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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이상 평화재단’ 3월 공식출범

    ‘윤이상 평화재단’ 3월 공식출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10주기를 맞아 올해 그의 업적을 기리는 문화사업들이 풍성하게 펼쳐진다. 윤이상 평화재단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원택 황석영 이강일)는 지난 11일 대표발기인 모임을 갖고 “새달 18일 예술의전당에서 전체 발기인대회를 열고 3월쯤 재단을 공식출범시킨 뒤 선생의 생전 업적을 재조명하는 문화 프로그램들을 본격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민감한 현안이자 역점사업은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78)씨의 한국방문. 재단측은 “선생의 생전에 이뤄지지 못한 고국방문이 10주기에 부인을 통해서라도 이뤄져야겠기에 정부의 협조를 얻어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루이제 린저와 윤이상과의 대담을 기록한 ‘상처 입은 용’을 재발간하고 이를 영화로도 만들 계획이다.“영화제작건은 LJ영화사와 구두합의를 마친 상태이며,3월에 제작발표회를 가질 것”이라고 재단의 관계자는 귀띔했다. 1979년 윤이상이 직접 설립한 평양 윤이상관현악단 초청공연도 올해 이뤄질 전망이다. 이 관현악단은 이수자 여사와 같은 시기에 방한을 목표로 실무협상 중이다. 윤이상의 대중적 복권을 위한 대표적 프로그램은 ‘평화콘서트 전국투어’. 윤이상 작품을 테마로 한 크로스오버 대중콘서트를 서울과 지방을 돌며 개최해 ‘윤이상 붐’을 일으키겠다는 복안이다. 관현악곡 ‘광주여 영원히’가 수록된 평양국립교향악단 연주의 윤이상 음반 정식발매,10주기 기념 국제심포지엄, 한국·독일·일본 3국 연주자들로 구성된 기념음악회(10월 예정), 윤이상·이응노·천상병 등 3인 작품전, 친필악보와 유품전시회 등이 다채롭게 마련된다. 재단 발기인은 각계 저명인사 29명. 윤이상의 외동딸 윤정씨를 비롯해 박재규 경남대 총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종수 KBS이사장, 원택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김민 서울대 음대학장, 김용배 예술의전당 사장 등이 포함돼 있다.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베를린에서 한국으로 강제납치, 수형생활을 하기도 한 윤이상은 1990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 연주자들이 서울~평양을 오간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주도했다.1995년 11월3일 끝내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에서 숨을 거두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2004 결산] 북핵·남북관계

    [2004 결산] 북핵·남북관계

    2004년 한반도의 안보정세는 최근의 강추위만큼이나 꽁꽁 얼어붙었다. 북핵문제는 해법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했고, 남북대화도 이렇다할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핵폐기와 체제보장의 선후를 놓고 북·미가 팽팽하게 맞선 데다 미국 대선이라는 초대형 변수가 맞물리면서 불가피하게 초래된 교착국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은 ‘개성공단산’ 냄비 3종 1000세트가 처음으로 생산돼 6시간만에 서울시내 백화점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간 것은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다. 지난 1년 동안의 한반도 안보정세를 북핵해법과 남북관계로 나눠 살펴본다. ■ 북핵논란 “미국은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하고 되돌릴 수 없으며 검증가능한 해체를 위한 주요 요소를 담은 로드맵을 제안했으나, 북한은 미국안이나 자신들의 안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에 응하지 않고 있다.6자회담이 진행 중이지만 대화를 계속한다는 합의 외엔 거의 진전이 없었다.” 미국 국무부가 작성한 ‘2004 회계연도 평가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실질적인 북핵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에는 이견이 있겠지만, 보고서는 북핵과 6자회담의 현주소를 간결하면서도 설득력있게 진단했다. 보고서는 “북핵 문제의 교착상태가 지속될 경우 위기해소 수단으로서 양자, 혹은 다자협상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고, 이같은 교착상태는 탄도미사일 문제의 진전도 가로막고 있다.”면서, 북핵과 미사일 문제가 정책목표에 ‘미달(below)’했다고 평가했다. 북·미는 지난 6월 3차 6자회담에서 각각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고 실질문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함으로써 본격적인 협상단계로 진입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은 3차회담에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포함한 모든 핵의 선 폐기를 전제로, 단계별로 상응조치를 취하겠다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상응조치에는 한·중·일·러 4개국의 대북 중유제공, 불가침보장을 포함한 다자안보보장, 비핵에너지 제공, 테러지원국 해제 논의, 국교정상화 등 그간 북측의 요구사항들이 대거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HEU 존재에 대해 북·미간의 이견도 드러났지만 남북한과 미·중·일·러 등 6개국은 한반도 비핵화원칙 재확인 등을 담은 의장성명을 채택했고,9월 말 이전 4차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비핵화를 위한 초기 단계 조치들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회의를 조속히 개최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하지만 회담 직후 북한은 이례적으로 “회담에서 진전을 가져다줄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는 외무성 대변인의 긍정적인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4차회담을 앞둔 8월23일 “도저히 회담에 나갈 수 없게 하는 것은 물론 미국과 마주 앉을 초보적인 명분조차 가질 수 없게 만들고 있다.”면서 태도 전환의 불길한 전주곡을 울렸다. “북한은 HEU 계획을 인정하고, 리비아 모델을 수용하라.”는 미 네오콘들의 대북 압박 발언, 미 하원의 북한인권법안 통과, 수백명의 탈북자 입국사태, 남한의 핵물질 실험문제 등이 어떻게든 시간을 끌며 더 많은 대가를 받아내려는 북한측에 좋은 빌미가 됐다. 하지만 북한이 6자회담을 중단시킨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미국 대선 상황이었다. 치열하게 맞붙은 미국 대통령 선거전의 와중에 북측 인사들이 부시 행정부의 관리들과 태평스럽게 마주 앉아 핵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기대한 것이 애시당초부터 무리였다고 할 수 있다. 어찌됐건 올 하반기 6자회담이 더 이상 열리지 못했고, 공식적인 북핵 논의도 중단됐다.11월 미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 7월 방한 때 “북한은 HEU 계획을 인정하라.”고 목청을 높였던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온건파인 파월 국무장관의 후임으로 지명됐다. 북한으로선 결코 달갑지 않은 사태진전이었다. 이에 북한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6자회담을 연다 해도 아무런 결과물도 없이 공회전만 하게 될 것”이라며 부시 2기 행정부의 정책기조를 지켜보겠다고 선언, 미측에 공을 떠넘겼다. 결국 본격적인 북핵 논의는 해를 넘겨, 빨라야 부시 대통령이 2기 행정부의 대내외 정책기조를 담은 연두교서를 발표할 새해 1월20일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 남북관계 통일부 인터넷 홈페이지(unikorea.go.kr)에 접속하면 첫 장에 ‘대북정책초점’이란 제목 아래 ‘남북관계 추진현황’이 뜬다. 그때그때, 적어도 월 1회 이상 업그레이드되던 이 자료가 ‘9월 말 현재’에서 멈춰 섰다. 올해 남북관계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실제 개성공단 관련 협의를 제외하고는 9월 이후 추가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을 만큼 남북 당국간 공식 대화가 끊겼다. “올해 6월까지만 해도 북남관계는 좋게 발전하고 통일분위기는 어느 때 없이 고조됐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인터넷판에 게재한 올해의 남북관계에 대한 총평이다. 조선신보는 두 차례의 경제협력추진위원회(3월 서울,6월 평양)와 6월 장성급회담에서의 합의서 채택,6·15공동선언 발표 4돌 기념 ‘우리민족대회’ 등 당국 및 민간교류 등을 성과로 꼽았다. 특히 4월 말 용천역 열차폭발사고 이후 남측에서는 동포애가 발휘되고 정부와 민간이 지원사업을 추진했으며,8월 아테네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선수들이 공동입장한 점을 들었다. 7월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 불허를 시작으로 탈북자 대거 입북, 남한 핵물질 실험 등이 불거져 나오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여기까지의 평가와 진단은 있는 그대로 옮겨 적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객관적이다. 하지만 다음 대목부터 사정이 달라진다.“남한은 말로는 협력이요, 뭐요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에 가담해 북남대결을 격화시켰다.” 남북관계가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간 것은 남한이 민족의 협력보다 미국의 입장에 충실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조선신보의 이런 일방적 결론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북한이 때때로 이런 억지주장과 함께 빗장을 걸어 잠그기 때문에 정상회담이니 장관급회담이니 하는 갖은 회담과 교류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진전이 지지부진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어쨌든 8월3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을 비롯해 제10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무산됐다. 장성급회담에서 합의한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또한 중단됐다. 이후 단 한 차례도 당국간 회담이 열리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경협 프로그램만은 착실하게 진행됐다. 북측은 외화관리 및 광고, 부동산 등 개성공단 사업을 위한 법적 인프라를 구축했고, 전력공급 협상도 타결하는 등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다. 이 결과 리빙아트는 개성공단 시범단지 입주업체 가운데 처음으로 ‘개성공단산’ 냄비 3종 1000세트를 생산하며 남북 경협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금강산 관광사업도 육로관광이 2003년 9월 시작된 이후 꾸준히 나아져 숙소가 모자라 관광객을 받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남북을 잇는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연결사업도 모든 공사를 마치고 개통식만 기다리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핵문제 해결 지연과 미국의 대통령 선거 등의 요인으로 인해 북한이 대남·대외정책에서 유연성을 보이는데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면서 “정부는 새해 부시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핵의 돌파구를 열어나가면서 동시에 남북관계도 병행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철 통일·안보전문기자 ickim@seoul.co.kr
  • 남북적십자 접촉 25일 재개

