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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학생 2천여명 화염병 시위/신촌 1시간 교통마비

    한국 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소속 대학생 2천여명은 29일 하오 7시부터 1시간여 동안 연세대 앞길에서 「한보비리 의혹 규명」,「김영삼 정권 퇴진」 등의 구호와 함께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로 연세대 정문 앞 도로의 통행이 전면 통제되는 등 신촌 일대 교통이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학생들은 이날 상오 11시부터 종로2가 탑골공원에서 지난해 3월 시위 도중 숨진 노수석군 사망 1주기 추모집회를 갖고 명동성당까지 가두행진을 한 뒤 연세대에 재집결,기습시위를 하다 하오 10시쯤 자진 해산했다.
  • 한국무용가 양길순(이세기의 인물탐구)

    ◎영혼이 깃든 춤사위로 무대마다 긴장감…/한동작 일만번씩 연습… 타고난 예살키워/결혼후 매헌 문하로… 경기 도살풀이 맥이어 양길순은 매헌 김숙자의 「경기 도살풀이」 이수자이자 전수교육조교다.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된 살풀이춤 가운데 호남 동살풀이의 맥을 잇는 이매방류와는 달리 김숙자의 도살풀이춤은 경기 무악인 도당굿의 아홉거리중 한 종류다.고개를 끄덕이는 「목젖놀이」가 특징인 이 춤은 바람에 나뭇잎이 흩날리는듯한 나뭇잎사위며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용사위, 학처럼 발끝을 딛고 서는 고고한 학사위가 일품이다. 똑바로 가르마탄 쪽진 머리에 하얀 치마 저고리, 허리를 질끈 동여맨 모습으로 양길순이 무대에 서면 섬뜩한 푸른 귀기가 언뜻 번뜩이고 아직 동작을 이루지 않았는데도 벌써 정중동의 미선이 숨막힐듯 이어진다.서무에서는 짐짓 느리게 거닐다가 세발이 넘는 긴 명주수건을 허공에 뿌리면서 어깨에서 오른팔, 다시 왼팔로 옮기고 때로는 바닥에 던져서 기쁨과 슬픔, 흥과 멋을 달래는 전과정은 삼엄한 천둥속에서 한송이 백매화가 피어나는 이미지다. ○취학전 학원서 춤배워 검은 가사에 흰고깔, 오방장단에 맞춘 「승무」역시 깊고 긴 호흡과 포개고 떼는 보법이 현란하다.긴 날개처럼 펼쳐지는 장삼자락은 뿌리칠때마다 장대한 능선을 그리고, 천수북을 울리면서 연풍대로 휘돌아가는 처연한 의식은 북가락에 실린 오뇌의 흐느낌과 함께 허물많은 세속에서 무상의 열반으로 무한정 빠져들게 한다.발딛음새는 고결하면서도 온누리를 세밀히 다지는듯 하다. 지난 94년 문예회관대극장에서 양길순이 전통춤을 발표했을때 평론가 정병호씨는 「한국춤에 알맞는 맵시있는 양태」란 글에서 「양길순만의 규모있는 매력」을 크게 호평한바 있다.「그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불세출의 명무 김숙자의 살풀이춤 교육조교로서 스승의 도살풀이춤 입춤 부정놀이춤 승무를 추면서도 종래의 전통무용발표회에서 보여준 춤들과는 달리 우리나라 고유의 고전적 형식을 재창조하여 한국적 정서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물론 전통춤사위를 그대로 살리고 보존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면서도 「양길순만의 앙칼지고 결연한 분위기탓에 춤사위사위마다가 제단앞에 선 사제같은 신명을 되살린다」는 것이다. 그와 매헌 김숙자와의 만남은 77년 일본에서 「김숙자 도살풀이춤」공연이 있을때부터 시작된다. 양길순은 본래 전남 진도에서 태어났으나 약사이던 부친 량원극씨를 따라 4살때 가족이 모두 서울로 이사했고 용산구 후암국민학교에 다니다가 이번엔 부친의 약방이 강원도 홍천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홍천여고를 졸업했다.국민학교다니기전부터 임미자· 김정자무용학원에서 춤추기 시작했고 학교행사때마다 『춤과 노래로 좌중을 사로잡는 재간동이였다』고 어머니 곽오덕씨가 전한다.파조· 이화무용콩쿠르를 비롯 전국학생무용콩쿠르에서 1등상을 수상, 한가지를 가르치면 열가지를 아는 지혜와 눈썰미탓에 주변에선 「장래 범상치않은 무용가탄생」을 점치고 있었다. 경희대 무용과에서 김백봉사사후 국립무용단에 입단, 그러나 무용에의 길은 생각처럼 순탄치 않았다.남들이 개인무용발표회를 갖거나 큰무대의 주역으로 발탁되는 것을 부러워하다가 「무용가로서 최고가 될수 없다면 무용을 그만둔다」는 결심으로 집안의 중매로 만난 재일동포 사업가 이태호씨와 결혼했다.한국을 떠나 오사카에 정착했으나 한국에서 교포위문공연이 올때마다 객석뒤에 숨어서 무대를 지켜보면서 「나는 역시 무용을 떠나서는 살수없는 운명」을 몇번씩이나 재확인할수있었다.그무렵 오사카에 온 「김숙자무용」공연을 보고 「삶의 애환이 깃든 춤으로 보는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살풀이」에 반해 스승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스승은 첫마디에 『아담한 몸맵시에 작고 예쁜 얼굴, 타고난 예살』을 지적하여 쾌히 문하에 받아주었고 그때부터 다시 서울에 돌아와 낙원동에 있던 김숙자무용학원에서 「밤이나 낮이나 스승의 모든 것을 전수」받는데 전념했다. 그는 여유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었으나 스승과 고락을 함께한다는 자세로 하루종일 학원에 머물러 스승을 돕고 보조하는 역할을 해냈다.그리고 「궁색한 티를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스승의 자존심」을 존경하여 친부모이상으로 스승을 모시는 모습은 무용계와국악계의 화제가 됐었다.국악계의 원로이던 박귀희 김소희씨는 「실과 바늘」같은 그들을 바라보면서 「당신들같은 스승과 제자는 다시 없다」고 부러워했고 그는 스승의 사랑속에서 자신의 춤경력과 「천부적 소질」을 살려 매헌의 「소중한 후계자」로 자라났다. ○친부모이상 스승 공경 그는 하나의 춤사위를 익히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속에든 모든 것을 쥐어짜고 그것을 손끝으로 발끝으로 어깨로 풀고 뿌리라」던 스승의 말을 어긴 적이 없다.그래서 하나의 동작을 「일만번씩 연습」하고 춤사위가 몸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 자연스러운 선으로 흘러나올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릴줄 알게 되었다.무용발표회를 가질때도 마치 교수가 논문을 발표하듯이 전통 무태와 무작을 살린 완벽한 무대를 준비했고 이생강 윤윤석 김덕수사물놀이패 등 인간문화재급을 초청하여 「음악과 춤의 조화」를 실천하는 화려하고 풍성한 공연을 펼쳤다. 스승이 일찍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그는 관련기관에 이를 호소하는데 앞장서기도 했고 91년 쾰른에서 열린 가우클러페스티발에 다녀오다가 김포공항에서 매헌의 「문화재지정」소식을 듣고는 스승과 제자가 부등켜 안고 통곡한 일화는 무용계의 미담으로 남아있다. ○심금 움직이는 춤으로 지금도 무대에 오를때마다 스승이 계시지않다는 슬픔때문에 그의 큰눈에는 언제나 눈물이 넘쳐있고 스승을 기리는 뜻에서 그와같은 살풀이 이수자이며 스승의 딸인 김운선을 친동생처럼 아끼고 감싼다.정의감이 강하고 남에게 폐끼치지 않는 결백한 성격에다 약한 사람의 편에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그는 죽파류 가야금산조 준인간문화재인 양승희와 송죽같은 우정을 나눈다. 「춤은 아름답고 이쁘게 추는 것이 아니라 심금을 움직이는 춤」이 진실한 춤이며 「스승을 감히 능가할수는 없으나 스승에 접근할수있는 춤」 그리고 「나의 영혼이 깃든 춤」을 춘다는 것이 그의 과제다.흰 명주수건을 들고 무대에 서있는 그자체가 바로 춤이고 싶고 매헌 김숙자­양길순으로 이어지는 춤의 맥을 고결하고 극진하게 지키고 싶은것만이 그의 소원이다. □연보 ▲53년전남 진도 출생 ▲72년 강원도 홍천여고 졸업 ▲76년 경희대 무용과 졸업 ▲77년 국립무용단단원 ▲78년 김숙자무용학원 강사 ▲81년 김숙자무용50년기념공연 ▲84년 양길순전통무용발표회 ▲85년 전주대사습전국대회 장원 ▲86년 86,아시아 문화예술축전 무용제 우수단체선정기념 전국6개도시순회,김숙자선생회갑축하공연 ▲87년 양길순전통무용발표회,자유중국태평양문화기금초청 동남아순회 ▲88년 일본 아사히신문사 「조일우의 회」초청 양길순무용공연 ▲88년 양길순전통무용발표회,서울올림픽개막전야제 축하공연 ▲89년 한길무용회 창작무용극 「바람꽃」발표회 ▲91년 독일 가우클러페스티발 초청공연(쾰른) ▲9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 춤」이수자지정,양길순무용단 창단,고김숙자선생 1주기추모공연,「명무전」 대한민국국악제 및 「춤과 그사람 명무」해마다 출연,춤의 해 「춤의 날」초청공연 ▲9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전수조교지정,국악협회무용분과위 부위원장,전주대사습놀이 심사위원,대전 엑스포기념및 명인전공연,94년 94,국악의 해기념 여성국극 「안평대군」 및 서울예술단 「터벌림」안무,한·중·일 문화교류명인전공연 ▲95년 전주대사습놀이 및 서울전통예술보존회 일반대회심사위원 ▲96년 고려대언론대학원수료,국제예능교류협회 학생무용콩쿠르 및 정읍사문화재 전국학생국악대회심사위원,김숙자 선생 5주기추모공연,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기념축하 「살풀이」공연
  • 실험극장 대표지낸 고 김동훈씨 1주기/에쿠우스등 명작시리즈 공연

