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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승종의 역사 산책] 저승길에서 만난 하서 김인후

    [백승종의 역사 산책] 저승길에서 만난 하서 김인후

    사후 세계에 대한 궁금증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오죽하면 ‘임사체험’ 곧, 죽었다가 되살아난 사람들의 경험담을 토대로 한 진지한 연구가 다 있는 것일까. 16~17세기의 탁월한 지식인 허교산(許蛟山·허균) 또한 흥미로운 임사체험의 글을 남겼다. 정확히 말해 그는 오세억이라는 선비의 경험담을 기록했다(‘성소부부고’ 제25권, 제26권). 하양(경북 경산)에 살던 오세억은 젊은 나이에 죽었다가 되살아났다. 허균이 쓴 글에는 그것이 반나절 만이라고도 했고, 또 사흘 만이라고도 했다. “꿈결처럼 하늘나라(天府)에 갔다. 붉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나를 작은집(小院)으로 이끌었다.” 허균은 그 집에 대해 쓰기를, ‘자미지궁’(紫微之宮)이란 현판이 붙어 있었다고 했다. 누각이 우뚝 솟아 난새와 학이 훨훨 날았다고도 했다. 바로 그 집에 윤건(綸巾)을 쓴 학사 한 명이 있었단다. 김하서(金河西·김인후)였다. 망자 오세억은 생시에 하서와 안면이 있었다고 했다. 그 하서가 조용히 말했다. ‘그대는 올해에 하늘에 오름이 합당치 않도다. 세상에 나가 행실을 닦기에 더욱 힘쓰라’ 그랬다던가. 그때 하서는 죽은 이들의 이름이 적힌 붉은 명부를 뒤적이며 “자네는 이번에 잘못 왔네. 나가야겠네그려” 하였다던가. 새하얀 비단 옷을 몸에 걸친 하서는 오세억을 이승으로 돌려보내며 한 편의 시를 주었다고 했다. “세억, 자네의 이름 자는 대년일세(世億其名字大年)/ 문 밀치고 들어와 자미선(하서)을 찾으셨구려(排門來謁紫微仙)/ 일흔일곱 살이 되거든 또 만나세(七旬七後重相見)/ 부디 인간 세상에 돌아가 이 말씀 함부로 퍼뜨리지 마시기를(歸去人間莫浪傳).” 다시 살아난 선비 오세억은 그 사연을 노소재(盧蘇齋·노수신)에게 알렸다. 생전의 하서는 소재와 막역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이후 오세억은 행실이 더욱 돈독해져 효자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하서의 시에 적힌 대로 일흔일곱 살이 되자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갔다고 했다. 김하서가 누구인가. 그는 시인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이퇴계(이황)와 더불어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로 손꼽혔다. 그리하여 훗날 문정(文正)이란 시호를 하사받았고, 문묘에 배향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에게는 도가의 선인과 같은 풍모가 있었다. 일찍이 퇴계는 하서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는 중년에 ‘황정경’ 곧, 도가의 서적에 몰입했다.” 조선의 선비들은 하서의 외모를 말할 때면 ‘옥골선풍’(玉骨仙風)이라 하였으니 도가풍의 미남자가 분명했다. 허균은 하서의 일생을 다음의 몇 줄로 요약했다. “하서 김인후는 인품이 높고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스스로 터득함이 있었음에도, 일찍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였다. 인묘(인종)는 동궁 시절에 그를 인재로 여겼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하서를 가장 먼저 불러들였다. 그러나 그가 서울에 도착하자 곧 승하하였다. 하서는 고향으로 되돌아갔고, 그 뒤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지만 나오지 않았다.” 하서는 평일에 도가풍이 물씬한 시를 썼다. “오기는 어디로부터 왔던가(來從何處來)/ 가기는 또 어디로 가는가(去向何處去)/ 가는 곳도 오는 곳도 정한 곳이 없다네(去來無定蹤)/ 유유한 세월이랬자 백년 남짓일 뿐이네(悠悠百年許).” 선비들은 은연중에 하서의 뜻에 공감하였던 것일까. 오세억은 저승길에서 하서를 만났다고 주장했고, 노소재와 허교산도 고개를 끄덕였으니 하는 말이다. 오늘의 우리는 모진 세상 풍파를 헤치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 종로 ‘몽유도원’서 듣는 실학 이야기

    종로 ‘몽유도원’서 듣는 실학 이야기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무계원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복숭아꽃 핀 낙원과 그 풍경이 비슷해 화가 안견에게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했다는 곳이다. 당시 안평대군이 같은 장소에 지었던 정자 ‘무계정사’의 이름을 따 현재의 이름을 얻게 됐다. 종로구가 낭만적 이야기가 가득한 전통문화공간 무계원에서 ‘실학과 근대사상’ 수업을 다음달 6일부터 진행한다. 정약용, 박지원 등 조선시대 대표 실학자를 중심으로 다룬다. 구 관계자는 “2014년부터 상·하반기로 나눠 인문학 강의를 진행 중”이라면서 “6월 1일까지 수업을 진행한다. 주 1회씩 매주 목요일마다 총 8주간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수업 세부 내용은 ▲17세기 시대 전환과 실학의 기원 ▲박지원과 박제가의 실학사상 ▲다산이 꿈꾸는 행복한 세상 등이다.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 김문식 단국대 사학과 교수 등이 수업을 맡는다. 수강료는 10만원이며, 종로구민은 원서 접수 시 신분증을 지참하면 3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삶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인문학 강의가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것은 그만큼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졌다는 뜻”이라며 “이번 강좌로 종로구민들이 정신적 풍요를 맘껏 누리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만국전도’ 등 보물문화재 5점 도난당했다

    ‘만국전도’ 등 보물문화재 5점 도난당했다

    17세기 중반에 제작된 세계지도인 ‘만국전도’(萬國全圖)를 비롯해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5점이 도난당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문화재청은 ‘함양박씨 정랑공파 문중 전적’(보물 제1008호) 중 만국전도, ‘고희 초상 및 문중유물’(보물 제739호)의 초상화 2점, ‘황진가 고문서’(보물 제942호) 중 문서 2점의 도난 사실을 최근 홈페이지 내 도난 문화재 정보 코너를 통해 공개했다. 만국전도는 조선 현종 2년(1661)에 박연설이 그린 가로 133㎝·세로 71.5㎝ 크기의 지도로, 바다와 육지를 다른 색으로 칠한 것이 특징이다. 1993~1994년쯤 서울 동대문구에서 소유주가 이사하는 과정에서 분실하거나 도난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함양박씨 정랑공파 문중 전적 중 이 지도를 제외한 유물 7종 45점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관리하고 있다. 고희 초상 및 문중유물(20종 215점) 가운데는 고희를 그린 채색 초상화 2점이 2012년 11월 이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고희(1560~1615)는 조선시대 중기 무신으로,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위했던 인물이다. 또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싸움에서 목숨을 잃은 황진(1550~1593) 장군의 후손에게 전하는 황진가 고문서(14종 125점) 가운데 1615년 임금이 내린 사령장인 교지(敎旨)와 1856년 남원부사가 발급한 잡역 면제 문서인 완문(完文)은 1993년 도난당했다. 이들 문화재는 모두 특정 가문에 대대로 전해 오는 지류(종이류) 유물로, 소유권이 개인에게 있다. 그간 문화재청은 모든 지정문화재의 정보를 개괄적으로 정리해 놓은 홈페이지 문화유산 정보 코너에는 이들 문화재의 도난 사실을 적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도난 또는 소재 불명으로 조사된 보물은 ‘안중근 의사 유묵’(제569-4호)과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제1043호)을 포함해 모두 13건이며, 국보 중에는 안평대군의 글씨인 ‘소원화개첩’(제238호)이 2001년부터 16년째 사라진 상황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만국전도는 2009년, 황진가 고문서의 문서들은 2012년에 각각 도난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환수 가능성을 고려해 한동안 도난 문화재로 등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에 도난 사실을 공개한 문화재들은 모두 1980년대에 보물로 지정된 것들”이라며 “5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정기조사를 통해 지류 문화재의 실태를 더욱 정밀하게 파악하겠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돈을 탐해 위조한 게 아니다…천재 못지않게 나도 천재다

