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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청의 역할/문화로 본 일본 일본인:4(해외문화)

    ◎전통·현대문화의 계승·발전에 주력/68년 개청후 문화재법 개정등 제도개선 계속/장기계획수립… 국제교류 노력 여러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문화정책이 본격화된 것은 1968년 문화청이 창설된 이후라고 보아 별로 틀림이 없을 것이다. 당시 문부성의 문화국과 문화재보호위원회를 통합하여 문부성의 외국으로서 새롭게 설치된 것이다. 그때까지는 문화예술의 진흥과 문화재의 보호에 관한 행정이 별도로 행해지고 있던 것을 문화청의 창설을 계기로 그것들이 일원적으로 처리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화청의 임무는 「문화의 진흥 및 보급과 함께 문화재의 보존 및 활용을 도모함과 동시에 종교에 관한 국가의 행정사무를 행하는 것」(문부성 설치법 제29조 제1항)이라고 되어있다. 문화청에서는 창설이후 저작권법의 근원적인 개정과 문화재 보호법의 대개정등 제도상의 개선충실을 행한 것을 비롯하여 예술적 창작활동의 장려,지방의 예술문화의 보급과 진흥 및 문화시설의 장비를 도모하는 동시에 개발사업의 진행과 사회환경의 변화가이루어지는 중에 사적,매장문화재 등의 문화재의 보호에 관한 제반 시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고 자부한다. 이와 같은 업무내용은 오늘날에도 별로 변화가 없다. 다만 국어시책과 종무행정 및 문화의 국제교류의 항목이 추가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오늘의 예술문화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작업에서 문예,미술,음악,무용,연극·연예,영화·방송,생활문화,국민오락 등을 주된 분야로 손꼽는다. 문화청 창설 10주년을 맞이하는 1978년에 펴낸 『문화행정의 걸음걸이』라는 책자에서 이들은 특히 명치이래 일본이 급속하게 근대화의 길을 걸으면서 그 과정에서 구미를 중심으로 한 외국의 문화를 섭취하고 그것을 정착시키는데 노력해 왔음을 인정하면서 그로 인해 일본의 문화가 독자적인 전통문화와 외국문화가 혼유되어 있는 세계에서도 드문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인식을 표명한다. 이에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요한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됨과 동시에 자연과 전통을 사랑하고,미를 구하고,마음의 풍요를 구하는 등 정신적으로 충실한 생활을 희구할 수 있게되었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볼 때,1965년을 경계로 한 앞뒤 2∼3년간에 일본의 문화생활·여가생활의 크나큰 전환점이 생겨난 것은 통계에 의해서도 밝혀진 바 있다. 즉,문화지출이라고 간주해도 좋을 비용이 식비지출을 앞지른 것이 이 시점이라는 것이 지적된다. 또한 생활 전기 기기의 보급률이 70%라는 포화점을 넘어선 것도 이 시점이다. 그리고 1965년경부터 국내에 있어서는 전통문화에의 이동(일본적인 것)에의 재평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도 지적될 수 있다. 필경 이 시점에서 일본인의 사회생활의 내용전환이 일어났다고 유추될 수도 있다. 국민의 이와 같은 필요에 응답하는 것은 전반적인 행정의 과제인 바,단순히 문화청이나 지방공공단체의 문화행정 당국에 멈추지 않고 이른바 행정이 그 수행에 있어서 문화적 지향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1975년 일본은 문화행정 장기종합계획 간담회를 설치하여 이후 10∼20년 앞을 내다보는 문화행정의 존재방식을 토의,1977년 3월 문화행정 장기 총합계획을 매듭지은 바 있다. 이러한매듭지음에 있어서 그때까지의 문화행정이 구미문화의 섭취에 급한 나머지 고유문화의 진흥과 보급이 충분하지 못하였다는 것,일본문화에는 전통문화와 새로운 문화의 양면이 있지만 그 시책에는 조화있는 전개가 필요하다는 것,그리고 중앙중심의 문화행정이기 때문에 지방문화의 진흥과 보급이 불충분하다는 것이 지적된 바 있다. 이러한 반성에 힘입어 그후의 문화행정을 감상뿐만 아니라 직접 참가하는 문화활동의 촉진,지역특성을 살린 문화행정,문화거점의 다극집중화,국제문화교류의 추진,문화행정면으로부터의 적극적 발언 등을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는 과연 이와 같은 기본지침이 생활현장에서 어떻게 체감되고 있는가를 알고 싶다.
  • 신춘화단에 대규모 기획전 2제

    ◎우리미술단면전/신·중진작가 96명이 참가/근대미술명품전/호암미술관 소장작품 전시 특정 계파와 장르를 초월하여 한국현대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조감해 볼 수 있는 대규모 기획전들이 잇따라 열려 미술애호가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미 개막됐거나 곧 개막될 예정인 「90년대 우리미술의 단면전」과 「한국근대미술명품전」이 그것. 「90년대 우리 미술의 단면전」은 최근 국내 최초의 미술문화 사설 종합 연구기관인 「우리 미술문화연구소」를 개설한 미술평론가 윤범모씩다 설립기념전으로 내보이는 첫 전시회이다.1백명에 가까운 각 장르의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까닭에 이례적으로 인사동의 네 군데 화랑에서 동시 개최를 하게 되는데 전시일정은 17일부터 25일까지,장소는 가람화랑(732­6170)갤러리상문당(732­4188)학고재(739­4937)현화랑(733­3339)등이다. 50대 중진작가로부터 30대초반의 신진작가까지 망라되는 이 전시회에는 다양한 색깔의 작가 96명의 작품이 대거 출품된다.주요 출품작가는 한국화의 이종상 홍석창 심현희 서양화의 신학철 김봉순,조각의 강관욱 강대철,공예의 윤광조,연변거주의 김광일,재일작가 홍성익,재미작가 최동열등 이른바 제도권과 민중,그리고 지역성을 탈피하여 다채로운 얼굴들로 구성돼 있다. 지난 11일 서울 호암갤러리(7515­114)에서 개막된 「한국근대미술명품전」은 국내최대의 사설미술관인 호암미술관이 개관 10주년을 맞는 올해 여러 기념사업 가운데 첫 선을 보이는 대규모 기획전이다. 호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명품 1백51점을 전시하는데 1910년대부터 60년말까지 우리 근대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대가들의 작품을 거의 다 만날 수 있다.
  • “한국은 미군철수 이후를 대비하라”

    ◎불 르몽드지,한반도정세 분석/“유엔가입으로 긴장완화” 속단은 금물/평양세력,생존 위해 최후 도박 가능성 프랑스의 르 몽드지는 1일 『냉전의 마지막 빙벽하나가 녹기 시작하다』라는 제목으로 최근의 북한상황에 대한 해설기사를 실었다.다음은 앙드레 퐁텐느 전사장이 서울발신으로 쓴 이 기사의 요약이다.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이 이루어진 날은 기이하게도 경희대에서 유엔 평화의 날 10주년 기념 국제 세미나가 열린 날과 일치했다.세미나 주제는 다음 세기를 예측한 「이데올로기 이후」였다.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온 참가자들이 수준높은 토론을 벌인 이 세미나 외에도 여러가지 축하 행사가 있었다. 한국이 행복감에 도취되었다고 상상하는것은 잘못일 것이다.경제는 급성장을 계속하여 금년초 4개월만의 국민총생산증가는 9.1%였으며 실업자는 없으나 인플레가 10%선을 위협하고 있다.인구 1천1백만인 서울은 세계에서 가장 과밀한 도시이며 하루 6백대씩 쏟아지는 자동차는 교통을 마비시키고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다. 독일의 경우를 보고 한국의통일 염원에는 통일비용에 대한 불안이 뒤섞여들고 있다.북한 경제는 위급한 상태로서 국민 총생산이 남한의 10분의 1인데 90년에 3.7%가 줄었다.한국 지도자들은 통일에 최소한 1백80억 달라가 들 것으로 보고있다. 김일성은 독재체제의 수령이며 스탈린과 합의하여 남한을 칩공한 장본인이다.그가 38선 이북에 구축해 놓은 제국주의 장벽을 허물 것이라는 조짐은 전혀 없다.오히려 사담 후세인을 본떠 핵감시단의 접근을 막고 있으며 영변의 원자로를 감추는데 급급하고 있다.최근 귀순한 외교관에 따르면 또 다른 원자로가 지하에 있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늙은 어버이 원수의 주변에 김일성 제거뒤 최선의 생존방법을 추구하고 있는 다수의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상처입은 짐승이 최후 발악을 한다는 가정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수년동안 일반적인 상황은 상당히 악화되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인 것 같다.경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상당한 차관의 대가로 고르바초프는 기꺼이 서울을 방문했고 대사관까지 두고 있다.그는 김일성에게 남한과의 대화에 응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북한은 소련은 물론 중국으로부터도 경제원조를 받을 가능성이 없다. 미군이 점진적으로 철수하는 상황에서 남한은 여러가지 가정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그 하나는 최종적으로는 독일방식처럼 완전한 흡수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한 잠정적인 연방체제(컨 페더레이션)가 될 것이다.
  • 남아공,20년만에 국제무대 복귀/미,경제제재 철회의 함축

