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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과 인공지능의 미래…대결 아닌 공존을 준비할 때

    사람과 인공지능의 미래…대결 아닌 공존을 준비할 때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인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 온 이목이 쏠려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세돌 9단이 이길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으나 2연패 이후 이제는 과연 사람이 인공지능을 상대로 한 번이라도 이길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입니다. 불과 5개월 만에 엄청난 수준으로 성장한 알파고를 보는 시선 역시 호기심에서 이제는 두려움이 섞인 시선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러다가 기계가 인간을 모두 대체하게 되는 것이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것이죠. 심지어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인공지능을 수준을 고려하면 인류에 반기를 드는 스카이넷 같은 이야기는 너무 앞서가는 이야기입니다. 반면 큰 문제 없다는 예상은 신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너무 간과한 주장입니다. 현재의 변화는 더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공 지능 이전에도 분업화, 기계화, 자동화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왔고 이제는 더 복잡한 작업까지 자동화와 기계화가 이뤄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옳을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걱정해야 하는 것은 앞으로 이 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면서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느냐입니다. 러다이트 운동과 네오 러다이트 운동 1811년과 1813년 사이, 영국에서는 러다이트 운동(Luddite)이 발생합니다. 이 운동은 산업혁명 시기 직장을 잃거나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한 수공업자를 중심으로 산업화, 기계화에 저항했던 운동입니다. 대개는 시대착오적인 저항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 그 배경은 더 복잡합니다. 당시 러다이트 운동 (가상의 리더인 러드를 내세웠기 때문에 붙은 명칭)은 1799년 단결금지법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한 노동자 계층이 자신의 요구를 내세우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폴레옹 전쟁 등으로 인해 영국 내 물가가 폭등하고 경제 상태가 어려워지자 발생했던 것입니다. 그때는 정당한 방법으로 불만을 표출하기 어려웠으므로 기계를 파괴하고 벽에 대자보를 붙이는 방식으로 항의했던 것이죠. 그러나 이와 같은 항의에도 불구하고 영국 노동 계층의 삶은 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인구가 급증했지만, 농업 생산력은 더 많이 증가해 적은 노동력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고 남는 잉여 노동력이 도시로 몰리면서 당시 기업가들은 저렴한 노동력을 대거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좁은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주거 환경은 더 열악해지고 노동 환경 역시 매우 열악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이런 산업화의 역설을 본 사람들 가운데는 공산주의 같은 극단적인 해결책을 들고나온 사람도 있었고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후자가 맞는 이야기였죠. 세월이 흘러 이제는 새로운 형태의 라다이트 운동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네오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불리는 이 운동은 아직 구체적인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약하면 인공지능과 로봇, 그리고 다양한 자동화 기술이 사람들에게 직장을 빼앗고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최근 열렸던 세계 경제 포럼에서 발표된 '미래의 일자리'에서는 로봇, 인공지능, 3D 프린터 같은 신기술이 2020년까지 510만 개의 직장을 없앨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미래에는 현재 있는 직장 중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반면 일부에서는 이와 같은 주장은 기우이며 결국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면서 문제를 저절로 해결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인간이 단순 노동에서 해방되고 더 창의적인 일을 하게 되리라는 것이죠. 서로 대립적인 주장이지만, 동시에 둘 다 맞으면서 잘못된 의견일 수도 있습니다. 단순한 자동화를 넘어선 인공지능 지금처럼 인공지능이나 로봇, 자율 주행이 화두가 되기 전에도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지는 사례는 무수히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무거운 용접기를 들고 용접을 하던 자동차 생산라인에 지금은 로봇이 대신 투입되어 일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이 힘들고 위험한 작업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현재의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전 역시 같은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최근 인공지능에 대한 거부감이 큰 것일까요? 그것은 단순한 육체노동만 대체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운전처럼 다소 복잡한 업무까지 인공지능이 넘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과거에는 대체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지식 노동 역시 대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자율 주행을 예로 들면 이는 물류 및 운수 사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인공지능이 반드시 인간보다 우월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안전하게 운전만 할 수 있으면 얼마든지 인간 운전자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 트럭이나 택시는 24시간 언제나 달릴 수 있고 인건비 부담이 없으니 최소한 기업으로서는 인간보다 훨씬 매력적인 선택입니다. 과거에는 숙련공만 가능했던 복잡한 노동 역시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들이 대체할 수 있습니다. 리씽크 로보틱스의 소이어와 박스터 로봇은 2만2000 달러에서 2만9000 달러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인간이 할 수 있는 동작을 다양하게 모방할 수 있는 로봇팔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로봇들은 기존의 산업용 로봇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 동작이 가능해 한 자리에서 여러 부품을 조립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딥러닝을 통해 더 효율적인 동작을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연구까지 진행 중입니다. 카네기 멜런 대학의 연구자들은 기계학습을 통해 소이어의 작업 속도를 처음보다 40배 빠르게 진행하는 연구 결과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사람들을 더 걱정하게 만드는 부분은 지식 노동까지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단순 육체노동의 자동화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사람 대신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를 대신해 줄 수 있는 로보어드바이저 같은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사실 이미 주식 등의 매매를 자동으로 하는 시스템 트레이딩은 금융계에 도입되어 있습니다. 인공지능은 아니지만, 스마트 뱅킹이나 인터넷 뱅킹의 등장은 사람의 필요성을 줄이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로봇 기자가 쓰는 기사를 매일 보고 로봇 주치의의 상담을 매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열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교육 역시 내 수준에 알아서 맞춤으로 강의를 해주는 로봇 선생님이 사교육의 필요성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고도로 창의적인 부분은 기계가 대체하기 어려우므로 이런 부분은 한동안 사람의 영역으로 남겠지만, 문제는 이런 일자리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율 주행차 때문에 직장을 잃은 택시 기사가 갑자기 인공지능 관련 프로그래머가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지금부터 공존을 준비할 때 미래는 항상 예측이 매우 어렵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이 대거 개발되는 시기에는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생각하면 지나친 낙관론이나 비관론 모두 경계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응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직업이 더 많이 생겨서 큰 문제 없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지나친 낙관론에 가깝습니다. 농업에서 산업화로 이행하던 초창기, 아직 공장에서 충분한 노동력을 흡수하기도 전에 많은 사람이 도시로 몰리면서 여러 가지 심각한 문제가 생겼던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도 세계화와 기술의 발전이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지만, 앞으로는 더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고도의 자동화가 이뤄진다면 전통적인 공장 노동자는 물론 서비스 산업 분야에서도 임금 상승이 정체되거나 혹은 실업률이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반면 소수의 고소득 지식 인력이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양극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사회적 안정이 흔들리고 경제도 침체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본래는 하지 않던 생각이나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는 열쇠는 역시 교육과 더불어 사회적 준비입니다. 20세기 많은 국가에서 교육을 통해 서비스, 지식 노동 분야에 인력을 공급했습니다. 덕분에 제조업에서 사라지는 일자리를 충분히 극복하고 오히려 더 소득이 높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동시에 복지 제도를 포함한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이전세대보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었죠. 아마도 21세기의 해법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시대의 변화에 맞는 창의적, 자기 주도적 학습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로지 명문대 입시에 모든 것이 달린 우리나라의 현 교육 시스템은 미래에 큰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단기간에 시험 성적을 높이기 위한 단순 암기와 문제풀이의 반복이기 때문이죠. 지금 가장 시급하게 바꿔야 하는 부분입니다. 동시에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취약 계층을 위한 사회적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일부 선진국에서 시도 중인 기초 소득 같은 제도가 새로운 대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공지능과 인간이 대결하기보다 함께 협력해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미래를 구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의료 부분에서 의사의 진단과 치료를 돕는 인공지능 왓슨의 경우 사실 의사를 대체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의사의 진단이나 치료 과정을 더 효과적으로 만들면서 실수를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로봇 기자와 인간 기자가 협력하는 미래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속보나 사실을 나열하는 기사는 로봇 기자에게 맡기고 인간 기자는 로봇이 할 수 없는 심층 취재나 분석을 하는 식의 더 효율적인 업무 분담이 이뤄져야 합니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기억합니다 반성합니다

