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1사단
    2026-07-18
    검색기록 지우기
  • 인종
    2026-07-18
    검색기록 지우기
  • 밥집
    2026-07-18
    검색기록 지우기
  • 두레
    2026-07-18
    검색기록 지우기
  • 제나
    2026-07-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27
  • [영상]예견된 참사였나?... 헬기 사고 부대 전역병 “잦은 결함으로 매일 정비”

    [영상]예견된 참사였나?... 헬기 사고 부대 전역병 “잦은 결함으로 매일 정비”

    “예견된 사고였나?.”지난 17일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사고로 해병 5명이 숨지는 불상사가 발생한 가운데 해당 헬기의 기체 결함 문제가 심각했던 것을 추정할만한 증언이 나왔다. 사고 헬기 소속 해병대 1사단 항공대에서 근무하다가 최근 전역한 병사가 헬기 결함 문제로 운행을 거의 못했고 거의 매일 정비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한 달 전 만기 전역한 이 병사(예비역 병장·21)는 “2호기(사고헬기)는 결함 때문에 못 나가고 1호기가 대신 나가곤 했다”며 “2호기는 거의 뜬 적이 없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20일 전했다. 그는 “해병대 헬기 사고가 났다는 보도를 봤을 때 2호기라고 바로 생각했다”며 “덜덜 떨리는 문제(진동)가 있었는데 간부들끼리 ‘언젠간 사고 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고 떠올렸다. 이 병사는 해병대 1사단 항공대에서 헬기 이착륙 시간을 상급부대에 보고하는 업무를 한 것으로 연합뉴스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2호기는 가끔 운행할 때도 있었지만 거의 뜨지 못했고, 정비사가 거의 매일 정비에 매달렸다”고 전했다. 이 병사는 항공대에 근무하면서 이번 마린온 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박모(20) 상병(병장 추서)과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항공대는 작은 부대이기 때문에 생활관이 4개밖에 없었다”며 “(병사들이) 가족처럼 지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병대 ‘마린온’ 헬기 시험비행 중 10m 상공서 곤두박질 참사

    해병대 ‘마린온’ 헬기 시험비행 중 10m 상공서 곤두박질 참사

    한국형 ‘수리온’ 개조 첫 상륙기동헬기 올 1월 인수식… 6개월 만에 추락 사고 15분간 진화 작업 중 소방대원 1명 부상 기체 결함 배제 못해… 軍 “사고위 구성”해병대 상륙기동헬기(마린온)가 추락해 승무원 5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17일 해병대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45분쯤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 비행장 활주로에서 시험비행 중이던 상륙기동헬기(MUH1) 1대가 지상 약 10m 상공에서 추락해 승무원 6명 가운데 5명이 숨지고 1명이 부상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망자는 정조종사 김모(45) 중령, 부조종사 노모(36) 소령, 정비사 김모(26) 중사, 승무원 김모(21) 하사, 승무원 박모(20) 상병 등 5명이다. 정비사 김모(42) 상사는 부상을 입고 인근 울산대병원으로 이송됐으며 외상이 심하지만 의식은 잃지 않은 상태다. 활주로에 추락한 사고 헬기는 전소했으며 군은 오후 5시쯤 자체적으로 진화를 완료했다. 진화 과정에서 소방대원 1명도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헬기는 해병대가 지난 1월 인수한 마린온 2호기로 인수식 6개월 만에 참사가 났다. 따라서 사고 원인이 기체 결함이었을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군 관계자는 “정비 뒤 시험 비행을 하던 중 10m 상공에서 지상으로 추락했다”고 사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륙에서 추락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고 현장에는 해병대 1사단장과 해군 6항공전단장, 헌병대 등 관계자가 나와 상황을 수습했다. 해병대사령부 측은 “사고위원회를 구성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사고가 난 군부대 헬기장은 민간 항공기와 같이 사용하는 포항공항 안에 있고 부대 측은 외부인 접근을 철저히 막고 있다. 사고 지점은 포항공항 청사에서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야 해 바로 보이지도 않는다. 공항공사 관계자는 “청사 2층에서도 사고가 난 지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면서 “우리도 연기가 난 것만 봤을 뿐”이라고 전했다. 마린온은 해병대가 도입한 첫 상륙기동헬기의 명칭으로 해병대를 뜻하는 ‘마린’(MARINE)과 ‘수리온’(SURION)을 합성한 이름이다. 수리온은 한국형 기동헬기를 지칭하며 마린온은 수리온를 개조해 만든 헬기다.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2013년 상륙기동헬기 개발에 착수해 2015년 1월 처음 비행했다. 이후 함정·해상 환경의 비행 성능 검증을 거쳐 2016년 1월 개발을 완료했다. 마린온은 수리온과 달리 함상 운용을 위해 헬기의 회전익 부분에 접이 장치가 추가됐다. 최대 순항속도는 시속 265㎞로 2시간 이상 비행할 수 있다. 최대 탑승 인원은 9명이다. 마린온 1, 2호기는 훈련 비행과 최종 임무 수행능력 평가 등을 거쳐 해병대 1사단 항공대에 실전 배치될 예정이었다. 해병대는 마린온 헬기 2대를 시작으로 2023년까지 모두 28대를 도입할 계획이다. 그간 한·미 연합작전을 통해 미군 상륙기동헬기에 의존했던 해병대는 마린온 인수로 45년 만에 항공전력을 보유하게 됐다는 평가를 받았었지만 이번 사고로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서울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포항 해병대 헬기 ‘마린온’ 추락…5명 사망·1명 중태

    포항 해병대 헬기 ‘마린온’ 추락…5명 사망·1명 중태

    경북 포항에서 군 헬기 1대가 추락해 승무원 6명 가운데 5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군 당국에 따르면 17일 오후 4시 45분쯤 경북 포항 남구 포항비행장 활주로에서 상륙기동헬기(MUH-1) 1대가 추락했다. 사고 헬기는 해병대가 지난 1월 인수한 ‘마린온(MARINEON)’ 2호기로 파악됐다. 사고 헬기는 정비 후 시험비행을 하던 중 약 10m 상공에서 추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친 1명은 울산대학교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지만 현재까지 의식을 되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병원에 따르면 부상자는 김모(43) 상사로 이날 오후 5시 57분 헬기로 이송돼왔으나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도착 당시 김 상사는 안면부와 양쪽 무릎 등에 찰과상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진은 김 상사에게 산소호흡기를 부착하고 엑스레이를 찍는 등 진료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향후 경과를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활주로에 추락한 것으로 알려진 사고 헬기는 전소됐다. 군은 오후 5시쯤 자체적으로 진화를 완료했다. 하지만 진화 과정에서 소방대원 1명도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사고현장에는 해병대 1사단장과 해군 6항공전단장, 헌병대 등 관계자가 나와 상황을 수습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병대사령부 측은 “사고위원회를 구성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린온은 해병대가 도입한 첫 상륙기동헬기의 명칭으로, 해병대를 뜻하는 ‘마린(MARINE)’과 ‘수리온(SURION)’을 합성한 이름이다. 수리온은 한국형 기동헬기를 지칭하며 마린온은 수리온를 개조해 만든 헬기이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포항서 해병대 헬기 추락…5명 사망, 1명 부상