    ◎인종차별 폐지노력 긍정평가/ANC선 “정치범 석방안해 시기상조” 반발 미국이 지난 5년간 계속돼온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대한 경제제재 조치를 10일 해제함으로써 남아공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재가입에 이어 국제무대에 완전복귀하게 됐다.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기자회견을 통해 『남아공은 미의회가 지난 86년 대남아공 제재조치를 하면서 제시했던 해제에 필요한 5개항의 전제조건을 충족시켰다』고 밝히면서 『남아공이 인종차별 없는 민주주의를 향해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이날 남아공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해제하면서 내세운 가장 큰 이유는 데 클레르크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남아공에서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폐지를 향한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현지 분석가들은 정치범석방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같은 해제조치를 내린 것은 그동안의 제재조치가 실효를 거두지 못했으며 때문에 미국은 더이상 「명분」에 시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사실 지난달 남아공이 주민등록법을 폐지한 것과 때를 같이해 일본은 매년 20%이내의 범위에서 남아공과의 무역을 확대키로 했으며 이보다 앞서 EC(유럽공동체)는 지난 4월 남아공과 무기거래를 제외한 모든 상품의 교역을 허용한 바 있다. 미 의회는 지난 86년 6월 남아공정부가 소웨토흑인폭동 10주년을 앞두고 전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EC·유엔 등과 함께 남아공에 대한 경제제재조치를 취하면서 ▲인종차별법 폐지 ▲비상사태 해제 ▲야당등 정당의 합법화 ▲인종차별 없는 정부구성을 위한 흑인세력들과의 협상개시 ▲정치범석방 등 5개 조건이 충족될 경우 언제든지 제재를 해제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남아공정부는 이 가운데 이미 4개를 충족시켰다. 인종차별법 폐지와 관련해서는 올해초 거주지역 분리법을 폐지한데 이어 지난 6월 주민등록법을 폐지시킴으로써 법적인 개선조치를 취했고 비상사태해제건은 지난해 6월 4년간 실시했던 비상사태령을 해제했었다. 때문에 이번 미국의 제재조치 해제는 비록 1백% 조건이 충족되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조치로 평가되고있다. 남아공에서 아직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정치범석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아공 최대의 흑인단체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아직도 1천여명에 가까운 정치범이 구속돼 있는 상태에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제재조치가 남아공에 변화를 가져오는데 도움이 됐다고 주장하며 흑인의 투표권을 포함한 추가개혁조치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남아공정부에 대한 계속적인 압력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미국내 민주당의원들을 포함한 진보주의 세력들도 남아공정부가 취한 5가지 조건의 「기술적인 수락」만을 보고 경제제재의 「정신」을 무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1천여명의 정치범이 석방됐으며 남아공의 개혁정책은 계속 진전될 것이라고 애써 강조하는 부시대통령의 대남아공정책은 미국의 뒤를 이어 조만간 해제조치를 취하겠다는 일본·이스라엘 등의 동조행위와 함께 지난 20년간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어 위기에 몰렸던 남아공을 국제무대에서 「복권」시킨 셈이다.
  • “남북한 관계 전기 도래”/노 대통령,평통자문회의 10주년 연설

    노태우 대통령은 5일 하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창설 10주년 기념리셉션에 참석,연설을 통해 『북한이 오랜 공언을 뒤집고 우리와 함께 유엔에 가입키로 태도를 전환하고 있는 것은 독일의 통일을 이루게 한 변화가 한반도에서도 시작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남북한 관계의 결정적 전기가 이제부터는 언제든 올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북한이 안팎으로 맞고 있는 상황으로 볼때 그들의 변화는 시간문제이며 소련과 중국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북한이 지금과 같은 비현실적 폐쇄 독재노선을 더 이상 끌고 나갈 수도 없으며 개방을 하지 않고는 경제적으로 존립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 다시 고개든 「유엔권한 강화론」(특파원코너)

    ◎“안보리 30개국으로” 「스톡홀름 제안」 지지 확산/5개 상임이사국 강력반대… 실현 가능성 희박 새로운 세계질서에 이르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탈냉전시대의 새로운 권력구조는 군사력보다도 세계적 도덕성에 의해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가 이끄는 일단의 세계고위정치인들의 신념이다. 「지구촌 관리 및 안전에 관한 스톡홀름제안」으로 알려진 이들 주장의 핵심은 유엔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이 제안의 골자는 ▲유엔사무총장에게 더욱 많은 권한을 부여,유엔산하기관의 업무를 조정케 하는 동시에 위기발생시 신속히 대처할 수 있게 하고 ▲안보리에서의 거부권 개념을 재검토하며 안보리 이사국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또한 안보의 개념에 개발과 환경을 포함시켜 안보리 수준에서 이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이 제안은 15개월 전 소위 「남북위원회」라고 부르는 「국제개발문제에 관한 독립위원회」 제10주년회의에서 처음 제기됐다. 이 위원회도 브란트가 이끌고 있다. 이들은 스톡홀름 제안을 검토·보완하기 위한 독립적인 위원회의 구성과 유엔창설 50주년인 1995년까지 지구촌 정상회담의 개최를 촉구하고 있다. 최근 페레스 데 케야르 유엔 사무총장에게 이 보고서를 제출한 전 영연방 사무총장 슈리다드 람팔경은 『50이라는 숫자에 무슨 마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를 돌아보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하는 시점으로서의 상징성은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22일 공식 발의된 이 제안은 지금까지 별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스웨덴 대사관에 의해 세계 각국 정부에 널리 전파됐다. 28개국 이상의 정치인이 망라된 발기인 가운데는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현직 수상,네덜란드의 고위관리,파키스탄·탄자니아·영국 등의 전직 수상 등이 포함돼 있다. 최근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전 소련 외무장관,바클라브 하벨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이 이 제안에 동참했다. 유엔 전문가들은 1945년 이후 세계가 급격히 변화됐고 따라서 유엔의 구조와 과정을 일부 재검토하는 것이 순리라는 데 대부분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미국은 유엔헌장 개정론에 반대하고 있다. 소련도 마찬가지다. 잘못 건드리면 벌집을 쑤신 결과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스톡홀름 제안이 추구하는 일반적인 목표는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 개편안에 대해선 그 실현성을 의심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브란트 자신도 거부권 문제부터 제기하면 유엔개혁 노력이 몽땅 무산될 우려가 있음을 시인하고 있다. 거부권이나 안보리 이사국의 변화는 5대 상임이사국,즉 미·영·불·중·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들 상임이사국이 자신들의 거부권 행사를 제한하거나 권한을 분산시키는 개혁안에 동조할 것으론 예상되지 않는다. 일부 유엔 전문가들은 안보리 이사국이 결국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미 국무부에서 유엔문제를 담당했던 리처드 가드너는 『안보리에 EC(유럽공동체) 의석이 마땅히 마련되어야 하며 일본도 한 자리를 차지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15개국인 안보리 이사국을 30개국으로 대폭 늘리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그는 논평했다. 안보리가 비교적 잘 굴러가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 규모가 작고 배타적인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거부권의 경우도 여러 나라가 컨센서스에 이르도록 압력을 가하는 유익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톡홀름 제안의 발기인들은 자신들이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세계여론이 그들의 제안을 지지하며 유엔의 변화를 강요할 것으로 그들은 믿고 있다.
  • 외언내언

