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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의 窓] 결국은 공생이다/오동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생명의 窓] 결국은 공생이다/오동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인간은 이기적이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남을 해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세상에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사람을 죽이는 인종차별주의자도 있고, 종교가 다르다고 원수처럼 서로 전쟁을 하고 있다. 인간은 그냥 재미로 살아 있는 생명체도 함부로 죽인다. 인간도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것은 당연한 듯하다. 그러나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결코 고립된 상태로 주위 생명체를 무시하고 살 수 없게 되어 있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은 박테리아로부터 진화되었다. 즉, 하나의 세포로 시작하여 총 60조나 되는 세포가 모인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되었다. 이렇게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된 이유는 단세포 생명체보다 더 효율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세포 생명체로 모인 것도 부족해서 군집생활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인간은 단세포시절부터 이미 공생(共生)을 시작하였다. 세포 속 기관을 살펴보면 공생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진핵세포 안에 미토콘드리아라는 기관이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안의 핵과 다른 유전정보를 갖고 있다.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는 똑같은 유전정보가 DNA에 남겨져 있다. 세포가 모두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세포 안에 있는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만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것은 진화하는 과정 중 다른 세균과 공생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우리 몸의 내부를 살펴봐도 공생의 증거가 많이 있다. 대장에 500여종의 세균이 있다. 대장은 세균의 별천지요, 전시장이다. 숫자로 따져 보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10배가 넘는다고 한다. 대장에 들어 있는 대장균을 무게로 환산하면 약 1.5㎏이 된다. 대장균은 우리가 직접 만들지 못하는 비타민을 공급해 주는 고마운 일을 하고 있다. 입 속에도 수많은 세균이 들어 있다. 피부 역시 수많은 세균이 산다. 우리 몸에 이렇게 많은 세균들이 사는 건 이로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유해한 세균이 침입하는 것을 막아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병원에서 세균 감염을 치료하기 위해 항생제를 너무 많이 쓰면 대장에 심한 염증이 생기기도 한다. 상주하던 유익한 대장균이 너무나 센 항생제로 인해 다 죽어버려 그 자리를 나쁜 균이 차지하면서 심각한 대장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인간 외의 생명체도 공생하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을 것 같은 세균들도 공생할 수 있다. 대장균과 세포성 점균의 공생관계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자연 상태에서 세포성 점균은 토양 중에 박테리아를 먹고 산다. 보통은 먹고 먹히는 관계에 있는 이 둘을 함께 폐쇄 공간에서 배양하면, 먹이가 되는 대장균을 다 잡아먹어 결국은 세포성 점균은 먹이가 없어서 같이 멸종한다. 인공적으로 이 2개 균의 균형을 맞춰 주면 포식자는 먹이를 적당히만 먹어 지속적으로 먹이를 살아남게 하는 공생관계를 형성한다. 먹이를 다 먹어 버려서 둘 다 죽는 것보다 적당히 먹이 세균을 남겨두어 상생(相生)의 관계를 만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간의 공생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미는 진드기를 돌봐주고, 진드기 분비물을 영양분으로 섭취하고 살아간다. 악어새는 악어의 이빨을 청소해 주는 대신 먹이를 얻어먹고 있다. 살벌할 것 같은 동물의 세계도 이렇게 공생의 관계가 많다. 지금 우리사회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견해가 다르다고 상대를 증오하는 일이 많다. 진보 세력은 보수 세력이 전부 없어지면 세상에 낙원이 올 것이라 상상하고, 보수는 진보가 사라져야 세상이 평화로울 거라 생각한다. 어떤 종교는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자신의 인종만이 지구상에 살아남아야 된다는 망상을 갖고 있다. 이렇게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공생할 줄 아는 세균보다도 생각이 짧다. 이들은 자신의 몸을 한번 들여다봐야 한다. 또, 동물들의 지혜로운 공생관계를 봐야 한다.
  • [사건 Inside](1) 밀폐공간에세 발견된 3구의 시신, 메모장에는…

    [사건 Inside](1) 밀폐공간에세 발견된 3구의 시신, 메모장에는…

     아파트 단지 지하실에서 남자 3명이 죽은 채 발견됐다. 2명은 날카로운 흉기에 찔리고, 다른 1명은 목을 맨 상태였다. 단지 주민들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한달 전 일어난 ‘울산 아파트 지하실 살인사건’은 폐쇄된 근무환경과 동료간 불신이 만들어낸 허무한 참사였다.    ●밀폐된 공간에서 나온 3구의 시신, 이들의 관계는?  지난달 20일 오전 8시 40분. 울산 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지하 비상발전실에 이곳 설비기사 A(46)씨가 출근했다. 3인 3교대로 24시간씩 돌아가는 순환근무에서 이날은 A씨의 근무 차례였다. 그러나 A씨는 이날 일을 하러 나온 게 아니었다. 앞서 근무를 마치고 맞교대자인 A씨를 기다리고 있던 B(65)씨를 보자 그는 다짜고짜 칼을 꺼내들었다. 이어 B씨의 목과 배 등을 무참히 찔러 살해했다. 범행 후 A씨는 B씨의 시신이 있는 비상발전실 문을 걸어잠근 뒤 태연히 근무를 했다.  A씨는 다음날 아침에도 전날과 같은 방법으로 출근한 C(56)씨를 살해했다. 이틀에 걸쳐 동료 2명의 목숨을 빼앗은 A씨는 발전실 천장 배관에 목을 매 자살했다.  3명의 시신은 22일 아침조회에 C씨가 안 나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에 의해 발견됐다. 일단 겉으로만 보면 누가 누구를 살해하고 자살을 했는지가 분명했다. 직장 내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살인의 흔적들. 하지만 제3자 개입에 의한 살인의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되는 게 수사의 기본이다. 또한 그들끼리의 칼부림이었다고 해도 왜 그랬는지 원인은 캐내야 할 터.  숨진 3명이 근무한 아파트는 700여 세대가 사는 중급 규모의 단지였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 21~22일은 주말이어서 이들 외에 다른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았다. 또 아파트 관리실 직원들도 이들과는 다른 업체여서 서로 관여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다 보니 3명이 같이 일을 한 기간이 거의 4년이나 되는데도 그들 사이에 어떤 갈등이 있었는지, 다툼이 있었는지 등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 범행장소인 비상발전실은 단지 안에서도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지하실이었다. 경찰은 “지하 계단이 상당히 높은 데다 구석진 곳에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사망자 3명 외에 다른 사람은 드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탐문수사도 난항을 겪었다. 2명을 살해한 A씨는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 가족이래야 1년에 1, 2차례 만나는 정도였다. 그의 형은 동생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B씨와 C씨의 가족들 역시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결정적인 증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피살자들이 갖고 있던 수첩이었다.    ●책상에서 발견된 2개의 수첩…“나한테 감정 있나?”  숨진 3명은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A씨는 자기가 다른 2명으로부터 심하게 따돌림을 당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B씨와 C씨는 그런 상황들을 꼼꼼하게 수첩에 기록해 놓고 있었다. 정황을 정리하면 A씨와 C씨는 심각한 갈등관계에 있었다. 3명 가운데 가장 직급이 높은 C씨에 대한 불만을 A씨는 B씨에게 털어 놓았고, 마찬가지로 C씨도 나이가 가장 어린 A씨에 대한 비난을 B씨에게 얘기했다.  다음은 B씨의 수첩에 적힌 내용.  “C가 토요일 당직근무 때 내가 잠을 자는지 확인하러 온다고 하더라.”(A씨)/ “나는 기억이 안나는데.”(B씨) / “A는 자기가 부소장인 것처럼 굴어. 지난번에 소화전 점검하고서 과장한테 고자질한 것 같더라. 나한테 감정 있나봐.” (A씨)  또 다른 메모에는 A씨에 대한 C씨의 불만이 적혀 있었다. “(A는)관리소장과 상담하면서 자기한테 불리한 얘기는 안하고 남들 험담만 한다.”, “근무 교대시간이 너무 늦는다.”, “(젊은 사람이)예의가 없다.” 등 내용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DNA 분석에서도 다른 외부인의 침입은 없었던 것으로 결론났다. B씨와 C씨의 사망시점도 그들의 아침 출근시간과 거의 일치했다. 경찰은 A씨가 두 사람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최종 결론을 냈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계획된 범죄?  혼자 생활하던 A씨는 모든 것을 계획했던 듯 자기집을 깨끗이 정리한 상태였다. 사건을 담당한 울산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피의자 진술을 받을 수 없지만 A씨가 범행 전 살의를 가졌을 수 있다는 추정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세 사람의 갈등은 3구의 시신과 1개의 흉기, 2개의 수첩만을 남긴 비극으로 마무리됐다. 경찰은 A씨가 B씨와 C씨를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잠정 결론짓고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WHO&WHAT] 올 110주년 맞는 노벨상 ‘가상 수기’ 공모전

