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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 체육인 홀대… 바뀌지 않는 순천시체육회

    “전임부터 악습 되풀이” 부글부글 사무처장 직책 신설 ‘옥상옥’ 지적도 전남 순천지역 체육인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순천 체육을 이끄는 시 체육회 임원들의 면면이 수준 이하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상임부회장은 70대 고령인 데다 사무처장 자리를 10여년이나 운동과 무관한 사람이 계속 차지하고 있어서다. 시는 지난 25일 최귀남(71) 상임부회장, 이옥기(56) 사무처장, 정영근(52) 사무국장 등 체육회를 이끌 신임 집행부를 임명했다. 체육인들은 전임 시장 때부터 전문 체육인들을 홀대하더니 과거 악습을 되풀이한다는 지적을 쏟아냈다. 시 체육회는 49개 가맹단체에 회원이 3만 5000여명이다. 시의원 출신인 이 사무처장은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에서 떨어진 후 허석 시장의 선거를 도왔다. 엘리트 체육을 전공하지 않은 데다 체육인 사이에서도 전혀 알려지지 않을 정도인데도 요직을 안긴 것이다. 전임 시장 시절 사무처장을 연임했던 김모(64)씨는 순천농협 지점장 출신이었다. 조충훈 당시 시장의 인척 조모씨(53)도 광양제철소 협력 업체에서 일했던 체육 문외한이었지만 사무국장을 맡았다. 시 체육회는 2016년 전남 22개 시·군 중 드물게 사무처장 자리를 신설했다. 기존 사무국장에서 한 단계 올리고 사무국장도 새로 뽑았다. ‘옥상옥’이라는 눈총을 받는 이유다. 이후 시는 상급 단체인 전남도 체육회에 사무처장 승인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도 체육회는 “전남도에 있는 자리인데 똑같은 명칭을 사용한다는 건 맞지 않다”고 밝혔다. 결국 시는 정식으로 인가받지 못한 상태인데도 사무처장 명칭을 3년째 사용하고 있다. 시 체육회가 시장 측근 자리 챙기기로 변질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셈이다. 이러는 동안 순천은 인구 규모로 도내 두 번째 도시임에도 지난 10여년간 도민 체전에서 우승을 단 한 번도 차지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김모(56·연향동)씨는 “체육회 새 임원들이 잘 헤쳐 나갈지 의문을 갖게 된다. 개성에 따라 50개 가까운 단체로 흩어진 이들을 어떻게 화합시킬지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요즘 것들의 문화 답사기] 헐렁하면 찐따, 불편해야 잘 팔려요… ‘코르셋 교복’ 딜레마

    [요즘 것들의 문화 답사기] 헐렁하면 찐따, 불편해야 잘 팔려요… ‘코르셋 교복’ 딜레마

    ‘요즘 애들은 뭘 입을까? 왜 저런 걸 먹고 볼까? 돈은 어디에 쓰지?’ 서울신문은 유아부터 10대 청소년, 20대 청년 세대까지 젊은층이 최근 즐기는 의식주, 여가, 놀이 등 문화를 소개하고 그 안에 담긴 의미·욕망 등을 해석해 보는 ‘요즘 것들의 문화 답사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첫 회 주제는 교복입니다. 중·고등학생에게 교복이란 ‘패션의 8할’입니다. 붕어빵처럼 똑같은 듯해도 자세히 보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저마다 개성을 추구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핏’(착용 때 몸에 맞는 정도)을 과도하게 강조해 너무 작아져 버린 ‘아동복 교복’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업체가 비정상적으로 몸매를 강조하는 옷을 내놔 아이들을 옭아맨다는 지적도 있지만, 오히려 아이들이 슬림한 교복을 선호한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무엇이 맞는 말일까요. 학생과 교사, 교복업체 등의 이야기를 토대로 ‘요즘 것’들이 가진 교복에 대한 진짜 생각을 살펴봤습니다.“옛날에는 계절이 바뀔 때면 교복 바지통이나 재킷, 셔츠의 품을 줄여 달라는 손님이 일주일에 4명은 왔단 말이야. 근데 요즘은 많이 줄었어. 애초부터 워낙 작게 나오니까….”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주택가의 8평 남짓한 세탁소에서 만난 70대 수선사 김인호(가명)씨는 스팀 다리미로 양복바지를 꾹꾹 누르며 푸념 섞어 말했다. 그가 말한 ‘옛날’은 불과 4~5년 전 일이다. 그는 “여학생 재킷이나 셔츠는 몸에 착 붙게 디자인돼 나오는 데다 남학생 바지는 같은 치수인데도 몇 년 새 통이 1인치는 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물론 그 작은 옷을 더 줄이려는 학생도 간간이 온다. 김씨는 “윗옷보다는 여학생은 치마 길이, 남학생은 바지통을 줄이러 온다”면서 “치마를 무릎 위 15~20㎝ 길이로 줄여 달라거나 바지 종아리부터 발목 부분을 슬림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수선사 김씨의 말속에는 2018년 한국 사회가 학생 교복을 보는 두 시선이 담겼다. ‘활동이 불편할 정도로 작게 나온다’, ‘하지만 더 줄여 입으려는 학생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여학생들이 편한 교복을 입게 해주자”고 발언한 뒤 딱 붙는 교복은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서울신문이 직접 만난 여학생들은 대부분 “요즘 교복이 너무 타이트해 불편하다”는 데 동의했다. 지난 20일 교정에서 만난 서울 강북 지역 A여고 학생들은 교복 대신 체육복 반팔·반바지 차림이 많았다. ‘라인’(몸매가 드러나는 선)을 강조한 교복이 너무 불편해서다. 이 학교에서 만난 학생 60여명이 꼽은 불편함의 ‘원흉’은 하의(치마)보다 상의(재킷·블라우스)였다. “재킷과 블라우스는 가슴팍을 너무 조이게 만들어 단추 잠그기도 힘들다”거나 “윗도리 소매가 너무 짧아 등굣길 버스 손잡이를 잡으려 하면 겨드랑이가 보일 지경”, “윗옷 색상이 흰색이라 땀을 흘리지 않아도 속이 비쳐 더운데도 속 티셔츠를 입어야 한다”는 등의 불만이 쏟아졌다. 이 학교 2학년인 한 여학생은 “고1 때는 체중이 별로 안나갔지만 앉아서 공부하다보니 살도 찌고 키도 크는데 교복은 3년 내 같은 걸 입어야 해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치마 교복에 대한 불편함도 있었다. “허벅지에 딱 붙는 H라인 치마라 불편하다”, “바지 교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겨울엔 교복 치마가 춥고 불편해 고3들이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공부하는 모습은 일상이 됐다. 다만 치마 길이에 대해서는 취향이 갈렸다. 고2인 한 여학생은 “애초 교복은 무릎을 덮을 정도로 나오는데 한 반 친구들의 3분의1은 더 짧게 줄여 입는다”고 했다. 멋을 내기 위해서다. “치마를 2개 사서 하나는 등교용(수선하지 않은 긴 치마), 다른 하나는 학원용(길이를 짧게 하고, 앞뒤 주름을 박음질해 몸에 더 붙게 수선한 치마)으로 입는다”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의 아우성을 듣는 교복업체의 생각은 복잡하다. 자신들이 파악한 현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업자들은 “매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국내 대형 교복 업체인 A사의 판매 담당 부장은 “몇 해 전부터 ‘교복 치마가 너무 짧다’는 얘기가 나와 속바지를 넣은 치마를 내놨었는데 잘 안 팔리더라”면서 “학생들이 타이트하고 짧은 교복이 ‘불편하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슬림해야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B 교복업체 관계자도 “교복 크기는 3단위로 촘촘히 나뉘어 사이즈가 13개나 된다”면서 “학생들이 본인 사이즈보다 작게 사니 불편한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학부모를 직접 만나 교복을 파는 대리점주들도 ‘작은 교복’ 논란이 다소 억울하다고 했다. 서울 강남권역에서 4대 교복업체 중 한 곳인 C사 대리점을 하는 한 점주는 “학생 10명 중 1~2명이 불편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더 작게, 더 짧게’ 요구한다”면서 “교복을 사러 온 엄마가 아이에게 ‘3년 입으며 공부해야 하니 크고 편한 치수로 사라’고 얘기해도 ‘큰 옷 입으면 ‘찐따’ 취급 받는다’며 맞서 싸우는 건 흔한 광경”이라고 귀띔했다. 슬림한 교복을 둘러싼 해석은 각자 다르지만 모두 동의하는 게 있다. 학생들에게 교복은 직장인의 정장처럼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면서도 멋낼 수 있는 ‘패션의 완성’이라는 점이다. 학생들과 업계 의견을 종합해 보면 현재 유행하는 여학생 교복 스타일은 무릎에서 15~20㎝쯤 올라온 짧은 치마에 허리를 약간 덮는 길이의 재킷을 기본으로 한다. 한때 허리가 보이는 짧은 재킷을 많이 입었지만 유행이 지났다. 이 위에 외투를 입는데 가을에는 모자가 달린 후드집업, 겨울에는 패딩을 사실상 교복처럼 입는다. 여기에 흰 양말과 흰색 운동화를 신고, 큰 백팩을 착용하면 ‘교복 룩’이 완성된다. 남학생은 몸에 적당히 맞는 슬림한 재킷을 단추를 푼 채 입으며, 바지 종아리부터 발목까지 다소 타이트한 스키니핏을 선호한다. 마스크나 쿨토시 등을 하는 학생도 있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맵시를 선호한다. 유니클로·H&M 등 가격이 싼 패스트패션은 학생들이 애용하는 브랜드다. A 교복업체 디자인팀 관계자는 “교복은 2000년쯤부터 계속 타이트해지기 시작했고 2000년대 후반 긴 치마나 통 큰 바지 등 박시하게 입는 유행이 잠시 있었지만 이후 다시 좁고 짧아졌다”면서 “3~4년 전 정점을 찍은 뒤 최근에는 반바지·반팔 등 편한 디자인으로 넘어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진짜 바라는 교복은 무엇일까. 학교 현장에서 확인한 의견은 치마와 바지, 통 큰 교복과 슬림한 교복 중 하나가 아닌 “자유로운 선택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치마 교복과 바지 교복, 정장형 교복과 생활복을 모두 채택해 학생들의 취향과 선호에 따라 입도록 해 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아직도 학부모 중 복장이 자유로운 학교는 학생생활 지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서 “교복이 자유로운 학교로 비치는 것을 학교 측에서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교육청은 학생들에게 편한 교복 채택을 위해 30일 ‘편안한 교복 공론화 추진단’을 발촉하고, 시민 토론 결과를 토대로 오는 11월쯤 ‘편안한 교복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예정이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기자칼럼]노회찬 의원이 말했던 “진보가 희망인 이유”