    실제로 오늘날 세계최대의 서점매장인 「교보문고」의 휴업이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하루 적정수용능력이 2만명쯤인데 평일에도 늘 4만명을 넘고 기록적인 날에는 8만명까지 찾아오는 독자를 맞을 수가 없어 매장공간의 재정리를 하겠다는 이유를 흠잡을 데는 없다. 그러나 지난 몇달 동안 폐업설과 사업축소설이 덧붙여져온 정황이 아직도 과연 일시휴업이 분명한 것이냐에 의문부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휴업을 한다는 시점이 교보문고로서는 10주년에 해당한다. 크게 기념행사를 해볼 만한 때이다. 사실상 이 기념은 또 출판계만이 아니라 우리 문화계가 함께 해주어도 좋을 만한 사항이다. 우리 출판물 총량의 2.7%에 달하는 책을 팔아 준다든가,사회과학계를 비롯한 무게있는 책들은 여기서 15%를 팔아야 그나마 간행이 가능하게 된다든가 하는 것 때문만도 아니다. ◆이보다는 독자가 책을 찾아낼 수 있는 거점이 우리에겐 너무 없다는 점이 더 절실한 문제의 핵심이다. 4천개에 이르는 전국서점의 평균면적은 10평 미만,책 3천종 쯤을 전시할 수 있다. 그러나해마다 나오는 신간만 2만4천종을 넘는다. 우리 구조에서는 신간의 절반쯤은 전시조차 못한 채 사라져 가고 있다. 30개쯤 되는 1백평 이상의 서점능력도 교보문고에는 비교되지 않는다. 교보의 현재 도서보유량은 1백45만권이다. ◆뿐만 아니라 교보는 지금 외국인 관광객들의 관광장소이다. 넓은 매장만이 아니라 그 속에 만원버스처럼 들끓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관광대상이다. 문화의 빈약한 구조적 측면이 교보를 통해 분출되면서 놀라운 문화의 활력으로 느껴지게 하는 경이로운 이벤트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점에서 교보의 장은 서점이나 출판문화의 장만이 아니다. ◆우리는 교보문고가 불안한 설을 보다 명백히 거둬내고 이 성공한 문화이벤트를 더 장수시켜 줄 것을 바란다. 그렇다면 10주년기념 행사도 좀 하고 공시된 6개월간의 휴업기간도 가능한 한 단축시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것이 교보문고의 모체인 교육보험의 기업정신에도 합치되는 일이다.
  • “북한,기존정책 수정 불가피/시국혼란 틈탄 도발 경계”

    ◎노 대통령,민족통일협 임원들에 강조 노태우 대통령은 14일 하오 청와대에서 민족통일협의회(의장 김창식) 발족 10주년을 맞아 협의회 임원들에게 다과를 베푸는 자리에서 『지금 북한의 내부실정이나 국제정세를 볼 때 북한은 기존의 국내외 정책을 대폭 수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고 말하고 『이러한 한반도 상황과 국제정세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잘 이용만 한다면 통일은 이번 세기가 끝나기 이전에 달성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통일완성에는 끈질긴 노력과 인내,그리고 희생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며 또 전국민의 일치된 의지가 뒷받침되어야만 완수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 다같이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통일만 된다면 어떤 형태나 방식이라도 좋다는 발상은 용납될 수 없으며 통일은 국민들이 진정한 삶의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통일,자유민주주의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평화통일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부적인 화합과 단결이 중요하다고 지적한 뒤 『특히 우리 사회가 북한에 혼란스럽다고 비칠 때 북한은 무모한 짓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다같이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또 주말시위… 곳곳 산발 충돌/노조위장 사망 규탄

    ◎도로점거 화염병·최루탄 공방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씨의 투신사망사건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와 시위가 11일 서울을 비롯,전국 15개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또 한차례 공권력과의 충돌을 빚었다. 서울에서는 이날 하오 6시30분쯤 「대기업노조연대회의」와 「전노협」 「전대협」 등이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지려다 경찰의 원천봉쇄로 집회를 갖지 못하자 그 중 일부가 종로일대와 광교 청계천 을지로 등 도심 곳곳에서 돌과 화염병 등을 던지며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6시쯤 종로 2가와 세운상가 앞 등에선 3천여 명의 시위대가 연좌농성을 벌이다 집회장소인 광화문으로 행진하려 했으나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보도블록과 화염병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맞섰다. 이들은 경찰에 밀려 종로2가∼종로4가 광교 청계천 2·3가 등으로피해 다니며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다 하오 9시쯤 해산했다. 앞서 이들은 이날 하오 학교별로 출정식을 가진 뒤 퇴계로 3가 대한극장과 동대문운동장 앞에 각각 집결해 종로 4가까지 구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재야 쪽 「전국노동자대책위원회」 소속 근로자와 「서총련」 소속 대학생 등 2천여 명은 이날 하오 3시20분 홍익대에서 박씨의 사인규명을 요구하는 집회를 가지려 했으나 경찰측이 교문출입을 막자 하오 4시30분 건국대로 장소를 옮겨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광화문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려다 경찰이 교문 앞에서 막자 삼삼오로 짝을 지어 지하철이나 버스 등을 이용,을지로3가 앞에 집결한 뒤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 일대 상가들은 시위대가 몰려들자 대부분 철시했으며 교통이 한때 마비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이 미리 시내를 빠져나가 지난 9일의 대규모시위 때와는 달리 큰 혼잡은 없었다. 홍익대에서는 이날 미리 학교에 들어와 있던 부천지역 15개업체 근로자 1백여 명과 대학생 등 7백여 명이 참석해 약식으로 집회를 가졌다. 대구와 광주 등 14개 지역에서도 집회예정장소 주변과 진입도로 근처에서 최루탄으로 막는 경찰에 화염병과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한편 일요일인 12일과 화요일인 14일에도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와 명지대 강경대군의 장례식이 각각 예정돼 있고 노동단체에서도 15일부터 3일 동안 사업장별로 파업투쟁을 벌일 움직임이어서 5·18 10주년인 18일까지는 시위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노학연대시위 여파… “경제 주춤”/생산줄고 장사도 안된다

    ◎5월 출고 30% 감소… 수출 타격/상가·백화점 매출 20∼30% 격감/발길 뜸한 행락철… 관광업계도 울상 강경대군의 치사사건 등을 항의하는 집회와 시위 등이 끊이지 않아 곳곳에 시국불안의 여파가 깊은 주름살을 드리우고 있다. 더욱이 각종 물가가 폭등하고 무역적자가 늘어나는 등 경제난까지 겹쳐 사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수출산업공단 등 산업현장에서는 일부 업체의 근로자들이 조업을 거부하고 파업에 들어가 생산에 큰 차질을 빚고 있고 백화점과 상가는 계속되는 시위로 매출이 20∼40%나 뚝 떨어졌다. 또 자제하는 사회분위기로 호텔에서 갖는 크고 작은 행사가 잇따라 취소되고 행락철인데도 관광객이 크게 줄어 여행업계가 울상을 짖고 있다. 재야·운동권측의 「범국민대책회의」가 추진한 대규모 집회가 벌어진 9일 하룻동안만 해도 전국적으로 23개 업체 노조원 1만4천여 명의 근로자들이 작업을 거부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수출산업공단내 나우정밀,중원전자 등 6개 업체 근로자 1천3백여 명은 이날 하루 조업을중단하고 시한부 농성을 벌였고 대흥기계 범우전자 등의 노조도 출정식을 갖고 작업장을 점거하거나 농성을을 벌였다. 이처럼 5월 들어 근로자들의 작업거부와 태업 등으로 일부 업체들은 생산량이 10∼30%씩 줄어들어 수출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전노협」,「대기업연대노조회의」 소속 전국 4백50개 노조 21만여 명이 시한부 파업을 결의한 데다 14일에 있을 강군의 장례식,18일의 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기념집회,26일의 「교원노조」 창립기념행사 등이 모두 이달 안에 이어져 있어 어수선한 분위기 장기화되면 생산활동 자체가 큰 위협을 받을 전망이다. 서울 도심의 대형백화점들도 계속되는 가두시위로 20∼30%나 줄어든 매출액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느라 고심하고 있다. M백화점의 경우 평소에는 하오 7시30분에 폐점했으나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지난 4일과 9일에는 2시간을 앞당겨 문을 닫았으며 손님도 줄어 매출이 30% 남짓 떨어졌다. L백화점도 4·9일에는 하오 6시쯤 문을 닫았으며 시위 때문에 시민들이 서둘러 귀가하는 바람에 평소보다 매출이 20% 남짓 줄었다. 호텔업계도 불황을 맞기는 마찬가지여서 9개의 연회장을 가지고 있는 서울 H호텔은 이달 들어 매상이 지난해보다 15%나 줄어들었다. 이 호텔은 모임과 행사 등의 예약취소가 잇따라 지난 2일로 예정된 대우자동차 국민차 홍보행사가 10일로 연기됐다가 아예 취소되는 등 하루 5건 꼴로 예약이 취소되고 있다. 걸프전으로 침체를 면치 못하다 지난달부터 겨우 회복세를 보이던 여행업계 또한 본격적인 행락철을 맞아 관광경기가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시국불안이 계속돼 오히려 여행객이 줄어들자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S여행사의 경우 이달에 국내관광은 물론이고 일본과 동남아 등지의 인기코스마저 여행객이 20% 남짓 줄었으며 예약취소도 잇따르고 있다. 한국수출산업공단에 있는 T산업 김 모 이사(45)는 『한달에 65만달러어치를 수출해 왔으나 최근 근로자들이 대규모 집회에 참석하거나 태업을 해 생산량이 20% 줄어든 탓에 수출에 차질을 빚고 있다』면서 『하루빨리 정국이 안정돼 모든 사람들이 제자리로 돌아와 수출만큼은 제대로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몸은 좌에,정책은 우로/미테랑 집권10년/프랑스 사회당정권의 변신

