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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한반도의 길과 신한반도 체제/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열린세상] 한반도의 길과 신한반도 체제/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2014년 여름 이름도 생소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도착해 예상치 못한 행사 인파 속에 갇힌 적이 있다. 가이드로부터 ‘발트의 길’이란 행사에 대해 설명을 듣고 감동과 탄식을 쏟았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탈린에 도착한 8월 23일은 1939년 히틀러와 스탈린에 의해 비밀리에 ‘독소 불가침 조약’이 맺어진 날이다. 이 조약으로 인해 ‘발트 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는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소련에 편입됐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989년 8월 23일 세 나라의 국민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거쳐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 이르는 600㎞ 넘는 도로로 몰려나와 손에 손을 잡고 독립과 자유를 외쳤다. 당시 3국의 총인구 600여만명 중 200만명이 거리에 나와 손을 잡았다. 결국 1990년 리투아니아를 시작으로 1991년에는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가 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잃어버렸던 나라를 되찾은 것이다. 이 사건은 인간이 만든 가장 긴 띠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독소 불가침 조약이 맺어진 지 70년 그리고 인간띠를 만든 지 20년이 지난 2009년에는 ‘발트의 길’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올해는 30년 되는 해이기도 하다. 한반도도 발트 3국처럼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졌다. 분단의 역사는 이미 19세기 중엽부터 한반도가 강대국들 간의 충돌과 대립의 공간이었을 때부터 시작됐다. 한반도는 열강의 침탈과 일제 강점, 전쟁과 분단, 그리고 냉전을 오랜 기간 타자에 의해 경험하고 강요당한 고난의 산물이자 집합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는 스스로 이 땅의 소중함을 잊고 한반도가 중심이 아닌 주변부라는 지정학적 편견과 지리적 숙명성에 매몰돼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해 본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은 지정학적 전략을 고수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 왔다. 지금도 여전히 한반도 미래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강대국 손에 달려 있다는 우려와 서글픔이 여전하다. 한반도 미래를 제약하는 미중을 비롯한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를 극복하려면 발트 3국이 함께 손을 잡은 것처럼 무엇보다 분단을 넘어 남북이 손을 잡고 중심이 돼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만들어 나갈 사람이 중심인 새로운 한반도의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2019년은 3ㆍ1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다.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가 주도하는 100년의 질서로 ‘신(新)한반도 체제’를 제시했다. 지금까지 제시한 다양한 정책을 포괄해 새로운 100년을 통해 만들고 지속해 갈 ‘평화·번영의 통일 한반도’의 청사진을 제시한 국가 통치철학이자 국가 비전의 최상위 개념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신한반도 체제’는 분단 체제를 해체하고 남이 아닌 우리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고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한반도의 길임에는 분명하다. 27일은 판문점 선언 1주년 되는 날이다. 이날 인천 강화에서 강원 고성까지 비무장지대(DMZ) 인근 500㎞를 인간띠로 잇는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또 고성 지역의 비무장지대(DMZ) 내 평화 둘레길이 열려 일반 국민에게 개방된다. 비록 남북이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작은 발걸음을 통해 70년 동안 철조망에 갇힌 분단의 공간이자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처로 남아 있는 소외된 접경지역 DMZ와 그 인근이 개방된 통합의 공간이자 평화의 성지로 탈바꿈하길 기대해 본다. 남북의 미래이자 희망인 소년 소녀가 판문점에서 손을 이어 잡고 부산에서 신의주, 한라에서 백두까지 남북이 함께하는 한반도의 길이 연결돼 ‘발트의 길’ 기네스 기록을 경신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 본다. 남과 북이 진정으로 두 손을 맞잡는 그날이 오면 미국도 중국도 그 어떠한 외세도 더이상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갈라 놓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어려움에도 남북이 어렵게 잡은 손을 놓지 않을 용기를 가지고 남과 북의 사람이 DMZ를 넘나들 수 있다면 앞으로의 새로운 100년으로 나아갈 신한반도 체제는 결코 한국몽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 “한 달에 한 번 ‘동네 한 바퀴’… 교육·도시재생·일자리 광명 만들 것”

    “한 달에 한 번 ‘동네 한 바퀴’… 교육·도시재생·일자리 광명 만들 것”

    “행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원칙으로, 원칙을 잘 지켜야 합리적이고 공정한 행정을 펼칠 수 있습니다.” 박승원 경기 광명시장은 22일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행정을 추진하며 원칙을 준수해야 시민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또 “어떤 행정을 하더라도 시가 독단적이지 않고 시민 의견을 숙고해야 행정에 신뢰를 받는다”고 행정철학을 내비쳤다. 민선 7기 3대 역점시책으로는 ‘교육도시 광명’, 도시재생사업, 일자리 창출을 꼽았다. 광명시 미래 100년 청사진도 밝혔다. 다음은 박 시장과의 일문일답. -취임 10개월째다. 지금까지 펼친 시정을 돌아본다면. “두 가지를 느꼈다. 막상 와 보니 광명시 직원조직이 매우 체계가 잘 잡혀 있고 철저하게 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중요한 건 시민의 안전인데 안전행정이 촘촘하게 잘 짜여져 있다. 또 하나는 시민들의 민도가 매우 높아졌고 의식도 굉장히 높다. 어떻게 시민의사를 반영하느냐가 중요한 과제인데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모아 함께 참여해 일해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시장의 역할이라고 본다. 시민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시정구도를 만들겠다.” -민선 7기에서 핵심 시정목표 3가지를 든다면. “첫째, 교육도시로서 성장한 광명시를 만들고 싶다. 광명이 갖고 있는 도시특성이 상호 밀접돼 있고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새 시대에 굉장히 능동적인 시민들이다. 다양한 평생교육뿐 아니라 혁신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마을교육 공동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틀을 갖춰 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하고 있는 3대 무상교육과 혁신교육·평생교육을 잘해나가는 것이다. 둘째, 도시재생사업이다. 장기적 전략과 목표를 갖고 추진해야 하고 도시를 어떻게 바꿔 갈 것인지 새로운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뉴타운 지역에서 해제된 곳이나 새롭게 지역을 바꾸고자 하는 지역주민들과 주거 문제를 새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셋째, 일자리다. 청년과 노인·여성 일자리 영역은 사회 소외계층 대상이다.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를 갖출 수 있도록 공공 분야 일자리를 최대한 발굴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민간 분야 일자리엔 다양한 형태의 취업교육이 필요하다. 청년층과 경력단절여성들이 교육을 통해 민간기업에 취업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 -올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할 시책은. “현장중심 시정 세 가지를 챙기겠다. 먼저 직접 한 달에 한 번씩 동을 찾아가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과 대화하겠다. 청년들·역세권 시민들과 대화하며 간담회 등 수시로 시민들과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셋째, 토론회다. 금명간 현안인 구로차량기지 이전을 주제로 의견을 나눌 계획이다. 민간업체를 통해 토론을 다양하게 실시해 시민 의사를 반영할 예정이다. 500인 원탁회의를 오는 7월 다시 추진할 것이다. 또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았다. 올 한 해를 ‘역사의 해’로 삼아 역사의 의미를 되새기고 미래 100년을 준비하겠다. 지난해 11월 기념사업추진단을 조직하고 시민 100인위원회를 구성해 시민참여형 기념사업을 추진한다. 또 독립유공자와 유족에게 독립유공자 발자취 책자 발간과 독립유공자 가족 항일운동지역 방문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다.” -시민들이 서울 구로차량기지 광명 이전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해법은. “국토교통부와 허심탄회하게 다시 원점에서 논의하겠다. 시민 의사를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 애초 서울 구로구 민원으로 시작된 사업이기 때문에 차량기지를 이전하려면 광명시민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광명시 요구는 차량기지를 지하화해 달라는 것이다. 또 현재 노선을 5분 간격으로 다니는 대중교통노선이 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지하철역도 5개를 설치해 달라. 국토부가 광명시민의 이런 요구를 수용해야 사업을 원활하게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24일 국토부를 항의 방문하고 구로차량기지 이전에 대해 시민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광명동굴 일대를 레저휴양단지로 개발한다는데. “광명도시공사에서 추진하는 동굴 앞 17만평 개발은 관광명소로 개발계획 중이다. 사업공모에 들어가 곧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절차를 밟아 진행할 것이다. 이와는 별도로 광명동굴은 이제 방향을 바꿔 개발할 계획이다. 기존엔 동굴 안쪽에 대한 개발이었는데 이젠 소화동에서 광명동굴쪽 방향으로 바깥쪽을 숲속 공원처럼 조성해 시민 쉼터, 힐링 동굴로 조성하려고 한다. 이른바 ‘숲속 광명동굴’ 만들기다. 동측 출입구를 새로운 출입구로 만들어 관광객들이 다닐 수 있게 추진한다. 조만간 사업기획안이 나온다.” -최근 청년실업이 문제다. 청년을 위한 시책이 있나. “청년 살리기 정책을 정말 많이 준비하고 있다. 청년창업과 관련해 창업자금을 지원하고 지원센터도 짓고 있다. 청년들이 다양하게 모여 협력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 예정이다. 입사면접 때 양복정장 대여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6개월 취업교육도 준비 중이다. 지난해 창업지원과 청년정책팀을 신설했다. 청년정책 토론회나 청년창업자 간담회, 청년과의 대화를 추진해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 기초자치단체에선 최대 규모 ‘시장 직속 광명시 청년위원회 50명’을 구성했다. 청년 실태조사와 청년공모사업, 청년주택 등 청년에게 필요한 분야별 사업을 심도 있게 논의할 계획이다. 또 청년배당이나 ‘청년 생각펼침’ 공모사업, 청년창업자금 등 실업청년들에게 복지사업도 추진 중이다.” -광명 ‘내 일자리’ 창출 및 지원 방안은. “일자리는 복지다. 특히 청년과 노인,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를 발굴하고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취업교육을 강화하겠다. 2022년까지 4년간 공공 일자리 2만 5270명과 민간 일자리 3만 740명 등 모두 5만 6010명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삼았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비해 ‘일자리 지키기와 만들기·채우기·나누기’ 4개 분야로 나눠 중점 추진한다. 시장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구성해 광명 맞춤형 일자리 정책 추진에 대한 전문가 의견도 수렴 중이다. 또 구인·구직자 간 일자리 미스매치를 최소화하고 계층별 세밀한 맞춤 일자리 정책을 지원하겠다.” -광명 도심의 ‘서울시립근로청소년복지관’ 부지 활용 방안은. “지난번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났다.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우리 시와 서울시가 서로 윈윈할 방법을 모색 중이다. 서울시와 같이 구성하고 협약서도 체결하기로 했다.” -시민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 시정에 참여해야 지역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오래전부터 갖고 있는 제 신념이다. 시민이 답이다.” 글 사진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박승원 광명시장 프로필 당적:더불어민주당 출생:1965년 충남 예산 학력:한양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경력:현) 문재인 정부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중앙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전국자치분권개현추진본부 공동대표, 전국자치분권 민주지도자회의 공동대표 전) 제8~9대 경기도의원(2010∼2018),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의원, 2017 문재인 대통령후보 광명을공동선거대책위원장, 노무현대통령자문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운영위원, 백재현 광명시장 비서실장
  • 문 대통령 “친일잔재 청산 너무 오래 미뤄…이념 적대 지워야 100년 시작”(종합)

    문 대통령 “친일잔재 청산 너무 오래 미뤄…이념 적대 지워야 100년 시작”(종합)

