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저항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논쟁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올리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선원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 졸업
    2026-04-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7,917
  •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이사장 송기인)은 오는 17~18일 경남 창원시 경남대학교와 부산 벡스코에서 ‘1979 부마민주항쟁을 기억하다’라는 주제로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고 14일 밝혔다.국제학술대회는 이틀간 국내외 전문가 및 일반시민 약 200여명이 참여하는 가운데 한영 동시통역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학술대회에 참석하는 국내외 학자 및 전문가 20여명은 부마민주항쟁 발생의 국제적 배경과 국내 정치경제상황, 지역 저항세력의 동향 등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부마민주항쟁이 오늘날 한국 민주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활발한 토론을 한다. 재단측은 산업화와 독재의 상호관계, 지역사회와 저항세력, 부마항쟁 이후 지역 민주화운동의 전개 등에 대한 폭넓은 토론을 통해 부마민주항쟁 연구의 지평을 넓히고 부마민주항쟁이 한국 민주주의운동사에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학술대회는 17일 오후 1시 경남대 창조관 평화홀에서 송기인 재단 이사장의 개회사로 시작한다. 전하성 경남대 부총장이 환영사, 홍순권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 위원장과 김지수 경남도의회 의장, 문승욱 경남도 부지사가 축사를 한다. 첫날 ‘부마항쟁의 의의와 한국 민주화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주제로 안병욱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이 기조발제를 하고 1세션 ‘1970년대 한국의 산업화와 반독재 민주화: 동아시아 국가사례 비교’를 주제로 4개 발표가 이어진다. ●분단 한국의 유신체제 중화학공업화와 반유신 부마항쟁(서익진 경남대 교수), ●전후 대만 경제발전과 정치적 민주화와의 관계(린 원카이 대만중앙연구원), ●남북한 체제경쟁과 북한 사회주의 방식 산업화의 운명(박순성 동국대 교수), ●베트남전쟁의 한국군 참전(1964~1973)에 관한 재해석: 내부자 관점을 중심으로(김종욱 청운대 교수) 등의 발표와 토론이 진행된다. 18일 오전에는 2세션 ‘1970년대 지역사회와 부마항쟁’을 주제로 ●동아시아 질서의 변동과 한미갈등(정근식 서울대 교수), ●유신체제하 대학생 통제와 부산·마산지역 대학생의 동향(오제연 성균관대 교수) 등의 발표와 토론이 열린다. 오후에는 3세션 ‘지역의 민주화운동 역사, 그리고 저항의 역량’이라는 주제로 ●지역 정치과정에서 활용되는 부마민주항쟁(이은진 경남대 교수), ●5·18민중항쟁의 유산과 새로운 사회구성(최정기 전남대 교수), ●역사적 기억 상실이 가져오는 민주주의 부재의 국가: 태국 사례를 중심으로(수드랏 무시카왕 태국 마히돌대학교) 등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 주제발표가 끝나면 이은진 경남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아 발표 주요 내용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종합토론을 진행한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서도 오는 19일 벡스코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주제로 부마민주항쟁 4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학술대회에는 관심있는 시민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중국의 미래를 결정한 시안사변(西安事變)

    중국의 미래를 결정한 시안사변(西安事變)

    70년 전인 1949년 10월 1일, 중국공산당 (이하 중공) 중앙위원회 위원장인 모택동(毛澤東)이 북경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의 성립을 선포함으로써 중국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 후 중국은 복잡한 역사를 거쳤으며 중국공산당의 지도 밑에 경제적으로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초강대국이 되어가고 있다. 중공의 당사(黨史) 연구자들도, 중국근현대사 연구자들도 중국혁명 승리의 뿌리는 중국의 역사를 완전히 바꾼 1936년 12월에 발생한 ‘시안사변’에 있다고 간주한다. 이번에는 중공에 의한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을 기념하면서 이 사건의 배경과 경과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중국공산당은 당시 공산주의운동을 지도했던 국제조직인 코민테른의 대표 2명이 참여한 1921년 7월 1일 제1차전국대표대회에서 창건되었다. 유럽혁명의 실패 후 소련과 코민테른은 민족 및 식민지문제에 관한 결의를 채택하면서 중국, 조선 등 제국주의 열강의 압박에 대항하는 동양민족 공산당들에게 사회주의혁명 대신 민족해방운동에 전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내전을 겪어 큰 피해를 입은 소비에트 러시아는 열강에 의한 국제적 봉쇄를 돌파하기 위해 중국의 국민혁명을 통해서 통일을 목적으로 했던 국민당의 당총리인 손문(孫文)과 관계를 맺었다. 만일 공산당원들의 국민당 가입을 허가하면 군사·정치적 지원을 제공할 것을 제안하였으며, 손문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것은 바로 제1차 국공합작이다.소련의 지원을 받은 국민당은 국민혁명군을 창설하고 중국의 무장통일을 위해 북벌(北伐)을 진행하였다. 하지만 손문은 1925년에 죽었다. 그 후계자인 장개석(蔣介石)은 극우파로 공산당원들을 숙청해야 할 내부의 적으로 보았다. 때문에 1927년 4월 상해를 점령한 장개석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국민혁명군과 함께 중국통일을 위해 싸웠던 노동자들로 구성된 소부대들을 무장해제시키고 잔인한 숙청을 단행했다.결국 국민당의 배신을 당한 중공은 국민당에 대해 혁명적 공세를 결정하고 남창폭동(南昌暴動) 등을 일으키면서 공산당 무력조직인 홍군(紅軍)을 창설하였다. 그 후 중공은 혁명근거지를 중심으로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을 설립하고 국민당과의 투쟁을 전개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을 통한 일본의 중국침략에도 불구하고 안내양외(安內攘外)정책을 선포한 장개석은 대일저항을 사실상 포기하고 중공에 대한 토벌을 고수했다. 1933~34년 독일 군사고문의 지도를 받은 장개석의 군대는 코민테른 군사고문의 잘못된 전략을 이용하여 대부분의 혁명근거지를 없애는 데에 성공했으며, 중공은 모택동을 따라 장정(長征)을 실시하고 심각한 병력피해를 입으면서 중국 북부에 있는 연안(延安)이라는 지역으로 도피했다. 연안에 도달한 중공은 항일전쟁을 계속 호소하면서 1936년에 그 정권의 명칭을 중화소비에트인민공화국으로 변경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이란 국명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이때 국민당 내부에 일제의 위협을 무시하고 중공 소멸에만 집중하던 장개석의 정책을 반대하고 중공을 동정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었다. 결국 연안 지역에서 중공 토벌이 맡긴 장학량(張學良)과 양호성(楊虎城)이 일제 침략이라는 상황에서 내전의 무의미함을 깨달아 공산당과 연락을 취하면서 정전했으며 장개석의 정책을 바꾸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 중공과 손잡고 대일전쟁의 준비에 나선 장학량은 대화를 통해서 내전보다 항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장개석에게 몇 개월 동안 설명하고자 했으나 장개석은 귀를 기울이지 않고 공격을 계속하라고 지시하였다. 1936년말, 장개석은 공격을 강행하기 위해 시안에 도착했다. 장학량과 양호성이 장개석을 다시한번 설득해봤으나 장개석은 즉시 공격하지 않으면 그들의 군대를 남부로 보내고 대신 중앙군대를 파견하겠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 장과 양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되어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심했다.12월 12일 오전 5시, 장학량 친위대가 장개석을 체포하려고 그가 머물렀던 별장을 급습했다. 장개석은 잠옷을 입고 맨발인 채 별장에서 나가 도망치려고 했으나 오전 9시에 잡혔다. 반란군 사령부에 호송 후 장학량은 8개의 조건을 내세우고 내전을 중지하고 항일에 나설 것을 요구했으나 장개석은 압박 하에서 아무 타협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것은 힘으로라도 장개석을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장학량과 양호성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같은 날 저녁, 장학량은 중공 중앙위원회에게 전보를 보내 상황을 설명했다. 중공은 긴급회의를 열어 장개석 문제의 해결 방법을 논의했다. 이 회의의 기록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지만, 그 회의에 참석했던 장국도(張國燾) 중공중앙위원의 회의록에 따르면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 중공중앙 책임자들 중에 시안사변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우리는 장개석을 살려주면 향후 큰 화를 초래할 수 있다(養癰遺患)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공개 재판을 통해 그 반공분자를 죽일 것을 주장했고, 어떤 사람은 그를 비밀리에 구금하고 인질로 삼아 남경으로 하여금 항일을 강요할 것을 주장했다.”하지만 중공 중앙위원회는 행동하기 전에 우선 교섭을 위해 주은래(周恩來)를 시안에 파견하고 코민테른의 의견을 확인하고 결정하기로 했고 모스크바에 전보를 보냈다. 소련과 코민테른에게 이 소식은 몹시 충격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잘 인식했던 소련의 지도부는 장개석을 죽이고 통일전선을 결성하지 못하면 아시아 전체가 일제의 지배에 들어가고 식민지 민족 해방은커녕 소련 자체가 독일과 일본의 양면침략을 당해 패망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장개석이 죽으면 국민당이 분열되고 대도시에서의 지지기반이 비교적으로 약한 중국공산당이 통일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스탈린은 그 소식을 받은 후 즉시 소련 정부 기관지인 ‘이즈베스티야’에 시안사변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장학량의 봉기’라는 기사를 발표할 것을 지시했고 12월 16일 코민테른 집행위원회 위원장 디미트로프가 중공에 시안사변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라는 전보를 보냈다. 재미있게도, 중공 당사(黨史) 교재에는 12월16일자 디미트로프의 전보는 암호에 문제가 있어 해독하지 못해서 재전송을 요구했다고 실려있다. 하지만 그 후 모스크바로부터 연락이 없어서 시안사변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운명적인 19일자의 결정을 모스크바의 지시에 의거해서 내려진 것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이 독립적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양규송(楊奎松) 등 중국 연구자들에 의해 중국문서보관소에서 시안사변을 비난하는 소련 신문기사의 내용이 17일에 중공에 알려졌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문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19일자의 결정은 소련의 영향을 받고 내려진 것으로 확인된다.이와 동시에, 중국에서의 상황은 급변하고 있었다. 장개석 구금의 소식을 받은 국민혁명군 장군 하응흠(何應欽)은 12월 16일 자신을 토벌군의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시안 부근에 대해 폭격을 실시했다. 이 폭격의 인명피해는 수백명에 달했다. 하지만 직접 시안에 가서 장학량과 만난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宋美齡)은 토벌 작전을 중지하도록 장개석을 설득했다. 긴장이 고조되어가는 상황에서 양측은 회담을 계속해 나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공 중앙위원회는 12월 19일 확대회의에서 시안사변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결정했고 장개석과의 대화를 본격적으로 지지했다. 흥미롭게도, 장학량과 양호성과의 대화를 거부하던 장개석은 소련이 창설한 황포(??)군관학교 총수 시절에 그 부하이었던 주은래와 대화를 시작했다. 결국 장개석은 중공이 그 정부와 홍군을 해산하고 국민혁명군에 들어가면 내전을 중지하고 통일전선을 결성하겠다고 약속했고 12월 26일에 석방된 후 비행기를 타고 남경(南京)으로 향했다. 약 반년 후인 1937년 7월 7일, 일본이 루거우차오 사건을 통해 중국에 대한 침략을 전면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하지만 이때 내전이 이미 중지되었고 제2차 국공합작이 형성되어 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유격대 전술에 능숙한 중공과 정규군을 가진 국민당은 통일전선을 결성하고 일본 침략에 맞설 수 있었다. 중국은 1945년 9월 2일에 승전국이 되었다. 하지만 전쟁과정에서 국민당과 중공 간의 모순이 완전히 해결되지 못해 내전이 재발하였고, 그 결과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었다.글 사진: 바실리 블라디미로비치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 공지영, 조국 장관직 사퇴에 “윤석열도 물러나자”

