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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색다른 인터뷰] “3·1독립선언, 현대적 관점서도 탁월한 동아시아 평화선언문”

    [색다른 인터뷰] “3·1독립선언, 현대적 관점서도 탁월한 동아시아 평화선언문”

    3·1 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과 일본은 과거보다 더 높고 두터운 장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성난 얼굴로 응시하고 있다. ‘피해’와 ‘가해’라는 역사의 대척점에서 상대를 바라보는 방향과 관점이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두 나라 사이의 어두운 과거를 정리하고 발전적인 미래를 추구한다는 당위론적 명제는 갈등과 대립 속에 좀체 현실화하지 못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일 연구에 오랜 시간 천착해 온 도노무라 마사루(53) 도쿄대 교수(한국학연구센터장)를 지난 24일 도쿄 메구로구 고마바 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나 100년 전 한국 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의 의미와 발전적인 양국 관계를 위한 제언을 들어 봤다. 도노무라 교수는 지난해 국내 번역된 책 ‘조선인 강제연행’을 비롯해 활발한 저술활동을 펴고 있다.→오랫동안 일제강점기 한반도 연구를 해 오셨는데, 3·1 독립운동의 의미를 요약한다면. -3·1 독립선언은 현대적 관점에서 봐도 탁월한 내용이 담긴 동아시아 평화선언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군사력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를 강압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동양의 전통이 아닌데도,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누르며 그 평화적 전통을 깨고 있음을 지적했다. 일본의 지배하에서는 조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에 독립을 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당시나 지금이나 3·1 독립선언서를 제대로 읽어 본 일본인은 거의 없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쉽다. →3·1 독립선언은 ‘우리 민족이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는 정당한 권리’를 특히 강조했는데. -독립선언서는 자신들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독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인들 스스로 자립의 길을 걷겠다는 선언이었다. 관련해서 일본이 한국을 기만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일본의 통치로 조선이 발전하고 있다는 일본 측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당시 일본은 철도와 도로가 놓이고 근대적인 학교와 병원이 세워지고, 농업생산이 늘었음을 통계적으로 보이며 조선 통치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독립선언서는 그것이 조선인이 추구하는 행복의 본질과는 무관한 것임을 강조했다. →당시 3·1 독립운동을 보는 일본 내 분위기는 어땠나. -일본 언론에서는 ‘천도교라는 미신을 믿는 불온한 사람들이 무지하고 어리석은 한국의 대중을 선동해 만세를 외친 사건’ 정도로 보도했다. 일본은 “천황(일왕) 아래에서는 일본인도 조선인도 평등하다”고 선전했지만, 그렇다면 왜 조선인들이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3·1 운동은 일본에서 어떻게 기억돼 왔나. -식민통치 기간 중에도 3·1 운동을 기념하려는 움직임은 일본 당국의 거센 탄압 속에서도 지속됐다. 특히 당시 공산주의자들은 민족해방을 계급투쟁 혁명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해마다 3월 1일을 전후해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전단지 배포나 집회 개최 등을 시도했다. 일본 경찰들은 이것이 또 다른 민중운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경계했고, 193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이에 대한 탄압이 한층 강화돼 거의 대부분 공공장소에서 3·1 운동을 기념하는 활동이 불가능해졌다. →1945년 일본의 패전 후에는 어땠는가. -전쟁이 끝나면서 3·1 운동을 기념하는 움직임이 되살아났다. 1947~48년 신문을 보면 재일 조선인들이 3·1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모임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 진보진영에는 3·1 운동을 세계혁명을 위한 기념비적 사건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를 전후로 과거 한국 식민지배 문제를 다시 돌아보게 된 일본인이 늘면서 3·1 운동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조선의 독립에 대한 일본사회의 분위기는 어땠나. -일본이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대다수 일본인들은 타국에 대한 식민지배에 찬성했던 것이 사실이다. 국민을 소중히 여기고 국민들의 생활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1894년 청·일 전쟁 이후 제국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1930년대 이후가 되면 대다수 일본 국민들이 침략전쟁을 적극 지지하게 된다. 하지만 침략에 대해 반대했던 사람들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변국을 침략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이 아니며, 소국주의와 평화주의를 견지해야 한다는 이념을 바탕으로 식민지배에 반대한 정치인과 언론인도 있었다. 물론 소수에 지나지 않았고 자기 주장을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라는 한계는 있었다. 패전 후 조선에 대한 불평등한 지배 관계를 깨닫고 이를 반성하며 속죄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했던 일본인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식민자(植民者) 2세’로 불리는 한반도 출생자로 유명 소설가였던 가지야마 도시유키는 ‘이조잔영’과 같이 식민시대 조선의 아픔을 그린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일본에서 과거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 분위기가 이전보다 약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과거 ‘무라야마 담화’가 나오던 때는 물론이고 자민당의 하시모토 류타로, 오부치 게이조 총리 등 시절만 해도 과거사와 관련해 반성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자민당 소장파가 세력을 얻은 후에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역사수정주의 책들이 많이 나온 가운데, 1990년대 말 이후 보수우파의 현실참여 활동이 부쩍 늘어난 것 등도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일 관계 악화의 주된 이슈는 일제 징용 노동자에 대한 한국 법원의 배상 판결이다. 강제동원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하나. -‘징용’이라는 말은 오해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전시노무동원피해자’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하다. 조선인 노무동원의 피해는 매우 광범위하다. 직접 노동을 했던 당사자만이 아니다. 동원됐던 사람의 가족들, 강제동원을 피해 산골에 은신하느라 인간답게 못 살았던 사람들도 모두 피해자다. 특히 미쓰비시니 신일철이니 장소와 시기를 기억하고 있는 피해자들은 재판이라도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인 경우다. 당시 조선은 학교교육을 받지 못해 일본어는 물론이고 한글조차 못 배운 사람이 대다수였다. 그렇다 보니 자신이 홋카이도에 있었는지, 규슈에 있었는지, 언제부터 언제까지 강제노동을 했는지를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어찌 보면 가장 큰 피해자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재판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피해까지 다 고려해 구제하려면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한·일 관계 미래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일본에는 정치인이나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한국의 3·1 운동 100주년 기념을 통해 일본에 대한 반감과 반일 행동이 강화될 것으로 우려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 3·1 운동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응원하고 한국인들 스스로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벌인 독립운동이라는 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중년 이후 세대에게 한국은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오랫동안 군사독재가 지배했던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한국은 경제적으로 잘사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이미지가 강하다. 이는 미래 한·일 관계에 희망을 주는 부분이다. 글 사진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도노무라 교수는 누구 1966년 일본 홋카이도 출생. 와세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와세다대 사회과학연구소,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등을 거쳐 2007년부터 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은 일본근대사. 주요 저서와 논문으로 ‘재일조선인 사회의 역사학적 연구’(2010년 국내번역), ‘식민지 시기에 있어서 재일조선인의 문화활동’ 등이 있다.
  • [단독]유관순 열사 독립유공자 서훈 등급 올린다

