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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별을 쏜다] (4) 최연소 국가대표 궁사 곽예지

    [2009 별을 쏜다] (4) 최연소 국가대표 궁사 곽예지

    “전 욕심이 많아요. 김수녕 선배처럼 이름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발그레한 볼을 가진 소녀답지 않게 포부가 당차다. 대전체고 양궁연습장에서 만난 ‘소녀 신궁’ 곽예지(17·대전체고1). 활시위를 당기는 폼도 예사롭지 않았다. 비록 연습이지만 실전처럼 한발한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무척 진지하다.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6시까지 점심시간을 빼곤 활 쏘기와 시위 당기기 훈련의 연속. 지루하지 않으냐고 묻자 “9월 울산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려면 견디고 열심히 해야죠.”라며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지난해 5월, 3위까지 주어지는 베이징올림픽행 티켓을 결정짓는 국가대표 최종 평가 2차전이 열린 태릉선수촌. 파워가 강점인 곽예지(168㎝·63㎏)는 평소처럼 시위를 당겼지만 집중력 난조로 4위에 머물렀다. 터키에서 열리는 3차 월드컵 대회가 남아 있었지만 3등과의 격차가 너무 컸다.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박성현(25), 윤옥희(23), 주현정(26) 등 자신보다 많게는 열 살이나 차이나는 언니들과의 경쟁은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최강 한국의 대표로 선발되기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기만큼이나 힘들다. 아쉽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힘들게 훈련해서 올라갔는데, 마지막에 탈락하니 허무했죠. 21살이 되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는 꼭 가고 싶어요.”라는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두 살 때 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막노동을 한 탓에 할머니 손에 어렵게 자랐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활을 처음 손에 쥔 건 대전 태평초교 4학년 때. “학교에 양궁부가 있었는데, 활쏘는 모습이 너무 멋져 반해버렸죠.” 활을 잡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6학년 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는 기존 기록을 줄줄이 갈아치우며 초등부 3관왕을 달성했다. 특히 20m 합계에서는 만점인 720점을 받아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대전체중 3학년이던 2007년 그는 다시 한번 주위를 놀라게 했다. 역대 최연소(만 15세 2개월)로 ‘태극마크’를 단 것.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수녕의 종전기록(만 16세 2개월)을 1년이나 앞당겼다. 베이징올림픽 대표 탈락의 아픔을 훌훌 털어버린 그는 대표 선발전에 재도전했다. 결국 지난해 11월 대표 선발전에서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종합 1위를 차지, 생애 두 번째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오는 3~5월 국가대표와 대표 후보 등 16명을 대상으로 한 자체 평가전에 나서 울산 세계선수권에 나설 대표 3인 선발전에 도전한다. 곽예지를 발굴, 지도한 대전체고 김구묵 감독은 “경험만 더 쌓으면 세계적인 선수로 대성할 기대주다. 양궁계의 큰 획을 그은 김수녕 선수보다 오히려 곽예지가 낫다.”고 평가했다. 지난 4일 태릉선수촌에 다시 입촌해 구슬땀을 쏟고 있는 곽예지가 올해 세계 무대의 주역으로 우뚝 설지 기대된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거식증 이기고 엄마가 된 ‘감동스토리’

    시한부 삶을 선고받을 만큼 심한 거식증을 앓았던 한 영국 여성의 이야기가 네티즌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영국 랭커셔주(州) 블랙풀(blackpool) 출신의 헤일리 와일드(Hayley Wilde·20)는 지난달 마이클(Michael)이라는 이름의 남아를 출산, 특별한 축하인사를 받았다. 지난 8년간 앓았던 거식증으로 임신은커녕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 그러나 와일드는 부모와 지인들의 아낌없는 도움으로 위기를 잘 극복, 마이클과의 행복한 삶을 꿈꿀 수 있게 됐다. 와일드가 거식증을 앓기 시작한 것은 11살 초등학생 시절. 살을 빼면 자신감도 생기고 인기도 많아질 거라는 생각에 매 끼니마다 음식을 버리거나 토해냈다. 16세가 됐을 무렵에는 몸무게가 겨우 31kg밖에 나가지 않을 만큼 야위어 탈모증세와 4년간의 무월경(생리가 6개월 이상 없는 것)증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와일드와 그녀의 부모는 포기하지 않고 거식증을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병원에 입원하여 수개월을 치료하는 동안 증세는 조금씩 호전됐다. 와일드의 엄마 제인(Jane·50)은 “딸이 음식을 먹지 않고 버린다는 것을 알아챘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며 “의사는 이 상태로 계속 간다면 10일 안에 (와일드가) 죽을 것이라고 경고까지 했었다.”고 설명했다. 또 “와일드의 체력으로 아기를 건강하게 출산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내 생애 가장 기쁜 일은 와일드가 건강을 되찾아 멋진 여성으로 성숙해가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엄마가 된 와일드는 ”더 마르고 싶은 생각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마이클을 위해 끼니를 거르지 않고 있다.“며 ”거식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줘 희망을 전해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처녀부부의 죽어도 좋아

    처녀부부의 죽어도 좋아

    시집도 안간 19살 양장점 아가씨와 21살 처녀운전사가 눈이 맞아 살림을 차리고 처녀부부가 되었다. 부모의 반대를 물리치기위해 타관으로 줄행랑까지 놓았던 처녀부부-. 끝내 못이루고만 애절한(?) 사랑의 사연인즉-. 충북(忠北) 보은(報恩)군 내속리면에 사는 처녀운전사 권(權)영옥양(21·가명)은 총각아닌 19살 처녀. 김(金)계순양(가명·대전(大田)시 S양장점 근무)과 눈이 맞아 살림을 차렸다. 권양은 보은에서 국민학교를 다니다 중퇴, 2종 운전면허와 대전 체신청이 준 구내교환원자격증을 갖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전영1-2xxx」 「코로나·택시」의 「스페어」운전사로 취직된 권양은 김양의 집에서 5백m쯤 떨어진 박(朴)모(42)씨 집에 하숙을 정했다. 일당 1천원의 「스페어」운전사지만 손님들은 권양을 『날씬한 아가씨운전사』라고 부르며 이따금 유혹의 손길을 뻗어왔다. 그러나 권양은 『남자보다 여자가 더 좋아』였던 모양. 「스커트」와 「오버」를 맞추기위해 우연히 대전시내 S양장점에 들른 것이 권양의 가슴속에 숨어있던 동성애본능에 불을 지른 계기. 권양의 몸을 잰 아가씨가 바로 김양. 김양은 대전서 D상업여고를 졸업, 주산3급의 자격까지 가지고 있는 실력파였다. 김양은 권양의 몸매를 재면서 야릇한 흥분을 느꼈고, 권양은 김양의 손길이 몸에 닿을때마다 감전이 된 듯한 감촉을 느꼈다. 첫눈에 정들어버린(?) 두처녀는 하루가 멀다하고 만나기 시작했다. 권양의 옷은 으례 김양이 고르고 맞추고, 두처녀는 일과가 끝나면 서로 어울려 극장구경, 다방엘 다녔다. 마침내 두 처녀는 뜨거운 사랑을 이루기 위해 지난 2월부터 권양의 하숙집에서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나이가 2살 위고 직업이 운전사인 권양이 남편, 김양이 아내가 되었다. 아내인 김양이 빨래·밥짓기등을 보살피는 대신 권양은 벌어오는 돈을 몽땅 김양에게 맡기는 가장다운 역을 맡았다. 양장점에 취직한 딸이 집에 들어오지 않고 따로 살게되자 김양의 어머니 정(鄭)모여인(54)은 어렴풋이 이들의 관계를 짐작하기 시작했다. 이따끔 만나보면 김양의 몸은 군데군데 시퍼런 멍이 들어있기 일쑤. 더욱이 처녀로서 있을 수 없는 부위에 「키스」자국이 남아 있기도 했다. 안되겠다고 생각한 정여인은 김양의 형부에게 연락, 이 두 처녀부부를 갈라놓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처녀부부의 뜨거운 사랑은 이런 타의의 별거로 식어지지 않았다. 두 처녀는 몰래 부산행 밤열차를 타고 사랑의 줄행랑을 놓았다. 여관생활 1주일만에 가지고 갔던 돈은 바닥이 났다. 남은 돈은 1백50원 뿐. 하는 수 없이 두 처녀는 다시 대구(大邱)행 기차에 무임승차했다. 가까스로 대구역을 빠져 나왔으나 갈 곳이 막막, 달성공원을 헤매다가 통금위반으로 걸려 경찰서 보호실로 끌려왔다. 여기서 두 처녀의 가출은 들통이 나고 가족들에게 연락되어 다시 헤어져야만 했다. 훈방하는 경찰서장 앞에서 『죽어도 못헤어지겠다』며 울부짓던 처녀부부. 과연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좋았던 것일까. <대구(大邱)=배기찬(裵基燦)기자>[선데이서울 71년 5월 30일호 제4권 21호 통권 제 138호]
  • [하재봉의 영화읽기] 비커밍 제인

