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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벨라루스 홀로코스트의 비극, 나치에 당하고 소련에 또 당하고

    벨라루스 홀로코스트의 비극, 나치에 당하고 소련에 또 당하고

    홀로코스트가 막을 내린 지 칠십여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벨라루스 브레스트의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는 1000여구의 유대인 주검을 발굴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새 아파트의 터를 다지던 인부가 사람뼈가 나오자 놀라 당국에 신고했고, 젊은 군인들이 조심스럽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영국 BBC가 지난 31일(현지시간) 전했다. 군인 팀을 이끌던 드미트리 카민스키는 “두개골에 총탄 자국이 선명하다”고 말했다. 그 팀은 원래 옛 소비에트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해왔는데 이곳에서는 아기를 보듬어 안은 여인, 십대 아이들의 작은 두개골 등 완전히 다른 유해들을 수습하고 있다. 희생자들은 바닥에 엎어진 채로 머리 뒤쪽에 총탄을 맞았고, 나치가 참호를 파 사람들이 총에 맞아 쓰러지면 그 위에 포개듯 사람들에게 다시 총격을 가하는 식으로 처형이 진행됐다. 1차 세계대전 전에 브레스트 인구 5만명의 얼추 절반이 유대인이었다. 나치가 1941년 6월 침공하자 5000명에 이르는 남성들이 즉각 처형됐다. 남은 이들은 철조망을 두른 담장으로 에워싸인 게토에 수용됐다. 이듬해 10월 이들을 모두 없애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게토 안의 유대인들이 기차로 끌려간 곳은 100㎞ 떨어진 브론나야 고라 숲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유해가 발견된 이들은 처음에 숨는 데 성공했다가 나중에 발각돼 처형된 이들이 함께 묻힌 게토 안의 구역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 현장을 지켜보던 미하일 카플란은 “우리 부모님이 돌아왔을 때 시내는 절반이 텅 비어 있었다”며 어린 시절 식탁 주변에 둘러선 고모들과 삼촌들, 조카들의 흑백사진을 보여줬다. 모두 나치에 학살된 친척들이었다.전쟁이 끝난 뒤에도 누구도 유대인 학살을 추모하지 않았다. 그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가 알았지만 누구도 공식적으로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독일이 우리를 의도적으로 망가뜨렸지만 소비에트는 그저 침묵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브레스트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지하 방 한 칸에 전쟁이 끝난 뒤 정착한 유대인 공동체가 꾸며놓은 것 밖에 없다. 전시된 것들은 마룻바닥이나 담 뒤에 숨어 기적처럼 살아남은 유대인 몇몇에 대한 얘기뿐이다. 1942년 10월 15일 독일은 1만 7893명의 유대인이 브레스트에 거주한다고 기록했는데 다음날 이 숫자는 지워졌다. 유대 공동체 지도자인 에핌 바신은 “게토가 언제 말살됐는지 우리가 알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많은 유해를 발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했다. “우리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적은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유대인 처형이 시내 어느 곳에서나 이뤄졌기 때문이다. 에핌은 몇년 동안 문서 보관소들을 뒤졌다. 증인들의 증언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운명은 벨라루스 전체가 맞은 총체적 재난에 섞여 들어갔다. 에핌은 “관리들은 잊지 말자는 주문만 되뇌이지만 유대인 대목은 씻겨나갔다”며 전쟁에 대한 기억은 소련 인민에게만 맞춰지고, 반유대 주의와 “한 나라”를 강조하는 소비에트 정권을 결속하는 데만 중점을 뒀다. “그러나 그건 매우 공격적이었다. 유대인들은 나치에 저항한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게 아니다. 그저 유대인이란 이유로 죽어나갔다.” 유대인 시나고그 위에 극장을 세운 것이 대표적이다. 유대인 공동묘지는 나치가 파괴하고, 다음에는 소련 군대가 파괴했다. 그 위에는 스포츠 경기장을 지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패놉티콘’(원형 감옥)으로 묘사되는 중국 사회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패놉티콘’(원형 감옥)으로 묘사되는 중국 사회

    중국에서 ‘라오라이’(老賴)가 생활하기에는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한번 라오라이로 낙인찍히면 항공기·고속철도 등 대중교통 이용은 원천봉쇄되고 호텔 숙박, 해외 여행, 자녀 학교 입학 등 사회 광범위한 부문에서 엄격한 제한을 받는 까닭이다. 라오라이는 돈을 갚을 능력이 있지만 갚지 않는 사람들, 곧 악성 채무자들을 뜻하는 말이다.지난 2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국민들의 일상 생활을 토대로 신용 점수를 매겨, 점수가 낮으면 신용불량 블랙리스트에 올리고 있다. 중국 최고인민법원의 신용불량 블랙리스트에 올라 갖가지 제재를 받는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1300여만 명에 이른다. 이들이 지난해까지 항공기 탑승이 금지된 사례는 1700만 건, 고속철도 탑승이 금지된 사례는 540만 건으로 각각 집계됐다. 중국 국무원이 2013년 ‘신용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인민은행·법원 등의 신용기록을 바탕으로 2020년까지 전 국민과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점수화하는 ‘사회적 신용체계 시스템’을 전면 도입하겠다고 밝힌데 따른 것이다. 사회적 신용체계 시스템은 정무·상무·사회·사법 4대 영역에서의 신용을 높이는 방안을 담고 있다. 공무원·금융·세무·의약·사회보장·노동·지식재산권 등 각론에서 다룬 내용은 국가개조 운동의 지침서를 연상시킨다. 베이징 외교가의 소식통은 “신용은 시장경제의 핵심 인프라”라며 “중국인 DNA에 결여된 신용에 대한 관념을 새롭게 구축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마감 시한을 1년여를 앞두고 신용사회 건설 운동의 추진 속도는 빨라지고 있다. 47개 정부 기관이 참가하는 부처 연석회의 시스템을 완비했으며 지역·부처 별로 나뉘었던 사회 신용코드를 18자리로 통일했다. 국민과 기업에 관한 신용정보를 18자리 숫자로 만들어 통합 관리 중이라는 뜻이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신용 중국’(www.creditchina.gov.cn)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앞서 지난해 8월 일반인 9억 6000만 명과 기업 2531만 개를 신용정보시스템에 수록했다고 구체적 수치를 발표한 바 있다. 신용점수는 사회 생활뿐만 아니라 사회관계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도 반영해 매겨진다. 예컨대 SNS에 정부 관련 악성 댓글을 달아도 점수가 깎인다. 신용점수가 낮아 라오라이로 낙인찍히면 비행기나 고속열차 등 대중교통뿐 아니라 호텔 숙박, 해외여행 승인, 자녀 사립학교 입학 등에서 제한을 받는 등 모두 169가지 벌칙으로 옭아맨다. 반면 신용점수가 좋은 개인이나 기업의 경우 무료 건강검진, 은행 대출 등 각종 혜택이 주어진다. 국무원은 “중국 사회의 신용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와 사회 거버넌스 체제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라며 “신용우수자를 격려하고 신용불량자는 옥죄는 상벌 시스템으로 사회의 신의성실 의식과 신용 수준을 높이겠다”고 명시했다. 이 때문에 라오라이 리스트에 올라 있는 쿵(孔·47)은 비행기나 고속열차 탑승할 때 제약을 받는다. “얼마 전 충칭(重慶)으로 출장을 다녀왔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비행기나 고속열차를 타고 갈 수 없는 탓에 어쩔 수 없이 장장 30시간 이상 걸리는 일반 열차를 타고 가야 했기 때문이죠. 비행기를 이용하면 3시간, 고속열차로는 12시간 밖에 안 걸리는 거리이지만….” 그는 “라오라이로 낙인찍히면 사람들이 상대하려고 하지 않아 재기하기도 매우 힘들다”며 “평생 고통 속에 살아야 해 징역형보다 더 가혹한 형벌”이라고 하소연했다. 중국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시에 사는 라오(饒)는 지난해 여름 아들이 합격한 베이징의 명문대로부터 청천벽력같은 합격 취소 통보를 받았다. 자신의 은행 연체금 20만 위안(약 3300만원)이 취소 이유였다. ‘라오라이’ 라오는 곧 은행으로 달려가 대출금을 모두 갚았다. 이를 두고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서는 현대판 연좌제 논란을 일으켰다. 중국 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적 신용평가 애플리케이션(앱)’도 내놓을 계획이다. 개인정보와 자원봉사, 사회적 관계, 신용기록, 소비기록 등을 토대로 개인 신용평가 등급을 매기는 앱을 만든다는 얘기다. 베이징의 CY크레딧사는 공산주의청년당(공청단)과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인민은행 등과 협업해 개인정보를 비롯해 자원봉사, 사회적 관계, 신용기록, 소비기록 등을 토대로 개인의 사회적 신용평가 등급을 매기는 앱을 개발 중이다. 예컨대 자원봉사, 연구논문 발표, 지식재산권 획득 등 ‘착한 일’을 하면 최고 신용등급을 받아 온라인 쇼핑 할인, 취업 우대 등의 각종 혜택을 누린다. 반면 커닝과 표절 등 ‘나쁜 일’을 해 등급이 내려가면 여기서 제외된다. CY크레딧사는 내년부터 이를 상용화해 장기적으로는 4억 6000만 명에 이르는 18∼45세 중국인들이 해외 유학, 주택, 여행, 연예·결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를 적용받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공산당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공청단 단원의 수만 9000만 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앱의 파장은 상당히 커질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월 라오라이를 잡는 앱도 출시했다. 허베이(河北)성 고급인민법원이 내놓은 ‘라오라이 지도’ 앱은 주변의 라오라이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고급인민법원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라오라이가 반경 500m 이내에 등장하면 지도에 위치가 표시되며, 이름과 주소 등 개인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나이언틱이 제작한 증강현실게임 포켓몬GO가 연상되는 형식으로 ‘빚쟁이GO’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고급인민법원은 “라오라이를 규제하고 정직한 사회의 틀을 만들기 위해 ‘라오라이 지도’ 앱을 만들었다”면서 “지도에 라오라이가 표시되면 즉각 당국에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중국을 ‘전체주의 사회’를 만들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중국 정부의 인터넷 감시·통제가 날로 심해지자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빅 브라더’처럼 당국의 감시망이 촘촘하게 확대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첨단기술을 사회 통제에 활용하고 관련 데이터를 쌓는데 집중하고 있다. 올해 초 중국 당국이 신장(新疆)위구르족 통제를 위해서 DNA 정보를 수집해온 것으로 알려지며 거센 비난이 일었다. 중국 정부는 무료 건강 검진을 명목으로 위구르족 얼굴을 스캔하는 등 개인 데이터를 수집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상 중국 당국에 저항하는 위구르족을 추적하는 데 사용해왔다는 지적이다. 중국 정부는 직접 수사와 관련되지 않아더라도 행정지도 차원에서 인터넷 기업이 관리하는 정보를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규정도 시행하고 있다. 당시 애플 등 외국 기업에 악영향을 끼쳐 논란을 일으켰다. 중국은 안면인식이나 인공지능(AI), 스마트 안경 등의 첨단기술을 사용해 사람들을 모니터링하고 평가하고 있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지난해 말 “중국 정부의 감시 능력과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이 결합하면 사실상 인간 삶의 모든 면을 통제하는 ‘오웰리언적(전체주의적) 시스템’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국제인권기구인 휴먼라이트워치의 왕쑹롄(王松蓮)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쇼핑 습관에서 댓글까지 시민의 모든 행위를 점수로 매겨 무결점 사회를 만들려 한다”고 비꼬았다. 이런 까닭에 뉴욕타임스(NYT)는 지난해 7월 8일 중국을 누군가 감시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법규를 따르는 ‘패놉티콘’(Panopticon·중앙감시 감옥)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팔 ‘위대한 귀환 행진’ 1주년 4만명...이스라엘 실탄에 4명 사망

