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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의 풍경] 상암DMC ‘디지털컬처오픈’

    [서울의 풍경] 상암DMC ‘디지털컬처오픈’

    현재와 미래의 디지털 세상을 미리 맛본다. 게다가 평소에 볼 수 없는 곳을 들여다볼 수 있고, 모든 행사가 무료이다. 빠르게 진화하는 디지털세상 속에 사는 우리에게 이런 순간은 더 이상 매력적일 수 없다. 오는 17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서울디지털컬처오픈(SeDCO)’이라면 가능한 기회이다. 디지털 미디어 문화산업의 중심지로 모습을 갖춘 서울 마포구 상암디지털미디어시티(DMC)에서 열리는 이 축제에는 서울시가 ‘문화의 미래’를 주제로 엄선한 20여개의 이벤트가 6일 동안 줄줄이 이어진다. 어떤 일들이 어떻게 펼쳐질지, 미리 경험해 보자. ●미래 보여주는 ‘디지털파빌리온´ 눈길 많은 주옥같은 행사 중에서도 꼭 경험해야 할 것으로 ‘디지털파빌리온’이 꼽힌다. 지금, 혹은 20년 후에 생활 속에 녹아든 디지털 기술이 총망라된 곳이다. 2층 탐구관에 들어서면 오감 멀티미디어 세상이 열린다. 작곡가와 악기를 직접 선택해 듣는 음악, 선 없이 울리는 하프와 발로 연주하는 색소폰, 허공에서 즐기는 도미노 등 손 끝 하나로 문화 공간이 만들어진다. 미래의 생활상을 알고 싶다면 3층 상상관으로 올라가 보자. 웰빙건강부스 안에 들어서면 체온과 비만도를 측정해주고, 디지털 주치의가 운동요법과 식단을 진단한다. 상상관 한 가운데 ‘물없는 연못’에 사는 디지털생명체는 나를 졸졸 따라다닌다. 낮에도 노을이 지고, 도시에서도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창밖의 풍경은 내가 선택해 연출한다. 영화에서만 보던 미래 생활을 현재에 경험하는 시간이다. 영상에 따라 바람, 비, 향기 등의 효과가 느껴지는 수준 높은 입체영화 ‘화첩몽’을 보는 코스까지 2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지루할 새가 없다. 평소에는 1500∼3000원의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이 기간은 무료이다. 문화콘텐츠센터에서 열리는 DMC영화제도 빼놓으면 아쉽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국내영화 100년사를 짜임새있게 풀어놓은 상설전시와 영화 속 연산군을 비교한 기획전시를 준비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을 재현한 ‘원각사’에서는 변사가 옛 영화를 소개한다. 독특한 소재와 뛰어난 심리묘사를 영화에 담아낸 고(故) 김기영 감독 10주기 기념 전작전(20∼29일)은 벌써부터 영화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음악, 미디어, 예술 행사가 줄줄이 이번 행사에서만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많다.KGIT센터 전시실과 야외광장 2곳에서 열리는 ‘서울 디지털아트 축제’에서 다양한 장르의 디지털아트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디지털파빌리온과 문화콘텐츠센터 가운데 놓인 임시전시실에는 독특한 디지털 미로가 만들어져 있고, 미디어보드에 송출된 환상적인 영상을 느낄 수 있다. 직접 UCC(사용자제작물)를 만드는 과정을 배우는 시간도 마련했다. 사전 신청이나 현장 참여로 전문강사에게 간단한 촬영기법과 편집기술을 익힐 수 있는 기회다. 아울러 학생들과 인디밴드들의 참신함과 열정을 맛보는 ‘디지털 음악회’, 휴스퀘어에 설치될 대형 하프파이프에서 진행되는 ‘아마추어 인라인 하프대회’, 시민 모델이 무대에 올라 ‘대장금’과 ‘주몽’의 사극 의상을 선보이는 ‘드라마 패션쇼’ 등도 열린다. 서울산업통상진흥원 심일보 대표이사는 13일 “DMC에서는 언제라도 디지털세상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전하기 위해 행사를 준비했다.”면서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DMC가 세계적인 디지털도시로 자리잡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설명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한국의 히치콕’ 김기영 감독전

    ‘한국의 히치콕’, 최고의 스타일리스트이자 천재로 불렸던 김기영(1919∼1998) 감독의 10주기 전작전이 마련된다. 한국영상자료원(원장 조선희)이 20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KOFA에서 김 감독의 작품 25편을 무료로 상영한다. 생전 32편의 작품을 남겼던 김기영 감독은 1998년 자택에서 일어난 화재로 불시에 팬들 곁을 떠났다.‘화녀’‘하녀’‘충녀’‘육식동물’ 등이 그의 대표작. 이번 전작전에서는 ‘봉선화’‘고려장’‘현해탄은 알고 있다’ 등 불완전판도 소개된다. 일반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도 있어 관심을 모은다.‘느미’와 ‘자유처녀’는 그동안 오리지널 필름이 유실돼 볼 수 없었지만 복원을 거쳐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 채 완성하지 못한 유작이자 미개봉작인 ‘죽어도 좋은 경험’도 볼 수 있다. 21일에는 김기영의 작품세계를 온몸으로 연기해낸 이화시, 윤여정, 박정자 등의 여배우 좌담회가 열린다.(02)3153-2047∼8.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신당 대선후보 인물 검증] ‘개성동영’의 허와 실

