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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포 쓰레기」 해결 기미/대책위 요구 「이행각서」에 27명 서명

    ◎2명 더 받으면 매듭 12일째 계속돼온 군포시의 쓰레기 처리난이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18일 군포시에 따르면 수도권 매립지 대책위원회가 군포의 쓰레기 반입 전제 조건으로 제시한 「이행각서」에 서명한 사람은 모두 27명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시장·시의원 12명·주민 자율추진 위원 13명 등이다.수도권 대책위가 수정 제시한 요구 인원 가운데 시의원 2명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군포시는 서명자가 3분의2를 넘으면 군포의 쓰레기 반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대책위의 방침에 따라 서명을 안한 시의원 8명을 설득하고 있다. 한편 군포시 곳곳에는 생활 쓰레기가 그대로 쌓여있어 주민들간에 시비가 벌어지는 등 큰 불편을 겪고 있다.특히 산본 2동 약수터 주변 주민들은 부근에 쌓아놓은 쓰레기로 고통을 받는다며 다른 곳으로 이전을 요구해 군포시는 일부 쓰레기를 신도시 중앙공원으로 옮기기로 했다.
  • 중 교포 등 28명 밀입국/인천해경 모두 검거

    인천 해양경찰서는 우리나라 해상을 통해 밀입국하려던 중국인과 조선족 28명을 붙잡아 영해법 위반 등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4일 하오 9시 45분쯤 인천시 옹진군 소청도 서쪽 34마일 해상에서 조선족 18명(남 13명,여 5명)과 중국인 10명을 태우고 밀입국하려던 중국 단동항 선적 목선 요등어 3868호(10t·선장 유군)와 3869호(30t·선장 왕릉현) 등 2척을 적발,검거했다.
  • DJ 4번째 대권도전 행보 “시동”/「제1야당」 신당의 앞날

    ◎중도보수 표방… 「호남당」 탈피여부가 과제 가칭 「새정치 국민회의」가 11일 발기인대회를 갖고 창당준비위를 구성하는 등 본격적인 창당작업에 들어갔다.이로써 정국구도는 민자당,새정치회의,민주당,자민련의 「4당체제」로 짜여지게 됐으며 신당의 준비위원장으로 선출된 DJ(김대중 위원장)의 네번째 대권도전을 향한 행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새정치회의의 등장으로 정당별 의석수는 민자당 1백68석,새정치회의 54석,민주당 42석(새정치회의 지지 전국구의원 13명 포함),자민련 22석등으로 재편됐다.새정치회의는 곧 소속의원으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한편 현역의원 지역구를 중심으로 40∼50개 지구당을 우선 창당,선관위 등록과 함께 다음달 5일 창당대회를 가질 계획이다. 새정치회의는 이날 발기선언문을 통해 중도보수색채의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국민정당」을 표방하고 나섰다.아울러 새 정치,젊은 정치를 기치로 내세워 지역과 계층,세대를 뛰어 넘는 국민적 지지를 추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그러나 새정치회의의 정권교체 플랜은 기본적으로 「30%+∝」전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분석이다.호남지역의 고정지지표에 서울과 수도권등 이른바 「중립지역」에서의 지지를 얹어 대선승리를 일군다는 복안인 것이다.이를 위해 내년 총선에서 민자당을 제치고 원내 제1당의 지위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워두고도 있다.김대중 위원장도 이날 대회에서 『국민들이 지지하지 않으면 대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말해 총선결과에 따라 대선출마를 결정할 뜻임을 밝혔다. 그러나 새정치회의가 「김대중당」「호남당」등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고 8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목표를 실현할 수 있을 지는 극히 미지수다.당장 외부인사 영입과정에서 상당수 인사가 신당참여를 주저한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목표를 웃도는 2백49명을 영입했지만 40% 가량이 호남출신인데다 「거물급」이 제외된 점도 신당측을 실망시키고 있다.「후 3김구도」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새정치회의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젊은 세대일 수록 신당출현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데다잔류민주당과 「정치개혁시민연합」등 3김청산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영향력을 확대하는 추세여서 새정치회의측을 위협하고 있다. ◎신당 창당 발기인대회 이모저모/2천여명 참석… 토크쇼처럼 진행/PC통신 통해 전국에 실황 중계 1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가칭 「새정치국민회의」 창당발기인대회는 1천5백여명의 발기인과 4백여명의 참관인 등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TV토크쇼 같은 문화행사 위주로 치러졌다. 「대회사」나 「만세삼창」같은 의례적 식순을 없애고 대회장을 원형무대로 꾸며 정치행사의 냄새를 옅게 했다.또 인기가수 이선희의 축하공연과 12인조 오케스트라의 연주,사물놀이등을 곁들여 축제분위기를 연출했다. 대회장엔 신당의 창당이념을 담은 현수막이 좌우벽에 가득했으며 PC통신을 통해 대회상황을 전국에 생중계했다. 토크쇼에서 김대중창당준비위원장은 유머를 섞어가며 페널리스트의 질문에 답했다. ○…발기인들은 아침 일찍부터 몰려들기 시작해 대회 30분전인 상오 8시30분쯤에는 대회장을 가득메웠다.사회는 서울대총학생회 장출신의 김민석 기획위원과 여성아나운서 김연주씨가 공동으로 맡았다. 토크쇼는 KBS 시사토론회 사회자인 유재건 경원대학장의 사회로 1시간동안 페널리스트의 질문에 김위원장이 대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토크쇼 도중 PC통신의 질문에 김위원장이 즉석으로 답변하기도 했다. 이어 이용희 임시의장과 김대중 창당준비위원장,김영배·박상규 부위원장의 선출이「구두추천」과 「박수동의」에 따라 10여분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마지막으로 발기인 전원의 「우리의 소원은 통일」합창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나종일 경희대교수와 김종철 한겨레신문 논설위원,X세대를 대표한 김봉영양(이화여대 정외과4년)등 3명이 참석한 토크쇼에서 김위원장은 세대교체주장과 관련,『나이만 따져 세대교체를 하면 마지막엔 유치원생만 남을 것』이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또 「3김청산」에 대해 『성이 같다는 이유로 3김을 한꺼번에 일괄 거세하는 것은 억울하다』고 조크를 던진 뒤 『3김이라도 군사쿠데타를 이끈 사람과 군사정권과 야합해 대통령이 된 사람과는 달리봐야 한다』고 차별성을 강조했다. 김위원장은 『지난 대선 때 TV토론을 했다면 지금쯤 청와대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아쉬워한 뒤 『97년 대선때는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에 나갈 의사가 없다』고 말해 역으로 대선출마 의사를 강력히 시사했다.
  • 신당 오늘 창당 발기대회/의원 등 1백명 민주 탈당

    가칭 「새정치국민회의」는 1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영입인사 2백49명을 비롯,전·현직국회의원등 1천4백98명의 발기인이 참석한 가운데 창당발기인대회를 갖는다. 이와 관련,민주당출신의 지역구의원 54명과 원외지구당위원장 46명은 민주당에 탈당계를 제출했다.그러나 박지원·남궁진·이우정의원 등 신당에 참여할 전국구의원 13명은 민주당에 잔류키로 했다. 이에 따라 정당별 원내 의석수는 민자당 1백68석,새정치국민회의가 54석,민주당 42석,자민련 22석으로 나눠져 정치권은 4당 구도로 재편되게 됐다.
  • 일 연정 대폭 개각/관방 노사카·건설상 모리 임명

