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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주 재해지역 선포/클린턴/홍수 피해 수억달러

    【로스앤젤레스 AP 로이터 연합】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10일 최근 10년만에 최악의 겨울 폭우로 피해가 늘어나고 있는 캘리포니아주를 주요 재해지역으로 선포하고 연방정부에 구호지원을 지시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남·북부 캘리포니아에 몰아닥친 엄청난 홍수로 인해 캘리포니아주에 재해가 발생했음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와함께 연방정부에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지방당국의 구호활동을 돕도록 지시하고 제임스 리 위트 연방재해대책국장을 현지로 파견했다. 주정부 관리들은 지난 이틀새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5명,남서부 오리건주에서 1명등 6명이 폭풍으로 사망했으며 폭우 피해액도 수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장성준(세계의 명소/걸작건축 감상:7)

    ◎바다 향해 열린 조개… 호의 자신감 표상/2천6백명 수용 콘서트 홀 등 대형 홀5개/국제현상공모 설계서 완공까지 18년… 세계적 관광명소로 호주는 구대륙에 대해 콤플렉스를 지녀왔다.창조적 문화유산의 결핍과 출생의 정통성 때문이다.석기시대를 사는 30만 원주민의 땅에서 1770년 영국식민지가 된 호주대륙은 죄수 유형지,이민 개척지를 거쳐 근세에야 신생독립을 이루었다(1926년).그들은 자신감을 쌓아가면서 서서히 콤플렉스를 해소하여 왔다.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건설(1955∼1973년)은 이 연장선상에 서 있으며,호주인의 문화적 자신감을 창조한 대표적 예에 속한다. 현재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호주를 연상케 하는 상징으로 전세계에 통한다.태평양 시드니만에 돌출한 갑 위에 세워진 이 건물은 열려진 조개처럼 하얗게 빛난다.조개지붕은 간결하고도 동적인 형태메시지를 던지며 어느 위치에서도 아름답다.특히 주변 경관과 극적인 조화를 이루면서 대중에게 쉽게 어필한다. 조개지붕 밑은 5개의 홀이 있어 각기 심포니 콘서트·오페라·실내악·연극전용으로 되어 있다.그밖에 전시홀,식당 3개,바 6개,도서관,분장실 60개 등이 있다.건물 연면적은 실효공간만도 1만4천평에 이른다.독특한 이 건물의 창조에는 한 건축가의 영감과 이의 구현을 가능케 한 구조기사의 솜씨가 있다.물론 건축주인 정치가와 시당국의 존재도 간과할 수 없다.이 건물 이후 유사한 예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 않다. 건물은 호주 주정부가 1955년 시드니시에 국립 오페라하우스 건설을 위한 국제현상설계를 공모함으로써 시작되었다.시드니는 영국 유형수가 처음 하선하여 오늘의 호주를 이루게 한 역사적 장소인데,이 항구의 해안 포대가 부지로 선택되었다. ○덴마크건축가 설계 당선된 설계안은 뜻밖에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덴마크인 건축가 요른 웃존이 제출한 것이었다.38세인 그는 시영주택 몇십호의 설계경험뿐이었으나 우아하고 도전적인 설계안으로 다른 안들을 압도하였다.도면은 개념도로 분위기 정도만 표현된 스케치였으며 이 점에서 논란이 있었다.그러나 4인 심사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이 도면을검토하면 할수록 위대한 오페라하우스가 될 가능성을 보인다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설계안의 조개지붕은 경이로운만큼 까다로움도 컸다.만약 다른 단순한 구조를 택했다면 비용과 수년에 걸친 논쟁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국은 심사위원회가 선정한 웃존의 설계를 받아들이고 그의 제안에 따라 덴마크계 영국인 오버 아럽을 구조기사로 지명했다.당선안을 구체화하기 위한 각종 실험과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3년이 더 걸려 실시설계가 완료되었다. 건설은 1959년부터 시빌 시빅사가 맡아 3단계로 진행하였다. 1단계는 당초 해안포대로 사용되던 건물과 전차차고를 철거하고 조그마한 바윗덩이던 부지를 확대하여 콘크리트 대지를 구축하고 본체 공사를 하는 것이었다.이 기간에도 설계도의 검토와 수정은 계속되었고 끝무렵에야 지붕의 구조와 재료를 최종적으로 확정할 수 있었다. 2단계는 건물 지붕이었다.이 부분은 강한 형태요소로서 구조적으로 어렵고 창의성을 요하는 부분이었다.조개지붕은 서로 기대어 세웠으며 조립식 콘크리트판에 타일을 붙여 마감하고 대형 유리벽을 도입하였다. 마지막으로 내부공사가 본격화되면서 마침 구성된 새 행정부는 시공방식과 하청업체 선정 등에 있어서 웃존과 의견을 달리하고 있었다.웃존은 1966년2월에 돌연히 오페라하우스의 건축가직을 사퇴하고 호주를 떠나고 말았으며 이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 호주인 설계팀이 작업을 승계하였고 건물의 성격에 약간의 변경이 있었다.가장 큰 홀(2천6백90석)을 오페라와 콘서트 겸용에서 콘서트 전용으로 바꾸었는데 음향실험 결과 겸용이 불가하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그리고 두번째 규모를 오페라홀(1천5백47석)로 배정하였다.그 결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는 복잡한 무대기구와 큰 오케스트라피트를 필요로 하는 그랜드오페라는 공연할 수 없거나 축소하여야 했다.이 때문에 비평자들은 이 건물을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그러나 변경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다.이들은 오페라하우스라는 단어가 잘못된 것이라면서 당초의 현상설계요강이 오페라를 주기능으로 보지 않았음을 지적하고있다.실제로 콘서트가 더 인기 있었으며 오페라홀을 크게 하여 보았자 관중이 적어 빈 좌석만 많을 것이라는 걱정과 함께 좌석수를 더 줄여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다. ○공사비 1억불 넘어 이렇듯 많은 논쟁을 거쳐 건물이 1973년에 완공되었을때 공사비는 당초예상 7백만달러를 훨씬 초과한 1억2백만달러가 소요되었다.비용 대부분은 복권판매수익으로 충당되었다.주정부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고 이제부터는 극적인 새 건물에 쏟아지는 시민의 사랑과 국제적 칭송을 즐기기 시작하였다.어느덧 건물은 공연센터로서보다는 오히려 시드니항의 진주와 같은 경관명소로 세계에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건물은 또 다시 이목을 모으고 있었다.1989년에 이르러 의회에서는 긴급 보수비용 8천6백만달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발표된 것이다.지붕 타일이 떨어지고 빗물이 새고 있었으며,창과 벽도 그러하였다.콘크리트조립판 틈을 메운 실런트는 20년 수명이 기대되었으나 불과 10년만에 퇴락되었다.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호주의 국보건물은 비용이 얼마가 들지간에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 했고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1년내내 각종 행사 현재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관리와 운영은 별도 법인체가 담당한다.시설의 주된 임차자는 호주오페라단·호주방송단이며 이외에도 많은 임의단체가 사용한다.법인체는 자체 기획의 무료 또는 상업적 공연도 하는데 임차자와의 경쟁을 피하기 위하여 낮공연을 주로 한다.오페라하우스의 안팎에서는 1년 내내 축제·파티·음악회·민속행사·불꽃놀이 등이 열린다. 호주정부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추구한 것은 분명하다.그들을 처음부터 호주를 상징할 세계적 건물을 원했다.설계와 건설에서 보여진 드라마틱한 과정은 이 꿈을 성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우며,건축가의 예지와 함께 설계심사위원의 안목과 건축주의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드러내고 있다.이 건물은 호주인으로 하여금 문화적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이 점에서 우리는 문화적 상징이란 현재에서도 창조되며 의외로 쉽게 사람을 설득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본다.
  • 추위 오늘도 계속/서울 영하9도… 내일부터 풀릴듯

    영하10도 안팎의 강추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서울지방의 경우 아침 최저기온이 15일 영하9.3도를 기록한데 이어 16일에는 영하12.6도까지 내려갔으며 17일 역시 영하9도의 한파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16일 『우리나라 북서쪽에 있는 차가운 대륙성고기압이 세력을 계속 확장함에 따라 이날 아침 중부지방 대부분이 영하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등 이번 겨울들어 가장 낮은 기온분포를 나타냈다』며 『17일에도 전반적으로 영하14도∼영하2도의 추운 날씨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서울의 이날 최저기온은 지난 85년 12월 16일 영하13.4도를 나타낸 이후 12월 중순기온으로는 10년만에 가장 낮은 것이다. 16일 지역별 최저기온은 화악산 영하25도를 비롯,대관령 영하20.4도,춘천 영하14.7도,대전 영하10.8도,광주 영하6.7도,부산 영하5.1도 등을 기록했다. 주말인 17일은 수은주가 다소 올라가겠으나 대관령 영하14도를 비롯,철원 영하13도,수원 영하10도,청주 영하9도 등 강추위가 여전하겠다. 기상청은 『일요일인 18일부터 추위가 점차풀려 평년기온을 되찾아가겠다』고 전망했다.
  • 「명승부」바둑 캘린더 발간/한국기원 10년만에…천지대국장면등 담아

