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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어린이 노래경연 봇츠로 투표 조작, 결국 우승자 교체

    러시아 어린이 노래경연 봇츠로 투표 조작, 결국 우승자 교체

    갑러시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어린이 노래 경연 프로그램 ‘보이스 키즈’(The Voice Kids)가 투표 조작 의혹이 잠정 확인돼 우승자가 바뀌었다. 러시아판 보이스 키즈 판권을 가진 국영 방송 ‘1채널’은 16일(이하 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전문기관의 잠정조사 결과를 토대로 보이스 키즈 시즌6의 결승 결과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방송사는 지난 13일 시청자 SMS 투표에서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며 사이버 범죄 조사업체인 ‘그룹-IB’에 의뢰해 조사해왔다. 지난달 26일 치러진 시즌6의 결승에서는 미모의 유명 여가수 ‘알수’(Alsou)의 열 살 딸 미켈라 아브라모바가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시청자 SMS 투표 결과 아브라모바가 56.5%를 차지한 데 비해 다른 결승 진출자는 27.9%와 15.6%를 얻는 데 그쳤다. 하지만 전문가들과 현지 언론은 아브라모바의 무대가 다른 출연자들에 비해 뒤졌는데도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조사를 맡은 그룹-IB는 아브라모바의 참가 번호인 7번으로 조작된 SMS가 대규모로 전송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300여개 전화번호에서 조작된 8000여개 문자가 전송됐다는 것이다. 한 가지 명령을 수천번 반복하는 이른바 ‘봇츠’(bots) 프로그램이 쓰인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고 영국 BBC는 전했다. 이런 잠정 조사 결과가 나오자 1 채널은 준우승자를 우승자로 격상시켰다. 새로운 우승자 역시 백만장자의 딸이다. 알수는 2000년 유럽 최대의 노래 경연 대회인 유로비전 콘테스트에 러시아 대표로 참가해 2위를 차지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그는 상원의원을 지낸 갑부 기업인의 딸로 역시 부유한 사업가 얀 아브라모프를 남편으로 두고 있다. 세계적 인기를 끈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스’(The Voice)의 어린이판인 보이스 키즈는 네덜란드에서 처음 만들어져 여러 나라로 수출됐다. 러시아에선 1채널이 판권을 확보해 7~14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지난 2014년부터 경연을 진행해 오고 있다. 1채널과 그룹-1B는 아직 누가 이런 조작을 저질렀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1채널은 성명을 통해 “어린이들이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 우리는 시즌6 준결승, 결승 진출자를 모두 모아 오는 24일 특별 쇼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달 말까지 조사를 마무리짓고 결과를 발표할 것이며 새 시즌 시작하기 전에 새로운 투표 방식을 채택하겠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좁은 협곡, 숨겨진 바위 도시… 붉은 사막, 그 너머 쪽빛 홍해

    좁은 협곡, 숨겨진 바위 도시… 붉은 사막, 그 너머 쪽빛 홍해

    좁은 협곡 사이를 빠져나오자 불현듯 거대한 신전이 나타났다. 실제로 보고 있지만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바위를 깎아 건설한 신비로운 고대도시 페트라. 그 속에 서면 인간의 능력이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다. 요르단은 우리에겐 다소 낯선 나라다. 지중해 동남쪽 아라비아반도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동쪽으로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서쪽으로는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와 접하고 있다.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 전형적인 이슬람 국가지만, 불행하게도 석유는 단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그런 만큼 교육열은 높다. 중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사와 정보기술(IT) 전문가는 대부분 요르단 출신이다.●영화 인디애나 존스·트랜스포머 촬영지로 유명 요르단을 대표하는 여행지는 페트라다. 수도 암만에서 150㎞가량 떨어져 있다. 차로 3시간여를 가야 한다. 페트라는 특유의 신비로운 존재감으로 인해 영화에 많이 등장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영화가 ‘트랜스포머’다. 외계 로봇 종족의 운명을 가를 열쇠가 신전 암벽 뒤에 감춰져 있는데 이 신전이 바로 페트라를 대표하는 건축물 ‘알 카즈네’다. 알 카즈네는 영화 ‘인디애나 존스-최후의 성전’에도 등장했다. 고고학자 인디애나 존스(해리슨 포드)가 예수의 성배를 찾아다니는 과정에 나온다. 인디애나 존스가 말을 타고 협곡 사이를 달리다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면서 만나는 장밋빛 신전이 바로 알 카즈네다. 붉은 사암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그 건축물을, 그곳이 페트라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정교한 세트 정도로 여겼다. 페트라 앞에 서자 왜 스필버그가 이곳을 성배를 숨겨놓은 장소로 설정했는지, 외계인이 그들의 운명을 건 열쇠를 이곳에 숨겨 놓을 수밖에 없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 세상에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많고 직접 눈으로 봐도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일들투성이다. 페트라를 세운 주인공은 기원전 6세기경 아라비아반도에 정착한 유목민족인 나바테아인이다.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해발 950m의 바위투성이 고지대에 이 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도시는 번성했다. 황량한 사막과 협곡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가진 곳은 아니었지만 예멘, 메카, 팔레스타인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의 요충지 역할을 하며 발전했다. 지리적으로 이집트와 아라비아반도, 페니키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실크로드를 따라 무역을 하던 대상들의 왕래가 잦았기 때문이다. 나바테아인은 ‘왕의 대로’를 장악하면서 아라비아의 거상으로 부상했고 페트라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교역의 중심지가 됐다. 왕의 대로는 요르단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고대의 길. 해발 1200m에 위치한 이 길은 지금도 자동차가 툴툴거리며 달린다. 도시가 발전하자 로마제국이 페트라를 넘보기 시작했고 결국 106년 로마군에 점령당하고 만다. 이후 세월이 흘러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된 후 페트라는 동로마가 통치하게 되는데 이때 동로마가 페트라보다 수도에 더 가까운 시리아의 팔미라로 무역의 중심지를 옮기면서 자연스레 대상들의 활동 무대도 시리아로 옮겨지게 되고 페트라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쇠락해 가던 페트라에 결정타를 날린 건 지진이었다. 6~7세기 발생한 대지진은 삽시간에 도시를 집어삼켰고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페트라는 역사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1000년이 지났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전설 속 도시는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되면서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당시 요한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카이로로 가는 도중 요르단 남서부 지방을 지나던 중이었다. 황무지와 가파른 협곡이 어우러진 도시 와디무사에 도달한 그는 사막의 유목민 베두인족에게서 와디무사 인근에 보물이 감춰진 고대 도시의 폐허가 있다는 전설을 듣게 된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페트라였다. 페트라에 정착해 살고 있던 베두인족은 자신의 생활 터전을 침범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요한은 베두인족 가이드를 앞세워 협곡 틈새로 숨어들었고, 마침내 폐허 속에 잔존해 있던 나바테아인의 도시를 발견했다. ●‘파라오 보물 창고’ 알 카즈네… 신전·수도원 유적도 페트라 입구에 위치한 마을은 와디무사. ‘모세의 건천’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14세기, 60만 명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는 ‘왕의 대로’를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이동하던 중 페트라를 통과한다. 모세는 이곳에서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화를 내며 지팡이를 바위로 두 번 치자 물이 솟아났다고 한다.페트라 입구에 자리한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알 카즈네까지는 ‘시크’라고 불리는 협곡을 따라 약 3㎞를 가야 한다. 여행자들은 100m가 넘는 높이의 바위들이 2~3m의 좁은 폭으로 형성돼 있는 시크를 걸으며 저마다 웅장한 페트라의 모습을 상상한다. 시크를 따라가다보면 절벽에 물결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침식작용과 대홍수로 생겨난 지형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샌드위치를 자른 듯 층층이 겹친 지층은 지질학 교과서이기도 하다. 벽에는 굵은 홈이 길게 이어져 있다. 나바테아인들이 사막 위에 거대한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의 샘’에서 물을 공급받았기 때문. 바위를 깎아 만든 이 홈이 다름 아닌 수로다. 그렇게 좁고 긴 시크를 통과하다 보면 협곡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조금씩 많아진다. 그리고 붉은색 암벽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 드러난다. 바로 알 카즈네다. 기원전 100년경 건축된 알 카즈네는 6개의 원형 기둥이 받치고 있는 2층 형태의 신전 건물로 너비는 30m, 높이는 43m에 달한다. 1, 2층 정면에는 제우스신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기마상과 풍요의 여신인 알우자 등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알 카즈네는 이집트 파라오의 보물이 감춰져 있다는 전설 탓에 ‘보물창고’라고 불린다. 하지만 내부에 들어가 보면 텅 비어 있는 작은 사각형의 방만이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어두운 방 한쪽에서는 실망한 여행자들의 작은 탄성이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알 카즈네는 페트라의 대부분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왕가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아레타스 3세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페트라에 암벽 조각 건축이 발달한 이유는 페트라를 둘러싼 협곡의 암석들이 조각하거나 파내기가 쉬운 사암이기 때문. 그리스어로 페트라는 ‘바위’를 뜻하는데 실제 페트라의 대부분 건축물들은 쌓아 올리면서 만든 건축물이 아닌 암벽을 깎아 내려가면서 조각해 만든 건축물이다. 알 카즈네를 지나 협곡을 따라 가면 바위산을 깎아 만든 도시가 나타난다. 절벽을 파내서 만든 33층의 계단 형태의 원형극장은 무려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당시 종교 의식과 다양한 회의 장소로 사용됐다고 한다. 원형극장을 지나 절벽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내부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어 수도원으로 추측되는 건물이 나온다. 데이르 수도원인데 입구의 높이만 8m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외에도 신전, 수도원, 목욕탕 등이 남아 있는데 모두 탄성을 자아낼 만큼 뛰어난 유적들이다.●해발 1000m 광활한 사막… 수백 m씩 솟은 바위산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1888~1935). 영국 군인이었던 그는 연고도 없는 아랍 지역의 독립을 위해 1917년 와디럼 사막을 가로질렀다. 아랍의 적인 터키군의 요새가 있는 홍해 연안의 항구도시 아카바를 함락하기 위해서였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그의 영웅담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낙타를 타고 붉은 와이럼을 달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 와디럼은 암만에서 남쪽으로 320㎞ 떨어져 있다. 면적이 720㎢에 달하는 광활한 사막이다. 언뜻 평지처럼 보이지만 가장 낮은 곳도 해발 1000m인 고지대다. 달리다 보면 수백m씩 솟은 바위산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와디럼에는 아직도 낙타를 몰고 살아가는 베두인들이 있다. 그리고 여행자들도 찾아든다. 지프를 개조한 트럭을 타고 사막을 여행한다. 열기구와 경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이들도 있다. 사막에는 여행자를 위한 베두인족 텐트도 마련돼 있다. 사막 한가운데 마련된 터라 전기도 없고 2인용 텐트에는 잠금쇠도 없다. 와디럼에서 딱히 하는 일은 없다. 그냥 달릴 뿐이다. 울퉁불퉁한 사막을 시속 80㎞로 달린다. 얼굴에는 모래가 날아와 박힌다. 바위산을 만나면 바위산을 감상하며 잠시 쉰다. 때로는 바위산에 오르기도 한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다. 해질 무렵이면 사막은 황금빛, 아니 붉은색으로 물들고 베두인들은 메카를 향해 절을 하고 기도를 올린다. 모래사막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는 마침내 지평선에 닿고 어느 순간 사라질 때쯤이면 텐트로 돌아간다.밤의 사막. 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다. 쌀알을 뿌려 놓은 것 같다. 별빛 아래에서 베두인족이 만들어 주는 ‘아라빅 커피’를 마시며 화덕에 양고기를 구워 먹는다. 그러고는 밤새 노래를 부르다가 돌아간다. 그렇게 하룻밤 있어 보았다. 해가 뜨는 아침 무렵, 사막이 점점 장밋빛으로 변해 갈 때, 로런스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로런스는 와디럼이 “신의 모습과도 같다”고 했다. 그가 와디럼을 가로질렀던 까닭은 아랍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사막에서 신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휴양 도시 아카바… 140여종 산호림·형형색색 물고기 와디럼을 나와 아카바로 향했다. 자동차로 1시간 안팎의 거리. 홍해에 면한 휴양도시다. 해변에는 고급 리조트들이 늘어서 있고 수영장마다, 백사장마다 비키니 차림의 여성이 가득했다. 아카바만에는 140여종의 산호림이 울창해 1년 내내 다이버들로 붐빈다. 유리로 된 바닥을 통해 해저를 관람하는 요트도 있다. 배를 타고 홍해로 나가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은 후 한적한 근해에 정박해 스노클링을 즐겼다. 투명한 물 아래로 새하얀 산호초가 너울댔고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코앞까지 다가와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생각지 못한 요르단에서의 사치스런 휴식. 방콕과 홍콩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내일 따위는 잊고 선탠 베드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해변은 고뇌하는 인간을 싫어하지. 홍해의 눈부신 햇살이 찬란했다. 글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 여행수첩 한국~요르단은 직항 항공편이 없다. 요르단항공, 에티하드항공, 대한항공 등으로 방콕, 두바이 등을 경유해야 한다. 1요르단 디나르(JOD)=약 1670원이다. 페트라는 암만에서 약 3시간 거리. 페트라~와디럼~아카바 코스가 요르단을 여행하는 가장 일반적인 루트다.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인 사해는 요르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보통 바다 염도의 약 5~6배인 사해는 피부병이나 류머티즘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해에서 동쪽으로 4㎞ 지점에 위치한 마인 온천은 ‘폭포 온천’이다. 낮은 산에서 55℃의 폭포가 떨어지면서 알맞게 식어, 폭포 아래에 고인 물로 천연 스파를 즐길 수 있다. 2000년 전 헤롯왕이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제라쉬는 요르단 북부에 자리한 도시다. 암만에서 약 50㎞ 떨어져 있다. 요르단에서 가장 큰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기독교인들과 이슬람인들이 이 도시를 두고 뺏고 뺏기는 역사를 되풀이했다. 700년경에 있었던 지진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흙더미 아래 묻혔는데, 일부를 발굴해 놓았다. 제우스 신전을 비롯해 광장, 극장, 문 등 고대 로마의 유적을 만날 수 있다.
  • [동영상] 맥주를 사랑했던 밥 호크 전 호주 총리 영면, 러셀 크로도 추모

