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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비자 세상] 홈플러스 주부 구매대행팀

    [소비자 세상] 홈플러스 주부 구매대행팀

    많은 여성들이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쇼핑을 꼽는다. 깔끔하게 정리된 매장을 왔다갔다하다 보면 고민도 사라지는 듯싶은 ‘마력’때문일 게다. 한 달 뒤 날아온 신용카드 명세서를 보면 새로운 스트레스를 받기 십상이겠지만…. ●매장 누비며 정성껏 상품 골라 배송 돈을 쓰지 않고도 하루종일 쇼핑을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게다가 돈까지 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이커머스(e-commerce)팀에 이런 꿈을 실현한 주부들이 있다. “내 가족을 위해 상품을 고르듯 쇼핑하는 거죠.” 하루 소비자 100여명의 쇼핑을 대신하는 홈플러스 영등포점 마규리(44) 실장과 구매 대행인(picker), 배송 기사 14명은 자신들의 일을 이렇게 소개했다. 대부분의 유통업체는 소비자가 인터넷으로 상품을 주문하면 물류창고에서 기계적으로 배송한다. 그러나 홈플러스는 구매 대행인이 각 매장에 진열된 상품을 직접 골라 보내준다. 이에 오프라인 매장처럼 할인도 받고,‘1+1행사(상품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얹어서 주는 행사)’에도 참가할 수 있다. 주문한 물건이 없으면 대체물품을 찾아 보내주기도 한다. ●사은품·유통기한 점검은 기본 “증정품이 붙은 것을 우선 고릅니다. 잠깐 동났다면 기다려서라도 받아요. 유통기한도 여유있는 것만 선택하지요.” 경력 3개월차 권애옥(45)씨의 말이다. 소비자가 70개짜리 기저귀를 주문했는데,100개짜리에 사은품이 달려 있다면 직접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할지 묻는다. 소비자에게 작은 손해도 입히지 않으려는 세심한 배려다. 마 실장은 다른 사례를 들려줬다.“한 어린이집이 간식에 쓰려고 플라스틱 상자(800g)에 들어있는 식품을 30개 주문했더라고요. 인터넷으로 대용량을 찾지 못했구나 싶어 15㎏짜리 박스가 있다고 전화를 걸었더니 기뻐하며 주문 내용을 바꿨습니다. 물론 가격도 12만원에서 7만원으로 줄었지요.” 영등포점 등 전체 9개점 구매 대행인 39명 중 21명이 30∼40대 주부다.‘주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비자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철학이 숨어 있다.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해 입사 후 좋은 상품을 선택하는 교육을 따로 받는다. 이것이 인터넷 단골을 만드는 힘이라고 마 실장은 설명했다. 매장을 가득 채운 1만 5000여가지 상품을 어떻게 일일이 찾을까. 마 실장은 “처음엔 생소한 수입상품이 많아 애를 먹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영국 본사에서 들여온 팀패드(Team pad) 덕에 금세 익숙해졌단다. 팀패드란 손바닥만 한 모니터로 소비자가 주문한 상품이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알려주고, 상품까지 도달하는 가장 빠른 길도 보여주는 단말기다. ●‘팀패드´는 상품 위치 찾는 ‘마법사´ 구매 대행인들은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혹시라도 잘못된 상품의 바코드를 인식하면 에러 메시지가 뜬다. 경력 2년 10개월차인 신영옥(38)씨는 “1년쯤 지나니까 상품 이름만 보면 길이 훤히 그려지기 시작했다.”며 웃었다. 사내 행사인 ‘매장 알기 경연대회’에도 이커머스팀은 출전 자격을 박탈당할 만큼 ‘실력’을 입증받고 있다. 구매 대행인들은 아침 8시30분부터 시간에 쫓겨 종종걸음을 친다. 한 시간 단위인 배달시간에 맞춰야 하는 까닭이다. 경력 8개월차인 서계연(37)씨는 “주문량의 50%가 아침에 몰려 오전엔 매장을 뛰어다니기 일쑤”라면서 “주문이 적은 오후 4∼8시가 가장 정확히 배달받을 수 있는 시간”이라고 귀띔했다.100여㎏의 카트를 하루종일 끌고다니다 보니 다이어트는 ‘덤’이다. 권애옥씨는 “입사 3개월 만에 살이 5㎏이나 빠졌다.”고 말했다. 신영옥씨는 “쇼핑이 직업이 되니까 훨씬 알뜰해졌다.”면서 “행사를 기다렸다 치약·샴푸 등을 사는 습관이 붙어 충동구매까지 없어졌다.”고 전했다. 월급은 100만원 안팎. “시들어 버릴 ‘떨이 야채’만 골라 보낸 것 아니냐고 소비자가 항의할 때면 눈물이 날 만큼 섭섭합니다. 내 자녀에게 먹일 상품이란 마음으로 쇼핑을 한다는 사실만 기억해주세요.”주부 구매 대행인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3·1운동-臨政 수립 80돌/총독부,해외 3.1행사까지 탄압