    공지영, 조국 장관직 사퇴에 “윤석열도 물러나자”

    조국 법무부 장관이 14일 취임한 지 35일 만에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내고 사직 의사를 밝혔다. 조국 장관을 지지하던 소설가 공지영은 이날 페이스북에 “검찰은 한 가족을 살해했다”면서 “자 이제 윤석열도 물러나자”라고 적었다. 공지영 작가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오늘 11시 검찰개혁안을 발표하고 1시 사이에 무슨 일인가, 일어난듯”이라고 했다. 공지영 작가는 그동안 검찰과 언론을 향한 비판과 함께 개혁을 촉구하며 조국 장관에게 힘을 싣는 글을 올려왔다. 조국 장관은 사퇴를 발표하며 “더는 제 가족 일로 대통령과 정부에 부담을 드려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며 “온갖 저항에도 검찰개혁이 여기까지 온 건 모두 국민 덕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 곁에 있으면서 위로하고 챙기고자 한다”며 “가족들이 자포자기하지 않도록, 그저 곁에서 가족의 온기로 이 고통을 함께 감내하는 것이 자연인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취임 이후 한 달여 동안 밀어붙인 검찰개혁에 대해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역사적 과제가 되었다. 어느 정권도 못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또 “온갖 저항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이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국민들 덕분”이라며 “국민들께서는 저를 내려놓으시고, 대통령께 힘을 모아주실 것을 간절히 소망한다”고 당부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여기는 남미] 멕시코 주민들, 공약 안지킨 시장 트럭에 묶고 ‘질질’

    [여기는 남미] 멕시코 주민들, 공약 안지킨 시장 트럭에 묶고 ‘질질’

    유권자들이 모두 이렇게 불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면 공약을 지키지 않을 정치인은 없을 것 같다. 멕시코에서 시청 공격사건이 발생했다. 시청으로 쳐들어간 유권자들의 목표는 현직 시장. 유권자들은 시장을 자동차에 묶고는 질질 끌고 다녔다. 멕시코 치아파스주의 라스마르가리타스에서 최근 벌어진 일이다. 산타리타인베르나데로에 사는 일단의 원주민 유권자들이 시청을 공격했다. 시청엔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었지만 성난 유권자들은 가볍게 제압하고, 시장 호르헤 루이스 에스칸돈을 사로잡았다. 죄인처럼 시장을 잡은 유권자들은 그를 밖으로 끌어냈다. 시청 정문 앞에는 픽업이 대기하고 있었다. 시장을 픽업 짐칸에 태우려 했지만 그가 결사적으로 저항하자 원주민들은 계획을 바꿨다. 시장의 두 손을 밧줄로 꽁꽁 묶더니 줄을 자동차에 묶어버린 것. 이 상태에서 픽업은 그대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순간 시장은 바닥에 쓰러지면서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서부시대에 응징할 누군가를 말에 묶고 달리는 장면을 연상케 했다. 상황은 시청에 설치된 CCTV에 고스란히 녹화됐다. 자칫 큰 부상을 당하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에서 시장을 구해낸 건 긴급 출동한 경찰. 다행히 시장은 크게 다친 곳 없이 구조됐다. 에스칸돈 시장은 "시장 집무실에 들이닥친 원주민들이 (나의) 한쪽 발을 잡고는 밖으로 끌어냈다"며 "이후 자동차에 묶고 달리는 린치를 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준비하고 온 사람들이었다"며 "모두 돈 때문에 벌인 짓"이라고 주장했다. 보조금을 받아내기 위해 자신을 납치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원주민들의 주장은 다르다. 원주민들이 화가 난 건 시장이 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산타리타인베르나데로는 원주민 120가구, 700여 명이 모여 사는 곳이다. 에스칸돈 시장은 선거 때 산타리타인베르나데로로 연결되는 길을 포장해주겠다고 했다. 전기를 넣어주고 상하수도도 놔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난 뒤 그는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 익명을 원한 한 주민은 "수개월 전부터 시장에게 공약 이행을 촉구했지만 답이 없었다"며 "시장이 원주민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까지 보이자 원주민들이 화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시장에게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원주민 11명을 체포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시청공격사건에 가담한 원주민은 약 50명이다.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조국 “검찰개혁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사퇴의 변 전문

    조국 “검찰개혁 위한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사퇴의 변 전문

    14일 오전만 하더라도 검찰의 특별수사부를 축소하고 장시간·심야조사를 제한하겠다고 발표한 조국 법무부 장관이 같은 날 오후 갑작스럽게 사퇴 의사를 밝혔다. 조국 장관은 “제 가족 일로 대통령과 정부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면서 “저의 쓰임은 다했다”고 밝혔다. 조국 장관은 이날 오후 “가족 수사로 인하여 국민들께 참으로 송구했지만, 장관으로서 단 며칠을 일하더라도 검찰개혁을 위해 마지막 저의 소임은 다하고 사라지겠다는 각오로 하루하루를 감당했다”면서 “그러나 이제 제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밝혔다. 조국 장관은 “저는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 역할에 불과하다.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라면서 “이제 저보다 더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 줄 후임자에게 바통을 넘기고 마무리를 부탁드리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국민 여러분께서 저를 딛고 검찰개혁의 성공을 위해 지혜와 힘을 모아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아래는 조국 장관의 사퇴의 변 전문.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법부무장관직을 내려놓습니다. 검찰개혁은 학자와 지식인으로서 제 필생의 사명이었고, 오랫동안 고민하고 추구해왔던 목표였습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기초한 수사구조 개혁”, “인권을 존중하는 절제된 검찰권 행사” 등은 오랜 소신이었습니다. 검찰개혁을 위해 문재인 정부 첫 민정수석으로서 또 법무부장관으로서 지난 2년 반 전력질주 해왔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유 불문하고, 국민들께 너무도 죄송스러웠습니다. 특히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가족 수사로 인하여 국민들께 참으로 송구하였지만, 장관으로서 단 며칠을 일하더라도 검찰개혁을 위해 마지막 저의 소임은 다하고 사라지겠다는 각오로 하루하루를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제 역할은 여기까지라 생각합니다. 지난 10월 8일 장관 취임 한 달을 맞아 11가지 ‘신속추진 검찰개혁 과제’를 발표했습니다. 행정부 차원의 법령 제·개정 작업도 본격화 됐습니다. 어제는 검찰개혁을 위한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계획을 재확인했습니다. 이제 당정청이 힘을 합해 검찰개혁 작업을 기필코 완수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제 검찰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역사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어느 정권도 못한 일입니다. 국민 여러분! 더는 제 가족 일로 대통령님과 정부에 부담을 드려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자리에서 내려와야, 검찰개혁의 성공적 완수가 가능한 시간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합니다.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온갖 저항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이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국민들 덕분입니다. 국민들께서는 저를 내려놓으시고, 대통령께 힘을 모아주실 것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검찰개혁 제도화가 궤도에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이제 저보다 더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 줄 후임자에게 바통을 넘기고 마무리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온 가족이 만신창이가 되어 개인적으로 매우 힘들고 무척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검찰개혁을 응원하는 수많은 시민의 뜻과 마음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 곁에 있으면서 위로하고 챙기고자 합니다. 저보다 더 다치고 상처 입은 가족들을 더 이상 알아서 각자 견디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특히 원래 건강이 몹시 나쁜 아내는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지탱하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 곁에 지금 함께 있어주지 못한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습니다. 가족들이 자포자기하지 않도록, 그저 곁에서 가족의 온기로 이 고통을 함께 감내하는 것이 자연인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국민 여러분! 저의 쓰임은 다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한 명의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허허벌판에서도 검찰개혁의 목표를 잊지 않고 시민들의 마음과 함께 하겠습니다. 그 동안 부족한 장관을 보좌하며 짧은 시간 동안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준 법무부 간부·직원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후임자가 오시기 전까지 흔들림 없이 업무에 충실해 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국민 여러분께서 저를 딛고, 검찰개혁의 성공을 위하여 지혜와 힘을 모아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쌩’ 찬바람에 ‘탁’ 막히는 동맥… 2시간 안에 응급실 찾으세요