    ◎핵심각료 3명 제외 17명 교체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무라야마 도미이치총리가 8일 개각을 단행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이날 각료 20명 가운데 17명을 새로 임명하는 등 수적으로는 대폭 개각을 단행했지만 관심을 모아온 외상과 대장상에 고노 요헤이 외상(하야양평 자민당총재)과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 신당사키가케대표)를 유임시킴으로써 연립정권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날 개각에서는 또 현행 내각과 마찬가지로 자민당 13,사회당 5,신당사키가케 2의 배분비율이 유지됐다. 오는 9월로 예상되고 있는 자민당 총재선거에 고노외상에 맞서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통산상도 유임됐다. 이날 개각에서는 모리 요시로(삼희랑)자민당 간사장은 건설상에 임명됐으며 관방장관에는 무라야마총리의 측근인 노사카 고켄(야판호현)건설상이 기용됐다. 또 경제기획청장관에는 민간경제인인 다이와종합연구소 이사장인 미야자키 이사무(궁기용)씨가 기용됐다.그는 신당사키가케의 몫으로 간주됐다. 한편 모리간사장의입각으로 공석이 된 자민당 간사장에는 총재선거에서 고노외상을 지원하는 미쓰즈카 히로시(삼총박)전정조 회장이 기용됐다. 이날 개각은 17명이 새로 임명되고 입각경험이 없는 13명이 입각하는 등 대폭 개편의 의미를 살리는 면도 있으나 선거패배 책임 및 자민당 총재선거와 관련,초점이 돼 온 외상 대장상 통산상등 주요 각료직이 유임됨으로써 부분개각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개각과정에서 3당간 이해가 엇갈림으로써 정권기반이 취약해지는 한편 총리의 우유부단한 결정에 대해 자민당등으로부터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 향후 정국운영에 부담을 줄 전망이다. ◎일 개각배경과 전망/수적으로는 「대폭」 내용에선 「부분」/분위기 쇄신 못하고 3당 「나눠먹기」 일본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내각이 8일 「대폭」 개편됐다.이날 개편은 수적으로는 대폭이지만 내용면에서는 부분개각적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개각의 폭을 보면 17명이 새로 임명됐으며 입각경험이 없는 13명을 기용,새롭게 출발하는 모습을 보였다.하지만 내용면에서 보면 무라야마내각이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를 말해주는 주요 포스트,즉 총리 외상 대장상 통산상 등은 모두 유임됐다.바꿔 말해서 기본 골격은 그대로 두고 부품만 대폭 교체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달 23일 참의원선거에서 연립여당이 참패한 뒤 내각총사퇴나 중의원해산등을 대신해 내각의 대폭개편으로 심기일전의 분위기 쇄신을 꾀하겠다던 당초의 의미가 충분히 살지 못한 개각이었다. 개각의 초점은 자민당 총재인 고노 요헤이(하야양평)외상과 신당사키가케의 대표 다케무라 마사요시(무촌정의)대장상의 거취였다.다케무라대장상은 선거패배등의 책임을 놓고 지난달 이미 당대표 사의를 표명했다가 철회했다.고노 외상은 9월 자민당 총재선거를 놓고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통산상 지지파의 거센 도전에 맞서기 위해 외상을 내놓고 「무임소 국무위원」을 맡아 총재선거에 전념하려 했었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는 개각에 미온적이었다가 대폭 개편을 주장하는 고노외상의 주장에 따라 대폭개각에 합의했지만 개편의 칼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대폭 개각에 이어 당인사까지 행함으로써 총재선거에서 기선을 잡으려는 고노외상과 총재선거후 개각을 주장하는 하시모토파 사이에서 어느 쪽도 편을 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또 다케무라 대장상을 교체할 경우 선거패배의 책임을 둘러싸고 총리에게도 따가운 눈길이 쏠릴 것은 뻔한 일이었다. 이에 따라 무라야마총리는 먼저 다케무라 대장상을,다음에는 고노외상을 각각 제자리에 주저앉히는데 주력했다.또 고노 외상이 그만두면 자신도 통산상을 그만두겠다는 하시모토 통산상을 설득했다.결국 8일까지 개각의 초점이 되는 주요 각료직 3인 모두가 유임으로 결정됐다.
  • 신당 영입 인사/13명 추가 발표/새정치 국민회의

    가칭 「새정치국민회의」는 8일 박상규 전 중소기업 협동조합 중앙회회장 등 신당참여가 확정된 13명의 영입인사를 추가로 발표했다.이에따라 지금까지 확정된 외부영입 인사는 40명으로 늘었다. 이날 발표된 영입인사는 군출신으로 간용태 전 해군작전 사령관,손길남 전2군부사령관,윤갑수 예비역 공군준장,김재민 전 육사교수부장 등이 포함됐으며 조경철 전 경희대 부총장과 오익재 전 천도교 교령도 참여의사를 밝혔다. 또 장성원 동아일보 조사연구실장과 김윤수 전 조선일보기자(리베라호텔 사장),박성규 전 상공부국장의 참여가 확정됐으며 탤런트 이효춘씨와 임현식씨,가수 최희준씨도 포함됐다.
  • 원격 영상회의/포철 첨단경영 체제구축

