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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용, 아들 믿음·마음 근황 공개 ‘폭풍성장’

    이정용, 아들 믿음·마음 근황 공개 ‘폭풍성장’

    이정용이 아들 이믿음, 이마음의 근황을 공개했다.17일 방송된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서는 이정용이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이정용은 아들 이믿음, 이마음의 근황을 공개했다. 과거 SBS 예능프로그램 ‘붕어빵’에 출연했던 이믿음, 이마음 형제는 폭풍성장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등장했다. 이믿음은 “저는 이 집의 기둥 배우 이정용 씨의 아들 이믿음이다. 붕어빵이라는 프로그램을 5살 때 시작했는데 벌써 14세가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마음은 “꿈이 크리에이터인 우리 집의 기둥이 되고 싶은 5학년 이마음 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사진=MBC ‘사람이 좋다’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찰스 왕세자 39년 전 키스 날렸던 여인과 조우

    찰스 왕세자 39년 전 키스 날렸던 여인과 조우

    찰스 영국 왕세자가 39년 전 자신에게 기습 키스를 날렸던 호주 여성과 다시 만났다. 1979년 그가 호주 케언스 공항에 도착했을 때 14세 소녀 레일라 셔우드는 그의 뺨에 입을 맞춰 사진이 지역신문에 실렸다. 거의 4반세기가 흘러 54세가 된 셔우드는 흐른 8일(현지시간) 케언스의 성요한 성공회 앞에서 고이 간직해온 신문을 든 채 일요 예배를 마친 왕자님을 기다렸다가 조우했다. 그녀는 “그가 내 손을 잡더니 은총을 빈다고 말했다. 난 그의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왕세자 일행을 알현하려고 기다리는 사람 중에는 왕세자의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을 따라 이름을 지은 호주 원주민(아보리진) 여성 엘리자베스 쿨라 쿨라도 있었다. 그는 왕세자와 악수를 나누는 순간 감정이 복받쳐 울음을 터뜨렸다.찰스 왕세자는 데인트리 우림 지대를 탐험하고 쿠쿠 얄란지 부족을 만나는 등 일주일 예정의 호주 방문 일정을 이어나갔다. 이 부족의 최연장자인 로이 깁슨은 왕세자에게 손으로 만든 사냥용 부메랑을 선물하고 전통적인 담배 세리머니에 참여하는 한편 나쁜 기운을 쫓는 주문을 듣고 지속가능한 삼림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이어 농촌 지역의 의료 지원을 하는 왕립 날으는 의사들의 케언스 기지를 처음 방문했다. 이번 호주 방문은 굉장히 버거운 일정으로 전개되고 있다. 찰스 왕세자는 영국 연방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커먼웰스 게임 개회식에 참석했고 명예추장에 임명됐으며 다가오는 70회 생일에 대해 조크를 하기도 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숨막히는 현실, 오지 않는 희망… 그래도 나아가라는 거장

