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1주기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성명서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교원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18세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 55세
    2026-08-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90
  • 노회찬 1주기… 곁에는 6411 버스

    노회찬 1주기… 곁에는 6411 버스

    노회찬 전 의원이 2012년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당선 수락 연설에서 언급했던 ‘6411 버스’ 모형물이 노 전 의원 1주기인 23일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묘역에 놓여 있다. 연합뉴스
  • 故 노회찬 1주기… 곁에는 6411 버스

    故 노회찬 1주기… 곁에는 6411 버스

    고 노회찬 의원이 지난 2012년 진보정의당 공동대표 당선 수락연설에서 언급했던 ‘6411 버스’ 모형물이 노 의원 1주기인 23일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묘역에 놓여 있다. 연합뉴스
  • tbs, 故노회찬 서거 1주기 특집다큐 ‘함께 꾸는 꿈, 노회찬’ 방송

    tbs, 故노회찬 서거 1주기 특집다큐 ‘함께 꾸는 꿈, 노회찬’ 방송

    tbs가 고(故) 노회찬 의원 서거 1주기를 맞아 특집다큐 ‘함께 꾸는 꿈, 노회찬’을 방송했다. 23일 오전 9시 방송된 ‘함께 꾸는 꿈, 노회찬’에서는 고교 시절 유신반대 운동을 시작으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거쳐 진보정당 건설에 앞장선 고인의 족적이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 조명됐다. 이념 차이에도 고인과 가깝게 지낸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은 “가슴이 아프다는 게 시적 표현이 아닌 물리적인 통증일 수 있다는 걸 (그의 부고를 듣고) 처음 알았다”며 눈물을 보였다. 노 전 의원 사후 세 번의 앵커 브리핑으로 그를 추모한 손석희 JTBC 사장은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따뜻한 사람, 휴머니스트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출마해 ‘삼겹살 판갈이‘ 발언으로 주목받으며 의정 활동을 시작한 고인은 특유의 촌철살인으로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이후 잇달아 낙선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와 가까웠던 변영주 감독은 ”노회찬의 언어는 많은 고민을 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좋은 언변“이라도 말했다. 방송에서는 고인이 고교시절 만든 것으로 알려진 노래 ‘소연가’의 친필 악보와 초등학생 시절 쓴 일기가 최초 공개됐다. 고인이 숨지기 몇 달 전, 고교 동창들에게 전한 가슴 뭉클한 선물도 소개됐다. tbs 특집다큐 ‘함께 꾸는 꿈, 노회찬’은 23일 밤 10시 30분에 재방송된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투명인간 같던 우릴 외롭지 않게 하겠단 노회찬, 잊을 수 없어”

    “투명인간 같던 우릴 외롭지 않게 하겠단 노회찬, 잊을 수 없어”

    노회찬 의원이 ‘투명인간’이라고 부르며 안타까워했던 노동자들은 그의 죽음을 유독 슬퍼했다. 1년 전 장례식장에는 양복과 구두 차림의 사람들보다 남루한 복장의 서민, 작업화를 신은 채 현장에서 달려온 노동자들이 많았다. 노 의원을 ‘직장동료’로 생각했던 국회 청소노동자들과 노 의원이 끝내 읽지 못하고 떠난 마지막 논평의 주인공 KTX 복직 승무원을 지난 19일과 20일 만났다.“내가 여기 있는 동안에는 여러분들을 외롭게 하지 않겠습니다.” 지난해 7월 27일 국회장 당시 노 의원을 눈물로 배웅했던 김영숙(64) 국회환경노조위원장은 “우리를 외롭게 하지 않겠다던 노 의원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2016년 4월 총선에서 국회에 새로 들어온 당이 늘어나면서 공간이 부족해졌다. 국회 사무처는 본청 2층에 있던 청소노동자들의 노조사무실을 빼기로 했다. 중재에 나선 노 의원은 “정 안 되면 내 의원실 공간을 반으로 나눠쓰자”면서 “적어도 청소노동자들을 외롭게 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청소노동자들은 마음속 깊이 노 의원을 ‘직장동료’로 생각했다. 박태점(65) 사무국장은 “노 의원은 우리가 장갑을 벗을 때까지 기다린 후에 악수를 하셨다”면서 “여성의날에는 꽃을, 국회로 돌아오신 뒤에는 점심을 사주셨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노 의원이 말한 ‘투명인간’이 딱 우리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청소노동자들은 국회 직원이 출근하기 전에 사무실을 청소하고 빠지려고 새벽 첫차를 타야 한다. 그러면서도 국회에서 무슨 행사라도 하면 사라져야 하는 투명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2017년 직접고용과 함께 투명인간에서 벗어났다. 노 의원의 지지가 큰 힘이 됐다. 박 사무처장은 “국회직원이 된 뒤부터는 국회행사 초대장을 받는다”면서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게 소속감”이라고 귀띔했다.국회 청소노동자들은 노 의원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운구 차가 국회에 들어왔을 때 노조 임원과 대의원 25명이 도열했다. 박 사무처장은 “그날 참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들은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열린 49재에도 참석했다. 청소노동자들은 “노 의원의 장례식은 달랐다”고 입을 모았다. 높은 사람이 사망하면 높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을 찾지만, 노 의원의 장례식장에는 장애인과 서민, 노동자들이 몰렸다는 것이다. 12년 복직 투쟁 끝에 일터로 돌아온 KTX 승무원들도 장례식장을 지킨 노동자들이다. 노 의원이 사망하기 이틀 전 KTX 승무원들은 복직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했다. 노 의원은 이들을 축하는 논평을 썼지만, 끝내 발표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복직 이후 한티역 고객지원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승하(40) 전 지부장은 “좋은 소식을 가지고 갔는데, 죄송한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승무원들은 복직 1주년 자축 대신 고속도로 서울요금소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는 톨게이트 요금수납 여성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도로공사 요금수납 노동자 1500여명이 해고됐다는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김 지부장은 “노회찬 정신은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것”이라면서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행사를 하게 돼 더 뜻깊다”고 설명했다. 2006년 KTX 승무원들이 첫 파업에 나섰을 때 노 의원은 이들의 싸움을 전폭 지지했다. 김 전 지부장은 “우리와 함께한 첫 국회의원이었다”면서 “굉장히 든든했다”고 회상했다. 김 전 지부장은 “저희가 12년간 잃은 것은 사회적 신뢰였다”면서 “우리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사회에 희망을 품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동자들이 여전히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한 번 쳐다봐주는 현실은 그대로”라면서 “개선되는 속도가 너무나 더딘 것은 아닌지, 정말로 나아지고는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고립돼 가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며 노 의원의 빈자리가 더 커 보인다. 김 전 지부장은 “많은 사람들이 불편만 보고 왜 파업하는지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왜 싸우는지 알려주는 스피커 역할을 했던 노 의원이 안 계시니 더 그립다”고 말했다. 글 사진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잘되지 않아도 진짜 좋아서 했던 진보정치…노회찬 정신은 당선 전후가 다르지 않은 것”

