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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2차 닷컴 버블/이춘규 논설위원

    경제현상에서 거품(bubble)이란 용어는 부정적이다. 거품이란 자산의 내재가치에 비해 시장가격이 과대평가된 것을 말한다. 1987년 나타난 거품경제라는 용어의 최초사용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노구치 유키오 일본 와세다대 교수가 ‘거품경제학’을 통해 거품경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거품경제의 시초는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발생한 튤립 거품이다. 튤립 구근 1개의 가격에 5만 달러까지 거품이 끼었다가 폭락했다. 1929년 뉴욕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꺼지며 세계 대공황이 시작된 것도 대표적인 거품경제 사례다. 일본은 1980년대 말 주가나 땅값이 실제 자산가치에 비해 폭등했다가 1990년 붕괴, 장기 불황으로 이어졌다. 1995년부터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인터넷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정보기술(IT) 선진국 주식 시장의 지분 가격이 급상승한 제1차 닷컴(.com) 버블이 일어났다. 인터넷·IT 버블로도 불렸다. 거품인지 모르고 한몫 챙기려 뛰어든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이 피와 눈물을 흘렸다. 1차 닷컴버블 소동 때인 1996년 미 주식시장에서 IT 관련기업의 평균주가가 1000달러 전후였는데 1999년에는 2000달러를 돌파했다. 2000년 3월엔 5000달러를 넘었다. 실물경제가 뒷받침되지 않은 거품은 결국은 꺼지고 말았다. 이후 미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장기 저금리 정책과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부동산 투자로 버블이 다시 키워지다 2008년 9월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붕괴됐다. 장기간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이의 이름을 따 ‘그린스펀’ 버블로도 통한다. 최근 제2차 닷컴 버블 논쟁이 일고 있다. 1차 닷컴버블의 시발지였던 실리콘밸리가 역시 진앙지다. 요즘 모바일, 소셜네트워크 신생기업에 대해 40억~60억 달러의 인수대금이 거론되고 있다. 심지어 아이디어뿐인 초기단계의 기업에도 수천만 달러의 투자자금이 몰리고 있다. 트위터나 징가 등 스타 IT기업으로 뭉칫돈이 몰리며 돈잔치가 뜨겁게 전개되자 2차 닷컴 버블 주의보가 내려졌다. 10년 전과는 다르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는 주식에서 거품이 형성됐지만 지금은 기업가치를 토대로 돈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거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투자의 주체가 현금 보유 규모만 900억 달러대인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3개사이기 때문에 버블을 염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컨설팅사 매킨지는 주장한다. 그래도 2차 닷컴버블 경고는 계속되고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다나, 뮤지컬 속 히로인 “슈주 규현과의 키스는…”

    다나, 뮤지컬 속 히로인 “슈주 규현과의 키스는…”

    걸그룹 천상지희의 다나가 뮤지컬 ‘삼총사’의 히로인으로 나서 변함없는 미모로 팬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다나는 지난 11월 29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A스튜디오에서 열린 뮤지컬 ‘삼총사’ 연습현장 공개에 참여했다. ‘삼총사’의 주인공 달타냥과 운명적 사랑에 빠지는 여인 콘스탄스로 분한 다나는 그룹 슈퍼주니어의 규현, 배우 김무열, 원기준, 제이 등과 달콤한 키스를 나눌 예정이다. 총 4명의 달타냥으로부터 사랑을 받게 된 다나는 “무대 위에서는 콘스탄스라는 생각으로 연습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규현과의 키스신은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라며 슈퍼주니어 팬들을 의식한 듯한 발언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또한 다나는 ‘삼총사’를 위해 금발 헤어스타일을 선보이며 프랑스 인형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게다가 늘씬한 몸매의 장점을 활용해 콘스탄스의 안무를 소화하며 뮤지컬에 대한 기대를 더했다. 한편 ‘삼총사’는 17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왕실 총사를 꿈꾸는 청년 달타냥과 궁정의 삼총사가 음모에 맞서 싸우며 벌어지는 모험을 그린 작품이다. 오는 15일 충무아트홀에서 첫 막을 올린다.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사진=현성준 기자
  • [길섶에서] 공감/황진선 논설위원

    ‘적당히 착하게 해주소서/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 어떤 성인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수도자가 적당히 착하고 싶다니 참 인간적이다. ‘17세기 어느 수녀의 기도’의 한 구절이다. 마더 테레사 수녀의 힘든 삶을 돌아보면 금세 공감이 간다. 그동안 많은 잘못을 저질렀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잘못을 할 거라고 생각하면 더 위안이 된다. 제러미 리프킨의 근작 ‘공감의 시대’는 이제 경쟁과 적자생존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진단했다. 공감하는 능력, 즉 협력과 평등이 새 여명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 맞아. 전 지구적 생태 위기와 사회 양극화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협력밖에 없어.’ 하고 중얼거린다. 그러다가 우리가 이기심을 이겨낼 수 있을까 자문한다. 너를 이겨야 내가 산다는 강력한 생존 본능이 뼛속 깊이 새겨져 있는데 공감 능력이 그보다 앞설 수 있을까. 그래, 쉽지 않아. 적당히 착하게 사는 게 쉬운 일이었으면 17세기 수녀의 기도가 지금까지 생명력을 이어 왔겠는가.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 신화 속 동물 천마 ‘페가소스’ 순간포착

    인도에서 큰두루미 한 마리가 영양을 추격하는 장면이 마치 그리스 신화의 날개달린 천마 ‘페가소스’처럼 보여 눈길을 끈다. 26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 메일은 인도의 사진작가 자그딥 라즈푸트(49)가 케오라데오 국립공원에서 촬영한 절묘한 사진을 소개했다. 공개된 사진은 얼핏 보면 영양의 몸통에 날개가 달린 돌연변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재치있는 착시 현상이다. 이 매체에 따르면 당시 영양 한 마리가 우연히 새 둥지 근처를 지나가다가 알을 보호하던 어미 큰두루미에게 쫓기는 모습이었다고. 그 광경을 카메라에 포착한 라즈푸트는 “관광객들 역시 사진을 보고 신화의 날개 달린 말인 페가소스와 비교했다.”며 “사실 두 동물의 교감을 나타낸 사진을 원했지만 이런 모습을 예상하진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사진을 처음 본 사람들은 조작했느냐고 물어보거나 신종 포유류나 페가소스의 다른 형태 같이 보인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한편, 페가소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 페르세우스가 괴물 메두사의 목을 베어 죽였을 때 흘러나온 피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보통 삽화나 문학에서 흰색으로 표혔됐으며 17세기 중세까지는 지혜와 명성의 상징이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씨줄날줄]프랑스 요리/함혜리 논설위원

