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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보성 고미술관/17세기 관서팔경 화첩 첫 공개

    ◎북 원전건설로 사라질 「영변 약산동대」 생생/사도세자 8살때 쓴 「동몽선습」서문도 발견 북한 영변의 약산동대등 우리나라 관서팔경을 그린 17세기 화첩과 사도세자(사도세자 1735∼1762)가 8세때 쓴 동몽선습 서문 등 사료적 가치가 큰 문화재들이 공개됐다. 다보성 고미술전시관(대표 김종춘)은 오는 22일부터 11월 5일까지 개최하는 개관 10주년 기념 고미술 특별기획전을 앞두고 20일 이들 문화재를 공개했다. 관서팔경 화첩은 평양·의주 주변의 여덟곳의 경치를 그린 그림으로 모두 18폭으로 구성됐다.화첩은 세로 64㎝,가로 44㎝ 크기로 채색이 매우 화려하고 필치가 매우 세심하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관서팔경은 단지 지명만이 전해 내려져 왔으나 구체적인 풍광을 묘사한 그림이 발견,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특히 북한의 핵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영변 약산 주변의 경관이 마치 지도를 대하듯 세밀하고 정확하게 묘사돼 있어 핵발전소 건설로 영원히 사라져 버리게 될 이곳의 옛모습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된다. 다보성 고미술관측은 그림에 나타난 건물들의 풍광·필체나 기법,종이의 지질등을 감안할 때 조선조 중반인 17세기 관아에 속한 화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서팔경은 강계 인풍루,의준 통군정,선천의 동림폭,안주의 백상루,평양의연광정,성천의 강선루,만포의 세검정,영변의 약산동대 등을 지칭한다. 사도세자 친필 글씨는 영조가 지은 어제 동몽선습 서문을 28면에 걸쳐 베껴 쓴 붓글씨.습작형식의 이 글은 가로 36㎝,세로 57㎝ 크기의 종이에 단정한 해서체로 써 내려갔으며 모두 28면에 이르고 있다. 글씨만으로는 사도세자의 친필이라는 점이 드러나지 않으나 당시 사도세자의 시강(교사)을 지냈던 유언호가 이 글의 입수경위를 쓴 발문이 첨부돼 있으며 발문의 내용이 영조실록 18년의 기술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사도세자의 친필로 인정된다고 전문가들은 밝히고 있다.
  • 경방필백화점 무리한 개장/얄팍한 상혼에 시민 큰불편

    ◎미완주차건물에 차량 통행시켜/영등포 온종일 교통지옥/인도서 상품배포·쓰레기 곳곳 방치 백화점의 얄팍한 고객유치 상혼이 서울의 교통체증을 부채질하고 쓰레기더미를 양산하는등 시민들의 불편을 가중시켰다. 31일 상오10시30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앞에 건립된 경방필백화점이 개장을 하면서 평소에도 교통혼잡을 이루던 이 일대는 하루종일 극심한 「교통지옥」으로 변했다.개장시간이전부터 시작돼 하오늦게까지 계속된 이 일대의 교통혼잡속에 백화점주변 곳곳에 쓰레기더미가 쌓여 고객과 보행자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날의 교통혼잡은 경방필백화점의 개점에 맞춰 근처의 신세계·롯데백화점 분점들이 각각 「개관10주년기념 감사대축제」,「우수협력업체 사은대감사제」등을 기획,대대적인 고객유치작전에 나서 더욱 심했다. 특히 경방필백화점측이 상품구매액수에 따라 이용객에게 나눠주는 고가상품을 광고효과를 의식,건물밖 인도에서 배포하는 바람에 주변 인도가 고객들과 보행자들로 한데 엉겼고 일부 보행자들이 이를 피해 차도로 걸어다녀 아수라장을 이뤘다. 더욱이 택시승강장이 없어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도로변으로 한꺼번에 몰려들었으며 백화점으로 연결된 차도에는 신호등이 없어 경찰이 일일이 교통정리를 하느라 진땀을 빼야했다. 경방필백화점측이 완전한 준비를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개장한데 따른 고객들의 불편도 컸다. 본관옆 4층짜리 주차전용건물은 공사가 끝나기도전에 차량을 통행시켜 공사설비들로 차량통행의 불편은 말할 것도 없고 사고위험마저 있었다.비상계단에는 상품과 상품박스·쓰레기더미등이 쌓여있어 비상시에 제기능을 할지에 의문스러웠다. 고객 박영미씨(30·구로구 신도림동)는 『신도림동 집에서 백화점까지 평소 15분 걸리던 것이 오늘은 일대 교통체증으로 배이상이나 걸렸다』며 『교통혼잡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 16∼26일 세계우표전/「72억원짜리」 등 진귀우표 한눈에

    ◎KOEX서 150여국 8백여 작품 전시 오는 16일부터 25일까지 KOEX에서 열리는 「94필라코리아」(세계우표전시회)에는 신고가 72억원짜리 작품을 비롯,경매가 32억원짜리 우표 2종등 1백50여개 국에서 출품한 8백여 우취작품(3천4백틀)이 전시될 예정이어서 국내외 수집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 이 행사는 체신부와 한국우취연합이 근대우정 창시 1백10주년을 기념하고 우취문화 증진을 위해 국제우취연맹(FIP)과 아시아우취연맹(FIAP)의 도움을 받아 마련했다. 비경쟁부문 전시작품 가운데는 1856∼1875년까지 핀란드의 고전우표로 만든 72억원짜리 우표수집 작품(일본 히로유키 가나이씨 출품)이 단연 눈길을 끈다.또 영국 왕립박물관 소장 세계 최초의 우표인 1페니짜리 흑색우표와 2펜스짜리 청색우표로 구성된 작품도 있다.이 우표는 1840년 5월6일 영국 빅토리아여왕의 옆모습을 담아 발행한 것으로 경매가가 32억원을 넘는다. 국내에서는 1884년 11월18일 우정국 개국일에 맞춰 일본 대장성에서 인쇄한 우표 4종을 비롯,1895년 7월에 사용돼 근대우편사상 현존 봉투중 가장 오래된 5억2천만원짜리 봉투(문화일보 김성환화백 소장),1896년 함북 경흥우체국 소인이 찍힌 경매가 1억5천만원짜리 봉투(일본인 소장) 등이 선보인다.
  • 교사들이 무대에 올린 「한여름밤의 꿈」