    ◎서울­포항­광양­도쿄 4자동시회의 이모저모/기업사상 처음 생산·판매전략 동시 수립/현장소리 즉시 본부에… 즉석 결재도/「하워링 현상」해소… 완벽한 음질자랑/88년이후 월1백여회 가동… 출장비 연 11억·27만시간 절감 지난달 22일 포항제철 영상회의실의 운영을 총괄하는 김태균부장(IBS팀장)은 새벽4시에 눈을 떴다.전날 밤에도 자는둥 마는둥 잠을 설쳤지만 꼭 무더위때문은 아니었다.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키고 여의도자택을 출발,2년전부터 준비해온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장인 서울 삼성동 포스코센터 29층에 도착한 것이 6시30분.포철의 IBS팀원들이 속속 도착했다.이날 행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전체 진행과정을 확인시켰다.각자 맡은 임무에 들어가 송·수신장치와 원격마이크,카메라의 작동을 확인하고 영상시스템의 전체적인 성능을 최종 점검했다. 현재까지 시스템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포항과 광양,도쿄의 영상회의실담당자와 통화를 시작으로 동시에 영상회의시스템을 작동시킨 것이 7시30분.원거리 4자 동시영상회의를 꼭 1시간 앞두고 최종 리허설을 시작했다.30분의 시험가동끝에 모든 시스템이 「이상무」로 확인됐다.8시 정각,회의시작 30분을 앞두고 서울 6명,광양 3명,포항 3명,도쿄 1명 등 모두 13명의 영상회의 진행실무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날은 국내기업 사상 처음으로 포철의 도교지사와 서울,광양,포항간 4자영상회의가 있던 날이다.세계적으로 양자간(1대1)의 해외간 영상회의는 가능하지만 이날 회의는 해외와 다자간회의로 전례가 없던 일이다.지난 88년 역시 국내처음으로 국내 원격영상회의시스템을 도입한지 꼭 6년만이다.93년7월,서울 삼성동에 포스코센터의 건립계획이 확정되면서 해외 첫 영상회의개최를 목표로 뛴지 2년만의 일이다. 상오 8시30분,김만제포철회장이 29층 영상회의실 중앙석에 앉으면서 33인치 5개 모니터와 1백20인치 대형스크린 2대에 화면이 들어왔다.김회장의 얼굴이 확대되고 강창오 도쿄사무소장(상무)의 모습이 크게 다가왔다.김회장은 영상회의실에 모인 40여명의 임원을 둘러보며 인사를 했다.『오늘은 역사적인날입니다.국내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해외지사와 원거리 영상회의를 개최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최첨단 빌딩에서 다른 기업들이 엄두도 못내는 해외 원격영상회의를 개최한 것은 앞서가는 포철의 상징인 것입니다』 이날은 국내 최첨단빌딩인 포스코센터의 입주일을 기념,김회장주재로 서울과 포항,광양,도쿄 등의 임원회의를 주재한 자리였다. 원격영상회의는 원거리에서 양자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 직접 얼굴을 맞대고 회의를 하는 효과가 있다.서로간 대화는 물론 결재서류의 내용도 선명하게 볼 수 있어 즉석결재도 가능한 최첨단 사무자동화시스템이다.한국통신의 해저광케이블을 통해 고선명화질과 음질을 확보할 수 있었다. 포철이 처음 원격영상회의를 추진한 것은 지난 83년.통신현대화계획의 하나로 경영능률성제고와 생산성향상을 위한 조치였다.철강업무 특성상 생산을 하는 포항과 광양제철소,판매를 맡는 서울사무소의 삼자통합체제가 필수적이다.주요 임원들이 포항과 광양,서울 등에 항상 분산된 상태에서 업무의 통합적 추진을 위해 이 시스템을 도입하게 됐다.일괄생산방식으로 운영되는 철생산과정의 문제점을 즉시 파악하고 제철소의 전체 생산과정과 생산현장의 목소리를 즉시 본부에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88년 첫 가동이후 지금까지 한달평균 1백회의 영상회의가 열렸다.출장에 따르는 경비는 연간 11억원,전체 소요시간은 연간 27만7천시간을 절약했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그러나 출장비절약외에 업무의 효율화측면에서 보면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비용이 절감된 셈이다. 포스코센터의 전체 영상회의실의 설비비용은 52억원.송·수신장비와 영상,오디오장비,컴퓨터운영시스템 등이 핵심장비이다.장비의 감가상각비용을 빼고 회선사용비는 서울,포항 등 전체 월2천만원이 든다. 세계 최초의 다자간 해외영상회의가 열렸던 포스코센터 29층 임원회의실은 모두 67석에 1백2평규모이다.회의실 전면에 1백20인치 대형스크린 2대와 그 위에 5개(33인치)의 소형모니터가 설치돼 양자간,4자간회의가 가능하다.발언자가 바뀔 때마다 자동적으로 화면이 포착되는 고감도카메라 10대가 있어 어느 좌석에서발언하더라도 즉각 대형화면에 나올 수 있다.굳이 마이크를 끌어당겨 쓰지 않아도 발언자의 음성이 정확히 전달되는 고감도 원격시스템을 설치,평상시 대화하는 분위기를 내도록 설계됐다. 서울사무소의 사내방송을 포항과 광양공장의 전직원에게 보내는 것은 물론 최고경영자의 의사를 신속히 전달해 전사원간의 결집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 다자간영상회의의 성공을 막는 최대의 장벽은 음질문제.회의중 별안간 음성이 겉돌거나 혼선이 이뤄지는 하워링현상이 간혹 일어나나 7년간 꾸준한 개선으로 이제 완벽한 성능을 자랑한다.세계 최첨단이라는 말에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얼마전 국내 굴지의 재벌회사관계자들이 포철의 화상회의시스템을 견학하고 시스템의 방대함에 첨단성에 경악,재계의 화제가 된 바 있다.이들은 너무 엄청나 『아직은 도입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상부에 보고했다고 한다.앞서가는 포철의 상징이다.
  • 주한미 대사관 무관보고서(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30)

    ◎북,남침 보름전 남·북총선 제의/조국전선 요원 남파… 각계지도층 시도/“국회통합” 등 위장 평화공세… 전쟁준비 숨겨 북한정권은 대한민국 제2대국회의원 선거인 5·30총선이 끝난 직후에도 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조국전선)을 내세워 남북총선을 제의하는 등 한국의 혼란을 부추겼다.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입수한 19 50년 6월16일자 주한 미대사관 무관들의 주간보고서 조인트위카(JOINTWEEKA)에 따르면 이를 위해 북한은 조국전선 요원들을 남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국전선이 남한으로 보낸 요원은 서기국 조직부장 김태홍·이인규와 조국전선 신문기자 김재창.조인트위카는 19 50년 6월10일 38선 경계의 여현에 도착한 이들은 8월 5∼8일 사이에 남북총선을 실시하고 8월 15일 최고입법기구를 창설하자는 조국전선 선전선동물을 휴대 했다고 기록했다.이들은 5·30총선을 참관하기 위해 한국에 온 유엔한국위원단을 여현에서 만나 남북총선거에 의한 최고입법기구 설치를 주장하는 전단을 전달했다. 조인트위카는 김태홍일행이 한수를 더 떠서 남한의 여러 정당및 사회단체 인사를 만난다는 이유로 부득부득 남행을 강행 했다고 밝혔다.그런데 이들은 38선을 넘자마자 한국군에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었다는 것이다.북한은 이 사건에 이어 6월 19일 자신들의 최고회의 정령을 통해 대한민국 국회와 최고인민회의가 단일 입법기관으로 연합하여 헌법을 제정하고 공화국을 수립할 것을 제의 했다. 북한정권의 이같은 제의는 진정한 평화통일의 의지를 담은 것은 아니었다.이 제안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비롯한 대한민국 집권층을 대화의 상대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에 실현성이 희박 했던 것이다.특히 일련의 제안들이 나온 6월 25일에 북한이 한국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평화의 제스처는 전쟁을 호도하기 위한 기만이었다고 할수 있다. ◎2대국회와 정계재편/신진들 대거 진출… 여소야대 정치구도 형성/지지기반 잃은 이승만… 새 정당 창당 서둘러 1950년 5·30선거를 통해 구성된 2대국회는 6·25전쟁으로 말미암아 초라한 피란국회의 인상이 짙게 남아있다.6월19일 개원한지불과 1주일도 채 안돼 한국전쟁을 만난 2대국회는 27일 새벽 긴급회의를 끝으로 서울을 떠났다.9.28수복과 더불어 서울에 잠시 들렀지만 환도는 19 53년 8월16일에 가서 이루어 졌다. ○보수 기득권세력 참패 그러나 제2대 국회는 한국 정당정치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우선 제헌국회에서 보수세력이 철저하게 기득권을 이용해 세력을 굳혔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2대 국회에서는 이들 기존 세력들이 대거 탈락하는 대신 그 반대세력인 신진과 소장파등 무소속이 압승을 거두어 판도의 대변화를 일찍 예고했다.이로 말미암아 2대국회는 보수파 세력간의 각축장이 아니라 본격적인 여·야의 대립양상을 보여주는 계기가 마련됐다.이는 실질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지지기반 약화를 가져온 것으로 이대통령은 이에대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여기서 2대 국회를 낳은 5·30선거를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5·30선거는 19 48년 제헌국회를 낳았던 5·10선거와는 크게 구별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외부 개입없이 한국인들만에의해 실시된 5·30선거는 보수세력들만이 참여했던 5·10선거와는 사뭇 달랐다.그래서 남북 협상파와 중간파들까지 모두 끼어들었다.이 5·30선거야말로 표면적인 활동을 할 수 없던 공산주의자들을 빼놓고 당시 한국의 전 정치세력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총선이라 할 수 있다. ○남북협상파 총선 참여 5·30선거에서는 모두 2백10명의 국회의원을 뽑았다.총선에는 여당인 대한국민당(국민당) 1백65명,야당인 민주국민당(민국당)의 1백54명을 포함해 39개 정당 사회단체에서 모두 2천2백9명이 입후보 했다.이 가운데 10명 이내의 후보자를 낸 정당 사회단체가 30개,1명 밖에 못 낸 정당 사회단체도 무려 18개나 됐다.특히 1천5백13명이라는 무소속 입후보자는 의원 총수의 7.2배나 됐다.이처럼 5·30선거에 여러 정당 사회단체가 참여한 데는 대한민국의 유엔 승인과 제헌국회를 통해 어느 정도의 정치적 역량을 키워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제헌국회에 비해 입후보의 난립상을 보여준 5·30선거는 예상대로 여권의 참패로 끝나고 말았다.국민당 24명,국민회 14명,대한청년단 10명,일민구락부 3명,대한노총 3명,여자국민당 1명,대한부인회 1명,중앙불교위원회 1명등 여권에서 57명이 겨우 당선했다.야당은 민국당 24명,사회당 2명,민족자주연맹 1명등 27명이었지만 의원 정원의 3분의 2를 차지한 무소속 1백26명을 일단 야권으로 보았을때 여소야대가 분명했다.국회가 개원하던 6월19일 의장선거에서 5·30선거가 철저한 야권의 압승임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날 의장선거 1차투표 결과는 민국당의 신익희 96표,사회당의 조소앙 48표,무소속의 오하영 46표,국민회의 이갑성 11표,무소속 안재홍 3표순으로 집계됐다.이승만 정부가 지지하던 무소속 오하영은 46표밖에 못얻어 패배하고 말았던 것이다.2대국회에서의 야당 우세는 이날 2차투표에서 더욱 두드러졌다.야당세력과 무소속의 대부분이 민국당으로 쏠려 결국 1백9표를 얻은 신익희가 의장으로 선출됐다.이는 정치갈등을 드러낸 제1라운드의 게임이었다. 민국당은 한민당과 신익희등 대한국민당의 일부의원,그리고 대동청년단등 3개 세력이 합동해 19 49년 2월20일 창당한 정당이다.민국당은 상해 임시정부에도 반대하고 국내 좌익세력과도 척을 졌던 한민당이 주축을 이루었다.한민당은 해방공간에서 남북의 대치상황이란 특수상황에 편승해 독립적 세력이었던 이승만과 가깝게 지냈다.일제하 기득권층이 대부분이었던 이들은 반공에 치우쳤던 이승만을 도와 정부수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그러나 이승만의 입장에서 볼때 한민당이 가장 이상적인 정당은 아니었다. 한민당이 제헌국회에서 압승을 거두고도 개각에서 철저하게 소외됐다는 사실은 바로 이같은 이유에서다.한민당측은 이런 상황에서 이승만과의 결별을 생존의 수단으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이승만 노선에 반대하던 세력과의 연합으로 손을 잡아 만들어낸 정당이 바로 민국당이었던 것이다. ○대통령직선 개헌 준비 민국당은 창당직후부터 이승만의 힘을 약화시키는 제도적 장치인 내각책임제 개헌을 강력하게 들고 나왔다.민국당의 내각제 개헌주장은 제헌국회에서 이승만과 그를 지지하는 국민당등 여권세력의 결사적인 반대로 부결됐다.하지만 1952년 임시수도 부산에서 대통령이 제출한 대통령직선제를 중심으로 한 개헌안과 국회가 낸 내각책임제 개헌의 대립에서 발췌개헌안이 통과돼 일단락될 때까지 계속됐다. 이승만은 민국당의 성격이 이처럼 자신에 대한 반대와 퇴진에 초점이 맞춰졌음을 잘 알고 있었다.이승만은 5·30선거에서 민국당측이 실질적으로 원내를 장악하게 되자 자신의 지지기반을 다지기 위한 창당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창당과정에서는 지지세력을 모으는데 이승만이 직접 나섰다.물론 여기에는 이승만의 지지세력이었던 여권이 만족할 만한 역할을 해내지 못한 탓도 있었다. ○자유당 창당에 박차 5·30선거후 정당의 이합집산을 계속했던 2대국회는 6·25전쟁을 겪으면서 민국당을 중심으로한 야권의 결집과 이승만 지지세력의 연합등 양분상을 나타냈다.야권이 이승만 퇴진이란 기치아래 민국당을 주축으로 굳건히 뭉친반면 여당은 상대적으로 약했다.이승만 대통령 쪽의 민정동지회와 국민구락부의 연합인 신정동지회,그리고 공화구락부의 통합 교섭단체인 공화민정회는 전체의원수의 과반수인 94명이 포진했다.그럼에도 민국당에 비해 오합지졸의 취약성을 띨 수 밖에 없었다.그래서 공화민정회는 열세를 면하기 위해 신당 창당을 서둘렀다.19 51년 8월15일 광복절을 맞아 이승만대통령이 드디어 신당의 필요성을 역설함으로써 창당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그로부터 4개월후 피란지 국회의사당에서 장차 독재집권의 기반이 될 자유당 결당대회가 열렸고 중앙위원회 의장에 이승만,부의장에 이갑성과 김동성이 선출되었다.
  • 한통분규 75일만에 일단락/수배 노조간부 「자수」 의미