    [WHO&WHAT] 올 110주년 맞는 노벨상 ‘가상 수기’ 공모전

    “전 세계의 관심이 노르웨이와 스웨덴으로 모이는 ‘북유럽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1901년 제정돼 올해로 110주년을 맞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10월 3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됩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상을 발 아래 둔 바로 그 상입니다. 오죽하면 필즈상은 ‘수학계의 노벨상’이고, 프리츠커상은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불리겠습니까. 매년 10여명씩, 800명이 넘는 사람과 단체에 수여됐지만 아직도 단 한 개를 받지 못해 속을 태우는 나라가 대다수입니다. 왜 모두들 노벨상에 목을 매고 염원하는 걸까요. 18k 금을 순금으로 도금한 메달과 1인당 평균 5억원씩 돌아가는 상금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요. 노벨상의 영광 뒤에 숨겨진 사연을 보내 주세요. 상금이나 시상식은 없습니다. 대신 마음 속에 꾹꾹 담아 왔던 얘기들을 널리 알려드립니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2011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노벨상 수기 공모전’을 열기로 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이어온 노벨상에 얽힌 수많은 사연들이 세계 곳곳에서 답지했다. 눈에 띄는 작품 중에서 1위부터 3위까지와 특별상을 선정했다. 수기 한편, 한편을 읽으면서 노벨상 수상자들에게는 살아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인류사에 이름을 남기는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이 위대한 상이 모두에게 즐거운 기억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다. [금메달] 이브 퀴리(1904~2007) “부모·남편·언니 모두 노벨상… 종군 기자로 엄친딸 극복했죠” ‘엄친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존경받는 집안에서 홀로 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엄친딸 수백명이 주위에 있는 것만큼 이상한, 미운 오리새끼가 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제 아버지는 피에르 퀴리(1903년 노벨물리학상), 어머니는 마리 퀴리(1903년 물리학상, 1911년 화학상)입니다. 제 언니 이렌과 형부 프레데리크 졸리오 퀴리도 1935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저는 제게 없는 과학적 재능 대신 책을 쓰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길을 택했죠. 어머니의 전기를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2차 세계 대전 때는 종군 특파원으로 리비아, 러시아, 미얀마, 중국 등을 돌아다녔습니다. 국제기구 활동을 하던 중 미국의 외교관 헨리 리처드슨 라부이스 주니어를 만나 결혼했죠. 남편도 1965년 유니세프 대표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제 가족의 진정한 영예는 노벨상이 아닙니다. 방사선에 노출되면서도 인류를 위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어머니, 막대한 가치를 가진 기술의 특허를 일부러 출원하지 않은 아버지의 인류애가 제 핏속에 흐른다는 것에 무엇보다 행복함을 느낍니다. 6개의 노벨상을 수상한 퀴리 가문이 인류사에 공헌한 가치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연구에 바빠 노벨상 수상식에도 참여하지 않은 마리 퀴리의 모습에서 그들이 얼마나 부와 명예를 초월한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가문에서 유일하게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지만,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터를 누빈 평화주의자이면서 국제기구 활동에 앞장섰던 ‘영원한 프랑스의 연인’ 이브 퀴리에게 금메달을 수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료된다. [은메달] 장 폴 사르트르(1905~1980) “수상 거부 진정한 이유?… 질투 아닌 자유”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상이라는 노벨상의 대전제는 틀렸다. 왜냐?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내가 그 증거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쓴 책에 ‘장 폴 사르트르’라고 쓰여있는 것과 ‘노벨문학상 수상자 장 폴 사르트르’라고 쓰여있는 것은 읽는 독자 입장에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독자들을 ‘바람직하지 않은’ 압력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노벨상 선정자 발표에서 나를 나타내는 대명사로 쓰인 ‘자유’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란 ‘최소한 한 켤레 이상의 신을 가지고, 굶주리지 않는 자유’에 불과하다. 노벨상은 문학적인 영예에 거액의 상금을 줌으로써 수상자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얹어주고 있다. 난 내 모든 친구들이 공유하고 있는 원칙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수상을 거부한 것이다. 호사가들이 퍼뜨리는 이상한 소문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겠다. 나는 결단코 내 필생의 라이벌인 알베르 카뮈(1957년 노벨 문학상 수상)가 나보다 먼저 상을 받았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상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둔다. ‘작가는 스스로 제도화되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 당사자가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사르트르의 노벨상 수상 거부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110년의 노벨상 역사에서 자의로 수상을 거부한 사람은 샤르트로와 1973년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던 레 둑토 북베트남 총리뿐이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후일 금전적인 이유로 ‘상금만 받을 수도 있다.’며 입장을 바꿔 웃음거리가 됐다. 은메달에 머문 이유다. [동메달] 로절린드 프랭클린(1920~1958) “도둑맞은 DNA 연구성과… 지하에서 울었죠” 노벨상 최고의 업적을 꼽으라면 단연 1962년 생리·의학상일 겁니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 일이죠. 이후 유전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만들어졌고, 인류는 영생을 꿈꾸게 됐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정말 노력의 대가를 받은 걸까요? 2차대전 이후 영국은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두 개의 대학이 같은 연구를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X선을 이용해 DNA의 구조를 연구하는 일은 제가 있던 킹스칼리지의 몫이었고, 캐번디시연구소의 왓슨과 크릭은 제 연구에 접근할 수 없었죠. 하지만 1962년 노벨상의 공동수상자인 우리 대학의 모리스 윌킨스가 그들에게 제가 찍어낸 X선 사진들을 넘겨줬습니다. 1952년 5월, 전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X선으로 명확하게 찍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에 부족함을 느꼈던 저는 발표를 미뤘고, 사진은 몰래 두 사람한테 전해졌죠. 결국 왓슨이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성과는 그들의 것이 됐습니다. 그나마 다행일까요. 저는 세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1958년에 난소암으로 이미 연구성과 도둑 따위는 없는 세상으로 왔기 때문이죠. 만약 제가 살아있었다면 윌킨스 대신 제가 그 자리에 있었을까요. 아마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왓슨이 저에 대해 그랬다죠. “깐깐하고 욕심많은 여성”이라고요. 진짜 욕심이 많은 건 누구일까요. ‘과학의 전당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낮은 지위의 상징이 돼 버린 다크레이디’ 프랭클린을 이보다 잘 나타내는 수식어는 없다.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도 끝까지 연구를 놓지 않았던, 유전공학의 진정한 어머니에게 동메달을 수여한다. [특별상] 더글라스 프레이셔(1951~ ) “해파리 연구 헌납하고 셔틀버스 기사로 헌신” 2008년 노벨 화학상 발표가 있던 날, 저는 16년 전을 떠올렸죠. 1992년 당시 미국 우즈홀의 해양생물학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해파리에서 발견된 형광단백질(GFP)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GFP를 유전자에 넣으면 신경세포가 어떻게 발달하는지, 암세포가 어떤 경로로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해냈습니다. GFP의 유전자 서열을 분석했고, 해파리의 DNA에서 GFP 유전자를 분리해 내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연구비 지원이 중단됐고, 저는 미항공우주국(NASA·나사)으로 옮겨 연구를 계속했지만 금방 해고됐습니다. 그동안의 연구를 버리기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모든 결과물을 컬럼비아대 마틴 찰피 교수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로저 치엔 교수에게 넘겼습니다. 2008년 노벨 화학상이 찰피와 치엔, GFP를 처음 발견한 일본의 오사무 시모무라 박사에게 주어졌을 때 저는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있었습니다. 도요타 매장에서 시간당 10달러를 받고 셔틀버스를 모는 일이 제 직업입니다. 만약 우즈홀이나 나사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그들의 자리에 제가 있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인생이겠죠. 일생일대의 연구를 인류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나눈 프레이셔의 숭고한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특히 노벨상 발표 이후에도 본인의 공헌을 전혀 강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물이고, 진정한 평가는 사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번외로 특별상을 수여한다. ●참고문헌 퀴리가문(데니스 브라이언·전대호/지식의숲)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DNA(브렌다 매독스·나도선/양문)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노벨재단·이광렬/바다출판사) 위대한 여성과학자들(송성수/살림) 과학사의 빛나는 순간(마농 바우크하게·이수영/웅진주니어) ‘노벨상 위의 사르트르’(르 몽드 1964년 10월22일자)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인류 첫 셀레브러티 ‘클레오파트라’… 베일 속의 그녀의 얘기 들어보니 [WHO&WHAT] 유전학의 창시자 수도사 멘델의 고백… “저, 유전학의 아버지 아니에요” [WHO&WHAT] 인간은 이기적 동물? 이타적 동물?…러시아 식물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가 밝힌 유전자의 비밀[WHO&WHAT] 아쉽게 놓친 노벨상’가상 수기’ 공모해보니
  • [W&W]노벨상 가상 수기 공모전 수상작

