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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형 ‘칠전팔기 내인생’ 작가, 효연 경찰 신고男? SM “헤어진 사이”

    김준형 ‘칠전팔기 내인생’ 작가, 효연 경찰 신고男? SM “헤어진 사이”

    김준형 ‘칠전팔기 내인생’ 작가, 효연 경찰 신고男? SM “헤어진 사이” 최근 ‘폭행 신고 해프닝’으로 곤욕을 치렀던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 효연(25)을 신고했던 남성은 단순한 지인이 아니라 2년 동안 사귀어온 남자친구 김준형(35)으로 밝혀졌다. 김준형은 ‘칠전팔기 내 인생’의 저자로 유명하다. 스포츠서울닷컴은 4일 효연의 폭행 혐의 내용을 추적한 결과 경찰에 신고한 지인이 김준형이라고 보도했다. 매체는 복수의 연예 관계자들의 말을 빌어 효연과 김준형은 2년 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친분을 쌓다가 연인으로 지냈으며 싸우고 헤어졌다 다시 만나기를 반복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지난달 8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효연과 김준형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효연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김준형과 오붓하게 거리를 걸어다녔다. 이 매체는 두 사람이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통유리로 된 레스토랑 창가에 앉아 주위 시선을 개의치 않았다고 전했다. 둘 다 모자나 안경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저녁 식사 데이트를 즐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최근 폭행 소동으로 경찰서까지 가게 됐고,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지인 사이에서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해명했다. 스포츠서울닷컴은 이날 또 다른 소녀시대의 멤버 티파니(25)와 그룹 2PM의 멤버 닉쿤(26)도 열애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효연과 티파니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보도 직후 언론을 통해 “효연은 김준형과 이미 헤어진 사이”라고 밝혔다. 다만 티파니와 닉쿤에 대해서는 “닉쿤과 티파니가 오랜 친구 사이였는데 최근에 가까워지며 조심스럽게 알아가는 단계로 발전했다”고 열애를 인정했다. 네티즌들은 “효연 김준형 칠전팔기 내인생 작가 예전에는 그럼 연인이었나”, “효연 김준형 칠전팔기 내인생 작가라고?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효연 김준형 칠전팔기 내인생 작가, 지금은 헤어진 사이라니 다행”, “효연 김준형 칠전팔기 내인생 작가, 왜 싸웠는 지 궁금하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국영 사망 11주기,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장국영 사망 11주기,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장국영 사망 11주기,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 홍콩배우 장국영이 사망 11주기를 맞은 가운데 의문의 죽음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10년 MBC 예능프로그램‘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장국영이 남긴 460억원 상당의 유산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방송됐다. 장국영 유산의 절반을 물려받은 당학덕은 장국영의 동성연인이다. 당학덕은 데뷔 전부터 장국영을 물심양면 도우며 평생 가장 가까이 지냈다. 장국영은 공식석상에서 당학덕에 대해 “평생 가장 고마운 사람”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하지만 장국영의 죽음 이후 그의 죽음이 장국영의 460억 상당 재산을 노린 타살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고 당학덕이 첫 번째 용의자로 지목됐다. 반면, 당학덕은 지난해 장국영 추모 10주년 행사에도 모습을 드러내는 등 변함없이 장국영을 기리는 모습으로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켰다. 장국영은 2003년 4월 1일 47세의 나이로 홍콩 만다린 호텔 24층에서 몸을 던져 투신자살했다. 그의 죽음이 발표된 뒤 9시간 만에 6명이 모방 자살을 하는 등 전 세계 팬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네티즌들은 “장국영 11주기, 왜 죽었는 지 아직도 모르겠네”, “장국여 11주기, 도대체 왜 자살했을까”, “장국영 11주기, 그래도 영화는 남아 추억하는 사람이 많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소찬휘 결별, 배우 이정헌과 동거 끝 ‘결혼식 하겠다더니..’

    소찬휘 결별, 배우 이정헌과 동거 끝 ‘결혼식 하겠다더니..’

    ‘소찬휘 결별’ 가수 소찬휘와 배우 이정헌이 1년 전 결별한 것으로 드러났다. 31일 한 매체는 소찬휘 측근의 말을 빌려 “1년 전 두 사람이 결별했다. 현재 동료 연예인으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소찬휘 측은 “두 사람이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겸하다 보니 여러 어려움이 있어 서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며 “다만 동료로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결별을 인정했다. 소찬휘와 이정헌은 지난 2009년 4월 지인들과 모임에서 처음만나 인연을 맺은 뒤 같은 해 9월에 연인으로 발전했다. 이후 결혼을 약속하고 동거 생활을 시작한 두 사람은 2011년 7월 한 아침방송에 출연해 “아이를 먼저 낳은 뒤 안정이 되면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소찬휘는 최근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로이와 함께한 프로젝트 앨범 ‘네오 로커빌리 시즌’을 발매했다. 소속사 관계자는 “그녀가 아픔을 잊고 올 연말까지 타이틀곡 ‘사랑해서 그런다’ 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다. 응원 바란다”고 전했다. 사진 = 방송 캡처 (소찬휘 결별)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소찬휘, 이정헌과 동거 끝 결별…재혼하지 않은 이유가

    소찬휘, 이정헌과 동거 끝 결별…재혼하지 않은 이유가

    ‘소찬휘 이정헌 결별’ 뛰어난 가창령의 가수 소찬휘(42)와 연기파 배우 이정헌(44)이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다 결별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스포츠한국은 31일 “소찬휘와 이정헌은 결혼을 전제로 동거생활을 하다가 1년 전 결별했다”면서 “앞서 소찬휘와 이정헌은 2009년 4월 지인의 모음에서 만나 친구로 지내다가 9월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밝혔다. 소찬휘와 이정헌은 두 사람 다 한 차례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재혼을 서두르기보다 조심스럽게 동거를 선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찬휘와 이정헌은 2011년 7월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한 차례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방송에서 소찬휘와 이정헌은 “상처 덕분에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면서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마음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재혼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소찬휘와 이정헌은 또 “결혼보다는 아이가 더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소찬휘는 1996년 가요계에 데뷔해 ‘티어스’, ‘체인지’, ‘파인’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뛰어난 가창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정헌은 1998년 영화 ‘기막힌 사내들’로 데뷔해 영화 ‘실미도’, ‘공공의 적’, ‘GP506’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소찬휘와 이정헌의 결별 소식을 들은 네티즌들은 “소찬휘-이정헌 결별, 안타깝네”, “소찬휘-이정헌 결별, 결혼 언제 하나 기다렸는데”, “소찬휘-이정헌 결별, 잘 어울리는 커플이 헤어지다니”, “소찬휘-이정헌 결별, 결국 결혼까지는 못했구나”, “소찬휘-이정헌 결별, 헤어진 이유가 궁금하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소찬휘 결별, 1년 전 두 사람 결별 ‘아이 낳고 결혼식 하겠다더니..’