    ◎19일부터 서울두레서… 5월중순엔 「신의 아그네스」/관람료 기금으로 조성… 고인기린 연극상 제정키로 지난 60∼70년대 소극장 연극운동의 산실이었던 실험극장이 왕년의 인기작 「에쿠우스」를 시작으로 「불후의 명작시리즈」를 공연한다. 「명작시리즈」 1편이 될 피터 셰퍼 원작의 「에쿠우스」는 오는 19일부터 4월20일까지 대학로 문화예술관 서울두레에서 공연될 예정이며 오는 5월중순부터는 작품성이나 관객동원면에서 또하나의 연극계 화제작으로 꼽히는 「신의 아그네스」를 공연한다.이어 실험극장의 인기공연작 「피가로의 결혼」「햄릿」「그린 줄리아」「사의 찬미」 가운데서 다음 작품을 선정한다. 실험극장의 이같은 기획은 지난 73년부터 지난해 3월21일 세상을 뜨기 전까지 23년간 실험극장의 대표를 지냈던 고 김동훈씨의 1주기를 맞아 실험극장 단원들이 생전에 그가 아꼈던 작품들을 선정해 공연키로 한 것.아울러 「명작시리즈」의 관람료는 기금으로 조성,「김동훈 연극상」을 제정할 계획이다. 시리즈의 첫편 「에쿠우스」는 지난 75년 실험극장이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전용극장을 마련한 뒤 기념작으로 초연,4개월동안 1만5천여명의 관객을 동원한 70년대의 대표작이다.정신과 의사 다이사트가 말 여섯마리의 눈을 찌른 소년 알런을 치료하면서 말을 신으로 모시고 그 아래서 본능을 마음대로 펴보였던 알런을 통해 평범하고 안정적인 일상에 대해 회의를 갖는다는 내용의 심리극이다. 지난 90년에도 「에쿠우스」를 연출했던 김아라씨가 다시 연출을 맡아 알런의 「행동」보다 다이사트의 「성격」에 촛점을 맞출 계획이다.그동안 강태기(75년),송승환(80년),최재성(85년),최민식·조재현(90년) 등 청춘스타를 탄생시킨 알런역은 탤런트 정유석과 연극배우 지춘성이 번갈아 연기한다.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역에 정동환·조명남(더블 캐스팅),질역에 이혜근 등이 출연한다. 또 이번 공연에서는 「에쿠우스」를 공연한 이래 처음으로 한회마다 40파운드(6만원상당)의 저작권료를 지불한다.
  • 불/미테랑 1주기 흠집내기 경쟁

