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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방송편집인협 초청 21세기 서울시정 조찬대화

    ◎경쟁력 강화·삶의 질 향상/市政 2대 핵심과제로/난지도를 정보·자연생태 도시화/실업자 구제 도시정보화사업 추진/‘푸른서울’ 건설 1,000만그루 식수운동 그동안 노숙자문제와 실업문제 등 긴급한 사항에 대한 처방과 ‘저비용 고효율’의 경영조직으로 서울시를 바꾸는데 힘썼다. 구조조정을 통해 지원·통제부서를 줄이고 결재단계도 축소했다.반면 도시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기능은 확대했다.간부만 15.6%인 20명을 감축했고 정원 기준으로 시청에서 모두 1,622명을 줄일 계획이다.투자기관과 사업소,출연기관 등에 대한 경영 및 조직진단을 거쳐 오는 10월까지 구조조정을 끝내겠다. 곧 실국장 책임관리제가 도입된다.실국 단위의 권한을 강화해 실질적인 경영행정이 이뤄지도록 하겠다.일의 재분배 및 일하는 방법의 재설계도 추진,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철폐하고 투입보다 성과를 지향하도록 행정을 쇄신하겠다. 이 시대 시정의 핵심과제는 도시경쟁력 강화와 삶의 질 향상이다.앞으로 4년동안 이 두 축을 중심으로 정책을 구상하고 실천하겠다.실업자 구제를 위해 도시정보화사업을 추진하고 서울형 산업 육성을 위해 창업보육센터를 지역별로 분산해 만들겠다.생명의 나무 1,000만 그루 심기사업을 벌여 회색도시를 푸른도시로 바꾸겠다. 주택 학교 공지 지하철역 한강변 등에 녹음과 꽃길을 만들고 기념일을 맞아 나무를 심는 기념식수운동도 펼 것이다. 교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대중교통 이용을 확대하도록 정책을 펴겠다.자가용 승용차 수요를 억제하는 주행세(지방세) 도입도 적극 추진하고 자동차에 빼앗긴 서울의 거리를 시민들에게 되돌려 주는 ‘걷고싶은 서울 만들기’운동을 펴겠다. 상암 월드컵 주경기장과 연결되는 난지도 일대를 정보도시,자연생태도시,남북통일시대의 관문도시 기능을 하는 ‘21세기 새서울타운’으로 조성하겠다.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8년까지 완공하도록 장기계획을 짤 것이다.21세기를 살아갈 미래의 서울시민들에게 바치는 위대한 선물이 될 것이다. 지난 50년간의 양적 성장과 외형적 도시건설의 과정 속에서 서울은 인간적이지 못하고,한국적이지 않으며,세계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도시가 돼 버렸다. 서울을 ‘인간적인 도시’‘한국적인 도시’‘세계적인 도시’로 바꾸도록 노력하겠다. 인간적인 도시는 자연과 사람이 더불어 사는 도시,생명이 숨쉬는 도시를 말한다.환경친화적인 도시공간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해야 한다.서울시정을 운영하는 사람에게는 경영마인드 못지 않게 환경마인드도 중요하다. 한국적인 도시는 변화 속에서도 고유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도시를 뜻한다.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잃은 도시는 융성할 수 없다.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주역인 도시를 전통문화공간이 살아있는 도시로 바꿔야 한다. 세계적인 도시는 세계화시대에 걸맞는 도시를 말한다.서울은 환태평양 경제권과 대륙 경제권을 연결시키는 동북아의 중심도시 기능을 담당해야 한다. 세계적인 수준의 비즈니스센터가 될 수 있도록 인프라와 소프트가 구축되는 세계적인 도시로 서울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 ‘솔아 푸르른 솔아’노찾사(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7)

