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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인삼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인삼

    우리나라 춘향전에 비견되는 일본 최고의 국민 문학 ‘충신장’(忠臣藏)에는 ‘인삼 먹고 목맨다’는 말이 있다. ‘죽 쒀서 개 준다’는 우리 속담과 같은 의미다. 충신장에는 고려 인삼이 천하의 명약으로 등장하는데, 다 죽어 가던 사람이 빚을 내어 고려 인삼을 먹고 기사회생하지만 그 가격이 엄청나서 빚을 갚지 못하고 목매어 자살한다는 내용에서 유래했다. 일본인 스스로도 ‘죽절삼’(일본삼)을 약용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고려 인삼의 가치를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고려인삼·中 전칠삼·북미 화기삼 3종만 상품화 우리나라가 기원인 인삼은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인삼속 식물은 10여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재배되는 인삼종은 고려 인삼과 중국의 전칠삼, 북미 화기삼 등 3종에 불과하다. 일본의 죽절삼은 쓴맛만 강할 뿐 약효가 없어서 재배되지 않고 있다. 지구상에서 인삼속 식물이 자랄 수 있는 곳은 동아시아와 북미 등 두 곳뿐이다. 고려 인삼은 한국과 중국의 동북3성(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 러시아 연해주에서 자생하거나 재배된다. 16세기 고려 인삼의 품귀에 따라 대체품으로 쓰이기 시작한 중국의 전칠삼은 삼칠삼, 주자삼 등 7~8종의 변종이 있을 만큼 다양하다. 주로 중국 윈난성, 후베이성, 쓰촨성과 히말라야 산맥 일대의 네팔, 티베트, 인도 일부,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자생한다. 화기삼은 1895년 야생 화기삼 종자를 토대로 인공 재배에 성공하면서 미국의 위스콘신주와 버지니아주 등 16개 주와 캐나다의 온타리오주 등 8개 주에서 재배되고 있다. 인삼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 전한의 원제(기원전 48~33년) 때 사유가 쓴 ‘급취장’(急就章)에 삼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이에 따라 인삼이 선사시대부터 민간요법의 형태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측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인삼은 삼국시대부터 이미 왕실에서 공납으로 받아 왔고, 중국의 위(魏)와 수(隋), 당(唐)나라와의 외교 활동이나 교역에 사용된 귀한 물품이었다. 일본이 조선에 요청한 교역품목에 인삼은 빠지지 않고 포함됐다. ‘동의보감’의 4000여개 처방 중에서 650여개 처방에 인삼을 사용한 기록과 함께 ‘오장의 양기를 보하며 정신을 안정시키는 등의 효과가 있다’고 적혀 있다. 동양에서 2000년 넘게 명성을 유지해 온 인삼은 17세기 후반부터 서양에 알려졌다. 고려 인삼이 서양에 소개된 최초의 기록은 1637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쿠커르바커르 무역관장이 본국에 보내는 ‘정세 보고서’였다. 16세기 이전의 기록은 인삼을 모두 중국의 귀한 약재로만 소개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약재로 인삼이 서양에 처음 전파됐다.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인삼을 귀히 여겨 사람들이 아시아 각국에서 인삼을 구해 바쳤다는 기록도 있다. 프랑스 선교사인 자르투와 라피토가 캐나다 북미삼을 발견했고, 미국 북미삼의 경우 네덜란드 상인들이 174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스톤브리지에서 야생삼을 발견했다. 지금은 캐나다가 인삼 생산과 수출에서 세계 1위 국가로 시장점유율 30%를 차지하고 있다. 고려 인삼의 학명은 ‘파낙스 진셍’(Panax ginseng)으로 만병통치약을 뜻한다. 고려 인삼의 다양한 효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입증된 고려 인삼의 효능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흔히 인삼의 주요 성분으로 알려져 있는 ‘사포닌’이라는 물질은 단일 물질이 아닌 여러 ‘진세노사이드’(Ginsenoside)들로 이뤄져 있다. 최근에는 각각의 진세노사이드마다 다른 효능이 밝혀지고 있다. 고려 인삼의 폴리아세틸렌 성분과 진세노사이드 Rh2는 종양세포의 증식을 억제하고 Rg1, Re, Rb2는 체내 면역세포를 활성화시켜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또 외부 자극에 저항할 수 있는 호르몬 생산을 증가시키고, 혈중 젖산 농도를 감소시켜 피로를 풀어 주고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준다. 또 아데노신과 진세노사이드 Rb1, Rb2, Re 성분은 중성지방과 콜레스테롤의 함량을 떨어뜨리고 혈전 형성을 억제해 혈류 개선에 도움을 준다. 이는 고지혈증과 동맥경화, 고혈압 등의 성인병과 협심증, 심근경색 등에도 효과가 있다는 얘기다. 진세노사이드는 학습과 기억력에 중요한 신경 전달 물질과 신경 세포수를 증가시키고 뇌신경도 보호해 준다. 이외에 간장 보호와 항암 작용, 당뇨 개선, 빈혈 회복, 성기능 개선에도 좋다. ●천연신약개발 원천… 신산업 소재로 각광 특히 최근에는 인삼이 신종인플루엔자에 저항력이 있고 방사능에 손상된 세포를 회복시켜 준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오면서 세계적으로 인삼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인삼의 매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건강기능식품으로만 이용했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기능성 산업 소재로도 각광받고 있다. 인삼 고유의 향기 물질로 독특한 향을 내는 ‘파나센’(Panacene)은 인체 보온과 피로 회복, 면역력 강화 등의 효능이 있어 아로마 테라피, 피부관리 용품 등에 신산업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화장품과 생활용품 시장에서도 진세노사이드의 노화 방지, 피부 재생 기능성을 이용한 다양한 제품들(얼굴 팩, 샴푸, 기초 화장품 등)이 앞다퉈 출시되고 있다. 앞으로도 현대 과학과 만나 천연 신약 개발의 원천이자 다양한 산업 소재로 가치를 확장해 나갈 전망이다. 김장욱 농촌진흥청 인삼과 농업연구사 ■문의 golders@seoul.co.kr
  • 디지털 빛, 틀을 비틀다

    디지털 빛, 틀을 비틀다

    디지털 출력된 조선 후기 문인화가 강세황의 ‘산수도’ 속에서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존 케이지가 연주를 한다. 영화 속 ‘나사렛 예수’가 텔레비전 모니터를 어깨에 짊어지고 가는 장면도 보인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얀 페르메이르가 그린 ‘우유를 따르는 하녀’에서는 우유가 끝없이 쏟아져 내린다. 영원히 젊은 상태로 남을 줄 알았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패어 있다. 스페인 바로크미술의 대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마르가리타 공주는 가슴에서 빛을 발하는 강화플라스틱 인형으로 재탄생했다. 디지털 시대의 독보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45)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열리는 개인전에 선보인 신작들이다. 그가 ‘다시 태어나는 빛’을 주제로 선보인 30여점의 설치 및 평면 작업들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창작과 모방,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대중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캔버스가 아닌 발광다이오드(LED)TV에 움직이도록 만든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디지털 산수화로 남다른 상상력과 감각을 드러냈던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더욱 확장된 아이디어와 재료를 접목해 동서양의 명화 작품을 새롭게 해석한다. 전시장을 돌아보는 내내 익숙한 명화들이 작가의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모습은 흥미롭고 감탄을 자아낸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충돌과 대립, 정치·도덕·문화·예술의 혼돈에서 비롯된 인간성 상실에서 빛을 잃어버린 시대를 읽은 작가는 빛을 도구로 삼는 미디어 아트를 이용해 새로운 탄생을 꾀한다. 그는 “순수한 빛의 출현을 기대하는 시대적 요구를 작품 속에 반영하고자 했다. 초자연적인 빛을 상징하는 성서 속 메시아와 빛을 이용하는 미디어 아트 간의 접점에서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 봤다”고 말했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작품 ‘빛의 언어’는 밀로의 비너스를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여러 개 복제해 등을 돌려 세워 놓은 뒤 프로젝트빔으로 ‘자승자박’ ‘각인소광’ 등 의미 있는 언어들을 비춘다. ‘빛의 탄생’은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투르의 작품 속 촛불을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치환한 작품이다.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에서는 강세황의 그림 속 인물들이 반딧불이처럼 빛을 반사하며 움직이고, 소나무를 크리스마스트리로 바꿔 놓았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에는 시간의 개념을 담아냈다. 영원히 앳된 소녀로 남을 줄 알았던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또 다른 작품에선 처참하게 늙어 있다. 그는 기존의 디지털 애니메이션 기술로 다양한 변화를 주는 동시에 물과 나무 등의 자연물이나 금속, 플라스틱을 소재로 한 조각, 오브제에 빛과 영상을 과감하게 결합하는 식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리본 라이트’는 기독교의 세례를 차용해 방수된 모니터 속에 있는 축구 선수의 얼굴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면서 부활하는 것을 상징한다. 전시 제목으로 선택한 작품 ‘다시 태어나는 빛’은 16세기 미켈란젤로가 만든 걸작 피에타상을 섬유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들고 예수의 몸을 마리아로부터 떼 내어 공중에 띄우고 빛을 비춘 형상이다.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저만의 시각으로 풀어 봤습니다. 600년 동안 한번도 떨어진 적이 없잖아요. 제가 한번 떼어 놓아 봤습니다.” 조선대와 동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연세대 영상대학원에서 영상예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이남은 디지털 애니메이션 기술을 이용해 일상과 자연의 변화를 영상으로 기록하거나 동서양 명화에 움직임을 부여하고 조각 및 오브제와 영상을 결합하는 등 미디어 아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왔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 ‘개인적인 구축물’(Personal Structure)에 초청되는 등 동시대 미디어 작가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향해 나가고 있는 그는 “디지털 기술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서로 충돌하거나 분리되지 않고 조화로운 모습을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8일까지. (02)720-1020.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24)호박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24)호박

