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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진석 추기경, 8일 모교 중앙고서 특별강론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75) 추기경이 오는 8일 모교인 서울 중앙고등학교를 방문해 특별강론을 한다. 중앙고는 개교 98주년을 축하하는 의미로 마련된 특별강론에 41회 졸업생인 정 추기경을 초청했다. 정 추기경은 강론에서 모교 재학생들에게 꿈을 가질 것을 당부할 예정이다. 그는 중앙교우회지와의 인터뷰에서도 “고교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로 큰 꿈을 키울 수 있었던 학창 시절을 잊을 수 없다.”며 청소년기의 꿈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정 추기경은 또 2008년에 개교 100주년을 맞는 모교의 기념사업 기금으로 1000만원을 기탁할 뜻을 학교측에 전했다.정 추기경은 1950년 중앙고 졸업 후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지만,6·25 전쟁을 겪으면서 가톨릭대에 진학해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한편 중앙교우회는 ‘자랑스러운 중앙인’에 한국 최초의 종두학자인 고 지석영, 대한미술협회장과 예술원장을 지낸 고 고희동, 지질학자인 김수진, 연극인으로 토월회를 조직했던 고 박승희, 외국어대 용인캠퍼스 부총장을 지낸 고 석일균, 국어학자서 서울대 도서관장을 지낸 이기문, 한국 법의학의 선구자로 수원도립병원장을 지낸 고 주종훈 선생 등 7명을 선정했다.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안익태 유품 고국품에

    작곡가 안익태(1906∼1965) 선생이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로부터 받은 편지를 비롯한 유품 150여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다. 안익태기념재단(이사장 김형진)은 “스페인 현지의 유족들로부터 넘겨받은 선생의 유품 150여점이 현재 부산항에 도착해 있다.”며 “다음달 1일쯤이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질 예정”이라고 29일 밝혔다. 안익태기념재단은 올해 안익태 탄생 10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롤리타 안 여사 등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유품을 인수, 국내 박물관에 기증하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이번에 들여온 유품은 안익태 선생이 직접 사용한 피아노 1대와 가구, 지휘봉, 볼펜, 시계, 다이어리, 앨범, 각종 배지, 훈장, 메달 등. 특히 그의 스승인 세계적인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로부터 받은 40∼50통의 편지,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았던 월트 디즈니가 식당에서 냅킨 위에 그려준 도널드 덕 그림 등 그동안 공개된 적이 없는 물품들도 포함돼 있어 관심을 모은다.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5) 국내최초 서양식 약현성당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5) 국내최초 서양식 약현성당

    한국 최초의 성당을 들라면 많은 이들이 대뜸 명동성당을 꼽는다. 명동성당이 갖는 한국 천주교의 얼굴이자 심장의 이미지 때문이다. 그런데 명동성당보다 무려 6년이나 앞서 세워진 성당이 있다. 서울 중구 중림동 149번지, 서울역 서쪽 맞은 편 언덕에 보일듯 말듯 앉아 시내를 내려다보고 있는 약현성당(현 중림동성당, 사적 제252호)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14년 전인 1892년 한국 최초의 서양식 벽돌 성당으로 건립되어 이후 한국 성당건축의 모델이 된 유서깊은 건물. 한국교회사상 첫 서양식 건축물이란 의미에 더해 1984년 성인 반열에 오른 103위 순교성인 가운데 무려 44위의 성인을 낳은 한국 최대의 순교지인 옛 ‘서소문 네거리’를 품 안에 두고 있는 성지이다. 숭례문에서 서울역 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다가 염천교를 건너 바로 산등성이를 오르면 만나게 되는 고색창연한 붉은 벽돌조의 작은 건물. 성당 초입의 큰 길 표지판엔 ‘천주교 중림동(약현)성당 한국최초의 고딕성당’이라 쓰여 있고 정문의 돌기둥에 ‘약현천주교회’라 새긴 글씨가 또렷하다. 약현(藥峴)은 원래 만리동에서 서울역으로 넘어오는 곳에 위치한 고개였는데, 약초 밭이 많아 약전현(藥田峴)으로 불리다가 지명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성당이 들어선 것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영세자인 이승훈(아호 반석)의 집이 있었기 때문. 반석골이라 불렸던 현재의 중림동에서 태어난 이승훈은 중국 베이징에서 영세를 받고 귀국해 교회 창설의 주역을 맡았던 인물.‘한국 천주교회의 베드로’로 통하며 본명(반석)대로 교회에서 반석의 역할을 톡톡히 하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최필공, 정약종, 홍교만, 홍낙민, 최창현 등과 함께 체포되어 성당 아래쪽 서소문밖 네거리에서 참수당했다. 참수될 당시 남긴 “월락재천 수상지진”(月落在天 水上池盡, 달은 떨어져도 하늘에 있고 물은 솟구쳐도 연못에서 다한다.)이란 말은 지금도 한국 천주교회의 명언으로 남아 있다. 약현성당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약현 본당은 본래 1887년 제7대 조선교구장 블랑(Blang)주교에 의해 수렛골(현 순화동)에서 한옥 공소로 출발한 역사를 갖고 있다.1891년 종현(명동)본당에서 분리되어 서울에서 2번째, 전국에서 9번째로 설립된 본당인 셈이다. 당시 명동본당은 4대문 안쪽에 있다고 해서 ‘문안본당’, 약현본당은 ‘문밖본당’으로 불렸다고 한다. 신자 수가 ‘문안본당’ 즉 명동성당보다 훨씬 많아지면서 조선교구가 새로 지은 것이 바로 약현성당이다.1891년 10월 건축을 시작, 착공 1년만인 1892년 공사를 마무리지었다.1898년 종현에 우뚝 섰던 명동성당보다 무려 6년이나 먼저 세워진 셈이다. 한국에선 처음으로 들어선 서양식 성당에서 하루 세번씩 울려퍼지는 종소리는 당시 장안에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축성식을 집전한 뮈텔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보낸 서한을 통해 이렇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이제 서울 문 밖 중심에 성당이 우뚝 솟았다. 그것은 아담하며 또한 성당다운 성당으로서는 한국 최초이고 유일하다.” 건립 당시의 규모는 길이 약 32m, 폭 12m, 종탑 높이 22m, 넓이 120평으로 목조 마룻바닥이었다.1905년 종탑 꼭대기에 첨탑이 올려진 데 이어 1921년에는 성당 내부의 칸막이가 철거되고 벽돌 기둥이 돌 기둥으로 바뀌었다.1974년부터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쳐 1977년 국가 문화재(사적 제252호)로 지정되었으나 1998년 2월 한 행려자가 저지른 방화로 성당 안이 거의 전소되고 지붕이 내려앉는 비운을 맞았다. 벽돌 구조물과 앙상한 잔해만 남았으나 1년 6개월여에 걸친 공사를 거쳐 2000년 9월 옛 모습을 찾았다. 시내쪽인 동측에 정면 출입구, 남북향의 측면 출입구 각 1개씩을 갖춘 성당은 표지판에 적힌 대로 전체적으론 고딕성당이지만 고딕보다는 로마네스크 양식이 강하다. 몸채에 곁채 2개가 딸린 라틴십자형 삼랑식(三廊式) 구조인데, 요란한 장식들이 없어 오히려 더 장중한 느낌을 받는다. 가운데 두 줄의 돌기둥이 늘어섰고, 기둥 바깥의 양쪽 신자석 창은 둥근 아치로 장식되어 있다. 가장 높은 가운데 부분 주위로 점차 낮아지는 하늘 형상의 둥근 천장은 성당의 가장 독특한 부분이다. 제대 좌우 신자석 정면에 성 모자상과 성 요셉상이 모셔져 있으며 그 좌우 벽에 14처가 걸려 있다. 정면 제대 뒤쪽을 장식하는 3개의 유리화를 통해 들어오는 빛줄기가 성전 안을 환하게 비추도록 돼 있는데 이 때문에 교계에서는 ‘전국의 성당 중 가장 밝은 성당’으로 통하기도 한다. 약현성당은 사적 252호로 지정된 성당건물 말고도 서소문순교자기념관, 가톨릭종교음악연구소, 가톨릭출판사 등이 자리잡아 명실상부한 한국 가톨릭문화의 중심지.1991년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아 세운 서소문순교자기념관은 그중에서도 가장 큰 자랑거리이다. 기념관 전면에 1996년 조광호 신부(베네딕토수도회)가 제작한 유해및 위패 봉안실이 들어 있는데, 이곳에는 서소문밖 네거리에서 목숨을 잃은 남종삼, 허계임 등 44위의 순교성인을 비롯해 아직 시성(諡聖)되지 못한 순교자 58위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다. 현재 약현성당의 신자는 3500여명, 약현본당에서 분리된 본당만 해도 90여개나 된다. 천주교 전체적으로 신자수가 감소하고 있지만 이 성당의 면모는 사뭇 다르다. 성당이 갖는 역사적 전통 때문인지 몇대에 걸쳐 성당을 다니고 있는 ‘대물림 신자’들이 많은 게 특징. 다른 지역으로 이사간 뒤에도 성당을 옮기지 않고 꾸준히 이 성당을 찾는 신자도 전체의 3분의1이나 된다고 한다. kimus@seoul.co.kr ■ 최대의 순교지 서소문 내려보며 약현성당에서 내려다보이는 지금의 서소문공원 부근, 즉 당시의 서소문 밖 네거리는 신유(1801년)·기해(1839년)·병인(1866년)박해를 거치면서 천주교 신자가 가장 많이 처형을 당한, 한국 최대의 순교지이다.1984년 성인반열에 오른 순교자 103위 가운데 44명이 바로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서울 지역 순교지 중 절두산이 병인박해 때의 집단 처형장소, 새남터가 국사범·지도자급 인물들의 형 집행처였다면 서소문 밖 네거리는 주로 일반 평신도들의 처형장이었다. 포졸들은 처형할 신자들을 태운 우차를 울퉁불퉁한 서소문 언덕길을 내리달려 신자들을 피투성이로 만든 뒤 아래쪽 네거리에서 처형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신자들이 순교한 지점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아현고가도로와 의주로가 교차하는 서소문공원 근처로 추정된다.1984년 한국 순교자 103위의 시성을 기념해 이곳에 순교자현양탑이 세워졌다. 서소문은 1914년 일제에 의해 철거되어 지금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1984년 세워진 순교자 현양탑은 1996년 5월 공원을 재개발하면서 철거되었는데, 약현성당이 머릿돌과 동판 석재를 되살려 성당 안으로 옮겼다.
  • 소문난 ‘책 잔치’ 볼거리 쌓였다

