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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에도 개혁의 미풍”/호 국립대 연구원,홍콩지에 방북기

    ◎자영업 인정ㆍ화폐경제… 10년전 중국과 비슷/「국방우위」변화… 보수파 제동으로 개혁 더뎌 북한은 아직도 겉보기에는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회로 보이지만 최근 들어 자영업이 인정되고 화폐경제요소가 등장하는가 하면 국방우위정책을 재평가 하는 등 안으로는 중요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홍콩의 시사주간지 파이스턴 이코노믹 리뷰지가 5일 발매된 12일자호에 보도했다. 호주국립대학 동북아과정 연구원인 개리 클린트워스씨가 지난 4월 북한을 다녀온뒤 기고한 「평양 페레스트로이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북한의 내면적 변화가 흡사 10년전 중국의 변화를 방불케 한다고 진단하면서,그러나 당과 군의 보수세력 때문에 변화는 느리고도 통제된 형태로 진행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이 기사의 요약. 북한은 겉보기에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북한에도 오래전부터 단파방송이나 재일동포들의 왕래를 통해 조금씩 외부소식이 들어왔다. 북한당국도 중앙계획경제와 지나친 국방우위정책으로 자원배분이 왜곡되고 있으며 동북아지역 경제발전의 흐름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북한도 개혁을 통해 살아남길 원하지만 이로 인해 중국ㆍ동구ㆍ소련처럼 권력이 불안해지거나 유혈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북한의 기술관료 엘리트들은 사석에서 사회주의의 폐단과 북한구조의 단점을 인정하곤 한다. ○사회주의 폐단 시인도 북한사람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도 승리할 수 없으며 테러ㆍ원자탄 등이 합리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군부와 보수적인 당관료를 중심으로 신사고에 대한 저항도 엄존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는 완만하고 통제된 형태를 띨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에도 이미 변화가 발생하고 있으며 그 모습은 10년전 중국과 비슷하다. 노동자들은 생산량에 따라 현금 보너스ㆍ상품ㆍ메달 등을 추가로 받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자영업도 허용되고 있다. 기차역에는 주로 여성들이 삼륜차를 대기시키고 있는데,이것이 대표적인 자영업이다. 이들의 노동은 매우 힘드나 수입은 일반인들에 비해 4∼5배에 달한다. ○국가발행 복권도 등장 또 북한이 점차 화폐경제로 이행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보조금에 의해 싸게 공급되던 난방ㆍ주택임대료ㆍ수도ㆍ전기료 등을 실제가격으로 올리는 계획을 추진중이다. 지폐를 쿠폰으로 대체하고 있으며 이자(일반예금 1∼2%,정기예금 3∼5%)도 지급된다. 국가가 운영하는 복권도 등장,당첨자는 TV 1대를 구입할 만한 「거액」도 만져볼 수 있게 된다. 청진ㆍ함흥ㆍ판문점,그리고 북방의 일부지역등 군사적 관련지역을 제외하고는 여행제한도 크게 완화됐다. ○중국경제특구에 관심 이같은 변화는 북한인들에게 있어 중요한 「신호」이다. 국방우선주의에 대한 재평가는 최근 변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나 한국이 군사적 반응을 초래할 어떠한 자극도 회피하고 있다. 또 비무장지대의 땅굴이 자신의 소행임을 인정하면서 그같은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비친다. 북한은 중국의 경제특구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방위산업의 일부를 자전거ㆍ완구ㆍ컴퓨터ㆍ레코드ㆍ생필품 공장으로 바꿔 나가고 있다. 물론 주한미군철수문제,일본에 대한 불신등 변하지 않고 있는 부분도 있다.
  • 수령 5백년 은행나무 고사위기/서울 사당동 은행나무골 동작구 나무

    ◎마구잡이 건축공사에 파헤쳐지고 잘리고…/「4m간격」어기고 1m거리에서 신축/“공사에 방해된다” 가지 2개 잘라버려/주민들 “시정”탄원 구청서 묵살… 보호책 시급 재개발사업 등 각종 건설사업으로 자연환경이 잇따라 훼손되고 있는 가운데 수령5백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행정관청의 관리ㆍ감독소홀과 한 건축업자의 무분별한 이기심 때문에 고사할 위기에 처해있다. 서울 동작구 사당4동 281의1 「은행나무골」에 우뚝 서있는 밑둘레 3.2m,높이 20m인 문제의 은행나무는 지난81년 10월27일과 82년10월 동작구청과 서울시에 의해 각각 「동작구 나무」 1­14­34호와 「서울시 지정보호수」57호로 지정됐으나 아무런 보호를 받지못하고 가지가 잘린채 흉한 모습을 하고있다. 수백년동안 「은행나무골」의 수호신처럼 받들어져 오던 이 은행나무가 날벼락을 맞게된 것은 지난 5월10일쯤. 나무밑둥에서 불과 1m밖에 떨어지지 않은 지점에 지하1층 지상3층 연건평 2백50평 규모의 콘크리트 연립주택 건축공사가 시작되면서 시련을 겪게된 것이다. 공사를 맡은건축업자 최모씨(33)는 이 나무앞에 세워져있던 보호수표지판은 물론 나무를 보호하기위해 나무주위에 설치해놓았던 시멘트 보호벽마저 포클레인으로 깨끗이 치워버렸다. 이에 주민들은 「건물경계선은 지정보호수의 수관폭을 벗어나 나무줄기에서부터 최소한 4m이상은 떨어져 시공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내세워 건축공사를 원칙대로 해줄것을 요구하는 진정서와 탄원서를 서울시청과 동작구청에 수십차례나 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답신을 받지못하고 있다. 서울시가 펴낸 「90년도 주요업무계획 추진지침」에 따르면 「보호수는 천연보호림을 보호관리하는 요령에 따라 보호하고 특히 주택지에 있는 보호수는 관리를 철저히 해 뿌리주변이 붕괴되는 일 등이 없도록 하고 노후ㆍ훼손된 보호수표지판은 우선적으로 교체ㆍ보수하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탄원과 진정은 아랑곳없이 공사는 계속 진행돼 지상1층까지 콘그리트작업이 계속됐고 지난달 1일에는 건물 1층으로 뻗어나간 직경 50㎝,길이 4m가량의 나뭇가지 2개가 공사장 인부에 의해잘려나가고 말았다. 지난 68년 7월3일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사당리에서 서울시로 편입된 뒤에도 사당4동보다는 수백년전부터 유래된 「은행나무골」로 잘알려진 이곳 주민들이 이 은행나무에 쏟는 애정과 정성은 남다르다. 해마다 촛불을 켜놓고 각종 고사와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물론 은행나무와 관련된 각종 모임도 구성돼 있다. 10년전 회원 20명으로 「행우회」를 구성했고 3년전에는 「은행나무 친목회」를 2년전에는 역시 20여명으로 「은행나무계」를 만들어 한달에 1∼2번씩 만나 친목을 도모하고 은행나무를 잘가꾸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 또 파출소의 명칭도 「은행나무골」의 유래를 이어가기 위해 2년전에 「사당5파출소」에서 「은행파출소」로 바꾸기까지 했다. 이 동네 20통 통장 신석철씨(45)는 『주민들이 계속해서 건축업자에게 건물경계선이 나무밑둥에서 4m이상 떨어지도록 다시 공사를 하고 보호벽을 원래대로 세워줄 것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했다』면서 『업자도 업자지만 수십차례에 걸쳐 민원을 냈는데도 나몰라라하고 있는 행정관청이더 원망스럽다』고 분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에대해 『현재 서울시에 1백97그루가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돼 특별관리되고 있으나 이같은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앞으로 재개발사업 등에 따른 보호수의 훼손사례가 늘어날 것에 대비해 보호수 실태조사를 실시한뒤 적절한 보호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노대통령 「국민과의 대화」 토론 내용

