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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탕카멘 전차에서 떨어져 숨졌다”

    3000년 전 이집트 황금 마스크 미라로 유명한 투탕카멘왕을 둘러싼 죽음의 미스터리가 풀렸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22일 그가 사냥 중 달리는 전차에서 굴러떨어진 후유증으로 사망했다는 과학자들의 분석을 전했다. 투탕카멘왕이 정치적 암투 끝에 살해됐다는 그간의 설을 뒤집는 보도다. BC 1343년 10살의 어린 나이로 이집트 18왕조의 파라오 자리에 오른 소년왕 투탕카멘은 19살에 갑작스럽게 사망했다.1922년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그의 무덤을 발굴한 이후 투탕카멘의 죽음을 둘러싼 궁금증은 증폭돼 왔다. 나이 어린 왕이 정치적 암투 끝에 살해됐을 것이란 소문은 정설로 굳어져 있었다. 1968년 촬영된 투탕카멘 미라의 X선 사진에는 두개골이 부어 있어 머리에 일격을 맞고 사망했을 것이란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의학용 CT촬영 결과 그가 사망 직전 추락으로 인한 왼쪽 대퇴부 골절을 입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그가 골절로 인한 패혈증으로 숨졌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영국 채널5 TV는 23일 이런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 이집트의 투탕카멘 전문가 자히 하와스는 “소년왕의 예기치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설명해 줄 실마리가 나왔다.”고 밝혔다. 사인이 전차추락으로 밝혀지면서 투탕카멘이 가냘픈 응석받이 어린 왕이었을 것이란 역사학자들의 추론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야외활동을 즐기는 혈기왕성한 청년이였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카이로 박물관의 나디아 로크마 박사는 “파라오의 무덤에서 나온 사냥용 전차를 분석한 결과 단순한 의식용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된 마모 흔적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함께 발굴된 특수고안된 코르셋도 전차 사고로 생길지 모를 장기 손상을 막기 위한 것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佛대통령 사르코지 이혼하러 법정출두

    |파리 이종수특파원|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 세실리아 여사가 15일 정식 이혼절차를 밟기 위해 법원에 출두했다고 주간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인터넷판이 17일 보도했다. 신문은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대통령 부부가 이날 저녁 늦게 함께 법원에 출두해 판사 앞에서 이혼 문제를 구체적으로 협의했다고 전했다.AP통신은 사르코지의 대변인이 이 신문 보도에 대해 논평하기를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지난주 로렌지역 일간 레스트 레퓌블리캥은 엘리제궁과 가까운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곧 두 사람이 이혼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한 뒤 이혼설이 급부상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달 초 세실리아 여사가 전격 방문계획을 취소한 가운데 불가리아를 방문했는가 하면 22일에도 혼자 모로코를 공식 방문할 계획이다. 1996년 각각의 배우자와 이혼하고 결혼한 두 사람은 10살된 아들 루이를 두고 있다. 사르코지는 전 배우자와의 사이에도 두 딸과 두 아들이 있다.vielee@seoul.co.kr
  • 줄타기 하는 고릴라판 ‘왕의 남자’

    제2의 ‘공길이’가 나타난 것일까? 영화 ‘왕의 남자’에서 멋진 줄타기 실력을 뽐낸 ‘공길이’ 못지 않는 고릴라가 일본에 나타났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로 단숨에 동물원스타가 된 주인공은 ‘샤바니’라는 이름의 수컷 고릴라. 올해로 10살이 된 샤바니는 호주에서 온 고릴라로 현재 일본 나고야(名古屋)의 히가시야마(東山)동물원에서 최고의 인기스타로 꼽히고 있다. 샤바니는 150cm 키와 110kg 몸무게의 체형으로 지상 3m 높이에서 좌우로 양팔을 뻗으며 줄을 건너 사람과 유사한 줄타기를 보여준다. 또 줄로 이어진 나무판자위에 특별한 먹이가 없는데도 5번이나 줄 위를 왕복하는 샤바니의 모습에 관람객들의 박수와 환성이 끊이지 않았다. 일본원숭이센터의 카토 아키라(加藤章)원장은 “고릴라는 주로 줄에 매달리지 이처럼 줄을 타는 것은 지극히 드문 경우”라며 “아마 줄타기 하는 고릴라는 샤바니가 세계에서 처음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또 “먹이가 없는데로 스스로 줄타기를 하는 것은 아마도 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며 “그러나 더 성장하거나 체중이 늘어나면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관련기사]“동물원이 동물무덤”…5년간 1600마리 죽어 ☞[관련기사]머리에 ‘빨판 달린 물고기’ 中서 발견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전계현·조경철박사 18개월만의 도킹