    ◎초기 국영화시책 실패 뒤 공산당과 결별/“자본주의체제 무시한 개혁은 환상” 체득/“우파의 향도” 극좌파 비난에도 국민지지 더 상승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10일로 취임 만 10년을 맞았다. 지난 81년 대통령선거전에 만년 야당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사회당(PS) 후보로 나서 승리,전후 최초로 프랑스에 좌파정권을 탄생시키면서 화려하게 등장한 미테랑 대통령은 88년 재선에 성공함으로써 서구에서는 드물게 민주사회주의 정권의 장기통치체제를 구축,오늘에 이른 것이다. 취임 10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8일 미테랑 대통령은 파리시내 팡테옹으로 프랑스 좌파의 시조인 장조례스의 묘역을 찾아 사회당의 심볼인 붉은 장미 한송이를 바쳤다. 자신과 사회당의 좌파통치 10년을 기념하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오늘의 미테랑 대통령이나 사회당을 두고 그 노선이 진정한 좌파라고 생각하는 프랑스사람은 맞지 않은 것 같다. 지난 81년 「사회를 바꿔보자」는 선거구호를 내걸고 당선된 미테랑 대통령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던 것은 20여 년간 우파지배 아래 짜여진 자본주의 사회구조를 좌파정권이 어떤 모양으로 바꾸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노동자의 최저이금을 올리겠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 「휴가를 늘리겠다」는 등 무려 1백10가지에 이르는 미테랑의 선거공약은 듣기만 해도 곧 장미빛 사회가 전개될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본주의체제 아래서 뿌리를 내린 기업들,특히 사회구조와 국민의식이 쉽사리 사회주의 이념에 따른 국가관리 경제체제에 순응하기를 기대한 것은 당초부터 무리였다. 실업자의 증가,투자의욕의 감퇴,생산저조 및 이에 따른 국가재정의 적자 등 경제파탄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부수자」는 캐치프레이즈가 1년도 안 돼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리하여 미테랑 정권은 83년 다시 긴축정책을 펴면서 세금을 올리고 물가를 인상하는 한편 소비억제책을 썼다. 서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해외여행 제한조치까지 취했다. 이른바 「프랑스식 사회주의건설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이는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혼합형태의 성격을 띠었을 뿐 본래의 사회주의정책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이때부터 미테랑의 좌파적 이미지는 퇴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테랑정권이 이념적으로 이같이 옆길로 빠져들자 84년에 들어서는 사회당에 협조해오던 공산당이 등을 돌렸다. 미테랑 대통령의 집권기간 동안 가장 이상한 형태의 국가통치현상이 빚어진 것은 우파와의 「동거정부」 때문이다. 사회당은 86년 총선에서 하원(국민의회)의석의 과반수 획득에 실패,그때까지 야당이던 우파에 총리직을 내줄 수밖에 없었으며 공화국 연합의 자크 시라크 당수가 총리에 기용되어 좌파대통령에 우파총리라는 기묘한 권력구조가 형성됐다. 이렇게 되자 우파행정부는 그때까지 미테랑의 사회당정권에 의해 국유화됐던 기간산업과 은행 보험회사들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하는 등 좌파정책에 수정을 가했다. 이후 88년 대통령선거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미테랑 대통령은 당내에서도 가장 우파 쪽으로 치우친 미셸 로카르를 총리를 기용하면서 정책집행에서 사회주의 색채를 더욱 희석시켜 나갈 것을 분명히했다. 그가 재선된 뒤 국책운영과 관련하여 새로이 내건 슬로건은 「비국영화·비민영화」였다. 더 이상 민간기업을 국유화하지 않겠으며 이미 국유화된 기업을 더 이상 민영화하지도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당내 극좌그룹이나 공산당 등 좌파 쪽에서는 사회주의 이상의 포기 또는 무소신정책이라고까지 몰아붙이며 미테랑을 「우파의 향도」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사회당 대통령의 통치가 10년이 됐지만 프랑스 사회에서는 기업활동,상품의 유통,재화의 이동·보전 등 거의 모든 경제·사회활동이 자본주의하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미테랑 대통령의 취임 10주년을 맞아 사회당 쪽에서는 그 동안의 미테랑과 사회당의 치적에 중점을 두어 홍보활동이 한창이다. 국내적으로는 평등사회를 향해 큰 진전이 있었으며 대외적으로는 프랑스의 국제적 지위가 크게 높아졌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 쪽에서는 『미테랑 10년에 남은 것은 실업자 증가,세금인상,그리고 윤리의 타락 뿐』이라고 공박하고 있다. 실제로 이같은 비난을 뒷받침하고 있는 현상들이 미테랑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각종 여론조사결과는 미테랑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꾸준한 지시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0년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을 말하는 이도 없지 않으나 그는 여러 정치지도자들 가운데서 항상 1위의 인기를 유지하고 있으며 하리스 여론조사의 경우는 최근의 지지도가 55%로 81년 집권 때의 52.2%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구 민주사회주의의 새로운 모델 시험시기로 평가되기도 하는 「미테랑10년」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개혁과 변화를 추구하자면 그 체제의 논리와 구도를 존중해야 하며,이를 무시하고서는 아무리 좋다고 믿어지는 이상이라도 그것은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시행착오에서 얻어진 값진 교훈을 남기고 있다.
  • 대구시 올 주요업무 보고내용