    ◎“방송·보안법 등 전향적으로 고칠 것”/분규등 사회불안 정치인 잘못… 책임 통감/재벌 문어발 경영·중기 침투 등 강력 제재/제조업체 인력난 덜게 기술훈련을 지원/반북의식 극복방안·지도층 도덕성 회복 등 촉구하기도 ▲노태우대통령=6·29 3주년을 맞아 국민 각계각층 대표들과 함께 90년대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에 대해 기탄없는 말씀을 듣는 기회를 갖게 되어 반갑게 생각합니다. 편리하게 진행시키기 위해 저 자신이 직접 사회를 보겠습니다. 왼쪽에 계신 분부터 말씀해 주십시오. ▲곽영훈씨(건축가·환경그룹회장)=저는 6·29선언을 청사진에 비유했습니다. 87년 당시 상황으로 보아 꼭 만들어졌어야 할 멋진 작품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시점에서 대부분 사람들의 의견은 제대로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직선제등 세가지 어려운 기초공사는 끝났으나 지자제·언론자유·민생치안 등은 기둥을 올리다 중단시킨 듯한 느낌입니다. 6·29 청사진대로 민주주의 위업이 완성돼야 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노대통령=청사진은 국민의 뜻을 담는 민주주의의 전당이라는 꿈을 지어달라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 모두가 함께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행복을 추구하는 가운데 어려움도 있고 고통도 없지 않았습니다. 회고하건대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고 정부를 선택했으며 각계각층으로 민주화와 자유의 물결이 파급돼 나갔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시리라 믿습니다. 민주주의의 전당은 완성된 것이 아니며 완성시킬 수도 없습니다. 계속 만들어져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6·29선언을 얼마나 잘 지켰나 하는 점은 역사가 평가해 줄 것입니다. ▲서경석씨(목사·경실련사무총장)=국민화합이 이뤄지려면 민주적 법질서가 확립되고 법이 공정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집시법·국가보안법·노동관계법·안기부법은 민주적이 아닙니다. 경제개혁을 통한 빈부 양극화 현상도 해소돼야 하고 금융실명제 유보조치도 철회되어야 합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대해서도 정부는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노대통령=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견해에 공감합니다. 6·29이후 오늘까지 비민주적으로 지적된 많은 법들은 국민이 지켜야 한다는 방향으로 고쳐졌습니다. 대강 알아보니 3당통합전 비민주적이라고 추려낸 법령이 1백47개나 됐고 이 가운데 1백37개가 고쳐졌습니다. 옛날에 악법이라는 개념에 속한 법은 고쳤거나 고쳐지고 있습니다. 방송법·국가보안법 등에 대해 시비가 붙어 있지만 절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고 역행하는 법으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토론등 국민의견 수렴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촉진하고 언론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에서 전향적으로 고칠 것입니다. 부동산투기 근절과 관련해 지금 정부가 취하는 조치가 미봉책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나자신으로서는 절대 미봉책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밝힙니다. 임시국회에서 부동산등기를 의무화하는 특별조치법을 마련해 토지거래를 실명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와 더불어 토지거래허가제와 지가가 다른 토지의 표준화를 강력히 실시하고 재산세와 양도세를 더 높이겠습니다. 재벌들의 비업무용 토지를 빨리 처분케 하고 더이상 비업무용 토지를 가질 수 없도록 행정조치를 강화하겠습니다. 우리의 택지와 공장용지가 전국토지의 2%밖에 안됩니다만 이를 더 넓히겠습니다. 부동산투기만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뿌리뽑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의 급성장에 따라 정부가 재벌에게 경제력을 집중시켰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대기업들은 주력업종에 대해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고 문어발식 경영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중소기업분야에 대한 대기업의 침해도 강력한 행정조치로 막겠습니다. 상속·증여·양도세도 월등히 강화시켜 재벌의 경제력 집중에 대한 국민들의 염려를 해소해 나가겠습니다. ▲서목사=그러나 금융실명제 실시는 국민의 80%가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노대통령=영원히 하지 않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원영군(서울대인문대 철학과4년)=남북통일을 위해서는 반북의식을 극복해야 하며 긴장상태인 남북관계를 평화상태로 개선해야 된다고 봅니다. 기성세대는 정국불안을 학생소요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젊은 세대들은 여야가 당리당략에 급급해 파행적으로 정치운영을 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저희가 그동안 물질적 성장에 노력하다보니 도덕성문제를 간과하고 있다고 보여지는 데 도덕성 회복을 위해 어떤 정책을 추진해 나갈 것입니까. ▲노대통령=정국불안과 경제둔화에 대해 일부 기성세대는 학원소요,노사분규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나자신은 정치인의 잘못이 제일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제일 큰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으며 그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러나 한마디 간곡히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기성세대의 한 세대를 30년간으로 보면 우리의 한 세대는 외국의 3∼4대가 한 일을 해냈습니다. 우리는 수천년간 가난과 무지와 외부침략만 당해온 민족으로 3가지 한을 품어왔습니다. 이 한가운데 아버지세대가 절대빈곤을 추방했으며 무지의 한을 풀게 했습니다. 안보·국방문제도 외국이 넘볼 수 없을 만큼 튼튼해졌습니다. 새로운 세대가 봤으면 왜 기성세대가 못났느냐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일을 급하게 하다보면 못한 일도 아쉬운 일도 있을 것입니다. 공직사회나 가정 모두에서 도덕성의 가치관을 심어줄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지도층에서 모범을 보여야 하며 호화사치 배격에 수범을 보여야 합니다. 정부도 잘 돼나가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최진식씨(풍국공업사장)=최근 우리나라는 생산인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없어 웬만한 중소기업은 50%정도의 공장가동률밖에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생산직이 까다롭고 지저분하기 때문에 무조건 이를 회피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모든 분야의 지도층 인사들이 잘못된 시대적 흐름을 바로잡아 생산직 일에 충실하면 자기발전의 새로운 보람을 얻을 수 있다는 범국민적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이같은 잘못된 시대적 흐름을 바로잡기 위한 어떠한 구체적인 정책을 갖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노대통령=공감합니다. 특히 중소기업의 제조업분야 인력 구하기가 힘든 것으로 듣고 있습니다. 서독은 50년대 영국보다 경제규모가 뒤졌으나 60년대 들어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은 인력이 서비스분야에 몰렸지만 서독은 제조업분야에 인력이 보다 집중됐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앞으로 과거 소홀했던 제조업분야에 집중 지원,투자할 것이고 특히 수출분야에 집중 지원하겠습니다. 반대로 사치스러운 서비스분야는 중과세를 매겨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고 실감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조업분야의 인력난은 정부와 기업 모두가 반성해야 합니다. 지난 81년부터 89년까지 일반고등학교는 3백여개가 늘었지만 공업고등학교는 불과 4개밖에 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는 제조업분야의 기술훈련에 집중 후원토록 하겠습니다. ▲조영황씨(변호사)=두가지 점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첫째는 6·29선언을 했을 때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으며 그것은 민주주의의 정도라고 이해했습니다. 국민의 뜻을 대통령이 알기 위해 직접 국민의 의사를 들을 수 있는 민간단체 의견청취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많은 사람들이 정부의 정책을 믿지 않고 있어 정부가 어떤 좋은 일을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대통령은 6·29선언그때의 심정으로 돌아가 국민과의 약속은 어느 경우에나 지킨다는 약속이 꼭 필요합니다. ▲노대통령=따가운 이야기이면서 좋은 충고로 생각됩니다. 대통령은 약속지키는 대통령,그렇게 노력하는 대통령이라는 것을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조변호사에게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을 반대한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습니다. 그런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각 분야마다 1주일에 5∼6회는 소관위원회로부터 얘기를 듣고 있습니다. 근로자주택 2백만호를 짓겠다고 했는데 이는 우리 역사상 지은 것의 3분의1 수준입니다. 건설현장에서 근로자들에게 정성껏 얘기하면 손잡고 고맙다면서 눈물을 흘립니다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 어떤 사람들이 이를 부정해 고맙다고 했던 것을 다 잊어버립니다. 집을 안 짓는다고 믿는 것이죠. 불신하는 국민들을 근본적으로 원망하지 않습니다. 더욱더 노력하고 국민을 받드는 자세로 일해 나가겠습니다. ▲이미영씨(서진전자 청주공장 근로자)=근로자 임금이 매년 인상되고 있으나 물가는 그 몇배로 뛰고 있습니다. 근로자 임금으로저축도 하고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책을 말씀해주십시오. 여성근로자들이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살인강도·인신매매에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즐겁고 밝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대책을 말씀해 주십시오. ▲노대통령=물가는 저자신의 의지는 물론 정부의 의지로 금년말까지 한자리수이내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경제장관들에게도 말했지만 직분과 명예를 걸어놓고 물가를 잡도록 강력히 지시했습니다. 한가지 당부할 것은 정부 힘 하나로는 물가를 잡을 수 없습니다. 지난 3년간에 우리 근로자 임금도 64% 올랐고 작년의 경우 추곡가도 일반미 14%,통일벼 12%가 올랐습니다. 주가가 올라가면 대통령에게 고맙다는 말한마디 없지만 주가가 떨어지면 심한 압력이 들어옵니다. 물가가 오르지 않도록 모든 경제주체가 노력해야 합니다. 물가가 오르는 것을 감안,어려운 근로자에게 장학금및 학자금융자를 확충하고 이번 임시국회에 내놓은 세제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 근로소득세가 20% 내리게 됩니다. 민생치안 문제는 공직자를 대표해 국민에게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정부가 총역량을 경주해 성과가 다소 있지만 국민의 기대에는 미흡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배석한 내무장관에게) 공단주변 폭력배 단속을 철저히 하는 방법을 강구해서 보고해 주십시오. ◎모든 경제주체 합심,「한자리수 물가」 지켜야/교원 4천명 올 해외 연수… 처우도 대폭 개선 ▲송선열씨(신한은행 인사부대리)=보통사람인 봉급생활자에게는 근로소득세 경감이 절실한 형편입니다. 우리나라의 담세율이 결코 높다고는 생각지 않으나 재산소득및 사업소득,특히 불로소득에 비해서는 높다고 생각합니다. 또 2천년대에는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으로 여기게끔 지역감정의 해소방안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노대통령=근로자들의 세부담이 커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임시국회에서 근로소득세 경감법안을 통과시킬 방침입니다. 이렇게 되면 1백만원 월급생활자(4인 기준)는 전보다 세액이 40%정도 감소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역감정 문제도 기성세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남북이 나눠진 것만도 억울한 데 지역적으로 쪼개진다는 것은 너무 커다란 문제입니다. 서해안 개발도 지역감정을 해소하고 지역간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입니다. 광주문제도 관련법률이 현재 국회에 제안돼 있으므로 빨리 통과돼 10년전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억울함을 달래는 일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정치인을 위시해 모든 지역·계층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화합을 한다면 지역감정 문제는 해소되리라 생각합니다. ▲임형재씨(휘문고 교사)=갈수록 치열해져가는 과열입시로 청소년은 창조적인 능력개발이 무시되고 좌절에 빠지고 청소년이 비행을 저지르거나 혼탁한 범죄에 말려드는 수가 있습니다. 학부모부담 학비가 가계에 큰 부담이 되고 천차만별의 사교육으로 국민간에 위화감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교원의 사회적 위치개선 관계,과밀학급 해소 등 낙후된 교육시설에 대한 국가지원 등 보다 안정되고 확고한 문교정책이 실시돼야 합니다. 교육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교조에 참여했다 해직된 1천5백여명의 해직교사들의 복직을 허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대통령=6공화국 들어서 국가재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의 범위안에서 교육비 부담을 경감시키고 교사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매년 3천7백억원을 투자하고 있으며 사학의 재정도 점차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교원들의 대우도 어느 정도 좋아지고 존경받는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런 차원에서는 흡족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해 1천억원을 내서 교원들의 처우개선에 노력하고 있으며 교원해외연수도 작년의 3천명에서 올해는 4천명으로 늘렸습니다.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여러 교원들이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이해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군사부일체라는 우리의 뿌리와 역사와 문화가 있습니다. 스승은 노동자의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비록 어려운 환경에 있더라도 마음만은 드높아야 합니다. 이런 입장에서 보았을 때 스승님들이 노조를 만들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해를 하지 않습니다. 누구보다도 스승된 입장에서 나라의 법을 지키는 데 수범이 돼야 합니다. ▲임교사=지난 2월 국회에 제시된 여로조사 결과를 보면 교원의 80∼90%와 일반 국민의 60%가 교조를 찬성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국민여론 수렴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이 문제는 보다 깊이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대통령=여론을 중시합니다. 그런 여론을 참고하겠지만 대통령은 여러 기관으로부터 여론을 듣고 있기 때문에 조금 전에 내가 말한 것이 국민의 여론을 가장 잘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얘기도 무시하지는 않겠습니다. ▲김천재(동일재봉사 노조위원장)=노조의 정치활동이 지난 63년 12월이후 계속 금지되어 오고 있는데 90년대 정치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노조의 정치활동 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세제개편을 통한 근로자들의 복지세제가 이루어져야 하며 저임금 영세사업 근로자들의 내집마련과 관련,부모와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평수가 건립돼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정부의 법집행이 노동자에게는 엄하고 사용자에게는 후하다는등 법집행의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대통령=노조가 탄압당하고 있다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이 지난 3년간의 노사분규의 경험을 통해 과거와 같이 기업과 근로자가 불건전한 관계가 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깊이 뉘우치고 건전한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동관계법은 6공출범이후 야당이 많은 상황에서 민주적으로 관계법을 개정했습니다. 근로자와 기업이 서로의 권리를 인정하고 같은 배에 탄 공동운명체라는 입장에서 노력해 주기를 당부합니다. 주택과 부동산대책은 정부가 해야 할 최우선과제로,주택문제에 있어서는 오는 92년까지 근로자를 위해 25만호의 임대주택을 지을 예정이며 근로자에게 우선 배정하겠습니다. ▲신낙균씨(여성유권자연맹부회장)=여성의 사회참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인 보장없이는 곤란한데 제도개선을 어느 정도 구상하고있으며 구상된 제도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또 청소년들은 하지 말라는 것만 있고 하라는 것은 없는 실정입니다. 운동장 없는 학교는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노대통령=흔히들 해놓은 것은 잊어버리고 해야 할 것을 말하는 예가 많은 데 89년은 여성들에게 참으로 뜻깊은 해로 기록되어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선거때 공약한 가족법의 개정과 남녀고용평등법의 제정,여성권익 신장,직업의 확대 등이 벌써 실천되고 있습니다. 공무원의 임용시험령도 바뀌어 지난 88년의 경우 9급 공무원의 합격비율이 10%에 그쳤으나 올해는 30%로 확대됐습니다. 과거에 없었던 정부제2장관을 여성전용장관으로 했으며 15개 시도의 가정복지국장도 전에는 남자로 했으나 여자로 고정시켰습니다. 여성의 힘이 크기는 큽니다. 경찰대학에서도 여성이 잘하고 있으며 철도전문대학에도 여학생이 있으며 군에서도 보면 여성인력이 우수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청소년들을 위해 여러가지를 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청소년센터를 건립해 여가선용과 취미활동·스포츠를 즐기도록 하고 있으며 야외 종합수련장도 더욱 확대해 청소년들의 여가를 선용하도록 해야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체육부가 청소년체육부로 바뀌어 청소년 10개년계획을 마련하는 데 이미 착수했습니다. ▲이현복씨(경기도 양평·농민)=10년전 10개년게획으로 농촌생활을 시작했으나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농촌문제는 현재 농어민 후계세대의 단절입니다. 또 농축산물 가격안정입니다. 농촌의 어려움은 농축산물 가격이 안정되지 못한 데도 큰 원인이 있습니다. ▲노대통령=먼저 이번 호우에 피해는 없었습니까. (이씨가 보편적으로 없는 편이라고 대답). 농어촌의 근본문제로써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은 영세성,경제여건에 의한 외국농산물 수입문제입니다. 이들 문제는 그때 그때의 임시처방이 어렵고 근본적으로 구조를 바꿔야 하는 것이어서 지난해에 농어촌개발종합대책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이에따라 16조원을 투입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농사 하나갖고는 안되며 중소도시나 농어촌에 들어서는 공단에서 직업을 갖고 일함으로써 농외소득이 농사소득보다 많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가격안정도 시급하다는 생각에서 가격안정기금을 조성해 농산물가격 불안을 해소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유통구조도 일대 개선을 해야겠다는 판단으로 관계기관에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농림수산·재무장관에게) 특히 우유문제에 있어서는 부가가치세 문제,배합사료 문제 등을 협의해 보고해 주십시오. (문교장관에게) 초·중·고교에서 우유를 먹이고,전체는 아니지만 급식도 하고 있다지요. 얼마 전 상주출신 서울유지들이 돈을 내서 우유를 구입,상주어린이들을 모두 먹인다는 얘기를 듣고 흐뭇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낙농가에게도,어린이에게도 모두 좋은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부총리와 문교장관이 이 문제를 협의해서 보고해 주십시오(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26억원을 증액했다고 농수산장관이 보고). ▲유화선씨(스피드파스너업무부장)=통일을 위한 사회적 기틀이 마련되기 위해서 정신적인 뿌리와 함께 질서와 권위가 지켜지고 국민들의 뭉쳐진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지금은 정신적인 뿌리도 권위도 망가진 상태라고 생각됩니다. 참다운 국가의 권위와 뭉쳐진 힘이 없는 이때 어떻게 통일을 위한 90년대가 있을 것이며 전국민은 하나로 뭉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노대통령=국민들간에는 권위주의와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는 권위를 서로 구별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권위주의는 정치적인 차원에서 억압을 하고 지시형으로 모든 일을 이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이런 권위주의는 청산돼야 합니다. 지난 87년 6·29선언을 할 때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를 위해 인식과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생각납니다. 이 과도기는 지나갈 것이며 멀지않아 각계에서 존경받는 권위가 확립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 통일과 민주주의는 없습니다. 오늘 주된 토론이 둔화되고 있는 경제력을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느냐,제2의 도약을 어떻게 할 것이냐에 초점을 두고 진행됐습니다. 경제력을 길러야 하고 국민모두가 합심협력함으로써 하루라도 통일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많은 분들의 기탄없는 말씀을 겸허한 마음으로 경청했습니다. 아주 유익한 말씀으로 생각합니다. 오랜시간 함께 생각해 주시고 자리를 함께 해주신 각계각층의 대표자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듣고 만나고 직접 눈으로 보면서 여러분들과 기쁨도 고통도 함께 나누면서 국민을 잘 받드는 대통령될 것임을 다짐합니다.
  • “거미줄” 고속전철,유럽을 달린다(특파원 코너)

