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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0억년 전 가장 오래된 ‘초신성’ 포착

    110억년 전 가장 오래된 ‘초신성’ 포착

    지금까지 발견한 것 중 가장 오래 전에 폭발한 초신성이 목격됐다. 캘리포니아 대학 제프 쿡 박사가 이끄는 천문학 연구진은 하와이 마우나키아 산 정상에 있는 카나타-프랑스-하와이 천문대에서 110억년 전 일어난 초신성 두 건을 포착하는데 성공했다. 초신성은 수명을 다한 별이 폭발하면서 순간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했다가 서서히 빛이 사라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번에 발견한 두 건의 초신성은 110억 년 전 태양의 50배 질량에 달하는 두 항성이 폭발한 사건으로, 우주가 137억 년 전 탄생한 것을 놓고 봤을 때 우주 생성 초기에 일어난 현상이다. 또 지금까지 목격한 것 중 지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발생한 것으로 기록됐다. 이전까지는 지구로부터 60억 광년 밖에서 일어난 것이 학계에 보고된 가장 멀리서 일어난 초신성이었다. 연구진은 “4년 간 일정 영역을 촬영한 사진들을 조합하고 비교하는 기법을 사용해 우주 끝에서 일어난 항성 폭발 장면을 목격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과학저널 네이처(Nature)에서 주장했다. 한편 학계에 보고된 가장 가까운 초신성은 17세기에 목격된 것으로, 당시 초신성은 지구로부터 불과 2만 광년 정도에서 일어나 육안으로 목격될 정도였다고 알려졌다. 이미지=초신성 일러스트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최동호 오솔길 산책] 여름 도시의 빛과 소쇄원의 바람

    [최동호 오솔길 산책] 여름 도시의 빛과 소쇄원의 바람

    여름 도시의 빛은 화려하다. 현란한 색들이 밀림처럼 눈앞을 가로막아 꼼짝도 못하고 땀만 흘리고 있는 것 같다. 화려한 여름 도시의 빛깔 뒤에 온갖 욕망이 번득인다. 오늘의 우리가 처한 암담한 현실은 모두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거나 방향을 바꿀 생각은 아예 없는 사람들이 도처에서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진실을 말해 줄 사람도, 진실을 경청할 사람도 사회의 중심에는 없는 것 같다. 공포와 독단이 지배적이다. 답답한 마음을 씻어 보고자 담양 소쇄원(瀟灑園)을 찾기로 하였다. 알려진 대로 소쇄원은 개혁정국을 주도하던 조광조가 기묘사화(1519년)로 능주로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자 그의 문하였던 양산보(1503~1557년)가 출세의 뜻을 버리고 자연 속에 숨어 살기 위해 건립한 정원이다. 하늘로 치솟은 죽림 사이로 드리운 그늘을 지나 소쇄원에 도달했다. 소쇄원은 예상보다 협소하지만 아기자기하게 중첩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계류를 뒤에 두고 대봉정(待鳳亭)이 있고 조그만 계곡을 건너 광풍각(光風閣)이 있고 그 뒤에 제월당(霽月堂)이 있었다. 제월당은 ‘비 갠 하늘의 상쾌한 달’이란 말이요, 광풍각은 ‘비 갠 뒤 햇빛 가득 머금은 청량한 바람’이라는 말이다. 소쇄원에서 직접 본 것은 작열하는 햇빛 속에 잔뿌리가 드러난 나무줄기요, 메마른 계류였다. 실오라기 같은 물이 흐르고 있을 뿐 소쇄원 어디에도 시원한 바람은 없고 메마르고 잔인한 햇살이 칼날처럼 빛나고 있었다. 16세기 전후 조선의 정치적 구도는 사림파와 훈구파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그들의 세력이 교체될 때마다 사화가 일어나고 이는 그 후 당쟁으로 발전되어 조선조의 망국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나라가 망하는 일이 있어도 당리댱략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일도 마지않았던 것이 조선조 사색당쟁의 폐단이 아니었던가. 오늘의 현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치 눈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인기에 편승하려는 권력투쟁 아니면 누가 뭐라 해도 소신껏 나가겠다는 소통부재의 독선이 지배하는 것이 오늘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 상황이다.  혹자는 양산보가 건립한 소쇄원을 양반 사림의 호사 취미라 몰아붙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쇄원은 호남의 사림이 도학과 절의라는 그들의 자존심을 지키고 힘들여 일구어나간 전통문화의 한 증거이다. 세속의 욕망을 버리고 자연에 은둔하기로 한 그들에게 소쇄원은 16세기 한국문화의 새 전통을 창출하였던 소통의 공간이다.  권력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갔어도 그들을 지켜 주는 문화적 자존심으로 인해 그들은 당당하게 생을 살아나갈 수 있었다. 소쇄원을 중심으로 모여든 송순, 정철, 기대승, 김인후, 고경명 등은 이후 거듭된 사화는 물론 임진왜란의 위기도 극복하는 저력을 길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문화적 자부심 위에서 17세기 후반 겸재 정선을 필두로 진경산수화가 전개되어 비로소 한국의 산과 들이 우리들 자신의 손에 의해 미학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한 것일 터이다. 기대승이나 김인후의 도학이나 송순이나 정철의 가사문학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문화적 전통의 깊이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고갈한 소쇄원의 계류에서 오늘의 난마와 같은 정치적 현실을 돌아본다. 양상은 다르지만 진보와 보수의 격돌은 언제나 역사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 이 뜨거운 정치판에 한바탕 시원한 장맛비가 쏟아졌으면 좋겠다. 소쇄원 광풍각의 청량한 바람이라도 불어 대결적 구도를 만들어 낸 당사자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진실을 말하게 하고 이를 실천하는 사람들로 탈바꿈시켰으면 좋겠다. 최동호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
  • “韓, 17세기 이후 족보 성행… 철저히 부계 중심으로 기록”

    “韓, 17세기 이후 족보 성행… 철저히 부계 중심으로 기록”