    기억합니다 반성합니다

    걸림돌/키르스텐 세룹-빌펠트 지음/문봉애 옮김/살림터/248쪽/1만 3000원독일사 산책/닐 맥그리거 지음/김희주 옮김/옥당/684쪽/2만 8000원 ‘유럽 공동체(EU)를 이끌고 있는 강대국’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송두리째 무너진 나라’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한 나치’…. 독일을 말할 때 떠올리는 인상들이다. 그중에서도 나치의 만행과 세계대전의 주범국은 가장 흔한 오명으로 기억된다.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끔찍한 인종 학살 만행을 저질렀던 독일은 어떻게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었을까. 신간 ‘걸림돌’(살림터)과 ‘독일사 산책’(옥당)은 분열과 통합, 창조와 파괴라는 양극을 넘나들었던 나라 독일을 기억과 반성 측면에서 풀어낸 책들로 눈길을 끈다. ‘걸림돌’이 선조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경각심을 일깨우는 ‘걸림돌 프로젝트’를 통해 기억과 반성을 다루고 있다면 ‘독일사 산책’은 문화재를 통해 독일인들의 저변에 흐르는 정신을 부각시킨 독특한 구성이다. 모두 ‘잊지 않겠다’는 기억의 화두에 천착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유대인 학살은 대체로 나치만의 만행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하지만 그 만행 와중에 많은 독일인들은 방관과 침묵, 동조로 일관했다. 그래서 전후 이래로 줄곧 이어졌던 독일의 사죄와 반성은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열렬한 박수를 받는다. 실제로 1970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위령탑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용서를 구했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다하우의 옛 나치 포로수용소 해방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대다수 독일인이 당시 대학살에 눈감았다’고 사죄했다. 그런가 하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희생당한 유대인들의 넋을 기리는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수도 베를린 한복판에 건립해 놓았다. 그런 국가와 정부 차원의 사죄, 반성과 달리 독일에서는 개인과 소규모 집단의 ‘잊지 말자’는 운동결 몸짓들이 번지고 있다. ‘걸림돌’은 행위 예술가 귄터 뎀니히가 1992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감동적인 추모 방식을 소개해 도드라진다. 나치 정권에 희생된 유대인, 집시, 동성애자, 저항 시민, 장애인의 집 앞에 가로, 세로 10㎝ 크기의 황동판을 깔아 나가는 독특한 추모 예식이자 운동이다. 책은 희생자의 이름과 내역을 간략히 적어 깔아 놓은 황동판 속 주인공에 얽힌 사연들을 소설처럼 재구성해 풀어냈다. 유대인과 비유대인 소녀의 감동적인 만남과 이별, 유대인과 독일인 부부의 갈등과 파국, 집도 무덤도 없이 끌려가 집단 학살된 집시들, 반나치 조직에 가담해 비참하게 처형된 반정부 운동가…. 그 희생에 감춰진 독일인들의 방조와 침묵이라는 불편한 진실들이 실감 나게 전해진다. 뎀니히의 황동판 걸림돌 표석은 지난해 말까지 유럽 18개 나라에서 5만 3000개가 깔렸고, 그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유럽인이 점차 늘고 있다. 하지만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과거 청산의 몸짓에도 걸림돌은 적지 않다고 한다. 뮌헨의 유대인 희생자들을 위해 제작된 200개의 걸림돌이 보도에 박히지 못한 채 방치돼 있고 쾰른의 한 변호사는 제 집 앞에 깔린 걸림돌 때문에 집값이 떨어졌다고 소송을 걸었는가 하면 뎀니히는 18년간 이 작업을 하는 동안 세 번이나 살해 협박 전화를 받았다. 걸림돌 프로젝트 반대자들이 100개가량의 걸림돌을 파헤치기도 했단다. 그와 관련해 추천사를 쓴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의 일갈이 예사롭지 않다. “독일 거리의 표석은 불행한 과거사의 화해를 가로막은 걸림돌이 아니라 미래 사회의 평화와 공존을 위한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과 독일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와 일본 사이에 풀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에 비해 ‘독일사 산책’은 전 영국박물관장이 직접 건물과 물건, 인물, 장소를 중심으로 독일과 독일인에 대해 입체적으로 접근한 책으로 주목된다. 책을 읽다 보면 그 박물관장의 지론은 이렇게 요약되는 듯하다. ‘부끄러운 역사조차 분명히 밝히고 단호히 질책하며 미래로 이끄는 자세를 견지했기에 국제사회가 독일을 수용하고 큰 역할을 맡겼다.’ 실제로 저자는 승리의 순간만을 떠올리게 하는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과는 사뭇 다른 형태를 띠는 뮌헨 개선문에 주목한다. 나폴레옹전쟁 당시 프랑스와 연합해 독일의 다른 국가들을 공격한 바이에른 군대에 헌정된 뮌헨 개선문에는 ‘승리에 헌정되고 전쟁으로 파괴돼 평화를 역설하는’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한 차례 파괴된 사실을 알려주면서 독일의 일부가 언제든 적이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사실을 함께 담은 것이다.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달리 ‘불가피하게 합일성을 찾을 수 없었던’ 독일의 역사를 더듬어낸 저자의 메시지는 독일 역사학자 미하엘 슈튀르머의 명언과 포개진다. ‘오랫동안 독일에서 역사의 목적은 그런 일이 절대 재발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우리는 정치 병폐의 당사자이며 공범인가

    우리는 정치 병폐의 당사자이며 공범인가

    정치는 뉴스가 아니라 삶이다/스기타 아쓰시/임경택 옮김/사계절출판사/224쪽/1만 3000원 다시 정치의 계절이다. 총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정치는 중요한 사회적인 화두다. 그러나 투표율은 여전히 낮고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과 경멸의 정서가 팽배해 있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정치의 당사자이며 현재의 정치가 안고 있는 많은 병폐의 공범이기도 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현재 일본 호세이대학 법학부 교수인 저자는 헌법 개정, 원전 재가동 등의 의제에 대해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독단에 맞서 다양한 단체를 만들어 자신의 정치 이론과 사상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해 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결정, 대표, 토론, 권력, 자유, 사회, 한계, 거리라는 총 8개의 키워드로 정치에 관한 상식과 전제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요즘 주권국가의 국민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한다는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모두가 만족하는 결정을 내리기란 불가능에 가깝고 결정 과정도 지난한 싸움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연 강한 리더의 신속한 결정을 바라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대표제가 아무리 잘 기능해도 개인의 입장에서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에 환경이나 생명, 의료, 정체성의 문제 등 정당의 전통적인 대립 구조 안에서 쟁점이 되기 어려운 문제들이야말로 직접 투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력의 문제 역시 무조건 비판하거나 옹호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권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권력도 일정 부분 우리가 요구해서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권력에 대한 저항은 자신에 대한 저항, 자신이 누려 온 생활양식을 바꾸는 일인 셈이다. 그렇지만 사회, 국가, 시장을 분리해 어떤 한 영역을 전면적으로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조롱거리 된 독재자, 두렵지 않다