    [동영상] 맥주를 사랑했던 밥 호크 전 호주 총리 영면, 러셀 크로도 추모

    맥주를 유난히 즐겨 마셨던 밥 호크 전 호주 총리가 89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1983년부터 1991년까지 호주 총리를 지냈으며 호주 노동당 지도자였던 호크가 시드니 “자택에서 편안히 영면했다”고 부인 블랑시 달퓌제가 16일 밝혔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이었던 고인은 호주 경제를 현대화시킨 주역이었다. 노동당 출신으로 최장수 총리를 역임했으며 네 차례나 노동당을 총선 승리로 이끌었다. 역대 어느 총리보다 지지율이 높았다. 18세이던 1947년 노동당에 입당해 저유명한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옥스퍼드 대학에 1953년 입학했다. 그 뒤 노동조합 운동에 투신해 1969년까지 호주 노동조합 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첫 연방 의원에 당선된 것은 1980년이었으며 3년 뒤 당수가 돼 곧바로 이어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스타일의 지도자였으며 술을 즐겨 마시고 농담도 잘해 이른바 ‘래리킨(larrikin·호주 도시의 빈민가 왈패들)’의 리더로 기억될 것이다. 골치 아픈 정치 일을 즐거운 일로 바꾸는 데도 탁월한 재간이 있었다. 젊었을 때부터 술 실력이 대단했다. 옥스퍼드 2학년이던 1954년 1.4리터의 맥주를 11초 만에 들이켜 기네스 월드 레코드에 등재됐으며 80대 후반 들어서도 크리켓 경주를 마친 뒤 맥주를 원샷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곤 했다. 공개 석상에서도 곧잘 울음을 터뜨렸다. 가장 유명했던 것이 1989년 중국 톈안먼 사태 때 의회 의사당에서 거행된 추모 행사 도중 울음을 터뜨린 일이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면모 뒤에 아주 날카롭고 예리한 정치적 마인드를 감추고 있었다. 재임 8년 동안 연금과 복지 개혁을 성공했고 해외 교역 망을 넓혔다. 호주의 보편적인 건강 돌봄 시스템 ‘메디케어’를 만든 것도 그가 ‘이류 계급 없는 호주’를 슬로건으로 내걸어 이룬 것이었다. 유족들은 성명을 통해 “고인의 자랑스러운 업적 가운데 고교 교육까지 마치는 아이들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난 것,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 격리 정책)를 끝내는 데 기여한 것, 남극권의 무분별한 자원 개발을 막는 국제 캠페인을 성공시킨 것, 인종주의를 혐오하고 아시아의 세기가 시작된 것을 내다본 것” 등을 꼽았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창립에도 그의 공헌이 있었다. 같은 당 출신으로 역시 총리를 지낸 케빈 러드는 트위터에 고인을 “호주 정치의 거인”이었다고 적었다. 한때 라이벌로 고인을 축출하는 데 앞장섰으며 중에 노동당 당수를 승계하고 총리까지 지낸 폴 키팅은 고인과 “위대한 파트너십”을 나눴다고 돌아보고 “그 파트너십이 남겼고 앞으로 남길 것들이 현대 호주의 기념비적인 토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호주 출신의 배우 러셀 크로도 트위터에 장문의 추모 글을 올려 눈길을 끈다. 그 역시 맥주를 사랑했던 총리의 면모를 각별하게 언급했다. 한편 달퓌제 여사는 고인의 14세 연하로 1995년 전처 헤이즐 여사와 2녀1남을 키우고 헤어진 호크와 전기 대필 작가로 인연을 맺은 지 10년 만에 재혼해 외아들을 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성폭행 싫어하는지 몰랐으니 무죄” 법원 ‘솜방망이 처벌’에 日사회 ‘분노’

