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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실업시대(눈높이 경제교실)

    ◎어디 일자리 없나요…/고개숙인 72만 “쿠오바디스”/경기 침체·감량경영 상승작용/3월 실업률 3.4%… 4년만에 최고 대량실업 시대가 폭풍처럼 오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3월중 고용동향」에 따르면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실업자)의 숫자가 한달사이 6만2천명이나 늘어 72만4천명이 됐다.이들 「실업자가 전체 경제활동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실업률)도 2월의 3.2%에서 3.4%로 높아졌다.실업자수는 87년 이후 가장 많고,실업률은 93년 2월 이후 가장 높은 것이다.보통때의 실업률은 2.0% 안팎이다.민간연구기관들은 잠재실업자를 합한 실업자는 이미 1백만명을 넘어 우리사회가 대량실업시대에 진입한 것으로 진단한다. 실업의 증가는 오랫동안의 경기침체에 기업들의 군살빼기,산업구조 선진화가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탓이다. 실업사태는 경기가 나아지면 일시적으로 좋아질 수도 있다.그러나 우리경제가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 들어섬에 따라 경기와 상관없이 상당수준의 고실업율을 겪어야할 것으로 보인다.주요 18개 선진국들은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을 전후한 6년간에 평균경제성장률이 5.3%에서 4.0%로 떨어졌고,평균실업률은 3.2%에서 4.5%로 높아졌다.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넘어서면서 성장둔화와 함께 고실업율현상이 나타났던 것이다. ◇실업통계의 허와 실 나라 전체의 실업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통계지표로 실업률이 이용된다.실업률이란 간단히 말해 일할수 있는 능력과 일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는 사람중에서 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이라 할 수 있다.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실업자인가? 우리나라의 경우 만15세 이상 인구를 경제적인 생산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인구,즉 생산활동가능인구로 보고 있다.생산활동가능인구는 일할수 있는 능력과 취업의사를 동시에 갖춘 경제활동인구와 일할 능력이 없거나 취업의사가 없는 비경제활동인구로 구분된다.경제활동인구는 다시 취업자와 실업자로 나누어진다.취업자는 매월 15일이 들어 있는 일주일 동안에 수입을 얻기 위하여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이나 본인 또는 가족이 소유·경영하는 농장,가게 등에서 보수를 받지않고 주당 18시간 이상 일한 사람을 말한다.한편 실업자는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하였으나 일자리를 찾지못한 사람을 가리킨다.실업률이란 구체적으로는 경제활동인구중 실업자의 비율을 말한다. ○실업자 개념과 기준 따라서 실업률은 실업자가 늘어날때 높아지게 되는데 실업자는 경기불황 등으로 직장을 잃는 근로자가 늘어날때,또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던 사람들이 직장을 찾아 나섰지만 일자리가 충분치 않을때 증가하게 된다.학교 졸업자들이 한꺼번에 직장을 찾아나서는 졸업시즌이나 그동안 경제활동에 나서지 않고 있던 사람들이 구직활동에 나서는 불경기 등이 이 경우이다.지난해 2%대에 머물던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금년 들어 취업자수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3%대로 높아졌는데 이는 기업의 감량경영노력 강화 등의 영향으로 가구주의 실직우려가 높아지면서 전업주부 등 여성의 구직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경제활동인구가 더 큰 폭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세계각국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한 기준에 따라 서로 비슷한 방법으로 실업률을 작성하고 있다.그러나 실업률은 그 나라의 경제발전단계나 사회제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실업률을 국제비교할때에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한 예로 우리나라의 실업률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것은 기본적으로 경제성장 속도가 빨라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시장 여건이나 사회보장제도 등이 선진국과 다른데도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현황 즉 우리나라에서는 직업알선제도가 완벽히 갖추어지지 않아 적극적인 구직활동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상당수의 실업자들이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다.또한 사회보장제도의 미비,노동시장의 기능 미흡 등으로 실직시 생활안정이나 재취업도 쉽지 않아 일단 취업이 된 근로자는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나쁘더라도 가급적 그 직장에서 계속 근무하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실업상태에 있으면서도 취업자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실업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에서 일을 하고 그 대가로 소득을 벌어들인다.이런 점에서 직장은 사람들이 가계를 꾸려나가고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터전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나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일할 능력을 갖추고 있고 또 취업을 원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이와 같은 상태를 실업이라 한다. ○마찰·구조·경기적 실업 그러면 실업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먼저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와 일할 사람을 찾는 구인자가 모두 많다고 하더라도 구직자가 정보부족 등으로 자기에게 맞는 구인자를 바로 찾지 못할 경우 실업상태에 놓이게 된다.이와 같은 실업을 마찰적 실업이라 한다.또한 산업구조의 변화나 기술혁신이 이루어져 어떤 산업이나 업종이 사양화될 경우 거기에서 종사하던 근로자들이 직장을 잃게 된다.이를 구조적 실업이라 한다.마지막으로 경기침체로 생산활동이 위축되어 고용기회가 줄어들 경우에도 실업이 발생하게 된다.이를 경기적 실업이라 한다.일반적으로 마찰적 실업은 일시적 현상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경기적 실업도 경기가 호전되면 해소될 수 있지만 구조적 실업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특징이 있다. 실업은 개인의 입장에서 볼때 가족의 생계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여러가지 폐해를 초래한다.우선 실업은 노동력의 유휴화를 의미하므로 그 자체가 자원의 낭비가 된다.또한 대량실업은 각종 범죄를 양산하여 사회의 공공질서와 안전을 해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따라서 각국에서는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모두 직장을 갖게되는 완전고용의 달성을 경제성장,물가안정,국제수지균형 등과 함께 국가경제의 중요한 정책목표로 여기고 있다. ◇역사속의 대량실업 ○미 1903년대 악몽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일자리를 얻기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과 가난에 찌든 표정 등 대량실업의 단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경제통계로 뒷받침되는 20세기의 매표적인 실업으로는 1930년대 대공황기에 겪었던 미국과 독일의대량실업을 들 수 있다.대공황기중 미국의 실업자는 1930년 한해만으로도 434만명이 늘어났으며 그후 3년간 900만명의 실업자가 추가로 발생함으로써 1933년에는 실업률이 25%까지 치솟았다.이에 따라 1933년의 취업자수는 호황기였던 1926년의 60%,임금수준은 42%로 줄어들었으며 이들 실업자중 대다수가 거리의 부랑아로 전락하면서 정치,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극심한 혼란이 야기되었다. ○독 10명중 4명 실업자 미국 대공황의 여파는 순식간에 전세계로 파급되었는데 특히 1차대전 패전후 과중한 전쟁배상금과 인플레이션 수습을 위한 긴축정책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독일경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그 결과 독일의 실업자수는 1932년 700만명을 훨씬 넘어서고 실업률은 40% 가까이로 높아져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하였으며 이는 결국 히틀러의 나치정권이 탄생하는 빌미가 되었다. ○정부 고용창출 해법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정부의 재정지출확대를 통한 고용창출정책에 힘입어 대량실업의 공포에서 벗어났다.그러나 영국은 예외적으로실업률이 1970년대 2%대에서 계속 상승하여 1986년에는 12%로 높아짐으로써 선진국중 가장 오랜 기간동안 가장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였다.이같은 영국의 고실업은 실업자에 대한 지나친 사회보장제도와 강경일변도의 노조때문에 생겨난 구조적 현상으로 이른바 ‘영국병’이라는 명예스럽지 못한 별명을 얻게 되었다.그러나 1979년 집권한 대처행정부의 노조활동 제한,사회보장비 지출감축 등 제도개혁과 외국인 투자유치 등 고용기회 확대를 위한 정책 등이 효과를 거두면서 고용사정이 1990년대 들어 점차 호전되기 시작하여 최근에는 유럽의 여타 국가보다도 낮은 6% 수준의 실업률을 유지하고 있다.
  • 미 유권자 외교정책에 너무 무관심/폴 월포위츠(해외논단)

    ◎아시아부상과 연계 중요성 인식을 탈냉전이후 유일한 슈퍼파워인 미국의 국민들이 갈수록 외교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내는 가운데 폴 월포위츠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장은 다가오는 21세기 및 아시아의 부상과 연관지어 이에 대한 각성을 촉구했다.미국 정치계간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에 게재된 그의 「세기에 다리를 놓으며」를 소개한다. 미국에서 지난해 대통령후보 공개토론회때 사회자의 호소가 있고서야 외교분야 질문이 제기됐고 그것도 따지고 보면 주변적인 것에 불과했었다.미국 유권자들이 이처럼 외교정책에 무관심한 이유로 우선 미국 및 미국의 이익과 관련해 세계가 냉전 때보다 훨씬 안전해졌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클린턴 행정부의 외교 능력하곤 상관없이 미국의 이익에 대한 위협은 있는다고 해봤자 예전에 비하면 소소하고 저 멀리 떨어진 감을 주었다. 클린턴 2기 행정부는 딴 일 제쳐두고 국민들에게 이같은 무사태평함은 합당한 근거가 없으며 외교정책은 탈냉전의 현재도 중요하고 여기에 커다란 이해가 걸려있다는 점을인식시켜야 한다.길고도 고통스러운 투쟁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라 긴장이 이완될 수 밖에 없고 거기다 분명한 적도 떠오르지도 않은 마당이라 국민들의 긴장을 죄고 각성시키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을 것이다.다음 세기로 가는 다리를 놓자는 말이 풍미하는 이때 1백년전의 세기말과 비교해서 금세기말인 현재는 어떤 모습인가를 살펴보도록 하는 것도 각성의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20세기 말과 19세기 말은 묘하게 경제적 번영및 기술 진보에 대한 낙관 그리고 세계평화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1백년을 건너뛰어 공유한다.그러나 평화와 번영에 대한 커다란 희망에 의문점을 찍는 현상에서도 이 두 기간은 닮았다.지난 세기말 세계는 일본·독일 등 신흥 세력들의 출현을 제대로 풀어가지 못했다.오늘날 빈곤을 줄이고 통상을 확대하고 새 중산층을 양산하는 특출난 경제성장은 또한 신흥 경제대국 그리고 덩달아 새 군사대국을 창출하고 있다.특히 아시아에서 이는 명확하다. 아시아에서 작은 나라로 치는 태국·필리핀·베트남 등은 아시아 기준으로 작을 따름이다.6천만 내지 8천만명의 인구는 유럽의 대국과 맞먹으며 유럽 큰나라보다 매해 4∼6%씩 더 급속하게 경제가 성장하는 현 추세를 계속한다면 이들은 20년내지 40년안에 유럽강국을 따라잡게 된다.아시아 큰나라는 어떤가.중국은 통일독일보다 더 큰 지방성이 3개나 되며 인도는 9억인구에 GDP가 1조달러를 넘어섰고 5%이상의 경제성장을 기록한다.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다.지평선에 떠오르고 있는 통일한국은 유럽강국과 비슷한 크기이며 현재 한국 혼자만으로도 경제대국의 하나로 올라서고 있는 중이다. 중국의 부상은 그 자체로 상당한 문제를 제기한다.그래서 다른 여러 아시아 파워와 함께하는 중국의 부상은 극도로 복잡한 방정식 문제를 내놓는 셈이다.중국의 경우 「아웃사이더(국외자)」라는 불길한 요소가 있고 이는 지난 세기말의 독일과 뚜렷하게 겹쳐진다.독일은 당시 자기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대명천지에서의 자리」가 거부되었고 다른 강국들에게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으며 따라서 민족주의적 공세로서 자기 자리를 찾고자 맘먹었다.물론 19세기말엽의 독일과 20세기말엽의 중국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확신있게 말하기 어렵다.유럽 강국과 일본으로부터 학대받았다는 중국의 생각은 독일의 경우보다 더 뿌리가 깊다.더구나 1차대전 발발에 큰 영향을 끼친 독일의 지도층 전환과 현재 중국의 지도층 교체는 아주 유사하다.20세기는 19세기말의 기대에 맞게 진행되지 않았다.중반경에 이미 역사상 가장 피를 많이 흘린 세기가 되고 말았는데 이 피의 상당부분이 유럽의 독일과 아시아의 일본 등 신흥세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흘렸다.20세기는 놀랄 정도로 평화의 톤을 띠며 마감을 맞고있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유혈이 낭자한 세기였다는 점이다. 미국인은 현재의 무사태평함에 안주하고 있어 외교정책 담당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막 눈에 띨가말까하는 문제들을 왜 지금부터 심각하게 눈여겨 보지 않으면 안되는가를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것이다.다음 세기가 이번 세기보다 더 많은 피를 흘리게 된다면 인류는 살아남지 못한다.반대로 평화가 잘 유지된다면 그 열매는 진짜 달디 달 것이다.미국은 오늘날의 문제가 지금 당장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그 이유만으로 세계를 소홀히 할 그런 여유는 가질수 없다.〈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장/정리=김재영 워싱턴 특파원〉
  • 불 여성작가 화제의 소설 시리즈로 나온다