    북한은 19일 오는 25일부터 2박3일간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면회소 건설을 위한 남북적십자 접촉을 갖자고 제의했다. 제의는 장재언 조선적십자회 위원장이 이세웅 대한적십자사 총재 직무대행에게 보내는 전화통지문을 통해 이뤄졌다. 접촉의 주체가 비정부기구이고, 이산가족 문제가 인도적 사업이기는 하지만 그간 현실적으로 남북관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북측의 제의가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남북간 공식 대화는 김일성 사망 10주기 조문 불허와 탈북자 대거 입국에 대한 북측의 반발로 지난 7월 이후 중단됐다. 남북은 지난 2003년 12월 5차 남북적십자회담에서 금강산에 콘도식 면회·숙박시설을 건설키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지질조사를 둘러싼 남북간 이견으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김인철기자 ickim@seoul.co.kr
  • [사설] 남북적십자 접촉재개에 기대한다

    남북 적십자간 접촉이 오는 25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린다. 이산가족 면회소 건설을 위한 접촉을 갖자는 북한적십자측의 제의를 대한적십자측이 흔쾌히 수용한 데 따른 것이다. 어느 때보다 북한의 생각과 움직임에 관심이 쏠리는 시점이어서 작은 접촉이지만 여기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한반도 안정은 물론이고 남북 경제협력이나 신뢰구축은 잦은 대화외에는 왕도가 없다. 남북적십자간 접촉이 그동안 중단됐던 당국간 회담이나, 군사회담 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남북 적십자간 접촉은 지난 7월 제10차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끝으로 중단됐다. 중단된 이유는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행사 불허와 대규모 탈북자 입국 등에 대한 북한측의 반발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서로 다른 체제를 인정한다면 불가피한 선택이 있을 수 있고, 오해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큰 틀에서 대화만큼은 서로가 자존심을 버리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야 한다. 북한이 먼저 적십자 접촉을 제의한 것은 다른 채널의 대화도 재개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보고 남한정부도 인도적 지원 등 분위기 조성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금 남북이 안고 있는 최대의 고민은 북한핵 문제다. 지금 한국과 미국간, 한국과 중국간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주의제는 말할 것도 없이 북한핵 문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북한핵의 평화적 해결과 체제보장이라는 우리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전달했다. 이런 한국 정부의 노력이 더욱 힘을 얻으려면 남북정상회담이든, 장관급 회담이든간에 남북접촉이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민족끼리 대화나 신뢰도 없이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공동이익’을 관철시키는 것은 어렵다. 남북이 더욱 전향적인 자세로 대화에 나서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 유족들 성수대교 10주기 추도식

    유족들 성수대교 10주기 추도식

    “가족을 잃은 상처가 아물기에 10년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21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대교 북단 한강둔치의 ‘성수대교 희생영령 위령비’앞. 지난 94년 32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성수대교 붕괴참사 1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유족 10여명과 당시 참사로 8명의 학생을 잃은 무학여고 후배 학생 10명, 교사 4명이 참석해 영령을 위로했다. 10년의 세월에도 유족들의 한숨섞인 눈물은 마르지 않고 있었다.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도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사고 소식이 계속될 때마다 10년 전 그날을 떠올린다며 가슴아파했다. 묵념으로 추도식을 시작한 유족들은 헌화와 분향을 하면서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한 유족은 “10년 동안 이곳에 와서 명복을 빈 것은 우리 유족들뿐이었다.”면서 “꽃 한송이 바치지 않던 사람들이 10주기라니까 갑자기 찾아와 생색을 내려 난리법석”이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사고로 친형을 잃었던 유족대표 김학윤(39)씨는 추도사에서 “슬픔의 상처는 세월이 지날수록 조금씩 아물고 있지만 이땅의 안전불감증은 여전하다.”면서 “32명의 무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성수대교가 튼튼한 교량으로 다시 태어나 제역할을 다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슬픔을 나누는 사람은 유족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면서 “아직도 우리 사회는 부실투성이인데 정부에서는 성수대교 참사에 대해서도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왔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이 추도식을 갖기 직전 붕괴지점인 성수대교 중간부분에서는 대형 붕괴사고에 대한 자성과 재해유자녀 지원 등을 위해 2000년 발족한 ‘건설교통연대’ 회원 40여명이 별도의 추도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붕괴참사로 세상을 떠난 고 이승영(여·당시 서울교대 3년)씨의 외삼촌 김갑순(58)씨가 참석했다. 김씨는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이곳을 10년만에 다시 찾았다.”면서 “다리는 말끔하게 고쳐놨지만 여전히 아픈 사연들이 서려 있어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다. 10년 동안 같은 아픔을 겪어온 다른 유족들을 만나고 싶었다는 김씨는 “아직도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족들을 보니 안타깝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시인 김남주