    ◎14개국,철도공동건설 합의/“런던∼나폴리 10시간” 하루생활권에/알프스에 새 터널… 7개노선을 확정/기종선택 이견ㆍ전압 달라 매듭까진 난관 곳곳에 유럽대륙이 1일 생활권으로 묶이게 될날이 멀지 않았다. 그 주역은 고속전철. 유럽공동체(EC) 12개 회원국 및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 14개국으로 구성되어 있는 유럽철도협회(CCFF)는 최근 브뤼셀에서 모임을 갖고 전유럽고속전철연계건설을 위한 공동계획을 확정했다. 동구국가들의 철도관계자들까지 참석시킨 가운데 열린 이번 회의에서는 유럽통합에 따른 가장 시급한 공동의 과제는 대량운송수단의 확보라는 점에 의견을 모으고 이를 위해 동서유럽을 종ㆍ횡으로 잇는 고속전철망을 구축하기로 의결했다. 유럽의회의 교통ㆍ관광위원회에 제출되어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전유럽고속전철연계건설계획은 3개의 유럽횡단노선을 기본축으로 하고 여기에 4개의 종단노선을 두는 등 모두 7개 노선의 고속전철망을 2천년초까지 구축한다는 것이다. 동서축의 1번선은 런던(파리)을 출발하여 브뤼셀∼쾰른∼하노버∼베를린을 경유하여 바르샤바까지 내닫는다. 파리를 서쪽 시발역으로 하는 중부선은 스트라스부르∼뮌헨∼빈∼부다페스트를 차례로 지나 부쿠레슈티에 이르게 된다. 또 남부선은 이베리아반도 남쪽의 카타론뉴(스페인)에서 떠나 리용∼밀라노∼자그레브를 경유하여 베오그라드에 닿게 되며 소피아까지 연장할 수 있게 했다. 종단노선은 바르셀로나를 출발하여 북상하는 1번선이 가장 길며 리용∼파리∼런던을 지나 에든버러까지 올라간다. 두번째 선은 밀라노에서 떠나 취리히∼스트라스부르∼하노버∼함부르크를 경유,코펜하겐을 북쪽 종착역으로 삼았다. 이탈리아반도를 종단하게 될 3번선은 나폴리가 남쪽 종점으로 로마∼피렌체∼볼로냐∼뮌헨 등지를 지나 베를린까지 간다. 또 발칸반도의 살로니카(그리스)를 출발하는 4번노선은 베오그라드∼부다페스트∼빈 등을 거쳐 바르샤바에 이르게 된다. 이같은 방대한 계획이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은 고속전철의 속도개선이 한몫을 크게 했다. 지난달 시속 5백15.3㎞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프랑스 TGV를기준으로 볼때 파리에서 유럽 어디든지 10시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TGV의 최고속력으로 계산한 것이 아니라 시속 3백50㎞정도의 상업속도를 기준한 것이다. 파리에서 리스본까지 10시간15분,나폴리까지 8시간30분,마드리드가 6시간45분,함부르크는 6시간30분 정도 소요되며 도버터널이뚫린뒤 런던은 2시간10분만에 갈 수 있으며 암스테르담까지도 2시간50분이면 넉넉하다. 런던에서 바르셀로나 까지는 현재 파리에서 마르세유까지의 소요시간인 7시간 정도밖에 안걸린다는 얘기이다. 현재 파리 르망간의 대서양노선의 TGV가 최고 3백20㎞의 시속으로 운행되고 있으며 상업속도 역시 계속 개선되어 나가고 있어 유럽 각 도시간 운행시간도 더욱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유럽고속전철 연계건설작업은 아직 계획단계이지만 각국별로 보면 이미 구체적인 작업이 진행중인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선 프랑스의경우는 이미 10년전부터 TGV를 운행하기 시작,파리에서 리용ㆍ제네바ㆍ낭트를 각각 잇는 3개 노선이 열려 있으며 계속 확장해 나가고있는 중이다. 프랑스는 특히 오는 98년까지는 암스테르담ㆍ브뤼셀ㆍ프랑크푸르트ㆍ쾰른까지 TGV노선을 연장시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통독을 전제로 하여 동서독간에는 현재 하노버∼베를린간에 고속전철을 위한 새 철길을 깔기로 협의중에 있으며 프랑크푸르트∼라이프치히∼베를린을 잇는 전철선 신설계획도 진행중이다. 스위스는 유럽전철망의 도입을 위해 알프스에 새로운 터널을 뚫을 계획이며 이탈리아는 밀라노∼로마∼나폴리 선과 토리노∼밀라노∼베내치아선이 포함된 고속전철 10개년 계획을 추진중이다. 이같은 계획들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유럽의 고속전철 총연장은 현재의 1천1백㎞에서 95년까지는 7천㎞로 늘어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전유럽고속전철연계 건설계획은 극복해야할 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국간의 이해관계 대립의 해소문제다. 고속열차의 기종선택ㆍ운행시스템ㆍ조정ㆍ연계방법의 차이 등 이해대립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한발 앞서가고 있는 프랑스는 TGV의 우수성을 내세우며 전유럽노선에TGV가 달릴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으나 TGV의 맞수인 서독의 ICE는 쉽사리 양보할 기미가 없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에서도 TGV가 런던시내까지 파고드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어 런던을 우회 해야할 입장이다. 각국이 서로 다른 기종을 선택할 경우에는 또다른 문제점이 드러나게 된다. 사용전기의 전압만 보더라도 프랑스 영국 덴마크 등은 2만5천V를 사용하지만 벨기에 이탈리아 폴란드는 3천V를,그리고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는 1만5천V를 사용한다. 미래 고속열차에 필수적인 전화도 각 나라마다 기기시스템이 다르며 객차의 연결방식도 제각각이다. 서로 양보하기도 힘들고 기술적으로 통일시키기에도 어려운 문제점들은 이밖에도 많다. 동구 각국의 궁핍한 재정형편도 장애요인의 하나. 이같은 문제점들을 헤쳐나가면서 전유럽대륙이 고속전철망으로 묶여질때 그동안 비행기에 밀리고 자동차에 괄시받던 철마는 과거의 영광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본토망명 7년만에 돌아온 대만가수/후덕건 전격 귀환… 속사정은

    ◎「6ㆍ4사태」이후 사회주의에 염증/천안문서 투쟁 주도… 한때 구속 지난 83년 6월 중국대륙으로 망명했던 대만의 가수겸 작곡가 후덕건(34)이 7년이 지난 20일 자의반 타의반에 의해 대만으로 송환돼 화제가 되고 있다. 후는 10년전 중화민족의 얼과 통일염원을 담은 「용의 후계자」란 노래로 크게 유명해진 뒤 당시 대만이 계엄령 아래 있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인 억압이 심하다는 이유로 홍콩을 거쳐 대륙으로 건너 갔던 것. 후는 중국대륙의 개방ㆍ개혁바람이 민주화를 촉진시키고 그의 예술창작활동도 크게 뒷받침해 줄 것으로 믿었으나 사회주의 제도에 점차 실망을 느끼다가 지난해 6ㆍ4사건때 천안문 광장에서 단식투쟁을 하던 중 체포,구속됐다. 그는 올해초 석방됐으나 지난 5월30일 동료 2명과 함께 북경주재 외신기자들과 회견을 갖고 그동안의 구금생활실태를 폭로할 계획을 세웠다가 다시 중국공안당국에 의해 지하조직과 연루돼 있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당초 7년전에 후가 대만에서 망명해 왔을때 중국당국은 두손을 들어 환영해 마지 않았지만 이제는 골치거리 뿐인 그를 더이상 국내에 두고 싶지 않아서인지 『당신이 원하면 대만에 돌려 보내 주겠다』고 제의했으며 후도 이를 흔쾌히 받아 들였다는 것. 그는 대만해협에서 중국 선박으로부터 한 대만어선에 옮겨 실린뒤 이틀 후인 20일 하오 되돌아와 대북당국에 자수했으며 『왜 다시 돌아왔느냐』는 질문에 『말할 수 있는 것은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는 한마디 뿐』이라고만 대답했다. 한편 홍콩과 대만 언론들은 후의 행동이 대륙 대만 양안의 정국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논평하기도.
  • 대전엑스포 조직위 허남훈총장에 듣는다

