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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eijing 2008] 혐한론 넘어서 韓·中동반의 길로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개혁개방 30년 동안 축적된 부와 성취를 과시하며 ‘중화제국’의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한국도 금메달 13개를 따내며 만족해하는 분위기지만 이번 올림픽에서 돌출된 중국인들의 ‘혐한(嫌韓) 감정’은 충격을 줬다. 한 국내 방송사의 올림픽 개막식 리허설 사전 방송은 혐한 감정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100년 동안 기다려온 올림픽’의 김을 뺐다.”는 따가운 눈총은 경기장에선 행동으로 터져나왔다. 한국선수 참가 경기에서 보여준 중국인들의 반한(反韓)응원, 야구 한·일전에서의 일방적인 일본 응원,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릴 때마다 들려오는 야유…. 축구 등 몇 경기를 참관하고 돌아온 이수성 전 총리는 “혐한 감정이 이 정도일지 몰랐다. 원인을 분석해서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걱정했다. 푸단(復旦)대 순커즈(孫科志) 교수는 “근년 들어 벌어진 한·중 문화주권 논쟁이 젊은이와 여론주도 그룹을 중심으로 혐한 감정으로 번졌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5년 유네스코가 강릉 단오절을 인류·무형유산으로 선정한 것이나 한의학(韓醫學) 경락체계가 중국전통의학을 제치고 세계 표준으로 인정 받은 것과 관련, 왕민(網民·누리꾼)들은 ‘역사·문화를 도적질하고 있다.’며 흥분하고 있다는 것이다.“이런 행동을 몇몇 누리꾼이나 관중의 일탈로 덮어두기에는 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고 심각성을 지적했다. 한·미 전략동맹 강화 발표, 중국 홀대 분위기도 중국의 의구심을 부추기고 중국인의 ‘한국 미워하기’를 자극한 배경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4월 서울 성화 봉송 당시 중국 유학생들과 한국 내 티베트 독립 지지자들과의 충돌도 혐한론을 부추겼다고 중국인들은 생각한다. 24일로 수교 16주년을 맞은 두 나라는 그 사이 교역액 23배, 방문 인원에서 45배 확대를 일궈왔다. 한국 내 체류 중인 수만명의 유학생 등 중국인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한국 언론 보도와 한국 내 중국관련 입장들을 인터넷에 올려 쟁점화시킨다. 교류 확대 속에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할 우려도 커진 셈이다. 우리의 대미·대일 교역액을 합친 규모의 교역상대국이자 최대 흑자대상국을 우리는 지금도 싸구려 관광지쯤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은지. 달라진 중국의 위상과 힘에 걸맞은 대우나 자존심 배려에 인색한 점은 없었는지. 땅과 바다를 맞댄 이웃의 화려한 부상을 어떻게 우리의 동반 상승으로 연결시켜 나갈지 고민할 때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출발점이 돼야 할 것이다. 이석우 전문기자 jun88@seoul.co.kr
  • 中언론, 당예서 동메달에 “자랑스럽다”

    中언론, 당예서 동메달에 “자랑스럽다”

    중국은 당예서가 자랑스럽다? 지난 17일 열린 탁구 여자단체전 3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3-0으로 완파하고 동메달을 획득한 김경아·당예서·박미영 중 귀화선수 당예서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중국명 탕나(唐娜)인 당예서는 지난 2000년 대한한공의 훈련 파트너로 한국에 온 뒤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고군 분투해왔다. 2007년 10월 당당히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뒤 2008년 초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0전 전승을 하며 태극마크를 달았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배신자’라며 온갖 야유를 퍼붓던 중국인들과 일부 언론이 당예서가 이번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자 “중국인의 실력은 역시 뛰어나다. 자랑스럽다.”며 칭찬하기 시작한 것. 중국 QQ.com 스포츠는 “시상식대에 올라간 9명의 선수 중 7명이 중국인이었다.”며 “중국인의 높은 실력이 세계를 놀라게 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중국선수 3명과 싱가포르 선수 3명, 그리고 한국의 당예서까지 모두 중국인이거나 중국 국적이었다 귀화한 선수들인 것. 이 언론은 “은메달을 획득한 싱가포르 소속 중국 선수들 뿐 아니라 동메달을 획득한 탕나도 팀의 승리에 큰 도움을 준 뛰어난 선수”라며 “이는 중국의 탁구 실력이 매우 강력하다는 것을 설명해준다.”고 전했다. 이는 ‘배신자’를 운운하며 당예서를 비난하던 것과 매우 상반되는 태도일 뿐 아니라 애초 당예서가 한국으로 귀화할 수밖에 없었던 중국 탁구계의 비합리적인 체계에 대한 설명은 전혀 덧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당예서의 선전을 지켜본 중국 네티즌들은 “하필이면 한국에 귀화해 중국과 적수가 됐다.”며 아직도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포털 사이트 163.com의 한 네티즌(221.2.*.*)은 “탁구가 그렇게 좋았다면 홍콩으로 이주할 수도 있었다. 왜 하필 한국인지 모르겠다.”고 올렸고 또 다른 네티즌(222.170.*.*)은 “어떤 국가든지 상관없다. 차라리 북한에 갔었더라면 지금처럼 욕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국 국적으로 동메달을 취득한 당예서를 비난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반한’을 넘어 ‘혐한’으로 치닫는 베이징올림픽

    ‘반한’을 넘어 ‘혐한’으로 치닫는 베이징올림픽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혐한(嫌韓)증’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한때 ‘한류(韓流)’ 열풍의 진원지로 꼽혔던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올림픽 축제에서 한국이 이런 ‘대접’을 받으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어서 그 충격은 더욱 크다. 종목별로 한국과 중국이 맞붙는 자리에서 중국 관중들이 자국팀을 응원하는 것은 너무 자연스럽지만 문제는 중국이 아닌 3국과 한국이 대결하는 곳에서도 중국인들의 응원은 언제나 한국의 반대쪽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선수가 사대에 서기만 하면 페트병을 두드리고 야유를 보내곤 했던 지난 14일 양궁 여자 개인전에서는 난공불락의 한국에 대한 시기가 맞물려 있기에 그렇다 쳐도 중국의 결과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종목에서 나오는 ‘반한(反韓) 응원’은 지극히 감정적이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 올림픽축구팀의 한 관계자는 “현지 한국 외교관들이 중국 내 ‘반한 감정’이 최고조에 일었다는 말을 한다. 한국을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반응은 차갑다.”고 전했다. 사례를 몇개 들어보면 우선 남자 축구에서 한국은 한번도 중국 팬들의 응원을 받지 못했다. 응원은 커녕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중국 관중은 언제나 카메룬, 이탈리아, 온두라스 등 한국 상대팀에게 ‘찌아요우(加油·힘내라)’라는 함성을 보냈다. 응원구호 ‘대~한민국’의 반대어는 ‘찌아요우’처럼 비쳐졌다. 펜싱 여자 플뢰레 결승에서 태극검객 남현희는 이탈리아의 베찰리보다 열세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약자보다는 강자를 응원했다. 골리앗에 맞선 이웃의 동양인에게 보내는 박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선수의 반대편에 섰다는 것만으로 지지를 보냈다. 한국과 미국의 야구 첫 경기에서 미국측 응원은 중국인까지 가세해 그 기세가 대단했다. ‘메이궈 찌아요우(미국. 힘내라)’라는 구호는 미·중 합작품이었다. 특히 이 응원은 처음에 몇몇 중국인이 외치자 미국 관중이 따라하는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미국을 응원한 주류는 중국인들이었다. 지난 5월 한·중 양국은 전면협력 동반자관계를 뛰어넘어 전략협력 동반자 관계로 외교적 지위를 격상하며 아름다운 미래를 지향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외교적 관계의 나아감과는 별도로 중국인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하기만 하다. 마치 역사적 구원관계를 형성한 일본 혹은 세계 패권 다툼의 라이벌인 미국을 겨냥한 감정이 그대로 한국에 옮겨온 듯한 느낌이다. 이를 두고 ‘혐한’(嫌韓)의 모습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웃한 나라와 동반자 관계까지 맺었던 한국에 중국인들은 왜 싸늘해졌나. 한국 축구 대표팀과의 대결에서 40년간 무승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중국은 ‘공한증(恐韓症)’을 꺼내며 과거 조공을 상납하던 변방 소국에 한번도 이기지 못하는 것을 분하게 생각해 왔다. 역사적으로 ‘신하의 나라’로 평가하는 한국이 중국을 넘어섰다는 것에 대한 질투가 그 곳에 숨어 있다. 최근에는 올림픽과 관련한 사건사고가 중국인들의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티베트 사태가 불거지며 국내에서 성화봉송 반대 움직임이 일었고 올림픽 개막식 내용이 국내 한 방송사에 의해 미리 공개된 것도 한 몫 했다. 기사제휴/스포츠서울 오광춘기자(베이징)@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中언론 “한국 관중, 응원과 매너 최고”