    ◎이창호 7단 패왕 첫 등극 바둑소사도 실어 한국기원이 홍익동이전을 기념,10년만에 「95 바둑 캘린더」를 내놓았다. 「명승부 시리즈」로 이름붙여진 이 달력은 그동안 펼쳐졌던 각종 대국가운데 명승부만을 골라 대국 장면사진을 실었고 94년의 바둑계 소사도 달마다 약술하고 있다. 1·2월은 한국 바둑사상 최초로 백두산정상에서 벌어진 조훈현9단과 유창혁6단간의 「천지대국」(90년 9월16일)사진과 함께 이창호7단의 패왕전 첫 등극등을 소사로 꾸몄고 3·4월은 스승과 제자간의 「백년전쟁」으로 불리는 조훈현9단과 이창호7단간의 「사제도전기」를 실었다. 또 5·6월은 우승상금 40만달러가 걸린 세계 최대기전 응창기배(93년 5월20일)결승에서 「된장바둑」서봉수9단이 일본의 오다케9단을 격파한 「싱가포르 대첩」,7·8월은 20여년간 한국 바둑계를 양분하던 「조훈현­서봉수」구도를 4인방체제로 바꾼 이창호7단과 유창혁6단간의 「신세대 라이벌전」으로 엮었다. 9·10월은 일본 심장부 도쿄에서 열린 후지쓰배결승전(90년 8월7일)에 나란히 진출한 한국의 조훈현9단과 유창혁6단간에 치러진 「형제대국」,11·12월은 「끈기의 화신」조치훈9단과 「기다림의 달인」 이창호7단간의 「신·구 영웅대결」로 꾸몄다.가격은 3천5백원.
  • 여권신장 부작용(연변 조선족 1백년:6)

    ◎여성 거의가 사회 참여… 시부모 모시기 기피 중국 조선족의 여성 활동은 눈부시다.사회적 정치적 활동과 아울러 경제적 면에서도 여성의 위치는 확고하다.1990년 통계에 의하면 중국 조선족 남녀의 연간 수입 비례는 1백대92.68로 나타난 것만 보아도 거의 남녀가 동위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여성학의 입장에서 여성의 사회 참여와 위상의 변천을 생각할때 거의 한국과 유사하나 지정학적 이유로 인한 약간의 차이점이 발견된다.광복을 맞이하기까지는 유교의 엄숙한 부덕의 덕목을 지켜야 할 여필종부의 사회 의식이 자리한 것은 한국과 다를바 없다.그러나 광복후 중국의 공산화로 인해 남녀동등권이 사회 개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고,교육을 통해 여성 자각 의식을 고취시켰다.그렇지만 문제는 여성들의 자각 속도에 비해 남성들의 의식 변화는 그것을 따르지 못했다.그러므로 남녀간의 갈등이 고조되는 일종의 사회병리가 쌓여갔다. ○현모양처 사상 사라져 예컨대 여성의 사회 참여로 발생된 가정의 빈 공간을 채울 대역이 필요했던 것이다.그럼에도불구하고 남성이 이 자리를 보완해야 한다는 자각을 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그러다가 문화대혁명이 발생했다.1966년부터 76년 사이의 문화대혁명 기간은 물리적으로 여성 권위 회복의 운동이 일어났던 때다.이 기간 동안 여성들은 가정도 우정도 혁명에 우선될수 없다는 사상으로 계몽되었다.바꾸어 말하면 혁명을 위해서는 이것들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문화대혁명의 10년간 지극히 가정적이라는 호평을 받아왔던 조선족 여성들은 상당한 변모를 하면서 억세어졌다.공자의 유교사상과 전통적 여성의 현모양처 사상이 정면으로 부정 당하면서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10년만에 붕괴되고,서서히 자유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것이 여성 권리에 대한 재고의 기간으로 간주된다.단순히 여성이 가정으로부터 사회로 진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신체적 생리적으로 남성과 다른 조건에 대한 사회적 보장을 요구하게끔 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성운동이 90년대 들어서면서 확립된다. 그러면조선족 여성 문제와 관련되는 고부간의 갈등은 연변에서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살펴보기로 한다.연변에서 불리는 다음 민요 한수가 며느리의 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백두산보다 더 높은 시아버지, 고추 후추보다 더 매운 시어머니, 외나무 다리보다 더 어려운 시형, 배두잎보다 더 푸른 맏동서, 종콩알보다 더 발가진 시동생, 올빼미 눈보다 더 밝은 시누이 눈, 참대보다 더 곧은 남편…」 며느리의 위치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임을 이 민요는 보인다.마지막 보루인 남편마저 여기서는 「융통성 없는 인간」으로 비치고 있다.한국의 전통적 며느리와 진배없다.그러면 조선족 여성사에 표출된 고부간의 갈등은 어떤 것일까.이명숙·최복순 두 분의 논문 「고부 관계에 대한 초보적인 고찰」이 이 문제를 잘 해명하고 있다. 고부간의 관계란 준혈연 관계다.갈등이 생기면 모자나 모녀간에는 잘 풀어지지만 고부간에는 겉으로는 풀어질지언정 심리적으로는 앙금으로 남는다.그래서 요즘 미혼녀들 사이에 유행하는 속어가 있다.『동무의 집에 염소와 투레기가 있습니까?』하고 묻는다.만일 있다면 『다른 물건은 다 가져도 염소와 투레기는 못 가지겠다』는 말이다.염소는 시아버지를 말하고 투레기란 시어머니를 말한다.경제적으로 어쩔수 없이 아들에게 얹혀사는 노부부는 참고 견뎌야만 한다. ○「시부모 유무」 결혼조건 참는데도 한계가 있으므로 극에 달하면 정면으로 며느리에게 항거한다.「내가 있으면 네가 없다」는 식이다.이 말은 죽냐 사냐 결판을 내자는 뜻이다.재미있는 것은 현행법 규정이다.「너도 있고 나도 있어야지,그 누구도 집밖에 쫓겨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법과 현실의 괴리를 좁히는 길이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가정에는 「총리」가 있다.며느리가 들어오기 전에는 어머니가 총리였다.며느리가 들어오자 총리를 놓고 갈등이 심화된다.그러나 경제적 기반이 없는 시어머니는 총리를 쥐고 있기엔 불안하다.만일 며느리에게 양도하면 냉전은 사라지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냉전이 지속된다.연변에는 이러한 문제로 가정이 불안한 상태가 전체의 반이나 된다. ○절반이상이 가정 불화며느리는 남편을 「우리」라고 호칭하고 시어머니를 「그」라고 호칭하면서도 「우리 어머니」라고는 부르지 않는다.이처럼 호칭 상으로도 시어머니는 소외를 당하고 있다.또 며느리를 맞기 전에는 무엇이나 어머니와 먼저 의논하더니 며느리가 들어오자 자기 마누라와 먼저 상의한 후에야 어머니에게 통고한다.이런 환경에서 남편의 중재적 역할은 매우 절실하다.사회주의 국가는 남녀 공히 노동자임을 자처하고 정치·사회·문화에 적극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의 재산 증식을 인정하지 않았다.그러므로 노부모는 경제적으로 자식에게 넘겨 줄 유산도 없고,노후를 자식에게 기댈수 밖에 없다.한편 며느리가 시부모를 모시는 것도 단지 인도적인 차원에서 해결이 되도록 호소하는 길 뿐이다. 사회 변화에 따르는 새로운 경제질서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핵가족의 확산이라는 반대급부를 초래했다.현재 핵가족의 수는 날로 확대해 가는 실정이다.1990년 통계에 따르면 도시에서는 핵가족이 68%이고,농촌에서는 66.28%임은 이러한 것을 단적으로 웅변하고 있다.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가정도 사실은 부모를 모신다는 효가 바탕이 된 것이 아니라 젊은 부부가 함께 뛰자니 집안을 돌봐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가정이 많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국이 현재 안고 있는 사회 고민이 이곳 연변에서도 가속으로 추격해 오고 있음을 볼때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 심장질환 어린이 1만명째 “새 생명”/한국심장재단 10년만에

    ◎대구 김진준군 수술 성공/22일 서울대병원서 자축행사도 한국심장재단(이사장 한용철)이 설립 10년만에 1만명째 심장병을 앓고 있는 불우한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 찾아줬다. 14일 상오 서울대병원에서 선천성 심방중격결손으로 입원한 김진준군(9·대구 남도국민교 3년)이 심장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퇴원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김군은 할아버지 김형숙옹(72)과 8만원짜리 사글세 단칸방에서 생활보호대상자로 어렵게 살아왔다. 한국심장재단은 83년 11월 방한했던 미국의 레이건전대통령이 선천성심장병을 앓고 있던 이길우·안지숙 두어린이를 미국으로 데려가 수술을 시켜준 일이 계기가 되어 설립됐다. 「심장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에게 우리 손으로 새생명을 안겨주자」는 취지에서 이듬해인 84년 「새세대심장재단」이라는 사회봉사단체가 탄생했다.그후 「5공청산」 과정에서 재단설립에 정치적 목적이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된뒤 89년 이름을 한국심장재단으로 바꾸고 면모를 쇄신하면서 「관변」이미지를 완전히 탈피,순수민간봉사단체로 자리잡았다. 현재는 정부의 보조없이 발족당시의 기금과 6천여명의 회원들이 매년 내는 후원금으로 꾸려나가고 있다.다행히 최근들어 재단의 뜻을 이해한 전국 43개병원들이 재단측이 주선한 심장병 어린이에 대해 4백만∼5백만원에 달하는 수술비의 30%가량인 특진료를 면제해주고 있어 운영에 별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지금까지의 수술 성공률은 92%선.푸른 입술로 병원을 찾았던 어린이들이 대부분 붉은 입술과 밝은 표정을 되찾아 병원문을 나섰다. 그러나 아직도 보호자들이 심장수술의 실패를 두려워해 수술을 망설이는데다 심지어 수술등록을 마친뒤 환자를 데리고 잠적하기도 해 관계자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재단측 전광희씨(33)는 『등록을 해놓고 잠적해버려 전직원이 나서서 2∼3년만에 찾아냈지만 이미 수술시기를 놓쳐 손을 댈 수 없는 어린이도 있었다』며 『이런 경우에는 보호자를 붙잡고 실컷 욕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털어놨다. 재단측은 오는 22일 서울대학교병원 지하강당에서 「1만명 새생명탄생 기념식」이라는 조촐한 자축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 인간문화재 만정 이소희(이세기의 인물탐구:62)