    예로부터 가을에 수확한 잘 익은 호박은 겨우내 다락방 시렁에 놓고 호박범벅이나 떡에 넣어 먹는 등 부족한 식량을 대신해 왔다. 다른 채소보다 기후에 잘 적응하고 가뭄과 병에도 강해 우리 선조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줬다. 넝쿨째 굴러 들어온 고마운 식물이 바로 호박이다. ●산모 부기 빼는 데 최고… 노폐물 배출도 탁월 호박은 박과에 속하는 작물로 중앙·남아메리카가 원산지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축제나 행사의 주인공으로, 중국에서는 다산(多産)과 풍작, 건강, 그리고 부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유럽에는 15세기 이후, 일본에는 16세기 중반쯤 건너갔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왜란 이후인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일본과 중국을 통해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남만(南蠻)에서 전래됐다는 의미로 남과(南瓜), 오랑캐로부터 전래된 박과 유사하다고 해서 호박이라고 부르게 됐다. 세계적으로 재배되는 호박은 열다섯 종류인데 지역에 따라 관상용으로 쓰이는 곳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재배하는 호박은 크게 세 종류다. 동양계 호박으로 불리는 ‘모샤타’종 가운데 가장 친숙한 것은 누렇고 커다란 늙은 호박이다. 청둥호박이나 맷돌호박으로 불린다. 서양계 호박이라고 구분하는 ‘막시마’종은 주로 쪄서 먹는다. ‘페포계’ 호박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주키니’ 호박인데 덩굴이 뻗지 않고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 호박은 대개 여름에 많이 나는데, 늙은 호박은 여름 내내 따지 않고 밭에서 그대로 익힌 것이다. 쨍쨍한 가을볕으로 호박의 영양분이 더 농익도록 기다렸다가 늦가을에서야 수확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동짓날 늙은 호박을 삶아 먹으면 1년 내내 무병한다고 할 정도로 늙은 호박을 훌륭한 영양식으로 평가했다. 늙은 호박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죽이나 김치, 범벅을 해 먹고 씨는 잘 말려 뒀다가 겨울철 간식으로 먹는다. 잎으로는 쌈을 싸 먹는다. 꼭지는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벌꿀과 함께 섞어 먹으면 감기 예방과 고질적인 기침에도 효과가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부기가 있을 때 호박을 먹으라고 했는데 특히 산모의 부기에 좋다. 이뇨제여서 소변이 잘 나오지 않거나 부기가 심한 사람이 달여 먹으면 효험이 있다. 호박은 또 다이어트와 피부 미용에 도움이 된다. 열량이 쌀의 10분의1에 불과하지만 노폐물 배출과 지방의 축적을 막아 준다. 잘게 썬 호박을 햇볕에 바짝 말린 뒤 가루로 만들어 하루에 20g씩 꾸준히 복용하면 인슐린 분비를 돕는 작용도 한다. 호박씨에는 질 좋은 불포화 지방산과 머리를 좋게 하는 레시틴이 많다. ●베타-카로틴 풍부… 폐 걱정되는 애연가라면 꼭! 호박은 소화 흡수가 잘돼 아이부터 소화력이 떨어지는 환자나 노인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비타민B와 펙틴, 칼슘, 철분, 인 등 식물성 섬유와 무기질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는 영양 덩어리다. 호박을 먹으면 소화기능 향상과 변비 개선에 도움이 된다. 항산화 영양소로 잘 알려진 비타민E도 호박에 넉넉히 들어 있다. 단호박을 한 조각 먹으면 하루 섭취 권장량의 절반 이상을 채운다. 한국인에게 부족하다고 알려진 비타민A도 호박에 많다. 호박의 노란 색깔은 베타카로틴이 있다는 의미다. 호박의 베타카로틴은 사람이 먹고 난 후 몸 안에서 비타민A로 바뀐다. 비타민A는 심장병, 뇌졸중, 시력 감퇴, 노화 방지, 폐기능 향상 등의 효과가 있어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호박을 자주 먹는 게 좋다. 호박은 당근과 나란히 황금색 야채의 대표 선수다. 암을 예방하는 성분도 풍부하다. 호박은 열매 채소류에 속하지만 조리법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요리에 이용됐다. 지중해에서는 올리브 오일에 볶아 향신 채소를 얹어 먹고, 아랍에서는 호박 속을 비운 뒤 양념한 고기와 여러 재료를 넣고 익혀 먹는다. 멕시코에서는 호박꽃으로 요리를 해 왔다. 호박의 여러 품종 가운데 ‘주키니’의 꽃을 주로 쓰는데 호박꽃의 부드러운 맛이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일본에서는 200여년 전부터 단호박을 즐겨 먹는 조리법이 발달했으며 애호박은 거의 먹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애호박과 늙은 호박, 잎과 순, 꽃을 두루 즐겨 먹는다. ●상처 없는 늙은 호박, 윤기 도는 단호박이 신선 애호박과 풋호박은 여름에 가장 맛있지만 늙은 호박과 단호박은 가을에 맛있고 영양분도 풍부하다. 늙은 호박은 얼룩진 색깔 없이 표면이 진한 황갈색이면서 상처가 없는 것을 고르는 게 좋다. 상처가 있는 호박은 오래 저장할 수 없고 쉽게 썩는다. 늙은 호박 표면에 하얀 분가루가 생긴 것은 잘 익었다는 표시로 맛이 좋다. 단호박은 들었을 때 묵직한 느낌이 나면서 표면이 고르고 윤기 있는 게 좋다. 반을 잘라 파는 호박을 살 때는 속이 진한 황색을 띠면서 촉촉한 것을 고른다. 애호박은 너무 크지 않고 곧은 것이 좋다. 황록색으로 윤기가 돌고 꼭지가 마르지 않은 것이 신선한 호박이다. 시판되고 있는 대부분의 단호박은 서양 호박인데 일반 호박에 비해 단맛이 강하고 비타민도 많다. 서양 호박은 단단하고 짙은 초록색에 표면에 흠집이 없는 것을 고르는 것이 좋다. 꼭지 주변에 주름이 있고 균일하게 울퉁불퉁한 것이 맛있는 단호박이다. 늙은 호박을 고를 때는 껍질에 윤기가 있고 속이 꽉 차 묵직한 것을 고른다. 특히 누렇게 잘 익은 것을 골라야 한다. 박동금 농촌진흥청 도시농업팀 박사 ■문의 golders@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서울학(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서울학(중)

    ●서울학과 서울정치학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 시기 한국에서 문관으로 근무했던 그레고리 헨더슨은 “서울은 단순히 한국의 최대 도시가 아니라 서울이 곧 한국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67년 전에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을 상상하면서 “파리는 프랑스 그 자체”라고 표현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두 도시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에 이르는 한국정치를 분석한 그레고리 헨더슨은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한국정치의 본질을 정치권력을 향해 상승기류를 타고 몰려드는 소용돌이 현상으로 파악했다. 그는 한국인이 단일민족이라는 동질성 때문에 오히려 원자처럼 분열돼 있으며 원자화된 한국인이 모두 정치권력을 향해 소용돌이처럼 몰려들기 때문에 중앙집중화가 이뤄진다고 주장했다. 이런 환경 속에서 한국정치는 당파성과 개인 중심의 기회주의를 보이면서 합리적 타협이나 응집을 배양할 수 있는 토양이 황폐화됐으며, 이런 소용돌이 정치패턴에 대한 처방은 다원주의와 분권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동질성과 중앙집중화 현상을 무리하게 단순화했다는 비판도 있으나 해방 후 혼란으로 점철된 한국 정치의 현상을 꿰뚫은 통찰력 있는 해석으로 평가받는다. 결국 두 도시는 시장 출신 대통령을 배출했다. 중앙집권화의 한 극단을 달린 프랑스 파리시장 시라크가 1995년 삼수 끝에 최초의 파리시장 출신 대통령에 올랐다. 이어 2007년 이명박 서울시장 역시 삼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중앙정치가 모든 것을 녹이는 특성 아래서 서울과 파리의 정치가 살아남는 데 성공한 셈이다. 중앙정치와 지방정치를 따질 때 서울은 중앙과 지방의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서울정치란 본래 중앙정치와 한 몸이었으나 오랜 관선 시장 시대를 거치면서 서울정치는 중앙정치에 무대를 빼앗긴 채 실체를 잃었다. 서울정치는 고유의 특성을 상실하고 일개 지방정치로 전락했다고 할 수 있다. 서울정치의 상실은 서울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서울은 2000년 이상의 생성사를 가진 기원전의 고도(古都)이며,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전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도시이다. 지속적으로 한반도의 심장부 노릇을 한 지도 620년을 훌쩍 넘겼다. 서울을 떠나 대한민국을 논할 수 없듯이 우리나라 정치는 서울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서울정치의 제 역할 찾기는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서울정치의 기본요소가 서울시장과 서울시 의회, 시민사회와 언론 등으로 구성된다고 보면 그중에서도 서울정치의 주 연구대상은 서울시장이다. 서울시장과 서울정치학은 분리할 수 없다. 서울시장의 위상은 이른바 서울정치학의 정립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서울시장의 존재가치와 위상은 홀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서울정치학과 더불어 성립하기 때문이다. 서울학 연구가 본격화된 지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서울학과 서울학에 바탕을 둔 서울정치학은 완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서울시사편찬위원회가 1957년부터 펴낸 ‘항토서울’ 등 2009년까지 발간된 서울학 관련 논저 682편을 바탕으로 서울학 연구의 대상을 분류하면 기초연구, 서울과 공간, 서울과 정치, 서울과 사회, 서울과 경제, 도시문화와 표상, 기타 등 크게 7개로 구분할 수 있다. 기초연구는 다시 역사개설, 방법론, 사료 및 자료로 세분화되며 공간연구는 도시계획과 제 개발, 도시건축물, 주거지 및 도시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사회분야는 사회집단 및 사회문제, 도시민의 일상생활, 인구문제, 교통과 통신이 포함된다. 경제분야는 공업 및 상업, 무역, 노동 등이다. 도시문화와 표상 속에는 문화 및 교육, 종교와 사상, 도시의 정체성과 이미지 등이 들어 있다. 이 중 서울과 정치는 도시와 국가, 지역정치, 도시행정 및 정책으로 작게 분류할 수 있다. 도시와 국가는 천도, 안보, 정치동향, 대외관계, 군사, 치안 등이 포함된다. 지역정치는 의회와 지방자치이다. 도시행정 및 정책 속에는 도시 관련 각종 제도와 정책, 행정이 망라된다고 할 수 있다. 682건 중 2000년 이후 발표된 논저 33건이 정치 편에 속했는데 서울정치의 핵심을 벗어난 채 행정제도에 관련된 내용을 맴돌았다. 올해로 민선 서울시장을 시민의 손으로 직접 뽑은 지 20년을 맞는다. 그동안 6기에 걸쳐 5명의 민선시장이 배출됐지만 그 정치적 실체는 여전히 모호하다. 정치권력론, 정치과정론, 정치리더십론, 정치문화론, 정치기구론 등 정치학의 분류를 서울학에 적용해 서울의 정치과정론, 서울의 리더십론, 서울의 정치문화론, 서울의 행정기구론 등으로 분류하는 등 서울정치학의 본격적 입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도의 입지와 의미 서울정치학은 1394년 조선 태조의 한양천도에서 비롯됐다. 천도와 안보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성립과 존망을 다루는 서울정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한양의 도시입지는 국토의 중앙에 있다는 점, 군사적 요충지라는 점, 교통과 수운이 편리하다는 점 등 지정학적 요인이 작용했다. 여기에 풍수도참적 측면이 강하게 두드러졌다. 유교적인 동양의 우주론과 풍수 조영 원리가 절충되어 한양 입지의 주요한 사상적 바탕이 되었다. 수도(首都·Capital)란 국가의 통치를 위한 여러 기관과 기능이 집중된 곳으로 다른 도시와 차별성을 갖는 도시이다. 수도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근대 국가 형성 이후에 사용된 것으로 근대 이후에 출현한 개념이다. 즉 수도는 정치의 일원화를 특징으로 하는 근대 국민국가의 정치권력 소재도시를 일컫는다. 수도에 있는 국가기관을 중앙정부, 그 외의 지역에 있는 행정기관들을 지방정부라고 부르는 식이다. 서울을 다스리는 한성부와 한성부의 우두머리인 한성판윤은 중앙정부에 속한 중앙직 관리였다. 조선시대에는 중앙과 지방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고 그와 비슷한 개념어로 경향(京鄕), 중외(中外), 내외(內外), 경외(京外)라는 용어가 사용됐다. 유럽에서는 16,17세기부터 수도라는 용어가 등장했지만 수도 개념이 일반화된 것은 18세기에 이르러서였다. 동아시아는 중앙집권체제가 일찍부터 형성되었고 지금의 수도와 유사한 개념 역시 일찍부터 실재하였다. 중국 중심의 국가별 위계가 존재하였고, 동일 국가의 지역 간에도 정치적, 신분적, 문화적 질서가 있었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사전에서 수도 항목을 찾아보면 한국은 ‘한 나라의 중앙 정부가 있는 도시’, 중국은 ‘국가 최고의 정권기관 소재지로 전국의 정치 중심’, 일본은 ‘ 그 나라의 중앙정부가 있는 도시’라고 각각 정의하고 있다. 세 나라 모두 국가를 단위로 수도를 사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영미권에서 수도를 나타내는 단어인 Capital에 대한 정의를 보면 ‘한 국가 혹은 지역의 정치행정 중심도시’라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근대 이후 수도는 더는 신성한 장소가 아니게 되었고, 수도를 상징하는 성곽의 의미도 축소되었다. 또 제도상 특별한 지위를 갖지도 않으며, 교화의 기준으로 작용하지도 않았다. 대신 수도는 근대 국민국가의 정치·행정·권력의 중심지라는 의미와 함께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데 필수적인 보편화의 기준이 되었다. 수도 그 자체로서 국가를 대표하기도 하며, 국민이나 국가의 형성에 필수적인 국어(표준어)도 수도의 말과 글을 기준 삼아 탄생하였다. 계서화된 국제질서가 만국 공법적인 국제관계로 재편되었듯이 차별적인 지역 간의 위상도 보편화를 지향하는 국민국가와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일원화되었다. 한국에서 수도란 용어가 사용된 것은 1945년 해방 이후였다. 19세기 중반 Capital을 일본에서 번역한 이 용어는 1890년대 처음 들어왔지만, 서울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외국의 수도를 지칭하는 용어로 주로 쓰였다. 교과서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근대 초기 통상조약을 맺을 때도 수도라는 용어 대신 도성이나 경사(京師), 한양, 경성, 경도(京都), 도읍, 수부(首府), 수선(首善), 경조(京兆), 황성, 경화(京華) 등이 쓰였다. 수도 서울은 전제군주와 독재자의 희생양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임금은 수도를 등졌으며, 구한말 고종은 신변보호를 위해 러시아공사관에 숨어들어 1년 동안 머물렀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 사수 거짓부렁으로 피란을 떠나려던 서울시민들이 한강을 건너지 못하게 했다. 이때 생긴 트라우마가 한강 너머 강남 땅에 대한 부동산투기의 실마리를 제공했는지도 모른다. 1960~70년대 남북한 간 안보경쟁의 산물인 ‘서울 요새화 계획’이 또 한번 서울을 멍들게 했다. 북한 장사정포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고자 정부를 과천청사와 대전청사로 분리했고, 끊임없는 수도 이전 시도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세종시 정부 이전으로 이어졌다. 북한의 공습 때 서울시민 30만~40만명용 대피소를 만들 목적으로 남산에 1, 2호 터널을 뚫었고, 남산타워 또한 북한에서 보내는 전파를 방해할 목적으로 세운 것이다. 을지로 지하보도 등 서울 곳곳의 지하보도도 대피용으로 만들었다. 서울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어김없이 대전차 방어벽이 구축됐다. 홍은동 네거리 유진상가도 시가전용 엄폐물이었다. 여의도 광장과 북악스카이웨이, 한강 잠수교도 안보용이었다. 국가안보는 수도 서울에 숱한 생채기를 남겼다. 선임 기자 joo@seoul.co.kr
  • [아하! 우주] ‘지구 중력’을 눈으로 보고 싶으세요?