    돈을 탐해 위조한 게 아니다…천재 못지않게 나도 천재다

    위작의 기술/노아 차니 지음/오숙은 옮김/학고재/352쪽/2만 2000원“멈추어라! 그대 교활한 자들이여, 노력을 모르는 자들이여, 남의 두뇌를 날치기하는 자들이여! 감히 내 작품에 그 흉악한 손을 대려는 생각은 하지도 말지어다.” 미술품 위조꾼들을 겨냥한 이 선전포고가 등장한 건 500여년 전 유럽에서다. 주인공은 ‘독일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 중세 말과 르네상스 전환기에 활약한 그의 판화는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들끓는 복제품, 모사품들에 시달려야 했다. 참다못한 뒤러는 위조꾼 라이몬디와 이를 찍어 판 달 예수스 출판사를 상대로 베네치아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최초의 미술품 지적재산권 소송 사건이었다. 하지만 “복제품이 나올 만큼 인정받았다는 데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판결은 뒤러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시대의 천재 화가가 베네치아를 떠난 이유였다. 이 ‘세기의 소송’에는 예술품 위조를 바라보는 복잡다단한 시각들이 얽혀 있다. 대표적인 게 미술품 위조범들의 주요 동기가 돈이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아니’라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위조꾼들이 위대한 걸작을 베끼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보다 다른 충동들이 우선한다. 천재의 걸작을 베끼면서 자신도 대등한 위치임을 과시하려는 ‘천재성’, 자신을 퇴짜 놓은 미술계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기 위한 ‘복수심’,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고 대중에게 인기까지 끌려는 ‘명성’에의 욕구 등이다. 르네상스 거장인 미켈란젤로도 고대 로마 석상을 모사하던 위조꾼으로 경력을 시작해 추기경까지 속였다. 천재성과 범죄성을 가르는 선이 얼마나 흐릿한지 보여 주는 사례다.‘위작의 기술’은 위조의 대가들이 벌인 대담한 모험과 불운에 대한 흥미진진한 스토리다. 저자는 위조꾼들이 어떤 동기와 방식으로 미술계를 속였는지, 어쩌다 덜미가 잡혔는지, 또 미술판의 속성이 어떻길래 이들이 쳐 놓은 덫에 덥석 걸려들었는지 등을 방대한 사례로 풀어놓는다. 영국 화가 에릭 헵번은 자신의 작품을 헐값에 사들여 수천 파운드에 판 런던 유명 갤러리 콜나기에 복수하기 위해 위조의 길로 들어섰다. 특히 거장들의 회화 밑그림으로 보일 만한 위작 드로잉이 그의 장기였다. 영국 박물관은 그의 그림을 반다이크의 진작으로 알고 사 가기도 했고 학자들의 반다이크 연구에 포함돼 미술사를 왜곡시켰다. 세기의 위조꾼은 1996년 로마에서 살해되며 끔찍한 종말을 맞았다. 영국 화가 톰 키팅은 미술품 복원가에서 위조꾼, 텔레비전 방송 명사로 위조가 발각된 이후에도 인생 역전에 성공한 드문 인물이다. 전문가들을 골탕 먹이려 17세기 회화에 20세기 물건을 그려 넣는 등 미묘한 단서를 위작에 집어넣어 온 그는 자신이 그린 위작 2000여점(화가 100여명)이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고 폭로했다. “화가들을 희생시켜 배를 불린 미술판에 저항하기 위해서”라며 위작 목록도 만들지 않았다. 위작이 기승을 부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고대부터 1900년까지 작품의 진위와 작가를 판별하는 데 국제적인 기준 없이 전문가와 감정가에 의존해 온 미술계의 오랜 관행도 있다. 사라진 걸작을 갈망하는 미술계의 탐욕이 ‘위작의 성공’을 부추기기도 한다. 진작 확인에 기득권을 쥐고 있는 수집가, 학계, 기관 등은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고의적으로 오류를 불러오는 주범이 되기도 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장 폴 게티 미술관이 대표적인 예다. 게티 미술관은 빠른 시간에 소장품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꼼꼼한 검증 없이 작품을 대거 사들여 위작 논란에 수차례 휘말렸다. 1993년 게티 미술관의 유럽 드로잉 큐레이터로 발령을 앞둔 니컬러스 터너는 라파엘로의 ‘티비아를 든 여인’ 등 옛 거장들의 드로잉을 살피다 위작 여섯 점을 찾아냈다. 지금까지 에릭 헵번의 위작으로 의심받고 있다. 게티 미술관은 위작 검증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실수를 인정하면 미술관이 무지해 헛돈을 썼다는 불명예를 얻게 되니 차라리 진실을 봉인한 것이다. 미술품 위작은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도 아니고 소유주와 일부 기관에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중범죄’로 인식되는 경우가 드물다. 더구나 대중은 위조꾼들을 부자들을 보기 좋게 골려 준 ‘로빈 후드’로 떠받드는 이상심리도 보인다. 하지만 한번 위작으로 오염된 미술사는 되돌리기가 힘들다. 이 때문에 미술계에서 위작을 진작으로 판정하는 건 과거를 왜곡하는 중대한 죄악이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20세기 들어 과학수사, 작품에 대한 기록 출처 조사가 발달하면서 위작이 진작 행세를 하기는 힘들어졌다. 그러나 ‘함정’은 여전하다. 위조꾼들은 자신이 만든 위작이 어떤 검사를 받을지쯤은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목적에 맞게 연대와 증거를 조작하는 등 과학 검증을 무력화할 방법을 언제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에 저자는 두 가지 대안이 절실하다고 제안한다. 첫째는 경매 회사, 갤러리, 중개상 등 전문기관이나 전문가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작품의 판매와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전문 출처조사원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오늘의 번영을 지속하는 법… 조선시대 생태환경서 답을 찾다

    오늘의 번영을 지속하는 법… 조선시대 생태환경서 답을 찾다

    조선의 생태환경사/김동진 지음/푸른역사/364쪽/2만원기후변화, 종 다양성의 감소, 바이러스 변이 등은 과학기술이 선사한 오늘의 번영을 나와 내 자손들이 함께 누리지 못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속가능성은 우리 시대 최고의 화두다. 새 책 ‘조선의 생태환경사’는 지속가능성의 답을 조선시대 생태환경 연구에서 찾고 있다. 미래 문제의 답은 과거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건 15~19세기 조선시대다. 한반도의 생태환경과 한국인의 삶이 크게 바뀐 시기다. 저자는 조선시대 사람들의 여러 활동으로 인해 이전까지의 생태환경이 급속한 변화를 겪었고 당대인들 또한 그렇게 변화된 생태환경에 영향을 받아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야생동물, 가축, 농지, 산림, 미생물, 전염병 등 우리를 둘러싼 생태환경 전반을 아우르며 살피고 있다. 예부터 한반도는 범과 표범의 땅이었다. 최상위 포식자였던 범과 표범은 조선 건국 이후 17세기 초까지 적어도 매년 1000마리 이상 잡힐 정도로 개체수가 많았다. 이는 이들을 먹여 살리는 피식자가 많았다는 뜻도 된다. 구석기 이래 한반도의 주거지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짐승의 뼈는 사슴이다. 사람에게뿐 아니라 맹수들에게도 사슴은 가장 흔하고 중요한 먹잇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15~19세기 무렵, 포식자와 피식자를 불문하고 야생동물이 번성에서 절멸로 전환되는 격변을 겪는다. 그리고 이를 되짚어 올라가면 뜻밖에 목화가 여러 원인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다. 고려 말 문익점이 들여온 목화는 조선의 복식 문화뿐 아니라 한반도의 농업 환경과 경제 시스템을 바꾸고 조선의 외교력까지 극대화하면서 동아시아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능성에 보존성까지 뛰어난 면포는 빠른 속도로 부의 축적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면포는 조선에 부를 안겨 줬고, 여진과 왜구를 제어할 수 있는 외교력의 원천이 됐다. 면포 수요의 증가는 곧 목화 재배 확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한반도 생태환경의 연쇄적 변화를 이끌었다. 산림지대 중 목화를 재배할 수 있는 곳은 급속히 밭으로 바뀌었고, 화전 개발을 촉진했다. 이로 인해 산림에서 살아가던 야생동물들은 서식처를 잃고 개체수마저 급감하는 비운을 맞게 된다. 그리고 이는 연달아 최상위 포식자의 절멸을 불러왔다. 책은 이처럼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핵심 요인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하고 변화하는 양상을 구조적으로 해명하고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아뉴스 데이’, ‘사일런스’, ‘러빙’…실화 영화들이 온다!

    ‘아뉴스 데이’, ‘사일런스’, ‘러빙’…실화 영화들이 온다!

