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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르헨 어머니, 이젠 눈물 닦아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어머니 광장’에선 매주 목요일 저녁 머리 희끗희끗한 여인들이 하얀 손수건을 쓴 채 정부청사 주변을 도는 시위를 25년 동안 벌여 왔다. 우리에겐 지난 1985년작(作) 영화 ‘오피셜 스토리’로 낯익은 풍경이다. 이들은 76년부터 83년까지 군사정권이 저지른 납치와 살인, 유아 납치 등으로 사랑하는 아들, 딸을 잃은 어머니들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 왔다. 이들 어머니의 피맺힌 한이 마침내 풀릴 수 있게 됐다. 아르헨티나 대법원 전원재판부가 14일(현지시간) ‘국민 통합과 화해’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군정 관계자들의 사법처리를 막기 위해 80년대 제정됐던 2개의 사면법을 위헌이라고 판결, 무효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78년 호세 포블레테와 거투르디스 흘라치크 부부를 감금, 고문하고 이들의 8개월 된 딸 클라우디아를 데려다 키운 혐의로 기소된 전직 경찰 훌리오 시몬에 대한 재판에서 나왔다. 현재 27세인 클라우디아가 시몬을 고발해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부는 “이 법들은 국가가 인권을 보호하고 유린 행위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 국제 규범에 역행한다.”고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판결로 무효화된 법은 86년과 87년 각각 제정된 ‘푼토 피날(일명 국민화합법)’과 의무복무법이다. 군정을 종식하고 83년 12월 집권한 라울 알폰신 정부는 군 요인들을 사법처리한 뒤 군부의 반발을 감안, 이들 외에 새로운 군정 관계자의 범죄가 드러날 경우 기소를 면책케 했다. 의무복무법은 이들이 계속 군에 몸담을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AP통신은 이날 판결에 타티 알메이다 등 많은 어머니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고 전했다. 알메이다는 “우리의 감정을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 수십년 동안 바라던 일이 마침내 이뤄졌다. 수많은 사건과 증거들이 재검토돼야 할 것”이라고 반겼다. 군정의 좌익 및 반체제 인사 탄압은 ‘추악한 전쟁’ 그 자체였다. 불심검문으로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체포됐고 전기고문을 당하고 발가벗겨 쇠사슬에 묶인 채 감금됐다. 심지어는 강제로 약을 먹인 뒤 헬리콥터에서 대서양에 내던지기도 했다.86년 군정인권유린 조사위원회는 1만 2000여명이, 인권단체는 3만명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곧 ‘살해’를 의미했다. 2003년 5월 취임 후 과거사 청산에 앞장서온 중도좌파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이번 판결로 정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되살아나게 됐다.”고 환영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영어·한국어 동시에’ 이중언어교육 열기

    어린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려는 엄마들의 열망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많은 엄마들이 영어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배워야 한다며 갖가지 방법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학비가 비싼 영어유치원과 영어교재가 봇물을 이룬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영어 등 외국어를 모국어와 같은 방법으로 가르치는 것을 이중언어교육이라고 한다. 그러나 조기 영어교육, 이중언어교육이 어떤 효과를 주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다만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것은 무조건 어릴 때 가르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언어교육 전문가들에게서 이중언어교육의 허와 실을 들어본다. #1 회사원 박선영(39)씨는 딸 채원(8)양이 초등학교 입학 전 6개월 동안 미국에 있는 친척집에서 지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1주일에 세번은 테솔(TESOL) 자격이 있는 한국인 교사가, 두번은 원어민 교사가 하는 그룹 지도를 받고 있다. 영어교육을 전공한 박씨도 틈틈이 영어 만화를 틀어놓고 영어로 대화한다. 딸이 간단한 대화 정도는 자유롭게 하고, 영어에 자신감을 갖고 있어 박씨는 다행스럽다. #2 광주에 사는 김희경(31·여)씨는 아들 유혁(4)군을 위해 지난해부터 ‘영어 품앗이’를 시작했다. 마음 맞는 엄마 4명을 모아 돌아가며 미술놀이, 장난감 만들기 등 영어로 테마수업을 한다. 생물학을 전공한 김씨를 비롯해 영어 전공자는 한 명도 없지만 아이 일이니 다른 일을 제쳐두고 매달리고 있다. 집에서도 가능하면 영어를 쓴다. 비싼 학원에 보낸 적도 없는데 올해부터 한두 문장씩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아들을 기특하게 생각한다. #3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사는 이기현(8·가명)군은 5살 때부터 영어유치원에 다녔다. 수업료와 교재비 등을 합해 매월 80만원 정도가 들었지만 아버지 이재성(43·가명)씨는 맞벌이인 탓에 시간도 없고 직접 가르칠 자신도 없어 영어유치원을 택했다. 영어는 학교에서 또래들에게 꿀리지 않을 정도는 된다. ●너도나도 이중언어교육 영어 조기교육 열풍 속에 이중언어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학원이나 교재 위주의 영어 ‘학습’에서 일상생활 속의 영어 ‘습득’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 어릴 때부터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시켜 모국어와 같이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방법도 다양하다. 외국에 보내거나 이중언어교육을 표방하는 영어유치원 등에 의존하는 것은 ‘고전적’인 방법. 말문이 트일 무렵부터 영어 책을 읽어주고, 회화 능력이 있는 엄마들은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사용해 아이를 키운다. ‘쑥쑥닷컴(www.suksuk.com)’ 등 유아영어교육 사이트에는 영어품앗이를 구하거나 수기를 교환하는 엄마들로 붐빈다. 이들은 맹렬히 공부하고 노하우를 나눠 아이와 영어로 대화하고 놀아주면서 영어에 친숙한 환경을 만들어준다. 한국방송통신대 영문과 4학년 이희영(40·여)씨는 “반복적으로 영어 환경에 노출시켜주려면 엄마가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에서 6세 딸의 영어교육을 위해 대학에 입학한 경우다. ●이중언어교육 정말 필요한가 너도나도 이중언어교육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그 효과와 시기, 방법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만큼이나 전문가들의 견해도 엇갈린다. 한국외대 영어교육과 차경애 교수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시키는 것이 필요하고, 어릴수록 유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맞는 얘기”라면서 “특히 외국에서는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아이들이 사고력이나 추론능력 등 전반적인 인지능력이 우세하다는 임상결과도 있었다.”고 말했다. 한서대 영재교육계발연구소 함정현 교수는 “딱딱한 학습의 범주만 아니라면 이중언어교육 이론을 적용한 조기 영어교육은 바람직하다.”면서 “말문이 트이기 전이라 해도 기본적인 인지 능력이 형성돼 있기 때문에 영·유아 때부터 적당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미국에서 수십년간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이중언어교육을 해온 장병혜 박사는 “문화적 토양 등을 수반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중언어교육이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라면서 “기본적인 어휘력이나 판단력도 없는 상태에서 영아기부터 영어를 ‘강요’하는 것은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3년 교육부 의뢰로 ‘영·유아 조기영어교육’을 연구해온 동덕여대 아동학과 우남희 교수는 “뇌가 종합적 기능을 형성해야 하는 3∼6세에 과도하고 편중된 자극은 성숙하지 못한 언어 중추를 지치게 할 수 있다.”면서 “영·유아기의 구조적인 영어교육은 효과가 극히 적고, 스트레스를 유발해 오히려 악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한다면 언제부터 어떻게 이중언어교육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지나친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주어서는 안된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차경애 교수는 “2∼3살 영아 때부터 혹사시키고 특히 이렇다 저렇다 하는 단편적 속설에 휩쓸리는 현상이 안타깝다.”면서 “아이마다 언어적 능력과 적성이 다르기 때문에, 아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를 잘 관찰해 자연스럽게 시작하고, 정규 영어교육이 시작되는 3학년 이전에 영어에 친숙해지도록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장병혜 박사는 “적어도 3살까지는 한국어를 먼저 배우게 하고, 이후에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도록 유도해 놀이나 문화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면서 “유아기부터 달달 볶는 영어교육은 정체성 혼란 등의 악영향이 더 크다.”고 조언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교과·생활지도때도 영어 활용 공교육에도 이중언어교육 개념이 도입되고 있다. 서울 동부교육청은 지난 3월 ‘이중언어교육 중심학교’로 용두·신답·면남·신현초등학교 등 4곳을 선정해 영어과목 외에 교과·생활지도에서도 영어를 활용토록 하고 있다.3학년이 대상이며, 내년에는 3·4학년 대상 10개교로 늘리고,2008년까지 관내 초등학교 3∼6학년 전체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교육 여건이나 내용 면에서 이중언어교육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걸음마단계이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다. 신답초등학교는 3학년의 모든 교과와 일상 생활지도에서 영어 사용을 원칙으로 한다. 국어 시간에는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 봅시다.’ 등의 지시를 영어로 말해주고, 수학 시간에는 삼각형의 성질을 영어로 설명하면서 문제를 영어로 풀어주는 식이다.3학년 담임은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담당교사를 비롯해 영어 전공자나 연수 경험이 있는 교사들로 전원 배정했다. 신현초등학교는 교사와 함께 영어 동화 읽기가 핵심이다.3학년 4개반이 20쪽 분량의 각각 다른 유아 동화책을 준비해 두달 동안 읽고 서로 교환한 뒤 연말에 연극으로 꾸며 발표한다.‘해와 달이 된 오누이’ 등 친숙한 내용의 동화 테이프를 매일 들려주고 노래를 따라부르는 놀이 형식이다. 절대 문장을 해석해 주거나 단어를 외우라고 하지 않는다. 반복적으로 나오는 ‘sun(해)’‘moon(달)’ 등의 주요 단어를 교실 곳곳에 붙여놓는 정도. 호기심을 유발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뜻을 익히게 된다. 면남초등학교는 1주일 단위로 짧은 대화체를 정해 ‘암호 놀이’를 한다.‘How are you?’‘Fine,thank you.’와 같은 짧은 대화체를 정해 교실 입구 등 특정 지역을 지날 때 ‘암호’를 대는 놀이이다.‘영어는 학습 대상이 아니라 재미있는 의사소통 기구’라는 점을 알려주는 단계다. 용두초등학교는 지난달 ‘독도는 우리 땅’을 주제로 영어 특별 수업을 하기도 했다. 신답초등학교 장선화 담당교사는 “두달 정도 계속하다 보니 어느날 늘 하던 대로 ‘Who wanna try(자, 누가 해볼까)?’ 했더니 아이들이 ‘I wanna try(제가 해볼래요.)’라고 말해 깜짝 놀랐다.”면서 “wanna(want to)의 뜻이나 용법을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도 같은 상황에서 반복해 들려주다 보니 문법과 단어를 스스로 깨친 것”이라고 말했다. 동부교육청 김점옥 초등교육과장은 “생활 속에서 영어를 접하는 기회를 만들어주자는 취지”라면서 “지도 매뉴얼을 만들고 교사들의 해외 연수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이중언어교육 ‘오해와 진실’ 이중언어교육이라는 비교적 생소한 개념이 영어 조기교육의 대세로 자리잡으면서 갖가지 검증 안된 속설들이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전문가들에게 그 ‘오해와 진실’을 들어봤다. ●한살이라도 어릴 때 배워야 한다? 차경애 교수는 “학계에서도 시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많다.”면서 “조기 교육의 장점도 많지만 일반적으로 6∼12세를 언어습득의 ‘결정적 시기’로 보기 때문에 무조건 영아기부터라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우남희 교수는 “4세와 7세 그룹을 나눠 실험을 해본 결과 7세의 습득능력이 훨씬 뛰어났다.”면서 “영어교육은 기본적 인지능력이 발달한 만 6∼13세 사이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원어민한테 배워야 효과 있다? 함정현 교수는 “원어민보다 잘 훈련받은 한국인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자질도 부족한 원어민보다는 깊이 관찰하고 아이와 교감할 수 있는 한국인이 더 낫다는 것. 발음 등 부족한 부분은 시청각교재를 활용해 보완하면 된다. ●모국어는 외국어 습득에 방해된다? 차경애 교수는 “모국어는 외국어를 배우는 데 매우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면서 “모국어를 통한 어휘력과 종합적인 언어 감각이 외국어 습득에도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장병혜 박사도 “어느 나라 말이든 문장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생각하는 작업이 기본”이라면서 “모국어를 못하면 외국어도 결코 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①-창업주 구인회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①-창업주 구인회 일가

