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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이슈-삐걱거리는 미-러 관계] 양국 주요이슈 뭔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미·러 관계의 현안을 점검해 본다. ●러시아의 민주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뒤 주지사 직선제 폐지, 언론에 대한 통제 강화, 에너지산업 국유화 등 중앙집권 강화 정책을 실시했다. 미국은 이를 민주주의의 후퇴로 규정,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 상원의원들은 러시아의 G8(선진 7개국+러시아) 회원국 자격 정지를 요구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러시아는 민주주의와 법치 확립에 힘써야 한다.”고 비판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도전함으로써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어한다.”면서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의 문제에서는 미국과의 협조관계를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안보 강화 지난해 ‘유코스 사태’는 에너지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푸틴 대통령은 최대 석유기업인 유코스의 회장을 구속하고 핵심 자회사인 유간스크네프테가즈를 결국 국영회사가 인수토록 했다. 러시아는 또 석유·천연가스·금·구리 등 핵심 천연자원에 대한 탐사개발은 러시아측 지분이 51%를 넘는 회사들에만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이에 대해 “러시아의 유코스 처리방식에 실망하고 있다.”,“해외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등 비난을 쏟아냈다. 미국은 중동 국가들에 대한 석유 수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늘리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석유를 자원무기화할 경우 유가 폭등에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러시아 유전·광산 개발에 참여하려 했던 미국 기업들도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란과 시리아 문제 부시 2기 행정부는 이란과 시리아를 테러 지원국으로 지목하고 나날이 이들 국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움직임은 미국과는 정반대다. 이란과 핵 연료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푸틴 대통령은 이란 방문 계획을 밝혔다. 또 러시아는 시리아에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 판매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외신들은 러시아가 중동 지역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고 세력 확장을 추구한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 역시 이란의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고 있는 만큼 양국이 이 부분에 대해 합의를 이루기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옛소련 국가들과의 관계 지난해 말 우크라이나 대선을 놓고 양국은 정면충돌 양상을 보였다. 미 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미·러 두 정상의 세계관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부시는 이른바 ‘자유의 확산’에는 지역적 한계가 없다고 생각한 반면 푸틴은 옛소련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접근에 분개하면서도 이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이다. 또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상원 청문회에서 옛소련 국가였던 벨로루시를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했다. 키르기스스탄·몰도바 등에서도 민주화 바람이 불고 있다. 카네기재단 모스크바 센터의 앤드루 쿠친스는 “옛소련 국가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미·러 관계의 화약고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월드이슈-삐걱거리는 미-러 관계] 부시, 러 에너지정책도 불만… 실리외교 주도권 다툼

    [월드이슈-삐걱거리는 미-러 관계] 부시, 러 에너지정책도 불만… 실리외교 주도권 다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01년 11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사저인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을 방문한 뒤 미·러는 ‘적대적 관계’에서 ‘동반자적 관계’로 바뀌었다. 미국이 탄도탄요격미사일협정(ABM)을 일방적으로 폐기했음에도 대테러전을 계기로 가까워진 부시와 푸틴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24일(현지시간)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측은 이란과 시리아 등 중동정책과 러시아내 인권 등의 문제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화해냐 반목이냐 대부분의 정상회담은 실무진이 각종 현안에 대한 합의점을 미리 도출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테러조직에 ‘견착식 지대공 미사일’의 밀매를 막는 협정 이외에는 이렇다 할 결과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상호 신뢰관계를 해칠 만한 ‘입씨름’만 치열하게 오가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슬로바키아로 가기에 앞서 “푸틴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러시아는 법치와 민주주의를 새롭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푸틴이 민주주의를 실천한다고 말할 때에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지는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슬로바키아 언론에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러시아의 현실과 역사에 부합해야 하며 러시아는 14년 전 국가와 국민을 위해 그같은 민주주의를 채택했다.”고 맞받아쳤다. 왜 미국이 러시아의 내정에 간섭하느냐는 항변이다. 2001년 6월 슬로베니아에서 열렸던 미·러 정상회담 당시 서로를 치켜세우던 분위기와는 딴판이다. 그러나 우회적인 화법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양측은 대테러 공조라는 기존의 틀을 재확인하면서 일부 이견을 표출하는 정도에서 회담을 마칠 것으로 예상된다. ●실리외교 공방전 푸틴은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면서도 틈틈이 미국의 독주를 견제했다. 바그다드 침공 이전에 러시아는 이라크와 400억달러 규모의 5개년 경제협력 협정을 추진했고 이란과는 2년 전에 핵시설 협력을 위한 10개년 계획에 합의했다. 미국이 추구하는 ‘힘의 외교’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론 중동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과 경제적 끈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이란에 대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라는 부시의 ‘경고’에 푸틴이 “이란은 핵무기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반박한 것도 ‘실속외교’의 전형이다.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이란과 북한의 핵 개발 중단이나 대테러 전쟁의 지속을 위해 여전히 러시아의 ‘강력한’ 도움이 필요하다. 오랜 우방인 프랑스·독일과 관계개선을 꾀하더라도 러시아가 보였던 만큼의 지지를 단시일 내에 얻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미국이 러시아의 미사일 시스템 수출이나 푸틴의 일당 독재체제로의 ‘회귀’ 움직임 등에 마냥 침묵할 처지도 아니다. 부시 대통령은 2기 취임사에서 ‘자유의 확산’을 강조했다. 러시아가 유전·가스개발에 외국업체 참여를 배제한 것은 국제 자유무역의 질서를 흔든 것이며 우크라이나 선거에 개입한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게 미국의 시각이다. 물론 미 석유업체의 불만이 부시에게 쏟아졌고 그 화살이 다시 러시아로 향한 측면이 강하지만 그동안 러시아에 빼앗겼던 실리외교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9)근대 문화유산의 보고 군산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59)근대 문화유산의 보고 군산