    소문난 ‘책 잔치’ 볼거리 쌓였다

    ‘책으로! 책으로!’ 국내 최대의 책잔치인 서울국제도서전이 6월2일부터 7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태평양홀과 인도양홀에서 열린다. 올해로 12회를 맞는 이번 도서전에는 세계 24개국의 출판사, 서점, 저작권 에이전시 등 471개사가 참여해 책을 전시하고 구매 상담을 벌인다. 주최측은 저작권 수출 상담을 위해 비즈니스 센터 격인 저작권 상담실을 따로 운영할 계획이다. 올해 전시회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작가의 글쓰기 작업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민 ‘작가의 방’ 코너. 고은, 김훈, 김용택, 신경숙 등 유명 시인과 소설가의 방을 직접 촬영해 작업실을 재현하고 작가의 애장품도 선보여 작가와 작품을 한층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공지영, 진중권 등 저자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저자와 사진 한 장’ 코너도 행사장 한켠을 차지한다. 또 일연 탄신 100주년을 맞아 삼국유사의 내용을 그래픽아트와 사진, 동영상 등으로 보여주는 삼국유사 특별전이 열리며 영세 소규모 출판사를 위한 전시회, 북한서적 전시회 등도 마련된다. 이번 도서전에는 ‘황진이’등 북한 책이 160여종 나온다. 부대행사로는 중소 서점들에 관심을 갖자는 취지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우리동네 서점 신문 발행 콘테스트’가 개최되며, 시중에 출고되지 않은 도서를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간 발표회와 역사분야 서적을 전시하는 ‘역사학 카페’도 예정돼 있다. 이밖에 한국니체학회 심포지엄, 해외 출판인 초청 세미나, 북아트 전시회 및 어린이 북아트 세미나, 도서 퀴즈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가 곁들여진다. 서울국제도서전 조직위원회(위원장 박맹호)가 주최하고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주관하는 이번 도서전의 개막식은 2일 오후 2시. 도서전 관람은 무료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명문대 교육혁명] (7)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명문대 교육혁명] (7)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패서디나(미국 캘리포니아주) 안동환특파원|“한국에서 우리 학교를 염탐하러(spying) 왔다고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쉿! 비밀 연구실이 많으니까 조심해서 보세요.” 지난 3월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Caltech·칼텍) 애서니움에서 만난 아메드 즈웨일 교수가 기자에게 건넨 장난기 섞인 농담이다. 그는 1999년도 노벨화학상 수상자이다. 라틴어로 아테네 신전을 뜻하는 ‘애서니움(Athenaeum)’은 교수 식당. 중앙에는 ‘노벨(Nobel) 테이블’로 불리는 특별한 좌석이 있다. 여느 식탁과 다를 바 없지만 노벨상을 수상한 교수들이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식탁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다. 드보라 헤지스 대외협력 팀장은 “노벨 테이블의 대화만으로도 박사 수준의 논문을 써 낼 수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면서 “아쉽게도 학생들은 출입금지”라며 웃었다. 식사를 하던 중 기자의 인사를 받은 즈웨일 교수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요청에 유쾌하게 응했다. 그에게서 딱딱한 권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학생 대 교수 비율 3대1 ‘소수정예 고수´ 칼텍은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함께 미국 이공계 분야 노벨상의 양대 산실이다. 지난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로버트 그럽스 교수까지 31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1학년생도 노벨상 수상자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학문적 서열’이 아닌 과학을 매개로 한 ‘지적 교류’가 풍성한 대학이다. 포스텍(포항공대) 박찬모 총장은 “작지만 강력한 경쟁력을 구축한 칼텍이 포스텍의 초기 모델이었다면 이제는 세계 기초과학 분야의 최강인 칼텍과 응용과학에 뛰어난 MIT의 통합 모델이 포스텍의 미래”라고 말한다. 칼텍은 미국 내에서도 가장 학생수가 적은 ‘초미니 사립대’이다. 학생 대 교수 비율은 미국 최저인 3대1이다. 대학원생을 합해도 전교생은 2000명에 불과하다. 강력한 경쟁자인 MIT의 5분의1 수준이다. 지난해 서울대의 교수 1명당 학생수는 23명이었다. 에리카 오닐 학생·재정 부총장은 ‘작지만 강한 대학’이라는 한마디로 칼텍을 설명한다. 칼텍은 미국 ‘연구소 대학’의 표본이다. 학생들은 연구소에 들어가 대학 과정을 이수한다. 학제, 커리큘럼부터 신입생 선발 등 학교 운영의 중심에는 ‘연구’가 있다. 미국 우주선을 개발하는 제트추진연구소(JPL), 생물·화학과가 있는 벡만 연구소, 공대가 입주한 무어 연구소 등 세계적인 연구소 하나 하나가 그대로 학과이다. ●철저히 연구 중심 학제 “교과서가 없다” 칼텍은 화학·화공학, 수학·물리학, 공학, 천문·지질학, 인문·사회학 등 6개 분야에 걸쳐 35개 전공 학위를 수여하고 있다.MIT가 종합대학으로 변신하는 동안 칼텍은 기초 과학과 공학을 고수하고 있다. 칼텍의 발전 전략은 ‘소수 정예주의’와 ‘가장 높게 발전한 분야를 더 높게’로 압축된다. 전 세계에서 한 해 200여명만 입학한다. 과학영재 교육기관이라는 위상에 맞게 가능성 있는 영재를 천재로 길러내는 것이 목표이다. 설립 이후 단 한번도 교수 1명에 학생 3명이라는 비율이 깨진 적이 없다. 학제는 철저히 연구 위주로 편성된다. 처음 2년은 기초과학을 한다. 모든 입학생이 전공에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양자물리학과 수학, 화학을 이수해야 한다. 그 과정이 끝나면 ‘이노베이트 클래스’ 단계로, 최종적으로 실험·연구에 참여한다. 여름방학 동안 연구비를 지원하는 SURF 등 기획 프로그램이 많아 학부 1∼2학년생도 연구 참여가 가능하다. 전체 학생의 절반 이상이 SURF 연구비를 받고 있다. 칼텍에서 박사 후 과정을 밟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곽주현 화학과 교수는 “학부생부터 연구원 수준의 트레이닝을 시키는 튜터링(개인교습) 체제가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쉴새 없이 도전 과제를 제시하는 학교” 칼텍 강의실에는 교과서가 없다. 교수는 매 시간마다 강의 자료를 직접 준비한다. 인공망막 개발 연구를 하는 다미앵 로저스 박사는 “교과서야말로 최소 1년, 길게는 2∼3년 이상 늦은 가장 뒤처진 텍스트”라고 말한다. 가장 최신의 학문과 새로운 발견 등을 담기 위해서라도 교과서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재학생들은 학업 스트레스에 대해 4년 내내 수천t의 철근에 눌려 사는 기분이라고 표현한다.1학년의 10%는 학문적인 이유로 2학년 진학을 포기할 정도이다. 정신과 상담을 받는 학생도 많다. 생명공학과 박준석(21·2학년)씨는 “파워포인트와 프레젠테이션을 사용하는 발표 과제, 퀴즈, 시험만으로도 일주일이 벅차다.”면서 “연구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자 쉴새 없이 도전 과제를 제시하는 학교”라고 말한다. 교수 영입은 2무(無)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교수 선발에 있어서는 예산과 시간의 제한을 전혀 두지 않기 때문이다. 오닐 부총장은 “2∼3년이 걸려도 반드시 원하는 교수를 모셔온다.”고 말한다. 