    ◎월배∼안심 지하철 1호선 착공/4차 순환선 56㎞를 새로 건설 대구시는 올해 직할시 승격 10주년을 맞아 도시 대중교통인 지하철공사 착공과 함께 도시기능을 1도심·3부도심권으로 분산 강화하고 대구를 세계적 패션도시로 육성할 계획이다. ▷지방자치의 성공적실시◁ 전행정력을 동원,불법 타락선거를 막고 각종 기회교육을 통해 시민자치의식을 배양한다. 또 재정기반을 확립,흔들림없는 내부조직의 지휘체계를 다져나간다. ▷새질서 새생활 실천◁ 기관·단체·학부모·교사 등으로 범시민감시활동을 강화해 범인성유해환경을 뿌리뽑고 올상반기까지 심야밀실영업·학교주변 유해업소 등을 일소한다. ▷지역사회안정◁ 공단문화 정착을 위한 교양강좌와 취미클럽 육성 등으로 근로자의 고통·불만사항을 적극 수용하고 노사교육·간담회를 통해 경제실상을 이해시킨다. 또 모범근로자 85명을 소련·중국 등에 해외연수시킬 계획이다. ▷교통난해결◁ 오는 7월 월배∼안심 구간 27·6㎞에 대한 지하철 1호선 건설공사를 착공한다. 또 서변대교·서변IC·제3아양교·복현로·신천대로·구안국도·성서국도·고산국도 등을 건설하고 도시 고속화 도로망확충을 위해 4차 순환선 56㎞를 건설하는 한편 동·서 신로 등 주요 간선도로에 교차로 입체화 공사를 착공할 계획이다. ▷지역경제발전◁ 주종산업인 섬유가 점차 사양화됨에 따라 지역내 섬유산업의 발전적 구조개편을 위해 성서공단에 첨단기술종합단지 1백82만평과 연구단지 60만평을 조성,컴퓨터·반도체 등 첨단업체 6백개 업체를 유치한다. 연구단지에는 KAIST 분원 등 국책 및 민간 부설연구소를 유치한다. 월배공단 77만평을 조성,시내 용도지역 위반업체 2백여개 업체를 이전토록 한다. ▷지역 권역별 개발◁ 도심권에 중심상가·업무시설단지 등으로 중추관리 기능을 수용하고 ▲안심부 도심권에 대규모 휴양시설 ▲칠곡부도심권에 대규모 유통단지 건설 ▲달서부도심권에 종합터미널·공업단지 확충 등 1도심 3부도심권으로 균형개발한다. 특히 2000년까지 ▲광역교통체계구축 ▲산업구조의 합리적인 조정 ▲도심공간구조개편 등으로 대구를 동남경제권의중핵도시로 육성할 계획이다.
  • 전 전대통령 하산이후의 입지

    ◎당분간 언행자제… 정치파장 극소화/「5공인사」와 범여결속 도울듯/독자계파 「연희계」 태동 가능성도 전두환 전 대통령이 2년1개월여의 은둔생활을 끝내고 30일 연희동 집으로 돌아옴으로써 그의 서울 귀환이 여야정치권,특히 여권내 세력판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집 복귀는 일단 5공과 6공 등 범여세력의 결집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6공에서 소외된 5공인사들이 모여 새로운 세력이 형성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으나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이는 전 전 대통령이 2년 이상 백담사에서 지낸 경과와 이번에 하산하게된 과정 등을 살펴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전 전대통령이 여소야대 국회의 위력과 국민감정에 떠밀려 고적한 산사에서 은둔을 시작한 것은 지난88년 11월23일부터다. 당시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이 권력투쟁의 희생양이었다고 생각했을 뿐 진정으로 국민이나 정치권에 사과할 생각은 없었다는게 은둔직후 그를 찾은 인사들과의 면담에서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은둔 1주년 법회에서는 『백담사를 내려가면 몇사람은 반드시 손보겠다』는 식의 「경고」까지 할 정도로 마음에 차가운 칼날을 갈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지난해 12월31일 그의 국회증언이 이루어지기까지의 우여곡절을 보더라도 그가 6공에 가진 「응어리」가 얼마나 깊었나를 알 수 있었다. 이같은 전 전 대통령의 심기가 변화되기 시작한 것은 금년초부터. 우선 하루 4∼5회씩 신도 및 방문객을 상대로 행하는 설법내용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세상에 대한 반감이 다수 표출되던 지난해 발언과 달리 경제난국 등 나라걱정이 주조를 이뤘다. 이달초 권정달 전 민정당 사무총장이 백담사를 찾아 내년 1월15일 구 민정당 창당 10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러 5공세 결집을 과시하겠다고 했을 때도 전 전 대통령은 이를 극구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의 하산과정에서도 6공정부에 협력하겠다는 전 전 대통령의 심경이 나타나고 있다. 내년 봄 지자제선거에 대비한 범여권 결집,그리고 노태우대통령의 집권후반기를 맞아 5공 문제를 완전히 매듭지으려는 청와대측은 전 전 대통령의 조기 하산을 강력히 희망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장세동·안현태·허문도·이양우씨 등 백담사 측근들은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느냐』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고 특히 민정기 비서관이 마지막까지 전 전 대통령의 조기 하산에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은 연희동 복귀후 당분간 정치성을 띤 언행은 극도로 자제할 것으로 관측된다. 청와대와 민자당측도 새로 증설될 국회의원 선거구를 5공 소외세력에게 어느정도 할애해 줌으로써 이들을 포용,지자제선거에 이어 14대 총선과 대통령선거 등 대사를 단합속에 치러간다는 방침이다. 최근 김윤환 민자당 총무가 5공인사 다수를 잇따라 접촉,정치재개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노대통령이 권익현 전 민정당대표를 남미에 특사로 보냈던 것 등이 6공정부의 5공포섭 노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5공 소외세력이 민자당내 민정계와 힘을 합칠 경우 민주계의 입지가 약화돼 자신의 대권가도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우려를 가진 김영삼대표도 일단은 5공세력과의 화해제스처를 보이고 있다. 김대표가 자신의 아성인 부산지역에서 허삼수씨를 지구당위원장이 되도록 했다는 점이나 최근 권익현씨 등과 접촉했다는 사실 등이 범여권을 자신의 지지세력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희망을 반증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전 전 대통령측과의 관계가 모두 분홍빛이지는 않다는 관측이다. 4·26 총선시 구 민정당 공천탈락자 모임인 민우회(회장 김숙현),3당합당 때문에 지역구에서 밀려난 인사들이 모인 민정사우회(회장 장성만)로 대변되는 5공 소외세력 중에는 독자 신당결성 등 강경론을 개진하는 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청와대측과 잦은 접촉을 갖고 있는 권익현씨 등을 「배신자」라 비난하면서 전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새 세력형성을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이들 5공 인사들이 전 전 대통령과 잦은 접촉을 가지면서 여권내에 「연희계」라 불릴 신세력이 태동할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신당 결성까지는 못가더라도 5공인사 상당수가 14대 총선에 무소속출마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5공 인사들의 활동이 노골화될 경우 김대표의 민주계와의 마찰도 불가피해지리란 관측이다. 평민당의 김대중총재가 전 전 대통령의 연희동 집 복귀를 용인한 것도 이같은 여권내 분열을 노리는 동시에 지자제선거 등에서 5공과 6공을 싸잡아 비난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 탓으로 분석된다. 김평민총재의 노림수를 잘 알고 있는 청와대와 전 전 대통령의 향후 협조관계 진척이 관심의 대상이며 곧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노·전 회동결과가 주목된다.
  • 여권 「은둔청산」 추진의 안팎