    전계현·조경철박사 18개월만의 도킹

    「스타」전계현(全桂賢)양(32)이 결혼을 한다. 상대는 천문학박사 조경철(趙慶哲)씨(41·연세대 교수).「아폴로」11 달착륙 해설로 과학계의「스타」가 된 통칭「아폴로」박사다. 결혼식은 2월 15일, 주례는 노산 이은상(李殷相)씨. 장소는 2월6일 현재「워커·힐」이나「크리스천·아카데미」중 택일. 15일로 화촉(華燭)날 잡아놓고 이미 연말(年末)부터 신혼살림 『미워도 다시한번』의「스타」와「아폴로」박사의 결합은 그「쇼킹」한「뉴스」성에도 불구하고 퍽 조용히 비밀스레 추진돼왔다. 두사람 모두 떠들썩한 것을 원치 않았던 까닭일까? 결혼날짜가 박두했어도 그들은 좀처럼 결혼에 관해서 입을 열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이들의 결합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뿐만 아니다. 전계현은 얼마전부터 주소도 전화번호도 행방불명이 됐었다. 증발설이 나올 정도였다. 영화사에서도 그녀에 대한 연락은「매니저」인 이용주란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했다.「매니저」란 사람도 연락사항만 전해줄뿐이지 거처나 전화번호를 알려주진 않았다.『집위치는 잘모르고 전화는 아직 놓지 않았다.』대개 이런 식의 따돌림을 당했다. 이들의 새 보금자리- 결혼식을 10일 앞둔 2월 5일 현재 두 사람은 앞당겨 신혼살림을 하고 있었다. 서울 혜화동 네거리에서 멀지않은 곳. 언덕위는 아니지만 하얀집. 아담하게 단장된 2층 양옥이 이들 두「스타」의 뜨거운 사랑의 집이다. 그 안에서 전계현은 방안 정돈을 하고 있었다. 빨강 꽃무늬가 수놓인 흰색 저고리에 진홍빛 치마. 한복차림이 그녀를 20대의 앳된 신부처럼 돋보이게 했다. 『지난해 12월 12일에 이 집을 사서 20일 이사했어요. 새로 뜯어고치다시피 했는데 아직 정돈이 잘 안되어서-』 조경철박사는 외출했고 전양과 소녀(전양은 동생이라고) 단 두식구가 있는 건평 70평가량의 집안은 유달리 조용했다. 응접실에는「피아노」가 놓였고 그 뒤에는「크리스머스·트리」가 아직도 꽃가루를 쓰고 서있다. 그「크리스머스·트리」뒤에 90호가량의 그림이 한폭. 한복차림의 여인이 그네뛰는 그림이다. 69년 가을 조씨가 전양에게 준 전양 초상화다. 그리고 이 그림이 바로 두사람의 사이를 묶은「사랑의 씨앗」. 비오는 하오의 첫랑데부 “생각보다 소탈해 좋았죠” 전계현의 설명에 의하면 이 그림이 그려진건 69년 여름이다. 두번 만나고 세번 만났을 때 조씨는 전양의 초상화를 그려서 들고나왔다. 상상만으로 그렸다는 것이다. 어느 점이 전양을 닮았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그림솜씨는 보통이상이고 전양에게는 가장 소중한 선물임에 틀림없다. 69년 여름부터,「아폴로」박사와 전양의「데이트」가 시작된건 정확히 69년 8월부터라니까 이들의「랑데부」는 이미 18개월을 꼽는다. 그들 최초의「랑데부」는 조씨의「프로포즈」에서 시작됐다.「아폴로」해설로 그때 이미 방송·TV의「스타」가 돼있었던 조씨는 D방송국 PD인 박(朴)모씨를 통해서 몇번인가 『전계현을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박씨의 전갈을 받은 전계현은 두번째 요청에 응락, D방송의『유쾌한 응접실』에 조씨와 함께 출연키로 했다. 『그날 비가 세차게 왔어요. 광화문 교육회관의 다방에서 약 30분가량 얘기를 나누었죠. 죠. 생각했던 것보다 소탈하고 솔직해 보이는 인품이 호감을 줬어요』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그분은「나는 이런 사람이다」하고 자기의 과거를 털어놓더군요. 북한에서의 소년시절, 월남이후의 학교생활, 미국유학 결혼생활, 그리고 귀국후의 생활등-』 두번째 만나자 전격 구혼…천문학자답잖게 성급해 조경철박사의 인물됨에 관해서는 TV를 통해「스타」못지않게 알려져있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큼직한 안경,「보타이」차림이 어울리는 당당한 사내다운 체구. 과학자이기 보다는「스포츠맨」이나 사업가를 연상케하는 서글서글한 인상을 그는 갖고있다. 천문학 박사의 학위는 미국「펜실베이니어」대학 대학원에서 받았다. 평북 선천태생으로 북한에서는 광산과를 다녔다하고 월남후에는 연세대 물리과를 졸업했다. 처음 미국에 가서는「터스큘럼」대학에 들어가 정치학과를「스트레이트」A로 졸업. 천문학으로 방향을 돌린건 이원철박사의 권유에서였고, 그의 주전공인 변광성(變光星)연구는 저명한 천문학자「페이지」씨가 편저한「스타·라이트」에 수록되는 등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는 것. 참고삼아 미국서의 그의 이력서를 들춰보면 ①미(美) 천문학회원 ②영(英)왕실 천문학회정회원 ③미해군천문대 우주물리부 주임 ④NASA 최고연구원 ⑤미 과학진흥협회 평의원, 그리고 각대학 교수-. 그 자신이 언젠가 말했듯이『5대양 6대주 어디를 가도 조경철 모르는 사람은 천문학자 아니다.』 68년 8월, 그는 정부의「한국의 두뇌」귀국 권장책에 의해 15년만에「두뇌 제1호」로 귀국했다. 과학기술정보「센터」의 사무총장직을 맡으면서 연세대 천문학과장, 성균관대학 강사 등 화려하고 바쁜 일과가 계속되었다. 과학기술정보「센터」의 사무총장직은 2월 5일 사직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아폴로「14호」가 달착륙에 성공한 날. 이날도 조박사는 D방송국에 나와서「아폴로」착륙광경을 해설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전계현과 조씨의「데이트」는 그의 벅차게 바쁜 일과속에서도 꾸준히 계속된 것 같다. 두번째「데이트」는 첫번「데이트」1주일 뒤. 조씨한테서 전화가 걸려왔고 전양이 살고있던 세운「아파트」의「그릴」에서 만났다.「치킨」과「스테이크」를 나누면서 이때 조씨는 단도직입적으로「프로포즈」를 했다한다. 『잊혀진 여인(女人)』보고는 홀딱…초상화 바치며 질긴 구애(求愛) 『그분 성격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무척 당황했어요.「배우자를 어떤 사람을 원하시오, 나와 결혼하는게 어떻겠소?」 이러지 않겠어요?』 전계현은 이때『글쎄요』정도로 끝냈다 한다. 그녀로서는 상대방 사정을 자세히 알지도 못했고 대개 그렇듯이 여배우에 대한 일종의 호기심이나 동경인가 하는 짐작뿐이었다한다. 사실상 그무렵까지 전계현은『다시는 결혼 안한다』고 말해왔다. 그녀는 초혼에 실패하고난 뒤 딸(현재 10살)과 함께 외로우나 별 말썽없이 살고 있었다. 61연도에 결혼해서 66년에 별거생활로 들어갔지만 법적 이혼수속은 68년 8월 2일에야 끝냈다.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다시 화합할 기회를 찾았었죠. 끝내 안오더군요. 혼자 살 결심을 하게 됐었읍니다.』 이런 전계현에게 조경철씨의 집착은 퍽 끈기가 있었던 것 같다. 해외에서 15년만에 돌아온 이 과학자의 가슴에 전계현은 어떻게 해서 불을 지른 것일까 조씨가 전양을 처음 본 것은 69년초 영등포의 한 3류극장에서였다. 그곳에서 전계현주연의『잊혀진 여인』이란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난 조씨는 함께 구경한 친구한테 전양의 얘기를 꼬치꼬치 캐어 물었다. 여기서 그녀가 현재 독신생활을 하고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바쁜 밀회(密會) 거듭, 제주도서 결혼결심 서고 『잊혀진 여인』(정소영(鄭素影)감독) 에서의 전계현은 미국유학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지친, 그래서 잠깐 탈선을 하게된 불행한 여자로 나타난다. 미국가서 새로 결혼한 남편을 멋모르고 기다리는 아내- 이런「드라머」구성이 해외에서 돌아온 조씨에게 색다른 감격이라도 안겨준 것일까? 전·조「커플」의「데이트」설이 새어나온 것은 69년 12월께다. 이때 조씨는『전계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존경한다』고 잘라 말했다. 여성상위의 미국식 표현이었지만 전계현 자신은 그들의「데이트」설을 완강히 부인했었다. 그녀의 배우생활이『미워도 다시한번』의 성공으로「피크」를 이루게 된 무렵, 전계현은 결혼보다「스타」의 위치가 더 소중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이들의「랑데부」는 계속되었다. 비원 뒤뜰, 수유리의 통닭집, 인천, 아현동에 있는「서울·하우스」등이 이들의 밀회장소로 이용됐다. 『「데이트」라고 해도 서로 바쁘기 때문에 잠깐 만나서 사진찍는게 고작이었어요. 나오라고 불러놓고는「카메라」로 몇장 사진찍고, 그 다음번엔 사진을 돌려주고, 큰 맘 먹어야 경인고속도로의「드라이브」정도였죠』 가장 긴「랑데부」는 70년 8월「바캉스·시즌」의 제주도 여행이었다. 그때 조씨는 자신이 조직한 연세대「화우회」학생들을 이끌고 1주일간 제주도에서 사생대회겸「캠핑」을 했다. 그곳에 전계현이 나타났다. 자신의 말로는 공연때문이었다한다. 어쨌든 두사람은 그곳에서 2일간 호젓한 시간을 누릴 수 있었다 전계현이 결정적으로 재혼을 생각한 것은 이 제주도「랑데부」에서인 것 같다. 그는 서울 올라오는대로 조씨의 가정문제를 탐색했다 한다. 그리고『그분이 이혼한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전력(前歷) 있는몸, 서로 감싸고 아폴로가 스타에 연착륙(軟着陸)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조경철씨는「워싱턴」에 부인 김상경(金相卿)씨(40)와 두 아이가 있다. 김상경씨는 바로 삼양(三養)재벌의 총수인 김연수(金秊洙)씨의 따님.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씨의 조카딸이다. 조씨는 67년 4월에 부인과 정식 이혼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매달 자녀 양육비를 보내주고 있는 실정. 그런데 조경철씨의 호적에는 이혼은 커녕 결혼한 사실도 없다.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3가 423의 조씨 호적은 결혼도 이혼도 없는 깨끗한 여백. 전양은 적어도 법률상으로는 총각인 조씨에게 본처로 입적하게끔 돼있는 것이다. -결혼후에도 영화배우는 계속할 것인지? 이 물음에 전양은 대답했다.『그분은 좋은 작품이라면 한해 한두편 정도는 해도 좋다고 말해요. 저로서는 가정주부로 만족하고 싶어요. 서로가 너무 오랫동안 가정을 몰랐거든요』 두뇌와 미모의 결합이라고 하면 일찌기「마릴린·몬로」와「아더·밀러」의「센세이셔널」한 결혼을 들 수 있다. 이와 비교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어쨌든「아폴로」박사와「스타」전계현의「도킹」이 행복한 가정에의 연착륙이 되기를「팬」들은 바라고 있다. [선데이서울 71년 2월 14일호 제4권 6호 통권 제 123호]
  • [이주의 책갈피]

    ●10살 전 꿀맛교육 어려서 공부습관을 길러주는 부모의 지도 방법을 알려준다. 자녀 셋을 기르면서 10살 때까지 공부습관을 잡아준 결과 학원을 보내지 않고도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저자의 자녀 공부 지도법을 엿볼 수 있다.21세기북스.1만원.●친절한 도형교과서 수학 도형을 어려워하는 중학생을 위한 수학 교양·참고서. 교과서를 바탕으로 도형과 관련된 수학의 원리를 기초부터 알기 쉽게 설명한다. 도형에 관한 설명이 주를 이루지만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얘깃거리가 많아 수학을 부담스러워하는 학생들에게도 권할만 하다. 도형의 기초와 도형의 성질과 닮음, 피타고라스와 원 등 세 권으로 구성됐다. 도서출판 부키. 각권 1만 1000원.●논술, 사고(思考)치다 인기 논술 강사가 쓴 논술 공부의 모든 것. 흔히 빠지기 쉬운 논술의 함정을 알려주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논술이라면 손사래를 치는 ‘논술 울렁증’에 걸린 학생들이라면 한번쯤 참고할만 하다. 황매.1만 2000원.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헉! 독극물사건 꾸민 범인은 10살짜리 소년

    “뭐요,한 가족을 완전히 몰살시키기 위해 ‘독극물’사건을 꾸민 주인공이 이제 겨우 10살짜리 소년이었다구요?” 중국 대륙에 10살짜리 소년이 학교에서 자신을 왕따시키고 괴롭히는 친구 가족들을 모두 살해하려고 찻물에 농약을 타는 사건이 발생하는 통에 충격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충격적인 농약 사건’의 장본인은 중국 중부 안후이(安徽)성 쑤쑹(宿松)현 류핑(柳坪)향 추산(邱山)촌에 살고 있는 우(吳·10)모군.초등학교 3학년생인 그는 부모가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가 뜬벌이 생활을 하는 바람에 할머니와 함께 살다보니 손버릇이 나빠져 여러차례 남의 물건을 후무리다 들켜 학교 내에서는 문제아로 찍힌 상태였다. 이런 문제아인 우군은 학교에서 자신을 왕따시키고 괴롭히는데 대해 친구에게 앙심을 품고 그 친구의 가족을 몰살시키기 위해 찻물에 농약을 타는 사건을 저지른 혐의로 붙잡혀 주변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고 안휘상보(安徽商報)가 20일 보도했다. ‘독극물 농약 사건’은 지난 15일 발생했다.그날 오후 류핑향 추산촌의 한 집에서 절도사건이 일어난데 이어 저녁에는 이들 가족 모두 농약에 중독사건이 발생했다고 이곳 공안(경찰)당국이 제보를 받았다. 공안당국이 고대 사건 현장에 출동해보니 그 집의 화장실 창문이 뜯겨져 있어 범인이 이곳을 통해 침입한 것으로 보였다.이에 정밀 현장조사를 하던 공안당국은 사건 현장에 남아 있는 흔적으로 볼 때 체격이 작으며 나이도 비교적 적은 것으로 보였다. 특히 그 집의 안방에 있던 담배 6갑과 현금 약간이 없어졌고 사건 현장에는 보온 찻병과 농약병이 하나 나뒹굴고 있었다.이 때문에 범인이 가족을 몰살시키기 위해 찻물에 농약을 탄 것임이 사실로 드러났다. 공안당국은 즉각 정밀 수사활동을 펼친 결과 사건 현장의 흔적 등을 감안해볼 때 ‘농약 사건’의 범인은 8살에서 14살 사이의 초등학생으로 모아졌다.이에따라 인근 마을에 사는 우군도 자연히 용의선상에 올랐다. 곧바로 공안당국에 불려간 그는 처음에 ‘범죄 사실’에 대해 완강히 부인했으나 2시간여에 걸친 공안당국의 끈질긴 추궁에 결국 사건의 전말을 모두 밝혔다.특히 지금까지 5건의 절도 사실까지도 털어놨다. 우군에 따르면 지난 15일 용돈이 궁하던 그는 도심(盜心)이 발동해 친구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친구의 집에 들어가보니 주방에 차를 먹기 위해 끓여놓은 물병을 봤다.이때 마침 학교에서 그 친구가 자신을 왕따를 시키는 등 괴롭히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라 가족 모두를 죽여 복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집안을 이리저리 톺아보니 농약병 하나가 눈에 띄었다.이에 농약병을 들고 나와 끓은 찻물에 농약을 부어넣는 일을 저질렀다.공안당국은 우군의 죄질이 나쁘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점을 감안해 일단 훈방 조치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여성&남성] ‘불륜의 덫’에 빠진 그남자 그여자