    팔 ‘위대한 귀환 행진’ 1주년 4만명...이스라엘 실탄에 4명 사망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위대한 귀환 행진’ 시작 1주년을 맞은 30일(현지시간) 4만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사르엘 분리장벽 인근에서 반(反)이스라엘 집회를 열었다. 이스라엘군은 돌과 불붙은 타이어 등으로 저항하는 시위대를 총격했다. 이날 알자지라 등은 “이스라엘군이 실탄을 쏴 4명이 숨지고 207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사망자 4명 가운데 3명이 17세 소년인 것으로 알려졌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마일 하니야 최고지도자도 시위 현장을 방문했다. 시위에 참여한 한 청년은 “죽을 각오를 하고 장벽으로 간다.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시위에 나선 또 다른 시민은 “이 잔인한 포위 공격을 멈춰달라. 우리는 우리의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는 것 뿐”이라고 밝혔다. AFP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3월 30일 위대한 귀환 행진이 시작된 뒤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서 이스라엘군에 사살된 팔레스타인인은 모두 258명이다. 사망자 대부분은 가자지구 분리장벽 근처에서 목숨을 잃었다. 부상자는 7000명에 이른다. 특히 지난해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 주재 미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을 때에는 가자지구 일대에서 시위가 격화됐었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62명이 이스라엘군에 살해당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일본 법원, 만취여성 성폭행 40대에 ‘무죄선고’…황당한 이유

    일본 법원, 만취여성 성폭행 40대에 ‘무죄선고’…황당한 이유

    일본 법원이 술에 취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남성에 대해 “여성이 성관계를 싫어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해 논란과 반발이 일고 있다. 법원은 판결에서 “여성이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던 것은 인정되지만, 남성이 그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이에 SNS 등에서는 “가해자 스스로 자신의 행위가 성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등 재판부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31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2017년 2월 어느날 밤 20대 여성 A씨는 후쿠오카시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스노보드 동아리 모임에 참석했다. A씨는 친구와 같이 처음 나간 이 모임에서 ‘벌칙음주’ 게임을 하다가 술을 여러차례 빠르게 마셨고, 결국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A씨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소파에 옮겨졌고, 얼마 후 같은 동아리 회원인 40대 남성 B씨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다. 이어 또 다른 남성이 추가로 성폭행을 시도하려 할때 A씨는 거부 의사를 밝히고 음식점에서 빠져나왔고 피해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B씨는 후쿠오카 검찰에 의해 ‘준강간’ 혐의로 기소됐다. 일본 형법 178조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을 이용하거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을 일으킨 상태에서 행해지는 성폭행’에 대해 준강간죄를 적용토록 하고 있다. 재판의 쟁점은 2가지로 요약됐다. 첫번째는 ‘여성이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는가’, 두번째는 ‘여성이 항거불능 상태에 있음을 남성이 인지하고 있었는가’였다. 후쿠오카 법원 재판부는 첫번째 쟁점에 대해서는 “구토를 하는 동안에도 잠에 빠질 정도로 깊은 주취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A씨가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판단, “A씨가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피고인측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나 두번째 쟁점에서 법원은 남성의 손을 들어주며 전체적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그동안의 동아리 모임에서 성적인 행위가 자주 이뤄졌기 때문에 피고인은 안이한 생각으로 성관계로 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A씨로부터 분명한 거부의 의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A씨가 성관계를 허용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 있었다” 등 이유를 들며 “A씨가 저항할 수 없는 상태라고 인식하지 못했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검찰은 지난 26일 무죄 선고에 불복해 항소했다. 시민단체 ‘성폭력금지법을 만드는 네트워크’의 스도 유미코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마이니치에 “성폭력 재판에서 가해자가 ‘상대방이 싫어한다고 느끼지 못했다’고 말하면 죄를 묻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며 ‘고의성’ 여부를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삼는 데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성범죄 사건 전문 오쿠무라 도오루 변호사는 “여성이 명확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피고인 측 주장에 검찰이 딱부러진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결과”라며 검찰 측의 문제를 지적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팩트체크 저널리즘(김양순 외 5명 지음, 나남 펴냄)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가운데 저널리즘이 지켜야 할 ‘팩트 체크’의 개념과 기법을 알려 주는 책. 내일신문 정재철 기자, KBS 김양순 기자 등 현직 언론인들과 박아란 언론재단 선임연구원 등 전문가들이 참여해 실전 경험과 이론을 조화했다. 312쪽. 2만원.인간의 성에 관한 50가지 신화(페퍼 슈워츠·마사 켐프너 지음, 고경심 외 2명 옮김, 한울엠플러스 펴냄) 어느덧 신화가 돼 버린 성에 관한 편견을 뒤집는 저작. 각각 워싱턴대 사회학 교수, 성 건강 전문가인 저자들은 피임약과 임신중절, 동성애자의 육아와 일생, 남녀의 생식기 등에 관한 편견들에 대해 사회학·심리학·생물학 연구 기록과 실례를 들어 알기 쉽게 파헤쳤다. 464쪽. 3만 9500원.도시로 읽는 조선(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엮음, 글항아리 펴냄) 한반도의 도시들이 어떻게 역사 속 특별한 장소가 됐는지 사료에 입각해 재현했다. 한양을 시작으로 전통문화의 보고인 전주, 천혜의 자연을 품고 조선의 학자들을 키워낸 변산, 제국주의 질서 속 조선의 위치를 명백히 보여 주는 인천 등 아홉 곳의 도시를 톺아본다. 272쪽. 1만 8000원.아메리카의 망명자(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황정아 옮김, 창비 펴냄) 칠레 사회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군부독재에 저항한 세계적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망명기를 담은 회고록. 1973년 9·11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망명길에 나선 후 파리와 암스테르담을 거쳐 다시 아메리카로 귀환한 자신의 여정을 2001년 두 번째 9·11을 겪은 다음의 시점에서 돌아본다. 480쪽. 1만 6000원.소년을 위한 재판(심재광 지음, 공명 펴냄) 서울가정법원의 소년부 판사인 저자가 소년법과 소년보호제도를 설명한 책. 요즘 소년들이 저지르는 잘못은 무엇인지, 소년보호재판은 형사재판과 어떻게 다른지, 소년법의 문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 만화를 곁들여 상세히 설명한다. 344쪽. 1만 7000원.빈센트 나의 빈센트(정여울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지난 10년간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도시 곳곳을 찾아다니며 기록한 빈센트 반고흐의 흔적을 기록한 에세이집. 세간의 외면과 오해, 비난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 고흐. 그를 알아가는 여정은 예술과 문학에의 탐구이자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었노라 작가는 고백한다. 356쪽. 1만 6000원.
  • NASA “2달간 침대 누워만 있으면 2100만원 준다”…이유는?

    NASA “2달간 침대 누워만 있으면 2100만원 준다”…이유는?