칼텍은 1920년대부터 화학 분야의 아서 노이스, 물리학의 로버트 밀리칸, 항공공학의 테오도르 폰 카르만 등 세계적인 학자들을 잇달아 영입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방문 교수로 재직했다. sunstory@seoul.co.kr ‘악동’ 과학 영재들의 유쾌한 에피소드 |패서디나(미국 캘리포니아주) 안동환특파원|칼텍 천재들은 악동? 1987년 5월4일 할리우드 탄생 100주년 기념일. 이날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민들은 깜짝 놀랐다. 로스앤젤레스의 상징으로 리(Lee) 마운트 정상 부근에 서 있는 거대한 ‘할리우드(HOLLYWOOD) 표지판’이 깜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할리우드라는 영어 철자는 사라지고 칼텍(CALTECH· 철자를 새긴 표지판으로 바뀌었다. 칼텍 학생들이 과학자의 중요성을 알리려고 계획한 행동이었다. 이 어마어마한 장난은 전 세계에 큰 화제를 뿌렸다. 지난달에는 칼텍의 영원한 ‘맞수’인 매사추세츠공과대(MIT) 학생들이 화제를 모았다.MIT 학생들이 칼텍의 명물인 1.7t의 ‘플레밍 대포’를 4828㎞나 떨어진 미 대륙 반대편의 MIT 캠퍼스로 옮겨놓는 장난을 친 것이다.MIT 학생들의 통쾌한 복수였다. 지난해 칼텍 학생들이 먼저 선전포고를 했다.MIT 대학본부에 새겨진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라는 교명을 ‘또 하나의 공대’(That other Institute of Technology)라는 철자로 바꾼 것이다. 칼텍 구내상점에서도 두 대학의 기싸움을 엿볼 수 있다. 셔츠 앞면에 ‘MIT’라고 쓰여진 특별한 기념품이 판매되고 있다. 이 셔츠는 일종의 ‘트릭’이다. 셔츠 뒷면에는 ‘아무나 칼텍에 입학할 수는 없기 때문에’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MIT의 자존심을 긁기에 충분한 말이다. 칼텍은 ‘서부의 MIT’,MIT는 ‘동부의 칼텍’으로도 불리는 등 두 대학은 미국 과학 기술계의 라이벌이다. 칼텍 악동의 대표적인 전통 행사는 ‘디치 데이(ditch day)’. 매년 4학년생이 기획하는 이 행사는 ‘등교하지 않는 날’이다. 학교측에 사전예고 없이 결정한다. 디치 데이에 멋모르고 등교한 배신자는 장난기 어린 응징을 당한다. 교내 캠퍼스 나무에 묶이거나 물벼락을 맞는다. 교수들도 즐거운 날이다. 나무 위에 쫓겨 올라가거나 묶인 학생들에게 교수들은 ‘행운을 비네.’(Good luck)라는 인사를 건네며 낄낄거린다. 학업 스트레스로 지친 칼텍의 ‘공부벌레들’이 해방감을 느끼는 유일한 날이다. sunstory@seoul.co.kr ■ “과학에 열정있다면 아낌없이 지원” |패서디나(미국 캘리포니아주) 안동환특파원|“돈이 없어 입학을 주저하는 학생이라면 우리가 학비를 지원합니다. 단 평생 과학자로 살고 싶은 학생을 원합니다.” 에리카 오닐 학생·재정 부총장은 “과학자로서의 기본 자질을 갖춘 학생이면 경제적 지원은 아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칼텍 등록금은 2만 7000달러(약 2700만원). 기숙사 비용 등 생활비를 합하면 1년에 4만달러가 필요하다. 국적에 상관없이 외국 학생들은 경제적 지원을 전제 조건으로 선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칼텍은 학생들의 재정 지원을 위해 14억달러(약 1조 4000억원)의 ‘기부금 캠페인’까지 벌일 정도이다. 칼텍 총장은 현재 공석이다.1997년 제7대 수장에 오른 데이비드 볼티모어 전 총장은 지난해 10월 사임했다.1975년도 노벨생리학상 수상자인 그는 “연구에 전념하고 싶다.”면서 총장에서 물러났다. 칼텍 입학의 핵심 요소는 수학·과학 성적이다. 대학수능시험(SAT) 수학과 과학 커트라인은 거의 만점에 가까운 780점(만점 800점)이다. 고교 때의 개별적인 연구·실험활동과 수학·과학의 학습 능력이 심도있게 반영된다. 오닐 부총장은 특히 창의력과 과학에 대한 열정을 강조했다. 그녀는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수학과 과학분야의 ‘조기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칼텍의 신입생 선발은 독특하다. 전권을 쥔 기관은 38명의 위원들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입학위원회’이다. 총장은 입학 사정에 참여할 수 없다. 교수(16명)와 직원뿐 아니라 학생(16명)도 참여한다. 매년 전 세계 3000여명의 입학 지원서는 이들에 의해 평가된다. 오닐 부총장은 늘어나는 아시아 학생(현재 31%)에 대해 높은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그녀는 “한국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흠잡을 데 없이 탁월하다.”고 말했다. 이어 “시험은 잘본다.”면서 “그러나 연구 능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 게 아쉬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입학을 원한다면 다양한 연구 활동 경험을 쌓으라는 게 그녀의 조언이다. sunstory@seoul.co.kr ■ 박사과정 한국유학생 4명 만나보니 |패서디나(미국 캘리포니아주) 안동환특파원|과학자로서 평생 연구에 전념하고 싶다는 소망을 표현하는 칼텍의 한국인 유학생들은 ‘과학 한국’을 이끌 주인공들이다. 칼텍 박사학위를 취득했거나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들은 칼텍이야말로 ‘미국 과학기술 교육의 특성과 경쟁력이 집약된 대학’이라고 입을 모은다. ▶칼텍을 선택한 이유는. -(박종원)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만큼 물리에 강한 대학을 선택했다. 칼텍은 물리학 분야에서 ‘끈 이론’을 정립한 존 슈워츠 교수가 연구하던 곳이다. -(김종민)경제적 지원이 폭넓다는 점과 칼텍이 한국의 포스텍과 비슷하다는 친근함이 작용했다. 처음 3년은 학과에서 장학금을 지원했다. 지금은 지도 교수가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손수진)학부는 MIT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칼텍은 화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칼텍의 실험실을 경험하고 싶다는 열망도 컸다. ▶칼텍 학제와 연구의 장점은. -(서진유)많은 도전 과제가 있다. 첫 1년이 가장 힘들었다. 수업 부담이 크다. 칼텍에서는 통상 첫 해만 잘 넘기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1년이 지나 등록을 연장하자 교학과에서 “생존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넬 정도였다. -(김)자연과학 분야는 석·박사 통합 과정으로 운영된다. 학교가 작고 연구소 체제로 운영돼 다른 전공 분야와의 통합 연구가 쉽다. 생물공학 분야도 다른 대학의 의대와 연계돼 있다. -(손)MIT가 평균 수준의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춘다면 칼텍은 톱 클래스 위주로 교과 과정을 구성한다.1주일에 50시간씩 공부하거나 100시간씩 연구하는 학생들이 꽤 많다. -(박)정말 ‘능력 위주’이다. 학부·대학원을 가르는 코스 제한이 전혀 없다. 학부생도 대학원 수업을 듣는다. 학제간 장벽이 없어 학과도 마음대로 옮겨다닐 수 있다. ▶어떤 학생들이 칼텍에 입학하는가. -(손)종합대학인 MIT에서는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지만 칼텍에는 과학자를 꿈꾸는 외골수(one-typed)가 주류이다. -(박)칼텍에서는 한 가지만 잘하면 된다. 학부 때 연구에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거나 수상 경력이 있다면 대학원 입학이 가능하다. ▶학생과 교수의 관계는. -(서)소수 정예의 분위기에 맞게 교수와 학생간의 학문적 상호작용이 깊고 넓다. 지도 교수로부터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박)현 지도 교수의 제자가 될 때가 가장 힘들었다. 칼텍은 지도 교수가 먼저 연구 과제를 제시한다. 그 과제에서 성과를 내야만 제자로 받아준다. 박사 과정 2년차였는데 심리적 압박감이 컸다. sunstory@seoul.co.kr
  • 우도 등대 점등 100주년…27일 기념행사