    [단독]유관순 열사 독립유공자 서훈 등급 올린다

    “3·1운동 100주년 국민께 선물” 공감대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유관순 열사의 독립유공자 서훈 등급을 상향 조정하는 방안이 적극 추진된다. 유 열사는 3·1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임에도 서훈은 건국훈장 5단계 중 3등급인 ‘독립장’에 그쳐 그동안 저평가 논란이 일었다. 27일 관가에 따르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총리 간 주례회동에서 ‘3·1운동 당시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제한됐던) 사회적 분위기 등을 고려하면 유 열사의 공적은 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번 3·1절을 맞아 유 열사의 서훈을 상향 조정하면 국민들께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는 취지의 대화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서훈을 담당하는 보훈처와 행정안전부에서 몽양 여운형 선생의 선례를 참조해 유 열사의 서훈 등급을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몽양 여운형 선생의 경우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독립운동 공적으로 ‘대통령장’(2등급)에 추서된 이후 2008년 해방 후 건국 준비 활동에 대한 공적으로 다시 한 단계 높은 ‘대한민국장’(1등급)으로 추서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 보훈처의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위원장을 지낸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금 일본이 재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 열사의 정신은 국민들에게 더 뜻깊은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며 “유 열사의 독립운동 공적과는 별개로 해방 후 어린이, 여성 나아가 전 국민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애국심을 심어 줬고 민족정기 회복 교육에 관한 공헌을 평가한다면 서훈의 격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광숙 선임기자 bori@seoul.co.kr
  • 김정덕 교육장, “몽실학교 성공정착시 25개 전 교육지원청으로 확산하겠다”

    김정덕 교육장, “몽실학교 성공정착시 25개 전 교육지원청으로 확산하겠다”

    “향후 몽실학교가 성공적으로 정착되면 25개 전 교육지원청으로 확산하고, 지역 내 2호 몽실학교를 추가 설립하는 게 꿈입니다.” 경기도 김포교육지원청은 지난 25일 역대 교육장 9명과 함께 김포교육 발전을 위한 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이 간담회는 역대 교육장과 소통하고 협력체계를 이뤄 김포교육 발전정책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고자 마련됐다. 이날 향후 교육청 역점 사업인 평화·통일교육 활성화를 비롯해 김포 몽실학교 운영 등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역대 교육장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몽실학교 운영과 관련해 김포학생 기자단이 직접 만든 통일 관련 학생 대토론회의 뉴스 영상을 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자신 의견을 어른들보다도 더 분명하게 밝히는 학생들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정답을 정해주는 교육에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소통·협력하는 교육으로 변화를 체감하는 기회였다. 송영찬 제12대 교육장은 “지역교육지원청 중 최초로 운영하는 몽실학교가 앞으로도 다른 지역의 귀감이 될 수있도록 더 잘 운영해주길 바란다”며 깊은 관심을 표했다. 이에 김정덕 교육장은 “김포 몽실학교는 40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앞으로 미래교육과 체험활동 공간으로 잘 활용될 수 있도록 리모델링해 학생·학부모들을 위한 교육 공간으로 꾸며나갈 예정”이라고 답했다. 방재선 제14대 교육장은 “올해 김포교육을 위한 예산이 전년대비 100억원이나 증액되었다니 낙후된 시설 개선에 특히 신경 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김정덕 교육장은 “특히 상대적으로 오래 전 지어져 시설이 낙후된 원도심과 작은 학교의 시설개선 지원에 신경 쓸 계획”이라며, “작은 학교 살리기사업을 통해 도심학교의 과밀학급 문제도 함께 해소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 3·1운동 100주년 기념 관련 추진사업과 인구 급증에 따른 학생 배치 수용문제, 다문화 교육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논의가 이어졌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경남도,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기념 슬로건 공모

    경남도,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기념 슬로건 공모

    경남도는 26일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슬로건을 공모한다고 밝혔다. 슬로건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경남미래 100년의 비전을 제시하는 내용이면 된다. 형식은 구호형태의 짧은 문구로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쉽고 간결해야 하며 기호도 사용 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응모할 수 있으며, 슬로건과 슬로건 의미를 적어 오는 2월 6일까지 경남도 홈페이지나 우편 등을 통해 참여하면 된다. 도는 이번 공모를 통해 선정되는 슬로건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 때 핵심 홍보 메시지로 활용할 계획이다. 한사람이 2건 이내로 응모할 수 있고 응모작은 심사를 거쳐 최우수 1편 50만원, 우수 1편 30만원, 장려 1편 20만원의 상금을 시상한다. 당선자에게는 경남도에서 주관하는 기념사업에 참석기회도 우선으로 줄 계획이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충주시 새 보훈회관 짓는다

    충주시 새 보훈회관 짓는다

    충북 충주시가 국가유공자와 유족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한다. 시는 보훈단체 회원들의 숙원사업인 충주보훈회관 건립이 추진된다고 25일 밝혔다. 지난해 이종배 국회의원이 확보한 국비 5억원과 지방비 등 총 38억원이 투입돼 지상 3층, 연면적 990㎡ 규모로 지현동에 건립될 예정이다. 위치는 노인복지관 근처가 좋다는 의견에 따라 결정됐다. 시는 올해 6월까지 건축설계용역을 완료하고 8월 착공한다는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사용중인 보훈회관이 낡아 새 부지에 신축하는 것”이라며 “8개 보훈단체 사무실과 회의실, 헬스장 등으로 꾸며질 예정”이라고 말했다.보훈예우수당 지급 대상자도 확대된다. 시는 이번에 공상군경 유족 중 배우자(65세이상), 특수임무 유공자, 보국수훈자(65세 이상)를 대상에 추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한 근거가 상반기에 마련되면 하반기부터 매월 5만원의 수당이 지급된다. 그동안 공상군경의 경우 본인만 수당을 받았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광복회원들의 중국 상해임시정부 현지 방문도 추진된다. 4월에는 신니면민 만세운동 기념행사와 독립의 횃불 전국 릴레이행사 재현에 동참한다. 동락전승지 조경공사 및 무공수훈자 공적비 개보수 등 현충시설을 정비하고 현충일 추념식, 6.25전쟁 첫 전승 기념행사 등도 열린다. 충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개인 칼럼] 이기흥 회장이 당장 물러나야 하는 세 가지 이유

