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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포토] 구의역 사고 1주기... 청년의 비극 더는 없기를

    [서울포토] 구의역 사고 1주기... 청년의 비극 더는 없기를

    25일 오전 서울 광진구 지하철 2호선 구의역 9-4 승강장 앞에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1주기 추모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놓고 간 국화꽃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이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만원행동 관계자들은 구의역을 찾아 지난해 5월 28일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더 중 전동차에 부딪혀 사망한 김군을 추모하고 이와 같은 비극이 다시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철폐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또 서울메트로 소속 무기계약직 신분 ‘일반직’ 청년들은 서울시에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서울메트로 업무직협의체는 25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구의역) 사고 이후 박원순 시장이 마련한 정규직화 후속 대책에 따라 서울메트로에 직고용될 수 있었다”면서도 “아쉽게도 우리는 여전히 비정규직이다. 높은 노동강도에 낮은 급여 등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시의회 민생실천위 25일 구의역 참사 1주기 추모 토론회

    서울시의회 민생실천위 25일 구의역 참사 1주기 추모 토론회

    서울시의회 민생실천위원회(위원장 박운기 서울시의원)와 지하철 비정규직 사망재해 해결과 안전사회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5월 25일 오전10시, 서소문별관 2층 제2대회의실에서“노동자와 시민에게 안전한 지하철을 바란다”는 제목으로 구의역 참사 1주기 추모토론회를 개최한다. 지난 해 5월 28일 구의역에서 발생한 비정규 청년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은 지하철 안전 문제와 열악한 비정규 노동의 시스템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일깨웠다. 지난 1년간 서울시와 시민사회는 문제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했는데 이번 토론회는 구의역 참사 1주기 및 서울교통공사 창립에 맞춰 지하철 안전과 노동의 문제가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를 검토하고 향후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25일 개최될 토론회는 서울시의회 박운기 민생실천위원장과 이상진 시민대책위 공동대표의 축사로 시작되며 한인임 일과 건강 사무처장,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이 발표를 하고 공공교통네트워크(준) 오선근 운영위원장, 안전사회실천시민연대(준) 박순철 사무처장, 서울시의회 우형찬 의원, 조성애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이 토론자로 참석할 예정이다. 아울러, 이날 자리에는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와 통합을 앞둔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임직원들이 참여하여 지하철안전문제와 양공사 통합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행사를 공동주최하는 서울시의회 박운기 민생실천위원장(서대문 제2선거구)은 “1년 전 구의역에서 발생한 19세 청년노동자의 죽음은 단순히 가슴 아픈 일로 끝낼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우리 사회의 안전과 노동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할 것이다”라고 밝히면서 향후에도 시민사회와의 적극적인 연대를 통해 문제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시의회 성중기의원 “승강장안전문 처음부터 부실공사”

    서울시의회 성중기의원 “승강장안전문 처음부터 부실공사”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성중기의원(자유한국당, 강남 1)은 5월18일 교통위원회 회의실에서 개최된 서울교통공사 사장후보자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안전은 뒷전인 승강장안전문 재시공에 대해 강하게 질타하고 눈앞에 보이는 급급한 결과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이며 충분한 시간과 검증을 통해 서울시민이 믿고 안심하며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되기를 김태호 사장후보자에게 당부했다. 또한 성의원은 서울시 승강장안전문은 처음부터 부실시공이었고, 잦은 고장과 장애, 안전사고가 연이어 발생했음에도, 구의역참사의 1주기가 도래한 현 시점에 실질적으로 진행된 것이 없다고 질타했다. 더욱이 서울시에서는 지난해 연이은 안전사고 발생 이후 서울시민과 언론사를 통한 안전보강 대책발표에서 “예비비를 동원해서라도 승강장안전문을 철저하게 고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안전보강 대책발표 이후 승강장안전문에 대한 사실 관계를 확인 중 안전 신뢰성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인 중대결함이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 성의원은 또한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현시점에서 승강장안전문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발언했다. 첫 번째, 승강장안전문 입찰사양서 확인결과, 서울메트로 120역중 75개역, 도시철도공사의 157개역 중 151개역의 경우, 사양서에서 요구하고 있는 국제안전기준(SIL, RAMS)를 적용치 않은 채 부실 시공한 것으로 확인됐으며 조치가 필요함을 지적했다. 두 번째, 승강장안전문을 설치한 업체는 전부 대기업으로,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된 승강장안전문의 안전사양을 지키지 않아 잦은 오작동, 고장, 인명사고를 유발한 업체에 대해 PL법(제조물책임법)을 적용하여 구상권을 청구하고, 전면재시공을 요구하여야함을 강조했다. 세 번째, 김포공항역 사고이후 서울시가 발표한 승강장안전문 안전보강 대책중 하나인 8개역사의 우선재시공과 관련하여 최단기간 착공 및 설치완료를 목표로 하여 안전성능 검증에만도 최소 30일이 필요하지만 무리한 납기일정(계약 후 165일 이내)을 제시하여 잇따른 유찰로 공사가 지연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네 번째, 승강장안전문 설치 시방서상 포함되어있는 장애물센서(레이저 스케너)의 설치는 대표적 고장유발장치로 승강장안전문에 불필요한 장비로(일부역사제외) 오히려 인명사고를 유발하며 열차 운행에 지장을 초래기만 할뿐으로 예산의 낭비라 질타했다. 이에 김태호 사장 후보자는 “승강장안전문 사업에 대해 외주용역에 의해 끌려 다니기보다는 서울교통공사안에 승강장안전문 설치, 보수 관련 부서를 만들어 직접설치하고 운영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여 안전에 한층 더 주의를 기울일 계획이다” 라고 답변했다. 끝으로 성중기의원은 “서울교통공사의 새로운 CI(Corporate Identity) S의 의미가 안전(Safety), 서비스(Service), 서울(Seoul)인 만큼 무엇보다도 안전에 중점을 둔 승강장안전문 공사로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지하철이 세계적인 대중교통의 중심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피해자 부모, 범인에 손해배상 소송