    온종일 침대에 누워 TV를 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이 주목할만한 소식이다. 두 달간 연구에 참여해 이렇게 살면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1만6500유로(약 2113만원)를 주기 때문이다. 28일(이하 현지시간) 미 NBC뉴스 등에 따르면, NASA는 유럽우주국(ESA)과 함께 지난 25일부터 독일항공우주센터(DLR)의 한 연구시설에서 참가자 24명을 대상으로 이같은 임상연구를 시작했다. 이 연구는 어떤 이에게는 꿈같은 아르바이트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장거리 우주 비행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특히 이 연구는 독일에서 진행되는 만큼 모든 참가자는 현지 연구원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참가자의 성비는 1대1로 남녀 각각 12명씩 선발됐으며 만 24세부터 55세까지라는 나이 제한이 있다. 덧붙여 신체가 건강해야 이 연구에 참가할 수 있다.총 89일간 진행되는 이 연구에서 모든 참가자는 무려 60일 동안 침대에 누운채 살아야 한다. 이는 먹는 것부터 대소변을 보는 것까지 모든 활동을 누워있는 상태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들 참가자에게 TV와 읽을거리 그리고 오락거리를 제공하지만, 이런 것으로는 지루함을 달래기 힘들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참가자들에게 여가 시간에 온라인 강좌를 듣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울 것을 권고한다. 그런데도 이들 참가자가 이 지루한 연구에 참여하는 이유는 돈도 벌고 우주 과학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ESA도 이 연구는 무중력과 우주방사선, 고립 그리고 공간적 제약이 우주비행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우주비행사들이 장기간 우주에서 체류할 때 발생하는 근육손실에 대해 자세하게 살필 예정이다. 현재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머물고 있는 우주비행사들은 이런 근육손실을 막기 위해 하루에 약 2시간30분 동안 신체에 저항을 주는 기구를 사용해 운동해야만 한다. 그런데 앞으로 이웃 행성인 화성과 그보다 먼곳까지 가는 장거리 우주 임무에서는 이처럼 매일 운동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인공중력실을 만들어 우주비행사들을 그 내부에서 활동하게 함으로써 근육손실을 막을 계획이다. 연구에 참여한 DLR 산하 항공우주의학기관의 수석연구원 에드윈 멀더 박사도 “인공중력의 사용은 오랫동안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해도 건강을 지키는 최선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연구에서는 또 이런 인공중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도 살핀다. 연구자들은 모든 참가자의 팔다리로 가는 혈류량을 줄이기 위해 이들 참가자의 다리를 머리보다 약간 높은 곳에 두도록 만든 특수 침대를 제공한다. 이는 무감각과 근육손실을 일으키는 미소 중력의 영향을 모방한 것이다.그리고 절반의 참가자는 실험시설에 마련된 원심기(원심력을 이용한 기계)에 간헐적으로 옮겨져 최대 30분 동안 분당 30회의 속도로 회전하게 된다. 이는 앞서 설명한 인공중력실처럼 참가자들의 혈액을 다시 사지 곳곳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이 같은 실험이 끝나면 전문가들은 이런 인공중력 기술이 인체의 근육손실을 얼마나 막을 수 있는지 각 참가자를 대상으로 조사할 것이다. 한편 이 연구는 이번이 끝이 아니다. NASA와 ESA는 오는 9월부터 2차 연구를 수행하며 오는 5월 24일까지 지원자 접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ESA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박상현의 디지털 미디어] 밀레니얼 세대와 구독 경제

    [박상현의 디지털 미디어] 밀레니얼 세대와 구독 경제

    신문에 칼럼을 쓰는 사람으로서 몹시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돈을 내고 종이신문을 구독해 본 적이 없다. 미국에 살면서 뉴욕타임스를 돈 내고 구독한 적은 있지만, 그건 그 신문이 돈을 내지 않으면 기사를 읽지 못하게 막기 때문이었고, 한국의 경우 대부분 신문이 기사를 웹사이트나 포털에 무료로 올려놓기 때문에 거기에서 읽으면 그만이다. 나는 어릴 때 부모님이 구독하시는 신문을 옆에서 읽으면서 신문 읽는 맛을 들였다. 지금은 70대이신 내 부모님은 지금도 종이신문을 돈 내고 구독하시고, 매일 아침 거의 종교적인 열정으로 읽으신다. 내 주위에 물어봐도 대개 비슷한 모습이다. 소위 X세대에 속하는 내 또래는 대학생 때부터 신문을 인터넷에서 공짜로 읽는 습관이 생겼지만, 부모 세대는 돈을 내고 신문을 구독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럼 구독 모델은 이제 끝났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세계적으로 부활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우리 세대를 건너뛰어 밀레니얼 세대에서 부활하고 있다. 2000년 언저리에 성인에 들어선 이 세대는 우리 세대와 달리 진정한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할 수 있는데도 그들은 돈을 내고 구독하는 것에 우리 세대보다 익숙하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물론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가 종이신문을 구독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넷플릭스나 퍼블리 같은 온라인 콘텐츠를 돈 내고 구독하고, 아침 식사를 ‘구독’하고, 꽃을 구독하고, 심지어 맥주를 구독한다. 물론 여기에서 구독(subscription)이라는 말은 엄밀하게 ‘정기결제’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지만, 이미 ‘구독경제’(subscription economy)라는 말이 익숙해졌을 만큼 이런 현상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최근 볼보 자동차는 새로운 전기자동차 모델을 소개하면서 사람들이 자동차를 돈을 내고 사는 대신 구독할 수 있는 옵션을 추가했다. 일시불, 혹은 할부 구매처럼 돈을 다 지불하면 자신의 소유가 되는 것과 달리 이 자동차를 구독할 경우 차를 사용하는 기간에 매달 돈을 내는 일종의 리스인 셈이다. 볼보가 이런 모델을 도입한 이유는 ‘밀레니얼 세대는 자동차를 사는 데 관심이 없다’는, 전 세계 자동차 제조업체가 당면한 문제 때문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소유보다는 우버 같은 공유서비스를 더 선호하는 추세에서 자동차 업계는 이제 구독 모델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왜 구매보다 구독을 더 선호할까? 전문가들은 전 세계적인 취업난과 노동시장의 큰 변화를 겪는 세대라는 점을 지적한다. 안정된 미래를 예상할 수 없는 세대가 자동차나 집처럼 큰 비용이 묶이는 투자를 꺼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또 다른 이유는 기업들이 매출을 꾸준하게 유지하기 위해 구독 모델을 많이 내놓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포토샵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어도비는 2011년 그동안 제품으로 판매하던 소프트웨어를 정기적으로 돈을 내고 사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했고, 그 성공을 지켜본 많은 기업이 뒤를 따랐다. 처음에는 사용자들 사이에서 저항이 적지 않았다. 한 번에 돈을 내고 ‘내 것’으로 만들거나, 불법 다운로드해 공짜로 이용하는 데 익숙한 많은 사람은 새로운 방식을 싫어했다. 반발하지 않은 사람들은 당시 막 사회에 들어선 밀레니얼 세대였다. 어차피 큰돈 내고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살 수도 없고, 당장 하는 프리랜서 일이 날아가면 비싼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는 그들에게 정기 결제로 고가의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건 꽤 매력적인 방법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빠뜨리면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그 어느 세대보다도 노동과 서비스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십세들’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는 구독자가 4만~5만명을 넘어서 처음으로 중간광고가 등장하자 팬들이 축하한다면서 “광고 더 많이 들어오라”고 오히려 좋아하는 일이 있었고, 뉴스를 이메일 뉴스레터로 전달하는 ‘뉴닉’에서는 제작비를 위해 모금을 하자 후원금과 함께 “이건 투자입니다”, “얼른 유료화해 주세요“와 같은 메시지가 도착했다고 한다. 저임금 부정규직과 무한취준을 오가는 그들이기 때문에 타인의 노동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무임금 노동력이 생겨선 안 됩니다”라는 어느 뉴닉 독자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 궁극의 공기역학으로 만든 드라이버

    궁극의 공기역학으로 만든 드라이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피닉스오픈 챔피언 리키 파울러, `괴짜 골퍼` 브라이슨 디섐보, 그리고 미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대표 장타자 렉시 톰프슨(이상 미국)의 공통점은? 바로 ‘코브라 F9 스피드백’ 드라이버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푸마골프가 궁극의 공기역학을 응용한 드라이버 ‘코브라 F9 스피드백’을 출시했다. 생김새만 보면 마치 노란색의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혹은 포뮬러원(F1) 머신을 연상케 한다. 코브라 측은 “F9 드라이버는 공기역학 클럽 헤드 설계, 저중심 및 정밀 CNC 밀링면을 결합한 최초의 드라이버”라고 강조하고 있다. 먼저 비거리를 위해 3가지 설계에 집중했다. 공기역학적 설계를 통해 클럽 헤드의 스피드 손실을 줄였고 낮은 무게중심과 빠른 볼 스피드로 비거리를 늘렸다. 1%의 공기 저항도 줄이기 위해 크라운 디자인도 클럽 속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난기류를 줄일 수 있게 했고 페이스와 크라운의 경계면도 둥글게 만들어 공기 저항을 줄였다. 가장 핵심은 CNC 밀링이 된 페이스. 헤드 페이스는 CNC 밀링이 된 유일한 제품으로 기존에 손으로 연마하던 것보다 최대 5배까지 정밀도를 끌어올렸다. (02)2136-1161.
  • 남북 모두 임정 실체 정치적 활용·왜곡… 시기·인물별로 평가해야