    [개인 칼럼] 이기흥 회장이 당장 물러나야 하는 세 가지 이유

    <이 기사는 서울신문사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개인의 의견을 담은 칼럼이라 개인 이메일을 크레딧에 담습니다.> 오죽하면 그가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기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여덟 가지로 설명하는 기사를 작성할까? 이기흥 대한체육회 회장이 사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일주일쯤 됐을까 싶은 시점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그가 사퇴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이를 촉구하는 기사도 많지 않았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는다. 지난 23일 문화체육관광부 간부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골치가 아프다고 했다. 이리저리 뒤엉킨 일이 많은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주제넘게도 기자는 부러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이기흥 회장은 당장 물러나야 한다, 자리를 보전해 봐야 식물 회장이다, 아무 것도 못한다, 대한민국 체육 발전을 위해 용단을 내려야 한다, 또다른 모자인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 모자를 쓰며 정치적 개입 운운하며 버티겠지만 사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충분히 협의하면 문제 없는 대목이다, 등등 기자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얘기를 감히 떠벌였다. 문체부 간부는 함정에 걸려들지 않았다. 대체로 여러 얘기를 듣는 편이었고, 다만 선거로 뽑힌 체육회 수장을 몰아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고 토로했을 뿐이다. 이런 가운데 이기흥 회장은 정성숙 용인대 교수를 선수촌 부촌장에 내정하는 등 전혀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새 판을 짜기 위해 물러나야 할 그가 인사권을 행사하며 버티는데도 우리 사회는 움쩍도 못하고 있다. 무한 책임이 있는 문체부도 약점이라도 잡힌 듯 굴고 있다. 심석희(22·한국체대)의 용기있는 폭로와 유도 선수 출신 신유용(24)씨의 얼굴을 드러낸 미투 고백 이후에도, 여러 종목에 걸쳐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고 있고 전명규(56) 한국체대 교수가 이기흥 회장의 부끄러운 발언을 증언했는데도 그는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아니 체육계의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기자가 이기흥 회장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정리해본다. 선수촌이나 여러 종목 현장에서 벌어진 폭력과 성폭력 문제에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소극적인 이유가 아니라 체육 시스템을 전면 재설계하기 위해서 물러나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이 회장을 비롯한 낡은 인물들이 존재하는 한, 한국체육은 수술과 혁신을 할 수 없어서다. 둘째는 허물어진 공신력과 구멍 난 리더십 때문에 그의 자리보전은 하등의 도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빙상연맹의 실력자 전명규 교수와 대거리를 하고 그를 어쩌지 못하는 체육회장이 어떻게 현 난국을 수습하고, 엘리트 체육을 관장하고 생활체육과의 통합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겠는가 의문이 재임 기간 내내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견뎌내면 되겠지, 할 일이 아니다. 이번 사안은 잠시 떠들다가 잠잠해질 사안이 결코 아니다. 셋째는 당장은 ‘내가 책임지지 않을 일인데 과다한 덤터기를 쓰는 것 아닌� � 싶겠지만 낡은 젠더 감수성을 지닌 세대의 퇴장을, 정치권과 특정 종교에 줄을 대고 의지했던 체육계 지도자들의 낡은 행태를 끊어내기 위해서도 결단을 내려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사퇴 회견 자리에서 이 점을 명확히 제시하면 내년 체육회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뜻깊은 일을 한 지도자로 두고두고 칭송받을 것이다. 김모, 이모 전 회장 등의 고견이나 영향력을 구하려 하지 않고 젊은 세대를 믿고 떠나도 된다. 일부에서는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성적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느냐, 힘의 공백이 생기면 이를 수습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등등 낡은 레코드판 같은 얘기를 늘어놓을 것이다. 그런 걱정 붙들어매도 된다고 감히 말씀드린다. 임병선 씀 aljajira@hanmail.net
  • 재외동포 범위 고려인 3세→4세이후로 확대

     그동안 고려인 3세까지만 인정됐던 재외동포 범위가 고려인 4세이후로 확대된다.  법무부는 고려인 4세 동포가 재외동포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시행령’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25일 밝혔다.  1937년 소련의 극동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약 17만명이 소련 인민위원회 등의 결정에 따라 카자흐스탄·우즈벡공화국 등으로 강제이주됐다. 강제이주의 역사적 아픔을 가진 고려인 동포 등이 최근 한국을 찾고 있지만 고려인 4세인 청소년들은 동포로 인정받지 못해 부모와 헤어지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시베리아·사할린 등의 강제이주 동원 동포 지원에 따른 후속조치의 일환으로 재외동포 대상을 3세대에서 전체 직계비속으로 확대하는 재외동포법률이 개정될 때까지 가족해체를 방지하기 위한 한시적 구제조치를 마련하여 국내 체류를 허용하는 인도적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아 재외동포 범위를 확대하는 재외동포법률 개정안 등이 발의돼 국회에 계류 중이다. 현재 한시적 구제조치로 국내에 체류하는 동포는 지난해 말 기준 516명으로 대부분 고려인 후손들이다.  법무부는 “올해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점을 감안해 고려인 동포 등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안정적인 국내 체류를 지원하기 위하여 이번에 재외동포법 시행령을 개정한다”고 설명했다. 이후 4세대 재외동포들의 한국 사회 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어, 기초 법질서, 한국사회 등으로 구성된 사회통합 프로그램 참여를 의무화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눈 뜨고도 현실 못보는 전쟁 당사국 향한 경고

    눈 뜨고도 현실 못보는 전쟁 당사국 향한 경고

    몽유병자들/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이재만 옮김/책과함께/1016쪽/4만 8000원1911년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침공했다. 지금은 세계사에서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는 이 전쟁에서 공중폭격이 처음 선보였고, 본격적으로 사용된 군용 탐조등은 과거보다 훨씬 많은 사상자를 낸 당대의 첨단기술이었다.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교수인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저서 ‘몽유병자들’은 1914년 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에 있었던 유럽 각 국가의 상황에 주목하며 전쟁의 원인을 파헤친다. 1차 대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20세기를 폭력의 악순환으로 빠져들게 한 이 전쟁이 발발한 원인에 대해 유럽 역사학계에서는 개별 국가가 모두 책임이 있다는 집단책임론과 주요한 책임이 독일에 있다는 ‘피셔 테제’ 간 공방이 이어졌다. 이 같은 논쟁에 대해 저자는 전쟁 이전 일련의 사건들이 어떤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접근한다. 앞서 소개한 이탈리아의 리비아 침공은 발칸반도 국가들의 연이은 충돌로 이어졌고, 이는 1차 대전의 빌미가 됐다. 1차 대전은 삼국동맹(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이탈리아)과 삼국협상(영국·프랑스·러시아) 간 대결로 시작했다. 사실 독일에서는 러시아가 전쟁에 끼어들지 않을 것이는 관측이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한 1914년 직전,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한 편의 ‘난투극’이었던 1912~1913년 발칸의 상황, 발칸에 대한 통제가 약화됐던 러시아의 혼란스러운 정세 등을 보면 왜 이 같은 예상이 빗나갔는지 조금 이해하게 된다.이탈리아의 리비아 침공 사건에서 당시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의 명분 없는 행동을 묵인했다. 결국 이들 동맹이 사실 내부적으로는 허술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저자는 이탈리아에 맞선 리비아의 투쟁이 “현대 아랍 민족주의의 출연을 자극한 중요한 초기 촉매 중 하나였다”(395쪽)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1차 대전을 얘기하며 1914년 6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 조피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에게 테러를 당한 ‘사라예보 사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페르디난트 대공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조피는 대공비 칭호도 얻지 못한 상황이었다. 대부분 누가 죽었는지보다는 사건 장소인 ‘사라예보’를 기억할 정도로 주목받지 못했던 이들의 죽음이 어떻게 당시 유럽의 여론을 바꿨는지를 설명한 저자의 서술도 흥미롭다. 1차 대전이 실제 일어나기 전까지 유럽인들은 이 같은 대규모 전쟁을 상상하지 못했다. 전쟁이 나더라도 1년~1년 6개월의 단기전으로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저자는 결국 당사국 모두가 눈을 뜨고도 눈앞의 현실을 보지 못하는 ‘몽유병자들’이었다고 지적한다. 전쟁의 원인이 아닌 과정을 집요하게 연구한 저자의 접근방식은 전쟁 발발 100주년을 맞은 2014년 1차 대전을 조명한 많은 신간 가운데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또한 이 책은 2017년 12월 북한을 방문한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이 리용호 북한 외무상을 면담하며 건넨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북한의 핵개발이 몽유병자와 같은 행동에 불과할 것이라는 경고였겠지만, 이 책을 본 독자라면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국가가 몽유병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설지도 모른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보훈처, 국가 유공자 명패 사업 본격 추진

