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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뿐인 사법부 과거 반성] 여전히 기울어진 ‘신의 저울’

    [말뿐인 사법부 과거 반성] 여전히 기울어진 ‘신의 저울’

    대법원은 사법 60주년을 맞아 재심을 통해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겠다고 발표했지만 정작 법원 일선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건 당사자에게 재판 기록조차 공개하지 않고 헌법재판소의 한정합헌 결정을 재심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 판례들이 잇따르고 있다.1·2심에서 재심을 허가한 사건을 대법원이 거부하고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비판하던 대법관들이 두 달만에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 ●사건 당사자조차 재판기록 못봐 조총련 간부인 동업자 정모씨에게 간첩 지령을 받았다는 혐의로 기소된 재미교포 김철(77)씨는 1989년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고문을 받아 거짓 자백했다며 2006년 9월 재심을 준비하며 검찰·법원의 사건기록을 열람하려 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은 김씨의 진술서 1500장을 제외하고는 수사에 지장을 준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 법원도 사건 당사자인 김씨를 정보공개법상 ‘제3자‘로 취급하며 수사에 필요하다는 자료를 빼고 열람하라고 판결했다. 공개된 법정에서 다퉜던 증인신문조차도 비공개 목록에 포함됐다. 김씨는 항소했고 사건은 서울고법에 계류 중이다. 법원은 국가보안법 제4조의 국가기밀 누설죄에 대한 헌재의 한정합헌 결정도 재심 사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97년 비밀로 보호할만한 실질적 가치가 있어야 국가기밀이라며 한정합헌 의견을 냈다. 신문에서 읽은 뉴스 등 ‘일반에게 알려진 공지의 사실‘조차 국가기밀로 폭넓게 해석하던 법원 판례에 제동을 건 것이다. 한정합헌이란 법률이 위헌 소지가 있어 특정하게 해석할 때만 합헌이라고 판단하는 헌재의 결정이다. 국가기밀 누설죄로 처벌받았던 함정희씨는 헌재 결정을 토대로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2001년 5월 10일 재심 개시를 거부했다. 헌재가 단순 위헌이라고 결정하지 않는 한 형사소송법상 재심 사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정합헌은 법률 해석에 관한 일종의 권고에 불과해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는 법원의 재량이라며 배척했다. 한정합헌도 위헌 결정의 일종이라는 헌재의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신귀영(72)씨 가족은 80년 재일교포인 형 수영씨의 지령을 받고 국가기밀을 유출하는 간첩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징역 3~15년형을 받았다. 사건 당시 일본에 거주해 증언할 수 없었던 수영씨는 95년, 조총련 간부도 아니고 간첩 지령을 내린 적이 없다고 진술했고, 신씨 가족은 이를 토대로 재심을 신청했다.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지만 대법원은 “새로운 증거 하나만 보았을 때, 무죄가 나올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될 때만 재심을 허용해야 한다.”며 진술서만으로는 재심을 허용할 수 없다고 원심을 뒤집었다. 5년 뒤 신씨 가족은 고문에 의해 위증했다는 당시 증인의 진술을 토대로 두 번째 재심을 신청했다. 부산지법은 재심을 허용했지만, 부산고법과 대법원은 배척했다. 지난해 1월23일 진실화해위원회는 신씨 사건을 간첩조작 사건이라 결론짓고 재심을 권고했고, 신씨는 같은 해 7월10일 세 번째 재심을 청구했다.1년이 지났지만 법원은 묵묵부답이다. ●이용훈 “구차한 소멸시효 주장 용납못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96년 12월에 삼청교육대 사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지났다며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용훈 현 대법원장을 포함해 천경소·정귀호·이임수 당시 대법관은 “국가가 정정당당하게 불법행위가 있었는지를 다투는 것은 몰라도 구차하게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하며 소수의견을 냈다. 그러나 두 달 뒤인 97년 2월 정귀호·이임수 대법관은 동일한 삼청교육대 사건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기존 의견을 철회하고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받아들였다. 이전에 다수의견을 냈던 이돈희 대법관까지 세 대법관의 의견이 일치해 이 사건은 전원합의체로 올라가지 않았다. 그래서 국가의 불법행위에 소멸시효를 적용한 대법원 판례는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수지 김 사건, 최종길 교수 사건 등 국가의 소멸시효 항변을 배척한 하급심 판결이 2003년과 2006년에 나왔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강남경찰서, 기업형 룸살롱에도 ‘性戰’ 칼날 주택금융公, 직원엔 펑펑 서민엔 찔끔   [뉴스in뉴스] 촛불 농성 100일,조계사에서는 지금…   [캐릭터뷰] 박철민이 말하는 ‘불광동 배용기’ 그리고 ‘배우 박철민’   기획재정부의 아고라 활동에 네티즌 ‘냉소’  
  • “죽기 전에 조국 한국으로 꼭 돌아가고파”

    한국전쟁 때 중국 영해에서 첩보활동을 벌이다 생포된 한국인 ‘켈로부대원’이 중국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푸순(撫順)에 거주하는 장근주(77)씨는 자신이 1951년 7월 미 극동군사령부 예하 13개 켈로(KLO)부대 중 하나였던 호염(湖鹽)부대에 입대해 활동하다 중국군에 체포됐던 북파공작원 출신이라고 밝혔다. ●첩보활동 벌이다 체포… 中서 14년 복역 장씨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국군이 원산에 상륙한 직후 흥남에서 아버지(사망) 및 남동생(현재 서울 거주)과 함께 남포를 거쳐 황해도 초도(椒島)에서 피란생활을 하던 중 1951년 7월 첩보부대에 입대했다. 그는 바로 평안북도 회도(灰島)로 이동됐으며 그곳을 거점으로 중국과 북한 등을 상대로 첩보활동을 벌였다. 장씨는 이어 상부의 명령에 따라 1952년 9월13일 동료 공작원 5명과 함께 선박을 타고 중국측 영해로 이동해 첩보수집 활동을 벌이다 이틀 뒤 중국 경비정과 어선 등에 발각돼 교전을 벌이던 중 생포돼 지금의 단둥(丹東)으로 압송됐다. 장씨는 1952년 9월10일 중국 영해를 2차례 침범해 중국과 북한 어선 등 선박 11척에 총격을 가하고 선원 1명을 부상시킨 혐의로 랴오닝성고급인민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의 확정판결을 받고 14년을 복역한 뒤 1965년 10월9일 감형, 석방됐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1992년 10월까지 푸순감옥공장에서 목수로 근무했다. ●조선족과 결혼… 5년전 신장암 판정 장씨는 1967년 조선족 교포인 곽달선(69)씨와 결혼해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5년 전 신장암 판정을 받고 현재 자택에서 치료를 받으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장씨는 “한국을 위해 입대했던 만큼 죽기 전에 꼭 한국 국적을 회복해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선양 연합뉴스
  • [교정 대상 수상자] 대상 수상 김진철 마산교도소 교위