    조롱거리 된 독재자, 두렵지 않다

    푸틴 부정선거 항의 ‘장난감 인형 시위’ 러 “무생물 시위도 불법”… 웃음거리로 철권통치 맞선 강력한 새 무기는 유머 큰 가치보다 사소한 저항이 파괴력 커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스르자 포포비치 지음/박찬원 옮김/문학동네/304쪽/1만 5000원 #1.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독재에 항거하는 시민 활동가들은 비밀경찰이 삼엄하게 감시하는 사회에서 창의적인 시위를 시도한다. ‘자유’와 ‘이제 그만’이라는 문구를 쓴 수천개의 탁구공을 도시의 경사진 거리와 골목길에 쏟아부었고, 경찰은 탁구공들을 쫓아다니며 체포하는 촌극을 벌인다. 다음 수순으로는 ‘알아사드는 돼지’라는 제목의 반정부 가요를 틀 수 있는 USB 스피커 수백개를 준비해 거리의 악취 나는 쓰레기통에 넣어 도시 전체에 음악이 흐르게 했다. #2. 러시아 시베리아의 바르나울시는 2012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항의 시위를 계속 불허했다. 활동가들은 사람들의 시위 대신 장난감 인형들이 하는 시위를 계획한다. 곰 인형과 액션피겨, 봉제 동물 인형들이 선거 부정을 비판하는 작은 팻말을 들고 시내 한복판에서 시위에 나선다. 러시아 정부는 ‘장난감을 비롯한 무생물 시위도 법률 위반’이라고 위협했지만 세계적으로 조롱거리가 되고 만다. 독재자는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사람들이 공포감에 빠지면 무력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폭력을 동원한 시위는 유혈만 부른 채 실패할 확률이 크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이 있을까. 이 책은 비폭력 저항 중에서도 특히 유머를 결합한 방식을 제시한다. 유머는 독재자가 만든 현실을 기묘하게 비틀며 저항의 새로운 무기가 된다. 독재자의 흉포한 이미지는 우스꽝스러워지고, 항거는 ‘쿨한’ 행동이 된다. ‘웃음 공격은 아무도 막아 내지 못한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웃음과 재미는 두려움을 몰아내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거리로, 광장으로 이끈다. 이 책은 인종 청소로 악명을 떨친 세르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오트포르 운동’을 주도한 스르자 포포비치가 전하는 크고 작은 독재 상황에 맞서는 실전 가이드북이다. 저자는 세르비아에서 매일 머리에 조화를 꽂는 밀로셰비치의 아내를 풍자하기 위해 수십 마리 칠면조 머리에 하얀 꽃을 꽂아 거리에 풀어놓았다. 농담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권력자들은 공권력을 이용해 칠면조를 잡으러 뛰어다니며 독재 권력의 조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시민들 중 누구도 다치거나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공권력은 더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게 됐다. 2000년 밀로셰비치 정권 퇴진을 시작으로, 우크라이나, 튀니지, 몰디브, 이집트, 수단, 이란, 미얀마뿐 아니라 뉴욕의 오큐파이 운동과 홍콩의 우산 시위에 이르기까지 비폭력 행동주의가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저자는 인권이나 자유 같은 커다란 가치를 위한 싸움부터 시작할 게 아니라 뭔가 사소한 것, 적절한 것, 그러면서도 성공적일 수 있는 것, 그것 때문에 죽거나 심한 폭력을 당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직장 생활과 가족 문제, 놓치지 말아야 할 TV 드라마와 반송해야 할 물품들을 신경쓰기에도 하루가 빠듯하다. 게다가 현실 정치는 염증이 날 만큼 진부하고, 불의에 맞서는 싸움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싸움’인 듯하다. 포포비치는 피를 상기시키는 혁명을 유쾌하게 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서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독재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독재 권력은 더 공고해지고 만다는 점을 지적한다. 저자는 크게 꿈꾸고 작게 시작하기, 미래에 대한 비전 갖기, 웃음 등을 비폭력 행동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함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새로운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에 도취되는 것만큼 편한 일은 없다. 그래서 너무 일찍 승리를 선언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승리의 최종적 선언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될 때라는 지적이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열차 충돌서 기적적으로 구사일생한 남자들

    열차 충돌서 기적적으로 구사일생한 남자들

    기적적으로 열차 충돌서 생존한 남성들의 충격적인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11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최근 체코공화국 즐린 주(州) 오트로코비체의 한 기차역에서 철길 무단횡단을 하던 두 남성이 열차 충돌에서 구사일생하는 장면이 담긴 CCTV를 기사와 함께 보도했다. CCTV 속 영상에는 철길을 무단횡단하는 두 남성의 모습이 보인다. 플랫폼으로 열차 한 대가 지나가 멈춰 서자 남성들이 건너편 플랫폼으로 가기 위해 철길을 건너기 시작한다. 앞서 멈춘 기차에 가려 미처 반대방향의 사각지대를 보지 못하고 철로로 들어온 두 남성. 반대방향에서 빠르게 기차가 진입하자 서둘러 철길을 건넌다. 두 남성은 가까스로 열차충돌은 피하지만 고속 질주하는 열차의 공기 저항에 떠밀려 허공에 떠 날아간다. 순간 남성들이 플랫폼 위로 추락하고 그들의 옷가지 일부가 찢겨 흩날리는 모습이 이어진다. CCTV화면에는 피해 남성 중 한 남성이 고통스러워하며 쓰러져 있고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몰려와 남성들의 상태를 살피며 응급구조 신고한다. 한편 해당 남성들은 가벼운 부상만 입었으며 생명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영상= Lievleak.com / AB News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아슬아슬’ 생방송 중인 기자에 돌진한 승용차 ☞ 승용차와 충돌 후 공중으로 붕 뜬 바이커 ‘아찔’
  • 수그러들지 않는 ‘윤상현 파문’…김무성 “요즘 내 마음은 춘래불사춘”

    수그러들지 않는 ‘윤상현 파문’…김무성 “요즘 내 마음은 춘래불사춘”

    새누리당 친박(친박근혜)계 핵심인 윤상현 의원의 ‘욕설·막말 파문’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윤 의원의 통화 녹취록에서 “솎아내라”고 말한 당사자인 김무성 대표가 10일에도 ‘침묵’을 지키는 상황에서 친박계와 비박계는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만 당 지도부는 이번 파문이 20대 총선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당 클린공천위에서 조사하기로 의견을 모으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서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까지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8차례나 모두발언을 생략했다. 당초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과의 공천 기준 갈등으로 인해 시작된 ‘묵언 정치’가 윤 의원의 욕설 막말 파문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윤 의원은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김 대표를 직접 만나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말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윤 의원이 오늘 아침 김 대표의 자택으로 찾아가서 사과했다고 최고위원회에 보고했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김 대표 측은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마주쳤을 뿐”이라며 김 대표가 윤 의원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윤 의원은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가 진행 중인 국회 대표최고위원실을 찾았지만, 김 대표는 윤 의원의 방문 계획을 미리 파악하고 5분 앞서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이에 대해 당내에는 18, 19대 두 차례 공천 탈락의 트라우마가 있는 김 대표가 상당히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얘기와 함께 ‘공천 살생부 파문’으로 약화된 입지를 다시 굳히기 위해 반전 기회를 모색 중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 대표는 이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출판기념회에 참석, 축사를 통해 “요즘 내 마음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이라면서 “당이 국민공천제의 최초 시행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가려는데 여러 가지 방해와 저항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고 말했다. 비박계는 윤 의원의 ‘정계 은퇴’, ‘공천 배제’ 등을 주장하며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전날 윤 의원의 정계 은퇴를 주장했던 홍문표 제1사무부총장은 이날도 “당의 대표를 죽여버린다든지, 솎아낸다든지, 이건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표현”이라면서 윤 의원의 거취 표명을 압박했다. 윤 의원은 “자중자애하고 있다”며 사실상 비박계의 요구를 거부했다. 이번 파문에 대해 청와대와 소통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반면 친박계는 파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친박계 맏형 격인 최경환 의원은 이날 경북 안동에서 열린 경북도 신(新)청사 개청식에서 “취중에 사적인 대화에서 실수로 한 것인데 더이상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친박·비박은 공동 운명체”라면서 “이제 계파를 뛰어넘어 당과 국가를 우선하는 그런 대국적 모습을 보일 때”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윤 의원이 통화한 상대가 공천관리위원인 박종희 제2사무부총장이라는 내용을 담은 ‘찌라시’가 돌아 당은 하루 종일 어수선했다. 박 부총장은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월 27일 통화한 기억이 전혀 없다. 통화한 내용 기억도 없고, 그런 통화한 적도 없다”면서 “누구를 잘라라 하는 것들이 공관위를 모독하는 것”이라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찌라시’에 언급된 새누리당 안상수(인천 서·강화을) 의원도 보도자료를 통해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유포로 선거관리위원회와 검찰에 고발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페트병 분해해주는 ‘착한 박테리아’ 찾았다 (연구)