    ◎맑고 구성진 목소리 “당대의 명창”/13세때 이화중선 소리에 매료… 송만갑 문화 입문/19세때 「춘향전 전집」 내고 72년 미 카네기홀 공연/“팔순기념무대 열어 사그라진 목소리 펼쳐 보이고파” 「천지 삼겨 사람이 나고,사람 삼겨 글만글저,뜻정자 이별별자 어이허여 내셨던고.뜻 정자를 내셨거든 이별 별자를 없었거나…’ 이는 「춘향가」중 「옥중장탄」이다. 「천지삼겨」는 정정렬 바디로 박녹주이후 만정 김소희만이 꿋꿋한 옛맛을 이어받고 있다. 널리 알려진대로 만정은 국악의 대가이자 우리가 세계에 자랑해 마지않는 인간문화재다. 만정을 둘러싼 찬사는 책한권을 꾸며도 넘칠 것이다. 이대교수이며 국악작곡가인 황병기는 그의 소리를 「가을밤 기러기소리」에 비유했고 음악평론가 서우석은 「낭랑하고 확실하게 뻗어나가는 절세의 명창」,소설가 박경수는 「민족의 한이 담긴 애원성의 절창」으로 표현하고 있다. 과연 만정은 그 음색이 맑고 차가우면서도 그 안에 이른 봄의 매화향기를 머금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더구나 그의 비절한 계면조는 억지 눈물을 강요하는 청승푸념과는 달리 안으로 한을 참아낸 고고한 유열이 깃들여있다. 이는 곧잘 강주 사마의 청삼을 눈물로 적신 「비파행」의 한구절에 비유되어 「옥반에다 크고 작은 구슬을 떨어뜨리듯」 「홀연 은병이 깨지며 물줄기 쏟아져내리듯」 애절한 사연이 굽이굽이 엮어지고 우조 또한 「철갑두른 기마병이 돌격하여 창칼을 부딪치듯」 웅장청원과 기염만장을 토해낸다. 1936년 일본 빅터레코드가 출반(서울음반 복각)한 「춘향전 전집」을 들어보면 열아홉살의 앳된 목이지만 또박또박한 발음이 청순하고 수줍은 느낌을 살려 그의 가락위에서 듣는 이의 흥취가 잦아들고 휘몰아친다. ○동·서편제 나눔은 무리 애원성의 진양조로 인해 만정은 서편제의 일인자로 손꼽히고 있지만 넉넉하면서도 화평한 평조와 경드름 설렁제를 두루 구사하여 어느 한 창제에 그를 못밖는 것은 무리가 아닐수 없다. 명인의 자질은 무엇보다 타고 난 소리와 홍진을 뛰어넘는 격조라면 이를 고루 갖춘 이가 아마도 만정일 것이다. 만정은 무대에서 관중을 압도하는 자태와 인물과 예인으로서의 조건에서 한치의 허점도 찾아볼 수 없다. 「노래를 하다보니 노래가 모두 시라 가사와 창을 올바로 알고 노래부르기 위해」 그는 등불을 돋워놓고 고전을 탐독하고 묵필을 가다듬어 묵정 그윽한 속에 노래의 진수를 아로새겨왔다. 여기에 가야금 거문고와 양금 살풀이춤이 뛰어나 그에게 가야금 가락을 닦아주던 김윤덕은 「만정은 창의 최고이지만 만약 가야금을 했다면 누구도 미치지 못할 명인이 되었을것」을 아쉬워했고 원로국악인 성경린은 「김소희의 춤은 소리보다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판소리 더늠은 방정하고 단아하다.그리고 단순한 득음이 아닌 심득의 창성으로 관중을 사로잡아 지금까지 그가 공연한 판소리 무대는 흥청거리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공연이 있는 날은 자주 댕기들인 쪽진 머리에 옥비녀,옥색치마로 화사하게 단장하고 쥘부채 하나만으로 만마를 다스리고 천하를 호령한다. 수많은 공연중에서도 지난 84년 동아일보가 주최한 명인명창초대 공연은 그의 판소리의 위력이 얼마나대단한가를 한눈에 증명한 감동의 무대였다. 그날의 청중은 대학생에서 직장인,멀리 지방에서 올라온 촌로에 이르기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을 구름같이 메웠고 객석은 시종 박수와 추임새로 「국창」에 대한 예우를 지켰다. 만정 역시 칠순을 눈앞에 둔 나이와는 상관없이 정확한 발음에 적절한 극적표현 그리고 구성진 수리성과 질감이 풍부한 방울목으로 목을 굴려 공연이 진행되는 2시간을 정교하게 수놓아갔다. ○전 일본 순회공연 가져 특히 「춘향가」중 「오리정 이별」대목은 자진모리 장단을 엇박으로 바꾸면서 원박으로 되돌아가 중모리로 마무리짓는 상성의 극치를 보였다. 이 대목에 이르면 아무리 「소리는 타고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의 소리목에 깃든 공력앞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공연은 그의 전성기인 60∼70년대에 미 카네기홀과 링컨센터에서의 기립박수를 꼽을수 있다. 또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초청한 전일본 순회 공연도 한국 국창의 긍지를 마음껏 과시한 역사적 무대의 하나다. 만정은 평소 겸허하고 따사로우나저속하고 부당한 천격을 용납하지 않는다.후학들이 실수로라도 경박한 언행을 저지르면 그 자리에서 엄히 나무라고 자세를 바로잡아준다.그러나 사소한 일에 연연하거나 사적인 인맥으로 사람을 평가하기보다 상대방이 지닌 기량과 미점을 적소에 둘줄 안다. 예를들어 국악계는 계보에 엄격한 편이지만 그는 자신이 키운 성창순을 정권진에게 보내 강산제를 이어받게 했고 신영희를 박초월에게 소개하는등 그 스승의 좋은 대목을 제대로 배울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2년전 동숭아트홀에서 외동딸인 박윤초가 판소리 독창을 열었을때는 딸에게 『너 비위도 좋다.그 소리를 가지고 어떻게 노래하느냐』고 나무라면서도 막상 공연날은 무대에 나와 『아직 미거하나 후진을 키운다는 뜻에서 격려해달라』고 부탁하기를 잊지 않았다.후계자 자리를 딸에게 물려주게 되느냐는 문제도 『제가 잘하면 물려줄 것이요 잘못하면 어쩔수 없다』고 냉정한 면을 지킨다. 만정은 이제 국악계의 어른으로서 국악이 발전되어지는 과정을 그 한가운데서 지켜보는 위치다.지난해 신병으로 협회이사장 자리를 물러나면서 『원래 이사장 자리라는 것은 국악실력보다는 단체를 잘 이끌고 운영할수 있는 실무자가 바람직하다』는 이유로 이성림을 추천했고 이사장 선출로 야기될 마찰을 미연에 방지하는 결단을 보였다. 만정의 어린시절은 모든 「끼」있는 예인의 삶이 그러하듯 모진 가난과 슬픔의 기록이 점철된다. 판소리의 태두인 동리 신재효를 배출한 고창 흥덕에서 출생,부모의 불화로 부친은 타관으로 떠돌고 모친마저 친정으로 가버리자 친척집에 얹혀서 고아처럼 자라났다. ○「천에 하나」 어려운 천재 광주여고보에 들어간 13살 되던해 당대 명창이던 이화중선의 공연을 보고 장래 「소리하는 사람」이 될것을 결심했고 동편제 소리의 대가인 송만갑문하에 입문한지 1년만에 남원명창대회에서 1등,송만갑은 미려청아한 소리를 지닌 어린 소녀를 향해 「천에 하나 나오기 어려운 천재」임을 인정하여 수업료도 받지않고 그의 모든 것을 전수시켰다. 이어서 정정렬에게 「춘향가」를 비롯,화순의 박동실에게 「수궁가」「적벽가」,김계문에게 향제가곡을 사사하고 이승환에게 거문고,강태홍 김윤덕에게 가야금등 금과옥조와도 같은 스승들을 거치면서 국악의 가시밭 길을 무난하게 헤쳐나갔다. 21살에 결혼하여 10년만에 부군을 잃고 3남매를 혼자서 키우면서 속창 속악의 천시속에서 서너명을 앉혀놓고 공연을 한적도 있고 조선창극단 시절에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내용때문에 왜경에게 붙잡혀 유치장 신세를 진적도 있다. ○소희이름 이모가 지어 조선성악연구회에 드나들던 소녀시절 본명 김순옥을 버리고 이모인 김남수씨가 지어준 「소희」란 이름을 가졌다.아호 「만정」은 「날이 갈수록 잔잔히 이름을 날리라」는 뜻으로 사주를 보는 이가 지어준 것이다. 만정은 지난 25년간 살았던 종로구 화동 골목안의 한옥을 떠나 84년 삼청동 쪽에 위치한 소격동으로 이사하면서 비로소 연탄불갈기에서 벗어났다. 지금도 결혼하지 않은 아들(준석·46·상업)과 둘이 살면서 손님이 오면 손수 문을 따주고 제자를 가르치고 밥짓고 빨래한다. 그만큼 그의 생활은 궁핍이 펼날이 없이 조금이라도 여유가생기면 가난한 제자들을 데려다 가르쳤다.지금은 국악계의 중진이 된 김소연 안향련이 그들이고 영화 「서편제」로 스타가 된 오정해는 8년간 이집에 머물면서 그가 세운 서울국악예고를 나왔다. 찬연한 오늘은 참담한 어제가 있었기에 얻어진 결과일 것이다. 지난 1,2년 병치레로 쇠잔해졌을 망정 그에게선 여전히 「닦은 자의 비어있는듯 차있는(수자 여하이유실)」예술불멸만이 돋보인다. 그리고 모진 시간속에서도 국창의 기개를 잃지않아 『만약 그때까지 살수 있다면 팔순 기념무대에 서서 사그라지면 사그라진대로 나의 목을 숨김없이 펼쳐보이고 싶다』고도 말한다. 한 시대를 주름잡던 화려한 흔적을 감추고 이제 역사의 뒤안길에 서려는 예인의 모습에는 자신을 끝없이 탁마하며 살아온 정제된 아름다움만이 하나의 구둣점처럼 선명하게 찍혀있다. □연보 ▲1917년 전북 고창 출생,본명 김순옥 ▲1930년 흥덕공립보통학교 졸업 ▲1932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2년 수료 ▲1929∼34년 송만갑에게 「심청가」「흥보가」사사 ▲1936년 일본 빅터 오케이레코드 전속,「춘향전전집」취입 ▲1948년 여성국악동우회 설립 ▲1954년 민속예술학원(서울국악예고 전신)설립 ▲1959년 국악30년 김소희 판소리첫번째 독창회(서울 원각사) ▲1962년 한국국악협회 이사장,파리국제민속예술제 참가이후 해마다 세계 각국순회 공연,신호열씨에게 서예사사 ▲1964년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제5호 판소리 기능보유자),뉴욕 아시아학회 초청 미국공연 ▲1967년부터 국전서예부 연3회입선 ▲1969년 일본 요미우리신문주최 요미우리홀 공연,전일본지역 순회 ▲1972년 미국카네기홀서 김소희 판소리독창회,뮌헨올림픽 참가공연 ▲1973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심청가전집」(5장)출반 ▲1977년 불우이웃을 위한 회갑공연(서울시민회관)「춘향전」완창 출반 ▲1979년 김소희 국악50년 기념공연(세종문회회관),고향 흥덕에「만정 김소희여사 국창기념비」건립 ▲1982년 제1회 한국국악대상 수상,첫민요 발표회(공간사랑),민요전집 출반(성음사),이대 한양대 출강 ▲198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동아일보주최 「명창 김소희 판소리의 밤 대공연」(세종문화회관 대강당) ▲1988년 서울 올림픽폐막식 공연,「김소희 구음과 민요」출반(성음사) ▲1993년 국악협회 이사장,94「국악의 해」지정기념 국악제 총지휘 ▲1994년 제1회 방일영국악상 및 11월28일 수상기념공연
  • 전도사챔피언(외언내언)

