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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둑 둔 판수만큼 인생을 살았는데(박갑천 칼럼)

    대학이 어떤 곳인가.들어가기 위해 박이 터지는 곳 아닌가.못들어갈까봐 지레 겁먹고 자살하는 고3생도 나올 정도로 도도하고 지체높은 곳.한데 세상이란 헤싱헤싱한 구석도 있다.그런 곳에서 거꾸로 우리대학으로 오십사고 넌지시 손짓한 경우도 있다지 않은가.더 재미있는 것은 몇군데서의 그 짝사랑을 모두 거절해버렸다는 사실.바둑의 세계적 1인자 이창호 9단이 그사람이다. 짝사랑마음 내비친 대학의 뜻은 무엇일까.“그는 우리대학 출신”이라 말하고 싶었던게지.하지만 그건 옥셈.그렇게 될때 이9단을 “모셔간 학교”지 “배출한 학교”는 아니겠기 때문이다.사실 이9단으로서는 대학이라는 곳에 새삼 발들여 놓아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듯싶다.자신의 분야에서는 그학교 교수 못잖게 온축이 가멸진 것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지식이 없으면…”하면서 그걸 채우기 위해 대학엘 가야한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지식이란게 무엇이던가.살기위한 방편이 되면서 까딱 교지로 이어질때는 도리어 인성을 해치는 요소로 되기도 하지 않던가.〈노자〉가 “학문을끊으면 근심이 없다”(절학무우)고 했던 뜻도 지식이 욕망을 키우는 속성을 지닌다는데서였다.한판의 바둑이 한번의 인생살이에 비유되기도 하는것이고 보면 ‘백전노장’ 이9단을 ‘대학 안간 젊은이’로만 볼일이 아니다.그는 ‘지식의 노예’아닌 ‘인간의 스승’경지에 올라있다고 말 못할게 없다. 반드시 바둑뿐 아니라 이세상 일 어떤 분야건 깊은 경지에 이르게 될 때 지식의 깊은 경지와도 한곳에서 만나게 된다.〈장자〉 여기저기에는 그런사람들 얘기가 보인다.그들은 지식을 넘어선 도의 경지에 있다.지식인들의 뒤퉁스럽고 메떨어진 속물근성이 가신 몸과 마음.뿜는 빛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예컨대 양생주편에 보이는 요리사.그가 문혜군 앞에서 소를 잡는데 칼질하는 솜씨는 무용과 음악을 빚는양한 예술이었다.잡은소가 3∼4천마리지만 한번도 칼을 숫돌에 갈아본 일이 없었을 정도의 기교.지식인 문혜군은 그 비천한 요리사에게서 배움을 얻는다.인간세편에 보이는 꼽추지리소,달생편에 보이는 매미잡는 노인이나 싸움닭 기르는 성자라는 사람이 다그렇다. ‘바둑황제’의 대학입학 제의 거절은 많은 시사를 준다.그래.참인생의 길이 중요한 것이겠거니.〈칼럼니스트〉
  • “에어로빅 세계챔피언을 향해 신나게 뛰고 신명나게 흔들자”

    ◎“수능 얘기는 꺼내지 마세요 답답해져요/전공으로 진학하고 세계1인자 될거예요” ‘어서 가자,세계 챔피언이 눈앞에 보인다’ 월드컵 축구나 미국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이야기가 아니다.에어로빅 세계 챔피언을 향해 뛰는 여고 3학년생들의 목표다. 5일 하오 10시 서울 성북구 돈암동 세학빌딩 4층 KAFA 에어로빅센터.밤늦은 시간에도 7명의 고3 여학생들이 음악에 맞춰 율동미 넘치게 운동을 하고 있었다. 수학능력시험을 불과 보름 앞두고 있지만 이들은 에어로빅을 전공으로 해 대학에 진학하려는 꿈에 부풀어 있다. “수능 얘기는 꺼내지 마세요.갑자기 답답해져요” 이성희양(18·고척고)은 수험생으로서 입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듯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긴장감을 내비쳤다. 유지인양(18·신경여실)은 “그래도 이렇게 땀을 흘리고 나면 수능시험에 대한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목표를 가질수 있고 대학에도 갈 수 있으니 일석삼조”라고 자랑했다. 고3학년때 에어로빅을 시작해 지난해 대학에 진학한 오수현씨(20·수원여전 무용과 1년)는 “에어로빅의 전망이 밝다”면서 “주부들의 다이어트 차원을 넘어 경기 에어로빅으로 정착된지 오래”라고 말했다.에어로빅이 스포츠로 자리잡아 가면서 사회적인 수요도 크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듯 올해부터 전국 에어로빅 챔피언대회에 고등학생부 경기가 신설됐다.내년에는 중학생부도 추가된다.대부분의 대학에서도 체육과나 사회체육과에서 에어로빅 전공의 신입생을 뽑는다. “당면목표는 물론 대학 진학이지요.하지만 우선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수 있고 대학 문제도 잘 해결될 것 같아요” 이곳에서 강사를 하고 있는 기현성씨(21)는 지난해 세계대회에서 2위를 차지하면서 명지대 체육과에 특기생으로 입학해 이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박광수(24),백승옥(27·여) 강사도 학생들의 우상이다.이들은 95년부터 각각 남성·여성 싱글부문에서 세계챔피언을 보유하고 있다. 에어로빅 센터 이정아 원장(31)은 “이들도 박찬호나 선동렬처럼 한분야에 매진해 세계를제패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 3소프트 조기욱 사장(빌 게이츠 꿈꾸는 한국의 도전자)

    ◎인터넷사이트 검색 SW 1인자 양보 못한다/94년 국내 첫 검색엔진SW 개발… 시장 30% 점유/고도의 기술력 자타인정… “외국제품 겁안난다” 정보검색서비스를 이용해 컴퓨터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찾고자 할 때 사용자는 ‘컴퓨터’라는 색인어를 검색창에 입력한다.이때 컴퓨터라는 말이 들어있는 모든 사이트를 끌어모아 보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검색엔진 소프트웨어다. 야후나 알타비스타,심마니 등 낯익은 인터넷 검색 서비스들도 모두 검색엔진 소프트웨어를 핵심도구로 삼는다.(주)3소프트(02­783­0212)의 조기욱사장(37)은 이 분야에 관한한 국내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조사장이 94년 개발한 ‘인포모어’는 국내 최초의 국산 검색엔진 소프트웨어였다.당시는 인터넷이 국내에 알려지기 전이어서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제한된 공간에서 쓰이는 DB검색용으로 내놓은 것이었다.창업전 모 대기업에서 정보검색담당팀장을 맡아 외국산 검색엔진의 한글화작업을 하면서 닦은 기량을 기초로 창업직후 개발에 들어가 6개월만에 출시했다. 또미국 베리티사의 검색엔진을 한글화한 ‘토픽’도 3소프트의 작품이다.검색엔진의 한글화작업에는 자연어처리 기술이 필요해 다른 응용소프트웨어의 한글화작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도의 기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조사장의 설명이다.국산 검색엔진 소프트웨어가 외국산과 국내시장을 놓고 경쟁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국산이 한글 자연어처리 기술에서 앞서기 때문이란다. 인터넷 도입초기였던 95년에 선을 보인 토픽에는 인터넷용과 DB용 두 종류가 있다.그동안 꾸준히 기능을 개선하면서 이름도 ‘서치97’으로 바뀌었다. 그는 지난 3월 마침내 자체기술로 만든 인터넷용 검색엔진 ‘인포에이스’를 내놓았다.인포모어를 개량해 만든 인포에이스는 인터넷 시대의 검색엔진 시장 주도라는 조사장의 전략적 승부수라 할 수 있다.인터넷의 확산은 검색엔진시장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판단이다.기업의 인트라넷 도입 확대는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서치엔진 97 인터넷용이 4천만원정도의 고가품이라면 인포에이스는 1천만원정도로 작은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합니다.특히 인포에이스는 패키지개념으로 나온 제품이어서 설치가 매우 간편한 것이 장점이죠” 인포에이스의 출시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수요층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얘기다. 3소프트의 제품들은 연구소,신문사,기업체,정부공공기관 등 50∼60개 업체 및 기관에서 쓰이고 있다.국내시장 점유율은 30%정도로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아직 유아단계에 있는 국내 검색엔진 시장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 “올해 국내 검색엔진 시장규모는 2백억원정도로 예상됩니다.시장규모가 작은 것은 아직 한글 DB나 한글 인터넷사이트의 구축이 미흡하기 때문이죠.그러나 인터넷의 확산은 DB의 중요성과 상품성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DB를 ‘살아있는 자료’로 만들어 주는 검색엔진 소프트웨어의 수요도 그만큼 증가하겠죠.” 그는 인포에이스에 이어 또 하나의 야심작으로 다국어 인터넷 검색엔진을 개발중이다.이 검색엔진은 한글 뿐만 아니라 영어,일어 등 외국어로 된 검색 질의어로도 자료를 찾을수 있다.이 제품은 내년 중반에 시장에 나올 예정이다.
  • 개천에서 난 ‘조선족 용’(흑룡강 7천리:10)