    ‘쌩’ 찬바람에 ‘탁’ 막히는 동맥… 2시간 안에 응급실 찾으세요

    찬 공기 노출되면 혈압 올라 심장 과로 심근경색·뇌졸중 연결… 중년 돌연사↑ 뇌 특정 부위 손상 땐 반신마비 올 수도 노인 새벽운동 금물… 체중 줄이면 도움일교차가 10도 이상 벌어지는 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급성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심·뇌혈관 질환자가 증가한다. 날씨가 추워지면 혈관이 수축하고 혈압이 상승해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등 심혈관계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13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최근 10년(2008~2017년)간 심·뇌혈관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겨울철과 일교차가 큰 3월과 10월에 많았다. 찬 공기에 갑자기 노출되면 인체를 흥분시키고 긴장하게 하는 교감신경이 활성화된다. 이러면 말초 동맥이 수축하고 혈관 저항이 상승하면서 혈압이 올라 심장이 과로하게 된다. 심혈관이 막힐 확률도 높아져 동맥경화증, 고지혈증, 고혈압, 당뇨병, 비만, 심혈관 질환 가족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주의해야 한다. 심혈관 질환은 환절기에 찾아오는 가장 위험한 질환 중 하나이며, 40~50대 돌연사의 주범이기도 하다. 박덕우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혈관이 완전히 막히는 급성 심근경색증은 예고 없이 찾아오며 급성 심근경색 환자의 50%는 건강하던 사람이고 나머지 50%가 협심증 등의 증상이 있는 환자”라며 “어떤 환자는 수일 전 건강검진에서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는데도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응급실을 찾았다”고 말했다. 누구든 예상치 못한 불운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급성 심근경색으로 심장마비가 발생하면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하는 일이 흔하다. 무사히 병원에 도착해 치료를 받더라도 사망률이 5~10%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심혈관 질환은 심장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에 문제가 생겨 발생한다. 관상동맥에 동맥경화증이 발생해 혈액을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면 해당 부위가 손상돼 협심증, 심근경색증 등의 심혈관 질환이 생긴다. 몸을 별로 움직이지 않을 때는 심장이 펌프 기능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 관상동맥 일부가 좁아지더라도 증상이 없을 수 있지만 흥분하거나 심한 운동을 하면 산소를 충분히 공급받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태를 ‘심장 허혈’이라고 하며, 가슴까지 아프면 협심증이라고 한다. 심근경색은 동맥경화증으로 좁아진 혈관에 혈전(피가 응고된 덩어리)이 생겨 관상동맥이 완전히 막히는 병으로, 자칫 심장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 심근경색이 발생하면 식은땀이 나고, 말도 하지 못할 정도의 죽을 것 같은 통증이 30분간 지속된다. 동맥벽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만성 염증이 발생하는 동맥경화증이 있는 사람도 심혈관이 잘 막힐 수 있다. 당뇨 환자도 예외가 아니다. 당뇨 자체가 혈관을 수축시키는 데다 당뇨로 인해 혈관에 노폐물이 많이 쌓여 혈관이 막힐 확률이 높다.혈압은 여름에 떨어졌다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1월에 급상승해 수축기 혈압이 여름보다 7㎜Hg, 이완기 혈압이 3㎜Hg 정도 올라가게 된다. 동맥경화증 합병증도 더 자주 발생하며, 특히 새벽 찬바람에 노출되면 혈압이 순간적으로 상승해 심근경색 등으로 치명적인 상태가 될 수 있다. 심장 돌연사는 사전에 아무런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대개 가슴 통증이나 호흡곤란, 심계항진 등의 전조 증상이 먼저 나타난다. 찬바람을 쐴 때 가슴이 뻐근하고 두근거리거나 가벼운 운동을 했는데도 가슴이 쥐어짜듯 답답하고 눌리는 듯한 통증이 있다면 심혈관 이상 신호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호흡곤란, 식은땀, 구토, 현기증 등이 나타나면 심근경색 전조 증상을 의심해야 한다. 서둘러 가장 가깝고 큰 병원을 찾아야 돌연사를 막을 수 있다. 뇌졸중 역시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발생하는 질환이다. 세계적으로 매년 1500만명 정도의 뇌졸중 환자가 발생하며 이들 중 600만명이 사망한다. 통계청의 ‘2018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사망 원인 1위가 암, 2위가 심장 질환, 4위가 뇌혈관 질환이다. 2018년에도 10만명당 62.4명이 심장 질환으로, 10만명당 44.7명이 뇌혈관 질환으로 사망했다. 뇌혈관 이상도 동맥경화가 원인이다. 고혈압, 당뇨, 흡연 등으로 혈관 벽에 지방성분과 염증세포 등이 쌓여 동맥경화가 생긴다. 동맥경화는 혈관을 좁게 만들어 혈액순환을 방해하고 혈전이 갑자기 혈류 흐름을 차단해 뇌 손상을 유발한다. 부정맥이 있거나 심장판막에 이상이 있는 경우 심장에서 생긴 혈전이 부스러지면서 뇌혈관을 막는 일도 있다. 혈관 벽이 막히면 뇌경색, 혈관이 터지면 뇌출혈이 온다. 나이가 들면 고혈압이 없더라도 혈관 벽이 약해져 잘 터질 수 있다. 뇌졸중으로 뇌가 손상되면 손상 부위에 따라 뇌의 기능이 저하되거나 지나치게 증가해 다양한 이상 증상이 생긴다. 오른쪽 뇌는 왼쪽 팔다리의 움직임을, 왼쪽 뇌는 오른쪽 팔다리 움직임을 관장하는데, 뇌의 특정 부위가 손상되면 반신마비가 올 수 있다. 발음이 어둔해지는 발음장애가 팔다리 마비와 함께 올 수 있으며, 얼굴 한쪽의 근육이 약해지면 약해진 쪽으로 입이 돌아가는 안면마비가 생길 수도 있다. 또한 왼쪽 뇌의 언어중추가 손상되면 정신은 멀쩡하고 발음을 하는 데 지장이 없는데도 말을 전혀 이해 못 하는 실어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 밖에 시야 장애, 사물이 두 개로 겹쳐 보이는 복시, 마비는 없지만 손발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아 심한 경우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걷게 되는 운동실조, 어지럼증, 의식장애가 생기기도 한다. 뇌졸중이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를 가능한 한 빨리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다. 그래야 뇌 손상 정도를 감소시킬 수 있다. 뇌졸중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있으면 먼저 응급구조대에 연락한 뒤 편안한 곳에 눕히고, 호흡과 혈액순환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몸을 압박하는 의복 등을 풀어 줘야 한다. 또 폐렴이 발생하지 않도록 입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환자가 구토하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이물질이 기도로 흡입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적정한 치료를 위한 골든타임(최적시기)은 심근경색 2시간 이내, 뇌졸중 3시간 이내다. 최대한 빨리 재관류 요법(막힌 혈관을 다시 흐르게 뚫어 주는 것)을 받으면 발병하기 전과 같은 정상 수준이나 장애를 거의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상태까지 호전될 수 있다. 권순억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동맥 내 혈전제거술이 크게 발전하면서 일부 뇌졸중 전문 치료시설을 갖춘 병원에서는 혈전이 주요 동맥을 막아 뇌경색이 발생한 경우 직접 혈전을 제거하는 시술을 하고 있다”며 “뇌졸중 발생 가능성이 큰 환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뇌졸중이 발생했을 때 혈전제거술을 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미리 정해 두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환절기 불청객인 심·뇌혈관 질환을 예방하려면 보온에 신경써야 한다. 아침 운동을 하기 전이나 잠시 현관 밖을 나설 때도 옷을 잘 챙겨 입어야 한다. 특히 얇은 실내복 차림으로 문밖에 나서거나 목욕 후 머리가 젖은 채로 바깥 활동을 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또한 심장 질환이 있는 환자나 노인은 추운 날 새벽 운동을 피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혈압은 아침에 오르기 때문에 새벽보다는 오후에 운동하는 게 좋다. 날이 추울수록 술과 담배는 멀리해야 한다. 술을 과음하면 혈관이 팽창했다가 추운 날씨로 다시 수축하면서 혈압이 심하게 오를 수 있다. 담배를 피워도 동맥경화가 악화하고 말초 혈관이 수축한다. 여기에 추운 날씨까지 겹치면 심장과 혈관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추운 곳에 오래 머물다 갑자기 따뜻한 곳으로 갈 때도 신체 움직임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비만인 사람은 몸무게도 줄여야 하는데, 몸무게를 10㎏ 줄일 때마다 혈압이 5~20㎜Hg 떨어진다고 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月 수천만 건 배달 폭주… 오토바이 사망 OECD 두 배