    “임신한 일곱 명의 수녀들 이야기”…‘아뉴스 데이’“종교 역사를 뒤흔든 충격실화!”…‘사일런스’“오직 사랑으로 세상을 바꾼 위대한 러브 스토리”…‘러빙’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주목받고 있다. 임신한 일곱 명의 수녀 이야기를 그린 ‘아뉴스 데이’를 비롯해 ‘사일런스’와 ‘러빙’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로 주목받고 있다. 오는 3월 개봉을 앞둔 ‘아뉴스 데이’는 1945년 폴란드의 한 수녀원을 배경으로 임신한 수녀들이 희망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 의사의 노트에서 70년 만에 발견된 감동 실화를 기반으로 ‘코코 샤넬’과 ‘투 마더스’를 통해 섬세하고 우아한 연출력을 선보인 안느 퐁텐 감독의 연출작이다. 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신작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일런스’는 17세기, 실종된 스승을 찾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천주교 박해가 심각한 일본으로 떠난 2명의 선교사 이야기를 그렸다. 명망 높은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한 실제 이야기에서 출발한 엔도 슈사쿠 소설 ‘침묵’이 원작이다. 앤드류 가필드, 아담 드라이버, 리암 니슨 등 쟁쟁한 배우들의 연기가 기대를 모은다. 오는 21일 개봉을 앞둔 ‘러빙’은 타 인종간의 결혼이 불법이었던 1958년, 버지니아주(州)에서 추방된 한 부부가 세상에 맞서는 10여 년간의 이야기를 그렸다. ‘테이크 쉘터’, ‘머드’, ‘미드나잇 스페셜’ 등의 작품으로 신념을 지키는 주인공들을 그려 깊은 울림을 전했던 제프 니콜스 감독이 다시 사랑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질 예정이다. 이렇게 실화를 다룬 영화 세 편이 개봉을 앞둔 가운데 관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틀을 깬 발칙함… 인류 미래를 바꾼 건 ‘놀이’였네

    틀을 깬 발칙함… 인류 미래를 바꾼 건 ‘놀이’였네

    원더랜드/스티븐 존슨 지음/홍지수 옮김/프런티어/444쪽/1만 6000원 “나태함 조장” 공격받던 ‘커피 하우스’ 민주주의 싹 트게 한 공론의 장 역할 옥양목 갖고 싶은 욕망, 산업화 일으켜 노예 무역 등 폭력의 역사 낳기도 AI시대 ‘놀이 맛들인 기계’ 걱정해야 ‘사람들이 가장 신바람나게 노는 곳에서 미래가 탄생한다.’역사가 생존, 권력, 부 등 진지한 것들을 얻기 위한 투쟁이라고 보는 대다수는 고개를 내저을지도 모르겠다. 놀이, 즐거움, 장난 등 ‘문명의 덤’, ‘보잘 것 없는 오락’ 등으로 치부했던 것들이 미래를 빚어낸 주체라니…. ‘원더랜드’를 펼치면 고개를 갸우뚱할 새도 없다. 뉴스위크가 선정한 ‘인터넷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50인’으로 선정된 미국의 과학 저술가 스티븐 존슨은 명확한 문장과 사유로 놀이가 역사를 바꾼 사례를 거침없이 주유한다. 저자는 놀이를 가리켜 규칙을 깨고 새로운 관행을 시도해 보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이 때문에 의미심장하고 견고한 형태로 발전하면 수많은 아이디어를 낳는 화수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꿈꾸는 동안 다가올 시대를 창조한다”는 프랑스 역사학자 미셸레의 말처럼 유희의 공간에서 다가올 시대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뼈로 만든 피리, 커피, 후추, 파노라마, 옥양목, 주사위 게임, 봉마르셰 백화점…. 얼핏 보면 조금도 교집합이 없어 보이는 사물과 공간이지만 저자는 공통의 특질을 길어 올린다. 처음 세상에 등장하자마자 새로운 맛, 촉감, 소리, 경험의 놀라움으로 사람들을 매혹한 주인공들이다. 신기함과 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이윤 추구나 기술 발명, 정복, 명예 욕구보다 가장 근원적이고 깊숙한 동력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좇는 과정에서 상업화를 시도하고 신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개척하며 문명을 바꾸게 된다는 게 저자의 통찰이다. 산업혁명을 설명할 때는 기계 공정이 상품을 만들고 운송하는 비용을 낮춰 중상류층과 이들의 소비를 낳았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저자는 정설의 주장과 실제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옥양목을 갖고 싶어 하던 영국 여성들의 열망, ‘쓸데없이’ 화려한 볼거리로 치장한 상점을 둘러보는 즐거운 소일거리가 산업화를 일으켜 영국이 1세기 넘게 막강한 경제력을 자랑하게 된 출발점이 됐다는 것이다. ‘나태함을 조장하고 선동적인 정치 운동을 부추긴다’며 찰스 2세가 금지 포고문까지 내렸던 17세기 중후반 런던에 탄생한 커피 하우스는 ‘민주주의’를 싹트게 한 평등한 공간이었다. ‘민중의 궁전’으로 불린 파리 봉마르셰 백화점의 탄생처럼 커피 하우스는 언론인, 시인, 귀족, 주식 투기꾼, 배우, 입담꾼, 과학자 등에게 모두 열린, 당시로서는 처음 맞이하는 평등한 공간이었다. 이 공론의 장은 근대 언론 기관, 최초의 공공박물관, 보험회사, 공식적인 주식 거래 등을 출발하게 한 ‘기적의 문화융성 촉진제’였다. 하지만 놀이와 쾌락에서 잉태한 산물들이 긍정적인 나비효과만 낳은 것은 아니다. 옥양목의 재료인 면이라는 신소재는 노예 무역, 아동에 대한 무자비한 착취 등 지울 수 없는 폭력의 역사도 낳았다. 저자는 ‘여가와 유희의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반전은 수많은 신기한 물건과 장치가 유럽의 바깥에서 탄생했다’는 사실도 짚어 내며 유럽인들의 높은 콧대를 민망하게 한다. 요즘 인류는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품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거나 종 부리듯 부릴 거란 걱정은 번지수가 틀렸다고 고개를 젓는다. ‘어쩌면 기계가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할 미래를 걱정할 게 아니라, 기계가 놀이에 맛들이기 시작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그 점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른다.’(419쪽)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발길 머문 곳, 중세의 낭만 흐르다

