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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統獨과 한반도 통일] (3)정치·경제·사회 통합

    [베를린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뒤쪽에 자리잡고 있는 제국의회 건물. 1894년 바이마르 헌법이 태동한 이 건물은 지난해 민주주의와 투명성을 강조한 유리 돔으로 단장한 뒤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으로 새로 문을 열어 통일 독일 정치통합의 상징물처럼 돼있다. 따라서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는 매일 연방의회의 모습을 참관하려는 동독지역 주민들로 장사진을 치고 있다.동독지역의 포츠담에서 왔다는 홀거 오펄러(58)씨는 “민주주의 제도를 참관한다는 설레임으로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못잤다”며 2시간째 기다리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통일 독일의 정치제도는 정당과 의회에 의해 이뤄지는 정당 민주주의·의회민주주의인 서독의 정치체제로 통합됐다. 정당간의 통합은 통일을 전후해 여러차례 실시된 선거를 통해 동서독 정당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자연스레통합됐다.특히 동독지역에 뿌리를 둔 동독 공산당 후신인 민주사회당(PDS)도연방의회에 진출했다. 베르너 페니히 베를린 자유대 교수는 “동서독간 빈부격차가 줄어들지 않고 실업률이 급증함에 따라 동독 시절을 그리워하는 ‘오스탈기(Ostalgie)’가 생겨나며 최근 치러진 지방의회 선거에서 PDS가 약진하고 있는 점은 다소 우려된다”고 전한다. 서독 행정은 업무에 따라 수직적·수평적으로 세분화된 반면,동독은 당과국가의 결정에 따라 집행하는 도구에 불과한 탓에 행정도 서독식 행정체계를 구축하고 직업 공무원제도를 확립하는 통합이 이뤄졌다.다만 동독출신 공직자들의 업무처리 능력이 서독 출신보다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법의 통합도 대체로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연방정부와 서독의 각주정부들이 동독지역의 사법제도 구축을 위해 법조인들을 파견하는 등 인적·물적지원을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페니히 교수는 “통일 직후 동독지역의소송건수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가 점차 늘어나며 서독 수준에 육박한 것은사법제도의 발전을 의미한다”며 “그러나 아직도 동독 주민들은 서독의 법률제도에 익숙지 않아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동독지역의 역동적인 성장 모습을 보면 경제통합도 긍정적이다.동독지역 경제재건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완비되고 국유기업이 모두 사유화됐으며,사회간접시설(SOC)의 확충을 위한 역동적인 투자가 이뤄지는 등 매우 희망적이다.동독지역이 통일 이후 95년까지 매년 평균 8% 이상의 고도성장을 이룩한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물론 96년 이후 성장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이는 서독 및 서방 선진국들의 경기가 크게 후퇴했다는 점이 작용했다. 그러나 사회통합은 만족할만한 수준이 못된다.노동시장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많은 실업자들이 발생한 데다 심리적 통합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통일 이후 동독지역의 경제·사회구조 변화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는 분야가 바로 노동시장이다.일부 지역에서는 실업률이 25%를 웃도는 등 동독지역의 실업률이 서독지역의 2배 가까운 18%를 넘고 있다.동독 경제가 경쟁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고용감축이 이뤄진 탓이다.실업문제의 해결은 민간기업의고용창출 능력에 달려 있는 만큼 동독경제가 지속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뤄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심리적 장벽도 여전히 높다.동독주민들은 서독식의 새로운 가치체계에 적응하는 등 정신적 고통과 서독인들에 대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반면,서독주민들은 통일 전보다 더 많은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지불하면서도 사회보장혜택은 오히려 줄어들어 불만이 크다.테오 좀머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은 “서독과 동독의 정신·정서적 분열은 경제적 격차만큼이나 깊다”며 “독일인들은 아직도 2개의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으며,베를린 장벽은 주민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강조한다. ** 동독지역 주민들 “옛날이 그립다” [베를린 김규환특파원] “가족들의 조그마한 소망을 채워줄 돈이 있었으면좋겠습니다. 애들은 나이키·아디다스 등 비싼 운동화를 보면 사고 싶어 안달합니다.이런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었던 동독시절이 차라리 더 좋았다는생각마저 듭니다” 통일 후 한동안 실직했다가 신문 가판대를 운영하며 근근히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는 마르틴 숄츠(36)씨의 하소연이다.통일 후 서독경제에 편입되면서동독지역 기업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대량 감원으로 실업자들이 급증하면서,요즘 동독지역에서는 숄츠씨처럼 동독시절을 그리워하는 오스탈기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오스탈기는 동쪽(Ost)과 향수(Nostalgie)’를 합친 독일식 신조어.동독 시절에는 일자리를 잃을 걱정이 없었을 뿐 아니라,‘실업’이라는 단어 자체도아예 없었다. 당시는 일자리가 있으면서도 일할 필요가 없이 그런대로 살 수있었던 세상이어서 동독인들은 그때 그 좋았던 시절에 매달려 연연하고 있는것이다. 오스탈기의 바람은 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은 지난해 절정에 달했다. 지난해 치러진 지방의회 선거에서 게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이끄는 집권 사민당(SPD)이 ‘오스탈기의 역풍’을 만나 연전연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라이프치히에서 만난 위르겐 뢰버(47)씨는 “노동자·농민의 나라 동독시절에는 모든 것이 친절하고 상냥했으며 인간과 인간의 대화도 그리 복잡하지않았다”며 “내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때가 동독시절이었다”고 말한다. 서독지역 주민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동독지역 경제재건을 위해 서독지역의 돈을 쏟아붓다보니 더많은 세금을 내도 사회복지 혜택을 줄어들었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남편 직장을 따라 본에서 동독 도시 프랑크푸르트 암 오데르로 이주한 40대 중반의 티나 크로네(여)씨는 “나는 처음부터 ‘외국인’이었다.동독에서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은 상상이상 이었다”며 “이런 적대감이 극우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 [뉴 밀레니엄의 전개] ‘남북통일’ 각국 언론사 시각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새로운 세기 세계 평화를 향한 관건이자 필수명제다.새 세기에도 한반도는 지척으로 다가올 통일과업 앞에서 남과 북이,그리고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들이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각축을 벌여나가는 격전장이 될 것이다.북한의 개혁개방,남북통일이라는대단원의 막은 새 세기 어느쯤에 이뤄질 것인가.새 세기 한반도 주변에서 펼쳐질 기상도를 워싱턴의 대한매일 특파원과 서울에 나와있는 각국 주요 언론사 특파원의 시각을 통해 집중 진단해본다. ◆미국 시각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미국의 대 한반도정책은 동북아시아지역의 안정과평화유지라는 대명제에 따라 이뤄진다. 최근 북한과 이뤄진 일련의 완화조치들은 이 커다란 대의명제 하에서 조직되고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9월의 대북경제제재 완화조치와 올해초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북미고위급회담 등은 한반도지역의 안보와 평화유지라는 명제를 가장 극명하게보여주는 정책실행의 단면이다. 단기적으로 핵의혹을 해소하고 계속되던 미사일 발사실험의 유예를 얻어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미국의 한반도정책은 당면한 미사일·핵확산금지에 더 초점을 둬 한국의 한반도 통일이라는 최종목표와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하기도한다. 어쨌든 그동안 북한의 핵의혹과 미사일발사 위협 등이 간헐적이나마 꾸준히이어진 미국과 북한과의 협상에서 다소 해소되거나 정지된 것은 새해 한반도지역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보이게 한다. 미국은 99년 한해동안 계속된 설득끝에 결국 북한이 대화의 장에 임할 의지가 있음을 확인했다.최근 북한은 외무성 성명에서 “임기가 얼마남지 않은클린턴 행정부와는 대화를 연기할 수 밖에 없다”고 했지만 북한의 대화의지는 강렬했다는 것이 미국의 평가이다.국무부의 한 고위관리는 “북한이 이번기회를 놓치지는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물론 북한의 미국과의 대화는 체제를 위협하는 계속된 극심한 식량난 해소를 위해 외부로부터의 지원을 노린 것이 직접적인 요인이다. 그러나 북한이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지난 수년동안과 같은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대화의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당분간 북한은 미국과는 물론 경제적·외교적 실익을 노린 한국과의 직접적인 대화 역시 비록 형태는 달리할지라도 속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구체적으로는 북미 고위급회담이 새해 첫 북미관계의 하이라이트로 떠오를것이다.북한측에서 아직 고위급회담을 위한 대화 준비가 덜 됐다는 분석이있지만 어쨌든 북미회담은 미국이 북한을 국제사회에 이끌어내고 체제의 완만한 변화를 꾀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인 북미수교의 첫단추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고위회담을 반드시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이며, 성과는 어느 선까지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를 낳게 하고 있다. [hay@] ◆중국 시각 20세기 지난(至難)했던 한반도 문제는 풀리지 않고 금세기로 넘어왔다.그러나 21세기를 맞아 한반도 정세에 고무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크게 보아4가지다. 첫째,북한과 미국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북한의 경제제재를 완화한데 대해,북한측이 미국과양측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북·미 고위급 회담에 동의하고 미사일 발사실험을 중단하기로 하는 등 적극 호응하고 있다. 둘째,긴장완화를 통해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한국·미국·북한·중국간의 ‘4자회담’이 진전을 보이고 있다.지금까지 6차례에걸친 회담의 성과로 볼때 4개국은 협상 시스템을 계속 가동할 뜻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북한·일본관계도 해빙 조짐이 무르익고 있다는 대목이다.지난해 12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를 단장으로 한 일본 초당파의원단이평양을 방문,북한측과 7년동안 중단됐던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한 수교협상을 벌이자는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이와 함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총리도 최근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를 해제하겠다고 화답했다.북·일 관계정상화 회담의 개최는 얼어붙었던 양국관계가 서서히 풀릴 가능성을 예고하고있다. 넷째,남북 민간교류와 경제합작 사업도 크게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이다.금강산관광,현대그룹의 공업단지 조성,남북 농구대회,남북 가수공연,남북교역의 증가 등은 남·북한 민간 및 합작교류의 성과를 의미한다.이는 앞으로 남북한 관계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적 토대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취약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99년 6월 남북한간의 서해교전이 잘 설명해준다.한반도는 동북아의 잠재적 화약고로 남아 있다.수십년간 적대시하면서 대치해온 데다 계속된 상호간의 제재 및 통제정책은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어렵게 하고 위기를초래할 수 있는 복병이다. [가오하오룽(高浩榮) 중국 신화통신 서울특파원] ◆러시아 시각 한반도는 종말을 고한 20세기 중 가장 극적인 일들이 많았던,끊임없이 정치적 대립과 격동을 경험했던 지역 가운데 한 곳이다.러시아는 한반도와 역사적 지리적으로 인접한 탓에 지난 수백년 동안 한반도에서 발생했던 사건들에직·간접적으로 개입했던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21세기와 새 천년의 시작은 양국간 국교정상화 10주년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지난 10년동안 서울과 모스크바는 상호관계에서서로 다른 경험을 해왔다.그러나 대체적으로 한·러관계라는 기관차는 현재가속도를 얻고 있으며 ‘친밀한 우호관계’라는 이름의 역(驛)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양국간의 정치관계에서 특히 중요했던 대목은 지난해 옐친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간 정상회담을 꼽을 수 있다.이는 97년 12월과 98년 8월의 한국과 러시아 경제위기 이후 다소 냉랭했던 관계를 정상화시켰다. 또한 이고르 세르게예프 국방장관,예브게니 셀레즈뇨프 국가두마(하원) 의장의 방한 등 다른 공식적 접촉도 있었지만 나는 무엇보다 보브린 아이스 발레단의 성공적 내한공연과 타간카극단의 공연 ‘아프간’에 대해 언급하고싶다.이 비극의 내용은 관객의 마음에 매우 가까이 다가간듯하다. 새해는 양국 지도층의 방문 뿐아니라 무역,경제,과학 및 기술협력 회의 등 많은 교류계획이 있다.한국 음악애호가들이 올해도 볼쇼이 오페라의 공연을 즐기기를희망한다.양국관계 10주년 기념 한·러포럼 계획도 있다. 한·러우호협회 의장인 비탈리 이그나텐코 이타르 타스통신 사장과 후원단체들이 러시아 박물관에 소장중인 양국관계 역사를 포괄하는 외교문서,공예품과 귀중품,19세기 양국 조정의 전통의상 등을 보여주는 전시회의 서울 개최를 추진중이다.이는 러시아 박물관 소장 한국 문화재를 볼 수 있는 소중한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같은 관계를 바탕으로 볼때 한반도를 둘러싼 새해 정세는 원만한 양국협력 하에 전개될 것으로 전망한다. [블라디미르 쿠다호프 러시아 이타르 타스 서울지국장] ◆일본 시각 올해 한반도 정세를 푸는 키워드는 ‘대화’다.북한내부에서 대화노선을 둘러싼 대립이 있어 한반도에 곧 평화가 찾아올 거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큰 흐름을 볼 때 대립이나 긴장을 초래하는 요소는 적고 북한 및 주변국을 둘러싼 토론의 장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이런 흐름을 구체적 성과로 연결시키는 일이 가능한지가 초점이 될 것이다. 우선 북한과 미국을 살펴보자.지난해 9월 베를린에서 열린 북·미회담에서북한 고위관리의 방미에 대해 합의했다.방문시기,논의내용은 명확하지 않지만 방문이 실현된다면 미국의 대북(對北) 경제제재도 한층 완화돼 국교정상화까지 내다본 대화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지난달초 일본의 초당파 의원단이 북한을 방문하고 올해안에 북·일 국교정상화 협상을 재개하는데 합의했다.일본도 예상치 못했던 큰 진전이었으며 얼어붙었던 양국이 관계개선을 향해 적극적인 의사를 나타낸 것은 의미가 있다. 물론 98년 8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북·일관계가 급속히 차가워진 것처럼 양국이 다시 어색해질 가능성도 적지않다.일본인 납치 의혹이나 미사일 발사의 전면중지 등의 조건을 일본측에서 제기하면 북한은 식민지배때의 보상금 등을 내걸어 대화는 간단히 중단될 것이다. 단지 북한은 최근 경제재건에 중점을 두고 있어 일본으로부터 식량지원이나 경제협력에 매력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하고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국교정상화교섭은 예상외로 빨리 진전할 가능성도 있다. 마지막으로 남북한의 대화는 지난해 6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차관급회담이 결렬된 이후 끊긴 상태다. 총선이 있는 올해도 당분간 북한과의 대화는 어려울 것이다.6월의 차관급협의에서도 한국정부가 먼저 비료를 보내는 대폭적인 양보를 하면서도 회담을 일방적으로 거부당하는 등 북한측 외교전략에 휘말려 국민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기 때문이다.현시점에서 대화를 재개한다면 야당측에게 절호의 공격요인을 제공할 따름이다. 그러나 좋은 요인도 있다.남북간 경제분야의 교류가 진행되는 일이다.대화재개의 토대가 될 것이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회담 직후 인 지난해 9월18일 임기중에 반드시 한반도 냉전구도를 종식시킨다고 강한 결의를 표명했다.이런 의미에서 4월 총선이 끝난뒤 다시 한번대화재개의 태동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고미 요지(五味洋治) 일본 도쿄신문 서울특파원
  • [2000년 뉴스캘린더] 하반기