    [아하! 우주] ‘지구 중력’을 눈으로 보고 싶으세요?

    "지구 중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포츠담 중력 감자'를 이용하면 됩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운영하는 오늘의 천문사진(APOD) 사이트에 15일(현지시간) 지구의 중력을 시각화한 이미지가 발표되어 누리꾼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지구 표면의 중력은 어떻게 분포하고 있을까? 17세기 영국의 아이작 뉴턴이 우주 삼라만상을 지배하고 있는 만유인력, 곧 중력의 존재를 발견하여 중력 방정식을 완성한 이래, 지구상에 있는 모든 존재가 지구 중력의 영항권 안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중력의 진정한 정체는 아직까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자연계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중력을 전하는 '중력파' 가설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제안되었지만, 아직까지 중력파의 존재는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공중에 떠다니지 않고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것도 다 지구 중력 덕분이지만, 지구에서도 중력이 강한 곳이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곳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이유 역시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다. 위의 '포츠담 중력 감자'는 고감도 탐지기를 탑재한 인공위성 GRACE와 CHAMP가 지구 궤도를 돌면서 작성한 지구 중력장 지도로, 결과물로 나온 것이 마치 감자 같은 모양인데다, 주로 독일 포츠담에서 연구가 진행된 탓으로 약간 코믹한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이 '감자'의 붉은 부분은 다른 곳보다 중력이 약간 높은 영역이며, 푸른 부분은 중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이다. 중력 감자의 들쭉날쭉한 모습은 해당 지역의 지질학적 특성들을 보여준다. 예컨대, 북대서양 중앙산령과 히말라야 산맥 영역을 보면 그렇다. 그런 지형적 특성이 없는 부분은 지표 아래 물질의 밀도차와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유의 지도는 다양한 해류의 순환과 빙하의 녹음 등 지표의 변화상을 계측하는 데 도움을 준다. 위의 중력 지도는 2005년에 작성된 지도에다 2011년에 보다 정밀한 중력 데이터를 보태어 완성된 것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진경산수화로 유람하는 조선의 산천

    진경산수화로 유람하는 조선의 산천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유명 화가들이 그린 작품을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 그리는 것을 최고의 배움이요 재능으로 여겼다. 하지만 아무리 잘 그린들 그것은 중국의 산이요 강이었다. 17세기 조선성리학의 토대가 확고해지면서 우리의 강산을 우리 고유의 시각문화로 담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고 이는 시대의 문화를 특징 짓는 주된 흐름이 된다. 우리 국토 안에 있는 진짜 경치(眞景)를 사생해 내는 진경산수다. 진경산수는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가 토대를 마련한 조선의 성리학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율곡학파가 주도하고 퇴계학파가 동조해 인조반정이 성공한 이후 우리 산천과 삶의 풍경에 자주적 정신과 자연관을 접목한 진경산수화의 서막이 열린다. 하지만 제대로 화법을 창안하고 이를 완성해 진경시대 문화를 연 것은 겸재 정선(1676~1759)이다. 주역에 밝은 문인화가였던 겸재는 주역의 음양조화와 음양대비의 원리를 토대로 진경산수화법을 창안했다. 중국 남방화법의 기본인 묵법으로 음인 흙산을 표현하고 북방화법의 기본인 필법으로 양인 바위산을 표현했다. 중국에서는 대립적으로 발달해 온 남북 화법을 이상적으로 조화시켜 우리 산천의 표현에 가장 알맞도록 만들어 낸 획기적인 화법이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간송미술문화재단의 소장품을 주제별로 묶어 소개해 온 간송문화전의 세 번째 전시 ‘진경산수화-우리 강산, 우리 그림’전은 진경산수화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다. 겸재와 그 뒤를 잇는 현재 심사정, 단원 김홍도, 진경산수의 정신과 화풍을 발전시킨 조석진, 안중식, 노수현 등 조선시대 화가 21명의 작품 90여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번 진경산수화전에는 겸재 59세 때의 작품인 경북 울진의 명승 ‘성류굴’부터 84세로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 그린 것으로 여겨지는 ‘금강대’까지 출품된다. 우리 국토에서 명승지로 꼽히는 금강산과 관동팔경, 단양팔경, 서울 주변의 경교명승, 박연폭포 등이 포함된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백인산 연구실장은 “진경은 조선성리학이라는 고유이념을 바탕으로 움터오는 조국애와 국토애의 발현현상이었다”면서 “절묘하게 남북화법을 조화시킨 기법으로 우리 산천의 특징을 담아낸 겸재의 진경산수화들을 연대별로 유의하며 보면 진경산수화법의 변화과정을 확연히 구분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겸재는 36세 때 금강산 초입의 금화현감으로 있을 때 진경시의 대가인 사천 이병연과 함께 스승인 삼연 김창흡을 모시고 금강산을 처음 여행한다. 이때 완성된 시화첩 ‘해악전신첩’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겸재는 당대 제일의 화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나 72세가 된 겸재는 그곳을 다시 찾아 무르익은 솜씨로 ‘금강내산’을 그렸다. 비로봉을 정점으로 내금강 1만 2000개 화강암봉을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놓아 막 피어나는 백련꽃 봉우리처럼 화면을 구성했다. 평생을 수련하며 독자적인 진경산수화풍의 완성에 매진한 그가 노년기에 터득한 우주 자연의 섭리를 풀어낸 명작이다. 비슷한 시기에 그린 ‘단발령망금강’, 봄의 금강산 경치를 그린 ‘금강전도’, ‘만폭동’ 등은 필묘법과 묵묘법을 적절히 조화해 그린 진경산수화풍의 전형적인 작품들이다. 겸재는 말년에 이르러 장식적인 요소를 모두 걷어내고 극도로 추상화된 진경산수화법으로 그려낸다. ‘금강대’는 겸재 만년 특유의 대담한 필법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겸재 다음 세대인 현재 심사정, 능호관 이인상, 진재 김윤겸, 단릉 이윤겸 등 사대부 화가들은 겸재의 영향으로 진경산수화를 각자의 기법으로 완성한다. 진경 말기에 이르면 단원 김홍도, 고송유수관 이인문, 긍재 김득신 등 화원화가들이 배출돼 겸재의 진경정신을 계승한다. 특히 김홍도는 정조의 왕명을 받들고 강원도 영동 9군의 명승을 사생해 돌아오는데 세련된 필법으로 섬세하고 충실하게 묘사해 겸재와는 또 다른 흥취를 자아낸다. 이번 전시에는 진경 문화가 부정당하기 시작하는 북학시대에 그려진 이방운, 윤제홍, 김기서, 조정규, 허유 등 진경정신을 상실한 산수화와 국망기에 활동한 김영, 조석진, 안중식 등의 작품들이 함께 걸렸다. 밝은 인공조명과 현대적인 공간의 생김새 탓에 고미술의 느낌이 반감되는 게 흠이지만 작품에만 집중하면서 진경문화의 실체와 시대별 진경산수화의 특징을 비교 감상하면 큰 공부가 된다. 전시는 내년 5월 10일까지. 입장료는 성인 8000원, 학생 4000원. 1644-1328.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감자 튀김 원조 논란, 벨기에 “우리 문화유산” 주장..프렌치 프라이 명칭바꿔야?

    감자 튀김 원조 논란, 벨기에 “우리 문화유산” 주장..프렌치 프라이 명칭바꿔야?

    ‘감자 튀김 원조 논란’ 감자 튀김 원조 논란이 화제다. 프랑스와 벨기에가 감자 튀김 원조 자리를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 최근 벨기에가 감자튀김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 달라고 신청할 계획이라고 다수의 외신들이 보도했다. 벨기에 문화유산 등재 관계자는 “프렌치 프라이가 아니라 벨지언 프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벨기에나 프랑스나 유럽에서 감자 튀김은 대표적 서민 음식이다. 프렌치 프라이는 두께가 1㎝ 이상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원뿔 모양 종이 봉지에 담아 먹고 주로 마요네즈를 곁들이는 음식이다. 벨기에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의 왈로니아 지역에서 감자 튀김을 처음 먹어본 미군이 왈로니아를 프랑스로 착각해 ‘프렌치 프라이’로 잘못 소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17세기에 벨기에 브뤼셀 브뤼셀 남쪽 나뮈르 지역 사람들이 우연히 감자 튀김을 개발했다는 것이 벨기에 사람들의 주장이다. 이 지역의 뫼즈 강이 얼어붙어 물고기를 잡을 수 없게 되자 어부들이 대신 감자를 작은 물고기 모양으로 잘라 튀겨 먹었다는 것. 하지만 프랑스는 감자 튀김 원조 논란에 “프렌치 프라이는 프랑스 대혁명 때 센강의 퐁뇌프 다리에 처음 등장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편 JTBC ‘비정상회담’에 출연 중인 벨기에 출신 줄리안은 이 프로그램 ‘세계의 요리’ 편에서 “벨기에는 감자튀김과 홍합탕 요리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네티즌들은 “감자 튀김 원조 논란, 프렌치 프라이 미국 것인 줄 알았다면”, “감자 튀김 원조 논란, 벨지언 프라이 어색하다”, “감자 튀김 원조 논란, 벨기에 주장 그럴 듯 하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JTBC 캡처(감자 튀김 원조 논란)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서울학(상)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서울학(상)