    발길 머문 곳, 중세의 낭만 흐르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의 현재를 잘 보여주는 도시다. 공항과 연결된 호텔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방금 이륙한 비행기를 포함해 한번에 12개의 운항궤적이 하늘에 그려질 때도 있다. 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는 비행기들이 남긴 흔적인지, 서로 부딪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유럽 하늘길의 요충지다운 풍경이다. 사실 프랑크푸르트는 오래전부터 유럽의 진면목에 다가서려는 여행자들에게 관문 같은 도시였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를 한번이라도 방문해본 이들은 독특한 유럽의 색채를 담은 이 도시를 쉬 잊지 못한다.유럽 금융 중심지… 골목 구석구석엔 중세 흔적이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 가장 현대적인 도시로 꼽힌다. ‘뱅크푸르트’라 불릴 만큼 유럽의 금융, 경제 중심지다. 프랑크푸르트의 스카이라인은 현란하지만 골목 구석구석엔 중세의 흔적이 여전하다. 프랑크푸르트가 내세운 슬로건이 ‘시대보다 늘 조금은 앞서간다. 하지만 시대는 준수한다‘인 것도 이런 이유이지 싶다. 독일 사람들은 프랑크푸르트 뒤에 꼭 ‘암 마인’을 붙여 부른다. ‘마인강변의 프랑크푸르트’라는 뜻이다. 이는 옛 동독 지역의 오데르 강 언저리에 있는 또 다른 프랑크푸르트(프랑크푸르트 안 데어 오데르)와 구분 짓기 위해서다. 프랑크푸르트의 명소들은 대부분 가까운 거리에 산재해 있다. 다소 벅차긴 해도 걸어서 돌아보는 게 한결 여유 있고 수월하다. 출발지는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이다. 역을 나서면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양옆으로 펼쳐진다. 여기가 카이저 거리다. 옛 건물들이 늘어선 골목길 너머에는 어김없이 마천루가 서 있다. 어느 골목이나 양상은 비슷하다. 아마 이런 느낌들이 프랑크푸르트의 정수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최고층 코메르츠방크 아래 화려한 스카이라인 프랑크푸르트가 자랑하는 건 스카이라인이다. 고층 건물들이 병풍처럼 서 있고 그 아래 옛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면 말이다. 이 모습은 걷기 여정의 끝인 아이제르너다리에서 본다. 모름지기 하이라이트는 아껴 뒀다 나중에 봐야 제맛이다. 독일에서 가장 높은 건물(65층)이라는 코메르츠방크 등을 줄줄이 지나고 나면 곧 중앙광장이다. 코메르츠방크는 지난해 삼성그룹이 인수해 관심을 끈 건물이다. 광장 주변은 번화가다. 하우프트바체 역을 중심으로 각종 상업용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갤러리아 백화점 옥상은 전망대 겸 식당이다. 프랑크푸르트 중심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커피와 맥주 등을 마시며 독일의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는 재미가 각별하다. 다만 굽어보는 도심 풍경은 다소 생뚱맞고 부자연스럽다. 마천루들 틈바구니에 성 카탈리나 교회, 카페 하우프트바체 등 옛 건물 몇 채가 옹색하게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이는 전쟁 탓이다. 프랑크푸르트는 2차대전 때 폭격 피해를 입은 도시 가운데 하나다. 온전히 남은 건물은 하나밖에 없을 정도로 철저히 두들겨 맞았다. 바로 그 탓에 이런 어색한 풍경들과 만나기도 한다. 중앙광장 한편의 성 카탈리나 교회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회다. 17세기 세워졌으나 1944년 파괴됐다가 1954년 재건됐다. 카페 하우프트바체는 옛 교도소 건물이다. 지금은 커피숍으로 쓰이고 있다. 갤러리아 백화점 아래쪽은 자일 거리다. 유명 브랜드의 상품 매장들이 늘어서 있다. 카탈리나 교회를 지나 마인강 쪽으로 걷다 보면 붉은 벽돌로 지은 성 파울 교회가 나온다. 1848년 최초의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가 열렸던 곳으로, 독일 사람들은 이 교회를 독일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여긴다. 교회 안에 당시를 기억하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입장료는 없다. 이 도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물이 ‘프랑크푸르트의 위대한 아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다. 괴테 하우스나 그가 자주 찾아 사과와인을 마셨다는 게르버뮐레 레스토랑 등의 흔적을 좇다 보면 18세기 프랑크푸르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파울 교회 위쪽으로 이어진 베를리너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괴테 생가가 나온다. 우아한 자태의 고딕양식 건물이다. 괴테가 태어나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살던 집으로 그의 문학적 토양이 됐던 곳이다. 괴테가 시를 썼던 방과 책상, 자필 원고 등이 전시돼 있다. 생가 옆은 괴테 박물관이다.올드 시티 중심지, 뢰머광장엔 ‘정의의 여신상’이 프랑크푸르트의 핵심은 뢰머광장이다. 이른바 올드 시티(old city)의 중심지 노릇을 하는 곳이다. 성 파울 교회에서 마인강 쪽으로 한 블록 내려가면 나온다. 마천루 사이에 터를 잡은 광장은 고즈넉한 분위기로 여행자들을 맞고 있다. 먼저 ‘정의의 여신상’이 눈길을 끈다. 정의의 기준을 형상화한 저울과 엄정한 심판을 상징하는 칼을 양손에 쥐고 있다. 여신상을 가운데 두고 2차대전 이후 원형대로 복원된 뢰머(옛 시청사)와 중세 목조건물 등이 늘어서 있다. 광장 뒤편은 프랑크푸르트 대성당이다. 역대 황제들이 대관식을 치렀다는 교회로 ‘카이저돔’이라고도 불린다. 탑에 올라서면 시가지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고 한다. 영원한 사랑이 깃든 마인강 위 아이제르너다리 광장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마인강이 나온다. 강변 바로 앞에 하우스 베르트하임 건물이 서 있다. 용케 2차대전의 포화를 견딘 유일한 건물이다. 1479년에 세워져 여태 그대로다. 지금은 커피와 음식 등을 파는 레스토랑으로 쓰인다. 마인강변으로 나가면 시원한 풍경이 이방인을 맞는다. 바람을 따라 찰랑대는 강물과 괴테의 이름을 딴 유람선,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강 양쪽에 슈테델 예술박물관, 시립미술관, 응용예술 박물관, 현대예술 박물관 등 다양한 박물관들이 있다. 시간이 있다면 한두 곳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마인강을 가로질러 아이제르너다리가 세워져 있다. 보행자 전용 다리로, 약 500t의 강철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트가 자랑하는 스카이라인은 아이제르너다리에서 본다. 저물녘 마인강 너머로 지는 해가 토해내는 붉은 기운과 파란 하늘, 그리고 막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마천루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다리 난간 곳곳엔 수많은 자물쇠가 매달려 있다.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흔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저물녘 풍경과 어우러지니 퍽 로맨틱하다. 다리 너머는 작센하우젠 지역이다. 두 블록 정도 내려가면 맥주 등을 맛볼 수 있는 선술집들이 나온다. 프랑크푸르트(독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실화, 그래서 더 빠져드는…

    실화, 그래서 더 빠져드는…

    →실제 스노든 외모·버릇까지 세밀하게 복사… 조셉 고든 레빗의 메소드 연기 빛나 거장이 뷰파인더로 바라본 세상은 어떨까. 실제 사건,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 사회에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해온 올리버 스톤 감독의 ‘스노든’이 새달 9일 개봉한다. 미국 정부가 전 세계를 상대로 광범위하고 무차별적인 통신 감청과 개인 정보 수집을 하고 있다고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실제 스노든의 외모와 중저음의 목소리, 버릇까지 세밀하게 복제하는 조셉 고든 레빗의 메소드 연기가 빛난다. 이라크전 참전을 위해 자원 입대했고, 의병 전역 뒤에도 미 정보기관에 투신할 정도로 애국심에 불타던 인물이 내부고발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스릴 넘치게 그려낸 스톤 감독의 연출력도 빛난다. 니컬러스 케이지, 재커리 퀸토, 셰일린 우들리 등 출연진도 탄탄하다. 다만 얼마 지나지 않은 2013년 사건이고, 스노든과 글렌 그린월드, 로라 포이트라스 등 언론인들이 첩보 작전처럼 준비했던 폭로 현장을 셀프 카메라로 담은 다큐멘터리 ‘시티즌포’가 한발 앞서 개봉한 것은 양날의 검일 수도 있다.→10년 만에 메가폰 잡은 멜 깁슨 감독… 전쟁영웅 그린 영화로 오스카 작품·감독상 또 도전 배우 출신으로 거장 반열에 다가서고 있는 멜 깁슨 감독의 전쟁 영화 ‘핵소 고지’가 22일 개봉한다. ‘브레이브 하트’(1995)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쓸었던 그다. ‘아포칼립토’ 이후 10년 만에 메가폰을 잡았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총을 잡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전쟁 영웅이 된 한 남자의 실화를 그렸다. 종교적 신념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지켰기 때문에 전쟁 영웅이 되는 과정이 아이러니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에 자진 입대한 데스몬드 도스(앤드루 가필드)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며 집총 훈련을 거부하는 등 부대 내 골칫거리가 된다. 하지만 의무병으로 참전한 오키나와 전투에서 무려 75명의 목숨을 구해내며 미군 최고 영예인 명예 훈장을 받는다. 멜 깁슨은 이 작품으로 올해 오스카 작품, 감독상에 또 도전하게 됐다. 6개 부문 후보다. 앤드루 가필드는 생애 첫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종교 영화 ‘사일런스’에서도 주인공을 맡은 그는 스파이더맨 복면을 완전히 벗어 던질 것으로 보인다. 샘 워싱턴과 휴고 위빙, 빈스 본 등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등장한다. 혈혈단신으로 전장에 남겨져 아군을 구해내는 장면이 장렬한 분위기로 연출됐다.→17세기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 페레이라 신부의 이야기… 日 소설 ‘침묵’ 읽고 28년 만에 영화 완성 ‘사일런스’는 28일 개봉한다. 다큐멘터리 작업에 더 관심을 기울였던 스코세이지 감독이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 이후 4년 만에 내놓는 장편 극영화다. 다른 사람의 고통과 구원을 이유로 배교(믿던 종교를 배반함)하며 가톨릭 교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17세기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페레이라 신부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페레이라 신부 이야기를 모티브로, 일본 문학 거장 엔도 슈사큐가 쓴 소설 ‘침묵’을 접한 뒤 28년 만에 영화를 완성했다고 한다. 카메라는 17세기 천주교 박해가 이뤄지던 일본에서 소식이 끊긴 스승 페레이라(리암 니슨) 신부를 찾아 나선 로드리게스(앤드루 가필드)와 가르페(아담 드라이버) 신부를 쫓는다. 참혹한 상황을 거듭 마주하며 믿음이 흔들린 이들은 결국 예수상이나 성모상을 그린 그림 즉 ‘후미에’를 밟고 지나가며 가톨릭을 등지게 된다. 스코세이지 감독의 종교에 대한 관심은 처음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그려 논란을 부른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과 14대 달라이 라마의 삶을 그린 ‘쿤둔’(1997)이 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새영화> 불교학자가 된 어느 신부의 실제이야기 ‘사일런스’