    [기자칼럼]노회찬 의원이 말했던 “진보가 희망인 이유”

    27일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국회 영결식이 열렸습니다. 평생을 한국의 민주화와 진보정치에 바쳤던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 의원을 기억하며 그가 2009년 당시 ‘서울신문’ 기자들의 공부모임이었던 ‘연대와 희망’ 초청강사로서 세 시간 가까이 진솔한 얘기를 들려줬던 얘기를 다시 꺼내놓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노 의원이 초청강연을 했던 2009년 1월 16일 당시 그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뒤 진보신당 공동대표로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2008년 1월부터 서울 노원(병)에서 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할 당시 겪었던 얘기로 자신의 17대 의정활동에 대한 반성을 시작했습니다. 선거를 준비하면서 노 의원은 유권자들한테 받을 예상 질문을 뽑아서 맞춤형 답변을 열심히 연습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건 헛수고였습니다. 선거까지 석 달 동안 아무도 그가 준비했던 예상질문이었던 “너무 과격한 거 아니냐” “너무 한쪽으로 편향된 거 아니냐” “중간에서 폭넓게 해야 하지 않느냐” “왜 밤낮 데모만 하느냐”를 묻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만 많이 받았답니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서민들 먹고 살게 해달라”였고, 그 다음이 “서민을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일해달라”는 것이었답니다. 노 의원에게 특히나 충격적이었던 건 자신이 몸담았던 민주노동당이 유권자들에게 서민의 대변자로 비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노 의원은 17대 국회 당시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넓은 현대차 공장에서 옷차림만 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섞여서 같은 일을 하는데 복장이 다른 겁니다. 노 의원은 “정규직들은 우리를 보면 장갑을 벗고 반갑게 악수를 하며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눈다”면서 “비정규직은 장갑 안벗는다. 다가가서 손을 내밀어도 외면하기도 한다”고 털어놨습니다. 노 의원으로선 서운할 법도 한 그런 상황은 왜 벌어졌던 것일까요. 노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일은 똑같은데 월급은 절반 밖에 안된다. 정규직노조가 파업이라도 하면 비정규직은 일감이 없어서 굶어야 한다. 정규직노조는 2층짜리 단독건물을 노조사무실로 쓴다. 상근자도 엄청 많다. 비정규직노조 사무실은 공장 한켠에 한 평 정도 된다. 노조 설립하고 나서 1년까지는 유선전화도 회사에서 안 놓아줬다고 한다.” 결국 비정규직 입장에선 정규직노조는 남의 편입니다. 민주노총은 정규직노조 집합체입니다.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민노당은 당연히 자기들 편이 아닌 겁니다. 노 의원은 그런 인식이 굳어지도록 방치한 책임을 크게 느꼈습니다. 노 의원은 “민노당이 정말로 당시에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고 인식됐다면 지난 대선 지지율이 20%는 거뜬했을 것”이라면서 “돌이켜보면 진보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준비 부족, 정치력 부족, 전략 부족… 그런 걸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2000년 1월 창당한 민노당 초기 주역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민노당은 놀라운 성장세를 이어갔습니다. 노 의원은 “민노당이 창당 당시 당원 7000명에서 1년만에 두배, 2년차에 3만, 3년차에 5만, 4년차에 7만, 나중에 10만 됐다”면서 “지지율도 처음엔 1~2%였는데 17대 총선에서 정당투표로 13.4%까지 기록했고 그해 말 지지율이 18~19%까지 나왔다”고 회상했습니다. 노 의원은 “13%라는 건 국민들 사이에서 진보를 수용할 수 있는 토대가 꽤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서 “문제는 그걸 더 끌어내는 것과, 고정지지로 만드는 거였는데 민노당 의정 4년에 결과적으로 제대로 못하니까 국민들이 지지를 철회한 것이지 국민이 보수화된 게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 의원은 17대 국회 4년 동안 가장 아쉬운 대목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번째는 민노당 17대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 공약을 제대로 끌고가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는 “국민들은 그 공약의 실현가능성을 본 게 아니라 그런 얘기가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라면서 “문제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를 민노당의 브랜드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2004년 원내 진출 이후 1년 내내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벌인 국가보안법 판에 휩쓸렸다”면서 “2005년 가을에야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 관철 위한 본부를 만들었다. 노력도 별로 안하고 타이밍도 놓쳐버렸다”고 아쉬워했습니다. 2004년 당시 한창 시끄러웠던 국가보안법 논쟁도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고수하자는 쪽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적었다고 합니다. 국가보안법 7조(이적단체, 이적표현물, 이적행위)만 없애자는 게 한나라당 개혁파와 민주당 주류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강경파와 민노당에선 완전폐지를 주장했다. 노 의원은 “국가보안법 사범 보면 95%는 7조가 문제다. 나머지는 간첩처럼 국보법 없더라도 잡혀갈 사람들이었다”면서 “당시엔 나도 국보법 완전폐지 주장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반성할 부분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한 것을 계기로 탄생한 특검도 많이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습니다. 특검 주장을 관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노 의원이었지만 “지금 와 생각하면 경륜부족”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상황에선 구석에 몰린 검찰이 대검중수부장 지휘받는 특별수사본부에 삼성 수사 열심히 해 좌천된 사람들로 구성했다. 이들이 당시에 제일 수사 잘할 사람들이었다. 성과도 있었다. 그런데 특검 때문에 중단됐다.” 노 의원은 “특검이 검찰보다 잘한다는 보장도 없고, 특검은 누가 되느냐에 따라 판도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노무현(대통령)이 검찰보다도 의지가 적었다”면서 “민변이 추천한 변호사가 했으면 100중에 60은 했겠지만 노무현은 삼성맨을 특검으로 임명했다. 나는 그것까지 내다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노 의원은 당시를 떠올리며 “운동권 관성과 흑백논리”를 반성한다고 했습니다. 노 의원은 17대 의원 시절을 반성하면서 미래에 대한 목표와 전망도 밝혔습니다. 지금 들어도 시사점이 많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진보는 지금 분명히 위기다. 지금 진보진영에게 필요한 건 실용노선, 즉 실사구시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되돌아봐도 성공한 혁명은 모두 실용노선으로 성공했다. ‘실사구시’를 진보의 기본철학으로 삼아야 한다.” 18대 총선 당시 선거참모들이 노회찬에게 “자유총연맹 회의가 있으니 거기 가서 인사를 하라고 권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 몸이 굳어졌다”는 노 의원은 참모들 강권에 별 수 없이 자유총연맹 회의에 갔답니다. 그가 거기서 본 건 무엇이었을까요. “내 선거구 인구가 20만명이고 9개 동이다. 자유총연맹이 동마다 조직이 있다. 내가 찾아간 자리는 어느 동의 운영위원회 뒷풀이였는데 거기 참석한 사람만 줄잡아 30명이었다. 본격적인 이념투쟁 벌어질거라 생각하고 각오 단단히 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노 의원은 “자영업 위해 먹고살기 위해 가입한 사람도 있고, 동네에서 사람들 많이 만나야 하는 필요 있는 사람들도 있고, 놀랍게도 여성이 절반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유총연맹 수뇌부는 극우조직이지만 하부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다. 처음엔 인사만 하고 나오려 했는데 주저앉아서 결국 소주를 너댓병 먹었다”면서 “만나보니 자유총연맹 회원이라는 사람들이 서민 범주에 드는 사람들이었다. 나중에는 9개 동네 운영위원회마다 가봤다”고 회상했습니다. 결국 내친김에 재향군인회도 찾아갔답니다. 재향군인회 사무실 한쪽은 6.25참전무공자회가 쓰고 있었답니다. 연배가 최소 60세는 되는 이 단체 소속 할아버지들이 재향군인회보다 훨씬 반갑게 맞아줬습니다. “외롭고 소외돼 있는데 알려진 사람이 찾아오니 반가운 거다. 나중엔 노원구 총회가 있는데 와달라고 귀띔까지 하더라. 70대 할아버지 500명이 모이는 자리였다. 후보들 중 유일하게 초청받아서 인사를 했다.” 그는 “결국 다른 게 아니다. 불의에 맞서 싸우는 거와 약자 편에 서는 활동에 호감 보인것”이라면서 “대중들을 만나보니 ‘친북만 아니면 사회주의도 좋다’는 정서가 강했다. 한국에선 노무현 정부조차도 친북으로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있지만, 가만히 보니 북한만 편드는 거 아니면 이데올로기에 구애받지 않는다. 레드컴플렉스가 막상 보니 웃기는 거였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노 의원이 말하는 “진보가 희망이 있다는 근거”였습니다. 그런 고민 위에서 노 의원이 가장 먼저 거론한 것은 남북문제였습니다. 노 의원은 “박근혜가 북한에 가면 조선노동당 관계자들이 만나준다. 정동영 전 통일장관이 북한 가도 조선노동당 관계자를 만났다. 하지만 민노당이 북한에 가면 노동당이 아니라 사회민주당이 만나준다”고 했습니다. 쿠바나 중국같은 혈맹은 조선노동당이 만나고 사회민주당은 서방세계 대표단 만나는 당이랍니다. 노 의원은 “북한은 오히려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힘’을 본다. 우리만 짝사랑한다고 되는게 아니다”면서 “오히려 진보정당이 북한 비판하면 그게 오히려 북한에게 따끔하다. 그걸 감안해서 북한에 대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습니다. 당시 노 의원은 선거제도 개혁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제는 바로 현재 정의당이 가장 주력하는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선거제도 개혁이 개헌보다 더 중요하다”는 노 의원의 외침은 이제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 됐습니다. “국민들이 5% 지지하면 5%만큼 의석을 가져야 한다. 1등 말고는 다 떨어지는 구조에선 최소 50% 국민의 선택이 무의미해진다. 유럽정치도 초기엔 완전비례대표제도를 위해 한세대 가까이 걸린 투쟁이 있었다. 그걸 거쳐서 좌파정당이 집권도 하고 그런 거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셋집도 내 집” 역발상… 런던 빈민굴, 사람 사는 동네로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셋집도 내 집” 역발상… 런던 빈민굴, 사람 사는 동네로