    ◎온동권 노래 대중속으로/직접 녹음 테이프 30종 인기 노동현장 등 공연 1,000회/84년 첫음반 창고로 직행 아픔 심의 굴레 벗고 10년만에 해방/사회적이고 진지한 메시지 상업성에 밀려 설자리 잃어 ‘운동권 가수들’‘운동권가요의 대명사’‘민중가요의 기수’….이쯤 거론하면 어렵지 않게 떠오르는 노래패가 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지난 70∼80년대 대학가와 노동현장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아슬아슬한 수위의 노래들을 노래방으로까지 끌어들여온 주인공들이다. 이젠 일반인들에게도 생소하지 않은 노래패로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겪고 있는 갈등은 예사롭지가 않다. 험한 시절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노래운동을 벌여 왔지만 지금 설 땅이 여의치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노래패가 서로 다른 노래운동을 펼치고 있는 요즘 ‘노찾사’의 자리는 어디쯤 될까. 84년 첫 음반을 내고 현장공연을 통해 운동권 노래들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인 ‘노찾사’. 지금까지 모두 6집의 음반을 냈지만 이 음반들은 ‘노찾사’가 부르고 일반인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진 노래들의 극히 일부분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노찾사’의 많은 노래들은 왜 아직도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입을 통해서만 전해지고 있을까. 지난 94년 12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노찾사’ 10주년 기념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공연된 노래들은 대학가와 시위·노동현장에서 불려졌고 불려지던 레퍼터리들. 단원들의 가슴은 마구 뛰고있었다. 걸어왔던 길이 험난하기만 했던 까닭에 감흥이 예사롭지가 않았던 것이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흔히 ‘노찾사’로 더 잘 알려진 이들은 사실상 70년대말 대학가 노래패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서울대와 연세대,고려대의 노래패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새벽’이 그것. 70년대 후반 급박한 사회현실 속에서 노래로 시대상황을 풀어내던 노래모임이었다. 이들이 대학을 나와 합법적인 활동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직접 부르고 녹음한 테이프를 통해 운동권 노래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불법이었다. 84년 ‘새벽’의 몇몇 구성원이 현실과 협상을 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노찾사’다. 84년 처음 낸 합법음반의 이름이 그대로 노래패 이름이 된 것이다. ‘새벽’에서 독립해 노찾사를 만들어낸 창단 멤버는 金昌南·金濟燮·文昇鉉·韓東憲·金甫成씨 등 10여명. ‘대중 속에서 활동’을 내걸고 열린 마당을 택했다.“‘새벽’이후 만들어 유통된 불법 테이프가 20여종이 넘습니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재야 인사들의 활동비용중 많은 부분이 이 노래 테이프 판매 수익금으로 충당됐었지요. 이 노래들이 자연스럽게 ‘노찾사’의 입과 연주를 통해 대중에게 친숙하게 됐다고 보면 됩니다. 노래방에서까지 인기곡이 될 정도였으니까요”(金昌南 성공회대 교수) 합법적인 공간을 택했지만 공연윤리위원회의 벽을 넘기란 쉽지가 않았다. 84년 첫 음반 ‘노래를 찾는 사람들1’부터 제동이 걸렸다. 적지 않은 노래들이 심의에서 탈락되거나 수정을 거쳐 통과됐다. 그러나 음반이 나온지 불과 1달도 못돼 창고에 쌓이고 말았다. 물론 공연무대도 허용되지 않았다. 음반이 나온지 3년만인 87년 10월에야 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첫 공식공연을 가질 수 있었다. 감격적인 무대였다. 이 때부터 전국 어디든지 사람이 있는 곳이면 마다않고 찾아갔다. 89년 9곡이 실린 2집을 냈다. 이 때도 적지않은 곡들이 빠지거나 수정돼야 했다. 6·29선언을 이끌어낸 민주화의 분위기에서 80만장이 팔려나가는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었다. 창고에 쌓여있던 1집이 다시 팔리기 시작했다. 노래들이 입에서 입을 통해서 믿기 어려울 정도로 퍼져나갔다. 이들이 주로 이용한 공연무대는 소극장을 중심으로 종교·노동단체들이 제공한 소규모 공간. 중앙무대와 대공연장에 서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94년 세종문화회관의 10주년 기념공연은 그야말로 어렵게 가진 자리였다. 노래운동의 상징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87년부터 공연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마침내 공연을 성사시켰지만 정보과 형사들로부터 “가만두지 않겠다”“두고보라”는 등 협박과 압력이 끊이지 않아 현실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가를 실감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 이에 앞서 열린 92년 문예회관 공연도 마찬가지. 어렵게 허가가 났지만 공연 직전까지도 관계자들이 공연을 저지하려는 공세를 펴 가슴을 졸이며 공연해야 했다. 94년에 가서야 ‘노찾사’는 자유롭게 된다. 첫 음반을 낸지 10년만이었다. 그동안 실리지 못했던 노래들이 이 해 발매된 4집 앨범에 대부분 담길 수 있었다. 91년 낸 3집 앨범에서만도 노동현장의 분위기를 담은 노래 ‘그리운 이름’ 중 ‘해방’이 ‘어머니’란 단어로 바뀌었고,녹음까지 마친 ‘백두에서 한라,한라에서 백두’가 결국 음반에서 빠졌던 것을 볼때 커다단 변화였다. 87년부터 지금까지 가진 공연은 1,000여회. ‘노찾사’를 거쳐간 安致環 權眞媛 金光石(96년 사망)씨 등은 유명가수가 됐다. 이제는 운동권 노래 집단이라는 평은 듣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대중들에게 운동권이란 말이 어색하게 들려질 정도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선 이들의 노래를 듣기가 쉽지 않다. 금지가 그 이유는 아니다. 지난 88년부터 노찾사에서 활동하고 있는 孫防日씨(31)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사회의 민주화 과정에서 큰 역할을 맡았던주체들이 주변화되고 있다고나 할까요. 80년대와는 또 다른 차원에서 노래운동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치중해온 사회적이고 진지한 음악이 상업성에 밀려 설자리를 잃고 있지만 노래패 본래의 의미를 살려 이 노래들을 다시 살려낼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사연들/방송 타는 노래 3∼4곡 불과/노래방에서도 불려지지만 댄스에 채이고 트로트에 밀려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어머님의 눈물이/가슴속에 사무쳐우는/갈라진 이 세상에/민중의 넋이 주인되는/참세상 자유 위하여/시퍼렇게 쑥물 들어도/강물 저어가리라…”(솔아,푸르른 솔아) 흔히 불려지는 이 노래가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의 레퍼터리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노찾사’ 출신의 가수 安致環씨가 연세대 재학시절 총학생회장 선거지원 유세용으로 만들어 불려지기 시작해 6·29 민주화 열풍을 타고 일반인들에게 친숙해진 노래다. 이처럼 대학가와 노동계 시위현장에서 불려지다 대중의 노래가 된 ‘노찾사’ 노래는 적지 않다. 그러나방송에서 들을 수 있는 노래는 ‘솔아…’‘광야에서’‘사계’ 등 3∼4곡 정도다. ‘노찾사’가 꾸준히 의식있는 노래 보급에 앞장서 왔지만 다른 노래패들에 비해 오히려 입지가 좁아졌음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노찾사’ 보다 훨씬 늦은 92년말 생겨나 노동가요를 현장공연을 통해 보급시키고 있는 ‘꽃다지’만 하더라도 노동계에서 자리를 굳혔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공연장,특히 공공시설에서 무대를 가질 때마다 경찰의 감시를 감내해야만 했던 제약을 딛고 노래운동을 벌여왔던 ‘노찾사’의 입장에선 안타까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솔아 푸르른 솔아’‘광야에서’‘사계’ 같은 노래들은 노래방에서도 인기곡 순위에서 빠지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인기를 끌고 있는 노래들은 이들 몇 곡뿐이다. 지난 70∼80년대 삭막한 정치·사회 현실에서 그나마 돌파구를 제시하며 갈증을 해소해 주었던 노래들이 이제와선 청소년 위주의 댄스뮤직과 나이든 세대들의 트로트에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현실의 순화로 퇴락했다고나 할까. 불법 테이프가 불티나게 팔리고 유행가 개사곡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시절 이노래들이 지지를 얻었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노찾사의 길 ▲84년 노래패 ‘새벽’에서 ‘노찾사’ 모임 독립.‘노래를 찾는 사람들1’ 발매. ▲87년 기독교100주년기념관서 첫 공연. ▲88년 예술극장 미리내서 제1회 민족극한마당 특별초청공연. ▲89년 두번째 음반 ‘노래를 찾는 사람들2’ 발매. 연세대 100주년기념관서 한돌·정태춘·노찾사 합동공연. ▲91년 3집 발간. ▲92년 ‘끝나지 않은 노래’ 지방 6개도시 초청순회공연. ▲94년 4집 발간. 10주년 기념음반 ‘떠남과 만남을 위한 하모니’ 발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서 10주년 기념공연. ▲97년 미발표곡과 히트곡 모음집 ‘노래를 찾는 사람들­모음하나’ 발매.
  • 美의 51번째 州가입 문제/푸에르토 리코 12월 투표

    【산후안(푸에르토리코) AP 연합】 미국의 주(州)가 지금의 50개에서 51개로 늘어날지도 모른다. 미국의 자치령인 푸에르토리코가 미국령이 된지 100주년에 때맞춰 오는 12월 미국의 51번째 정식 주로 편입할 것인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한다고 25일 발표했다. 푸에르토리코는 1898년 미국과 스페인간의 전쟁으로 미국령이 됐고 지난 52년 미국의 자유연합 주로 자치권을 얻었다. 미국 의회에 대표를 보내고 있으나 표결권이 없고 대통령 선거권도 없다. 중남미 카리브해에 위치한 푸에르토리코는 제주도의 5배 크기인 8,959㎢. 인구 380여만명. 스페인계와 흑인사이의 혼혈이 전 인구의 80%를 차지한다. 최근 14%까지 높아진 실업률 등으로 미국의 지원과 51번째 주로의 격상을 희망하는 의견이 높아지고 있다. 법적 구속력 없이 93년에 실시된 푸에르토리코의 국민투표에서는 지금처럼 자치령 지위로 남아 있자는 주민이 정식 주로 가입하자는 의견보다 2%나 많았다.
  • 서울­세계연극 진수 맛보고/佛 아비뇽­한국 전통문화 선뵌다

