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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경산수화 품은 선유정에 서니, 절두산 순교의 아픔 아스라이

    진경산수화 품은 선유정에 서니, 절두산 순교의 아픔 아스라이

    서울신문이 서울특별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7회 양화진과 선유도’ 편이 지난 17일 오후 6시부터 2시간여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화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혹서기 야간투어 프로그램 네 번째 순서였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절두산 가톨릭 순교성지와 양화진 역사공원을 거쳐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원을 둘러봤다. 이동시간을 단축하려고 시내버스를 이용, 양화대교를 건너 선유도공원에 내렸다. 수질정화원-선유정-녹색기둥의 정원-수생식물원-시간의 정원-전망대 순서로 어둠이 내려앉은 한강 한가운데 섬을 걸었다. 이번 코스의 서울미래유산은 양화대교와 선유도공원 2곳이다. 가까이 있지만 먼 양화진과 선유도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참석자들의 기대와 호응이 높았다. 선유정과 전망대에서 바라본 야경은 18세기 겸재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의 야간 버전인 듯했다. 선유도라는 거대한 배를 타고 양화대교~서강대교~성산대교 사이에 펼쳐진 서울의 서쪽을 맘껏 조망했다. 해설을 맡은 황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가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새 답사코스를 개발한 덕분이다.양화진은 기독교를 양분하고 있는 가톨릭과 개신교 양대 종파의 공동 성지다. 우리나라 가톨릭교회의 박해와 수난을 상징하는 절두산 순교자기념관과 개신교 개척 선교사들의 요람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이 있다. 양화진 역사공원은 두 성역의 중심부에서 절묘한 균형추를 잡고 있다. 양화진 역사공원은 양화나루터를 지키던 옛 군사기지 터에 조성됐다. 본래 양화진은 서울~인천, 서울~강화도 두 바닷길을 잇는 길목이었다. 또 세금으로 바친 곡식을 실은 세곡선의 검문소이자 선유봉과 잠두봉이 연출하는 절정의 뱃놀이 명소이기도 했다. 새남터(이촌동)와 함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였기에 죄인을 처형하거나 죄인의 시신을 전시했다. 1884년 갑신정변 ‘삼일천하’의 주인공 김옥균이 능지처참을 당한 바로 그곳이다.1866년(고종 3) 제1차 병인양요 때 서울을 침범한 프랑스 함대가 정박한 양화진에서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이 이뤄졌다. 이때부터 잠두봉은 ‘머리를 자른 산’이라는 뜻에서 절두산이라는 섬뜩한 이름이 붙었다. 무려 2000여명이 이때 순교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톨릭교회에서는 1966년 병인 순교 100주년을 기념해 이곳을 매입한 뒤 잠두봉을 중심으로 성당과 순교기념관을 건립, 사적지로 조성했다. 1976년 이래로 한국 성인들의 유해를 옮겨 와 안치했다. 절두산성지 내에는 관련 사료와 유물, 유품전시관, 28위의 성인 유해를 모신 유해실, 순례성당, 순교자 교육관, 김대건 신부 동상을 비롯해 야외 전시관이 있다. 절두산 성당은 혜화동 성당, 아현동 성당 및 국립극장, 경주박물관 등 종교건축과 문화시설을 주로 지은 건축가 이희태의 작품이다. 기념관은 우뚝 솟은 절벽 위에 세워졌는데 원반 모양의 지붕은 선비의 갓을, 6m 높이의 종탑으로 구멍이 뚫린 벽은 순교자들의 목에 채워졌던 목 칼을, 그리고 지붕 위에 늘어뜨린 사슬은 족쇄를 상징한다. 성당은 부대시설과 장식을 일절 배제했다. 언덕 위 양화진 외국인선교사 묘역은 언더우드, 아펜젤러, 스크랜턴 등 3인이 묻힌 한국 개신교의 성소다. 서울시내에 유일한 이국적 풍경의 외국인 묘역이다. 1885년 4월 5일 개신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와 헨리 아펜젤러를 태운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이틀 전 일본 나가사키를 출항, 부산에 도착한 뒤 남해안과 서해안을 돌고 돌아 제물포에 도착한 것이다. 이날은 한국 개신교의 공식 선교일이다. 갑신정변 직후여서 파란 눈을 가진 목사의 서울 입성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결국 아펜젤러 부부는 일본으로 되돌아갔고, 독신 언더우드는 서울에 들어온 첫 목사로 기록됐다.언더우드는 제물포선착장(올림푸스호텔)-인천도호부(문학초등학교)-성현(근로복지공단 인천병원 앞)-성곡(부천시 여월동)-고음월리(신월IC)-양화진(인공폭포)-애오개(아현감리교회)-돈의문(강북삼성병원 앞)-제중원(을지로입구)을 거쳐 사대문 입성에 성공했다. 직선거리 45㎞에 이르는 이동경로는 오늘의 경인로라고 보면 된다. 최초의 여선교사 메리 스크랜턴은 6월, 아펜젤러는 7월 뒤이어 입경했다. 언더우드는 새문안교회와 경신학교, 연세대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를 세웠다. 아펜젤러는 배제학당과 정동교회, 스크랜턴은 이화학당을 각각 설립했다. 이들 외에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호머 헐버트, 대한매일신보 설립자 어니스트 베델, 한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서양인으로 결핵요양원을 세우고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한 셔우드 홀, 삼일만세 사건을 처음 보도했고 행촌동에 딜쿠샤를 남긴 앨버트 테일러 등 모두 14개국에서 온 415명의 선교사와 가족이 잠든 곳이다. 양화대교 중간에 배 모양으로 길게 누워 있는 선유도는 원래 40m 높이의 선유봉이었고 주변은 더 넓은 모래벌판이었다. 선유봉의 운명은 기구했다. 네 번의 윤회를 통해 변신을 거듭했다. 우뚝 솟은 봉우리에서 채석장으로 변했고, 다시 정수장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첫 변화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 한강변에 둑을 쌓으면서 골재 채취용으로 크게 훼손당됐다. 두 번째는 여의도비행장 건설 때 모래와 자갈을 내어 주는 골재 공급처로 쓰여 망가졌다. 1945년 해방 이전에 봉우리의 절반 이상이 희생됐다. 해방 이후 도로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또 선유봉 암반을 깎았는데 이때 선유봉은 평지로 변했고, 1965년 이 자리에 제2한강교(양화대교)가 놓였다. 1968년 시작된 제1차 한강개발사업은 선유봉을 섬으로 만들었다. 주변에 7m의 옹벽을 치고, 섬과 한강 남단 사이에 있던 모래를 모두 퍼내 강변북로를 만들었다. 결국 1978년 영등포 공단지대의 식수공급용 정수장으로 둔갑했다. 2002년 4월 정수장을 재활용한 한강 최초의 섬 공원이자 국내 최초의 산업시설 재활용 생태 공원이 돼 시민 곁으로 되돌아오기 전까지 당인리발전소와 함께 개발시대 한강의 대표적인 산업시설로 존재했다. 조선시대 뱃놀이 명소, 일제강점기의 골재 채취장, 1970~90년대 정수장이라는 변신을 겪은 공간은 생태공원으로 네 번째 삶을 맞았다. 선유도 전망대에 올라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한강을 가로지르는 붉은 아치의 성산대교가 나타난다. 다리 너머엔 난지 하늘공원, 남쪽에는 목동, 북쪽에는 상암 월드컵경기장이 펼쳐져 있다. 오른쪽에는 양화대교와 합정동의 마천루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한강공원에서 선유교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선유도공원으로 들어올 수 있고, 선유정 정자 맞은편은 누에머리 모양의 옛 잠두봉 절두산 성지다. 조명을 받은 망원정도 눈에 들어온다.자갈과 모래로 채워졌던 제2여과지는 상판을 들어내고 주차장으로, 약품침전지는 부레옥잠이나 연꽃 같은 수생식물을 키우는 식물원이 됐다. 제1여과지는 선유도공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하천이나 늪지에서 자라는 습지식물이 콘크리트 그릇에 담겨 있다. 시간의 정원은 제1침전지였고, 침전지의 상부 수로는 수생식물 정원으로 물을 실어 나르는 물길로 꾸며졌다. 취수펌프장은 한강을 조망하는 카페테리아 나루가 됐고, 전망대를 뚫고 나온 미루나무는 생명과 바람의 존재를 실감 나게 한다. 선유도공원은 물과 회색 콘크리트와 녹색식물의 합작품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선유봉의 네 번째 환생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제18차 서울의 영화3(이만희 감독의 귀로) ■일시 및 집결 장소:8월 24일(토) 오후 5시 시청역 2번 출구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전남도, 공모 사업 ‘시군 눈치보기’로 또 연기 비난 쇄도