    남북 모두 임정 실체 정치적 활용·왜곡… 시기·인물별로 평가해야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 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해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대한민국 헌법 전문) “(1919년 3·1 봉기로) 인민이 피흘리고 싸울 때 (일부 민족 운동가들은)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조직하고 미국에 대한 애국운동만 진행했다. 이들은 미 제국주의자들의 지지와 도움으로 나라가 독립할 수 있을 것으로 타산(계산)하고 그들에게 아양을 떨면서 원조를 구걸했다.”(북한 조선전사) 3·1운동은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과 수탈, 민족말살 정책에 항거한 전국 단위의 민중 시위였다. 이를 계기로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생겨났고 임정 요인들의 희생 덕분에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임정에 대한 평가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임시정부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건 아니다. ‘나약한 부르주아 혁명가들의 집합소’, ‘우리 민족 독립운동에 숟가락만 얹은 조직’이라며 싸늘한 냉소를 보내는 국내 연구자도 적지 않다. 우리는 임정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北·국제사회 “임정 제 역할 못 해…정부 아냐”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가장 큰 논란은 임정이 정말로 한국 독립운동 단체들의 대표이자 정부로서 역할을 수행했는가 하는 점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임정이 엄연한 정부였고 국내 독립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고 천명한다. 초·중·고교 역사 교과서에서도 임정을 우리 민족의 반만년 역사상 첫 민주공화국 정부로 소개한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임정을 독립운동 단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식민지 체제에서 일제에 고통받으며 목숨 걸고 저항한 이들은 당시 한반도에 살던 노동자와 농민들이었지 임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해외에서 “힘 없이 외교청원 놀음이나 펼친” 망명가 집단에게 정부 자격을 부여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최근 우리 정부가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 행사를 남북 공동으로 추진하려다가 실패한 데에는 이런 역사 인식 차가 깔려 있다. 북한이 자신의 정통성을 김일성 일가에서만 찾다 보니 임정을 더욱 깎아내릴 수밖에 없는 내막이 있기도 하다. 여운형(1886~1947)을 비롯해 주요 독립운동가들도 임정의 법통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30년 가까이 외국에서 지리멸렬하게 파벌 싸움만 하다가 국내에 별다른 지지 기반을 만들지 못했고 시베리아와 만주 등에 임정보다 훨씬 크고 실력 있는 단체가 존재했다는 이유에서다. 국제사회 역시 임정을 정부로 승인하지 않았다. 국제법상 국가의 3요소인 영토, 주권, 국민이 없던 탓이다. 오직 중화민국(대만)이 임정을 정부로 인정하고자 미국과 영국 등을 설득했지만 열강의 반응은 차가웠다. 1945년 해방 뒤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 미국 대통령은 임정 승인을 요청한 장제스(1887~1975)에게 이렇게 답했다. “한국 독립운동 단체들이 분열돼 있어 임정의 대표성을 인정할 수 없다. 임정은 한반도와 연계가 없다. 중국이 (친중 세력인) 임정을 승인하면 소련도 친소단체를 승인할 텐데 이렇게 되면 갈등이 커질 수 있다.”●‘1919년 건국론’ ‘1948년 건국론’ 대립 임정의 위상에 대한 시각차는 건국절 논쟁으로도 이어졌다. 가장 큰 쟁점은 대한민국 수립 시점이다. ‘1919년 건국론’과 ‘1948년 건국론’이 대립하고 있다. 상당수 역사학자들은 1919년 건국론을 주장하지만, ‘뉴라이트’를 포함한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1948년 건국론을 지지한다. 1919년 건국론자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임시헌장을 통해 국민·주권·영토 등 국가의 3요소를 규정했기 때문에 국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48년 건국론자들은 임정이 한국 독립에 이렇다 할 기여를 하지 못했기에 1919년은 진정한 건국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명실상부한 주권을 되찾고 국제사회에서도 합법적으로 승인한 1948년이 진짜 건국이라는 것이다. 1919년 건국론자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한다면 1948년 건국론자들은 국제법적 형식 논리를 더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독립운동사 전문가인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27일 “임정 지도자들이 1919년 건국론자 주장처럼 1919년에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그 뒤부터 국가의 완성도를 높여 가는 과정으로 여겼는지 아니면 1948년 건국론자 생각처럼 그저 독립운동을 한다고 인식했는지는 좀더 정교한 사실 규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임정은 ‘빛과 그림자’를 함께 지닌 조직” 임정은 3·1운동으로 드러난 민족국가·국민주권국가 수립 욕구를 맨 처음 구체화한 조직이다. 3·1운동으로 생겨난 여러 정부를 하나로 묶어 독립운동 대표체로 거듭났다. 이것만으로도 임정은 대한민국의 시원으로서 정통성을 인정받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해서 임시정부가 정통성을 독점한 건 아니었다. 수립 초기부터 분열과 무능, 파벌 싸움 등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고 일개 독립운동 단체보다 못할 정도로 쇠약해진 시기도 보냈다. 임정은 분명 ‘빛과 그림자’를 함께 지닌 조직이다. 그래서 시기와 인물에 따라 다르게 평가받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과거 냉전 구도 속에서 정권에 따라 임정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다보니 지금의 논란이 생겨났다고 지적한다. 김희곤(65) 안동대 사학과 교수는 “광복 이후 임정의 위상을 두고 정치적 논쟁이 일어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남한에서는 군사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부족한 정당성을 보완하고자 임시정부를 치켜세우려고 애썼다. 이들은 임정이 독립운동의 최고봉이자 한반도를 장악한 대표 조직으로 과장해 선전했다. 상당수 학계 인사도 이런 분위기에 무비판적으로 편승하며 곡학아세에 나섰다. 하지만 남한과 체제 경쟁을 펼친 북한에 임정은 ‘실패한 망명가 집단’에 불과했다. 1980년대 남한의 운동권 세력도 군사정부에 대한 반발로 북한의 ‘민중사관’을 흡수해 3·1운동 민족대표나 임정 요인을 무시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훗날 ‘뉴라이트’가 돼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부터 대놓고 임정을 부정한다. 언론 역시 이런 상황에 대해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임정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있을 때마다 정확한 사실관계에 근거하기보다는 매체가 지향하는 이념이나 정권 성향에 맞춰 임정을 평가 절상 혹은 절하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지금부터라도 정치적 유불리에 휘둘리지 말고 임정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고 인정해야 정확한 사실 전달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다. ●“남북 시각차 인정… 꾸준한 교류로 극복해야” 지금의 한반도 현실이 남한이나 북한 어느 한쪽에만 정통성을 부여하기 어려워진 만큼 지금부터라도 남북이 함께 임정의 정확한 위상을 재평가해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스위안화 중국 푸단대 한국북한연구센터 교수는 최근 열린 임정 관련 토론회에서 “(일제강점기 핵심 독립운동단체였던) 김구의 임정 세력, 김일성의 항일무장 세력, 중국 내 조선의용군 세력에 대한 정확한 연구와 평가야말로 남북통일 실현의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임정을 법통으로 적시했지만 북한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상하이 임정 청사를 방문하는 것조차 꺼린다. 학계의 교류와 충분한 인내로 이런 간극을 극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남부내륙철도 성주역사 유치해 재도약 기틀 마련할 것”

    “남부내륙철도 성주역사 유치해 재도약 기틀 마련할 것”

    “남부내륙철도(김천~거제) 성주역사 유치를 통해 성주의 미래 100년을 희망차게, 야심 차게 준비해 나가겠습니다.” 이병환 경북 성주군수는 26일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성주는 2016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이어 남부내륙철도 성주역사 유치라는 또 한 번의 중차대한 역사적 현실에 직면해 있다”면서 “5만 군민의 염원이 담긴 남부내륙철도 성주역사를 반드시 유치해 재도약의 기틀을 확고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 군수는 “성주역사가 유치되면 낙후 지역인 국립공원 가야산 인근의 경북 김천·고령, 경남 거창·합천의 공동 발전은 물론 칠곡과 대구 달성·다사 등지의 주민 100만명이 다 같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뿐만 아니라 국가 안위를 위해 사드 배치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는 성주군에 대한 보상과 군민 간 갈등, 반목 해소에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사업비만 4조 7000억원(추정)을 들여 김천~성주~고령~합천~의령~진주~고성~통영~거제까지 9개 지역 172㎞ 구간을 오가는 남부내륙철도 건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내년부터 2년간 기본·실시설계를 거쳐 2022년 상반기에 착공한다. 2028년쯤 개통 예정이다. 다음은 일문일답.-남부내륙철도 성주역사 유치 배경은. “남부내륙철도 관련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기초용역 보고서를 보면 김천~거제 구간에 6개 역사와 1개의 신호장이 설치된다. 이 가운데 신설될 역사 4개가 모두 합천~거제의 경남 지역 107㎞ 구간에 몰려 있다. 김천~성주~고령의 경북 지역 구간도 경남 구간의 3분의1(약 35㎞)이 되지만 역사 신설 계획이 전무해 형평성에 어긋난다. 고작 성주 구간에 역사 대신 신호장이 들어서는 정도다. 신호장은 역사나 주차장 등과 완전히 다른 단선철도 운행을 위한 신호체계에 불과하다. 고용 창출과 주민편익, 경제적 효과 등 어느 하나도 기대할 수 없는 시설이다. 실시설계 과정에 성주군 내 역사 설치가 반영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투입하겠다.” -성주역사 유치를 위해 민관이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군 대응팀(TF)을 중심으로 군내 기관·단체 등이 힘을 모아 성주역사 유치 결의대회와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성주 지역 60여개 단체가 참여하는 사회단체협의회는 성주 전역에 현수막을 대대적으로 내걸어 범군민 유치운동 분위기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4월 초에는 ‘성주역사 유치 범군민추진협의회’(가칭)를 출범시킬 예정이며 주민 등 5000여명이 참가하는 범군민 결의대회도 갖는 등 물리적 행동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경북도·정부·국회 등을 방문해 성주역사 유치에 대한 지역 여론과 역사 설치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명하는 작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 -최근 주한미군이 성주 사드 정식 배치 수순을 밟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주한미군 측이 지난달 중순 우리 정부에 레이더와 발사대 6기가 임시 배치된 사드 기지 내 부지 활용 사업계획서를 제출했고, 정부가 조만간 사드 정식 배치를 위한 일반환경영향평가를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벌써 성주 사드 배치 반대 측이 향후 진행될 사드 기지 일반환경영향평가 과정에 강하게 저항할 것을 예고했다. 하지만 성주 군민들은 2017년 4월 사드 발사대 2기와 레이더 반입, 같은 해 9월 발사대 4기 추가 배치 때 온몸으로 저지에 나섰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이후 지나친 우려와 오해가 많이 해소됐고 의식도 크게 높아졌다. 안심하고 생업에 충실하고 있다.”-하지만 사드 배치 지역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책은 지지부진하다. “사실 그렇다, 우리 군은 군민의 희생과 고통에 대한 위로·보상 차원에서 정부에 대구∼성주 고속도로 및 경전철 건설, 대구∼성주 국도 30호선 6차로 확장 등 약 2조원 규모의 16개 지원사업을 건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국비 106억원이 지원됐을 뿐 대다수 사업에 대한 예산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행정안전부 등 중앙부처를 수차례 방문해 조속한 지원을 건의했지만 사드가 임시 배치 단계라는 명목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만 되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사드 지역 홀대론이 불거지고 있다.” -3년 내에 농업 조수입 1조원 달성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지난해 성주참외 조수입 5000억원을 달성했다. 4000여 재배농가가 중심이 돼 부자농촌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 줬다. 농가당 수입이 1억원을 넘을 정도로 고수입이다. 6차 산업과 스마트 농장 조성, 농산물 직거래 센터 설립, 농산물 해외 수출 확대, 참외 대체 작물 개발 등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이들 사업을 차질없이 추진해 농업 조수입 1조원 시대를 앞당기도록 하겠다.” -그동안 중단했던 참외 축제를 올해부터 다시 개최하기로 했는데. “참외축제는 2009년 5회째 행사를 끝으로 중단됐고, 그 뒤부터 생명문화축제를 개최해 왔다. 하지만 이후 전국 참외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성주에 참외를 주제로 한 지역축제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왔다. 최근 들어 축제의 트렌드도 문화관광 위주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와 연계되는 축제로 옮겨 가고 있다. 두 축제가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 5월 16일부터 4일간 성밖숲 일원과 세종대왕자 태실에서 펼쳐질 ‘2019 성주생명문화축제·제6회 성주참외페스티벌’에 많은 성원과 참여를 당부한다.” -가야사 연구복원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성주는 옛 성산가야로 대가야(고령), 금관가야(김해), 아라가야(함안), 소가야(고성), 고령가야(함창) 등과 함께 가야의 하나로 불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관련 문헌과 사료의 빈곤으로 정설을 찾기 힘들다. 대표적 유물은 71곳에 분포된 고분군이며, 그 가운데 성산리 고분군이 중심 고분군이다. 현재 국비 등 총사업비 184억원을 들여 성산리 고분군전시관을 건립하고 있으며 올해 말 준공할 예정이다. 또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 조사·연구와 보존·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가야문화유적에 대해서는 기초조사를 거쳐 발굴조사, 학술대회 개최, 문화재 지정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1500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실존했던 미지의 나라, 성산가야의 실체를 제대로 밝히고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들이다.” 성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이병환 군수는 35년 중앙·지방행정 경험한 베테랑 공직자 이병환(61) 성주군수는 중앙 및 지방행정 경험이 풍부한 정통 행정관료다. 1983년 7급 공채시험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내무부에서 13년간 실무경험을 쌓은 뒤 경북도로 전입해 통상과장, 도지사 비서실장, 일자리투자본부장, 자치행정국장, 경북도의회 사무처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공직 재임 35년 동안 탁월한 기획력과 함께 온화하고 배려심 있는 성격으로 폭넓은 소통을 이룬 공직자라는 평을 들어왔다. 투자유치 5조원, 새마을세계화 사업 성공적 수행, 경북도청 신청사 이전 추진 등 탁월한 성과를 이뤄 우수공무원 녹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내무부장관 표창 등을 받았다. 지난해 6월 치러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아 처음 당선된 그는 계성고와 경북대 농대, 연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했다. 취미는 독서.
  • 비극과 활극의 만남… 조선인 가슴에 저항정신 불 지르다

