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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아 성추행 미군 검거

    의정부경찰서는 31일 가정집에 침입,6살짜리 여자 어린이를 성추행한 주한 미군 제1여단 보병대대 소속 차니 테리앨 일병(26)을 미성년자 의제 준강제추행 혐의로 붙잡아 미군에 넘겼다. 경찰에 따르면 테리앨 일병은 이날 상오 2시쯤 동두천시 광암동 한모씨(56·여) 집에 들어가 건너방에서 잠자던 한씨의 외손녀 이모양(6)을 성추행한 혐의다.
  • 식량·병원 부족…미숙아 출산 많아/귀순 김원형·안선국씨 가족문답

    ◎“김정일 물러나야지…” 체제불만 팽배/국경경비 2배 강화… 초병도 감시대상 지난 12일 서해를 통해 귀순한 김원형(57),안선국씨(47) 가족 14명은 2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귀순동기와 북한실상 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요약이다. ­비교적 여유있는 생활을 했음에도 귀순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원형씨=해외에 있는 동생과 어머니로부터 돈을 받아 그럭저럭 살만하긴 했지만 북한체제의 불합리성과 월남자 가족이라는 신분상의 제약,과거 부모가 잘 살았다는 전력 때문에 북한에서는 항상 그늘진 곳에서 지내야 했다. ­탈출때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 ▲김씨=기상이 좋지 않아 배에 물이 새 걸레로 틀어막고 온 가족들이 물을 퍼낼 때였다.게다가 소형 라디오를 통해 인천 남부지역에 폭풍주의보가 내려졌다는 소식까지 접했다.하지만 배가 침몰해 죽거나 북한 경비함에 잡혀 죽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 계속 배를 남쪽으로 몰았다. ­왜 바닷길을 통해 북한에서 직접 귀순했나. ▲안선국씨=바다를 통해 귀순한다는 것은 천번에 한번 성공할까 말까할 정도로 무모한 행동이었다.그러나 군에 있을때부터 모험을 즐겨왔고 7∼8년동안 서해를 항해하면서 북한 경계망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다.공해상에서는 북한의 단속이 미칠수 없는 것으로 안다. ­쌍둥이 동생의 생존사실은 어떻게 알았나. ▲김씨=90년 아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확인해 달라는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북한에 들어온 이모가 형을 만나 어머니와 동생이 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북한에 형도 있는데 왜 같이 안왔나. ▲김씨=형은 사위가 군에 복무하고 있는데다 나와는 생각이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탈북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탈북계획을 잘못 알렸다가는 우리 가족이 모두 죽음에 처할수 있기 때문이다. ­대북지원 식량이 주민들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데. ▲김희성씨(김씨 3남)=일반 주민들은 한국·미국에서 지원해준 식량이 군용으로 돌아가는데 왜 자꾸 식량을 보내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곤 한다.아예 안 보내는 것이 나을 거라는 의견도 있을 정도다.주민들은 김정일과 북한의 군사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북한의 불만을 잠재워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혹은 수해난에 따른 순수한 지원 등을 외부의 식량 지원 이유로 생각한다. ­북한 주민은 김정일체제를 어떻게 생각하나 ▲김희근씨(김씨 장남)=식량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기 시작한 80년대 이후부터 불만이 고조되기 시작했다.최근에는 식량난이 더욱 악화돼 이런 분위기가 더 심해지고 있다.전에는 이런 불평을 늘어놓다가 붙잡혀 다시 나올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가는 것을 두려워했으나 최근에는 공공연히 「김정일이 자리에서 물러나든지 아니면 쌀을 주든지 해야 될것 아니냐」고 말한다. ­체제불만이 직접적인 행동으로 옮겨지기도 하는가. ▲김희근씨=행동으로 옮기지는 것을 보지 못했다.