    「별을 꿈꾸노라면/우리가 누구인가는 중요치 않은 것/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우리꿈은 이루어질 수 있다네」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어진 세계권투협회(WBA)와 국제권투연맹(IBF) 헤비급타이틀매치에서 조지 포먼은 아들뻘인 마이클 무어러(26)를 물리치고 정상에 오른 뒤 자신이 즐겨 부르던 흑인영가의 한 구절을 읊었다고 한다.그의 나이 45세10개월.내년 1월10일이면 46세가 된다. 이 노래의 가사가 말해주듯 이 늙은 복서는 불 같은 투지와 집념으로 그의 꿈을 실현시켰다.그리고 그는 1951년 39살에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저지 조 월콧의 헤비급 최고령 타이틀획득과 1903년 40살에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을 따낸 보브 피츠시몬스의 최고령 세계챔피언등극기록을 한꺼번에 갈아치웠다. 철도노무자의 7남매중 다섯번째로 태어난 조지 포먼은 대부분의 흑인복서들이 그랬듯 불우한 환경과 인종차별로 인한 억눌린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링에 뛰어올랐다.68년 멕시코올림픽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프로로 전향,73년1월22일 조 프레이저를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으나 그 이듬해 10월30일 무하마드 알리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1년9개월의 단명챔피언이었다.그가 은퇴를 선언한 것은 77년.한때 마약과 폭력으로 「죽음의 공포」를 체험한 조지 포먼은 링을 떠난 뒤 신앙생활에 몰두,전도사로 변신했고 불우한 청소년들을 돕기 위해 헌신해왔다. 87년3월 링을 떠난 지 10년만에 복귀를 선언한 것도 청소년전도회관을 건립하고 그들에게 신앙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그가 링으로 다시 뛰어들면서 외친 소리도 「신의 뜻」이었다.WBA는 포먼의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마이클 무어러와의 대전을 불허했으나 법정투쟁을 통해 이를 극복했고 다시 세계정상에 오른 것은 그의 신념대로 「신의 뜻」인지도 모른다. 알리,프레이저와 함께 70년대 프로복싱 세계헤비급을 석권하던 포먼.두 사람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만은 다시 정상에 우뚝 섰다.신의 뜻인가,인간의 위대한 승리인가.
  • 10년만에 개인전/승려화가 김원학스님(인터뷰)

    ◎“그림에의 몰두는 수행정진의 또다른 길” 승려화가 세석 김원학스님이 10년만에 세상구경을 나왔다.불교신문 지령1500호기념 초대전(15∼25일 ·서울 공평아트홀)에 내놓을 역작의 서화 31점을 들고 바깥 출입을 한 것이다. 『산중에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어찌 번뇌가 없겠습니다.그럴때면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는 그림에 몰두했지요.그림이 곧 수행이 되었다고나 할까요.또 달리 생각하면 수행의 결과가 그림으로 나타났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두리봉 아래 한적대로 떠올라서 매화봉으로 지는 달보기가 천하일품이라는 관월암이 그림의 산실.지난 84년 개인전 이후 단 한점의 그림도 세상에 내놓지 않았으니까 10년만에 갖는 개인전이다.그런 탓에 그림속에는 한가닥의 속기도 어리지 않았다. 『부처님 모셔놓아 끼니 굶는 일 없고,그림 계속 그려서 좋습니다.오른팔을 잃을뻔한 고비를 넘기고 또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도 다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 것이지요.그 보은은 수행정진하고 그림 그리는 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승랍 29년.교통사고를 당해 오른팔을 못쓰는 수난의 세월도 살았다.해인승가대를 거쳐 동국대 교육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한 스님은 우계 오우선으로 부터 한국화를,청남 오제봉으로부터는 글씨를 사사했다.이어 한국전통남종화(남종화)의 산실인 해남 대흥사에서 수련을 쌓았다.그래서 화풍은 남종선이 추구한 이상,문득 깨치는 돈오의 경지처럼 맑고 시원한 산천경계로 살아났다.
  • 미 생명공학산업 “내리막길”(현장 세계경제)

    ◎「황금알 낳는 거위」 명성이 기운다/신약 부작용 많고 효능 미진/소기업 난립… 막대한 투자비 엄두못내/“대형 제약회사와 협력해 활로 찾을때” 한때 미국에서 최첨단산업으로 각광받던 바이오테크(생명공학)산업이 추락위기를 맞고 있다.바이오테크는 암에서부터 불치병으로 알려진 유전자질환 치료 가능성을 제기,수많은 투자가들로 하여금 91∼92년 단 2년동안에 80억달러를 쏟아붓게해 이른바 바이오붐을 일으켰고 「지니」(유전자),「셀」(세포)등의 용어를 유행시켰다. 그 결과 이 분야는 70년대 탄생한이후 불과 20년만에 업체가 1천여개로 늘어나는 외적 성장을 달성하면서 그럴듯한 제품으로 투자가들을 더욱 많이 모으는데 성공했다. 바이오테크 기업들은 간염백신과 암치료제인 알파 인터페론등 특정분야에서 효능이 뛰어난 신약을 생산해 의학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기여하는 한편 알파인터페론이 셰링 플라우사에 연5억달러의 수입을 가져다 줘 경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두고 있기도 하다.현재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24개의 약중에서 4개가 생명공학에서 비롯됐을 만큼 바이오테크 산업은 곧바로 「황금」과 직결돼 있어 투자가치는 그만큼 높다고 하겠다. ○1천여 업체 설립 빈혈치료약 EPO(암젠사),간염백신 B및 진단기술(바이오젠사),항암제 인터류킨(시론사),성장호르몬및 심장마비약(제네테크)등의 신약들은 효능에서나 매출액면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들이다. 더욱이 일부기업은 심장마비나 갑상선암·백일해등 주요 질환에 효능이 뛰어난 치료제나 치료기술을 개발,미 FDA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등 의학·의약분야에서 마치 르네상스가 예술에 그랬던 것처럼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20년동안의 급격한 외적성장은 개별기업의 왜소화와 난립을 초래했다.미국에서만 84년 불과 30여개이던 주식시장 상장기업이 10년만에 2백40여개로 늘어났다.그러나 이중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미국내 5백대기업에는 셰링 플라우(1백17위)와 암젠(3백4위) 둘밖에 없을만큼 그간의 명성은 실적을 쌓지 못했다. 이는 기업들의 대부분이 한가지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이를 전문화했기 때문이다.이같은 전문성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신제품(약)을 출시하는데는 7∼12년에 1억∼1억5천만달러가 소요되는게 보통이다.그러나 단일기업은 이처럼 막대한 자금은 물론 신약개발에 필수적인 생물학·약리학·생리학등의 연구재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바이오테크 약중 10%만 임상실험에 들어가고 최종 통과한 50%만이 승인을 받는다는 점은 중요한 대목이다.뿐만 아니라 제약업계가 연간 2백50억달러의 연구비를 투자하는 반면 바이오테크 업계는 고작 15억달러밖에 투자할 수없어 신제품 개발기간과 성공확률은 더길어지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개발기간 7∼12년 전문 회계회사들이 바이오테크기업중 약 절반만이 향후 2년을 버틸 것으로 관측하듯 월가에서는 바이오테크 산업은 「중병」선고를 받은지 오래다.바이오테크의 아멕스 주가지수는 92년 절정에 도달한뒤 이미 50%나 하락했다.기업들은 바이오붐 동안에도 3년정도 버틸 자금을 축적했을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신제품들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인슐린등 유전자 기술을 이용한 지극히 「인상적인」신약은 일부이고 나머지는 부작용이나 약효가 없어 상업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미국에서 매년 발병자 60여만명에 사망자 10만명을 유발하는 패혈증 치료제 개발 실패담은 단적인 예다.소마·코르테크·센토코르·시론등 선두기업들은 각각 수백만달러를 투자했으나 효능있는 치료제는 개발하지 못했다.에이즈도 같은 경우다.바이오젠·제네테크·임뮨 리스폰스등은 AIDS에 대한 이해의 폭은 넓혔으나 확실한 물건은 만들지 못했다. 이같은 실패는 가급적 빨리 신제품을 만들어 투자자들로부터 더 많은 R&D 자금을 얻어내야한다는 압력에 시달리는 경영의 실수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센토코르·코르테크·마가이닌등 10여 기업은 개발한 신약들이 효능미달과 부작용으로 주가는 폭락을 면치 못하게됐다. ○주식값 폭락 사태 이같은 산업전반의 위기에는 신규진출을 재촉한 모험자본가와 달콤한 수수료 때문에 가망없는 기업들의 상장을 막지 않은 투자은행 그리고 특허수입을 노려 자체 과학자들에게 기업설립을 부추긴 대학도 한몫을 했다. 앞으로 바이오산업은 파산과 합병을 통해 적자생존을 거듭할 것이다.기업을 살릴 수있는 길은 신기술의 개발과 대형제약사와의 협력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문제는 자체 합병과 유통망 정비에 여념이 없는 제약회사가 과연 바이오기업과 손을 잡겠느냐는 것이다.
  • 미 경제회생/첨단 컴퓨터기술이 “일등공신”(현장 세계경제)