    국가보훈처는 24일 올해 3·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임우철 애국지사를 시작으로 ‘국가유공자 명패 달아 드리기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보훈처는 “피우진 보훈처장이 25일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독립유공자 임우철 애국지사 자택을 방문해 새해 첫 ‘독립유공자 명패’를 직접 달아 드리는 행사를 가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임 애국지사는 1941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공옥사고등학교 토목과 재학 중 동급생과 함께 내선일체(일제가 전쟁협력 강화를 위해 취한 정책)의 허구성을 비판하고 궁성요배(식민지 주민들이 도쿄 궁성을 향해 절하던 예법)의 부당함을 주장하는 등 민족의식을 드높이는 활동을 했다. 임 애국지사는 민족의식을 고취하고자 활동하던 중 1942년 12월 일제로부터 체포돼 치안유지법 위반과 불경죄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임 애국지사는 이 같은 공적으로 200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지방자치단체와 협업을 통해 추진될 예정인 국가유공자 명패 달아드리기 사업은 이달부터 독립유공자 7697명, 4월부터는 민주유공자 2266명, 6월부터 국가유공자 20만 5820명 등을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확대 실시할 계획이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익숙한 무지/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익숙한 무지/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세월의 두께와 100년의 의미 때문일까. 곳곳에서 3·1운동 정신을 되살리자는 구호와 몸짓이 요란하다. 100년 전 아픔과 구국의 희생을 상기해 미래 한국의 발판으로 삼자는 외침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 와중에 애국가 논란이 뜨겁다.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 말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른 안익태. 그의 행적이 친일을 넘어 일본과 결탁한 독일 나치 파시즘의 나팔수였다는 흔적이 속속 드러나면서 애국가 폐지의 주장이 힘을 얻어 가는 형국이다. 보수, 진보 진영의 논객들이 주거니 받거니 논쟁을 잇는 가운데 여론의 대치도 점입가경이다. 일단 세간의 입장은 ‘계속 쓰자’는 쪽이 우세다. CBS 의뢰를 받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애국가 교체를 물은 결과 반대 응답이 58.8%로 찬성 24.4%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뭐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대중 인식의 우위로 읽힌다. ‘계속 쓰자’는 쪽 주장은 이렇다. 정부 수립 이후 줄곧 불러 왔던 애국가를 이제 와서 폐기 처분하려 드느냐는 관성의 대응이 주축이다. 여기에 친일인사 작품이란 이유로 써선 안 된다는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입장이 거들고 있다. 예술가와 작품의 분리다. 이를테면 친일 문인 서정주의 작품이 교과서에 계속 수록되고 있지 않느냐는 식의 항변이다. 하지만 냉철하게 따져 보면 애국가, 적어도 안익태 애국가는 그런 편의주의와는 차원이 사뭇 다르다. 많은 이들이 갖고 있는 인식과 달리 애국가는 국가(國歌)가 아니다. 이승만 정부 출범 후 국가로 정해 관습법적으로 쓰여 왔을 뿐 법적 지위를 부여받지 못했다. 70여년간 국가·공공단체의 공식 행사나 이런저런 자리에서 당연히 부르고 들어온 국가 대용일 뿐이다. 모르는 결에 몸에 밴, ‘익숙한 무지’의 흔적일 수 있다. 예술가와 작품의 분리라는 편한 원칙도 그다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국가는 국기(國旗), 국화(國花)와 함께 한 나라의 대표적 상징이다. 언제 어디서든 떳떳하게 만나고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는 나라의 얼굴인 셈이다. 기왕에 국가처럼 굳어진 애국가를 굳이 폐기 처분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어 보인다. 하지만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포개지고 떠오르는 친일·친나치 작곡자의 얼굴을 힘겹게 용인할 이유 또한 없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나치 독일 부역자를 가혹하게 응징한 프랑스를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작품 궤적과 생애를 들춰 보면 안익태는 표리부동한 작곡가요, 지휘자임을 부인할 수 없다. 적어도 나라 사랑, 즉 애국의 차원에서 보자면 그렇다. 미국에서 1936년쯤 애국가를 처음 작곡해 발표한 직후 안익태는 이런 말을 남겼다. “대한국 애국가를 부르실 때는 애국가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애국적 정신으로 활기 있게 장엄하게 부르시되 결코 속히 부르지 마십시오.” 그 말대로 애국적 정신으로 활기 있게 장엄하게 부를 수 있는 애국가를 만났으면 한다. 보수니, 진보니 편 가르기는 집어치우고 떳떳한 국가를 한번 고민해 보자. 3·1운동 100주년의 해에. kimus@seoul.co.kr
  • 채광석 시인, 두 번째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 출간

    채광석 시인, 두 번째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 출간

    채광석 시인이 2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를 출간했다.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는 시집 출간 일주일 만에 예스24 신간 시집/희곡 분야 1위를 기록했으며 2쇄에 돌입했다. 현재 신간문학 5위 및 시집/희곡 TOP 20에 진입했다. 이번 시집에는 잠시 시단을 떠나 있던 채광석 시인의 삶과 철학이 녹아 있다. 30대, 40대를 지나 50대에 들어선 현재까지, 시인의 삶이 현실적이면서도 서정적인 언어로 담겨 있다. 특히 3.8.6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고 그래서 386세대라고 불렸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불안, 죄책감, 체념 그리고 새롭게 살아나는 희망과 기대까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자전적 시들이 가득하다. 관계자들은 오랜만에 만나는 ‘리얼리즘 시학의 귀환’이라고 평한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방민호(서울대학교 국문과 교수)는 “채광석 시인의 시집은 내가 걸어온 모든 것을, 상처와 고통과 죄책감과 새롭게 일어나는 꿈까지도 함께 나누어 갖도록 한다. 이 새로운 시적 자서전이 우리들로 하여금 가슴 깊이 도사린 슬픔과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타인들의 삶에 대한 새로운 자각으로 이끌어줄 것”이라고 해설했다. 시집 ‘꽃도 사람처럼 선 채로 살아간다’는 총 4부로 나뉘어 있다. ‘제1부 90 그리고 서른’은 20대 후반과 30대의 삶이 담겨 있다. ‘제2부 마흔, 무늬 몇 개’에 담긴 40대의 삶은 슬픔과 회한으로 가득하다. ‘제3부 쉰 즈음’에 실린 시를 통해서는 세상을 바꾸고자 했으나 스스로 선(善)이 되지 못한 동료들과 자신의 삶을 반성한다. 마지막 ‘제4부 역사의 바깥’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이름 없이 스러져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담았다. 한용운의 아내 전정숙, 기미년의 기녀들, 중국과 러시아 등 이국 땅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이들의 삶을 기록하고 애도한다. 특히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시 ’역사의 바깥32 과꽃‘은 故채광석 시인의 유작 시로 잘못 알려져 회자되기도 했는데, 본 시집의 출간을 계기로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편 27년 만에 리얼리즘 시학으로 귀환한 채광석 시인은 현재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신통일한국의 시대적 사명 다할 것” 이기성 가정연합 한국회장 간담회