    ◈ 정치◆제헌절 행사(17일,국회)◆ 경제◆통합농협중앙회 출범(1일)◆직할기관 우정사업본부 출범(1일,정보통신부)◆2000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 개최(13∼25일,과학기술부)◆경총 창립 30주년 행사(15일)◆창업·벤처기업 우수제품 선정(17∼23일,조달청)◆2000년 1기 부가세 확정신고 납부(25일,국세청)◈ 사회◆제33회 산업안전보건대회(1∼7일,노동부)◆APEC 관광장관회의(4∼7일,문화관광부)◆7·4 남북공동성명 28주년(4일,통일부)◆제3회 청소년보호대상 시상식(4일,청소년보호위원회)◈ 국제◆제6차 한·일 환경공동위원회(도쿄)◆멕시코 대통령 선거 ◆서방선진7개국(G7) 정상회담(일본 오키나와)◆미 공화당 전국대회(필라델피아)◆ 문화 · 스포츠◆자유형 및 그레코로만형 세계주니어레슬링선수권(3∼9일,프랑스 보테스)◆제10회 세계 남자소프트볼선수권(7∼15일,남아공 이스트런던)◆아시안컵 트라이애슬론선수권(14∼17일,속초)◆제6회 주니어 세계양궁선수권(19∼23일,프랑스 벨포르)◆제6회 세계 여자주니어 및 제26회 세계 남자주니어 역도선수권(이집트 카이로)◆국제마장마술경기(러시아 모스크바)◈ 정치◆8·15 광복절 기념 국민화합을 위한 행사(15일,국정홍보처)◈ 경제◆해양수산부 출범 4주년 기념식(8일)◆나라꽃 무궁화 큰잔치(12일,산림청)◆전경련 39주년 창립행사(16일,전경련)◆12월말 결산법인 법인세 중간예납(31일,국세청)◈ 국제◆미 민주당 전국대회(로스앤젤레스)◆ 문화 · 스포츠◆제14회 아시아태평양에이지그룹수영선수권(태국 방콕)◆이천국제조각심포지엄(4일,이천시 마장면 조각공원)◆인천국제환경영상문화제(17∼26일,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및 강화갯벌)◈ 정치◆제12차 APEC 각료회의(12∼13일,외교통상부)◆현대 금강산관광사업 2주년(18일)◈ 경제◆창업·벤처기업 우수제품 선정(13∼19일,조달청)◆종합소득세 중간예납(30일,국세청)◆도쿄한국부품산업 종합전시회(30일∼12월4일,산업자원부)◆코리아 슈퍼엑스포(30일∼12월4일,산업자원부)◈ 사회◆제병합동·협동훈련(10∼20일)◆해군창설 기념행사(11일,국방부)◈한국광고대회(11일)◆제20회 전국국악경연대회(12일,문화관광부)◈ 국제◆제8차 APEC 정상회의(15∼16일,브루나이)◆미 대선 및 의회 의원 선출(7일)◈ 문화·스포츠◆제1차 월드컵루지대회(10∼29일,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한국광고대회(11일)◆제20회 전국 국악경연(12일)◆제2회 서울컵 국제유도선수권(서울)◆동아시아 승마선수권(한국)◈ 사회◆국민교육헌장선포 기념일(5일,교육부)◆남북기본합의서 채택 10주년(13일,통일부)◈ 국제◆세계인권선언 기념일(10일)◆EU정상회담(파리)◈문화 · 스포츠◆아시아 컬링선수권(12∼17일,서울)◆세계 세팍타크로선수권(태국)◆아시아 테니스선수권
  • [統獨과 한반도 통일](1)베를린시대의 개막