    [하재봉의 영화읽기] 비커밍 제인

    사랑에 빠진 남녀의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해 대중들의 열렬한 호응을 불러일으킨 여류작가 그 자신은, 과연 어떤 사랑을 했을까? 혹시 허구적 소설 속에 등장한 이야기나 인물들은 자신의 연애담에 상상력이라는 질료를 불어넣어 조금 변형한 것은 아닐까? 18세기 영문학사에 중요한 작가로 기록되는 여류작가 제인 오스틴은 평생 6편의 소설만을 남겼지만, 그 소설들은 현재의 독자들에게도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고 또 6편 전부 영화나 TV영화 혹은 미니시리즈로 여러 차례 만들어져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제인 오스틴의 감성은 시대를 뛰어 넘어 2백년이 훨씬 지난 지금의 관객들에게도 통하고 있는 것이다.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을 만든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이 <센스 앤 센서빌리티>로 제인 오스틴의 섬세한 감성을 화면에 옮기는데 성공했고, <오만과 편견> <엠마> 등 제인 오스틴의 작품 6편들은 지금까지 수십 차례 영화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커밍 제인>은 알려지지 않은 제인 오스틴의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물론 당시의 정확한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기 때문에 상당 부분은 허구로 재구성한 것들이다. 제인 오스틴은 1775년 12월 16일 영국 햄프셔 스티븐톤 교구에서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형제는 모두 8명. 그 중에서 제인은 일곱 번째였다. 그녀가 받은 공식적인 교육은 11살 생일 직전 애비 스쿨에서 1년 반 동안 읽기를 배운 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혼자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기성교육을 받지 않은 그녀는 지금까지의 소설들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글을 시도했다. 그녀의 첫번째 소설은 《엘리노와 마리안느》로서 19살 때 쓴 작품이다. <비커밍 제인>은 제인이 첫번째 소설을 막 쓰고 난 직후부터 시작된다. 제인이 스무 살 때인 1795년 크리스마스 시즌, 그녀는 운명적인 남자를 만나는데 그는 제인의 오빠의 친구인 톰 리프로이다. 휴가차 햄프셔를 방문한 톰은 1월 중순 런던으로 돌아가 법률공부를 시작한다. 제인은 그 해 8월 런던에 가서 톰을 만나지만 1798년 8월 그들의 로맨스는 끝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제인 오스틴의 짧은 일생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을 이 무렵의 제인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왜냐하면, 제인이 런던에서 톰을 만나고 돌아온 직후인 1796년 9월 18일부터 로맨스가 끝난 직후인 1798년 10월까지 2년 동안 쓴 제인의 편지를 제이의 언니가 모두 불태워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인의 언니 카산드라가 실수로 혹은 고의로 태우지 않은 두 사람 사이의 첫번째 편지는 아직 남아 있다. 제인 오스틴의 전기작가 존 스펜스는 이 편지를 바탕으로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끄집어내서 제인이 사랑한 톰 리프로이라는 인물의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했다. 제인이 톰과 사랑에 빠져 있던 그 시기, 제인 오스틴의 주요 걸작들이 탄생되었다. 그 2년 동안 제인은 《오만과 편견》《센스 앤 센서빌리티》《엠마》 등을 집필했고 사랑이 끝난 직후인 1979년 그녀의 마지막 작품 《노싱거 사원》을 완성했다. 하지만 제인은 1799년 이후 1817년, 4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깊은 사랑의 상처로 인해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았다. 제인 오스틴의 연애 이야기를 그린 줄리아 제롤드 감독의 영화 <비커밍 제인>은, 존 스펜스의 전기 《비커밍 제인 오스틴》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줄리아 제롤드 감독은 10년 넘게 TV 시리즈를 연출하면서 인정받은 후 2005년 영화계에 대뷔했다. <비커밍 제인>은, 기존의 자료를 바탕으로,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에 나오는 여러 가지 상황이나 인물을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상상적으로 재구성했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강조되는 것은, 사랑이냐 돈이냐 라는 선택의 문제다. 조금 더 고급스럽게 말한다면 정신적인 영혼의 사랑을 갈구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적인 물질적 풍족을 따를 것인가 하는 문제다. 제인(앤 해서웨이 분)이 사랑한 톰 리프로이(제임스 맥어보이 분)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외삼촌의 후원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더구나 그는 법대생인데 대법관인 외삼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는 출세할 수 없다. 즉, 외삼촌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아무리 제인을 사랑해도 현실적으로 결혼이 불가능하다. 톰이 외삼촌의 반대로 제인과의 결혼을 망설이고 있는 사이, 제인 앞에는 부와 명예를 갖춘 귀족 집안의 위슬리(로렌스 폭스 분)가 청혼한다. 제인의 어머니(줄리아 월터스 분)는 사랑만 가지고 가난한 목사(제임스 크롬웰 분)와 결혼했기 때문에 지금도 감자를 캐고 있는 신세라면서 제인에게 위슬리의 청혼을 받아들일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다. 결혼이 여성들의 신분상승을 위한 중요한 기회로 인식되는 것은 현대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빈부격차가 심했던 18세기 당시에는 훨씬 더 심했다. “어떻게 사랑 없는 결혼을 할 수 있지? 가족, 집, 모두 다 잃고 얻는 건 가난과 고역뿐이라도 난 이 행복을 놓칠 수 없어!” 사랑에 빠졌지만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 절망하는 제인이나 톰은 물론 제인 주변의 위슬리나 위슬리의 후원자인 그래샴 부인(매기 스미스 분)과 제인의 언니인 카산드라 오스틴 등 <비커밍 제인>에 등장하는 많은 캐릭터들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속 인물들에서 뼈대를 가져와 살을 붙인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사랑에 빠진 남녀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깊은 관찰력으로 획득된 입체적인 캐릭터의 구축,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다. 그것이 그녀가 창조한 인물들로 하여금 시대를 초월해서도 살아있는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게 하는 것이다. 평생동안 독신으로 소설만 쓰며 살다간 제인 오스틴은 실연의 깊은 상처로 10년 넘게 절필하다가 1811년 《센스 앤 센서빌리티》가 출판되면서 활력을 되찾는다. 이미 오래 전에 탈고한 소설이었지만 출판은 되지 못하다가 《센스 앤 센서빌리티》의 좋은 반응으로 그녀의 다른 소설들 《오만과 편견》(1813년), 《맨스필드 파크》(1814년) 《엠마》(1815년)가 출판되었고 《설득》과 《노싱거 사원》은 1817년 7월 18일 에디슨 병으로 그녀가 사망한 후 유작으로 출판되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항상 결혼 직전의 남녀가 주인공이며, 매력적이지만 믿을 수 없는 남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사랑의 상처에서 오는 경험 때문이다. 톰 리프로이는 훗날 아일랜드의 수석변호사로 성공했으며 그는 자신의 첫 딸 이름을 제인이라고 지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제인 오스틴의 사랑 이야기가 섬세하게 만들어진 <비커밍 제인>은 시대가 흘러도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남녀 관계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화두로, 진정한 사랑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스타가 된 앤 해서웨이의 연기도 좋지만 조연들의 빼어난 연기도 영화의 격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다. 특히 제인의 어머니 줄리아 월터스나 그래샴 부인 역의 매기 스미스 등 당대를 풍미하는 노 여배우들의 출연은 <비커밍 제인>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앤 헤서웨이는 지적 호기심이 강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강렬한 반어적 통찰력을 갖고 있었던 제인 오스틴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글 하재봉 시인, 영화평론가, 동서대 교수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남한行 1등급 티켓 1000만원”

    돈을 받고 북한 주민을 한국으로 탈출시키는 ‘기획탈북’이 성행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브로커들은 액수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주민들을 탈북시키는데 돈을 많이 내면 중국엔 며칠 안에, 한국엔 몇 주 만에 입국할 수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소개했다. 가장 저렴한 통로는 중국에서 태국을 경유, 서울로 가는 코스로 2000달러(약 182만원) 미만이 든다. 그러나 위험천만인 두만강 도강 및 도보, 태국 밀입국자 수용소에 몇 주간 수감 등 고달픔을 각오해야 한다. 반면 ‘1급 탈북’ 코스는 1만달러(약 910만원) 이상 들지만 탈북완료까지 3주면 충분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위조 중국여권을 이용해 베이징에서 서울까지 항공편으로 직행하는 방법이다. 최근 북한에 남아 있는 11살 난 아들을 서울로 데려온 37세의 한 탈북 여성은 “이렇게 빨리 데려올 수 있을 줄 몰랐다.”고 말했다. 신문은 최근 기획탈북이 그 어느 때보다 성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경제가 악화된 데다 국영 식량 배급 체제가 거의 와해돼 뇌물을 받고 주민들의 탈북을 눈감아 주는 국경경비원, 하급 공무원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뇌물 탓에 두만강 유역 국경 수비원들의 수도 줄고 보안경비도 허술해졌다. 이에 따라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을 기획탈북시키는 사례도 늘었다. 또 남한의 이산가족이 북한 친지들을 탈북시키거나 중국 국경지대에서 밀회하기 위해 브로커들을 고용하는 일도 빈번해졌다.50년 전 북한에 부인과 두 아들을 두고 월남한 이모(81)씨는 남한에서 재혼, 새 가정을 꾸렸다.그러나 북한 가족을 평생 마음의 짐으로 생각했던 이씨는 2년 전 브로커를 고용, 북한의 아들과 중국 국경 지대에서 3일간 밀회했다고 신문은 소개했다. 한편 기획탈북을 주도하는 계층도 변화했다. 과거 종교단체들에서 최근엔 한국에 정착한 군인, 보안요원 출신의 탈북자들이 브로커로 나서고 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이정연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외박 잦고 아이에 무심한 남편 어쩌죠