    비극과 활극의 만남… 조선인 가슴에 저항정신 불 지르다

    한국 사람이라면 나운규(1902~1937)라는 존재와 ‘아리랑’(1926)이라는 영화 제목을 들어보지 못한 이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무성영화 시기를 대표하는, 아니 한국영화사 전체를 관통해서도 가장 무게 있는 영화인과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랑’의 필름은 사라졌다. 우리 대부분은 처음 개봉한 지 90년도 훨씬 지난 이 영화를 보지 못했고, 그저 여러 매체를 통해 얼마나 위대한 영화인지 전해들었을 뿐이다. ‘아리랑’은 왜 훌륭한 영화인가. 어쩌면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원로 영화인들의 증언이 쌓여가는 과정에서 신화화된 결과가 아닐까.‘아리랑’을 걸작으로 칭송하는 이유는 바로 일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아낸 민족 영화라는 평가 때문이다. 어쩌면 이 관점은 맞는 말일 수도 있고 틀린 말일 수도 있다. 애초 나운규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는 조선영화도 미국영화처럼 한번 재미있게 만들어보자는 목적이었다. 당시 조선인들은 더이상 활동사진에 신기해하는 초창기 관객이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활극적 볼거리와 속도감에 열광하는 영화 팬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리랑’은 개봉하자마자 조선인 관객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6·25 전쟁 시기까지 수십 차례 반복 상영되며 영화 자체가 가진 힘을 넘어 사회 현상이 되어버렸다. 과연 ‘아리랑’은 어떤 영화였을까.●일본 신파를 극복하다 먼저 1920년대 전반기 조선영화계를 살펴보자. 조선 극영화의 시작은 ‘월하의 맹서’(1923)를 만든 윤백남의 역할이었지만 이후 조선영화를 주도한 감독은 윤백남의 조감독을 맡았던 이경손(1905~1977)이었다. 그는 고대소설을 영화화한 ‘심청전’(1925)으로 감독 데뷔해 이광수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개척자’(1925)로 인정받았다. 이 시기 조선영화 제작은 초창기의 활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춘향전’(1923), ‘장화홍련전’(1924), ‘운영전’(1925) 등 고대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으로, 즉 조선 사람이 조선 옷을 입고 활동사진에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관객이 몰려들던 시기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이경손은 일본영화를 모델로 삼아 상업적인 노선을 모색하는데 일본 신파 ‘곤지키야샤’(金色夜叉)를 번안한 ‘장한몽’(1926), 일본 시대극 영화를 참조한 ‘산채왕’(1926)이 그것이다. 두 영화는 당시 일본 신파소설을 번안하던 조중환과 이경손이 함께 설립한 계림영화협회가 제작했다. 이 시기 조선은 일본 문화의 강력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조선영화 역시 ‘나의 죄’(己が罪)가 원작인 ‘쌍옥루 전후편’(1925), ‘새장 속의 새’(籠の鳥)를 각색한 ‘농중조’(1926) 등 일본 신파의 조선적 번안이 대세였다. 이처럼 연애비극이나 가정비극을 다루는 신파 서사는 식민지 조선영화의 기본적 설정으로 안착하게 된다.나운규의 ‘아리랑’이 특별한 점은 일본 신파영화의 화법을 받아들인 시기에 등장한 영화였지만 그 영화들과는 다른 방향을 찾았다는 것이다. ‘아리랑’이 어떤 의도로 만든 영화인지는 나운규의 운명 전 해인 1936년 그가 남긴 기록을 통해 파악해 볼 수 있다. 바로 ‘조선영화감독 고심담 아리랑을 만들 때’(‘조선영화’ 제1집)라는 글이다. “그 당시에 조선에 오는 양화(洋畵)를 보면 수(數)로는 서부활극이 전성시대요 또 대작연발시대다. 그리피스의 ‘폭풍의 고아들’(1921)을 보던 관중은 참다 못하여 발을 굴렀고 더글러스의 ‘로빈 후드’(1922)는 조선 관객의 손바닥을 아프게 하였다.” 나운규가 미국영화의 “대작연발시대”를 강조한 것처럼, 당시 조선인 관객들은 화려한 볼거리와 물량 공세, 또 스케일 큰 액션 장면이 긴장감을 자아내는 할리우드 영화에 열광했고, 이에 익숙해지면서 영화의 감식안도 높아져갔다. 관객들의 취향을 포착한 나운규는 ‘아리랑’을 만들기 직전 선배 감독 이경손에게 “화나는데 서양사람 흉내를 내서 한 작품 만들어봅시다”라고 말했고, 어떻게 하면 “하품 나는 조선영화”를 탈피할 수 있을까, 조선영화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 고민을 거듭했다. ‘아리랑’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서구영화의 창조적 수용 연출의 기회를 잡은 나운규는 할리우드 활극 스타일을 연출 방향으로 잡고, 어떻게 하면 서구식의 활극 장면을 경제적으로 연출할 것인지에 집중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선 사람들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스토리까지 고안해냈다. 대중적 화법인 신파 양식을 기반으로 비극과 활극을 직조한 동시에 조선의 식민지적 상황을 상징과 비유가 담긴 이야기로 녹여 민족적 감정을 건드린 것이다. 가장 핵심은 ‘아리랑’이 나운규의 오리지널 스토리라는 점이다. 당시 “전 조선영화를 통하여 가장 우수한 장면”(‘동아일보’ 1926년 10월 7일자)으로 기록된 사막 장면은 단연 영화의 압권이다. 한 나그네(나운규)가 여자(신일선)를 취하려는 악마 같은 상인을 살해한 장면은 주인공 영진(나운규)이 여동생 영희(신일선)를 겁탈하려는 지주의 하수인 기호를 환상 속에서 살해하는 것으로 정확히 반복된다. 광인의 내면세계를 일그러진 세트로 시각화해 보여준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1920) 같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나운규는 할리우드 활극뿐만 아니라 유럽 예술영화 등 동시기 서구영화의 여러 요소를 포착하고 자신만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또 작품의 인물 구도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 지주도 그 하수인도 조선인이라는 설정이지만 돈으로 민중을 괴롭히는 자본가 계급의 폭압적 행태를 당시 조선인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는 짐작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아리랑’은 민족영화가 되었고, 조선 무성영화의 대표작으로 한국영화사의 신전에 올랐다.●아리랑의 실제 감독은 누구일까 ‘아리랑’ 개봉 당시 이 영화의 감독은 쓰모리 슈이치(한국 이름 김창선)라는 일본인으로 기록되었다. 이 영화의 실제 감독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 결정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우리는 당 시 재조선 일본인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조선영화인의 협업으로 구축되었던 조선영화 제작현장을 감안해야 한다. ‘아리랑’을 제작한 영화사는 일본인 흥행사 요도 도라조의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인데, 그의 조카 사위 쓰모리 슈이치가 실질적인 운영을 맡았다. 현대 영화의 프로듀서 역할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는 조선키네마의 첫 번째 영화 ‘농중조’와 ‘아리랑’ 개봉 당시 감독 크레디트로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 점은 이후의 문헌들은 두 영화의 감독으로 각각 조선영화인 이규설과 나운규를 기록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당시 제작 현장에서 일본인이 감독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조선인 관객들을 위한 각본을 쓰고, 무성영화이지만 동작 연기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던 배우들의 조선어 대사 연기를 지도한 것은 조선인일 수밖에 없었다(물론 무성영화의 논리상 그들의 입에서 발성되어야 할 대사는 변사의 음성에서 들리게 된다). 다시 ‘아리랑’으로 돌아가면 쓰모리가 설령 크레디트상의 감독직을 맡았더라도 각본을 쓰고 실질적인 연출을 진행한 나운규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후 나운규는 계속해서 요도 도라조의 조선키네마프로덕션을 통해 ‘풍운아’(1926), ‘야서(들쥐)’(1927), ‘금붕어’(1927)라는 활극멜로드라마를 그의 이름으로 연출했다. 그리고 나운규프로덕션을 세워 ‘사랑을 찾아서’(1928) 등 자신의 감독 및 주연작을 이어 나간다. ●조선 무성영화 황금기 이끌다 마지막으로 ‘아리랑’이 이후 조선 무성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점을 언급해야 한다. 먼저 지주와 소작민, 그 사이 희생양이 되는 젊은 여성이라는 계급구도에 기반한 서사와 활극이 더 선명하게 앞으로 나서는 스타일이 이후 조선영화의 상업적 기준이 된 점이다. 또 일제 치하의 식민지적 현실을 드러내고 저항의 관념을 싣는 수단, 즉 계급 운동으로서의 영화를 지향하는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진영의 영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카프 진영과는 거리를 두었지만 소설가 심훈의 감독 데뷔작 ‘먼동이 틀 때’(1928)는 단연 ‘아리랑’의 적자라고 할 수 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단독]“김학의 성접대 피해 여성, 윤중천의 꼭두각시였다”