    ◎한때 중국 행정부·군 최고자리 올라/“30∼40년대 한족간부와 항일운동·해방전쟁 참가 정치적으로 한자리씩 감투…” 흑룡강이 가음현에 이르면 그야말로 도도한 강을 이루었다.가음하와 결렬하,오운하 등 26갈래의 지류를 품에 안아 강폭이 바다처럼 넓어지기 시작했다.강 저쪽 러시아의 바스커워가 가물가물하게 시야로 들어왔다.극동 시베리아의 대철도가 지나는 화물집산지라서 중국쪽 흑룡강 대안은 가음통상구가 되었다. 그 흑룡강에는 20만t급 화물선들이 드나들고 있다.그런데 강폭이 넓은 가음현 경내의 흑룡강은 이름 그대로 용이 살던 곳인지도 모른다.강변공원에는 ‘공룡가족’과 ‘공룡세계’ 조각품이 들어선 것을 보면 태고때 공룡이 살았던 모양이다.그래서 가음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룡화석 발굴지역이라는 것이다.1915년부터 지금까지 가음현 용골산에서는 모두 6마리몫의 완형 공룡화석이 발굴되었다.러시아 레닌그라드박물관과 흑룡강성박물관 등이 보관하고 있다. ○성 행정 최고간부도 배출 강변공원 입구에 세운 안내판에는 ‘중화민족은 용의 자손’이라는 글귀를 담았다.중화민족은 물론 한족을 가리키는 말이다.용의 후손들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한족들은 뿌리깊은 용문화를 지키고 있다.음력 설날부터 보름까지는 아직도 용춤을 추고 단오날에는 용주를 타는 민족이다.그리고 용은 지고의 권력을 상징했다.임금의 옷을 용포,얼굴은 용안,앉는 의자를 용상이라 하지 않았던가.우리 민족도 용을 우러르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한족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한족의 용은 어마어마한 권력의 상징물이다.그 권력은 타고난 것이거니와,세습이었다.그래서 여느 사람이 출세해서 높은 자리에 오르면 ‘개천에서 용이 났다’는 말을 한다.한족사회에서 조선족의 출세는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그런 조선족으로는 전 중앙민족사무위원회 문정일주임과 전 중국인민해방군 총후군부장 조남기상장을 꼽을수 있다.이들은 중국의 행정부와 군부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조선족들인 것이다. 흑룡강성에서 고위직에 올랐던 조선족중에는 전 성민족사무위원회 이민주임이 있다.그녀의 남편 진뢰는 성장이었는데,부가 항일투사였다.지금은 항일과 해방전쟁 출신의 조선족 간부들은 다 퇴직하고 새로운 조선족 세대들이 들어섰다.그러나 옛날처럼 정치적인 출세라기보다는 기술직과 전문행정직이 대부분이다.흑하시에 사는 퇴직간부 한정순씨(64)는 조선족들이 기술이나 전문직에서만 출세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의 조선족 간부들은 한족 간부들과 어울려 항일이나 해방전에 함께 참여한 동지이자 전우였디요.기래서리 정치적으로 길이 열려 한 자리씩을 했던거우다.요즘은 사정이 달라져 한족 틈새에서 간부를 하자면 실력이 뛰어나지 않고는 퍽 어렸습네다.개천에서 용이 나던 세월도 다 갔디요.” 그도 역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한족들과 함께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한 조선족이다.평북 신의주 태생인 그는 1958년 대퇴한 이후 흑룡강성 밀산현 농업개간국에서 근무하다 1964년 흑하시 당학교로 전근했다.중학교를 졸업했으나 중국인민지원군으로 참전했던 덕분에 지식인 대접을 받았다.그러나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아내의친척들이 남과 북에 산다는 이유로 조선간첩 누명을 썼다.당시 흑하시의 조선족 간부 13명 모두 간첩이 되었다.조선족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북한도 백안시했던 때라 기쁜 소식을 말하는 ‘해보’를 통해 ‘김일성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어떻든 조선족은 연변과 같은 자치구역이 아닌 한족구역 공공직장에서 제1인자가 되기는 점점 어렵게 되었다.용은 감히 바라지도 못하고 이무기만 되어도 다행스럽게 여길 정도로 조선족 위치가 변했다.자리가 높아진다 해도 자리를 지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치치하얼시에서 12년간 물자국장으로 일했던 성영석씨(58)의 회고담에는 그런 어려운 사연이 역역히 들어있다.소수민족이 다수민족 사이에서 홀로 서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만했다. “물자국 직원은 600명이나 됐드랬디요.그런데 조선족은 내 혼자였디요.내가 총경리가 되고 나서리 밑에 있는 직원들이 상급기관에 고자질하기를 밥먹듯 합데다.그때 고자질 내용이 흑룡강신문에도 났디요.시에서 전문조사단을 통해 1년동안 검사를 해봤디만 헛물만 켠꼴이 되었댔습네다.내가 청렴하게 살았는데 걸려들 것이 있을리 만무했디요.내 인물이 잘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부에 아첨 잘한 것도 아닙네다.오로지 실력과 청렴으로 버틴 것이우다.” ○물가국장 12년간 봉직 그는 1964년에 치치하얼 물자국에 배치되어 1982년 총경리로 올라갔다.그리고 1994년까지 꼭 12년간 국장을 지냈다. 그는 당시 북한의 유일한 공과대학이었던 김책공대 출신의 기술엘리트다.흑룡강성 용강현에서 태어나 내몽골 우란하오터에서 중학교를 나온 뒤 1960년에 하얼빈공업대학에 입학했다.그런데 3학년때 북한으로 도망을 가서 김책공대에 시험을 쳤다.북한은 조선족을 무조건 받아주고 공부도 시켜주는 때라 김책대학에 들어가 매달 20원의 생활비도 받았다.김책공대를 졸업하고 잠깐 집에 들렀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중국에 주저앉아 버렸다. 오늘날 흑룡강유역에서 현직으로 활동하는 ‘개천의 용’은 겨우 두 손가락을 꼽을수 밖에 없다.막하현 기술감독국 박청천 국장(50)과 흑하시 우전국 서리희 국장(53)이 그들이다.그런 현실을 보면 기술전문분야를 파고들지 않고는 조선족중에서 ‘개천의 용’이 나올수 없다는 사실이 예견되었다.2백만 조선족을 대변할 정치적 ‘용’은 영영 나오지 않을 것인가.그 숙제는 조선족의 부단한 노력과 단결력에 달려있을 것이다.
  • 하마스 지도자 암살 기도/이 개입 우회적 시인

    【예루살렘 AP AFP 연합】 이스라엘은 5일 지난달 25일의 하마스 지도자 칼리드 마샬 암살미수 사건과 관련,첫 공식 성명을 통해 ‘타협하지 않고’테러에 대처하는 것은 권리라면서 이 사건에 이스라엘 정부가 개입돼 있음을 우회적으로 시인했다. 다니 나베흐 내각장관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과 대책회의를 가진뒤 발표한 성명에서 이스라엘 정부가 암살을 기도했음을 분명하게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마샬을 “많은 이스라엘인을 살해한 책임이 있는 하마스의 제1인자”라고 지칭하면서“시민의 생명을 보호하면서 테러에 타협하지 않고 대처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라고 말했다.
  • 이 대표 여 중심축으로 급부상/총재되면 달라지는 것

    ◎대표최고위원·3역 임명 등 인사권 장악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가 30일 대구전당대회에서 총재직을 승계하게 되면 여권의 중심축이 상당 부분 이대표쪽으로 이동하게 된다.대선후보로서 현재 지지도가 3위에 머물어 급격한 권력변동은 없을 것이지만,당안팎의 여러 주요 현안과 행사들이 이대표를 중심으로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이대표측이 “이대표가 총재직 승계하고 나면 주변 여건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근거한다. 이대표는 명실공히 당권을 거머쥔 ‘집권여당의 1인자’로서 당무 전반에 관한 ‘무한책임’을 갖게된다.중앙당사와 지구당사에 걸린 김영삼총재의 사진이 이회창 대표로 바뀌고,당원증·당직자 임명장 등 각종 공식문서에도 이대표의 이름이 적힌다.무엇보다도 1천억원 상당의 천안연수원을 비롯,10일 입주하는 중앙당사 등 총 2천억원에 달하는 당재산의 실적적인 관리자가 된다.이대표의 동의와 도장없이는 처분은 물론 어떤 형태의 변경도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당직 인사권의 장악이다.총재로추대된 직후 대표최고위원을 지명하게 되고 당 3역을 임명하는 등 주요 당직이 그의 심중에 따라 짜여지게 된다. 물론 전임 총재인 김영삼 대통령과 같은 권한을 지니지는 못한다.개정된 당헌·당규에 따라 당직자회의,당무회의는 총재가 아닌 대표최고위원이 의장이 되는 등 권한의 상당부분을 대표에게 넘겨줬기 때문이다.
  • 여 대표 인선 국민회의의 계산