    “신통일한국의 시대적 사명 다할 것” 이기성 가정연합 한국회장 간담회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맞아 ‘신통일한국’의 시대적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가정연합) 이기성 한국회장은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신년 간담회를 열고 “평화와 통일은 가정연합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며 “애천과 애인, 애국의 이념을 바탕으로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국민종교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교인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올해는 여세를 몰아 구세·구국운동과 함께 범국민교육에 치중하겠다고 밝혔다. “3·1운동 100주년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를 맞아 ‘신통일한국시대 개문 안착‘이라는 표어를 세웠다”는 이 회장은 우선 다음달 7~10일 서울 잠실 롯데호텔월드에서 각국 전·현직 정상과 국회의원, 종교 지도자를 비롯한 각계 지도자 1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정수립 100주년 기념 세계정상회의’를 개최한다고 귀띔했다. 한반도 평화통일 지지 기반과 공감대 확대를 목표로 한 이 자리에선 한반도 평화선언문도 채택, 발표될 예정이다. “두루미도 양 날개와 머리가 균형을 맞출 때 비상할 수 있습니다.” 이 회장은 “한반도 평화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이 균형과 화해의 정신에서 해결될 수 있다”며 “가정연합은 좌·우익,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성을 견지하며 화해와 평화를 바탕으로 최근 악화된 한·일 관계에 대한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힘을 보태겠다” 강조했다. 한편 가정연합은 다음달 10일 오전 9시 30분 경기 가평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문선명·한학자 총재 탄신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이어 17일에는 경기 가평 천주청평수련원에서 기원절 6주년 기념식을 열고 전 세계 3000여명에게 장학금 100억원을 전달하기로 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그날 민족대표 33인처럼… 7대 종단 모인다

    그날 민족대표 33인처럼… 7대 종단 모인다

    3월 1일 광화문 범국민대회 개최 ‘제2 독립선언서’ 시민선언문 발표 본래 취지 잃고 종교 간 勢경쟁 우려 “종교계 기득권 내려놓고 화합해야”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종교계가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다. 종교별 기념 행사와 학술 심포지엄이 이어질 전망인 가운데 3월 1일 당일엔 대규모 범종교 연합행사도 치러질 예정이다. 이처럼 종교계에 봇물 터지듯 요란한 구호와 몸짓의 바탕은 3·1운동 정신을 되찾아 한국사회에 올바르게 펴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그 좋은 취지가 종교 간 경쟁과 위상 강화로 변색되지 않느냐는 우려도 없지 않다.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행사는 3월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3·1운동 100주년 범국민대회. 시민사회단체와 함께하는 공동행사지만 종교계가 주축이다. 정부 기념행사가 끝난 뒤 낮 12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이어질 이 행사에는 불교, 원불교, 천도교, 유교, 개신교, 민족종교협의회는 물론 천주교까지 참여한다. 행사에선 ‘제2의 독립선언서’ 격인 시민선언문도 발표될 예정이다. 국내 7대 종단이 3·1운동 기념행사에 함께 참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범국민대회에 앞서 7대 종단이 모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다음달 20일 경기 파주 도라산역에서 세계종교인 평화기도회를 개최한다. 이에 앞서 다음달 19일에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종교와 평화, 새로운 100년’을 주제로 기념세미나를 열 계획이다. 행사 참가자들은 천도교대교당, 탑골공원, 서대문형무소, 제암리 등 3·1운동 관련 유적지도 순례할 예정이다. ●개신교·불교 등 총동원령 수준 행사 3·1절 당일 각 종교가 진행하는 개별 행사도 눈길을 모은다. 개신교 연합기구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교회총연합은 오전 10시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연합예배를 가질 예정이다. 이 자리에선 ‘3·1운동 100주년 한국 그리스도인의 고백과 다짐’ 제목의 한국그리스도인헌장이 발표된다. 불교계도 만만치 않다. 이날 범국민 기념대회에 앞서 서울 조계사에서 불교 29개 종단협의체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주최로 기념법회가 열린다. 법회에 맞춰 전국 모든 사찰에선 일제히 범종을 울리는 타종식이 진행된다. 천도교도 서울 천도교중앙대교당과 삼일로 일대에서 기념대회를 열 계획이다. 이처럼 동시 다발로 열리는 종교계의 3·1절 행사는 ‘퇴색한 3·1운동의 정신을 종교계가 앞장서 되살리자’는 것으로 결집된다. 그 바탕에는 ‘민족대표 33인이 모두 종교인’이었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요란한 외침과 움직임에 각 종교, 종단 나름의 이해와 특성이 담겨 있다는 점을 부인키 어렵다. 그래서 본질을 되찾자는 초심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각 종교 수장들이 신년 간담회에서 밝힌 계획과 다짐에서도 세간의 기대 섞인 우려를 확인할 수 있다. ●남북 교류·기념관 설립 등 요청도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신년 회견에서 “올해 남북 불교교류의 새 지평을 열겠다”고 선언했다. 실제로 조계종은 3월 1일을 기점으로 다양한 남북교류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금강산 신계사에 템플스테이를 개설하고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평양 시내 사찰에서 봉축 점등식을 여는 한편 조선불교도연맹 관계자를 초청, 남북공동 연등축제와 봉축 법요식도 추진할 계획을 발표했다. NCCK 총무 이홍정 목사도 간담회를 통해 “이 땅의 화해를 이루고 평화를 일궈 내는 일에 전념하겠다”고 천명했다. NCCK는 올해 가장 중점적으로 다룰 총회의 주제를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로 정해 놓고 있다. 천도교는 올해 3·1절 100주년에 가장 힘을 쏟는 종단으로 관측된다. 이정희 천도교 교령은 “천도교 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는 3·1운동의 중추적 역할을 했지만 평가절하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령은 특히 “손병희 선생 기념관을 국가 차원에서 건립할 것을 정부에 거듭 건의했으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3·1운동 정신 되새기는 행사도 많아 물론 종교계는 3·1운동 정신 되살리기를 향한 심포지엄 등 연속성 있는 행사도 다양하게 열 전망이다. NCCK는 올해 9월부터 3·1운동의 정신과 한국 근현대사를 탐구하는 청소년학교를 운영할 계획이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는 3·1운동 관련 불교계의 역할과 향후 과제를 제시하는 학술세미나를 계획 중이며 천도교도 3·1운동의 의의를 조명하는 학술대회와 사진전, 유적지 답사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변진흥 전 KCRP 사무총장은 “일제강점기 암울한 상황에서 나라의 미래를 위해 종교계가 용기 있게 앞장섰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3·1운동 100주년인 올해 그 어느 때보다 종교계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진정한 독립을 위해 합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이해찬 “3·1운동, ‘3·1혁명’으로 불러야”…명칭 변경 추진

    이해찬 “3·1운동, ‘3·1혁명’으로 불러야”…명칭 변경 추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3·1운동·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특위 출범식에서 “3·1운동을 ‘혁명’이라 부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해찬 대표는 이날 축사에서 “3·1운동은 대한제국에서 민주공화제로 바뀐 큰 가치의 전환이자 국가 기본의 전환”이라며 “한반도 모든 곳의 국민이 만세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일 뿐 아니라 앞으로 100년을 시작하는 첫해라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앞으로 100년은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으로,문화적으로 성숙하고 경제적으로 부강한 민족으로 나아갈 수 있는 100년”이라며 “분단체제를 극복해 한반도가 섬이 아니라 북방으로 나아가는 전초기지라는 나라의 성격을 잘 살려가는 100년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특위 위원장은 “특위의 목표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라며 특위의 구체적인 사업 계획을 설명했다. 특위는 기존의 ‘3·1운동’ 명칭을 ‘3·1혁명’으로 변경하는 등 한국 독립운동사의 역사용어 정명(正名)에 나서고, 독립운동사를 매개로 북한과 교류하는 사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특위에는 이종걸 의원이 위원장으로, 강창일·우원식·권칠승·김정우·박경미·박주민·소병훈·전재수 의원 등 29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고문으로는 이종걸 의원처럼 우당의 손자인 이종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건립위원회 위원장과 임채정·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이 위촉됐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황재우 ㈜광양기업 대표, 광양시 어린이보육재단에 1억원 기탁