    [교정 대상 수상자] 대상 수상 김진철 마산교도소 교위

    “저보다 열심히 근무하는 동료가 많은데, 이렇게 큰 상을 받아 어깨가 무겁습니다.” 제26회 교정대상을 받는 마산교도소 김진철(53) 교위는 극구 자신을 낮추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김 교위는 31년 세월을 교도관으로 성실히 일하며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도 바른 태도와 원칙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지역사회 봉사에도 누구보다 앞장섰다. 아울러 적극적인 자세로 구외공장 및 위탁공장에 우수업체를 유치, 막대한 세입을 증대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 교위는 교도소 안에서 재소자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마음씨 넉넉한 교도관으로 통한다. 그는 “처음부터 흉악한 범죄자는 없다.”면서 “대부분 재소자들은 한순간의 잘못으로 범죄자의 멍에를 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갑원(46·가명)씨를 예로 들었다. 최씨는 살인죄로 15년형을 선고 받고 마산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다 2003년 모범수로 가석방됐다. 처음에는 자신을 억제하지 못해 말썽을 피우다 독방에 수감되기 일쑤였다. 김 교위는 “인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관계가 형성되자 선량해지더라.”고 말했다. 그는 오갈 데 없는 최씨에게 직장까지 알선해 줬다. 최씨는 마산시내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선반공으로 착실하게 생활하고 있다. 김 교위는 박승욱(42·가명)씨와도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박씨는 성폭행죄로 3년간 징역을 살다가 출소, 지금은 자기 사업을 하고 있다. 최근 김 교위의 수상소식을 전해 듣고 마산교도소를 방문했다가 만나지 못하자 메모를 남기고 돌아갔다. 박씨는 “저에게 인생을 알려준 덕택에 제가 있을 곳을 알았다.”면서 “다시 한번 수상을 축하한다.”고 적었다. 김 교위는 1956년 경남 창원시 동읍에서 태어나 1972년 마산공고를 졸업한 후 부산의 섬유회사에 취직해 전기기사로 근무하다 군에 입대했다. 해병대 제대 후 교도관 시험에 응시,77년에 합격했다. 이듬해에는 김남선(51)씨와 결혼해 두 아들을 뒀다. 타고난 그의 성실성은 한 재소자의 자살을 사전에 예방했고, 교정작품 전시회에 출품할 재소자의 작품 제작을 지도해 입상 시켰다. 김 교위는 “사회나 이웃이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대했더라면 어둠속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도 인간적인 교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마산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美 민주당 지자체장 또 性스캔들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민주당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스캔들이 이어지고 있다. 24일(현지시간) AP통신과 인터내셔녈 헤럴드트리뷴, 폭스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크웨임 킬패트릭 (38) 미 디트로이트 시장이 위증과 사법방해, 공무상 비리 등 자그마치 열두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12일 엘리엇 스피처 전 뉴욕 주지사가 성매매로 사퇴한 데 이어 민주당으로선 또 악재를 만났다. 킬패트릭 시장은 2001년 31세의 나이에 최연소 시장으로 당선돼 개혁작업 등 지도력을 발휘, 스타 정치인으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스피처 전 주지사와 엇비슷하다. 특히 힐러리 측근인 스피처와 달리 오바마를 지지한 점에서 민주당 경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그러나 오바마 진영은 이를 부인하며 진화에 나섰다. 킬패트릭 시장은 2002∼03년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동갑내기 크리스틴 비티와 불륜을 저질렸다는 혐의가 짙어지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 일로 비티 전 실장은 사직했지만 두 사람 모두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했으며, 이들의 간통 사실을 증명할 만한 적절한 증거가 제출되지 않아 사법처리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올해 초 일간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가 두 사람이 주고받은 1만 4000여건의 문자 메시지를 확보해 내연 관계를 증명할 만한 단서라고 폭로하면서 킬패트릭 시장에 대한 비난 여론이 다시 불붙었다. 이에 디트로이트 검찰은 24일 킬패트릭 시장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비티 전 실장과 함께 기소했다. 이들을 기소한 킴 워시 검사는 “이번 사건은 개인 프라이버시로 다뤄질 범위를 벗어났으며 사법체계의 권위와 신뢰도에 얽힌 문제”라고 말했다. 패트릭 시장은 “모든 사실이 공개되면 의혹을 깨끗이 벗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면서 “나는 오로지 디트로이트 발전 방향 모색에 계속 집중하겠다.”고 사임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킬패트릭 시장은 유죄가 입증될 경우 시장직 사임은 물론 길게는 징역 15년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였다. 디트로이트 시의회가 킬패트릭 시장의 퇴진을 결의하는 등 스캔들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미국 언론은 내다봤다.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죽음의 상인’ 바우트 잡혔다

    ‘죽음의 상인’ 바우트 잡혔다

    ‘죽음의 상인’으로 불리며 무기 밀거래로 한해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돈을 주물러온 러시아 출신 무기 밀매업자 빅토르 바우트(41)가 영화 속 장면처럼 극적으로 붙잡혔다. 영화 ‘로드 오브 워(Lord of War)’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그는 미 마약단속국(DEA)의 1년여에 걸친 함정수사 끝에 태국 방콕의 한 호텔에서 7일 체포됐다. 이날 AFP와 CNN에 따르면 바우트는 콜롬비아 무장혁명군(FARC)과 무기계약을 맺으려던 참이었다. 바우트가 지난달 말 태국으로 잠입했다는 첩보를 입수한 DEA 요원들은 FARC 반군으로 가장, 그의 측근을 감쪽같이 속인 뒤 이날 그를 체포하는 개가를 올렸다. 러시아 일간 러시아투데이는 바우트가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 최소한 징역 15년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국은 좌익반군인 FARC에 무기를 공급하려 한 혐의로 그를 기소하는 한편 태국에 신병인도를 요청할 방침이다. 타지키스탄 태생인 바우트는 러시아 국가안보위원회(KGB) 소속 장교로 앙골라에서 근무하면서 무기·석유 밀매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미국과 중동, 아프리카, 동유럽에서 화물운송회사 운영을 가장해 아랍에미리트(UAE)를 거점으로 암약해 왔다. 자신이 소유한 에어세스, 그리고 센트라프리칸 항공기를 통해 아프가니스탄과 앙골라, 콩고민주공화국, 라이베리아, 이라크 등에 무기를 실어 날랐다.1991년부터 2002년까지 이어진 내란으로 5만여명이 숨진 시에라리온의 반군에게 무기를 공급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SG銀 금융사기 용의자 “난 잘못 없다”