    月 수천만 건 배달 폭주… 오토바이 사망 OECD 두 배

    지난달 6일 오후 7시 40분 충남 아산시 번영로에서 아산우체국 집배원 A씨가 운전하던 오토바이가 앞서 가던 차량과 부딪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도로에 쓰러진 A씨는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차량에 치여 숨졌다. 지난 5월 14일 새벽 2시에는 서울 송파구청 앞 사거리에서 배달을 하던 오토바이 운전자 B씨가 진로를 변경하던 도중 택시에 부딪혀 사망했다. 택시운전사는 B씨의 갑작스런 진로 변경을 예상치 못했다고 진술했다. 최근 배달업계의 경쟁 격화로 오토바이(이륜차) 교통사고가 급증해 안전을 강제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전국의 오토바이 등록 대수는 2014년 213만 6085대에서 지난해 220만 8424대로 3.4% 늘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오토바이 교통사고는 1만 1758건에서 1만 5032건으로 27.8% 늘었다. 특히 지난해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오토바이 운전자 사망자수는 1.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0.9명)보다 2배가량 높았다. 순위로는 그리스(2.5명)에 이어 두 번째였다. 오토바이 사고 급증은 우선 배달시장의 팽창이 원인으로 꼽힌다. 올해 8월 국내 유명 배달업체의 주문 건수는 3600만건으로 지난해 8월보다 56% 증가했다.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한 주문량도 지난해 1월 533만건에서 올 7월 945만건으로 늘어 오토바이 배달 종사자들의 사고 위험성은 그만큼 커지게 됐다. 2016년부터 올해 8월까지 서울의 오토바이 사고 사망자 196명 가운데 28.6%(56명)가 배달 종사자로 드러났다. 김민우 교통안전공단 책임연구원은 “배달업계 경쟁이 심화되고 더 빨리 배달해야 하는 서비스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이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토바이 과속을 비롯해 교통법규 위반 단속이 잘 이뤄지지 않는 점도 취약점으로 꼽힌다. 주요 도로의 과속 단속 카메라는 주로 차량 앞쪽에 설치된 번호판을 인식하지만 오토바이는 차량 뒤쪽에만 번호판이 부착돼 있다. 김 연구원은 “오토바이들이 경찰 단속을 피해 민첩하게 움직이기도 하고 경찰들도 오토바이를 추격하다 자칫 오토바이가 더 큰 사고를 내지 않을까 걱정해 추격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최근 5년간 오토바이 운전자 교통사고 건수를 연령대별로 보면 20세 이하가 23.0%로 가장 많았다. 21~30세가 20.8%, 31~40세가 13.5%로 나타났다. 사고 유형별로는 오토바이 운전자 사고의 71.5%가 차량과의 충돌이다, 오토바이와 사람이 충돌한 사고는 18%로 나타났다. 오토바이가 단독으로 구조물과 충돌하거나 전복된 사고는 10.5%였다. 사망 원인을 신체 부위별로 분석하면 머리 부상에 의한 사망이 46.2%로 가장 많았다. 다른 차종과 달리 운전자 신체가 외부로 노출되기 때문에 안전모 착용이 필수라는 점을 보여 준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오토바이 승차자의 안전모 착용률은 84.6%로 독일(99%)과 같은 자동차 선진국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오토바이 운전자가 안전모를 착용하면 사망률은 42%, 부상률은 70%까지 줄일 수 있다고 권고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오토바이 사고를 줄이려면 배달 종사자들이 목숨을 건 시간과의 싸움을 하지 않도록 부당근로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정책 변화뿐 아니라 느슨한 도로교통법 기준도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행 도로교통법으로는 안전모 착용 위반 과태료가 2만원에 불과해 강제성이 떨어진다. 오토바이 번호판을 차량 전면에도 부착하도록 자동차관리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통안전공단은 배달업체 종사자, 집배원 등을 대상으로 체험형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김민지 교통안전공단 연구원은 “2016년 국회에서 오토바이 전면 번호판 부착 의무화 법안이 발의됐지만 오토바이 동호회 등에서 공기 저항이 많아진다고 반발해 진전이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중국과 태국 등에선 오토바이 전면 번호판 부착법이 통과된 만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서초동 4주간의 함성… ‘광장 민주주의’ 힘과 한계 모두 보았다

    서초동 4주간의 함성… ‘광장 민주주의’ 힘과 한계 모두 보았다

    지난달 중순부터 매주 토요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을 밝힌 ‘검찰개혁 촛불문화제’(서초동 집회)가 지난 12일을 끝으로 잠정 중단됐다. 법무부는 물론 검찰도 개혁안을 내놓고 있는 만큼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와 맞물려 폭발력을 키운 서초동 집회는 약 한 달간 광장 민주주의의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13일 사법적폐청산 범국민시민연대에 따르면 이 단체가 주최해 온 서초동 집회는 추후 일정을 잡지 않았다. 시민연대 측은 다만 “검찰이 개혁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음주라도 촛불이 다시 켜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초동 집회는 조 장관 취임 일주일 뒤인 지난달 16일 ‘검찰개혁’ 구호를 내걸고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5차례 주중 집회와 한 차례 주말 집회로 군불을 때다가 지난달 28일 7차 집회 때 참여자 수가 급격히 늘며 폭발했다. 도화선은 23일 이뤄진 검찰의 조 장관 자택 압수수색이었다. 압수수색이 11시간 동안 진행되면서 일각에서 “수사가 과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전문가들은 서초동 집회가 세를 키울 수 있었던 배경을 크게 세 가지로 설명한다. ▲검찰·언론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강했고 ▲‘조국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정 지지도가 휘청하자 지지자들이 뭉쳤으며 ▲검찰 수사 과정에서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트라우마가 그를 지지했던 시민들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초동 집회의 구호가 ‘이제 울지 말자, 이번엔 지키자, 우리의 사명이다’였는데 이는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며 “당시 비극은 검찰발 허위 정보 탓이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 지지자들이 광장으로 나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서울신문이 서울시의 생활인구 데이터를 토대로 지난 5일 8차 집회 때 서초역 일대에 모인 집회 참여 추정자들의 특징을 분석해 보니 40대가 29.8%, 50대가 26.1%로 가장 많았다. 이에 대해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지금 진보의 주류를 구성하고 있는 386세대인 50대와 1990년대 자유주의 세대인 40대가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진보 집회에 적극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초동 집회를 둘러싼 논란도 많았다. ‘뒤섞인 구호’를 두고 벌어진 논쟁이 대표적이다. 이 집회의 대표 구호는 검찰·언론개혁뿐 아니라 ‘조국 장관 수호’였다. 이를 두고 참가자 사이에서는 “다수의 공통된 뜻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송재룡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조국이라는 한 개인의 가치나 능력을 좋게 봤다가 부정적인 부분이 조금씩 드러나자 지지자 사이에서 그 진실성에 회의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국 사퇴’를 촉구하며 진행된 광화문 집회와 세 대결을 하면서 참가 인원을 두고 소모적 논쟁까지 벌어진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서초동 집회 주최 측은 7차 집회 때 200만명이 참여했다고 주장했다가 논란이 일자 이후 참가자 수를 발표하지 않았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초동 집회가 마무리된 건 ‘절차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 바란다’는 대통령 발언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결국엔 검찰개혁이 국회에서 법안으로 해결돼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검찰에 최후통첩”, “개싸움은 우리가”…다시 타오른 서초동 집회

    “검찰에 최후통첩”, “개싸움은 우리가”…다시 타오른 서초동 집회

    “언론·경제·교육은 물론 종교 개혁까지”주최 측, “당분간 집회 잠정중단검찰 개혁 미진하면 다시 올 것”인근에선 조국 파면 맞불집회정경심 교수, 10시간 넘게 檢 조사조국(54) 법무 장관의 부인 정경심(57) 동양대 교수가 12일 네 번째 검찰에 나와 조사받는 가운데 검찰 개혁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 다시 모였다. 주최 측은 이날 시위를 ‘최후통첩 집회’로 이름 붙였다. ‘사법적폐청산 범국민 시민연대’는 이날 오후 6시부터 검찰 개혁과 조 장관 수호를 주장하며 서초역 사거리에서 ‘제9차 사법적폐 청산을 위한 검찰 개혁 촛불 문화제’를 열었다. 경찰은 집회 참가자들이 누에다리부터 교대입구 교차로(삼거리), 대법원 정문부터 교대역 사거리까지 8차선 도로를 점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최 측은 이날 참여 인원을 따로 추산해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직전 주말인 지난 5일 집회 때보다 참여자 수가 5% 더 늘었다고 주장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검찰과 언론을 싸잡아 비판하며 조 장관을 향한 수사가 검찰 개혁을 가로막기 위한 적폐 행위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정치 검찰 아웃’, ‘기레기 언론 아웃’, ‘친일잔당 아웃’ 등의 구호를 수차례 외쳤다. 집회에 참가한 우희종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는 “(검찰 개혁 촉구 시국선언에) 동참한 교수와 연구자가 8000명이다. 우리가 서명을 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촛불 시민들의 힘 때문이다. 우리는 앞으로 검찰 개혁에 머무는 게 아니라 언론·경제·교육 개혁은 물론 더 나아가 종교개혁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 장관 반대 취지의 광화문 집회를 두고는 “광화문에 몰린 숫자(인파)는 대부분 특정 종교의 신자들”이라고 깎아내렸다. 최민희 전 의원도 이날 연단에 올라 기성 언론이 문재인 정권의 실적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소식을 공유하겠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대한민국 국가순위를 발표했는데 13위다. 2013년 박근혜 때 40위권이었다”면서 “또 거시경제 안정성은 세계1위, 정보통신보급률 세계1위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가 잘하는 게 아주 많은데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최 전 의원은 “권력 비판이 언론의 사명이라면서 왜 검찰은 비판하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시민들의 지지 발언도 이어졌다. 최윤 5·18민주화운동유공자단체 전국협의회 상임의장은 “5·18과 서초동 집회는 성격이 비슷하다. 5·18의 본질이 국민에게 주어진 권력을 군인이 사유하려는 것에 대한 저항이라면 서초동 집회는 검찰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데 대해 국민들이 저항한 운동”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서초동 집회를 제2의 5·18 민주화운동이라고 지칭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북 무주에서 올라왔다고 밝힌 한 고교 3학년생은 “수능을 한달 남짓 남기고 검찰의 잔혹한 모습을 이대로 가만히 쳐다볼 수 없어서 나왔다”면서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독점하며 자신의 입맛대로 사건을 조작하고 혐의가 명백하지 않은데 끝까지 몰아붙이고 있다. 이게 과연 정의로운 검찰인가”라고 되물었다.조 장관과 정 교수 등을 지지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집회에 참여한 양희삼 목사는 “조국 장관이 우리가 길거리에 나와 ‘조국 수호’, ‘검찰 개혁’ 외치는 걸 보고 감격해 하시면서 ‘미안하고 송구하고 감사하다’고 하셨다”면서 “왜 장관님이 그래야 하느냐. 개싸움은 우리가 한다. 장관님은 검찰 개혁에 모든 것을 거십시오. 문재인 대통령 깨어 있는 시민 우리가 반드시 지킨다”고 주장했다. 집회 측은 이날 집회 제목을 ‘우리는 언제든 다시 모인다(We‘ll be back)’로 정했다. 당분간 주말 집회를 잠정 중단하지만 검찰개혁이 미진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나오겠다는 의미다. 한편, 정 교수는 이날 오전 9시 검찰에 출석해 10시간 넘게 조사 받고 있다. 앞서 3차례 조사에서는 자녀들의 입시 비리 의혹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이날은 사모펀드 의혹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포토] ‘멸종저항’ 반나체 시위행진