    “성폭행 싫어하는지 몰랐으니 무죄” 법원 ‘솜방망이 처벌’에 日사회 ‘분노’

    주말인 지난 11일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등 일본의 3개 대도시에서는 ‘플라워 데모’(꽃 시위)라는 이름의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손에 꽃을 들고 있었다. 이들은 성폭행 가해자에 대한 법원의 잇딴 무죄 판결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성폭력 피해자와 인권단체 회원들이었다. 최근 일본에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한 무죄 선고가 잇따르면서 피해자 및 관련단체 등의 집회, 법률 개정 요청 등 단체행동이 이어지고 있다. 상식적으로 유죄가 확실시되는데도 무죄가 선고되고 있는 것은 일본 형법이 ‘저항할 수 있느냐 없느냐’ 여부를 성폭행 처벌의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성폭행 무죄 선고 4건이 줄줄이 이어진 게 기폭제가 됐다. 3월 12일 후쿠오카지법이 술에 취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 대해 “여성이 성관계를 싫어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한 것을 비롯해 시즈오카지법, 나고야지법 등에서 연달아 피고인들이 무죄로 풀려났다. 특히 26일 나고야지법에서 친딸(19)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면서 사람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재판부는 딸이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과 14세 때부터 성적 학대를 받아 ‘저항하기 어려운 심리상태’였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항거불능 상태는 아니었다”고 무죄의 이유를 댔다.성폭력 피해자들로 구성된 단체 ‘스프링’은 지난 13일 ‘동의없는 성관계’의 경우 ‘저항 불능’ 여부 등과 상관 없이 무조건 처벌이 가능토록 하는 조항을 형법에 신설해 달라는 내용의 요청서를 법무성(한국의 법무부)과 최고재판소(대법원) 양쪽에 제출했다. 최고재판소에 대해서는 성폭력 피해의 실태 및 이해를 바탕으로 모든 재판관에 대해 연수를 실시할 것도 함께 요구했다. 13세부터 20세까지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피해자인 야마모토 준(45)스프링 대표는 나고야지법 판결에 대해 “나 자신도 아버지에게 저항하기는 어려웠다”면서 “동의없는 성행위가 죄로 인정되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바꿔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 및 인권단체들은 지난달 26일부터 인터넷에서 형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일본을 제외한 많은 나라에서 동의없는 성관계는 이유를 불문하고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등 피해자의 관점에 성범죄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형법을 개정해 ‘동의가 있었는지 여부’만 형사처벌의 잣대로 삼거나 ‘친족이나 교사, 회사 상사 등 지위나 관계를 이용한 성관계’를 포괄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기준을 새로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명 참여자는 현재 3만명을 넘어섰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유정훈의 간 맞추기] 어머니의 이름으로

    [유정훈의 간 맞추기] 어머니의 이름으로

    지난 3월 미국 워싱턴DC로 출장을 갔을 때, 일정 중간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스미스소니언 아프리칸ㆍ아메리칸 역사문화 박물관을 방문했다. 개관한 지 3년이 돼 가는데 아직도 입장권을 구하기 쉽지 않을 정도로 인기 있는 박물관이다. 지하 3개 층에 걸쳐 미국의 흑인 역사를 집대성한 전시관이 여기의 핵심이다. 아프리카에 살던 흑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강제이주로부터 시작해서 노예제도의 확립과 심화, 남북전쟁과 노예 해방, 계속되는 인종분리정책, 이에 저항한 민권운동을 거쳐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 한나절이 부족할 만큼 꽉 찬 내용이다. 그중에서도 ‘에밋 틸 기념관’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1955년 8월, 시카고에 살던 소년 에밋 틸은 미시시피에 친척을 만나러 갔다가 식료품 가게에서 백인 여성을 유혹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게 된다. 백인 여성의 남편과 친척이 틸을 납치해 고문하고 살해한 다음 시신을 강에 버렸다. 그의 나이 14세 때의 일이다. 며칠이 지나 그의 시신이 강에서 떠올랐다. 시카고에서 장례를 치를 때 그의 모친 메이미 틸은 충격적 결정을 한다. 백인의 끔찍한 증오범죄를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아들의 시신을 담은 관을 열어 참혹한 모습을 공개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에밋 틸과 메이미 틸은 시대를 바꾼 인물이 됐다. 아들의 장례를 치른 메이미는 얘기했다.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자기에게는 집도, 직장도, 아들도 있었고 남부에서 흑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자기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고. 도시지역 중산층이던 메이미는 아들의 살해 사건을 계기로 남부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혹독한 인종차별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민권운동에 헌신하게 된다. 바로 그 에밋 틸의 관이 이 박물관에서 유일하게 사진 촬영이 금지된 전시실에 놓여 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음에도, 에밋 틸의 관을 보는 순간 경외감에 압도돼 한참 넋을 잃고 그 앞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출장 일정을 마치고도 그 잔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생각했다. 남의 나라 일이 아니구나.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같은 분들이 계셨다. 5년 전 세월호 사건은 수많은 ‘누구의 어머니’를 만들어 냈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겪은 분들이 자기 자식을 죽음으로 내몬 세상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그걸 바꾸어 보겠다고 나섰다. 본인들이 누구보다 상처받은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아픔을 겪은 다른 사람을 품었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그분들의 희생을 대가로 만들어진 더 나은 세상을 누리며 살아간다. 아주 가끔씩 누구누구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될지 몰라도, 그 빚을 갚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버이날도 챙겨야 하고 가정의 달도 좋지만, ‘어머니의 이름으로’ 세상을 고치는 일에 던져지는 분이, ‘누구의 어머니’로만 기억되는 사람이 더이상 나올 이유가 없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우리 이제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야 하지 않을까.
  • 마구잡이 학원보다 우리 아이 ‘미래 목돈’ 준비해 볼까

    마구잡이 학원보다 우리 아이 ‘미래 목돈’ 준비해 볼까

    올해 자녀가 중학교에 입학한 직장인 A씨는 자녀 교육뿐만 아니라 대학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해둘지 고민이다. A씨는 “주변에서는 예전과 달리 아이가 학원을 많이 다니도록 하는 것보다 창업 등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미래를 대비할 수 있도록 목돈을 마련해두는 게 좋다고도 한다”면서 “공감하지만 아이를 위한 재테크 방법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요즘 A씨처럼 자녀의 금융 미래를 설계해주려는 부모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위한 목돈 만들기’도 다른 재테크와 마찬가지로 목표 금액부터 설계할 것을 권한다. 금융사가 아동이나 청소년에게 주는 혜택을 살뜰이 챙기면서 일반 금융상품과 득실을 꼼꼼히 따지는 것도 필요하다. 가입하려는 금융상품을 정했다면 가정의 달인 5월에 쏟아지는 맞춤형 이벤트에 주목해보자.김현섭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도곡스타PB센터 팀장은 8일 “다달이 나가는 교육비를 줄이는 대신 재테크를 하려 한다면 리스크 분산 효과를 볼 수 있는 적립식 펀드나 3년 만기 적금이 제격”이라면서 “우선 1년 동안 세운 목표 금액을 달성하면 모은 목돈을 안전하게 굴리면서 다시 적립식 투자를 시작할 것을 권한다”고 조언했다. 증여 공제 한도는 미성년 자녀는 2000만원, 성년은 5000만원까지인 점도 주의하자. 자녀를 위한 목돈을 마련할 때 투자 상품은 어떻게 고르는 것이 좋을까. 2000년대 중반에 자녀의 대학 등록금 마련으로 인기를 끌던 어린이펀드는 요즘 주춤하고 있다. 최원규 KB증권 도곡스타PB센터 과장은 “어린이 펀드가 많지만 운용이나 수수료가 다른 펀드와 특별히 다르지는 않다”면서 “주식형 펀드에 가입하고 싶다면 미국의 ‘FANG’(페이스북·아마존·넷플릭스·구글) 같은 대형 기술주나 수수료가 낮은 해외 상장지수펀드(ETF)에 가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어린이 펀드는 미성년인 자녀 이름으로 가입하면 만 18세까지 10년 동안 원금 2000만원까지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금융 교육도 장점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운용보수와 판매보수에서 15%씩 적립해 경제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삼성자산운용은 어린이를 위한 운용보고서를 보내준다. 안정적으로 목돈을 마련하려면 적금이 선택지다. 어린이나 청소년 적금은 나이에 따라 우대금리를 주거나 목표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특징이다. 하나은행의 ‘아이 꿈하나 적금’은 만 14세 이전에 등록한 희망 대학에 실제로 합격하면 연 2.0% 포인트 우대금리를 준다. KB국민은행의 ‘영 유스 적금’은 자녀의 출생과 입학, 졸업 시기에 맞춰 나이가 만 0세, 7세, 13세, 15세, 19세일 때 연 0.5% 포인트 우대금리를 준다. 주택 청약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주택청약종합저축’은 성인이 되기 전에 납입한 횟수는 24회까지만 인정되므로 17세부터 가입하면 유리하다. 자녀가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돈을 관리하는 경험을 쌓는 것도 소중한 자산이 된다. 김 팀장은 “예전에는 고액 자산가들이 자녀 모르게 사전 증여를 하고 부모가 관리했다면 지금은 손해가 나도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자녀와 같이 와서 투자를 경험하도록 한다”고 전했다. 아이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 때는 자녀기본증명서나 가족관계증명서 등 필요한 서류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미취학 자녀라면 금융바우처도 놓치지 말자.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쿠폰번호를 받으면 IBK기업·우리은행에서 1만원을 주고, 신한은행은 ‘신한아이행복적금’에 가입하면 1만원 금융바우처를 준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일본의 전체인구 어린이 비중 12%…한국은 어느 정도?