    |파리 이종수특파원|49억유로(6조 7963억원)라는 사상 최악의 금융사고를 일으켜 구속된 프랑스 소시에테 제네랄(SG) 은행의 중개인 제롬 케르비엘(31)은 자신의 잘못을 일절 부인했다. 당초 금융사고가 발표될 무렵 도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케르비엘은 26일(이하 현지시간) 뇌이슈르센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경찰에 체포되기 전 어머니 마리 조제(71)와 형 올리비에(37)에게 “난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어요.”라고 말했다고 현지 언론들이 이날 잇달아 보도했다.금융사고가 터진 뒤 그의 입장이 외부에 알려진 것은 처음이다. 또한 케르비엘은 평소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를 가족들에게 자주 호소해 왔으며, 이에 그의 친인척들은 “회사를 1년간만이라도 쉬는 것이 낫지 않으냐.”고 조언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가족들은 “케르비엘이 은행에서 희생양이 됐다.”면서 “우리 모두가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발벗고 나설 것인 만큼 케르비엘은 악몽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라데팡스에 있는 SG은행 본사 사무실과 파리 서쪽 뉘쉬르센에 있는 아파트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면서 아파트에 있던 그에게 영장을 제시하고 체포했다. 케르비엘이 기소절차를 거쳐 사기 및 위조 등의 혐의가 인정되면 최소 15년형의 징역형에 처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SG측은 지난 24일 케르비엘이 혼자 가상의 회사를 세워 유럽 증시지수 선물투자로 거액의 손실을 낸 혐의로 낭테르 지방검찰청에 고소했으며 현재 수사권은 파리 지방검찰청으로 넘어갔다. 프랑스 당국은 이번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해 다각도로 진상 조사에 나서고 있다.프랑수아 피용 총리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경제장관에게 “8일 이내에 사건의 전말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라가르드 장관은 “은행 내부 감시망이 사건을 미리 인지하지 못했는지 등을 중점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프랑스 은행 산하 은행위원회도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용의자 케르비엘의 범행 동기를 놓고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그의 가족측은 “케르비엘이 대규모 금융사고의 희생양이 됐다.”며 “그는 은행의 여러 뛰어난 중개인들 가운데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필사적으로 애를 쓰다 사고를 냈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vielee@seoul.co.kr
  • 中 진출 다국적기업 “나 떨고 있니”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 사정 당국이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기업의 부정부패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고 11일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현재 프랑스계 유통업체인 까르푸의 구매 담당 고위 간부 8명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며 맥도널드, 월풀 등도 수사선상에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나는 고위공무원과 다국적기업간의 커넥션을 찾아내는 등 비리 척결 차원에서의 수사다. 지난해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시 당서기의 연금 불법대출 사건 때 공무원-기업간의 유착 수사가 본격 진행돼, 상당한 자료가 수집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하나는 다국적기업 임직원들의 자체적인 부패사건이다. 까르푸는 최근 베이징(北京) 시내 까르푸 매장 육류 구매 담당 등을 맡고 있는 직원 10명과 매장 물품 납품업체 관계자 12명을 중국 공안당국에 정식으로 수사를 의뢰했었다. 중국 언론 등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인 매킨지의 상하이(上海) 지점 직원 등이 130만위안(1억 5000여만원) 규모의 뇌물사건에 개입된 혐의로 사법처리를 받았다. 역시 지난해 419만위안의 뇌물을 받고 15년형이 선고된 장언자오(張恩照) 전 중국건설은행장 수뢰 사건에서도 IBM이 연루됐었다.jj@seoul.co.kr
  • 日軍, 미국인 여성도 위안부 삼았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장교가 미국인 여성을 상대로 매춘을 강요한 것과 관련해 재판을 받은 기록이 확인됐다. 그동안 한국, 타이완, 중국 등 아시아여성이 위안부에 강제동원된 사실이 드러난 적은 있지만 미국령인 괌 여성의 피해 사실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같은 사실은 그동안 ‘위안부의 존재는 인정하나 일본군의 개입은 부정해 온’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반박하는 또 하나의 물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달 30일 미국 하원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는 위안부 결의안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일본군이 칼로 위협 “따르지 않으면 죽이겠다” 25일 위안부문제를 연구하는 국내 한 전문가가 미국의회도서관에서 입수한 350장짜리 1945년 미 해군 괌 재판보고서에 따르면 1942년 2월부터 6개월 동안 일본인 괌 사령관 하야시의 부관(소령급)인 ‘사카이’는 당시 17세인 F양을 강제로 끌고가 성노리개로 삼았다. 사카이는 당시 괌에서 활동하고 있던 일본인 사업가 ‘시노하라’와 함께 F의 집으로 찾아가 부모를 칼로 위협해 강압적으로 F를 데리고 갔다. 이어 한 집에 F를 감금한 뒤 매일 감시를 했다. 그 곳에서 F는 언니를 만났다. 사카이는 하야시와 함께 일주일에 2∼3차례씩 그 곳에 들렀다. 그러나 재판기록에는 언니와 하야시 두명에 대한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F는 재판에서 “약혼자가 있었지만 집으로 끌려간 첫 날 사카이와 잠자리를 해야 했다. 집으로 가고 싶다고 하자 (시노하라가)도망가려고 하면 나쁜일이 일어날 것이고 복종하지 않으면 목을 베어버릴 것이라고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 사카이가 “세탁과 청소를 하면 매월 20엔씩 주겠다.”고 했으나 약속한 돈은 절반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적혀있다.시노하라는 재판에서 ‘매춘을 목적으로 여성을 강제로 끌고간 혐의’등 5개 혐의에서 유죄를 인정받아 교수형을 선고받았다가 징역 15년형으로 감형됐다. 일본군 장교 사카이는 미군이 괌을 탈환하기 직전 일본으로 돌아가 재판을 받지 않았다.●“특정인을 위한 성노예도 위안부” 시노하라는 당시 괌 거주 일본인 협회 회장을 지낸 사업가로 일본군 장교 사카이의 지시로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1938년 일본 육군성이 중국 북부지역 참모에게 보낸 결재서류에 ‘위안부 모집은 지역의 군이 통제하고 모집책(업자)선정을 적절히 할 것’이라는 내용과도 일맥 상통한다. 서울대 사회학과 정진성 교수는 “전쟁 중 성매매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첫 사례인 네덜란드 바타비아 법정문서보다 앞선 것”이라면서 “이번 재판기록에는 한명의 피해여성이 나오지만 앞으로 케이스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전형적인 위안소의 형태는 아니지만 특정인을 위한 성노예도 위안부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 가운데서도 이런 사례가 여럿 있다.”고 덧붙였다. 건국대 법학과(국제법 전공)조시형 교수는 “인신매매 현장에 일본군인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본군의 개입은 명확하다. 설사 사적인 목적이라 하더라도 국제법상 일본군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미국 여성의 사례가 발견되기는 처음인 만큼 앞으로 미국의 태도가 주목된다.”면서 “미국 차원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처벌을 위해 미국의 관련 문서 공개를 촉구하는 등 법제정 움직임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금감원 “한국판 서브프라임 없다”

    금감원 “한국판 서브프라임 없다”

    ‘한국판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될까?미국 경제가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주택담보대출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화로 타격을 입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할 가능성을 두고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있다. 최근 몇년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적극적이었던 국내 저축은행·여신전문회사 등의 주택담보대출은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김대평 부원장보는 3일 “현 주택담보대출 규모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비중이 34.3%로 미국의 81.6%와 큰 차이가 있고, 특히 전체 잔액대비 저축은행 등의 비중은 4.7%에 불과해 리스크 수준이 낮다.”고 말했다. 이어 금감원은 이날 한국과 미국의 주택담보대출의 리스크를 조목조목 비교, 분석해 안정성을 거듭 강조했다. ●한미 주택대출 리스크 비교 분석 금융감독원은 3월28일 현재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78조 3000억원으로 2월 말보다 4000억원 증가했다고 3일 밝혔다. 이중 은행권의 증가액은 317억원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보험과 신협 등 비은행계의 대출실적이다. 지난해 월간 기준으로 11월 5조 2000억원,12월 4조원, 올해 1월 1조 3000억원,2월 1조 1000억원 등 조 단위로 급등하던 것과 비교하면 둔화세가 아니라, 얼어붙은 수준이다. 금융감독당국은 “신규 주택담보대출은 규제하지만 만기연장률이 94%로 대환대출은 순조롭기 때문에 대출시장 냉각에 따른 위험요인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대출규모·연체율·LTV비율 안정적 금감원이 발표한 ‘한국·미국간 주택담보대출 리스크 수준 비교’에 따르면 국내는 은행·보험·상호금융 등 비교적 저금리의 상품에 전체 주택담보대출자의 비중이 95.4%를 차지하고, 다소 고금리 대출상품 구매자는 4.6%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서브프라임모기지 가입자가 12.8%로, 국내 위험대출의 약 3배 수준이다. 담보인정비율(LTV)도 국내 금융권은 평균 50.3%이지만, 미국은 86.5%로 높다. 연체율은 국내의 경우 평균은 0.9%로 ‘연체율 0%대’에 진입했고, 연체율이 가장 높다는 저축은행도 8.9%이다. 미국은 전체 모기기론의 연체율이 4.95%이고, 이중 서브프라임은 13.33%로 높다. 그러나 만기구조는 미국이 훨씬 안정적이다. 미국은 통상 만기가 30년이다. 반면 국내 주택담보대출 상품은 10∼15년형(이자·원금 분할상환형)이 적극적으로 판매된 지 얼마 안 됐다. 때문에 2006년 말 만기가 10년 이상인 대출의 비중이 51.0%에 불과하다. 금감원은 현재 1년 내에 일시상환해야 하는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4조원,3년 이내 만기도래 잔액도 65조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잔액들은 잠재적인 금융불안 요인으로 존재하는 셈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獨법원,10년간 신생아 9명 암매장 엄마 징역 15년형