    ◎고속정보망으로 인력 등 절감/통신·금융업 생산성 일의 2배/EDS사가 선두… 컴퓨터프로젝트 수출액 급증세 지금 미국 경제에서 불황이 지나간 흔적을 찾아보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일본과 유럽이 긴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때에 미국은 올 경제성장률이 3.7%에 이를 것으로 보면서 오히려 경기과열을 걱정할 정도다.이런 현상을 뒷받침하듯 지난 6일 세계경제포럼과 국제경영개발연구소(IMD)가 내놓은 보고서는 미국이 85년 이후 10년만에 일본을 제치고 국가경쟁력 1위에 복귀했다고 평가했다. 이 보고서는 특히 미국이 1위자리에 오르기까지 과학과 테크놀로지의 역할이 막중했다고 지적했다.기초과학 및 첨단테크놀로지가 미국경제를 밑받침하는 초석이라는 것이다.이에 때 맞춰 경제전문지 「아시아 월스트리트 저널」최근호는 테크놀로지분야에서 미국 경쟁력의 실체를 보여주는 기업들을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국가경쟁력 1위 지난 수년동안 미국은 서비스 및 첨단과학 기술분야에서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했으나 석유 자동차 등의 수입에 따른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로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92년 미 메킨지사의 연구보고서가 통신분야·은행업·유통업·항공분야에서 미국이 일본·독일에 비해 생산성이 2배나 높은 것으로 본 데서도 그대로 나타났다.이런 생산성을 갖추게 된 주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이 보고서는 테크놀로지를 꼽았다.보고서의 발표대로 메캔슨·보잉·시티콥·월 마트 등은 세계시장 공략무기로 최첨단 컴퓨터네트워크를 전진배치함으로써 기업전체를 완전히 새롭게 재정비하였다. 컴퓨터 네트워크는 전세계적으로 이미 이노베이션(혁신)을 가속화하고 생산 사이클을 축약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정보의 공장(팩토리)이다.미국기업들은 금세기 초 컨베이어벨트에 의한 대량생산체제의 선구자였듯이 이 분야에서도 논쟁의 여지가 없는 제1인자의 위치를 굳히고 있다.컴퓨터네트워크의 대명사격인 EDS(일렉트로닉 데이터시스템)사는 이러한 미국기업의 위치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영국 사업권 따내 제너럴 모터스의 컴퓨터 서비스 계열사인 EDS는 92년 영국 국세청이 발주한 15억달러 짜리 컴퓨터네트워크 프로젝트에 참가신청서를 내 다른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사업권을 따냈다.EDS가 내세운 조건은 국세청 데이터센터의 인원 2천명 중 일부만 가지고도 현재의 비용과 시간을 절반으로 줄여서 완벽한 작업을 수행하는 시스템을 설치하겠다는 것이었다.이러한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사업체는 EDS밖에 없었다. EDS의 지난해 해외수출액은 이 회사가 벌어들인 전체수입액 86억달러의 23%를 차지했다.89년의 경우 해외수출액은 전체수입액의 15%였다.이것은 해외수출이 계속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EDS네트라 불리는 이 회사 정보팩토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정보 네트워크다.EDS네트는 퍼스널 컴퓨터 및 단말기 40만대,1백42대의 대형고속컴퓨터를 갖춘 95개 데이터센터,그리고 30여개국에 퍼져있는 1만5천개의 위성안테나를 서로 연결하고 있다.EDS네트는 하루에 5천1백20만건의 업무처리 및 데이터전송을 행하며 미 국회도서관 장서의 45배에 이르는 49조7천억개의 데이터를 저장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EDS네트가 처음 설치됐을 때 이것의 유일한 기능은 미국내 고객을 위해 데이터센터를 관리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설립자 로스 페로가 84년 EDS를 GM사에 팔고난 뒤 이 네트워크는 성장을 거듭해 EDS의 경쟁력 향상에 큰 역할을 하였다. EDS는 이 네트워크를 통해 일처리 속도를 높였다.또 EDS네트는 회사의 인력을 확충하는 데서도 큰 역할을 한다.일단 새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정을 하면 EDS는 이 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기술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특별팀을 재빨리 구성한다.고객의 요구에 대한 분석이 예리할수록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높다.EDS네트의 이런 능력은 영국국세청 사업에서 빛을 발했다. ○경영관리층 축소 다른 한편 EDS네트는 경영관리층을 축소함으로써 인원감축 및 신속한 결정의 효과를 낳기도 한다.89년 이 회사는 38개의 자동사업시스템을 설치함으로써 관리층을 7단계에서 3단계로 축소해 인원를 대폭 줄였다.네트워크를 사용함으로써 고위관리자는 단위사업체의 업무가 겹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을 감독할 수 있으며 참모들의 일을 직접 할 수 있게 됐다. 전문가들은 소프트웨어·컴퓨터·네트워크 분야에서 미국의 지배력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분야에서 미국의 지배력은 기업가정신,창의성,풍부한 모험자본(위험은 크지만 미래지향적인 사업에 투하되는 자본),높은 교육수준,해외인재들의 유입 등 이른바 미국적인 전통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창작뮤지컬 「황금신화2001」 주연/뮤지컬전문배우 왕은숙(인터뷰)

    ◎“10년만의 큰무대서 관객반응좋아 눈물났어요” 가을문턱으로 접어든 요즘 창작뮤지컬「황금신화 2001」(김상열 극본,권재우 연출)이 공연되고 있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 가보면 대형무대를 꽉 채우는 한 주연 여배우의 온몸연기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극중 영아 역을 맡아 막힘없는 가창력과 연기력을 한껏 뽐내고 있는 뮤지컬전문배우 왕은숙씨(29)가 그 주인공. 『뮤지컬에 입문한지 10년만에 세종문화회관이라는 큰 무대에서 주연을 맡게돼 뭐라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첫날 공연후 관객의 반응이 나쁘지만은 않음을 연출자 선생님으로부터 확인했을땐 눈물까지 났어요』 서울시립가무단(단장 이의일)이 서울정도 6백주년 기념무대로 마련한 「황금신화 2001」은 고구려 건국신화인 김왜신화를 현대감각으로 해석,미래 과학기술문명의 맹점을 고발한 작품.왕은숙씨는 해맑으면서도 고난을 꿋꿋이 이겨내는 극중 영아의 성격을 진솔한 내면연기로 소화해내는 한편 「사랑이란」「사랑을 기다리며」등 2편의 사랑노래를 특유의 낭랑한 「생소리」로 들려준다. 84년 정단원으로 시립가무단에 입단한 이래 「성춘향」「지붕위의 바이올린」「바다를 내품에」「춤추는 도시」「연변강냉이」등 20여편에 주역급 조연으로 출연하며 뮤지컬배우로서의 ABC를 다졌다.한솥밥 동료이자 선배인 손해선(42),홍윤희(35)씨와 함께 시립가무단의 스타 맥을 이어오고 있는 왕은숙씨.그가 이번에 맡은 타이틀 롤은 수차에 걸친 엄정한 심사 끝에 얻은 행운이어서 더욱 값지다.시립가무단은 그동안 주로 대중적 인기가 있는 TV스타등을 주역으로 기용해 왔으나 뮤지컬배우 출신인 이의일단장이 부임하면서부터 선의의 자체경쟁 풍토를 마련,단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 『조연시절엔 주역배우의 연기를 보며 「나는 더 잘할 수 있다」고 자만도 했지만 막상 주연을 맡고보니 모든 것에 한계를 느껴요.앞으로 더욱 노력해 춤·노래·연기가 3위일체를 이루는,이름값 하는 뮤지컬배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서울예술단 단원인 이희정씨를 부군으로 KBS탤런트인 이영씨를 시아버지로 둔 예술인가족인 왕은숙씨는 영국뮤지컬「미스 사이공」의 여주인공 리 살롱가를 자신의 연기모델로 삼고 있다고 했다.
  • 통일 늦을수록 비용 많이 든다