    족보(族譜)는 한 집안의 내력을 들여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당대의 사회구성, 종족제도 등을 엿볼 수 있는 역사 자료이다. 족보는 중국 고대에서 비롯됐는데 송나라때 비교적 완성된 형태의 족보가 등장했고, 명청대에 이르러 전성기를 이뤘다. 한국 족보와 일본 계보 기록은 중국 족보의 영향을 받았지만 나라마다 특성은 조금씩 다르다.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의 족보를 비교연구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10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연구소에서 강원대 산학협력단 주최로 ‘동아시아 족보 자료의 구조와 활용 방안’을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린다. 차장섭 강원대 교수, 호다테 미치히사 도쿄대 교수, 유상광 타이완 국립정치대 교수가 각국 족보 구조의 특성을 발표하고 이건식 한중연 연구원이 족보의 학문적 활용을 위한 방안을 소개한다. 차 교수는 미리 배포한 논문 ‘한국 족보의 유형과 내용’에서 우리나라 족보는 조선 시대 왕실 족보가 간행되면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고려 때도 가계 기록이 있었으나 족보 형태는 아니었다. 족보는 조상에 대한 가계 기록을 체계화해 서책으로 편찬한 것을 말한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족보는 1476년 간행된 ‘안동권씨성화보’다. 사가(私家)의 족보 편찬은 17세기에 접어들면서 활발하게 이뤄졌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명문가가 몰락하는 대신 신흥세력이 대두해 족보를 경쟁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국가가 전란으로 인한 재정부족을 벌충하기 위해 공명첩을 팔고, 군공면천(軍功免賤)을 실시하면서 신분질서가 해이해졌다. 이 틈을 타 명문가는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자 족보를 보강했고, 신흥세력은 미천한 가계를 은폐하고 가문의 품격을 높이고자 족보를 위조했다. ●조선시대 왕실족보 간행되면서부터 시작 17세기를 기준으로 족보의 수록 내용은 변화한다. 조선 전기 족보는 부계와 모계를 모두 기록하는 내외보로 자녀와 친손, 외손을 차별하지 않았으며 자녀를 기록하는 순서도 남녀구분 없이 출생순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족보는 외손을 제외한 친손만을 기록하고 출생연도와 상관없이 선남후녀의 순서로 기록하는 등 철저하게 부계중심으로 이뤄졌다. 또한 조선 전기 족보에는 양자가 일반화되지 않았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점차 활성화됐는데 이는 종가사상이 강화됐음을 보여준다. 차 교수는 “족보 기록 형식이 달라진 것은 성리학의 심화와 예학의 발달, 종법적 가족제도의 정착 등 당시 사회의식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흥세력 미천한 가계 은폐위해 족보 위조 유 교수는 논문 ‘중국 근세 족보의 구성 형식’에서 “송원 시기에 전해온 원본 족보는 없으나 현존하는 송원 문집속에서 두 시대에 여러 사대부와 사인이 족보 편사작업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면서 “명대 중기 이후부터 형식과 내용이 증가하는 등 새로운 발전을 이뤘다.”고 밝혔다. 호다테 교수는 ‘일본 역사 계보 자료에 대한 개관’에서 계도(系圖)의 시대라고 불렸던 14세기의 가계 기록을 분석한다. 한편 이건식 연구원은 ‘학문적 활용을 위한 족보 자료의 사실정보화 방법 연구’에서 족보 자료의 디지털 정보화 작업을 체계적으로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양재역에 가면 서초역사 한눈에

    양재역에 가면 서초역사 한눈에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 가면 1950년대 말죽거리 풍경과 196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 등 과거 서초의 모습을 담은 진귀한 사진과 자료를 감상할 수 있다. 서초구는 선사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토지와 주택의 변천사는 물론 서초의 과거와 최근의 모습을 소개한 ‘토지·주택 역사자료 전시회’를 다음달 2일까지 연다고 29일 밝혔다. 전시회에서는 고문서나 고지도, 옛 사진, 항공사진 등 총 60여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5개 테마로 나뉜 이번 전시회에서는 ▲선사시대~현대주택 전경 ▲1580~1920년대 고문서에 남겨진 토지의 역사 ▲17세기~현재의 모습을 지도로 본 변천사 ▲1972년~현재 풍경을 항공사진으로 본 서초 ▲사진으로 본 과거의 모습 등이 선을 보인다. 특히 ‘사진으로 본 과거 서초의 모습전’을 통해 1950년대 서래마을 풍경과 1960년대 잠원동 나루터 모습, 1970년대 서초동과 방배동 일대 모습, 1980년대초 강남고속터미널 주변 풍경, 1990년대 법조단지 전경 등이 고스란히 담긴 다양한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박성중 구청장은 “많은 시민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회 무대를 유동인구가 많은 지하철 역사에 꾸몄다.”면서 “고문서나 사진, 지도, 항공사진 등을 통해 우리 고장의 역사와 선조들이 남긴 귀중한 삶의 흔적, 문화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장미의 화가’ 김재학 작품전

    ‘장미의 화가’ 김재학 작품전

    20세기의 추상화를 넘어서 설치·영상 작품들이 홍수를 이루는 21세기 현대미술에서 아직도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사실주의 화풍의 정물화(Still life)가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겠느냐? 하고 작가 김재학(57) 씨에게 묻는다면 그는 ‘그렇다.’고밖에 답할 수 없다. 초등학교 5학년 시절부터 ‘이발소 그림’과 탤런트 태현실 등의 얼굴을 완벽하게 묘사해 주변에서 감탄을 받았던 그는 정규 미술 교육도 없이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걸어온 국내에서 몇 안되는 작가다. 인천 남중 2학년 때 미술반에서 활동하던 중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김 작가는 “사실주의 화풍에 대해 지적들이 있지만, 내가 가장 잘하는 분야를 떠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주영, 이구택, 홍라희, 이건희, 김보경, 박정구, 박성용 등 대기업 총수들의 초상화 작가로도 유명하다. 최근 몇년 사이에는 ‘장미의 작가’로 더 알려진 김 작가가 극사실주의적 화풍으로 그려낸 꽃그림 30여 점을 20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전시한다. 그의 꽃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부에서는 “국민소득 2만달러 전후로 꽃그림들이 팔린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반면 김 작가는 “30분만 바라보고 있으면, 다른 작가들의 정물화와 달리 내 그림에서 품위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배경을 완전히 삭제하고, 빛의 반사를 다소 과장해서 그린 그의 꽃그림 정물은 선명하고 영롱하다. 사진을 찍어 포토숍으로 ‘뽀샵’처리를 해도 그런 느낌을 만들어 내기 어려울 정도다. 모델이 될 예쁜 꽃을 찾아 꽃시장을 열 바퀴 이상 돌아본다는 그의 꽃그림은 아마도 ‘Best of Best of Flower’ 일 수도 있겠다. (02)734-0458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서울광장] 신자유주의와 마릴린 먼로/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신자유주의와 마릴린 먼로/오일만 논설위원