    살기 위해서 먹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먹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다. 전자는 영양섭취를 식사의 주목적으로 삼는 반면, 후자는 식탁에서 특별한 즐거움을 찾고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후자를 대표하는 나라가 프랑스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기름지고 넓은 평야와 높은 산을 갖고 있으며 지중해와 대서양에 면하고 있어 질 좋은 농·축·수산물이 풍부하다. 지역별로 각기 다른 재료를 사용한 특유의 음식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프랑스 요리라 일컫는 것은 귀족들의 식사에서 발달한 요리를 가리킨다. 프랑스 요리는 숙련된 요리사가 고도의 기술로 다양한 식재료를 충분히 살리고 향신료와 소스로 섬세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포만감이 적으면서 미각을 즐겁게 하는 요리를 최고로 치는데 달팽이 요리, 거위간으로 만든 푸아그라, 송로버섯으로 만든 트뤼프 요리 등이 유명하다. 정찬의 경우 6~7코스는 기본. 아페리티프(식전주)에서 시작해 입맛을 돋우는 오르되브르-수프-생선요리-육류요리-샐러드-치즈와 디저트- 설탕조림과일-커피로 이어진다. 요리 종류에 맞는 포도주가 곁들여진다. 프랑스의 식문화는 요리만 음미하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 세팅, 테이블 매너, 대화법 등을 포함한다. 요리와 문화가 어우러진 프랑스식 미식은 17세기 루이14세의 궁중에서 시작됐다. 스스로를 ‘태양왕’이라고 불렀던 이 강력한 군주의 식탁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올랐으며, 식기들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화려했다. 그는 맛있는 요리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호화로운 식탁을 권력 과시의 수단으로 삼았다. 식탁은 정치적 문제를 다루고, 결속을 다지는 특권적인 장소였다. 식탁에서의 대화술이 중시된 것도 이때부터다. 18세기 말 대혁명으로 귀족이 몰락하면서 그들의 식탁문화를 신흥 부르주아들이 세습한다. 귀족들을 위해 요리하던 요리사들이 일자리를 잃자 레스토랑을 열기 시작했고, 신흥 부르주아들이 레스토랑에 드나들면서 현란한 식도락 문화를 선도했다. 본격적인 미식 문학이 등장하고 최초의 음식비평가도 출현했으며, 프랑스한림원(아카데미프랑세즈)은 1835년 미식(gastronomie) 이라는 단어를 프랑스어로 인정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프랑스의 음식문화가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후보에 등재됐다고 한다. 음양오행의 이치를 따지고 식재료의 궁합까지 살린 우리 궁중요리의 문화유산 등재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조선의 몰락…16~18세기 일본서 답을 찾다

    조선의 몰락…16~18세기 일본서 답을 찾다

    21세기에 성공학만큼 각광받는 분야가 바로 실패학이다. 실패의 원인을 알아야 성공을 위한 더 큰 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못난 조선’(전략과문화 펴냄)은 19세기 말 조선이 왜 일본에 강제로 개항을 당하고 100년 전에는 왜 식민 지배의 고통 속에 역사의 단절을 겪어야 했는지 16~18세기 조선과 일본의 비교를 통해 예리하게 짚어낸 책이다. 한 재벌 총수는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 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라고 했지만, 책을 쓴 문소영 서울신문 기자는 이미 역사적으로 16~19세기에 조선은 당시 중국(명·청)과 일본(에도 막부) 사이에 낀 샌드위치일 가능성이 높았다고 지적한다. 조선이 오랑캐, 왜구 정도로 무시했던 일본은 16세기부터 유럽과 동남아 등 외부 세계와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고, 수백년간 축적된 경제력을 바탕으로 일본의 독특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저자는 18세기 무렵부터 조선과 일본 사이의 문물 교류 역전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예로 18세기 중엽 유럽 왕실에서는 일본의 채색 도자기와 함께 칠기 목가구가 유행했다. 영어로 저팬(Japan)은 일본을 의미하지만 ‘칠기·옻칠’이라는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차이나(China)는 중국을 뜻하지만 도자기를 의미하기도 한다. 유럽은 16세기 이후 중국이나 일본에서 수입된 도자기나 칠기에 해당 국가의 대표성을 부여해 ‘국가이름=보통명사’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하지만 같은 시기 코리아의 보통명사는 없다. 저자는 문화, 경제, 사회, 정치의 네 부분으로 나눠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모습을 면밀히 분석한다. 스스로 ´도자기 강국´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은 왜 세계적 조명을 받지 못하고, 한국보다 수백년 늦게 도자기 산업에 뛰어든 일본은 도자기 원조처럼 우뚝 섰을까. 여기에서도 조선과 일본의 차이가 있었다. 17~18세기 채색 도자기로 유럽 왕실과 귀족을 매료시킨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산업화된 생산 방식으로 전환한 유럽과 경쟁하기 위해 서양의 전문가를 고용해 근대적 도자기 기술을 도입했지만, 아무 준비 없이 개항기를 맞은 조선의 가마들은 ‘왜자기’라고 부르던 자기들이 싼 가격에 수입되면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 후기까지 명맥을 이어온 전통 도자기 제작 기법들도 덧없이 사라졌다. 조선 후기에 생산력 증대에 필수적인 인구 증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데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중국과 일본은 16세기, 늦어도 17세기에 감자·고구마 등 구황작물을 받아들였지만, 17~18세기 심각한 대기근을 겪은 조선은 구황작물 전래가 늦어 초근 목피로 연명하는 질곡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정체된 조선 후기의 인구는 조선의 수공업과 상업의 발달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사고의 틀’인 두 나라 언어도 비교한다. 한글은 1446년에 조선의 왕인 세종이 만들었음에도 조선 왕실과 지배층에게 외면당했다. 때문에 한글로 쓴 고전문학은 일본에 비해 상당히 적은 편이다. 반면 일본은 한자의 초서체를 모방한 히라가나 등을 만든 직후부터 각종 시와 소설을 쏟아낸 것이 훗날 문학적 성과와 출판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그동안 역사학자들이 자료 부족을 이유로 혹은 국민적 정서를 불편해하며 주저하던 시점을 골라 조선과 일본을 비교했다는 것이다. 책은 겉으로는 역사서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와도 직결된 부분이 많다. 책을 덮은 뒤 “진실은 불편하고 아프지만 받아들이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힘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1만 8000원.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공무원 해외연수 제대로 하겠습니다

