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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립大는 지금 ‘생존전쟁’

    사립大는 지금 ‘생존전쟁’

    고려대·경희대·한국외국어대 등 3개 대학은 올 2학기부터 서어서문학과 등 전공자가 적은 일부 어문계열 박사과정 수업을 한 강의실에서 공동으로 진행한다. 취업난 등으로 이른바 ‘인기학과’ 집중이 심해져 학생보다 교수가 더 많아진 탓이다.3개 대학은 한국학 등의 박사 과정 수업도 공동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취업난이 심해지고 전공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상아탑에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국·공립 대학과 달리 당국 주도의 대학간 통·폐합이 쉽지 않은 사립대학들은 학과 통합, 학교간 공동수업, 학과 체계개편 등을 통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대학운영 효율성·경쟁력 강화 고려대는 공동수업 외에 한국외대와 학부, 대학원 과정을 포괄해 학점 교류를 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28일 학술교류협정을 맺었다. 학교 관계자는 “외대는 어문학, 고대는 사회과학·공학 등에서 각각 장점을 살리는 ‘윈-윈 전략’이며 앞으로 다른 전공분야로도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대학간 통합이 힘든 사립대로서 운영의 효율성을 꾀하고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건국대는 학부제 도입 이후 전공 희망자가 적어 폐강이 속출했던 불어불문과와 독어독문과를 내년부터 없애고 이를 ‘EU(유럽연합)문화정보학과’로 통합한다. 올해 세부 전공을 선택한 2004학번(2학년) 인문학부 학생 319명 중 독문과 지망은 2명이었고, 불문과는 단 1명이었다. 반면 영문과는 103명, 중문과는 95명, 국문과는 81명이었다. 새로 생기는 EU문화정보학과는 순수학문에서 탈피, 경제·경영학에서 요리·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유럽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는 학과다. 기존 어학·사학 외에 ▲EU문화브랜드 리서치 ▲EU문화와 디자인 ▲EU문화권 요리분석 등 실용적 색채가 강한 과목들이 대거 추가된다. 히브리어과도 ‘히브리·중동학과’로 개편된다. 이스라엘 현지에서 오래 생활한 교수를 중심으로 국제분쟁의 대명사로 꼽히는 중동지역의 경제·문화 등을 강의, 향후 중동 전문인력 수요에 대비한다는 계산이다. 성균관대 역시 극비리에 ‘레인보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문과대학 부흥전략을 추진중이다. 우선 올해부터 기존 어문학부와 인문학부를 문과대학이란 이름으로 통폐합했다. 성균관대 관계자는 “수도권지역 특성화 대학에 선정되기 위해 오는 12일 인문학과 기초학문 발전을 골자로 한 레인보 프로젝트 기획안을 교육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취업 겨냥 실용학과 늘리고 기존 교수 활용 이화여대는 내년에 공과대학 안에 식품공학과를 새로 만든다. 학교 관계자는 “식품영양학과는 졸업후 전공 관련 진로가 영양사 정도에 국한되지만 식품공학과는 더 넓은 분야로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취업난을 감안, 과를 신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는 기존 식품영양학과 교수 10여명 중 3명을 식품공학과 교수로 임용할 방침이다. 학과는 신설하되 새 교수 임용은 최소화함으로써 ‘슬림화’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전 학부생 “2배이상 공부하기” 개별 학과의 경쟁력 강화 노력도 활발하다. 고려대 불어불문학과는 학생들의 취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올 2학기부터 수강과목을 대폭 개편한다. 인문학 인재 양성을 위한 기존의 ‘전공트랙’ 외에 행사기획전문가 등 문화정보산업 진출을 위한 ‘문화트랙’과 국제경영 분야 등에 취업하기 위한 기반을 닦는 ‘실무트랙’을 도입했다. 국제어문학부의 경우 해당 언어국가에서 1학기 이상 연수를 받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연세대 역시 15일 120주년 기념일에 맞춰 학교발전계획안을 발표한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두배 이상 공부하기’ 캠페인을 올 1학기부터 전 학부생을 대상으로 확대해 시행하고 있다. 교양과목이나 기초학문뿐 아니라 취업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과 어학 분야에 대한 과제 및 시험도 병행하고 있다. 유지혜 김준석기자 wisepen@seoul.co.kr
  • 모스크바 회동 최대이슈도 ‘핵’

    모스크바가 ‘정상회담 전시장’이 되고 있다.9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60주년 기념행사에 세계를 움직이는 정상들이 대거 참석, 정상간 양자회담을 곳곳에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행사에 참석하는 각국 정상은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등 53개국에 이른다. 이처럼 다양한 정상회담에서는 외교·경제분야의 민감한 현안들이 두루 다뤄질 것으로 전망돼 그 결과에 적잖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중, 한·러, 미·러 북핵 논의할듯 한·중, 한·러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 문제가 주로 논의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8일 저녁 열리는 부시 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도 북한과 이란 핵 문제가 비중있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 핵실험 준비중’이라는 외신 보도와 함께 ‘6자 회담이 결렬될 경우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 방안을 논의하는데 동의한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했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어 이번 미·러 정상회담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관측이다. 이런 가운데 부시 대통령이 모스크바 방문에 앞서 과거 옛 소련에 합병됐다가 해방된 발트해 연안 3국 정상들과 회담을 갖고 역사에 대한 러시아측의 사과 필요성을 강조함에 따라 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러·일 영유권, 인·러 국방·에너지 협의 고이즈미 총리와 푸틴 대통령은 9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이 영유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 문제를 논의하고 올해 안에 일본을 방문키로 한 푸틴 대통령의 방일 일정도 확정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와 러시아의 정상회담도 열린다.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는 9일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지난해 12월 뉴델리에서 상호 합의한 양국간 국방·에너지 협력 문제를 진전시키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 분야의 지적재산권 문제도 협의한다. 인도는 과거 냉전시대 때 옛 소련과 우방 관계였으며 현재 무기의 70% 가량을 러시아로부터 조달하고 있다. 하지만 양국 관계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뒤 인도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냉각돼 왔다. 이와 관련, 모스크바 주재 인도 대사관측은 푸틴 대통령이 1대 1로 만나는 인사는 미국과 중국 정상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은 러시아가 인도를 어느 정도 대우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5일 총선에 이은 새 내각 출범 등의 정치 일정을 이유로 모스크바를 방문하지 못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푸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양국이 오는 7월 G8(선진 7개국+러시아) 회담에 앞서 협상테이블을 마련하는 문제를 협의했다. 8일 낮에는 러시아를 비롯,10개국이 참석한 독립국가연합(CIS) 정상회담이 열렸다. 유엔과 러·미·유럽연합(EU) 등이 참여하는 중동평화회담에 이어 10일에는 러·EU 정상회담도 예정돼 있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사설] 어린이날에 어버이를 생각한다

    오늘은 여든세번째 맞는 어린이날이다. 많은 가정에서는 아이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랴,오늘 하루 가족동반 외출 계획을 짜랴 지난 며칠 바빴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놀이공원을 비롯한 행사장·공연장 등에는 인파가 넘쳐날 것으로 예상된다.그런데 행여 아들·딸 데리고 외출하면서 나이 드신 부모에게는 집 지키시라며 홀로 남겨 두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제 자식은 끔찍이 챙기면서 저를 낳아준 부모는 소홀히 하는 이가 워낙 많은 세상이기에 하는 걱정이다. 어린이날이 제정된 1923년 당시는 유교윤리가 지배하던 시절이고,세대간 윤리기준의 바탕은 ‘장유유서’였다. 따라서 어른을 공경하는 게 어린 사람의 도리인 데 견줘 어른이 어린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마음은 희박했다. 이런 악습을 깨고자 선각자들이 계몽운동 차원에서 정한 것이 어린이날이다. 젊은이·늙은이라는 표현에 맞춰 어린 사람도 인격체임을 강조한 단어 ‘어린이’가 탄생한 것도 이즈음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비록 아동학대 등의 범죄적 행태가 일부 남아 있기는 하나 이 시대의 어린이는 더이상 가정과 사회에서 약자라고 하기 힘들다. 한 두 자녀를 키우는 집이 대부분이다 보니 가정사가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기 십상이요,그래서 부모의 과잉보호가 오히려 논란에 오른다. 반면 이 시대 늙으신 부모의 위상은 어떠한가.올해 65세가 되는 1940년생을 기준으로 할 때 그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공간의 혼란을 거친 뒤 열살이 되어 한국전쟁을 겪었다. 1950년대 전후(戰後)의 절대빈곤을 거쳐 60∼70년대에는 경제건설의 최일선에 섰다. 베트남전쟁에 파병돼 밀림의 전투에서 겨우 살아 남은 이가 그들이며,열사의 땅 중동에서 건설노동자로,머나먼 독일에서 광산노동자·간호사로 돈 벌어 모국의 가족에게 송금한 이도 그들이다. 지금 30대이상 세대의 부모는 대부분 그렇게 살아왔다. 1940년생보다 연세가 높다면 그들의 삶은 그만큼 더 신산(辛酸)했으리라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지나간 삶을 보상받기는커녕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한다. 사회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외면 받고 버림 받는 것이다. 한 예로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행한 조사를 보면 노인들의 37.8%가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이 노부모를 모시는 우리사회의 자화상이다. 이제 우리사회에서 노인과 어린이가 갖는 위상은,어린이날이 제정되던 당시에 비해 완전히 역전됐다. 앞으로 사회와 가정에서 사랑 받고 보호 받아야 할 대상으로서 노인은 어린이보다 우선순위에서 앞서야 한다. 제 자식을 지금처럼 사랑하되 부모 사랑과 공경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울러 나 자신이 자녀에게 거울임을 명심해 아이에게도 할머니·할아버지를 공경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나를 보며 자란 아이들이 훗날 나를 공경할 리는 없다. 오늘 어린이날, 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을 되살리자.
  • 와이즈만 전 이스라엘 대통령 사망

    중동평화 정착에 기여한 또 하나의 큰 별이 스러졌다. 독립전쟁 영웅에서 정치인으로 변신,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이끌어냈던 에제르 와이즈만(사진 오른쪽) 전 이스라엘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노환으로 사망했다.80세. 1924년 북부 항구도시 하이파에서 태어난 와이즈만 전 대통령은 16세때 비행기 조종에 입문, 이스라엘 전투기 조종사 ‘1호’로 기록됐으며 48년 발발한 독립전쟁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58년 공군 사령관에 취임한 와이즈만은 프랑스에서 첨단 전투기를 도입하는 등 전력 향상에 힘써 67년 중동전쟁에서 이집트 공군을 3시간 만에 무력화시키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참모와 전화할 때 “우리 공군이 중동 최고”라는 말로 시작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69년 와이즈만은 정치인으로 변신, 민족주의 정당인 헤루트당(리쿠드당의 전신)에 입당해 골다 메이어 연정에서 교통장관으로 일했지만 1년 뒤 당이 연정에서 탈퇴하는 바람에 잠시 사업가의 길을 걷기도 했다. 77년 리쿠드당 선거운동본부장으로 복귀, 노동당의 29년 독주를 무너뜨리고 메나헴 베긴 총리의 집권을 도왔다. 국방장관 자격으로 같은 해 12월 이집트를 극비 방문,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과 맺은 개인적 친분을 토대로 이듬해 평화협정 체결을 주도했다. 188㎝ 장신에 직설적이고 솔직한 성격으로 유명한 와이즈만 전 대통령은 87년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점령 반대 투쟁인 1차 인티파다(봉기)가 발발하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대화를 촉구하는 등 이스라엘 정치권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 몇 안되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93년 대통령에 선출돼 98년 재선에 성공했으나 프랑스 재벌로부터 수천달러를 받은 혐의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나 2년 뒤 하차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이 일본과 다르려면/김민환 고려대 언론학 교수