    군산은 식민 수탈의 가장 전형적인 공간이었다. 식민공간답게 전통과 근대가 공생하고, 강요된 근대의 기형적 뒤틀림이 강한 흔적으로 남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일제시대 군산은 오쿠라, 이와사키 등 수많은 일본 토지재벌들이 지배했다. 그들은 고리대금업도 겸했으니,‘허리에 권총 차고, 손에 망원경 든’ 무장상인, 바로 약탈자였다.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시가지) 하나가 올라 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 한국문학사의 금자탑인 채만식의 탁류는 이렇게 시작된다. 채만식 문학관은 소설 대목처럼 금강이 끝나면서 황해와 만나는 그 곳에 서있다. 문학관에서 조금만 서쪽으로 내려가면 ‘째보선창’이 나온다. 소설 속의 정주사는 서천땅을 처분한 뒤 똑딱선을 타고 째보선창으로 건너온다. 하지만 쌀 현물을 가지고 투기하는 미두장에서 돈을 다 날리고는 선창에서 자살을 기도한다. ●‘탁류’ 속 정주사 자살시도했던 ‘째보선창’ ‘째보선창’은 지정학적으로 ‘옆으로 째졌다.’고 해서 붙은 이름. 실제로 백마강과 금강이 합수하면서 바다로 흘러드는 길목에 자리잡아 Y자로 째진 곳이다. 구한말까지도 삼남의 농수산물이 이곳에 집산했다가 서울로 보내지던 중요한 선창이었다. 채만식 시절까지만 해도 제 몫을 다하던 선창이 금강하구언이 축조되면서 쌓일 대로 쌓인 퇴적물 때문에 항구 기능을 거의 상실해 문화원이 세운 입간판만이 그 역사를 말해줄 뿐이다. “탁류는 당연히 픽션이지만 역사적 전형성을 고스란히 획득하고 있지요. 두벰이산 정상에 있는 정주사 집터, 한창봉 쌀집, 콩나물고개 같은 소설 속의 역사현장을 짚어가면 식민지시대 군산의 풍경이 오롯이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군산 지킴이’ 이복웅 군산문화원장의 증언이다. 세종실록지리지 만경현조에 ‘군산은 병선을 정박시킨 곳으로, 섬이 둘 있는데 군산도와 망입도가 있다.’고 했다. 군산진은 본디 군산도(현재의 선유도)에 있었다. 그 후 군산진을 오늘의 군산시 영화동 해변의 진포로 옮기면서 이름도 따라와 군산으로 확정됐으며, 과거의 군산진은 고군산이 되었다. 그러니 고군산열도는 본디 군산의 원적지인 셈이다. 1899년 개항과 더불어 전혀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기 시작한다. 당시의 군산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갈대밭이 무성한 비좁은 곳이었다. 일제는 이 갈대밭을 매립하고, 시가지를 일본식 마치(町)체계로 바꾸었다. 본정통, 명치정, 강호정 따위가 그것이다. 메이지(明治), 에도(江湖) 같은 이름에서 식민지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일제는 군산을 강제로 개항시킨 뒤 대규모 항만시설을 서둘러 건설한다. 당시의 항만 흔적은 ‘뜬다리’같은 유적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수탈의 신작로’ 전주~군산가도 일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만경평야의 곡식을 군산항에 모았다가 일본으로 실어냈다. 전주~군산을 잇는 ‘전군가도’가 벚꽃으로 유명한 이유는 이런 역사적 연원을 지닌다. 일직선으로 뻗은 신작로는 수탈을 위한 토목공사의 증거였다. 오죽하면 당대 민중들이 ‘아깨나 낳는 년 갈보짓하고, 힘깨나 쓰는 놈은 목도질한다.’며 식민의 애환을 읊조렸을까. 일본 영사관이 설치되고 일본 거류민단이 세력을 확장해 갔다. 수탈은 금강을 거슬러서 상류인 부여 위쪽의 부강까지 미쳤다. 추수철이면 충청도와 전라도의 이 황금 곡창지대에서 개땅쇠처럼 일만 했던 소작인들은 피땀흘려 거둔 알곡을 바리바리 싣고 지주집으로 향했다. 소작 떼일 것을 걱정한 작인들은 굶주리면서도 정성껏 엿을 고와 받쳐야 했으니, 참으로 ‘엿 같은 세상’ 아니었을 것인가. 조선인 지주는 일본인 지주에 비하면 수나 양 모두 ‘별것’ 아니었다. 전국에서 전북처럼 일본인 농장이 많은 곳은 없었다. 전북은 일본의 기업형 농장이 가장 많이 진출한 일본 식량조달의 거점이었다. 금강, 동진강, 만경강 3대 강 유역에 펼쳐진 30만 정보의 대평원, 그 곡창의 문호인 군산 일대를 오쿠라, 이와사키 등 수많은 토지재벌들이 지배했다. 그들은 땅만 소유한 것이 아니라 고리대금업도 겸했으니,‘허리에 권총 차고, 손에 망원경 든’ 무장상인, 바로 약탈자였다. 폭력적 토지겸병 과정을 보노라면 사무라이 낭인집단의 건들거리는 풍경이 되살아난다. 가령,1904년에 이곳에 들어온 가와사키는 옥구군 서수면 일대를 자신의 향리인 일본 니가타현 모형으로 일본화할 계획을 가지고 온 골수 국수주의자였다. 일본 고향의 지주들을 서수면에 불러들여 농장설치를 권유했는가 하면 서수에는 신사까지 세웠다. 그리하여 가와사키농장이 모체가 된 이엽사농장이 탄생하는데, 이엽사는 전주의 삼례, 익산의 황등, 옥구의 서수면 일대에 논 1000정보, 밭 200정보, 소작인 1700여명을 거느린 대농장주로 군림하게 된다. 이들이 농장을 순찰할 때는 말을 타고, 승마복에 권총까지 찬 채 말채찍을 휘두르며 다녔다고 한다. 봉건시대의 영주와 다를 바 없었다. 그리하여 군산과 옥구·김제 등의 농민들은 대부분 소작인으로 전락했으며, 일본인 농장에 가족들까지 예속되어 노예 같은 삶을 이어나갔다. 보릿고개 때는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으며,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해 북간도 허허벌판으로 야반도주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아니면 소작쟁의를 벌여 죽기살기로 저항하는 수밖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34년 통계를 기준으로 무려 200만섬 이상의 쌀이 군산항에서 일본으로 반출됐다.1930년대 일본 농업공황을 계기로 조선은 완전한 일본의 식량 공급기지로 전락했다. 황금쌀은 일본으로 나가고 조선사람들은 만주에서 들여온 콩 같은 잡곡, 일제 말기에는 그것도 모자라 기름 짜고 버린 깻묵으로 연명했다. 일본인들이 끊임없이 수탈을 감행하는 동안 ‘멍청한’ 조선인 지주들은 미두장에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공인 도박장 격인 미두장에서 실의에 빠진 조선인 지주들과 자본가들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유산과 토지를 탕진했다. 탁류의 정주사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한 쪽에서는 거대한 기선에 수천 섬의 쌀이 실려나가는 동안 다른 한 쪽에서는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빈 밥그릇에 멍한 눈길을 주던 곳, 바로 군산이다. ●일본인은 평지 살고 조선인은 산동네 살고 일본인들이 평지에 살고 조선인은 산동네에 얹혀 살았다.‘언덕 비탈에 의지해 오막살이가 생선비늘 같이 들어박힌 개복동 그 중에서도 산꼭대기에 올라앉은 납작한 토담집, 방이라야 안방 하나 건넌방 하나 단 두 개뿐인 것을 명임이네가 도통 5원에 집주인한테서 세를 얻어가지고 건넌방은 먹곰보네한테 2원씩 받고 세를 내주었다.’고 채만식은 묘사했다. 군산은 식민 수탈의 가장 전형적인 공간이었다. 식민공간답게 전통과 근대가 공생하고, 강요된 근대의 기형적 뒤틀림이 강한 흔적으로 남아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으로 개항장은 제국주의의 의도가 적나라하게 관철되는 시험장이었다. 네덜란드가 건설한 바타이유 같은 해양 식민도시처럼 일본이 건설한 목포·군산·마산·원산 등이 그랬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이 곳은 숫자조차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숱하게 징용 나간 이들의 눈물이 넘치던 항구였다는 점이다. 쌀만 수탈당한 것이 아니라 목숨까지 수탈당한 곳이다. 해방 직후 군산항에서 노무자들의 퇴직금 요구와 귀화 노무자의 착취에 대한 격렬한 보상요구 투쟁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근자에 다시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한·일협정 과정에서의 반민족적인 협상으로 그만 영구 미제사건으로 덮이고 말았다. 재미있는 점은 조선에서 살다가 8·15 후 일본으로 되돌아간 일본인들은 ‘인양자(引揚者)’라며 일본에서도 차별대우를 받았다는 점이다. 실로 아이로니컬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식민지를 체계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경찰, 군대, 식민 경영기관, 거류민단, 금융기관 등이 필요하다 보니 으레 항구에는 이런 흔적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군산도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로서는 거대했을 조선은행 건물, 번듯한 세관건물이 지금도 남아있으니 가히 근대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뒷골목에는 이른바 왜정시대의 적산가옥도 즐비하다. ●방치된 수탈의 흔적들… 박물관 재활용해야 그러나 어쩌랴. 극장식 카바레로 쓰이던 조선은행 건물은 방치돼 있다. 안될 일이다. 식민지 시대를 비판하는 것과 별개로 그 시절의 흔적을 이런 식으로 방치해서야 되겠는가. 식민지의 역사적 교훈을 위해서라도 말끔히 복원하여 박물관이나 자료관 등으로 재활용할 일이다. 군산항의 역할은 일제시대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군산 수용소에는 진남포에서 LST를 타고 내려온 무려 5만여명의 피란민이 수용되었다. 이곳 미군기지와 공군비행장은 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증명해 준다. 항구는 이처럼 사회변동의 축소판이다. 군산은 더 이상 화려한 곳이 아니다. 서해안시대를 부르짖지만 침체한 경기는 살아날 기미가 없다. 영화롭던 영화동에는 을씨년스러운 기운이 감돈다. 항구는 먼 외곽의 신항으로 밀려났고 토사가 쌓이는 본래의 군산항은 그저 자그마한 배들만 오갈 뿐이다. 예로부터 백제의 도읍지인 부여 길목에 자리잡아 대중국 전진기지였던 천년 역사의 군산은 그렇게 정중동의 움직임만 보이고 있다. 건너편 장항에 오래된 제철소만 남아 옛날의 영화를 증명할 뿐. 개항 100년을 기념하는 백년광장에서 우리는 과연 개항 백년의 기념비적 의미를 제대로 챙기고 있는가 자문하게 된다. 또 좋든 싫든 근대 100년의 음지와 양지를 모두 지닌 군산항의 21세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말로만 서해안시대를 부르짖을 것이 아니라 군산 같은 항구에서부터 그 해답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 이·팔 정상 1주일내 후속 회담

    8일(현지시간) 열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상회담이 4년여에 걸친 유혈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극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 속에 중동평화 무드가 한껏 고조되고 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죽음과 고통을 초래한 폭력을 종식시키는 데 합의해 평화절차가 재개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나빌 샤스 팔레스타인 외무장관은 9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정상급 후속회담이 1주일 안에 다시 열릴 것”이라고 밝혀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기대를 부풀렸다. ●유혈분쟁 종식 선언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집트의 홍해 휴양지 샤름 엘 셰이크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상호공격 중지와 평화회담 재개 합의를 공식 선언했다. 두 정상은 아울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수감자 500명을 즉각,400명은 추후 석방하기로 하고, 석방 수감자와 수배 해제 대상을 선정하기 위한 위원회와 요르단강 서안 5개 도시에서의 이스라엘군 철수 및 치안 이양을 논의하는 위원회를 가동하기로 합의했다. 또 샤론 총리와 아바스 수반은 각각 자신의 농장 방문과 라말라 자치정부 청사 방문을 초청, 서로 상대방의 수락을 받아냈다. ●후속조치 착수 정상급 후속회담에서는 휴전 합의를 확고히 하고 두 공동위원회 구성을 위한 실무적인 논의에 집중할 것이라고 샤스 장관은 분명히 했다. 특히 아바스 수반은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통행 제한을 없애고 검문소 몇 군데를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고 이스라엘군도 이를 확인했다. 요르단 정부도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지난 2000년 9월 인티파다(반 이스라엘 봉기) 발발 이후 공석이었던 주 이스라엘 대사를 새로 내정해 아그레망을 요청했다. ●난민 귀환 등 난제 수두룩 과거 양측은 10차례의 휴전 합의를 위반한 전력이 있다. 각국이 기대를 걸면서도 우려하는 대목이다. 상호 공격중단을 선언한 지 이틀 만인 10일 아침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가자지구 남부의 이스라엘 정착촌에 30여발의 박격포탄과 로켓포탄을 퍼부어 이날 열릴 예정이었던 사에브 에라카트 팔레스타인 내각장관과 도브 와이스 이스라엘 총리 비서실장간의 실무회담이 이틀이상 연기됐다. 독립국 출범을 위해 2008년까지 이스라엘군을 가자지구에서 철수시키는 문제가 가장 민감한 내용이 될 것 같다.6일전쟁 이후 생긴 40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과 가자지구 및 요르단강 서안의 영토 반환을 이스라엘에 요구하고 약속을 받아내는 문제 역시 간단치 않다. 팔레스타인측은 이스라엘이 꾸준히 요구해온 하마스 등 무장단체의 제도권 수렴을 통해 이스라엘에 신뢰를 심어 주어야 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美 ‘중동평화 구상’ 유럽 끌어안기