    해병대 상륙기동헬기(마린온)가 추락해 승무원 5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을 입었다. 17일 해병대에 따르면 오후 4시 46분쯤 경북 포항시 남구 냉천로 포항 비행장 활주로에서 정비 후 시험 비행 중이던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1대가 지상 약 10m 상공에서 추락해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탑승한 승무원 6명 중 5명은 목숨을 잃었고, 1명은 부상으로 인근 병원로 후송됐다. 군은 오후 5시쯤 자체적으로 진화를 완료했다. 하지만 진화 과정에서 소방대원 1명도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사고 현장에는 해병대 1사단장과 해군 6항공전단장, 헌병대 등 관계자가 나와 상황을 수습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병대 측은 “사고위원회를 구성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고 헬기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수리온’을 상륙기동헬기로 개조한 ‘마린온’ 항공기다. 마린온은 올해 1월 2대가 해병대에 전력화 됐다. 포항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서울포토]유해발굴 작업이 한창인 강원 양구 백석고지 현장

    [서울포토]유해발굴 작업이 한창인 강원 양구 백석고지 현장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비무장지대(DMZ) 유해발굴 작업을 남·북이 함께 하자고 제안한 가운데, 며칠 안에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사망한 미군 유해 200여구가 송환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DMZ 지역에는 수습되지 못한 국군 전사만 1만 여명이 넘는 걸로 추정되고 있다.  68년 전 총부리를 겨눴던 남과 북이 함께 DMZ에서 6·25 전사자의 유해수습에 나서게 된다면 이 또한 역사적 화해의 한 장면이 될 것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과 21사단 장병들이 강원 양구군 백석산 고지에서 유해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최해국 선임기자seaworld@seoul.co.kr
  • 김정은 싱가포르행 신속 보도… 리커창 전용기 임차까지 공개

    김정은 싱가포르행 신속 보도… 리커창 전용기 임차까지 공개

    노동신문 등 북미회담 상세히 보도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방문에 이용한 중국국제항공(에어 차이나) 소속 보잉 747기는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의 전용기라고 홍콩 빈과일보가 11일 보도했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북한이 요청해 중국 민간항공사가 북한 대표단의 싱가포르행을 위해 유관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현재 중국 지도부의 전용기는 중국국제항공이 보유한 보잉 747-400 기종 4대다. 일련번호는 각각 B2443, B2445, B2447, B2472다. 이 중 B2472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전용기다. 이번에 김 위원장이 이용한 B2447은 리 총리의 전용기라고 빈과일보는 전했다. B2447은 평소 여객기로 이용되다 리 총리 등 중국 지도부가 외국을 방문할 때 즉시 전용기로 개조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는 지도부 전용 공간과 사무실, 응접실, 침실 등으로 꾸며져 있다. 다만 미국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되는 미 공군 1호기 ‘에어포스 원’과는 달리 무기 방어 체계는 갖추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지도부 전용기의 승무원은 모두 중국 공군 31사단에서 복무하는 현역 군인이다. 비행 경험이 풍부한 군인 중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의 전날 비행에 이들이 탑승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 매체들은 이날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 방문 소식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보도했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비롯해 조선중앙TV, 조선중앙통신 등은 북·미 정상회담 소식을 크게 보도하면서 평양 시민이 지하철역 신문 게시판에 몰려들고 주요 기차역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 도착 장면을 지켜봤다고 AP통신은 평양발로 보도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싱가포르 미디어센터에서 노동신문이 1면 기사에서 북·미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조선반도(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문제,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문제를 비롯해 공동의 관심사로 되는 문제에 대해 폭넓고 심도 있는 의견이 교환될 것”이라고 보도한 것에 대해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노동신문이 공개한 김 위원장의 사진에는 중국 국적기임을 뜻하는 ‘AIR CHINA’라는 검은 글씨와 중국 국기인 붉은 오성홍기가 그려진 전용기 동체가 선명히 보였다. 이를 두고 체면이나 자존심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의 성향과 함께 북·미 정상회담에 나선 북한의 뒷배에 북·중 우호 관계가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후임병 상습 성추행한 해병대 선임 집행유예 2년

    후임병 상습 성추행한 해병대 선임 집행유예 2년

    군대에서 후임병들을 강제 추행한 20대 남성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대구지법 포항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형식)는 후임병을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A(21)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을 명령했다고 8일 밝혔다. 해병대 1사단에서 근무하던 A씨는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생활관에서 후임병 3명을 상대로 강제로 끌어안거나 신체 일부분을 만지는 등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재판부는 “A씨는 선임병 지위를 이용해 후임병에게 상습적으로 강제추행을 저질렀다”며 “피해자들과 합의하지 못했지만 범행을 인정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점을 고려했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그때의 사회면] 휴전선 도발과 철책