    ‘강남역 살인사건’ 1주기…피해자 부모, 범인에 손해배상 소송

    사건 발생 1년 “여성 혐오 범죄 다시 없길”…위자료 등 5억 청구 ‘여성 혐오’ 논란을 일으킨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해자 부모가 범인 김모(35)씨를 상대로 5억여원을 배상하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소송을 대리한 대한법률구조공단 관계자는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가운데 여성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따르면 김씨에게 살해된 A씨(당시 23·여)의 부모가 김씨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소장을 지난 11일 법원에 제출했다.A씨의 부모는 소장에서 “A씨가 기대여명보다 60년 이상 이른 나이에 사망했고, 갑작스러운 딸의 살해소식에 원고들이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게 됐다”며 “A씨가 60세까지 얻을 수 있었던 일실수익 3억7000여만원과 정신적·육체적 위자료 2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배상액은 이미 지급받은 범죄피해구조금 7000여만원을 제외한 5억여원으로 정했다. 김씨는 지난해 5월 17일 오전 1시쯤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에 있는 한 주점 건물의 공용화장실에서 A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달 13일 대법원에서 징역 30년 형을 확정받았다. 김씨는 1999년 처음 정신 질환 증상을 보인 뒤 2009년 조현병(옛 정신분열증)의 일종인 ‘미분화형 조현병’을 진단받은 후 여러 차례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월 이후 약을 먹지 않아 평소에도 피해망상 증상을 보였고, 범행 당시에도 조현병 증상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가 경찰 수사와 법정에서 “여성에게 자꾸 무시를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면서 ‘여성혐오 범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경찰은 조현병 증상에 의한 범행이라며 이를 부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SBS 문재인 세월호 보도…민주당 “박근혜 정권 의혹을 연결, 적반하장”

    SBS 문재인 세월호 보도…민주당 “박근혜 정권 의혹을 연결, 적반하장”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 측은 SBS가 2일 내보낸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 조사 나선다’ 기사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했다.문 후보 측 송영길 총괄선대본부장은 3일 여의도 당사 브리핑에서 “해수부 공무원의 일방적인 말만 갖고 민감한 시기에 이러한 보도를 한 데 유감이다. 박근혜 정권이 인양 의지가 없어서 대통령의 눈치를 보는 해수부가 고의로 인양을 늦춘다는 의혹이 있었지,이걸 문 후보와 연결하는 것은 적반하장이고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송 본부장은 “(관련 의혹을 언급한) 해수부 공무원이 무슨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어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인터뷰를 했는지 경위를 밝혀야 한다. 해수부도 해당 공무원의 신원을 파악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선대위 공명선거본부 부본부장인 박주민 의원 또한 “미수습자 가족과 유가족은 수중수색이 종료된 2014년 11월부터 인양을 서둘러달라고 했지만 정부가 이를 묵살하다 세월호 1주기 때 박 전 대통령이 운을 띄우자 인양을 결정했다. 결정 자체도 늦어졌고 해수부의 소극적 태도도 인양을 고의로 지연한다는 의혹을 들게 했다”면서 “해당 보도는 최근의 악의적인 기사 중 최고인 것 같다”고 불쾌감을 표했다. 앞서 ‘SBS 8 뉴스’는 지난 2일 익명의 해수부 공무원 발언을 인용, 해수부가 부처의 자리와 기구를 늘리기 위해 세월호 인양을 고의로 지연하며 차기 정권과 거래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고 보도했다가 논란이 되자 해당 기사를 삭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만화가 오세영의 책상을 만나다

    만화가 오세영의 책상을 만나다

    박재동 화백은 조문(弔文)에서 ‘우리 만화계의 보물, 사람들은 몰라도 아는 사람은 아는 우리 문화계의 국보, 수많은 그림쟁이의 스승, 세계 대가급 중의 한 사람’으로 그를 이야기했다. 가장 한국적인 리얼리스트라고 평가되는 만화가의 손때가 가득한 책상이, 그가 입원하기 전까지 열심히 작업하던 원고가 올려진 그 상태 그대로 만화 팬들과 만난다. 만화가 오세영(1955~2016)의 1주기를 맞아 ‘오세영전(展)’이 경기 부천 만화박물관에서 열린다. 2일부터 7월 9일까지다.오세영은 늘 예술로서의 만화를 추구하며 낮은 시선에서 바라본 민초들의 삶을 만화 컷 속으로 옮겨 온 작가다. 특히 우리네 얼굴과 표정, 말본새, 체취, 삶의 풍경 등을 생생하고 구수하게 담아내며 일가를 이뤘다. 오세영은 일제강점기나 산업 근대화를 이루기 전 민중들의 진실한 모습과 사회상을 후대들에게 남겨주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문예 만화가라고 불릴 정도로 주옥같은 우리 소설을 만화로 옮기는 작업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번 추모전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작업실 전시다. 번잡한 도시의 삶을 뒤로 하고 2005년 경기 안성 쌍령산 기슭에 꾸렸던 작업실을 거의 통째로 옮겨 왔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가 만화로 옮겨지던 곳이다. 오랜 세월 오세영과 함께한 책상과 각종 화구에서부터 각종 자료와 만화책이 빼곡한 책장 10개, 일반 벽지 대신 만화책 낱장을 도배지로 사용했던 작업실 벽면과 작품 설정자료를 걸어 놓은 빨랫줄까지 고스란히 재현했다. 실제 작업실 사진과 비교하며 작가의 깊은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지난해 5월 5일 세상을 뜰 때까지 그의 이름처럼 딱 30년 걸어온 만화가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높이 3m, 가로 12m짜리 ‘작품 맵’도 돋보인다. 그의 작품 중 50편을 시대와 만화, 문학과 만화, 인물과 만화 등 세 가지 키워드로 분류해 빅데이터 그래픽 형식으로 펼쳐 놨다. 마지막 작업이 되어버린 ‘삼국지’ 유고 원고를 비롯한 작품 원화들도 전시된다. 연필 데생으로 80쪽가량 작업한 ‘삼국지’ 원고는 10쪽 정도 펜화가 더해졌다. 또 석정현, 차성진, 송동근 등 후배 작가 14명이 오세영과 얽힌 인연과 에피소드를 다양한 형식으로 담아낸 작품도 곁들여진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국보급 만화가의 책상을 만나다···오세영 1주기 추모전