    [W&W]노벨상 가상 수기 공모전 수상작

    공고 “전세계의 관심이 노르웨이와 스웨덴으로 모이는 ‘북유럽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1901년 제정돼 올해로 110주년을 맞는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10월 3일(현지시간)부터 시작됩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셀 수 없이 많은 상을 발 아래 둔 바로 그 상입니다. 오죽하면 필즈상은 ‘수학계의 노벨상’이고, 프리츠커상은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불리겠습니까. 매년 10여명씩, 800명이 넘는 사람과 단체에 주지만 아직도 단 한 개를 받지 못해 속을 태우는 나라가 대다수입니다. 왜 모두들 노벨상에 목을 매고 염원하는 걸까요. 18k 금으로 도금된 메달과 1인당 평균 5억원씩 돌아가는 상금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요. 노벨상의 영광 뒤에 숨겨진 사연을 보내 주세요. 상금이나 시상식은 없습니다. 대신 마음 속에 꾹꾹 담아 왔던 얘기들을 널리 알려드립니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2011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노벨상 수기 공모전’을 열기로 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을 이어온 노벨상에 얽힌 수많은 사연들이 세계 곳곳에서 답지했다. 그중 눈에 띄는 작품을 1위부터 5위까지 선정했다. 수기 한편, 한편을 읽으면서 노벨상 수상자들에게는 살아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인류사에 이름을 남기는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이 위대한 상이 모두에게 즐거운 기억만을 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다. 특별상 더글라스 프레이셔(1951~) 2008년 노벨 화학상 발표가 있던 날, 저는 16년 전을 떠올렸죠. 1992년 당시 미국 우즈홀의 해양생물학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던 저는 해파리에서 발견된 형광단백질(GFP)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GFP를 유전자에 넣으면 신경세포가 어떻게 발달하는지, 암세포가 어떤 경로로 움직이는지를 알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해냈습니다. GFP의 유전자 서열을 분석했고, 해파리의 DNA에서 GFP 유전자를 분리해 내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모든 과학자들의 꿈인 최고의 과학학술지 사이언스에 논문도 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연구비 지원이 중단됐고, 저는 미항공우주국(NASA·나사)으로 옮겨 연구를 계속했지만 금방 해고됐습니다. 그동안의 연구를 버리기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모든 결과물을 컬럼비아대 마틴 찰피 교수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로저 치엔 교수에게 넘겼습니다. 2008년 노벨 화학상이 찰피와 치엔, GFP를 처음 발견한 일본의 오사무 시모무라 박사에게 주어졌을 때 저는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있었습니다. 도요타 매장에서 시간당 10달러를 받고 셔틀버스를 모는 일이 제 직업입니다. 만약 우즈홀이나 나사에서 해고되지 않았다면, 그들의 자리에 제가 있지 않았을까 가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인생이겠죠. 심사평 일생일대의 연구를 인류 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나눈 프레이셔의 숭고한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특히 노벨상 발표 이후에도 본인의 공헌을 전혀 강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살아있는 인물이고, 진정한 평가는 사후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번외로 특별상을 수여한다.   동메달 로절린드 프랭클린(1920~1958) 노벨상 최고의 업적을 꼽으라면 단연 1962년 생리·의학상일 겁니다.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낸 일이죠. 이후 유전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만들어졌고, 인류는 영생을 꿈꾸게 됐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정말 노력의 대가를 받은 걸까요? 2차대전 이후 영국은 물자가 부족했기 때문에 두 개의 대학이 같은 연구를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X선을 이용해 DNA의 구조를 연구하는 일은 제가 있던 킹스칼리지의 몫이었고, 캐번디시연구소의 왓슨과 크릭은 제 연구에 접근할 수 없었죠. 하지만 우리 대학의 모리스 윌킨스, 1962년 노벨상의 공동수상자인 그 윌킨스가 두 사람과 친했죠. 윌킨스는 그들에게 제가 심혈을 기울여 찍어낸 X선 사진들을 넘겨줬습니다. 1952년 5월, 전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X선으로 명확하게 찍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에 부족함을 느꼈던 저는 발표를 미뤘고, 사진은 몰래 두 사람한테 전해졌죠. 결국 왓슨이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하면서 성과는 그들의 것이 됐습니다. 그나마 다행일까요. 저는 세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장면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1958년에 난소암으로 이미 연구성과 도둑 따위는 없는 세상으로 왔기 때문이죠. 만약 제가 살아있었다면 윌킨스 대신 제가 그 자리에 있었을까요. 아마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왓슨이 저에 대해 그랬다죠. “깐깐하고 욕심많은 여성”이라고요. 진짜 욕심이 많은 건 누구일까요. 심사평 ‘과학의 전당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낮은 지위의 상징이 돼 버린 다크레이디’ 프랭클린을 이보다 잘 나타내는 수식어는 없다. 38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도 끝까지 연구를 놓지 않았던, 유전공학의 진정한 어머니에게 동메달을 수여한다.   은메달 장 폴 사르트르(1905~1980) 누구나 받고 싶어하는 상이라는 노벨상의 대전제는 틀렸다. 왜냐?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내가 그 증거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쓴 책에 ‘장 폴 사르트르’라고 쓰여있는 것과 ‘노벨문학상 수상자 장 폴 사르트르’라고 쓰여있는 것은 읽는 독자 입장에서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내 독자들을 ‘바람직하지 않은’ 압력에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노벨상 선정자 발표에서 나를 나타내는 대명사로 쓰인 ‘자유’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들이 생각하는 자유란 ‘최소한 한 켤레 이상의 신을 가지고, 굶주리지 않는 자유’에 불과하다. 노벨상은 문학적인 영예에 거액의 상금을 줌으로써 수상자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얹어주고 있다. 난 내 모든 친구들이 공유하고 있는 원칙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단호하게 수상을 거부한 것이다. 호사가들이 퍼뜨리는 이상한 소문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겠다. 나는 결단코 내 필생의 라이벌인 알베르 카뮈(1957년 노벨 문학상 수상)가 나보다 먼저 상을 받았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서 상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둔다. 심사평 ‘작가는 스스로 제도화되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한 당사자가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는 점에서 사르트르의 노벨상 수상 거부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110년의 노벨상 역사에서 자의로 수상을 거부한 사람은 샤르트로와 1973년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던 레 둑토 북베트남총리뿐이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후일 금전적인 이유로 ‘상금만 받을 수도 있다.’라며 입장을 바꿔 웃음거리가 됐다. 은메달에 머문 이유다.   금메달 이브 퀴리(1904~2007) ‘엄친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존경받는 집안에서 홀로 다른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것은 엄친딸 수백명이 주위에 있는 것만큼 이상한, 미운 오리새끼가 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제 아버지는 피에르 퀴리(1903년 노벨물리학상), 어머니는 마리 퀴리(1903년 물리학상, 1911년 화학상)입니다. 제 언니 이렌과 형부 프레데리크 졸리오 퀴리도 1935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저는 제게 없는 과학적 재능 대신 책을 쓰고 세상을 돌아다니는 길을 택했죠. 어머니의 전기를 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고, 2차 세계 대전 때는 종군 특파원으로 리비아, 러시아, 미얀마, 중국 등을 돌아다녔습니다. 국제기구 활동을 하던 중 미국의 외교관 헨리 리처드슨 라부이스 주니어를 만나 결혼했죠. 남편도 1965년 유니세프 대표로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하지만 제 가족의 진정한 영예는 노벨상이 아닙니다. 방사선에 노출되면서도 인류를 위한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어머니, 막대한 가치를 가진 기술의 특허를 일부러 출원하지 않은 아버지의 인류애가 제 핏속에 흐른다는 것에 무엇보다 행복함을 느낍니다. 심사평 6개의 노벨상을 수상한 퀴리 가문이 인류사에 공헌한 가치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연구에 바빠 노벨상 수상식에도 참여하지 않은 마리 퀴리의 모습에서 그들이 얼마나 부와 명예를 초월한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가문에서 유일하게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지만,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터를 누빈 평화주의자이자 국제기구 활동에 앞장섰던 ‘영원한 프랑스의 연인’ 이브에게 금메달을 수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사료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퀴리가문(데니스 브라이언·전대호/지식의숲) 로절린드 프랭클린과 DNA(브렌다 매독스·나도선/양문) 당신에게 노벨상을 수여합니다(노벨재단·이광렬/바다출판사) 위대한 여성과학자들(송성수/살림) 과학사의 빛나는 순간(마농 바우크하게·이수영/웅진주니어) ‘노벨상 위의 사르트르’(르 몽드 1964년 10월22일자)
  • 라이너스의 담요 “상큼·달달하기보다는 담요처럼 편안한 음악 추구”

    라이너스의 담요 “상큼·달달하기보다는 담요처럼 편안한 음악 추구”

