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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한국영화 100주년에 거둔 칸영화제 최고상 쾌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2006년 ‘괴물’로 칸영화제와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꾸준히 칸의 부름을 받아 온 봉 감독이 13년 만에 거머쥔 최고의 영예이자 한국 영화계의 쾌거다. 지난해 이창동 감독의 ‘버닝’ 수상 불발의 아쉬움을 단번에 만회한 낭보인 데다 특히 올해가 한국영화 100주년이란 점에서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할리우드 데뷔작 ‘설국열차’, 넷플릭스 진출작인 ‘옥자’ 등으로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세가 높지만 이번 수상으로 명실공히 글로벌 거장의 반열에 오른 봉 감독과 ‘기생충’을 위해 애쓴 모든 영화인에게 축하를 보낸다. 봉 감독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절묘하게 배합하는 뛰어난 균형감을 갖춘 영화인으로 꼽힌다.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흥행과 호평을 동시에 얻고 난 뒤 3~4년에 한 편씩 발표하는 작품마다 소시민적 삶을 기반으로 사회 비판적 시각과 특유의 유머 감각을 버무려 자신만의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쌓아 왔다. ‘기생충’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 이야기를 통해 인류의 보편적 주제인 빈부 격차 문제를 블랙코미디로 다룬 ‘기생충’의 수상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결정됐다고 한다. 시사회장에서도 기립박수가 끊이지 않았다는데 한국영화가 세계인의 정서를 파고들어 열렬한 공감을 얻었다니 반갑고 흥분되는 일이다. 세계 3대 영화제 중에서도 가장 권위 높은 칸영화제가 한국영화를 선택했다는 것은 한국영화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인정한 것이다. 1919년 ‘의리적 구토’로 시작된 한국영화는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베를린영화제 특별은곰상을 받은 이후 칸영화제 여우주연상(2007년),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2012년) 등 여럿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룩했다. 이에 더해 이번 칸의 쾌거는 한국영화 100년의 저력이 마침내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영화의 위상이 크게 발돋움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빛나는 성과를 마냥 기뻐할 수만 없는 게 현실이다. ‘기생충’의 주제인 빈부 격차는 영화계라고 다르지 않다. 1000만 영화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한쪽에선 스크린 독과점으로 개봉하자마자 퇴출되거나 아예 세상에 나오지도 못하는 작은 영화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흥행 코드에 맞춰 천편일률적인 영화만 만든다면 퇴보가 불가피하다. 가뜩이나 넷플릭스 등 미디어 다변화로 영화시장이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화의 독창성과 풍부함은 다양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영화계도 명심해야 한다.
  • 2114년을 기다리며… 노르웨이 숲에 잠든 한강의 미공개 원고

    2114년을 기다리며… 노르웨이 숲에 잠든 한강의 미공개 원고

    ‘사랑하는 아들에게’ 소설 제목만 공개 한강 작가 직접 흰 천으로 원고 봉인작가 한강이 100년 뒤 공개할 소설 제목은 ‘사랑하는 아들에게’(Dear Son, My Beloved)였다. 노르웨이 공공예술단체 ‘미래도서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한강이 25일(현지시간) 한 세기 뒤에 출간할 미공개 소설 원고를 재단 측에 전달했다. 2014년 시작한 미래도서관 사업은 100년 동안 매년 1명씩 작가 100명의 미공개 작품을 노르웨이 오슬로 외곽의 ‘미래도서관의 숲’에 100년간 심어둔 나무 1000그루를 사용해 2114년 출판하는 프로젝트다. 한강은 이 프로젝트의 다섯 번째 참여 작가이며 아시아 작가로는 처음이다. 한강이 전달한 원고는 지금부터 정확히 95년 뒤 출간된다. ‘미래도서관’ 등에 따르면 한강은 이날 ‘미래도서관의 숲’에서 열린 원고 전달식에 참석해 흰 천으로 싸맨 미공개 ‘한글 원고’를 ‘미래도서관 프로젝트’를 기획한 스코틀랜드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에게 넘긴 뒤 자신의 소설 제목을 발표하는 행사를 가졌다. 한강은 한국에서 흰 천을 가져와 원고를 봉인한 이유에 대해 “마치 내 원고가 이 숲과 결혼하는 것 같았고, 또는 바라건대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작은 장례식 같았고, 대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세기의 긴 잠을 위한 자장가 같았다”고 말했다. 한강 작가가 전달한 원고는 제목을 제외한 분량과 내용, 주제의식 등을 모두 비밀로 한 채 봉인돼 오슬로 도서관에 보관된다. 현재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는 한강을 포함해 캐나다 출신의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영국 출신의 데이비드 미첼, 터키 소설가 엘리프 샤팍, 아이슬란드 작가 숀 등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연합뉴스
  • 황교안, 지지층만 잡고 중도층 놓쳤다

    황교안, 지지층만 잡고 중도층 놓쳤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 집회를 끝으로 18일간의 민생 대장정을 마쳤다. 민생 대장정을 통해 지지층 결집과 ‘대중 정치인’ 이미지 구축 등 성과가 있었지만 중도층 껴안기 등 외연 확장에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정치권에서 나온다. 황 대표는 지난 7일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생업 현장의 자영업자와 농어촌의 어르신들, 취직이 안 돼 어려움을 겪는 청년까지 다양한 계층을 만났다. 황 대표는 26일 페이스북에 “‘18일, 4080㎞’. 전국의 민생현장을 다니며 시민과 함께했던 그 시간과 거리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알기 위한 노력과 도전의 여정이었다”며 “현장은 지옥과 같았고 시민은 ‘살려 달라’ 절규했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황 대표는 지난 12일 경북 영천 은해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에서 합장 등 불교의식을 따르지 않아 종교 편향 논란을 불렀다. 11일에는 대구에서 달리는 쓰레기 수거차에 보호 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매달려 이동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논란이 있었다. 또 안동을 방문한 자리에서 일부 유림 대표가 ‘100년 만에 나타난 구세주’ 등 찬양 발언으로 안동 유림 전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나오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대변인(짓)’이라고 비판해 막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26일 ‘지옥’ 발언을 놓고도 여당이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대한민국 국민을 지옥에서 절규하며 구원을 기다리는 듯한 객체로 표현한 것은 명백한 국민 모독”이라면서 “황 대표가 국가와 국민의 자존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스스로 구원자임을 자부하고자 한다면 종파를 창설할 일”이라고 힐난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강경 발언 등으로 보수층에게는 대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면서도 “확장성에는 뚜렷한 한계를 보여주면서 이념적 울타리에 갇힌 것이 패착”이라고 분석했다. 황 대표는 이번 주중 전체 국회의원·당협위원장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을 계획하고 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사회문제를 다양한 장르로 변주… “봉준호가 장르” 거장 반열에

    사회문제를 다양한 장르로 변주… “봉준호가 장르” 거장 반열에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 평단의 주목 ‘살인의 추억’으로 스타 감독 대열 올라 ‘괴물’ 1091만 돌파… 통념 뒤엎은 ‘마더’ ‘설국열차’ ‘옥자’ 사회적 시스템 일침 7번째 장편 ‘기생충’으로 쾌거 이뤄“한국 최초의 황금종려상인데 마침 올해가 한국영화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칸영화제가 한국영화계에 의미가 큰 선물을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25일(현지시간) 밤늦게 열린 현지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이번 수상은 봉 감독 개인의 성취를 넘어 대중상업영화와 작가주의영화의 절묘한 균형을 모색해 온 한국영화가 이룩한 독보적인 성과라는 평가를 받는다. 더욱이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한국영화계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영화만의 개성과 저력을 다시금 인정받는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됐다.한국영화 향후 100년사에 특별한 전기를 마련한 봉 감독은 번뜩이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선보여 왔다. 작품마다 인간애와 유머, 서스펜스를 아우르는 복합적인 재미를 선사하는 동시에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놓치지 않은 그는 보기 드물게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두루 호평받았다. 특히 사회문제를 범죄·미스터리, 괴수 블록버스터,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로 변주한 그는 “봉준호 자체가 장르”라는 평가를 얻었다. 봉 감독은 지난 22일 ‘기생충’ 상영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장르 영화감독’이라고 강조하며 “한국 장르영화가 할리우드의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전형적인 규칙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그 틈바구니로 사회적 문제가 표현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이번 수상의 동력 가운데 송강호와의 ‘케미’도 빼놓을 수 없다. 둘은 ‘기생충’을 포함해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설국열차’(2013) 등 17년간 네 번의 작품을 함께했다. 봉 감독이 조연출이던 시절, 오디션에서 처음 만난 송강호에게 ‘이번 오디션엔 탈락했지만 다음 작품에 꼭 함께하자’고 위로했고, 그 후 ‘살인의 추억’ 감독이 돼 송강호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이야기는 영화계에선 널리 알려진 일화다. 특히 봉 감독은 ‘기생충’ 시나리오를 쓸 때 이미 송강호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봉 감독이 수상대 높은 곳으로 송강호를 불러 올린 뒤 그에게 무릎 꿇고 트로피를 바치는 퍼포먼스를 벌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연세대 사회학과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한 뒤 연출부 생활을 거친 봉 감독은 2000년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서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연출력을 선보이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2003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살인의 추억’이 흥행성과 작품성에서 두루 인정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배우들의 대사와 동작, 세트, 소품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는 섬세한 연출을 통해 ‘봉준호+디테일’이란 뜻의 ‘봉테일’이란 별칭도 얻었다. 2006년 한국형 블록버스터 탄생을 알린 ‘괴물’은 최종 관객수 1091만명을 불러모으며 당시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 이후 ‘마더’(2009)에서는 아들을 지키려는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모성애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뒤엎었다.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설국열차’에서는 설원을 질주하는 기차를 배경으로 부와 권력에 따라 서열화된 이 시대의 계급 문제를, 넷플릭스 영화 ‘옥자’(2017)에서는 슈퍼 돼지와 산골소녀의 우정을 통해 자본주의 대량생산 시스템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봉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인 ‘기생충’은 가족 전부가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고액 과외 교사 면접을 보기 위해 글로벌 IT 기업 CEO인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도저히 만날 일이 없어 보이는 가난한 가족과 부유한 가족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빈부 격차 문제를 꼬집는 블랙코미디다.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문제를 한국적인 방식으로 풀어낸 점이 이번 수상에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은 “한국적인 상황이면서도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한 이야기가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최근 한국영화가 2000년대 초·중반의 독창성과 개성을 잃어버리고 상업적으로 안전한 영화들만 만든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기생충’을 통해 한국영화가 과감한 도전과 미학적 활기를 되찾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찬일 영화평론가 역시 “봉 감독은 자신의 대표작인 ‘살인의 추억’을 객관적으로 뛰어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현재이면서 미래”라는 말로 봉 감독을 치켜세웠다. 이어 “그간 칸에 의해 세계 영화 역사의 지형도가 그려져 왔다”면서 “서구영화 역사가들이 이번 영화제를 계기로 한국영화를 본격적으로 조명하게 될 텐데 이번 수상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분석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황교안 민생대장정 끝나자 이번엔 지옥 발언 공방