    신자유주의가 곳곳에서 휘청거리는 요즘 이상하게도 마릴린 먼로의 비극이 자꾸만 떠오른다. 세기의 연인이자 섹스 심벌인 그녀의 인생 역정과 극성기에서 몰락의 길로 향하는 신자유주의는 너무도 닮은 꼴이다. 전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던 1950년대 말 미국의 풍요로움과 자유분방함은 그녀를 통해 전세계에 투영된다. 스크린에 비치는 미국의 번영과 자유가 고혹적인 먼로와 조화를 이루면서 ‘아메리카 드림’으로 포장된다. 대중의 박수갈채가 커질수록 그녀의 내면은 더욱 초라하게 시든다. 화려한 외부와 내적 공허함의 모순은 결국 그녀를 파멸의 길로 내몰았다. 실체 없는 가치 상승에 환호하다 물거품처럼 터져 버린 작금의 경제 위기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자유와 풍요는 미국을 지탱하는 양대 좌표이고 신자유주의 경제 이론은 이를 구체화시키는 무기였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직후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신자유주의는 인간 이성이 도달하는 역사의 필연이자 마지막 단계’라고 선언한다. 자만은 위기와 파멸의 씨앗이다. 어찌 보면 세계 불황의 근본 원인은 승리에 도취한 신자유주의의 오만에서 비롯됐는지 모른다. 물론 몇가지 착시 현상이 있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시장 메커니즘은 안정적’이란 명제를 맹신했다. 이들이 주류 경제학의 주도권을 쥐면서 금융 자본의 고삐는 더욱 느슨하게 풀렸다. 시장 만능주의가 금융공학과 결합되면서 악몽이 현실이 돼간다. 통제 불능의 ‘현대판 프랑켄슈타인’이 탄생한 것이다. 최하 신용도 계층에게 100% 수준의 주택 담보 대출을 해 줬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역시 금융공학의 맹신에서 비롯됐다. 17세기 유럽을 광기의 투기열풍으로 몰아넣었던 ‘튤립 공황’과도 맥이 닿는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시장주의와 세계화의 명제는 달콤했고 장밋빛 미래는 많은 사람들을 설레게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자유주의를 ‘독주’에 비유한다. 독주를 마시면 순식간에 취기가 오른다. 이성은 마비되고 감성은 허황된 꿈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그 결말은 참혹하다. 우리는 IMF 이후 지난 10년간 독주에 취해 있었다. 시장의 자유가 주는 효용을 중시하고 그 폐해는 애써 무시했다. 물론 비효율적인 경제 시스템이 개선됐고 재벌개혁에도 일정한 성과를 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 전반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대표적인 것이 양극화 문제다. 10년만에 중산층 250만명이 하위계층으로 몰락했다. 상위와 하위계층 20%의 소득 격차는 사상 최고치인 9배나 됐다. 효율과 성장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필연적 수순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바마 미 대통령이 주창하는 ‘신 뉴딜정신’은 자유 방임주의에 대한 반성이다. ‘뉴딜 정신’의 회복을 부르짖던 폴 크루그먼이 2008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불황이 오면 출발점으로 돌아가 뜻을 바로잡아야 한다.’ 경영의 신으로 불렸던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말이다. 금융위기의 1막을 넘긴 한국 경제는 어디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아야 하는가. 다름아닌 ‘땀과 노력’이라는 경제의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렵지만 건전한 투자와 기술개발의 힘든 길을 가야 한다.”는 장하준 교수의 말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땀과 노력, 나눔과 공존의 경제 가치 회복이야말로 한국경제의 장기발전 모델이 돼야 한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불·화석연료·인공태양 등 에너지를 향한 인류의 끝없는 욕망

    인간을 동물과 구별짓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가 거론됐다. 직립보행한다, 말을 한다, 도구를 사용한다, 농사를 짓는다, 사회를 구성한다 등등. 그러나 20세기 이후 사회생물학이 발전하면서 그런 것들이 더 이상 인간과 동물을 갈라놓는 잣대로 사용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럼 뭐냐? ‘태양의 아이들’(이창희 옮김, 세종서적 펴냄)의 저자인 앨프리드 W 크로스비 텍사스 대학의 역사·지리·미국학 교수는 ‘불을 소유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벼락이 떨어진 나무에 붙은 불을 보고 인류나 동물 모두 두려워했지만 인류는 동물과 달리 불을 이용해 요리를 해서 고기 등 단백질을 안전하게 먹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은 단백질 섭취를 위해 수십만 년 동안 먹어야 했던 ‘샐러드’에서 해방됐고 날것을 소화하기 위해 강화돼야 할 이빨과 소화기관은 작아졌다. 또 쉽게 에너지와 단백질을 공급하게 되면서 뇌가 커지고, 뇌가 커지니 생각도 많아졌다. 또한 원시 인류들은 불 덕분에 화살촉을 만들어 사냥을 하고, 숲을 태워 동물들을 불러모으고, 화전을 일구고, 모닥불가에 모여 앉아 교류하고 대화하면서 정교한 사회, 국가까지 만들어나갔다. 따뜻한 아프리카를 벗어나 인류가 극한의 툰드라 지역까지 거주지역을 확장시킨 것도 불 덕분이다. 크로스비 교수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인도양 안다만 군의 부족 사람들이 여전히 중기 구석기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독자적으로 불을 일으킬 능력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라고 ‘증거’도 내보인다. 불을 소유하는 능력이야말로 인간과 동물을 갈라놓는 위대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불의 사용으로 시작된 인류의 문명사 크로스비 교수는 ‘태양의 아이들’ 초반부에 ‘불의 소유와 활용’을 상당히 강조하는데 이는 불의 사용으로 시작된 인간의 역사가 ‘에너지를 향한 끝없는 욕망의 역사’이자 ‘문명사’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동물과 달라진 인류는 말이나 소의 힘을 빌리기도 하고, 물의 낙차를 이용해 풍차를 만들거나, 풍력을 이용해 배를 움직이기도 했다. 질적 변화가 일어난 것은 태양의 선물인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을 발명한 것이다. 인류는 전기와 원자력, 더 나아가 이제 태양 에너지와 흡사한 에너지인 수소핵융합을 통해 ‘인공 태양’을 건설하려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이같은 에너지의 확보와 이용은 권력이었다. 인류의 경제적 발전과 인류 대이동을 이끌기도 했다. 1830년부터 1914년까지 고향을 떠나 이민한 사람들의 수가 1억명에 달한다. 불을 소유한 뒤 인간이 동물과 달라졌듯이 화석원료(석탄)를 에너지화하는 방법을 알아낸 민족들은 그렇지 못한 민족과 다른 길을 걸었다. 대표적인 것이 17세기 말 시작된 산업혁명이다. 크로스비 교수는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700~800년 전 송나라 때(1078년)에 숯을 이용해 12만 5000t의 철광석을 처리하는 등 이른바 산업혁명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 후 400년 뒤 유럽이 이룩한 철 생산량의 두배다. 그러나 송나라의 산업혁명은 숯의 원료인 나무가 부족해지면서 좌초했다. 이 산업혁명을 완성한 것은 석탄이 그 나라 땅에 지천으로 깔려 있던 영국이었다. 산업혁명이 유럽에서 정착하자 세계 경제는 근본적으로 흔들렸다. 18세기 인도, 중국, 유럽은 전세계 총생산의 70% 정도를 차지했고 이 70%를 세 나라가 각각 3분의1씩 나눠 갖고 있었다. 그러나 1900년이 되자 세계 제조업에서 중국의 비중은 7%, 인도는 2%로 추락했고 유럽은 60%, 미국은 20%까지 치솟았다. 영국의 방적공장에서 나오는 싼 면직물이 인도의 전통 섬유산업을 초토화했고 미국에는 대단위 목화농장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에너지 확보는 불가능? 이같은 세계사적인 변화는 현재 전 세계 각 나라가 신생 에너지 개발 전쟁에 돌입한 이유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에너지를 둘러싸고 일어난 전쟁은 1992년 걸프전이나 2000년대의 이라크 전쟁뿐이 아니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 역시 에너지를 얻기 위한 제국주의적 경쟁 때문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현재와 같이 에너지를 낭비하는 상황에서는 전 세계가 지탱해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물 쓰듯 했던 석유는 가격이 너무 비싸지고 있다. 인류가 화석원료인 석탄을 이용해 증기기관을 만들어 새로운 에너지로 갈아탔듯이 신생 에너지, 재생에너지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인류가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전 세계 옥수수로 바이오연료를 만들거나, 전 국토를 태양전지판으로 덮지 않는 한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방법은 하나다. 우선 선진국 사람들이 에너지를 물 쓰듯 하는 현재의 생활방식을 버려야 한다. 무절제한 화석원료의 소비야말로 암페타민(마약) 중독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고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는 무한정 늘어나기만 했지만 앞으로 에너지에 대한 욕망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인류 전체의 몰락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경고를 크로스비 교수는 남기고 있다. 가상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들이 거대한 통 안에서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에너지를 공급하는 객체로 존재하는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암울한 미래를 맞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1만 4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감쪽같이 사라진 피카소 스케치북