    지난 3월3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강남타워(옛 LG강남타워)에서 열린 GS그룹 ‘CI 및 경영이념 선포식’. “지난 반세기 동안 LG와 GS는 한 가족으로 지내며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GS가 새롭게 출발하는 것을 보니 남다른 감회로 가슴이 뿌듯합니다.” 차분히 축사를 읽어가는 구본무(60) LG 회장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조부(고 구인회 창업주)때부터 계속돼 온 허씨와의 57년간(47년 락희화학 설립 기준)의 ‘동거’를 당대에서 마무리짓는 순간이었다. 사돈이자 ‘동반자’였던 GS그룹 허창수(57) 회장과 임직원 300여명은 축사를 마치고 행사장을 빠져 나가는 구 회장을 기립 박수로 환송했다. 행사장에 울려퍼진 ‘사랑해요 LG’는 앞으로도 두 그룹이 여전히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구 회장은 이에 앞서 3월14일 ‘당숙’인 구자홍(59) 회장·구자열(52) 부회장이 이끄는 LS그룹 출범식에도 참석, 새로운 길을 떠나는 집안 어른들을 축하했다. 연이어 열린 GS·LS그룹의 출범은 LG의 역사상 가장 큰 행사로 기록될 것이다.‘동업으로 일궈 합작으로 키웠다.’는 LG의 사사가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새로 쓰이게 되는 것이다. GS의 분리로 자산이 지난해 61조 6000억원에서 50조 8800억원으로 줄어든 LG는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산기준 재계순위에서 현대자동차그룹(56조 400억원)에 2위(한전 제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1974년과 1980년에는 삼성과 현대를 제치고 재계 1위까지 올랐던 LG그룹으로서는 다소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다. 조부때부터 늘 확장일로를 걷던 사업을 ‘정리’한 구 회장은 LG의 비전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졌던 종합그룹에서 전자·화학중심의 ‘글로벌 리딩그룹’으로 재확립했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여건임에도 올해 경영목표를 매출 94조원, 경상이익 4조 3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15%,26%나 높게 잡은데서 ‘제3의 창업’을 향한 LG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부친이 준 자금으로 사업 시작 재계3위 LG그룹의 역사는 1947년 락희화학(현 LG화학)의 설립에서 시작되지만 그 기원은 1931년 7월 경남 진주시 진주식산은행 건너편 2층 건물에서 시작한 ‘구인회 상점’이 출발이다. 구인회 회장은 1907년 8월28일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산마을(현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에서 홍문관 교리를 지낸 할아버지 만회 구연호 공의 외아들 춘강 재서 공과 진양 하씨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1921년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해 잠시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과 같이 수업을 듣기도 했다. 효성그룹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과는 같이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축구로 교유관계를 쌓았다고 한다. 구 회장은 20세때 서울 중앙고보 2년을 마치고 귀향, 사업에 뜻을 보였는데 엄격한 유교집안의 장손이 장사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조부와 부친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결국 장손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 24세에 이미 3남 1녀와 아래로 다섯 동생을 둔 집안의 가장이었던 구 회장은 아버지가 건네 준 2000원과 첫째 동생 철회씨의 사업자금 1800원을 더해 자본금 3800원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이 7년 뒤인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시작한 것에 비하면 출발은 일렀지만 규모는 작았던 셈이다. 구 회장의 첫 사업은 ‘실패’였다. 사업 첫 해 무려 500원의 손실을 본 것이다. 이듬해 고향마을의 땅을 담보로 8000원을 빌린 구 회장은 새로운 각오로 사업을 재개했지만 그 해 장마로 포목이 물에 잠기고 만다. 이후 사업이 제 자리를 잡아 가는 듯했지만 또다시 1936년 대홍수로 가게가 떠내려 가고 말았다. 첫 시련은 가혹했지만 구 회장은 사업가 기질을 발휘해 “장마가 든 해에는 풍년이 들어 살기가 좋아질 것이다.”는 신념을 갖고 주변 사람에게 다시 돈을 빌려 포목사업을 벌였다. 구 회장의 예측대로 그해 풍년이 들어 결혼수요가 폭증하자 포목사업도 번창하기 시작했고 구 회장의 사업인생도 탄탄대로를 걷기 시작했다. ●허씨와의 인연 LG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구씨-허씨 동업을 빼놓을 수 없다. 두 가문의 인연은 구인회 회장의 8대조인 구반공 시절부터 시작됐다. 구반공의 부친이 현풍현감으로 재임할 때 진주의 만석꾼인 허씨 집안으로 장가를 왔고 이후 승산마을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구인회 회장 역시 열네살 나던 해인 1921년 담 하나 사이 이웃인 허만식씨의 장녀 을수씨와 혼례를 올렸다. 조부 만회공의 셋째 딸이 허만식씨의 둘째아들 인구씨에게 출가했지만 신랑이 요절하는 바람에 이어지지 못했던 두 집안이 다시 한번 관계를 맺은 것이다. 이후 구씨와 허씨는 무려 8건의 겹사돈으로 맺어지며 끈끈한 관계를 이어왔다. 구씨와 허씨는 1946년 1월 구 회장 장인(허만식씨)의 재종인 허만정씨가 셋째 아들 준구(당시 24세)를 데리고 당시 구회장이 살던 부산으로 찾아오면서 사돈에서 동업자 관계로 발전한다. 허만정씨는 사업자금을 내놓으며 아들의 경영수업을 부탁했고 구 회장은 동경 유학생 출신의 준구씨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준구씨는 첫째 동생 철회씨의 맏사위였으므로 이미 남도 아니었다. 잘 알려진 대로 고 허준구씨는 LG건설·LG전선 회장 및 그룹 부회장을 지내며 LG의 역사와 함께했고 허창수 현 GS그룹 회장, 허정수(55) GS네오텍(전 LG기공) 사장, 허진수(52) GS칼텍스 부사장, 허명수(50) GS건설 부사장, 허태수(48) GS홈쇼핑 부사장 등 그의 아들들도 LG의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LG의 초기 역사에는 허준구씨말고도 다른 허씨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준구씨의 친형인 고 허학구씨는 락희화학 전무로 일하면서 구자경 당시 상무와 함께 부산 범일동 공장에서 먹고 자며 밤낮으로 일했다고 한다. 구 회장은 또 락희화학 서울사무소를 지원하기 위해 허준구씨의 동생으로 당시 ‘조선통운’에 다니던 허신구씨를 끌어들였다. 허신구씨는 락희유지 상무시절인 62년 동남아출장에서 ‘합성세제’를 처음보고 구인회 회장에게 세제 사업 진출을 건의,66년 ‘하이타이’가 출범하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허신구씨는 금성사 사장, 그룹 부회장, 럭키석유화학 회장 등을 역임했고 장남 허경수씨는 87년 코스모그룹을 창립하며 독자경영의 길을 걷고 있다. 허만정씨는 8형제를 뒀는데 학구-준구-신구씨는 LG에 발을 담은 반면 장남 고 허정구씨는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창업동지’로 다른 길을 걸었다. 허정구씨의 2남이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다. 허신구씨의 차남 허연수씨도 GS리테일(전 LG유통) 상무로 일하고 있고 허만정씨의 막내인 허승조씨는 GS리테일 사장을 맡고 있다. ●가족들의 맹활약 LG는 그동안 숱한 계열분리를 통해 친족간 재산분배를 마무리지었다. 현재 LG에 남아있는 ‘오너일가’는 구본준(54) LG필립스LCD 부회장이 유일하다. 하지만 몇년전만 해도 주요 계열사 사장과 임원 상당수가 구씨, 허씨일 정도로 가족경영이 활발했다. 오너일가들이 지나치게 많아 그만큼 부작용도 적지 않았지만 LG의 창업과정에서 이들의 공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앞서 언급했듯이 구인회 회장은 첫째 동생 철회씨와 동업으로 ‘구인회상점’을 창업했다. 철회씨는 형과 함께 사업을 일구며 락희화학, 금성사 등의 사장을 맡았다. 둘째 아우 정회씨도 경성전기학교를 마치고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정회씨는 45년 구인회 회장이 ‘조선흥업사’라는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때 화장품 기술자 김준환씨를 영입해 화장품 사업에 뛰어드는 계기를 마련했다. 처음 만든 화장품 이름을 ‘럭키(LUCKY)’라고 지어 ‘럭키그룹’의 기반을 닦은 것도 정회씨였다. 셋째 아우 태회씨는 서울대 문리대에 다니면서 창신동 집에서 ‘화장품연구’에 몰입,‘투명크림’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50년 서울대를 졸업하자마자 락희화학의 전무로 입사,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다. 같은 해 장조카 구자경 명예회장도 부산사범대 부속국민학교 교사 생활을 접고 락희화학 이사로 입사했다. 태회씨는 이후 안 깨지는 크림통 뚜껑에 목말라하던 구인회 회장을 도와 LG가 플라스틱 사업에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53년 락희화학이 서울에 사무소를 낼 때 기반을 닦은 것도 태회씨였다. 태회씨는 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유당후보로 고향인 진양에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역시 서울대 문리대를 나온 넷째 아우 평회씨는 락희화학 지배인 시절인 1954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청년상공인회의(JCI)에 참석한 뒤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콜게이트사’ 주변에 머물며 치약 제조기법을 알아내는 공을 세웠다. 공전의 히트를 친 ‘훌라후프’도 평회씨의 제안으로 들여왔다.5·16 쿠데타 직후인 61년 ‘부정축재 기업인’ 처벌때는 형을 대신해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남인 이창희씨가 아버지와 형(맹희씨)을 대신해 처벌을 받은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5년 연속 세계판매 1위를 달리고 있는 LG전자의 에어컨 사업은 구자경 명예회장이 락희화학 전무시절 “고층빌딩이 계속 늘고 있어 에어컨이 앞으로 필요해질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내 시작했다.67년 9월 미국 GE사와 제휴를 통해 국내 첫 에어컨 생산에 들어갔다. 미국 워시본대와 뉴욕시립대 대학원을 나온 구자두씨는 금성사 관리부장 시절인 62년 동남아 통상사절단을 수행하며 홍콩의 바노사로부터 라디오 200대를 주문 받아오는 등 LG의 첫 수출 물꼬를 트는데 기여했다. 럭키치약 광고판을 부산 연지동 공장에 세우는 등 본격적인 광고개념을 도입한 것도 자두씨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6남4녀의 ‘방대한 혼맥’ 구인회 회장은 허을수씨와 사이에 6남4녀를 뒀다. 자손이 워낙 많다 보니 LG가를 ‘재벌 혼맥의 핵’이라고 부르지만 권력 핵심이나 정계쪽과는 인연이 없어 세칭 ‘정략결혼’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평이다.LG가는 특히 아들이 많은데 회(會)자 돌림만 6명, 자(滋)자 돌림은 23명에 달한다. 본(本)자 돌림은 구인회 회장 직계로만 11명이다. 장녀 양세(83)씨는 15세때 경남 남해군수를 지낸 박해주씨의 아들로 진주고보 학생이던 박진동씨에게 출가했다. 박씨는 광복후 좌우익투쟁으로 학병동맹본부 피습사건으로 사망했다. 장남 구자경(80) 명예회장은 17세때인 42년 5월 고향인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과 가까운 대곡면 단목리의 대지주 하순봉씨의 장녀 정임(81)씨와 혼례를 올렸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진주공립중 4학년이었고 한살 위인 신부는 한문에 뛰어난 소양을 갖춘 사람이었다. 구 명예회장 부부는 올해로 63년째 해로하고 있다. 2남 자승(74년 작고)씨는 56년 부산에서 금성방직 전무로 있던 고 홍재선씨의 딸 승해(71)씨와 선을 본 뒤 4개월만에 결혼했다. 홍씨는 훗날 전경련 회장과 쌍용양회 회장을 지냈다. 구 회장과 홍재선씨와의 우애는 유명한데 홍씨는 훗날 구 회장이 한때 자신을 ‘바람둥이’로 오해해 혼사가 어려울 뻔한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홍씨가 평소 안면이 있던 다방 마담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고지식한’ 구 회장이 오해를 한 것이다. 3남 구자학(75) 아워홈 회장은 고 삼성 이병철 회장의 차녀 숙희(70)씨와 57년 결혼했다. 구 회장은 64년 제일제당(현 CJ) 기획부장으로 삼성에 입사한 뒤 동양TV방송 이사, 호텔신라 대표이사,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 등을 거쳐 본가로 돌아왔다. 4남 구자두(72) LG벤처투자 회장은 심계원(현 감사원) 심계관과 국방부 차관을 지낸 고 이흥배씨의 딸 의숙(67)씨와 결혼했다. 이 혼사는 이미 사돈을 맺었던 홍재선씨의 중매로 이뤄졌다. 이씨는 64년 동양TV 사장으로 일하다 삼성과의 동업파기로 물러났고 이후 국제신보(현 국제신문) 사장에 취임했다. 삼성과 LG는 동양TV사장에 이병철 회장의 사돈인 홍진기씨와 구인회 회장의 사돈인 이흥배씨를 나란히 앉혀 ‘공동경영’을 시도했지만 결국 파국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흥배씨의 장남인 이희종(72)씨도 LG산전(현 LS산전) 사장과 부회장을 지낼 정도로 LG와 인연이 깊었다. 5남 구자일(70) 일양화학 회장은 일찌감치 독립했는데 부인 고김청자(66)씨는 사업가인 김진수씨의 딸이다. 차녀 자혜(68)씨는 대림산업 이규덕 창업주의 장남 고 이재준 대림그룹 회장의 막내 아우인 이재연(74) 아시안스타 회장에게 시집갔다. 이재연씨는 럭키화학 상무로 LG에 입사한 뒤 희성산업 사장, 금성통신 사장, 금성사 사장을 거쳐 LG카드 부회장을 지냈다. 장남에게 외식업을 해보라고 권유, 국내에 패밀리 레스토랑 ‘TGIF’를 처음 들여왔다. 3녀 자영(66)씨는 제일은행장을 지낸 이보형씨의 아들 재원(68)씨와 결혼했다. 구 회장 막내 처남 허윤구씨의 아들인 허남목씨 소개로 만난 뒤 20일만에 ‘초스피드’로 결혼했다. 이씨는 자신 소유의 일성제지 회장을 지냈지만 일성제지는 98년 신호제지에 합병됐다.4녀 순자(62)씨는 류헌열 전 대전지법원장 아들이자 서울지검 검사였던 류지민씨에게 시집갔다. 이 혼례도 사돈인 이흥배씨가 주선했는데 구씨의 혼사는 이처럼 사돈이 연결해 준 경우가 많다. 구 회장은 막내 사위를 무척 아껴 골프장에 자주 데리고 다니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았지만 류씨는 43세때 요절했다. 유일하게 구 회장 타계후 결혼한 6남 자극(59)씨는 이화여대 교수인 조필대 교수의 딸 아란(54)씨와 결혼했다. ●창업주 형제들의 화려한 혼맥 LG가문의 혼맥이 늘 주목받는 것은 구인회 회장 형제들의 혼사가 본가 못지 않게 화려하기 때문이다. 첫째 동생 철회(75년 작고)씨는 부인 안남이(작고)씨와 4남 4녀를 뒀는데 딸들의 결혼이 눈에 띈다. 장녀 위숙(77)씨는 허만정씨의 3남인 고 허준구 LG건설 회장에게 출가했다.2녀 영희(74)씨는 의학박사인 고 이호덕씨에게,3녀 자애(66)씨 역시 의사인 정승화(71·전 현대피부과원장)씨에게 시집갔다.4녀 선희(61)씨는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의 장남 박용훈(6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에게 시집갔다. 박우병씨는 박두병 전 두산 회장의 동생이다. 장남인 구자원(70) 넥스원퓨처 회장은 류영희(63)씨와, 차남인 고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은 이갑희(62)씨 등 평범한 집안의 딸과 결혼했다.3남인 구자훈(58) LG화재 회장,4남인 자준(55) LG화재 부회장의 부인인 임방인(61), 이영희(53)씨도 재계나 정·관계 집안은 아니다. 다만 구자훈 회장의 3녀 문정(31)씨가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재영(35)씨에게 시집가 재계 명문가의 위상을 이어갔다. 둘째 동생 정회(78년 작고)씨는 부인 김증문(작고)씨 사이에 5남 2녀를 뒀다. LG유통 사장을 지낸 장남 자윤(작고)씨는 정정자(62)씨와 결혼했다.2남 형우(62) 전 부민상호저축은행 사장은 전 대한석탄공사 전무였던 이길주씨의 딸 화숙(57)씨와 결혼했고 장녀 숙희(59)씨는 이구종 전 대한교과서 대표의 아들 규영(62)씨와,3남 자헌(작고)씨는 조종렬 한일수산 회장의 딸 금숙(55)씨와 결혼했다.LG MMA 사장을 지낸 4남 자섭(55)씨는 최근 LCD 회로부품업체인 한국SMT를 갖고 LG에서 독립했다. 부인은 심영숙(51)씨. 박정화(50)씨와 결혼한 5남 자민(50)씨는 지난해 말 LG전자 부사장으로 승진한 뒤 3개월도 안돼 회사를 그만두고 형 회사인 한국SMT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2녀 명희(52)씨의 남편은 하영준(56) 전 세원기업 사장이다. 셋째 동생으로 국회예결위원장·부의장을 지낸 태회(82)씨는 최무(83)씨와 사이에 4남 2녀를 뒀다. 장녀 근희(62)씨는 이계순 전 농림장관의 아들 준범(64)씨와 혼인했다. 장남 구자홍(59) LS그룹 회장은 지순혜(60)씨와 결혼했는데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애결혼에 성공한 ‘러브스토리’를 갖고 있다. 차남 구자엽(55) 가온전선 부회장은 김태향(55)씨와 결혼했다. 구 부회장의 사위가 정몽우 전 현대알미늄 회장의 장남인 정일선(35) BNG스틸 사장이다.3남인 구자명(53) LS니꼬동제련 부회장의 부인은 조영식 경희대 이사장의 딸 미연(53)씨다.4남 구자철(50) 한성 회장의 외동딸 원희(25)씨는 ㈜두산 박용만(50)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결혼이 예정돼 있다. 구씨가문으로서는 두산가로 출가한 자혜씨에 이은 두번째 두산과의 혼사다.2녀 혜정(57)씨는 이인정(60) 태인 회장과 결혼했다. 넷째 평회(79)씨는 부산 피란시절인 52년 금릉원예조합 문흥린 이사장의 딸 문남(75)씨와 결혼해 3남 1녀를 뒀다. 장남인 구자열(52) LS전선 부회장은 육군 중장으로 청와대 경호실차장과 성업공사 사장, 전쟁기념관장을 역임한 고 이재전씨의 딸 현주(48)씨와 결혼했다. 차남인 구자용(50) E1사장은 이상돈 전 중앙대 의대 학장 딸 현주(46)씨와 결혼했다.3남 구자균(48) LS산전 부사장은 독고진(46)씨와, 막내 혜원(46)씨는 주진규(49)씨와 결혼했다. 막내동생 두회(77)씨는 유한선(72)씨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 은정(44)씨는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의 아들 중민(48) 전 국민생명보험 부회장과 결혼했다. 김택수씨는 김한수 한일그룹 창업주의 동생이다. 장남인 구자은(41) LS전선 상무는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 딸인 인영(37)씨와, 막내 재희(38)씨는 김세택 전 덴마크 대사 아들 동범(37)씨와 결혼했다. ●점점 ‘소박’해지는 혼맥 구자경 명예회장은 선대 회장 못지않은 4남 2녀를 낳아 ‘다산’의 전통을 이었다. 장남인 구본무(60) 회장은 미국 애슐랜드대 유학을 마친 72년 김영식(53)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충북 괴산의 ‘수재’로 불린 김태동 전 보사부장관의 딸. 장녀 연경(27)씨는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마치고 미국에서 유학중이고 막내 연수(9)양은 아직 초등학생이다. 딸만 둘인 구 회장은 지난해 바로 아랫동생인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 광모(27)씨를 양자로 영입해 ‘대’를 잇고 있다. 장녀 훤미(58)씨는 구 회장 작고 직후인 70년 4월 김용관 전 대한보증보험 사장의 4남 화중(작고)씨와 결혼했다. 훤미씨의 딸인 김선혜(34)씨는 대림산업 이준용 회장의 장남인 이해욱(37) 전무와 결혼해 대림가와 대를 이은 혼인관계를 이어갔다. 김용관씨는 경방 회장과 전경련 회장을 지낸 고 김용완 회장의 동생이다. 화중씨는 “딸은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지만 사돈이나 사위는 아들에 준하는 대접을 해준다.”는 LG의 ‘가풍’대로 계열사였던 희성금속 사장을 지냈다. 95년 일찌감치 독립한 2남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은 차경숙씨와 결혼했다. 3남 구본준(54) LG필립스LCD 부회장은 숱한 계열분리 뒤에도 여전히 LG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오너 경영인’이다. 사업가 김광일씨의 딸인 은미(48)씨와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2녀 미정(50)씨는 대한펄프 창업주인 고 최화식 회장의 아들인 최병민(53) 대한펄프 회장과 결혼했다. 4남 구본식(47) 희성전자 사장은 조경아(45)씨와 결혼,1남 2녀를 뒀다. ●LG를 떠나는 滋자 돌림 구자경 명예회장의 첫째 동생 자승(작고)씨는 홍승해씨와 3남 1녀를 뒀다. 장남 본걸(48)씨는 LG상사 대주주이자 부사장을 맡고 있고 본순(46), 본진(41)씨도 LG상사 상무로 일하고 있다.LG상사는 LG의 다른 자회사와 달리 ㈜LG가 대주주가 아니어서 자승씨 집안 몫으로 남겨진 것으로 알려졌다.2000년 아워홈을 갖고 독립한 둘째 동생 자학씨는 이숙희씨와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남 본성(48)씨는 심재석 전 장은할부 부회장의 딸 윤보(44)씨와 결혼했다. 본성씨는 처가인 삼성에서 사장까지 지낸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2000년 삼성캐피탈 부장으로 입사해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보까지 지냈다. 장녀 미현(45)씨는 고 이문호 서울대의대 교수의 아들인 이영렬(50) 한양대의대 교수와 결혼했다.2녀 명진(41)씨는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의 4남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셋째 동생 자두씨 역시 2000년 LG벤처투자를 갖고 분리했다. 이의숙씨와 사이에 2남 2녀를 뒀는데 장녀 혜란(45)씨는 심창유 청주사대 학장의 아들 현주(50)씨와,2녀 혜선(43)씨는 장홍식 전 극동정유 사장의 아들 원우(44)씨와 결혼했다.LG벤처투자 사장인 장남 본천(41)씨와 차남 본완(39)씨는 각각 22.24%의 지분을 갖고 있다. 넷째 동생 구자일 일양화학 회장은 처음부터 LG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독립했다. 본길(39), 은미(38)씨를 자녀로 두고 있다. 차녀 구자혜씨는 이재연 전 LG카드 부회장과 2남 1녀를 두고 있는데 명망가 집안과 혼사를 맺었다. 아시안스타 사장인 장남 선용(44)씨는 고 오세중 세방여행 회장의 딸 은주(40)씨와 결혼했다. 차남 지용(42)씨는 추경석 전 건설교통부 장관의 딸인 재연(38)씨와 결혼했다. 막내 구자극(59)씨는 LG상사 미주법인 회장을 그만두고 대주주로 있던 예림인터내셔널을 통해 전자코일, 변성기 등을 생산하는 이림테크를 인수(현 엑사이엔씨)한 뒤 스피커 전문업체인 모토조이, 성주음향의 중국 톈진공장 등을 인수하며 종합부품그룹을 키우고 있다. 엑사이엔씨 사장인 장남 본현(37)씨와 차남 본우(26)씨는 엑사이엔씨 지분 24%,4%를 각각 보유중이다. ukelvin@seoul.co.kr ■ 그룹 분가-지분율 따라 재산분배… ‘잡음’ 없어 LG는 1999년 LG화재를 시작으로 LG벤처투자, 아워홈,LS,GS그룹 등을 차례로 분리했다. 재산배분을 둘러싸고 ‘집안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예사이지만 유독 LG만은 큰 잡음없이 대규모 분가를 마무리지었다. 이는 LG가 엄격한 유교집안으로 집안 어른이 정한 기준을 자손들이 철저히 지키는데다 수십년간 그룹에서 친족들의 지분을 관리해온 덕분이다. 분가에 앞서 일부 친족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그동안 정리해 놓은 지분율을 근거 자료로 제시하기 때문에 큰 불만을 가질 수 없는 구조다. 계열분리의 신호탄이 된 LG화재는 정부의 ‘5대 그룹 생명보험사 진출 금지’ 정책에 맞물려 분리됐다. 한때 대한생명 인수전에 뛰어들어 손해보험-생명보험을 영위하려했던 LG는 생명보험사업이 좌절되면서 LG화재를 독립시키려 했고 집안회의에서 고 구철회씨 가족들이 화재를 원해 순조롭게 분가가 이뤄졌다. LG벤처투자를 갖고 떠난 구자두씨 가족은 얼핏 ‘재산’이 너무 적어 보이지만 윗대인 구철회씨 가족에 비해 가족수가 적기 때문에 지분도 그만큼 적었다. 아워홈의 구자학씨는 한때 삼성에서 호텔신라 사장을 지내는 등 유통·서비스쪽에 관심이 많아 이견없이 분배가 이뤄졌다. 2003년 말 분리된 LS그룹은 구태회·평회·두회씨가 LG의 창업공신인데다 자녀들도 적지 않아 상황이 복잡했다. 게다가 LS전선은 허씨 가문의 고 허준구씨가 회장을 지내는 등 오랫동안 허씨들이 경영을 맡아 애착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역시 ‘태평두씨’ 가족이 갖고 있던 지분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회사를 묶어 주면서 마무리됐다. LG그룹의 가장 큰 지각변동은 허씨들이 갖고 간 GS그룹의 분리다.GS칼텍스,GS건설,GS홈쇼핑,GS리테일을 주축으로 한 GS그룹은 자산이 18조 7200억원이나 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창업주 형제들이나 구자경 명예회장 형제에 비해 허씨들의 재산이 지나치게 많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LG관계자는 “고 허만정씨가 처음 사업자금을 댄 이후에도 허씨들은 계속 자금을 출자했고 그 비율은 일찌감치 65대 35로 정해져 있었다.”고 밝혔다. 지분비율은 정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업을 가져갈지에 대해서는 잠시 의견이 엇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측은 전선사업에 마음이 있었고 지금은 형편이 어려워진 금융관련 계열사도 내심 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구씨측의 어른인 구자경 명예회장과 허씨측의 대표인 고 허준구 회장이 이미 수년전에 정해 놓은 ‘분리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2002년 허 회장이 타계했지만 두 집안의 자손들은 선대의 ‘약속’을 변함없이 이어갔다. ukelvin@seoul.co.kr ■ 필립스 “具·許씨 동업에 감명 LCD합작” 1999년 9월 LG전자에 16억 5000만달러를 투자하며 LCD합작사를 설립키로 한 네덜란드 필립스사의 크리스털리 전 회장은 합작파트너로 LG를 택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 투자를 결정하면서 파트너를 찾기 위해 거의 모든 것을 체크했는데 LG그룹의 구씨와 허씨가 50년 이상 동업자로서 아무런 잡음없이 경영하는 걸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LG는 외국기업과의 합작이 이미 13건이나 되는데 이는 LG가 양보와 타협, 신뢰를 바탕으로 한 기업이란 것을 말해 준다.” 구본무 회장의 화답도 이에 못지않았다.“동업은 결혼과 같은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전혀 다른 남녀가 함께 사는 것처럼 동업자도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양보와 타협을 잃지 않아야 한다.” LG의 58년 역사에는 숱한 합작사가 등장한다. 합작사만 한때 20개에 달할 정도였다.60년대에 이미 66년 미국 칼텍스사와 합작으로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를 설립했고,68년에는 미국 콘티넨털카본사와 합작으로 한국콘티넨탈카본을 세웠다.70년에는 일본 알프스전기와 합작으로 금성알프스전자를,71년에는 일본 포스타전기와 합작으로 금성포스타를 설립했다. 독일 지멘스, 일본 후지전기와 3사 합작으로 금성통신을 설립했고 74년에는 일본 NEC와 손잡고 금성전기를 세웠다. 80년대 들어서도 합작은 계속됐는데 84년 다우코닝과 공동출자로 럭키DC실리콘을 설립했고 84년에는 제어시스템 메이커인 미국 하니웰과 공동으로 금성하니웰을 만들었다. 이후 동업관계가 끝났지만 87년 미국 EDS와 합작으로 만든 STM(현 LG CNS),96년 IBM과 맞잡은 LGIBM도 합작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현재 남아있는 LG계열사 가운데도 합작사가 적지 않다. 히타치LG는 히타치와, LG MMA는 일본 스미토모상사와 합작한 회사다.LG텔레콤은 영국의 BT가 합작투자했고 필립스와는 LG필립스LCD에 이어 LG필립스디스플레이를 합작했다. 지난해에는 일본 오키사와 함께 루셈을 만들었고 올 상반기중으로 LG전자와 캐나다 노텔사의 합작사인 ‘LG-노텔’이 출범할 예정이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빚탈출 희망찾기-김관기 채무상담실] 죽은 남편의 빚 어떻게…