    ◎도서출판 열림원,월말 3권 첫 출간 □뒤라스 ·「연인」으로 유명 ·작품 「고통」통해 애증갈등 표현 □유르스나르 ·「알렉스」·「세사람」 화제 소설 두편 ·성,인간성 탐구 □사로트 ·누보로망 기수 ·소설 「황금열매」 진수 선보일듯 프랑스 현대 여성작가들의 화제작만을 골라 맛보여주는 시리즈물이 나온다.도서출판 열림원에서 출간될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선」이 그것.이달말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알렉시」「세 사람」(이상 남수인 옮김),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고통」(유효숙 옮김) 세권으로 테이프를 끊은 뒤 연말까지 일차분 열세권을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모두 프랑스 현대문단의 성감대를 민감하게 건드리고 있고 문학성도 갖춘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프랑스에서도 각종 문학상에서 여성작가 수상이 날로 늘어나고 있으며 요즘 우리나라같은 「여성작가 붐」도 일었다.프랑스가 유럽문학의 수원인 점은 누가 뭐래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필력 섬세하기로 소문난 여성작가들의 소설을 찾아 읽는 즐거움은 더욱 클 듯하다. 먼저 나오는 세권은 「…소설선」중에서도 구세대로 어느 정도 문학적 평가가 이뤄진 작가들의 작품.발표시기도 거의 50년 이전이다.지난해 죽은 뒤라스는 자전소설 「연인」이 영화화된 뒤 우리나라에서도 설명이 필요없을만큼 유명해졌다.「고통」은 2차대전때 포로로 뼛가죽만 남게 된 레지스탕스 남편에게서 동지이지만 연인을 느낄수 없었던 솔직한 심경을 그린 소설이다.사회참여와 연애 다방면에 불꽃을 피웠던 뒤라스의 기질을 엿보게 한다. 유르스나르 역시 「어둠속의 작업」「하드리아누스황제의 회상록」 등이 국내 번역돼 풍요로운 인문학적 품격과 여성을 느낄수 없는 선굵은 문체로 적잖은 독자를 모았던 작가.아내에게 자신의 솔직한 「성애론」을 고백하는 편지형식의 「알렉시」는 레즈비언이었다고 알려진 작가의 성취향을 보여주며 「세 사람」은 1차대전 와중에 애인을 쏘아죽이기에 이른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토대로 인간성과 사회에 대한 특유의 묵직한 고찰이 펼쳐진다. 93년 내한한 아니 에르노의 최신작 「부끄러움」(이하 원제)「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거식증 소녀를 그린 「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로 국내 소개된 주느비에브 브리작의 페미나상 수상작 「엄마를 찾아서」 등도 화제가 될 만하다.이밖에 누보로망의 기수인 나탈리 사로트의 「황금열매」를 비롯,앙드레 쉐디드,카롤린 라마르슈,클레르 갈루와,다니엘 살르나브,마리 르도네,마리 카르디날 등 최신 작가들이 대거 소개된다.
  • 제4의 전환/윌리엄 스트라우스&닐 호웨(미래는 보는 세계의 눈)

    ◎2000년대 미국의 변화와 대응 예측/과거 300년 역사 흐름 분석… 새사회 탄생 확신 단순한 세기의 변화뿐 아니라 새로운 천년대(천연대·millennium)의 개막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고 있는 2000년대를 맞아 미국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 것이며 이를 위한 미국인의 준비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 것인가.「제4의 전환(The Fourth Turning)」은 이같은 미국 장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가능한 예측을 위해 300년 미국역사의 흐름을 분석한 역사예언서이다. 미래 예측 분야에서의 인식의 지평을 넓힌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역저인 「세대들:미국 미래의 역사」「제13의 세대」에 이어 역사학자인 이들 저자윌리엄 스트라우스(William Strauss)와 닐 호웨(Neil Howe)가 세번째로 함께 펴낸 이 책은 미국역사의 흐름이 80∼100년 단위로 사이클(순환)을 이루고 있으며 또 각 사이클은 다시 20∼25년 주기 4개의 터닝(전환)으로 구성돼 있음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2000년대 초반은 네번째 사이클중 제4의 전환기로 미국사회는 위기의 시대를 맞게 되며 현재는 그이전단계인 위기전시대(pre­Crisis)로 「문화전쟁」시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혼돈으로 가득찰 위기시대는 2020년쯤 끝나고 사회는 다시 평온을 되찾을 것이며 이후에 돌아올 새로운 사이클을 준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은 위기 이 책은 미국인들이 불과 10년 앞으로 다가온 위기시대를 앞두고 각기 속한 세대별로 어떻게 사고하고 있으며 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먼저 현재 미국인들의 구성을 각 출생연대별로 특징지어 ▲침묵세대(1925∼42년생) ▲붐세대(1943∼60년생) ▲제13세대(1961∼81년생) ▲천년세대(1982년이후 출생)의 4세대로 구분하고 있다. 최고 연장자 세대로 점차 힘이 약화돼가고 있는 침묵세대는 관용과 조화를 취해나가며 붐세대는 전후 베이비붐세대로 대의를 위해 자신들의 젊음을 기꺼이 바쳤던 투쟁옹호의 성격에 규율화 돼있으며 도덕적 권위 강화를 위해서라면 공공이익의 축소도 수용한다. ○4개의 전환기로 구분 또한 네번째 사이클의 첫전환기가 13번째 세대에 속한다 하여 제13세대로 이름지어진 이 세대출생자들은 가장 다이내믹한 세대로 가정중심의 생활을 잘 꾸려나가며 국가나 대의를 위한 일보다는 자신들의 생존술을 잘 습득하고 있다.마지막 세대인 천년세대는 희망적이고 팀워크가 짜여진 모습을 보이고 또 훌륭한 시민의 행동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저자들은 미국역사 사이클을 「혁명 사이클」(1704∼1794),「남북전쟁 사이클」(1794∼1865),「위대한제국 사이클」(1865∼1946),「천년 사이클」(1946∼2026?) 등으로 구분하고 각 사이클을 공통적으로 구성하는 4개의 전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제1전환은 「지고의 시기」로 새로운 시민질서가 태동함으로써 제도가 강화되고 개인주의가 약화된다.오늘날 천년사이클에서는 「미국 최고」(American High)의 정신으로 초강대국의 꿈을 이룩한 트루만,아이젠하워,케네디 대통령 당시가 해당된다. 제2전환은 「각성의 시기」로 시민질서가 새로운 가치들의 부상으로 도전을 받게 됨에 따라 정신적 동요가 일어나는 양심혁명의 열정적 시기를 말한다.60년대이후 활발해진 반전데모,흑인의 인권신장운동,환경운동,여권신장운동 등이 이 시기의 주류를 이룬다. 제3전환은 「이완의 시기」로 구질서가 약화돼감에 따라 제도가 약화되고 개인주의가 강화되며 문화의 분열과 타락을 느끼게 된다.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발달된 컴퓨터 등 첨단기기에 의한 개인주의시대로 진입을 가져오며 세기말을 맞아 가정 가치의 회복,범죄·무질서·퇴폐 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게 된다. ○위기상황 무난히 극복 제4전환은 「위기의 시기」로 새로운 질서가 구질서를 대체토록 촉진케되는 결정적인 시기가 되며 한 사이클을 끝맺게 된다.새 천년대의 시작과 함께 예기치 않았던 위기상황에 봉착하게 되나 미국인들은 새로운 컨센서스로 이를 무난히 극복,새사회를 탄생시키게 된다. 이 책에서 구분하고 있는 미국역사의 사이클별 전환기는 다음과 같다. ◇혁명 사이클=「제국의 시대」(1704∼27),「위대한 각성」(1727∼46),「프랑스∼인디안전쟁」(1746∼73),「미국혁명」(1773∼94) ◇남북전쟁 사이클=「호감의 시대」(1794∼1822),초월적 각성」(1822∼44),「멕시칸전쟁과 지역주의」(1844∼60),「남북전쟁」(1860∼65) ◇위대한제국 사이클=「재건」(1865∼86),제3의 각성」(1886∼1908),「1차대전」(1908∼29),「공황과 2차대전」(1929∼46) ◇천년 사이클=「미국 최고」(1946∼64),「양심혁명」(1964∼84),「문화전쟁」(1984∼2005?),「제4의 전환」(2005?∼26?). 브로드웨이 북스(뉴욕)사 발행,380페이지,27.50달러.
  • 마이클 르딘 저서「…자유」서 역설