    ◎“우리산업 도약의 경제올림픽으로”/1천만명 관람 예상… 「한국비전」전세계에 과시 BIE(국제박람회기구)의 대전엑스포93 공인을 계기로 허남훈 대전국제무역산업박람회 조직위 사무총장을 만나 대전엑스포93의 준비상황과 앞으로의 대책을 들어봤다. ­대전엑스포93이 마침내 BIE의 공인을 받았다. 대전엑스포의 개최 의의는. ▲우리나라가 지난 30여년간의 국민적 노력으로 이룩한 경제발전의 실상을 돌아보고 21세기를 눈앞에 둔 현시점에서 엑스포를 통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발전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다시 말해 대전엑스포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긍지를 바탕으로 전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화합의 축제이며 청소년에게 21세기를 향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게 된다는데 큰 뜻이 있다. 또 국제적으로는 한국의 소중한 발전경험과 실상을 보여줌으로써 개발도상국에 희망을 주고 서울올림픽으로 부상한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다시한번 떨치게 될 것이다. ­흔히들 대전엑스포가 88서울올림픽에 이어 「경제올림픽」이라고 불릴 정도의 큰 규모라고 하는데 그만큼 국제적인 과시효과가 있는지. ▲올림픽은 체육ㆍ문화적인 행사로 국위선양에 도움이 됐지만 엑스포는 산업ㆍ경제적 차원에서 한단계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는데 목적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기술ㆍ산업수준면에서 급템포의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일본이 과거 오사카엑스포70을 개최함으로써 10년 이상의 외교적 성과를 얻었다는 점은 유념할만하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약 1만명의 직ㆍ간접 고용효과를 거둘 수 있고 약 30만명으로 예상되는 외국관광객유치와 10억달러의 수출증대효과가 기대된다. ­대전엑스포가 국제공인을 받은 최초의 박람회라고 하는데 과연 어떤 성격인가. ▲현행 국제박람회기구(BIE)협약상 박람회는 종합박람회와 전문박람회로 구분된다. 그래서 여러 분야에서 인류노력에 의해 성취됐거나 성취될 발전과 그 방법을 전시하는 것은 종합박람회,어떤 단일 분야를 전시하는 경우는 전문박람회라고 한다. 그러나 BIE는 국제박람회의 난립방지와 참가국들의 경비절감을 위해 현재 추진중인 협약개정을 통해 등록된 박람회와 인정된 박람회로 구별,현재 회원국들의 비준을 받고 있다. 대전엑스포93은 현재 전문박람회로서 공인받아 추진되고 있으며 앞으로 발효될 신협약상의 인정박람회의 정신을 살린 박람회로 개최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대전엑스포가 과거의 박람회나 무역전시회와는 어떤 차이가 있으며 특히 BIE의 공인을 받지 못한 박람회와 다른 점은. ▲무역전시회는 특정상품의 상거래촉진을 목적으로 판매업체가 구매자를 대상으로 개최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령 박람회라는 명칭을 사용하더라도 순수히 제품의 판매 및 홍보를 목적으로 한 것으로서 매년 열리는 서울국제무역박람회(SITRA)나 한국전자박람회가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엑스포는 주최국 및 참가국이 국가단위로 참가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인류의 발전상 및 발전가능미래상을 전시하는 점에서 단순한 무역전시회와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85 쓰쿠바박람회」「86 벤쿠버박람회」등이 대표적인 엑스포사례다. 또 BIE공인을 받을 경우 BIE회원국은 자국명의의 국가관으로 참가가 가능하나 BIE비공인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경우 지방박람회에 그치고 있다. ­대전엑스포의 주제인 「새로운 도약에의 길」이 갖는 의미는. ▲한국의 경제발전과정에서의 기술개발과 기술흡수축적 과정을 제시,각국 여건에 맞는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을 접목,발전과정에서 소외된 인간성회복에 기여하기 위한 취지를 담고 있다. ­대전엑스포개최에 따른 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당초 91년 개최를 전제로 2천1백51억원으로 잠정 결정한 바 있으나 개최시기가 93년으로 연기됨에 따라 3천7백억∼4천억원정도가 소요되리라고 본다. ­처음 개최시기를 91년으로 했다가 93년으로 연기하게 된 이유는. ▲최근 수출과 투자의 부진으로 전반적인 기업환경이 어려워짐에 따라 당초 계획대로 91년에 박람회를 개최하게 되면 기업에 새로운 부담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고 박람회장 주변의 숙박시설이나 도로ㆍ교통 등 기반시설의 완벽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일부에서는 대전엑스포가 92년 총선을 앞둔 정치행사라는 오해가 있어 이를 불식하기 위한 점도 있다. ­들리는 말로는 BIE공인을 받기 위해 정ㆍ관ㆍ재계가 합동으로 대외로비를 벌이는등 대단한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만한 가치가 있으며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BIE에서는 빈번한 박람회개최로 인한 회원국들의 과중한 경비부담 때문에 2000년까지 이미 확정된 박람회를 제외하고는 박람회를 개최하지 않기로 했으나 이번에 그 필요성을 인정해 대전엑스포의 공인을 하게된 것이다. 다른 나라는 국제공인을 받기 위해 통상 10년전부터 사전 교섭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2000년 박람회개최를 놓고 캐나다는 수상의 친서를 보내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대전엑스포의 예상 관람객수와 수송ㆍ숙박대책은. ▲93일동안의 엑스포기간동안 약 1천만명의 관람객이 예상되며 1일 최대 30만명,1일 평균 10만명이 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관람객 수송을 위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경부고속도로 서울∼수원간 편도 2차선 증설을 92년에 완공할 계획이며 숙박시설,신ㆍ개축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방안도 강구중에 있다. ­대전엑스포가 끝난뒤 박람회장의 활용계획은. ▲행사후 대덕연구단지 및 둔산동 문예공원과 연계,세계굴지의 과학공원으로 발전시켜 국민과학기술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 청소년 체격 해마다 좋아졌다/문교부,10만명 체격검사 발표

    ◎10년사이 남중생 키 5.7㎝ 더 자라/남국교생 체중은 3㎏나 늘어나 우리나라 초중고교생들의 체격이 해마다 좋아지고 있으며 남학생들의 향상이 두드러진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12∼14세인 중학교남학생의 지난해 평균키는 1백55.78㎝로 나타나 지난 79년의 1백50.02㎝보다 10년사이 평균 5.76㎝나 더 자랐으며 여학생들도 1백53.38㎝로 3.12㎝가 커졌다. 6∼11세인 국민학생은 남학생이 1백30.90㎝로 10년전보다 4.09㎝가 더커졌으며 여학생도 4.24㎝가 커진 1백30.70㎝로 나타났다. 그러나 15∼17세인 고교생들의 평균키는 남학생이 1백68.33㎝로 3.33㎝,여학생은 1백58.11㎝로 1.95㎝가 커지는데 그쳤다. 이는 문교부가 지난해 전국 4백80개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학년마다 1백80학급씩 모두 10만3천9백50명의 체격검사를 실시한 결과이다. 국민학생들의 경우 특히 앉은키의 성장이 남학생은 평균 1.26㎝,여학생은 1.28㎝에 그쳐 그만큼 하체가 길어지는 체격변화의 현상을 보였다. 몸무게는 국민학교 남학생이 평균 3.03㎏,여학생은 2.81㎏ 무거워 졌으며중학교는 남학생이 5.14㎏,여학생은 3.60㎏,고교는 남학생이 3.35㎏,여학생은 1.47㎏씩 늘어났다. 문교부는 이처럼 초중고교생들의 신체발육이 향상되고 있는 까닭은 경제가 발전되면서 보건위생ㆍ식생활 등 생활여건이 크게 개선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79년부터 10년사이 각 신체별로 가장 큰 성장치를 보인 학년은 남자의 경우 키는 중학2학년이 1백55.87㎝로 5.97㎝나 커졌으며 몸무게도 5.37㎏이 늘어난 45.67㎏이었다. 가슴둘레는 중학1년생이 가장 많이 자라 3.23㎝가 늘어난 72.13㎝였으며 앉은키는 중학3년생으로 2.38㎝가 향상돼 12∼14세사이 체격향상이 가장 두드러진 것으로 밝혀졌다. 여학생의 체격은 국민학교 6학년생들이 제일 향상돼 키는 1백45.43㎝로 5.43㎝,몸무게는 37.16㎏으로 4.66㎏ 늘어났고 가슴둘레는 2.93㎝,앉은키도 2.00㎝가 더 자랐다. 지난해 체격을 88년과 비교해보면 고교3학년 남학생의 경우 평균키도 1년사이 0.22㎝가 더 자란 1백69.87㎝였고 몸무게는 0.22㎏ 더 는 61.01㎏,가슴둘레는 0.28㎝늘어난 87.23㎝,앉은키는 0.12㎝가 큰 91.79㎝였다. 여학생은 키1백58.6㎝로 1년사이 0.3㎝가 몸무게는 53.63㎏으로 0.01㎏이 늘어났다. 중학3년 남학생은 키가1백62.21㎝로 0.79㎝가,몸무게는 51.2㎏으로 1.12㎏이 늘었으며 여학생은 키가 1백56.18㎝로 0.39㎝,몸무게는 49.54㎏으로 0.48㎏이 더 붙었다. 국민학교 1학년은 남학생이 키 1백17.91㎝,몸무게 21.40㎏,가슴둘레 57.91㎝,앉은키 65.70㎝이었고,여학생은 키 1백16.97㎝,몸무게 20.73㎏ 가슴둘레 56.60㎝,앉은키 65.04㎝로 조사됐다.
  • “유가하락이 페레스트로이카 불러”/WP지,소 경제위기 분석

    ◎85년이후 오일달러 약세,수입 격감/국내경제 급속 악화… 동구지원 한계 소련의 중앙통제경제체제는 지난 70년대초 이미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으나 서시베리아에서 막대한 양의 원유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70년대를 그럭저럭 버텨왔으며 최근의 원유생산 감소와 유가하락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불을 댕긴 요인이 된 것으로 보도됐다. 워싱턴포스트가 미소정상회담을 앞두고 소련원유생산이 소련의 외교 및 경제에 미친 영향을 28,29일에 걸쳐 보도한 바에 따르면 1차 에너지 쇼크가 있은 후 크렘린당국은 서시베리아의 유전개발에 박차를 가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의 생산량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일일 1천2백만배럴까지 생산,이중 75%는 국내소비에 충당하고 10∼15%는 동구국가들에 헐값으로 수출해 왔으며 나머지 10∼15%를 서방측에 판매함으로써 지난 15년간 2천억달러를 벌어들였다는 것이다. 72년초 배럴당 7∼8달러선의 원유가 1차 에너지 쇼크를 겪고난 후 74년초부터 23∼24달러선으로 뛰어올라 원유수출로 막대한 달러를 벌어들인 소련은 이 자금으로 국내경제를 지탱하고 동구권 등 공산제국에 원조를 늘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련은 풍부한 석유달러로 75년부터 제3세계에 대한 진출을 늘려왔다. 75∼76년의 쿠바군 3만6천명 앙골라 파견,77∼78년 쿠바군 1만2천명의 에티오피아 파견,79년의 산디니스타반군의 니카라과 소모사 정권 전복,그리고 79년말의 소련군 아프간 침공 등이 풍부한 석유달러 수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소련이 지난 15년동안 서시베리아산 원유와 천연가스의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전체 대외수입의 60%에 이르렀다. 최근에 공개된 소련정부의 한 통계는 소련이 공산제국과 제3세계에 원조형태로 빌려준 돈은 1천3백60억달러에 이르는 데 이는 장부상의 금액일 뿐 대부분은 상환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막대한 돈은 소련이 제3세계에서 영향력 유지를 위해 사회국제주의의 이름으로 사용됐는데 인도의 제철소 건립지원,시리아에 대한 최신식 전투기 공급,이라크에 대한 탱크와 헬기 공급,에디오피아와 앙골라에 대한 기술진 파견 등에 들어갔다.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외무장관은 최근 아프간의 10년전쟁에 도합 6백억루블(미화 1천억달러)이 소요됐다고 말했다. 소련은 원유수출대금으로 제3세계에 대한 군원 및 경제원조 이외에 국내식량부족을 메우기 위해 곡물을 사들였는데 곡물수입은 지난 70년에서 83년사이에 4배가 늘어났다. 소련에 석유위기의 충격파가 몰아친 것은 원유가가 배럴당 30달러에서 15달러로 무너진 85년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시베리아의 원유생산이 처음으로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권좌에 오른 고르바초프는 시베리아의 원유생산시설을 방문,생산을 독려했다. 시베리아에는 아직도 방대한 양의 원유가 매장돼 있다. 유전에 물을 집어넣어 경질유를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원시적 방법을 사용하고 있어 중질유의 채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원유산업에 막대한 돈을 투입하지 않으면 앞으로 5년이내에 생산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지난 수십년동안 소련은 동구권 국가들이 정치적 충성을 바쳐온 대가로 이들 국가들에 원유를 40%정도 헐값에 판매해 왔다. 이로인해 지난 88년 한해에 소련은 동구권 국가들에 대한 원유수출로 40억달러를 손해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베리아의 원유가 없었다면 소련체제가 어떻게 발전돼 왔을 것인가에 관한 논란이 소련에서 일어왔다. 고르바츠프의 보좌관들은 시베리아의 원유가 없었다면 페레스트로이카가 더일찍 왔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이에 반대하는 견해도 있다. 지난 85년 고르바초프가 아닌 다른 지도자가 소련에 등장했다면 현재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없었을 것이며 병영과 같은 사회주의로 돌아갔을지 모른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며 브레즈네프와 같은 지도자가 권력을 쥐고 있었다면 제2의 루마니아가 됐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차분한 광주… 빗속의 추모/어제 「5ㆍ18」10주

