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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뭐, 아버지…” 성폭행으로 붙잡힌 30대 남성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양녀라고 해도 그런데 친딸을 어떻게 성폭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말 ×××만도 못한 ×이지” 중국 대륙에 30대의 한 남성이 자신의 친딸을 성폭행한 혐의로 붙잡혀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중국 동남부 안후이(安徽)성 페이시(肥西)현에 가오뎬(高店)향 살고 있는 30대 후반의 중년 남성이 자신의 친딸을 2차례에 걸쳐 성폭한 혐의로 붙잡혀 주변 사람들을 경악하게 하고 있다고 안휘시장보(安徽市場報)가 최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희대의 파렴치 사건’의 장본인은 올해 37살의 량(梁)모씨.그것도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아내와 두딸이 둔 엄연한 가장이다. 성폭행 사건은 지난해 8월 하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아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인 어느날,집에는 중학교에 다니는 14살짜리 큰 딸만 지키고 있었다. 짐승으로 돌변한 량은 이때를 놓칠 세라 몰래 살금살금 딸의 방안으로 들어갔다.당시 딸은 아버지가 들어오는 것도 모른 채 책상에 앉아 온통 공부에 여념이 없었다. 방에 들어간 그는 딸의 뒤에서 껴안고는 곧바로 침대에 눕힌 뒤 몸을 만지는 등 성폭행을 자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량의 ‘필생의 거사’는 성공하지 못했다.큰 딸이 심하게 반항하고 마침 귀가한 둘째 딸이 이를 보고 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결국 미수에 그쳤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그가 아니었다.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량은 며칠 후,큰 딸이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알고 문을 열어주는 틈을 타 성폭행을 자행했다.이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리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비밀은 없었다.충격을 받고 집을 나갔던 큰 딸이 나중에 공안(경찰)기관에 붙잡혔을 때 아버지의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결국 량씨가 붙잡혔다. 그는 경찰서에서 “나는 개돼지보다도 못한 놈”이라며 “나의 지나간 과오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의 눈물은 가식으로 가득찬 ‘악어의 눈물’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것이 두려워한 큰 딸이 공안에 가서 아버지의 성폭행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자,감옥에 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 그가 성폭행한 사실을 완전히 번복한 탓이다. 페이시법원은 그러나 량의 범죄가 사회 악영향을 끼치는 죄질이 워낙 나쁜 점을 감안,보충 증거를 확보해 그에게 ‘겨우’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온라인뉴스부
  • 엽기 副장관

    50대 중년 남성이 인터넷에서 만나 성적(性的)인 대화를 나눴던 14세 소녀는 알고 보니 수사관이었다. 미국 플로리다주 수사당국은 5일 브라이언 도일(55) 국토안보부 부장관을 아동포르노 유포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국토안보부는 이날 도일 부장관을 휴직 처리하면서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토안보부의 서열 4위인 도일 부장관은 플로리다주 이송을 앞두고 메릴랜드 몽고메리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가 수갑을 찬 모습이 방송에 중계되면서 큰 충격을 던졌다. 도일 부장관은 지난달 14일 인터넷 채팅에서 14살 소녀를 만났다. 그는 소녀에게 몇개의 아동포르노 동영상을 보내고 성적인 행동을 주문했다. 또 소녀에게 ‘화상 채팅’을 하자면서 ‘웹 카메라’를 사도록 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그가 철석 같이 믿었던 소녀는 인터넷 범죄를 수사하고 있던 여성 요원이었다. 그녀는 플로리다주에서 함정수사를 벌이고 있었다. 도일 부장관은 소녀에게 자신의 이름과 직장명인 국토안보부뿐만 아니라 사무실과 정부가 제공한 휴대전화 번호까지 알려줬다. 그는 소녀에게 여러장의 사진을 보냈으며 이후 소녀로 가장한 수사관과 전화통화까지 나눴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월드 그래픽 뉴스] 아프리카 아동 280만명 에이즈

    [월드 그래픽 뉴스] 아프리카 아동 280만명 에이즈

    아프리카의 14살 이하 어린이 280만명이 에이즈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치료제가 부족해 어른들만 혜택을 볼 뿐 어린이는 20명 중 1명만 치료를 받는다고 뉴욕타임스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자궁에서 감염돼 태어난 유아의 절반이 치료를 못 받고 2살도 안 돼 목숨을 잃고 있다. 어린이용 치료제가 더 비싼 탓도 있지만 “그들이 말 못하는 어린이기 때문”이라고 유니세프 관계자는 말했다.
  • [인간시대] 5대째 아차산자락 토박이 ‘아차산지킴이’ 박정분 회장

    [인간시대] 5대째 아차산자락 토박이 ‘아차산지킴이’ 박정분 회장

    평생을 봉사활동을 하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1945년 광복과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4H운동’. 19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 1980년대에는 한·일 민간인 친선운동. 1990년대 이후에는 친환경 운동과 저소득층을 위한 자선 활동. 굴곡 있는 대한민국 반세기의 봉사 활동 역사를 구구절절이 이야기할 수 있는 박정분(70) 할머니. 할머니는 5대째 광진구에서 살아온 서울 토박이다. 봉사하며 살아온 자신의 삶에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매주 일요일마다 아차산을 찾아 청소를 하는 ‘아차산 지킴이’의 대표를 맡아 봉사 활동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체험으로 얻은 박 할머니의 봉사 활동 철학을 들어보자. 글 사진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내 평생을 광진에 봉사하며 살았다오. 인생의 황혼에서 칠십 평생을 돌아보니 후회는 없어. 다만 요즘 사람들이 너무 잘 먹고 잘 살아서 세상 모든 것이 귀한 줄 모르는 게 슬퍼.” ●14살부터 각종 활동… 봉사역사 산증인 배고프고 못사는 서러움 많았던 대한민국 반세기를 이어오는 동안 광진구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할머니가 있다. 지금은 ‘아차산 지킴이’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정분(70·광진구 광장동)씨가 그 주인공이다. 박 할머니가 평생 참여한 봉사활동 단체는 일일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다.1945년 광복과 50년 한국전쟁 이후에는 ‘4H운동’에, 개발시기인 1970년대에는 ‘새마을 운동’, 일본과 교류가 절실했던 80년대에는 한·일 민간인 친선운동,90년 이후부터는 친환경 운동과 저소득층을 위한 자선 활동 등에 투신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각종 봉사 활동에서 손을 놓았지만 박 할머니는 대한민국 봉사활동의 산증인인 셈이다. 박 할머니가 어린시절부터 봉사 활동에 열심히 참여한 것은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아차산 자락에서 5대가 터를 일구고 살아온 광진 토박이인 박 할머니는 6·25전쟁 중인 51년 1·4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을 떠난 것 외에는 평생을 광진에서만 살았다. 전쟁이 끝난 후 고향에 돌아왔을 때 박 할머니의 나이는 열네살. 폐허가 된 고향을 재건하자는 4H운동이 일었을 때 당시 소녀였던 박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 돼지를 나눠주고 키우는 법을 직접 알려주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박 할머니의 봉사활동은 스물 한살에 결혼한 뒤에도 계속됐다. 33년 3개월 동안 공직 생활을 하고 지난 92년 성수2가 1동장으로 퇴임한 남편은 박 할머니의 봉사 활동을 평생 지원해준 든든한 후원자였다. ●표창장 셀 수 없을 정도 70년대 새마을 운동은 물론이고 성동광진 농심회 광진구 회장,80∼91년 한·일 친선협회 부회장,90년대 아차산 어머니산악회 회장, 아차산 지킴이회 회장으로 활동하다보니 한 평생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박 할머니는 요즘은 매주 일요일에 아차산 지킴이들과 아차산에서 만나 쓰레기를 줍고 주변을 정리하는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박 할머니 자택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들의 표창장이 즐비하다.‘자랑스러운 구민상’ 수상 경력은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평생을 봉사 활동하며 살아온 이유를 묻자 박 할머니는 “팔자라니까. 그냥 좋아서 했어.”라며 웃는다. 그 시대에 남자로 태어났으면 큰 일 이루셨을 것이라는 기자의 말에 할머니는 “전쟁 통에 배운 게 있어야지. 우리 세대가 고생만 하고 참 애매한 세대라니까. 나는 봉사 활동하는 게 마냥 좋았으니까 됐어.”라며 웃는다. ●요즘 사람들 물건 귀하게 여길 줄 몰라 하지만 박 할머니가 평생을 광진에서 봉사 활동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5대가 한 장소에서 살았다는 박 할머니는 마을의 길 하나, 나무 한 그루, 동네 이름 하나까지 지키고 보존해야 할 소중한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어딨어. 요즘 아파트 한동을 한 시간만 돌아보면 1년 내내 써도 좋을 버려진 물건들이 넘쳐나. 그런게 모두 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인데 요즘 사람들은 간직하고 귀하게 여길 줄을 모르고 너무 쉽게 버려. 그러니까 내가 봉사 활동하면서 그런 것 지키고 싶었던 거야.”라며 박 할머니는 평생을 봉사 활동에 투신한 소신을 담담히 밝혔다. 세 아들은 출가시키고 남편과 단출하게 살아가고 있는 박 할머니는 “새벽 5시에 일어나도 여기저기 부르는데로 따라다니며 봉사 활동하면 하루가 너무 바빠.”라며 노년의 즐거운 삶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제2의 ‘쉬리’ 만들고 싶어요”