    [김응교 교수 작가의 탄생] 숨막히는 현실, 오지 않는 희망… 그래도 나아가라는 거장

    “자, 이제 가자.” “안 돼.”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아, 그렇군.” 바짝 마른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빈 무대에 허름한 점퍼를 입은 두 사람이 앉아 구두를 벗으려 애쓴다. 에스트라공(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는 고도가 올지 안 올지를 두고 대화한다. 도대체 고도는 누구인지, 왜 고도를 기다리는지는 설명하지 않고 싱거운 대화만 몇 번이고 반복한다. 주인과 노예가 잠시 등장하고, 소년이 등장하여 고도가 그날은 오지 않고 내일도 오지 않을 거라고 알린다. 고고와 디디는 왠지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린다. 두 사람은 무의미한 대화로 시간을 때운다. 1막에서는 고고가 가자고 하고, 2막에서는 디디가 가자고 한다. 쓸데없는 장난과 엉뚱한 대화를 듣는 관객이 왜 내가 여기 앉아 있어야 하나 고민할 때 막은 내린다.●파리로 온 작가·화가·철학자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에서 태어난 사뮈엘 베케트(1906~1989)는 부유한 개신교 집안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전공하고, 졸업 후 파리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에서 2년간 영어를 가르쳤다. 1937년 파리 몽파르나스 언덕에 정착한 베케트는 이듬해 장편소설 ‘머피’를 발표했다. 1938년 1월 6일,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나오던 베케트는 소위 ‘묻지마 폭력’을 당한다. 모르는 청년이 느닷없이 그에게 칼을 휘둘렀던 것이다. 법정에서 범인이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하자 충격을 받은 베케트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인생을 숙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41년 파리에서 그는 조국도 아닌 프랑스 레지스탕스 친구들을 돕는다. 더블린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부잣집 아들이 어떻게 이런 위험을 결심했는지 모르지만, 1942년 동지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베케트는 시골 농장으로 피신하여 ‘와트’라는 소설을 썼다. 전쟁의 비극 속에서 그는 집중해서 작품을 썼다. 우주의 인연이란 기이한 바, 베케트가 태어나기 5년 전 한 인물이 옆 나라에서 태어났다. 1901년 10월 10일 스위스에서 탄생한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 스위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후기 인상파 화가였던 아버지 덕에 자코메티는 거대한 서가에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자코메티는 10세 때부터 소묘와 그림을 그렸으며, 14세 때 동생 디에고를 모델로 처음 흉상을 만들었다. 18세 때 자코메티는 제네바 미술 공예학교에 들어갔다. 자코메티는 눈앞에서 몇 번의 죽음을 목격했다. 아이를 위해 제왕절개를 거부했던 여동생의 죽음을 보았다. 어제까지 함께 베네치아 여행을 즐겼던 병든 할아버지 이야기도 황당하다. 아침에 깬 자코메티는 죽어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때 자코메티는 깨닫는다. 죽음이란 늘 곁에 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폭격으로 잘린 팔 등 그는 죽음을 목격하고 강제로 성찰해야 했다. 그의 예술은 죽음이라는 한계에서 탄생했다.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베케트처럼 자코메티도 파리에 있었다. 그 무렵에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도 파리에 있었다. 세 사람은 양차 대전을 모두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쟁의 비극으로 아수라장이었던 파리라는 공간을 작가 베케트, 화가 자코메티, 철학자 사르트르는 같은 시기에 체험했다. 세 거장은 죽음의 심연을 극복하는 실존주의 문학(베케트)-미술(자코메티)-철학(사르트르)의 연대를 보여줬다. 이후 1953년 1월 파리 몽파르나스 바빌론 소극장에서 초연한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대성공을 거두었다.●기다리는 사람과 걸어가는 사람의 만남 나무 한 그루만 서 있는 텅 빈 무대에서 ‘고도’를 기다리는 고고와 디디가 있다. 처음 이 연극을 보았을 때 홀쭉이와 빵빵이 같은 개그맨이 나와서 만담하는 줄 알았다. 노숙자 복장을 한 괴이쩍은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고도가 온다는 확신도 없이, 두 사람은 그저 기다리지만 고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기다림 자체가 희망이다. 반세기를 기다렸건만, 고도는 오지 않고 다만 심부름꾼을 보낸다. 디디는 고도의 심부름꾼에게 “나를 만났다고 말해”라고 부탁한다. 두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버티기 위해 구두끈을 풀었다 다시 감기를 반복한다. 두 인물이 대체 몇 번이나 구두끈을 풀고 다시 묶는지 세어보다가 포기할 정도다. 어찌보면 이 한심한 방법이 아우슈비츠의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꿈꾸었던 생명들이 견뎌내는 방식이었을 것이다. 아니 전쟁이 아니더라도 삶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베케트는 고도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다만, 영어 ‘신’(God)이 무의식에 있어서 절대자를 생각하고 썼을 수도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희망이란, 숨은 신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이 연극이 세계에 널리 알려진 배경에는 자코메티가 있다. 1961년 파리 오데옹 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려 할 때 베케트는 자코메티에게 무대 디자인을 맡겼다. 두 거장은 밤새도록 나무 하나를 구부려도 보고, 꺾어도 보고, 부수고, 다시 세웠다. 목매달아 죽고 싶어도 매달리면 부러질 것 같은 연약한 나무를 구상했다. 나뭇잎이 한두 개 달린 앙상한 나무를 석고로 만들어 마치 뼈다귀 같은 느낌을 줬다. 자코메티와 베케트는 바로 이 지점에서 만났다. 석고로 만든 이 나무 하나로 자코메티는 열매 맺을 수 없는 죽은 나무의 비극을 미니멀리즘 무대 양식으로 표현했다.베케트가 무대 디자인을 자코메티에게 부탁한 까닭은 자코메티가 1년 전인 1960년에 발표한 ‘걸어가는 사람’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작품은 사진으로, 모작으로 하도 많이 봐 와서 별 감동이 없었다. 과연 저 삐쩍 마른 철사 같은 존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파리 퐁피두센터 5층에서 저 삐쩍 마른 이상한 작품이 몇 점 있어 한참을 봤지만, 부끄럽게도 모자란 서생은 철사인간의 깊이를 공감할 수 없었다. 뭔 뜻인지 몰랐다. 이번에 예술의 전당 전시회에서 이 작품 하나만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묵상하는 방에서 나는 사십여분을 응시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운명을 쏘아보는 듯 눈알이 크고 둥글었다. 원효의 눈부처를 보듯, 저 둥근 눈에 내 눈을 겹쳐 놓으니 가슴이 떨렸다. 대지를 버티는 두툼한 발, 해골 같은 머리를 촬영하면서 저 철사 같은 인간을 내 삶에 전이시켜 보았다. 183㎝ 키의 철사인간을 자코메티는 비정상적으로 늘어뜨리고 불필요한 것은 다 덜어냈다. ‘덜어냈다’는 표현이 대단히 중요하다. 죽음을 곁에 둔 인간이 덕지덕지 무엇을 품고 걸을 필요는 없었다. 자코메티 이전의 화가들은 ‘본 것’을 만들려 했지만, 자코메티는 ‘생각’을 작품으로 표현하려 했다. 동양철학에 깊이 영향을 받은 자코메티는 쓸데없는 것을 다 덜어낸 인간의 모습을 만들었다. 그는 선배 화가 피카소를 향해 엄청난 말도 했다. “난 피카소가 예술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천재더라.” 자코메티의 말은 무서운 자세를 보여준다. 예술은 명성이나 기술이 아니라, 깊이 있는 사상에서 탄생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피카소는 기술로만 그리는 천재(기술자)일 뿐, 사상을 가진 예술가는 아니라는 비판이다. 나는 피카소와 차원이 다르다는 뜻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라는 자코메티의 생각은 사뮈엘 베케트의 정신과 만난다. “우리는 왜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걸까요?” “그건 말이야, 인간이 더이상 갈 곳이 없기 때문이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기다리는 인간을 만든 베케트처럼, 자코메티는 걸어가는 인간을 말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걸 포기하는 대신에 계속 걸어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좀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순간을 경험한다. 비록 이것이 하나의 환상 같은 감정일지라도 무언가 새로운 것이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계속해서 걸어나가야 한다.”●걸어가는 고도가 만든 실존주의 철학 희망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죽음이 앞에 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기다리는 주인공은 베케트 자신이었다. 동지들이 죽어가는 전쟁 속에서 레지스탕스로 숨어 지내면서 그는 끊임없이 글을 썼다. 고독을 벗하며 쓰고 또 쓰면서 사망 전까지 그는 매년 작품을 발표했다. 자코메티, 베케트, 사르트르는 인간의 비극적인 죽음에서 절망하지 않고, 걷는 인간, 기다리는 인간, 실존주의 철학을 만들어냈다. 그들에게 파리는 창조의 공간인 동시에 죽음을 체험하게 한 공간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 나오는 두 등장인물의 모습은 요즘도 파리에 많은 집시, 난민, 노숙자의 모습이다. 젊은 시절 나치를 피해 도망쳐야 했던 베케트와 자코메티가 한때 저런 처지가 아니었을까. 꼭 전쟁이 아니더라도, 인간의 삶 자체는 무의미요, 전쟁의 아수라와 유사하지 않은가. 세 사람은 뜬구름 잡는 희망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살을 유도하는 염세주의를 자극하지도 않았다. 숨막히는 현실에서 오지 않는 희망을 기다리는 세 거장의 자세는 운명을 견디는 잔혹한 낙관주의라 할 수 있겠다. 이 땅에서는 식민지의 어둠 앞에서 쫄지 말고 “눈 감고 가라”고 했던 시인 윤동주, 독재 시대에 아마득한 혁명을 꿈꾸었던 시인 김수영, 제주도에서는 4·3의 비극에 숨죽이며 지금까지 많은 눈물을 삼켰던 이들의 태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저 철사인간이 바로 내 모습,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여 눈시울이 뜨끈해진다. 무의미한 세계에서 베케트는 금욕적인 수도승처럼 살았다. 사람을 만나지 않고 글쓰기와 연출에만 전념했던 그는 1969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시상식에 가지 않았다. 자코메티와 함께 잔혹한 낙관주의를 가르쳐 준 베케트는 1989년 12월 22일에 조용히 고도가 있는 곳을 찾아 까마득한 여행을 떠났다. 시인·숙명여대 교수
  • [주말 하이라이트]

    ■다큐 3일(KBS2 일요일 밤 10시 40분) KBS 2TV 가요 프로그램 ‘뮤직뱅크’가 지난달 칠레에서 진행한 월드투어 공연에서의 72시간을 카메라에 담은 ‘온다 꼬레아’ 편을 방영한다. ‘온다 꼬레아’는 스페인어로 ‘한류’라는 뜻이다. 공연장인 모비스타 아레나 1만 6000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케이팝 스타들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열광적인 환호를 보낸다. 이날은 14세 소년 이그나시오의 꿈이 이뤄진 날이기도 하다. 이그나시오의 엄마 산드라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란 아들이 케이팝을 들은 뒤로 밝아졌다며 인터뷰 내내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는다. ■살짝 미쳐도 좋아(SBS 토요일 밤 12시 25분) 걸그룹 에프엑스의 엠버와 이종격투기 선수 김동현이 출연한다. 엠버는 처음으로 3명의 교포 친구들과 함께 한집안에서 같이 생활하는 모습과 3년간 활동해 온 1인 방송인으로서의 일상을 선보인다. 김동현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분에 물 주기, 수제 치즈를 곁들인 건강식 만들기, 청소 후 향초 피우기 등으로 거친 파이터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 준다. ■부모 성적표(EBS1 일요일 밤 9시 5분) 자녀들이 부모의 점수를 평가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가족 리얼리티 프로그램 ‘부모 성적표’에서는 경북 칠곡군에서 아이돌을 꿈꾸며 연습하고 있는 18세 소년 두겸이 출연한다. 아버지는 아들과 단짝처럼 지내다가도 때때로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빠져 집안 분위기를 흐리게 만드는데…. 가족 토크를 통해 아버지의 사연을 들어 본다.
  • 만델라 前부인·인권운동가 ‘흑인 마마’ 위니 만델라 별세