    ◎도청앞 5만인파 평화적집회/시민들,“질서”외치며 자진해산/일부대학생은 밤늦게까지 산발시위/상오 망월동엔 3만여명 몰려 【광주=임시취재반】 「5ㆍ18광주민주화운동」 10주년인 18일 광주에서는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식과 기념행사가 거행됐다. 이날 상오10시 망월동 5ㆍ18묘역에서 열린 「광주민중항쟁 10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던 시민과 전남대ㆍ조선대등 「남대협」소속 대학생들은 하오3시쯤부터 광주시내 카톨릭센터를 중심으로 금남로 2∼3가와 충장로ㆍ도청앞 광장주변에 모여들어 하오8시까지 3시간 넘게 「광주5월 민중항쟁 10주년 계승대회」를 가졌다. 이날 대회가 시작된 하오5시부터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인파가 5만여명까지 몰렸다. 시민ㆍ재야단체회원과 학생들은 이날 하오3시쯤부터 「해체민자당」「노태우퇴진」등의 구호를 외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등의 노래를 부르며 50∼1백여명씩 짝지어 대회장소로 모였으며 대회주최측은 대형 마이크로 「질서」「앉자」등의 구호를 외치며 집회참가자들을 정리시켰다.이날 집회는 오종렬「민주연합공동의장」의 대회사,유가족대표의 인사말순으로 진행,하오8시쯤 별다른 충돌없이 무사히 끝났다. 오의장은 대회사에서 『광주는 10년전 외형적으로 처참한 패배를 당했지만 이제 자유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추앙을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주최측은 이날 행사가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비폭력 평화집회임을 강조하면서 질서유지 담당요원 50명을 편성,자체적으로 과격한 행동이나 구호등을 외치지 않도록 통제했다. 참석자들 가운데 3만여명은 집회가 끝난 하오8시쯤부터 금남로에서 광주역ㆍ무등산장입구ㆍ공명터미널 등 세방향으로 나뉘어 북구 중흥동 민자당광주전남시ㆍ도지부 사무실 앞까지 3㎞구간을 행진하려 했으나 경찰이 10분만에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대림동 등 도심 곳곳에서 1백∼2백명씩 몰려 화염병을 던지며 밤늦도록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기념식은 17일 집회개최시간의 엄수와 연사들의 반체제적 발언금지등 7개항을 조건으로 경찰당국의 허가를 받아 열렸다. 이에앞서 이날 상오10시에 시작된 망월동묘역 추모행사는 「추모제」「기념식」「씻김굿」등 3부로 나뉘어 빗속에서 4시간동안 진행됐다. 「5ㆍ18유족회」 전계량회장(54)은 추모사를 통해 『아직도 광주항쟁의 진실을 애써거부하는 닫힌 가슴들을 열지 못했으며 참혹했던 학살의 진상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고 애도했다. 또 「5ㆍ18기념사업추진위원회」 명노근회장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광주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가슴 아프지만 이에 얽매이지 말고 광주항쟁 정신을 이어받아 민주화 실현에 최선을 다하자』고 말했다. 추모제는 유가족들의 분향과 각 단체 대표들의 헌화순으로 경건하게 진행됐다. 이날 추모식 행사는 내용이 다채롭고 짜임새 있게 준비되어 어느 해보다 차분하고 질서있게 치러졌다. 경찰은 이날 5ㆍ18묘역 3㎞지점에서 2.5t이상 차량을,5백m 지점에서는 추모식 준비위원회 소속직원 10명이 행사준비차량 및 시내버스ㆍ일부 보도차량만을 통과시켜 예년과 같이 혼잡한 상황은 벌이지지 않았다. 또 추모제가 시작된 상오10시 광주시내 교회와 사찰에서는 일제히 타종을 했고 차량들도 경적을 울려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한편 전남대ㆍ조선대 등 「남대협」소속 19개 대학생들은 이날 상오11시부터 각 대학별로 「5ㆍ18광주민중항쟁」1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또 서울 등 전국에서 모여든 대학생 5천여명은 하오2시 광주대학에 모여 「5ㆍ18계승 및 광주 5적처단결의대회」를 갖고 망월동 묘역까지 16㎞를 도보행진으로 참배했다. ㅁ임시취재반 ▲사회부=오승호ㆍ성종수기자 ▲제2사회부=임정용기자 ▲사진부=유재림ㆍ김경빈기자
  •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5ㆍ18민주화운동 10주에 부쳐/조오현

    ◎“원을 원으로 풀순 없다” 법구경 되새겨야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지도 벌써 10년이 됐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세월,그러나 광주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채 마치 악성종양처럼 우리 사회의 내부를 불신과 증오로 채워가고 있다. 광주문제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더 시간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 아픔이 10년이 지나고도 치유되지 않았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동안 광주문제를 정리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6공화국 출범이후 국회는 그동안 망월동에 묻어두었던 광주문제를 꺼내 진실을 밝히고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국민들을 모두 TV수상기 앞에 매달리게 했던 청문회를 통해 가려졌던 진실이 조금이나마 밝혀진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또 5공시절에는 광주문제를 단순히 「광주사태」로 부르고 희생자들도 「폭도」라고 매도했던 것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의미를 규정하고 「폭도」가 「희생영령」이란 말로 바뀐 것도 변화라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역사가 그만큼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표면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광주가 내장하고 있는 본질적인 몇가지 문제는 미결로 남아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이며 민주화를 어떻게 이루어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광주문제는 일부 정치군인의 권력장악에 맞서 긴 군부통치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민주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일어난 민주항쟁이었다.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목이 터져라 외쳤던 구호도 민주주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부는 무력으로 이를 진압했고 선량한 시민과 학생은 폭도로 매도되었다. 처참한 살육전이 우발적인 것이었는지 계획적인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어찌되었건 이로 인해 광주는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도시가 되고 말았다. 5월18일만되면 시내 전체가 죽은 사람을 위해 촛불을 밝히고 통곡하는 도시는 광주밖에 없다. 우리가 적어도 같은 하늘 밑에 사는 형제라면 광주의 이러한 아픔을 어떻게든 풀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진작 매듭을 풀고상처를 아물게 해야할,정치적으로 책임있는 사람들은 「광주의 아픔」을 미끼로 추악한 정치흥정만 계속하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보상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부여당의 경우 광주문제에 보상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마치 무슨 항복문서에 도장찍는 일인 것처럼 주저주저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애써 광주문제의 본질과 진상이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도 않을 뿐더러 무조건 덮어두자는 식이다. 광주문제를 빌미로 명분상 흠을 잡히지 않겠다는 속셈이다. 야당이라고 해서 이 문제 해결에 여당보다 적극적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야당은 광주문제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 6공화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우위에 서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정치인들은 아무도 광주문제를 마무리짓고자 하는 의지가 없어보인다. 말로는 과거를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고 떠들면서도 청산방법이 당리당략에 어긋날듯 싶으면 여지없이 생트집을 잡고 돌아앉고 만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지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했다. 그러나 누구도 광주의슬픔을 진정으로 나누려고 하지 않고 사람의 목숨값을 무슨 물건값 흥정하듯이 밀고 당기기를 계속하면서 그 언저리에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할 뿐이다. 저간의 형편이 이러하고 보면 광주문제가 10년이 지나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작태는 죽은 사람들의 원혼을 달래지 않고 유가족들과 슬픔을 나누지 않는다는 단순히 도덕적인 이유로만 비난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그로 인해 높아진 불신의 벽과 삭여지지 않는 분노의 감정이다. 광주에 가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광주문제가 10년째 공산의 메아리마냥 울리기만 하고 실체가 잡히지 않자 이제는 분노를 넘어 증오감으로 치닫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다시 어떤 비극적 사태로 발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광주사람들은 차마 입밖에 이런 말을 내뱉지 않고 있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불만이 낙진처럼 누적되고 있다. 일을 자꾸 어렵게만 만들어가서는 안된다. 광주의 슬픔이 아무리 크다고해도 10년을 거기에 매달려 역사의수레바퀴를 헛돌게 해서는 곤란하다. 수많은 사람이 광주항쟁때 쓰러져간 것은 길을 잘못 든 민주주의의 수레를 바로 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스스로 역사의 제단앞에 공양물이 되었다. 진흙에 빠진 수레를 건져 올리기 위해 돌이 되고 다리가 되었다. 지금 살아남은 사람이 할 일은 그 돌을 딛고 일어나 그 다리를 밟고 민주사회라는 피안에 도착하는 일이다. 그것이 죽은 사람의 죽음을 욕되지 않게 하는 길이요.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언제까지나 광주의 비극을 흥정만 한다면 광주의 역사적 의미인 민주화가 오히려 광주라는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게 된다. 당장 우리가 서둘러 해야할 일은 우선 광주의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하고 청산하는 길밖에 없다. 개인적 감정으로야 도저히 용납할 수 없고 용서가 안될 수도 있다. 장승같은 자식 잃고 기둥같은 형제를 잃은 사람에게 용서하라고 말하는 것은 무례한 요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용서하지 않는다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용서와 관용이 아니면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없는 것을.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우리들 중생에게 이렇게 가르친바 있다. 『원망은 원망으로 갚아지지 않는다. 원망은 또다른 원망을 낳기 때문이다. 원망은 용서함으로써만 갚을 수 있다』 어려운 때,마음이 상하는 때일수록 우리는 성인의 말씀을 삶의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분들의 가르침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슬기가 담겨 있다. 광주문제도 마찬가지다. 용서하고 관용하는 것만이 참으로 이기는 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과거를 잊자는 얘기는 아니다. 역사란 과거의 아픔과 경험을 바탕으로 전진하는 것이라면 간디의 말처럼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는 10년전 광주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한다. 중음으로 맴도는 광주의 원혼들도 그래야 하루속히 정토왕생 이고득락하게 될 것이다. □약력 스님ㆍ전불교신문 주필 1968년 문단데뷔 신흥사주지 역임
  • 중국연변 조선족자치주를 가다/일 다케사다 교수 탐방기