    [포토] ‘멸종저항’ 반나체 시위행진

    12일(현지시간) 환경단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 활동가들이 호주 멜버른에서 시위행진을 벌이고 있다. EPA 연합뉴스
  •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 자원봉사자 역사해설 교육 개최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 자원봉사자 역사해설 교육 개최

    서울 강북구가 근현대사기념관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역사해설을 도맡게 될 자원봉사자 교육을 시행한다고 12일 밝혔다. 기념관 강의실과 전시실을 비롯한 다양한 유적지에서 진행될 교육은 15일부터 29일까지 매주 화·수 총 5회에 걸쳐 마련된다. 일정별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운영되며 전시해설 심화·실습, 현장체험, 답사 등으로 구성됐다. 조재곤 서강대 연구교수, 김도훈 한국교원대 연구교수, 조형열 근대한국학 연구소 연구교수 등 역사 분야 전문가가 강사로 나선다. 이들 강사는 근현대사 특강으로 ▲‘동학에서 의병으로, 개항 이후 외세의 침입과 민중의 저항’(15일) ▲독립운동의 노선과 의의, 외교론과 무장투쟁론, 독립운동의 방략과 실제(16일) ▲해방과 분단, ‘독재정권과 민주화운동/해방공간의 좌우대립’, 한국전쟁 이후의 반공독재와 민주화 투쟁(22일) 등을 다룬다. 이어 23일에는 식민지역사박물관과 효창공원 답사가 진행된다. 마지막날인 29일 기념관 상설 전시실에서는 수료식과 함께 선발 인원을 발표한다. 최종 선정된 참가자는 오는 11월부터 내년 10월까지 일년간 기념관 해설 및 안내요원으로 근무하게 된다. 통상 주1회 하루 3시간씩 활동할 예정이다. 구는 봉사 참여자에게 실적 등록, 증명서 발급, 활동비 실비 지급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침이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교육을 받은 봉사자들은 방문객에게 양질의 해설을 할 수 있는 우수인력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원봉사의 보람뿐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기본 소양도 갖출 수 있는 프로그램에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40년 만에 불러보는 ‘그날의 함성’

    40년 만에 불러보는 ‘그날의 함성’

    ‘소위 유신헌법을 보라. 그것은 법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을 위한 법이라기보다는 한 개인의 무모한 정치욕을 충족시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1979년 10월 16일 오전 9시 40분 부산대 경제학과 2학년생 정광민(현 10·16부마항쟁연구소 이사장)은 유신헌법 철폐와 박정희 전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선언문을 뿌려 부산대 시위를 촉발했다. 이른바 부마민주항쟁의 처음이다. 이렇게 시작된 시위는 마산으로 번졌고 학생과 시민이 합세한 민주화 운동은 마침내 유신정권의 종말을 가져왔다. 서슬 퍼런 유신 독재정권 몰락의 결정적인 단초였던 부마민주항쟁은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과 함께 우리 현대사를 장식한 4대 민주항쟁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국가기념일에서 제외됐다가 항쟁 40년 만인 지난달에야 공식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오는 16일 경남 창원시에선 ‘부마 1979, 위대한 민주여정의 시작’을 주제로 정부 주관의 첫 공식 기념식이 열린다. ‘다시 시월 1979’는 부마민주항쟁 40주년과 공식 국가기념일 지정을 맞아 항쟁 주역들의 목소리를 담은 기록과 증언집으로 눈길을 끈다. 닷새 동안 진행됐던 당시 항쟁의 실상과 의미, 과제까지를 꼼꼼히 수록했다. 부마항쟁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여 당시 사건과 진실을 밝히는 최초의 출간물인 셈이다. 정광민 이사장을 포함해 당시 항쟁을 이끈 주역들은 인터뷰를 통해 항쟁 발발부터 닷새간의 전개 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특히 거리로 뛰쳐나와 독재정권에 맞섰던 10명은 당시 항쟁이 자발적 학생들의 저항운동에 도시빈민과 노동자, 자영업자 등 민중이 자연스럽게 동참해 범시민운동으로 발전했다고 강조한다. 당시 부산대 국어교육과 77학번 학생이었던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부마항쟁은 어떠한 지도부가 있거나 조직이나 단일한 주체가 뒷받침한 항쟁으로 보기 어렵다.” 책에선 시위 전개 과정이 명확하지 않은 이 항쟁의 증언들에 더해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불거진 소멸 시효도 다루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5월 부산지법 민사6부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체포된 뒤 경찰의 가혹한 수사로 피해를 당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항쟁 관련자 6명의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창조도시 정책’ 택한 리옹… 균형발전 한계 뛰어넘었다