    1959년도에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83달러였다. 이 수치 하나만으로 당시의 궁핍이 어느 지경이었는지 알고도 남는다. 문제는 가난이 아니라 그것이 해소될 전망이 도무지 없어 보였다는 사실이다.6·25 이후의 베이비붐으로 어린아이가 늘어 살림살이 전망은 앞이 캄캄할 따름이었다. 장면 정부 시절에 경제개발 계획을 세우고자 했지만 그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국자를 곤혹스럽게 한 것은 북한의 존재였다.5개년 계획이 끝나는 시점의 경제지표를 실현 불가능할 정도로 높여 잡아도 북한이 1959년에 이미 달성한 바에 미치지 못하는 분야가 허다했다. 그런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북한은 가난해서 거지가 득실거린다.”는 대민 선전이 뿌리째 흔들릴 판이었다. 그러나 60년대에 우리나라는 몸에 밴 오랜 궁기(窮氣)를 떨어내고, 세계 자본주의사에 남을 만한 기적을 이루었다. 무엇이 우리 경제에 기적을 안겼는가? 그 이유로 여러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른바 베트남 특수이다.1965년부터 1972년까지 베트남 전쟁으로 우리가 벌어들인 총 수입은 10억달러를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 바람에 1인당 GNP는 1964년에 105달러였으나 1973년에는 373달러로 300%이상 증가했다. 베트남 특수로 우리 산업기반 자체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베트남 파병으로 미국의 신뢰를 얻어 외자도입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렸고, 그로 인해 정유·화학·시멘트·철강 등의 전략적 기간산업의 설비 구축에 성공할 수 있었다.6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서 우리 기술로 냉장고와 텔레비전 수상기를 만들어냈을 때 국민은 그런 ‘첨단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감격했다. 그런 기쁨은 만약 베트남 특수가 없었다면 아마 최소한 몇년은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베트남 특수의 성과는 외형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베트남에서 쌓은 우리 토목 건설의 경험은 1970년대 이후 중동 등 각지에서의 해외건설 붐을 가능하게 했다. 더구나 우리 기술자들이 베트남으로 중동으로 진출하면서 경제활동의 범위가 그야말로 지구적으로 확장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소득이다. 우리가 60년대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데에 베트남 특수가 기여한 바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다. 우리로 하여금 느닷없이 베트남 특수를 생각하게 한 것은 일본이다. 일본 역시 이웃나라의 전쟁 덕을 톡톡히 본 나라다.2차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경제상태가 말이 아니었지만 한국전쟁 특수로 단숨에 2차대전 이전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켜 우리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기고 나서,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전쟁 덕으로 다시 일어섰으면서도, 일본은 우리 가슴에 끊임없이 못을 박는다. 총리라는 분은 잊을 만하면 신사를 참배하고, 정객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망언을 내뱉는다. 일본에도 한류가 통하고, 그래서 이른바 ‘욘사마 붐’이 일고, 그 여파로 요즘도 남이섬이 통째로 일본 관광객 차지가 되어 있는 사실에서 일본 국민의 정서가 달라지고 있음을 체감하지만, 일본의 우파 정치인들, 우파 지식인들은 그런 흐름에 찬물을 끼얹기 일쑤다. 그들은 2세에게 일본인으로서 긍지를 갖게 하는 데 우리나라만큼 좋은 소재가 없다고 여기는 것 같다. 속좁은 일본에 대해 우리가 모멸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일본이 우리에게 좋은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고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일본이 우리에게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면서 우리가 베트남을 위해 무엇을 도울까를 아울러 생각해야 한다. 김민환 고려대 언론학 교수
  • [월드 이슈-中·印 갈등씻고 손잡나] 23억 ‘친디아’ 팍스아메리카나 맞선다

    [월드 이슈-中·印 갈등씻고 손잡나] 23억 ‘친디아’ 팍스아메리카나 맞선다

    |베이징 오일만특파원|‘친디아(CHINDIA·중국과 인도의 합성어)’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1962년 국경분쟁 이후 43년간 앙숙으로 지낸 양국이 지난 11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와 만모한 싱 인도 총리의 정상회담을 통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항공, 교육, 과학기술, 관광, 문화교류 등 다양한 부문에서 전방위적인 협력에 착수한 것이다. 인구 23억(중국 13억, 인도 10억)의 두 아시아 거인이 약속대로 손을 맞잡을 경우, 아시아 지역안보와 국제무역 환경에 큰 변화가 일 전망이다. ●중국, 인도 앞세워 미국의 포위전략 돌파 두 나라의 화해로 ‘아시아 안보 지형’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중국 입장에서 인도와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은 시시각각 조여왔던 미국의 중국 포위 전략의 일각을 돌파했다는 의미가 적지 않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중앙아시아, 인도 등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 서부지역에 대한 포위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는 것이 중국 군사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지난달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아시아 순방 당시 인도와의 군사협력 강화를 약속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러시아와의 전통적 우방관계인 인도에 대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가상 적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향후 미국과 인도는 미사일 방어체계(MD)를 비롯한 안보분야는 물론 첨단기술 및 경제·에너지분야 협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인도에 F-16 전투기와 패트리엇 미사일 방어체계,PC-3 해상 초계기 등의 첨단무기 판매를 결정했다고 중국 관영 주간 ‘세계보(世界報)’ 최근호가 보도했다. 그러나 중국은 인도와의 최대 걸림돌인 국경분쟁의 정치적 해결이란 원칙에 합의하면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하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일대 타격을 준 것이다. 적어도 중국은 인도를 친미 국가로 기울지 않게 했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팍스아메리카나(미국 중심의 세계지배)’에 맞선 ‘다극화 전략’에 시동을 걸었다. ●美 아시아 전략에 일대 타격 베이징 우주항공대학 국제전략연구소 장원무(張文木) 교수는 “중동 페르시아만과 말라카 해협 사이에 위치한 인도는 전략적 요충지”라며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에 인도 역시 강한 압력를 느끼고 있어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여지는 많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중국의 당근전략이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는 중·인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은 인도가 유엔과 국제무대에서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것을 이해하고 지지한다.”며 인도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인도의 소프트웨어와 중국의 하드웨어를 마치 파고다(탑)를 쌓듯이 결합시키면 두 나라는 ‘아시아의 세기’를 열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 양국간 FTA(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기초작업에 착수했고 지난해 137억달러였던 양국의 교역액을 2010년까지 300억달러로 확대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홍콩 아주시보(亞州時報)는 두 나라가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경분쟁 ▲중·인·미 삼각관계 등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인도의 줄타기 외교 인도 역시 미·중간 파워게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국익을 극대화시키는 ‘줄타기 외교’를 시작했다. 아시아 대국을 꿈꾸는 인도는 일본과 싱가포르 등과 손잡고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동진(東進) 전략’을 추진 중이다. 지난 40여년간의 폐쇄경제에 종지부를 찍고 매년 6% 안팎의 경제성장을 지속,2050년 ‘라이벌 중국’을 따라잡겠다는 ‘청사진’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인도가 중국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지만 동맹관계까지 발전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과 아시아 패권을 다투는 일본도 최근 인도와의 관계개선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다. 카말 나스 인도 통상장관은 13일 “최근 인도와 일본의 교역이 지지부진한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일본의 대인도 투자 확대를 요청했다. 이에 화답하듯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도 이달 말 인도를 방문할 예정이다. 일본 총리의 인도 방문은 5년 만에 처음이다. 일본은 지난해 전체 ODA(공적개발원조)의 24%인 11억 4000만달러를 인도에 제공하며 인도에서의 시장확대를 노려 왔다. 인도는 중국과 미국의 ‘파워게임’을 활용하고 중국 역시 인도를 앞세워 미국의 대중 포위전략을 견제하겠다는 ‘3인 4각의 전략 외교’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oilman@seoul.co.kr ■ 양국 경제협력의 미래 중국과 인도의 전략적 접근이 가속화되고 있는 분야는 경제분야다.11일 뉴델리서 발표된 ‘델리 선언’을 구체화해 나가기 위한 후속 조치들이 이어지고 있다. 두 나라는 우선 오는 10월 이전에 경제무역 및 과학기술 공동위원회 개최를 위한 실무준비에 착수했다. 과학기술과 금융시스템 분야에서 별도의 협력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정보 교환, 인적 교류 등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한 발 앞선 인도의 정보통신기술(IT)과 금융·서비스업 분야의 노하우 전수를 희망하고 있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인도 방문 후 처음 찾은 곳이 실리콘밸리인 방갈로르인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원 총리는 이 자리에서 “중국의 하드웨어와 인도의 소프트웨어를 합치면 세계 IT업계를 석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항공우주·생명공학 분야도 시너지효과 기대 원자력, 항공우주, 생명공학 등에서도 양국은 서로 주고 받을 것을 찾으면서 ‘동반 상승’을 꾀하고 있다. 기술 이전과 관련, 선진국들의 견제를 받고 있는 동병상련 입장에서 서로 연합을 통해 기술을 교류하고 시장을 공유해 이같은 봉쇄를 뚫겠다는 전략이다. 과학기술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기술합작지도 위원회의 발족과 올해내 상호 첨단기술교류회의 개최 등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다. 가시화되는 에너지 및 자원 협력도 대표적인 협력 분야다. 양국은 일단 원 총리의 방문을 계기로 에너지 및 자원 협력 등 공동 대처의 발판을 놓았다는 평가다. 국제 석유시장에서 원유확보를 위한 입찰경쟁 자제 및 해외유전 공동개발 등에 의견접근을 봤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지금까지 원유 공급량의 각각 40%와 70%를 해외에 의존하는 중국과 인도는 국제 석유시장에서 입찰경쟁을 벌이다 가격상승 부담 증가란 자충수를 둬 왔다. ●2008년까지 교역액 200억弗로 확대 인도의 마니 샨카르 아이야르 석유장관은 지난 2월 “중국과 인도의 경쟁으로 다른 나라들의 배만 불려왔다.”며 양국간 협조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지적한 바 있고 중국측의 호응도 받았었다. 중국 3대 철강회사 가운데 하나인 중국 우한철강의 경우 주 수입원인 호주 BHP사가 철강석 가격을 올리자 인도로 수입원을 다원화할 움직임을 보인 것도 이같은 흐름과 맥이 통한다. 인도는 이와 함께 쌀, 포도 등 농작물의 중국 수출길도 열었다. 두 나라의 지난해 교역액은 137억달러. 전년보다 79%나 늘었다. 지난 1991년 2억 6400만달러에 비하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교역액을 2008년까지 200억달러로 늘리겠다는 것이 두 나라의 목표다. 양국간 무역액이 연간 200억달러인 인도·미국간의 무역액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中·印 갈등의 역사는 국제사회에서 앙숙으로 알려진 중국과 인도의 갈등은 역사적으로 그리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1950년대까지만 해도 비교적 평화로운 관계를 이어온 두 나라가 총부리를 들이대게 된 것은 국경분쟁 때문이었다. 현재 양국이 분쟁 중인 지역은 서쪽 카슈미르 일부인 악사이친과 동쪽 아루나찰 프라데시이다. 악사이친의 히말라야산 국경을 두고 1962년 10월 발발한 양국 전쟁은 40여일 만에 중국의 대승으로 막을 내렸고 중국은 인도가 점유했던 악사이친을 빼앗아 버렸다. ●1962년 국경분쟁이후 앙숙관계 악사이친은 현재 중국의 자치주인 신장(新疆)과 티베트를 잇는 고속도로가 나있는 전략 요충지이다. 중국은 아루나찰 프라데시도 점령했지만 병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지리적인 문제점과 국제적 비난 등을 고려해 곧 철수했다. 하지만 해당 지역의 선조가 현재 중국의 자치주인 티베트에서 왔다는 점 등을 들어 아직까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영국, 인도 식민지배가 분쟁의 씨앗 두 나라간 국경 분쟁의 씨앗을 뿌린 당사자는 영국이었다. 인도를 식민지로 삼았던 영국은 티베트와 접한 인도의 북방 국경선을 명확히 정하지 않았다. 인도가 독립을 하고 중국이 1950년 티베트를 자치주로 강제 편입시키면서 시작된 양측의 갈등은 1950년대까지는 외교적으로 무마되는 듯 보였지만, 산발적 총격전이 일어나다 1962년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전쟁은 또 다른 갈등을 불러왔다.‘인도 역사상 최대의 치욕’으로 기록된 전쟁 패배 이후 인도는 핵무기 개발 등 전격적인 국방력 증대에 나섰으며 중국은 인도를 견제하기 위해 인도의 숙적 파키스탄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지원했다. ●티베트 문제가 또 다른 갈등 불러 티베트 문제도 두 나라가 충돌을 거듭해온 부분이다. 인도는 중국으로부터의 티베트 독립을 외치는 달라이 라마가 1959년 봉기에 실패하자 자국 내 다름살라에 망명정부를 수립하게 해주었다. 티베트가 중국에 강제 편입됨에 따라 사라져 버린 중국과의 지리적 완충지대를 복원하도록 지원한다는 의미가 컸다. 하지만 양국은 가장 큰 쟁점인 국경 문제의 경우 1962년 전쟁 이후에 설정된 ‘실질적 국경선(LAC)’은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특히 지난 10여년 간 실무협상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합리적 해결’을 대전제로 구체적인 타협안을 이끌어낼 것으로 전망된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씨줄날줄] 베를린 효과/이목희 논설위원