    페트병 분해해주는 ‘착한 박테리아’ 찾았다 (연구)

    바다 오염의 주범 중 하나인 플라스틱과 유리병 등의 쓰레기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가 전 세계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일본 연구진이 플라스틱을 ‘먹는’ 착한 박테리아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일본 도쿄의 게이오기주쿠대핚교 연구진은 250종류의 페트병 쓰레기와 수 종의 박테리아를 한 공간에 두고 변화를 관찰했다. 이번 실험의 목표는 플라스틱이나 병과 같은 단단한 물질을 먹어치워 분해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박테리아를 찾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페트(PET, 폴리에스테르)는 미생물 작용에 의한 생물분해에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 혹은 땅 속에서 분해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분해를 방해하는 것은 페트에 다량 함유된 생물분해 비활성 성분이며 이 때문에 버려진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썩지 않고 쌓여 있기 마련이다. 게이오기주쿠대학교 연구진이 이번 실험에서 찾은 착한 박테리아는 ‘이데오넬라 사카이넨시스 201-F6’이라는 명칭을 가진 박테리아다. 연구진은 30℃의 공간에 페트의 얇은 막과 이 박테리아를 함께 두고 6주간 지켜본 결과 거의 완벽하게 생물분해 된 페트병 막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박테리아가 가진 ‘ISF6-4831’, ‘ISF6-0224’라는 효소는 물과 만났을 경우 페트병 얇은 막에 침투하며, 흡수한 폴리에스테르를 성장의 주요 요소로 활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를 이끈 쇼수케 요시다 박사는 “페트는 전 세계에서 널리 활용되는 플라스틱 용품 제조 성분이다. 생물분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바다와 육지를 구별하지 않고 가장 골치아픈 쓰레기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이번에 발견한 박테리아는 자신의 주된 에너지와 탄소원으로 페트를 활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이 박테리아가 내뿜는 두 가지 효소는 페트의 성질을 친환경적인 양성 단량체(작은 분자의 단위)로 바꾸면서 생물분해를 가능케 한다”고 덧붙였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결과가 깨끗한 지구로 되돌리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윤상현 파문’ 이후 침묵 지키던 김무성 “요즘 내 마음은 춘래불사춘”

    ‘윤상현 파문’ 이후 침묵 지키던 김무성 “요즘 내 마음은 춘래불사춘”

    ‘살생부 논란’과 ‘윤상현 욕설 파문’ 등으로 계속 침묵을 지키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0일 공식 석상에서 복잡한 심경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김 대표는 이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증언록 ‘소이부답’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축사를 통해 “요즘 제 마음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총선을 앞두고 우리 새누리당이 국민공천제의 최초 시행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가려는데 여러가지 방해와 저항으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 대표는 “꽃샘추위를 심하게 느껴 어디를 가나 마음이 편치 않은데 오늘 모처럼 오고 싶은 자리에 참석해 (이곳으로) 오면서 마음이 푸근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또 자신이 상향식 공천을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과거 김 전 총리도 반대를 극복하고 역사에 업적을 남겼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자신의 처지를 김 전 총리의 과거 행보와 견주었다. 김 대표는 김 전 총리에 대해 “대한민국이 가지 않은 길을 온몸으로 헤쳐나가는 참 용기를 보여줬다”면서 “온갖 난관과 반대를 무릅쓰고 역사에 가장 큰 업적을 남겼다”고 칭송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말 살생부 논란이 불거진 이후 공식석상에서의 발언을 자제해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당신이라면?…폭행 말리는 아버지 vs 신고만 하자는 가족 (영상)

    당신이라면?…폭행 말리는 아버지 vs 신고만 하자는 가족 (영상)

    아내와 딸을 차에 태운 채 도로 위를 천천히 운전하던 당신, 앞서가던 차량의 주인이 차에서 내리더니 행인을 폭행하는 모습을 발견한다.술에 취했는지 전혀 저항의 능력이 없어 보이는 행인은 머리를 강력하게 걷어차인다. 그가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신은 서둘러 그만 두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딸과 아내는 부디 끼어들지 말고 경찰에 조용히 신고만 할 것을 부탁한다.피해자를 보호하려다가는 가족들이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상황,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태국 매체 방콕포스트는 자체 홈페이지에 10일(현지시간) 한 가족이 촬영한 폭력현장 기록 동영상 한 편을 소개한 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문제의 영상은 지난 주 태국의 SNS를 통해 확산돼 현지의 네티즌들 사이에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킨 것으로 전해진다. 영상이 촬영된 장소는 태국 남부 라용 시의 한 도로 위,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이 “동영상으로 촬영해 기록을 남겨라”고 지시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곧 앞서 가던 흰색 BMW 차량에서 건장해 보이는 체격의 남성이 내리더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다른 남성의 머리를 발로 강하게 걷어찬다. 이 모습을 본 아버지는 차를 몰아 당사자들에게 접근해 “그만 둬라”고 여러 차례 크게 소리를 지른다. 뒷좌석에 앉아 영상을 촬영하고 있던 딸은 가해자 남성이 자기 가족들에게까지 해를 가할 것을 우려했는지 “아빠, 제발 끼어들지 마세요”라며 여러 번 애원한다. 아내 역시 “둘이서 알아서 해결하게 둬라”면서 대신 경찰에 신고 전화를 건다. 그러나 가해 남성은 거듭해서 피해자의 머리를 걷어찼고, 그의 안위를 걱정한 촬영자의 아버지는 가족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저항할 힘도 없는 사람을 해치는 짓을 그만둬라”면서 계속 소리를 지른다. 영상 말미를 보면 남성이 가족들까지 해치려 들 수 있다는 딸의 우려는 자칫 현실이 될 뻔했다. 아버지의 지속적 간섭에 불쾌한 기색을 보이던 가해 남성이 가족의 차량으로 접근해 차에서 내리라면서 분노를 드러낸 것. 이에 아내 또한 아까까지의 조심스런 태도를 바꿔 “술 취한 사람을 해치는 것이 옳은 일이냐”며 가해자를 큰 목소리를 비난한다. 그러자 딸은 “엄마, 저 사람 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요”라며 모친을 말린다. 이후 가해자 남성이 현장을 떠나는 모습과 함께 영상은 끝을 맺는다. 영상을 본 네티즌 중 일부는 “딸의 말이 맞다, 기록만 남기고 경찰에 뒷일을 맡기는 편이 낫다”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일부는 “아버지의 행동이야말로 영웅적이다”고 말하는 등 서로 상반된 의견을 펼쳤다. 한편 가족들은 혼란스럽고 불안한 와중에도 사건 장소 및 차량번호 등을 정확하게 경찰에 알리는 침착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해당 사건이 어떻게 종결됐는지는 아직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방콕포스트 웹사이트 캡처(위)/유튜브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더딘 구조조정 ‘고삐’… 3대 악재 풀 사령탑은 안 보인다