    <새영화> 불교학자가 된 어느 신부의 실제이야기 ‘사일런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신작 영화 ‘사일런스’ 소재가 종교 역사상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킨 실화라는 것이 알려져 주목받고 있다. 17세기 포르투갈 출신의 가톨릭 예수회 지도자인 신부 ‘크리스토바오 페레이라’는 선교를 위해 에도 막부 시대인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 선불교로 개종한 뒤 불교학자가 되어 일본인 아내를 얻는다. 예수회 지도자였던 사실이 무색하게 배교 후 그의 행보는 놀랍도록 파격적이었다. 그는 1636년 ‘기만의 폭로’라는 책을 통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설했으며 가톨릭교회를 강력하게 비판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페레이라 신부의 이러한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종교 역사상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으로 기록됐다. 영화 ‘사일런스’는 명망 높은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한 실제 이야기에서 출발한 엔도 슈사쿠 소설 ‘침묵’이 원작이다. ‘택시 드라이버’와 ‘셔터 아일랜드’, ‘디파티드’,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그는 일본 문학계의 거장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을 읽은 순간부터 영화화를 꿈꿨고, 15년 동안 각색 작업을 거쳐 작품을 완성할 정도로 이번 작품에 남다른 애정과 심혈을 기울였다. 17세기, 실종된 스승을 찾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한창인 일본으로 떠난 2명의 선교사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다. 온갖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과 고난과 역경을 겪는 선교사들의 모습에서 ‘신은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시는가’라는 종교계의 오래된 논제가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로 떠오른다. 가혹한 시대, 선교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신부로 앤드류 가필드, 리암 니슨, 아담 드라이버의 열연이 서사의 무게를 예상케 한다. ‘사일런스’는 원작을 훌륭하게 스크린에 옮긴 덕분에 2016년 전미비평가협회 각색상 수상과 올해의 작품으로 꼽혀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 2017년 아카데미 주요 부문 유력 후보로 거론되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영화 ‘사일런스’는 2월 22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159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종교 역사 뒤흔든 충격 실화…‘사일런스’ 예고편

    종교 역사 뒤흔든 충격 실화…‘사일런스’ 예고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신작 ‘사일런스’ 메인 예고편이 공개됐다. ‘사일런스’는 17세기, 실종된 스승을 찾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천주교 박해가 심각한 일본으로 떠난 2명의 선교사 이야기를 담은 대서사 드라마다. 종교 역사를 뒤흔든 실화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은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거장 엔도 슈사쿠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공개된 예고편은 2명의 선교사가 실종된 스승을 찾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출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극에 달했던 17세기 일본에 도착한 이들은 온갖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처참한 광경을 목도하게 된다. 날카로운 현악기 선율이 만들어낸 긴장감 넘치는 음악은 이들이 겪을 고난과 잔혹한 박해의 역사를 암시한다. 또 “기도해도 앞이 보이질 않는다. 난 침묵에 기도하는 것인가?”라고 말하는 앤드류 가필드의 대사는 ‘신은 고통의 순간에 어디 계시는가?’라는 오랜 논제이자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어떻게 풀어낼지 기대를 모은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원작을 읽은 순간, 영화화를 꿈꾸며 80년대 후반부터 각색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15년 만에 이 시나리오를 완성할 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격정적이고 가혹한 시대를 그리는 만큼 전 세계가 사랑하는 거장의 깊은 시선을 비롯해 앤드류 가필드, 리암 니슨, 아담 드라이버의 열연이 작품의 완성도를 궁금케 한다. 영화 ‘사일런스’는 오는 2월 22일 국내 개봉 예정이다. 159분.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김욱동 창문을 열며]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김욱동 창문을 열며]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17세기 영국 내전이 의회파의 승리로 끝나면서 찰스 1세는 처형당했고, 찰스 2세는 추방당해 프랑스의 루이 14세에게 몸을 의탁했다. 의회파는 올리버 크롬웰을 호국경으로 삼아 영국 연방을 세웠다. 그러나 크롬웰이 사망한 뒤 공화정은 붕괴했고, 왕당파는 찰스 2세를 왕위에 앉혔다. 1660년 영국은 다시 왕정 국가로 되돌아갔다. 찰스 2세는 왕위에 앉자마자 아버지 찰스 1세의 복수 계획을 은밀하게 세웠다. 처형에 가담한 판사들과 법정 관리 58명을 리스트로 만들었다. 13명은 국왕 시해죄로 사형시키고, 25명은 종신형에 처했는데, 나머지 20명은 처벌을 피해 도망쳤다. 악명 높은 ‘블랙리스트’의 역사는 바로 찰스 2세가 처벌자 명단으로 적어 둔 이 살생부에서 시작한다. 우리말로 ‘흑색 명단’이라고 옮길 수 있는 블랙리스트란 경계가 필요한 요주의 인물들이나 위험 인물을 일목요연하게 적어 놓은 목록을 말한다. 이 용어에 왜 하필 검은색을 뜻하는 ‘블랙’이 들어가 있을까. 영어 관습에서 좋지 않거나 부정적인 용어에는 하나같이 ‘블랙’이 들어간다. 가령 법에 저촉되는 물건을 사고파는 암시장은 ‘블랙 마켓’이라고 부르고, 코미디라도 뒷맛이 씁쓸한 코미디는 ‘블랙 코미디’라고 부른다. 어찌 이뿐이랴. 같은 거짓말이라도 악의에 찬 거짓말은 ‘블랙 라이’, 비밀 범죄조직은 ‘블랙 핸드’, 공갈이나 협박은 ‘블랙 메일’이라고 부른다. 이와 반대로 흰색을 뜻하는 ‘화이트’가 들어가는 말은 하나같이 좋거나 긍정적이다. 예를 들어 ‘화이트리스트’란 허용되거나 식별된 실체를 모아 놓은 목록을 말한다. 가령 회사나 기관에서 화이트리스트에 올라 있는 인물들은 여러 모로 혜택을 받는다. 같은 거짓말이라도 ‘화이트 라이’라고 하면 의사가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것 같은 악의 없는 거짓말을 말한다. 블랙 마켓과는 달리 화이트 마켓은 공인받은 시장을 뜻한다. 그러고 보니 흔히 사상의 집이라고 일컫는 언어에서부터 흑인 차별이 무척 심한 듯하다. 최근 들어 다문화주의의 거센 물결을 타고 미국에서 흑인들이 이런 부정적인 용어에서 ‘블랙’이라는 말을 빼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그다지 무리가 아닌 듯하다. 최근 현 정부에서 작성한 블랙리스트 때문에 문화계는 물론 온 사회가 떠들썩하다. 오죽하면 특별검사팀에서도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의혹을 받는 인물들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겠는가. 이 블랙리스트에는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서명자들을 비롯해 세월호 시국선언을 한 문학인들, 특정 후보 지지를 선언한 문화인들 등 모두 9500명 정도가 포함돼 있다.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이 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채식주의자’로 2016년도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도 이 명단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블랙리스트가 비단 문화계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최근 특검팀은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블랙리스트가 모든 분야에 걸쳐 폭넓게 작성됐다는 정황을 포착했다. 청와대의 거의 모든 수석비서관실이 분야별로 정부 지원 배제 대상자 명단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블랙리스트가 존재했다는 정황이 확인되면서 앞으로 파장이 작지 않을 것이다. 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화인들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자신의 소신을 밝힌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령 고은 시인은 “나는 대선 후보 따위나 지지하고 반대하고 하는 시인이 아니다. 시인의 위엄을 위해서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이 명단에 오른 것이 오히려 ‘영광’이라고 밝혔다. 안도현 시인도 “문화 예술계 블랙리스트 중에 내 이름이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명단을 살펴보았다. 참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예술을 비롯한 문화는 숲과 같다. 숲에 온갖 생물이 서식하면 할수록 그 숲은 그만큼 건강하다. 한 숲에 특정한 한 종류의 식물만 자라면 좋을 것 같지만 생태학적으로는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다. 여러 나무가 다른 생물들과 함께 어울려 살 때 건강하다. 이 점에서는 문화도 마찬가지여서 여러 경향의 문화가 서로 공존할 때 그 문화는 그만큼 풍요롭기 마련이다.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역관상언등록연구(이현주 지음, 글항아리 펴냄) 조선 인조 15년(1637)부터 숙종 18년(1692) 사이에 역관(譯官)들이 작성한 문서와 지방 수령이 중앙정부에 올린 보고서인 ‘역관상언등록’(譯官上言謄錄)의 첫 완역본. ‘상언’은 신하가 임금에게 글을 올리는 일을 뜻한다. 17세기 역관의 인사 이동과 처우 개선 문제, 조선을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후금이 청나라를 세우면서 명나라를 압박하고,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후손들이 권력을 세습하고 있었다. 저자는 책이 제작됐을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역관의 세계를 소개한 뒤 문서 65건을 빠짐없이 번역했다. 468쪽. 2만 5000원. ●우리는 아이들을 믿는다(리처드 벡 지음, 유혜인 옮김, 나눔의집 펴냄) ‘맥마틴 유치원 아동학대 사건의 진실’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미국 현대사의 기상천외한 사건으로 꼽히는 아동학대를 다뤘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아동학대 사건의 방대한 기록을 조사하고, 핵심 인물 수십 명을 인터뷰함으로써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나간다. 아동학대 사건은 그 자체로 선정적이고 자극적이어서 언론과 수사기관 모두 ‘악마 찾기’에 몰두한다. 그러다 보니 아동학대 자체가 진실과 상관없는 집단 패닉을 낳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개별 사건 측면을 넘어 문화적 측면까지 저자는 분석해 낸다. 452쪽. 1만 7000원. ●농촌(마이클 우즈 지음, 박경철·허남혁 옮김, 따비 펴냄) 우리는 흔히 농촌을 어촌, 산촌과 함께 분류되는 지역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어촌이나 산촌에 사는 사람 역시 대부분 어업이나 임업 등을 농사와 병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농촌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이 책은 다양한 기능과 상반되는 이미지가 교차하는 농촌을 9개의 주제로 다룬다. 영국 농촌지리학자인 저자는 지리학과 사회학에서의 농촌 연구를 개괄하고 경제적 공간, 자본주의 농촌 변화, 소비 공간으로서의 농촌을 탐색한다. 농촌이 생산 공간일 뿐 아니라 관광과 레저의 소비 공간으로 글로벌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자연과 문화유산 등의 가치도 재평가되는 등 학제적 통찰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400쪽. 2만 2000원.
  • [백승종의 역사 산책] 뜻밖의 송시열