    영화 속 한 장면이 현실이 됐다. 입체파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스케치북이 프랑스 파리 한복판의 피카소 박물관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피카소 박물관의 직원들이 9일(현지시간) 유리상자에 보관돼 온 피카소의 스케치북이 없어진 사실을 확인하고 프랑스 경찰에 신고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0일 보도했다. 피카소의 그림 작품 33점이 실린 스케치북의 추정가치는 최소 970만달러(120억원)에서 최대 1390만달러(173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현재로선 도난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가 어렵다고 통신은 전했다.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은 데다 도난 당시 박물관 내부의 비상등조차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17~24년에 피카소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스케치북 작품은 박물관 1층 전시실에 전시돼 왔다.도난 사실이 확인된 날은 박물관의 정기 휴관일이었으나, 몇몇 외부 관람객들이 특별히 초대됐다고 박물관 측은 밝혔다. 전시 중인 작품들 가운데 회화 2점의 합산 가격만 무려 6600만달러에 이르는 것이 있을 정도로 이 박물관은 피카소의 그림 250여점과 1500점의 스케치, 160점의 조각상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 경찰은 박물관 건물이 17세기에 지어져 보안이 허술하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은 대대적 개보수 공사를 위해 몇 달 뒤 약 2년 동안 장기 휴관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미술품 도난 전문 경찰은 “없어진 작품은 미술품 시장에서 수백만 유로에 쉽게 팔려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의 말라가에서 태어나 파리를 예술활동의 터전으로 삼아오다 1973년 프랑스 남부 무쟁에서 숨을 거뒀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140억원 상당 ‘피카소 스케치 노트’ 도난

    140억원 상당 ‘피카소 스케치 노트’ 도난

    20세기 미술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의 스케치 노트가 파리 박물관에서 도난당해 당국이 수사에 나섰다. 프랑스 문화부는 지난 9일 피카소 박물관에 전시 중이던 노트가 사라졌으며 곧바로 추적에 나섰다고 전했다. 스케치 33점이 담긴 이 노트는 특수 제작된 유리 케이스에 보관돼 있었으나 도둑은 유리관을 깨지 않고 노트를 훔쳐간 것으로 알려졌다. 박물관 측은 9일 아침 노트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는 경찰에 신고했으며 수사를 위해 9일 하루 휴관했다. 그러나 노트가 전시된 특수 유리 케이스에 큰 손상이 없고, 감시 시스템이 설치되지 않은 구역에서 도난사고가 발생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피카소가 1917년부터 1924년까지 그린 스케치 33점이 담겨있는 이 노트는 1100만 달러(약 140억 원) 상당의 보물이다. 가로 세로 길이는 각각 16㎝·24㎝이며, 겉장에는 금빛 바탕에 반짝거리는 붉은빛의 글자 ‘Album’이 새겨져 있다. 경찰은 17세기에 지은 이 박물관의 보안이 매우 허술하며 현재까지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편 피카소의 그림이 도난당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7년에는 6600만 달러(약 823억 원)상당의 그림 두 점을 피카소의 손녀딸 집에서 도난당했다 되찾았다. 또 1994년에는 4400만 달러(약 549억원) 상당의 그림 7점이 갤러리에서 사라졌으며, 이 그림들은 6년 뒤에야 되찾을 수 있었다. 사진=theage.com.au(피카소 대표작 ‘꿈’)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겨울의 사랑/김성호 논설위원

    ‘한손에 칼, 한손에 쿠란’. 이슬람교의 호전성을 빗대 많은 이들이 입에 올리는 상징문구이다. ‘중세 십자군전쟁 중 만들어낸 매터도’란 보편주장에도 가시지 않는 전도(顚倒)의 말. “종교의 믿음이란 마음으로 시작되는데 칼을 들고 사람마음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최근 성공회대 강연회 연사로 나섰던 한 무슬림의 강변이 사람들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었을까? 실상을 왜곡한 가치의 전도가 특정 대상을 겨눈 여론몰이로 향할 때 큰 재앙을 낳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스케이프 고트(scape goat)’. 고대 유대인들이 사람의 죄를 양에 뒤집어씌워 황야로 내쫓은 속죄양·희생양의 비극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일본 간토지역에서 10만여명이 사망하고 3만 7000여명이 실종된 1923년의 간토대지진. “재난을 틈타 방화와 테러·강도를 일삼는다.”는 흑색선전에 들뜬 광기의 일본인에게 6000명 이상의 무고한 조선인이 처참하게 죽어갔다. 15∼17세기 중세 유럽에서 극성을 부렸던 마녀사냥. 종교전쟁, 30년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상황과 기근, 페스트로 사람들이 죽어넘어가던 시절. 사회혼란과 불행의 원인으로 몰려 집단 떼죽음을 당한 비극의 마녀사냥도 그리스도교 지배사회속 종교·체제유지를 위한 집단 매터도로 평가된다. 이념·정치적 시인으로 인상지워진 ‘풀’의 시인 김수영의 미공개 시 ‘겨울의 사랑’이 발견됐다. ‘늬가 준 욧보의 꽃잎사귀 우에서 잠을 자고 늬가 준 손수건으로는 아침에 얼골을 씻고…이만하면 나는 너의 애정으로 목욕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 6·25전쟁 중 거제도수용소에서 만난 한 간호사를 향한 연시. ‘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데 있는데’(1960년 ‘김일성 만세’중)라고 썼던 김수영의 색다른 면모를 들추며 문단이 시끄럽다. ‘민족주의 저항시인’은 사랑시 한 편쯤 써서는 안 되는 것인가. 연시 한편이 발견됐다고 ‘민족주의 저항시인’의 인상과 가치가 바뀌는 것일까. 원래 그 자리에 있었고 지금도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는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왜곡한 채 흔들어댔을까. 김수영의 저항 이미지도 ‘내편 네편’의 편향 탓은 아닐지.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우리말 여행] 우레