    20세기 동서 이데올로기에 의한 분단의 대표격으로 인식돼온 독일은 올10월 분단극복,즉 통일 10주년을 맞는다.20세기 뼈아픈 이념의 상흔(傷痕)을 딛고 미국·일본에 이어 경제규모 세계 3위의 대국으로 발돋움한 통일독일은이제 21세기 초강대국으로의 비상을 준비하고 있다.지난해 베를린 장벽붕괴10주년을 맞아 새 수도 베를린으로 천도(遷都)함으로써 준비작업도 완료했다.새 세기의 첫날,통일독일의 현장에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 있는 한반도를 돌아본다.그리고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줄 21세기,우리에게 다가오는 통일독일의 의미를 5회에 걸쳐 재조명해 본다. [베를린 김규환특파원] 통일독일의 수도 베를린에는 과거 분단의 아픈 생채기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21세기를 맞아 명실상부한 유럽대륙의 맹주로 도약하기 위한 건설의 굉음이 요란하다.지난해 9월 새단장뒤 문을 연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 주변에는 여러 공사들이 진행되고 있다.의사당 앞에,대형 녹지를 조성하고 대통령과 총리 관저,정부 청사들을 한데 묶는 ‘연방정부 구역’을 만드는 공사 현장에는 기중기들이 바삐 움직이고 각종 건축 자재를 실은 트럭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다. 베를린의 중심부 포츠담 광장에서도 다임러-벤츠,일본 소니 등 세계적 기업들이 앞다퉈 최첨단 고층건물을 세우는 등 ‘21세기형 도시’건설을 위한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통일 10주년을 맞는 독일의 새천년 청사진이 베를린에서부터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통독 10주년을 맞으면서 독일은 인구 8,200만명,국내 총생산(GDP) 3조8,000억마르크(약2,470조원)로 경제대국으로올라섰다.독일정부는 주변 국가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유럽 속의 독일’정책을 내세우고 있지만,실제로는 ‘슈퍼파워의 독일건설’이라는 복안을 깔고있는 셈이다. 독일의 활기찬 모습은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지난 88년 경제성장률 3.7%의 활황을 구가하던 독일의 경제가 통일된지 3년만에 -1.8%로 곤두박질쳤다.해마다 연방예산의 30%를 동독지역에 쏟아부었지만 20%에 가까운 실업률은 떨어지지 않고 요지부동이었다.더욱이 세금인상과 사회보장 혜택 축소 등 갖가지 긴축 조치들이 나오면서 98년 공공부채는 통일전의 2.5배인 2조3,000억마르크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러나 최근 몇해동안 경제사정은 크게 달라졌다.93년 -1.6%성장을 고비로98년에는 2.3%의 성장을 일궈냈고,물가도 1%대에서 잡혔다.베를린 주재 한국대사관 이현표(李賢杓) 문화원장은 “통일의 대가로 독일 연방정부의 누적적자가 700억 마르크에 이르고 실업자도 430만명을 넘었지만,통일이 잘못된 결정이라고 생각하는 독일인들은 별로 없다”고 전한다. 독일의 경제 발전상은 라이프치히·드레스덴·뷔텐베르크 등 옛 동독지역에 가보면 더욱 실감할 수 있다.곳곳에 주택과 고층빌딩,쇼핑센터가 들어서는등 현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상점에 진열된 상품이나 도로,철도의 시스템은 서독과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렸고,통일당시 서독 평균치의 40%에 미치지 못했던 동독의 임금수준은 80∼90%수준으로 뛰어올랐다.할레 경제연구소뤼디거 폴 소장은 “아직 동독지역의 경제가 서독지역의 생산성을 따라잡으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며,“하지만 동독지역의 산업은지난 92년부터 연평균 11%라는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이루며 단기간에 국제시장에 진입하는 큰 성과를 거뒀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통일 독일의 뒤안길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통독후 서독은 10년동안 동독지역에 투입한 정부예산은 1조5,690억마르크(약 1,020조원)를 넘는다.해마다 서독 GDP의 4∼5%를 투자했다.역사상 동독재건 프로그램보다 규모가 큰 지원사업은 없을 정도다.그럼에도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18.2%로 서독의 2배 가까이 된다.일부 지역에서는 25%를 웃돈다.산업생산에서동독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15%이고 수출 기여도는 2%에 불과한 실정이다. 두지역간의 정신적 분열도 경제적 격차만큼이나 크고 깊다.서독인들은 동독인들을 배은망덕한 ‘오씨’로,동독인들은 서독인들을 오만한 ‘베씨’로 비아냥거릴 정도로 보이지 않는 심리적 장벽이 남아 있다.게하르트 슈뢰더 독일총리가 통일은 미완성이라며 진정한 의미의 통일을 위해 심리적 장벽을없애는 사회통합을 유도해내는데 정책의 중점을 두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 점을 의식한 것이다. khkim@ * [인터뷰] 베르너 페닝 베를린 자유대교수 [베를린 김규환특파원] “독일 통일은 지난 90년 8월말 동서독 통일 기본조약 체결 이후 갑자기 이뤄지는 바람에 크고작은 경제·사회적 문제를 초래했습니다. 하지만 옛 동독주민들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예상보다 빨리 적응하고 있어 혼란상이 적은 점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일 통일에 대해 이같이 평가한 베르너 페닝 베를린 자유대 교수(55·동아시아학 전공)는 통일의 가장 큰 의미는 동서독이 하나가 되면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로 등장한 것이라며 통일후 동독지역의 통신·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시설(SOC)도 크게 발전한 것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페닝 교수는 동베를린에서 태어나 서독으로 탈출,베를린 자유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한국을 4차례나 방문,강연을 했을 정도로 남북관계에해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그러나 강력한 독일 통일로 부상한 이면에는 동서독간 빈부격차와 사회복지제도의축소 등에 따른 심리적 갈등과 서독주민들의 동독지역 부동산소유에 대한 귀속여부 등 법적인 문제 등 여러 과제도 안고 있어 사회통합에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동독출신 주민들은 동독시절을 그리워하는 ‘오스탈기’마저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페닝 교수는 남북관계와 관련,“독일 통일과 한반도 통일의 케이스가 달라말하기 곤란하다”며 과거 동서독은 통신·상호방문·우편 등 끊임없이 교류해온 점이 통일의 기틀이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경우 남북간 접촉이 활성화되지 않은 탓에 인내심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반도 통일은 한국인 자신의 문제이므로 한국 사람들이 모색해야 한다며 남북 상호간 부정적 시각을 불식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 사회에는 우리가 희생하면서 북한을 도와줘야 한다는 사람들이많다는 게 통일의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한 그는 통일 비용을 부담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장래에 대한 투자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고 충고했다.남북한의 제도적 차이 등으로 단시간내 통일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 페닝 교수는 남북한의 경우 경제적 격차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북한의 경제력을 일정수준까지 끌어올린 뒤 통일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밝혔다.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55)
  • [사설] 러시아 총선이후

    러시아의 국가두마(하원)의원을 뽑는 총선은 친크렘린계의 신당인 단합당을 비롯한 우파들의 사실상 승리로 끝났다.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이끄는 단합당이 제1당인 공산당에 1%이내의 근소한 차이로 육박한 예상밖의 총선결과는 내년 6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의 향방과 러시아의 앞날을 내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세계의 관심을 끌고있다. 이번 총선결과 단합당의 대약진은 러시아가 지난 10년간 꾸준히 추진해온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의 개혁이 거둔 값진 성과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단합당은 지난해 대외채무에 대한 지불유예(모라토리움)사태까지 빚었던 극심한 경제난과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지도력을 의심받아온 옐친 대통령과 푸틴 총리가 총선을 앞두고 급히 만든 정당이었다.‘개혁정책의 연속성’과 ‘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내건 단합당의 도약은 러시아 국민들이 낡은 이념이나 급진적인 변화보다는 안정속의 점진적인 개혁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의 개혁으로 러시아가 안정된 민주주의 사회로 착실히 변화하고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세계는 이제 이념보다는 경제적실용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급격히 변화하고있으며 러시아도 이러한 추세를거스르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 총선 결과라 하겠다. 이번 총선으로 푸틴 총리는 내년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선두 주자로 떠올랐다.여론조사에서 그에 대한 지지율이 50%에 이르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푸틴 총리의 인기는 체첸사태에서 보여준 그의 강경한 자세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푸틴 총리의 급부상과 함께 이번 총선에서 확인된 러시아 민족주의의 강한 바람은 주목되는 부분이다.미국과 함께 양대 강대국으로 군림했던 옛 소련에 대한 러시아 국민들의 향수는 세계가 경계해야할 위험이기 때문이다. 공산당을 중심으로한 좌파가 장악해왔던 러시아 의회가 우파들의 지배로 바뀌게 된 것은 세계질서를 위해 다행한 일이라 하겠다.공산당의 거부로 비준이 거부됐던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2)의 비준 가능성이 높아졌고 때때로 마찰을 빚어왔던 러시아의 미국 및 서방과의 외교관계도 한결 부드러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내년으로 한·러 수교 10주년을 맞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도 이번 총선결과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러시아는 한반도문제에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협력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외교부문은 공산당이 주도하는 의회의 영향으로 그렇게 긴밀하지 못했던 편이었다.이번 총선 결과가 한국과 러시아를 더욱 가깝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 금호미술관 10돌 기념전

    금호미술관이 개관 10주년 기념전을 내년 1월21일까지 열고 있다. 지난 89년 인사동에 갤러리로 문을 연 뒤 96년 지금의 사간동으로 옮긴 금호미술관의 박강자 관장은 “한국 현대미술과 함께 호흡하고자 노력했다”고 말하고 있다.국내의 많은 작가,특히 젊은 작가들이 이 말에 상당한 공감을표할 정도로 금호미술관의 기획전과 초대전은 젊은 재능을 알아보는 ‘트인눈’과 내용과 질을 중시하는 ‘높은 눈’을 동시에 갖춘 전시회란 평가를받아 왔다. 금호는 지금까지 개최한 총 320회(기획전 41회 초대전 32회 준초대전 241회 상설전 6회)의 전시회를 ‘하나로 묶는’ 자리로 이번 기념전을 펼친다.미술관이 주최한 전시회에 나온 그림중 미술관이 구입했거나 전시 작가가 미술관에 기증한 소장품들을 선보이는 형식이다.금호는 전시회마다 최소한 한 건 이상의 작품을 직접 구입하거나 기증받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소장품 목록중 이번에 70여점을 보여주고 있다. 90년대를 맞이하는 시기에 문을 연 금호갤러리는 개관기념전 ‘80년대의 형상미술전’을 통하여 당시 국내 미술계에서 커다란 논쟁이었던 ‘형상’ 작업에 주목하였다.이 기념전을 기획했던 초대 큐레이터 이준은 이어 ‘오늘의 지역작가전’과 ‘80년대 여성미술전’ 등을 열었다.뒤를 이은 큐레이터 박영택은 ‘문화와 삶의 해석-혼합매체전’에서 당시 별 관심을 끌지 못했던사진을 전시에 포함시켜 혼합매체를 보는 시각을 한단계 높였다고 미술관은자부하고 있다.현 큐레이터 신정아는 98년 ‘대한민국 언더그라운드 만화페스티발’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 99년 어린이를 위한 ‘쿨룩이와 둠박해’ 등을 기획해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데 힘썼다. 금호의 10주년 기념전은 ‘정신’ ‘진경산수’ ‘인간-형상·생명·환경’ 등 세 파트로 그림을 나눠 전시하고 있다.김지원 김진관 김홍주 도윤희 문봉선 민병헌 박불똥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김재영기자 kjykjy@
  • 경실련 창립10돌 기념토론회 요지