    ◎“범여 결속”… 집권후반 안정도모 포석/5공세력 포용,정치적 안전판 확보 겨냥/지자제선거등 「대사」 앞두고 우군화 모색 6공의 5공 포용전략이 가시화되고 있다. 노태우 대통령이 백담사에 2년 넘게 은둔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내 하산 및 연희동사저 복귀를 강력히 희망한 것은 바로 이같은 포석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전 전 대통령의 하산을 계기로 앞으로 5공인사들의 정치적 입지모색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3당통합으로 5공의 여권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민자당과 이따금 마찰음을 낼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6공 여권이 5공을 포용하려 하는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각종 「정치대사」를 앞두고 5공이라는 걸림돌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내년 상반기의 지방의회선거를 비롯,지방자치단체장선거,14대 총선,차기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5공인사들이 정치세력화하여 6공 여권의 입지를 훼손토록 방치하기보다는 일부 포용을 통해 범여 세력군으로 결집시켜야겠다는 판단이다. 특히 지방의회 진출을 희망하는 여성향 인사들은 대개가 5공때부터 뿌리를 같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중앙에서부터 6공과 5공을 확실히 우군화 해두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둘째는 민자·평민으로 2분화되는 양당 정치구도에 대비하고 집권 종반기,정권재창출과정에서 여권의 층을 두터이 함으로써 정치적 안전판을 최대로 확보하자는 계산이다. 3당통합·민자당 출범으로 정치권이 이미 양당구도로 진행되고 있는 마당에 기본적으로 현 여권과 성향 및 기반을 같이하는 제3의 정치세력군이 등장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또한 노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6공정권의 창출의 모태였던 5공세력의 불만을 어떤 형태로든 어느 정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 전 대통령의 「환속」이 가시화되자 정치권과 국민들의 관심이 모아지는 부분은 정중동속에 활로를 모색해오던 구여권세력들의 향후 정치적 행보와 범여권의 결속 여부. 6공 출범과 함께 소외감을 느끼며 나름대로의 재기 및 입지확보를 노리는 구여권세력을 큰범주로 나누면 이양우·민정기·안현태·장세동씨 등 백담사 측근과 민정당 시절 11·12대 의원을 지내다 13대 공천에서 탈락한 전직 의원모임인 민우회(회장 김숙현 전 의원),3당통합 이후 지구당위원장직을 상실한 구민정당 지구당위원장들로 구성된 민정동우회(회장 장성만)와 특별한 소속을 갖고 있지 않지만 새로운 진로를 모색중인 권익현·권정달씨 등으로 구분. 24일 청와대로부터 하산권유를 받은 백담사 측근들은 우선 전 전 대통령이 큰 잡음없이 무사하게 연희동사저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하는 만큼 특별한 정치적 코멘트를 삼가하는 분위기. 그러나 민정동우회와 민우회 등의 일부 인사들은 전 전 대통령의 하산을 계기로결집력을 갖고 행동노선을 정리하자는 입장을 조심스럽게 개진하고 있어 구여권내의 교류가 한층 활발하게 전개될 전망. 특히 구민정당 창당 10주년을 맞아 새해 1월15일 1천여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집회를 구상했다가 민자당 지도부의 설득으로 모임준비를 취소했던 권정달씨 등 구여권 인사들은 최근 구민정당 발기인 1백여명을 포함,2백여 명의 핵심인사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행사」를 갖기로 다시 결정해 주목. 권씨는 25일 구여권세력의 향후 진로 등과 관련,『과거 정치를 같이했던 사람들끼리 가끔 만나 교분을 나누고 있으나 새로운 정당 결성 등에 대해서는 특별히 얘기가 오간 것이 없다』고 설명하고 『새해 봄으로 예상되는 지방의회선거 등에서 민자당이 어떻게 해나가는지 우선 지켜보겠다』며 당분간 관망자세를 유지할 뜻을 피력. ○…구여권의 이같은 행보 속에서 민자당측은 5공세력과의 화해와 포용을 위한 접촉 및 후속조치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는 게 정가의 일반적인 관측. 지난달부터 김윤환 민자당 원내총무를 5공과 6공세력의 재결합 창구로 내세웠던 민자당측은 그 동안 민우회·민정동우회 멤버들과의 접촉결과 등을 토대로 향후 정치구도에 이들의 입지를 확보해주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중이다. 지금까지 범여권 인사들간의 접촉에서 14대 총선과 관련,분구 예정지구당의 지구당위원장 배정,지방자치단체장 후보 배분 등이 구여권 인사포용의 활로로 논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아직 확실한 윤곽은 드러나지 않고 있는 상황. ○…노 대통령의 5공 포용전략은 이미 지자제 실시 등 5공의 정치 민주화 약속이 일단락되면서 하나씩 실천에 옮겨지고 있었던 것으로 풀이. 노 대통령이 5공시절 민정당 대표위원을 지낸 권익현씨를 지난 11월 대통령특사로 남미에 파견한 것을 계기로 5공인사들과의 교감을 확대해왔고 권씨를 통해 미국에 머물러 있는 정호용씨와도 「앙금」을 해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가에서는 최근 노 대통령이 단행한 군 주요인사에서 전 전 대통령의 사람으로 알려진 김진영 교육사령관을 대장으로 승진시켜 한미연합사부사령관으로 보임시킨 것이나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정치사는 이제 과거를 부정하고 단절시켜왔던 나쁜 전통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해 온 것은 바로 노 대통령의 5공 포용작업이 깊숙히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따라서 전 전 대통령의 하산과 함께 구여권의 결속력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나 6공과 독자노선을 걷는 정치세력화의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예상. 백담사측은 6공 이후 지나치게 평가절하됐던 전 전 대통령 중심의 5공 치적에 대한 재평가와 명예회복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이미 이에 대해서는 청와대측과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큰 마찰은 없을 것으로 여권 인사들은 지적. 전 전 대통령이 6공에 대한 섭섭함이 풀어지고 자신의 위상이 재정리될 경우 정치적 영향력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는 필요 이상의 활동이나 움직임은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 다만 6공이 5공세력을 포용하는 과정에서 5공인사들을 어느 수준에서 흡수,통합을 시도하느냐에 따라 구여권 인사들의 새로운 이합집산이 이뤄질 전망.
  • 청와대측 “하산 희망” 피력의 안팎

    ◎「백담사 결심」만 남긴 “은둔 청산”/“겨울 넘겨선 곤란… 국민 이해할 것” 청와대/“사전논의 없었지만 곧 가부결정” 백담사 그 동안 설왕설래가 많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하산·귀경이 연내 이뤄질 것 같다. 노태우 대통령은 24일 송년기자간담회를 통해 전 전 대통령이 연내에 백담사를 떠나 연희동집으로 돌아오길 바란다는 희망을 강력히 개진했다. 백담사 측근들은 이에 대해 『청와대측과 전 전 대통령의 귀경문제를 놓고 협의한 바 없다』고 연내 하산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측근들은 『노 대통령이 국가통치권자로서 전직 국가원수가 더 이상 은둔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표시한만큼 전 전 대통령이 여러 상황을 고려,하산문제에, 대한 결심을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곧 전 전 대통령의 산사은둔 종식여부가 결정될 것임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이 기자간담회에서 전 전 대통령의 연내 하산을 거론한 것과 관련,「일방적 희망사항」이냐 「백담사측과의 충분한 교감교환결과」이냐에 관심이 집중.노 대통령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전임 대통령이 은둔처인 백담사에서 세 번째 겨울을 맞고 있다』고 전제,『2년이 넘도록 산사에서 불행한 은둔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입장에서도 이제는 가슴아픈 일이며 특히 대통령인 나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이런 일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간절하다』고 피력. 노 대통령은 이어 『솔직한 나의 심정은 하루라도 빨리 산사은둔생활을 마치시고 내려와야겠다는 것』이라면서 『지금 그 분의 댁은 청와대 오기 훨씬 옛날부터 살아왔고 또 그 집 하나뿐』이라고 말해 전 전 대통령이 하산할 경우 연희동집으로 돌아와야 함을 시사. 노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의 구체적 하산시기와 관련,『금년 겨울을 넘겨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간절한 생각』이라고 말하고 『국민 대다수도 이제는 충분히 이해하리라 본다』고 언급. 노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를 통해 전 전 대통령의 연내 하산을 바라고 있다는 심경을 피력했을 뿐 백담사측과 사전혐의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치 않았다. 하지만 이는 청와대측의 희망에 이어 백담사측의 수용이라는 절차를 밟아 전 전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려는 것이며 양측간 하산문제에 대한 사전교감이 있었으리란 것이 일반적 관측.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이 전 전 대통령을 「그분」이라 호칭하는 등 전보다 더 깍듯한 존칭어를 썼던 것도 하산문제와 관련해 백담사측의 심기를 거스리지 않으려는 배려였다는 분석. 노 대통령은 또 기자간담회에 앞서 이날 상오 노재봉 비서실장을 김영삼 민자당 대표에게 보내 전 전 대통령의 하산문제를 거론할 것임을 미리 통보했고 김 대표는 기자회견 종료시각에 맞춰 환영논평을 발표함으로써 청와대와 백담사측,또 청와대와 당측간 사전교감 사실을 뒷받침. 반면 이날 상오 열린 청와대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여권 지도부는 전 전 대통령이 내년 1월18일 자신의 회갑을 서울에서 맞도록 강력히 희망하고 있으나 개인적 이미지와 여론 동향에 민감한 백담사측은 회갑을 산사에서 지내는 것이 모양상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설명. 민자당의 한 당직자는 『노 대통령이 전 전 대통령의 하산이 연내에 이뤄지길 희망한다고 밝힌 것은 일단 분위기 환기 차원으로 봐야 한다』고 하산시기를 연내로 못박지 말라면서 『이제 정치권 및 국민반응를 보아 백담사측이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피력. 백담사 측근들은 이에 대해 『하산이나 귀경여부는 전 전 대통령 자신이 결정할 문제이며 곧 입장피력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 ○…전 전 대통령의 연내 귀경에 대한 청와대측과 백담사측의 「완전 합의」가 이뤄졌느냐는 문제를 떠나 양측간 하산문제에 대한 협의가 계속 진행되어온 것은 주지의 사실. 여권은 전 전 대통령이 내년초 자신의 회갑은 물론 지방의회선거 때까지 백담사에 머물 경우 범여권 결속에 상당한 타격을 가져와 지자제선거에 이롭지 않다는 생각 아래 조기하산을 종용해온 것을 관측. 김윤환 총무 등 여권의 주요인사들은 백담사 측근들과의 접촉을 통해 이같은 청와대의 뜻을 전달했으며 장세동·안현태·이양우·허문도·민정기씨 등 백담사의 핵심측근들은 「가족등반」을 핑계대고 지난 5일 백담사에 집결,전 전 대통령과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했다는 것. 이때 장·허씨 등은 조기하산을 주장했으나 이·안씨 등은 신중론을 개진해 최종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장씨가 『전 전 대통령이 노 대통령과 직접 해결해야 될 문제』라고 밝혔다는 후문. 청와대측과 백담사측의 하산문제 협의에서 주요 관건이 됐던 것은 시기문제와 함께 전 전 대통령의 주거문제였으며 청와대측은 일단 경기도 화성의 이규동씨 소유 평화농장 등을 1차 귀환지로 제시했으나 백담사측의 강력한 요구에 의해 연희동집으로 최종 낙착됐다는 것. 협상과정에서 노 대통령과 전 전 대통령의 직접 전화통화와 김영일 민정수석비서관의 백담사행 등이 있었다는 관측이 유력. 이같은 막후접촉을 토대로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이 나왔으며 이양우 변호사 등 백담사 측근들이 곧 전 전 대통령을 방문,전 전 대통령의 최종결심을 얻어오는 요식행위만 남았다는 분석. ○…전 전 대통령은 연희동집으로 돌아오더라도 당분간 두문불출하며 현 여권에 해가 되는 행동은 자제하리란 전망. 전 전 대통령은 지난 12월초 백담사를 찾은 권정달씨 등 5공인사들이 『내년 1월 구민정당 창당 10주년행사를 거창하게 갖고 신당결성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것은 노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당신들도 두 번 죽는다』고 극구 만류했다는 것. 다만 전 전 대통령은 『이미 월동준비를 끝냈기 때문에 이번 겨울은 이곳에서 지낼 것』이라고 밝혔다고 여권 고위인사가 전했으나 청와대측은 이같은 전 전 대통령의 심기가 바뀔 수 있는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 이와 관련,청와대측은 5공 소외세력들이 신당결성 움직임 등을 자제한다면 국회의원선거구 분구시 이들을 상당수 배려할 뜻을 전달하고 있으며 전 전 대통령도 이에 상당한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상황. ○…노 대통령이 전 전 대통령의 연내 귀경을 희망한 데 대해 민자당은 계파를 초월해 환영의 뜻을 표시했으며 평민당측도 하산에는 크게 받대않는 분위기이나 연희동집 귀환에는 부정적 입장. 민자당의 김 대표는 이날 논평을 통해 『전직 대통령이 끝없이 유폐생활을 계속할 수 없으며 자연인으로 복귀하는 것이 나라의 장래를 위하는 일』이라고 피력. 민주·공화계도 『지자제선거를 앞두고 범여권 결속을 위해서 하산이 바람직하다』는 반응.
  • “한반도의 전쟁위험 제거/고르비와 합의도출 노력”/노대통령 회견