    “공무원 해외연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겠다.” 김만수 부천시장은 지방의회나 공무원들의 ‘관광성’ 해외연수가 눈총을 받는 가운데 22일 영국과 핀란드로 열흘 일정의 ‘준비된 학습’ 연수를 떠난다. 이번 연수에는 김영배 성북구청장,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임정엽 완주군수, 송영선 진안군수 등 민선 5기 지자체장 4명과 도시재생 및 디자인 담당자와 사회적 일자리 창출 담당자 등 6급 공무원 20여명도 참여할 예정이다. 고양시·강진군도 함께한다. 참가 지자체는 민간 싱크탱크를 자임한 희망제작소 ‘목민관 클럽’ 회원들이다. 목민관 클럽은 지난 9월 7일 시장·군수·구청장 47명이 참여한 모임으로, 희망제작소로부터 지자체 교육프로그램 및 정책연구를 지원받고 있다. 이번 연수도 희망제작소의 박원순 상임이사가 프로그램을 짰다. 세미나와 강연, 현장방문 등이 거의 1시간 단위로 짜여졌다. 휴대전화 노키아와 교육으로 잘 알려진 핀란드에서는 주로 도시재생과 디자인을 연구할 예정이다. ‘디자인 서울’ 등 최근 몇 년간 디자인 열풍이 불고 있지만, 도시계획을 100년 단위로 잡고, 계획 확정에만 30년이 걸리는 핀란드의 도시개발에서 전통과 현대를 조화하는 법 등도 연구할 예정이다. 특히 용도 폐기된 도시시설물의 재활용 방안도 살펴본다. 김 시장은 “부천에 폐쇄된 쓰레기 소각장과 수돗물 정수장이 있는데 이들을 어떻게 재활용해 도시의 기능을 강화할지를 살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1980년대 굴뚝산업들을 접고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영국에서 사회혁신의 사례를 살피고 주민참여식 지역개발의 방안을 모색해 보겠다.”고 밝혔다. 이번 연수에서 ‘영국 지방자치정부의 재정위기 대응법’이나 ‘17세기 시장의 재개발’ 등을 통해 현재 지자체가 안은 재정위기나 재래시장 활성화 방안도 모색한다. 이번 연수에 참가한 지자체들은 영국의 시민운동단체인 영 파운데이션과 협약식을 갖고 서로 경험과 성과를 교류할 예정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열린세상]우리 고전번역의 중요성/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명예교수

    [열린세상]우리 고전번역의 중요성/조광 고려대 한국사학 명예교수

    우리 고전은 대부분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이는 한문이 우리의 문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고전한문은 그 문법체계나 표현 방법이 우리말과는 판이하다. 그러나 한문은 우리 선조들이 자신의 뜻을 드러내고 표현했던 보편적 수단이었다. 그들은 한문을 통해서 자신의 생활감정을 표현하고, 논리적 성찰 결과를 정리해 왔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문을 외국어로 취급할 수만은 없다. 한문은 우리 사상과 감정을 표현했던 우리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역사는 말과 글이 달랐던 시대를 오랫동안 경험해 왔음에 틀림없다. 지난날 선비들은 스승이나 친족들의 글을 모아 시문집을 간행해 왔다. 자신의 문집을 사후에 간행하도록 스스로 정리하여 둔 사람들도 있었다. 시문집은 특정인의 저술을 망라한 전집을 뜻한다. 한문을 지적 무기로 삼았던 이들이 남긴 문집은 5000여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전집이라면 위대한 문인이나 학자들만 만드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자신의 전집을 남긴 사람들은 불과 몇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수천명이 자신의 지혜를 담아 놓은 전집을 남겼다. 우리에게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각종 역사적 기록과 연구서들도 남아 있다. 한문으로 된 고전들은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었으며, 지혜의 보물창고이다. 지난날의 지성들이 갈고 닦아 축적해 놓은 지식의 결정체이자 풍부한 감성의 표현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보물들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다. 한문으로 기록되어 쉽게 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은 ‘책의 나라’였다. 개항기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프랑스인 중에 모리스 쿠랑이 있었다. 그는 조선에 많은 책이 있음에 경탄하고 조선을 책의 나라라고 단언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파악했던 조선의 도서목록을 정리하여 ‘조선서지(朝鮮書誌)’를 저술, 조선의 문화를 유럽의 학계에 소개했다. 모리스 쿠랑의 작업은 17세기 우리나라에 표착했던 헨드리크 하멜이 남긴 기행문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것은 우리의 전통과 지혜가 담긴 책의 문화에 대한 전문적 내용이었다. 이 책의 간행은 조선이 문화국임을 유럽사회에 선언한 사건이었다. 프랑스의 해군장교 쥐베르는 1866년에 일어난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공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강화도 촌구석에 있던 초가집에 책들이 있는 것을 보고 감탄하는 글을 남겼다. 당시 프랑스의 농민 대다수는 글을 몰랐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찍부터 한문이라는 우수한 문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 덕분에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문자를 알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정리하여 책을 남겼다. 이 기록들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의 고전임에 틀림없다. 역사는 죽은 과거의 사람들을 되살려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지혜를 빌리는 작업이다. 그리고 역사와 더불어 축적되어 온 인문학의 전통은 현대사회에서 무한한 자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소중한 자산의 상당부분은 한문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사장되고 있다. 여기에 우리는 새 생명을 불어넣어 오늘의 자산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 인문정신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리 고전번역은 한국 인문학의 부흥을 위한 대전제이며, 문화의 계승을 위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고전번역은 인문학분야의 세계적 이론을 창출하는 데도 첩경이 된다. 우리의 고전인 한문기록들은 반드시 우리말로 번역되어야 한다. 급격한 문화의 변동을 겪은 오늘에 이르러서는 지난날 국한문이나 한글로 저술되었던 자료들도 다시 옮겨져야 비로소 뜻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번역은 학문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러므로 고전번역은 학문의 발전수준에 따라 꾸준한 보완작업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 고전번역 사업에 국가적 배려와 더 큰 관심이 당연히 요구된다. 악조건 속에서도 묵묵히 고전의 정리와 번역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고전번역원이나 한국국학연구원을 비롯한 여러 기관과 연구원들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전폭적인 지원이 간절하다.
  • [루브르박물관 복원연구소를 가다] 상상 그 이상의 루브르