    ◎대선자금 확보능력 감안… 김 고문 경계/위협덜한 이 고문으로 가닥잡히기 기대 ‘밑져도 본전’ 대표 인선을 둘러싼 신한국당의 갈등을 지켜보는 국민회의쪽 반응이다.상처를 입을 만큼 입었으니 누가 대표가 되든 DJ(김대중 총재)에게 손해날 일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은 신한국당 갈등의 주역인 김윤환·이한동 두 고문에 대한 국민회의의 ‘선호도’에서 격차가 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내심으로는 누가 대표가 되느냐에 따라 자칫 불편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의 한 관계자는 23일 “신한국당 후임대표는 대선에서 이기면 정권재창출의 1등 공신이고,지면 다수당의 1인자가 된다”면서 두 고문의 성격을 설명했다.김고문이 정권재창출에 혼신을 쏟을 것으로 보이는 반면 이고문은 후자의 가능성도 염두에 두며 대표직을 수행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대선자금의 확보능력에서도 김고문을 경계하는 분위기다.청렴을 내세우는 이회창 대표가 직접 나설 가능성이 없다고 보면 그 역할은 대표의 몫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회의는 신한국당이 대표 인선 문제로 상처를 입은데다,인선 자체도 상대적으로 위협이 덜한 이고문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는데 대해 다행스러워하는 분위기다.
  • 신조협려­대만 소프트월드사/‘평민신분’극복 무협세계‘1인자되기’

    ◎무예연마·사랑 ‘원사이드’ 진행/잇단 사건속 실마리/난이도 다소 높아 ‘신조협려’는 대만 소프트월드사에서 만든 RPG(롤 플레잉게임). 국내에는 지관(02­871­0812∼4)에서 한글로 바꿔 10월 중순쯤 내놓는다. 게임의 원작 시나리오는 김용의 무협소설.워낙 원작이 방대한 분량이라 이번에 나온 게임이 전편이고 곧 후편 제작에 착수한다. 평민인 주인공 ‘양과’가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무협세계의 1인자로 등극하기까지의 과정이 게임의 기둥줄거리다. 유년기부터 시작되는 양과의 피나는 무예 연마과정,사랑에 눈을 떠가는 과정,화산 정상에서 무공연마에 열중하다 예기치 않은 사건에 휘말려 속세를 등지게 되는 일 등이 흥미진진하게 표현된다. 이전의 RPG와는 달리 원사이드 진행방식을 택하고 있어 게이머는 무조건 주인공 ‘양과’를 선택해서 플레이해야 하는 점이 특징. 게이머는 그때그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게임을 지속할 수 있는데 실마리는 도처에서 만나는 여러 인물들한테서 얻게 된다.들은 얘기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꼭 기억해둬야 한다. 게임 초반부는 어드벤처 형식으로 진행된다.이때는 양과의 무공이 아직 형편없기 때문이다.여기에는 수많은 인물과 아이템을 찾아내는 이벤트가 들어 있다. 다른 RPG와 차별되는 것은 시나리오다.원작에 충실하게 만든 게임이므로 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지는 않는다.특히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기 위해 장면장면에 세심한 신경을 썼다. 예를 들어 길과 동굴이 한꺼번에 배경으로 나올수 있는 장면에서도 동굴장면만 따로 처리했다. 이 장면에서 게이머는 동굴에 빠지게 되는데 스스로 아이템(갈고리)을 찾아서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게임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전투장면은 3D로 처리하고 있다. 전투장면에서는 마우스로 아이템을 클릭하면 다양한 속성을 알 수 있고 필요한 아이템은 끌어다 사용할 수 있다. 게임안에 들어있는 무공초식(기본무공)은 전진검법에서 미녀권법,타구봉법,음란쇄혼장,옥녀소심검,천라지강세,쌍검합벽,쌍수호박 등 매우 다양하다. 시나리오를 중시하는 게임이라 그래픽은 그다지 뛰어나지않은 편.하지만 어린 동자들이 방으로 달려가 놀고 있는 모습,소가 풀을 뜯어먹는 장면,하품하는 장면 등은 애니메이션이 돋보인다. 16곡의 배경음악도 게임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 생각을 많이 하면서 플레이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수 있다.김용 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쉽게 진행할 수 있다.
  • 강택민 1인체제 굳히기/중국공산당 15전대 결산

    ◎대대적 세대교체… 중앙위원 절반 신진기용/상해파 약진… 경제개혁·개방 가속도 붙을듯 중국공산당 15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는 강택민의 개혁·개방에 바탕을 둔 정책을 인준하고 그에대한 정치적 견제세력들의 실각을 결정함으로써 모택동­등소평시대에 이은 강택민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강은 정치적 라이벌 교석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정치적으로 무장해제시키고 1인자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18일 교석은 중앙위원에서 탈락,14차 당대회때 양상곤 전 주석과 마찬가지로 정치국 위원및 상무위원직에서 자동 탈락하게 되는 등 정치적으로 은퇴하게 됐다.강택민은 권력안정에 절대적인 군부장악에도 성공,입지를 더욱 다졌다.군부내 강택민의 견제세력인 양백빙의 중앙위원 탈락과 중립적이던 노장군 류화청과 장진 등 군부내 두 기둥의 은퇴로 강택민의 군부에대한 직접 통치도 가능하게 됐다.류화청의 정치국 상무위원자리는 강택민의 군부내 대리인인 장만연 중앙군사위 부주석이 대신하게 된다.또 우영파 총정치부 주임,주자옥 총정치부 부주임,웅광해총참모부 부참모부장 등 직계들의 중앙위원 기용도 강의 군부장악을 알려주는 것이다. 강택민시대의 본격 개막은 19일 열릴 중앙위원회 15기 1차회의에서 정치국원 선출 등을 통해 구체화 된다.그러나 강택민이 모나 등과 같은 카리스마적인 일인 지배권력을 휘두르기는 어렵다는게 일반적인 견해다.기존의 집단지도체제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도내에서 각 계파와 세력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명실상부한 당·정·군의 일인자의 자리를 지켜나갈것이다.이점은 16대 전당대회까지 앞으로 5년동안도 중국 정국의 안정을 예상케 한다. 18일 선출된 중앙위원들은 193명가운데 절반이 넘는 56.5%,109명이 새로 임명됐다.새로운 진용으로의 대폭적인 물갈이 인사라고 할 수 있다.나이도 55.9세로 대폭 낮아졌다.21세기를 대비한 인사의 성격도 있다.중앙위원회는 중국 공산당의 최고의결기관으로서 각 영역의 대표들이란 점에서 미래 중국을 점치게 한다.강택민의 오른팔격인 증경홍당 중앙판공실 주임과 서광적 상해시 시장겸 부서기,진양우 상해시 부서기 등의 중앙위원 기용은 차세대 주자로서의 포석으로 해석돼 주목된다.이들의 약진은 상해파의 세력확대와 직결된다.당가선 외교부 부부장,대병국 당대외연락부 부부장의 기용은 젊은 전문관료들에 대한 중용을 표시한 것이다. 이에비해 광동의 대부인 엽선평,조자양의 후계자였던 호계입,북경시의 터주대감 이기염,추가화 부총리의 탈락은 한시대가 가고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음을 상징한다.정책적인 측면에서 15대 당대회는 등소평이론을 당의 헌법인 당장에 명문화시킴으로써 시장경제의 본격적인 도입등 경제개발중심의 개혁·개방을 더욱 밀고 나갈 것임을 선언했다.또 국유기업의 개혁,소유의 다양화 등 부분적 사유화 인정 등도 통과시켰다.그러나 공산당과 무산계급의 독재,공유제도및 국가의 경제적 통제 등 사회주의노선에 충실할 것을 다짐했다는 점은 예전과 다름없는 점이다. 한편 조선족으로는 이덕수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중앙위원으로 선출됐다.
  • 피아노 임동창·소리 장사익·대금 이생강/3인의 쟁이 3색음 교감