    [여성&남성] ‘불륜의 덫’에 빠진 그남자 그여자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유부남을 사랑하는 미혼녀’라는 글에 대한 설전이 벌어졌다.“어떻게 임자 있는 남자한테 꼬리를 치느냐.”는 기혼 여성들의 항의에 미혼 여성들은 “남편 바람난 게 자랑이냐.”는 식으로 응수했다.‘사이버 전쟁’의 이면에는 유부남과의 연애에 당당한 미혼 여성이 늘고 있는 세태가 자리잡고 있다. 당장 주변만 둘러봐도 직장 상사와 연애하는 미혼 여성이나 유부녀와 만나는 미혼 남성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만 해도 수십개에 달한다.‘금지된 사랑’을 찾는 남성과 여성의 마음 속에는 어떤 심리가 자리잡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임일영 류지영기자 argus@seoul.co.kr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유부녀’일 뿐 회사원 박모(28)씨는 두 아이의 엄마인 동갑내기 A씨와 만나고 있다. 대학시절 ‘캠퍼스 커플’이던 이들은 박씨의 군입대로 헤어졌다 지난해 과 동기모임을 계기로 다시 연락이 닿았다. 미남형의 외모와 깔끔한 매너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박씨지만 지금까지 A씨를 완전히 잊지 못했다. 올 초 학교 후배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A씨와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 때문에 결국 결별하고 말았다. 역술가인 A씨의 남편은 늘 “기운을 받아야 한다.”며 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기 일쑤여서 A씨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고. 심지어 주말에 A씨의 집에 찾아가 아이들과 놀아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남들 사생활을 족집게처럼 맞히는 역술가들도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있다는 사실은 모르나봐요. 남들이 저에게 어떤 비난을 쏟아부을지 모르겠지만 전 사실 유부녀라서 그녀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그저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유부녀일 뿐이죠.”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모(29)씨는 박사과정 선배인 두 살 연상의 누나 B씨와의 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올 초 대학원 술자리에서 “둘이 잘 어울린다.”는 주변의 농담을 재미삼아 응대하다 몇 달 만에 실제 ‘연애’로까지 발전했다고. 문제는 B씨는 이미 남편뿐 아니라 두살배기 아이까지 있다는 것. 김씨는 철저히 자신이 원할 때만 만나주는 B씨를 보며 이기적이라고 느끼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마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친구들은 “B씨는 조건을 보고 결혼해 남편과 관계가 좋지 않다 보니 대리 만족을 위해 널 만나는 것”이라며 말리지만 ‘콩깍지’가 씐 김씨로서는 그런 경고가 귀에 안 들어온다. “저도 양심은 있어서인지 가끔 B씨를 데리러 오는 남편과 눈을 못 맞추겠더라고요. 어떠한 변명이나 면죄부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마음은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또래에게 느끼지 못하는 특별한 것이 있다 지난해 말 지방 지점으로 발령이 난 회사원 정모(30)씨는 주말마다 회사 근처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다 얼마 전 여중생 딸을 둔 열두살 연상의 ‘띠동갑’ C씨를 만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지방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볼 요량으로 가끔 전화 연락이나 하며 지냈다. 하지만 재미삼아 한두 번 만나기 시작하면서 둘 사이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30대에 접어든 자신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마치 늘 옆에서 지켜본 것처럼 콕 집어 조언해주는 C씨의 진지한 태도에 차츰 빠져들기 시작했다. “처음 만날 때부터 C씨와 불륜관계로 나아가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한 또래 사이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배려나 포용성 같은 감정들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가 ‘정’에 굶주려 있었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어요. 지방으로 발령나자 ‘시골에서는 못 산다.’며 떠나간 옛 여자친구와 많이 비교되기도 했고요.” 회사원 조모(33)씨는 7살 연상 직장 상사인 기혼녀 D씨와 2년째 은밀한 관계를 지속 중이다. 어린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조씨는 D씨로부터 엄마에게 받지 못한 포근함을 느껴 첫눈에 반했다.‘이건 안 된다.’는 생각에 억지로 D씨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했지만 회식 뒤 술에 취한 D씨를 집에 바래다 주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 만남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D씨는 남편과 이혼한 뒤 딸아이와 살고 있다. “가끔 D씨가 ‘우리나라를 떠나서 남들 눈치 안 보고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해요. 저 역시도 지금 제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D씨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점은 말할 수 있어요.” ●책임감 없이 만날 수 있으니까 학원강사 박모(35)씨는 직장에 다니던 5년 전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동갑내기 여성 E씨와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 만날 당시만 해도 E씨는 갓 결혼한 새색시였지만 지금은 이혼한 뒤 지방에 혼자 살고 있다. 예전에는 지방 출장 겸 만나곤 했지만 지금은 E씨를 만나기 위해 KTX를 타고 갈 만큼 만남에 열의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박씨는 한 번도 E씨와 결혼할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어차피 E씨는 아이가 있는 사람이고 나이도 많아서인지 나에게 뭔가를 바라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이 나를 편하게 만들기도 하고요.E씨는 정말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이긴 해도 만약 결혼을 전제로 만났으면 이미 내가 먼저 도망쳐 나왔겠죠. 나 때문에 이혼한 것도 아닌 만큼 E씨의 현 상태에 죄책감 같은 것도 솔직히 느끼지는 않고요.” ●그 사람 말고는 아무 것도 안 보여 회사원 김모(26·여)씨는 지난해 결혼한 회사 동기 H씨를 짝사랑하고 있다.1년쯤 전부터 회식자리에서 늘 김씨의 옆에 앉아 챙겨주던 H씨의 자상함에 반하면서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H씨의 신혼 집들이에 갔던 김씨는 의외로 평범한 외모인 H씨의 아내를 보고는 ‘내가 외모나 능력 어느 것 하나 저 여자에게 달리지 않는데….’라는 생각에 화가 났다고. 최근 H씨가 이직을 하자 김씨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H씨에게 고백을 했다가 완곡하게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저한테 그 남자의 아내는 존재감이 없는 ‘투명인간’ 같은 존재예요. 오직 그 남자 하나만 보인다고 할까요. 그 남자 이혼하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밥 한 번씩 먹고 영화나 볼 수 있는 관계만 돼도 좋을 것 같은데. 유부남이라 그것도 안 될까요. 그래서 가슴이 더 저려요.” 최모(30·여)씨는 4년 전 세 아이의 아버지였던 I씨를 만났다. 잘생기지도 않았고 돈도 별로 많지 않던 열다섯 살 연상의 I씨가 최씨에게 선물공세를 펼 때만 해도 ‘정신 나간 사람’쯤으로 생각했지만 당시 이별의 아픔을 겪던 그에게 I씨의 배려는 큰 힘이 됐다고. 결국 최씨는 ‘기러기아빠’였던 I씨와 동거를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I씨는 외박이 잦아지고 변하기 시작했다. 최씨는 I씨가 자신을 폭행하고 또 다른 여자를 만나는 일이 잦아지자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I씨는 곧바로 집을 나갔고 연락 한 번 없다. 지금 최씨에게는 4년을 함께 산 I씨에 대한 그리움뿐이라고. “늘 곁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없어지니 세상이 온통 빈 느낌뿐이에요. 제가 전화하면 그대로 전화를 꺼버려요. 제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이니 늘 행복했으면 하지만 저를 이렇게까지 마음 아프게 했으니 평생 불행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도 교차해요.” ●유부남 사랑하는 내 마음 나도 몰라 3년 전 취직한 회사원 정모(27·여)씨는 입사 당시 ‘사수’(일을 직접 가르치는 선임자)였던 상사 F씨와 얼마 전 만남을 시작했다. 처음 입사할 당시 “일 못하는 빵점짜리”라며 혼도 많이 내던 F씨였지만 3년이 지나면서부터는 태도가 사뭇 달라졌다고. F씨는 정씨에게 저녁이나 같이 먹자고 불러내서는 고가의 목걸이나 반지 등을 선물하며 애정 공세를 시작했고 정씨 역시 그런 F씨가 싫지만은 않았다.‘내가 원하면 언제든 관계를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던 정씨였지만 이제는 자신의 의지로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게 됐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다른 남자가 생기면 언제든 떠나겠다.’며 F씨에게 자신있게 말했지만 이상하게도 회사에서 저 좋다는 남자들이 아무리 덤벼도 안 끌렸어요. 다른 남자가 좋아지려고 해도 F씨가 ‘그와 만나지 말라.’고 말하면 자연스레 헤어지게 됐어요. 내가 생각해도 이렇게 돼 버린 내 자신이 너무 황당하고 이상해요.” 외국 유학 중인 이모(29·여)씨는 해외 지사 근무 중이던 기혼남 G씨를 알게 됐다. 아침마다 모닝콜을 해주고 먼 거리라도 언제든 이씨의 집으로 달려와주는 G씨에게 남자다운 매력을 느꼈다. 몇 달 뒤 G씨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고 공항에서 그를 바래다주며 ‘이것으로 G씨와의 인연은 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G씨가 돌아간 뒤 이씨가 먼저 연락하게 됐고 지금까지 인터넷 화상채팅 등을 통해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 “G씨는 이혼할 마음이 전혀 없어요. 그럼에도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걸 너무도 싫어해요. 쉽게 말해서 ‘난 가정을 지킬 테니 넌 결혼하지 말아라.’라는 심보죠. 하지만 이상한 것은 제가 그런 남자를 사랑한다는 거예요.G씨가 나와 결혼해주길 원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내가 너무 이상해요.” ●서로 좋아하는 현재가 제일 중요하니까 얼마 전 결혼한 김모(27·여)씨는 최근까지 10살 연상의 직장 상사 J씨와 소위 말하는 ‘불륜’관계를 맺었다. 당시 김씨는 미혼이었고 헌칠한 외모의 J씨에게 반해 먼저 프러포즈를 했다고. 그제서야 J씨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은 보통 연인들과 똑같이 데이트도 하고,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J씨의 부인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앞으로 둘 간의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J씨와 사랑하고 있는 현재가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지요. 철없는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 나이에는 그저 누구든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J씨의 집에 집들이 갔다가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서로 좋아하던 거니까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어요.” ■심리학으로 본 불륜 진화 심리학에서는 외도가 오랜 기간에 걸친 인류의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인류에게 ‘1부1처제’가 정착된 지 수천년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수십만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1부다처’ 혹은 ‘1처다부’의 전통이 아직 상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 쉽게 말해 인간 유전자에 아직 ‘바람기’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윤리·규범 등을 통해 이를 잘 억제해 왔지만 최근 이러한 규제가 느슨해지면서 외도나 불륜이 다시금 사회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외도나 불륜에는 어떤 심리학적 원리가 작용하고 있을까.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랑에 장애가 있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상대를 더 깊이 사랑한다고 지각하게 되는데 이를 ‘로미오와 줄리엣 효과’라고 한다. 이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불륜 커플의 사랑이 유독 열정적인 이유를 설명해준다. 불륜은 극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인 만큼 들키지 말아야 한다. 조마조마해서 가슴이 뛰게 만드는 상황은 두 사람의 사랑을 실제보다 더욱 큰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콘돔 판매량과 호텔 예약률이 급증하는 것으로 알려진 것도 불안이 사랑을 더욱 크게 느끼게 만드는 요인임을 잘 보여준다. ‘남들 다 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사회 분위기 또한 외도나 불륜을 조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데 이를 ‘사회규범이론’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처럼 TV나 영화 등 미디어가 외도나 불륜을 미화해 방영할 경우 대중들 또한 이에 관대한 사회적 태도를 갖게 된다.‘남들 다 하는 것인데 나도 하면 안 되냐.’는 식의 사고방식이 일종의 사회적 합의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한때 기혼남녀 사이에 불었던 ‘애인만들기’ 열풍 또한 외도나 불륜이 일종의 사회적 규범이 된 우리 사회의 윤리적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 도움말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 ‘브로드웨이의 황제’의 삶 무대 올리는 송한샘 쇼팩대표