    [루브르박물관 복원연구소를 가다] 상상 그 이상의 루브르

    대영박물관, 바티칸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이자 영화와 소설 ‘다빈치 코드’의 주무대였던 루브르의 뒤편은 상상 이상이었다.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루브르박물관 내 ‘프랑스 복원 및 보존 연구소´(C2RMF) 곳곳에 최고의 작품과 유물들이 즐비했다. 무궁무진한 이 ‘보물창고’에 공개된 곳보다 감춰진 곳이 많으니 ‘성배’나 ‘프리메이슨’ 같은 수많은 음모론의 온상이 된 이유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루브르는 프랑스 전체 박물관 소장품의 60%를 보유하고 있다. 복원이나 연구가 루브르를 중심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루브르 지하에는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가 촘촘히 연결돼 있습니다. 이 지하 통로 덕분에 작품들은 건물 밖으로는 절대 나가지 않게 되고, 운반과정은 외부에 철저히 숨길 수 있습니다.” 소피 르페르는 복원 과정을 설명하기에 앞서 작품이 옮겨지는 과정부터 털어놓았다. 지하도로와 작품을 옮길 수 있는 대형 엘리베이터들은 1983년부터 1989년 사이에 진행된 루브르 대보수 기간에 설치됐다. 이때 함께 조성된 것이 그 유명한 666개의 조각으로 만들어진 루브르의 입구, 유리 피라미드다.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주도로 이뤄진 루브르 대보수에는 30억 프랑이라는 거액이 투자됐고, 이는 오늘날 루브르의 명성으로 이어졌다. 프랑스 전역에서 옮겨진 소장품들 역시 지하통로를 통해 C2RMF로 운반된다. 작품이 C2RMF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카메라다. 이틀 이상 가시광선·적외선 투사, 특수 촬영 등을 거치면 과거에 복원된 부분이나 덧칠된 부분이 그대로 나타난다. 복원 이전과 이후를 기록하는 목적도 있다. 엑스레이 촬영을 이용하면 화가가 작품을 그리던 당시의 기법과 생각까지도 읽을 수 있다. 루브르가 최근 매입한 17세기 화가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작품을 보고 있던 엑스레이 판독팀 관계자는 그림을 보여 주며 “처음 그릴 때는 작품 속의 바이올린이 없었고, 트럼펫이 2개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면서 “19세기 말 뢴트켄의 엑스레이 발견은 복원 기술의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복원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품에 손상을 입히지 않는 것인데, 엑스레이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탄소연대측정실과 재료분석실 등 다양한 연구실을 지나 커다란 방에 들어서자 박물관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원통형의 첨단장비가 눈에 들었다. C2RMF의 자랑인 루브르선형입자가속기(AGLAE)다. 이온빔을 쏘아 훼손 없이 작품의 연대는 물론 성분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는 AGLAE는 박물관에 있는 세계 유일의 가속기로, 1000억원을 호가한다. 훼손된 이집트 파피루스 글자를 해독하거나, 각종 고대작품의 연대를 세밀하게 측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AGLAE실 관계자는 “세계 각국 연구진들이 가속기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지만, 미술품만을 위해 이런 장비를 구비하는 건 루브르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과학의 힘이 인류의 유산을 보존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 가운데 무엇을 먼저 연구하고, 복원할까. 그 순서를 어떻게 정하는지 궁금했다. 복원사 파스칼 프티는 “가장 먼저 살펴보는 것은 작품을 만든 사람의 명성”이라며 “한 사람의 방이나 소장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기 때문에 소장자도 주요한 고려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복원에 들어가는 돈을 해당 박물관에서 지불할 수 있느냐도 우선순위에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지하 연구소 위에는 ‘에콜 드 루브르’로 불리는 세계 최대의 복원학교와 C2RMF 복원실이 있다. ‘밀라노미술품복원학교’와 함께 두 개뿐인 복원전문학교이자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에콜 드 루브르는 학생 수가 적고 입학시험이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가구 분야의 경우 매년 5명의 전문가만이 배출된다. 복원기술 이외에 역사학, 박물관학과도 있고 역사·문화적 배경을 우선적으로 가르쳐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소양을 갖춘 장인을 양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 학생은 “입학에만 300~400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면서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에서 학교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실제 입학에 성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복원실은 5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1~3층은 미술품·장신구 복원실, 4층은 섬유·카펫 복원실, 5층은 가구 복원실이다. 미술품 복원실에 들어서자 크고 작은 작품들이 마치 도서관의 책처럼 산더미로 쌓여 있는 장관이 펼쳐졌다. 각 창가마다 커다란 그림 하나씩이 세워져 있고, 복원 전문가들이 확대경을 쓴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붓칠을 하는 그들의 모습에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주인공 준세이가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복원사들은 실제로 작업을 하는 시간보다 그림을 쳐다보고 고민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붓칠 한 번을 위해 여러 각도에서 작품을 지켜보고, 앞뒤로 오고 가는 일을 반복했다. 작업 중인 작가 이름과 작품명을 알려줄 수 없다는 한 복원사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작품의 가치가 내 붓칠에 달려 있다는 점 때문에 항상 어깨가 무겁다.”면서 “맡은 작품을 그린 작가의 생각이나 당시 시대적 배경을 느끼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엄숙한 분위기의 그림 복원실과 달리 4층 가구복원실은 활기가 넘쳤다. 황실가구에 많이 쓰였던 거북이 등껍질 물량이 세관을 통해 오랜만에 확보됐기 때문이었다. 루이 15세가 사용했던 시계 받침대를 복원하고 있던 마크 앙드레 파울린은 “예전에 사용했던 소재들 중 상당 수가 요즘 시대에 유통이 금지된 경우가 많다.”면서 “가치가 떨어지는 작품에서 꺼내 사용하곤 하는데, 종종 세관에서 압수된 물건이 이쪽으로 넘어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복원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과 실제 복원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19세기 후반 화가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예술사 프레데릭 르블락은 “가장 중요한 것은 원형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지만, 처음 그림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난 흔적까지도 살리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형을 아무리 재현한다고 해도 원작자가 그린 것은 아니지 않으냐.”면서 “복원에 사용되는 모든 것들은 다시 원래대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파리 박건형 순회특파원 kitsch@seoul.co.kr
  • “오바마·페일린은 먼 친척”

    “오바마·페일린은 먼 친척”