    더딘 구조조정 ‘고삐’… 3대 악재 풀 사령탑은 안 보인다

    자본금 잠식·취약 업종 평가 추가… 책임 회피 등 근본 문제는 그대로 “靑 나서든가 금융위에 권한 줘야” 총선에 밀려 기업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는 비판이 일자 정부가 “신용위험 평가 대상을 확대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당국과 은행 간 책임 떠넘기기, 오너와 노조 저항, 정치권 개입 등 근본적인 걸림돌은 그대로다.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할 ‘컨트롤타워’(관제탑)가 필요하다는 주문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금융위원회는 9일 ‘기업 구조조정 진행 상황과 향후 계획’ 브리핑에서 올해부터 신용위험평가 대상을 확대하고 평가 방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영업 활동 현금 흐름, 이자보상배율 등을 따져 평가 대상을 선정했으나 앞으로는 자본금을 완전히 까먹은 기업과 취약 업종 기업 등을 평가 대상에 추가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2015년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금융권 대출·보증 500억원 이상)은 54개로 2010년(65개) 이후 최대 규모다. 3년 내리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부실 기업은 2009년 2698개에서 지난해 3295개로 늘었다. 그런데도 구조조정은 더디기만 하다. 실질적으로 기업 구조조정의 고삐를 쥐고 있는 정부가 정작 채권단에 책임을 떠넘기기 급급해서다. 예정에 없던 이날 브리핑에서도 금융위는 “기업 구조조정은 기업을 잘 아는 채권단이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조조정을 오랫동안 담당한 금융권 인사는 “이론적으로야 정부 말이 맞지만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라고 냉소했다. 그는 “시장 원리로만 구조조정이 단행된 역대 사례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한 뒤 “기업 하나 정리하려면 일자리 감소에 따른 민심 이탈, 지역경제 타격에 따른 정치권 압력, 오너와 노조 저항 등을 모두 극복해야 하는데 민간에 이를 맡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지적했다. 역대 굵직한 구조조정이 ‘청와대 서별관 회의’에서 결정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라는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이 점을 잘 아는 정부가 4월 총선 탓인지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인사는 “(구조조정과 관련해) 임종룡 금융위원장에게 확실하게 힘이 실린 것도, 그렇다고 청와대가 주도적으로 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형국”이라면서 “구조조정 속도를 내려면 사령탑부터 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업의 자금 조달 경로가 다양해진 것도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로 은행에 의존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2금융권 이용과 회사채 발행 등이 늘어나 주채권은행의 입김이 약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부실 기업 퇴출 결정 못지않게 살리는 결정도 매우 중요한데 배임 논란 등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다”면서 “그렇다고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성공했을 경우 (배임 걱정 등을 상쇄할) 인센티브가 확실한 것도 아니다”라고 털어놓았다. 박기홍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기업금융팀장은 “지난해 대형 조선사들이 수조원대 손실을 냈지만 부실을 털어 내려는 자구 노력이 약했다”면서 “인력 감축, 급여 삭감, 사업부 매각 등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라 오너도, 정부도, 채권단도 누구 하나 선뜻 총대를 메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영욱 한국금융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어차피 청와대나 정부가 컨트롤타워를 맡을 수밖에 없다”면서 “채권단 면책증서나 워크아웃 성공 인센티브 등(구조조정을 꼭 하겠다는) 확실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특별기고] 인류와 인공지능, 공조의 길 찾아 나설 때다

    [특별기고] 인류와 인공지능, 공조의 길 찾아 나설 때다

    어제 이세돌 9단과 구글사의 인공지능(AI) 알파고가 벌인 세기의 특별대국에서 알파고가 기선을 제압했다. 모두 다섯 판을 겨루게 되는 만큼 최종 승자와 패자를 예단하긴 어렵겠으나 어제 대국에서 알파고가 보여 준 가공할 수읽기와 치밀한 전략만으로도 많은 세계인이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여러 단계로 변모해 왔다. 수렵·농경시대에 인간이 사용한 것은 기계랄 것도 없는 용구여서 팔다리의 힘을 덜어 주는 보조적 존재에 불과했다. 기계가 인류 사회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공장제 공업이 성장하기 시작한 18세기 중반 산업혁명기에 이르러서다. 육체적 힘을 대체할 수 있는 기계의 등장으로 당시 많은 노동자가 일터를 떠나거나 단순 근로자로 전락하게 됐다. 생존을 위협받게 된 일부 근로자가 러다이트운동(기계파괴운동)과 같은 저항을 시도했지만 도도한 기계문명의 위력을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인류가 창안한 기계가 오히려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는 우려가 싹트게 된 것이 바로 이때부터다. 기계공포증은 앎으로서의 방법인 과학과 삶으로서의 방법인 기술이 합체를 이루게 된 19세기 과학기술혁명을 계기로 배가됐다. 마르크스가 노동에 이어 과학 지식이 자본에 복속돼 버렸다고 갈파한 바와 같이 소위 제2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과학기술혁명으로 육체노동은 물론이요, 많은 정신노동이 존속할 수 있는 일자리도 축소됐지만 그래도 기계는 생각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인간은 여전히 기계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기기 등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한 첨단 정보통신기술이 선도하는 제3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돼 가는 오늘날에는 기계에 대한 인간 우위성의 신화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생각하는 기계가 속출하면서 기계적 사고의 수준이 날로 높아 가는 까닭이다. 컴퓨터의 초창기 명칭은 전자계산기였고, 그다음 명칭은 정보처리기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컴퓨터는 인간이 입력한 정보를 주어진 알고리즘(연산법)에 의해 가공 처리해 출력해 보내는 중앙처리장치(CPU) 중심의 하드웨어였다. 하지만 다양한 기능을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나 앱이 보강되는 지금의 첨단 정보통신기기는 외적 자극이나 상황 변화를 독자적으로 인지·판단·대처할 수 있는 지능성을 높여 가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앞서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일 뿐으로 여겨진다. 이번 대국은 바로 그러한 머리싸움의 시험대인 셈이다. 알파고의 개발자 데미스 허사비스는 대국에 앞서 최근 기량이 크게 향상된 알파고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반면 시합 참관을 위해 방한한 지주회사 알파벳의 에릭 슈밋 회장은 “누가 이겨도 승자는 인류”라는 여유로운 발언을 했다고 한다. 인류 문명을 주관하는 여신이 이미 인공지능 쪽으로 기울고 있으므로 유력한 도전자 알파고가 쫓기는 방어자인 정상급 프로기사를 꺾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1970년대부터 성행했던 정보사회론은 인터넷이 확산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지식사회론으로 이행했으며 근자에는 지능, 감성, 지혜 등으로 논의가 확대돼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얕은 기계적 사고 능력은 인간의 직관이나 통찰을 따를 수 없다는 견해가 풍미하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꾸준한 자기 학습과 실전 체험, 여기에 신경학적 심층연결망을 접합해 인간 못지않은 깊은 사고를 습득하게 되면 안이한 인간우위론은 거둬들여야 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본다. 따라서 누가 이겼느냐는 결과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집단지성의 범역을 인간뿐 아니라 인공지능으로까지 확장해 인간과 사물이 지식 창조에 공조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김문조 고려대 명예교수(사회학)
  • “젠트리피케이션 NO” 인디 뮤지션들의 저항