    [단독]“김학의 성접대 피해 여성, 윤중천의 꼭두각시였다”

    “탈출 시도하자, 성관계 장면 찍어 인터넷에 공개 협박… 김학의는 변호인 회유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씨를 특수강간 혐의 등으로 고소한 피해 여성 이모씨는 윤씨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성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폭행과 협박이 일상화된 공간에서 이씨는 윤씨에게서 탈출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강제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현대판 성노예’와 같은 처지였던 이씨의 충격적인 진술에도 검찰은 “진술을 믿지 못하겠다”며 이씨의 호소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4년 이씨의 변호인으로 활동한 ‘원로 정치인’ 박찬종(80) 변호사는 24일 서울신문에 “이씨가 당시 강원도 원주 별장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김 전 차관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해도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은 윤씨에게서 공간적으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라며 “윤씨의 노예나 마찬가지였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의 이런 주장에 대해 2013년 피해자 이씨를 수차례 조사한 경찰도 공감했다. 이 경찰관은 “이씨가 윤씨의 꼭두각시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았다”면서 “상습강요 혐의를 적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박 변호사와 담당 경찰관은 검찰이 이씨에게 ‘왜 원주 별장에서 탈출하지 않았느냐’, ‘왜 그때 고소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친 것은 이씨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윤씨가 권총으로 협박하는 등 이씨가 갇혀 있던 곳은 폭력성과 강제성 그 자체였다”고 강조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수행비서 김지은씨가 성폭행을 당한 뒤에도 안 전 지사가 담배를 사오라고 하면 안 사올 수 없었던 것처럼 이씨도 윤씨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피해 여성들은 경찰 조사에서 윤씨가 성관계를 강요하는 등 상상도 못할 행위를 한 뒤 여성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6년 6~7월쯤 모델 활동을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윤씨를 알게 된 이씨도 같은 수법에 걸려든 것으로 보인다. 경찰 대질 신문 과정에서도 피해 여성들은 윤씨 근처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등 극도의 두려움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찰은 윤씨의 폭행, 협박에 대해서는 피해 여성들의 진술만 있었기 때문에 윤씨의 범죄 사실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씨가 윤씨로부터 벗어나려고 한 것은 1년 7개월가량 지난 2008년 초쯤이다. 김 전 차관이 이씨와 성관계하는 모습이 이씨의 의사에 반해 촬영된 직후로 알려진다. 하지만 윤씨는 이씨를 순순히 놓아 주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씨가 이씨의 나체 사진을 이씨 가족에게 보내는가 하면,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협박도 했다고 한다. 2013년 ‘김학의 동영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수사가 시작됐지만, 이씨는 한동안 변호인 조력을 받지 못했다. 검찰의 무혐의 처분 이후 이씨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어하자 이씨의 부친이 평소 알고 지내던 박 변호사 측근에게 부탁해 박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박 변호사가 등장하자 김 전 차관 측이 지인을 통해 박 변호사를 회유한 정황도 포착됐다. 당시 박 변호사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정기 출연하고 있었는데, 다른 출연자인 대학교수가 박 변호사에게 김 전 차관과 관련해 “각별히 부탁드린다”며 “앞으로 잘 봐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그 자리에서 대학교수에게 “나한테 그런 노력을 하지 말고 이씨 앞에 가서 ‘무릎을 꿇으라’고 (김 전 차관에게) 전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 변호사는 “김 전 차관이 떳떳했다면 교수를 통해 ‘절대 그런 일은 없었다’고 했을 텐데 그런 취지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 수사팀 관계자는 “2013년에는 이씨의 피해 사실에 상습 강요와 불법 촬영 혐의만 적용됐지만, 이씨가 윤씨에게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김 전 차관이 인지한 상태에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이 입증된다면 특수강간(공소시효 15년) 혐의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서울광장] 친일 커밍아웃/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친일 커밍아웃/박록삼 논설위원

    돌아본다. 전두환씨가 지난 11일 광주지방법원 현관을 들어서며 버럭 내뱉은 “이거 왜 이래?”라는 고함은 일종의 ‘행동 개시 신호’였나.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는 등 각종 5·18 망언을 선동한 자유한국당 일부 세력은 내심 불안했을 상황이었다. 지난 겨우내 추위와 미세먼지 속에서도 태극기와 성조기 손에 든 채 주말, 주중 가리지 않고 ‘박근혜 석방’을 외쳐 온 이들이 확고한 지지자들이나 이 노령의 극우세력을 기반으로 정치적 확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지난달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뉴페이스인 ‘황교안 전 총리’가 당대표가 되었다. 여러 주요 당직도 ‘강성 우파’가 거머쥐었다. 5·18 망언에 대해 당내 징계를 넘어서 의원직 제명까지 하라는 국민의 요구는 드높지만, 한국당은 아예 국회 윤리위 파행을 유도하고 있다. 당내 징계야 솜방망이로 시늉만 내도 되겠지만, 국회는 그렇지 않은 탓일 게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 인상, 물가 상승, 청년실업 등 경기 체감도가 좋지 않다. 또 고맙게도 정부 여당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헛발질도 해줬다. 촛불 정부에 거는 개혁의 기대감이 너무 큰 탓이었는지 안팎에서 크고 작은 비판이 쏟아졌다. 그 반사이익 덕도 톡톡히 보고 있다. 게다가 이 정부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인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뭔가 삐그덕댄다. 그래도 모를 일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전격 종전선언·비핵화 빅딜을 이뤄 내기라도 한다면 회복하기 어려운 ‘악몽 같은 정치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실로 건곤일척의 비상한 정국이었다. 그때 39년 전 쿠데타를 진두지휘했던 주역이 광주를 찾았다. 치매니 독감이니 핑계대며 버티다가 끌려가다시피 광주의 법정에 서게 됐다. 광주가 어떤 곳인가. 1980년 학살의 시간과 공간의 기억 속 총칼로 정치권력을 얻어 낸 상징의 공간이자 이념 전쟁의 최전방 현장과도 같은 곳이다. 거기서 그가 보여 줄 몸짓 하나, 말 한마디는 향후 판세를 가늠할 중요한 변수였다. 게다가 알츠하이머로 제정신이 아니라니 혹시나 국민과 역사 앞에 참회하는 뜻이라도 내비치면 보수 세력 결집은커녕 자칫 지리멸렬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였다. 아니, 지만원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시 ‘영웅’이었다. 구차한 쭈뼛거림 따위는 전혀 없었다. 이렇게 국정농단에 대한 거센 국민적 저항과 촛불 정국, 그리고 대통령 탄핵 및 대선 패배를 거치며 2년 남짓 웅크려 있던 보수 대반격의 신호탄이 쏴 올려졌다. 총공세는 거침없었다. 그다음날인 12일 나경원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김정은 수석대변인” 운운한 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14일 최고위원회 회의와 15일 의원총회에서 나 원내대표는 잇따라 자신들의 정체성을 과감히 드러내는 커밍아웃을 했다. “해방 후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분열했다”는 발언은 해방 이후 이승만 자유당으로 시작해 공화당-민정당-민자당 등으로 이어지는 자유한국당의 정체성과 뿌리를 드러냈다. 그 정체성과 뿌리의 본질은 ‘보수’가 아니다. 바로 친일이자 극우다. ‘반민특위 발언’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친일 부역자들과 야합해 만든 정당의 후신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커밍아웃이었다. 진짜 보수는 사상적 가치, 역사적 연원을 따지면 친일, 친미 등 외세 의존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예컨대 백범 김구를 보자. 그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수 정치인이자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그러나 외세의 간섭과 분단을 막고자 공산주의자의 본진인 평양으로 건너갔다. 지켜야 할 가치와 질서를 지키는 것, 그게 보수다. 나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제2, 제3의 개성공단 및 남북 자유무역협정(FTA)을 모색해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때와 지금, 어느 쪽이 진짜인가. 나 원내대표의 ‘사이다 발언’ 혹은 ‘커밍아웃’ 덕인지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30%를 넘는 고공행진을 연일 거듭한다. 지난해 12월 여야 5당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합의를 가볍게 뒤집은 것도 자신감의 발로다. 나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국회 연설에서 이렇게 물었다. “북한 체제에 비판적인 사람은 친일파인가?” 그 물음에 답한다. “북한 체제에 비판적이어서 친일파라 부르는 게 아니다.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등지고 자신의 이익과 영달을 위해 일제의 식민지배에 적극 협조했고, 해방된 나라에서 반성하지 않은 채 식민의 폐해를 외면하기 때문에 친일파라 부르는 것이다.” youngtan@seoul.co.kr
  • 이희진씨 부모 살해 피의자, 동생 만나 추가범행 시도 의혹