    문학이 머문 풍경-시인 김남주

    시인 김남주는 글로 ‘지금’을 말한다.‘당신은 묻습니다/언제부터 시를 쓰게 되었느냐고/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투쟁과 그날 그날이 내 시의 요람이라고’(‘시의 요람 시의 무덤’에서) ‘김남주 평전’을 쓴 대구가톨릭대 강대석(철학과) 교수는 “시인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혁명가로서 불꽃같이 살다 갔다.”고 평했다. 시인 스스로도 “나는 사랑하고 증오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시에서 적었다. 이처럼 사랑과 증오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 지난 70∼80년대 독재정권에 맞서 저항한 민중시인 김남주. 1994년 2월,48세로 사망(췌장암)하기까지 길지 않은 고단한 삶 속에서 그는 470여편의 시를 남겼다. 감옥생활 9년3개월 동안 칫솔을 갈아 우유곽에 300여편의 시를 눌러냈다. 암울한 시절, 햇볕으로 나온 시들은 희망의 메시지로 퍼져나갔다. ●제도권이 싫다. ‘해남의 수재’이던 시인은 광주의 명문고교에 들어가지만 사회과학서적과 더 가까워졌다.1965년 2학년 때, 한·일회담 반대 데모가 한창이었다.“좋은 학교, 우수한 학생들이 교실에서 책상만 지켜야 되겠느냐.”며 시위 참가를 소리쳤지만 메아리로 끝났다. 번민하던 그는 이후 학교를 그만뒀다. 같은 고향이자 해남의 2대 수재였던 평생 친구 이강(58)씨는 “시인은 마음씨가 선(善) 그 자체였다. 오죽했으면 박석무(광주 5·18기념재단이사장) 선배가 남주한테 ‘물봉(호구)’이란 별명을 지어줬겠느냐.”고 웃었다.“하지만 결단을 내리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뜻을 꺾지 않던 사람”이라고 털어놨다. 시인의 삶은 저항과 투쟁의 연속이었다.1946년 전남 해남군 삼산면 봉학리에서 3남3녀의 둘째로 태어났다. 머슴살이로 중농을 이룬 부친으로서는 남주가 그의 분신이자 희망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유달리 영어를 잘했던 그는 영국시인 바이런의 시를 암송하던 꿈 많은 문학소년이었다. 고교 때 광주 미문화원에서 미국을 비난하는 원서를 훔쳐 읽었던 일화도 있다. 시인이 전남대 영문과를 택한 것도 외국의 진보적인 서적을 맘껏 읽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대학생활 내내 강의실에 나온 것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밖으로만 돌았다. 강대석 교수는 “시인은 끝까지 지식인과 혁명가의 순결을 지키며 살았다.”고 그의 평전에 기록했다. ●나는 꿈꾼다. 고등학교 때 늘상 자취방에서 함께 뒹굴었던 이강씨는 “당시 광주 계림동에 헌 책방이 즐비했는데 책을 유달리 좋아했던 남주는 시간만 나면 이곳에 들러 서적을 탐독했다.”고 말했다. 시인의 엄청난 독서량은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사상적 토대로 자리매김된다. 이씨는 “당시 남주의 인식론은 아나키즘적 경향을 보였던 것 같다. 반미주의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국내 모순의 근원을 미국에 두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주변에서 그를 지켜본 지인들은 그를 완벽주의자로 봤다. 허점을 보이지 않고 피해를 안 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시인은 늘 “글쓰는 사람들이 재주는 있지만 동·서양 고전을 아우르는 철학사상이 빈곤한 게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고교시절 싹튼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은 대학 졸업반이던 73년 3선개헌 반대운동의 불쏘시개가 된 지하신문 ‘함성’으로 이어졌다. 반공법 위반으로 첫 구속되는 계기다.75년 인혁당 관련자들에 대한 사형집행은 김남주를 투사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의 데뷔작인 ‘진혼가(1974년)’에서 ‘공포(고문)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캐내는 데 가장 좋은 무기’라고 정의했다. 78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남민전)에 참여해 소식지인 ‘민중의 소리’를 제작해 돌렸다. 이듬해 체포돼 15년형을 선고받고 9년만인 88년 가석방된다. 이 해 연인이자 동지였던 박광숙(교사)씨와 가정(1남·현재 14살)을 꾸리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등으로 5년가량 모처럼 창작세계에 몰두하게 된다. 스스로 ‘시인’으로 불리기를 바라던 시인이 대학시절,“그래도 얘기가 통하는 친구”라고 말했다는 이경순(전남대 영문과) 교수의 회고다.“그는 글쓰기를 좋아했고 스스로 시인이라고 했어요. 시인이 되고 싶다고 늘 말했지요. 그의 빼어난 언어감각이나 해독 능력에 혀를 내둘렀어요.”지난 74년 이래 시인과 두터운 교분을 유지했던 염무웅(영남대·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 교수는 “그가 살았던 때는 ‘꽃 속에 피가 흐른다’고 읊어야 할 만큼 가혹했다. 자신이 몸으로 겪은 그 시대를 꾸미지 않은 목소리로 외친 김남주의 삶이 곧 시였고 투쟁”이라고 말했다. ●김남주를 알자. 시인의 생가에는 현재 동생인 덕종씨가 살고 있다. 전국에서 그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이어진다. 지난 2월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김남주의 실천적 삶과 정신을 기리는 추모 문화제를 열었고 출판계에서는 그의 평전과 시선집을 잇따라 펴냈다. 염 교수는 ‘꽃 속에 피가 흐른다’라는 시선집을 출간했다. 혁명가로서 뼈대를 갖추기 전에 써낸 소박한 시에서부터 옥중시, 현실의 고뇌를 담은 시 등 120편을 골라냈다. ‘민중시인 김남주 해남기념사업회’의 김경윤(해남공고 교사) 회장과 지역회원 80여명이 김남주 문학관 건립에 힘쓰고 있다.2000년 5월에는 광주시립 민속박물관 앞쪽에 시인의 시비도 세워졌다. 해남군도 내년부터 2년으로 잡고 11억원을 들여 생가 터에 전시관과 창작실, 소공원 등을 만든다. ■시인의 주요시집 ▲ 진혼가·잿더미(74년) ▲ 나의 칼 나의 피(87년) ▲ 조국은 하나다(88년) ▲ 산이라면 넘어주고 강이라면 건너주고(89년·옥중서한집) ▲ 사랑의 무기·솔직히 말하자(89년) ▲ 학살(90년) ▲ 사상의 거처(91년) ▲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91년) ▲ 이 좋은 세상에·저 창살에 햇살이(92년)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10년만에 돌아온 가극 ‘금강’