    ◎국악·양악 어우러져 ‘장르파괴’/21일 예술의 전당서 이색무대 피아노의 임동창,소리의 장사익,대금의 이생강.각자 자기 분야에서 독특한 색깔을 자랑하는 이들 3인이 한 곳에 모여 3색 음악의 교감을 꾀하는 장이 마련된다. 21일 하오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갖는 ‘임동창 장사익 이생강의 97 공감’ 콘서트.이들은 여기서 피아노와 사물,소리와 사물,피아노와 대금,피아노와 소리,그리고 3색 음의 즉흥적 혼합 등 다양한 무대를 꾸민다.임동창과 장사익은 이미 콘서트와 음반 ‘하늘 가는 길’을 통해 음악적 만남을 이뤘었지만 이생강이 합류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까까머리로 유명한 임동창(41)은 피아노로 가야금이나 거문고,해금과 같은 국악기의 소리를 내거나 밥주발·홍두깨 등 생활용품과의 협연 등으로 독특한 자기 영역을 구축한 연주자 겸 작곡가.음악계에서는 음악인보다 기인으로 더 잘 통하는 그는 요즘도 자기 맘대로 뜯어고친 ‘임동창식 피아노’로 국악과 양악,장르와 장르의 넘나듦을 꾸준히 실험하고 있다. 소리꾼 장사익(48)은 임동창을 만난 것을 계기로 마흔을 훌쩍 뛰어넘은 나이에 첫 가요음반을 낸 역시 기이한 경력의 소유자.걸걸한 탁성에 가슴을 뚫어주는 창법이 일품이지만 그의 소리는 반주를 맞추기 어려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 이 둘의 자리에 처음 합류하는 이생강(60)은 지난해 무형문화재 대금산조 보유자로 지정받은 대금의 1인자.대금뿐 아니라 피리·단소·소금·퉁소··호적 등 모든 전통 관악기를 통달한 ‘타고난 쟁이’다. 임동창의 멜로디언 연주로 막을 여는 이들의 이번 공연은 크게 네마당으로 진행될 예정. 첫 무대는 임동창의 차지로 ‘또닥또닥’ 등 2곡의 피아노 연주에 이어 사물놀이 두드리와 함께 생활용품들을 악기로 활용한 신나는 협연을 펼친다.이어 이생강이 나서 ‘이생강류 대금산조’ ‘정선아리랑’등 타령 2곡을 연주하며 임동창과 피아노·대금의 협연을 갖는다. 뒤이어 장사익이 임동창의 연주및 사물을 반주로 ‘찔레꽃’ 등 5곡을 들려주며 마지막 피날레 무대에서는 3인의 즉흥 합성으로 임동창의 피아노 퍼포먼스,장사익의구음,이생강의 대금연주 등이 함께 어우러지는 이색무대를 꾸민다.문의 598­8277.
  • 부채에 땀이 배어야 “시원”/태극선 1인자 조충익씨

    ◎살 가늘고 견고… 태극천 겹치지 말아야/특수접착제 사용… 장마철 곰팡이 안슬어 “태극선 만큼 우리를 잘 나타내는 상품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20년 가까이 전주에서 태극선을 만들어온 조충익씨(50)의 전통부채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은 대단하다. “부채는 손으로 연신 흔들어대는 것이어서 정성을 들여서 만들지 않으면 며칠 못가 망가지고 맙니다.공을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얘기죠” 조씨는 요즘 전북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 전주죽세공예협동화단지내 10여평의 작업실에서 ‘천연 손풍기’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국내 태극선제작의 1인자로 손꼽히는 그가 지금까지 제작해온 부채는 아동선 금선 대금선 파초선 중원선 등 20여종이 넘는다.일반부채보다 살이 3배쯤 많은 250살짜리 세미선은 태극선 제조기법의 최고봉이란 찬사를 받고 있다. 태극선의 특징은 부채살에 오려붙인 태극선의 태극무늬천이 전혀 겹치지않아 전체가 마치 한장으로 보이는 것이 조씨의 빼어난 솜씨다.특히 자신이 고안한 특별접착제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장마철에도 곰팡이가 슬거나 변질되지 않고 부채살이 가늘어도 매우 견고하다.이 때문에 그의 태극선은 해외에서도 알아준다.각종 운동경기대회에서 응원단이 한국을 상징하기 위해 흔드는 태극선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쳐간 것들이다.
  • 전주 전통부채/단아한 선비의 멋 부채살마다 가득

    ◎한해 합죽선 5만·태극선 50만개 생산/살 많고 고른것이 좋아… 가격 천차만별 ‘단오 선물은 부채,동지 선물은 책력(24절기가 표시된 지금의 달력에 해당됨)’ 단오가 되면 더운 여름철이 가까워지는 만큼 부채가 선물로 제격이고 동지가 가까워오면 새해에 쓸 책력이 선물답다는 뜻의 옛말이다. 부채가 다른 어느것보다 친근한 성하의 계절이 돌아왔다. 에어컨과 선풍기 등 냉방기기의 폭발적인 증가로 부채시장이 크게 위축됐지만 ‘전주 전통부채’가 나름대로 활로를 찾고 있다. 워낙 멋과 품위가 있는데다 옛 것을 되찾자는 최근의 복고적인 분위기도 부채사용 인구를 점차 늘리는데 한몫하는 셈이다. 부채와 관련된 기록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은 삼국사기다.이 책에는 후백제의 견훤이 왕건에게 공작선을 선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흥미로운 것은 당시 후백제의 수도가 지금의 전주인 완산이란 점이다. 조선시대에도 전주는 국내의 부채산업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당시 전라도 전역을 관할하던 최고행정기관인 전라감영에 부채를만드는 선자방을 별도로 두고있었으며 최고행정책임자인 관찰사는 해마다 여름이 되면 최고품질의 부채를 궁중에 진상해 왔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전주의 부채가 옛부터 전국적으로 높은 성가를 얻어온 것은 이 지역의 특산품인 한지와 질좋은 대나무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인 냉방기기가 폭넓게 보급되면서 부채산업은 지난 80년대 이후 한동안 판매량이 절반이하로 뚝 떨어지며 쇠락했다. 결국 전북도와 전주시는 지난 90년 지역경제의 활성화와 전통문화보존대책의 하나로 전주지역의 부채 제작자들이 한 곳에 모일수 있도록 공예품협동화단지를 주선해주고 조합도 결성했다.공예품을 전시,판매할 수 있는 70여평규모의 공간도 지원했다. 현재는 전주지역에서 합죽선과 태극선을 수십년씩 제작해온 장인 8명이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 전주∼남원간 국도변의 협동화단지에 보금자리를 틀고 부채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단지에서 연간 생산되는 부채는 합죽선이 4만∼5만개,태극선을 비롯한 각종 부채는 40만∼50만개에이른다.합죽선은 국내 유통량의 거의 전부가 이곳에서 생산되고 태극선 등은 국내전체시장의 80∼90%에 해당되는 물량이다. 이밖에 남원지역과 전남 담양지역에서 태극선 등이 약간 생산되고 있으나 미미한 양이다. 다만 요즘엔 값싼 중국산 대나무로 만들어진 부채들이 국내에 상당량 유입되고 있으나 대와 종이의 질,접착상태등 전반적인 솜씨가 전주의 전통부채를 따라가진 못한다. 지난 90년부터 협동화단지에 입주해 작업중인 국내합죽선제작의 1인자 이기동씨(68·전북도 무형문화재)는 “에어컨과 선풍기 등 냉방기기 보급이 늘어났다고 해서 부채의 용도가 완전히 페기된 것은 결고 아니다”면서 “일부에서는 냉방병 걱정도 없고 전력도 아낄수 있는 부채사용을 적극 권장하고있으며 어떤 이들은 아예 부채를 장식용으로 구입해 수요는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단선과 접선으로 나눠 ▷종류◁ 부채는 모양이 둥근 단선과 접었다 펼 수 있는 접선으로 나뉜다.단선은 모양이나 크기에 따라 오엽선과 연엽선·태극선·까치선·공작선·파초선·대금선·중원선·대원선 등이 있다.또 접선에는 합죽선과 백선·칠선 등이 있으며 아동들을 위한 아동선과 민화가 그려진 민화선도 있다.물론 전통 전주부채로는 태극선과 합죽선을 제일로 친다. ○손잡이 재질은 소나무 ▷제작 과정◁ 태극선과 합죽선의 제작과정은 다소 다르다.우선 태극선은 2년이상 묶은 왕대나무를 겨울철에 베어내 1㎜ 두께로 부채살을 만든다.이어 고급비단인 양단을 부채살에 잘 붙여 떨어지지 않도록 응달에서 24시간 가량 말리고 각종 모양으로 끝을 오려낸 뒤 한지로 테두리를 친다.소나무를 재질로 하는 손잡이를 끼우면 마무리된다.합죽선은 이보다 제작과정에 훨씬 복잡하다.합죽선은 대나물를 양잿물에 삶아 진을 뺀 뒤 약 보름정도 말리고 칼로 부채살을 만든다.부채살의 아랫부분에 인두를 이용해 그림을 그려넣는 낙죽과정을 거친뒤 종이를 부채살에 붙이고 그 종이에 그림을 그린다음 부채살의 끝을 고리로 꿰어 사용한다. ○살 많고 간격 일정해야 ▷좋은부채 고르는 법◁ 일반적으로 부채는 대나무살의 간격이 고르고 가급적 살의 수가많을수록 좋다.태극선은 살 위에 붙은 태극무늬가 정교하고 옆에서 봤을때 구김이 없고 반듯해야 한다.또 부채의 두께가 너무 두껍지 않고 한지를 이용한 모서리의 마감상태가 좋아야 한다.합죽선은 대살이 가급적 많고 가지런해야 하고 대나무와 한지의 접착상태를 잘 보고 구입하면 된다. ○합죽선 최소 2만원선 ▷가격과 구매방법◁ 태극선은 크기나 모양등에 따라 2천원부터 약 5만원까지 매우 다양하다.합죽선은 이보다 비싸 최소 2만원선이며 크기나 부채안에 그려진 그림·글씨에 따라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것도 있다.전주시 완산구 중앙동을 비롯한 시내 중심가의 화랑에 가면 유명화가나 서예가들의 그림이나 글씨를 붙인 각종 크기의 합죽선과 태극선을 손쉽게 구할수 있다.전주∼남원간 도로변인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의 전주공예품특산단지(0652­87­7975)에 가면 전국최고의 장인들이 만든 진품전주부채를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다.
  • 로커스 김형순 사장(빌 게이츠 꿈꾸는 한국의 도전자)