    국보급 만화가의 책상을 만나다···오세영 1주기 추모전

    박재동 화백은 조문(弔文)에서 ‘우리 만화계의 보물, 사람들은 몰라도 아는 사람은 아는 우리 문화계의 국보, 수많은 그림쟁이의 스승, 세계 대가급 중의 한 사람’으로 그를 이야기했다. 가장 한국적인 최고의 리얼리스트로 평가되는 한 만화가의 손 때 묻은 책상이, 그가 입원하기 전까지 열심히 작업하던 원고가 올려진 그 상태 그대로 만화 팬들과 만난다. 국보급 만화가 오세영(1955~2016)의 1주기를 맞아 ‘오세영 전(展)’이 경기 부천 만화박물관에서 열린다. 5월 2일부터 7월 9일까지다.오세영은 늘 예술로서의 만화를 추구하며 낮은 시선에서 바라본 우리 민초들의 삶을 만화 컷 속으로 옮겨온 작가다. 특히 우리네 얼굴과 표정, 말본새, 체취, 삶의 풍경 등을 생생하고 구수하게 담가 내며 일가를 이뤘다. 오세영은 일제 강점기나 산업 근대화를 이루기 전 민중들의 진실한 모습과 사회상을 후대들에게 남겨주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문예 만화가라고 불릴 정도로 주옥 같은 우리 소설을 만화로 옮기는 작업에도 적극적이었다. 미완의 대표작 ‘토지’에서 해방 전후 시대의 옷이나 건물, 풍광 등을 철저하게 고증해 재현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만화 장르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원작자인 박경리 선생이 탄복했을 정도다. 이번 추모전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작업실 전시다. 여느 전시처럼 만화가 책상 하나만 덜렁 가져다 놓는 수준이 아니다. 번잡한 도시의 삶을 뒤로 하고 2005년 경기 안성 쌍령산 기슭에 꾸렸던 작업실을 거의 통째로 옮겨 왔다. ‘토지’가 만화로 옮겨지던 곳이다. 오세영의 손때가 가득 묻은 책상과 각종 화구에서부터 각종 자료와 만화책이 빼곡한 책장 10개, 일반 벽지 대신 만화책 낱장을 도배지로 사용했던 작업실 벽면과 작품 설정자료를 걸어 놓은 빨랫줄까지 고스란히 실어 날랐다. 실제 작업실 사진과 비교하며 작가의 깊은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전시다.지난해 5월 5일 세상을 뜰 때까지 그의 이름처럼 딱 30년 걸어온 만화가의 삶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높이 3m, 가로 12m짜리 ‘작품 맵’도 돋보인다. 그의 작품 중 50편을 시대와 만화, 문학과 만화, 인물과 만화 세 가지 키워드로 분류해 빅데이터 그래픽 형식으로 펼쳐놨다. 우리나라 리얼리즘 계열의 독보적인 만화가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인간진화론’, ‘점’, ‘돈’, ‘불’, ‘쏴쏴쏴쏴 탕’, ‘김노인 경행록’, ‘부자의 그림일기’, 그리고 ‘고샅을 지키는 아이’와 ‘14세 소녀의 봄’에서부터 문학과 만화의 예술적인 만남을 이뤄낸 이태준, 박태원, 안회남 등 월북작가 단편 순례, 교과서에도 실린 이효석과 김유정, 채만식의 단편, 박경리의 ‘토지’가 만화 지도에 올랐다. 오세영이 필생의 역작으로 여겼던 ‘토지’는 사실 비운의 작품이기도 하다. 예술가로서의 고뇌가 커지며 1부 7권에서 멈춘 채 더 이상 진척을 보지 못했다. 작가는 이 때 건강을 잃었고, 출판사는 결국 다른 만화가의 힘을 빌려 17권으로 완간했다.주로 어른을 위한 작품을 그려오던 오세영은 어린이 잡지 ‘보물섬’을 통해 세계 위인 30명 이야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이 중 12명이 한국 위인으로 고선지, 최무선, 장영실, 허준, 김홍도, 전봉준, 김구, 신돌석, 한용운, 김좌진, 방정환, 윤봉길이다. 여느 위인전 목록과는 달랐던 오세영의 안목을 작품 맵에서 느낄 수 있다. 오명천 선생의 문하로 만화계에 입문했지만 스승의 그림체에 얽매이지 않고 크로키와 데생에 열중하며 한편으로는 미술 해부학을 독학해 자신만의 그림체, 단군이래 최고의 데생력을 일궈낸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접할 수 있는 것 또한 작품 맵의 특징이다. 모처럼 컨디션도 좋고 집중력도 살아났다며 즐거이 열중했으나 마지막 작업이 되어버린 ‘삼국지’ 유고 원고를 비롯한 여러 작품의 원화들도 전시된다. 연필 데생으로 80쪽가량 작업한 ‘삼국지’ 원고는 10쪽 정도가 펜이 입혀졌다. 또 석정현, 차성진, 송동근 등 후배 작가 14명이 오세영과 얽힌 인연과 에피소드를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들도 곁들여진다.큐레이션을 맡은 이상홍 만화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시대가 오세영을 낳고 시대가 오세영을 데려갔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1980년 중반 어른을 독자층으로 한 만화의 시대가 열리며 세계적으로 자랑하고 싶은 작가를 탄생시켰지만 성인 만화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고 입지가 좁아진 채 급속히 웹툰 시대로 넘어오며 이러한 작가를 키워내지 못한 시대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산 같은 사람…사람 같은 산