    황교안 민생대장정 끝나자 이번엔 지옥 발언 공방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25일 서울 광화문 집회를 끝으로 18일간의 민생 대장정을 마쳤다. 민생 대장정을 통해 지지층 결집과 ‘대중 정치인’ 이미지 구축 등 성과가 있었지만 중도층 껴안기 등 외연 확장에는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정치권에서 나온다. 황 대표는 지난 7일 부산을 시작으로 전국을 돌며 생업 현장의 자영업자와 농어촌의 어르신들, 취직이 안 돼 어려움을 겪는 청년까지 다양한 계층을 만났다. 황 대표는 26일 페이스북에 “‘18일, 4080㎞’. 전국의 민생현장을 다니며 시민과 함께했던 그 시간과 거리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알기 위한 노력과 도전의 여정이었다”며 “현장은 지옥과 같았고 시민은 ‘살려 달라’ 절규했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하지만 황 대표는 지난 12일 경북 영천 은해사에서 열린 부처님오신날 봉축 법요식에서 합장 등 불교의식을 따르지 않아 종교 편향 논란을 불렀다. 11일에는 대구에서 달리는 쓰레기 수거차에 보호 장구를 착용하지 않고 매달려 이동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논란이 있었다. 또 안동을 방문한 자리에서 일부 유림 대표가 ‘100년 만에 나타난 구세주’ 등 찬양 발언으로 안동 유림 전체에 대한 비판 여론이 나오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대변인(짓)’이라고 비판해 막말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26일 ‘지옥’ 발언을 놓고도 여당이 반발하는 등 논란이 일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대한민국 국민을 지옥에서 절규하며 구원을 기다리는 듯한 객체로 표현한 것은 명백한 국민 모독”이라면서 “황 대표가 국가와 국민의 자존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스스로 구원자임을 자부하고자 한다면 종파를 창설할 일”이라고 힐난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강경 발언 등으로 보수층에게는 대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면서도 “확장성에는 뚜렷한 한계를 보여주면서 이념적 울타리에 갇힌 것이 패착”이라고 분석했다. 황 대표는 이번 주중 전체 국회의원·당협위원장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을 계획하고 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달콤한 사이언스]“100년 뒤 지구는 생쥐와 참새 등 작은 동물들이 지배할 것”

    [달콤한 사이언스]“100년 뒤 지구는 생쥐와 참새 등 작은 동물들이 지배할 것”

    중생대 백악기와 쥬라기 시대에 지구를 지배했던 생물은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큰 공룡들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소행성과 충돌해 지구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서 공룡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현재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다. 과연 먼 미래에도 지구에 사람이 있을까. 한국에서 인기작가로 자리잡은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2015년 발표한 ‘제3인류’는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 몸집이 15㎝ 안팎의 작은 사람들을 만들어 내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이 100년 뒤가 되면 포유류나 조류의 몸집이 지금보다 작아지고 작은 몸집을 가진 동물들이 지구에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영국 사우샘프턴대 생물과학부, 지리및환경과학부, 국립해양과학센터, 캐나다 뉴펀들랜드 메모리얼대 해양과학과 공동연구팀은 다음 세기 동안 포유류의 평균 체중은 지금보다 25% 정도 감소할 것이며 다음 세기에는 작은 몸집의 조류와 포유류가 번성하게 될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기초과학 및 공학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 24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육지에서 살고 있는 1만 5484종의 포유류와 조류에 초점을 맞추고 체중, 한 번에 낳는 새끼나 알의 수, 서식지의 다양성, 먹이, 세대 간격이라는 다섯 가지 특징을 조사했다. 이와 함께 멸종 가능성이 높은 동물들을 살펴보기 위해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리스트를 분석했다. IUCN 적색리스트는 전 세계 동식물종의 멸종위기를 평가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들 데이터를 바탕으로 몸집의 감소율과 생물다양성 손실에 대해 분석했다. 그 결과 다음 세기에 포유류 평균 체중은 25% 정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마지막 간빙기인 13만년 전부터 현재까지 포유류 크기 감소율이 14%인 것을 고려한다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이다. 이 때문에 미래에는 작고 수명이 짧아 세대 교체가 빠르고 다양한 서식지에서 사는 것이 가능한 동물들이 지배종이 될 것이라고 연구팀은 전망했다. 이 같은 전망에 따르면 미래의 승리자는 생쥐 같은 설치류, 참새 같은 조류 등이다. 이에 비해 수명이 길고 특정한 서식환경이 필요한 동물인 독수리 등 수리과 조류나 검은코뿔소 등은 필연적으로 멸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사실 이렇듯 조류와 포유류의 멸종과 몸집이 작아지는 것의 가장 큰 원인은 ‘인류’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무분별한 벌목, 사냥, 집약적 농업, 도시화, 지구온난화 등 사람이 만들어 내고 있는 생태계에 대한 각종 부정적 영향은 동물종의 소형화와 멸종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문제는 동물종의 소형화는 장기적인 생태, 진화의 지속가능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펠릭스 아이겐브로드 영국 사우샘프턴 생물과학부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제시한 포유류와 조류의 몸집이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은 생태학적으로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생물이 그들의 특성과 생태학적 변화에 대한 취약성으로 인해 도태된다는 것이 문제”라며 “이번 연구를 통해 멸종 위험이 있는 종을 어떻게 보존해고 인류가 이들의 서식지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하동군, 2022년 하동야생차문화 엑스포 유치 본격 시작

    하동군, 2022년 하동야생차문화 엑스포 유치 본격 시작

    경남 하동군이 하동야생차문화 엑스포 유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전통방식으로 차를 재배·수확·생산하는 하동 전통 차농업은 2017년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됐다. 하동군은 23일 화개면 켄싱턴리조트 컨벤션홀에서 ‘2022 하동야생차문화 엑스포 자문단 및 기획단 발대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이날 발족한 엑스포 자문단 및 기획단은 국내 각계 원로를 비롯해 학계, 문화·예술계, 종교계, 기업인, 방송·문화기획자, 연구기관, 엑스포 경험자, 차 생산자 및 단체, 행정 등 각계각층 인사 각 100명씩 모두 200명으로 구성됐다. 자문단은 반기마다 회의를 갖고 엑스포 유치를 비롯한 주요 정책·사업·행사 등의 자문역할을 한다. 기획단은 기획·문화·산업 등 3개 분과로 나눠 분기마다 한차례 및 수시 회의를 갖고 엑스포 추진방향, 관광객 유치 방안, 행사장 구성 등 기획·조사·실행 업무를 한다. 이날 발대식은 식전 차 체험에 이어 개회선언, 참석자 소개, 자문단 및 기획단 대표자 위촉장 수여, 제1·2 주제영상 상영, 엑스포 관련 주제발표 및 토론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첫번째 주제영상에서 한상덕 경상대 교수가 칠불사에서 ‘다신전’을 초록한 조선시대 차 중흥조 초의선사로 분장해 1200년 하동야생차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차문화산업의 미래를 함께하자는 메시지를 연출했다. 두번째 주제영상에서는 윤상기 군수가 자전거 앞바퀴와 뒷바퀴의 융합을 매개로 신성장 차 산업 육성과 자연·농업·관광이 어우러진 전통자원의 조화로움 속에서 100년의 비전을 세우고, 엑스포의 성공적 유치를 담은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정남수 공주대학교 교수가 좌장을 맡아 엑스포 관련 주제발표와 자유토론을 진행했다. 이상균 ‘차와 문화’ 편집장이 ‘세계 차산업의 흐름과 세계농업유산으로서 하동차 산업의 육성 필요성’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박미경 원광대학교 교수가 ‘하동 티 엑스포의 의의’를 주제로 발표했다. 김대호 목포대 교수가 ‘국내·외 차 산업 동향과 하동차의 미래전략’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김종두 동국대학교대학원 교수가 종합 토론을 했다. 이날 행사에는 윤상기 군수와 신재범 군의회 의장, 이정훈 도의원 등 기관·단체장과 엑스포 자문단 및 기획단 위원, 차 생산자·단체, 관계 공무원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군은 엑스포 자문단 및 기획단 발대식을 시작으로 하동야생차문화 엑스포 유치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선다고 밝혔다. 군은 국내·외 차 문화 교류를 통해 차 시배지 대한민국의 차 산업 위상을 강화하고, 하동야생차의 세계화를 위해 2022년 5월 전후로 20일간 하동야생차문화 엑스포를 개최할 계획이다. 엑스포 주 행사장은 화개면 차박물관 일원으로 예정하고 부 행사장은 화개면 천년다원, 탄소없는 마을, 악양면 최참판댁, 평사리들판 등으로 할 계획이다. 군은 엑스포 행사기간에 외국인 관람객 5만명을 포함해 모두 100만명 참가를 목표로 잡고 있다. 군은 오는 8월 말까지 기본계획 용역을 마치고 경남도 국제행사 평가위원회, 유치 신청, 기획재정부의 국제행사 심의위원회 타당성 용역 결정 및 타당성 조사 등을 거쳐 내년 8월 기재부 국제행사심사위원회 최종 승인을 받을 계획이다. 유치 승인이 나면 국비와 지방비 등 모두 140억원을 투입해 엑스포 운영을 위한 각종 시설과 전시 등 인프라 구축을 시작한다. 윤상기 군수는 “야생차문화 엑스포는 차 생산지로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된 하동차를 항노화바이오와 연계해 100년 미래 신성장 산업으로 육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아카시아와 아까시나무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아카시아와 아까시나무