    Q외아들인 남편은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벤처회사를 창립해 정부 인증을 받고 대출을 받아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적자에 2003년에 문을 닫고 법인 보증채무 5억원이 남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친가, 처가 쪽의 친척과 친구, 선후배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빌려 사업을 하다가 저와 7세 딸만 남기고 죽었습니다. 빚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고, 그중 7000만원은 제가 보증을 섰습니다. 집 한 채 가진 시부모에게 장례가 끝나기도 전에 빚 독촉이 온답니다. 생계비 벌기도 어려운데 빚이라니 한숨만 나옵니다. 벗어날 방법이 있는가요. 시부모님은 괜찮은가요. -고가연(36·가명)- A 민법상 사람이 죽는 순간 재산과 부채가 보통 배우자와 자녀에게 이전됩니다(997조). 그러나 조상의 부채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하면 신분제를 유지하는 것이 되기에 민법은 상속을 받을 것인지를 3개월 이내에 결정할 기회를 줍니다. 어느 것이나 호적등본, 제적등본과 인감증명을 첨부해 법원에 신고하고 상속을 포기하면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으로 되고, 한정승인을 하면 재산을 받은 한도 내에서만 채무를 변제합니다. 채무의 포기는 간편하기는 하지만, 다른 상속인 또는 그 다음 순위의 상속인에게 채무가 넘어가게 돼 관련자 모두가 함께 또는 순차적으로 포기를 해야 하는 불편함이 생길 수 있고 포기기간을 놓치는 상속인이 채무를 뒤집어쓰는 예도 자주 생깁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가연씨 모녀뿐만 아니고 시부모도, 형제도 동시 또는 순차 상속포기를 해야 합니다. 한정승인은 상속채권자에 대한 최고와 공고절차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다음 순위의 상속인을 번거롭게 하지 않는 장점이 있습니다. 즉 제1순위의 상속인만 한정승인을 하면 시부모 등 다른 가족은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어느 경우이든 남편 분의 채무는 상속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연씨의 보증은 남편의 생전 채무와 별개의 채무인지라 이 채무는 남습니다. 이 경우에는 빚잔치와 남은 채무의 집행력 취소를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파산제도로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시부모님이 앞으로 유산을 남기실 가능성이 있다면, 가연씨의 파산은 필수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남편을 대신해 가연씨와 따님이 상속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대습상속이라고 합니다. (파산·개인회생 전문 변호사)
  • 부모 ‘색깔론’이 남녀차별 부른다