    근·현대 세계사의 주된 흐름은 해양국가와 대륙국가의 대치였다. 영국-미국으로 이어지는 해양국가의 패권에 독일-소련(러시아)의 대륙국가가 도전하는 양상이었다. 해양국가가 두려워하는 것은 유라시아 중심부를 제패하는 세력의 등장이다. 독일이 그를 노리다가 1·2차대전의 패배를 맛봤다. 이어 40여년간 유라시아 중심부를 지배한 옛 소련이 힘을 잃자 미국의 봉쇄정책은 중국쪽으로 방향이 옮아가고 있다. 유라시아세력이 밖으로 뻗는 길목은 4군데다. 동북아, 중부유럽·발칸반도, 중동·서남아, 동남아가 그곳이다. 근대 이후 큰 전쟁은 유라시아세력이 해양세력과 맞부딪치는 지역에서 발생했다. 한국전, 월남전이 유라시아 변방에서 벌어진 대표적 전쟁이다. 냉전종식으로 동북아에서 북한·러시아·중국의 대륙세력과 한국·미국·일본의 해양세력의 동맹구도는 의미가 없어졌다고 청와대측은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진을 발생시키는 지각판의 충돌을 예상하기 힘들 듯 유라시아 변방의 불안정은 여전하다. 양대 세력이 만나는 전형적 장소로 한국의 판문점과 독일의 베를린이 꼽힌다. 베를린에서는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로 대륙세력의 힘이 꺾였다. 엄청난 군사력이 밀집된 휴전선을 갖고 있는 한국으로서 베를린은 깊이 참고해야 할 대상이다. 미국과의 동맹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대륙국가 소련을 설득해 베를린장벽을 깬 옛 서독의 지혜가 아직 한국 정부에선 보이질 않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부터 베를린을 방문함으로써 남북관계와 관련해 관심을 끈다. 전임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3월 남북경협, 한반도냉전 종식을 골자로 하는 ‘베를린선언’을 발표해 그해 6월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독일과 베를린은 분단 이외에도 한국 상황과 연관이 많다.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독일의 모범사례가 재강조되어야 한다. 독일은 또 수도이전의 선배다. 통일 후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기는 문제로 나라가 들썩인 끝에 ‘부분 이전’ 절충안을 채택했다. 우리와 다른 점은 핵심부처가 새 수도로 이전했다는 것이다.‘동백림(동베를린)간첩단사건’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참여정부가 과거사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있고, 동백림사건도 진상이 새로 밝혀져야 할 사안이다. 노 대통령의 베를린 방문효과가 주목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부의 탄생/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부의 탄생/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개인이든, 국가든 현대사회에서 ‘부’(富)는 거의 ‘진리’에 가깝다. 잘라 말해서 나라의 목표는 부국(富國)이요, 개인의 목표는 부자(富者)라고 해도 크게 지나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부’의 정체를 아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특히 국가의 부는 개인의 부보다 여러 요인이 훨씬 복합적으로 작용해 축적되는 것이기에 더욱 그 실체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남미와 남아시아 국가들은 왜 그렇게 가난을 벗지 못할까? 남유럽보다 북유럽 국가들이 잘 사는 원인은 무엇일까? 1500년대만 해도 가장 부유했던 이탈리아의 1인당 GDP가 최빈국의 1인당 GDP의 3배에 불과했는데 21세기엔 미국의 1인당 GDP가 최빈국의 15배에 달하는 이유는 무얼까? 비교적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던 나라들이 근대에 들어오면서 어떻게 부국과 빈국으로 극명하게 갈리게 됐을까? ●국부형성의 4요소는 재산권·과학적 합리주의·자본시장·빠른수송 ‘부의 탄생’(윌리엄 번스타인 지음, 김현구 옮김, 시아출판사 펴냄)이 밝히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주제들이다. 저자는 근대 이후 급격히 부가 축적된 나라들과 끝내 그 부를 향한 궤도에 이르지 못한 나라들에 대해 역사적·경제적으로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부를 쌓을 수 있는 요소를 도출해낸다. 그것은 바로 노동의 대가를 국가나 범죄자에게 몰수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재산권’, 기술적 진보의 바탕이 되는 과학적 합리주의, 재화와 서비스를 대량생산하기 위한 자본시장, 빠르고 효율적인 통신과 수송 등 네가지다. 이 요소들은 16세기 처음으로 네덜란드에서 동시에 나타났고, 영어권에선 1820년께 비로소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이것들이 지구상 다른 곳으로 확산돼 나갔다. 이 네가지 요소중 하나라도 빠지면 경제적 진보가 위태로워져 국부라는 테이블은 쓰러지고 말았다. 18세기 네덜란드는 영국의 해상봉쇄로 인해, 공산권에선 재산권 결여 때문에, 중동 국가들은 자본시장과 서구적 합리성 부재로 인해 이같은 사태가 발생했다. 더 비극적인 것은 아프리카의 경우 이 네가지 모두를 전혀 확보하지 못한 국가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몇 개의 나라들을 대표적으로 선별하여 부국과 빈국들이 생겨나는 과정을 탐구한다. 먼저 근대의 부가 어떻게 가장 먼저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두 나라에서 탄생했는지 검토한다. 네덜란드는 이미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3세기나 앞선 1500년에 잉글랜드나 이탈리아보다 1인당 GDP가 두배에 달할 정도로 부유했다. 이는 그로부터 3세기 후 잉글랜드에서 일어난 폭발적 성장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당시로선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대부분의 영국인들과 함께 부러워할 정도로 큰 것이었다. ●근대사회 富는 네덜란드·잉글랜드부터 출발 네덜란드는 1500년 이후 주변 나라들에 비해 주민들이 강건한 재산권을 누리고 있었으며, 종교개혁을 통해 교회의 도그마로부터 해방돼 종교로 인한 분열을 피할 수 있었고, 낮은 이자율과 강력한 투자자 보호 덕분에 자본시장이 활성화돼 있었던 것이다. 잉글랜드가 산업혁명 이후 급성장한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가장 민주적인 의회제도가 정착돼 있었고, 이는 금융시장을 안정·발전시켰다. 분업화에 따른 전문화도 상당히 진전돼 있었다. 이같은 상태에서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으로 촉발된 산업혁명은 성장의 불꽃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네덜란드와 잉글랜드에서 움튼 번영은 곧 서유럽의 나머지 나라들과 동아시아로 확산되었다. 프랑스는 잉글랜드와의 근접성과 혁명 이후 개혁 덕택에 이웃을 가장 근접하게 추격했다. 앙시앙레짐 하의 비효율적 제도가 깨지면서 번영의 걸림돌이었던 통행세가 일소됐고, 소작농의 토지 소유권이 확인됨으로써 부의 씨앗이 뿌려졌던 것이다. 반면 16∼17세기 합스부르크 제국을 이루며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로 부상했던 스페인은 영국과는 정반대되는 재정적·제도적 구조에 의해 쇠퇴의 운명을 맞는다. 종교적 이유로 경제의 주력이었던 유대인과 무어인을 내쫓았고, 프랑스·잉글랜드·네덜란드와의 전쟁을 벌이며 국력을 소진했다. 중남미에 대한 무자비한 정복을 통해 금과 은 약탈로 구멍을 메워나갔으나, 금과 은이 고갈되자 스페인 사회는 산업 및 상업적 본능이 결핍된 상태를 드러냈다.16세기 스페인과 오늘의 사우디아라비아의 유사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재미있는 것은 식민지 나라들의 빈부의 엇갈림이다. 영국의 식민지로 출발한 미국과 캐나다는 영국이 이룩한 부의 네가지 요소를 그대로 옮겨다가 발전시켰고, 스페인이 정복했던 중남미의 국가들은 정복자의 구태적 제도를 답습함으로써 남미와 북미의 빈부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말았다. ●英식민지 美·캐나다 부자로 …중남미는 정복자 스페인 구태 답습 우리나라와 인접한 일본이 부를 축적해 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다. 임진왜란 이후 이어진 도쿠가와 막부체제는 재산권을 박탈하고, 효율적인 자본시장 발전을 가로막는 등 200여년간 경제 번영으로 가는 네가지 요소를 질식시켰다. 결국 유능한 일단의 사무라이들이 막부정권을 타도하고 메이지 정부를 세웠으며, 이후 개혁은 마치 면도날이 실크 천을 찢듯이 봉건적 일본을 해체시켰다. 번영을 위한 네가지 요인을 철저한 방식으로 도입함으로써 기적적인 경제번영을 이루어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 전쟁·문화·정치의 부침이 아니라 경제적 동인이라는 점이다. 역사적 시공간에서 경제적 번영이 일어나는 원인과 과정을 검토하다 보면, 몇년째 안개 속을 헤매는 우리 경제가 가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그 윤곽이나마 잡히지 않을까? 2만 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북한도 ‘모래바람과 전쟁’

    북한도 ‘모래바람’을 넘는다. 북한이 중동팀들을 잇달아 안방으로 불러들여 홈경기를 갖는다.25일에는 바레인과, 오는 30일에는 이란과 평양에서 일전을 치른다. 25일 오후 3시45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펼쳐질 바레인과의 경기는 북한으로서는 2006 독일월드컵 본선 진출을 가름할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지난달 일본과의 1차전에서 1-2로 패해 조 꼴찌로 내려앉은 북한은 바레인을 잡아야 본선행 불씨를 되살릴 수 있다. 지난달 일본전을 통해 12년 만에 국제무대에 다시 선보인 북한의 전력은 충분히 바레인을 꺾을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 대표팀은 주축인 4·25체육단 소속 선수들 외에 재일동포 J리거 쌍두마차 안영학(나고야)과 이한재(히로시마)까지 가세, 빠른 패스와 강철 체력을 앞세워 경기 내내 상대를 밀어붙이는 게 최대 강점. 지난달 북·일전에 비하면 다소 관심이 떨어지지만 외신기자 20여명이 이미 현장에서 경기장 주변의 상황을 취재하고 있고, 국내 방송사(SBS)도 이 경기를 생중계한다. 바레인전에 이어 곧바로 마주칠 이란은 오히려 바레인보다 전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돼 역시 북한의 우세가 점쳐진다. 이란은 바레인과의 1차전에서 무승부를 이뤘지만 경기 내용면에서는 뒤졌다는 평가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씨줄날줄] 생명을 위한 물/육철수 논설위원

    물값이 기름값보다 더 비쌀 것 같은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카타르 등 중동의 석유부자 나라에서 물장사를 하면 얼마 안 가서 깡통을 차기 십상이다. 반면 해마다 대홍수로 물이 지천으로 넘치는 방글라데시나 인도에서 식수사업을 벌이면 떼돈을 벌 수 있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빈부의 차이 때문이다. 물 기근국가군(群)에 속하는 중동 산유국들은 1970년대부터 오일쇼크로 벌어들인 수천억달러를 퍼부어 바닷물을 생활용수로 바꾸는 담수시설을 갖춰 놓았다. 이들 나라는 용수의 50%를 담수로 해결한다. 식수는 우유·기름·야채·고기 등과 함께 생필품으로 분류돼 수입하더라도 관세가 없어 거의 원가로 공급된다. 생필품은 국왕이 국민에게 하사(下賜)하는 일종의 ‘시혜품’이어서 물값은 ℓ당 30원 정도다. 산유국이지만 가난한 북아프리카의 리비아는 사정이 좀 다르다. 이 나라에선 유엔의 경제제재를 받던 몇년전까지, 우리 기준으로 보면 참 소박하게도,500㎖들이 페트 물병 2통이 외국인들의 검문소 통과용 뇌물로 쓰였다. 물 한 병을 얻으려고 총격전을 벌여 사람을 죽이기도 예사다. 방글라데시나 인도는 경제력이 모자라 댐건설이나 담수화를 엄두도 못낸다. 강수량 때문에 생고생을 하면서도 정작 마시고 생활용수로 쓸 만한 물을 저장하지 못해 늘 물기근에 시달린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은 약 14억㎦로, 땅덩어리 전체를 2.7㎞ 깊이에 잠기게 할 정도인데도 이처럼 국가별 경제력과 관리역량에 따라 물의 가치는 천차만별이다. 22일은 제13회 세계 물의 날이다. 주제는 ‘생명을 위한 물(Water for Life)’로 정해졌다. 오는 2050년이면 세계 인구가 90억명에 이르고 이 중 24억명이 물 부족에 직면한단다. 국지적 물전쟁은 이미 수차례 있었고,21세기 전쟁은 물 때문에 일어날 것이라는 섬뜩한 예견까지 나온다. 여차하면 물과 생명을 맞바꿀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 부족국가군에 포함된 우리나라는 2011년쯤 12억㎥의 물이 모자란다고 한다. 중동 산유국만큼 돈도 없는 나라여서 정부가 재정을 털어 물을 공급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텐데, 물 때문에 난리칠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지금부터라도 물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겨야 뒤탈이 없을 것 같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월드이슈-중동에 이는 변화의 바람] 외세 개입… 민주화의 봄 ‘산넘어 산’