    ‘동맹강화를 통한 외교적 압박’ 콘돌리자 라이스 신임 미국 국무장관의 첫 해외 순방을 계기로 부시 2기 외교 프로그램이 가동됐다. 이라크 전쟁으로 껄끄러워진 프랑스와 독일 등 일부 유럽국가들과의 균열을 봉합하고 그 바탕에서 중동평화 구축과 이란 등 ‘폭정의 전초기지’ 흔들기를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이다. 라이스 장관은 6일과 7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방문에 이어 8일 파리에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을 만난 뒤 이번 유럽과 중동 순방 결과를 토대로 유럽연합(EU)과의 협력강화 및 중동평화 구상 등을 밝힐 예정이다. 라이스 장관의 유럽 순방은 오는 22일부터 브뤼셀에서 열리는 EU·나토정상회담에 앞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유럽정상들과의 만남을 위한 정지 작업의 성격도 띠고 있다. 유럽 국가들과의 협조를 다진 뒤 중동평화 등 현안을 풀어나가겠다는 것이 라이스의 접근법이다. 일단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된 국가들에 시간을 준 뒤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동맹국들과 단계적인 압박과 제재를 강화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라크전쟁 등 부시 1기 외교정책이 동맹국 의견을 무시한 채 독선으로 치우쳐 유럽국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화와 동맹과의 협조를 중시는 하겠지만 여전히 ‘힘에 바탕을 둔 공세적인 강한 대외정책’을 펼쳐나갈 것임을 확실히 했다. 다만 ‘자유 및 민주의 확산’이란 부시 2기의 외교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맹과 유럽국가들의 힘이 필요하고 이를 충분히 이용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라크에서 민주정부가 정착되기 전에는 미국도 힘에 부쳐 다른 지역에 대한 무력공격이 어렵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라이스는 지난 4일(현지시간) 첫 방문국 영국에서 핵개발 등과 관련, 이란을 공격할 것이냐는 질문에 외교적 수단을 강조하면서도 “미국 대통령은 (무력사용을 포함한)어떤 수단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면서 “이란의 농축우라늄프로그램을 해결하기 위해선 협상과 함께 제재가 동반돼야 한다.”고 확인했다. 또 “이란이 민간용 핵발전이라는 구실아래 핵무기 프로그램을 지속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한 어조의 경고를 보냈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은 “라이스가 유럽순방을 통해 이란을 강하게 몰아붙이고 있다.”고 평했다. 무력행사가 힘든 상황에서 강한 외교적 수사를 통한 명분 쌓기를 시작한 셈이다. 라이스는 지난 4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회담에서 이라크 민주화, 이란 핵 개발, 팔레스타인 정상화 등 중동문제에 초점을 맞춘 2기 외교정책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보여주었다. 라이스는 10일까지 영국과 독일, 폴란드,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 유럽 8개국과 이스라엘 및 요르단강 서안지역을 순방한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열린세상] 부시와 빈 라덴/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부시 대통령이 다시 취임했다. 부시 2기 정부가 출범하는 데 대해서 축하의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크다. 미국 메릴랜드대 여론조사에서 21개국 2만 1953명 가운데 58%가 부시 재선이 세계 평화와 안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응답할 정도로 세계인들이 부시정부에 대해서 갖는 생각은 부정적이다. 이는 세계가 위험해진 이유를 부시 대통령이 미국 중심의 안보지상주의를 대외적 강경정책으로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지상주의가 대외적 강경정책으로 나타나고 있는 게 부시정부라면, 대내적 인권탄압으로 나타난 대표적 사례가 박정희 유신정부였다. 부시나 박정희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안보지상주의와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활용하여 시민사회의 자유를 제약했다. 다행히도 지난 40여 년간 한반도를 압도해 왔던 ‘적대적 상호의존’은 남한의 민주화 과정에서 소멸되어 나갔다. 다만 여전히 북한이 일당독재를 펴 나갈 수 있는 데에는 남과 북의 적대적 상호의존을 대신하는 북한과 미국간의 적대적 상호의존이 한 몫을 하고 있다. 부시와 빈 라덴 간의 관계는 일종의 미국판 적대적 상호의존을 반영하고 있다.2000년 9·11 테러는 세계 제1의 강대국인 미국만이 절대적 안보를 누리고 있다는 미국 예외주의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무고한 인명살상과 사회심리적 충격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점령하는 이른바 대테러전쟁을 정당화해 주었다. 그러나 부시 1기 정부 동안 그렇게 많은 인력과 물자가 동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테러문제는 전혀 해결의 조짐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저 부시와 빈 라덴간의 적대적 상호의존만이 돋보일 뿐이다. 대테러 전쟁의 구호는 미국 내부의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게 하고 애국주의에 호소하면서 일시적으로나마 국민적 단합을 이끌어 나가는 데 유용해 보인다. 공화당 부시의 재선은 바로 여기서 가능했다. 2004년 11월 미대선을 며칠 안 남기고 미국에 테러 위협을 공개리에 표명한 빈 라덴이야말로 부시 재선의 일등 공신이다. 경제실정으로 인해 마지막 유세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부시에게 빈 라덴의 테러 협박은 구사일생의 기회였다. 대통령 선거가 일시에 전시 지도자로서 부시에 대한 국민투표적 신임투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부시의 재선으로 인해 중동 지역의 반미전선에서 차지하는 빈 라덴의 지도적 입지도 그대로 유지되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빈 라덴이 부시 당선에 도움을 주듯이, 부시의 강경노선이야말로 빈 라덴의 반미강경노선이 지속되어 나가도록 하는 강력한 명분이자 토대이기 때문이다. 부시와 빈 라덴간의 적대적 상호의존을 끊기가 쉽지 않은 것은, 부시가 이라크에 이어 이란에까지 압박을 가하는 한, 중동 지역에서의 반미감정은 더욱 불타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것처럼 ‘온 세계에 자유를 확산’시켜 나감에 있어 ‘필요하면 무력’도 불사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한, 부시 2기 정부와 빈 라덴 등 반부시세력들 간의 적대적 상호의존 고리는 어느 일방이 제거될 때까지 지속되어 나갈 전망이다. 여기서 남북한간의 적대적 상호의존을 평화공존으로 바꾸어 나간 한국의 경험은 시사적인데, 그것은 안보지상주의를 버리고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을 감당할 수 있다는 한국민들의 자신감에서 가능했다. 결국 해결의 열쇠는 부시 대통령에게 있는 게 아니라 미국민들의 정치적 의지에 있다. 지난날 베트남 개입을 반대하는 미국내 반전운동 경험에서 보듯이 미국의 이라크 개입에 대해 국내적으로 많은 반대가 제기된다면, 부시정부 역시 ‘명예로운 철수’를 모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민의 반전평화운동이 안보위기감을 넘어설 수 있을 만큼 커져 가다가도 빈 라덴이 계속 미국에 대한 테러를 협박한다면 무망한 것이기에 답답함은 여전히 남는다. 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 [이도운특파원 워싱턴 저널] 부시의 ‘빅 아이디어’

    지난달 30일 이라크 총선이 실시된 이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기세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31일(현지시간) 깔끔하게 머리까지 자르고 TV 카메라 앞에 나서 “이라크 총선은 명백한 성공”이라고 연설하는 부시 대통령의 표정에는 정치적 승리자의 자부심이 가득 차 있었다. 이라크전을 줄기차게 반대해온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등 외국 지도자는 물론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 미국 내의 이른바 반 부시 언론도 이라크 총선이 성공적이었다고 인정했다. 일부에서는 이라크 총선으로 말미암아 부시 대통령이 중동을 해방시킨 위대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는 성급한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는 ‘중동의 민주화’라는 ‘빅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킨 데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빅 아이디어란 정치나 사업에서 추구하는 대의명분이나 경영전략을 말하는 용어다. 예를 들어 월마트의 빅 아이디어는 ‘싸게 판다.’는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빅 아이디어가 월마트를 세계 최대의 유통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부시는 2000년 선거 당시에는 빅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못했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호황을 구가하던 당시의 미국인들은 그저 앨 고어 민주당 후보보다 좀 덜 얄밉고 친근해 보이는 부시를 택했을 뿐이다. 그러나 9·11 테러가 터진 뒤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고, 거기에 네오콘의 이념을 얹어 중동의 민주화라는 빅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 이다. 논란도 많고 비판도 많았지만 어쨌든 부시는 뚜렷한 빅 아이디어를 제시했기 때문에 불투명한 메시지로 일관했던 존 케리 민주당 후보를 물리치고 재선에 성공했다.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조국 근대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18년을 통치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민화’를 내세웠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이라는 빅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빅 아이디어는 행정수도 이전으로 상징되는 ‘사회 주도세력의 교체’였다고 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이나 남았지만 벌써부터 차기 대통령 후보들이 거론된다. 그들마다 특별히 부각되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누가 우리나라 지도자가 될 것인가는 결국 그들이 제시하는 빅 아이디어가 무엇이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dawn@seoul.co.kr
  • “美, 새정부 도와 치안 확립”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정부와 언론은 이라크 총선이 중동의 민주화는 물론 조지 W 부시 정부의 대내외적 정치적 위상을 가름할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부시 미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이라크 총선은 이라크 역사의 전환점이자 자유 신장의 초석이며,‘테러와의 전쟁’의 결정적인 진전”이라며 “이라크 선거는 미국의 안보에도 중요하다.”고 주례 라디오 연설을 통해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연설에서 “이라크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하는 동안 미국의 임무는 계속돼야 한다.”면서 “우리 군대와 외교관, 민간인 요원은 새로 선출된 이라크 정부를 도와 치안을 확립하고 이라크 군경을 훈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지칭한 ‘새로 선출된 이라크 정부’는 헌법 제정후 오는 12월 총선에서 구성될 정부를 가리키는 것이어서 내년에도 미군이 이라크에 계속 주둔할 것임을 재확인한 셈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어 “민주주의 국가로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나라는 없다.”며 “미국의 안보는 항상 자유가 진군할 때 확보돼 왔다.”고 말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30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총선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예상보다 나은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사담 후세인이 권좌에 있던 3년 전만 해도 누구도 이같은 이라크의 발전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라크 전역에서의 선거 진행과 바그다드 주재 미대사관 폭발사고 등 선거를 무산시키려는 저항세력의 테러공격 상황을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라크 총선에 앞서 메릴랜드주 등 미국내에서 진행된 이라크인 부재자 투표상황을 소개하고 “총선일은 이라크인에게 새로운 희망의 날”이라는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뉴욕타임스는 바그다드 주재 미대사관의 폭발사고 등 이라크 총선을 방해하기 위한 저항세력의 움직임을 자세히 전했다. daw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④-무역·중화학·서비스 CEO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그룹 ④-무역·중화학·서비스 CEO