    ◎서울연극제­최신 외국작품 6편 참가/한국의 밤­사물놀이 등 유럽에 소개 올 하반기 나라 안팎에 월드컵 밤샘중계 보듯 지켜봐야 할 연극제가 하나씩 있다.98 서울국제연극제와 아비뇽연극축제.서울 것(8월 31일∼10월15일)은 그렇다치고 아비뇽은 왜? 이곳에서 우리 전통문화의 정수를 집약,소개하는 ‘한국의 밤’ 행사(7월13∼21일)가 열리기 때문.자못 성격이 다른 두행사를 연결하는 ‘마스터키’는 문화연출자 강준혁씨.아비뇽 예술감독에서서울 집행위원장으로 바쁘게 오가며,만능 기획자의 ‘끼’를 발휘할 참이다. 98 서울국제연극제는 서울연극제가 국제행사로 탈바꿈하는 첫 단추.더불어 경연 형식에서 ‘축제’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다.국내서 뽑힌 8개 작품을 놓고 연극제 막바지에 또 순위를 매겨 시상해 온 약간 ‘촌스런’ 관행은 올해로 끝.축제란 원래 1등,꼴찌 없이 만인이 즐거운 잔치.내년 연극제부턴 앞선 세밑에 그해의 ‘베스트 5’를 뽑아 그뒤부턴 축제 출품작으로 다 동등대우한다.집행위원장 강씨는 이와 관련,“연극제는 뭣보다 연극인들이 주인되고 부담없는 자리,그래서 연극 한번 보고팠던 이들에게도 느긋한 즐거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10월부터 공연될 외국작품은 공식참가작 4편,특별공연 2편 등 총 6편.공식참가작은 올해 현지에서 뚜껑 딴 따끈,신선한 유럽 작품들.△베를리너 앙상블(독일)의 ‘나는 살고 싶다!너희들의 태양을 숨쉬며’는 브레히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그의 시편에 곡을 붙인 노래극.△로마 현대극단(이탈리아)의‘와장창’은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탄 다리오 포 작품.△프랑스 예술극장(프랑스)의 ‘롱드르 기자의 세계보고’△류블리아나 국립극장(슬로베니아)의‘인생은 꿈’등도 가세한다.특별공연으론 카자흐스탄 고려인들로 된 고려극장 ‘기억’이 초청되며,폴란드 비우로 포드로지 극단의 ‘비운의 카르멘’이 대학로 야외 대형주차장에서 심야공연될 계획이다. 공식무대는 문예회관 대극장·소극장,학전블루.그밖에 대학로 곳곳에 연극인 카페,마임 카페,퍼포먼스 레스토랑,야외 독백무대 등을 열고 실험극,대학극,마임 등 부대공연도 한 보따리씩 곁들인다.이 기간에 대학로에 들르는 이들은 온통 연극만 호흡하면서,홀낏 곁눈질로라도 연극의 매력에 한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아비뇽 ‘한국의 밤’은 주최측이 94년부터 마련해 온 지역별 집중조명 기획의 한 가닥.대만·일본 등도 함께 초대됐으며 우리는 천혜의 자연극장이라는 ‘부르봉’ 절벽을 배정받았다.여기에 대금·생황 연주,살풀이춤,승무,시나위합주,‘수제천’,판소리 한토막,사물놀이,판굿 등 한국 전통문화 알맹이들로만 엮은 공연장을 차린다.참가자들도 이매방,안숙선,김덕수 사물놀이,국립국악원,김대환,남정호 등 문화대사급.우리가 3억,주최측이 7억원을 부담한 공식초청 무대.한국전통문화가 유럽의 주류무대에 소개돼 진가를 평가받을 좋은 기회라고 다들 벼르고 있다.
  • 클래식 음반史 한눈에/DG 100주년 기념 ‘레전드’ 시리즈

    ◎지휘자·성악가 등 연대별 수록 클래식 음반 100년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앨범이 나왔다.세계적인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DG)의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폴리그램이 지휘자와 바이올리니스트,피아니스트,성악가의 연주를 연대기별로 담은 ‘레전드’(전설)시리즈를 제작 발매했다. 두장짜리 CD 5집,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이 앨범은 클래식 음반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국판으로 특별 기획된 것. 이번 음반은 100년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각별한 의미는 물론,음반이란 매체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DG 100년을 기념한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DG가,토마스 에디슨과 같은 시기에 음반을 발명한 에밀 베를리너가 창립한,바로 그 회사이기 때문.에디슨이 원통형의 음반을 낸 것과는 달리 베를리너는 현재의 것과 유사한 원형 음반을 발명,본격적으로 산업화한 주인공이다.따라서 DG는 음반의 기술과 예술적 성과에서 한 세기를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의미를 살리기 위해 음반 첫 부분에 베를리너의 1898년 육성도 담겨졌다.‘레전드’시리즈는 지휘자 부문이 1,2집 CD 4장으로 구성돼 있고 3집 피아니스트,4집 바이올리니스트,5집 성악가 순으로 짜여 있다.교향곡이나 협주곡은 하이라이트가 되는 한 악장씩만 수록했다. 전설처럼 전해 오는 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시의 베토벤 교향곡 ‘운명’을 비롯,리하르트 슈트라우스,카를 뵘,카라얀,앙드레 프레빈,레너드 번스타인,정명훈에 이르기까지 명지휘자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그륀퓔트,리히터,마르케비치 등 피아니스트와 부슈,슈탄스케,크레머 등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날수 있고 엘리자베스 슈만,레오 슬레차크의 감미로운 노래를 100여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음반은 IMF현실을 감안,2장을 한장값에 판매한다.시리즈지만 낱장으로도 판다.값은 각 1만4,000원.
  • 예술 장르의 벽 허물기

    ‘미래 예술 주인공을 한데 모십니다’ ‘내일을 여는 몸짓­젊은 문화축제 장(場)’이 올해 두해째를 맞는다.19∼30일 서울 문예회관 소극장.‘젊은 예술가들이 장르의 벽을 허물고 어울려 새로운 주류문화를 모색해보자’는 마당. ‘98 장’은 무용,마임,인형연극 등으로 꾸려간다.공연예술의 ‘변두리 장르’기에 응어리진 에너지가 더 크고 실험의 여지도 넓다. 참가작중 이현찬의 인형극 ‘나그네’(23∼25일)는 인형만 아니라 줄을 잡은 조종자도 함께 등장,생명이 세상에 나와 경험하는 희로애락을 구현한다. 남궁호·박미선 팀(19∼21일)은 현대마임 창시자 에티엔 드쿠르 탄생 100주년을 맞아그의 작품 4편을 올릴 예정.이와 함께 △김은희,조성주의 무용(19∼21일) △김용철의 무용,유진규의 마임(23∼25일) △‘사다리’의 마임,이정연,이은주의 무용(27·28·30일) 등의 일정.화·목·금 하오 7시30분,수·토 하오 4시30분·7시30분,일 하오 4시30분.424­1421.921­1874.
  • 첼리스트 鄭明和(이세기의 인물탐구:173)