    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과 세라 페일린(오른쪽)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먼 친척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족보 전문 웹사이트인 엔세스트리닷컴이 13일(현지시간) 밝혔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두 사람을 이어주는 공통 조상은 17세기 초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 정착한 존 스미스 목사다. 엔세스트리닷컴은 “스미스 목사는 퀘이커 교도를 박해하는 것을 반대하는 등 사회적으로 매우 의식 있는 사람이었다.”고 설명했다. 엔세스트리닷컴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과 페일린 전 주자사의 어머니 쪽 조상이 스미스 목사와 연결된다. 오바마 대통령과 페일린 전 주지사 모두 새뮤얼 힝클리라는 조상을 통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연결되는 것도 인상적이다.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에게 인신공격을 남발하는 보수 논객 러시 림보도 오바마 대통령과 핏줄이 이어진다. 두 사람은 17세기 미국 버니지아 대지주였던 리치먼드 테럴을 같은 조상으로 뒀다. 이번 조사를 주도한 계보학자 아나스타샤 타일러는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가계가 궁금한 명사들의 계보를 따지고, 역사 기록과 대조한 끝에 이번 결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칭기즈칸, 발해공주를사랑했다?

    칭기즈칸, 발해공주를사랑했다?

    칭기즈칸이 발해 공주와 사랑에 빠졌다? 오는 25일부터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김정배)이 주최하는 ‘제5회 세계한국학대회’에서 몽골학자가 발표할 논문의 주제다. 자미얀 바투르 몽골 국립대 교수는 16~17세기에 기록된 몽골 문헌 ‘백사’(白史·White His tory), ‘황금사략’(黃史略·Precious Sum mary) 등에서 한국을 언급한 것을 따로 떼내 정리한 논문을 발표한다. 13세기 때의 일이 16~17세기에야 기록된 것은 그나마 중심을 잡아주던 쿠빌라이칸(훗날 원나라 시조가 되는 칭기즈칸의 손자)이 죽은 뒤 한동안 몽골제국이 큰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들 기록은 몽골 제국을 구성하는 5가지 색깔을 언급하면서 한국을 흰색으로 규정한다. ‘백의 민족’을 떠올리면 된다. 몽골은 푸른색, 중국은 붉은색, 티베트는 검은색, 투르크는 노란색을 배정받았다. ‘한국의 코끼리 산’에 대한 언급도 있다. 몽골인 입장에서 코끼리 등짝처럼 높고 옆으로 길게 퍼진 하얀 산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백두’(白頭)산을 뜻한다. 기록에 따르면 칭기즈칸은 태양이 떠오르는 곳으로 진격해 ‘솔롱고스 메르키드족’을 위협, 여러 노획물을 손에 넣는다. 노획물 중에는 메르키드족의 왕인 다이르 우순 칸의 딸 쿨란도 포함돼 있었다. 칭기즈칸은 완승을 거뒀음에도 3년이 지나도록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쿨란이 너무 어여쁜 새 부인이어서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부인 부르테 역시 통이 컸다. 질투나 시기보다는 류트(기타처럼 생긴 유목민의 현악기) 연주에 능한 신하를 보내 칭기즈칸을 점잖게 타일렀고, 부끄러움을 느낀 칭기즈칸은 스스로 되돌아 온다. 칭기즈칸의 초기 행적은 대체적으로 몽골족 내부의 주도권 잡기 싸움으로 이해된다. 이에 근거해 대부분의 중국 학자들은 다이르 우순 칸과 쿨란 공주를 다구르족, 그러니까 몽골족의 다른 갈래 정도로 파악한다. 그러나 몽골 학자인 바투르 교수는 이런 관점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다이르 우순 칸과 쿨란 공주는 명백히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바투르 교수가 그 근거로 제시하는 이유는 이렇다. “13세기 이래 솔롱고스(Solongos), 혹은 솔랑가(Solanga)는 몽골에서 한국을 가리키는 단어로 고정됐다. 이는 몽골이 다이르 우순 칸과 쿨란 공주를 바로 한국의 왕이자 한국의 공주로 이해했다는 방증이다. 따라서 이 왕과 공주를 다구르족으로 파악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번역(misinterpretation)이거나 조작(falsification)된 것이다.” 다른 몽골 문헌에서는 이 시기 역사를 기록하면서 솔롱고스 메르키드족의 왕 이름을 ‘부크 차간 칸’이라 적었다. 바투르 교수는 “부크 혹은 부카이는 몽골 말로 늑대를 높여 이르는 것으로 몽골이 흔히 옛 발해 지역에 살던 유목민을 부를 때 쓰던 말”이라면서 “따라서 쿨란 공주의 아버지, 즉 다이르 우순 칸과 (문헌에 기록된) 부크 차간 칸은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한다. 발해가 나라 자체는 926년에 망했어도 그 후손들은 계속 남아 명맥을 이었다는 게 바투르 교수의 설명이다. 한족이 통상 다른 민족을 낮춰 부르기 위해 동물 이름을 넣었다면, 몽골족은 유목민답게 그 지역을 상징하는 동물 이름을 갖다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메르키드(Merkid)가 몽골의 메르겐(Mergen), 신라의 마립간(麻立干)과 동일 계통의 단어로 활을 잘 다루는 종족을 뜻한다는 해석이 존재하는 점을 감안하면 바투르 교수의 주장에 설득력이 실린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내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솔롱고스’가 ‘무지개가 뜨는 나라’가 아니라는 해석이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옛 몽골어 계통에서 ‘솔로고’(sologo)는 삵이나 담비 같은 짐승을 뜻한다. 만주어 솔로히(solohi)는 족제비를 뜻한다. 발해가 늑대로 상징됐다면, 비슷한 원리로 ‘솔롱고스 메르키드’란 ‘삵이나 담비처럼 날래고 활 잘 쏘는 종족’을 부른 명칭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보면 결국 쿨란 공주는 우리나라 발해말갈의 후손인 셈이다. 학술대회에는 이 논문을 포함, 25개국 180여편의 논문이 발표될 예정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미술품 불법유통과정 추적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공화국의 재력가 코시모 메디치(1389~1464)는 가업인 메디치 은행에서 축적한 막대한 재산을 예술과 학문 등 다양한 문화활동을 후원하는 데 사용했다. 17세기까지 메디치 가문은 문예부흥의 선각자로 추앙받았다. 그로부터 300년이 지난 20세기. 또 한 명의 메디치가 문화예술계의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자코모 메디치. 그런데 역사의 우연일까, 아이러니일까. 문화예술 후원자의 명예 대신 이번엔 희대의 고미술품 불법 유통업자란 오명으로 정체를 드러냈다. 1972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고대 그리스의 에우프로니오스 도기를 100만달러의 거액에 사들여 논란을 빚었다. 사상 최고가의 액수도 문제였지만 도기의 입수 과정도 불투명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맥도널드 고고학연구소 연구원인 피터 왓슨은 이런 의문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았다. ‘메디치의 음모’(김미형 옮김, 들녘 펴냄)는 세계 각지의 유적지에서 도굴된 미술품들이 어떻게 해외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에 전시될 수 있는지 그 불법 여정의 시작과 끝을 낱낱이 폭로한 책이다. 이 과정에서 자코모 메디치는 고미술품의 불법 유통을 주도하는 핵심 인물로 드러난다. 시작은 1994년 이탈리아 중부 도시 멜피의 멜피박물관에서 벌어진 강도 사건에서 비롯됐다. 범인들은 박물관이 소장한 고대 에트루리아 도기들을 훔쳐 달아났다. 이탈리아 문화재 전담 수사국은 즉시 수사에 착수했다. 독일 경찰의 제보를 받고 뮌헨 골동품상 집을 압수수색한 이탈리아 경찰은 엄청난 양의 고대 토기, 항아리 등과 함께 메디치를 비롯한 도굴꾼과 밀거래 조직의 계보도를 손에 넣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메디치의 창고에선 골동품 수천 점이 발견됐다. 2005년 이탈리아 법원은 그에게 징역 10년형과 1만 6000유로의 벌금을 선고했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이탈리아 수사팀의 수사 과정을 한편의 흥미진진한 드라마처럼 극적이고, 현장감 있게 그려냈다. 수사로 드러난 도굴 미술품 유통 경로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세계 유수의 경매 회사와 박물관, 미술관, 유명 컬렉터들은 실상을 알면서도 메디치 같은 유통업자에게서 미술품을 샀고, 버젓이 세상에 이를 내놓았다. 불법 고미술품의 유통이 성행하는 것은 바로 이들 작품의 수요자인 박물관과 미술관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비판이다. 2만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해외작가 한국 나들이… 풍성한 가을화단