    ◎당장 통일땐 10년간 1천2백조 소요/2천년에 이뤄지면 1천8백조 들어/산은분석 북한체제가 갑자기 붕괴돼 당장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 앞으로 10년 동안 1천2백조원이 통일비용으로 든다.오는 2000년에 통일되면 통일 이후 10년간 드는 비용은 1천8백조원에 달한다.통일이 늦어질수록 비용이 늘어나는 셈이다. 8일 산업은행이 발행한 「산업경제 16호」에 따르면 통일 이후 10년만에 남한과 북한의 소득수준이 같아지려면 통일 뒤 10년간 남한이 이 정도를 북한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는 통일 이후 서독이 부담하는 비용과 비슷한 수준이다. 북한체제의 갑작스런 붕괴로 통일이 될 경우 남한은 앞으로 10년간 올해 국민총생산(GNP·3백조원으로 추정)의 4배 수준인 1천2백37조원을 투자해야 2004년에 남북한이 같은 경제력을 지닌다.10년간 GNP의 2배 수준인 6백44조원을 투자하면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의 60% 수준에 도달한다. 2000년에 통일되면 10년간 올해 GNP의 6배인 1천7백95조원을 투자해야 남북한이 같아지며,7백6조원을 투자하면 남한의 60% 수준에 이른다.통일이 늦을수록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가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은 통일 이후의 경제부담을 줄이려면 남북관계는 경제논리로 풀어야 하며,북한경제의 개방과 이를 통한 경제성장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불타는 일열도…/산업별 명암 뚜렷/쌀농사,10년만에 대풍 예상

    ◎철강·화학 용수난… 조업중단 속출/가전·음료·맥주업체 초유의 호황 일본 기상대 관측사상 최고온도(39.1도)까지 나타났던 일본의 올여름 폭서는 산업에도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대부분의 산업이 물부족으로 조업을 중단 또는 단축하는 괴로움을 겪었지만 폭서로 톡톡히 재미를 본 업종도 적지 않다. 대량의 물을 필요로 하는 철강,화학 업계 등의 타격은 예상외로 심각해 일본 강관(NKK),가와사키(천기) 제철소 등 대형 제철소들이 물사정이 나은 지역의 공장으로 생산을 긴급 이관하는가 하면 감산 등의 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지난 봄부터 약간 생산량이 회복 단계에 들어 섰던 소재 산업은 감산과 생산 이관에 따른 비용 증가로 다시 침체 국면에 빠지지 않을까 업계 관계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제철소,석유 화학 콤비나트,섬유 공장 등은 현재 대부분 평균 50% 이상의 취수 제한으로 20∼30%의 감산을 실시하고 있으나 앞으로 며칠 사이 비가 내리지 않을 경우 더 많은 감산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폭서 덕택으로 톡톡한 재미를 보고 있는 산업 분야도 많다. 그 중에도 물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이른바 「절수형 상품」과 더위를 식혀 주는 에어컨,청량 음료,미네랄 워터,맥주 등을 생산하는 업체는 사상 최고의 판매 호황을 누리고 있다. 종이컵,종이 접시,나무 젓가락 등 1회용 용기와 물을 쓰지 않는 샴푸,목욕탕 물을 갈지 않고 몇번이나 사용할 수 있는 목욕정화제 등은 일부 품목의 경우 지난 4월의 판매량보다 무려 50배 가까이 많이 팔리고 있는 곳도 있다. 일본의 각 가전 업체들이 7월 한달동안 판매한 에어컨은 무려 2백만대로 작년 같은 달보다 3배 이상에 달해 사상 월간 최고판매기록을 세웠다. 더운 날씨는 쌀 농사에도 좋은 영향을 미쳐 일본의 금년도 미곡은 지난 84년이래 10년만의 대풍이 예상되고 있다. 일본의 민간 미곡 전문조사회사인 「미곡 데이터 뱅크」가 발표한 전체 작황 지수는 전국적으로 풍작을 나타내는 108(평년작 100)을 기록,지난 84년 풍작이래 10년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냈다.
  • 3개지역 표정과 떠오른 이슈(8·2보선)

    ◎더위먹은 민심… 애타는 “한표” 호소/개발공약 않고 「TK자존심」 논쟁/대구 수성갑/“관광특구”·“도청유치”… 공약 홍수/경주/푸대접론·쌀개방 등 싸고 입씨름/영월·평창 「8·2보선」출마자들은 선거전이 이미 중반을 넘어섰는 데도 열기가 달아오르지 않아 불볕더위와는 또다른 몸살을 앓고 있다.구석구석 선거구를 다녀봐야 유권자들의 관심은 온통 무더위와 가뭄이 언제 끝날 것인가에만 쏠려있을 뿐 선거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한 표가 아쉬운 후보들은 자기의 목소리를 이슈로 부각시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있고 이에 따라 지역별 선거쟁점의 윤곽도 분명해 지고 있다. ▷대구 수성갑◁ ○…신흥 아파트 밀집지역으로 「서울의 강남」에 비유될 정도로 대구에서는 생활수준이 높은 지역.따라서 섣부른 지역개발공약은 유권자들에게 별 호응을 얻지 못한다.후보들도 이같은 지역적 특색을 감안,「다리를 놓아 주겠다」「양로원을 짓겠다」는 등의 지엽적인 지역개발공약은 삼가고 있다. 문제는 「반민자 비민주」로 요약되는 이른바 「TK정서」.후보들은 문민정부 출범후 싹튼 이 지역의 소외감을 제1공략목표로 삼고 있다.저마다 「대구의 자존심을 되찾자」는 「자존심론」으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그러나 자존심을 살리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현경자후보(신민)는 『민자당에 참패를 안겨주는 것이 대구의 자존심을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반면 정창화후보(민자)는 『감정을 앞세운 한풀이 투표보다는 이성에 따른 투표가 자존심을 되찾는 진정한 방법』이라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권오선후보(민주)는 『두 후보 모두 기득권층으로 이들의 싸움에 대구시민들이 들러리를 서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자존심을 파고 들고 있다. ▷경주◁ ○…지역적 특성에 맞추어 관광개발문제가 핵심이슈로 떠올라 민자당 임진출후보의 「경주시·군 관광특구지정」과 「문화재보호구역내 건축물규제 완화」,민주당 이상두후보의 「경주역사 이전」과 「경북도청유치」,무소속 정상봉후보의 「문화예술회관건립」등 지역개발공약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당의 후보가 여성인 점도주요 관심사.야권후보들은 이를 「여당의 경주자존심 무시」로 몰아치며 보수성향이 강한 유권자층의 반발을 유도하고 있다.당사자인 임후보는 「무뚝뚝한 아들보다 꼼꼼한 딸」의 장점을 강조하면서 맞대응. 여기에 득표기반이 겹치는 임후보와 무소속 김순규후보의 「복수공천설」을 둘러싼 공방,낙선경력을 바탕으로 한 임후보와 민주 이후보 사이의 「3전4기냐,4전5기냐」하는 읍소경쟁,간헐적으로 나오고 있는 불법·탈법 선거운동시비등이 종반선거전에서 부각되고 있다. ▷영월·평창◁ ○…민주당 신민선,신민당 김성용,무소속 강도원·함영기후보등 4명이 민자당의 김기수후보를 포위공격하는 형국속에 단골메뉴인 「강원도 푸대접론」과 농촌문제가 주요이슈로 일찌감치 굳어졌다. 야권후보들은 이 지역의 낙후원인이 줄곧 여당후보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탓이라면서 『쌀개방거부 약속을 어긴 민자당의 후보를 표로 심판,강원도 사람의 본때를 보여주자』고 호소하고 있다.이에 대해 김기수후보는 시장개방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면서 대신 『농촌복지와지역발전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큰 인물이 필요하다』는 「인물론」으로 맞서고 있다. 처음 예상됐던 영월과 평창의 지역대결 양상은 표면화되지 않고 있다.하지만 후보마다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지역경쟁바람이 일기를 기대하는 표정도 보인다. 여당후보는 평창의 단일주자인 점에 내심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한 눈치이고 야권후보들도 서로 녕월의 대표주자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주보선 공개토론회 표정/칼날 질문공세에 후보자들 진땀/옥외연설식 발언으로 빈축사기도 26일 경주시 청년회의소(JC)회관에서 있은 여야후보들의 공개토론회는 우리나라 선거사상 처음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지난날에도 관훈클럽 등에서 대통령 입후보자를 한사람씩 초빙,질의 답변을 벌이는 자리는 있었으나 이처럼 출마자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유권자들과 대화하며 「면접시험」을 치른 것은 지난 3월 통합선거법에서 근거조항이 마련된 데 따른 것이다(법 81조 후보자등 초청·대담토론회). 열띤 분위기속에 열린 토론회에서 보선에 출마한 6명의 후보들은 개인의 이력에서부터 공약의 신빙성까지 광범위하게 물고늘어진 이주대 전경주JC회장등 6명의 패널리스트 앞에서 진땀을 흘려야 했다.주최측은 토론의 효율적 진행을 위해 후보자의 정견발표를 7분이내로 제한한데 이어 관련 질문·답변시간을 3분씩 두차례로 했다.여야후보들도 처음 마련된 자리임을 의식한 탓인지 합동연설회 때와는 달리 다른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직접 비난을 삼가는등 조심스런 모습을 보였다. 이날 토론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후보자들에 대한 질문·답변시간이었다. 민자당의 임진출후보에게는 주로 「이당 저당을 옮겨다녔다는 전력시비와 항간에 떠돌고 있는 복수공천설의 진상」,고서수종의원의 유업계승 방안등에 대한 질문이 집중됐다.이에 임후보는 『계속해서 여권을 지향해왔으나 공천이 안돼 방황이 불가피했다』면서 『이번에 여권후보로서 일할 기회가 주어진만큼 고서의원과의 친분,마당발로서의 부지런함을 살려 관광도시 경주의 부흥에 온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이상두후보는 『뚜렷한 소득도 없이 어떻게 다섯번이나 국회의원에 출마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멋적게 웃으며 『처음 7대선거에 출마했을 때는 가산을 탕진했으나 그뒤로는 2천만원이상을 쓰지 않았으며 이번에는 중앙당의 지원과 사업하는 동생의 도움으로 자금 동원이 가능하다』면서 전국 최고의 상수원건설,관광특구지정등 경주발전 청사진을 제시했다. 신민당의 최병찬후보는 『경주병원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남에게 피해를 끼친 일이 없었느냐』는 추궁조의 질문을,무소속 김순규후보는 『고향에 잘 오지 않다가 10년만에 경주에서 다시 출마한 이유가 뭐냐』는 등의 힐난성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무소속 정강주·정상봉후보에게는 「경주사람」으로서의 자격과 공약의 구체성,그리고 정치판의 떠도는 철새가 아니냐고 따지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날 토론회에는 패널리스트와 방청객등 2백여명이 참석했는데 일반 유권자는 특정후보 지지에 이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돼 모두 JC회원들로만 채워졌다. 그러나 일부 후보자들은 아직도 옥외연설과 토론회를구분하지 못한듯 연설투로 장광설을 늘어놓아 빈축을 사기도 했으며 또다른 후보자는 시간을 지키지 않아 답변도중 마이크가 꺼지기도.또한 이날 토론회가 처음이어서인지 후보자들사이의 정책대결을 유도하기 보다는 단지 『경주에 오래 살았느냐』는등 단순한 질문만이 주류를 이뤄 「과연 쓸만한 인물인가」라는 측면에서는 미흡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
  • 작년 세계무역액 3조7천억불/10년만에 감소로 반전

