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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직행 부담에 숙고의 시간… ‘국힘 8월 경선 버스行’ 결단할 듯

    정치 직행 부담에 숙고의 시간… ‘국힘 8월 경선 버스行’ 결단할 듯

    대선을 250여일 앞둔 28일 최재형 감사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사실상 대선 출마를 위한 수순이다. 정부 직무 감찰을 총괄하는 감사원장이 대권에 뜻을 두고 사퇴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로, 원장이 스스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역사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최 원장은 이날 감사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에게 “저의 거취에 관한 많은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면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서도 원장직 수행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오늘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어 “임기를 끝까지 마치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과 임명권자, 감사원 구성원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최 원장은 “저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면서 “감사원장직을 내려놓고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밝혔다. 정치 입문·대선 출마 의사를 묻는 질문에는 “오늘 사의를 표명하는 마당에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 “차차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최 원장은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사의를 전달했다. 이날 오후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5시 50분쯤 최 원장의 사의를 수용하고 감사원장 의원 면직 안을 재가했다”면서 “감사원장 임기 보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최 전 원장은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며 아쉬움과 유감을 표했다”고 전했다.최 원장은 ‘숙고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를 대선 출마를 위한 ‘간격 조정’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본격 대선 행보까지 한두 달가량 시간을 두고 구체적 행보를 구상하면서, 정치적 중립성 훼손에 대한 비난 여론도 희석시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종착점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 기대만큼 완충 효과가 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곧장 출마 의지를 밝히는 것은 여론이나 감사원 구성원들이 보기에 본인도 민망한 일이라고 느꼈을 것”이라면서 “국민의힘 경선이 시작되면 정치 행보에 대한 입장을 밝히려는 수순이겠지만 이후에도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논란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정부 직무를 감찰하는 감사원을 대통령 소속으로 규정한 우리 헌법의 특성 탓에 감사원장이 정권 교체기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본인을 임명한 정부의 임기 내에서 대선 출마를 위해 스스로 사의를 표명한 것은 최 원장이 처음이다. 헌법이 규정한 감사원장 임기는 4년으로, 2018년 1월 취임한 최 원장의 임기는 6개월가량 남았다. 현직 원장이 대권을 염두에 두고 사의를 표명하자 감사원 내부에서도 “조직에 부담을 줬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특히 최 원장의 인지도를 끌어올린 월성원전 1호기 폐쇄 타당성 감사와 김오수 검찰총장이 야인이었을 당시 감사위원 제청 거부 등 청와대와 각을 세웠던 소신 행보도 빛이 바랬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그럼에도 오랜 공직생활 동안 정치와 무관하게 살아온 최 원장을 단번에 대권 주자급으로 만든 것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지적도 여전하다. 감사원의 업무 수행에 대해 여권이 내로남불식으로 강하게 반발하면서 최 원장의 ‘원칙과 소신’을 더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최 원장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월성원전 감사와 관련해 “이렇게 심한 저항은 처음 봤다”고 소신 발언을 하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최 원장의 숙고는 길어야 두 달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8월 경선 버스 정시 출발’을 강조하고 있다. 그 전에 구체적인 대선 플랜을 수립하고 국민의힘 입당 여부도 결정해야 된다는 얘기다. 현재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고 사퇴하는 최 원장이 여당을 택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자기 세력을 구축할 만큼 충분한 시간도, 인지도도 떨어지는 최 원장 입장에서는 제3지대에 남아 있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 원장 측 관계자도 “최 원장은 항상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며 국민의힘 입당에 힘을 실었다. 논란 끝에 사실상 대권 행보를 택했지만 어떠한 민심의 평가를 받을지도 미지수다. 최 원장은 2017년 인사청문회 당시에도 ‘미담 제조기’라고 불릴 정도로 인품과 개인사 등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를 받아 왔다. 아울러 부친이 6·25 참전 용사라는 점 등 보수 진영의 지지를 얻을 요소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평생 판사로 살아온 그가 대선에서 어떤 정치력과 리더십을 보여 줄 수 있을지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야권 경선에서 페이스메이커 역할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X파일’ 논란이 불거지자 최 원장을 ‘플랜B’로 띄웠던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최 원장이 입당할 경우 윤 전 총장 이상의 상승효과가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감지된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인품이나 개인사 리스크는 확실히 작다”면서 “최 원장 때 감사원이 정부에 대한 정책 감사도 강하게 했던 만큼 정책에 대한 전반적 이해 능력도 윤 전 총장보다 낫다고 본다”고 전했다.
  • 대권 꿈에 감사원장직 던졌다

    대권 꿈에 감사원장직 던졌다

    대선을 250여일 앞둔 28일 최재형 감사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사실상 대선 출마를 위한 수순이다. 정부 직무 감찰을 총괄하는 감사원장이 대권에 뜻을 두고 사퇴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로, 원장이 스스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역사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최 원장은 이날 감사원으로 출근하며 취재진에게 “저의 거취에 관한 많은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면서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관련해서도 원장직 수행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 오늘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이어 “임기를 끝까지 마치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과 임명권자, 감사원 구성원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최 원장은 “저에 대한 국민 여러분의 기대와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면서 “감사원장직을 내려놓고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밝혔다. 정치 입문·대선 출마 의사를 묻는 질문에는 “오늘 사의를 표명하는 마당에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 “차차 말씀드리겠다”고 답했다. 최 원장은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사의를 전달했다. 이날 오후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5시 50분쯤 최 원장의 사의를 수용하고 감사원장 의원 면직 안을 재가했다”면서 “감사원장 임기 보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최 전 원장은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며 아쉬움과 유감을 표했다”고 전했다. 최 원장은 ‘숙고의 시간’을 갖겠다고 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를 대선 출마를 위한 ‘간격 조정’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본격 대선 행보까지 한두 달가량 시간을 두고 구체적 행보를 구상하면서, 정치적 중립성 훼손에 대한 비난 여론도 희석시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종착점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 기대만큼 완충 효과가 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곧장 출마 의지를 밝히는 것은 여론이나 감사원 구성원들이 보기에 본인도 민망한 일이라고 느꼈을 것”이라면서 “국민의힘 경선이 시작되면 정치 행보에 대한 입장을 밝히려는 수순이겠지만 이후에도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논란은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정부 직무를 감찰하는 감사원을 대통령 소속으로 규정한 우리 헌법의 특성 탓에 감사원장이 정권 교체기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본인을 임명한 정부의 임기 내에서 대선 출마를 위해 스스로 사의를 표명한 것은 최 원장이 처음이다. 헌법이 규정한 감사원장 임기는 4년으로, 2018년 1월 취임한 최 원장의 임기는 6개월가량 남았다. 현직 원장이 대권을 염두에 두고 사의를 표명하자 감사원 내부에서도 “조직에 부담을 줬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특히 최 원장의 인지도를 끌어올린 월성원전 1호기 폐쇄 타당성 감사와 김오수 검찰총장이 야인이었을 당시 감사위원 제청 거부 등 청와대와 각을 세웠던 소신 행보도 빛이 바랬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그럼에도 오랜 공직생활 동안 정치와 무관하게 살아온 최 원장을 단번에 대권 주자급으로 만든 것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지적도 여전하다. 감사원의 업무 수행에 대해 여권이 내로남불식으로 강하게 반발하면서 최 원장의 ‘원칙과 소신’을 더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최 원장은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월성원전 감사와 관련해 “이렇게 심한 저항은 처음 봤다”고 소신 발언을 하면서 크게 주목받았다.최 원장의 숙고는 길어야 두 달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은 ‘8월 경선 버스 정시 출발’을 강조하고 있다. 그 전에 구체적인 대선 플랜을 수립하고 국민의힘 입당 여부도 결정해야 된다는 얘기다. 현재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고 사퇴하는 최 원장이 여당을 택할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깝다. 자기 세력을 구축할 만큼 충분한 시간도, 인지도도 떨어지는 최 원장 입장에서는 제3지대에 남아 있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최 원장 측 관계자도 “최 원장은 항상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결정을 내렸다”며 국민의힘 입당에 힘을 실었다. 논란 끝에 사실상 대권 행보를 택했지만 어떠한 민심의 평가를 받을지도 미지수다. 최 원장은 2017년 인사청문회 당시에도 ‘미담 제조기’라고 불릴 정도로 인품과 개인사 등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를 받아 왔다. 아울러 부친이 6·25 참전 용사라는 점 등 보수 진영의 지지를 얻을 요소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평생 판사로 살아온 그가 대선에서 어떤 정치력과 리더십을 보여 줄 수 있을지는 전혀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야권 경선에서 페이스메이커 역할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다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X파일’ 논란이 불거지자 최 원장을 ‘플랜B’로 띄웠던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최 원장이 입당할 경우 윤 전 총장 이상의 상승효과가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감지된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인품이나 개인사 리스크는 확실히 작다”면서 “최 원장 때 감사원이 정부에 대한 정책 감사도 강하게 했던 만큼 정책에 대한 전반적 이해 능력도 윤 전 총장보다 낫다고 본다”고 전했다.
  • 최재형에 비난 쏟아낸 與…“내로남불” “헌법 모욕”

    최재형에 비난 쏟아낸 與…“내로남불” “헌법 모욕”