    어릴 적 우리 집 뒤엔 관악산이 있었고 주말이면 아버지는 어린 나를 데리고 산에 올랐다. 너무 어릴 때의 기억이라 그저 아버지와 관악산에 자주 갔었다는 것과 아버지와 손을 잡고 내려오던 산에선 향기로운 꽃향이 났었다는 것, 그 산에는 동그란 잎이 여러 개 달린 가지의 나무가 많았다는 기억만이 어렴풋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초등학교 때 이사 가기 전까지 종종 우리 가족은 산에 올랐고, 부모님은 내가 기억하는 그 나무를 아카시아라고 가르쳐 주었다. 우리가 먹는 꿀이 바로 이 아카시아로부터 나는 것이라는 것까지도. 그때 왜 그렇게 산에 아카시아가 많은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저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 살던 것이겠지. 생물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은 의미 없다 생각했다. 아카시아 이름에 관한 의문도 품지 않았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해 수목학 수업을 들으며 1900년대 초에 도입돼 1970년대까지 전쟁이 끝나 황폐해진 산을 복구하기 위해 자라는 속도가 빠른 아카시아를 도심의 산에 심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그 나무의 이름이 내가 부르던 아카시아가 아닌 아까시나무라는 것은 꽤나 충격이었다.아까시나무. 관악산을 뒤덮고 있던 향기로운 그 꽃향의 나무는 아까시나무였고 아카시아는 전혀 다른 식물이었다. 둘 다 콩과이긴 하지만 우리 산에 많은 아까시나무는 북아메리카 원산의 흰 꽃을 피우는 식물이고, 아카시아는 호주와 아프리카 원산의 노란 방울 모양의 꽃이 핀다. 요즘 플라워 디자인용 절화로 많이 이용하는 미모사나무가 바로 아카시아속 식물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이름부터 잘못 불린 아까시나무는 1891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 100년이 넘는 지금까지 많은 오해와 편견 속에 지내왔다. 해방 이후 산에 나무가 없어 흙만 보여 붉은 산이라 불리던 우리나라의 산에 1970년대까지 생장 속도가 빠른 이들을 식재해 왔으나 1980년대 이후에 일제의 잔재라거나, 다른 식물의 생육을 방해한다거나, 뿌리가 관을 뚫고 들어간다는 등의 잘못된 이론으로 한동안 우리 숲에 유해한 나무로 인식돼 왔다. 오해를 풀자면, 이들은 일제 식민지 정신을 새기기 위해 심어진 식물도, 일본 원산의 식물도 아니다. 북아메리카 원산으로 세계적으로 이미 관상용이나 사방 조림용으로 많이 식재되던 종이다.그리고 햇빛을 좋아해 이미 숲을 이룬 곳은 들어가지 못하고, 콩과 식물에 있는 뿌리혹박테리아가 땅에 질소를 공급해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다른 나무의 생육을 방해한다는 건 틀린 이야기이고, 뿌리가 땅속으로 얕게 퍼져나가는 형태라 묘지의 관 깊이까지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관을 뚫는다는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뿌리가 왕성하게 자라 토양을 잡아주면서 산사태를 막아준다. 게다가 이들은 꿀을 만들어 주는 대표적인 밀원식물이다. 우리나라 꿀의 80%가 아까시나무 꿀인데, 그동안의 오해로 아까시나무 개체수가 줄면서 우리나라 양봉업계에 위기가 불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산림청은 2016년부터 아까시나무 조림 사업을 다시 시작했고, 이들 기능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에도 애쓰고 있다. 불과 수십년 만에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를 실현시킨 우리나라 곳곳의 아까시나무, 그 외의 또 다른 식물들, 산림 인재와 기술 등을 바탕으로 우리는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 곳곳에 나무를 심고 있다. 몽골, 중국, 카자흐스탄 등 세계의 산림 관계자들이 우리나라에 와 사막과 도시를 숲으로 만들 기술을 배우고자 하고, 우리는 북한과 협력해 북한 산림을 푸르게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격년 주기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산림 관계자들이 모여 산림 과제와 해결 방안을 도모하는 회의인 아태산림주간이 올해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건 그래서 더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난주 이 회의에서 진행할 세밀화 강의를 위해 들렀던 산림청에서 직원 중 한 분이 몽골 사막 조림 사업 이야기를 하며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식물, 동물과 같이 살아 있는 생물을 다루는 일이란 국경을 넘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 우리와 이어진 어느 땅이 푸르러진다면 그보다 더 값진 일이 있을까. 먼 훗날 사막에서 숲으로 변할 몽골에서, 미래의 어느 아이가 이 숲의 나무는 언제 누가 심었는지 궁금해한다면 좋겠다. 그러면 누군가 아이에게 먼 옛날 어느 먼 곳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 나무를 심어 주었다고 이야기하겠지. 지금 우리가 보는 저 산의 아까시나무도 수십년 전 누군가 심은 수고와 희망의 씨앗이었음을 우리 모두 기억했으면 한다.
  • 이화학당 재학 시절 유관순 열사 미공개 사진 공개

    이화학당 재학 시절 유관순 열사 미공개 사진 공개

    3·1운동 당시 일제에 맞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1902~1920)의 이화학당 시절 사진이 100년 만에 처음 공개됐다. 이때까지 알려진 것 중 가장 앳된 모습이다. 이화여대는 21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역사관에서 유관순 열사의 사진 2점을 최초로 선보였다. 기존에 알려진 열사의 사진은 192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찍힌 것과 1918년 이화학당 보통과 졸업 때 찍은 단체사진 등 3장이 전부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은 열사가 이화학당 보통과에 입학한 직후(1915~1916년)와 고등과에 재학하던 때(1918년)로 추정된다. 당시 나이는 15~16세. 이화여대는 창립 133주년 및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시 ‘이화의 독립운동가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진을 발견했다. 이화역사관은 24일까지 사진 원본을 전시한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삼진어묵·유튜버에 배워…삼성SDI의 ‘집사부일체’

    배터리 회사가 어묵 회사에 가르침을 청했다. 초통령(초등학생에게 인기) 유튜버 배우기에도 나섰다. 서로 다른 분야 사업을 하더라도, 표적 고객층이 다르더라도 고유의 성공 신화를 쓴 대상에게 분명 배울 점이 있다는 게 배터리 회사 삼성SDI의 생각이다. 삼성SDI의 이(異)업종 벤치마킹이 화제다. 괴짜 사부를 찾아 인생 철학과 소신을 듣는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를 연상시킬 정도로 배움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100년 전통 지평막걸리를 찾아 ‘품질경영’의 묵직한 가치를 배운 데 이어 ‘어묵 베이커리 매장’을 선보인 삼진어묵,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과 같은 키즈 콘텐츠를 생산하는 캐리소프트를 찾았다. ●삼진어묵 B2B서 B2C로 전환 ‘혁신’ 고착화된 시장의 돌파구로 ‘혁신 마인드’를 강조해 온 전영현 삼성SDI 사장의 의지가 담긴 이 여정들은 모두 온라인 사보에 게재돼 공감을 얻고 있다고 삼성SDI가 21일 밝혔다. 스마트폰이나 전기차의 ‘밥’과 같은 배터리 제조사가 사람이 먹는 어묵을 만드는 회사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박용준 삼진어묵 대표는 “원래 소매상에 납품하는 B2B(기업 대 기업) 영업 위주 회사를 B2C(기업 대 소비자) 사업으로 전환시켰다”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 소비자들이 소매상에서 비닐 포장된 어묵만을 접할 뿐 제조 과정을 직접 접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묵 제조 과정의 청결·재료 함량 등에 불신이 커졌는데, 삼진어묵 매장을 내고 직접 소비자들에게 통 유리 주방을 공개하며 신뢰를 쌓았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또 ▲내부고객(직원) 만족을 위한 개선 ▲합리적 의심·실패 뒤 반면교사를 통한 성장 ▲고정관념 탈피 등을 B2B 회사가 소비자 신뢰를 얻는 첫걸음으로 제시했다. 삼성SDI 역시 배터리를 스마트폰 제조사나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B2B 위주 기업이다. ●연매출 100억 캐리소프트 ‘시장 반영’ 공감 초통령 엘리는 2014년 3명이 3개월 동안 겨우 17만원의 수익을 내던 캐리소프트가 연매출 100억원대 벤처기업으로 성장한 사례를 설명한 뒤 “시장을 반영한 기획이 시장에서 성공한다”거나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본질을 추구하라”고 강조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타이타닉호 침몰 해안…집 앞으로 떠밀려온 ‘거대 빙산’

    타이타닉호 침몰 해안…집 앞으로 떠밀려온 ‘거대 빙산’