    “삼성물산의 역사는 삼성그룹의 역사입니다.” 삼성그룹의 모태기업인 삼성물산의 지난해 매출은 9조 6963억원으로 주력인 삼성전자 57조 6324억원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0%를 비롯해 삼성석유화학, 삼성정밀화학, 삼성카드, 삼성SDS, 제일기획 등 숱한 관계사의 지분을 갖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주식 1.38%를 보유하고 있고 등기임원(회장)으로 직접 챙기고 있는 데서도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이 회장이 등기임원으로 활동하는 삼성 계열사는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물산, 제일모직, 호텔신라, 삼성에버랜드뿐이다. 국내 종합상사 1호인 삼성물산은 84년 3위,1998∼2000년,2002년에 2위를 기록했던 것을 제외하면 종합상사의 매출기준이 달라진 2003년까지 줄곧 매출 1위 기업 자리를 지켜왔다. ●‘그룹의 역사’ 삼성물산과 인재들 고 이병철 회장이 28세였던 1938년 3월1일 대구시 서문시장 인근 수동(현 인교동)에서 250여평 규모로 출발한 삼성상회가 삼성물산의 전신이다. 이 회장은 이에앞서 경남 마산에서 정미소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지만 ‘부동산 투자’에서 다 날리고 자본금 3만원으로 상회를 시작했다. 삼성(三星)의 삼은 우리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로 크고 많고 강한 것을, 성은 밝고 높고 영원히 깨끗이 빛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첫 사업은 대구일대에서 생산되는 사과 등 청과물과 포항의 건어물 등을 만주와 중국으로 수출하는 일이었다.‘라면부터 미사일까지’ 취급한다는 종합상사의 70년전 버전인 셈이다. 삼성물산은 삼성의 대표기업답게 거쳐간 인물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초창기 삼성상회의 지배인으로 영입된 이순근씨는 이병철 회장의 와세다대 동문이다. 그는 정계에 투신했다 월북, 농림상까지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거의 모든 경영을 이순근씨에게 맡겼는데 오늘날 ‘전문경영인’ 체제를 일찌감치 시험한 것이다. 서울로 거처를 옮긴 지 1년 만인 1948년 종로2가 ‘영보빌딩’ 근처 2층건물에 삼성물산공사로 간판을 걸 당시에는 효성그룹 창업주인 조홍제 회장이 전무를, 김생기씨가 상무를 맡았다.1949년 11월 마른오징어 3만근을 배에 싣고 홍콩으로 떠난 조홍제씨가 교포무역상과 챤넬양행으로부터 오징어를 담보로 각각 면사 50근을 외상매입한 것이 국내 최초의 D/P(Document against Payment Base) 거래로 꼽힌다. 조홍제 회장은 62년 효성물산, 한국타이어를 갖고 삼성을 떠난다. 김생기씨도 삼성에서 독립, 영진물산·영진식품·혜성개발 등을 일궈냈다. 삼성물산 창립멤버로 60∼61년 사장을 역임한 고 허정구씨도 눈에 띈다.LG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사돈인 고 허만정씨의 장남인 허씨는 이후 삼양통상을 설립했다.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허동수 GS칼텍스정유 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아버지다. 70년에 대표이사를 지낸 정상희 사장은 3·5대 국회의원과 삼호무역 회장을 역임했고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남편인 정재은 명예회장의 아버지다. 이병철 회장과 고 홍진기 전 중앙일보 회장을 이어준 신현확 전 국무총리는 86년 이병철 회장의 요청으로 삼성물산 회장으로 영입됐다. 홍 회장의 공백을 메우며 이건희 회장 체제가 자리를 잡은 91년까지 물산 회장과 삼성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이필곤 전 부회장도 삼성물산 대표이사를 두차례(85∼93년,95∼97년)나 지낸 대표적인 ‘물산맨’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을 진두지휘하다 사업진출 차질에 대한 ‘책임’을 지고 중국으로 물러난 뒤 삼성을 떠났다. 서울시 부시장을 거쳐 현재 알티전자 회장과 삼성 CEO 출신들의 모임인 ‘성대회’ 회장을 맡고 있다.93∼95년 사장을 역임한 신세길씨는 현재 서울반도체 회장이다. 현명관 부회장은 아직도 물산의 비상근 회장 직함을 갖고 있다. 삼성물산은 2001∼2004년 배종렬 사장을 끝으로 공동대표체제가 굳혀졌다. 건설부문의 이상대(58) 사장은 충남 서천생으로 경복고와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했다.73년 제일합섬으로 입사한 뒤 대부분 삼성건설에서 일했다. 건설이 삼성물산에 합병되면서 97년 삼성물산 전략기획실장으로 일했고 2000년부터 주택부문 대표를 맡았다. 이 사장의 경복고 2년 선배인 상사부문 정우택(60) 사장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포항제철을 거쳐 77년 삼성물산에 입사했다. 휴스턴 지점장, 카자흐스탄 법인장 등 줄곧 상사부문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병철의 세번째 회사 제일모직 1954년 9월 설립된 제일모직은 삼성상회, 제일제당(53년)에 이은 삼성의 세번째 회사다. 긴 역사만큼이나 숱한 인재들을 배출했는데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 김인주 구조본 차장, 최도석 삼성전자 경영총괄 사장, 김징완 삼성중공업 사장, 안복현 삼성BP화학 사장,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등이 제일모직에서 잔뼈가 굵었다. 지난해 제일모직 대표이사로 부임한 제진훈(58) 사장은 경남 산청생으로 진주고와 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제일모직에 입사한 ‘모직맨’이다. 제일모직에는 올초 상무보로 승진한 이건희 회장의 차녀 서현씨와 남편 김재열 상무가 같이 일하고 있다. ●‘봄날’을 기다리는 화학·중공업 80년 유공 인수 실패,90년대 중반 자동차 사업의 좌절 등으로 자동차·중공업∼정유·석유화학·화학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중화학그룹’을 도모했던 삼성의 꿈은 사실상 좌절됐다. 오늘날 삼성을 대표하는 업종은 전자와 금융이다. 하지만 화학·중공업 계열사들의 ‘절치부심’이 예사롭지 않다. 화학·중공업 계열사 CEO가운데 비교적 많이 알려진 CEO는 허태학(61) 삼성석유화학 사장이다. 경남 고성생으로 진주농림고와 경상대 농학과를 졸업한 뒤 69년 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에 입사했다. 허 사장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진학마저도 조부의 강한 반대에 부딪힐 정도로 보수적인 농촌출신으로 한때 덴마크의 달라스나 그룬트비히 같은 농촌 계몽자를 꿈꾸었다고 한다. 호텔신라 총지배인, 삼성에버랜드 사장, 호텔신라 사장을 거쳐 2003년 삼성석화에 자리를 잡았다. 에버랜드 사장시절에는 ‘캐리비안베이’라는 테마파크를 조성, 리조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93∼2002년 삼성에버랜드는 이재용 상무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 위한 ‘징검다리’로 부상하면서 구설수도 따랐다. 허 사장은 96년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를 이 상무에게 저가로 발행한 것과 관련, 최근 징역 5년을 구형 받았지만 지금도 공공연히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건희 회장을 꼽을 정도로 삼성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삼성 CEO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할 정도로 ‘자기 PR’에도 열심이다. 삼성과 고 이병철 회장에게 큰 상처를 줬던 삼성정밀화학(옛 한국비료)은 제일합섬, 에버랜드, 삼성전자, 삼성종합화학, 삼성중공업, 삼성카드, 삼성자동차 등 가장 많은 회사를 옮겨 다닌 것으로 유명한 이용순(59) 사장이 2003년부터 맡고 있다.64년 8월 27일 설립된 ‘한비’는 유명한 ‘사카린 밀수사건’을 계기로 67년 10월 삼성이 주식의 51%를 국가에 헌납한 회사다. 한비는 이후 산업은행이 대주주로 공사형태로 운영됐지만 방만한 경영 등으로 위기를 맞자 94년 다시 삼성의 품으로 돌아왔다. 고홍식(58) 삼성토탈 사장은 삼성 사장단 가운데 몇 안되는 호남 출신으로 광주일고와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했다. 유난히 영남출신 CEO가 많은 삼성에서는 전주 출신의 배정충(60) 삼성생명 사장, 전남 구례생인 양인모(65) 삼성엔지니어링 부회장과 고 사장이 호남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LG전자 김쌍수 부회장이 기계공학과 1년 선배다. 72년 삼성에 입사한 고 사장은 줄곧 제일합섬에서 일하다 92년 비서실 경영팀장,93년 신경영실천위원회 팀장 등을 맡으며 그룹 전반의 일을 익히기 시작했다.95년 삼성종합화학 소속으로 화학소그룹 전략기획실장을 맡으며 화학계열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갔다.2001년부터 삼성종합화학 CEO를 맡으며 97년 당시 부채비율 800%로 ‘회생불능’이었던 삼성종합화학을 프랑스 토탈과의 합작과 고효율 경영으로 지난해 매출 2조 8000억원, 영업이익 5700억원(이익률 21%)이라는 ‘알짜기업’으로 변신시켰다. 순차입금 비율은 20%로 뚝 떨어졌다. 스스로 “화학이 곧 내 인생”이라는 고 사장은 2010년 이익 1조원 돌파를 목표로 삼성그룹 내에서 비교적 위상이 처지는 화학 사업의 ‘중흥’을 노리고 있다. 2006년 세계 1위 조선업체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중공업은 ‘현장경영’,‘극한원가’,‘질적인 1위’를 부르짖는 김징완(59) 사장의 지휘하에 부활을 꿈꾸고 있다. 경북 달성생인 김 사장은 현풍고와 고려대 사학과를 마치고 73년 제일모직에 입사했다. 중공업과는 88년부터 인연을 맺어 2001년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생산성 높은 조선소를 만들고 싶었던 이병철 회장은 일본 IHI사와의 합작을 통해 경남 통영시 안정리에 150만평 규모의 조선소를 세울 계획이었다. 하지만 오일쇼크의 여파로 계획은 차질을 빚었고 썩 내키지 않던 거제의 우진조선을 인수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또 하나의 ‘초일류’, 삼성 서비스 삼성에버랜드가 언론에 크게 부각될 때는 대부분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관련돼 있다. 그도 그럴것이 에버랜드는 이건희 회장(3.72%)은 물론, 이재용 상무 25.10%, 이부진 호텔신라 상무,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보, 이윤형씨 등 세딸이 나란히 8.37%의 지분을 갖고 있다. 고 이병철 회장의 4녀인 덕희씨의 남편인 이종기 전 삼성화재 회장(0.48%), 맏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남편인 조운해 전 고려병원장도 0.08%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국내 최대, 세계 6위권의 테마파크와 골프장, 빌딩관리 등 자산관리, 단체급식 등 유통, 조경 등 환경사업을 영위하며 지난해 매출 1조원 1600억원, 순이익 800억원대를 거둘 정도로 탄탄한 경영을 자랑한다. 박노빈(59) 사장은 보성고와 서울대 수학과를 마치고 74년 제일제당으로 입사,91년 삼성중공업을 거쳐 93년부터 에버랜드에 발을 담갔다. 사업 구상이후 무려 7년이 지난 79년 개관한 호텔신라는 초기 경기하락과 오일쇼크까지 겹쳐 적자에 허덕였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홍진기 회장의 총 지휘하에 손영희 사장이 경영을 맡고 장녀 인희가 고문이 돼 음식조리 등 안살림을 챙기고나서부터야 경영이 호전됐다.”고 회고했다. 경복고와 서울대 응용화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삼성물산에서 해외영업을 담당한 이만수(55) 사장이 2003년부터 경영을 맡고 있다.2001년 호텔신라로 들어와 지난해 상무보 승진에 이어 올초 상무로 승진한 이부진씨도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삼성의 서비스 사업 가운데 가장 독특한 영역인 보안업체 에스원은 2002년부터 이우희(58) 사장이 맡고 있다. 삼성가의 고향인 경남 의령 출신으로 삼성내 거의 유일한 이건희 회장의 친척이다. 이 사장은 부산고와 부산대 법학과를 마치고 제일제당에 입사했다.94년부터 계속 비서실 인사팀장으로 일해왔다. 국내 최대 광고회사인 제일기획 배동만(61) 사장은 보성고와 고려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73년 중앙일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제일제당, 호텔신라를 거쳐 비서실 홍보팀장, 에스원 대표이사를 역임한 뒤 2001년 제일기획 사장으로 부임했다. 지난해부터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 초창기 사업동지 이병철·조홍제 세간에는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과 효성 창업주인 고 조홍제 회장이 경남 진주의 지수보통학교를 다녔고 삼성을 공동 창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조 회장은 지수보통학교를 다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910년생인 이 회장은 서당을 다니다 1922년 3월 지수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이 회장의 고향은 의령군 중곡면 중교리지만 진주시 지수면과는 인접해있다. 지수에는 이 회장의 둘째누이 분시씨가 결혼해 살고 있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이 회장은 지수보통학교를 졸업한 것이 아니라 그해 9월 서울의 수송보통학교로 전학했고 25∼29년에는 중동학교를 다녔다. 1906년생으로 이 회장의 형인 병각씨와 동갑인 조 회장은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 상경,1922년 중동학교 초등과 1,2,3학년 과정을 이수하고 이듬해 협성실업학교 초등과 4,5,6학년 과정을 마쳤다. 효성 관계자는 “언제부터인지 선대회장과 삼성 이병철 회장,LG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이 지수보통학교 동문으로 소개됐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29년 도일,30년 와세다(早稻田)대 전문학부 정경과로 입학했고 조 회장은 27년 와세다대 공업전문학부에 입학했지만 29년 일본 호세이(法政)대 경제학부에 다시 입학한다. 둘의 동업관계에 대한 회고도 조금씩 다르다. 이 회장의 자서전인 호암자전은 48년 서울 종로2가에 삼성물산공사를 세울 당시 전무가 조홍제 회장, 상무가 김생기 전 영진약품 회장이었으며 설립자본금의 75%는 이 회장이, 나머지 25%는 조 회장, 김 회장, 이오석, 문철호, 김일옥씨가 분담했다고 밝혔다. 반면 조 회장의 회고록 ‘나의 회고’에는 48년 말 평소 안면이 있던 이 회장이 명륜동 조 회장의 집을 찾아와 사업얘기를 하던 차에 조 회장이 사업자금 800만원을 빌려준 것으로 나온다.2개월 뒤쯤 조 회장은 200만원을 더 투자해 1000만원을 채웠다. 이 회장이 이미 투자한 돈은 700만원이었다고 나와있다. 한국전쟁으로 잠시 헤어졌던 둘은 51년 이 회장이 당시 가족이 피난가 있던 마산에 들렀다가 조 회장을 만나 부산에 새로 차린 삼성물산에 와서 일하기를 권하면서 다시 이어졌다. 조 회장 역시 이와 비슷하게 기억했다. 호암자전은 또 조 회장과의 결별에 대한 별도 언급없이 63년 3월 2일 효성물산과 한국타이어, 한일나일론을 양도했다고만 명시했다. 나의 회고는 60년 3월초 일본 도쿄에서 골프를 치던 도중 이 회장이 결별 의사를 밝혔다고 소개한다. 이날 두 사람은 서로의 지분에 대해 언쟁을 가졌다. 둘의 재산분배는 62년 8월 이 회장의 자택에서 다시 논의된다. 조 회장은 “내 지분이 삼성 전체의 3분의 1쯤 되니 제일제당을 떼어달라.”고 제의하고 이 회장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지분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갈등이 점점 커지다 64년에야 결론이 난다. 조 회장은 자신이 분배받은 재산(한국타이어와 한일나일론의 삼성 지분 50%, 효성물산)은 3억원 정도로 자기 몫의 10분의 1도 안됐다고 밝혔다. 분가하면서의 불화는 한동안 재계 인사들에게 회자됐었다. 그러나 지난 84년 먼저 세상을 떠난 조 회장의 빈소를 이 회장이 찾아와 한참동안 머물며 ‘앙금’이 없었음을 내외에 알렸다.3년뒤인 87년 이 회장도 영면했다. ukelvin@seoul.co.kr ■ 삼성물산 역대 대표이사 1938년 이병철 회장 1960년 허정구 사장(LG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사돈 허만정씨의 장남, 삼양통상 창업주) 1961년 박도언 사장 1963년 김선필 사장 1966년 안동선 사장 1967년 김진하 전무 1967년 박태암 사장 1967년 성상영 사장 1968년 정수창 사장(전 두산그룹 회장) 1970년 정상희 사장(이명희 신세계 회장 시아버지) 1971년 김정렬 사장 1974년 이은택 사장 1977년 손상모 사장(전 동부그룹 부회장) 1978년 송세창 사장(전 나산그룹 부회장) 1981년 경주현 사장(전 삼성종합화학 회장) 1984년 배상욱 사장 1985년 이필곤 사장 1993년 신세길 사장(현 서울반도체 회장) 1995년 이필곤 부회장(현 알티전자 회장) 1997년 현명관 부회장(현 전경련 부회장) 2000년 이상대 사장(현 건설부문) 2001년 배종렬 사장 2004년 정우택 사장(현 상사부문)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월드 이슈-부시2기 행정부와 네오콘] ‘극단적 무슬림’ 해체에 역량 집중