    15~17세기 형태는 ‘울에’였다. ‘울’은 ‘울다(鳴)’의 ‘울-’이고 ‘에’는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다. ‘울에’를 연철한 ‘우레’가 널리 쓰이게 됐고 표준 형태로 자리 잡았다. ‘우레’를 의미하는 한자 ‘뢰(雷)’를 유추해 ‘우뢰(雨雷)’로 잘못 쓰기도 하는데, 우레는 이처럼 고유어다. 이에 해당하는 한자어는 ‘천둥’이다. ‘천동(天動)’의 ‘동’이 ‘둥’으로 변했다.
  • 300년전엔 서양이 동양을 흠모했었다

    300년전엔 서양이 동양을 흠모했었다

    정복한 땅의 크기를 볼 때 세계사적으로 최고의 정복왕은 누구일까. 헬레니즘 문화를 꽃피운 고대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일까, 서양 문화의 원형이 된 로마제국의 카이사르일까, 동유럽인 헝가리에까지 침략의 손을 뻗친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일까. 답은 물론 12~13세기 유럽을 경악시킨 칭기즈칸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까닭은 동양이 현재 시점에서 겪고 있는 서양에 대한 콤플렉스가 세계사를 거꾸로 1000년만 돌리면 우월감으로 변화되고, 최소한 300년만 돌려도 그 콤플렉스는 찾아보기 힘든 여러 정황이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동양과 서양의 위대한 만남(1500~1800)’(데이비드 문젤로 지음, 김성규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은 16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동양과 서양 간의 문화교류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미국 베일러대 교수로 19세기 말 어떤 힘에 의한 일방적인 소통의 시대로 나가기 전의 모습을 보여 준다. 부제인 ‘대항해 시대, 중국과 유럽은 어떻게 소통했을까’가 제시하듯 16세기 동양(정확하게는 중국)의 철학과 예술은 유럽의 종교와 과학과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시대에는 일방적인 쏠림현상이 없다. 오히려 중국의 차와 실크, 도자기가 유럽으로 밀려들어간다. 도자기의 경우 17세기가 돼서야 유럽은 중국이 유럽에 수출한 수준의 도자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그 사이에 유럽의 귀족과 왕들은 중국 도자기 방을 만들고, 도자기 수집에 열을 올렸다. ●16세기 유럽의 왕·귀족 中도자기 수집 열광 고리타분해 보이는 유학과 공자가 서양에 소개되면서 서양 철학사와 사상사에 일대 반향이 일어난다. 볼테르를 위시한 프랑스의 계몽주의자들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중국 사회와 유럽의 부패한 가톨릭 사회를 대조했다. 볼테르는 중국의 종교는 미신이나 터무니없는 전설이 거의 없다고 호평한 반면, 기독교에는 미신 등이 가득하다고 비난했다. 영국의 철학자 마르크스, 벤저민 프랭클린과 토머스 제퍼슨 같은 미국 정치인들도 중국의 법률 체계와 귀족 정치를 흠모했다. 독일의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1646~1716)와 같은 저명한 지식인은 스스로 발견해낸 우주의 진리가 유가 철학에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17세기 중국의 역사는 유럽의 정체성에 지적인 도전도 이뤄낸다. 유럽에서 학문의 여왕은 신학이었지만, 중국에선 역사였다. 세계에서 가장 길게 이어지는 문명을 가진 중국은 전문 학문으로서 역사학이 있었다. 역사학을 만난 17세기의 유럽은 성경에 정확한 연대기를 만들려는 열정을 갖게 됐다. 결국 영국 성공회의 대주교인 제임스 어셔는 라틴어로 된 ‘신구약 편년사’를 출판해 아담 창조의 시기를 기원전 4004년, 노아의 홍수를 기원전 2349년 등으로 정하기도 했다. 그럼 동양의 서양에 대한 씻을 수 없는 콤플렉스(일부 동양인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는 언제 시작됐나. 19세기 말 중국 필리핀 마닐라 등이 서양의 식민지로 전락한 뒤 200년간 쌓여온 감정이다. 원래 중국은 자신들 세계의 밖을 ‘오랑캐’에 불과하다고 했지 않았나. 동양에 대해 서양인들이 우월한 의식을 갖게 된 것도 산업혁명과 과학의 발전, 15세기 말~16세기 ‘대항해의 시대’를 통해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등을 식민지로 성공적으로 개척한 불과 200년 안팎에 형성된 감정일 뿐이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동양에 대한 우월의식 사실 바스코다 가마(1497)나 콜럼버스(1492) 등을 유럽의 ‘대항해 시대’ 또는 ‘지리상 발견의 시대’의 원조라고 주장하는 것도 서양의 시각에서 그럴 뿐이다. 이보다 70년 전 명나라 영락제 때 환관 정화는 함대를 이끌고 1405~1433년까지 7차례나 ‘서양원정’을 떠났다. 그때 인도는 물론 아프리카까지 도달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것이다. 더 나아가 영국 해군 제독 출신인 개빈 멘지스는 ‘1421년 가설’을 통해 정화가 호주와 아메리카 발견까지 해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이 주장은 현재 가설로 존재하고,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중국 측에서 배를 띄우는 등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 시기에 동서양 문화의 가교는 예수회 신부들이었다. 문젤로 교수는 초기 예수회 신부들이 영아 살해, 아동 인신매매, 매춘 등이 자행되는 중국 사회를 거침없이 비판하기도 했다. 1740년대 중국을 방문한 영국의 해군지휘관 조지 앤슨도 중국을 비열한 관리들이 백성을 착취하는 나라라고 맹비난했다. 번역자인 김성규 전북대 역사학과 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지금까지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을 규정해온 것들은 모두 서양 중심주의적인 것으로, 19세기 후반 이후 서양이 동양을 압도했기 때문”이라면서 “그러나 그 이전의 시기를 돌아보면 동양의 우월성이 도드라지는 만큼 중국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시점에서 동양의 여러 문제를 새롭게 점검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1만 4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미동맹의 위험한 이데올로기화