    데뷔 10년 만에 첫 정규앨범을 내놓은 2인조 밴드가 있다. 웬만한 거물이 아니면 미니앨범(EP)이나 디지털 음원으로 쉽게 가는 게 요즘 트렌드인 점을 감안하면 무모해 보인다. 2009년에 녹음을 다 끝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통째로 폐기했다. 밴드와 함께 원-테이크(악기별로 따로 녹음하지 않고 함께 녹음하는 전통방식)로 재녹음을 했다. 2007년 곡 작업을 시작해 5년 산고 끝에 내놓은 앨범답게 수록 11곡에 정성이 묻어난다. 정규 1집 ‘쇼 미 러브’로 찾아온 ‘라이너스의 담요’가 주인공이다. 지난 7일 케이블 음악프로그램 ‘이소라의 두번째 프로포즈’ 녹화현장에서 ‘라이너스의 담요’ 멤버 연진(30·본명 왕연진·건반 및 보컬)과 상준(31·본명 이상준·기타)을 만났다. ●낮에는 직장인·밤에는 음악인 이중생활 밴드의 출발은 2001년. PC통신 하이텔 ‘하드코어 동호회’에서 경희대 호텔경영학과 1학년생이던 연진을 비롯한 5명의 대학생들이 알음알음 모였다. “음악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놀려고, 취미활동으로 만들었다.”는 게 연진의 설명. 라이너스는 스누피로 유명한 미국 만화 ‘피너츠’에서 늘 담요를 갖고 다니는 찰리 브라운의 친구 이름이다. 연진은 “라이너스에게 담요가 없으면 불안하듯, 우리 음악을 들으면서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의미”라고 팀 이름을 설명했다. 2003년 히트곡 ‘피크닉’이 담긴 첫 번째 미니앨범 ‘시메스터’를 발표한 이후 기타를 치던 멤버가 팀을 떠났다. 빈틈을 메운 기타리스트가 동호회에서 알고 지내던 상준이다. 생계를 위해 밤낮이 다른 생활은 불가피했다. 연진은 “호텔리어로 잠시 일하거나 중학생 영어 과외를 5~6개씩” 했다. 상준은 제약회사에 취직해 실험실에서 “DNA와 RNA를 배합”했다. 그러면서도 매주 2~3차례 서울 홍익대 근처 작업실에서 만나 다음 날 새벽까지 작업에 매달렸다. 자신들만의 음악을 하려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아예 FAB3이란 회사까지 차렸다. 첫 정규앨범에 대해 연진은 “아이를 뱃속에 품듯 5년 동안 머릿속에 담은 음악을 힘겹게 내놓았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운명처럼 받아들인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두 사람의 고민은 진행형이다. 연진은 바리스타 일을 3주 전에 그만뒀다. 당장은 앨범 활동에 전념하겠다는 연진은 “내가 하고 싶다고 술술 풀리는 게 아니어서 전업가수로 갈지는 고민스럽다. 곡도 쓰지만 변방 장르이기 때문에 지금 같은 대중음악 지형에서는 남에게 곡을 주는 것도 여의치 않다.”고 털어놓았다. ●앨범작업 5년만에 완성 반면 상준은 “전업가수가 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정기적으로 월급 나오는 게 좋다. 직장생활에 피해를 안 주는 선에서만 음악을 하고 싶다.”며 웃는 상준은 “음악에 올인한다고 해도 더 잘할 자신은 없다. 외려 출근 안 하면 빈둥빈둥 놀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전업가수가 되면 상업성을 배제하기 힘들어서 정말 하고 싶은 음악을 하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을 에둘러 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음악을 상큼하고 달달한 음악쯤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연진은 “인디팬들에게조차 ‘밥’이 아닌 ‘디저트’로 받아들여질 땐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면서 “1950~60년대 올드팝과 재즈를 컨셉트로 한 앨범 전체 분위기를 느껴달라.”고 주문했다. 상준도 “홍대 주변에 깜찍한 인디밴드들이 유행인데 그들과 한 묶음으로 보지 말았으면 한다.”고 정색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영어작명까지 가능…금채음향이름연구원

    영어작명까지 가능…금채음향이름연구원

    신생아 이름을 작명해야 할 때나 새로 시작할 사업의 이름을 붙일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곳이 있다. 바로 이름 잘 짓는 작명소가 바로 그곳이다. 왜 그렇게까지 이름작명에 목숨을 거는지 제대로 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으나 모든 사람은 본능적으로 좋은 이름을 갖고 싶어하고, 붙이고 싶어한다. 여기, 경남·부산권에 당신의 어렴풋한 큰 소망과 작은 소망까지도 이루어주는 곳이 있다. 기존 사주팔자와 명리학, 주역 등 각종 학문으로 점철된 한문작명에서 더 나아가 영문작명까지 시도하는 신개념 성명학으로 창업이나 기업의 브랜드네이밍, 영어이름작명, 신생아이름작명, 개명 등 해당 이름의 내용에 맞는 적절한 작명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름 잘 짓는 작명소, 금채음향이름연구원(원장 배금채)이 그곳이다. 금채음향이름연구원은 음향이름연구학회만의 작명법으로 승부를 겨룬다. 음향을 놓고 생각하는 음향학 이름법은 타 작명업체에서는 감히 모방 할 수 없는 과학화된 작명 프로그램이 돋보인다. 음향학 이름법은 한문으로 짓는 철학관적인 성명학의 단점과 기존 작명업체의 한글 자음으로만 짓는 단점을 보완한다. 한문의 뜻과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아우르는 거시화된 작명법은 기존 성명학의 한계와 단점을 넘어선 인류 미래의 최신 버전으로 과학화된 작명학, 더 나아가 세계인의 성명학으로 거듭날 것이다. 음향이름은 소리의 과학이며 음향성명학은 뜻보다 소리로 인간 운명의 길흉화복을 예시하고 적시하는 과학이다. 소리로 이름을 짓기 때문에 어떤 나라의 말로도 작명할 수 있어 세계화된 현시기에 들어맞는 성명학의 형태를 띠고 있다. 명리학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어이름 작명까지 할 수 있는 것 역시 장점이다. 점차 현실이 되고 있는 세계화에 어울리는 작명법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음향이름학을 다루고 있는 금채음향이름연구원은 한경닷컴이 주관하는 ‘2011년 하반기 중소기업 브랜드대상’ 작명부문을 수상한 바 있어 인정받은 작명소로서의 믿음과 신뢰를 더 한다. 또한 금채음향이름연구원은 2011년 부산작명소 본점을 설립 후, 둘 달 만에 가맹점 6개 오픈한 유명한 작명소이기도 하다. 개명, 신생아 작명, 상호명 작명, 제품이름 작명, 아호, 영어이름 작명, 애완동물 명, 궁합, 택일과 같은 무형의 상품을 주로 취급하는 명품작명원으로써 고객들에게 명작(名作)을 선물한다. 금채음향이름연구원은 세상의 모든 존재에 이름을 붙이는 이름 잘 짓는 부산 작명소로써 개명, 상호명 이름을 바꾼 후, 인생이 바뀌고 사업이 잘되었다는 후기가 줄을 잇고 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면 금채음향이름연구원의 음향성명학의 영험함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금채음향이름연구원에서는 현재 홈페이지에서 무료 이름풀이 온라인상담과, 개명신청, 아기 작명신청을 받고 있다. 특히 신생아 이름 작명 시에는 35주년 특별기념행사로 기존 30만원이던 아기이름작명 비용을 파격가 10만원으로 할인해주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9월, 새 식구가 늘어나는 집의 엄마, 아빠라면 금채음향이름연구원에서 예쁜 소리를 내는 이름으로 내 아이의 앞날을 축복해보자. 본 행사는 9월 한 달 동안 진행된다. 출처: 금채음향이름연구원(www.goldname680.com) ※본 콘텐츠는 기업 제공 자료로 서울신문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억만장자’ 사우디 왕자, 여성모델 성폭행 기소

    ‘억만장자’ 사우디 왕자, 여성모델 성폭행 기소

    세계 재계순위 26위에 오른 막대한 재력가 사우디 아라비아 왕자가 스페인 여성모델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재판 결과에 귀추가 모아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최대 투자전문 기업 킹덤홀딩(Kingdom Holding Co.)의 회장인 알왈리드(56) 빈 탈랄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는 2008년 7월 스페인 발레아스 제도의 호화 요트에서 당시 20세였던 스페인 모델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미국 CNN방송이 전했다. 지난해 이 재판은 증거불충분으로 기각됐으나 피해를 주장하는 여성이 항소해 조사가 재개된 것으로 전해졌다. 스페인 법원은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에 빈 탈랄 왕자의 DNA정보와 출입국 기록 등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상태다. 고소장에서 밝힌 여성의 주장은 이랬다. 3년 전 스페인 이비자섬에 있는 한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성과 술을 마시던 가운데 의식을 잃었고, 눈을 떴을 때 호화 요트에서 자신을 빈 탈랄 왕자라고 밝힌 남성과 강제적인 성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 이 여성은 “그날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 아무래도 술에 무언가 탄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탈랄 왕자 측은 성폭행 혐의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했다. 킹덤 홀딩 측은 “빈 탈랄 왕자는 10년 넘게 이비자섬에 간 적이 없고 그의 요트 역시 2008년도에 그 쪽에 간 적이 없다.”면서 “그를 가장한 어떤 남성에 의해 벌어진 일일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61년만에…6·25戰때 전사 국군 2명 유해 수습해 가족 품으로