    부모 ‘색깔론’이 남녀차별 부른다

    왜 여자 아이들은 분홍색 옷을 입어야 할까? 남자 아이들에게는 왜 짙은색 옷을 입힐까? 여자 아이는 화려하고 예뻐야 하고, 남자아이들은 씩씩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가치관 때문이다. 이런 한쪽으로 치우친 고정관념 때문에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적 사고로 보게 된다. 두살배기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을 만나 색깔과 관련한 편견을 실제로 갖고 있는지 알아봤다. 22개월된 딸 하영이에게 입힐 푸른색 원피스를 사러 재래시장에 간 남지현(29·여)씨는 아동복 전문 매장을 두바퀴나 돌았지만 허사였다. 남씨는 “하영이가 친척 언니에게 옷을 물려 입는 바람에 외출복도 분홍색이나 붉은 계통이 대부분”이라면서 “아무래도 분홍색은 때가 잘 타 얌전하게 행동하라고 이르게 된다.”고 말했다. 남씨는 ‘딸을 씩씩하게 키우고 싶어’ 푸른색 원피스나 청바지를 골라 입히고 싶다고 했다. ●“산부인과 여자 아이는 무조건 분홍색 팔찌” 흔히 분홍색은 여성을 대변하는 색깔로 여겨진다.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난 시각과 몸무게를 적은 분홍색 팔찌를 채워준다. 여자라고 따로 쓸 필요가 없다. 19개월된 딸 주영이를 둔 조은경(29·여)씨는 “산달이 다가오니까 산부인과에서 출산용품은 분홍색으로 준비하라고 넌지시 귀띔해 줬다.”고 말했다. 주영이도 출생 직후 분홍색 팔찌가 채워졌다. 남자 아이 팔찌의 색깔은 파란색이다. 걸음마를 익히자 백화점 의류매장 직원도 분홍색 계통을 권했다. 조씨는 “주영이가 자주 입는 옷은 분홍색과 노란색, 빨간색 순”이라면서 “요즘에는 모녀가 함께 레이스가 달린 옷을 입기도 한다.”며 웃었다. 여자 아이가 자라면서 분홍색을 선호하게 되는 것도 이같은 ‘암묵적인’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옷이 화려하면 아들이 돋보이지 않는다?” 남자 아이들은 어떨까. 여자의 색으로 여겨지는 분홍색은 당연히 멀리한다. 심현수(35·여)씨도 17개월 된 아들 민균이에게 푸른색 옷을 즐겨 입힌다. 심씨는 “굳이 분홍색 옷을 입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딸을 둔 어머니들이 “튀어 보이게 하려고” 화려한 옷을 입힌다고 답한 반면 심씨는 “옷이 화려하면 아이가 돋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은 심씨와 달랐다. 유아복 업체인 ‘해피랜드’의 오현경 디자인실장은 “패션과 외모에 남성이 관심을 갖는 메트로섹슈얼 열풍에 맞춰 남자 아이의 옷도 주황색·보라색 등 과감한 색상을 많이 응용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오해와 편견을 넘어 고정관념 허물기 사단법인 문화세상 이프토피아도 고정관념을 깨자며 3년째 ‘분홍색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재단한 분홍색의 수동성을 거부하고, 대신 ‘화해와 상생’의 상징으로 분홍색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매년 10월이면 ‘분홍파워의 천지개벽-대한민국 여성축제’도 연다. 이들은 “푸른색이 남성성을 상징, 하늘과 평화의 색으로 대접받아온 기존 관념을 깨뜨려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성 정체성이 생기지 않은 시기에서부터 특정한 색을 접하는 아이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게 돼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여자 아이에게 분홍색을 강조하는 것이나 남자 아이에게 분홍색을 금기시하는 것 모두 비교육적이라는 것이다. 사단법인 공동육아 운영위원장 양용준씨는 “자녀를 어릴 때부터 부모의 시선으로 보고, 고정적인 패턴으로 기르면 다양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성 정체성이 형성되는 5∼7세 전까지 자녀가 의도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딸에게 운동을 시키거나 아들에게 악기를 배우게 하는 것도 바람직한 ‘다양성 교육’의 하나”라면서 “사소하게는 ‘남자도 분홍색을 입을 수 있고 머리를 기를 수 있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터득하게 하는 것이 교육적”이라고 말했다. 경기대 이부미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색깔이나 언어 형태가 성에 따라 구별되어 있으며, 이같은 경향이 상술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교수는 “아동 의류가 성인복 디자인을 따라 가면서 여자 아이는 예뻐야 한다는 가치를 어른에게 심는다.”면서 “자녀의 소비패턴은 부모가 주도하기 때문에 부모의 의도에 따라 자녀의 선호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선호가 습관이 되면 관념으로 굳어져 남성과 여성의 이분법적인 사고에 익숙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신세대 부모는 자녀의 옷차림에 상대적으로 편견이 적은 편이지만, 사소한 말 한마디도 자녀의 성역할 개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동환 홍희경기자 sunstory@seoul.co.kr
  • 정읍 북면 ‘50년 홀로 고생한 어머니’ 14명 위로

    정읍 북면 ‘50년 홀로 고생한 어머니’ 14명 위로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어떻게 혀. 그런 말 난 못혀. 효도를 주둥이로 하는 감. 당신이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나도 아퍼.” 1일 전북 정읍시 북면초등학교에서는 ‘면민의 날’을 맞아 남편과 사별하고 50년 이상을 홀로 살아온 할머니들을 위로하는 행사가 열렸다. 마을 이장의 추천과 심사를 거쳐 14명의 할머니가 받은 것은 ‘제1회 반 백년 한 세월 상’이었다. 북면은 6·25 당시 인민군의 학살로 유난히 남편과 사별한 미망인이 많다. 시상식장에 엉거주춤 선 어머니 송귀순(87·보림리)씨를 지켜 보는 막내아들 이정삼(56)씨는 그만 눈물이 그렁거린다.“내가 세 살 때니께 기억도 못혀. 아직도 어머니에게 아버지 이야기를 못한당께. 눈물만 팍 쏟으신당께.”이씨도 흰 머리가 수북하지만 어머니 앞에선 그저 막내아들일 뿐이다.“아야 거서 그렇고 있지 말고 뭐라도 먹으래이.”시상식이 이어지며 스피커가 쩌렁쩌렁 울리는데도 아들을 걱정하는 송씨의 잔소리가 계속된다. 상을 받은 할머니들의 평균 나이는 82.7세. 가장 나이가 많은 신순녀(94·남산리) 할머니는 아들 내외가 안겨준 꽃다발을 안고는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할머니 대부분이 초등학교 문턱도 넘지 못했다. 고향인 전남 무안을 떠나 정읍에서 남의 집 더부살이로 살았다는 신씨는 “내는 못 배워도 애들은 쑥 뜯어다 먹이며 가르쳤제. 새끼들 안 굶겨 죽이려고 힘께 남편 생각도 못했제.”라며 순박한 웃음을 지었다. 어머니 나현숙(78·승부리)씨의 수상을 지켜보던 아들 유창범(55·대전)씨도 눈시울을 붉힌다. 전쟁이 발발하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 유씨는 어머니 뱃속에 있었다. 공무원인 유씨는 “애비없는 자식이라는 손가락질이라도 받을까 어머니에게 오지게 맞았다.”면서 “어머니는 강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딸이라고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도 딸도 모두 할머니가 됐지만, 딸은 어머니가 밟아 온 길을 걸어갈 자신이 없다고 고백한다. 최양순(76)씨의 둘째딸 이유순(60·마정리)씨는 “어릴 때 어머니가 새벽에 머리라도 매만지면 ‘오메 시집가려나 부다.’하고 겁나게 눈물을 쏟았제.”라고 추억했다. 이씨는 “나는 어머니처럼 그렇게 살 수 있다고 장담을 못한다.”면서 어머니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시상식은 할머니의 이름을 한 분씩 호명한 뒤 “50년을 한 세월로 대나무처럼 곧은 마음, 소나무처럼 추상같은 마음으로….”라고 상패의 문구를 읽는 순으로 진행됐다. 북면 사람들은 이 상이 해가 거듭될수록 수상자가 줄어들어 ‘시한부 상’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김기문(52) 면장은 “열녀상이 아니라,50년 이상 홀로 고생하신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에게 드리는 상”이라면서 “단 한 분이 남을 때까지 매년 ‘면민의 날’에 시상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글 정읍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책꽂이]

    |경제·실용| ●울지마, 다빈아(손영철 지음, 들마루 펴냄)생후 1개월된 딸 아이를 혼자 키우게 된 다빈 아빠가 인터넷 카페에서 선배엄마들의 도움으로 터득한 육아 체험을 담은 일기. 강희철 연세대 의대 교수의 조언을 함께 실었다.9000원.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안철수 외 지음, 스테디북 펴냄)IT분야에서 프랜차이즈 사업까지 저마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위기’를 ‘기회’로 바꾼 한국의 CEO 21명이 들려주는 성공 노하우.1만원. ●유쾌하게 나이먹는 건강상식(시오자와 유키토 지음, 한혜란 옮김, 나무의꿈 펴냄)평균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제2의 삶을 준비해야 하는 중장년을 위한 건강 실용서. 건강한 치아 유지와 노화를 막는 섹스, 치매 예방 스터디, 식생활 포인트 등 알아두면 유용한 상식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9800원. ●프랭클린, 위대한 생애(벤저민 프랭클린 지음, 최종률 옮김, 지훈 펴냄)대표적인 성공 신화의 주인공인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30년 전 ‘후회없는 생애’(삼성문화문고)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던 원고를 새롭게 번역했다.1만원. |유아·아동| ●원숭이 사세요(새나 스탠리 지음, 윤정숙 옮김, 느림보 펴냄) 아프리카 콩고가 배경이어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덤으로 맛볼 수 있는 그림책. 아프리카의 장날 풍경, 물물교환 등 원시경제의 모습을 보면서 먼 나라의 이색풍물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색다른 책읽기.5세 이상.8500원. ●베개아기(김현주 지음, 깊은책속옹달샘 펴냄) 어린 아이의 물건에 대한 집착심리와 성장통을 묘사한 애니메이션 원작 그림책. 담요, 베개, 인형 따위에 생명체 대하듯 강한 집착을 보이는 아이의 이야기. 사소한 것도 보물처럼 여기는 아이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어 부모가 함께 읽어도 좋을 듯.4∼7세.9000원. |초등·청소년| ●어린이 식물백과(이명호 지음, 베텔스만 펴냄) 초등학생들이 꼭 알아야 할 614종의 식물을 생생한 컬러사진으로 보여주는 백과사전. 식물의 특징, 분류, 구조, 번식 등 다양한 해설이 덧붙었다. 초등 교과과정에 나오는 70종의 식물을 별도 화보집에 담았다. 초등생.2만4000원. ●나무의사 큰 손 할아버지(우종영 지음, 사계절 펴냄) 나무의 생태를 보여주는 교양서이면서도 생태지식을 평면적으로 나열하지 않아서 좋다.‘큰 손 할아버지’가 어린 손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나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덕분에 책은 창작동화처럼 재미있다. 초등2년 이상.9500원.
  • [월드이슈-유럽 ‘다빈치 광풍’] ‘다빈치 투어’까지… 바티칸 속수무책

    [월드이슈-유럽 ‘다빈치 광풍’] ‘다빈치 투어’까지… 바티칸 속수무책

    미국 작가 댄 브라운의 역사스릴러 소설 ‘다빈치 코드’를 둘러싼 논란의 수위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내용의 진위를 둘러싸고 성서 역사가들이 한바탕 논쟁을 벌인 데 이어 표절 논란에까지 휩싸인 이 소설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지금까지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자제해 온 가톨릭 교계가 침묵을 깨고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논쟁에 유력한 차기 교황 후보들까지 가세하고 있어 파장이 커지고 있다. |파리 함혜리특파원| 바티칸이 이 소설에 대해 공식 반박 입장을 밝힌 가운데 교계에선 강경 대응과 민감하게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가톨릭 교계의 논란 지난 17일 이탈리아 제노바 시청 강당에서는 제노바교구 주재로 다빈치 코드 공개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회에는 강당 좌석과 복도·창문 밖까지 수백명이 운집해 이 소설에 대한 높은 관심을 단적으로 입증했다.“예수가 진짜 결혼을 했습니까?”“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기를 가졌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교회가 여성의 역할을 무시해 왔습니까?” 질문공세를 받으며 이날 토론회를 주재한 사람은 제노바 교구 대주교이자 차기 교황으로 유력시 되고 있는 타르치시오 베르토네(70) 추기경. 지난 15일 라디오 바티칸을 통해 이 책을 ‘수치스러운 거짓말’‘거짓의 성’으로 비유하며 “읽지도, 사지도 말 것”을 주문한 인물이다. 베르토네 추기경은 이날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왜곡된 이야기를 역사의 진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스럽고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소설의 파장을 경고하기에는 너무 늦은감이 있지만 우리 신자들, 특히 젊은이들을 비판적 경각심으로 무장시키고 싶다.”면서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 논박하는 목소리를 낸데 교계 내부에서 많은 반향이 있었다.”고 말했다. 베르토네 추기경이 다빈치 코드에 대한 신도들의 ‘보이콧’을 주문한 것과 달리 상파울루의 호세 마리아 핀헤이로 주교는 이 책을 금서(禁書)로 여길 것까지 없다는 입장이다. 역시 차기 교황 후보로 주목되고 있는 핀헤이로 주교는 베르토네 추기경의 목소리를 교황청의 공식적인 목소리가 아님을 강조하면서 책을 읽더라도 사리분별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그는 “사람들이 소설 속에 담긴 사실과 허구적 요소를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갖도록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며 “책을 읽지 못하게 할 것까지는 없다.”고 주장했다. 가톨릭 교계에서 이 책의 출간 2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공식대응에 나선 것은 이 소설의 놀라운 성공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교황청은 사실과 허구가 마구 뒤섞여 혼동을 초래하고, 특히 로마 교황청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성서 대신 ‘다빈치 코드’를 기독교 역사 안내서로 사용하는 것에 경악해 왔다. ●표절 시비와 광고 패러디 논란 레바논에선 이 책에 대한 판매를 금지했으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향인 이탈리아 피렌체 인근 빈치시에서는 성서의 진실에 이의를 제기한 소설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모의재판이 예술전문가와 가톨릭 성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기도 했다. 또 프랑스의 청바지 제조회사 ‘마리테 프랑소와 저버’는 소설에서 코드 분석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는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을 패러디한 광고물을 제작했다가 법원의 게시 금지령을 받았다. 여자 예수를 등장시키고 예수의 제자 2명이 청바지를 입고 가슴을 드러낸 채 서로 안고 있는 이 광고물에 대해 법원은 “믿음에 대한 근거없는 공격행위”라며 신성성 훼손을 내세우며 소송을 제기한 프랑스 가톨릭교회의 손을 들어줬다. 표절 논란도 거세다. 영국 작가 마이클 바이젠트와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은 자신들이 지난 1982년 발간한 논픽션 ‘성혈과 성배’의 구성을 댄 브라운이 통째로 가져다 사용했다며 다빈치 코드 발행사인 더블데이사와 모회사인 랜덤하우스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수그러들 줄 모르는 인기 이런 논란 속에서도 ‘다빈치 코드’의 위세는 여전하다. 오히려 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새롭게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며 출판사측은 즐거움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해 3월 프랑스어판을 출간해 170만부 판매를 기록한 JC 라테스 출판사의 홍보 담당자 에릭 디빌은 “교황청이 반박을 한 것이 오히려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켜 판매에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다빈치 코드 삽화 제작본 출간,‘천사와 악마’(댄 브라운이 2000년 출간한 책)의 번역 출간과 맞물려 교황청이 훌륭한 홍보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 출판사는 다빈치 코드 덕분에 창사 40년 만에 돈방석에 앉았다. 디빌은 이 책에 소개된 내용의 진위여부에 대해 “단지 소설일 뿐”이라며 “암호해독과 비밀결사, 종교, 추리성 등이 어우러진 데다 소설의 대부분이 파리를 무대로 하고 있어 프랑스 독자들의 반응이 식을 줄 모른다.”고 말했다. 소설의 무대인 유럽은 ‘다빈치 코드’의 인기 덕분에 관광업계도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 소설에 푹 빠진 독자들은 파리에서 런던·스코틀랜드까지 소설 주인공인 로버트 랭던과 소피 뇌브가 성배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에 거쳐간 장소들을 여행하며 소설 속의 무대들을 살피는 즐거움을 맛본다. 미술사·종교 등에 정통한 가이드와 함께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를 찾는 패키지 상품 ‘다빈치 투어’를 통해 소설 속의 미스터리를 풀며 여행한 관광객은 이미 2만여명을 넘는다. 내년에는 영화까지 개봉될 예정이다. 소니픽처스는 310만달러에 판권을 매입, 오는 6월 제작에 들어간다. 론 하워드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톰 행크스와 오드리 토투, 장 르노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lotus@seoul.co.kr ■ ‘흥행 대박’ 원인은 허구와 실제의 환상적 결합 “미래의 소설은 모두 추리소설이 될 것.”한 추리작가의 지적은 다빈치 코드의 ‘흥행’ 성공 요인을 압축한다. 주인공 랭던은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해리슨 포드를 연상시키며 유럽 각국을 오가는 빠른 전개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 이런 통속성을 극적으로 채색한 것이 가톨릭 교계의 음모를 둘러싼 논쟁적인 메시지와 이를 파헤치기 위해 동원된 예술사와 건축사, 종교철학, 기호학 등에 관한 해박한 지식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박힌 것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 딸을 두었으며 이 혈통이 메로빙거 왕조로 이어졌고 교황청이 이를 은폐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해왔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시온수도회 수장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나 ‘최후의 만찬’,‘암굴의 성모’ 등에 여성성과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코드를 숨겨놓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교황의 적통(適統)을 은폐하려 했던 바티칸 비밀결사 ‘오푸스 데이’가 실존하며 현 교황청 대변인 나발로 발스를 비롯, 차기 교황 후보 일부가 이 결사 회원이란 주장은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과 실제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게 한다. 미국에서만 700만부가 팔려나간 것을 비롯, 전세계 44개국에서 변역돼 2500만부가 판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다빈치코드, 진실과 거짓 |파리 함혜리특파원| 작가 댄 브라운은 “주인공 로버트 랭던 등 등장인물을 제외하고 예술과 건축, 밀교의식, 비밀결사에 관한 모든 내용은 역사에 근거하고 있다.”고 했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프랑스의 역사 전문지 ‘이스토리아(Historia)’는 3월호에서 특집으로 ‘다빈치 코드의 해독’을 다루며 내용의 진위를 파헤쳤다. ●템플 기사단 기사단의 역사는 11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소설에서 성배를 보호하는 임무를 띤 것으로 묘사된다. 실제로 1차 십자군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성물들을 소유하며 재물과 권력을 확보했다. 초창기 로마교회와 왕실은 이들 기사단에 우호적이었지만 권력이 커지면서 갈등 관계로 번져 1307년 10월13일 기습 공격을 받고 궤멸했다. ●시온 수도회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을 보호해 귀족혈통(메로빙거 왕조)을 만들었다는 이 수도회는 ‘가톨릭 교리와 전통 보존 연합 기사단’이라는 부속 명칭을 갖고 있다. 사브와지방의 생줄리앙 앙 제느브와시에 등록번호 KM94548로 1956년 6월25일 등록됐다. ●비밀 문서 시온수도회에 관한 문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1975년에 ‘4 LM 1249’라는 번호로 등록되어 있고 열람도 가능하다. 중세당시 기록은 찾기 힘들고 1967년에 정리돼 타이핑된 문서다. 이 문서에 따르면 당시 시온 수도회 회원은 1093명이며 7계급으로 구분돼 있다. 비밀문서는 시온수도회가 템플기사단의 비호세력이라고 주장했다. ●피에르 플랑타르 소설속 소니에르 루브르박물관장의 모티브를 제공한 시온수도회의 마지막 기사단장인 플랑타르는 1920년 3월18일 파리에서 태어난 실제 인물이다.17세에 학교공부를 그만두고 성당에서 생활하며 종교생활에 심취했다. 히틀러 추종자로 극우파 성향의 종교단체 활동을 했다.1942년에 반유대주의를 주장하는 잡지 ‘정복’을 발간했다. lotus@seoul.co.kr
  • ‘금단의 사랑’ 결실