    일본의 전체인구 어린이 비중 12%…한국은 어느 정도?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에 따라 ‘레이와’(令和) 시대의 원년이 된 올해 일본의 ‘어린이’(통계기준 만 15세 미만) 수는 전체 인구의 12.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의 감소세가 40년 가까이 이어진 데 따른 것으로, 관련통계 작성이 시작된 1950년의 35.4%와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올 4월 1일 기준 일본의 15세 미만 인구는 1533만명으로 전년보다 18만명 줄었다. 1982년 이후 38년 연속 감소세다. 앞서 아키히토 일왕이 즉위한 1989년 ‘헤이세이’(平成) 원년의 2320만명과 비교하면 30년 새 33.9%(787만명)나 줄었다. 전국 47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가운데 45개 부현에서 어린이 수가 전년보다 줄어든 가운데 인구집중이 이어지고 있는 도쿄도에서는 8000명이 늘었다. 일본에서는 1997년부터 전체 인구에서 어린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65세 이상 고령인구보다 낮아지며 역전됐다. 이후 차이가 갈수록 커지면서 현재는 ‘15세 미만’ 12.1%, ‘15~64세 미만’ 59.5%, ‘65세 이상’ 28.3%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고령자 비중이 어린이의 2.3배에 이르는 것으로, 다시 말해 어린이 1명당 고령자는 2.3명이라는 얘기다. 아사히는 어린이의 연령을 3세 간격으로 끊어서 볼 때에도 ‘12~14세’ 322만명, ‘9~11세’ 321만명, ‘6~8세’ 309만명, ‘3~5세’ 295만명, ‘0~2세’ 286만명 등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총무성 관계자는 “사회적으로 큰 변화가 없는 한 어린이의 감소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사히는 “인구 4000만명 이상인 약 30개국의 어린이 비중을 비교하면 일본이 12.1%로 가장 낮고 한국 12.9%, 중국 16.9%, 미국 18.7% 순”이라고 설명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사설]새 아파트의 절반 이상이 층간 소음 부실시공됐다니

    새 아파트의 절반 이상이 층간 소음 방지를 위한 최소 기준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공사들은 사전 인정 때보다 낮은 등급의 바닥구조를 쓰고, 평가기관은 데이터를 조작해 측정 성적서를 작성했다고 한다. 감사원이 지난 해 말 입주 예정이던 공공·민간 아파트 191세대에 대해 층간 소음 문제를 감사한 결과다. 층간 소음 민원이 갈수록 늘고, 그로 인해 살인사건까지 벌어지는 현실에서 시공사들과 평기기관들의 짬짜미 행태에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감사원의 측정 결과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시공한 22개 공공아파트 126세대 중 114세대(60%)가 최소 성능 기준에 못미쳤다. 6개 민간아파트 65세대 중에서는 72%인 47세대가 기준에 미달했다. 층간 소음 최소성능기준은 층간바닥이 경량(가볍고 딱딱한) 충격음은 58㏈, 중량(부드럽고 무거운) 충격음은 50㏈ 이하여야 한다. 또한 콘크리트 슬래브 두께는 210㎜ 이상이어야 한다. 이번 결과는 LH와 SH는 물론 민간 시공사들이 비용을 줄이려고 절차를 지키지 않거나 바닥구조의 마감재 강도를 기준에 미달되게 시공했기 때문이다. 일부 아파트 현장소장과 공사감독관은 퇴직 직원의 부탁을 받고 성능인정서가 없는 자재를 시공토록 묵인해줬다고 한다. 사후 평가도 엉터리였다. 준공 시점에 13개 공인측정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한 성능측정 성적서 205건 중 관련 기준에 맞춰 측정한 것은 28건에 불과했다. 시공사는 부실시공을 하고, 이를 걸러내야 할 평가기관은 이를 대부분 눈감아준 것이다. 국민의 60%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현실에서 층간소음 문제가 주요 관심사가 된 지 오래다.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조사에 따르면 층간 소음 민원도 매년 급증 추세다. 2016년 1만 9000여건에서 2017년 2만 3000여건, 지난해 2만 8000여건으로 늘었다. 층간 소음으로 인한 폭력사건이 빈발하고, 이웃간 살인사건까지 매년 끊이지 않는다. 정부는 감사원이 통보한 대로 층간소음 차단 성능을 시공 후에도 제대로 확인할 수있는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또한 시공과 평가업무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비록 시공 후라도 기준에 미달하면 재시공을 의무화하거나, 입주민에게 합당한 금전적 보상을 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사후에라도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부실시공과 엉터리 평가가 근절될 수 있다.
  • [달콤한 사이언스]국내서만 14만명 사망자 낸 스페인독감 원인 알고보니…

    [달콤한 사이언스]국내서만 14만명 사망자 낸 스페인독감 원인 알고보니…

    1918년 초여름 프랑스에서 주둔하던 미군 병영에서 때아닌 독감환자가 발생했다. 일반적인 감기증상과 비슷해 보여 별로 주목을 끌지 못했지만 그해 8월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때부터 빠르게 퍼지기 시작해 유럽을 휩쓸었고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군들의 귀환으로 미국까지 확산됐다. 1918년부터 1920년까지 2년 동안 전세계에서 2500만~5000만명이 죽었고 3·1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직전 겨울부터 1919년까지 740만명이 감염됐고 이 중 14만명이 사망했다. 14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페스트로 인한 사망자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해 인류 최악의 재앙으로 불리며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든 바로 ‘스페인 독감’이다. 문제는 발병 당시 바이러스를 분리해 보존하는 기술이 없어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2005년 미국 연구팀이 어렵게 스페인독감 바이러스를 분리해 A형 독감의 일종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강한 독성의 원인과 메커니즘이 밝혀지지는 않았었다. 이런 가운데 연세대 생명공학과 성백린 교수,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김균환 교수 공동연구팀이 스페인 독감의 독성 원인과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엠보저널’ 최신호(4월 12일자)에 실렸다.연구팀은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를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 중 ‘PB1-F2’에 돌연변이가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이를 분석한 결과 돌연변이 PB1-F2 단백질이 인체의 항바이러스 역할을 하는 인터페론 베타를 차단해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바이러스의 독성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밝혀냈다. 구체적으로는 돌연변이 PB1-F2 단백질은 인터페론 신호전달에 관여하는 필수단백질인 DDX3를 분해시켜 인터페론 베타가 분비되는 것을 막는다. 또 연구팀은 PB1-F2 단백질의 68번째와 69번째 아미노산에 생긴 돌연변이가 이러한 특징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김균환 건국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스페인 독감의 새로운 병인 기전을 밝혀낸 것으로 새로운 형태의 고(高)위험성 인플루엔자 치료제 개발에 응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특정 위치의 돌연변이가 스페인 독감 같은 고위험성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아낸 만큼 이런 고위험군 바이러스를 조기엑 검출하고 예측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백린 연세대 교수도 “스페인 독감은 인류가 경험한 감염성 질환 중 최악의 사례로 최근 스페인 독감과 유사한 유전적 변이와 중증 감염을 유발시키는 바이러스들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연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아카디아는 아테네 서쪽 펠로폰네소스반도의 중심부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외딴 산악 지대가 님프와 자연의 정령이 사는 낙원이라고 여겼다. 이곳의 주민들은 자연 속에서 양과 염소를 치며 걱정 없이 살아간다고 믿었다. 수천 년 전에도 이미 번잡한 도시에 염증을 느끼고 전원을 동경하는 풍조가 있었던 것 같다. 들판을 지나던 세 목동이 커다란 석관을 발견했다. 양만 치며 살아온 이 순박한 사람들은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셋 중 한 명이 무릎을 꿇고 글자를 짚어 가며 떠듬떠듬 읽는다. 왼쪽 젊은이는 석관에 몸을 기대고 생각에 잠겨 있다. 붉은 천을 두른 젊은이는 글자를 가리키며 설명을 구하듯 오른쪽에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본다. 푸른 드레스에 금빛 튜닉을 걸치고 금빛 샌들을 신은 아름다운 여인이다. 이 도회적 여인은 옅은 미소를 띠고 목동들 쪽을 쳐다보지 않는다. 석관에는 ‘아카디아에도 나는 있다’는 라틴어 구절이 새겨져 있다. 낙원에서도 죽음은 피할 수 없으며, 이 세상의 행복은 일시적이고 무상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 주제가 그림에서 유행한 것은 중세 말의 일이다. 중세 말은 전쟁과 흑사병으로 사회 분위기가 흉흉했다. 부유한 후원자들은 고위 성직자나 미녀를 둘러싸고 해골들이 춤추는 그림을 그리게 해 지상의 권세나 젊음이 다 부질없는 것이라는 교훈과 함께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기괴한 분위기의 메멘토 모리와 푸생의 조용한 고전주의를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지만, 이 그림의 주제는 메멘토 모리와 닿아 있다. 푸생은 해골을 직접 들이대며 위협하지 않는다. 석관과 라틴어 글귀로 넌지시 죽음을 가리킬 뿐이다. 우아한 여성의 정체는 불분명하다. 아카디아에 사는 님프라는 게 일반적 해석이지만, 예술의 의인화라는 설도 있다. 예술은 인간의 유한함을 극복하는 방책으로 고안된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이기지 못하지만, 예술이라는 형태로 삶을 기억하고 붙잡아 놓을 수는 있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이 그림은 루이 14세의 컬렉션에 들어 있던 것이다. 절대 권력을 누렸던 화려한 왕은 이 그림의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미술평론가
  • 치매 아내 10년 ‘노노 돌봄’ 끝내 살인 부른 ‘독박 돌봄’