    우리나라 도시 인구는 2000년대 들어 전체 인구의 90%를 넘겼습니다. 한국 사람 열 명 중 아홉은 도시에서 살고, 40대 이하의 반 이상은 고향마저 도시입니다. 우리가 나고 함께 살아가는 도시란 무엇일까요? 근대는 도시의 고민에서 출발했으며, 그 근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서울신문은 출판사 수류산방과 함께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의 합창’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명인 조성룡(74) 성균관대 건축학과 석좌교수와 심세중(44) 수류산방 편집장의 대담을 지면으로 옮기는 형식으로 이어 갑니다. 근대 이후 세계의 도시를 만들어 온 역사적 인물과 흐름들, 당시 중요하게 대두됐던 가치들을 끄집어내는 작업입니다. 그 과정에서 본질적이고 중요한 질문인데도 우리가 너무 몰랐던, 타율적이고 일방적인 도시 개발 과정에서 간과했던 모더니즘의 근본 고민들을 들춰 보게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 드립니다. (시리즈 제목은 1949년 출간된 모더니즘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서 따 왔음을 밝힙니다.)“나이팅게일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쉽겠어요. 영국의 간호사 나이팅게일(1820~1910)이라고 아시죠? 우리나라에서도 백의의 천사로 유명한데, 실제로는 씩씩한 사람이었대요. 우리나라에서는 위인전을 그렇게 만들었잖아요. 생애 한 시절에 공이 있으면 그것만 띄우죠. 사실 나이팅게일이 전장에서 간호한 건 잠깐이거든요. 물론 나이팅게일은 그 시대 영국 사회를 개혁하는 일을 남자도 못할 만큼 해냈죠. 그런데 같은 시대를 살았던 옥타비아 힐(Octavia Hill·1838~1912) 이라는 여성은 우리한테 그만큼 안 알려졌어요. 부잣집에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 집이 갑자기 망했어요. 그래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현실을 보게 되죠. 그러다가 15살 때쯤에 당대의 인물인 존 러스킨(John Ruskin·1819~1900)이라는 사상가를 만나요. 그 양반이 미학 얘기도 했고 고딕건축에 대해서 연구도 많이 했지요. 1900년에 죽은 사람이니까 빅토리아 시대 사람인데, 이 시대가 영국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였어요.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시작했잖아요.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무슨 문제가 일어났냐면, 주택 말입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해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지니까 집이 부족해서 집을 짓는데, 너무 엉망인 집을 마구 지어요. 그걸 봤겠죠. 나름대로 문제라고 생각했겠죠. 옥타비아 힐이 사실 러스킨하고 몇 살 차이가 안 나요. 러스킨 밑에서 그림 필사해서 그리는 일을 했거든요. 그러다가 이 사람이 20대에 자기 선생한테 도움을 받아서 집 세 채를 사요.”1887년 런던 웨스터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된 빅토리아 여왕의 즉위 60주년 기념 행사에 남성의 동반자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참여한 여성은 단 세 명이었다.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조지핀 버틀러(Josephine Butler·1827~1906), 그리고 옥타비아 힐이다. 나이팅게일은 국가를 위한 전쟁에 나가 근대 의학의 개가를 알렸기 때문인지 세계적으로 위인의 반열에 올랐다. 조지핀 버틀러는 여성운동가였다. 옥타비아 힐은 우리에게 가장 이름이 덜 알려진 인물이다. 그나마 알려졌다면 문화재 보호 운동 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의 창립자로서지만, 옥타비아 힐이 평생을 바친 주제는 도시 빈민들의 주거 문제였다. 그의 부모와 외조부도 박애주의를 실천하던 부유한 사회 사업가 집안이었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병환 이후 어린 시절 런던 외곽에서 성장하면서 런던 빈민의 문제를 접하게 되었다. 절대적 빈곤 계층은 근대화와 도시화의 산물이었다. 처음에는 최악의 주택을 짓지 못하도록 규제하면 낫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더 컸다. 옥타비아 힐도 그런 생각이었고, 나은 집을 얻어서 거기에 빈민들을 살게 하려고 계획했다. 정작 그 구상을 듣자 어떤 집주인도 선뜻 집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더럽고 위험할 것 같은 가난한 사람들을 세입자로 들이고 싶지 않아 했기 때문이다. 고민에 빠진 청년 빅토리아 힐을, 마침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은 스승 존 러스킨이 도왔다. 좋은 집이 아니라 이미 빈민들이 살고 있던 최악의 주택을 겨우 몇 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러스킨의 조건은 매년 5%의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임대주택 지저분하게 방치하는 게 문제 “옥타비아 힐은 임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임대 아파트가 좋아지려면 뭘 해야 하는가를 연구하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아예 집주인이 된 거지. 런던의 매릴번이라는 동네인데, 집을 산 다음에 이 여자가 하는 일이 뭐였나면, 매주 임대료를 받으러 가요. 꼬박꼬박. 그런데 돈 벌려는 것보다는 연구를 하는 거예요. 임차인이 어떡하면 행복해지느냐. 가서 주민들한테 뭐가 문제인지 묻고, 어떻게 사는지 관찰하고, 옆집하고 계단을 같이 쓰려면 청소를 해야지 하고 알려 주기도 했어요. 처음에 3채에서 시작했는데 18년이 지나니까 이 사람이 관리하는 임차인이 3000명이 된 거예요.이 사람의 주장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이거예요. 집하고 사람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그러니까 세입자가 행복해지려면, 삶이 고귀해지려면, 집이 그렇게 좋아져야 한다. 아름답죠. 집주인으로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를 고민했어요. 살아가면서 옆집하고 공유하는 부분을 어떡해야 하는가를 공부해야 한다는 거예요. 학생들하고 공공 임대 주택에 관찰하러 답사를 나가 보면, 임대 주택 사는 빈민들이 단지를 너무 지저분하게 방치한다고 관리인들이 불평하거든요. 바로 그 문제예요.” 옥타비아 힐의 빈민 주택에 대한 방법론은 깔끔한 새 집을 지어 빈민들을 이사시켜 주는 것이 아니었다. 매주 세를 걷으러 직접 다녔다. 체납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니 집세를 내려면 일을 해야 했다. 자신이 사는 집을 수선하고 가꾸는 일거리를 주었다. 집세도 낼 수 있었고 살림도 나아졌으며 주거 환경도 나아졌다. 야학이나 어린이 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러스킨의 투자를 받았던 최악의 빈민굴이 몇 년이 지나자 번듯한 사람 사는 동네로 바뀌어 갔다. 주민들은 도시 환경 개선을 명분으로 한 재개발에 밀려 살던 동네를 떠나지 않아도 됐고 공동체도 깨지지 않았다. 게으르고 술만 마시고 범죄를 저지를 것 같은 사람들이 빈민이 될 거라는 낙인을 찍지 말고, 자립심과 자존감을 가지도록 북돋아 주고 대화해 주자는 것이 힐의 방법론이었다. 그들은 퍼 주기 식으로 부양해야 할 불쌍한 사람이 아니며, 세 들어 사는 집은 세만 내면 그만인 남의 집이 아니다. ●난개발 반대… ‘그린벨트’ 용어 첫 사용 옥타비아 힐은 국가에서 보조금 주택을 분양하는 방식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임대 주택이 수익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입주자 가족의 규모와 성격, 집의 입지를 고려해서 가구 배치를 섬세하게 정했다. 애초에 제대로 집행되지 못할 규칙은 제정하지 않았다. 집주인은 세를 과도하게 올리지 않고 장기적이지만 적절한 이윤에 만족하되 집의 상태를 좋게 유지하고, 세입자는 감당할 만한 집세로 떠돌지 않고 정착해서 살면서 일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 세상에 보이려고 했다. 그녀가 관리하기 시작한 집들은 그 모델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런던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내내 놀랍게도 100년이 넘게 신자유주의 시대를 견디며 지금까지 같은 방식으로 관리되며 수익을 내는 단지들이 남아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하고 같이 책을 보다가 옥타비아 힐이라는 이름이 나왔어요. 이 사람이 누구지? 찾아보니까 우리말 자료가 너무 없어요. 처음에 나는 왜 집주인이 되었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주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체험했다는 것이 좋은 방법 같아요. 집주인으로서 끊임없이 세입자와 친구처럼 얘기했대요. 그런데 철칙이 뭐냐면, 그 집 관리인을 전부 여성으로 고용해요. 그러니까 여성의 사회 진출하고도 관련이 있죠. 이 여성들이 몇십년 같이 일하면서 이런 일을 전파하는 전문인이 된 거죠. 그러다가 이 사람이 또 뭘 하냐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만 아니라 집 근처에 공원이나 정자 나무 그늘 같은 곳이 필요하다, 도시나 건축에서 오픈 스페이스라고 하는 공간인데, 그 중요성을 처음 말한 사람이에요. 지주는 땅이 있으니 오픈 스페이스를 가지죠. 지주가 아니어도 시골에 살 때는 오픈 스페이스가 어디에나 있지. 그런데 고향을 떠나 도시에 오면 그런 공간이 없단 말이에요. 주말이나 저녁에 가족들하고 나갈 곳이 있어야 하잖아요. 정말 중요한 겁니다.”옥타비아 힐은 실외에 ‘앉아 있을 장소, 놀이할 장소, 산책할 장소, 그리고 여가를 보낼 장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고궁이나 교외로 놀러 갈 수 있다. 그러나 노동자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외곽으로 놀러 간다는 것은 여행 경비를 쓰는 것뿐만 아니라 하루치 일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외 녹지의 난개발에 반대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옥타비아 힐은 ‘그린벨트’라는 말을 처음 쓴 인물 중 한 명이다. 도시민들에게 근교의 공원과 녹지를 선사하기 위해서 시작한 난개발 반대 운동이 결국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으로 성장했다. 또한 옥타비아 힐의 사업은 세틀먼트 운동(Settlement Movement)을 낳았는데, 이는 중산층이 빈민과 같은 구역에 함께 거주하면서 생활 문화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자는 것이었다.●주택 관리, 새로운 시대에 적합하게 해야 “요즘 임대 주택 한다지만, 아, 서울에 비싼 아파트에 임대 주택 넣으라고 하니까 단지 한쪽 구석에 몰아 놓고, 그 집 아이들 학교 가면 놀림 받잖아요. 그때 런던이나 지금 서울이나, 다 시골 사람들이 올라와서 노동자가 되면서 만들어진 도시예요. 산업화를 이뤘으면서, 그 노동자에 대한 생각을 사회적으로 돈 있는 사람들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요. 150년 전 런던에 비교하면 서울에는 훨씬 집이 많잖아요. 그런데도 그 고민이 너무 적었어요. 일제강점기에는 될 리가 없었겠지만 해방 후에는 돼야 할 건데 5년 있다가 전쟁 나고, 또 몇 년 있다가 군사독재 시작해서 1988년까지 군사정권이었잖아요. 그런 시대 속에서 집을 지었다고요. 그러니까 이 집이 노동자를 위한 집이 아니에요. 내가 70대가 되고 보니까, 도대체 내가 사람들을 위해서 한 게 뭐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집 짓는 사람인데, 건축가들이 돈 있는 사람 집만 지어 줬단 말이지. 돈 없는 사람이 자기 집을 맡길 리가 없고, 국가의 임대 주택은 오로지 중산층을 위한 거였어요. 그런데 건축가들이 이런 내용을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그저 임대 놓기 좋은 집이 아니라 세입자들이 품위 있게 살도록 설계할 수도 있단 말이에요. 좋은 단지는 예쁜 집, 잘 지은 집이 있는 단지가 아니라 거기 있는 사람들이 행복한 단지예요. 그러려면 설계와 관리가 서로 이어져야 하는 거예요.”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18 56~1925)가 그린 옥타비아 힐의 초상화는 1898년에 동료 노동자들이 선물한 것이었다. 그 무렵 이미 옥타비아 힐은 서방 세계 여러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었지만, 국가나 정부에서는 그녀의 방식을 끝까지 반기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딴 여러 단체가 생겼고, 그중에는 부작용도 많았다. 지금 서울에서 집주인이라는 이유로 세를 받으려고 일주일마다 한 번씩 가정 방문을 한다고 하면 누구도 반기지 않을 것이다. 옥타비아 힐은 무상 복지나 보조금에 완강히 반대했다. 엘리트주의에 기반해 근면이나 특정한 이데올로기나 종교를 전파하려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5%의 수익률도 악용되기 십상이다. 집값이 오르면 그에 따라 세도 올려 두 배의 수익이 주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초상화를 선물받았을 때 힐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벗들이 특별한 시스템을 만들려고 하지도 말고, 내가 갔던 길을 맹목적으로 따르지도 말기를 바란다. 새로운 시대 환경은 또 다른 노력을 요구할 것이므로 우리가 끝없이 추구해야 할 것은 굳은 형식이 아니라 정신이다. … 어떤 주택은 잘 수선하는 것이 낫고, 어떤 주택은 새로 짓는 것이 나을 것이다. 사려 깊고 사랑을 담은 관리를 충분히 기울여야 하며” 더 중요한 것은 “다가올 새롭고 더 나은 날들의 가장 큰 과제를 간파하는 것이다. 더 큰 이상, 더 큰 희망, 그리고 그 둘을 실현시킬 인내력”을 품고 서로의 집과 삶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이 여름밤, 에어컨 아래에서나, 맞바람이 들지 않는 대학가의 원룸이나 땡볕을 피할 길 없는 옥탑방에서나, 잠들기 어려운 도시의 밤에 말이다. 기획 수류산방
  • 78세에도 여전히 인어공주 연기를 펼치는 비키 스미스