    ◎측근들과의 갈등·부정적인 면 폭로 책 발간/“정권욕 눈멀어 공산주의와 제휴” 헐뜯기도 8일은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대통령이 숨진지 꼭 1년째 된다.그의 사망 1주기를 맞아 프랑스에서는 재평가작업이 활발하다. 주로 측근들에 의한 재평가작업은 그러나 미테랑에게 그리 명예스럽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공화국의 「군주」로 군림해온 그의 비밀에 대한 폭로주의가 난무하고 있다. 1주기를 맞아 발간된 책은 2권.「마지막 미테랑」은 조르주 마크 베나무라는 기자가 미테랑의 모습과 내면세계를 그린 책이다. 베나무 기자는 미테랑의 허락을 받아 거의 함께 생활하면서 2년동안 미테랑을 지켜볼 수 있었다.베나무 기자는 미테랑이 발라뒤르,로카르 전총리들과 자크 들로르 전 유럽연합집행위원장,의사 등에 대해 가졌던 언잖은 기분 등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하루는 미테랑이 어두운 얼굴빛을 하면서 미국과 경제전쟁을 하고 있다고 중얼거리는 말까지 기자는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숨겨놓은 딸 마자린에 대한 기사가 나가던 날 가족끼리의대화도 그대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어 지나친 폭로주의라는 비난도 제기된다. 또다른 작품은 알렝 뒤하멜이라는 작가가 쓴 「예술가의 초상화」.이 책은 예술을 좋아했던 미테랑이 이제는 더이상 영웅적이지 않고 무기력한 미테랑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때 레지스탕스였던 미테랑은 20년 뒤에는 정권욕에 눈멀어 공산주의자와 손을 잡게 됐다고 저자는 비난한다.그에게는 전략은 없고 전술적인 모사만이 있었다고 미테랑을 헐뜯는다.
  • 고 윤이상 추모 음악회/새달 2·8일 서울­베를린서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로 지난해 11월4일 독일 베를린에서 타계한 윤이상씨.그의 타계 1주기를 맞아 추모 음악회가 2일과 8일 서울과 베를린에서 각각 열린다. 이번 추모음악회는 지난 5월 설립된 국제윤이상협회의 첫번째 공식 연주회이기도 하다.국제윤이상협회는 회장인 독일의 음악학자 발터 볼프강 슈파러를 중심으로 고인을 아끼던 음악인들과 친지들이 모여 베를린에서 발족한 단체.연주회 워크숍 심포지엄 등을 통해 윤이상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발족했다. 음악회의 주제는 윤이상이 유년시절부터 각별한 애정을 품은 악기 「첼로」.고인의 대표적 첼로작품인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노래」(64년)와 연주자들을 곤란하게 할 정도로 어려운 곡으로 유명한 「현악4중주 4번」(88년),유작인 「이스트 웨스트 미니어처」·「오보에와 현악3중주를 위한 4중주」(94년) 등이 연주된다. 서울 연강홀과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에서 각각 같은 프로그램으로 펼쳐지며 공연시간은 하오7시30분. 연주자는 서울음악회의 경우 김형섭(오보에),이혜경·정재윤·박정민(첼로)씨가 출연하고 베를린음악회에는 자브뤼켄 플루트4중주단과,부르크하르트 글래츠너(오보에),발터 그리머(첼로),홀가 그로쇼프(피아노)가 참가한다. 738­4012(한영문화예술기획·국제윤이상협회 한국지부).〈김수정 기자〉
  • 잠재의식속에 「김정일 사망」이…/이재근(남풍북풍)

    며칠전 북한 평양방송이 김일성 사망 2주기와 관련한 방송에서 한 아나운서가 「김일성 동지의 서거일…」운운을 「김정일 동지의 서거일…」로 잘못 읽는 실수를 범한 것으로 전해진 일이 있다.이쪽의 전파로 잡힌 것이니 사실일 것이고 아나운서는 자신의 실수를 알고는 그 엄청난 「불경죄」에 혼비백산하면서 파직은 물론 더 나가 노동교화소 수용까지 생각했을 것이다.작년 김일성 1주기 때도 중앙방송의 여자 아나운서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가 사망한 때로부터…」라고 오보를 한 이후 그녀의 목소리가 북한방송에서 사라진 전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을 향해 말하는 것을 일로 삼는 방송인,특히 아나운서가 갖는 직업의식은 유난히 강하고 예민하다고 한다.아무리 오랜 연륜을 쌓은 아나운서라도 자신의 방송시간이 임박하면 신경이 곤두서며 입술이 마르는 초조감에 시달린다는 것이다.실수없이 넘겨야겠다는 의식과 아무래도 뭔가 잘못될 것같다는 무의식의 교차과정에서 그런 갈등을 느낀다는 얘기다. 죽은 수령을 살아 있는 후계자와 혼동한 것이 한여름 더위를 먹은 아나운서의 착각이었는지,아니면 의도적인 오독이었는지는 당사자만이 알 것이다.단순한 실수라면 수령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데 따른 긴장 탓일 수 있다.그러나 의도적이라면 이 아나운서의 잠재적인 무의식의 발로가 아닐까도 추측해 본다.사람에게는 의식의 부분보다 몇배나 더 큰 무의식부분이 감추어져 있고 그것이 어떤 경우 의식을 제치고 순간 표출된다는 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이다.이 아나운서에게 혹시 살아 있는 후계수령을 부인하고 싶은 잠재의식은 없었을까. 북한측은 이 오보사건이 알려진 지 이틀 후 「어리석기 그지없는 날조이고 중상모략」이라며 사실자체를 부정하고 나섰다.활자라면 몰라도 공중에 떠도는 전파가 잘못 될 리는 없다.작은 일 같지만 이것이 바로 북한체제의 불가해성이다.그 아나운서의 안위도 마음에 걸린다.
  • “김정일에 대이어 충성” 구호 요란/북 김일성사망 2주기 추모식