    ◎「핵심」 잇단 구속으로 조직장악에 “한계”/통신개방 발표따라 재연 가능성도 통신대란의 우려를 자아냈던 한국통신사태가 지난달 30일 유덕상 노조위원장과 이해관 노조 경기지방본부장 등 당국의 수배를 받아오던 노조 핵심지도부가 경찰에 자수함으로써 사태발생 75일만에 일단락됐다. 유위원장은 이날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직권중재철회와 총력투쟁결의대회」에 참석한 뒤 파업 등 모든 단체행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두달반을 끌어온 한국통신사태는 큰 고비를 넘기고 그동안 양측 사이에 이견을 보였던 문제를 수습하는 문제만 남겨 놓고 있다. 유위원장이 자수 직전에 언급한 내용은 『올해 임투패배를 시인하며,파업에 돌입할 경우 득보다는 실이 너무 많아 모든 단체행동을 중단한다』는 것이었다. 유위원장의 이같은 발언과 자수행위는 정부의 강력대응책에 더이상 버티지 못한 현 노조집행부의 사실상 「사퇴」또는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로써 좀처럼 사태해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며 대결국면과 소강상태를 반복해온 한통사태는 돌발적인 변수가 없는 한 어떤 형식으로든 해결점을 찾아낼 것으로 기대된다. 노조집행부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지난 5월 이래 간부들의 잇단 구속으로 노조의 조직력이 약화돼 실질적으로 전국사업장 동시파업능력을 갖추지 못한데다 3백40여명의 지부장구속 등 노조측에 엄청난 피해가 예상되고 국민여론 또한 유리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 5월16일 회사측의 노조간부 64명에 대한 중징계발표로 표면화된 한통사태는 정부의 강경대응과 노조의 「준법투쟁」등 단체행동이 이어지면서 파국위기를 맞았으며 노조간부들의 명동성당 및 조계사농성으로 사태가 장기화국면으로 접어들기도 했다. 지난 6월6일에는 노조간부들이 농성 중이던 명동성당과 조계사에 공권력이 투입되고 이어 조백제 사장이 전격경질되면서 이를 계기로 대화를 통한 사태해결의 가능성이 한때 엿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교섭과정에서 양측의 입장차이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아 마침내 회사측은 지난 15일 중앙노동위원회에 쟁의중재신청을 냈으며 노조도 이에 맞서21∼22일 파업찬반투표로 파업을 결의하는 등 다시 정면대결의 양상을 드러냈다. 지난 28일에는 임금 5.7% 인상을 내용으로 하는 중노위의 중재재정이 나오자 노조측은 이를 거부,한통사태는 장기전이 될 것으로 우려됐었다. 노조지도부의 전격적인 「패배선언」으로 당분간 당국과의 물리적 충돌가능성은 희박해졌지만 이번 사태의 핵심적인 요인 중의 하나가 한국통신의 민영화문제와 통신시장개방을 둘러싼 대립이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한통문제가 쉽사리 해소될 것으로 낙관하기는 어렵다. 올 하반기 중 윤곽이 드러날 한통민영화계획이나 시장개방협상여부에 따라 한국통신사태는 또 한차례 재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통사태 일지◁ ▲5월16일=노조간부 64명에 대한 파면 등 중징계방침 발표.노조 철야농성 돌입 ▲5월22일=노조간부 6명 명동성당서 농성돌입.노조위원장 등 14명 사전영장발부 ▲5월29일=노조,퇴근·점심시간지키기 등 강경투쟁방침 발표.검찰,한통사태 엄단방침발표 ▲5월30일=경찰,명동성당과 조계사측에 농성간부 영장집행 협조요청 ▲6월5일=명동성당,중재안 정부에 전달 ▲6월6일=명동성당,조계사에 공권력투입.농성간부 13명 연행. ▲7월28일=중노위,임금 5.7% 인상 중재재정 ▲7월30일=유덕상 노조위원장,단체행동 중단선언 후 자수
  • 제헌국회의 공과(새로쓰는 한국현대사:29)