    “젠트리피케이션 NO” 인디 뮤지션들의 저항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무대를 잃어 가고 있는 인디 뮤지션들이 음악으로 적극적인 문제 제기에 나섰다. 그간 피해 장소에서의 공연이 일반적이었다면 최근에는 특정 공간을 벗어나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를 알리는 대중적인 공연을 열고 음반까지 제작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역 발전에 기여한 세입자나 원주민들이 임대료 상승으로 쫓겨나는 현상을 말한다. ●13일 ‘홍대 앞 공연장 지키기 프로젝트’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장 심각한 지역으로 꼽히는 홍대 앞에서 활동하는 밴드들이 뭉쳐 공연을 갖는다. 오는 13일 오후 6시 롤링홀에서 ‘홍대 앞 공연장 지키기 프로젝트 제1탄’이 열린다. 그간 홍대 앞에서는 씨클라우드, 디디다, 바다비, 롸일락 등 지역을 대표하던 라이브 공간들이 잇달아 문을 닫았거나 문 닫을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같은 현상이 지역 특유의 문화 예술적인 분위기를 없애고 이를 향유하던 소비자도 내밀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체리필터, 슈퍼키드, 갤럭시익스프레스, 킹스턴루디스카, 아름다운밤이 무대에 오른다. 밴드 공연 사이사이에 젠트리피케이션의 민낯을 알리는 영상물이 상영된다. 이번 공연은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에서 주관한다. 이후 뮤지션유니온, 자립음악생산조합, 홍대앞에서시작해서우주로뻗어나갈사회적문화예술(홍우주)협동조합이 바통을 이어받아 후속 공연을 마련할 예정이다. 지난해까지 임대차 분쟁을 직접 겪었던 아름다운밤의 리더 신가람은 “무분별한 자본의 유입으로 임대료가 치솟으며 뮤지션이 설 공간도, 홍대 앞을 찾던 관객도 줄어들고 있다. 결국에는 상권도 쇠락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공연을 기획했다. 특정 공간을 지키자는 게 아니라 더이상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자는 취지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없어져 이러한 공연이 더이상 열리지 않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상징적 공간’ 주제로 한 음반 발매 지난달 말에는 월드스타 싸이와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서울 한남동 문화 카페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주제로 한 음반도 나왔다. ‘테이크아웃드로잉 컴필레이션’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과거 홍대 앞 칼국수집 두리반에 이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상징하는 공간이 된 곳이다. 두리반, 테이크아웃드로잉 등에서 꾸준히 연대 활동을 해 오던 신제현, 김오키, 야마가타트윅스터, 레인보우99 등 인디 뮤지션과 예술가 12팀이 앨범에 참여했다. 카페를 스튜디오 삼아 노래를 녹음하는 등 공간 자체를 사운드로 남겼다는 점이 이채롭다. CD는 500장을 찍었는데 매진 단계다. 9일 음원 서비스도 시작했다.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이 지난 5일에 이어 오는 12일에도 열린다. ●‘서울 젠트리피케이션’ 프로젝트 추진 앨범 완판을 앞두고 CD를 추가 제작하는 대신 2집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앨범 제목은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이다. 프로젝트는 인디 뮤지션들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또 다른 장소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를 만들어 해당 공간에서 녹음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앨범은 2CD·20트랙·CD 3000장 규모로 발매될 예정이다. 최근 경복궁 옆 통인시장에 있는 통영생선구이집에서 레코딩 작업이 이뤄졌다.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도 찾아갈 계획이다. 앨범 제작을 주도한 문화 기획자 황경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를 지키고 싶다는 신호탄”이라면서 “음악가들의 설자리를 앗아가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그리고 강제집행이라는 야만적인 행위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가는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영화 多樂房] ‘헝거’, 자유 향한 투쟁, 그 서슬 퍼런 신념

    [영화 多樂房] ‘헝거’, 자유 향한 투쟁, 그 서슬 퍼런 신념

    ‘신념’, 유구한 역사를 추동해온 이 단어는 아마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한 무기이자 방패일 것이다. 단어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지만 어떤 신념은 때로 타인을 무기력하게 만들 뿐 아니라 공포로 몰아넣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과 사회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신념이라면-비판이나 논쟁은 가능하되-그 누가 더 고결한 잣대로 정죄할 수 있을까. ‘셰임’(2011)과 ‘노예12년’(2013)을 연출한 스티브 매퀸의 강렬한 데뷔작, ‘헝거’는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이 수감 중 감행했던 저항운동을 통해 신념의 본질과 그 논쟁점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킨다. 수감자뿐 아니라 교도관과 신부의 입장까지도 관철시키는 영화의 태도는 이 정치적 사건을 보다 보편적인 주제로 확장시킨다. 현대에도 빈번히 목격되고 있는 ‘정치적 몸’에 대한 이슈들이 영화를 보는 내내 유령처럼 고스란히 머릿속에서 되살아난다. 보비 샌즈(마이클 패스벤더)는 영국으로부터 완전독립을 주장하는 IRA의 주요인물로서, 14년형을 선고받아 메이즈 교도소에 수감된다. 그는 IRA 조직원들의 정치범 대우를 요구하며 불결투쟁에 앞장선다. 샤워를 거부하고 배설물을 벽에 발랐다는 역사책의 서술은 스크린에서 즉물적으로 묘사되어 경악할 만큼 큰 충격을 안긴다. 수용실은 그 어떤 짐승도 살아남기 어려울 만큼 불결한 환경으로 보이지만, IRA 조직원들에게는 몇 문장으로 그들의 신념을 묵살해버리는 대처 수상의 연설이 더 역겹게 다가오는 듯하다. 수년간의 불결투쟁과 1차 단식투쟁은 실패로 끝나지만 IRA 조직원들의 사기는 수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보비 샌즈는 마지막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2차 단식투쟁을 시작하기 전, 보비는 도미니크 신부(리엄 커닝햄)와 독대하게 되는데 이들이 마주 앉은 역광의 투샷은 무려 16분간의 롱테이크로 촬영되었다. 보비와 신부 사이의 논쟁, 상반된 정치철학 및 신념이 응축된 이 장면은 두말할 것 없이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이자 백미다. 이 신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영화는 이전까지 대사를 자제하면서 투쟁과 폭력의 상황을 음향효과 및 분절된 음성들로 처리했다. 저항의 함성, 둔기를 휘두르는 소리, 전술 방패를 두드리는 소리, 무자비한 구타와 비명은 사육제를 방불케 한다. 이곳에서는 신부가 읽어주는 성경 말씀조차도 수감자들의 잡담과 소음에 묻혀 사라진다. 이런 무질서한 사운드 끝에 듣게 되는 보비와 신부의 대화는 비록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음에도 비로소 인간답게 들린다. 지난한 논쟁을 끝낸 후, 영화는 마지막 투쟁의 고요함 속으로 다시 침식한다. 얇은 살가죽이 불거져 나온 뼈를 겨우 덮고 있는 몸으로 보비는 신념의 순결함을 입증한다. 그의 바람처럼 이 사건은 아일랜드 독립 역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그를 국민적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다. 목숨과 자유, 신념에 대한 보비의 대사가 알량한 양심을 오랫동안 괴롭히는 작품이다. 17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 [과학계는 지금]

    과천과학관 9일 부분일식 특별관측회 국립과천과학관(관장 조성찬)은 9일 부분일식 현상을 볼 수 있는 특별관측회를 과학관 천체관측소에서 연다. 이번 부분일식은 서울을 기준으로 9일 오전 10시 10분에 시작돼 오전 11시 19분에 끝난다. 이번 관측회에서는 부분일식 현상은 물론 태양흑점, 태양의 불기둥인 홍염을 전문가 해설과 함께 관측할 수 있다.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과학관 홈페이지(www.sciencecenter.go.kr) 참고. 한의학硏 ‘초음파 뜸 치료기’ 개발 한국한의학연구원(원장 이혜정)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과 함께 초음파를 이용한 ‘스마트 뜸 치료기’를 개발했다고 7일 밝혔다. 뜸 치료는 인체의 경혈 위에 불붙인 쑥으로 열 자극을 줘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질병 저항력을 높이는 전통 한의학 요법이다. 그러나 기존 뜸은 재료나 시술법에 따라 효능 차이가 날 수 있고 화상의 우려나 연기로 인한 불편함 등이 있었다. 이번에 개발된 치료기는 기존의 불편함을 없앤 것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 임상시험 허가를 거친 뒤 2년 내에 상용화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실 유해인자 사전분석제도 시행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양희)는 8일부터 ‘연구실 사전 유해인자 위험분석 실시에 관한 지침’을 시행한다. 교수나 책임연구원 등 연구실 책임자가 연구·개발 활동 시작 전 화학적·물리적 위험 요인을 미리 분석하고 사고 예방을 위해 필요한 대책을 수립, 시행하도록 하는 제도다.
  • 안철수·김한길 야권통합 ‘정면충돌’… 김종인의 ‘흔들기’ 먹히나