    자신이 낳은 신생아 9명을 숨지게 한 뒤 시신을 암매장한 독일인 여성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법원은 1일(현지시간) 옛 동독 지역인 브란덴부르크주에 사는 사빈 힐셴츠(40)에게 살인과 시체유기 혐의로 징역 최고형인 15년형을 선고했다고 영국 BBC가 보도했다. 피고가 알코올 중독이란 이유로 고의살인이 아닌 단순살인죄를 적용했다. 신생아 1명에 대해선 공소시효가 지났다. 앞서 독일 경찰은 지난해 8월 사빈 부모의 집 정원에서 신생아 시체 9구를 찾아냈다. 당시 시체들은 어항이나 꽃병 등에 담겨져 있었으며, 한 이웃이 이 집의 창고를 치우다가 사람의 뼈를 발견하면서 꼬리가 잡혔다. 경찰은 유전자(DNA) 검사 결과 사빈과 그녀의 전 남편 올리버 힐셴츠의 자식이 분명하며,1988년부터 10년여에 걸쳐 차례로 암매장됐다고 밝혔다. 부부에겐 현재 3명의 자녀가 있다. 사빈은 경찰에 “종교적 이유로 피임을 못했으나 남편은 네 번째 아기를 원치 않았다.”면서 “이 아기는 변기에서 낳다 익사했고 그 이후의 아기들은 술에 너무 취해 출산과정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기들을 해치지는 않았으며 태어난 뒤 그냥 내버려뒀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전모] “법원 무죄판결로 명예회복·보상을”

    31년 만에 드러난 인혁당과 민청학련 사건의 진실 앞에 피해자와 유족은 묵은 세월에 대한 회한을 쏟아냈다. 시민단체는 환영과 함께 정부 차원의 보상을 촉구했다. 인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강창덕(79·대구 동변동)씨는 7일 “죽기 전에 진실이 밝혀져 기쁘다.”면서 “누명을 벗지 못하고 사형당한 여덟 분도 기뻐하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나경일(76·대구 범어동)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사형을 당한 고 하재완씨의 부인 이영교(70·대구 방촌동)씨는 “남편이 사형당한 후 2남3녀를 키우면서 ‘빨갱이 가족’이라는 손가락질까지 받아야 했다.”면서 “이제 고문과 사건조작 당사자의 양심 고백이 뒤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15년형을 선고받았던 임구호(57·대구 시지동)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포함한 당시 정권 핵심부의 가담 여부까지 확인하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고 아쉬워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8명 중 4명이 안장돼 있는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 묘지를 참배했다. 시민단체들은 ‘국가범죄’에 대한 역사적 심판과 향후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했다.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은 “과거 군사정권이 자행해 온 조작과 은폐, 고문 등 도덕성 추락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간사는 “국정원의 발표는 환영하지만 피해자들의 고통까지 지워진 것은 아니다.”라며 “법원에서 무죄확정 판결을 내려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동시에 대통령의 사과와 보상방안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대구 황경근 서울 안동환기자 kkhwang@seoul.co.kr
  • 정태수 前회장 또…이번엔 대학공금 72억 횡령

    전 한보그룹 총회장 정태수(81)씨가 또다시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지난 1991년 ‘수서특혜비리 사건’과 97년 ‘한보비자금 사건’ 이후 세 번째다. 정씨는 95년 수서사건과 관련해 특별사면을 받고 2년 뒤 한보 사건으로 징역 15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2002년 지병을 이유로 형집행이 정지됐고 같은 해 12월 사면됐다. 당시 검찰은 정씨가 허위진단서를 돈을 주고 샀다고 밝혔다. 정씨는 곧 재기를 노렸다. 한보철강을 되찾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어 해외유전사업과 강원도 영월에 위락단지 개발사업에도 손댔으나 허사였다. 다음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강릉영동대학 교비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2003년 3월쯤 학장인 윤양소(52)씨를 시켜 자신이 소유한 서울 대치동 은마상가 일부를 서울로 실습나온 간호과 학생들의 숙소로 빌리도록 하고 임대료를 받는 방식으로 대학 공금 72억원을 빼돌렸다. 반대하는 전 학장 강모(67)씨를 내쫓기도 했다. 정씨는 이렇게 착복한 재산이 추징되는 것을 피하려고 조카 하모(39)씨에게 관리토록 했다. 그는 서울 종로구 가회동 저택을 며느리 이름으로 빌리거나 회사를 운영하는 데 수십억원을 썼다. 검찰은 그의 집안 금고 등에서 현금 27억원을 찾아냈다. 검찰은 정씨가 인천 땅 4만평을 담보로 30억원을 빌린 사실을 확인하고 국세청 등에 통보했다. 정씨와 그 일가는 현재 2440억원의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대검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은 12일 정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횡령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또 하씨를 구속기소하고 전 ㈜한보 대표이사 이용남(65)씨와 윤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 (3) 재소자의 인권(영국)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 (3) 재소자의 인권(영국)