    “잘되지 않아도 진짜 좋아서 했던 진보정치…노회찬 정신은 당선 전후가 다르지 않은 것”

    “내가 왜 잘되지 않는 일(진보정치)을 계속하는지 아냐. 진짜 좋아하는 일이라서 그래.” 2014년 9월 추석, 노회찬 의원이 취기가 남은 목소리로 조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날 노 의원은 동생 회건씨 집에서 평소답지 않게 취할 정도로 음복했다. 노 의원의 큰조카인 선덕(29)씨는 잠든 큰아버지를 차로 집까지 모셔다드렸다. 선덕씨는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 노회찬재단에서 이뤄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가족에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큰아버지가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속마음을 보이셨다”고 회상했다. 선덕씨는 자녀가 없는 노 의원의 빈소에서 상주 역할을 했고 운구 때 영정을 들었다. 당시 노 의원은 2013년 2월 ‘삼성 X파일’에 등장하는 검사 7명의 실명을 밝힌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상태였다. 같은 해 4월 노 의원의 지역구였던 노원구 재보궐 선거에 출마한 아내이자 동지인 김지선 진보정의당 후보는 안철수 후보에게 졌다. 이듬해 7월 동작구 재보궐 선거에 나선 노 의원은 나경원 의원에게 패배했다. 900여표 차이였다. 진보정당은 성공할 수 없다는 비관과 민주당 표만 깎아 먹는 세력이라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그가 세상에 외치고 싶었던 말을 조카에게 했을지도 모른다.선덕씨는 큰아버지를 멘토로 삼았다. 고민이 있을 때면 와인을 사 들고 큰아버지를 찾아갔다. 선덕씨는 “항상 겸손하고 유머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가 로스쿨에 진학한 것도 큰아버지 같은 사람을 옆에서 도와주고 싶어서다. 선덕씨는 진로 상담을 하다가 노 의원에게 “미래를 알지 못하면서도 매 순간 선택을 하실 텐데 어떤 기준으로 하시냐”고 물었다고 한다. 노 의원은 “잘 모르겠을 때는 제일 어려운 게 맞다”고 답했다. 이 말은 선덕씨의 좌우명이 됐다. 2018년 7월 23일 노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는 당부를 유서에 남겼다. 큰아버지는 항상 같은 차를 타고, 똑같은 집에 살면서도 자신감이 넘쳤다. 그래서 충격이 더 컸다. 선덕씨는 5일장을 치르는 내내 “도대체 큰아버지가 하시려던 건 무엇인가”라고 되뇌었다. 운구차가 화장터로 가다가 신호에 걸려 멈췄을 때다. 시민들이 모두 발길을 멈추고 큰아버지의 영정사진을 향해 목례를 했다. 선덕씨는 “정치인 한 명이 많은 사람에게 이런 감동을 줄 수 있구나. 큰아버지가 하시려는 게 이런 거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그때야 들었다”고 말했다. 큰아버지의 빈자리는 그대로다. 찻잔을 꺼내려다가 큰아버지가 보내 준 녹차를 보면 그리움이 밀려온다. 선덕씨는 “일상 속에서 큰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그립다”면서 “1주기가 다가오면서 아버지와 큰어머니가 다시 힘들어하신다”고 걱정했다. 아이가 없었던 노 의원은 조카들을 예뻐했다. 형편이 좋지 않았는데도 늘 조카들 선물을 챙겼다. 그중 여섯 살 때 받았던 두발자전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처음 타는 두발자전거를 뒤에서 잡아 준 사람도 큰아버지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이런 것도 들어 봐야 한다”며 서태지 음악 테이프를 줬다. ‘전태일 평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부터 법학 책도 숱하게 받았다. 하루는 열 살이던 선덕씨의 동생이 두 번 연속으로 방송국 토론 기념시계를 받고 실망한 표정으로 “또 시계야”라고 말했다. 노 의원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급히 밖으로 나가더니 만원을 뽑아왔다. 안경에는 서리가 잔뜩 끼어 있었다. 노 의원의 죽음에 청년들이 특히 슬퍼했던 건 청년을 대하던 자세 때문이었을 것이다. 선덕씨는 “큰아버지는 자기가 아는 것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흥미로워하는 것을 생각하고 대화 주제로 삼았다”면서 “영화, 음식, 4차산업, 비트코인 이야기를 자주 했고 ‘꼰대’처럼 말씀하시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선덕씨는 ‘노회찬 정신’을 ‘진정성’이라고 했다. 그는 “진정성은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 번의 행위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꾸준히 밀고 가야 진정성 있는 정치인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 노회찬이 노동자에게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당선 이전과 이후가 같았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정신이 계속 이어지면 좋겠어요.”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심상정 “노회찬이 이루고자 했던 진보 집권의 꿈 향해 나아가겠다”

    심상정 “노회찬이 이루고자 했던 진보 집권의 꿈 향해 나아가겠다”

    고 노회찬 전 정의당 의원 서거 1주기를 사흘 앞둔 20일 경기 마석 모란공원에서 고인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가 열렸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추도사를 통해 “대표님은 걸음을 멈추셨지만 저와 정의당은 대표님과 함께 끝내 진보정치의 길을 계속 이어 완성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심상정 대표는 이날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노 전 의원 서거 1주기 추모제 및 묘비 제막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했다. 심 대표는 “노회찬의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저 밑에서 서러움이 밀려온다. 분노와 죄송함 그리고 아픔과 그리움, 안타까움 같은 헤아릴 수 없는 감정들이 서로 얽혀 큰 덩어리가 되어 솟구쳐 올라온다”면서 “저는 아직도 그 감정 덩어리를 해체할 만한 용기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심 대표는 “저는 노회찬 대표님이 길을 열고 개척한 진보정치에 입문해서 20년 간 고단한 진보정치의 능선을 함께 걸어왔다. 우리는 같이 쓰러졌다가 같이 일어서 왔다. 서로가 서로의 길이 되어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다”면서 “대표님은 걸음을 멈추셨지만, 저와 정의당은 대표님과 함께 끝내 그 길을 계속 이어 완성해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심 대표는 또 “우리 정의당이 서 있는 곳은 바로 노회찬 대표님이 서 있던 곳”이라면서 ‘6411번 버스’를 언급했다. 이 버스는 고인이 지난 2012년 진보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이야기한 버스로, 고인은 당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각, 같은 정류소에서 같은 사람이 탑니다. 누가 어느 정류소에서 타고 어디서 내릴지 모두가 알고 있는 매우 특이한 버스입니다. (중략) 이분들은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다. 그냥 아주머니,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중략)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은 투명인간입다. 존재하되 우리가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첫 버스를 타고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강남으로 가는 청소노동자의 삶을 보듬어 줘야 한다는 고인의 호소였다. 심 대표는 “이름 없는 수많은 보통 시민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청년들, 자영업자들, 장애인들. 6411번 버스를 타면 늘 만날 수 있는 그분들과 두 손 꼭 잡고 차별 없는 세상, 정의로운 복지국가를 향해 힘차게 걸어가자는 것이 노회찬의 꿈이고, 우리 정의당의 길”이라면서 “대표님이 생을 다해 이루고자 했던 진보 집권의 꿈을 향해 저와 정의당, 당당히 국민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심 대표는 고인의 서거 1주기인 오는 23일엔 노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경남 창원을 찾아 추모 행사에 참석한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포토] 노회찬 서거 1주기, 묘비 제막식