    “‘친일잔재 청산’은 너무 오래 미룬 숙제, 공정한 나라의 시작”3·1절 기념사서 북미관계도 언급 “북미대화 완전타결 반드시 성사”“우리가 주도하는 100년의 질서…새 경제협력공동체 열 것”문재인 대통령은 1일 “친일잔재 청산은 너무나 오래 미뤄둔 숙제”라며 “잘못된 과거를 성찰해야 함께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마음에 그어진 ‘38선’은 이념의 적대를 지울 때 함께 사라질 것”이라며 “혐오와 증오를 버릴 때 우리 내면의 광복은 완성되고 새로운 100년도 비로소 진정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야말로 후손들이 떳떳할 수 있는 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문 대통령은 “친일은 반성해야 하고, 독립운동은 예우받아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가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친일잔재 청산”이라며 “이 단순한 진실이 정의이고, 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 공정한 나라의 시작”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아직도 사회에서는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는 도구로 빨갱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며 이를 변형된 색깔론으로 꼬집고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 친일잔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좌우의 적대, 이념의 낙인은 일제가 민족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사용한 수단이었다”면서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다.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빨갱이는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다”고 설명했다. ‘빨갱이’라는 단어가 해방 후에도 친일청산을 가로막는 도구가 됐다면서 “많은 사람이 ‘빨갱이’로 규정되어 희생됐고,가족과 유족들은 사회적 낙인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다”고 떠올렸다. 문 대통령은 이를 ‘우리 마음에 그어진 38선’이라고 규정하고 “혐오와 증오를 버릴 때 우리 내면의 광복은 완성되고 새로운 100년도 비로소 진정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문 대통령은 “과거의 상처를 헤집어 분열을 일으키거나 이웃 나라와의 외교에서 갈등 요인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는 모두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친일잔재 청산도, 외교도 미래 지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체제의 청사진도 함께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의 한결같은 의지와 긴밀한 한미공조, 북미대화의 타결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바탕으로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했다. 이어 “신한반도체제는 이념과 진영의 시대를 끝낸, 새로운 경제협력공동체”라면서 “한반도에서 ‘평화경제’의 시대를 열기 위해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방안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군사적 적대행위 종식과 함께 남북이 합의한 ‘군사공동위원회’를 언급하면서 “비핵화가 진전되면 남북 간 경제공동위원회를 구성, 남북이 혜택을 누리는 경제적 성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남북관계 발전이 북미관계의 정상화와 북일관계 정상화로 연결되고 동북아 지역의 새로운 평화안보 질서로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3·1 독립운동의 정신과 국민통합을 바탕으로 신한반도체제를 일궈 나가겠다”며 “한반도 평화는 남북을 넘어 동북아와 아세안, 유라시아를 포괄하는 새로운 경제성장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하노이 담판 결렬에 대해 “더 높은 합의로 가는 과정”이라며 “우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는 많은 고비를 넘어야 확고해질 것”이라며 “베트남 하노이에서의 2차 북미정상회담도 장시간 대화를 나누고 상호이해와 신뢰를 높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두 정상 사이에 연락사무소 설치까지 논의가 이뤄진 것은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중요한 성과였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지속적인 대화 의지와 낙관적인 전망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한반도의 하늘·땅·바다에서 총성이 사라졌다”며 “이제 곧 비무장지대는 국민의 것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또 “우리는 그곳에서 평화공원을 만들든, 국제평화기구를 유치하든, 생태평화 관광을 하든, 순례길을 걷든, 자연을 보존하면서도 남북한 국민의 행복을 위해 공동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문 대통령은 “그것은 우리 국민의 자유롭고 안전한 북한 여행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산가족과 실향민이 단순한 상봉을 넘어 고향을 방문하고 가족 친지를 만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문 대통령은 아울러 “통일도 먼 곳에 있지 않다”며 “차이를 인정하며 마음을 통합하고 호혜적 관계를 만들면 그것이 바로 통일”이라고 짚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0년 우리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 인류의 평화와 자유를 꿈꾸는 나라를 향해 걸어왔다”며 “새로운 100년은 진정한 국민의 국가를 완성하고, 과거 이념에 끌려다니지 않고 새로운 생각과 마음으로 통합하는 100년”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신한반도체제는 우리가 주도하는 100년의 질서로, 새로운 100년은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100년이 될 것”이라면서 “국민 모두의 힘을 모아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재정특위 “9억 이상 고가 1주택자 장기보유 혜택 축소”

    재정특위 “9억 이상 고가 1주택자 장기보유 혜택 축소”

    고가 1주택자 연간 공제율 축소하거나 보유기간 현 10년서 늘리는 방안 제안 경유세 인상·환경부담금 강화 검토해야 중소·중견기업 상속세 완화 제도 권고 “중장기 로드맵 없는 용두사미” 비판도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가 26일 고가 1주택자에 대한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 축소 등을 담은 ‘재정개혁보고서’를 발표하고 공식 활동을 마무리했다. 100년을 내다보는 재정 개혁 로드맵을 제시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지만, 내놓은 결과가 시원치 않아 ‘용두사미’라는 비판이 나온다. 재정특위는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투기 억제를 위해 공시가격 9억원 이상 고가 1주택자에 대한 장기보유 특별공제의 공제 한도를 현행 80%로 유지하되 연간 8%인 공제율을 축소하거나 최대 공제를 받기 위한 보유 기간을 현행 10년에서 늘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 공시가격의 시가 반영 비율을 현실화하고, 이원화된 평가기관을 일원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상속세는 물려주는 재산 규모에 따라 세율이 결정되는 유산세 방식에서 상속받는 이들이 실제 받는 액수에 따라 세율이 결정되는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도록 권고했다. 특위는 이 과정에서 세수가 줄어들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과표구간 조정과 공제제도 개편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중소·중견기업에서는 과중한 상속세가 경영에 부담이 된다는 의견을 고려, 이를 완화하는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류세에 대해서는 “미세먼지 저감, 환경보호를 위해 친환경적 세제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휘발유·경유 상대가격을 점진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정리해 사실상 경유의 유류세를 인상하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동시에 “원전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외부 비용이 과세 체계에 반영되도록 제도를 합리화해야 한다”, “생활 전반에 걸쳐 발생하는 폐기물 등으로 인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환경부담금 강화를 검토해야 한다” 등의 의견을 냈다. 일부 개혁 과제의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지난해 4월 9일 출범 당시 재정·조세 정책의 틀을 바꾸겠다는 목표에 비해 결과물이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정특위에는 예산·세제 분야 전문가 30명이나 참여했지만 지난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 확대 등을 놓고 실제 칼자루를 쥔 기획재정부와 갈등하면서 위상이 추락했다. 결국 당초 목표한 중장기 재정개혁 로드맵은 고사하고, 2023년까지 포용적 사회보장체계 구축을 위해 필요한 재원 332조원 마련을 위한 청사진도 제시하지 못했다. 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김용원 팀장은 “주택 관련 세제에 대해선 비교적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당초 목표로 한 중장기 계획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세종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SNS 타고 퍼지는 한류…전세계로 확장되는 문화영토

    SNS 타고 퍼지는 한류…전세계로 확장되는 문화영토

    “한류는 서방으로 밀려왔다 밀려나가는 ‘물결’이라기보다 점점 더 확장하고 있는 ‘물줄기’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 한류축제 ‘KCON’을 본 뒤 쓴 기사의 한 대목이다. 방탄소년단(BTS), 트와이스와 같은 아이돌 그룹이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많은 이들이 한국 영화를 즐긴다. 오랜 전통을 지닌 서양에 비해 한국의 문화는 짧은 기간 급속히 성장했다. 고속성장을 가리키는 ‘한강의 기적´처럼, 문화 분야에서도 이른바 ‘한류의 기적’을 일군 셈이다. 전 세계에 통하는 거대한 흐름이 되기까지, 지난 100년은 어땠을까. 또 앞으로 100년 물결은 어떻게 흐를까. ●지난 100년, 경제성장 따라 문화도 성장 ‘문화’라는 단어는 서양 문물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는 것이 관련 분야의 대체적인 인식이다. 1884년 한성순보 ´아세아주 총론´에 “로마의 문화는 그리스에서 취하였고 그리스의 문화는 아시아의 터키 등 여러 나라에서 취하였다”라는 표현이 처음 쓰였다. 문화가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켠 때는 100년 전인 3·1 만세 운동 이후다. 신문과 잡지를 통해 외국 사상이 들어오면서 교육진흥운동, 문맹퇴치를 비롯한 국어운동이 전개됐다. 문맹률이 낮아지면서 사람들은 문학, 연극, 영화, 음악, 미술, 체육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문화 운동에 눈 떴다. 한데 일제가 이를 막으려 ‘문화’라는 단어를 거론한 것이 흥미롭다. 1919년 8월 3대 조선총독으로 부임한 사이토 마코토는 이전 총독들의 통치 방식과 다른 슬로건을 내세웠다. 그것이 이른바 ‘문화정치(통치)’다. 광복 이후 문화의 흐름은 신문·방송·잡지에서 꽃을 피웠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할 무렵, 한국어로 발행되는 일간지는 현 서울신문의 전신인 ‘매일신보’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해 말까지 무려 40종 남짓한 신문이 새로 창간됐다. 이해 8월 26일엔 옛 소련군이 38도선 이북의 방송중계 전용선로를 끊어버리면서 남북한의 방송은 단절됐고, 서울에 진주한 미군은 9월 15일자로 경성중앙방송 등 남한의 방송국을 모두 접수했다. 문화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는 잡지의 흥행을 불렀다. 휴전 직후 피란지인 부산과 대구에서 창간한 ‘학원’을 비롯한 잡지들이 서울로 발행지를 옮겨가며 잡지의 르네상스를 구가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문화 예술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문화 관련 법률이 제정되는 등 ‘문화입법’이 활발해졌다. 특히 경제 성장을 타고 문화 정책이 손질되며 기틀이 잡혔다. 1960년 국립극장 설치법을 시작으로 1961년 공연법, 1962년 문화보호법, 1965년 지방문화사업조성법, 1966년 영화법, 1967년 음반에 관한 법률 등이 줄줄이 제정됐다. 1968년 7월에는 문화공보부가 발족하며 우리 정부에도 ‘문화’를 담당하는 부처가 탄생했다. 1962년부터 1981년까지는 네 차례에 걸친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과를 거두며 국민총생산 성장세가 연평균 9.3%, 수출은 연평균 39.9%씩 확대되던 시기다. 1978년엔 국민소득이 1000달러를 넘어섰다. 경제 성장으로 대중의 문화 욕구가 커지면서 대중문화가 꽃을 피웠다. 상업 라디오와 TV 방송국이 개국하고 주간지가 널리 보급됐다. ‘대중문화’라는 단어가 생겨난 것도 이때다. 경제 사정이 좋아지자 레저 문화도 형성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 ‘배낭여행’이란 단어도 생겼다. ●이후 100년… 신흥 시장 열고 기존 시장 지켜야 우리 문화·산업계의 가장 큰 화두인 ‘한류’는 한국 문화의 향후 100년을 내다보기 위한 주요한 키워드로 꼽힌다. 한국 문화의 외국 진출은 1986년 아시아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 계기가 됐다. 국제적인 스포츠 이벤트에 맞춰 국공립 예술단체들은 국가 이미지 제고를 위해 해외 무대에 연이어 올랐고 이후 민간 차원의 교류로 이어졌다. 이런 교류의 역사가 ‘상품’으로 결실을 본 대표적인 사례는 ‘난타’였다. 1999년 한국 공연으로는 처음으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소개된 ‘난타’는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서 1년 6개월간 장기공연되는 등 해외 진출의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됐다. ‘한류’는 1999년 중국 베이징의 한 방송기획사가 한국 가요의 홍보용 CD에 붙인 중국어 타이틀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1997년과 1998년 한국 TV 드라마가 중국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는데, 한국 인기 가수들의 현지 공연이 성공을 거두면서 현지 신문들이 한국의 대중가요, TV 드라마, 영화, 패션을 포함한 대중문화를 ‘한류’로 부르면서 일반명사가 됐다. KBS가 2002년 방영한 TV 드라마 ‘겨울연가’는 일본에 한류 열풍을 부른 기폭제였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중국의 한한령, 과거사 문제로 인한 일본의 혐한론 등 악조건 속에서도 한류의 흐름은 여전히 계속됐다. 중국의 한류가 한한령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일본과 동남아 국가를 중심으로 아시아권에서의 한류는 지속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 빌보드 1위와 유엔 연설 등 지난해 문화 뉴스의 중심에 섰던 방탄소년단(BTS)은 이제 한류가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 문화산업의 메인스트림인 북미권에서도 의미 있는 흐름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과거와 달리 한류가 지속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플랫폼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음악 콘텐츠는 이제 음반이 아닌 네트워크 플레이어나 유튜브를 통해 유통된다.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도 영상 콘텐츠 소비 방식을 새로이 만들고 있다. 누구든 플랫폼만 있으면 문화를 유통할 수 있고,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들은 모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이를 재공유한다. 세계가 주목한 우리의 대중문화는 이러한 플랫폼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더불어 꾸준히 증가하는 세계 각국의 한류 커뮤니티들은 언제든지 우리 콘텐츠를 즐길 준비가 돼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발간하는 ‘지구촌 한류현황 보고서’의 한류 커뮤니티 현황을 보자. 2014~2016년 매해 200여개가 새롭게 생겼고 지난해부터는 한류의 확장세가 약했던 북미와 유럽지역에서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17년까지 감소세였던 일본의 한류 커뮤니티도 다시 늘고 있어 트와이스와 BTS 등에 주목하는 일본 청년층의 호감을 확인할 수 있다. 음반 구매와 공연 관람에 익숙한 일본 젊은층이 한국 아이돌 관련 굿즈(상품)를 구매하거나 공연장을 찾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는 의미다. BTS의 성공 역시 전 세계 한류 커뮤니티의 증가와 맞물린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당장은 한국문화에 대한 접촉도가 크지 않지만, 잠재적으로 한류를 받아들일 나라들에 대한 관심도 필요한 때다. 예컨대 인구가 많고, 모바일 이용도가 높은 인도네시아는 향후 한류의 확산 가능성이 매우 큰 나라로 지목된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조사연구팀의 남상현 박사는 “정책적으로 정부 차원에서는 기업이 진출하기 어려운 신흥 시장을 개척해야 하고, 기업은 기존 시장에 집중하는 이원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시흥시승격 30주년-하] 염전에서 시작한 산업도시가 4차 산업혁명 전진기지로… MTV 거북섬 개발 박차, 해양레저 종합 관광 산업 육성