    6·25전쟁 때 전사한 국군 2명의 유해가 61년 만에 가족의 품에 안겼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8일 1950년 입대해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故) 정우상·조용수 하사의 유해를 수습해 신원을 확인하고 이날 고향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고인들은 1950년 추석을 불과 엿새 앞둔 9월 20일 경남 통영에서 함께 입대해 같은 소대에서 8개월간 전투에 나섰다가 이듬해 전사했다. 6·25전사에 따르면 고인들은 입대 후 북진 대열에 합류해 원산탈환 작전에 이어 국군의 선봉으로 함북 청진까지 진격했다. 그러나 1·4후퇴 뒤 중공군의 5월 공세에 맞섰던 1951년 5월 22일 대관령전투에서 무공을 세우고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 대관령전투는 설악산을 방어 중이던 수도사단이 급거 강릉지역으로 남하해 대관령 일대에서 북한군 12사단과 중공군 27군의 진출을 저지한 전투다. 두 사람에게는 1954년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됐다. 고인들의 시신은 당시 수습되지 못한 채 강원 평창의 대관령 전투현장에 남겨졌는데, 지난 5월 17일 유해발굴감식단과 36사단 장병에 의해 인식표(군번)와 함께 수습됐다. 국방부는 인식표에 적힌 군번을 단서로 유가족을 추적하고 유전자(DNA) 감식으로 비교한 결과 두 사람이 수도사단 1연대 3대대 11중대 2소대 소속이었던 것을 확인했다. 53사단장과 박신한 유해발굴감식단장은 이날 지역 행정기관장 및 보훈단체 회원들과 함께 유가족의 자택을 방문해 국방부장관 이름의 신원확인 통지서와 위로패, 유해 수습 때 관을 덮은 태극기와 유품을 전달했다. 61년 만에 형의 유해를 찾은 정 하사의 동생 우향(68·경남 양산)씨는 “꿈에도 그리던 형님을 찾았고 이번 추석에 형님을 모시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국가보훈처와 협의해 다음 달 중 국립대전현충원에 형제를 함께 안장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아름다운 바이러스’ 기부 문화] 경남엔 ‘천사 DNA’ 있다

    [‘아름다운 바이러스’ 기부 문화] 경남엔 ‘천사 DNA’ 있다

    ‘아너소사이어티’(Honor Society). 사회복지법인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억대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이다. 시쳇말로 골든멤버들이다. 그러나 우쭐대거나 가진 것을 ‘광내는’ 이들이 아니다. 개인 기부에 관한 한 늘 어려운 이웃에게 힘이 되는 이들이다. ●강소기업 많고 ‘나눔’ 지역정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중앙회는 2일 사회지도층 인사 등의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2007년 12월 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를 설립한 뒤 지금까지 모두 51명(익명 기부자 3명 포함)이 회원으로 가입했다고 밝혔다. 이들 회원이 기부했거나 기부를 약속한 금액은 모두 94억 4100만원이다. 그런데 특히 경남지역에 13명(1명은 중앙회에 기부)이나 된다. 전체 회원의 25.5%, 4명 가운데 1명이 경남사람이다. 기업가가 11명,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사 각 1명이 포함돼 있다. ●지회장 열정적 전파 한몫 중앙회는 유독 경남지역에 고액 기부자가 많은 이유를 분석해 봤다. 이민구 대리는 “장병석(전 소니코리아 회장) 경남지역 지회장을 비롯한 직원들이 지역 기업인 등을 상대로 지도층 인사들의 기부 참여가 필요하다는 점을 열성적으로 설득한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재정적으로 안정돼 있는 ‘강소기업’이 많고 이웃과의 나눔에 후한 전통적인 지역 정서도 기부의 ‘아름다운 바이러스’가 잘 전염되고 있는 배경으로 파악됐다. 경남지역 첫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한 사람은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익명의 한 기업가다. 이 회원은 언론 보도를 통해 이런 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남지회에 연락, 설명을 들은 뒤 지난해 1월 단번에 1억원을 내놓았다. 이처럼 이름을 밝히지 않고 1억원 이상을 기부한 고액기부자가 경남에만 3명이다. 익명 회원이 경남에만 있는 것도 이채롭다. 10년 전 간암으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뒤 병마를 이겨낸 창원시 ㈜중앙금속 정영건(55) 대표는 지난 4월 경남지역 11번째 회원이 됐다. 경남스틸스㈜ 대표이사인 최충경 창원시 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해 4월 두번째 회원으로, 5년 임기의 월급 전액(2억 7000만원 예정)을 매월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있는 하성식 함안군수는 여섯번째 회원이 됐다. 무료 진료에 앞장섰던 김해미치과 안진공 원장은 지난 7월 가입 제안을 받고 “작지만 누군가에겐 큰 힘이 될 것”이라며 1억원을 쾌척, 12번째 회원이 됐다. ●서울 20명 이어 전국 두번째 전국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운데는 SKC 최신원 회장이 가장 많은 12억 9000만원을 기부했다. 홍명보 청소년축구대표팀(20세 이하) 감독(12억 5000만원)도 회원이다. 회원이 되면 청동으로 핸드프린팅을 만들어 사회공동모금회 중앙회와 지회에 1개씩 보관하고 본인에게도 1개를 전달한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나눈 이들이 갖는 건 그게 전부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커버스토리] 월세 살지만 기부… 그들의 DNA는 특별하다?

    [커버스토리] 월세 살지만 기부… 그들의 DNA는 특별하다?

    “기부를 하면 제가 지은 죄를 ‘바터’(물물교환)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난 10년간 100억원 넘게 기부했지만 정작 자신은 월셋집에 사는 가수 김장훈(44)의 고백이다. 그는 각종 행사와 광고수입으로 번 돈 대부분을 기부에 썼다. 월세까지 내고 나면 그의 통장 잔고는 항상 ‘0’원이다. 그래서 그에겐 ‘기부천사’, ‘기부중독자’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국민 여동생’ 배우 문근영(24)도 대표적인 기부천사다. 지난해 사랑복지공동모금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통계를 집계한 결과 문근영은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총 8억 5000만원을 기부해 개인 기부액 1위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문근영은 이런 사실을 일절 함구했다. 기부도 남몰래 했다. 사랑복지공동모금회의 발표가 없었다면 그녀의 기부 사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뻔했다. ‘선글라스맨’ 가수 박상민(47)도 연예계의 ‘숨은 기부 큰손’으로 꼽힌다. 그는 청각장애인들의 달팽이관 이식을 돕는 단체 ‘사랑의 달팽이관’ 회장을 지냈다. 자선 공연 등을 통해 얻은 수입 40억원도 소아 암환자와 독거 노인을 위해 기부했다. 박상민의 기부는 ‘유전’이다. 농사를 지었던 박상민의 부모는 수확량의 반을 항상 양로원이나 보육원 등에 보냈다고 한다. 세 번에 걸친 아버지의 암 수술과 교통사고, 어머니의 갑상선 수술, 18억원대 부동산 사기 등 시련 속에서도 기부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은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는 게 박상민의 고백이다. 결손 가정 어린이 등에게 40억여원을 기부한 방송인 김제동(37),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해 20억원을 기부한 가수 조용필(61), 나라 안팎에서 130억원을 기부한 가수 장나라(30), 큰 재해가 휩쓸고 갈 때마다 이재민을 돕는 ‘욘사마’ 배용준(39) 등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는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착한 유전자(DNA)’가 있는 것일까. 김장훈의 주치의인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신경정신과 교수는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스트레스 관리 능력이 뛰어나고 뇌가 건강한 경우가 많다.”면서 “자족감도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일반적으로 사람은 쾌락 중추를 통해 행복감을 느끼는데 기부처럼 남을 돕는 행위를 할 때 사람은 긍정적인 쾌락을 느끼게 돼 있다.”면서 “기부를 경험한 사람은 이를 통한 쾌락의 기쁨을 알기에 계속 기부 활동을 이어 갈 수 있는 긍정적 행동 강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익명 기부도 남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자기 중독적 행동 강화의 일환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새 선장 쿡 “애플은 변하지 않는다”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애플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팀 쿡(51)이 자사의 ‘창조적 DNA’를 강조하며 “애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플의 새 CEO에 임명된 직후 모든 직원에게 보낸 첫 이메일을 통해서다. 정신적 지주이자 전임 CEO 스티브 잡스(56)가 물러나면서 직원들이 불안해하자 분위기를 다잡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쿡은 이메일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의 CEO로 봉사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잡게 돼 기쁘다.”면서 “애플에 들어온 것은 일생 최고의 선택이었고 13년 넘게 이 회사에서 스티브 (잡스)와 일한 것은 인생 최고의 영예”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놀라운 리더인 스티브가 이사회 의장으로서 지속적으로 지도하고 영감을 불어넣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쿡은 또 “여러분이 ‘애플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신했으면 한다.”면서 “나는 애플의 독창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이것이 우리의 DNA”라고 직원들을 안심시켰다. 그는 마지막으로 “최고의 날이 우리 앞으로 펼쳐져 있다. 지금껏 그랬듯 애플을 마법의 장소로 만들어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주들도 ‘잡스 없는 애플’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보여줬다. 잡스 사퇴 뒤 열린 25일(현지시간)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애플 주가는 전날보다 0.65%만 떨어진 채 거래를 마감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9) 두려움이 만든 ‘복합자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9) 두려움이 만든 ‘복합자살’