    中언론 “한국 관중, 응원과 매너 최고”

    2008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각국 선수들의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면서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들의 열기도 고조되고 있다. 특히 중국을 방문한 한국 관중들은 금메달 효자종목인 양궁 경기에 큰 응원을 보내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양궁경기에서 한국 관중들은 ‘제 2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열띤 응원과 성원을 보내 현지인들을 놀라게 했다. 이에 중국 신화통신은 “양궁은 한국 관중들이 가장 주목하는 경기”라면서 “중국과 한국 관중 사이에 ‘큰 대결’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특히 양궁 남자 개인전 예선이 펼쳐진 지난 13일 한국의 박경모와 타이완의 궈전웨이(郭振瑋)가 맞붙었을 당시를 예로 들며 “1000여명의 한국 관중들은 장비가 매우 훌륭했고 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고 극찬했다. 플랜카드와 통일된 막대 풍선이 눈길을 끌었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형태의 구호와 질서 정연함이 중국 선수 뿐 아니라 현지 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는 평가. 신화통신은 “타이완 선수를 응원하는 중국 관중은 2000명 가까이 됐지만 한국 관중만큼 잘 정비되어 있지 않았다.”면서 “‘중궈짜요’(中國加油·’중국 파이팅’의 뜻)를 외치는 중국 관중들과 한국 관중의 대결 같았다.”고 전했다. 이어 “이 경기는 중국과 한국 양궁 선수 뿐 아니라 열띤 응원을 펼친 두 나라의 관중들로 더욱 훌륭한 경기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중국 관중들은 올림픽 초반 반한(反韓)감정에서 비롯된 야유로 선수들의 경기를 방해하는 등 물의를 빚었다. 그러나 지난 12일 부상투혼을 펼쳐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보였던 역도 이배영 선수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는 박수를 보냈던 것을 시작으로 차츰 정정 당당한 관중의 몫을 해내고 있다. 사진=SOHU.com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부상투혼’ 이배영 ‘반한감정’도 녹인다

    ‘부상투혼’ 이배영 ‘반한감정’도 녹인다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은 무더위·공해 등 악천후 외에도 중국 관중들의 야유라는 악조건과 맞서 싸워야 하는 2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2일 덴마크와 맞붙었던 남자 핸드볼 대표팀은 자신들이 공을 잡을 때마다 들려오던 야유를 감내해야 했다.복싱의 이옥성(27·보은군청) 선수가 혼자 싸우는 동안 그와 맞붙은 미국의 러시 워렌 선수는 관중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펀치를 뻗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양궁 대표팀이 경기를 할 때는 관중의 노골적인 방해 움직임도 포착됐다.양궁 대표 임동현(22·한국체대)은 이를 두고 “야유 섞인 중국 관중의 응원이 거슬렸다.”고 말했다. 여자농구와 남자 축구대표팀의 경기에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 같은 관중의 야유는 최근 몇 년 동안 한중 양국관계가 더욱 악화된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 SBS의 올림픽 개막식 행사 사전 방송 파문으로 중국 내 ‘반한감정’이 더욱 거세졌다는 평이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에 일방적인 비난을 보내던 중국 관중들도 ‘부상 투혼’을 선보인 역도의 이배영(29·경북개발공사)선수에게는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지난 12일 베이징 항공항천대 체육관에서 열린 역도 남자 69㎏급 결선에서,관중들은 경기 중반까지도 이배영에게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배영이 용상 1차시기에서 다리에 쥐가 나고도,끝까지 투혼을 발휘하자 관중들은 격려의 박수와 응원의 함성을 아끼지 않았다.특히 이배영 선수가 2차 시기 직전 부상 부위를 점검하는 듯 두 발을 바닥에 탁탁 구르는 동작을 취하자,관중들은 큰 환호성으로 힘을 실어줬다.3차 시기까지 실패한 후에도 옅은 미소를 보내며 화답했을 때,관중들의 박수 소리는 최고조에 달했었다. 이배영이 보여준 진정한 스포츠맨십과 승부 근성에 반한감정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다는 올림픽 정신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중국 언론과 네티즌도 이배영의 부상투혼에 “감동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QQ.com 스포츠판은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명장(名將)”이라며 “패배자가 아닌 스포츠 영웅”이라고 극찬했다. 신화통신도 바를 잡고 쓰러지는 이배영의 사진을 실은 뒤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라는 문구와 함께 “불굴의 용기가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의 환호성과 박수를 이끌어 냈다.”고 평했다. QQ.com의 한 네티즌(116.16.213)은 “정신력으로 봤을 때 이배영은 1위와 다름없다.그는 진짜 남자”라고 말했고 또 다른 네티즌은 “한국 선수가 온 세계를 감동시켰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국내 네티즌들도 ‘이배영 미니홈피’ 등을 검색하며 그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다.더불어 그의 부상을 염려하며 회복에 최선을 다하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송혜민기자 taiji@seoul.co.kr
  •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당당하게 다시 일어서라