    10년만에 돌아온 가극 ‘금강’

    동학농민혁명을 배경으로 한 가극 ‘금강’이 오는 8·9일 이틀간 의정부 예술의전당에서 10년만에 무대에 오른다. 1994년 초연된 ‘금강’은 시인 신동엽의 동명 서사시를 오페라 연출가 문호근이 우리 고유의 민족 음악극 양식으로 승화시켜 호평 받은 작품.이번 공연은 동학농민혁명 110주년과 늦봄 문익환목사 서거 10주기를 기념해 마련됐다.원래 남북 문화교류차원에서 지난달 22·23일 평양 봉화예술극장 공연이 추진됐으나 남북관계 경색으로 무기한 연기됐다. ‘금강’은 1894년 ‘반봉건,반외세’를 외치며 이땅에 들불처럼 번졌던 동학농민군들의 활약상을 그리는 동시에 혁명에 참여한 청춘남녀 하늬와 진아의 애틋한 사랑을 담고 있다.탈춤,살풀이 등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춤사위와 국악,민중가요,클래식 등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음악 구성으로 기존 오페라나 뮤지컬과는 차별되는 표현양식으로 주목받았다. 3년 전 타계한 문호근 연출가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는 김석만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고인의 서울대 연극반 후배이기도 한 그는 “서사적인 전개를 살려내면서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갈등을 음악에 녹여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초연에 비해 드라마의 유기적 연결에 더 정성을 들였다는 설명이다.음악도 대폭 보완했다.24곡 가운데 초연때 사용했던 곡은 절반뿐,나머지는 이번 공연을 위해 재미작곡가 이현관씨가 새로 작곡했다. 화려한 출연진 또한 눈길을 끈다.국립극단 원로배우인 장민호씨가 동학농민군의 정신적 지주인 아소역을 맡은 것을 비롯해 서희승,양희경,강신일,방주란 등 쟁쟁한 중견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주인공 하늬는 배우 오만석이,진아는 서울시뮤지컬단 출신의 길성원이 열연하고,초연때 하늬로 분했던 가수 이정열은 혁명의 중심 인물인 명학을 연기한다.2만∼5만원.(02)762-919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문학이 머문 풍경] 전북 부안과 전원시인 신석정

    [문학이 머문 풍경] 전북 부안과 전원시인 신석정

    “어머니,/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깊은 삼림대를 끼고 돌면/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멀리 노루 새끼 마음놓고 뛰어 다니는/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중략)” 한국 최초의 전원시인 신석정(辛夕汀·1907∼74). 시인은 일제치하의 암울한 시기에 잃어버린 조국을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라는 시를 통해 간절히 찾아가고 싶은 이상향으로 노래했다.시작생활 50여년 동안 우리의 산과 자연 그 자체를 아름다운 시어로 승화시켜 여느 시인보다 친근하게 다가온다. 시인이 태어났던 전북 부안군은 ‘생거부안(生居扶安)’이라 불릴 만큼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성하고 경관이 빼어난 지역이다.지평선까지 펼쳐지는 황금벌판,낙락장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산등성이,일몰이 장관인 격포와 해창 앞바다…. 그가 목가시인,자연시인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자양분은 곧 고향의 아름다운 산천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부안읍 선은리 ‘신석정 고택 청구원(靑丘園)’은 시인이 외로움 속에 첫시집 ‘촛불’과 두번째 시집 ‘슬픈 목가’를 펴낸 산실이다.1934년부터 전주로 이사했던 54년까지 20년 동안 시작활동을 했던 이곳은 당시 한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던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석정은 처녀시집 ‘촛불’을 펴내면서 “청구원 주변의 산과 구릉,멀리 서해의 간지러운 해풍이 볼을 문지르고 지날갈 때 얻은 꿈 조각들”이라고 전했다.청구원은 앞은 논과 밭들이 이어져 시원하게 툭 터져 있고 멀리 상소산이 보이는 정남향의 아담한 초가삼간이었다.마당이 넓어 시인이 직접 심고 가꾼 나무와 꽃들이 가득했다. 청구원에서 출생해 중학교 시절까지 이곳에서 자란 시인의 셋째아들 광연(68·전 동아일보기자)씨는 “아버님은 틈이 날 때마다 마을 뒷산에 올라 커다란 버드나무 밑에서 시상에 잠기셨다.”고 회고했다.또 집앞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상소산에서 멀리 서해로 이어지는 평야지대와 바다를 응시하며 시상을 떠올렸다고 전한다. 하지만 최근 찾은 청구원은 양옥집과 창고에 가려져 초라한 모습이었고,주변 경관도 완전히 변했다.그림처럼 아름답던 전형적인 시골마을은 4차선 도로건설과 주택개량사업으로 도시화되고 있다.지난 91년 시비가 세워진 변산면 해창 해변공원 앞바다는 바다를 육지로 만드는 새만금간척사업이 한창이다. 1907년 부안읍 동중리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집안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시인은 8살때 남의 빚보증을 잘못 서 가세가 크게 기울면서 인근 선은동으로 이사했다. 선은동은 석정이 꿈많은 소년시절을 보낸 곳이다.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우다 부안보통학교를 졸업하고,농사를 지으며 독학으로 문학의 길을 닦아갔다.18세이던 1924년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고향의 자연에서 얻은 시편들을 발표했다. 1930년 서울로 올라가 중앙불교전문강원(동국대 전신)에서 1년간 불전을 공부하면서 문예작품 회람지 원선(圓線)을 만들었다.1931년 시문학 3호에 ‘선물’을 발표하며 시문학 동인이 된 시인은 당시 시단의 거두였던 정지용,이광수,한용운,주요한,김기림 등의 문인을 만나게 된다. 그해 어머니 상을 당한 석정은 김기림 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귀향,물려받은 가난과 싸우며 문학의 길을 계속 걸었다.낙향 3년 만에 조촐한 집을 장만해 청구원이라 이름 붙였다. ●시인은 키가 크고 술을 즐긴 멋쟁이 해방 이후 1947년에는 일제 말기 숨막혔던 상황속에서 악몽 같은 세월을 견디며 쓴 32편을 묶어 ‘슬픈 목가’를 펴냈다.이 무렵 석정은 김제 죽산중,부안중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72년 교직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에도 왕성한 시작활동을 하다 고혈압으로 쓰러져 “내 무덤에 태산목을 심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홀연히 자연에 귀의했다. 허소라(68·군산대 명예교수)씨는 “고인은 키가 훤칠하고 이국적인 얼굴에 마도로스 파이프를 물고 술을 즐겼던 멋쟁이였다.”면서 “목가시인이기 전에 항상 역사의 현장에 입회인이 되고자 했던 올곧은 선비였다.”고 말했다. 석정 작고 10주기인 1984년 후학들이 ‘석정문학회’를 결성해 동인지를 발행하고 있다.올해는 시인 작고 30주기를 맞아 추모문학제가 열렸다.지난 3일부터 오늘까지 시인의 친필 시화와 서예,유품,유영이 전시되고 시세계를 재조명하는 문학특강과 세미나가 개최됐다.청구원과 해창시비를 순회하는 문학기행 행사도 가졌다.30주기 추모 기념우표도 발행됐다.같은 시기에 부안문화원에서는 ‘석정 변산시인학교’와 기념백일장,석정시 낭송회,추모 문학강연이 열려 그를 추모했다. 부안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서울광장] 남북경색 마침표 찍자/오풍연 논설위원