    한·미동맹의 위험한 이데올로기화

    한·미동맹은 반세기 넘게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지배적인 전략 패러다임으로 확고한 위치를 점해 왔다. 국권침탈과 식민 지배, 전쟁 등 혹독한 근대화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한국 사회는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패권국가인 미국에 대한 의존성을 키워 왔다. 이런 풍토 아래서 한·미동맹을 비판적 혹은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반미주의’로 낙인찍혔다. 한·미동맹이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위한 선택적 전략의 수준을 넘어 이데올로기 차원으로 승격됐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미국 외교와 국제정치 전문가인 이삼성 한림대 교수는 한·미동맹의 이데올로기화에 따른 위험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과정에서 시선을 전통시대 동아시아 2000년의 역사로 돌려 그 근원과 형성 과정을 파헤치는 데 주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최근 출간한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2’(한길사 펴냄)에 쏟아냈다. 각각 840쪽과 67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전통시대 동아시아 2000년과 한반도’란 부제가 달린 1권에서 저자는 한·미동맹의 이데올로기화가 중국과 일본 등 주변 국가를 타자화함으로써 합리적인 공존의 모색을 봉쇄하는 위험성을 지녔다고 지적한다. 패권국가와의 동맹에 대한 지나친 몰입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 중심의 화이관과 맞닿는다. 중화주의적 세계관은 통일신라 이래 중화제국과 문화적·경제적 교류를 증진하고 수백년간에 걸친 평화적 관계를 영위하는 중요한 자산이었다. 그러나 중화주의에 대한 중독은 중화질서 바깥 세력에 있는 북방민족이나 일본을 타자화하는 현상을 낳았고, 이는 곧 이들 세력의 역동성에 둔감해 외세 침탈 등 고난을 겪는 상황을 자초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10~11세기 거란의 침입, 13세기 몽골의 침입, 16~17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이 그런 예다. 다만 저자는 서양식 식민주의와 중화주의적 화이관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서양식 식민주의가 정치·군사·경제 등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착취적인 성격을 드러낸 데 비해 동아시아의 전통적 질서는 공식적 위계를 전제하되 약소 사회의 내적 자율성을 전제한 제3의 질서를 만들어 냈다고 주장한다. 2권 ‘근대 동아시아와 말기 조선의 시대구분과 역사인식’은 19세기 동아시아 질서와 그 안에서 한반도의 운명이 어떻게 식민지화됐는지 정리한다. 19세기는 동아시아 질서에서 그 이전 2000년의 전통질서와 20세기 중엽 이래의 현대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그 한세기 안에서 동양과 서양의 관계가 전복되었고, 그와 함께 동아시아 내부의 질서 또한 전복되었다. 그 와중에 20세기의 근대사회로 한국인들이 진입해간 경로는 여타 약소국가 사회와 민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회와 국가권력의 노예로 된 식민지화를 통해서였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국제정치학자로서 저자의 궁극적 관심은 21세기 동아시아 질서에서 전쟁이 초래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최소화하는 데 한국이 기여할 백년대계의 전략을 탐색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연구 성과는 이어서 출간될 3권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21세기 팝아트 진수를 만나다

    21세기 팝아트 진수를 만나다

    완벽하게 둥근 공 모양의 얼굴은 표정이 없지만, 새틴 드레스나 블루 진, 데님 스커트에 웨지힐을 신고 즐겁게 춤을 추고 있다. 굵은 테두리의 인체 라인은 아주 인상적이라 어디선가 한번이라도 봤더라면, 두 번째부터는 당장에 알아볼 수 있다. 영국 출신 팝아트 작가 줄리안 오피(51)의 작품으로, 모델은 스페인 현대무용가인 카트리나와 영국 로열발레단의 앤이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 1, 2층에서 29일부터 5월31일까지 한 달가량 오피의 개인전이 열린다. 국제갤러리에 따르면 국내에서 공식적인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오피의 작품은 이미 국내 아트페어나 각종 전시, 잡지나 인터넷을 통해 자주 소개돼 있어 공식적인 첫 개인전이라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 “내 작품엔 日·벨기에 등 타 문화 반영” 1958년 런던에서 태어난 오피는 1960년대 앤디 워홀 이후 21세기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둥근 머리와 단순한 선으로 이뤄진 전신상, 여기에 친밀하고 섬세한 색채들이 특징이다. 오피는 영국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수학했는데 지난 3월 서울 청담동 PKM갤러리에서 국내 첫 전시회를 가진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68)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마틴은 의자, 커피포트, 샌들, 전구 등 일상적인 물건들을 아주 화려한 색채감으로 표현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개념미술의 1세대다. 오피는 1982년에 학교를 졸업했고, 마틴은 1994~2002년 그곳의 교수를 지냈으니 서로 직접적으로 사제의 연을 맺지는 않았다. 개인전을 앞두고 방한한 오피는 27일 기자 간담회에서 “나의 인물 초상 작품은 개별성과 보편성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면서 “인물 초상화의 경우는 18세기 일본의 판화작가인 우타 마로와 17세기 반 다이크의 초상화, 어린시절 읽은 벨기에 작가의 세계적인 만화 틴틴(우리 식으로는 ‘땡땡’)과 20세기 일본의 망가(만화)와 애니메(애니메이션)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오피는 이를 두고 “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라며 보편성을 강조했다. 오피는 초기에는 입체작품을 주로 했고, 1980년대 후반까지 후기 미니멀리즘 혹은 네오 미니멀리즘의 형태 작업을 했다. 특히 1991년까지 그의 그림의 주된 주제는 고요한 풍경으로 인물은 나타나지도 않았다. 특정 인물이 나타나게 된 시점은 1998년으로 미술행정가인 엘렌과 교사인 폴 등 주변 인물을 그리면서다. 그 후로 작가의 화가 피오나, 학생 마르코, 주부인 버지니아, 무용수인 브루스, 미술품 수집가, 화랑대표, 일본 판화의 딜러 켄과 그의 부인 등을 그렸다. 개별성에 보편성을 입히는 오피는 인물의 얼굴과 신체적 특징 같은 생략하고 단순화했다. 오피 자신이 직접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로 수정한 이미지들이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마치 표지판(사인보드·Sign Board)같이 느껴진다. ●LCD동영상 작품 등 30점 전시 현대 산업화의 상징인 LCD 위에 그린 초상화는 영화 ‘해리 포터’에서 본 인물사진이나 현상수배 전단지를 연상하면 된다. 꼼짝도 하지 않는 몸과 달리 눈동자가 살짝 움직이거나 인물화의 배경인 풍경속 구름이 흘러가거나 귀고리가 딸랑거린다. “21세기가 아니면 해 볼 수 없는 작업이었다.”고 오피는 말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 영국 테이트 모던, 뉴욕 현대미술관, 도쿄 국립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최신작들로 라이트 박스를 이용한 평면작품과 LED 동영상 작품, LCD 동영상 작품, 조각 등 총 30점으로 구성됐다. (02)733-8449.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26일 TV 하이라이트]