    “제2의 ‘쉬리’ 만들고 싶어요”

    “‘쉬리’와 같이 분단의 아픔을 그린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탈북자들의 삶도 영화로 보여 주고 싶고요.” 북한 이탈주민으로서 최초로 영화감독을 꿈꾸는 탈북청년 김경철(22·서울 송파구 ‘하늘꿈학교’ 졸업)씨가 오는 28일 서울예술대학 영화학과 새내기로 꿈을 향해 첫발을 내디딘다. 노란 염색머리와 삐딱하게 쓴 챙모자, 강력한 눈빛 등 그의 모습에서 숨겨진 끼와 재능이 느껴진다. ●14살에 북한 탈출… 영화같은 삶 “그동안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삶은 마치 한편의 영화와도 같다. 영화감독을 하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14살의 나이로 아버지와 함께 북한을 탈출, 중국에서 생활하다 우여곡절 끝에 3년전 겨우 남한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남한에 들어와서도 열심히 살아 성공하는 길만이 북에 남은 엄마와 형제를 하루속히 만날 수 있다는 희망때문에 입을 굳게 다물고 학업에 전념했다. 그는 곧바로 북한 이탈청소년이 함께 기숙하며 공부하는 도시형 대안학교인 하늘꿈학교에 들어갔다. 학교에 들어온 지 2년 만에 초스피드로 초·중·고 검정고시를 끝내고, 마침내 난공불락과도 같던 대학의 문까지 넘었다. 자원봉사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공부과정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그는 영어와 국사 등 생소한 과목이 많은데다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 때문에 고생했다. 영화 ‘쉬리’의 영화배우 한석규를 가장 좋아하는 그의 교재는 영화. 지난 3년동안 무려 300∼400편의 영화를 봤다. 뮤지컬에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하고, 틈틈이 거울을 보며 하루 17∼18시간씩 연기연습에 매달렸다. 그는 “내가 원하던 그곳의 문을 열었으니 이제는 내가 스스로 노력하는 일만 남았다.”며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하늘꿈학교´ 7명 모두 대학 진학 지난 2003년 설립된 하늘꿈학교는 지난해 7명에 이어 올해도 7명이 모두 서울예대와 연세대, 성균관대, 중앙대, 숙명여대, 신흥대 등에 합격했다. 하늘꿈학교는 올해에도 만 15세 이상 25세 미만의 북한 이탈청소년을 대상으로 대학진학반 10명과 검정고시반 10명 등 총 20명의 신입생을 모집한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피부른 ‘마호메트 만평 파문’

    |파리 함혜리특파원·서울 이세영기자|대사관 난입과 방화 등 극단적 양상으로 치닫던 마호메트 만평 파문이 결국 유혈사태를 불렀다. 6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경찰이 서방언론의 만평 게재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던 군중에게 총격을 가해 최소 3명이 사망했다고 영국의 BBC가 보도했다. 소말리아에서도 경찰이 시위대에 발포해 14살 소년이 숨졌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첫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지 하루 만이다. 앞서 레바논 관리들은 덴마크 대사관에 대한 방화로 이어진 전날 시위에서 최소 1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레바논 정부가 덴마크 정부에 공식 사과한 가운데 하산 사베흐 레바논 내무장관은 방화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사베흐 장관은 “대사관 난입을 막기 위해선 시위대에 발포하는 방법밖에 없었지만 그런 명령은 내릴 수 없었다.”고 밝혔다.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도 무슬림 4000명이 기차역에 모여 동조 시위를 벌였다. 인도 카슈미르의 스리나가르에서는 이슬람 분리주의 세력이 총파업을 벌여 도시 기능이 완전 마비되기도 했다. 관망세를 유지하던 일부 중동국가들도 서방에 대한 항의 대열에 속속 합류했다. 이라크 정부는 덴마크 기업들과의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발표했고, 이란은 덴마크 주재 대사를 소환키로 결정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도 서방에 대한 비난에 가세했다. 유럽국가들은 극단으로 치닫는 아랍 무슬림들의 폭력을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 독일·라트비아·오스트리아 등 7개국 정상들은 독일 드레스덴에서 대책회의를 열고 폭력에 대한 단호한 대처를 중동 각국에 주문했다.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대표도 성명을 내고 “이슬람교의 평화적 이미지를 훼손하는 폭력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각 지역의 정치·종교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덴마크 외무부는 이슬람회의기구(OIC)와 이번 사태와 관련해 공식 만남을 갖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일부에선 이번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돌파구가 마련될지 모른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제기된다.lotus@seoul.co.kr
  • 마포구민 효행상 수상 임헌순 주부