    송영길 “김오수 거부하더니 본인은 대선후보”강병원 “감사원을 정치적 야욕 위한 도구로”백혜련 “법조인의 한계 뛰어넘기 어려울 것” 더불어민주당은 28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한 최재형 감사원장을 향해 “내로남불”, “헌법 모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이날 구미시청 로비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치적 편향을 이유로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의 감사위원 임명을 거부했던 분이 본인이 원장을 그만두고 야권의 대선후보로 나온다는 것은 너무나 말이 맞지 않는 내로남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감사원은 어떤 국가 조직보다 정치적 독립성이 요구되는 곳이다. 그런데 현직 감사원장이 임기 중 사표를 내고 대선에, 그것도 야당 후보로 나가겠다는 것은 누가 봐도 감사원법 취지에 안 맞다”고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를 보고 자기가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1980년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등장한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사시 합격해서 판사가 된 최 원장 이 지금까지 판사로 있으면서 군사독재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 인사에 대해 판사로 단 한 번의 양심적 판결이나 발언을 했는지 찾아볼 수 없다”고도 했다.강병원 최고위원도 이날 대구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최 원장의 행보는 감사원을 정치적 야욕을 위한 도구로 악용했다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라며 “헌법 모욕이다. 오늘은 최재형에 의해 감사원이 부정된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법제사법위 소속 백혜련 최고위원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최 원장이 끝까지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위해 자리를 지켜주길 바랐는데, 그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너무나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백 최고위원은 “대권에 도전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길”이라며 “그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고, 법조인의 한계를 뛰어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선기획단 공동단장인 강훈식 의원은 KBS 라디오에서 “독립성과 중립성을 부여한 제도적 장치로 임기를 보장한 감사원장이 그만두고 나온다”며 “야당도 오죽 인물이 없으면 여당에서 일하던 분을 데리고 가야 하겠나”라고 직격했다.2017년 말 최 원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을 지냈던 우상호 의원은 TBS 라디오에서 “정권의 고위직을 발판으로 삼아 야권의 후보가 되겠다는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 자체가 공직윤리에 맞지 않는다”라며 “코미디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안민석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최 원장 사퇴의 변은 자가당착에 어이상실”이라며 “너무 치졸하고 조악한 결말이다. 스스로 ‘윤석열 플랜B’로 기회를 엿보겠다는 속셈이니, 참 꼴사납다. 탐욕의 벌거벗은 임금님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정청래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며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하게 돼 있다. 세상에서 제일 얍삽한 사람이 평생 친일파 하다가 8월16일 독립운동가 흉내를 내는 사람”이라고 쏘아붙였다.
  • “아들 내놔!” 이혼한 전처 찾아가 창문 깨고 새벽 난동 50대

    “아들 내놔!” 이혼한 전처 찾아가 창문 깨고 새벽 난동 50대

    경찰 진입 막고 피해자 생활도구 내던지기도경찰 진압하려 하자 깨진 유리조각 던져30분간 저항하다 결국 테이저건 맞고 체포새벽에 이혼한 전처 집을 찾아가 아들을 내놓으라며 쇠막대기로 집의 유리창을 깨뜨리고 집기를 집어던지며 위협한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27일 50대 남성 A씨를 특수폭행·특수손괴 등 혐의로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이날 오전 4시 10분쯤 이혼한 전처와 아들이 거주하는 중구의 한 빌라에 찾아가 “아들을 내놓으라”고 소리치며 문을 두드린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복도에 있던 쇠막대기를 집어 집 창문을 깨뜨리고, 현관문을 여러 차례 내리치는 등 난동을 부린 혐의도 있다. 경찰이 출동한 이후에도 A씨의 범행은 멈추지 않았다. 복도 철제문을 잠가 경찰관의 진입을 막은 그는 복도에 놓인 피해자의 생활 도구들을 1층으로 내던지며 계속 소란을 피웠다. 진압을 시도하는 경찰관에게 주먹을 휘두르고, 깨진 유리 조각을 던지며 약 30분간 저항을 이어가던 A씨는 경찰이 발사한 테이저건에 맞고 현장에서 체포됐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정확한 범행 경위를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 ‘北 6사단 미스터리’와 희생…잊지 않겠습니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北 6사단 미스터리’와 희생…잊지 않겠습니다 [밀리터리 인사이드]

    북한군, 개전 뒤 파죽지세 진격호남 점령하려 돌연 1주일 지연강경 등서 전투경찰 온 몸으로 방어‘여단급 방어’로 오판…공격로 우회1950년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 서울 점령과 낙동강 전투, 인천상륙작전, 중공군 참전 등으로 이어져 1953년 7월 휴전 때까지 국군과 경찰에서만 무려 13만 8000명이 희생됐습니다. 유엔군 5만 8000명도 머나먼 타국에서 목숨을 바쳤습니다. 71년이 지난 지금도 참전용사들의 헌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희생도 무수히 많습니다. 희생의 무게를 감히 평가할 순 없겠지만, 전쟁의 판도를 바꾸고도 잊혀진 이들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전차까지 갖춘 북한군 최정예 6사단에 용감하게 맞섰던 ‘전투경찰’들입니다. 북한군 6사단의 남침 과정은 ‘미스터리’로 불립니다. 그들의 초기 진격은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는데, 이후 이해할 수 없는 전술을 구사합니다. 6사단장 방호산은 한인들이 많이 속한 중국 인민해방군 166사단을 개편해 사단을 꾸렸습니다. T34 전차와 모터사이클 연대, 보병연대 등을 갖췄으며 실전 경험이 있는 병사가 많은 최정예 부대였습니다. 1개 사단 편제였지만 실제 병력은 2개 사단 수준이었습니다. 이 부대는 전쟁 당일 개성을 함락하고 26일 북한군 최초로 한강을 도하해 김포로 침입합니다. ●충청·호남 침공한 북한군 정예 6사단6사단은 한반도 서쪽으로 우회해 전남 목포, 여수 등 한반도 서남쪽 대부분을 점령했습니다. 그러곤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7월 31일 경남 진주에 나타납니다. 고작 북한군 1개 사단에 충청, 호남, 경남 지역이 유린된 겁니다. 필사적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던 ‘불독’ 월튼 워커 미 8군 사령관은 깜짝 놀랐습니다. 대구를 지키더라도 모든 병력과 군수물자가 들어오는 부산을 불시에 빼앗기면 정말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북한군이 서쪽에서 나타났으니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경북 상주의 미 25사단에 지시해 36시간 만에 240㎞를 달려 마산을 방어하게 합니다. 당초 북한군 6사단은 ‘무인지경’을 내달려 진주까지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5일 만에 300㎞를 이동하기도 했으니, 전사(戰史)에 유례없는 빠른 이동이긴 했습니다.그렇지만 방호산은 결정적 실수를 하게 됩니다. 충청지역으로 진출한 뒤 전남 남원·순천, 경남 진주로 직행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돌아 목포와 여수를 점령하는데 3일 가량을 흘려보낸 겁니다. 또 충남 공주까지 진출했다가 세종시 전의면 지역으로 부대를 후퇴시켜 4일을 보냈습니다. 대전에 집결한 미군의 병력 규모를 과대 평가해 일단 부대를 뒤로 물렸다는 것이 역사가들의 평가입니다. 이 1주일은 이후 전세를 결정지을 정도의 영향을 미쳤습니다. 국군 해병대의 분전과 미군의 반격에 북한군은 진주에서 더이상 전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해 9월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완전히 뒤집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북한군의 오판은 6·25 전쟁 최대 미스터리로 남았습니다. 워커 사령관조차 “북한군이 목포와 여수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면 전쟁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고 평가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미스터리 속엔 여러분이 잘 모르는 숨겨진 희생이 있었습니다. ●“북한군 우회 미스터리엔 전투경찰이 있었다” 당시 호남지역엔 국군 정규군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충청, 호남 지역 전투경찰과 해병대원 일부, 징집자 등 급조한 군경 합동부대로 ‘7사단’을 꾸렸습니다. 27일 이종호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가 쓴 ‘6.25전쟁 초기 강경 경찰과 북한군 6사단 전투의 함의’ 논문에 따르면 이 부대는 이름만 사단일뿐 총기조차 완벽히 갖추지 못했습니다. 북한군 6사단의 주력 1연대가 현재 충남 논산에 속한 강경읍을, 13연대는 서천 장항읍과 군산 방향으로, 15연대는 익산 웅포면 방향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때 강경읍을 지킨 분들은 정성봉 강경경찰서장과 220명의 경찰병력이었습니다. 1개 중대병력을 조금 넘는 수준이었지만 3개 중대로 나눠 배치했습니다.북한군 6사단은 ‘기만전술’에 능했습니다. 교묘하게 30명을 ‘남한 유격대원’으로 꾸며 강경읍을 방어중인 경찰에 보냈습니다. 증명서를 본 경찰은 별다른 의심 없이 이들을 강경읍 외곽에 배치합니다. 병력 규모를 간파한 북한군 1연대는 7월 17일부터 강경읍을 포위해 시가전을 벌였습니다. 당시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강경경찰서 앞 다리에서 북한군은 또 다시 “우리가 도우러 왔다”고 기만전술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경관 1명이 “속았다. 적이다”라고 외치면서 적탄에 쓰러졌고, 북한군은 강경읍사무소로 진출해 중기관총을 걸고 공격했습니다. 정 서장은 부대를 이끌고 30배 규모의 적에 맞섰습니다. 그러다 힘이 부치자 통신병 등 본부 병력을 후퇴시킨 뒤 30여명의 경찰대원과 차량을 타고 이동하다 강경중학교 근처에서 잠복했던 북한군에 의해 산화했습니다. 포로로 잡힌 경관 20명이 들판에서 학살되는 등 이 때 모두 83명이 전사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전북경찰과 충남경찰 혼성부대는 북한군이 강경읍을 침탈하는 것을 보고 차분히 이동경로를 분석해 외곽에 잠복하고 있었습니다. 북한군 1연대가 나타나자 사격을 퍼부어 무려 10시간 동안 이동을 지연시키고 결국 적을 강경읍으로 후퇴시켰습니다. 이후 전력 열세로 익산으로 후퇴하면서도 온 힘을 다해 지연전을 펼쳤습니다. ●진주로 가는 길, 온 몸으로 막은 경찰들경찰부대들은 청양, 서천, 장항, 김제, 정읍, 광주, 목포, 남원, 구례, 순천, 여수 등지에서도 잇따라 전투를 벌이며 적의 이동을 방해했습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 뒤인 10월 3일 강경읍은 다시 우리 군에 의해 수복됐습니다. 이 교수는 북한군 6사단을 막은 전투경찰들의 희생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교수는 “강경전투에서 경찰관 본인들은 몰랐겠지만, 6·25 전쟁을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로 본다”며 “강경경찰이 강인한 전투의지와 불굴의 저항정신을 보여줬기 때문에 북한군 6사단의 진출이 강경에서 진주까지 15일이나 소요됐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파죽지세였던 북한군은 강경전투 뒤 진주까지 직진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우회하게 됩니다. 소련 군사고문단장 라주바에프 중장은 강경전투에서 교전한 부대 규모를 ‘여단’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만큼 저항이 거셌다는 뜻입니다. 이 교수는 북한군 6사단이 강경전투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규모 적 병력을 후방에 남겨두지 않기 위해 호남 전 지역을 샅샅이 훑고 다녔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포항을 방어하기 위해 분전한 71명의 학도병을 그린 영화 ‘포화속으로’처럼 ‘경찰판 포화속으로’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들의 희생을 가벼이 여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에티오피아 정부군 시장 공습해 64명 사망 참사.. 민간인 대거 포함