    황재우 ㈜광양기업 대표, 광양시 어린이보육재단에 1억원 기탁

    황재우 ㈜광양기업 대표가 (재)광양시어린이보육재단에 1억원을 기탁했다. 황 대표는 지난 19일 서울시청 8층 대강당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 도전한국인 시상식’에서 맨발의 사나이 조승환 씨의 ‘얼음 위에 맨발로 오래 서있기’ 세계기록 성공에 맞춰 성금을 전달했다. 도전한국인운동본부와 (사)도전한국인운동협회에서 주최한 이번 행사는 3·1절 100주년을 기념하고 대한민국 각 분야의 자랑스러운 한국인과 건전한 도전정신에 앞장선 인물을 선정해 격려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조씨는 3·1절 100주년과 민족대표 33인을 기리는 의미로 ‘133분 동안 맨발로 얼음위에 서 있기’ 도전에 성공해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세계기록 122분을 경신했다. 황 대표는 “조승환 씨의 세계기록 도전에 5000만 국민의 염원을 모은다는 뜻에서 5000만원을, 성공했을 땐 5000만 국민이 성공을 축하한다는 뜻에서 추가로 5000만원을 기탁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자라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전국 최초로 설립한 (재)광양시어린이보육재단에 기증하게 됐다”며 “너와 나의 아이가 아닌, 우리 모두의 아이로 키우기 위해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함께 관심을 가져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대한민국 경제발전으로 도전 한국인 대상을, 정현복 광양시장은 경제자립도 및 리더십 행정 공로로 대한민국 국가대표 33인상을 수상했다. 광양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100초 인터뷰]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하는 것”

    [100초 인터뷰]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하는 것”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강제 징용과 징병 등 뭐하나 제대로 정리된 것이 없다. 특히 친일 부역자 문제는 아직 손도 못 댄 상태인 것 같다. 이러한 문제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진지하게 논의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김용한(48) 영화감독이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를 기획한 이유는 비장했다. ‘여명의 눈동자’는 김성종 작가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로, 1943년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까지, 비극적인 한국 현대사를 다룬 대작이다. 영화 ‘돈 크라이 마미’(2012년)를 연출했던 김용한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는 기획과 드라마트루기(작가나 연출가의 의도가 작품 속에서 잘 살아날 수 있도록 극작술적인 면에서 조언을 해 주는 것)를 맡았다. 김 감독의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제작 출발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다. 우연한 기회에 수요집회에 참가한 김 감독은 그 자리에서 “위안부 문제를 언젠가, 내가 어떤 형태로든 이야기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고백했다. 이후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관련 이야기를 찾다가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떠올랐다”며 “평소 친분이 있던 변숙희 프로듀서와 노우성 연출가가 프로젝트 합류를 결정하면서, 그들과 함께 김성종 원작자와 송지나 각색자를 찾아다니며 어렵게 허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1977년 10권으로 완성된 대하소설 ‘여명의 눈동자’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통한의 역사 속 젊은이들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 많은 사랑을 받았다. ‘위안부’ 문제와 제주도 ‘4.3사건’, 해방전후 ‘이념대립’ 등 현대사의 민감한 문제들을 진정성 있게 건드린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 감독은 “당시 여자들은 위안소로, 젊은 남자들은 군대로, 그리고 어른들은 영화 ‘군함도’에 나온 것처럼 징용되고 수탈당했다. 이런 아픈 역사를 지금이라도 계속, 꾸준히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뮤지컬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더불어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대본을 개발하면서 남북 간 좌우대립 역사를 보니, 3.1운동부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더라”며 “같이 만세운동을 했지만, 한반도 평화를 바랐던 두 이데올로기가 시작된 게 어쩌면 3.1운동부터라는 점, 이러한 좌우대립의 시작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를 “기억해야 할 이유, 상기시켜야 할 이유를 말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이 사과하겠나? 나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10년 내외면,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실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흐르는 시간과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김 감독은 “‘여명의 눈동자’ 같은 작품을 통해 중요한 역사적 이슈가 반복되고, 이러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기억하고, 상기시킨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해결되리라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평소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고백했다. 그러한 그의 경향은 청소년 성범죄를 화두로 내세운 2012년 작품 ‘돈 크라이 마미’로 드러난 바 있다. 작품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과 부당한 사회적 시스템에 대해 세상에 질문을 던진 김 감독은,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또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피해자와 그 가족이 겪어야 할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이야기했다. 그는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를 마친 뒤, 친일파를 찾아 처단하는 SF장르영화를 준비 중이다. 이에 앞서 영화 ‘헝그리’ 촬영이 예정돼 있다. 김 감독은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를 잘 마무리하고, 기회가 되면 영화 ‘여명의 눈동자’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2월 22일부터 4월 14일까지 두 달간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gophk@seoul.co.kr
  • 종로, 김상옥 의사 의거 96주년 기념식

    서울 종로구는 22일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김상옥 의사 의거 96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고 21일 밝혔다. 김 의사의 후손, 의열단 후손, 3·1운동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 구성된 서울시 ‘시민위원 310’위원 등이 참석한다. 기념식은 김 의사 의거일인 22일 대학로 36-4 인근 지역에서 펼쳐진다. 이곳은 김 의사가 생을 마감하기 전 일본 군경 1000여명과 치열한 격전을 벌인 장소이다. 아울러 3·1운동 100주년 서울시기념사업회는 김 의사 의거 현장 기념 조형물 설치 구상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조형물 디자인은 김 의사가 맞은 총 11발을 상징하는 구멍 11개와 김 의사가 일본 군경들과 싸운 장면이 담긴 구본웅 화백의 시화첩 ‘허둔기’를 활용한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우리 겨레에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김 의사의 행적을 널리 알리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 몰라 안타까워”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 몰라 안타까워”