    [포토] 노회찬 서거 1주기, 묘비 제막식

    20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열린 노회찬 의원 서거 1주기 추모제에서 참석내빈과 유족들이 묘비를 제막하고 있다. 2019.7.20 연합뉴스
  • “유관순부터 이한열까지…그 희생은 청년정신이 밑바탕”

    “유관순부터 이한열까지…그 희생은 청년정신이 밑바탕”

    “유관순, 김상옥, 조명하, 이봉창, 윤봉길, 조소앙, 신채호, 장준하, 박종철, 이한열 등 헤아릴 수 없는 보통 사람의 희생은 그 시대의 청년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의 손자 조인래씨는 지난 14일 중국 항저우에서 외교부가 개최한 ‘한중 우호 카라반’ 역사문화콘서트에서 중국 내 독립운동 유적지를 돌아보는 한국 청년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조씨는 “지난 100년의 역사는 동아시아 전체 민족독립운동 역사이기도 하고 민주화 역사이기도 하다”며 “그 역사의 주역은 청년이었다. 청년 시대의 역사이기도 하다”고 했다. 조씨는 조소앙 선생이 제창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헌장과 건국강령의 기초가 된 ‘삼균주의’를 설명하며 “세계 피식민지 독립운동사에서 우리 임시정부처럼 이념과 정책을 제시하면서 광복 운동을 전개한 사례는 전무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독립운동가가 꿈꾼 건 모두가 균등하게 잘사는 나라였다”며 “여러분이 꿈꾸는 것은 주권이 바로 서는 대한민국일 것이다. 그 중심은 여러분 청년들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조씨는 “지난 100년의 역사가 준 교훈을 새기며 그 시대의 청년정신을 또 다른 청년정신으로 만들어 후대에 유산으로 남겨 달라”고 당부했다. 통일이 되기 전에는 진정한 독립이 이뤄진 게 아니라는 조씨는 “얼마 전 김구 선생 70주기였는데 71주기 때는 통일이 와서 기분 좋게 술 한 잔 부어 드리겠다고 다짐했었다”며 “여러분이 그 꿈을 이뤄 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한편 장하성 주중 대사는 지난 16일 상하이에서 ‘한중 우호 카라반’ 만찬 행사에 참석한 독립유공자 후손을 만나 “독립운동을 해 주신 선열의 후손이 너무 오랫동안 국가로부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쉽고 죄송하다”며 “지금부터라도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장 대사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계시기 때문에 독립운동 유적지를 보존하는 데도 큰 힘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100년 전부터 시작된 독립운동의 정신이 살아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며 감사를 표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외교부 공동취재단
  • 서울 자사고 8곳 무더기 탈락 … 세화고 울었다

    서울 자사고 8곳 무더기 탈락 … 세화고 울었다

    재지정 기준점 70점 못넘어2020년부터 일반고 전환조희연 “고교 정상화 전기되길”서울지역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8곳이 일반고로 전환된다. 올해 재지정 평가대상인 13개교 중 절반이 넘는 ‘무더기 탈락’이 현실화됐다. 서울교육청은 8일 자율학교 등 지정·운영위원회를 열고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를 심의한 결과 평가대상 13개교 중 8개교에 대해 지정 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 지정 취소 절차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지정 취소 절차 대상인 학교는 경희고와 배재고, 세화고, 숭문고, 신일고, 이대부고, 중앙고, 한대부고(가나다순)이다. 서울교육청의 재지정 기준점은 70점으로, 서울교육청은 개별 학교의 총점 등 세부적인 평가 내용은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들 학교 중 한대부고를 제외하면 모두 2014년 진행된 1주기 재지정 평가에서 지정취소 또는 취소유예 처분을 받은 바 있다. 경희고와 배재고, 세화고, 이대부고, 중앙고는 1주기 평가 당시 재지정 기준점에 미달해 지정 취소됐지만 당시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가 교육청의 결정을 직권취소하면서 자사고 지위를 유지해왔다. 숭문고와 신일고는 지정취소 2년 유예 결정을 받아 구제됐다.서울교육청은 8개교를 대상으로 청문을 거쳐 교육부에 지정 취소 동의를 신청할 계획이다. 교육부가 동의하면 이들 학교는 2020학년도부터 일반고로 전환돼 신입생을 받는다. 다만 재학생들은 졸업 때까지 자사고 학생 신분을 유지한다. 서울교육청은 일반고 전환이 확정되는 학교에 대해 학교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과정 운영을 지원하고 별도의 재정 지원을 통해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할 계획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평가는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견지에서 평가위원들이 자율적으로 진행했다”면서 “경쟁 위주의 고교 교육과 서열화된 고교체제의 정상화를 위한 새로운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최덕신 전 장관 차남 최인국 영주하려 ‘월북’…평양 도착