    [서울광장] 남북경색 마침표 찍자/오풍연 논설위원

    남북 관계가 답답하다.올여름 지루한 폭염만큼이나 숨막히는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지난달 19일 열기로 했던 남북 장성급 군사실무회담이 무산된 이후 경색국면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북측은 이달 3∼6일 서울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제15차 남북 장관급회담에도 아무 연락없이 불참했다.언제 회담이 속개될지 모르는 형국이다.북측이 무성의하게 나오다 보니 우리로서도 자의든,타의든 숨고르기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고 있다. 북한이 왜 이렇게 나올까.첫 장성급 회담에 이어 군사실무회담을 잇따라 열고 서해상에서 핫라인 등을 가동하기로 합의할 때까지만 해도 남북 관계는 순항을 계속했다.그러나 우리 정부가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기 조문을 불허하고,동남아 A국에 머물던 탈북자들이 대거 입국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여기에 미국 하원은 얼마 전 탈북자들에 대한 막대한 재정지원을 담은 북조선인권법을 통과시켰다.말하자면 북한의 자존심과 체제 정통성을 건드린 셈이다. 무엇보다 탈북자 문제가 북한의 심기를 크게 건드린 듯하다.북 언론의 보도를 보더라도 그렇다.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3일 조선중앙통신과 가진 회견에서 탈북자들의 대규모 입국과 관련,“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산물”이라면서 “더욱 간과할 수 없는 것은 A국이 공모해 나선 것”이라고 싸잡아 비난했다.그동안 쉬쉬해왔던 북한이 A국을 지목한 것은 사실상 탈북자의 존재를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더 이상 침묵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한이 A국을 겨냥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앞서 북한은 지난달 29일에는 조평통 대변인 성명을 통해 “남한 정부가 탈북자들을 대량으로 끌어가는 반민족행위를 감행했다.”고 비난했었다.제3국을 공식언급한 것은 처음이다.북한은 이번에 468명이 입국한 데 대해 놀란 것 같다. 국내외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동남아 지역이 본격적인 탈북루트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A국뿐만 아니라 인근 동남아 국가들과 비정부단체들의 협조 가능성에 제약을 가하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탈북자 문제는 국제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더 꼬여가고 있다.실제로 A국은 최근 탈북자 100여명을 중국으로 추방했다는 소식이다.자유를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한 그들을 다시 사지(死地)로 돌려보내게 해서는 안 된다.이는 우리 정부가 외교력을 총동원해 해결할 일이다.이 문제를 제때,제대로 풀지 못하면 남북간 경색이 예상보다 오래갈 수 있다. 남북은 하루빨리 머리를 맞대야 한다.경색국면이 계속되면 남북 모두 득될 게 없다.장관급 회담과 군사실무회담을 빨리 속개하길 바란다.거기서 모든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면 된다.따지고,해명하고,의견을 같이하면 그만이다.동족끼리 ‘기싸움’을 계속하는 것은 모양새도 좋지 않다. 다행히 북측은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비무장지대내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중단했던 긴장완화 작업을 재개했다는 것이다.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북측은 지난 10∼11일 서너차례씩 남측 함정을 호출했다고 한다. 북측이 ‘한라산’을 먼저 부른 것은 지난 6월15일 핫라인이 가동된 후 처음이어서 주목된다.아울러 지난 8일부터는 북측이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선전물을 제거하는 작업도 관측됐다는 것이다.경색된 남북관계를 푸는 기폭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9월말에는 제4차 6자회담이 예정돼 있다.또 북한의 정권창건일인 9·9절 행사도 기다리는 중이다.그 전에 물밑 협상을 갖고 대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한다.경색국면의 ‘마침표’는 일찍 찍을수록 좋다. 오풍연 논설위원 poongynn@seoul.co.kr
  • [시론] 남북회담도 올림픽 공동입장처럼/박재규 경남대 총장·전 통일부장관

    [시론] 남북회담도 올림픽 공동입장처럼/박재규 경남대 총장·전 통일부장관

    남과 북은 정상회담 이후 남북장관급회담을 비롯하여 군사,경제,적십자 등 각 분야별 회담을 통해 6·15 공동선언 이행에 성의를 다해 왔다.그러나 북·미관계의 악화와 핵문제로 인해 남북관계는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지난 3일 서울에서 열리기로 되었던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연기되었다.물론 남북간 예정된 회담이 지연되거나 연기된 것이 이번만의 일은 아니었다.북한은 김일성 10주기 남측 추모단의 방북 불허와 대량탈북자 입국을 문제 삼아 회담을 연기시킨 것으로 보인다.최근 방북하여 북한의 고위간부를 만나고 돌아온 한 지인은 ‘북측 고위 간부의 대남 항의성 주장’이 보다 격앙되어 있었다고 전했다. 북측의 주장은 대략 두 가지였다.추모 불허와 관련하여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간 교류와 화해협력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는데 남측이 왜 추모단의 방북을 불허했는지,이러한 남측의 태도는 북측의 체제를 부정하는 행위로서 6·15공동선언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대량탈북자 입국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과거 탈북자의 남측 입국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그런데 이번에는 남측이 왜 국내외로 대대적인 선전을 하면서,특히 미국 하원의 대북인권법안 통과 시기와 맞추어 마치 007 작전식으로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이러한 행위는 북한체제 붕괴를 위한 고도의 한·미 공동작전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북한의 주장은 모두가 불신과 오해에서 출발하고 있다.아직도 남북간에 많은 인식의 차이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정상회담 이후 남북한은 과거 냉전시대와는 달리 많은 변화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그러나 서로 존중해야 할 법과 제도,그리고 국민들의 정서가 상존하고 있다. 북측 행사에 남측에서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는 여건이 아직 성숙되지 않았음을 북측은 이해해야 한다.남북 양측의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특히 정부는 우리의 입장을 보다 분명히 하는 한편 북측에 대한 설득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대량탈북자 문제와 관련하여,정부는 해외에서 떠도는 탈북자들을 인도적 차원에서 입국시켰다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오비이락 격으로 북측이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대량탈북자 입국이 ‘한·미공동작전’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나아가 북측이 납득할 수 있는 조치를 빨리 취해야 한다. 남과 북은 제1차 장관급회담에서 ‘불신과 논쟁’에서 벗어나 ‘신의와 협력’으로 대화하기로 민족 앞에 약속했다.남북간에 신뢰가 없으면 남북관계는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의문과 불만이 있으면 회담테이블에 앉아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상대방의 설명을 들으면서 서로의 입장 차이를 좁혀 나가는 자세야말로 민족 앞에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남과 북은 ‘서로 이마를 맞대고 진지하게 대화하면서’ 산적한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2000년 9월 시드니 올림픽 공동입장에 대한 북측의 결정은 ‘남북이 뭉치면 힘이 커진다.’는 김정일 위원장의 뜻이 담긴 것으로 알고 있다.한반도기를 앞세운 시드니 올림픽의 공동입장은 전 세계에 남북한의 화해 모습을 보여 주었다. 14일 새벽 세계평화의 제전인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에서 또 한 번의 남북한 화해 모습이 재연될 것이다.올림픽 개막식 공동입장처럼 당국간도 서로 이해하는 자세로 회담을 개최하여 남북화해협력의 힘이 국제사회에 널리 퍼져나가기를 기대한다. 박재규 경남대 총장·전 통일부장관
  • 남북 장관급회담 무산