    에티오피아 정부군 시장 공습해 64명 사망 참사.. 민간인 대거 포함

    내전 중인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정부군이 티그라이주 주도인 메켈레의 토고가 시장을 공습, 최소 백여명이 사상을 당하는 참변이 벌어졌다고 AP통신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어린이를 포함한 64명의 사망자엔 민간인이 대거 포함됐고, 73명이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고 현지 직원이 전했다.정부군은 이날 반군인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 요원 여러명이 ‘순교자의 날’을 맞이해 토고가에 집결했기 때문에 공습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군은 또 최첨단 기술로 정밀 타격을 시도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 공습 이후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티그라이의 한 주민은 AP와의 인터뷰에서 “이 지역에는 반군이 없다. 정부군 공습으로 죄 없는 내 가족과 친지들의 집만 파괴됐을 뿐”이라며 “정부가 반군을 타격했다는 주장에 주민들이 모욕감을 느낀다”고 했다. 에티오피아 내전은 지난해 11월 아비 아머드 총리가 티그라이 집권 지역 정당인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 축출을 시도하며 불거졌다. 정부군은 약 한달여 만에 승기를 잡아 티그라이에 친정부 임시정부를 수립했지만, TPLF 반군은 시골 지역에서 저항을 이어왔다. 지금까지 양 측 분쟁으로 수천명이 사망하고 200만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에티오피아에선 지난 21일 아머드 총리의 재집권 여부를 결정할 총선이 진행 중이며, 티그라이 지역에선 아직 선거가 치러지지 않았다.
  • “도주 우려 인정”… 13세 딸 때려 숨지게 한 계모 구속

    “도주 우려 인정”… 13세 딸 때려 숨지게 한 계모 구속

    13세 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계모가 25일 구속됐다. 창원지법 진주지원 김도균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받는 A(40·여)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도주 우려가 인정돼 구속됐다. 그는 지난 22일 오후 9시부터 10시 사이 경남 남해군 자택에서 13세 딸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손과 발 등을 이용해 반복적으로 숨진 딸을 폭행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숨진 딸은 또래보다 왜소한 체구지만, A씨는 덩치가 있는 편이어서 A씨 폭행에 딸은 마땅히 저항할 방법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A씨는 현장에서 긴급 체포됐으며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도구는 따로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숨진 딸에 대한 지속적인 학대 여부, 사건 당시 폭행 정도와 시간, 도구 사용 여부, 구체적인 범행 동기 등을 조사하고 있다.
  • 아키노 필리핀 前대통령 타계

    아키노 필리핀 前대통령 타계

    필리핀 민주화의 상징인 정치 명문가 ‘아키노’ 출신으로 2010년부터 2016년까지 15대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베니그노 아키노 전 대통령이 당뇨병에 의한 신부전증으로 24일(현지시간) 타계했다. 61세. 아키노 전 대통령은 첫 여성 대통령인 코라손 아키노와 독재에 저항하던 정치인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 사이에서 1960년 2월 8일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독재자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통치하던 1983년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마치고 마닐라 공항에 도착한 직후 군인들에 의해 암살됐다. 그의 어머니는 타계한 남편의 후광으로 대통령에 당선돼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재임했다. 어머니와 아들이 대통령직을 맡은 것도 전 세계에서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재임 기간에 필리핀의 경제 개혁을 주도했다. 특히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국제상설재판소(PCA)에 제소해 자국에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는 한때 한국계를 비롯한 일부 여성들과 교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 알리페이 10억명 금융정보, 中 당국에 넘긴다

    알리페이 10억명 금융정보, 中 당국에 넘긴다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전자 금융 거래 자회사 앤트그룹이 중국의 국영기업과 함께 신용정보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2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합작 신용정보회사가 출범하면 앤트그룹의 알리페이 결제 서비스 사용자 10억명의 금융 정보가 당국의 관할권 내로 넘어가게 될 것으로 기사는 전망했다. 알리페이 플랫폼은 17조 달러(약 1경 9300조원) 이상의 결제 거래를 처리했고 중국 인구의 3분의1 이상에 대출을 해 주는 등 수년간 소비자 데이터를 수집해 왔다. 지난 10년간 앤트그룹 등 핀테크 회사들은 수집한 개인 정보 대부분을 자신들의 시스템에 보관했다. 중국은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개인과 기업의 은행 대출 내역 등을 취합해 신용을 평가해 왔기 때문에 은행 대출이 없는 국민에 대한 신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이에 금융 규제 기관들은 데이터를 공유하거나 금융 기관들이 접근할 수 있는 중앙 저장소에 공급하라고 핀테크 회사들에 압력을 가해 왔다. 그러나 핀테크들은 사용자들의 동의가 없었다며 저항해 왔다고 한다. 그러던 지난해 11월 앤트그룹이 홍콩과 상하이 증시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하려다 중국 당국의 개입으로 취소된 이후 분위기가 반전됐다. 앞서 10월 알리바바 창립자 마윈이 당국을 공개 비판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금융 당국은 앤트그룹 등 핀테크 기업에 은행과 동일한 수준의 규제와 자본 요건 규정을 요구하는 등 압력을 가해 왔고, 광범위한 규제 단속을 본격화했다. 앤트그룹은 이후 당국이 요구에 따라 회사 재편 청사진을 제시한 후 전면적인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 [손성진 칼럼] 대선과 적대 정치/논설고문

    [손성진 칼럼] 대선과 적대 정치/논설고문

    바야흐로 대권 레이스다. 벌써 머리가 어지럽다. 내년 대선이 어느 때보다 협잡과 음모가 난무할 가능성이 커 보여서다. 나라와 국민을 이끌어 갈 지도자를 뽑는 선거는 한바탕 축제 분위기로 치러져야 할 터인데 그 반대다. 어느 진영이든 ‘백마를 탄 왕자’는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사람들이 큰 무대로 옮겨서 대결을 이어 가고 있다. ‘저쪽 진영’에서 보면 윤석열이라는 대항마를 키운 1등 공신인 추미애가 “내가 윤석열을 잡겠다”며 어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사실 추미애가 아니었다면 윤석열도 대선판에 없었다. 우습게도 윤석열은 추미애가 낳은 ‘옥동자’가 됐다. 윤석열이 없으면 ‘이쪽 진영’에서는 대선을 치르기가 훨씬 수월할지도 모른다. 이쪽 진영에서 보면 추미애는 결과적으로 아군에게 총을 쏜, 이적 행위를 한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대선판을 기웃거리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대선이 인물다운 인물들이 겨루는 장이 되지 않고, 전투욕과 적개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등판하는 장이 된 것은 오롯이 적대 정치의 결과다. 자천타천으로 대권 주자로 떠오르는 최재형 감사원장도 그런 후보 중의 하나일 것이다. 법조계에서만 뼈가 굵었지 윤석열처럼 정치와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최재형이 여론의 부름을 받는 것은 적대 정치가 낳은 산물인 것이다. 1%라도 앞서면 다수가 권력을 잡는 다수결이 대의민주주의의 원리이지만, 민주주의의 함정은 바로 거기에 있다. 분열과 대결이 극심할수록 선거에서 이긴 다수 쪽이 진 소수를 적대시하고 집권 내내 공격하는 것이다. “법대로 하겠다”는 뜻으로 오독한 ‘법치주의’를 겉으로 내세우면서 뒤로는 엉뚱한 짓을 한 박근혜나 그 이전 정부에서 적대 정치는 이미 발원했다. 현 정권의 ‘적폐(積弊) 청산’도 적대 정치에 오염되면서 ‘적패(賊牌) 청산’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가 돼 버렸다. ‘대통령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법치주의조차 오용될 위험이 있지만, 그 정도를 민주주의의 함정이라 할 수 없다. 적대 정치에서 비롯된 위험한 민주주의는 다수가 소수를 존중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어기는 데서 비롯된다. 참된 민주주의는 다수가 소수를 포용하고 타협해서 합리적 정책을 만들어 낼 때 가능하다. 그러나 적대적 인식에 사로잡힌 과도한 다수는 21대 국회처럼 법을 큰 저항 없이 바꾸는 법치 아닌 ‘인치’(人治)를 낳는다. 결국 인간이 법률 위에 있는 것이라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인간이 법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이다. 그것이 인치주의이며 민주주의의 큰 함정이 된다. 적대 정치가 나쁜 것을 알더라도 그 자체가 포퓰리즘의 수단이 돼 선거에 영향을 미칠 때 민주주의는 더 큰 위기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말은 쉬워도 실행은 어렵다. ‘적대 정치의 종식’을 선언한 대통령들이 어디 한둘인가. 어려운 이유는 국민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점점 더 벌어지는 빈부 격차의 간극은 국민들끼리도 적대하는 관계를 만들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팬덤 정치’의 횡행은 그런 점에서 한편으로 이해하고 싶기도 하다. 왜냐하면 누가 정권을 잡는가에 따라서 자신에게 돌아오는 이득과 피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막연한 추종은 아닌 것이다. 집권을 위한 필생의 사투를 벌이고 옳든 그르든 무턱댄 지지와 반대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적대는 적대를 부른다. 역사의 기록이 증명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대선은 다수가 소수를 이겨서 군림하려는 목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역대 정권들은 이 금과옥조는 안중에도 없이 집권하자마자 상대를 탄압하고 권력을 향유했다. 적대 정치라는 악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9개월 후 당선자의 숙제다. 추미애식으로 적대 감정에 불타서 선거판에서 악을 쓴다고 대통령이 될 것도 아니고, 이미 대통령감이 아니다. 스스럼없이 일반 국민과 어울리며 낚시를 하는 핀란드 전 대통령을 본 적이 있다. 퇴임한 뒤 농장으로 돌아가 자연인처럼 산 우루과이 대통령도 있다. 더 살펴보지 않아도 다수, 소수를 가리지 않고 대다수 국민에게 존경받는 정치를 한 사람들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물러난 후에도 신변을 걱정해야 했던 한국 전직 대통령들의 모습은 우리 민주주의의 슬픈 역사와도 같다. 독재를 하고 적대 정치를 한 결과이니 자업자득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sonsj@seoul.co.kr
  • 아귀찜·복국 잡솨봐… 갯장어샤부 빼면 섭합니데이