    교도소는 지은 죄를 징벌하기 위해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도록 법으로 합의한 곳이다. 그러나 높은 담이 상징하듯 폐쇄적인 교도소에서는 징벌이 강조됐지, 인권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져 왔다. 오랜 행형의 역사를 가진 영국은 교도소의 담을 낮추고 재소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노력도 함께 기울여 왔다. 죄는 엄격히 벌하되 인권은 존중하고, 나아가 재사회화를 통해 재범을 줄이는 영국의 앞선 교도행정 현장을 찾았다. |워튼언더에지(영국) 이효용특파원|런던에서 자동차로 서쪽으로 달린 지 2시간여, 글로체스터주(州)의 한적한 마을에 닿는다. 나지막한 붉은 벽돌 건물들과 여기저기서 담소하는 사람들은 영락없이 한가로운 시골 풍경의 하나다. 정문의 차단막과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아니라면 농장이나 학교쯤으로 보일 법한 이곳은 1948년 탄생한 영국 최초의 개방형 교도소 레이힐이다. 여권을 맡기고 철저한 신분 확인을 거쳐 정문을 지나자 ‘방문자 출입 제한’이라는 푯말이 나타난다. 보안 정도에 따라 A(중구금시설)∼D(개방형)급으로 분류되는 영국 내 137개 교도소 가운데 D급에 속하는 이곳의 재소자는 크게 두 부류다.5개월∼1년 정도의 형을 선고받은 경범죄자들과 살인·성폭행 등으로 12년∼종신형을 선고받고 10년 이상 복역한 장기수들이다. 특히 장기수들에게는 사회와 비슷한 환경에서 직업활동을 익히도록 해 복역을 마친 뒤 사회적응이 쉽도록 도와주고 재범을 줄인다는 것이 레이힐의 설립목적이다. ●재소자들 각방 자유롭게 드나들어 체육관과 의료센터를 지나 도서관 옆 건물 안에 들어서자 복도 양 옆으로 늘어선 방들에서 시끄러운 록음악이 새어 나온다. 마을 목공소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해 쉬고 있던 매튜(39·가명)가 선뜻 방을 보여주겠다며 열쇠를 꺼내 문을 연다. 이 곳은 대부분 1인용 방으로, 재소자들이 각자 방 열쇠를 가지고 자유롭게 드나든다. 침대와 책상,TV, 옷가지 등이 널려 있는 모습이 마치 학교 기숙사 같다. 음주운전으로 건물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5개월형을 선고받은 매튜는 첫 2주를 일반교도소에 있다가 4주 전 이곳으로 왔다. 그는 “전과자로 낙인찍혔다는 두려움이 이곳에 와서 사라졌다.”면서 “죗값은 치르지만 복역기간 중에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인터넷이나 우편으로 개방대학 다녀 중범죄자 수용동에 들어서자 바닥을 쓸고 있던 대런(60·가명)이 반갑게 말을 건넨다. 성폭행으로 15년형을 선고받고 12년을 복역하다 지난해 이곳에 온 그는 건물 청소를 하며 주당 15파운드(약 2만 7105원)를 번다. 나이가 많아 비교적 수월한 직업을 택했다면서 “벌써 2000파운드나 모았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탈옥할 수 있지만 남은 인생을 위해 하지 않는다.”면서 “내년 10월 출소하면 모아 둔 돈으로 새 삶을 시작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살인으로 11년을 복역하고 이곳에 온 로이(27·가명)는 대학 갈 꿈에 부풀어 있다. 어린 나이에 의도하지 않은 살인으로 오랫동안 사회에서 떨어져 있었지만, 대학에서 전기·배관 기술을 배워 출소할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그는 “이곳 생활은 거의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더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사회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아직 젊은 만큼 남은 2년간 많은 것을 배워 가치 있는 삶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소자들은 교도소 안팎에서 일을 하거나 교육을 받는다. 교도소 내 농장, 목공소, 인쇄소, 식당은 물론 인근 마을에서 트럭 운전, 기계공, 상점 직원 등으로 일하고 주당 10∼20파운드를 번다. 읽고 쓰기, 수학 등 기초교육에서 외국어, 컴퓨터, 경제학까지 교육프로그램도 다양하고, 인터넷이나 우편으로 개방대학에 다니기도 한다.512명의 재소자 가운데 100여명이 마을로 출퇴근하고 70명이 외부 교육을 받고 있다. 재소자들의 직업소개를 담당하는 토니 로바그로바(47)는 “어떤 일을 원하는지 상담한 뒤 고용주에게 데리고 가 왜 교도소에 왔고 왜 일하고 싶은지를 직접 설명하게 한다.”면서 “직업을 갖는 것은 책임감을 키워 주고 더이상 범죄가 필요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리처드 부티 레이힐교도소장은 “10년 넘게 교도소에서 살다가 나오면 적응하기 어려워 다시 범죄의 유혹을 받게 마련”이라면서 “이들을 그냥 사회로 내보내는 것은 매우 게으르고 무책임한 처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물론 허가없이 교도소를 나가 A∼C급 교도소로 돌려보내지는 경우도 한 달에 3∼4번꼴로 있다.”면서 “그러나 제한된 자유를 시험하는 장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소전 6개월간 일반주택서 생활 영국에는 개방형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교도소가 있다. 그렌든 교도소와 같은 의료집중교도소는 최신 의료시설과 심리 프로그램을 갖춰 정신질환자나 마약 중독자들이 수감된 기간을 치료기간으로 활용해 내보내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여성만 수용하는 브론즈필드 교도소 등은 임신한 재소자를 위한 의료서비스는 물론 영아와 산모가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해 모성을 보호한다.‘호스텔’이라 불리는 중간처우시설은 출소 직전 6개월간 10∼20명 단위의 그룹홈 형태로 일반 주택에서 생활하면서 ‘가족과 사회’를 만난다. utility@seoul.co.kr ■ ”인권감시 자원봉사모니터링 큰 효과” |런던 이효용특파원|“범죄자라 할지라도 수감된 기간에 존엄하게 처우하면 법을 존중하는 시민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습니다.” 런던킹스칼리지 국제교도소연구센터 소장 앤드루 코일 교수는 “교도소 내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재소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을 낳기 때문에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25년간 교정국에서 근무하며 교도소장을 역임하는 등 실무를 겸비한 교정학의 권위자다. 코일 교수는 이를 위해 독립적 기구와 감시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영국은 교도소에 대해 복수의 감시장치를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재소자들이 일상 속에서 가장 가깝게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이 137개 교도소마다 구성돼 있는 교도소모니터링위원회다.16∼18명의 지역사회 자원봉사자들이 언제든 자유롭게 재소자들을 만나 불만을 듣고, 잘못된 점의 시정을 요구하며, 진정이 필요할 때는 진정서 작성을 돕기도 한다. 교사, 법조인, 전직 경찰,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상담을 한다. 모니터링위원회가 지역 중심의 1차 감시기구라면 교도소사찰위원회는 전문적 사찰을 담당하는 중앙 기구다. 모든 감옥을 5년에 한 차례씩 불쑥 방문해 1주일간 300여개 기준으로 집중 사찰한다. 문제점에 대해 권고 조치를 내리며 수용률은 96%다. 행형옴부즈맨위원회는 특정 사안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다. 우선 자살을 포함한 모든 죽음에 대해 예상이 가능했는지, 의료 서비스를 받았는지, 교도관의 부당 행위는 없었는지를 조사한다. 또한 공식 진정을 접수해 조사하고 필요할 경우 권고 조치한다. 수용률은 98% 정도. 코일 교수는 “교도소 인권 감시는 꼭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며, 모니터링위원회와 같은 자원봉사 제도를 통해서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면서 “관리가 매우 비싼 교도소의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범을 줄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utility@seoul.co.kr ■ 기고 우리나라 수용자 1명이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면적은 법무시설준칙이 규정한 0.75평에도 채 미치지 못해 이른바 ‘칼잠’을 자야 하는 실정이다. 교도소 내 과밀수용 문제는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우리 행형법은 독거수용을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교정 현실에서 독거수용은 오히려 예외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구교도소의 경우 1실 평균 수용인원이 8.77명에 이른다. 법규와 현실이 일치될 때만 인권은 보호될 수 있다. 2001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족한 이래 지금까지 구금시설 내에서의 인권침해를 이유로 위원회에 접수된 진정사건은 총 5500여건으로 전체 인권침해 사건의 44.4%에 해당한다. 이러한 진정사건의 처리와 조사 등을 통해 구금시설 내 인권상황의 점진적 개선을 가져온 것은 위원회가 이룩한 가장 가시적인 성과 중의 하나다. 모든 국민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은 우리 헌법 최고의 원리다. 여기에 교도소 수용자도 포함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반사회이든 구금시설 내부이든 질서는 법에 의해 구축돼야 한다. 거리의 자유로운 시민이든 시설에 갇힌 수용자든 최대한의 인권보장은 민주국가가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다.“구금시설의 상황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말이 있다. 진정한 선진사회는 사회의 가려진 모든 구석에 대한 헤아림을 바탕으로 가능해진다. 갇혀진 자들 역시 이러한 포용의 대상에서 결코 예외일 수 없다. 김호준 인권위 상임위원
  • “중정에서 고문 받을때도 ‘인혁당’ 한마디도 안나와”