    ‘창조도시 정책’ 택한 리옹… 균형발전 한계 뛰어넘었다

    균형발전은 현 정부의 5대 국정과제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가운데 핵심적인 전략과제 중 하나다. 2018년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개정·시행돼 법적·제도적 추동력을 재확보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균형발전과 같이 국가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실제 효과를 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방 쇠퇴를 넘어 지방 소멸론이 등장하는 최근의 상황을 보면 중앙정부의 정책효과를 느긋하게 기다릴 수 없다. 국민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균형발전정책의 효과를 제고하고 정책적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필요한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체감도가 높은 균형발전정책은 지역적 특성이 잘 반영된 정책이다.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정책의 실행 주체는 지방정부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균형발전정책 추진에서 중앙정부의 정책적 노력에 호응(呼應)한 지방정부의 더 적극적인 정책적 관여(commitment)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 5월 한 광역지자체가 수립하는 도시균형발전계획과 관련해 프랑스 리옹을 다녀왔다. 광역도시권 내에서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균형발전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지방정부가 어떠한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살펴봤다. 리옹의 사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근 추진 중인 프랑스의 지방자치정책에 대한 개략적 이해가 필요하다. 프랑스의 지방행정체계는 크게 레지옹(R?ion 18개:광역), 데파르트망(D?artement 101개:중역), 코뮌(Commune 3만 5357개:기초)으로 구성되고 각각의 권한을 가진다. 프랑스 지방자치정책의 변화는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고 권한 배분의 원칙을 확립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한 사회당(1981~1995) 제1기를 거쳐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재정적 분권을 위한 체계 정비를 한 자크 시라크·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집권 기간(1995~2012)인 제2기를 지나왔다. 제3기는 지방자치단체 개혁법(2010년)을 근거로 추진되고 있는 지방자치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위한 지방행정체계의 정비와 새로운 권한 배분 정책이 추진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집권 시기부터다. 제3기 정책의 목표는 정책 비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다양한 지역 간의 격차를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있다. 이와 같은 프랑스의 지방행정체계 변화 속에서 지방정부 스스로 균형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동시에 자율적이고 내발적인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떠한 역할과 기능을 하고 있는지를 리옹 사례를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지방자치단체 개혁법에 의거 2015년에는 10개 메트로폴(M?opole)이 설립됐고, 리옹도 메트로폴의 자격을 부여받았다. 경기연구원 보고서 ‘프랑스 국토개혁정책의 시사점’(2015년)에 따르면 ‘메트로폴은 다수의 코뮌으로 구성된 코뮌협의체로 지역경제 활성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양한 균형발전정책을 함께 수립·추진하는 지역 간 연대로서 행정적 경계를 초월해 도시기능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대도시권’으로 정의하고 있다. 리옹 메트로폴(M?opole de Lyon)은 리옹시를 포함한 59개 코뮌으로 구성됐다. 리옹 메트로폴은 면적 533.68㎢, 인구 138만 1349명(2016년 기준)으로, 2018년도 국내총생산(GDP)이 740억 유로를 기록하며 파리 다음의 경제규모를 가지게 됐다. 리옹은 19~20세기 산업화 과정에서 경제적 수도로 성장하고자 했으나 프랑스의 중앙집권화가 심화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1970년대 탈중앙화가 시작됐을 무렵 일시적으로 도시기능을 회복하는 듯했지만 국제도시들 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파리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려는 중앙집중화 정책에 의해 큰 타격을 받았다. 또한 국내 도시 간 경쟁이 심화하며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1980년대 그르노블, 툴루즈 등의 도시가 국가 주도의 신산업을 유치하고, 인구 유입이 활발한 연안도시인 니스, 보르도 등에는 정부가 신기술 산업투자를 했다. 전통적 산업구조를 가진 리옹은 이런 심각한 위기 속에서 중앙정부의 정책에만 의지하지 않았다. 미셸 누아르 시장(재임 기간 1989~1995)은 도시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문화유산의 미관을 개선하고 수준 높은 공공공간을 조성했다. 특히 기업을 유치하기보다는 중·상류층의 유입을 유도하기 위한 주거지를 조성했다. 이는 창조적인 시민이 우수한 기업을 유인한다는 판단에 따른 정책적 결정이었다. 유럽의 다른 도시가 창조도시정책을 실시한 시점에 비해 20년 정도 앞선 것이었다. 뒤를 이은 레몽 바르 시장(재임 기간 1995~2001)은 시내에 산재해 있는 로마,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적 유적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등 원도심 재생과 문화 활성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제라르 콜롱 시장(재임 기간 2001~현재)은 ‘온리 리옹’(ONLY-LYON)이라는 도시 브랜드를 활용한 적극적인 도시 마케팅을 실시했다. 이는 프랑스 최초의 도시홍보정책으로, 행정뿐 아니라 민영기업에서도 ‘온리 리옹’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한편 리옹은 파리와의 경쟁적 관계 구도에서 탈피하는 동시에 유럽의 국제도시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유로시테(EuroCit?라는 유럽도시연합체를 결성했다. 같은 시기에 유럽연합(EU)이 결성돼 유럽 내 도시 간 이동이 활발해졌다. 이 영향으로 프랑스의 탈중앙화 경향이 다시 강해졌다. 리옹은 도시 혁신을 위해 연구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선택과 집중의 정책이 성과를 거두면서 리옹의 산업클러스터 구조는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심각한 위기 속에서 리옹은 지방정부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정책적 수단을 각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시했다. 리옹을 둘러싼 도시·사회적 변화를 수렴하면서 새로운 도시정책을 수립하는 데는 혁신적 지방행정조직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시민소통 및 미래 연구부가 바로 그곳이다. 시민소통 및 미래 연구부의 공공정책의 미래센터 장 루 몰랭 센터장과 최근 리옹이 추진하고 있는 균형발전정책에 대해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시민소통 및 미래 연구부는 1990년대 리옹광역시 개발계획을 수립할 당시 시민참여를 담당한 부서에서 점차 발전해 왔다. 인원은 20명 내외로 ①이용 및 참여 경험 수집(주로 도시마케팅, 디자인 영역) ②시민참여 ③공공정책평가를 담당하는 3개의 팀으로 구성돼 있다. 이 가운데 공공정책평가팀은 리옹의 재정 상태가 악화되면서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하기 위해 가장 최근에 신설된 조직이다. 지방정부가 보다 신중하게 정책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책평가가 중요하다는 정책적 판단이 강력하게 작용했다. 메트로폴 이전에는 교육 및 고용은 중앙정부 소관, 직업훈련은 레지옹 소관 등 분야별로 정책실행 주체가 구분돼 있어 정책적 수단을 사용하는 데 제한이 있었다. 메트로폴로 전환되고 난 후에는 ‘사회적 참여’에 대한 권한이 없었다. 그러나 리옹 메트로폴은 ‘사회적 참여’에 대한 정책적 권한이 없다고 이 문제를 방치하지 않았다. 도심 환경 개선, 주거 개선, 교통체계 개선이라는 3가지 정책을 통해 우회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주거·교통정책만으로 리옹 메트로폴이 안고 있는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이에 리옹 메트로폴은 중앙정책과 지방정책에 차별을 두면서 자체 재정 확보를 위해 보조금을 삭감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시민들의 반발이 커서 추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르지만 우선적으로 경제활동이 가능한 젊은 계층의 실업수당을 기간에 따라 줄이는 방향으로 예산을 확보하는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다. 리옹의 사례는 중앙정부의 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적 노력에 호응하고 조기에 정책적 효과를 지역에 파급하려면 지방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 준다. 첫 번째는 2000년대 초반 리옹이 수도인 파리와의 경쟁적 관계 구도에서 탈피하고 독자적 도시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 점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서울과 지방도시와의 경쟁적 관계 구도에서 추진되는 균형발전정책은 결국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각기 다른 지역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추진되는 균형발전정책으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균형발전은 요원해진다. 두 번째는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정책을 우선적으로 실시함으로써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춘 점이다. 리옹 메트로폴은 사회적 참여에 대한 정책적 권한이 없다고 해서 직면한 문제를 방치하지 않고, 주거·교통정책 등을 통해 주어진 정책적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청년에 대한 보조금 삭감 등과 같은 시민적 저항감이 큰 정책까지 추진해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강력한 정책 의지가 동반됐다. 세 번째로 지방정부의 지속적인 재정 악화가 예측되는 가운데 정책평가 기능을 강화해 신중한 정책 추진을 실시한 점이다. 2017년 한국의 세출을 보면 중앙정부가 차지한 비율이 40%, 지방정부는 60% 정도다. 반면 세입의 경우 국세가 76.7%(265조 4000억원), 지방세는 23.3%(80조 4000억원)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세입과 세율의 불균형 현상이 심각하다. 이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기 때문에 지방정부는 대규모 재정이 필요한 정책은 보다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리옹의 사례는 법·제도를 포함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국적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옹의 사례는 이제 균형발전을 위해 지방정부 스스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 또한 스스로 찾아야 할 때가 왔음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한승욱 주택도시금융연구원(HUGI) 박사 ■한승욱 박사는 부산연구원을 거쳐 주택도시금융연구원(HUGI)에서 도시재생과 관련한 다수의 정책연구를 수행했다. 일본 교토에서 9년간 머물며 각기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구성된 파편화된 도시공간을 관찰하고 그곳에서 이뤄지는 마이너리티의 삶에 대한 도시사회학적 연구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
  • [손성진 칼럼] 검찰 개혁의 요체는 탈정치

    [손성진 칼럼] 검찰 개혁의 요체는 탈정치

    수십년 동안 몸집을 불려 온 검찰 권력은 무소불위, 공룡 검찰이란 통제 불능의 지경에 이르렀다. 권력의 비대화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한다. 괴물이 된 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어떻게 억압했는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아무런 통제 장치가 없는 권력은 더욱 위험하다. 정치권력은 유권자의 참정권을 통한 제어가 가능하다지만 검찰에는 그런 제어장치가 거의 없다. 사법부는 결국 검찰과 한 뿌리, 한통속이고 입법부도 검찰을 뜻대로 변화시킬 수 없는 현실이다. 행정부는 검찰을 통제하기는커녕 통치 수단으로 이용했고 그러면서 정권을 비호하는 맹수로 키웠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도 검찰 개혁의 당위성을 부인하기는 어렵고 현재 검찰 외에는 개혁에 반대하는 집단도 없다. 역대 정권들은 검찰 개혁을 외면하지는 않았지만 성공한 적이 없다. 실패한 이유는 자명하다. 정치적 보복과 정권의 유지· 재창출을 위해 검찰만큼 유용한 수단도 없다는 사실도 알았기 때문이다. 말 잘 듣는 검찰에 채찍을 가할 필요가 없었고 도리어 사탕을 내어 주며 권력의 단맛에 빠지도록 했다. 임기의 절반을 보낸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검찰 개혁에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이런 맥락과 어긋나지 않는다. 검찰의 저항이 심했겠지만 이유는 따로 있다. 문 정부도 검찰을 적폐 수사의 본산으로 삼아 활용했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검찰권 남용과 인권 침해 사례가 발생했다. 적폐 수사를 충실하게 실행한 검찰에 개혁이란 압력을 행사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제 와서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경쟁하듯 검찰 개혁안을 내놓고 있다. 그렇게 갈구했던 개혁이 일순간에 이뤄지는 모양새다. 이렇게 쉬운 개혁을 왜 진작에 하지 못했던가. 변죽만 울린다고 비판하기에 앞서 경쟁적 개혁 공세는 시대적 과제인 개혁 자체를 조국 임명을 둘러싼 정쟁 속에서 정치도구화해 버린 것이 문제다. 검찰 개혁을 조국 가족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속전속결식으로 진행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윤석열의 개혁은 정치적 공격에 대한 자기방어적 개혁으로 보인다. 개혁을 거부하는 검찰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한편 외부의 개혁 압력이 진행 중인 수사의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선제적 조치인 것이다. 검찰권의 비대화는 병세가 짙은 만큼 깊은 진단과 숙의 과정이 요구된다. 취임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장관이, 또 총장이 각각 독자적으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급조해서 발표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서 국민의 뜻과 각계각층의 중지를 모아 완벽한 개혁안을 모색해야 마땅하다. 정치적 목적에서 즉흥적으로 추진된 개혁은 언젠가 또 다른 정치적 목적에 의해 쉽게 과거로 되돌려질 수 있다. 조국의 개혁은 그런 점에서 시기적으로, 방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발표된 개혁안들은 특수부 축소와 잘못된 수사 관행 개선에 관한 것들이다. 법률의 제·개정과 기관 권한 조정이 필요하지 않는, 내부 규정을 만들고 고침으로써도 가능하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같은 핵심적인 문제는 여전히 난관이 많다. 발표된 개혁안들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본질적 문제는 아니다. 검찰 개혁의 요체는 정치적 중립, 탈정치화다. 검찰을 괴물로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정치다. 괴물이 된 검찰을 정상적으로 돌려놓으려면 정치에서 해방해 줘야 한다. 특수부를 축소하고 해체하는 것만으로 검찰 개혁이 완성될 것이라고 본다면 오산 중의 오산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검찰을 이용하려 든다면 형사부 검찰인들 동원하지 못하겠는가. 대검 중앙수사부를 없앴어도 그 역할을 특수부가 이어받아 했듯이 정치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형사부를 특수부 대행으로 활용하지 못할 것도 없다. 어차피 같은 검찰이다. 검찰은 중립을 지켜야 하고 중립을 지키도록 정치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검찰 개혁을 달성하는 길이다. 조국 가족 수사에 대해서도 청와대, 정치권, 검찰, 또한 국민이 취해야 할 생각이다. 검찰은 오직 법률과 수사의 정도를 따르고 지키며 공정하게 수사하면 된다. 그것이 곧 개혁이다. 정치에 휘말리지 않는 검찰권은 강해도 무서운 존재가 아니며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 무턱댄 검찰권의 축소는 비리를 웃음 짓게 한다. 특수부 축소에 우리 사회 곳곳에 숨은 거악들은 속으로 손뼉을 치고 있을 것이다. sonsj@seoul.co.kr
  • 두 학자가 바라본 ‘광장 정치’