    [신당 대선후보 인물 검증] ‘개성동영’의 허와 실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2004년 7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18개월 동안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유일한 대선 후보다. 다른 후보에 비해 ‘통일 대통령 후보’란 이미지를 점유하고 있는 셈이다. 정 후보 측이 ‘개성동영’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면서 이미지 부각에 나서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정 후보가 통일부 장관을 맡던 초기에는 고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기 조문단의 방북 불허,468명이란 대규모 탈북사태 등으로 남북 관계가 얼어붙어 있었다. 북한 외무성의 핵무기 보유 선언과 6자회담 중단 등으로 북한과의 대화 창구는 막혀 있었다. 그러던 중 2005년 6월 정 당시 통일부 장관은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했다. 그 자리에서 200만㎾ 대북송전이라는 ‘중대제안’을 꺼냈고,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남북 장관급회담과 6자회담이 재개됐다. 통일부의 고위 관계자는 “정 장관의 방북이 남북관계 개선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면서 “중대제안 이후 미국을 방문해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면담하고 설명한 것은 관료 출신 장관과는 다른 면이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개성동영’이라고 내세울 만큼 정 후보가 개성공단 사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지를 놓고는 논란이 많다. 개성공단 사업은 김대중 정부에서 추진되기 시작했고, 정 후보의 장관 취임 이전인 2004년 4월 착공됐다. 두 달 뒤인 6월 시범단지 입주기업 모집 공고가 나갔다. 정 후보가 통일부 장관이 되기 전부터 이미 추진되던 개성공단 사업을 놓고 ‘개성동영’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전인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강대 신지호 겸임교수는 “2000년 6월 정상회담 직후 고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이 방북한 뒤 개성공단 사업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중국의 주룽지 총리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남한과 경협을 하려면 휴전선 인근이 적당하다.’고 한 충고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설이 유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후 토공이 개입하면서 민간사업에서 반민반관사업이 된 것인데, 이렇게 많은 이들이 관여한 사업을 ‘개성동영’이라며 독식하려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사업 초기부터 참여한 대북관계 전문가는 “벌써부터 노동력 부족 등 구조적인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데, 개성공단 사업이 실패한다면 그때 가서 ‘개성동영’이 책임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정 후보가 북한에 던진 200만㎾ 대북송전 사업은 현재 잠정 중단된 상태다. 정부는 정 후보의 방북 이후 ‘대북송전추진기획단’을 가동하겠다고 의욕을 보였지만, 정작 북한은 대북송전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통일부 측은 “TF회의만 두세 차례 열렸을 뿐 추진기획단은 발족되지도 않았고, 이후 외부용역연구 등도 진행된 바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중대제안’은 북한의 반응과 상관없이 냉각된 남북관계를 타개하기 위해 급조한 허점투성이 정책이었다는 비판도 있다. 자문과정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는 “전기사업인데 통일부 발표 당시 산업자원부는 내용을 알지도 못하고 있었고, 북한의 전력실태 등에 대해 사전에 시스템 스터디가 이뤄지기는커녕 관련 분야 자문회의도 통일부 발표 이후에 소집되는 등 본말이 전도됐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무반응으로 중단되기는 했지만, 중대제안이 오히려 남한 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기공학 전문가는 “북한이 6자회담 등 급한 불을 끄고 나면 중대제안을 빌미로 송전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러면 남한측은 당시에 아무 실익을 얻지 못했음에도 해놓은 말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민족경제론’ 외친 故박현채 그의 삶과 사상 되짚어본다