    소찬휘 결별, 1년 전 두 사람 결별 ‘아이 낳고 결혼식 하겠다더니..’

    ‘소찬휘 결별’ 가수 소찬휘와 배우 이정헌이 1년 전 결별한 것으로 드러났다. 31일 한 매체는 소찬휘 측근의 말을 빌려 “1년 전 두 사람이 결별했다. 현재 동료 연예인으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소찬휘 측은 “두 사람이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바쁜 일정을 겸하다 보니 여러 어려움이 있어 서로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며 “다만 동료로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결별을 인정했다. 소찬휘와 이정헌은 지난 2009년 4월 지인들과 모임에서 처음만나 인연을 맺은 뒤 같은 해 9월에 연인으로 발전했다. 이후 결혼을 약속하고 동거 생활을 시작한 두 사람은 2011년 7월 한 아침방송에 출연해 “아이를 먼저 낳은 뒤 안정이 되면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소찬휘는 최근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로이와 함께한 프로젝트 앨범 ‘네오 로커빌리 시즌’을 발매했다. 소속사 관계자는 “그녀가 아픔을 잊고 올 연말까지 타이틀곡 ‘사랑해서 그런다’ 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다. 응원 바란다”고 전했다. 사진 = 방송 캡처 (소찬휘 결별)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소찬휘·이정헌, 동거 끝 결별…헤어진 이유 무엇이길래

    소찬휘·이정헌, 동거 끝 결별…헤어진 이유 무엇이길래

    ‘소찬휘 이정헌 결별’ 뛰어난 가창령의 가수 소찬휘(42)와 연기파 배우 이정헌(44)이 결혼을 전제로 동거하다 결별한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다. 스포츠한국은 31일 “소찬휘와 이정헌은 결혼을 전제로 동거생활을 하다가 1년 전 결별했다”면서 “앞서 소찬휘와 이정헌은 2009년 4월 지인의 모음에서 만나 친구로 지내다가 9월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밝혔다. 소찬휘와 이정헌은 두 사람 다 한 차례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재혼을 서두르기보다 조심스럽게 동거를 선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소찬휘와 이정헌은 2011년 7월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한 차례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고 고백했다. 방송에서 소찬휘와 이정헌은 “상처 덕분에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면서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웠고 마음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재혼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소찬휘와 이정헌은 또 “결혼보다는 아이가 더 중요하다”고도 말했다. 소찬휘는 1996년 가요계에 데뷔해 ‘티어스’, ‘체인지’, ‘파인’ 등의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뛰어난 가창력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정헌은 1998년 영화 ‘기막힌 사내들’로 데뷔해 영화 ‘실미도’, ‘공공의 적’, ‘GP506’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소찬휘와 이정헌의 결별 소식을 들은 네티즌들은 “소찬휘-이정헌 결별, 안타깝네”, “소찬휘-이정헌 결별, 결혼 언제 하나 기다렸는데”, “소찬휘-이정헌 결별, 잘 어울리는 커플이 헤어지다니”, “소찬휘-이정헌 결별, 결국 결혼까지는 못했구나”, “소찬휘-이정헌 결별, 헤어진 이유가 궁금하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추대엽 결혼, 미모의 헤어 아티스트와 결혼 ‘신부 미모가..연예인?’

    추대엽 결혼, 미모의 헤어 아티스트와 결혼 ‘신부 미모가..연예인?’

    추대엽 결혼 소식이 전해졌다. 29일 오후 3시 서울 부암동의 AW컨벤션에서 개그맨 추대엽이 3살 연하의 헤어 아티스트 이모 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날 추대엽 결혼식의 주례는 MBC 코미디언실 신우회를 이끌고 있는 예일교회 이종명 목사가 맡았고, 사회는 MBC 선배 개그맨인 문천식이 맡아 눈길을 끌었다. 또 방송인 현영이 축사를, 밴드 장미여관의 육중완이 축가를 맡았다. 추대엽은 신부와 5년 전 초등학교 동창 소개로 처음 만나 이후 연인으로 발전해 결혼에 골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추대엽은 지난 2002년 MBC 공채 13기 개그맨으로 데뷔해 ‘노브레인 서바이벌’, ‘나도 가수다’등의 코너에서 활약했다. 사진 = 스튜디오 바닐라 플라스틱 (추대엽 결혼)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채림 “중국 배우 가오쯔치와 교제 중”

    채림 “중국 배우 가오쯔치와 교제 중”

    27일 배우 채림의 소속사 싸이더스HQ 관계자는 “채림 본인에게 확인 결과 중국 배우 가오쯔치와 3~4개월 전부터 교제 중”이라고 밝혔다. 채림 가오쯔치는 중국 CCTV 드라마 ‘이씨가문’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추다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가오쯔치는 채림이 타지에서 적응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현재 코믹 사극 ‘시아전기’ 촬영도 함께 하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채림 “중국 배우와 열애 중”

    채림 “중국 배우와 열애 중”

    27일 배우 채림의 소속사 싸이더스HQ 관계자는 “채림 본인에게 확인 결과 중국 배우 가오쯔치와 3~4개월 전부터 교제 중”이라고 밝혔다. 채림 가오쯔치는 중국 CCTV 드라마 ‘이씨가문’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추다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가오쯔치는 채림이 타지에서 적응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채림 가오쯔치는 코믹 사극 ‘시아전기’ 촬영도 함께 하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채림, 국경-나이 초월한 사랑 “중국 배우와 교제 중”

    채림, 국경-나이 초월한 사랑 “중국 배우와 교제 중”