    ◎사색을 길어올린 웅숭깊은 음색/선율마다 무르익은 서정성과 넉넉한 여유/테크닉보다 음의 조화 이뤄내는 경지 터득/80년대 음악 멀리하다 “삶의 목적” 깨달아/드로브자크 협주곡 백미… 제자양성에 보람 첼리스트 鄭明和의 손은 남자손보다 크다. 어깨도 남자처럼 넓다. 잘 생긴 용모에다 목소리도 밝고 건강하다. 시원시원하고 밝은 성격때문인지 음악도 스케일이 크고 넓고 심오하다. 단순히 넓고 클뿐만 아니라 톤에는 힘이 살아있고 음의 마디마다엔 유연하고 확고한 뼈대가 꿈틀거린다. 그에게선 발톱을 세운것 같은 독이나 과시감은 찾아볼수 없다. 단지 무르익은 서정성과 육화된 음악의 포도주가 내면에서 출렁거릴 뿐이다. 일상생활에서도 그는 타인에 대한 포용력과 너그러움으로 남의 잘못을 가려줄 줄 안다. 초면이라도 구면같이 굴고 좋은 환경에서 잘자란 숙녀답게 반듯한 예의와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다. 만사에 대범한 편이지만 음악에 관해서만은 치열성과 철저성이 대단하다. 승부근성이 투철하여 그가 이화여중에 다닐때는 친구 하나도 사귀지 못한채 낮과 밤은 온통 첼로연습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전국남녀음악경연대회에서 첼로부문 1등상, 서울예고 재학중에 이미 두번의 개인독주회를 가졌고 고2때인 60년에는 한국학생문화사절의 일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와 오사카 순회연주등 그의 이름은 ‘첼로의 천재’로서 소녀시절에 음악계의 중앙에 우뚝서는 존재였다. 오랜 연주경력탓에 그의 음악은 언제부턴가 외형보다 내면을 추구하게 되었고 테크닉보다는 음과 음의 연결로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내는 능란한 경지를 터득하고 있다. 음악평론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인 이강숙씨는 ‘정명화의 음악은 팽팽한가 하면 느슨하고 여유로운가 하면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이는 가운데 자신감에 찬 연주로 청중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평한다. 그는 과연 무리와 과장이 없이 음악의 ‘순리’를 존중하며 음악의 도리에 순종한다는 자세를 지킨다. 기교에 침몰하거나 장식음으로 청중을 혼도시키기보다 음과 음으로 보석타래를 꾸미듯이 장구하고도 값진 음악을 그때마다 선사해준다. 화사하게꽃가루를 뿌려대는 바이올린의 변화무쌍과는 달리 첼로만의 사색과 철학은 마치 동굴에서 길어올린 갖가지 원석처럼 장중과 비장미마저 풍긴다. 정명화를 새삼 설명할 필요는 없다. 서울 명동의 유명한 음식점이었던 고려정의 정준채씨와 이원숙씨 사이의 7남매중 딸로 둘째.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첼로의 거장 피아티골스키를 사사했고 60년대 중반 뉴욕 링컨센터에서 첫연주를 가졌을때 뉴욕타임스는 ‘멋과 재능 그리고 기교의 연주가’로 평했고 워싱턴포스트는 ‘가장 보배로운 첼리스트’로 표현하여 지금까지도 이 찬사는 그를 따라다니는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때까지 동생인 바이올린 정경화나 피아노를 치던 정명훈보다 정명화의 이름은 그들을 리드하고 있었고 그만의 음악적 매력으로 해 세계 첼로계에서도 선두그룹을 달리고 있었다. 파죽지세로 명성을 쌓던 시기인 66년, 고국에 돌아와 첫리사이틀을 열었을때 음악계의 대부이던 평론가 유한철씨는‘예의 타고난 활달함과 연주가다운 낙천성이 몸에 배어 다이내믹한 역성감(力性感)을 실감시켜주는 연주’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세계에 내놓아 자랑할수 있는 젊은이’로 정명화의 장밋빛 미래를 예고한 것도 그 무렵이다. 제네바국제음악콩쿠르에서 첼로부문 1등상을 수상하던 71년에 전세계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당시 AP통신 기자이던 具三悅씨와 결혼, 부군은 유엔 50주년 총괄국장으로 있다가 최근에는 유니세프총재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자녀는 꽃별과 꽃샘. 장녀 꽃별이 지난주 뉴욕에서 결혼했다. 80년대 로마에 머물던 시기에는 잠깐이지만 첼로연주를 멈춘 적이 있으며 가장 자신있게 연주하던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마저 낯설게 느껴지자 문득 ‘좌절의 시간이 오히려 음악적으로 가장 성숙한 시기’, ‘첼로야말로 무덤까지 끌고갈 동반자이자 삶의 목적 자체임을 깨달을수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94년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교수로 재직하면서 같은해 8월 그는 실로 12년만에 고국에서의 독주회를 가졌고 작곡가 이영조가 그를 위해 작곡한 ‘첼로와 장구를 위한 도드리 1’ 연주는 또한번 음악계에 센세이셔널한 화제와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농현을 뜻하는 피치카토와 글리산도, 높은 음역에서 낮은 음으로 급격히 낙하하는 소리의 대비, 명상적인 지속음과 장식음등 우리만의 얼이 담긴 가야금과 거문고, 해금과 아쟁이 할수 있는 음악적 요소를 첼로로 펼치면서 우리의 소리를 세계음악언어의 반열에 올려놓는 계기를 만들었다. 과연 한국 첼리스트의 자존심과 실력을 마음껏 과시한 자리로 그가 연주를 끝냈을때 객석에서 길게 이어지는 박수갈채는 그칠줄을 몰랐다. 조용하게 데뷔한 연주자가 있는가하면 센세이셔널하게 등장하는 연주자도 있을 것이다. 조용한 강이라고 해서 모두가 깊은 것은 아니며 센세이셔널은 그만한 화제성과 가치성을 지닌다. 일찍이 세계의 매스컴으로부터 ‘발군의 테크닉과 명쾌한 해석, 특히나 그의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은 보헤미아의 향수가 사무친 연주’라는 평과 함께 그의 연주는 지금도 고국의 땅을 밟는 순간의 탄성과 향수와 사랑이 간절하게 얼룩져 듣는 이의 심금을 뜨겁게 울린다. 어릴때는 피아노 성악 바이올린 사이에서 무엇을 전공할 것인가를 방황했고 20대에는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들으면서 자신의 음악성과 장래에 대한 회의에 빠지기도 했으며 30대에 이르자 명성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40대가 넘자 비로소 모든 치열성과 명성에서 벗어나 그는 진정한 음악인의 자유로움을 구가하고 있다. 그래선지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가 되어 조국과의 연대를 끈끈히 하고 제자들을 가르치게된것을 어느때보다 감사하고 행복과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음악을 관조하고 무르익은 예술성을 내면에 삭이는 시기에 서서 그는 물이 흐르는 듯한 유연함과 여유로움으로 그만의 서조와 광채를 여전히 잃지않고 있다 □그의 길 ▲1944년 서울출생 ▲1961년 서울예고 졸업, 도미 ▲1961부터 줄리아드음악원 및 남가주립대졸업, 거장 레오나드 로즈, 그레고르 피아티골스키 사사 ▲1969년 미 닉슨 대통령 초청 백악관연주,로스앤젤레스필하모닉 협연 ▲1971년 제네바국제음악경연대회 최우수연주상 수상 ▲1972년부터 런던 BBC교향악단을 비롯, 런던필, 베를린 R IAS, 스위스로망드, 로테르담 워싱턴교향악단등과 협연(지휘 주빈메타 루돌프 켐페 안탈 도라티 줄리니등) ▲1976년 뉴욕 링컨센터 바이올린 정경화, 피아노 정명훈과 ‘ 3남매’연주,전미순회연주, 파블로 카잘스탄생 100주년기념연주 1982년 KBS교향악단초청 협연(세종문화회관 대강당) ▲1991년부터 정트리오 음악축제 ▲1994년 국악과의 만남독주회 ‘장구와 첼로를 위한 도드리1( 이영조작곡)’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1995년 UN창설 50주년 UN마약퇴치 친선 사절로 세계순회 연주 ▲1997년 뉴욕에서 유니세프주최‘북한 어린이돕기 모금음악회’ ▲1998년 워싱턴 케네디홀 뉴욕 카네기홀서 ‘나라사랑’음악회, 미국 버몬트 국제음악제연주, 이착펄먼 서머프로그램 참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빙교수 미국 ‘엑설런트 2000’상(92년) 청소년 차이코프스 키콩쿠르 최고지도자상(97년) 아름다운 소리 ‘한·꿈·그리움’(96년 CMI음반레이블 )출반
  • 祖國에 바친 아메리칸 드림(사설)