    두 학자가 바라본 ‘광장 정치’

    서초동과 광화문. 광장의 세 대결이 이번 주를 기점으로 전환점을 맞이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서초동 집회 주최 측은 “12일 집회를 끝으로 당분간 집회를 열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첨예하게 갈라선 민심은 쉽게 수습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신문은 조 장관을 비판해 온 이택광(51)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교수와 서초동 집회에 적극 참여한 김민웅(63)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에게 사태의 원인과 해법을 물었다. 이 교수는 “조 장관을 감싸는 정부와 여당은 상위 10%를 위한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광장의 대립을 “촛불혁명으로 일궈 낸 성과를 발전시키려는 세력과 이에 저항하는 움직임의 충돌”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자들 없는 서초동 촛불…상위 10%를 위한 민주주의” -한글날에도 광화문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반대 집회가 열렸다. 집회의 성격을 어떻게 보나. “광화문 집회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자유한국당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큰 축이지만 이들만 참여하는 건 아니다. 원래 이들 집회에는 100명도 안 모인다. 이번에 수십만명 모인 건 조 장관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곳곳에서 싸움이 나는 등 집회가 일사불란하지 않은 것도 참가자들이 이질적이었기 때문이다.” -조 장관을 지지하는 서초동 집회는 어떻게 보나. “서초동 집회는 광화문과 달리 성격이 간단하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자 집회다. 박근혜 정부 시절 ‘촛불 세력’의 연장이라고 볼 수 없다. 민주노총을 비롯해 당시 촛불집회에서 주요 역할을 한 단체는 다 빠졌다.” -민주당 지지자 외에는 검찰개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건 아니다. 검찰개혁에는 모든 사람이 다 동의한다. 다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톨게이트 노동자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문제, 노동시간 단축 적용 등 일반인에게 검찰개혁보다 더 절실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런데 ‘조국 사태’에 묻혔다. 이렇게 노동자를 버리고 가는 건 상위 10%를 위한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조 장관 찬성 쪽 일각에서는 의혹이 장관 본인의 문제가 아니고 다른 정치인과 비교하면 큰 흠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도덕적 타락이다. 지금까지 진보가 보수를 이긴 유일한 자산이 도덕성이었다. 그런데 그마저도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건가. 딸의 단국대 논문 1저자 문제만으로 충분히 낙마 사유다. 정부와 여당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딸 의혹을 끌고 올 게 아니라 오히려 고위공직자 자녀 전수조사를 주장했어야 한다.” -조 장관이 물러나면 검찰개혁 추진력이 떨어지지 않겠나. “왜 조 장관만이 검찰개혁을 해야 하는지 설득되지 않는다. 조 장관 외에도 검찰개혁에 대한 의지를 보여 준 사람은 많다. 정부와 여당이 조 장관만 감싸면서 검찰개혁 문제를 장관 개인의 문제로 좁혔다.” -서초동 집회가 대의제를 보완하는 직접 민주주의라는 평가도 있다. “직접 민주주의라고 보기 힘들다. 직접 민주주의는 대의제를 파괴하거나 발전시켜서 더 많은 목소리를 담으라는 거다. 그런데 서초동 집회는 단순히 지지 세력의 결집이다. 현 제도를 더 강화하자는 주장만 한다. 사람이 많이 모였다고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다.” -진보의 이중성이 드러났다는 점은 어떻게 보나. “이때까지의 진보가 ‘강남 좌파’ 진보였다는 게 드러났다고 본다. 조 장관 딸이 ‘고졸도 상관없다’는 식으로 발언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대학에 가지 않은 고졸 청년이 얼마나 많나. 그런데 그런 발언을 하고 그 발언을 옹호하는 건 이들이 생각하는 진보라는 개념이 그 정도였다는 뜻이다.” -대통령과 여당은 어떻게 해야 하나.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지금 정부 여당은 조 장관만 있으면 검찰개혁이 될 것 같은 판타지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검찰개혁 주체는 대통령 아닌가. 청와대와 국회가 당사자가 돼야 하는데 왜 조 장관 지키기로만 끌고 가나. 선거 공학적 관점에서 청와대와 여당이 생각하는 검찰개혁이 아니라 국민이 동의하는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 그게 정부와 조 장관이 사는 길이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檢 정치적 역할에 강한 분노…‘조국수호’ 자체가 검찰개혁” -시민들이 서초동에 모인 이유는.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 검찰이 하지 말아야 할 정치적 역할을 과도하게 한 것에 분노했다. 대통령의 임명 행위를 검찰이 개입해 교란한 것은 민주주의 작동원리와 헌법 정신에 대한 전면 공격이다. 확인되지 않은 검찰발 언론보도로 사안을 단정 짓게 하고 유죄가 확정된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에도 시민들이 분노했다.” -조국수호가 어떻게 검찰개혁으로 연결되나. “검찰개혁의 최전선에서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수행할 장관이 바로 그 개혁 대상의 공격으로 물러나면 검찰개혁은 첫 단계에서 좌초되는 것이다. 청문회나 검찰 수사를 보면 (정치권과 검찰이 타협한) 인물이 아니면 법무부 장관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조국수호’ 구호는 조 장관에 대한 강력한 지지다. 그 힘을 가지고 검찰개혁을 하지 않으면, 검찰개혁의 시기나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를 담고 있다. 조국수호가 곧 검찰개혁이고 조 장관 자체가 검찰개혁의 중요한 깃발이 된 셈이다.” -검찰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민주적 통제가 핵심이다. 법무부를 통해 권력기관에 대한 지휘체계를 확실히 하라는 것이다. 검찰 본연의 기능은 보존하고 과잉된 권력은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게 개혁의 기준이다. 그동안의 수사 관행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이를 뒷받침했던 제도와 관습을 해체해야 한다.” -광화문 집회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였다고 보나. “태극기부대, 자유한국당, 보수 기독교.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한 집회이고, 기본적으로 동원체제다. 서초동은 미래로 나아가는 집회인 반면 광화문은 이미 정리된 과거를 복원해서 시대의 발목을 잡으려고 한다. ‘폐기된 과거의 낡은 사진’ 같은 집회다.” -서초동의 촛불을 보면서 정작 노동자나 취약 계층은 소외감을 느낀다고 한다. “저 힘의 10분의1이라도 노동 문제에 쏟아 주면 좋겠다는 섭섭함이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노동자의 권리나 사회적 취약 계층의 문제를 연대해서 푸는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을 반영하기도 한다. 검찰개혁에만 집중함으로써 절박한 사안이 방치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는 정당하다고 본다. 검찰개혁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들 모두가 이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진보의 분열이라는 진단에 동의하나. “동의할 수 없다. 시대를 정확히 읽고 앞으로 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갈리는 것이다. 지식인은 민중의 삶과 미래에 헌신해야 한다. 현장 없이 논평만 하는 지식인들은 그런 역할과 임무로부터 스스로 퇴각하거나 아니면 역사에 기여하지 못한 자로 전락하고 있다.” -대통령과 정치권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나. “대통령은 조 장관의 검찰개혁에 힘을 확실히 실어 줘야 한다. 잘못된 관행과 헌법 유린 사안이 있다면 책임을 묻는 엄격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거리정치에 나선 것을 비난하며 광장의 파시즘을 이야기하는 비판도 잘못됐다. 정치는 거리와 일상에서도 이뤄진다. 국회의원들이 민주주의 현장에서 어떤 요구가 있는지 성실하게 듣고 성찰하는 게 먼저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보나. “우리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가에 대한 진실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 검찰과 언론이 이 지형을 비틀어버려서 교란됐다. 서초동 촛불집회를 통해 의회권력의 내용이 바뀔 것이고 언론의 지형도 변화될 것이다. 검찰권력의 변화도 꾀할 수 있다고 본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여기는 호주] “인류 멸종에 반역하라” - 멸종반역 시위 현지 반응