    27일 배우 채림의 소속사 싸이더스HQ 관계자는 “채림 본인에게 확인 결과 중국 배우 가오쯔치와 3~4개월 전부터 교제 중”이라고 밝혔다. 채림 가오쯔치는 중국 CCTV 드라마 ‘이씨가문’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추다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가오쯔치는 채림이 타지에서 적응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현재 코믹 사극 ‘시아전기’ 촬영도 함께 하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채림, 中 배우 가오쯔치와 열애 인정.. 결혼설까지? 어떻게 만났나보니

    채림, 中 배우 가오쯔치와 열애 인정.. 결혼설까지? 어떻게 만났나보니

    채림 가오쯔치 열애 배우 채림(35)이 중국 배우 가오쯔치(33)와 열애 중이다. 27일 채림의 소속사 싸이더스HQ 관계자는 “채림 본인에게 확인 결과 가오쯔치와 3~4개월 전부터 열애 중이다”며 “아직 오래 만난 것은 아니라 결혼을 언급하기엔 이르다”고 밝혔다. 채림 가오쯔치는 중국 CCTV 드라마 ‘이씨가문’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추다 연인 관계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채림 가오쯔치는 코믹 사극 ‘시아전기’ 촬영도 함께 하고 있다. 가오쯔치는 채림이 타지에서 적응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네티즌들은 “채림 가오쯔치 열애 소식 반갑네. 예쁜 사랑 하길”, “채림 가오쯔치 열애 인정, 멋지다”, “채림 가오쯔치 열애 인정, 연상연하 커플 대열 합류”, “채림 가오쯔치 열애, 잘 어울린다”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채림 웨이보(채림 가오쯔치 열애)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채림, 중국 배우와 열애 중 ‘연상연하 커플’

    채림, 중국 배우와 열애 중 ‘연상연하 커플’

    27일 배우 채림(35)의 소속사 싸이더스HQ 관계자는 “채림 본인에게 확인 결과 중국 배우 가오쯔치(33)와 3~4개월 전부터 교제 중”이라고 밝혔다. 채림 가오쯔치는 중국 CCTV 드라마 ‘이씨가문’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추다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가오쯔치는 채림이 타지에서 적응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현재 코믹 사극 ‘시아전기’ 촬영도 함께 하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채림, 중국 훈남 배우와 열애 중 ‘공식 인정’

    채림, 중국 훈남 배우와 열애 중 ‘공식 인정’

    27일 배우 채림의 소속사 싸이더스HQ 관계자는 “채림 본인에게 확인 결과 중국 배우 가오쯔치와 3~4개월 전부터 교제 중”이라고 밝혔다. 채림 가오쯔치는 중국 CCTV 드라마 ‘이씨가문’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추다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가오쯔치는 채림이 타지에서 적응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현재 코믹 사극 ‘시아전기’ 촬영도 함께 하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채림, 중국 배우와 4개월째 열애 중

    채림, 중국 배우와 4개월째 열애 중

    27일 배우 채림의 소속사 싸이더스HQ 관계자는 “채림 본인에게 확인 결과 중국 배우 가오쯔치와 3~4개월 전부터 교제 중”이라고 밝혔다. 채림 가오쯔치는 중국 CCTV 드라마 ‘이씨가문’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추다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가오쯔치는 채림이 타지에서 적응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현재 코믹 사극 ‘시아전기’ 촬영도 함께 하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안내상 동생, 송윤아 고소에 화제된 이유 ‘설경구 전처’ 루머 아닌 진실

    안내상 동생, 송윤아 고소에 화제된 이유 ‘설경구 전처’ 루머 아닌 진실

    ‘안내상 동생, 설경구 이혼원인, 송윤아 악플러 고소’ 배우 송윤아가 악플러 고소에 나섰다. 2009년 배우 설경구와 결혼 이후 쏟아진 악성 루머에 대해 강경대응하기로 한 것. 법무법인 세종은 24일 “송윤아의 법률 위임을 받아 허위의 블로그 내지 악성 댓글에 대해 본격적인 법적 대응을 진행하기로 했다”며 “허위가 명백하거나 악의에 찬 노골적인 비방과 욕설을 담은 블로그 글과 기사 댓글을 중심으로 1차로 지난 21일 강남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송윤아 악플러 고소 사실을 밝혔다. 송윤아는 설경구의 전 부인과의 이혼원인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설경구는 지난해 한 토크쇼에 출연해 전 부인과의 이혼원인은 자신에게 있다며 송윤아 때문에 이혼한 것이 아님을 해명하기도 했다. 송윤아는 일부 네티즌의 비방과 욕설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미치는 등 정도가 지나쳐 악플러 고소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송윤아가 고소에 나서며 설경구 송윤아 부부와 배우 안내상의 동생과의 관계도 재조명 받고 있다. 설경구는 안내상 동생과 결혼하고 딸을 가졌지만 2006년 합의 이혼에 이르렀으며 딸의 양육권은 전처가 갖게 됐다. 이후 설경구는 송윤아와 두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송윤아와는 2002년 영화 ‘광복절특사’에서 처음 만나 2006년 ‘사랑을 놓치다’에서 호흡을 맞췄으며 2007년 연인으로 발전해 2009년 결혼했다. 사진 = SBS, 스포츠서울닷컴(안내상 동생, 설경구 이혼원인, 송윤아 악플러 고소)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희미해진 참상… 참배객 없는 위령탑 ‘썰렁’

    희미해진 참상… 참배객 없는 위령탑 ‘썰렁’