    30대 재미(在美) 벤처 기업가가 조국에 바친 ‘아메리칸 드림’의 사연은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세계 최대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미 루슨트테크놀로지 金鍾勳 사장은 2억달러(2,800억원)를 국내 조흥은행에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보도됐다.金사장은 미국을 국빈(國賓)방문중인 金大中 대통령을 백악관 만찬석상에서 면담한 후 이같은 투자의사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金사장은 자신이 한국인인 만큼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투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때문에 이번 일은 다른 외자유치와 달리 더욱 값진 것으로 받아 들여지며 앞으로 모국에 대한 교포사업가들의 투자를 유도하는 파급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중학교 2학년때 가족을 따라 미국에 이민한 金사장은 세븐일레븐 등의 편의점에서 밤샘 일을 하며 공부에 힘써 지난 92년 초고속전자교환기를 생산하는 벤처기업 유리시스템즈를 세워 억만장자가 됐다.그는 지난 4월 이 회사를 현재의 루슨트테그놀로지에 매각,6억달러의 순익을 얻었고 이 가운데 3분의 1을 조국 국난극복에 도움을 주려 선뜻 쾌척한 것이다. 조흥은행에 투자하는 그의 변(辯)은 “순수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가장 오랜 은행이기 때문”으로 보도됐다.金사장은 당초 국내 대학생들의 벤처기업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잠시 귀국했을 때 국민회의 金弘一 의원으로부터 기술과 투자지원 요청을 받았고 지난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조흥은행 방문이 계기가 돼 투자를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이번 투자결정으로 조흥은행은 금융구조 조정과정에서 선도(先導)은행의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게 된 것으로 분석된다.또 金사장은 이 은행의 최대주주로서 미국 등 선진국의 첨단 금융기법을 도입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이는 전반적으로 낙후된 국내 금융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는 플러스효과의 파장을 가져 올 것이다. 金사장은 이밖에도 대학생의 벤처기업 창업재단설립을 위해 100만달러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한다.투자계획도 이에 그치지 않고 미국에서 모은 돈을 조국을 위해 쓰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진 것으로 전해져 이 또한 적잖은 감동을 자아낸다.우리는 그의 국내투자가 알찬 열매를 맺어 억만장자의 벤처기업가로서 모국사랑의 보람을 가슴 뿌듯이 느끼게 되길 바라는 바이다.일부 재벌 2세들이 방만한 경영으로 국가경제를 망하게 하고 회사이익금까지 해외로 도피시킨 망국(亡國)의 해악과는 너무 대조적이지 않은가.
  • 鄭鎭奭 대주교/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가톨릭교회는 오는 2000년에 맞을 대희년(大禧年)을 크게 준비하고 있다.희년은 7년마다 오는 안식년(安息年)의 7번째 다음 해,즉 50년만에 오는 해를 일컫는다.그 희년 가운데서도 새로운 천년대(밀레니엄)를 시작하는 1000년이나 2000년에 희년을 맞을 때는 꼭 대희년이라 부르며 전세계 교회가 축제 분위기에서 새로운 세기를 준비한다.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미 지난 94년에 ‘3천년기’라는 교서(敎書)를 발표하고 이 뜻깊은 대희년을 준비토록 했다.그 해 로마에서는 세계 성체대회를 비롯한 세기적인 대희년 축제가 예정돼 있기도 해 로마로 향하는 모든 항공권은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다. 한국천주교회 역시 교황교서에 따라 지난 해를 ‘성자의 해’,올해를 ‘성령의 해’,내년을 ‘성부의 해’로 정해 대희년을 준비하고 있다.한국교회는 특히 새로운 세기에 걸맞는 ‘새 날,새 삶 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세부실천사항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세번째 천년기를 맞는 가톨릭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거대한 변화와 넘치는 은총을 바라는 설레임으로가득하다. 이 큰 변화의 시기애 한국천주교회를 대표하는 서울대교구장이 바뀌었다.명동대성당 축성 100주년과 교구장 金壽煥 추기경 착좌 30주년이 되는 지난달 29일,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새로운 교구장에 청주교구장인 鄭鎭奭(니콜라오) 주교를 임명한 것이다.교황은 교구장 정년인 만 75세 되던 지난 해 5월 金 추기경이 밝힌 사임의사를 1년만에 공식 수락한 셈이다.엄혹한 시절,수많은 민주인사와 국민들은 명동성당을 안식처요 피난처로 삼았고 金 추기경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이며 힘과 용기를 얻었다.민주화가 되고 진정한 의미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때 단행된 서울대교구장의 교체는 엄청난 의미를 지닌다.교회의 임무가 바뀌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임명과 동시,대주교가 된 그는 ‘하느님이 하필이면 나를 선택하신 뜻이 무엇일까,그 뜻을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가장 먼저 기도했다고 한다.로마 성 우루바노대학에서 교회법을 전공하던 지난 70년,당시로서는 최연소인 39세에 주교로 서품돼 청주교구장으로 28년 동안 사목해오면서 채택한 주교표어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옴니부스 옴니아)’였다.오는 29일 초대교황 성베드로 대축일에 서울대교구장 착좌식을 갖는 鄭 대주교의 표어가 어떻게 바뀔 지 주목된다.
  • 명동성당 축성 100돌 아침의 갈등/金煥龍 기자·사회팀(현장)

    “철거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29일 아침 축성(祝聖) 100주년 기념 행사로 바쁜 가운데 명동성당측은 농성 중인 민주노총 지도부를 성당밖으로 내보내는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수십년 동안 농성과 시위로 바람 잘 날 없었던 명동성당이었지만 이날 만큼은 엄숙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농성장도 조금씩 술렁거리기 시작했다.농성자들의 표정에는 밖으로 쫓겨난다는 불안에다 성당측에 대한 불만이 뒤섞여 있었다. 농성장 철거에 신자 100명이 동원될 것이라는 흉흉한 이야기도 들렸다.그래도 대부분의 농성자들은 ‘명동성당이 설마’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성당측은 행사 1시간전까지도 농성장 철거 문제를 결정하지 못했다.잠시라도 철수시키자는 쪽과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는 쪽의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천막만 걷고 집기는 미관상 가린다’는 평신도 의결기구인 사목위원회의 결론에 농성자들도 동의,줄다리기는 일단락됐다. 절충은 이루어졌지만 성당측이나 농성자들이나 개운치 않다는 표정이었다. 한 농성자는 “명동성당이 변했다”면서 씁쓸해 했고 성당 관계자들은 성당이 언제까지 시위대들에게 ‘안전지대’로 이용돼야 하느냐며 못마땅해 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명동성당이 자유와 인권의 상징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민주화가 뿌리를 내리는 상황에서도 성당이 ‘만성 농성병’에 시달려야 하느냐는 항변도 있었다. 한 신자는 “선과 악을 분명히 가릴 수 있었던 반독재 투쟁 시절엔 농성하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물을 주기도 했지만 지금은 누구 편을 들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아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100주년을 맞는 동안 정권과 반정권의 갈등과 충돌로 얼룩졌던 명동성당에는 새 시대를 맞아 또다른 갈등이 싹트고 있는 듯했다.
  • 명동성당옆 중국음식점 주인 祝振財씨의 감회

    ◎민주화 중심서 화해의 가치 배워/현대사 바꾼 시위현장 빠짐없이 지켜봐/시위대 투신·할복 등 가슴아픈 기억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위와 농성이 민주화로 이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며 화해와 용서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서울 명동성당 옆에서 30년째 중국음식점 ‘성화장’을 운영하고 있는 축진재씨(51).29일로 축성 100주년을 맞는 명동성당을 바라보는 축씨의 감회는 남다르다. 화교인 축씨는 김수환 추기경이 30년전 천주교 서울 대교구장으로 명동성당에 부임하던 그 해 중국음식점을 열었었다.성당에서 10m도 채 안떨어진 건물 2층의 음식점에서 축씨는 70년대 명동성당 시국선언 사건부터 최근 민주노총의 집회까지 현대사를 바꾼 시위 현장들을 빠짐 없이 지켜보았다. 87년 6·10항쟁 때는 쇠파이프와 각목을 든 시위대 10여명이 프락치를 찾는다며 셔터를 뜯고 들어오는 바람에 5층까지 피신했다가 겨우 오해가 풀려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회고했다.돌이나 최루탄에 유리창이 깨지고 시위가 며칠이고 계속돼 임시휴업을 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그보다도 시위대의 투신이나 할복자살 사건이 잊혀지지 않는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28일 민주노총 지도부의 농성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본 축씨는 “화해와 용서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100주년을 맞은 명동성당이 가르쳐 준 진실”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 梨大 “캠퍼스 투어 오세요”/외국 단체 관광객에 개방