    우도 등대 점등 100주년…27일 기념행사

    ‘100년을 밝혀온 바닷길.’ 제주도 북제주군 우도 등대가 올해로 점등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가 펼쳐진다. 우도 등대는 1906년 3월 일제가 러·일 전쟁을 치르기 위해 목제 등대(등간)형태로 설치, 첫 불을 밝힌 제주도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이다. 제주해양수산청은 오는 27일 우도 등대에서 점등 100주년 기념식을 갖고 등대 점등 재현, 돌돔치어 방류 등의 행사를 연다. 등대 바로 옆에 복원된 100년전 우도 등간은 호롱에 석유를 넣어 불을 켠 뒤 쇠기둥에 올려 달도록 한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복원했다. 이날 검멀레 해안에서는 넙치와 돌돔치어 3만 5000마리를 방류하고 주민 무료 의료봉사활동도 펼쳐진다. 우도에서는 12일부터 대한민국 등대 100주년 사진공모전과 여류화가 안정희씨의 ‘등대와 바다 그리고 우도’라는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우도 등대는 1915∼1916년에 벽돌로 원형의 등탑을 쌓은 형태로 개축됐으며,2003년 11월 원형 대리석 구조물로 현재의 등대가 지어졌다. 현재 3명의 등대지기(항로표지원)가 근무하고 있다. 우도는 섬의 형태가 소가 드러누웠거나 머리를 내민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산호백사장 등 빼어난 자연경관으로 연간 30여만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열린세상] 지금 우리의 시대정신은 존재하는가/김병식 동국대 부총장