    “도대체 공모를 하라는 말인지, 하지 말라는 뜻인지 어이가 없네요. 통 믿음이 안갑니다.” 전남도가 주요 사안을 결정하기 위해 도내 22개 시·군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공모 사업이 지자체 눈치보기식으로 차일피일 미뤄지는 일이 잦아 말썽이 되고 있다. 충분한 검토 없이 지역간 공모로 책임을 떠넘기다 과열 경쟁이 되면 기한을 연기하는 등 신뢰성에 큰 문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전남도에 따르면 오는 23일 마감 예정이었던 480억원 규모의 남도의병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무기한 연기했다. 임진왜란에서부터 3·1운동까지 호남지역 의병의 구국 충혼을 기리고 지역 의병 역사를 정립하기 위해 추진됐지만 불과 마감 1주일을 앞두고 갑작스레 중단했다. 도는 역사공원 콘텐츠 미흡에 대한 우려와 국비확보에 난관이 예상돼 조성 계획을 보완한 후 입지를 선정하기로 하고 지난 4월부터 추진해왔던 공모 일정을 중단했다. 하지만 13개 시·군이 유치 경쟁을 벌이면서 과열 현상이 나타나자 탈락하는 지자체들의 반발을 의식해 시간 벌기식으로 막연히 미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같은 연기 결정에 민관이 합심해 부지확보와 결의대회, 서명운동 등 다양한 유치 활동을 벌여왔던 지자체들은 황당하다는 반응들이다. A 지자체는 “열심히 준비했는데 광역단체가 하는 일이라 항의도 못하고,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럽다”며 “어차피 경쟁은 계속 될텐테 막연히 뒤로 미루기만 할 일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B 지자체 관계자는 “2개월 넘게 휴가도 반납하고 현장 답사 등 많은 노력을 해왔는데 허탈하다”며 “사업에 선정되면 좋겠지만 떨어지더라도 지역의 상징성을 살린다는 차원에서 계속 보완하고 노력해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이때문에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역사공원을 선정하는 것이 취지에 맞는 일인 만큼 내년으로까지 넘어갈 경우 그 의미가 퇴색될 우려가 있다는 시각이다. 이에앞서 도는 지난 6월 전남 동부권 통합청사 장소를 공모로 결정하면서 지자체간 갈등으로 여수와 광양시가 반발하자 2차례나 접수기한을 연기한 일도 있다. 이때도 이용자들의 편의 목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을 지역간 유치공모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일선 지자체 공무원은 “전남도는 그동안 공모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간 균형발전이라는 명목으로 나눠주기와과 보여주기식으로 결정한 경우가 많았다”며 “실제 공모가 필요하지 않은 사안도 명분 쌓기용으로 한데 이어 마감 기한도 아무렇지 않게 늦추는 모습을 보여 행정력 부실함과 신뢰성 저하가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송혜교, 이혼 후 어딘가 달라진 눈

    송혜교, 이혼 후 어딘가 달라진 눈

    배우 송혜교의 근황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19일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이 전개하는 컨템포러리 슈즈 브랜드 슈콤마보니는 2019 가을·겨울(FW) 시즌, 뮤즈 송혜교와 함께한 ‘샤인 온 미’ 캠페인 화보를 공개했다. ‘샤인 온 미’는 자신의 스타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즐길 줄 아는 여성을 위한 캠페인이다. 이번 캠페인 화보에서 송혜교는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고 인형 같은 미모를 과시했다. 시크한 콘셉트로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다. 한편 송혜교는 배우 송중기와 결혼 1년 8개월 만인 지난 6월 파경을 알리고, 7월 이혼했다. 송혜교는 이혼 후에도 브랜드 파티에 참석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제74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함께 중국 중경 임시정부청사에 한국어와 중국어로 제작된 안내서 1만 부를 기증하기도 했다.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송혜교 근황, 달라진 화장법+분위기 “범접불가 미모”

    송혜교 근황, 달라진 화장법+분위기 “범접불가 미모”

    배우 송혜교의 근황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19일 코오롱인더스트리FnC부문이 전개하는 컨템포러리 슈즈 브랜드 슈콤마보니는 2019 가을·겨울(FW) 시즌, 뮤즈 송혜교와 함께한 ‘샤인 온 미’ 캠페인 화보를 공개했다. ‘샤인 온 미’는 자신의 스타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즐길 줄 아는 여성을 위한 캠페인이다. 이번 캠페인 화보에서 송혜교는 짙은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고 인형 같은 미모를 과시했다. 시크한 콘셉트로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내뿜고 있다. 한편 송혜교는 배우 송중기와 결혼 1년 8개월 만인 지난 6월 파경을 알리고, 7월 이혼했다. 송혜교는 이혼 후에도 브랜드 파티에 참석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제74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함께 중국 중경 임시정부청사에 한국어와 중국어로 제작된 안내서 1만 부를 기증하기도 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같이 펀딩’ 유준상, 태극기함 목표 달성 “난 전생에 독립투사”

    ‘같이 펀딩’ 유준상, 태극기함 목표 달성 “난 전생에 독립투사”