    [시흥시승격 30주년-하] 염전에서 시작한 산업도시가 4차 산업혁명 전진기지로… MTV 거북섬 개발 박차, 해양레저 종합 관광 산업 육성

    ●염전에서 시작한 산업도시, 4차 산업혁명 전진기지로 시흥밸리 청사진… 연구기관·기업 등 집결 기대 시화스마트허브(당시 시화산업단지)는 1986년부터 조성돼 1987년 4월 첫 삽을 떴다. 시화스마트허브는 한국산업단지공단에서 관리하는 국가산업단지의 하나다. 첫째 수도권 신규 공업용지 수요에 대한 대비와 수도권 내부적격 공장에 대한 이전 용지 제공, 둘째 미래지향적인 지원체계를 갖춘 공업단지(중소기업종합단지)로 개발, 셋째 국토확장에 의한 효율적 공간 창출로 서해안 공업벨트 형성 촉진을 목표로 개발을 시작했다. 이는 인접한 반월산업단지 분양이 완료된 상태에서 수도권 내 잔여공장을 더 이상 이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인접한 시화지구를 연계해 개발하고자 한 것이었다. 따라서 반월산업단지가 수도권에 있던 공해성 공장 분산 수용을 위해 중소기업 전문단지로 형성된 것과 마찬가지로 시화스마트허브도 중소기업 전문단지로 조성됐다. 시흥스마트허브로 대표되던 산업도시 시흥은 이제 4차 산업혁명의 전진기지로서 역할을 확고히 하고 있다. 시흥은 서울대와 시흥시 시화산업단지로 이어지는 3S로 시흥밸리를 완성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는 서울대와 협력해 배곧신도시를 스마트시티로 발전시킨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축구장 90개 크기인 66만2000㎡ 서울대 시흥캠퍼스가 그 중심에 있다. 해당 캠퍼스는 대학원 중심의 연구단지다. 연구자들은 연구성과를 스마트시티 내에서 직접 적용 시험해 볼 수 있다. 4차산업혁명시대는 산학협력을 통한 시너지가 각국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것을 선진국들은 이미 알고 준비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그 첫 시작을 시흥에서 열어나가게 됐다. 대우조선해양 시험수조연구센터가 지난해 8월과 12월 개소한 데 이어 시흥시 배곧신도시 20만평에 서울대 4차 산업혁명 중심 연구기관들이 속속 들어오게 된다. 국내 재계 서열 1~3위인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은 서울대 시흥캠퍼스에 자율주행 연구 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자율주행은 4차산업혁명의 꽃이다. 지난해 11월 시에서는 카셰어링용 자율주행차 시연행사가 열렸다. 시민 100여명은 배곧신도시에서 직접 자율주행차에 올라 4차산업혁명의 물결을 체험했다. ●천혜의 자연환경 서해안권 관광 중심지로… MTV 거북섬 개발 박차, 해양레저 종합 관광 산업 육성 시흥의 개발사업은 1992년 ‘공영개발사업소’ 설립으로 가속화됐다. 이후 1992년에 월곶공유수면 매립사업과 은행지구택지개발사업이 기공되면서 대규모의 택지개발사업이 본격화됐다. 1994년 1월 24일 시흥시 오이도와 옹진군 대부면 방아머리를 잇는 동양최대규모 시화방조제 끝막이 공사가 마무리됐다. 이날 연결된 시화방조제는 안산·시흥시와 옹진·화성군 등 1도·2시·2군을 연계개발하기 위한 시화지구간척종합개발사업 1단계 사업의 핵심공정이었다. 1987년 6월부터 1994년 2월까지 6년이 넘는 공사 끝에 시화호라는 거대한 인공호수가 탄생했다. 방조제 건설로 시화호, 방조제도로, 시화호북측간석지(멀티테크노밸리, MTV)와 같은 수변관광자원과 개발가용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시화호는 한때 오염호라는 불명예를 극복하고 현재까지 지속적인 수질개선을 통해 시흥 관광지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시화호에서는 매년 여름 요트경기가 열리고 있다. 북측 간석지는 새로운 미래도시 신화가 될 멀티테크노밸리(MTV) 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해 11월 22일에는 시화MTV 내 거북섬에 들어서게 될 세계 최대 인공 서핑파크를 위한 협약식이 진행됐다. 2020년 개장을 목표로 첫 삽을 뜨게 된 시흥 인공서핑파크는 아시아 최초,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더불어 오는 2023년까지 인공서핑장을 비롯해 호텔·컨벤션·마리나·대관람차 등을 함께 조성해 서해안권 해양레저 중심축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시승격 30주년을 맞은 시흥시는 여전히 성장 중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년간 시흥시는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시흥시는 2019년을 50만 대도시 진입 원년으로 삼고 자부심을 갖는 도시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향후 100년 모습이 기대되는 시흥시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고가 철거하고 탁 트인 영등포 만든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 고가 철거하고 탁 트인 영등포 만든다

    서울 영등포구는 지난 15일 열린 제23회 구민의 날 행사에서 민선 7기 비전을 발표했다고 17일 밝혔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그동안 영등포1번가 등을 통해 모인 구민 제안 3945건, 미래비전위원회의 숙의과정을 거쳐 나온 의제들을 종합해 민선 7기 미래비전과 목표를 제시했다. 영등포구는 ‘구민과 함께, 더 나은 미래, 탁 트인 영등포’를 민선 7기 구정의 목표로 삼는다. 분야별로는 꿈이 실현되는 교육도시, 조화로운 성장 경제도시, 쾌적한 주거 안심도시, 더불어 잘사는 복지도시, 소통과 협치의 민주도시 등 5대 목표가 제시됐다. 우선 영등포 고가를 철거하고, 고가가 있던 자리에는 녹지공간을 조성한다. 또 불법 노점상으로 몸살을 앓는 영등포역 주변 영중로를 보행자 중심거리로 바꾼다. 아울러 문래동에는 문화예술복합 공연장을 조성하고 문화예술종합지원센터를 건립한다. 생활 속 문제 해결을 위해 재개발 해제지역에 대한 관리와 폐쇄회로(CC)TV확충으로 생활밀착형 치안을 강화하고 쓰레기, 주차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교육환경 조성을 바라는 구민들의 요구도 반영됐다. 창의예술교육센터를 설립하고 융합 인재교육센터를 확대 운영해 미래 인재를 육성한다. 학교별 맞춤형 통학로 개선사업으로 안전한 교육환경을 만들고 권역별 도서관 확충, 작은 도서관 시설을 개선한다.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를 구축해 좋은 일자리, 더불어 잘사는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책도 추진된다. 지역 화폐 발행, 전통시장 지원, 스마트메디컬특구 사업을 추진하고, 청년일꿈터와 청년희망복지타운을 조성해 청년들이 자신의 미래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계획이다. 또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 권역별 맘든든센터 설치, 어르신과 장애인 일자리확대도 정책에 포함됐다. 마지막으로 구민과 함께하는 영등포를 만들고자 열린 소통 창구인 영등포 1번가와 영등포신문고를 지속적으로 운영한다. 또 영등포 100년 미래비전위원회와 함께 구민의 제안을 다듬고 실현방안을 검토한다. 감사인력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공익제보신고처리센터를 만들어 행정의 신뢰도 높일 예정이다.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은 “영등포의 변화와 도약은 저 혼자가 아닌 구민 모두가 함께할 때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글로벌 인사이트] “볼펜심도 못 만드나” 3년전 질책… 패권 노린 中 야심 불씨 됐다

    [글로벌 인사이트] “볼펜심도 못 만드나” 3년전 질책… 패권 노린 中 야심 불씨 됐다

    거세지는 중·미 무역전쟁의 도화선이 된 게 2015년 발표된 중국의 첨단제조업 육성정책인 ‘중국제조 2025’다. 지난 6일부터 퍼붓기 시작한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폭탄이 정조준하고 있는 분야가 바로 ‘중국제조 2025’ 산업들이다. 이 모든 시작의 발단은 볼펜심이었다. 2015년 리커창 총리가 “중국 기업들이 볼펜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느냐”고 질책한 사건의 파장은 컸다. 중국은 매년 400억개의 볼펜을 생산하며 전 세계 공급량의 80%를 점유하고 있지만 정작 핵심 기술인 볼펜심은 제조하지 못해 일본, 독일에서 90%를 수입한다. 비행기와 자동차도 만드는 국가이지만 고강도 스테인리스강 볼펜심을 만들지 못해 수입하는 신세인 셈이다. ‘중국제조 2025’가 탄생하게 된 계기다. 미국 통상 공세의 빌미가 된 것도 ‘중국제조 2025’다.‘중국제조 2025’는 로봇부터 바의오의약까지 10개 첨단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육성 전략이다. ‘중국제조 2025’가 무역전쟁의 계기가 된 것도 그 속에 담긴 중국의 야심 때문이다. 독일의 성장 전략인 ‘인더스트리 4.0’을 벤치마킹한 ‘중국제조 2025’의 속내는 3단계 발전 전략이 완성되는 2045년에 중국이 세계 패권을 쥐겠다는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는 분석한다.‘중국제조 2025’를 완성하는 목표로 삼은 2045년에서 불과 4년 뒤인 2049년은 중국 공산당 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공산당 정부 수립 전까지 외세에 시달렸던 중국은 아편전쟁 발발 20년 전인 1820년 청나라 때만 해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3%를 차지했다. 천하를 호령했던 대국이 홍콩, 마카오 등의 영토를 외세에 하나씩 떼어 주며 ‘잠자는 거인’이라 조롱받는 신세로 전락했던 시절을 공산당은 뼛속 깊이 각인하고 100년 뒤에는 세계 패권을 다시 쥐겠다는 장기 계획을 세운다. 중국인의 입으로 한 번도 발표된 적이 없는 이 장기 목표가 ‘중국제조 2025’로 가시화된 것이다. ●스스로 과대평가하는 中정서도 영향 지린대학 경제금융대학원 리샤오(李曉·55) 원장은 지난달 열린 졸업식 축사에서 “지난 100여년 동안 우리는 서방의 침략을 받았고, 그 압박이 너무 오래돼서 마음속에 스스로 대국이 되고자 하는 정서가 절박하게 자리를 잡았다”며 “개혁·개방 40여년 동안 이뤄진 중국의 경제발전은 비범한 성취를 이룬 것이었고 어떤 영역에서는 세계의 선두 그룹에서 달리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거국적인 자부심을 갖게 됐으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정서도 자리를 잡았다”고 분석했다. 리 원장은 중·미 무역전쟁에서 교훈을 얻어야 하고 미국에 대해서도 더 연구해야 한다며 축사를 마무리했다. 중국인 스스로 과대평가하는 정서는 ‘신(新)4대 발명’과 중·미 무역협상 중에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끈 100년 전과 후의 비교 사진으로 압축된다. ‘신4대 발명’이란 종이, 화약, 인쇄술, 나침반의 고대 4대 발명에 견주어 고속철도, 모바일 결제, 공유자전거, 전자상거래를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신4대 발명의 원천 기술은 모두 중국의 것이 아니다. 지난해 5월 베이징 외국어대에서 20개국의 젊은이들에게 중국에서 자국으로 가져가고 싶은 기술을 설문조사했고 그 결과 고속철, 모바일 결제, 공유자전거, 전자상거래가 응답 상위권에 올랐다. 이후 중국 매체에서는 이를 ‘신4대 발명’이라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계 최초의 고속철은 1964년 일본 신칸센이며 모바일 결제도 1997년 핀란드에서 완성됐다. 최초의 공유자전거는 1960년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출현했고 전자상거래도 1997년 영국인 마이클 올드리치가 발명했다고 BBC는 ‘팩트 폭력’을 날렸다. 물론 현재 신4대 발명이 가장 거대한 규모로 활용되는 곳은 중국이 맞다. 2차 미·중 무역협상을 위해 류허(劉鶴·66) 중국 부총리가 지난 5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중국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끈 사진 한 장이 있다.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 중국 협상 대표단과 미국 대표단을 100여년 전 신축조약 협상단의 사진과 비교한 것이다.●100년 전 신축조약 사진 퍼뜨린 中공산당 신축조약은 1901년 청나라가 영국·미국·러시아·독일·일본 등 11개국과 외세 배격을 주장했던 무장단체인 의화단 사건 처리를 위해 맺은 것이다. 청나라는 독일과 일본에 사죄사를 파견하고 막대한 규모의 배상금을 지불하며 외국 군대 상주를 허용해야만 했던 불평등조약이었다. 서구 열강의 중국에 대한 통치를 강화한 계기가 바로 신축조약인데 당시 사진 속 청나라 관리들은 흰 수염이 성성한 노인들이고 서구 열강의 대표는 콧수염을 멋있게 기른 청장년들이다. 하지만 100여년이 흐른 뒤 미국 대표단은 허리가 굽은 노인인 데 비해 중국 대표단은 젊다는 사실이 중국의 힘을 보여 준다고 공청단은 주장했다. 이 사진도 팩트가 틀린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중국 무역 협상대표단과 마주 앉은 미국 측은 실질적인 협상 파트너가 아니라 공화당 하원 세입위원회 의원들이었다. 거듭된 협상에도 별다른 미국 측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자 중국 내부에서도 ‘중국제조 2025’에 대한 재고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터넷 매체 펑파이(澎湃)는 “‘중국제조 2025’가 무역전쟁을 촉발시킨 중요 계기가 됐다”며 “초심은 좋지만 효과는 충분히 따져 볼만하다”고 보도했다. ‘중국제조 2025’가 정부에 의한 ‘경제 지도’의 성격이 짙어지면서 국제적으로 민감한 반응을 낳았다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가 ‘중국제조 2025’를 앞세워 시장을 선도하고 열정을 북돋우는 효과도 있지만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적의와 위기감을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앙정부는 ‘중국제조 2025’를 ‘시장 주도 정책’이라고 했지만 중국의 현실적인 국정 수행은 지방정부의 보조금과 지원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펑파이는 정부가 기업에 대해 직접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면 예산 낭비는 물론 기업의 혁신 동력을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정부가 특정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 ‘시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못박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선 “중국제조 2025는 낡은 모델” 실제로 후저우시에서 지난해 ‘중국제조 2025’ 보조금의 가장 큰 수혜자는 첨단기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밀크티 제조업체 샹퍄오퍄오(香)였다. 샹퍄오퍄오는 후저우시 ‘중국제조 2025’ 전체 예산의 10%에 해당하는 1억 6560만 위안(약 279억원)의 보조금을 받아 새로운 ‘스마트’ 밀크티 공장을 세웠다. 미국에서는 ‘중국제조 2025’가 잘 짜인 전략으로 보고 있지만 실제 적용 과정에서는 많은 약점이 나타나고 있다. 대만 경제연구원의 루쥔웨이는 “잘 의도된 정책도 실행 과정에서 왜곡될 수 있는데 ‘중국제조 2025’는 낡은 모델”이라고 밝혔다. ‘중국제조 2025’는 지방정부에게는 지역산업 청사진 정도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베이징 사범대의 중웨이 교수는 “중앙정부는 인력, 예산, 자원의 분배에 있어 ‘중국제조 2025’와 관련해 어떤 관여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샹진웨이 교수는 ‘중국제조 2025’ 내용 가운데 외국 기업이 중국에 기술을 이전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조항이 없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국적에 따른 차별이 없어서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칙에 부합하므로 제재를 받지도 않는다고 역설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50년 숙원 옥정호 관광도로 첫발… 300만 관광임실 연다