    마포구민 효행상 수상 임헌순 주부

    시아버지(97세), 시어머니(89세), 친정어머니(85세) 등 3명의 노인을 모시고 17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한 여인이 효행상을 받아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지난해 마포구 구민상 효행부문에서 효행상을 받은 임헌순(51)씨가 그 주인공이다. 친정아버지마저 살아계셨다면 임씨는 시댁과 친정의 부모를 모두 모시고 살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 마포에서 30여년째 살고 있는 마포 토박이 임씨의 가족은 부모님 세 분과 남편, 그리고 혼기가 찬 딸 둘을 합해서 모두 7명이다. 게다가 임씨는 7년째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를 돌봐왔고 지난해부터는 신장에 이상이 생겨 중환자실에 입원한 시아버지의 병수발도 마다하지 않는다. 임씨는 “나라고 왜 어렵지 않았겠어요. 부모님 모시며 속상한 일도 많지만 이젠 이분들 덕택에 제가 복받고 살고 있는 것 같아요.”라며 활짝 웃는다. 임씨가 부모님을 모두 모시고 사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친정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충남 조치원이 고향인 임씨는 복잡한 가족 관계를 차마 다 말하진 못했다. 다만 임씨가 태어났을 때 친정아버지는 62세였다고 했다. 친정집이 워낙 가난했던 터라 임씨는 초등학교만 마치고 14살 되던 해에 서울에 올라와 지금의 남편을 만난 21살 때까지 남의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다고 한다. 식모살이를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끄러워 남앞에서 10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임씨는 불광동의 한 부잣집에서 생활했던 17살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오신 아버지에게 임씨는 주인 몰래 돼지고기를 넣어 된장찌개를 대접했다. 아버지는 “딸 덕에 고깃국을 맛본다.”며 너무나 좋아하셨다고 한다. 임씨의 아버지는 임씨가 25살 되던 해,87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임씨는 마포에서 양고기 전문점을 경영하고 있다. 임씨는 “이제야 아버지께 실컷 고기를 드시게 할 수 있는데 아버지는 안 계신다.”며 눈물을 훔쳤다. 젊은 시절 아버지에게 효도하지 못한 것이 한으로 남았다. 결국 임씨는 결혼 뒤 서울에 정착하면서 조치원에 있는 시부모님과 친정어머니를 서울로 모셔왔다. 친정어머니는 임씨와 한집에, 시부모님은 걸어서 3분 거리에 집을 얻어드렸다. 시부모와 친정어머니를 함께 모시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특히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면서부터는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7년 전부터 기억력이 감퇴하기 시작한 시어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물건을 보따리를 싸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감춰뒀다. 그렇게 감춰둔 물건을 임씨 친정어머니가 훔쳐 갔다며 억지를 부렸다.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불렀고 이러한 일들은 가족 모두를 힘들게 했다. 임씨는 최근 시어머니를 치매 전문기관에 모셨다. 임씨는 “시부모님 병원비 대기도 만만치 않지만 시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살 수 있어 현재 경영하는 양고기 전문점도 흑자를 내고 있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임씨가 말하는 효도는 거창하지 않다. 부모에게 부모 대접을 해주는 것이다.“부모를 존경하고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주는 것이 효도”라는 임씨는 “나이가 든 부모일수록 오히려 내 자식을 챙기듯 세심하고 아기자기하게 사랑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아랍전쟁 영웅서 ‘평화지킴이’ 자처

    아리엘 샤론(77) 이스라엘 총리는 군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해 성공 가도를 달렸다. 자신이 무공을 세워 점령한 땅을 말년에 스스로 팔레스타인에 내주는 ‘온건파’로 변모해 중동평화 지킴이로 자처했다. 샤론 총리는 영국의 과도통치 기간인 1928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14살에 지하 군사조직에 가입했다. 아랍 국가들과 싸워 오늘날 이스라엘 지도를 완성한 제 3차 중동전쟁 때는 혁혁한 공을 세워 ‘전쟁영웅’으로 떠올랐다. 이후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에도 앞장섰다. 1973년 리쿠드당 창당에 참여해 정치에 뛰어든 그는 이후 국방·통산·외무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국방장관 시절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본부를 무단 공격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1999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총선에서 패한 뒤 리쿠드당 당수를 승계한 샤론은 2001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고 총리직에 올랐다. 가자지구 철수를 강행한 지난해 9월에는 네타냐후 등 강경파의 도전을 물리치고 조기 재신임에 성공해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강경파의 흔들기는 계속됐고, 연정 파트너인 노동당의 시몬 페레스마저 낙마해 연정이 붕괴될 위기에 놓이자 샤론은 돌연 리쿠드당을 탈당했다. 페레스와 손잡고 중도 신당인 ‘카디마(전진)’ 창당을 선언했다. 샤론의 정치생명이 사실상 끝나면서 주목받는 정치인은 네타냐후(55) 신임 리쿠드당 당수이다. 가자지구 철수에 반발해 재무장관직을 박차고 나온 그는 ‘젊은 피’를 내세워 올해 차기 총선에서 샤론과 맞붙을 참이었다. 네타냐후는 이미 45살에 이스라엘 사상 최연소 총리로 취임했었다.총리 권한대행을 맡은 에후드 올메르트(60) 부총리는 신당이 승리할 경우 샤론을 이을 제 1의 후계자이다.10년간 예루살렘 시장을 지내다 2003년 내각에 참여한 샤론의 최측근이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16세 소년 ‘꿈의 에베레스트’ 등반기

    “실패가 성공보다 더 자주 일어나니까 실패에 익숙해져야 한다.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서 겪게 되는 실패는 모두 또 하나의 발걸음이다.” 이 얘기는 연륜을 감출 수 없는 나이의 노인이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후배들에게 남기는 조언이 아니다. 학교생활이 전부인 16살 소년 마크 페처.12살에 처음으로 암벽등반을 한 뒤 에베레스트 등정을 꿈꾼 이 소년은 꿈을 이루기 위해 네팔 트레킹부터 시작했다. 강도 높은 육체적 훈련은 물론 경비 5000달러를 마련하기 위해 저명한 인사들에게 후원을 원하는 편지를 보내는 지극 정성을 들였다. ‘꿈의 높이 8848미터’(마크 페처·잭 갤빈 지음, 김율희 옮김, 다른 펴냄)는 어린 소년 마크가 꿈을 실현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마크는 많은 등반을 통해 산악 등반사에서 새로운 기록들을 쌓았다.14살에 페루에 있는 피스코산 등의 최연소 등정자가 됐고,15살에 아르헨티나의 아콩카과의 정상에 오르며 에베레스트 산에 첫 도전장을 냈다. 비록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에베레스트 등정에 실패했지만 7620m를 등반하는 성과를 거뒀다. 다시 에베레스트에 도전했지만 8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적인 폭풍으로 7925m까지의 등정만 가능했다. 그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과 세계에서 6번째로 높은 8201m인 티베트의 초유를 최연소 등정하는 데 성공했다.1만 2000원.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프리미어리그] 지성, 긱스 넘어라