    아귀찜·복국 잡솨봐… 갯장어샤부 빼면 섭합니데이

    [이우석의 미시 여행] <3>‘경남의 명동’서 먹거리 타운으로… 옛 마산의 기개 오롯한 창원 창동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일대, 오늘은 창원이 아니고 ‘마산’이다. 2010년 마산 창원 진해의 통합 전, 구 마산시의 원도심 지역이다. 마산에서 창동은 서울 명동보다 컸다. 명동과 종로, 무교동, 남대문시장 등을 모두 합친 개념이 창동이었다. 실제 면적이 큰 것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도심이라 그렇다. 1990년대 초반까지 마산에서 “시내 나가자”고 하면 창동으로 갔다. 대표적 문화시설인 극장이나 나이트클럽에 가려면 마산밖에 없었다. 창동 길을 걷다 보면 그날 외출한 사람들을 죄다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마산어시장, 부림시장, 유흥가인 오동동과 이어져 밤낮으로 소비가 이뤄지는 특구를 이뤘다.창동(倉洞)은 조선시대 대동법 시행 이후(1760년) 조창이 생겨났대서 붙은 지명이다. 인근 농산물과 건어물 등 세곡이 여기에 모였다가 한양으로 올라갔다. 그때부터 이미 돈이 돌던 지역이다. 일제강점기와 근대화 시기에도 수출자유지역으로 번성했다. 경남 최대 어시장인 마산어시장에 물건을 떼러 온 상인들과 제수용 생선을 사러 멀리 산청, 함양, 진주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에 있었다. 한일합섬 등 섬유산업에 종사하던 여성 직장인들도 주말이면 창동에 나와 도심 나들이를 즐겼다. 당연히 술집, 식당, 찻집 등 외식산업이 발달하고 세련된 옷가게와 서점, 금은방 등이 창동 거리를 빼곡하게 채웠다. 곳간이 차면 예술혼이 무르익는 법. 조각가 문신, 시인 김춘수, 이은상, 천상병, 정진업 등이 마산에서 자라며 감성을 키웠다. ‘경남의 시내’였던 창동은 주거지역의 이동과 대체상권 형성 등으로 인해 한때 상권을 잃어버리며 빛이 바랬다. 하지만 창원시가 십여 년 전부터 진행한 도시재생 프로젝트 덕에 과거의 영화를 되찾아가고 있다. 창동은 단지 법정동 ‘창동’만을 이르는 것이 아니다. 마산어시장 일대부터 복집골목, 오동동 아귀찜골목, 창동 예술촌, 부림시장을 잇는 원도심 벨트를 의미한다. 마산어시장부터 들른다. 엄청나게 크다. 아쿠아리움이 따로 없다. 요즘은 제철인 갯장어가 나온다. 갯장어는 개(犬)장어란 뜻이다. 이빨이 날카롭고 하도 잘 물어댄대서 개장어다. 갯장어는 육수를 팔팔 끓여 샤부샤부로 찰방찰방 슬쩍 익혀 먹으면 된다.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어시장 바닷가 쪽에 장어를 맛볼 수 있는 곳이 몰려 있다. 붕장어도 판다. 고추장 양념이나 소금구이로 구워 파는데 싱싱한 놈은 ‘부산식’(마산 사람들이 화를 낼 테지만)으로 다짐 회를 썰어 달래도 된다. 출입구가 여러 곳인데 입구 쪽엔 반드시 식당가가 있다. 들어오거나 나갈 때 뭔가를 꼭 먹게 되는 이유다. 젓갈이나 건어물 코너에는 이것저것 살 것도 많다. 딱 어시장만 이리저리 둘러봐도 반나절은 족히 지나간다.길을 건너 오동동 쪽으로 오르면 복국 골목이 있다. 곳곳에 ‘복’이라 쓰인 간판 일색이다. 왠지 복 받는 느낌이다. 복매운탕이나 복맑은탕이 아니라 복국이다. 시원하게 끓여 한 뚝배기씩 내 준다. 집집마다 조금씩 메뉴가 달라 전골을 파는 집도 있다. 마산만에서는 복어가 많이 잡힌다. 일찌감치 복국이 발달한 이유다. 가장 오래된 ‘남성복집’은 양복을 파는 집이 아니다. 일제가 패망하던 1945년 개업한 유서 깊은 복국집이다. 3대째 운영하고 있다. 미나리를 넣은 시원한 국물이 일품이라 아침이나 늦은 밤 해장거리로 남겨 두는 것이 좋다.창동 어귀에 접어들면 장을 보러 온 행인이 많이 지난다. 부림시장에서 푸성귀를 사고 어시장에서 생선을 사 저녁상을 차리려는 마산 시민들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과거 경남의 대표적인 전통 재래시장답게 주전부리도 푸짐하다. 이미 관광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날 대로 난 6·25떡볶이는 물론 명태 한 마리를 통째로 지져 주는 명태전, 참기름 냄새 고소한 꼬마김밥집 등 시장 안에는 ‘뭔가 살 일 없는’ 내가 가도 한참을 머물 수 있다. 6·25떡볶이는 시장 좌판 노점으로 시작해 어엿한 점포를 이루며 ‘전국구’ 떡볶이 맛집으로 소문났다. 1970년대까지도 좌판을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모여 쭈그리고 앉아 떡볶이를 먹었다. 그 모습이 한국전쟁 당시 배급장 풍경 같대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떡볶이 그릇을 받치는 화분받침도 그때부터 시작됐다. 쫀득한 떡에 진한 어묵의 풍미가 배어난다. 후루룩 허기 때우기 좋은 맹숭한 잡채도 판다.부림시장 입구 쪽에서 나오면 창동에서도 가장 중심가가 펼쳐진다. 분식점이 많다. 성지여고 학생도, 한일합섬 여공도 주말이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호호 웃음보를 터뜨리며 먹던 분식들이다. 우동과 메밀국수를 잘하는 만미정, 떡볶이와 팥빙수 명가 복희집, 새로 생긴 짬뽕맛집 울트라반점 등에서부터 전통의 고려당 제과 등이 거리를 지키고 있다.1970년대 초반 문을 연 창동복희집 팥빙수는 정말 예스럽다. 들들 갈아 낸 통얼음에서 쏟아진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장비의 장팔사모처럼 순식간에 혀를 베며 냉기를 집어넣는다. 직접 쑨 고소하고 달달한 통팥이 “내가 진정한 팥빙수요”라고 외치는 듯하다. 떡볶이와의 궁합도 ‘최수종·하희라 커플’처럼 딱 맞아떨어진다.1959년 개업한 마산 고려당은 오랜 세월 마산시민의 입맛을 지켜 온 노포 베이커리다. 걸핏하면 싹 갈아엎는 서울과 달리 마산은 그리 바뀌지 않았다. 맛 좋은 ‘빠다빵’으로 소문난 고려당 빵집도 그대로 남았다.초밥 노포도 당당히 세월을 거스른 채 자리를 지켜 오고 있다. 창동 신라초밥은 신라시대보다는 ‘좀 많이 늦은’ 1977년 개업한 집이다. 서울 강남처럼 세련된 ‘오마카세’(주방장에게 맡긴다는 뜻의 일본어) 일식집은 아니다. 호주머니 사정 가볍던(지금도 뭐 별반 나아지진 않았다) 필자의 어린 시절, 창문으로 흘끔흘끔 엿보던 그 옛날식 초밥집 분위기 그대로다. 주방장이 정성껏 깔끔하게 빚어내는 초밥은 이미 일본의 ‘스시’가 아니다. 우리 입맛이다. 이를 확인이라도 하듯 김치를 얹은 김치초밥이 이 집의 간판 메뉴다.창동에는 예술촌이 있다. 화가, 디자이너, 공예 등 예술인이 상주하며 작업을 하고 작품을 판매한다. 관광객들은 50여개 입주시설과 12개 체험공방에서 마산의 우수한 ‘예술 유전자’를 일부 수혈받고 갈 수 있다. 예술에 관심이 있든 없든 골목을 거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파리의 뒷골목에 온 듯하다. 곳곳이 포토존이라 인증샷 투어의 재미도 쏠쏠하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마산시민의 오랜 약속 장소인 ‘학문당 서점’과 시민극장 역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학문당 서점은 여전히 영업 중이나 시민극장은 영화관 대신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모했다. 개관 100년, 문 닫은 지 20여년 만에 시민극장이란 이름으로 지난 4월 다시 문을 열었다. 