    ‘민족경제론’ 외친 故박현채 그의 삶과 사상 되짚어본다

    ‘지구화시대의 자립경제’,‘국경 없는 자본’과 ‘민족경제’,‘신자유주의’와 ‘경세제민(經世濟民) 경제학’….2007년 현재 이런 의미쌍은 논리적으로 가능한 언어조합이 아니다. 비현실적인 이항대립이자 형용모순 취급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초국적 자본통합이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 민족경제란 시대착오적 화두(?)를 붙들고 끙끙대는 이들이 있다. 민족경제론의 주창자 고 박현채(1934∼1995) 교수(조선대 경제학과)의 후학들이다. ●진보사회과학 중요유산 박현채 사망 10주기(2005년 8월17일)에 맞춰 계획된 ‘지구화시대 박현채 경제사상의 의의와 재구성’ 토론회가 2년여를 끈 끝에 21일 개최된다. 민주사회정책연구원과 ‘고 박현채 전집발간위원회’ 주관으로 서울 중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교육장에서 열린다. 토론회는 박현채 사상의 핵심이자 산업화시대 저항담론의 구심점이었던 민족경제론을 지구화 시대의 맥락에서 재성찰·재구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독재권력에 맞설 언어가 빈곤했을 때, 민족경제론은 시대가 공유한 무기였다.1978년 ‘민족경제론’(한길사) 출간은 한국 토착경제학의 싹을 틔우는 일대 사건이었다. 박정희 정권의 외자주도형 산업화에 대립각을 세우며 자립경제를 주장했던 박현채의 사상은 비판지식인들의 이론적 전진기지가 됐다.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학자와 책을 묻는 여론조사들은 박현채와 ‘민족경제론’을 늘 다섯 손가락 안에 꼽아왔다. 산업화시대는 갔고, 지구화시대가 도래했다. 민족경제론은 ‘과거의 이론’으로 버려졌다. 국민국가를 넘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파악할 수 있는 이론적 확장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92년 대선 때까지 박현채가 골간을 잡았던 김대중의 ‘대중경제론’도 97년 대선 땐 유종근 전 전북지사와 이강래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의 손을 거치며 박현채의 흔적을 지웠다. 박현채는 잊혀진 존재가 됐고, 민족경제론은 재벌의 경영권 방어논리로 오용되고 있다. 시대의 변화가 불러온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박현채 후학들은 왜 ‘폐기된’ 민족경제론을 복원하려 하는 것일까. 정확히 말하면 ‘민족경제론의 문자적 복원’이 아닌 ‘민족경제론적 문제의식의 복원’이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민족경제론의 문제의식은 경제총량지표로 파악되는 국민경제가 아닌, 민중 삶을 보장하는 국민경제의 확립”이라면서 “민족경제론은 민중의 기본적 삶과 직결된 공공성이 해체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반드시 재검토돼야 하는 한국 진보사회과학의 중요한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주류경제학이 돌보지 못하는 ‘생활하는 민중의 구체적 삶의 요구’를 지탱하려면 민족경제론의 발전적 재구성이 시급하다는 절박함이 토론회 저변에 깔려 있다. ●DJ 대중경제론에도 영향 토론회의 행간을 읽는 핵심 키워드는 ‘대안적 상상력’이다. 민족경제론 재해석 작업이 당장의 대안을 내놓긴 힘들지만, 대안의 단초가 될 다양한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획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조희연 교수는 민족경제의 재구성 방안으로 공공성 강화를 강조하고, 장상환 경상대 교수는 글로벌 체제의 급진적 변혁 가능성을 탐구한다. 또 권영근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소장은 자립경제의 단초로 쿠바 모델에 주목하는 견해를 밝힐 예정이다. 현대 자본주의 경제를 ‘화석연료에 의존한 탄소경제’라고 정의하는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는 “석유 고갈과 동반할 자본주의 파국에 대비하려면 지역공동체 운동과 에너지·식량 자립, 지역자치를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며 생태적 자립경제를 주장한다. 박현채 10주기 및 전집발간에 맞춰 기획된 토론회는 발간작업이 늦어지며 한 차례 연기됐고, 박현채 사상을 계승하는 민족경제연구소 설립이 난항을 겪으며 또다시 늦춰져 이번에 열리게 됐다. 박현채가 몸담았던 조선대가 설립을 거부한 이후 연구소는 성공회대·한신대·상지대가 컨소시엄으로 운영하는 민주사회정책연구소가 내부 기관 형태로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사회정책연구소는 한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지구화와 공공성’이란 주제로 민족경제론의 현재화작업을 체계화하고 있다. 민족경제론의 재구성은 이제 첫발을 떼고 있는 중이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열린세상] 들을 귀와 보는 눈/차동엽 신부·천주교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열린세상] 들을 귀와 보는 눈/차동엽 신부·천주교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성철 스님의 그 유명한 말이다. 당연한 듯한 이 말은 그저 단순한 의미로 해석될 수 없음을 안다. 이 오도송(悟道頌)을 이해하는 수준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일 것이다. 범부들에게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말일 터요, 인식론과 해석학에 좀 전문적 조예가 있는 전문인에게는 뭔가 유의미한 진술일 터요, 고승들에게는 무명(無明)과 열반(涅槃)의 경계를 넘나드는 삼매경의 환호일 수 있을 터이다. 그러므로 한 구도자의 일생에 거친 명상으로부터 나온 그 깊이 있는 철학을 함부로 논하는 것은 경솔이며 무례라 할 수 있다. 같은 말을 들어도 각자의 이해력만큼만 알아듣는다. 같은 현상을 보아도 각자의 안목만큼만 본다. 이에 대하여 지난 세기 하반기에 문학계의 거두로 존경받았던 구상 시인은 노년에 이르러 경험한 신세계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 바 있다. “이제사 비로소/두 이레 강아지만큼/은총에 눈이 뜬다.//이제까지 시들하던 만물만상이/저마다 신령한 빛을 뿜고/그렇듯 안타까움과 슬픔이던/나고 죽고 그 덧없음이/모두가 영원의 한 모습일 뿐이다.//이제사 하늘이 새와 꽃만을/먹이고 입히시는 것이 아니라/나를 공으로 기르고 살리심을/눈물로써 감사하노라.(하략)” 시인이 ‘두 이레 강아지만큼’ 눈 떠서 접한 ‘은총’은 이렇게 시인의 세계관과 삶의 자세를 바꾸어 놓았다. 곧 냉철한 이성으로 생로병사에 깃든 영원의 편린을 꿰뚫어 보게 하였으며 천진의 감성으로 ‘하늘’의 보살피심에 눈물 흘리게 하였다. 요 몇 주, 새롭게 공개된 마더 테레사의 편지들로 인해 국·내외 언론은 들끓었다. 테레사 수녀의 10주기를 기념하여 발간된 책 속, 테레사 수녀가 고해 신부에게 보낸 40여 통의 편지에서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기도하려 해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신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고통을 호소하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공격적인 무신론을 주장하는 논객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한 방송국 난상토론 자리에서 “아주 감동적이고 정직한 고백”이라며 환영했다. 국내에서도 일면 그대로를 받아들인 다양한 여론들이 반사적으로 쏟아졌다. 이런 글들을 접하면서 필자는 앞에서 언급된 바 이해력과 안목의 차이에서 기인된 ‘경솔’ 내지 ‘무례’를 연상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우연스럽게 필자의 생각과 광범위하게 오버랩되고 있는 한 시인의 건강한 사량(思量)을 대면하였다. 토를 달 것도 없이 블로그에 실린 조병준님의 글을 발췌하여 소개한다. “… 평생을 ‘몸의 고통’과 싸우며 살아야 했던, 자신의 몸이 아니라 ‘타인의 몸’의 고통과 싸우며 살아야 했던 사람이 신의 존재를 매순간 확인할 수 있었다면, 그게 차라리 거짓말이 되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쓰레기터에 버려진 아기들을 보면서 어찌 신의 존재를 회의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며 구더기가 파먹고 있는, 그러나 아직 살아 있는 육신을 만지면서 어찌 신의 부재를 의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중략) 이미 여러 번 말로 했고 글로 썼던 이야기지만 오늘 한 번 더 반복하련다. 내가 마더 테레사와 사랑에 빠졌던 그 아침의 이야기를. 새벽 6시에 시작하는 수도원의 아침 미사. 마더 테레사는 언제나 바로 저 자리에 저 자세로 앉으셨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새벽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신부님의 강론에 졸립고 지겨워 내가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을 때 거기서, 마더 테레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계셨다. 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리하여 너무나 신성한…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던, 앞으로 가톨릭이 될지 말지 아무도 모르는. 내가 신을 만난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저 연약한, 저 부서지기 쉬운 몸을 가진 인간이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해냈구나…(하략)” 차동엽 신부·천주교인천교구 미래사목연구소장
  • [인도통신] 선종 10주년 마더 테레사의 빛과 그림자