    [백승종의 역사 산책] 뜻밖의 송시열

    이 사람 때문에 조선이 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송시열의 막무가내가 조선사회에 큰 폐해를 끼쳤다는 것인데, 과연 그에게는 성리학만 옳고 다른 사상은 글렀다는 식의 경직된 보수성이 있었다. 송시열은 당쟁이 극심하였던 17세기 후반의 인물이라, 시시비비의 여운이 몹시 길다. 그러나 그에게는 우리가 몰랐던 뜻밖의 모습이 있었다. 예컨대 송시열은 여성에게 절개를 강요하는 풍조에 반대하였다. 놀랍게도 그는 양반 부녀자들의 개가 즉, 재혼을 허용하자고 했던 것이다. 동시대의 서양지식인 중에서도 송시열처럼 여성의 재혼을 주장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훗날 광무 4년(1900년), 민치헌이란 관리는 고종에게 올린 상소 가운데서 송시열의 주장을 자세히 소개했다(고종실록, 제40권). 생전의 송시열은 숙종에게 올린 글에서 전혀 다른 말을 하였다. 자신은 여성의 재혼을 주장한 일이 없다고 발뺌한 것이다. “사대부 집안 여성이 개가해도 된다는 말은, 옛 선비 이언적과 조헌이 했던 바입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임금님께 아뢴 적도 없고, 조정 신하들에게 언급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일로 저를 비방하다 못해 제가 삼강(三綱)을 무너뜨린다는 비방까지 일어났습니다.”(송자대전, 제13권) 어떻게 된 일일까? 송시열의 문집을 자세히 살펴보면, 효종 10년(1659년) 송시열이 권시라는 학자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가 눈에 띈다. 약 250년 뒤 민치헌이 상소문에서 인용한 것보다 훨씬 상세한 내용이다. “고려 말엽에 윤리가 무너져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고, 다른 남자에게 재혼하는 여성이 있었다오. 그리하여 부득이 이 법(재혼금지법)을 제정했다고 하오. 이 법은 일시적으로 폐단을 교정하는 수단이었을 뿐이오.”(송자대전, 제39권) 송시열의 이 말이 실상에 부합하는 것 같다. 조선 초기에는 여성이 3번 이상 결혼해서 발생하는 가족 간의 감정적 대립과 복잡한 상속문제가 논의의 초점이었다. 여성의 재혼마저 법으로 엄금한 것은 성종 8년(1477년)의 일이었다. 역사적 검토를 통해 송시열은 여성의 재혼 금지가 한시적인 성격을 띤다고 보았다. 그는 중국 고대의 예법 가운데서도 자신에게 유리한 이론적 근거를 발견했다. ‘주례’에는 가모(嫁母) 즉, 재혼한 어머니와 의붓아버지(繼父)의 상복에 관한 언급이 있었다. 대다수 조선 성리학자들의 짐작과는 달리, ‘주례’를 만든 주공은 여성의 재혼을 금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리학의 큰 스승들, 곧 주자와 정자도 여성의 재혼을 노골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송시열은 그 점을 확신했다. 그래서 그는 열녀와 충신에 관한 조선 사회의 통념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은 동일한 의리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무슨 까닭으로 두 임금을 섬기지 말라는 법은 제정하지 않은 채, 여성에게 두 남편을 섬기지 말라고 강요하는가?” “예의를 잘 가르쳐, 백성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나날이 진보되게 하는 것이 성인의 정치다. 그러나 엄한 형벌을 써서 아무리 강요해도 백성이 따르지 않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후세의 정치다.” 송시열은 성인의 정치를 추구한 사람이었다. 정치가 송시열의 행적에는 잘못도 많았다. 그러나 우리가 미처 알아보지 못한 매력도 없지 않았다. 무엇이 보수이고, 무엇이 진보인가? 중요한 것은 그 생각이 웅숭깊은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 [우주를 보다] 오리온 성운 속 ‘별들의 요람’

    [우주를 보다] 오리온 성운 속 ‘별들의 요람’

    아기별이 태어나는 우주의 한 곳을 아름답게 담아낸 사진을 유럽우주국(ESA)이 4일(현지시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은 오리온 성운 중에서도 ‘오리온 A 분자구름’으로 불리는 곳으로, 우리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들의 요람’이다. 이 곳은 천문학자들에게 별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상세히 보여준다. 오리온 성운은 은하수로 불리는 우리 은하에 속하며 지구에서 약 1350광년 거리에 있다. 여기서 성운은 성간 가스와 먼지가 널리 펼쳐진 구름을 말하는데 오리온 성운의 질량은 태양의 2000배에 달한다. 하지만 오리온 성운에서도 태어난지 얼마 안 된 매우 젊은 별들은 가시광 스펙트럼 상에서 볼 수 없다. 이에 따라 천문학자들은 칠레에 있는 유럽남방천문대(ESO)의 가시적외선 천체망원경 ‘비스타’(VISTA)를 통해 아기별들의 탄생 현장을 관측했다. ESO는 새로운 이미지 탐사를 통해 인근 분자구름 속 젊은 별들의 진화 초기 단계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새로운 별이나 젊은 항성체(YSO), 또는 먼 은하와 같은 약 80만 개의 천체를 확인했다. 오리온 성운은 밤하늘을 바라보면 맨눈으로도 볼 수 있는데 17세기 초에 처음 과학적으로 소개됐다. 1789년 당시 영국의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은 직접 만든 구경 2m 망원경을 사용해 오리온 성운과 같은 성운을 보고 ‘미래에 태양들이 될 혼돈 상태의 물질들’이라고 예언처럼 묘사했다. 한편 오리온 성운은 ‘메시에 42’ 또는 M42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17세기 프랑스의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가 자신이나 동료 천문학자들이 발견한 성운과 성단을 구분하기 위해 정리한 ‘메시에 목록’에서 42번째를 뜻한다. 사진=ESO/VISION survey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스웨덴 왕비 “궁전에 유령 산다” 깜짝 발언 화제

    스웨덴 왕비 “궁전에 유령 산다” 깜짝 발언 화제

     스웨덴의 실비아(74) 왕비가 자신이 살고 있는 궁전에 ‘친절한’ 유령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고 밝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실비아 왕비는 최근 현지 SVT1방송이 스웨덴 왕실 드로트닝홀름 궁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던 도중 “이곳은 유서가 깊고 작은 친구들도 살고 있다. 바로 유령들 말이다”고 말했다고 AFP 통신이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실비아 왕비는 “이들 유령이 모두 친절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실비아 왕비는 “궁에 놀러 와서 어두운 곳에서 걷거나 해 보라”면서 “아주 재미있다. 깜짝 놀라는 일은 없다. 유령들은 상냥하다. 가끔은 내가 완전히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독일 태생의 실비아 왕비는 칼 구스타프 16세(71) 현 스웨덴 국왕과 1972년 결혼해 슬하에 1남2녀를 뒀다. 실비아 왕비의 ‘궁궐 유령’ 발언이 담긴 STV1방송의 다큐멘터리는 오는 5일 방영된다. 유럽에서는 오래된 건물에서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는 괴담은 드물지 않다. 영국의 주요 관광명소이자 한때 감옥으로 사용됐던 런던 탑에서도 옛날 왕과 왕비의 유령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실비아 왕비가 머물고 있는 드로트닝홀름 궁전은 스웨덴 왕가가 1662년 스톡홀롬 교외에 건축한 여름별궁으로, 17세기 스웨덴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던 건물이다. 프랑스 바로크 양식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과 비교되며 ‘북유럽의 베르사유’라고도 불린다. 수백 개의 방이 있는 거대한 궁전이지만 현재 관광객에는 일부만 공개하고 있다. 199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고려 불상 셋 뜯어보니 한 공방 출신