    시민단체의 맏형 노릇을 해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10일 창립 10돌을 맞아 서울 서대문 농협중앙회 강당에서 ‘대형 안전사고의 원인과 그책임 누구에게 있는가’란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경실련은 “인천 호프집 화재사건을 계기로 대형 사고의 근본원인을 진단해 대안을 마련함으로써 대형 참사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안전사고 문제를 다루게 됐다”고 밝혔다. 발제자로 나선 건국대 손동권 교수(법학)는 ‘안전사고 책임자에 대한 사법처리 실태와 안전 관련 법제의 문제점’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업무상 및 중과실 치사상죄에 대한 별도의 가중처벌 규정과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산업대 김찬오 교수(산업환경학)는 안전관리 대책 방안으로 민간전문기관에 의한 제3자 감시,규제의 일원화,사업장 근로자 중심의 안전관리체제에서 전체 직업인에 대한 안전관리 체체로의 전환할 것 등을 역설했다. 경실련은 이날 토론회에 이어 아나운서 손범수씨의 사회로 변형윤 경실련초대 공동대표,강원룡 목사,한승헌 변호사 등 각계 인사와 회원 500여명이참석한 가운데 창립 1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최정표 경실련 정책협의회장은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을 감시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데역점을 두겠다”면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당부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주한 외국대사에 듣는다] 이코노모프 불가리아대사

    디미테르 이코노모프 주한 불가리아대사는 28일 대한매일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아시아에서 불가리아의 최대 교역국이라고 소개하며 “현재 양국 경제교류는 매우 만족할 수준”이라고 말했다.이코노모프 대사는 또한 불가리아의 EU(유럽연합) 가입이 실현될 경우 “한국기업들이 불가리아기업과의 합작투자를 통해 EU시장에 자연스럽게 진출할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이면 양국 수교 10주년을 맞는다.현재 두나라 관계를 어떻게 보는지. 90년 3월 국교수립 이후 양국관계는 매우 순조로운 발전을 해왔다.95년 젤류 젤레프 대통령이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방한,경제 문화분야에 7개의 협정을 체결해 본격적인 교류의 발판을 닦았다.하지만 두나라 모두 96년 이후경제난,총선,대선등 국내문제로 바빠 상호 관계증진에 힘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 ■경제교류는 어떤 수준인가. 지난해말 기준으로 한국에 연간 3,300만 달러를 수출하고 4,400만 달러를수입했다.한국의 불가리아 투자총액은 6,500만 달러에 이른다.우리로서는 매우 큰 규모다.한국은 아시아시장에서 일본,중국을 제치고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다.특히 대우는 전체투자 규모의 95%에 해당하는 5,000만달러를 투자했다.최근 3년간 불가리아에서 최대 베스트셀러 자동차가 대우차이다.대우와현대 자동차가 전체 신차시장의 40%를 차지한다. ■불가리아의 문화,관습은 한국국민들에게도 비교적 친숙한 편이다.인적교류는 어떤 수준인가. 95년 불가리아대통령 방한 이후 현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불가리아 방문초청을 해놓은 상태다.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이 방문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인적교류는 비교적 활발하다.양국에서 수십명의 교환 학생들이 서울대,소피아대에서 양국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있다. 예술단체의 방문공연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지난 4일 소피아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 이어 내달 11일,12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소피아솔로이스트 챔버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이 있을 예정이다. ■지난 90년 역사적인 공산정권 몰락 이후 민주화,시장경제화 과정이 순탄치못했는데. 지금도 50개의 정당이 난립해있는등 정치적 혼란을완전히 떨치지 못한 상태다.지난 94년에는 경제난등으로 국민들의 불만이 커져 그해말 총선에서 옛공산세력이 중심이 된 사회당이 의회 과반의석을 차지해 공산세력의 재집권이 이루어졌다.그러나 97년 총선에서 민주세력연합(UDF)이 52%의 지지를 얻어 다시 민주정부가 출범했다. 피터 스토야노프대통령은 현재 친서방 민주,시장경제 노선을 확고히 견지해 안정기조를 이룩해놓았다.특히 환율과 물가안정에 주력해 경제안정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불가리아는 코소보전때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지지해 나토의 작전수행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나토,EU가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두곳 모두 정식가입신청을 해놓았고 현재 가입이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다.정식 가입이 언제 이루어질지 정확한 시기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전체 법규의 75%를 EU수준으로 정비하는등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 ■불가리아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뒤인 지난 46년 왕위를 박탈당하고 망명길에 올라 이국을 전전하다 지난 96년 고국을 다시 찾은 세메온 2세 국왕(62)스토리가 한국에서도 화제다. 시메온 국왕은 현재 불가리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지도자 중 한사람이다.반세기만에 그의 귀향이 이루어지던 날 불가리아국민들은 열광적으로 그의 귀국을 환영했다.현재 스페인에 머물고 있는데 금년 성탄도 귀국해 국민들과함께 보낼 예정이다. 망명지인 스페인에서 고국에 돌아올 날을 그리며 집을 모두 불가리아식으로 지은 이야기는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현재 국왕제 부활,시메온왕의 차기대통령출마설등을 놓고 논란이 없지 않지만 실현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하지만 시메온왕이 국민들의 높은 신망과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기 때문에어떤 형태로든 조국을 위해 일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기동기자 yeekd@
  • 한국기독교총연합회 28일 창립 10주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함께 한국 개신교 연합체의 양대축 가운데하나를 형성하고 있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대표회장 지덕목사)가 오는 28일 창립 1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행사를 벌인다. 한기총은 지난 19일 서울여대에서 ‘하늘 새땅 그리고 새천년을 향하여’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갖고 한국 개신교의 당면 문제들을 점검한 데 이어오는 29일 오후6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한국 교회의 밤’을 10주년 기념예배를 갖는다.또 ‘한기총 10년사’와 목회자 500명의 설교내용을담은 ‘한국기독교대표설교전집’을 올해 안으로 펴낸다. 한기총은 1989년초 한경직(韓景職) 유호준(兪虎濬) 목사 등 원로 목사 10여명이 발의해 그해 12월28일 출범한 연합체.현재 예장통합을 비롯해 50개 교단과 한국복음주의협의회,한국대학생선교회 등 15개 단체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KNCC가 진보적 노선을 견지하는 것과 달리,한기총은 비교적 보수적인 성향을 띄며 개신교 지도자들의 친교·협력과 선교 사회문제에 대한 공동보조를주도하고 있다.창립 이후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순결서약운동’‘북한복음화’에 앞장서 왔는데 그동안 ‘사랑의 쌀 나누기 운동’을 통해 100억원을 모아 국내외 불우아동과 사회복지시설을 도왔으며 북한에 쌀 1만가마를보내기도 했다. 지난 93년부터 학교와 교회 군, 경찰 등에서 전개해온 ‘순결 서약운동’은 범국민운동으로 확산되는 성과를 낳았다.지난 95년부터는 북한동포 돕기, 북한교회 재건 등에 치중하고 있으며 중국 동북3성의 탈북자 보호뿐만 아니라탈북자들이 UN에서 국제 난민자격을 인정받도록 1,000만명 청원운동도 벌이고 있다. 김성호기자
  • ‘춘향’ ‘심청’ 춤으로 만난다

    춘향전과 심청전,우리의 고전 두 작품이 춤으로 거듭난다.춘향은 서양춤인발레로,심청은 한국 창작무용으로서. 광주에서 활동하는 박금자발레단은 창작발레 ‘춘향’을 26∼28일 광주문예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각 오후7시(062)230-7400. 춘향전은 영화·드라마·뮤지컬 등 온갖 장르에서 재창작이 시도된 대표적인 사랑이야기.장편발레로 만들어진 것은,지난 86년 임성남 안무로 국립발레단이 공연한 ‘춘향의 사랑’에 이어 두번째다. 이번에 처음 공연하는 ‘춘향’은 2막4장으로 구성됐다.1막에서는 춘향과 이도령의 만남과 사랑(1장),그리고 변사또 부임과 옥중의 춘향(2장)을 풀어나간다.2막은 춘향의 갈등과 암행어사 출도(1장)에 이은 춘향-이도령의 결혼(2장)으로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광주시립무용단 주역 및 솔리스트 출신인 신민경 김정미 공병태 김유미 이수희 등이 무대에 서며 특히 26일에는 국립발레단 주역무용수인 이원국이 이도령으로 객원출연한다. 안무는 박금자 조선대교수와 문영 국민대교수 모녀가 함께 했다.우리 역사·고전을 소재로‘심청전’‘장희빈’‘우수영의 원무’(이순신 일대기)등 창작발레를 꾸준히 발표해온 박교수는 “21세기 문화시대를 앞두고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문화상품으로 만들겠다”고 의욕을 밝혔다. ‘우리 고전의 발레화’라는 의미말고도 지방발레단이 만들어낸 대형무대라는 점에서 무용계는 창작발레 ‘춘향’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심청전을 소재로 한 ‘우리 아버지-심청 99’는 춤·타래무용단 10주년 기념공연으로 무대에 오른다.12월 1일 오후7시,2일 오후 4시·7시 문예회관 대극장(02)2272-2153∼4. 판소리 ‘심청가’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 여섯마당으로 재구성했다.심청의 효심을 또한번 강조하기 보다는,눈을 뜬 심봉사가 과연 진정으로 마음의눈을 연 것인가 라는 질문에 촛점을 맞추었다. 황성 맹인잔치에서 심청을 만나 눈을 뜬 심봉사는 딸을 팔아먹었다는 죄책감에 잔치자리를 뒤로 하고 길을 떠난다.이때 나타난 스님에게서 시련의 의미를 깨닫는 심봉사 모습을 보며 이 시대에 효는 무엇인지를 다같이 생각해 보자는 게 안무 의도다. 무용단 예술감독인 김말애 경희대교수가 안무를 맡았으며 심청으로 출연한다.심봉사로는 조흥동 한국무용협회 이사장이 나선다. 이용원기자 ywyi@
  • [베를린 장벽 붕괴10돌] (하) 축하행사 이모저모