    서울은 2000년 이상의 생성사를 가진 기원전의 고도(古都)이며,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전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도시다. 지속적으로 한반도의 심장부 노릇을 한 지도 620년을 훌쩍 넘겼다.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간다’라고 어느 시인은 읊었지만, 서울에는 읊을 기억이 별반 없다. 왜일까. 연식은 2000년을 넘겼지만, 마일리지는 환갑에 불과한 후진국형 신생 도시로 강제 성형수술을 당했기 때문이다. 서울은 16~17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을 겪고서 인구가 10만명에서 4만명으로 줄었지만, 18세기 후반 30만명이 사는 당대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로 회생했다. 한국전쟁으로 도시의 4분의1이 파괴돼 폐허가 됐지만 6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초현대도시로 탈바꿈하는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서울학’이란 무엇이며 왜 서울학인가 우리는 회생과 개발의 논리에 파묻혀 민족의 역사와 공동체의 거룩한 자취를 유지하지 못했다. 서울은 역사도시의 향기를 잃었다. ‘서울에는 분명히 서울다운 면이 있을 것인데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직 모른다. 사람들은 이것을 정체성이라고 하는데 서울은 바로 정체성이 없다’는 문제의식을 낳았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서울의 깊은 내면 세계를 파헤쳐 보고자 20년 전 고고성을 울린 것이 이른바 ‘서울학’이다. 서울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학문적으로 답하려는 시도다. 서울학은 어느 특정 분야에 속하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학문이라기보다는 서울의 역사적, 문화적 진면목을 살리기 위한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학술 활동의 총칭이다.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들과 얽혀 있다’고 한다. 서울학은 서울이 가진 장구한 역사와 서울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모든 사물과 사실, 작용과 반작용 및 현상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분야로 씨줄과 날줄이 짜였다. 시공간의 축으로 볼 때 매우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종합 학문의 영역이며 학문과 학문 간 학제(學際)적인 연구 분야 또한 무한대다. 역사학을 바탕으로 학문 간의 벽을 허물자는 아날학파(프랑스 역사학자 페브르와 블로크가 1929년 창간한 ‘경제사회사 연보’에서 유래된 역사학파)의 명제를 실행할 무대다. 지역 명칭을 사용하는 학문이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1957년 서울 시사편찬위원회가 ‘향토서울’을 창간하면서 돛을 올린 이후 1994년 서울시립대학교에 세계 최초의 수도학 연구소인 서울학연구소가 개설됐다. 서울의 역사, 정치, 지리, 문화, 도시, 건축, 경제, 자연환경, 생활 등의 분야에서 서울의 생성, 성장, 발달 및 변천과정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연구해 하나의 새로운 독자 학문으로 발전시키고자 한 것이다. 단순히 지역학에 머무르지 않고 서울의 문화와 역사를 총체적으로 밝히는 학문을 목표로 했다. 1995년 본격 지방자치시대의 개막과 함께 특정한 도시의 이름을 붙인 ‘부산학’ ‘인천학’ ‘강릉학’ ‘대전학’ ‘경주학’ ‘안양학’ ‘춘천학’ 등이 생겨났다. 더불어 특정한 지역을 단위로 하는 ‘영남학’ ‘호남학’ ‘경기학’ ‘충북학’ ‘제주학’ ‘강원학’ 등 다양한 지역 학문이 싹을 틔우기에 이르렀다. 이에 앞서 1985년 대구지역사회연구회를 기치로 부산지역사회연구회, 호남사회연구회, 전남사회연구회가 1988년부터 차례로 결성되면서 해당 지역사회의 역사 발전과 현안을 화두로 삼았다. 현재 전국에는 서울학(서울학연구소, 도시인문학연구소, 서울연구원, 서울 시사편찬위원회), 부산학(부산학연구센터, 부산발전연구원), 인천학(인천학연구원, 인천발전연구원), 경기학(경기문화재단, 경기도사편찬위원회), 충청학(충청학연구소, 충북개발연구원, 충북학연구소, 충북학연구센터), 강원학(강원개발연구원, 매지학술연구소), 대전학(대전학연구회, 대전발전연구원), 제주학(제주역사문화연구소), 호남학(호남문화연구소), 경주학(경주학연구원), 영남학(영남문화연구원) 등이 있다. 1980년대까지 서울 연구는 서울 내에 위치한 궁궐 및 도성, 도시건축물의 개별적인 건설 과정, 연혁, 건설 규모의 고증과 서울행정제도사의 파악에 머물렀다. 1994년 서울학연구소 발족 이후 도시공간 구조, 도시민의 주체적 행위 등 도시를 대상으로 하는 도시사, 도시학으로 영역이 확대됐다. 도시건축물의 개별적인 건설과정에서 벗어나 도시계획 및 주거지 분화에 따른 공간 확장이나 공간 분화 양상을 고찰했다. 도시화가 낳은 사회적, 문화적 도시공간의 구조 변동이 서울시민의 삶에 미친 영향을 연구했다. 그러나 서울학의 갈 길은 아직 멀다. 관동대 이규태 교수는 “지역이나 도시명을 사용하는 학문이 어떤 유형의 학문이며, 어떠한 학문적 성격을 가지고,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 연구돼야 한다는 학문이론이나 연구방법이나 연구범주에 대한 객관적이고 보편화한 학문적 개념과 정의 그리고 이론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방학의 전통은 동아시아에서 득세하는 편이다. 순서는 일본〉한국〉중국이다. 유럽에는 지역학의 전통이 없다. 있을 법한 프랑스 파리에도 ‘파리학’이라는 학문은 없다. 우리가 서울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일본의 ‘에도학’이 제공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들어간 1590년 이래 만 400년이 되던 해인 1989년쯤 붐이 일었다.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의 지역 연구를 시작하는 ‘오사카학’도 1994년 뒤를 이었다. 에도학 또는 ‘에도도쿄학’의 정의는 “에도시대부터 지금까지의 도시형성 발전과 문화변용의 과정을 일관한 시점에서 파악해 그 연속성과 비연속성, 도시로서의 특성을 학제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중국에는 베이징학이 있다. 2000년 중국 베이징연합대학교가 우리의 서울학과 서울학연구소를 모델로 연구소를 창립, 베이징학 연구가 첫 발걸음을 떼었다. 서울학연구소는 2010년부터 ‘동아시아 수도연구와 서울학’이라는 연구 주제로 연구영역을 국제적으로 확장해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 베트남 하노이와 교류하고 있다. ●서울학은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 어떤 학문인가 서울학을 ‘서울지방학’이라고 호칭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국제지역학을 연구하는 학문인 국제지역학(International Area Studies)과 크게 나누는 의미에서 지방학(Local Studies)이라고 부르는 것이 연구범주나 학문의 개념을 명확하게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한국의 수도인 서울을 연구하는 데 지방학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어색한 느낌이며 서울학이 더 잘 어울린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역할이나 기능에 차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서울학과 ‘한국학’의 연구범주도 다르다. 이 때문에 서울학을 서울지방학이라고 혼칭해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중국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분명하게 구분하려고 베이징시의 경우 ‘베이징시 지방 인민정부’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서울시 지방정부’라고는 하지 않으나 중앙정부 산하 기관은 서울지방국세청, 서울지방검찰청, 서울지방경찰청처럼 ‘서울지방’이란 명칭을 사용한 지 오래다. ‘향토사’와 구분해야 한다. 우리가 흔히 지역문화사를 이르는 향토사란 자연 지리적 공간과 전통문화를 결합한 공동체의 속성을 강하게 내포한 폐쇄적이고 자족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하여 지방학의 연구 목적이나 대상 혹은 범주가 주로 지역사회의 역사문화 전통으로 한정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경계하자는 목소리이다. 국제지역 연구는 세계의 다른 국가나 다른 지역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국가 내부의 특정 지역에 대한 연구로서 지방학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하지만 지방학의 연구방법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서울학은 국내 지방연구의 인식전환에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서울이라는 상징성과 대표성 때문이다. 서울학을 학문 영역의 하나로 모색하면서 가장 먼저 논의된 것이 바로 ‘서울학이 학문으로 성립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였다. 서울학연구소 초대 소장을 맡았던 안두순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서울학 연구의 필요성과 가능성 및 그 한계’라는 논문에서 “서울에 대하여 너무도 모르는 것이 많고 알고자 하여도 그 결실을 당장에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이는 “어느 누구도 서울에서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나 사물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하며 이해하고 설명하고자 노력한 바가 없고 어느 학문 분야도 서울을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학 연구의 첫걸음은 서울의 정체성 찾기이며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연구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면 서울학의 연구 대상은 무엇인가. 공간적으로 행정구역상 서울은 물론 역사적으로 서울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던 지역공간 모두를 대상에 넣었다. 시간상으로는 서울의 역사적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대상이다. 학문별로는 정치학, 국문학, 사회학, 도시행정, 지리학, 건축학, 도시계획학, 조경학, 생태학, 민속학, 역사학, 경제학, 행정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와의 연계성이 모색됐다. 오늘날 서울을 구성하고 있고, 구성해 온 모든 요소들이 서울학의 연구 대상이다. 서울의 장소, 사람, 일, 문화를 만들어 내고 변화시키는 도시적 보편성과 특수성을 밝혀냄으로써 더 나은 서울의 미래상을 그리는 것이 서울학의 연구 목적이다. 서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다. 우리가 숨 쉬는 서울의 모든 것이 서울학의 연구 대상이요, 연구 목적이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지루함 못 견디는 인간 문화와 문명을 만들다