    ‘브로드웨이의 황제’의 삶 무대 올리는 송한샘 쇼팩대표

    10살 때부터 죽기 직전까지 평생 뮤지컬에 몸을 바친 브로드웨이의 황제 조지 엠 코핸(1878∼1942).51개의 뮤지컬,500개의 싱글 넘버를 작곡하고 노래 사이를 대사로 잇는 현재 뮤지컬의 포맷을 구축한 그는 지금도 동상으로 남아 브로드웨이를 지키고 있다. 그의 이야기 ‘조지 엠 코핸 투나잇’이 9월7일 동양아트홀에서 개막한다. 지난해 3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을 보고 다음날 바로 계약했다는 쇼팩의 송한샘(33) 대표를 만나 작품 얘기를 들어봤다.‘헤드윅’‘벽을 뚫는 남자’ 등을 성공시키고 지난해 공연기획사 쇼팩을 차린 송 대표.270석 규모의 동양아트홀도 운영하는 그가 첫 작품으로 ‘조지 엠 코핸 투나잇’을 선택한 이유는 행복 뒤의 쓸쓸한 뒷맛, 앞만 보고 내달리는 인생의 발걸음을 늦추라는 메시지 때문이다. “배우라면 맘 먹으면 얼마든지 커튼콜을 할 수 있는 존재 아닌가요?그런 그가 죽는 순간 커튼콜은 없다고 말합니다. 한 시간동안 단 한 번의 퇴장도 없이 관객을 웃기며 잘난 척하던 그가 사라진 빈 무대를 페이소스와 슬픔이 꽉 채우죠.” ‘조지 엠 코핸 투나잇’은 뮤지컬 팬들에게 솔깃한 작품이다. 브로드웨이가 형성되고 뮤지컬이 틀을 잡아가는 20세기 초 뮤지컬 장인의 이야기이기 때문. 임춘길, 고영빈, 민영기 세 배우가 코핸이 되어 원맨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인다.100분간 A4용지로 60장을 가득 메우는 대사와 30곡의 노래, 현란한 탭을 소화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다. 배우 한 명이 극을 이끌어가는 모노 뮤지컬이 국내 관객에게 낯설지는 않을까.“모노 뮤지컬은 호감 있는 배우를 90분간 해바라기로 바라보며 즐기고 배우가 긴장과 이완을 조절할 수 있어서 리드미컬합니다. 기본적인 연출 동선만 받아 배우가 다시 요리하는 거죠.”기존 작품들은 초 단위로 약속할 정도로 꽉 짜여져 있지만 ‘조지 엠 코핸 투나잇’은 배우가 마음껏 쥐락펴락한다. 연출은 ‘헤드윅’의 이지나씨가 맡았다. 우연의 일치인지 10월 개막하는 여성들의 모노 뮤지컬 ‘텔미온어선데이’도 그가 지휘한다.“이지나 연출은 자타가 공인하는 모노뮤지컬의 1인자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진행으로 속도감 있게 몰아부치죠.” 쇼팩의 차기작은 내년 3월 개막할 ‘이블데드’. 코믹 호러의 고전, 이블데드 1·2편을 합친 작품이다.“좀비들이 나오고 피가 난무해요.3번째 줄까지는 피 맞으러 오는 관객이죠.” 내년 하반기에는 핀란드의 유명 작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기발한 자살여행’을 임도완·이수연의 공동 극작으로 재구성한다. 한국, 북한, 장가계를 이어 통일된 미래의 한 시점을 배경으로 삶의 소중함을 보여줄 생각이다.“뮤지컬 판권도 사들였는데 라이선스로 다시 파는 게 목표예요. 요즘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논버벌이 해외로 많이 진출하는데 우리 뮤지컬도 영화처럼 되팔고 우리의 언어로 무대화하는 게 꿈입니다.” 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신·구황제’ 페더러-샘프러스 서울서 맞짱

    테니스팬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상상. 바로 로저 페더러(사진 왼쪽·26·스위스)와 ‘피스톨 피트’ 피트 샘프러스(오른쪽·36·미국)의 맞대결이다. 페더러와 샘프러스가 11월20일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신·구 황제 대결’을 펼친다.‘역사상 가장 완벽한 선수’라는 최고의 수식어를 놓고 전·현 세계 1위가 붙는 이 경기는 남자테니스 최고의 ‘흥행카드’가 될 전망이다. 말레이시아-마카오로 이어지는 ‘아시아투어’의 첫 판이며 현대카드의 ‘슈퍼매치 6탄’이다. 이번 맞대결 개런티는 각 30만달러(약 2억 8000만원)로 알려졌다. 둘은 닮았다. 샘프러스는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메이저대회 단식 최다 우승 기록(14회)을 보유한 90년대의 최고 스타.2003년 은퇴한 뒤 올해 시니어대회 출전으로 코트에 복귀했다. 투어 통산 우승 기록만 64차례. 상금도 4328만달러를 벌어들여 총상금 부문에서도 선두에 올라 있다.‘피스톨’ 소리를 들을 만큼 서비스가 명품이다. 윔블던에서 7차례나 정상을 밟았고 286주 동안 세계 1위를 지켰다. 페더러도 뒤지지 않는다. 윔블던 5연패와 US오픈 3연패 등 모두 11차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 샘프러스 기록에 3개차로 다가섰다. 또 메이저대회 9회 연속 결승 진출이라는 신화는 물론 최근 개인 통산 50번째의 단식 타이틀을 수집, 통산 타이틀 순위 9위에 올랐다. 둘은 유독 클레이코트에 약해 ‘커리어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대회를 시기에 상관없이 제패하는 것)을 달성하지 못한 점까지 닮았다. 다른 점이라면 10살 터울과 함께 페더러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고, 샘프러스는 은퇴한 뒤 복귀했다는 것. 둘은 6년 전 윔블던 16강전에서 딱 한 번 맞붙었다. 당시 ‘떠오르는 별’ 페더러가 ‘내리막’의 샘프러스를 3-2로 제압했다. 이번에도 페더러의 우세가 점쳐지지만 샘프러스는 “전성기 때 페더러와 대결했다면 아마도 이겼을 것”이라며 ‘지존’의 자존심을 드러냈다. 최근 연습경기에서 페더러를 상대로 한 차례 이긴 적도 있어 섣부른 속단은 금물이다.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사내가 수십억대 재산을 ‘날린’ 기막힌 사연