    ◎100년 전통 한국사회 홍보/신촌 연계코스 개발 추진 이화여대가 외국인들에게 관광코스로 개방된다. 한국관광공사는 27일 우리나라의 여자 전통 사학인 이화여대 교내 일정 구역을 외래 단체 관광객들에게 제한적으로 개방하기로 이화여대 측과 합의했다고 밝혔다. 관광객들에게 개방되는 곳은 이대 자연사 박물관,100주년 기념관,공과대학건물을 잇는 순회코스로 걸어서 1시간∼1시간 30분 남짓 걸린다.관광공사는 여자대학교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공과대학이 외국인들에게 큰 인기를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학교측은 신청이 들어오면 외국 정부 관계자및 교육계 인사,학생들에게 우선 배정하고 일반 단체 외래 관광객은 면학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체 심사를 거쳐 선별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견학 신청은 1주일전에 해야 한다. 관광공사는 “외국에서는 학교 홍보를 위해 학교를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학교 로고가 새겨진 T­셔츠 등을 판매하는 등 캠퍼스 투어가 일반화돼 있다”며 “앞으로 이화여대 캠퍼스 투어를 인근 봉원사영산제,아현동 웨딩드레스거리,이대 및 신촌일대 쇼핑거리 등과 연계하는 새로운 관광 상품도 개발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 상업은 본점 건물 매각/은감원에 정상화안 제출

    상업은행이 서울 소공동에 있는 13층짜리 본점 건물을 판다. 상업은행은 30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경영정상화계획을 은행감독원에 냈다. 본점 건물의 공시지가는 3백58억원이나 시가는 7백∼8백억원에 이른다.그러나 경기불황기여서 원매자가 나타날 지 여부는 미지수다.이 은행은 본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중구 회현동에 지상 24층짜리 새사옥을 짓고 있다.창립 100주년(99년 1월30일)을 기념해 95년 착공했으며,오는 12월 말 완공 예정이다. 한편 상업은행 외에 국제결제은행 기준 8%인 자기자본비율을 충족하지 못해 은감원으로부터 경영개선권고 또는 조치를 받은 11개 은행들도 유상증자,부동산 매각,부실경영에 책임있는 임원의 교체,외자유치 등을 통한 자본확충계획 등을 담은 경영정상화계획을 냈다.
  • 中 北京대학 새달 개교 100돌/세계유명대 총장 참석

    ◎江澤民 축사내용 관심 【베이징=鄭鍾錫 특파원】 중국의 명문 베이징(北京)대학이 오는 5월4일로 설립 100주년을 맞는다. 베이징대 100주년은 단순히 대학자체의 행사에 그치지 않고 중국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전체 중국차원의 축제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전 세계에서 활동 중인 5만여명의 동문들이 베이징으로 몰려오는 것은 물론 세계 유명대학의 총장들도 150명 가량이나 기념행사에 참석한다.우리나라에서도 金俊燁 전 고려대 총장 등 10여명의 전현직 대학총장들이 참석한다.현재 베이징시 서쪽하이디엔(海淀)구에 있는 베이징대 주변 호텔은 행사일을 전후해 모두 예약이 끝났다.개교 100주년 당일 베이징대학은 인민대회당에서 국가지도자 및 각계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형 기념식을 갖는다.웨이후밍(未名湖)에서 열리는 기념행사는 중앙(CC)TV를 통해 중국전국에 생중계된다.중국체신부는 이날 기념우표를 발행한다.또 국제천문학회에서 최근 새로이 발견된 소행성을 ‘베이징대학 별’로 이름지음에 따라 이 명명식도 거행된다. 이번 100주년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5월4일로 예정된 중국의 최고통치자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축하연설.장 주석은 기념식에 참석해 베이징대 개교 100주년 기념축사를 한다.1898년 청조 말기 세워진 베이징대는 49년 중국공산당 창당위원 53명중 21명을 배출했다.중국현대화 교육의 개척지로 인식되는 베이징대는 19년 반제반봉건(反帝反封建) 운동인 ‘5·4운동’과 신문화 운동의 중심지였다.
  • 철도청 25일 ‘사랑의 영화열차’운행/예비부부 무료결혼식 오세요

    ◎7쌍에 혼수·호텔 숙식권·혼례복 등 제공/하객 500명 모집… 먹거리 경진도 펼쳐 한푼이 아쉬운 IMF시대 알뜰파 예비부부들을 위한 무료결혼식이 오는 25일 일영역에서 열린다. 철도청은 한국철도 창설 100주년 기념으로 기획한 ‘사랑의 영화열차’ 제 2회 행사를 ‘결혼이 있는 풍경’이란 주제로 갖기로 하고 행사에 참여할 7쌍의 예비 신랑신부와 하객으로 참여할 500명을 모집한다고 8일 밝혔다. 鄭鍾煥 철도청장이 주례를 서게 될 무료 결혼식에서 혼례를 올리는 7쌍에게 철도청은 경주신혼열차 왕복권을 제공할 예정이다.또 현대백화점에서는 혼수와 경주현대호텔 숙식권을 제공하고 박준미장에서는 신부화장을 비롯해 웨딩드레스와 턱시도 등을 책임진다. 신랑 신부들이 탑승한 웨딩열차 1량과 결혼식단으로 꾸며진 1량,사랑의 영화열차 초대손님을 태운 8량 등 총 10량의 열차는 25일 하오 3시25분 서울역을 출발,한강변의 싱그러운 바람을 가르며 의정부를 통해 일영으로 들어간다. 행사는 무료결혼식(하오 5시10분)외에 영화 ‘웨딩싱어’ 야외시사회(하오 8시),추억의 먹거리 경진대회 등으로 다양하게 꾸며진다.참가신청은 16일까지 철도청(363­1108)과 현대백화점(3449­5200)으로 하면 된다.
  • 난파 탄생 100주년 음악회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모양이 처량하다…’.‘봉선화’를 비롯,현재형으로 손색없는 무수한 애창곡을 남긴 홍난파.그의 탄생 100주년이 ‘처량하’지 않게끔 후학들이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꾸렸다. 난파기념사업회와 KBS 등이 준비한 ‘홍난파 탄생 100주년 기념 대음악회’가 11일 하오 7시 난파의 고향 수원의 경기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12일 하오 3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 바이올린 김남윤,피아노 이강숙,소프라노 김영미,바리톤 고성현 등 역대난파음악상 수상자들이 가곡,동요,바이올린,피아노,관현악모음곡 등을 들려준다.11일엔 98 난파음악상 수상자 장윤성 지휘로 KBS향이,12일엔 금난새 지휘의 수원시향이 협연한다. 이에 앞서 10∼11일엔 같은 경기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작곡,바이올린,합창,관악합주 등에 걸친 ‘난파음악콩쿠르’도 펼쳐진다.이상 598­8277. 수원시립합창단도 가세한다.경기도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다시 피어나는 난파의 노래’ 기획연주회를 갖는다.‘사공의 노래’‘사랑’‘옛동산에 올라’‘성불사의 밤’ 등 가곡과 함께 이동훈 단국대 교수가 작곡한 ‘난파 주제에 의한 변주곡’도 선보인다.지휘 이상길.0331)38­4417.
  • 백건우씨 라벨 전곡 국내 첫 연주