    [베를린 남정호 김규환특파원]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은 9일, 베를린에서는장벽붕괴 및 독일 통일과 관련된 각종 기념행사와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열려21세기 통일독일의 새비젼과 희망찬 미래를 기약하는 축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냉전 종식의 주역들인 콜 전 총리와 부시 전 미대통령,고르바초프 전 옛소련 대통령이 행한 기념 연설.베를린 장벽 붕괴 및독일 통일에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이들 ‘3인방’이 차례로 연방하원에등장,‘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의 상황’의 회고 및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념 연설을 하자 연방하원 의원들은 물론 독일 시민들이 일제히 열렬한박수로 환영. ●장벽 붕괴 10주년 행사와 관련 최고의 인기는 고르바초프 전대통령.그가브란덴부르크문 인근 아들론 호텔에서 묵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몰려가 ‘고르비’‘고르비’를 연호.이때 고르바초프가 딸 이리나와 손녀 아나스탸사와 함께 밖으로 나오자 악수를 하려는 사람들로 운더텐린번대로의 교통이 한때 마비되기도.그는 또베를린의 유명 보석상 옌스 로렌츠씨로부터 독일 통일에 이바지한 공로로 ‘평화의 시계’로 명명된 최고급 시계를 선물 받았다. ●전날 베를린 명예시민증을 받은 부시 대통령은 이날 연합군 박물관에서 열린 ‘베를린의 해방-조지 부시와 독일 통일’이라는 주제의 특별전시회에 참석하는 등 비교적 조용한 행보. ●베를린 시청에서는 부대행사로 장벽 붕괴일인 지난 89년 11월9일 출생한어린이들을 초청,‘독일 통일의 꿈나무’ 행사를 열어 이들이 베를린 장벽붕괴와 독일 통일의 정신을 이어가도록 격려.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과 게메르크 폴란드 외무장관은 베를린 시청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에 일조한 겐셔 전 서독 외무장관과 추쿠비스 츠브스키전 폴란드 외무장관에게 ‘독일·폴란드’상을 수여. ●브란덴부르크문 앞에 설치된 야외 특설 음악당에서는 3만명의 청중들이 운집한 가운데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 기념 대연주회’가 열렸다. 이 연주회에서 첼리스트 무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 등 세계적 거장들의연주에 이어,팝그룹 스콜피온스우도 라덴베르크가 각각 ‘변화의 바람’‘베를린을 환영합니다’를 열창.축제 분위기가 무르익었을때 수십발의 기념폭죽이 터져 하늘을 수놓자 시민들은 일제히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 베를린 장벽 붕괴후의 동유럽 변화상 ‘동구 국가들의 새 세기 시작은 2000년 1월1일이 아니다.10년 전인 1989년11월9일 이미 시작됐다’ 2차대전 종전과 함께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철의 장막 음지에 있다 지난10년간 숨가쁜 변화를 겪어온 동구(지리적으로는 발트해에서 발칸반도)국가들에게 베를린 장벽붕괴가 갖는 의미를 설명한 말이다. 지난 91년 구 공산권국가들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은 9일 연례보고서에서 중부 유럽국가들과 발트국가들이 내년에는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인 1.6%의 두배에 해당하는 3.2%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했다. 동구 발전의 선두그룹은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과 접경,유로리전(Euro Region)등의 실험적인 경제및 환경협력 모델을 운영하고 있는 폴란드 헝가리체크 등 ‘동구 3룡(龍)’.지난3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한데 이어 정치·경제 안정의 척도라할 유럽연합(EU) 가입을 눈앞에 두고 유럽 옛공산권 국가들의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89년 동독인들에게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철의 장막을 처음 깨뜨린 헝가리는 이 지역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나라.10년전 2,000달러이던 1인당 GDP는 지난해 4,500달러가 됐다. 붕괴 이전부터 동구지역의 반공산혁명 선봉장 역할을 했던 폴란드는 지금도4,000만에 가까운 인구와 경제력으로 중부유럽 최대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10년전 3,200달러이던 1인당 GDP가 5,000달러로 증가했다. 지난 93년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결별했다.체코는 옛 반체제 인사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의 지도아래 꾸준한 경제성장을 이루어왔다.그러나 슬로바키아는 90년대 내내 권위주의적 정부의 영향으로 유럽 최대 빈국으로 간주돼온 저성장국.그러나 지난해 친 EU성향 새정부 출범으로 장족의발전을 거듭하고 있다.옛 유고연방 국가들 가운데는 슬로베니아가 1인당 GDP1만달러를 넘기며성공, EU 가입 최우선 대상국 대열에 합류했으며 90∼91년각각 독립을 선언한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3국도 이웃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도움으로 놀라운 경제변신을 이룩했다. 그러나 개혁이 오래 지체됐던 루마니아와 불가리아,그리고 계속된 분리 전쟁과 내전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유고등은 불안정한 정치,절름발이 경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공산 종주국이었던러시아는 지난 97년 금융위기 이후 성장률이 0%에 머물고 절대 빈곤층이 7,400만명으로 증가하는 등 경제,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지못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인터뷰] 구동독 마지막 국가원수 에곤 크렌츠 [베를린 남정호 특파원] “지난 89년 11월9일부터 11일까지의 사흘동안은 내 생애에 가장 길고도 어려웠던 시간이었습니다” 8일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아 베를린 개인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난 에곤 크렌츠 전 동독 공산당 서기장(62)은 당시 심경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현재 각종 강연과 집필로 생활하고 있는 그는 최연소 정치국원으로 그해 10월18일 실각한 에리히 호네커의 후계자로 선출된 후,한달도 채 안된 11월9일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맞은 비운의 동독 마지막 국가원수이다. “브란덴부르크문 앞 장벽 위로 수천명의 서베를린 시민들이 기어올라와 장벽이 무너지고 국경이 뚫릴 상황이었습니다.이때 우리가 가장 우려한 것은유혈 이었습니다.소련이 어떻게든 대응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9일밤 동독 공산당 정치국회의에서 동서독 국경선 개방 공표는 ‘피 대신 샴페인’을 터뜨리게한 결정이었습니다.” 동·서 베를린 국경개방은 당시 양측의 적대상황을 고려하면 기적에 가까운것이었다는 그는 그때만 해도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독일통일을 원치 않았다고 밝혔다. “89년 11월1일 고르바초프와 4시간동안 회담했을 때 독일통일은 의제에도없었습니다.당시 바르샤바조약기구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을 해체하고자한 정치가는 동서진영 어디에도 없었고 고르바초프 입장도 그랬습니다.” 그는 “그러나 장벽이 무너진뒤 12월2∼3일 지중해 몰타에서 열린 부시 미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정상회담에서 갑자기 통일이 결정됐다”며 “89년 당시 소련은 ‘이미 임종을 앞둔 상태’였기 때문에 소련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동독의 몰락은 어찌보면 당연했다”고 말했다. 80년대 초 호네커와 슈미트 서독 총리간의 회담 이후 호네커와 소련 공산당지도부 사이에는 상호불신이 팽배해 있었다는 크렌츠는 89년 11월9일밤 동서독 국경개방 결정도 소련의 군사적 개입으로 유혈사태가 벌어지기 전 미리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오후 내려진 연방대법원의 동서독 국경탈주자 사살명령 혐의에대한 상고기각 판결에 대해 “동서독 장벽은 옛소련의 전략적 방위선으로 탈출자에 대한 발포 결정은 군사적 성격의 결정이었습니다.그러므로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는 없습니다.”고 강조하며 연방헌법재판소에 심판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크렌츠는 97년 8월 베를린 지방법원에서 6년6개월형을 선고받았으나 무죄를 주장하며 상고했었다. * 베를린장벽 붕괴 관련어록 [파리 AFP 연합] 유럽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붕괴는 기억할 만한 발언들을 많이 남겼다. ●미스터 고르바초프,이 장벽을 부숴 버리십시오.(로널드 레이건 전 미대통령,89년 6월12일 브란덴부르크문에서)●장벽은 그것이 세워진 여건들이 변하지 않는 한 남아 있을 것이다.장벽은앞으로도 50년,아니 100년 동안도 존재할 것이다.(에리히 호네커 구동독 공산당 서기장,89년 1월19일)●소련은 동유럽 이웃들의 문제에 개입할 도덕적,정치적 권리가 없다.그들은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한을 갖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소련대통령,89년 10월 핀란드 방문시)●동독인들은 가고자 하는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이 조치는즉각 발효된다.(귄터 샤보브스키 옛동독 공산당 정치국 대변인,89년 11월9일기자회견에서)●우리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슬픈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매우 슬픈 일들을.(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89년 11월9일)●나는 방금 베를린으로부터 도착했다.엄청난 사건을 목격하는 것 같았다.(헬무트 콜 서독 총리,89년 11월10일)●베를린 장벽에 처음 금이 간 것은 80년 8월 폴란드 전역에 걸쳐 일어난 대규모 파업사태 당시였다.(아담 미흐닉 폴란드 반체제 인사,99년 11월)●나는 내 결정을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미하일 고르바초프,99년 11월)
  • [베를린 장벽 붕괴10돌] (중) 베를린市 축하행사 이모저모