    [그때의 사회면] 휴전선 도발과 철책

    1960년대 초반까지 휴전선에는 철책이 없었다. 남방·북방한계선을 경계로 남북군이 경계를 서고 있었을 뿐이다. 철책이 없었기에 북한군이나 공비가 남방한계선을 넘어 우리 지역으로 침투해 도발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휴전선을 넘어 북한군이 귀순하거나 반대로 월북하는 일도 자주 발생했다.군대에 다녀온 장년층이 군복무 중 들었던 “북한군이 내려와 우리 병사들을 죽이고 귀를 베어 갔다”는 증언도 틀린 게 아니다. 신문에 전부는 아니겠지만 북한군의 도발 사실이 보도됐다. 1976년 8월 18일 발생한 북한군의 판문점 도끼 만행은 철책선 설치 이후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철책선이 없을 때는 휴전선은 전장과 큰 차이가 없었다. 북한의 도발은 소위 4대 군사노선을 채택한 후인 1960년대 들어 본격화됐다. 1962년 7월 14일 북한의 정찰부장이 직접 북한군을 지휘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내려와 장병 4명을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해 11월 20일 밤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유엔군 감시 초소에 북한군이 수류탄을 던쳐 미군 병사 1명이 사망했다. 유엔군 초소를 공격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듬해 7월 29일에도 미군 2명이 북한군의 기습을 받고 사망했다(동아일보 1963년 7월 31일자). 우리 쪽에서 응사는 당연했고 비무장지대 주변에서 교전이 수시로 벌어져 전쟁을 방불케 하는 살벌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휴전선에 목책을 설치하기 시작한 때는 1964년이다. 당시 6군단장 한신 중장이 남방한계선 일반전초(GOP)에 목책을 설치했다. 휴전선 철책의 효시다. 그러나 전 전선에 설치되지는 못해 침투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북한군의 도발은 더 격화됐다. 1966년 11월 2일 서부전선에서 한ㆍ미 장병 6명이 북한군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존슨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고 떠난 직후였다. 1967년 4월 12일에는 중동부전선에 북한군 소대 병력이 침입한, 휴전 이후 최대의 침입 사건이 일어났다. 같은 해 육군 21사단에 북한군이 침투해 모 연대 부연대장 홍두표 중령의 목을 베어 갔다고 전해지고 있다. 북한군 소행이 확실하지만 목을 베어 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도발이 심해지자 휴전선 155마일 전 전선에 철책 설치 계획이 세워졌다. 1967년 1야전군사령관 서종철 대장이 주도했다. 미군 지원으로 난공사 끝에 2중·3중 철책이 설치됐다. 그러나 초기의 철책은 몹시 허술해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철책을 자르고 침투했다. 붙잡힌 김신조씨가 현장검증에서 발로 철책을 찼더니 뻥 뚫렸다. 철망을 자르고 표시나지 않게 붙여 놓은 줄 군이 몰랐던 것이다. 사진은 1970년 1월 휴전선 철책 근무를 보도한 기사(경향신문 1970년 1월 7일자). 손성진 논설주간 sonsj@seoul.co.kr
  • 실종 해병 장교 발견…19일 만에 숨진 채로 파도에 떠밀려 와

    실종 해병 장교 발견…19일 만에 숨진 채로 파도에 떠밀려 와

    실종됐던 해병대 장교가 19일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됐다.9일 해병대 1사단에 따르면 8일 오전 포항시 남구 동해면 입암리 해안에서 해병대군수단 소속 A(40) 소령의 시신이 파도에 떠밀려 온 것을 발견했다. 군은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부검을 하기로 했다. A 소령은 지난달 21일 오후 동해면 입암리 바닷가에서 실종됐다. 당시 A 소령이 타고 갔던 승용차는 인근 주차장에서 4m 아래에 떨어져 뒤집혀 있었고, 차 안에는 A 소령의 것으로 보이는 혈흔이 나왔다. A 소령 가족은 사고 하루 전인 지난달 20일 실종신고를 했다. 군과 경찰은 인근 바닷가와 육지를 집중 수색했으나 정작 실종자 본인은 찾지 못 하고 있었다. 해병대 관계자는 “사망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해병대 장교 포항서 실종 19일 만에 숨진 채 발견

    해병대 장교 포항서 실종 19일 만에 숨진 채 발견

    경북 포항에서 실종된 해병대 장교가 19일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됐다. 9일 해병대 1사단에 따르면 8일 오전 포항시 남구 동해면 입암리 해안에서 해병대군수단 소속 A(40) 소령의 시신이 파도에 떠밀려 온 것을 발견했다. 군은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부검하기로 했다. A 소령은 지난달 21일 오후 동해면 입암리 바닷가에서 실종됐다. 당시 A 소령이 타고 가던 승용차는 인근 주차장에서 4m 아래에 떨어져 뒤집혀 있었고 차 안에는 A 소령의 것으로 보이는 혈흔이 나왔다. A 소령 가족은 사고 하루 전인 지난달 20일 실종신고를 했으며 군과 경찰은 인근 바닷가와 육지를 집중 수색했으나 찾지 못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단독] 지역 랜드마크 사업은 ‘空約’…생활밀착형 정책 제시해야