    제15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사실상 무산됐다.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 취임 뒤 처음으로 열릴 예정이던 회담이다.탈북자 대규모 입국과 김일성 주석 10주기 조문문제가 끝내 북측의 반발 빌미가 됐다. 북측은 회담 예정일을 하루 앞둔 2일에도 회담 개최와 관련한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남측도 더 이상 북측의 입장을 확인하지도,실무접촉 제의를 하지도 않았다. 종전의 경우 회담 개최 일주일 전에는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각종 일정협의와 대표단 명단을 교환하는 등의 절차를 마무리해 왔다. 정부는 지난달 26일과 28일 판문점 연락관 접촉을 통해 회담에 대한 북측의 입장을 타진했다,북측은 이에 ‘상부로부터 지시가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정부 당국자는 2일 “북측이 장관급회담 개최와 관련해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아 3∼6일 서울에서 회담이 예정대로 열리기는 물리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본다.”며 “연기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측 대표단이 중국을 경유해 서울로 오는 만큼 항공기 예약 등이 이미 이뤄졌어야 한다.”며 “일정대로 회담이 열리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회담 장소와 관련,여름철 비수기를 감안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측에 예약을 하지 않은 채 회담이 열리면 언제든지 객실과 회담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인철기자 ickim@seoul.co.kr
  • 故장왕록 교수 추모집 나와

    영문학자인 고 장왕록 전 서울대 교수의 10주기 추모집 ‘그러나 사랑은 남고’(도서출판 샘터)가 출간됐다. ‘문학이 있는 삶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이 추모집은 장영희 서강대 교수와 장병우 LG-Otis 대표이사가 부친인 장 교수의 글들을 모아 엮은 것.장영희 교수는 책 서문에 “아버지의 글들을 다시 읽고 새로운 감회를 느꼈다.아버지의 사랑 이야기,실수담,친지분들과 학생들과의 일상의 글들에서 아버지의 명민하고 선량한 성품이 곳곳에서 배어 나온다.”고 적고 있다.˝
  • 김남주 10주기 시선집 발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가다 못가면 쉬었다 가자(…)”라고 노래하며 ‘영원한 혁명’을 꿈꾼 시인 김남주(1946∼1994).그의 서거 10주년을 기려 시선집 ‘꽃속에 피가 흐른다’가 창비사에서 나왔다. 엮은이는 1974년 계간 ‘창작과비평’ 여름호에 고인이 ‘잿더미’ 등 8편의 작품을 투고했을 때 주간으로서 편집실무를 맡았던 염무웅 영남대교수.고인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해 남다른 애정과 ‘마음의 부채’를 지닌 염교수는 발문에서 고인의 시들이 어떤 경로로 묶여졌는가를 이야기하기 위해 시인의 험난한 인생역정을 살핀다.신산한 가족사가 밴 고인의 편지를 소개하면서 “김남주 문학의 원천은 바로 몰락하는 농민현실이고 그 현실에 맞서 힘들게 삶을 이어가는 아버지 어머니이다.”라고 밝힌다. 선집은 ‘잔소리‘‘하하 저기다 저기’‘여자는’ 등 20년 만에 햇빛을 보는 시 세편을 포함, 120편의 작품을 골라서 시인의 삶을 따라서 초기작,옥중시편,출감 후 등 6부로 나누었다.소박한 초기시부터 건강한 민중의식을 날카롭게 녹인 작품 등 시인의 모든 작품 세계가 살아 숨쉰다.그 속엔 억압과 모순의 현실에 맞서 시인이 “자기 몫의 희생을 자기 시대의 역사에 아낌없이 헌납”한 과정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선집에 대해 염교수는 “세월을 뛰어넘어 나의 굳어진 감성과 메마른 육신을 쑤시고 들끓게 한다.”며 “김남주의 불꽃 같은 삶과 찬란한 시세계를 교향악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다면,그리고 이를 통해 김남주가 살아보지 못한 21세기의 타락을 뒤엎는 예술적 항체가 형성될 수 있다면….”이라는 바람을 전한다. 이종수기자˝
  • [오늘의 눈] 文목사와 민노당/박록삼 정치부 기자

    민주노동당에 ‘문익환 목사’는 어떤 의미인가. 봄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시던 지난 19일 민주노동당 대표단은 총선 후 첫 공식일정으로 70여명의 민족민주 열사가 잠들어 있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을 찾았다. 단숨에 10석을 얻은 민주노동당의 성공적인 국회 진출을 열사들에게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들은 전태일 열사를 포함,20여명의 묘역을 주욱 둘러보면서도 끝내 문 목사의 묘소 앞에서 민주노동당의 성공과 민족통일의 다짐을 보고하지 않았다. ‘노동자가 사람대접받는 세상’을 상징하는 전태일 열사를 맨 먼저 찾은 것은 이해된다. 벅찬 감격에 노동열사들 위주로 참배하고 문 목사의 존재는 깜빡 잊었을 수도 있다. 당 정책에 통일 관련 내용은 잘 정리돼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어찌 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쉬 가시지 않았다.간단한 실수로 보기에는,민주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 민족민주·노동운동의 향후 과제 및 활동 방향을 생각하면 우려스러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문익환 목사는 평생을 노동자,농민,빈민,철거민 등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했다. 국가보안법이 시퍼렇던 1989년 북한을 방문,당시 김일성 주석을 만나 한반도 3단계 통일방안의 원칙을 합의한 뒤 제발로 감옥에 걸어 들어간 이였다. ‘감상적 통일론자’라는 일부의 비판도 있었지만,문 목사가 뿌린 씨앗은 2000년 남북 정상의 6·15공동선언으로 꽃피었다. 그래서 일반인도 모란공원에 가면 꼭 문 목사의 묘소를 찾는다.서거 10주기를 맞아 ‘문익환 평전’이 출간된 요즘 더욱 그렇다. ‘대중적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은 일하는 사람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통일이나 한반도 평화 등 시급한 과제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일상적인 활동에서 나타날 때 비로소 사회 일부가 민주노동당에 던지는 ‘노동계급 편향성’과 같은 우려를 불식할 수 있을 것이다. 박록삼 정치부 기자 youngtan@˝
  • “낙선·당선운동 지지” 90%