    일제하 조선총독부는 해외 독립진영에서 개최한 3·1절 기념행사를 극비에감시,탄압한 사실이 총독부 문서를 통해 처음 확인됐다. 본사 취재팀이 최근 일본 외무성사료관에서 단독입수한 ‘국외(國外)에서소위 독립선언 기념일의 상황에 관한 건’이라는 비밀문건에 따르면,일제는조선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3·1의거 기념행사를 치밀하게감시,탄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정(大正)14년(1925년) 3월 31일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명의로 작성된 이문건(高警 제1090호)은 총 20페이지로 구성돼 있으며 당시 일제가 중국·만주·노령(露領.러시아령)·미국 등지에서 열린 3·1의거 기념행사를 철저히감시,분석한 것으로 나와있다.총독부는 문건에서 “재외 불령선인(不逞鮮人. 독립운동가)들은 매년 3월 1일을 소위 독립기념일로 하여 축하연 또는 기념식 명칭으로 집회를 가져왔다”면서 “금년에도 지나(支那.중국) 각지에서행사를 가졌는데 그 규모는 점차 감퇴하고 있다”고 밝혔다.또 문건에는 각지역에서 개최된 3·1절 기념식의 행사일정·참가자 인원·주요 발언내용 등 세밀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중국인이나 한국인 밀정을 동원했던 사실도언급돼 있다. 3·1의거 6주년을 맞아 상하이임시정부와 의정원은 이날 오전 10시 상하이시내 포석로(蒲石路) 신민리(新民里) 제14호에서 朴殷植국무총리,崔昌植의정원 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가졌다.청년동맹회는 별도로 정오부터 망지로(望志路) 소재 사무실에 모여 기념식을 갖고는 “애국선열의 뒤를 따라 맹진(猛進)하자”고 서약하였다.또 상하이교민단은 오후 3시 민국로(民國路) 침례교회 예배당에서 500여명이 모여 별도의 집회를 가졌다.참석자들에게는 청년동맹회가 제작한 ‘3월 1일’이라는 ‘불온유인물’을 나눠주어 독립의식을 일깨웠다.이날 일경측은 참석자들이 행사후 일본영사관에 폭탄을던질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중국인 밀정 정자향(程子鄕)을 행사장에 침투시켜 애국인사를 체포하는 장소로 악용한 것으로 나와있다. 같은 날 난징(南京)에서는 조선인 70여명이 동명(東明)학원에 모여 기념식을 가졌는데,鮮于爀은 연설을 통해 “분투 7년이지나도록 독립을 쟁취하지못한 것은 유감”이라며 “향후로는 (일제)파괴사업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한편 베이징(北京)에서는 한교(韓僑)동지회와 고려학생회 공동주최로 북경대학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는데 여기서도 ‘말썽’이 생겼다.서울출신 왕동춘(王桐春.본명은 徐昌鉉 또는 徐浩錫)이 일제의 밀정혐의를 받고 행사도중에퇴장당한 것. 또 간도(間島)지역에서는 이날 독립진영에서 대규모 시위와 함께 일본영사관 습격과 일본인 요인암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돼 일·중 양국경찰이 대거 동원돼 삼엄한 경계를 편 사실도 나와 있다.중국지역에서는 이밖에 텐진(天津)·지진(吉林)등에서도 행사가 열렸다.천진에서는 당일 오전9시 교민단장 金政·李壇海·申聖文등 3명이 태극기로 장식한 자동차를 타고 미리 준비한 인쇄물 3천 매를 영·불·독 등 각국 조계(租界)지역에 살포하였다.미국 하와이에서는 당일이 일요일이어서 하루 미뤄 3월 2일 교민단 등에서 기념행사를 가진 것으로 나와있다. 한편 총독부는 이 문서를 일본 내각 각부서와 해외 공사관,법원·경찰부서,각 도지사 등에게 발송하였다.이는 총독부가 해외 독립진영과 교민들의 3·1절 기념식을 특별히 감시,탄압하기 위해 일제 공권력 기관을 총동원했음을보여주고 있다. 韓詩俊단국대 역사학과 교수는 “일제가 해외에서 열린 3·1의거 기념행사를 감시,탄압한 것은 이를 계기로 조선인들이 또다른 ‘거사’를 할 가능성을 우려한 때문”이라며 “3·1정신은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투쟁의 정신적지주였다”고 평가했다.그러나 이 문건에는 행사당일 특별히 독립진영과 일경측이 충돌한 사례는 언급돼 있지 않다.이는 대부분의 기념행사가 옥내에서 치러진데다 일경의 감시가 심해 대규모 집회나 시위는 불가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鄭雲鉉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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