마음 속으로만 불만이 쌓여 있는 것이다. ­「7월 이후 전쟁설」에 대한 근거는. ▲김씨=김정일이 김일성 3년상을 끝낸뒤 무력행사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3년상만 끝나면 김정일은 자기 맘대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고 군부에서도 전쟁준비를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주민들이 인식하고 있다. ­북한의 최근 국경·해안 지역 경계상황은 어떤가. ▲김씨=평안북도 북부 해안과 국경경비를 담당하던 보위부 5국(경비총국) 11여단의 임무가 94년 말 해안경계 업무로 한정되는 대신 국경지역 경계를 담당하는 7개 대대 규모의 31여단이 신설됐다.지난 해 초부터는 국경·해안초소에 초소장(중위) 외에 정치부초소장(소위)과 보위부초소장(소위)을 추가 배치하는 등 초소 근무자에 대한 감시 및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직접 겪은 식량난은 어땠나. ▲김화옥씨(안씨 부인)=우리집 식구 중에서도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있을 정도다. ­외국 출판물에 대한 통제는 심한가. ▲김희영씨(김씨 차남)=미국에 있는 삼촌한테 영어 카세트테이프와 교재,영어사전 등을 보내달라고 했었는데 테이프는 당국에 뺏기고 영영사전과 한영사전 2권만 받았다.그런데 한영사전의 남한에 관한 항목은 모두 지워져 있었다.북한에서는 외국출판물이 들어오는 것을 「흑색바람」이라고 하는데 이를 막기위해 사상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식량난으로 산모들이 사산이나 조산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김순희씨(김씨 장녀)=상급병원·하급병원 할 것 없이 약품과 시설 등이 부족해 대부분의 산모들이 집에서 아기를 낳으려고 한다.사산보다는 미숙아가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먹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안일천군(안씨 장남)=과일이 제일 먹고 싶다.공부도 계속하고 싶다.북한에서는 밥을 먹지 못해 집을 팔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다.남한에는 거지들이 많고 사람들을 잡아 죽인다는 들었으나 여기에 온후 거지라곤 한 명도 보지 못했고 사람들을 때려 가두고 일도 없는 것 같았다. ◎탈출경로/9일 신의주에서 철산으로 출발/10일 만조시간 출항해 낙도은신/북한추격 우려 공해상으로 남하/12일 백령도인근서 해군에 구조 김원형·안선국씨 두 가족 14명의 북한 탈출은 9일 상오 11시쯤 안씨가 신의주를 출발한 것으로 시작됐다. 안씨는 먼저 경비가 삼엄한 평북 신의주 국경분소에서 김씨의 아들 2명을 선원자격으로 태우고 출발했다.나머지 가족들은 평북 철산군 동천리의 부두에서 따로 접선하기로 했다.조업선에 가족단위는 물론 부부도 동승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에 위장하기 위해서였다. 9일 신의주 해군 부두를 출발한 안씨 등은 10일 해안 경비의 마지막 초소인 철산군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척 기다리다 하오 9시쯤 순조롭게 철산군 동천 수산부업선 부두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가족들을 만나 배안에 숨겼다. 이들은 10일 상오 11시쯤 만조시간을 이용해 바다로 나와 서해쪽 마지막 섬인 낙도 부근에서 4∼5시간 정박하다 어둠을 틈타 중국을 향해 시속 7∼8노트로 10여시간을 달린뒤 공해상으로 나갔다. 공해상에 들어섰다는 감을 잡은 안씨는 다시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6∼7시간을 항해한 뒤 인천항 쪽으로 방향을 돌려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이때가 12일 상오. 3시간 가량 항해했을 무렵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파도가 3∼4m로 높아졌다.갑자기 목조선에 20㎝ 정도 틈새가 벌어지면서 물이 스며들기 시작했다.일행 중 일부는 걸레로 틈새를 막고 나머지는 정신없이 배 바닥에 괴는 물을 퍼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때 미리 준비해둔 휴대용 라디오를 통해 인천 남부지역에 폭풍주의보가 내려진 사실을 확인했다.순간 죽기아니면 살기라는 절박감이 뱃전을 감쌌다.무작정 인천 방향인 동남쪽으로 전속력으로 달렸다. 12일 하오 2시25분쯤.해안선 한끝에 배가 보였다.나침반과 해상지도를 숨겼다.북한경비정에 들키면 길을 잃었다고 거짓말을 할 작정이었다. 그때 누군가 『태극기가 보인다』고 소리쳤다.남한 경비정이었다.배위에 꽂혀있던 중국 국기와 북한의 인공기를 내리고 구조의 손길을 보냈다.이때가 12일 하오 4시28분. 김씨와 안씨 가족 14명의 나흘에 걸친 필사의 탈출은 이렇게 끝났다.
  • 특전사 사병 3명 침투훈련중 익사

    육군은 지난 2일 충남 보령시 용천면 무창포 해수욕장에서 해상침투훈련을 실시하던 특전사 1여단 소속 박형진(21)일병 등 사병 3명이 익사했다고 4일 밝혔다.