    ◎컴퓨터 털레포니 “내가 바로 1인자”/「보이스 메이징」 시스템 개발… 200억에 계약/올매출 목표 250억·해외시장 개발 박차 □그가 성공할 수 밖에 없는 3가지 비결 ①37살 나이에 사고·행동은 100% 신세대 ②수요예측·기술개발 등에 발굴의 순발력 ③“메이저 외국업체가 별거냐” 자신감 충만 『자기가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가장 잘할수 있는 일을 찾아 한다면 행복한 인생 아닐까요』 정보통신업체 (주)로커스(02­3149­9000) 김형순 사장은 벤처기업 붐과 함께 우리사회에 흔해진 20대 신세대 사장은 아니다.37살의 나이에 회사 운영도 벌써 9년째인 관록(?)이 여느 엔지니어 출신 풋내기 사장들과는 다른 무게를 느끼게 한다.그러나 그의 사고나 행동은 신세대를 뺨치는 패기와 모험심으로 충만해있다.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하지 말라는 일만 한」 인생이었다.연세대 신문방송학과 2학년때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연히 미국 유학길에 오른 일하며 도중에 경영학으로 돌아 박사과정에 들어가선 학위보단 사업이 적성이라고당돌하게 현지 법인을 세운 일은 모두 집안의 우환거리였다. 『철없는 방황은 아니었어요.제가 원하는 일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사업에 대한 욕심은 어려서부터 있었던 것이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구체화되니까 하다못해 식당에서 이쑤시개를 보면서도 어떻게 만들면 더 잘 팔릴까 생각할 정도였어요』 이렇게 해서 로커스는 미국에서 89년 설립된다.90년 김사장의 귀국으로 국내에 둥지를 틀고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간다.분야는 컴퓨터 텔레포니.정보통신망을 컴퓨터로 제어,서로 다른 종류의 단말기들을 연동시켜주는 첨단 통신기술 분야다. 예컨대 전원을 끈 PCS로 전화를 걸어도 음성메시지를 남기면 서버 컴퓨터가 이를 저장해 수신자의 무선호출기,일반전화기 등 미리 설정한 통신단말기로 메시지를 자동으로 보내주는 기술이다.로커스는 「보이스 메시징」이라고 불리는 이 시스템의 장비 및 소프트웨어 판매계약을 최근 한솔PCS와 맺었다.계약규모는 2백억원,시스템 인도는 99년초 예정이다. 한솔과의 매출계약과 함께 올해 완료되는 SK텔레컴고속무선호출망 시스템 구축사업은 로커스가 수년동안의 기술개발투자가 열매를 맺는 신호탄이다.지난해까지 은행창구일을 컴퓨터 제어를 받은 전화로 완벽하게 수행하는 폰 뱅킹 시스템이 주된 수입원이었지만 덩치가 작았다.지난해 매출액 70억원에서 올해 2백50억원으로 목표를 잡은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전화,무선호출기,PCS,팩스 등 컴퓨터기술을 이용한 통신단말기 망간 통합은 계속 확대될 것입니다.이에 따라 새로운 시장도 핵분열처럼 창출되는 것이죠』 김사장은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전자우편과 다른 통신단말기간의 통합기술 개발에 일찌감치 착수,재작년에 한 국제전시회에서 발표한 바 있다.미래의 수요를 예측하고 기술개발이 남보다 빨라야 하는 벤처기업 경영인다운 순발력이 돋보인 예다. 그는 컴퓨팅 텔레포니라는 분야가 우리 언어적 특성을 고려한 소프트웨어라는 점에서 외국업체와 승부를 걸어 볼 만하다고 판단한다.국내 대기업들의 기술수준은 로커스의 그것보다 못하다는 자신감도 갖고 있다. 그는 『국제 표준규격에 가장충실한 기술을 지향해왔으며 앞으론 동남아시장을 필두로 해외시장에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 기수련 열기(송화강 5천리:29)

    ◎새벽녘 강변 메운 기공인파 진풍경/“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리듬맞춰 각종 동작/정식 등록된 것만 200여종… 법륜공 가장 인기/창시자 이홍지의 저서 1백만부 판매 ‘돌풍’/노인·질환자 주축 연변 조선족 3만여명 심취 송화강가의 이른 아침은 기공으로 시작되었다.도시의 사람들이 패거리로 모여 녹음기에서 울려나오는 음악에 맞추어 기공을 즐겼다.마치 디스코를 추듯이 팔다리를 움직이는가 하면,원숭이처럼 홀딱거리는 춤을 추었다.어떤 패거리는 스님들이 좌선을 하는 자세로 명상에 잠기기도 했다.별의별 기공이 다 펼쳐지는 하얼빈의 홍수방지기념탑 광장은 중국 기공의 노천 박람회장 그것이었다. ○법륜공학원 전국 20만개 중국에는 천여가지의 기공이 있다고 한다.정부에 정식 등록한 기공만도 200여종에 이른다.그중에서 법륜공과 중화양신공,향공따위가 유명하다.그 가운데 법륜공은 조선족과도 인연이 깊은 기공이다.확실한 통계는 없으나 길림성 연변에서만도 조선족 기공인구가 3만여명인 것으로 추산했다.그런데 법륜공을 하는 사람이 가장많아 7천여명에 이른다는 것이다.대개가 노인들이고 청장년들은 환자거나 병력을 가진 사람들이 기공을 하고 있다. 법륜공 창시자는 이홍지(46)다.길림성 공주령시 태생인 그는 어려서부터 스승밑에서 수련을 쌓았다.그는 39살때 법륜공을 창시하고 제자를 길러 1992년부터 보급하기 시작했다.법륜공은 법륜대법이자,세계적으로 유일한 성명쌍수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그러면 기공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물음에,기공은 현대인들이 지은 것에 불과할 뿐 본래의 이름은 수련이라고 했다.그가 쓴 「중국법륜공」과 「전법륜」 등을 보면 법륜공은 심성을 수련하여 마음과 몸을 함께 건강하게 만드는데 목적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가 오래 자리를 잡았던 길림성 장춘시에는 법륜공학원이 자그마치 1만군데를 헤아리고 있다.그리고 전국에는 20만군데에 분포되었다.그의 저서는 근래 몇년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굳혔다.해적판까지 나와 1백만부가 팔렸다니 법륜공 위력을 알만하다.70∼80년대에 전국을 휩쓸던 다른 종류의 여러가지 기공들이 차츰 식어가는 것과는달리 법륜공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과학으로는 해명할 수 없는 신비의 세계가 아닌가 한다. 조선족과 법륜공의 만남은 지난 1994년 1월에 이루어졌다.연변농업대학 이명권 교수(68)가 당시 모친 유경순 노인(87)의 병치료를 위해 북경으로 가던 길에 천진에서 열린 이홍지의 법륜공학습반을 찾은 것이 인연이 되었다.그 때에 용정시당학교 직원 염준철(50)과 용정시 직원 김미옥씨(42)도 북경으로 병을 치료하러 동행했던 터라 함께 법륜공학습반을 찾았다.이명권 교수는 법륜공과 인연을 맺게된 사실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제 모친은 병이라는 병은 다 앓고 계셨디요.고혈압에 동맥경화증,담낭염 관절염 등 병주머니였습네다.그래서 북경을 가는 길에 요행을 바라고 이홍지선생 강습반을 찾았디요.수천명이 모인 회장에서 3일간 강의를 듣고 났더니,모친 병세가 더 나빠지지 뭡네까.그래서 당황했디요.이홍지 선생께 말씀을 드렸더니,병이란 업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을 합데다.그러면서 더 아픈 까닭은 소업을 하는 중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디요.이틀이 지나니까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합데다』 그 이후 노인은 산동성 제남에서 열리는 법륜공학습에도 참여했다.20여일 학습이 끝나고 나서 제남에서 유명한 천불산 정상을 오르는 기적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집에서는 계단도 오르지 못했던 노인은 그동안 먹던 약을 모두 버렸다.연변으로 돌아온 이명권교수 일행은 이홍지를 연변으로 초청했다.지난 1994년8월20일 연길시체육관에서 법륜공학습반을 열었을때 전국에서 3천200명이 참가했다.1인당 학습비를 40원씩 받았는데,경비를 제외한 7천원은 연변홍십자회에 기증되었다. 법륜공으로 건강을 회복했다는 렴준철씨를 용정으로 찾아갔다.나이와 걸맞지 않게 혈색이 아주 좋았다.법륜공에 의한 기공을 시작하고 나서 8년간을 감기약 한 알 먹지 않았다는 그는 지난날 병을 오래 앓았던 사람이다.기공은 그만큼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규정된 동작을 가지고 있거니와,그 동작은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그래서 법륜공에 대한 자랑이 대단했다. ○규정된 동작 반복 훈련 『저는 남포(화약폭발)사고로 뇌를 다쳤댔습네다.그 이후에 여러가지 병이 겹쳐서 생겼디요.뇌외상간질병에 약물성간염,장염에 치질까지 생기더란 말입네다.거기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니끼니 마누라가 자식들과 나를 두고 달아납데다.월급은 서푼인데 아이들 공부시켜야디,맨날 병원에 가야디,도저히 살 수가 없습데다.그러다 설상가상이라고 면풍까지 맞아서 입이 돌아갔디요.죽을 생각만 납데다요.에라 죽을 바에야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이나 받아보자고 집을 나섰다가 천진에서 법륜공학습을 만나 살아났수다』 ○과학자도 법륜공에 심취 법륜공을 하는 사람중에는 과학기술자도 있다.하북성 한단강철회사 고급공정사 경점의가 바로 그 사람이다.북경과학기술대 전신인 북경강철원을 50년대에 졸업한 중국 야금계의 제1인자인 그는 아내가 법륜공수련으로 건강을 되찾은 것이 법륜공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의사였던 아내가 중동성신근염에 걸려 오랫동안 입원치료를 해도 효험을 보지 못하다가 법륜공 수련으로 회복한 것을 보고 법륜공에 심취해버렸다. 그는 몇가지의 국가전리권을 가지고 있다.한국의 기술 특허권 같은 것인데,그가 따낸 전리권은 「광석으로 직접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기술」과 「야금제련과 건설항업 내화격열 저온 양화마그네슘 전열재료 및 생산방식」 등 두가지다.국가과학기술전리국에서 준 전리권수권서에는 「발명인은 기공학자로서 법륜대법을 수련하면서 법륜대법의 방식으로…」라는 머릿말이 명백히 들어있다. 그 법륜대법의 방식은 무엇인가.경점의는 북경대학과 청화대학에서 가진 좌담회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고열의 용광로속에서 일어나는 구체적 화학반응을 지금까지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이론을 먼저 세워놓고 실험을 거쳐 생산에 응용하는 간접적 인식방법이 있을 뿐이었습니다.나는 어느날 마음을 가다듬어 무아의 상태에 들어갔을때 누군가가 시뻘건 쇳물이 부글대는 용광로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그리고 잠수부가 바다밑을 헤엄치듯 쇳물속을 휘저으면서 광석을 직접 알루미늄합금으로 제련하는 반응을 보여 주었습니다』 기공현상과 기공이론은 전통적 과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있다.따라서 비과학적이고 미신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그러나 어딘가에 불가사의한 구석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 “나를 구속하면 국민 저항”/박경식씨 “현철씨 증언 다 거짓말”