    [베를린 남정호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장벽 28년.전세계를 가로지르고 있던 이데올로기적·정신적 분단의 벽을 육체의 벽으로까지 전이(轉移)시켰던 그 세기의 장벽은 마침내 허물어졌다.그리고 또 10년이 흘렀다.베를린시는 8일 그 제일의 주역중 한 사람인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 명예시민증을수여했다. 에버하르트 디프켄 베를린시장은 이날 명예시민증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베를린시가 어렵던 시절 영국과 프랑스 등과 함께 연합국의 일원으로 서베를린시의 자유를 지켜줬으며,전후(戰後) 베를린 세대에게 민주화와 문화를 꽃피우게 했고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줬다”며 “부시 전 미 대통령에 대한 베를린 명예시민증 수여는 전체 미국시민들의 영예”라고 밝혔다.그는 “독일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장벽 붕괴에 따른 동서베를린 통합에 공로가 큰 부시 전 미 대통령은 오늘부터 베를린 시민”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베를린 명예시민증을 받은 사람은 모두 108명.지난 1826년 콘라드 리벡이 첫번째 명예시민이 된 이후,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콘라드아데나워·빌리 브란트·헬무트 콜 전 총리,리처드 폰 바이츠제커·로만 헤어초크 전 대통령 등도 포함됐다.부시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등 미국인으로서는 다섯번째이다. ●지난 89년 11월4일 100만명의 동베를린 시민이 모여 민주화와 서독으로의여행자유화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던 알렉산더 광장에는 장벽 붕괴 10주년을맞아 시민들이 자신의 감회를 적어 붙이는 게시판이 등장,시민 및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 게시판에는 ‘동독 인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사회·정치적 변화를 일궈냈다.행운이 있기를’‘베를린 장벽 붕괴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다’‘고르바초프 전 소련대통령과 콜 전 총리에게 감사한다’는 등 각양각색의 문구가나붙어 이채를 띠기도.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독일통일이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옛 동독인들(90%)이 서독인들(83%)보다 통일에 대해 더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독일 은행협회가 최근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조사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인의 85%가 ‘옳은 결정’이라고 응답.한편 옛동독인들은통일 자체에 대해서 긍정적인 견해와는 달리,그들중 70%가 아직까지 ‘2등국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옛 서독인들에 대한 심리적 열등감을 표출하기도. ●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아 옛동독 정권에 관련돼 유죄판결을 받은 동독 마지막 서기장 출신 에곤 크렌츠,동독의 비밀경찰 조직 슈타지 첩보실장출신의 마르쿠스 볼프 등의 사면을 놓고 베를린 정가에서 설왕설래. 로타르 드 메지에르 기민당 부당수는 이날 “새천년을 맞는 만큼 20세기의잘못은 묻어줘야 한다”며 이들의 사면을 건의.이에 대해 헬무트 콜 전 총리는 과거 잘못은 심판을 받아야 한다며 “사면은 시기상조”라고 일축. ●독일 언론은 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 붕괴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3인 주역들의 회고담을 게재해 눈길.콜 전 총리는 베를린 장벽 붕괴사건을 확인하는 순간 마치 다른 행성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고 회고했다. 부시 전 미 대통령은 미국이 잘못 움직이면 소련의 군사개입을 유도할 수있어 자제했다고 회상.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동독 친구들이 국민들에게적대 조치를 취하지 않고 국민들의 의지를 수용한 것은 매우 올바른 결정이라고 격려했다고 반추. khkim@ *당시 駐서독美대사 회고기 1989년 서독주재 마지막 미국대사로 부임해 베를린 장벽 와해와 독일통일을 지켜본 버넌 월터스대사가 8일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에 당시를 회고하는기고를 실었다.그의 기고문 ‘내가 목격한 혁명’을 요약한다. 89년 1월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주독일 대사로 임명받았을 때 나는 이미 72세였다.고령을 이유로 사양했으나 부시대통령은 “독일에서 지금 중대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당신같은 노련한 외교관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 예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소련과 동유럽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드러나고 있었다.폴란드에서는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됐고,소련은아프가니스탄에서 무조건 철수를 결정했다.그해 4월 22일 독일에 부임했을때 독일통일이 임박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는 부임 첫 회의때대사관 직원들에게 내가 대사로 있는 동안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공언했다.독일 정부관리들을 만나서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아무도 내 말을 믿으려들지 않았다.헬무트 콜총리만 예외였다.콜총리는 “내가 바라는 것도 바로그것이며 우리도 그걸 위해 노력중”이라고 화답했다. 헤럴드 트리뷴지는 나의 발언을 반박하며 머릿기사로 “지금은 무분별한 독일통일 논란을 벌일 때가 아니다”고 썼다.그러나 동유럽의 변화는 폭풍처럼 밀어닥치기 시작했다.수천명의 동독 난민들이 폴란드,체코,헝가리,오스트리아로 밀려들어갔다.라이프치히 등 동독 도시들에서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 숫자가 점점 더 불어났다. 그 무렵 어느날 나는 운터덴린덴가에 있는 동독주재 소련대사 관저에서 그대사와 오찬을 했다.그는 “베를린장벽은 앞으로 100년은 끄떡없이 그대로있을 것”이라고 호언했다.나는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했다.소련은 당시 3,900억달러에 달하는 국방비 부담에 짓눌려 더이상 미국과 경쟁할 여력이 없었다.동독의 시위대는 점점 더 과격해졌다.서독 국기가 시위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마침내꼭 10년 전인 89년 11월9일 밤.본에 있던 나는 베를린 미국대표부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았다. 장벽 검문소 한곳이 열려 동독 주민들이 물밀듯이 밀려나온다는 보고였다.다른 검문소들에도 주민들이몰려들고 있다고 했다.나는 곧장 베를린으로 달려가고 싶었다.하지만 소련의 반응이 어떨지 알수 없었다.소련이 무력진압에 나설 경우에 대비해 나는 독일정부가 있는 본에 남아있기로 했다. 24시간 뒤 나는 베를린으로 가 헬기로 도시를 한바퀴 돌아보았다.서베를린으로 통하는 도로마다 자동차와 인파로 가득찼다.동독국가의 한 구절인 “하나인 우리의 조국 독일”이라는 외침이 거리마다 울려퍼졌다.그날밤 베를린상점들은 문을 닫지 않았다.동베를린 주민들은 상점진열장에 쌓인 오렌지,바나나 같은 과일들을 신기한듯 바라보았다.소련으로부터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수천명의 주민들이 망치를 들고 장벽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독일통일을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공산체제가 무너지리라고는 예상못했다.압제와 자유의 오랜 싸움은 이렇게 끝났다.자유가 승리한 것이다. 정리 이기동기자 yeekd@ * 당시 東獨지도자들 근황[베를린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을 맞아 장벽이 무너질 당시 동독 지도자들의 근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인 지난 89년 10월 에리히 호네커 공산당 서기장 체제가 와해되면서 권좌에서 함께 물러난 20명의 옛 동독 공산당인 사회주의 통일당(SED) 정치국원중 11명은 아직 생존해 있다. 이들 생존자 대부분은 은퇴한 뒤 베를린에서 칩거하고 있으나,89년 호네커후임에 선출된 에곤 크렌츠 공산당서기장(62)과 귄터 샤보프스키 전 동베를린 SED 지구당위원장(70)만이 가끔 인구에 회자(膾炙)되고 있다.이 두 사람은 동서독 국경 탈출자들에 대한 사살명령을 내렸다는 혐의로 지난달 27일부터 연방대법원에서의 상고심이 열린데 이어,8일 결심 공판이 열리기 때문이다. 89년 10월10일 실각한 호네커는 90년 1월 구속됐다가 풀려난 뒤 모스크바 도망중 베를린으로 송환돼 동서독 국경 탈출자에 대해 사살명령을 내린혐의로 구속됐다.이후 암투병을 이유로 93년 1월 석방돼 칠레로 망명했으나이듬해 5월 그곳에서 사망했다.옛 동독 총리를 역임한 한스 모드로프(71)는장벽 붕괴 뒤인 90년 실시된 총선에서 메클린부르크-포어포메른주에서 당선돼 연방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그러나 거짓 증언 등을 이유로 연방하원 의원직을 박탈당한 뒤 칩거하고 있다. 동독의 비밀경찰조직인 슈타지(국가보위부) 첩보실장 출신인 마르쿠스 볼프(76)는 첩보활동을 한 죄로 재판에 회부됐으나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비공산당원 출신으로 90년 3월부터 동서독 통일이 이뤄진그해 10월3일까지 동독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로타르 드 메지에르는 기민당부당수로 아직까지 정계와 연을 맺고 있다.호네커의 후계자로 선출된 크렌츠는 장벽 붕괴 이후 TV 토크쇼에 출연,생계를 이어왔다.특히 91년 ‘장벽이무너진다면’이라는 책을 펴내 2만마르크의 인세를 받은데 이어 신문에 장벽붕괴 당시의 상황을 시리즈로 게재,10만마르크를 벌기도 했다.91년부터 금융중개업에 뛰어들어 매달 5,000마르크를 벌고 있다. 97년 베를린지방법원에서 동서독 국경탈출자에 대한 사살명령 혐의로 6년6개월형을 받아 한때 구속되기도 했다.그는 상고심에서 ‘냉전체제의 희생물’이라고 강변하고 있다.샤보프스키는 97년 크렌츠와 같은 혐의로 기소돼 베를린 지방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상고심이 열리고 있다.
  • [베를린 장벽 붕괴10돌] (상) 현지르포