    “고놈의 입이 방정이지.말 한마디 잘못 쏟아내는 바람에 수십억원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다니!” 중국 대륙에 한 30대 후반 남성이 말 한마디 때문에 재산 수십억원을 아내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하는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은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30대 후반의 남성.그는 최근 아내에게 별 생각없이 ‘세컨드(내연녀)’를 두고 있다고 털어놓은 바람에 수십억대 재산의 대부분을 아내 명의로 돌려놓을 수밖에 없어,자칫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빈털털이 신세가 될 위기에 처했다고 하문만보(厦門晩報)가 최근 보도했다. 지난 1일 오후 중국 남부 푸젠(福建)성 샤먼(厦門)시 공증처 정문 앞.30대 후반의 부부가 걸어나오고 있었다.남자 쪽은 얼굴에 온통 ‘소태’를 씹은 표정이고,여자쪽은 만면에 얇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재산 분할 공증을 받고 나오는 이들 부부의 표정이 극단적으로 나뉜 것은 수십억대의 재산중 아내가 거의 대부분 차지하고 남편 빈털털이가 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의 기막힌 사연은 이렇다.10살된 아들을 두고 있는 이들 부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실 좋은 부부로 통했다.남편의 사업운이 좋아 돈을 많이 벌어 수십억대의 자산가로 일어선 것이다. 집안에 돈이 풍족해지면서 남편이 행동이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한마디로 ‘외부 출장’이라는 이유로 외도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아내는 아무래도 남편에게 ‘여자’가 생긴 것으로 짐작이 갔으나 뚜렷한 물증을 잡아낼 수가 없었다.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남편이 ‘여자’가 있는 것이 확실하며 남편으로부터 그 ‘여자’를 떼어내기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때문에 한참을 고민한 아내는 남편으로부터 ‘여자’를 떼어놓을 수 없다면 재산이라도 챙길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그녀는 ‘이혼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 자칫 잘못하면 ‘빈털털이’가 될 수 있는 까닭에 최대의 방어수단인 재산분할 공증을 받기로 했다. 재산 분할 공증을 받을 때 이혼에 이르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 쪽은 ‘빈털털이’가 되는 것으로 규정돼 있었다. 이날 공증처에 들린 이들 부부는 재산분할 공증을 받았다.이 자리에서 ‘순진한’남편이 자신의 외도 사실을 털어놓았다.특히 공증처 직원이 여러번 확인하자,그만 외도의 속사정까지 털어놓은 것이다. 이 바람에 이들 재산중 아내쪽은 아파트를 비롯해 가게,두대의 고급 외제차 등 수십억대의 재산중 거의 모두를 차지하고 남편은 몇푼 되지 않는 공장 부지만 차지하게 돼 거의 빈털털이나 다름없이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진 까닭이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나카히 마사히로-코다 쿠미 슈퍼커플 탄생?

    나카히 마사히로-코다 쿠미 슈퍼커플 탄생?

    새로운 ‘슈퍼 커플’ 탄생? 최근 일본에서 유명 J-POP그룹 ‘스마프’(SMAP)의 나카이 마사히로(中居正広·34)와 인기 여가수 코다 쿠미(倖田來未·24)의 열애 사실이 밝혀지면서 팬들의 큰 관심을 끌고있다. 일본 스포니치는 15일 “10살이나 차이가 나는 나카이 마사히로와 코다 쿠미는 올 여름 가장 주목되는 ‘국민 커플’”이라며 교제 과정을 상세히 보도했다. 두사람은 지난 3월부터 데이트를 본격적으로 시작, 코다 쿠미가 스마프의 콘서트에 나타나거나 음식점에 같이 들어가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면서 열애설이 불거졌다. 음식점에서 두 사람의 데이트를 목격한 한 사람은 “즐거워 보이는 나카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코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연인처럼 가까이 붙어있었다.”고 밝혔다. 신문은 “나카이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팬이고 코다 쿠미도 야구를 좋아하는 등 두 사람의 취향이 비슷해 자연스럽게 연인 관계로 발전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진=코다쿠미 홈페이지 캡처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브리티시여자오픈] 오초아, 브리티시오픈 우승… 메이저 첫승

    여자프로골프 세계 1위 로레나 오초아(25·멕시코)가 명실상부한 ‘골프 여제’로 거듭났다. 오초아는 ‘골프 성지’인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코스에서 벌어진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우승,‘메이저 무관의 반쪽 여제’라는 오명을 었다. 동시에 ‘금녀의 땅’ 첫 여왕으로 골프사에 족적을 남기게 됐다. 오초아는 6일 대회 4라운드 합계 5언더파 287타로 정상에 올랐다.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단 한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은 완벽한 우승. 이로써 오초아는 올시즌 네번째 우승을 포함해 통산 13승을 거뒀다. 4라운드 18번홀(파4)에서 짧은 파퍼트를 챔피언 퍼팅으로 마무리한 그는 “역사적인 무대에서 메이저대회 우승을 거둬 감격스럽다.”며 “조국 멕시코에 영광을 바친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유난히 큰 눈을 가진 오초아. 그러나 어릴 때부터 극한 스포츠로 다져진 ‘철녀’로 유명하다.5살 때 4m가 넘는 나무에서 떨어져 양쪽 손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뒤 완치되자 “손목이 더 튼튼해졌다.”고 큰소리를 쳤다는 일화는 골퍼들 사이에 익히 알려진 얘기다.10살도 되기 전에 이미 하이킹과 승마 등으로 시에라마드레산맥을 누볐고,13살 땐 해발 5280m의 이차치후아티산을 정복했다. 프로 입문 후에도 철인3종 경기에 두차례나 나서 완주했고, 틈나면 마라톤 경기에도 나서는 등 ‘만능 스포츠 우먼’으로 이름을 날렸다. 운동감각도 뛰어나 어릴 때부터 클럽이나 학교 등에서 테니스 육상 농구 배구 축구 선수도 활약하기도 했다.2003년 LPGA 투어에 입성한 오초아는 그해 신인왕이 된 데 이어 2006년 마침내 상금왕에 오름으로써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의 오랜 독주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골프 여제’의 출현을 예고했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 우승은 못했지만 이지영(22·하이마트)이 1언더파로 공동 2위, 박세리(30·KTF)와 ‘신성’ 지은희(21·캘러웨이)가 1오버파로 공동 5위를 차지해 태극자매들의 매서움을 보여 줬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어느날 갑자기 사창가(私娼街)서 만난 누나