    지루함 못 견디는 인간 문화와 문명을 만들다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고쿠분 고이치로 지음/최재혁 옮김/한권의 책/376쪽/1만 9000원 자본주의가 전개되면서 사람들은 한결 여유로워졌고 한가함을 얻었다. 그러나 여유가 생긴 사람들은 이 한가함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모른다. 무엇이 즐거운 것인지 모르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 자본주의는 이 틈을 파고든다. 문화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만들어진 즐거움’, 즉 문화상품을 제공하고 그것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철학자로 꼽히는 고쿠분 고이치로는 “이전 시대에는 노동자의 노동력이 착취됐지만 이제는 오히려 노동자의 한가함이 착취되고 있으며, 한가함의 착취는 자본주의를 이끌어 가는 거대한 힘”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역설과 질문으로 가득 찬 책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에서 이처럼 한가함이 착취되는 이유가 “인간이 지루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는 사회적 불평등부터 현대 소비사회가 인간의 소외를 불러오는 것까지 모든 문제가 인간의 근원적인 고통인 ‘지루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책은 한가함과 지루함이 어떤 문제를 만들어 내는지, 인류사적 관점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현대 소비사회에서 한가함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차례로 다룬다. 17세기의 수학자이자 종교사상가인 파스칼은 “인간의 불행은 누구라도 방에 꼼짝하지 않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했다. 파스칼에 따르면 지루해하는 것은 인간이 겪는 모든 불행의 원천이다. 니체는 “인간은 지루함으로 괴로울 바에야 오히려 괴로움을 택한다”고 이에 공감한다. 저자는 ‘지루함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하나하나 비판적으로 분석해 나간다. 그러면서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 같은 지루함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한다. 인간은 대부분 지루함과 기분 전환이 뒤섞인 상태를 살아간다. 인류는 지루함이라는 원죄를 안고 있지만 기분 전환이라는 즐거움을 창조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지루함과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된 인류는 문화와 문명이라고 불리는 것을 발달시켰다. 그렇게 예술이 생겨났고 의식주 이외의 것을 모색하면서 삶을 장식할 줄도 알게 됐다. 문화란 어쩔 수 없는 지루함과 직면하게 된 인간이 괴로움과 사이 좋게 공존하기 위해 생각해 낸 방법인 셈이다. 지루함과 공존하는 삶, 즉 인간적인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있다. ‘동물 되기’가 대안이다. 동물이 하나의 환경 세계에 빠져 사는 고도의 능력을 지닌 것처럼 우리 역시 특정한 대상에 ‘압도되어 있는 상태’를 계속할 수 있다면 인간은 지루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함혜리 기자 lotus@seoul.co.kr
  • [문화마당] 역사 기억의 독점/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문화마당] 역사 기억의 독점/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우리는 흔히 과거의 진짜 사실로 믿는 경향이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원 사료(史料)일지라도, 그것이 과거의 특정 상황을 있었던 그대로 보여 주지는 않는다. 텍스트로 바뀌는 순간부터 그것은 이미 일정한 프리즘을 거쳐 가공된 기록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과거 경험을 반추하는 방법도 다를 바 없다. 청소년 때 겪은 어떤 경험을 20~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얼마나 사실 그대로 기억하며, 얼마나 객관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가? 골목길에서 불량배에게 잡혀 몇 대 맞고 풀려난 우울한 경험임에도 세월이 흘러 부모가 돼서는 불량배들과 4대1로 싸워 이겼다는 무용담으로 조작해 자식에게 전달한 적은 없는가? 과거의 경험에 대한 인간의 기억은 이렇듯 불완전하며, 심지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기 좋은 식으로 편집해 기억한다. 이런 기억 장치가 없다면 우리 인간은 엄청난 정신적 상처에 눌려 미쳐 버리고 말 것이다. 개인의 기억조차 이럴진대 수백·수천만 명이 집단을 이루어 ‘역사’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는 것들을 정말 100% 사실로 믿는다면 순진하다 못해 바보스러울 수도 있다. 한 예로 17세기에 조선이 전개한 ‘나선정벌’의 실상을 보자. 나선정벌이란 17세기 중반 북만주로 남하하는 러시아(나선)를 저지하려던 청나라의 출병 요구에 따라 조선군이 송화강과 흑룡강 유역으로 두 차례 출정한 사건이다. 교과서에서는 대개 조선군이 러시아 지휘관 스테파노프를 전사시키고 승리했음을 강조하지만, 이는 교묘하게 조작된 기억이다. 오랑캐 청나라에게 당한 수치를 씻자는 취지의 북벌운동이 절정을 이룰 즈음에 조선은 청나라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청과 러시아의 전투에 ‘끌려 나갔다’. 북벌의 대상인 청나라를 상대로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그 청나라 오랑캐 장수의 지휘를 받아 전투에 임한 조선군은 심각한 정신적 공황을 겪었다. 2차 원정군 사령관 신유(申瀏)가 전투에서 승리하고 개선하면서도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문제 때문이었다. 또한 신유가 병으로 죽었을 때 조문객들 중 어느 누구도 만사(輓詞)나 행장(行狀)에서 그의 전공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공적을 다소 부풀려 과장하기 마련인 만사에서 있는 공적조차 함구한 사실은 나선정벌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망자에 대한 예의라는 분위기가 당시에 절대적이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나선정벌에 대한 우울한 기억은 국가 차원에서 장쾌한 승리로 편집된다. 북벌운동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나선정벌을 북벌운동의 가시적인 성과로 둔갑시킨 것이다. 나선정벌 경험이 우울했던 이유는 청나라의 존재 때문이었는데, 이제 나선정벌의 기억에서 청나라를 지워 버림으로써 나선정벌은 처음부터 조선의 필요에 따라 조선이 스스로 군사를 일으켜 북쪽 오랑캐를 쳐부순, 말 그대로 북벌(北伐)의 승리로 뒤바뀐 것이다. 역사 기억은 하나일 수 없으며, 하나이어서도 안 된다. 특히 국가가 독점하는 역사 기억은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다. 최근 유신의 망령처럼 되살아나는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움직임은 국민의 머릿속 기억까지 국가가 일방적으로 통제하고 특정 기억을 독점적으로 주입시키려는 것으로, 심각한 시대착오이자 일종의 폭력이다. 학창 시절 읽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감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감

    감은 달콤함과 떫은맛을 함께 가진 가을과 잘 어울리는 동아시아 특유의 과일이다. 감나무는 전 세계에 400여종이 분포해 있다. 하지만 식용으로 활용되는 것은 4종에 불과하다. 감 재배에 관한 기록은 6세기 중국 농업서인 ‘제민요술’에 최초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감 재배는 삼한시대 이전으로 추정될 만큼 우리 민족과 오랜 시간 함께했다. 감은 식용뿐 아니라 약용으로 애용돼 왔다. 피로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비타민과 무기질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예부터 ‘신의 과일’이라 불린 까닭이다. 세계의 감 산업은 떫은 감 위주의 시장이다. 2012년 기준 전 세계 81만 5000㏊에서 446만 8000t이 생산된다. 생산량의 74% 정도가 중국에서 산출된다. 생산량의 1위부터 3위까지를 중국, 한국, 일본이 차지하고 있다. 브라질은 수출량이 가장 많은 나라로 약 673t을 네덜란드(59%), 포르투갈(14.3%), 캐나다(9.4%) 등에 판매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1위의 단감 생산국인 동시에 세계 2위 감 생산국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9%를 점유한다. 2013년 기준으로 3만㏊에서 35만 2000t을 생산했다. 생산액은 5929억원으로 사과, 감귤에 이어 3위를 차지한다. 전체 감 생산액 중 55%가 단감에 해당한다. 수출량은 2013년 기준 7380t, 금액으로는 1000만 달러 정도를 기록했다. 주요 수출 시장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캄보디아 등 아시아권에 국한돼 있다. 감에는 특히 비타민C와 A가 풍부하다. 비타민C는 간의 활동을 도와 해독을 촉진시킨다. 술 마신 다음 날 감 1개만 먹어도 회복에 크게 도움이 된다. 비타민A는 각종 전자기기로 피로한 현대인들의 눈에 특히 좋다. 피부 재생 및 기능 유지와 노화 방지에도 효능이 있다. 펙틴과 셀룰로오스 등 식이섬유가 많아 동맥경화와 관상동맥질환 등 심장병에 효험이 있다. 성인병과 변비 예방, 피로 해소에 좋은 구연산도 풍부하다. ‘동의보감’ 등에는 곶감이 기침과 설사에 좋다고 나와 있다. 피 혹은 피가 섞인 가래를 기침과 함께 배출하는 객혈이나 하혈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감의 떫은맛은 감만의 매력이지만 한편으로 감을 꺼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부유, 차랑, 서촌조생 등 단감은 어린 시기에 떫은맛이 사라져 생과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바로 깎아 먹거나 부드럽게 만든 뒤 먹어도 좋다. 꼭지의 반대편과 씨 주위가 가장 달기 때문에 세로로 잘라서 먹는 게 가장 맛있다. 꼭지 부근이 찌그러져 있거나 뾰족한 부분의 모양이 예쁘지 않은 것은 맛이 없을 확률이 높다. 떫은 감은 떫은맛을 없앤 뒤 먹는 게 정석이다. 최근에는 말린 뒤 곶감이나 반건조감으로 주로 먹는다. 곶감은 경북 상주 곶감이 가장 유명하다. ‘조선왕조실록’에 상주 곶감이 진상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건조 감은 영양분이 농축되면서 더 좋은 효능을 발휘한다. 대표적인 기능이 숙취 해소다. 요즘에는 다양한 디저트와 간식도 나온다. 아이스홍시는 청도반시를 이용한 얼린 홍시다. 홍시를 모양 그대로 얼린 뒤 껍질을 벗겨 먹는다. 최근에는 대형마트나 커피·음료전문점에서도 아이스홍시를 출시하고 있다. 반건시는 곶감처럼 감을 깎아서 통째로 말린 것이다. 감말랭이는 껍질을 제거한 감을 한 입 크기로 잘라 말린 제품이다. 반건시는 겉은 바삭하게 말랐지만 속은 홍시의 촉촉함이 살아 있는 게 특징이다. 감말랭이는 술안주나 간식, 다이어트식 등으로 사랑받고 있다. 가공식품도 다양하다. 건강음료로서 식초의 효능이 재평가되며 먹기 편하면서 향도 좋은 식초인 감식초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감잎차 역시 비타민B·C가 풍부하며 피부 개선에 좋다고 해 소비가 늘고 있다. 특히 감잎은 지혈 작용이 탁월하고 열을 내리며 기침과 천식을 고친다고 알려져 있다. 경북 청도에서 개발한 세계 유일의 감와인은 술로서도 인정받으며 와인터널 등과 함께 관광 소득을 창출하고 있다. 외국에서도 감을 이용한 다양한 가공식품을 즐긴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 이전에 감으로 만든 브랜디를 마셨다. 남북전쟁 기간 중에는 감의 씨로 만든 대용 커피를 마셨는데 커피만큼 훌륭했다고 전해진다. 17세기 미국 개척민들이 토착민으로부터 감의 이용법을 배워 이미 빵 재료로 사용해 왔다. 파이나 푸딩, 수프 등 다양한 음식도 정착돼 있다. 감의 우수성을 알리고 농가 소득에 보탬이 되기 위해 단감과 곶감 주산지를 중심으로 축제와 체험 관광이 진행되고 있다. 단감의 경우 경북 청도반시축제(10월), 경남 진영단감제(11월), 창원단감축제(10월), 하동 악양 대봉감축제(11월) 등이 대표적이다. 곶감은 충북 영동곶감축제(12월), 충남 논산 양촌곶감축제(11월), 경북 상주곶감축제(12월), 경남 지리산 산청곶감축제(1월) 등이 손꼽힌다. 조광식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연구관 ■문의 douzirl@seoul.co.kr
  • 진짜 뱀파이어? ‘심장에 말뚝’ 중세 유골 발견

    진짜 뱀파이어? ‘심장에 말뚝’ 중세 유골 발견

    지난 8일,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맞서기 위해 어둠의 존재와 계약을 맺고 공포의 화신으로 거듭난 드라큘라 백작의 기원을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한 영화 ‘드라큘라 언톨드(국내 개봉 명은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가 개봉된 후,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던 뱀파이어(흡혈귀)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불가리아에서 가슴에 금속말뚝이 박힌 채 매장당한 중세 뱀파이어 추정 무덤이 발견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장소는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남동부에 위치한 유서 깊은 페퍼리온 수도원이다. 불가리아 전문 고고학 연구진에 의해 발굴된 유골 2구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상태에서 심장부위에 금속 재질 말뚝이 박혀 있었다. 이는 13~14세기 당시 동부유럽 지역에서 행해지던 의식으로 흡혈귀가 다시 무덤에서 부활할 수 없도록 심장을 파괴한다는 의미다. 동부 유럽지역에서 이런 형태의 유골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 폴란드 지역 언론매체 ‘카미안스키 인포(kamienskie.info)’에 따르면, 폴란드 북서부 카미안 포모르스키 마을 공동묘지에서 16세기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뱀파이어 유골이 발견됐다. 당시 이 유골은 치아가 모두 제거된 상태에서 입 안이 벽돌로 채워져 있었고 발 부분에는 못이 박혀있었는데 이는 흡혈행위와 사후부활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매장이 13~17세기 사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정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 뱀파이어 시신의 실제 주인들인 당시 지식인, 귀족, 성직자들과 같은 특권층들이 많았는데 치열한 권력 암투에 밀린 희생양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는 해당 시기 유럽은 흑사병 공포가 만연했는데 일부 특권층을 뱀파이어로 몰고 병균의 원인으로 지목해 살해하는 방식으로 민중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다. 종합해보면, 과거 실존했던 뱀파이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시무시한 흡혈귀가 아닌 역사적 흐름에서 불가피하게 희생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불가리아에서는 지금까지 5구의 뱀파이어 추정 유골이 발견됐으며 해당 유골 2구는 최근 2년 만에 6번째, 7번째로 발굴된 것이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씨줄날줄] 인공지능 로봇/문소영 논설위원