    ◎셰익스피어 대표적 희극… 극단 교극 19∼21일 국립중앙극장서/교사들이 번역서 연출까지 직접 담당/환상·현실 아름답게 조화 이룬 대작 셰익스피어의 대표적인 낭만 희극 「한여름밤의 꿈」이 현직교사들에 의해 무대에 오른다. 초·중·고 현직교사들로 구성된 한국교사연극협회 산하 극단 「교극」(대표 이정석)은 오는 19일부터 21일까지(하오4시·7시30분) 국립중앙극장 소극장에서 「한여름밤…」을 공연한다. 한국교사연극협회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무대에는 30여명의 현직교사들이 배우로 출연하며 기획·제작·번역·연출도 직접 맡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정적 분위기와 재담·익살·해학 등 고전 희극 고유의 요소가 온전하게 녹아있는 「한여름…」은 성격이 전혀 다른 네개의 플롯으로 구성돼 있는 것이 특징.요정들의 이야기와 공작의 혼인이야기,두 쌍의 연인이야기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큰 줄기로 숲속에서 하룻동안 일어난 가지가지의 일들이 한편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펼쳐진다. 요정들이 살고 있는 숲속에 들어온 네명의 쫓고쫓기는 연인들(라이샌더,허미어,디미트리어스,헬레나)과 숲의 요정이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요정 왕 오베론은 장난꾸러기 요정 퍼크에게 사랑의 묘약인 꽃 즙을 이용해 연인들의 사랑의 결실을 도와주도록 명한다.하지만 퍼크의 실수로 서로의 연인이 뒤바뀌어 엎치락 뒤치락하는 사랑싸움이 시작되면서 극은 점입가경의 단계에 이른다.특히 요정의 여왕 타이테이니어와 당나귀 귀를 한 익살스런 보텀과의 대조는 통속적이긴 하지만 극의 유머러스한 부분을 탄탄히 받쳐준다. 아침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얼키고 설킨듯한 사건들이 다시 제자리를 찾으면서 연인들은 마치 한바탕의 환상적인 꿈을 꾼듯한 기분으로 아테네로 향하고…이어 공작과 두쌍의 연인들의 결혼식이 요정들의 축하속에 이뤄진다는 끝대목 또한 한여름 더위를 식혀줄만큼 환상적이다. 전체적으로 볼때 젊은 남녀간의 사랑이 갖가지 우여곡절끝에 결혼이라는 행복한 결말에 이른다는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사랑의 변덕스러움과 풍성함을 아울러 보여주고 있는 「한여름밤…」은 낭만과 현실의 완벽한 융합은 물론 환상속에서도 현실을 느낄 수 있을만큼 조화의 묘를 이루는 작품이란 점에서도 눈길을 줄만하다. 번역 및 연출을 맡은 이정래씨(덕소고 교사)는 『극단 「교극」의 창단성격을 살릴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이 작품의 틀을 이루고 있는 결혼축하무드와 다양한 사랑의 모습,인간성에 대한 따뜻한 이해는 관객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극단 「교극」은 지난 85년 연극지도교사의 전문지식 배양과 교사와 제자간의 공동작업을 통한 지속적인 「사제동행」의 실천을 목표로 창단된 현직교사들의 「아마추어성」연극단체.현재 한국교사연극협회(회원 2백여명)을 모단체로 30명의 단원이 활동중이다.
  • 비정한 권력투쟁가… 유례없는 반세기 독재/김일성 82년의 인생역정

    ◎유년 평양·만주 전전… 20세에 빨치산 활동/해방후 구소점령군 배경업고 권력장악/도전세력 가치없이 제거… 1인체제 구축/민족통일 빙자 6·25남침… 「전범」 낙인/67년 주체사상 만들어 사회주의 통치도구로 활용하기도 김일성.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집권을 누린 독재자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난 45년 소련군을 등에 업고 한반도의 절반인 북한땅의 통치자가 된 뒤 거의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라는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어마어마한 권력집중적 직책도 모자라 북한주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민족의 태양」으로 부르기를 강요한 전제군주적 독재자였다. 김은 어찌보면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전지전능하고 무오류의 존재로 인식되도록 주민들을 세뇌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먹을 것이 모자라 하루 두끼 먹기운동을 벌이면서도 철저한 사상무장과 외부 정보통제로 주민들로 하여금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믿도록 만드는능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은 1912년 4월15일 평양의 한 농가에서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을 부모로 하여 철주와 영주를 동생으로 둔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본명은 성주였으나 만주에서 빨치산활동을 할 때 일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우상화과정에서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엄청나게 날조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그의 출생지가 평남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에 있는 외가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을 거쳐 다시 일성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김일성의 「공식」생가는 평양 대동강변 언덕에 자리잡은 지금의 만경대이며 이른바 「혁명의 요람」으로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는 참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은 어린 시절 한때 외할아버지가 개신교 장로를 지내는 등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만경대에서 짧은 유년시절을 보낸 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그후 김은 만주의 중국계 소학교인 모예산소학교,팔도구소학교와 평양근교 외가인 칠골에 있는 외조부 강돈욱이 교감으로 있던 창덕학교 등을 전전하며 파란많은 소년기를 보내다 26년 역시 중국계인 무송소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32년 유격대활동에 적극 가담하기까지의 기간은 뚜렷한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북한에서 나온 그의 전기들은 이 기간중 장춘과 길림 사이에 있는 가륜에서 한인농민들에게 사상교화작업을 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31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32년 중순부터 중국 공산당 산하의 항일 빨치산집단에 참여한다.이때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김의 항일투쟁경력은 그가 북한정권을 장악한뒤 유일체제를 강화하면서 그에 대한 우상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과장·미화되었다.북한의 선전용 김일성 전기들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32년 그가 조선공산당을 창설했다고 하지만 당시 불과 19세였던 그는 당시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양세봉이라는 한인이 이끄는 유격조직에 들어감으로써 항일빨치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그는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사병으로 들어가 활동하다 우수한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대대장급으로 승진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일대에서 소규모 유격활동을 벌이던 김은 37년 유격대원 2백명을 이끌고 국경 마을인 함남 보천보를 습격했다.일본경찰지서와 우체국 등을 방화하고 추격해오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일경 7명을 살해한 이른바 「보천보전투」를 벌여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김은 이 전투가 자신이 참여한 빨치산 전투중 가장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자랑하며 보천보에 자신의 동상과 혁명박물관까지 세우고 북한 주민들에개 참관을 강요했다.하지만 보천보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김일성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을 내는 학자들도 있다.즉 보천보사건의 김일성은 그해 11월 죽었으며 그의 부하였던 사람이 소련으로 도피한 뒤 그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보천보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 본토 침략의 전초전으로 만주의 빨친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나서는 바람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때문에 김도 41년 8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서쪽으로 피신해야 했다. 소련은 이 무렵 만주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중국인과 한인유격대원들을 모아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등지에 「88독립저격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했다.김도 김책,최용건,이동화 등 빨치산 동료들과 함께 이 부대에 들어가 43년에는 대위급으로 진급한다. 김은 여기서 만주에서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김정숙과 결혼했다.그녀는 16세 때인 35년에 김일성의 빨치산부대에 가담해 주방일 등 잡일을 보았던 여자였다. 김은 42년 그녀와의 사이에 첫아들인 정일(소련명 유라)을 낳았다.하지만 그녀는 49년 평양에서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했다. 해방과 함께 무명의 소련군 장교로 평양에 입성한 그는 이후 소련의 절대적 후원과 타고난 권모술수로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소련 점령군은 친소세력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의 필요성에 따라 자신들의 협조자들 가운데 하나를 북한지도자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김이 바로 그같은소련의 의도를 기민하게 포착한 것이다. 소련점령군이 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그의 기반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에서 4월까지 한달동안 자신을 도와준 소련에 감사를 표시하기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인 6월 24일 북로당과 남로당 중앙위원회연석회의를 열어 당 위원장자리를 차지했다.이 회의에서 당의 명칭도 북조선노동당에서 조선노동당으로 바꾸었다. 당과 정부기관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그는 자신에게 협력했던 인사도 자신에 도전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숙청 또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심지어 자신과 유격대활동을 함께했던 빨치산대원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했다. 그는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박헌영,김두봉등과 같이 자신에게 협력했던 수많은 인물들을 한국전쟁에 대한패전책임을 덮어씌우거나 종파주의를 부추키고 있다는등의 갖가지 죄목을 걸어 제거함으로써 결국 북한정권을 족벌체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소련의 힘을 빌려 48년 북한정권의 초대수상에,49년 조선노동당 초대위원장에 오른뒤 도전세력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기 시작했다.그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는 물론 현준혁 등 국내파,박헌영 등 남로당계,김두봉을 위시한 연안파,허가이 등 소련파를 차례로 숙청해 결국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은 자신의 권좌가 어느 정도 다져진 50년 6월25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침내 무력 남침을 감행한다. 그 자신이 식은죽먹기라고 여겼던 적화통일이 유엔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음에도 그는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무력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였다.그는 신년사를 통해 『단합된 민주조선의 건설은 남한에 있는 반동적인 매국노들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민군과 보안대를 강화시켜야한다』고 역설했다. 김일성은 모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밤도둑처럼 새벽야음을 틈타 남침을 했으나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의용군이 자신을 도와주러 왔을때는 이미 전쟁이 자신의 관리능력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었다.국제정세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던 판단착오의 결과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실수로 엄청난 결과가 빚어지자 동료들을 숙청했다.그는 1950년 12월 21일 강계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그의 빨치산 동료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그 가운데서 김일,최광,임춘추,김열,무정등은 당에서 축출해버렸다. 김일성은 뒤이어 당의 재조직문제를 놓고 자신과 이견을 보인 소련파의 거두 허가이를 숙청했으며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파들도 정부전복을 기도하고 미국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는등의 죄목으로 체포해 사형에 처하는등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더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세력은 여지없이 제거하는 비정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50년대 중반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67년에 「주체사상」을 만들어 냈으며 72년에 와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명문화시켜 통치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체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극단적인 우상화가 맞물리면서 북한정권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는 요인이 됐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김일성에 대해 『가랑잎을 띄우고 대하를 건너가는 만고의 영웅이며 그가 한번 노려보기만 하면 원쑤도 가을 풀같이 쓰러진다』고 보도할 정도로 북한은 이후 유사종교집단적 사회구조를 띠면서 경직적인 김일성 1인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김일성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철저한 폐쇄체제로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 아들인 김정일에게로 후계세습작업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나름대로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72년 12월 비공개리에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쳐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그도 소련의 스탈린 등의 전례를 보고 자신의 사후에 대해 대비를 시작한 것이다.다시 말해 스탈린 사망후 대대적인 격하운동에 충격을 받은 김이 사후 안전판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상정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에 대한 우상화 이상으로 김정일에 대한 상징조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면서 권력을 하나씩 아들에게 이양하기 시작했다.김정일에 대한 호칭을 「당중앙」에서부터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향도의 별」 등으로 격상시켜나가면서 노동당 조직비서(73년),노동당 정치 상무위원회 위원(80년),인민군 최고사령관(91년),국방위원장(93년) 등 핵심요직을 하나하나 물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으로 우상화작업을 펴온 김일성도 끝내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한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그 자신도 70년대 이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건강유지에 발버둥쳐온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일성의 질환은 지난 73년께부터 확인된 뒷머리의 혹에서부터 고혈압·당뇨·난청·신경통·뇌일혈을 비롯해 그를 8일 새벽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간 심근경색 등 10여가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그는 분단 반세기만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사했다.그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그의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과정에서의 과로 때문인지,아니면 경제난과 대외적 고립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 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영생불사의 존재로 신격화된 그도 죽음 앞에 아무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철리를 그의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에게 마침내 일께워 준것이다. 그의 공과는 후세의 사가가 엄정하게 평가해줄 것이다.그가 역사의 장에 어떻게 기록되든 과대망상에 빠진 권력의 화신이었다는 사실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연표◁ △1912.4.15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출생(본명은 김성주) △1923 만주 장백현 팔도구 소학교 졸업 △1926 만주 길림 육문중학 중퇴,재학중 공청 가입 △1930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개명 △1931 중국공산당 입당 △1932 중국공산당 조선인부대 지대장 △1935 김일성으로 재개명 △1936 조국광복회 조직 △1937.6 함남 보천보 습격 △1937.9 함남 증평리 습격 △1940말 소련으로 망명 △1945.8 소련군 소좌 △1945.9 소련점령군 비호하 입북 △1945.10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참석 △1945.10 「김일성장군」환영 평양시군중대회에 등장 △1945.12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1946.2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7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장단 의장 △1946.8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 △1947.2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8.8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8.9 수상(제1차 내각) △1949.3 경제문화 협정체결차 소련방문 △1949.6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0.6 군사위원회 위원장 △1950.7 인민군 최고사령관 △1953.2 원솔칭호 △1953.7 영웅칭호 △1956.4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7.9 수상(제2차 내각) △1957.11 당 및 정부 대표단장으로 소련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 참석 △1959.1 소련 제21차 공산당대회 참석 △1959.9 중국 정권창건 10주년 기념식 참석 △1961.7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조약 체결차 소련 중국 방문 △1961.9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정치위원회 위원장 △1961.10 소련공산당 제22차대회 참석 △1962.10 수상(제3차 내각) △1966.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7.1 소련방문 △1967.12 수상(제4차 내각) △1970.11 노동당 총비서 겸 정치위원 △1972.12국가주석 △1972.12중앙인민위원회 위원겸 국방위원회 위원장 △1975.4중국방문 △1975.5루마니아·알제리·모리타니·불가리아·유고 순방 △1977.11국방위원회 위원장 △1977.11인민군 최고사령관(원수) △1977.12 국가주석 △1980.5 유고 티토대통령 장례식 참석 및 루마니아 방문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총비서·군사위원장 △1982.4 국가주석 △1982.9 중국 방문 △1984.5 소련등 동구권 8개국(소련·폴란드·동독·체코·헝가리·유고·불가리아·루마니아)순방 △1986.10 소련 방문 △1986.12 국가주석 △1988.6 몽골 방문(중국·소련 경유) △1989.11 중국 방문 △1990.5 국가주석 △1991.10 중국 방문 △1992.4 대원솔 칭호 △1993.4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발표 △1994.4.8 사망
  • 창단10돌맞은「새이웃 주부극회」/“연극통해 생활의 자신감 키우죠”