    1989년 11월9일,동서 냉전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올해로 10년.인류를 동서로 분열시켰던 이념의 장벽을 허물어트리고 통일을 이룩했던 독일은 베를린으로 새 수도를 옮기는 등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도약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고 있다.진정한 ‘이데올로기의 종언(終焉)’은 왔는가.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아 그 해답을 모색해본다. [베를린 남정호 김규환 특파원] ‘게르마니아 여신’이 탄 사륜마차를 머리에 얹고 있는 통일 독일 수도 베를린의 부란덴부르크문.동·서베를린을 가르는 장벽이 통과해 동서 냉전 대결의 결전장으로 상징되던 곳이다. 그러나 오늘의 부란덴부르크문 주변에서는 과거 가슴아픈 이념장벽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부란덴부르크문 앞의 넓은 도로에 ‘베를린 장벽 1961∼1989’라는 조그마하지만 선명한 글씨로 새겨져 있어 베를린 장벽이 통과했다는 의미만 되새겨주고 있을 뿐이다.장벽붕괴 10년,통일 9년을 맞은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는 뉴밀레니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로 이전의모습이 크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부란덴부르크문과 지척에 있는 옛 제국의회 건물이 새단장을 하고 손님을맞고 있고,지난 9월 문을 연 독일 연방 의회의사당 일대 곳곳에는 21세기 도약을 상징하는 공사들이 진행중이어서 부산하다.의회의사당과 대통령 및 총리 관저,의원회관 건물은 거대한 기중기들이 빼곡히 들어서 ‘21세기를 주도하는 독일’임을 알려주는 공사를 독려하고 있다. 부란덴부르크문 주위의 변화하는 모습이 장벽붕괴 10년,독일 통일 9년이라는 세월이 베를린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는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서 만난 콘라드 엘리자베스씨(여·34)는 “통일 그 자체가 좋다”며“아직까지 헬무트 콜 전총리가 천명한 ‘꽃피는 독일’은 이루지 못해 아쉽지만 그래도 독일 전체 국민들에게 이익이 됐다”고 전한다. 외형적인 변화 못지 않게 통일 독일의 변화의 바람은 옛 동독주민들의 소득수준을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98년 독일의 국민총생산(GDP)은 3조8,000억마르크(약2,470조원).1인당 GDP가 4만6,400마르크(약3,016만원)이다.89년 옛동독 지역의 1인당 GDP가 1만8,700마르크(약1,22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통일 후 8년만에 소득이 2.5배나 늘어났다.소득수준이 향상되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10년만에 동독 지역과 서독 지역이 소비생활 측면에서는 어느정도 평준화를 이뤘다.옛 동독지역은 서독지역과 비슷하게 가구의 71%가 승용차를 갖고 있고 가전제품은 서독지역을 능가할 정도이다. 그러나 통일 독일에는 긍정적 효과 뒤에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동독주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지난 8년동안 모두 1조5,600억마르크(약1,000조원)의 막대한 통일비용을 쏟아붓는 바람에 독일정부는 늘어나는 부채로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이 때문에 경제성장률이 98년 2.8%에서 올해에는 1.7%로크게 떨어질 전망이다. 실업문제도 골칫거리다.실업률은 평균 11%.옛 서독지역의 실업률이 9.4%인데 비해 옛 동독의 실업률은 2배 가까이나 되는 18.2%에 이른다. 이곳에서 만난 옛 동독 주민 홀거 오펄러씨(45)는 “통일 전보다 수입은 많지만 방세 등 지출이 많아사는 수준은 비슷하다”며 “그나마 직업이 있어나은 편이지만 실직한 친구들은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그러나 엘리자베스씨는 “통일의 아픔이 있다해도 분단의 아픔에 비하면 견딜만한 것”이라고덧붙였다. khkim@* 베를린 장벽이란 나치 정권시절 수도인 인구 450만명의 베를린은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인구가 절반 수준인 280만명으로 줄어들었고 소련군 점령지역의 한가운데 외로이 떠있는 섬이 됐다.연합국측은 베를린이 독일제국의 수도라는 중요성을 감안해 특수 점령지역으로 간주,2개 지역으로 쪼개 서베를린은 미국·영국·프랑스가,동베를린은 소련이 각각 점령 통치했다. 그러나 시장경제체제의 서독과는 달리 동독에서는 정권이 수립된 49년 이후부터 경제사정이 급속히 악화됐다.산업 국유화 및 계획경제 체제의 비효율성,지식계층의 서베를린 탈출로 경제발전의 활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동독당국은 경찰력을 동원,탈출사태를 막아보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실패했다. 이 기간동안 매년 20만명 이상의 동독인들이 탈출하는 등 61년까지모두 270만명의 동독인들이 서독으로 넘어왔다. 탈출사태가 심각해지자 동독 당국은 경찰력으로 막는데 한계를 느껴 61년 8월13일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에 장벽을 쌓고 철조망을 쳤으며,지뢰를 묻었다.이때 베를린 중심부와 외곽에 총155㎞의 장벽이 만들어진 게 베를린 장벽이다. 이후 철조망과 장벽을 넘어 탈출하려다가 총에 맞거나 지뢰가 터져 죽은 동독인은 모두 250명으로 공식 발표됐으나 실제로는 950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허물어진 옛 장벽' 행진 [베를린 남정호 김규환 특파원]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아 베를린시는 지난 3일부터 ‘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 기념주간’으로 지정,대대적인 기념행사를 펼치고 있다.5일부터 10일까지 유럽 24개국의 젊은이들이 참가하는 ‘젊은이들의 유럽 축제’를 개최,43㎞에 이르는 베를린 옛 장벽을 행진하는 한편통일독일의 상징인 부란덴부르크문에서 다채로운 공연 행사도 펼친다. 특히 베를린시는 베를린 장벽붕괴 당시 동서냉전 양진영의 거두들인 조지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헬무트 콜 전 서독 총리,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대통령이 참석,기념식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킬 예정이다.이를 위해 베를린시는 8일 시청에서 베를린 장벽붕괴에 영향력을 발휘한 부시 전 미대통령에게베를린 명예 시민증을 수여할 계획이다.이 자리에는 콜 초대 통일독일 총리가 연설하며,고르바초프도 귀빈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베를린 장벽붕괴 당일인 9일 기민당(CDU) 소속의 에버하르트 디프겐 베를린시장의 주재로 베를린시청에서 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오후 1시30분에서 3시까지 연방하원 의사당(옛 제국의회 의사당)에서 ‘독일연방하원 10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옛 동독출신 정치인으로 가장 성공한볼프강 티어제 연방하원의장이 개막 연설을 할 계획이다.이어 슈뢰더 독일총리와 콜 전총리,부시,고르바초프 등이 참석,기념연설을 하며 기념 폭죽도 떠뜨릴 예정이다.독일정부가 이처럼 베를린 장벽붕괴 10주년을 맞아 사상유례없이 다채로운 행사를 개최하는 것은 베를린으로 천도(遷都)를 단행한이후 통일독일의 새로운 위상정립을 위한 자신감의 표시이다.
  • 베를린장벽 붕괴 10돌 대대적 행사

    [베를린 남정호 김규환특파원]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 기념일인 9일을 앞두고 베를린에서는 4일부터 다양한 행사가 시작됐다.오는 13일까지 계속되는행사는 동서 베를린 경계에 있었던 ‘찰리 검문소’등 베를린 장벽이 서 있던 베를린 시내 중심가에서 벌어진다. 이번 행사기간에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디프겐 베를린 시장으로부터 베를린시 명예 시민증을 선사받을 예정이다. 동서독간 사실상의 통일을 이룩한베를린 장벽 붕괴의 감격을 되살리고 의의를 부각시키기 위해 독일 정부는 9일 국회에서 공식 기념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이날 기념식에는 장벽 붕괴 당시 현직에 있었던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조지부시 전 미국 대통령,미하일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등 ‘3거두’가 초청돼 연설할 예정이다. jhn@
  • 시사저널 각계 전문가 여론조사

    언론계는 과연 위기를 맞고 있는가? 창간 10주년을 맞은 ‘시사저널’이 최근 각계 전문가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언론 매체의 영향력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는것으로 나타났다.지난 97년 같은 조사에서 정치권과 더불어 ‘한국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있는 집단’으로 뽑혔던 언론집단이 이번 조사에서는 재계와 시민단체에 밀려 4위로 추락한 것이다. 90년대 중반이래 언론이 ‘영향력있는 집단’ 베스트 3위에서 밀려난 것은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이 시사저널의 분석이다.이는 90년대 초반부터 정치적권위가 실추하고 권력 공백이 발생하면서 언론기관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례적인 결과다. 이같은 결과를 놓고 시사저널은 “언론 자신이 추락을 자초했다”고 말했다.지난해 조선일보의 ‘최장집 교수 사상 검증 파동’과 최근 중앙일보의 ‘언론탄압 논쟁’ 등이 언론의 권위를 떨어뜨렸다는 것이다.또한 여론조사를앞둔 시점에서 ‘중앙일보 사태’가 터짐으로써 매체 영향력에서 중앙일보가 한겨레에 뒤처지게된 것도 이채로운 결과다. ‘가장 영향력있는 언론인’ 조사에서 7명의 언론사주 또는 경영인이 10위권 안에 올랐다는 것도 특이한 결과로 평가된다.시사저널은 “사주의 영향력이 이처럼 높이 평가된 데는 ‘중앙일보 사태’가 언론계 안팎으로 영향을미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미경기자
  • [지구촌 밀레니엄 준비] 헝가리/ 건국1천년 역사적 자긍심 고취