    치매 아내 10년 ‘노노 돌봄’ 끝내 살인 부른 ‘독박 돌봄’

    치매 70%·인지 저하 56%, 가족이 수발 돌봄책임, 배우자>자녀>지역사회 꼽아 돌보는 노인도 신체·정서·경제적 부담 노령화 2060년 4배… 돌봄 문제 가속화 삶의 질 고려해 ‘사회적 돌봄’ 분담을10년의 간병 끝에 치매 아내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80대 남편이 검거됐다. 고령화 사회에서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 노노(老老) 돌봄이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여전히 많은 노인들이 또 다른 노인들을 돌봄의 책임자로 인식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인권과 삶의 질을 고려해 사회가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2일 전북 군산에서 A(80)씨가 치매 아내를 숨지게 한 혐의로 붙잡혔다. A씨는 10년 전부터 병시중을 들어 왔고 아내와 요양병원 입원 여부를 두고 다투다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노노 돌봄의 비극적 단면을 보여 주는 사건이다. 스스로를 보살피기도 어려운 노인이 배우자 등 다른 노인을 돌보게 되면서 어려움에 부딪히고 결국 극단적 범행으로 이어졌다. 노노 돌봄은 돌봄 제공 노인에게 신체적·정신적·경제적으로 큰 부담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치매 노인과 돌봄 제공자를 위한 맞춤형 정책 방안 모색’ 보고서(2018)에서 한 노노 돌봄 노인은 “뇌병변 2급인 내가 치매인 아내를 만나러 일주일에 한 번 요양원에 오는데 요양원비 자체가 큰 부담”이라며 “몇 번 죽으려 했지만 아내만 혼자 남길 수 없어 죽지도 못하고… 내가 꼭 죽었으면 싶을 정도로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치매 확진자의 70.2%, 인지 저하자의 56%가 동거 가족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발행한 ‘노노 돌봄 현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노인들은 돌봄의 주체를 배우자 등 같은 노인으로 보고 있다. 전국 60세 이상 노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노인들은 노인 돌봄의 가장 큰 책임자로 배우자(39.1%)를 꼽았다. 노인인 자녀를 꼽은 응답자도 24%나 됐다. 국가를 꼽은 응답자는 27.3%였으나 지역 사회를 꼽은 응답자는 9.6%에 불과했다. 응답자들은 노인 돌봄을 제공할 때의 어려움도 호소했다. 건강 악화를 우려한 응답자들이 45.9%에 달했고 정서적 스트레스(25.6%), 생계활동 제약(20.8%)을 꼽은 응답자들이 뒤를 이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110.5명인 노령화지수(0~14세 유소년인구 대비 65세 이상 인구)가 2060년에는 현재보다 4배나 증가한 434.6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앞으로 노노 돌봄으로 인한 문제는 더욱 증가할 것이 명백하다. 전문가들은 삶의 질 측면에서 노인 돌봄을 개인, 민간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와 정부가 함께 분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재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가족 내 노노 돌봄은 필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지만 이를 권장하기 어려운 현실을 실태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면서 “가족 구성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가정 방문 등 지역 커뮤니티 형태로 사회적 돌봄 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 역시 실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올 연말쯤 노노 돌봄이 노인의 정서적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해 추가로 연구할 예정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가족 내 노노 돌봄은 돌봄 제공자의 신체적·정신적인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왕이 후궁 처소를 찾을 때 썼던 이 물건, 아시나요”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왕이 후궁 처소를 찾을 때 썼던 이 물건, 아시나요”