    [프리미어리그] 지성, 긱스 넘어라

    ‘맨유의 전설, 긱스를 넘어라.’ ‘신형엔진’ 박지성(24·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맨유의 살아있는 전설’ 라이언 긱스(32)를 뛰어넘는 ‘새로운 전설’을 꿈꾼다. 박지성은 늘 새로운 목표를 정해두고 쉼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스타일이다. 지난 21일 터진 잉글랜드 데뷔골로 프리미어리그 연착륙이란 1차 목표를 달성한 박지성에게 남은 계단은 ‘맨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발돋움하는 것. 이 때문에 지난 15년 동안 ‘맨유 부동의 왼쪽 날개’를 지키며 팬들의 끝모를 사랑을 받아온 긱스가 박지성의 역할 모델이 되고 있다. 웨일스에서 태어난 긱스는 14살때인 1987년 맨체스터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시작했다.1991년 3월3일 애버턴전에서 18살의 나이로 리그에 데뷔한 긱스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돌파력, 환상적인 개인기로 단숨에 리그 최고의 왼쪽 날개로 발돋움했다.92∼93시즌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하자마자 41경기에서 9골을 터뜨리며 팀을 1위에 올려놓는 등 15년 동안 무려 8차례나 리그 제패를 이끌었다. 특히 98∼99시즌에는 맨체스터가 프리미어리그와 FA컵,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거푸 우승,1988년 PSV에인트호벤에 이어 사상 두번째 트리플크라운(자국리그 자국FA컵 챔피언스리그 모두 우승)을 달성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는 데 일등 공신이 됐다. 긱스는 지난해 9월21일 리버풀과의 경기에 출장, 보비 찰튼(759경기)과 빌 포크스(688경기)에 이어 맨체스터 사상 세번째로 6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로 이름을 올리는 등 통산 648경기에서 132골,248도움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겨우 25경기에서 1골 4도움을 기록한 박지성에게 벅찬 목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불가능하지 않다. 이제 겨우 24살인 데다 긱스에 뒤지지 않는 능력을 보유해 앞으로 7∼8년 동안 꾸준히 전성기를 구가할 경우 꿈은 이뤄질 수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에게 필수인 언론 및 팬들과의 유대 관계를 위해 원활한 영어 구사 능력을 갖추는 것과 아직도 ‘2%’ 부족한 골결정력 보완은 한걸음 더 내딛기 위한 숙제. 서형욱 MBC해설위원은 “맨유팬들은 팀을 위해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박지성과 같은 스타일을 전통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프랜차이즈 스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올해의 인물](6)아리엘 샤론

    [올해의 인물](6)아리엘 샤론

    ‘고양이 목숨’을 가진 정치인.77세의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올해 그 끈질긴 정치적 생명력을 과시했다. 동시에 ‘불도저’라는 별명도 또다시 입증해보였다.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38년 만에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라는 미증유의 일을 완수한 것이다. 정적의 도전을 뿌리치고 당권을 지켜내더니 분신과도 같던 집권 리쿠드당을 탈당하고 의회까지 해산시켰다. 이제 신당을 이끌고 내년 3월 조기 총선에 나설 계획이다. 여론조사는 그의 압승을 예상하고 있다. ●‘도박’과 도전 올 1월 예루살렘은 ‘가자지구 철수반대’ 시위로 요동쳤다.13만명의 시위대는 연말까지 가자지구 정착촌을 완전 철수시키려는 샤론 총리를 “독재자, 배신자, 거짓말쟁이”라며 성토했다. 2003년 샤론 총리는 일방적으로 정착촌 철수방침을 발표했다.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을 끝내자는 구상에서다. 당내 극우세력은 사사건건 샤론 총리의 정책에 반기를 들었다. 급기야 총리 출신으로 당내 ‘매파’를 대변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재무장관은 8월 장관직을 사임, 총리 퇴진운동에 앞장섰다. 결국 매파의 의도대로 5개월여 앞당겨 11월 치러진 당 지도부 개편 대회. 사실상 정치적 ‘탄핵’이었고, 그의 승리 가능성은 낮았다. 샤론 총리는 연설 도중 누군가 마이크 선을 자르는 바람에 발언도 못하고 퇴장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나 그는 이 즈음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헬기 공습 등 강경책을 사용,52대 48의 신승(辛勝)을 거뒀다. ●의회 해산, 거듭되는 모험 샤론의 위기는 계속됐다. 연정의 한 축인 노동당에서 우군 역할을 해온 시몬 페레스 당수가, 리쿠드당과의 연정 파기를 요구해온 아미르 페레츠 신임 당수에게 밀려났다. 신임 페레츠 당수는 샤론 총리에게 내년 11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당겨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연정 탈퇴를 결의했다. 조기 총선에서 승리해도 당내 내분으로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이 수월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의회 해산이라는 강공책을 택했다. 이어 ‘중도파 대결집’을 주창하며 신당 창당을 선언한다. ●‘전쟁을 위해 태어난 수류탄’ 14살에 대(對)팔레스타인 레지스탕스 활동으로 시작, 총리까지 오른 사람.1953년 요르단 공격,56년 수에즈 위기,67년 6일 전쟁,73년 속죄(욤키푸르) 전쟁 등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전쟁 영웅. 그러나 ‘전쟁만을 위해 태어난 사람’ ‘수류탄’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적에 무자비했던 지휘관.1982년 레바논 침공 지휘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 방조를 책임지고 국방장관을 사퇴했다. 그랬던 그에 대해 아랍세계마저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상을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이스라엘 지도자’라 칭했다. 물론 압둘라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등은 군인으로서의 그를 잊지 않고 있다. 내년 1월25일 팔레스타인에서도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 사후 처음 총선이 실시된다. 양측의 선거가 마무리되는 내년 3월까지는 평화협상에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그는 요즘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연구하고 있다. 고이즈미가 자신에 앞서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때문이다. 그의 새해가 주목된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후세인 재판 ‘난장판’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측근 7명에 대한 재판이 5일(현지시간) 욕설과 고함, 변호인단의 퇴장 등 파행속에 진행됐다. 이날 재판은 바그다드 특별법정에서 재개됐다. 개정 직후 변호인단이 특별법정의 위법성을 따지려다 제지당한 뒤 집단 퇴정해 증인신문이 지연됐다. 리즈가르 모함메드 아민 주심 판사는 변호인단이 퇴정하면 다른 변호인을 선임하겠다고 경고했고 이를 지켜보던 후세인 전 대통령은 벌떡 일어나 “재판부가 임명하는 변호인은 거부하겠다.”고 고함을 질렀다. 후세인은 “법률에 따라 재판을 진행한다.”는 주심판사의 설명에 “미국이 만든 법이고, 이라크 주권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소리를 지르는 등 재판부에 도전적인 태도를 보였다. 후세인의 이복동생이자 정보부장을 역임한 공동 피고인인 바르잔 이브라힘 알 티크리티도 “이라크 만세, 아랍국가 만세”를 외쳐대면서 “우리를 빨리 처형하라.”고 고함을 질러댔다. 한편 재판에서 두자일 마을 사건 관련 증인들이 나와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등 후세인과 측근들의 반인륜 범죄 행위 등 기소내용을 확인했다. 첫 증인으로 나온 아메드 하산 모하메드는 “남녀 할 것없이 14살부터 70살까지의 두자일 마을 주민들이 후세인의 안전요원들에게 잡혀가 살해당했다.”고 증언했다. 모하메드는 증언을 하다 후세인의 이복동생인 알 티크리티에게 “네가 14세 소년도 살해했다.”며 고함을 쳤고 그와 욕설을 주고 받았다. 두자일 사건은 82년 7월 후세인 암살미수사건이 발생했던 두자일 마을의 시아파 주민 140여명이 약식재판으로 처형된 것을 말한다. 칼릴 알-둘라이미 변호사와 램시 클라크 전 미국 법무장관 등 변호인단은 퇴정했다가 재판부와 협상을 벌여 90분 만에 재판에 복귀했다. 이번 재판은 지난 10월19일 첫 개정 이후 2차례 휴정을 거쳐 3번째로 열렸다. 지난달 28일의 2차 재판에서도 증언이 이뤄졌지만 비디오 녹화증언이었다. 현지 언론들은 증인 10명이 출석하게 될 3차 재판은 오는 15일의 총선을 앞두고 휴정할 때까지 3∼4일 계속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석우기자 외신종합 jun88@seoul.co.kr
  • 함순섭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전시팀장