    78세에도 여전히 인어공주 연기를 펼치는 비키 스미스

    올해 78세의 미국 여성 비키 스미스가 플로리다주에서 지난 70여년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은 인어공주 쇼에 출연하고 있다고 영국 BBC가 22일 소개했다. 쇼의 공식 명칭은 ‘위키 와치 스프링스(Weeki Wachee Springs)의 전설적인 사이렌’인데 집에서 손주나 돌봐야 할 스미스를 비롯해 60~70대 할머니 연기자들이 자원봉사 개념으로 쇼에 참가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 손질이나 화장도 전혀 하지 않고 타이트를 신고 수영복과 핀만만 걸치면 바로 입수한다. 스미스가 처음 인어가 된 것은 17세 때였다. 고교를 졸업하고 이틀 만의 일이었다. 시골 처녀에게 옵션이 많지 않은 시절이었다.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만 증명하면 됐고 한달 연습해 바로 무대에 올랐다. 지금은 4~6개월 연습해야 첫 공연에 들어간다. 스쿠바와 인명구조 자격증까지 주어진다. 임금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높지 않다. 스미스는 회당 3달러씩 받았는데 지금 인어들은 시간당 10달러를 받는다. 월트 디즈니가 디즈니랜드를 만들기 전까지 위치 와치는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2차 세계대전 때 해군 잠수 공작원들을 훈련시키고 호스로 공기를 공급하는 시스템을 창안한 뉴턴 페리가 인어들을 선발해 1947년 처음 쇼가 시작됐다. 1950년대까지 매진 사례를 기록했고 영화배우들도 찾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1959년 abc방송이 온천을 사들여 400석짜리 극장을 세웠는데 스미스가 극장 개관 테이프를 끊었다. 1961년 두 자녀를 돌보기 위해 인어공주 일을 그만 뒀다. 몇년 뒤 테네시주로 이사했다가 1992년 어머니를 가까운 곳에서 모시겠다며 플로리다로 돌아왔다. 2004년 다시 쇼에 복귀해 이제는 한 해의 몇달만 인어로 변신한다. 4년 뒤 위키 와치가 주립공원이 되면서 이 쇼는 여름 한철에만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쇼가 됐다. 가을과 겨울에도 이따금 공연을 하긴 하는데 독립기념일(7월 4일)과 같은 국경일 등에만 공연한다. 지금 로스터에는 그녀 외에 벤 수턴(67), 베키 영(63), 리타 킹(72), 수지 페노이어(64) 등이 있다. 우편배달부, 미용사, 호흡기 치료사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친 뒤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다.페노이어는 “우리가 완벽한 몸매를 갖췄나요? 아니죠”라고 자문자답한 뒤 “우리 또래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한번 보세요. 어떤 식으로든 인어가 되겠다는 사람도 많지 않죠”라고 말했다. 둘 모두 자신들이 인어공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운명과 같은 일이라며 “우리끼린 기적이라고 얘기한다”고 했다. 스미스가 인어공주의 매력에 빠져드는 이유는 뭘까? 그녀는 “다이빙해 물 속에 들어가는 순간 근심이 사라진다”며 “뭍에선 할 수 없는 일들을 물 속에서 할 수 있다. 공중제비를 할 수 있고 다리를 완전히 휘게 만들 수 있다. 또 발가락 끝에 머리를 갖다댈 수도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꿈은 80세가 될 때까지 연기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과거에 79세 때까지 공연한 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공연 전에 관객들과 함께 얘기를 주고받으며 “19세 소녀들을 무더기로 볼 수 있겠구나 생각하셨다면 크게 놀라실 것”이라고 미리 충격을 줄여줬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7세기에 숨진 건장한 남성 노인의 뼈…서동요 무왕, 쌍릉 대왕릉 주인 가능성