    산 같은 사람…사람 같은 산

    “내 주변 생활에서 산을 늘 가까이 하니까 산이 보일 때가 있다. 산이 보인다는 것은 산 자체나 산의 명암, 광선, 산세들이 드라마틱하게 나와 만난다는 얘기다. ‘보이는 산’을 ‘가슴에 오는 산’이라고 할 수도 있다.”힘이 넘치는 필치로 한국의 산이 주는 감동을 표현했던 ‘산의 작가’ 박고석(1917~2002)의 탄생 100년을 기리는 ‘박고석과 산’전이 서울 종로구 삼청동 현대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 근현대미술의 대가로 꼽히지만 작품 수가 적어 일반적으로 덜 알려진 그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시대별 주요 작품 40여점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작품들을 유족과 화랑들, 미술관, 개인 소장자의 도움으로 한자리에 모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현대화랑 측은 강조했다. 1930년대 일본 유학 이후 30대 중반에 부산 피란 시절 그린 ‘범일동 풍경’부터 1950년대 후반의 추상작품, 산행을 시작하면서 가장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했던 1970~80년대의 작품들과 작고 10년 전인 1990년대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박고석은 유영국(1916~2002)과 함께 산을 작품의 주제로 삼은 대표적인 작가다. 유영국의 산이 추상적이고 명상적이며 관조적인 반면 강렬한 색채와 두꺼운 마티에르로 표현된 박고석의 산은 생명력이 꿈틀댄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 본 것 등 다양한 시점으로 포착한 한국의 산들이 10여호 크기의 캔버스 안에서 힘찬 기상을 뽐낸다. 미술평론가 서성록 안동대 교수는 “격변하는 한국사의 풍파 속에 살면서 변치 않는 자연을 상징하고 생명이 충만한 산에 매료된 듯하다”면서 “필선을 강조하고 원초적인 감동의 질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표현주의적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박고석의 산은 강하고 우직하다. 그가 예술을 대하고, 뭇사람을 대했던 것처럼. 미술평론가 오광수 뮤지엄산 관장은 “박고석만큼 산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산이 되는 경지는 없을 것 같다. 바라보는 대상으로서 산을 그린다기보다 산과 일체가 되는 경지, 인간과 자연이 분화되지 않고 일체화되는 경지에서 그의 산 그림의 본령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평양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박고석은 평양 숭실학교를 나와 1935년 일본에 유학해 일본대학 예술학부 미술과에 입학했다. 일본 체류 이후 귀국했으나 곧이어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부산에서 피란 생활을 했다. 사교적인 성격은 아니었지만 묵직한 인품과 믿음직한 언행으로 그의 주변에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몰려들었다. 이중섭, 한묵과의 우정은 각별했다. 이중섭의 유골 일부를 수습해 1년간 보관하다 1주기 행사를 열고 망우리 묘역에 봉안했을 정도였다. 1957년엔 한묵, 황염수, 이규상, 유영국과 함께 모던아트협회를 창립하고 추상작품을 시도했던 그는 1968년부터 산행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산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수시로 서울 근교의 도봉산, 백암산을 비롯해 강원도의 설악산 등 전국의 명산을 올랐다. 저마다의 산이 주는 감동을 스케치북에 담고, 집으로 돌아와서 유화로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하지만 스케치가 유화로 옮겨지는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그리더라도 작은 사이즈가 대부분이었다. 현대화랑 박명자 회장은 “작품을 받으러 명륜동 댁에 가면 등산화와 배낭 같은 등산장비만 가득하고 벽에는 미완성 작품만 걸려 있어 난감했던 적이 많았다”고 회고한다. 현대화랑은 이번 회고전을 계기로 미술계에서 그의 위상을 보여 주는 기초적인 작업으로 박고석의 작품 200여점을 담은 국영문 화집도 발간했다. 화집에는 대표적인 유화작품뿐 아니라 그동안 흔히 볼 수 없었던 수채화와 스케치, 삽화들이 수록돼 있다. 부인 김순자(90) 여사는 “집에 차례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는데도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면서 산으로 훌쩍 떠날 정도로 산을 좋아했고, 제일 싫어하는 질문은 ‘언제 돌아오느냐’는 것이었다”면서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야속하고 서운했지만 지금은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고 미소 지었다. 전시는 오는 23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故강선영 태평무 명예보유자 1주기 맞아 안성서 동상 제막식