    “형제님, 안에 계신가요?” 2003년 2월 16일 오전 10시 경기 OO시 OO읍 철물점 뒤 단칸방. 인근 개척교회의 유모(당시 45세) 목사는 신도 A씨를 깨우려고 문을 열었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3평 남짓한 작은 방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온통 피칠갑이 돼 있고, 40대인 A씨는 방 한가운데 엎드린 채 숨져 있었다. 뒤통수와 목, 복부 등 상처도 한두 곳에 난 게 아니었다. 방 한 구석에는 파이프렌치와 망치가, 또 다른 쪽에는 깨진 박카스 병과 액자가 널브러져 있었다. A씨의 머리를 때린 것은 바로 그 파이프렌치와 망치였다. 머리 위쪽과 뒤통수에 여러 차례 둔기로 맞은 흔적이 있었다. 턱 아래쪽 목에는 모두 3개의 자상이 있었다. 복부에도 각각 7㎝와 4㎝의 자상이 나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타살의 현장이 분명했다. #알코올중독자 둔기 자해로 안 죽자 유리로 자살 경찰 감식반은 애를 먹었다. 이 작은 방 어디에서도 살인범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천장에 피가 튈 정도로 범행 수법이 잔혹했다면 분명히 범인 몸에도 피가 튀었을 테지만 출입구는 나간 흔적이 없었다. 현장에서 수많은 족적과 지문이 나왔지만 모두 숨진 A씨의 것이었다. 혈흔도 의문을 던졌다. 혈흔이 그려 낸 죽은 이의 최후는 결코 탈출하려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감식반은 마지막으로 DNA와 지문에 기대를 걸었다. 그 결과 또한 실망스러웠다. 어렵게 채취해 의뢰한 11개의 증거 자료 어디에서도 침입자의 흔적은 나타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몸이 크게 훼손돼 있으면 통상 사람들은 타살을 떠올린다. 피범벅 등 현장이 잔혹할수록 이런 생각은 짙어진다. 이건 수사관들도 예외가 아니다. A씨 사건은 한 달여의 수사 끝에 자살로 결론 났다. 경찰이 판단한 사건 정황은 이러했다. 이혼 후 심한 알코올중독 증세를 보이며 삶을 비관해 오던 A씨는 자살할 결심을 했다. “못 박을 게 있다.”며 철물점 주인집에서 망치와 파이프렌치를 빌렸다. 그는 이것들로 여러 차례 자기 머리를 내리쳤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날카로운 것을 찾아 부엌으로 갔다(이런 동선은 문지방과 부엌에서 나온 적하혈흔 등을 통해 추론된 것). 마땅한 것이 없자 그는 유리를 떠올렸다. 그는 깨진 박카스 병과 액자 유리를 차례로 이용해 자기 몸을 찌르고 베었다. 결국 그는 숨을 거뒀다. 부검 결과 목과 배에 나타난 상처는 A씨가 오른손에 거머쥐었던 유리 조각에 의한 것으로 결론 났다. 현장에서 타인의 DNA나 지문이 전혀 나오지 않은 점도 자살로 무게중심을 옮기게 했다. 정황 증거도 참고됐다. 그는 불과 6개월 사이 네 차례나 자살을 시도했었다. 손목을 긋고, 차에 뛰어들고, 돌로 스스로 머리를 내리쳤다. 그때마다 유 목사 등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살아나곤 했다. #70대 자살 노인, 급소 못 찾아 ‘주저흔’ 남겨 현장의 참혹함은 때론 검안의마저 혼란에 빠뜨린다. 다음은 검안의까지 타살로 규정했다가 나중에 뒤집어진 경우다. 2003년 12월 10일 오후 5시 경기 OO시 한 주택가. 방안에는 70대 노인 B씨가 벽을 향한 채 숨져 있었다. 목에 감긴 전깃줄은 벽 위쪽 못에 걸려 있었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한 B씨였다. 이마와 머리 곳곳에 각각 칼에 베이고 망치에 찍힌 듯한 상처들이 나타났다. 방 한쪽에서는 피가 엉겨붙은 망치와 칼이 발견됐다. 시신을 검안한 인근 병원 의사는 “목에 있는 끈 자국은 누군가 전기선 등으로 잡아당긴 교사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마와 얼굴에 난 칼과 망치 자국은 각각 열상과 좌상으로 중풍에 걸린 노인이 자해해 생긴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어진 부검과 경찰 조사에서 이 말이 뒤집혔다. B씨는 최종적으로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결론 났다. 부검의는 “이마와 얼굴에 출혈을 동반한 상처가 여럿 있긴 하지만 뇌 등 주요 장기를 다치게 할 만큼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면서 “목을 구성하는 방패연골이나 목뿔뼈 등이 부러지지 않았고 목 주위 물렁뼈 등에도 손상이 없는 것으로 봐서 죽음의 원인은 타인의 목 누름에 의한 질식사가 아니다.”고 밝혔다. 가족과 건강문제 등을 비관한 노인은 자기 집에서 망치와 칼, 한복끈과 전깃줄 등으로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했다는 게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수사진의 결론이었다. 이렇게 두 가지 이상의 방법으로 자살을 하는 것을 법의학적으로 복합자살이라고 부른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하자 2차, 3차 계속해서 자살을 이어가는 것이다. 전체 자살의 5%가 이런 복합자살이라는 외국 통계도 있다. 여기서 드는 깊은 의문 한 가지. ‘기왕 죽을 작정을 했다면 왜 그토록 자신에게 가혹하게 굴까.’ 하는 점이다. 법의학자들은 자살하는 사람들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흉기로 자살하려는 사람은 고통 없이 빨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겁을 낸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국과수 관계자는 “영화를 보면 타살의 흔적은 무조건 잔혹하게, 자살의 흔적은 평안하게 그려지지만 실제는 이와 반대인 경우가 상당수”라면서 “때론 자살자의 몸에서도 수십 개의 자상(베이는 것)이나 창상(찔리는 것)이 발견되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상처의 개수만으로 자살, 타살을 구분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스스로 치명적인 곳을 한 번에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처를 모두 법의학적으론 주저흔이라고 부른다. A씨와 B씨의 몸에 난 여러 개의 상처 역시 주저흔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다. 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이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고민한다. 생(生)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애플 혁신 지속 미지수… 빅2공세 직면

    애플 혁신 지속 미지수… 빅2공세 직면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를 이끌던 스티브 잡스가 24일(현지시간) 최고경영자(CEO)에서 퇴진했다. 애플의 영혼으로 불리던 잡스가 빠진 애플은 글로벌 IT업계에 어떤 방식으로든 지각 변동을 몰고 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당장 구글의 모토롤라 인수, 휼렛패커드(HP)의 PC 사업 분사 등 IT 업계의 주도권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전환되고 있고, 운영체제(OS)와 콘텐츠를 앞세운 각축전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에서 애플의 명성이 이어질지 관심거리다. 경쟁 그룹 입장에서 ‘포스트 잡스’ 시대는 애플에 공세를 가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잡스의 애플’은 세계 IT 업계의 판도를 바꾼 1차 진원지였다. 윈도와 인텔이 독점했던 ‘윈텔’ 시대를 끌어내렸고, 기존의 휴대전화 제조사인 노키아와 모토롤라 등 하드웨어 회사들을 아이폰·아이패드와 통합한 소프트웨어 생태계로 허물었다. 그러나 창의적 카리스마를 지닌 잡스의 리더십이 사라진 애플이 지속적으로 혁신적인 제품과 경이로운 실적을 보여줄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애플을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도 결국 ‘후계 리스크’이다. 실제로 잡스가 애플에서 축출된 1984년 이후 애플은 하락세를 걷다가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1997년 잡스가 복귀하면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연이어 블록버스터급 제품을 내놓으면서 애플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끌어올렸다.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아이폰, 아이패드의 디자인도 잡스의 개인적 취향이 반영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월스트리트저널은 애플의 미래가 장기적으로 어둡다고 우려할 정도이다. 당장 애플에 대적할 경쟁자들의 공세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애플 따라잡기’에 이미 시동을 걸었다. 구글은 모토롤라의 휴대전화 사업을 인수함으로써 애플식 수직통합형 모델을 구축했다. 애플은 OS(iOS)-단말기(아이폰·아이패드)-콘텐츠 장터(앱스토어)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통합한 유일한 기업이었다. 구글은 단말기 제조 능력까지 확보하면서 애플에 대적할 수 있는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했다. 더구나 삼성전자-HTC-LG전자 등 구글 연합군을 앞세워 모바일 OS 점유율을 급속도로 높여가고 있다. 지난 2분기 글로벌 스마트폰 OS 점유율에서 안드로이드는 47.7%로 1위를 차지했다. 구글은 세계 최대 검색엔진에다 유튜브, 구글 어스 및 스트리트뷰 등 고부가가치 콘텐츠도 확보하고 있어 잡스의 DNA가 사라질 경우 애플의 아성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PC 시대의 공룡인 마이크로소프트(MS)도 모바일 OS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MS는 차기 윈도폰 OS인 망고를 9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애플과 구글에 비해 아직 기반은 약하지만 윈도폰 앱을 3만개로 확대하고 윈도폰 마켓 플레이스도 문을 여는 등 전투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MS의 노키아 인수설이 꾸준히 제기되는 등 단말기 직접 제조 가능성도 열어둔 상황이다. 글로벌 업계는 향후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대표되는 모바일 분야에서 애플-구글-MS의 삼각 구도가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모토롤라는 구글을 배경으로, 노키아는 MS를 등에 업고 영향력을 키울 것으로 본다. 잡스의 부재가 삼성전자 등 하드웨어 강자들에게 일견 희소식이 될 수 있지만 구글, MS의 공세가 더욱 거칠어져 오히려 입지가 좁아질 수도 있다. 글로벌 IT 전문가 상당수가 애플에 대해 장기적으로 도전적인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예고하고 있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Mr. 애플’ 몽상·배짱·도전으로 썩어가는 사과 명품으로 바꿨다