    [인도통신] 선종 10주년 마더 테레사의 빛과 그림자

    가난하고 버려진 이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테레사 수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인도 콜카타(Kolkata)를 비롯 세계 곳곳에 그녀의 사랑의 흔적은 아직도 여전하다. 선종 10주기인 지난 5일 콜카타 시내 빈민가에는 콜카타 대주교가 주관하는 미사를 비롯 ‘빈자의 성녀’를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열렸다. 현재 테레사 수녀가 콜가타에 세운 사랑의 선교회는 여전히 ‘마더 하우스’로 불리우며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테레사 수녀의 선종 후 선교회가 제대로 운영될 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지난 10년 동안 사랑의 선교회는 더 확대돼 더 많은 국가에 병원이 지어졌으며 소속된 수녀도 4천800명에 750개 이상의 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편지형태로 된 그녀의 심경고백론이 공개되면서 마더 테레사가 생전에 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과 고민으로 가득했었다는 충격적인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생전 그녀가 가난한 자 중에서도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신의 부름을 들었다고 고백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자신의 심경을 나누었던 서한 40통을 모아 출간된 내용 가운데 ‘주께서 제 안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둠, 냉담, 공허의 현실이 너무도 커서 제 영혼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라고 고백한 부분 등이 언론의 집중 화살을 받았다. 이같은 내용을 출간에 앞서 입수한 일부 언론들은 테레사 수녀가 신의 부재로 번민했으며 드러난 그녀의 신앙관 때문에 성녀 반열에 올리는 절차에도 적지 않은 파문이 예상된다고까지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테레사 수녀의 번민에 대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 1일 젊은 가톨릭 신도 30만명에게 한 연설에서 “깊은 신앙으로 자선활동을 폈던 테레사 수녀조차 하느님의 침묵으로 고통 받았다.”며 “때때로 모든 신자들은 이런 하느님의 침묵을 견뎌내야 한다.”고 밝혀 파문을 일축했다. 1929년 콜카타에 온 알바니아 출신인 테레사 수녀는 아그네스 곤자 보와쥬라는 본명보다 ‘가난한 자의 어머니’, ‘빈자의 성녀’로 더 알려져 있다. 1997년 9월 5일 밤 인도 캘커타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2003년 교황청에서 시복(교황이 성덕을 인정해 복자로 선포함)돼 시성(성인 또는 성녀로 추대함)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숱한 난관에 부딪치면서도 가난으로 죽어가는 사람들과 나병 환자, 버려진 아이들, 노인들에게 끈질기게 사랑을 전했던 테레사 수녀는 선종 10주년을 맞아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받고 있다. 나우뉴스 인도통신원 김대석 redarcas@gmail.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프린세스 다이애나의 삶과 죽음

    케이블·위성TV 스타일 채널 온스타일은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10주기를 맞아 31일 밤 10시 ‘프린세스 다이애나 스페셜’을 방송한다. 방송은 결혼 이후 찰스 왕세자의 불륜과 이에 따른 불행한 결혼생활은 물론 공식 별거 이후의 생활 등 왕세자비가 아닌 평범한 아내이자 여자로서의 삶을 산 다이애나의 생활을 조명한다. 다이애나비는 1997년 8월31일 파리에서 파파라치를 피해 차를 몰다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사망했다.
  • 카밀라, 다이애나 추모 불참

    찰스 영국 왕세자와 재혼한 카밀라 파커 볼스가 31일 런던 가즈 채플에서 열리는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10주기 추모식에 참석하려다 반대 여론에 밀려 불참 의사를 밝혔다. 카밀라는 26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다이애나의 추모식에 초청해준 윌리엄 왕자와 해리 왕자에 감동을 받아 참석을 결정했었다.”며 “그러나 내가 참석하는 것이 추모식에 대한 관심을 변질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카밀라가 추모식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영국 전역에서는 “다이애나에게 고통을 안겨준 여성이 추모식에 참석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다이애나는 찰스 왕세자와 이혼하기 전인 1995년 TV인터뷰에서 “우리 결혼 생활에는 세 사람이 있다.”며 찰스와 카밀라의 관계 때문에 고통받고 있음을 내비쳤다. 추모식 참석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자 카밀라는 여왕에게 자신이 처한 곤경을 토로했고, 여왕의 재가를 받아 불참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영국 언론들은 전했다. 당초 카밀라는 추모식 참석을 꺼렸으나 찰스 왕세자가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님은 갔지만 우리엔 거울 같은 존재”

    “님은 갔지만 우리엔 거울 같은 존재”