    사람은 누구나 실패를 할 수 있다. 이 세상 누구라도 자신의 꿈을 직선주로를 달려 단번에 도달해 버리는 사람은 없다. 어떤 목표나 희망을 일컬어 왜 ‘꿈’이라고 하겠는가. 그것은 불투명한 것이며 불확실한 것이다.‘꿈’은 종종 우리의 능력과 노력을 배신한다. 문제는 실패에 직면했을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 하는 것이다. 공중화장실에 써 있는 것처럼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 진출했던 이천수가 1년 임대 조건으로 수원 삼성에 안착했다. 잉글랜드 미들즈브러에 진출했던 이동국도 성남에 다시 둥지를 틀게 됐다.그들이 인천공항을 떠날 때 그 누구도 이렇게 일찍 돌아오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들 스스로 이렇게 일찍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매우 저열한 야유나 비난을 받을 일은 결코 아니다. 축구를 빙자해 사기를 치거나 능력도 없이 빈둥거리다가 돌아온 ‘먹튀파’가 아니다. 실력을 거짓으로 꾸며냈거나 흠결을 숨기고 있다가 그만 들통 나서 쫓겨난 파렴치범도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였으나 실력이 미치지 못했고, 소속팀 감독의 큰 그림에 맞지 않아 돌아오게 된 것일 뿐이다. 이런 일은 이 세상 누구나 겪는 일이다. 사기를 치거나 거짓을 꾸미지도 않았는데, 다만 실력 부족으로 ‘꿈’이라는 불확실한 세계가 점점 더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일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실패와 좌절은 인간의 운명이다. 중요한 건 그 상황에서 본인과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뜻을 모아 다시 일어나느냐 하는 것이며 이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소중한 미덕인 것이다. 지금 우리에겐 그런 미덕이 필요하다. 이천수와 이동국에겐 더욱 그렇다. 출국장으로 나설 때보다 입국장으로 침통하게 들어올 때의 심정을 뼛속 깊이 저장하고 있어야 한다. 일부 극성맞은 팬들이 그동안의 사랑과 기대에 대한 허탈감 때문에 인터넷에서 조금은 냉소적인 야유와 신경질적인 비난을 퍼붓고 있지만, 그것마저도 받아들여야 한다. K-리그를 지킨 대부분의 국내파 선수들에 견줘 상당히 여유 있는 조건으로 뛸 수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연히 아랫입술을 꽉 물고 그라운드에 들어서는 모습. 거기에서 우리는 또 한번 인생을 배우는 것이다. 지금은 그런 마음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데스크시각] 악착같은 일본 야구와 독도/ 이춘규 체육부 부장

    [데스크시각] 악착같은 일본 야구와 독도/ 이춘규 체육부 부장

    해마다 한여름이면 일본 효고현 고시엔야구장은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열기로 뜨겁다. 올 90회 대회는 다음달 2일부터 18일까지 전국 4163개 고교팀 가운데 지역대표 55개교가 참가해 17일간 열린다. 지역예선은 6월말부터 오는 27일까지 개최된다. 이 밖에 전국규모 고교야구대회는 봄방학기간 중 선발대회가 열린다. 봄 선발대회와 여름 선수권대회 모두 각 지역예선은 원칙적으로 토·일요일, 본선경기는 방학 때 치러지고 있다. 이른바 ‘학생으로서의 본분’ ‘학생다움’을 충실하게 지키기 위해서다. 고시엔대회로 익숙한 고교야구선수권대회는 공영 NHK방송이 지상파와 위성으로 전 경기를 중계하고, 지난해 대회에 관중이 77만여명이었다.1990,91년 대회 때는 90만명 이상의 입장객을 기록했다. 이처럼 국민적인 관심이 높은 만큼 경기들을 지켜보면 이른바 일본적인 집요함이 느껴진다. 감독들은 초반은 물론 아무리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더라도 기회가 오면 번트를 지시한다. 그렇다고 야유하는 관중은 없다. 봐주기는 절대 없다. 선수들은 땅볼을 치면 예외없이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이다. 흙으로 뒤범벅이 된다. 악착같다. 진 팀 선수들은 울음을 토해내고 방송화면은 이를 잡아낸다. 프로야구라고 예외는 아니다. 요미우리도 일본 최고의 명문이라고 하지만 1회부터 번트작전을 구사한다. 프로 선수들도 땅볼을 치고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건 기본이다. 일본의 승부세계는 1등만이 우선시되는 분위기 때문에 처절하기까지 하다. 일반 사안에 대해서도 일본은 집요하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매달리는 일본 경찰들의 모습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집요하다. 일본 경찰은 1977년 이뤄진 요코다 메구미 납치 등 30년 넘은 북한의 납치 사건에 대해 담당자를 인계해 가며 집요하게 수사해 자료를 축적했다. 메구미는 숨졌지만 아직도 수사는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 한국에 독도 영유권 도발을 해 왔지만 일본의 바다영토 확장 기도는 특히 집요하다. 오키노도리 문제는 극치다. 도쿄에서 서남쪽으로 1740㎞ 떨어진 태평양상의 오키노도리는 높이 수십㎝, 넓이 2m×5m에 불과해 파도가 조금만 일어도 물속에 잠기는 두 개의 암초다. 암초는 국제법상 영토가 안 된다. 그래서 일본은 1988년 콘크리트를 타설해 반경 25m, 높이 3m의 인공섬을 만들었고, 지난해에는 등대도 설치했다. 아예 산호초를 양식, 자연섬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태세다. 독도 영유권 도발에 대한 일본의 접근도 이런 일본적인 집요함에 바탕을 두고 이뤄지고 있음을 되새겨야 한다. 일본은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뒤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억지를 부렸다. 특히 한국의 정권교체기나 한국 정부의 관심이 줄어들 때면 뒤통수치듯이 예정된 스케줄에 따라 독도 영유권을 국제무대에 주장, 분쟁지역화를 노렸다. 이번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명기하겠다고 나선 것도 역시 뒤통수치기 식이다. 일본이 집요함을 앞세운 반면 우리나라는 ‘냄비근성’이라는 비아냥 섞인 표현으로 대표되듯이 일본의 도발에 반짝 대응하다 흐지부지해 버렸다. 쉽게 잊어버리고, 사후대책 마련도 소홀했다. 그렇지만 실망하지 말자. 한민족도 은근과 끈기는 세계 최고다. 중국 주변 소국이지만 수천년간 역사·문화적 저력을 앞세워 복속되지 않은 것은 세계적으로도 평가받는다.97년 외환위기도 조기 극복,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정부 관계자들이 “장기적 안목에서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하듯이 독도문제에 대해 이번에는 정부나 국민들의 대응이 달라지려는 기류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 끈질겨야 한다. 일본이 집요하다면 한민족은 은근과 끈기가 있지 않은가. 놀라운 저력을 믿어본다. 이춘규 체육부 부장
  • “이겼습니다”…추성훈, 블로그 통해 승리보고