    고미술 수집 40년 최형술씨가 말하는 골동품“이 향난로는 아마 한국에서 하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약재를 가루로 만드는 약연과 한약을 달이는 약탕기, 약주전자, 약탕관 등 한약과 관련된 모든 도구가 한 세트입니다. 약주전자와 약맷돌에 새겨진 이 문양을 보세요. 용, 불로초, 사슴, 잉어가 보이죠. 그리고 이번에 청자철제귀면종에 대해 문화재 등록신청을 했습니다.” 골동품 가게 앞에 5층 8각 석탑 두기 서 있어“14세기 청자철제귀면종, 문화재 등록 신청해”서울에서 가장 큰 고미술점을 운영했다는 최형술(81)씨를 인터뷰하려고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청계8가 한국도자기 뒤에 있는 골동품점 갤러리 미(취강당)을 지난 17일 찾았다. 철물점 상가들 사이에서 두 기의 8각형 5층 석탑이 가게 앞을 지키고 섰다.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의 가게에 들어서자 세월의 더께에 쌓인 갑옷과 놋그릇, 제사용품과 서화, 가구 등이 가득했다. 그는 처음엔 골동품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사진이 나가면 짝퉁이 나돌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기사화 하려면 사진이 필요하다고 설득한 끝에 촬영을 허락받았다. 사진을 찍으러 공예품 먼지를 털자, 먼지도 털지 못하게 했다. 최씨는 가리킨 약주전자에는 뚜껑은 용이 똬리를 튼 특이한 모양새다. 물이 나오는 주구 부분 역시 특이하다. 손잡이는 나무로 만들었다. 이 주전자를 끓일 아궁이 역시 커다란 돌덩이로 만들어졌다. 그 옆에는 향난로가 놓여있었다. 사각형의 돌상자에는 다시 작은 돌상자를 넣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사방으로 구멍이 2개에서 4개씩 나 있었다. 들어보니 아주 묵직했다. “장수곱돌로 만든 거예요. 이게 옛날에 임금님이 어느 후궁 처소로 가겠다고 하면 상궁들이 이것을 미리 그 후궁방에 두고 방을 따뜻하게 데우면서 향기롭게 하는 기능을 했다고 합니다. 저도 용도를 몰라 궁금해했는데 수년 전 한 스님이 이렇게 설명해 줬습니다만 좀 더 정확한 용도와 고증이 필요합니다.” 기자가 이 사진을 한의사에 보여줬지만 그 한의사 역시 처음본다고 했다. 이렇게 한약방과 관련된 도구가 100여 점에 이른다. “장수곱돌로 만든 한약방 도구 100여점용 무늬, 불로초, 잉어 등의 그림 새겨져충청도 대갓집에 3년간 공들여 수집해”- 한약 도구세트, 어떻게 소장하게 됐나. “1980년대에 충청도의 한 가문으로부터 수집했습니다. 99칸에 이를 정도의 대갓집이었는데 그 집 할아버지로부터 사들였습니다. 처음엔 안 팔겠다고 했는데, 한번 내려갈 때마다 술, 고기 등을 사들고 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팔아달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설득하면 그 할아버지가 한꺼번에 팔지 않고, 한점 팔고, 몇 달 뒤에 또 내려가면 3점 팔고…. 이렇게 해서 다 사모는데 한 3~4년 정성을 들였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이 한약방 도구들의 출처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하지 않고, 집안에 내려오는 것이라고만 했습니다.”- 현재 소장한 가장 비싼 미술품은. “글쎄, 가격을 다 매겨보지 못해 잘 몰라요. 그런데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물건은 있습니다. 고려시대인 14세기 전남 해남군 산이면 진산리 가마터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청자철제귀면종’은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고 있어요. 청자로 만든 종의 사금파리는 전하고 있지만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청자 종(鐘)으로는 아마 국내에서 유일할 겁니다. 사찰에서 쓰였을 것 같은데, 전문가들의 감정을 받아보면 가치와 용도를 알 수 있겠지요. 또 한가지 백자대호(달항아리)는 다음 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한 달간 전시할 생각입니다. 18세기 전후에 광주 분원리에서 구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고가품은 분청사기…신사동 땅값 100배골동품 안목 수업료로 집 몇 채 값 날아가”- 그러면 최고가 수집품은. “미련을 갖지 말아야지요. 박수근·김환기·이수근의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겸재 정선·단원 김홍도 그림도 제 손을 거쳐 간 것이 제법 됩니다. 한번은 평당 강남 땅값의 100배로 샀던 것도 있습니다. 1976년인가에 분청을 그때 돈 2000만원에 샀습니다. 그때 허허벌판의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비포장이었지만 도로 옆에 붙은 좋은 땅은 평당 2만~3만원이었고, 안쪽 구석에 있던 것은 5000원도 안 되었습니다. 분청사기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겠지요.” - 그 분청 아직도 갔고 있나. “벌써 임자를 만나 나갔지요. 비싸게 매입한다고 다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골동품과 관련해 수업료로 집 몇 채 값은 날아갔습니다. 수십년 골동품을 거래한 저도 사람의 손때를 탄 물건, 어찌 보면 혼이 담긴 물건이기에 알기가 무척 어려워요. 살 때 분명히 진품으로 보였는데, 가게에 와서 보면 다르게 보이고 해서….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일반인도 아닌 전문 장사꾼이라 무를 수도 없고 집 한 채 값 그냥 날아가지요.” - 그 분청사기 누가 사갔나. “이름은 말할 수 없지요. 의사와 변호사, 교수 등이 우리 집에서 물건 많이 사갔습니다. 예술품이나 골동품은 소장자가 누구냐에 따라 가치가 또 확 달라집니다. 같은 분청사기라도 골동품상인 제가 가진 가치와 유명 교수나 학자가 소장한 것의 가치가 다르다는 거죠.” - 현재 보유한 고미술품 수는. “고미술품과 민예품 등을 합쳐서 아마 1만 점이 넘을 겁니다. 중간 상인이 차로 100점~200점 갔고 옵니다. 그중에서 서너 점이 마음에 들면 차떼기로 전부 다 샀던 겁니다. 중간 상인도 값나가는 서너 점을 알거든요. 좋은 것만 사고, 나머지를 사지 않으면 다음엔 거래하러 오지 않아요. 그 서너 점으로 본전을 뽑고, 나머지를 팔아서 이익을 내는 구조입니다. 많을 때 10만 점가량 보유했습니다. 다 보관을 할 수가 없어서 팔기 시작한 겁니다. 가구와 같은 목제품, 그림이나 글씨와 같은 서화는 비바람을 맞아 곰팡이가 피면 안 되잖아요. 여기 가게에도 있지만 개운사 옆 카페 봄에도 삼국시대의 토기 등을 전시하고 있지요. 창고에도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자개 농과 같은 나무 제품은 공간도 많이 차지합니다. 사람이 쓰는 물건이 3만가지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 대부분을 다루어봤을 겁니다.” “50~90년대 광장시장서 복지점으로 돈 벌어1970년대 우리 민예품 해외 마구 팔려나가남아있는 게 없겠다는 생각에 수집 시작박물관 생각에 마구 수집…여건 달라져 포기수집품 한때 10만점쯤 …지금은 1만점가량 보유”- 고미술 수집엔 돈이 엄청 든다. “동대문과 광장시장에서 양복을 짓는 데 쓰는 옷감인 복지 가게를 운영했습니다. 1958년부터인가 시작했는데, 그 당시 신랑이 장가갈 때 양복 한 벌 맞춰 입으려면 쌀 10가마의 돈이 들었습니다. 저는 도매와 소매를 겸해서 전국에 거래상을 두고 팔았지요. 그때 돈을 제법 만졌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닥친 1998년 복지 가게는 다 정리했습니다.” - 왜 고미술에 빠졌나. “1970년대에 보니깐 우리 공예품이 외국으로 많이 팔려나갔습니다. 심지어 수석까지 미국 일본 필리핀 이탈리아 등으로 팔려가가더군요. 소련에도 팔려나갔습니다. 이래서는 우리 것이 남아있지 않겠다는 생각에 수집을 시작했습니다. 좋은 것을 사 모아야겠다는 사명감에 보이는 대로 사서 모았지요. 그러다가 우리 공예품, 민예품을 보는 눈도 생기고, 알게 되니깐 더 애착이 가더라고요. 어느 순간 더 이상 보관할 수가 없게 되어서 골동품 가게를 열었습니다. 매장 면적이 170평으로 전국은 몰라도 서울에서는 가장 컸습니다. 18~19년간 하다가 땅 주인이 건물을 새로 짓는다고 해서 여기로 이사해 소일거리로 하는 겁니다.” - 아무리 고미술에 빠져도 그렇게 사모을 수 있나. “처음엔 박물관을 하나 운영할까 생각했습니다. 서울에다 박물관 하나 하려다 보니 땅값이 엄청나게 올라 있고, 박물관 운영비 마련도 쉽지 않아 보여서, 그냥 나자빠진 거죠. 결국, 이렇게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게 된 거죠. 한창때는 귀하거나 없는 물건을 보면 안 사고는 못 배겼어요.” - 고미술 수집과 복지점 운영하면 물려받은 게 많았겠다. “저는 1939년생으로, 고향이 전남 해남인데, 그때 꿈이 교사였어요. 중학교 졸업하고 해남고등학교에 합격했어요. 그런데 집안이 어려워 진학 대신 농사일을 도우며 서당에 3년가량에 다녔습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싶어서 무작정 상경해서 동대문시장에서 행상을 해서 돈을 아끼고 모으고 해서 복지점을 낸 겁니다. 복지점을 낸 지 3년 만에 해남에서 농사짓는 아버지한데 논 20마지기(4000평)와 기와집을 사드렸습니다.” “아파트 거주공간에 고미술 둘 공간 없어져조상 손때 묻은 골동품, 갈수록 가치 올라”- 고미술 대신 강남에 땅을 샀다면. “강남에 땅을 샀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잖아요. 잘 되었을 거라는 보장이 없지요. 신사동의 좋은 땅이 평당 2만원할 때 고려대 뒤 개운사 옆에 7500만원을 들여 큰 한옥을 지어 살았습니다. 그동안 건강하게, 화목하게 살았으니, 강남에 땅을 사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후회는 없어요. 남들은 뭐라 생각하든 우리 고미술 보존에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 고미술 찾느라 전국 많이 다녔겠다. “복지점을 할 때 전국 거래처를 다녔지만, 고미술을 할 때는 가지 않습니다. 골동품도 수십년 거래한 믿는 중간 상인들이 있습니다. 중간 상인들은 지역별로 골동품을 모아두는 사람들을 두고 있었지요. 그래야 탈도 없고, 외상거래도 떼어먹는 일도 없지요. 집안에서 대대로 쓰던 물건을 파는 사람들은 정말 돈이 급하잖아요. 그래서 언제든지 현금으로 지불할 준비는 해 놓고 있었습니다. 물론 속은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그 또한 제 안목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엔 곁눈질로 한번 보면 10가지 이상이 파악됩니다. 그리곤 가격이 바로 매겨집니다. 수십년 경험이지요.” - 문제는 없었나.“무슨 문제요? 아~, 한번도 경찰에 조사받은 일이 없습니다. 수십년 거래한 중간 상인들이라도 의심스러우면 거래를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골동품이라는 것들이 무겁고, 부피도 커고 해서 귀금속과는 많이 달라요. 이 부근 한자리에서 20년가량 장사를 하는데 손님을 속이고 그렇게 운영해서는 오래 못가요. 손님들이 수년 지나서 찾아와 물러달라거나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손님들 요구대로 다 해줬습니다.” - 요즘 고미술 인기는. “한때 한국화가 잘 나갔습니다만 아파트가 못도 박지 못하게 하잖아요. 소품의 유화라도 그림을 걸어둘 곳도 없어졌습니다. 동양화는 액자나 족자를 하게 되면 무겁고 공간도 넓게 차지하는 단점이 있지요. 병풍을 쳐 놓을 공간도 없고, 조상의 손때 묻은 물건들을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같아요. 고미술을 사려는 사람도 적지만, 수요는 꾸준히 있습니다. 하지만 고미술, 골동품을 구하기가 정말 어려워졌습니다. 가격도 비싸졌고…. 동묘에도 골동품상이 한두집 밖에 없어요. 요즘엔 물건이 안 나오니깐 못하는 거지요. 그래도 조상들의 혼이 담긴 골동품, 갈수록 가치가 올라갈 겁니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위고가 헐릴 위기 성당 살렸듯… 다시 복원되리