    만델라 前부인·인권운동가 ‘흑인 마마’ 위니 만델라 별세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인 고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의 전 부인이자 정치적 동지인 위니 마디키젤라 만델라가 2일(현지시간) 숙환으로 별세했다. 81세. AFP통신은 이날 위니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고 전했다. 위니는 지병으로 이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었다. 그는 만델라 전 대통령의 두 번째 부인으로, 1958년부터 38년간 결혼 생활을 이어 갔다. 결혼한 지 5년 만에 만델라 전 대통령이 수감되면서 27년 동안 두 딸을 홀로 키우며 옥바라지를 했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당원으로서 남편을 대신해 ‘아파르트헤이트’(흑인 차별 정책)에 맞서 싸워 흑인들로부터 ‘마마’(엄마)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2011년 남아공판 노벨평화상인 ‘우분투상’을 받았다. 하지만 오명도 만만치 않다. 위니는 ‘비폭력운동’을 지향하던 만델라 전 대통령과 달리 타협 없는 급진주의적 성향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경호대로 활동했던 만델라연합축구클럽(MFC)이 1988년 경찰 정보원이라는 의심을 받은 14세 소년을 살해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았다. 1994년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자 그는 예술문화교육기술 차관에 임명됐지만 이듬해 명령불복종을 이유로 해임됐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수요 에세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처벌의 온도/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수요 에세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처벌의 온도/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주변에서도, 언론에서도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처벌이 터무니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성폭력 사건은 그 어느 범죄보다도 한 사람의 인생에 평생 씻기 어려운 상처를 준다. 한 가정을 송두리째 파괴시키기도 한다. 재범률이 높고 사회적 충격이 크기 때문에 피해 예방차원에서도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성폭력 사건 처벌에 있어서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판단하는 처벌의 온도와 사법부의 온도 차이는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온 나라가 펄펄 끓을 정도로 전 국민들의 분노를 일으킨 조두순 사건도 고작 12년을 선고받고 곧 출소를 앞두고 있다. 올봄 성폭력이 아닌 것으로 판결이 나서 죽음을 택한 부부의 자살 사건도 그렇고 14세 여중생과 40대 연예기획사 대표와의 성폭력이 무죄로 판결 난 사건도 그렇다. 일일이 다 세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강간의 성립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음주나 합의를 감경요인으로 적용하거나, 나아가 ‘남녀가 좋아하면 그럴 수 있는 것이지’라는 식으로 유독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관대한 관행과 문화가 원인이다. 이러다 보니 판결이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공감하는 태도를 보인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솜방망이 판결은 학습효과를 가져와 범죄 예방효과가 낮아지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2014년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지난 5년간(2007~2012) 유죄판결이 확정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추세와 동향‘에 의하면, 강간범죄에 대한 집행유예 비율은 2007년 30.4%에서 2012년 42.0%로 증가했다. 강제 추행에 대한 집행유예 비율도 2007년 44.0%에서 2012년 51.5%로 증가해 여전히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법정형과 양형 강화를 통한 엄중한 처벌이 요구되고 있음을 통계로도 보여 주고 있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의 예를 보면 올 1월, 체조선수들을 장기간 상습적으로 성폭행·성추행한 것으로 드러난 대표팀 주치의에게 징역 175년형이 선고됐다. 우리나라는 상상하지도 못할 형량판결이다. 2013년 현직에 있을 때 13세 미만인 의제강간 연령을 16살 미만으로 확대하려고 애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현행법은 만 13살 미만 아동과 성관계를 맺으면 무조건 성폭행으로 간주하나, 만 13살 이상부터는 위력에 의한 성관계임이 입증돼야 성폭행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회 법사위 문턱을 문이 닳도록 찾아다녔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신체발달로 13살인지 16살인지 육안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워 과잉 처벌 우려가 있다는 부정적 답만 들었다. 만일 그때 법이 개정됐다면, 해당 사건의 경우 사랑의 존재여부나 진술신빙성 등을 따질 필요도 없이 피고에게 유죄가 선고될 수 있었을 텐데 해결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자괴감은 아직도 남아 있다.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의 여성정책에 대한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심의회의가 열렸다. 4년마다 한 번씩 심의를 받는데, 이번이 벌써 7번째이다. 올해는 미투 운동 때문인지 강간죄 성립 등 성폭력 처벌에 관한 질의가 많았다. 한 위원은 “가해자에 대한 형사 처분이 없다면 성폭력 범죄가 폭로로만 끝날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따끔하고 정확한 지적이다. 언론에 먼저 공개되는 미투 운동도 사법부 수사와 판결 과정이 험난하고 신뢰가 안 가기 때문에, 사생활을 포기하고 국민들에게 여론에 먼저 호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한 처벌만으로 범죄를 예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법부의 아집을 탓하자는 것도 아니고 판결의 독립성을 침해하자는 것도 아니다. 단지 성폭력 사건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과 피해자에 대한 인권존중, 양성평등의식을 높이자는 것이다. 사법부 독립의 원칙이 국민의 신뢰로부터의 독립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통해 성폭행은 중대한 법 위반이라는 메시지가 온 사회에 공유돼야 한다. 그런 공유가 성폭력 없는 사회를 앞당기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성범죄의 재범을 예방하고 경각심을 주기 위한 사법부의 강력한 의지가 중요하고도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부터라도 국민의 상식과 사법부의 처벌 온도 차이를 하나씩 줄여 나가야 할 것이다.
  • [사설] 유소년 추월한 고령인구, 늙어 가는 대한민국

    지난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유소년(0~14세) 인구보다 처음으로 많아졌다. 노인 인구가 급증한다지만 재작년까지는 그래도 유소년 인구가 더 많았다. 생산가능인구도 줄기 시작했다. 어제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한국의 사회지표’가 그렇다. 그저께 발표한 통계청 자료도 맥락은 같았다. 지난해 혼인건수는 4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를 의미하는 ‘조혼인율’도 역대 가장 낮았다. 결혼 적령기 인구가 줄어든 탓이지만 청년 실업 등으로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사람이 그만큼 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무섭게 늙어 가고 있다. 고령화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다. 지난해 고령 인구는 전체 인구의 14% 가까이 차지했다.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는 이미 지난해부터 줄어들었다. 출생아 수는 계속 감소하고 수명은 꾸준히 연장되니 앞으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 자명하다. 미래 설계에 결혼과 출산을 넣지 않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많아진다. 저출산 원인은 많겠으나 경제적 요인이 가장 큰 부분이라는 사실은 불문가지다. 반듯한 직장을 구해 홀로서기도 힘든데, 결혼과 출산을 생각할 여력이 있겠느냐고 청년들은 반문한다. 실제로 취업난에 주거비, 양육비, 사교육비 등 어느 하나 녹록한 게 없다. 어렵사리 대학을 나와도 청년 실업자로 전락하고, 천정부지 뛰는 집값에 내 집 마련은 평생 불가능한 꿈이며, 아이를 뒤처지지 않게 키우려면 노후 대책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이다. 사교육을 유발하는 오락가락 불안한 교육정책은 출산 기피 현상에 기름을 붓고 있다. 지난해 초·중·고교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가 그렇다고 출산율 대책을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12년간 무려 126조원의 예산을 퍼부었으면서도 출산율 하락을 막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려면 합계출산율이 최소 2.1명은 돼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딴 세상 이야기다. 사회 존속을 위해 어떤 이유에서든 밀쳐 두거나 포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범정부 차원의 저출산 종합대책을 조만간 내놓겠다고 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추진 중인 제3차 기본계획을 전면 수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안이한 땜질 처방으로는 백약이 무효였다. 장기적 안목으로 결혼과 출산을 가로막는 빗장들을 하나씩 풀어 가는 작업에 국가적 명운이 걸렸다.
  • 노인>유소년… 늙는 한국, 총인구 2032년부터 꺾인다