    “인공지능으로 악마를 부르게 될 것이다.” 미국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가 이렇게 경고해 화제다. 영화 ‘아이언맨’의 실제 모델이라는 그는 최근 매사추세츠공대(MIT) 연설에서 “인류의 가장 큰 실존적 위협을 꼽는다면 아마 인공지능일 것”이라며 “능력자가 악마를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머스크는 지난 8월 트위터에서도 “스웨덴 철학자 닉 보스트롬의 ‘초지능’(Superintelligence)을 읽어보라”면서 “인공지능이 핵무기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인간이 디지털 초지능을 위한 생물학적 장치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는 대목에서는 거대한 기계 사회를 위해 인간은 그저 생체발전소에 불과했던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가 퍼뜩 생각난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란 인간처럼 스스로 생각하고 학습하고 판단하는 활동을 하는 컴퓨터 시스템을 말한다. ‘신이 창조하여 인간이 존재한다’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깬,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같은 인간 중심적 이성주의가 더 이상 인간만의 것이 아니게 된 시대다. 컴퓨터와 게임기, 스마트폰 등을 활용하며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무한한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상상하며 자란 세대들로서 이런 경고가 시답지 않을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귀찮고 힘든 노동은 모두 로봇에 떠맡기고, 인간은 낚시나 가고 그림을 그리며 사색하는 유희의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판단해 왔다. 로봇 하녀·시종을 두고 사는 풍요로운 인간사회 말이다. 그러나 기계가 인공지능을 갖게 될 때 처할 인류의 위험을 경고한 영상도 적지 않다. B급 액션 SF영화라고 여겨진 ‘터미네이터’ 시리즈나, 미국 SF 드라마 ‘배틀스타 갤럭티카’가 그렇다. 인공지능은 전쟁과 환경오염 등 지구 파괴의 주범으로 탐욕스러운 인류를 지목하고 제거하려고 애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유통기간 4년에 불과한 인간형 로봇들이 폐기되지 않으려고 사냥꾼과 사투를 벌인다. 그 처절한 저항에 대체 인간과 기계의 차이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인공지능의 차세대 로봇에는 영혼과 마음이 담기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다룬 영화 ‘her(그녀)’도 인간적인 요소를 묻고 있다. 과학기술이 늘 인간과 사회에 유리하다고 믿었으나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다이너마이트나 핵무기가 그러했다. 인공지능도 편익뿐 아니라 위험요소를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물론 인공지능 로봇이 아닌 인간의 두뇌 수준으로 분석·판단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말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철저히 계산된 과학·20시간 긴박한 작업

    철저히 계산된 과학·20시간 긴박한 작업

    “국내 미대의 서양화과에선 수채화나 유화, 아크릴화 등을 가르칠 뿐 프레스코화에 대해선 관심이 없죠. 같은 서양화인데 그리는 과정이 까다로우니 좀처럼 전문가도 없고, 그리려 들지도 않아요.” 오원배(61) 동국대 미대 교수는 작가라기보다 화학자에 가깝다. 전시장에서 쭉쭉 써내려간 화학반응식은 놀라울 따름이다. 생석회에 물을 넣어 수산화칼슘을 만들고, 다시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반응시켜 탄산칼륨을 끌어낸다는 복잡한 화학식이 전혀 낯설지 않은 듯했다. 작가는 “프레스코화를 알려면 화학작용을 이해해야 한다”며 회반죽을 벽에 칠하고 반죽이 마르기 전에 물에 갠 안료로 그림을 그리는 고된 노동의 과정을 끊임없이 묘사했다. “프레스코 작업은 긴박하고 엄격한 노역입니다. 반죽이 마르는 20시간 안에 작업을 끝내야 하기 때문에 앉은 자리에서 떠날 수가 없어요. 실수가 용인되지 않는 까다로운 작업 탓에 허리 디스크를 아예 달고 삽니다.” 흔히 ‘서양의 벽화’로 알려진 프레스코화는 16세기 초 미켈란젤로가 그린 로마 산타마리아 미네르바 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가 대표적이다. 로마인이 기원전부터 그렸는데 14~15세기 이탈리아에서 전성기를 누렸고 17세기 유화에 밀려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후 20세기 미국과 멕시코 등지에서 활기를 띠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프레스코화에 ‘꽂힌’ 것일까. 작가는 “30여년 전 파리 국립미술학교에서 공부할 때 졸업을 위해 모든 유형의 작품을 다 공부했다”며 “그때 처음 접한 프레스코화에 흠뻑 빠져 이후 5년 주기로 파리에 날아가 1년씩 프레스코화를 공부하고 왔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을 ‘정통 프레스코화’라며 자부심을 느끼는 이유다. 그렇게 2007년 처음으로 프레스코화 4점을 선보인 뒤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다. “프레스코란 이런 것임을 국내에 보여주고 싶었어요.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류 최초의 미술품인 알타미라 벽화도 석회암 동굴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죠.” 2012년 인천 강화면 전등사 무설전에 프레스코 기법의 후불(後佛) 천장벽화를 그린 이도 작가다. 국내 법당에 그린 1호 프레스코화다. “불교 탱화에 시대 가치가 담겨온 만큼 현대의 불사들도 변화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작가는 다음달 19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28점의 프레스코화를 선보이는 개인전 ‘순간의 영속: 그리기의 위대한 노역’을 이어간다. 모든 작품을 프레스코화로 채우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작품들은 예전 묵직한 분위기와 달리 파스텔톤으로 다소 밝게 변했다. 4년 전 늦장가를 든 작가의 눈에 세상이 밝게 비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 파리의 지붕과 굴뚝이 가득 화폭을 채우는데, 모두 파리 유학시절 몽마르트 언덕에서 바라본 풍경들이다. 작가는 “프레스코화는 철저한 계산이 깔린 과학”이라며 “이번 전시가 감각적 작업에만 의존하는 국내 미술계에 자극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해외여행 | 바랄 것이 더 있을까 한여름 날의 다낭·호이안