    [단독] 지역 랜드마크 사업은 ‘空約’…생활밀착형 정책 제시해야

    서울신문과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1일 민선 6기 전국 시·군·구청장의 공약 이행 상황을 점검한 결과 시·군·구청장도 광역단체장과 마찬가지로 시설 건립, 단지 조성 등 눈에 보이는 랜드마크 사업의 공약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대체로 폐기했다. 특히 민생과 관련이 깊은 기초자치단체가 실적 쌓기용 공약에만 집착한 결과 공약이 삶의 질 개선에 연결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6·13 지방선거에서 기초자치단체의 장으로 출마한다면 생활밀착형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아이러니하게도 대규모 개발 행정이 집중적으로 제시된 지역은 면적에 비해 인구수가 적거나 군 기지 이전, 매립 등으로 개발 허가권이 많은 곳이었다. 이광재 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이런 지역은 청렴성 제고에 중심을 두고 지역 일꾼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유권자 운동으로 제안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약 이행률 전국 2위를 기록한 서울시 25개 구는 2265개의 공약이 완료 및 이행됐고 폐기된 공약은 11개였다. 노원구의 중계동 문화복합센터 건립, 송파구의 지하철 3호선 연장 추진(오금역~올림픽공원역), 관악구의 도림천 통수단면 확장사업 추진 등의 공약이 폐기됐다. 성동구의 왕십리오거리 문화예술패션타운 건립은 700억원이 필요했지만 재정 확보 내역이 없었다. 부산시 16개 구의 공약 이행률은 3위로 전국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 그러나 해운대구의 반송천 일원 워터피아 조성 공약은 폐기됐다. 역시 해운대구의 해운대~송정해수욕장 연안정비사업 시행 공약은 230억원의 재정이 필요했지만 재정 확보 내역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국에서 공약 이행률이 가장 높은 대구시에서는 동구의 안심 율하지역 초등학교 신설 사업이 폐기됐다. 북구의 제일모직 이전 터에 친기업적 문화와 창조적 도시환경을 조성하는 공약은 900억원의 재정이 필요했지만 이 역시 재정 확보 내역은 없었다. 공약 이행률 하위권인 인천시 10개 구에서 폐기된 공약은 옹진군의 영흥 화력 7·8호기 조기 착공 지원 사업과, 덕적 서포리 국제거점형 마리나항만 조성 사업 등 3개였다. 광주시 5개 구에서는 동구의 세계수영선수권 선수촌 유치 공약이 폐기됐다. 또 광산구의 첨단3지구개발(광주연구개발특구) 1조 217억원, 북구의 31사단 이전과 미래형 마을조성사업 8000억원 등은 재정 확보 내역이 없었다. 대전시 5개 구에서는 동구의 국제화센터 운영 개선 공약이 폐기됐다. 동구의 대전 의료원 유치는 1315억원, 서구의 도안동 분동 및 주민센터 건립은 98억 2500만원이 필요했지만 어떻게 재정 확보를 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울산시 5개 구에서는 폐기된 공약이 없었다. 다만 중구의 장현지구 산업단지 조성 16억원, 동구복합문화관 건립 83억 9900만원 등의 재정 확보 내역은 없었다. 경기도 31개 시·군에서는 폐기된 공약 대부분이 대규모 시설 유치 사업이었다. 가평군의 청평생활체육공원 조성과 안양시의 국철 1호선 가칭 ‘안양초교역’ 신설, 파주시의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유치 등이었다. 강원도 18개 시·군에서는 32개 공약이 폐기돼 전국에서 폐기된 공약 수가 가장 많았다. 태백시의 1조 8000억원 규모 LNG 발전소 유치 공약과 속초시의 영랑호 시민 문화생태공원 조성 등이 대표적이다. 공약 이행률 최하위인 충북도 11개 시·군에서는 충주시의 경제자유구역(에코폴리스) 개발 등 공약 3개가 폐기됐고 청주시의 예술의전당 광장 주차장 잔디공원화 등 7개 공약이 보류됐다. 충남도 15개 시·군에서는 홍천군의 광천 대단위 화훼단지 조성과 바다송어 양식 특화지구 육성 등 공약 5개가 폐기됐다. 예산군의 수도권 전철 연장(장항선 복선전철화) 6785억원은 재정 확보 내역이 없었다. 전북도 14개 시·군에서는 임실군의 식생활교육문화연구센터 유치 등 9개의 공약이 폐기됐고 김제시의 새만금 배후 복합물류단지 기반 구축 공약은 보류됐다. 전남도 22개 시·군에서는 여수시의 여수공항 저비용항공 유치 공약 등 공약 21개가 폐기됐다. 함평군의 국도 24호선(함평) 시설개량사업 453억원 등 15개 공약의 재정 확보 내역은 없었다. 경북도 23개 시·군에서는 군위군의 국술원 연수원 유치, 청도군의 군립화장장 건립 등 8개 공약이 폐기됐다. 재정 확보 내역이 없는 공약은 칠곡군의 1067억 100만원 규모의 칠곡농기계 자동화특화 산업단지 조성 등 덩어리가 큰 사업이었다. 경남도 18개 시·군에서는 사천시의 만 65세 이상 어르신 공영버스 무료 이용과 김해시의 남부권 신공항 유치 사업 등 5개 공약이 폐기됐다. 거제시 등의 6조 7907억원 규모 남부내륙고속철도 조기 착공 및 역사 유치 사업 등 도로 건설 등의 공약은 무더기로 재정 확보 내역이 없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6·25 유해발굴 재개… 500위 목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이 6일 재개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이날 전남 광양에서 육군 31사단의 개토식을 시작으로 올해 6·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개토식은 ‘땅의 문을 연다’는 뜻으로 유해발굴 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다. 올해 발굴 사업은 6·25전쟁 주요 격전지였던 전국 82개 지역에서 진행된다. 참가 병력은 사단과 여단급 33개 부대 10만여명에 이른다. 한 해 동안 전사자 유해 500위(位)를 발굴해 신원확인 작업을 거쳐 10위 이상의 유해를 유가족 품으로 돌려준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신원확인을 위한 유가족 유전자 시료 채취 목표는 3000여명이다. 국방부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6·25전쟁 50주년을 맞아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국군 9800여위를 비롯해 1만1000위 이상의 6·25 전사자 유해를 발굴했다. 이 중에는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도 포함돼 있다. 중국군으로 판정된 유해는 2014년 이후 지난해까지 모두 중국 측에 송환됐다. 지금까지 국군 전사자 유해 9800여위를 발굴했지만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128위에 불과하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김영철, 군사도로 우회해 서울 들어와···홍준표 “개구멍으로 빠져나가”

    김영철, 군사도로 우회해 서울 들어와···홍준표 “개구멍으로 빠져나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평창동계올림픽 폐막행사 참석을 위한 북측 고위급대표단이 25일 2박 3일 일정으로 방남, 서울에 도착했다. 김영철 부위원장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수행원 6명 등 8명으로 구성된 고위급대표단은 이날 오전 9시49분쯤 경의선 육로를 통해 군사분계선(MDL)을 넘은 뒤 9시53분쯤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했다.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이들을 CIQ에서 맞았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CIQ에서 ‘천안함에 대해 어떤 생각이냐’, ‘방남 소감 한마디 말씀해 달라’는 등의 취재진 잇단 질문에 다소 굳은 얼굴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지나갔다.북측 고위급대표단은 간단한 입경 절차를 마친 뒤 10시15분 차량편으로 이동을 시작했다.김영철 부위원장과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은 각각 별도의 승용차에 탑승했고 나머지 6명은 승합차를 탔다. 이들은 자유한국당 의원 등이 김영철 부위원장의 방남 저지를 위해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통일대교를 피해 통일대교 동쪽에 있는 전진교를 통과해 남측으로 향했다. 정부는 야당 의원들과 당원들이 농성을 벌이는 통일대교를 피해 북측 고위급대표단을 전진교로 우회시킨 것으로 알려졌다.전진교는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내에 군사용으로 만든 교량으로, 일반 차량은 간신히 교행할 수 있고 자주포는 일방통행해야 하는 폭이 좁은 다리이다. 육군 1사단 관할로, 부대 명칭이 전진 부대여서 전진교로 불리고 있으며 통일대교처럼 군사 시설물이다.오전 11시쯤 통일대교 남단 도로에 대형 태극기를 펼쳐놓고 점거시위를 벌이던 자유한국당 의원과 당원들은 북측 대표단이 전진교를 통해 서울로 향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분통을 터트렸다.한국당 의원들은 “살인마 전범 김영철이 결국 대한민국을 범했다”, “우리가 완벽 봉쇄하니 문재인 정부는 국민이 준 권력으로 김영철을 대한민국으로 들였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장제원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결국 살인마 전범 김영철이 대한민국을 범했다. 정부가 김영철에게 샛문을 열어준 것은 권력남용, 국정농단,반역행위”라고 주장했다.홍준표 대표는 “통일대교를 지킨 덕분에 김영철이 개구멍으로 빠졌다. 그 정도로 대한민국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김성태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권이 김영철을 빼돌려서 워커힐 호텔에서 초호화로 모시겠다고 하지만 5천만 애국 국민은 김영철을 반드시 체포할 것”이라며 “자유한국당은 내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또다시 대규모 규탄집회를 열겠다”고 강조했다.한국당의 한 당원은 “정부가 김영철 방남에 대해 국민을 제대로 설득해야지, 쥐구멍으로 빼돌리는 꼴이 우습다”면서 “김영철을 군사도로로 우회시켜 들인 것은 북측에 우리 안방을 내준 꼴”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방남 저지를 위해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4일 오후부터 이틀간 파주시 통일대교 남단 도로를 점거한 채 농성을 벌였지만,큰 마찰 없이 끝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5·18특조위 조사 결과] “전남도청 진입 전 5월 21일에도 비무장 시민에 헬기 사격”