    ◎미국,신생 민주국가 체제정착 도와줘야 냉전이후 미국의 전통적 고립주의 외교노선이 한층 강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저명한 싱크탱크 공공정책연구소(AEI)의 마이클 르딘 선임연구원은 최근 「배반당한 자유」라는 제목의 저서를 통해 새로 탄생한 민주국가들의 체제전환 작업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협력과 개입을 역설했다.저서의 요지를 소개한다. 지난 20여년간은 제2의 민주혁명기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구상에 민주혁명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옛 미국혁명 사상에 고취되고 미군사력과 민주지도자들의 뛰어난 세대에 선도돼 혁명은 세계를 휩쓸었던 것이다.유럽,아시아,라틴아메리카,그리고 아프리카의 숱한 반민주 정권이 무너졌다. 이에 영향받아 미국 의회마저 크게 변했다.정부기관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인류의 근본문제를 푸는데 적절하다는 국가지상주의적 사고가 공격받기 시작했으며 놀라울 정도로 많은 나라에서 압제적인 중앙정부의 힘이 축소되었다.소련 대제국이 붕괴되자 조만간 세계 모든 곳에서 민주주의가 승리하며 우리 아이들은 우리 자신이 품어온 최고의 이상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살 것이라고 기대하게 됐다. 그러나 우리가 중히 여겨온 가치관이 세계를 휩쓴 바로 이 90년대들어 미국의 대통령들은 이 민주혁명을 배반하고 미국의 역사적 사명을 유기한 채 전제적 폭정이 다시 힘을 얻어 지난날의 나쁜 전횡을 부리도록 방관해 왔다.얼마 전에 분명 타도되어 버린 것으로 여겨졌던 민주주의의 적들이 옛 소련제국의 많은 곳에서 점점 강해지고 있으며 공산주의 테러를 자행했던 인물들이 민주 인사라는 새 갑옷을 걸치고 권력자로 다시 올라선 경우도 여럿 된다. 그런데도 미국은 미적거리기만 한다.이것은 또 처음이 아니다.금세기에서만 미국은 두번이나 민주주의의 적들에 대한 섬멸전을 성공적으로 주도하고도 비극적이게도 평화정착의 호기를 망쳐버렸다.미국은 가끔씩만 세계사에 깊숙히 관여했을 뿐이며 그런 대사에 끼어드는 것을 미국이 별로 마음내켜 하지 않은 것은 역사가 말해준다.독일 U보트의 기뢰공격을 받고서야 1차대전에 참여했으며 일본의기습폭격에 의해서 2차대전에 끌려들었다.40년대말에도 스탈린의 왕성한 정복욕에 간신히 미국은 전후의 잠에서 깨어났다. 이렇게 다른 나라 사람들과 따로 떨어져있고자 하는 한편으로 이중적,정신분열적이게도 미국은 그들에게 미국 혁명의 가치관을 설교해 왔다.미국은 바깥 세계의 일부가 되는 걸 원하지 않으나 그 세계를 변화시키고,민주화하고,보다 미국처럼 만들기를 원하는 것이다. 제2의 민주혁명은 공산주의를 패배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훨씬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즉 모든 형태의 폭정에 대한 전세계적 대운동인 것이다.공산주의의 종언은 미국의 가치에 고취되고 세계의 여러 민주 지도자에 영도된 지구적 혁명의 한 모멘트(아마 가장 중요한)에 지나지 않는다.그리고 소련 제국의 몰락과 공산주의의 종말을 경제적 관점으로 설명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경제체제가 실패하자 따라서 제국이 붕괴했다는 말은 설명이라고 할 수조차 없다.왜냐하면 소련 체제는 처음부터 실패작이었기 때문이다.80년대들어 갑자기 나빠진 것이 아니다.언제나 실패한 상태였다.또 칠레,체코,필리핀 등을 보더라도 민주혁명기에 무너진 전제정권은 경제적 위기에 희생된 것은 아니다. 소련이 망했다고 해서 미국의 임무가 끝난 것은 아니다.새롭게 자유국가가 된 나라들이 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를 구축하는 것을 도와줘야 한다.이 국가들이 이 두 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아주 어려운 과업인데 이들이 성공하는냐의 여부에 미국의 커다란 이해가 걸려있다.만약 이들이 실패한다면 민주주의 미래 그리고 이에 따른 미국의 장기적 국가안보가 받을 타격은 막심하다.그들이 미국의 도움으로 성공한다면 장래 세대들은 미국을 선망하고 찬양해 마지 않을 것이다.
  • 서울신물 박정현 특파원 파리 OECD 본부를 가다

    ◎연구팀만 200여개 “세계경제 산실”/26개 분야별 소위서 국제경기흐름 조율/모든회의 비공개… 서류마다 「비」자 일색/지하커피숍엔 각국외교관 등 「정보사냥꾼」 북적 파리시내 서쪽 앙드레 파스칼거리 2번지.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고색창연한 본부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이 거리를 사이에 두고 샤토 뮈에트(뮈에트성)이라고 불리는 구관과 비교적 신식인 별관건물이 맞이한다. 구관 건물부터 찾아들었다.방문객 접수창구에서 신분증을 내고 임시방문증을 받는다.OECD 대표부 직원이 아니면 회의에 참석하는 정부대표단도 매번 방문증을 받아야 한다.그만큼 29개 회원국을 대상으로한 OECD의 문턱은 높게 느껴진다. 건물입구에는 OECD라는 간판도 금방 눈에 띄지 않는다.주변에 주차된 외교관 번호판의 승용차들이 OECD 건물임을 말해준다.신분증을 받아 구관을 들어서면 넓은 뜰이 나오고 건물 입구를 쳐다보니 가로 1.5m,세로 1m 크기의 태극기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본부입구 태극기 펄럭 지난달 12일 이시영 주프랑스한국대사가 프랑스 외무성에가입서를 기탁하자마자 게양된 태극기다.한국이 OECD 회원국임을 대외에 알리는 가장 큰 상징이다.나머지 28개 회원국의 국기가 태극기와 함께 나부낀다.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음을 실감케 했다. 샤토 뮈에트는 왕과 귀족들이 가까운 불로뉴숲에서 사냥을 하다 쉬던 「휴식처」.우여곡절을 겪은뒤 1차대전 직후 유태인 출신의 작가 로드 차일드가 인수한다.현관과 회의실 등에 진열된 그림 등 소장품들은 그가 진열한 거의 그대로이다. 차일드는 2차대전이 일어나자 나치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 성을 프랑스 정부에 헌납했다고 한다.전쟁이 끝나고 돌려줄 것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고 프랑스 정부는 지난 49년 유럽경제협력기구(OEEC)가 설립되면서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에 OEEC에 이 성을 넘겨줬다. OEEC의 손에 들어간뒤 61년 명의가 OECD로 개편되었으며 그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건물 1층에 있는 회의실은 4개.A∼D까지의 회의실이 있고 이 가운데 C회의실이 바로 매년 5월 각료들이 모여 각료이사회가 열리는 유명한 곳이다. 입구 왼쪽의 계단을따라 올라가자 도널드 존스턴 사무총장의 집무실과 사무국 직원들의 사무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구관을 나와 다시 앙드레 파스칼 거리를 건너 신관에 들어섰다.신관의 지하1층에 위치한 회의실은 9개.나머지는 모두 사무국의 사무실이다. ○사무국 직원 1천900명 구관의 회의실을 합해 모두 11개 회의실이 있지만 매일 열리는 7∼8개의 회의때문에 항상 북적댄다.지하의 커피숍은 회의 막간을 이용해 외교관이나 정부대표단이 정보를 교환하고 휴식을 취하는 장소.다른 선진국 경제정책의 흐름을 파악하려는 각국 외교관과 정부관리들의 눈초리는 커피숍에서도 느껴진다. OECD는 부자들의 모임이라고들 한다.하지만 실제로 OECD를 방문해보면 OECD가 결코 부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회의실이 부족해 파리시내 프랑스정부 소유의 건물로 자리를 옮겨 「더부살이」 회의를 여는 경우도 많다. OECD는 본부를 이전한다는 방침아래 대상지를 물색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영등포구 정도의 크기에다 건물 증개축이 엄격한 파리시내에서 넓은 부지에 번듯한 사무실을 찾기란 쉽지 않다.지난해 여름 한국이 가입협상을 진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OECD 사무국 직원들은 한국이 하루라도 빨리 회원국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한국이 가입하면 예산이 늘어 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OECD예산은 약 2억6천만달러.이 가운데 1천900여명의 사무국직원들 인건비가 85%를 차지하고 있어 예산은 턱없이 모자란다.때문에 지난해 존스턴체제 출범이후 사무국 기구 축소와 기능정비 검토에 들어갔다.여느 국제기구와 마찬가지로 인력감축바람이 서서히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된다. ○건물 비좁아 이전 모색 OECD 29개 회원국 가운데 유럽국가들이 22개국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이는 OECD자체가 2차대전후 잿더미의 유럽의 재건을 위한 기구라는 뿌리에서 비롯된다.미국은 마셜플랜이라는 대규모 유럽원조를 했고 유럽 16개국이 원조자금의 배분 등을 논의했던 기구가 OEEC이다. OEEC는 유럽의 경제복구가 어느정도 달성되자 지난 61년 미국과 캐나다 등을 포함한 OECD로 확대 개편됐다.이제는 선진7개국(G7)정상회담의 사무국 역할과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의 막후조정을 할 정도로 국제경제질서를 주무르는 최고의 국제경제기구로 떠올랐다.이런 기구에 가입해 회의에 참석한 우리 정부 관리들은 OECD가입이 백번 잘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본부가 파리에 소재하고 있어서인지,회원국이 유럽지역에 편중돼 있는 탓인지 유럽 텃세가 심하기로도 유명하다.한국의 가입협상때 아시아국가들은 지원사격을 많이 해준데 비해 유럽국가들은 꼬치꼬치 트집을 잡기도 했다.때문에 백인 기독교사회가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회원국이 되려는 한국을 골탕먹이려 한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최고기구 각료이사회 OECD의 회의 특징은 회원국간 비밀을 중시하고 웬만한 서류에는 「컨피덴셜(비밀)」이라고 찍혀 있다.지난 연말 투자보장협정(MAI)회의에 참석중 OECD건물에서 만난 한국의 한 외교관은 『한국이 정식 회원국이 아닐때 한 위원회의 회의에서 하루에 3번씩이나 쫓겨나는 설움을 겪기도 했다』며 『회원국의 가장 큰 장점은 쫓겨나는 설움이 없이비밀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점』이라고 전했다.그만큼 비회원국에 대해서는 철저히 배타적이라는 얘기다.회의의 또다른 특징은 「동료간 압력(Peer Pressure)」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회의는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지만 회의에 참석한 외교관들의 말을 빌려 종합해보면 이렇다.A국의 경제정책이 잘못돼 B국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치자.B국의 대표는 어느날 회의에서 『A국의 정책은 국제경제규범에 어긋난다』고 간접적으로 지적하면서 수정을 요구한다.그러고 나면 회원국들은 A국과 함께 토의를 거듭하면서 서로의 정책 조화를 도출해 나가는 점잖은 진행방식이다.이 과정에서 선진국들의 최신 관심사를 파악할 수 있다. OECD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는 이런 각료이사회와 함께 상주대표들이 참석하는 일반이사회가 있다.사무총장을 의장으로 하는 일반이사회가 열리는 매달 두번째및 네번째 목요일은 OECD가 붐비는 날이다.그리고 특별사안이 있으면 한차례 이사회가 더 열려 한달에 2∼3번씩 열리는 셈이 된다.이 자리에서 신규 회원국 가입문제와 위원회별 심사및 검토결과에 대한 최종 승인이 내려진다. 이사회 산하에는 26개의 분야별 위원회가 있고 200여개의 작업반이 구성돼 있다.이들 작업반에서는 문제점으로 지적된 경제정책에 대한 해결방안 등에 대한 연구가 모색된다.이외에 국제에너지기구(IEA),원자력기구(NEA),교육연구혁신기구(CERI) 및 개발센터(DC) 등의 반독립적 부속기관들이 설치돼 있다.
  • 아르헨티나(외언내언)