    “조사과정에서 ‘인혁당’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대표적인 반유신운동의 제물이자 광복 이후 최대 ‘사법살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던 인혁당 사건. 당시 대구·경북지역에서 민주수호국민협의회 소속으로 반독재 운동을 벌였던 강창덕(77·대구시 북구 동변동)씨는 2일 “인혁당 사건은 명백한 중앙정보부의 조작극”이라고 단언했다. 야당과 언론계(그는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출신이다)를 중심으로 유신반대 운동을 주도하던 강씨는 1974년 5월6일 체포된 뒤 다음날 서울 남산 중앙정보부로 압송됐다. 강씨는 “남대구경찰서로 끌려가 밤새도록 자행된 구타와 물고문을 이기지 못해 조서에 도장을 찍었다.”며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경찰·검찰 조사를 거치고 중정 지하 고문실에서 조사받을 때도 수사관 어느 누구로부터도 ‘인혁당’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고 강씨는 항변했다. 강씨는 “중정에서 조사받을 때 차출된 경찰관들이 원고를 갖고 들어와 그 내용대로 신문했다.”며 조작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강씨는 긴급조치 1호(유신헌법에 대한 부정적 논의금지)와 긴급조치 4호(민청학련 관련활동 금지) 위반, 국가보안법(반국가단체 조직)·반공법 위반, 내란예비음모 등의 중죄가 씌워져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서울 서대문구치소에서 “1차 인혁당 사건과 같은 목적의 반국가단체를 만들었다.”는 내용의 공소장을 보고 나서야 강씨는 어마어마한 사건에 연루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공소장도 2시간여 만에 뺏겼다고 한다. 당시 대구에서 학원강사로 일하며 반유신운동을 벌이다 15년형을 구형받았던 임구호(57·대구)씨는 “공소장에 ‘자생적 공산주의자’로 적혀 있었다.”며 인혁당 사건이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수사당국의 발표를 부인했다. 임씨는 “서대문구치소 부소장실에서 조사받을 때 검찰 수사관이 책상 밑의 종이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읽고 서기가 받아 썼다.”며 짜맞추기식 수사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수사 총책임자였던 이용택(74·해외희생동포추념사업회장) 당시 중정 6국장은 “수사당국이 고문에 의해 사건의 실체를 밝혀내려고 작정했다면 북한과의 관계를 왜 못 캐냈겠냐.”며 고문에 의한 조작이라는 피해자들의 증언을 반박했다. 그러나 이 전 국장은 대법원 선고 20여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사실에 대해 “1차 인혁당 사건 뒤 간첩 3명이 잡혔는데도 10년 후 다시 불법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이 인혁당 관련자들을 좋지 않게 봤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인혁당사건 판결문 30년만에 공개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대법원 판결문이 선고 30년 만에 공개됐다. 법원 도서관은 인혁당 사건을 포함해 1973∼82년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 88건을 대법원 홈페이지(www.scourt.go.kr) 종합법률정보에 올렸다고 18일 밝혔다. 누구나 판례검색을 통해 판결문을 읽을 수 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1974년 4월8일 박정희 정권에 맞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이자 군검찰이 주도한 ‘민청학련’ 뒤엔 북한 지령을 받은 인혁당이 있다고 발표, 관련자 23명을 구속기소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이듬해 4월 8일 관련자 8명에게 사형을,15명에게 무기∼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법률 전문지인 ‘법률신문’에 판결 전문이 나왔다는 이유로 ‘법원 판례공보’에 판결문을 넣지 않았다. 사형을 선고받은 8명은 대법원 확정판결 20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대법원은 당시 판결문에서 “공산정권을 수립하려는 목적이 없어도 정부를 뒤엎기 위해 특정 집단을 구성한 것만으로도 내란죄에 해당한다.”면서 “경험상 공산주의자들이 반국가단체를 만들면 북괴와 같은 정부를 수립할 것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재판이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고, 항소심 심리가 없었다는 피고인측 주장에 대해 “많은 피고인 탓에 방청석이 비좁아 가족 1명과 변호인만 참석하도록 조정한 것은 합당하다.”면서 “항소심에서 1심에서 다룬 사실관계를 또다시 진행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사형을 선고하는 등 형량이 지나치게 높다는 상고 이유에 대해서도 “군법회의법은 형사소송법과 달리 양형부당을 이유로 상고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일규 대법관은 “항소심에서 피고인 신문도 생략하고 선고한 것은 부당하다.”면서 “사건을 군사법원에 돌려보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내놓았다. 인혁당 사건 유족들은 2002년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국가정보원도 이 사건을 과거사 진상규명 대상에 포함, 재조사에 들어갔다. 법원 관계자는 “과거 판결문을 홈페이지에 한꺼번에 올린 것이지, 사법부의 공개반성 등과는 상관없다.”고 설명했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성기능 퇴화때까지 격리” 상습성폭행 15년형 선고

    법원이 여자어린이들을 성폭행해 교도소에서 7년 동안 복역했음에도 출소한 뒤 다시 10명을 성폭행한 인면수심의 30대를 성기능이 감소할 때까지 사회로부터 격리하라고 판결했다. 박모(37)씨는 성폭행죄로 복역한 지 4년도 지나지 않은 2002년 12월, 인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놀고 있던 H(당시 9세)양에게 다가갔다.H양이 낯선 사람을 경계하자 “스위치 끄는 것을 도와달라.”고 거짓말을 한 뒤 지하실로 데리고 가 성폭행했다. 박씨는 불안에 떠는 H양에게 “조용히 하지 않으면 찌르겠다.”며 흉기를 들이대기도 했다. 박씨의 파렴치한 범행은 지난해 5월까지 계속됐다. 박씨는 학원에 다녀오거나 등교하는 9∼12세 여자아이들에게 길 안내를 부탁하거나,“수도관이 터졌는데 도와달라.”는 등 순진한 마음을 악용해 성폭행했다. 박씨는 범행이 드러나자 중형을 피하기 위해 법정에서 정신병 환자 행세를 했으나 거짓임이 들통났고 1심 법원은 검찰 구형보다 5년 더 늘어난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부장 고영한)도 6일 항소심에서 박씨의 항소를 기각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같은 전과로 복역한 지 얼마 안 돼 살인에 못지 않는 인면수심의 범행을 또 저질렀다.”면서 “더 이상 무고한 피해를 막고 순진한 어린이들의 장래를 보호하기 위해 자연노화에 따라 피고인의 성범죄 충동과 능력이 감퇴되는 연령까지 사회로부터 격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美 성폭행신부 12~15년형

    성직자로서 어린 소년을 성폭행, 미국 사회와 가톨릭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폴 샌리(74) 전 신부가 15일(현지시간) 아동강간 혐의로 12∼1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보스턴 교외 케임브리지 법원의 스티븐 닐 판사는 이날 “믿음과 권리를 이보다 더 오용한 사례는 상상할 수 없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피해자와 다른 희생자 가족들은 수갑을 차고 법정을 빠져나가는 샌리의 등에다 욕설과 야유를 퍼부었다. 한때 불우한 어린이들과 동성애자들을 극진히 보살펴 ‘거리의 신부’로도 불렸던 샌리는 1983년 당시 6살이던 피해자를 사제관이나 고해성사실 등으로 불러 6년간이나 성폭행했다. 올해 27살인 피해자는 검사가 대신 읽은 성명에서 “나는 그가 감옥에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검사측은 종신형을 구형했으나 변호인측은 그의 나이 등을 감안하면 사형에 가까운 형량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보호관찰 10년도 포함시켜 가석방은 8년이 지난 뒤에나 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성폭행 성직자가 교도소에서 목졸려 죽은 것을 감안하면 샌리 역시 교도소에서 다른 죄수에 의해 살해될 가능성이 크다. 샌리는 2건의 아동강간 등으로 지난주 배심원들로부터 유죄 평결을 받았다. 그에게 성추행을 당한 아동은 20여명에 이른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시인 김남주