    ‘같이 펀딩’이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첫 항해를 시작했다. 첫 번째 주자로 나서 아주 특별한 태극기함을 준비한 유준상의 이야기는 우리가 잊고 있던 태극기의 가치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숨은 영웅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진심이 통할 때 전해지는 기분 좋은 즐거움과 유익함, 묵직한 감동을 선사했다. 18일 첫 방송된 MBC 새 예능 프로그램 ‘같이 펀딩’에는 배우 유준상이 준비한 3.1주년 100주년 기념 아주 특별한 국기함 프로젝트가 베일을 벗었다. MC 유희열을 비롯해 유준상, 유인나, 노홍철, 장도연이 한자리에 모여 유준상이 꺼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공감 수다를 펼쳤다. ‘같이 펀딩’은 혼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다양한 분야의 ‘가치’ 있는 아이디어를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이 확인하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같이’ 실현해보는 예능. 우선 첫 방송은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다루지만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시간으로 꾸며졌다. MC 유희열은 펀딩에 대해 잘 몰랐다고 밝히면서도 “시청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힘들이 하나둘 모여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며 ‘같이 펀딩’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했다. 가장 먼저 프로젝트를 공개한 유준상은 ‘진심’을 꺼냈다. 유준상은 “나는 전생에 독립투사였을 것”이라며 체격이 왜소했던 어린 시절 이 생각만 하면 든든했다고 밝히면서, 성인이 되어 3.1절에 태극기를 걸고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다녀온 이유도 들려줬다. 평소 나라를 향한 마음을 표현해 왔던 유준상은 “태극기를 다는 날 너무 기뻤다. 예전에는 태극기를 안 단 집이 드물었다. 자랑스럽게 달았었다. 태극기가 모두의 마음에 펄럭이길 바라면서 시청자들과 같이 만들어가고 싶다”고 태극기함 프로젝트를 준비한 이유를 밝혔다. ‘같이 펀딩’ 출연진은 학창 시절 태극기함을 만들었던 경험부터 태극기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나눴다. 그러면서 “축제 때는 태극기가 있는데, 정작 달아야 할 그날에는 없다”, “이건 알아야 한다”면서 국기함 프로젝트에 공감했다. 유준상은 5월부터 제작진과 회의를 하고 이웃 주민들과 동료들을 찾아 국기 게양에 대한 현재의 인식을 살펴봤다. 또 아이템 제작에 앞서 태극기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보기 위해 역사 강사 설민석과 함께 진관사를 찾았다. 설민석은 역관 이응준이 고안했다는 최초의 태극기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의 그 순간에도 휘날리던 태극기의 의미를 들려줬다. 독립운동 불교계 대표였던 초월스님의 이야기도 소개됐다. 지난 2009년 진관사 칠성각 보수 공사 중 보자기가 하나 발견됐는데, 이 보자기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초월스님의 이야기가 공개된 것. 일장기 위에 덧대고 그린 태극기 보따리 안에는 민족의 독립운동 기사가 실린 신문이 담겨 있었다. 진관사를 방문해 처음 초월스님의 이야기를 알게 됐다는 유준상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태극기에 의미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영웅의 이야기는 일요일 저녁 안방극장에 뜨거운 감동을 선사했다. 태극기의 의미를 다시 마음의 새긴 유준상은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태극기를 달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며 시장 조사 및 아이템 회의에 돌입했다. 방송 말미에는 유준상이 평창동계올림픽 메달 디자이너 이석우와 함께 태극기함을 만드는 과정이 살짝 공개돼 향후 그려질 이야기에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진심이 전해지니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 역시 움직였다. 유준상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국기함 프로젝트는 언젠가부터 국경일에도 태극기를 다는 것에 소홀해지고 진짜 중요한 부분들을 놓치고 있던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두드리며 그가 나누고자 한 생각을 같이 만들어보고 싶은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같이 펀딩’ 첫 방송 중 시작된 유준상의 국기함 펀딩은 오픈된 지 약 10분 만에 1차 목표인 815만 원을 달성했고, 사이트 응답 지연 속에서 1차 준비 수량인 5000개의 펀딩이 방송 종료시점인 오후 8시 전에 조기 종료됐다. ‘같이 펀딩’ 측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발빠르게 응답하면서 추가 수량을 올렸고 총 1만 개가 오후 8시 30분 전에 마감됐다. 최종적으로 1차 펀딩 달성률은 4110%를 기록했다. ‘같이 펀딩’ 측은 펀딩 마감 이후에도 “국기함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고 싶다”라는 시청자들의 뜨거운 공감을 접하고 2차 펀딩을 논의 중이다. 시청자가 지켜보는 것은 물론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새로운 도전을 바탕으로 한 ‘같이 펀딩’은 진정성이 담긴 생각 위에 작은 힘이 모이면 큰 변화를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같이’의 힘을 보여주며 새로운 힐링 예능의 탄생을 알렸다. 향후 유인나의 오디오북, 노홍철의 소모임 특별전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새로운 재미를 안길 예정이다. ‘같이 펀딩’은 매주 일요일 오후 6시 30분에 방송되며, 네이버 해피빈 페이지를 통해 실제 펀딩에 참여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인사] 산업통상자원부, 충남 보령시,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인사혁신처

    ■ 산업통상자원부 ◇ 전보 △ 통상정책총괄과장 최진혁 △ 철강세라믹과장 김현철 ■ 충남 보령시 ◇ 5급 승진 △ 홍보미디어실장 이지성 △ 회계과장 김정수 △ 수산과장 김왕주 △ 청라면장 맹진영 △ 남포면장 강동구 ■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 국장급 △ 주한미군기지이전지원단 부단장 정용욱 △ 청년정책추진단 부단장 김민 △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 기념사업추진기획단 파견 이성춘 ◇ 과장급 △ 기획총괄정책관실 기획총괄과장 서영석 △ 조세심판원 조사관 은희훈 ■ 인사혁신처 ◇ 과장급 전보 △ 인재채용국 공개채용1과장 김준경
  • [인사]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국장급△주한미군기지이전지원단 부단장 정용욱△청년정책추진단 부단장 김민△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100주년 기념사업추진기획단 파견 이성춘 ◇과장급△기획총괄정책관실 기획총괄과장 서영석△조세심판원 조사관 은희훈 ■산업통상자원부 ◇전보△통상정책총괄과장 최진혁△철강세라믹과장 김현철 ■환경부 ◇과장급 전보△자연보전정책관실 자연생태정책과장 유명수 ■인사혁신처 ◇과장급 전보△인재채용국 공개채용1과장 김준경
  • MBC,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독립운동 표지석 설치

    MBC,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독립운동 표지석 설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한제국 공사관 건물 외벽에 ‘대한민국 독립운동 사적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졌다. MBC는 지난 15일 상트페테르부르크 뻬스첼랴 거리 5번지에 위치한 대한제국 공사관에 독립운동을 알리는 표지석을 설치했다고 16일 밝혔다. MBC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및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에 표지석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이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표지석은 지난 6월 프랑스 쉬프에 이은 두 번째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한제국 공사관은 러시아주재 대한제국 초대 상주공사 이범진이 집무했던 곳이다. 이범진은 1901년 러시아 상주공사에 임명된 후 현재 위치에 공사관을 개설하고 업무를 개시했다. 현재 아파트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의 1층 벽면에는 “이 건물에는 1901년부터 1905년까지 이범진 러시아 주재 대한제국 초대 상주공사가 집무하셨습니다”라는 문구가 한글과 러시아어로 새겨진 현판이 부착돼 있다. MBC가 설치한 표지석은 이 현판 아래 자리하게 됐다. 디자이너 성정기의 재능기부를 통해 탄생한 표지석은 금속 테두리 안에 청동으로 만들어진 가로·세로 19㎝, 두께 3.1㎝의 태극 상징물이 비스듬히 놓여 있다. 표지석 상단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이범진의 활동을 소개하는 미니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다. 표지석 제막식에 참석한 권동석 주 상트페테르부르크 총영사는 “MBC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표지석을 설치해줘서 기쁘고 영광스럽다. 이범진 공사는 초대 상주 공사였을 뿐 아니라 독립운동의 기반을 닦아놓은 분으로 더욱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한정우 MBC 임정100주년사업단장은 “표지석 설치 과정이 쉽지 않음에도 총영사관과 교민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결실을 맺게 됐다”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나경원 “74년전 대한민국 이름조차 안 정해져” 언급 논란