    ◎헌법·각종 기본법률 제정… 민주주의 토대구축/일제잔재 청산 미비·농지개혁 실패 등 실정도 1950년 5월 30일 제헌국회는 두번째 정기회기를 마침으로써 2년여만에 막을 내렸다.이 날은 마침 제2대 국회 구성을 위한 국회의원선거를 실시한 날이었다.대한민국 출범이후 지금까지 14대의 국회가 구성됐지만 제헌국회의 의미는 각별할 수 밖에 없다. 제헌국회는 헌법을 비롯한 각종 기본적인 법률의 제정,초대 대통령 선출등 대한민국 탄생의 산실이었기 때문이다.또 일제 잔재 청산등 묵은 시대를 정리하고 민주주의에 기초한 새 시대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 업적은 대단하다.물론 새로 도입한 민주주의 제도가 우리 사회에는 생소한 것이어서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고 일제 청산이 미흡한 점 등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이는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제헌국회 2년을 수치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선거에서 의원 1백98명이 선출됐다.회기는 그해 5월 31일 개막해 2백3일동안 계속된 임시회를 비롯,임시회와 정기회를 합쳐 6차례,6백40일동안 문을 열었다.임기 7백30일 가운데 90일을 제외하곤 늘 개회 상태였으니 신생국가의 첫 의회답게 엄청난 열정을 보였던 것이다.실제로 첫 임시회는 정기국회 개회를 이틀 앞둔 48년 12월 18일 폐회,하루만 쉬고 다시 회기에 돌입할 정도였다. 이같은 열의로 제헌국회는 2백34건의 법률안을 통과시켰다.또 2백26건의 청원을 접수해 65.5%인 1백48건을 처리했다.국회 자체의 건의·결의안은 모두 1백45건이나 됐으며 1백1건을 가결했다. 이같은 활동 중에서도 제헌국회가 다룬 주요 의제로는 반민족 친일파의 처벌,미군 철수대응,국가보안법 제정,농지개혁과 지방자치제 실시 등을 꼽을 수 있다.특히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대응은 새로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사활이 걸린 최대 현안이었다.남북에 별개의 정부가 들어서기 전부터 분단은 곧 전쟁을 불러오리라는 예상이 널리 퍼져 있었다.더욱이 북한의 군사력이 대한민국의 수준을 능가한다는 사실도 이미 확인된 상태였다.따라서 주한미군의 존재는 국가안보를 위해 꼭필요했고,만약 미군이 떠난다면 그에 앞서 자체 국방력을 대폭 강화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의 칼자루는 물론 미국 정부가 쥐고 있었던 만큼 당시 미국의 한반도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미 정부는 1947년 9월 말 한반도문제를 유엔으로 이관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위한 정지작업을 했다.하지만 미 국무성과 육군성,그리고 주한 미 군정 사이에는 입장에 따른 견해차가 있었다. 육군성은 『한국에 대해 군사전략적인 이해를 거의 갖고 있지 않다』는 합동참모부(JCS)의 분석을 바탕으로 미군 철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미 군정도 군정을 지속시킬 수 없을 정도로 한국 상황이 악화됐다는 이유로 철군을 지지했다.국무성도 철군주장에는 동의했다.다만 한국이 공산화하지 않도록 철군에 앞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미정부는 1948년 4월 초 「한국에 대한 미국의 입장(NSC 8)」이라는 문서를 채택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결정했다.이 문서에는 주한미군이 그해 12월 31일까지 철군을 완료하도록 규정돼 있었다.하지만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남북한간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철수는 계속 연기됐다. 한국 정부는 처음부터 미군철수를 반대하지만 일단 기정사실로 굳어지자 더 많은 경제원조와 군사원조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 미 정부에 집요하게 요구했다.이에 미국도 군사고문단을 설치하고 국방경비대를 강화하는 등 철군이후 한국의 안전보장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제헌국회 내에서도 미군 철수는 최대의 논쟁점이 되었다.1948년 10월 13일 제87차 본회의에서 의원 46명은 「외군철회 요청에 관한 긴급동의안」을 제출했다.그들은 『자주국가로서 자율권이 엄연한 이상 외군의 주둔을 허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 다음 유엔을 겨냥,『유엔은 총회에서 19 47년 11월 14일 결의한 기록을 회상해』외군철수를 조속히 시행하라고 요구했다.이에 대해 많은 의원들은 「공산당 모략」이라고 흥분했고 양쪽 의원들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국회의장이 경위를 출동시키기 까지 했다. 이어 11월 19일에는 최윤동 의원 등 99명이 『대한민국의 방위태세가 정비될 때까지 미군의남한주둔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미군주둔에 관한 결의안」을 제출했다.이 결의안은 약간의 논란을 거친 뒤 표결에 들어가 재석 1백13명 가운데 찬성 88,반대 3의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됐다.「외군철회 동의안」이 나온 뒤 빗발치는 여론의 비난 속에서 미군철수 주장이 급격히 사그라든 결과였다. 일제강점기 때 민족반역자 노릇을 한 친일파를 처벌코자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제헌국회는 48년 9월 친일파를 사형까지 시킬 수 있도록 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곧 이어 이를 실행할 기구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반민특위」는 김상덕 의원을 위원장으로 뽑고 중앙과 지방에 사무국을 설치했다.또 친일파를 기소·재판할 특별재판부·특별검찰부도 정하는 등 발빠르고 치밀하게 움직였다. 위원회는 넉달동안 3백5명의 친일분자를 검거하는 실적을 올리지만 곧 활동이 벽에 부딪힌다.친일파를 대거 기용한 이승만 정부가 시국이 불안정한데 사회지도급 인사를 대량검거하면 사회불안을 가중한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게다가 19 49년 6월에는 친일파의 조정을 받은 사회단체가 『반민특위를 해체하라』며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특위 소속 사법경찰관이 습격을 받는 등 온갖 행패가 자행됐다.국회는 그해 8월 22일 「반민특위 폐지안」을 통과시킴으로써 행정부에 굴복했고 친일파 처리는 흐지부지돼 아직도 역사의 짐으로 남아 있다.제헌국회가 친일파 처리에 좌절한 것은 당시 국회·행정부를 차지한 계층의 본질적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제헌국회는 이밖에도 국가보안법·농지개혁법·지방자치법등을 제정해 국가의 기틀을 튼튼히 하고 개혁 의지를 보였다.『국헌을 위배해 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결사 또는 집단을 구성한』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한 국가보안법은 48년 11월 19일 통과됐다.이 법에 대한 논의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이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반대했고 일부 문구의 수정이 있었지만 투표에서는 찬성 84,반대 3으로 가결됐다.남북이 대치하고 「여순반란사건」등 공산주의 폭동을 여러차례 겪은 그때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제정은 어쩔 수 없는선택이었을 것이다. 「농지개혁법」은 49년 6월 21일 제정됐다.헌법 제86조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소유의 한도,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는 규정에 따라 하위법으로 마련된 이 법은 유상매수­유상분배를 골자로 했다.농지개혁법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결국 대농에게 토지가 집중되는 현상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주한미군사령부 전문/이 대통령,49년4월11일 미군철수 동의/1년간 강력반대… 미,계획 수차례 연기/무기이양·군사고문단 설치 조건 수락 대한민국 수립직후부터 한국과 미국 양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를 둘러싸고 협의를 계속했다.한국은 철군을 강력하게 반대한 반면 미국은 한국 안보를 위한 보완책을 제시하며 설득했다. 미 정부는 1948년 4월 2일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에서 정리한 「한국에 관한 미국의 입장 (NSC 8)」을 미군철수의 지침으로 삼고 있었다.그 내용은 49년 3월 31일까지 철군을 끝낸다는 것이었다.그러나 한국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미국이 계획한 철수 일자는 점차 늦어졌다. 시한은 5월 10일로 한번 수정됐다가 49년 3월 23일 채택한 「NSC 8­2」에서 그해 6월 30일로 최종 결정됐다.따라서 49년 4월 미국으로선 상당히 초조한 상태였다. 서울신문 특별취재팀은 당시 양국에서 오간 문서 가운데 한국측 입장 변화를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전문을 발굴했다.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입수한 이 문서는 주한미군사령부가 49년 4월 12일 미 국무성에 보낸 것이다. 그 내용은 「이승만 대통령이 전날 미군철수에 마침내 동의했으며 며칠안에 이같은 사실을 국민에게 공개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이와 함께 철군에 앞서 미군이 한국의 육군,해안경비대,경찰에 장비를 이양하며 정식으로 군사고문단을 설치한다는 조건에 합의했음을 밝혔다. 이대통령은 합의에 따라 4월 18일 주한미군 철수를 공표했으며,주한미군 1천5백여명은 49년 6월 27일 인천항을 통해 철수했다.
  • 스리랑카 장성 폭사/타밀반군서 매설한 지뢰터져