    ◎전주민에 동원태세 견지 촉구 북한은 8일 김일성 사망2주기를 맞아 평양 금수산기념궁전에서 김정일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추모대회를 갖고 전체 주민에게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촉구했다. 이날 행사의 주석단에 등장한 김정일은 국방위원장겸 최고사령관 등으로만 호칭되어 당총비서와 국가주석 등 최고위직 공식승계가 이뤄지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그는 지난해 1주기 추모대회 때와 마찬가지로 대중연설을 하지 않았다. 관계당국에 따르면 북한의 고위 당·정·군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중앙추모대회에서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후보위원 겸 비서인 최태복은 추모사를 통해 김정일의 영도를 받들어 나가는 것이 곧 김일성의 유훈을 관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인들은 김정일을 정치사상적으로 목숨으로 견결히 옹호 보위하는 총폭탄이 될 것』을 요구하고,전체 주민에게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긴장되고 동원된 태세를 견지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대회는 당비서 김기남의 사회로 개막됐으며 묵상과 최태복의추모사에 이어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김광진,직총위원장 주성일,김일성 사회주의청년동맹 제1비서 최용해 등의 연설 순으로 진행됐다. 김광진은 이날 연설을 통해 『천하제일 명장인 김정일 최고사령관의 손길 아래 무적 강군으로 자라난 인민군대는 전만대군이 덤벼들어도 일격에 소탕할준비가 되어 있다』고 호언했다. ○CNN 생중계 한편 북한은 이날 중앙방송과 평양방송 등 텔레비전을 통해 중앙추모대회를 중계했으며,서방언론으로는 미CNN이 평양당국의 허가를 받아 생중계했다.〈구본영 기자〉
  • 김건호 건교부 건설지원실장(폴리시 메이커)

    ◎“「제2의 삼풍」 막게 5개 관련법 강화”/건설종사자 안전의식 고취에도 최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주기를 맞아 피해 가족들에게 먼저 조의를 표합니다.사전예보체계만 제대로 됐다면 1천5백여명의 사상자를 모두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건설현장의 안전과 부실시공방지 등을 총 책임진 건설교통부 김건호 건설지원실장(51)은 1년전 삼풍붕괴사고를 떠올리며 말끝을 맺지 못했다. 건설분야의 행정실무자로서,전문가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과 함께 피해가족들의 한을 생각하면 견딜 수 없는 참담함이 밀려 온다고 한다. 그는 『정말 그렇게 허무한 사고는 처음 당했다』며 『사고원인이야 많겠지만 1차적으로 안전불감증에 걸린 관련 건설업체와 백화점 관계자의 책임이고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행정기관도 면책받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에서는 사고 직후 재난관리법을 제정,인위적 재난에 대한 사고예방은 물론 긴급구조구난 등 사고수습을 위해 국가차원의 재난관리체계를 확립했습니다』 김실장은 부실한 설계와 시공,감리,유지관리소홀,사용제한 명령불복 등 부실건설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시설안전특별법,건설기술관리법,건설업법 등 5개 관련법의 벌칙을 강화함으로써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두고 있으나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법이 아무리 강화돼도 건설업체를 포함한 모든 관련자들이 안전에 대한 신념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의식의 대전환만이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성수대교 및 삼풍사고 이후 국내의 모든 건설업체들이 자체적으로 부실공사 방지와 현장종사자 등 공사 관련자들의 안전의식 고취에 힘쓰고 있어 멀지않아 이같은 안전제일 풍토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는 국내에서 대형 건설사고가 유난히 많은 것은 그동안 경제발전 제일주의의 영향으로 「빨리 빨리」하려는 졸속주의 의식에도 영향이 있다고 진단했다.공사현장을 지나는 국민들도 불편을 참아 완벽한 시공이 되도록 사회분위기 조성에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 김실장은 경기고(64년)와 서울대 토목과(68년)를 졸업한 전형적인 「KS」마크이다.기술고시 5회에 합격한 건설행정 전문가이며 건설부에서 기술개발관·도로국장,제2차관보를 지냈다.젊은 부하직원들과 축구시합을 해도 체력과 투지에서 조금도 뒤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라운드를 누빈다.〈육철수 기자〉
  • 유족들 희생자 부르며 빗속 오열/「삼풍」 1주기 추모식 이모저모

    ◎인간띠 만들어 부실공사 추방 촉구/돌풍으로 씻김굿 등 일부행사 취소 건국이래 최대의 참사로 기록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주년을 맞아 지난 29일 하오 사고현장과 서울교대 등에서는 하루종일 장마비가 내리는 가운데 추모식과 각종 추모행사가 열렸다. ○…행사는 성수대교 남단 진입로에서 1천여명의 유족과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맑은사회 안전사회 만들기 시민대회」로 시작. 사전행사로 기획된 풍물패의 씻김굿이 취소될 만큼 돌풍이 몰아치고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음에도 유가족들이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며 주저앉아 오열하자 대회장은 시종 숙연한 분위기. ○…대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성수대교에서 삼풍백화점까지 6㎞구간에 걸쳐 거리행진을 벌이면서 부실공사 추방 캠페인을 전개. 삼풍추모준비위원회 심영규회장은 『부실공사의 상징적 현장인 두 곳을 연계해 그날의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생명존중의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라고 설명. ○…하오 4시40분쯤 삼풍백화점 사고 현장에 도착한 걷기대회 참석자들은 백화점 주변 1㎞가량을 손을 맞잡고 에워싸는 「생명존중 사회를 위한 인간띠」를 연출하며 부실공사 추방을 다짐. ○…사고 당시 실종자 가족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에서도 삼풍참사 1주기 추모위원회와 「자유학교를 준비하는 모임 물꼬」가 1천여명의 어린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혼제를 거행. 행사장에는 「부자가 왜 건물이 한꺼번에 무너지도록 지었을까요.내가 어른이 되면 튼튼하고 안전하게 지을 거예요」 등 초등학생들이 어른들을 「꾸짖는」 글 1백여편이 전시돼 눈길.〈박용현 기자〉
  • 「도시개혁 시민운동」 선언/경실련,「삼풍」참사 1주년 맞아