    김현철씨가 한보 청문회의 증인으로 나선 25일 서울 송파구 송파동 G클리닉 원장 박경식씨(44)는 상오 9시30분쯤 병원에 정상 출근,TV를 보지 않은채 20여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박씨는 『김씨가 뭐라 말할지 궁금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다 거짓말인데 TV를 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내 할 일은 다 마쳤다』며 예수가 최후의 순간 했던 말과 비슷하게 말했다.청문회를 통해 현철씨와 관련된 의혹에 대한 진실을 국민에게 알리는 자기 역할을 다했다는 설명이다.박씨는 또 자신의 입장을 담은 성명서를 통해 이른바 「의사·열사론」을 주장했다.박종철씨 고문치사 사건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예로 들며 이때 결정적인 증언을 해 진실을 밝힌 사람들이야말로 의사이며,이들이 민주화를 앞당기고 지켜온 주인공이라고 강조했다.자신도 마찬가지라며 좌충우돌했다. 박씨는 또 『자신을 구속하면 엄청난 국민의 저항을 겪을 것이며 국회는 해산될 것』이라면서 『나 하나 희생해 부패하고 썩은 세력을 씻어내고 국민을 위한 세력이 등장한다면 어떤 고난도 달게 받겠다』고 밝혔다. 이날 청문회에서 현철씨가 신라호텔에서 만난 사실이 없다고 하자 박씨는 『내가 허깨비를 봤단 말이냐.그러면 허깨비가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셈 아니냐』고 반문했다. 박씨는 『나보고 「왕자병 환자」라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분야에서 1인자가 되면 그가 바로 대통령이며,내 분야에서 1인자인 내가 대통령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소신을 피력했다.
  • 북한지도부 변화 주시해야(사설)

    북한 권력내부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김정일이 김일성사망 3주기가 지난 뒤인 오는 7월이후 주석자리를 승계하는 등 제1인자로서의 지위를 공식화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는 가운데 황장엽의 망명,이 사건과 무관치 않아 보이는 총리강성산의 실각에 이어 최광 인민무력부장 사망 등 개편의 폭을 넓힐 요인들이 잇달아 추가되고 있다. 궁금한 것은 최광 등 소위 혁명1세대 내지 1.5세대 다수의 퇴진이 북한정권의 성향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이냐 하는 것이다.아울러 김정일이 황비서 망명사건과 관련하여 강성산이외에 내부숙청을 얼마나 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내부동요는 없을 것인지도 관심사다.또 가장 신뢰를 주고 있는 군요직에 어떤 성향의 인물을 기용할 것인지도 향후 「김정일 북한」의 진로와 관련,주목된다. 북한문제전문가들은 당장은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본다.김일성이 생전에 김정일을 군사위원장 자리에 앉혀 사전 정지작업을 철저히 해놓아 오진우사망때처럼 최광사망도 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본다.황비서 망명사건도 조기수습으로 방향을 잡아 대대적 숙청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식량난극복과 주민동요 차단등 화급한 문제가 많아 당분간 대외적으로는 온건노선을 가리라는 분석이다.실제 김정일은 황비서 망명수용에 이어 4자회담설명회 참석 등 온건책을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권안정이 확보된 후의 일이다.김정일과 그 주변에 다수 포진한 강성인물들이 북을 어느 방향으로 끌어갈지는 알 수 없다.우리는 과도기 북의 변화를 세밀히 관찰하며 김정일세력의 새로운 변화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작업을 강화해야 한다.비단 여권의 문제제기가 아니더라도 대북정책 전반을 기초부터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앞으로 북한은 과거의 고정된 시각,정책으로는 정확히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울 만큼 급속도로 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등소평 사망­중 이끌 5인의 실력자