    25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 연화리 앞 바닷가. 4년 전 엄청난 사건이 있었는지 모르는 듯 언제나처럼 고요하다. 천안함이 침몰된 2.5㎞ 해상에 설치된 부표만이 안개 속에서 당시의 참상을 어렴풋이 나타낼 뿐이다. 46명의 장병이 산화한 곳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야산에는 ‘천안함 위령탑’이 들어서 있다. 주탑 앞 벽에는 산화 장병들의 청동상(얼굴 부조)이 이름·계급과 함께 나란히 붙어 있어 그날 이곳에 고귀한 희생이 있었음을 웅변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위령탑을 ‘46용사탑’이라고 부른다. 이근배 시인은 탑 옆 추모시에 “파도가 잠드는 시간 누구는 부모에게 문안전화를 드리고, 누구는 연인을 그리는 편지는 띄울 때 하늘이 무너지는 참화가 이들을 앗아갔다”고 적었다. 위령탑에 머무는 동안 참배객은 보이지 않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명명된 불만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날의 참상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것은 아닐까. 하지만 택시기사 손동일(72)씨는 “가끔 위령탑에 올라갈 때마다 참배객들이 두고 간 꽃들이 놓여 있었다”고 말했다. 마을로 내려가 주민들을 만나 보니 가슴속에 담아온 분노와 슬픔, 아쉬움 등이 묻어 나온다. 악몽을 떨쳐내기에는 4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았을 것이다. 강옥분(56·여·진촌4리)씨는 “천안함 인양 작업이 진행되는 20여일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바닷가에 나가 작업을 지켜봤다”면서 “그때는 인양이 걸리는 시일이 왜 그리 길게 느껴졌는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당시 주민들은 인양 현장을 직접 찾거나 TV에 바짝 붙어 속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박영순(54·여·연화리)씨는 “내 자식 또래의 장병들이 바닷속에서 숨진 채로 나오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그런 기막힌 일이 마을 코앞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함체 인양 작업을 지휘한 이청관 88수중개발 전무는 “당시 유족들은 4∼5일 안에 인양하면 함체 내 격리실에 생존자가 있을 수 있다고 믿었는데 파도와 조류가 거세 시일이 오래 걸린 것이 못내 아쉽다”고 밝혔다. 이 전무는 “당시 한주호 준위가 해저 수색 도중 사망한 것도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천안함 산화 장병 유족들의 아픔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유족회 회장 이인옥(50)씨는 “지금이라도 아들이 ‘휴가 나왔어요’라며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올 것 같다”면서 “아들의 시신을 찾았을 때는 자식 시신조차 못 찾은 유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장병 6명의 시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유족들은 26일 천안함 전사자 공식 추모식이 열리는 대전현충원을 찾은 뒤 다음 날 사건 현장인 백령도 해상에서 위령제를 열 예정이다. 이씨는 “국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유족들이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애써 담담해했다. 글 사진 백령도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20년간 백두산 찍은 산악 사진가 안승일