    ◎주부 14명으로 구성… 매년 2∼3편씩 무대 올려 평범한 주부들로 구성된 아마추어 극단 「새이웃 주부극회」(회장 권조례)가 창단 10주년을 맞아 16∼18일까지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 8층 현대 토아트홀에서 닐 사이먼 원작의 「프라자호텔 719호」를 공연한다. 한국 지역사회교육 중앙협의회산하 주부클럽으로 85년 창단된 새이웃 주부극회는 평소 연극을 하고싶다는 꿈을 가졌던 주부들이 모여 일궈낸 순수 연극모임. 창단 첫해 역시 닐 사이먼 원작의 「굿 닥터」로 첫 막을 올린후 해마다 2∼3편씩 꾸준히 무대를 마련,이번이 23번째이다. 현재 회원은 3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의 전업주부 14명.주부극회의 운영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는 이들은 자신들의 지나간 10년을 『느린 황소걸음이 10년을 가는 놀라움』혹은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기적』이라고 평가한다. 모임의 총무 이연호씨는 『배우가 모두 전업 주부들인만큼 공연을 한다해도 매일 시간맞춰 모여 연습하기도 힘들고 공연장소 섭외등 어려운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고 회고한다.그러나 지역사회학교측에서 장소도 구해주고 이화여고 교목인 이종룡씨가 창단때부터 줄곧 연출을 도맡아 와 힘든줄 모르고 매해 공연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새이웃 주부극회 회원으로 무대에 선지 7년째라는 이해자씨는 가족들이 『처음엔 엄마의 연기가 너무 어설퍼 조마조마 했지만 이젠 전문배우 같아 편안하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연극을 통해 주부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회고했다. 공연 일자가 눈 앞으로 다가옴에따라 요즘 연습에 눈 코 뜰새가 없다는 권조례회장은 이번에 공연할 「플라자…」는 「잠깐 들린 손님」,「할리우드에서 온 손님」,「결혼식 손님」등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3편의 코미디극으로 각편마다 남편의 외도·화려한 결혼·부모 자식간의 단절이 갖는 현대의 가정문제를 주제로 담아 자신이 속한 가정과 위치를 점검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새이웃 주부극회는 상업극단이 아닌만큼 관객의 대부분이 가족이나 친지라는 사실을 감안,공연작품을 선정할때도 어느 한사람을 주역으로 내세우기 보다는 회원 모두 역을 맡고 가능한 출연자 모두가 돋보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특징. 회원들은 연습이 없는 여름과 겨울방학때는 지역사회 어린이 연극교실을 열어 지도하기도 한다.
  • “한­러 우호 신기원의 해” 공감(김 대통령 북방여로)