    나경원 “74년전 대한민국 이름조차 안 정해져” 언급 논란

    독립 후 국호는 1948년 정해제2의 건국절 논란 비화 될까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광복을 맞이 한 1945년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조차 아직 정해지지 않은 시점이었다”고 언급해 논란이다.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해 반포한 1919년에 이미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정해졌다고 봐야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반면 독립국가로서 대한민국의 국호가 정해진 것은 1948년 제헌국회였으므로 나 원내대표의 발언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나 의원은 광복절인 지난 1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자취를 찾아 중국 충칭에 왔다며 사진과 함께 장문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나 의원은 “74년 전 오늘 우리 민족은 일제 식민강탈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기쁨을 맞이함과 동시에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가라는 고민도 함께 맞이했다”며 “아니, 사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조차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시점이었다”고 적었다. 1945년 8월 15일 당시 대한민국의 국호가 없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이에 대해 임시정부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냐는 반박이 제기됐다. 김성회 정치연구소 ‘싱크와이’ 소장(전 손혜원 의원 보좌관)은 페이스북을 통해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선포한 최초의 헌법인 임시헌장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칭하고 정치체제는 민주공화제로 정했다”며 “임시 정부가 선포한 최초 헌법을 인정하는지 나 의원은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반포해 대한민국을 국호로 정했다. 한인섭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의 책 ‘100년의 헌법’을 보면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상하이에 모여 임시정부의 국호를 정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신한민국’, ‘한양정부’, ‘대한민국’, ‘조선공화국’ 등의 후보가 1919년 4월 10일 제출됐고 격론 끝에 이튿날인 11일 새벽 ‘대한민국’이 공식 채택됐다. 국명을 실제 제안한 사람은 조소앙이었고 여운형 등 일부는 “‘대한’(제국) 때문에 우리가 망했다”며 대한이라는 말을 쓰는 데 크게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이라는 이름이 국민 정서에 깊숙이 스며들었고 “일본에게 빼앗긴 국호이니 다시 찾아 독립했다는 의의를 살리는 게 좋겠다”는 주장에 최종적으로 힘이 실렸다.독립국가로서 대한민국의 국호가 정해진 것은 1948년이다. 1948년 5월 제헌국회 개원된 직후 구성된 헌법기초위원회는 가장 먼저 국호 문제를 논의했다. 제헌의원 대부분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생각했기에 무난하게 ‘대한민국’을 국호로 채택하리라 예상됐다. 그러나 ‘고려공화국’, ‘조선공화국’ 등으로 나라 이름을 부르자는 주장도 제기돼 투표를 거쳐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결정됐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나경원 원내대표는 1948년에 대한민국 국호가 정해졌다고 봤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김성회 소장은 “1948년 국호가 정해진 것은 맞다. 나 의원이 광복절에 임시정부에 가서 1945년은 국호도 안 정해진 혼란한 상태였다는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라며 ”36년 일제치하에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싸우다 산화한 호국영령을 무시하는 말“이라고 비판했다.대한민국 국호가 정해진 시점에 대한 논란은 뉴라이트 계열에서 제기한 ‘건국절 논란’과 닮았다.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등은 임시정부가 세워진 1919년이 아닌 독립국가로서 정부가 출범한 1948년을 건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건국 60년 기념식을 여는 등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6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건국 68주년’이라고 언급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삼일절 경축사에서 ‘건국 100주년’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해 임시정부를 계승했음을 분명히 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김해분청도자박물관, 3·1운동 100주년 주제 기획전

    김해분청도자박물관, 3·1운동 100주년 주제 기획전

    경남 김해분청도자박물관은 16일 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 기획전 ‘2019 분청愛, 그날을 기억하며’를 오는 11월 3일까지 개최한다고 밝혔다. 분청愛 기획전은 분청도자박물관 개관을 기념해 해마다 개최하는 전시회다. 올해는 100주년을 맞은 3·1 운동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전시회 주제를 ‘그날을 기억하며’로 정해 기획했다.. 이같은 주제에 따라 68점의 작품을 제작해 전시했다.김해지역 독립유공자와 가족, 명사 등이 추첨을 통해 선정한 시민 67명이 각자 초벌 접시에 원하는 문구를 써 넣어 만든 작품 67점과 김해시·도의원 30명이 대형 태극기 도판에 글을 써 완성한 작품 1점 등이다.기획전 개막식은 제74회 광복절인 지난 15일 오후 4시 허성곤 김해시장과 지역 국회의원, 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시·도의원, 3·1운동 기념사업회장, 시민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전시회는 무료 관람이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올해 기획전은 분청도자의 우수함과 아름다움을 체험하고, 3·1 운동의 역사적 의미도 되새기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사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참광복이다

    74주년 광복절을 맞은 우리의 심정은 참담하기 그지없다. 일본이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을 핑계로 대한민국의 급소를 노리고 감행한 경제보복의 끝이 보이지 않아서다. 올해가 3·1운동·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지만 광복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선열을 뵐 낯이 없다. 아베 신조 정권은 과거를 성찰·반성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는 것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은 전략물자의 부정한 유출이라는 근거도 없는 해괴한 이유를 들어 반도체 핵심 부품 등에 대한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일본은 적반하장격 도발을 사과하고 하루빨리 보복 조치를 철회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몇 차례나 강조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는 해방 직후 김기림 시인이 쓴 ‘새 나라 송(頌)’에 나오는 구절이다. 광복을 맞은 새 나라의 꿈을 노래한 김기림의 시를 대통령이 인용한 것은 해방 74년, 한일 국교 정상화 54년이 된 2019년 일본이 한국을 다시 흔들려 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다”면서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강력한 대일본 메시지가 나올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경축사는 일본을 안보와 경제협력의 파트너로 보고 미래를 열어 가자는 데 방점을 뒀다. 문 대통령은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며 대화를 제안했다. 또한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보이콧 움직임에 대해서도 부정에 가까운 의견을 나타냈다. 평창동계올림픽, 도쿄올림픽,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이 동아시아 공동 번영의 좋은 기회라면서 “세계인들이 평창에서 ‘평화와 한반도’를 보았듯이 도쿄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는 언급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경제보복으로 대한민국을 흔들려고 시도하면 경제력을 키워 대응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문 대통령은 “경제에서 주권이 확고할 때 우리 운명의 주인으로 흔들리지 않는다”면서 부당한 수출 규제에 맞서 책임 있는 경제강국을 향한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을 뛰어넘는다는 극일(克日)은 있으되 반일 메시지를 담지 않은 문 대통령의 8·15 경축사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광복절 직후 제3국에서 개최하려던 한일 외교차관 회담이 무산됐지만, 경제전쟁을 해소하려는 대화를 서두르는 게 양국 모두의 이익이라는 사실을 일본이 조속히 깨달았으면 한다.
  •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서울 성동구는 지난 14일 구청 1층 성동책마루에서 제74회 광복절 기념행사로 ‘구민과 함께하는 백범일지 낭독회’를 개최했다고 15일 밝혔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을 비롯해 지역 광복회 회원, 예술인, 독서골든벨 수상 어린이 등 10여명이 참석해 백범일지 ‘나의 소원’ 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함께 낭독했다. 백범일지는 독립운동가 백범 김구의 자서전으로, 1947년 초판이 간행됐다. 우리나라 독립운동 역사를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정 구청장은 “3·1운동 100주년의 해에 맞는 광복절인데,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으로 그 의미가 더 크게 다가온다”며 “이번 낭독회를 통해 어려운 시기에 희망을 잃지 않았던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기리고, 일본 경제 보복 위기도 의연하게 극복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文 “日과 기꺼이 손잡겠다”… 극일 기조 속 대화 촉구