    “저뉘는 어드메련가. 믈옥(수정)으로 순정하였으므로 아릿다운 글지(작가)였거늘, 아지못게라(알 수 없어라). 비롯됨도 없고 마침도 없음이여. 그대의 나그넷길 소솜(잠깐)하였다 누가 말하는가.…해는 져서 달이 뜨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뵤-뵤-(새가 둥글게 원을 그리며 천천히 도는 모양)산 새 한 마리 갑션무지개(쌍무지개) 사이로 날아가누나. 창밖의 흙바람 소리 들으며 천근번뇌를 보태고여.” 서른넷의 나이로 요절한 소설가 고 김소진(1963∼1997)씨의 묘비에는 ‘월헝청(옆눈 팔지 않고 후다닥 닿듯이 걸어가는 모양) 어디로 가시는가’라는 제목의 비문이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말로 적혀 있다. 적지 않은 문단지기들이 우리 문학에서의 ‘김소진 부재’ 후유증을 걱정하고 있는 가운데 김씨 10주기를 맞아 동료 및 선후배 문인 30명이 그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글을 엮었다. 추모문집 ‘소진의 기억’(문학동네 펴냄)은 그렇게 태어났다. “통유리창에 내리는 비는/아무것도 내리지 않고/전망을 가로막는 아파트 몇 동도/그 끄트머리 산등성이도/저 아래/가로수도 우산도 자동차도/골목길도 내리지 않고/무거운 것이 스스로 내려앉으며/흐려지는 것이다.//천둥 번개 다 지나고 헐벗은/한 여인이/남는 것처럼.//김소진,/죽은 지 십 년.//이 놀라운 기적./” 시인 김정환씨는 이렇게 ‘김소진 죽은 지 십년’을 아쉬워했고, 김기택, 신현림, 이진명, 장대송, 장철문, 안찬수씨 등이 시를 보탰다. 소설가 이혜경씨는 산문에서 생전 한번도 본적 없는 김소진을 꿈속에서 두번이나 만난 기억을 소개하면서 그에게 ‘쐬주’ 한 잔을 바치고 싶다고 토로했다. 소설가 천운영씨도 자신의 습작 ‘쥐덫’과 김소진의 등단작 ‘쥐잡기’의 유사성에서 비롯된 그와의 ‘인연’에도 불구하고 단지 자신은 김소진이 아닌 그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만 만났다며 아쉬워했다. 소설가 전성태, 권여선, 조헌용, 윤성희, 김중혁씨 등은 소설을 헌정했다. 절친한 동료였던 안찬수, 정홍수, 진정석씨 셋이 엮은 추모문집에서 편자들은 ‘김소진 소설’이 19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의 어떤 편향과 맹목을 되비쳐 주는 하나의 거울과도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2007년 현재 시점에서 김소진을 다시 읽어보는 일은 의례적인 추모행위를 넘어 한국소설의 좌표를 점검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당대적 실천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김소진은 1991년 ‘쥐잡기’로 등단한 이후 6년 동안 그야말로 열정적으로 글을 썼다. 네 권의 소설집과 장편 2권, 한 편의 미완성 장편, 콩트집 2권, 동화 1권, 산문집 1권 등을 남겼다. 작품들은 대부분 중심에서 배제된 주변적인 것들에 대한 본래의 애착과 공감을 담았다. 그가 타계한 4월22일 하루 전인 21일 낮 경기도 용인공원묘원 그의 유택에서는 문우들이 모여 또다시 그를 추모했다. 김정환 시인의 추도시 발표에 이어 등단작 ‘쥐잡기’와 유작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를 후배 작가들이 낭독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3.5차원의 조각 vs 저항적 추상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1977년 함께 입학한 조각가 윤영석과 박희선이 30년 뒤 보여주는 작품세계는 서로 많이 다르다. 오는 4월22일까지 서울 로댕갤러리(02-2259-7781)에서 ‘윤영석:3.5차원의 영역’이란 제목으로 개인전을 갖는 윤영석은 독일 유학 이후 미묘하고 개념적인 작업을 선보여 왔다. 금속, 돌, 나무 등 그동안 조각가들이 흔히 사용했던 소재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2003년부터 국내에서 독보적으로 시도했던 렌티큘러(입체사진) 작업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보는 방향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는 렌티큘러로 눈동자의 움직임, 발레리나의 발동작, 움직이는 농구공 등을 표현했다. 전시회장 입구에는 당구큐대를 잡은 거대한 손인 ‘제로섬 게임을 넘어서’가 설치돼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손가락이 6개다. 복제양 돌리를 인용하여 과학과 문명에 대한 인간의 과도한 집착을 해석하는 ‘표본실의 양들’ 등 작가는 우리가 사는 3차원 공간을 넘어 시공간이 일치된 4차원에 도달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김종영미술관(02-3217-6484)에서 오는 4월26일까지 10주기 추모전이 열리는 박희선은 기억 속에서 다소 희미한 조각가이다. 41살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난 작가는 ‘저항적 추상미술’이란 한국미술사에 독보적인 작품을 남겼다고 미술관측은 평가했다. 유족들이 10년 넘게 보관해오던 작품들은 여전히 서슬이 시퍼렇고 시대의식이 살아 숨쉰다.1980년대에 한반도의 역사, 통일, 생명과 같은 주제에 골몰했던 작가는 종류가 다른 여러 나무토막을 끼워 맞춰 작품을 완성하는 전통적 제작방식을 사용했다. 재료를 통째 깎는 것이 아니라 나무못으로 조각들을 끼워 맞춰 작품을 완성, 통일에 대한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여린 나무 속살에 도끼를 찍어 넣은 작품 ‘한반도’는 시각적 충격과 아슬아슬한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윤영석은 “박희선이 전통적인 한국성에 천착했다면, 나는 조각의 영역 확장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같은 시대를 살았고, 비슷한 것을 배웠던 두 조각가가 어떻게 판이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이지운특파원 베이징은 지금] 춘절맞이 폭죽놀이와 덩샤오핑 사망10주기