    “이겼습니다”…추성훈, 블로그 통해 승리보고

    ”여러분 덕분에 이겼습니다.” 7개월 만의 복귀전에서 화끈한 승리를 거둔 추성훈이 응원해준 팬들에게 감사를 나타내는 글을 21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이겼습니다.’라는 제목의 이 글에서 추성훈은 “응원해준 팬 여러분 감사합니다.”고 밝힌 뒤 “언제나 느끼지만 여러분의 서포트가 있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며 변함없이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한편 21일 ‘드림5 라이트급 그랑프리 결승전’ 미들급 원매치에서 추성훈이 프로레슬러 출신 ‘시바타 카츠요리’(柴田勝頼)를 1라운드 6분 34초 만에 목조르기로 가볍게 이기자 일본 언론은 “역시 강하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스포츠니폰은 “추성훈이 시바타를 실신시킴으로써 관객의 야유를 잠재웠다.”고 전했고 데일리스포츠는 “무서울 정도의 강함을 보여준 한판!”이라고 시합을 평가했다. 닛칸스포츠도 “관객의 야유를 받으면서도 시바타에 한판승을 거뒀다.”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한 경기였다.”고 보도했다. 일본네티즌 역시 추성훈의 승리에 야유를 보내면서도 “강하다.”라는 의견을 나타냈다. 한 네티즌은 야후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추성훈은 미들급에서는 최강일 것”이라며 “사쿠라바와의 경기 역시 반칙 없이도 이겼을 것은 물론 이번 경기 역시 시바타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한다.”고 격려했다. 또 다른 네티즌 역시 “추성훈은 강하다.”며 “강하기 때문에 사쿠라바와의 일전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 앞으로도 노력해 달라.”고 응원을 보냈다. 사진=gbring.com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철 기자 kibou@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추성훈 日야유 날린 TKO승

    추성훈 日야유 날린 TKO승

    재일교포 추성훈(32·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이 7개월 만에 링에 올라 TKO승을 거뒀다. 추성훈은 21일 일본 오사카성홀에서 열린 종합격투기 대회 ‘드림5’ 라이트급 그랑프리 결승전 미들급 이벤트 경기에서 프로레슬러 출신 시바타 가쓰요리(29·일본)를 1라운드 6분34초 만에 초크(목조르기)로 제압했다. 일본 팬들의 거센 비난 속에 유도복을 입고 링에 오른 추성훈은 초반에는 지난해 12월31일 ‘야렌노카!오미소카!’에서 미사키 가즈오(일본)에게 나중에 무효로 판정된 KO패를 당하며 코뼈를 다친 것을 의식한 듯 신중하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그러나 추성훈의 공격은 강력했다. 하이킥이 빗나가자 달려든 시바타를 들어 바닥에 쓰러뜨린 뒤 파운딩 펀치에 이어 위에 올라탔고, 목조르기에 들어갔다. 추성훈의 완벽한 기술에 걸린 시바타는 결국 기절,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켰다. 추성훈은 도복 양소매에 새겨진 태극기와 일장기를 손으로 두드리는 세리머니로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추성훈은 2006년 12월31일 K-1 다이너마이트 사쿠라바 가즈시(일본)전에서 규정에 어긋나는 로션을 발랐다는 이유로 무기한 출전 징계를 받은 이후 일본 팬들의 ‘공공의 적’이 됐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추성훈, 그는 왜 일본서 ‘마왕’이 됐나

    추성훈, 그는 왜 일본서 ‘마왕’이 됐나

    일본인들은 왜 격투기 스타 추성훈(일본명·아키야마 요시히로)에게 환호 대신 야유를 보낼까.스포츠 스타에 대한 질시일까,아니면 민족적 편견의 발로일까. 추성훈이 일본에서 관중들의 야유를 받으며 ‘마왕’ 이미지를 구축하게 된 데에는 사쿠라바 카즈시(40)·미사키 카즈오(31)와 치른 2번의 경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재일동포 4세인 추성훈은 2001년 일본으로 귀화,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남자 유도 81㎏급에 일본 대표로 출전,우리나라의 안동진(경남도청)을 꺾고 금메달을 땄다. 그후 종합격투기 선수로 변신한 그는 2004년 마지막 날 열린 K-1 다이너마이트 대회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복서인 ‘화이트 버팔로’ 프랑소와 보타(40)를 꺾으며 화려하게 데뷔전을 장식했다. 추성훈은 승세를 이어 2006년 10월 K-1 히어로즈 라이트헤비급 그랑프리 결승전에서는 ‘타격 몬스터’ 멜빈 마누프(32·네덜란드)를 암바 기술로 꺾고 드디어 챔피언에 등극하는 영예를 누렸다.이 경기를 계기로 추성훈은 “실력에 맞는 타이틀을 차지했다.”는 평과 함께 일본 내에서도 뜨거운 인기를 구가했다. 그리고 이어진 운명의 ‘사쿠라바 카즈시 전’. 2006년 12월 31일 추성훈은 ‘K-1 다이너마이트 대회’에서 사쿠라바 카즈시와 대결을 벌였다.사쿠라바는 ‘그레이시 가문’ 등 해외 격투기 스타를 차례로 꺾으며 일본 격투기계의 자존심을 지킨 인물로,일본인들은 그를 ‘격투 영웅’이라고 칭송하며 환호를 멈추지 않았다. 사실은 추성훈이 일본을 대표하는 그런 선수와 맞붙었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의 (일본에서)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기는 했다.더구나 이 경기에서 추성훈은 사쿠라바에 무차별적인 난타를 퍼부으며 1라운드 5분37초 만에 TKO승을 거뒀다.비록 전성기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일본인들이 눈앞에서 ‘영웅’이 쓰러지는 모습은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임을 추측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더 큰 문제는 경기 후에 벌어졌다.사쿠라바측에서 “추성훈이 몸에 크림을 발라 미끄러워 경기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의혹을 제기했고,그 결과 경기가 무효처리됨과 동시에 추성훈은 무기한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이로 인해 추성훈은 엄청난 야유와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다.언론은 거침없이 추성훈을 파렴치한 선수로 몰아갔다.추성훈이 “규정을 몰라 저지른 실수였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일본인들에게 추성훈은 ‘악마’로 각인되고 있었다.여기에는 일본 특유의 배타적 국민의식도 작용했다.그들의 눈에 추성훈은 여전히 ‘조센징’일 뿐이었다.얼마든지 짓밟고 짓이겨도 별 문제가 없는…. 이후 2007년 10월 28일 K-1 히어로즈 서울대회에서 추성훈은 한국계 데니스 강(32)을 꺾으며 재기에 성공했으나 그해 12월 31일 ‘프라이드FC-야렌노카!오미소카’에서 미사키 카즈오에게 킥에 이은 파운딩을 허용해 1라운드 1분46초를 남기고 레프리 스톱으로 패했다.(이 경기에 대해 22일 실행위원회는 미사키의 킥이 반칙이었기 때문에 무효 판정을 내렸다.) 경기 직후 마이크를 잡은 미사키는 추성훈을 향해 “많은 사람과 아이들을 배신했다.”는 등 운동 선수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신모독성 훈계를 했다.마치 어른이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꾸짖듯. 이후 일본내에서 추성훈의 ‘악역 이미지’는 더욱 굳어지게 됐다.일종의 여론조작이자 이지메였다. 실제로 한 일본 언론은 추성훈과 미사키의 대결을 ‘권선징악극’으로 묘사하며 선(善)의 편인 미사키가 악(惡)의 편인 추성훈을 물리쳤다고 보도하기도 했다.그런가 하면 일본의 격투기 잡지 ‘카미프로’는 표지에 내세운 추성훈의 얼굴에 눈동자를 빨갛게 칠해 악마로 그리고는 그를 ‘마왕’이라고 지칭했다. 이런 일련의 사태 속에서 일본인들은 그가 패션모델인 야노 시호와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춰 또다시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한번 먹이를 물면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놓지 않는 일본인들의 야만성이 추성훈의 사생활을 지나칠 리가 없었다. 추성훈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런 감정은 지난 21일 열린 ‘K-1 드림5’ 시바타 카츠요리와의 대결에서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모습 그대로였다.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입장하는 추성훈에게 우레(?)와 같은 야유를 보내며 반감을 표시했다. 이같은 추성훈의 ‘악역’ 이미지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바타를 꺾은 추성훈은 일본의 또 다른 격투 영웅인 ‘고독한 천재’ 타무라 키요시(39)와 맞붙고 싶다고 밝힌 것.그동안 타무라는 줄기차게 ‘추성훈 크림 사건’ 등을 거론하며 비난하는 등 스포츠 스타의 격에 어울리지 않는 비난을 계속해 왔고,견디다 못한 추성훈이 격투기 선수 답게 경기장에서 승부를 가리자고 도전 의지를 밝혔다. 문제의 타무라는 1997년 링스 초대 무차별급 챔피언에 오르며 전성기를 구가했었고,그의 스승 격이었던 다카다 노부히코(46)의 은퇴 경기에서 다카다를 꺾으며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었다. 이렇듯 타무라는 일본을 상징하는 강자로,그가 제안을 수용한다면 또 한번 추성훈은 ‘마왕’으로 경기를 치러야할 것으로 보인다. ‘마왕’이란 캐릭터는 일장기와 태극기를 동시에 품고 활동하는 그에겐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숙명일지도 모른다.문제를 이성으로 보려하지 않고 집단의식에 매몰된 시각으로만 보려는 일본인들 속에서 지금 추성훈은 힘겹고 고독한 길을 걷고 있다.그런 그가 목을 곧추 세우고 당당하게 일본인 상대를 제압하는 한 일본인들의 질시와 비난은 멈추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 [데스크시각] 소통의 시대를 위하여/김종면 문화부장