    Q우리 부부는 3년 동거 끝에 결혼한 지 1년 된 신혼 부부입니다. 동거 기간 중 애가 생겨 남편이 서둘러 결혼하였으나 연애할 때와는 달리 가정생활에 무책임하고 특히 친구들과 외박을 자주 합니다. 여자가 있는 건지, 아니면 남자들끼리 사귀는 건지 별별 의심이 다 듭니다. 남편은 1살 때 부모가 헤어져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서로 싸우다 보면 심한 말도 하지만, 툭하면 애두고 나가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면서도 아이한테 무관심한 게 더 속상합니다. 떠돌아 다니는 남편을 기다리다 우울증이 생겨 분노로 변합니다. 이혼해도 애를 잘 키울 수 있고, 지금보다 나을 것 같습니다. -문희영(가명·28) A누구나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으며, 남들보다 행복하게 살려는 꿈을 펼치게 됩니다. 그럼에도 신혼기의 배는 거친 항해를 하게 됩니다. 목표가 불분명하고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시작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우선 남편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성향은 어릴 적 불안정한 생활 때문일 수도 있고, 부부간의 갈등을 회피하려는 방법일 수도 있으며 또는 이 두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설마 하겠지만 부인이 임신 기간 중 성생활을 꺼리다 보면 외도하는 남편도 생각보다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거 생활을 선택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규율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부부가 되어 경제적인 것부터 심리적인 부분까지 서로 맞추려다 보니 자유롭게 살아온 남편에게는 적응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두 분에겐 신혼기보다 오히려 동거 기간이 더 행복한 기간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문희영씨는 남편이 아이한테 무관심한 것에 더욱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현상만 보고 판단한다면 당연히 남편의 무책임한 면을 비난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남편의 성장 과정을 보건대, 아직도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어린 시절의 상처가 남아 있으며, 키우지도 않을 거면서 ‘부모는 왜 나를 낳았을까.’ 하는 질문을 가슴에 품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를 보면서도 긍정적인 면보다는 자신의 부정적인 면을 더 연상하는 것이겠지요. 아이 두고 나가라고 하는 말은 사실 자신이 경험한 가족사를 그대로 반영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서 부모의 행동을 대물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남편이 일절 의논도 없이 맘대로 행동하는 것이 문희영씨에겐 불만인 줄 압니다. 아이 때문에 묶여서 모든 것을 의논하고 남편으로부터 답을 듣고 싶겠지만, 남편은 그런 것을 더 불편해할 수 있습니다. 부인은 대화를 해야 마음이 편해지지만, 외롭게 그리고 자유롭게 살아온 남편은 여자가 대화하자고 하면 단속이나 공격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외박하여 미안한 마음이 있다가도, 다그치면 오히려 반발심이 생겨 화를 내기도 합니다. 현재로서는 문희영씨가 산후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한다면 우울증이 심해져, 남편이나 아이에게 화풀이하려는 충동이 생깁니다. 친구나 부모 또는 상담센터 등을 연결하여 심리적 지지를 받도록 하세요. 문희영씨에겐 남편이 적이 아니라 혼자 풀어 놓은 상상이 적입니다. 남편이 점차 가정생활에 정착해 가도록 도우면서 본인도 관계향상 교육이나 상담을 받아 행복의 열쇠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집 장만하는 계획은 철저히 세우면서 서로의 신뢰가 무너지기 전에 복구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다면 신혼부부의 배는 쉽게 좌초되고 맙니다. 어린 아기의 맑은 눈망울이 희망의 나침반입니다. 아이를 기르고 외출하기 힘들어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나 교육을 받으며 미래를 설계하시기 바랍니다. <목포대 교수·한국가족상담사협회장>
  • ‘기쁨조’ 있는 北음식점 日손님에 인기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북한음식점에 최근 일본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있다. 일간 닛케이신문은 23일 비즈니스칼럼에 “많은 일본계 기업이 있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북한사람이 경영하는 음식점이 일본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며 현지 전문가의 말을 빌려 상세히 소개했다. 신문은 “상하이에 있는 7개의 음식점을 비롯해 중국 내 100개가 넘는 북한 레스토랑이 동남아시아 이어 호황을 누리고 있다.”며 “기쁨조와 북한요리가 그 인기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평양출신의 미소녀로 이루진 기쁨조 밴드들은 식당의 종업원이기도 해 손님들의 접대를 돕고 있다.”며 “북한음식점에서는 식사를 하면서 북한 가요쇼를 볼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밝혔다. 또 “그 중에서도 지난 2006년 오픈한 ‘평양묘향관’(平壌妙香館)이 손님의 70%가 일본사람일 만큼 인기가 많다.”며 “주변의 음식점과 달리 이곳은 분위기가 건전하고 설치된 TV스크린으로 북한 드라마가 방영된다.’고 전했다. 아울러 “메뉴판에는 음식종류마다 ‘평양냉면’ ‘평양김치’ 등 꼭 ‘평양’이라는 단어가 포함됐지만 일반 한국요리점의 음식맛과 별 차이가 없었다.” 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같은 북한음식점이 유독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양묘향관의 사장은 “일본손님의 대부분은 상하이 거주의 주재원들” 이라며 “주재원이나 기쁨조 친구들 모두 (해외에서) 낯선 생활로 쌓인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데 서로의 기분을 잘 헤아려주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또 “일본 손님들을 위해 기쁨조 친구들에게 일본 노래를 가르치고 있다.”며 “그러나 19~21살의 이들은 3년이 지나면 북한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음식점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한 일본인 손님은 “나라의 어려움으로 해외에 나와 힘든 일을 하는 어린 소녀들에게 지금의 일본인이 잃어버린 순수함을 느끼는 것 같다.”며 “상하이에 와 춤추고 노래하는 그녀들에게서 (일본인들은) 기특함을 느끼고 위안을 받는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가보았지] (40) 연하남 인기 상종가 ‘자커스 펭귄’

    미혼여성들 사이에 연하남이 상한가다. 본능적인 욕구인지 그간 젊고 싱싱한 여자에 광분(?)했던 남자들에 대한 복수의 부메랑인지는 몰라도…. 그럼 동물의 세계에서도 연하남은 통할까. 적어도 서울대공원에 사는 자카스 펭귄들에게 연하남은 하나의 트렌드인 듯하다. ●펭귄은 연하남을 좋아해(?) 서울대공원 해양관 한쪽에 자리잡은 자카스 펭귄의 우리에는 7마리가 옹기종기 모여산다. 뭐가 그리 바쁜지 이리저리 뒤뚱대며 뭉쳐다니는 모습은 마치 ‘백설공주’속 일곱 난쟁이들을 보는 듯하다. 녀석들의 본적은 남아프리카 케이프섬 인근 바다. 일년 내내 기온이 10∼20도 사이를 오가는 곳이다.‘펭귄은 남극에만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상식을 뒤집어 주는 놈들이다. 녀석들이 서울대공원에 둥지를 튼 건 지난해 5월이다. 인근 동물원으로부터 암컷 3마리와 수컷 4마리가 함께 들어와 사는데, 우연찮게도 암컷 모두 연하남을 신랑감으로 골랐다. 암수의 나이차이는 많게는 6살부터 적게는 2살까지. 가장 나이가 많은데다 성격까지 포악하기로 유명한 맞언니 펭버(♀·11살)는 6살 연하의 펭승(♂·5살)을 낙점했다. 녀석들 평균 수명이 20∼25살인 것을 고려하면 펭버는 인간의 나이로 환산해 20살 정도 어린 영계와 함께 사는 셈이다. 펭버의 딸인 펭콩(♀·5살)도 엄마의 영향인지 2살 연하의 남편을 골랐고, 마지막 암컷인 펭쥐(♀·5살) 역시 1년 10개월이나 어린 신랑 펭음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녀석들은 한번 부부의 연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 산다. ●“누나들이 새끼 낳으면 장가보내 줄게” 자카스 펭귄은 다른 펭귄과는 달리 암컷이 수컷들보다 덩치가 크다. 그만큼 거세고 당당하다. 그럼 만남은 누나들의 강압 때문이었을까. 자카스 펭귄은 원래 수컷이 울면서 구애를 하면 암컷이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짝을 맺는다. 이때 수컷이 마련한 우리로 암컷이 쏙 들어가면 승낙의 뜻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수컷 역시 암컷이 맘에 들었단 뜻이다. 하지만 동물원 관계자는 “연하남차지는 우연히 생긴 현상일 뿐 일반화되는 펭귄의 특성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낙동강 오리알’신세도 있다. 누나들의 간택을 받지 못한 유일한 솔로 펭도(♂·4살)다. 그나마 다들 밖으로 나와 수영을 하거나, 먹이를 먹고, 햇볕을 쬘 때는 펭도의 외로움이 덜하다. 하지만 요즘 같은 짝짓기 철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뭘 해도 부부가 함께 다니는 데다 저마다 시간이 남으면 둥지로 들어가 사랑을 나누기 일쑤다. 다른 쌍이 알이라도 낳으면 외로움 더하기 마련. 최재덕 사육사는 “세 쌍의 펭귄들이 노력중이기 때문에 좋은 소식을 기다리는 중”이라면서 “새끼중 암컷이 나오면 조만간 펭도의 신붓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LPGA] 승부사 박세리 시즌 처음·통산 24회 우승