    해외작가 한국 나들이… 풍성한 가을화단

    인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수보드 굽타(46)와 당대 가장 주목받는 여성작가인 로니 혼(55).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두 작가의 국내 전시회가 화제 속에 열리고 있다. 서울과 천안 아라리오갤러리 두 곳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는 수보드 굽타의 개인전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것이며,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가 마련한 로니 혼의 전시회는 2007년 이후 두번째다. ●일상과 신성의 조화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전시장에는 ‘수보드 굽타’하면 떠오르는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작품 대신 매끈한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조각들이 시선을 압도한다. 인도 서민들이 식기로 주로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스틸을 활용한 대형 조각과 설치 작품으로 유명한 그는 이번 전시에선 대리석을 깎아 만든 주전자와 우유통, 도시락통 등의 신작을 내놨다. 재료는 달라졌지만 인도인의 일상에서 신성한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방식은 마찬가지다. 인도에서 생산되는 대리석은 스테인리스 스틸처럼 일상적인 재료. 그러나 그가 대리석으로 만든 대형 주방 용기들은 마치 고대 조각품을 보는 듯한 위엄과 신비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17세기 북유럽 바니타스 정물화의 이미지를 차용해 인도식 침대 위에 대리석 해골과 이불을 배치한 작품과, 쟁반 위에 물결치는 파도를 형상화한 작품도 눈길을 끈다. 2층 전시장에는 요리와 음식에 대한 그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회화 작품들이 선보인다. 신작 위주로 꾸며진 서울 전시와 달리 천안 전시는 수보드 굽타의 대표작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잘라낸 택시의 상판에 브론즈로 만든 짐꾸러미를 올린 ‘모든 것은 내면에 있다(Everything is inside)’를 비롯해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한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서울 전시는 10월10일까지(02-723-6190), 천안 전시는 11월7일까지(041-551-5100) 이어진다. ●같음과 다름, 그 찰나의 간극 로니 혼의 조각 작품 ‘투 핑크 톤즈(Two pink tons)’는 똑같은 크기, 똑같은 모양의 분홍빛 유리 조각 한 쌍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전시장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유리 표면에 반사되는 정도에 따라 두 개의 조각은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다. 또 관람객이 두 조각 사이의 빈 공간에 들어가면 이 작품은 원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 같은 작품이지만 시간과 장소, 관람객의 참여에 따라 정체성을 달리하는 작품인 셈이다. 동일한 대상의 같음과 다름에 대한 로니 혼의 탐구는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를 찍은 사진 ‘이미지의 초상’에서 좀더 분명히 드러난다. 수초 간격으로 연달아 찍은 여배우의 사진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섬세한 표정 변화와 뉘앙스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로니 혼은 개인의 정체성과 배역의 정체성을 동시에 품고 있는 배우의 표정을 통해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는 다양한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알루미늄 막대기에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적은 ‘화이트 디킨슨’ 조각은 문학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작가 스스로 ‘모든 작업의 핵심’이라 일컫는 드로잉 작품 3점도 선보인다. 그림 위에 자른 종이를 조각조각 이어 붙인 드로잉은 개념적이고 철학적인 작품 세계의 근원을 짐작하게 한다. 전시는 10월3일까지 열린다. (02)733-8449.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 인기

    17세기 이후 한·일 문화교류의 첨병역할을 했던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이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 이후 1607년에 467명 규모로 처음 일본에 파견된 뒤 1811년까지 총 12차례에 걸쳐 파견됐고, 한의학과 약초 재배기술, 음악, 무용 등 조선의 앞선 문물을 일본에 전파해 ‘한류의 원조’로 평가받고 있다. 23일 부산문화재단에 따르면 최근 일본 요코하마의 ‘뱅크아트 1929 문화 기획단’이 조선통신사 10년 프로젝트를 수립하고, 조선통신사 행렬을 가장 먼저 재현한 부산문화재단 측에 노하우 전수 여부를 타진해 왔다. 다음 달 2일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열리는 ‘코리안 퍼레이드’ 행사에도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이 메인 행사로 선정됐다. 또 서울문화재단은 부산문화재단에 조선통신사 문화행사의 세계화를 위한 전략탐색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고, 코리안 퍼레이드에 경복궁과 광화문 형상의 꽃차 퍼레이드와 청사초롱 500개를 다는 홍보부스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다음 달 31일 일본 도쿄에서, 11월3일 일본 후쿠오카현 신구초에서 열리는 전일본 조선통신사 연고지대회에서도 각각 조선통신사 행렬 재현을 요청받았다. 이에 앞서 부산문화재단 조선통신사 문화사업팀은 지난 17일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페스티벌에 초청받았고, 지난 8월에는 일본 쓰시마와 시모노세키에서 각각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전통음식책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추진