    위고가 헐릴 위기 성당 살렸듯… 다시 복원되리

    영원할 줄 알았던 존재가 무너지는 모습에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화재로 첨탑과 지붕이 내려앉은 노트르담 대성당을 보니 위풍당당하게 세계인을 맞았던 예전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프랑스를 여행하다 보면 노트르담(Notre-Dame)이란 이름을 가진 성당을 여럿 보게 된다. 노트르담은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뜻으로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를 부를 때 쓰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노트르담은 누구든지 너른 품으로 안아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넬 것 같다. 파리 센강에 있는 시테(Cite)섬은 프랑스어로 ‘도시’를 뜻한다. 고대부터 켈트족의 분파였던 파리시(Parisii)족이 시테섬에 마을을 꾸리며 살았기에 도시라는 뜻이 생겼고, 파리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 그래서 시테섬은 파리의 어머니이고, 노트르담 대성당은 어머니의 심장이다. 파리의 심장이 타버렸으니, 남대문 화재를 겪은 우리는 파리 시민의 탄식과 눈물을 이해한다. 유네스코는 노트르담과 주변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파리의 센 강변’이라는 이름으로 노트르담과 그 일대를 199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노트르담 대성당이 세계의 사랑을 받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1211년부터 14세기 초에 걸쳐 세워진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 왕들의 대관식을 거행했던 배경이었다.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조각상이 부서져 방치될 정도로 관리가 부실했고, 성당은 식량 저장 창고로 쓰이기까지 했다. 프랑스 대혁명 기간에 창문이 깨졌고, 1804년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노트르담에서 대관식을 올렸을 때는 노트르담의 상태가 너무 초라한 지경이었다. 나폴레옹 대관식 장면은 가로 979㎝, 세로 621㎝의 대형 캔버스에 담겨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됐다. 모나리자 다음으로 인기가 높은 그림이다. 노트르담이 지금의 사랑을 받게 만든 일등공신은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다. 헐릴 위기에 처한 노트르담 대성당을 살리기 위해 ‘노트르담의 꼽추’를 썼고, 작가의 의도는 성공했다. 프랑스 전역에서 노트르담을 살리자는 여론이 일어났고 1845년에 복원 공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때도 창문이 깨졌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폭격에 대비해 창문을 분리시켰다가 전쟁 후 복원하기도 했다. 수많은 시련을 겪은 노트르담은 오랜 역사 속에서 살아남았지만 이번 화마로 그 어느 때보다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성당의 서쪽 파사드는 노트르담을 대표하는 모습으로, 너른 광장이 있어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다. 남쪽과 북쪽에 난 장미창은 13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섬세한 장미 모양의 돌 조각이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지탱하고 있다. 장미창으로 스며들어왔던 성스러운 햇빛 아래 그레고리안 성가가 울려 퍼지던, 그 때의 노트르담이 그립다. 김진 칼럼니스트·여행작가
  • [여기는 남미] 악명높은 범죄 조직, 두목 잡고보니 14세 소녀

    [여기는 남미] 악명높은 범죄 조직, 두목 잡고보니 14세 소녀

    운전기사들을 협박해 상습적으로 이른바 '통행료'를 갈취한 조직이 경찰에 붙잡혔다. 잡고 보니 조직의 우두머리는 여자어린이였다. 남미 콜롬비아에서도 치안이 불안하기로 악명이 높은 메데진의 13구역에서 벌어진 일이다. 13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콜롬비아 경찰은 공갈협박 등의 혐의로 14살 여자어린이를 긴급체포했다. 수사 관계자는 "그간 13구역에서 발생한 복수의 운전기사 살인사건, 차량공격사건 중 다수가 이 여자어린이의 명령으로 이뤄진 범행일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이 여자어린이는 무장범죄조직을 결성, 13구역을 오가는 택시나 버스, 트럭 등에 매일 통행료를 받아왔다. 기사들이 상납한 돈은 평균 13달러, 우리돈 약 1만4800원이다. 큰 금액이 아닌 것 같지만 콜롬비아 현지 물가를 감안하면 적지 않은 돈이다. 통행료를 내라는 요구에 기사들은 대부분 울며 겨자를 먹는 식으로 돈을 내놨다. 콜롬비아 메데진의 13구역에서 운수업을 하는 한 기사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목숨 걸고 운전대를 잡느니 돈을 주거나 아예 일을 나가지 않는 게 낫다"고 말했다. 실제로 13구역에선 그간 복수의 운전기사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누군가 불을 지르는 등 차량을 공격한 사건도 다수 발생했다. 경찰은 이들 사건이 통행료 내길 거부한 기사에 대한 보복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어린이들에게 어른들이 벌벌 떠는 세상이 됐다"면서 "처벌이 상대적으로 가벼운 청소년들 역시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 RCN에 따르면 절도, 불법총기 소지, 마약류 판매 등의 혐의로 메데진 소년원에 수감된 14~17살 청소년은 현재 1000명을 웃돈다. 이 가운데 25%는 살인 혐의로 소년원 생활을 하고 있다. 한편 메데진의 13구역은 콜롬비아에서도 치안이 불안하기로 유명하다. 사망한 콜롬비아의 마약황제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과거 청부살인업자들을 육성하기 위해 미성년자들을 끌어 모은 곳이기도 하다. 사진=자료사진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동영상] 마리 앙투아네트 침실 등 3년 리노베이션 끝에 재개관

    [동영상] 마리 앙투아네트 침실 등 3년 리노베이션 끝에 재개관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베르사유 궁전 안에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방들이 3년의 리노베이션 공사를 마치고 다시 관람객들을 맞고 있다. 나중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되는 조제파 잔은 오스트리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열다섯번째 딸)로 빈의 쇤부른 궁전에서 태어났다. 막내딸로 사랑과 귀여움을 잔뜩 받는 아이였다고 묘사한 기록도 있고, 어릴 적부터 사치와 방탕 외에는 배운 것이 없었던 아이였다는 부정적 묘사도 남아 있다. 공부나 외국어에 관심이 없어 여제를 걱정시키기도 했으나 춤과 음악에 소질이 있는 데다 움직이는 모습이 우아하고 아름다워 감탄을 자아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시시각각 변하는 유럽의 정세에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는 결혼으로 결속을 다지려 했고 14세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한 살 위 프랑스 왕세자 루이와 결혼을 하게 돼 베르사유 궁전으로 왔다. 1770년이었다. 총애하는 궁정 신하, 귀족들과 사치하고 노는 데 열심이어서 막대한 궁정비 지출의 원흉으로 지목됐고 1789년 7월 14일 군중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을 때 군대를 데리고 메스로 피신하라고 루이를 설득하는가 하면 그를 부추겨 국민의회가 봉건제도 철폐와 왕의 권력 제한을 위해 시도하던 일들을 저지시켜 혁명 세력의 원성을 샀다. 파리에서 혁명세력의 인질로 붙잡혀 있다 탈출하려던 부부 모두 체포돼 1793년 10월 16일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이번에 리노베이션을 마친 방들은 접견실과 침실인데 1789년 10월 6일 아침 황급히 베르사유를 떠나 파리로 옮긴 마리 앙투아네트는 끝내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프랑스식 궁정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접견실 뒤에는 비밀 출입문을 만들어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 찾아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늘 거기 숨어 지내며 궁정 탈출을 꿈꿨던 것으로 유명하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월드피플+] 일면식도 없는 소년에게 골수 주다 세상 떠난 교장