    3년 전 미국의 골프다이제스트가 유명 수학자에게 의뢰,50년 동안의 기록을 조사한 결과 아마추어 골퍼가 150야드짜리 홀에서 홀인원을 뽑아낼 확률은 무려 8만분의1로 나타났다. 물론, 기량이 출중한 프로골퍼라면 그 확률은 현저히 높아진다. 그러나 정규대회에서, 그것도 우승을 다투는 최종 라운드에서 잡아낸 홀인원은 확률을 떠나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이른바 “그분이 오셨다.”는 우승에 대한 확신이다. 반면 상대방에게는 힘이 쭈욱 빠지는 좌절감 그 자체다. 그러나 박세리(30·CJ)는 주저앉지 않았다. 되레 “상대방의 홀인원이 경쟁심을 더 자극시켰다.”고 했다.11살 아래 ‘신동’ 모건 프레셀(미국)의 홀인원도 ‘여왕의 귀환’을 막지는 못했다. ●프레셀 홀인원에 자극 “집중 또 집중”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제이미파오언스 코닝클래식 4라운드가 벌어진 16일 오하이오주 실베이니아의 하일랜드메도스골프장.2타차 2위로 출발한 프레셀은 박세리가 전반 4∼5번홀 줄보기로 타수를 까먹는 사이 146야드짜리 다음홀 홀인원으로 순식간에 3타차 선두로 나섰다. 하이파이브로 쓰린 축하를 건넨 박세리는 속으로 “집중, 또 집중”을 외친 뒤 같은 홀 7.5m의 긴 퍼트를 떨궜다. 다시 2타차.8∼9번 연속버디로 균형을 맞춘 박세리는 15번홀에서 천금 같은 버디퍼트를 떨구며 1타차 리드를 다시 잡았다.1타차의 지루한 파행진은 계속됐지만 승부는 관록에서 갈렸다.17번홀 버디를 주고받은 뒤인 18번홀. 박세리는 두번째 샷을 홀 바로 뒤에 붙여 상대의 전의를 꺾었다. 프레셀은 페어웨이에서 드라이버를 잡는 초강수를 뒀지만 보기로 홀아웃, 챔피언퍼트를 버디로 장식한 박세리의 우승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의 병, 이젠 굿바이 박세리의 우승은 통산 24번째라는 사실보다 경기 내용은 물론,‘평정심에 의한 완벽한 부활’이라는 데 더 의미가 있다.2004년 명예의 전당 입회 포인트는 다 채웠지만 또 하나의 조건인 ‘10년’을 채우는 데는 2년이 더 걸렸다. 그건 박세리에게 깊은 생채기만 남긴 기간이었다. 모든 게 엉망이었다. 좌우로 마구 흩어지는 그의 샷을 두고 “난초를 그렸다.”는 말도 생겨났다. 시즌 상금 랭킹과 평균 타수도 곤두박질쳤다. 기량 탓이 아니라 25년 가까이 골프채만 잡은 데서 온 ‘마음의 병’이었다. 그러나 박세리는 강했다.13개월 전인 지난해 맥도널드LPGA챔피언십 우승으로 부활을 예고한 이후 자신감을 되찾는 데 필요한 건 죽기살기식 훈련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라는 사실을 터득했다. 프레셀은 “오늘 그의 플레이로 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다음 목표는 올해의 선수상” 통산 24승째를 신고하며 화려하게 여왕의 자리로 컴백한 박세리는 “어려운 상황이 되레 집중력을 키워준 계기가 됐고, 그 덕분에 우승할 수 있었다.”면서 “올해 컨디션이 좋은 만큼 늦었지만 올해의 선수상에 도전해 보겠다.”고 끊임없는 욕심을 드러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시즌 첫 승인데. -우승은 언제나 기쁘다. 명예의 전당 입회 이후 일궈낸 우승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렸지만 워낙 경쟁자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와 우승을 쉽게 장담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은 있었다. 한 대회 5회 우승도 내게는 가슴 벅찬 기록이다. ▶프레셀의 6번홀 홀인원 때는. -당연히 축하해줬다. 많이 부럽기도 했고. 더 솔직히 말하면 “이번 대회도 내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 “집중하자, 집중하자!”라고 외쳤다. 결국 프레셀의 홀인원이 집중력을 부추겼고, 이후 플레이에 좋은 영향을 줬다. ▶승부처는 어디였나. -15번홀이었다.3라운드 때 보기가 부담이 되긴 했지만 세컨드샷이 생각보다 핀에 잘 붙어줬다. 다행히 쉽게 버디를 챙길 수 있었고, 이후 나머지 홀을 풀어나가는 데 탄력이 붙었다. ▶향후 시즌 계획은. -곧 다가올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하고 싶다. 늦은 감은 있지만 올해의 선수상에도 도전을 해볼 생각이다. 아직 대회는 많이 남아 있고, 컨디션이 상당히 좋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 시즌 초반 명예의 전당 입회와 관련해 들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번 대회처럼 초반 라운드에 좀 더 집중하면서 매 대회에 임할 생각이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세리 “오하이오는 약속의 땅” 박세리에게 오하이오는 ‘약속의 땅’이자 ‘기록의 땅’이었다. 박세리는 이날 한 대회 다섯번째 정상을 밟아 LPGA 투어 사상 네 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을 작성했다. 미키 라이트(미국)가 시아일랜드오픈(1957∼58,1960,1962∼63년)에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미즈노클래식(2001∼05)과 삼성월드챔피언십(1995∼96,2002,2004∼05년)에서 5승을 달성한 이후 처음이다. 박세리는 또 첫 우승 때인 1998년 2라운드에서 10언더파 61타로 자신의 최소타 기록과 함께 72홀 최소타 기록인 261타로 우승했고, 올해 역시 1라운드 최소타 기록(63타)을 수립하며 대회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날 우승으로 박세리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명예의 전당 요구 포인트도 모두 채워 국내외 그린을 아우르는 최고 여자 골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국내 명예의 전당 입회는 구옥희에 이어 두번째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이 세상 모든 아비지들께 바칩니다… ‘아버지 영화’ 봇물

    이 세상 모든 아비지들께 바칩니다… ‘아버지 영화’ 봇물

    갑자기 나타난 딸로 개과천선하는 양아치 종대(눈부신 날에), 아들과 잊을 수 없는 특별한 하루를 보내는 무기수 강식(아들),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의 졸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치킨집 사장 진규(날아라 허동구). 언뜻 봐도 평범하지 않은 이 아버지들이 삶에 찌든 조폭 가장 강인구(우아한 세계)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극장가에서 ‘아버지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영화도 유행을 타는지 짠한 부성애를 내세운 영화들이 앞다퉈 개봉되고 있다. 잘만 버무리면 관객들의 눈물을 쏙 빼놓기는 어렵지 않을 듯한데…. 과연 관객들이 이들과 함께 울어 줄 수 있을까. #1 ▶“죽음 앞둔 딸을 보며 새 삶 찾아” 슬퍼 보이긴 하는데 눈물이 나지 않는다. 애틋한 부녀지간을 만들기 위해 너무 억지를 부리면 이런 부작용이 생긴다. 박광수 감독이 아주 오랜만에 들고 나온 영화 ‘눈부신 날에’가 그렇다. 물론 ‘신동’ 소리를 들으며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아역배우 서신애의 나이답지 않은 열연은 콧등을 시큰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뿐이다. 진한 감동을 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을까. 현실과 동떨어진 일부 무리한 설정은 상당히 거슬린다. 특히 영화에서 아이는 감동을 위한 희생양일 뿐 엄연한 인격체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그걸 보고 울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다. 이야기는 이렇다. 전과 3범으로 야바위판을 전전하는 삼류건달 종대(박신양) 앞에 어느날 친딸이라며 귀엽고 깜찍한 준(서신애)이 나타난다. 아이를 잃은 상처를 지닌 사회복지사 선영(예지원)이 친딸처럼 여기는 준을 위해 아빠를 찾아준 것이다. 선영은 눈물 섞인 호소와 약간의 돈으로 펄펄 뛰는 종대에게 준을 맡긴다. 아이의 마지막 소원이라며. 사실 준은 불치병 환아. 이를 몰랐던 종대는 준을 방치하게 되고 병은 악화된다. 그토록 소원하던 월드컵 거리응원을 나간 날, 준은 종대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막 살아온 대가로 실명 위기에 처한 그에게 마지막 선물까지 주고 말이다. 최루성의 강도를 높이려다 보니 영화는 이해하지 못할 일 투성이다. 부양자로서의 자격을 전혀 갖추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를 종대에게 맡기는 선영의 행동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현실에서 입양이 얼마나 엄격한 심사와 기준에 의해 이뤄지는지 모른단 말인 것인지…. 게다가 병든 아이를 허름한 컨테이너 박스(종대의 집)에 살도록 하는 것은 방치나 다름 없고, 또 아이에게 병을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장면은 오로지 비극적 결말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겠다는 뻔한 계산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10살짜리 아이가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올라가 비바람 속에 TV안테나를 부여잡고 있다가 쓰러지는 장면에 이르면 슬픔 때문이 아니라 답답함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여기에 더해 준이 종대의 친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암시하는 원장 수녀의 태도는 나름 유쾌한 반전이라고 집어넣은 것이겠으나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어렵게 상봉한 부녀의 이별이 안타까워서 눈물이 나는 것이 아니라 이렇듯 말도 안되는 상황에 내몰린 준을 보고 있으면 억울해서 눈물이 나긴 난다.19일 개봉,15세 관람가. #2 ▶“15년 떨어져도 아들을 느낀다” ‘아들’은 살인강도로 무기수가 된 아버지 강식(차승원)이 15년 만에 24시간의 특별휴가를 받아 아들 준석(류덕환)을 만나며 일어나는 사건과 감정의 변화를 다뤘다. 관객들의 눈물샘을 터뜨리기로 작정하고 만든 것처럼 느껴질 만큼 슬픔과 안타까움이 영화 전반을 흐른다. 평생을 교도소에서 가족을 보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강식의 미안함, 그리고 너무 오래 떨어져 산 탓인지 아버지를 보고도 선뜻 살갑게 대할 수 없는 아들의 안타까움이 잘 그려졌다. 하루의 만남으로 서로 화해를 이루는 장면은 감동적이기는 하지만 이야기 전개가 조금은 억지스럽다는 인상이 든다. 강식과 준석이 나누는 대화를 듣다보면 아버지와 딸 같다는 느낌도 든다. 교도소에 수감되며 3살배기 아들과 헤어졌던 강식은 15년이 지난 지금 준석에 대해 추억할 만한 기억이 거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를 직접 찾아가 만난 준석은 자신과 달리 키도 작고 그리 닮지도 않았다. 어려서부터 아들이 왼손잡이여서 혼내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 어느새 아들은 오른손잡이로 변해 있다. 그래서일까. 더욱 아들에게 다가가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둘은 함께 목욕을 하며 화해를 시도하고 강변에서 달을 바라보며 준석이 아버지에게 ‘죽을 때까지 날 사랑해 달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린다. 아들 앞에서 한번도 울지 않던 강식은 다음날 아침 교도소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다 준석이 손을 잡자 통곡하고 만다. “호랑이 문신이 나이가 들다보니 얼룩말처럼 변했다.”는 등 영화 곳곳 등장하는 ‘장진식 코미디’가 활력을 준다. 하지만 영화 내내 너무 울음이 많다는 것은 아쉽다.5월3일 개봉. 전체 관람가. #3 ▶“아들아 초등학교만 졸업해다오” ‘날아라 허동구’는 타이완의 베스트셀러 소설 ‘나는 백치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원래 소설에서는 저능아 아들을 초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엄마가 주인공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정진영이 영화 제작초기 ‘엄마’를 ‘아빠’로 바꿔보자는 제안을 해 받아들여졌다고. 장애아의 힘겨운 ‘장애 극복과정’을 그린 기존 장애우 영화와 달리 단지 사회에 무사히 발을 딛기만 해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대다수 장애아 부모들의 심정을 대변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다.‘장애아’를 키우는 한 아빠의 사실적이면서도 소소한 일상을 통해 잔잔한 웃음을 선사한다. 주인공 동구를 연기한 아역배우 최우혁은 연기를 위해 체중도 8㎏이상 늘리고 정진장애학교에도 주 1∼2회씩 방문하는 등 어른 못지 않은 열정을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학교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IQ 60의 11살 동구. 아들이 세상에서 전부인 치킨집 사장 진규(정진영). 학교에 가도 친구들에게 물 따라주는 일밖에 못하는 동구지만 엄마 없이도 밝게 자라는 동구를 보는 진규는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하지만 동구가 그렇게 좋아하는 학교에서는 특수학교로 전학가라고 종용하고, 난데없이 집주인은 이사를 가라며 진규의 등을 떠민다. 때마침 선수 부족으로 없어질 위기에 처한 야구부에 들어가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진규는 오직 동구의 초등학교 졸업을 위해 야구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야구의 규칙을 알 리 없는 동구는 선생님의 차가운 눈빛과 집주인의 잔소리에 맞서며 초등학교 졸업을 위해 고군분투한다.26일 개봉. 전체 관람가. 박상숙 류지영기자 alex@seoul.co.kr ■ 왜? ▶영화계 불황과 소재 개척을 반영 이뿐만이 아니다. 오는 19일 개봉 예정인 ‘파란 자전거’(권용국 감독)를 필두로 ‘성난 펭귄’(박상준 감독),‘마이 파더’(황동혁 감독),‘귀휴’(김영준 감독·),‘이대근, 이댁은’(심광진 감독),‘가시고기’(유학주 감독), 일본영화 ‘내일의 기억’(쓰쓰미 유키히코 감독) 등도 아버지를 소재로 5월 이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한국 영화에 ‘아버지 영화’가 대거 등장한 데에는 지난해 후반부터 시작된 영화계의 불황을 반영한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규모 자본투자가 어려워지자 적은 비용으로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는 감성형 가족영화 제작이 늘고 있다는 것.30억원 정도의 순수제작비로 5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말아톤’(2005년 개봉·정윤철 감독)의 성공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 모성애 위주로 흐르던 가족영화에 부성애라는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인지 최근 아버지 영화 상당수는 감정에 호소하기 위한 흥행공식에 충실한 영화를 만든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날아라 허동구’를 배급하는 ‘쇼박스’의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가 노고를 잊고 살아온 아버지를 돌이켜볼 수 있는 계기로 삼기 위해 아버지에 관한 영화들이 기획되는 것으로 보인다.”며 “장르나 소재가 다양한 한국영화의 특성상 새로운 영역으로의 확장이라는 의미도 갖는다.”고 말했다.
  • 김경숙 의문사 28년만에 풀릴까