    최덕신 전 장관 차남 최인국 영주하려 ‘월북’…평양 도착

    류미영 전 북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의 차남 최인국씨가 북한에 영구거주하기 위해 지난 6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북한 대남 선전매체가 보도했다. 한국 국민이 공개적으로 북한 영주를 선택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북한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는 지난 6일자 기사에서 “류미영 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의 아들 최인국 선생이 공화국에 영주하기 위하여 7월 6일 평양에 도착하였다”고 보도했다. 최씨는 평양국제비행장에서 발표한 도착소감에서 “가문이 대대로 안겨사는 품, 고마운 조국을 따르는 길이 곧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유언을 지켜드리는 길이고 그것이 자식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기에 늦게나마 공화국(북한)에 영주할 결심을 내리게 되었다”고 했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최씨는 부모의 유지대로 ‘조국통일위업 실현’에 여생을 바치겠다는 뜻도 밝혔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최씨는 평양국제비행장에서 발표한 도착소감에서 “민족의 정통성이 살아있는 진정한 조국, 공화국(북한)의 품에 안기게 된 지금 저의 심정을 무슨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평양국제비행장에서 리명철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측 관계자들이 최씨를 맞았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최씨는 월북자로 북한에서 고위직에 오른 최덕신·류미영 부부의 아들이다. 최덕신은 국군 제1군단장에 이어 박정희 정권에서 외무장관과 서독 주재 대사를 지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갈등을 빚은 뒤 1976년 아내 류미영과 함께 미국에 이민한 뒤 부부가 함께 북한으로 영구 이주했다. 최덕신은 북한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조선종교인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남편 사망 뒤 아내 류미영도 공식 활동에 나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을 지냈다. 한국에 사는 차남 최인국씨는 최근 어머니의 사망 1, 2주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한 바 있다. 최덕신·류미영 부부 슬하의 2남 3녀 중 장남은 세상을 떠났고 차남인 최인국씨는 한국에 거주해왔으나 부모의 월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세 딸은 해외에 거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국적자인 최인국씨는 2001년 이후 가족 상봉 및 성묘 등의 목적으로 모두 12회 방북했다. 최근에는 모친 사망 직전이었던 2016년 11월과 2017년 11월 1주기, 지난해 11월 2주기 행사에 참석차 방북했다. 이전 방북 때는 정부 승인을 받았지만, 이번 평양행을 위해서는 정부에 방북 신청을 하지 않았다. 북한은 최씨의 이번 입북과 ‘영주’ 사실 등을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에만 게재하고 이날 오후 현재까지 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 조선중앙방송 등의 공식매체에는 보도하지 않았다. 한국 국민이 공개적으로 북한으로 영주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앤디 워홀은 저장강박증이었다(클로디아 캘브 지음, 김석희 옮김, 모멘토 펴냄) 미국의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수백개의 상자를 해묵은 엽서와 진료비 청구서, 수프 깡통 따위로 가득 채웠다. 찰스 다윈은 툭하면 복통에 시달렸고, 과학자 모임에서 몇 분간 발언하고는 24시간 동안 계속 토했다.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렌즈를 통해 현대사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393쪽. 1만 5000원.정선(전윤호 지음, 달아실출판사 펴냄) 시력 28년 차 시인이 정선을 통째로 시집에 옮겼다. 이별과 서러움 같은 전통적인 ‘한’의 정서가 전편을 누비는 한편 ‘아우라지’, ‘곤드레’ 같은 시어로 절절한 고향 사랑을 행간마다 녹였다. 삶을 살아내느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유년의 기억들, 고향의 기억들을 소환하는 시집. 152쪽. 1만 2000원.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김인선 지음, 메디치 펴냄) 1980년대 말 ‘샘이깊은물’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 생활고에 쫓겨 낙향했던 저자의 1주기 산문집. 자연 속에서 동식물과 어울려 살아가는 즐거움, 농촌의 인간군상에 대한 묘사와 함께 곤궁한 생활을 버티게 하는 허풍, 현실과 꿈의 경계를 뛰어넘는 기이한 이야기를 담았다. 380쪽. 1만 6000원.공연의 사회학(최종렬 지음, 오월의봄 펴냄) 한국 사회가 집합 의례를 통해 수행한 네 가지 자아성찰을 다룬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쳤던 2016년 촛불시위를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를, 이명박 정부의 한미 소고기 협정에서 촉발된 2008년 촛불집회를 통해 성장주의를, 이자스민 전 의원이 한국 시민사회에 편입되는 과정을 통해 혈족적 민족주의를,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비키니 사건을 통해 젠더주의를 분석했다. 476쪽. 2만 4000원.식물학자의 식탁(스쥔 지음, 박소정 옮김, 현대지성 펴냄) 식물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은 물론, 음식에 대한 열성까지 뛰어난 한 식물학자가 선사하는 식물 백과사전 겸 요리책. 각종 식물의 역사를 열거하고 영양 성분과 독성을 분석한 뒤, 먹어도 되는지, 맛있는지, 어떻게 먹는지를 정리했다. 400쪽. 1만 7500원.지구에서의 내 삶은 형편없었다(임승훈 지음, 문학동네 펴냄) 2011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의 첫 소설집. 파란 새를 찾는 탐정, 마지막 경기를 앞둔 복서, 외계인에게 개조당한 소설가 등 지금 여기의 나와는 다른 삶을 유머와 지질함이 배합된 상상과 가미시켜 읽는 내내 ‘단짠단짠’하다. 432쪽. 1만 5000원.
  • JP 서거 1주기 추도식

    JP 서거 1주기 추도식

    김종필 전 국무총리 1주기를 맞은 23일 충남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김 전 총리의 가족묘원에서 추도식이 엄수되고 있다. 추도식에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정진석·정우택 의원과 지역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부여 뉴스1
  • JP 서거 1주기 추도식

    JP 서거 1주기 추도식

    김종필 전 국무총리 서거 1주기를 맞아 23일 충남 부여군 외산면 가족묘원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시민들이 김 전 총리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 부여 뉴스1
  • [포토] ‘선글라스가 멋진’ 김종필 전 총리 사진 바라보는 나경원

    [포토] ‘선글라스가 멋진’ 김종필 전 총리 사진 바라보는 나경원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충남 부여군 외산면 가족묘원에서 열린 고(故) 김종필 전 총리 서거 1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유족인 김예리씨와 함께 고인의 사진을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 미 힙합계 연이은 총격 사건 공포...이번엔 10대 래퍼 머리에 총격

    미 힙합계 연이은 총격 사건 공포...이번엔 10대 래퍼 머리에 총격

    지난해 잇따른 총격 사건으로 젊은 래퍼 두 명이 숨져 충격에 휩싸였던 미국 힙합계에서 이번에는 10대 래퍼가 머리에 총격을 받았다. 피해자는 목숨을 건졌으나 위중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18일(현지시간) 할리우드 매체 등에 따르면 최근 두각을 드러냈던 16살 래퍼 C 글리지(본명 크리스천 무어)는 지난 15일 미 플로리다주 폼파노 비치의 한 편의점 밖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글리지의 가족과 친구가 차로 급히 그를 병원으로 후송하는 과정에서 고속도로 램프 구조물을 들이받는 교통사고도 있었다. 글리지는 브로워드 헬스 노스 병원에서 총탄 제거 수술을 받은 뒤 현재 입원 중이다. 측근에 따르면 글리지의 가족들은 침착함을 잃지 않고 있으며 그가 살아날 수 있으리라 여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리지가 총격을 받은 경위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며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 4월 ‘넘 더 페인’이라는 앨범을 내고 왕성하게 활동하던 글리지는 지난해 6월 18일 총에 맞아 숨진 실력파 래퍼 XXX텐타시온의 가까운 친구다. 글리지의 사고가 텐타시온의 사망 1주기를 3일 앞두고 벌어져 미국 사회는 더욱 충격을 받았다. 스무 살의 텐타시온은 지난해 두 번째 앨범의 수록곡 ‘SAD!’로 데뷔 후 첫 빌보드 TOP10에 진입하는 등 미 힙합계의 떠오르는 루키로 촉망받았었으나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있는 오토바이 가게에 들렸다가 근처 차 안에서 총을 맞고 숨졌다. 총격으로 사망한 지 7개월이 된 지난 1월 텐타시온의 여자친구가 텐타시온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출산하며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러나 텐타시온은 과거 임신한 전 여자친구를 폭행 감금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며, 동거하던 여성을 상습 폭행한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사후에 주목받고 있는 그의 음악과는 별개로 그가 미화돼선 안될 인물이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폭풍전야 자사고 운명… “일반고 전환돼도 고교 서열화 유지될 것”

    폭풍전야 자사고 운명… “일반고 전환돼도 고교 서열화 유지될 것”