    ◎「코리아의 맥」이 숨쉬는 연길의 한인촌/하나같이 소박하고 활기에 넘치는 모습/10여개 무도회장 연일 만원… 「서울의 찬가」 등 크게 유행/「한반도」 질문엔 신중한 반응… 서울사정에도 매우 밝아 최근 중국을 방문했던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의 국제정치담당 다케사 다 히데시(무정수사)교수는 특히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는 길림성 연변일대를 관심깊게 둘러보고 연길지방에서 소박하고 낙천적이며 활기에 넘친 한국인 원형을 발견했다는 기행문을 본지에 보내왔다. 다케시다교수는 전략문제 전문가로,특히 한반도관련 연구논문이 많으며 본지 특별기고가 이기도 하다. 비행기로 일본에서 북경까지 4시간 남짓,북경에서 길림성의 성도 장춘까지 1시간40분,다시 장춘으로부터 연변 조선족자치주인 연길까지 기차로 15시간. 전부를 합치니 도쿄(동경)에서 연길까지는 21시간의 도정이었다. 그처럼 먼 연길을 막상 찾아가보니 필자의 서울 유학시절을 회상케 하는,매우 정겨운 곳이었다. 중국 전체의 조선족 숫자는 1백77만명으로 그중 연변자치주에 75만명이 살고 있는데 연길은 중국 조선족중심지이다. 장춘에서 연길로 향하는 열차는 기관차를 바꿔달기 위해 도중 몇개인가의 역에서 잠시 정차했다. 열차가 멈출 때마다 밖의 공기를 호흡하기 위해 홈에 내려섰지만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언제나 긴장해야 했다. ○모두 상냥하고 친절 중국어가 난무하는 열차 속에서 『몇분동안 정차합니까』라고 한국말로 질문하자 좀처럼 듣지 못하던 발음으로 한국말을 구사하는 나를 보고 여차장은 일순 당혹스런 표정을 짓더니 『15분』하고 대답했다. 역시 그녀는 조선족이었다. 북경에서도,장춘에서도 조선족은 곧 알아볼 수 있었다. 멀리서 미소짓고 있는 상냥한 사람은 으레 조선족이었다. 인사하는 모습도 어딘지 한족과는 달랐다. 주의해 보니까 여차장들의 대부분이 조선족이었다. 이렇게 해서 연길까지 가는 도중에 느꼈던 불안은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장춘에서 상오 4시 넘어 떠난 열차가 퇴화역에 가까이 다가가자 차내 방송에 「조선어」가 첨가됐다. 드디어 조선족자치주에 들어왔구나 하는 실감이들었다. 차내에는 식당차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이름은 「문명열차」였으며 간판은 한자와 한글로 병기돼 있었다. 연변의 조선족 일상생활 감각에서 본 한반도는 어떤 것인가. 연길사람에게 한반도에 대해 물어보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한결같이 신중한 태도가 되어 대답을 회피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여기서는 평양방송을 들을 수 있읍니까』라고 묻자 『글쎄요…. 나는 한국의 KBS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가 좋아서 매일 듣고 있습니다』 역시 그래서인지 연길사람들은 모두 한국 가요곡에 밝았다. 『한국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어… 경제적으로 성공해서 발전하고 있는 나라…』 『올림픽을 개최한 나라…』 ○북한책 없는 서점 한국의 실정이랑 서울의 생활에 대해서는 대부분 상세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흑룡강성에서 2주일 전에 왔다는 불고기집의 아가씨는 서울의 불고기집에서와 마찬가지로 고기를 구울때 옆에 붙어서서 『할머니가 평양에 계십니다. 편지에 이것저것 보내 주었으면 하고 써보냈습니다. 어머니가 평양사는 친척을 방문할 때는 식료품과 의복을 갖고 갑니다』라고 말을 붙인다. 그의 말은 북한과의 국경 가까이에 있는 중국마을은 북한 쪽에서 물품을 구입해 가는 곳이란 사실을 시사하는 것같았다. 시내에서 제일 큰 서점인 「신화서점」의 2층은 한글도서 코너였다. 그러나 북한책은 한 권도 없었다. 연길은 북한에서 가깝다. 연길에서 열차로 1시간거리에 있는 도문은 북한과 접하고 있으나 의외로 연길에서는 북한의 존재가 먼 것이었다. 연길시내에는 중국과 북한이 합작한 불고기레스토랑,한국과 중국합작 가라오케집이 있어서 시내에서는 사이좋게 「평화공존」을 이루고 있었다. 레스토랑에선 일요일에 때때로 결혼식 피로연이 열리는 탓에 필자가 처음 찾았을 때는 들어가지 못했다. 이 북한ㆍ중국합작 가게에 이튿날 가보니 자리를 차지하기가 어려울 만큼 손님으로 만원이었다. 불고기를 먹고 가라오케집에 간다면 손님도 「평화공존」인 셈이다. 연길에서 인상깊었던 것중의 하나는 풍요함이었다. 공사중인 건물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연변지구는 중국에서 가장 질좋은쌀을 생산하는 지역의 하나로 유명하지만 확실히 이곳의 쌀은 맛이 있었다. 연길의 서시장에는 다채로운 색깔의 상품이 널려 있어 북경이상의 화려함을 느끼게 했다. 한국에서 수입된 신발ㆍ치마ㆍ저고리ㆍ셔츠가 진열돼 있었다. ○「백만장자」도 탄생 인삼을 재배,홍콩등지에 수출함으로써 백만장자인 「만원호」가 생겨났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서시장 저자거리의 구석에는 보신탕용인듯 턱이 벗겨진 개가 그대로 리어카에 실려 있었다. 얼굴을 찡그리면서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거리에는 개고기 전문점이 여러집 있었다. 찻집에 들어서니 내부는 창을 가려 어두컴컴했다. 각방은 간단한 커튼으로 가릴 수 있도록 돼 있었고 연길의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가게의 경영은 개인경영인 듯 했으며 어딘가 여염집 여자같은 풋내기 마담 2명이 인스턴트 같은 커피를 서비스했다. 10년전 서울 신촌대학가에 있던 경양식집의 분위기가 생각났다. 연길에는 가무음곡을 즐기는 조선족의 생활양식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연변지구의 오락은 2가지이다. ○남ㆍ북한과 다른「대지」 사교댄스와 가라오케가 안되는 생음악바이다. 바에는 밴드맨 1명과 커다란 스피커가 놓여 있으며,홀은 작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는 옛날의 한인들의 노래,남과 북의 노래를 연주했다고 하는데 내가 들은 것은 모두가 10년전 까지의 한국노래였다. 여기서는 1개 3원(일화90엔)씩 하는 깡통맥주를 대여섯개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돌아가는 손님들이 보통인 듯했다. 「백산무청」은 「백산댄스홀」의 뜻이다. 그 홀은 내가 숙박했던 백산대후의 2층에 있는데 임시휴업 중이었다. 밖으로 나가 「연변공인문화회」(노동자문화회관)라는 간판이 걸린 곳엘 들어가 보았다. 입구에서 2.5원(75엔)의 입장료를 내고 수하물 일시보관소로 가방을 갖고 가니까 『외국화폐가 아닌 인민원으로 지불해요』라는 것이 아닌가. 없다고 하니까 『일 없어요』라는 것이었다. 불쑥 『괜찮다는 말입니까』했더니 『네』라고 대답했다. 이처럼 중국내 조선어 단어는 한국에서 사용하는 단어 그대로는 뜻이 통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종업원도 복무원이라고 부른다. 이 댄스홀은특히 규모가 큰 듯 싶었으며 안에는 수백명 정도의 사람들이 한곡이 끝날 때마다 파트너를 바꿔가며 댄스를 즐기고 있었다. 여성들은 독특한 치마저고리를 입고 있어 화사했다. 댄스곡은 역시 「마음약해서」 「서울의 찬가」 등 대체로 예전의 한국가요가 많았다.연길 시내의 무도회장은 10여개소 있었으며 매일 무도회가 열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댄스홀에는 노동자 취향,젊은이 취향의 여러가지가 있었다. 그중에는 「연변노인무도청」의 간판까지 있었다. 한마디로 연길은 한국과 북한과는 다른 「또하나의 대지」였다. 그곳엔 소박하고 낙천적이며 활기에 넘친 코리아의 원형이 있었다.
  • 『체신의 날』한자리 모인 집배원 5형제/천안우체국 김수부씨 가족

    ◎“희노애락 배달”보람에 산다/근무연수 합치면 60년… 1천t전달/하루만 쉬어도“산더미”… 휴가 엄두못내/한밤“윤화위독”전보갖고 산길30리 달려가… 생명건져 뿌듯 22일은 제35회 체신의 날. 한집 5형제가 집배원인 김수부씨(50ㆍ충남천안우체국)형제들이 이날을 맞는 감회는 더욱 새롭다. 남의 소식을 전하는 일이 워낙 바빠 정작 형제끼리는 편지 한장 주고받지 못하다 모처럼 이날을 맞아 한자리에 모이고 보니 서로가 대견스럽기만 했다. 김씨 형제는 6형제 가운데 둘째인 태기씨(48ㆍ식당운영)만 빼고 셋째 태명씨(39)가 서울 동대문우체국에,넷째 태인씨(38)는 충남 천원군 광덕우체국,다섯째 태국씨(33)는 서울 구로전화국,여섯째 태홍씨(31)는 천원군 성환우체국에 근무하는 모법집배원들이다. 태국씨만 해도 지금 전화국에 근무하고는 있으나 지난 81년부터 86년까지 천원군 목천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근무했던 체신가족으로 지금도 남의 소식을 전하기는 집배원과 다름 없는 중계전송일을 맡고 있다. 형제들이 모이는 자리에 제일 늦게 도착한셋째 태명씨가 『아이구,오늘도 쌀두가마어치나 배달하다 보니 이렇게 늦어 죄송합니다』면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는데서 이들 형제의 체취가 물씬 풍겼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생을 얼싸 안으며 『그래 서울에서는 집배원 노릇하기도 우리보단 더 어려울거야』라고 위로하는 맏형 수부씨의 구두에 묻어있는 흙먼지 또한 이들의 노고를 잘 대변해주고 있었다. 『남의 소식을 빼놓지 않고 전하면서 우리 스스로는 집안 경조사때도 갈 틈이 없잖아요』 『그게 어디 어제 오늘 일인가요. 하루만 놀아도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데요』 『체신의날 덕에 모처럼 형제가 한자리에 모였으니 이것도 참 복이네요』 형제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격려했다. 맏형인 수부씨가 지난 67년 우체국에 발을 들여놓아 24년째 근무해온 것을 비롯,이들 5형제가 집배원으로 근무한 연수를 모두 합치면 60년. 그동안 이들이 배달한 우편물량만해도 1천t이 넘는다고 했다. 이들은 『우편물은 10년전보다 몇십배 늘어났는데도 집배원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변함이 없다』면서 『체신부도 이제는 과감한 투자를 해 공채집배원수를 늘려야 한다』고 내친김에 애로사항도 털어놓았다. 특히 임시직의 경우 월급이 20만원 안팎이고 다른 대우도 시원찮아 사명감을 갖기 힘들다고 했다. 『몇년전 여름이었어요. 목천우체국에 있을때 일인데 밤 12시쯤 교통사고를 당해 생명이 위독하다는 전보 한통을 받았어요. 워낙 급한 점보라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지는데도 산길 12㎞를 달려가 전해주었습니다. 다행히 조치를 빨리해 다친 사람의 생명을 구할수 있었지요』 태국씨는 지금도 그때의 감격을 잊지못하며 자랑스러워 했다. 그러나 지방 읍소재지의 경우 집배원 한사람이 하루 2천여통의 우편물을 배달해야하고 서울은 더많아 3천여통에 이르며 그무게가 80∼1백20㎏이나 된다는 얘기이고 보면 집배원이란 역시 고된 직업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우편번호와 번지수도 제대로 쓰이지않은 편지1통이라도 끝까지 찾아 전해주는 정성이 집배원에게는 필요하다』고 말하는 5형제의 표정에서 남다른 사명감과 책임감을 읽을 수있었다.
  • 「태극나래」모스크바에 첫 안착

    ◎김포서 10시간17분비행끝 셰레메치예프공항에/본사 이중호특파원KAL기취항 동승취재기/한복교민50명””어서오세요””뜨거운 환영 “”몇년전만 해도 생각못한일””승객들 감격 「승객여러분 저희 항공기는 방금모스크바의 세례메치예프 공항에 도착했읍니다. 지금시각은 상오1시58분입니다. 대한항공의 모스크바 첫 취항에 탑승해 주신 것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모스크바의 4월은 역시 봄인데도 밖에는 눈발이 흩날렸다. 그러나 기온은 예상보다 포근했다. 지난 31일 하오8시40분 4백10명의 승객을 태우고 서울을 떠난 대한항공 913편(기장이상재.58)보잉747기가 10시간17분만에 모스크바 공항에 안착하는 순간 이곳에서 내린 45명의 승객은 물론, 이항공편으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스위스 취리히까지 가는 3백55명의 통과여객들도 모두 마음속으로부터의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태극마크도 선명한 KAL기는 계류장으로 들어가 멎었고 로딩브리지를 통해 소련땅을 처음밟았다. 탑승객들은 공항청사 입구에서부터일단의 환영인파에 휩싸였다.이곳에 사는 교민 50여명이 손에손에 태극기와 소련기를 들고「어서오십시오」라며 일행을 따뜻이 맞았다. 이 가운데는 우리말을 전혀 못하는 교민3.4세 청소년들도 끼어 있었다.치마 저고리를 곱게 받쳐 입은 여성들도 여러명있었다. 승객들이 이들환영객의 안내로2층입국장에서 입국수속을 밟을때 3층트랜짓라운지(통과여객대합실)로 가던 통과여객들은 아래층의 모스크바에서 내리는 승객들이 부러운듯 모두난간에 줄지어 서서 내려다 보았다. 소련의 공항당국자들은 다소 행동이 느린듯했으나 우리 승객들에게 친절하게 모든 편의를 제공했다. 승객들은 5층으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한밤중인데도 성대한 아에로플로트 관계자와 공노명초대소련영사회처장과 재소교민회의 미하일박회장,허진부회장등 많은 교민들이 참석했다.공처장은 기념사를통해「1945년12월 모스크바에서삼상회담이 열리던 때만해도 45년뒤 이와같은 큰역사적인 일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고 상기시키고「돌이켜보면 양국항공사에는 대단히 가슴 쓰라린 일도 있었으나 이제 우리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며 우애를 다져나가자」고 말했다. 서울∼모스크바 정기항공노선의 개설축하를 위해 함께도착한 우리측이헌석사절단장(교통부 항공국장)은 도착성명에서 그동안의 양국 항공관계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오늘날 한.소간에 정기노선의 교류가 트이게 된 것은 노태우대통령의 북방정책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접합점을 이루어 가능했던 것」이라고 지적하자 특히 소련측 관계자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소련의 항공관계자들은 아에로플로트의 서울취항과 함께 대한항공의 모스크바 취항은 두나라 관계개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건배를 제의했다. 지난 31일 하오8시51분 김포공항을 이륙한 모스크바행 첫KAL기는 강릉상공을 지나 30분만에 동해로 빠져 9시32분 일본영공에 들어섰다.도쿄관제탑과의 교신에서 안두찬부기장은「주긴항로인 니가타(신석) 상공까지 갔다가 소련영내로 들어가는 대신 카두보로 직항하겠다」고 요청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도쿄관제탑은 곧 항로수정을 허용하겠다고 알려왔다.하오10시40분「여기는 하바로프스크,다이얼을 12450으로맞추어라.현재 위치와 속도.고도를 말하라」는 소련관제자의 영어무선방송이 들려왔다. 소련 상공을 유유히 날으고 있는 KAL기와 소련관제탑과의 첫교신이었다. 하늘엔 초승달이 걸렸고 별빛은 초롱초롱했으나 아래는 칠흑같은 어둠뿐이었다. 이 여객기로 2일부테 레닌그라드에서 개최되는 비행안전에 관한 국제 학술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합승 한 한국항공대 홍순길교수(52)는 「모스크바에 태극날개가 취항하다니….형용할 수없는 감개를 느낀다」고 말하고 10년전외국항공기로 모스크바공항에 1시간 기착했을때 무슨일이 없을까 마음조이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술회했다. 비행10시간17분만에 기수는 드디어 아래로 숙였다.모스크바였다.
  • 「범죄공무원」과 불신감(사설)