    ◎건설전문가 1백명 참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사무총장 유재현)은 28일 상오 서울 종로의 경실련 강당에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주년을 맞아 건설분야 전문가 1백명의 이름으로 「도시개혁 시민운동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발전의 과실이 국민생활의 질적 향상으로 직결되려면 발상의 대전환이 선행돼야 한다』고 전제하고 『환경친화적이며 시민들의 삶의 질을 최우선에 놓는 개발철학에 입각,삶의 터전인 도시를 건강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변화시키는 도시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또 『도시개혁은 시민의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도시개혁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압력이 거스를 수 없을 만큼 드세질 때만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구체적인 실행방안으로 ▲초과밀 도시개발 반대 ▲시민참여를 위한 법·제도개혁 운동 ▲무주택 서민을 위한 주거권 확보운동 ▲국토 균형개발을 위한 국토종합개발계획 수정 촉구운동 등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선언에 참여한 김수삼교수(중앙대 토목공학과)는 『건설교통부 등 관련기관들이 내놓은 일련의 제도가 재난발생시 현장지휘와 조치 등에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나 형식적인 문제제기라는 측면도 적지 않고 결과도 공개하지 않아 시민들에게 안전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시민들의 안전의식도 삼풍사고 전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꼬집었다. 한편 삼풍참사 1주기 추모준비위원회(위원장 심영달)는 29일 하오 5시30분 삼풍백화점 옥외주차장에서 조순서울시장과 유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을 갖는다.또 추모식에 앞서 추모위원회와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맑은사회만들기본부(본부장 김창국) 등 시민단체들은 성수대교 남단에서 삼풍백화점 터까지 6㎞를 행진한 뒤 사고현장을 에워싸는 인간띠잇기 행사와 추모음악회를 갖는다.〈박용현·박준석 기자〉
  • “우리사회는 아직도 안전불감증”/삼풍참사1돌…생환 3명 한자리에

    ◎최명석군­올초 전문대학 복학… 아직도 유명세 치러/유지환양­다니던 회사 계속 근무… 8월 호주유학/박승현양­근로복지공단 근무… 당시 생각 “눈시울” 『불과 1년전 일인데 사람들이 삼풍사고의 끔직함을 모두 잊은 것같아 답답합니다』 지난해 6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당시 기적적으로 생환,온 국민의 심금을 울린 최명석군(20)과 박승현(18)·유지환양(19)이 20일 상오 「악몽」의 사고현장에서 다시 만났다.삼풍참사 1주기 추모준비위원회(위원장 심영규)의 초청으로 만들어진 자리였다. 「6.29 그날 하오­삼풍시계는 멎었는가」라는 삼풍유족들이 쓴 수기를 들고 나타난 최군은 올해초 수원전문대 건축설비학과에 복학했다.말쑥한 차림의 최군은 아직도 한달에 서너통씩 여학생들로부터 펜레터를 받는 등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하지만 내년 가을에 졸업하면 군입대나 4년제 대학 편입을 생각하는 평범한 삶을 준비하고 있다. 두번째 생존자인 유양은 사고전부터 다니던 삼광유리에 계속 다니고 있다.모교인 위례상고이사장의 주선으로 오는 8월에는 호주로 유학을 간다.어학연수를 마치면 패션공부를 할 생각이다. 유양은 『우리를 기억해달라는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사고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등 우리사회가 안전불감증에 빠진 것같다』며 안타까워했다. 맨 마지막으로 구출된 박양은 지난 해 태백시에서 열린 산재근로자를 위한 사랑의 음악회에 초청받은 인연으로 지난 2월부터 근로자복지공단에 다니고 있다. 박양은 『사고이후 한동안 불을 끄고는 잠을 못잤는데 이제 많이 나아졌다』며 『같이 근무하다 숨진 언니들이 보고싶어 서너차례 삼풍백화점자리를 들러봤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한편 추모위원회와 참여연대 등 2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오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1주년을 맞아 영령들을 달래고 안전사회를 기원하는 대규모행사와 추모식을 갖는다. 삼풍백화점에서는 생명존중사회를 염원하는 뜻에서 시민들이 1㎞길이의 「생명의 띠」를 건물에 감는 인간띠 잇기행사를 갖는다.〈김성수 기자〉
  • 문신 선생 생전 예술세계 한눈에/마산 문신미술관서 1주기 추모전

    ◎청동·흑단조각·미공개 친필자료 등 전시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선생의 타계 1주년을 맞아 생전 그의 예술세계를 보다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는 추모전이 23일부터 올 가을까지 경남 마산시 합포구 추산동 문신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문신미술관측은 지난해 5월24일 타계한 문선생의 1주기를 맞아 「문신 추모 1주년 흑단,친필자료전」을 마련해 이날부터 전시한다. 미술관 제1전시관 1층 전시실에는 지난 60년대이후 제작한 나무조각작품에서부터 20여점의 브론즈,타계직전 제작한 흑단조각작품 등 문씨의 열정이 깃들여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전시된다. 2층 전시실에는 그동안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문씨의 친필자료 등이 전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예술계에 처음 발을 디딜 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작품세계를 평한 평론가들의 친필원고를 비롯해 젊은 시절 그가 기고한 각종 수필원고,작품활동 틈틈이 적은 메모노트,그동안 국내외 여러 보도자료 등이 전시됐다.작품제작에 사용하던 여러가지 도구 등도 함께 진열돼 있다. 특히 이번 추모전을 계기로 문씨의 예술성을 대표하는 흑단조각작품을 미술관 전시실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됐다.지난 94년 5월 미술관이 문을 연 뒤 잠시 전시를 한 흑단작품은 도난우려가 있어 전시를 하지 못했다.브론즈는 다시 찍어낼 수 있지만 단단한 나무인 흑단을 일일이 손으로 깎아 다듬은 흑단조각작품은 작품 하나하나가 귀중한 것이다.따라서 흑단은 문씨가 타계한 뒤 예술적 가치가 더욱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술관측은 미처 정리가 안된 친필자료 등은 정리가 되는대로 2층 전시실에 계속 전시하는 등 문씨가 50년 예술여정에 쏟은 땀과 열정 등 생전의 숨결을 그가 직접 지은 전시관 공간에 모두 담아나갈 계획이다. 파리 유학시절 회화에서 조각으로 전환한 그는 80년 고향에 돌아와 정착했다.88년 올림픽때는 올림픽조각공원에 「올림픽의 조화」을 선보이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왔으며 92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프랑스정부가 수여하는 프랑스 예술문화영주상을 수상했다.그는 사망 1년전 마산시 고향집터에 건평 3백40평의 실내전시장과 2천5백평의 야외조각전시장으로 이루어진 문신미술관을 개관,생전의 숨결을 담아두었다.〈마산=강원식 기자〉
  • 삼성차,2002년 연산50만대 목표/창립1주기념식