    ◎14일 파리 이어 20일 대전·25일 서울서/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음반도 나와 피아노 위의 유랑자 백건우씨가 양손에 선물보따리 하나씩 들고 파리에서 돌아왔다.선물의 화두는 ‘라벨’과 ‘라흐마니노프’.연주회장에서 포장을 풀 라벨은 피아노 전곡 무대,음반 곽속에서 뚜껑 열리길 기다리는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노 협주곡 전곡이다.고통끝에 화두 하나를 깨뜨리면 금새 다른 화두로 옮아가 매달리는 선승처럼 백씨는 작곡가를 하나씩 골라 뿌리뽑힐 때까지 파헤치는 작업으로 유명하다.그래서 그의 연주에는 ‘전곡’ 꼬리표가 따라붙기 일쑤다.무소르그스키 피아노 전곡,프로코피에프 피아노협주곡 전곡,라흐마니노프 소나타 전곡….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이 좋으면 그의 소나타까지 기웃거리지요.한곡만 파고들면 작곡가의 폭넓은 세계를 우물안에 가둬버리기 쉽거든요.” 라벨 피아노 전곡은 백씨에게 음악적 고향같은 곡.지난 72년 청년 피아니스트였던 그는 뉴욕 앨리스 툴리 홀에서 라벨을 완주,서유럽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 라벨을 육신과 음악의 고향인 우리나라와 파리에도 들려줘야겠다고 새겨왔단다.배우 윤정희씨와의 결혼 22주년 기념일인 지난 14일 파리 연주에 이어 20일 대전 우송문화예술회관,25일 서울 예술의전당(문의 598­8277)에서도 다짐대로 연주회를 갖게 됐다.두시간 넘는 연주를 끌어갈때 “곡의 개성이 제각각 살면서도 모두 유기적 전체를 이루도록” 전달하는데 주력하려 한다. 한편 라흐마니노프 탄생 125주년에 때맞춰 최근 BMG레이블에서 나온 백씨의 피아노협주곡 전집은 어떤 풍문보다 그 피아니즘의 진수를 속속들이 보여준다.페도세예프 지휘 모스크바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1,2번을 담은 한 장이 가장 먼저 국내에서 나왔고 ‘파가니니 주제 광시곡’ 보너스 CD가 딸린 3,4번은 9월에 마저 나온다. 2번 첫 악장.피아노가 혼자 온음표를 잇달아 내리치는 도입부.템포는 느린데 음표와 음표사이가 허공으로 느껴지지 않는건 왜일까.여백에 더욱 깊은 여운을 담는 당당한 울림 덕인듯.담백하면서도 사려깊은 타건,나뭇잎틈으로 왁자하게 빛나는 햇살처럼 쏘며 반짝이는 속주,오케스트라와 힘을 겨루는 2번 마지막 악장은 강인한 근육질이다. 탄탄하면서도 세심하고 강인하면서도 내면으로 흡입하는 백씨의 연주 순례는 올해도 멎지 않는다.6월1일 명동성당 100주년 기념 자선음악회에서 브람스·브루크너 등 독일 작곡가들을 연주한뒤 8월엔 프랑스로 옮긴다.음악감독으로 부르타뉴지방의 한 음악제를 꾸리고 피아노 페스티벌에 초대받아 라흐마니노프 1,3번을 협연한다.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전집의 유럽발매는 6월로 잡혀있고 미국 시장에도 연내 상륙할 예정이다.
  • 변화·내분 기로의 러 공산당/탄생 100돌의 명암

    ◎온건주의자들 옐친과 타협… 개혁노선 공개 지지/레닌신봉 금진파도 정체성에 ‘새 좌표’ 설정 막막 【모스크바=류민 특파원】 러시아 공산당이 13일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정확히는 1898년 3월13일부터 15일까지 3일 동안 혁명가인 레닌,플레하노프 등은 현재 벨라루시공화국의 수도인 민스크에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결성을 꾀했다.이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바로 그해 가을 탄생한 러시아공산당의 모태다. 그러나 오랜 역사의 러시아공산당은 이제 발전은 커녕 정체감 위기 속에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 러시아’에서 공산당의 역할은 무엇인가.옐친정부의 협력자인가 아니면 적인가.공산당 이론에 충실한 반대자인가 급진적인 무리들인가.옛 이론에 충실한 고위층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공산당은 방황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에 염증을 느끼고 정치보다는 오히려 경제적 이익에 관심이큰 ‘신세대 공산주의자’에게 러시아 공산당은 이제 아무런 호소력도 없다.겐나디 주가노프 러시아 공산당 당수는 최근 옐친 대통령에게 ‘연립정부’의 뜻을 비추다 ‘퇴짜’도 맞았다.이 연립정부 제안은 곧바로 공산당의 분열을 가속시킨다.“공산당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일부 관측통들은 당이 최소한 두조각이 날 가능성을 벌써부터 점치고 있다. 서방국가들은 소련체제의 붕괴를 ‘공산주의의 사망’으로 연결했었다.그러나 공산당은 여전히 러시아의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국가두마의 다수당이요,러시아 남부 ‘레드벨트’에서 공산당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공산당은 무엇인가.당내 일부세력은 서방의 사회민주당을 본따며 변화하려 든다.하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소련식 전체주의를 숨김없이 드러내며 미국을 적대시한다. 변화의 한 축에는 주가노프 당수가 자리잡고 있다.그는 온건하고 합리주의적인 공산주의자의 선봉으로 꼽힌다.마르크스주의보다는 러시아의 민족주의에 호소한다.때때로 시장개혁과 자본주의자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일부분파들은 그를 실용주의자로 분류해 비난한다.러시아 정치무대에서 옐친과 타협하며 그와 권력을 공유하려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 축인 급진주의를 대표하는 블라디미르 세마고 하원의원은 “공산당이 좌파로서 새 좌표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되며 레닌주의는 21세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정작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공산당의 정체성과 관련한 최대의 아이러니는 옐친정부 지도부의 상당수들이 전직 공산당 간부라는 점이다.한 몸에서 나온 두개의 머리가 러시아 정치를 괴롭히고 있다.
  • 앤드류 잭슨(미국의 대통령 문화:14)