    【콜롬보 AFP 연합】 타밀 반군은 스리랑카 정부군의 공세로 3백명이상의 인명손실을 입은데 대한 보복으로 30일 정부군 동부지역사령관을 암살했다고 정부군 대변인이 밝혔다. 이 대변인은 이날 바티칼로아 해변지역을 통과하던 제3사단장 날린 안감마나 준장이 탄 랜드 로버차가 타밀 반군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측에서 매설한 지뢰로 폭파돼 안감마나 준장이 그 자리서 숨지고 수행장교 수명을 포함한 13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 지방세 상습체납 2만명 적발/재산압류 등 처분

    지방세를 상습적으로 체납해온 2만여명의 재산이 내무부 전국 토지종합전산망에 검색돼 재산 압류 등의 강제 처분을 받게 됐다. 내무부는 29일 부산·대구 등 13개 시·도로부터 지방세를 체납한 개인 및 법인대표 8만5천5백81명의 부동산 보유여부를 전산검색한 결과 24·4%인 2만9백13명이 해당 시·도가 아닌 외지에 부동산을 보유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방사선기기 관리 잘해야(사설)

    부산의 방사성동위원소 감마선 조사기 도난사건은 위험한 방사선기기의 취급이 얼마나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유출되면 암유발등 인체에 치명적 위해를 가져오는 방사성물질이 노상에서 차량째 도난당할 정도라면 그 관리 허술의 실상을 알만하다. 방사선기기의 취급에는 당연히 방사성동위원소 취급면허나 감독면허 소지자가 입회,그 지시와 감독에 따르기로 규정돼 있으나 이번 사고에는 무면허 직원이 작업을 맡았던 것이다.말할 것도 없이 기본적 안전수칙 위반이다. 감마선조사기를 사용하는 비파괴검사업체나 방사성동위원소 취급업체가 최근 부쩍 늘어나 전국에 1천여개소나 된다.이에 비해 필수적인 감독면허나 일반면허 소지자는 2천7백여명에 불과해 절대수요에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결국 방사성동위원소 취급에 관한 안전수칙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더구나 대부분 영세업체인 탓으로 안전요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이들 업체들은 기술이 낙후한데다 과당경쟁으로 인해 효과적인 안전관리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방사성물질 사용의 필요성은 점점 확대되고 있으나 이에 따른 안전대책과 관리는 제자리걸음이어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방사성물질 취급업체에 대한 점검·관리는 현재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연1회 실시하고 있다.그러나 검사요원의 태부족으로 형식적인 검사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과기처 위탁기관인 안전기술원 한 군데서 전국 1천여 업체· 기관을 점검한다는 것도 무리한 일이다.그것도 고작 13명의 검사인원으로 어떻게 탄탄한 안전점검을 해낼 수 있겠는가.조사대상의 증가에 따라 검사요원의 증원도 조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방사성동위원소는 여러 분야에서 편리하게 이용되고 있지만 그 치명적인 위험성은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 대규모 「유령회사」 사기단 적발/19명 구속 1백17명 입건

    ◎자본금대납·수수료 수억 챙겨/어음 등 남발… 62억여원 부도내 회사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을 은행에 잠시 대납해주는 수법으로 유령회사를 차려주고 수수료를 챙긴 브로커 일당과 유령회사 대표 등 1백44명이 검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서울지검 동부지청 특수부(김상희 부장검사)는 27일 성진컨설팅 대표 한봉현(46·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씨 등 유령회사 설립 브로커 13명을 상법 위반(자본금 가장 납입)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한씨 등이 설립한 유령회사를 인수한 뒤 은행으로부터 신용대출을 받거나 당좌수표 및 딱지어음을 남발하는 등 사기행각을 벌인 한주상사 대표 김의환(금천구 시흥4동)씨 등 6명도 사기 등 혐의로 구속하고 김모씨(25·여)등 1백17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한씨는 지난 3월27일 김모씨(30)로부터 『회사설립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시중은행에 자본금 1억원을 대납,주식회사를 설립해준 뒤 곧바로 이 돈을 인출하면서 수수료 3백30만원을 받는 등 모두 2백28개 법인설립에 개입,2억2천2백여만원을 챙긴혐의를 받고 있다. 또 김씨는 명의만 빌린 속칭 「바지사장」을 대표이사로 내세워 한주상사 등 유령회사 3곳을 설립한 뒤 은행으로부터 1억3천5백만원의 신용대출을 받는 등 모두 2억1천3백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한씨 등 브로커 13명에 의해 설립된 유령회사는 모두 4백60여개,허위납입 자본금은 모두 1천33억여원에 이르고 이들 유령회사 대표들이 당좌개설과 어음 등을 남발,부도를 낸 액수는 62억원 가량 된다고 밝혔다.
  • 「전국구 탈당시기」싸고 야권 “입씨름”/민주당­신당 공방전 가열