    文 “日과 기꺼이 손잡겠다”… 극일 기조 속 대화 촉구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만들자” 다짐 “日, 과거 성찰해 번영 함께 이끌자” 압박 “북미 실무협상 모색… 판 깨지는 말아야 평화경제로 광복 100년엔 통일 코리아”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저는 오늘 어떤 위기에도 의연하게 대처해 온 국민을 떠올리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시 다짐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제 극일’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며 ‘대화의 문’을 열어 뒀다. 문 대통령은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아직도 우리가 충분히 강하지 않고, 우리가 분단돼 있기 때문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이루지 못했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어 “기적처럼 이룬 경제발전 성과와 저력은 나눠줄 수는 있어도 빼앗길 수는 없다”며 “부당한 수출규제에 맞서 우리는 책임 있는 경제강국을 향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고 했다. 또 “일본이 이웃나라에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 가길 바란다”고 압박했다. 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건설을 위한 3가지 목표로 ▲경제강국 ▲교량국가 ▲평화경제 구축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또 “최근 북한의 몇 차례 우려스러운 행동에도 대화 분위기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큰 성과”라면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북미 간 실무협상이 모색되고 있으며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구축을 위한 전체 과정에서 가장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남북미 모두 북미 실무협상 조기 개최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불만스러운 점이 있어도 대화의 판을 깨거나 장벽을 쳐 대화를 어렵게 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아울러 “임기 내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확고히 하고, 그 토대 위에서 평화경제를 시작해 통일을 향해 가겠다”며 “2045년 광복 100주년에는 평화와 통일로 하나 된 나라(One Korea)로 우뚝 서도록 기반을 단단히 다지겠다”고 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이날 천안에 있는 유관순 열사 기념관을 방문한 자리에서 “유관순 열사에게 1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서훈한 것이 최근이라고 하는데,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분들에 대해 국민들이 더 추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아주 귀한 장소에 와서 마음을 다시 한번 다지게 된다”고 밝혔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여주시, 남한강 여름축제 ‘그냥 놀자’ 열린다

    여주시, 남한강 여름축제 ‘그냥 놀자’ 열린다

    “신륵사 느티나무 숲으로 피서 오세요” 경기 여주시는 17일 오후 2시부터 저녁 9시까지 신륵사 입구 느티나무 숲 속에서 2019 남한강 여름축제 ‘그냥 놀자’ 행사를 갖는다고 15일 밝혔다. ‘그냥 놀자’ 축제는 독립운동의 고장 여주에서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전통예술과 현대예술이 어우러지는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을 통해 여주시민이 아름다운 느티나무 숲 속에서 한여름의 더위를 씻고 즐기며 휴식할 수 있는 종합문화예술제이고, 한국민예총여주지부가 주관하고 여주시가 후원한다. 이항진 시장은 “종합문화예술축제 ‘그냥 놀자’를 통해 여주시민들이 보다 건강하고 활기차게 무더운 여름을 극복하시고, 이 행사를 통해 자연과 문화와 인간이 어우러지는 신명나고 즐거운 축제가 되길 바란다.” 고 밝혔다. 이날 오후2시 거리로 나온 예술 버스킹 공연을 시작으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가수 오디션 본선 행사, 초·중·고등학생들의 댄스공연, 거제시 택견회의 택견 마샬아츠 창작극, 첼로앙상블, 설장고 독주, 상모판굿, 3.1운동 독립기념 어린이 뮤지컬 공연 등 문화예술 동아리 및 전문예술인들의 다양한 공연이 펼쳐져 관람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한 가수 오디션 본선 행사 우승자에게는 평화의 소녀상 OST 음반제작과 음원등록은 물론 향후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라고 여주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에서 밝혔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문 대통령, 통일 비전 구체화 ‘2045년 원코리아’…경제강국 의지

    문 대통령, 통일 비전 구체화 ‘2045년 원코리아’…경제강국 의지

    “늦어도 2045년 광복 100주년 통일”“동북아 평화·번영 선도국가” 구상 밝혀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2045년 원코리아’라는 남북통일 비전을 제시했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를 구축하고 이에 기반한 남북통일 시점을 구체화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늦어도 2045년 광복 100주년에는 평화와 통일로 하나된 나라, 원코리아(One Korea)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단단히 다지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청사진을 현실로 이뤄내기 위한 3대 국가운영 목표로 ‘책임있는 경제강국’, ‘교량국가’, ‘평화경제’를 제시했다. 일본 경제보복 사태 등으로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강’이 급선무라는 점을 강조하고, 극일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세계의 번영을 선도하는 국가로 거듭나야 한다는 포부를 담았다. 문 대통령은 한국이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돼 왔다고 돌아보면서도 “우리가 힘을 가지면 대륙과 해양을 잇는 나라,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남과 북 사이 끊긴 철길과 도로를 잇는 일은 교량국가로 가는 첫 걸음”이라며 남북 협력사업을 언급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로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바탕으로 경제발전의 새 동력을 얻겠다는 ‘한반도 신 경제지도’ 구상을 발표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을 강조해 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도 “광복절을 맞아 임기 내에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확고히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 토대 위에 평화경제를 시작하고 통일을 향해 가겠다”고 밝혔다. 최근 북한의 연이은 단거리 미사일 도발 속에 이런 평화경제 구상이 힘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지만 문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를 통해 평화경제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거듭 확인한 것이다. 평화경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는 단호하게 반박했다. 문 대통령은 “여전히 (남북)의 대결을 부추기는 세력이 국내외에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데 무슨 평화경제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들을 겨냥해 “미국이 북한과 동요 없이 대화를 계속하고 일본 역시 대화를 추진하는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을 인용하며 2024년에는 한국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해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중기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IMF를 인용해 한국이 2023년에는 일본, 이탈리아, 스페인, 이스라엘 등과 함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달러를 넘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남북이 인구만 합치더라도 한층 큰 경제적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통계청은 장래인구 특별추계를 통해 지난해 국내 인구수를 5161만명으로 추계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팩트북에 따르면 북한 인구는 2538만명(2018년)으로 추산된다. 이를 합산하면 7699만명에 이른다. 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언급한 “남북이 역량을 합치면 8000만 단일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발언과 맥락이 같다. 문 대통령의 경축사 내용처럼 남북통일이 이뤄지면 GDP 규모는 세계 6위 수준으로 올라서며 1인당 국민소득역시 8만 달러에 이르리라는 예상이 나온다. 세계 11~12위 수준으로 평가되는 한국의 GDP 규모는 경상 기준으로 지난해 1조 7209억 달러이며,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3만 3434달러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2017년 12월 말 내놓은 ‘남북한 경제통합 분석모형 구축과 성장효과 분석’에 따르면 30년에 걸친 3단계 남북 통합을 전제하면 남북한이 총 763조 5000억원 규모의 경제성장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추산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한반도 단일 경제권을 가정해 통일 한국의 실질 GDP가 2050년 5663조원으로 증가하고, 1인당 실질 GDP는 7만 484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문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6월 말의 판문점 회동 이후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북미 간의 실무협상이 모색되고 있다”며 “아마도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구축을 위한 전체 과정에서 가장 중대한 고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남북미 모두 북미 간 실무협상 조기 개최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 “국민들께서도 대화의 마지막 고비를 넘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며 “이 고비를 넘어서면 한반도 비핵화가 성큼 다가올 것이며 남북관계도 큰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하는 등 ‘고비’라는 단어를 총 세 차례 반복해 사용했다. 문 대통령은 “평화로 번영을 이루는 평화경제를 구축하고 통일로 광복을 완성하고자 한다”며 “경제협력이 속도를 내고 평화경제가 시작되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통일이 우리 앞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송혜교 서경덕, 광복절 맞아 중경임시정부청상 한글안내서 기증