    ◎“러 개혁정책 향후 세계사 향방에 영향”/김 대통령/“한국 월드컵축구 유치 최대한 돕겠다”/옐친/2백여 교민 양국국기 흔들며 열렬히 환영 김영삼대통령은 1일 하오(이하 모스크바현지시간)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옐친대통령과 1차 정상회담을 갖는등 러시아방문 첫날부터 바쁜 일정을 보냈다. ▷정상회담◁ ○…김대통령은 이날 저녁 이번 일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행사로 꼽히는 옐친대통령과의 「다차만찬회담」을 위해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모스크바근교의 국영별장에 도착,셰브첸코의전장의 영접을 받고 현관에서 옐친대통령내외와 반갑게 인사. ○러 정찬으로 식사 김대통령내외는 옐친대통령내외의 안내로 1층 응접실로 들어가 한동안 환담.두 대통령의 만남은 92년11월 옐친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서울 신라호텔에서 처음 만난 뒤 두번째. 두 대통령은 모스크바의 날씨로 화제를 열기 시작,김대통령일행의 비행기여행,서로의 건강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 김대통령은 89년6월 통일민주당 총재시절 한국 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소련을 방문했으며 그것이 두나라의 관계정상화에 나름대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92년11월 대통령후보 때 옐친대통령과 만난 것도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고 언급. 두 대통령내외는 다시 응접실 옆방인 만찬장으로 이동,순수 러시아식 정찬으로 식사를 나누며 대화를 계속. 두 대통령은 두 나라가 모두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점과 관련,서로의 경험을 소개하며 격려. 김대통령은 『러시아의 안정과 옐친대통령의 개혁정책성공이 향후 세계사의 향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러시아의 개혁에 대한 한국의 지지와 협력을 재확인. 이에 옐친대통령은 사의를 표하면서 『김대통령의 신한국건설을 위한 변화와 개혁이 한국을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화답. 두 대통령은 취미활동과 가족관계등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김대통령은 『옐친대통령이 배구와 테니스를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친근감을 표시. 김대통령은 『한국국민들은 축구를 매우 좋아한다』고 소개했고 두 대통령은 미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축구대회에 나란히 출전한 두 나라 선수단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서로 기원. 김대통령이 우리나라의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유치계획을 설명하고 러시아측의 협조를 요청하자 옐친대통령은 『최대한 돕겠다』고 다짐. 만찬 말미에 김대통령은 1854년 러시아 해군제독(푸티아친중장)이 조선에 입국하여 5일동안 체류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로부터 30년 뒤 한국과 러시아 두나라가 수교를 했고 올해가 수교 1백10주년이 되는 해임을 지적. 이어 김대통령이 『올해가 양국관계의 신기원을 이룩하는 해로 기억되도록 공동노력을 펴나가자』고 제의하자 옐친대통령은 흔쾌한 표정으로 적극적인 동의를 표시. 두 대통령내외는 만찬에 이어 2층 서재로 올라가 다시 다과를 들며 이야기를 계속해 김대통령내외의 다차체류는 3시간가량을 기록. ▷모스크바공항 도착◁ ○…김대통령은 서울공항을 떠나 10시간30분의 비행끝에 이날 하오3시30분 모스크바 세르메티예보 제1공항에 안착,3박4일동안의 러시아방문일정을 시작. 김대통령은 공항에서 김석규주러시아대사와 체르니셰보 러시아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고 트랩에 나서 태극기와 러시아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교민환영단 2백여명에게 손을 들어 답례. 이어 김대통령은 트랩을 내려와 쇼스코비치 러시아부총리내외와 쿠나제 주한러시아대사내외등의 영접을 받고 의장대사열위치로 이동. ○「다차」 만찬회담 김대통령은 러시아의장대장의 경례를 받고 애국가와 러시아국가 연주를 들은 뒤 국기에 대해 목례를 하고 의장대를 사열. 김대통령은 파노프외무차관등 러시아측 환영인사및 우리 대사관간부들과 인사를 교환한 뒤 교민화동 신영은양과 김병수군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교민환영단으로 다가가 교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 ▷러시아행 특별기내◁ ○…김대통령은 이날 특별기가 서울공항을 이륙한 직후 가벼운 옷차림으로 기내를 돌며 공식·비공식수행원및 동승한 취재진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 김대통령은 서울공항에 민주당의 이기택대표등 야당인사들이 많이 출영나왔더라는 수행기자들의 인사를 받고는 『다 큰정치를 하려고 그러는 것일 것』이라고풀이. 기내를 도는 김대통령의 표정은 매우 밝았으며 한 측근은 이번 여행이 마침 김대통령의 89년6월2일 첫 모스크바방문으로부터 만5년이 되는 시점이어서 더욱 설렘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 김대통령은 특별기가 한반도를 벗어나 일본영공을 지나는 동안 한승주외무부장관등 공식수행원들을 모두 집무실로 불러 잠시 환담. 이 자리에서 김대통령은 이양호합참의장으로부터 『북한 때문에 항로가 포항∼니가타∼하바로프스크상공을 우회해 지나가느라 비행시간이 2시간 더 걸린다』는 설명을 듣고 『빨리 직선으로 갈 수 있어야 되는데…』라고 국토분단의 안타까움을 표시. ▷서울공항 출국◁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이하 서울시간) 손명순여사와 함께 서울공항에서 특별기편으로 출국. 상오9시45분쯤 승용차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한 김대통령내외는 이영덕국무총리와 황영하총무처장관의 영접을 받으며 공항청사 2층에 마련된 환송식장에 입장,3군의장대의 사열을 받은 뒤 곧바로 연대에 올라 출국인사. ○3부요인 환송 김대통령은 출국인사에서 미국·일본·중국순방에 이은 러시아방문을 통한 「4각외교」의 완결을 강조하면서 『나는 대통령으로서 이 나라의 안보와 국가이익을 위해서라면 지구의 끝까지라도 가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국익외교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표명. 김대통령내외는 이어 서울사대부속국민학교 정재현군(5년)과 김지혜양(5년)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환송나온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교환. 김대통령은 『잘 다녀오겠습니다.잘 부탁합니다』라고 인사했으며 특히 이기택민주당대표와는 반갑게 악수를 나눴는데 이대표는 『잘 다녀오십시오』라고 환송.이날 환송식에는 이만섭국회의장·윤관대법원장·조규광헌법재판소장·이총리등 3부요인과 김종필민자·이민주당대표등 정당지도자들및 국무위원등 60여명이 나와 김대통령내외의 장도를 축원.
  • 재클린 케네디 추모(뉴욕에서/임춘웅칼럼)