    항일운동 구심점이던 고종 ‘日 독살설’ 백성들 공분… 장례일 계기로 3·1운동 당시 황제에게만 사용했던 경칭 ‘만세’ 국호와 더불어 ‘대한독립 만세’ 외친 것“올해는 고종 황제 승하 100주년이 되는 해다. 대개 3·1 만세운동 100주년인 것을 알면서도 만세운동의 도화선이자 기폭제가 된 고종황제 승하 100주년은 모르는 사람이 많다. 황사손(皇嗣孫·대한제국 황실의 적통을 잇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역사 교육이 부족한 점이 정말 안타깝다.”고종의 증손자인 이원(57·본명 이상협) 대한황실문화원 총재는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종 사망 100주년 소회를 묻자 “만감이 든다”며 이렇게 답했다. 이 총재는 2005년 영친왕계인 이구 황태손(皇太孫·황제의 적장손)이 타계한 이후 양자로 입양돼 황가의 법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제5대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총재도 맡았다. 또 조선시대 왕이 직접 참여한 종묘대제, 사직대제, 환구대제, 조경단대제, 조선왕릉 제향의 ‘초헌관’으로도 참여한다.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 21일 오전 6시 30분쯤 사망했다. 건강하던 고종황제가 식혜를 마신 지 30분도 채 안 돼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사망해 일부 역사학자와 법의학자를 중심으로 일제에 의한 독살설이 제기됐다. 이런 소문은 전국으로 퍼져 나가 3·1 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됐다. 고종의 후손인 이 총재는 이 독살설을 정설로 보고 있다. 그는 “고종 황제가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에서 한약, 식혜, 커피를 마신 지 30여분 만에 시해됐다”며 “항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역적 매국노들이 눈엣가시 같은 고종을 독살했다”고 견해를 밝혔다. 고종이 억울하게 죽으면서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염원한 백성의 공분을 일으켰고, 고종 장례일을 계기로 3·1 만세운동이 터졌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친일 역사학자들이 고종을 어리석은 군주로 묘사했지만, 최근에는 재조명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독립 만세’라는 구호에 대해 그는 “요즘은 만세가 축하나 환호할 때 외치는 소리이지만, 그때만 해도 황제에게만 사용하는 경칭”이었다며 “국호가 ‘대한제국’이었으니 자연스럽게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총재는 21일 오전 11시 30분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홍릉에서 ‘고종황제 100주기’ 제향을 거행한다. 홍릉은 고종과 명성황후를 합장한 무덤이다. 그는 “종묘대제와 종묘제례악처럼 사직대제, 환구대제, 왕릉제향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고종의 주치의였던 호러스 알렌 박사의 후손들을 설득해 작년에 다 돌려받지 못한 유물들을 환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김정은 3월 중순~4월 답방설… 靑 “2차 북미회담 성공 우선”

    북·미가 2월 말쯤 2차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면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 시기에도 관심이 쏠린다. 당초 청와대는 내부적으로 3·1절 100주년 기념식에 맞춰 답방을 추진했지만, 북·미가 합의한 일정을 감안하면 시간이 촉박한 터라 3월 중순∼4월이 합리적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3·1절 답방은 북·미회담 일정상 촉박 청와대 관계자는 20일 “북·미가 2월 말 실질적 성과를 내는 회담을 한다는 조건이 충족된다면 직후부터 답방 논의도 본격화될 것”이라며 “북측도 2차 회담에 올인하는 상황인 만큼 그 전에 논의가 이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지난 19일 “북·미회담의 성공에 이어서 답방이 이어지기를 희망하고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 및 남북 대화를 확대해 가면서 2차 회담 성공을 위한 ‘촉진자’ 역할을 하겠다는 게 청와대 입장이다. 2차 회담에서 가시적 비핵화와 상응 조치가 나와야 경제협력 등 논의의 폭이 확대되면서 김 위원장의 역사적 방남에도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 판단이다. 현재로선 답방을 위한 남북 협의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3월 말~4월 중 답방 추진 중이라는 일본 언론 보도에 대해 김의겸 대변인은 “추진한 적도 논의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2차 북·미 회담에서 비핵화의 비약적 진전을 이룬다면 동력을 이어 가고자 이른 시일 내 답방을 추진될 것이란 관측은 여전하다. 문재인 대통령도 신년회견에서 “2차 북·미 회담이 열리면 어떤 형태로든 남북 정상이 마주앉아 결과를 공유하고 남북 관계 발전을 협의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3월 북·미 회담 땐 ‘4·27 답방’ 가능성도 북·미가 날짜를 못박지 않고 ‘2월 말쯤’이라고 한 데다 지난해 6·12 정상회담이 막판까지 곡절을 겪었던 점에 비춰보면 회담이 3월로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조기 답방보다는 남북 모두에게 의미 있는 날짜를 택일하는 데 무게를 둔다면 4·27 정상회담 1주년 즈음이 ‘적기’라는 관측도 나온다. 첫 남북 정상회담이 이뤄진 6월 15일 전후, 비핵화 과정이 급물살을 타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논의로 연결된다면 정전협정이 체결됐던 7월 말(27일), 3·1절 못지않게 상징성이 큰 광복절(8월 15일)도 가능한 선택지로 꼽힌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올해는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모르는 사람 많아 안타까워”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올해는 3·1운동 기폭제 된 고종 승하 100주년…모르는 사람 많아 안타까워”