    송혜교 서경덕, 광복절 맞아 중경임시정부청상 한글안내서 기증

    제74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배우 송혜교와 성신여대 서경덕 교수가 의기투합해 중국 중경임시정부청사에 안내서 1만부를 기증했다. 이번 안내서는 한국어와 중국어로 제작됐으며, 방문전 미리 다운로드 받아 확인할 수 있도록 올해 초에 오픈한 ‘한국의 역사(www.historyofkorea.co.kr)’ 홈페이지에도 함께 공개했다. 특히 안내서에는 중경임시정부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동경로가 소개되어 있고, 한국광복군 창설 및 활동 등이 전면컬러로 이해하기 쉽게 제작됐다.이번 일을 기획한 서 교수는 “올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항주임시정부청사에 안내서를 먼저 기증했고, 광복 및 환국을 준비했던 중경임시정부청사에 또 기증하게 됐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지금까지 송혜교 씨와 함께 17번째 안내서를 발간하게 됐다. 한류스타로써 국가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말 좋은 선례를 만들어 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올해는 2.8독립선언 100주년을 맞아 도쿄에 안내서 1만부를 기증했고, 3.1운동 100주년을 맞아서는 네덜란드 헤이그의 이준 열사 기념관에 대형 한글간판과 전시안내판을 기증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 해외에 남아있는 독립운동 유적지 보존 상황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유적지를 자주 방문하는 것만이 타국에 남아있는 독립운동 유적지를 지켜 나갈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서경덕 교수와 송혜교는 향후에도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 및 세계적인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에도 한국어 서비스를 계속해서 기증할 계획이다. 사진=뉴스1, 중경임시정부청사에 기증한 한국어 및 중국어로 제작된 안내서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전문]문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일본, 대화의 길 나오면 기꺼이 손 잡을 것”