    부마항쟁의 도화선이 된 1979년 ‘YH 여공’사태를 기억하십니까.여공 김경숙씨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28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18일 오후 11시5분 YTN의 민주화 20주년 특별기획 ‘진실-YH 여공 김경숙, 그리고 우리들의 누이편’은 지나간 역사의 진실을 파헤친다. YTN은 아픈 우리의 역사를 김경숙이란 인물에 초점을 맞춰 풀어간다.1973년 김경숙은 남동생을 공부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상경해 이른바 ‘공순이’가 된다. 소규모 하청업체 세 군데를 전전하던 그녀는 1976년 봉제업체인 YH무역주식회사에 입사한다. 철야와 잔업을 마다않고 고향에 송금하는 것을 보람으로 알던 그녀는 서서히 노동자 현실에 눈을 뜨고 1978년 YH 노동조합 대의원에 선출된다.1979년 8월, 회사는 폐업을 통보하고, 신민당사에서는 회사 정상화를 요구하는 YH 여공들의 농성이 벌어진다. 1000여명의 경찰병력이 투입된 진압과정에서 김경숙은 시신으로 발견된다.21살, 그녀의 죽음은 개인적인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신민당 농성,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부마 민주항쟁,10·26사태로 이어져 유신시대의 종말을 앞당긴 기폭제가 됐다. 1979년 8월, 경찰은 김경숙의 죽음에 대해 ‘경찰 진입 전 투신자살’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가족이나 그녀와 함께 농성장을 지켰던 동료들 가운데 그녀가 자살했다고 믿는 이는 없다. 그렇게 30년이 다 되도록 김경숙의 죽음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제작진은 취재기간 중 경찰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책을 입수,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밝힌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어린이병사’ 근절하자

    |파리 이종수특파원|지구촌에 ‘카도고스(Kadogos)’라는 말이 사라질까?동부 아프리카에서 쓰는 스와힐리어로 카도고(kadogo)는 ‘어린이 병사’란 뜻으로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당시 생긴 말이다. 단수가 아니고 복수로 통용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어린이 병사는 아프리카 수단, 코트디부아르 등 주요 분쟁 지역에서 25만여명이 동원되고 있다. 이들을 근절시키기 위해 파리에서 이틀 동안 열린 ‘어린이 병사 구하기 국제회의’가 6일(현지시간) 폐막했다. 회의에 참석한 지구촌 58개국 대표들은 어린이 병사 근절을 위한 ‘파리 규범’에 합의했다. 서약에는 어린이 병사가 징집되는 국가들로서 유엔의 블랙리스트 12개 국가 가운데 부룬디, 차드, 콜롬비아, 코트 디부아르, 콩고민주공화국, 네팔, 소말리아, 수단, 스리랑카, 우간다 등이 참여했다. 또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유럽연합(EU) 국가들도 동참했다. 그러나 유엔 블랙리스트에 오른 미얀마와 필리핀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어린이 병사 동원땐 처벌규정 마련 합의문의 골자는 어린이가 무기를 들도록 허용하는 정부들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명시하고, 전쟁 기간에 각 국은 어린이 병사를 적발, 해산하고 이들을 동원한 사람들을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이번 회의는 20여년에 걸친 어린이 병사 근절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 가운데 가장 최대의 조치로 꼽힌다. 또 그동안 주로 비정부기관(NGO)들 중심으로 추진해온 어린이 병사 근절 노력에서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대책이 논의됐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합의문이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해 실제 어린이 병사를 근절하는 데 어느 정도 효력을 미칠 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현재 유엔 보고에 따르면 어린이 병사들이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10여개 분쟁 지역에 동원되고 있다. 이들은 전투병은 물론 심부름꾼·짐꾼·스파이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한때 30만명까지 추정됐었다. ●“물 마시듯 총 쏴” 어린이 병사 증언 앞서 회의 첫날인 5일 시에라리온의 어린이 병사 출신 이스마엘 베아흐(26)는 “총을 들고 누군가를 쏘는 것이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쉬웠다.”는 증언으로 회의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12세 때부터 총을 들고 전선에서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다는 그는 “어린이 병사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그들은 언제든 100달러를 받고 이웃의 분쟁지역으로 갈 수 있다.”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했다. 또 르몽드는 11살 때부터 콩고 내전에 참가 중인 무히마(17)의 증언을 보도했다. 그는 “늘 돈이 모자랐는데 사촌형이 ‘한달에 30달러를 받는다.’고 권유해 부모들에게 말하지도 않고 집을 나왔다.”며 “가자마자 군인들이 군복과 무기를 줬다.”고 말했다. vielee@seoul.co.kr
  • ‘남매’간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집안이 결딴?