    서울의 낮12시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밤12시다.한국이 봄이면 아르헨티나는 가을이고 서울이 겨울이면 그곳은 여름이다.겨울철 서울에서는 해그림자가 북으로 나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남으로 난다. 아르헨티나는 정확히 한국과 지구의 정반대편에 있는 나라다.동·서로만 반대인게 아니라 남·북으로도 그렇다.그래서 서울의 남대문,동대문시장에서 철지나 팔리지 않은 옷가지가 아르헨티나로 무더기로 팔려 나간다.그곳의 돌아오는 철에 대기 위해서다. 김영삼 대통령이 9일부터 2박3일동안 아르헨티나를 공식 방문하고 있어 아르헨티나란 나라가 새삼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우리의 외교가,우리의 경제가 오랫동안 잊혀져있던 남미의 저 끝 아르헨티나에까지 미치게됐다는 것이 우선 가슴 뿌듯한 일이기도 하고 감회가 새삼스럽기도 하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세계 5∼6위권의 경제부국이었다.국토의 대부분이 경작가능지역인 아르헨티나는 실로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받은 미래의 땅」이었다.끝없이 펼쳐진 대지에 물줄기가 굽이굽이뻗쳐있어 종자만 심으면 어디에도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그런 땅이다.꿀이 설탕값보다 싼 나라다. 무엇이 「축복받은 땅」을 버려두었을까.농업국인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기운 것은 전후 유럽의 농업생산력이 회복되면서부터.『아르헨티나는 영국에 양모를 팔고 영국은 아르헨티나에 양복지를 판다.양모의 값은 소비자가 결정하고 양복지의 값은 생산자가 결정한다』는 말이 오늘의 아르헨티나 경제를 설명해줄지도 모른다. 땅이 너무 풍요로운 것도,국토가 너무 넓은것도,인구가 너무 적은것도 이곳에서는 모두다 문제가 됐다.그래서 여기서는 척박하고 비좁은 땅에서 바글바글 들끓는 한국의 모든 것이 좋았던 것으로 평가된다.1차대전이후 산업화의 기회를 놓친것도 빠뜨릴 수 없는 실책이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 “중·러 국경협정 아태 평화 도움된다”/유산(해외기고)

    ◎일부 대국에 의해 주도된 아주 직서서 벗어나/자주적 평화여건 조성… 장기적 안정 도모해야 중국이 지난 4월말 상해에서 러시아 등 독립국가연합(CIS) 4개국과 국경협정을 맺은 것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지대한 공헌을 할것이라고 중국북경 외교학원(대학)의 유산 원장(학장)이 서울신문에 특별기고한 글에서 주장했다.유원장은 벨기에·EC(유럽연합)대표부대사와 국무원 외사 판공실부주임등응 거쳐 지난 92년부터 외교인력 양성을 위한 외교학원원장직을 맡아오고 있다.그의 기고를 소개한다. 지난 4월26일 중국과 러시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등 5개국이 서명한 국경지역의 군사적 신뢰강화를 위한 협정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어떤 이는 이 협정을 아·태지역 우호관계 수립을 위한 모델이자 지역 안전메커니즘의 기초라고 평했다.그러나 일부에선 중국과 러시아가 새로운 동맹을 결성했다며 이를 경계하고 있다. 중국과 이들 국가의 국경지역에는 민족들마저도 혼재한다.근대에 들어 청나라는 무력으로 압박하는차르의 러시아와 일련의 불평등조약을 맺었고 방대한 땅을 상실했다.이는 금세기들어 두나라의 끊임없는 분쟁의 발단이 됐다.신중국 성립이후 중국은 독립및 외침위협 대처를 위해 러시아와 동맹을 맺었다.그러나 69년 국경 군사충돌로 중·소는 오랜 세월 대항의 시기로 접어들게 됐다.이 세월동안 두나라는 깊은 교훈을 얻게 된다. 소련해체후 중·소간의 7천여㎞에 달하는 국경은 이들 4개국으로 나뉘어 공유됐다.중국과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과의 국경은 아직 완전하게 획정되지 못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경은 법률상으로 결정됐다.또 지난 4년동안 이들 4개국과 중국은 정치·경제·무역등 각 부문에서 끊임없이 교류를 발전시켜 왔다.이점에서 5개국의 국경 강화협정은 중국과 관련국가들과의 친목,우호관계가 집대성된 결과일뿐아니라 지역안전과 안정수립의 탐색을 위한 새로운 시도란 의미도 갖는다. 이 협정은 알려진대로 ▲상호 불공격▲상대방을 겨냥한 군사훈련 중지 ▲군사연습의 규모,범위,횟수에 대한 제한 ▲국경으로부터 1백㎞지역내의 군사활동에 대한 상호통보 ▲국경지역에서의 군사교류 강화등을 들고 있다.중국과 러시아 등이 위의 상술한 협정을 서명한지 얼마되지 않아 일본과 러시아는 모스크바에서 군사부문에서의 상호신뢰강화를 위한 비망록에 서명했다.일본과 러시아는 대규모 군사연습에 대한 상호통보,군사력과 국방정책에 대한 정보교류,상호 군사교류등을 합의했다.이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협정을 다른 나라들이 폭넓게 수용,채택할 경우 지역의 평화,안정및 안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 19세기이후 아시아는 여러차례 전쟁과 재난을 겪어 왔다.아시아의 국제질서와 각국의 운명은 적잖이 몇몇 대국의 손에 의해 결정돼 왔다.1919년 베르사유조약과 1921∼22년사이의 워싱턴 군축체계는 1차대전이후 제국주의가 아시아의 구도를 결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얄타협정은 2차대전후 초강대국이 아시아의 세력범위를 획정한 것이었다.그러나 역사는 군사력과 대국동맹을 배경으로한 국제질서는 결코 믿을만한 것이 아니란 점을 입증한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안정과번영의 신질서를 확립하려면 패권주의와 강권정치로 국제질서를 유지하려는 낡은 생각을 넘어서야 한다.냉전후 아시아와 세계 변화는 전대미문의 역사적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다.이런 조건들은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각국 공동발전의 기회를 제공한다.이런 변화는 다음 5가지로 요약되는 인류생존조건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졌다.첫째는 현대과학기술의 신속한 발전이다.다른 나라의 자원·국토를 점령,약탈해 얻어내던 사회·경제적 부와 번영은 갈수록 해당 국민들의 과학및 교육수준에 대한 의존으로 대치되고 있다. 둘째,경제의 전지구화는 각국의 경제경쟁을 가속화시키면서 상호의존을 더욱 강화시켰다.인류가 직면한 공동 난제는 어느 한 대국의 해결능력을 넘어서 여러나라의 협조,노력을 기대하고 있다. 셋째,지역경제의 일체화는 이미 국제적 조류다.지역합작은 중소국가들의 응집력 강화에 유리할뿐아니라 인접국들의 공동이익증진과 지역안전,안정에 유리하다. 넷째,세계는 다극화와 국력의 상대적 평균화 추세로 가고 있다.대국간에도 상호협력과함께 상호견제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도 이때문이다. 다섯째,개발도상국들이 갈수록 국제정치 무대의 독립적인 행위자가 되고 있다.특히 아시아에서 이들 국가들은 경제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성장 세력이 되고 있다. 이미 세계는 지난해 반파시스트 전쟁승리 50주년을 축하했다.동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은 민족독립의 달성이후 아시아의 경제번영을 향해 공동 노력하고 있다.이런 진흥은 아직 시작단계이고 균형을 이루진 못했지만 전체 아시아인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동아시아 국가들의 도약은 국제관계에서 역사적으로 지배와 피지배의 도식과 구분을 변화시키며 대국의 세력범위 기초를 뒤흔들고 있다. 아시아가 대국통치아래의 평화상태에서 각국의 독립과 평등한 조건아래서의 평화상태로 나아가려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적지않다.그러나 아시아의 장기적인 평화와 안정,그리고 공동발전에 유리한 국제환경을 만드는 것은 모든 아시아 국가들의 이익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이익에도 유리하다.이런 입장에서 중국과 러시아,카자흐스탄등 4개국과의 국경지대의 신뢰협정은 아·태지역의 안전과 신뢰촉진을 향한 실제적인 첫 걸음이란 점에 무게를 지닌다.
  • 아테너서 애틀랜타까지/올림픽 100돌 성화 타오른다