    故강선영 태평무 명예보유자 1주기 맞아 안성서 동상 제막식

    태평무(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명예보유자였던 강선영씨의 1주기를 맞아 ‘강선영 동상 제막식’이 25일 경기 안성시 태평무전수관에서 열렸다. 동상은 전국의 태평무 이수·전수자들이 1년 동안 기금을 모아 만들었다.강씨는 태평무를 비롯해 한량무, 승무 등 스승이 만든 한국 전통춤의 백미들을 배워 전승한 인물이다. 태평무는 왕과 왕비가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는 춤을 재현한 것으로, 한성준 선생이 왕십리 당굿에 독특한 무속장단을 바탕으로 창안해 손녀 한영숙과 제자 강선영에게 가르쳤다. 강씨에 의해 전승돼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됐다. 경쾌하고 절도 있어 한국 민속춤의 정중동의 흥과 멋을 지니고 있다. 강씨는 1960년 강선영무용단을 창단해 한국 무용인으로서는 최초로 참가한 파리 국제민속예술제를 시작으로 400여 차례에 걸쳐 한국무용을 세계 각국에 선보였다. 2006년에는 한국 전통무용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170개국을 돌며 1000회 이상의 공연을 해 한국 무용가 중 가장 많은 나라에서 가장 많은 공연을 한 기록을 세웠다. 개인 재산을 털어 고향인 안성에 태평무전수관을 개관, 전통문화 전승과 춤꾼 발굴·양성에 힘썼다. 2013년 태평무 명예보유자가 됐으며 한국무용협회장, 예총 회장,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태평무보존회 조흥동 위원장은 “한국 예술계의 큰 자랑이었던 스승님의 업적을 상징물로 남겨 후세들에게 전통예술의 숭고함을 현장 교육으로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태평무 명예보유자 고 강선영 선생 동상 제막식

    태평무 명예보유자 고 강선영 선생 동상 제막식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명예보유자였던 강선영씨의 1주기를 맞아 ‘강선영 동상 제막식’이 25일 경기 안성시 태평무전수관에서 열렸다. 동상은 전국의 태평무 이수·전수자들이 1년 동안 기금을 모아 만들었다.강씨는 태평무를 비롯해 한량무, 승무 등 스승이 만든 한국 전통춤의 백미들을 배워 전승한 인물이다. 태평무는 왕과 왕비가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는 춤을 재현한 것으로, 한성준 선생이 왕십리 당굿에 독특한 무속장단을 바탕으로 창안해 손녀 한영숙과 제자 강선영에게 가르쳤다. 강씨에 의해 전승돼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됐다. 경쾌하고 절도 있어 한국 민속춤의 정중동의 흥과 멋을 지니고 있다. 강씨는 1960년 강선영무용단을 창단해 한국 무용인으로서는 최초로 참가한 파리 국제민속예술제를 시작으로 400여 차례에 걸쳐 한국무용을 세계 각국에 선보였다. 2006년에는 한국 전통무용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170개국을 돌며 1000회 이상의 공연을 해 한국 무용가 중 가장 많은 나라에서 가장 많은 공연을 한 기록을 세웠다.개인 재산을 털어 고향인 안성에 태평무전수관을 개관, 전통문화 전승과 춤꾼 발굴·양성에 힘썼다. 2013년 태평무 명예보유자가 됐으며 한국무용협회장, 예총 회장,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태평무보존회 조흥동 위원장은 “한국 예술계의 큰 자랑이었던 스승님의 업적을 상징물로 남겨 후세들에게 전통예술의 숭고함을 현장 교육으로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섹션 이하늬 “세월호 추모, 국민으로서 가진 기본적인 생각” 소신 발언

    섹션 이하늬 “세월호 추모, 국민으로서 가진 기본적인 생각” 소신 발언

    ‘섹션TV 연예통신’에 출연한 이하늬가 세월호 추모에 관한 생각을 밝혔다. 16일 방송된 MBC ‘섹션TV 연예통신’을 통해 이하늬의 인터뷰가 전파를 탔다. 이날 이하늬는 “‘역적’으로 바쁜 일상을 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하며, 건강미를 지키는 비결로 “거의 매일 운동하고 있다. 매일 2~3시간씩은 한다”고 말했다. ‘역적’에서 장녹수 역을 맡은 것에 대해 “부담이 많이 됐다. 국악과를 나왔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하늬는 롤모델로 시상식에서 소신 발언을 펼친 메릴 스트립을 꼽으며 “하고 싶은 말을 꽁꽁 싸매기보다 소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또한 세월호 1주기 때 SNS를 통해 추모의 뜻을 밝히는 등 소신을 드러낸 것에 대해서는 “배우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가진 기본적인 생각인 것 같다. 슬픔을 나눈다는 건 큰 위로”라고 말했다. 사진=MBC ‘섹션TV 연예통신’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북마크] 여기 ‘기록’이 있습니다