    “범행 털어놓고 사죄하려 했다” 주장 부모 살해 혐의는 공범들에 떠넘겨 ‘청담동 주식 부자’로 알려진 이희진(33·수감 중)씨 부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34)씨가 범행 직후 이씨의 동생을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김씨에게 추가 범행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김씨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 안양동안경찰서 등에 따르면 피의자 김씨는 범행 며칠 후 이씨의 동생을 만났다. 김씨는 숨진 이씨의 어머니 행세를 하며 이씨의 동생에게 “내가 잘 아는 성공한 사업가가 있으니 만나보라”는 내용의 카카오톡을 보내 자신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김씨 측은 김씨가 죄책감에 이씨의 동생을 만나 범행을 털어놓고 사죄하려 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경찰은 김씨가 이씨의 동생에게 사업을 제안하며 추가 범행을 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김씨는 전날 조사에서 달아난 공범들이 피해자들을 살해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김씨는 “집에 침입해 피해자들을 제압하는데 저항이 심해 공범 중 한 명이 이씨의 아버지에게 둔기를 휘둘렀고 어머니 목을 졸랐다”고 주장했다. 또 빼앗은 5억원 중 일부도 공범들이 돈가방에서 멋대로 가져갔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씨가 공범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것일 수도 있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범행 이후 공범들이 현장을 빠져나간 뒤 김씨가 뒷수습을 위해 불러 현장에 왔던 A씨 등 한국인 2명은 김씨와 직접적인 친분은 없는 김씨 친구의 지인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중국 동포인 공범 3명을 고용해 지난달 25일 안양시 이씨 부모의 자택에서 아버지(62)와 어머니(58)를 살해하고, 5억원이 든 돈가방을 강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가 고용한 공범들은 범행 직후 중국 칭다오로 출국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민족대표 33인 중 친일 변절 3명 뿐… ‘3·1운동 리더’ 인정받아야

    민족대표 33인 중 친일 변절 3명 뿐… ‘3·1운동 리더’ 인정받아야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정춘수(1873~1953)는 1919년 3·1운동 직후 일본 경찰에 체포된 뒤 일본인 검사의 취조에 이렇게 말했다.“나는 한일합병에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1910년 합병 당시 기대했던 ‘내선 융화’(일본과 조선이 하나가 돼야 한다는 정책)가 잘되지 않았던 것이 유감이었을 뿐입니다.” 그는 두 달 뒤 열린 재판에서도 “자치권을 달라고 청원하는 것에 찬성한 것이지 (일본에 대한) 독립 선언은 내 의사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정춘수는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아 1921년 5월 출옥했다. 이후 감리교 목사로 활동하며 갖가지 친일 행각을 서슴지 않았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그를 체포했다. 지금도 정춘수는 우리 역사에서 ‘변절한 민족대표’로 거론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난무한다. 바로 정춘수 같은 이들 때문일 것이다. “민족대표들이 3월 1일 독립을 선언하는 엄중한 자리에서 술판을 벌였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상당수가 친일파로 돌아섰다”, “33인은 3·1운동 시위에 직접 나서지 않았기에 진정한 의미의 민족대표가 아니다”라는 얘기도 나온다. 유명 역사강사 설민석씨가 “민족대표들이 룸살롱에서 술판을 벌였다”고 발언한 것은 바로 이런 생각을 대변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과연 사실일까. ●33인은 왜 모두 종교인 뿐일까? “3·1운동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이 물음에 국민 대다수는 유관순을 꼽는다. 일부는 김구나 이승만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민족대표 33인을 언급하는 이는 거의 없다. 당시 이들의 인지도를 감안할 때 33인을 진정한 의미의 민족대표로 보기 어렵다는 회의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이들은 모두 종교인이었고, 자신의 종교 밖에서는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학계는 “당시 우리 사회 사정을 잘 살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치·사회적으로 일제의 강압통치가 심해지던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모여 의사를 주고받을 수 있었던 분야는 종교계가 거의 유일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사학자인 윤경로 한성대 명예교수는 20일 “3·1운동 준비 당시에는 고관대작을 지낸 유명인사를 민족대표로 섭외하려고 했다.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으로 명성이 높았던 박영효(1861~1939)와 구한말 대신 출신 한규설(1856~1930), 당대 최고의 개화지식인 윤치호(1865~1945) 등이었다”며 “하지만 이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민족대표 자리를 수락한 이가 없었다. 결국 종교인들이 자기희생의 정신으로 직접 나선 것”이라고 밝혔다. 윤 교수는 “당시 이들은 지체가 높지도 않았고 특별한 명성도 없었다. 한 명도 예외 없이 평민 출신이었다”고 강조했다. 기득권 계층이 자신의 안녕을 챙기느라 민족대표 맡기를 거부하자 보통 사람들이 조선 독립에 목숨을 바치겠다고 스스로 나선 것이다. 이는 ‘민(民)이 주도한 혁명’이라는 3·1운동의 성격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민족대표 33인은 진짜로 친일파가 됐나? 민족대표 가운데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인물은 최린(1878~1958)과 박희도(1889~1952), 정춘수 등 세 사람이다. 김창준(1890~1959)은 독립유공자 서훈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이는 해방 뒤 월북한 탓이지 친일 행각 때문은 아니다. 33인 가운데 상당수가 친일파로 돌아섰다는 세간의 주장은 지나친 과장이다. 설민석 강사와 민족대표33인유족회 간 소송을 담당한 재판부도 “세 명을 제외한 나머지 민족대표들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온 뒤에도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적어도 친일 반민족 행위로 평가받을 일은 하지 않고 지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민족대표들이 친일행각에 나섰다는 인식이 퍼진 데에는 훗날 친일파가 된 최남선(1890~1957)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그는 33인에 이름을 올리진 않았지만 3·1 독립선언서를 직접 썼기에 존재감이 남달랐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최남선이 ‘나는 평생 학자로 살고 싶다’며 독립선언서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천도교 측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윤 전 총장은 “33인 가운데 훗날 두세 명 정도가 변절했다. 이것만으로 민족대표 전체를 싸잡아 폄하·매도해서는 안 된다. 이는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3·1정신을 흐리게 하는 자해행위”라고 지적했다. ●태화관은 정말로 ‘룸살롱’이었나? 3월 1일 독립선언식은 서울 종로의 음식점인 태화관에서 열렸다. 하필 기생이 나오는 요릿집에 모인 걸까. 이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역사의 시계를 3·1운동 하루 전인 1919년 2월 28일로 돌릴 필요가 있다. 애초 독립선언 장소는 종로의 파고다공원(탑골공원)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민족대표들은 선언식 장소를 돌연 태화관으로 바꿨다. 공원에서 민족대표들이 연행될 경우 이를 지켜보던 학생들이 일본 경찰을 제지하려다가 유혈 사태가 생겨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민족대표 33인의 비폭력 투쟁 노선이 거사 장소 선택에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1919년 2월 28일 사전 제작돼 3월 1일 뿌려진 ‘조선독립신문’ 1호에는 “오후 2시 경성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했으며 대표들은 종로경찰서에 끌려갔다”고 적혀 있다. 이미 거사 전날부터 민족대표들이 폭력 시위를 피하고자 자수할 계획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연구위원은 “탑골공원 인근에서 30명이 넘는 인원이 비밀리에 모일 수 있는 곳을 급히 찾다 보니 자연스레 태화관으로 정해진 것”이라며 “태화관은 요즘으로 치면 호텔과 같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도 “무사히 선언식을 마치려면 실내에서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따른 것일 뿐 (기생집을 선언 장소로 택한 것에 대해) 그 이상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은 무리”라고 덧붙였다. ●만세 운동 주도 못한 이들이 진짜 민족대표? 민족대표 33인의 역할을 부정하는 이들은 “3월 1일 독립선언 직후 이렇다 할 저항도 하지 않고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연구자는 “민족대표 가운데 일부는 조선의 독립보다는 자치권 확대와 총독부의 지배방식 개선을 목표로 했다고 말했다”면서 “이처럼 일제와 타협하려는 듯한 어설픈 리더십으로는 당시 조선인들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33인의 재판 내용을 살펴보면 “소란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독립선언과 폭동은 관계가 없기에 나에게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요즘 말로 ‘유체이탈 화법’에 해당하는 실망스러운 태도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학계에서는 민족대표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다. 3·1운동 대표로 나서면 곧바로 체포돼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뛰어들었고, 3·1운동이 전국으로 퍼지는 데 이들의 역할이 상당했다는 설명이다. 김정인 춘천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일본의 엄혹한 통치가 이뤄지던 때 33인은 3·1운동의 기획자이자 기폭제로서 큰 역할을 했다”면서 “3·1운동 첫날 서른 곳 가까운 도시에 독립선언서가 배포됐다. 이것만 봐도 민족대표들은 시위의 전국 확산을 염두에 두고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주용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는 “3·1운동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올린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민족대표는 3·1운동의 리더로서 충분히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고 덧붙였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안희정에 ‘거짓 증언’ 고소당한 김지은 측 증인 무혐의 결론

    안희정에 ‘거짓 증언’ 고소당한 김지은 측 증인 무혐의 결론

    지위를 이용해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측이 ‘모해위증’(모해할 목적으로 허위진술)으로 고소한 김지은 측 증인에 대해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20일 “1심에서 안 전 지사 측이 검찰 측 증인에 대해 모해위증으로 고소한 사건에 대해 ‘혐의없음’ 결과가 최종 통지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9일 안 전 지사의 1심 재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 나온 구모씨는 안 전 지사의 경선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한 바 있다. 구씨는 “안희정 전 지사가 언론사 간부에게 전화해 (자신과 관련한) 기사를 막아주면 부인 민주원 여사 인터뷰를 잡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증언했다. 또 “언론사 간부가 실제로 기자에게 기사를 쓰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기자의 저항에 부딪혀 결국 기사가 나갔다”고 덧붙였다. 이에 안 전 지사 측 변호인은 “안 전 지사에게 사실이 아님을 확인했다”면서 서울서부지검에 구씨를 모해위증 혐의로 고소했다. 공대위는 “피해자를 위해 증언한 조력자에 대해 안희정 지지자 등은 악성 댓글과 실명 및 직장 유포 등 공격을 지속해왔다”며 “전형적인 역고소 공격, 모해위증 고소, 댓글 공격, 언론을 통한 피해자에 대한 허위 이미지 만들기 등은 위력의 다른 형태들”이라고 지적했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안 전 지사는 항소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법정구속 됐다.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공범 3명에게 혐의 떠넘긴 이희진 부모 살해 피의자