    [전문]문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일본, 대화의 길 나오면 기꺼이 손 잡을 것”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무역도발과 관련해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겠다”고 밝혔다. 북미 비핵화 협상에 대해서는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 하더라도 대화의 판을 깨거나 장벽을 쳐 대화를 어렵게 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북미가 협상 테이블 위에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15일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 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일본에 과거사 성찰을 요구하면서도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문 대통령은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는 것”이라며 “일본이 이웃나라에게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우리는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다”며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고 일본의 무역 도발을 비판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일본과 대화를 통해 양국 갈등을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며 “공정하게 교역하고 협력하는 동아시아를 함께 만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북한과 아시아 이웃나라와의 경제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전문이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올해,  광복 74주년 기념식을 특별히 독립기념관에서 갖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떤 고난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던  독립 선열들의 강인한 정신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을 갈망하며  모든 것을 바쳤던 선열들의 뜨거운 정신은  이 순간에도 국민들의 가슴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독립 선열들과 유공자, 유가족께  깊은 경의를 표하며  광복의 그날, 벅찬 마음으로 건설하고자 했던 나라,  그리고 오늘, 우리가 그 뜻을 이어 만들고자 하는 나라를  국민들과 함께 그려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함께 잘사는 나라’,  누구나 공정한 기회를 가지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나라는 완도 섬마을의 소녀가  울산에서 수소산업을 공부하여 남포에서 창업하고,  몽골과 시베리아로 친환경차를 수출하는 나라입니다.  회령에서 자란 소년이 부산에서 해양학교를 졸업하고  아세안과 인도양, 남미의 칠레까지  컨테이너를 실은 배의 항해사가 되는 나라입니다.  농업을 전공한 청년이 아무르강가에서  남과 북, 러시아의 농부들과 대규모 콩농사를 짓고  청년의 동생이 서산에서  형의 콩으로 소를 키우는 나라입니다.    두만강을 건너 대륙으로, 태평양을 넘어 아세안과 인도로,  우리의 삶과 상상력이 확장되는 나라입니다.  우리의 경제활동 영역이 한반도 남쪽을 벗어나  이웃 국가들과 협력하며 함께 번영하는 나라입니다.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나라의 심장에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리고 철판을 펴자  시멘트와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세워가자”    해방 직후,  한 시인은 광복을 맞은 새 나라의 꿈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외세의 침략과 지배에서 벗어난  신생독립국가가 가져야 할 당연한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74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세계 6대 제조강국, 세계 6대 수출강국의  당당한 경제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열었고,  김구 선생이 소원했던 문화국가의 꿈도 이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아직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우리가 충분히 강하지 않기 때문이며,  아직도 우리가 분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어떤 위기에도 의연하게 대처해온 국민들을 떠올리며  우리가 만들고 싶은 나라,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다시 다짐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는 자유무역 질서를 기반으로  반도체, IT, 바이오 등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산업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나 자신의 강점을 앞세워 성공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뒤처졌던 동아시아는  분업과 협업으로 다시 경제발전을 이뤘습니다.  세계는 ‘동아시아의 기적’이라고 불렀습니다.    침략과 분쟁의 시간이 없지 않았지만,  동아시아에는 이보다 훨씬 긴 교류와 교역의 역사가 있습니다.  청동기 문화부터 현대 문명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는 서로 전파하고 공유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랜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졌고,  함께 문명의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광복은 우리에게만 기쁜 날이 아니었습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만주사변과 중일전쟁, 태평양전쟁까지  60여 년간의 기나긴 전쟁이 끝난 날이며,  동아시아 광복의 날이었습니다.  일본 국민들 역시 군국주의의 억압에서 벗어나  침략전쟁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일본과 안보·경제협력을 지속해 왔습니다.  일본과 함께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치유하고자 했고,  역사를 거울삼아 굳건히 손잡자는 입장을 견지해왔습니다.    과거를 성찰하는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는 것입니다.  일본이 이웃나라에게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우리는 바랍니다.    협력해야 함께 발전하고, 발전이 지속가능합니다.  세계는 고도의 분업체계를 통해 공동번영을 이뤄왔습니다.  일본 경제도 자유무역의 질서 속에서  분업을 이루며 발전해왔습니다.    국제 분업체계 속에서  어느 나라든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한다면  평화로운 자유무역 질서가 깨질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라도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입니다.  공정하게 교역하고 협력하는 동아시아를  함께 만들어갈 것입니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어 내년에는 도쿄하계올림픽,  2022년에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립니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맞는 동아시아 릴레이 올림픽입니다.  동아시아가 우호와 협력의 기틀을 굳게 다지고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입니다.    세계인들이 평창에서 ‘평화의 한반도’를 보았듯이  도쿄 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동아시아의 미래 세대들이  협력을 통한 번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닙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도전과 시련을 극복하며  더 강해지고 성숙해진 대한민국입니다.    저는 오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우리가 만들고 싶은 ‘새로운 한반도’를 위해  세 가지 목표를 제시합니다.    첫째, 책임 있는 경제강국으로  자유무역의 질서를 지키고  동아시아의 평등한 협력을 이끌어내고자 합니다.    우리 국민이 기적처럼 이룬 경제발전의 성과와 저력은  나눠줄 수는 있어도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경제에서 주권이 확고할 때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으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통합된 국민의 힘은 위기를 기회로 바꿨고,  도전은 우리를 더 강하고 크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중동의 열사도, 태평양의 파도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경제를 성장시켰습니다.  경공업, 중화학공업, 정보통신 산업을 차례로 육성했고  세계적 IT 강국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5G 등 세계 기술표준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선진국을 추격해 왔지만,  이제 앞서서 도전하며 선도하는 경제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에 맞서 우리는  책임 있는 경제강국을 향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갈 것입니다.    우리 경제구조를 포용과 상생의 생태계로 변화시키겠습니다.  대중소 기업과 노사의 상생 협력으로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겠습니다.  과학자와 기술자의 도전을 응원하고, 실패를 존중하며  누구도 흔들 수 없는 경제를 만들겠습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성찰하면서도  스스로 비하하지 않고 함께 격려해 나갈 때,  우리는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경제력에 걸맞는 책임감을 가지고  더 크게 협력하고 더 넓게 개방하여  이웃 나라와 함께 성장할 것입니다.    둘째,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며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교량 국가가 되고자 합니다.    지정학적으로 4대 강국에 둘러싸인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초라하고 힘이 없으면,  한반도는 대륙에서도, 해양에서도 변방이었고,  때로는 강대국들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겪었던 지난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힘을 가지면 대륙과 해양을 잇는 나라,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선도하는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정학적 위치를 우리의 강점으로 바꿔야 합니다.  더 이상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주도해 나간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일찍이 임시정부의 조소앙 선생은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의 균등을 주창했습니다.  평화와 번영을 향한 우리의 기본정신입니다.    우리 국민이 일본의 경제보복에 성숙하게 대응하는 것 역시,  우리 경제를 지켜내고자 의지를 모으면서도  두 나라 국민들 사이의 우호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준 높은 국민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사람중심 상생번영의 평화공동체’는  우리부터 시작해 한반도 전체와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으로 확장하자는 것입니다.    신북방정책은 대륙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포부입니다.  중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협력의 기반을 넓히고  동북아시아 철도공동체로 다자협력, 다자안보의 초석을 놓을 것입니다.    신남방정책은 해양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포부입니다.  아세안 및 인도와의 관계를 주변 주요국들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공동번영의 협력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올해 11월에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가 부산에서 열립니다.  아세안 및 메콩 국가들과 획기적인 관계발전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남과 북 사이 끊긴 철길과 도로를 잇는 일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교량국가로 가는 첫걸음입니다.  한반도의 땅과 하늘, 바다에 사람과 물류가 오가는 혈맥을 잇고  남과 북이 대륙과 해양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된다면,  한반도는 유라시아와 태평양, 아세안, 인도양을 잇는  번영의 터전이 될 것입니다.    아시아공동체는 어느 한 국가가 주도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평등한 국가들의 다양한 협력이 꽃피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셋째, 평화로 번영을 이루는 평화경제를 구축하고  통일로 광복을 완성하고자 합니다.    분단체제를 극복하여  겨레의 에너지를 미래 번영의 동력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평화경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위에  북한이 핵이 아닌 경제와 번영을 선택할 수 있도록  대화와 협력을 계속해나가는 데서 시작합니다.    남과 북, 미국은 지난 1년 8개월, 대화국면을 지속했습니다.  최근 북한의 몇 차례 우려스러운 행동에도 불구하고,  대화 분위기가 흔들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추진해온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큰 성과입니다.  북한의 도발 한 번에 한반도가 요동치던 그 이전의 상황과  분명하게 달라졌습니다.  여전히 대결을 부추기는 세력이 국내외에 적지 않지만  우리 국민들의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난 6월 말의 판문점 회동 이후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북미 간의 실무협상이 모색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구축을 위한 전체 과정에서  가장 중대한 고비가 될 것입니다.  남·북·미 모두 북미 간의 실무협상 조기개최에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불만스러운 점이 있다 하더라도,  대화의 판을 깨거나 장벽을 쳐 대화를 어렵게 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불만이 있다면 그 역시 대화의 장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할 일입니다.  국민들께서도 대화의 마지막 고비를 넘을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고비를 넘어서면  한반도 비핵화가 성큼 다가올 것이며  남북관계도 큰 진전을 이룰 것입니다.  경제협력이 속도를 내고 평화경제가 시작되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통일이 우리 앞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IMF는 한국이 4차산업혁명을 선도하며,  2024년경 1인당 국민소득 4만 불을 돌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남과 북의 역량을 합친다면  각자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8천만 단일 시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한반도가 통일까지 된다면  세계 경제 6위권이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2050년경 국민소득 7~8만 불 시대가 가능하다는  국내외 연구 결과도 발표되고 있습니다.    평화와 통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매우 클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남과 북의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시장과 기회가 열립니다.  남북 모두 막대한 국방비뿐 아니라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무형의 분단비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저성장, 저출산·고령화의 해답도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광복의 그 날처럼 우리 민족의 마음에 싹틀  희망과 열정이 중요합니다.  희망과 열정보다 더 큰 경제성장의 동력은 없을 것입니다.    부산에서 시작하여 울산과 포항, 동해와 강릉, 속초,  원산과 나진, 선봉으로 이어지는 환동해 경제는  블라디보스톡을 통한 대륙경제,  북극항로와 일본을 연결하는 해양경제로 뻗어 나갈 것입니다.    여수와 목포에서 시작하여 군산, 인천을 거쳐  해주와 남포, 신의주로 향한 환황해 경제는  전남 블루이코노미, 새만금의 재생에너지 신산업과  개성공단과 남포, 신의주로 이어지는 첨단 산업단지의 육성으로  중국, 아세안, 인도를 향한 웅대한 경제전략을 완성할 것입니다.    북한도 경제건설 총노선으로 국가정책을 전환했고  시장경제의 도입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도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경제성장을 돕겠다 약속하고 있습니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돕자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체제 안전을 보장하면서  남북 상호 간 이익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며,  함께 잘 살자는 것입니다.  세계 경제 발전에 남북이 함께 이바지하자는 것입니다.    평화경제를 통해 우리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만들겠습니다.  우리의 역량을 더 이상 분단에 소모할 수 없습니다.  평화경제에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어  ‘새로운 한반도’의 문을 활짝 열겠습니다.    남과 북이 손잡고  한반도의 운명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가진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분단을 극복해낼 때 비로소 우리의 광복은 완성되고,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는데 무슨 평화 경제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보다 강력한 방위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의주시하며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지 않도록 관리에 만전을 다하고 있지만,  그 역시 궁극의 목표는 대결이 아니라 대화에 있습니다.  미국이 북한과 동요 없이 대화를 계속하고,  일본 역시 대화를 추진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기 바랍니다.  이념에 사로잡힌 외톨이로 남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 국민의 단합된 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국민들께서 한마음으로 같이해주시길 바랍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립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저는 오늘 광복절을 맞아  임기 내에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확고히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 토대 위에서 평화경제를 시작하고 통일을 향해 가겠습니다.    북한과 함께 ‘평화의 봄’에 뿌린 씨앗이  ‘번영의 나무’로 자랄 수 있도록  대화와 협력을 발전시켜나갈 것입니다.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늦어도 2045년 광복 100주년에는  평화와 통일로 하나된 나라(One Korea)로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단단히 다지겠다고 약속합니다.    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함께  ‘민주공화국’을 선포한 지 100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100년 동안 성찰했고 성숙해졌습니다.  이제 어떤 위기도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이루기 위한 국민적 역량이 커졌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말을 되새겨봅니다.    “나는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올 때  제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우리 힘으로 분단을 이기고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이  책임 있는 경제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우리가 일본을 뛰어넘는 길이고,  일본을 동아시아 협력의 질서로 이끄는 길입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이끄는  ‘새로운 한반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끝>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독립운동가, 그 별 헤는 밤