    노인>유소년… 늙는 한국, 총인구 2032년부터 꺾인다

    작년 5144만명·증가율 0.39% 생산인구 15~64세 감소 시작 출산율 최저… 고령화 가속 미혼여성 절반 이상 ‘비혼족’ 지난해 우리나라의 노인 인구가 처음으로 유소년 인구보다 많아졌다. 지난해부터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저출산 기조가 지속될 경우 2032년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감소하고 2050년에는 5000만명 이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통계청이 22일 발표한 ‘2017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고령인구(65세 이상)가 13.8%로 유소년(0~14세)을 0.7% 포인트 추월했다. 주요 출산 연령대에서 결혼과 출산이 감소하고 의료기술 발달로 평균수명은 늘어났다.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지난해 13.8%에서 2030년 24.5%, 2040년 32.8%, 2060년에는 41.0%까지 늘어난다. 통계청 관계자는 “인구성장률은 2032년 0%를 기록한 뒤 2040년 -0.32%, 2060년 -0.97% 등으로 인구감소에 가속도가 붙는다”면서 “총인구는 2040년 5219만명에서 2050년에는 4943만명으로, 다시 2060년에는 4524만명까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총인구는 5144만 6000명, 인구성장률은 0.39%를 기록했다. 또한 우리나라 중위연령은 이미 2014년(40.3세) 40세를 넘어섰고, 2017년에는 42.0세를 기록했다. 2033년(50.3세)에는 50세를 넘어선다. 계층 상승 희망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자식 세대의 계층 이동 상승성에 대해 ‘낮다’고 응답한 비율은 54.5%로 2년 전보다 3.9% 포인트 올랐다. 자식 세대의 계층 상승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비율은 2013년 43.7%에 불과했지만 4년 만에 10% 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특히 스스로 상층이라고 답한 경우 61.1%가 본인 세대 계층 이동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했다. 반면 하층이라고 답한 경우에는 13.9%만 계층 이동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저출산 현상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첫 자녀를 출산한 여성의 평균 연령은 31.4세로 전년 대비 0.2세 상승했다. 또한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주 출산 연령대인 30대 초반의 출산율은 -12.4명으로 가장 크게 감소했다.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51.9%로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미혼 여성 중에서는 결혼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응답한 비율이 59.5%에 달했다. 이 밖에 질병이나 사고로 병치레를 하는 유병 기간을 제외한 기대수명은 64.9세로 조사됐다. 남자가 64.7세, 여자가 65.2세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세종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납치됐던 中청각 장애인, 25년 만에 가족과 만나다

    납치됐던 中청각 장애인, 25년 만에 가족과 만나다

    인신 매매단에 의해 납치됐던 한 청각 장애인이 25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19일(현지시간) 중국 언론 차이나뉴스 닷컴은 청각 장애를 가진 남성 유중량(39)이 허베이성 양좡 마을에 사는 가족과 재회하게 된 사연을 전했다. 사연에 따르면, 지난 1993년 당시 14세였던 유씨는 어머니와 함께 상하이로 여행하는 도중 기차역에서 혼자 길을 잃어 두 명의 인신매매범에게 납치당했다. 매매범들은 그에게 절도 행위를 하도록 시켰고, 이를 거부하면 폭행하며 위협했다. 다행히 유씨는 납치 며칠 뒤 어렵게 탈출에 성공했지만 집 주소 조차 제대로 몰라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이때부터 그는 길거리에서 노숙생활을 하며 10년을 보냈다. 이후 산시성 시안의 지역 복지관에 머물며 수화를 배운 그는 구두닦이를 하거나 폐지를 주우며 하루 4위안(약 700원)을 벌어 생계를 유지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힘겹게 생활해 온 유씨는 그러나 단 한번도 가족을 잊은 적이 없었다. 자신의 고향이 항저우라는 사실만 알았던 그는 어렵게 기억을 더듬어 고향 마을에 물밤이 많았다는 것을 떠올려 지난 13일 지역 신문사에 도움을 요청했다. 행방불명된 가족을 연결해주는 섹션을 운영 중이던 신문사는 유씨의 기억을 근거로 마을 범위를 좁혀나가 그의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사흘 후, 신문 기사를 본 한 여성이 자신의 동생이 25년 전에 실종됐다며 지역 경찰서에 찾아왔다. 경찰은 DNA 검사를 통해 유씨가 여성의 동생임을 밝혀냈다. 긴 세월 떨어져있다 처음 가족들을 만난 유씨는 누가 누구인지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청각 장애를 가진 유씨의 누나는 수화로 아버지를 소개했다. 유씨는 쇠약해진 아버지 앞에서 큰절을 올렸고, 가족 모두 감정에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소포 연쇄 폭발·학교 총기 난사…공포에 질린 美

    소포 연쇄 폭발·학교 총기 난사…공포에 질린 美

    같은 날에 연달아 5·6번째 터져 범인은 24세 백인… 자폭 사망 메릴랜드 5주 만에 총기 사고 17세 남학생, 학생 2명 향해 쏴 잇단 폭발물 사고와 총기 난사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20일(현지시간) 여섯 번째 정체불명의 소포 폭발물 사건이 일어났으며 플로리다 고교 총기사고 이후 5주 만에 또다시 학교 내 총기사고로 한 명이 숨지고 두 명이 크게 다쳤다.현지 매체들은 이날 오후 7시쯤 텍사스 오스틴의 기부 물품 가게인 굿윌센터에서 소포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고 전했다. 사고로 다쳐 병원에 후송된 30대 남성은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로 알려졌다. 텍사스 경찰 관계자는 “여섯 번째 폭발물은 엄밀히 말해 폭탄이 아니라 소이탄 장치 같은 것으로, 앞선 소포 폭탄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앞서 이날 오전 1시쯤 샌안토니오 북서부 셔츠의 페덱스 배송센터에서 다섯 번째 폭발물이 터져 직원 한 명이 경미한 부상을 당했다. 오스틴에서는 이 밖에도 지난 2일부터 18일까지 동일범의 소행으로 보이는 4건의 연쇄 폭발사건이 발생, 2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했다. 텍사스주 경찰은 이 연쇄 폭발 사건을 일으킨 용의자가 21일 새벽 경찰에게 쫓기던 끝에 자폭해 사망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용의자가 탄 차를 미행하다 오스틴 라운드록에서 포위했고, 그 직후 용의자가 차 안에서 폭탄을 터뜨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용의자는 24세 백인 남성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범행 수법이 갈수록 진화한다는 점이다. 18일 오스틴 남서부 주택가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20대 남성 2명이 주변에서 폭발물이 터지면서 크게 다쳤으며, 범행 용의자는 철사를 덫으로 놓는 ‘트립와이어’로 폭탄을 터트린 것으로 드러났다. 트립와이어는 보행자나 차량이 철사를 건드리면 기폭 장치가 작동되는 수동식 폭파 기법이다. 이전 세 차례 사건에선 주택 현관문 앞에 배달된 소포를 열었을 때 폭탄이 터졌다. 이후 3건은 일반 도로와 페덱스 배송센터, 상점 등에서 터졌다. 장소는 다르지만 소포라는 공통점이 있다. CNN은 “미국 사회가 ‘택배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면서 “수사당국은 사회에 불만을 품은 테러범이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이날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70마일(약 110㎞)가량 떨어진 메릴랜드주 렉싱턴파크의 그레이트 밀스 고교에서 한 남학생이 다른 학생 2명을 향해 반자동 권총을 발사, 범인은 그 자리에서 숨지고 두 명의 학생이 다쳤다. CNN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오스틴 와이엇 롤린스(17)가 수업 시작 15분 전인 이날 오전 7시 45분쯤 복도에서 16세 여학생과 14세 남학생에게 글록 반자동 권총을 발사했다. 총상을 입은 여학생은 위독하고 남학생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보안담당관인 블레인 개스킬은 총격 시작 1분도 안 돼 롤린스와 총격전을 펼쳐 추가 인명 피해를 막았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9층 빌딩 철근에 매달려 위험천만 셀카…14세 소녀 논란