    20일부터 전국 24개 자사고 결과 발표 13곳 최다 서울 평가 따라 폐지 ‘분수령’ 재지정 탈락 이후에도 행정소송 가능성 수월성 교육 수요 높아 특목고 인기 여전 폐지 후에도 ‘지역 명문고’ 쏠림 생길 것 상위권은 제도 관계없이 입시 준비 추천 자율형 사립고(자사고)의 ‘운명의 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20일 전북교육청이 전주 상산고등학교의 자사고 재지정 여부를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6월 말에서 7월 초 사이에 올해 재지정 평가 대상인 전국 24개 자사고에 대한 평가 결과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자사고를 포함한 후기고는 오는 8월까지 최종 입학전형을 공고해야 해, 청문 절차와 교육부 장관의 동의 등 일련의 절차가 그 전까지 마무리된다. 특히 전국에서 가장 많은(13개교) 자사고의 재지정 평가를 진행하는 서울교육청의 평가 결과는 정부의 자사고·외국어고 폐지 정책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서울에서는 내년에 휘문고·경문고 등 나머지 9개 자사고와 대원외고·대일외고 등 6개 외고, 서울국제고에 대한 재지정 평가도 진행할 예정이어서 서울교육청의 ‘칼자루’에 고교체계 개편의 향배가 갈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에서는 일반고 전환 위기에 몰린 자사고와 학부모들이 시위와 법적 대응 등으로 맞서고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교육계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고교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이 목표로 하는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될지, 고교체계 개편을 앞두고 어떻게 고교 입시를 준비해야 할지 혼란이 적지 않다.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둘러싼 여러 의문점을 Q&A로 풀어봤다. ①재지정 평가로 얼마나 많은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될까 서울교육청의 경우 조희연 교육감은 제2기 공약 이행 계획서에서 올해부터 2022년까지 4년간 총 5개 자사고가 추가로 일반고 전환을 신청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교육청은 이번 재지정 평가에서 특정한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다. 다만 지난 1주기 평가에 비해 문턱이 높아진 만큼 자사고들이 재지정 평가를 통과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커트라인’인 기준점이 1주기 평가의 60점에서 70점으로 높아졌다. 전북교육청의 경우 이보다 10점 높은 80점을 기준점으로 내걸어 전주 상산고의 자사고 재지정 가능성은 타지역 자사고들보다 낮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청이 감사 등 학교가 지적받은 사항에 대해 최대 12점까지 감점할 수 있게 한 것도 자사고들에는 ‘결정타’로 작용할 여지가 크다. 하나고의 경우 최근 수년간의 감사 결과를 종합하면 해당 항목에서 12점이 감점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중앙고와 숭문고, 한가람고는 5점 안팎의 감점이 예상된다. 그러나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한 자사고들이 행정소송으로 맞설 가능성이 커 좀더 지켜봐야 한다. 자사고들은 “1주기 평가에서 대폭 강화된 평가지표를 재지정 평가 직전인 지난해 말에야 공개했다”면서 “평가의 일관성과 공정성이 없다”고 반발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평가지표가 본래 목적에서 벗어났거나 평가 대상인 자사고들의 예측에서 벗어날 정도로 일관성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 ‘신뢰 보호’의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사고가 감사에서 지적받은 사항이 수사당국으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더라도 교육청은 이와 무관하게 감사 결과를 재지정 평가에 반영한다는 계획인데, 자사고의 입장에서는 이 역시 교육부와 다퉈 볼 여지가 있다. ②자사고·외고 폐지 논란의 영향으로 이들 학교의 고입 경쟁률이 떨어질까 실제로 자사고 진학률은 올해 들어 소폭 낮아졌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학교알리미에 공시된 올해 중학교 졸업생의 지역별·학교별 고등학교 진학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올해 전체 중학교 졸업자 46만 4369명 중 자사고 진학자는 1만 2277명(2.6%)으로 전년도(1만 3781명·3.0%)보다 0.4% 포인트 감소했다. 외고와 국제고 진학률도 전년도 1.5%에서 올해 1.4%로 줄었다. 앞서 2016~2018년 과학고(영재고 포함)와 외고, 국제고 등을 포함한 특목고의 진학률은 상승세였다. 외고의 모집정원이 전년도보다 200명 줄어든 것과 더불어 올해 고입부터 외고와 국제고, 자사고가 전기고에서 후기고 선발로 바뀌면서 지원자수가 줄어든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자사고 폐지 논란에도 수월성 교육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다. 고교체계 개편의 ‘무풍지대’인 과학고와 영재고의 입시 경쟁률이 높아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교육계 인사는 “외고와 국제고 입학설명회에는 예년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린다”면서 “외고와 국제고에 대한 관심이 식기는커녕 더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③자사고·외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고교 서열화가 해소될까 자사고·외고 폐지가 곧바로 고교 서열화 해소로 이어질 것이라 내다보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입시 전문가들은 자사고나 외고가 일반고로 전환돼도 ‘지역 명문고’로 남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존 자사고·외고의 명성과 입시 노하우 등이 단번에 사라지지 않는 상황에서 일반고로 전환된 뒤 ‘강남 8학군’과 같은 지위를 얻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자사고·외고와 일반고라는 서열이 표면적으로 사라질 뿐 일반고 사이에서의 서열이 생겨날 것”이라면서 “일반고 사이에서 기존 자사고·외고로 학생 쏠림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의 경우 강북 등 강남 8학군 이외의 지역에 있는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강남 8학군의 인기가 다시 치솟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교육부의 ‘고교체계 개편 3단계 로드맵’의 단계에는 일반고의 교육력을 높이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2025년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를 비롯해 특정 분야의 중점 과정을 설치해 운영하는 교과중점학교, 학교 간 공동으로 과목을 개설해 운영하는 공동교육과정 등으로 학생들이 적성과 소질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고교 내신의 절대평가(성취평가) 전환 등 그에 맞는 입시제도 개선이 전제되지 않아 쉽게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강북과 전국 각지에 자사고가 사라지면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교육 격차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는 자사고·외고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도 해결책을 주문하는 대목이다. 김은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은 “일반고의 교육의 질을 높이는 과정에서 지역 격차에 대한 교육 당국의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에서 고등학교가 균등한 교육을 제공하도록 하는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④자사고나 외고·국제고를 목표로 고입을 준비해도 될까 이번 재지정 평가에서 대다수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면 당장 내년도 고입부터 일대 혼란이 예상된다. 상위권 학생들은 외고나 국제고, 과학고, 영재고 등으로 몰리겠지만 외고와 국제고 역시 내년 재지정 평가를 앞두고 있어 고입 전략을 세우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재지정 평가를 통해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결정돼도 자사고 측이 행정 소송으로 맞설 경우 고입 전형이 발표되는 8월 이후에도 자사고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게 된다. 다만 자사고나 외고, 국제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더라도 지역 명문고의 지위를 유지할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임 대표는 “어느 학교에 가든 전교 1, 2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상위권이라면 자사고와 일반고 사이에서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상위권 학생이라면 비록 일반고 전환 가능성이 있더라도 자사고나 외고, 국제고를 목표로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상위권 학생들이 모여 있고 학생부종합전형 등 수시 모집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왔던 기존 자사고와 외고, 국제고가 이들 학생에게는 좋은 환경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외로운 사나이가 찾아간 삼각지… 눈물의 비표 새긴 애창곡 되다