    [데스크시각] 소통의 시대를 위하여/김종면 문화부장

    “국익과 더불어 우리의 자존을 위해서다.‘노무현 죽이기’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자학으로부터의 쾌감’에 종지부를 찍고 모두 다 의젓한 성인으로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언제까지 어린애들처럼 징징대면서 노무현을 씹고 조롱하고 야유해야 하겠는가.” ‘노무현 죽이기’의 저자인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그 속편격인 ‘노무현 살리기’에서 수구언론과 우파성향 엘리트들을 겨낭해 이렇게 일갈한 적이 있다. 그의 어법을 빌려 노무현의 자리에 이명박을 대입시키면 어떤 논의가 가능할까. 국익과 자존을 위해 촛불 끄기 국민각성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까. 아니면 쇠고기 협상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니 떼어내고 다시 달 때까지 ‘이명박 때리기’를 계속해야 할까. 어느 쪽이든 일면의 진실이 있으니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부가 뒤늦게나마 오만과 독선의 ‘먹통정치’를 뉘우치고 소통의 정치, 상생의 문화를 강조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는 혼란의 가장 큰 원인은 이 대통령 스스로 인정했듯 국민과의 소통부재다.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 쇠고기 협상을 어떻게 벼락치듯 해치울 생각을 했을까. 그야말로 협상아마추어리즘의 결정판이다. 그로 인해 대통령으로서도 피멍이 들도록 처절한 시련을 겪었으니 국민과의 소통의 중요성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어떻게 소통이 우리 사회의 단층을 허물고 자기치유의 미덕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느냐 하는 것이다. 논자들은 소통의 달인을 따라 배우라고들 한다.‘위대한 커뮤니케이터’ 레이건, 노변정담으로 유명한 루스벨트, 만백성을 두루 어루만지는 배려와 소통의 정치를 편 정조대왕에 이르기까지.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 생각해 볼 인물이 미국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다. 사실 후버 하면 기껏해야 후버 댐이나 후버 모라토리엄 정도 떠오르는 ‘별 볼일 없는’ 대통령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초드는 것은 그가 당대 최고의 ‘라디오 대통령’으로 명성을 떨쳤기 때문이다. 후버는 재임중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라디오를 정기적으로 이용했다. 굳이 라디오가 아니어도 좋다. 이 대통령도 공영방송을 이용해 한달에 한번이라도 국민과의 소통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그것은 대통령의 필수 자질인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곧 미디어 해독능력을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 국민과의 소통과 짝을 이뤄야 할 것이 역사와의 소통이다. 국민과 불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와의 대화가 필요하다. 오늘의 ‘촛불 쓰나미’를 몰고온 것도 따지고 보면 최고지도자로서 시대의 흐름을 꿰뚫는 역사적 통찰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역사의식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실용도 개혁도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최고지도자로서 어찌하면 그에 걸맞은 역사적 안목을 갖출 수 있을까.‘성학집요´니 ‘정관정요´니 하는 제왕학 교본이라도 외워야 할까. 조선의 왕들이 경연(經筵)에 나아가 경서를 공부했듯 이 대통령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 대통령에게 지금 진정으로 필요한 건 국민과 함께하는 ‘대통령의 길’을 일러줄 정신적 스승이다. 이제 대통령도 대통령 아닌 사람도 ‘촛불의 멍에’를 뒤로하고 평상심을 되찾아야 한다. 장수가 잡념이 많으면 검(劍)을 뺄 기회를 놓치는 법. 이 대통령은 가슴에 ‘소통’이란 두 글자만 새기고 다시 한번 가로 뛰고 세로 뛰어야 한다. 무너진 권위를 바로 세우고 새 출발 해야 한다. 국민은 여전히 주눅든 포퓰리스트보다 당당한 현장승부사 이명박을 원한다. 만신창이가 된 ‘이명박 브랜드’ 중에 아직 쓸 만한 게 있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살려나가야 한다. 강한 개혁 대통령이 정답이다. 모호크족 인디언은 말한다.“눈물에 젖은 눈으로는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 맑은 눈으로 차분히 미래를 응시할 때다. 김종면 문화부장
  • 촛불정국 의식… ‘조용한 잔치’

    촛불정국 의식… ‘조용한 잔치’