    고려 불상 셋 뜯어보니 한 공방 출신

    구한말 조선 왕실이 일본인으로부터 각각 구입한 고려 시대 불상 3점이 한 공방에서 제작된 ‘삼존상’인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6일 펴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불교조각 조사보고2’에 따르면 각각 입수 경위와 연도가 달라 100년 넘게 서로 다른 고려 시대의 불상으로 여겨져 온 금동아미타불좌상(가운데)과 금동관음보살입상(오른쪽), 금동대세지보살입상(왼쪽)이 복장물(腹藏物·불상 안에 넣는 물품) 조사와 박물관의 X선형광분석(XRF) 결과 동일한 공방에서 일괄 제작된 것으로 나타났다. 금동아미타불좌상은 1908년 조선 왕실이 당시 350엔을 주고 구입한 것이고, 두 입상은 1912년 일본인 곤도 사고로로부터 600엔을 주고 사들인 것이다. 이 불상 3점은 가늘게 뜬 눈과 살짝 다문 입가, 동그란 달걀형의 얼굴에 좁은 어깨 등 용모가 서로 닮아 양식적으로 동일하다는 추정이 줄곧 제기돼 왔다. 특히 몸 전체에 걸친 장신구의 세부 표현도 비슷하다. 이번 XRF 조사를 통해 세 불상의 구리, 주석, 납의 배합 비율도 거의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삼존불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물의 발원문을 통해 제작 연도가 1333년인 것으로 확정됐다. 삼존불의 복장물 납입에는 고려 시대의 고위 관료 등 수백명이 참여했다. 이 밖에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관음보살좌상 내부에선 오색실과 동서남북·중앙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보배를 넣은 ‘후령통’, 불교 주문인 ‘진언’ 등이 발견됐다. 이들 복장물은 최소 두 차례, 즉 15세기와 17세기에 불상에 납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백마 탄 ‘산타’ 한여름 ‘이브’

    백마 탄 ‘산타’ 한여름 ‘이브’

    350년 교황 ‘그리스도 탄생일’ 선언 … 동방정교 국가는 13일 늦은 1월 7일러시아는 순록 대신 미녀 파트너…아르헨티나는 찬 사과주스 마시며 파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전 세계가 성탄절 분위기 내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빨간 옷을 입은 산타가 트리 등에 걸린 양말에 몰래 선물을 넣어 두고 가는 날로 생각하지만 모든 나라가 다 같은 것은 아니다. 크리스마스는 2000년 가까이 전 세계로 퍼지며 각 지역의 전통을 흡수해 다양한 형태로 발전돼 왔다. 지구촌이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비기독교 문화권 亞·아프리카서도 성대히 치러 크리스마스는 라틴어 ‘그리스도’(Christus)와 ‘모임’(massa)을 합친 말로 ‘구세주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모임’이라는 뜻의 종교 예식이다. 12월 25일이 예수의 실제 탄생일인지는 알 수 없다. 기독교와 로마제국 간 정치적 타협 과정에서 태양신 축일인 동지(冬至)를 성탄절로 받아들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로마 연감 기록 등에 따르면 기원 전부터 로마와 이집트에서는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매년 12월 25일을 ‘무적의 태양신’ 축일로 기념했다. 동지를 지나면 해가 조금씩 길어지는 것에 착안해 ‘빛이 어둠을 이기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날로 본 것이다. 3세기 초만 해도 로마 일부 기독교도는 크리스마스를 예수 세례일로 알려진 1월 6일에 치렀다. 사람인 예수가 이날 그리스도로 거듭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서기 336년에 아기 예수 탄생일인 12월 25일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행사가 처음 열렸다. 350년 교황 율리우스 1세는 12월 25일이 그리스도 탄생일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이때부터 로마에 ‘태양=예수’ 개념이 생겨났다. 자연스레 태양신 축일이 크리스마스에 통합됐다. 예수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가 예수보다 더 오래전에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크리스마스는 ‘12월 25일’이지만 러시아와 그리스 등 10여개 나라에선 이듬해 ‘1월 7일’을 크리스마스로 기린다. 기독교계는 기원전 45년 만들어진 율리우스력(태양력)을 써 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역법과 실제 시간이 맞지 않자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그레고리력(신태양력)을 제정했다. 로마 교회와 반목하던 동방정교계는 새 역법을 쓰지 않고 율리우스력을 고수했다. 그레고리력은 기존 역법보다 매년 11분이 빠르다. 새 역법이 제정된 지 400여년이 지난 현재 두 역법 간 시차는 13일로 벌어졌다. 동방정교 국가들은 지금도 율리우스력을 써 크리스마스 행사를 서구보다 13일 늦게 연다. ●北·中·日 등 40여개 국가 공휴일로 지정 안 해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문화권인 미주와 유럽, 오세아니아는 물론이고 비(非)기독교 지역인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도 성대히 치러진다. 중동 지역으로 이슬람 국가인 레바논과 요르단, 인도네시아는 크리스마스가 공휴일이다. 이집트(콥트교)나 이라크(아시리아 교회)도 토종 기독교도가 크리스마스 행사에 참석할 수 있게 배려한다. 세속국가 터키와 국제도시 두바이에서는 외국인을 위한 성대한 크리스마스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기독교인의 크리스마스 행사 참여를 허용한다. 다만 십자가 등 상징물을 외부에 보여선 안 된다. 중동 국가가 크리스마스에 비교적 관대한 것은 예수가 이슬람교에서도 주요 성인(聖人)으로 인정받아 무슬림이 이날을 길일로 여기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은 나라는 북한과 중국, 일본 등 40여곳이다. 대부분 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에 몰려 있다. 중국에선 홍콩과 마카오에서만 공휴일이다. 대만은 12월 25일이 공휴일이지만 이는 제헌절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태어난 이스라엘에서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지 않는다. 예수를 ‘선지자’로 보지 않아서다. ●가까운 지인에게 카드 보내는 풍습 영국서 시작 크리스마스는 오랜 기간 지역 전통과 결합해 다채롭게 발전됐다. 17세기 초 명나라 쉬자후이(상하이)에서도 행사가 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영어권 국가에선 크리스마스 전날인 12월 24일을 ‘크리스마스이브’(성탄 전야제)로,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6일을 ‘박싱데이’(이웃과 선물을 주고받는 날)로 부르며 연말 분위기를 이어 간다. 영국에선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가까운 친지에게 카드를 보낸다. 이 풍습은 전 세계로 퍼져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됐다. 성탄 아침에는 치즈를 발라 요리한 공작새 고기를 먹는다. 축구의 나라답게 크리스마스 연휴에도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가 진행된다. 아일랜드인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집안 창문을 조금 열고 촛불을 켜 둔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를 낳기 위해 숙소를 찾아 헤매던 어려움을 다시 겪지 않게 하겠다는 의미다. 네덜란드에서는 천사가 백마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전설에 따라 산타가 흰말을 타고 마을 곳곳을 찾는다. 한여름에 크리스마스를 맞는 남미국가에서는 시원한 음료를 즐기며 각종 축제를 진행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가족이 모여 차가운 사과주스를 마시며 음악이 동반된 축하연을 연다. 당일 자정에는 축포를 쏘며 소원도 빈다. 칠레에선 무용수가 다양한 종류의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춤을 춘다. 멕시코에서는 집안 한 곳을 마구간처럼 꾸며 아기 예수 인형을 눕힌다. 러시아에는 ‘데드 모로자’(얼음 할아버지)라는 현지식 산타가 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아닌 12월 31일에 오는데, 순록 대신 ‘스네구르카’(눈의 아가씨)로 불리는 미녀 파트너와 함께 다닌다. 최근 크리스마스는 문화 간 갈등에 휩싸이며 상업화 논란도 가열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인사법을 두고 의견이 양분돼 있다. 비영리단체 공공종교연구소에 따르면 소매업자들이 성탄 및 새해 인사로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 홀리데이스’(행복한 연휴)가 비슷하게 갈려 있다. 미국에선 유대인 등 비기독교인을 고려해 ‘해피 홀리데이스’를 많이 쓰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성탄에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써야 한다”고 주장해 기독교인의 지지를 받고 있다. ●석가탄신일 등과 달리 소비 지향적 분위기 우려 부처의 탄생일인 석가탄신일이나 유대교 축일 하누카 등이 차분하고 엄숙하게 진행되는 데 비해 유독 크리스마스만 시끄럽고 소비 지향적으로 치러지는 것에 대한 비난도 크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11년 성탄 전야 미사에서 “성탄절이 한낱 상업적 기념일로 전락한 것 같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사도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 제20조 2항에 위배된다”며 크리스마스와 석가탄신일을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국가의 근간인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제헌절이 2008년 법정 공휴일에서 빠지면서 이 주장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한국에서는 1949년 기독교 신자인 이승만 대통령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기독교 신자가 많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대통령 개인의 종교가 공휴일 지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伊 문화재 복원력 첫 인증 ‘한지 세계화’ 신호탄 쏘다