    어느날 갑자기 사창가(私娼街)서 만난 누나

    지난 11월 2일밤. 창백한 고교생이 어릿어릿 춘천(春川)의 사창가를 헤매고 있었다. 『절절 끓는 방이 있어요. 학생 놀다가요』하는 소리에 그 고교생은 고개를 들었다. 「클로스·업」되는 창녀의 얼굴, 『누나…』하는 고함. 이 하늘아래 둘도없는 비통한 어느 오뉘의 사연인즉-. 어둠속에 “학생 놀다가요” 듣던 목소리 돌아다보니 지난 2일. 쌀쌀한 소양강 밤바람이 불어오는 춘천역에 핏기없는 한 고등학생이 내렸다. 어둠이 내려오는 시가지를 보며 고등학생은 한장의 편지봉투를 꺼내 보았다. <춘천시 근화동 X구 XX번지> 난생 처음 와보는 춘천, 근화동이 어느쪽에 붙어 있는지, 또 근화동하면 서울에선 옛날 「종(鍾) 3」으로 통하는 사창가인지는 알길이 없었다. 서울 H고등학교 야간부 3학년에 재학중인 김(金)경호군(가명·18·서울서대문(西大門)구)은 5년동안이나 헤어져 만나지 못했던 누나 김영자(가명·23)를 만나보기 위해 무턱대고 내려온 것이다. 매달 5~8천원 안팎의 생활비를 보내주며 항상 자상하게 몸조심하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의 편지만을 보내 주었던 누나.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 직장생활을 한다는 누나가 그리워 가슴까지 설레며 그는 역 광장을 걸어 나갔다. 『근화동이 어느 쪽이죠?』 김군은 행인에게 주소를 물었다. 행인은 잠자코 역의 오른쪽을 가리켜주었다. 김군은 우선 역에서 가까와 좋다고 생각했다. 김군은 게딱지같은 판자집을 지나 근처의 「빌딩」을 기웃거리며 『여기 김영자란 여자가 있읍니까?』하고 찾아헤맸다. 그러나 있을 턱이없었다. 몇시간을 헤매다 보니 어느덧 역뒤에 있는 판자촌까지 이르렀다. 처마가 땅에 닿을듯 나지막한 판잣집들이 줄지어 섰고 그 안에는 밤의 아가씨들이 거의 속옷차림새로 옹기종기 둘러앉아 히히덕거리며 지나는 사람들은 쳐다보는 품이 심상치않게 느껴졌다. 지리하고 긴 사창가를 누비면서도『누나가 많지 않은 월급으로 생활비까지 대자니 자연 이렇게 허술한 판자촌에서 고생을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콧마루를 시큰하게 했다. 바로 그때 벽에 달라 붙어서 있던 한여자가 『학생 놀다가세요』하는게 아닌가. 귀에익은 낮은 음성.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설마 누나가 이런 곳에서 창녀생활이야 않겠지 하고 자위하려던 믿음의 벽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았다. 노름에 아편맞던 아버지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자 그렇게 몽매에도 그리던 누나가 또 그렇게 소망스럽고 자랑스럽던 누나가 창녀라니 이 엄청난 사실앞에 5년만에 모처럼 만난 남매는 말한마디 못건네고 그대로 영영 헤어져야하는 운명이 됐다. 『누나』소리에 놀란 영자양은 질겁을 하고 어디론지 행방을 감췄고 경호군은 너무 큰 충격에 그만 미쳐 버리고 말았다. 영자양이 쓰던 방에 들어가 단하나뿐인 「트렁크」를 다 불태워 버리고 벽에 걸린 옷가지는 모두 갈기 갈기 찢어 버렸다. 그리고 그 싸늘한 늦가을 밤을 소양강 백사장에서 뜬눈으로 울며 지샜다. 『제가 돌았나 보죠』라고 오히려 자신의 정신착란 상태를 알고있으면서도 때때로 발작을 일으켜『누나는 창녀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맨발로 길위를 뛰어다니기도. 처음에는 그저 미친 놈이니 하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김군의 사연에 차차 동정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경찰과 시민들은 백방으로 영자양의 행방을 수소문했으나 영자양은 현재로선 자취를 감춘채 행방이 묘연하다. 이들 남매의 고향은 전남 광주(光州)시 변두리에서 그래도 넉넉하다는 살림에 두남매는 별로 구김살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이 단란한 가정에도 먹구름이 일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노름판에 미치게된 것이다. 땅문서 집문서등을 모두 가져다 노름판에 버리고 알거지가 됐다. 이를 만류하는 어머니에게 전에없던 욕설과 매질까지 했다. 한섬지기가 넘는 농토와 적잖은 집을 모두 노름판에서 빼앗긴 아버지가 얼마후에는 아편을 맞기 시작했다.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귀여운 자식들조차 버리고 집을 나가 버렸고, 병색이 완연한 아버지는 어린 남매를 데리고 남의집 셋방살이로 들어갔다. 그 때 영자양이 중학교 2학년인 15살때, 경호군은 국민학교 3학년인 10살이었다. 재산을 날리고 어머니까지 쫓아낸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아버지는 이미 자식들의 원망을 들을만한 기력도 없었다. 겨울동안 내내 객혈을 하다 다음해 봄에 아버지는 세상을 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셋집주인도 폣병환자 가족에게 더이상 집을 빌려줄 수 없다고 거리로 내 쫓았다. 두남매는 그날 밤새도록 거리를 방황하며 울기만 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호남선 상행 화물열차를 비집고 올라탔다. 서울역에 내려 먼일가뻘 되는 아저씨집을 찾아들었다. 영자양은 이집에서 월급없는 식모살이를 했고 경호군은 누나덕에 더부살이로 얹혀지내게 됐다. 공부에 미친 동생을 위해 돈 벌 결심으로 몸을 팔아 그러나 경호군이 주인 집 식구들에게는 눈의 가시. 아무일도 않고 밥만 치우는 것이 못마땅해 구박투성이었다. 결국 경호군도 밥벌이 작전에 나섰다. 구두닦이 「검」팔이등 닥치는대로 했다. 밤에는 야간재건학교에도 다녔고. 64년에는 중학입학검정 고시에 합격, 그해 서울 H중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는 새벽먼동이 틀때 나가 밤10시에 돌아와서는 주인집의 눈치를 살펴가며 전등대신 촛불을 켜놓고 밤새껏 쪼그리고 앉아 공부에 미쳐버리기 일쑤였다. 공부에 미친동생을 볼수없어 영자양이 돈벌이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영자양은 동생에게 거짓말을 했다. 춘천 모회사에서 월급을 많이 주겠다고 하니 취직을 하겠다고 하며 앞으로 힘겨운 구두닦이는 그만 두도록 했다. 이렇게해서 춘천에온 영자양은 제일 손쉬운 사창가에 뛰어 들었다. 이곳 윤락여성들의 친목단체겸 자활단체인 장미회장 박옥자(朴玉子)여인은 『그애는 아직「검」한개 제돈주고 사먹는 일 없었어요. 서울에 동생이 있다는 것도 생활비를 대줬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죠』라고 눈물을 글썽거린다. 김군도 대학 입시 예비고사도 모두 망쳐 버리게 됐다면서 설사 대학은 가지못하더라도 자신 때문에 희생당한 누나를 꼭 찾아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편지마다 구구절절이 『참된 사람이 돼라』『남에게 욕먹는 사람이 되지 말아라』고 하던 누나가 창녀였다니 너무 어처구니 없다는 김군은 경찰들의 도움으로 며칠뒤 다시 상경했다. <춘천=김선중(金瑄中)기자> [선데이서울 70년 11월 22일호 제3권 47호 통권 제 112호]
  • [1일 TV 하이라이트]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청전 이상범의 산수화가 나온다. 겨울과 가을의 풍경을 각각 담아낸 두 점의 그림, 이 가운데 하나만 진품이라는데 과연 어떤 것이 진품인지 찾아본다. 추억의 박치기왕으로 온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준 프로레슬러 김일은 은퇴와 함께 제자 이왕표에게 가운을 물려주었다. 용맹한 호랑이의 모습이 담겨있는 이 가운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싱싱 일요일(KBS2 오전 8시)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꿈꾸는 새로운 전원생활이나 전문 영농인을 꿈꾸는 귀농 모두 농촌에서의 정착 성공률은 30% 정도이다.100회를 맞아 ‘도시탈출, 전원을 꿈꾸다’에 나왔던 세 가족의 ‘방송 그 후 1년’을 찾아 행복한 전원생활의 성공요소를 살펴본다. 그동안 ‘계절의 보석’을 거쳐 간 신토불이 농수산물 70가지 가운데 베스트 5를 알아본다. ●잡지왕(MBC 오후 4시40분) 일본에는 토끼 전문 잡지가 3종이 있고, 이 가운데 ‘토끼의 생활’에는 세계 각국 다양한 종의 깜찍하고 앙증맞은 토끼들이 소개되고 있다. 일본 토끼계 톱스타로 불리는 이즈미. 기비결은 바로 일본 최고의 초대형 토끼이기 때문이란다. 이즈미의 몸무게는 무려 8kg에 이른다. 토끼 전문 잡지에서 소개하는 매력만점의 애완 토끼들을 만나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SBS 밤 12시5분) 몇 시간 외출하기 위해선 이틀을 굶어야 하는 환희. 환희는 ‘대장폴립’이란 질환을 앓고 있다.10살 무렵, 환희의 대장에서 수백 개의 폴립이 발견되었고, 빠른 시간 안에 대장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진단을 받고 환희는 3년전에 대장을 모두 잘라냈다. 아빠와 환희, 세상에서 단 둘뿐인 가족. 아빠는 환희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데…. ●장학퀴즈(EBS 오후 5시) 제543회 우승자의 자리를 놓고 서울 정의여고와 천안 북일여고 학생들 사이에 박진감 넘치는 대결이 펼쳐진다. 야구명문고인 천안 북일고와 한 울타리에 있는 북일여고는 강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실력으로 줄대결과 아이템획득전에서 월등히 앞서간다. 하지만 정의여고도 뒤지지 않고 1승의 노련함을 살려 본선대결에서 북일여고와 접전을 펼친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전 8시30분) 전 세계 국가에서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게다가 기후 변화의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단순한 빙하가 녹는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와 지역 주민의 생계가 걸린 문제이다. 기후의 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곳은 자원부족으로 기후 변화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개발도상국들이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1933년 최악의 암흑기를 맞은 미국 시민들에게 큰 활력소가 되어준 만화 속의 위대한 영웅 ‘슈퍼맨’. 영화로까지 제작되어 큰 인기를 누렸지만, 이목이 집중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는데 과연 영화 속에 숨은 비밀은 무엇일까. 고대 문명의 폐허에서 발견된 유물 가운데는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엎는 지식의 보고가 숨겨져 있다는데…. ●TV탐험 멋진 친구들(KBS2 오전 9시45분) ‘서울뚝배기’에서 윤마담으로 나왔던 김애경. 애교 목소리의 1인자인 그녀의 연기 인생이 담긴 세 가지 보물상자를 열어본다. 부부 사이의 문제를 드라마로 재구성한 드라마 ‘사랑과 전쟁´의 촬영 현장에서 이루어진 배우들과의 생생 인터뷰도 공개된다.
  • [웨그먼스 LPGA] ‘루키’ 김인경 연장서 오초아에게 져 눈물의 준우승

    피말리는 연장 두번째홀인 18번홀(파4). 제법 먼 거리의 파퍼트가 홀을 외면하자 19세 소녀 김인경은 결국 눈물을 떨궜다. 생애 첫 승을 눈앞에 뒀던 터. 비록 세계 1위 로레아 오초아(멕시코)에게 막혀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그는 당당하게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예비스타’로 이름 석 자를 알렸다.“후회 없는 경기는 없다.”는 게 데뷔 12번째 대회인 웨그먼스 LPGA를 25일 마친 그의 말이다. ●통한의 1.5m 버디퍼트 16번홀까지 1타를 줄인 김인경은 보기를 4개나 쏟아내며 3타를 까먹은 오초아에게 3타차로 앞섰다. 우승은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짧은 파퍼트 3개가 홀을 맴도는 불운 속에 고전하던 오초아는 17번홀(파5)에서 7m짜리 이글 퍼트를 떨구며 분위기를 뒤집었다. 반면 같은 홀 4m 버디 퍼트를 놓쳐 1타차로 쫓긴 김인경은 18번홀 1.5m짜리 챔피언 퍼트를 놓쳐 땅을 쳤다. 오초아에게 연장을 허용했고, 결국 관록의 오초아에게 무릎을 꿇었다. 지금까지 4차례의 연장전에서 모두 쓴잔을 든 오초아는 김인경을 상대로 ‘연장 필패’의 징크스를 벗고, 시즌 세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김인경은 “마지막 3홀까지만 버티자고 다짐했는데 16번,17번홀에서 버디 찬스를 놓쳤다.”면서 “18번홀에서는 좀더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욕심을 부렸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그는 또 “연장은 생각지도 못한 터라 당황스러웠고, 결국 연장전을 생각하고 계획을 짰던 오초아에게 기회를 준 꼴이 됐다.”며 미숙함을 인정하면서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US여자오픈 지켜보라 아버지를 졸라 10살 때 골프채를 쥔 김인경은 서문여중 3학년이던 2003년 파맥스-빅야드배 주니어선수권대회 우승으로 국가대표 주니어 상비군에 이름을 올렸고, 한영외고로 진학한 2004년에는 국가대표 상비군에도 발탁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길지 않은 골프 인생에서 전환점을 맞은 건 2005년 미국으로 건너가 국제주니어골프아카데미(IJGA)에 입학하면서부터. 코치 게리 길크라이스트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선수 출신인 휴 로여의 지도를 받은 김인경은 2005년 주니어대회에서 세 차례 우승, 미국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같은 해 US여자주니어골프선수권을 제패, 주니어 최강자에 오른 김인경은 지난해 12월 퀄리파잉스쿨에서 공동 수석으로 프로에 발을 들였다. 5월 말 코닝클래식에서 공동 4위에 올랐던 김인경은 “잃은 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면서 “28일 개막하는 US여자오픈을 기대해 달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한나라 검증결론 놓고 정치권 논란