    [여기는 호주] “인류 멸종에 반역하라” - 멸종반역 시위 현지 반응

    기후변화 방지 환경단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XR)이 주관하는 전 세계적인 환경 시위가 3일차로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환경 시위하면 평화적인 시위 분위기 였는데 이번에는 “체포되고 감옥을 가도 상관없다”며 작정하고 도로점거 불법 시위를 행동 강령으로 전 세계적으로 수명백이 체포되고, 세계 대도시의 교통이 마비되는 교통대란을 일으키고 있다. 호주의 3대 도시 시드니와 멜버른 브리즈번에서도 이 시위가 진행되고 있다. 시드니에서는 브로드웨이 도로를, 멜버른에서는 플린더스와 버크 도로를 점거하며 교통대란을 일으켰고, 브리즈번에서는 다리에 매달리는 퍼포먼스를 보여 시민들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교통 중심지를 점거한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하며 현재 40여명이 체포되었다. 이 기사를 쓰는 현재도 시드니 시내 시위를 관찰하는 경찰 헬리콥터와 경찰 사이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들의 취지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문제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불법시위를 목표로 하는 이들의 시위방법에 대한 언론과 일반 시민들의 반응이다. 그동안 녹색당이나 환경단체는 환경시위를 할 때 공원에 모여 집회와 시위 신고를 미리 경찰에 알렸지만 이번처럼 불법 환경시위를 경험하게 되니 언론이나 시민들의 역반응도 만만치 않다.채널9 시사프로 '더 커런트 어페어'의 방송에서는 사망한 엄마의 유품을 시위대 때문에 정리하지 못하고 길에서 오도가지도 못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방송했다. 멜버른에 사는 샐리의 어머니는 이틀 전인 일요일 병원에서 사망했다. 병원에 남겨진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가야하는데 시위대의 점거로 차가 지나가지 못하자 그만 울음을 터뜨리며 시위대에 쌍욕을 하는 샐리의 모습이 그대로 방송됐다. 기자가 시위대에 사정을 이야기해 샐리의 차가 시위대를 통과하는 과정에 이번에는 시위대의 한 여성이 차를 막아섰다. 기자와 다른 시위 참가자의 제지로 이 시위 여성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많은 시청자들은 이 장면에서 취지는 좋지만 방법이 잘못된 시위대의 모습에 반감을 들어냈다. 호주 공중파 뉴스에서는 오늘의 시위 시간과 예정 장소를 알리는 뉴스가 메인 뉴스가 되었고 그 다음에는 시위대의 불법점거로 평범한 생활을 방해받는 일반시민들의 인터뷰가 올라온다. “환경문제도 중요하지만 매일 매일 일을 해야 먹고 사는 사람들 생각은 하지 않느냐”며 욕설이 들어가 삐처리가 되는 시민들 반응이 시위뉴스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호주 멸종저항 시위에 참가한 환경 운동가인 제인 모튼은 “우리는 그동안 탄원, 로비, 시위를 해왔지만 충분하지 않았다”며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각 정부가 기후와 생태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우린 반역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멸종반역 시위대의 경고와 불법시위가 정부 및 세계 지도자들에게 얼마나 효과를 발휘 하냐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2주 간의 불편함보다 인류멸종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데에는 공감하지만 이 즈음 일상생활을 지장 받고 있는 일반 시민들의 불편함을 이해하는 현명한 시위 방법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다. 김경태 시드니(호주)통신원 tvbodaga@hanmail.net 
  • [사설] 보조금 부정수급 철저히 막아야 확장재정 의미 있다

    정부가 어제 국무회의에서 국가 보조금이 엉뚱하게 새 나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보조금 부정수급 관리 강화 방안을 확정했다. 보조금 부정수급은 세금을 눈먼 돈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켜 재정 정책을 왜곡하고, 정부 불신과 조세 저항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생활적폐다. 그동안 정부가 수차례 근절 방안을 내놓았지만 해마다 적발 건수와 환수액이 늘어나 실효성에 의구심이 적지 않았다. 올해 1~7월 보조금 부정수급 적발 건수와 액수는 각각 12만 869건, 1854억원이었다. 이 중 현재까지 부정수급 사실이 확정돼 환수가 결정된 금액은 647억원이다. 2018년 한 해 적발 건수 4만 2652건, 환수액 388억원보다 67%나 늘었다. 올해 국고·지방 보조사업 예산 규모는 124조원으로 지난해 105조 4000억원에 견줘 17.6% 증가했다. 보건복지부가 37조원(46.7%)으로 가장 많고, 농림축산식품부(8.6%)와 고용노동부(8.4%), 국토교통부(8.0%)가 뒤를 이었다. 복지 지출 확대 등으로 보조금 규모는 갈수록 느는데 관리는 이토록 허술하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정부는 고용장려금, 생계급여, 농수산직불금 등 부정수급 고위험 사업군을 지정해 특별 관리하고, 특별사법경찰과 시도별 보조금 전담 감사팀을 설치해 연중 집중단속하기로 했다. 부정수급 적발에 내부자 고발이 가장 유효하다고 보고, 신고포상금 상한을 폐지해 부정수급 환수액의 30%를 신고자에게 지급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부정수급 적발 시 처벌도 한층 강화했다. 부정수급자를 모든 국고보조사업에서 배제하고, 부정수급 제재 부가금을 부정수급액의 5배로 통일한다. 부처별 시스템을 연계해 사전에 보조금 사업자의 자격 검증을 강화하고, 지방보조금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인프라도 정비하기로 했다. 내년도 예산이 513조원에 이르는 등 정부는 확장적인 재정 정책 기조를 이어 가겠다는 방침이다. 재정의 과감한 역할이 필요한 시점인 건 분명하나 예산이 적재적소에 활용되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다. 나랏돈을 곶감 빼먹듯 하는 부정수급부터 원천봉쇄해야 한다.
  • 10월엔… 민주주의를 되새기다

    10월엔… 민주주의를 되새기다

    인간 존재 이유와 존엄성은 문화·예술계의 영원한 화두다. 문인은 글로, 화가는 그림을 비롯한 창작물을 통해 ‘인간성’을 묻고 성찰해 왔다. 그래서 인권과 맞물린 민주주의 또한 그들의 창작 욕구를 자극했다. 주말이면 서울 광화문광장과 서초동 사거리로 나뉘어 서로 다른 정의를 외치는 2019년 10월, 문화·예술계에서는 다시 인권과 민주주의를 묻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서 임민욱 기획전 지난 8월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 기획전시 중단에 반발하며 자신의 출품작 철수를 요청했던 임민욱 작가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새로운 기획 전시 장소로 선택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정권 유지를 위해 각종 고문과 폭력으로 ‘가짜 간첩’을 만들어 낸 인권유린의 대명사와 같은 곳이다. 지금은 민주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했다. 8일 임 작가의 기획으로 이곳에서 개막한 기획전 ‘끝없는 여지’(Endless Void)는 대공분실 건물 전체를 복합 전시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강라겸, 강은교, 배선영, 하고로모 오카모토 등 한일 청년 작가 13명이 각자의 시선으로 정권의 폭압과 민중의 저항을 풀어낸다. ●한일 청년작가 13명이 고발하는 인권 유린 김예슬 작가는 설치미술 ‘분실’을 통해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속에 짓밟힌 인권을 떠올렸다. 과거 물고문이 자행됐던 5층 분실 안에 수도 호스를 연결, 좁은 창 밖으로 물이 흘러나오도록 했다. 김 작가는 “상수도시설은 1차 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된 1960년대부터 급속한 산업화·도시화와 함께 기반시설을 확립하기 위해 대대적인 계획과 투자로 이어졌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도 할 수 있는 상수도 보급은 인권을 박탈하는 형태로도, 경제발전과 함께 이뤄졌다”고 기획 의도를 전했다. 일본 작가 오카모토 하고로모는 행위예술을 통해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대공분실의 서늘한 기운과 공포감을 전달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임 작가는 ‘기획의 글’에서 “폭력은 불멸하고, 민주와 인권은 기념할 수도, 개념화할 수도 없다”면서 “예술로 비관주의를 조직하며 더 살아내서 더 오래 울고, 더 오래 상처 입는 불멸의 민주주의로 지키려는 청년 작가들의 실험과 고민들을 함께 읽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18일까지 무료로 엄혹했던 현대사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부마항쟁 40주년 맞아 토크쇼·공연도 박정희 군사정권 몰락의 도화선이 된 40년 전 10월 ‘부마민주항쟁’을 기리는 자리도 마련된다. 1979년 10월 16일 부산대에서는 유신헌법 철폐와 박정희 대통령 하야 등을 촉구하는 시위가 일어났고, 이는 곧 부산 전역을 넘어 마산 일대까지 포함한 대규모 시위로 번졌다. 부마항쟁 발발 10일 뒤인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숨을 거두며 유신정권도 막을 내렸다. 이 부마항쟁은 지난달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이에 ㈔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와 관련 시민단체는 10일 서울 종로구 기독교회관에서 부마항쟁 40주년 기념공연 ‘시와 노래, 강연 그리고 토크쇼: 다시, 민주주의!´를 개최한다. 부마항쟁 당시 청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시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쓴 정희성 시인과 인문학 콘서트 등을 진행해 온 가수 신재창이 시와 노래로 공연을 열고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강연 ‘부마항쟁을 말한다’가 이어진다. 또 당시 대학생 중심 시위를 대규모 민중항쟁으로 이끈 노동자들이 직접 들려주는 ‘나의 부마항쟁’ 등 과거 희생을 기억하고 지금의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는 자리도 마련된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기후변화에 죽어가는 지구

    기후변화에 죽어가는 지구

    환경운동가들이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에서 피투성이 시신을 연출해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멸종저항’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운동단체 ‘멸종저항’은 이날부터 세계 60여개 주요 도시에서 2주간의 시위를 시작했으며 지역에 따라 수백명의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뉴욕 로이터 연합뉴스
  • 기후변화에 죽어가는 지구

    기후변화에 죽어가는 지구

    환경운동가들이 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에서 피투성이 시신을 연출해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멸종저항’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운동단체 ‘멸종저항’은 이날부터 세계 60여개 주요 도시에서 2주간의 시위를 시작했으며 지역에 따라 수백명의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뉴욕 로이터 연합뉴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