    ◎미 영토 확장 크게 기여한 전쟁영웅/개척농민 유복자로 변호사·의원·대법판사도/귀족정치서 대중정치시대 연 첫 서민대통령 【내슈빌(미테네시주)=나윤도 특파원】 미국의 7대 대통령(1829­1837) 앤드류 잭슨은 미합중국 정치문화에 ‘대중시대’의 개막을 의미하는 이른바 ‘잭소니안시대’을 전개시킨 대통령으로 전 미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당시 6명의 전직 대통령이 버지니아,매사추세츠 등 동부 출신의 대농장주 후손으로 좋은 정규교육을 받은 ‘신흥귀족’ 출신이었던데 반해,그는 가난한 개척농민의 유복자로 통나무집(log cabin)에서 태어났으며 정규학교라고는 문턱도 밟아본적이 없었다.그 때문에 첫 ‘서민대통령’으로서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미국의 영토를 확장하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전쟁 영웅으로 추앙되어 대통령에 오른 잭슨은 대통령직 자체를 ‘최고의 지위’라기 보다는 ‘일할수 있는 기회’로 인식했다.그는 국민적 인기를 바탕으로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했으며 미국 정치사에서 현대적 민주주의 제도를 확립시킨 대통령으로남아 있다.그래서 그는 강인함 또는 단단함의 상징인 히커리나무에 비유되어 ‘올드히커리’(Old Hickery)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올드 히커리’ 애칭 영국과의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767년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의 후손으로 노스 캐롤라이나의 시골에서 태어난 잭슨은 태어나기 직전 아버지의 병사로 홀어머니에 의해 양육됐다.성질이 급하고 거친 그는 싸움질을 일삼아 아들을 목사로 키우고 싶었던 어머니의 꿈은 일찌감치 포기해야할 정도 였다. 장로교 목사로부터 가까스로 글을 깨친 그는 14세때 독립군 민병대에 가담,소년병으로 영국군과의 전투에 참가했다. 잭슨은 용맹스럽게 싸웠으나 이듬해 영국군에 포로로 잡히고 말았다.그러나 적개심에 불타던 그는 구두를 닦으라는 영국군 장교의 명령에 불복,그로부터 칼로 머리를 맞아 깊은 상처를 얻게 됐다.그는 평생동안 그 상처를 자랑스럽게 내보이며 다녔다. 포로교환으로 풀려나온 그는 솔리스베리의 한 변호사 밑에서 법률공부를 시작,20세때인 1787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으며 이후 테네시주 내슈빌로 옮겨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96년에는 새로 주로 승격된 테네시주의 연방하원의원에 선출됐으며 이어 상원의원,테네시 대법원 판사를 역임했다. 그의 호전적인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1812년 미합중국의 선전포고로 영국과 다시 전쟁이 발발하면서부터 였다.45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민병대를 이끌고 전투에 참가한 잭슨은 인디안과의 전투에서 연승,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으로부터 미군 중장으로 임명됨과 동시에 서남부 전체 미군의 지휘권을 얻게 됐다. 잭슨은 플로리다 펜사콜라 전투에서 승리,플로리다를 장악했으며 15년 겨울,뉴올리언스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영국군과 미군과의 전투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뒀다.전쟁의 승패를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사령관을 포함한 2천600명의 사망자를 낸 반면,미군은 단지 8명의 사망자만 냈을 뿐이었다. ○영군과 전투서 대승 세계 전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방적 승리로 기록된 뉴올리언스의 승전은 영국민에게는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를 안겨줬다.그동안 군사력 열세에서 유럽 강대국들에 소극적 대응을 해오던 미국은 자신감을 갖게 됐으며 국제사회에 독립국가로서의 위력을 과시하게 됐던 것이다.지금도 뉴올리언스 시가지 한복판에는 포효하는 말에 탄 그의 동상이 높이 서있다. 이같은 그의 업적은 그를 자연스레 1824년 새로 태어난 민주당의 대통령후보로 부상시켰다.잭슨은 1차투표에서 승리했으나 과반수에 미달했고,2차투표에서 정치적 흥정에 의해 존 퀸시 아담스에게 고배를 들고 말았다.그러나 잭슨은 4년후 다시 도전,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게 됐다. ○첫 암살대상자 기록도 잭슨은 작은 정부를 강조하면서 정부와 국민이 어떻게 하면 가까와질수 있는가를 고민했다.고율의 관세제도를 개혁,관세율을 낮추었으며 예산절감을 통해 연방예산의 잉여분을 주정부에 골고루 이월할 것을 제안했다.따라서 그는 연방정부가 공공복지사업이나 건설사업 등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은 반대했다.정부의 지나친 부채는 국민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까지 주장했다.이같은 국민편에 선 통치는 그의 재선을 무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잭슨은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많은 시행착오도 일으켰다.친구들을 요직에 등용,‘주방내각’이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인사행정의 난맥상을 보인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특히 그는 이혼녀인 부인 레이첼을 따라다니는 악의적 소문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보였다.그 문제로 대통령이 되기전까지 많은 사람들과 결투를 벌이곤 했다.그는 또 1935년 실패로 돌아갔지만 암살기도가 발생,역대 미대통령 가운데 처음 암살대상이 되는 기록도 세웠다. 그의 주요 업적으로는 ▲영토의 확장 ▲귀족정치에서 대중정치로의 전환 ▲연방정부의 부채청산으로 건전재정 확립 ▲부패한 연방은행의 규제제도 확립 등이 꼽히고 있다.대중정치의 확립은 라이딩스의 미대통령 랭킹에서 잭슨은 42명 가운데 비교적 높은 8위에 랭크되고 있다.그는 69세 대통령을 퇴임하여 자신의 농장인 내슈빌 교외의 허미티지에서 78세로 숨을 거둘때까지 조용한 여생을 보냈다. ◎잭슨 유적지 ‘허미티지’/평생 가꿔온 사저… 테네시주 내슈빌 위치/55만평에 정원·교회·농장·후손들의 집도 【내슈빌(미테네시주)=나윤도 특파원】 앤드류 잭슨 대통령의 유적지로 지정된 ‘허미티지(Hermitage)’는 잭슨이 평생을 가꿔온 사저로 컨트리뮤직으로 유명한 테네시주의 주도,내슈빌에 위치해 있다. 외딴집이라는 의미의 허미티지는 55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에 잭슨과 그 가족이 기거하던 맨션을 중심으로 부인 레이첼을 위해 만든 정원과 교회,후손들의 집 등 각종 부속건물과 농장으로 돼있다.비지터센터 뒤에 위치한 맨션에는 잭슨 생존 당시의 실내장식과 함께 가재도구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18세기말∼19세기 중반에 이르는 당시 미국 상류사회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이 터는 잭슨이 내슈빌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며 1804년부터 조금씩 구입해 모은 것으로 오늘날의 형태가 갖춰진 것은 대통령 재임중인 1833년 무렵이며 37년 대통령 퇴임후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허미티지는 워싱턴 교외에 위치한 조지 워싱턴 사저인 마운트버논과 함께 미국내 대통령문화 보존의 한 본보기로 유명하다.1889년 애미 잭슨에 의해 창립된 허미티지부인회에 의해 보존되고 운영되고 있으며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들고 있다.이 부인회는 내년 2월 창립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애미 잭슨은 자식이 없던 잭슨 대통령 양아들의 아들인 잭슨3세의 부인이다.그녀는 45년 잭슨 사망후,수십년 동안 역사적 장소가 일부는 팔려나가고 퇴락해가는데 안타까움을 느낀 끝에 허미티지부인회를 결성,유적지키기에 나섰던 것이다. 30년 앞서 결성된 마운트버논부인회와 함께 허미티지부인회는 남자들이 남북전쟁의 와중에서 전쟁에 휩쓸려 있는 동안 부인들의 힘으로 문화유적을 지켜낸 훌륭한 본보기로 남아 있다.
  • 작년 한해 여성권익의 디딤돌과 걸림돌은?

    ◎여연,최종영 대법관 등 선정 ‘지난 한해 여성 인권 향상을 도운 대표와 방해한 대표선수는 누굴까?’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오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97 여성 권익의 디딤돌과 걸림돌’을 선정했다. 디딤돌은 ▲서울대 우조교 성추행 사건 우조교에게 승소판결을 내린 대법원 판사 최종영씨 ▲한국 최초의 여성영화제를 개최한 여성문화예술기획 대표 이혜경씨 ▲동성동본 금혼제 헌법 불합치 판정을 이끌어내는데 힘써온 가정폭력상담소 부소장 곽배희씨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에 힘써온 변호사 이찬진씨. 걸림돌로는 ▲소설 ‘선택’을 통해 페미니즘 논쟁을 일으킨 작가 이문열씨 ▲97년 역무직에 여성을 한 명도 채용하지 않은 대우지하철공사 대표 신태수씨 ▲TV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과 행동을 일삼은 코미디언 이주일씨 ▲한국판 포르노잡지 ‘스파크’ 등을 선정했다. 여성단체연합은 8일 하오 2시 연세대 100주년 기념관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14회 한국여성대회’ 행사에서 명단을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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