    함순섭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전시팀장

    “꿈을 이뤘으니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렵니다.” 꿈을 이룬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전시팀 함순섭(40) 팀장. 경주가 고향인 그가 14살 때부터 꿈꿔온 박물관 학예사가 된 지 10여년 만에 ‘큰 일’을 해냈다.1995년부터 새 박물관 건립사무국에 몸담은 뒤 지난해 말 구성된 개관전시팀을 이끌며 박물관 개관을 성공적으로 이끈 ‘1등 공신’이다. 박물관 설계·시공부터 유물 전시, 관람 프로그램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개관전시팀 사무실을 찾았을 때 함 팀장은 엄청난 인파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박물관을 뒤로 하고 짐을 싸고 있었다. 무거운 소임을 다하고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기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 한달여간 밤을 새우며 일하느라 대구에 사는 가족을 박물관에 초대하지 못해 마음이 아프다.”는 그에게 박물관 개관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박물관이 개관하기까지 밤을 새우며 쏟은 노력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서관 1층에는 문패도 없는 사무실이 있다. 박물관 개관전시를 위해 지난해 말 구성된 태스크포스(TF)팀인 ‘개관전시팀’이 사용하는 공간이다. 이 곳에서 하루 24시간이 짧을 정도로 바쁘게 생활해온 함순섭(40) 팀장을 만났다. 개관 이후에도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다는 그는 한마디로 ‘시원섭섭한’ 얼굴이었다. 고고부 소속이던 그가 새 박물관 추진업무에 뛰어든 것은 1995년부터 2년동안 ‘새 박물관 건립사무국’에서 일하면서부터. 이어 2001년부터는 ‘박물관 건립추진기획단’ 전시과와 개관전시팀에서 10년에 걸친 박물관 건립 역사를 쓰는 데 ‘1등 공신’역할을 했다. 개관일이 다가오면서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시간의 연속이었다는 함 팀장으로부터 새 박물관의 역사적인 개관이 이뤄지기까지 파란만장했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학예직이지만 시공에서 전시까지 맹활약 95년 건물 설계에서부터 97년 공사 착공, 지난해 건물 준공에 이어 올 3월부터 시작된 유물 전시에 이르기까지 박물관의 탄생과정 곳곳에 함 팀장의 손길이 배어 있다. “학예직이지만 개관전시팀에 소속된 이상 전시와 관련된 시공 및 설계, 디자인, 배치 등 모든 일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덕분에 시설·전시 관련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그동안 박물관에서 시도하지 못한 일을 과감히 추진하게 됐지요.” 기술자가 아닌 그가 전시실 인테리어 및 진열대 공사 업무에 뛰어든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그러나 전시실 자재 및 진열장 성격 등에 대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유물을 제대로 보존, 전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스템 도입이 필요했다. 그는 “진열장 밀폐도는 도쿄·베를린박물관 등의 사례를 조사해 기준을 만들었고, 환경친화적 자재를 쓰기 위해 관련 업체·연구소 등을 찾아 결국 최상등급을 받은 자재를 처음으로 쓰게 됐다.”고 말했다. 도배를 하기 전 합판을 붙일 때 쓰는 본드도 방염제품을 찾아 적용했고, 페인트 대신 불이 붙지 않는 섬유를 수입해 만든 도배지를 썼다. 전시실 2,3층 바닥재는 온·습도 변화가 없는 미국의 고급 미송을 국내 최초로 수입, 적용하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10년의 복원작업 끝에 1층 ‘역사의 길’에 들어선 ‘경천사 10층석탑´을 위한 면진 시스템도 함 팀장의 걱정거리였다. 석탑의 규모를 견딜 만한 시스템이 없어 고민하던 중 일본현대미술관에 장치를 제공한 중소기업을 발견, 가까스로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었다. ●유물 배치에만 8개월… 각고의 세월 2004년 말 전시실 구축이 끝나면서 함 팀장의 업무는 3개 층 5개 관 43개 실마다 적합한 유물을 어떻게 전시할 것인가로 바뀌었다. 지난해 경복궁 옛 박물관에서 옮겨온 15만점의 유물중 1만 1000여점이 지난 3월 고고관을 시작으로 전시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학예연구실과 함께 역사적인 가치와 한국의 미를 가장 대표할 수 있는 유물을 골라 전시했습니다. 같은 종류의 유물이 100점 있다면 그 중 1점을 골라내는 작업을 한 셈이지요.” 고고관에서 역사관, 미술관, 기증관까지 유물들이 하나둘씩 들어서면서 뜻밖의 ‘복병’도 만났다.“전시하다 보니 도면과 실제가 다르고 방 구조와 조명, 받침대 등 배경과 유물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수차례 재설치 과정을 거쳐 자리잡은 유물들이 꽤 많아요. 그만큼 전시물이 주위와 조화를 이뤄 돋보이도록 노력했습니다.” 대부분 전시실의 유물은 9월 중순까지 마무리됐으나 아시아관은 대여품이 많아 10월이 돼서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야근 밥먹듯… 전쟁 치른 마지막 한 달 ‘D-30.’개관전시팀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업무 폭주로 집에 가지 못하고 야근이 잦아졌다. 대여기간을 짧게 하기 위해 ‘늦깎이’로 박물관에 도착한 아시아관의 인도네시아실·일본실 유물을 배치하기 무섭게 모든 전시유물에 대한 설명을 담은 패널과 이름표, 받침대 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름표는 개관 전날까지도 수정을 요구한 50여개가 도착하지 않아 애간장을 태웠다.”면서 “받침대에 흠집이 있거나 유물과 어울리지 않아 교체를 요구하는 등 담당 업체들과 며칠씩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고 회상했다. 마지막 10일은 함 팀장과 직원 8명 모두가 밤을 새우며 모든 전시유물에 패널과 이름표를 달았다. 새벽 4시쯤 퇴근해 옷만 갈아입고 다시 전시실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개막식 직후 전시실이 공개되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며칠 전부터 얼굴이 붓고 공중에 떠다니는 느낌이라는 동료들의 얼굴이 가장 먼저 생각나더군요.” ●국민의 문화교육 공간 됐으면… 함 팀장은 “박물관이 국민과 함께 숨쉬는 문화교육공간이 됐으면 한다.”는 희망을 밝혔다. 아무리 규모가 크고 유물이 잘 전시돼도 소비자(관람객)가 찾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 그는 “국내 최초로 테마를 정해 12가지 동선을 제공하는 PDA네비게이터와 온라인정보시스템 등을 통해 효율적으로 관람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면서 “유물에 관심을 갖고 적어도 2∼3번씩 박물관을 찾아야 더 깊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향인 경주에서 중학생 때부터 문화유산 교육을 받으며 학예사를 꿈꿨던 함 팀장은 “이제 꿈을 이뤘으니 고향인 국립경주박물관으로 돌아가 평범한 학예사로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면서 “박물관을 쉽게 소개하는 가이드북을 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英서 흑인·아시아계 유혈충돌