물리적 공간은 좁지만 넓고 깊은 예술 세계가 담긴 창동 예술촌을 차근차근 둘러보고 문신미술관이 있는 ‘가고파 꼬부랑길’을 걸어 보면 마산의 야경과 그 안에 숨은 멋을 제대로 느껴 볼 수 있다.창동과 오동동 사잇길에는 ‘상상길’이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세계 각국의 외국인들에게 응모를 받아 그들의 이름을 타일로 새겨 조성했다. 국내 딱 한 곳 창원 창동밖에 없다. 멀리 외국에 자신의 이름이 박힌 길이 있다면, 게다가 주변에 아름다운 예술촌까지 있다면, 어찌 가 보고 싶지 않을까. 색색 타일로 수놓은 길은 창동 예술촌의 중앙을 지나 여러 테마의 골목을 연결한다. 조만간 역병이 물러가고 나면 이곳에서 ‘창원’과 ‘자신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하고 먼 길을 떠나온 각국의 외국인 관광객들을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창동에서 좁은 찻길을 건너면 바로 오동동이다. 오동동 타령의 가사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에 나오는 바로 그 유명한 동네다. 오동추야(梧桐秋夜)는 오동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 밤을 뜻한다. 가을 밤 운치나 동동주 한 사발의 흥겨움, 기생의 장구 치는 소리, 한량들의 술놀음 등 이 모두가 오동동으로 귀결된다. 오동동은 그런 곳이다. 전국을 통틀어 이토록 술집 골목을 흥겨이 노래한 적이 있었나. 아마도 오동동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전통 유흥가일 것이다. 지금 기생집의 흔적은 아예 사라지고 없다. 다만 달빛 아래 좁은 골목에서 비틀거리며 튀어나오는 나카오리(중절모) 차림 시인의 환영이 보일 듯하다. 오동동 골목 어디선가 상을 때리는 젓가락 장단이 들려올 듯도 하다.지금의 오동동은 아귀찜과 통술거리로 더욱 유명하다. 창동에서 이어진 골목엔 통술집이 줄을 섰고, 복국골목으로 내려가는 길엔 아귀찜 식당들이 가득하다. 마산 특유의 술문화인 ‘통술집’은 통영 다찌집, 진주 실비집, 전주 막걸리집과 비슷한 방식이다. 사실 통술은 예전 우리나라의 술문화였다. 안주를 따로 팔지 않고 술을 주문하면 먹을 만한 안주를 해 주는 것이다.이젠 통술집도 많이 바뀌었다. 요즘이야 예전처럼 술을 많이 마시는 분위기도 아니고 관광객들이 몰려와 안주만 바라니, 지금은 대부분 ‘한 상에 얼마, 몇 인 상에 얼마’ 하는 식으로 영업한다. 아무튼 제철 재료나 특별한 안주를 한상 가득 깔아 주니 물가가 턱없이 높은 서울에서 온 이들로선 눈이 휘둥그레진다.제철 안주를 찌고 볶고 삶아서, 때론 생으로 내온다. 호래기(참꼴뚜기)부터 멍게, 부침개, 냉채, 전복회, 오만둥이찜, 미더덕찜, 가오리, 오징어볶음, 소고기 장조림, 생선구이, 찌개, 회까지 줄을 이어 한 상에 연착륙한다. 어떠한 입맛에도 맞출 수 있는 구성이다. 아, 물론 집집마다 계절마다 구성은 달라진다.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술을 많이 주문할수록 안주는 더 나온다. 그래서 필자는 통술집에서 거의 ‘국빈급’ 환대를 받는다. 통술골목에서 거나하게 취하면 안 된다. 아직 아귀찜이 남았다. 역시 마산은 아귀찜이 가장 유명하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아귀찜집 간판에는 보통 ‘마산’을 쓴다. 흉측하게 생겨서 어부들이 죄다 버렸다던 아귀다. 자연적으로 말라비틀어진 아귀를 주워다 불려 콩나물을 얹어 찜을 했더니 그게 맛이 좋아 지금의 ‘값비싼’ 안줏거리가 된 신데렐라 생선이다. 아귀는 투실하고 시원하면서도 비린내가 없어 칼칼한 양념의 찜은 물론 수육이나 전골도 좋다. 특히 부드럽고 녹진한 간과 쫄깃한 껍질 등 버릴 것도 없다. 영화 ‘타짜’에서 나온 ‘전라도 아귀’(김윤석 분)와 조금 헷갈리지만 사실 마산에선 ‘아구’라 부른다. 아귀찜의 원조로 유명하니 아귀라 쓰고 아구라 읽는 것이다. 아귀찜 골목에는 식당마다 특색이 있다. 구수한 맛, 칼칼한 맛, 매콤한 맛 등 입맛대로 즐길 수 있다. 아귀찜뿐 아니라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의 아귀탕과 부드럽고 담백한 아귀 수육도 별미다. 생아귀와 건아귀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투박하지만 현지의 맛을 즐긴다면 건아귀를, 좀더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맛을 찾는다면 생아귀찜을 주로 취급하는 집으로 가면 된다. 오동동아구할매집처럼 둘 다 취급하는 집도 있다.마산 창동은 놀고 먹기에만 좋은 곳이 아니다. 근현대사에서 마산은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민중항쟁이 두 번이나 일어난 저항의 도시다. 그 중심에 창동이 있었다. 1960년 3·15 당시 마산 시내 중고교생이 창동에 모여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대한 저항에 나섰다. 그중 한 명이 전북 남원 출신의 김주열 열사다. 당시 명문이었던 마산상고(현 용마고)에 진학하기 위해 창동을 찾은 김 열사는 시위에 참가하다 행방불명됐고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에서 최루탄이 눈에 박힌 시신으로 떠올랐다. 이는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1979년 10월에는 유신독재에 항거한 부마민중항쟁이 펼쳐졌다. 마산 시민들의 저항정신을 보여 주는 두 가지 사건이다. 마산 사람들은 거침없는 다혈질 성향으로 인식된다. 그 혈기가 정의감과 애국심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다. 2005년 일본 시마네현이 독도의 날을 제정하자 마산시의회(현 창원시의회)는 곧바로 대마도의 날을 만들어 맞대응했다. 전국 최초다. 날짜는 6월 19일.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을 위해 마산포에서 출정한 날을 골랐다. 얼마 전인 19일, 창원시의회는 제17회 대마도의 날 기념식을 진행했다. 대단한 기개가 아닐 수 없다. 지방 여러 도시가 있지만 이토록 원도심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은 드물다. 한때 경남을 대표했던 도시 마산. 지금 그 이름은 창원특례시 안에 묻혀 있지만, 적어도 도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만큼은 창동의 무궁한 매력과 함께 나란히 오랫동안 기억될 듯하다. 글 사진 놀고먹기연구소장 demory@naver.com ■ 마산 창동여행 체크리스트 어떻게 가나 : KTX 마산역에서 800번 좌석버스를 타면 마산어시장, 창동까지 간다. 동마산병원 앞에서 승차하고 삼성생명 맞은편 정류장이나 상호신용금고 앞에서 하차하면 된다. 무엇을 볼까 : 굿데이뮤지엄은 ‘무학소주’를 만드는 무학에서 운영하는 주류 박물관이다. 전 세계 5대륙 권역별로 주류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어디서 잘까 : 마산어시장 인근의 호텔 레이지 헤븐과 스카이뷰 호텔이 평점이 좋다. 창동 쪽엔 퍼스트클래스 호텔이 있다.
  • [영상] 체코판 조지 플로이드 사건 발생…경찰 진압 중 사망