    사진작가 마크 그레이는 집 앞 해변에 떠다니는 빙산의 일각을 보며 여름이 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캐나다 남동부 끝자락에 위치한 뉴펀들랜드와 래브라도 해안에는 매년 이맘때면 크고 작은 빙산들이 흘러든다. 오죽하면 ‘빙산 골목’이라고 불릴 정도다. 특히 인구 400명 남짓의 페리랜드는 지난해 타이타닉호가 마주친 빙산의 3배에 달하는 거대 빙산이 흘러들어오면서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곳도 바로 이 뉴펀들랜드 해안이다. 타이타닉호는 뉴펀들랜드 해안에서 만난 15m짜리 거대 빙산에 부딪혀 선장과 승객 등 1,500여 명과 함께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빙산은 페리랜드에서 약 350km 떨어진 뉴펀들랜드주 항구도시 보나비스타에서도 볼 수 있다. 그레이는 이달 초부터 심심찮게 보이는 빙산을 촬영해 SNS에 공유했다. 보나비스타 해안에는 요즘 아이스크림은 물론 코끼리를 연상시키는 빙산까지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빙산이 목격되고 있다. 그레이는 “보나비스타 등대가 이쑤시개처럼 보일 정도로 거대한 빙산이 흘러들어오고 있다”면서 몇 년 새 가장 많은 빙산이 보이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곳으로 유입되는 빙산의 90%는 그린란드 서부의 빙하에서 나온 것으로 1만 년~1만2000년 된 얼음들이다. 매년 400~800개 정도가 흘러들어오는데 1984년에는 2000개가 넘는 빙산이 유입된 것으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로 빙하 유실이 가속화되면서 빙산이 해안가로 진입하는 시기도 앞당겨지고 개수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캐나다 오타와 대학의 빙하 연구가 아드리안 화이트가 조사한 결과 2000년~2016년 사이 캐나다 북극권 지역의 빙하 면적은 1천700km2 이상 줄어들었다. 전체의 약 6%가 사라진 셈이다. 지난해에는 높이 100m, 무게 1100만톤에 달하는 거대 빙산이 그린란드 해안가로 떠밀려 오면서 쓰나미를 우려한 주민들이 대피하기도 했다. 이처럼 빙하 유실로 인한 각종 재앙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빙하에서 떨어져나온 빙산을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2017년 아랍에미리트는 심각한 물 부족 현상을 빙산으로 해결하는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지난해에는 10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남극 빙산을 견인하는 방법을 논의하기도 했다. 코 앞까지 빙산이 흘러 들어오는 뉴펀들랜드는 빙산을 깨 진이나 보드카를 섞어 만든 ‘빙산 칵테일’과 ‘빙산 맥주’ 등을 관광상품으로 이용하고 있다. 사진=마크 그레이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독립투쟁 다룬 첫 영화 ‘자유만세’… 월북배우 편집된 ‘반 토막 필름‘

    독립투쟁 다룬 첫 영화 ‘자유만세’… 월북배우 편집된 ‘반 토막 필름‘

    해방을 맞이한 1945년 8월 15일부터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기까지 5년간은 한국영화사에서 ‘해방기’로 부르는 시기다. 해방기 영화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일제 말기 국책영화사에 소속되어 군국주의 선전영화를 만들던 영화인들과 그 영화사에 소속되지 않고 영화 작업을 쉬었던 영화인들이 다시 조우해 함께 영화를 만든 점이다. ‘조선영화가 계속 만들어질 수 있을까’라는 생존의 문제 앞에 친일부역 문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해방기 문화예술계의 상위 조직들이 좌우 진영의 논리로 이합집산을 거듭할 때 이에 따른 영화계 조직의 구성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좌익 진영의 주도로 우익까지 아우른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소속으로 1945년 9월 24일 조선영화건설본부가 설립되었을 때, 그 구성원은 일제 말기 조선영화제작주식회사에 참가했던 영화인들이 대부분이었다. 11월 5일에는 좌익 강경파의 주도로 조선프롤레타리아영화동맹이 설립되었는데, 최고 지도부를 제외하면 역시 이데올로기와 관계없이 참가한 기술 파트 영화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한 달여 만인 12월 6일 두 조직은 조선영화동맹으로 통합되는데 이 때 지도부 면면만 보더라도 친일부역과 이념 성향을 초월한 인선임을 알 수 있다. 영화 작업의 특성상 인적 관계나 기술적 전문성을 더 중요하게 고려한 결과였다. 어지러운 해방 정국 그리고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전후한 시기, 최인규의 ‘자유만세’(1946)를 통해 ‘조선영화’가 어떻게 ‘한국영화’로 거듭나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미국영화의 범람과 열악한 제작 환경 해방기 영화계 상황은 미국영화의 장악과 조선영화의 위기로 요약된다. 1948년 4월 23일자 서울신문 기사에 의하면 1945년 11월부터 1948년 3월까지 미국 극영화가 422편, 미국의 뉴스영화는 289편이 수입되었는데 그중에서 극영화 400편, 뉴스 250편이 중앙영화배급사(CMPE)의 영화였다. 미국 9대 영화사의 배급 대행을 담당한 중앙영화배급사는 실질적으로 미군이 관장한 단체였다. 1946년 2월 일본에 도쿄사무소를 설립한 것에 이어 4월 조선사무소를 설치하고, 미국영화가 조선 영화시장을 장악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처럼 미국영화가 극장가를 독식하는 가운데 같은 시기 조선 극영화는 17편이 제작되는 데 그쳤다. 해방 후 첫 극영화로 이규환의 ‘똘똘이의 모험’(1946)이 개봉하고, 최인규의 ‘자유만세’가 상징적인 의미에서 ‘해방영화’로 인정받으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당시 영화계는 영화 필름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극영화 제작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연극 무대에 영화 장면을 덧붙여 공연하는 연쇄극이 다시 만들어지는가 하면 일반적인 상업영화용 필름인 35㎜ 대신 16㎜ 영화가 만들어졌고, 변사를 써야 하는 무성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기술적으로도 퇴보했다. 현재 필름이 보존되어 있는 영화 중에서 16㎜ 무성으로 만들어진 ‘검사와 여선생’(윤대룡·1948), 16㎜ 발성으로 제작된 ‘청춘행로’(장황연·1949)가 대표적인 예다. 미국영화에 비해 상영할 영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영화들도 다시 개봉했다. 1946년 2월 서울극장(해방 전 경성극장)에서 일제의 국책영화 ‘군용열차’(서광제·1938)가 ‘낙양의 젊은이’라는 제목으로 재편집 후 상영되어 물의를 빚었고, 3월에는 일제의 검열로 창고에 있던 ‘신개지’(윤봉춘·1942)가 빛을 보았다. 5월 우미관에서는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안종화·1934)가 다시 상영되기도 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앞둔 시점, 영화계는 건국이라는 절대적 과제와 궤를 같이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으로 ‘경찰 영화’와 독립운동가들을 내세운 영화를 들 수 있다. 조선해양경비대의 지원을 받은 ‘바다의 정열’(서정규·1947)을 위시로, 경찰 조직의 후원을 받은 ‘수우’(안종화·1948) ‘밤의 태양’(박기채·1948)이 정부 수립 직전 속속 공개되었다. 가장 대중적인 범죄액션 장르를 통해 경찰의 기능과 밀수 근절을 선전하는 영화들이었다. 또한 계몽문화협회를 주축으로 ‘의사 안중근’(이구영·1946), ‘윤봉길 의사’(윤봉춘·1947) 등 일제치하 애국지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들이 만들어졌다. 이처럼 계몽과 건국을 키워드로 한 극영화의 등장은 새로운 국가·국민 만들기와 맥을 함께하는 것이었다. 물론 괴기물 ‘목단등기’(김소동·1947)처럼 순수한 오락영화도 만들어졌지만, 최은희의 영화배우 데뷔작 ‘새로운 맹서’(신경균·1947)처럼 대중이 좋아하는 멜로드라마 장르를 빌어 건국과 관련된 주제를 담아낸 영화들이 선보였다.●해방기 영화인들이 총출동한 ‘자유만세’ 해방 1주년을 기념해 ‘해방 경축 영화’로 기획된 ‘자유만세’는 일제강점기 조선영화계를 대표하던 영화인들이 모여 의기투합한 프로젝트였다. 전창근(‘복지만리’(1941) 감독)의 각본으로 최인규가 연출을 맡았고, 촬영은 한형모(‘태양의 아이들’(1944)로 촬영기사 데뷔), 조명은 김성춘(‘살수차’(1935)의 조명 기사), 편집은 양주남(‘미몽’(1936)의 감독)이 맡았다. 또한 고려영화주식회사의 배급으로 고려영화협회가 제작을 맡았고 사회사업 단체인 ‘향린원’(‘집 없는 천사’(1941년)의 배경)이 공동제작으로 참가했다. 1930년대 중후반 조선영화계를 대표하던 고려영화사의 인맥이 그대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단 고려영화사의 대표였던 이창용이 빠지고, 최인규의 형인 최완규가 기획과 제작을 맡았다. 또한 감독 안종화, 안석영, 윤봉춘, 이규환도 ‘연출응원’으로 이름을 올린 것에서 당시 영화계를 대표하던 인물들이 모두 나선 것을 알 수 있다. ‘자유만세’는 어떤 내용으로 해방의 기쁨을 담아냈을까. 영화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일제의 패망이 짙어지던 1945년 8월 어느 날, 독립운동을 하다 친구 남부(일본어 발음으로 나베·독은기)의 배반으로 투옥되었던 최한중(전창근)은 동료(박학)와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료는 사살되고, 그 혼자 탈출에 성공한다. 한중은 대학병원 간호사 혜자(황려희)의 집으로 은신해 지하조직의 무장봉기를 다시 주도한다. 동료 박(김승호)이 다이너마이트를 운반하다 일본 헌병에 붙잡히자 한중은 그를 구출한 후, 우연히 남부의 애인인 미향(유계선)의 아파트로 피신한다. 한중을 숨겨준 미향은 그에 매료되어, 지하조직이 있는 지하실로 찾아가 정보와 자금을 전달한다. 그 뒤를 밟은 헌병대에 의해 미향은 사살되고 한중 역시 총상으로 대학병원으로 옮겨진다. 한중을 사모하던 혜자는 헌병이 잠든 틈을 타 그를 탈출시킨다. ‘자유만세’는 해방 이후 한국영화에서 일제치하의 무장독립운동을 묘사한 첫 번째 작품으로 기록된다. 제목처럼 해방의 감격을 활극·멜로드라마 장르에 잘 녹여내 해방기 극장가에서 최고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영화는 1947년까지 계속해서 상영되었고 “조선영화 최초 외국판으로 ‘자유만세’(고영 작품) 중국판이 만들어져 중국으로 수출”되기도 했다(경향신문 1947년 6월 15일자). 흥미로운 대목은 1948년 이후에는 영화의 상영 기록을 찾아볼 수 없는 점이다. 이후 ‘자유만세’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 영화 필름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한국영화’가 된다는 것의 문제 ‘자유만세’가 다시 공개된 공식적인 기록은 1975년 ‘흘러간 명화 감상회’에서였다(동아일보 1975년 7월 5일자). 영화진흥공사가 8·15 광복 30주년을 기념해 해방 이후 한국영화 12편을 선정하고 상영회를 개최한 것이다. 한편 당시 기사는 1940년대 작품으로 유일하게 ‘자유만세’가 포함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고려영화사 사장 최완규가 프린트 1벌을 지금까지 보관해 온 덕분이라고 설명하며 “월북한 연기자가 출연진에 들어 있어서 그 상영 당시 많은 장면이 가위질을 당했고 현재 남아 있는 프린트는 상영시간으로 50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흥미로운 내용을 전한다(경향신문 1975년 6월 28일자). 즉 원래 개봉 버전인 100분의 러닝타임이 당시 삭제 검열 등을 거치며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 중인 51분 버전과 비슷한 분량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문제가 된 월북 배우는 바로 박학과 독은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보존된 버전에서 두 배우의 모습은 삭제되었지만 둘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먼저 영화의 시작부, 한중(전창근)과 그의 동료(박학)가 서대문 형무소를 탈출하는 장면이다. 박학의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는 빠른 편집으로 구성된 숏들의 경우 그대로 살리고 총에 맞아 죽은 그의 얼굴의 클로즈업은 당시 검열에서 삭제되었다. 이렇게 파악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 필름에는 나중에 촬영한 다른 배우의 얼굴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헌병대 형사 남부(독은기)의 경우 시나리오상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다른 인물의 클로즈업으로 완전히 교체되었다. 그런데 그가 애인 미향(유계선)의 집에서 그녀를 만나고 가는 장면에서는 삭제되지 않은 그의 뒷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배우들의 모습이 들어간 필름은 과연 언제 만들어졌을까.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현재 보존본의 오프닝 크레디트에 나오는 정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영화 처음에 등장하는 해설 자막이다. “29년을 경과하는 동안 6·25사변 등 역사의 격동을 겪으면서도 기적적으로 보존”되었다는 문구에서 이 영화의 재공개를 결정한 1975년 시점을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녹음은 특히 전반에 있어서 실패”(경향신문 1946년 10월 24일자)라는 당시 기사 내용에도 불구하고, 현재 보존된 ‘자유만세’ 프린트가 매우 선명한 녹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인물들의 대사 중 시나리오상 자주 등장하는 ‘조선’이라는 말은 전부 ‘한국’으로 바뀐 것에서 새롭게 녹음한 버전임을 확신할 수 있다. 이는 오프닝 크레디트에서 현상, 인화를 ‘한국영화문화협회’에서 담당했다는 정보와 연결해 봐야 한다. 한국영화문화협회는 미국의 민간원조기구인 아시아재단으로부터 기증받은 영화기자재를 관리하기 위해 1956년 7월 설립된 단체인데, 카메라부터 녹음기까지 각 기재들은 1957년 1월 개소한 정릉스튜디오에 설비했다. 즉 다시 녹음한 프린트의 제작은 1957년 이후의 어느 시점에 이루어졌다는 말이 된다.정리하면 ‘자유만세’의 필름은 1948년 시점 검열을 받아 상당한 장면들이 삭제되었고, 1957년부터 1975년 재공개 사이 새로운 장면의 촬영과 편집, 재녹음 등 각 단계를 거쳐 새로운 프린트가 만들어졌다. 현재로서는 각 단계가 한 번에 이루어졌는지 별개로 진행되었는지 구체적인 과정과 시점을 특정하기 힘들지만, 새로운 ‘자유만세’의 프린트 제작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국 사회가 ‘한국영화’를 규정하려고 고민하던 시기와 맞닿아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유만세’는 당국의 검열로 월북 영화인들의 출연 장면이 삭제된 후 다시 편집되고 녹음된 후에야 비로소 ‘한국영화’가 될 수 있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혹시 잠수함?…지구상 최대 크기 동물 거대 ‘대왕고래’ 포착