    영국 잉글랜드 중부 버밍엄의 소도시가 자극적인 소문 하나로 인종폭동의 광란 속에 빠져들었다. 14살난 아프리카계 여학생이 파키스탄인 미용실 주인에게 성 폭행을 당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22일부터 인터넷과 해적 방송 등을 통해 소도시 로젤스에 퍼졌다. 사흘 동안 분노한 흑인 폭도들이 거리를 휩쓸었고 파키스탄계 술집·상점들이 약탈과 파괴의 대상이 됐다.23살난 흑인은 칼에 찔려,18살난 남자는 총탄에 맞아 숨졌다.80여건에 달하던 범죄를 말리던 경찰관도 총상을 입었으며,35명이 병원에 실려갔다. 이번 폭동은 백인 대 유색인종이 아닌 흑인 대 아시아계 사이에서 발생, 주목을 받았다. 폭동 현장 로젤스는 카리브해 연안의 서아프리카계 흑인이 정착하던 곳이었다. 뒤이어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이민자들의 줄지어 들어와 슈퍼마켓, 미용실, 식당 등의 상권을 장악하면서 소외된 흑인들의 불만이 커졌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일요영화]

    [일요영화]

    ●광부의 딸(EBS 오후 1시50분) 국내에서는 미국 컨트리 음악이 그다지 인기가 없지만, 미국에서 컨트리 음악은 우리로 치면 트로트 같은 장르다. 이 영화가 주목되는 두 가지는 미국 컨트리 음악의 전설적인 여가수 로레타 린의 일대기를 담았다는 것과, 시시 스페이섹이 이 영화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는 것. 시시 스페이섹이 누구냐고? 브라이언 드팔마 감독이 연출한 공포영화 ‘캐리’(1976)를 떠올리면 된다. 한 소심한 여고생이 광신도인 어머니의 괴롭힘과 학교 친구들의 심한 따돌림에 저도 모르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으로 복수한다는 이야기. 처연하게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으로 피를 뒤집어 쓴 그녀의 모습은 두고두고 충격이었다. 시시 스파이섹은 ‘캐리’를 시작으로 6차례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연기파 배우다. 미 켄터키주 작은 광산촌에서 광부의 딸로 태어난 로레타(시시 스페이섹)는 14살 어린 나이에 10살이나 차이가 나는 동네 청년 둘리틀(토미 리 존스)과 결혼한다. 자주 다투고 헤어지기도 하는 등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이었지만, 아이들이 태어나며 안정을 찾게 된다. 어느 날 둘리틀은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로레타의 노래 솜씨에 반해 그녀를 컨트리 가수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두 사람은 라디오 무대를 쫓아다니는 힘든 여행을 시작하는데….1980년작.125분. ●생활의 발견(KBS1 오후 11시40분) 7일 동안 한 남자가 두 여자를 상대로 벌이는 연애담이 춘천과 경주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홍상수 감독의 네 번째 작품. 남녀 심리를 잘근잘근 묘사했던 ‘강원도의 힘’(1998)이나 ‘오! 수정’(2000)을 합쳐놓은 듯한 작품이지만, 전작보다는 평범하다는 평을 받았다. 영화에 출연했다가 흥행 실패로 달랑 100만원만 받아든 연극배우 경수(김상경)는 선배를 찾아 춘천으로 간다. 팬을 자처하는 무용가 명숙(예지원)을 만나 함께 술을 마시다가 사이가 급진전하지만, 알고 보니 선배가 남몰래 좋아하던 여인이다. 충동적으로 경주행 기차에 오른 경수는 옆자리에 앉은 선영(추상미)에게 끌리며 무작정 뒤를 쫓는데….2002년작.110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종주국 한국학생 세계진출 도울것”

    “제 임용이 바로 태권도가 세계화됐다는 또 다른 증표이죠.” 푸른 눈에 갈색 머리인 독일인 우도 뫼니히(42)가 태권도 종주국 한국에서 교수로 임용된 소감이다. 경남 양산시의 영산대는 5일 태권도의 세계화 흐름에 맞춰 그를 생활스포츠학부 태권도학과 전임교수로 임용,2학기부터 겨루기 위주로 실기과목을 가르치게 됐다고 밝혔다. 수업은 영어로 진행된다. 국내 태권도학과에서 외국인이 교수로 임용되기는 뫼니히가 처음이다. 그의 임용으로 태권도에서 외국인은 배우고, 종주국 한국 사람만이 가르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는 “정신세계까지 아우르는 태권도는 이제 세계인의 무도로서 자리잡고 있다.”며 “태권도학과 학생들의 해외진출을 돕겠다.”고 말했다.그의 태권도는 5단.14살이던 1977년 “태권도의 유려한 발차기에 반해” 입문,81년부터 88년까지 독일 국가대표팀과 상무팀 선수로 활동했다.84·85년 벨기에 오픈과 그리스 오픈 태권도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1983년 독일 숀가우 기술대학을 졸업했다.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 여고 3년생의 이유 있는 반항