    고 존F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여사가 지난 19일 임파선암으로 세상을 떠나 23일 알링턴국립묘지에 묻히기 까지,그리고 또1주일이 다되도록 미국민들은 또한번 케네디 추모분위기 속에 묻혀 살았다.그동안 미국의 신문 TV들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재클린여사의 일생과 그의 죽음을 통해 본 케네디가의 영광과 좌절,케네디의 죽음을 재조명했다. 연일 수백명씩의 관광객과 뉴욕의 시민들은 재클린여사의 유해가 안치돼있던맨해튼 그의 아파트앞에 몰려들어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추모대열 속에는 케네디 대통령이나 재클린 퍼스트 레이디시대를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젊은세대들도 끼어있었다. 23일 고인의 영결식은 미국에서 가장 유력한 CBS TV와 CNN이 각각 생중계를 했고 빌 클린턴 대통령도 알링턴국립묘지 영결식에 직접나와 고인을 회상했다. 미국의 역대 어느 대통령 미망인도 사후 이처럼 대대적인 국민의 추모를 받아본 일이 일찍이 없다.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퍼스트 레이디였던 32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미망인 엘리노어여사 까지도 이런 대접을 받지는못했다. 재클린여사에 대한 이러한 추모는 재클린 개인의 인기도 작용하고 있다.텔리비전시대가 만들어낸 최초의 스타 퍼스트 레이디,그녀의 우아함과 지성미가미국민들에게 심어준 강력한 인상,그 엄청난 비극들의 주인공에 대한 연민같은 것들일 것이다. 그러나 재클린에 대한 이러한 미국민의 관심의 뿌리는 역시 「케네디」에 있다.이는 이번 재클린여사에 대한 각종 추모행사에서도 중심은 케네디 대통령,케네디가문과 재클린의 관계에 있었던것만 봐도 알수있다.케네디대통령은 고인이 된지 31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어느 현직대통령도 케네디만큼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인물은 없었던 것 같다.매년 11월(케네디가 암살된 달)이 되면 어김없이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케네디가 회상되며 그의 죽음 10주년·30주년 하는 특별한 계기가 되면 그 요란함이란 외국사람들이 상상키 어렵다. 「케네디」가 이처럼 미국민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살아남아있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그것은 그의 극적인 죽음이나 인간적인 매력때문이 아니라 한 치인으로서 케네디가 미국역사에 남긴 비전과 용기때문일 것이다.미국은 가장 빛나는 역사를 가진 나라의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50∼60년대에 걸쳐 미국사회는 적지않은 문제점을 안고있었다. 끊임없는 흑백간의 인종분규,빈부문제,냉전에의 대응등이 그런 문제들이었다.케네디는 이런 문제점들에 당시로서는 대단히 진보적인 비전을 제시했고 과감한 정책을 추진했다.그는 핵전쟁을 무릅쓰고 쿠바미사일 위기를 극복하는 용기를 보여주었으며 무엇보다 미국의 오랜 지배체제에대한 과감한 도전을 시도했다. 대통령이 되기전 케네디는 「용기있는사람들」이란 책을 썼었다.그리고 보스턴에 세워진 케네디기념도서관은 90년부터「케네디 용기상」을 제정해 수여하고 있다.제1회 수상자는 인종문제에 너무 진보적이란 이유로 재선에 실패한앨라배마주출신의 하원의원을 지낸 칼 엘리옷이었다.미국민들은 케네디를 통해 미국의 꿈을 그리고 있는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이루어지지 않고있는 꿈의 실현을 위해 케네디를 끊임없이 되새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 민추협 10주 기념식

    「5공」때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창립10주년 기념식및 리셉션이 16일 하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최형우내무부장관·김상현민주당고문등 참여인사,각계대표등 3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민추협 결성 1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공동대표 최형우·김상현등 9명)는 이날 대국민발표문을 통해 『민추협은 지난 84년 군부독재의 종식과 민주화·통일시대를 열기 위해 긴 투쟁의 첫걸음을 시작했다』고 상기하고 『이제는 우리들 가슴속의 민추협이 아니라 역사속의 민추협으로 그 정신을 부활시켜 나갈것』이라고 밝혔다.
  • 10주년 행사 주관 김상현의원/“문민시대 탄생 민추협이 씨앗”

    ◎모두가 하나였던 당시로 돌아갔으면 「민추협」결성 10주년을 앞두고 기념행사준비를 주관하고 있는 민주당의 김상현의원은 문민정부가 탄생할 수 있었던 토양으로 민추협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김영삼대통령과 함께,미국에 머물던 김대중씨를 대신해 민추협 결성의 산파역을 맡았던 그는 『이땅에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시대를 열기 위한 긴 투쟁의 첫발이 민추협이었다』고 회상했다. 김의원은 『시대가 암울했던 만큼 민추협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절대절명에 가까웠다』면서 『그러나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단식농성」「닭장차」「최루탄」등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민추협에 대한 정부의 탄압은 혹독했다』고 말했다. 『DJ(김대중씨의 애칭)가 그때 출마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요…』빠른 투의 남도사투리에는 지난 87년 두 김씨가 13대 대선에 함께 출마하면서 공중분해된 민추협에 대한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김의원은 『84년 신민당의 창당과 이듬해 2·12총선에서의 신민당 돌풍,87년 6월 항쟁과 6·29민주화선언등 우리 사회가 민주화로 접어들던 길목마다에는 바로 민추협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번 1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준비하는 것도 이같은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는 『민추협은 사라질 뿐 죽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역사속에 민추협이 살아 숨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내년 11주년 기념행사에 맞춰 민추협의 모든 것을 담은 책자를 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실제로 그는 최근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환경과 생명을 위한 모임」사무실에 새로 직원을 두고 민추협 참여인사들의 증언채집과 자료수집에 나서고 있다. 정치적 목적을 갖고 이번 행사준비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김의원은 『모두가 하나였던 민추협때의 마음자세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그는 『이번 행사를 준비하기에 앞서 청와대와 동교동에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고 밝히고 『16일 저녁 기념행사때 두분 모두 꽃을 보내주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 민추협/「결성 10돌」… 그 발자취와 역사적 위상

    ◎「어둠」의 시대 “민주”의 외침/84년 YS·DJ “합작”… 5공박해 극복/85년 「2·12총선」서 돌풍… 직선제 투쟁/내일 기념식… 심포지엄 등 열고 「기념 사업회」 계획 80년대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앞장서 이끌었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 10주년 기념식및 리셉션이 16일 하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다. 이날 기념식에는 민추협 초기의 지도위원및 후기 상임위원·운영위원과 집행부의 국장·부장급등을 포함해 모두 3백∼4백여명이 참석,여와 야로 나뉜 오늘날의 처지를 떠나 오랜만에 동지애를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이에 앞서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장에서는 기념심포지엄이 열려 장을병성균관대총장의 「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민추협 역할의 평가와 현대사적 조명」이라는 주제발표와 대학교수·언론인·변호사등의 토론이 벌어진다. 이들 행사를 마련한 「민추협 결성 10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는 민추협의 공동의장권한대행과 부의장을 맡았던 김상현민주당고문·김명윤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수석부의장을 책임대표로,이민우전신민당총재와 최형우내무부장관,박종율 조연하 홍영기 김윤식 용남진씨가 준비위원대표로 구성됐다.준비위는 16일 행사를 계기로 「민추협운동 기념사업회」(가칭)를 발족시킬 계획이기도 하다. 민추협은 84년 5월18일 서울 남산의 외교구락부에서 민주화투쟁을 기치로 내걸고 발족했다. 바로 1년전 이날 가택연금 상태에서 단식투쟁에 돌입,23일이란 장기단식 기록을 세운 뒤 민주화운동의 기회를 찾던 상도동의 김영삼씨가 오랜 정치적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동교동의 김대중씨와 모처럼 손을 잡고 공동의장을 맡았다.그러나 김대중씨는 사형집행정지 상태로 미국에 머물던 시기여서 그의 의장직은 김상현씨가 권한을 대행했다.김영삼씨는 지금 문민정부의 대통령이고 김대중씨는 세번째 대선에서 패배,정계를 은퇴했다. 그때까지도 정치활동 규제에 묶여 있던 인사들이 구성한 민추협은 한달 뒤인 6월 운영위원 64명을 인선하고 민주화투쟁을 정식으로 선언,민주화대장정의 막을 열었다.당시 전두환정권은 사무실에 집기마저들여놓지 못하게 하는등 탄압을 했으며 이 때문에 돗자리를 깔고 회의를 할 수 밖에 없었다.민추협은 같은 해 9월 헌법연구특위등 17개 부서에 달하는 실무기구를 구성해 정당에 버금가는 조직을 갖추면서 여러 민주세력과 연대투쟁에 들어갔다. 이듬해 1월에는 다음달 2·12총선에서 제1야당의 돌풍을 일으킨 이른바 「통합신당」을 창당,정치활동 재개에 들어갔다.김대중씨는 2·12총선을 4일 앞두고 귀국,김포공항에서 곧바로 연행돼 가택에 연금됐다가 선거결과에 충격을 받은 「5공」으로부터 한달만에 연금이 해제되면서 공동의장 일을 본격적으로 맡게 됐다. 86년 2월 민추협은 드디어 「1천만명 개헌서명운동」을 선언,직선제 개헌투쟁을 전개했다.87년 4·13호헌선언에 이어 6월10일 노태우민정당대표가 차기 대통령후보로 선출되던 날 모든 민주세력과 연대해 6·10항쟁을 벌였다. 이같은 투쟁과정에서 민추협에 대한 「5공」의 탄압은 끊임 없이 계속됐다.85년5월 미국문화원 점거사건과 86년2월 직선제 개헌투쟁 때는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했다.87년2월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에 따른 「고문살인및 용공조작 폭로대회」등 일이 있을 때마다 사무실이 원천봉쇄되고 지도부는 수 없이 가택연금을 당했다. 그러나 민추협은 「6·29선언」이후 두 김씨의 대권다툼을 계기로 공중분해돼 3년 남짓의 민주화대장정을 마감하고 말았다. 민추협 참여인사들은 세상을 떠났거나 정계를 은퇴한 이들도 있지만 상당수가 문민정부의 여야 핵심세력으로 계속 활동하고 있다.신상우 황명수 최형우 김덕용 강삼재 번형식 신진욱(이상 민자),이기택 한화갑 이철 홍영기 김영배 신기하 최락도 김종완(이상 민주),박찬종(신정당),양순직의원(무소속)등이 아직 정계일선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이들 말고 이민우 김명윤 박용만 예춘호 김동영 김녹영 문부식 이중재 명화섭 김현규 김창근 김윤식 김충섭 박종태 손주항 최영근 안필수 용남진 박한상 이상민 조병봉 김현수 권오대 김두오 김길준 김창환 송좌빈 이우태 이종남 정채권 정헌주 태륜기 권대복씨 등도 상임운영위원이나 지도위원등으로 참여했던 민추협인사들이다.김광일씨는 국민고충처리위원장으로,김도현씨는 문화체육부차관으로 재직하고 있다.김대통령을 그림자 같이 따라 다니던 청와대의 이원종정무·홍인길총무수석비서관과 최기선인천시장등 이른바 「상도동 가신그룹」들이 민추협 출신들임은 말할 것도 없다.김동영전정무장관과 김녹영전국회부의장은 작고했으나 창립10주년 기념식 때 특별공로패를 받게 돼있다.
  • 화랑들,신인 발굴 나섰다