    오늘 우리 모두가 갖는 공동의 이념, 이른바 시대정신은 존재하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물음이 너무 관념적이어서 생뚱맞긴 하지만, 최근 하던 일에서 부딪쳐 나온 생각이다. 봉직하고 있는 대학이 금년으로 창학 100년을 맞았다. 기념행사를 치르면서 숙연함이 있었다. 그 어려운 시절, 학교를 설립했던 선각자들의 바쁘고 격정어린 숨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100년 전인 1905년 일본의 을사늑약, 쇠락해 가던 조선말, 그 시대의 사람들이 가진 시대정신, 그 상황적 편린을 우리 젊은이들에게 근대교육을 시켜야겠다는 구체적 실천으로 풀어 나갔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휘문고를 위시한 명문 사립고, 고종황제의 고려대와 숙명여대 설립, 불교 선각자들의 우리 대학 창립이 그것이다. 이 학교들이 모두 100주년을 맞았다. 이제 새로운 백년을 다시 시작하며 어떤 지표로 교육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나온 생각이다. 최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갖는 사안별 생각의 편차는 매우 크다. 미국 및 일본 등 국제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부동산 등의 경제현안, 사학법, 양극화 문제 등 논란이 되는 사회 문제에서 보여준 이견의 폭은 크다. 인터넷 댓글로부터 여러 견해를 접하며 동시대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하고 놀란다. 이해하려 노력해 보지만 혼란스럽다. 물론, 수학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에 의견이 통일되기는 힘들겠지만 각론이 아닌 총론에서부터 견해가 이렇게 극명히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현대 사회를 ‘해체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데올로기로 대변되는 거대담론을 거부한다. 개인의 욕구와 사고를 우선시하고 작은 담론을 즐겨 한다. 더욱이 인터넷이란 쌍방향 매체로 손쉽게 많은 개인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개진한다. 그래서 개인의 생각은 더욱 나누어지고 그 결과, 사회 해체가 가속화되기 때문에 이른 말일 것이다. 해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한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의 개념을 꺼내는 것이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안팎의 사정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중국의 국제적 등장과 동북공정, 일본의 우경화와 독도, 미국과의 FTA협상을 중심으로 한 경제 및 정치현안, 그리고 때늦은 정치권의 이데올로기 논쟁, 다종교 사회 등이 버겁게 느껴진다. 시대정신의 사전적 의미는 ‘한 시대의 공통된 환경과 문화를 통해 생성된 시대 구성원의 이념’이다. 역사적으로 돌이켜보면,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각 시대에는 나름대로 시대정신이 있었다. 우리 근대사에서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시대정신은 ‘독립’이었고 독립 후 이승만 정권에서는 ‘건국’이었다.6·25 전쟁을 거치면서 박정희 정권에서는 ‘경제성장’이었으며, 군사독재정권하에서의 또 다른 우리의 시대정신은 ‘민주주의’였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에게 어떤 시대정신이 바른 것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훗날의 역사가 바른 것이었는지 말해줄 뿐이다. 그러나 국가발전, 민족번영의 목표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는 큰 그림 속에서 그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건전한 시대정신을 찾고 공감을 얻는 과정에서 사회적 통합을 이끌어 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공동의 시대정신이 진정 필요한 것인가. 필요하다면 어떻게 세울 것인가. 답은 전문가에게 미룬다. 다만 증폭되는 갈등이 안타깝고, 비판이 과다한 것 같아 절제를 당부하고 싶다. 건전한 정신을 세우는 일에는 바른 의사결정 및 비판이 전제조건이다. 다른 사람의 견해를 비판할 때도 나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사람의 말이어서 비판할 것이 아니라 시대정신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있었으면 한다. 다른 편이 내는 의견도 시대정신에 부합되면 동조하고 박수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사회였으면 한다. 해체의 시대에서, 사회를 통합하는 건전한 시대정신을 기대하는 욕심을 내 본다. 김병식 동국대 부총장
  • “공감·이해로 전쟁을 기억하라”

    “어느 국가도 평화에 대한 기원과 전몰자에 대한 애도는 있다.”(2005년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옹호 발언) “참전용사들의 명예를 이토록 손상시켜도 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2001년 베트남전을 사과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에 대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의 비판 발언) 목숨 내놓고 싸운 전쟁에 대한 기억은, 그래서 공포와 참혹으로 뒤덮여 있다. 그러나 국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들의 죽음을 ‘애국애족’의 이미지로 재생산해 내야 한다.그런데 전쟁이란 ‘상대방’이 있기에, 재생산 수준과 방식을 놓고 많은 말을 낳을 수밖에 없다.이 문제를 두고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20세기 전쟁기념의 비교문화사 연구팀은 30∼31일 이틀 동안 ‘전쟁기념 담론의 구성과 성격, 공적담론에서 제도교육까지’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박진한(한양대) 연구원은 지난해 러·일전쟁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본의 분위기를 한 예로 든다. 러·일전쟁의 승리, 그러니까 동북아 변방에서 조금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하던 황인종의 섬나라가 백인 대제국을 꺾어 드디어 제국의 일원이 됐다는 얘기가 어떻게 승전기념식 등 국가적인 의례는 물론 기념우표나 광고 등에서도 유통되는지 분석한다.권명아(한양대) 연구원은 우리 역사상의 전쟁이 ‘국난사’로 정의되는 과정을 문제삼는다. 약한 자의 자기방어라는 논리로 전쟁을 설명해버리는 것은 국가주의·민족주의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전쟁에 대한 윤리의식을 마비시키는 자기정당화라는 점에서 더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전진성(부산교대) 교수는 거창한 전쟁기념 자체가 그만큼 상처가 깊다는 증거라는 역설을 제시한다. 국가의 모든 역량이 투입·동원되는 총력전은 그 후유증이 엄청나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를 승화시키려면 결국 전쟁기념 자체가 거창해질 수밖에 없다. 상처를 승화시켰다고 하는 순간, 승화 그 자체가 이미 또 하나의 상처인 것이다. 이들의 해결책은 ‘공감’과 ‘이해’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뼈저리게 식민지를 경험한 만큼이나, 독립하려 밀림을 누빈 베트남 사람들에게 공감해야 한다는 의미다.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여성사학 100년 시대] 이화 120주년·숙명 100주년