    민망스런 일로 터지고만 민망스런 소녀들의 항의 제자에겐 묘한 사연 학교측은 아픈 가슴 『학생들을 창녀 취급하는 교육자 밑에서 공부할 수 없다』 여고 3년생들이 색다른「데모」를 벌였다. 9월 18일 저녁 서울 청량리에 있는 J여상고 1백 50여 학생들은 교문 밖으로「데모」를 벌이려다 출동한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그들이 외친「학원의 민주화」는 그들 나름대로 묘한 사연을 지니고 있다. 지난 7월 중순 J여상고 학생들은 함게 모인 자리에서 김(金)교장으로부터 듣기도, 참을 수도 없는 심한 욕설을 당했다. 노한 교장선생님의 말은 전율과 분노를 일으켰다. 이 날 화가 솟은 김교장에게도 참을 수 없는 제자의 터무니 없는 배반이라는 아픈 상처가 있었다. 급기야 몸치장, 손톱에「매니큐어」를 칠한 7명의 학생들은 교장실에 불려갔다. 가방검사, 주머니검사 끝에 그 중 2명은 여선생님으로부터 옷을 벗기는 특수(?) 몸수색을 당했다. 화근은 지난 7월 17일의 일. 이 날 김교장은 서울 동대문 경찰서로부터 낭패스런 소식을 받았다. 숭인동 창녀촌에서 창녀생활을 하다 적발된 고3 장(張)모(18)양을 인수해 가라는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곧 담임 김교사를 보냈다. 장양으로부터 신경통으로 무기결근계까지 받아 놓은 학교당국이 난처했던 건 당연했다. 담임선생과 함께 학교에 불려온 장양은 또 다른 학생들이 창녀노릇을 하고 있다면서 울먹였다. 갈수록 태산 같은 사실에 부딪친 교장은 학생들을 집합시켰고, 장양은 퇴학, 이사회 결의 끝에 담임 김교사는 권고해직됐다. 창녀를 가린다는 지나친 몸수색이 학생들간에 전해지자 방학을 마친 학생들은 제자를 창녀로 오인하는 교육자의 양심을 어린 마음 나름대로 의심했고 19일에는 학교장의 사임, 장양의 담임 김교사의 복직 등 3개 요구 조건을 내걸고 고3 1백 50명이 주동이 되어 무기한 동맹휴학으로까지 사태를 진전시켰다. 그러나 세대의 흐름을 탓하기 전에 학교당국은 당국대로 벌어진 사태를 빨리 수습하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용의자 색출에 동맹휴학 사태수습에 주모자 처단 성급한 용의자(?) 색출이 동맹휴학에까지 이르렀다. 또한 사태수습도 자못 강경책이다. 우선 주모자를 처단(?)하겠다는 방침이고 보면…. 또한 학교당국은 이번 동맹휴학은 학생들 스스로 보다는 배후의 알력이 작용한 것으로도 보고 있지만 발단을 따지고 보면 일부 젊은 층의 문란한 생활은 한번 검토해 볼 일이다. 서울 종로구 돈의(敦義)동 통칭「종삼」으로 통하는 골목 안 1천 8백여 명의 창녀 가운데는 학교에 나가는 여성들도 있다. 낮엔 모대학 국문과에 다니고 밤엔 그 생활을 하는 K양은 유객행위로 경찰에 잡혀 올 때마다 얌전히 고개 숙인다. 그러나「배지」를 달고 다니지 않는 진짜 여대생인 것만은 틀림없다. 서울에서 가장 연령층이 어린 창녀들은 거의가 숭인동, 창신동 등 청계천변에 자리한다. 심지어 14살, 15살 난 아이들이 시커먼「아이섀도」를 치하고 악의 구렁에서 킬킬거리며 헤엄치고 산다. 이들 소녀들의 전직은 식모, 차장, 무작정 상경 등이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학교엘 다니다 나쁜 친구들의 꾐에 빠져 학교를 등진 소녀들도 많다. 집에서 매일 신문에 내는「사람찾음」의 광고를 버젓이 보면서도 별다른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지난 달 경찰에 잡혀온 딸의 기별을 듣고 달려온 동대문구 보문동에 사는 어머니 L여인은 딸이 창녀로 왔다는 소리를 듣고 마당에서 기절해 쓰러졌다.『설마 설마 그 애가…』엄마가 딸을 보고 부르짖은 최초의 외마디가 비명 같았다. 경찰통계를 보면 최근 무단 가출하는 소녀들의 수가 격증하고 있다. 통금시간이 넘도록 거리를 헤매는 소녀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치안국 집계에 의하면 지난 1월부터 8개월간 집을 뛰쳐나간 여자는 모두 6천 3백명, 그 중 3분의 2가 이들 나이 어린 소녀들이었다. 나이 어린 소녀가 대문 밖을 나서면 우악스런 현실이 있을 뿐. 무너져가는 성도덕, 거기 방향 없이 휩쓸려드는 동심을 막는 길을 모색해야 할 심각한 오늘이다. 가정과 학교가 좀더 자라는 동심 속에 생활하고 있다면 J여상고 학생들이 그렇게 동맹휴학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최광일(崔光一) 기자> [ 선데이서울 68년 9/29 제1권 제2호 ]
  • [교황 베네딕토 16세 시대] ‘하느님의 충복’ 별명 보수주의자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78)는 일생 동안 보수주의적 입장을 견지해왔다.‘요한 바오로 3세’,‘하느님의 충복’이라는 별명이 그의 노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콘클라베가 시작된 뒤 그는 보수적 추기경들의 지지를 모으면서 일찌감치 강력한 교황 후보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여든에 가까운 고령인데다 지역적 지지기반이 약한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그는 “교황이 된다면 단기간만 재위하고 물러나겠다.”며 스스로 ‘과도기적 관리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평범한 유년기, 나치 전력으로 얼룩 베네딕토 16세는 1927년 4월16일 독일 바이에른주의 마르크트 암 인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전통적인 독일 농가의 분위기를 이어받았으며 아버지는 경찰관이었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열심히 배웠던 명민한 소년이었던 그는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나치와 2차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말려들게 된다.14살이었던 1941년 히틀러 소년단(유겐트)에 가입했던 것이 두고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소년단 가입을 거부할 수도 있었는데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어 1944년 입대, 방공포 부대 소속으로 복무하던 중 탈영했다가 붙잡혔다. 전범수용소에 갇혀있다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석방됐다. ●왕성한 연구활동으로 명성얻어 이후 베네딕토 16세는 형 게오르그 라칭거와 함께 가톨릭 신학교에 입학, 본격적으로 신학 수업을 받기 시작한다.1951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2년 뒤 뮌헨대학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프라이징과 본, 튀빙겐, 레겐스부르크 등지의 여러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며 가톨릭 교리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했다.1962년 그는 35세의 나이로 쾰른대주교의 고문에 임명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1977년 2월 베네딕토 16세는 뮌헨대주교가 됐으며 석달 뒤 추기경에 봉임됐다.1981년 요한 바오로 2세는 베네딕토 16세를 교황청 신앙교리성성(聖省) 수장으로 임명, 이후 24년 동안 두 사람은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1998년에는 추기경단 부단장,2002년에는 단장이 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베네딕토 16세가 실질적으로 교황청을 이끌어왔다는 데에 이견이 없다. ●평생 보수주의 유지 베네딕토 16세가 보수주의적 입장으로 돌아선 데에는 1968년 독일 대학가를 휩쓴 ‘68운동’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그는 동성애, 낙태, 피임, 여성 사제 서품 등에 대해 일관되게 보수적 입장을 유지해왔다. 베네딕토 16세는 종교적 자유·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 ‘2차 바티칸공의회(1962∼65년)’에 대해 “교회의 타락 과정이며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불길하고 파멸적인 것”이라며 분명하게 반대했다.2001년 6월 발표된 동성애와 자위행위 금지를 포함한 엄격한 교황청의 성윤리 지침과 지난해 7월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교회와 세계에서 남성과 여성의 협력에 관하여’라는 교황청의 문건을 작성한 사람도 바로 베네딕토 16세였다. 또 미국 주교들에게 낙태를 옹호하는 정치인에게 영성체를 베풀지 말라는 편지를 보냈고, 이슬람국가인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에 반대했다. 지난 13일에는 이혼, 동성결혼, 인간복제 등에 반대하는 교리를 담은 저서 ‘격변의 시대의 가치’를 출간했다. ●엇갈리는 평가 베네딕토 16세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지자들은 대표적인 지적 성직자인 베네딕토 16세가 뚜렷하고 명쾌한 교리를 제시, 가톨릭 내부의 단합을 이끌 것이라며 환영한다. 베네딕토 16세는 10개 언어를 구사하며 7개 분야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베토벤 음악을 좋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진보주의자들은 그를 ‘강요자’로 부른다. 이들은 ‘해방 신학’의 주창자인 브라질의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를 징계했던 것처럼 새 교황이 진보적 성직자들을 처벌하고 가톨릭을 중세시대로 돌려놓을 것으로 우려한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한국 테니스 기대주’ 김천 성의중 김청의