    [자치단체장 25시] 50년 숙원 옥정호 관광도로 첫발… 300만 관광임실 연다

    심민 전북 임실군수는 요즈음 ‘관광 임실’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300만 관광시대’를 실현해 ‘모두가 행복한 스마트 강소도시’를 만드는 게 목표다. 특히 지역의 반세기 숙원인 ‘옥정호 수변 관광도로 개설사업’이 올해부터 첫발을 내딛게 돼 이에 맞는 관광종합개발사업을 서두르고 있다. 13일 군수실에서 만난 심 군수는 “우리 임실 발전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천혜의 관광자원을 상품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8년은 관광 임실로 발돋움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힘줘 말하는 그의 얼굴에 열정과 자신감이 넘쳤다. 올해는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인재 양성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다. 심 군수는 “그동안 임실은 낙후되고 소외된 변두리로 치부됐으나 지난 3~4년 동안 자존감과 자긍심이 되살아나 지역에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며 “임실이 보유한 모든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재선 도전 의지도 감추지 않았다. 다음은 심 군수와 일문일답이다.→임실군정의 추진 방향과 역점 사업은. -올해는 미래 임실 건설을 위한 새로운 성장 기반을 재설계하는 데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희망농업, 맞춤복지, 지역경제 등 7대 중점 시책과 10대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할 방침이다. 역점 사업은 임실읍 도시경쟁력 강화, 옥정호 관광개발, 임실N치즈축제 차별화 등이다.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직결된 사업은. -문화와 복지, 농업 및 생태환경 등 분야별로 필요한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문화분야는 해피문화복지센터와 청소년 문화의 집 건립공사를 착공했다. 복지사업으로는 노인들을 위한 종합시설을 갖춘 복지관을 신축한다. 치매환자 조기발견 등을 위해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치매안심센터도 건립된다. 식품안전과 운영의 효율성을 반영한 과일가공공장 건립사업도 한창이어서 농가소득 증대가 기대된다.→300만 관광종합개발계획의 청사진은. -지난해 45만명의 관광객이 찾은 임실N치즈축제의 성공에 힘입어 올해를 기점으로 300만 관광시대의 물꼬를 트겠다. 우선 올해부터 2027년까지 10년간 임실 관광산업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핵심 전략을 수립해 국책사업 발굴의 토대를 마련할 계획이다. 지역의 핵심 자원인 옥정호, 성수산, 임실N치즈를 활용한 글로벌 관광명소 거점을 구축하고 융복합 관광자원을 개발하겠다. 임실의 10년 관광정책 기본 계획을 내실 있게 수립하는 게 과제다.→옥정호 종합관광개발은 어떻게 추진되나. -상수원 보호구역이 해제되면서 옥정호가 임실 관광을 이끌어 가는 주역이 됐다. 섬진강변 관광자원을 활용해 수상과 산림, 문화를 아우르는 섬진강 에코종합관광특구를 조성하겠다. 에코뮤지엄 조성사업은 한창 진행 중이다. 붕어섬 에코가든과 관광경관도로 조성사업은 연초 계약을 맺어 착공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물문화 둘레길 조성사업도 실시설계 용역을 진행 중이어서 하반기에 발주가 가능하다. 옥정호는 체류형, 친환경 관광거점으로 급부상할 것이다.→옥정호 개발을 둘러싸고 정읍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 -옥정호 수상레포츠단지는 친환경·친수적으로 개발된다. 2016년 11월 전북도, 정읍시, 임실군, 순창군이 맺은 상생협력 합의서에 입각해 옥정호 수변 및 수면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정읍시의 식수원인 옥정호 수질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정읍시의 반발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는 이유다. 정읍시가 진정 시민들의 식수 오염이 걱정된다면 정읍시 지역에 있는 칠보취수구 상류에 산재된 축사 등 각종 오염원과 수변 관리 대책을 수립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오수의견 설화를 활용한 관광개발 방안은. -1000만 반려동물 시대와 문재인 정부의 반려동물 정책에 맞춰 전국 최초로 조성된 오수의견 관광지를 적극 활성화하겠다. 오수의견은 고려시대 최자가 지은 보한집에 기록돼 있는 데 술에 취한 주인을 화마로부터 구해낸 개 얘기다. 오수개는 진돗개, 풍산개, 삽살개 등과 함께 토종개로 꼽힌다. 오수개는 ‘주인을 구한 충견’으로도 유명하다. 반려동물의 입양, 놀이, 미용, 장례까지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테마공원을 조성하겠다. →성수산 관광지 개발계획은. -고려와 조선의 건국 설화를 담고 있는 성수산을 종합 힐링타운으로 만들겠다. 뛰어난 역사적 가치를 살려 국민생태관광지로 가꾸겠다. 왕의 숲, 생태관광지, 태조 희망의 숲을 조성한다. 성수산을 군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 →지역인재 양성을 위해 개원한 봉황인재학당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가 크다. -농촌지역 교육환경은 매우 열악하다. 인구유출의 원인 가운데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 지역인재를 배출할 수 있는 우수한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올해 첫 신입생을 맞은 봉황인재학당은 주민들의 기대와 호응 속에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방과 후 중학생을 대상으로 서울과 인근 도시에서 유명 강사를 초빙해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을 집중적으로 교육한다. 학생 안전을 위해 버스·택시를 이용한 통학서비스와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급식이 지원된다. 봉황인재학당이 많은 인재를 배출해 임실군민의 자부심이 되도록 인재양성의 요람으로 육성하겠다.→지난해 임실N치즈축제가 대박을 터뜨렸다. 발전 방안은. -지난해 세 번째로 열린 임실N치즈축제는 45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와 대성공을 거두었다. 400억원에 이르는 지역경제 파급 효과도 거뒀다. 청정 임실 이미지의 확산 효과도 기대 이상이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의 반응이 너무 좋아 가을에만 개최했던 임실N치즈축제를 봄과 가을에 두 번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 이를 위해 임실치즈테마파크 일원에 사계절 장미원을 조성 중이다. 봄에는 장미, 가을에는 국화와 함께하는 치즈축제를 개최하겠다. 지난해 미흡한 점으로 지적된 주차, 교통관리, 먹거리 문제를 대폭 보완하겠다. →재선 도전 계획은. -임실은 민선 5기까지 모든 민선군수가 중도에 낙마한 아픔을 안고 있다. 앞으로 남은 임기를 무사히 마쳐 임실이 ‘군수들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걷어 내겠다. 지난 4년간 오직 군민들만 바라보고 열심히 달려왔다. 이제 어느 정도 지역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으니 미래 100년을 책임질 탄탄한 기틀을 다져야 한다. 군민들의 선택에 앞날을 맡기겠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평균 81개월 집권하는 경제대통령, 그의 한마디에 세계가 들썩