    문학이 머문 풍경-시인 김남주

    시인 김남주는 글로 ‘지금’을 말한다.‘당신은 묻습니다/언제부터 시를 쓰게 되었느냐고/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투쟁과 그날 그날이 내 시의 요람이라고’(‘시의 요람 시의 무덤’에서) ‘김남주 평전’을 쓴 대구가톨릭대 강대석(철학과) 교수는 “시인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혁명가로서 불꽃같이 살다 갔다.”고 평했다. 시인 스스로도 “나는 사랑하고 증오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시에서 적었다. 이처럼 사랑과 증오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지난 70∼80년대 독재정권에 맞서 저항한 민중시인 김남주. 1994년 2월,48세로 사망(췌장암)하기까지 길지 않은 고단한 삶 속에서 그는 470여편의 시를 남겼다. 감옥생활 9년3개월 동안 칫솔을 갈아 우유곽에 300여편의 시를 눌러냈다. 암울한 시절, 햇볕으로 나온 시들은 희망의 메시지로 퍼져나갔다. ●제도권이 싫다. ‘해남의 수재’이던 시인은 광주의 명문고교에 들어가지만 사회과학서적과 더 가까워졌다.1965년 2학년 때, 한·일회담 반대 데모가 한창이었다.“좋은 학교, 우수한 학생들이 교실에서 책상만 지켜야 되겠느냐.”며 시위 참가를 소리쳤지만 메아리로 끝났다. 번민하던 그는 이후 학교를 그만뒀다. 같은 고향이자 해남의 2대 수재였던 평생 친구 이강(58)씨는 “시인은 마음씨가 선(善) 그 자체였다. 오죽했으면 박석무(광주 5·18기념재단이사장) 선배가 남주한테 ‘물봉(호구)’이란 별명을 지어줬겠느냐.”고 웃었다.“하지만 결단을 내리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뜻을 꺾지 않던 사람”이라고 털어놨다. 시인의 삶은 저항과 투쟁의 연속이었다.1946년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3남3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머슴살이로 중농을 이룬 부친으로서는 남주가 그의 분신이자 희망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유달리 영어를 잘했던 그는 영국시인 바이런의 시를 암송하던 꿈 많은 문학소년이었다. 고교 때 광주 미문화원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원서를 훔쳐 읽었던 일화도 있다. 시인이 전남대 영문과를 택한 것도 외국의 진보적인 서적을 맘껏 읽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대학생활 내내 강의실에 나온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밖으로만 돌았다. 강대석 교수는 “시인은 끝까지 지식인과 혁명가의 순결을 지키며 살았다.”고 그의 평전에 기록했다. ●나는 꿈꾼다. 고등학교 때 늘상 자취방에서 함께 뒹굴었던 이강씨는 “당시 광주 계림동에 헌 책방이 즐비했는데 책을 유달리 좋아했던 남주는 시간만 나면 이곳에 들러 서적을 탐독했다.”고 말했다. 시인의 엄청난 독서량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사상적 토대로 자리매김된다. 이씨는 “당시 남주의 인식론은 아나키즘적 경향을 보였던 것 같다. 반미주의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국내 모순의 근원을 미국에 두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주변에서 그를 지켜본 지인들은 그를 완벽주의자로 봤다. 허점을 보이지 않고 피해를 안 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시인은 늘 “글쓰는 사람들이 재주는 있지만 동·서양 고전을 아우르는 철학사상이 빈곤한 게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고교시절 싹튼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은 대학 졸업반이던 73년 3선개헌 반대운동의 불쏘시개가 된 지하신문 ‘함성’으로 이어졌다. 반공법 위반으로 첫 구속되는 계기다.75년 인혁당 관련자들에 대한 사형집행은 김남주를 투사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의 데뷔작인 ‘진혼가(1974년)’에서 ‘공포(고문)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캐내는 데 가장 좋은 무기’라고 정의했다. 78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남민전)에 참여해 소식지인 ‘민중의 소리’를 제작해 돌렸다. 이듬해 체포돼 15년형을 선고받고 9년만인 88년 가석방된다. 이 해 연인이자 동지였던 박광숙(교사)씨와 가정(1남·현재 14살)을 꾸리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등으로 5년가량 모처럼 창작세계에 몰두하게 된다. 스스로 ‘시인’으로 불리기를 바라던 시인이 대학시절,“그래도 얘기가 통하는 친구”라고 말했다는 이경순(전남대 영문과) 교수의 회고다.“그는 글쓰기를 좋아했고 스스로 시인이라고 했어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늘 말했지요. 그의 빼어난 언어감각이나 해독 능력에 혀를 내둘렀어요.”지난 74년 이래 시인과 두터운 교분을 유지했던 염무웅(영남대·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 교수는 “그가 살았던 때는 ‘꽃 속에 피가 흐른다’고 읊어야 할 만큼 가혹했다. 자신이 몸으로 겪은 그 시대를 꾸미지 않은 목소리로 외친 김남주의 삶이 곧 시였고 투쟁”이라고 말했다. ●김남주를 알자. 시인의 생가에는 현재 동생인 덕종씨가 살고 있다. 전국에서 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지난 2월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김남주의 실천적 삶과 정신을 기리는 추모 문화제를 열었고 출판계에서는 그의 평전과 시선집을 잇따라 펴냈다. 염 교수는 ‘꽃 속에 피가 흐른다’라는 시선집을 출간했다. 혁명가로서 뼈대를 갖추기 전에 써낸 소박한 시에서부터 옥중시, 현실의 고뇌를 담은 시 등 120편을 골라냈다. ‘민중시인 김남주 해남기념사업회’의 김경윤(해남공고 교사) 회장과 지역회원 80여명이 김남주 문학관 건립에 힘쓰고 있다.2000년 5월에는 광주시립 민속박물관 앞쪽에 시인의 시비도 세워졌다. 해남군도 내년부터 2년으로 잡고 11억원을 들여 생가 터에 전시관과 창작실, 소공원 등을 만든다. ■시인의 주요시집 ▲ 진혼가·잿더미(74년) ▲ 나의 칼 나의 피(87년) ▲ 조국은 하나다(88년) ▲ 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89년·옥중서한집) ▲ 사랑의 무기·솔직히 말하자(89년) ▲ 학살(90년) ▲ 사상의 거처(91년)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91년) ▲ 이 좋은 세상에·저 창살에 햇살이(92년)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별세 구상시인 詩세계·일생