    [여성사학 100년 시대] 이화 120주년·숙명 100주년

    한국의 여성 사학계가 올해 큰 경사를 맞고 있다.5월31일 이화여대가 창립 120주년, 이보다 아흐레 빠른 22일 숙명여대가 창립 100주년을 맞는다. 새로운 100주년 시대를 맞아 여성사학의 양대산맥인 이화여대와 숙명여대의 발자취와 동문들의 근황을 살펴본다. 이화·숙명의 인재들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남다른 족적으로 이끌어 왔다. 각각의 학풍 때문에 사회 진출 방향이나 성격은 다소 달랐지만 여성권익 신장 등 여성계 발전에 대한 두 학교의 기여는 곳곳에서 눈에 띈다. ●한국 여성계의 역사는 이화인의 역사 여성 1호 기록을 보유한 인사는 대부분이 이대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최초의 여의사 김정동, 최초 여성 변호사 이태영,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최초 신문사 여사장 장명수, 최초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효숙, 최초 여성총리 한명숙씨가 모두 이화 출신이다. 정·관계를 들여다 보면 이화의 파워는 더 막강해진다.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김대중 정부까지 장관을 지낸 여성 인사 25명 중 12명이 이대 출신이었다. 신낙균(문화관광부), 지은희(여성부), 송정숙(보건사회부)씨 등이 장관을 지냈고 손봉숙, 이미경, 이계경, 이경숙, 서혜석씨 등 25명이 국회에 입성했다.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한 방송작가 송지나,CNN서울지국장 손지애, 앵커 김주하, 화가 겸 문인 김점선, 소설가 권지예, 프로골퍼 박지은씨 등 언론·문화·스포츠계에도 이화의 바람은 거세다. 이화여대 신인령 총장은 “이대에서 배운 자신감과 당찬 근성이 사회 곳곳에서도 큰 활약을 보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숙명인,‘현모양처’에서 암탉으로 변신중 숙대는 현모양처를 강조하는 교풍 때문에 그동안 이대에 비해 사회에 진출한 동문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세상을 바꾸는 부드러운 힘’‘울어라 암탉’이라는 구호처럼 학교 차원에서 동문들의 사회 진출을 적극 돕고 있다. 이경숙 총장은 “지속적인 리더십 교육과 연구활동으로 2020년까지 대한민국 리더의 10%를 양성한다는 목표다.”라고 말했다. 최정희, 박화성 등 1920∼30년대의 대표적인 여류작가,1927년 19세의 나이로 비행사 자격증을 딴 여류비행사 이정희, 무용가 최승희 등은 숙명이 배출한 대표적인 신여성들이다. 정·재계의 숙대 출신 동문들은 한상은 배상면주류연구소 대표, 이행희 ㈜한국코닝, 우성화 티켓링크 대표, 박찬숙·김선미 국회의원 등이 있다. 숙대 동문들은 문화 예술 및 방송 분야에서 특히 두각을 드러낸다. 국내 최초 여성 연출가인 강화자 베세토오페라단 단장, 무용가 홍신자씨가 있고 소설가 신달자·은희경씨, 뮤지컬배우 문희경씨가 숙대 출신이다. 영화배우 엄앵란, 탤런트 전원주, 전문방송MC 이금희, 방송인 이익선, 아나운서 윤현진, 정미선, 쇼호스트 유난희씨도 숙명이 배출한 방송인이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양대사학, 서로를 말하다 “구한말부터 한국의 여성교육을 이끌어온 이화”“역경을 딛고 꽃피운 여성인재의 산실, 숙명” 두 대학 관계자 입에서 나온 상대 학교에 대한 넉넉한 덕담이다. 숙명여대 대외협력처장 김형국(정치외교) 교수는 “이대는 지난 120년간 우리나라 여성교육을 선도해 왔다. 여성사학 중에서 어디가 1등이고 어디가 2등이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면서 “앞으로 두 여성사학이 국내 뿐 아니라 세계 여성교육을 앞장서 이끌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120주년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이화여대 이배용(사학과) 역사관장은 “숙대는 한국 근현대사의 시대적 역경 속에서도 훌륭한 여성인재를 많이 배출해왔다.”고 화답했다. 그는 “21세기 여성시대를 맞아 여성사학의 양대 기둥으로서 협력관계를 통해 함께 성장하고 서로의 지혜와 힘을 모아 여성사학을 이끄는 주도적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소속 학교 자랑도 덕담 못지않았다. 숙대 한정신(교육심리) 대학원장은 숙명의 강점으로 강한 의욕과 이를 능가하는 성과물을 꼽았다.“학교에서 조금만 이끌어주면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이루어내지요. 앞으로 숙명인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 관장은 “규모면에서나 역사적인 면에서나 여성사학 중에서는 우리 이화여대가 단연 최고라고 자부한다. 이화 동문 수는 15만명으로 숙명의 두 배가 넘으며 2005년 사법고시에 52명이 합격하고 최근 3년간 행시 합격자 수가 행정학과 기준으로 남녀공학 대학을 포함, 전국 1위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자랑했다. 이런 보이지 않는 경쟁심리 때문인지 숙명과 이화가 학점·학생 교류 협정을 체결한 것은 지난 1월이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창학기념 자축행사 다채 두 학교는 요즈음 창립기념일을 자축하는 행사준비로 분주하다. 이화여대와 숙명여대는 각각 22일과 30일 창립기념행사를 갖는다. ●이화, 즐겁게 세상을 흔들어라 이화여대는 1886년 선교사 스크랜튼 부인이 자택에서 학생 1인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한국에 세워진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이다. 이화여대는 120주년 대표 기념사업의 하나로 제3세계 및 개발도상국 여성인재를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해 교육하는 EGPP(Ewha Global Prtnership Program)를 시작했다.120년 전 외국인 선교사가 1명의 학생으로 출발한 정신을 기리고 이화의 교육역량을 전세계 여성들에게 환원하고자 추진하는 사업이다. 22일부터는 교내 곳곳에서 e미디어 아트페스티벌 프런티어 백남준전을 연다. 26일에는 이화학당 한옥교사가 복원공사를 마치고 살아 있는 역사교육장으로 재탄생한다. 이화 120주년 역사를 담은 전시회를 열고 영상물 상영도 한다. 120주년 기념식은 30일 오전 10시 교내 대강당에서 갖는다.3대 이상 이화 출신 30가족을 찾아 기념패를 전달하고 이화학술상을 시상한다. 이화여대 새 정문도 이날 처음 공개된다.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해 세계로 뻗어가는 이화의 역동적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백년의 숙명, 천년의 빛 숙명여대는 1906년 고종 황제의 계비인 엄씨가 내탕금(황실자금)을 내려 종로구 수송동 한성부 수진방의 72칸 한옥에서 5명의 양반가 딸들을 가르친 것이 그 시작이었다.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민족 여성 교육이었다. 숙명여대는 창학 100주년을 맞아 ‘백년의 숙명, 천년의 빛!’이라는 기념 캐치프레이즈를 제작하고 22일 오후 7시30분 교내 르네상스 플라자 야외무대에서 창학 10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 기념식에서는 기념일 100일 전부터 전국 각지의 동문·재학생·교직원 등의 손을 거쳐 전달된 기념성화가 채화되며, 성화는 100주년 기념 타임캡슐 상단에서 영구히 타오르게 된다. 고건 전 국무총리, 이수빈 삼성생명보험 회장, 권인혁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 어윤대 고려대 총장 등과 학생, 교직원, 동문 1000여명이 참석한다. 기념식에 앞서 오후 3시부터 삼성컨밴션센터에서 미국 밀스칼리지 재닛 L 홈그런 총장,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나가타 도요오미 총장 등 10개국 18개 대학 총장단을 초청,‘글로벌 리더십 포럼’을 개최한다. 100주년 기념주 ‘숙명백년’(2006세트 한정)과 기념우표도 발행한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훈민정음’ 보러와요