    평균 81개월 집권하는 경제대통령, 그의 한마디에 세계가 들썩

    2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이사가 차기 연준 의장으로 공식 지명됐다. ‘양적 축소’를 시작한 각국은 파월 의장이 펼칠 통화정책에 주목한다. 연준 의장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의 수장으로, 한국은행 총재와 비슷한 존재다. 그런데 전 세계는 왜 미국 중앙은행장의 인선에 떠들썩할까. 가장 간단한 답은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이 기축통화를 기반으로 세계가 금융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시대에 달러의 발행량, 미국의 기준금리 등은 세계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연준 의장의 성향이 ‘매파’(금리 인상 선호)인지 ‘비둘기파’(금리 인하 선호)인지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역대 의장의 정책 등을 살펴보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0년대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저금리 정책을 유지한 덕분에 글로벌 경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라는 혹독한 한파를 불러왔다. 글로벌 경제가 금융위기를 극복한 것은 달러를 마구 찍어 낸 ‘헬리콥터 벤’ 벤 버냉키 덕분이다. 파월 16대 의장 지명자 전까지 15명의 역대 연준 의장이 있다. ‘최장수 의장’은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이다. 윌리엄 밀러는 ‘1년 의장’이라는 불명예를 남겼다. 15명 연준 의장의 평균 임기는 81개월이었다.1.미약한 시작은행관리 기구로 출범, 로스차일드 ‘수렴청정’ 찰스 햄린(1914년 8월~1916년 8월) 등 6인:1907년까지 몇 차례 공황과 재정 실패를 겪은 미국 자본가들은 은행을 관리할 기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민간 주도로 연준이 만들어진 이유다. 당시 연준이나 의장의 역할은 미약했다. 통화감독청(OCC)이 은행의 건전성을 감독했지만 월가의 위세가 더 높았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월가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1913년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연방준비제도 법안을 거의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렇게 탄생한 초대 의장인 찰스 햄린은 재무부 차관 출신이었다. 하지만 연준의 권한은 미국 정부와 연준에 속한 연방은행들 사이를 조율하는 수준에 그쳤다. 연준은 ‘재무부의 부속 기구’처럼 취급됐다. 마치 한국은행이 1980년대 전까지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로 불리던 것과 비슷하다. 연준의 실질적인 권력자는 따로 있었다. 바로 폴 워버그 이사였다. 워버그 이사는 연준의 청사진을 그린 인물로, 세계 금융시장을 석권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심복이었다. 쑹훙빙은 저서 ‘화폐전쟁’에서 ‘연방은행의 주인은 12개 지역 연방은행이고, 워버그 이사를 조종한 것은 런던에 있는 알프레드 로스차일드’라고 주장했다. 최초 연방준비제도법 제10조에 따라 연준 의원들은 재무부 건물 안에서 근무했다. 연준이 출범할 당시 재무장관인 맥아두는 윌슨 대통령의 사위였다. 맥아두 장관은 연준 위원과 각 지역 연방은행 총재와 임원을 ‘친맥아두 인사’로 채워 넣었다. 2.대공황 수습기축통화로 힘 실려… 금리 결정기구 출범 루스벨트 시대, 매리너 에클스(1934년 11월~1948년 4월):연준이 독립성을 확보한 계기는 1929년 미국을 강타한 대공황이다. 대공항 초기에 연준은 재무장관의 지시를 기다리며 대응하지 않았다. 연준은 무책임한 조직으로 변해 갔다. 분개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5년 연준의 지배구조를 바꿨다. 1935년 은행법 개정을 계기로 연준은 산하 연방은행들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됐고, 행정부 각료는 연준에서 제외됐다. 통화정책의 핵심인 금리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만들어진 것도 이때다. 당시 뉴딜 정책을 지지했던 은행가 매리너 에클스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며 연준 의장에 올랐다. 에클스 의장의 연준은 재무부 건물에서 ‘에클스 빌딩’이라 불리는 연준 본관 건물로 독립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 시기 연준은 재무부보다 강력해졌다. 판사 출신인 빈슨 재무장관은 에클스 의장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다. 1944년 브레턴우즈 협정이 체결돼 기축통화가 영국 파운드화에서 미국 달러화로 바뀌자 연준의 지위는 더 공고해졌다. 연준 독립의 기초를 닦은 에클스 의장은 그러나 ‘에클스 실수’를 남겼다. 1937년부터 경기가 회복됐다고 판단해 갑작스럽게 기준금리를 올려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었다. 3.호황의 초석20년 재임한 마틴, 60년대 美성장 발판 마련 현대 연준의 창시자,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1951년 4월~1970년 1월):거의 20년간 재임한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의장은 현대 연준의 창시자라고 불린다. 그가 재임할 때 재무부뿐만 아니라 백악관의 영향에서도 벗어났다. 마틴은 트루먼 대통령의 심복 출신이다. 트루먼 대통령 집권 시절, 연준은 제2차 세계대전 자금 조달을 위해 저금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마틴은 저금리를 유지하기를 원했던 백악관의 요구를 물리치고 취임 이후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등 대통령과 충돌을 빚었다. 퇴임 후 한 파티장에서 마틴 의장을 마주친 트루먼 대통령이 “배신자”라 부르며 돌아설 정도였다. 마틴 의장이 연준의 독립성을 확립한 것은 취임 직전인 1951년 ‘재무부-연준 양해각서’(Treasure-Fed accord)가 통과된 덕분이다. 이는 재무부가 앞으로 연준의 일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항복문서’다. 영국 왕이 시민의 편에 선 귀족에게 항복한 ‘마그나카르타’(대헌장)에 비유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문서는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로 작성됐다. 연준과 존 스나이더 재무장관이 금리 문제를 두고 1년간 실랑이를 벌이자 트루먼 대통령이 장관에게 빨리 사태를 수습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 협약 덕분에 연준은 재무부 증권(미 국고채)을 무조건 돈으로 찍어 낼 의무에서 벗어났다. 중앙은행의 역할을 “파티가 한창 달아오를 때 펀치볼을 치우는 일”로 정의한 마틴 의장은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 억제에 나섰다. 경기 성장을 위해서는 물가가 낮은 수준에서 안정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틴 의장은 전후 인플레이션을 잡아내며 1960년대 미국 경제 호황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준 최초의 흑인 이사 앤드루 브리머는 마틴 의장을 ‘연준의 구원자’라고 회고했다. 4.물가와의 전쟁인플레 잡은 볼커… “가장 우수한 의장” 아서 번스(1970~1978년)+ 윌리엄 밀러(1978~1979년), 폴 볼커(1979년 8월~1987년 8월):1970년대 미국 경제는 암울했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첫 패전을 겪고, 막대한 전비 부담에 만성적 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1972년과 1978년에는 각각 1차, 2차 오일쇼크로 치명타를 입었다. 당시 연준은 주로 고용률에 신경을 썼다. 경제학자 출신의 첫 연준 의장인 아서 번스는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해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시행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으로부터 재지명을 받기 위해서였다. 고약한 인플레이션은 폴 볼커 의장 때 잡았다. 볼커 의장이 취임한 1979년 미국 경제는 연간 물가상승률이 13.3%로 최악의 수준이었다. 그 직전의 번스·밀러 의장은 각각 법률가, 기업가 출신이었지만 경제와 금융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높은 인플레이션에 경제학자들은 미국이 남미형 만성 인플레이션 경제나 대공황에 빠질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밀러 의장은 긴축을 반대했다. 연준의 신뢰도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밀러 의장은 1년 만에 교체됐다. 볼커 의장은 경기 부진을 감수하고 단기 금리를 한껏 올렸다.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볼커 의장이 기준금리를 12%로 올리자 언론들은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고 비난했다. 1981년 이자율은 20% 선으로 뛰었고, 실업률은 5%에서 10%로 올랐다. 미국 농민들은 워싱턴으로 상경해 볼커 의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볼커 의장의 정책에 개입하지 않았던 카터 대통령은 결국 재선에 실패했다. 결국 볼커 의장은 스태그플레이션 위기를 잠재워 연준에 대한 신뢰도를 회복했다. 연 15%에 달하던 인플레이션은 1983년 3.2%까지 떨어졌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볼커를 가장 우수한 연준 의장으로 손꼽는다. 볼커 의장이 퇴임한 1987년 다우지수가 2000선을 돌파하며 200년 역사상 최고 수준의 강세장이 열렸다. 이 시기에 달러가 진정한 세계 통화가 됐다. 시중에 풀린 달러는 미국이 보유한 금의 5.7배에 달했다. 달러를 금으로 바꿔 줄 여력이 없어졌다. 금본위제가 폐지됐으나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유지됐다. 미국은 사실상 금 보유고와 관계없이 달러를 자유롭게 찍어 낼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나라다. 달러의 위상이 세계화되자 연준 의장의 위상도 ‘세계 경제대통령’ 수준으로 높아졌다. 5.버블의공범최저금리·규제완화, 서브프라임위기 부메랑 앨런 그린스펀 1980~2000년대(1987년 8월~2006년 1월):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마틴 의장에 이어 최장수 의장으로 재임했다.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대통령 등 4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경제 마에스트로’라는 평가를 받았다. 0.25% 포인트씩 조심스럽게 금리를 움직이는 ‘베이비 스텝’ 인상으로도 유명하다. 그린스펀 의장은 두 차례 주식 폭락 때 효과적으로 대처했다. 의장을 맡은 지 2개월쯤 지난 1987년 ‘검은 월요일’(Black Monday)이 터졌다. 다우지수가 하루 만에 22.6% 곤두박질쳤다. 밤새 아시아 증시가 폭락하자 선물 매도가 이어졌고, 뉴욕 증시 현물도 폭락했다. 그린스펀 의장은 기준 이자율을 신속하게 낮춰 1929년 같은 대공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린스펀 의장은 위기마다 금리를 인하했다. 그가 내린 처방에 미국 경제는 1991년 걸프전쟁, 아시아 경제 위기, 2000년 닷컴 버블 붕괴에서 회생했다. 연준이 2003년 기준금리를 1%대로 내리자 세계 중앙은행도 이를 따랐고 세계 경제가 회복됐다. 그린스펀 의장이 네 차례 연준 의장을 역임하는 동안 ‘그린스펀 효과’, ‘미국 경제의 조타수’, ‘통화정책의 신의 손’ 등 숱한 신조어가 쏟아졌다. 1970년대 초 이후 28년 만에 실업률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린스펀 의장은 FOMC 회의록을 공개해 중앙은행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도 강화했다. 그러나 그린스펀 의장은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론(비우량주택담보대출)에서 비롯된 세계적 금융위기의 주범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저금리 정책을 오랜 기간 유지한 탓이다. 게다가 그는 시장의 자정 능력을 과신한 탓에 급팽창하던 금융파생상품의 폭발력을 인지하지 못했다. 각종 금융 규제를 풀자 급속도로 발전한 세계 금융 산업의 부작용이었다. 가계가 직접 금융자산시장의 움직임과 얽히면서 전 세계가 ‘제2의 대공황’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6.양적완화 시대헬리콥터 벤·비둘기 옐런, 금융위기 넘다 벤 버냉키(2006~2014년) + 재닛 옐런(2014~2018년) + 제롬 파월(2018년~):‘헬리콥터 벤’. 벤 버냉키 의장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헬리콥터로 공중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말해 붙여진 별명이다. 연준은 2008년 위기 이후 3차례 양적완화를 선언해 약 3조 달러를 공급했다. 중앙은행의 발권력까지 동원했다. 대공황을 연구한 경제학자 출신인 버냉키 의장의 결단이 통했다. 연준 의장으로선 최초로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타임은 버냉키 의장을 ‘1930년 대공황 당시 연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은행의 파산을 막아 낸 유능한 은행가’라고 치켜세웠다. 통화정책에 대한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인 것도 버냉키 의장의 공로다. 그는 2011년 4월부터 FOMC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결과를 직접 언론에 설명하기 시작했다. 연준 출범 이후 의장으로서는 처음이었다. 그는 ‘화폐 전쟁’ 논란에도 불을 지폈다. 팽창한 달러 통화량에 다른 화폐가치가 급등했다. 2014년 브라질 헤알화는 2002년 말 대비 75% 급등했고,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는 각각 46%, 30% 올랐다. 버냉키 의장의 한마디에 글로벌 자금이 신흥국 시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도 했다. 2013년 5월 버냉키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를 시사해서다. 그는 “양적완화를 줄인다고 통화완화정책을 종료하는 것은 아니며, 제로 금리는 유지한다”면서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혼란이 벌어진 뒤였다. 버냉키 의장의 뒤를 이은 재닛 옐런 의장은 고용을 중시하는 비둘기파였다. ‘에클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경기가 회복되기까지 기다렸다. 옐런 의장은 지난 9월 양적완화를 끝맺고 완만하게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7월 미국의 실업률은 4.3%였고, 연준은 목표한 물가상승률인 2%에도 곧 도달할 거라 내다봤다. 시장은 12월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2018년 2월 정식 취임할 제롬 파월 차기 의장은 월가에서 일한 인물로 옐런 의장의 ‘비둘기파’ 통화정책 기조를 이어 갈 것으로 예상된다. 파월 지명자는 2일(현지시간) “가능한 최대의 근거와 통화정책 독립이라는 오랜 전통에 기초한 객관성을 갖고 (통화정책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금융 규제법인 ‘도드-프랭크법’ 등의 완화와 연준의 독립성 강화 등은 파월 지명자의 과제로 꼽힌다. ‘중립적인 올빼미’라고 불린 파월 지명자가 어떤 의장으로 기록될지는 그의 몫이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서울시의회, 정책 인력-인사권 독립 등 지방분권 7대 과제 추진