    NGO(비정부기구)의 시민활동가들은 17대 총선에서 시민단체가 해야 할 핵심과제로 비리 정치인 퇴출 등 정치개혁을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또 활동가의 과반수가 낙선·당선운동 참여를 통해 이번 총선에 참가할 의향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사회단체 젊은 활동가들로 구성된 ‘시민·사회단체 청년활동가 모임’이 지난 2일부터 11일까지 환경·인권·여성·통일·교육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39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4·15총선 관련 설문조사’ 결과다. 이에 따르면 ‘총선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 내지 핵심과제’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6%인 220명(복수 응답)이 ‘권력비리 척결과 지역주의 극복,보수 정치인 퇴출 등 정치개혁’을 꼽았다. 이어 ▲진보정당의 원내진출 42%(164명) ▲청년실업과 고용안정,노동정책 개혁 등 신자유주의 경제정책 극복 20%(78명) ▲남북화해협력 및 한반도 평화실현 18%(70명) ▲교육·인권·사회복지 등 삶의 질 개선 15%(58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총선에 어떤 형식으로 참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29%인 115명이 낙천·낙선운동 참여를 꼽았으며,이어 당선·지지운동 참여 27%(104명),공명선거·정보공개운동 감시 18%(71명) 등의 순이었다.그러나 17%인 67명은 직접 정당가입을 통해 총선에 참여하겠다고 답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최근 시민단체의 낙선·당선운동에 따른 정치적 중립성 훼손 등 부정적 의견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90%인 353명이 ‘시민단체의 다양한 총선활동’이라며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반면 총선 참여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39명에 불과했다. 청년활동가모임 최현진 총무는 “이번 설문은 정치개혁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17대 총선을 임하는 NGO단체 활동가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실시한 것”이라면서 “조사 결과 많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이번 총선에서 민생을 외면하는 부패·타락 정치인들을 퇴출시키려는 열망이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총선을 통해 부패정치 청산과 낡은 정치 퇴출,유권자 혁명을 가져올 수 있도록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힘을 결집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단체는 지난 2001년 고 강경대 열사 10주기 추모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91학번 시민활동가 20여명이 주축이 돼 만들어졌다. 조현석기자˝
  • 김남주 10주기 추모 첫 평전 발간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소나무 뿐이다.”라는 괴테의 말은 ‘진리의 힘’을 돌아보게 한다.이론과 실천이 결합된 그 영원한 싯푸름을 삶으로 보여준 인물로 우리는 칼 마르크스,체 게바라를 떠올린다.좀 더 가까운 곳에서는 ‘시인 김남주’를 기억한다. 13일은 그가 평생 사랑했던 민중의 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날.그의 삶과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기리는 책이 나오고 추모문화제가 열려 ‘김남주의 자리’를 되새기게 한다. 대구가톨릭대학 철학과 강대석 교수가 지은 ‘김남주 평전’(한얼미디어 펴냄)은 시인의 삶과 문학세계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첫 평전.강교수는 감옥도 가두지 못한 김남주 시인의 사상·문학의 고갱이를 ‘계급의식’으로 규명한다.김지하와 황석영의 저항정신과 문학적 형상화를 뛰어넘는 김남주,그만의 미덕을 ”철저한 역사의식과 세계관을 견지했다.”고 평가한다. 이런 입장에 바탕하여 지은이는 1부에서 김남주 시인의 삶을 상세하게 추적한다.시인은 전남 해남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79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남민전)’사건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아 1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와 5년 동안 살다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평전이 돋보이는 대목은 시인의 삶을 단순 연대기로 서술하는게 아니라 작품을 적절하게 배치해 삶의 편린들에 숨결을 불어 넣는다.어릴적 성장기에는 ‘아버지’‘이야기’,중고교시절엔 ‘그러나 나는 잘된 일인지 못된 일인지’같은 시를 얹어 고뇌와 인간성을 살려낸다. 2부 ‘투쟁의 무기’는 시인의 예술세계를 보듬는다.주요 시집 ‘조국은 하나다’와 산문집 ‘시와 혁명’ 등을 토대로 시인의 통일·민중에 대한 애정의 원천을 풀어낸다.당연히 지은이의 철학에 대한 깊이있는 분석이 바탕이 됐다.저자는 또 정세 분석을 병행하면서 ‘시인의 선택’이 어떻게 나왔고 필요했는지에 대해 당위성을 부여한다.여기에 중학교 친구로서 변혁의 길을 함께 걸은 이강,선배 박석무,남조선민족해방전선의 동지 박석률 등 관련 인물의 생생한 증언을 덧붙여 평전을 살아있게 한다.덕분에 ‘민중의 벗’ 김남주는 영원히 푸른 소나무로 되살아 난다. 한편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관련 단체들과 함께 13일부터 이틀간 전남 해남문예회관,김남주 생가,5·18기념문화관 등지서 추모문화제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김남주 시 ‘노래’의 첫 행)를 연다.추모제는 가수 안치환,극단 ‘토박이’‘신명’의 공연과 ‘소설가 황석영이 본 김남주의 삶과 문학세계’강연으로 이뤄진다.15일에는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 추모제도 갖는다.(02)313-1486. 이종수기자 vielee@˝
  • 北, 문익환목사 10주기 추모단 파견

    고(故) 문익환 목사 서거 10주기 추모제에 북측이 추모단 7명을 파견한다.북측이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사망시 조문단을 파견한 적은 있었지만,남측 인사 추모를 위해 이처럼 다수의 추모단을 파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일맞이 늦봄 문익환 목사 기념사업회(이사장 李在禎)’는 “북측의 민족화해협의회 주진구 신임 부회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유영구 위원등 7명의 추모단과 17일부터 열리는 추모제중 일부 행사를 남북이 함께 진행한다.”고 7일 밝혔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김원룡박사 10주기 추도식

    한국 고고학의 제1세대 학자인 삼불 김원룡(三佛 金元龍) 박사 10주기를 기념하는 국제학술세미나 및 추도식이 15일 오전 10시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문화체육센터에서 열린다.
  • 시·그림 어우러진 ‘응축된 수필’/三佛 김원용 10주기 문인화展 25일부터 서울 가나아트센터