    ‘촛불 정국’과 여야간 국회 등원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3일 ‘조용히’ 전당대회를 치렀다. 후보들은 최대한 자극적인 행동을 자제한 채 지지를 호소했다. 정견 발표에 앞서 상영된 영상물에는 후보들이 서로를 칭찬하는 내용을 담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후보들 자극적 행동 자제 7000여명의 대의원은 지지 후보의 정견발표가 이어질 때마다 환호와 박수로 화답했다. 행사장 주변과 장내에서 벌이는 응원전도 뜨거웠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던 박희태 후보는 당·정·청의 소통을 강조하며 웅변조보다는 편안한 말투로 참석자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정몽준 후보는 ‘버스요금 70원’ 설화를 만회하려는 듯 연설 도중 주머니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T머니 카드’를 꺼내 “‘앞으로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며 당원이 선물한 것이다.”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단일화에 대한 해명도 이어졌다. 허태열 후보는 ‘친박(친박근혜)계’ 대표주자답게 박 전 대표를 가리키며 박수를 유도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화합을 강조했다. 반면 ‘친이(친이명박)계’ 후보인 공성진 의원은 “이명박 정권의 성공이 공성진의 성공이다.”면서 “이 대통령과 직접 머리를 맞대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을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가장 먼저 정견 발표에 나선 박순자 후보는 유일한 여성 후보라는 점을 내세우면서도 “여성몫 최고위원이 아니라 당당히 지도부에 들어가게 해달라.”며 지지를 당부했다. 김성조 후보는 “미국에서 이재오 전 의원의 ‘오더(지시)’가 내려오고 있다.”면서 “전당대회가 시나리오대로 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친이계가 뭉쳐 전당대회를 좌우한다는 김 후보의 주장에 곳곳에서 야유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대통령·박근혜 만남 ‘불발´ 한편 대선후 처음으로 당의 공식행사에 참석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어떤 형식으로든 마주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이 대통령은 인사말을 끝내고 바로 자리를 떠났고 박 전 대표는 대의원들과 함께 앉아 있어 두 사람의 만남은 불발에 그쳤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사설] 국회 공전 한 달, 국민은 안중에 없나

    18대 국회 파행이 한 달째를 넘어섰다. 지난달 30일 임기가 시작된 이후 식물국회가 계속되고 있다. 법정 기일내 개원식(6월5일)을 열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그들 스스로 국회법을 어긴 탓이다. 그러다 보니 국회의 고유권한인 입법기능은 완전히 마비됐다. 정부가 고물가·고유가 대책을 내놓아도 당장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 부수적으로 법적 보완책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가 지금처럼 손을 놓고 있으면 서민들의 생계는 더욱 멍든다. 치유책을 제도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국회의 몫이다. 하루라도 빨리 국회를 열어야 하는 이유다. 여기까지 온 데는 여야 모두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정치의 실종이 그것이다. 정치권은 국민을 안중에 두지 않은 채 그들만의 리그를 전개해 왔다.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은 민심이 노도와 같은 상황에서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하다가 뒷북만 쳤다. 야당을 끌어안으려는 진정한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다. 새 원내지도부 역시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한다면 끝까지 설득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재차 강조하건대 민주당의 등원거부는 명분이 없다. 소속 의원들이 촛불 시위대로부터 왜 야유를 받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 야당다운 대안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제헌절(7월17일)이다. 올해는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여야는 극한 대치 상황에서도 개원은 했다. 정말로 국민앞에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는데 듣기조차 민망하다. 조건없이 등원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7월4일이면 임시국회가 종료된다. 그 전에 최소한 개원 접점이라도 찾기 바란다.
  • [누드 브리핑] 시의회 의장 선거 보이지 않는 손 개입?

    서울시가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스폰서 계약 추진에 고민하고 있습니다.FC서울 팬들의 오세훈 시장에 대한 야유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합니다. 한나라당 서울시의회 의장 후보 선출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맨유 스폰서’ 할까, 말까 지난 15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상암월드컵 경기장을 찾았다가 스타일을 구겼습니다.FC서울과 J리그 FC도쿄간 친선경기 축사를 하기 위해 나섰다가 관중들의 야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스포츠 행사에 정치인과 지자체 단체장이 곧잘 축사를 하는데 이렇게 야유를 받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오 시장도 순간 당황했다고 하네요. 축구팬들이 야유를 보낸 까닭은 지난달 언론을 통해 알려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스폰서 계약 추진 탓입니다.‘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에 경기당 90초간 서울시 광고를 하는 대가로 25억원을 지급하는 것인데요.FC서울 팬들은 연고구단을 놔두고 엉뚱한(?) 곳에 돈을 쓴다고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네티즌들도 “세금 낭비”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때문에 서울시도 고민이 많은 모양입니다. 지난달 언론에 알려진 이후로 맨유와의 계약과 관련해 별다른 진척이 없다고 하는데요. 내부적으로는 스폰서 계약 추진을 취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합니다. 이번 팬들의 야유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됩니다.●부의장 전격사퇴… 내부 교통정리? 제7대 서울시의회 후반기 의장 선거에 때아닌 ‘보이지 않는 손’ 논란이 제기됐는데요. 이유인즉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었던 김기성 부의장의 전격 사퇴 때문입니다. 김 부의장은 지난 17일 “박주웅 의장과 지지층이 겹쳐 당선이 어렵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는데요. 한나라당 의장 후보 출마 때와는 태도가 너무 달라 한나라당 내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내부 ‘교통정리’가 진행된 것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시의회 의장직은 한나라당이 시의회 106석 중 102석을 차지하고 있어 사실상 한나라당 의장 후보가 의장으로 선출됩니다.시청팀
  • 중학생 앞에서 스트립쇼 한 英교사 논란

    중학생 앞에서 스트립쇼 한 英교사 논란

    영국의 한 중학교에서 수업을 하던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스트립 쇼’를 펼치는 동영상이 네티즌 사이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유튜브에 올려진 이 문제의 영상에는 교단에 서 있는 한 남성이 갑자기 윗옷을 벗고 학생들에게 팔 근육을 자랑하는 듯한 포즈를 취한 뒤 다시 옷을 입기까지의 화면이 담겨져 있다. 수업을 듣고 있던 학생들은 13세~14세의 중학생들이며 옷을 벗어 던지는 선생님을 본 한 학생이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동영상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로 떠오르자 해당 학교의 교장과 주 교육부가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동영상 속 남성은 영국 서퍽(Suffolk)주에 위치한 서드베리중학교(Sudbury Upper School)의 영어교사로 근무중이며 이 화면은 지난 4월 촬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교사는 수업 도중 학생들에게 장난으로 “근육을 보여주겠다.”며 약 30초간 윗옷을 벗은 채 교단에 서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윗옷을 벗어 던지는 선생님을 본 학생들은 놀라는 한편 몇몇은 야유와 환호성을 번갈아 지르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이 동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자 해당 중학교의 데이비드 포레스트(David Forrest)교장과 서퍽 주 교육부는 이 교사에게 ‘추방’ 명령을 내렸다. 서퍽 주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그의 행동이 아이들을 위험하게 한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러나 선생님으로서는 부적절한 행동이었다.”고 추방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문제의 교사는 곧바로 서드베리 중학교를 떠날 것이며 담임 자격을 박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문제의 이 동영상은 영국 BBC와 일간지 텔레그래프 등을 통해 소개된 뒤 곧바로 유튜브에서 삭제됐다. 사진=데일리메일(수업 도중 학생들 앞에서 옷을 벗고 있는 영국 교사)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6·10 촛불집회] “경제 독재 타도” 광화문 가득 메운 50만 함성