    지난 26일, 지방자치의 날을 기념하여 여수세계박람회장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은 “자치와 분권이야 말로 국민의 명령이고 시대정신이라고 믿는다”며 “자치와 분권이 대한민국의 새 성장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 지방분권TF 구성하여 구체적인 분권 로드맵 마련 서울시의회는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에 대한 이 같은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고자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서울시의회 양준욱 의장은 취임 후, 지방분권 실현 및 지방의회 권한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시의회 지방분권TF를 출범시켰으며, 1년간 소기의 성과를 거두어냈다. 지방분권TF는 신원철 단장을 중심으로 구성됐으며, 초당적으로 지방분권을 추진하기 위해 각 정당의 지방분권 전문가인 시의원 8명, 행정·법조계 외부전문가 2명, 그리고 시의회사무처 핵심부서장을 포함한 4명 등 총 14명으로 구성됐다. 2016년 10월 출범 이후 1년 동안 10차례에 걸쳐 회의를 진행하여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했으며,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들에게 질의서 전달,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국회토론회 개최,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결의안 의결, 국회입법조사처와 업무협약 체결, 지방분권형 개헌 관련 연구용역 추진 등의 성과를 이루어냈다. ● 정책지원 전문인력 확보 등 지방분권 7대 과제 추진 자치와 분권을 위한 선결과제로서 가장 시급한 지방분권 7대 과제를 선정하고 실현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방분권 7대 과제는 정책지원 전문인력 확보,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 자치조직권 강화, 자치입법권 강화, 지방의회 예산편성 자율화, 인사청문회 도입, 교섭단체 운영 및 지원체계 마련 등이다. 지방분권TF는 지방분권 7대 과제의 실현 가능성을 분석하여 각각의 개선방안을 마련하였으며 이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서울시의회 지방의회법(안) 마련, 국회에 발의 제안 서울시의회는 지방자치단체 위주로 규정된 현행 지방자치법에 대한 대안법(안)으로 지방의회법(안)을 마련하였으며, 국회에 이를 제안하여 발의될 수 있도록 추진할 예정이다. 지방의회의 목적, 기능, 역할, 운영 등을 별도의 법에 구체적으로 규정하여 주민자치의 대의기관으로서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지방의회의 위상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회에 심사대기 중인 (지방분권형)지방자치법 개정안의 가결을 위한 노력은 이와는 별개로 진행된다. 중앙정부와 국회가 권력 분립과 견제를 통해 서로 균형을 갖추고 있는데 반해, 주민대표기관인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지방의회와 지방자치단체 간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있어왔고, 이를 위해 서울특별시의회 지방분권TF는 지방의회법 제정을 추진하게 되었다. 1991년 지방의회 부활을 통해 다시 시작된 지방자치는 지난 26년간 다양한 면에서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지방행정은 주민 중심 행정으로 고도로 복잡해지고 다양해졌으며 그 속에서 주민의 요구 또한 급격히 증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의회 의정환경은 26년 전의 법·제도의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지방의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은 권한이 주어지지 않아 제대로 된 감시와 견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지방의회법 서울시의회(안)은 전체 제13장 90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방자치법 제5장 지방의회, 서울시의회 기본조례, 서울특별시의회 회의규칙의 내용을 국회법에 맞추어 구성하였고,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들어있는 내용 중 지방분권관련 조항을 포함시켰다. 주요 내용으로는 지방의회 운영 및 자치사무에 관한 조례 제정(안 제6조), 정책지원 전문인력 신설(안 제12조), 지방의회 교섭단체 구성 및 지원에 관한 사항(안 제32조), 지방의회 인사청문회 실시(안 제46조), 지방의회 의장에게 의회 사무직원에 대한 인사권 부여(안 제85조), 지방의회 경비에 관한 규정(안 제88조) 등이 있다. 향후 전문가 집단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최종안을 마련한 후,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지방의회법 발의를 제안할 계획이다. ●지방분권 실현 순간까지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일 것 지방분권TF의 향후 추진 계획은 다음과 같다. 현재 국회에 발의되어 금년 11월에 행안위 법안소위에서 병합심사(추미애, 강석호, 김광수, 정병국) 예정인 지방자치법일부법률개정안이 연내에 본회의에서 가결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전국 광역의원들의 모임을 갖고 지방분권 실현 및 향후 지방의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시민의 입장에서 고민한다. 현재 서울시의회에서 진행 중인 「지방분권형 개헌에 관한 연구용역」이 완료되면, 연구용역 결과에 대한 각계의 의견 수렴을 위해 국회 합동 토론회를 개최한다. 서울시의회 양준욱 의장은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기본질서이자 우리 세대가 후손들을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이라면서 “지방분권을 통해 지역 발전과 국가경쟁력 향상을 도모하고, 지방자치를 통해 이 땅에 풀뿌리 민주주의를 꽃 피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덧붙여 “대한민국이 향후 100년간 누려야 할 평화와 번영은 분권과 자치의 틀 속에서만 지속가능하다”면서 “앞으로도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시민 공감대 형성 등 산적해 있는 과제해결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브렉시트發 ‘아일랜드 통일론’…100년 만에 현실화되나

    브렉시트發 ‘아일랜드 통일론’…100년 만에 현실화되나

    ●맥기니스의 사망… 재조명된 ‘통일 아일랜드’ 지난 3월 23일 수천명의 아일랜드인들이 촛불을 들고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로 향했다. 전날 밤 66세의 나이로 고향 데리에서 사망한 마틴 맥기니스 전 북아일랜드 공동정부 부수반을 추모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세인트 콜롬비아 교회에서 열린 맥기니스 전 부수반의 장례식은 아일랜드 공영방송 RTE로 생중계됐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비롯한 아일랜드·영국의 정·재계 인사뿐만 아니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참석해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았다. 맥기니스 전 부수반의 장례식이 특별했던 것은 그가 평생 아일랜드의 통일을 위해 싸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북아일랜드는 독립국인 남쪽의 아일랜드공화국과 달리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와 함께 영연방을 구성하는 4개 지역 가운데 하나다.인구 181만명에 면적은 1만 4130㎢로 우리나라 경상북도보다 작다. 그러나 1922년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종교 갈등으로 남북으로 갈라진 이후 이곳에서 통일과 독립을 목적으로 수많은 내전이 일어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 맥기니스 전 부수반도 10대 후반이었던 1960년대 말부터 무장투쟁 단체인 아일랜드공화국군(IRA)에 들어가 북아일랜드 통일·독립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IRA의 사령관으로 과격한 투쟁을 이끌던 그는 1990년대 들어 총을 내려놓고 IRA 무장해제를 중재하는 협상가로 변신, 30년간 지속돼 온 유혈투쟁을 종식시켰다. 당시 복잡한 북아일랜드 정치세력 간 대타협을 성사시킨 그는 1998년, 평화협정을 이끌어 내면서 영국으로부터 자치정부 지위도 확보했다. 20세기 아일랜드 분쟁의 상징적인 인물이자 통일을 주창해 온 대표적인 정치인이었던 그가 세상을 떠나자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평생 조국의 통일을 꿈꾸던 그는 떠났지만 (그의)통일에 대한 염원은 함께 묻히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영국과 유럽연합(EU) 간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을 앞두고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된 현 상황을 빗댄 표현이었다.●브렉시트로 되살아나는 아일랜드 국경 ‘분단국가’ 아일랜드가 100여년 만에 ‘통일’에 가장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통일 논쟁이 본격화된 것은 오는 19일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협상을 앞두고 북아일랜드가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부터다. 대표적인 것이 국경 문제다. 현재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 북아일랜드 간에는 국경 통제와 세관 검사 없이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영국이 EU를 떠나게 되면 북아일랜드가 EU 회원국과 유일하게 국경을 맞댄 영국령 지역이 되고, 더이상 양쪽 간 자유로운 이동이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국경 문제는 브렉시트 이후 북아일랜드에 심각한 경제적 타격이 될 전망이다. 현재 영국에서 생산되는 상품의 50% 미만이 EU 국가로 수출되는 반면, 북아일랜드의 전체 수출량의 약 60% 이상은 EU 국가로 보내지며 이 중 절반 이상은 아일랜드로 수출된다. 북아일랜드 주민들은 브렉시트가 현실화된 이후 남북 간 국경 통제가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EU와의 협상에 따른 관세까지 물어야 하는 신세에 놓이게 된 것이다. 또 북아일랜드 농업은 EU에서 지급하는 농업 보조 수당에 영국보다 훨씬 더 의존하고 있다. 브렉시트로 EU 시장 접근이 어려워지면 아일랜드와의 교역 비중이 절대적인 북아일랜드 경제는 최악의 경우 붕괴될 수도 있다. 현재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는 모두 양국 간 관세가 부과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FT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하드 브렉시트’가 진행된다면, 아일랜드의 국경 문제도 심각해질 것”이라면서 “이는 30년 전 폭력과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아일랜드 분리 독립 투쟁 시절의 삼엄했던 국경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상기시킨다”고 지적했다. 아이리시타임스는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다른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EU, 특히 아일랜드와의 관계가 경제적으로 상당히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브렉시트 이후 4개 지역 중 가장 큰 경제적 손실을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아일랜드 주민 56% “EU 잔류해야” 이러한 경제적 손실은 북아일랜드가 처음부터 브렉시트에 반대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실시된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북아일랜드 주민 중 56%는 EU 잔류를 원했다. 그러나 총투표 결과가 북아일랜드 주민들의 의견과는 달리 브렉시트 찬성으로 결정되자 통일에 대한 북아일랜드 주민들의 여론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2일 실시된 북아일랜드 조기총선에서 ‘친영파’인 민주연합당(DUP)은 10석이나 잃으며 통일을 주장하는 신페인당에 겨우 1석 차이로 제1당을 유지했다. 미셸 오닐 신페인당 대표는 즉각 “브렉시트는 재앙”이라면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통합을 묻는 주민투표를 최대한 빨리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자치정부 수반인 DUP의 알린 포스터 제1장관은 “주민투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지만 선거에서 참패해 힘이 약해졌다. 최근 영국 제2야당인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지난 8일 치러진 조기총선 공약으로 EU 내 스코틀랜드 지위 보호와 제2의 독립 주민투표 실시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북아일랜드 민심이 또 한 번 요동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일랜드공화국에서도 통일 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통일아일랜드당과 더불어 공화국의 양대 정당 중 하나이자 제1야당인 공화당(피어너 팔)의 마이클 마틴 대표는 최근 “스코틀랜드의 독립 움직임과 북아일랜드 헌법의 불확실성 등을 놓고 봤을 때 브렉시트는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북아일랜드 내부의 견해를 크게 바꿀 수 있으며 ‘통일 아일랜드’의 추진력을 창출할 수 있다”고 통일에 대해 낙관하는 발언을 했다. 공화당은 현재 통일 청사진을 제시할 백서를 제작 중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아일랜드공화국 주민들의 60%는 브렉시트 이후 통일을 지지한다고 밝혔다고 FT는 전했다. ●오랜 갈등 ‘벽’ 뛰어넘을 수 있을까 물론 100년 만의 통일이 현실화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영국과 북아일랜드가 1998년 맺은 ‘굿프라이데이 협정’에?따르면 북아일랜드 자치정부는 주민들이 원할 경우?국민투표를?통해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투표는 영국 정부의 승인이 있어야 치러질 수 있다. 메이 총리는 스코틀랜드 독립과 더불어 아일랜드 통일을 위한 주민투표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유혈투쟁은 사라졌지만, 북아일랜드에서 종교로 인한 정치적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도 통일의 발목을 잡고 있다. 북아일랜드에선 여전히 영국과의 연합을 지지하는 개신교도들과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지지하는 가톨릭교도들의 거주 지역이 구분될 만큼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는 과거 잉글랜드가 팽창해 아일랜드가 복속되자, 개신교인들이 대거 이주해 이 지역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가 우여곡절 끝에 독립을 쟁취했어도 개신교도 수가 많은 북쪽에서 영국 잔류를 원하며 반독립운동이 일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랜 갈등 탓에 통일에 반대해 온 주민들의 견해가 바뀌기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EU 협정에 따라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급격한 상황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블린대 정치학과 아이댄 리건 교수는 “브렉시트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조차 않았을 아일랜드 통일에 관한 담론을 다시 재점화시켰다”며 “‘사건’들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바탕체·돋움체, 어떻게 탄생했을까

    바탕체·돋움체, 어떻게 탄생했을까

    ‘한글 글꼴의 설계자’로 평가 사진활자 원도·청사진 공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 글꼴인 바탕체와 돋움체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지금의 50~60대에 익숙한 국정교과서 ‘국어’의 활자를 만든 이는 누구일까.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 글꼴의 설계자’로 평가받는 최정호(1916~1988)와 최정순(1917~2016) 두 선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그들의 삶을 기리고 작품을 소개하는 특별전을 오는 5일부터 연다. 최정호와 최정순은 이름은 비슷하지만 남남이다. 두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면서 현재 글꼴의 근간이 되는 수많은 ‘원도’(原圖·한글 활자의 씨그림)를 만들어 냈다. 바탕체와 돋움체, 명조체와 고딕체 등의 ‘오리지널 드로잉’을 그린 장인들인 셈이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가 공동 개최하는 이번 전시에는 최정호와 최정순의 유품을 비롯해 안상수 안그라픽스 대표, 일본 폰트업체 모리사와가 소장하고 있는 두 사람의 작품 등 자료 195점이 나온다. 특히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은 최정호의 사진활자 원도와 청사진, 마스터필름 등도 공개된다. 전시는 크게 2부로 구성된다. 1부 ‘원도활자’에서는 두 장인이 활발하게 활동한 1950∼1990년대 활자 인쇄기술의 변화 양상과 원도를 다룬다. 원도는 기계로 활자를 만들기 전, 한 변의 길이가 4∼5㎝인 정사각형 안에 쓰는 글자를 지칭한다. 원도를 바탕으로 1950∼1960년대에는 납활자를 생산했고, 1970년대부터는 사진활자를 만들었다. 전시장에서는 납활자 제작 시 사용되는 원자판과 자모, 사진식자기에 쓰이는 유리식자판 등을 볼 수 있다. 2부의 주제는 ‘두 글씨장인 이야기’다. 두 사람은 같은 일을 했지만 활동 영역은 달랐다. 최정호는 서적 출판용 활자의 글꼴을 주로 개발했고, 최정순은 교과서와 신문 활자의 원도를 많이 그렸다. 최정호의 글꼴이 사용된 1959년 동아출판사 ‘새백과사전’과 최정순의 글꼴로 제작된 같은 해의 ‘국어’ 교과서를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다. 최정순은 1982년 서울신문 CTS 원도, 1983년 서울신문 사진식자, 1985년 서울신문의 전산식자를 개발했고, 중앙일보 창간호의 신문 활자를 제작하기도 했다. 국립한글박물관 관계자는 “한국전쟁 이후 혼란스러웠던 시절에 많은 사람이 본 백과사전과 교과서, 신문에는 대부분 최정호 선생과 최정순 선생의 글꼴이 담겨 있다”면서 “한글의 아름다움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두 장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11월 17일까지.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아톰’ 서경배, 과학의 미래에 1조원 건다