    안철수·김한길 야권통합 ‘정면충돌’… 김종인의 ‘흔들기’ 먹히나

    더민주, 김한길 편들며 安 압박 수도권 의원은 安 대표에 힘 실어 연대론도 총선 임박해야 점화될 듯 안철수 공동대표와 김한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공개석상에서 ‘야권통합’을 놓고 날 선 논쟁을 벌이는 등 국민의당이 극심한 ‘내홍’ 국면에 접어들었다. 총선을 불과 37일 남겨 놓았지만 야권통합(혹은 연대) 논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당초 안 대표의 완강한 반대로 통합은 물 건너간 것으로 봤던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국민의당 지도부의 ‘틈새’를 벌리면서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양상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마포 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안 대표를 정조준했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회의에 들어온 김 위원장은 첫 번째 발언자로 나서 “안 대표가 (지난해 11월 더민주 탈당 전 혁신전당대회를 요구하면서 당시 무소속이던 천정배 의원과의 통합을 추진하자며) 말씀하신 대로 통합적 국민저항체제가 꼭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김 위원장은 “교섭단체 이상 의석만 확보하면 여당이 개헌선을 넘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정치를 해선 안 된다”, “나라와 국민과 역사를 생각하는 정치를 해야 된다” 등 안 대표를 겨냥한 날 선 비판을 이어 갔다. 담담한 표정으로 듣던 안 대표는 “통합론은 익숙한 실패의 길”이라며 김 위원장의 주장을 단칼에 잘랐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가장 늦게 회의실에서 나온 뒤 “개헌저지선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맞닥뜨릴 정말 무서운 상황에 대한 위기감이 너무 부족하다”고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천정배 공동대표도 “개헌저지선을 내주면 우리 당이 설령 80~90석을 가져도 나라의 재앙”이라며 동조했다. 안 대표와 김 위원장의 신경전은 오후까지 이어졌다. 김 위원장이 선대본부장단 회의차 당사에 있다는 보고를 받은 안 대표가 예정에 없이 당사로 돌아와 당 대표실에서 4분여 동안 회동했다. 냉랭한 분위기 속에 통합·연대 논의 대신 당무를 상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회동 후 “조정할 건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안 대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견이 있으면 곤란한 노릇”이라고 못박았다. 안 대표 측근 사이에서 “김 위원장이 해당 행위를 했다. 윤리위원회에 제소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로선 통합 거부 당론이 뒤집힐 가능성은 크지 않다. 국민의당 관계자는 “호남 의원들은 (수도권 연대에 대해) 이해관계가 없고 수도권 의원들이 관건인데 모두 안 대표에게 힘을 실어 준 상황이기 때문에 김 위원장으로선 역부족”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의 중대 결심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위원장 측 관계자는 “탈당은 과격한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떠드는 얘기”라면서도 “(행보는) 고민 중”이라고 전했다. 물론 총선이 임박하면 선거 연대론이 재점화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또 다른 국민의당 관계자는 “안 대표가 ‘통합은 안 되지만, 연대는 고려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지역·후보별 연대 논의는 다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더민주는 김 위원장을 편들면서 안 대표를 압박했다. 김종인 대표는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공개 발언을 생략했다. 취임 후 처음이다. 김 대표는 여성·성평등 공약 발표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대단히 반가운 소식”이라면서 “야당의 상황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정치인이라면 통합을 반대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며 반색했다. 아직 ‘통합 카드’가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국민의당 정치혁신특별위원회는 “‘수구진박 및 친노패권·무능86세력’을 심판해야 한다”며 새누리당 한선교, 홍문종, 김을동, 윤상현, 이정현 의원과 더민주 이해찬, 이목희, 정청래, 김경협, 전해철 의원을 지목해 ‘자객공천’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김영환 인재영입위원장은 “더민주를 떨어뜨리기 위한 공천을 해선 안 된다”고 말하는 등 이견을 노출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건강을 부탁해] 흡연자 살던 집, 당뇨병 유발…“제3의 흡연’

    [건강을 부탁해] 흡연자 살던 집, 당뇨병 유발…“제3의 흡연’

    이제 집을 구할 때 전 주인이 흡연자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선택 기준이 돼야 할 것 같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은 이른바 ‘제3의 흡연’이 간과 폐에 해를 주는 것은 물론 ‘제2형 당뇨병’을 유발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흡연과 간접흡연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으나 제3의 흡연은 다소 생소하다. 제3의 흡연은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때 그 유독 잔여물이 집안 가구, 카페트, 장난감 등에 달라붙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경우를 말한다. 특히 제3의 흡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노약자인데 아기들의 경우 잔여물이 달라붙은 물체를 입으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아 더욱 해롭다.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은 제3의 흡연의 유해성을 입증하기 위해 흡연 잔여물이 남아있는 공간에 쥐들을 넣어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기존에 밝혀진대로 간과 폐의 악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상처 치료가 둔화되거나 과잉행동을 보이는 현상도 발생했다. 여기에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인슐린 저항성이 야기돼 제2형 당뇨병을 유발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이 확인됐다. 제2형 당뇨병은 충분한 양의 인슐린이 체내에서 분비되지 않거나 세포가 인슐린에 반응하지 않는 인슐린 저항성으로 인해 발병한다. 국내 당뇨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주로 소아에게 발생하는 제1형과 달리 성인에게 주로 발병한다. 연구를 이끈 마누엘라 마르틴스-그린 교수는 "흡연으로 인한 잔여물은 가구, 커튼 등 집안 곳곳에 남으며 심지어 20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서 "노인들은 장기가 노화되어 있어 이같은 잔여물에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로 입주하는 집의 전주인이 흡연자였다면 가구, 가정용품, 페인트, 배관, 환기시설 모두에 잔여물이 남아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제3의 흡연에 대한 유해성 연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4년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담배 연기에 노출된 가구 등이 직접흡연 만큼의 니코틴을 방출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돼지국밥과 육개장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돼지국밥과 육개장

    이젠 외국인들도 곰탕, 설렁탕, 삼계탕 등 우리 고유의 뜨끈한 탕반(장국밥) 문화에 매력을 느끼고 제법 즐긴다. 하지만 아직은 눈치를 보며 손사래를 치는 게 돼지국밥과 육개장이다. 돼지국밥의 약간 비릿한 냄새, 육개장의 얼얼한 매운맛이 낯설 것이다. 돼지국밥은 돼지 뼈와 머릿고기 등으로 곤 육수에 내장 등 잡육을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이며 밥을 토렴해 먹는다. 토렴이란 밥을 담은 그릇에 국물을 부었다 빼는 것을 반복하면서 탱글한 밥알에 국물이 배도록 하는 조리법이다. 국밥에는 삶은 잡육을 삼베 보자기에 싸서 누른 뒤 가지런히 썬 제육편육을 넣기도 한다. 여기에 새우젓, 부추, 양파 등을 곁들인다. 본래 순대를 넣으면 순대국밥이라고도 하지만 순대는 만들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부산 등 경남 지역에선 머릿고기와 오소리감투라는 별칭을 지닌 위장, 허파, 염통, 간, 곱창 등을 넣는다. 이를 또는 내장국밥이라고도 한다. 육개장은 본래 개고기와 대파, 고춧가루 등으로 땀을 흠뻑 내면서 즐기던 보양식이었다. 개고기는 식용을 하는 데 호불호가 갈리니까 조선 후기 궁중 등에서 소고기의 양지머리로 대체됐다. 마늘, 숙주, 부추, 고사리 등 약성이 강한 채소에 고춧가루와 고추장, 고추기름을 넣고 팔팔 끓인다. 오래전부터 한반도 북부와 만주에서 주로 사육되던 돼지가 갑자기 남쪽인 부산에 나타나 돼지국밥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더 아래로 내려가 제주나 오키나와에 돼지가 등장했던 사연은 무엇일까. 우선 6·25전쟁 직후 부산엔 함경도에서 배를 타고 남하한 피란민이 많았다. 돼지국밥이나 순대는 그들의 고유 음식이다. 부산에 밀집된 미군 부대에서 돼지고기의 안심, 등심 등 질 좋은 살코기를 제외한 뼈나 잡육이 쏟아져 나왔고, 이를 실향민들이 고향의 맛으로 재현했다. 1960~70년대엔 경제 부흥기를 맞은 일본에서 돼지고기의 등심과 안심으로 만드는 돈가스가 유행한 덕분에 김해 등지에 수출용 축산단지가 조성되기도 했다. 제주 북부의 삼성혈에는 선사 시대에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라는 3명의 신이 땅에서 솟구쳐 탐라왕국을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을나’는 고구려의 고위 직함이다. 고씨는 고구려 왕족이고, 양씨는 양만춘 장군처럼 중국 요동 지방의 군벌 세력이다. 또 부씨는 평양의 지방 토호 세력이다. 고구려 역사에서 서로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이던 3개 집안의 어떤 이와 그 식솔이 제주에 느닷없이 등장한 것은 본국의 변란을 피해 망명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발해만에서 배를 타고 남하하면 제주 북부에 닿는다. 이때 고향에서 즐기던 돼지고기가 함께 전해졌을 것이다. 오키나와의 돼지 불고기는 제주 등에 머물다가 추격을 피해 탈출한 몽골 저항군 삼별초의 후손들에 의해 개발됐을 가능성이 있다. 소고기는 남하한 돼지고기와 달리 벼농사가 발달한 아시아 남방에서 북상했다. 조선 시대에 한양에선 소고기를 먹었으나, 평양 등에선 돼지고기를 즐겼다. 일제강점기 때 경북·대구에는 소 사육장이 많았다. 골목의 허름한 가게에서 손마디가 굽은 주인 할머니가 말없이 국자로 퍼주는 돼지국밥이나 육개장이 언젠가는 그 시대 주인공들의 입맛에 맞게 바뀌겠지만, 음식 문명의 뿌리는 꼭 흔적을 남긴다. kkwoon@seoul.co.kr
  • [씨줄날줄] 사라지는 대학신문/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사라지는 대학신문/최광숙 논설위원