    [5·18특조위 조사 결과] “전남도청 진입 전 5월 21일에도 비무장 시민에 헬기 사격”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가 7일 지난해 9월부터 5개월 동안의 조사 활동 결과를 발표했다. 특조위는 5·18민주화운동 기간에 ▲육군이 헬기를 이용해 비무장 광주시민을 향해 사격을 가했고 ▲공군 전투기와 공격기가 이례적으로 폭탄을 장착한 채 대기했으며 ▲해병대 1개 대대도 광주에 출동하려 했었다는 사실 등을 새로 밝혀냈다고 강조했다.이건리 특조위 위원장은 “당시의 진압 작전이 육군과 해군(해병대), 공군 3군의 ‘합동작전’이었다는 사실을 사상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헬기 사격 등이 실제 자행됐다는 세간의 의혹을 규명한 조사 결과라는 점에서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일부 의혹에 대해서는 결정적인 ‘스모킹건’을 제시하지 못해 과도한 추정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헬기 사격의 최초 발포 명령자 규명 등도 숙제로 남았다. 전투기가 폭탄을 장착한 채 대기한 이유 등도 명확히 밝히지 못했다. 특조위는 그 원인 중 하나로 많은 자료가 은폐, 왜곡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국방부에 발족된 특조위는 5개월간에 걸쳐 62만쪽에 이르는 자료를 수집 분석하고 당시 광주에 출동했던 190개 대대급 이상 군부대 및 관련기관, 당시 군 관계자들과 목격자 등 총 120명을 조사했다.특조위는 우선 당시 계엄사령부의 지시 문서와 명령, 목격자 증언, 광주 전일빌딩에서 발견된 UH1H 장착 M60 기관총 피탄 흔적 등을 통해 헬기 사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광주에 출동한 40여대의 헬기 중 일부 500MD 공격헬기와 UH1H 기동헬기에서 1980년 5월 21일과 27일 각각 비무장 시민과 시민군을 향해 여러 차례 사격을 가했다는 것이다. 특히 특조위는 계엄사가 5월 21일 전남도청 앞에서 집단 발포와 함께 더 강경한 진압작전을 계획하면서 다음날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에 헬기 사격이 포함된 구체적인 ‘헬기작전계획 실시지침’을 하달한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 지침에는 위협 및 실사격에 사용할 기총 종류 등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특조위는 또 황영시 당시 계엄사 부사령관, 김재명 육본 작전참모부장 등이 전교사 간부들에게 무장헬기 투입 및 위협사격 명령 등을 하달한 내용도 공개했다. 하지만 이들이 최초 헬기 사격 발포 명령자인지는 규명하지 못했다.특조위는 특히 5월 22일 103항공대장 등 조종사 4명이 AH1J 코브라 헬기 2대에 벌컨포 500발씩을 싣고 광주에 출동했다고 진술한 점, 20사단 충정작전상보 첨부자료에 ‘103항공대가 5월 23일 전교사에서 벌컨포 1500발을 수령했다’고 적혀 있는 점 등으로 미뤄 코브라 헬기에서 벌컨포를 사격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특히 5월 21일 헬기 사격은 비무장 상태의 시민을 향했다는 점에서 ‘자위권적 조치’였다는 계엄군의 주장을 뒤집는 증거”라면서 “비인도적이고 적극적인 살상 행위로 재평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특조위 조사에 응한 헬기 조종사들은 사격 행위를 모두 부인했다. 해병대 1사단 3연대 33대대 병력이 광주 출동을 위해 마산에 대기하고 있다가 진압작전 변경으로 출동해제됐다는 사실도 새로 확인된 내용이다. ?전투기들이 광주 폭격을 준비했다는 의혹은 여전히 의혹으로 남았다. 특조위는 5·18민주화운동 기간 경기 수원과 경남 사천에서 각각 F5 전투기와 A37 공격기가 MK82 공대지 폭탄을 장착한 채로 대기했던 사실까지는 확인했으나 어떤 목적에서 대기했는지는 정확히 규명하지 못했다. 특조위 측은 “폭탄이 장착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면서도 “하지만 광주를 폭격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확한 근거자료는 발견하지 못했고, 미국 등 외국자료까지 포함한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서주석 국방부 차관이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을 주도했던 ‘511 연구위원회’(이하 511위원회)의 실무위원으로 활동한 것이 확인돼 파문이 일고 있다. 511위원회는 1988년 제13대 국회의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위원회 청문회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부, 합참, 보안사, 육군 KIDA 등이 참여해 만든 조직이다. 서 차관은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말단 연구원으로 발표문 초안, 예상질의응답 수정 등 주로 시키는 일을 했다”며 “만약 당시 주도적으로 일했다면 지금 5·18 운동 진상조사 규명에 전심전력으로 노력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5·18특조위 조사결과 “군, 시민에 헬기 사격…사과해야”