    [북마크] 여기 ‘기록’이 있습니다

    수습기자였던 2000년 6월 30일. 유족들의 멘트를 받아 오라는 선배 기자의 지시로 갔던 현장이 씨랜드 참사 1주기 추모식이었습니다. 씨랜드 사건은 한 해 전 경기도 화성의 청소년수련원 씨랜드에서 일어난 불로 5~6세 유치원생 19명과 교사 등 23명이 숨진 참사입니다. 그날 유족들로부터 한마디도 듣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말조차 건네지 못했습니다. 숨진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엄마(아빠)가 미안해”라고 절규하는 부모들 속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오열했을 뿐입니다. 피눈물을 흘린다는 말의 뜻을 그때 실감했습니다.그 수습기자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됐지만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참사들, 인재(人災)와 안전 불감증이라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는 진단, 그리고 개인에게 재난의 고통을 전가하는 국가의 몰염치한 태도조차. 16일은 봄이어서 더 무참했던 세월호 참사 3년입니다. 배는 뭍으로 귀환했지만 우리는 304명의 죽음 뒤에 숨은 괴물의 정체를 여·전·히 알지 못합니다. 출판계는 남겨진 자들의 기록으로 추모를 대신합니다. ‘잊지 않을게 절대로 잊지 않을게’(해토), ‘재난을 묻다’(서해문집),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오름) 등 참사 3년을 맞아 출간된 책들은 우리의 상처와 기억이 오롯이 담긴 ‘시대화’(時代畵)입니다. 책으로 복원된 기록 중 ‘44년 전의 세월호’ 남영호 참사가 있습니다. 제주~부산을 오가는 여객선 남영호는 1970년 12월 15일 새벽 침몰해 최소 319명, 최대 337명(정부 기관별 사망자 추정)이 숨진 비극입니다. 침몰 원인은 과적으로 결론 났지만 당시 정부가 사고 발생을 알고도 10시간 넘게 구조에 나서지 않은 사실은 은폐됐습니다. 정부는 분노한 유족들을 불순 세력으로 매도했습니다. 두 비극이 유일하게 다른 점은 기록입니다. 남영호 참사가 제대로 된 공식 기록조차 찾기 어려운 “망각의 완전한 승리”였다면, 세월호는 우리 안에 호명되고 기록되고 환기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소설가 김훈 선생과의 저녁식사 중 ‘세월호를 소설로 쓰려고 하지 않으셨나’고 물었습니다. 선생은 “세월호 자료도 모으고 팽목항과 동거차도를 기웃거리며 인터뷰도 했지만 그 참담함과 비통함은 글의 한계 너머에 있다”고 답하시더군요. 강유정 문학평론가는 문학잡지 릿터 5호에서 “말을 하든 문장을 쓰든 마침에 당도하기가 어렵고 특히 술어가 잘 떠오르지 않게 된 소설가(황정은)들의 고백을 전하며 “2014년 4월 16일 이후 쓰는 것, 써야 하는 것, 보고 들었던 그 ‘사건적 경험’에 대한 사후적 윤리 감각(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기억이 기록되지 않는 이상 진실에 닿을 수 없다”(416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며 펜을 놓지 않는 수많은 무명(無名) 기록자들의 헌신이 고맙습니다. ipsofacto@seoul.co.kr
  • 성균관대 ‘세월호 3주기 추모강의’ 대실 금지에 학생 반발

    성균관대가 세월호 사고 3주기를 맞아 학생들이 준비한 ‘세월호 추모 강연회’를 학교 내에서 열지 못하도록 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앞서 2015년 세월호 사고 1주기 때도 학생들이 마련한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학교측은 허락하지 않았다. 성균관대 학생단체인 성균인행동은 29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종로구 600주년 기념관 앞에서 학교의 강연회 불허 결정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고 “학내 강연을 허락하지 않는 학교 당국은 정치적이며 비교육적”이라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 3주기 강연회’를 이날 오후 6시 학교 정문 앞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학교 측은 교육목적 이외 강의실 대여는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성대 관계자는 “외부 관계자가 참여하는데다 정치적으로 비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학생들은 이 행사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데도 학교가 부당한 지위를 이용해 학생들의 정치적 자유를 침해했다고 반박했다. 이 대학은 2014년 경기 수원 자연과학캠퍼스 학생회실에서 세월호 유가족 초청 간담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학생회장의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아 반발을 사기도 했다. 4·16국민조사위원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성균관대는 지난 3년간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강연과 간담회를 불허해왔다”며 “관련 강연이 정치적이고 비교육적이라는 (학교의) 왜곡 폄하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 성균관대는 학문 탐구의 자유를 보장하는 대학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바르셀로나, 크루이프 추모하며 동상 세우고 경기장 이름 붙이기로

    바르셀로나, 크루이프 추모하며 동상 세우고 경기장 이름 붙이기로

    스페인 프로축구 FC 바르셀로나가 1년 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토털 사커의 창시자 요한 크루이프를 추모하기 위해 누 캄프에 동상을 세우기로 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구단은 고인의 1주기 하루 뒤인 25일(이하 현지시간) 내년에 시작하는 누 캄프 재개발 계획중 하나인 B팀 경기장에 고인의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바르셀로나 시의회에 거리 이름과 특정 공간 이름에 고인의 이름을 딸 수 있도록 청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셉 마리아 바르토뮤 구단 회장은 “우리가 연습 구장에 짓고 있는 경기장 이름을 더 이상 ‘미니에슈타디’라고 하지 않고 지금부터는 요한 크루이프 스타디움으로 부를 수 있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어 “크루이프는 장벽들을 허물었고, 우리로 하여금 고개를 들어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남자였다”고 돌아봤다. 아들 조르디는 고인이 바르셀로나 시절 입었던 등번호 9번 유니폼과 1974년부터 수상한 발롱도르 트로피들을 구단 박물관의 요한 크루이프 추모관에 기증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조르디는 “이번 합의는 아버지가 사랑했던 클럽을 앞으로도 늘 대번하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바르셀로나 선수로 클럽 역사에 처음 따낸 1992년 유로피언컵을 비롯해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13개의 우승 트로피를 수집했다. 선수로는 스페인리그와 스페인컵 한 차례뿐이었지만 감독으로는 유로피언컵과 유럽컵위너스컵, 유럽슈퍼컵 각 1회, 스페인리그 4회, 스페인컵 한 차례, 스페인슈퍼컵 3회 우승을 경험했다. 아약스 선수로는 유러피언컵 3회, 유럽슈퍼컵 2회, 네덜란드리그 우승 8차례, 더치컵 5회, 인터콘티넨탈컵과 슈퍼컵 각 1회 들어올렸다. 이 팀의 감독으로는 유럽 컵위너스컵 1회, 더치컵 2회 우승을 기록했다. 페예노르트 선수로는 네덜란드리그와 더치컵 1회씩 우승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더딘 진상규명·인양작업… 9명 여전히 바다에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는 침몰했다. 사고 당일 오전 8시 52분 당시 단원고 2학년이던 최덕하군은 전남소방본부 상황실에 “배가 기울고 있다”며 첫 신고를 했다. 하지만 최군은 결국 구조되지 못했다. 사고 다음날인 17일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진도체육관을 찾았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가능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구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약속은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그해 5월 19일에는 해양경찰청 해체를 골자로 하는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대국민 담화가 있었다. 7월에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순천 매실밭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시신 훼손 상태가 심해 ‘진짜 유병언이 맞느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경찰은 변사자 오른쪽 손가락 지문이 유 회장과 같다고 발표했다. 그해 11월 정부는 수색작업 종료를 발표했다. 실종자 9명이 여전히 찬 바다에 남은 상황이었다. 그해 말에는 참사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발족했다. 하지만 특조위는 조사 대상자들의 비협조 등으로 성과 없이 지난해 9월 문을 닫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2015년 4월 10일 해양수산부는 세월호 인양 결정을 발표했다. 8월에는 중국 상하이샐비지를 인양업체로 선정해 작업을 진행했다. 그해 1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준석 선장에게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나머지 선원 14명의 징역도 확정됐다. 당초 정부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6월 세월호 인양이 끝났어야 했지만 인양 핵심 작업이 그때서야 시작됐다. 김영석 해수부 장관은 지난 3월 세월호 인양을 4~6월에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연기에 연기를 거듭했던 세월호 본체 인양은 마침내 22일 오후 8시 50분쯤 착수됐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하위권 2개 등급 대학 정부 지원 끊는다