    ‘아톰’ 서경배, 과학의 미래에 1조원 건다

    소년은 TV 만화영화 ‘우주 소년 아톰’을 즐겨봤다. 학창시절에는 생물 과목을 유독 좋아했다. 누구보다 과학을 사랑하던 소년은 이제 자라서 기업을 경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과학의 힘을 굳게 믿는다. 과학을 포기하면 미래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과감하게 1조원을 투자해 과학재단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서경배(53)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서경배과학재단’ 설립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서 회장은 “3000억원으로 시작하지만 꿈은 사업을 잘해서 재단이 50년, 100년 이상 갈 수 있도록 (지원 규모를) 1조원까지 늘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처음 시작하는 재단 출연금 3000억원은 아모레퍼시픽 우선주를 매각해 마련하기로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그동안 창업자 고(故) 서성환 선대회장의 사재 등을 기반으로 ‘아모레퍼시픽재단’(학술·교육·문화 사업),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저소득층 복지 사업), ‘한국유방건강재단’ 등을 운영해 왔다. 과학재단을 설립한 이유에 대해 서 회장은 “아버지가 기술과 과학에 늘 관심이 있었고 어렸을 때 만화 ‘아톰’을 보는 게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면서 “회사가 어렵던 시절 과학의 힘으로 회사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고 과학이 위대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은 1990년 총파업 등으로 위기에 처했으나 그 다음해에 세운 연구소에서 개발한 레티놀(노화를 방지하는 비타민 유도체)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아모레퍼시픽은 요즘도 매출의 3%가량을 연구·개발비로 쓴다. 이번에 출범하는 서경배과학재단은 기초과학, 특히 생명과학 분야의 국내외 한국인 신진 연구자를 지원할 계획이다. 생명공학에 관심을 두는 까닭에 대해 서 회장은 “어려서부터 생물이 재미있었다”면서 “좋아해야 관심을 갖고 도와줄 수 있고, 좋아해야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다”고 답했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빌게이츠재단도, 록펠러재단도 모두 자신의 이름을 걸었다”며 “잘못하면 자기 이름에 먹칠하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지고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서 회장은 ‘천외유천’(天外有天·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을 언급하면서 “세계 최고의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창의적인 신진 과학자들을 발굴해 장기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며 “재단이 (노벨상 등) 세계적인 결과물을 만들기를 바라고 그런 영광의 순간에 같은 자리에 있게 된다면 무한한 영광일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매년 공개 모집을 통해 생명과학 분야 신진학자 3∼5명을 선발하고 과제당 5년 기준 최대 25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1차 연도 과제는 오는 11월 공고된다. 내년 1∼2월 과제 접수 후 심사 등을 거쳐 6월에 최종 선정자가 발표된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아톰’ 서경배, 과학의 미래에 1조원 건다

    ‘아톰’ 서경배, 과학의 미래에 1조원 건다

    소년은 TV 만화영화 ‘우주 소년 아톰’을 즐겨봤다. 학창시절에는 생물 과목을 유독 좋아했다. 누구보다 과학을 사랑하던 소년은 이제 자라서 기업을 경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과학의 힘을 굳게 믿는다. 과학을 포기하면 미래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과감하게 1조원을 투자해 과학재단을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서경배(53)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서경배과학재단’ 설립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서 회장은 “3000억원으로 시작하지만 꿈은 사업을 잘해서 재단이 50년, 100년 이상 갈 수 있도록 (지원 규모를) 1조원까지 늘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처음 시작하는 재단 출연금 3000억원은 아모레퍼시픽 우선주를 매각해 마련하기로 했다. 아모레퍼시픽은 그동안 창업자 고(故) 서성환 선대회장의 사재 등을 기반으로 ‘아모레퍼시픽재단’(학술·교육·문화 사업),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저소득층 복지 사업), ‘한국유방건강재단’ 등을 운영해 왔다. 과학재단을 설립한 까닭에 대해 서 회장은 “아버지가 기술과 과학에 늘 관심이 있었고 어렸을 때 만화 ‘아톰’ 보는 게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면서 “회사가 어렵던 시절 과학의 힘으로 회사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보고 과학이 위대하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은 1990년 총파업 등으로 위기에 처했으나 그다음해에 세운 연구소에서 개발한 레티놀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아모레퍼시픽은 요즘도 매출의 3 %가량을 연구·개발비로 쓴다.이번에 출범하는 서경배과학재단은 기초과학, 특히 생명과학 분야의 국내외 한국인 신진 연구자를 지원할 계획이다. 생명공학에 관심을 두는 까닭에 대해 서 회장은 “어려서부터 생물이 재미있었다”면서 “좋아해야 관심을 갖고 도와줄 수 있고, 좋아해야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다”고 답했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빌게이츠재단도, 록펠러재단도 모두 자신의 이름을 걸었다”며 “잘못하면 자기 이름에 먹칠하는 것이기 때문에 책임지고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서 회장은 ‘천외유천’(天外有天·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을 언급하면서 “세계 최고의 연구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창의적인 신진 과학자들을 발굴해 장기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며 “재단이 (노벨상 등) 세계적인 결과물을 만들기를 바라고 그런 영광의 순간에 같은 자리에 있게 된다면 무한한 영광일 것”이라고 말했다. 재단은 매년 공개 모집을 통해 생명과학 분야 신진학자 3∼5명을 선발하고 과제당 5년 기준 최대 25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할 계획이다. 1차 연도 과제는 오는 11월 공고된다. 내년 1∼2월 과제 접수 후 심사 등을 거쳐 6월에 최종 선정자가 발표된다.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 세계 탄소산업 메카 꿈꾸는 전북… 100년 먹거리 싹 틔우다

    세계 탄소산업 메카 꿈꾸는 전북… 100년 먹거리 싹 틔우다

    “전북, 세계 탄소산업의 메카를 꿈꾸다. 탄소산업육성법 제정 성공” 전북도청사 정문에 들어서면 서편 대강당 벽에 설치된 초대형 걸개그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도청사 주변에도 탄소산업육성법 제정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즐비하게 내걸렸다. 전북도가 탄소산업육성법 제정에 환호하는 것은 국내 탄소산업의 ‘태 자리’이자 집적화 단지가 바로 전북이기 때문이다. 전북은 탄소산업 불모지에서 법적 근거도 없을 때 온갖 악조건을 극복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호남의 기초지자체가 시작해 국가 성장동력 산업으로 큰 축으로 구성했다.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특히 송하진 전북도지사의 앞을 내다보는 안목과 끈질긴 노력이 없었다면 국내 탄소산업은 시작조차 하지 못할 뻔했다. 송 지사는 민선 4·5기 전주시장 시절 8년과 전북도지사 2년 등 모두 10년에 걸쳐 탄소산업의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우는 선구자 역할을 했다. 그를 ‘탄소 전도사’로 부르는 이유다. 국내 탄소산업의 태동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선 4기 전주시장에 당선된 송 전북도지사는 특화된 먹거리로 탄소산업을 선정했다. 그는 탄소 산업이 ‘100년 먹거리가 될 블루오션’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있지만, 다른 지방정부에서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라고 판단했다. 무모한 도전이란 지적도 많았다. 지자체가 전망이 없는 산업을 추켜 들고 전주시민에게 사기를 친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2008년 국내 첫 일관 생산시스템 구축 당시 송 전주시장은 신념을 가지고 밀어붙였다. 메카트로닉스(기계와 전자를 복합적으로 적용하는 학문)에 주력하던 전주기계산업리서치센터에 탄소섬유 소재성형동과 장비를 구축했다. 2008년에는 기계산업리서치센터를 국내 유일의 탄소 전문 연구기관인 전주기계탄소기술원으로 개편했다. 이어 300억원을 투자해 국내 유일의 탄소섬유생산 일관 시스템을 구축했다. 전담 부서를 만들어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지원에 나섰다. 전주시는 지자체 최초로 탄소산업과를 설치했다. 이런 집중적인 투자와 지원에 힘입어 2009년 T-300급 범용 탄소섬유 개발에 성공했다. 전북은 이를 계기로 국내 탄소섬유 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됐다. T-300급은 건축자재나 자동차 등에 사용 가능한 저가형 탄소섬유다. 전주시장 재선 2년차이던 2011년은 전주시의 투자와 노력이 산업화로 가는 계기를 마련한 해다. ㈜효성과 전북도, 전주시는 탄소섬유 양산공장 건설 협약을 맺었다. 전주시가 개발한 탄소섬유 생산기술을 효성에 이전하는 대신 효성은 전주 친환경첨단복합단지 18만㎡ 부지에 연산 2000t 규모의 탄소섬유 공장을 건설한다는 내용이었다. 2020년까지 1조 2000억원을 투자해 생산규모를 1만 7000t으로 확대하고 1000여명의 고용창출도 하겠다는 조건도 붙었다. 시는 같은 해 10월 탄소밸리구축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소재·부품·완제품으로 이뤄지는 가치사슬을 완성해 전국 최대 탄소산업 집적화 단지를 만들고 신소재 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마련했다. ●초고강도 제품 개발을 국가사업 선정 드디어 2013년 5월에는 효성 전주공장 준공과 함께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3번째로 고강도(T-700급) 탄소섬유를 개발했다. 전주시의 투자와 연구개발이 밑거름이 돼 공장건설 3년 만에 선진국에 근접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이를 계기로 중앙부처 등에서 비로소 탄소산업이란 말이 등장했다. 2014년에는 세계 최초로 탄소섬유 자동차 엔진 커버를 개발하고 탄소특화 국가산단 지정도 받았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탄소산업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탄소소재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미래 성장동력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탄소소재를 정부 13대 산업엔진 프로젝트로, 초고강도 탄소섬유 개발사업을 국가정책사업으로 선정했다. 전주시장에서 2014년 7월 전북도지사가 된 송 도지사는 최초로 탄소산업 육성 조례와 탄소기업 투자유치 촉진 조례를 제정해 전북도가 탄소기업 지원과 집적화의 중심이 되도록 했다.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탄소산업육성법’은 전주시장 8년, 전북도지사 2년 등 모두 10년 동안 송 도지사가 탄소산업에 쏟아부은 노력이 꽃을 피우는 전기를 마련했다. 법안이 발의된 지 2년 만이었다. 이 법의 제정으로 탄소산업은 이제 국가 차원에서 이끌어가는 제도적 근간이 됐다. 민간의 연구개발과 상용화 투자 촉진을 위한 지원시책이 수립되고 산업계·학계·연구계의 정보교류 및 합동연구도 가능했다. 탄소소재 융·복합기술전문연구소도 설립될 전망이다. ●탄소산업 미래는 외연 확장이 과제 탄소산업육성법이 제정됐으니, 전북도는 ‘탄소산업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고 분석한다. 무엇보다 세계 탄소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외연 확장이 급선무라고 지적한다. ●국내 시장 활성화돼야 경쟁력 향상 국내에서 생산된 탄소 제품을 국내 기업들이 많이 사용해 주어야 시장경쟁력이 높아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내 기업들은 국내산 탄소섬유 사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크다. 현재는 세계시장 1위인 일본 도레이사 제품을 주로 사용한다. 그 탓에 국내에서 생산된 탄소섬유는 90%가 해외로 수출해야 한다. 전북도는 탄소섬유 내수소비 활성화를 위해 ▲자동차 융·복합산업 ▲조선·해양산업 ▲농·건설기계 산업 ▲신재생에너지 산업 등 4대 전략 산업을 유치할 방침이다. 이들 4대 산업계가 국내산 탄소 제품을 소비하면 산업화가 촉진되고 관련 기업의 활력도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탄소산업 활성화로 강소 기업을 육성하고, 탄소산업 클러스터 조성에도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전주시 탄소담당 계장부터 국장까지 10년 동안 탄소산업을 위해 헌신했던 최락휘 완산구청장은 “국내 탄소산업은 전북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지자체의 노력으로 국가 기간산업을 육성하는 발판을 마련한 만큼 이제 정부에서 탄소산업 육성에 본격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지역에서 꽃피는 미래 먹거리] “글로벌 기업이 판키우자 중소상인 매출도 올라”