    [김문이 만난사람] 20년간 백두산 찍은 산악 사진가 안승일

    4월의 어느 날이었다. 한라도령은 꽃향기에 잔뜩 취했다. 저절로 백두의 문이 열렸다. 금잔 한 잔에 시름 한 술 놓았다. 흰 구름과 함께 백두낭자가 나타났다. 낭자는 팔을 벌려 한라도령을 감싸 안았다. 고운 자태와 온화한 숨결로 그를 따뜻하게 포옹했다. 도령은 낭자의 아름다운 치마폭에 푹 빠졌다. 도무지 헤어날 수가 없었다. 세월 가는 줄 몰랐다. 낭자는 어느새 백두의 여신으로 변했다. 도령은 얼마 후 세상을 향해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나는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설레는 20년을 백두산에서 살았다. 나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한 마디를 백두산에 묻었다. 백두산은 나의 스승이요 사랑이다. 20년 전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자연을 복제해내는 단순한 인간 복사기로, 사람질 제대로 못해 보고 머저리 사진장이의 삶을 살고 말았을 것이다.’ 산악사진가 안승일(68)씨는 ‘괴짜’로 통한다. 20년 동안 사시사철 백두산에 살다시피 하며 백두산 속살만 수십만 컷을 찍었다. 단순히 카메라 셔터만 누르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나만큼 진하게 백두산의 영혼과 동고동락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할 정도로 백두산에 미쳐 지냈다. 천지를 보는 순간 백두의 신을 만나 넙죽 큰절을 올리면서 단박에 시작된 백두산 인생이었기에 ‘괴짜, 백두산의 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오로지 사진 한 장을 담기 위해 백운봉에서 장군봉으로 솟는 해를 기다리며 영하 50도를 견뎌냈던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아예 천막집을 두 채나 짓고 살았다. 계속되는 눈보라에 밖에 나갈 수도 없었다. 천막집 안에서 김치전과 만두를 빚고 눈 녹인 물로 북어 대가리와 멸치 육수를 만들어 칼국수만 먹다 보니 복부비만에 고지혈증 환자가 됐다. 제대로 된 일출 하나 건지려고 서백두 청석봉에서는 눈구덩이를 파고 지낸 일이 수백 번은 된다. 그러나 아무리 추워도 한 컷 한 컷에 대한 기대감으로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즐겁게 지냈다. 백두산 하늘 아래 첫 동네인 이도백하에 조그마한 아파트를 하나 사서 작업실을 꾸렸다. 백두산을 마주 보는 식탁에서 밥을 먹고 뒹굴뒹굴 책이나 보다가 미풍을 타고 살살 들어오는 구름이 산과 어울리는 낌새가 보이면 후다닥 집 근처 오름으로 달려갔다. 운 좋은 날이면 창밖으로 펼쳐진 웅장한 장백산맥의 새벽을 담았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또 찍으며 살았다. 최근 안씨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불멸 또는 황홀’이라는 제목으로 백두산의 20년 사진전을 열어 ‘역시 괴짜 안승일’이라는 낙관을 또 한번 찍었다. 백두산에서 지낸 세월이 궁금해 지난 18일 서울 충무로의 한 인쇄소 사무실에서 안씨를 만났다. 그는 이곳에서 ‘아직도 갈 수 없는 산’과 ‘우리 동네 꽃 동네’라는 두 권의 사진집을 최근에 찍어냈다. 백두산 20년의 흔적이 담긴 것들이다. 사진집을 들추던 그에게 어떻게 해서 백두산과 인연을 맺었는지 먼저 물었다. “1994년 4월이었지요.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산악인 글쟁이 박인식씨가 백두산에 가자고 하더군요. 그때만 해도 통일이 된 후에나 백두산에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4, 5년 뒤면 통일이 될 줄 알았지요. 인천항에서 박씨를 만났는데 다른 일행 열댓 명과 같이 왔습니다. 이들은 중국 여러 곳의 여행코스 중 백두산에 들르는 일정을 잡고 있었지요. 하지만 저는 백두산 코스에서 숙명처럼 혼자 남게 되면서 20년 동안 그곳에 파묻히게 됐습니다. 필름 현상을 위해 한국에 와야 할 때 말고는 줄곧 백두산에서 지냈지요.” 처음에는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산과 완벽하게 하나가 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든 쉽지가 않았다. 기상이변이 워낙 심해 ‘진경의 순간’을 놓치기 일쑤였다. 눈 덮인 산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찾는 것처럼 마땅한 터를 잡고 앉아 꼼짝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다 보면 가끔 중국 병사와 맞닥뜨려 ‘수상한 자’로 내몰리기도 했다. “하루는 중무장한 중국 군인 셋이 제 방에 들어와 조사할 것이 있다고 하더군요. 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하자 그렇다면 얼른 찍고 갈 것이지 왜 오랫동안 살고 있느냐, 국경 부근에 어슬렁거리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냐, 카메라와 렌즈들은 무슨 용도에 쓰이는 것이냐고 다그쳤습니다. 결국 저의 진심을 알게 되면서 나중에는 친한 사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백두산에서 1년을 지낸 뒤 ‘백두산’이라는 사진집을 냈다. 장기체류하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찍은 생생한 장면들이 모였다. 백두산이라는 하나의 피사체에 4m에서 16m에 이르기까지 마치 백두산에 들어와 있는 착각을 일으킬 만한 사진들이었다. 이어 안씨는 북한 쪽에서 백두산을 찍은 일본 사진작가 이와하시의 사진 ‘장백산’과 자신의 사진 ‘백두산’을 합해 서울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이때 ‘백두산’ 사진집 표지 안쪽 날개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눈길을 끌었었다. ‘정일이 형님, 백두산 금강산 사진이 필요하시면 일본 사람 부르지 마시고 내가 좀 찍게 해주시오. 나는 평생 산 사진을 찍어온 사람이오. 사진은 재주나 기술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혼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민족의 피가 흘러야 합니다. 내 조국 산하를 왜 일인들에게 빼앗겨야 합니까.’ 2001년 6월 평양 인민대학습당에서 남북공동사진전이 열릴 때에도 난생처음 넥타이를 매고 ‘정일이 형님’을 향해 이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는 백두산 사진작업을 통일을 위한 민족화합에 초점을 맞추면서 시작했다. 그래서 백두산 사진은 대부분 ‘남과 북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혹자는 감상적 통일론자라고 할지 모르지만 백두산에 있다 보니 참으로 이상한 산이라는 걸 느끼게 됐다”면서 “애국자도 아닌 사람에게 나라를 걱정하게 하고 국가관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에게 민족의 앞날을 생각하게 한다”고 말한다. 1998년 부산에서 열린 북한의 사진가 김용남의 사진과 함께 2인전을 통해서도 이 같은 ‘백두산의 혼’을 알리기도 했다. 산과의 인연은 어떻게 해서 맺게 됐을까. 어릴 적부터 시끄러운 세상살이가 싫어 자꾸 산으로 갔다. 중학교 때였다. 그해 처음 뜨는 해를 본다고 삼각산으로 갔다.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지리산이나 설악산의 텐트 속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심취했다. 나중에 한적한 시골에서 살 생각에 건국대 원예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공부는 뒷전이고 시간만 나면 산으로 가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2학년 때 대학을 중퇴한 그는 사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서라벌예술대 사진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나이 많은 자신한테 반말로 하대하는 후배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 꼴사나웠다. 다시 등산 장비를 챙기고 산으로 올라갔다. 간첩으로 오인받아 여러 차례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이럴 무렵 서라벌예대 산악회 선배들한테 결혼 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1968년 당시에는 신랑 신부가 결혼 예복을 입고 경복궁이나 덕수궁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붐이 일기 시작했고, 그런 분위기에 따라 결혼하는 선배들이 그를 불렀던 것이다. 나중에는 결혼하는 친구들도 그를 찾았다. 이래저래 돈이 모였다. 1979년 충무로에 스튜디오를 내고 광고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달동네에서 어렵게 사는 아버지한테 500만원을 건네면서 집을 늘려 구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히려 아들에게 사진집을 만들 것을 권유하면서 사진가로 대성하기를 바랐다. 이렇게 해서 1982년 첫 사진집 ‘산’을 시작으로 ‘삼각산’ ‘한라산’ 등이 연이어 나왔다. 도봉산 인근에 작업실을 위한 땅을 장만할 만큼 돈을 모았다. 충무로 생활 10년쯤 지날 무렵 그는 백두산에 ‘필’이 꽂히면서 모든 것을 접고 백두산으로 훌쩍 떠나게 된다. 벌어놓은 돈까지 몽땅 백두산 사진에 투입했다. “경제적으로는 다시 어려워졌지만 제게는 영원한 스승이자 연인과 같은 백두산이 곁에 남아 있습니다. 항상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또한 지금 와서 효자 노릇까지 하고 있습니다. 백두산 사진을 달라는 사람이 있어서 (사진을)크게 인화해주곤 합니다. 살림에 보탬이 되고 있거든요(웃음).” 백두산 사진은 몇 장 정도 가지고 있을까. 웃으면서 “그런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8을 옆으로 누이면 무한대를 나타내는 수학기호가 된다. 그만큼 정말 지독하게 찍었다”면서 “하지만 고르고 골라 엄선해서 내놓을 만한 사진은 100여장이다. 찍은 사진 컷 수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과연 몇 장의 사진을 건지느냐가 중요하다. 그나마 20년 동안 운 좋게도 100장 정도 건졌다고 생각한다”며 웃는다. 다시 물었다. 백두산은 그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할까. “저는 2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추석을 백두산에서 보냈습니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이 함께 손에 손을 잡고 가야 할 산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속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산입니다. 제가 사진을 찍는 작업이 민족화합의 그날을 한시라도 앞당길 수 있다면, 저의 사진으로 우리 민족의 문화통일이라도 한 발 앞당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는 이제 16세 때 맨 처음 카메라 매고 올랐던 삼각산부터 다시 오를 예정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산악사진 인생 2막을 뚜벅뚜벅 걸어가기로 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안승일은 194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6세 때부터 카메라를 매고 산에 올랐다. 서라벌예술대 사진과를 중퇴했다. 1979년 서울 충무로에 그린스튜디오를 설립해 광고사진을 찍었다. 1994년부터 20년 동안 백두산 사진에만 몰두했다. 주요 사진전으로는 ‘한국의 산’(1970·1975년), ‘백두산-일본 사진가 이와하시와 2인전’(1996년), ‘백두산-북한 사진가 김용남과 2인전’(1998년), ‘남북공동사진전-평양’(2001·2004년), ‘산의 영과 기-서예가 권창륜과 2인전’(2011년), ‘백두산 사진전-불멸 또는 황홀’(2014년) 등이 있다. 또한 사진집으로는 ‘산’(1982년), ‘삼각산’(1990년), ‘한라산’(1993년), ‘백두산’(1995년), ‘굴피집’(1997년), ‘아리랑’(1999년), ‘고산화원’(2007년), ‘천상지천하화’(2010년), ‘백산백화’(2013년), ‘아직도 갈 수 없는 산’(2014년), ‘우리 동네 꽃 동네’(2014년) 등 10여권을 발간했다.
  • 밀라 쿠니스, 애쉬튼 커처 아이 임신…결혼도 아직 안했는데 벌써?