    [월드 이슈-부시2기 행정부와 네오콘] ‘극단적 무슬림’ 해체에 역량 집중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비밀 결사단. 명문대를 졸업한 유대인을 중심으로 구성돼 조지 부시 정부와 언론 기관에 뿌리내린 이상주의자들의 세포 조직. 이슬람에 대한 증오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이라크전은 이들이 이슬람을 점령하기 위해 미국을 조종한 것.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방적인 무력행사를 불사한다. 유엔이나 국제사회와의 협력은 목표 실현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뿐….’ 지난 24일(현지시간) 저녁. 워싱턴 시내 17번가에 자리잡은 미국기업연구소(AEI) 12층. 네오콘의 거두 앨버트 울스테터의 이름을 붙인 대형 콘퍼런스 룸에서 ‘네오콘 포럼’이 시작됐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2기 정부 취임에 맞춰 네오콘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미래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단합대회’ 성격의 모임이었다. 최근 ‘네오콘 독자(Neocon Reader)’라는 저서를 펴낸 허드슨연구소의 어윈 스텔저 연구원이 주제발표 첫머리에 미국과 유럽의 언론에 투영된 네오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짧은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지만, 장내의 분위기는 심각했다. 스텔저 연구원은 “언론에 묘사된 것과 같은 뿔 달린 괴물은 없다.”고 일갈했다. 네오콘 포럼은 ‘과격한 이상주의자들’이라는 미국 내부와 국제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의식한 듯 다소 위기감 속에서 시작됐다. 포럼에는 스텔저 연구원과 AEI의 칼린 바우먼, 진 커크패트릭, 찰스 머레이, 워싱턴포스트의 찰스 크라우트해머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누가 네오콘인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유엔 대사를 지냈던 진 커크패트릭은 “가장 분명한 것은 누가 네오콘인가 하는 것이 한 번도 분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커크패트릭은 “(네오콘의 우상격인)어빙 크리스톨을 만났을 때도 물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크리스톨조차도 그같은 질문에 답변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암시였다. 크라우트해머는 “네오콘은 집단의 운동(Movement)이 아니라 개인의 성향(Tendency)이라고 설명했다.‘예일대를 나온 사람’과 같은 기준이 아니라,‘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과 같은 구분이라는 것. 따라서 보기에 따라 네오콘의 범위는 확대될 수도 축소될 수도 있다. 스텔저는 ‘네오콘 독자’에서 네오콘의 대외정책 섹션에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 및 토니 블레어 총리의 글을 올렸다. 가급적 네오콘의 지평을 더 넓혀보려는 의도를 가진 것 같았다. 토론자들에게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로버트 졸릭 부장관이 네오콘이냐고 묻자 “모르겠다.”며 “앞으로 추진하는 정책을 보고 나서야 판단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즈펠드 같은 인물은 네오콘에게 무엇일까. 스텔저는 그의 저서에서 이들이 네오콘의 정책을 구현하는 중요한 ‘실행자(Practitioners)’라고 규정했다. 반대로 부시나 체니, 럼즈펠드의 입장에서 보면 네오콘은 미국의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주는 ‘명분 제공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네오콘은 이상주의자들인가? 크라우트해머는 네오콘이 “과격한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냉철한 현실주의자”라고 지칭했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를 핵심가치로 삼지만, 네오콘들은 비민주적인 파키스탄을 민주화하는 것보다는 파키스탄을 이용, 아프가니스탄의 극단적 무슬림을 해방시키는 것을 우선순위에 둔다는 것이다. 머레이는 네오콘들이 “상대적으로 데이터를 잘 다루고, 정책을 기획하고 대통령과 의회를 설득하는 데 정력적인 추진력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일이 시작되면 이데올로기에서는 한발 벗어나 있다.”고 주장했다. 포럼에 참석한 독일 기자가 “메시아적인 성향을 갖고 있지 않느냐.”고 종교 지향성을 지적하자 머레이는 “부시 정부(참석자들은 이따금씩 네오콘과 부시 정부를 일치시켰다)의 대외정책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부분은 매우 작다.”고 주장했다. 또 크라우트해머도 “루스벨트, 링컨 대통령도 재임 중에 종교적인 비유를 하곤 했다.”면서 “네오콘 가운데 유대인이 많기는 하지만 수요일밤에 모여 비밀 의식을 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스텔저는 “부시 대통령의 관심은 90%가 대외정책이고 10%만이 국내정책이라는 말을 백악관 관계자들로부터 들었다.”면서 “미국의 국익이 대외정책에 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 등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네오콘은 대북 강경론자들인가? 저녁 5시부터 7시까지 두 시간 동안 계속된 포럼에서 ‘노스’든 ‘사우스’든 ‘코리아’라는 단어는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네오콘의 관심이 ‘극단적 이슬람’의 터전이라는 중동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포럼이 끝난 뒤 참석자들에게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묻자 “북한은 중동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역”이라면서 “부시 정부는 앞으로도 북한과의 현상을 유지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크라우트해머는 따라서 “부시 대통령이 북한과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매우 명확하다.”고 단언했다. 다만 크라우트해머와 스텔저는 북한이 핵이나 미사일을 외부지역 특히 중동으로 유출할 경우에는 엄중한 사태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포럼에는 정부와 외교가, 학계, 언론계 인사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참석해 네오콘에 대한 관심이 미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라이스 국무장관의 연설문 담당자라고 소개한 참석자는 행사장을 떠나며 “한편으로는 유익했지만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네오콘들이 향후의 국제질서와 국내정책에 대해 보다 명확한 목표와 대안을 제시하기를 기대했지만 포럼 전체가 네오콘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다소 추상적인 느낌을 줬다.”고 말했다. dawn@seoul.co.kr
  • [월드 이슈-부시2기 행정부와 네오콘] ‘네오콘’ 역사와 인맥