    [지역에서 꽃피는 미래 먹거리] “글로벌 기업이 판키우자 중소상인 매출도 올라”

    양기대 경기 광명시장은 27일 “상생경제로 KTX 광명역이 수도권 서남부의 물류유통과 교통지도를 바꾸고 있어 이제 광명시는 더는 베드타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명시 미래가 달린 KTX광명 역세권과 광명동굴을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게 해서 광명시가 대한민국의 경제 중심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케아 등 글로벌 기업들을 유치한다고 했을 때 반발이 적지 않았을텐데. -반대가 심했다. 폭증하는 민원에 시정이 마비될 정도였다. 반대 시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윈·윈(Win-Win)하는 방안을 찾았다. 중소업체와 상인 보호도 중요하지만, 지역발전을 위해서는 글로벌 기업들의 유치도 꼭 필요하다고 설득했는데, 진정성이 통했다. 한발씩 양보해 상생했다. →상생협력을 위해 재정 투입을 중소상인들에게 계속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동안 주차장 조성이나 쉼터 지원 등 중소상인들의 자체 역량 강화를 지원했다. 앞으로는 재정 부담이 적은 디자인·품질·서비스 개선 등에 주력할 것이다. 상인들의 매출이 늘어 세금을 더 내고 투자도 더 하면 결국 광명시 전체에 도움이 될 것이다. →KTX 광명 역세권 개발 계획은. -영상미디어와 제2의 한류 열풍을 일으킬 ‘광명 미디어아트밸리’가 올 상반기 착공에 들어가면 소하동에 들어설 ‘대형 종합병원’과 ‘의료복합클러스터’ 추진에도 박차를 가하겠다. KTX 광명 역세권의 변화와 바람은 3500여명의 새로운 일자리와 연 500억원 이상의 세수 증대, 3조원 규모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예상돼 향후 100년간 광명의 미래를 이끌 원동력이 될 것이다. →광명동굴을 세계적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한 각오와 일정은. -지난해 한 달 평균 10만명 이상이 방문해 100만명이 방문하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외국인 단체 관광객도 1만명 이상 방문했다. 올해는 연간 관광객 150만명 이상, 고용창출 300명 이상, 수익 100억원 달성이 목표다. →광명시의 청사진을 밝힌다면. -KTX 광명 역세권을 쇼핑·의료·미디어·디자인 중심지로 도약시켜 대한민국의 경제지도를 바꾸겠다. 신안산선과 월곳~판교선이 완공되면 사통팔달 중심에 KTX 광명역이 놓이게 된다. 통일시대 유라시아 대륙철도의 출발역으로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中 내년부터 ‘복지·환경’ 시대 연다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는 지난 23일 오전 러우친젠(婁勤儉) 산시(陝西)성장과의 공식 면담을 시안(西安)공항에서 해야 했다. 김 대사는 산시성을 공식 방문하는 길이었고 러우 성장은 서둘러 베이징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들의 일정상 공항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러우 성장을 포함해 전국 성장과 서기 등 권력의 핵심을 이루는 200여명의 당 중앙위원과 200여명의 후보위원은 이날 베이징의 징시(京西)호텔로 집결했다. 26일 개막된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5중전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흘 전부터 모여 토론에 들어간 것이다. 29일까지 비공개로 열리는 5중전회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중국이 나아갈 청사진이 담긴 ‘국민경제 및 사회발전에 관한 제13차 5개년 계획(13·5 규획)을 확정하는 중요한 회의다. 특히 당 지도부는 12·5 규획(2011~2015년)과 13·5 규획이 엇갈리는 현 시점을 경제발전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시기로 보고 있다. 중국은 지난 7차례의 5개년 계획을 진행했던 35년 동안 고속성장을 최고의 덕목으로 쳤다. 그러나 당 창건 100주년이 되는 2021년에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복지를 누리는 중진국) 사회 건설을 완성한다는 ‘100년 목표’를 두고 있는 만큼 내년부터 5년 동안은 복지와 환경을 강조하는 방향으로의 대전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6일 1면에 ‘100년 목표를 향해서’라는 논설을 게재하고 “발전의 속도와 능률만 추구한 경제실험에 대해 각성할 필요가 있다”면서 “성장과 복리, 전체와 개인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신창타이(新常態·뉴노멀)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민일보는 13·5 규획의 10대 목표를 소개하면서 생태문명 건설과 빈곤 구제가 처음으로 10대 목표에 진입했음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스모그 등 환경오염을 줄이는 대책과 7000만명에 이르는 빈곤층 구제책이 이번 회의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최근 “5년 내에 모든 빈곤층을 가난에서 해방시키겠다”고 밝혔다. 신화통신은 “그동안 중국은 경제건설, 정치건설, 문화건설, 사회건설 등 ‘4위일체’를 추진했지만, 앞으로는 샤오캉 사회의 화룡점정이 될 ‘생태문명 건설’을 추가해 ‘5위일체’를 추진해야 한다”고 전했다. 신경보는 “현재의 경제 체제는 빈곤층에 매우 불리하다”면서 “경제성장률(GDP)의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 충분한 취업률 유지, 국민 수입의 보장, 건강 개선이 관건”이라고 밝혔다. 체질 전환이 5중전회의 주요 의제로 자리잡으면서 향후 5년 동안의 연평균 성장률 목표치는 6.5%로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높다. 12·5 규획 기간의 성장 목표치는 7.0%였다. 성장 목표치 등 구체적인 수치는 이번에 공개되지 않으며 내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추인을 거쳐 발표된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생명의 窓] 바이오 3D 프린팅과 장기 복사/이레나 이화여대 의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생명의 窓] 바이오 3D 프린팅과 장기 복사/이레나 이화여대 의대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현대 인간의 수명은 100년이 조금 못 된다. 유한한 인간의 삶을 생각하면 한 세기에 해당하는 10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불과 한두 세기 동안, 인간의 생명체에 대한 인류의 관념 구조는 송두리째 바뀌었다. 1859년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한 이래, 1953년에는 왓슨과 크릭이 생명체의 정보를 담은 DNA의 구조를 밝혀냈다. 그리고 이제 진화론이나 DNA만큼 떠들썩하지는 않았지만 또 하나의 거대한 혁명이 예고된다. 바로 생명체의 3D 프린팅이다. DNA 분석과 3D 바이오프린팅 기술은 흥미로운 대조를 보인다. DNA 분석이 생명체에 대한 염기서열 단위의 미시적 해체라면, 3D 바이오프린팅은 세포 단위의 거시적 해체다. DNA 구조 분석이 귀납적 발견이었다면, 3D 바이오프린팅은 인간이 먼저 상상을 한 후 이를 현실화한 연역적 발명이다. 이들 기술은 해체 후 다시 조립한다는 의미에서 ‘창조적 파괴’라는 공통점이 있다. DNA 분석은 컴퓨터 디지털 혁명과 시기가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0과 1의 컴퓨터 정보 이론의 발전은 이제 빅데이터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 생명체도 디지털 정보로 치환할 수 있다.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의 롬스버그 박사팀은 인공 DNA를 복제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는 DNA 염기를 레고 블록처럼 사용해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는 이론 단계를 현실화 단계로 옮겨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다루는 기술이 발전하여 우리가 생명체를 구성하는 ‘신의 코딩’을 이해하게 된다면 인간에 의한 조작적 진화는 시간을 초월한 폭발성을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3D 바이오프린팅은 어떠할까. 3D 프린팅은 이미 생명 분야가 아닌 제조 분야에서 무서운 잠재력을 보여 주었다. 권총을 프린팅하거나 집을 프린팅하게 되면서 인간의 의식주와 사회에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의학 분야에서 3D 프린팅이 사용되고 있다. 인공뼈 제작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쉽게 가능성을 타진하기 어려운 분야까지 도전하고 있다. 바로 장기의 ‘기능’을 프린팅해 내는 작업이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한가. 프린터 원리는 기존의 아날로그 프린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포 하나하나를 프린터의 잉크 방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하는 기능을 가진 세포를 기존의 잉크젯 프린터나 레이저 프린터, 또는 미세압출원리를 이용해서 형태 유지용 바이오페이퍼(생체재료 지지체)에 분사한다. 이 바이오페이퍼는 세포를 닮은 합성 폴리머다. 우리가 종이에 잉크로 프린트를 하는 것은 2차원의 평면이지만 사실 종이와 잉크도 두께를 가지고 있다. 이들 바이오페이퍼 사이에 자외선 등을 조사하여 세포들을 접착시킨다. 아직 오장육부 장기의 기능을 실현하는 것은 연구단계에 있지만 신장처럼 기능적 소단위(네프론)로 구성된 장기부터 단계적으로 현실화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인공 신장 프린팅의 성공은 거의 노벨상에 가까운 성과가 될 것이다. 영화 제5원소에서는 외계인의 몸 조각을 생명체 합성 장치에 넣어 아름다운 여인을 만들어 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치는 외계인의 생체조직에서 DNA를 분석하여 생명체의 청사진을 알아낸 후, 그에 맞는 세포로 3차원적으로 프린팅해 내는 원리이다. 이제 과학 공상 영화는 더는 상상 속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생명과학의 다각적 발전은 앞으로 신세계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래가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 용산화상경마장 “기업과 지역발전 위해 시동 건다”

    낮고 오래된 전자상가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용산 한강로에 건립된 용산화상경마장(용산문화공감센터)은 유독 세련된 외관을 자랑하며 우뚝 서있다. 18개의 층에 문화센터와 발매서비스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 빌딩 내부 중 꼭대기에 있는 페가수스 라운지는 그 중에서도 최고의 뷰를 자랑하는 곳이다. 오후 3시 미니어처 같이 보이는 다리들 아래로 흐르는 한강의 황금색 물결은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감동이 있다. 문화공감센터의 한 직원은 한강에서 벌어지는 불꽃쇼의 가장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는 숨은 명소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쪽으로 무심하게 흐르는 한강을 비롯하여 과거의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낮은 주택밀집지역, 한 때 가장 바쁘게 움직였던 전자상가의 건물들을 비롯하여 개발을 앞두고 있어 어떤 모습의 건축물이 들어설지 모르는 역 주변의 대지까지 용산화상경마장은 주변의 전경을 한눈에 품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과거의 퇴색한 자취가 더 짙은 용산에서 지금 용산문화공감센터 빌딩이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된 외관으로 지역 내 랜드마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용산문화공감센터는 발매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전부 지정 좌석제로 운영 예정이고, 이용요금도 2만1,000원에서 3만1,000원 정도라 서민들보다는 중산층 이상의 소비주도층이 방문하여 지역 상권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변에 큰 6차선 도로가 이중으로 놓여있어 주택 지역과는 조금 단절되어 있는 반면 용산역에서 쪽에서 연결되는 도로 주변의 상권이 살아나면 과거처럼 이 지역의 경제가 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중산층 이상이 찾을만한 고급 음식점이나 명품 쇼핑몰들이 하나 둘 들어서면 오히려 명동의 인파에 지쳐 고급 쇼핑몰을 찾는 중국 VIP 관광객들의 수요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용산문화공감센터에 KTX의 교통 편의와 중앙박물관, 전쟁기념관, 이태원 등 인프라를 엮어 용산의 미래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경마와 발매가 전부인 듯했던 한국마사회는 새로운 사업모델인 문화공감센터를 만들어 미래에 대비하고 있다. 요식행위로 일부 내용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구조를 발매중심에서 다양한 지역문화서비스로 다변화하겠다는 조직의 비전이 담겨있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미래를 대비할 수 없다는 내부의 치열한 고민이 낳은 산물이기도 하다. 혹자는 수익성이 거의 없는 현 용산의 사업모델을 두고 회의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과감한 지역 투자와 상생을 통해 구축한 사업이야말로 100년을 대비하는 기업들이 실행하고 있는 필수 코스가 되고 있다. 지자체인 용산구도 장기적 안목으로 지역 발전을 설계할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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