    ◎2010년까지 11개모텔 개발 삼성자동차는 오는 2010년까지 국내 제2공장 및 해외공장을 새로 짓고 11개 모델을 개발,생산하는 종합생산체제(풀라인업)를 갖추기로 했다. 삼성자동차는 27일 부산공장에서 자동차사업 출범 1주년을 맞아 임경춘 부회장을 비록한 1천5백여명의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기념식을 갖고 이같은 내용의 「21세기 비전」을 선포했다. 4단계 중장기 발전전략을 통해 우선 98년까지를 기반구축기로 삼아 중형차 중심의 고품질 이미지를 구축하고 2002년까지는 연간 50만대를 생산,경제생산규모를 갖추기로 했다. 2006년까지는 자립도약기,2010년까지는 국제협력기로 각각 설정,제2공장 및 해외공장을 신설하고 5개 플랫폼(생산공장)에서 11개 모델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98년 이후 매년 신차를 내놓을 예정이며 대·중·소형 승용차는 물론 다목적 자동차(MPV),왜건,해치백,경차 등도 조기에 개발해 시판할 방침이다. 또 자동차 제조와 판매뿐만 아니라 레저,패션,디자인,금융,리스,렌트사업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자동차 문화 창출을 위한 종합적인 사업을 전개해 나가기로 했다.〈김병헌 기자〉
  • 국악인 김천흥(이세기의 인물탐구:89)