    해외여행 | 바랄 것이 더 있을까 한여름 날의 다낭·호이안

    Fall in Love with Vietnam 여행에서 돌아와 당신이 어떤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면, 당신은 그 도시의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그곳에서 흘러간 당신의 시간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높고 아름다운 건물 그 자체보다 건물의 서쪽 벽면에 얼굴처럼 붉게 비추인 오후 다섯 시의 햇살을 더 사랑하는 것. 아니면 어느 저녁, 숙소로 돌아가며 올려다본 하늘의 푸른 별, 휘파람을 불며 걸어가던 꼬마아이, 끝없이 젖고 또 마르던 해변의 모래들, 멀리서 들리는 이국어의 함성들. 그렇게 당신을 스쳐 지나간 그 도시의 어떤 순간들을, 당신은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떤 풍경이다. 장소와 시간이 연인인 듯 서로 껴안은 채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한 순간. 그 찰나의 찬란함이 적금처럼 모여 쌓인 여행의 잔고들. 그 기억을 우리는 풍경이라 부르고, 쉽게 사랑에 빠져든다. 글·사진 Travie writer 최성규 ●Vietnam Da Nang · HoI An 다낭 & 호이안 바랄 것이 더 있을까 한여름 날의 다낭·호이안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했던가. 너그러워져도 괜찮은 몇몇 휴양지에서도 이 문장을 스스로 완성시켜 보겠다는 듯 종종걸음을 치곤했다. 그렇게 나는 내 여행 세포가 기억하는 감각을 복기하며 다낭에 떨어졌다. 마음을 다잡았던 것과 달리 그곳에서 나는 한결 차분해졌다. 해변의 선베드, 노천카페의 앉은뱅이 의자, 고도의 담벼락. 그곳이 어디든 나는 비스듬히 기대 나른해지곤 했다. 다낭 & 호이안 다낭은 베트남 중부의 항구도시로 참파왕국, 안남왕국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지금은 해안선을 따라 리조트가 개발되면서 베트남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로 알려져 있다. 호이안은 다낭에서 남쪽으로 25km 떨어진 옛스러운 도시로 특히 일본과의 교역이 활발하여 지금도 일본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다. 구시가지는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DaNang 오늘의 알람은 태양 다낭에서의 며칠, 단잠에 빠진 나를 흔들어 깨운 것은 요란한 휴대전화의 알람 대신 눈가를 실룩이게 만든 아침 해였다. 그러나 서울과의 두 시간여 시차를 생각하더라도 ‘am 06:00’ 글자 선명한 그 순간에 잠을 깨고 싶진 않았다. 뭉그적거리다 보니 다시 졸음이 밀려왔다. 침대 위로 쓰러지고 잠시 후, 잠결이지만 꽤 잘 자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느지막하게 일어났지만 잠에 쏟은 시간이 그다지 아깝지가 않을 만큼. 그래봐야 호텔 조식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 여전히 아침나절. 다낭의 태양은 아침을 거르게 하지 않았다. 그 시절을 직접 겪지 않았지만 베트남이라 하면 우리가 흔히 월남전이라 부르는 베트남 전쟁의 이미지가 컸다. 다낭은 그랬던 베트남의 이미지를 오히려 낯설게 만들었다. 남북으로 길쭉한 지형에 동쪽으로 바다가 두르고 있는 베트남은 북쪽에 위치한 수도 하노이를 시작으로 무려 3,444km에 달하는 해안선을 따라 그들만의 문화유산과 풍광을 간직한 고도古都를 품고 있다. 그 가운데 아름답고 활기찬 분위기의 휴양 도시로 손꼽히는 곳이 다낭이다. 겹겹이 밀려오는 파도는 속이 알싸해지는 느낌을 줄 만큼 꽤 드세다. 다낭의 미케My Khe 해변은 그 끝이 어디쯤인지, 선 자리에서는 가늠이 되지 않을 만큼 아득하게 펼쳐졌다. 몇 번 피해 봤지만 이내 파도가 두 발을 덮친다. 머리 가르마는 따가운데 발끝은 시원하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동안에는 머나먼 타국에서 온 몇몇 여행자들이 해변을 독차지한다. 베트남 전쟁 기간에는 다낭에 주둔했던 미군들의 휴양지였다고 한다. ‘르 말 뒤 페이Le Mal Du Pays.’ 아주 간단하게는 ‘향수’로 번역되는 프랑스어 구절. 풀이하면 전원 풍경이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이라는데 하루키의 어느 소설에서 보았던 그 구절이 떠올랐다면 너무 감상적인 것일까. 천국이든 극락이든 바라는 것은 매한가지 바다인 줄 알았는데 강이었다. 다낭 해변 안쪽으로 친근한 이름의 ‘한강Song Han’이 흐른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꺼우롱Cau Rong·龍橋’ 주변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그 언저리에 눈에 띄었던 건축물이 있다. 고운 핑크빛의 다낭 대성당Chinh Toa Da Nang. 문을 밀어 보지만 꿈쩍을 안 한다. 기웃댔더니 자신을 자원봉사자라고 소개한 청년이 맨발로 뛰쳐나와 안내를 해준다. 정작 궁금했던 것은 ‘성당 안을 둘러볼 수 있나 없나’인데 본분에 충실한 이 청년,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은 성당으로 하늘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던 중세 사람들의 소망을 반영한 고딕양식이라는 등 속사포로 설명을 한다. 순박한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들을 수밖에 없었다. 대개 미사를 하는 일요일에 개방을 하고 다른 날은 방문객이 있을 때만 열쇠를 가진 직원이 와서 열어주는데 그 직원이 지금 어디에 갔는지 모르겠다고. 결과적으로 성당 안을 볼 순 없었지만, “괜찮아요, 그대의 친절한 안내가 충분히 인상적이었으니.” 시내를 살짝 벗어나면 차창 밖으로 대번에 고개를 빼게 되는 풍경을 마주한다. 다낭 사람들이 신성시 여기는 응우한썬Ngu Hanh Son이다. 목썬Moc Son, 호아썬Hoa Son, 터썬Tho Son, 낌썬Kim Son, 투이썬Thuy Son 등 5개의 산봉우리가 우뚝우뚝 솟아 군락을 이루고 있는 응우한썬은 한자어로 오행산五行山이다. 각각의 봉우리는 나무木, 불火, 흙土, 쇠金, 물水을 상징한단다. 그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투이썬은 산길을 따라 오르는 것이 아니라 동굴을 따라 관통하는 산이다. 흙벽에 새긴 부조와 동굴 곳곳 불상이 영험한 분위기를 증폭시켰다. 동굴 가장 아래 공포가 느껴지는 곳을 지옥, 동굴 속 깎아지를 듯한 156개의 계단을 타고야 맞이할 수 있는 전망대를 극락이라고 했다. 계단을 기다시피 극락에 올랐다. 응우한썬의 나머지 4개 봉우리와 그 아래로 야트막하게 내리깔린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에 피식 웃었지만 속에서는 부지런히 소원을 읊어댄다. 좋은 구경 실컷 하고 소원도 빌었지만 마른 목은 도무지 해결되질 않는다. 습하고 뜨거운 베트남의 낮 공기엔 ‘카페 쓰어 다Caphe Sua Da’가 정답이다. 철들지 않은 어린 양, 어리석은 중생에겐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맛볼 수 있는 노천카페가 곧 천국이고 극락이랄까. 무슨 사람이 그리 가볍나 핀잔을 줄지 모르겠으나 그거야말로 모르는 말씀이다. 이 커피 한잔을 제대로 즐기려면 나름의 내적갈등을 이겨내야 한다. 강하게 볶은 원두를 양철 필터를 통해 한 방울씩 추출한 베트남 커피는 에스프레소 샷보다 몇 배나 더 진하다고. 여기에 설탕과 우유 대신 연유를 넣어 차갑게 즐기는 베트남식 아이스커피가 바로 ‘카페 쓰어 다’. 극단적으로 쓰고, 극단적으로 단맛이 어우러지는 이 커피는 얼음이 녹을 때까지 기다렸다 천천히 음미하며 마셔야 제대로. 조급하지 않게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려는 베트남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HoiAn 고도의 싱그러움이란 소낙비가 내리던 오후, 서글픈 생각이 들었지만 다낭에서 25km 가량 남쪽에 위치한 호이안을 향해 길을 나섰다. 다행히 호이안에 가까워지자 비가 잦아들었다. 오늘의 호이안은 베트남 중부를 유유히 흐르는 투본Thu Bon강과 지류가 하나로 이어지는 호아이Hoai강변의 자그마한 마을이다. 그러나 16~17세기 무렵의 옛 호이안은 인도, 포르투갈, 프랑스,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상선이 드나들며 크게 번성했던 무역항이었다. 호이안을 소개하는 자료에는 ‘해상 실크로드의 중심지’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자연스레 마을은 다양한 문화권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색채를 품게 되었다. 베트남 고유의 문화적 토대 위에 일본과 중국 그리고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문화를 두루 흡수하여 조화를 이뤄낸 고도古都 호이안은 이후 무역의 중심이 다낭으로 옮겨가면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덕분에 베트남 전쟁의 마수를 피해 옛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그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마을 전체가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때문인지 이 작은 마을에는 여느 메트로폴리탄 못지않게 다양한 낯빛의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강물 잔잔한 마을 가운데에 아치형으로 지붕이 있는 목조다리 ‘꺼우 라이 비엔Cau Lai Vien·來遠橋’이 있다. 호이안이 가장 번성했던 17세기, 특히 일본과 중국의 상인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각각의 마을을 형성했는데 당시 일본 상인들이 돈을 모아 두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라이 비엔은 멀리서 온 친구란 뜻이다. 호이안은 이 다리를 중심으로 구시가와 신시가로 구분된다. 다리 주변에 중국 복건성 상인들의 회합장소였던 ‘쭈어 푹 끼엔Chua Phuc Kien·福建會館’과 베트남 상인 ‘풍흥Phung Hung’의 고택 등 옛 시간을 머금고 있는 명소가 이웃한다. 호이안의 옛 거리에는 분위기 좋은 카페와 레스토랑, 쨍한 색감이 인상적인 갤러리, 수공예품을 파는 기념품 상점, 감각적인 디자인 숍 등이 촘촘하게 들어차 있다. 시간이 멈춘 고도라지만 호이안은 잿빛을 허락하지 않았다. 소낙비 때문만은 아닐 테다. 파스텔 톤의 건물과 푸른 잎사귀 무성한 가로수가 더욱 선명한 빛을 내비친다. 손잡고 걷거나, 나란히 자전거를 탄 젊은 연인들이 많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들의 뒤를 따라 자박자박 걷는다. 벽도 쓰다듬어 보고, 빗방울 매달린 나뭇잎도 건드려 보고. 베트남에서 느낀 뜻밖의 싱그러움. 이번 여행에서도 등 돌리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비엣젯항공 VietJet Air, 02-399-4500, www.vietjetair.com ▶travel info Resort 다낭에서 한껏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안락한 잠자리는 물론이고 굳이 바깥나들이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 싶을 만큼 근사한 비치프론트 리조트에 머물렀던 것이 컸다. 어디 근사한 비치프론트 리조트가 한둘이냐 하겠지만 다낭의 해변은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6대 해변 가운데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경쾌한 낮과 평화로운 밤 푸라마 리조트 다낭Furama Resort Danang 오아시스라고 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건축 스타일에 베트남 전통 양식을 가미한 건물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는 리조트 중앙 뜰에 서면 코코스야자가 도열한 끝에 수영장과 백사장, 다시 그 너머로 푸른 바다가 차례로 주단을 펼친다. 수영장 끄트머리에 턱을 괴고 바라보는 박미안Bac My An 해변은 물론이고 그 뒷모습 또한 필름에 담게 할 만큼 인상적이다. 이처럼 태양을 즐길 줄 아는 투숙객들은 수영장과 해변을 오가며 다낭의 낮을 만끽한다. 다이빙과 스노클링 등 다양한 해양 스포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푸라마의 다이빙 센터는 마운틴 반도와 참섬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다이빙 포인트로 안내해 주는 다낭 유일의 다이빙 센터이다.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이들은 열대식물 가득한 정원 가운데의 라군 수영장 또는 스파를 이용하며 쌓인 피로와 긴장을 풀어낸다. 최고급 리조트답게 푸라마 스파는 자체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는데 페이셜 아로마 케어나 전통 베트남 마사지 등 기본 타입의 경우 우리 돈으로 3~5만원 수준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더욱 만족도를 높인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면 리조트 곳곳에 달아 놓은 등에 불이 들어온다. 한밤의 푸라마는 더욱 나긋나긋한 표정을 짓게 만든다. 시원한 맥주든, 은은한 와인이든 매일 밤 파도 소리 시원한 해변 테라스에 기대어 잔을 들도록 했기에. Truong Sa Street, Khue My Ward, Ngu Hanh Son District, Danang City +84 511 3847 333 www.furamavietnam.com 조용하고도 뜨거운 나절 라구나 랑코Laguna Lang Co 반얀트리 호텔 앤 리조트 그룹이 2013년 11월 베트남 중부 랑코 해안에 ‘앙사나 랑코Angsana Lang Co’와 ‘반얀트리 랑코Banyan Tree Lang Co’라는 걸출한 리조트와 챔피언십 골프 코스, 마린센터 등을 겸비한 복합 리조트 ‘라구나 랑코’를 오픈했다. 다낭 도심에서 한 발짝 떨어져 때묻지 않은 해안가와 울창한 열대 우림 뒤로 높다란 산봉우리가 한데 어우러진 자연 속에 자리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 조용하고 뜨거운 나절을 보낼 수 있다. 베트남 후에 왕조의 성벽 창문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리조트 전반의 장식은 매우 감각적이다. 흙빛에 밝은 자색으로 포인트를 준 색감, 옻칠한 기물, 비단 자수를 놓은 직물 등이 차분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홀에서 복도를 지나 객실에 이르기까지 반얀트리 호텔이 자리 잡은 세계 각지의 인상적인 풍광을 담아낸 사진과 그림을 내걸고 있어 리조트 전체가 세련된 갤러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작품을 감상하는 묘미가 있다. 마냥 널브러져 쉰다고 에너지가 보충되는 것은 아니다. 너른 숲 한 켠에 나무를 심고, 리조트 내 수로를 따라 자전거 페달을 힘껏 굴리거나 바다 위에서 카약 패들을 젓는 동안에 맺힌 땀방울은 한층 개운한 기분을 들게 해준다. 모두 라구나 랑코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이다. Cu Du Village, Loc Vinh Commune, Phu Loc District, Thua Thien Hue Province 02-2250-8051(한국사무소) www.angsana.com(앙사나), www.banyantree.com(반얀트리) Airline 베트남으로 가는 새로운 하늘길 비엣젯항공 여행의 설렘이 최고조로 달하면서도 얼마간 불안이 공존하는 비행시간. 국적기가 아니라면 승무원에게 사소한 도움을 청하는 것도 마냥 쉽지만은 않다. 2007년 설립된 베트남 제2의 항공사 비엣젯항공은 승객들에게 비행의 즐거움을 전하고 안전한 하늘길로 안내하고자 보다 젊고 발랄한 이미지로 단장했다. A320, A321 등 평균 기령 3년 이내의 최신형 기종으로 운항하고 있으며 저렴한 항공 요금에도 불구하고 인천-하노이, 인천-다낭 구간의 경우 따뜻한 기내식을 무료로 제공한다. 또한 한국인 승무원이 탑승하여 직접적인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호치민, 나트랑 등 베트남 내 8개 도시를 연결하는 국내선과 방콕, 싱가포르 등 아시아 주요 도시를 오가는 국제선을 연계하면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진다. 9월10일까지 운행하는 다낭행 전세기는 매일 1회 11:05에 인천VJ8737을 출발해 14:30에 다낭에 착한다. 귀국편VJ8736은 01:50 다낭 출발, 08:00 인천 도착이다. 하노이 정기편VJ8977은 매일 11:05에 인천을 출발하며 14:10에 현지에 도착한다. 귀국편VJ8976은 01:45 하노이 출발, 07:55 인천 도착이다. ACTIVITY 시클로Cyclo는 우리의 인력거를 연상케 하는 바퀴 셋 달린 베트남식 소형 오토바이이다. 대중교통의 하나지만 요즘에는 이색적인 문화 체험으로 인기가 있다. 하노이와 호치민에 비해 한결 호젓한 다낭과 호이안은 시클로 드라이브에 더없이 좋은 환경. 바퀴의 움직임과 강바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시클로를 타고 골목골목 베트남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 30분~1시간이면 충분. 호객행위가 상당하니 가격은 흥정하기 나름. 대략 10만~30만VND. FOOD 다낭 여행자들이 꼭 찾아서 맛보는 음식이 있다. 베트남 쌀국수냐고? 다낭에서는 단연 미꽝Mi Quang이다. 다낭의 명물 면 요리로 면은 쌀로 만들었지만 우동 면에 가까울 만큼 오동통하고, 땅콩가루와 함께 국물 없이 자작자작하게 비벼먹는 양념장이 독특하다. 일종의 비빔쌀국수인 셈. 새우, 돼지고기, 닭고기, 해파리 등 고명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다. 다낭 중심가인 한시장 주변으로 미꽝을 맛볼 수 있는 현지 식당이 많다. 가격은 2만5,000~4만VND.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가슴에 금속 말뚝 박힌 뱀파이어 추정 무덤 발견

    가슴에 금속 말뚝 박힌 뱀파이어 추정 무덤 발견

    지난 8일,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맞서기 위해 어둠의 존재와 계약을 맺고 공포의 화신으로 거듭난 드라큘라 백작의 기원을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한 영화 ‘드라큘라 언톨드(국내 개봉 명은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가 개봉된 후,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던 뱀파이어(흡혈귀)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불가리아에서 가슴에 금속말뚝이 박힌 채 매장당한 중세 뱀파이어 추정 무덤이 발견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9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장소는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남동부에 위치한 유서 깊은 페퍼리온 수도원이다. 불가리아 전문 고고학 연구진에 의해 발굴된 유골 2구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상태에서 심장부위에 금속 재질 말뚝이 박혀 있었다. 이는 13~14세기 당시 동부유럽 지역에서 행해지던 의식으로 흡혈귀가 다시 무덤에서 부활할 수 없도록 심장을 파괴한다는 의미다. 동부 유럽지역에서 이런 형태의 유골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 폴란드 지역 언론매체 ‘카미안스키 인포(kamienskie.info)’에 따르면, 폴란드 북서부 카미안 포모르스키 마을 공동묘지에서 16세기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뱀파이어 유골이 발견됐다. 당시 이 유골은 치아가 모두 제거된 상태에서 입 안이 벽돌로 채워져 있었고 발 부분에는 못이 박혀있었는데 이는 흡혈행위와 사후부활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매장이 13~17세기 사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정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 뱀파이어 시신의 실제 주인들인 당시 지식인, 귀족, 성직자들과 같은 특권층들이 많았는데 치열한 권력 암투에 밀린 희생양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는 해당 시기 유럽은 흑사병 공포가 만연했는데 일부 특권층을 뱀파이어로 몰고 병균의 원인으로 지목해 살해하는 방식으로 민중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다. 종합해보면, 과거 실존했던 뱀파이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시무시한 흡혈귀가 아닌 역사적 흐름에서 불가피하게 희생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불가리아에서는 지금까지 5구의 뱀파이어 추정 유골이 발견됐으며 해당 유골 2구는 최근 2년 만에 6번째, 7번째로 발굴된 것이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개 달래는 사이 건물발파 순간 놓친 여성