    [스포츠 라운지] ‘한국 테니스 기대주’ 김천 성의중 김청의

    ‘20살엔 윔블던 제패, 그 5년 뒤엔 그랜드슬래머.’ 꽤 널찍한 그의 방 양쪽 벽은 빼곡히 책들로 채워져 있다.15살 까까머리 중학생의 방이라곤 믿겨지지 않을 만큼 잘 정돈된 책장. 그러나 교과서와 참고서는 찾아볼 수 없다. 대신한 것은 앤디 로딕,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등 내로라 하는 테니스 스타들의 이름이 적힌 두터운 파일과 비디오 테이프들. 한 쪽엔 테가 깎이고 그립이 닳을 대로 닳은 서른 개 남짓한 라켓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책상 위에 써붙인 굵은 글씨가 시선을 끈다.‘2015년엔 그랜드슬래머’. ●작년 최연소 시니어대회 포인트 따내 올 초 중학교 졸업반이 된 김청의(15·김천 성의중). 국내 테니스계에는 입소문으로 이름 석자가 제법 알려져 있지만 일반인들에겐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국내는 물론 세계 테니스계로부터 주목을 받은 ‘물건’이다. 8월 파키스탄에서 벌어진 새틀라이트대회. 국제테니스연맹(ITF)이 주관하는 하위급대회지만 엄연한 시니어대회다. 예선 와일드카드를 받은 14살의 김청의는 본선까지 오른 뒤 ‘어른‘들을 상대로 내리 3연승, 국내 최연소 나이로 시니어대회 포인트를 따냈다. 세계를 통틀어 1800여명 남짓한 같은 90년생 선수들 중에서도 유일했다. 김청의는 걸음마를 배울 무렵 ‘태극부채’를 갖고 놀았다.‘테니스마니아’였던 아버지 김진국(50)씨가 무거운 테니스라켓 대신 손에 쥐어준 것. 아빠의 스윙을 흉내내며 팔을 흔들어대던 한살배기는 라켓 하나로 세계를 제패할 ‘될성 부른 떡잎’으로 무럭무럭 커갔다.2살에 스쿼시라켓을,5살에 제대로 된 테니스라켓을 잡은 김청의는 초등학교 들어 ‘신동’으로 통했다. 또래 상대는 이미 없어 고학년 형들을 찾아다니기 일쑤였다. 처음 나선 국제대회는 2001년 오렌지볼 12세부.11살의 김청의는 첫 세계무대에서 현재 주니어 세계1위 도널드 영(미국)을 준결승에서 꺾은 뒤 우승컵까지 안았고, 이듬해에는 256명이 출전한 14세부에서 5위를 차지해 나이보다 두 세발 앞서는 기량을 뽐냈다. 중학생이 되자 몸 만큼이나 힘도 불었다. 웬만한 고교선수를 능가한 그는 시니어 출전 제한 나이인 14세가 될 무렵 시속 180㎞에 달하는 강서비스를 구사하며 같은해 최연소 시니어대회 포인트 획득을 예고했다. ●중1때 시속 180㎞ 강서비스 구사 그의 대회 출전 스케줄은 프로선수 못지않게 빡빡하다. 지난해 퓨처스급 9경기에 출전했고, 올해에도 이미 7개 시니어대회를 소화해 냈다. 내년쯤 예정하고 있는 메이저대회 출전을 빼곤 일단 주니어시절은 건너뛸 작정이다. 그의 유일한 ’사부’는 걸음마 시절 부채를 손에 쥐어준 아버지다. 김씨는 첫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테니스 선수로 키우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집 마당에 테니스장을 만들기 위해 15t 트럭 3대 분량의 자갈을 직접 등짐으로 나르기도 했다. ●행시출신 아버지 아들 뒷바라지 위해 공무원생활 접어 행정고시 출신으로 체신공무원 고위직까지 지낸 김씨는 대구와 진해, 안동 등 보직을 옮기면서도 아들에 대한 뒷바라지는 늦추지 않았다. 김청의가 시니어대회 제한 연령을 넘긴 지난해 그는 22년간 몸담았던 경북체신청 서기관 자리를 미련없이 뒤로 하고 아들과 함께 본격적인 대회 투어에 나섰다. 코트 관중석에서 그는 ‘한국판 유리 샤라포바’로 통한다. 완벽하리만치 탄탄한 경기 이론으로 무장한 그의 판정 항의에 웬만한 심판은 두 손을 들 정도. 그는 “아들과 함께 세운 목표인 10년뒤 4대메이저대회 석권은 먼 얘기 같지만 청의의 나이 불과 25세 때”라면서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60년대 두 차례나 그랜드슬램을 일궈낸 호주의 영웅 로드 레이버로 꼭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지난해 ‘테니스 요정’ 마리아 샤라포바가 윔블던에서 우승한 뒤 관중석으로 달려가 아버지 유리와 포옹하던 그 모습. 한국의 ‘테니스부자’가 메이저코트에서 그대로 재연할 수 있을지 테니스팬들의 기대는 커지고 있다. ■ 김청의는 ●1990년 3월 대구 출생 ●김천 모암초등학교-안동 서부초등학교 -김천 성의중학교(현재 3학년) ●179㎝ 65㎏ ●오른손포핸드 양손백핸드 ●5세때 테니스 입문 ●주요 성적 -전한국주니어선수권 12세부 8강 교보생명컵 준우승 초등연맹회장컵 우승 (이상 2000년 ) -전한국주니어선수권 12세부 우승 오렌지볼 12세부 우승 (이상 2001년) -오렌지볼 14세부 5위(2002년)-국제테니스연맹(ITF) 주니어 4· 5급대회 16강(2003년) -스페인퓨처스 예선 3회전 파키스탄새틀라이트 본선 4강 (이상 2004년) -멕시코퓨처스 예선 결승(2005년) 글 사진 김천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세상에 이런일이]4.2m 장발녀

    |홍콩 연합|미국 국적의 중국 장발녀 다이위에친(戴月琴·40)이 지난 25일 고향을 방문해 26년 동안 기른 머리카락을 공개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다이위에친이 이날 고향인 중국 저장(浙江)성 퉁샹(桐鄕)에서 지난 26년 동안 기른 길이 4.2m짜리 머리카락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친척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고향을 방문한 다이위에친은 14살 때인 지난 1979년부터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길러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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