    [월드이슈-중동에 이는 변화의 바람] 외세 개입… 민주화의 봄 ‘산넘어 산’

    미국의 이라크 침공 2주년(20일)을 맞는 요즘 중동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왕정과 독재로 점철된 과거의 중동 정세와는 다른 양상이다. 이라크에선 사상 첫 선거로 새 정부가 곧 구성되며 내전의 상처로 얼룩진 레바논에선 ‘피플파워’가 넘친다. 팔레스타인은 선거로 첫 자치정부 수반을 뽑는 등 민주적 개혁을 통해 이·팔 평화협상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이라크 침공으로 안팎의 비난을 받던 부시 행정부가 그렇게 고대하던 민주주의의 흔적이 곳곳에서 읽혀진다.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도 자유로운 선거방식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동유럽에 확산된 ‘민주화의 봄’으로 보기에는 시기상조다. 들불처럼 번지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같은 변화가 자칫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가능성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월 말 이라크 총선을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비유했다.2기 집권의 목표를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으로 규정한 부시 대통령과 신보수주의자(네오콘)에게는 의미심장한 전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인 내부로부터의 혁명같지는 않다. 이라크나 레바논, 팔레스타인 모두 미국과 시리아, 이스라엘군의 점령하에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특이하다. 통치기반이 무너지거나 허약한 정권에서만 변화가 시작됐음을 뜻한다. 체코의 ‘벨벳혁명’ 등과 달리 변화의 진원지가 폭발적이지도 않다. 자생력이 부족해 후유증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이라크의 경우 변화의 주도세력은 미국이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뒤 선거에 의한 정권을 탄생시켰지만 수니파와 시아파, 쿠르드족 사이의 갈등이 더 커 이라크 민주주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이라크를 ‘중동의 모델’로 삼으려 하지만 지배구조가 확고한 이집트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파급효과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정파간 반목으로 정정 불안 레바논은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사건으로 반시리아 열풍이 불었다. 결국 친시리아계인 오마르 카라리 총리가 사임하고 시리아군이 일부 철수하자 미국은 레바논 국기에 그려진 삼나무에 빗대,‘백향목 혁명’으로 불렀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대규모의 친시리아 시위를 주도하면서 카라리 총리는 10일 만에 복귀했다. 이는 레바논에서의 ‘민주화의 봄’이 친시리아와 반시리아로 양극화, 사상누각으로 끝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시리아가 철군한 배경에도 ‘피플파워’보다는 미국과 프랑스 등의 압력이 더 컸다. 시리아 철군 이후 야기될 권력공백은 레바논을 다시 내전의 수렁에 빠뜨릴 수도 있다. 일각에선 하리리의 암살 배후가 시리아가 아닌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야세르 아라파트의 죽음이 발단이 됐다. 지난 1월 선거로 아바스 정권을 출범시켜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재개했다. 무장투쟁으로 일관한 하마스도 7월 팔레스타인 총선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무쟁투쟁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민주주의의 진전이라는 시각도 있으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을 겨냥, 일정 지분을 확보하려는 정략적 측면이 더 큰 것 같다. ●정권유지를 위한 임시방편적 개혁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복수 후보가 출마하는 대통령 직선제를 수용했다. 그러나 파라오에 버금가는 그의 권력에는 이상 징후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정당이 대선 후보를 낼 수 있다고 했지만 정당의 적법성 여부를 집권당이 심사한다.50년간 일당 독재체제의 여파로 야당 후보의 이미지는 약하고 개표과정에서 조작 등 선거부정의 여지는 충분하다. 진보적 야당인 ‘알 가드’의 아이만 누르 대표가 창당서류 위조 혐의로 체포된 것은 이집트의 민주개혁이 무늬에 불과하다는 점을 입증한다. 입헌군주제인 요르단은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지방정부에 이관할 계획이다. 부시 행정부에 인권 및 민주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사우디아라비아는 단계적인 지방선거를 실시하고 쿠웨이트는 여성에게 참정권을 허용할 방침이다.3년전 계엄통치를 끝내고 해외 망명인사들의 입국을 허용한 바레인은 더 개혁하라는 국민들의 요구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국가 예산지출의 감시와 검열받지 않는 언론의 자유, 독립적인 사법기관,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경찰과 보안군 등에 대한 개혁은 아직 요원하다. 부시 대통령이 ‘자유의 확산’이라고 말했지만, 그보다는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른 생존전략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 중동지역의 변화가 민주개혁으로 이어지려면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을 것같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분쟁 끊이지 않는 ‘세계의 화약고’ 중동지역은 ‘세계의 화약고’라 불릴 만큼 다양한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다. 민족·종교 갈등이 수그러지지 않고 있고 세계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권의 대립은 중동 분쟁의 핵심이다. 역사적으로는 기원전 13세기 무렵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이 이 지역으로 들어오면서 마찰이 시작됐다. 본격적으로 갈등이 시작된 것은 유대인들이 1897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조국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부터다. 유대인들은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이 지역에서 세력을 키운 뒤 1948년 국가 수립을 선포했다. 이후 이스라엘과 아랍권은 4차례에 걸쳐 전쟁을 치렀다.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지역과 가자지구에서 점진적으로 철수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우면서 타협을 모색하고 있다. 야세르 아라파트 사후 온건파로 분류되는 마무드 아바스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 오르면서 양측은 지난달 휴전에 합의하는 등 해빙 무드를 맞고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무장세력들이 휴전에 반대하고 있고 동예루살렘 지배권,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 문제 등 난제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 이스라엘은 또 1967년 골란고원 점령 이후 시리아와 긴장 관계에 놓여 있으며, 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을 공격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과의 휴전 합의를 계기로 아랍국가들과의 외교관계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종교적으로 중동지역은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뉘어 있다. 전체적으로는 이슬람의 80% 이상이 수니파지만 이란과 이라크 등 일부 국가는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한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나뉘게 된 것은 창시자 마호메트의 후계자 승계 문제 때문이었지만 현재 두 종파의 갈등 원인은 종교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인 데서 찾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라크의 경우 오랫동안 수니파가 집권해오다 이라크전 이후 시아파에 정권을 내준 뒤 수니파가 새 정부 수립에 반대하면서 테러행위를 주도하고 있다. 강대국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사안별로 반목과 협력을 반복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른바 ‘자유의 확산’ 정책에 따라 이라크전을 벌이고 이란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원유 수급을 원활하게 하겠다는 속셈이라고 비판한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짙어가는 레바논 내전 암운 레바논이 시리아 군대의 철수 문제로 극심한 내부 분열을 겪고 있다. 시리아의 지원을 받아온 이슬람 시아파 세력과 이스라엘을 등에 업은 기독교 마론파, 갈등의 조정자 역할을 해온 이슬람 수니파 등이 이뤄온 세력균형이 깨져 또다시 내전에 휩싸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가 탄생때부터 갈등 배태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의 암살로 급류를 탔지만 갈등의 씨앗은 레바논 탄생과 더불어 배태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국제연맹의 결정에 따라 시리아 영토였던 레바논 땅에 진주한 프랑스군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던 마론파를 중심으로 이슬람 수니파·시아파 등을 규합해 독립국가 건설에 나섰다. 1943년 레바논 독립을 앞두고 마론파는 이슬람 진영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대통령은 마론파, 총리는 수니파, 의회 의장은 시아파 몫’이라는 권력분배안을 마련했고 의회 의석은 인구 구성 비율에 따라 기독교와 이슬람 진영을 6대5 비율로 나눴다. 그런데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끊임없이 몰려들면서 이슬람교도가 증가하자 마론파와 이슬람 진영간의 갈등이 고조됐다. 급기야 1975년 내전이 발발했고 마론파를 지원하는 이스라엘과 이슬람 진영을 지지하는 시리아가 개입하면서 15년간 계속된 내전은 10만여명의 사망자를 내고 1990년에야 끝났다. 마론파와 이슬람 진영의 의회 의석수를 같게 하는 등 새로운 권력분배안도 마련됐다. 외국군도 철수키로 했지만 시리아를 등에 업은 역대 레바논 정권은 시리아의 철군을 반대했다. ●시리아 철군싸고 양진영 세대결 최근 베이루트는 마론파가 이끌고 수니파 등이 가세한 반시리아 시위대가 세를 과시하면 시아파 정치조직이자 무장단체인 헤즈볼라가 친시리아 시위로 맞서는 등 ‘장군 멍군’ 행태를 연출하고 있다. 지난 8일 친시리아 진영이 50만여명을 동원하자 반시리아 진영은 14일 100만명가량을 불러모았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인구는 불과 370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사회는 19일 테르예 로에드 라르센 유엔 중동특사가 코피 아난 사무총장에게 보고하는 시리아의 구체적 철군안 내역과 하리리 암살사건 조사를 마친 유엔 진상조사단의 결과보고서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부시의 네오콘’ 국제기구 점령하나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16일(한국시간)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세계은행 총재에 지명한 것을 둘러싸고 외교가와 국제금융계 양쪽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울포위츠 지명에 대한 국제사회의 찬반 논란이 벌어지는가 하면 미국 내에서는 승진이냐, 아니면 사실상 밀어내기냐를 놓고도 말들이 많다. ●네오콘의 퇴조 여부 주목 울포위츠 지명 사실이 처음 알려지면서 미 언론의 보도는 울포위츠가 국방부에서 물러난 것과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된 것 양쪽으로 초점이 분산됐다. 울포위츠 부장관이 이라크전의 주요 설계자이며 ‘테러와의 전쟁’을 상징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세계은행이 갖는 중요성에 비추어 ‘승진’ 쪽에 무게를 두는 해석이 유력해지고 있다. 울포위츠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신임은 여전하지만, 그를 장관직에 지명할 경우 상원 인준 과정에서 지난 대선 때 벌어졌던 갖가지 정치 공방이 재연돼 ‘상처뿐인 영광’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국제기구로 돌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퇴조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대북 강경론자였던 울포위츠 부장관의 후임이 누가 되느냐가 관심사다. ●적절한 인사인가? 세계은행의 형제격인 국제통화기금(IMF)의 로드리고 라토 총재는 울포위츠가 국제문제, 특히 아시아와 중동문제에 풍부한 경험이 있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와 함께 일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환영 의사를 표시했다. 잭 스트로 영국 외무장관도 울포위츠가 국제문제에 경험이 많고 탁월한 식견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몇주 전 언론에 울포위츠 부장관 하마평이 보도되면서 세계은행에 근무하는 일부 유럽측 관계자들은 인선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국가들은 그가 “과거 로버트 맥나마라 전 세계은행 총재처럼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를 미국의 정책에 따라 좌우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외무장관은 울포위츠 추천은 단지 “제안”에 불과한 것이라며 “우리는 그의 캐릭터를 검토할 것”이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에 패한 존 케리 민주당 상원의원은 존 볼턴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의 유엔대사 기용과 함께 이번 조치는 ‘사람을 어리둥절케 만드는’ 결정이라고 혹평했다. 울포위츠 총재 추천 수용 여부는 향후 세계은행 이사회가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이라크전에 반대했던 유럽 국가들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주목된다. ●민주화 조건 개도국 지원 가능성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부시 대통령이 세계은행을 개혁하기 위해 울포위츠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는 볼턴 차관이 유엔대사에 지명된 것과 일맥상통하는 인선이다. 세계은행에 근무했던 정부 고위관계자는 “울포위츠가 현재 에이즈나 환경 등 특정 프로그램 위주로 돼 있는 자원배분 방식 등을 개혁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세계은행은 총재의 입김이 세기 때문에 울포위츠가 개발도상국들을 상대로 ‘민주화’를 지원의 조건으로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울포위츠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회견에서 “민주와 자유의 고취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세계은행의 자원 배분은 정치적 고려와 경제적 고려가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dawn@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美국무부 공공외교 차관 내정 카렌 휴즈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카렌 휴즈(여·48) 전 백악관 고문을 국무부 공공외교(홍보) 담당 차관에 임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휴즈 전 고문은 칼 로브 백악관 정치보좌관 겸 비서실 부실장과 함께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로브가 전략의 명수라면 휴즈는 그 전략을 대중에게 홍보하는데 비범한 재능을 갖고 있다. 휴즈는 로브와 마찬가지로 ‘텍사스 사단’의 일원이다. 텍사스 지역의 방송국 리포터였던 휴즈는 1994년 부시를 만나 공보업무를 시작했으며 두 차례의 텍사스 주지사 선거와 2000년 대선 승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부시의 대통령 취임 후 백악관 고문으로 임명됐으나 2002년 7월 사표를 던지고 고향인 텍사스로 돌아갔다. 아들 로버트(17)를 뒷바라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난해 8월 대선을 앞두고 부시 캠프로 다시 돌아와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다니며 홍보전략을 진두지휘했다. 