    7세기에 숨진 건장한 남성 노인의 뼈…서동요 무왕, 쌍릉 대왕릉 주인 가능성

    “당시 사망한 백제왕은 무왕밖에 없어” 기존 여성 치아 발견 등 주장 뒤집어 “소왕릉 주인은 선화공주?” 추가 조사백제시대 왕릉급 무덤인 전북 익산 쌍릉(사적 87호) 대왕릉에 묻힌 주인공이 백제 제30대 임금 무왕(재위 600~641)일 가능성이 커졌다.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 4월 익산 쌍릉 대왕릉 내부에서 발견한 인골을 분석한 결과 “최소 50대에서 60~70대 남성으로 키는 161~170.1㎝이며 620~659년에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대왕릉과 소왕릉으로 구성된 쌍릉은 향가 ‘서동요’의 배경 설화인 서동설화의 주인공 백제 무왕과 그의 부인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여겨져왔다. 이번 분석 결과를 토대로 대왕릉 피장자의 정체를 무왕으로 본 통설에 힘이 실리게 된 셈이다. 이상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은 “정강뼈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사망연도로 산출된 620~659년 사이에 사망한 백제 왕은 무왕밖에 없다”면서 “그 외에도 무덤 구조와 규모, 유물의 품격, 당시 시대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대왕릉의 주인이 무왕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무왕의 출생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600년에 즉위해 641년에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연구소는 대왕릉의 주인을 파악하기 위해 고고학과 법의인류학, 유전학, 생화학, 암석학 등 관련 전문가들을 총동원해 인골을 분석했다. 인골함에서 확인된 인골은 모두 102개로, 겹치는 뼈조각이 없어 모두 한 개체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법의인류학 분석을 맡은 가톨릭의대 응용해부연구소의 견해다. 이우영 가톨릭의대 교수는 “팔꿈치 뼈의 각도, 목말뼈의 크기, 넙다리뼈 무릎 부위의 너비 등으로 봤을 때 성별은 남성일 확률이 높다”면서 “넙다리뼈의 최대 길이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키를 추정한 결과 약 161~170.1㎝로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인골의 주인보다 훨씬 후대인 19세기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161.1㎝인 점을 고려하면 비교적 건장한 편이다. 삼국사기에서 무왕을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고 묘사한 부분과 일부 들어맞는다. 나이는 최소 50대에서 60~70대 노년층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목 갑상연골에 골화(骨化)가 많이 진행됐고, 골반뼈 결합면의 표면에 거칠고 작은 구멍이 많다”면서 “남성 노년층에서 발병하는 등과 허리가 굳는 증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2016년 국립전주박물관이 일제강점기 쌍릉 조사 당시 대왕릉에서 수습한 유물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찾은 치아 4점을 분석한 결과 20~40세 여성의 것이고, 무덤 내부에서 신라 토기가 출토됐다는 결과를 공개하면서 일각에서 대왕릉의 피장자가 무왕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번 인골 분류 과정에서 추가로 발견한 치아 2점에 대해 이 교수는 “전주박물관이 당시 의견서에 치아만으로 성별을 구별하고 나이를 추정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임을 밝혔다”면서 “유골과 치아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결과를 확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왕릉과 180m 떨어진 소왕릉의 진짜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앞으로 밝혀야 할 과제로 남았다. 이 소장은 “현재는 대왕릉 조사에 집중하고 소왕릉 발굴은 내년부터 추진할 예정”이라면서 “소왕릉에서 인골 등 피장자를 추측할 수 있는 자료가 나오면 향후 대왕릉 피장자와의 관계를 규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국가 주도 시장화…‘개성·신의주·나선’ 동북아경제 중심에 서다

    [남북경협 넘어 신동북아 경제지도] 국가 주도 시장화…‘개성·신의주·나선’ 동북아경제 중심에 서다

    중국 단둥시 중심가에 있는 북한식당인 류경식당에서는 저녁 6시 30분이 되자 종업원들이 한복으로 갈아입고 공연을 시작했다. 공연은 시작과 마무리만 북한 노래이고 나머지 5곡은 모두 중국 노래다. 식당을 채운 손님 30여명 가운데 2명을 빼곤 모두 중국인이어서다. 음식과 공연 모두 중국 손님 취향에 맞춘 이유는 딱 하나, 돈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공연은 사회주의 모자를 쓴 북한식 ‘주체 자본주의’의 단면을 보여 준다.북한을 빼놓고는 ‘동북아 경제지도’ 자체가 불가능하다. 남북 경협은 개성, 북·중 경협은 신의주, 북·중·러 경협은 나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이 거부하면 한국은 대륙으로 갈 수 없고, 중국은 동해로 나올 수 없다. 북한도 그 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 북한은 자신들의 지정학적 입지를 디딤돌 삼아 동북아 경제지도의 중심이 되려 한다. 북·중 접경지역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들,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인 사업가들,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말하는 현재 북한의 모습은 딱 ‘잘살아 보세’를 외치던 산업화 시기 한반도 남쪽을 떠올리게 한다. 그 당시 국가가 나서서 경제발전을 독려하고 외국으로 광부와 간호사, 건설노동자를 보내던 걸 21세기 한반도 북쪽에서 되풀이하고 있다. 북한에서 파견한 노동자들은 대북제재 와중에도 여전히 중국 곳곳에서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북·중 접경지역에서 10년 넘게 북한 관련 연구를 하는 남모씨는 “훈춘이나 투먼에선 지금도 북한 노동자 수천명이 기숙사형 공장에서 일한다”면서 “매일 자체적으로 자아비판과 사업평가로 이뤄지는 ‘총화’를 하고 그 결과를 대사관이 보고받는다. 철저하게 북한 당국 관리하에 파견노동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단둥 현지조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문화인류학자인 강주원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단둥에 나와 있는 북한노동자는 2만명 규모”라고 밝혔다.북한 노동자들은 중국에서 인기가 높다. 인건비가 저렴하고 일을 잘하는 데다 성실하기 때문이다. 남씨는 “훈춘에 있는 한 중국 식당이 중국인 종업원 8명을 쓰다가 북한 종업원 4명으로 바꿨는데 일을 더 잘한다고 칭찬하는 걸 들었다”면서 “중국만 해도 인건비가 많이 올랐다. 한국에서 동남아 노동자를 찾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한 중국인 사업가는 의류를 생산하는 북한 공장과 거래하는 게 무척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는 “북한 공장에 200명이 일하는데, 500명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면서 “북한 공장을 방문해 보니 마감시간을 맞추기 위해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일하더라”고 혀를 내둘렀다. 정은이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를 ‘북한식 발전국가’로 표현했다. 그는 “1990년대엔 자생적으로 시장이 발생했다면 지금은 국가 스스로 계획경제 안에서 시장을 포괄하려 한다”면서 “한마디로 ‘국가가 주도하는 시장화’다. 시장이 발달하면 북한 체제가 붕괴할 거라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순진한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최응구 베이징대 조선문화연구소 명예소장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박봉주 총리에게 경제정책을 일임한 뒤 젊고 해외를 아는 240명을 모아 연구팀을 꾸렸다”면서 “이들은 수년 동안 한국, 중국, 미국을 연구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 이들이 세운 경제개발계획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변화상은 북한에서 온 보따리상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달 28일 오전, 훈춘에 있는 한 세관 앞에서 북한에서 온 보따리상 일행 5명과 조심스레 대화를 나눴다. 함경북도에서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들은 50대에서 70대 여성들이었다. 훈춘에 있는 친척 방문 목적으로 정식 도강증을 발급받아 1개월을 체류한 뒤 귀국하기 위해 세관 검사를 받는 중이었다. 현재 동네에서 인민반장을 맡고 있거나 맡았던 경험이 있었다. 두 명은 자식이 군복무 중이었고 한 명은 남편이 공무원이었다.이들은 모두 화가 나 있었다. “친척들이 조금씩 생활에 보태라고 옷이며 각종 물건들을 줬는데 세관에서 못 가져가게 막는다”면서 “중국이 미제 승냥이들한테 머리를 팍 숙이고 있다”고들 했다. 김모씨는 “여기 올 때 버섯, 고사리, 다시마, 까나리, 젖은 물고기를 가져왔는데 세관에서 못 가져가게 해서 다 두고 왔다. 귀국할 때 찾아가라고 하더라”면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이번에는 우산이나 옷걸이조차도 ‘쇠붙이라 안 된다’고 한다”고 하소연했다. 이모씨는 “난 원래 훈춘에서 태어났다. 갓난아기 때 아버지 등에 업혀서 조선으로 넘어왔다”면서 “당시만 해도 조선족들은 물론이고 한족들까지 두만강을 건너와 쌀이며 옷, 숟가락, 젓가락까지 얻어 갔다”고 회상했다. 이어 “우리는 그때 하나라도 더 쥐여 주며 정성으로 보살펴 줬다”면서 “중국이 이제 좀 잘살게 됐다고 우리를 이렇게 괄시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세관에 신고하기 위해 적은 물품은 겨울옷, 바지, 속옷, 와이셔츠, 아동복, 사탕, 쌀, 담요, 가루비누, 맥주, 자전거, 우산, 옷걸이 등 일상용품이 대부분이었다. 이들과 두 시간 넘게 얘기를 나눠 보니 행동이 생각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기자의 말을 듣자마자 대뜸 “남쪽에서 왔습니까?”라고 묻더니 “연길(옌지)에서 왔다. 사업차 이남을 많이 다녀와서 그렇다”고 둘러대자 더 묻지도 않았다. 크게 개의치 않는 느낌이었다. 이들은 주요 소식도 얼추 파악하고 있었다. “북·남 수뇌회담을 생중계로 보는데 눈물이 났다. 문재인 대통령 부모가 함흥사람이라더라”며 호감을 보이기도 했다. 1990년대 기근 사태, 이른바 ‘고난의 행군’ 이래 북한 각지에서 활발하게 생긴 장마당 얘기도 했다. 박모씨는 “중국 장마당은 너무 지저분합니다. 우린 여기처럼 질서 없게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깨끗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한군데 정해 놓고 거기서 장사합니다”며 북한과 중국의 장마당을 비교했다. 박씨는 이어 “학생들은 장마당 출입금지다. 공부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관공서의 통제를 벗어난 장마당이 아닌, 당국이 관리하는 시장이 작동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북한 경제상황이 좋아졌다는 것도 느껴졌다. 최모씨는 “요즘은 인구가 많아지니까 새 집을 많이 짓는다”고 했다. 김씨는 “여기 쌀 값이 우리보다 비싸다. 우리 동네에선 중국돈으로 3위안이면 쌀 1㎏을 살 수 있다”면서 “요새 새 옷이 유행이다. 헌 옷은 장마당에서 아무도 사질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돈 100위안이면 우리 돈으로 12만 5000원가량”이라면서 “그걸로는 네 식구 먹고살기 힘들다. 200위안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배급으로 받는 쌀은 실제 먹는 쌀의 절반가량”이라면서 “먹고살려면 늙은이들도 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이 친척방문으로 중국에 와서 각종 물건을 고향으로 가져가려고 하는 건 말 그대로 “살림살이에 보태려는” 의도였다. 최씨는 “집에서 재봉틀로 재단을 한다”고 했다. 가내수공업으로 옷을 만들어 파는 셈이다. 이들은 세관을 통과하면 친척들이 차를 가지고 마중 나올 거라고 했다. 이들은 세관에서 트럭에 실어 놓은 물건을 모두 풀어 놓고 검사를 받으라고 한다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저녁 무렵 이들 가운데 두 명을 다시 만났다. 트럭 맨 위에 있는 물건 몇 개만 빼고는 다 통과시켜 줬다고 했다. 공식적인 대북제재와 현실 속 대북제재의 간극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씨는 “몇 년만 지나면 우리 조선이 잘살게 될 것”이라면서 “지하자원도 많고, 한다고 결심하면 일치단결해서 해내는 인민들 아니냐”고 했다. 이어 “함경북도엔 유명한 온천이 여럿 있다”면서 “통일 되면 놀러오시라요”라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단둥·옌지·훈춘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베이징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살인 더위