    「범죄공무원」이 4년사이에 배로 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것도 사람이면 흔히 할 수 있는 일반적인 범죄가 아니라 직업과 관계있는 「범죄」가 더 많고 늘어난 비율도 많은 것이다. 공무원의 직업과 관련된 「범죄」의 유형을 구조적으로 짐작하게 해주는 것이 한사람의 순경이 저질렀다는 「수사기록 빼돌리기」 식이다. 직권을 남용하고 허위공문서를 작성하고 업무상 횡령을 하고 뇌물수수를 하는 것이 공무원의 대표적인 비리다. 파출소 순경으로 임용되면서부터 건이 있을 때마다 사건기록을 빼돌려 집에다 보관하고는 압수한 현금이나 기타 금품을 가로채곤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본인의 진술로는 압수품이 탐이 나서 저지른 일이라고 한다지만 그 많은 건수의 수사기록을 집으로 빼돌린 것에는 압수품을 불법으로 차지하려던 정도보다 더 큰 범죄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유추된다. 범죄기록을 손 안에 쥐고 있으면 협박도 가능하고 흥정도 가능해진다. 사건을 없애준다는 조건으로 금품을 요구할 수도 있고 줄여준다는 조건으로 무마비를 우려낼 수도있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사성과를 조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빼돌려 가며 이리저리 악용도 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일선 순경들이나 단속 공무원들이 「다라이 돌리기」라는 것도 있다. 한 수사관이 탈법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에는 그 사람에게서 뇌물을 받아먹고 눈을 감아준 뒤에 그 사실을 다른 동료에게 넘겨준다. A가 B로,B가 C로 돌리다 보면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마치 양은 다라이를 돌리듯 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범죄기록을 공식화시키지 않는다면 이런 목적으로도 쓰려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일이야말로 직권을 남용한 일이고 허위로 공문서를 작성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압수한 돈을 국고로 돌리지 않았으므로 공금횡령이고,사건기록을 담보로 뇌물을 챙겼을 터이니 공무원이 저지를 수 있는 범죄를 한꺼번에 저질러 온 셈이다. 드러난 것이 57건이라지만 그밖에 얼마나 더 있을는지는 알 수 없고 이 순경만 이런 짓을 했는지,그 언저리에서는 이와 비슷한 일이 항다반사로 저질러진 것은 아닌지,의심나는 일이 적지않다. 「범죄공무원」이 4년전에 비해 1백%나 늘어났다는 통계와 견주어보면 우리의 불신감이 과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우리는 홍콩에 있는 한 중국계 신문에 의해 단단히 체면이 상하는 우세를 당한 일이 있었다. 한국사회에서는 뇌물을 주지 않으면 관청의 민원이 해결되지 않고 상공부에 방직기 수입을 신청해 놓고도 담당공무원에 뇌물을 안줘 제때에 들여오지 못하다가 식사초대를 하고서야 해결되었다는 식의 구체적인 사례까지 제시해 가며 「부정부패의 만연」을 소개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10년전 잡지를 인용한 것이어서 사과까지 했지만 이런 외국신문 보도에 대해 떳떳할 수 없는 정황이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울하고 자존심이 상한다. 「공무원만은 썩지 않았다」는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사회,그것만 가능해진다면 우리 사회는 성공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 그것이 기본이고 완성이다.
  • 보험료 13조4천억 거뒀다/89년 보험산업 현황 분석/재무부

    ◎10년새 13배로 급격 증가/총자산 24조 GNP성장률 80%를 웃돌아 보험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다. 25일 재무부의 지난해 보험산업현황에 따르면 현 40개 보험사가 거둬들인 보험료는 13조4천3백75억원,자산규모는 24조4백67억원으로 10년전인 지난 79년보다 각각 13.7배,21.6배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수입보험료와 자산규모의 최근 10년간 연평균성장률은 각각 33%,35.9%로 GNP성장률 8.3%를 크게 웃도는 것이다. 이를 지난 88년 수입보험료와 자산규모에 비교하면 각각 27%,32.5%가 증가한 것이며 GNP(국민총생산)에 대한 총자산의 비율도 88년도의 14.6%에서 지난해 17.5%로 늘어났다. 시장구조를 살펴보면 생보사와 손보사가 총수입보험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2대 18인 각각 11조4백11억원,2조3천9백64억원으로 나타나 생보사간의 격차가 심화되고 외국에 비해 생명보험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수입보험료 가운데 생보사 24개중 삼성ㆍ교보ㆍ대한 등 3개사가 전체의 72.9%,손보사 16개중 자보ㆍ안국ㆍ럭키ㆍ현대 등 4개사가 전체의 48.6%를 각각 차지함으로써 동종사간에도 불균형 성장이 시정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한편 지난 87년 이후 자본시장의 개방으로 생보사의 경우 지난해 기존 6개사외에 18개사가 시장에 뛰어들었으며 올해 영업을 시작할 8개사와 함께 손보사 16개사를 합치면 보험사는 모두 48개로 늘게 된다. 이에 따라 보험산업은 소비자의 금융형 보험상품의 선호와 자동차 보유대수의 증가에 힘입어 갈수록 그 규모가 커지고 시장확보를 위한 보험사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할 전망이다.
  • 대만­중국 직항로 올 여름 개설/대중­하문시에 민항기 취항

    ◎직교역도 실시키로/“대만,3불정책 곧 포기”/홍콩지 【홍콩=우홍제특파원】 중국과 대만은 올 여름쯤 직항 정기민간항공노선을 신설하고 직접 교역도 실시할 것이라고 20일 홍콩 스탠더드지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직항노선이 중국 복건성 경제특구 하문과 대만 대중시를 연결하며 이에 대해 양국 당사자들이 이미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다고 밝혔다. 이러한 계획은 대만측 실업가들이 적극 추진해왔고 대만당국은 올 3월 부총통선거가 끝나는대로 중국에 대한 경제 3불원칙 포기를 선언,중국과 대만은 직접 교역과 함께 실질적인 「대중화경제권」시대의 막을 올리게 될 것이라고 스탠더드지는 전망했다. 대만은 중국과의 정치적 타협을 거부하는 내용의 정치 3불정책과 함께 양국 항구에서의 직접적인 선적과 교통왕래ㆍ직교역 등을 금지하는 경제3불정책을 취해오고 있다. 한편 대만과 정기항공노선으로 연결되는 하문은 10년전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후 간접 방식을 통해 6억4천4백만달러의 대만 민간자본을 유치한 것으로 집계됐다. 하문은 대만과 지리적으로 가까울뿐 아니라 역사ㆍ문화ㆍ언어상 동질성이 강해 정기노선 적지로 선정됐다고 스탠더드지가 전했다. ◎「중화경제권」시대의 서곡(해설) 하문∼대중 정기민간항공노선의 개설은 지난해부터 중국 대만의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활발히 논의돼온 「대중화경제권」 구상의 실현시기를 앞당기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이 지난 79년 경제개방정책을 실시하고 대만이 87년부터 주민들에게 대륙친지 방문을 허용한데 힘입어 홍콩ㆍ마카오를 통한 대만의 대중국 투자는 크게 활기를 띠었다. 또 대만이 경제3불정책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동안 중국과 대만은 제3국 선박을 이용,사실상의 직접거래를 해옴으로써 이 정책은 이름뿐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직항로 개설과 함께 포기선언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중국ㆍ대만 경제인들은 앞으로 「국제경제무역발전공사」(가칭)를 설립,민간차원에서의 중화경제권 설립을 강력히 추진할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한ㆍ일 분업적 대외합작 진출 바람직(해외기고)