    한나라 검증결론 놓고 정치권 논란

    “이명박 후보의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서는 자녀 교육 문제로 인한 전입은 있었지만 부동산 투기를 위한 전입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근혜 후보의 ‘정수장학회 공금횡령 및 탈세 의혹’의 경우는 급여 수령의 절차상 하자가 없었고, 이미 오래 전에 세금과 건보료가 완납돼 의혹의 근거가 해소된 상태였다.” 한나라당 국민검증위원회 이주호 간사는 2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검증위에 제보된 120여건의 검증 요구 가운데 조사를 마친 사안들에 대해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간사는 이 후보가 시인하고 사과한 위장 전입과 관련,“내집 마련을 위한 주소지 이동 6회, 현대건설 제공 아파트 입주 3회, 논현동 주택 전입 4회, 국회의원 출마를 위한 종로구 이전 3회와 자녀 입학을 위한 전입 4회 및 아들 중학교 입학을 위한 부인만의 전입 1회라는 이 후보측 해명은 사실로 확인됐다.”고 말했다.“1969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뤄진 총 24회의 주소지 이전 중 실제 주소지 이전은 21회”라고 덧붙였다. 이 간사는 또 박 전 대표가 정수장학회 이사장 재직시인 95년 9월부터 99년 12월까지 급여를 섭외비 명목으로 지급받아 소득세를 탈루했다는 의혹도 ‘문제 없음’으로 판명났다고 밝혔다. 그는 “정수장학회는 기밀비 지급 규칙에 따라 섭외비를 지급했기 때문에 절차상 하자가 없고, 당시 세무서도 섭외비가 탈루소득이라고 적극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법인세법이 개정된 98년 이전의 섭외비는 소득세 납부의무 대상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데도 박 후보가 섭외비 전액에 대한 소득세를 자진 납부했기 때문에 탈루의혹은 해소됐다.”고 말했다. 건강보험료 체납 의혹에 대해서는 “행정적 착오로 건보료 체납이 있었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납부 고지를 받은 즉시 밀린 건보료를 완납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공금 횡령과 재단 사유화 의혹도 실사 결과 근거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이 간사는 설명했다. 검증위는 결론을 내리기까지 상당한 발품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중간 발표가 양 후보측의 해명을 그대로 확인시켜 주는 데 그치자 검증위의 역할과 한계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전 시장의 경우, 자녀 교육을 위한 주소지 이전은 실제 주소지 이전 21회 중 5차례에 불과하다. 나머지 주소 이전이 정말 부동산 투기와 관련이 없었는지에 대한 의혹이 여전할 수 있다는 점과 위장 전입 자체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5·16 장학회’(정수장학회 전신) 강제 출연 의혹에 대해 당시 박 전 대표가 10살이었던 만큼 직접 관련되지도 않았고 후보의 직무수행 등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볼 수도 없다고 판단해 검증 대상에서 뺀 것도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다른 정당들의 평가는 혹독했다. 서혜석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구두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 검증위는 후보방탄위원회”라며 “의혹을 해소한 게 아니라 오히려 물타기한 결과”라고 혹평했다. 김형탁 민주노동당 대변인도 “이 후보의 위장전입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으로 대통령 후보 자격이 없다.”면서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강제 헌납 의혹도 당연히 검증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광삼 한상우기자 hisam@seoul.co.kr
  • 야후 신임 CEO에 제리양

    세계 2위의 검색엔진 업체 야후의 신임 CEO에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 제리양(38)이 취임하게 됐다고 BBC 등 외신들이 19일(현지시간) 전했다. 야후의 실적이 계속 나빠지고 1위 업체 구글과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자 창업자가 경영일선에 나와 친정(親政)에 나선 것이다. 현 CEO를 맡고 있는 테리 세멜(64)은 CEO자리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직으로 자리를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야후는 인터넷 검색 시장의 26%를 차지하며 49%를 차지하는 구글에 이어 2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구글에 밀려 위축되는 상황이다.2007년 첫 3개월 동안에만 영업 이익이 16% 감소하고 야심차게 시작한 비디오 및 모바일 분야가 부진을 보이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제리양은 타이완 출신으로 10살때 미국으로 건너와 스탠퍼드 대학시절 야후의 틀을 만들었다.1995년 데이비드 파일로와 함께 야후를 설립했다. 현재 그의 재산은 22억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다.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종교건축 이야기] (30) 500년만에 복원된 개성 영통사

    [종교건축 이야기] (30) 500년만에 복원된 개성 영통사

    남과 북이 공동으로 복원 불사에 나서 2005년 10월 원래의 모습을 되살려 놓은 고려 사찰 개성 영통사(개성시 개풍군 영남면 용흥리). 고려 태조 왕건의 조상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왕씨의 발상지이자, 대각국사 의천이 출가해 35년간 주석하며 한국 천태종을 개창한 유서깊은 고찰이다. 고려 현종 18년(1027년)에 창건되어 고려 왕실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받아 융성했으나 16세기쯤 소실되어 이름만 전하던 사찰. 천태종 개창자인 대각국사 비와 당간지주, 그리고 세 개의 탑만 덩그맣게 남아있던 것을 남북이 힘을 모아 29개의 전각을 원 모습대로 세워놓았다.500여년간 불교계에선 그저 ‘꿈의 성지’로 남아있었던 폐사 영통사. 하지만 이젠 웅장한 제 모습을 어엿하게 되찾아 일반 신도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조선 중기의 기록들에 따르면 고려시대 불교가 한창 성할 무렵 개성 성내에는 300여개의 사찰이 있었으며 절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것 만도 100개가 넘는다고 한다. 태조 왕건 자신도 고려를 세운 뒤 궁궐 주변과 송악산 기슭에 25개의 절을 지었던 것으로 전한다. 이 가운데 갓을 쓴 5개의 산 봉우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오관산(五冠山) 아래, 영통사가 자리잡은 영통골은 예로부터 절경과 길지로 이름 높았다. ‘큰 골짜기’란 뜻의 마하갑으로 통했던 영통골에서 왕건의 할아버지가 출생했다. 승려가 된 증조 할아버지도 이곳에 작은 절을 짓고 살았는데 왕건이 고려를 세운 뒤 절을 중창해 이름을 숭복원이라 고쳐지었다고 한다. 이후 고려 왕실은 숭복원을 왕의 원당으로 삼아 왕건의 아버지인 세조 왕륭과 태조 왕건, 문종, 인종, 명종 등 역대 왕의 초상을 모셔놓고 정기적으로 참배했다. 지금 영통사란 이름의 사찰은 고려 현종기인 1027년 그 자리에 세워진 것으로 전한다. 왕실 사찰의 위상에 더해 영통사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11세기 대각국사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하면서부터. 대각국사 의천은 이곳에서 35년간 주석하며 불교학설을 강의해 남북한을 통틀어 빼놓을 수 없는 명찰로 키웠다. 1530년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영통사의 온전한 모습이 등장하고 있지만 1671년 김창협의 ‘송도유람기’에 적힌 “영통사의 주요건물이 불 탔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16세기 중반 절이 소실됐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북한이 고려왕조에 눈을 돌리기 시작할 무렵인 1997년부터 북한 조선사회과학원과 일본 다이쇼(大正) 대학이 공동으로 발굴 작업을 벌였다. 이후 남한의 천태종이 50억원 상당의 기와 46만장, 단청 재료, 묘목 등을 제공해 1만 8000여평 부지에 고려양식의 원 사찰을 고스란히 되살려놓은 것이다. 형태는 옛 고려 사찰 그대로이지만 북한군이 상주하며 올려세운 전각들은 한결같이 콘크리트 건물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절 앞에 서면 예사롭지 않은 대찰이었음을 금세 알 수 있다. 주차장에 바로 붙여 조성한 큰 마당 서편에 선 높이 4.7m, 두 돌기둥 사이 폭 72㎝의 거대한 당간지주가 당시 영통사의 사격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남한 사찰에선 흔한 일주문은 보이지 않는다. 일주문 격인 남문을 통해 절 안에 들면 거대한 회랑으로 나뉜 3개의 구역에 각각 들어앉은 전각들이 웅장하게 다가온다. 서편 끝의 종루와 동편 모서리의 경루가 회랑으로 연결된 정문인 중문에 들어서면 양 옆의 삼층석탑, 가운데에 오층석탑을 거느린 보광원이 우뚝선 채 내려다보고 있다. 전통사찰의 대웅전격 전각으로 영통사에선 중심 건물.2층 구조의 지붕 아래 닫집을 만들어 그 아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을 모셨다. 보광원 뒤편에는 중각원과 숭복원이 차례로 앉았다. 중각원은 대각국사와 제자들이 공부를 하던 곳.‘고려사’에는 이곳에서 50여차례의 대규모 강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숭복원은 태조 왕건의 원당으로 썼던 곳으로 나중에 사찰을 찾는 왕의 숙소로도 사용되어 행궁이라 불린다. 회랑으로 사방을 막은 것을 볼 때 당시에도 사찰의 다른 공간과 경계를 철저히 했음을 알 수 있다. 관세음보살을 봉안한 보조원 구역을 들어가려면 동문을 통해야 한다. 동문 앞에는 그 유명한 대각국사비가 우뚝 섰다. 거북 받침과 바닥돌을 1개의 통돌로 만들었는데 비 높이가 4.32m나 된다. 앞면엔 어린 시절부터 천태종을 개창하기까지의 대각국사 행적을 새겼고 뒷면에는 대각국사 제자 영근화상이 해서체로 쓴 묘실과 비명 내력인 사적기와 문도들의 이름이며 직명을 적은 제자 혜소의 글이 들어 있다. 보조원 뒤편에는 영통사와 관련있는 역대 고려 왕들의 초상을 모신 영영원이 서 있다. 사찰 뒤편 산 중턱엔 대각국사의 화상을 모신 경선원이 사찰을 내려다보고 있다. 대각국사는 이 곳에서 서쪽으로 4㎞ 떨어진 총지사에서 열반했는데 대각국사의 유언을 따른 제자들이 영통사에 잠시 법구를 안장했다가 다비한 다음 사리탑인 부도를 세웠다고 한다. 경선원 바로 앞에는 그 때 세운 부도가 그대로 서 있다. ‘송도제일루(松都第一樓)’라 쓰인 종루에서 회랑을 통해 동쪽 끝 경루에 올라서면 옛 시인이 쓴 시구가 눈에 든다. ‘오관산하고총림(五冠山下古叢林) 풍만누대녹수음(風滿樓臺綠樹陰) 경절진훤상한적(境絶塵喧常閒寂)’ ‘오관산 아래 총림이 섰으니/바람 가득한 누대에 푸른 나무 숲이 우거졌구나/빼어난 절경에 티끌마저 사라지니 이 얼마나 한가롭고 고요한가’ 남북이 합동 공사를 진행하면서 서로 다른 입장 차로 인해 수차례나 중단될 뻔했던 영통사 복원. 처음부터 수월치 않았지만 마침내 500년 염원을 풀어낸 큰 불사를 예견한 듯해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kimus@seoul.co.kr ■ 대각국사 의천은 영통사는 고려 왕조의 위상을 다시 세우기 위한 북한의 정책에 따라 500년 만에 복원되었지만 천태종찰을 되찾기 위한 남북한 불교계의 원력으로 되살아났다는 종교적 의미를 갖는다. 말할 나위 없이 그 가운데에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있다. 대각국사 의천은 태조 왕건의 4세손인 고려 11대 문종왕의 넷째 아들로 만월대 왕궁에서 태어난 인물. 여러 왕자들을 불러모은 문종이 당시 왕들도 자식을 승려로 만들었던 세태를 따라 “누가 승려가 되겠느냐.”고 물었는데 의천이 서슴없이 부왕의 뜻을 받들어 영통사로 출가했다고 한다. 10살 때 출가해 2년 뒤 승가에서 수여하는 높은 칭호인 ‘우세승통’에 올랐고 송나라의 이름난 사찰을 돌며 선지식인들과 만나 불교를 익혔다. 송나라에서 가져온 불경·경서 1000권 등을 모아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 이 곳에서 1000여종 4769권에 달하는 불경을 출판한 게 ‘고려속장경’이다. 고려속장경은 원의 침략으로 1232년 불탔다. 의천은 어머니와 선종이 죽은 뒤 남쪽으로 유람해 합천 해인사에 은거하던 중 의천의 셋째 형인 숙종의 부름을 받아 흥왕사 주지로 있다가 개성 총지사에서 입적했다. 의천이 세운 천태종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전파되었으며 의천은 입적후 대각국사라는 시호를 받았다. 대각국사비는 17대 왕 인종의 지시에 따라 세워진 것이다.
  • 세상을 등지려 했던 사연은 무엇일까