    한낮 활동·커피 등 카페인 음료 피해야 폭염 기세가 심상찮다. 최근 나흘 만에 온열질환자가 285명이나 발생하고 2명이 사망했다. 17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온열질환 감시 체계가 가동된 지난 5월 20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신고된 온열환자는 551명으로, 이 가운데 4명이 사망했다. 특히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나흘간 전체 환자의 52%인 285명이 발생했다. 사망자 4명 가운데 2명은 이 시기에 나왔다. 올해 사망자는 80대 할머니 2명과 70대 할머니 1명, 2세 남자아이 1명으로 모두 노약자였다. 사망 아동은 차 안에서, 나머지 노인들은 집 주변과 밭에서 활동하다 쓰러져 숨졌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발생한 온열환자는 모두 6500명이다. 이 가운데 40%(2588명)는 정오에서 오후 5시 사이 논밭과 작업장 등 실외에서 발생했다. 7월 11일부터 8월 20일까지 발생한 환자가 전체의 78%(5077명)에 이르러 올해도 여름철 온열환자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폭염이 심하면 갈증을 느끼기 이전부터 규칙적으로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 어지러움과 두통, 메스꺼움 등 온열질환 초기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시원한 곳으로 이동해 휴식을 취하는 게 좋다. 또 폭염 주의보·경보가 발령되면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위험 시간대 활동을 줄이고 활동이 불가피하면 챙이 넓은 모자, 밝고 헐렁한 옷을 착용해 온열질환을 예방해야 한다. 커피를 포함해 카페인 음료는 소변량을 늘려 탈수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덥다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찾다간 큰일

    덥다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찾다간 큰일

    폭염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최근 나흘 만에 온열질환자가 285명이나 발생하고 2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온열질환 감시체계가 가동된 지난 5월 20일부터 이달 15일까지 신고된 온열환자는 551명으로, 이 가운데 4명이 사망했다. 특히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나흘간 전체 환자의 52%인 285명이 발생했다. 사망자 4명 가운데 2명은 이 시기에 나왔다. 올해 사망자는 80대 할머니 2명과 70대 할머니 1명, 2세 남자아이 1명 등 모두 노약자였다. 사망 아동은 차안에서, 나머지 노인들은 집 주변과 밭에서 활동하다 쓰러져 숨졌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발생한 온열환자는 모두 6500명이다. 이 가운데 40%(2588명)는 정오에서 오후 5시 사이 논밭과 작업장 등 실외에서 발생했다. 7월 11일부터 8월 20일까지 발생한 환자가 전체의 78%(5077명)에 이르러 올해도 여름철 온열환자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온열질환은 열로 인해 생기는 급성질환이다. 대표적인 온열질환은 ‘일사병’과 ‘열사병’이다. 일사병은 더운 곳에서 장시간 일하거나 직사광선을 오랜 시간 받아 몸이 체온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병이다. 열사병은 무덥고 밀폐된 공간에서 일하거나 운동할 때 생기고 사망위험이 높다. 폭염이 심하면 갈증을 느끼기 이전부터 규칙적으로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 어지러움과 두통, 메스꺼움 등 온열질환 초기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작업을 중단하고 시원한 곳으로 이동해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 또 폭염 주의보·경보가 발령되면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위험시간대 활동을 줄이고 활동이 불가피하면 챙 넓은 모자, 밝고 헐렁한 옷을 착용해 온열질환을 예방해야 한다. 커피 등 카페인 음료는 소변량을 늘려 탈수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일사병과 열사병이 생기면 환자를 즉시 시원한 곳으로 옮기고 시원한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 체온을 내려준 뒤 의료기관을 방문한다. 의식이 없으면 음료수를 억지로 먹이지 말고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70대 친할머니와 아시아 배낭여행 떠난 20대 손자

    70대 친할머니와 아시아 배낭여행 떠난 20대 손자

    남들과 조금은 다른 여행 경험을 쌓고 있는 청년이 있다. 그는 바로 친할머니 사프타(74)와 함께 배낭 여행을 떠난 나다넬 크레슨(26). 13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일간 메트로에 따르면, 스웨덴 태생의 나다넬은 지난해 할머니와 아시아를 순회하는 배낭 여행을 시작했다. 함께 여행에 동참하길 원했던 손자의 바람을 할머니가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단 몇 개월 만에 짐을 꾸려 배낭여행에 나선 할머니와 손자의 계획은 우리나라를 비롯 중국, 일본, 필리핀, 인도와 같은 국가들을 둘러보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를 찾아와 비무장지대(DMZ) 등을 방문했으며 중국의 만리장성, 일본 도쿄의 고양이 카페 등 대표적인 명소를 돌아봤다. 나다넬은 “할머니는 늘 모험을 좋아하고 즐기신다. 우리 가족 휴가에서 할머니는 계획 단계부터 빠지지 않는다. 혼자 중동, 아프리카, 미국 일대를 다녀오기도 하셨다”고 말했다. 나다넬과 할머니가 여행을 계획을 하는데는 약 3개월의 시간이 걸렸지만 여행하는 과정에서 사귄 많은 친구들 때문에 그 계획은 여러차례 변경됐다. 그는 “모든 도시에서 만난 개개인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여행 경험을 더 풍요롭게 만들었고, 자신들의 나라로 우리를 초대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좋았던 장소를 묻는 질문에 나다넬은 “중국이다. 언어를 할 수 없는 국가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만족스러웠고 하루하루가 문화적 도전이었다”고 언급했다. 반면 자연을 사랑하는 할머니는 아름다운 섬들과 열대 기후, 신선한 코코넛이 있는 필리핀을 가장 좋았던 곳으로 꼽았다. 매주 나다넬은 블로그와 페이스북 ‘더 그랜 어드벤처‘(The Gran Adventure)에 할머니와의 즐거운 여행 이야기를 올린다. 그는 “여행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조부모를 더 잘 알고 싶어했다. 나는 우리가 여행으로 많이 배울 수 있다고 믿으며, 우리 이야기가 세대 간 격차를 불식시키고 가족간 끈끈한 정을 나누는 계기로 작용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사진=페이스북(더 그랜 어드벤쳐)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만취 운전 골목길 질주… 2명 숨지게 한 70대 구속

    서울 광진구 구의동 아차산역 인근 골목길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차량을 몰다 행인 2명을 치어 숨지게 한 김모(72)씨가 15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동부지법은 이날 김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결과 “사안이 중대하고 구속 사유가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씨는 지난 12일 오후 5시 40분쯤 산타페 승용차를 몰고 좁은 골목길을 질주해 행인 2명과 다른 차량 1대를 들이받은 뒤 마트를 향해 돌진했다. 이 사고로 A(48·여)씨와 B(59)씨가 숨졌고 6명이 다쳤다. 사망자 2명은 아차산공원 관리 업무를 하는 광진구청 소속 기간제 노동자들로, 퇴근 후 귀가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상자 중에는 14개월 된 남아와 6살 여아도 있었으나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김씨의 혈액을 채혈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범행 당시 김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인 0.186%로 나타났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골목길 ‘음주러시’로 2명 숨지게 한 70대 구속