    [영상] 체코판 조지 플로이드 사건 발생…경찰 진압 중 사망

    미국 백인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지 1년 여 만에 체코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BBC, 가디언 등 해외 언론의 22일 보도에 따르면 체코 현지시간으로 19일, 경찰은 한 명은 북부 테플리체 거리에서 40대 롬인(또는 로마니인, 북부 인도에서 기원한 집시계 민족 중 하나)을 제압하던 중 무릎으로 남성의 목을 최소 5분 동안 누르고 있었다. 현장에 있던 또 다른 경찰 한 명은 발을 잡고 있었고, 그 사이 다른 경찰 한 명은 제압당한 남성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제압당한 남성은 거리 바닥에 바짝 엎드린 상태였으며, 경찰은 그가 제압당한 이후에도 경찰을 깨물려고 시도하는 등의 저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완전한 제압에 성공했지만 남성은 의식을 잃었고, 경찰은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 남성은 결구 구급차로 옮겨지던 중 사망 선고를 받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망한 남성은 테플리체 지역의 마트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했으나, 정해진 숙소가 없이 노숙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체코 경찰은 19일 오후 3시경 거리에서 남성 두 명이 다투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고, 그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체코 경찰 측은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난 후 시신 부검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 측은 “사망한 남성의 시신에서 마약류 성분이 검출됐다”면서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남성은 마약 과다 복용 후 매우 공격적이었으며 경찰은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남성의 죽음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것이며, 경찰과는 무관하다”면서 “이번에 사망한 남성을 두고 ‘체코 플로이드’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그러나 사망한 남성이 체코 롬인이라는 점에서, 경찰이 차별적 강경진압을 벌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과 비판이 쏟아졌다. 롬인은 유럽의 유랑민족으로, 오랫동안 차별적 대우를 받아왔다. 인권단체 국제 앰네스티에 따르면 2015년 롬인 아이들은 체코 아이들과 다른 학교로 배정되는 등 고의적인 분리교육을 받는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현지 롬인 인권단체는 BBC와 한 인터뷰에서 “체코 당국과 지역사회가 평상시 롬인을 매우 잔인하게 대해왔다”고 주장했다. 인권단체 관계자는 “경찰은 이미 손을 등 뒤로 제압한 상태에서 왜 3분 동안 그의 목을 무릎으로 누르고 있었을까?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현지 시민들은 롬인이 사망한 장소에 꽃과 촛불을 남기며 추모했으며, 수도 프라하에서는 경찰의 과잉진압을 비판하는 시위가 열릴 예정이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남자 아이 수백명 성착취…20대 최찬욱 공개

    남자 아이 수백명 성착취…20대 최찬욱 공개

    남자 초·중학생을 협박해 성착취 사진과 영상을 찍어 보내도록 하고 유사 강간을 일삼은 20대 남성이 경찰에 구속됐다. 대전경찰청은 23일 최찬욱(26·사진)을 아동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 및 유사강간 등 혐의로 구속하고 신상공개위원회를 거쳐 이름, 나이, 얼굴을 공개했다.최씨는 2016년 5월부터 지난 4월까지 남자 초·중생을 꼬드기거나 협박해 찍은 성착취 사진·영상을 유포하고 유사 강간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아동성착취 영상 3073개, 사진 3881개 등 6954개와 저장매체 원본, 최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최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성, 여성, 동성 등 계정 30개를 만들어 유인한 뒤 접근해 오는 아동·청소년에게 연락해 알몸으로 성적 행위를 하면서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보내도록 요구했다. 최씨는 허위로 여성 사진과 프로필 등을 올려 이들을 유인하는 수법을 썼다. 최씨의 요구는 점점 더 강해졌고, 초·중생들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며 “저번에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한층 더 자극적인 행위를 하도록 시키고 이를 촬영해서 자신에게 전송하도록 했다. 이같은 수법에 전국의 남자 초·중학생 357명이 걸려들었다. 경찰은 현재까지 아동·청소년 67명이 압수 사진·영상에 들어 있는 걸 확인했다. 최씨는 또 남자 초등생 3명을 각각 찾아가 집 밖으로 유인한 뒤 자신의 차 안에서 유사 강간했다. 이 중 한 명은 8차례나 피해를 당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씨는 이같은 범행을 통해 자신의 욕구를 해소하고 자신이 만든 사진·영상 중 14건을 지인 등에게 유포했다. 하지만 판매까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며 “피해 초·중학생 4명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최씨는 경찰에서 “아동·청소년에게 성 상담을 해줬고, 욕구도 해소해줬다”고 변명하다가 “소아 성 도착증을 치료받고 싶다”고 진술했다. 최씨는 부모와 함께 살면서 몇년 전 회사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4월 19일 대전지역 피해자 부모가 휴대전화에서 이상한 것을 보는 아이를 수상히 여겨 상담하는 과정에서 최씨를 가해자로 특정했다. 검거 당시 최씨는 부모와 함께 자택에 있었고, 저항하지 않은 채 검거 후 경찰에서 범행을 시인했다. 상습아동성착취물 제작은 무기형까지, 배포는 3년 이상, 상습 미성년자 유사강간은 3년 이상 등의 처벌에 처해진다. 한편 ’N번방’ 등으로 아동·청소년 성 착취 범행이 드러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조주빈(25)은 항소심에서 징역 42년을 선고 받았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글로벌 In&Out] 20세기 역사 바꾼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20세기 역사 바꾼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사이에서 흐른다. 그 흐름의 속도와 반향은 보통 객관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지만 가끔은 우연 또는 주관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때도 있다. 이번에는 20세기 역사의 ‘주관적 요소’가 된 소련의 첩보원인 리하르트 조르게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조르게는 1895년 10월 4일 러시아제국 바쿠에서 독일인 아빠인 유전기술자와 러시아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다. 1898년 그 가족은 귀국했고 1902년 그를 학교에 보냈다. 1914년 여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정치에 관심이 많은 그는 독일군에 입대해서 전선으로 떠난다. 간단한 훈련을 받은 후 1915년 이프르 전투, 동부전선의 갈리치아, 1916년 베르? 전투에서 세 번이나 부상당했다. 전쟁의 참화를 몸소 겪은 조르게는 ‘제국주의적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1917년 10월 사회주의 혁명 승리 후 러시아가 대전에서 이탈해 유럽의 많은 진보적 인사들에게 세계혁명의 희망을 심어 주었다. 조르게도 역시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1919년 독일공산당에 입당한다. 그러나 당시 세계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독일혁명은 벌어졌으나 곧 진압됐다. 1924년 말 조르게는 코민테른의 요청으로 모스크바에서 일하게 된다. 하지만 조르게는 러시아어를 잘 못해서 모스크바 생활에 적응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결국 1929년 11월 그는 코민테른에서 해고되고 노농적군 대외첩보부의 요원으로 베를린으로 떠났다. 1930년 일본의 팽창을 우려했던 소련은 조르게를 중국 상하이로 파견하기로 했다. 상하이에서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첩보망을 구축했고 중국군의 현황, 대일정책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다. 하지만 조르게의 가장 큰 성공은 대일첩보활동이었다. 1931년 만주사변 후 소일전쟁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1933년 조르게는 일본으로 파견되고 주일 독일대사 오이겐 오토와 친해지고 대소련정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1940년 말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하기로 결정했으나 작전개시일은 항상 바꾸고 있었다. 때문에 조르게가 모스크바로 보낸 보고서마다 침략 개시 예정일도 달랐다. 5월 중, 5월 말, 6월 15일…, 전쟁이 6월 말에 시작한다는 최신 보고서를 본 스탈린은 말을 항상 바꾸는 첩보원은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무시했지만 큰 잘못이었다. 6월 22일 오전 4시, 독일군이 소련을 침략하고 소련의 대조국전쟁이 시작됐다. 아무 요구도 하지 않고 침략한 독일의 행동은 소련에 큰 충격을 주었다. 소련군의 완강한 저항에도, 120만명 이상의 중앙집단군은 소련군에 커다란 피해를 입히면서 9월 30일 모스크바를 함락시키기 위한 태풍작전을 개시했다. 20세기 역사의 흐름을 결정한 모스크바 공방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9월 19일 조르게는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낸다. “일본이 올해 대소참전을 하지 않는 것을 결정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만주와 조선주둔군은 소련 패전 시 1942년 봄에 소련을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 오토 대사는 일본의 대소참전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다고 한다”. 스탈린은 더는 의심치 않았다. 1941년 10월 12일, 소련군사령부는 극동지역에서 7개 사단을 모스크바로 추가 투입해 12월 5일 반격에 들어갔다. 이것은 독일군의 첫 번째 패배로서 나치 독일, 그리고 동맹국이었던 일제의 종말의 시작이었다. 조르게는 그 노력의 성과를 보지 못했다. 1941년 10월 그는 일본의 특별고등경찰 첩보원 35명과 함께 체포됐고 심문 후 1943년 9월 29일 사형 선고를 받았다. 1944년 11월 7일 스가모 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됐다. 교수대 앞에서 그는 일경에게 “적군, 국제공산당, 소련공산당”이라고 일본말로 외쳤다. 처형 직후 그의 일본인 애인 이시이 하나코의 노력으로 도쿄의 다마 묘지로 이장됐다.
  • 드러누운 난동 취객 제압했는데 폭행 혐의로 기소 당한 경찰관

    드러누운 난동 취객 제압했는데 폭행 혐의로 기소 당한 경찰관

    거리에 드러누운 30대 취객, 일으켜 세우자 발로 걷어차며 저항…경찰관 2명 함께 제압 취객, 8개월 뒤 “경찰 폭행에 갈비뼈 부러져”檢, CCTV 분석 후 독직폭행 혐의로 경찰 기소술에 취해 거리에 드러누워 난동을 부리는 시민을 제압하다가 폭행 혐의로 되레 고소 당한 경찰관이 재판에 넘겨졌다. 당초 경찰은 취객을 제압한 경찰에 대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지만 검찰은 독직폭행 혐의가 인정된다며 경찰을 기소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변필건 부장검사)는 최근 현직 경찰관 A경위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상 독직폭행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A경위는 2018년 9월 서울 서초구 사당역 인근에서 술에 취한 채 누워 있던 30대 남성 B씨를 발견하고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B씨가 발로 걷어차며 저항하자 A경위는 현장에 있던 다른 경찰관과 함께 B씨를 제압하고 수갑을 채웠다. 그러자 B씨는 사건 발생 후 8개월가량 2019년 5월쯤 ‘경찰의 폭행으로 갈비뼈가 부러졌다’며 서울 동작경찰서에 A경위 등 2명을 독직폭행 혐의로 고소했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두 사람에 대해 같은 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에 검찰은 사건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A경위에 대해서는 독직폭행 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함께 B씨를 제압한 다른 경찰관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씨줄날줄] 몽고메리 김치/이종락 논설위원