    ◎동아 갤러리/8∼9월 신인 공모전… 해외 출품도 주선/서림 화랑/30∼40대 유망작가 6∼10명 뽑아 초대전 화랑들이 각종 공모전이나 화랑전시에서 소외된 신인과 30∼40대 작가중 능력있는 인물을 발굴,지원하기 위해 나섰다. 동아갤러리가 청년작가 창작을 후원한다는 취지로 공산미술제를 제정한데 이어 서림화랑이 올해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30∼40대 작가들을 선별 초대하는 전시회를 마련해주기로 한것. 화가 평론가뿐만 아니라 시민들까지 참여하는 공정한 심사를 거쳐 숨은 인재를 발굴하겠다는 이같은 행사들은 우리 화단의 고질적인 학연 지연위주의 인물등용을 배제한다는 뜻을 담고있어 일단 참신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동아갤러리가 오는 8∼9월에 걸쳐 처음 실시하는 공산미술제는 만 38세이하의 신인만을 대상으로 작품을 심사해 후원금 지급과 초대전 해외전출품을 주선하는 공모전. 매년 평면과 입체작품을 번갈아 공모해 1백여점을 전시하면서 이들 작품을 평론가와 기자단 큐레이터가 심사해 평론가 기자단 큐레이터상을 각각 1명(후원금각 1천만원)에게 주며 시민관람객의 투표를 통해 파랑새상(2명 후원금 각5백만원)도 뽑는다 기존 공모전이 특정 인물에 치우친 심사탓에 공정성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다양한 인사들의 공개심사를 통한 투명성과 일반인들의 참여를 적극 살려 나간다는게 동아갤러리측의 설명이다. 이에비해 서림화랑이 「작가를 찾아서」라는 타이틀아래 하반기중 실시할 30∼40대 작가 초대전은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초대전의 기회를 잡을수 없었던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한다는 취지. 알려지지않은 응모작가중 6∼10명을 선정해 8월부터 매월 1명씩 초대전을 마련할 계획으로 이미 화가 평론가등 4인으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해놓고 있다.
  • 10회 한국무용제전 화려한 나래

    ◎한국무용연 주최,16∼18일 문예회관 대극장서/한국무용의 흐름·실험성 한눈에 조망/20∼22일 수원서 우수작품 재공연도 한국무용의 최근 흐름과 다양한 표현기법 및 실험성을 한눈에 조감할 수 있는 대규모 춤잔치가 펼쳐진다.한국무용연구회(이사장 임학선)는 오는 16∼18일 서울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20∼22일 경기도 수원 문화예술회관에서 제10회 한국무용제전을 개최한다. 한국무용제전은 「무용을 통해 인류화합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국제무용연맹과 유네스코 산하 국제극예술본부(ITI)가 제정한 국제무용주간(4월29일이 속한 주간)을 기념해 창설한 행사.올해로 10주년을 맞는 이 행사는 그동안 중견무용가들이 하나의 주제아래 각자의 개성과 창작기법에 따라 다양한 춤세계를 펼쳐보임으로써 한국무용의 최대 취약부문인 안무부문의 발전에 기여해왔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16일 첫무대는 두리춤터의 「가고싶은 나라」(안무 배상복)와 창무회의 「얼과 몬」이 장식한다.「가고싶은 나라」는 현실에서 해소하지 못하는 온갖 욕망들을 꿈의 상황으로 대치,코믹하게 표현한 세태풍자춤이며 「얼과 몬」은 시인 성찬경씨의 태극에 관한 상념을 춤언어로 형상화한 작품이다.여기서 얼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일컬으며 몬은 물의 옛말로 얼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특히 이 작품은 생명이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기철학에 바탕을 둔 것으로 생명의 탄생과 성장,그리고 완성을 태극의 모습에서 그 원형을 찾아 춤으로 그릴 예정이어서 관심. 17일에는 한무회의 「오늘은 내일의 어제이다」(안무 성재형)와 최은희무용단의 「물맞이」(안무 최은희)가 선보인다.「오늘은…」은 시간의 게걸스러움을 안타까워하는 현대인의 심정을 묘사한 작품이며 「물맞이」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수로왕신화를 중심으로 엮은 기원제적 의식무다.또 18일에는 정혜진 무용단의 「얼음별」(안무 정혜진)과 설무리의 「신이어도」(안무 송혜순)가 올려진다.「얼음별」은 망향의 서러움을 서정적으로 그린 것이며 「신이어도」는 제주도 사람들의 피안의 섬인 이어도를 현대적 의미로 재조명한 작품.올해는 10주년을 기념한지방공연(20∼22일)도 푸짐하다.20일은 경기지역의 무용활성화를 위한 「경기무용인들의 밤」으로 꾸며질 예정.임학선 김영실 한은희 정금란 차효영씨등이 출연한다.21,22일은 「우수작품 리바이벌무대」로 그동안 공연됐던 화제작들을 모아 다시 선보인다.리을 무용단의 「길」,임학선무용단의 「흰새의 검은 노래」,윤덕경무용단의 「빈산」,채상묵무용단의 「혼의 율점」등이 소개된다.한편 「한국무용제전」은 그동안 공동주최를 해왔던 MBC측이 지난해부터 예산상의 이유로 참여를 포기,한국무용연구회가 독자적으로 개최해오고 있어 일각에서는 운영예산 부족에 따른 행사규모의 축소도 우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 “사랑의 나무를 심으세요”/신혼부부 3백쌍 한자리에 모여