    [6·10 촛불집회] “경제 독재 타도” 광화문 가득 메운 50만 함성

    1987년 6월10일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함성은 2008년 6월10일 ‘소통의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촛불로 이어졌다. 수십만명의 시민들은 21년 전의 그날을 추모한 뒤 함성과 함께 촛불을 치켜들고 여러 갈래로 나눠 광화문과 종로, 안국동과 서대문 일대를 ‘촛불의 강’으로 가득 메웠다. 전국에서 70만여명이 참여한 이날 촛불집회에서는 미국 쇠고기 수입 재협상, 민생안정, 대운하 반대, 정권 퇴진 등 다양한 구호가 터져 나왔다. 비폭력과 평화 시위를 지켜내자는 목소리도 높았다. ●세종로 네거리서 덕수궁 앞까지 가득 메워 이날 서울 세종로 네거리에서 서소문로 입구까지 태평로 12차선 도로는 이번 촛불집회에서 최대 인파인 50만명(경찰 추산 10만 5000명)이 넘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행렬이 남대문 삼거리까지 드문드문 이어졌고 일부 통신장애까지 발생할 정도였다. 유모차를 끌고온 가족부터 대학생, 비정규직 노동조합원, 여성단체, 교수단체, 민주화운동 단체 등 각계각층뿐만 아니라 젖먹이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세대의 시민들이 모였다. 시민들은 오후 9시30분쯤부터 두 갈래로 나뉘어 한 갈래는 신문로∼독립문 방향으로 행진했고, 다른 갈래는 종로∼안국동 방향으로 나아갔다. 가수 안치환씨와 양희은씨, 영화배우 문소리씨가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송파구 가락동에서 온 정덕수(46)씨는 “21년 전 6·10때도 이 자리에 있었는데, 다시 여기 설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면서 “군부독재 타도의 목표가 경제독재 타도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고려대 최장집 교수는 “나도 참여하러 왔다. 그야말로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감동스럽다.”고 말했다. 오후 7시45분쯤에는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방송차 앞으로 찾아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자유발언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정 장관은 “제가 책임자이니 책임을 지고 국민들에게 설명하러 왔다. 현재 미국에서 협상이 진행중이니 자유발언할 기회를 달라.”고 했지만 주최측은 “기회를 줄 수 없다. 해명을 들을 필요도 없는 상황이다.”라고 답했다. 주변의 시민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냈으며 심지어 “매국노”라는 소리도 일부에서 나왔다. ●정운천 장관, 집회 현장 찾았다 야유받아 각계각층의 시민들은 이날 오후 고(故) 이한열·박종철 열사 추모식 등 6·10항쟁을 기리는 행사에 참여한 뒤 오후 7시쯤 광화문 일대로 모였다. 연세대 이한열 열사 21주기 추모기획단 300여명은 이한열 열사 국민장을 재연한 뒤 촛불집회 현장에 합류했다. 박종철 기념사업회 회원 100여명도 용산구 남영동 경찰인권센터 내 509호 조사실에 마련된 ‘박종철기념관’의 개관식을 가진 뒤 광화문에 모였다. 지난달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며 분신한 고(故) 이병렬씨의 서울광장 분향소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총파업을 예고한 공공운수연맹은 오후 5시 서울광장에서, 여성단체들은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촛불집회를 지지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전교조는 오후 4시부터 종로 보신각에서 ‘6·10 교사 행동의 날’을 선포했고 전국교수모임도 행진하는 등 수많은 종교계·문화계·여성계·교육계 단체가 자체 행사를 갖고 촛불대행진에 가세했다. 대학생들도 학내에서 행사를 가진 뒤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이들은 ‘평화시위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고려대를 비롯해 서울대·이화여대·연세대·한국외대·단국대 등 30여개 대학이 참여했다. ●촛불, 전국에 들불로 번져 이날 촛불은 전국 각지로 번져 서울을 포함, 모두 70만여명이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부산에서는 오후 7시 서면 쥬디스태화 앞에서 3만여명이 촛불을 들었다. 광주·대구·울산·창원 시민들도 대거 촛불을 드는 등 전국 시·군·구에서 작지만 강렬한 촛불들이 밤을 밝혔다. 한편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단체는 이날 오후 서울광장에서 3000여명이 참가한 국민대회를 열었지만 곧 빛을 잃었다. 김승훈 이경원 김정은 장형우기자 hunnam@seoul.co.kr
  • 스웨덴, 지난 대회 챔피언 그리스 2대 0 제압

    스웨덴, 지난 대회 챔피언 그리스 2대 0 제압

    ’무적 함대’ 스페인이 2008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8)에서 처음으로 해트트릭을 작성한 다비드 비야의 맹활약으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러시아를 격파하고 첫 승을 신고했다. 스웨덴도 같은 조에 속한 지난 대회 챔피언 그리스를 2-0으로 물리치고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스페인은 11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티볼리 슈타디온에서 열린 유로2008 조별리그 D조 1차전에서 혼자 3골을 뿜어낸 공격수 비야를 앞세워 후반 40분 로만 파블류첸코가 한 골을 만회한 러시아를 4-1로 크게 이겼다. 개막 전부터 이미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 스페인은 1964년 대회 우승에 이어 44년 만에 정상 탈환을 향해 기분좋게 출발했다. 스페인은 또 구 소련을 시절을 포함한 러시아와 역대 전적에서 5승3무2패로 우위를 보이며 1971년 유로대회 예선에서 1-2로 패한 뒤 7경기(4승3무) 연속 무패행진을 이어갔다. 장대비 속에서 시작한 경기에서 스페인은 프리메라리가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 중인 간판 골잡이 비야(발렌시아), 페르난도 토레스(리버풀)를 투톱으로 내세워 선제골도 먼저 터뜨렸다. 전반 8분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토레스의 오른발 슛으로 포문을 연 스페인은 전반 20분 왼쪽 측면을 돌파한 토레스가 상대 수비수 한 명을 따돌린 뒤 문전으로 달려오던 비야에게 밀어줬다. 유로 예선에서만 7골을 터뜨렸던 비야는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고 침착하게 오른발로 밀어 넣어 러시아 골문을 처음으로 열어 젖혔다. 러시아는 바로 반격에 나섰지만 두 차례 골대를 맞추는 지독한 불운에 시달리며 동점골을 뽑아내는 데 실패했다. 전반 23분 미드필더 콘스탄틴 지리아노프가 페널티 지역 중앙에서 날린 슛이 오른쪽 골 포스트를 맞추고 튕겨 나온 러시아는 전반 41분 파블류첸코의 아크 왼쪽 중거리 슛마저 크로스바를 강타하고 말았다. 러시아가 기회를 놓치자 운은 바로 스페인에 돌아갔다. 스페인은 전반 45분 안드레이 이니에스타가 러시아 포백 수비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절묘한 스루패스를 해주자 비야가 골문으로 달려들며 오른발 논스톱 슛으로 연결해 골 그물을 또 한번 출렁였다. 히딩크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공격수 드미트리 시체프를 빼고 블라디미르 비스트로프를 투입한 뒤 후반 12분 이고르 샘쇼프를 벤치에 앉히고 드미트리 토르빈스키를 대신 내보내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그러나 러시아는 스페인의 탄탄한 수비에 좀처럼 득점 기회를 만들지 못했고 비야에게 끝내 해트트릭을 내주고 말았다. 비야는 후반 30분에는 토레스 대신 교체 투입된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오른쪽 미드필드에서 올린 크로스를 이어받아 수비수 한 명을 제친 뒤 페널티지역 중앙에서 오른발 슛으로 세 번째로 골망을 흔들었다. 비야는 한 경기에서 세 골을 사냥해 루카스 포돌스키(독일.2골)를 제치고 득점 선두로 나섰다. 러시아는 경기 종료 10분 전 오른쪽 코너킥을 로만 시로코프가 머리로 연결해 주자 파블류첸코가 헤딩슛으로 골을 넣어 영패를 모면했다. 그러나 스페인은 후반 인저리타임 때 러시아가 공격에 치중한 사이 다시 역습에 나서 파브레가스가 에르난데스의 패스를 받아 경기 종료 직전 다이빙 헤딩슛으로 추가 골을 터뜨려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2위 스웨덴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슈타디온 발스 지젠하임에서 이어 열린 D조 두 번째 경기에서 후반 22분 베테랑 공격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선제골과 27분 페테르 한손의 추가골로 FIFA 순위가 더 높은 그리스(11위)를 2-0으로 제압했다. 스웨덴은 수비 중심의 전술을 펼친 그리스를 상대로 역대 전적에서 2승3무2패로 동률을 이뤘다. 전반 초반에는 스웨덴이 우위를 점해 가는 듯 했지만 그리스의 두터운 수비벽을 뚫지 못해 지루한 공방이 계속됐다. 전반에는 유효슈팅을 포함해 양 팀 모두 네 개씩 슈팅을 주고 받을 정도로 경기 흐름이 더디게 진행됐다. 특히 그리스는 전반 종료 10여 분을 남겨 두고 중앙선을 넘지도 않은 채 수비수들끼리 공을 주고 받으며 역습 기회만을 노리는 등 지나친 시간 끌기 작전으로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후반 들어 스웨덴은 공격의 고삐를 더욱 당기면서 두 골이나 터뜨렸다. 스웨덴은 후반 22분 헨리크 라르손과 2대1 패스를 주고 받은 이브라히모비치가 아크 오른쪽에서 오른발 강슛으로 골망을 처음으로 흔들었다. 기세가 오른 스웨덴은 5분 뒤 한손이 그리스 문전 왼쪽에서 상대 수비수와 공중 볼을 경합 끝에 따내 골대 안쪽으로 왼 발로 차 넣어 추가 골을 뽑았다. 그리스는 후반 중반 수비수 트라이아노스 델라스를 빼고 공격수 요안니스 아마나티디스를 투입해 공격적으로 나서려 했지만 득점을 올리지는 못했다. 후반 42분 그리스 바실리스 토로시디스가 왼쪽 측면을 돌파해 결정적인 골 기회를 잡은 뒤 오른발 슛을 날린 것도 스웨덴 골키퍼 안드레아스 이삭손의 발에 걸리면서 추격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11일 전적 △D조 스페인(1승) 4-1 러시아(1패) 스웨덴(1승) 2-0 그리스(1패) /연합뉴스@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프로야구] KIA·한화 ‘꼼수’ 대결 눈살