    밀라 쿠니스, 애쉬튼 커처 아이 임신…결혼도 아직 안했는데 벌써?

    할리우드의 톱스타 커플인 애쉬튼 커처(36)와 밀라 쿠니스(30)가 임신 소식을 알렸다. 미국 연예매체 E!온라인은 23일(현지시간) 한달 전 약혼식을 올린 커처와 쿠니스가 첫 아이를 임신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의 측근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쿠니스가 올해 말 첫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라면서 “임신 초기를 맞은 커처와 쿠니스 모두 정말 행복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측근은 ‘쌍둥이 임신설’과 ‘결혼 임박설’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는 “임신했다고 결혼을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혓다. 밀라 쿠니스와 애쉬튼 커처는 지난 1998년 TV 시리즈에 함께 출연하며 알게 된 뒤 15년간 친구로 지내온 사이다. 밀라 쿠니스는 애쉬튼 커처와 연인이 되기 전 ‘나홀로 집에’ 시리즈로 유명한 맥컬리 컬킨과 사귀기도 했다. 밀라 쿠니스는 애쉬튼 커처가 데미 무어(52)와 이혼을 결심한 뒤 연인으로 발전했다. 애쉬튼 커쳐는 지난해 11월 2년 간 끌어온 데미 무어와의 이혼 소송을 마무리했다. 이후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잉꼬 커플로 손꼽히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밀라 쿠니스, 애쉬튼 커처 임신…前 남친 누군가보니 ‘대박’

    밀라 쿠니스, 애쉬튼 커처 임신…前 남친 누군가보니 ‘대박’

    할리우드의 톱스타 커플인 애쉬튼 커처(36)와 밀라 쿠니스(30)가 임신 소식을 알렸다. 미국 연예매체 E!온라인은 23일(현지시간) 한달 전 약혼식을 올린 커처와 쿠니스가 첫 아이를 임신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의 측근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쿠니스가 올해 말 첫 아이를 출산할 예정”이라면서 “임신 초기를 맞은 커처와 쿠니스 모두 정말 행복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측근은 ‘쌍둥이 임신설’과 ‘결혼 임박설’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는 “임신했다고 결혼을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혓다. 밀라 쿠니스와 애쉬튼 커처는 지난 1998년 TV 시리즈에 함께 출연하며 알게 된 뒤 15년간 친구로 지내온 사이다. 밀라 쿠니스는 애쉬튼 커처와 연인이 되기 전 ‘나홀로 집에’ 시리즈로 유명한 맥컬리 컬킨과 사귀기도 했다. 밀라 쿠니스는 애쉬튼 커처가 데미 무어(52)와 이혼을 결심한 뒤 연인으로 발전했다. 애쉬튼 커쳐는 지난해 11월 2년 간 끌어온 데미 무어와의 이혼 소송을 마무리했다. 이후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잉꼬 커플로 손꼽히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BALI-홀로 발리에 갔소이다만