    한국 전통음식 조리책인 ‘수운잡방(需雲雜方)’과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경북도는 조선시대 요리책인 수운잡방과 음식디미방을 묶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23일 밝혔다. 음식디미방(17세기 후반)은 영양지역에 살았던 여성 군자 장계향(張桂香·1598~1680)이 쓴 최초의 한글 조리서로 옛날부터 전해져 오거나 개발한 조리법 146가지가 담겨 있다. 수운잡방은 조선 중기 안동에 살았던 김유(綏·1481~1552) 선생이 지은 식품 가공 및 조리 방법을 적은 책으로 음식디미방보다 100여년 전에 발간됐다. 조선 전기의 식생활에 대한 기록으로서는 가장 앞선 책이다. 음식디미방과 수운잡방은 각각 영양의 재령 이씨와 안동의 광산 김씨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져 왔다는 점이 특징이다. 도는 두 조리서의 역사성과 중요성을 고려해 우선 국내 문화재로 지정한 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다는 방침이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유교적 이념·의례 망치는 건 옛 관습에 안주하는 유교인들”

    추석이 다가온다. 시댁의 ‘시’자만 나와도 온몸이 저려 온다는 ‘명절증후군’ 시즌이다. 오랜만에 일가 친척들이 모이는 날이지만, 명절이 즐겁지 만은 않다는 뜻일 게다. 16~17일 서울역사박물관과 경북 안동의 이우당종택에서 한국국학진흥원(원장 김병일) 주최로 열리는 학술대회 주제가 마침 ‘전통 상제례 문화의 현황과 과제’다. 이덕진 창원전문대 장례복지과 교수는 한국적 장례문화를 꼼꼼히 점검한다. 이 교수는 유교적 장례란 기본적으로 양반 사대부 집안 얘기지, 일반인들의 문화는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큰 봉분을 만들고 석물을 놓은 뒤 3년상을 치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겠냐는 것. 그렇기에 이 교수는 현대에는 소박하게 치를 수 있는 화장이나 자연장이 좋은 방법이라 권한다. 또 원래 수의는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는 뜻에서 예쁘고 곱게 치장하는 방식이었다고 밝혔다. 삼베처럼 거친 천을 썼던 것은 예전엔 명주나 모시가 비싸서 어쩔 수 없이 그랬다는 설명이다.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비싼 국산 삼베나 중국에서 수입하는 삼베를 쓸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정종수 국립고궁박물관장도 제사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 관장은 “옛 예법에 따르면 1년에 제사만 31번 정도는 치러야 한다.”면서 이게 지금 가능하겠느냐고 되묻는다. 특히 아직도 제사는 장남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조선시대도 17세기까지는 재산 상속이 균등상속이었기 때문에 돌아가며 제사를 지냈던 것이 오히려 일반적이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집안에 따라서는 이런 얘기를 꺼냈다가는 경칠 노릇인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금장태 서울대 종교학과 명예교수는 유교식 예법의 뿌리인 ‘주자가례’의 글귀를 빌려온다. 금 교수는 “주자가례에 보면 ‘예법이란 때(時)가 중요한 것이니, 성현으로 하여금 예법을 쓰게 하면 반드시 일체로 옛 예법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단지 옛 예법을 감쇄하여 지금 세속의 예법을 따를 것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내친 김에 금 교수는 한마디 덧붙여 둔다. “유교 이념과 의례를 파괴하는 이들은 다른 종교집단이나 반유교적 개혁론자가 아니라 시대 변화에 적응하기를 거부하고 옛 관습에 안주하는 유교인 자신이다.”라고.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부고] ‘세상의 모든 아침’ 알랭 코르노 감독 하늘로

    [부고] ‘세상의 모든 아침’ 알랭 코르노 감독 하늘로

    ‘세상의 모든 아침’(1991)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프랑스 영화감독 알랭 코르노가 지난 29일(현지시간) 암으로 숨졌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67세. 40년 가까이 영화계에서 활약해 온 코르노 감독은 카트린 드뇌브, 제라르 드파르디외 등 프랑스 유명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 왔다. 17세기 음악가의 이야기를 그린 대표작 ‘세상의 모든 아침’은 드파르디외가 주연한 영화로, 프랑스 세자르영화제에서 7개 부문을 수상하고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오르는 등 세계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궁은 성명을 통해 코르노를 ‘용감한 사람’, ‘위대한 감독’이라고 칭송하면서 “그는 영화를 통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했다.”고 말했다. 194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재즈 뮤지션으로 잠시 활동하다 그리스 출신 영화감독 코스타 가브라스의 조수로 영화계에 입문했다. 2003년 제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최근 프랑스에서 개봉한 영화 ‘러브 크라임’이 마지막 작품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경술국치 100년] 이태진 교수는

    [경술국치 100년] 이태진 교수는

    1990년대 초반부터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사학자다. 1988년 서울대 규장각 도서관리실장을 맡은 뒤 장서 35만권을 정리하던 중 두 가지 소득을 얻었다. 하나는 프랑스가 외규장각 도서를 가져갔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이는 반환운동으로 이어졌다. 또 하나는 한·일병합 불성립론이다. 그는 한·일 조약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조목조목 따져 나갔다. 그의 작업이 일본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일본 잡지 세카이(世界)에서 진행된 일본 학자와의 논쟁이다. ‘한·일병합은 문제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머지 조약이나 협약은 문제가 없다.’는 일본 학자들과 집요하게 논쟁했다. 이를 계기로 2001년, 2004년 일본 도쿄대 학생들에게 직접 강의도 하고,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전선’을 확대시켜 나갔다. 그의 또 다른 연구 주제는 다소 엉뚱해 보인다. 17세기를 중심으로 한 외계 충돌설이다. 이 무렵 조선에서는 자연재해와 당쟁이 유난히 심했고, 서양에서는 페스트(흑사병)와 마녀사냥이 성행했다는 점에 주목, 전 세계적인 소(小)빙하기 가능성을 탐문하고 있다. 조선의 가장 큰 문제는 ‘유교’라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일본이 한국을 집어삼키기 위해 그렇게 많은 무리수를 둬야 했던 것도 조선 유교 문명의 힘이었다는 게 그의 반론이다. 1943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고 서울대 문리대 사학과를 나왔다. 1977년 서울대 강단에 선 이래 역사학회장, 한국학술단체연합회장, 서울대 인문대학장 등을 지냈다. 현 학술원 회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광장]한국, 장기판의 卒은 안 된다/이춘규 논설의원