    ●MBC스페셜(MBC 오후 10시35분) 올 초 호주의 산불을 비롯해 아프리카의 가뭄, 유럽의 폭염, 미국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동남아시아의 사이클론 등 기후재해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기후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현상들은 모두 지구온난화와 관련이 깊다.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와 키리바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시급함을 강조한다. ●영상앨범 산(KBS1 오전 7시30분) 13세기 초 건설되어 16세기 중반까지 중앙 안데스 일대를 지배한 잉카제국. 페루의 옛 수도 쿠스코에는 옛 잉카문명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케추아어로 배꼽이라는 뜻의 쿠스코는 잉카인들에게 세계의 중심이었다. 남미 여행가 유원식씨와 함께 잉카 문명의 심장부인 마추픽추로 향한다. ●도전, 골든벨(KBS1 오후 7시10분) 호텔조리학과, 인터넷 비즈니스과, 디지털 정보통신과, 사이버 정보통신과. 학생 개개인의 특성과 취미에 딱 맞춘 특성화 교육의 산실로 정보계열과 조리계열로 양분된 대구 상서여자정보고등학교. 이 학교 학생들이 73대 골든벨을 향해 펼치는 50문제와의 대결을 지켜본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17세기 궁정화가로 세계 3대 명작 중 하나인 ‘시녀들’을 남긴 디에고 벨라스케스. 이 그림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데…. 로댕과 까미유 클로델, 고흐와 시엔. 세기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유명 연인들 그리고 아인슈타인과 한 여인의 특별한 로맨스가 펼쳐진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SBS 오후 8시50분) 설란은 금란이 가지고 온 와인을 마신 뒤 잠에 취해 기억 없이 스포츠센터를 또 찾아가 트레이너인 태우를 다시 만난다. 설란과의 우연한 수영장 만남에 강한 인상을 받았던 태우는 스포츠센터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설란을 보고 그 뒤를 쫓으며 폴라로이드로 설란의 모습을 찍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밤 12시20분) 또래보다 걸음이 늦다고만 생각했었던 수빈이. 4살이 될 무렵까지 걸음걸이가 불안정하고 다리에 힘이 없는 것이 걱정돼 찾은 병원에서는 자세한 병명을 얻을 수가 없었다. 한창 친구들과 함께 동네방네 뛰어 놀 나이인 열 한살 수빈이는 오늘도 집에만 있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5시30분) 몽골은 1년 중 7개월이 겨울이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몽골의 유목민들은 나무와 가축의 말린 배설물, 석탄을 연료로 사용한다. 하지만 이러한 재료를 이용한 난방은 비효율적이며 흙이나 물의 오염을 초래하기도 한다. 또 난방을 할 때 배출되는 매연은 더욱 심각한 대기 오염을 일으킨다.
  • 초현실의 돈키호테 판화로 만난다

    초현실의 돈키호테 판화로 만난다

    문학과 미술의 통섭이라고 해야 할까. 서울 관훈동 윤갤러리의 ‘살바도르 달리의 돈키호테 판화전’이 그렇다. 윤 갤러리는 23일인 ‘세계 책의 날’을 맞아 17세기 유럽 문학의 자랑거리인 스페인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세르반테스(1547년~1616년)를 기념하는 전시를 연다. 4월23일은 세르반테스가 사망한 날로, 유네스코가 책의 날로 지정했다. 가난한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세르반테스는 이미 400여년 전 국가의 파산상태와 개인적인 절망을 체험하면서, 그의 대표적인 소설 돈키호테에서 이상과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인물상을 그려냈다. 평생 가난하게 산 그는 전쟁으로 왼손에 장애를 입는가 하면, 알제리에서 노예로 5년간 지내기도 한다. 소설이 돈이 되지 않자 문학을 포기하고 세금징수원으로 살아가기도 했다. 현실의 어려움을 겪은 그이기에 소설 속에서 무모하고 현실감 없는 돈키호테가 애마 로시난테를 타고 풍차를 쳐부수기 위해 돌진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비웃지만, 과연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상을 향해 뜻을 굽히지 않고 도전하는 돈키호테처럼 끊임없는 도전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도전정신에 감동한 20세기 스페인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돈키호테를 초인(超人)으로 그려냈다. 괴팍하고 독특하며 현실과 환상이 혼합되는 초현실주의적인 화법을 구현한 달리는 ‘돈키호테 판화시리즈’를 통해 삶의 일상성을 초월하는 꿈꾸는 자의 숭고한 정서를 담아내고자 했다. 석판화에서 돈키호테는 바위에 앉아 풍차가 보이는 마을을 내려다보는가 하면, 격렬하게 혼자만의 전쟁에 돌입하기도 한다. 창을 들고 방패를 위로 휘젓는 듯한 모습에서는 그의 혼란스러운 정신세계가 보이는 듯하다. 이번 전시에서 달리의 돈키호테 시리즈 판화 작품 12점과 달리의 다른 판화작품 7점 등 모두 20여점이 전시된다. 전시는 22일부터 28일까지다. (02)738-1144.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인사동 스캔들’로 본 가짜 그림 스캔들

    ‘인사동 스캔들’로 본 가짜 그림 스캔들

     오는 30일 개봉하는 영화 ‘인사동 스캔들’은 400억짜리 명화 ‘벽안도’를 둘러싼 유쾌 상쾌 통쾌한 한바탕의 사기극이다.  신인 감독이 꼼꼼하게 정성들여 만든 영화에는 볼거리들이 가득하지만 특히 그동안 말이나 사진으로만 접했던 위작(가짜 그림)의 제조 공정이 동영상으로 생생하게 재연된다는 점도 큰 재미다.  주인공 이강준 실장(김래원)은 고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유학한 천재 복원가다.명화를 복원하는 다소 생소한 복원가란 직업은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남자 주인공의 직업으로 등장한 바 있는데, 이때 영화의 배경은 이탈리아였다.  김래원은 어머니가 미술학원을 운영한 데다 국내 최고의 미술기관인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복원 전문가로부터 특별 개인지도를 받기도 했다.닭피,조개 껍질, 수백년 묵은 먼지,얼음보다 찬 깨끗한 계곡물 등을 이용한 명화 복원과 복제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진짜보다 흥미진진한 가짜 명화의 역사  ’인사동 스캔들’을 보기 전에 명화를 둘러싼 위작 스캔들의 역사를 안다면 훨씬 흥미진진하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다.  먼저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위작 스캔들로는 명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유명한 얀 베르메르를 베꼈던 반 메레헨이 있다.  17세기에 활동한 네덜란드의 ‘국보급’ 화가인 베르메르는 오랜 시간을 들여 사진을 찍은 듯 꼼꼼하고 정밀하게 유화를 그렸는데 실내에서 여성들을 주로 담은 그의 그림은 고요하면서도 관능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그의 대표작인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북구의 모나리자’로 칭송됐는데 영화로도 옮겨졌다.명화 한 장이 불러오는 상상력을 스크린에 채웠는데 스칼렛 요핸슨이 관능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하녀 역할을 맡았었다.  메레헨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네덜란드의 보물인 베르메르의 그림들을 나치에 팔았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서게 되자 사실은 자신이 그린 위작임을 실토한다.  법정에서 위작을 만들어내는 실력을 선보인 그는 문화재 반출죄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받는다.메레헨이 쓴 위작 수법은 오래된 그림을 사서 그 위에 다시 베르메르 풍으로 그림을 그린 뒤 오븐에 구워 물감이 오랜 세월 때문에 갈라진 듯 보이게 만드는 것. 베르메르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점을 이용했다.  한국 미술사에서 가장 떠들썩한 위작 스캔들로는 1991년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가 있다.문제가 된 ‘미인도’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로부터 압류한 재산 가운데 하나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적당하게 ‘미인도’라 이름붙였다.  당시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하던 경찰관이 인사 청탁용으로 김재규에 건넨 것으로 알려진 ‘미인도’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회 리플릿에 그림 사진을 넣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천경자씨는 자신의 그림이 아니라고 부인했고 스캔들로 번졌다.  당시 감정을 맡았던 오광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전문가들 사이에선 진품으로 결정났으나 작가 자신이 깜빡 실수한 것이라고 번복하기엔 격한 감정에 휩싸인 상황에선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지난 2007년 한 잡지에 후일담을 털어놓았다.일반 대중이나 언론은 천경자 화백 편에 서서 ‘작가가 자식과 같은 작품을 못 알아볼 리 없다.’고 했고, 이 사건으로 큰 상처를 받은 천 화백은 절필을 선언한 뒤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이다.  2007년에도 국내 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인 45억 2000만원에 팔린 박수근의 ‘빨래터’를 둘러싸고 위작 논쟁이 일어 현재까지 진위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악랄하면서 아름다운 화랑주 엄정화  아름답고 카리스마 넘치는 악랄한 화랑주 배태진을 열연한 엄정화는 그동안 보여준 건강하고 섹시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연기를 펼친다.  화가를 협박하고 복제전문가의 손을 절단내며 가짜 그림도 거리낌없이 팔아대는 화랑주는 단연코 감독이 만들어낸 캐릭터이다.  국내 미술계에도 미모에 카리스마를 겸비한 여성 화랑주들이 많지만 엄정화처럼 가짜 그림을 유통시키는 범죄를 서슴지 않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국내 최대의 화랑 가운데 한 곳에서 일하는 큐레이터는 현역으로 활동 중인 자신의 화랑주에 대해 “영화 ‘악녀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묘사된 잡지 편집장 메릴 스트립처럼 까탈스럽고 카리스마가 넘친다.”고 언급하긴 했었다.  ’인사동 스캔들’이 한국 영화계와 미술계에 어떤 화제와 스캔들을 몰고 올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영화를 보고 인사동이 가짜 그림과 미술품들이 판치는 곳으로 오해받지 않기를 바란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CEO 칼럼] 변화는 생존의 또다른 표현/박장석 SKC 사장