    하위권 2개 등급 대학 정부 지원 끊는다

    130개 대학서 5만명 추가 감축 자율개선 땐 행정·재정적 지원교육부가 9일 발표한 2주기(2017∼2019년) 대학 구조개혁평가 기본계획에 따라 대학들의 명암이 분명하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앞서 4만여명을 목표로 진행된 1기에 이어 2018학년도 입학정원의 10분의1에 달하는 인원을 줄여야 하는 데다 평가방식이 바뀌면서 특히 하위권 대학이 상당한 압력을 받게 됐다. 2기 계획에 따라 대학들은 내년 3월부터 2021학년도까지 입학정원 5만명을 줄여야 한다. 2018학년도 기준 입학정원은 모두 50만명이다. 교육부는 내년 3월 1단계 평가를 시행하고 5월 결과를 발표한다. 2단계 평가는 내년 6월 시행하고 그 결과는 내년 8월에 나온다. 현재 교대를 제외한 4년제 대학은 189개교, 전문대학은 138개교로 모두 327개교다. 이 가운데 종교계나 예체능계 등 30여곳을 제외한 290곳 정도가 이번 평가 대상이다. 교육부는 1단계 평가에서 50% 대학을 ‘자율개선 대학’으로 지정하고 나머지 50% 가운데 10% 정도를 자율개선 대학으로 승급시킨다. 이렇게 따지면 290곳 가운데 130곳 안팎의 대학이 5만명을 줄이는 셈이다. 이번 2주기 평가는 실효성을 높이고자 1주기 평가와 비교해 평가 결과와 각종 재정지원 사업의 연계를 강화했다. 자율개선 대학으로 선정되는 160곳 안팎의 대학은 각종 재정지원 사업에서 인센티브 등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는다. 반면 하위 대학인 X·Y·Z 대학은 강한 압박을 받는다. 최하위인 Z등급 대학에는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 장학금, 학자금 대출 등 재정지원이 전면 제한된다. Y등급은 재정지원이 일부 제한된다. 교육부는 이날 “하위 등급을 받은 대학은 교육부의 재정지원 사업에 아예 신청하지 못하도록 자격을 제한할 방침”이라고 했다. 1주기 평가 당시 하위 등급을 받은 일부 대학이 다른 재정지원 사업 대상에는 계속 포함돼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 사업이 ‘부실대학 연명 수단’이 된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하위 대학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출구도 마련했다. 통폐합 계획을 사전에 제출하는 대학은 구조개혁평가 대상에서 제외한다. 현행 통폐합에 따른 정원 감축 기준이 완화되도록 관련 법령, 규정을 정비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재 5∼6곳에서 통폐합 의사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국채보상·국권 회복 이끈 독립운동史 되새긴다

    국채보상·국권 회복 이끈 독립운동史 되새긴다

    대한매일신보 국채보상운동, 대구에서 110주년 기념식‘친일 매국 비판’ 신채호 선생 청주서 순국 81주기 추모식 구한말 국권 회복을 위해 전개한 국채보상운동 110주년 기념식이 21일 대구시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다.국채보상운동은 1904년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으로 경제가 파탄에 이르자 1907년 대구에서 서상돈, 김광제 등이 중심이 돼 의연금을 모아 일본에 진 빚을 갚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특히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가 2000만 동포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취지문과 함께 대대적인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민족적 호응을 이끌어 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국채보상운동은 3개월 만에 사실상 좌절됐지만 독립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 언론인이었던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81주기 추모식이 21일 충북 청주의 ‘단재 신채호 선생 사당 및 묘정’에서 열린다고 20일 밝혔다. 1880년 충청도 회덕현(현재 대전시)에서 태어난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대한매일신보 등에 친일파 매국행위 비판과 국권회복운동을 주창하는 내용의 논설을 게재해 민족의 각성을 촉구했다. 선생은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자 대만으로 가던 중 일제에 체포돼 안중근 의사가 순국했던 중국 랴오닝성 다롄의 뤼순 감옥에 수감돼 1936년 옥사했다.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 명상 한 걸음 사색 한 걸음… 구로구에 ‘더불어 숲길’