    혹시 잠수함?…지구상 최대 크기 동물 거대 ‘대왕고래’ 포착

    현존 최대 크기의 동물인 ‘대왕고래’가 카메라에 포착됐다. 지난달 초 태국 출신 다이버 타나키트 얌모 수완양아운(37)이 이끄는 수중촬영팀은 스리랑카 심해에서 길이 30m짜리 ‘대왕고래’와 마주쳤다.타나키트는 “수많은 고래를 봐왔지만 이렇게 큰 고래는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30m가 넘는 크기의 대왕고래는 잠수함 같았다.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알게 해주는 대왕고래의 거대함에 경외심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달 초 직접 주최한 ‘2019 고래 사진 전시회’에서 이 사진을 공개했다. 타나키트와 함께 촬영에 임한 사진작가 피어라퐁 조 크롱프라타야는 크릴새우 사냥에 한창인 대왕고래를 배경으로 찍은 셀카를 SN에 공유하기도 했다.타나키트는 “대왕고래는 촬영이 매우 까다롭다. 겁을 먹으면 심해 깊숙이 헤엄쳐내려 가기 때문에 조심스러우면서도 빠르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대왕고래가 스쳐 지나가는 데는 10여 초 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숨 쉴 틈이 없다고 덧붙였다.대왕고래의 최대 길이는 33m, 몸무게는 179t에 이른다. 일부 학자들은 대왕고래가 현존하는 동물은 물론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동물 가운데서도 가장 거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구상에 살았던 가장 큰 육지 동물로 추정되는 공룡 아르헨티노사우루스가 길이 35m, 몸무게 90t 정도인 것만 봐도 대왕고래가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한편 대왕고래는 붓으로 그린 듯한 주름이 온몸을 뒤덮고 있으며, 크릴새우(남극새우)만 먹는 것이 특징이다. 최대 수명은 100년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좁은 협곡, 숨겨진 바위 도시… 붉은 사막, 그 너머 쪽빛 홍해