    골목길 ‘음주러시’로 2명 숨지게 한 70대 구속

    서울 광진구 구의동 아차산역 인근 골목길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SUV 차량을 몰다 행인 2명을 치어 숨지게 한 김모(72)씨가 15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서울동부지법은 이날 김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결과 “사안이 중대하고 구속 사유가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김씨는 지난 12일 오후 5시 40분쯤 산타페 승용차를 몰고 좁은 골목길을 질주해 행인 2명과 다른 차량 1대를 들이받은 뒤 마트를 향해 돌진했다. 이 사고로 A(48·여)씨와 B(59)씨가 숨졌고, 6명이 다쳤다. 사망자 2명은 아차산공원 관리 업무를 하는 광진구청 소속 기간제 노동자들로, 퇴근 후 귀가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부상자 중에는 14개월 된 남아와 6살 여아도 있었으나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김씨의 혈액을 채혈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한 결과 범행 당시 김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인 0.186%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사고를 내기 전 식당에서 지인들과 두부 안주에 소주와 막걸리를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서울 광진경찰서는 이번 사안이 중대하다고 보고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폭염에 온열환자 발생 잇따라

    불볕 더위에 전북에서도 온열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15일 전북도에 따르면 지난 12일 현재 도내에서 발생한 온열 환자는 모두 11명이다. 세부적으는 열사병 5명, 열탈진 2명, 열경련 2명, 열실신 2명이다. 연령대는 80대 이상 2명, 70대 1명, 60대 1명, 50대 3명, 40대 2명, 20대 2명으로 50대 이상이 63%를 차지했다. 열사병은 땀이 나지 않는 데다 피부 온도가 40도를 초과해 나타나는 질병으로 중추신경 장애(혼수상태)를 초래한다. 가장 흔한 온열 질환인 열탈진은 무력감과 피로, 구토 등을 유발한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11일 오후 5시 59분쯤 김제시 금구면 한 밭에서 일하던 이모(85·여) 씨가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 씨는 고열에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병원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았다. 같은 날 오후 2시 46분쯤에는 전주시 덕진구 한 공사장에서 일하던 근로자 최모(50) 씨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출동한 구급대원은 얼음으로 몸의 열을 식히며 최 씨를 병원으로 옮겼다. 진단명은 열사병이었다. 보건당국은 온열 질환 증세가 나타나면 그늘로 자리를 옮겨 체온을 낮추거나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포츠음료나 물 1ℓ에 소금 1티스푼을 넣은 식염수도 도움이 된다. 전북도 관계자는 “무더위가 다음 주 내내 이어질 것으로 예보돼 건강관리에 유의해야 한다”며 “온열 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체온을 낮춰주고 119에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현재 전주와 익산, 완주, 무주, 정읍, 임실, 순창, 남원 등 8개 시·군에 폭염경보가, 나머지 6개 시·군에는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퇴근시간 상가 돌진한 SUV... 운전대엔 ‘만취상태’ 70대

    퇴근시간 상가 돌진한 SUV... 운전대엔 ‘만취상태’ 70대

    서울 구의동 아차산역 인근 골목길에서 SUV 승용차를 몰고 돌진해 행인 2명을 치어 숨지게 하고 6명을 다치게 한 70대 남성은 범행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13일 서울 광진경찰서는 전날 이 사고를 낸 김모(72)씨에 대해 음주 측정을 한 결과 면허 취소 수준의 혈중알코올농도가 나왔다고 밝혔다. 경찰은 사고를 낸 김씨 본인도 병원으로 실려 간 탓에 몇 시간에 걸친 검사를 마친 후 음주 측정을 했다. 경찰은 더 정확한 측정을 위해 채취한 혈액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할 예정이다. 김씨는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하는 절단장애인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의족이 사고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수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김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퇴원 직후 긴급체포했다. 경찰 관계자는 “오늘 피의자 조사를 한 다음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전날 오후 5시 40분경 산타페 승용차를 몰고 좁은 골목길을 질주해 행인 2명과 다른 차 1대를 친 뒤 마트를 들이박는 사고를 냈다. 사고 당시 차에 동승자는 없었다. 이 사고로 A(48·여)씨와 남성 B(59)씨가 숨졌다.부상자 6명 중에는 생후 14개월 된 남아와 6살 여아도 있으나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 두 명은 모두 아차산공원 관리 업무를 맡은 광진구청 소속 기간제 근로자로 업무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마트로 차량 돌진해 8명 사상낸 70대, 운전 당시 만취

    마트로 차량 돌진해 8명 사상낸 70대, 운전 당시 만취

    서울 구의동 아차산역 인근에서 SUV 승용차를 몰고 돌진한 70대 남성이 범행 당시 술에 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사고로 행인 2명이 숨졌고 6명이 다쳤다. 13일 서울 광진경찰서는 전날 이 사고를 낸 김모(72)씨를 대상으로 음주 측정을 한 결과, 면허 취소 수준의 혈중알코올농도가 나왔다고 알렸다. 경찰은 사고를 낸 직후 김씨도 병원으로 실려가 검사를 받은 탓에 몇 시간이 지나서야 음주 측정을 했다. 더 정확한 측정을 위해 채취한 혈액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 의뢰할 계획이다. 경찰은 김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퇴원 직후 긴급체포했다. 경찰 관계자는 “오늘 피의자 조사를 한 다음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전날 오후 5시 40분께 산타페 승용차를 몰고 좁은 골목길을 질주해 행인 2명과 다른 차 1대를 친 뒤 마트를 들이박는 사고를 냈다. 이 사고로 A(48·여)씨와 B(59)씨가 숨졌다. 부상자 6명 중에는 생후 14개월 된 남아와 6살 여아도 있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 두 명은 모두 광진구청 소속 기간제 근로자로 퇴근길 귀가하던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김씨는 오른쪽 다리에 의족을 착용하는 절단장애인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의족이 사고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수사할 방침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확산되는 ‘조현병 포비아’ 가족은 범죄 무방비 노출

    확산되는 ‘조현병 포비아’ 가족은 범죄 무방비 노출

    “범죄 전력 ‘고위험군’ 격리 등 사회적 관리 시스템 구축해야”지난 8일 경북 영양에서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가 난동을 부리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을 흉기로 살해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면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실한 관리 시스템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특히 조현병 환자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돌보는 부모를 비롯한 가족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70대 노모를 살해한 조현병 환자 A(36)씨를 구속했다고 10일 밝혔다. A씨는 지난 6일 성북구 자택에서 함께 사는 어머니의 목을 졸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 관계자는 “어머니가 자신을 다시 정신병원으로 보내려고 하는 것을 알아채고 범행을 저지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에도 “아들이 아버지를 폭행하고 협박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아들 B(56)씨의 행동과 발언이 정상적이지 않다고 판단하고 지역 내 정신건강증진센터에 B씨의 정신질환 여부를 의뢰했다. B씨는 ‘조현병’ 판정을 받았고 경찰은 B씨를 정신병원에 입원하도록 조치했다. 경찰과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부모 등 노인에 대한 폭행·협박 등 학대 가해자 5101명 가운데 정신장애인은 424명(8.3%)으로 집계됐다. 이들 가운데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는 조현병 환자는 191명(45.0%)으로 나타났다. 79명(31.3%)이었던 2013년 이후 4년 만에 2배 이상 늘어났다. 같은 기간 살인·강도·절도·폭력 등 ‘4대 범죄’를 저지른 정신장애인은 3450명에서 5405명으로 56.7% 증가했다. 특히 존속살해범 가운데 정신장애인은 2013년 12명(24.5%)에서 지난해 23명(48.9%)으로 2배가량 늘었다. 전문가들은 범죄 전력이 있는 ‘고위험군’ 조현병 환자에 대해 강제 입원 등 격리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다만 “모든 조현병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언제까지 전체 범죄자 중 조현병 환자가 0.4%에 불과하다는 점만 강조할 것인가”라면서 “공공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큰 환자는 완치되기 전에 사회로 나올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치료받지 않은 조현병 환자의 범죄율이 일반인 범죄율보다 3배 정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에게 책임을 지우기보다 체계적으로 환자를 관리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택시에 두고 내린 현금 3억원 찾아준 70대 기사

    70대 택시기사가 승객이 두고 내린 현금 3억원을 찾아줘 화제다. 8일 대구 동부경찰서에 따르면 택시기사 이모(71)씨는 지난 1일 낮 동대구역에서 중년 남자를 태우고 시내 한 아파트에 내려줬다. 그러나 승객은 깜박 잊고 택시에 가방을 두고 내렸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택시기사 이씨는 가방을 열어봤다가 5만원권이 가득 들어있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고민할 틈도 없이 인근 동촌지구대로 차를 몰고 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가방을 맡겼다. 비슷한 시각 수성구의 한 경찰 지구대에 현금 3억원이 든 가방을 택시에 두고 내렸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은 가방 분실 신고자가 택시 승객인 것을 확인하고 가방 보관 장소인 동촌지구대에서 신원 확인 뒤 가방을 건넸다. 사업한다는 중년의 승객은 “택시기사와 경찰에 고맙다”며 지구대를 떠났다. 경찰 관계자는 “현금과 관련해 특별히 수상한 점은 없었다”며 “승객이 사례했는지는 모르지만 택시기사님이 참 훌륭한 분 같다”고 말했다. 대구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일본의 60대, 돈버는 ‘현역 세대’보다 소비성향 더 높아