    명상 한 걸음 사색 한 걸음… 구로구에 ‘더불어 숲길’

    지난해 1월 15일 신영복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다. 당시 느낀 소회와 고뇌를 편지 형식으로 적어 내놓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스테디셀러다. 신영복은 ‘변방을 찾아서’,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등 많은 저서를 출간하며 시대의 지성으로 자리매김했다. 소주 ‘처음처럼’도 그의 글씨체로 친숙하다. 서울 구로구가 신 전 교수의 1주기를 맞아 ‘더불어 숲길’을 조성해 주민들에게 개방했다고 18일 밝혔다. 그의 올곧은 정신을 기리고 주민들에게 사색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더불어 숲길’은 신 전 교수가 재직했던 성공회대 뒷산에 길이 480m, 폭 2m로 조성된 산책로다. 이름 또한 세계 22개국을 여행한 기록과 함께 더불어 사는 ‘연대’의 가치를 담은 신 전 교수의 대표적 저서 ‘더불어 숲’에서 착안해 명명했다. 숲길 전 구간에는 주민들이 편안하게 걸으며 명상과 사색을 즐길 수 있도록 매트를 깔았다. 산책 도중 쉴 수 있는 등의자도 설치했다. 특히 ‘더불어 숲길’의 주인공인 신영복 교수가 생전에 직접 쓴 서화작품 31점을 안내판 형식으로 해놔 주민들의 눈길을 끈다. ‘더불어 숲길’은 인근 푸른수목원, 구로올레길 3코스와도 연결돼 올레길 최고의 코스로 평가받는다. 앞으로 구로구는 푸른수목원을 확장하고 이 일대를 ‘더불어 숲’으로 이름 붙일 예정이다. 이성 구로구청장은 “‘더불어 숲길’이 사색과 명상의 길, 신영복 교수의 참된 뜻을 함께 느껴 보는 길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더불어 숲’ 실현 강조한 문재인·안희정

    ‘더불어 숲’ 실현 강조한 문재인·안희정

    ‘노무현’이란 정치적 뿌리를 뒀지만, 대권 경쟁자이기도 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가 15일 성공회대에서 열린 신영복 선생의 1주기 추도식에 나란히 참석했다. 최근 일부 언론 등에서 ‘친노(친노무현) 적자 경쟁’에 불을 지폈지만, 둘은 이날 화기애애한 모습을 연출했다. 옆자리에 앉은 문 전 대표가 얘기를 건네자 안 지사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경청했다. 지난 대선 슬로건인 ‘사람이 먼저다’의 글씨를 선물받는 등 고인과 각별했던 문 전 대표는 추도사에서 “촛불 하나는 가냘프지만 많은 촛불이 모이니 세상을 바꾸는 도도한 힘이 된다. 선생님 뜻대로 많은 촛불과 함께 더불어 정권교체하고 세상을 꼭 바꾸겠다”면서 “2주기 추도식 때는 선생님이 늘 강조하셨던 ‘더불어 숲’ 이제 이뤄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보고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안 지사 또한 “신영복 정신으로 ‘더불어 숲’을 만들어서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들자는 다짐을 한다”며 “그 다짐을 저는 정치의 영역에서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안 지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구체적인 사제의 관계를 맺은 적은 없으나 저에게 그분은 큰 스승이었다. 진보의 힘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이 그립다”고 썼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故 신영복 선생 1주기 추모식…문재인·안희정, 웃는 얼굴로 악수

    故 신영복 선생 1주기 추모식…문재인·안희정, 웃는 얼굴로 악수

    15일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의 1주기 추도식이 열린 가운데 야권의 대선주자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가 나란히 참석했다. 이들은 성공회대 성미가엘 성당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신 교수의 저서에 나오는 ‘더불어숲’을 언급하며 ‘신영복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앞다퉈 강조했다. 행사 시작 전 문 전 대표는 추도식장에 안 지사가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서 웃는 얼굴로 악수하기도 했다. 문 전 대표는 추모사에서 “노 전 대통령 퇴임 무렵, 어떻게 한사람이 5년만에 세상을 다 바꾸겠냐며 ‘우공이산(愚公移山)’ 글씨로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주셨다. 노 전 대통령이 이 말을 좋아해 퇴임 후 ‘노공이산’을 아이디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문 전 대표는 “신 선생은 더불어민주당의 ‘더불어’라는 당명을 주고 가셨다. 선생의 ‘더불어숲’에서 온 말이라면서 ”여럿이 더불어 함께하면 강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많은 촛불이 모이니 세상을 바꾸는 도도한 힘이 됐다. 촛불과 함께 더불어 정권을 교체하고, 내년 2주기 추도식때는 선생이 강조하신 더불어숲이 이뤄지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보고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추모사에서 ”86세대인 저희는 혁명을 하고 싶었지만, 1990년대 언젠가 혁명의 시대가 끝이 나버렸다. “그 순간 선생은 열정과 철학의 시대가 끝날 리 없다, 혁명은 영언히 지속되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고 말했다. 안 지사는 “정치에 있어 제 스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이었지만, 사상과 지혜에 있어서 스승은 신 선생이었다”고 “신영복 정신으로 더불어숲을 만들어 대한민국을 새로 만들지는 다짐,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다짐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는 “불의한 정권에 분노하고, 고된 삶에 지친 시민들이 광장으로 모였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중요하다는 그 뜻을 받들어 2017년 정유년에는 더불어 숲이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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