    ◎1896년 첫 대회… 13개국 311명 참가/31년 LA­상업주의 적중 “대성공”… 선수촌 처음 등장/72년 뮌헨­아랍테러단 「이」 숙소 기습… 선수 9명 사망/88년 서울­개도국서 첫 개최… 159국 참가 “화합구현” 아테네에서 애틀랜타까지 1백년.오는 7월19일 미국 남부도시 애틀랜타에서 개막되는 제26회 올림픽을 계기로 근대올림픽이 1백주년을 맞는다.「근대 올림픽의 아버지」 쿠베르탱남작의 올림픽부활운동이 열매를 맺으면서 1896년 고대올림픽의 발상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13개국 3백11명의 선수들이 제1회 대회를 연지 한 세기가 흐른 것이다.그동안 올림픽은 질적·양적으로 수많은 변천을 거쳤다.그 과정을 간추려보고 올림픽의 의의 및 앞으로의 과제 등을 살펴본다. ▷약사◁ 기원 3천여년전 그리스 제우스신전 근처 계곡에 있는 올림피아에서는 4년마다 한차례씩 헤라클레스 축제를 기념하는 경기가 열렸다.달리기 멀리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그리고 레슬링이었다.이 행사는 아테네 스파르타 마케도니아의 끊임없는 전쟁속에서도 10세기 이상지속되었다. 기록된 최초의 올림픽경기는 기원전 776년으로 서기 394년에 이르기까지 1천2백년 이상 이어졌다.그러나 그리스를 정복하고 있던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가 기독교정신에 어긋나는 이교도 의식이라며 올림픽을 폐지시켜 이후 근대올림픽이 부활되기까지 15세기 동안 자취를 감춘다. 1880년대 들어 쿠베르탱남작이 부활운동을 펼치면서 드디어 1896년 첫 대회를 열기에 이르렀다.모두 10개 종목에 44개 금메달이 걸린 이 대회에서는 미국이 1위를 차지했고 그리스와 영국이 그 뒤를 이었다. ○16·40·44년대회 취소 이후 미국 세인트루이스,런던,스웨덴 스톡홀름 대회를 거친 올림픽은 1916년 베를린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개최국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취소되고 만다.이때부터 올림픽의 정치오염이 본격화된다. 제7회 대회는 1920년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열렸는데 1차대전동안 벨기에 사람들이 겪었던 슬픔을 달래주는 대회였다.반면 패전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불가리아 터키는 참가가 허용되지 않았다. 다시 파리와 암스테르담을 거친 올림픽은 32년 유럽대륙을 떠나 미국 LA로 옮겨간다.이 대회는 미국의 상업주의가 적중해 대성공을 거뒀다.처음으로 선수촌이 등장했고 거의 매일 6만명 이상의 관중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4년 뒤 히틀러의 나치에 의해 올림픽은 나치의 들러리 역할로 전락했다.독일 베를린대회 주변에는 나치의 숨막히는 분위기가 감돌았고 결국은 40년 대회와 44년 대회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되고 만다. 52년 헬싱키대회에는 볼셰비키혁명 이래 수십년동안 올림픽을 인정치 않던 소련이 마침내 대선수단을 이끌고 등장,동·서냉전시대에서의 미국·소련 초강대국 대결을 시작한다. 이후 92년 바르셀로나 대회 때까지 11차례의 올림픽에서 미국은 4차례,소련은 7차례 1위를 차지했다. 올림픽은 56년 호주 멜버른에서 개최돼 다시 한번 대륙간 이동을 했고 64년 일본 도쿄로 넘어갔다.도쿄대회는 패전국 일본의 부흥을 꾀하는 기폭제가 됐다. 68년 멕시코대회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아프리카국가들의 보이콧위협,학생시위,시상식에서의 흑인시위 등 정치오염이 심각했다.시위폭동으로 2백60여명이 사망했다. ○올림픽정신 상처입어 72년 뮌헨대회에서는 9월5일 아침,세계평화를 추구하는 올림픽정신이 영원한 상처를 입었다.아랍테러리스트들이 이스라엘숙소를 기습,선수 9명과 테러리스트 2명,경찰 1명이 사망했고 올림픽은 34시간 중단됐으며 메인스타디움에서는 추모식이 열렸다.이때부터 올림픽의 슬픈 역사가 거듭된다. 76년 몬트리올대회는 뉴질랜드럭비팀의 남아공 여행을 꼬투리잡은 아프리카국가들의 보이콧으로 얼룩졌고 80년 모스크바 대회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하는 64개 서방국가들의 불참으로 반쪽대회로 전락했다. 84년 LA대회 역시 소련등 동구권의 보복불참으로 반쪽대회였다.한국은 이 대회에서 종합10위를 차지한 뒤 88년 서울대회 4위,92년 바르셀로나대회 7위 등으로 기염을 토해 올림픽강국으로 떠오른다. 서울올림픽은 「한강의 기적」을 온세상에 자랑하면서 상처투성이의 올림픽을 되살려 놓았다.동·서 양진영 1백59개국이 참가해 「화합올림픽」을 구현했고 그동안 선진국이 독점했던 올림픽개최를 처음으로 개발도상국에서 대성공으로 마무리했다.단일민족 북한의 불참이 「옥의 티」였다. 서울대회는 초강대국 소련과 스포츠강국 동독의 올림픽 고별무대였다.이후 지구상에는 지각변동이 일어나 독일통일이 이뤄지고 소련이 붕괴됐으며 동구권 전체가 몰락했다. ○소련·동독의 고별무대 바르셀로나 대회에서 옛 소련 국가들은 EUN이라는 어정쩡한 단일팀으로 참가했다.동독은 참가대상에 존재하지 않았다.EUN은 미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해 소련붕괴의 긴 여운을 남겼다. 애틀랜타 올림픽은 경쟁상대를 잃은,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의 안마당이 될 것이다. 근대 올림픽이 19세기에서 21세기로 3세기를 옮겨가는 길목인 2000년 대회를 놓고는 중국 북경과 호주 시드니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여 시드니로 돌아갔다.12억의 중국인들은 그들이 「천하의 중심」,즉 「중화민족」임을 과시할 절호의 기회를 놓쳐 땅을 쳤으며 2백5년전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호주땅을 밟은 곳이기도 한 시드니는 흥분의 도가니를 이뤘다. ◎의의·과제/세계평화·국제친선 구현 “이바지”/인간능력 한계 넓히는데도 도움/정치오염·상업주의 극복이 과제 올림픽헌장은 첫 머리에 올림픽의 본질과 목적을 내세우고 있다.즉 ▲육체적·도덕적 자질의 향상 ▲세계평화의 추구 ▲국제친선 등이 골자이다.올림픽은 1백년의 역사를 누리면서 이같은 올림픽정신을 구현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인종과 언어와 풍습·국적·민족·문화를 뛰어넘는 인류의 대제전으로 발전했다.인간 능력의 한계를 넓히는데에도 공헌을 해 인류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올림픽정신이 퇴색하고 있다.정치오염과 상업주의가 스포츠정신을 퇴색시키고 있다.금메달은 「돈방석」과 직결되고 있으며 대회 행사 자체도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해 치러진다. TV독점중계는 올림픽을 TV의 「시녀」로 전락시켰으며 공식후원업체의 횡포 역시 심각하다. 아마추어리즘도 프로페셔널리즘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테니스 축구 농구를 시발로 프로선수들의 출전은 현대올림픽이 종착을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뿐만아니라 옛 소련·동독을 중심으로 한 공산권과 중국,그리고 일부 권위주의국가에서 보여준 국가관리체육정책은 자본주의의 프로페셔널리즘 못지 않게 올림픽을 오염시켰다. 약물복용의 폐해 또한 심각하다.근육강화제 흥분제 진정제 호르몬제 등의 복용은 육체와 정신의 건강을 추구하는 올림픽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과 각국 스포츠지도자들의 「스포츠귀족화」 역시 올림픽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일반대중의 평등을 추구하는 올림픽에서 이들은 이미 스포츠 특권층으로서 상당한 부와 권력을 향유해 올림픽의 이질감을 부추기고 있다. 과대망상에 가까운 민족주의·국가주의 역시 장애요인이다. 전문가들은 21세기에는 다시 한번 「올림픽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러시아의 딸 앙가라강(시베리아 대탐방:45)

    ◎바이칼호서 발원… 뱃길 1천8백여㎞/목재운반 최대 하상통로… 관광선도 운항/상·하류에 6개의 수전… 1천4백만㎾ 발전/인근 벌목장 우스치구트에 북한노동자 집단 거주 『「앙가라」는 옛날 시베리아의 늙은 추장 「바이칼」의 맏딸이었다.그녀는 아버지 바이칼의 말을 거역하고 무사인 「예니세이」에게 시집가버렸다』이 이야기는 앙가라강과 바이칼호 예니세이강에 얽힌 옛 시베리아의 전설이다.앙가라강이 흐르는 시베리아 중부 어느 마을에서도 이같은 전설을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다. 바이칼호에는 무려 3백36개의 크고 작은 강물이 흘러 들어온다.하지만 호수에서 강물이 빠져나가는 곳은 오직 한군데,이 것이 바로 앙가라강이다.그래서 「앙가라가 바이칼의 말을 거역하고」흘러나간다는 얘기다.길이 1천7백79㎞,유역면적이 46만8천㎦에 달하는 이 강은 바이칼호 남서쪽 끝 리스트비얀카에서 흘러나온다.이어 북동쪽 이르쿠츠크 분지를 가로지르고 협곡으로 들어가 브라츠크 우스치일림스크 보크찬스크를 차례로 지나 예니세이강 오른쪽 기슭에 다다른다.이 것이 바로 「예니세이에게 시집갔다」는 내용이다. ○예니세이강과 연결 시베리아의 큰 강들이 대개 그렇듯 앙가라강 역시 시베리아의 중요 하상교통로다.하상교통로는 바이칼호 이웃 이르쿠츠크를 기점으로 앙가르스크­체렘호보­브라츠크­예니세이스크로 이어진다.배들이 다닐 수 있는 지역만도 1천 5백㎞에 달한다.물론 이 교통로는 강물이 녹아있는 6∼10월까지만 이용이 가능하다.이 교통로는 목재·금속·소금을 운반하는 화물선이 애용하고 있으나 여름철에는 관광쾌속선도 많이 눈에 띈다.눈에 가장 자주 띄는 것은 목재운반선이다.우스치일림스크 브라츠크와 바이칼 이웃 도시에서 벌채한 목재들은 모두 이 하안교통로를 이용,이르쿠츠크에 부려놓은다.앙가라 강가에만 나가면 그다지 크지 않은 배들이 뗏목형식으로 수백m 길이로 묶어놓은 목재를 끌고 들어오는 광경을 목격한다. 특히 브라츠크와 바이칼호사이의 약 5백㎞는 하루종일 목재운반선간에 교통혼잡이 일어날 정도다. 앙가라 강의 중심도시는 브라츠크.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동쪽으로 약 1천㎞ 떨어져 있는 곳이다.브라츠크시로 들어가는 기차역은 파둔키예 파니기역(BAM철도)이다.이 역에서 내려 브라츠크 시내로 들어오는 동안 거리는 자작나무와 소나무 숲에 둘어싸여 끝이 없었다.도로마다 트럭이나 트레일러들이 원목을 싣고 가는 차량으로 붐비고 있었다.주택들은 겨울철에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원목을 잘게 잘라 이곳 저곳에 쌓아두고 있었다.「목재도시」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겨울철만 한시적 작업 이 브라츠크에서 북쪽 4백㎞쯤 가면 우스치구트란 마을이 나온다.동시베리아 최대 벌목장지역인 이곳에는 바로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벌목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이 사실은 취재팀이 브라츠크시를 취재하기 위해 빌린 승용차의 운전사 바실리 보로실로씨(42)가 확인해주었다.그는 『우스치구트에 북한이 러시아측으로 부터 임대한 벌목장이 있다』면서 『그러나 겨울에만 한시적으로 일한다』고 덧붙였다.그는 우스치구트에 자그마한 「조선인마을」이 있다고 했으나 「조선인마을」이 북한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살고 있는 마을인지에 대해서는 확인해주지 못했다.하지만 최근 들어 조선인 중국인 베트남인들이 이 지역에 조금씩 작업인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페레스트로이카가 한창 전개되던 지난 80년대 후반 때부터 이들 외국인이 터를 닦고 살기 시작했다고 그는 강조했다. 목재자원만이 앙가라강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브라츠크 동남쪽 2백㎞쯤 떨어진 곳에 체렘호보라는 비교적 생소한 시가 나온다.이곳은 1차대전 때만 해도 매년 2천만t의 석탄을 캐내던 곳이다.하지만 1차대전중 이 마을의 젊은 남자들은 대부분 징병됐다.때문에 채굴작업은 중지될 수 밖에 없었고 채굴현장,채굴장비들은 모두 쓸모없게 돼버렸다.19 18년,바로 이곳에서 러시아 혁명정부가 차르정부에 최종적인 승리를 얻어내자 마을로 되돌아온 젊은 병사들은 레닌에게 편지를 띄웠다.지속적으로 혁명과업 수행을 다짐한다는 내용이었다.『우리들은 최단시간안에 석탄 채굴을 재개할 것이며 이를 통해 전후의 황폐를 극복하겠다』는 결의에 찬 내용이었다.이후 이 마을은 옛 채굴량을 회복했다.하지만주민들은 실제로 석탄을 많이 캐면서도 집안에서의 땔감으로는 석탄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사용했다.러시아의 오래된 관습에 따라 이곳 주민들의 난방방식은 모두 나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4개 수전 더 생길듯 앙가라강은 상·하류에 모두 6개의 수력발전소를 갖고 있다.이르쿠츠크(66만㎾),브라츠크(4백10만㎾),우스치일림스크(4백50만㎾)발전소가 그것으로 이들이 앙가라강에서 생산하는 전력량만해도 1천4백만㎾에 달한다.이들 말고도 최근 하류에는 보크찬스크발전소등 3.4개의 발전소 건설계획들이 예정대로 추진되고 있어 러시아 강가운데는 가장 많은 전력을 생산하는 강으로 꼽힌다.특히 브라츠크 수력발전소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50주년 기념으로 설립된 것으로 지상최대의 인조저수지로 꼽힌다.이 저수지의 깊이는 1백60m정도,길이는 5백70㎞로 이야·우다·오카등 다른 지류와의 운항조건을 크게 개선시키기도 했다.저수량이 워낙 엄청나 저수지의 보온효과로 이 지역의 기온을 변화시킬 정도라는 것이다.앙가라 강주변은 겨울에는 섭씨 영하50도,여름에는 영하30도 안팎이다.그러나 겨울철 앙가라강 주변도시의 기온은 다른 오지에 비해 5도이상 높은데 이는 바로 이 인공저수지 때문이라고 한다.앙가라강은 이제 「바이칼의 딸」이 아니다.그 보다는 「러시아의 딸」로 러시아 산업에 엄청난 부수효과를 주고 있다.
  • 21세기 아태시대 개막 한·가 협력 역설/밴쿠버/김 대통령 여로