    ◎90년대 양국 경협의 향방/「제휴형」 원조로 후발국 성장 도와야/중국ㆍ아세안 제국엔 직접투자 확대/기술ㆍ자금 상호보완… 공동 프로젝트 개발 서둘러야 아시아가 급속한 성장과정에서 개발도상 단계에 있으면서 원조공여국이 될 의사를 굳힌 NIES를 탄생시킴으로써 일본이 아시아에 있어서 유일한 원조국이던 시대가 종언을 고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일본은 우선은 NIES와,이어서 ASEAN의 전략국과 제휴,후발국가의 개발에 협력한다는­우리들이 「제휴형 원조」라고 이름붙인­새로운 형태의 원조에 나설 여건이 마련된 것으로 보이며 이미 그 개념정립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제휴형 원조는 NIES 및 아세안 제국의 기술ㆍ조직ㆍ제도의 특성으로 보아 후발국에 보다 알맞은 것이며 그 보급ㆍ확대가 순조로울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성이 높은 원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뿐만 아니라 NIES 및 몇몇 아세안제국을 부축,그들을 새로운 원조제공자로 육성해 간다는 과제에 비추어 보더라도 제휴형 원조는 풍부한 가능성을 지닌 협력형태이며 그 때문에우리들은 제휴형 원조를 폭넓은 논의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하 제휴형 원조가 가능성을 갖게된 배경,그 개념,상정될 수 있는 사례등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경쟁의 격차 줄어 오늘날에 와서는 일본ㆍNIESㆍ아세안 제국의 공업발전단계 사이에는 지나날과 같은 넘기 어려운 깊은 도랑은 없다. 오히려 아시아는 선발국에서 후발국으로 「연속적」인 차이를 갖고 원활히 이어지는 특유한 경제공간으로서 특징을 갖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과 아시아 사이에 NIES라는 중간적인 「성장핵」이 형성된 의미는 대단히 크다. 아시아는 NIES가 일본을 좇고 그 NIES를 아시아제국이 좇는다는 「중층적 추적」 관계를 가진 동태적 지역이 되었다. NIES가 일본과의 국제경쟁력 격차를 현저한 속도로 축소해온 것,더욱이 아세안 제국이 NIES 와의 경쟁격차를 좁히고 있는 것은 최근의 두드러진 현상이다. 한국은 저부가가치제품의 국제경쟁력을 낮추는 한편 고부가가치 제품을 꽤 빠른 속도로 고도화시켰다. NIES에 의한 선진국 추적과정이 점차고도의 자본ㆍ기술 집약재 분야에서도 전개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태국은 한국이 국제경쟁력을 잃은 저부가가치제품 쪽에서 경쟁력을 현저하게 상승시키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아세안제국의 NIES 추적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NIES와 아세안 제국간의 비교우위 구조의 다이내믹한 변화 아래 NIES의 생산ㆍ무역구조의 고도화가 추진됨과 동시에 양자 사이에는 강한 보완적 관계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NIES와 아세안 제국에 있어서 최근의 두드러진 무역증가는 바로 이를 반영한 것이다. NIES와 아세안제국과의 보완적 관계를 추진시켜 온 것은 무역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배후에서 보완적 관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달성한 것은 NIES의 대아세안 제국 직접투자였다. NIES의 직접투자는 최근들어 급격한 확대를 계속하고 있고 멀지않은 장래에 아세안 제국과 대중국 투자국으로 확고한 지위를 굳힐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 대미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NIES는 미국으로 부터 강력한 환율조정 요청을 받고 있으며,이에 응해 플라자합의(1985년 뉴욕에서 선진경제 5개국이 합의한 달러화의 가치 안전조치)후 4년간 대만 원(元)은 40% 이상,한국 원도 20% 이상의 절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미국의 환율정상 요청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양국은 오랜 기간 계속된 고도경제성장의 결과 노동공급의 제약이 심화돼 임금상승 경향이 높아졌다. 결국 통화절상과 임금상승의 두가지 요인이 NIES 기업의 해외진출을 촉진시킨 것으로 보인다. 기업의 경우 이제까지의 고도성장 과정에서 축적된 경제자원과 수출지향적 공업화 과정에서 얻은 풍부한 해외거래 경험 등으로 해외진출 조건은 충분히 갖춘 것으로 여겨진다. 1988년에 이르러 NIES의 대아시안 제국 직접투자는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필리핀에서 일본과 미국을 상회했다. 또하나 주목할만한 현상은 최근들어서의 NIES와 중국간의 무역ㆍ투자관계의 긴밀화이다. ○제2 「성장축」으로 NIES는 아세안 제국,중국과의 이러한 밀도깊은 무역ㆍ투자관계를 통해 후발국의 성장을 재촉하고 있다. 일본과 어깨를 견줄수 있는 또하나의 「성장축」으로 등장한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위에서 한국이 「대외경제협력기금」을 대만이 「해외경제협력발전기금」을 창설하고 새로운 원조공여자로서의 지위를 굳혀가고 있는 것이다. NIES가 활발하고 효율적인 원조공여자로 등장한 것은 아시아에 있어서 후발국의 개발을 위해 극히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NIES는 10여년간 저위의 발전단계를 거쳐 중위의 발전단계의 국가로 올라섰고 후진국의 단계 이행에 도움이 되는 직접적이고도 유효적절한 기술과 조직ㆍ제도를 갖게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NIES는 원조세계의 신참이며 후발국에의 협력경험도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게다가 협력의 노하우 축적도 불충분하며 협력조직ㆍ제도 역시 미비하다. 또 NIES라고 하지만 아직은 개발도상국 단계에 있고 경제협력에 쏟아부을 자금 역시 넉넉하다고 볼수는 없다. 바로 여기에 일본이 NIES와 손잡고 후발국을 개발하는 이른바 제휴형 원조 방법이 제기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협력에 있어서도 NIES와 일본이 각자의 비교우위를 발휘하고 그 비교우위를 기초로 해 양자간에 협력적 보완관계를 만들어내는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타입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NIES의 기술ㆍ조직ㆍ제도가 후발국의 개발에 있어서 보다 적정한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휴형 원조는 일본으로서도 매력있는 방식이라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일본의 원조액은 근래 급속한 증가를 계속,엔고의 효과를 포함시켜 지난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의 공여국이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거액의 원조를 효율적으로 소화할 능력이 지금의 일본에게는 퍽 적다는 것이다. 특히 원조사업에 관계하는 인재의 부족은 상당히 심각하다. 원조액은 확대되는 반면 담당직원 총수는 1천6백명에 머물고 있는데 이 숫자는 10년전에 비해 별로 변함이 없는 것이다. 가까운 장래에 이 상태가 개선될 가능성 역시 적다. 또 일본의 원조는 도로ㆍ항만ㆍ댐 등 시설에 집중되어 있고 기술협력과 인재양성등 소프트 지원분야에 있어서는 협력이 미미하다. 이 점에 관해서는이미 국제적 비판을 받은지 오래이다. 그러나 NIES와의 제후형 원조를 통해 그들의 인재협력을 얻을 수 있다면 일본의 원조가 보다 효율적이고 섬세하고 치밀한 것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면 NIES와 일본과의 제휴형 원조는 어떠한 구체적 내용을 가진 것으로 설정될 수 있는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이제까지의 일본경제협력의 중심분야는 도로 항만 댐 등 시설부문이었다. 그러나 NIES는 이러한 부문에 있어서 지금까지 괄목할 속도로 자체역략을 키워왔고 실제 건설분야의 국제입찰에 있어서 일본기업이 NIES기업에 패한 사례도 적지 않다. 시설재 부문의 건설기술은 일본보다 NIES쪽이 보다 노동집약적이고 코스트도 싸기 때문에 강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앞서 든 NIES 성공사례의 배후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즉 후발국에 있어서 NIES의 건설기술이 일본의 그것에 비해 보다 적절한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시설재 부문의 건설을 NIES가 담당하고 일본이 자금면에서 보완적 지원을 하며,더 나아가 프로잭트의 가동을 함께하는 원조 수입국 내화분(로컬 코스트)의 융자를 시도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것이다. 또 시설재 프로젝트 건설과정 자체에 대해서도 NIES가 건설기술을 담당하고 일본이 컨설팅 서비스 및 어드바이스 서비스를 담당하는 등의 분업적 협력도 가능할 것이다. ○인재 교류등 긴요 제휴형 원조가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원천적으로 원조 프로젝트의 발굴 및 사업화 가능성 조사 단계에서의 공동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러한 공동작업을 위해서는 예컨대 필요인원의 25%를 외국인에게 개방하고 있는 국제협력사업단(JICA)의 개발조사 사업에 있어서 이 범위를 더욱 확대함과 동시에 JICA 이외의 개발협력기관의 개발조사에 있어서도 이와같은 시도를 적극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범위에 NIES의 스태프들이 많이 참가하고 더 나아가서는 NIES의 개발조사 계획속에 같은 범위를 설정,여기에 일본인 스태프가 참가할 수 있도록 한다면 더욱더 바람직할 것이다. NIES와 일본과의 제휴형 원조는 시설재 부문에 국한되지 않는다. 역대 농업기술,역대 의료기술에 있어서도 일본보다 풍부한 기술축적을 가진 대만ㆍ싱가포르에 의한 후발국에의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일본이 두나라에 자금을 지원하고 협력안건 발굴과 사업화 가능성조사를 일본과 공동으로 행하는 방식도 유효한 제휴형 원조의 하나의 예가 될수 있다. 더욱이 후발국의 인재양성을 위해서 시도하고 있는 연수사업도 일본보다는 NIES에서 행하는 쪽이 효율적일 경우가 적지 않다. 일본은 이러한 제3국 연수가 활발해질 수 있도록 NIES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만 한다. JICA는 이러한 제3국 연수제도를 이미 갖고 있지만 이것이 더 확충된다면 제휴형 원조의 하나의 모델로서 높은 가치를 갖게될 것이다. 제휴형 원조는 가능성이 많은 협력방식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아이디어 단계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이것은 제휴형 원조의 개발 여지가 아직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래에 전개될 제휴형 원조를 위해 NIESㆍ일본간에 인재를 긴밀히 교류하고,제휴형 원조의 안건발굴을 위한 공동연구ㆍ조사체제를 정비하며 그 연구조사를 기초로 제휴형원조의 파일로트 프로젝트를 공동 운영한다는 계획의 착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NIES는 현재 직접투자를 통해 아세안 제국,중국등 후발국의 성장을 공급면에서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 일본보다 후발인 NIES가 산업기술등 경영의 노하우를 아세안 제국 및 중국에 이전시키기는 훨씬 쉽다. 직접투자의 경험과 자원면에서 NIES보다 풍부한 일본이 전자의 직접투자를 적극화시키기 위해서는 응분의 노력을 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을 위한 구체적 계획의 수립이 기대된다. 지난 7월 일본국제포럼에서 나온 제언,「일본의 경제력을 세계경제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이점에 관한 구체적 조치는 일고의 가치가 있다. 거기에서는 다음 3가지가 제창되었다. ▲해외경제협력기금과 일본 수출입은행의 대출등 출자를 일본계 합병기업뿐만 아니라 NIES계 현지기업인에게도 적용한다 ▲개발도상국의 NIES에 합치되는 투자기업의 조사ㆍ발굴에 힘을 쏟는 일본무역진흥회의 활동대상을 NIES 기업에까지 넓힌다 ▲NIES중에는 한국이 해외 직접투자보험제도를 갖고 있으며,일본의 금융기관이 한국의 해외투자보험기관과 재보험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직접투자 촉진을 측면으로부터 지원한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일본과 협력,개발도상국 진출의 길을 개척해야할 새로운 시대의 개막앞에 서있는 것이다. □와타나베 도시오 ▲1939년 산리현 출생 ▲1963년 경응대 경제학부졸 ▲1975년 축파대학원 지역연구소 조교수 ▲1988년 이후 동경공업대 교수,아시아 정경학회 상무이사 ▲저서 「성장의 아시아,정체의 아시아」 「서태평양시대」등.
  • “민주­공화 합당에 「유신」장애 안된다”/김영삼 총재

    ◎「통합추진」첫 직접거론/여선 보수대연합 주도채비/야 소장의원들,“평민ㆍ민주 통합” 서명/평민연은 “당내논의 공식화”방침 민주당 김영삼총재가 공화당과의 통합을 직접거론,민주ㆍ공화당의 합당움직임이 보다 구체화되는 가운데 야권통합파 의원들이 서명작업에 들어가는가 하면 민정당은 민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 방안마련에 착수하는등 정계개편 움직임이 새국면을 맞고 있다. 민주당 김영삼총재는 8일 저녁 『공화당과의 통합에 대해 유신잔당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해 공화당과의 합당계획을 추진중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김총재가 자신의 정계개편 구상과 관련,공화당과의 통합문제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공화당 김종필총재와의 골프회동에 이어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김총재는 이날 하오8시부터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진행된 미주 해외동포 세미나의 「해외동포와 민주당의 대화」시간에 참석,이같이 말하고 『정계개편은 온건민주세력이 뭉치자는 것』이라며 자신의 개편구상내용을보다 분명히 했다. 김총재는 이날 『10년전의 일을 계속 거론하는 것은 잘못이며 시야를 넓혀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거듭말해 유신논란이 정계개편의 장애물이 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총재는 연합공천문제와 관련,『천천히 하는 것이 좋으며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지자제선거 직전에 했으면 한다』고 말해 자신의 정계개편 구상이 조속히 실현되지 않을 경우 연합공천도 검토할 수 있음을 밝히는 동시에 『큰 정당일수록 연합공천은 필요없다』고 덧붙여 정계개편추진이 공화당과의 합당 이상을 의미하는 폭넓은 것일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민정당은 민주ㆍ공화 등 야당 일각에서 일고 있는 정계개편문제와 관련,9일 상오 중집위와 11일 소속의원및 지구당 연석회의를 열어 정계개편및 지자제실시문제 등에 대한 당의 입장을 논의할 예정이다. 민정당은 일부 야당의 개편논의에 대해 일단 주시한다는 입장이나 정계개편이 민정당의 해체나 신당결성 등을 통한 개편이 아니라 민정당이 주도하는 정책연합을 통해 우선 원내안정을 기하고 정치연합과정을 거쳐 보수대연합으로 개편한다는 내부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준병사무총장은 8일 이와 관련,『민정당이 1백28석의 의석을 갖고 대통령을 총재로 하고 있는 집권당으로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민주ㆍ공화당의 움직임이 민정당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해 당분간 관망하되 민정당 주도의 개편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시사했다. 한편 민주ㆍ공화 양당을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평민ㆍ민주당내 일부 중진및 소장파 의원들은 평민ㆍ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통합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평민당의 이상수ㆍ이해찬의원과 민주당의 김정길ㆍ장석화ㆍ노무현의원 등은 7일과 8일 잇따라 모임을 갖고 오는 10일부터 13일까지 통합서명운동을 끝내기로 했다. 이와 관련,평민당내 재야출신모임인 평민연은 8일 여성백인회관에서 간담회를 열고 당에 야권통합논의를 공식 제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평민당은 8일 총재단회의에서 『지금은 임시국회에서의 법적청산문제와 지방의회선거 등 산적한 현안들을우선적으로 처리하는 데 당력을 집중해야 할 시기』라며 부정적 입장을 보여 평민ㆍ민주 양당 중심의 야권통합논의를 둘러싸고 평민ㆍ민주당이 각각 내부진통을 겪는 모습이다. 여야는 오는 11일 김대중 평민당총재를 시발로 13일까지 계속될 노태우대통령과 3야 총재간의 청와대 개별회담에서 정계개편을 포함한 향후 정국운영방안을 폭넓게 논의할 계획이어서 정계개편 움직임은 주말을 고비로 크게 가속화할 전망이다.
  • 국회는 전씨 고발해야/정승화씨,기자회견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은 3일 상오 전두환 전대통령의 국회증언 내용과 관련,기자회견을 갖고 『전씨의 12ㆍ12 군사반란 관련 증언은 10년전의 조작된 발표문 보다도 몇걸음 더 나아간 사실왜곡과 날조를 거듭해 그동안 드러난 12ㆍ12반란의 진상마저 호도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나는 전씨를 반란죄로 고발하여 12ㆍ12사태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날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가진 회견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면서 『국회는 5공합의청산 약속을 확대 해석하여 전씨의 역사적 진실의 날조를 기정사실화 해서는 안될 것이며 그를 위증으로 고발함으로써 국회 스스로 진실 확인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전씨의 12ㆍ12관련 증언에서 ▲12ㆍ12사태의 결행날짜가 수요일이었는데도 토요일이라고 했고 ▲대통령 시해사건에 대한 조사권이 사전결재를 받지 않아도 되는 합수부장의 포괄적 고유권한이었다고 해 합수부장이 누구의 결재도 없이 체포구금할 수 있는 논리를 펴 합수본부가정부기능을 무력화시키는 쿠데타권도 갖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케 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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