    올 춘제(春節·설)를 맞은 베이징은 유별났다. 폭죽놀이 제한이 전년보다 완화되면서 17일 밤∼19일 새벽 도심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폭죽음으로 가득찼다. 간단한 산술로도 폭죽에 드는 금액은 천문학적이다. 한국 돈 5만원어치로는 5분 정도밖에 즐길 수 없다. 동네 조그만 네거리를 들여다보자.5만원어치가 10곳에서 동시에 터져대면 5분에 50만원,1시간이면 600만원 이상이 들어간다. 폭죽놀이는 저녁이면 보통 5∼6시간 쉼없이 이어지므로 최하 3000만원을 웃도는 돈이 하룻밤새 연기로 사라지게 된다. 올해 베이징시 당국이 시내 중심까지 폭죽놀이를 허용한 것은, 이렇게라도 ‘분출’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판단이 감안된 것으로도 알려진다. 폭죽놀이는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진다. 19일 낮 베이징 도심은 폭죽놀이와 대비돼 유난히 조용했다. 이날은 덩샤오핑(鄧小平) 서거 10주년. 춘제가 덩을 덮어버린 듯한 양상이다. 선부론(先富論)을 제시했던 덩은 과연 오늘날 빚어진 극심한 양극화의 책임자로 묻혀져 가고 있는가. 이와 관련,‘덩의 추모 분위기가 썰렁한 것과 덩이 조화사회의 적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식의 한국 언론보도가 중국에 소개된 점이 눈길을 끈다. 일부에서는 중공중앙문헌연구실 제3편집연구부 옌젠치(閻建琪) 주임의 입을 빌려 이에 대한 반박을 시도했다. 옌 주임은 “마오쩌둥(毛澤東) 서거 때는 10년 문화혁명으로 사회가 피폐해져 모두 근심했으나, 덩의 서거 때는 국민이 동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마오와 덩은 사망 자체부터 다르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을 거론하며, 조용한 추모 분위기와 덩에 대한 평가는 별개란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셈이다.“이미 2004년 8월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가 전국적으로 이뤄진 마당에 새삼 10주년 추모 행사를 성대하게 할 필요가 있었겠느냐.”는 분석도 없지 않다. 적지 않은 지식인들은 “마오에 대해서도 7대3의 공과론이 나오는 중국에서 어떻게 양극화의 원죄를 덩에게 씌울 수 있겠는가.”라며 덩의 책임론을 일축하고 있다. 결국 춘제 폭죽놀이가 덩을 가린 것은 아니라는 얘기. 사망 10주기에 덩에 대한 평가를 바란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일인가.jj@seoul.co.kr
  • [부고] 계응태 北 노동당 비서 사망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의 계응태 공안담당 비서가 폐암으로 숨졌다고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이 25일 보도했다.노동당 중앙위는 이날 부고를 통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당 중앙위원회 비서로 사업하다가 연로보장을 받고 있던 계응태 동지가 폐암으로 23일 오후 2시30분 81세를 일기로 서거했다.”고 전했다. 숨진 계 비서는 평안남도 평안 출신으로 노동당 중앙위 국제부 부부장(1957), 외무성 부상(1960), 무역성 부상(1962), 당 중앙위 위원(1970), 당 정치국 후보위원(1981), 정무원 부총리(1982) 등을 거쳐 1985년부터 당 중앙위 공안담당 비서를 맡아 왔다. 그는 치매를 앓아 2004년 중국에서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2004년 7월 김일성 주석 10주기 중앙추모대회 주석단에 서열 10위로 이름을 올린 뒤 그동안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17년만에 만나는 故박항섭 화백 유작

    작고 화가 박항섭(1923∼1979)의 그림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소설가가 ‘서커스’란 제목의 8호짜리 박항섭 그림에 매혹된 나머지 세들어 있던 전세방 한 칸을 남에게 내주고 300만원을 받아 그림을 샀다는 거짓말 같은 일화다. 박항섭 그림의 진정성을 대변해주는 이야기로 미술계에서 회자된다. 황해도 장연 출신인 박항섭은 일본 도쿄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구상전 창립에 참여했던 작가로 1·4후퇴 때 남쪽으로 내려온 윤중식, 최영림, 황유엽, 박수근 등과 함께 활동하며 국전에서 기반을 다졌다.20회 예술원상을 수상하고 대한민국예술대전 심사위원과 중앙미술대상전 운영위원을 역임하는 등 생전에도 주목받았던 작가다. 지난 79년 쉰여섯 짧은 생을 마감했던 박항섭의 작품세계를 돌아볼 수 있는 유작전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 두가헌에서 열리고 있다. 독특하고 자유로운 화면구성으로 정감 있는 현대미를 추구했던 그의 독창적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다. 현대화랑의 81년 유작전과 호암갤러리의 89년 10주기 전시 이후 17년 만이다. 그의 그림은 겉 꾸미기가 아닌 작가의 고백 자체란 평가를 받는다. 그만큼 미적 현재성이 있고, 그것을 아는 이의 마음을 휘어잡는 마력이 있다.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은 유족들과 개인 소장자들이 내놓은 작품 23점이다.‘감의 계절(季節)’‘얼굴’,‘하일(夏日)’,‘정(情)’ 등 대부분 70년대 중반에 완성된 작가의 말년작들이다. 소품이지만 작가의 진면목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작들이다.24일까지.(02)3210-2111.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새앨범] 요절가수 고(故)김광석 패키지음반

    사망 10주기를 맞은 김광석의 3집과 4집,‘다시 부르기’ 1집과 2집을 묶은 패키지 음반 2장이 25일 발매된다. 미국에서 생활하다 귀국한 김광석의 딸 서연양이 아버지의 노래를 직접 부르는 공연도 추진중이다. 장소와 날짜는 미정. 만월당.
  • 이산가족 상봉중단 장기화 가능성