    ◎정기국회 「뜨거운 감자」로 부각 될듯 김대중 상임고문의 신당과 민주당 사이에 전국구의원의 탈당시기를 놓고 입씨름이 한창이다.선관위가 24일 전국구의원이 지구당을 해산하는 편법을 쓰더라도 탈당하면 의원직을 자동 상실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 촉발제가 됐다.이번 공방전은 민주당이 공격,신당측은 수비에 치중하는 듯한 인상이 짙다.9월에 시작되는 정기국회 회기중에도 계속 「뜨거운 감자」역할을 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 신당은 25일 김상임고문 주재로 주비위 지도위원회의를 열어 선관위의 유권해석문제를 논의,전국구의원의 탈당시기를 정기국회 이후로 미뤘다.여론의 따가운 비판이 쏟아져도 지금은 어쩔수 없다는 자세다.현재 신당참여가 확실한 전국구의원은 장재식·이우정·이동근·박정훈·박은대·나병선·김옥천·국종남·김옥두·양문희·박지원·남궁진·조윤형·김충현 의원 등 14명이다.이들 가운데 박지원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13명은 신당지도부의 이같은 방침에 따라 창당때부터 합류하지 않는다.따라서 신당 참여의원은 당초68명선에서 55명 정도로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수치보다 호된 비판여론이 몹시 곤혹스러운 것 같다.벌써부터 「부도덕하다」「정도가 아니다」는 질책이 쏟아지고 있다.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뾰족한 방책이 없다는데 고민이 있다. 반면 민주당은 오랜만에 호재를 만난듯 공세에 여념이 없다.「파렴치한 행위」「시정잡배들의 결정」이라는 등의 원색적인 용어를 동원,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계속되는 신당측의 악수로 오히려 민주당의 명분이 강화되고 있다는 판단도 하고 있다.이기택 총재는 『신당이 동조의원들에게 잔류를 명한 것은 전당대회를 방해하려는 공작』이라고 비난한 뒤 『여러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구체적 대안을 마련중임을 시사했다.전당대회 연기도 유력한 방안의 하나라는 후문이다.이규택 대변인도 논평에서 『딴살림을 차린 사람들이 민주당에 남아 당무를 지속적으로 방해한다면 김 이사장이 즐겨하는 말처럼 「소나 웃을 일」이며 정치도의상 묵과할 수 없는 행위』라고 몰아세웠다.이총재의 한 측근도 『정기국회 회기중 「5분 자유발언제」를 활용,신당의 부도덕성을 집중 홍보해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 나갈것』이라고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 내부도 점차 감정대립이 첨예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어 향후 사태추이가 주목되고 있다.이날 김원기 부총재와 이부영·노무현부총재 등 구당파가 당사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 이총재측 당원들이 몰려가 욕설을 퍼부으며 김정길 전의원의 멱살을 잡고 주먹다짐 일보직전까지 가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전날 구당파가 『이총재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총재가 소집한 회의에는 참석치 않겠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총재도 이 소식을 듣고 기자들과 만나 『구당파의 주장은 내가 총재직을 물러난뒤 DJ를 민주당총재로 모시겠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원만한 해결보다는 점차 이총재와 구당파의 한판승부로 내몰리고 있는 느낌이다.
  • 대우기술자 13명/방북위해 출국

    (주)대우의 기술자 13명이 오는 9월 가동 예정인 북한의 남포공단 경공업 공장에 가기 위해 20일 중국으로 떠났다. 대우그룹에 따르면 (주)대우 부산공장 신홍조 이사를 단장으로 하는 방북단 13명(설비 담당 6명·생산 7명)은 북경에서 북한측 합작사인 조선삼천리총회사 관계자들과 만나 남포공장에 설치될 설비의 운송일정과 송금 및 회사 운영 등에 대해 협의한 뒤 빠르면 오는 22일 북한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 「21세기 경제 청사진」 제시/「신경제 장기구상」의 의미

    ◎고속성장 부작용 총점검… 정책대안 구상/5년단위계획 연속성에 문제… 장기 입안 정부가 「신경제 장기구상」(96∼2020년) 작업계획을 세우기로 한 것은 개발시대의 경제성장 과정을 총체적으로 점검,선진국을 향해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기 위한 것이다.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계기로 차세대까지도 겨냥한 발전전략을 세운다는 뜻이다. 우리 경제는 지난 62년 1차 5개년 계획이 시행된 이후 30여년간 연평균 8% 이상의 높은 성장을 해 왔다.단순히 소득을 높여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1차적 목적을 추구하는 성장 위주의 정책을 추진,선진국들이 2백여년에 걸쳐 이룩한 업적을 30여년만에 쫓아가는 초고속 성장(압축성장)을 해 왔다. 그 결과 국민소득 1만달러,경제규모 세계 11위,교역규모 세계 12위라는 놀라운 기적을 일구어 냈다. 그러나 과거 성장의 촉진제 역할을 했던 「헝그리(배고픔) 정신」만으로는 세계화 및 정보화의 빠른 진전 등 급속하게 변하는 21세기에 대비할 수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다.저임에 의존한 성장과 과도한 정부의 규제및 독과점적인 시장구조,인간을 경시하는 정책으로 대변되는 과거의 방식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문민정부 들어 과거 박정희대통령 시대부터 5·6공까지 일관되게 추진해 왔던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이 사실상 중단되고 신경제 5개년 계획이 수립되자 일각에서는 경제정책의 연속성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았다.정권교체기 때마다 경제정책을 새로이 수립하면 정책의 일관성에 문제가 생겨 기업들도 안정적인 투자계획을 세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정책의 혼란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청와대 경제비서실이 서울대 교수를 역임한 박재윤수석팀(현 통산부장관)에서 과거 장기계획을 수립한 경험이 풍부한 옛 경제기획원 출신의 현 한리헌수석팀으로 넘어오면서 청와대와 재경원에서 2000년대를 대비한 장기 경제계획을 은밀하게 준비,이번에 기본구상이 발표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경제활동 참가율도 61.7%로 선진국들의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 때보다 낮은 편이며,농림어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7%로높다.선진국들의 과거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가 장년기였다면,우리나라는 청년기에 불과하다. 그만큼 앞으로 할 일이 많고,상대적으로 성장 잠재력도 있다는 얘기다.세계무역기구(WTO) 출범에 따른 시장의 개방과 인구의 고령화 추세 등 대내외적 여건의 변화도 지금까지의 발전전략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하게 하는 요인들이다. 재경원은 장기발전 전략을 단순한 정책방향의 제시에서 그치지 않고,「비전」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들에 대해 정책대안을 세울 방침이다.재경원은 향후 25년간의 장기 발전전략을 ▲96∼2000년 ▲2001∼2010년 ▲2011∼2020년 등 3단계로 나눠 추진할 계획이다.10년이 넘으면 「비전」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신경제 장기구상에는 기업과 정부의 역할,독과점 구조의 개선,시장개방의 폭,인재양성 및 기술개발,정보산업의 육성,복지수준의 정립 등의 정책대안들이 담길 전망이다.장기 발전전략의 실질적인 연구작업은 분야별로 거시경제반·대외정책반·재정반·금융반·사회간접자본반·노동시장반·환경정책반·농어촌대책반·경쟁촉진반·복지정책반 등의 실무작업반이 맡는다.한국개발연구원(KDI)등 연구기관이 주도하되,관계부처와 연구소 및 학계 등도 참여한다. 실무작업반이 연구한 분야별 내용을 종합 조정하는 「신경제전문위원회」의 위원수도 현 13명에서 25명 가량으로 늘릴 계획이다.최종 보고서는 신경제추진위원회에서 확정된다.
  • 「살생부」 등재설 의원 동요/신당 분위기 갈수록 “흉흉”