    ◎동행 기업대표들에게 “세일즈 외교” 주문 캐나다 밴쿠버를 방문중인 김영삼 대통령은 17일 낮(이하 한국시간)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이는 북한의 대남전략에 변화가 없다는 산 증거』라며 『북한이 남북대화에 응할 수 있도록 인내를갖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숙소인 팬 퍼시픽호텔에서 공로명 외무장관 등 공식수행원들과 비공식 만찬을 한 자리에서 김동진 합참의장으로부터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보고받고 『북한이 무장공비를 침투시키는 등 대남 호전적인 자세를 계속 취하고 있는만큼 우리는 국토방위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남북문제는 환상에 빠져서도 안되고 인내심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면서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과 에너지난으로 한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 등을 예의주시하면서 신중하게 대북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지 1년 4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주석직 승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이러한 북한이 어디로 갈 것인지 예의주시하면서 멀지않은 장래에 남북통일이 분명히 민주방식에 의해 이뤄질 것에 대비,국방 및 통일정책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김대통령은 18일 새벽 팬 퍼시픽호텔에서 마이크 하코트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주 총리의 예방을 받고 오찬을 함께하며 한­캐나다간 경제교류 증진방안 등에 관해 폭넓게 논의했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오찬연설을 통해 『한국과 이 지역간에 교역·관광은 물론 첨단산업분야에서도 긴밀한 협력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에앞서 김대통령은 17일 상오 밴쿠버의 월센터 가든호텔에서 교민 리셉션을 갖고 『10월중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수출 1천억달러 시대를 돌파하게 된다』면서 『1차대전후 지구상에 1백여개의 나라가 새로 탄생했으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국제적인 기여도로 보아 한국을 앞서는 나라는 없다』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18일 낮 밴쿠버 무역협회및 아·태재단이 공동주최하는 만찬에 참석,아·태지역에 대한 상호협력과 양국간 경제협력 등을 주제로 연설할예정이다.
  • 현대 추상화 창시 칸딘스키 연작전

    ◎미 LA 시립미술관서 새달 3일까지 열려/1910∼1939년 콤포지션 변화 한눈에/습작·부분화·스케치 등 밑그림도 전시 현대 추상회화의 창시자 바실리 칸딘스키(1866 ∼ 1944)가 생전에 남긴 「구성(콤퍼지션)」 연작을 한데 모은 전시회 「칸딘스키­콤퍼지션」이 미국 LA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달 초 개막,9월 3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는 최초의 추상적 수채화로 일컬어지는 「무제」가 발표된 1910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5년전인 1939년까지 그린 「콤퍼지션」 10점 가운데 남아있는 7점(3점은 2차대전중 소실)과 콤퍼지션 제작을 위한 드로잉,스케치 등을 처음으로 총집결해 보여준다. 칸딘스키에 관해서라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82년과 83년,85년 3차례에 걸쳐 열린 전시회를 통해 미국의 미술 애호가들에게 이미 보여 줄 것은 다 보여 준 것으로 여겨졌었다.그러나 이번 전시회는 뮌헨시절,파리시절,러시아와 바우하우스 시절로 나누었던 앞서의 전시회들과는 색다른 예술적체험을 미술애호가들에게 선사한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회화부문 부수석 큐레이터인 막달레나 다브로프스키가 기획한 이번 전시회는 3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변화하는 「콤퍼지션」 시리즈를 통해 기하학적 추상의 발전단계를 보여준다.또 많은 습작과 부분화,스케치는 그의 작품이 즉흥적인 붓질과 색의 나열이 아니라 주도면밀한 형태에 대한 분석과 준비작업,그리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결과임을 확인시켜 준다. 초기 작품인 콤퍼지션 Ⅳ∼Ⅵ은 바그너의 오페라와 독일의 아름다운 전래동화,코사크 지방의 영웅담,옛 러시아의 민요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1차대전이 시작돼 러시아로 돌아가기 전인 1913년 제작된 콤퍼지션 Ⅶ은 이전의 작품보다 도상들이 더욱 복잡해 지고 있으나 구조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연구에 연구,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30점에 가까운 드로잉과 습작을 거친 결과다. 독일로 돌아와 바우하우스에서 교편을 잡던 시기에 그려진 콤퍼지션 Ⅷ(1923년작)에서는 기하학적 형태와 여백의 사용등이 두드러진다. 그는 전쟁과 혁명 등을 거친 후 마지막 체류지인 파리 근교에 머물면서 36년과 39년 콤퍼지션 Ⅸ와 Ⅹ를 완성했다.특히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는 콤퍼지션 Ⅹ(뒤셀도르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예술관 소장)은 바탕을 검은 색으로 처리한 점이 독특하다.그에게 있어 검은 색은 다른 모든 색을 끌어안는 강렬한 에너지를 지닌 모태와 같아 새로운 탄생을 의미하는 색이었다. 미술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깨고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고 다듬어 가는 한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가 담긴 긴 서사시와 같은 전시회였다.
  • 보스니아내전 종식시켜야 한다(해외사설)

    악순환은 시작됐다.모두 보스니아사태에는 정치적 해결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프랑스와 우방국들은 그들의 군사배치에 날마다 놀라곤 한다.모두 평화를 말하면서 전쟁의 논리에 빠져든다.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이 유엔평화유지군의 요구에 따라서 장비에장군에게 포격범위를 줘야만 평화유지군의 활동은 능력을 발휘한다.병사들이 세르비아계의 포탄표적이 될 때는 나토 소속 비행기가 지상지원임무 투입을 위해 뉴욕의 유엔본부까지 갈 필요가 없다.자그레브에 있는 유엔사령부에서도 충분한 일이다. 대량폭격을 위해서는 2중의 장치가 남아 있다.폭격명령은 유엔군과 나토군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영·불 양국은 이렇게 통제를 하고 있다.나토군의 결정에만 맡기게 되면 결국은 미국의 의향대로 움직여진다. 보스니아문제를 중요하게 느끼지 않는 빌 클린턴대통령은 폭격을 하는 데 덜 주저할 것이다.미국 상원이 무기금수조치 해제를 의결한 뒤 그것은 하원의 결정을 막으려는 미국대통령으로서는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그러나 지상군을 늘리는 것은 인명상실의 위험도 그만큼 증가된다는 것이다.이런 반대에 대해 정치적인 지도자들은 위험증가의 결과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 스레브레니차 함락이후 회교도가 희생된 폭력이 증가한 이후 인종말살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공포다.공존이 불가능할 때 민족의 교환은 강제로 비난할 일은 못된다. 1차대전은 물론 2차대전 때는 이런 방법이 소수민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에서는 허용됐다.강제추방은 특히 노골적으로 행해졌다.스레브레니차에 이어 제파를 빼앗긴 뒤 유엔평화유지군은 주민을 보스니아국경까지 후퇴시켰다. 서구국가들은 세르비아의 내전을 종식시켜야 한다.반드시 그것을 실현시켜야 한다.트로이의 전쟁에서 장 지로두가 말했듯이 전쟁의 노래를 부르기보다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편이 낫다.
  • 한국전참전 미언론인 베이런 로버츠 회고

    ◎42년만에 되살린 참전용사의 프라이드/기념비 제막계기 평가 새로이/「잊혀진 전쟁」서 이젠 「기념할 전쟁」으로 워싱턴에서 한국전 참전기념비가 제막되는 것을 계기로 이 기념비의 주인공인 참전미군에 대한 평가가 새로워지고 있다.미 보병25사단 일반병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현직언론인 베이런 로버츠씨(워싱턴 타임스)의 한국전참전회고문을 소개한다. 한국전 참전 미군들에게 이번주는 아주 큼직막한 주간이었다. 「사격 끝」의 기념일이었고 워싱턴 중앙국립공원안 「기억의 연못」 옆에서 한국전 참전용사기념비가 제막되는 주였다. 그림자가 어리는 「기억의 연못」? 얼마나 어울리는 배치인가. 1950년대,아니 정확히 1950년6월로 거슬러올라가자.거기서 한국전은 시작한다.처음엔 전쟁도 아니었다.경찰적 용무라고 불렸다.1차세계대전·2차대전 또는 남북전쟁과 비교해보면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그런 전쟁과 비할 때 첫눈에 이 전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 전쟁은 3년이 걸렸고 5만4천명의 미국인 목숨을 앗아갔다.이 숫자를 바탕으로하면 베트남의 악전고투,소위 걸프전쟁,그라나다 모험,파나마 조련 등은 감히 상대가 되지 못한다.베트남전은 미군 목숨을 이보다 수천명 더 앗아가긴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 9년이나 더 총격전을 벌여야 했었다. 페르시아만에서의 전쟁? 글쎄,잘해야 1백시간이나 걸렸을까.파나마는 거기에도 아주 못미친다.그라나다는? 아예 말도 꺼내지 말자. 그런 한국전을 미국에선 잊혀진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 전쟁은 아마 미국이 참전하고도 가장 잊혀져버린 진짜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는 세계대전의 발꿈치를 밟아 터졌고 그때 마침 거개의 미국인은 50년대와 60년대의 붐을 준비하기에 바빠 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공장들은 하이테크로의 경이로운 이행을 배태하기 시작했으며 텔레비전이 수백만 미국인의 넋을 홀릴 즈음이었다. 냉전은 유럽에서 열기가 오르고 있었다.미국 위에 아련히 드리우는 몹쓸 그림자는 소련 곰이었지 북한도 중공도 아니었다. 한국전 기사는 한 1년쯤 미국신문 1면에 올랐으나 곧 거침없는 후퇴를 기록,3면·7면·18면·20면으로 밀려났다.텔레비전은 초창기인 만큼 훗날의 베트남전같이 한국전을 커버하지 못했다.영화의 뉴스시간도 그저 다루는 시늉만 냈다.사람의 관심은 딴 데 있었다. 한국은 몸이 오그라드는 강추위와 숨이 턱 막히는 무더위 속에서 전쟁을 치렀다.쉬지 않고 쏟아지는 비와 세찬 눈보라,질식할 듯한 흙먼지와 무릎이 그냥 빠져드는 진창에서의 전쟁이었다. 또 교착상태의 기나긴 전선,축축한 벙커,가시철조망의 전진기지 등이 주요인상이었고 끊임없는 수색조 임무,적들의 미친 듯한 인해전술이 끔찍한 기억을 남겼다. 전쟁이 끝나자 싸웠던 미군은 다른 모든 전쟁의 참전용사가 그랬던 것처럼 행복감과 약간의 신경과민상태로 귀환했다.그러나 차이가 있었다. 1차대전의 귀환장병은 진정한 영웅으로 퍼레이드와 축하연에 파묻혔다.2차대전 참전용사도 마찬가지였다.베트남 참전용사는? 고향에 돌아올 때 퍼레이드는 없었지만 현충일·재향군인의 날·독립기념일 날 워싱턴의 베트남참전기념비 부근에 가보라. 걸프전의 「사막의 폭풍」에 참전한 미군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성대한 귀환 퍼레이드를 벌였다.단 1백시간만 싸우고도 슈발츠코프장군과 휘하 장병은 영웅대접을 톡톡히 받았다. 한국전 참전용사에겐 퍼레이드도 없었고 축하연은 더더욱이 없었다.옷가지를 쑤셔넣은 잡낭 하나만 달랑 들고 있었을 뿐이다.그리고 곧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몸소 참전한 전쟁에 대해서 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특히 외부인에게 그랬고,하더라도 같은 참전동료끼리 나지막한 소리도 주고받는 데 그쳤다. 베트남전이나 걸프전과는 달리 한국전 참전미군은 전쟁경험과 관련된 괴상하고 신비화된 후유증증상,혹은 그런 용어를 만들어내지 못했다.귀환해서 사회생활 속으로 융화되거나 표류해갔는데 기억과 참혹한 전쟁에 대한 상처는 혼자 말없이 간직했다.아마 그들은 중공군의 나팔소리와 뼛속을 파고드는 한기를 이따끔 머리에 떠올릴지 모른다.고지탈환을 위해 비명 같은 함성을 지르며 비탈을 지쳐오르는 장면을 기억할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그걸 장황히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전 참전미군이 이번 참전기념비를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다.참전 퇴역군인은 말없이 참전비 옆에 서서 회상에 잠길 것이고 그새 눈물이 괴는 용사도 많을 것이다. 그들에겐 항상 이같은 조용한 위엄이 배어나온다.자신의 감정을 중인환시리에 떠벌리지를 않는다.말은 없지만 한국전 참전미군에겐 프라이드가 있다. 그렇다,42년이 지난 뒤이긴 하지만 이젠 기념할 때다.
  • 카타르 무혈 궁중쿠데타/하마드왕자가 부친 폐위/QNA통신 보도