    북한이 일방적으로 중단을 선언한 이산가족 상봉이 언제나 재개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북한은 한반도 정세 등을 이유로 걸핏하면 이산가족 상봉 카드를 들고 나왔다. 2001년에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우리 정부의 비상경계 강화조치를 이유로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1년 2개월여 동안 멈췄고,2004년에 고 김일성 주석의 10주기 조문 불허를 트집잡아 1년 넘게 중단된 적이 있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중단카드로 남측을 압박해 왔기 때문에 관심은 언제 재개되느냐는 것이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중단은 겉으로는 쌀·비료 지원유보에 연결돼 있지만 실제로는 미사일·6자회담 복귀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법찾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20일 “빠른 시일 내에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히면서도 “당분간 남북관계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장기화 가능성을 감추지 않았다. 북한이 금강산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산가족 면회소 건설현장에서 인력을 철수하라고 추가 통보해 온 데서도 북한의 추가 조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종석 장관은 북한이 취할 추가 조치에 대해 “예단하지 않겠다.”면서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미국 등에서 개성공단을 문제삼을 경우에 북한은 개성공단 인력 철수 등도 요구할 수도 있다. 북한은 인도적 차원의 대북 쌀·비료 지원거부에 인도적 차원의 이산가족 상봉 중단이라는 강수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재개의 분위기와는 더욱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미사일 사태가 해결될 수 있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이산가족 상봉중단 사태는 장기화될 가능성도 높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10월에 예정돼 있는 남북장관급 회담 때까지 5자회담으로 6자회담의 토대를 만들고 남북적십자 회담을 자연스럽게 열어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꽃·여인 주제 반세기 조명

    ‘꽃과 여인과 태양의 작가 임직순 10주기전’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다. 임직순은 탄탄한 조형성과 화려한 색감을 통해 강렬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을 남겼다. 이번 전시에선 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꽃과 여인과 풍경을 주제로 한 작품 100여점과 드로잉, 수채화 50여점을 선보인다.30일까지.(02)734-6111.
  • [Book & Life] 평전 읽기의 괴로움

    무릇 글을 쓴다는 것이 다 그렇지만 평전(評傳)을 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인물의 내면에 육박해 그 정신세계를 빈틈없이 포착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때론 신화가 된 인물을 ‘지금, 여기’로 끌어내 가상의 대화라도 나눌 필요가 있다. 그만큼 한 인물의 진면목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소설적 상상력과 구성력, 대중적인 필력만 갖췄다고 해서 모두 평전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안경환 서울법대 교수가 펴낸 ‘조영래 평전’(도서출판 강)은 우리 평전문화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한다. 저자는 1990년 마흔셋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인권변호사 조영래의 열정적인 삶을 개인사와 시대사를 넘나들며 다룬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해 조영래 변호사의 유족이 “사실 왜곡이 심각하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또 권인숙 명지대 교수는 ‘인물과 사상’ 4월호에서 ‘조영래 평전에는 조영래가 없다.’라는 기고를 통해 “‘조영래 평전’이 형식과 내용 면에서 평전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않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이 책은 10주기 추모 다큐멘터리 등 이미 공표된 문헌과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제한된 범위의 사적 인터뷰 내용을 반영한 것으로, 서문에서도 이런 사실을 밝히고 있다.”고 반박한다. 그런 한편 “글의 형식이며 내용도 필자 자신의 편견과 무지, 성의와 무성의가 고스란히 담긴 결함투성이의 미완성품”이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는 왜 애당초 감당하기 어려운 평전작업에 손을 댔을까.‘글쓰기의 유혹’에라도 빠진 것일까. 글쓰기를 ‘권력’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영래 평전’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허명(虛名)이 실명(實名)을 능가하는 사람은 단명(短命)한다.” 이른바 ‘잘 나가는’ 사람에게 이만큼 경종이 되는 경구도 드물다.)(86쪽) 이것은 물론 텍스트의 전후 맥락을 잘 살펴가며 읽어야 한다. 수사적인 표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 조영래의 ‘세상을 바꾼 아름다운 열정’을 다루는 평전에 굳이 그런 자극적인 글줄을 끼워넣어야 했을까. 한 인물의 사상적·정신적 궤적을 깊이있게 다뤄야 하는 평전작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와 언어에 대한 균형감각이다. 철저한 취재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책상머리 평전’은 결코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 우리의 평전출판, 특히 국내 인물에 대한 평전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개정판까지 내며 50만부 이상 팔려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전태일 평전’(도서출판 돌베개)같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우리 평전시장은 아직 열려 있지 않다. 이런 현실에서 모처럼 나온 ‘조영래 평전’이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사를 생동감 있게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산 인물들의 평전을 읽는 것이다. 역사 속에 박제화된 인물을 피가 돌고 살냄새 나는 인간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데 평전의 진정한 매력이 있다. 지식과 정보가 담긴 향기나는 평전을 우리는 언제쯤 읽을 수 있을까.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김광석을 그리다