    BALI-홀로 발리에 갔소이다만

    쪽쪽, 틈날 때마다 입맞춤을 하는 허니무너들 틈바구니에 짝 없이 홀로 멀뚱거리는 한 여자. “그래요, 나에요.” 기내식까지 떠먹여 줄 건 뭐냐며 속으로 구시렁거려 봐야 소용없다. 적어도 발리 출장은 연인과 함께 보내 달라 강력히 주장하고 싶지만 같이 갈 남자가 없으니 한숨만. 여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캐리어를 끌고 발리 공항을 빠져나가면서 옹골차게 다짐했다. 까짓, 혼자라도 얼마든 우아하게 여행해 주겠어. 흥! Artistic Ubud 아티스틱 우붓 우붓을 걸었다. 발리 좀 여행해봤다 하는 사람들이 으레 우붓 이야기를 꺼냈더랬다. 그리고 말미에는 어김없이 “네가 정말 좋아할 만한 곳이야.” 염장을 돋웠다. 타인이 보는 내 취향과 우붓, 거기엔 어떤 접점이 있을까 스스로 물음표를 갖고 우붓으로 들어갔다. 우붓은 발리섬 한가운데 열대 나무들이 우거진 숲과 허수아비 반가운 논이 펼쳐지는 마을. 처음엔 그토록 아름다운 섬에서 바다 구경을 할 수 없는 이 작은 마을을 ‘굳이 왜?’라는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19세기 후반 발리에서 꽤 영향력 있었던 한 영주의 지원으로 예술가들이 우붓을 찾기 시작해 자연스레 지금까지 전 세계 예술가들이 이곳 우붓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독특한 예술인 마을의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는 귀동냥을 했지만 글쎄…. 때로는 고요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붓의 중심은 몽키 포레스트Monkey Forest, 200마리 가까이의 원숭이가 사는 숲이다. 발리 사람들은 원숭이를 신성한 존재로 여긴다고 했다. 힌두교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에서 라마를 도와 시타를 구출하고 권선징악의 결말을 이끌며 ‘선’을 상징하게 되었다고. 발리 전통 예술의 하나인 바롱Barong에도 원숭이가 등장한다. 선악이 대결하는 상황에서도 장난스럽고 익살맞은 표정과 몸짓으로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 반얀트리 나무 사이를 자유로이 뛰노는 몽키 포레스트의 원숭이들과 인상이 겹친다. 몽키 포레스트 앞으로 난 길 양쪽으로 공예품, 그림, 패션 아이템, 먹을거리 등 특색 있는 상점들이 빼곡하게 몽키 포레스트 로드를 잇고 그와 나란한 방향으로 하노만 로드가 우붓을 하나로 엮는다. 상점들 대부분이 아주 작은 규모였지만 가게마다 간판이며 상품의 디자인, 색채, 디스플레이 등이 무척 다채로웠다. 골목 참 예쁘다 싶어 따라 들어가면 1~2만원에 발리식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아늑한 분위기의 스파도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몇몇 골목을 기웃거리다 욕심이 생겨났다. 급한 마음에 택시를 타고 몽키 포레스트의 반대편, 우붓 맨 끄트머리로 향했다. 택시는 ‘아르마ARMA’ 앞에 섰다. ‘아궁라이 아트 뮤지엄Agug Rai Museum of Art’. 인도네시아의 특색을 담은 작품을 수집하는 유명 컬렉터 아궁라이가 수집한 미술품들을 한데 모아 전시하고 있어 그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입소문이 나 있다. 양쪽으로 커다란 나무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가면 전통 사원을 연상케 하는 공연장이 나타나고 그 무대 너머에 잘 가꾼 조각공원을 사이에 두고 발리와 인도네시아 회화를 중심으로 한 전통관과 조각, 설치 등 보다 다양한 장르를 접할 수 있는 현대관이 있다. 전통 복식을 한 중년의 남성이 다가와 전시실로 인도한다. 높은 천장, 바깥의 녹음을 병풍처럼 두른 너른 창문,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작품들이 영화 속에서 보았던 어느 귀족의 대저택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간간히 그 남자의 나직한 도움말이 이어졌고 나는 적당히 대꾸를 했다. 순수예술에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낯선 여행지의 문화를 단숨에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기에 빠르게 그 분위기를 흡입할 뿐이다. 느낌 아니까. 우붓에서의 마지막은 인도네시아의 1%, 발리 사람들의 일상 조금 더 가까이로 고개를 돌렸다. 이슬람교 국가 인도네시아에서 단 1% 발리 사람들은 힌두교를 따른다. 발리 사람들은 그 1%의 문화에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집집마다 가족사원을 두고 매일 꽃과 음식을 가지런히 담은 야자나무 접시 차낭canang을 만들어 재물로 바친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씩 정성들여 기도한다. 또한 마을마다 힌두교의 주요 신을 모신 세 개의 마을사원을 두어 신을 기쁘게 하는 춤, 음악, 회화 등의 활동을 통해 발리만의 공동체 문화를 지켜 가고 있다. 가족사원과 마을사원은 그 구성원이자 기도하는 사람만이 출입할 수 있는 금기의 구역. 여행자들이 힌두문화를 접할 수 있는 사원은 공용사원뿐이다. 우붓 왕족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우붓 왕궁Ubud Kingdom은 엄연히 가족사원이지만 일반에 개방하여 우붓 왕가의 문화를 선보이고 있었다. 짧은 바지를 입었다면 입구에서 허리춤에 기다란 스카프 형태의 사롱을 둘러 단장을 해준다. 발리 사람들은 사원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머리, 가슴, 다리로 구분한다. 머리는 신이 사는 신성한 세계, 가슴은 사람이 사는 세계, 다리는 귀신이 사는 세계라고. 그에 따라 발리에서는 사람의 머리를 만지는 일은 되도록 삼가고, 적어도 사원에 들어설 때 다리를 드러내는 옷차림은 피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라고. 발리의 명절은 발리 힌두력 사카Caka를 기준으로 매년 조금씩 날짜가 달라지는데 특히 설날 녜삐데이Nyepi day에는 모두가 일손을 멈추고 침묵한다는 말을 들었다. 자연의 빛 외에는 어떤 빛도 허용되지 않는다. 음식을 해먹을 수도 없다. 기도를 통해 자기 성찰을 할 뿐 관공서도 문을 닫는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여행자들을 토해내던 공항도 멈춘다고 했다. 그래, 때로는 고요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아궁라이 아트 뮤지엄ARMA, Agug Rai Museum of Art 주소 Jl. Pengosekan Ubud Gianyar 80571 Bali 찾아가기 몽키 포레스트에서 차로 5~10분 오픈 오전 9시~오후 6시 입장료 5만루피아(카페 아르마 음료 한 잔 포함) 문의 +62-361-976659 www.armabali.com Romantic Jimbaran 로맨틱 짐바란 누군가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훔치다 핫hot 또는 힙hip 하다는 메인스트림을 뒤로한 채 발리에서 나머지 여정을 푼 곳은 짐바란Jimbaran이다. 그중에서도 짐바란 해변 절벽 위의 림바 짐바란 발리는 발리를 찾는 여행객들이 반색하는 풀빌라 타입의 리조트 아야나 리조트 앤 스파 발리Ayana Resort & Spa Bali에서 새로 문을 연 호텔이다. 사실 나는 풀빌라에 익숙하지가 않다. 개인 수영장과 함께 리조트에 머물면서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최고급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다고나 할까. 뭔가 외딴 섬에 뚝 떨어진 느낌이 든다. 몇 번 기회가 있었지만 너르고 너른 풀빌라 안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서성이곤 했다. 나도 안다. 