    [서울광장]한국, 장기판의 卒은 안 된다/이춘규 논설의원

    내일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 조상들은 100년 전 제국주의 국가들의 잔인한 정복 쟁탈전에 휘말렸을 때 무기력했다. 인재도 없었다. 국제정세에 무지했다. 자체 방어를 위한 군사력도 약했다. 재정은 거덜났다. 결국 미국, 일본, 영국의 식민지 나눠먹기 제물이 되었다. 강국들에 무참하게 농락당하다 나라를 잃고 말았다. 한반도는 ‘동아시아 장기판’의 졸(卒) 신세였다. 1907년 주한 영국 총영사였던 헨리 코번은 우리의 처지를 강국 일본, 러시아, 중국 세력의 틈바구니에 끼여 고통받는 장기판의 졸에 비유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당시 미 대통령은 무력한 나라들을 문명국의 합법적인 먹잇감이라고 했다. 미국인들은 조선인을 퇴화한, 몰락중인 인종으로 봤다고 ‘임페리얼 크루즈’(프리뷰)라는 책이 소개했다. 미국과 일본이 각각 필리핀과 대한제국 지배를 용인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굴욕의 결정판이었다. 고종은 미국·일본의 나눠먹기를 전혀 몰랐다. 미국을 형님 같은 나라로만 생각했다. 1905년 을사늑약 두 달 전까지 미국에 애처롭게 매달렸다. 일본과 비밀거래를 계속한 미국은 을사늑약을 묵인, 조장했다. 그리고 일본의 대한제국 통치를 인정한 첫 번째 나라가 된다. 국제외교는 비정했다. 일본은 어땠던가. 17세기 초부터 쇄국정책을 펴면서도 네덜란드에만은 나가사키의 작은 섬에서의 교역을 허용, 세계정세를 계속 파악한다. 외교전을 통해 19세기 말 근대화를 단행, 부국강병책으로 제국주의 열강 일원이 됐다. 비백인, 비기독교 국가로서는 유일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인접국을 집어삼키며 욱일승천했다. 태평양전쟁 패전으로 엄한 대가를 치렀지만 경제외교력으로 부활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 국가에 외교는 중차대하다. 외교력은 경제력, 국운을 좌우한다. 2008년 경제위기는 외교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 중심 외교시대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주요 20개국(G20)이라는 다극화 구조도 시동을 걸었다. 미국에만 외교를 의지해서는 안 될 시대다. 국익에 따른 치열한 합종연횡이 전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합종연횡의 시대, 외교무대에 천사는 없다. 긴장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 변수라는 숙명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싸움 속에서 힘겨운 줄타기 외교를 해야 한다. 리비아, 이란 제재 문제 등 절박한 외교적 선택을 해야 하는 팍팍한 처지다. 오늘도 국제외교 현장에서 속내를 감춘 채 미소짓는 비정한 외교전을 수시로 체험하고 있다. 정복 쟁탈전은 없지만 외교전은 여전히 살벌하다. 우리는 100년 전 처참한 굴욕을 당했다. 그 굴욕을 씻기 위한 노력이 아직도 부족한가. 많은 유학생과 상사원들이 세계로 나가 국제정세 흐름 파악은 빠르다. 하지만 자원확보 경쟁 등 경제외교를 포함한 총체적인 외교력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 경제외교전을 펼 촉수인 기업과 배후지원을 할 외교관의 협조 체제가 미약하다. 외교의 일관성, 정교함, 치밀함을 보강해야 한다. 장기전략에 따른 외교를 해야 한다. 21세기 원대한 외교 전략이 세워져야 한다. 정권이 바뀐다고 외교 정책의 큰 틀이 바뀌는 일은 최소화해야 한다. 냉정하게, 기민하게 국제정세 변화를 파악해야 한다. 일관성 있는 외교정책만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다. 지역전문가를 키워야 한다. 외교관 선발과 양성에 아낌없이 투자, 외교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한반도 주변정세의 변화 속도가 빨라졌다. 100년 전처럼 오늘날 외교현장에도 천사 같은 미소가 넘친다. 미소 뒤에는 여전히 날카로운 비수가 숨겨져 있다. 그 시절 미국은 대한제국을 속였다. 등에 비수도 꽂았다. 결국 일본도 속였다. 각국이 속고 속이는 외교전은 여전하다. 지금 외교 현장에서 미소 뒤에 숨겨진 비수는 없는지 살펴야 한다. 한국이 다시 장기판의 졸 신세가 되어서는 안 된다. taein@seoul.co.kr
  • “美 항모 조지워싱턴호 中자극 위한 3대 함정”

    미국이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이용해 중국을 상대로 치밀한 함정을 파놓고 있다고 22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지적했다. 통신은 인터넷 사이트인 신화망의 군사코너에 게시한 글을 통해 조지워싱턴호가 6월 초 모항인 일본 요코스카항을 떠나 베트남의 다낭까지 두 달여간 중국 주변 3700㎞를 움직이며 중국을 자극한 것은 모종의 계획이 있는 것이라며 “3가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선 중국이 미국 패권에 대한 ‘도전자’라는 등식을 세우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16세기 세계 패권국이었던 포르투갈에 스페인이 ‘도전’했지만 정작 17세기에 패권을 잡은 국가는 스페인이 아니라 포르투갈의 지지자였던 네덜란드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미국은 중국을 역사의 함정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함정은 의도적으로 중국을 격분시켜 경제건설 중심의 정책노선을 지속하려는 중국을 동요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통신은 미국이 ‘스타워스’ 계획 등 군비경쟁을 통해 옛소련을 몰락시켰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는 중국의 자위권 강화를 유도해 주변국들에 ‘중국 군사력이 위험하다.’는 인식을 퍼뜨리려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의 이익을 유지하려는 미국은 ‘중국 위협론’을 확산시켜 중국과 주변국을 이간시키는 것을 중요한 전략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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