    ◎새달 밤나무등 3천그루 심기로/유한킴벌리 캠페인 「사랑의 나무를 심으세요」­.신혼부부 3백쌍이 한날 한시 한 장소에서 「사랑의 유실수」3천그루를 심는다. 유한킴벌리(주)는 식목철을 맞아 오는 4월3일 경기도 가평군 상면 6천여평의 국유림에서 「신혼부부 사랑의 나무심기행사」를 갖기로 했다. 「한가정 한그루 나무심기 10주년기념행사」의 하나로 펼치는 이 「사랑의 나무심기」는 한쌍의 신혼부부가 잣나무·밤나무·대추나무중 한종류를 선택해 10그루씩을 심게 된다. 이 행사를 준비해온 유한킴벌리 홍보실장 이은욱씨(39)는 「신혼부부가 보금자리를 가꾸듯 정성들여 나무를 심고 가꾸자」는 뜻에서 이 행사를 기획했다며 이번 행사에 참여한 부부들은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회원으로 위촉돼 각종 환경보호프로그램에 참여할 수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나무를 심은 장소에 설치될 기념판에 자신들의 이름이 영원히 새겨질 것이라고. 이 회사는 지난 84년부터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캠페인을 벌여 지금까지 총19억원을투자,전국에 1천5백만그루의 나무를 심어 가꾸어 오고있다. 회사측은 『앞으로 사정이 허락하는한 식수규모를 늘리고 나무관찰대회·나무캠프등 다양한 행사를 열어 「자연및 산림지키기의식」을 더욱 고취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참가희망자는 오는 28일까지 신청하면된다.525­0891∼3.
  • 국립중앙박물관 신축설계 국제공모/올 주요 사업계획 확정

    ◎4백39억원 투입/옛 조선총독부건물철거 작업 착수/학술조사·유적발굴·해외교류 확대 국립중앙박물관의 올해 사업계획이 확정됐다.모두 4백39억9천만원을 들여 추진할 주요 사업은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및 국립중앙박물관 신축 ▲문화재 특별 전시 ▲학술조사 연구 및 유적발굴 ▲해외문화교류 ▲사회교육 활동등이다. 먼저 오는 20 00년에 문을 열 새 국립중앙박물관은 설계를 국제공모하는데 이어 지질 및 교통영향평가등 기초자료 조사에 초점을 맞춘다.또 총독부 건물 철거를 위한 실측 및 철거 설계작업과 함께 박물관이 임시로 이전될 현 문화재관리국 건물에 대한 증·개축 공사도 시작한다. 다양한 주제로 중앙과 지방박물관에서 잇따라 펼쳐질 특별전시회는 박물관의 기초적인 기능.중앙박물관은 「국내외 특별전 포스터전」과 「금동용봉봉래산향로 특별전」,「이달의 문화인물 기념전­안견」등을 준비하고 있다.또 재일일교포 두암 김용두선생이 소장하고 있는 토기와 도자기·회화등을 가려 뽑은 「재일교포 소장 한국 미술품전」과 미국 피바디박물관에 소장된 한국 개화기 유물 1백여점을 모은 「유길준과 개화기의 한국전」등도 눈길을 끈다. 이밖에 경주박물관은 「통일신라 금동불전」,광주박물관은 「선사인의 삶과 죽음전」,진주박물관은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전」,부여박물관은 「선사고대유물전」,청주박물관은 「충북도민 소장 문화재전」,전주박물관은 「고구려 고분벽화전」,공주박물관은 「상감문 유물전」을 각각 연다. 학술조사 및 유적발굴도 중요한 대목.중앙박물관이 경기도 고양시 원흥동 청자요지 발굴을 비롯,창원 다호리 고분군 제8차 조사,아산만 일대 선사유적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등을 계획하고 있는등 각 박물관이 다양한 조사연구 활동을 펼친다. 해외교류 사업으로는 「18세기 한국미술전」이 지난해에 이어 미국 워싱턴 스미소니언 새클러 갤러리와 LA 카운티박물관에서 8월까지 열리고 애지현 도자자료관이 7∼8월에 여는 「동양도자명품전」에 우리 도자기 11점을 출품한다.
  • 주현미 가수생활 10주년 기념공연

    ◎사회자없이 직접 히트곡 부르며 진행/데뷔때 에피소드·결혼 등 사생활 공개 가수 주현미가 오는 6일(하오3시·7시)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설날특집 공연을 갖는다. 대중가수로서는 패티김,이미자,조용필에 이어 네번째로 세종문화회관에 서게된 주현미의 이번 무대는 가수데뷔 10년을 맞아 특별히 마련된 것.김정택씨가 지휘하는 40인조 SBS관현악단이 반주를 맡고 가수 조영남·송대관등이 특별출연한다.특히 이날 공연은 사회자없이 주현미가 지난날을 이야기하면서 히트곡을 부르는 형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어서 눈길.노래인생 10년을 결산하는 무대이니만큼 어린시절의 고생담,가수데뷔 당시의 에피소드,전성기,결혼,출산,그리고 결혼하면서 국적을 바꾼 일등 숨겨진 사생활을 소상히 밝힌다는 계획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신곡「정으로 사는 세상」을 비롯,「비내리는 영동교」「신사동 그사람」「짝사랑」「잠깐만」등 주로 뉴트로트계열의 노래를 특유의 떨림음에 실어 들려준다.
  • 대화와 안보 한계 분명히 해야(사설)

    한반도와 그 주변의 북한핵관련 정세가 심상치 않다. 북한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간의 2차회담이 무산되었으며 남북회담도 북한의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표류중이다.중국의 핵실험 강행으로 북한 핵개발 저지는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이런 가운데 미하원 아태소위 위원장 애커먼의원이 평양을 방문중이고 서울에선 긴급 안보장관회의가 개최되었다. 관심의 초점은 역시 북핵문제의 향방이다.현재로선 해결의 전망은 커녕 악화일로의 인상이다.미중관계의 냉각과 중국의 핵실험 강행을 보면서 북한은 여유를 찾는듯한 느긋한 자세다.중국의 적극적인 협력없는 대북제재나 압력은 실효를 거두기 힘들 것이다.북한은 유엔의 제재까지도 할테면 해보라는 배짱일지 모른다.애커먼의원의 방북으로도 어떤 실질적 진전의 실마리가 잡힐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것 같다. 그러니까 바로 이런때,대화와 안보의 한계가 분명해야 한다. 취임후 3번째인 김영삼대통령 직접주재 안보장관회의 개최 배경이 그러하다.북한의 핵개발은 무슨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그리고 설득하지못하면 한반도 안보가 갑자기 흔들릴 가능성도 크다.중국의 협력이 없더라도 제재는 불가피 할 것이며 북한은 더욱 어려운 고립의 궁지에 몰리겠지만 「막다른 골목의 쥐」격의 도발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9일은 무모한 북한의 버마 아웅산테러 1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그렇지않아도 그동안 북한에서 흘러나오는 정보들은 심상치않은 군사동향을 전하고 있다.끈질긴 핵개발 고집뿐아니라 노동 1,2호 중거리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북한군의 휴전선 전진배치와 전투비행기지의 지하요새화등도 신경을 자극한다.그리고 식량난에 지친 북한사람들은 전쟁이 나더라도 「북한이 망하든 한국쌀을 차지하든 양단간에 결말이 빨리 나기를 바란다」는 불길한 정보도 있다.세계적인 이상기후와 냉해에서 북한도 예외일수 없다면 금년겨울은 큰 고비가 될지도 모른다. 하나같이 불안한 요소들이다.더욱 걱정스런 것은 우리국민의 흐트러진 안보의식이다.옛소련 동구공산권의 붕괴및 민주화는 물론이고 중국도 우리와 수교한 현실인데 경제파탄의 북한이 감히 도발할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그것은 위험한 우월감이요 방심이다. 군사력에 관한한 북한은 한치의 후퇴도 없다.서울은 휴전선에서 40마일 거리에 있다.예측불허의 북한은 1백만대군의 준비를 완료하고 있다.러시아나 중국의 상황도 유동적이며 상황에 따라선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모두들 안보 경각심을 늦춰선 안된다.안보장관회의의 중요취지도 거기에 있다.「만사 불여튼튼」이며 유비무환의 자세가 긴요하다.
  • DJ,아태평화재단 설립 모색/해외순방길에 뭐하나