    9층 빌딩 철근에 매달려 위험천만 셀카…14세 소녀 논란

    누구나 보면 감탄(?)할 만한 사진을 찍으려는 욕심에 무모한 곳에 오른 여학생이 경찰에 구조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최근 벌어진 일이다. 나이만 14세로 공개된 문제의 여학생은 지독한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중독자다. 여학생은 특히 남들은 찍지 못하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길 즐겼다. 평범함에 지루함을 느끼고 충격적인 사진을 찾던 여학생은 위험천만 상황을 카메라에 담기로 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바르셀로나의 9층 건물이다. 이 건물 맨 위층엔 건물의 들보 역할을 하는 철근이 외부로 돌출돼 있다. 여학생은 친구와 함께 건물에 올라 철근에 매달렸다. 9층 건물 위에서 철근을 철봉 삼아 매달려 있는 여학생은 예상대로 위험천만한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철근에서 건물옥상으로 넘어가야 하는 데 힘이 부족했던 것. 함께 간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 역시 여학생을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긴급상황이 발생했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한 뒤에야 여학생은 겨우 구조됐다. 팔에 약간의 상처를 입었을 뿐 큰 부상은 없었지만 여학생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상태였다. 바르셀로나 경찰은 "위험한 곳에서 사진을 찍는 건 곧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이라며 자제를 당부했다. 미국의 데이타 분석기관 프라이소노믹스(Priceonomics)에 따르면 2014년 지금까지 위험한 셀카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이 가장 많은 국가는 인도(1252명)다. 스페인에선 단 4명이 사망했을 뿐이다. 하지만 인구비율로 보면 스페인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인구 100만 명당 셀카 사망자 비율 1위는 포르투갈(0.2명), 2위는 스페인(0.085명)이었다. 사진=바르셀로나 경찰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오늘도 옌블리”...김원준, 판박이 딸과 행복한 일상

    “오늘도 옌블리”...김원준, 판박이 딸과 행복한 일상

    가수 김원준이 딸과의 행복한 일상을 공개했다.지난 19일 김원준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예은이는 우리집 청소 요정. 예은 아빠는 근무 중에도 옌블리 영상”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 및 동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김원준의 딸이 물티슈로 집을 청소하는 모습이 담겼다. 작은 손으로 집을 청소하려는 모습이 귀여운 매력을 돋보이게 했다. 또한 김원준을 바라보며 옹알이를 하는 모습이 담겨 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했다. 한편, 지난 2016년 14세 연하 검사와 결혼한 김원준은 지난해 1월 20일 딸을 얻었다. 사진=인스타그램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내륙 위치한 남원, 곳곳에 왜구가 할퀸 상흔 … 황산엔 승전의 역사

    [서동철 논설위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내륙 위치한 남원, 곳곳에 왜구가 할퀸 상흔 … 황산엔 승전의 역사