    삼불(三佛) 김원용(1922∼1993)은 흙에서 나 평생을 흙 속에 담긴 역사를 연구하다 흙으로 돌아간 한국 고고미술사학의 태두다.그는 자신의 유해를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에 뿌리도록 해 마지막까지 고고학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올해는 삼불의 10주기.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삼불 김원용 문인화’전이 25일부터 11월16일까지 열린다.문인화는 전문 직업화가가 아닌 시인이나 학자 등 사대부 문인들이 여기로 그린 그림을 총칭하는 말.그림의 기법이나 세부적인 묘사에 얽매이지 않고 그리고자 하는 사물의 내면이나 화가의 의중을 표현하는 사의(寫意)를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다.이번 전시에는 인물·산수인물·산수·동물·화조·어해(魚蟹)·화훼·묵죽·묵란 등 다양한 주제의 문인화 60여점이 선보인다. 삼불은 일상생활 속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화폭에 담았다.무엇을 그리든 그 속에는 그의 사상과 철학이 녹아 있다.그것은 그림의 여백에 남긴 문구를 통해 어렵잖게 확인할 수 있다.자유로운 필치로 씌어진 글들은 그림의 의미를 한층 분명하게 밝혀준다.시와 그림이 어우러져 서화동체(書畵同體)를 이루는 삼불의 그림은 그런 점에서 일종의 ‘응축된 수필’이요, ‘형상화된 수필’이다. 전시작들은 저마다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전해준다.조그만 서안(書案)에 비스듬히 기대앉은 옆모습을 그린 ‘초탈속진(超脫俗塵)’은 자화상의 성격이 강하다.여백에 쓰인 글에는 세상의 티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염원이 잘 드러나 있다.‘먼 객지에서’란 제목의 작품에는 네 그루의 소나무 옆에 자리잡은 작은 초가집에 선비 한 사람이 그려져 있다.자신의 모습을 그린 듯하다.여백에는 “서가에 쌓인 천권의 고서,집밖에 소나무를 스치는 맑은 소리,책상 위에 놓인 향로,한 항아리의 술이면 그밖에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어 올곧은 선비의 학구적인 생활과 청정하고 검박한 삶을 엿보게 한다. 문인화가로서 삼불은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소나무와 대나무,난초를 즐겨 다뤘다.‘대나무 안되는 것은’이라는 작품에는 “대나무 안되는 것은 나 사람 못되어서인가”라고 씌어져 있다.그림의 격조를 그것을 그린 사람의 인품과 연관짓는 문인화가의 자세를 그대로 보여준다. 게를 그린 ‘해빈일해(海浜一蟹)’는 손녀의 돌을 맞은 감회를 담아낸 그림.“인생은 바닷가의 한마리 게와 같구나.망망대해를 대하면 오직 두려운 생각뿐이네.”라는 글귀에는 다가올 인생살이의 고단함을 우려하는 혈육의 정이 담겼다. 개구리는 삼불의 그림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삼불은 왠지 개구리를 자주 그렸다.그 이유는 분명치 않지만 ‘유수즉영(有水則泳)’이란 작품에 씌어진 글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물이 있으면 헤엄치고 흙이 있으면 걸으니 그 행세함이 발을 씻는 선비와도 같다.”는 내용.삼불은 개구리에게서 선비의 도를 본 게 아닐까. 삼불은 생전에 ‘나의 인생,나의 학문’등 세 권의 수필집을 냈고 두 차례 문인화 개인전을 열 정도로 다재다능한 선비였다.전통적인 지필묵연(紙筆墨硯)의 문방사우를 쓰는 삼불의 그림에서는 누구든 글씨와 그림이 어우러져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를 발하는 진정한 문인화의 멋을 느낄 수 있다.(02)720-1020. 김종면기자 jmkim@
  • ‘돈오’ - 종교 초월한 인류 보편적 경험/성철스님 10주기 국제학술회의 8개국 권위자 13명 한자리에

    현대사회에서 돈오(頓悟),즉 깨달음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한국을 비롯한 선(禪)불교에서 널리 쓰이는 돈오는 흔히 깨달음의 높은 경지를 말한다.비단 선불교의 최고경지란 의미를 넘어 일반적으로도 통용되는 개념으로 자리잡았다.그렇지만 국내외에서 그 사상의 유용성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오는 16·17일 세종문화회관 콘퍼런스홀에서 성철 스님 열반 10주기를 기념해 열리는 ‘깨달음의 문화적 지평과 그 현대적 의미’주제의 국제학술회의는 바로 이 돈오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파헤치는 자리이다.성철 스님이 줄곧 천착했던 돈오를 다른 종교,문화와 비교하면서 이 깨달음이 과연 현대문명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지를 모색하는 흔치 않은 토론의 자리이다. 성철 스님이 그토록 매달렸던 돈오사상에는 인간 경험의 보편적 세계관과 가치관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그러한 세계관·가치관의 차원에서 볼때 스님의 돈오는 다른 종교전통과 문화의 관점에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그래서인지 성철사상연구원과 고려대민족문화연구원 한국사상연구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종교문제연구소가 주최하는 학술대회에는 불교를 비롯해 유교·도교·기독교·인지과학 등 국내외 각 분야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성철 스님의 돈오에 대한 나름대로의 입장을 밝힌다. 세계적 불교학자인 미국 하버드대 로버트 지멜로·일본 도요가쿠엔(東洋學園)대 찰스 뮬러 교수를 비롯,베트남계 미국인 쿠옹 뉴옌 조지메이슨대 교수,신학자인 뉴욕주립대 전헌 교수,유교학자인 조지 메이슨대 노영찬 교수 등이 발제에 나선다.이밖에 헝가리(임레 하마르 교수),네팔(민 바하두르 샤키아 교수),중국(첸핑 교수),오스트레일리아(마이클 레빈 교수) 등 8개국 학계의 권위자 13명이 한 자리에 모인다. 참석자들은 대부분,돈오는 단지 불교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종교 전통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인류의 보편적 경험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깨달음은 세계의 유기적인 통일성을 확인하는 경험이며 이 깨달음의 경험을 새롭게 조망함으로써 현대 문명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 가운데 서울불교대학원대학 목정배 총장은 미리 공개한 발제문을 통해 “깨달음이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 선불교에서의 깨침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깨달음의 보편화를 이룬 점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전헌 교수는 ‘성철 스님의 돈수론’을 통해 “성철 스님의 사상을 볼때 부처님도 돈(頓)의 한 지칭이요,하나님도 돈의 이름”이라며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론은 단번에 사이비종교와 사이비학문을 척결하고 종교의 제자리를 찾았다.”고 해석했다.이밖에 유교학자 노영찬 교수는 ‘깨달음과 과학문화’에서 불교의 연기론과 신경과학을 비교하면서 신경과학과 불교가 상호보완적이라는 주장을 펴 흥미롭다. 김성호기자 kim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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