그녀의 정치적 위상은 교육장관에 임명된 마거릿 스펠링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도 부시 대통령이 휴즈에게 차관직을 맡기는 것은 전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이미지 개선 작업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미 언론은 분석했다. 휴즈는 특히 이라크 침공으로 악화된 이슬람 세계에서의 반미감정을 개선하고 ‘중동 민주화’의 명분을 홍보하는 작업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도 가까운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휴즈가 외교를 직접 담당한 경험은 없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홍보전을 치른 적이 있다. 당시 휴즈는 탈레반에 의해 집안에 ‘갇혀있던’ 아프간 여인들에게 초점을 맞춘 홍보 캠페인을 전개했었다. daw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현대를 삼성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은 현대의 창업 정신을 강조한다. 현대는 남이 일궈놓은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주춧돌을 올렸다. 건설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으며, 중공업이 그랬다.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은 이를 평생의 긍지요, 자랑으로 여겼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끌려가서도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인천제철만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내 손으로 말뚝을 박고 길을 닦아 시작하지 않은 공장이 없다.”며 기업 강제 통·폐합에 맞섰을 정도였다. 1947년 5월25일 서울 중구 초동의 허름한 자동차 수리공장 한 귀퉁이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을 내건 지 60여년. 삼성보다 10년 가까이 늦은 출발이었지만 현대는 이내 1위 기업으로 우뚝 섰고,‘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던 2000년까지 그 지위는 차돌만큼이나 단단했다. 이때 현대그룹의 자산규모가 87조여원. 계열사 수만 40개가 넘었다. 비록 그룹이 쪼개지면서 외형상의 규모가 작아지고 재계 서열은 떨어졌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전화위복’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현대차그룹), 유통(현대백화점), 해운·제조(현대그룹), 조선(현대중공업), 금융(현대해상·현대기업금융) 등 각자 전문그룹의 길로 나서면서 경쟁력은 더 강화되고 동반 부실의 위험은 현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그룹들이 이제서야 계열분리 등으로 홍역을 앓는 동안 현대의 대표주자들은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KCC, 한라, 성우 등 창업주의 형제들이 이끄는 그룹들도 각자 독자영역을 굳혀가고 있다. 언뜻 봐도 느껴질 만큼 현대에 뿌리를 대고 있는 기업들은 유난히 굴뚝업종이 많다. 고용된 인원과 딸린 부품·협력업체가 많다는 얘기다. 국민경제 기여도로 따지면 현대가 여전히 1위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또 한 가지, 현대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현대정신’이다. 현대에는 일단 해보자며 덤비는 정신,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때로는 비합리성을 낳기도 하지만 현대맨들은 이를 “맨바닥에서부터 기업을 일군 현대만의 저력”이라고 자부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이를 “진정한 기업가(起業家) 정신”이라고 불렀다. 제각각 ‘마이 웨이’를 걷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가를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기도 하다. ●담(淡)한 혼맥… 후한 연애결혼 다른 재벌가에 비해 현대의 혼맥은 의외로 소박하다. 낭만을 즐겼던 고 정 회장이 자식들의 연애에도 너그러웠던 영향이 가장 크다.‘왕 회장’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그 자신, 강원도 통천의 평범한 고향처녀(변중석)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했다. 슬하에 9남매(8남1녀)를 두고 동생이 일곱(한명은 어려서 사망)이나 됐지만 눈에 띄는 혼사는 손가락을 꼽는다. 직계가족 중에 굳이 꼽자면 다섯째아들 고 몽헌(MH)씨와 여섯째아들 몽준(MJ)씨를 들 수 있다. 몽헌씨는 신한해운 현영원 회장의 딸 정은씨와, 몽준씨는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 영명씨와 각각 결혼했다. 오랜 세월 재계를 주름잡았던 현대의 위상에 견줘 혼맥이 조촐한 데는 창업주의 성공과정과도 무관치 않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부두 막노동꾼을 거쳐 대기업 총수에 오른 그는 살아생전 “세상에 공짜란 없다.”며 담(淡)한 마음을 갖자고 입버릇처럼 강조하곤 했다. 권력이나 부(富)를 결코 싫어하지 않았지만 굳이 혼사줄까지 대가며 공짜를 탐할 이유 또한 없었던 것이다. 정략결혼의 흔적이 적은 대신에 유난히 많은 손(孫)과 맞닥뜨리는 게 현대라는 집안이다. 이런 현대가 대(代)를 건너뛰면서 LG, 롯데, 한진, 이건, 비비안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과 사돈을 맺은 점은 흥미롭다. 현대가의 2세들이 ‘몽(夢)’자 돌림이라면 3세들은 딸이 ‘이(伊)’, 아들은 ‘선(宣)’자 돌림을 쓴다.4세는 ‘진’자(딸),‘창’자(아들) 돌림이다. ■ 현대의 핵심축 아들들 ●장남 몽필… 쌍용가와 인연 큰아들 몽필씨는 나이 50도 안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국영 적자기업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에 여념이 없던 1982년 4월 어느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그가 탄 승용차가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이 때가 마흔아홉살. 수도여대 출신의 부인 이양자씨와 두 딸 은희·유희씨는 망연자실했다. 몽필씨가 떠난 지 한달 뒤, 정주영 회장은 동서산업 공장장이던 이영복씨를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이씨는 몽필씨의 처남, 즉 이양자씨의 친동생. 졸지에 가장을 잃은 장남 가족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이양자씨마저 91년 위암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큰딸 은희씨는 최근 미국에서 귀국했다. 둘째딸 유희씨는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결혼해 두 아들(진석·진하)을 두었다. 지용씨는 현재 용평리조트 상무를 맡고 있다. ●2남 몽구… 글로벌 현대차그룹 리더 몽필씨의 죽음으로 사실상 집안의 장남 역할을 도맡아 한 이는 둘째아들 몽구(MK)씨였다. 유희씨가 결혼할 때 부모 역할을 대신 한 사람도 몽구씨 부부였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 시절,‘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낸 그는 기아차마저 인수해 지금의 현대·기아차 그룹을 이끌고 있다.2000년 자동차전문 그룹으로 출범한 지 몇 년도 안돼 그룹을 세계 6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출범 당시 10개였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다. 그룹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85조원.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소비자 보고서(컨슈머 리포트)’는 최근 현대차의 뉴쏘나타를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했다. 갤로퍼 신화 때부터 MK가 강조해온 ‘품질 경영’의 힘이다. MK는 평범한 집안의 딸 이정화씨와 결혼해 3녀1남을 두었다. 큰딸 성이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이자 영훈의료재단을 설립한 고 선호영 박사의 아들 두훈씨와 결혼했다. 둘째딸 명이씨는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 태영씨와, 셋째딸 윤이씨는 미국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신성재씨와 결혼했다. 둘째사위와 셋째사위는 그룹 계열사인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현대하이스코 사장을 각각 맡고 있다. 막내이자 외아들인 의선씨는 지난 11일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내 직함은 현대·기아차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으로 기아차의 기획, 재무, 수출, 연구·개발(R&D) 등 핵심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일찍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부인은 정도원 강원산업 부회장의 큰딸 지선씨다. ●3남 몽근… 소리없이 유통명가 키워 셋째아들 몽근씨는 일찌감치 유통을 넘겨받아 현대백화점 그룹을 이끌고 있다.‘빅3’(MK·MH·MJ)에 가려 조명은 덜 받았지만, 묵묵히 외길을 걸으면서 소리없이 유통 명가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현대백화점, 현대H&S(非 백화점 계열), 현대홈쇼핑 등 주력 계열사를 토대로 지난해 5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문 최고경영자(CEO)들이 소신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면서도 거의 매일같이 매장을 둘러봐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위 형 몽구씨와는 고등학교(경복고)-대학교(한양대) 동문인 데다 선굵은 외모까지 비슷하다. 옛 현대그룹에서 고문을 지낸 우호식씨의 딸 경숙씨가 부인이다. 두 아들은 각각 부회장,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아들 지선씨는 고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인 서림씨와 결혼했다. 둘째아들 교선씨는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큰딸 승원씨와 지난해 말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교선씨의 결혼식에는 큰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집안 어른들이 대거 참석해 모처럼 우애를 다지기도 했다. 현대가는 한때 딸만 남기고 떠난 몽필씨의 대를 잇기 위해 지선씨를 양자로 입양하는 방안을 의논했었다. 유교식 법도대로라면 바로 아래 동생인 몽구씨의 아들을 입양해야 했으나 의선씨가 외아들인 탓에 지선씨가 선택된 것.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입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때 의선씨가 ‘종손’ 자격으로 고인의 영정을 든 것은 이 때문이었다. ●외사위 희영… 천마산스키장 운영, 이건·비비안과 사돈 현대가는 자손이 많은데도 딸은 귀한 편이다. 외동딸 경희씨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 그러나 바깥 활동은 없다. 대신 남편(정희영)이 선진종합㈜ 회장이다. 공교롭게 고 정주영 회장의 여동생 희영씨와 이름이 똑같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입사 동기다. 조선 수주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 창업주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됐다. 정주영 회장은 딸 경희씨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 희영씨를 도쿄법인 이사로 발령내 자연스러운 교제를 유도했다고 한다. 이후 희영씨는 조그만 해운회사(선진해운) 하나를 갖고 독립, 장인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천마산 스키장은 오롯이 그가 독립해 만든 회사다. 외아들 재윤씨가 선진종합㈜ 상무다. 두 딸은 각각 이건그룹과 비비안그룹으로 시집갔다. 큰딸 윤미씨의 남편이 이건창호 박승준 상무, 둘째딸 윤선씨의 남편이 비비안 남석우 부회장이다. ●4남 몽우… BNG스틸 통해 부활 넷째아들 몽우씨는 숙명여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 이행자씨와 연애결혼했다.40대에 현대알루미늄 회장을 맡은 그는 그러나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결국 1990년 4월 45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유족을 돌보는 일도 사실상의 장남 몽구씨의 몫이었다. 조카 셋을 모두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BNG스틸(전 삼미특수강)에 입사시켰다. 큰조카, 즉 몽우씨의 장남인 일선씨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BNG스틸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일선씨에 이르러 비로소 현대는 내로라하는 재벌가와 사돈관계를 맺는다. 일선씨의 부인은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 은희씨다. 구 부회장은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조카이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씨와 결혼했다. ●5남 몽헌… 못다 이룬 꿈, 현 회장이 힘찬 날갯짓 ‘비운의 황태자’ 몽헌씨는 1998년 그룹 공동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설립해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으면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끌어냈다.2000년에는 형들을 제치고 그룹 단독 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2003년 8월4일 서울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부인 현정은씨가 경영에 뛰어들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황망히 그룹을 물려받았지만 사업가 집안의 딸답게 배포와 합리적 리더십으로 1년 만에 그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대상선, 올해 첫 흑자를 넘보고 있는 현대아산, 주가 1000시대의 수혜주 현대증권 등을 축으로 재계 10위권 진입(현재 19위)을 눈앞에 두고 있다.201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10위권에 진입한다는 ‘2010’ 프로젝트를 가동중이다. 현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이 직접 ‘점지한’ 며느리로도 유명하다. 현 회장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결혼 뒷얘기는 이렇다.“당시 현대상선 회장이던 아버지(현원영)를 따라 선박 명명식차 울산에 내려갔다가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명예회장(정주영)께서 나를 선보러 미리 내려오셨었다. 명예회장께서 중매를 서신 셈이다.” 큰딸 지이씨는 현대상선 재정부 대리로 근무 중이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고3 수험생이었던 외아들 영선씨는 졸업후 미국 유학을 준비중이다. ●6남 몽준… 세계1위 현대중공업 ‘건조’ 지금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세계 일류 현대중공업의 뒤에는 기업인 몽준씨가 있다. 형제중에 학벌(서울대-미국 MIT 경영대학원)이 가장 좋아 ‘신문대학’(소학교만 졸업한 정주영 회장은 신문을 통해 지식의 대부분을 얻었다며 자신을 신문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출신인 왕 회장이 유난히 예뻐했다는 몽준씨는 31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1988년 금배지를 처음 달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시도했다. 경영은 CEO에게 맡기고 자신은 대주주로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만 내리고 있는 것. 지금도 현대중공업의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 공식 직함은 5선의 국회의원이자 축구협회 회장.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현대중공업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10조원. 웬만한 그룹과 맞먹는다. 부인 김영명씨와는 미국 유학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큰아들 기선씨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올해 학사장교(ROTC)로 임관했다. 이로써 부자(父子)가 ROTC 선후배가 됐다. 두 딸 남이씨와 선이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월드컵 베이비’로 유명한 늦둥이 아들 예선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우리나라가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을 최종 통과한 것을 기념해 이름을 ‘예선’으로 지었다고 한다. ●7남 몽윤… 현대해상으로 컴백 몽윤씨는 지난해 말 업계 2위의 손해보험회사인 현대해상의 등기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돌아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의 전격 복귀였다. 