    좁은 협곡, 숨겨진 바위 도시… 붉은 사막, 그 너머 쪽빛 홍해

    좁은 협곡 사이를 빠져나오자 불현듯 거대한 신전이 나타났다. 실제로 보고 있지만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바위를 깎아 건설한 신비로운 고대도시 페트라. 그 속에 서면 인간의 능력이 새삼 경이롭게 다가온다. 요르단은 우리에겐 다소 낯선 나라다. 지중해 동남쪽 아라비아반도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동쪽으로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서쪽으로는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와 접하고 있다.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90% 이상이 이슬람교를 믿는 전형적인 이슬람 국가지만, 불행하게도 석유는 단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그런 만큼 교육열은 높다. 중동 지역에서 활동하는 의사와 정보기술(IT) 전문가는 대부분 요르단 출신이다.●영화 인디애나 존스·트랜스포머 촬영지로 유명 요르단을 대표하는 여행지는 페트라다. 수도 암만에서 150㎞가량 떨어져 있다. 차로 3시간여를 가야 한다. 페트라는 특유의 신비로운 존재감으로 인해 영화에 많이 등장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영화가 ‘트랜스포머’다. 외계 로봇 종족의 운명을 가를 열쇠가 신전 암벽 뒤에 감춰져 있는데 이 신전이 바로 페트라를 대표하는 건축물 ‘알 카즈네’다. 알 카즈네는 영화 ‘인디애나 존스-최후의 성전’에도 등장했다. 고고학자 인디애나 존스(해리슨 포드)가 예수의 성배를 찾아다니는 과정에 나온다. 인디애나 존스가 말을 타고 협곡 사이를 달리다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면서 만나는 장밋빛 신전이 바로 알 카즈네다. 붉은 사암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그 건축물을, 그곳이 페트라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정교한 세트 정도로 여겼다. 페트라 앞에 서자 왜 스필버그가 이곳을 성배를 숨겨놓은 장소로 설정했는지, 외계인이 그들의 운명을 건 열쇠를 이곳에 숨겨 놓을 수밖에 없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졌다. 역시 세상에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많고 직접 눈으로 봐도 불가사의하게 느껴지는 일들투성이다. 페트라를 세운 주인공은 기원전 6세기경 아라비아반도에 정착한 유목민족인 나바테아인이다.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해발 950m의 바위투성이 고지대에 이 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도시는 번성했다. 황량한 사막과 협곡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람이 살기에 좋은 환경을 가진 곳은 아니었지만 예멘, 메카, 팔레스타인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의 요충지 역할을 하며 발전했다. 지리적으로 이집트와 아라비아반도, 페니키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실크로드를 따라 무역을 하던 대상들의 왕래가 잦았기 때문이다. 나바테아인은 ‘왕의 대로’를 장악하면서 아라비아의 거상으로 부상했고 페트라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교역의 중심지가 됐다. 왕의 대로는 요르단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고대의 길. 해발 1200m에 위치한 이 길은 지금도 자동차가 툴툴거리며 달린다. 도시가 발전하자 로마제국이 페트라를 넘보기 시작했고 결국 106년 로마군에 점령당하고 만다. 이후 세월이 흘러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된 후 페트라는 동로마가 통치하게 되는데 이때 동로마가 페트라보다 수도에 더 가까운 시리아의 팔미라로 무역의 중심지를 옮기면서 자연스레 대상들의 활동 무대도 시리아로 옮겨지게 되고 페트라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쇠락해 가던 페트라에 결정타를 날린 건 지진이었다. 6~7세기 발생한 대지진은 삽시간에 도시를 집어삼켰고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다. 페트라는 역사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1000년이 지났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전설 속 도시는 1812년 스위스 탐험가 요한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발견되면서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당시 요한은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카이로로 가는 도중 요르단 남서부 지방을 지나던 중이었다. 황무지와 가파른 협곡이 어우러진 도시 와디무사에 도달한 그는 사막의 유목민 베두인족에게서 와디무사 인근에 보물이 감춰진 고대 도시의 폐허가 있다는 전설을 듣게 된다.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페트라였다. 페트라에 정착해 살고 있던 베두인족은 자신의 생활 터전을 침범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요한은 베두인족 가이드를 앞세워 협곡 틈새로 숨어들었고, 마침내 폐허 속에 잔존해 있던 나바테아인의 도시를 발견했다. ●‘파라오 보물 창고’ 알 카즈네… 신전·수도원 유적도 페트라 입구에 위치한 마을은 와디무사. ‘모세의 건천’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14세기, 60만 명의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모세는 ‘왕의 대로’를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이동하던 중 페트라를 통과한다. 모세는 이곳에서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화를 내며 지팡이를 바위로 두 번 치자 물이 솟아났다고 한다.페트라 입구에 자리한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알 카즈네까지는 ‘시크’라고 불리는 협곡을 따라 약 3㎞를 가야 한다. 여행자들은 100m가 넘는 높이의 바위들이 2~3m의 좁은 폭으로 형성돼 있는 시크를 걸으며 저마다 웅장한 페트라의 모습을 상상한다. 시크를 따라가다보면 절벽에 물결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침식작용과 대홍수로 생겨난 지형의 변화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 샌드위치를 자른 듯 층층이 겹친 지층은 지질학 교과서이기도 하다. 벽에는 굵은 홈이 길게 이어져 있다. 나바테아인들이 사막 위에 거대한 도시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의 샘’에서 물을 공급받았기 때문. 바위를 깎아 만든 이 홈이 다름 아닌 수로다. 그렇게 좁고 긴 시크를 통과하다 보면 협곡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조금씩 많아진다. 그리고 붉은색 암벽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 드러난다. 바로 알 카즈네다. 기원전 100년경 건축된 알 카즈네는 6개의 원형 기둥이 받치고 있는 2층 형태의 신전 건물로 너비는 30m, 높이는 43m에 달한다. 1, 2층 정면에는 제우스신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기마상과 풍요의 여신인 알우자 등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알 카즈네는 이집트 파라오의 보물이 감춰져 있다는 전설 탓에 ‘보물창고’라고 불린다. 하지만 내부에 들어가 보면 텅 비어 있는 작은 사각형의 방만이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어두운 방 한쪽에서는 실망한 여행자들의 작은 탄성이 들리기도 한다. 실제로 알 카즈네는 페트라의 대부분 유적들과 마찬가지로 왕가의 무덤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며 아레타스 3세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페트라에 암벽 조각 건축이 발달한 이유는 페트라를 둘러싼 협곡의 암석들이 조각하거나 파내기가 쉬운 사암이기 때문. 그리스어로 페트라는 ‘바위’를 뜻하는데 실제 페트라의 대부분 건축물들은 쌓아 올리면서 만든 건축물이 아닌 암벽을 깎아 내려가면서 조각해 만든 건축물이다. 알 카즈네를 지나 협곡을 따라 가면 바위산을 깎아 만든 도시가 나타난다. 절벽을 파내서 만든 33층의 계단 형태의 원형극장은 무려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당시 종교 의식과 다양한 회의 장소로 사용됐다고 한다. 원형극장을 지나 절벽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내부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어 수도원으로 추측되는 건물이 나온다. 데이르 수도원인데 입구의 높이만 8m에 이를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한다. 이 외에도 신전, 수도원, 목욕탕 등이 남아 있는데 모두 탄성을 자아낼 만큼 뛰어난 유적들이다.●해발 1000m 광활한 사막… 수백 m씩 솟은 바위산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1888~1935). 영국 군인이었던 그는 연고도 없는 아랍 지역의 독립을 위해 1917년 와디럼 사막을 가로질렀다. 아랍의 적인 터키군의 요새가 있는 홍해 연안의 항구도시 아카바를 함락하기 위해서였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그의 영웅담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낙타를 타고 붉은 와이럼을 달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 소망이 이루어졌다. 와디럼은 암만에서 남쪽으로 320㎞ 떨어져 있다. 면적이 720㎢에 달하는 광활한 사막이다. 언뜻 평지처럼 보이지만 가장 낮은 곳도 해발 1000m인 고지대다. 달리다 보면 수백m씩 솟은 바위산들이 불쑥불쑥 나타난다.와디럼에는 아직도 낙타를 몰고 살아가는 베두인들이 있다. 그리고 여행자들도 찾아든다. 지프를 개조한 트럭을 타고 사막을 여행한다. 열기구와 경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이들도 있다. 사막에는 여행자를 위한 베두인족 텐트도 마련돼 있다. 사막 한가운데 마련된 터라 전기도 없고 2인용 텐트에는 잠금쇠도 없다. 와디럼에서 딱히 하는 일은 없다. 그냥 달릴 뿐이다. 울퉁불퉁한 사막을 시속 80㎞로 달린다. 얼굴에는 모래가 날아와 박힌다. 바위산을 만나면 바위산을 감상하며 잠시 쉰다. 때로는 바위산에 오르기도 한다. 그래도 지루하지 않다. 해질 무렵이면 사막은 황금빛, 아니 붉은색으로 물들고 베두인들은 메카를 향해 절을 하고 기도를 올린다. 모래사막에 길게 늘어진 그림자는 마침내 지평선에 닿고 어느 순간 사라질 때쯤이면 텐트로 돌아간다.밤의 사막. 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다. 쌀알을 뿌려 놓은 것 같다. 별빛 아래에서 베두인족이 만들어 주는 ‘아라빅 커피’를 마시며 화덕에 양고기를 구워 먹는다. 그러고는 밤새 노래를 부르다가 돌아간다. 그렇게 하룻밤 있어 보았다. 해가 뜨는 아침 무렵, 사막이 점점 장밋빛으로 변해 갈 때, 로런스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로런스는 와디럼이 “신의 모습과도 같다”고 했다. 그가 와디럼을 가로질렀던 까닭은 아랍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사막에서 신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휴양 도시 아카바… 140여종 산호림·형형색색 물고기 와디럼을 나와 아카바로 향했다. 자동차로 1시간 안팎의 거리. 홍해에 면한 휴양도시다. 해변에는 고급 리조트들이 늘어서 있고 수영장마다, 백사장마다 비키니 차림의 여성이 가득했다. 아카바만에는 140여종의 산호림이 울창해 1년 내내 다이버들로 붐빈다. 유리로 된 바닥을 통해 해저를 관람하는 요트도 있다. 배를 타고 홍해로 나가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은 후 한적한 근해에 정박해 스노클링을 즐겼다. 투명한 물 아래로 새하얀 산호초가 너울댔고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코앞까지 다가와 지느러미를 흔들었다. 생각지 못한 요르단에서의 사치스런 휴식. 방콕과 홍콩을 거쳐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내일 따위는 잊고 선탠 베드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해변은 고뇌하는 인간을 싫어하지. 홍해의 눈부신 햇살이 찬란했다. 글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 여행수첩 한국~요르단은 직항 항공편이 없다. 요르단항공, 에티하드항공, 대한항공 등으로 방콕, 두바이 등을 경유해야 한다. 1요르단 디나르(JOD)=약 1670원이다. 페트라는 암만에서 약 3시간 거리. 페트라~와디럼~아카바 코스가 요르단을 여행하는 가장 일반적인 루트다.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지역 중 하나인 사해는 요르단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보통 바다 염도의 약 5~6배인 사해는 피부병이나 류머티즘 등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사해에서 동쪽으로 4㎞ 지점에 위치한 마인 온천은 ‘폭포 온천’이다. 낮은 산에서 55℃의 폭포가 떨어지면서 알맞게 식어, 폭포 아래에 고인 물로 천연 스파를 즐길 수 있다. 2000년 전 헤롯왕이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제라쉬는 요르단 북부에 자리한 도시다. 암만에서 약 50㎞ 떨어져 있다. 요르단에서 가장 큰 유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기독교인들과 이슬람인들이 이 도시를 두고 뺏고 뺏기는 역사를 되풀이했다. 700년경에 있었던 지진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흙더미 아래 묻혔는데, 일부를 발굴해 놓았다. 제우스 신전을 비롯해 광장, 극장, 문 등 고대 로마의 유적을 만날 수 있다.
  • ‘農뚜레일’ 이용해서 농촌체험 기차여행 떠날래요?

    ‘農뚜레일’ 이용해서 농촌체험 기차여행 떠날래요?