    세상을 등지려 했던 사연은 무엇일까

    그 자신 배우이면서 「톱·스타」김진규(金振奎)의 아내인 김보애(金寶愛)가 자살을 기도했다는 사실은 영화계 안팎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평소 별다른 말썽없이 영화인중에서도 가장 원만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것으로 알려진 김진규부인이 뭣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것일까? 「스타」라는 화려한 명성뒤에 도사린 이 의외의 비극을 훑어보면-. 성질 못돼서 만 되풀이 눈뜨고 보니 부끄럽다고 『참을성이 없었어요. 저만 혼자 편하려 했으니까 제가 잘못된거겠지요』 사건이 일어난 3일뒤에 의식을 회복한 김보애양은 기자를 만나자 이렇게 첫마디를 열었다. 9월29일 김양의 음독소식이 신문 방송에 실려나가자, 수십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고, 염치없는(?) 이 취재공세에 김보애는 그 자신이 소문없이 가버릴수있는한 평범한 여인일수 없었다는 점을 새삼 실감한 것같다. 무엇때문에 삶의 의욕을 버렸던가를 생각하기전에 자신의 행동이 몰고온 여파에 관심을 두는것 같았다.『다시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워요. 세상사람들이 모두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것 같아요』 무엇때문에 죽을 생각을 했는지? 이 물음에 김보애는『성질이 못돼서, 참을성이 없어서』를 되풀이 할뿐 확실한 답변을 꺼려했다. 한 측근자는 그날 아침 김보애는 부부싸움을 했다고 귀띔했다. 부부싸움의 이유는 경제문제가 됐고 이 싸움이 자살을 생각케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일까…. 부부싸움은 소문처럼 영화『성웅(聖雄) 이순신(李舜臣)』과 관계가 있었던듯…. 남편의 영화제작을 비롯 벌여놓은 사업등이 얽혀 그의 남편 김진규는 약 6개월전부터 이『성웅이순신』제작에 일체의 재력과 정력을 쏟고있다. 특수촬영을 위해 「풀」을 만들고 거북선을 주조하는등 영화가 촬영되기전에 이미 4천만원가량이 투자됐다는 소문. 당초 보통영화의 3배쯤 예상한 제작비가 의외로 확대되었으니까 자연 무리가 따를밖에 없었을 것. 지난 추석전날엔 밀린 노임을 내놓으라고 70여명의 인부가 한남동 김씨집에 몰려들어 농성을 했고, 이 소동속에 휘말린 김보애는 왼쪽엄지손가락이 절반가량 끊겨지는 상처를 입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김보애가 영화「이순신」에 짜증을 느꼈을건 추측할 수 있는일. 또 하나의 경제사정은 김보애자신이 벌이고있는 사업이 뜻같지 못하다는 점이다. 유달리 활동적인 성격으로 알려진 김보애는 한때 광화문에 「희원(喜苑)」이란 음식점을 내어 직접 팔을 걷고 나섰었다. 그리고 지난 봄에는 충무로에 5백만원을 투자해서 「커튼·숍」을 차렸다. 이 사업들이 부진하자 그는 또하나의 사업을 구상했었다한다. 한남동 집을 「스틱·하우스」로 개조해서 영업을 하자는 구상. 본격 「스틱·하우스」를 배우기 위해 그녀는 지난 8월에 일본에 다녀오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스틱·하우스」의 자금이 그녀의 힘으로는 벅찼던 것 같다. 그리고 남편은 「이순신」영화에 몰두해서 전처럼 도와주지도 못했다. 그녀는 스스로 이 사업설계를 추진해왔는데 그러는 동안 누적된 불평과 욕구불만이 이날 아침 폭발했을거란 관측이다. -돈이 그렇게 절실한 형편이었던가요? 『남들이 빚때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빚이 있다면 벌어서 깨끗이 갚아야지 그냥 죽는건 비겁하잖아요? 그리고 사실 저의 형편에 돈 천만원쯤 빚졌다고 그렇게 큰 타격은 아녜요』 돈을 모아 거부가 되고싶은 생각은 해보지 않았단다. 사업체를 벌이는 것은 남편과 아이들(그는 3남3녀의 어머니)의 뒷받침을 해주자는 목적이외에 잠시도 놀지못하는 성격 탓이라고 풀이했다. 『광우리 장수나 연탄장수를 하면 어때요.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녜요. 남루한 옷차림으로 야채 「리어카」를 끄는 채소장수 부부에게서도 행복한 웃음은 있어요. 내가 김진규의 아내 김보애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여성도 있을줄 압니다. 마찬가지로 저는 야채장수부부가 부러울 때도 있답니다』 남편이 일에 파묻인 탓에 답답한 일 의논할수 없어 김보애는 자신의 과거가 연속극에서 살아온것 같다고 말했다. 「팬」이나 사회에서 바라보는 눈길이 너무 강렬하기때문에 때로는 그 시선에 억눌리어 자기의 생활을 진실하게 가져보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내가 선 무대는 너무 고달팠어요. 산다는 것이 힘겨웠어요. 저의 가정은 「스크린」속의 인물이나 가정은 아니었어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것은 자기자신에게 충실할수있는 여건인 것 같아요. 사회가 보는 눈과 실제의 생활이 균형을 잃으면 그보다 비참할 수가 없어요. 저는 사회의 눈에 우리집의 현실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어요. 22세때 처녀몸으로 저는 10살과 8살짜리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읍니다. 그때의 보잘것 없던 작은 보금자리에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맨주먹에서부터 오늘을 이뤄왔읍니다-』 -무엇이 불만인가요? 『깊이 생각하면 참을수 없을 정도의 불만은 없어요. 일이 잘 안될때, 답답할때 저는 상의할 사람이 없어요. 남편은 자기일에 열중했고 오랫동안 우리는 의견교환조차 제대로 못했어요』 -의식을 찾았을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먼저 오늘이 며칠인가? 하는거였어요. 남편과 꼬마 「진근」이가 곁에 있더군요. 남편은 처음부터 계속 제곁에 있어줬어요. 남편의 애정을 실감하면서 왈칵 눈물이 나오더군요. 어린것을 두고 못할짓을 했구나 하는 후회와 함께 혼자 편안히 죽을생각을 한것이 욕심이 많아서였다고 반성하게 되더군요. 그 뒤 여러 사람들이 저를 찾아주셨어요. 혼자가 아니다, 따뜻한 인정이 있다, 살아야겠다… 이런거였어요』 [선데이서울 70년 10월 11일호 제3권 41호 통권 제 106호]
  • “개가 당구를?”…포켓볼 치는 강아지 눈길

    “당구치는 개 보셨나요?” 잉글랜드 슈롭셔(Shropshire)주에 ‘포켓볼 치는 개’가 화제가 되고 있다고 중국 장쑤(江蘇)성에서 발간되는 일간지 셴다이콰이바오(現代快報)가 31일 보도했다. 주인공은 10살 된 보더 콜리(Border Collie)종인 목양견(牧羊犬, sheep dog) ‘블루’. 블루가 주인집으로 왔을 때는 생후 6개월이었다. 블루의 주인은 “6개월밖에 안된 강아지가 포켓볼에 큰 관심을 보였다.” 며 “바에서 포켓볼을 칠 때마다 옆에서 유심히 관찰했다.”고 말했다. 신문은 “개가 공을 칠때 뒷다리로 서서 앞 발을 당구대에 걸친 후 엎드려 진지하게 조준한다.” 며 “앞발을 사용해 주인이 만들어준 큐대로 공을 친다.”고 소개했다. 또 “공이 포켓에 들어가면 블루는 흥분하여 당구대 주위를 몇 바퀴고 돈다.”고 전했다. 블루의 당구실력을 지켜본 주위사람들은 ‘포켓볼 신견’ 혹은 ‘테니스 소녀’ 마르티나 힝기스의 이름을 따 ‘허리케인 힝기스’라 부른다. 블루의 주인은 “호기심이 많아 내가 하는 것은 모두 따라한다.”며 “블루에게 방을 따로 내주어 혼자 트윈베드에서 잠잔다.”고 덧붙였다. 나우뉴스 신청미 기자 qingme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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