방카슈랑스(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의 교차판매) 확대 시행 등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1981년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혜영씨와 연애결혼해 정이양과 경선군을 두었다. ●8남 몽일… 할부금융으로 내실 막내아들인 몽일씨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마친 뒤 현대상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현대기업금융을 차려 독립했다. 기업대출 등을 주로 취급하는 회사다. 권영찬 현대파이낸스 회장의 딸 준희씨와 결혼해 고등학생인 현선(영국 유학중)군과 중학생인 문이양을 두고 있다. ■ 현대의 또 다른 축 형제들 고 정주영 회장의 형제들은 동생이기 이전에 창업 동지요, 사업 동료였다.6·25전쟁 직후 고령교(대구와 거창을 잇는 교량) 복구 공사를 덜컥 떠맡았다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 내남없이 살던 집을 팔아 돈을 내놓은 것도 동생들과 매제였다. 이 때문에 20명이 넘는 대식구가 한 집(돈암동)에 모여 살아야 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독립해 각자의 그룹을 이끌고 있다. ●옛 영화 꿈꾸는 한라·성우 동아일보 외신부 기자로 활동하던 첫째 동생 인영씨는 1953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하면서 경영에 본격 합류했다.75년 말 중동 진출 때 신중론을 펴 형과 이견을 빚을 때까지 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당시 독립해 만든 한라그룹은 한라건설·한라시멘트·한라중공업·만도기계 등을 거느리며 재계 서열 12위로까지 도약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그룹이 부도나는 시련을 겪었다. 지금은 둘째 아들 몽원씨가 한라건설 회장을 맡아 재기를 꿈꾸고 있다. 큰 아들 몽국씨는 94년 아버지가 동생을 그룹 후계자로 지목하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한때 배달학원 이사장을 맡았으나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부인 이광희씨는 배달학원 계열인 한라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대시멘트·성우종합건설·성우리조트·현대종합금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성우그룹은 둘째 동생 순영씨 일가가 이끌고 있다. 순영씨는 명예회장으로 물러앉고 2세 경영을 정착시켰다. 큰아들 몽선씨가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을, 둘째아들 몽석씨가 현대종합금속, 셋째아들 몽훈씨가 성우전자, 넷째아들 몽용씨가 성우오토모티브를 각각 맡고 있다. 몽선씨는 사촌인 정몽윤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과 함께 정몽헌 회장의 부검을 임관하기도 했다. ●‘기계박사’가 일군 한국프랜지 자동차부품회사인 한국프랜지공업의 김영주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유일한 매제다. 정주영 회장은 ‘이 땅에 태어나서’라는 두 번째 자서전에서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기계가 저절로 고쳐졌다.”며 매제를 ‘기계박사’라고 불렀다.1946년 정주영 회장이 미 군정에서 불하받은 토지에 ‘현대’(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상호를 처음 내걸었을 때, 감격적으로 지켜본 이도 영주씨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로부터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기직종이던 운전기사 출신의 영주씨는 황해도 홀동광산에서 역시 운수업을 하던 정주영 회장과 뜻이 맞아 사업을 같이 도모했고, 매제까지 됐다. 부인 정희영씨는 2001년 정주영 회장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을 때 “대통령 한번 못해보고…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쩔거나.”하며 가장 서글프게 울었던 동생이다. 장남 윤수씨가 회사를 물려받아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으로 있다. 둘째아들 근수씨는 독립해 울산화학·퍼스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후성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윤수씨의 장남 용석씨가 프랜지공업 계열사인 서한산업(자동차부품회사) 대표이사 사장이어서 3세 경영체제를 갖춰 가고 있다. 둘째아들 용범씨는 이름을 용태로 바꿨다. ●‘포니 정’ 부자(父子)의 변신 ‘포니 정’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넷째 동생 세영씨는 외아들 몽규씨와 함께 1999년 3월 현대그룹에서 독립해 건설시장에서 영역을 확실하게 굳혔다. 꼼꼼한 시공과 치밀한 분양으로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도급순위 4위 업체로 키워놓았다.‘포니 정’이라는 별명은 1976년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국산 고유모델 자동차 1호 ‘포니’를 만들어낸 데서 붙여졌다. 이같은 열정과 헌신을 인정받아 87년 형에게서 현대그룹 회장직을 물려받기도 했다. 분가한 뒤로는 현대산업개발 경영에만 매달렸다. 몇 년 전 폐암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희수연을 치렀을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회사 경영은 아들 몽규(회장)씨가 책임지고 있다. 지금의 서울 삼성동 사옥은 몽규씨가 직접 지었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현대가 맺은 최고위층 사돈도 세영씨 집안에서 나왔다. 큰딸 숙영씨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 경수(서울대 교수)씨와 결혼한 것. ●“아… 신영아”-교통사고 아닌 병으로 요절 다섯째 동생 신영씨는 고 정주영 회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동생이다. 서울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함부르크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1962년. 처음에 어떤 기자가 교통사고사로 쓰면서 오랜 세월 세상에 잘못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인은 지병이라고 유족은 본지에 밝혔다. 당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일에서 떠나본 적이 없는 정주영 회장이 일주일을 손놓았을 만큼 가족의 슬픔은 컸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첼리스트였던 미망인 제수씨(장정자)에게 현대학원(현대고)을 경영토록 했다. 지금도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정자씨는 남북이산가족 상봉때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남한측 방문단장을 맡았었다. 장홍선 전 극동도시가스 회장의 누나다. 신영씨는 1남1녀를 두었다. 아들 몽혁씨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로 취임해 인천정유(구 한화에너지)를 인수하고 오일뱅크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외자유치와 함께 2002년 전문경영인에서 물러나 그 해 건축자재 유통회사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를 설립해 돌아왔다. 부인 이문희씨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동원 이홍근 선생의 손녀이다. 사업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였던 동원 선생은 평생 모은 문화재 4941점을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딸 일경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블룸버그대학 회계학과 교수인 남편 임광수씨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 ●‘리틀 정주영’이 이끄는 KCC 막내동생인 상영씨는 ‘불에 타지 않는 바닥재’ 등으로 유명한 자재 전문그룹 KCC를 이끌고 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성격 등이 고 정주영 회장을 가장 많이 닮아 ‘리틀 정주영’으로 불린다. 큰형과 나이 차이가 21살이나 나 아버지처럼 따랐다. 장조카 몽구씨와도 2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또 다른 조카인 고 정몽헌 회장이 자금난에 몰렸을 때 200억원을 선뜻 내놓았을 만큼 의리도 강하다. 그러나 조카의 죽음 이후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면서 다소 빛이 바랬다. 그룹 경영은 두 아들에게 맡긴 상태다. 큰아들 몽진씨가 대표이사 회장, 둘째아들 몽익씨가 대표이사 부사장이다. 셋째아들 몽열씨는 계열사인 금강종합건설 사장을 맡고 있다.KCC는 몽익씨를 통해 롯데·한진그룹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몽익씨의 부인 은정씨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조카(신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씨의 딸)이다. 은정씨의 언니 은영씨는 한진해운 조수호 회장의 부인이다. 몽익씨와 조 회장이 동서지간인 셈이다. ●현대가의 여자들 현대가의 딸이나 며느리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화여대(정경희-이양자-현정은-김혜영-정유희 등) 출신에 해외유학(김영명-정지선-황서림-허승원 등)까지 다녀온 재원들이 적지 않지만 경영에 참여하거나 대외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남편을 따라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다. 유일한 경영자인 현정은씨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전업주부’였다. 오너 일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한 관계자는 “지금도 명절 때면 청운동 집(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오랫동안 살던 집)에 몇 대에 걸친 며느리들이 모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직접 장만한다.”면서 “옷차림들도 수수하고 인상이 소박해 언뜻 봐서는 재벌가 며느리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미인들이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유난히 많은 연애결혼’에서 찾는다. ●그룹분리 가속화시킨 ‘경영권 분쟁’ 2000년 ‘형제간 다툼’은 현대가를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핵분열시킨 결정적 계기였다.99년 12월 마지막 날, 고 정몽헌(MH) 회장쪽 인사로 분류되던 박세용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정몽구(MK) 회장 계열의 현대차 회장으로 전격 발령나면서 시작된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은 그룹 후계자로 MH를 지목한 고 정주영 회장의 육성 테이프가 공개되기까지 석달여에 걸쳐 숨막히게 전개됐다. 효심이 남달랐던 MK는 아버지의 육성이 공개되자 깨끗이 승복하고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그룹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아픔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의 지배구조를 선진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21일 왕 회장의 4주기에 모처럼 형제들 모두가 함께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은 공식적으로 가족화합이 됐음을 안팎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현대가에 정통한 소식통은 전했다. hyun@seoul.co.kr ■ 정주영 회장의 ‘빈대론’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은 ‘해당화가 찬란하고 눈(雪)이 많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에서 1915년 6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죽어라고 일해도 콩죽을 면할 길이 없는 농군이 진절머리나게 싫고 지겨워”(첫번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열네살 무렵부터 줄기차게 가출을 시도했다. 무작정 길을 나서 보기도 하고, 아버지의 소 판 돈을 훔쳐도 봤다. 그러기를 네번째. 열아홉살 마지막 가출에 성공해 인천부두 막노동꾼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한 푼이 아까워 몸을 기댔던 곳이 노동자 합숙소. 뼈가 으스러지는 중노동으로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를 만큼 고단했지만 좀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빈대들의 공격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밥상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 빈대들의 공격이 잠시 뜸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내 밥상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와 온 몸을 물어 뜯었다. 다시 머리를 써야 했다. 무릎을 탁 칠 만한 묘안이 떠올랐다. 밥상다리 네 개를 물 담은 양재기 넷에 하나씩 담근 뒤 그 위에 올라가 잔 것이다. 빈대를 밥상다리로 유도해 양재기 물에 익사시키자는 계략이었다. 쾌재를 부른 것도 이틀여. 빈대들은 또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양재기 물을 건넌 것일까.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불을 켜본 젊은 정주영 회장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빈대들이 밥상다리 대신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을 겨냥해 뚝 떨어져 목적 달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역경에 부딪칠 때마다 정주영 회장은 ‘빈대의 노력’을 떠올렸다.“난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든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는 단골 지청구는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울산 염포리)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조선소 투자금액을 유치할 때나,20세기 최대 역사(役事)로 꼽히던 중동 주베일 공사 입찰전에 뛰어들 때나, 직원들이 불가능하다고 도리질칠 때면 “이봐, 해봤어?”라고 불호령을 쳤던 것도 빈대의 집요한 노력을 떠올리면서였다.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던 정주영 회장은 근검과 노력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자본금” “한강에 기적은 없다. 성실하고 지혜로운 노동이 있을 뿐” “고선지부지설(苦蟬之不知雪;여름철 서늘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없어지는 매미는 한겨울 펑펑 쏟아지는 눈을 알 수 없다)” ‘아산 정주영 어록’에 실려있는 그의 유명한 말들이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대모’ 변중석 여사 열여섯살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섯살 연상의 고향총각 정주영에게 시집온 변중석씨는 현대가의 산 증인이다. 올해로 84세. 젊어서 남편이 사준 재봉틀 하나를 자신 소유의 유일한 재산으로 여기며 한결같은 근검과 후덕함으로 ‘현대가의 여자’라는 상징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동생들과 자식들에게 근검을 가르쳤다면, 변씨는 새벽 3시반부터 손아래 동서·며느리들과 아침 준비를 함께 하면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겸손하라.”고 일렀다. 가혹하리만치 자식 교육에 엄격했던 정주영 회장이 아이들을 자가용으로 등교시키는 며느리들을 보고 “젊었을 때 콩나물 버스에 시달려봐야 나중에 자가용을 샀을 때의 기쁨을 안다.”며 역정을 내자 “손주녀석들 키우는 문제에까지 시아버지가 잔소리를 할 거냐.”며 막아준 이도 변씨였다. 칭찬에 인색했던 정주영 회장도 아내를 가리켜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을 정도다.“아내를 보며 현명한 내조는 조용한 내조라는 생각을 굳혔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식을 먼저 땅에 묻는 참척의 고통과 여자로서의 마음고생을 거치면서 ‘살아있는 보살’도 탈이 났다. 거동이 불편해 10년 가까이 병원(현대아산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상 맏며느리인 이정화씨 등 며느리들이 틈날 때마다 병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월드 이슈] 태풍의 눈-中 반국가분열법