    고교 때부터 학보로 불리는 대학신문 애독자였다. 군대 갔다가 복학한 오빠가 학보를 보내 준 덕분이다. 갈래머리 여고생 눈에는 신문 기사보다는 석탑의 학교 건물과 캠퍼스에 더 눈길이 가면서 미래의 대학 생활을 동경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대학에 들어가서 꼼꼼히 읽게 된 학보에는 젊은이들의 꿈과 낭만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아카데믹한 진리의 향연도 있었고, 사회를 향한 비판과 고뇌도 담겨 있었다. 1970~1980년대는 특히 학생들이 독재 권력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대학신문과 정부 당국 간의 충돌이 심했던 시기다. 5공 시절 고려대의 ‘고대신문’(1947년 창간)만 하더라도 시험 인쇄본이 나오는 월요일 아침이면 학생회관 2층에서 기관원들의 검열을 받아야 했다. 어떤 경우는 배포 금지되기도 했다. 그 후 당국의 외압 대신 원고의 사전 검토를 주장하는 주간 교수와 학생 기자 사이에 편집 자율권을 두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렇듯 학보는 단순히 학생들만의 신문이 아니었다. 부조리한 정치권력과 횡포를 단호히 거부하고자 하는 날 선 시대정신을 담아 냈기 때문이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1960년도 ‘고대신문’의 사설을 보면 졸업생에게는 ‘낡은 사회에 신선한 피를 수혈하라’고, 신입생들에게는 ‘우리는 행동성이 결여된 기형적 지식인을 거부한다’고 썼다. 지금도 가슴을 뛰게 하는 사설이지 않은가. 이런 대학신문들이 3·15 부정선거 이후 학생들의 저항의식에 불을 댕겨 4·19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토양이 됐던 것은 당연하다. 연세대의 ‘연세춘추’는 1935년 ‘연전타임스’라는 이름으로 창간됐다. 일제의 탄압이 극심하던 시절인데도 학생 기자들이 한글 신문을 고집하는 결기를 보였다고 한다. 그후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발행이 중단됐다가 6·25전쟁 중인 1953년 재발행됐다. 전쟁통 임시 수도인 부산에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윤동주 시인 특집호를 기획해 민족의 자긍심 고취에 나서기도 했다. 학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12년 미국의 선교사가 운영한 평양 숭실학교에서 ‘숭대시보’를 창간하면서다. 광복 후 1946년 지금의 서울대인 경성대학에서 ‘경성대학예과신문’(훗날 대학신문으로 재창간)을 필두로 본격적으로 대학신문들이 발행되면서 지금은 학보를 내지 않는 대학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최근 대학생 10명 중 3~4명은 학보를 읽어 본 적이 없을 정도로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고 한다. ‘재미없어서’ ‘바빠서’ 등이 이유란다. 그러다 보니 학교 측도 예산 등을 핑계로 학보를 폐간하거나 온라인 발행으로 바꾸려고 한단다. 취업난, 인터넷 매체의 등장 등을 고려하면 대학신문의 미래가 결코 밝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역사의 산증인이기에 대학신문의 위기가 더 안타깝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흡연자 살던 집’ 당뇨병도 유발…‘제3의 흡연’ 아시나요?

    ‘흡연자 살던 집’ 당뇨병도 유발…‘제3의 흡연’ 아시나요?

    이제 집을 구할 때 전 주인이 흡연자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선택 기준이 돼야 할 것 같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은 이른바 ‘제3의 흡연’이 간과 폐에 해를 주는 것은 물론 ‘제2형 당뇨병’을 유발할 가능성을 높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흡연과 간접흡연의 유해성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으나 제3의 흡연은 다소 생소하다. 제3의 흡연은 실내에서 담배를 피울 때 그 유독 잔여물이 집안 가구, 카페트, 장난감 등에 달라붙어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경우를 말한다. 특히 제3의 흡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노약자인데 아기들의 경우 잔여물이 달라붙은 물체를 입으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아 더욱 해롭다.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은 제3의 흡연의 유해성을 입증하기 위해 흡연 잔여물이 남아있는 공간에 쥐들을 넣어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기존에 밝혀진대로 간과 폐의 악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상처 치료가 둔화되거나 과잉행동을 보이는 현상도 발생했다. 여기에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인슐린 저항성이 야기돼 제2형 당뇨병을 유발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것이 확인됐다. 제2형 당뇨병은 충분한 양의 인슐린이 체내에서 분비되지 않거나 세포가 인슐린에 반응하지 않는 인슐린 저항성으로 인해 발병한다. 국내 당뇨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주로 소아에게 발생하는 제1형과 달리 성인에게 주로 발병한다. 연구를 이끈 마누엘라 마르틴스-그린 교수는 "흡연으로 인한 잔여물은 가구, 커튼 등 집안 곳곳에 남으며 심지어 20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면서 "노인들은 장기가 노화되어 있어 이같은 잔여물에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로 입주하는 집의 전주인이 흡연자였다면 가구, 가정용품, 페인트, 배관, 환기시설 모두에 잔여물이 남아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제3의 흡연에 대한 유해성 연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4년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담배 연기에 노출된 가구 등이 직접흡연 만큼의 니코틴을 방출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상하이 윤봉길기념관에 한글 간판

    상하이 윤봉길기념관에 한글 간판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배우 조재현씨가 1일 기증한 ‘윤봉길기념관’ 한글 간판이 중국 상하이 루쉰공원(구 훙커우공원)의 기념관 정문에 설치돼 있다. 가로 60㎝, 세로 150㎝ 크기의 간판에는 ‘윤봉길 의사 생애 사적 전시관’이라는 글씨가 한글과 한자로 새겨져 있다. 서씨는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 유적지에 한글로 된 간판이 거의 없어 간판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윤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훙커우공원(현 루쉰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축하 기념식장에 폭탄을 던져 일제에 대한 민족의 저항 정신을 보여 줬다. 서경덕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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