    [월드피플+] 일면식도 없는 소년에게 골수 주다 세상 떠난 교장

    일면식도 없는 프랑스 소년을 위해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려던 미국 남성이 사망했다. 폭스뉴스 등 미국 언론은 지난 8일(현지시간) 뉴저지주 웨스트필드고등학교 측이 이 학교 교장이었던 데릭 넬슨(44) 박사의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넬슨 박사는 지난 2월 뉴저지의 한 병원에서 조혈모세포 채취 중 심장마비에 걸렸으며 이후 한 달 넘게 혼수상태였다. 넬슨의 부친 윌리 넬슨(81)은 “우리는 지난 주말 아들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가슴 아픈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넬슨 박사는 지난해 10월 골수 연결 비영리 단체 ‘비 더 매치’(Be the Match)에게서 프랑스에 있는 14세 소년과 조혈모세포가 일치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는 1996년 델라웨어주립대학교 학부생이던 시절 헌혈과 동시에 골수 기증에 서약한 바 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웨스트필드고등학교 교장이 된 그에게 22년 전의 약속을 지킬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넬슨 교장은 당시 학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약간의 고통은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서 이 소년에게 골수를 기증할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20년 이상 육군 예비군으로 복무하면서 얻은 수면 무호흡증 때문에 전신마취는 불가능했고, 넬슨은 성분헌혈 방식으로 말초혈에서 조혈모세포를 기증하기로 했다. 하지만 기증을 위한 검진 도중 그가 '겸상 적혈구 체질’(Sickle cell trait)이라는 질환이 있음이 밝혀졌고 말초혈조혈모세포 채취 역시 어려워졌다. 겸상세포질환으로도 불리는 '겸상 적혈구 체질'은 낫 혹은 초승달 모양을 한 끈적이는 적혈구가 다른 세포와 엉켜 혈액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는 질환이다. 결국 그는 전신마취가 아닌 국소마취로 골수를 채취하기로 했고 이 과정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혼수상태에 빠졌다. 넬슨의 부친은 “우리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한다”면서 “시술 후 아들은 그저 침대에 누워 있을 뿐이었다. 다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아들이 깨어나기를 바랐지만 결국 이렇게 떠나보내게 됐다”고 슬퍼했다. 약혼녀와의 사이에서 6살짜리 딸도 낳은 넬슨은 일면식도 없는 프랑스 소년을 도우려다 영영 가족 곁을 떠나고 말았다. 넬슨의 조혈모세포는 채취 즉시 소년에게 이식하기 위해 프랑스로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넬슨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학교 관계자와 학생들은 애도를 이어가고 있다. 학교 대변인은 “넬슨 박사는 친절과 연민, 성실함 그리고 끝없이 긍정적인 태도로 우리 모두를 감동시켰다”면서 “우리는 이 큰 손실을 함께 슬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학교 3학년인 마르셀라 아반스는 “훌륭하고 친근했던 교장 선생님이었다”면서 “누구 하나 선생님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아반스는 “처음에는 누군가를 도우려다 돌아가셨다는 게 마음이 아팠지만, 지역 사회는 그를 존경하고 있다”고 조의를 표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英 인터넷·소셜미디어 ‘자율규제’ 시대 끝났다

    영국 정부가 인터넷 및 소셜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테러 및 아동학대을 비롯해 허위 정보와 극단주의 콘텐츠, 가짜뉴스 등도 규제 대상에 포함한다는 방침이다. 8일(현지시간) BBC 방송에 따르면 영국 문화·미디어·스포츠부와 내무부는 이날 ‘온라인 유해 콘텐츠 보고서’를 공개했다. 인터넷 및 소셜미디어 콘텐츠와 기업에 대한 규제를 담은 보고서 내용은 12주간의 협의 절차를 거친 뒤 구체적인 입법 과정을 밟게 된다. 보고서는 구체적인 규정을 만들어 그동안 기업 자율에 맡겨온 온라인 유해 콘텐츠 대응을 강화하도록 했다. 최근 영국에서는 14세 소녀가 인스타그램의 자해 관련 사진 등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소셜 미디어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졌다. 뉴질랜드 테러 용의자가 테러 장면을 생중계한 한 동영상이 노출되면서 페이스북 등의 신속한 대응 부재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기업들이 제공하는 서비스 등에 불법적인 내용이 있을 경우 즉각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여기에는 불법 콘텐츠뿐만 아니라 불법은 아니지만 사회에 해를 미치는 허위 정보, 극단주의 콘텐츠, 가짜뉴스 등도 포함된다. 만약 규정을 위반하면 해당 기업의 고위 간부가 구속되는 것은 물론, 기업은 벌금과 함께 영업정지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독립규제기구가 설치돼 기업의 규정 준수 여부를 감독하고 규제를 적용하도록 했다. 제러미 라이트 문화부 장관은 “온라인 유해 콘텐츠에 대한 업계의 자발적 대응은 일관적이거나 충분하지 않았다”면서 자율규제의 시대는 끝났다고 밝혔다. 사지드 자비드 내무장관은 온라인 거대기업과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젊은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여기는 남미] 최소 12명 살해…청부살인업자 14세 소년 체포

    [여기는 남미] 최소 12명 살해…청부살인업자 14세 소년 체포

    남미 콜롬비아에서 희대의 10대 살인마가 경찰에 검거됐다. 현지 언론은 "메데진에서 활동하던 14살 청부살인업자가 경찰에 체포됐다"고 최근 보도했다.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소년 청부살인업자는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메데진 산타루시아 전철역 인근에서 마지막 범행을 저질렀다. 누군가의 의뢰를 받은 그는 한 상점에 들어가 상인 다리오 알렉시스 아테오르투아(43), 점원 마테오 프리에토(20)를 총으로 쏴 살해하고 도주했다. 무차별 총격에 또 다른 사람이 총상을 입었지만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곧바로 출동, 아직 현장 주변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소년 청부살인업자를 체포했다. 소년은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하면서 당당하게 주민증을 내밀었다. 주민증에 적힌 그의 생년월일을 보니 만 13세, 형사처벌이 불가능한 촉법소년이었다. 하지만 이건 타인의 것이었다. 소년이 경찰에 보여준 건 동생의 주민증이었다. 경찰의 확인 결과 소년은 만 14세. 청소년처벌법을 적용할 수 있는 나이였다. 충격적인 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여죄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메데진에서 발생한 10건 살인사건의 용의자였다. 14살 나이에 12명을 살해한 살인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최소한의 혐의다. 소년이 저질렀지만 용의자로 지목되지 않은 사건이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어 그가 살해한 사람은 12명보다 훨씬 많을 수 있다. 경찰은 "겨우 14살 소년이 총으로 사람을 죽이고 다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며 "소년범죄가 최근 부쩍 늘어나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콜롬비아는 미성년 범죄의 증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현지 검찰에 따르면 올해 들어 살인 등 강력 범죄로 경찰에 체포된 미성년자는 600명에 이르고 있다. 사진=콜롬비아 경찰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EN스타] “천년돌의 유혹” 하시모토 칸나, 미공개 컷도 완벽 미모

    [EN스타] “천년돌의 유혹” 하시모토 칸나, 미공개 컷도 완벽 미모

    일본 걸그룹 출신 배우 하시모토 칸나가 화보 B컷을 공개했다. 하시모토 칸나는 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화보 미공개컷을 게재했다. 사진 속 하시모토 칸나는 완벽한 미모에 ‘심쿵’ 눈빛을 발사하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하시모토 칸나는 천 년에 한 번 나올 미모라는 뜻의 ‘천년돌’이라는 수식어로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일본 걸그룹 리브프롬디브이엘(Rev.from DVL) 소속으로 14세였던 2013년 한 팬이 찍은 사진 속 청순한 미모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인물. 지난해 11월 영화 ‘은혼2: 규칙은 깨라고 있는 것’ 홍보를 위해 내한해 한국 팬들을 만난 바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벨기에 명물 오줌싸개 동상, 이제 물 다시 쓴다…“먹지 마세요”

    벨기에 명물 오줌싸개 동상, 이제 물 다시 쓴다…“먹지 마세요”

    벨기에 브뤼셀의 관광 명소 ‘오줌싸개 동상’(Manneken-Pis)이 앞으로 '새 오줌'을 쌀 일은 없을 것 같다. 지난 400년간 한 자리를 지키며 약 2억 5000만 리터의 오줌을 싼 오줌싸개 동상에 이제 ‘순환 급수 시스템’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브뤼셀 타임즈 등 현지 언론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하루 10여 가구가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깨끗한 물 1000~2500리터가 17세기부터 매일 ‘오줌싸개 동상’을 통해 버려졌다고 전했다. ‘오줌싸개 동상’은 1619년 조각가 제롬 뒤케누아의 작품으로 그간 수도 없이 도난당했으며 현재 설치되어 있는 것은 1965년에 만든 복제품이다. 원본은 그랑플라스에 있는 박물관 ‘왕의 집’에 전시되어 있다. 이 동상은 각종 행사를 기념하는데 동원되며 일년 내내 다른 의상으로 장식된다. 1년에 약 130 차례 장식이 바뀌며 사용되는 의상만 1000여벌에 달한다.이 동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레우벤의 공작 듀크 고드프리 3세에 관한 것이다. 1142년 전쟁통에서 당시 2살이었던 고드프리 3세가 적군 부대를 향해 소변을 본 뒤 아군이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 오줌싸개 동상이 14세기 방어벽을 폭파하려는 적들에 의해 불이 붙은 퓨즈에 오줌을 싸서 도시를 구한 줄리앙스케라는 청년에게 바치는 공물이라고도 말한다. 다양한 전설을 품고 400년간 브뤼셀의 관광 명소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오줌싸개 동상’은 그러나 지금까지 2억 5000만 리터의 식수를 흘려보내 물 낭비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브뤼셀시는 앞으로 ‘오줌싸개 동상’으로 흐르는 물이 끝없이 재순환된다고 밝혔다. 브뤼셀 시의원 브누아 에링스는 “400년 만에 처음으로 오줌싸개 동상에서 깨끗한 오줌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시 당국은 또 브뤼셀 전역에 있는 분수에서 식수가 낭비되고 있지는 않은지 조사할 계획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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