    문화재의 보고로 평가받는 간송미술관이 설립자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소장품의 진수를 보여주는 특별전을 연다. 간송 미술관은 국보 12점과 보물 10점을 보유하고 있으며, 문화재 지정 신청을 하지 않은 국보·보물급 문화재들을 상당수 소장하고 있다. 1930년대 10만석지기 재산을 물려받은 간송은 학자이자 전각가였던 오세창과 교유하며 고미술품에 대한 감식안을 익히면서 일본의 소장가와 골동품 경매를 통해 일급 서화와 도자기 등을 적극적으로 구입,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으로 현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을 설립했다. 간송미술관은 봄가을 정기전만 열고 상설전시를 열지 않아 소장품을 제대로 보기가 쉽지 않다.특히 이번 전시는 간송미술관의 대표주자라 할 만한 작품 100점을 한꺼번에 내놓아 고미술 마니아들을 들뜨게 하고 있다. 국보 제70호인 ‘훈민정음’을 비롯 ‘동국정운’(제71호),‘청자상감운학문매병’(제68호)‘청자기린형향로’(제65호)‘청자상감연지원앙문정병’(제66호)‘청자원형연적’(270호)등 주옥같은 도자기 작품들과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추사 김정희, 안평대군 등의 대표적 서화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연구실장은 “이번 전시는 간송미술관 소장품의 전모를 보여주고 회화사의 흐름을 짚어줄 수 있는 값진 전시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전시는 21일부터 6월4일까지. 관람은 무료.(02)762-0442.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스승의 날 두 모습] 닫혀버린 제자사랑

    [스승의 날 두 모습] 닫혀버린 제자사랑

    스승의 날인 15일 전국 학교 70% 가량이 자율적으로 휴업에 들어간 가운데 정부와 서울시교육청, 교원단체들은 기념행사를 잇따라 가졌다.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학부모단체 등 정부와 교원ㆍ학부모단체는 이날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스승의 날 기념식’을 공동 주최했다. 1999년부터 지난해까지 정부와 교원단체가 따로 개최했던 ‘스승의 날 기념식’은 8년 만에 처음 공동으로 열렸다. 전교조는 이날 따로 행사를 가졌다. 전국 초ㆍ중ㆍ고 대부분이 이날 휴업에 들어간 것에 대해 학부모 박모(43)씨는 “촌지 때문에 학교가 쉰다는 것은 비교육적”이라면서 “내년에는 교사와 학생들이 한 자리에 어울려 사제지간의 정을 나누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등교한 학교에서는 스승의 날 기념식이나 반별 행사 없이 평소처럼 수업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별도 행사를 갖는 경우도 있었다. 백성호 한가람고 교감은 “2년 전까지는 기념식을 했는데 학생들의 짓궂은 행동에 교사들이 불편해 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난해에는 휴업을 했더니 졸업생들이 찾아오지 못해 불평이 많았다.”고 정상수업 배경을 설명했다.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은 보성고는 이날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인 가운데 담임선생님께 꽃을 달아주는 행사와 사제동행 축구경기를 가졌다. 용산고 역시 전교생이 등교한 가운데 기념식을 열고 학생회 주최로 동문 선배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 이택순 경찰청장의 강연회를 가졌다. 경기고 역시 학교 차원에서 간단한 기념식을 열었다. 한편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이 회원 1313명을 대상으로 스승의 날 자율휴업과 선물비용 관계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변화가 없다’는 답변이 796명(60.8%)으로 가장 많았다. 학부모들이 교사에 대한 선물부담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반증으로 풀이됐다. 이밖에 ‘선물하지 않는다’(16.2%)와 ‘낮아졌다’(15.6%),‘높아졌다’(7.5%) 순이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김인식 농진청장 “수요자 중심으로 조직 개편 추진”

    김인식 농촌진흥청장은 9일 과천 정부청사 브리핑룸에서 “농진청이 최근 10여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지만 수입개방 확대 등으로 농업·농촌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고 국민들이 더 많은 노력과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수요자 중심 기관으로 조직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청장은 “전신인 권업모범장이 1906년 출범한 이래 올해로 100주년을 맞게 되는데 따라 오는 7월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 이념 뛰어넘은 ‘사제의 만남’

    “아이고 선생님, 어떻게 이렇게 정정하세요. 제 동창이래도 믿겠습니다.”“이 사람아, 나 아직 끄떡없다네.” 9일 오후 서울 잠실체육관. 휘문중·고등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으로 열린 ‘휘문인 큰잔치’를 찾은 70대 제자는 아흔을 바라보는 스승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스승은 진보좌파의 원로 경제학자인 김윤환(85) 고려대 명예교수, 제자는 보수우파의 리더 중 한명인 민병돈(71)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현재 경실련과 민주노동당 고문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1952년부터 2년 동안 휘문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 고려대 교수로 옮긴 뒤에는 서슬 퍼런 유신치하에서 진보 경제학계를 이끌었다. 반면 민 전 교장은 89년 노태우 정권 초기 육사 교장으로 재직하다 노 정권의 북방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군을 떠난 뒤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의 인연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통에 본교를 부산으로 옮긴 휘문학교는 서울 광화문 내수동의 한 건물에 임시 학교를 열었다. 김 교수는 민 전 교장의 고1 때 담임으로 일반 사회(정치)와 독일어를 가르쳤다. 민 교수가 옛날 일화를 떠올렸다.“어느날 헌법 수업을 하는데 자네가 당당하게 손을 들고 ‘우리나라 정치환경이 헌법처럼 제대로 되고 있는 겁니까.’라고 물어왔었지. 나는 그때 ‘헌법은 이상이지 꼭 그대로 실행되는 건 아니다.’라고 답해주면서 자네가 대단한 인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네.” 두 사람의 인연은 학교를 떠나서도 가끔씩 이어졌다. 가장 극적인 만남은 신군부가 집권하던 80년에 이뤄졌다. 김 교수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134명의 지식인이 서명한 시국선언에 동참해 고려대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당시 국보위 대령이던 민 전 교장은 스승을 찾아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날 길을 논의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뜻을 굽히지 않다가 결국 4년 동안 교직을 떠나게 된다. 민 전 교장은 “영관 장교의 신분으로 힘이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너무 안타까웠다.”고 돌아봤다. 이념에 대한 질문에 김 교수는 “우리 나이엔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지.”라고 호탕하게 웃었고 민 전 교장은 “이념과 상관없이 선생님은 고등학교 때 내게 훌륭한 가르침으로 각인된 분이기 때문에 존경할 뿐”이라고 말했다.글 사진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업계소식-대학] 동국대 ‘개교 100주년 기념식’