    외로운 사나이가 찾아간 삼각지… 눈물의 비표 새긴 애창곡 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7회 서울의 대중음악1(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편이 지난 8일 용산구 한강대로와 원효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삼각지역 안 기타를 치는 배호(1942~1971) 좌상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서울의 5번째 노래비 ‘돌아가는 삼각지’를 둘러보고 배호길을 따라 왜고개 성지~아모레 퍼시픽 사옥~용산전자상가를 걸었다. 임진왜란 때 당사국 조선을 제쳐 두고 명나라 심유정과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화의를 맺은 심원정 터~유서 깊은 용산신학교와 예수성심성당~범죄심리학의 개척자 장병림 가옥~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원삼탕, 창성옥, 경의선숲길공원까지 2시간 30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배호의 노래를 포함해 6건의 서울미래유산이 즐비했다. 1978년 타계할 때까지 원효로에 거주한 박목월 시인을 기리는 목월공원과 청노루힐 옛 자택 구경은 덤이었다. 이준섭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차분하고 깊이 있는 해설을 들려줬다.대중가요 가사에 투영된 서울은 서울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노랫말은 특정 시대, 특정 장소, 특정 시각에 대한 경향성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영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대중가요에 나타난 서울의 길’에서 “대중의 경험과 욕망을 통해서 걸러진 서울을 보는 것”이라고 파악했다. 서울을 소재로 한 노래를 통해 서울에 대한 당대인의 꿈과 희망 혹은 불안과 좌절을 엿볼 수 있다. 서울은 선과 악의 이중성을 가진 야누스적 도시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대중가요의 소재로 활용되는 이유는 근대성이 가장 잘 체현된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유정 단국대 교수는 ‘서울 노래를 통해 본 서울의 풍경’에서 대중가요는 “당대의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대중가요의 가사를 통해 당대인의 시각과 정서를 헤아릴 수 있다.서울을 노래한 대중가요는 몇 곡이나 될까.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의 ‘대중가요에 녹여낸 서울 100년’ 자료에 따르면 가수 710명이 1141곡의 서울 노래를 불렀다. 이 중 제목에 ‘서울’이 포함된 노래만 544곡이었다. ‘명동’이 85곡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한강 70곡, 서울역 55곡, 남산 40곡 등의 순이었다. 가수별로는 각각 14곡을 부른 나훈아와 이미자가 1위를 차지했다. 작사자로는 31곡을 지은 반야월이 돋보였다. 박춘석이 가장 많은 22곡을 작곡했다. 1930년대 대중가요의 3대 키워드는 ‘서울’, ‘한강’, ‘종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이라는 지명을 노래 제목에 처음 사용한 최초의 노래는 1929년 발표된 랑소희의 ‘서울마치’였으나, 1932년에 발표된 이애리수의 ‘자라메라’ 노랫말에 ‘종로네거리’가 등장하는 등 내용상 최초의 서울 노래로 평가받는다. 궁궐과 관청 그리고 지배계층과 상권이 몰려 있는 종로는 한양천도 이래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일제강점기 들어 위상이 쇠락했다. 1950년대에 나온 현인의 ‘서울야곡’이나 나애심의 ‘미사의 종’이 그렇듯 해방 이전까지 새로운 시가지로 개발된 명동과 충무로 일대 남촌이 대중문화의 주 무대로 주목받았다. 대중가요 가사의 중심지가 1920년대 종로에서 1930~40년대 명동·충무로로 옮겨 갔다가 1950년대 해방과 한국전쟁 시기에 광화문, 종로, 남대문, 서울역 일대로 확장된 것을 알 수 있다.1960년대 대중가요에서 주목할 것은 노랫말이 서울 사대문을 벗어나 사대문 바깥으로 뻗어나갔다는 점이다. 서울의 양적 팽창이다. 1967~68년에 발표된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 낀 장충단공원’,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이 대표작이다. 이른바 ‘미8군 무대’ 출신 가수들이 가요계에 진출하면서 과장되고 서구화된 서울의 모습이 판치던 시절이었다. 1970년대 명동과 무교동에 머물던 대중문화의 중심지가 종로로 중심 이동했으나 1979년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시작으로 윤수일의 ‘아파트’,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 문희옥의 ‘사랑의 거리’ 등으로 흐르면서 1980년대 대중가요의 주 무대는 강남으로 강을 건넜다. 서울 노래는 1973년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 1982년 이용의 ‘서울’, 1988년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 등이 맥을 이었다.1968년 서울에서 전차가 사라진 뒤 건설된 입체교차로가 시민들의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새 서울’ 건설의 상징물이었다. 전차의 궤도와 전깃줄이 사라지면서 고가도로와 육교가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이 중 삼각지 입체교차로가 군계일학이었다. 장르는 트로트지만 세련된 재즈 스타일을 선보인 배호의 창법 때문에 유명해졌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지하 8층까지 내려가는 공포의 저음’과 ‘바닥까지 끌고 가서 밀어올리는 절절함’이 불후의 곡을 탄생시켰다. 이 노래는 1963년에 만들어졌지만 1967년 입체교차로가 들어선 뒤 창작한 노래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작곡가 배상태는 노량진에서 전차를 타고 충무로로 가던 중 삼각지에서 한 사내가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 취입할 가수를 찾지 못해 애를 먹은 일화도 남겼다. 당대의 인기가수 남일해는 연습만 했고, 금호동은 퇴짜를 놓았다. 유망 신인가수 남진도 여의치 않자 무명가수 김호성이 녹음까지 했지만 음반을 내지 못했다. 배상태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배호의 허름한 전셋집을 찾았다. 건강이 악화돼 거동조차 힘들던 배호는 녹음을 사양하다가 쓸쓸한 분위기가 자기 처지를 대변하는 것 같다면서 가래를 뱉어 가면서 병상에서 녹음을 강행했다. 5년 묵은 곡이 배호를 만나서 빛을 본 셈이다. 서울에는 모두 9개의 노래비가 있다. 서울 노래비 1호는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이며 1995년 광화문 세종로공원에 세워졌다. 2호는 반야월 작사, 이해연 노래 ‘단장의 미아리고개’. 성북구 돈암동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에 서 있다. 3호는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인데 1997년 마포구 도화동 마포근린공원에 세워졌다. 4호는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이며, 강북구 번동 북서울꿈의 숲에 있다. 5호는 2001년 용산구 삼각지에 세워진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다. 6호는 2008년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앞 벽면에 있다. 7호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다. 2008년 대장암으로 세상을 등진 작곡가 이영훈 1주기를 맞아 정동길과 정동교회가 바라보이는 덕수궁 돌담길 앞에 세워졌다. 8호는 1965년 발표된 오기택의 ‘영등포의 밤’을 기려 2010년 영등포 타임스퀘어광장에 세워졌다. 9호는 의료사고로 숨진 신해철을 기리고자 2015년 북서울꿈의 숲에 벤치 형태로 건립됐다. 넥스트3집 수록곡 ‘세계의 문(유년의 끝)’이 새겨졌다.배호는 1981년 MBC특집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로 선정됐고,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 KBS 가요무대 여론조사에서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가수 10인’에 올랐다. 전국 방방곡곡에 배호의 노래비 7개 있다. 서울 삼각지(돌아가는 삼각지)를 비롯해 경기 양주(두메산골), 경북 경주(마지막 잎새), 강원 강릉(파도), 인천 중구(비 내리는 인천항 부두), 충남 보령(두메산골), 전북 정읍(잘 있거라 내장산아) 등이다. 전국에 배호사랑연합회가 활동 중이고, 올해도 제23회 배호가요제가 열려 언제 어디서나 배호의 노래가 애창되고 있다. 혹자는 그 이유를 ‘가난과 병마에 시달린 눈물의 비표(秘標)’가 노래에 새겨진 때문이라고 푼다. 삼각지를 품은 용산은 13세기 몽골군 침입 때 병참기지, 16세기 임진왜란 때 일본군 주둔지를 거쳐 19세기 임오군란 때 청군 주둔지였다. 20세기 들어 전승국 일본인 마을, 철도기지와 군사기지에 이어 해방 이후 미군기지였다. 한반도를 유린한 외세의 각축장이자 침략 통로였고, 150년간 외국 지배세력이 머문 특수한 곳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단절과 망각의 도시다. 이처럼 용산에는 식민지 근대에 대한 불편함이 온존한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에세이집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에서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간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라고 지적하면서 “참담하고 역동적인 모더니티의 장소로서 용산은 다시 성찰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용산이 가진 과도한 산문성의 이면을 설명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문희일·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8회 서울의 문학2(박완서의 나목) ■일시 및 집결장소: 6월 15일(토) 오전 10시 4호선 회현역 7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1점’에 명운 갈릴 자사고, 종합감사 결과 발표로 ‘먹구름’