    “호미로 쉽게 막을 일을 미봉(彌縫)하면 가래로도 막을 수 없다.” 중국 대륙에 재혼해 금실 좋게 살아가던 부부가 자신들의 의붓 남매간의 성폭행 등 불미스런 일을 감추기 위해 혼인시켜려다 실패하는 바람에 화목하던 집안이 풍비박산하는 일이 발생,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이혼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 남녀가 재혼해 각각 데려온 아들·딸과 화목한 가정을 이뤄 살아가던 중 의붓 남매인 아들·딸을 억지로 결혼시키려다 결국 실패하는 바람에 집안이 쑥대밭이 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고 상주일보(常州日報)가 16일 보도했다. ‘사건’의 장본인들은 재혼한 추궈칭(邱國慶·40)·뤼루(呂茹·37)씨 부부와 의붓 남매인 추하오(邱皓·20)·장윈(17)씨.지난 19991년 이혼의 아픔을 딛고 결혼한 추·뤼씨 부부는 추씨가 전처와의 아들 추군을,뤼씨가 전부(前夫)와의 딸인 장양을 각각 데려와 함께 오순도순 화목한 가정을 꾸려나갔다.이들이 재혼할 당시 추군은 14살,장양은 11살이었다. 재혼한 추·뤼씨 부부의 금실이 너무 좋은 덕분에 이들 가족 네식구는 웃음꽃이 그칠 날이 없을 정도로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특히 추씨는 국영기업 중견 간부이고 뤼씨는 능력 있는 보험 설계사여서 집안의 셈평도 나날이 펴졌다. 하지만 이들 집안에 ‘불행의 싹’이 서서히 자라나고 있었다.2002년 9월부터 17살이 된 추군이 고교 2년,장양은 14살로 중학 2년생이 됐다.고교 2년생이 된 추군이 사춘기에 접어들자,아리잠직한 장양을 옆에서 지켜보며 ‘성충동’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심한 경우 밤에 잠을 설칠 정도로 고생을 했다.장양은 14살이지만 조숙한 탓에 몸매가 이미 성숙할대로 성숙한 까닭이다.그해 11월10일 일요일이었다.추·뤼씨 부부는 직장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외출하고 추군과 장양 단둘이만 남았다. 의붓 남매이지만 사이가 좋은 이들은 집 근처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쳐 온몸에 땀으로 흠뻑 젖었다.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장양은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온몸에 난 땀을 식히기 위해 물을 끼얹고 있었다.화장실 문을 잠그지 않은채…. “쏴,쏴….”사워 소리를 들은 추군은 갑작스런 성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사워중인 장양을 끌어안고 성폭행을 자행했다.그녀가 끝까지 버티며 반항했으나 오빠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끝내 무너져버렸다.정조를 잃어버린 장양은 추·뤼씨 부부가 돌아왔을 때까지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사태를 알아챈 뤼씨는 너무 화가난 나머지 경찰에 신고,의붓아들 추군을 감옥으로 보낼 생각이었다.추씨는 아내 뤼씨에게 백배 사죄한 뒤 아들 추군을 불러 어머니와 동생에게 용서를 빌라며 마구 때렸다.추군은 “어머니,용서해주세요.내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혼돈에 빠진 뤼씨는 추씨 부자의 사죄에 못이겨 경찰에 알리지 않았다.뤼씨는 고통스럽지만 참기로 했다.이혼의 아픔을 딛고 재혼해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데다,추씨가 워낙 성품이 좋고 수입도 안정되고….이런 행복한 가정생활을 깨기 싫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이 아픔도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져 갔다.1∼2년이 지나면서 이들 가정에 과거의 아픔을 떨쳐버리고 또다시 웃음소리가 넘치기 시작했다.특히 2004년 여름 추군은 공부를 열심히 한 덕택에 대학 수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어 유명 대학에 진학하게 됐다. 화불단행(禍不單行·불행은 한번 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겹쳐 온다는 뜻)인가.그해 7월말 대학 합격을 한 추군이 무료하게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이때 샤워를 하고 타월로 몸을 감싼 뒤 머리를 털며 나오는 장양을 본 순간,또다시 흑심이 발동했다.더욱이 지난번 일도 용서받은 만큼 이번에도 조금 잘못했다고 빌기만 하면 쉽게 용서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의 사워한 뒤의 물기 묻은 섹시한 모습이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추군은 이때부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지난번에는 아무런 준비없이 하다가 들켰지만,수면제를 먹인 뒤 일을 치르면 들키지 않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착각도 하게 됐다. 이틀 뒤 추·뤼씨 부부가 출근한 이후 수면제를 사온 그는 장양이 마시는 물컵에다 몰래 집어넣었다.아무 것도 모르는 그녀는 그 물을 마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파 위에서 통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때를 놓칠세라 추군은 또다시 동생을 범했다.잠에서 깬 뒤 자신의 하복부에 통증을 느낀 그녀는 그에게 당한 사실을 눈치챘으나 어머니가 걱정할까봐 말을 하지 못했다.하지만 어머니 뤼씨는 여자의 직감으로 장양이 당했음을 알아차렸다. 이에 뤼씨가 장양에게 집중 추궁하자 눈물을 흘리며 “사실 몸이 너무 아프다.”며 사실을 털어놨다.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뤼씨는 모든 사실을 남편 추씨에게 털어놓고 경찰에 신고하려고 마음먹었다. 추씨는 집안의 스캔들이 밖으로 알려지면 직장생활을 하기 어렵다며 제발 참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대신 혼인서약서를 쓰겠다고 했다.의붓 남매인 만큼 이들이 결혼하는데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추·뤼씨 부부는 의붓 남매를 데려다 놓고 ▲추군은 장양을 성폭행했으나 경찰에 알리지도 않고 형사책임도 묻지 않으며,▲추군은 법정 결혼연령이 되면 반드시 장양과 결혼한다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하도록 했다.의붓 남매간 불행한 사건은 이로써 묻혀지는 듯 했다. 이들 부부는 의붓 남매가 당연히 결혼할 것으로 생각하고 “추군과 장양이 결혼을 하면,우리들은 이미 가족인 데,너희 둘이 또 결혼하면 우리들 사이는 더 가까워지니 얼마나 좋으냐?”며 흐믓해 했다. 하지만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2005년 들어 나이가 들면서 장양에 대한 추군의 마음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 것.그해 10월 중순 장양은 학교 기숙사에 있는 ‘장래 남편’인 그를 찾아갔다. 이때 추군의 친구들이 “저 아가씨가 아내냐?”라고 묻자,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니,나의 여동생이야.”이라고 말한 뒤 식당으로 데려가 점심을 사준 뒤 아무 말 없이 되돌아가버렸다.너무 황당하다고 느낀 장양은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 사실을 안 추씨도 몹시 화가 나 추군을 찾아가 “장양과 결혼할 것이냐,말 것이냐?”고 따지자,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추군은 그때 이미 한국 유학생 김(金)모씨와 사귀고 있었다. 지난해 4월 중순,추군은 뤼씨와 장양에게 “정말 죄송하게 됐다.하지만 장양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해버렸다.너무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우두망찰하던 뤼씨는 “우리 모두 각서를 썼다.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욱대겼다. 며칠 뒤 이들 뤼씨 모녀는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추군의 대학교 기숙사에 있던 한국 유학생 김씨를 찾아 저간의 사정을 털어놨다.이 사실을 알게 된 김씨도 깜짝 놀랐다.김양은 그를 찾아가 “너는 부끄러움도 모르는 치사한 남자다.왜 나를 속였니?너를 저주할 것”이라고 말한 뒤 헤어질 것을 요구했다. 이에 화가 난 추군은 이들 모녀가 김씨를 찾아가 이같은 사실을 말한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그는 “죽었으면 죽었지,너와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고 잼처 강조했다. 이 말을 들은 모녀는 모든 생의 의욕을 잃어버렸다.여름방학 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추군이 8월말 생활비를 타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마침 추씨는 출근하고 없는 상황이었다. 추군을 보자 이성을 잃은 뤼씨는 “왜,장양과 결혼하지 않느냐?”며 따져 물었다.그는 “죽어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대거리했다.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치민 뤼씨는 주방으로 들어가 식칼을 꺼내 들고 나와 추군을 마구 찔렀다. 이날 사고로 추군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충격이 너무 커 장애인이 되는 것은 물론 기억상실,실어증에 걸렸다.뤼씨 모녀는 현재 영어(囹圄)의 생활을 하고 있으며,추씨는 입원중인 아들을 돌보기 위해 병원에 머무르고 있다.추씨는 곧 뤼씨와의 이혼 수속을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오거스타 ‘숲神’ 누굴 점지할까

    미국 남부 조지아주의 오거스타가 또 붐비기 시작했다. 전세계의 톱클래스 골퍼들과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모여든 팬들이 ‘마스터스 주간’을 수놓고 있다. 올시즌 미프로골프(PGA) 투어 첫 메이저인 ‘명인 열전’ 마스터스가 7일 새벽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의 오거스타내셔널골프클럽(파72·7445야드)에서 70번째 막을 올린다. 전년도 PGA 상금 상위, 세계랭킹 상위 등 17가지 기준을 만족시킨 103명의 ‘명인’들이 출전한 가운데 4라운드 72홀 스트로크플레이로 펼쳐질 이번 대회의 초점은 언제나 그랬듯 타이거 우즈와 그외 선수들의 대결에서 누가 승리할 것이냐에 맞춰져 있다. 우즈와 마스터스의 인연은 무척이나 깊다. 메이저 첫승을 1997년 이 대회에서 거둘 당시부터 역대 최연소(21살), 역대 최저타(18언더), 역대 최다 타수차(12타차) 우승으로 폭풍을 몰고 온 그는 2001년 두번째 우승 때는 4개 메이저 연속 우승으로 ‘타이거슬램’이라는 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2002년엔 역대 7번째로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고, 지난해엔 네번째 챔피언에 올라 아널드 파머와 함께 다승 공동 2위로 올라서 잭 니클로스가 보유한 최다승(6승)에 2승만을 남겨놓고 있다. 경쟁자들도 우즈의 5번째 챔피언 등극을 보고만 있지는 않을 터. 우즈와 함께 ‘빅5’라 일컬어지는 비제이 싱(피지), 필 미켈슨(미국), 어니 엘스, 레티프 구센(이상 남아공)도 우승후보로 손색이 없다. 세계랭킹 2위이자 2000년 마스터스 챔피언인 싱과 2004년 챔피언 미켈슨은 이미 한 차례씩 마스터스 챔피언의 상징인 그린재킷을 입어봤다는 점에서 호락호락하지 않고,US오픈 두 번과 브리티시오픈 한 번을 제패한 엘스와 US오픈 우승컵을 두 번 안은 구센도 그린재킷을 입겠다는 각오가 크다. 특히 지난주 끝난 벨사우스클래식에서 나흘 동안 무려 28언더파 260타의 맹타를 휘두르며 우승을 차지한 상승세로 2년만에 우승컵을 되찾겠다는 미켈슨의 의지가 돋보인다. 물론 ‘오거스타 숲이 점지한다.’는 마스터스 챔피언에는 의외의 인물이 선택될 수도 있다. 지난해 연장전에서 우즈에 아깝게 무릎을 꿇었던 크리스 디마르코(미국)와 세르히오 가르시아(스페인), 짐 퓨릭(미국), 마이크 위어(캐나다), 애덤 스콧(호주), 채드 캠벨(미국) 등과 함께 지난 2004년 3위에 올라 마스터스에 남다른 자신감을 갖고 있는 최경주(나이키골프)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곽영완기자 kwyoung@seoul.co.kr
  • 쓰나미 영웅 英소녀 ‘올해의 어린이’