    가수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6일 고인의 팬들을 중심으로 한 추모 모임이 곳곳에서 열렸다. 그러나 정작 김광석이 속했던 음악계 인사들이 주축이 된 행사는 열리지 않아 10주기가 조용한 분위기 속에 지나갔다. 김광석의 팬 모임인 인터넷 동호회 ‘둥근소리(www.oneum.net)’ 회원들은 이날 서울, 광주, 울산 등에서 모임을 갖고 그의 노래를 부르며 고인을 기렸다.이들은 내달 중순에는 트리오 자전거탄풍경의 멤버였던 풍경(송봉주), 그룹 동물원 등을 초청, 추모콘서트를 열 준비도 하고 있다. 대전 세이백화점 아트홀에서는 이날 고인의 팬과 후배가수들이 모여 그의 노래를 부르는 공연이 마련됐으며 고인의 유골이 안장된 서울 창천동 안양암에서도 여러 인터넷 팬 카페의 회원들이 모여 추모 행사를 가졌다. 추모가요제까지 개최되고 있는 가수 유재하와 달리 김광석을 추모하는 공식 행사가 없는 점에 대해 둥근소리 운영자 이승우(30)씨는 “유족 간에 저작권 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정식 추모공연을 열겠다고 누구 하나 나서기 힘든 상황인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김광석은 지난 96년 1월6일 자신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강원대 이병천 교수 새개념 ‘개발자본주의론’ 2일 학술대회

    강원대 이병천 교수 새개념 ‘개발자본주의론’ 2일 학술대회

    ‘따라잡기와 벗어나기를 넘어서자.’ 자본주의에 대한 후진국의 태도는 두 가지였다. 어떻게든 열심히 노력해 선진국을 따라잡든지 아니면 선진국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서 벗어나든지. 좌파는 이탈을 택했다. 그러나 이 선택은 실패였다. 박정희 개발독재의 모순 때문에 망할 것이라던 한국은 80년대 외려 고도성장을 이어 나갔다. 곧 현실사회주의권 국가들도 줄줄이 무너졌다. 좌파는 어떻게 해야 하나. 현실사회주의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었다며 여전히 자본주의의 몰락을 기원(?)하는 종말론자로 남아야 하나. 솔직히 현실적 대안이라 보기 어렵다. 아니면 좌파였던 과거를 회개하고 전향할 것이냐. 이는 성장과정의 갖은 희생자들을 무시하는 처사다. 이런 좌파의 딜레마를 풀기 위해 강원대 이병천 교수가 ‘개발자본주의론’을 들고 나왔다. 지난해 아이디어를 낸 뒤 1년여 작업 끝에 대략의 틀을 잡아 2일 성공회대에서 열리는 사회경제학계 공동학술대회에서 ‘개발자본주의 개념구성 시론’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대회는 한국사회과학연구소·한국사회경제학회·한국산업노동학회·대안연대 합동 주최로 열리는 고 박현채 선생 10주기 추모대회다. ●“산업화가 이미 갈등이다” 이 교수는 기본적으로 산업화를 자본주의 체제 이행의 관점에서만 설명하는 것에 반대한다.“체제 이행 논의로만 보면 자칫 현재의 결과로 과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정당화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 기준만 적용한다면 왜 유신이 탄생했고, 박정희는 비극적으로 죽었고, 광주사태는 왜 일어났습니까.” 체제이행적 관점은 자본주의를 ‘가야 할 길’로 전제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갈등은 무시해 버린다는 비판이다. 그래서 이 교수는 그냥 산업화라 하지 않고 ‘쟁투적’ 산업화라 부른다.“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산업화 과정 안에 갈등 지점들이 이미 들어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겁니다.” ●“단선적 발전론을 버려라” 그래서 이 교수는 ‘개발국가론’의 폐기를 주장한다. 개발국가론은 한국 등 동아시아의 성장을 ‘국가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설명하는 이론. 그러나 국가의 힘 역시 그것을 받아들이는 문화와 그때그때 권력관계에 의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그래서 산업화를 볼 때 국가의 능력뿐 아니라 이에 대응하는 시민정신까지 함께 보자고 제안한다. 이 교수는 이 두 잣대로 산업화 과정의 유형화를 시도한다(표 참조). 예컨대 프랑스는 강력한 혁명적 전통으로 인해 합의에 의한 산업화가 진행된 반면, 자이르 같은 곳은 이런 조건들이 전혀 없어 아예 산업화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은 국가의 강력한 주도가 있었으나 사회적 합의는 부족한 개발자본주의 유형이다. 이 교수는 이런 논리를 통해 산업화와 근대화를 일직선상에 놓고 설명하는 모든 종류의 발전단계론을 폐기하자고 주장한다.“발전단계론을 놓고 각국을 보면 보편성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모습을 보입니다.”그렇기에 이 교수는 자신의 유형화 작업조차도 ‘제한적 일반화’라 불렀다. ●다이내믹한 이론 구성을 위해 개발자본주의론은 이 교수가 오랫동안 몸 담아왔던 제도경제연구회 멤버들과 의견을 교환한 끝에 내놓은 주장이다.“산업화의 성공이나 성장만 보는 게 아니라 그것이 품고 있는 긴장과 모순까지 드러내는 역동적인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제도경제학의 성과와 우파·좌파의 논리까지 모두 수용한 것입니다.”그러나 무척 긴장되는 것도 사실이다.“꼭 옳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만든 개념인 만큼 학계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으면 합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조각가 문신 10주기 추모전

    그의 조각 하나하나는 생명 그 자체다. 자연속의 식물, 곤충, 새들의 모습과 닮은, 좌우 대칭의 모습으로 생명을 떠받친다. 마치 살아 움직이는 오브제같기도 하고, 커다란 보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의 10주기 추모전이 22∼30일 인사동 윤갤러리에서 열린다. 생전 “노예처럼 작업하고 신처럼 창조한다.”는 치열한 작가정신을 보인 작가의 독특한 조형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다.이번 전시회에는 1960년대 파리의 초라한 자취방 시절 창작한 것부터 임종 전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우면서 창작한 소품 조각 22점이 선보인다. 문신 예술세계의 아픔과 성장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소품 브론즈 조각들은 그의 유명한 개미시리즈와 원생동물, 사랑 등을 추상형태로 남긴 작품이다.(02)738-1144.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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