    중국을 현대화한 카리스마적 지도자 등소평이 사망함에 따라 등없는 중국의 미래에 세계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강택민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지도자들은 등과 같은 지도력과 카리스마적 권위가 없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강을 중심으로한 집단지도체제가 유지되며 권력투쟁의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등이후의 정치역학 구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실력자들을 알아본다. ◎강택민/개방정책 지휘한 등의 적자/상해·기술관료 출신… 추진·포용력 돋보여/대중적 카리스마 부족… 군부기반도 취약 「강철 미소」.북경외교가에서 강택민을 평하는 말이다.부드럽고 여유있게 보이는 이면에 치밀하고 끈질긴 추진력을 평하는 말이다.각 부문을 통괄하고 무리없이 이끄는 포용력은 등소평도 크게 평가했다고 한다.문제를 파악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지도력도 그의 장점으로 꼽힌다.현재와 같은 중국의 집단지도체제에선 강과 같은 적격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다른 지도자들의 입지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점진적으로 지도력을 강화해 나가고있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강은 명문대(상해 교동대)를 졸업한 전형적인 기술관료(테크노크래트)다.지난 95년 한국방문때 삼성전자 등을 둘러볼때 전문지식과 식견으로 주위를 놀라게 할 정도다.그러나 특유의 인화력과 포용력으로 조정과 막후 교섭등 정치력이 돋보인다는 평이다.지난 89년 천안문사건으로 전국이 혼란에 빠졌을때 상해서기로서 유혈사태를 피하면서도 시위대를 적절히 제압하는 「성과」를 거두어 등소평의 점수를 얻었다.그는 강소성의 비교적 넉넉한 학자집안의 자제다.그가 영어·러시아어 등 외국어에 능통하고 서예와 그림,중국전통악기 및 피아노 다루기 등에도 조예가 깊은 것은 그같은 집안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이붕에 비길수 없지만 그의 양아버지인 숙부가 공산당원간부로서 이선념·장애평·진의 등 신4군 수뇌들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이같은 출신배경도 그의 능력과 함께 출세의 밑천이 됐다.인민해방군의 거목인 이선념은 생전 그를 적극 지원했었다.강택민은 상해시 당위원회 부서기·서기·시장 등을 거치면서 중앙의 인정을 받았다.상해가 권력의 기반일뿐 아니라 출세의 발판이고 그의 고향도 넓게 범상해권에 속하는 강소성이다.상해의 식품공장과 비누공장에서 기술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뒤 기계공업부와 전자공업부 부장 등으로 기술관료로서도 엘리트코스를 거쳤다. 그의 뒤에는 상해파벌의 대부격인 왕도극이 후견인 역할을 해왔다.오방국·황국·서광적 등이 다 그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하는 소위 「상해방」이다.그는 증경홍 당중앙판공실 주임을 정치국으로 끌어올리려는 등 계속 상해출신의 진용을 강화하고 있다.94년 14기4중던회 때 상해시장 황국과 당시 당서기 오방국을 정치국원으로 진입시키는 등 주위를 두텁게 하고 있다.등소평에 의해 뽑혀 올려왔지만 지난 8년동안의 최고지도자로서의 입지 강화해 모택동에 의해 선택된 화국봉처럼 쉽사리 뽑혀나갈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그러나 국가지도자로서 카리스마나 구체적인 치적이 없고 취약한 군부의 지지기반 등이 그의 아픈 곳이다. ◎이붕/보수파 대변 태자당의 리더/거미줄처럼 깔려있는 관료인맥이 강점/천안문사태 강경진압 지휘… 대중반감 커 이붕 국무원총리는 지난 8년여동안 강택민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쌍벽을 이루며 중국을 이끌어 오고 있다.이미 79년 국무원 전력공업부 부부장으로 중앙에 진출한뒤 국무원 부총리(83년),중앙위원 겸 정치국위원 등을 거친 기술관료로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중앙위원이나 정치국원도 강택민보다 먼저 올랐다.제3세대 기술관료들의 본산인 소련유학파의 수장격으로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관료인맥의 대부격이다. 87년이후 10년 가까운 총리직을 통해 각 지방에 자신의 인맥을 상당히 확보해왔다.정부를 통괄하는 국무원 판공실주임 라간 등도 그의 수하다.최근 그는 지난 95년 북경시의 진희동·왕보삼사건 등으로 곤경에 몰리는 등 강택민의 상해파에게 밀리는 듯 위축된 모습이다.그러나 그의 경력과 배경은 앞으로 전개될 권력투쟁에서 강점으로 꼽힌다. 그는 중국 공산혁명 제1세대의 적자로 비유되는 소위 로열패밀리의 성원이다.아버니 이석훈은 장개석 국민당군에게 처형된 「혁명열사」고 어머니 조군도도 열렬한 핵심당원이었다.그의 외가는 혁명1세대의 핵심성원이다.고아가 된 그는 혁명1세대들에게 「우리들의 아이」로 키워졌고 특히 주은래와 등영초의 양자로 성장했다.진운은 사망했지만 당원로 팽진·등력군 등은 그의 배경이 되고 있다.또 중국 정·관·군의 주류로 건재한 로열패밀리출신의 「태자당」들의 구심점이란게 무엇보다 그의 강점이다.이같은 배경은 그의 생각과 행동을 보수적인 성향을 갖게 한다. 이붕은 그러나 지난 89년 천안문사건때의 강경진압 주도자라는 부담을 지게하고 있다.진압의 총지휘자인 등소평이 사라진 마당에 천안문의 부담은 더할 것만은 분명하다.이붕은 연임제한규정에 묶여 오는 98년초 총리직에서 내려와야 한다.아직 그에게 마땅한 자리는 없는 듯하다.강택민·오방국·황국 등을 주축으로한 상해파가 계속 북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의 입지가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시장개방정책과 국유기업개혁 등 경제체제개혁이 심화돼 부작용이 높아질수록 그의 발언권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중국의 방대한 관료체계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상층부 인사들과의 인적관계,총리 등 당·정 지도자로서의 엘리트코스 등은 그가 1인자는 될 수 없어도 영원한 2인자,견제세력으로의 위치를 지키게 할 것으로 보인다. ◎교석/온건·합리… 서열3위 중도파/개혁·보수파 조정역… 전면 나서진 않을듯 올해 74세의 교석은 당 공식서열 3위로 국회의장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맡고 있다.절강성 출신으로 대학시절(상해 동제대) 상해학생운동의 총지도자였다.당조직부와 정법부문에서 오래 근무해왔다.공안부 및 검찰·감찰업무를 총괄하는 정법위원회 서기 임건신,부정부패처벌 등을 총괄하는 기술검사위원회 서기 위건항 등이 모두 그의 직계로 꼽힌다. 천안문사건 당시 강경진압에 기권의사를 표시하는 등 온건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전인대 상무위원장직을 맡은 이후 전기운부위원장의 지지 아래 전인대의 정부에 대한 감독·비판역할을 강화하고 있다.또 법률정비 및 법치제도 완비추세 속에 각종 법률제정 등을 주도하며 보이지 않게 중국사회변화를 주도하고 있다.강택민 서기의 선배격이며 당조직 부부장 때는 현재 중국지도부의 거의 대부분을 발탁,관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발이 넓다.빠른 판단력에 기분과 의사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성격은 그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결정적인 순간 그의 동의는 더욱 무게를 갖는다.그러나 개인적으로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위사람의 이야기다.사실상 실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란 것이다.한때 「강락석출(강택민은 떨어지고 교석이 등장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일반의 인정을 받고 있다.「불편불기,심장불로」로 요약되는 그의 조심성과 균형 있는 처신은 전환기를 맞아 정치적 힘을 배가시킬 것으로 보인다.중앙대의연락부 부장,중앙당교 교장 등 당·정 핵심요직을 두루 거쳐 넓은 인맥도 강점이다.또 최근 해외나들이 등 국회외교를 보여 주목받기도 했다.실질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경제개혁·개방에 이어 정치적 개혁의 바람을 주도할지 그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조자양/개방의 전도사… 대중적 인기/천안문사태로 실각… 세력잃어 재기 의문 소년 홍군병사 출신으로 총서기에 올랐다가 「급진」자유주의적 견해 때문에 권좌에서 추락한 올 79세의 조자양은 개인적인 권력기반보다는 중국 자유주의사조의 부침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그의 입지변화의 귀추가 주목된다.89년 천안문사건 당시 천안문광장에서 학생과 얼굴을 맞대며 설득을 시도하던 그의 실각도 8년여가 되지만 개혁·개방정책의 주도자로서의 그의 명성과 성취는 기존지도자들을 위축되게 한다.경제성장,개혁·개방의 전도사란 말은 늘 그의 성공을 수식하며 따라다니는 말이다. 그만큼 그는 지금도 요주의인물의 하나로 감시받고 있다는 것이 북경외교가의 이야기다.이미 정치의 꿈은 버렸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그의 복귀가 현정권 자체에 위협시되고 있는 것이다.그는 성장시절 빈곤에 찌든 사천성에 빈곤추방을 시작해 대성공을 거두었다.「곡식 먹고 싶거든 조자양에게로 가라」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로 그의 경제개혁은 성공을 거두었다.그는 중앙무대에서도 혁명세대와 혁명후 전문기술관료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며 입지를 다져왔었다.그는 1932년 13살의 나이에 중국혁명에 참가한 소년병 출신이다.양상곤의 다음세대인 2.5세대로 평가된다.80년대 개혁·보수의 힘겨루기 속에 급진적 정치·경제개혁을 추진하다가 천안문사태로 「동란을 지지하고 당을 분열시켰다」며 정치적 매장을 당해야 했다. 그는 지방의 자율성과 중앙권력의 지방이양을 강조,지금까지도 지방세력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고 있다.특히 80년대 호요방에 의해 형성된 기술관료층이 현집권세력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복귀를 두려워하는 현정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그러나 세력기반이 뿔뿔이 흩어져 재기는 의문시된다. ◎양상곤/군부 영향력… 킹 메이커 노려/「천안문」 강경진압 주역… 나이도 너무 많아 양상곤이야 말로 등소평없는 중국에서 당·정·군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로다.그는 인민해방군의 창설자의 한명이자 중국공산당의 원로며 전임 국가주석겸 권력의 핵인 당 중앙판공실 주임을 20년가까이나 맡았다.실권은 없지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즉 중국국내의권력투쟁이나 분쟁이 가열되고 문제해결이 어려워질 경우 그의 발언권과 선택이 상당한 무게를 갖는다는 점에서 그의 향배는 앞으로의 주요 변수로 꼽히고 있다. 올해로 91살이지만 쉬지않는 지방시찰 등으로 정력적인 활동으로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그는 95년 광동성,96년 동북3성을 순회한데 이어 올해초에도 주해와 심천 등을 시찰하고 개혁개방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중국건립 당시 팽덕회가 지휘하던 제3군의 정치위원이었다.양상곤은 지난 93년10월 정치 연소화란 구실로 권좌에서 밀려났다.실은 그와 그의 이복동생 양백빙의 군에 대한 장악력등은 강택민정권의 가장 큰 위협세력이 된다고 판단한 등소평의 기습으로 군의 실세였던 양백빙과 함께 실권에서 밀려나게 된 것이다. 그 역시 이붕처럼 89년 천안문사건때 「손에 피를 묻힌」강경진압자중 대표인물이다.부담을 벗어버리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천안문사건의 강경진압주장과는 달리 그는 비교적 유연한 사고와 실용주의적 노선이 지지자로 평가된다.나이 때문에 권력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없지만 유사시 「킹메이커」는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문화혁명때 주자파로 몰려 66년부터 13년동안 소련간첩 혐의를 뒤집어쓴채 감옥생활을 한 쓰라린 과거도 있다.등소평과는 고향도 갖고 깊은 친분을 갖고 있다.〈북경=이석우 특파원〉
  • mila schon(패션가 산책)