    개 달래는 사이 건물발파 순간 놓친 여성

    애완견의 지루함을 달래주다가 정작 보려고 했던 건물 발파 순간을 놓친 여성의 영상이 인터넷상에서 화제다. 케빈 숀리(Kevin Sohnly)란 계정으로 유튜브에 게재된 53초 가량의 영상에는 지난달 13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저먼타운의 퀸 레인 아파트의 건물 발파 해체작업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영상에는 발파 직전의 퀸 레인 아파트의 모습과 이를 구경하려는 구경꾼들이 보인다. 애완견과 함께 한 흑인 여성이 아파트의 발파 해체작업을 보기 위에 카메라 앞에 서 있다. 잠시 후, 강아지가 오랜 기다림에 지루한 듯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여성이 애완견의 행동을 말리기 위해 뒤로 돌아본 순간, 레인 아파트 건물이 발파되며 5초 만에 와르르 무너져 해체된다. 여성이 개를 안고 앞을 쳐다보지만 아쉽게도 퀸 레인 아파트는 사라지고 난 이후다. 9월 13일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은 현재 56만 3600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 중이다. 한편 18세기 중반에 퀘이커(17세기 중반 영국과 식민지 아메리카에서 일어난 그리스도교 집단)에 의해 건축된 퀸 레인 아파트 건물 부지는 1900년대 초반까지 저먼타운에서 죽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뮬라토(흑백혼혈), 낯선 이방인들이 묻히는 매장지로 사용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영상= Kevin Sohnly youtube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가슴에 금속말뚝 박힌 ‘뱀파이어 유골’ 발견

    가슴에 금속말뚝 박힌 ‘뱀파이어 유골’ 발견

    지난 8일,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맞서기 위해 어둠의 존재와 계약을 맺고 공포의 화신으로 거듭난 드라큘라 백작의 기원을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한 영화 ‘드라큘라 언톨드(국내 개봉 명은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가 개봉된 후,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던 뱀파이어(흡혈귀)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불가리아에서 가슴에 금속말뚝이 박힌 채 매장당한 중세 뱀파이어 추정 무덤이 발견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9일(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장소는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서 남동부에 위치한 유서 깊은 페퍼리온 수도원이다. 불가리아 전문 고고학 연구진에 의해 발굴된 유골 2구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상태에서 심장부위에 금속 재질 말뚝이 박혀 있었다. 이는 13~14세기 당시 동부유럽 지역에서 행해지던 의식으로 흡혈귀가 다시 무덤에서 부활할 수 없도록 심장을 파괴한다는 의미다. 동부 유럽지역에서 이런 형태의 유골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 폴란드 지역 언론매체 ‘카미안스키 인포(kamienskie.info)’에 따르면, 폴란드 북서부 카미안 포모르스키 마을 공동묘지에서 16세기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뱀파이어 유골이 발견됐다. 당시 이 유골은 치아가 모두 제거된 상태에서 입 안이 벽돌로 채워져 있었고 발 부분에는 못이 박혀있었는데 이는 흡혈행위와 사후부활을 막는다는 의미가 있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매장이 13~17세기 사이 활발했던 것으로 보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정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 뱀파이어 시신의 실제 주인들인 당시 지식인, 귀족, 성직자들과 같은 특권층들이 많았는데 치열한 권력 암투에 밀린 희생양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는 해당 시기 유럽은 흑사병 공포가 만연했는데 일부 특권층을 뱀파이어로 몰고 병균의 원인으로 지목해 살해하는 방식으로 민중 여론을 잠재우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다. 종합해보면, 과거 실존했던 뱀파이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시무시한 흡혈귀가 아닌 역사적 흐름에서 불가피하게 희생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한편, 불가리아에서는 지금까지 5구의 뱀파이어 추정 유골이 발견됐으며 해당 유골 2구는 최근 2년 만에 6번째, 7번째로 발굴된 것이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14) 달걀

    [농촌진흥청과 함께하는 식품보감] (14) 달걀

    달걀은 고대로부터 생명과 부활을 상징했다. 고대 그리스, 이집트, 인도, 중국 등의 신화에서도 우주를 거대한 알로 묘사하거나 최초의 신이 알에서 태어난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 역시 알에서 태어났다고 주몽신화가 이야기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부활절에 달걀을 나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류가 달걀을 먹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100년 그리스 시대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11세기쯤 교황청이 육식을 금지한 시기에도 달걀 요리는 먹을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금요일에 고기 대신 달걀을 먹는 관습도 생겨났다. 해마다 부활절에 달걀을 주고받는 관습은 17세기쯤 수도원에서 시작됐다. 미국 남북전쟁(1861~1865년) 이후 햄과 달걀이 들어간 샌드위치가 아침 식사로 각광받으면서 오늘날의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로 정착됐다. 동양에서 달걀을 먹기 시작한 시기는 서양보다 빠른 편이다. 약 4000년 전에 인도, 말레이시아, 미얀마 등에서 닭을 사육하면서 달걀을 먹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의 카시족과 마리오족은 부활의 의미를 지닌 달걀을 죽은 자와 같이 매장하는 풍속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은 근대에 달걀 요리가 급속히 발달해 오믈렛(오므라이스), 소바(메밀국수), 초밥, 카스도스(과자), 달걀 푸딩 등을 만들었다. 우리나라는 기원전 1400년 닭의 전래와 동시에 달걀을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경주 고분군에서는 세계 최초로 썩지 않은 달걀 껍데기가 출토되기도 했다. 달걀 조리법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규곤시의방’(閨?是議方), ‘주방문’(酒方文) 등의 서적에 등장한다. 난탕법(수란), 알찜, 난적법, 팽란, 알쌈 등이 기록돼 있으며 이 밖에도 지단을 만들어 고명으로 쓰거나 전을 부치는 데 이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70년대 후반 축산 기술의 발달로 알을 많이 낳는 닭 품종이 보급되면서 우리 식탁에 흔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달걀은 닭이 낳은 알(계란, 鷄蘭)이라는 뜻으로 ‘닭의 알→닭이알→달걀’ 순으로 변화됐다. 전라도에서는 ‘닥알’, 제주도에서는 ‘독새끼’라는 사투리가 있고 북한에서는 ‘닭알’로 부르기도 한다. 서양의 속신(俗信)에서는 일몰 후에 알을 바깥으로 가지고 나가거나 팔러 나가는 것은 불길하며 알 꿈은 악운의 전조로 생각한다. 영국에서 ‘에그 댄스’는 눈을 가리고 흩어놓은 알을 밟지 않고 춤을 추는 것으로 매우 곤란한 일을 의미한다. 우리 속담에서 달걀은 중요한 사물이나 희망을 뜻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희망이 없거나 딱한 처지를 비꼬기도 하는 말이다. ‘달걀노른자’는 어떤 사물이나 일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뜻하며 ‘내일 닭보다 오늘 달걀이 낫다’는 이익의 의미도 있다. 반면 ‘조막손이 달걀 떨어뜨린 셈’, ‘곯은 달걀이 꼬끼오 하거든’ 등은 희망이 없거나 어려움을 비꼬는 말이다. 라틴어에 ‘달걀에서 사과까지’는 연회에서 처음에 달걀이 나오고 마지막에 사과가 나온 데서 유래한 말로 ‘풀코스’를 뜻한다. 달걀은 완전식품에 가장 가까운 식품이다. 우리 인체가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다. 한 개의 달걀에는 단백질, 지방과 리보플래빈, 니아신, B12 등 11종의 비타민과 광물질이 포함돼 있다. 지방 중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 함량은 약 60% 정도다. 반면 달걀 1개의 칼로리는 72㎉(전란 기준)에 불과하다. 단백질에는 류신, 아르기닌 등의 아미노산이 풍부하며 이를 이용한 스포츠용 보충제도 판매되고 있다. 난백에 함유된 생리 활성 물질로는 오브알부민, 오보트랜스페린, 라이소자임 등이 있으며 이들은 주로 항균 활성, 항고혈압, 면역 조절 등의 효과를 발휘한다. 난황에 함유된 루테인, 제아잔틴, 면역글로불린 등은 생리 활성 작용을 한다. 루테인 및 제아잔틴은 눈의 건강을 유지하고 노화와 관련된 안 질환의 발생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이들 물질은 백내장 발생의 위험도를 감소시키고 노화에 의한 황반변성,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야가 흐릿해지고 일그러지는 현상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면역글로불린(Ig)Y는 여러 종류의 항박테리아, 항바이러스, 박테리아 부착 억제 효과가 있다. 강근호 농촌진흥청 축산물이용과 이학박사 ■문의 douzirl@seoul.co.kr
  • 살아있는 세포 실시간 관찰…노벨 화학상은 ‘형광현미경’

    살아있는 세포 실시간 관찰…노벨 화학상은 ‘형광현미경’

    2014년 노벨 화학상은 살아 있는 세포나 바이러스 내부, 화학반응 등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초고해상도 형광현미경’을 개발한 미국과 독일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수상 가능성이 점쳐졌던 유룡 기초과학연구원 단장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스웨덴 왕립아카데미 노벨위원회는 8일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에릭 베치그(54) 미국 하워드휴스 의학연구소 박사, 슈테판 헬(52) 독일 막스플랑크 생물물리화학연구소장, 윌리엄 머너(51)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들은 가시광선만을 보는 광학현미경과 죽은 물질만 관찰할 수 있는 전자현미경의 한계를 뛰어넘은 새로운 현미경을 고안해 미시 세계를 보는 인류의 시각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광학현미경을 발명한 이후 렌즈의 발달에 따라 과학자들은 점차 작은 물질을 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광학현미경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을 이용하기 때문에 렌즈가 아무리 발달해도 가시광선의 파장보다 작은 200나노미터(㎚: 10억분의 1m) 이하의 물질은 점으로 보였다. 미토콘드리아의 형체와 박테리아 등 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m) 수준이 광학현미경의 한계였다. 전자현미경의 경우 훨씬 작은 크기까지 관찰할 수 있지만 낮은 온도에서 죽은 상태로만 관찰이 가능하다. 베치그 박사와 머너 교수는 1989년 ‘팜 현미경’(단분자 현미경)이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작은 분자가 여러개 겹쳐 있을 때 인위적으로 빛을 내도록 만들어 이를 영상으로 기록한다. 이 영상을 잘라서 관찰하면 한 개의 분자가 빛을 내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 원리다. 헬 소장은 1994년 ‘STED’(유도방출억제) 현미경의 원리를 발견했다. 관찰하고자 하는 물질에 레이저를 쏘면 에너지를 얻은 전자가 들뜬 상태가 된다. 이때 도넛 모양의 레이저를 한번 더 쏘면 들뜬 상태의 전자는 빛이 사라지고 10㎚ 이하인 가운데 구멍 부분만 관찰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두 가지 기술 모두 ‘빛’을 인위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형광현미경’으로 분류되며 나노 수준인 바이러스, 단백질, 단일분자 등을 상온에서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 박용근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교수는 “이들의 기술을 이용하면 뇌 신경세포 간 연결 부위인 시냅스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단백질이 파킨슨병·알츠하이머병·헌팅턴병 등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등은 물론 수정란이 배아로 발달하는 과정도 관찰할 수 있다”면서 “신약 개발, 생물학, 화학 등에서 높은 차원의 세밀한 연구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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