    ‘금지된 사랑’으로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던 여교사와 초등학생 제자가 마침내 결혼한다. 8년 전 시애틀에서 교사 재직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제자와 성관계를 갖다가 아동강간죄로 복역까지 했던 메리 케이 르투어노(43·여)가 제자 빌리 푸알라우(22)와 4월 16일 결혼할 예정이라고 AP통신이 14일 보도했다. 르투어노는 7년 6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지난해 8월 출소했고 푸알라우와의 결혼을 원해 왔다. 둘 사이엔 각각 7세와 6세인 딸들이 있다. 이들 커플은 푸알라우가 12세이던 지난 95년부터 사귀었고 96년부터 성관계를 가졌으나 관계가 들통나 97년 르투어노가 아동강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만나지 못하게 됐다. 르투어노는 96년 당시 4명의 자녀를 둔 어머니였지만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97년 복역 중 딸을 낳았고 6개월 형기를 마치고 풀려났다. 하지만 제자와 만나지 말라는 법원의 명령을 어기고 석방된 뒤 1개월 만인 98년 푸알라우와 차 안에서 또다시 성관계를 갖다 경찰에 적발돼 7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해 10월 교도소에서 둘째 딸을 낳았다. 지난해 출소한 르투어노는 푸알라우와 함께 상호 접촉 금지 명령을 거둬달라고 법원에 청원했고 둘은 다시 만날 수 있게 됐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낙화’ 시인 하늘로 지다

    원로시인 이형기씨가 2일 오전 10시20분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73세. 이 시인은 11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져 치료를 받아왔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동국대 문리대를 졸업한 고인은 1950년 17세에 등단, 한국현대시의 중추로 역할해 왔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낙화)라는 대표적 시구에서 드러나듯 그는 존재론적 고민을 시의 미학으로 승화시킨 작가였다. 7년전 발표한 시집 ‘절벽’에서도 생명의지와 존재의 소멸에 천착한 글쓰기 면모를 보였다. 비평 소설 수필 등 전방위 문학활동을 펼친 그는 투병 중에도 부인의 대필로 시창작을 했을 만큼 작품활동 의지를 꺾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양통신, 서울신문, 대한일보 등의 기자를 거쳐 국제신문 편집국장을 역임하기도 했다.1981년 부산산업대 교수를 시작으로 1987년부터 모교인 동국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1974년 ‘월간문학’ 주간을 지냈고 1994년부터 2년동안 한국시인협회장으로 활동했다. 시집 ‘적막강산’‘심야의 일기예보’‘절벽’, 비평집 ‘감성의 논리’‘한국문학의 반생’ 등을 남겼다. 생전에 한국문학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 대산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서울시 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은숙(68)씨와 딸 여경씨, 사위 김태윤(한국와이어스 대리)씨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에 마련됐다. 발인은 4일 오전 8시. 장례는 이날 오전 9시 서울 도봉구 방학동 성당에서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02)929-4099.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부고]