    서울교육청이 올해 재지정 평가 대상인 자율형사립고(자사고)에 대한 종합감사 결과를 잇달아 공개하면서 자사고들의 재지정 가능성을 어둡게 하고 있다. 이번 평가에서는 자사고들이 감사에서 적발된 비위사실로 최대 12점까지 감점받을 수 있어, 재지정에서 탈락한 학교들이 평가지표의 공정성을 문제삼으며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서울교육청은 30일 한대부고와 세화고, 중앙고에 대한 종합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감사 결과 한대부고는 시험에서의 오류가 발견됐음에도 심의를 거치지 않고 채점을 진행해 학업성적관리지침 운영이 소홀했고, 교직원 성희롱·성폭력 예방교육 연수 시간을 확보하지 않은 등의 이유로 기관주의와 관련자 주의 조치를 받았다. 세화고는 소규모테마교육여향 입찰 과정에서 관련 증빙 자료를 보관하지 않고, 단일공사로 통합해 낙찰자를 선정해야 하는 학교 공사를 분할해 계약을 체결하는 등으로 주의조치를 받았다. 중앙고는 정기고사별 시험계획과 수행평가 계획 등을 학업성적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은 것과 학생부 출결상황 관리 소홀 등으로 기관주의와 관계자 경고 및 주의 조치 요구 처분을 받았다. 서울교육청은 올해 재지정평가 대상인 13개 자사고를 대상으로 지난해 말부터 감사를 실시, 지난 20일부터 감사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앞서 20일 공개된 한가람고는 관련자 경고 처분을, 경희고는 기관경고 처분을 받았다. 감사 결과 비위 사실이 확인된 학교는 운영평가 점수에서 감점을 받는다.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기관경고는 2점, 기관주의는 1점 개인 주의 및 경고는 0,5점 감점된다. 감사 결과로 인해 운영평가 점수가 감점된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될 경우 1점이 아쉬운 자사고들은 평가지표에 대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며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2015년 1주기 평가에서는 종합감사 등에서의 감점이 최대 5점이었지만 이번 평가에서 12점으로 대폭 확대됐다. 교육청이 ‘트집잡기’ 감사를 해 자사고 재지정을 불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자사고들의 주장이다. 전국 자사고 중 가장 먼저(6월 중순) 재지정 여부가 발표되는 전주 상산고는 평가지표 논란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전북교육청은 전국 교육청 중 유일하게 재지정 기준점을 10점 높은 80점으로 잡았다. 상산고는 “타 지역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교육계 한 관계자는 “상산고가 70~79점 사이의 점수를 받아 일반고로 전환될 경우 평가지표에 대한 논란이 불붙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盧대통령 말·글 속에 산 지 15년 만에 ‘탈상’… 그분 소환 더 없었으면”