    노태우 대통령은 10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에서 냉전을 종식시키고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이루어나가는 문제를 깊이있게 논의하고 구체적인 결실도 있을 것』이라고 밝혀 이번의 한소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냉전체제 종식과 전쟁위협 제거를 위한 구체적이고 중요한 합의를 도출하게 될 것임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오는 19일로 창사 10주년을 맞는 연합통신과 특별회견을 통해 이같이 시사하고 『한소 수교가 이루어지고 한국의 대통령이 소련을 공식방문하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역사를 여는 일이며 이제 우리는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시대를 열 수 있다는 확신과 전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연말연초의 대폭개각설에 대해 『책임정치를 구현하고 나라가 처한 새로운 상황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인재를 등용한다는 차원에서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정부요직을 개편할 수 있겠으나 그 시기를 미리 거론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남북한총리회담 등 남북관계와 관련,『북한이 두 차례 회담에서 불가침선언의 채택만을 주장할 뿐 교류협력 문제에는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등 태도의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보면 북한이 조속한 남북 관계개선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하고 『그러나 우리는 북한의 입장도 적절히 수용하여 건설적인 합의를 이루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홍콩인은 대륙에 순종하라”/신화사 지사장 발언 큰 파문

    ◎천안문시위 주동자 석방요구에 발끈/“정치적대항 계속땐 대가 치를 것” 위협 『홍콩은 중국의 사회주의를 전복시키려는 전초기지 노릇을 하고 있다. 만약 홍콩이 계속해서 중국에 정치적으로 대항할 경우 현재 누리고 있는 경제상의 우세를 잃게 될 것이다』 이는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 홍콩 분사장인 주남이 29일 홍콩 공업총회 주최의 만찬에서 한 경고발언이다. 다분히 협박적인 주의 이 발언이 현재 홍콩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신화사 분사장은 중국이 홍콩에 파견한 관리 가운데 가장 고위직 인물이며 사실상 대사역할을 하고 있는만큼 그의 말은 북경정권의 의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홍콩을 곱게 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천안문사태 발생때 이곳에서 가장 요란하게 중국의 민주화지지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 이밖에도 중국은 홍콩을 거쳐 심수·광주 등 대륙의 개방지역으로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서적들이나 포르노물,폭력조직 등 그들이 가장 꺼리는 자본주의의 독소들이 스며드는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천안문사태 당시 홍콩을 「반혁명기지」로 비난했으며 이번 주의 말도 표현은 조금 부드러워졌으나 홍콩에 대한 적개심엔 변함이 없는 것으로 현지 주민들은 두려움을 느끼며 받아 들이고 있다. 주가 이같은 말을 하게된 직접적인 동기는 최근 북경에서 천안문시위 주동자들에 대한 재판이 열리는데 대해 홍콩의 민주단체들이 무조건 석방을 요구하며 데모를 벌이는데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중국으로선 이미 경고를 보냈는데도 요즘 다시 민주단체를 비롯한 홍콩 주민들이 중국당국을 비난하며 시위주동자 석방을 주장하자 심기가 몹시 불편해졌다는 얘기다. 주는 또 『홍콩이 비록 번영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소요자원을 대륙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중국정책을 반대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그렇지 않을땐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결국 중국당국에 순종하지 않으면 오는 97년 이후 홍콩이 대륙에 귀속됐을때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으름장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주는 29일의 만찬참석 이전에 심수 주해 경제특구의10주년 기념행사때 강택민 당총서기와 양상곤 국가주석을 만나보고 온 것으로 돼있어 강등으로부터 홍콩을 잘 길들여 놓으라는 지시를 받은게 아니냐는게 관측통들의 견해이다. 한편 중국은 90년대 안에 상해를 홍콩보다 규모가 크고 활기에 찬 자유무역항과 공업 및 금융중심지로 개발키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홍콩은 민주의식이 높고 자본주의 사상에 너무 젖어있어 정치불안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그 대안으로 제2의 홍콩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어쨌든 주의 이번 위협발언은 그렇잖아도 97년 대륙귀속을 앞두고 해외이주를 서두르는 홍콩주민들의 이민열기를 더욱 부채질하게 될 것 같다.
  • 중국의 「개방창구」로 성장 뒷받침/「심수특구 지정 10년」의 허실