    5·18특조위 조사결과 “군, 시민에 헬기 사격…사과해야”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위원장 이건리 변호사·이하 5·18특조위)는 7일 5·18민주화운동 당시 “육군은 공격헬기 500MD와 기동헬기 UH-1H를 이용해 광주시민을 향해 사격을 가했고, 공군도 수원 제10전투비행단과 사천 제3훈련비행단에서 이례적으로 전투기와 공격기에 폭탄을 장착한 채 대기시켰다”고 밝혔다.지난해 9월 발족한 5·18특조위는 이날 5·18민주화운동 기간 헬기 사격과 전투기 무장 출격대기 의혹에 대한 이런 내용의 조사결과를 담은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특조위는 5개월간 62만 쪽에 이르는 자료를 수집·분석했고 광주에 출동했던 190개 대대급 이상 군부대 및 관련기관을 방문조사하는 한편 당시 군관계자들과 목격자 등 총 120명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5월 21일부터 계엄사령부는 문서 또는 구두로 수차례에 걸쳐 헬기 사격을 지시했으며, 인적이 드문 조선대 뒤편 절개지에 AH-1J 코브라 헬기의 벌컨포 위협사격을 했다는 증언이 있다”고 전했다. 이어 “계엄군 측은 지금까지 5월 21일 19시30분 자위권 발동이 이뤄지기 이전에는 광주에 무장헬기가 투입되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으나, 실제로는 5월 19일부터 31사단에 무장헬기 3대가 대기하고 있었던 사실이 기록을 통해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5·18특조위는 계엄사령부가 5월 22일 오전 8시30분 전투병과교육사령부(전교사)에 ‘무장폭도들에 대하여는 핵심점을 사격 소탕하라’, ‘시위 사격은 20미리 발칸, 실사격은 7.62미리가 적합’이라는 등의 ‘헬기작전계획 실시지침’을 하달했다면서 관련 내용을 공개했다. 특히 당시 계엄사령부 황영시 부사령관은 5월 23일께 전교사 김기석 부사령관에게 ‘UH-1H 10대, 500MD 5대, AH-1J 2대 등을 투입해 신속히 진압작전을 수행하라’, ‘코브라로 APC를, 500MD로 차량을 공격하라’는 취지의 명령도 하달했다고 전했다. 5·18특조위는 “5월 22일 103항공대장 등 조종사 4명은 AH-1J 코브라 헬기 2대에 벌컨포 500발씩을 싣고 광주에 출동했다고 진술하고 있고, 20사단 충정작전상보 첨부자료에 의하면 103항공대는 5월 23일 전교사에서 벌컨포 1500발을 수령했다”면서 “따라서 코브라 헬기에서 벌컨포를 사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5월 21일 헬기 사격은 무차별적이고 비인도적인 것으로 계엄군 진압작전의 야만성과 잔학성, 범죄성을 드러내는 증거”라며 “특히 시민들과 물리적 충돌 과정에서 실시되었던 지상군의 사격과 달리 헬기 사격은 계획적·공세적 성격을 띠는 것이다.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시민을 상대로 한 비인도적이고 적극적인 살상행위로 재평가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당시 헬기 조종사 5명은 헬기에 무장한 상태로 광주 상공을 비행했으나, 헬기 사격은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고 5·18특조위는 덧붙였다. 이와 함께 5·18특조위는 전투기와 공격기에 폭탄을 장착한 사실은 확인했으나 광주를 폭격하기 위한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자료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5·18특조위는 “수원에 있는 공군 제10전투비행단에서 F-5에 MK-82 폭탄이 장착되었던 사실 및 사천에 있는 제3훈련비행단에서 A-37에 MK-82 폭탄이 이례적으로 장착되었던 사실은 인정된다”면서도 “현재로서 그것이 광주를 폭격하기 위한 것이라는 명확한 근거자료는 발견하지 못했고, 이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5·18 당시에 존재했던 ‘광주 폭격설’ 또는 ‘광주 폭격소문’은 그 진원이 당시 광주에 있는 공군 제1전투비행단에 주둔했던 미 공군 관계자들이었던 것은 확인했으나 그와 같은 말을 한 인물의 구체적인 신원 및 과연 어떠한 점을 근거로 광주 폭격 계획이 있다고 판단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5·18특조위는 “해군(해병대)도 광주에 출동할 목적으로 5월 18일부터 마산에서 1개 대대가 대기했다가 출동명령이 해제되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면서 “5·18민주화운동 진압은 육군과 공군, 육군과 해군(해병대)이 공동의 작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군사활동을 수행하거나 수행하려 한 3군 합동작전이었음을 사상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5·18 특조위는 “이제 국가와 군이 국민에게 진솔하게 사과하고 과거로부터의 절연을 선언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광주시민을 상대로 하는 헬기 사격은 용납될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행위로서 정부는 시민을 상대로 자행된 헬기 사격에 대해 깊이 사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 대사관도, 모범장병도…‘평창 하나된 응원’

    美 대사관도, 모범장병도…‘평창 하나된 응원’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5일 앞둔 4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 벽면에 미국 대표팀을 비롯한 선수단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육군은 4일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고 장병을 격려하기 위해 모범장병 200명에게 경기 관람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선정된 장병은 올림픽 경기를 관람한 뒤 4박 5일 휴가도 갈 예정이다. 사진은 평창동계올림픽 경기 관람권을 받은 31사단 모범장병들이 티켓을 받고 기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세종로의 아침] 독도함에서의 사흘/박홍환 정치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독도함에서의 사흘/박홍환 정치부 선임기자

    사흘, 정확히 말해 45시간의 특별한 경험은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아침 일찍 KTX에 몸을 싣고 경남 진해 해군기지로 향할 때만 해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전날 밤 격전을 치른 탓에 창원중앙역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사흘간의 독도함 승선 취재는 그렇게 시작은 미미했다. 하지만 시나브로 감동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지난 25일 정오. 승선하자마자 부두에 단단히 묶여 있던 홋줄이 풀려 올라가고, 현문(舷門)이 치워지면서 배수량 1만 4500t의 아시아 최대 상륙함 독도함이 육중한 선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인선에 이끌려 조심스럽게 협수로를 벗어난 독도함은 이내 닻을 던져 내리고 본격 훈련에 돌입했다. 선미의 밸러스트 탱크를 열어 평형수를 채워 넣자 선체 하부 격납고 후미가 서서히 2m쯤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고속상륙정(LCM) 한 척이 미끄러지듯 안으로 들어왔다. 독도함은 고속상륙정 2척, 전차 6대, 상륙돌격장갑차 7대, 155㎜ 야포 3문 등을 하부 격납고에 싣고 상륙작전을 펼칠 수 있다. 잠시 후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이륙한 UH60 헬기 2대가 접근했다. 컨트롤타워인 함교의 항공통제 구역이 분주해지면서 이착륙 훈련이 익숙하게 펼쳐졌다. 길이 199m, 폭 31m의 비행갑판 위에 헬기 2대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독도함은 갑판에 5대, 내부 격납고에 7대 등 최대 12대의 상륙 헬기를 탑재할 수 있다. 독도함은 상륙작전을 펼칠 경우 최대 720명의 상륙 병력을 태우게 되는데 이번에는 3군 사관학교의 패기 넘치는 2학년 생도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육군과 공군 사관생도들로서는 다시 없는 귀중한 경험을 쌓은 셈이다. 육사 76기 구부중 생도는 “임관해서 야전에 배치됐을 때 해·공군과의 원활한 합동작전 수행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독도함은 풍랑경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밤새 동해를 시속 18노트(약 30㎞)의 속도로 북상했다. 선체가 이따금 좌우로 흔들리기는 했지만 6m의 높은 파도도 독도함을 크게 괴롭히지는 못했다. 이튿날 오전 6시 30분 선미 데크에 나가자 독도가 수평선 멀리 어렴풋이 나타났다. 일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독도는 더욱 선명하고 크게 다가왔다. 오전 8시 낮게 깔린 먹구름 아래 눈을 하얗게 뒤집어쓴 독도가 나타나자 생도들과 승조원들은 함성을 지르며 갑판으로 뛰쳐나갔다. 모두 벅찬 표정이 역력했다. 독도에 대한 무한 애정, 한국인의 공통된 DNA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5년 5개월 만의 ‘귀향’인 독도함 역시 감동에 겨운 듯 기우뚱했다. 독도의 잔상은 울릉도를 돌아 부산 해군기지로 남하하는 내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아마도 상당히 오랫동안 강렬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독도함 승선 경험 또한 마찬가지다. 사흘간 함께한 어린 사관생도들도 훗날 각 군의 지휘관이 됐을 때 그날의 감동을 병사들에게 전하면서 우리가 왜 독도를 지켜내야 하는지, 독도 수호의 힘은 어떻게 갖춰야 하는지 절절하게 설파할지도 모르겠다. 독도함 승선 취재 기회를 제공해 준 해군 당국과 독도함 승조원들에게 지면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stinger@seoul.co.kr
  • “전사한 친구여, 인천학생들의 6·25 참전 역사 찾기를 도와다오!”