    ● 학술원 회원 민영규 연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인 역사학자 민영규(閔泳珪) 연세대 명예교수가 1일 오전 11시 숙환으로 별세했다.90세. 1915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고인은 연희전문학교 출신으로 1945년부터 35년동안 연세대 교수를 역임했다.1967년 홍이섭ㆍ백낙준 교수 등과 실학 공개강좌를 마련해 조선 후기 사상사적 흐름을 실학이라는 개념으로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월인석보 영인해제’와 ‘동문유해(同文類解)’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유족으로는 아들 기식(사업)씨와 딸 영지·애내·마나가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영안실 1호, 발인은 3일 오전 10시.(02)392-0299. ● 항일 애국지사 배봉수 선생 일제 강점기 비밀 결사단체를 조직, 항일운동을 펼쳤던 애국지사 배봉수 선생이 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77세. 경남 울산 출신으로 부산 동래중학교 재학 중이던 1944년 5월1일 평소 독서회 활동을 같이 해오던 동료 12명과 함께 비밀결사 순국단을 조직, 선전책을 맡았다. 단원들은 독립군으로 합류하기 위해 만주로 망명하려 했으나, 실행 직전 일본 경찰에 발각돼 모두 체포됐다. 1945년 8월 석방 전까지 미결수 신분으로 부산형무소에서 1년여의 옥고를 치렀고,1993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빈소는 고대 안산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3일 낮 12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이다. ● 원로 연극연출가 강유정씨 원로 연극연출가 강유정(본명 강숙자)씨가 1일 오전 0시 5분 서울 청구 성심병원에서 폐암으로 별세했다.73세. 국내 여성연출계의 대모격인 강씨는 1932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1966년 한국 최초의 여성정극극단인 여인극장을 창단해 이끌어 왔으며,‘마스터 클래스’‘아름다운 여인의 작별’ 등 주로 여성문제를 다룬 100여 편의 작품을 선보였다.1984년 백상예술상 대상,1987년 동아연극상,1993년 한국예총 문화예술대상,2001년 보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임재준(광고디자인회사 근무)씨 등 1남 2녀가 있다. 발인은 3일 오전 10시 마로니에공원에서 연극인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서울대 병원 영안2호실.(02)2072-2011. ●곽영완(서울신문 체육부장)영준(기아자동차 직원)씨 부친상 나은경(나스커뮤니케이션스 대표)씨 시부상 1일 일산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031)908-1599 ●이문희(전 한국일보 주필)씨 별세 효태(현대산업개발 대리)씨 부친상 최종하(한국CVA 지사장)씨 빙부상 3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4일 오전 8시 (02)3410-6915 ●이천세(한국철도공사 고속철도사업단장)씨 부친상 1일 김천의료원, 발인 3일 오전 10시 (054)429-8363 ●신창식(한국은행 경제통계국 과장)씨 부친상 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3일 오전 10시30분 (02)392-1699 ●장웅수(금융감독원 수석조사역)철수(서울아산병원 진단방사선실)운성(자영업)씨 부친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02)3010-2239 ●정남기(현대모비스 부사장)씨 빙부상 31일 안동병원, 발인 4일 오전 8시30분 (054)820-1672 ●원동희(동남개발 대표)태희(메종 〃)미숙(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미현(거제고 교사)씨 부친상 양순권(GM대우 부품물류부 부장)심윤보(부산대 화학과 교수)박종기(대우조선해양 이사)씨 빙부상 31일 부산 남천성당, 발인 2일 오전 10시 (051)622-0241 ●황필규(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국장)씨 부친상 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일 오전 7시30분 (02)3410-6908 ●이번우(정부조달우수제품협회 회장)근우(지우트레이닝 대표)규(엔시스 〃)씨 모친상 김성열(코코모 대표)박상오(성동구 옥수2동 동장)심재현(동화마루 부장)씨 빙모상 1일 서울대병원, 발인 3일 오전 6시 (02)2072-2018 ●이선재(사업)원재(신일교회 부목사)덕재(고려컨설팅 실장)정선(신용회복위원회 직원)정미(동작세무서 직원)씨 부친상 최광호(자영업)정현승(대한송유관공사 Acs사업팀장)씨 빙부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일 오전 9시 (02)3010-2236 ●최철웅(파이낸셜뉴스 광고국)씨 부친상 1일 국립의료원, 발인 3일 오전 5시30분 (02)2262-4813 ●이석기(대한생명 경영기획팀장)복기·홍기(미국 거주)씨 부친상 박영주(광우내장 회장)씨 빙부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일 오전 6시 (02)3010-2238 ●허청욱(약국 경영)철욱·삼욱(사업)관욱(삼성엔지니어링 부장)송욱·태욱·지욱(사업)씨 부친상 노시영(콜롬버스여행사 대표)씨 빙부상 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일 오전 8시 (02)3010-2291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어느 시대에나 나라와 집단을 움직이는 인맥은 있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시절에는 권력 중심의 인맥이 조명을 받았지만, 요즘은 자본을 토대로 형성된 인맥집단이 눈길을 모은다. 지난해 말 단행된 주요 그룹 인사에서 창업자의 2,3세들이 사장이나 임원으로 속속 승진하면서 재계의 ‘가계도’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무관치 않다. 사실 재계의 인맥과 가계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계급간 갈등이 악화되는 현실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발전해 왔듯이 90년대 이후 재벌가문의 인맥도는 정략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의 주요 그룹들이 창업에서부터 2세,3세로 내려오면서 어떻게 가업을 승계해 왔고, 총수와 더불어 대그룹을 일군 주역들이 누구인지를 주 1회씩 연중 기획으로 조명해 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후원자인 메디치가, 근세유럽 최고의 명문가로 알려진 합스부르크왕가, 미국의 케네디·부시가 등 서양에는 그 사회가 인정해 주는 명문가가 있다. 한국에도 수백년 내력의 명문가문이 존재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존재가 미약하다. 대신 일제치하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자본을 축적한 ‘재계 명문가’들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권력이 최우선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금력의 위력이 커질수록 재계 명문가의 위상도 커지고 있다. 재계 명문가를 일군 창업주들은 대부분 좋은 집안 출신도 아니고 고등교육을 받지도 못했지만 대를 내려오면서 후손들은 명실상부한 상류층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한국의 몇 안되는 ‘상류층 클럽’의 최정점에 재벌 2,3세들이 서 있고 또 그 정상에는 삼성가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이 일군 ‘삼성가’는 오늘날 대한민국 재계의 대표 가문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1938년 29세때 자본금 3만원과 은행자금 20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만주에 청과물과 건어물을 수출하고 제분업을 병행하면서 1년 만에 두배의 이익을 거뒀고 이를 토대로 연산 7000석 규모의 ‘조선양조장’을 매입하며 삼성의 기틀을 세웠다. 현재 삼성은 자산규모 92조원으로 공기업인 한국전력에 이어 2위다. 하지만 지난해 자산을 꾸준히 늘려 올 4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가 나면 명실상부한 재계 1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삼성은 지난해 매출 136조원, 세전이익 19조원이라는 경이로운 경영성과를 이뤄냈다. 직접 수출만 527억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2542억달러)의 21%를 차지했다.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한때 120조원을 넘었다가 현재 94조원에 달한다.2위인 LG그룹(36조원)과 비교해 보면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삼성은 또 CJ, 신세계, 한솔, 새한그룹과 연결돼 있고 중앙일보그룹, 보광그룹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신세계 5조 2000억원(21위),CJ 4조 9000억원(23위), 한솔 3조 4000억원(36위), 중앙일보·보광 1조원 등을 더하면 ‘범 삼성가’의 자산은 106조 5000억원에 달한다. ●다양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혼맥 이런 위상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혼맥은 의외로 담백하다. 특히 이건희 회장대로 내려오면서 특별한 집안을 ‘간택’하지 않았다. 이미 재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삼성가로서는 더 이상 혼맥을 통해 뭔가를 기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병철 회장 사후 삼성은 91년 11월 신세계와 전주제지(한솔),93년 6월 제일제당(CJ),95년 7월 제일합섬(새한),99년 중앙일보 등을 독립시키며 세포분열을 거듭했다. 새한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영역에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8명(3남 5녀)이나 되는 자녀를 분가시켰지만 명성만큼 화려한 혼맥은 아니었다. 이맹희씨가 그의 회고록에서도 밝혔듯이 이 회장은 혼사를 통해 권력층과 줄을 잇는 체질이 아니었다. 다만 자유당 시절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역임한 고 홍진기씨 집안과 사돈(이건희 회장)을 맺은 것이나 둘째딸 숙희씨를 LG의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3남인 구자학씨에게 시집보낸 것 정도가 눈에 띈다. ●비운의 장손가, 화려한 부활 장남 이맹희씨는 어릴 적부터 약조가 돼 있던 손영기 전 경기도 지사의 딸 손복남씨와 결혼했다. 한때 17개 계열사 경영을 맡으며 장남의 역할을 다했지만 일찌감치 그룹 경영에서 발을 빼야 했다. 맹희씨의 존재는 항상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묻어둔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 등의 회고록에서 “고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제일모직 등 ‘제일’자 계열과 안국화재(현 삼성화재)를 나에게 넘기기로 했었다.”고 발언,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맹희씨는 현재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살고 있다. 당대에 이루지 못한 맹희씨의 꿈은 지난 2002년 장남인 이재현씨가 CJ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어느 정도 풀렸다. 고려대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은 삼성과 무관한 씨티은행에 공채를 통해 입사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 경리부로 자리를 옮기도록 했다. 그는 이후 93년 잠깐 현재 이재용 상무 자리인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제일제당과 함께 했다. 이 회장은 비록 CJ그룹이 삼성그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 차이가 나지만 삼성가의 장손으로 그 위상이 만만치 않다. 이병철 회장의 부인인 박두을 여사도 2000년 타계하기 직전까지 서울 장충동에서 이 회장과 함께 살았다.87년 이병철 회장 장례식때 영정을 들고 앞장선 사람도 이 회장이었다. CJ그룹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미국에 머물던 이 회장의 누나인 미경씨를 CJ엔터테인먼트,CJ CGV,CJ미디어 및 CJ아메리카 담당 부회장에 임명했다.CJ는 이 회장의 외삼촌 손경식 회장이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새한의 도전과 좌절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인 이영자씨와 연애 결혼한 차남 창희씨는 91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비사건(사카린 불법유통사건)으로 한때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고 67년 삼성이 인수한 새한제지(전주제지) 이사로,68년에는 삼성물산 이사로 일했지만 그룹 경영에서는 한발 비켜서 있었다. 창희씨는 고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와세다대 동문이다. 창희씨 사후 새한은 부인 이영자씨를 회장으로 97년 새 CI를 선포하며 독립그룹으로 발을 내디뎠지만 곧바로 경영위기를 겪고 만다.2000년부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돌입했는데 채권단에 따라 ㈜새한 계열과 새한미디어 계열로 나눠졌다. 새한미디어는 현재 론스타로의 매각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새한은 99년 일본 도레이사와 3대7 합작을 통해 도레이새한을 출범시켰다. 2000년 지분을 채권단에 양도한 이영자 전 회장과 아들인 이재관 전 부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한은 삼성의 분가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몰락하고 말았지만 혼사만큼은 화려했다. 장남 재관씨는 동방그룹 김용대 회장가의 딸인 희정씨와 중매로 결혼했다. 재관씨는 ㈜동방 주식 1만 6000여주를 갖고 있지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재찬씨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인 선희씨, 재원씨는 김일우 서영주정 사장의 딸과 결혼했다. 막내딸인 혜진씨도 조내벽 전 라이프그룹 회장가로 시집갔다. ●글로벌 삼성을 만든 이건희 회장 3남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2대 회장이 된 것은 유교적 전통과 장자승계가 원칙인 한국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70년대에 이미 ‘3남 후계’ 방침을 확정했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장남 맹희는 주위의 권고와 본인 희망대로 그룹 경영을 일부 맡겨 봤지만 6개월도 못가 맡겼던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면서 “창희는 그룹 산하의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복잡한 대조직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알맞은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하고 싶다고 희망해 희망대로 해주었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와세다대 1학년때 중앙매스콤을 맡아보라고 했더니 본인도 좋다고 했는데 조지워싱턴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그룹 경영에 차츰 참여하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기업경영이 하도 고생스러워 중앙일보만 맡았으면 하는 심정이었지만 본인이 하고 싶다면 그대로 놔두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양녕대군, 효령대군 대신 3남인 충녕대군(세종)을 택한 태종의 결단과 닮은 꼴이다. 87년 11월19일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뒤 12일 만인 12월1일 삼성의 2대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7년 만에 삼성의 차원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매출 13조 5000억원과 비교하면 14년 만에 매출이 10배로 늘어났다. 세전이익은 1900억원에서 19조원으로 100배나 늘었다. 원달러 환율이 100원 이상 절상된 올해도 삼성은 매출 140조원, 세전이익 14조 6000억원을 목표로 세웠다. 이 회장의 ‘신경영 전도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최근 이 회장의 ‘17년 경영’을 이렇게 평가했다. “반도체 투자 같은 천문학적인 액수는 보통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한때 잘나갔던 일본 반도체 업체들도 CEO들이 결단을 내리지 못해 투자시기를 놓쳤다. 반면 삼성은 이 회장이 전략을 제시하고 투자를 결정해 줌으로써 강력한 리더십이 생긴다. 계열사 사장들은 회장의 비전 제시를 책임감 있게 충실히 이행하고 구조본은 이 과정에서 정보분석 등 보좌업무를 수행한다. 삼성의 힘은 이같은 ‘3각 경영시스템’에서 나온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이 ‘우리 회장’을 진심으로 따르고 승복하니까 이같은 영향력이 나오는 것이다.” 이 회장과 홍라희 여사의 만남은 부친들끼리 미리 약조가 돼 있는 상태에서 66년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처음 이뤄진 뒤 7개월 뒤인 67년 5월 결혼으로 이어졌다. 홍 여사는 당시로는 큰 키(165㎝)에 미모와 지성을 갖춘 재원으로 이후 한국 재계의 ‘퍼스트레이디’로 자리매김했다. 서울대 미대(응용미술학과) 출신인 홍 여사는 79년 막내 윤형씨를 낳고 난 뒤인 83년 현대미술관회 이사로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67년 삼성으로 시집온 뒤 이건희 회장의 후계구도가 확정된 71년부터는 삼성그룹의 사실상 ‘안방마님’이었지만 서열상으로 엄연히 형님(맹희·창희씨 부인)들이 있고 위로 시누이가 넷(인희·숙희·덕희·순희씨)이나 있어 편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홍 여사는 85년부터 98년까지 친정아버지(고 홍진기씨)가 회장으로 있는 중앙일보 상무로 재직했다.95년 호암미술관장으로 취임한 홍 여사는 96년에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까지 맡았지만 98년 이사장직을 남편인 이 회장에게 돌려줬다. 지난해 4월 현대미술관회 부회장으로 선임됐고 같은 해 11월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 옆에 국내 최고 수준의 미술관인 ‘리움(Leeum)’을 개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해외활동도 활발해 93년부터 CIMAM(국제근현대미술박물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박물관 국제이사회 회원, 영국 테이트갤러리 국제이사회 회원이다. 이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96년 프랑스 문학예술훈장인 ‘코망되르’를 받았고 2003년에는 제57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딸들의 맹활약 삼성가는 딸들의 경영활동이 활발하기로 유명하다.5명의 딸 가운데 덕희(숙명여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다. 장녀인 이인희씨는 경북지방의 대지주였던 조범석가로 시집갔다. 남편인 조운해씨는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원장·이사장 및 병원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도 맏사위 자격으로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일부 갖고 있다. 인희씨는 91년 삼성에서 분리,92년 한솔그룹으로 이름을 바꾸며 새 출발했다. 한때 계열사가 16개에 이르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현재는 8개 계열사로 줄었다. 장남인 조동혁 회장에 이어 현재 그룹 경영은 3남인 조동길 회장이 맡고 있다. 차남인 조동만 전 한솔PCS 회장은 PCS 사업매각 관련 비리로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차녀인 숙희씨는 LG가로 시집을 갔다. 남편인 구자학씨는 해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제일제당, 동양TV 이사, 호텔신라 사장, 중앙개발 사장 등 처가에서도 활발한 경영을 펼쳐 눈길을 끈다. 그는 삼성이 전자사업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본가로 돌아간 뒤 금성사 사장,LG반도체·LG건설 회장 등 굵직한 자리를 맡다 지난 2000년 외식산업인 ‘아워홈’을 갖고 독립했다. 지금도 LG가에서 구자학 회장은 ‘구씨답지 않게 낭만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인물’로 회자된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삽입형 생리대인 ‘탐폰’을 국내 처음으로 내놓는 등 여성적인 섬세함은 ‘LG가’보다는 ‘삼성가’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숙희씨의 아들 본성씨도 한때 삼성 계열사에서 일했다. 딸인 명진씨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아들인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3녀 순희씨는 대학교수와 결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4녀 덕희씨는 삼성가의 고향인 경남 의령의 대지주 이정재씨 집안으로 시집갔다. 마산고와 서울대 상대를 나온 남편 이종기씨는 중앙일보 부회장, 제일제당 부회장을 거쳐 삼성화재 회장까지 지내다 은퇴했다. 그는 지금도 삼성전자 주식 8만주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큰손’이며 동서인 조운해씨와 마찬가지로 에버랜드 주식도 갖고 있다. 삼성가의 딸들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은 5녀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 회장의 시아버지는 4·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삼호무역 회장을 지낸 정상희씨로 남편인 재은씨가 차남이다. 남편인 정재은씨는 경기고·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수학한 엘리트. 삼성항공·삼성종합화학 부회장, 삼성전기 회장, 삼성전자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삼성그룹에서 맹활약하다 분가와 함께 삼성을 떠났고 현재 신세계 고문직을 갖고 있다. 신세계가의 후계자인 정용진 부사장은 미스코리아 출신 고현정씨와 결혼했다가 2003년 이혼했다. ●최고의 사돈감,‘소박한’ 결혼 이건희 회장은 홍 여사와의 사이에서 재용(삼성전자 상무), 부진(호텔신라 상무보), 서현(제일모직 부장), 윤형(학생)씨를 낳았다. 이재용 상무는 경복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마쳤다.91년 삼성전자에 입사했으며 차분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중장기 전략담당인 이 상무는 최근 소니와의 7세대 LCD(액정표시장치)합작사인 ‘S-LCD’의 등기이사로 등재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S-LCD는 삼성과 소니가 ‘명운’을 걸고 시작한 사업. 차기 CEO로 꼽히는 구타라기 겐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대표를 이사로 내세운 소니는 삼성측에 이 상무의 이사 등재를 특별히 부탁했다. 이 상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첨단기술에 관심이 많아 혼자서도 사업장을 둘러보고 관련 전문가들에게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등 열심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평이다. 이 상무는 98년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인 세령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당시 ‘미원-미풍 전쟁’을 벌였던 삼성과 대상이 사돈을 맺었다는 점과 연세대(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었던 세령씨의 빠른 결혼, 영호남 대표기업의 혼사 등이 화제를 모았었다. 임씨는 삼성가 며느리라는 지위 외에도 ㈜대상 주식 10.22%를 보유하고 있는 등 만만치 않은 재력을 자랑한다. 세령씨의 서문여고 동창들에 따르면 학창시절부터 말수 없이 조용한 데다 미모를 갖춰 일찌감치 ‘최고의 신부감’으로 꼽혔다고 한다. 지난해 초 호텔신라 상무보로 승진한 부진씨는 연세대 아동학과 출신으로 99년 삼성 계열사의 평범한 회사원 임우재씨와 결혼했다. 임씨는 현재 삼성전자 소속으로 미국 유학중이다. 미국 뉴욕의 패션전문학교 파슨스 출신인 둘째딸 이서현 제일모직 부장은 2000년 동아일보 사주인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재열씨와 결혼했다. 재열씨는 지난해 초 제일모직 상무로 승진했다. 아직 미혼인 막내 윤형씨의 배필이 누가될지 벌써부터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화여대 불문과 98학번인 윤형씨는 지난해 싸이월드에 개설한 미니홈피가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었다. 당시 윤형씨는 재벌가의 딸답지 않는 소탈하고 귀여운 글을 많이 남겨 ‘삼성가’에 대한 세인들의 궁금증을 어느정도 풀어줬다. 지금은 활동이 중단됐지만 ‘다음’의 윤형씨 팬카페(이뿌니 윤형이네) 회원수가 1만 2000여명이 넘을 정도로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씨가와 홍씨가 LG가 구씨-허씨의 ‘합작품’이라면 삼성은 이씨와 홍씨가 함께 이끌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 홍진기 회장의 장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최근 각을 세워왔던 노무현 정부의 주미대사로 내정됨에 따라 현 정권과 중앙일보, 삼성가로 이어지는 관계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고 이병철 회장과 고 홍 회장의 인연은 4·19 직후 홍 회장이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 이 회장이 면회를 가면서 시작됐다. 전 국무총리 신현확씨의 소개로 이뤄졌는데 신현확씨도 이후 삼성물산 회장까지 지내며 삼성과 돈독한 인연을 유지했다.87년 이병철 회장 사후 이건희 부회장을 2대 회장으로 추대한 회의도 신현확씨가 주재했다. 홍 회장은 65년 라디오서울(동양방송 전신) 개국 4개월 뒤 경영을 맡았는데 80년 신군부에 동양방송을 ‘강탈’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의 중앙일보를 일궈냈다. 홍 회장이 삼성그룹에서 직접 경영한 것은 중앙일보(66∼67년,68∼86년)밖에 없지만 그가 삼성에 끼친 영향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다. 삼성의 언론사업에는 비화가 있다.‘호암자전’과 ‘삼성 60년사’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은 60년대 초 정계 투신을 결심했었다. 기업가의 사회적 공헌이 전적으로 무시되고 오히려 ‘부정축재자’,‘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은 현실(한비의 국가 헌납 등)에 환멸을 느낀 이 회장이 직접 정치를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1년간의 고심 끝에 정치보다는 언론사업을 택했다. 이른바 ‘정권은 유한하지만 언론은 무한하다.’는 세간의 ‘이치’를 일찌감치 간파한 셈이다. 홍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타계 직전인 86년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이 회장은 조사를 통해 “당신은 내 일생을 통해 제일 많은 시간을 접촉한 평생의 동지요, 삼성을 이끌어 온 같은 임원이요, 사업의 반려자였고, 가정적으로는 나의 사돈이었다.”며 진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관·언·재의 홍씨 4형제 홍씨 가문은 네 아들을 뒀는데 하나같이 훤칠한 용모에 좋은 머리를 갖고 있다. 주미대사로 내정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미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의 엘리트로 30대(39세)에 세계은행(IBRD)의 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등 정부쪽 일도 수행했다. 홍 회장은 삼성코닝 상무·부사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뛰다 99년 중앙일보의 계열분리를 계기로 중앙일보 회장에 취임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에 올라 국제사회에도 그 이름을 알렸다. 홍 회장의 장인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고 신직수씨다. 사시 18회인 둘째 홍석조 인천지검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서울지검 남부지청장(현 남부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홍 지검장은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홍 지검장의 부인은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동생 양기식씨의 딸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은 86년 미 노스웨스턴대 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삼성코닝 이사로 입사했다.95년 삼성전관(현 삼성SDI) 상무로 이동, 기획홍보팀장을 거쳐 2002년 부사장(경영기획팀장)으로 승진했다.‘로열 패밀리’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을 정도로 자상한 면모를 갖고 있다. 선친때부터 살아 온 서울 성북동 집을 지키고 있다. 4남인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회장으로 승진, 오너 경영을 본격화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홍 회장은 79년 제13회 외무고시에 합격, 외무부 의전과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홍 회장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95년 외무부 기획조사과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홍 회장은 보광 상무이사로 경영활동에 뛰어들었다. 제8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 대한스키협회 부회장, 한국광고업협회 부회장, 서울대 기성회 회장 등 외부활동도 활발하다. 보광그룹은 아직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편의점인 보광훼미리마트, 자판기 유통업체인 휘닉스벤딩서비스, 보광창업투자,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문화상품권 발행사인 한국문화진흥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PDP(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 부품업체인 휘닉스PDE, 반도체 관련 업체인 휘닉스디지탈테크, 반도체패키지 제조업체인 STS반도체통신 등 전자 계열사들은 사돈기업인 삼성전자, 삼성SDI 등과 거래가 활발하다. 특히 지난해 코스닥에 등록된 휘닉스PDE는 홍 회장이 13.89%, 홍석조 인천지검장,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 홍라영씨가 나란히 10.89%를 보유해 눈길을 끈다. 홍씨가의 주력은 중앙일보 그룹이지만 실제 ‘자금줄’은 보광그룹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보광이 주요그룹으로 성장한다면 정·관계, 언론계를 주름잡은 이 가문이 재계에서도 능력을 검증받게 된다. 막내인 홍라영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둘째아들인 철수씨와 결혼했다. 노 전 총리의 장남 경수씨는 현대산업개발 정세영 명예회장의 큰딸 숙영씨, 차녀 혜경씨는 ㈜풍산 류진 회장과 결혼했다. 이대 불문과, 미국 뉴욕대 예술경영학 석사 출신인 라영씨는 95년 삼성문화재단 기획실로 입사, 현재 삼성미술관 부관장직과 한국박물관협의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ukelvin@seoul.co.kr ■ 이병철 회장의 경영어록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잘 모르는 경우에는 가리지 말고 물어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2∼3년이 지나면 물어보는 횟수가 차츰 줄어들 것이 아니겠는가. 나 역시 혼자 삼성 전체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과거 오랫동안의 경험을 살려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1983년 6월 반도체회의) ●“인재제일, 인간본위는 내가 오랫동안 신조로 실천해온 삼성의 경영이념이자 경영의 지주이다. 기업가는 인재양성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인재양성에 대한 기업가의 기대와 정성이 사원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에 전달되어 있는 한 그 기업은 무한한 번영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1982년 10월 기고문) ●“사람을 관찰해 보면 세 부류가 있다. 첫째 어려운 일은 안 하고 쉬운 일만 하며 제 권위만 찾아 남만 부리는 사람, 둘째 얘기를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 셋째 알아듣긴 해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1982년 9월 사장단 오찬회의) ●“모든 설비투자계획에 있어서 5년 정도만 내다보고 세우지 말고 10년 이상 50년 정도의 장기 안목 위에서 세워야 한다.”(1977년 6월 삼성조선 건설현장) ●“미국에서는 사람의 후천적 교육에 치중하고 소질은 별로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선천적 소질 내지는 능력에 60%를 두고 교육에 40%를 둔다. 사람은 노력 여하에 따라서 달라진다. 하지만 아무나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은 따로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1976년 6월 ‘재계회고’) ●“일이 잘돼 나갈 때 오히려 다가올 불행을 각오해야 한다. 기업가도 뜻하지 않은 좌절을 겪어본 기업가가 좌절을 모르고 자라난 기업가보다 훨씬 더 강인한 기업경영 능력을 갖고 있다.”(1975년 9월 ‘최고 경영자와의 대화’) ■ 이건희회장의 경영담론 ●“그동안은 세계의 일류 기업들로부터 기술을 빌리고 경영을 배우면서 성장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어느 기업도 우리에게 기술을 빌려 주거나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기술 개발은 물론 경영 시스템 하나하나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자신과의 외로운 경쟁을 해야 한다.”(2005년 1월3일 신년사)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 경영진들이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너무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머리를 쓰는 하이테크산업밖에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반도체에서 시기를 놓치면 기회손실이 큰 만큼 선점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2004년 12월 반도체 30년 기념식) ●“4∼5위에서 2∼3위로 가는 것하고 2∼3위에서 1위로 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2003년 11월 휴대전화사업 격려 자리에서) ●“행정규제, 권위의식이 없어지지 않으면 21세기에 한국이 일류 국가로 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1995년 4월 중국 베이징 특파원 오찬간담회) ●“선친이 장사하는 것을 보며 세살 때부터 주판을 갖고 놀았다. 정치보다 장사를 잘 알고 거기에 맞는 사람으로 키워졌다. 난 양복과 잠옷만 있고 중간 옷이 없다. 잠옷 입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 잠옷을 입고 정치할 수는 없지 않으냐.”(94년 10월 마이클 헤슬타인 영국 상공부 장관과 만찬자리에서 정치 참여에 대해) ●“변하는 것이 일류로 가는 기초다. 앞으로 5년이면 회장 취임 10년인데 10년 해서 안 된다면 내가 그만두겠다. 자기부터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93년 6월 신경영 선포)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25일 출범한 ‘최승희 춤연구회’ 김백봉 이사장