    전북 남원 시내에서 순창으로 방향을 잡아 시내를 막 벗어나면 오른쪽으로 널찍한 절터가 나타난다. 만복사가 있던 자리다. ‘춘향가’의 몇몇 고전소설 판본에는 이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남원관아로 행차하기에 앞서 만복사를 찾아 노승들이 춘향을 위해 재를 올리는 모습을 구경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장면은 김연수제 판소리 ‘춘향가’에도 있다. 춘향을 월매가 만복사에 시주하고 불공을 드린 공덕으로 낳은 자식으로 그리고 있다.잘 알려진 대로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은 ‘금오신화’의 한 편으로 ‘만복사저포기’를 남겼다. 저포(樗浦)는 윷놀이다. 양생(梁生)은 부처님과 내기를 해서 이긴 다음 아름다운 처자를 만나 이승의 3년에 해당하는 꿈같은 사흘을 지내고는 헤어진다. 이 처자는 왜구에 죽은 혼령으로, 이후 양생도 장가들지 않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살았다는 줄거리다.소설 속 여주인공이 부처님에게 바친 축원문에는 당시 사정이 담겨 있다. ‘지난번 변방의 방어가 무너져 왜구가 쳐들어오자, 싸움이 눈앞에 가득 벌어지고 봉화가 여러 해나 계속되었습니다. 왜적이 집을 불살라 없애고 노략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동서로 달아나고 좌우로 도망쳤습니다.…그런데 날이 가고 달이 가니 이제는 혼백마저 흩어졌습니다.’지금 만복사에 가면 텅 빈 마당에서 높이 1.6m의 당당한 석제 불좌(佛座)를 만날 수 있다. 소설에서도 양생이 불좌 뒤에 숨어 아름다운 처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대목이 나온다. 아마도 이 불좌가 아닐까 싶다. 매월당과 시대를 초월해 같은 공간에서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최척전’을 지은 현곡 조위한(1567∼1649)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 휘하에서 종군한 인물이다. 이 소설은 최척과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여성 옥영의 사랑이야기를 뼈대로 정유재란 당시 남원이 왜군에 함락됨에 따라 가족이 붙들려 가거나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과 기적적인 재회를 그렸다. 소설 속에서 최척은 만복사에서 가까운 동네에 산다. ‘춘향전’이 조선 후기 남원의 사회상을 드러내고 있다면 ‘만복사저포기’와 ‘최척전’은 각각 조선 초기와 중기 왜적의 침입에 따른 살육과 파괴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남원은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지리산 기슭이다. 왜구의 세력은 단순한 해적 수준을 크게 넘어섰다. ‘만복사저포기’가 묘사한 대로 왜구는 고려말, 조선초에 가장 극성을 부렸다. 특히 14세기 후반기 피해가 가장 커서 고려 멸망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역사학계는 고려시대 왜구의 발생을 크게 두 시기로 나누고 있다. 1223년 현재의 김해인 금주에 나타난 것을 시작으로 1265년까지 10차례 이상 침입했는데, 대부분 선박 2~3척 규모였다. 왜구는 1350년부터 연안뿐 아니라 내륙에도 출몰한다. 해안 조창에서 걷은 세곡을 수도로 나르는 조운선이 공격 목표가 되자, 고려가 세곡 운송의 상당 부분을 육운(陸運)으로 전환한 것이 이유의 하나가 됐다. 대형 선단을 이룬 왜구는 개경이 지척인 강화 교동도에도 출몰했고, 조정은 천도를 고민하는 단계에 이른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왜구는 태조가 즉위한 뒤 5년 동안에만 53차례나 침입했다. 황산대첩비는 고려시대 왜구의 남원 침입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런 대목이 보인다. ‘신우(辛禑) 6년(1380) 경신 8월, 왜적의 배 500척이 진포에 배를 매고 하삼도에 들어와 연해 주군(州郡)을 도륙하고 불살라서 거의 없어지고, 인민을 죽이고 사로잡은 것도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조선은 우왕을 신돈의 자식이라 하여 ‘신우’라 했다. 왜구가 충청·전라·경상도를 휩쓴 참상은 ‘만복사저포기’와 매우 닮아 있다. 당시 고려는 금강 하구 진포에 정박한 왜구의 선단을 최무선 장군의 화포로 모두 불사르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자 퇴로를 잃은 왜구는 지금의 충북 옥천과 경북 상주, 경남 함양을 떠돌며 살인, 약탈, 방화를 자행한다. 이어 남원으로 몰려들어 운봉 인월역 황산에 진을 친 왜구를 당시 양광·전라·경상 삼도도순찰사 이성계가 섬멸한 것이 황산대첩이다. 황산대첩비는 1577년(선조 10) 이 싸움의 현장에 세운 것이다. 만복사는 남원 시내 서쪽에 자리잡고 있지만, 황산대첩비를 찾으려면 자동차를 타고 시내에서 동쪽으로 20분쯤 달려야 한다. 이성계가 어린 두목 아지발도(阿只拔都)가 이끈 왜구를 무찌른 현장이다. 당시 지명 인월(印月)은 이후 인월(引月)로 바뀌었다. 부처의 교화가 세상 곳곳에 비친다는 월인천강(月印千江)에서 따온 듯한 불교적 이름이 황산대첩 당시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어두운 밤 보름달을 끌어올려 왜구를 물리쳤다는 설화 속 의미로 대체됐다. 황산대첩비는 일제강점기 수난을 겪는다. 조선총독부는 ‘학술상 사료로 보존의 필요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 존재가 현 시국의 국민사상 통일에 지장이 있는 만큼 철거함은 부득이한 일’이라면서 ‘서울로 가져오기엔 수송의 곤란이 적지 않고, 그 처분을 경찰 당국에 일임하는 바’라고 했다. 결국 1945년 1월 폭파됐고, 지금의 비석은 1957년 복원한 것이다. 그러니 대첩비는 받침돌과 지붕돌만 옛것이다. 하지만 파비각(破碑閣)에 비석 조각이 남아 있으니 역사적 의미는 훨씬 커졌다. 100m 남짓 떨어진 곳에는 어휘각(御諱閣)이 있다. 이성계는 대첩 이듬해 함께 싸운 원수와 종사관들의 이름을 이곳 바위에 새겼다. 일제는 이 글씨도 정으로 쪼아내 지금은 알아볼 수가 없다. 황산에 승전의 역사가 있다면 남원 시내에는 패전의 역사가 곳곳에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곡창 호남에 진입하지 못했다. 이를 패전의 원인으로 지목한 왜군은 정유재란을 벌이면서 전라도를 먼저 점령하고 북진하는 계획을 세웠다. 우희다수가(宇喜多秀家)가 이끈 왜군 5만 6000명은 1597년 8월 13일 남원을 공격했다. 남원성은 전라 병사 이복남과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000명 군사가 지키고 있었다. 남원 백성들까지 모두 1만명이 합심해 싸웠지만 모두 순절하고 말았다. 왜란이 끝난 뒤 시신을 합장하고 1612년(광해군 4) 사당을 세웠다. 지금의 만인의총은 옛 남원역 근처에 있던 것을 1964년 옮긴 것이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을 남원성의 흔적은 시내에서 만인의총으로 가는 중간에 일부가 남아 있다. 옛 남원읍성의 서북쪽 모서리에 해당한다. 시내 남문로 골목 안에 있는 관왕묘도 왜란의 흔적이다. 남원싸움 이듬해 명나라 장수 유정은 대군을 이끌고 왔는데, 1599년 자신들의 수호신인 관우의 사당을 지었다. 성 동문 밖에 있던 것을 174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관왕묘는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담 너머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글 사진 dcsuh@seoul.co.kr
  • 컬러사진으로 되살아난 아우슈비츠 수용소 14세 소녀

    컬러사진으로 되살아난 아우슈비츠 수용소 14세 소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폴란드에 세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됐던 당시 14세 폴란드 소녀의 사진이 컬러로 복원됐다. 앳된 얼굴의 사진 속 주인공은 1943년 당시 14살이었던 유대인 소녀 크와카다. 크와카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인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수많은 희생자 중 한명이었다. 크와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용된 지 불과 3개월 만에, 14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이후 그가 수용소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공개되면서 아우슈비츠 10대 희생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기록됐다. 화제가 된 크와카의 사진은 당시 아우슈비츠에 함께 수감됐던 또 다른 폴란드인이 찍은 것으로, 사진 속 어린 소녀의 눈가는 눈물로 얼룩져 있고 입술과 얼굴 곳곳에서 폭행으로 인한 상처를 볼 수 있다. 아무렇게나 잘려진 머리카락과 두려움과 분노로 가득 찬 표정이 당시의 참담했던 심정을 대변하는 듯 보인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75년 전 소녀의 사진에 색깔을 불어넣은 사람은 브라질의 예술가인 마리아 아마랄이다. 올해 22세인 아마랄은 디지털 컬러리스트로 활동하며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과 세계적인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 체 게바라, 그리고 마틴 루터 킹 목사 등 유명 인사들의 흑백사진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아마랄은 역사의 안타까운 희생양이 된 소녀를 기리고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지난해부터 크와카의 사진에 색을 입히기 시작했고, 그 결과 당시의 참담한 현실을 눈앞에서 보는 듯 더욱 생생한 크와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75년 전 크와카의 사진을 찍었던 동료 수감자이자 사진작가였던 빌헬름 브라세(1917~2012)는 2005년 다큐멘터리에서 “(사진을 찍었던 당시) 그녀는 울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진을 찍기 전 그 소녀는 눈물도, 입술에서 흘렸던 피도 말라붙어 있는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현재 크와카의 사진은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손성진 칼럼] 대통령의 흑역사와 개헌