    “전사한 친구여, 인천학생들의 6·25 참전 역사 찾기를 도와다오!”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 소위·24세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아래의 글은 6·25전사(戰死) 인천학생 양순혁의 인천상업중학교 동기 동창 이경종이, 전사한 고향 친구 고(故) 양순혁을 추모(追慕)하며 서해문화 1999년 1월호에 기고했던 글이다. 양순혁은 전사하였기 때문에 아래의 글로 양순혁 참전기(參戰記)를 대신한다.인천상업중학교 같은 반 친구 양순혁과 나 양순혁은 인천 중구 경동에서 태어나서, 인천송림국민학교를 졸업하고, 6·25 사변(事變) 때 6년제 공립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이 글을 쓰고 있는 나(6·25 참전 인천학생 이경종)하고는 인천상업중학교 동기동창생이었다. 1950년 6월 25일 6·25사변이 터지고, 악몽과도 같았던 인민군(人民軍) 치하에서 지옥보다도 더한 고통을 견디고 9·15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민군 치하에서 벗어났다. 6·25 사변(The Korean Civil War) 사변은 국가와 비국가 사이에 발생한 문제를 전쟁으로 해결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것으로는 미국 남북전쟁(The Civil War)과 한국 6·25 사변(The Korean Civil War)이 있다. 6·25 사변은 대한민국과 북한 공산괴뢰 집단 간의 무력 충돌이기 때문에 사변이라고 할 수 있으나, 시일이 지나면서 UN군의 개입과 중공군의 참전으로 너무 많은 국가가 참전하여 일반적으로 이제는 한국전쟁(韓國戰爭)이라 한다. 중공군의 참전과 인천학도의용대의 남하 1950년 11월이 되자 우리 국군과 UN군은 압록강까지 북진했으나, 만주 지역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하여 1950년 12월에는 우리 국군과 UN군은 후퇴하였다. 인천 지역의 학생들은 인천학도의용대를 결성하고 국가 위난의 혼란한 시국에 호국(護國)활동을 하였는데, 1950년 12월 중공군의 참전으로 단체로 남하(南下)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1950년 12월 18일 인천학도의용대(仁川學徒義勇隊)가 인천 병사구 사령부(현재의 병무청)에서 파견을 나온 국민방위군(國民防衛軍) 소위를 따라서 경상남도 통영충렬국민학교에 있었던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를 최종 목적지로 남하할 때, 나와 양순혁도 같이 걸어서 남하하였다. 18일간 걸어서 내려가 도착한 마산 양순혁과 나는 함께 출발하여 첫날은 안양역에서 자고 그다음 날은 수원역에서 하룻밤을 자고, 대전에 도착했을 때는 1950년 12월 24일이었다. 양순혁과 나는 계속 걸어서 같이 내려 갔는데 대구를 지나서 경산, 청도, 밀양, 삼랑진을 지나서 마산에 도착한 것은 인천을 떠난 지 18일만인 1951년 1월 4일이었다. 양순혁과 나는 추운 겨울 함께 걸어서 내려갔는데, 행진하면서 굶거나 얼어 죽은 국민방위군 시체를 많이 봤다. 국민방위군 사건 추운 겨울 땅이 얼어서 매장도 못 하고 논바닥에 버려진 많은 국빈방위군 시체는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국민방위군은 전시에 신속한 병력 동원을 위해 1950년 12월 제정한 국민방위군법에 의한 예비군이었으나 1951년 1·4 후퇴 때 소집된 50만명의 국민방위군 중에서 약 10만명이 굶거나 얼어서 죽은 사건이 발생하여 관련된 장성 5명이 총살당했고, 국민방위군은 1951년 5월에 해체되었다. 1951년 1월 4일 마산에서 해병 6기 지원 양순혁과 나는 국민방위군 사건을 보고 경상남도 통영의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통영충렬초등학교)로 가지 않고 마산에서 해병 6기 모집 광고를 보고 둘이 같이 지원했는데 양순혁은 합격하였지만 나는 탈락하였다. 같은 중학교 같은 반으로 인천에서 마산까지 18일간 함께 의지하면서 같이 걸어서 내려온 양순혁과 나는 1951년 1월 4일 해병 6기에 합격한 양순혁이 입대하는 바람에 헤어지고, 나는 부산으로 배를 타고 가서 1951년 1월 10일 육군 제2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서 자원입대하였다.47년만에야 알게 된 양순혁의 전사 1996년 7월 15일날부터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역사 발굴을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의 도움으로 시작했는데 1997년 9월 10일 동네 친구 민병태를 만나서 양순혁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 동네 친구 민병태가 나에게 “내가 해병 장교로 1958년 10월에 해병 제1사단 근무대대 영현(英顯·죽은 사람의 영혼을 높여 이르는 말) 소대장을 하고 있을 때 경기도 장단·양곡·용주골 등 많은 전투지역의 여기저기 흩어져 가매장(假埋葬)되어 있었던 6·25 사변 당시 해병 전사자 무덤을 찾아 그 유골을 개인별로 홍제동 화장장에 모셔 화장한 후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일을 지휘·감독한 일이 있었다. 그때 시신을 화장하고 이장하는 과정에서 명단을 보니 양순혁이 그 명단에 있었으며 양순혁은 우리와 같은 6년제 공립인천상업중학교 동기 동창생으로 해병대에 입대했다 전사하여 그때 국립묘지로 이장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48년만에 비석으로 만난 전사한 고향 친구들 동네 친구 민병태로부터 이러한 내용을 들은 나는 1998년 1월 2일 아침에 동작동 국립묘지를 큰아들 이규원(치과 원장)과 함께 찾아갔다. 양순혁이 잠들어 있는 국립묘지 번호는 서(西)16-1091이었고, 바로 옆 서(西)16-1093에는 박명호의 묘(墓)가 있었다. 근처 서(西)16-1386에 있는 최춘국(해병6기)과 근처 서(西)16-0911에 있는 이중수(해병6기)의 무덤도 찾아보았다. 무덤이 없이 위패 봉안소에 봉안되어 있는 해병대 제6기 김윤수(육군 위패06-7-18)와 해병대 제6기 임익순(육군 위패49-5-47)의 위패(位牌)도 찾아보았다.전사한 친구여! 참전역사 찾기를 도와다오! 나는 그들 무덤 앞에 앉아서 “48년 전 인천에서 같이 중학교에 다니다가, 부산까지 20일간 걸어가서 함께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여 너희들은 전쟁터에서 죽고, 나는 참전하고 살아 돌아와 여기서 만나게 되었구나! 채 피지도 못하고 전쟁터에서 죽어간 너희들 기록을 남기려고 48년만에 이렇게 찾아왔다”라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또한 잠들어 있는 친구들에게 나는 “넋이 있다면 부디 편안한 잠들기 바라며, 나와 큰아들 이규원(치과 원장)이 하고 있는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 역사 찾기 사업을 도와다오!”라고 말했는데, 눈물이 앞을 가렸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 호에 8회 계속 참전기 7회를 마치며 한때 인천에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국가의 징병 모집에 대하여 한참이나 어려서 입대할 필요가 없었던 어린 중학생이었습니다. 저의 아버지 또한 중학교 3학년 16살이어서 인민군(人民軍)에나 끌려갈 나이지, 국군에 입대할 필요는 없는 어린 나이였습니다.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양순혁은 저의 아버지와는 동기 동창으로 같은 반이었습니다. 마산까지 저의 아버지와 같이 내려가서 16살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를 위하여 자원입대하면서 서로 헤어졌습니다. 48년만에 동작동 국립묘지에 누워있는 고향 친구 양순혁을 만나고서 아버지께서 비석을 어루만지시면서 구슬프게 우시는 모습을 저는 지켜봤습니다. 이제 고향 인천에서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지만, 이 참전기에 그 이름 양순혁을 6·25참전 전사(戰死) 인천학생으로 기록합니다. 이규원 치과 원장(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 해병대, 상륙헬기 배치… 45년 만에 다시 날다