    태국에서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 100여명의 관광객을 구한 영국의 ‘쓰나미 걸’ 틸리 스미스(11)가 올해의 어린이로 선정됐다. 영국 텔레그래프지는 26일 “프랑스의 어린이 신문 ‘몽 쿼티디앙’이 소아애 병자에게 납치됐다가 살아난 6살의 남아프리카 고아 소녀,11살 인기 프랑스 가수 등과 함께 스미스를 올해의 어린이로 뽑았다.”고 보도했다. 스미스는 지난해 말 가족과 태국 푸껫으로 휴가를 갔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이던 26일 마이카호 해변에서 자갈을 줍다가 바다의 낌새가 이상해지자 2주 전 지리수업 시간에 지진 뒤에 발생하는 해일에 대해 배운 것을 생각해 냈다. 바닷물에서 거품이 인 뒤 갑자기 파도가 치고, 수평선의 배가 위아래로 마구 흔들리는 것을 보고는 쓰나미가 온다는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렸다.스미스의 가족은 호텔 직원에게 큰 파도가 온다고 경고했고 관광객들은 즉각 호텔을 비웠다. 수분내에 쓰나미가 닥쳤지만 이 해변에서는 아무도 죽거나 크게 다치지 않았다. 스미스는 쓰나미 1주년을 기리기 위해 올해 다시 태국으로 향했다.26일 밤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촛불을 들고 태국 시를 낭송했다.스미스는 “쓰나미가 온다는 것을 말했을 때 사람들이 내 말을 들어줘서 기뻤다.”면서 “바다에서 지글지글 소리가 나고 거품이 이는 것이 지리 시간에 배운 것과 똑같았다.”고 말했다.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카밀라는 훌륭한 어머니” 英 해리왕자, BBC 인터뷰

    “카밀라는 사악한 계모가 아니다. 형 윌리엄과 나는 그녀의 모든 면을 사랑한다.” 영국 해리 왕자가 21살 생일을 맞아 BBC와 가진 인터뷰에서 찰스 왕세자와 재혼한 카밀라 파커 볼스가 아버지를 아주 행복하게 해주는 훌륭한 여성이라고 치켜세웠다. 해리 왕자는 올초 파티에서 나치 제복을 입어 물의를 빚은 것을 사과하며 “어리석은 짓이었다. 크는 과정의 일부라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15일 생일을 샌드허스트 사관학교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보낼 예정이며, 어떤 파티도 갖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형인 윌리엄 왕자에 대해 “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돌아가신 뒤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뭐든 말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또 “해외로 나가 휴가나 보내면서 말도 안 되는 변명만 늘어놓는 왕족은 되지 않겠다.”며 아프리카 레소토에서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위해 일하는 등 어머니 다이애나의 뒤를 이어 자선활동을 하겠다고 장래 포부를 밝혔다. 이날 인터뷰에서 해리 왕자가 답변을 망설였던 단 하나의 질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만장자로 헌팅 사파리 운영자의 딸인 여자친구 첼시 데이비에 관한 것. 해리는 여자친구에 대해 “특별하고 놀라운 사람”이라고만 답했으며, 더 이상의 사생활은 공개하지 않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 (5) 성적소수자의 권리(네덜란드)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 (5) 성적소수자의 권리(네덜란드)

    흔히 네덜란드를 ‘성적소수자의 천국’이라 부른다. 세계 최초로 동성간 결혼을 인정해 동성애자들도 드러내 놓고 떳떳한 삶을 살 수 있는 곳이 네덜란드다. 성전환자에 대한 의료 지원도 철저하다. 성(性)에 대한 정체성이 다르다는 것을 이유로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오랜 과정을 거쳐 법과 제도로 반영된 결과다. 네덜란드 성적소수자들의 생활을 현지 취재로 생생히 살펴본다. ■ 세계 첫번째 레즈비언 부부의 삶 |암스테르담(네덜란드) 이효용특파원|암스테르담 중심가에서 서쪽으로 20㎞ 떨어진 한적한 동네의 한 아담한 복층 아파트. 곳곳에 걸린 가족사진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집 안으로 들어서자 지극히 평범한 두 ‘아줌마’가 기자를 맞았다. 지난 2001년 ‘세계 최초의 합법적 동성부부’로 외신을 장식했던 헬레네 파센(38)과 안느-마리 튀스(36) 부부다. ●두 아이 낳고 완벽한 가족으로 “이쪽은 우리 엄마고요, 이쪽도 우리 엄마고요, 얘는 내 동생이에요.” 2층에서 쪼르르 뛰어 내려와 조잘조잘 가족을 소개하던 나탄(5)이 수줍은 듯 헬레네 뒤로 숨는다. 나탄은 이들이 인공수정을 통해 얻은 아들이다. 헬레네와 마리는 1998년 12월 친구들의 소개로 만나 한눈에 서로 ‘인생의 동반자’라고 느꼈다.1주일 만에 가족들에게 소개하고 동거에 들어갔다.2001년 4월1일, 세계 최초로 네덜란드에서 동성커플의 결혼을 허용하는 법이 시행되던 날 0시를 기해 결혼식을 올렸다. 나탄에 이어 딸 미르틀러(3)를 낳고 ‘완벽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헬레네는 사실 마리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몰랐었다. 명문 프리예대학 법대를 졸업하고 공증인으로 일하던 그는 공부와 일에 바빠 31살이 되도록 연애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마리를 처음 본 순간 ‘운명적인 사랑’을 느꼈으며, 그것은 동성이건 이성이건 상관없는 사랑 자체였다.”고 말했다.15세 무렵 성 정체성의 고민을 시작한 마리는 19세 때 동성애자임을 알았다고 한다. 다행히 둘 다 가족의 반대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아이 문제는 녹록지 않았다.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 부부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입양과 인공수정 두가지. 마리가 아이를 낳고 싶어 했기 때문에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수정으로 2000년 첫 아들 나탄을 낳았다. 생모인 마리는 출산과 동시에 부모의 자격을 얻었지만, 헬레네가 나탄의 부모로 인정받기까지는 3년이 걸렸다. 네덜란드 현행법은 출산이든 입양이든 일단 한명만 부모로 인정하고, 동성 배우자는 3년이 지나야 ‘입양’ 형식으로 부모가 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둘째 미르틀러까지 모두 입양 절차를 마쳤다. 여느 부모와 다른 상황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도 고민스러웠다. 아이가 물으면 “너는 아빠가 없고 엄마가 둘이다.”라고 말해줬다. 혹여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편부모나 미혼모와 마찬가지로 조금 다른 형태의 가족일 뿐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둘 다에게 엄마라고 부르는 남매는 구김살 없이 자라고 있다. ‘행복해 보인다.’는 기자의 말에 “가족이니 행복한 게 당연하죠.”라며 활짝 웃던 헬레네는 “네덜란드에서도 불과 30∼40년 전에는 동성 커플이 가족을 이루고 산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이성애와 동성애가 적어도 법적으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성적 정체성 인정 후 편견 극복을”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제동성애정보자료실에서 책과 뉴스 수집을 담당하는 김혜진(21)씨는 3개월에 한번씩 진료와 호르몬 치료를 위해 프리예 대학병원을 찾는다. 벨기에 입양아인 김씨는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성 정체성이 여성이며, 성적 지향 또한 여성인 트랜스젠더 레즈비언이다. 성적으로 소수자 중의 소수자인 셈이다. 어릴 때부터 인형놀이를 좋아하던 김씨는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늘 헷갈렸고, 부모는 그를 게이(남성동성애자)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여성이 되고 싶으면서도 자꾸 여성에게 끌렸다. 트랜스젠더들을 만나면서 자신이 트랜스젠더 레즈비언임을 깨달았다.“입양이 실패했다.”며 냉랭하게 등을 돌린 양부모를 떠나 2002년 암스테르담에 와서 동성애 자료실에 일자리를 구했다. 다행히 네덜란드는 성전환을 치료의 대상으로 보고 수술 및 평생 해야하는 호르몬 치료까지 모두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물론 까다로운 신체검사와 심리검사를 통과해야 한다.18세부터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김씨는 내년 10월 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동양인이며 트랜스젠더에 레즈비언이라는 3중의 핸디캡과 싸워온 김씨는 “특히 소수자에게 인권은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면서 “우선 솔직하게 자기 정체성을 인정하고, 그 다음 편견과 싸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차별금지를 위한 15년의 노력 네덜란드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한다.’는 헌법 1조에 따라 단계적으로 성적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갖춰 왔다.1980∼90년대에 유명 연예인들과 몇몇 정치인들이 커밍아웃하면서 꾸준히 이슈를 만들어 나갔다.1991년 동성애자였던 당시 내무장관이 기반이 되는 법안을 만들었고,1998년 동성간 ‘등록 파트너제’가 합법화된 데 이어 2001년 동성간 결혼과 동성부부의 입양이 허용됐다. 스작 얀슨 법무부 법률고문은 “성적 정체성이 다름을 이유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법의 기본 정신”이라면서 “올 가을 동성부부의 입양 때 한쪽이 3년 뒤에야 입양할 수 있도록 하는 제약을 수정하는 법안이 상정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네덜란드 최대의 동성애 운동 단체인 COC의 아르요스 벤드리그(30)는 “지난 4월 ‘여왕의 날’ 행사를 취재하던 미국인 동성애 운동가이자 기자인 크리스 캐인이 집단 폭행을 당하는 등 아직 차별이 남아 있다.”면서 “법적으로 보장됐다 하더라도 예전 상태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려면 지속적으로 투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utility@seoul.co.kr ■ 동성애자 정치인 디트리시|암스테르담(네덜란드) 이효용특파원|“동성애자니 이성애자니 하는 성 정체성을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결국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개성과 능력입니다.” 네덜란드 연립 여당 가운데 하나인 D66의 당대표 보리스 디트리시(50)는 잘 알려진 동성애자 정치인이다. 암스테르담 한 노천카페에서 만난 그는 “한국 상황에 대해서는 코멘트할 수 없다.”고 예의 정치인다운 첫마디를 날리면서도 “결국 동성애자들 스스로 적극적으로 권리를 찾아 나가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1955년 유트레흐트에서 태어난 그는 명문 레이든 대학에서 법학 석사를 받은 뒤 1981년 중도진보 성향의 D66에 입당했다. 그의 아버지는 유고연방에서 망명해 레이든대에서 동유럽학을 가르친 교수였다.20세를 전후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된 그는 1981년부터 25년째 한 남성과 함께 살고 있다. 부모는 처음엔 놀라고 슬퍼했지만 언젠가부터 파트너를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정치인인 그가 공개적으로 동성애자임을 밝힌 것은 1993년 처음 국회의원에 출마해 선거운동을 할 때였다. 평가가 엇갈렸지만 “본인에게 솔직하다면 국민에게도 솔직할 것”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무난히 당선됐다. 국회의원으로는 첫 커밍아웃이었다.1993년 동성결혼허용 법안을 제안했고,2003년 당 대표가 됐다.151석 가운데 6석을 차지, 제1·2당인 CDA·VVD와 연립여당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보수 성향 정치인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었다.1996년 기독연합당 대표가 한 잡지 인터뷰에서 “보리스가 사는 방식은 제대로 된 방식이 아니며 동성애는 이성애보다 열등하다.”라고 비난했다. 일부 의원들이 “정당의 대표가 공개적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다.”며 소송을 걸었지만, 항소와 상고를 거듭한 끝에 결국 ‘의사표현의 자유’라고 결론났다. 그는 “수치심과 모욕을 느꼈던 순간이지만 결코 커밍아웃한 것을 후회하거나 불편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면서 “오히려 누가 뭐라고 하든 정치인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개인의 권리나 능력이 억압받아서는 안된다.”면서 “동성애운동단체, 언론, 정치인 등이 꾸준히 동성애 문제를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utility@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단양군청 탁구감독 정현숙