    [손성진 칼럼] 대통령의 흑역사와 개헌

    논란이 있지만 이승만의 독재는 후대 대통령 독재의 원형이 됐다. 국회의원들이 타고 있는 버스를 통째로 연행하고 정적 암살을 자행하다 ‘발췌 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을 통해 12년 독재를 누린 끝에 이승만은 이국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심지어 국어의 어원을 무시하고 한글맞춤법을 멋대로 바꾸려 했던 일은 대통령 권한 남용의 표본이었다. 한국의 대통령사(史)는 독재와 부패의 흑역사다. 그들의 마지막도 하나같이 이승만처럼 비극적이다. 박정희의 18년 독재는 더 설명할 것도 없다. ‘10월 유신’을 감행해 종신독재를 꿈꾸다 총탄에 쓰러졌다. 재벌 기업들로부터 수천억원씩 뇌물을 받은 전두환, 노태우는 최초로 검찰의 포토라인에 섰다. 가족의 뇌물수수 의혹에 자살이란 비극적 선택을 한 노무현도 아직 그 의혹을 완전히 벗지 못했다. 박근혜는 국정농단과 뇌물 수수로 수감돼 있다. 그리고 어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또 업보처럼 검찰청에 불려 나왔다. 100억원대 뇌물 수수 혐의다. 반세기 만에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이룬 한국 정치의 흑역사도 세계 정치사에 유례가 없다. 외국인들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정치 역정이다. 비리 없는 정치가 세상 어디에 있겠느냐만 다섯 명이 거의 연속적으로 처벌을 받는 현실은 참담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말 한마디, 손가락 까딱만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을 것 같은 권력. 권력은 일종의 중독성 마약이다. 실제로 권력을 잡으면 도파민이라는 중독성 신경전달물질이 생성된다고 한다. 만인지상(萬人之上)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최고 권력은 어떤 자제력도 잃게 할 것이다. 국가를 자신과 동일시한 루이 14세나 전체주의 독재자 히틀러나 무솔리니도 그런 범주다. 권력집착증은 일종의 병인 것이다. 절대 권력은 결국에는 민중의 힘에 의해 무너진다. 프랑스혁명이 그렇고 중국의 신해혁명도 절대왕정에 대한 민중의 저항이었다. ‘절대 부패한 절대 권력’은 절대 파멸하게 돼 있다. 역사의 진리다. 조선의 500여년 왕정을 유지했던 것은 그나마 왕권을 견제하는 대간(臺諫) 제도가 활성화된 덕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 대간제도가 쇠퇴하면서 조선도 멸망을 맞았다. 조선의 위기는 1800년 정조 사망 후부터 찾아왔다. 세도정치가 만연해 권력은 왕과 왕에 빌붙은 세도가들에게 집중됐다. 대간의 언로는 막혔고 망국을 재촉했다. 대통령의 흑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권력의 비대화를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조선의 대간제도를 능가할 권력 감시기관과 제도다. 감사원의 독립성 제고, 대통령도 예외 없는 공수처 제도 도입 등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문고리 3인방’과 같이 권력에 기생하는 세력은 더 큰 병폐다. 그들에게 철퇴를 내릴 수단이 급하다.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킬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바로 개헌이다. 제헌절 70주년을 맞은 올해 개헌 논의는 무르익고 있다. 국민 주권을 촛불집회를 통해 확인했듯이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도 높다. 개헌의 의미는 대통령들의 잇단 비리로 더 커졌다.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 축소에 있다. 청와대 개헌안이 나왔지만 폭넓은 공론화가 부족했다. 부패를 조장하는 무소불위적 권한 축소는 미흡하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유신헌법이 갈봉근 등 몇몇의 헌법학자들에 의해 밀실에서 만들어진 점을 유념해야 한다. 헌법 개정안 발의권자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지만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투표 절차가 있지만 많은 국민의 지지를 미리 반영하는 절차도 긴요하다. 민주화의 완성에는 진통이 따르고 시간이 걸린다. 영국 민주주의의 주춧돌인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는 800년 전에 만들어졌다. 우리의 민주주의와 헌법의 역사는 이제 70년이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지만 졸속 헌법은 두고두고 멍에가 될 수 있다. 그럴수록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국민의 대의기관이기 때문이다. sonsj@seoul.co.k
  • 두 살 딸에게 금메달 선물한 엄마 스노보더

    두 살 딸에게 금메달 선물한 엄마 스노보더

    의족 차고 시합…2관왕에 도전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 엄마 스노보더가 20개월 된 딸에게 올림픽 금메달을 선사했다.브레나 허커비(22·미국)가 12일 강원 정선 알파인센터에서 열린 평창동계패럴림픽 스노보드 크로스 하지장애 1등급(LL1) 결승에서 에이미 퍼디(미국)를 누르고 챔피언을 꿰찼다. 생애 첫 패럴림픽의 첫 메달을 금빛으로 장식한 그는 트레이드 마크인 보랏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퍼디, 동메달리스트 세실 에르난데스(프랑스)와 기쁨을 나눴다. 일찍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I)의 수영복 화보에 장애인 선수로는 처음 등장할 만큼 스타성을 인정받았다. 주관 방송사인 미국 NBC가 대회 예고편에 기용했고 주한 미국대사관에서도 그를 홍보 포인트로 삼았다.체조로 꿈을 키우다 14세 때 골육종에 걸려 왼쪽 다리를 잘라냈다. 부모와 함께 새롭게 정을 붙일 스포츠를 찾다가 스노보드가 눈에 들어왔고 의족을 찬 채 보드를 익혔다. 2015년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이름을 알린 뒤 이듬해 딸을 낳았다. ‘나비처럼 날아서 허커비(bee·벌)처럼 쏜다’를 좌우명으로 내세운다. 두 차례의 월드컵에서 크로스와 뱅크드 슬라롬 금메달을 땄던 터라 패럴림픽 2관왕 후보로 꼽혔다. “평창에서 금메달 2개로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다”던 그는 오는 16일 뱅크드 슬라롬에서 2관왕 도전에 나선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다리를 잃은 오웬 픽(26·영국)은 남자 하지장애 2등급(LL2) 16강전에서 탈락했다. 18세이던 2010년 1월 아프간 참전 중 폭발물에 무릎 아래를 크게 다쳤다. 영국에서 긴 치료를 받다가 결국 이듬해 8월 두 다리를 절단했다. 병실에 누워 텔레비전으로 스노보드 중계를 보다 빠져들었고, 미국 콜로라도 여행 중 처음으로 보드를 탄 그는 원래 뱅크드 슬라롬이 주 종목이다. 한편 남자 LL2 16강전 도중, 출발 순간을 감지하는 센서가 고장 나 수리하느라 경기가 20분 넘게 중단됐고 급기야 심판위원이 중간에 서서 양쪽 출발 게이트에 고무줄을 묶어 잡아당겼다가 놓는 ‘슬링샷’ 스타트를 하는 웃지 못할 장면이 연출됐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즉흥 베드신 요구하는 현장…노출신 가이드라인 세워야

    김기덕 감독이 영화 촬영을 핑계로 여성 배우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행사한 일이 드러나면서 선진국처럼 노출 장면이나 베드신 촬영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영화산업 규모가 2조원을 넘어섰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노출 장면 촬영을 위한 원칙이나 가이드라인이 전무하다. 때문에 19세 이상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인권침해, 성폭력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배우 이상아의 경우 임권택 감독의 영화 ‘길소뜸’(1986) 촬영 당시 14세에 불과한 미성년자였지만 사전 협의 없이 진행된 전라 노출신 촬영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2014년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당시 노출신을 거부하자 감독님이 ‘돈 많으면 필름값 다 물고 가도 된다’고 말했다”며 어쩔 수 없이 촬영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배우 문소리 역시 시나리오에 없던 노출 장면을 갑자기 요구해 이를 거부하고 현장을 떠났던 일화를 밝힌 적 있다. 영화 ‘전망 좋은 집’의 배우 곽현화와 감독 이수성은 노출 장면 촬영 당시 벌어진 갈등을 둘러싸고 최근까지 법정 공방을 벌였다. 미국에선 배우·방송인조합(SAG·AFTRA)의 영화계약서를 기준으로 삼아 노출 관련 조항을 엄격하게 정하고 있다. 노출신이나 베드신 촬영 시 제작사는 배우에게 첫 번째 인터뷰나 오디션에 앞서 노출 장면이 있음을 통보해야 하고, 배우와 합의한 뒤 이와 관련한 별도의 특수 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 또 촬영을 할 때에도 신체 주요 부위를 가릴 수 있는 장치를 쓰도록 하고, 사전에 서면 동의서 없이 영화 촬영 이외에 스틸컷을 찍어서도 안 된다. 전국영화산업노조 관계자는 “영화 촬영 과정에서 암묵적, 관행적으로 일어나는 성폭력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박사는 “국내에서는 감독의 권한이 강한 편이라 계약서가 있어도 촬영 현장에서 번복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미투 운동을 계기로 여성 배우들이 제작 과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내고, 영화인들이 모여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핵잼 라이프] “조혼·성폭력 그만” 수백만명 마음 움직인 걸그룹의 노래