    ◎3명 “민주당 잔류” 이어 2명 또 이탈조짐 지난 19일 발표된 신당 주비위 지도위원 명단에 유준상 의원의 이름이 빠졌다.지도위란 민주당의 고문과 부총재급 출신으로 구성한 조직이다.민주당 부총재였으므로 당연히 포함됐어야 하나 유독 그는 직제상 지도위보다 낮은 주비위 상임위원 명단에만 올랐다.한편 이날 신당파에서는 박석무·홍기훈·황의성씨 등 전남출신 세의원이 『신당창당은 명분이 없다』면서 민주당 잔류를 선언,신당을 당혹스럽게 했다. 우연인지 모르나 유의원과 이들 세의원은 공통점이 있다.신당분위기를 흉흉하게 하고 있는 이른바 「살생부」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이라는 점이다.살생부란 민주당 운영과 지방선거 과정에서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에게 반기를 들었거나 지구당 운영 잘못 등으로 「미운 털」이 박혀 15대 공천에서 배제될 의원들을 꼽아놓았다고 알려진 명단이다.이름이 오른 인사는 대부분 민주당 「구당모임」의 리더인 김원기부총재계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살생부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13명의 명단이 문서로 만들어져 있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신당반대파의 모략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다.신당의 박지원대변인은 『15대 공천에서는 현역의원들을 최우선적으로 배려한다는 방침』이라고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살생부의 존재 자체보다는 「살생부가 있다는 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이 때문에 신당에 참여하고 있는 많은 의원들은 내심 『15대 공천에서 탈락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일말의 두려움으로 뒤숭숭한 상태에 있다.특히 김부총재계 의원들은 속을 태우고 있다.19일 신당에서 이탈한 세의원도 김부총재계다.홍기훈의원은 신당이탈 직전 김부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왜 우리에게 말도 않고 민주당에 잔류하셨느냐』고 「원망」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부총재는 20일 『현역의원 한명이 아쉬운 김이사장이 살생부를 만들 입장이냐』고 살생부 존재를 부인했다.그는 그러나 『살생부 때문이 아니라 신당에 명분이 없어 앞으로 추가이탈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이와 관련,신당내부에서는 박태영·김장곤의원 등이 조만간 이탈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이들도 살생부에 등재됐다고 알려진 의원들이다. 신당측은 20일 서둘러 이들을 주비위 정책소위와 연락소위 위원으로 각각 선임했다.
  • 27일 한·미 정상회담/김 대통령,22일 미… 29일 귀국

    김영삼 대통령은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공식초청으로 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동안 미국을 국빈방문한다고 윤여전청와대 대변인이 19일 발표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22일 출국,미국의 샌프란시스코(22∼23일)와 시카고(24∼25일)를 경유해 워싱턴(25∼28일)을 방문한 뒤 29일 귀국한다. 김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은 지난 93년 11월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김대통령은 26일 미국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의 연설을 통해 21세기 아·태시대에 대비한 한·미양국의 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예정이다. 김대통령은 이어 27일 백악관에서 클린턴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및 동북아 주변정세에 관해 폭넓게 논의할 예정이다. 김대통령은 이날 워싱턴에서 거행되는 한국전 참전기념공원 준공식 행사에 참석,6·25 전쟁의 역사적 의의와 참전용사들의 공헌을 기리는 연설을 할 예정이다. □순방일정 ◇샌프란시스코(22∼23일) ▲시장접견 ▲교민리셉션 ▲재미 한인 과학기술자 격려. ◇시카고(24∼25일) ▲교민리셉션 ▲시카고외교협회 만찬및 연설▲일리노이 주지사 접견. ◇워싱턴(25∼28일) ▲교민리셉션 ▲무명용사묘 헌화 ▲상·하 양원 합동회의 연설 ▲조지타운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및 수락연설 ▲공식 환영식 ▲정상회담및 공동기자회견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 준공식 ▲국빈만찬 ▲고어 부통령 주최 조찬 ▲워싱턴포스트지 회장 접견 ▲워싱턴특파원과의 간담회. 공식수행원명단(13명) ▲공로명 외무부장관 ▲박재윤 통상산업부장관▲황창평 보훈처장 ▲박건우 주미대사내외▲김동진 합참의장 ▲김광석 경호실장 ▲한리헌 경제수석 ▲유종하 외교안보수석 ▲윤여전 공보수석 ▲김석우 의전수석 ▲문동석 외무부의전장 ▲임성준 외무부미주국장
  • “KT 고사시켜라” DJ특명설/민주당 와해작전 본격화

    ◎잔류의원 교섭단체 이탈­총무 장악 계획/「중진 남겨 당권 빼앗은뒤 합당」 택할지도 정계복귀를 선언한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KT(이기택 민주당총재) 고사작전이 본격화하고 있다.구체적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 김이사장은 이제 이총재를 완전한 「적군」으로 치부하고 있다.신당을 만드는 과정이나 창당후 신당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국회 의정활동등에서 이총재가 최대 장애물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실제로 이총재는 이미 김이사장의 정계은퇴 번복과 대국민약속 파기에 대한 대대적 공세에 착수했고 「신3김시대」청산을 위해 전력투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정치행보에 장애 이런 점에서 이총재는 김이사장의 일거수 일투족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 것이 확실하다.까닭에 김이사장으로서는 이총재의 존재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가능하면 그를 재기불능 상태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이총재에 대한 「사퇴 최후통첩」시한(15일)은 이미 양측 모두의 관심권 밖이다. 민주당사 주변에는 김이사장이 측근들에게 잔류파 민주당이 교섭단체를 유지하지 못하게 하라는 특명을 내렸다는 정보가 나돌고 있다.김이사장의 「KT죽이기」 첫번째 전략이 민주당이 교섭단체 등록을 못하도록 만드는 이른바 「방해작전」이다. 이와 관련,동교동계가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묘안은 신당파이면서 전국구의원직 유지때문에 탈당치 못하고 민주당에 잔류하게 되는 의원들을 교섭단체에서 탈퇴케 하는 것이다.현재 민주당 전국구 의원 23명의 성향은 신당참여파가 13명이고 관망파와 이총재파가 각각 6명,4명인 것으로 동교동계는 분석하고 있다.따라서 신당동조 의원들만 교섭단체에서 이탈시켜도 의원이 20명 이하로 줄어들어 교섭단체 유지는 어렵게 된다.정치도의에는 어긋나지만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될 게 없다는 생각이다.이와 관련,국회법 제33조 1항은 「국회에 20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은 하나의 교섭단체가 된다.그러나 다른 교섭단체에 속하지 아니하는 20인 이상의 의원으로 따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이 조항에 따라 당적을 포기하지 않아도교섭단체 탈퇴는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를 위해 신당동조의원을 경선을 통해 잔류 민주당총무로 당선시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신당파가 수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당선은 무난하다고 보고 있다.이것은 「빨치산작전」으로 통한다.즉 당에 남아 공식회의 등에서 끊임없이 이총재의 지도노선을 문제삼아 퇴진공세를 펼쳐 나가는 것이다. ○「빨치산 작전」 구상 두번째 전략은 신당과 잔류 민주당의 통합방안이다.솔직히 신당에 대한 여론이 좋지않고 지금 상황으로서는 전국정당화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동교동계의 판단이다.신당을 창당할 때도 잘해야 전국 지구당 2백60개 중에서 1백개 정도 채울 것으로 예상된다.조직과 자금의 어려움으로 잔류 민주당에 남겨주게 되는 「위자료」가 계속 마음을 짓누르는 것도 사실이다.제1야당으로서 받는 국고보조금도 아쉬움이 여전하다. 결국 이런 측면을 감안,신당 동조의원들이 잔류해 이총재로부터 당권을 빼앗은 뒤 내년 총선 전에 신당과 합친다는 전략이다.그렇게 되면 김이사장은 잃었던 재산을 모두 되찾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엄청난 돌풍 예고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이 김원기부총재의 행보다.김부총재는 신당행을 거부하고 있다.그의 출신지역(전북)등을 감안할때 그의 신당참여 거부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관측이 많다.때문에 김이사장과 뭔가 교감을 나누고 이런 행동을 하는게 아니냐는 시선도 적지 않다.김부총재는 당에 잔류,이총재 퇴진운동을 계속하면서 노무현부총재등과 연계,당권을 장악한다는 계산이다.그런 뒤에 신당과 통합을 하겠다는 복안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하지만 그는 아직까지 이런 시나리오에 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그렇지만 전후 사정을 볼때 그럴 개연성은 충분하다는 게 중론이다.그에게는 김이사장의 바로 뒤를 잇는 2인자의 위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민주당은 분당 이후에도 김이사장의 「KT 죽이기」와 이총재의 결사항전이 충돌하면서 엄청난 회오리를 일으킬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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