    일본의 60대, 돈버는 ‘현역 세대’보다 소비성향 더 높아

    60대 초반, 퇴직후 여행·사회활동 등 지출 가장 많아70대 이상 “유산 물려주려고 저축 안깨고 돈 안써”젊은 세대의 미래불안이 노인들 소비성향까지 좌우‘노인 왕국’ 일본에서 60대는 ‘현역’인 50대까지 보다 더 소비성향이 높았다.  또 60대, 70대 등 고령자, ‘시니어세대’들이 소비를 늘리지 않고 금융자산을 모으고, 소비를 억제하는 이유는 자식들에 대한 걱정 탓이 컸다.  NHK는 최근 30년치 정부 통계 등 데이터 분석을 통해, 이 같이 전하면서, “50대까지의 이른바 ‘현역 세대’에서는 그 기간 동안 평균 소비 성향이 지속적으로 줄어 온데 비해 60대, 70대에서는 소비가 오히려 느는 경향을 보였다”고 전했다. 특히 지난 15년동안 60대의 평균 소비 성향은 1을 넘어섰다.  소비성향이 1을 넘어선다는 것은 벌어서 자기가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보다, 소비가 더 많다는 것을 뜻한다. 즉, 지난 15년 동안 일본의 60대는 저축을 허물어 돈을 써 왔음을 의미한다. 그러다 70대가 되면 다시 소비가 줄면서 대체로 평균 소비성향이 1정도로 돌아왔다. 즉 연금 및 이자 수입 등, 자기가 쓸 수 있는 여력 안에서 소비하고 있었다.  반면 50대의 소비 성향은 그 기간 내내, 대체로 0.7에서 0.8을 기록했다. 수입의 7~8할을 소비하고, 나머지 2~3할을 저축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관련 분석을 실시한 호리 마사히로 내각부 수석 선임 연구관은 “60대에서는 아직 자식들이 독립하지 못한 가구도 있고, 퇴직 후 여행 및 각종 사회활동 등 지출할 기회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또 “60대 초반이 가장 많이 저축을 허물고 있지만, 70대가 되어서는 연금 등의 수입 내에서 생활하는 스타일로 다시 돌아가면서 소비·지출의 균형을 찾았다”고 NHK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70대 이상은 소비성향이 1을 넘지 않았다. 저축을 허물지 않고 생활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들 70대 이상의 세대에서 저축을 줄이지 않고, 소비를 늘리지 않는 가장 주요 이유중 하나는 아이들, 자식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내각부 설문조사에서 “왜 금융 자산을 보유하려고 하느냐”는 질문과 관련, 2013년부터 5년동안 평균적으로 “유산을 남기려고”라고 답한 응답자가 60대에서 10.5%, 70세 이상에서 11.7%로 나타났다. 그 전의 2012년까지 5년 평균과 비교하면 각각 4.1%포인트와 3%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경제 환경 등이 악화된 자식 걱정 탓에 이 같은 생각이 늘어난 것이다.  이를 분석한 내각부 전문가는 “(과거와 달리) 지금 시대에는 더 이상 수입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인식이 일반적으로 확산됐다 ”면서 “자신들(고령자) 쪽이 젊은이(자식세대)보다 풍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경우일 수록, 저축률이 높아지는 경향을 나타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히 고령자가 자신의 아이들 걱정 때문에 저축을 더 깨지 못하는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NHK는 “미래의 불안이 현역 세대뿐만 아니라 그 부모의 세대에까지 확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령자, 시니어 세대가 돼서도 아이들, 자식세대의 장래까지 걱정하느라 마음대로 소비 지출을 늘리지 못하고, 저축을 깨지않고 유산을 물려주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현재의 일본 고령자, 시니어 세대의 모습이라고 전했다.  NHK는 또 노후에 자식의 경제적 여유를 살필 수밖에 없는 지금의 사회적 소비 부진의 배경에는 “장래 불안”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역 세대의 감소, 일손 부족으로 노인 인력이 기대되고 있지만, 소비를 확대한다는 관점에서도 앞으로는 더 고령자의 본격적인 취업 지원이 소비진작의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건강하고 능력이 있는 고령 취업자에 대해서는 현역 세대와 마찬가지의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일하는 방식의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내각부에 따르면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소비에서 갈수록 늘면서 2016년에는 개인 소비의 50%를 차지했다. 70세 이상의 세대주도 15년전에 1.5배 수준인 전체 가구수의 25.5%로, 4가구 중에 한 가구를 차지했다.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서울시민 월143만원 쓴다… 압구정동 302만원 1위

    서울시민 월143만원 쓴다… 압구정동 302만원 1위

    자치구 중 서초 202만원 최다 현금은 60대, 체크카드는 20대 신용카드 76만원·공과금 4만원 직장인 179만원 써… 중구 ‘톱’ 서울시민은 한 달에 평균 143만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25개 자치구 중에서는 서초구가, 동 중에서는 강남구 압구정동이 ‘소비 1위’를 차지했다. 현금은 60대, 신용카드는 40대, 체크카드는 20대가 각각 가장 많이 쓰는 결제 수단으로 파악됐다. 신한은행은 서울에 거주하는 고객 131만명의 금융 거래 빅데이터 3억건을 분석한 ‘서울시 생활금융지도(소비편)’를 5일 공개했다. 분석 결과 지난해 월평균(이하 중앙값) 소비액은 143만원으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역시 ‘강남3구’의 씀씀이가 컸다. 서초구가 202만원으로 소비 수준이 가장 높았고 강남구 195만원, 용산구 161만원, 송파구 156만원 등이었다. 특히 압구정동은 302만원으로 전체 평균의 2배가 넘었다. 서초구 반포동 223만원, 강남구 도곡동 244만원, 대치동 203만원 등의 순이다. 지난해 서울시민은 월평균 공과금 4만원, 현금 20만원, 신용카드 76만원, 체크카드 26만원 등을 썼다. 서초구는 현금과 신용카드 항목에서 모두 가장 높은 소비 수준을 보였다. 반면 체크카드는 대학가가 있어 젊은층이 많이 사는 관악구가 1등을 차지했다. 직장이 서울인 고객 88만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서울 직장인이 한 달에 쓰는 돈은 평균 179만원이다. 중구에 있는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241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종로구가 238만원이었다. 새로운 업무단지로 떠오른 마곡지구가 있는 강서구 235만원, 여의도 증권가가 자리잡은 영등포구 234만원, 서초구 231만원, 강남구 226만원 등으로 뒤를 이었다. 강북 도심권 직장인들이 강남권 직장인보다 씀씀이가 더 크다는 얘기다. 중구와 종로구에는 주요 대기업의 본사가 밀집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종로구 직장인의 평균 급여 수준은 360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소비는 2위로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급여 대비 소비 비중은 66%로 꼴찌를 차지했다. 돈을 더 버는 만큼 다 쓰지는 않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신한은행 빅데이터센터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저축 등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은행 입장에서는 여유 자금이 많은 이들을 공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령별로는 40대가 188만원으로 가장 많이 썼다. 50대 165만원, 30대 163만원, 60대 129만원, 70대 93만원, 20대 85만원 등의 순이었다. 현금 소비는 연령대가 높을수록 증가 추세를 보여 60대가 52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신용카드 소비는 40대(94만원)까지 점차 늘다가 이후 줄어들었다. 체크카드 사용률은 20대가 38%로 가장 높았다. 일자리가 없는 20대의 경우 신용카드 발급이 쉽지 않아 체크카드를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신한은행은 지난 4월 서울시 생활금융지도 소득편을 공개한 데 이어 다음달 안으로 저축편도 내놓을 계획이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미국 90대 노모, 자신을 보호시설에 맡기려던 70대 아들 살해

    미국 90대 노모, 자신을 보호시설에 맡기려던 70대 아들 살해

    미국의 90대 노모가 자신을 보호시설에 맡기려던 70대 아들을 총으로 쏴 살해했다. 4일(현지시간) 미국 USA투데이 등에 따르면 애리조나 주 파운틴 힐즈에 사는 애나 메이 블레싱(92)이 지난 2일 오전 아들 토머스 블레싱(72)을 총으로 살해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아들은 목과 턱에 총상을 입고 이미 숨진 채로 침실에서 발견됐다. 아들을 쏜 애나는 자신의 침실로 돌아와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으며, 체포되면서 “네가 내 인생을 빼앗았으니, 나도 네 인생을 가져가겠다”고 중얼거렸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조사에서 애나는 아들이 자신을 보호시설에 맡기려고 했기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사건 당일 아들과 아들의 여자친구 A(57)씨의 침실로 향한 애나는 “너희들이 날 이렇게 대하는 게 지긋지긋하다”며 아들을 쐈다. 애나는 A씨도 쏘려고 했으나 몸싸움 끝에 총을 놓쳤던 것으로 드러났다. 애나는 갖고 있던 다른 총을 꺼내 다시 A씨를 쏘려 했으나 또 빼앗겼고, 도망친 A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애나는 아들을 쏜 뒤 맥박까지 짚어보고 죽음을 확인한 뒤 자신의 침실로 돌아갔다. 애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었지만 총이 없어 그러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나는 4개월 전부터 아들 커플과 함께 아들의 여자친구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3~4일 전 아들이 자신을 시설로 보내려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진술했다. 또 아들이 자신과 함께 사는 게 어렵게 됐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고도 했다. 자신을 보호시설에 맡기려는 아들을 살해한 애나는 1급 살인죄로 교도소 신세를 지게 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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