    ◎할리파국왕도 72년 형 내쫓고 정권잡아 【도하(카타르) 로이터 AFP 연합】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 카타르 국왕(65)이 26일(이하 현지시간) 그의 아들 하마드 빈 할리파 알­타니 왕자(47)에 의해 축출됐다고 카타르 관영 QNA통신이 27일 보도했다. QNA통신은 하마드 왕세자가 할리파 국왕이 외유중인 틈을 이용, 부왕을 폐위시키고 국왕에 즉위함으로써 권력 장악을 공식화했다고 전했다. 하마드 왕세자는 지난 10년 가까이 카타르 정부를 실질적으로 움직여온 국방장관을 맡아왔다. 이 통신은 하마드 왕세자가 왕실과 카타르 국민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밝혔으나 할리파 국와폐위에 관한 세부적인 내막과 그의 체류지역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카타르 방송들은 이날 국가와 함께 하마드의 업적을 찬양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해 방영하는 한편 그가 외국귀빈과 왕실의 다른 왕자 및 각료들을 영접하고 있는 모습을 내보냈다. 현지 목격자들은 26일 밤부터 도하의 공항이 폐쇄돼 모든 항공편의 이·착륙이 중단된 뒤 27일 상호 9시30분부터 다시 공항이 개방됐으나 아직 이 공항을 통해 이·착륙한 비행기는 없다고 전했다. ◎국왕 귀국선언 【제네바 AFP 로이터 연합】 27일 왕세자에 의해 축출된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카타르 국왕(63)이 자신은 카타르로 돌아가 카타르의 합법적 지도자로서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스위스를 방문중인 할리파 국왕은 이날 제네바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나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카타르로 돌아갈 것』이며 자신의 『합법적 지위』를 회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타르 쿠데타 언저리/거세불안 황태자가 전격거사/최근 부친 재집권 시도하자 축출 카타르의 하마드 빈 할리파 알 타니 황태자 겸 국방장관(47)이 27일 부친인 할리파 빈 하마드 알 타니 국왕(65)의 해외여행을 틈타 무혈 쿠데타를 일으킨 배경은 최근 끊임없이 나돌았던 부자간의 권력투쟁설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축출된 할리파국왕도 지난 72년 2월, 형인 아흐마드 당시 국왕의 부재중 무혈 궁정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경력이 있어 권력찬탈의 부전자전을 여실히 보여준다.하마드황태자는 지난 92년부터 사실상 일상적인 국정을 총괄해왔으나 할리파국왕이 최근 국정운영권을 다시 장악하려고 시도함에 따라 신변불안을 느낀 나머지 왕위를 찬탈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수십억달러 규모의 가스개발 투자에 관련된 금융가들이 카타르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누구인지 불확실한 점에 대해 우려할 정도로 부자간의 갈등은 심했었다.할리파국왕은 장남이 지나치게 독주하자,파리에서 살고 있는 차남 압델 아지즈를 귀국시키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압델은 지난 92년 하마드황태자가 주도한 개각 당시 석유 및 재무장관직을 박탈당한뒤 프랑스에서 살아왔다.압델의 귀국시도에 격분한 하마드황태자는 할리파국왕에게 지난 6월18일 이집트를 시작으로 한 이번 외국여행을 연장하도록 요청하는 등 사전에 쿠데타를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셋째아들인 압둘라 내무장관은 이날 쿠데타 직후 하마드황태자의 국왕취임 행사에 참석,가장 먼저 축하했고 재무장관인 넷째아들 모하메드는 부친과 동행중이다.나머지 아들 3명은 아직 어려서 공식직위가 없다. 하마드황태자는 국정을 관리하기 이전까지 군에서 일생을 보내왔다. 10대 후반에 영국 최고의 왕립군사학교에서 수학한뒤 카타르가 영국에서 독립하던 71년 졸업과 함께 귀국했다. 귀국한뒤 하마드는 무엇보다 카타르군을 현대화하는데 앞장서 걸프전 당시 카타르군이 카프지 전투에서 용맹성을 떨친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 국정을 장악하고부터는 그의 탁월한 성실성으로 각료들을 독려, 수십억달러의 천연가스 개발을 비롯, 산업화계획에 착수했다. ◎카타르는 어떤 나라/71년 영서 독립… 석유 33억배럴 매장/면적 1만1천㎢… 국민 95% 회교도 페르시아만 연안 아라비아반도에 위치한 카타르는 면적 1만1천㎦의 경기도만한 작은 나라다.총인구는 51만명(외국인 노동자 포함)이며 국민의 95%가 수니파 회교도. 규모는 작지만 석유매장량이 풍부하며 석유수출로 국민소득은 선진국과 비슷하다.석유매장량은 33억 배럴이며 하루 원유생산량은 37만8천배럴. 1차대전 이후 영국보호령에 편입됐다가 1971년 완전독립.한국과는 74년에 수교했다. 세습군주제로 국왕이 총리직을 겸임하고 입법권도 갖는다.자문위원회가 의회역할을 하지만 입법권은 없고 정당도 인정되지 않는다.
  • 르완다비극의 배경은 식민통치(해외사설)

    르완다도 지금처럼 비극적으로 살지 않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후투족과 투치족은 지난 30년간 부족간의 반목과 외세의 인위적인 조종 결과로 추잡스런 난민 수용소등에서 서로 죽이는 「인종청소」의 대학살을 반복해 왔지만 그 전에는 목가적이진 않더라도 마을단위로 행복하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그것은 아마도 한세기 이전의 시대로 독일인들이 이곳에 상륙하기 이전의 일이다. 르완다와 부룬디는 1897년부터 1919년까지는 독일의 동부아프리카 식민지의 일부였고 1차대전이후는 벨기에에 이양됐으며 그후 국제연맹을 거쳐 국제연합의 신탁통치를 받아왔다.중요한 것은 금세기 초부터 어떤 세력이 이곳을 통치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문제는 유럽의 국가들이 이곳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귀족정치를 해왔다는 사실이다.즉 소수 인종인 투치족을 두드러지게 선호한 반면 다수족인 후투족은 피지배계급으로 삼았던 것이다. 벨기에가 르완다에 준 것이라고는 소수 투치족을 특권지배계급으로 하고 다수 후투족은 못배우고 빈곤한 상태로 내버려둔인종차별의 가혹한 계급체계라는 카드뿐이었다.이같은 체계는 한쪽이 다른 쪽을 살해하는데 쓰인다.한세기가 넘는 동안 지속된 식민지 착취와 무관심은 오늘날 르완다가 겪는 참담한 상황을 낳은 원인이 됐다. 르완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못할 짓을 해왔다.후투족은 수백·수천명이 소수 투치족에게 칼을 휘두르고 총격을 가하고 돌을 던져왔다.한 후투인은 한번에 9백여명을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또 수백명의 후투인들도 투치족이 휘두른 총·칼에 죽었다.이같은 유혈분쟁의 기저에는 외세가 오랜 동안 통치해온데서 기인한 두인종간의 경쟁심이 놓여있다. 지금 르완다는 아제르바이잔이나 보스니아·남부수단·터키와 쿠르드족등의 상태와 같이 돼가고 있다.서방세계는 이들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고 있으며 화해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을 놓고 양손을 부여잡고 해결책을 짜내고 있다.그러나 사람들은 『그곳에서 비극이 벌어질 때 유엔은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 환상의 종말(외언내언)

    합스부르크왕가(왕가)는 유럽 최대의 왕조가운데 하나로 1차대전 전까지 수백년동안 유럽을 뒤흔들었던 가문이다.오스트리아와 독일을 통치했고 스페인왕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그 가문에서 배출되었다.16세기말 합스부르크왕조는 전성기를 이루었고 명실상부한 유럽의 패자로 군림했다. 3천4백억원의 부도를 낸 덕산그룹의 대모이자 회장의 어머니인 정애리시씨가 배임 사기 횡령등 혐의로 구속됐다.정씨는 조사과정에서 자신의 가문을 『합스부르크 가문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술회했다고 한다.본인 스스로는 『다시 태어난다면 여걸이 아니라 여제가 되고싶다』고 했다는것.저 유명한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여제를 꿈꾸었던 것은 아닐는지.허욕과 과대망상도 이지경에 이르면 가히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을것이다. 수감되는 날 정씨는 주위사람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도 보였다.조금도 위축되거나 당혹스러워 하지않는 그녀의 모습에 사람들은 『역시 대단한 할머니다』고 감탄했다.71세의 고령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체력도 사람들을 놀라게했다. 덕산그룹의 부도사태는 아들인 박 회장의 「30대재벌」이란 환상이 불러온 파국이라는게 검찰주변의 지적이다.실현불가능한 헛된 꿈을 쫓다가 수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를 끼치고 자신은 물론 노모까지 영어의 신세를 만들었다.『대출이 1조가 되고 30대 그룹에 진입하면 함부로 부도처리를 못할것』이라는 망상이 화근을 불러온것.결국 빗나간 「재벌놀음」에 우리사회가 심한 몸살을 앓는 셈이다. 왕가와 같은 명문가문을 일으키려 했던 어머니의 환상과 재벌을 꿈꾸었던 아들의 허황된 망상이 「모자수감」이라는 보기드문 불행으로 귀결되었다. 이것은 옛사람이 말한 패가망신에 속한다.그래서 성서에서도 「욕심이 죄를 잉태하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 진리교,생체실험 의혹/신도 몸서 향정신성 효소 검출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야마나시현 가미쿠이시키촌 오우무 신리쿄(진이교) 시설을 1주일째 수색하고 있는 일본 경찰은 강력한 독소를 제조할 수 있는 「보쓰리누스」균을 실험실에서 압수했다고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이 28일 보도했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이 세균은 1차대전 당시 독일군이 생물무기로 개발했던 것으로 뿜어내는 독소 8가지 가운데 A형 독소는 1ⓖ으로 1천7백만명을 죽일 수 있는 맹독이다. 일본 경찰은 이와 함께 세균배양 등에 쓰이는 유기물질 팹튼도 대량압수했다.일본 경찰은 세균과 팹튼의 발견으로 오우무 신리쿄가 화학무기 뿐 아니라 생물무기도 제조하려 했던 것으로 보고 그 용도를 집중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또 가미쿠이시키촌 제10동 건물에서 구출된 7명의 신자 가운데 2명의 혈액으로부터 향정신성 의약품이 사용된 것을 강력히 시사하는 혈중 효소가 검출돼 이들에 대해 인체실험이 행해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이들 7명의 신자는 모두 오우무 신리쿄 병원에 수용된 적이 있는 신자들이다.
  • 세계의 미래 결정하는 미국/보브 돌 미상원 공화당 원내총무(논단)