    중국의 타이완 독립에 대한 무력 저지를 정당화한 ‘반국가분열법’ 제정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오는 14일 제 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 전체회의 폐막일에 통과가 확실시된다. 중국 지도부는 반국가분열법 제정을 통해 타이완 독립에 대해선 무력 동원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의 중국’ 원칙을 관철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 법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와 우려를 표시하며 법 제정의 재고를 촉구했다. 전후 60년을 맞아 새로운 냉전의 기운이 커가고 있는 동아시아에서 반국가분열법은 새로운 ‘뇌관’으로 등장했다. ■ 동아시아에 미칠 파장 중국의 반국가분열법은 채택도 되기 전부터 주변국가들의 반발과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타이완에 대한 무력 공격의 법적 기반을 제공하는 근거법이란 점에서 최악의 경우 전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국군이 타이완을 공격할 경우 미국, 일본의 개입 가능성도 있어 국제전으로 확대될 위험도 있다.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 호주도 병참지원, 기지사용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쟁에 끌려들어갈 수도 있다. 8일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경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류 대변인은 “호주가 타이완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국과의 동맹 내용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국제전’은 최악의 시나리오지만 관련국가들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그만큼 개연성이 높다. 노무현 대통령이 8일 유사시 주한미군을 동북아지역에 투입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거부 의사를 표시한 것도 이같은 우려를 반영한다. 미국과 일본은 전략적으로나 명분상 중국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타이완의 존속을 원한다. 타이완마저 중국 손에 들어갈 경우 아·태지역의 세력균형의 추가 중국쪽으로 기울 것으로 우려한다. 미국은 중국과 수교 직후인 지난 1979년 4월 타이완의 안보가 위협받을 경우 자위수단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타이완 관계법을 제정, 타이완에 무기판매 등 사실상의 군사지원을 유지해오고 있다. 미·일 두 나라가 전쟁에 무력 개입을 않는다고 해도 경제제재 등 중국에 대한 강도높은 응징책을 채택할 가능성도 높다. 또 ‘세계의 공장’, 중국경제의 순항에 차질이 생기고 기우뚱댈 경우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파장은 불가피하다.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엔 경제적 태풍이 되어 밀어닥칠 수도 있다. 당사자 타이완의 반응은 격렬하다.8일 중국 전인대의 반국가분열법 심의가 시작되자 중국을 맹비난하며 강경대응책을 천명했다. 중국 의도와는 달리 독립의지를 꺾기는커녕 오히려 독립 열망에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헌법조항에서 중국 대륙과의 연관성을 언급하는 내용을 삭제하자는 의견에서부터 반분열법에 대항하는 ‘반병탄법’ 제정 의견까지 다양하다. 타이완 정부는 화물전세기 운항 계획 연기 등 양안 개방정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류즈젠(劉志堅) 타이완 국방부 대변인도 “중국의 비평화적인 수단이나 경솔한 조치에는 적절한 대응조치로 맞설 것”이라고 결연한 대응 의지를 표시했다. 타이완군은 중국의 공격이 시작될 경우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도시를 공격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전쟁이 당장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이 법이 미·중 및 중·일관계 악화 등 동북아지역의 긴장을 부추기고 중국 견제를 주장하는 중국위협론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요동치는 타이완 해협의 문제가 동북아평화를 집어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석우기자 swlee@seoul.co.kr ■ 법안마련 경과와 中의 속셈 |베이징 오일만특파원|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4일 인민대회당에서 ‘타이완에 대한 4개항의 지침’을 제시했다. 이날 발표된 ▲‘하나의 중국’ 원칙 견지 ▲평화통일 노력 ▲독립·분열 활동 반대 등은 ‘반국가분열법안’의 예고탄이었다. 4일 후인 8일 제10기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 전체회의에서 처음 공개된 이 법안은 타이완이 실질적으로 독립을 시도할 경우 즉각 전쟁에 돌입한다는 단호한 입장을 담고 있다. 수년 전부터 학자들 사이에서 시나리오로 논의돼 오다가 지난해 5월 천수이볜(陳水扁) 타이완 총통 취임 이후 법제화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완 독립 움직임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중국 지도부가 무력 저지라는 ‘마지노선’을 택한 것이다. ‘전쟁불사’의 배수진을 통해 천수이볜 총통의 개헌 움직임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다. 중·장기적으로 민진당 등 분리주의 세력의 고립과 친중국 세력으로의 정권교체를 겨냥했다. 초안은 입법 취지, 타이완 문제의 성격, 평화통일, 비평화적 방식 동원 등 4개 부분으로 구성됐다.▲타이완 독립세력에 의한 분열행위 ▲타이완 분열을 가져오는 중대사건 발생 ▲평화통일 조건의 완전한 소멸 시 국가주권과 영토 보전을 위해 비평화적 방식과 필요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그동안 중국이 제시해온 ‘평화통일, 일국양제’의 기본 방침과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평화통일 8개항 원칙’이 망라돼 있어 향후 양안관계의 최종 나침반이 될 전망이다. 중국 언론들도 법안의 당위성에 초점을 맞춰 대대적인 선전을 시작했다.CCTV 등 방송들도 긴급 대담을 편성, 내부 공감대 형성에 노력하고 있다. 중국 군부의 지지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인민해방군 전인대 대표들은 “타이완 독립 기도를 저지하고 외국의 중국내정 간섭을 방지하기 위한 방어용”이라고 주장했다. 총후근(군수)부 부부장 왕타이펑(王大風) 중장은 “타이완 분리주의자들의 독립기도와 외국세력의 간섭 때문에 군은 강군을 건설하고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며 반분열법 지지를 분명히했다. 미국과 일본 등 서방국가의 반대 목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중국 정법대학 법률연구센터 샤자쥔(夏家駿) 소장은 “국가 주권과 영토 보전은 국제적 관례며 미국과 영국 등 모든 국가들도 분열을 반대하는 관련 법률이 있다.”고 일축했다. 법안에 ‘타이완 문제는 중국 내정으로 외국세력의 간섭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법안 통과가 중국 지도부의 주장처럼 ‘국가의 분열을 제지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인지 동아시아 냉전의 새로운 신호탄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oilman@seoul.co.kr ■ 美·日의 입장과 전략 |도쿄 이춘규특파원|미국과 일본은 ‘반국가분열법안’이 성립되어 타이완해협의 긴장이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최선은 평화적 해결이다. 그러면서도 가상 적인 중국에 대한 포위망 구축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 2월 두나라 안전보장협의회에서 “타이완해협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아·태지역 안보의 공동목표로 설정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타이완 문제와 관련, 미·일의 정책은 ‘현상유지’다. 미국은 정부 고위관리나 의원 등이 반국가분열법안 처리 움직임을 “양안 관계의 긴장 완화에 역행하는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스콧 매클렐런 미 백악관 대변인은 중국 정부에 법안 통과의 ‘재고’를 촉구했을 정도다. 그러면서 타이완에 대해서도 중국을 더 이상 자극하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독립을 겨냥한 주민투표나 신헌법 마련 움직임에도 냉정하게 반응하고 있다.‘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하며 타이완 독립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미국은 중국에 의한 타이완 무력통일에 반대하고, 타이완에도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 ‘현상유지 정책’을 밝히고 있다. 이라크 부흥및 중동평화, 유럽과의 관계개선, 북한과 이란 핵문제 등 막중한 외교과제가 산적한 때 중·타이완 긴장은 피하겠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1년 4월엔 “타이완을 돕기 위해 필요한 어떤 일도 할 것”이라면서, 타이완해협에서의 군사개입도 “확실하게 하나의 선택수단”이라고 말해 중국을 ‘전략적 파트너’라고 불렀던 클린턴 전 대통령과 대비되는 친타이완 정책을 취했다. 부시 2기에 들어서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취임 직전 의회 증언에서 “중국은 상당히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등 중국을 ‘전략적 경쟁상대’로 규정했던 부시정권의 본질이 다시 표면화되는 분위기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아울러 중국의 군비증강 정책을 우려하면서 ‘중국위협론’을 부각시키겠다는 생각이다. 호소다 관방장관은 반분열법안에 대해 “양안관계에 영향이 있다고 염려는 하고 있다.”고 말했으며, 외무성 간부들도 “타이완해협의 긴장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긴장하고 있다. 일본은 타이완 독립 저지를 명분으로 한 중국의 무력행사를 법률적으로 용인하는 반분열법이 성립되면 “동아시아의 안정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는 국제여론전을 펴고 있다. 즉, 타이완해협의 긴장 고조는 한반도 문제와 함께 일본과 미국은 물론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도 최대의 불안요인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taein@seoul.co.kr
  • 이태원 봄, 쇼핑객 넘친다