촌스러워서 그렇다는 걸. 어쨌거나 림바는 기존 아야나 리조트의 다양한 편의시설과 프로그램을 즐기면서도 객실은 보다 단출한 호텔 타입으로 여러모로 부담은 줄고 즐길 수 있는 꺼리들은 더욱 많아졌다. ‘스테이 림바, 엔조이 아야나Stay Rimba, Enjoy Ayana’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가장 기대가 된 것은 역시나 록바Rock Bar. 절벽 아래 자연 암석 위에 있는 말 그대로 바위 위의 칵테일 바이다.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을 감상하며 가벼운 타파스와 다양한 칵테일을 즐길 수 있어 1~2시간 줄을 서야 하는 일이 빈번하다. 절벽 위에서 트램을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아야나와 림바 투숙객이라면 언제 가도 우선 입장할 수가 있다. 따라서 굳이 시내의 물 좋은 펍이나 바를 쫓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도착하자마자 록바로 달려가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호텔 로비에서 살짝 멈칫했다.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싶었는데 폐어선 세 척을 해체해 얻은 목재를 재활용하여 호텔 곳곳을 단장했다는 소개가 따라온다. 리조트 단지를 통틀어 천여 명이 넘는 직원 가운데 딱 한 명의 한국인 호텔리어 저스틴Justin의 목소리다. 방 안에 짐을 던지듯 부려놓고 록바로 향하는 길에 운 좋게 그의 에스코트를 받을 수 있었다. “요즘엔 6시에서 6시30분 사이 이곳 선셋이 뭐라 말 할 수 없이 멋지거든요. 록바의 선셋도 물론 좋죠. 그런데 여기 림바 로비에서도 은은한 선셋을 감상할 수가 있어요. 로비의 앞뒤가 벽이나 유리 없이 트여 있죠? 로비 입구에서 노을 지는 반대쪽을 향해 서면 로비가 하나의 액자처럼 보여요. 날 좋은 날 이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선셋은 정말 최곱니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림바에서는 아침이면 일찌감치 눈이 떠졌다. 더불어 하루 일과도 더 일찍 시작됐다. 물속에 들어가면 맥주병이 되어 허우적거리기만 하는데도 수영장에 나가 물장난을 했다. 수영장에서 바라본 림바는 새로웠다. 로비 양쪽으로 객실이 있고 로비 아래로 레스토랑과 층층으로 연결되는 수영장이 이어지는데 맨 아래층의 수영장에서 호텔 로비를 올려다보면 푸른 바다를 향해 닻을 올린 배 모양이다. 림바는 인도네시아어로 숲이란 뜻이라 하니 발리의 푸르른 숲이 짐바란 바다를 향해 돛을 올린 모양새다. 또한 점심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아야나의 프라이빗 해변 쿠부 비치Kubu Beach와 함께 콘셉트가 다른 단지 곳곳의 수영장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다. 발리 출신의 가이드와 함께 현지 시장과 사원을 방문하거나 인도네시아 요리를 배우는 쿠킹 클래스 등 문화탐방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림바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 인도양을 바라보고 있는 바위 위의 스파시설 ‘스파 온더 록스Spa on the Rocks’와 인도양의 해수를 끌어올려 직접적으로 활용하는 아쿠아토닉 해수 테라피 풀은 여행의 노곤함을 한꺼풀 벗겨 준다. 림바에서는 맛집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발리 전통 음식부터 스타 셰프들이 만들어 내는 메뉴까지 다양하게 맛볼 수 있다. 맛도 맛이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발리, 씨푸드 등 다양한 테마의 레스토랑이 각기 스타일에 걸맞는 아름다운 정원 속에 자리하고 있어 맛있게 먹고 슬렁슬렁 정원 산책에 나서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림바 안에서 보내기만도 며칠이 부족할 만큼 충분했지만 떠날 시간은 다가오고 발리를 그냥 흘려 보내기엔 아쉬웠다. 한낮의 뜨거움이 가시기 시작할 무렵 림바 가까이 짐바란 해변으로 나섰다. 모래사장을 가운데 두고 한쪽은 바다, 한쪽은 갖가지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나란히 들어선 해변은 발리의 대표적인 선셋 포인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다로 첨벙첨벙 뛰어드는 사내아이들은 왁자지껄 마냥 신이 났고, 주변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웨딩촬영을 하는 커플은 쑥스러워하면서도 행복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팬티 차림의 꼬마 아이가 슬금슬금 다가가 막 키스를 하려는 커플을 빤히 쳐다본다. 엄마가 급히 아이 손을 잡고 렌즈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그 장면 하나로 그곳에 있던 모두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즐거워했다. 그 사이 나직하게 깔린 수평선 너머로 하루 해가 저문다.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본의 아니게 누군가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훔치며 여전히 무엇이 될지 모를 내 삶의 한 조각을 맞추어 간다. 림바 짐바란 발리rimba Jimbaran Bali 주소 Jalan Karang Mas Sejahtera Jimbaran, Bali 80364 Indonesia 객실 짐바란 베이, 힐 사이드, 짐바란베이 스위트, 풀억세스 등 총 4개 타입 비용 2인 1실 1박 조식 포함 기준, USD220부터 문의 +62-361-8468468 www.rimbajimbaran.com 에디터 손고은 기자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인도네시아 관광청 www.tourismindonesia.com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 www.garuda-indonesia.co.kr 림바 짐바란 발리 www.rimbajimbaran.com ▶travie info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으로 인도네시아 곳곳을 보다 편리하게 인도네시아 국영항공사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을 이용하면 인도네시아 여행이 훨씬 편리해진다. 인천-자카르타, 인천-발리 노선을 에어버스330 최신 기종으로 주 7회 운항하는 것은 물론, 인도네시아 각 지역을 오가는 국내선도 운영하고 있다. 인천에서 매일 아침 출발하여 자카르타에 오후 3시45분, 발리에는 오후 5시에 도착한다. 특히, 세계 항공사 최초로 도입한 기내 입국 서비스 IBOImmigration On Board는 인도네시아 입국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법무부 직원이 기내에서 진행하여 입국심사에 대한 피로감과 시간을 대폭 줄여 준다. 현재 인천-자카르타 구간에서 실시하고 있는데, 조만간 인천-발리 구간에서도 시행될 예정이다. 단, 기내입국서비스는 인천 공항에서 항공권을 발권한 후 도착비자 발권 데스크에서 미화 25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영수증을 수령해야 이용 가능하다. 운항정보┃인천→발리 매일/ 11:05 출발 17:00 도착/ GA 871 발리→인천 매일/ 00:20 출발 08:25 도착/ GA 870 인천→자카르타 매일/ 10:35 출발 15:45 도착/ GA 879 자카르타→인천 매일/ 23:30 출발 08:30(+1일) 도착/ GA 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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