  • 「쿠데타계획」 입증어려워 “답보”/「5·18」수사 어떻게 돼가나

    ◎피고소·고발인 58명중 21명 조사/신군부측 의원4명은 소환불응 「5·18」고소·고발 사건의 검찰수사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질 전망이다. 고소·고발인들이 주장하는 내란죄 등과 관련,신군부의 79년 12·12∼80년 5·18∼80년 8월16일 최규하 전대통령 하야로 이어지는 이른바 「다단계 쿠데타 계획」을 입증하기 어려운데다 피고소·고발인 또한 수사에 비협조적이기 때문이다. 「5·18」관련 고소·고발사건은 크게 3부류로 나뉘어 진다. 정동년씨 등 이 사건 피해자 3백22명이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등 35명을 상대로 낸 사건 ▲한완상·김상현씨 등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22명이 전·노 전대통령 등 10명을 상대로 낸 사건 ▲이부영의원 등 민주당 「민주개혁정치모임」소속 29명이 국보위 위원 23명을 상대로 낸 사건 등이다. 이 3가지 사건의 총 피고소·고발인은 58명에 이르고 있다.이들 가운데 29일 현재 검찰에서 조사를 마친 사람은 21명.피고소·고발인중 12명의 현역 군인은 국방부에서 자체조사가 진행중이다. 이와 관련,검찰수사 관계자는 『사건 당시 광주에 투입된 3·7·11여단장을 비롯,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씨 등 21명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면서 『정동년씨와 신현확 전국무총리 등 9명도 고발인과 참고인자격으로 불러 「5·18」 당시 광주에서의 상황 등에 대한 보완조사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수사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 수사관계자는 『고소·고발인들의 주장대로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수경사령관,정호용(정호용) 특전사령관을 비롯,박준병(박준병) 20사단장 등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워 최전대통령을 협박,전국에 계엄을 확대시켜 광주사태를 일으키고 최전대통령을 하야시켰는지 여부는 당사자들의 진술과 함께 물증확보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해 이를 암시했다. 검찰은 5·18이후의 사건에 대한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당시 국무총리를 역임한 신현확씨를 참고인으로 불러 비상계엄확대를 결의한 국무회의와 2월부터 시작된 충정훈련 등 신군부측의 동향을 파악하려 했으나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신군부측의실세로 통했던 정 전특전사령관 등 국회의원 4명을 소환하려 했으나 이들이 2월초 열리는 전당대회 등을 이유로 소환시기를 미루고 있어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 이번 사건 역시 최대의 관심사는 피고소·고발인격인 전·노 전대통령과 참고인격인 최 전대통령에 대한 소환시기 및 조사방법이다. 특히 최 전대통령은 12·12사건과는 달리 이번 사건의 성격을 규정지을 수 있는 「핵심」참고인이어서 서면조사 대신 검사가 직접 방문해 조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 공소시효의 기산점은 최 전대통령이 하야한 80년 8월16일 무렵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피해자들은 김씨가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81년 1월을 기준으로 96년 1월을 꼽고 있고 민주당 개혁모임측은 국보위가 해산된 81년 4월을 기준으로 96년 4월 공소시효가 완성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검찰은 최 전대통령의 하야시점을 기산점으로 잡고 있는 것이다.