    [CEO 칼럼] 변화는 생존의 또다른 표현/박장석 SKC 사장

    계 절이 바뀌면 사람들은 옷을 바꾸어 입는다. 젊은이들은 계절이 오기도 전에 앞다투어 새 옷을 갈아 입고 뽐낸다. 이는 계절의 변화에 따르거나 변화에 앞서는 모습일 것이다. 우리의 삶은 변화의 과정으로 채워져 있으며 항상 변화를 요구받는다. 하지만 왠지 변화는 힘들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보자. 수많은 새로운 왕조의 탄생은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 질서에 집착하는 세력에 맞서 승리한 결과물이다. 변화를 거부한 왕조는 망했다. 중세를 지나면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무대를 땅에서 바다로 바꾸면서 세계의 패권을 잡았다. 17세기 영국은 명예혁명과 산업혁명으로 그 자리를 빼앗았다. 이어서 미국으로 그 중심이 이동했고, 지금은 중국으로 세계 경제의 축이 옮겨 가고 있다. 한편으론 정보기술(IT), 글로벌, 환경, 에너지, 문화와 같은 토픽들이 변화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면서 과연 누가 진정으로 세계를 리드할지를 놓고 지구촌은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고 있다. 거센 변화의 물결이 밀려올 때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변화의 존재와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 변화는 무수한 변수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상호작용을 하고 그 결과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람들은 변화를 미리 알고 싶어 하지만 정확히 예견하는 사람은 없다. 변화의 소용돌이가 멈추고 다른 변화가 움틀 때에야 비로소 그동안 일어났던 변화의 실체를 알고 탄식하게 된다. 변화의 끝에는 항상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고 승자와 패자로 구분되어질 뿐이었다. 지 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는 변화(Change)의 중심에 서 있었고 그래서 변화를 열망하는 미국인들은 오바마를 선택했다. 도연명은 자신의 시에서 일일난재신(一日難再晨·하루의 새벽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이라고 표현했다. 지금 무엇인가를 하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변화는 필연적이며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서 변화란 단순한 ‘변동’이 아닌 ‘발전’과 ‘혁신’이라는 의미가 포함돼야 한다. 생존하기 위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영국의 철학자 스펜서의 주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1864년 생물학의 원리에서 가장 적합한 자가 생존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적합하다는 것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의미로 강한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것으로, 현재 강하다고 해서 환경이 변한 후에도 똑같이 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변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변화는 항상 일어나고 있으며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기업의 경영활동을 변화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으며 경영은 ‘변화관리’ 그 자체라는 인식의 전환이 요구된다. 그리고 현재를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지금을 새로운 변화의 출발점으로 인식할 때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계할 수 있고 변화에 쫓기기보다는 변화를 리드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끝으로 변화를 위한 방법론으로 ‘Think big, Start small’을 추천하고 싶다. 생각은 크게 하되 작은 것 하나하나를 실천할 때 비로소 목표한 바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장석 SKC 사장
  • “4월엔 바흐를”

    “4월엔 바흐를”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매주 목요일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아름다운 목요일 시리즈’의 4월 프로그램으로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집중 조명하는 ‘바흐를 위하여’를 준비했다.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와 소나타, 프렐류드(전주곡), 현악4중주로 선보이는 푸가 기법 등 17세기 초 바로크 음악을 집대성한 바흐의 다양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2일 첫 무대는 ‘김수빈, 바흐를 만나다’로, 1998년 미국 클래식계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린 바이올리니스트 김수빈(사진 위)이 바흐의 무반주 파르티타 2번과 3번, 무반주 소나타 3번을 연주한다. 9일에는 피아니스트 스테판 프루츠만(아래)이 자신의 신보 제목이기도 한 ‘바흐 앤드 포스(Bach & Forth)’를 주제로 독특한 무대를 꾸민다. 바흐 전후 시대 작곡가들의 다양한 곡들을 바흐 프렐류드와 번갈아 연주하며, 바로크 시대의 음악들을 한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다. 16일 무대는 통영국제음악제의 상주단체인 실내악단 TIMF앙상블이 ‘바흐 푸가의 기법’으로 준비했다. 한 주를 건너뛴 30일 마지막 무대는 바로크 테너 박승희와 바로크 시대 음악 전문연주 단체인 카메라타안티콰서울이 ‘바흐 칸타타의 세계’를 선사한다. 청소년 8000원, 일반 2만~3만원. (02)6303-7700.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160m 낭떠러지 위 ‘아찔한 소풍’ 눈길

    깎아놓은 듯한 절벽 위에서 젊은 남성들이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국 대중지 데일리메일이 동부 서식스의 한 낭떠러지를 촬영한 이 사진에는 20대로 보이는 남성 4명이 햇살을 맞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담겨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들이 올라서 있는 곳이 161m의 수직에 가까운 낭떠러지이기 때문. 행여 발을 헛딛기라도 하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곳이다. 특히 이 낭떠러지는 17세기부터 이른바 ‘자살의 명소’로 알려져 한해 평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는 사람이 20명의 달할 정도로 악명 높은 곳이기도 하다. 데일리메일은 “이날의 기온이 16도 정도로 포근한 날씨였고 공식적으로 봄이 시작되는 주였기 때문에 이 남성들이 따뜻한 햇살을 즐기기 위해 소풍을 나온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종교단체들은 이 절벽에서 정기적으로 순찰을 돌고 긴급 공중전화기를 설치하는 등 자살방지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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