    “(…)이렇듯 나의 오늘은 영원 속에 이어져/바로 시방 나는 그 영원을 살고 있다.//그래서 나는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오늘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하고/영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마음이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시 ‘오늘’ 중) 11일 작고한 구상 시인의 삶은 ‘구도자적 자세’와 ‘영원한 현역 시인’으로 압축할 수 있다.산소호흡기를 쓰고 투병하던 지난해 격월간 문예지 ‘한국문인’ 10,11월호에 유언과 함께 남긴 위의 유언시는 이런 고인의 삶을 잘 보여준다. 구상 시인을 아는 사람들은 그를 두고 ‘마치 흐르는 물같은 삶을 산 사람’이라고 한다.그렇듯 그의 삶은 문학과 신앙이라는 두 축으로 지탱되는 구도(求道)의 그것이었다. 노년 들어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짤막한 턱수염,얼마간 창백해 보이는 길다란 얼굴에 그럴 듯하게 구레나룻까지 이루며 자란 이 수염은 항상 그의 무명 한복과 어울려 이 땅의 수많은 독자와 문인들에게 ‘따뜻하고 순결한 시인’이라는 지워지지 않는 표상으로 각인돼 있다.문인이기 전에 그는 암울한 식민지의 신문기자였다. 스물 네살 나던 1943년에 함흥에 있는 ‘북선매일신문’ 기자로 세상과 맞닥뜨렸던 젊은 구상은 이후 두 차례의 필화사건과 6·25,감옥생활과 질병 등 온갖 신산을 겪으며 오로지 문학에의 열정과 종교(가톨릭·세례명 요한)적 신념으로 시대를 앞서 이끌었다. 그가 겪은 첫번째 필화사건은 1946년에 일어났다.원산문학가동맹의 주축멤버였던 그는 해방 1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동인시집 ‘응향(凝香)’에 발표한 ‘여명도’‘길’‘밤’등의 시가 퇴폐적이고 악마적이라며 반동으로 몰리자 이듬해 2월 서울로 월남해 이산의 삶을 시작했다.이때 남한에서는 남로당 기관지였던 ‘문학’이 이 시집을 대대적으로 소개했고,민족진영에서는 김동리씨 등이 나서 이에 반박하는 등 한차례 격랑이 일기도 했으며,이 와중에 그는 별도의 입상이나 추천 절차없이 문단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본격적인 민권운동에 나선 그의 길은 평탄치 않았다.전쟁 후 영남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있던 그는 칼럼 ‘고현잡화(考現雜話)’와 시사평론집 ‘민주고발’ 등으로 사사건건 당시 자유당 정권과 부딪쳐 이적죄로 15년형을 선고받는 두번째 필화를 겪었다.그런가 하면 그는 평생 갖가지 병력(病歷)을 체험하며 형극의 길을 걸어온 시인이기도 했다.폐결핵으로 두번이나 수술을 했는가 하면 두번의 큰 교통사고와 당뇨병,만성 천식과 전립선 비대증,망막염과 백내장 등 수많은 병마와 싸워야 했다. 이런 역경 속에서도 고인의 지사적 풍모는 돋보였다.4·19 이전에 대표적 민권운동가였던 엄상섭,전진한씨 등과 함께 시국강연회를 갖는 등 치열하게 민권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그의 고고함은 5·16쿠데타 직후 박정희 장군의 상임고문역 추대를 거절한 것이나,전두환 정권의 부당한 학·예술원법 개정에 맞서 홀로 입법기구 회원직을 사퇴한 사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권력에 초연함을 유지했던 고인의 인품은 현세의 이해관계에 초월해 예술세계를 지키며 외롭게 살다간 예술가들에 대한 애정으로 나타나 소장품을 내놓고 모금운동을 벌여 서울신문이 주관하는 ‘공초(空超) 오상순 문학상’의 토대를 세우기도 했다. 시인 구상은 그의 삶이 험난할수록 더욱 강고하게 종교에 집착하는 면도 보여 주었다.이런 영향으로 그의 시에는 대부분 동양적 관조와 기독교적 영원성이 깊게 배어 있다.연작시 ‘그리스도 폴의 강’은 이런 그의 정서를 대변하는 작품이다. 한편 서울 강남 성모병원 빈소에는 김수환 추기경,서영훈 전 적십자사 총재,박삼중 스님,이한택 주교를 비롯해 문덕수,박연희,김남조,김광림,구중서,성찬경,김종길,김종해,신세훈,신달자,김이연,류자효씨 등 많은 종교인과 문인들이 찾았다.노무현 대통령은 조화를 보내 조의를 표했다. 김 추기경은 “고인은 좁은 의미의 가톨릭이 아니라 종파를 넘어서 온세계를 아우르는 의미로서의 가톨릭 시인이었다.모든 것을 향해 열려 있었고,항상 마음을 비우는 진실의 사람이었다.”고 추모했다. 구중서씨는 “고인은 전쟁 중에는 인민군의 묘지를 만들어 준 뒤 ‘적군 묘지 앞에서’라는 시를 썼고,베트남 전쟁 때 미군이 승승장구할 때는 ‘인류가 아직 깜깜하다.’며 인간의 도덕적 양심을 묻는 시 ‘베트남 기행’을 썼다.”면서 “이데올로기나 정파,권력에 가담하지 않고 인간 본성과 양심을 쉬우면서도 뜻이 깊은 시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초토(焦土)의 시(詩)’ 8 - 적군 묘지 앞에서 오호,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스러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땅은 30리면 가로막히고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람 속에 깃들어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 구상시인 연보 ▲1919년 서울 이화동 출생.본명 구상준(具常浚) ▲1941년 일본대학 전문부 종교과 졸업 ▲1946년 원산에서 시 ‘여명도’등으로 필화,월남 ▲1948∼1950 연합신문 근무 ▲1952∼1956 효성여대 교수 ▲1961∼1965 경향신문 논설위원겸 동경지국장 ▲1976∼1999 중앙대 대우교수 ▲주요 저서 시집 :‘구상(具常)’,‘초토(焦土)의 시’,‘까마귀’,‘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개똥밭’,‘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다면’,‘오늘속의 영원,영원속의 오늘’,‘인류의 맹점에서’,‘홀로와 더불어’ 등. 수상집 :‘침언부어(沈言浮語)’‘영원속의 오늘’‘실존적 확신을 위하여’‘시와 삶의 노트’ 사회평론집 :‘민주고발(民主告發)’,수필집 ‘우주인과 하모니카’ ‘현대 시창작입문’ 등. ˝
  • 송두율교수 석방대책위에 편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서 15년형을 구형받은 송두율 교수가 최근 송 교수 석방대책위 앞으로 보낸 두 통의 편지에서 “구치소는 한국사회의 표본실이며,한국 사회는 갈등이 증폭되는 과도기에 놓여 있다.”고 적었다. 대책위는 11일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송 교수 무죄석방 촉구 사회원로 기자회견’을 열고 편지 내용을 공개했다. 송 교수는 “구치소를 조그마한 한국처럼 느끼고,지난 37년간 경험치 못한 한국사회를 압축적으로 그리고 속성(速成)으로 배우고 있다.”면서 “현재 많은 정치인들,재벌기업 회장과 사형수까지 함께 생활하니 구치소야말로 한국사회의 표본실과 같다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사회가 직면한 문제점의 핵심을 잘 볼 수도 있다.”면서 “한국사회는 안팎으로 엄청난 갈등이 증폭되는 과도기에 놓여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득권 세력은 갑자기 잃어버린 고지의 탈환에 혈안이 돼 자꾸 무리수를 두고 (개혁세력은) 정권을 잡았으나 이를 견고하게 다지고 개혁을 추동시킬 힘이 없다 보니 갈팡질팡하는,한마디로 주인없는 사회처럼 돼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난입춘 추위는 정말 매서웠지만 오는 봄을 결코 막을 수 없다.”면서 “‘매화는 한 번 추위를 겪지만 그의 향기를 팔지 않습니다.(梅一生寒不賣香)’”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송 교수는 사회 원로들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재판부의 선고를 기다리는 심정은 담담하다.”고 말하면서도 “‘국가보안법’은 한마디로 말해 ‘네모난 원형’을 그리려는 애초부터 무모한 법 적용이었다.”고 꼬집었다. 김세균 교수,홍근수 목사 등 사회원로 30여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송 교수가 북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점을 입증할 증거가 제시되지 못했고 송 교수의 학문활동은 법률적 판단대상이 아니다.”면서 “송 교수는 남북 학술 교류에서 성실한 중재자 역할을 했을 뿐인 만큼 무죄 석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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