    [씨줄날줄] 몽고메리 김치/이종락 논설위원

    미국 남동부 앨라배마주 주도(州都) 몽고메리시. 몽고메리는 1960년대 버스 안에서 백인에게 자리 양보를 거부했던 로자 파크스의 저항을 계기로 흑인 인권운동을 촉발한 본거지다. 사양길에 접어든 섬유산업과 목축업에 의존해 미국에서 못사는 농촌의 작은 도시이기도 하다. 2005년 주청사에서 남쪽으로 15분 거리에 있는 곳에 현대차 공장이 들어서면서 이 도시는 모든 게 달라졌다. 자동차산업에 의존했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가 포드와 크라이슬러, 제너럴모터스(GM) 등 완성차 기업들의 잇단 이탈로 ‘러스트벨트’로 전락했지만,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주 가운데 하나였던 앨라배마주는 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의 잇단 유치로 남동부에서 실업률이 가장 낮은 주로 탈바꿈했다. 주정부는 현대차 공장의 주소를 한국의 현대차 울산공장 번지수와 같은 ‘700번지’로 배정했다. 도로명을 ‘현대대로’(Hyundai Boulevard)로 아예 바꿨다. 현대차는 14억 달러를 투자해 연간 30만대 생산 능력을 갖춘 공장을 지으면서 현지 지역민 3000여명을 채용했다. 현대모비스가 동반 진출해 협력사 직원까지 더하면 1만명 이상의 신규 고용이 이뤄졌다. 앨라배마주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인구가 약 21만명인 몽고메리에는 한국인이 약 1만 3000명이 산다. 이런 한국에 우호적인 분위기는 야구팀에도 번지고 있다. 몽고메리에는 최지만이 뛰는 메이저리그 탬파베이 레이스 산하 더블A 팀인 ‘몽고메리 비스킷’이 있다. 팀명인 비스킷은 우리나라 패스트푸드점에서도 흔히 맛볼 수 있는, 옛날 미국 남부에서 치킨과 함께 식사로 먹던 빵이다. 미국 남부 지방 노예들은 저가의 재료로 요리했는데 이런 남부 가정식을 ‘솔푸드’(Soul Food)라고 한다. 미국 남부의 몽고메리를 상징하는 음식이 비스킷이라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김치다. 몽고메리 구단은 다음달 17일 안방경기 때 하루 동안 팀 이름을 ‘몽고메리 김치’로 바꾼다. 이는 우리나라 프로야구팀인 LG 트윈스나 롯데 자이언트가 팀 이름을 LG 몽고메리나, 롯데 몽고메리로 바꾸는 것과 같은 파격적인 결정이다. 구단 측은 “‘한국 문화유산의 날’을 맞아 팀 이름도 바꾸고, 김치를 모티브로 한 유니폼 디자인도 선보이기로 했다”고 그제 발표했다. 주황색 유니폼 상의 앞면엔 영어 ‘MONTGOMERY’ 아래에 한글로 큼지막하게 ‘김치’가 쓰여 있다. 뒷면 등번호 위에 고추 양념의 배추김치를 얹었다. 미국 프로야구팀 ‘몽고메리 김치’는 기업의 활약이 국가의 브랜드와 음식의 가치를 얼마나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는 사례다. jrlee@seoul.co.kr
  • 178cm·50kg·백인미녀… ‘속옷천사’ 역사 속으로

    178cm·50kg·백인미녀… ‘속옷천사’ 역사 속으로

    2000년대 중·후반까지 미국 속옷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던 빅토리아 시크릿은 바비인형 같은 모델들을 ‘엔젤’로 내세워 섹시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1995년부터 시작된 빅토리아 시크릿의 패션쇼는 패션계의 슈퍼볼이라 불리며 많은 인기를 얻었다.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엔젤은 커며셜 모델의 커리어에 있어 최고의 업적이기도 했다. 많은 모델이 날개를 단 엔젤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하이디 클룸이나 지젤 번천같은 최정상급 슈퍼모델이 출연했고, 전 세계 TV에 방영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남성이 원하는 여성의 매력을 속옷에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모델들의 평균 신장은 177.8cm, 체중은 50.8kg, 허리 둘레는 24인치, 대부분 백인이었다. 타이라 뱅크스같은 흑인 모델도 있었지만 거의 백인, 브라질 모델이 엔젤로 선정됐다. 이 때문에 유색인종을 차별하고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강요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8년 11월 뉴욕에서 열린 쇼를 마지막으로 패션쇼는 폐지됐다. 엡스타인 이슈까지… 이미지 타격 실적 부진에 이어 도덕적 문제까지 크게 터졌다. 빅토리아 시크릿 모회사인 엘 브랜즈 창업자인 레슬리 웩스너가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연루된 사실과 사내 여성 혐오, 왕따 문제 등의 폭로가 연이어 나왔기 때문이다. 엡스타인은 빅토리아 시크릿 임원진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미성년 모델 지망생들을 개인 소유 섬으로 납치해 성 노리개 취급을 한 사실이 밝혀졌다. 2016년 포브스지에서는 제2의 아베크롬비 1순위로 빅토리아 시크릿을 지목했다. 나이 많은 백인 남자 임원들이 변화에 저항하다가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놓쳤다고 진단했다. 뒤늦게 변화하려고 해도 과거의 영광으로 브랜드 네임 자체가 마이너스가 된 점도 그 이유로 꼽았다.배경, 직업, 인종 다양한 모델로 빅토리아시크릿은 2021년 6월부로 엔젤 제도를 폐지했다. 수년 동안 매출이 곤두박질치면서 미국 시장에서 빅토리아 시크릿의 점유율은 21%까지 하락했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는 대중의 평가가 매출액 감소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2월 최고경영자(CEO)로 승진한 마틴 워터스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통해 “빅토리아 시크릿은 세상의 변화에 너무 늦게 반응했다. 이제 남성이 원하는 것을 논하기보다는 여성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할 것이다”라며 엔젤을 대신해 빅토리아 시크릿을 이끌어갈 7명의 홍보대사를 발표했다.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의 동성애자 선수 메건 러피노, 브라질 출신 트랜스젠더 모델 발렌티나 삼파이우, 수단 난민 출신 모델 아두트 아케치, 배우이자 사진작가 아만다 드 카데넷, 플러스사이즈 모델 팔로마 엘세서, 인도 출신 유명 배우 프리앙카 초프라, 중국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 에일린 구 등 배경과 직업, 인종이 다양한 7명이 새 모델로 기용됐다. 이들은 브랜드 홍보뿐 아니라 이사회에도 참석해 목소리를 내게 된다.가부장적, 성차별적…“참 해로웠다” 빅토리아 시크릿은 이번 변화를 계기로 여권 강화를 위한 ‘대변인’이 되겠다고 밝혔다. 모델이 된 미국 여자축구팀 주장 메건 러피노는 “동성애 여성으로서 여성의 매력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곤 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섹시하다는 속옷을 입어야 섹시해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빅토리아 시크릿은 가부장적, 성차별적이었으며 남성 시각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반영하려 했다”며 “젊은 여성들을 겨냥했기 때문에 굉장히 해로웠다”고 꼬집었다. 현지 언론들은 빅토리아 시크릿의 변화의 흐름이 매출로 이어질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빅토리아 시크릿 임원 출신인 신시아 피두스필즈는 “지금까지 빅토리아 시크릿 매출의 대부분은 여성의 성적 매력을 앞세워 올린 것”이라며 “변신 시도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유럽의 아버지‘ 로베르 쉬망 가톨릭 성인의 첫 관문 통과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유럽의 아버지‘ 로베르 쉬망 가톨릭 성인의 첫 관문 통과