    강릉 야생화 체험·함안 고택투어 등 7개 지자체 농촌·철도 연계상품 출시 매주 토요일 운영… 요금 할인 혜택도‘기차 타고 아름다운 농촌 가볼까.’ 농촌진흥청과 코레일은 18일부터 경북 군위군 등 전국 7개 자치단체와 함께 농촌 체험 기차여행 프로그램 ‘농(農)뚜레일’을 운영한다고 16일 밝혔다. 공모로 선정된 상표명인 ‘농뚜레일’은 ‘농촌과 철도의 연결’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이번 프로그램은 군위를 비롯해 강원 강릉, 충북 청주, 충남 서천, 전북 정읍, 전북 순창, 경남 함양 등 7개 지역을 둘러보도록 구성됐다. 매주 토요일에 운영한다. 코레일은 기차요금 30% 정도를 할인해주며, 지자체들은 버스 임차 및 관광지 입장료 등을 지원해 참가자들의 부담을 덜어 준다. 군위에서는 ‘보이소! 군위 보물상자’ 프로그램이 선보인다. 네티즌이 뽑은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 ‘화본역’, 돌담길이 가장 아름다운 ‘한밤마을’, 경주 불국사 석굴암보다 100년 앞서 조성된 ‘군위 삼존 석굴암’(국보 제109호), 1960, 70년대를 추억할 수 있는 ‘엄마 아빠 어렸을 적에’ 전시장 등을 둘러보게 된다. 막걸리 및 발효빵 만들기 체험과 연잎 밥을 즐길 수 있다. 가격은 동대구역에서 출발하면 1인당 2만 6000원, 대전역 5만 3400원, 부산역 5만원으로 저렴하다. 강릉에서는 ‘바다향 강릉, 자연 속으로’를 주제로 허브와 야생화를 체험하는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충주에서는 ‘와유바유 충주로’를 주제로 사과를 이용한 디저트도 만들고 전통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순창은 ‘치유벗 순창이 참 좋다’를 주제로 농가 맛집에서 제철 건강 밥상과 꽃차를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함안은 개평마을 고택투어, 솔송주 명인과의 만남, 산삼주제관 등을 체험하게 된다. 신청은 코레일 홈페이지 농뚜레일 농촌체험연계 상품코너에서 하면 된다. 곽영호 경북도 농업기술원장은 “이번 농뚜레일 출시를 계기로 농촌체험관광이 활성화돼 도농 교류 및 상생발전에 크게 기여하길 바란다”면서 “앞으로 다양한 기차여행상품 개발과 홍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역사 살리고 젊음 되찾고… 전남 순천 ‘도시재생 전국 1번지’로

    역사 살리고 젊음 되찾고… 전남 순천 ‘도시재생 전국 1번지’로

    대한민국에서 도시재생 하면 떠오르는 지역이 있다. 바로 전남 순천이다. 2014년 근린재생형 200억원, 지난해 중심시가지형 300억원, 일반근린형 197억원, 올해 역세권 300억원을 지원받는 등 국토교통부로부터 네 차례나 도시재생 뉴딜사업 지역으로 선정됐다. 2016년부터 3년 연속 도시재생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았다. 명성이 퍼지면서 전국 자치단체뿐 아니라 많은 기관에서 도시재생을 보고 간다. 시가 도시재생을 추진하게 된 이유는 2013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로 도시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고, 순천만에 6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 반면 신도심에 밀려 쇠퇴하는 지역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되면서다. 원도심은 700년 역사의 순천 부읍성터로 20년 전 대비 인구가 49% 감소했다. 이러한 도시를 활성화하기 위해 도시재생 선도 사업에 뛰어들게 됐다. 시는 시스템에 의한 도시재생, 외부 전문가보다는 지역민이 주도하는 도시재생을 추진하고 있다. 전국 최다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된 순천의 비결을 살펴본다.●도시재생 선도사업 선정… 주민 주도로 진행 순천시는 2014년 국토부 도시재생 선도 사업지로 처음 지정된 후 지난해까지 200억원을 투입해 에코지오 마을 만들기, 역사문화자원 경관 조명사업, 창작 예술촌 조성, 생활문화센터 영동 1번지 등을 추진했다. 생활문화센터 영동 1번지는 옛 승주군청을 일부 리모델링해 세대 간 교류, 생활예술공간으로 활용한다. 개장 4개월 만에 2만 8000여명이 이용, 산뜻하게 출발했다. 당초 생활문화센터 영동 1번지는 경관을 가린다며 철거하자는 주민과 역사성을 고려해 보전하자는 의견이 팽배했다. 이후 시가 주민, 도심 관계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리모델링했다. 순천시 도시재생 사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처럼 비전 수립에서부터 각종 사업까지 주민 주도로 진행해 성공했기 때문이다. 순천 부읍성 서문 안내소도 유명 건축사 설계안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있었다. 과거 순천부읍성 성벽 안과 밖의 정서적 차별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현장 설명회와 주민 의견 수렴 간담회를 열고, 집중 검토회의를 거친 데 이어 주민들을 상대로 설명회 등을 거쳐 착공했다. 지역 주민이 건물 디자인 및 기능을 결정하도록 주민 의견 수렴 후 전면 재설계했다. 시설물 관리 운영도 주민이 맡았다. 주민 스스로 기획하고 참여한 선도 모델이다. 시는 역사 복원을 강조한다. 가장 먼저 역사성, 상징성이 있는 안력산 의료 문화센터를 복원했다. 이곳은 100년 된 근대 의료 건축유산을 복원해 전시실 2곳과 주민 의료 봉사실을 갖춰 동네 어르신들의 의료 진료 등을 한다. 길이 좁은 골목의 변화를 가져와 순천의 핫플레이스인 옥리단길을 탄생시켰다. 옛 주택 사이에 작은 공방과 카페, 오래된 맛집과 젊은 셰프가 요리하는 식당들이 어깨를 대고 이어져 있다. 인테리어 센스나 음식 맛이 서울 경리단길 못지않아 젊은이들은 ‘옥리단길’이라 부른다. 향동 일대 빈집이 187동에서 지난해까지 7동으로 급감한 성과도 거뒀다. 대신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 등 주민들이 주도하는 40개 법인이 설립됐다. 원도심 빈집을 활용해 청년창업 챌린지숍 43곳을 열어 80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가져왔다. 책방, 공방, 공연장, 셰어하우스, 문학 등 골목상점 25곳을 개점해 76명의 일자리도 만들었다. 유동 인구 및 매출, 관광객이 16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동 인구는 2015년 26만명에서 지난해 43만명으로, 일평균 매출액은 2014년 25만원에서 지난해 40만 5000원으로 증가했다.●순천 역세권 향후 5년간 300억 들여 개발 시는 앞으로 5년 동안 300억원을 들여 순천역 주변을 개발한다. 순천역 주변 20만㎡에 ‘생태비즈니스 플랫폼 순천역전(展)’이라는 비전으로 생태비즈니스센터, 국가정원 플랫폼, 도시재생 어울림 센터 등 거점 공간을 조성한다. 숙박 및 유흥업 이미지 개선, 정원 특화 창업, 주차장 등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기념품 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한다. 시는 이번 역세권 도시재생 뉴딜사업 공모를 위해 시민과 함께 4년 동안 준비했다. 사업 구역 설정부터 자원 조사, 비전 및 목표 설정, 단위사업 발굴 등 모든 과정을 주민이 참여하고 주도했다. 특히 응모에 필요한 도시재생활성화 계획 수립과 실행 타당성 조사표 작성은 외부 용역을 주지 않고 주민, 활동가, 공무원 등이 머리를 맞대고 작성했다. 예산 절감 효과와 함께 심사단으로부터 특별한 사례로 평가받았다. 이와 동시에 스마트시티 사업에도 선정돼 5년간 국비 20억원을 포함해 40억원을 이 사업에 투입한다. 도시재생 사업과 연계하기 위해 지역주민협의체 중심의 민·관·학·연 스마트시티 거버넌스를 구성할 계획이다. ●2019 대한민국 도시재생 박람회 11월 개최 오는 11월 1일부터 3일까지 ‘사람 중심, 일자리 중심, 그리고 지역창생’을 주제로 향동중앙동 도시재생 선도 지역에서 2019 대한민국 도시재생 박람회를 연다. 자치단체와 도시재생 사회적 경제조직 300개 단체, 민간투자기업 85개 등 600개 기관단체에서 참여할 예정이다. 박람회는 사회적경제 단체 등이 참여하는 주민 주도 행사로 도시재생 선도 구역을 최대한 활용하고 비용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행사 콘셉트는 생태, 문화, 역사, 사람을 융합한 행복한 재생이다. 조태훈 도시재생과장은 “순천은 15년 전부터 마을만들기사업을 하면서 도시재생의 핵심인 주민 역량이 쌓였다”며 “주민이 행복한 도시 재생 얘기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BNK경남은행, 김해서부문화센터에 대형 시계탑 기증·제막

    BNK경남은행, 김해서부문화센터에 대형 시계탑 기증·제막

    BNK경남은행은 15일 지역사회 공헌사업으로 경남 김해시 율하동 (재)김해서부문화센터에 시계탑을 설치해 이날 제막식을 했다고 밝혔다.BNK경남은행이 1억 5000만원을 들여 설치해 기증한 김해서부문화센터 시계탑은 100년 전통의 미국 시계 제조업체인 ‘일렉트릭 타임 컴퍼니(ELECTRIC TIME COMPANY)’가 지난해 10월부터 약 7개월간 제작했다. 높이가 5.8m인 대형 시계탑으로, 모양은 미국 하버드대 교정과 뉴욕 록펠러 광장에 설치돼 있는 시계탑과 비슷한 ‘4면 세스 토머스’(Seth Tomas 4Dial) 형태의 고풍스런 모습이다. 김해서부문화센터 시계탑은 김해서부문화센터 공연·전시장, 스포츠센터,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 찾은 지역민들에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줄 뿐 아니라 밤에는 조명을 밝혀 경관시설로도 활용된다. 이날 김해서부문화센터 광장에서 열린 시계탑 제막식에는 BNK경남은행 황윤철 은행장과 허성곤 김해시장, 김형수 김해시의회의장, 시민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황윤철 은행장은 “미국 하버드대 교정과 뉴욕 록펠러 광장에 있는 시계탑과 비슷한 김해서부문화센터 광장 시계탑이 만남과 약속 장소로 즐겨 이용되고 역사 문화 도시 김해의 품격을 높여주는 랜드마크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해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남부고속철 역사 유치 위해 고령군민 뭉쳤다