    [스포츠 라운지] 단양군청 탁구감독 정현숙

    ‘기적’이란 단어가 남발되는 것이 요즘 세태라 젊은 세대에겐 가슴에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73년 구기종목 사상 첫 세계를 제패한 ‘사라예보의 기적’이 안겨준 감동은 대단했다. 전국일주 카퍼레이드에 환영행사만 두달 간 계속됐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훌쩍 흘렀다. 인구 3만 8000여명에 불과한 충북 단양에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창단 3년도 채 안된 단양군청 탁구팀의 이은희(19)가 지난 11일 미국 포트로더데일에서 열린 US여자오픈 주니어(21세 이하) 단식 패권을 거머쥔 것. 곳곳엔 플래카드가 걸렸고 워낙 얘깃거리가 없는 작은 동네라 주민들이 모이기만 하면 “은희가 미국가서 우승했다며?”라고 이야기꽃을 피웠다. ●탁구영웅, 생활체육전도사로 두 차례의 기적에 한 번은 주연, 또 한 번은 연출을 맡았던 사람이 있다. 사라예보세계선수권의 3총사 가운데 맏언니였던 정현숙(53) 단양군청 감독이 바로 그.21살 처녀는 어느새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넘겼지만 빛바랜 흑백사진 속의 단발머리 고운 모습은 오롯이 남아 있었다. 정현숙은 77버밍엄세계선수권 직후 라켓을 놓았다. 요즘 같으면 한창 뛸 나이가 아닌가.“그땐 스물다섯이면 할머니 선수였어요.”라며 말문을 연 그는 “사실 연이은 준우승으로 스트레스가 심했죠. 지나가다 공 튕기는 소리만 들려도 소름이 돋을 만큼 탁구가 싫었어요.”라고 털어놨다. 한동안 ‘자연인’ 정현숙으로 살던 그는 85년 방송리포터로 나타나 차분한 말솜씨를 뽐냈고,90년엔 ‘정현숙 탁구교실’을 열어 천직인 탁구 곁으로 돌아왔다.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때 중국인들이 손바닥만한 장소가 있어도 탁구대를 놓고 즐기는 것을 보고 ‘중국 탁구의 저력’을 실감해 문을 열었다는 탁구교실은 어느덧 16년째에 접어들었다.“300여명씩 몰렸던 초창기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잠실과 단양 두 곳에 150명 정도는 될 걸요.”라고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 곳을 통해 탁구의 맛을 본 이만 해도 1만명은 족히 된다고 한다. ●‘생체’전도사, 감독으로 정 감독은 2002년 9월 단양군청 창단감독으로 늦깎이 지도자 데뷔를 했다.30∼40대 지도자가 대세인 요즘으로선 이례적인 일. 물론 세세한 부문은 최정안 코치가 지도하지만 정 감독도 1주일에 2∼3일씩 단양에 머물며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세계챔피언의 노하우를 전수한다. 굴지의 실업팀들이 고교 에이스들을 훑어가는 현실에서 지자체 팀이 살아남기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단양군청은 지난해 7월 종별선수권 3위, 전국체전 3위에 이어 11월 MBC왕중왕전에선 준우승의 기염을 토했다. 소속선수들의 고교 성적을 생각한다면 꿈도 못 꿀 일로 2배 이상의 돈을 퍼붓는 다른 팀들도 단양군청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의 지갑 속엔 5∼6종류의 명함이 있다. 여성체육인 가운데 그 정도로 명성을 구축한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본의 아니게 ‘감투’를 쓴 탓. 하지만 정현숙은 ‘단양군청 감독’으로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늦게 들어선 지도자의 길에 애착이 크기 때문이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사회체육까지 넘나든 정 감독은 “엘리트체육과 생활체육은 바늘과 실 같아요.”라면서 “클럽이 활성화되면 성인들에겐 삶의 활력소가 될 테고, 어렸을 때부터 즐기다 보면 세계를 주름잡는 국가대표도 나오지 말란 법 없죠.”라고 활짝 웃었다. 실업팀 감독과 생활체육 전도사, 거기에 체육행정가로서 분초를 다퉈 사느라 10년째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는 그에게 ‘53’이란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했다. 단양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비극의 주인공서 전설로

    불리한 신체 조건을 딛고 우뚝 선 스포츠맨들의 얘기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잔잔히 요동치게 한다. ‘맨발의 마라토너’ 비킬라 아베베(사진 왼쪽·에티오피아)는 1960년 로마올림픽 마라톤에서 맨발로 질주, 월계관을 썼다.64년 도쿄올림픽에서 2연패를 일궈낸 그는 69년 자동차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불운을 겪었다. 하지만 불굴의 투지로 장애인올림픽의 전신인 70년 ‘스토크·맨더빌 게임스’에서 양궁 금메달을 목에 걸어 전세계를 울음 바다에 빠뜨렸다. 로마올림픽 100m와 200m,400m 등 단거리 3개 종목에서 여자 최초 3관왕에 오른 윌마 루돌프(미국)는 11살 때까지 목발에 의지해야 했던 장애인. 그는 피나는 운동 끝에 걷기에 성공한 것으로도 모자라 비장애인보다 더 잘 뛰겠다는 목표를 세워 결국 육상 단거리의 여왕이 됐다. 미국프로야구의 짐 애보트(오른쪽)는 오른손을 쓸 수 없는 조막손 투수. 그는 왼손으로 투구한 뒤 오른손에 걸치고 있던 글러브를 다시 왼손에 끼고 수비를 하는 등 남들이 불가능하리라던 동작을 연습으로 극복했다. 그는 93년 뉴욕 양키스에서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이와 함께 수류탄 폭발로 오른손을 잃었지만, 왼손으로 48년 런던과 52년 헬싱키올림픽 자동권총 2연패의 위업을 수립한 카로리 타카스, 사고로 눈과 귀를 잃었지만 88년 서울과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수영에서 2관왕에 오른 타마스 다르니(이상 헝가리) 등이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22일 TV 하이라이트]

    ●어여쁜 당신(KBS1 오후 8시25분) 인영이 재혼하기 전에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말을 희주로부터 전해 들은 기준 엄마는 눈앞이 캄캄하다. 기준 엄마는 급기야 인영을 찾아가 기준이 혼자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남자가 있다고 연극이라도 해 달라고 사정한다. 인영은 속상하고 미칠 것 같은 심정으로 기준 엄마를 바라본다.  ●오픈 스튜디오(SBS 오후 4시10분) 노래를 부르고, 듣고, 가사를 외우려고 노력하다 보면 치매 예방과 우울증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노래방 모니터에 의존하는 기존 습관을 고치기 위한 가사외우기 비법은 물론 노래 듣기를 통해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는 심리적 효과 등 노래를 통한 음악치료의 이모저모를 알아본다.  ●기획특집 ‘독도,100년의 진실’(YTN 오전 9시30분) 한국전쟁과 IMF 등 우리가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이면 어김없이 독도 분쟁을 조장하는 일본의 음모를 조명한다. 홍순칠 독도의용수비대장의 미공개 육성과 러일전쟁 당시 울릉도 앞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보물선 돈스코이호의 모습이 생생히 방송된다.  ●시민의 힘(EBS 오후 11시40분) 서남아시아 쓰나미 발생 후 6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NGO들은 지속적으로 이곳에 지원을 해오고 있다. 기초적인 긴급물자를 보내 풍토병과 피부병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치료해 줬는가 하면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해 주택건설에도 나섰다. 우리 NGO의 다양한 활동상을 살펴본다.  ●사과나무(MBC 오후 7시20분) 82년에 데뷔하여 20년 넘게 최고로 군림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 남경주. 항상 주연만 했을 것 같은 그에게도 무명시절이 있었다는데…. 그가 한때 뮤지컬을 포기까지 했던 사연과 펑펑 울었던 사연을 공개한다. 또 11살 연하의 방송아카데미 강사 정희욱씨와의 러브스토리도 엿듣는다.  ●부활(KBS2 오후 9시55분) 20년 전 사고의 기억을 되찾게 되고, 격심한 분노로 복수를 결심한 하은은 마침내 신혁의 모습을 하고 인철의 집을 찾아간다. 자신을 신혁으로 알고 반기는 어머니 이화를 보며 참을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은하와 재수는 수철을 찾아가 하은의 억울한 죽음에 분통을 터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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