    ◎“군사력 없는 외교는 허상”/미 군사비 감축 지속땐 세계 이끌 힘 약화 미국의 유력한 다음 대통령후보인 보브 돌 상원 공화당원내총무는 외교전문 계간지 「포린 폴리시」 봄호에 「세계의 미래를 결정하는 미국」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다음은 기고문 요약이다. 미국이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라는 것은 이제 진부한 이야기이다.세계의 리더십 정상에 있는 미국은 금세기 3번의 주요 전쟁을 치렀다.그 전쟁은 유럽에서 싸운 1차대전,유럽·아프리카·아시아에서의 2차대전 그리고 전세계를 무대로 한 냉전이었다.미국인들은 그때마다 미국의 국익과 이상의 실현을 위해 피와 땀을 요구받았다. 미국은 때때로 전쟁은 이기고 평화를 잃었다는 지적을 받았다.그러한 지적은 1차대전후 윌슨 대통령적인 이상주의가 국익을 우선할 때는 맞는 말이었다.그러나 19 45년 나치즘이 유럽에서,일본의 군국주의가 아시아에서 패배한후 미국은 지도력을 통해 평화를 실현했다. 동맹국들의 지원을 받은 미국의 지도력과 활약은 냉전에서 승리를 가져오고 베를린 장벽과소련을 붕괴시켰다.냉전에서의 미국과 민주동맹국들의 위대한 승리는 역사적으로 자랑할 만한 성공적인 업적이다. 냉전의 승리는 미국이 세계문제에 선택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그렇다고 미국이 세계적 이슈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미국이 국제문제에서 손을 떼면 지난 40년간 얻었던 이익을 잃을지 모르며 필연적으로 미국의 번영과 안보에 마이너스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 붕괴후 많은 평론가들은 미국은 세계문제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의 국익과 이상은 자유경제와 민주주의 실현이다.미국인들의 지지를 받고 후손들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 미국 외교정책은 국익과 이상의 실현을 계속 추구하여야 한다.그것이 미국의 전통이다. 지도력은 국제적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지도력은 또 자신의 가치를 말하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이다.미국의 지도력은 필요하면 미국의 군사력도 기꺼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을 포함한다. 군사력 없는 외교는공허한 허상에 불과하다.외교없는 군사력은 또 무책임하다.현재의 클린턴 행정부는 그러한 외교와 군사력간의 근본적인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우리는 소말리아와 아이티에서 외교없는 군사력의 문제와 보스니아에서 군사력없는 외교의 허상을 보았다. 미국의 1995년 군사상황은 10년전인 1985년과 같을 필요는 없다.그러나 미국의 군사비는 너무 많이 너무 빠르게 감축되고 있다.현정부는 당초 6백억달러의 군사비를 줄일 계획이었다.그러나 앞으로 5년간 1천2백70억달러의 군사비 감축 계획을 추가했다.지나친 군축 결과 19 94년 하반기에는 3개사단이 70년대이후 처음으로 전투준비를 갖추지 못했었다. 미국은 장·단기적인 관점에서 군사력 정비를 하여야 한다.미국은 오늘의 전쟁뿐만 아니라 미래의 전쟁에서도 싸워 이길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그러나 클린턴 행정부의 군사예산 감축은 내일의 도전에 대응할 수 있는 군을 만드는데 필요한 투자를 못하게 하는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것이다. 냉전시대에는 바르샤바동맹군의 침공과 미국에 대한핵공격을 막는 「단순한 전략」이었다.그러나 앞으로는 우리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지역과 환경에서 새로운 위협이 발생할 것이다.1995년과 그이후의 세계도 불확실성의 시대다. 러시아는 중부유럽에서의 힘의 공백을 메우려 하거나 국내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외국의 관심을 딴곳으로 돌리려 하고 있다.이라크는 사우디 아라비아 유전을 위협하고 이란은 걸프만 지배를 꾀하고 있다.한국과 일본은 핵무장 위험이 있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받고 있다.인도와 파키스탄의 네번째 분쟁은 세계 최초의 핵전쟁으로 비화될지 모른다.일본과 중국의 경제분야 경쟁은 군사충돌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미국은 이러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전에 없던 유연성·민첩함·기동력을 갖추어야 한다.그러나 미국의 지도력은 냉전후 한동안 유지될수 있는 정의와 평화건설에 대한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시대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세계의 지도국으로서의 책임을 지는 것이 미국의 운명』이라는 1953년의 아이젠아워 대통령 취임사는 오늘날에도 진리이다. 미국은 다음세기에도 「미국의 이익 보호」와 「지도력 확보」라는 2가지 원칙은 불변임을 명심해야 한다.냉전의 종언은 미국에 역사적 기회를 주고 있다.미국은 그러한 기회를 유토피아적인 다국적주의나 국제적 고립주의를 추구하다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일을 해서는 안된다.유토피아적인 접근은 미국의 이익과 권위,영향력을 훼손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속에서 체험했다. 미국은 외교정책의 미래를 위해 냉전의 교훈을 냉정하게 분석하지 않으면 안된다.미국은 국익을 우선하고 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미래는 미국을 기다리지 않는다.그러나 세계의 미래는 미국에 의해서만이 결정될 수 있다.
  • 「다음 핵전쟁의 교훈들」/마이클만델바움 미존스홉킨스대 교수(논단)

    핵무기확산을 저지하려는 냉전체제하의 노력들은 전반적으로 성공을 거둬왔다.따라서 오는 4월 유엔에서 열리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연장및 개정 등을 논의하게 되는 NPT평가회의는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냉전이후 핵확산금지 문제의 전개과정은 유엔에서 이 조약이 어떻게 결정되느냐 보다 워싱턴측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더 좌우될 것이다.핵무기확산을 저지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NPT가 아니라 미국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핵확산은 단일문제가 아니고 세개의 개별문제들이 혼합해 있으며 이들은 각기 냉전체제의 붕괴로 핵무기 수요및 공급에 대한 주요한 제한들이 약화되거나 제거됐기 때문에 과거보다 더 복잡해졌다.즉 핵무장 후보국들은 세개의 서로 다른 유형의 국가군들로 나뉘어 있고 미국은 그들의 핵야망을 저지시키기 위한 세개의 서로 다른 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첫번째 국가군은 독일 일본 등 동맹국들로 이들의 핵보유는 핵확산 차원이 아니라 국제정치구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이들 국가들은 냉전체제하에서 미국으로부터 국가안전에 대한 보장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핵을 갖지 않았다.따라서 이들이 계속 비핵국가로 남아 있느냐 여부는 미국으로부터의 안전보장의 계속 여부에 달려 있다. 두번째 국가군은 파키스탄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등 핵위협은 심각하게 느끼고 있으나 동맹국으로부터 보호는 받지 못하는 국가들로 고아(orphan)국이라고 할 수 있다.이들로 하여금 핵무장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분쟁들을 종식시키기 위한 노력이 미국 외교정책의 당면 목표가 되고 있다. 세번째 국가군은 북한 이라크 이란 등 핵확산의 중점 대상이 되고 있는 국가들로 악당(rogue)국이라 할 수 있다.이들은 핵무장을 추구하고 있으며 미국에 대해 적대적인 국가들이다.이들의 핵야욕을 막기 위하여 미국은 핵관련 물질의 국제적 이동에 대한 제재조치를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 현재 핵확산에 관련된 대부분의 토론들은 이들 국가군에 대한 것으로 미국의 핵확산금지 노력도 이들에 집중돼 있다.악당국가들의 핵야망은 미국의 이익에 배치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공격적이기도 하다.자신들의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이라크와 이란이 그같은 경우다. 표면상으로 방어용을 내세우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미국의 입장에서는 그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다.북한의 경우 핵무기개발 프로그램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생존을 위한 것이라는 측면도 있다.그러나 일단 핵무장된 북한은 필요하다면 공산통치하에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다.또 남한을 직접 공격하거나 전복시키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핵무장된 북한은 핵관련 물질과 장비들을 다른 나라들에 팔려고 할 것이다. 이 국가군에는 북한 이라크 이란 외에 시리아 리비아 알제리가 포함된다.이들은 구소련 붕괴이후 정치적 군사적인 고통 상황이 핵야망을 더욱 부추겼다.미국은 이들이 핵무기를 갖지 못하도록 하는 노력의 최선두에 서있다.미국의 역할은 핵확산 저지라는 일반적 개념뿐 아니라 냉전시대부터 수행해온 한국과 중동 동맹국들의 안보에 대한 책무수행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들의 수중에 핵무기가 들어가는데 대한 대응방법으로는 세가지를 생각 할 수 있다.첫째는 그들의 목표가 될만한 국가들에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을 제공해주는 것이다.두번째는 미국이 북한에 대해 취했던것 같이 이들이 핵야망을 포기하도록 유인하는 방법이 있다.세번째는 가장 강압적인 방법으로 이라크에서와 같이 의심나는 시설물을 파괴시키는 것이다. 냉전체제가 비참한 경험만을 안겨준 것은 아니다.다음 핵전쟁은 우발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으며 그것은 세계를 경악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갈 것이다.이미 냉전 이후에도 소말리아의 기근,보스니아의 인종청소,르완다의 대학살 등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그러나 핵은 미국인들에게 그 공포가 직접 자신들이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큰 심리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다음 핵전쟁은 국제사회와 미국의 핵확산을 초월한 정책이나 태도는 물론 핵확산금지정책도 재구성하게 될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변할지는 예측 할 수 없다.또 다음 핵전쟁은 2차대전과 같이 선제 개입을 강력하게 선호하는 경향을 가져올 것이다.미국의 여론은 악당국가들에서 핵무기를 제거시키기 위한 예방전쟁을 선호하는 쪽으로 기울 것이다. 그러나 다음 핵전쟁은 반대의 결과도 초래 할 수 있다.1차대전의 결과와 같이 역사적으로 유럽의 정치적 군사적 분쟁에서 떨어져 있으려는 미국의 입장을 더욱 강화시켜 고립주의 외교정책을 되살아나게 할 것이다.미국인들은 핵무기가 위치해 있거나 사용될 가능성이 있는 곳에서의 정치적 다툼은 회피하도록 배우게 될는지도 모른다. 이런 교훈들이 정책으로 변환된다면 세계에 있어서 미국의 역할은 기본적인 변화를 나타내게 될 것이다.이런 관점에서 미국의 외교정책에 변화를 가져올만한 포스트 냉전체제시대의 중요한 사건은 아직 발생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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