    해병대, 상륙헬기 배치… 45년 만에 다시 날다

    도서 방어·신속대응전 등 투입 해병대가 45년 만에 자체 항공 전력을 운용한다. 바다는 물론 창공을 통한 상륙작전이 가능해진 것으로 강제로 날개가 꺾였던 해병대가 다시 ‘날개’를 단 셈이다.해병대사령부는 10일 오후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항공대에서 상륙기동헬기(MUH1) 1·2호기 인수식을 갖고 본격적인 운용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상륙기동헬기는 유사시 해병대 상륙작전에 투입되는 헬기로 전략도서 방어, 신속대응작전, 비군사 인도주의 작전 등의 임무도 수행할 수 있다. 이번에 도입한 상륙기동헬기는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KUH1)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육상뿐 아니라 해상에서 작전할 수 있도록 수리온에 주로터(헬기 회전익) 접이 장치를 추가하고 기체에 해수 방염 처리를 했다. 비행 중 이물질 제거를 위한 윈드실드(전방유리) 세척액 분사장치, 장거리 통신용 무전기, 전술공중항법장비, 보조연료탱크 등도 설치했다. 최대 속도 시속 265㎞로 2시간 이상 비행할 수 있다. 7.62㎜ 기관총 2정을 장착하고 있으며 최대 탑승 인원은 9명이다. 해병대 상륙기동헬기의 명칭은 장병들을 대상으로 공모를 거쳐 마린온(MARINEON)으로 정해졌다. 해병대를 뜻하는 마린과 수리온을 합성한 이름이다. 해병대는 1958년 3월 헬기 등 총 8대의 항공기를 기반으로 제1상륙사단 항공관측대를 창설했고 1971년 5월에는 사령부 직할 항공대로 전력을 증강했다. 하지만 1973년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면서 해병대 항공부대는 해군으로 통합됐다. 해병대는 그동안 상륙작전에 특화된 상륙기동헬기 도입 필요성을 계속 제기했으며 2008년 항공부대 재창설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2021년까지 추가로 20여대의 상륙기동헬기를 전력화해 해병대 항공단을 창설할 계획이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 평창올림픽 도우려고 전역 미룬 고참들

    평창올림픽 도우려고 전역 미룬 고참들

    육군 장병 4명이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지원 임무가 마무리될 때까지 전역을 연기했다.7일 육군에 따르면 평창동계올림픽 경계지원 임무에 투입된 11사단 박혁재·박희민(22) 하사와 36사단 가동헌·고정진(21) 병장이 전역 연기를 신청하고 현지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두 사람은 2015년 병사로 입대한 후 지난해 전문 하사로 임관해 분대장과 부분대장을 맡아 후임병을 이끌고 있다. 박희민 하사는 지난해 11월 10일 전역할 예정이었지만 부대가 올림픽 지원을 위해 출동하자 일찌감치 전역을 미뤘다. 오는 26일 전역할 예정이었던 박혁재 하사도 임무를 마친 후 전역하기로 했다. 박혁재 하사는 “전 세계 축제의 장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전우들과 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평생에 가장 기억에 남을 일이 될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는 생각으로 책임감을 느끼고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말했다. 36사단의 가동헌·고정진 병장은 2016년 6월 입대해 오는 3월 20일 전역할 예정이었지만 망설임 없이 올림픽 및 패럴림픽 지원 임무가 마무리될 때까지 현장에 잔류키로 했다. 36사단은 지난해 9월 올림픽 지원 임무를 부여받고 평창으로 출동했다. 전우들과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에 이바지하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라고 육군은 전했다. 고 병장은 “나와 같은 장병의 작은 정성과 노력이 모여 안전하고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박홍환 선임기자 stinger@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