    ◎미·러·독 전직대통령재단 돌아볼 계획/출국 앞서 이 대표와 장시간 독대 눈길 김대중 전민주당대표가 독일,러시아,미국을 차례로 순방하기 위해 21일 낮 대한항공 905편으로 출국했다.김전대표의 이번 순방은 외국지도자들과 세계정세,아·태평화,한반도 통일문제를 논의하고 목하 설립을 추진중인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의 국제적 협력방안모색에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김전대표는 오는 10월13일 귀국한다. ○…김전대표는 첫번째 기착지인 독일에서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디트리히 겐셔 전외무장관과 만나며 나우만재단을 방문한다.슈미트전총리와의 면담은 성사여부가 아직 미정.또 베를린사회과학연구원을 방문,연구소관계자들과 독일통일 등을 주제로 좌담회를 가질 예정. 김전대표는 이어 27일부터 2박3일간 러시아에 머물며 고르바초프전소련대통령,알렉산드르 사다노비치와 로고노프 전·현 모스크바대총장을 만나고 모스크바대에서 한차례 강연한다.또 자신에게 정치학박사학위를 수여한 러시아외교대학원을 방문하고 「창조적 노력을 위한 아카데미」로부터 회원 임명장을 받는다. 김전대표는 29일 미국으로 가 카터전대통령,키신저전국무장관 등과 만나고 카터재단,컬럼비아대,라로슈대를 방문하며 코리아 소사이어티,외교협회 등에서 강연할 계획.조지워싱턴대 초청좌담회와 LA인권문제연구소 1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한다. ○…김전대표는 출국에 앞서 김포공항 신청사 2층 대한항공 귀빈실에서 배웅나온 이기택대표와 허경만국회부의장,김원기·권로갑·신순범최고위원,김상현상임고문 등과 김영삼대통령의 국정연설 등을 화제로 10여분간 환담. 이날 출국장에는 30여명의 민주당의원을 포함해 1백여명이 나왔는데 건설위소속 김봉호·최재승의원은 상임위가 열리는 중인데도 참석,김전대표의 장도를 기원. 김전대표는 『이번 외국행은 지난번과는 달리 순방목적과 일정이 뚜렷해 안정된 마음』이라고 소감을 피력. ○…김전대표는 출국에 앞서 「집안단속」에 신경이 쓰였던 듯 지난 17일 저녁 시내 모음식점에서 이대표와 3시간여동안 만나 국정전반과 당운영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 초라한 KAL기 희생자 추모비/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오늘의 눈)

    KAL 007기 격추 10주년을 맞아 러시아 당국 주관으로 희생자추모비 제막식이 거행된 1일 상오 사할린섬 남서부의 네벨스키시 행사장에 나온 한국측 유가족일행은 눈앞에 벌어진 기막힌 장면에 모두들 말들을 잊었다. 러시아당국이 세운 KAL 추모비는 1백평 남짓한 크기의 일본군 전몰자위령탑 경내 한구석에 초라한 모습으로 서있었다.높이 10m에 달하는 일본군 전몰자위령탑에 비해 높이 1m,가로 1m,세로 70㎝의 KAL추모비는 볼품도 없었고 황량하기까지 했다. 『한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감정을 그토록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민간 여객기 격추행위에 대한 사과·애도의 뜻으로 세운 추모비를 이렇게 초라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제막식이 끝나자 유족들은 러시아당국자들에게 거센 항의를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러정부대표와 추모비건립을 주관한 사할린주정부측의 설명은 유가족들이 추모비건립 일체를 자기들한테 일임했고 그래서 「관리하기 쉬운 장소라고 판단」,그곳에 세웠는데 무슨 소리냐는 식이었다. 추모비 자체에도 유족들의 항의가 뒤따랐다.유족들에 따르면 당초 지난 3월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러당국과 유가족대표자간 회의에서 러측이 8개의 석주로 받쳐진 대형건조물을 세우겠다며 설계도면까지 보여줘 합의해줬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분개해했다.그러나 러시아측은 『그렇게 합의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여러가지 안중에 하나를 택해 제작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확한 경위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이다.그러나 러시아당국의 처사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겨 주었다.KAL기 사고 10주년을 맞으며 러당국은 크게 두가지 조치를 취했다.대통령직속으로 설치된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최종 조사보고서를 발표한게 하나고 또 하나가 추모비건립이다.그리고 이 두가지 조치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이쯤해서 「사건을 종결짓자」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러정부는 위령비건립에 보다 신경을 썼어야 옳다.결국 이런 식으로 한다면 사건의 종결은 더욱 어려워지고 새로운 문제만 만들어 가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사건을 빨리 마무리짓고 잊고 싶은 쪽은 유가족들도 마찬가지다.『유골 하나라도 찾을 수 있다면 고국땅에다 묻고 이제 잊고 싶다』며 추모제에 참석한 한 가족은 울먹였다.그리고 이를 위해선 유해발굴과 송환,배상문제등에 러당국의 전향적인 태도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러당국은 그러나 배상문제에 대해서도 『군사영공을 침범한 여객기의 격추는 국제법상 정당하다』는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배상금액의 과다를 떠나 이 문제에 대한 러시아측의 도덕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 러,KAL기유품 첫 공개/유골은 없어… 피격10주년 추모식 엄수

    ◎「추모비 일군위령탑 역내 설치」 유족 반발 【네벨스크(사할린)=이기동특파원】 러시아정부는 KAL 007기 사고 10주년을 맞은 1일 하오(현지시간) 사고해역에서 수거한 KAL 사고기의 기체일부와 승객들의 유품일부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구소련당국이 사고직후 수거한 유품을 소각,매장한 장소인 사할린 남서부 페레푸드에마을의 한 해변에서 각국 유가족 대표들과 정부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공개된 이 유품가운데는 기체일부,불에 탄 승객들의 내의·신발·손수건·영한사전·출입국신고서 등 승객 소지품 다수가 들어있었으나 기대했던 유해나 유골은 없었다. 유가족들이 이에 대해 항의하며 유해반환을 거듭 요구했으나 러시아 정부대표인 세르게이 스테파노프 대통령행정실장 보좌관은 『유해나 유골은 절대 발견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이에 앞서 이날 상오11시부터 네벨스크시에서는 희생자 2백69위에 대한 추모식이 한국을 비롯,러·미·일 등 사고관련 4개국 정부대표와 한·일 유가족 대표,현지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됐다.이날 추모식은 러시아정부대표 인사말,한·일대표의 추도사,추모비 제막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러시아정부는 이날 제막된 KAL 007기 희생자 추모비 위치를 사고해역이 바라보이는 해변으로 정했던 당초 유족들과의 합의를 무시한채 무단 변경,네벨스크시내에 있는 일본군 2차대전 전몰위령탑 경내 한 구석에 설치해 유족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 추모비는 가로1m 세로70㎝ 높이30㎝의 기단에 높이1m의 화강암 비석이 얹혀졌으며 「1983년 KAL 007기의 비극적인 희생자들을 기념하여」라는 짤막한 내용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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