    “최승희 선생님은 항상 조국을 생각했어요. 또 무궁화가 있기에 춤을 출 수 있는 것이라며 조국 사랑을 늘 강조하셨지요.” 원로 무용가 김백봉(77)씨. 그는 전설적인 무용가로 알려진 최승희의 수제자이면서 동서지간이다.24일 저녁 김씨는 경희대에서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최승희 춤 연구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연구회 이사장직을 맡은 그는 “해외에서 활동 중인 최 선생의 제자들과 만나 한국무용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며 ‘최승희의 춤과 삶’을 연구할 것임을 피력했다. “최승희 선생님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무용가였으며 한국 무용계의 씨앗이 된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월북 이후 선생님의 삶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무용가로서 남긴 업적은 대단하지만 인간적인 조명은 잘 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스승의 춤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고 하자 그는 “매우 아름답고 철저히 객석과 호흡하는 무용가였다.”면서 “오사카나 도쿄에서 공연할 때 대학생들이 환호를 지르며 기립박수를 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 선생은 ‘평생 하루에 2시간씩만 연습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말씀을 격언처럼 하셨다.”면서 “새벽 4,5시에 일어나 작품연습에 몰두할 정도로 춤을 사랑했다.”고 회고했다. “스승님은 항상 단발머리였죠. 머리핀 두 개만 꽂으면 머리 미용은 끝났습니다. 제가 머리핀을 자주 꽂아 드렸지요. 또 선생님은 제가 몸이 아프면 꼭 안아주셨습니다. 자신보다 항상 남을 배려하는 자세로 삶을 사셨지요.” 1911년 서울에서 태어난 최승희는 국내뿐만 아니라 파리와 뉴욕 등에서도 활발히 공연했다.1946년 월북한 최승희는 국립최승희무용연구소를 개설해 활동하다가 1967년 숙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씨는 13살 나이에 일본 도쿄에 있는 최승희를 찾아 무용에 입문,10여년 동안 제자로 활동했다. 최승희의 남편은 1920년대 유명한 문필가였던 안막(본명 안필승). 김씨는 17세때 안막의 동생인 안제승과 결혼했다. 해방후 김백봉 부부는 최승희 부부와 함께 월북했다가 6·25전쟁이 발발하자 아들을 데리고 월남했다. 김씨의 두 딸 안병헌·안병주씨와 세 손녀도 춤을 전공하고 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시네마 천국]로맨틱 영화 ‘노트북’

    ‘노트북’(The Notebook·26일 개봉)은 사랑의 나이를 귀엣말처럼 속삭여주는 로맨틱 영화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청춘에 나눴던 벼락 같은 사랑에서, 생의 끝자락에 반추해보는 깊고 적요한 사랑까지. 주제어 ‘사랑’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온도와 농도를 달리 하며 극을 관통하는, 모처럼 사려깊은 할리우드산 드라마다. 17세의 부잣집 딸 엘리(레이첼 맥애덤스)와 시골 목수 노아(라이언 고슬링)는 순식간에 사랑에 빠지지만, 집안의 반대로 헤어진다. 7년이 흐른 뒤 결혼을 앞둔 엘리는 우연히 신문광고에서 노아의 소식을 접하고 그를 찾아온다. 첫사랑을 한순간도 잊지 못한 노아, 미래를 보장해줄 능력있는 남자와 이미 약혼한 엘리는 현실의 완강한 벽 앞에서 다시 좌절한다. 아련한 회고담의 얼개로 살을 붙여가는 사랑이야기다. 치매로 기억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노파(지나 롤랜즈)와, 매일같이 그녀를 찾아와 소설을 읽어주는 노인(제임스 가너)을 통해 한편의 러브스토리가 화면에서 재구성되는 식이다. 웬만큼 눈치있는 관객이라면 두사람이 엘리-노아 커플임을 꿰맞추는 건 시간문제. 따사로운 자연광선이 스민 고즈넉한 사랑이야기를 기다려온 관객, 특히 중년관객들에게 맞춤일 듯하다. 잔잔한 감동으로 기억되는 영화 ‘병 속에 담긴 편지’의 원작자 니컬러스 스파크스의 동명소설이 원작.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부고]

    ● 예수교장로회 박정식 前총회장 제85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총회장을 지낸 박정식 목사가 8일 오후 3시25분 전남 순천 성가롤로병원에서 지병으로 타계했다.64세. 장례는 12일 오전 10시 순천제일교회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으로 치러지며, 시신은 고인의 유지에 따라 전남대 병원에 기증된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희옥 씨와 딸 미현, 미진, 미선씨 3녀.(061)725-5910. ● 천주교 서울대교구 김몽은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은퇴 사제 김몽은(요한) 신부가 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77세. 김 신부는 1961년 프랑스 느베르 신학대학을 졸업한 뒤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한국종교인평화회의 회장과 가톨릭종교문화연구원 초대 이사장 등을 지냈다. 장례는 10일 오전 10시 주교좌 명동성당 대성당에서 열린다. 빈소는 명동성당 지하성당이며 장지는 용인 공원묘지내 성직자 묘역.(02)727-2023. ●고영철·영환(재미 의사)영헌(자영업)영관(경희의료원 응급의학과장)씨 모친상 마원중(전 영등포초등학교 교장)이석우(경희대 중앙박물관장)씨 빙모상 9일 경희의료원, 발인 11일 오전 10시 (02)958-9549 ●조대영(조대영세무사사무소 대표)씨 별세 상준(〃 사무장)씨 부친상 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7시 (02)3010-2267 ●윤영표(인천국제공항공사 홍보실장)씨 모친상 9일 일산 국립암센터, 발인 11일 오전 6시 (031)920-0301 ●조전문(남양주시청 직원)전석(그린토피아건설 차장)전수(우진ACT 해외사업부 과장)씨 부친상 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1일 오전 8시 (02)3010-2294 ●차수련(동국대 경영대학장)씨 별세 8일 고양시 일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31)902-5499 ●박원서(국제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씨 모친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11시 (02)3410-6918 ●윤석천(한국기술교육대 교수)석재(미디어포인트 대표)씨 모친상 최성국(그린화재 감사)씨 빙모상 8일 강남 삼성의료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3410-6919 ●박영기(한국정보기술연구원장)흥기(감곡교회 목사)씨 모친상 9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1일 오전 6시30분 (02)3410-6907 ●이종훈(자영업)종철(기백한의원 원장)씨 부친상 박경만(출판저널 주간)임효순(스포츠조선 광고제작팀장)박지웅(온타임텍 책임연구원)씨 빙부상 9일 제주도 서귀포시 동홍동 자택, 발인 12일 오전 7시 (064)762-7198 ●차동민(대검찰청 중수부 수사기획관)씨 모친상 9일 오후 8시 서울 삼성의료원, 발인 12일 오전 8시 (02)3410-6915
  • 성형수술 적합한 나이는?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성형수술이 가능한 최소 나이는 몇 살인가?최근 미국에서 ‘너무 어린 나이’에 성형수술을 시작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성형수술의 적정 연령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신문의 광고란에는 ‘보톡스 199달러,콜라겐 299달러,초음파 피부관리 195달러‘ 등 성형과 관련한 광고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특히 ABC의 ‘완벽한 변장’,FOX의 ‘백조’,MTV의 ‘스타의 얼굴이 되고 싶어’ 등 성형수술과 관련된 방송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실제로 수술을 시도하는 10대들이 크게 늘어났다. 미국성형의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8세이하 청소년의 성형수술은 7만 4233건으로 2000년에 비해 14%가 늘었다.심지어는 6세의 어린이가 귀 성형수술을 받는가 하면 13,14세 청소년이 코를 높였다.또 가슴성형을 받은 소녀도 3700명이나 됐다. 이 가운데는 ‘당나귀 귀’나 ‘비뚤어진 코’ 등 학교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지장을 주는 외적 요소를 제거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순수하게 미용을 위한 성형수술 요구자들도 적지 않았다고 협회관계자들은 밝혔다.성형의사들은 특히 “남자친구가 가슴 큰 애들을 쳐다보기 때문에 가슴 수술을 받고 싶다.”거나 부모가 멀쩡한 딸을 데려와 “코 좀 높여줘야겠다.”고 요청하는 경우는 대표적으로 성형시술을 말려야 하는 경우라고 밝혔다. 협회는 ▲가슴 수술은 17세 ▲코 수술은 13∼14세 ▲귀 수술은 6∼7세가 최소 연령이라고 밝혔다.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가슴 성형에는 3375달러가,귀 성형에는 2500달러가 필요하다. dawn@seoul.co.kr
  • 영화 ‘사이코’ 여배우 재닛 리 사망

    |로스앤젤레스 연합|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물 ‘사이코‘에서 샤워 도중 무참히 살해당하는 여자 역을 맡은 재닛 리가 3일 베벌리힐스 자택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77세. 유족을 대변하는 하이디 새퍼는 “리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리는 혈관에 염증이 생기는 병을 1년간 앓았으며 네 번째 남편인 로버트 브랜트와 영화배우인 두 딸 제이미 리 및 켈리 커티스가 임종을 지켰다. 금발의 리는 1960년 제작된 ‘사이코’로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지명돼 스타덤에 올랐다. 히치콕 감독은 미치광이에게 무참히 살해되는 45초의 욕실 장면을 찍기 위해 7일간 70여 차례나 촬영,리는 촬영중 가장 오래 샤워한 여배우라는 진기록을 갖게 됐다. 리는 ‘리틀 우먼(1949년)’‘터치 오브 이블(1958년)’‘맨추리안 캔디데이트(1962년)’‘바이바이 버디(1963년)’ 등 5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 두가족 8명 익사