  • 정치적 파문 고려 “평가는 역사에”/검찰「12·12」수사발표 의미

    ◎기소유예 불구,“명백한 군사쿠데타” 규정/고소·피고소인 모두 불만… 파장 오래갈등 부하 장교들에 의해 현직 계엄사령관이자 육군참모총장이 전격 연행된 79년의 12·12사태는 15년가까이 지나 군사반란으로 결론지어졌다.다시 말해 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라는 것이다. 이 사건은 79년 발생한뒤 쿠데타의 주역들이 그동안 대통령을 두차례나 역임하는가 하면 현재까지도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있어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돼 왔던 게 사실이다. 사건 주역들의 위세에 눌려 침묵을 지켜왔던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과 장태완전수경사령관측이 지난해 7월 19일 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을 포함,신군부측에 섰던 34명을 내란 및 반란등의 혐의로 고소해옴에 따라 사건이 표면화됐다.검찰로서도 이 사건 피해자들이 고소해온 만큼 어떠한 결론이든지 내려야 할 처지에 이르렀던 것.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15년으로 오는 12월 12일 끝나게 돼 있었다.이에 따라 고소인측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는 더 이상 시간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지난해 고소를 하게됐고 검찰 또한 공소시효 이전에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고 수사에 착수했다. 공소시효를 넘길 경우에는 수사기관의 검증을 통한 사법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해 8월부터 본격적으로 고소인과 참고인들을 부르기 시작,모두 1백51명을 불러 조사를 벌였다.아울러 정승화 전총장이 연행됐던 한남동의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현장확인과 함께 실황조사를 실시하는가 하면 국회의 광주회의록,12·12사건 국정조사회의록등에 대해서도 모든 검증절차를 거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신군부측의 무력동원은 육군의 정식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은 군사반란임이 명백하게 드러났다.정전총장 등 고소인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반면 정전총장을 연행하거나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기 위해 「자파」의 병력을 동원한 신군부측의 변소는 거짓으로 판명난 셈이다. 신군부측의 무력동원은 사건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을 겸직하고 있던 전두환보안사령관이 10·26사건 관련 혐의를 수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전총장을 제거,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한 치밀한 사전계획 아래 실행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러한 실정법위반이 드러났는데도 신군부측 관련자들에게 전원 불기소처분을 내려 국민들의 「법감정」과는 다소 동떨어진 결정을 내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군형법상 반란혐의는 사형등 「중죄」를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불기소 처분이 내려져 신군부측인사들은 법정에 서지 않아도 된다.이들은 우리나라 최고 수사기관인 검찰로부터 당시 행위에 대한 「면죄부」를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역사적 중죄를 짓고도 법정에 서지 않는 「역사적 사건」으로 남게 됐다.후일의 「역사적 평가」는 사가들의 몫으로 돌려지게 된 셈이다. 이에 대해 검찰관계자는 『12·12사건에 대한 검찰의 처분이 국가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고려,법률적 문제는 물론 정치·사회적 제반 요소들을 신중히 검토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신군부측 피의자들이 하극상에 의한 군사반란을 일으킴으로써 우리 헌정사를 후퇴시켰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제2,제3의 불법적 군사행동이나 하극상 사건의 재발을 엄중히 경고했다. 김영삼대통령도 지난해 이 사건과 관련,『하극상에 의한 군사쿠데타』라고 규정하고 『역사적 평가에 맡기자』고 언급한 바 있어 검찰수사도 이와 궤를 같이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공소를 제기하는 문제는 김대통령의 앞선 「언급」과 함께 검찰나름대로의 판단에 따라 모두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피의자들을 정식 재판에 회부할 경우 공판과정에서 과거사가 반복 거론되고 법적논쟁이 계속돼 국론분열과 대립양상을 재연함으로써 불필요하게 국력을 소모할 우려가 있다는 계산을 먼저 심중에 넣은 것 같다. 이러한 난맥상은 또 장래적으로 국가안정을 저해하고 자칫 국가발전에도 지장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올 공산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신군부측 인사들이 지난 14년간 우리나라를 통치하면서 나름대로 국가발전에 기여한 점을 고려했음도 물론이다.