    ‘황사손’ 이원이 말하는 고종 승하 100주년“올해가 고종광무태황제 승하 100주년입니다. 3·1만세운동 100주년인 것을 알면서도 만세운동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고종 황제의 붕어 100주년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황사손으로서 안타깝고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21일 오전 6시30분쯤 일제에 의해 독살되셨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이지만 해마다 이날 정오에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홍릉에 가서 제향을 봉행합니다. 고종 황제가 당시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는데, 나라를 잘 못 이끌었다는 오해를 아직도 받고 있습니다. 역사교육이 잘 못된 점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21일 정오 고종 왕릉인 남양주서 ‘홍릉제향’ 봉행 그를 만나면 무엇부터 질문할까 고민했다. ‘군주국이 아닌 나라에서 황위 계승자 제1순위로서의 삶’을 먼저 물어볼까하다 ‘고종 사망 100주년의 소회’를 물었다. 황사손(皇嗣孫·(대한제국)황실의 적통을 잇는 후손) 이원(57·본명 이상협)은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만감이 교차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제5대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 사단법인 대한황실문화원 총재,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총재도 겸하고 있다. 고종의 증손자인 이원 총재는 2005년 영친왕계의 이구 황태손이 타계한 이후 3년상을 치르고 그의 계자(系子)로 입양돼 황가의 법통을 이어가고 있다.- 고종 황제의 승하 당시 어땠나요. -> 고종이 항일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기에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역적 매국노들은 눈엣가시 같은 고종을 독살했든 겁니다. 1919년 1월 21일 아침 6시 경운궁(현재의 덕수궁)에서 한약·식혜·커피를 드시고 30여분만에 시해되셨습니다. ‘윤치호 일기’에 의하면 황제는 식혜를 마신지 30분도 안 되어 심한 경련을 일으켰고, 사후에 보니 혀와 치아가 타 없어지고, 30cm 가량 되는 검은 줄이 목 부위에서 복부까지 길게 나 있었으며, 온몸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는 것입니다. 독살됐다는 확실한 증거 기록입니다. “고종, 21일 아침 6시 한약·커피·식혜 마시고 승하심한 경륜 후…혀·치아 타 없어져 독살 시해 증거고종 시해 이유…항일독립 망명정부 차단하려고”- 고종 승하에 백성들은 왜 ‘만세(萬歲)’라고 외쳤을까. -> 만세가 요즘이야 축하나 환호할 때 외치는 소리이지만, 그때만 해도 황제에게만 사용하는 경칭이었고, 죽음이란 단어를 꺼렸습니다. 국호가 ‘대한제국’이었으니 자연스럽게 ‘대한독립 만세’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대한광복군정부(大韓光復軍政府)의 수장이었던 황제가 억울하게 독살당하자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염원한 백성들이 공분을 일으킨 것입니다. 고종의 항일 투쟁의 뜻을 기리는 백성들이 인산일(因山日·왕과 왕가의 장례일)인 3월 3일에 앞서 자발적으로 모여 만세를 외쳤던 것입니다. 인산일에 맞추려다 국장날 소요는 예가 아니다고 미루고, 전날인 3월2일은 일요일이어서 하루 늦췄다고 합니다. 결국 1일로 날짜가 맞추진 것이 3·1독립만세운동입니다. - 고종의 독립운동 가운데 일반인이 잘 모를 법한 이야기는. ☞ 고종 황제는 1897년 황제국을 선포한 것도 지금보면 여러모로 의미있는 일입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1894년 갑오개혁때 공식적인 국문 즉 ‘나랏글’로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근대 문명의 초석이 된 겁니다. 한글을 이용한 잡지와 신문 발간도 적극 권장했지요.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도 출간도 가능했던 겁니다. 또 일본보다 2년 빠른 1884년 미국 에디슨전기회사와 협약해 창덕궁에 전기등소를 설치하고 종로에 전차를 도입했습니다. 종로를 아시아에서 가장 번쩍이며 화려한 명소로 탈바꿈시키셨던거죠. 친일역적 매국노들이 고종 황제를 철저히 암군(暗君·어리석고 아둔한 군주)으로 묘사했지만 최근 학자들에 의해 개명군주(開明君主)로서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고종, 한글 공식 나랏글 선포…개명군주 역할 많아대한광복군정부 수장…항일 구국 독립운동 구심점- 대한광복군정부에 대해 설명하면. ☞ 고종 황제는 1907년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황위에서 강제로 퇴위되셨습니다만 1914년 이상설(1871~1917)을 중심으로 설립된 첫 망명 정부인 대한광복군정부의 수장이 되어 항일구국 운동을 지원하셨습니다. 대한광복군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규군으로, 다시 대한민국국군의 모체가 됩니다. 간접적인 독립활동에 한계를 느끼신 황제는 이상설과 이회영(1867~1932)의 계획 아래 중국에 망명해 항일구국 독립투쟁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려 하셨습니다. 이런 망명 계획을 첩보로 입수한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와 민병석·송병준·이완용·윤덕영·한상학이 고종의 망명을 차단하려고 암살을 한 겁니다. - 군주국이 아닌 공화국에서 황사손의 역할은. ☞ 가장 대표적인 직무는 종묘대제·사직대제·환구대제(대한제국 황실 선포 및 국태민안 기원 제사)·조경단대제(조선왕실 시조 즉 전주이씨 시조묘 제사) 그리고 연중 66회의 왕릉제향의 초헌관(初獻官)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연간 70번 거행되는 제사에서 왕과 왕비 신위에 술잔을 처음으로 올리는 제관 역할을 하는 겁니다. 왕실 초헌관은 조선시대 때부터 국왕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만 이구 황태손 저하를 이어 제가 그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조선왕실과 대한제국황실의 그 유구한 역사·문화적인 유산을 지금도 계승하고 있으며, 대한제국황실이 그 정통성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공화국이 된 나라에서 황제 계승자라는 직위는 다른 분들에겐 사실 설명하도 이해를 잘 못하는, 그래서 외로운 면이 있습니다. “황사손 역할, 연중 70회 대제·제향 초헌관 맡아유구한 역사 계승…대한민국 정통성 뒷받침 자부”- 황실 최고령인 이해경씨 환국은. ☞ 제게는 고모님이 되시는 해경 황녀님은 1930년 태어나셨서 올해 구순이 됩니다. 고종 황제의 다섯째 왕자이신 의친왕(1877~1955)의 5녀입니다. 조선왕실 법도로 보면 의친왕의 공주가 되고, 대한제국 황실 법도로 보면 황녀가 됩니다. 1956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신 이후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한국학 사서로 조선의 기록을 많이 발굴해 내셨습니다. 1996년 정년퇴직하신 이후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홀로 거주하고 계십니다. 뉴욕의 한인사회 주요 행사에 참석하시며 교민들에게 정신적 구심점이 된다 들었습니다. 뉴욕에서는 황녀라는 호칭보다 ‘한국 공주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계십니다. 독립한 조국이 있는데 이역만리에서 홀로 생활하시는 게 너무 마음에 걸립니다. 더 늦기 전에 환국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환국시 친모이신 의친왕비가 생활하셨던 안동별궁이나 사동궁이 좋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습니다. 황실의 상징성을 고려해 이구 황태손 저하와 영친왕비, 그리고 덕혜옹주께서 기거하셨던 창덕궁 낙선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황사손으로 보람을 느꼈던 일은. ☞ 2017년과 작년 미국 수도 워싱턴D.C에 있는 스미스소니언박물관 관계자들과 오하이오주에 사는 고종 황제의 주치의였던 호러스 알렌 박사 후손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소개되자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관계자들은 저를 ‘His Imperial Highness’(저하)로 경칭해 놀랐습니다. 또 알렌 박사의 고향에선 ‘한국의 황태자가 온다’는 소문에 알렌 박사의 증조카 며느리의 집에 동네사람들이 저를 만나려 몰려왔습니다. 그들도 저를 ‘Your Highness’로 높여 불러주었습니다. 한 이웃은 오찬 음식점까지 자신의 자녀들을 데려와 소개시켜주면서 “오늘 한국의 황태자를 알현하는 것은 저희 가족에게는 큰 영광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대한제국 황실의 수장으로서의 뿌듯한 마음을 갖게 됐고 또한 큰 위로도 받았습니다. 황사손에 대한 마땅한 영어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해외왕실교류수석위원이신 김영관 박사는 제1위 황위 계승자이니 영어로 ‘The Crown Prince His Imperial Highness’(황태자 저하)로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고, 현재 영어로는 그렇게 호칭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알렌 후손들로부터 환수된 문화재는 서울시에 기증하였습니다. “황실 최고령 이해경 황녀, 늦기 전에 환국해야사직대제·환구대제·왕릉제향 유네스코 등록 추진”- 앞으로 중점적으로 추진할 계획은. ☞ 올해는 특히 국민을 섬기며 대한민국의 문화 융성에 이바지하려고 합니다. 종묘대제와 종묘제례악이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가장 큰 이유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입니다. 즉, 민주공화정에서도 종묘에 모셔진 역대 왕과 왕비의 직계손이 제향에 초헌관으로 참여함으로서 그 뿌리와 원형이 인정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사직대제와 환구대제 그리고 왕릉제향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올해도 지속적인 노력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뉴욕한인축제나 에딘버러축제에서 어가행렬을 재현하는 행사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종묘제례악이나 어가행렬은 단순한 제례의식의 절차를 뛰어 넘어 대한민국만이 보유한 역사·종교·문화 유산으로서 그 가치가 지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우리의 역사문화 유산에 큰 자부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또 알렉 박사의 후손들을 올해 직접 방문해 작년에 환수하지 못한 나머지 유물 환수와 숨겨진 역사적 사실들은 발굴할 계획입니다. 이런 여정을 영상으로 남길까합니다. 그는 황사손이라고 하지만 궁궐이 아니라 서울 성북동의 한 아파트에 산다고 했다. 황사손이 되기 전에는 그도 평범한 샐러리맨이었다.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상문고와 뉴욕공과대(NYIT)를 마치고 미국 케이블사 홈박스오피스(HBO)의 PD로 일하다 1990년 귀국했다. 금강기획을 거쳐 현대방송 PD, 현대홈쇼핑 디지털방송본부장으로 있다가 황사손으로 선정됐다. ‘직장인으로 승승장구했는데, 미련이 많겠다’고 하자 그는 “하늘의 부름이죠”라며 말끝을 흐렸다.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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