    남부고속철 역사 유치 위해 고령군민 뭉쳤다

    대가야의 도읍지 경북 고령군민이 남부내륙고속철도(경북 김천~고령~경남 거제 172㎞ 구간) 고령역 유치를 위해 뭉쳤다. 군민 2000여명은 14일 대가야읍 대가야문화누리 야외공연장에서 ‘남부내륙고속철도 고령역 유치를 위한 군민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곽용환 고령군수, 김선욱 고령군의장, 김인탁 고속철도 고령역 유치 민간공동위원장(고령문화원장) 등이 참여했다. 곽 군수는 “고령 미래 100년이 달린 고령역 유치를 염원하는 군민들의 진정한 뜻을 중앙정부와 정치권에 제대로 알리기 위해 행사를 갖게 됐다”면서 “교통요충지인 고령에 환승역을 반드시 유치해 교통·물류를 활성화하고 대구와 인근 시군의 동반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202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고령 지산동고분군의 국내외 관광객을 위한 교통 편의책도 마련돼야 한다”고도 했다. 김 유치위원장은 “고령의 경우 김천역과 진주역 간 중간지역에 위치해 접근성이 탁월하고, 달빛내륙철도(대구∼고령∼광주) 환승과 대구산업선 연계, 대구·광주 간 고속도로 교차지점 등을 고려해도 최적지”라고 주장했다. 4만 군민들의 고령역 유치 염원을 담은 결의문도 채택했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국가균형발전과 광역물류망 구축의 가장 효율적인 대안인 남부내륙고속철도 고령역 유치 적극 추진 ▲남부내륙 지역에 고루 혜택이 미칠 수 있도록 적정한 역 간 거리를 안배해 역 설치 ▲최적의 경제성과 효율성을 위해 김천~진주 중간지점에 위치한 고령군에 역 설치를 강력히 건의했다. 이어 대가야문화누리 야외공연장~축협네거리~중앙네거리 1㎞ 구간에서 고령역 유치를 위한 가두 캠페인을 벌였다. 고령군은 지난 2월 남부내륙고속철도 ‘고령역 유치추진단’을 구성한 데 이어 지난달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사회단체 및 주민대표로 구성된 ‘남부내륙고속철도 고령역 유치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유치위는 군민의 염원을 담은 서명운동을 벌여 지금까지 주민과 관광객 등 5만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고령군과 이웃하면서 남부내륙고속철도가 지나는 성주군, 칠곡군도 역사 유치에 가세해 이웃 지자체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글 사진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베니스에 초대받은 최비오, 세계인들에 한국미술 뽐내

    베니스에 초대받은 최비오, 세계인들에 한국미술 뽐내

    2년에 한번씩 열리는 세계최고의 국제미술전시회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전에 초대된 최비오(Vio Choe)작가의 전시가 지난 11일 시작했다.개막 첫날부터 지구촌 최고 미술축제답게 수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이는 이곳은 ‘퍼스널스트럭처(Personal Structure)’라고 명명한 특별전이 열리는 전시장 팔라조 벰보이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100년 이상 역사를 자랑하는데 여기에는 쟈르디니 중앙관, 아르세날, 특별전 등으로 구분되며 올해 여기 특별전 전시장인 팔라조 벰보 에는 한국의 서양화가 최비오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에 등장한 최비오 작가의 작품을 본 관람객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미술 회화작품으로 이런 감흥과 느낌을 느끼기는 처음”이라는 칭찬과 “평생 그림을 봐 왔으나 이런 스타일의 그림은 처음 경험한다”같은 감동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같은 베니스 현장의 뜨거운 반응과 관심 덕분인지 최비오의 전시관은 개막 첫날부터 수많은 관람객으로 북적이고 있는데 이 모습은 한국미술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떨치는 것이며 동시에 같은 한국인에게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최비오(Vio Choe) 작가가 참가하는 특별전인 ‘Personal Structure’전은 비엔날레 측이 공인하는 전시로 네덜란드 비영리재단인 글로벌 아트페어재단(GAAF)과 유럽피안 컬쳐센터(European Cultural Centre)의 주관아래 전세계의 유망 작가들을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정하며, 이곳에서 지금까지 회화부분으로 특별전에 참여한 한국 작가는 이우환 등 3명 정도이다. 자신만의 체계적인 우주관을 구축하고 있는 최비오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인간과 우주의 연결성을 주제로 하는 “Universe in my mind”, “Super String” 그리고 “Blue note of creator”라는 타이틀을 가진 회화작품 3점을 전시하고있다. 한국에서 공대를 졸업하고 1993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서 대학원 석사과정(MFA)을 취득한 이후 뉴욕 맨하튼에서 수년간 활동하였는데 이때 그는 다수의 미디어 회사와 아트분야에서 활약하며 자신만의 세계관 및 독특한 조형언어를 발전시켰다. 그는 자신의 작가노트를 통해 “언어는 우리의 생각을 3차원적 시간의 공간 안에서 생각하도록 제한한다. 나는 언어로 생각하기 이전에 원천적으로 내 안에 내재되어있는 잠재의식을 통해 나를 표현하기에 내 그림을 언어나 말로 설명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 이유는 보는 이들마다 전부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라고 밝히고 있다 세계에서 50만명 이상 관람이 예상되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특별관 전시에 초대된 최비오 작가의 현재보다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는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아르눌프 라이너(Arnulf Rainer), 로렌스 와이너(Lawrence Weiner) 등 현대미술의 거장들도 이곳 특별전에 초대 되에서 전시해 세계적인 작가로 활동하는 발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은 5월 11일부터 11월 24일까지 6개월 동안 베니스의 명소인 리알토 다리 근처에 위치해 있으며 15세기 베니스의 명문귀족인 벰보 가문에 의해 지어진 팔라조벰보( Palazzo Bembo) 전시장에서 전시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기고] ILO 100주년 총회와 한국의 현실/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기고] ILO 100주년 총회와 한국의 현실/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매년 6월 초 제네바에서는 국제노동기구(ILO) 총회가 열린다. 각국 노사정 대표가 모여 일터에 적용될 국제적 표준을 정하고 이행을 점검한다. 올해는 특별히 ILO가 창립한지 100년이 되는 해라 지난 10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 100년을 내다보며 ‘미래형’ 국제노동기준을 설계한다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 각 회원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하도록 ILO 사무국은 각국 정상들의 참석을 요청했고 40개 나라의 정상이 참석해 일의 미래에 관한 자국의 포부를 밝히기로 했다. ‘노동존중 사회’를 공약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아직 참석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이유는 ‘딱히 내세울 것이 없어서’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ILO 100주년 총회의 최대 관심사는 나중에 ‘2019년 선언’이라고 불릴 문서에 어떤 내용을 담아 채택할 것인가다. 1919년 출범 당시에는 “결사의 자유 원칙은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평화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임을 ‘헌장’에 명시했고,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에서는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표현 및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에 필수적이다”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 한다”라는 문구로 당시의 정신을 표현했다. 1998년 ‘일터에서의 기본 원칙과 권리 선언’은 ILO 회원국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결사의 자유, 아동노동·강제노동·차별로부터의 자유를 법과 관행에서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고 확인했다. 2008년 ‘공정한 세계화를 위한 사회정의선언’에서는 핵심노동기준이 양질의 일자리 어젠다를 실현하는 데에 중심이 된다고 확인했다. 여기에 뒤이어 올해 채택할 선언은 전 세계 노동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비공식부문 노동자와 경제의 디지털화 등 기술변화로 날로 확산되는 비전형 노동자를 아울러 적용되는 보편적 노동권 보장(Universal Labour Guarantee)을 핵심으로 한다. 선언의 기초가 될 ‘일의 미래에 관한 글로벌 위원회’가 올해 2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보편적 노동권 보장은 1998년 선언의 원칙과 권리를 토대로 하고, 여기에 기본적인 노동기준을 더 얹는다. 다시 말해 결사의 자유와 강제·아동노동 및 차별로부터의 자유는 물론이고 적정 수준의 생활임금, 건강을 해치지 않을 노동시간 한도, 노동안전보건을 고용 형태에 상관없이 세계 모든 노동자가 보장받아야 할 최저수준의 노동권으로 명시한다는 것이다. ‘긱 이코노미’ ‘플랫폼 노동’의 확산으로 더욱 모호해진 고용 관계로 노동 조건이 극도로 불안정해지는 상황에서, 기업이 국경을 넘나드는 다단계 하청망과 공급사슬을 거느리며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에서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기준 밖으로 어느 누구도 내몰리지 않도록 하자는 다짐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 100주년 총회에 참석한다면 무엇을 내세울 수 있을까. 노동존중을 표방한 정부는 ‘독립사업자’로 둔갑된 채 노동기본권에서 배제된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신의 고용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진짜 사장들과 교섭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모든 노동자들이 어떠한 불이익과 보복의 두려움 없이 노조할 권리를 행사하도록 보장하게 위해 무엇을 했는가. 모든 인간은 일터에서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단결하고 더 큰 힘으로 행동에 나설 수 있어야 한다는 100년 된 원칙을 담은 ILO 협약을 비준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이 세상 모든 노동자들에게 보장된 기본 원칙과 권리가 한국 노동자들에게는 언제까지 그림의 떡이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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