    이태원 봄, 쇼핑객 넘친다

    ■ 이태원의 봄… 쇼핑객 다시 붐벼 ‘외인촌’으로 불리는 서울 이태원에 봄이 완연하다.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데다, 소비 심리가 회복 조짐을 보이며 보세 상품을 선호하는 쇼핑객들이 크게 몰려들어 붐비기 시작했다. 특히 이태원 입구에서 한남2동까지 1.4㎞ 구간에 자리잡은 이태원의 심장부격인 관광특구는 의류·구두와 가방 등을 판매하는 쇼핑가와 각종 음식점, 유흥·오락시설, 무역상, 여행사, 관광호텔 등 2000여개의 외국인 대상 점포가 밀집해 있어 쇼핑의 즐거움은 물론, 아르헨티나·쿠웨이트 등 외국 대사관저 등도 ‘늠름하게’ 들어서 있어 ‘이국정취’에 흠뻑 빠져 들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글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보세품 가게·음식점등 즐비 세계인의 거리로 명성 높아 ‘외인촌’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은 이름부터 외색(外色)이 짙게 밴 동네다. ‘이태원(梨泰院)’은 배밭이 많아 불렸다는 설과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귀화해 살던 곳으로 ‘이타인(異他人)’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왜군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이 살던 보육원인 ‘이태원(異態園)’이 있던 장소라서 유래됐다는 주장도 공존한다. 여하튼 이태원은 관리와 여행자를 위해 제공되는 ‘원’으로 원래 위치는 용산중·고등학교에 있던 숙박시설이었다. 이태원 마을은 현재 이태원 2동 중앙경리단 일대였으나 서울시의 도시계획에 따라 이태원로가 뚫리면서 이태원의 축이 해밀턴 호텔쪽으로 이동했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용산에 미군기지가 자리를 틀면서 인접지인 이태원은 위락지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해방촌’과 외국공단, 군인아파트 등이 건설되면서 본격적인 도시화를 이뤘다. 하지만 1950∼60년대에는 생활용품과 잡화류 위주의 상가들이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1970년대 초 부평에서 121후송병원이 미8군 영내로 옮기면서 1만여명의 미군과 관련 종사자가 유입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드러냈다. 70년대 섬유산업이 호황을 맞자 이태원은 보세물품의 쇼핑가를 형성했다.1980년대 각종 국제회의와 두 차례의 국제 경기가 열리면서 쇼핑명소로 두각을 드러냈다.90년대에는 미군과 일본 관광객뿐만 아니라 홍콩, 중국, 동남아, 아프리카, 중동지역 등 다양한 국가에서 관광객이 쏟아지면서 세계인의 거리로 탈바꿈하고 있다.1997년 서울시 최초로 관광특구로 지정돼 현재 하루 7000여명 연간 240여만명이 이곳에 발자국을 새겨, 연간 12억달러의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현재 이태원의 중심축을 이루는 이태원관광특구는 이태원 입구에서 한남 2동까지 1.4㎞의 구간,11만여평을 말한다. 구두와 의류, 가방 등을 취급하는 쇼핑가를 비롯해 각종 음식점, 유흥·오락시설, 무역상, 여행사, 관광호텔 등 2000여개의 점포가 밀집해 있다. 관광특구의 면모 외에도 이태원은 하얏트 호텔에 이어 형성된 고급주거지역으로 유명하다. 아르헨티나와 쿠웨이트 대사관을 비롯, 각국 대사관과 관저 등 담이 높은 고급주택과 빌라가 많다. 또 다른 한 편인 용산2가동과 닿은 곳은 월남민의 주거지역인 ‘해방촌’이 마을의 또 다른 성격을 규정한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씨줄날줄] 영변 공습계획/이목희 논설위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CVID)’-그동안 한국과 미국이 내놓은 북한핵 해결 방안이다.‘완전한 핵폐기’로 용어를 단순화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핵폐기의 실현이 쉽지 않은 게 문제다. 김정일은 핵무기라도 가져서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결의를 곳곳에서 비친다. 경제보상을 노린 협상용으로 치부해선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울 듯싶다. 북한이 끝내 핵무장을 추구한다면 해법은 두가지뿐이다. 첫째, 무력사용 혹은 견디기 힘든 제재로 목줄을 죄는 것이다. 둘째, 핵무기로 얻는 것 이상의 체제보장을 해주는 방안이다. 애슈턴 카터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주 서울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영변 핵시설 공격이 이뤄졌다면, 어떠한 방사능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성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터 교수는 1990년대 1차 북핵위기 당시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국방부 차관보를 지냈다.94년 영변 핵시설 공습계획을 지휘한 인물이다. 북폭은 김영삼 정부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한 모의실험 결과 B-2스텔스기와 B-52폭격기를 동원한 영변 공습은 1∼2일안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공습후 90일안에 한반도 전면전으로 한국군 49만명, 미군 5만 2000명과 수백만 민간인이 희생당하는 끔찍한 시나리오가 예상되기도 했다. 휴전선 주위의 인구밀도가 워낙 높기 때문이다. 중동지역 전쟁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럼에도 카터 교수는 “많은 미국민들은 한국에서의 전쟁이 이라크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부시 행정부 역시 ‘제한북폭론’의 유혹을 느끼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에는 제한전이지만, 한국으로선 전면전이 된다는 점이 북핵의 아킬레스건이다. 그로 인해 한국 정부의 북핵 정책은 사실상 ‘관리’ 수준이다. 전쟁방지에 신경쓰다 보니 북한이 이미 개발한 것으로 보이는 핵을 폐기할 정도의 체제보상안을 미국이 내놓게 설득할 여력이 없다. 북한 핵무기를 조잡한 수준에서 머물도록 관리하는, 고육책을 이어가는 처지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핵전쟁 위기, 일본·타이완의 핵무장 등 엄청난 후폭풍이 우려된다. 한반도 안정을 위해 미국의 ‘화끈한 당근’이 필요하다. 북·미수교, 불가침 서면약속 등 북한 체제와 관련된 획기적 대북 제안을 미국측과 만들어내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6일 TV 하이라이트]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50분) 1936년 소련, 스탈린의 부하인 보안부장 이바노프는 한 아파트에 입주하게 된다. 최고 간부들과 상위 1%의 사람들만 살 수 있다는 모스크바의 강변 아파트에 입주한 이바노프는 입주 날부터 한 주민의 죽음을 보게 된다. 과연 아파트 속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1시25분) 이라크, 이스라엘, 요르단과 인접한 중동국가 시리아는 그동안 주변국과의 전쟁으로 고통을 받아왔다. 여름에는 45도의 무더위, 겨울에는 영하로 떨어지는 연교차를 보이는 불모의 초원지대가 국토의 절반 이상이다. 또 폭발적인 인구·가축의 증가로 국토의 사막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곳. ●특선 다큐멘터리(EBS 오후 7시10분) 이집트의 동쪽 지방에서 시리아 반군세력이 파라오에 반기를 들고 일어났다. 왕권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젊은 투트모세 3세는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투트모세 3세가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동시에 이집트왕국이 제국으로 거듭나게 되는 메기도 전투를 살펴본다. ●TV 동물농장(SBS 오전 9시40분) 동물농장 농장주, 신동엽이 일일 수의사에 도전한다. 수중 바다생물을 만나러 간 윤현진.‘견생역전’ 유기견은 내가 지킨다, 버림받은 개들의 수호천사가 된 정선희. 사자들의 대부,‘라이언 킹’에 도전하는 김생민. 이들이 펼치는 기상천외한 미션 도전기가 펼쳐진다. ●부모님 전상서(KBS2 오후 7시55분) 창수는 성실에게 빈 집에서 자기 싫다며 재워 달라고 말하지만 성실은 허락하지 않는다. 술 한잔하며 생모에 대한 생각을 털어 버리려는 금주의 마음을 헤아려 고모방에 모여 술자리를 한다. 미연과 아리는 같이 상을 치우다가 문제가 생겨 서로 마음이 상하고…. ●불멸의 이순신(KBS1 오후 9시30분) 거북선 때문에 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고, 이순신 역시 어떤 처벌을 받을지 모르는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이순신은 기방을 전전하며 술독에 빠져 있는 나대용을 직접 잡아와 거북선과 함께 목숨을 잃은 병사들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고 호통친다.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외도에 이혼요구까지 하는 아내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외도에 이혼요구까지 하는 아내

    단란하던 가정이 아내의 외도로 파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저에게는 이미 마음이 떠났다고 하면서 이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상대 남과 재혼을 하겠다고 하니 이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다고 합니다. 어린 자식들을 생각해서 이혼하지 말고 예전처럼 살자고 했습니다. 이혼은 절대로 해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집에서 각방을 쓰고 있었는데 이것도 싫은지 얼마 전에는 아내가 나간다고 해 결국 제가 나와 살고 있습니다. 나와서 생활한 지 7개월째 접어들고 있는데 정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힘듭니다. 지금은 생활비를 매달 집으로 보내주고 있고 매주 아이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통화도 자주 합니다.7개월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집사람은 직장을 다니면서 적잖은 봉급을 타서인지 오히려 더 큰소리 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혼을 하지 않고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요. -이철수(가명)- 역사 이래 여자의 간통은 엄하게 다스려온 것이 사실입니다. 중동 등 아랍국가에서는 간음하는 여자는 돌로 쳐 죽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간음으로 잡혀온 여인을 두고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도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타일렀습니다. 그 여인은 아마도 평생 다시는 간음하지 않았으리라 추측됩니다. 우리나라 민법도 1960년 이전에는 남편의 간통은 문제삼지 아니하고 아내의 간통만을 이혼사유로 삼았습니다. 지금도 간통죄를 근본적으로 근절하거나 방지할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를 막을 길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전예방이고 또 하나는 사후 조치입니다. 교육과 종교로 막는 것이 사전예방이라면, 법으로 막는 것이 사후 조치입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또는 다음 세대를 지키기 위해 간통 같은 죄는 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선생님들이나 부모들이 행동으로 보여주고 모범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로마가 1000년간 번성하다가 결국 망한 이유 중의 하나는 성(性) 문란과 가정의 붕괴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전쟁 후 그야말로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다가,1961년 이후 40여년간 전국민이 피땀 흘려 노력해 경제성장을 이룩했습니다. 덕분에 이제 겨우 먹을 것, 입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형편이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사치와 향략, 쾌락쪽으로 흐르는 경향이 생긴 것은 아닌지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제가 맡은 사건 중에 남편이 이혼청구를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소송 중에 아내의 간통을 포착하고, 이를 몰래카메라로 촬영해 남편이 도리어 이혼의 반소를 제기해 승소판결을 받았습니다. 철수씨는 증거를 확보해야 합니다. 아내로부터 “언제, 어디서, 누구와 관계하였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라는 식의 자인서라도 작성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내와 간통한 남자를 만나 진지하게 그만둘 것을 요구할 수 있다면 그것도 또 하나의 방법입니다. 약간의 협박성 발언도 이 경우에는 용납됩니다.“나의 요구를 들어주지 아니하면 두 가정이 함께 침몰한다.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어도 좋으냐.”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간통죄는 형법 241조에 따르면 2년 이하의 징역을 살아야 하고, 판례에 따르면 간통을 한 사람은 고소인(배우자)뿐만 아니라 고소인의 존속이나 자녀 등에게도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습니다. 간통에 따르는 이혼으로 인해 아이들은 부모 중 어느 한쪽과는 헤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듣게 설명하세요. 그래도 끝내 반성하지 않고 계속할 경우는 고소를 해야 합니다. 고소인이 범행을 안 날부터 6개월, 범행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고소조차 할 수 없습니다. 또 이혼소장을 제출한 후 그 접수증명서를 첨부해야 고소할 수 있다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철수씨가 집을 나온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걱정이 됩니다. 아내는 종전과 다름없이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지요. 아내가 이혼소송을 걸어올 때까지 철수씨는 먼저 소송을 걸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부정행위를 한 배우자는 이혼청구를 해도 승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평화무드 중동 시리아 새 ‘분쟁불씨’ 되나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사건으로 모처럼 조성된 중동지역의 평화 분위기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또 이스라엘은 이 사건의 배후로 시리아를 지목, 세계의 이목이 시리아에 집중되고 있다. ●이, 텔아비브 자살테러 배후로 지목 25일(현지시간) 오후 이스라엘 텔아비브 해안에 위치한 한 나이트클럽 입구에서 자살폭탄 공격이 발생, 적어도 4명이 숨지고 50여명이 부상했다. 지난 8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상회담 이후 최대 규모의 테러다. 이스라엘은 즉각 치안책임자 회의를 소집했고, 샤울 모파즈 국방장관은 시리아와 테러단체 이슬람지하드가 이 사건의 배후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의 치안업무를 팔레스타인에 넘기려던 계획을 동결시켰고, 이슬람지하드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기로 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은 이 사건의 배후를 밝히기 위한 즉각적이고 믿을 만한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긴급 고위안보회의를 소집, 대책 마련에 나섰다. 마무드 아바스 수반은 “휴전 과정과 독립국가의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제3의 세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측은 테러단체 헤즈볼라를 의심하고 있다. 이슬람지하드 시리아 지부는 이번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알 자지라 방송은 26일 이슬람지하드 대원으로 보이는 22세의 대학생 압둘라 바드란이 자살테러를 준비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방영했다. 영국 BBC방송은 “누가 배후에 있든 이-팔 화해 무드가 붕괴될 위기에 놓인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중동 위기의 핵으로 떠올라 시리아 외무부는 모파즈 장관의 발언과 관련,“이번 테러공격과 무관하며 수도 다마스쿠스에 있는 이슬람지하드 사무실을 폐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시리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14일 라피크 하리리 레바논 전 총리 암살의 배후로 시리아가 지목되고 있는데다 시리아는 레바논 주둔병력 1만 4000여명의 철수 시한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4월까지 철군하지 않으면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미국 부시 2기 행정부가 시리아를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하자 시리아는 이란과 반미 공동전선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밖에 러시아로부터 미사일 수입을 추진하고 있고, 이라크 무장단체 대원들이 시리아에서 훈련받았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여러 방면에서 미국과 충돌하면서 이라크 이후 중동지역 불안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시리아는 어떤 나라 지중해 동부 지역에 위치한 시리아는 이스라엘, 터키, 이라크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국토 크기는 18만 5180㎢로 남한의 약 2배이며 인구는 1800만명 정도다. 종교는 이슬람 수니파가 74%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967년 중동전쟁에서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에 빼앗긴 뒤 이스라엘과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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