    독립운동가, 그 별 헤는 밤

    지상파 3사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광복절을 기념해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항일 역사를 되짚고, 극우 성향이 짙어지는 일본의 행태를 분석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KBS1은 일본 현지에서 단독 발굴한 공문서를 토대로 밀정들의 활동상과 이들에게 배신당한 독립운동가들의 시련을 재현한 ‘시사기획 창-밀정’ 1부를 지난 13일 방송한 데 이어 오는 20일 2부를 방송한다. 광복절인 15일에는 쿠바혁명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은퇴 후 한인사회 재건을 위해 헌신한 헤르니모 임(한국명 임은조)을 조명한 ‘KBS스페셜-헤르니모를 찾아서’를 비롯해 우리 식물 학명에 숨은 일제 잔재를 밝힌 특집 다큐 ‘우리 들꽃의 독립’, 독립운동가들의 밥상을 재현해본 ‘한국인의 밥상’ 등을 편성했다. 같은 날 KBS2 ‘3·1운동 100주년 기획 윤동주 콘서트 별 헤는 밤’에서는 가수 이적, 윤형주, 스윗소로우, 다이나믹 듀오, YB, 최백호, 포레스텔라, 백지영 등이 무대를 꾸민다. MBC는 올 초부터 방송한 미니 다큐 ‘1919~2019, 기억록’의 이번 주 방송에서는 손정은 아나운서가 서울 혜화동 교차로에서 여운형 선생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스트리트 댄서 제이블랙이 광복의 역사를 음악과 춤으로 기록한다. ‘기억록’과 제이블랙이 공동제작한 배경음악 ‘웬 더 데이 컴스’ 음원이 광복절 당일 공개된다. 이날 특선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도 볼 수 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일본 우익세력의 신친일파 양성 계획을 심층 취재해 이달 중 내보낸다. 광복절 당일에 영화 ‘암살’과 최재형, 이범진, 이위종 등 선열들의 길을 직접 걸어본 특집 다큐 ‘연해주에 남겨진 별들’을 편성했다. ‘좋은 아침’은 특별기획으로 ‘100년 만에 찾아온 영웅들의 한 끼’를 방송한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구의3동 24가구에 독립유공자 명패 단 광진

    구의3동 24가구에 독립유공자 명패 단 광진

    서울 광진구가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시작한 ‘독립유공자 명패 달아드리기’ 사업을 광복절까지 이어 나간다. 구는 지난 12일부터 13일까지 이틀간 광복 74주년을 맞아 구의3동에 사는 국가유공자 86명 중 24가구를 찾아가 명패 달아드리기를 했다고 14일 밝혔다. 특히 동국대부속여자고등학교 학생 자원봉사자와 함께 행사를 추진해 의미를 더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동국대부속여자고 자원봉사 학생 20명과 함께 국가유공자 가구를 직접 방문해 현장에서 6·25전쟁 참전 사연 등 국가유공자들의 삶에 대한 얘기를 듣고 꽃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구는 연말까지 지역에 거주하는 국가유공자 1150여명에게 명패를 달아드릴 계획이다. 이미 구는 지난 3~4월에 독립유공자에게, 5월에는 민주유공자에게 명패를 달아드렸으며 12월까지는 상이군경, 참전유공자, 무공수훈자 등을 찾아갈 예정이다. 또 올해 2월부터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와 복지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보훈예우수당을 지원하고 있다. 김선갑 광진구청장은 “이번 행사가 학생들에게는 살아 있는 역사를 느끼는 소중한 시간으로, 독립유공자에게는 자긍심이 재고되는 의미 있는 자리로 남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한국 가서 사죄해야 한다”…日할머니의 ‘마지막 여행’

    “한국 가서 사죄해야 한다”…日할머니의 ‘마지막 여행’

    올 3·1절 100주년 서대문형무소 방문 “고통받고 죽어 간 곳” 휠체어서 내려 소녀상 만난 뒤 귀국 10일 만에 별세한국에 대한 ‘가해의 역사’ 앞에 일본은 진심 어린 사죄를 해야 한다고 늘 말해 온 일본 할머니가 올 3·1절 100주년을 맞아 ‘생애 마지막 여행’을 서울에서 한 뒤 조용히 눈을 감은 사실이 알려졌다. 최후의 여행에서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과의 만남이었다. 할머니는 자신을 화장한 뒤 어릴 적 살던 북한 압록강변에 산골(散骨)해 달라고 유언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에 거주해 온 에다 유타카 할머니. 1928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일본 군인의 딸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취학 직전 일본에 돌아갔던 에다 할머니는 올해 3·1절 한국을 방문해 자신에게 남아있던 마지막 힘을 소진한 뒤 10일 만에 세상을 떴다. 14일 장남 에다 다쿠오(64)에 따르면 할머니는 올해 3·1절을 앞두고 아들에게 “죽기 전에 나를 한국에 꼭 좀 데려가 달라”고 생의 마지막 부탁을 했다. 연로해지면서 심장병, 폐렴에 한랭응집소증이란 희귀병까지 나타난 90대 어르신을 모시고 비행기를 타는 게 겁이 났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청을 받아들였다. 스스로 건강을 자신하지 못했던 할머니는 만일의 경우 불필요한 연명치료는 하지 말아달라고 의료진에게 요청하는 ‘리빙윌’(종말기 의료에 관한 사전의향서)까지 준비했다. 할머니는 어릴 적 한국에서 있었던 일을 임종 때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때 ‘순남이’라는 조선인 식모가 나를 정말 예뻐하고 잘해 주었는데, 우리 어머니가 순남이를 얼마나 구박하고 괴롭히셨는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게 마음에 걸려서 남북이 통일되면 꼭 순남이랑 살던 동네에 찾아가 용서를 빌려고 했지.” 할머니는 평소 1919년 3·1운동이 같은 해 중국 5·4운동의 산파 역할을 하는 등 제국주의에 맞선 아시아 독립운동의 뿌리라는 생각을 확고히 갖고 있었다. 한반도에 대한 애착에 더해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결과였다. 졸업 후 할머니는 일본 민속학의 태두인 미야모토 쓰네이치의 밑에서 민중생활사를 연구했다. 위안부 피해를 다루는 단체 일본의전쟁책임자료센터 회원으로도 꾸준히 활동했다. 이 단체는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조사자료를 일본 정부에 제출하고 ‘일본의 군 위안부 연구’ 등을 펴낸 곳이다. 그러면서 야간고교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일본의 조선 침략을 알리고 전쟁의 참화를 일깨우는 데에도 힘을 기울였다. 할머니는 지난해 3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나뉜 것은 일본 때문”이라는 부채의식에서였다. 평소 할머니의 말. “1945년 2월 태평양전쟁에서 도저히 승산이 없게 되자 당시 고노에 후미마로 내각은 연합군에 항복을 하려고 했지. 그런데 그때 국가 지도부가 결단을 못내리면서 전쟁이 길어졌고 그 결과 오키나와전,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투하 등 막대한 추가 인명피해를 초래한 거야. 하지만 이뿐만 아니라 소련이 참전하게 되면서 남북이 나뉘고 말았지. 그러니 우리는 남북 분단에 막대한 책임이 있는 거야.” 지난 2월 28일 휠체어를 타고 서울에 도착한 할머니는 3월 1일 광화문 기념행사에서 온 힘으로 태극기를 흔들었고, 2일에는 임진각 망배단을 찾아 남북 통일을 기원했다. 경건한 마음가짐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3일 서대문형무소에 갔을 때 할머니는 갑자기 휠체어에서 내리게 해 달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어간 이곳을 내가 앉아 갈 수는 없다”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한국에서 마지막 날인 4일 할머니는 위안부 소녀상 앞에 데려다 달라고 청했고, 비슷한 또래였을 소녀의 손을 잡았다. 회한과 미소가 한데 섞인 표정으로 소녀의 손을 어루만지고 또 어루만졌다. 그리고 귀국 비행기를 탔다. 마지막 바람을 다 이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할머니는 일본 도착 이틀 후인 6일부터 병상에 누웠고, 14일 운명했다. 장남은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최후의 말은 ‘반자이’(‘만세’의 일본 발음)였다”면서 “마지막으로 3·1운동의 외침을 머릿속에 간직하며 돌아가신 것 같다”고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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