    [업계소식-대학] 동국대 ‘개교 100주년 기념식’

    동국대학교는 지난 8일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김진표 교육부총리,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정운찬 서울대 총장, 이명박 서울시장 등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이 날 행사에서 ▲법전 종정예하의 ‘기념법어´ ▲동국대 김현해 이사장의 기념사 ▲홍기삼 총장의 ‘평화선언문´ 등이 이어졌다. 행사 후반부에는 ‘민족의 화해, 종교의 화합´의 메시지를 담은 종교지도자들의 축하 영상메시지가 상영됐다.
  • [부고] ‘한국 부흥사계 대부’ 신현균 목사

    신현균 서울 방배동 성민교회 원로목사가 7일 오전 8시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79세. 황해도 수안 출신인 고인은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하고 해외 집회 250여 차례, 국내 부흥회 5300여 차례를 인도하는 등 평생 부흥사역에 매진하면서 ‘한국 부흥사계의 대부’로 불렸다. 한국기독교 100주년 선교대회 준비위원장,88복음화 대성회 대표 대회장,92세계성령화 대성회 대표회장,97민족통일복음화성령 대성회 총재 등을 역임했다.유족은 부인 이태연(78)씨와 영준(50)·광준(48ㆍ이상 목사)씨 등 2남2녀.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발인예배는 11일 오전 11시.(02)3410-6912.
  • 중동중·고 100주년 학술대회

    중동중고등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아 기념학술대회를 열었다. 중동중고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9일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중동 100년 한국 100년’을 주제로 기념학술대회를 개최했다.중동 중고교 졸업생들의 사회 각 분야에서의 활동상을 조명하는 자리로,‘중동 100년사’ 편찬의 기초 자료로 사용될 예정이다.‘한국의 법률사회와 법조계 동문’(김제완),‘한국의 문학을 이끈 중동동문들’(유영봉) 등의 발표에 이어, 장영섭 연합뉴스 사장, 안희천 서울교대 교수 등의 동문들이 참석,‘중동의 건학이념과 한국교육’,‘중동 100년과 한국의 정치 사회’ 등 7개의 세션에서 토론을 벌였다.
  • 동포 100만명 평양서 기독교집회 연다

    오는 10월 동포 100만명이 모이는 대규모 기독교 집회가 평양에서 열린다. 8일 (사)우리민족교류협회(대표회장 장희열 목사, 이사장 송기학)에 따르면 이 협회와 조선그리스도교연맹(위원장 강영섭 목사)은 최근 중국 선양(瀋陽) 칠보산 호텔에서 ‘동북아 평화와 민족통일을 기원하는 100만인 초청 평양국제대성회’를 10월23∼28일 평양서 개최키로 합의했다.협회측은 이 자리에 남측의 우리민족교류협회 이사장 송기학 목사와 대표회장 장희열 목사, 본부장 백광진(잠실동교회)목사가, 북측의 강영섭 목사와 서기장 오경우 목사 등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성회는 국내 개신교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 평양대부흥운동(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 100주년을 1년 앞둔 시점에 열리는 것으로 북한 주민 100만명을 비롯해 해외의 한인 지도자와 동포 500명, 국내 각계 지도자 2500여명이 참가한다. 북한에서 열리는 단일 종교집회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숭문高 개교 100주년 기념식

    개교 100주년을 맞은 숭문고등학교(교장 서연호)가 8일 서울 마포구 대흥동 본교 운동장에서 김승호 보령그룹 회장, 장영수 건설문화원 이사장, 박홍섭 마포구청장 등 동문과 재학생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
  • 휘문고 9일 개교 100주년 잔치

    휘문고가 9일 오후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개교 100주년 기념 및 스승의 날 큰잔치’ 행사를 연다. 휘문고는 1906년 5월1일 민영휘(閔泳徽) 선생이 고종황제로부터 자기 이름 속 ‘휘’자를 딴 교명을 하사받아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터에 세운 휘문의숙(徽文義塾)에서 시작됐다. 동문으로는 국무총리를 지낸 최두선, 백두진, 이한기씨 외에 조중훈 전 한진 회장, 민경중 전 기아 명예회장, 김성수 전 오양수산 회장 등이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김영랑, 정지용, 홍사용, 박종화, 김훈, 유현목, 손석희씨가 동문이며 고병익 전 서울대 총장, 장충식 전 단국대 재단이사장, 이선근 전 문교부 장관 등도 휘문 출신이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동국대 개교 100주년 맞아

    동국대가 8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동국대는 이날 오전 10시30분 교내 만해광장에서 ‘건학 10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 기념식에서는 동국대 100년사 영상자료와 각계 명사의 축하메시지가 상영되며, 홍기삼 총장이 ‘민족의 화해, 종교의 화합’ 메시지를 담은 평화선언문을 읽을 예정이다. 또 미당 서정주 선생이 작고 전에 남긴 100주년 기념시도 낭독된다. 기념식에는 법전 조계종 종정, 박경조 성공회 주교, 최근덕 성균관 관장, 이혜정 원불교 교정원장 등 종교계 인사를 비롯해 김진표 교육부총리, 정운찬 서울대 총장, 알프 짐머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총장,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 이명박 서울시장,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오세훈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열린우리당 최재성 의원 등 외빈과 학생, 교직원 등 1500여명이 참석한다.12∼13일에는 ‘달빛 연등축제’ ‘동국인 한마당’ 등 재학생과 졸업생이 함께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만해 한용운 선생이 1906년 첫 입학생이었다. 서정주와 청록파 시인 조지훈도 동국대 동문이며 시인 신경림, 소설가 황석영, 동화작가 정채봉, 소설가 조정래가 문인요람의 맥을 이었다. 이덕화, 고현정, 최민식, 한석규, 김혜수, 이경규 등 연예인들도 연극영화과 출신이다.홍기삼 동국대 총장은 “개교 100년을 계기로 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만전을 기해 명문 3대 사학의 영광을 되찾겠다.”고 말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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