더욱이 전직 대통령등을 법정에 세워 단죄하는 경우 국민들에게 심정적으로 혼돈을 느끼게 할 우려가 크다는 점도 참작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먼저 고소인들이 검찰의 결정에 대해 불복,항고의사를 분명히 했고 신군부측 역시 「무혐의」 또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어 그 파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반군 수뇌 집결지 공격” 긴급명령/하오10시 40분/양측,한남동서 중화기무장 대치/밤∼다음날 새벽/최대통령 「총장연행」 재가… 신군부 승리/「그날」 일촉즉발의 순간들 「육군 26사단,수도기계화사단,공수9여단 병력 완전무장 출동하라」「전두환장군을 비롯한 반군 수뇌부가 집결한 경북궁 30경비단및 보안사령부를 공격하라」 79년 12월 12일 하오 10시 40분쯤 반군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예하 부대에 타전한 「급보」내용이다. 수경사로 자리를 옮긴 육군의 「정식지휘계통」에 있었던 장성들이 이날 하오 7시25분쯤 정승화참모총장의 강제연행으로 시작된 「군사반란」에 대응해 3시간여만에 일전불사의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신군부측과 육본측은 일촉즉발의 경계에 돌입했다.그러나 상황은 이미 신군부측으로 기운 뒤였다.우선 수적으로 육본측은 열세였다. 당시 전합수본부장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측에 가담한 부대는 공수 1여단(박희도준장),3여단(최세창준장),5여단(장기오준장)을 비롯,수경사 30단(장세동대령),33단(김진영대령),9사단 29연대(이필섭대령)등 수도권 핵심주둔부대 대부분과 전방의 2기갑여단(이상규준장)등 무려 5천여명의 병력이 동원됐다. 이에비해 정규군측이 실제 동원가능했던 병력은 행정병을 포함,수경사 잔류병력 1백여명과 전차 몇대뿐이었다.공수9여단(윤흥기준장)병력은 합수부측의 항의를 받은 윤성민 육참차장의 복귀지시에 따라 회군해 버리고 말았다.또 출동명령을 받은 26사단등의 병력출동도 불발에 그쳤다. 이날 밤과 새벽사이 정육참총장의 공관이 있던 한남동과 한강다리쪽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돌아갔다.양측은 장갑차와 전차등 중화기로 무장한채 적과 아군이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서 대치중이었다. 상황발생 9시간50분만인 13일 새벽 5시10분 합수부측이 최규하대통령으로부터 총장연행재가를 받으면서 신군부측의 일방적인 승리로 상황은 끝났다.서울시내를 화염에 휩싸이게 했을지도 모르는 시가전의 위협을 간신히 면할 수 있었다.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다.
  • 남예멘,선전포고 경고/북군에 포위해제 촉구

    【아덴·사나 AP 로이터 연합】 남·북예멘이 통일된지 4년만에 양측군간에 충돌이 발생,사상자가 2천명까지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남군측은 1일 북군이 남군 포위를 해제하지 않을 경우 선전포고하겠다고 경고했다. 남예멘 사회당 고위관리들은 이날 북예멘 출신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을 「전범」으로 규정하고 북군이 북예멘 수도 사나부근주둔 남군에 대한 포위를 해제하지 않을 경우 공식 선전포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달 27일 처음 발생한 남군 제3여단과 북군 제1여단간의 전투가 통일이후 북측에 배치된 남군을 제거하려는 북측의 「사전 계획된」 사건이었다고 주장했다.
  • 주이라크 미군/최종 철수 개시

    【사프완 로이터 연합】 딕 체니 미 국방장관의 쿠웨이트 방문을 수 시간 앞두고 미군은 이라크 남부에서 최종철수를 7일 개시했다. 이번에 최종적으로 철수하는 제3기계화사단의 1여단 병사들은 수천 대의 탱크·장갑차·군용차량 등을 타고 쿠웨이트로 입국하기 시작했다.
  • 이라크,다당제 도입… 개혁 추진/후세인,대국민연설

    ◎곧 새 정부구성… 국가재건/“이란서 반정소요 지원” 맹비난 【바그다드 로이터 AFP 연합 특약】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16일 자정(한국시간) 걸프전 패배후 처음으로 전국에 중계된 TV연설을 통해 민주적인 개혁과 다당제 실시를 약속했다. 그는 또 이라크를 재건하기 위해 빠른 시일내에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헌법에 기초해 법치주의와 정치적 다원주의를 실시하려는 우리의 결단은 철회 불가능한 결정적인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이라크 국민들이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국가 재건에 참여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이라크내에서 격화되고 있는 반란과 관련,남부의 시아파 반란은 진압이 됐으며 북부의 쿠르드족 반란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부에 이웃나라들이 「파괴공작원」을 침투시키고 있다고 말해 이란에 대해 간접 비난하면서 이라크가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중심지로 계속 남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후세인대통령의 연설과 관련,바그다드주재 아랍외교관들은 후세인이 내각을 개편하고 언론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를 확대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라크의 한 관리는 후세인대통령이 헌법개정과 의회선거를 실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새 내각에는 종전과 달리 집권 바트당원이 아닌 고급전문인력 등이 포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군 반군에 가담/이라크TV,첫 시인 한편 이라크 국영TV는 15일 정부군 일부가 반후세인 무장봉기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시인했다. 이와는 별도로 이날자 시아파의 한 성명은 이라크공화국 수비대 소속의 제10기갑여단과 정규군 제81여단이 탱크와 야포 등을 끌고 반정부군에 합류,정부군과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슬람혁명최고회의의 바이얀 자브르 대변인도 2천명의 공화국수비대 병력이 나시와 지역에서 반군에 투항해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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