    22일 오전 7시30분쯤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양포리 방파제에서 대구3모 69××호 쏘나타 승용차(운전자 우모·50·대구시 북구 구암동)가 바다로 추락했다.이 사고로 우씨와 아내 김모(50)씨,딸(20),아들(13) 등 일가족 4명이 숨졌다.경찰은 “승용차가 옆으로 기울더니 곧바로 바다에 빠졌다.”는 목격자들의 말과 차량 내에서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시신에 외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우씨가 방파제에서 U턴을 하다 운전부주의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으나,동반자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편 이날 오전 10시20분쯤에도 충북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인근 충주호에 경기33구 17××호 싼타페 승용차(운전자 이철휘·38·경기도 성남시 수정구)가 추락,이씨와 아내로 추정되는 정모씨,자녀로 보이는 7세와 5세 된 여자아이 2명 등 4명이 숨졌다. 포항 김상화기자 제천연합 shkim@seoul.co.kr
  • 여인과 일각수/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프랑스 파리의 클뤼니 중세박물관에는 ‘여인과 일각수’라는 아름다운 태피스트리 연작이 걸려 있다.이 작품은 꽃무늬 바탕장식의 기교로 보아 브뤼셀의 장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또 사용된 문장(紋章)을 근거로 파리의 귀족 장 르 비스트 가문의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촉각’‘시각’‘미각’‘후각’‘청각’‘나의 유일한 소망’이라는 소제목이 붙은 6점의 태피스트리에는 각각 여인과 일각수(一角獸)가 아로새겨져 있다.수많은 꽃과 나무,토끼에 둘러싸인 여인의 옆에는 일각수와 사자가 서있다.여인과 일각수가 어떻게 한 폭의 그림이 될 수 있을까. 미국의 여성작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여인과 일각수’(권민정·허진 옮김,강 펴냄)는 바로 이 태피스트리 속의 여인과 일각수 전설을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슈발리에는 1999년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를 발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인물.소설은 직물을 짜는 일조차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던,남성만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던 중세를 배경으로 한다.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다.여성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는 데 이 소설의 묘미가 있다. 무대는 파리와 브뤼셀.이야기는 파리의 바람둥이 화가 니콜라를 둘러싼 네 여인의 욕망을 축으로 전개된다.주느비에브는 사막같은 결혼생활에서 벗어나 수도원에 들어가길 원하고,그의 딸 클로드는 꽉 짜인 귀족생활에 길들여지기를 거부한다.그런가 하면 크리스틴은 여자들한테는 허용되지 않는 태피스트리 짜기를 꿈꾸고,그의 눈먼 딸 알리에노르는 장인의 딸로서 작업장의 이해에 따라 결혼해야 하는 관습의 폐해에 맞선다.작가는 이처럼 태피스트리의 이면에 감춰진 여성들의 욕망을 새롭게 읽어낸다.그리고 각각 ‘시각’‘촉각’,‘미각’‘나의 유일한 소망’등 네 부류의 여인으로 묘사한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일각수의 상징성이다.일각수라는 상상의 동물은 여러 문화권에서 나타난다.멀리 고대 아시리아나 그리스 로마시대의 문헌에도 일각수 이야기가 나오며,중국이나 일본에도 일각수 전설이 있다.일각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나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보듯 오늘날에도 널리 쓰이는 아이콘이다.그렇다면 일각수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프로이트에 따르면 일각수의 뿔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때로는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나타내기도 한다.사냥꾼의 화살에 맞아 처녀의 무릎 위에 엎드려 있는 일각수의 모습은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온 예수를 안고 있는 피에타의 전형적인 구도를 연상시킨다. 소설의 화자 니콜라는 일각수가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전설을 두가지로 나눠 들려준다.일각수는 원래 거칠고 난폭한 동물이지만 정결한 처녀 앞에선 양처럼 순해져 처녀의 무릎 위에 다소곳이 기댄다는 것.일각수 뿔에 독을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 또한 잘 알려진 이야기다.‘여인과 일각수’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 다른 장르의 예술 작품을 생산하는 촉매 구실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주 귀고리 소녀’와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1만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3)칠산바다 지키는 수성당할머니

    ●깎아지른 절벽위 여신모신 성소가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새삼 에게해와 그리스신화가 관심을 끈다.아테네 도심의 파르테논 신전 못지않게,아티카반도 끝자락 수니온곶(串)의 포세이돈 신전도 낙조 풍경과 어울려 세계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포세이돈 신전.에게해의 찬란한 석양이 비끼는 천애 절벽에 각인된 역사와 신화의 지문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살아 신화시대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다.바다의 신 포세이돈.그의 뜻에 따라 질풍과 노도가 일어나니,바다의 모든 것이 그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포세이돈의 황금전차가 말발굽 요란하게 바다 위를 가로지를라치면 거센 폭풍은 간데없고 잔잔한 고요가 그를 옹위했다.원형은 파괴됐으나 15개의 도리아식 원주는 고스란히 남아 에게해의 험한 바닷길을 아우르고 있다.지금도 이 신전 앞을 지나는 그리스 어부들은 고개 숙여 예를 표한다.첨단이 지배하는 오늘날에도 뱃길에 나선 사람은 누구나 포세이돈의 신화적 영력에 깊은 외경과 간절한 기원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반도국가 그리스의 끝자락에 바다의 신전이 있다면,같은 반도국가인 우리의 사정은 어떠할까? 우리라고 왜 바다신을 모신 신전이 없을까만,남의 떡만 크게 보이고,내 것은 초라하게만 여기는 문화사대주의의 병폐가 여기에서도 예외는 아니다.나이아가라폭포의 웅장함에 취해 박연폭포 정도는 ‘애들 장난’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필자가 줄 수 있는 최선의 해답은 ‘우리 것부터 좀 챙겨 보라.’는 충고이다.포세이돈이 중요하다면,중국의 여자 해신 마조(祖)도 알 필요가 있으며,더불어 ‘문화 종다원성’을 위해서라도 한반도 바로 이 땅의 수성당할머니를 생각해야 한다. ●서해바다 거닐며 거친 물길 다스려 해신은 세계 어느 바다에나 있었고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변산반도의 끝자락 격포 수성당은 우리 해신의 위엄과 격식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신성(神聖)의 성소(聖所) 격이다.우선,위치가 눈길을 끈다.잘록한 자루처럼 돌출한 곶의 깎아지른 절벽을 ‘성소’로 선택했다. 10여년 전만 해도 수성당 길목은 해안초소를 설치해 민간인 출입을 막는 군 작전구역이었다.그 후 전주박물관에서 이곳 일대를 발굴한 결과,고대의 제사터임이 확인되었다.민간의 구술(口述)전승이 이루어진 이곳에서 확인 발굴이 이루어졌음은 우리 문화에서 구술이 지닌 실증적 힘을 웅변한다.트로이문명이 애초에 구술과 신화에서 출발했다가,훗날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입증된 것과 다를 게 없다. 수성당은 시누대가 창검처럼 밀집해 빼곡하게 들어찬 단애(斷崖)에 숨어 있다.바닷물이 밀물처럼 다가와 이 안에 들면 절벽에 서있다는 느낌을 잊게 된다.그러나 자칫 한발 잘못 내디디면 벼랑으로 곤두박질이다.오금이 저리도록 가파른 곶.벼랑 아래로는 여근처럼 갈라진 해식동굴이 있어 조수가 드나들며 보는 이의 현기증을 자아낸다.일명 용굴 혹은 여우골이라 불리는 이곳이 수성당할머니의 거처이다.서해 어업의 중심기지였던 위도가 굽어보이는 칠산바다의 관망대에 해당하는 곳으로,임진왜란 때 왜군이 여우골로 몰려오는 것을 할머니가 무찔렀다는 전설은 지금도 남아 전한다. ‘개양할미’라고도 불리는 수성당할머니는 딸만 여덟을 낳아 각도에 한명씩 시집보냈다고 전해진다.더러는 그녀가 딸 일곱을 낳았으며,그들이 수성당에서 굽어보이는 칠산바다의 일곱 섬 지킴이가 되었다고도 한다.수성당 할머니는 엄청나게 큰 키로 굽나무신을 신고 저벅저벅 서해바다를 걸어다녔다.위험한 곳에는 표지를 남겨 어부들이 해를 입지 않게 돌보았으며,심지어 수심까지 재어 어부들이 알도록 했다.괴력난신(怪力亂神)의 힘을 보여준 ‘서해 창건주’의 전설이므로 이 말이 맞느냐,아니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변산 격포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정초에 정성껏 제물을 마련해 이곳을 찾는다.세상이 바뀌어 서해 여신으로서의 지위는 볼품없이 쪼그라들었지만 그때의 마을굿 양식이 여전히 잔존해 있으며,무신도도 걸려 있었으나 지금은 불타고 없다.‘1804년 상량(上樑)’이라고 적힌 상량문으로 미뤄 적어도 200여 년 전에 이 신당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신당이 어찌 사람의 신탁(神託)의식과 같은 나이일 수 있겠는가.이 상량문과 무관하게 훨씬 이전에 신당이 있었고,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람들의 가슴 속에 수성당할머니가 살아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수성당은 변산반도 일대를 지켜주는 ‘지역신’으로 ‘강등’되었으나,그 해양문화적 원형은 바다를 지켜주는 거녀(巨女)신화에서 비롯된 것이다.제주도의 설문대나 전국에 골고루 분포한 마고할매는 수성당할머니의 문화적 원형이다.마고나 설문대가 순 토속어인 반면 수성(水星)이라는 한문투 용어가 후대에 덧 씌워졌을 뿐이다.즉,마고식의 해양문화 원형질에서 수성이란 지역적 여신이 탄생한 것이다. ●거대한 치맛자락에 가려 어둠 내리고 사실,우리의 의식에는 가부장적 남신들만 가득 차 있었다.그러나 바다만은 달라 그곳은 늘상 여신들의 무대였다.바다는 모든 생명체가 탄생한 최초의 자궁이다.그런데도 기이하게 바닷가에서 여성은 사실상 금기의 대상이다.지금은 그런 금기의식이 많이 희석됐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신권(神權)만큼은 여신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여신을 숭앙하는 바다’의 신권과,‘여성을 배척하는 바다’의 생활이란 두 측면은 바다문화를 둘러싼 대단한 역설을 설명해 주는 단초가 된다. 수성당에서 서쪽을 굽어보니 초여름 햇살을 받은 칠산바다가 싱싱한 비늘을 반짝이며 꿈처럼 펼쳐져 있다.그곳에 서서 신화적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수성당에 기대 칠산바다를 바라보는 마음의 물길을 따라 당할머니가 들어왔다.그녀는 저물어 수평선 아래로 잠겨드는 해를 안간힘으로 붙들려고 했으며,그러다가 이른 저녁의 별밭을 거닐어 내게 이른 것이다.그 덕분에 칠산바다는 여름의 붉은 황혼에 늦도록 젖어 있었다.흡사 쌩떽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첫마디를 속삭였을 때처럼 그렇게 붉게. 그녀는 깊은 바닷물에 겨우 발목만 적신 채 아주 천천히 걸음을 떼고 있다.아주 천천히,우리 역사의 태고적 울림은 그렇듯 바다로부터 시작되었다.서해바다가 아직 형성되지 않아 우리와 중국이 육지로 맞붙어 있던 그 옛날의 땅을 디디고 걸었음직한 그런 발걸음이다.생각해 보면 수성할머니 같은 거녀는 한반도 탄생의 비밀을 알려주는 중요한 존재가 아닐수 없다. 여신들은 늘 바닷가를 뚜벅뚜벅 걸어다녔다.풍랑이 일지는 않았지만 생각보다는 깊었다.깊은 곳으로 발을 잘 못 내디뎌 빠지는 바람에 치맛자락이 살짝 젖었다.끝모르게 큰 여신들이었지만 치맛자락이 젖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그녀는 젖은 치마를 벗어 산 위에 펼쳐 널었다.산에서는 난리가 났다.치마를 널자 지상이 온통 컴컴해졌고 동물들은 갑자기 맞은 밤이 두려웠을 것이다. 여신은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소피도 여러번 보았다.여신의 오줌이 물길을 만들어 곳곳에 강이 생겨났다.여신의 똥은 군데군데 섬으로 남았다.저녁 무렵에 찬 이슬을 맞자 마고는 기침을 했다.그러자 폭풍이 불어 풍랑이 일었고,산과 들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혔다.이윽고 밤이 왔다.여신은 하늘의 별을 만지고,달을 껴안고 그렇게 외로운 밤을 지냈다.참으로 외로웠다.사람이 탄생하기 전이라 그녀를 즐겁게 할 미물 인간이 아직 없었던 탓이다. ●위도 핵폐기장엔 인간사 갈등 고스란히 얼마나 컸으면 바다를 걸으며 치맛자락만 적셨을 뿐일까.참으로 막강한 여성의 위력이다.우리 신화의 들머리를 차지하는 마고,수성당할머니 등은 지모신(Great Mother,Mother Goddess)이다.수성당을 찾아온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잃어버린 여성의 힘.거녀로서 세상을 창조하는 거대담론을 이끌어 온 문화적 원형질을 당할머니에게서 발견한다.현대인들은 그만 그 거대한 신화적 힘,자연친화적 순응을 거부하고 말았으니,수성당 코앞의 새만금간척지나 위도 핵폐기장 같은 인간사의 복잡다단한 갈등이 그것이다. 당할머니가 바다를 걷는 발자국소리를 듣노라니 상상력은 멀리 상전벽해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왜 하필이면 국가적인 큰 제사터가 수성당에 자리잡고 있었을까.우리는 그동안 ‘전북지역은 곧 백제문화권’이라는 도식적 편견에 함몰돼 있었다.전주박물관 발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유병하는 이를 3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의 마한,백제,가야,왜의 노천제사라고 주장했다.3세기 후반에는 마한,4세기는 마한과 백제,5세기 전반과 6세기 전반은 백제,가야,왜의 제사가 이루어진 듯하다. 마한,백제는 그렇다치고 멀리 가야와 왜의 유물이 나온 사실은 흥미롭다.백제 땅으로 들어서자면 반드시 변산반도를 돌아,고군산열도를 비집고 들어가,금강하구로 들어서야 했을 것이니,수성당의 위치는 지정학적으로 해양의 길목이다.위도나 고군산에서 바라볼 때,곶의 신비로운 장소에 신당을 세우고 해신에게 정성껏 제사를 올렸으리라.채석강과 적벽강이 펼쳐진 천혜의 절경에 자리잡고 있으니 신들조차도 비경을 선호했음이다. 근년까지도 풍어기(豊漁旗)가 올라가던 수성당 앞바다에서 역사시대의 제사가 올려졌고,더 앞선 시대에는 마고할머니가 걸어다녔다는 사실에서,천년을 훌쩍 뛰어넘는 수성당 신앙의 해양문화적 지속성을 보고야 마는 것이다.이렇듯 바다에는 인간 이전에 여신들도 살고 있었던 것이니,‘바다에 살어리랏다‘에서 어찌 이들을 모른 채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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