    「밀라 쇤」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브랜드다.최상의 질을 추구하는 고급 브랜드로 유명하다.단순함과 우아함(엘레강스)을 기조로 하고 있다. 밀라 쇤 여사는 이탈리아 정통파 패션의 제1인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다.패션의 여왕이라는 수식어도 붙는다.유고슬라비아의 귀족명문가 출신으로 어릴적에 밀라노로 이주했다.전설의 디자이너로 남아있는 발렌시아 가문의 고객이 되면서 패션과 인연을 맺었다.귀족적이며 클래식한 분위기의 발렌시아풍 영향을 받았다. 58년 고급의상실을 차리면서 패션계에 뛰어들었다.최고의 소재를 사용한다는 게 방침.실용적인 감각이 돋보인다.색채감각이 더해지면서 고급스런 이미지도 살아난다. 『여성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일시적인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멋,자기만의 스타일을 창조하는게 중요하다.자신을 알고 멋을 내는게 정말로 엘레강스와 통하는 것이다』 그가 터득한 패션학이다. 밀라 쇤의 디자인은 시공을 초월한 느낌을 준다.원초적이면서 현대의 감각을 살려내 몸의 선(바디라인)을 정교하게 해 준다.감촉이 우수한 고품질의 재료를 사용하는데다 착용감이 좋고 우아함이 넘치는 실루엣….전통의 바탕위에 이뤄진 깨끗하고 단순한 현대적인 감각과 선은 밀라 쇤을 세계적 브랜드로 자리잡게 했다. 퍼스트라인과 세컨드라인으로 구분된다.세컨드라인은 퍼스트라인보다 20%쯤 싸다.주 고객층도 다르다.퍼스트라인은 30대 후반∼50대,세컨드라인은 30대∼40대를 주고객층으로 한다.93년 일본의 이토츠상사가 밀라 쇤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금비(금비)가 94년부터 수입해 국내에도 팔고 있다.갤러리아 명품관과 리츠칼튼호텔,라마다 르네상스호텔,부산의 파라다이스 비치호텔,부산 광복점(051-246-9292)에 매장이 있다.여성재킷은 90만∼1백50만원,스커트는 40만∼60만원,블라우스는 50만∼70만원,니트제품은 10만∼40만원이다.남성 정장은 1백80만∼2백만원,셔츠는 10만∼20만원,넥타이는 10만∼20만원선이다.
  • “한국행 안되면 죽겠다”/황장엽 석명서·진술

    ◎북 체제 모순에 환멸 망명 결심/“로동자·농민 굶는데 리상사회 건설했다니” 황장엽 북한노동당비서는 12일 북경 한국 총영사관에 망명을 요청한 뒤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가고자하는 곳은 바로 한국』이라고 한국망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시했다. 황비서는 이날 주중대사관 고위당국자와의 대화를 통해 『만일 나의 한국행 결심이 실현되지 못한다면 나는 제3국이든 어디든 가지않을 것이며 이곳(한국 영사관)에서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관계당국자가 전했다. 황비서는 이어 망명동기와 관련,『이번에 일본에 갔을 때 (한국망명을)결행해보려고 여러차례 기회를 엿보았는데 여의치 않았다』면서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이 친구(김덕홍)와 함께 이곳을 찾아왔다』고 밝혔다. 황비서는 이어 한국공관의 안전상태를 물은뒤 『나는 북조선의 주체사상을 확립시킨 제1인자』라면서 『주체사상이 본래의 뜻대로 되지않고 왜곡되고 변질되고 있어 이를 바꾸어보려고 노력도 해보았지만 현실적으로 큰 벽에 부딪쳐 좌절을 겪었다』고 망명을 결심하게 된동기를 전했다. 황비서는 대사관 당국자와의 면담이 끝난뒤 A4용지 3장 분량의 망명동기를 밝히는 자필 석명서를 작성했으며 ,외무부는 이날 황비서가 작성한 석명서를 사진과 함께 공개했다. 황비서는 이 석명서에서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결국 우리 민족을 불행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문제를 좀 더 넓은 범위에서 협의하고 싶은 심정에서 북을 떠나 남의 인사들과 협의해 보기로 결심했다』면서 『노동자 농민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이상사회를 건설하였다고 떠드는 사람들을 어떻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라고 북한체제를 비판했다. 그는 또 『조국을 통일한다고 떠들면서도 서로 적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심지어 상대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떠들고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고 북측의 호전성을 성토했다.
  • 주체사상 이론정립의 제1인자/황장엽 망명­누구인가

    ◎김일성대학 총장 역임… 김정일 가르쳐/김일성 살아있을땐 서열13위 최측근 12일 북경에서 우리나라에 망명을 신청한 황장엽(74)은 「김일성주체사상」을 체계화한 장본인으로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을 거친 북한 지식층의 대표적 인물이다. 현재 북한 노동당 중앙위 비서국 국제담당 비서로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과 국제평화자주재단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는 거물이기도 하다. 현재 북한 권력서열 24위인 황은 일부에서 관측하는 것처럼 김일성과 혈연관계는 아니나 김이 살아있을때는 북한 권력서열 13위로 김이 직접 자문을 구할 정도의 측근이었다. 황은 또 김정일에게는 김일성대학에서 마르크스­레닌 철학을 가르친 스승으로 김이 졸업한 뒤에는 주체사상에 관한 고문역할을 했다. 황은 모스크바유학시절 식당과 화장실 가는 길 밖에는 몰랐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의 학구파로 북한내에서는 새로운 사고의 철학자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최근 「시대가 변하는데 주체사상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등 개인적인 고뇌를 방문한 외국인사들에게 부지불식간에 내비쳤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김정일의 호전적이고 무모한 성격으로 인해 북한이 피폐해진데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수해와 식량난 극복문제와 대외관계 등에서도 김정일의 노선과 다른 발언이 감지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황은 침착하고 온순한 성격으로 두뇌가 명석하고 논리가 정연하며,남에게 흠을 잡히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또 말이 적고 감정표현을 하지않는 편으로 술과 담배도 전혀 하지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가족은 모스크바 유학중에 연애결혼한 부인 박승옥(66)과의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있다. 황의 주요경력은 다음과 같다. ▲1923년 2월17일 평안남도 출생 ▲53년 모스크바국립대학 유학.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 교원·강좌장 ▲59년 노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김일성종합대학 총장 ▲72년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장 ▲80년 노동당 중앙위 비서국 사상담당 비서 ▲87년 사화과학자협회 위원장 ▲93년 노동당 중앙위 비서국 국제담당 비서·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동반 망명 김덕홍/여광무역 사장·노동당 자료연구실 부실장/황장엽의 제1심복… 95년부터 북경 체류 황장엽과 함께 망명을 신청한 김덕홍(59)은 조선 여광무역연합총회사 총사장으로 95년 4월부터 북경에 머물러왔다. 그는 황장엽의 제1심복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같은 두 사람의 관계에 따라 이번에 함께 귀순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김은 1938년 12월3일 평안북도 의주읍에서 태어나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한뒤 조선경비대 제3191군부대 중사로 군복무를 마쳤다. 김은 이어 김일성종합대학의 교무부 지도위원과 노동당 중앙위 지도원·부과장·부실장을 지냈다. 현재는 여광무역 총사장말고도 노동당 중앙위 자료연구실 부실장과 국제평화주체재단 총재,재정관 겸 평양사무소장 직함도 갖고 있다. 가족으로는 부인과 1남3녀가 있다. ▷주요 망명·귀순 일지◁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87.2.8=김만철씨 일가 11명 ▲90.4.2=소련 유학생 박철진씨 등 2명 ▲90.8.4=소련 유학생 김지일씨 등 2명 ▲91.5=주콩고 북한대사관 1등서기관 고영환씨 ◇94년 ▲3.20=여만철씨 일가 4명 ▲5=강성산 정무원총리 사위 강명도씨 ▲5.7=황광철씨 형제 등 3명 ▲7.18=김일성대학 경제학부 강사 조명철씨 ▲8.13=이철수씨 일가 3명 ▲10.23=조창호 소위 ◇95년 ▲3.27=오수룡씨 일가 6명 ▲10.11=용성무역합영부장 최주활 상좌 ▲12.12=북한 최대무역회사인 대성총국 유럽지사장 최세웅씨 일가 4명 ◇96년 ▲1.7∼23=주잠비아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 현성일·최수봉 부부 등 3명 ▲5.23=공군 이철수 대위 ▲5.31=과학자 정갑렬씨와 방송작가 장해성씨 ▲6.30= 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 친척인 정순영씨 일가 3명 ▲12.9=김경호씨 일가 등 17명 ◇97년 ▲2.12=북한 노동당 황장엽 국제담당비서 북경주재 한국대사관에 망명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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