    [월드 이슈-부시2기 행정부와 네오콘] ‘네오콘’ 역사와 인맥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시조(始祖)는 레오 스트라우스다.1899년 독일계 유대인으로 태어난 실존주의 철학자로 당초 좌파 성향에서 미국에 귀화한 뒤 우파로 바뀌었다.2차대전 이후 70년대 초까지 25년간 시카고대에서 정치철학을 강의했다. ●네오콘의 시조는 레오 스트라우스 그는 기독교 근본주의에 근거, 야만인들로부터 도덕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이의 적임자로 미국을 꼽으며 ‘로마제국의 현대화’,‘세계의 경찰국가’ 등을 주창했다. 그의 제자인 앨런 블룸과 하비 맨스필드 등은 시카고대와 하버드대에서 ‘스트라우스 학파’를 발전시켰다.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과 네오콘의 기관지 ‘위클리 스탠더드’의 편집장 윌리엄 크리스톨은 이들로부터 수학했다. 네오콘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집권 이후 전면에 부상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 네오콘과 인연을 쌓은 딕 체니 부통령이 정권 이양의 중임을 맡으며 네오콘을 대거 중용했다. 90년대 초 국방정책 차관이던 울포위츠는 미래의 적에 ‘선제공격’ 개념을 도입, 미 국방계획 지침을 마련했다. 체니는 이를 수용하고 지지했으나 온건파인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과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제동을 걸었다. 이후 체니와 베이커측의 사이는 멀어졌으나 울포위츠와의 관계는 돈독해졌다. 세인의 관심을 끈 것은 1997년 워싱턴에서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가 발족하면서다. 기업연구소(AEI) 회장을 지낸 존 볼턴 전 국무부 군축협상 차관과 더글러스 파이스 국방정책 차관 등이 앞서 후세인 정권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네오콘의 기치를 걸고 공식 활동에 나선 것은 PNAC가 처음이다. ●리비는 울포위츠에 직접 배워 체니·울포위츠·크리스톨·파이스·볼턴 이외에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피터 로드맨 국방부 안보담당 차관보, 엘리엇 에이브럼스 국가안보회의(NSC) 중동 보좌관,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 등이 참여했다. 리비는 예일대에서 울포위츠로부터 직접 배웠다. 네오콘의 역할이 과대평가됐다고 비판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스 홉킨스대 교수와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 로버트 로웬버그 선진전략정치연구소 회장 등도 포함됐다. 베이커와 함께 일했던 로버트 졸릭 신임 국무부 부장관은 PNAC의 정책을 지지했으나 그가 네오콘인지 여부에는 논란이 있다.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으로 옮긴 로버트 조지프 전 백악관 핵확산방지 국장은 네오콘의 작품으로 알려진 ‘이라크-니제르 정보 커넥션’을 퍼트린 장본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파면당할 대상이 승진한 케이스다.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백악관에서 호흡을 맞췄으나 라이스 ‘견제용’으로 체니가 NSC에 심었다는 게 정설이다. 국방부의 윌리엄 루티 근동담당 부차관보와 리처드 롤리스 아태담당 부차관보는 체니가 기용한 네오콘으로 분류된다. 특히 루티 부차관보는 이라크전쟁을 주도한 특수작전국(OSP)을 맡아 백악관에 직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체니가 네오콘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으나 ‘좌장’인 것만은 틀림없으며 럼즈펠드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라이스를 네오콘으로 보지는 않는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체니 “이스라엘이 이란 공격할수도”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딕 체니 미국 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 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무산시키기 위해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고 발언해 국제사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체니 부통령은 MSNBC와의 인터뷰에서 “세계의 잠재적 분쟁지역들을 살펴보면 이란이 명단의 최상위에 있다.”면서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우려들 중 하나는 이스라엘이 누구의 요청없이도 (이란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체니 부통령은 이란이 민간용 에너지 생산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핵 프로그램에 대해 “대단히 우려하고 있다.”면서 “이스라엘도 이란이 명백히 핵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체니 부통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취임식 날 방송된 인터뷰에서 이같이 발언함에 따라 미국이 이란을 이라크 다음의 공격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뉴요커의 최근 보도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경우 북한 핵 문제는 일단 미국 대외정책의 최우선 순위에서는 비켜날 것으로 전망된다. 체니 부통령은 “이스라엘 파괴가 목표라는 이란의 공개된 정책을 감안하면 이스라엘인들이 먼저 행동하기로 결정할 수 있다.”면서 “세계 다른 나라들은 그 이후의 외교적 혼란을 정리하는데 우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란이 이스라엘을 자주 공격하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지지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란을 “주목할 만한 테러 후원국”이라고 지칭했다. 이에 앞서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는 18일 의회 인준청문회에서 이란을 북한 등과 함께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했다. 체니 부통령은 “미국은 중동에서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이란 문제에 대해서는 부시 행정부가 다양한 선택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체니 부통령은 “후세인 제거 후 상황이 보다 빨리 회복될 것으로 계산했다.”고 말해 이라크전과 관련된 정책에 차질이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dawn@seoul.co.kr
  • 부시 취임 “자유 향해 행진”…2기임기 시작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취임식을 갖고 4년 동안의 2기 임기에 들어갔다. 미국의 43대 대통령인 부시 대통령은 이날 낮 12시 의사당 앞에 마련된 취임식장에서 50만명의 축하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에게 취임선서를 했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미국이 구가하는 자유의 존립은 갈수록 다른 지역의 자유에 의존돼가고 있다.”면서 “세계의 평화는 전세계에 민주화를 확산시킴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며 ‘자유를 향한 행진’을 제창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우리는 미국이 추구해야 할 미래의 목표를 향해 이상과 용기를 갖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미국인의 단결을 호소했다. 이어 “자유야말로 미국을 단합시키고 세계인에 희망을 주는 대의명분”이라면서 “미국은 이러한 명분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천명한 세계의 자유와 민주화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을 다음달 2일 열리는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제시할 계획이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입장도 이날 연설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취임식은 55차례의 역대 대통령 취임식 가운데 가장 많은 경찰과 군이 배치된 가운데 삼엄한 지상 및 공중·지하 경비 속에 진행됐다. 또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서도 전국에서 모여든 수만여명의 시위자가 도심 곳곳에서 부시 대통령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며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부시 대통령은 역대 재임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은 50%의 지지율을 기록 중이며, 이라크 전쟁 완수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등 중동 평화협상 추진, 재정 및 무역적자 해소, 사회보장 개혁, 세금제도 개편 등의 산적한 과제를 안고 있다. 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알베르토 곤잘레스 법무장관 지명자의 상원 인준이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는 등 2기 행정부 구성부터 의회의 전폭적인 협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dawn@seoul.co.kr
  • [월드 이슈-총선 D-9 이라크 미래는] 美 ‘중동 민주화’ 순항할까