    [핵잼 라이프] “조혼·성폭력 그만” 수백만명 마음 움직인 걸그룹의 노래

    에티오피아 북서쪽 바히르다르의 한 학교에 학생 수십 명이 몰려들었다. 최근 에티오피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걸그룹’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예냐’라고 불리는 이 그룹은 2012년부터 에티오피아에서 활동해 왔다. 암하라(에티오피아 공용어)어로 ‘우리의 것’을 뜻하는 예냐는 열광하는 많은 팬 앞에서 익숙하게 노래하고 춤춘다. 언뜻 보면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걸그룹 같지만, 사실 이들이 그룹을 구성하게 된 계기 및 이들의 노래와 춤에는 결코 가볍지 않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 예냐는 노래와 춤, 드라마 등을 통해 미성년자 결혼제도 및 성희롱과 폭력, 그리고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실제로 이곳에서 자라는 소녀 5명 중 1명은 15세가 되기 전에 어른들의 손에 떠밀려 결혼한다. 소녀들은 결혼과 동시에 고립되고, 사회적인 활동과는 전혀 동떨어진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폭력에도 노출된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에티오피아의 소녀들을 위해 예냐가 나섰고, 이미 850만명이 넘는 에티오피아인이 이들의 노래와 메시지를 접한 뒤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최근 예냐의 공연을 관람한 14세 소녀는 “예냐는 우리에게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사람들은 여자아이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그들의 생각은 예냐에 의해 달라졌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인에 의한, 에티오피아를 위한’을 모토로 하는 예나의 결성 뒤에는 영국의 국제 원조 기구인 국제개발부(DfID)의 도움이 있었다. 영국 국제개발부는 2011년부터 몇 년간 예냐의 활동자금을 지원했지만, 지난해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히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하지만 예냐는 포기하지 않았다. 예나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디렉터인 가야트리 버틀러는 “예냐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브랜드 스폰서십과 라디오 쇼, 광고 수익 및 음원 판매를 모색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매우 포괄적인 방식으로 소녀들을 위한 장벽을 무너뜨리려는 브랜드”라고 소개했다. 가디언은 “예냐는 사회 관례와 논쟁적인 이슈를 전하기 위해 스토리 라인과 노래 가사를 사용하는 5명(현재 1명은 출산휴가 중)의 젊은 여성들”이라면서 “음악뿐만 아니라 드라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에티오피아 소녀들의 현재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소개했다. 한편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동부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지만 여전히 성차별이 심각한 국가로 꼽힌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7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에티오피아는 총 144개국 중 115위를 차지했다. 2015년 후반부터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으며, 지난 2월에는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 하는 등 불안한 정세가 이어지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亞위안부 “동물 취급했던 日, 제대로 사죄·배상해야”

    亞위안부 “동물 취급했던 日, 제대로 사죄·배상해야”

    “일본군에게 끌려가 강간과 폭행을 당하는 등 원치 않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런 만행을 사실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세계여성의날인 8일 서울 영등포구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최로 열린 ‘제15차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 참석한 중국의 첸리안춘(92) 할머니는 “어린 나이에 낮에는 허드렛일을 하고, 밤에는 매일 10명이 넘는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며 눈물을 훔쳤다. 중국 하이난 성의 작은 마을에 살던 그는 14세의 나이에 일본군에 납치됐다. 그는 “일본군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난 뒤 아들을 낳았다”며 “마을 사람들은 내 아들을 일본군 자식이라고 손가락질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일본 정부는 피해자에게 반드시 사죄, 배상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을 겪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인도네시아의 누라이니(88) 할머니는 “초경도 시작하지 않은 13살에 일본군에 끌려가 성 노예 생활을 했다”며 “일본이 패망한 뒤 마을로 돌아왔지만 아버지조차도 부끄럽다며 한탄하셨다”며 울먹였다. 이어 “일본군이 우리에게 한 짓에 대해서 사죄받고 싶다. 나를 짐승처럼 취급했던 일본의 사죄를 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도네시아의 자헤랑(87) 할머니는 12세의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하고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그는 “나를 동물 취급했던 모든 행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고 싶다”며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원한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 참석한 길원옥(90) 할머니는 자신이 평소에 즐겨 부르던 노래 ‘남원의 봄 사건’을 열창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길 할머니는 지난해 생애 첫 음반 ‘길원옥의 평화’를 발표했다. 윤미향 정대협 공동대표는 기조발제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은 피해당사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했을 때 비로소 그 첫발을 내디딜 수 있다”면서 “이번 15차 아시아연대회의를 통해 다시 한번 우리의 제언을 일본 정부에 요구할 것을 제안한다”고 강조했다. 1992년 서울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아시아연대회의는 아시아 각국의 피해자와 활동가들이 모여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행동을 결의하고, 국제사회를 향한 요구를 발표해 왔다. 이번 회의에는 한국,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동티모르, 대만, 일본, 미국, 뉴질랜드, 독일 등의 생존자와 활동가들이 참가해 일본군의 만행을 비판했다.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17개월 딸과 함께… 美스노보더 허커비, ‘금메달만 10개’ 加크로스컨트리 매키버

    17개월 딸과 함께… 美스노보더 허커비, ‘금메달만 10개’ 加크로스컨트리 매키버

    61세 日아이스하키 골리 후쿠시마 사고 전 아마 축구 골키퍼로 활약17개월 딸을 데려오는 엄마 스노보더에 61세 아이스하키 골리(골키퍼), 메달을 13개나 수집한 터줏대감까지. 평창동계패럴림픽에 참가하는 570명의 선수 모두 애달프거나 감동적인 사연을 품고 있다. 그중에서도 브레나 허커비(22·미국)는 단연 돋보인다. 일찍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의 화보에 장애인 선수로 처음 등장했다. 늘 월드컵 대회를 17개월 딸과 함께 도는데 좀처럼 보기 드문 보라색 머리로도 시선을 잡는다. 주관 방송사인 미국 NBC가 대회 예고편에 기용했고 주한 미국대사관에서도 그를 홍보 포인트로 삼았다. 패럴림픽은 생애 첫 출전이지만 두 차례 월드컵 금메달을 땄던 터라 2관왕 후보로 꼽히고 있다. 체조선수의 꿈을 키우다 14세 때 골육종에 걸려 왼쪽 다리를 잘라냈다. 정 붙일 운동을 부모와 함께 찾다가 스노보드가 눈에 들어왔고 의족을 찬 채 보드를 익혔다. 2015년 세계선수권을 우승하며 이름을 알린 뒤 이듬해 딸을 낳았다. ‘나비처럼 날아서 허커비(bee·벌)처럼 쏜다’를 좌우명으로 내세운다. 허커비는 “평창에서 금메달 2개로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다”고 벼르고 있다. 일본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골리 후쿠시마 시노부는 올해 61세다. 20대 초반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기 전까지 아마추어 축구팀 골키퍼로 활약했다. 휠체어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1998년 아이스하키에 입문해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대회부터 출전했다. 아들뻘 동료들은 후쿠시마를 “아버지 같은 존재”라며 따른다. 대회 ‘레전드’로 통하는 브라이언 매키버(39·캐나다)는 네 차례 패럴림픽에 참가해 메달을 13개(금 10, 은 2, 동메달 1개)나 수집했다. 크로스컨트리스키 10㎞ 클래식 5연패를 정조준한다. 세 살 때부터 스키를 탔으나 19세 때 병으로 시력을 잃었다.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에도 출전할 뻔했으나 막판에 석연찮은 이유로 매키버 대신 비장애인 선수를 선발하자 대표팀에 거센 비난이 쏟아졌던 일로 유명하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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