    헝가리에 있어서 새 천년은 단순히 다른 천년의 시작이 아니다.건국 천년을맞는 역사적 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교황 실베스터 2세로부터 기독교 공인을 받았던 1000년 12월25일을 건국의기원으로 삼고있는 것이다.헝가리의 새 천년 준비는 바로 건국 천년을 기념하고 새로운 국가비전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헝가리 정부는 98년 ‘밀레니엄 경축의 원칙에 관한 결정’을 발표,2000년1월1일부터 2001년 8월20일까지를 밀레니엄 경축기간으로 정했다.건국 천년을 기념하기 위한 각종 행사를 전국 규모의 국민 행사로 추진할 계획이다. 헝가리는 최초의 수도인 에스테르곰에 위치한 왕국의 재건,2차대전때 파괴된 헝가리∼슬로바키아 교량의 복구,초대 국왕을 기념하는 성이스트반 성당의 개축 등 역사적인 유적과 유물복원을 중심으로 밀레니엄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새 천년기(旗)와 기념 로고를 제작,지방정부와 국민에게 배포해일체성을 강조한다는 복안이다. 민간차원에서도 현재 부다페스트시 중심부에 건설되고 있는 무역센터 내에새 천년관을 설치할 계획이다.여기에 역사적으로 유명한 헝가리 위인들의 조각을 새기는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한마디로 헝가리의 새 천년 준비사업은 자국의 역사적 문화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이를 통해 국민과 국가의 통합을 촉진,새로운 국가건설의 비전을 제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헝가리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에 기초한 민주체제로 전환한지 올해로 10주년을 맞고있다.아직까지 계층과 지역간 불균형 등 여러가지 문제가있지만 중·동구 국가 중 개혁의 선두주자로 지난 10년간 이룩한 성공적인정치·경제개혁의 성과를 높이 평가받고있다. 정치적으로는 지난 10년간 실시된 3차례의 총선 때마다 진정한 민의에 기초하여 정권이 수립됨으로써 민주주의가 확고히 뿌리를 내려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외국투자의 적극적인 유치와 사유화 정책의 성공으로 경제적으로 안정국면에 접어든 것이 반증이다.96년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올 3월 NATO 가입을 실현하여 서유럽에의 진입이라는 국가 제일의 외교목표달성을 눈앞에 두고있다. 그러나 새 천년 헝가리의 가장 큰 비전은 무엇보다도 EU에 가입함으로써 오랜 숙원이던 서유럽 국가에로의 복귀를 실현하는 일이다.이를위해 헝가리 정부는 2002년까지 EU에 들어간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회원국의 기준에 맞도록정치·경제·사회 등 전분야에 걸쳐 법적,제도적 개혁을 광범위하게 추진하고 있다. 또한 유럽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7개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정학적 특성을 살려 새 천년에는 중부 유럽의 중심국가로 자리를 굳힌다는 결의다.이미 92년 비세그라드(헝가리 제2의 도시)체제라고 불리는 중부유럽자유무역체제(CEFTA)를 출범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중부유럽의 유통과 금융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주변국과 연결되는 도로망 건설 10개년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등 눈물겨운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새 천년 헝가리는 체제전환의 과도기에서 벗어나 당당한 유럽국가의 일원으로서 선진 서유럽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새로운 국가상을 제시하고있다.
  • 3개 군, 자매결연 10돌 행사 ‘풍성’

    고려시대 당시 삼별초가 몽고에 대항해 싸운 근거지였던 제주도 북제주군과 경기도 강화군,전남 진도군 등 3개 군이 자매결연 10주년을 맞아 각종 행사로 형제애를 쌓아가고 있다. 26일 북제주군에 따르면 이들 3개 자매 군은 지난 89년 5월 결연한 이후 매년 군민의 날 등 주요 행사가 있을 때면 군수나 부군수급의 상호 교환방문을 실시하며 관내 농협지부에 자매군 지역특산물 판매코너를 설치해 감귤,쌀,화문석,흑미,구기자차 등을 서로 팔아주고 있다. 특히 결연 10주년이 되는 올해는 북제주군 정월대보름 들불축제(2월)와 진도군 영등축제(4월),강화군 고인돌 축제(8월)에 각각 축하사절단을 보내 서로를 격려했고 3월에는 제주에서 항몽유적지 답사와 삼별초 항몽호국정신 계승발전을 위한 합동세미나를 개최했다. 지난 8월에는 수해를 입은 강화군에 북제주군과 진도군이 의연금을 전달해위로했고 지난 24일에는 강화군과 진도군 공무원 40여명이 제주에 와 북제주군 공무원들과 친선 축구경기를 가졌다. 오는 11월중에는 각 군이 2명씩의 공무원을 차출,1주일동안 상호 교환근무를 실시할 예정이며 삼별초를 보다 폭넓게 연구하고 이해하기 위해 올 연말까지 3개군이 함께하는 가칭 ‘삼별초학회’도 설립할 계획이다. 제주 김영주기자 chejukyj@
  • 한·러 학술회의 주제발표 요지-尹炳奭 인하대 명예교수

    구한말 ‘시일야 방성대곡(是日也 放聲大哭)’이라는 사설로 유명한 언론인이자 애국지사인 장지연(張志淵)선생 기념사업회(회장 朴權相)창립 10주년을기념하기위한 한-러 학술회의가 22일 열렸다.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국립극동대학 한국학대학 강당에서 열린 학술회의에는 이 대학 교수와 학생, 국내사학자,러시아 한국학 관계자 등 300여명이 참석,성황을 이뤘다. 다음은 ‘연해주에서의 한국 민족운동’이란 대주제로 한·러 학자들이 발표한 주제발표문 요지. ?러시아 연해주 한인사회의 민족운동 러시아 연해주는 1905년 을사조약이래 1907년 군대해산과 광무황제의 강제퇴위,1910년 국치에 이르는 동안 의병과 애국계몽운동자,민족운동자들의 총집결지였다. 연해주 의병은 한때 3,000∼4,000명에 달했을 만큼 규모도 컸다.연해주 민족운동자들은 성명회를 조직해 한일합병의 원천무효도 선언했다.‘성명회 선언서’는 합병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민족적 혈전을 선언했다.이 선언서에는8,000여명의 민족운동자들이 서명했다.1911∼1914년간의 권업회활동,특히독립군양성과 대한광복군정부 건립노력도 두드러졌다. 3·1운동이 나자 연해주지역의 한인들은 전로한족중앙총회를 중심으로 대한국민의회를 성립시켰고 윤해와 고창일을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로 파견했다.3월 17일 니콜리스크에서 대한국민의회의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선언축하식과 시위운동도 전개했다.연해주 한인의 민족운동내지 조국독립운동 등은 한국근대사의 중요한 일면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 값싸고 수준높은 작품 경매 통해 만난다

    고대와 현대 작품에 걸쳐 미술품 경매가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서울고미술경매(주)는 설립 10주년 기념 특별경매전을 16일 하오 2시 서울종로구 경운동 동예헌에서 갖는다.위작 시비가 심심찮게 일어나는 고미술의공개 경매는 고미술 유통의 양성·활성화에 이바지한다고 할 수 있다.경매관계자들은 “일반 유통가보다 낮은 가격으로도 고미술품을 구입할 수 있는좋은 기회이며 공개 장소에서의 유통이기 때문에 뒷거래에서 생길 수 있는문제가 사전에 차단된다”고 강조한다. 이번 동예헌 특별경매전은 백자 위주의 도자기 경매전이지만 IMF후 오랜만에 열리는 골동 경매전인 탓에 서화류도 상당수 출품되어 있다.100여 점의경매신청 작품 가격은 신청가로 보면 10만원(16세기 초 筆洗)에서 1억5,000만원(17세기 청화백자)까지 다양하다.서울고미술경매는 이번 특별전을 맞아출품료 무료와 판매작이 가작으로 판명될 경우 원금상환과 함께 10%의 손해배상제를 실시할 방침이다.(02)730-5550. 이달초 최초로 경매전용관 (옥션 하우스)을 개관했던 (주)서울경매역시 17일 오후5시에 제13회 경매전을 갖는다.한국고미술품으로 품목을 한정한 이번 경매에는 고서화·도자기·목가구 등 130여 점이 출품된다.11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청자·분청·백자 등 도자기 60여점이 포함된 이번 경매는 서울경매의 첫 한국고미술품 경매다. 한편 서울경매는 전용관 개관 특별전으로 열었던 지난 12회 경매에서 낙찰71점,낙찰총액 3억3,400만원을 기록했다.(02)395-0330. 또 한국화랑협회도 제3회 아트갤러리 경매를 19일 오후5시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갖는다.한국 근·현대 회화,조각,판화 작품 170여점이 위탁·출품되어있는데 신청가에서 100만원 미만 작품이 69점으로 제일 많으나 1,000만원 이상 작품도 6점 있다.(02)720-4461. 김재영기자 kjykjy@
  • SBS 특집드라마 ‘경찰 특공대’ 주연 황인영

    “자세 나온다,총도 제법 쏘네.”지난 5일 오후 서울 사당동에서 과천으로 넘어가는 남태령고개 못미쳐 왼쪽편 계곡아래 숨은 경찰특공대 훈련장.MP5 자동소총을 비껴매고 P7 권총을 든 채 과녁을 노려보는 자줏빛 베레모의 황인영(21)이 눈에 들어왔다.특공대교육조장은 흠뻑 빠져있었다.미모가 아니라 사격 솜씨에. 그는 SBS가 창사 10주년 드라마로 기획한 ‘경찰특공대’(가제)의 유일한 여성 저격수 유상희경장 역에 캐스팅돼 이날 교육생으로 입소했다.영화 ‘댄스 댄스’와 011 CF로 알려졌지만 TV는 첫 경험이다. “아직 연기가 뭔지 몰라요.영화의 흥행실패 부담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라도배운다는 자세로 열심히 뛰겠습니다.”그와 함께 캐스팅 경쟁을 벌인 이는 영화 ‘거짓말’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김태연.그러나 황인영의 훤칠한 키(173㎝),연약해보이는 외모에 감춰진 내면의 강인함,속깊어 보이는 눈매가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겠다 싶어정세호PD의 택함을 받았다.정PD는 “깡다구 있어 보여서”라고 거들었다. 전광렬 김상중 선우재덕 배용준김석훈 이종원 이세창 등 쟁쟁한 스타들과함께 외출이 금지당한 채 특공대원들과 똑같은 대접을 받아가며 9박10일동안 지낸다. “인영아 이리 와 봐.”특공대측은 그를 여자라고 특별히 봐줄 것 같지 않았다.특공대는 그에게 5층 옥상에서 테러범이 인질을 붙잡고 있는 2층에 밧줄을 타고 진입하는 역래펠과 15㎞ 구보,250m 저격 등 혹독한 훈련을 시킬 계획이다. 그는 ‘발레를 한 전력’등으로 인해 역동적인 역할에 이미지가 고착될까 벌써 걱정이다.발성이 제대로 안되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이 드라마가 끝나면 웅숭깊은 멜로 주인공을 꼭 해보고 싶단다.“2학년을 마친 뒤 휴학한 용인대 연극영화과에 복학해야 하는데…”라고 말끝을흐리면서도 지금 치르는 유명세가 싫지만은 않아 보였다. SBS는 편당 1억원을 쏟아부어 내년 1월부터 촬영을 시작해 16∼20부작 전편을 사전제작,여름에 방영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새 밀레니엄의 첫해,남자 냄새가 풀풀나는 드라마를 보게 될 것 같다. 임병선기자 bsn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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