    [월드 이슈-총선 D-9 이라크 미래는] 美 ‘중동 민주화’ 순항할까

    |워싱턴 이도운특파원|30일로 예정된 이라크 총선은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의 2기 초반의 성패가 달린 국제적으로 중요한 외교적 이벤트이다. 선거가 무난하게 치러진다면 9·11 이후 ‘중동의 민주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테러와의 전쟁을 감행한 부시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어느 정도 국제사회로부터 수긍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부시 대통령은 2기의 중요한 과제로 전세계적인 민주주의 확산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선거가 제대로 치러지기는 어려운 상황이어서 부시 행정부를 긴장시키고 있다. 총선을 저지하기 위한 저항세력의 테러공격이 갈수록 격렬해져 ‘절름발이 총선’에 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총선을 강행할 방침이지만 선거에 대한 기대치는 크게 낮췄다. ●이라크 親이란 시아파 집권 예상 이라크 총선의 중요한 지표인 투표율과 관련, 백악관 관계자는 “별 의미가 없는 숫자에 초점을 맞추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면서 “그보다는 선거로 구성될 정부를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 행정부가 투표율 기대치를 낮춘 것은 테러 위협과 수니파의 총선 거부 분위기가 투표율을 떨어뜨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라크 총선이 일단 마무리되면 부시 행정부의 관심은 이란 등 다른 중동국가의 ‘민주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4일 언론과의 회견에서 “재선을 통해 이라크 전쟁에 대해 국민들의 인준을 받은 만큼 이라크에서의 임무를 완수한 후 철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對테러전 확대 이란 공격설 부상 철군론과 발맞춰 미국에서는 이란 공격설도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이같은 분석은 ▲이라크 총선에서 친 이란 성향의 시아파가 정권을 잡을 것으로 예상되고 ▲향후 중동에서 이란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에 뒤따라 나오는 것이다.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24일자에서 “부시 2기 행정부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그 전선을 더욱 확대할 것”이라며 “이라크 다음 상대는 이란”이라고 보도했다. 뉴요커는 익명의 정보원들을 인용, 미국은 지난해 여름부터 정보기관과 특공대를 투입해 30여곳의 이란 내 군사 및 핵저장시설 위치파악에 나서는 등 공격준비에 나섰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미 국방부는 뉴요커의 기사는 오보라고 반박했으나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것이라는 관측은 수그러지지 않고 있다. dawn@seoul.co.kr
  • [라이스 청문회] 라이스 인용書 ‘민주주의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 이어 18일 상원 인준청문회에 나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까지 인용한 나탄 샤란스키의 책 ‘민주주의론’(The Case for Democracy)이 관심을 끌고 있다. 샤란스키는 구소련 반체제인사 안드레이 사하로프의 영어 통역으로 일하다 9년 동안 수감됐던 인물. 석방된 그는 1986년 이스라엘로 건너가 세 차례나 각료를 지낸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 삶의 궤적이 그대로 투영된 이 책의 부제 ‘폭정과 테러를 극복하는 자유의 힘’은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을 함축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9월 펴낸 이 책에서 ‘광장 시험 이론’을 제시했다. 민주주의란 공개된 장소인 광장 한가운데에서 수감이나 육체적 위해에 대한 공포 없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한다는 것.9·11테러가 발생한 21세기 지구촌을 자유사회와 공포사회로 양분한다. 자유사회는 한번도 그 안에서 서로 전쟁을 벌인 적은 없고 현대사에서 전쟁은 자유사회와 공포사회간, 또는 공포사회 안에서만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세계가 민주화 된다면 전쟁은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 부시 대통령 외교정책의 근간이라고 샤란스키는 짚었다. 구소련에서든, 중동에서든 폭정은 반드시 민주주의에 고개 숙이고 길을 비켜줄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정치는 더 이상 좌우의 문제가 아닌 옳고 그름의 문제”라고 단언한다. 따라서 샤란스키는 팔레스타인의 공포사회가 자유사회로 대체되지 않는 한 적대행위는 종식되지 않을 것이며, 이스라엘은 위험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美 ‘이란 공격’ 현실화되나

    이란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이라크전이 일단락된 뒤 줄곧 제기돼온 ‘미국의 다음 목표는 이란’이라는 설에 점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17일 밤(현지시간) NBC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란이 핵무기 의혹에 대해 협조하지 않는다면 군사행동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부시 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의 존재에 대한 국제사회의 접근을 완강히 거부하더라도 군사행동은 고려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길 희망하지만 모든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미 국무부는 ‘수출관리목록에 따라 통제되는 장비와 기술’을 이란에 제공했다는 이유로 이달초 중국 기업 7개와 타이완 및 북한 업체 각 1개등 총 9개 업체에 대해 제재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했다고 뉴욕타임스가 17일 보도했다. 제재대상 기업은 ‘베이징 에리트 테크놀러지’와 ‘차이나에어로·테크놀러지 수출입회사’ 등 중국 업체들과 북한의‘백산 어소시에이티드 코퍼레이션(Paeksan Associated Corporation)’등이다. 미 국무부는 이들 업체가 이란이 대량살상무기와 현대화된 탄도탄미사일을 개발하도록 도움을 준 것으로 판단, 이런 조치를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미국 잡지 ‘뉴요커’의 시모어 허시 기자는 ‘다가오는 전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국 정부가 핵ㆍ화학ㆍ미사일 무기 정보를 찾기 위해 지난해 여름부터 이란 내부에 특수부대를 투입,30여곳을 비밀리에 정찰했다고 16일 보도했다. 허시는 남아시아의 미 특수부대가 이란 과학자들과 교류했던 파키스탄 과학자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으며, 파키스탄의 정보를 바탕으로 이란 동부로 잠입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 기사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미군 특수부대가 중동·남아시아 10개 국가의 테러 의심 장소에 대한 조사를 승인하는 문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이에 대해 17일 성명을 통해 “기초적인 사실에 오류가 많은 기사”라고 일축했다. 미 정치권에서 이란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해외에 거주하는 반정부 이란인들로 구성된 ‘이란민주화동맹’이라는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8일 보도했다. 이 단체는 이란에서의 왕정 복귀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 실시와 미 의회의 ‘이란 민주화 지원법’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라이스 “북·이란 핵 포기해야”

    |워싱턴 이도운특파원|18일(현지시간) 시작된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지명자의 인준 청문회에 세계의 관심이 쏠렸다. 라이스 청문회가 조지 W 부시 대통령 2기 정부의 대외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라이스는 부시 1기 정부 4년간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지만 “대외정책에 대한 입장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라이스도 이를 의식한 듯 청문회에서 미국의 대외정책과 이를 추진하는 국무부의 비전을 명확히 전달하는데 주력했다. 라이스는 모두 발언을 통해 “이제는 외교력을 발휘할 때(The time for diplomacy is now)”라고 강조했다. 라이스는 특히 “우리는 일치단결해 북한과 이란이 핵무기 야망을 포기하고 평화의 길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과 쿠바, 짐바브웨, 미얀마 등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부르며 이들 나라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의 민주화를 함께 추진해야 하는 주요 동맹국 및 동맹국 국민과의 관계 개선도 강조했다. 아시아에서 일본, 한국, 호주가 공동의 위협에 대처하고 경제적 번영을 위한 ‘핵심 동반자’(Key Partner)라고 지적했다. 국무장관으로서 라이스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은 ‘중동의 민주화’. 이날 청문회에서 외교위 소속 의원들의 질문이 이라크전과 테러와의 전쟁에 집중됐으며 라이스도 이에 대해 가장 긴 답변을 했다. 이와 함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 등도 라이스 국무부의 우선순위가 될 것이며, 통상과 에이즈 예방 등 ‘비 안보 이슈’에도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라이스 지명자는 이번 청문회에서 대외정책의 기본 방향만 밝히고 구체적인 정책 추진 방안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20일 부시 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두고 김 빼지 않겠다는 자세다.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도 외교적 수단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북한은 6자회담에 조속히 복귀해야 한다는 국무부의 공식입장을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문회를 앞두고 민주당의 바바라 박서(캘리포니아) 등 일부 상원의원은 이라크전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 정보의 ‘왜곡’ 등을 문제삼을 태세다. 특히 공화당이 민주당 텃밭인 캘리포니아에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라이스를 오는 2006년 상원의원선거에 내보낼 것이라는 소문이 워싱턴 정가에 나돌고 있다. 민주당측이 이를 의식, 라이스를 흠집내기 위해 강하게 밀어붙일 가능성도 있다. 라이스 지명자는 새해 들어 매일 새벽 6시45분이면 워싱턴 시내 워터게이트 아파트를 나와 걸어서 1분30초 거리인 국무부 임시 집무실에 도착, 국무부 업무 파악과 청문회 준비에 전념해왔다. 상원 외교위는 19일 청문회가 끝나면 인준 투표를 실시하며, 상원 전체회의는 20일 부시 대통령 2기 취임식이 끝난 뒤 본회의를 열어 인준 투표를 할 예정이다. 미 언론은 라이스가 무난하게 인준될 것으로 예상한다. 라이스가 인준을 받으면 헨리 키신저 이후 처음으로 국가안보보좌관 출신의 국무장관이 된다. 라이스 지명자는 다음달 초와 3월 잇따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을 위한 국제회의 참석을 위해 유럽을 방문할 예정이다. 라이스가 이날 ‘멘토(정신적 스승)’이라고 호칭한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아침 일찍 출근해 전세계의 외교 지도자들과 전화로 대화하는 스타일이었다. 반면 라이스는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것을 선호한다. 때문에 라이스가 국무장관에 취임하면 끊임없이 전세계를 돌아다닐 것으로 보인다. dawn@seoul.co.kr
  • [김홍신의 세상보기] 신명 바이러스