    공범 3명에게 혐의 떠넘긴 이희진 부모 살해 피의자

    이희진 부모살해 피의자 김모씨 “내가 안 죽였다”공범 3명에게 혐의 떠넘겨…구속여부 오후 결정‘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33) 씨의 부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가 취재진의 쏟아지는 질문에 “제가 안 죽였습니다”라고 주장했다. 20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 출석을 위해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를 나온 김모(34)씨는 차량 판매대금 5억원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는지, 이희진 씨와 피해자 부부와 아는 사이인지 등을 묻는 말에 “제가 안 죽였습니다. 억울합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이미 도주한 공범 3명에게 범죄 혐의를 떠넘긴 것이다. 김씨가 살해 혐의를 부인함에 따라 실제 범행 여부는 수사기관의 정밀 감식 등을 통해 확인해야 할 전망이다. 점퍼로 머리부터 어깨까지를 덮어 얼굴을 완전히 가린 김씨는 경찰서를 나온 지 1분도 채 안 돼 경찰 호송차에 올랐다. 김씨는 중국 교포인 공범 A(33)씨 등 3명을 고용해 지난달 25일 오후 안양시 소재 이씨 부모의 아파트에서 이 씨의 아버지(62)와 어머니(58)를 살해하고, 5억원이 든 돈 가방을 강탈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전날 경찰 조사에서 “집에 침입해 피해자들을 제압하려는데 피해자들의 저항이 심했고 그때 갑자기 옆에 있던 공범 중 한명이 남성(이 씨의 아버지)에게 둔기를 휘두르고 여성(이 씨의 어머니)의 목을 졸랐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며 나는 죽이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 피해자들에게서 빼앗은 5억원 중 공범들이 가져간 돈도 자신이 고용한 대가로 지급한 형식이 아닌 공범들이 앞다퉈 돈 가방에서 멋대로 돈을 가져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범행의 계획은 자신이 세웠을지 몰라도 착수 과정에서는 공범들이 주도했다는 식으로 진술한 셈이다. 김씨는 이씨 아버지에게 2000만원을 빌려줬으나 돌려받지 못해 범행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에 경찰은 강도살인 혐의를 적용해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이날 오전 10시 30분 수원지법 안양지원에서 열린다. 구속 여부는 오후에 결정될 전망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이희진 부모살해 피의자 “나는 아니고, 공범들이 죽였다”

    이희진 부모살해 피의자 “나는 아니고, 공범들이 죽였다”

    ‘청담동 주식 부자’ 이희진(33) 씨의 부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주범격 피의자가 달아난 공범들이 피해자들을 살해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는 피의자 김모(34)가 전날 조사에서 이같이 주장했다고 20일 밝혔다. 김씨는 “집에 침입해 피해자들을 제압하려는데 피해자들의 저항이 심했고 그때 갑자기 옆에 있던 공범 중 한명이 이씨의 아버지에게 둔기를 휘둘렀고 어머니 목을 졸랐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우발적으로 벌어진 일이며 나는 죽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피해자들에게서 빼앗은 5억원 중 공범들이 가져간 돈도 자신이 고용한 대가로 준 것이 아니며, 공범들이 앞다퉈 돈 가방에서 멋대로 돈을 가져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범행의 계획은 자신이 세웠을지 몰라도 착수 과정에서는 공범들이 주도했다는 취지의 진술했다. 김 씨는 20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 출석을 위해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를 나오면서도 “제가 안 죽였습니다.억울합니다”라고 항변했다. 그는 자신의 살인 혐의를 부인한 뒤 진술을 거부하는 등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경찰은 김씨가 공범들이 달아난 것을 이용해 이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는 것일 수도 있어 모든 가능성을 갖고 수사하고 있다. 범행 이후 공범들이 현장을 빠져나간 뒤 김 씨가 뒷수습을 위해 불러 현장에 왔었던 A 씨 등 한국인 2명에 대한 조사도 전날 진행했다. 이들은 김씨 친구의 지인으로 당시 김 씨는 친구에게 “싸움이 났는데 중재해달라”며 도움을 요청했고 사정이 여의치 않아 현장에 갈 수 없었던 김 씨의 친구가 자신의 지인들에게 대신 가달라고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김 씨와는 일면식도 없던 A씨 등이 현장에 갔고 이들은 쓰러져 있는 피해자를 보고선 단순한 싸움 중재가 아니라고 판단, 김 씨에게 신고를 권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전날 A 씨 등에 대한 참고인 조사에서 이러한 내용의 진술을 받았다. 앞으로 김씨를 상대로 자세한 범행동기 등을 수사하고 달아난 공범 3명을 검거하기 위해 국제공조를 진행할 예정이다. 경찰은 김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구속 여부는 이날 오후 결정될 예정이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왜 군화를 혀로 핥지? ‘lame suela’의 정확한 맥락 알려주세요

    왜 군화를 혀로 핥지? ‘lame suela’의 정확한 맥락 알려주세요

    19일 출근하며 서울신문 국제면을 펼쳐 보다 당혹스러웠다. 웬 여성이 벌건 대낮에 남의 군화를 혀로 핥고 있어서다. 베네수엘라 예술가 데보라 카스티요가 17일(이하 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파울리스타 거리에서 ‘라메 주엘라(Lamezuela)’란 제목의 행위예술을 선보이는 도중 경찰과 정치인, 군인으로 분한 세 명의 남성이 신고 있는 신발들에 혀를 갖다대 핥은 것이다. 라메 수엘라(lame suela·부츠를 핥는 사람)란 스페인어권 관습에다 고국인 ‘베네주엘라(Venezuela)’를 갖다붙여 살짝 비튼 것이었다. 제6회 상파울루 국제연극제에 참여한 카스티요는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의 전체주의와 억압을 폭로하고자 하는 것이 이날 공연의 목적이었다. 그런데 라메 수엘라의 원래 뜻, 남의 신발을 혀로 핥는 행위가 무얼 의미하고 무얼 정확히 겨냥하는지가 궁금했다. 인터넷 서핑을 해봤다. 스페인어 사전을 들춰보는 게 가장 좋은 방안이지만 기자가 스페인어를 모르니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영어로 부츠를 핥는 사람이란 뜻의 ‘bootlicker’를 검색하니 두 가지 뜻으로 풀이된다. 첫째는 남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이, 둘째는 자존감 따위는 없는 것처럼 구는 사람이란 설명이다.스페인어를 구사하는 이들의 문화에서 이런 풍자와 조롱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고 싶었지만 능력 부족으로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이슬람권에서는 종종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견해를 피력하는 정치인, 심지어 조지 W 부시 미국 전 대통령을 향해서도 신발을 투척하는 행위가 보도되지만 그에 견줘 신발이 똑같이 등장하는 이 풍자는 정반대되는 의사표현 방법으로 여겨진다. 둘째 풀이는 한나라 고조가 되는 유방의 가랑이 일화와도 일맥상통해 보인다. 확장된 의미로는 개인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입에 발린 말을 하는 사람, 다시 말해 아첨꾼(toader)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포털 야후!를 통해 영어 문서나 뉴스 등을 검색하는 것으로는 라메 수엘라의 정확한 맥락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풍자나 조롱의 뜻이라면 구체적으로 이 행위가 시위나 저항의 의사 표현으로 기능한지를 알고 싶었다. 스페인어와 문화에 정통한 이들의 조언을 기다릴 따름이다. 한편 베네수엘라 정국은 혼돈이 걷힐 조짐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사회보장청장 출신 카를로스 로톤다로 육군 장군이 콜롬비아로 망명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소식통들을 인용해 18일 보도했다. 로톤다로 장군은 콜롬비아로 몰래 달아난 뒤 먼저 망명해 마두로 정권 퇴진 운동을 이끄는 루이사 오르테가 전 검찰총장 측에 합류했다고 한 소식통이 전했다. 또 콜롬비아 외교부는 지난달 이후 베네수엘라 군경 약 1000명이 탈영해 자국으로 입국했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중국 등의 지지를 받는 마두로 대통령은 미국이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앞세워 쿠데타를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군부의 지지를 토대로 여전히 국가기관을 통제하고 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새끼를 지키기 위해…어미 다람쥐, 독수리에 반격

    새끼를 지키기 위해…어미 다람쥐, 독수리에 반격

    거대 독수리에 용감하게 맞서는 다람쥐가 포착됐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덩치 차이가 큰 독수리와 다람쥐의 대결은 지난 주 한 야생 사진작가의 카메라에 담겼다. 17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은 미국 북동부 메인 주 링컨 지역의 한 나무에서 독수리의 공격을 받은 다람쥐가 새끼를 지키기 위해 맹렬하게 저항했다고 전했다. 몇 권의 책도 펴낸 프로 사진작가 로저 스티븐스 주니어(60)는 “그런 광경은 처음 봤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아내 줄리와 반려견 로지와 함께 노후를 보내고 있는 로저는 “이전에 너무 많은 장면을 놓쳤기 때문에 지금은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면서 “독수리를 발견한 곳은 내가 로지와 산책할 때 항상 지나는 곳”이라고 말했다.평소 보기 드문 독수리가 먹이를 찾는 듯 죽은 나무에 걸터앉아 있자 로저는 곧바로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그 순간 그의 프레임 속으로 다람쥐 한 마리가 들어왔다. 로저는 “독수리가 있는 곳에 제발로 굴러들어가다니 다람쥐가 죽고 싶은건가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저는 곧 다람쥐가 나무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는 어미 다람쥐라는 것을 알고 독수리와의 대결을 주시했다. 로저는 “회색 다람쥐는 독수리가 나무에 걸터앉은 상태라 발톱을 사용하지 못하고 부리를 이용해야만 하는 것을 깨달은 듯 계속해서 독수리를 향해 찍찍거리며 도발했다”고 설명했다. 다람쥐를 먹잇감으로 생각했던 독수리는 예상치 못한 다람쥐의 반격에 결국 사냥을 포기하고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로저는 “이제 나는 사람들이 ‘네가 찍은 가장 위험한 동물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그게 무엇이든 새끼가 있는 어미라고 대답한다”며 독수리에 맞선 어미 다람쥐에 경의를 표했다. 이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이 지방 소도시로 시골에 속하지만 근래 들어 독수리를 볼 기회가 줄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제 네다섯 쌍의 독수리만이 마을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음 책은 대머리 독수리에 관한 내용일 것”이라며 독수리의 개체 감소에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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