    ‘Mr. 애플’ 몽상·배짱·도전으로 썩어가는 사과 명품으로 바꿨다

    “늘 갈구하고 겸손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 2005년 검은 예복 차림의 중년 신사가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단에 섰다. 세상 밖으로 나갈 청년들에게 그가 던진 화두는 ‘결핍’과 ‘창의력’이었다. 스티브 잡스(56).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대학 중퇴자. 심지어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당했고 암 투병 중인 이 사내는 늘 배고팠다. 빈 곳을 채우려 완벽함을 좇았다. ‘지구상 최고의 최고경영자(CEO)’로 칭송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덕분이다. ●결핍과 몽상의 결합… 혁신적 제품으로 “잡스가 위대한 건 천재여서가 아니다. 어떤 위험도 감수하는 배짱 덕이다.”(잡스 전기 작가 앨런 더치만) 잡스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몽상’과 ‘배짱’이다. 늘 꿈꿨고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쉼없이 도전했다. 스물한 살 되던 1976년 선배이자 엔지니어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립하면서 도전이 시작됐다. 잡스의 학력은 리즈대 한 학기를 마치고 중퇴한 것이 전부였지만 선불교 등 종교에 심취했고 인문학에 몰두하면서 얻은 직관과 몽상가적 기질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잡스의 상상력과 워즈니악의 기술력으로 탄생시킨 개인용 컴퓨터(PC) ‘애플 Ⅱ’는 대히트였다. 4년 만에 100만대가 팔리며 ‘애플 제국’의 탄생을 알렸고, 순식간에 정보기술(IT) 업계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직관을 앞세운 독단적인 경영 스타일이 문제가 됐다. 잡스는 자신이 영입한 또 다른 경영진과의 마찰이 깊어졌고 결국 권력 다툼 끝에 ‘사표’를 냈다. 첫 시련이었다. ●어떤 위기도 짊어지는 ‘배짱’… 애플 제국을 만들다 “애플에서 해고당한 일은 최고의 사건이었다. 성공에 대한 부담 없이 창의적 시기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 졸업연설 중) 잡스는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중압감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사업에 도전했다. 컴퓨터그래픽 업체(CG)인 픽사가 디즈니와 손잡고 만든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의 성공을 시작으로 흥행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그 사이 잡스를 잃은 ‘사과’(애플)는 걷잡을 수 없이 썩어갔다. 결국 애플은 잡스 소유의 PC업체 ‘넥스트’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경영의 신’을 다시 불러들인다. 13년 만의 복귀. 명예회복을 벼르던 잡스는 “연봉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한다. 검정색 터틀넥과 청바지를 고집한 잡스지만 ‘창의적 DNA’에서 나오는 제품은 너무나 혁신적이었다. ‘승부사’ 잡스는 개발자가 만든 제품 중 ‘소비자가 사고 싶어 하는 것’을 직관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디자인이라는 감성의 옷을 입혀 시장에 내놓았다. ‘디지털 음악의 혁명을 이뤘다.’는 음악재생기 ‘아이팟’(2001년)과 터치폰 방식으로 스마트폰 시대를 연 ‘아이폰’(2007년), PC의 몰락을 이끈 태블릿PC ‘아이패드’(2010년) 등 잡스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은 여지없이 히트했다. 부도 위기에 몰렸던 애플은 잡스 취임 뒤 10여년 만에 세계 시가총액 1위(3372억 달러·약 364조원) 기업이 됐다. ●재발 암 이식 간에 전이?… 건강 악화된 듯 하지만 잡스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2003년 췌장암이 발병한 것. 치료를 위해 사임 전까지 세 차례 병가를 내면서도 ‘아이패드 2’ 등 신제품 발표회에는 꼭 자신이 직접 나섰다. 하지만 ‘오뚝이’ 잡스에게도 병마는 의지만으로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웠던 듯하다. 그는 24일(현지시간) 결국 사임을 결정했다. 의료 전문가들은 잡스에게 건강 문제가 생겼다면 ‘아일렛 세포 신경내분비계 종양’이 재발하고, 2009년 이식한 간으로 전이됐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특히 잡스가 앓고 있는 종양은 재발할 경우 장기 이식의 거부반응을 예방하기 위한 면역억제제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치료가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난 1월 병가 이후 주주총회 등에서 꾸준히 CEO 승계안이 논의된 데다 CEO에서 물러난 뒤에도 이사회 의장직을 유지키로 한 점 등을 감안할 때 CEO직 승계에 따른 혼란을 줄이려고 적절한 승계 시점을 찾았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강국진·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1억6천만년전 포유류 조상 화석 中서 발견

    ▶원문 및 사진 보러가기 중국에서 현존하는 거의 모든 포유류의 조상 격인 고대 동물 화석이 발견돼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카네기자연사박물관의 저시 루오 박사가 이끈 연구팀은 중국 북동부 랴오닝성에서 발견한 포유류 화석의 생성 시기를 1억 6000만년 전으로 확정하고, 이 화석의 발견으로 포유류 진화 역사에 빠져 있던 3500만년간의 격차가 채워지게 됐다고 네이처지 최신호를 통해 발표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고대 동물의 화석은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진수류로 밝혀져, 중국에서 발견된 쥐라기(시대)의 어머니라는 뜻을 지닌 ‘주라마이아 시넨시스’(Juramaia sinensis)로 명명 됐다. 진수류는 태반을 통해 뱃속 새끼에게 양분을 공급하도록 진화한 포유류의 한 분류(아강)로, 이번에 밝혀진 화석은 캥거루 등의 유대류를 포함한 후수류와 오리너구리처럼 알을 낳지만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단공류와 갈라진 분기 시기를 나타내는 가장 오래된 화석이다. 작은 뾰족뒤쥐처럼 생긴 주라마이아 시넨시스 화석은 불완전한 두개골과 골격 일부, 그리고 털과 같은 부드러운 조직 자국이 매우 선명히 남아 있다. 특히 가장 완벽히 보존된 치아와 앞발 뼈를 통해 이 동물이 캥거루 같은 유대류보다는 현존 진수류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루오 박사는 “진수류의 기원을 이해하는 것이 포유류 진화의 결정적 단서를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물 조상이 두 개의 계통으로 갈라지는 진화적 분기 시기를 밝히는 것은 진화론 과학자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에 속한다. DNA 분석 기법을 사용한 ‘분자시계’를 통해 분기 시기를 계산할 수 있지만, 확인시 화석 증거가 필요하다. 주라마이아 시넨시스 화석이 발견되기 전 과학자들은 DNA 기법으로 추정한 진수류의 분기 시점은 약 1억 6000만년 전이다. 이전까지 발견된 최초 화석인 에오마이아의 연대는 약 1억 2500만년 전으로 밝혀져 3500만년이란 큰 격차가 있었지만 이번 화석의 발견으로 그 격차가 채워졌으며 DNA 기법에 의한 연대도 뒷받침해주게 됐다. 또한 이 화석은 쥐라기 시대의 척박한 환경에서 갓 태어난 새끼의 생존율을 높이려는 진수류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 동물의 앞다리는 기어오르기에 적합하게 적응돼 있는데, 땅 위에서만 살았던 쥐라기 동물이 위기를 접하면 나무 위로 도망치거나 나무를 통해 이동할 수 있었음을 나타낸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진수류가 유대류로 부터 갈라지면서 태생동물의 진화적 성공에 필수적인 태반의 등장과 태반을 통한 번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들이 성공적으로 생존 가능했던 것은 나무 위의 환경을 이용할 수 있도록 초기에 적응 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인간이 만든 ‘생명체’ 화성서 살게하겠다” 논란