    伊 문화재 복원력 첫 인증 ‘한지 세계화’ 신호탄 쏘다

    국제인지도 낮아 日 화지에 밀렸던 한지 세계 문화재 복원 재료로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조된 우리 한지(韓紙)가 세계 중요문화재 복원 재료로 쓰이게 됐다. 한지가 해외 공인기관에서 문화재 복원 용도로 인증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15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의령 신현세 장인의 전통한지 공방에서 제작된 ‘의령 신현세 전통한지 1’과 ‘의령 신현세 전통한지 2’가 유럽의 지류 복원 전문기관인 이탈리아 로마의 국립 도서병리학연구소(ICRCPAL)로부터 문화재 복원력 인증서를 획득했다. ●결합성·보존성 좋고 보강작업 용이 문화재 복원 재료로 한지가 적합하다는 판단을 받은 것이다. ICRCPAL은 지난해부터 한지의 성분·산성도검사를 포함해 생물학적, 물리화학적, 기술적 검사를 해 왔다. 이미 도서병리학연구소는 한지를 사용해 자국의 중요 문화재 5점을 복원했다. 그중 하나가 800년 전 가톨릭 성인인 성 프란치스코(1182∼1226)의 친필 기도문이 적힌 ‘카르툴라’(Chartula)여서 주목받고 있다. 카르툴라는 가톨릭 성인이자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받들어지는 성 프란치스코가 1224년 자필로 쓴 ‘하느님 찬미가’와 ‘레오 수사를 위한 축복 기도문’을 기록한 10×13.5㎝의 양피지로, 훼손된 부분을 한지로 보강했다. 카르툴라는 15일(현지시간) ICRCPAL 본부에서 공개됐다. ICRCPAL은 이 밖에 ‘로사노 복음서’와 로마 카사나텐세 도서관 소장의 ‘243 음악책’ 복원과 17세기 이탈리아 화가 피에트로 다 카르토나의 작품에 생긴 기름얼룩을 제거하는 데도 한지를 사용했다. 이번 한지의 문화재 복원 재료 인증서 획득은 향후 한지 세계화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 전통 종이 화지는 50년 전 피렌체 대홍수 때 손상된 문화재 복구에 대거 쓰인 것을 계기로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양의 문화재 복원에 널리 활용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한지 교류 추진” 반면 한지는 결합성이 좋아 보강 작업이 용이하고, 성질이 중성을 띠어 보존성이 우수하다는 일반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인지도가 낮아 문화재 복원 분야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한지가 세계적인 문화재 복원에 쓰인 사례는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년) 재단의 주도로 이뤄진 교황 요한 23세의 지구본이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는 “다양한 종류의 한지에 대해 추가로 인증받기 위해 노력하고 로마예술대의 종이연구소 교수진과 한지 장인 간의 교류, 한지 정규 강의 개설 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아인슈타인은 ‘신’을 믿었을까? 전보로 답했다

    아인슈타인은 ‘신’을 믿었을까? 전보로 답했다

    '스피노자의 신' 상대성이론을 만들어 세계를 보는 인류의 시각을 극적으로 바꿔놓은 20세기 최고의 과학 천재 앨버트 아인슈타인. 이 최고의 과학자가 과연 신이란 존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은 사람들의 커다란 관심사였다. 과연 아인슈타인은 신을 믿을까? 만약 신을 믿는다면 그 신은 어떤 신일까? 이런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마침내 아인슈타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돌직구를 날린 사람이 나타났다. 질문은 전보문으로 날아들었다. 1929년 미국 뉴욕의 유대교 랍비인 골드슈타인이 아인슈타인에게 전신으로 보낸 질문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50단어로 답해 주십시오. 회신료는 선불되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독일어 25단어로 된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법칙적 조화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스피노자의 신'은 믿지만, 인류의 운명과 행동에 관여하는 신은 믿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위의 전보문 내용을 어느 편지에서 더욱 자세하게 부연 설명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의 신관이다. "두 종류의 신이 있다. 우리는 굉장히 과학적이어야 하고, 정확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 만약 신이 우리와 함께 하는 인격적 신이라면, 그리고 바닷물을 가르고 기적을 보이는 신이라면, 나는 그러한 신은 믿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에 자전거를 사달라는 ​기도를 들어주시는 신, 이런저런 소원을 들어주시는 신이라면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질서와 조화, 아름다음과 단순함 그리고 고상함의 신을 믿는다. 나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 왜냐하면 이 우주는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말이다. 스피노자는 우주는 신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스피노자란 어떤 사람인가? 아인슈타인과 같이 유대인인 바뤼흐 스피노자는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로 범신론자이다. 범신론이란 '자연의 밖에 존재하는 인격적인 초월자를 인정하지 않고, 우주,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이며, 신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고 있는 그 자체다'라는 관점이다. 세계 내의 '모든 것이 하나'라고 믿는 스피노자는 "우주는 신이다"라는 말까지 했다. 스피노자의 철학에 따르면 우리는 대상으로서의 초월적 신이 아니라, 바로 '신' 안에 살고 있는 셈이다. '유신론자' 아인슈타인​ 이같은 스피노자의 철학은 유대교에서 이단으로 찍혀 추방되었고, 인격적인 초월신을 부정하는 그의 '우주교'는 기독교로부터 일종의 무신론이라고 비난받았으며, 이 같은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는 아인슈타인에게는 무신론자라는 딱지가 붙었다. 신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견해를 들으면 그러한 비판에도 나름 근거가 있는 듯이 보인다. 아인슈타인은 또 어느 편짓글에서 인간이 믿는 신에 대해 "내게 신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표현과 산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성서'에 대해서는 "훌륭하지만 상당히 유치하고 원시적인 전설들의 집대성이며, 아무리 치밀한 해석을 덧붙이더라도 이 점은 변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했다. 나아가, "유대교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가장 유치한 미신들이 현실화된 것에 불과하며, 유대인은 결코 선택된 민족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아인슈타인이 확고한 무신론자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신의 개념을 어떻게 정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어쨌든 아인슈타인에게도 종교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가 믿는다고 말한 신은 스피노자의 신이며, 스피노자의 신은 '우주'이다. 따라서 삼단논법로 보자면 아인슈타인의 신은 '우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우주와 신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우주가 이해 가능하고 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은 경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조화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내는 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우주는 유한하나 끝은 없다' 참고로, 아인슈타인이 생각한 우주의 모습은 '유한하나 경계가 없는 우주'였다. 그는 무한한 우주가 불가능한 이유로, 중력이 무한대가 되고, 모든 방향에서 쏟아져들어오는 빛의 양도 무한대가 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공간의 한 위치에 떠 있는 유한한 우주는 별과 에너지가 우주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줄 아무런 것도 없기 때문에 역시 불가능하며, 오로지 유한하면서 경계가 없는 우주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우주에 존재하는 질량이 공간을 휘어지게 만들고, 그래서 우주 전체로 볼 때 우주는 그 자체로 완전히 휘어져 들어오는 닫힌 시스템이다. 따라서 유한하지만, 경계나 끝도 없고, 가장자리나 중심도 따로 없는 우주다. 이것이 바로 깊은 사유 끝에 아인슈타인이 도달한 우주의 모습이었다. 독일 물리학자 막스 보른은 "유한하지만 경계가 없는 우주의 개념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세계의 본질에 대한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의 하나"라고 평했다. 이 같은 우주가 아인슈타인에게는 그의 말마따나 '신'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종교인이 자신의 신앙 대상에 대해 갖는 경외감보다 더 깊은 경외감을 우주에 대해 갖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그 신을 알기 위해 도정에 자신의 평생을 오롯이 바쳤다. 죽기 직전까지 그는 종이 위에서 우주의 본질을 꿰뚫는 대통일장 이론 방정식을 이리저리 매만졌다.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그의 열망은 다음 말에 그대로 나타나 있다. "나는 신의 생각을 알고 싶다. 나머지는 세부적인 것에 불과하다." 아인슈타인은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그의 신은 우주였고, 종교는 '우주교'였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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