    ◎내외기업 2천5백개… 생산 15배 늘어/“외화벌이 전초기지”… 올해 33억불 수출/개발효과 편중… 지역격차·인플레 등 유발 논란도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 심수를 비롯,주해 산두 하문 등 4개 지역에서 26일부터 특구지정 10주년 기념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강택민 당총서기는 26일 하오 심수의 기념행사에 참석,축하연설을 통해 경제특구가 중국발전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개방개혁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행사에는 강과 전기운 부총리 등 개혁파 지도자들과 외빈 등 7백여명이 참석한 반면 이붕 총리를 비롯한 보수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23일 북경을 방문했던 북한의 연형묵총리도 천진을 거쳐 이날 심수행사에 참석,특구의 발전상을 돌아 보았다. 심수는 중국 정부수립 이후 대륙에선 처음으로 자본주의식 자유경제 운용방식을 도입,대외개방의 창구와 체제개혁 시험장 역할을 했으며 중국 개방개혁정책의 상징으로 통하는 지역이다. 심수의 뒤를 이어 특구로 지정된 같은 광동성의 주해 산두와 복건성 하문 등 4개 지역은과거 10년동안 외국자본과 경영기법 및 기술도입의 전초기지로서 중국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0여년전 한적한 농촌이던 심수에는 이제 2천5백개에 이르는 내국 및 외국합작기업이 들어섰으며 총 생산량의 60%를 수출하고 있다. 올들어 10월말까지의 수출실적은 33억달러. 심수등 4개 경제특구가 유치한 외국민간자본은 31억달러(4천1백78건)로 중국전체가 들여온 외자의 26%를 차지하고 있으며 공업생산치는 10년전에 비해 15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4개지역의 수출실적은 중국 전체의 8∼10%선으로 올해 6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며 이는 전년대비 21% 늘어난 규모이다. 또 4개지역 중국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60∼80달러로 기타지역 근로자의 2배에 가깝다. 경제특구에서 벌어들이는 외화는 중앙정부의 에산으로 적잖게 전용되고 있어 심수의 경우 지금까지 40억달러의 재정수입을 중앙에 지원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특구에 대한 중국내의 평가가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과거 등소평·조자양(전당총서기)팀의 개방정책으로 출발하게 된 경제특구는 주로 성장의 파급효과가 중국 동남해안에 미치는데 그쳤기 때문에 지역간 발전격차를 심화시켰고 무분별한 외자도입은 인플레와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유발하는등 적잖은 부작용을 낳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폐단은 중국 지도층의 강경보수세력이 득세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고 개방개혁을 제자리걸음시킨 반면 사회주의식 중앙계획 경제운용을 유도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 중국 지도층이 8차 5개년계획(91∼95년)을 포함,향후 10년의 경제운용방안을 놓고 개혁·보수파로 나뉘어 권력투쟁의 양상을 띠며 논란을 벌이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당초 심수 특구지정 기념식은 만 10년이 되던 지난 8월26일 거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방개혁등 경제운용에 관한 이견이 첨예화됨에 따라 3개월이나 늦춰진 것이고 행사규모도 축소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개방정책의 총 설계사로 이번 행사에 당연히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던 등소평이 나타나지 않았고 개방에 비판적이던 진운 당중앙위고문 이붕총리 등 강경보수파들이 한명도 참석치 않은 점은 중국내 개혁·보수세력 사이의 암투를 단적으로 반영한 것이란 풀이를 가능케 하고 있다. 한편 지난 88년 뒤늦게 특구로 지정된 해남을 포함해서 이들 경제특구의 장래는 중국 중앙정부가 전력을 다해 추진중인 상해 포동지구 개발사업으로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중국 최대의 도시이며 역사적으로 상공업이 발달했던 상해에 대규모 첨단공업단지를 마련하고 금융 및 무역중심지로 개발,90년대 안에 「사회주의세계의 홍콩」으로 탈바꿈 시킨다는게 중국정부의 구상이다. 조세·금융 및 각종 자원배분의 특혜를 주었던 기존 경제특구와는 달리 외국금융기관을 대거 유치,자체적인 자금조달과 성장계획에 의해 운용토록 함으로써 지역간 발전격차에 따른 위함감도 배제시킨다는 것이다. 또 상해는 물론 주변 양자강 델타지역개발로 한국·일본·미국·캐나다 등 외국과 직교역 할 수 있는 중국최대의 자유무역센터를 건설할 계획이어서 다른 경제특구에 대한 정책배려는 크게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홍콩지,등소평의 영향력 약화 요인 분석

    ◎정치적 입지 흔들리는 「부도옹」/보수파,천안문사태 책임 등에 전가/개혁부진 겹쳐 「수렴청정」은 옛말로 중국의 실질적인 최고실권자로 군림해 오던 등소평이 최근 사면초가상태에 빠진 것 같다. 개방 개혁의 골격을 짰던 등은 강경파 원로들과 중앙계획경제를 지향하는 현 지도층이 펼치는 연합전선의 압력 때문에 정치생명에 적잖은 위협을 받고 있으며 중국의 개혁정책도 제대로 추진될 수 없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지는 18일 등의 정치적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는 명백한 증거로 몇가지 사례를 들고 있다. 이 신문은 지난 16일 북경을 친선방문한 싱가포르의 이광요 수상일행이 등을 예방할 수 있도록 중국당국에 요청했으나 아무런 확답을 얻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또 같은 날 강경파 이붕총리는 이란 대통령의 정치고문인 후세인 무사비와 만난 자리에서 등을 간접적으로 비난했다고 포스트지가 밝혔다. 이총리는 10여년동안 추진돼온 등소평의 개방개혁정책에 대해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켰다』며 일단 긍정적으로평가했으나 『앞으로는 개혁도 좋지만 우리의 사회주의 노선을 더욱 굳게 지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의 말은 등과 그의 추종자이던 호요방ㆍ조자양 전 당총서기들이 사회주의 노선에서 크게 벗어났음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등에 대한 질책은 진운 중앙당고문위주임 및 박일파부주임,팽진 전 중앙정치국위원,이선념 전국정협주석 등 과거부터 그의 급진적인 개방정책과 권력독점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당내의 강경보수원로들에 의해 더욱 가열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마르크스경제이론가로 강경보수세력의 대부격인 진운은 6ㆍ4천안문사태가 개방개혁의 부작용 때문에 발생했다고 공공연히 등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이러한 보수원로들의 배경을 업고 이붕총리등은 당ㆍ정부의 젊은 지도자급 인사들을 포섭,정치세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관측통들은 등의 과거 통치실적이 맹공을 당하고 있는 또다른 증거는 당초 지난 8월26일로 정해졌던 경제특구개설 10주년 기념행사 개최일이 연기된 사실을 꼽고 있다. 등이 그동안 가장 큰 자신의 공적으로 내세웠던 경제특구개설 기념행사는 당시 해당지역 책임자들이 등을 초청,성대하게 치를 것을 중앙정부에 요청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이 행사는 아시안게임 개최등과 관련,11월로 미뤄졌지만 등이 심수등 경제특구를 순방하게 될 것 같지 않다는게 관측통들의 예측이다. 그만큼 등에 대한 정치적 지지기반이 약화됐다는 얘기인 것 같다. 등은 지난해 11월 당중앙군사위 주석자리를 내놓고 은퇴한 뒤에도 올 7월까지는 이따금씩 공식석상에 나타나 외빈들의 예방을 받았으며 중국의 개방개혁이 앞으로도 힘차게 추진될 것임을 강조하곤 했다. 그러나 중국지도층에서 강경보수세력의 비중이 점차 강해지자 스스로 외부에 나타나지 않고 몸가짐을 신중히 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게다가 그의 오른팔 노릇을 하던 조자양 전 당총서기와 기타 개혁세력이 천안문사태로 설땅을 잃게 됨에 따라 등의 주변에는 내노라하고 나설만한 심복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강택민 당총서기를 조 대신 후계자로 지목했다고는 하지만 상해시장출신의 강은 중앙정치무대 진출이 일천하기 때문에 등을 위해 강력한 보호막구실을 하기엔 역부족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부도옹(오뚝이)의 별명을 가진 그이긴 하나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데다 86세의 고령인 점 등을 감안할때 시간은 그의 편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게 아니냐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 광주 평온되찾아/시민들 거리청소… “원정학생”돌아가

    【광주=임시취재반】 5ㆍ18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을 맞아 사흘동안 갖가지 집회와 시위로 얼룩졌던 광주시내는 21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던 대학생과 재야단체회원등이 대부분 돌아간 가운데 어지러워진 도심곳곳에 시민들이 나와 청소작업을 하는등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 1천여명은 이날도 학교별로 집회를 가진뒤 교문밖으로 나가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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