    “인간이 만든 ‘생명체’ 화성서 살게하겠다” 논란

    지금까지는 영화 속에만 존재했던 인조인간의 탄생이 현실화 되고 심지어 화성에 뿌리내리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게놈 연구 선구자인 미국의 크레이그 벤터 박사가 이끄는 생물학 연구팀이 “인조생명체 개발이 인류의 화성 정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해 세계 최초로 새로운 박테리아 ‘신시아’(Synthia)를 창조해내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일으켰던 벤터 박사가 최근 라이브 사이언스에 “화성 대기 대부분을 구성하는 이산화탄소를 이용하는 인조 세포를 탄생시키는 프로젝트를 NASA와 협의해 이미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벤터 박사는 “머지않은 미래 인류가 화성에 정착하기 위해선 음식과 깨끗한 물, 연료, 플라스틱 등을 필요로 하는 문제에 당면한다.”면서 “화성의 대기 환경에 딱 맞는 새로운 생명체 형태를 개발한다면 인류의 화성 식민지화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5월 벤터박사는 세포벽이 거의 없고 단일 염색체를 가진 박테리아 ‘미코플라스마 미코이데스’(Mycoplasma mycoides)를 이용해 새로운 합성세포를 만들어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미코플라스마는 세균과 바이러스의 중간적 형질을 가진 미생물이다. 연구진은 그동안 “이 기술을 응용하면 합성 DNA를 설계하고 미생물에 주입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기존 유기물의 DNA를 개조를 통해 인류가 당면한 연료고갈 문제, 환경 문제, 난치병 극복 등에 쓰일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생명의 존엄성을 해친다는 사회 각계의 비난과 현실화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벤터 박사는 “식량과 연료생산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고민”이라면서 “인공생명체 기술의 발전은 이를 해결하고 화성문명 탄생에도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 스트레스 지속시 암 등 치명적 질병 위험 높아져…

    스트레스 지속시 암 등 치명적 질병 위험 높아져…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암 같은 치명적 질환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 듀크대학 로버트 레프코위츠 교수 연구팀은 과학 학술지 네이처 최신호를 통해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알려진 아드레날린에 장기간 고농도로 노출되면 유전자(DNA) 변형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생쥐에게 몇 주간 고농도의 아드레날린을 투여해 만성 스트레스와 같은 조건을 만들었다. 그 결과 각종 자극으로부터 유전자 변형을 예방하는 핵심 단백질인 p53의 수치가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p53 단백질은 유전자에 손상이 발생했을 때 암세포로 변하지 않도록 막거나, 회복할 수 없을 때에는 세포 스스로 자멸하게 하는 역할을 해 ‘게놈 수호자’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또한 이 같은 유전자 손상은 암 발병 위험을 높일 뿐만 아니라 머리카락의 색소 형성 능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프코위츠 교수는 “이번 연구는 만성 스트레스가 새치 같은 외모변화로부터 종양 등 치명적 질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체의 변화와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연구진은 만성 스트레스 조건에서 ‘베타 아레스틴 1’이라는 단백질이 작용해 DNA 손상이 촉진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연구팀은 이에 따라 이 같은 물질의 작용을 차단하는 신약을 개발하면 암이나 백발을 예방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진=데일리메일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신체 절단해 하나의 몸으로…英서 독특한 미라 발견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미라 4구가 사실은 절단된 시신 일부가 조합된 독특한 형태로 매장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미라는 2001년 스코틀랜드 아우터헤브리디스(Outer Hebrides)에서 발견한 것으로, 생후 3개월 된 영아, 젊은 여성, 40대로 추정되는 남녀의 유골로 추정됐다. 당초 연구팀은 유골 한 구를 조사한 결과 여성의 것으로 추정했지만, 최근 맨체스터대학 연구팀이 방사선탄소를 이용한 연대측정과 DNA검사를 실시한 끝에 유골 한 구에서 여성의 골반과 남성의 머리가 마치 원래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매장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렇게 조합된 미라들은 청동기시대 매장 방식처럼 대부분 웅크린 형태로 발견됐다. 연구를 이끈 영국 셰필드대학교의 고고학전문가 마이크 파커 퍼슨 박사는 “각각의 미라에서 날카로운 것에 몸이 절단된 흔적들을 발견했다.”면서 “한 사람의 모습 같지만 사실은 신체 일부분들이 조합돼 하나의 미라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체 부위가 조합된 미라들은 서로 혈통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페루 인근에서 발견되는 유골들과 비슷한 점을 보인다.”고 덧붙였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들 미라의 뼈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탈염(염분이 제거)된 흔적이 나타나며, 이는 미라로 만들기 전 습지에 시신을 몇 년간 묻어뒀다가 꺼내는 매장 풍습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전문가들은 이 미라가족의 독특한 매장방식은 부족사회에서의 특이한 행동양식을 나타내며, 이번 연구가 선사시대에 영국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재정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10인의 과학자 ‘지혜 기부’

    10인의 과학자 ‘지혜 기부’

    “여기 서서 여러분을 만나고 있는 것 자체가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요.” 지난 20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포스코관 대형 강의실을 가득 채운 300여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가 연단에 올랐다. 이 교수는 척수마비로 전동 휠체어에 의존하지만 해양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내놓고 있어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불린다. ‘우리 모두를 위한 과학기술’이라는 주제로 30분간 자신의 삶과 과학을 이야기했다. 이 교수는 “46억년에 걸쳐 생성된 석탄과 석유를 인류는 고작 400년에 불과한 시간 동안 고갈시키고 있다.”면서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은 과학기술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과학의 사명은 인류 생존 대안 마련”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10명의 과학자들이 이날 ‘제1회 지혜의 기부강연회’라는 이름으로 일반인들과의 만남을 가졌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의 책임을 맡고 있는 이혜숙 이화여대 수학과 교수는 “한번 만나기도 힘든 한국 최고의 과학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대중의 멘토로 만들겠다는 것이 당초 기획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초등학생부터 중년까지 대부분 여성이었지만 남성들도 눈에 띄었다. 고교생 김소리(17·여)양은 “바라보고 좇아갈 수 있는 롤모델을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 자리에 왔다.”고 말했다. 물리학회 부회장 출신인 박영아 한나라당 의원을 시작으로 혈관로봇과 캡슐형 내시경을 만든 박종오 전남대 기계시스템공학부 교수, 뇌과학 전문가인 서민아 성균관대 생명과학부 교수, ‘수학의 여왕’으로 평가되는 최영주 포항공과대 수학과 교수 등이 강연했다. 최 교수는 “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암호기술, DNA 해독, 심장 수술에 이르기까지 수학의 적용 범위는 무궁무진하다.”면서 “심지어 드림웍스나 디즈니는 미분기하, 대수기하, 수치해석 등 고도의 수학적 계산을 이용해 영화보다 더 현실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버스 앱’ 만든 유주완씨도 연단에 오후에는 ‘여성 과학 전도사’로 불리는 김형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네트워크기반 로봇을 만든 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단장, 고교 때 ‘서울버스 앱’을 제작해 화제가 된 유주완 연세대 학생 등이 연단에 섰다. 이화여대 교수직을 거절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행을 택한 정하린 박사와 ‘기계공학계의 아마조네스’로 불리는 박수경 한국과학기술원 기계공학과 교수는 특히 많은 박수를 받았다. 정 박사는 “어린 시절 추리소설 속 검시관에 매료돼 이 길을 택했지만 직접 시체를 다루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매 순간 느끼고 있다.”면서 “과학고 시절 열등생이었지만 무언가를 알아간다는 즐거움을 깨달은 뒤 인생이 변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여자가 기계공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놀라는 시선을 너무나 많이 접했고, 지금도 그렇다.”면서 “어울리지 않는 일에 도전하는 것부터 대단한 일이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라.”고 조언했다. 대기업 연구원인 정수진(33·여)씨는 “남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공학계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회의가 들 때가 많았다.”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여성 과학자들을 만나면서 내 생각이 얼마나 초라한지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아기 4명 버린 비정한 엄마

    5년 동안 무려 4명의 남자 아기를 낳자마자 바로 내다 버린 비정한 어머니가 경찰에 잡혀 충격을 주고 있다. 경남 남해경찰서는 19일 지난달 생후 나흘밖에 안 된 남자 아이를 집근처 공터에 버린 혐의(영아유기)로 불구속 입건한 정모(38)씨를 조사한 결과 정씨가 이전에도 3명의 아기를 출산한 뒤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내다 버린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지난 7월 24일 오후 2시 40분쯤 집 근처의 남해군 모 사회복지회관 화장실에서 혼자 출산한 남자아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인근 공터에 버렸다가 비닐봉지를 산 마트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에 모습이 찍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정씨를 입건하고 정씨의 구강 세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2006~2011년 남해에 버려진 남자 아기 3명과 유전자(DNA)를 대조한 결과 정씨가 이들 아이 3명 모두의 생모임이 확인됐다. 정씨는 2006년 8월과 2008년 8월, 2010년 5월에도 자신이 낳은 남자 아이를 집 근처에 있는 종교단체 현관과 교회 주차장, 어린이집앞 등에 내다 버린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 아기 3명은 모두 복지기관을 거쳐 입양됐다. 현재 초·중등학생인 2남 1녀를 키우고 있는 정씨는 경찰에서 “아이가 늘어나면 양육하기가 힘들어 태어나자 마자 버렸다.”고 말했다. 한편 정씨의 남편은 지금까지 “아내가 아이들을 내다 버린 사실뿐 아니라 임신했던 사실조차 몰랐다.”고 진술했다. 남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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