    ◎「춘앵전」 등 궁중무 재현에 80평생/14세때 아악생으로 입문…악·가·무 두루 갖춰/대한 국악원·민속 예술원 등 설립,후지 양성/오는 3월 미수 앞두고 “전아의 극치” 「춘앵무」공연 준비 꾀꼬리를 상징하는 노란 앵삼에 노란 관과 붉은 띠,오색 한삼속에 감춘두손을 좌우로 펼쳤다가 이마높이로 들어 모으며 창사를 읊조린다.여섯자 화문석위에서 「평조회상」에 맞춰 추는 「춘앵전」은 꾀꼬리가 버들가지를 넘나들며 노니는듯 노래부르는듯 화사하고 밝은 화전태와 여의풍이 특징이다.이는 궁중정재의 마지막 한끝을 잇는 심소 김천흥이 재현한 춤으로 그는 상영산에서 잔영산에 이르는 원형그대로를 추기도 하지만 느린 가락의 상영산을 생략하고 세영산을 위시한 삼현도드리와 변주곡인 군악의 장단으로 아정한 무작을 짜고 있다. ○꾀꼬리 춤사위 일품 그의 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이미 사람의 심금을 움직인다.그것은 한낱노익장을 과시했다는 표현으로는 미치지 못하달 수가 있다.특히 한국무용의 기교를 전통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처용무」는 「깊은 온축과 비범한 예술성,씩씩하고 장엄한 남무의 풍도와 낙화유수의 가녀린 애조가 두드러져 우리의 고대무용을 보다 본격적으로 형성」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즉 그의 춤은 천격이나 기교가 없이 「심소가 아니면 되살릴수 없는 무격이 제격」이다.크고 광활하게 장삼을 흩뿌리는 「승무」역시 무기교의 절제미와 정제미,무념무상의 선비적인 청정이 깃들어 몸이 아닌 마음으로 추는명무로 손꼽힌다.그런가 하면 그의 「살풀이」는 멈출듯 주춤한 정지속의 움직임과 여백의 미가 일품이다.명주수건을 던졌다가 다가서고 다가섰다 물러서는 흐르는 춤태는 손끝 하나에서도 예술의 연륜이 묻어나 이를 보고 「속으로 흐느끼지 않은이가 없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다.이 춤은 지난 연초 하와이대 객원교수로 갔다가 배한라여사의 1주기를 맞는 추모무대에서 춘 것이 「그곳의 객석을 흐느끼게 했다」고 전해져 왔다.노예술가의 연륜을 거론하는 것은 외람되나 약관 14세에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의 아악생으로 입소하여 장천 춤추고 노래하고 악기를 다루기를 어느덧 70여년.1923년 순종황제 탄신 오순을 경축하는 창덕궁 어전연주에서 무동으로 뽑힌 것이 인연이되어 그는 당대 명인 하규일 함화진으로부터 「악.가.무」일체를 이어받는 예인의 길에 올랐다.그가 재현하여 공연에서 선보인 궁중무만도 「춘앵전」외에 「무고」 「가인전목단」,용알을 가지고 사를 부르며 추는 「포구락」등 48종.궁중명무로 알려져 있지만 한때 아악부를 떨치고 나가 교방의 무속악사로 전전한 경험때문에 민속무용과 무속음악에도 일가를 이루어 「꼭두각시」에서 「봉산탈춤」에 이르기까지 그가 추지 않은 춤은 없다.악기도 아악부시절의 전공은 해금이지만 양금 아쟁의 명수이고 곰삭고 결삭은 성대를 구사하여 남녀창인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선유가등 12잡가와 사설시조 휘모리시조를 어느 자리에서나 두루 거침없이 노래부른다.그가 춤과 국악으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개인무용발표회를 가진것은 56년부터 7차례,궁중무용 재현은 10여차례가 넘지만 공연뒤 리셉션을 가진 것은 72년 「무악생활 50년」과 92년 「무악생활 70년기념」공연등 단 두번뿐이다.그만큼 그는남에게 폐스러운 일,번거로운 일을 삼가고 분수에 넘치는 것은 넘보지 않는다.첫번째 공연에서 벌써 「우뚝하고 반듯한 김천흥의 무용」으로 평가되더니「완숙의 미와 멋과 흥」등 넘치는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으나 만약 충고하는 조언이 있으면 언제라도 주춤거리지 않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돋보인다. ○순종 오순때 무동으로 「일찍이 없었고 뒤에도 없을 그의 공업은 동료와 제자의 경의와 찬하만으로 모자란다」는 이성천교수(서울대)의 말대로 그는 참으로 많은 업적을남기고 있다.40년대초 이전에서의 국악교육을 필두로 대한국악원 국악사양성소 무용인협회 한국가면극 대한민속예술원 정농악회등 국악과 관련된 수많은 단체를 만드는데 앞장서 왔으나 그는 이를 굳이 「창단」「결성」으로 강조하기보다 단순히 「참여」한 것으로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청렴했던 심소는 80평생 살림집과 무용연구소 이사를 다닌 것만도 50여번이 넘는다.살림집은 사글세 전세 전세를 전전하여 40여번,연구소는 지난 55년 낙원동에 김천흥무용연구소를 개설하고 나서 78년 문을 닫기까지 10여번이상을 옮겨다녔다.무용발표 때마다 빚더미에 올라앉아 집을 가진 것은 68년 잠실주공아파트가 처음이고 그후 다시 수번을 이사한 끝에 2년반전 현재의 서초구임광아파트에 정착했다.그러나 무용연구소 시절 장구쳐 줄 사람이 없어 하루종일 「하나둘 하나둘」 육성박자로 춤을 가르치는 궁핍한 생활에서도 그는 연구생들이 내는 월사금외에 별도로 작품료를 받은 적이 없고 월사금을 가져오지 않으면 그냥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만사에 최선을 다하여 대강 넘어가지 않는 그는 60년대초 원각사 공연때는 빈혈로 쓰러지자 아침마다 신당동에 다니며 소피를 먹으면서 무대에 선 적도있고 76년 미독립 2백주년기념 축하행사는 50일간 필라델피아 워싱턴등 11개지역에서 20여회를 공연하는 동안 급작스런 복통으로 고생을 하면서도 자신의 할바와 의무에 빈틈을보이지 않았다.지금도 「국록」을 받는다는 자세로 매일 국악원에 나와 직접후진을 지도한다. ○40여회 전·월세 전전 국악계를 통틀어 『높은 스승일뿐만 아니라 인품이요 덕망,학식이고 예술에서 앞으로 누가 있어 선생을 따를 이가 과연 있을 것 같지않다』는 성경린씨(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지휘 기능보유자)의 말대로 「명확한 운궁법을 통한 정확한 표현력으로 평가되어지는 악기」를 젖혀두고라도 전통무용으로 저문한 그는 당연히 「한국무용사의 산증인」이요 「궁중정재의 대명사」이며 「정재재현의 명장」이 아닐 수 없다.아악부 시절에 만난 성경린과의 총죽지교는 「한 핏줄과도 같은깊고 짙은 우정」으로 일요일마다 「산행의 동반자」이기도 하다.가족은 그를말없이 내조해온 부인 박준주여사는 2년전 타계하고 3남3녀중 5남매는 미국에 체류중.차남 정완씨(회사원)가 극진히 모시고 있다.여전히 가볍고 날렵한 그의 몸놀림은 어느 한구석 비틀거림이나 흐트러짐이 없다.갸냘프리만치 깡마른 체구에도 강단이 세고건강해서 그에게선 「노인」의 티란 찾아볼 수 없고 특히 춤을 출때 그렇다.『남과 다투지 않고 아부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고 마음 편히 늙었으니 행복하고후회가 없다』는 그는 『그러나 노장은 무용이긴 하지만 마지막까지무대에 서서 살아있는 춤을 보여주고 싶다』는 절규와도 같은 기원을 기필코지키고 싶어한다.오는 3월 30일 미수를 앞둔 제자들의 축하공연에서 심소는 또한번 「전아의 극치」로 일컬어지는 「춘앵무」로 우리에게 상서로운 봄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그것은 무용가 최현의 표현대로 「결과 멋과 흥」이 샘물처럼 어우러진 「절예의 경지」 또는 「입신의 경지」 그자체일 것이다. □연보 ▲1909년 서울출생 ▲22∼26년 이왕직 아락부원양성소 졸업(해금·양금·아쟁전공) ▲23년 순종황제탄신 오순경축공연 무동출연 ▲26∼42년 이왕직아악부 아악수,아악수장 ▲40∼45년 이화여전 강사 ▲43∼45년 조선음악가협회회원 ▲45∼47년 대한국악원이사 ▲50∼88년 서울대·한양대·추계예대·숙대무용과 출강 ▲51∼95년 국립국악원 예술사,연주원,자문위원,현재 원로사범 ▲55∼78년 무용연구소 개설 ▲1956년 첫번째 무용발표회 이후 75년까지 7차례,창작무극 「처용랑」「만파식적」「흥부전」「봉산탈춤」등 발표 ▲61∼76년 한국국악협회이사,부이사장,상임고문,명예회장 ▲61∼80년 서울시 문화재위원 ▲62∼95년 미주·동남아·유럽지역등 해외공연 21차례 ▲68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39호 처용무기능보유자지정 ▲73∼93년 대락회 이사장 ▲77∼현재 정농락회 회장,궁중무용발표회 이후 10여차례 ▲78∼현재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92년 「심소김천흥선생 무락생활 70주년기념」공연(국악원소극장) ▲93년 무악생활 70주년기념 해외순회공연 ▲95년 하와이대 초청 객원교수 한국무용의 기본무보(69년) 정악양금보(82) 정악해금보(88) 심소김천흥무악70년(95년) 서울시문화상(60년) 문화재보존공로상(68년) 한국문화대상(69년) 대한민국예술원상(70년) 국민훈장모란장(73년) 한국국악대상(83년) KBS국악대상 특별공로상(92년)
  • 밀입북 박용길씨 집유 3년 선고/서울지법