    “盧대통령 말·글 속에 산 지 15년 만에 ‘탈상’… 그분 소환 더 없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0주년이 되는 날이 오늘, 23일이다. 경남 진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서는 부인 권양숙 여사와 유족을 비롯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정당 대표, 지방자치단체장, 참여정부 인사, 시민 등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이 열린다. 이번 10주기의 캐치프레이즈는 ‘새로운 노무현’이다. 추모 행사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자라나는 세대들, 새로운 깨어 있는 시민들이 정말로 노무현 정신이 어떤 것인지를 되새기고 미래지향적으로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바로 이 캐치프레이즈를 ‘노무현의 입’이었던 윤태영(58) 전 청와대 대변인이 고안했다. 지난해 추모 행사의 캐치프레이즈였던 ‘평화가 온다’도 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참여정부의 탄생과 국정 운영을 이끌었던 사람들은 많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문희상 국회의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노무현의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대한민국을 이끄는 핵심권력으로 활약하고 있다. ‘인간 노무현’과의 친밀도를 따지면 윤태영만 한 사람이 없다. 윤 전 대변인에게 노무현은 어떤 존재일까. “제 인생의 절반입니다. 30대에 정치권에 들어왔는데 정치인 보좌관과 멘토, 40대에는 노 대통령의 측근 보좌관, 50대에는 노 대통령의 말을 기록하고 알리는 기록자로 일해 왔습니다. 근 30여년 동안 노 대통령과 함께 산 셈이죠.” 윤 전 대변인은 1988년 이기택 전 통일민주당 총재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당시 13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한 정치인 노무현을 만났다. 1994년 잠시 여의도를 떠나 새터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할 때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노 전 대통령의 자전적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 집필 작업에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가 2000년 말 노무현 대선캠프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노무현 사람’이 됐다. 2002년 노무현 대선후보 홍보팀장이었던 그는 2003년부터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연설담당비서관과 대변인, 제1부속실장, 연설기획비서관 겸 대변인을 차례로 맡으며 노무현의 ‘복심’(腹心)으로 통했다. 특히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정도의 세월을 ‘노무현의 말’과 함께 살았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대통령인 그의 말을 받아 적는 게 직업이었다. 노무현의 말에 관해 뜨거운 찬사와 차가운 비난을 함께 듣는 분신이었다. “요즘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대통령을 뵙니다. 물론 꿈속에서지요. 달변이셨던 대통령은 말씀을 많이 하시지는 않아요. 저와의 추억에 대한 회고를 하시는 건지 제 곁에 한참 동안이나 계시다가 묵묵히 가십니다.” 2008년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봉하 집필팀’을 이끌며 노무현의 말과 글을 기록하는 데 참여했던 윤 전 대변인은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사라졌다. 최측근 참모로서 대통령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자책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아픔을 달래느라 잘 못 마시는 술로 버티다가 병을 얻었다. 2011년 2월 지주막하 출혈이라는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2주일가량 입원했다. 퇴원 이후에도 뇌압이 심해 후유증을 앓았다. 그 후유증을 이겨내느라 파주의 산 밑에 가서 2013년까지 세상과 등진 채 살았다. “노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컸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 자체가 두려웠어요.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노 대통령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자책감이 들어 누구도 만나질 않았습니다.”윤태영을 다시 일으킨 사람은 역시 노무현이었다. 2014년 노 전 대통령 이야기를 담은 책 ‘기록’을 펴내면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후 지금까지 6년 동안 ‘대통령의 말하기’, ‘바보, 산을 옮기다’,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 등 7권의 책을 펴냈다. 이들 중 ‘대통령의 말하기’는 6만여권이나 판매됐다. 지난 17일에는 ‘윤태영의 좋은 문장론’(위즈덤하우스)을 출간했다. 좋은 글은 한 시간을 썼으면 세 시간을 다듬어야 한다는 지론을 내세운 첨삭 지도 책이다. 글을 잘 쓰는 방법, 그중에서도 문장 다듬기 기술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좋은 문장을 만들기 위해 쓰고 다듬는 과정은 결국 ‘나와 세상을 바꾸는 여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처럼 윤 전 대변인의 책의 주제는 ‘노무현’ 아니면 ‘글쓰기’다. “노 대통령은 책을 읽고 사법시험을 치고 인권변호사가 되다 보니, 책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글로 쓰인 것에 굉장한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정치는 돈과 권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글로 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수시로 하셨습니다. 이런 노무현의 말과 글을 다듬으며 책을 쓰는 데 몰입하면서 병을 치유했습니다. 책을 쓰는 것 자체가 대통령의 말씀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죠.” 윤 전 대변인은 노무현의 말을 500여권에 달하는 휴대용 포켓수첩과 100여권의 업무수첩, 1400여개의 한글파일로 담아 놓고 있다. 자신이 기록한 노무현의 말을 하나씩 풀어 책과 기록으로 남겨 놓는 작업을 묵묵히 해 왔다. 지금은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마지막 저술 작업이라고 여기는 ‘노무현 평전’ 집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 탈고를 목표로 마지막 정성을 쏟고 있다. 내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에 맞춰 출간할 예정이다. 그는 ‘노무현 평전’ 집필이 끝나면 “적극적으로 강연도 하는 등 대중과 접할 기회를 자주 가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과 2017년 대통령 취임사 초고를 다듬기도 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는 명 연설문을 그가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관계를 묻자 정치적 동지 이상이라고 했다. “원칙과 소신을 갖고 있던 노 대통령이 마지막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기대고 의지했던 분이 바로 문재인 변호사”라고 회고했다. 윤 전 대변인은 지난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를 고려했다. 주위에서 “청와대 대변인도 두 번이나 해 얼굴도 많이 알려졌으니 총선에 출마하라”는 권유가 끊이질 않았다. 이런 얘기를 누구한테 전해들은 노 전 대통령은 윤 전 대변인을 따로 불렀다. 그리고 다짜고짜 “진짜 정치할 생각인가. 출마하지 말게. 내가 글쓰는 걸 도와주는 게 훨씬 잘하면서도 나라를 위한 일일 거야”라며 윤 전 대변인의 출마의지를 꺾었다. 노 전 대통령은 워낙 험난한 정치 역정을 걸어서인지 주변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3월 4일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인 ‘사람사는세상’에 “정치하지 마라”는 글을 올렸다. 노 전 대통령의 참모들은 서거 두어 달 전의 글에 대한 진의를 놓고 아직도 해석이 분분하다. 이를 두고 윤 전 대변인은 “정치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정치를 하지 말라는 것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라고 쓴 ‘역설적 표현’이다”라고 해석했다. 내년 4월 21대 총선 출마 가능성을 묻자 “그동안에는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은 기회를 열어 놓고 생각하려 한다. ‘노무현 평전’이 끝난 뒤에…”라며 여운을 남겼다. ‘노무현 평전’의 탈고가 올해 말이면 공천 작업이 끝날 수도 있다고 하자 “그럼 할 수 없지요”라는 알 듯 말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2004년부터 시작한 윤 전 대변인의 노무현 글쓰기 작업은 15년 만에 막을 내린다. 그에게는 ‘탈상’(脫喪)이나 마찬가지다. 그는 이 지난한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소원이 있다고 했다. “그동안 노 대통령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많았잖아요. 책을 쓰면서 더이상 노 대통령이 현실정치에 소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 대통령의 말과 글을 정치권에서 정략적으로 삼지 않는 그런 분위기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jrlee@seoul.co.kr
  • LG 구본무 회장 1주기 추모식… 구광모 등 임원만 참석

    LG 구본무 회장 1주기 추모식… 구광모 등 임원만 참석

    LG그룹은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트윈타워에서 고 구본무 전 회장의 1주기 추모식을 가졌다고 20일 밝혔다. 고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구광모 LG 회장을 비롯해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권영수 LG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등 임원진 4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은 구 전 회장의 약력 소개, 추모 영상 상영, 사장단의 헌화와 묵념 순서로 진행됐다. 추모 영상엔 1995년 2월 고인의 회장 취임식 장면부터 이차전지와 올레드(OLED) TV 사업 추진, 대기업 최초 지주회사체제 전환, 새로운 기업문화 ‘LG웨이’ 선포, 마곡 사이언스 파크 방문, LG 의인상 제정, 화담숲 조성 등이 담겼다. 영상에 출연한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이차전지 사업이 처음에 적자가 많이 났다”면서 “구본무 회장의 집념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항상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대국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열심히 하셨다. 몇 번을 만나도 좋아지고 존경심이 생기는 분”이었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고모리 시케타카 후지필름 회장,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도 영상을 통해 고인을 추모했다. LG 관계자는 “생전 과한 의전과 복잡한 격식을 멀리하고 소탈하게 살아온 고인을 기리기 위해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간소하게 추모식을 열고, 진정성을 갖고 사람과 사회와 자연을 대했던 고인을 기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추모식은 구본무 회장을 추억하는 동시에 고인의 유지를 이어받아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다짐하는 자리였다”고 덧붙였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