    유럽연합(EU) 설립의 초석을 깔았다는 평가를 받는 로베르 쉬망(1886∼1963년) 전 프랑스 외무장관이 가톨릭 성인(聖人)으로 인정받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쉬망 전 장관의 ‘영웅적 성덕(heroic virtue)’을 인정하는 시성성 교령을 승인했다고 교황청이 19일(현지시간) 밝혔다. 이로써 쉬망 전 장관은 가경자(可敬者, venerable)의 칭호를 갖는다. 가경자는 교황청 시성성의 시복 심사에서 영웅적 성덕이 인정된 ‘하느님의 종’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가경자로 선포된 증거자는 그의 전구(轉求·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간청하고 탄원하는 행위)로 기적이 일어났음을 입증하는 기적 심사를 통과하면 시복(beatification)돼 복자 칭호를 받는다. 시복 이후 한 번 더 기적이 인정되면 성인의 반열에 오르는데 canonisation이라고 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쉬망 전 장관은 1950년 5월 9일에 이른바 ‘쉬망 선언’을 통해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창설을 제안했다. 석탄·철강 자원의 공동 관리를 통해 경제적 연대·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전쟁을 예방하고 함께 번영을 이루자는 취지의 구상이다. ECSC는 쉬망 선언 2년 뒤인 1952년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벨기에, 룩셈부르크와 네덜란드 여섯 나라가 정식 출범했다. 그는 1951년 4월 18일 조약 서명식 도중 우리는 이제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난다(We are venturing into the Unknown)”이라고 말했다. 이 공언은 자유무역지대 설립, 관세 동맹, 단일 시장·통화 도입 과정을 거쳐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 1993년 EU로 발돋움해 현실이 됐다. 우리에겐 가톨릭 신앙과 세계관에 근거해 유럽 통합이 설계됐으며 공허하고 이상적일 것만 같은 내용이 실은 아주 현실적으로, 구체적인 목표와 단계에 맞춰 차근차근 현실로 이뤄졌다는 점을 깨닫게 만든다. 이런 이유로 쉬망 전 장관은 알치데 데 가스페리 이탈리아 전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 전 독일 총리, 프랑스 경제학자이자 외교관 출신인 장 모네 등과 함께 ‘유럽의 아버지’로 불린다. 1958년 유럽의회의 전신 기구 첫 의장으로 일하다 건강이 좋지 않아 퇴임했는데 앞의 칭호가 붙여졌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쉬망 선언 70주년을 맞아 쉬망이 “오늘 날 우리가 혜택을 누리는 장기간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왔다”며 시성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1886년 룩셈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알퐁소 도데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으로 유명한 알사스-로렌(Alsace-Lorraine) 지방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원래 프랑스 시민권자로 태어났으나, 1871년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독일 땅이 돼 독일 시민권자가 된다. 쉬망의 어머니는 룩셈부르크 사람이었으나 아버지의 국적에 따라 가족 모두가 독일인이 됐다. 쉬망은 룩셈부르크에서 중등 교육을, 독일 대학에서 법학 교육을 받은 뒤 로렌 지방에서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다. 쉬망은 나중에 1차 대전의 결과 다시 알사스로렌 지방이 프랑스 땅이 되자 독일 법을 프랑스 법으로 바꾸는 일에 공을 세워 정치에 입문했다. 2차대전이 벌어지자 비시 괴뢰정부에 가담해 나치 부역자로 몰려 사형이 선고된 페탱 원수를 짧은 기간 따랐다. 1940년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자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됐다. 독일군에 징집됐으나 군복을 입지 않고 건강을 핑계로 지방관청에서 근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일년 뒤 탈출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숨어 지냈다.(일부에선 그가 지하 저항활동을 조직했다고 한다) 종전 후 프랑스 총리와 외무장관으로 일했다. 그는 1949년 미국과 유럽의 집단 안보 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창설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 모네가 위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상가였다면, 쉬망은 이를 어떻게 하면 현실에 적용할지 방법을 아는 실천가였다. 아데나워 총리에게 양국이 합의한 내용을 먼저 공표하게 한다든지, 극우에 민족주의 성향의 드골을 지지하는 자신의 부하들이 협상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게 독일어로 협상을 진행하는 등 약간의 반칙도 썼다. 한국과 일본 못잖게 사이가 안 좋은 프랑스와 독일의 국민감정을 넘어서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는 점을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심초사를 했을지 짐작도 못하겠다. 양대 대전을 몸소 겪으며 온갖 어려움을 체험한 결과이기도 했다. 해서 쉬망 선언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럽은 하루아침에 건설되거나 단 하나의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유럽은 실질적인 상호 의존과 이익, 그리고 함께 행동하겠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구체적인 성과를 통해 만들어 질 것입니다.” 브렉시트다 코로나19다 해서 어려움을 겪는 유럽 통합의 현실에서 반추할 테제라고 생각한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영국 변이보다 60% 강해” 80개국 퍼진 델타 변이…백신 효과는

    “영국 변이보다 60% 강해” 80개국 퍼진 델타 변이…백신 효과는

    지난해 10월 인도에서 처음 발견된 델타 변이(B.1.617.2)가 세계 80여개 나라로 퍼져나간 것으로 파악됐다. 델타 변이는 기존 코로나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영국발 알파 변이보다도 전파력이 60%가량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보건기구는 인도발 델타 변이가 세계적 지배종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세계보건기구(WHO) 수석과학자 숨야 스와미나탄 박사는 1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델타 변이는 전파력이 두드러지게 높아 세계적으로 지배종이 되는 과정에 있으며, 이는 상당히 진척돼있다”라고 말했다. WHO는 감염률과 백신 저항력이 높은 델타 변이를 ‘우려 변이’ 단계로 지정해 놓았다. 영국은 신규 확진자의 90%가 델타 변이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신규 확진자 9000명 이상을 연속으로 기록한 러시아도 신규 확진의 89%가 델타 변이 감염으로 알려졌다. 중국 선전 지역에서도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진 사례가 발견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델타 변이가 41개 주에서 발견됐으며 최근 확진자의 10%가 델타 변이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국에도 지난 12일까지 155명의 델타 바이러스 감염자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시시 자 브라운대학 공중보건학 교수는 “현재 델타 변이 바이러스 감염자는 전체 코로나19 확진자 6~10%에 불과하지만, 8월에 이르면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지배종이 될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백신 형성 항체 피해갈 수도” 연구2차 접종까지 마친 후 감염은 1건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델타 변이가 치명적이라며 백신 접종을 거듭 독려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 확산을 그나마 늦추는 방법으로 거론되는 것은 백신 접종이다.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는 자사 백신을 2번 다 맞았을 경우, 델타 변이 바이러스 중증질환 예방 효과는 각각 92%, 96%라고 밝혔다. 그러나 인도 ‘구자라트 생명공학 연구센터’의 연구진들은 최근 동료 평가 중인 논문에서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을 토대로 델타 변이가 기존 코로나19 항체를 회피하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델타 변이의 경우 스파이크 단백질의 NTD(N-말단 도메인)에서 돌연변이가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델타 변이에서는 Arg158 등 기존 두 아미노산이 없어졌고 스파이크 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생겼다”며 이런 변화 때문에 항체는 이 바이러스를 기존과 다른 것으로 인식하고, 이 때문에 델타 변이는 면역계의 공격을 피해 감염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인도의 다른 전문가들은 델타 변이의 ‘면역 회피’가 아직 광범위하게 확인되는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구자라트주의 한 의료 시설에 근무하는 의사 아미트 프라자파티는 “우리 시설의 경우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친 이가 감염된 사례는 한 건밖에 없었다”면서 “이번 연구 결과는 항체 형성 후에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는 경고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①위헌 논란 ②조세 저항 ③행정낭비… ‘종부세 2%’ 3대 부작용

    ①위헌 논란 ②조세 저항 ③행정낭비… ‘종부세 2%’ 3대 부작용

    ‘상위 2%’ 불명확해 조세법률주의 위배공시가격 따라 해마다 달라 과세 반발6월에 고지서 받아야 알 수 있어 혼란매년 상위 2% 정하는 데 행정비용 지출더불어민주당이 논란 끝에 당론으로 확정한 1가구 1주택 기준 종합부동산세 ‘상위 2%’ 부과는 실제 시행 때 상당한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가 많다. 과세 기준과 대상이 불명확해 조세법률주의에 반하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시가격에 따라 해마다 과세 여부가 갈리고 집값이 하락해도 세금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세 저항이 거세질 수 있다. 주택을 공시가격 순서대로 정렬하는 데 따른 행정비용 소모도 만만찮을 전망이다.20일 정치권과 정부에 따르면 아파트를 포함한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매년 3월 국토교통부가 공시하고, 주택 소유자와 지방자치단체 의견을 들어 4월에 확정한다. 따라서 현재처럼 공시가격에 따라 종부세를 부과(1가구 1주택 9억원 초과)하는 경우는 매년 3~4월에 과세 대상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상위 2%’로 바뀌면 과세 기준일인 6월 1일이 돼야 부과 여부를 알게 된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조세법률주의에선 납세 의무자와 과세 표준, 세율, 과세 대상 등 4가지 요건을 명확하게 명시하도록 하고 있다”며 “하지만 ‘공시가격 상위 2%’ 같은 추상적 요건을 부과 기준으로 삼으면 고지가 오기 전까지 자신이 납세 의무자인지, 자신의 집이 과세 대상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종부세 과세 목적 중 하나는 ‘부동산 안정’도 있는데 ‘상위 2%’로 정하면 집값이 내려가도 세금을 내는 등 당초 취지에도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상위 2%’ 부과가 시행되면 종부세 납부 대상자는 현재보다 크게 줄어든다. 현재 기준인 9억원 초과로 하면 올해 납부대상은 18만 3000명이지만 8만 9000명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하게 된다. 하지만 공시가격 인상률이 매년 지역별로 천차만별이라 특정 해에 종부세 대상에서 빠졌더라도 다음해엔 포함될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강한 조세 저항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토지에 대한 종부세도 주택과 같은 ‘상위 2%’를 적용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불과 1년 전에는 종부세 인상을 여당 단독으로 법안소위도 거치지 않고 통과시킨 점을 고려하면 정책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당내에서도 나온다. 특히 종부세 기준 조정에 따른 혜택이 소수에 그친다는 점에서 ‘명분과 실리’ 모두 놓쳤다는 지적도 있다. 신동근 의원은 페이스북에 “가진 이들에게 누진적으로 거둬 어렵고 간절한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더 두텁게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며 “종부세, 양도세 완화안이 신념에 어긋나기 때문에 반대했다”고 밝혔다. 대선 주자인 박용진 의원도 “기왕 집 있는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 주기로 했다면 집 없는 서민들의 월세·전세 부담도 깎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은 “민주당은 종부세 면제 기준을 두고 9억원과 12억원 사이를 오락가락하다 이도 저도 아닌 해괴한 세금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세종 임주형·서울 이민영 기자 herm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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