    [김홍신의 세상보기] 신명 바이러스

    40대 후반을 넘긴 한국인이면 점치기가 거저 먹기일 수 있다. “초년 고생했고 자수성가했으며 부모 덕이 지지리도 없는 데다 죽을 고비 참 여러 번 넘겼구랴.” 이렇게 말질을 하면 얼추 용하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 시절에 누구인들 풍족한 사람이 있었으랴. 그러니 부모 덕이 없었고 지금 밥술이나 먹으니 자수성가한 셈일 수밖에. 한국인 치고 연탄가스에 김칫국 마시고 깨어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의료가 미천했으니 홍역 마마도 죽을 고비요, 출산 과정에서 죽다 살아난 사람투성이요, 배고픈 군대생활에 월남전과 중동의 근로대열로 이어지는 죽을 고비는 부지기수였다. 나라 별 국토의 크기로 따져 고작 0.078%의 땅에 인구 0.77%로 세계 교역량 12위를 달성한 국민이니 그 고초가 오죽했겠는가. 우리의 현대사를 주욱 훑어보면 고비고비 참담한 고통의 역사가 도사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해방공간의 분단과 혼돈,6·25 전쟁의 비극과 이념갈등, 절대빈곤과 독재,4·19혁명과 5·16쿠데타의 격변, 군사독재의 장기화와 민주화의 갈등양상, 산업화를 통한 빈부격차와 지역 갈등, 광주민주화운동과 6·10항쟁, 그리고 우리를 참담하게 했던 IMF, 수도 없는 억압과 인권유린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던 민중의 함성들…. 그러나 그런 틈새마다 우리 민족은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 저력의 끈은 흥이었고 신명이었으며 희망에 대한 열정이었다. 고도성장을 이끌어낸 것도 그랬고 독재와 맞선 민주화 물결도 그러했으며 올림픽에서부터 붉은 악마의 함성과 촛불행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신명나게 한바탕 흥으로 화합과 도약을 일구어내곤 했다. 한국인의 특질 중에 한과 흥을 함께 가졌다는 주장이 있다. 한번 흥이 나면 못해내는 게 없을 정도로 신바람을 내지만 흥이 깨지면 한이 맺혀 분노하고 좌절하며 남 탓을 한다는 것이다. 요즘, 사는 게 모두 어렵다고들 한다. 내 탓보다는 남의 탓인 듯싶으니 더욱 화가 치밀 만도 할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탓해서 지금의 고통이 가셔질 수만 있다면 그럴만한 가치가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우리는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그 험한 세상을 뚫고 여기까지 달려온 우리의 저력을 다시 한번 꺼내어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 과학자들의 실험결과에 따르면 중증환자라도 희망을 가지면 놀라운 치유능력을 보이지만 가벼운 환자라도 좌절하면 회복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희망을 잃으면 모든 걸 잃게 된다. 희망은 미움과 분노와 갈등을 털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남 탓을 하면서 신명이 생길 리 없고 누굴 미워하면서 흥이 생길 리 없으며 쓸모없는 짐을 무겁게 지고 앞으로 달려나갈 수 없는 것이 세상이치인 것이다. 물론 신명나야 할 국민들의 흥을 깨뜨리는 무리들이 꽤 많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 조금만 세월이 지나면 쓸모없다는 걸 알게 될 이념 대립, 민생 살피기와 경제 살리기에 전념해도 빠듯한 판에 딴청 부리는 세상사, 제 주장만 옳고 다른 얘기엔 귀를 막는 집단 이기주의, 말로만 국민을 섬기고 돌아서면 뱃속 채우기 바쁜 가진 자와 쥔 자들의 도덕적 이중성…. 그렇거니 부존자원 없는 땅에서 뒤늦게 현대화하고 작은 땅덩어리마저 둘로 갈라져 마주 겨눈 상태에서 이만큼이나 가꾸어온 그 바탕에는 한국인의 신명바이러스가 늘 작동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현대산업의 쌀이라는 메모리반도체가 세계 제일이라는 명성을 차지한 것도 한국인의 신명바이러스일 것이고 한류열풍이 아시아를 파고드는 까닭도 따지고 보면 한국상품과 한국인의 저력 그리고 한국인의 신명이 스며있는 덕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힘겨운 때일수록 저력은 더욱 빛나는 법이다. 우리 사회에 신명바이러스가 무섭게 번져나가길 기대한다.
  • [열린세상] 영화 ‘알렉산더’를 보고/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미래전략연구원장

    우리에게 알렉산더 대왕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한 마케도니아 정복자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알렉산더’가 현재 한국에서 상영되고 있다. 새해 연휴 기간에 가족과 함께 이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세계사 교육을 아직 안 받은 딸이 “우와 그 잔인한, 야만적인 사람이 뭐가 좋다고 이런 영화를 만들었지.”라고 화를 내는 것을 보고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만큼 보이는 것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알렉산더의 본 모습을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입된 지식, 그리고 선입견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아는 만큼 무지해지는 아이러니를 갖게 된다. 선입견 없이 보면 너무나 명쾌하게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지식 때문에 본질을 볼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러한 ‘아는 것의 아이러니’는 많은 경우 의도적으로 이용된다. 역사 서술의 경우 이러한 사가들의 의도가 많이 발견되는데, 예를 들면 아메리카 대륙을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했다는 서술이나, 한국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표현하는 것 등이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아메리카 대륙을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했다고 알게 되면, 그 이전부터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으며,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알게 되면 무례한 한국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런데 사실은 아메리카 원주민도 존재하고, 무례한 한국 사람도 존재한다. 이러한 ‘아는 것의 아이러니’가 생겨나면 ‘알면서 모르는’ 사람은 지식을 조작하는 세력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어 조작 세력은 이들에게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학에서는 이러한 생각을 통한 영향력을 ‘소프트 파워(soft power)’ 혹은 ‘연성권력’이라고 부른다. 영화 ‘알렉산더’는 독특한 소프트 파워를 가지고 있다.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삐딱한 영화를 많이 만들기로 유명한 올리버 스톤이 감독한 영화여서 그런지 이 영화는 서구 문명의 근원인 그리스·로마 문명을 무조건적으로 미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페르시아인과 동방인들을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알렉산더와 그의 부하 그리스인들을 보여 주면서 이들의 문명관을 조롱하고, 알렉산더의 광기의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불완전한 정복자를 묘사한다. 또한 아무런 의미 없는 동방으로의 끝없는 정복이 무고한 생명만을 앗아가는 전쟁으로 귀결된다는 반전(反戰)의 메시지도 전하고 있다. 그리고 페르시아와 동방의 장엄한 건축과 문명을 보여주면서 타 문명에 대한 존경심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올리버 스톤은 ‘야만적인’ 중동에 민주주의를 심기 위해 들어간 미국을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에 비유해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미국제국의 건설계획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로마 문명으로 대표되는 서양 문명을 다시 한번 동방인인 우리에게 전파하고 교육하고 있다. 이미 우리들의 교육과정을 통하여 수차례 미화된 그리스·로마 문명이 더욱 아름답게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배경으로 깔리고 있고, 신화적인 고대사를 사실적으로 재구성해 알렉산더의 제국을 그야말로 문명국가 건설에 버금가는 위대한 작업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잔인하고 잔혹한 알렉산더도 대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알렉산더 대왕으로 남기고자 한다. 영화 ‘알렉산더’의 소프트 파워는 이러한 서양문명의 뿌리에까지 동방인이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게 하는 것이며, 또한 그 안에서 모르는 만큼 보이게 해 주는 계몽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어쩌면 고대의 알렉산더가 칼과 창의 힘으로 동방을 정복해 나갔다면, 지금의 알렉산더는 생각을 지배하는 소프트 파워로 동방을 정복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소위 동방의 우리는 칭기즈칸의 기마병을 대체할 만한 21세기 동방의 소프트 파워를 가지고 있는가? 서양의 저들은 동방의 문명과 얼마나 친숙하며, 동방의 위대한 영웅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저들은 우리의 광개토대왕과 이순신의 위대함을 알고 있는가? 영화관을 나오면서 괜히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미래전략연구원장
  • 올 ‘금융대전’ 예고

    “2등이란 없다.” 을유년 새해 첫 영업일인 3일 은행장들이 신년사를 통해 밝힌 각오가 비장하다. 올해 본격화될 ‘금융대전’을 앞두고 열린 은행들의 시무식은 승리를 다짐하는 출정식 분위기였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올해는 글로벌 은행들이 국내시장에서 본격적인 토착화 전략을 추진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면서 “이들과 국내 대형은행들간, 그리고 국내 은행들끼리의 치열한 상품과 서비스 경쟁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국민은행의 중점 과제로 ▲조직체제 정비 ▲영업력 확충 ▲자산건전성 향상과 부실 축소를 위한 여신관리체제 정비 ▲기업금융과 파생상품 개발역량 강화를 꼽았다.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수익기반 확충과 선도은행 자리를 놓고 주요 은행들이 정면 승부를 펼치는 금융대전이 전망된다.”면서 “제2의 창업이라는 각오로 발로 뛰는 영업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황 행장은 금융대전 승리를 위한 중점 추진사항으로 ▲고객의 성공을 지원하는 최고의 파트너 ▲영업수익 극대화 ▲건전한 여신문화 창달 ▲인적자원 역량제고 및 최고 전문가 양성 ▲경영효율 개선과 비용 절감 등을 제시했다. 신상훈 신한은행장도 “올해는 은행들이 사활을 걸고 전쟁을 치르는 ‘빅뱅’ 원년이 될 것이며 전쟁에서 2등은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신 행장은 이어 “고객중심의 마케팅, 최적의 수익구조 구축, 글로벌 경쟁기반 강화 등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많은 은행들이 우리를 강력한 경쟁상대로 지목해 철저히 준비하는 만큼 진정한 통합을 완성하고, 차별화를 통해 잠재력을 실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은행장들도 경쟁체제 강화를 선언했다. 강권석 기업은행장은 “씨티은행 등 글로벌 강자들이 국내시장에 상륙하면서 은행간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면서 “이번 전쟁에서 기필코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행장은 승리를 위해 젊은이의 도전정신을 갖자는 ‘청년 기업은행’ 운동 전개를 선포했다. 신동규 수출입은행장은 “올해 중동 및 브릭스(BRICs) 국가들에 대한 시장개척에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면서 “해외자원개발 및 중소기업 발굴에도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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