    ◎전연비 1.8% 줄어 【도쿄 연합】 작년 세계무역액은 3조7천77억달러(명목수입액 기준)로 92년에 비해 1.8% 줄었으며 10년만에 감소로 돌아섰다고 일본 무역진흥회가 25일 발표했다. 무역진흥회가 이날 발표한 「세계와 일본무역」(94년판)에 따르면 이같이 세계무역이 감소한 것은 원유등 1차산품 가격이 하락세를 보인데다 달러에 대한 유럽통화의 대폭 가치하락이 큰 원인이다. 지역별로는 동아시아,미국,중남미의 수입이 크게 늘어난 반면 유럽은 경기침체로 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 무역액은 명목 기준으로 수출이 전년대비 4.2% 감소한 2조5천3백83억달러,수입은 6.4% 준 2조5천3백8억달러이며 개발도상국은 수출이 7.5% 증가한 1조1천9백24억달러,수입은 9.7% 늘어난 1조1천7백69억달러로 각각 나타났다. 세계의 성장중심지로 불리는 아시아의 비중은 점점 증가,한국·대만·중국·태국 등 동아시아는 수입액이 전년대비 13.2%나 늘어났다.
  • 개방파·「혁명소조」출신 친위그룹 주도/김정일의 적과 동지들

    ◎당 김용순·황장엽­적 「프라하 3인방」 포진/평일모자·빨치산출신 「잠재적」 반발세력 김정일이 일단 북한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그의 친위세력들이 대거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김일성이라는 절대권력자의 사망으로 인한 권력의 진공사태를 메우기 위한 필연적인 수순이다. 따라서 앞으로 김정일체제가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긴 하나 당분간 북한정국은 친김정일 세력과 잠재적인 반대세력간의 물밑 암투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친김세력과 반김세력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북한이라는 특수체제의 성격상 쉽지 않다. 우선 김일성 생전에 김부자간 권력세습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은 곧 파멸을 의미했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내연할 수 밖에 없었던 탓이다.그리고 김정일 친위세력은 대부분 김일성 추종세력과 겹치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지난 72년 당중앙위 비밀 전원회의에서 공식 후계자로 낙점된 뒤 꾸준히 자신의 시대에 대비해온 것은 사실이다.당·정·군에 걸친 주요 포스트에 은밀히 자신의 세력을 심어온 것이다. 이같은 그의 측근세력은 크게 ▲3대혁명소조를 중심으로 한 소장 저변 친위세력 ▲당·정·군의 이른바 혁명2세대 간부 ▲혁명1세대 중 김정일과 잦은 사적인 교유를 갖는 인물군 ▲친족세력 등으로 대별된다.이들은 상당부분 중첩되는 것도 특징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노동당쪽에선 김용순·김기남·김국태·황장엽 등이 눈에 띈다.이중 대남담당 비서와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용순은 외교 및 대남관계 핵심브레인으로 등장할 전망이다.「주체사상」의 최대 이론가인 황장엽과 김정일의 각종 연설문 등을 대필해온 김기남 등은 김정일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우상화작업을 선도할 이론과 실무책임자로 부상할 공산이 크다. 김정일의 권력안정에 핵심적 열쇠를 쥐고 있는 군쪽에선 오극렬대장과 김강환·김두남 두 전현 당군사부장이 대표적 측근이다.이들 중 김일성의 빨치산 동료였던 오증흡의 아들인 오극렬이야말로 군부내 「혁명2세대」 중 김정일의 최측근 인사로 차기 인민무력부장이 유력시된다는 관측이다.그는 김정일의 비호하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다 88년 오진우인민무력부장과의 마찰로 군총참모장직을 재임 10년만에 최광에게 넘겨준 바 있다. 행정 및 경제분야에선 프라하공대 출신의 3인방인 강성산·연형묵·박남기 등과 전현직 국가계획위원장인 김달현·홍석형 및 최영림 등이 측근인사로 거명된다.이들은 대부분 조심스럽지만 개방노선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는 대표적 테크노크라트들이다. 이밖에 김정일을 위해 중국 문화혁명기의 홍위병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해온 3대혁명소조를 이끌고 있는 장성택도 빼놓을 수 없는 측근이다.그는 김정일의 친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라는 사실 하나 때문에 김으로부터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고 있는 측근세력과는 달리 반김세력들은 수면하에 잠재해 있다.더욱이 어차피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북한권력의 속성상 측근세력중에서도 김정일세가 약화될 경우 언제라도 등을 돌릴 인사가 상당하다는 관측이다.이같은 관점에서 주목되는 잠재적 반김 세력들로는 군부와 당에 걸친 이른바 「혁명1세대」그룹 일부와 군부내 소장 및 중견 장교층,그리고 김성애·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 김정일의 권력장악에는 오진우를 정점으로 최광인민군총참모장과 이을설호위총국장·백학림사회안전부장·김철만 국방위원을 비롯해 「혁명1세대」의 막내격인 김광진차수 등 빨치산 원로급들의 협조가 절대적이다.그러나 이들중 상당수는 그동안 김일성이 카리스마에 눌려 침묵을 지켰으나 내심 김정일의 노선과 지도력에 회의를 품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때문에 이들 중 일부가 동구유학을 다녀온 중견장교들과 연계해 김정일체제가 대외적 고립과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할 경우 반기를 들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표면적으로는 후원세력이나 언제든지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는 인물들로는 친삼촌인 김영주와 계모 김성애,이복동생 김평일 등 족벌세력들이다.특히 김정일과 후계경쟁에서 밀려나 18년의 은둔 끝에 지난해 일약 부주석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김영주는 일단 김의 후견인역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당정에 걸친 추종세력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요주의 인물이라는 관측이다. ◎매부 장성택 가장 신임… 요직 앉혀/작년 재기한 숙부 영주의 향배에 관심/김정일과 족벌내 역학관계 김일성은 생전에 자신의 아들 정일을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가족간 갈등에 대해 심히 우려했었다고 전해진다.그만큼 김정일과 다른 가족간 대립이 심각했고 이는 자신의 사후 정권존립 자체에 위험요소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김정일과 자신의 후처 김성애,자신의 친동생 김영주,김성애와 사이에 난 아들 즉 김정일의 이복동생 평일과의 관계였다. 지난 72년 이후 20여년간 후계자로서의 정권 정지작업을 다져온 김정일에 있어서 가족관계는 철저히 적과 아의 개념이 분명했다.권력장악의 걸림돌이냐 추종세력이냐가 그 기본선으로 특히 김일성과 자신의 생모 김정숙(49년 사망)사이 관계인 「기본가지」와 계모 김성애(김일성과 56년 결혼)와의 관계인 「곁가지」를 철저히 구분했다. 따라서 김정일이 가장 신임하고 있는 것은 친 여동생으로 북한 여성계의 참모역할을 하는 당 경공업위원장인 경희와 그의 남편 장성택이다.그는 실세로 불리며 중앙당 27개 부서 가운데 3대혁명소조부·근로단체부·청년사업부 등 핵심 3개부서를 맡고 있다.이밖에 신임하는 사람으로는 자신의 브레인으로 사상적 부족함을 메워주는 가정교사 황장엽(전 김일성대총장으로 사상담당 당서기·김일성의 조카사위),양형섭(최고인민회의 의장·김의 4촌동생 김신숙의 남편),김정숙 민주조선 책임주필(김의 4촌동생)등이 있다. 김정일이 배척,김일성의 우환거리를 제공했던 이들과의 「가족화해」를 시사한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져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지난해.70년대 초반 남북조절위 공동위원장,10년간의 당조직위원장을 지내며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다 75년 김정일에 의해 사실상 숙청된 김영주가 재등장한 것.당내 막강한 지원세력까지 김정일에 의해 「여독청산」란 이름으로 거의 제거돼 은둔생활에 들어간 그는 지난해 7월1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기념관」 준공식에김부자등과 모습을 나타내고 이어 며칠뒤 당정치국서열 7위로 부상했다. 또 지난 71년 여맹위원장이 돼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다 김정일에 의해 73년 여사칭호를 박탈당하고 친동생 김성갑마저 평양시 인민위원장 자리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던 김성애도 마찬가지.80년 이후 줄곧 공식행사에 얼굴을 못내민채 평양근교 별장에서 두문불출해 오다 지난해 11월 노동신문에 쿠바여성대표단을 맞는 사진이 나오고 이어 여맹전원회의에서 「김정일지도자를 받들자」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지난달 김일성과 함께 카터 전미국대통령을 맞으며 내외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계의 뉴스거리로 받아들여질 정도였다. 