    서울지법 형사4단독 조승곤 판사는 1일 김일성1주기 추도 행사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밀입북해 징역 5년에 자격정지 5년이 구형된 고 문익환 목사의 부인 박용길(76)피고인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탈출·회합등)죄를 적용,징역2년에 집행유예 3년 및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피고인이 정부의 사전승인 없이 북한을 방문,김정일 등 반국가단체 구성원들을 만나 반정부 발언을 한 사실이 유죄로 인정된다』면서 『그러나 고령인 점등을 감안,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 일시 귀국 박태준씨 정·재계 복귀 희망

    【경주=이동구 기자】 모친의 1주기 제사를 위해 일시 귀국한 박태준 전 포철회장이 정계 또는 재계에 복귀할 의사를 비친 것으로 전해졌다. 경주 힐튼호텔에 머물고 있는 박전 포철회장은 귀국 이틀째인 24일까지 외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으나 정명식 전 포철회장 등 전 포철 관계자와 조용경 전민자당 최고위원 보좌관 등 극히 제한된 측근 인사들을 만나 조만간 정계나 경제계에 복귀할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 박태준씨 일시 귀국

    박태준 전포항제철 명예회장이 23일 하오4시 모친의 1주기에 맞춰 부산 김해공항을 통해 일시귀국했다. 공항에는 박전회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최재욱 의원(민자)과 황경로 전포항제철회장을 비롯,「포항제철 명예퇴직자협의회」회원등 1백50여명이 마중나왔다. 박전회장은 귀국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25일 모친의 1주기 제를 지낸 뒤 오는 27일 김해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 박태준씨 오늘 귀국/일서 1년만에

    박태준 전포항제철회장이 모친의 1주기에 맞춰 23일 하오 부산 김해공항을 통해 귀국한다. 박전회장은 지난해 10월9일 모친 사망때 일시 귀국해 장례를 치른뒤 신병치료를 위해 도미,뉴저지 몽클레어시에 있는 맏딸집에서 지내다 최근 부인과 함께 일본에서 머물고 있었다. 8·15 특사때 사면복권돼 정치재개등 향후 거취가 주목되고 있는 박전회장은 모친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한뒤 27일쯤 다시 출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 무학교정에 드리운 슬픔/박성수 사회부 기자(현장)

    ◎「성수」 붕괴 8명 앗긴 아픔 아직도 『교정에 가을꽃은 다시 피는데…』 21일 상오11시30분 서울 성동구 행당동 무학여고 강당에서는 성수대교 붕괴사고 당시 등교하다 희생된 이 학교 학생 8명에 대한 1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사고가 난 지 1년이 지났는데도 무학여고 교정은 아직도 정신적 생채기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었다. 『하루전까지도 해맑은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로 서로를 격려하며 학창시절의 고운 꿈을 펼치던 네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돌아온 지도 어느덧 1년의 시간이 지났구나.그래도 오늘만큼은 이곳에 와 함께 있을 너희를 생각하며 조용히 이름을 불러본단다』 학생회장 이선명(18·여고3)양의 추도사가 떨려 나오자 식장은 온통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학생들에게 그날의 아픔을 씻어주기 위해 학교측은 이날 행사를 되도록 간소하고 조용히 치르기로 다짐했으나 막상 식장에 나온 교사들마저도 끝내 울음을 터뜨려 식장은 또다시 1년전의 장례식장처럼 슬픔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고 최양희양(18)의 친구인 2학년3반 위경자양은 격한오열을 삼키다 결국 몸을 가누지 못하고 담임선생과 친구들의 부축 속에 식장을 떠났다. 추모식에 참석한 고 배지연양(17)의 담임 임영훈교사(38)는 『8송이 무악의 꽃망울이 하늘에서 편히 잠들게 하기 위해 처음에는 출석부에 이름을 그대로 놔두었으나 올해초 모두 지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1년전 사고로 같은 반 친구 이연수양을 잃은 무학여고 3년 김미경(18)양은 책상서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연수양의 쪽지편지가 든 조그만 플라스틱상자를 들고 나와 주위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연수양의 담임이던 송태훈(54·영어)교사는 『학생들이 모이면 그날의 얘기를 다시 할 것만 같아 남몰래 앨범만 펼쳐보고 있다』며 『애꿎은 연수의 죽음이 내탓인 것만 같아 학생들을 대할 때마다 남모르는 고충속에 빠진다』고 털어놨다. 이를 의식한 때문인지 김여옥 교장은 추도사를 통해 『그날의 악몽을 저주하고 가신 이들을 그리는 마음 하염없지만 하루빨리 상처를 치유하고 일어서는 우리에게 그들은 뜨거운 박수를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며 남아 있는 학생들을 다독거렸다.
  • 성수대교 참사 1주기 위령제/한강에 국화던지며 원혼 달래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숨진 희생자 31명에 대한 1주기 합동위령제가 21일 상오 11시 서울 성수대교 남단 진입로에서 유가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수대교 붕괴사고 유족회」(회장 성운경·40)의 주관으로 열렸다. 유가족들은 이날 다리 남단에 고인들의 위패와 생전의 사진으로 임시빈소를 차려놓고 헌화,분향하며 고인들의 명복을 빌었다. 위령제가 진행되는 동안 유족들은 고인의 사진을 부여안고 통곡했으며 일부 유족들은 한강에 흰 국화꽃송이를 던지며 원혼들을 달랬다. 이날 유족대표로 나온 김학윤씨(30·회사원)는 추도사에서 『비참하고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들께 삼가 명복을 빌며 가슴에 스며드는 슬픔을 참을 길이 없다』면서 『작지만 소박한 꿈을 안고 착하게 살아가던 우리 부모·형제·아들딸들을 이제 어디서 다시 보아야 하느냐』며 오열했다. 한편 이날 일부 유족들은 유족회측이 서울시에 위령제 참석을 요청했는데도 불참한 것에 분노,조순 서울시장이 보내온 화환을 부수는 등 한때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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