한편 김평일은 김정일로부터 가장 박대를 받아온 인물.김일성을 닮은 건장한 체구와 카리스마적 얼굴,원만한 성격이 김정일로 하여금 그를 권력의 언저리에서 감시의 대상으로 올려 놓았던것. 불가리아 대사로,핀란드 대사로 겉돌며 북한주민들로부터 동정을 받았던 그가 최근 북한으로 돌아가 군요직을 맡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도 그 하나다. 이같은 김정일의 관용이 김일성의 심기를 편하게 해주는 단순한 배려로 그치고 김일성이 사망한 지금 다시 이들을 숙청하거나 「안거」토록 할는지는 분명치않다. 일단은 복권된 이들 친족들이 「조카의,의붓아들의,형의,처남의 대권에 도전하지 않고 적극 밀어주겠다」고 약조한 끝에 나온 족벌정치강화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정일족벌의 정확한 향배는 11일 이후 김정일이 정식 권력승계절차를 마치고 통치를 행사함에 따라 조만간 드러날 전망이다. ◎올들어 공식행사 6차례만 참석/「친필서한」은 부쩍 늘어… “충성경쟁 유도”/김정일 최근 어디서 뭘했나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 아버지 김일성을 예우하는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몇가지의 콤플렉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1백58∼1백62㎝로 추정되는 단신에다 그의 연설문이 육성으로 단 한 차례도 방송되지 않을 정도로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어 대인 기피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김정일의 최근 행적 가운데 특별히 눈에 두드러지는것은 없다.평소보다 활동이 눈에 띄게 뜸했다거나 아니면 왕성했다거나 하는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정일의 최근 행적에서 그의 권력승계 여부를 확인하는 단서를 찾기란 힘들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공식적인 자리에 자주 얼굴을 내미는 대신 뒤에서 조용히 기반을 다져 권력승계에 대비해온 것이다. 김정일이 올들어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여섯차례에 불과하다. 새해 벽두에 근로자들과 신년모임을 가진데 이어 2월 28일에는 조총련 책임부의장인 허종만과 면담했다.뒤이어 3월 5일에는 북한군 협주단 공연을 관람했고,4월 6일에는 최고인민회의 9기 7차회의에 참석했다. 4월 25일에는 군창건절을 맞아 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564군부대를 시찰했고,5월 6일에는 조총련 제1부의장 이진규와 「친선담화」를 나눴다.지난달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방북했을 때 김정일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처럼 의례적인 공식활동을 하면서도 실질적인 통치자로서의 정책지도 활동이라 할 수 있는 「현지지도」 및 외빈접견 활동은 김일성이 사망할때까지 단 한차례도 갖지 않았다. 올들어 김정일의 보이지 않는 행적 중 눈에 띄는 것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친필서한」을 보내는 숫자가 예년에 비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친필서한이란 김정일이 주민들에 대한 「사랑」을 과시하고,이들을 고무·격려하기 위해 직접 쓰는 편지이다.지난 90년 11월 1일 「조선중앙통신사」 당원들에게 보낸 것이 효시이다. 올들어 지난 5월초까지 7차례의 친필서한을 보냈다.예년의 1년치와 맞먹는다. 전문가들은 친필서한이 잦아지고 있는 것을 김정일의 「인덕정치」를 부각시키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정치적인 속셈으로 보고있다.사상적으로 취약한 새 세대들에게는 김정일에 대한 「대을 이은 충성」을 확고히 하고,핵문제로 국제적 압력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청년 군인들에게는 김정일 체제 수호를 위한 긴장감을 불어 넣기 위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이후 김정일의 외형적인 행적에서 변화를 찾는다면 생산현장에 대한 「현지지도」가 줄어든 대신 군관련 행사 참여가 늘고 있는 점이다.군후방일꾼대회·전승기념탑 제막식·공병대회 등에 참석하고,전승기념 퍼레이드를 관람하는 등 군관련 행사에는 매우 활발하게 참여했다.지난해 4월 국방위원장으로 선임된 이후 당연한 결과로 지적되고 있으나,권력승계에 대비해 군부를 미리 장악하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 외래종교앞에 무속세계 와해과정 그려/극단 띠오빼빼 「무녀도」 공연

    극단 띠오빼빼(대표 박영)가 향토색 짙은 토착연극 한편을 선보인다. 김동리씨의 동명원작소설을 극화,2일부터 13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올리는 「무녀도」(강영걸 연출)가 그것.무녀 모화를 통해 우리의 재래적 토속신앙인 무속의 세계가 외래종교·문물의 충격앞에 급속히 무너져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집 떠난지 10년만에 독실한 기독교신자가 되어 돌아온 아들 욱이는 어머니 모화와 끝없는 종교적 갈등을 겪는다.이들의 신앙대립은 갈수록 깊어지고 마침내 어머니 모화가 욱이의 성경책을 「서역 귀신책」이라며 불태우려는 순간 이를 말리던 욱이는 눈이 뒤집힌 모화의 신칼에 찔려 숨지고 딸 낭이는 불타는 신당을 보며 미쳐버린다는 것이 기본줄거리. 신들린 무당 모화역은 대형배우 박정자가 열연하며 중견배우 윤주상이 박수무당 삼재역을,올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최승일이 모화의 아들 욱이역을 맡는다.평일 하오 7시30분,금 하오 3시·7시30분 토·일·공휴일 하오3시·6시 공연.747­2574 세계무대를 겨냥하고 있는이 작품은 오는 10월4,5일 도쿄 예술극장에서 일본공연을 가지며 내년 7월 프랑스「아비뇽 연극제」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 티베트 공작 회의/중,10년만에 개최

    【홍콩 연합】 중국은 오는 가을 지난 84년이후 10년만에 티베트공작회의를 개최해 독립운동이 활발한 이 지역의 경제발전과 정치안정을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홍콩의 중국계신문 문회보가 27일 티베트자치구 성도인 라사발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티베트자치구정부의 강촌라포 주석이 단독회견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말하고 티베트공작회의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후 1980년과 1984년에 이어 건국후 세번째라고 전했다. 문회보는 이에앞서 티베트자치구내에 앞으로 5대경제특구와 상해 포동에 실시중인 것보다 더욱 유리한 「최고특혜정책」이 실시될 것이라고 밝혔었다. 중국전문가들은 최고특혜정책과 티베트공작회의 개최소식은 새로운 티베트정책이 입안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 민간기업 상업차관 96년 허용/첨단시설재 도입 한정

    ◎재무부,OECD가입 준비 일환 오는 96년부터 국내 기업들도 상업차관을 들여올 수 있다.용도는 첨단시설재 도입 자금으로 제한된다.국내 민간기업의 상업차관 도입은 지난 86년 이후 10년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재무부는 15일 이같은 내용을 외환제도 개혁안에 포함시키기로 했다.이는 우리 나라의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을 위한 준비작업의 일환이다.OECD의 「자본이동 자유화 규약」은 회원국에 대해 외국인에게 투자가 개방된 업종의 경우 만기 5년 이상인 자금은 모두 투자로 간주,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업차관은 국내 기업이 외국의 은행으로부터 만기 3년 이상인 자금을 빌리는 것으로 국내 은행보다 금리가 절반 수준이다.지난 86년까지는 민간 기업에도 상업차관 도입이 허용됐으나 이후 국제수지가 흑자로 돌아서자 통화관리 차원에서 한전 등 공기업에만 허용하고 민간기업에는 금지했다. 첨단 기술을 가진 외국인투자 기업들은 내년부터 만기 5년 이상인 상업차관을 투자금액(외국인 지분)의 범위에서 들여올 수 있게 된다. 재무부는 이밖에 무역 및 용역거래에 대해 외국환은행의 사전 인증을 받아야만 외환을 사용할 수 있는 현행 외국환은행 인증제는 신고제로 전환해 기업들이 복잡한 증빙서류를 내지 않고 신고만으로 외환을 쓸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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