    두 경기는 비로 취소되고 1경기는 노게임이 선언된 가운데 4일 광주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KIA전도 결국 9회를 채우지 못했다.KIA는 6-1로 앞선 7회말 쏟아진 폭우로 강우 콜드게임이 선언돼 승리를 거뒀다. KIA는 1회말 이용규와 이종범의 연속 볼넷에 이어 장성호와 김원섭의 적시타로 먼저 2점을 뽑았다.2회 2사 만루에서는 장성호가 만루 홈런을 날려 6-0으로 달아났다. 그러나 승부의 추가 일찌감치 KIA쪽으로 쏠린 4회말 오락가락하던 비가 굵어지자 한화는 우천 노게임을,KIA는 강우콜드게임을 바라며 어이없는 플레이를 펼쳐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빗속에서 관중석을 지키던 팬들은 야유를 보냈다. 6-1로 앞선 KIA의 공격 때 1사 1루에서 1루 주자 이종범이 2루를 훔치자 한화 수비진들은 뻣뻣이 선 채 도루를 허용했다. 이종범은 멋적은 웃음을 지었다. 이어 장성호의 투수 앞 땅볼을 한화 두 번째 투수 마정길이 쫓아갔지만 전력 질주를 하지 않아 놓쳤다. 고의성이 짙었다. 반면 KIA는 1사 3루에서 이재주와 김원섭이 어이없는 공에 연속 헛방망이를 돌려 3구 삼진으로 물러났다.5회 이전에 비로 중단되면 노게임이 선언되기 때문에 경기를 빨리 진행시켜 승리를 챙기려던 것.KIA 선발 이대진은 6이닝을 6안타 1실점으로 막고 시즌 2승(6패)째를 챙기며 최근 3연패를 끊었다. 한화 이범호는 허리 부상으로 나오지 못해 연속경기 출장기록을 ‘615’에서 마감했다. 최태원(1014경기)과 김형석(622)에 이어 세 번째. 한편 LG-삼성(잠실),SK-우리 히어로즈(문학)전은 비로 취소됐다. 사직에서 열린 롯데-두산전은 1회초 1사 1루에서 폭우가 쏟아져 경기가 중단됐고 30여분이 지나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노게임이 선언됐다.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74) 병자호란이 시작되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74) 병자호란이 시작되다(Ⅰ)

    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까지 조정에서는 청과의 관계를 복원할지, 그것과 관련하여 사신을 보낼지를 놓고 격심한 논란이 빚어졌다. 척화파는 명분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절교가 불가피하다고 했고, 주화파는 이렇다 할 준비 없이 전쟁을 벌이는 것의 위험성을 들어 끝까지 청을 기미(羈)해야 한다고 맞섰다. 사람들은 대체로 척화파의 논의가 높고 깨끗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높고 깨끗한 논의’만으로 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갈팡질팡하는 사이 전쟁은 결국 터지고 말았다. ●준비 없이 갈림길에 서다 당시 ‘명분’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던 조선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인물은 명 감군 황손무(黃孫茂)였다. 그가 귀국 길에 보낸 서한이 10월24일 조정에 도착했다. 그는 청천강과 압록강, 그리고 평안도의 험준한 지형은 하늘이 준 것이니 병사들을 조련하고 화약과 총포 등을 제대로 갖추면 적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 신료들이 현실을 모른다고 야유했다.‘경학(經學)을 연구하는 것은 장차 이용(利用)하기 위한 것인데 나는 귀국의 학사와 대부들이 읽는 것이 무슨 책이며 경제(經濟)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소. 뜻도 모르고 웅얼거리고 의관(衣冠)이나 갖추고 영화를 누리고 있으니 국도(國都)를 건설하고 군현(郡縣)을 구획하며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 세금을 경리하는 것은 과연 누가 담당한단 말이오?’ 황손무의 비판은 신랄했고 진단은 냉정했다.‘귀국의 인심과 군비(軍備)를 볼 때, 저 강한 도적들을 감당하기란 결단코 어렵습니다. 일시적인 장유(奬諭)에 이끌려 그들과의 화친을 끊지 마십시오.’ 조선을 찬양하고 청과의 싸움을 독려하는 내용을 담은 황제의 유시문을 들고 왔던 그였다. 조선을 다독여 청과 싸움을 붙이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지만, 황손무가 본 조선은 전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오히려 청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말라고 충고했던 것이다. 청 역시 마지막까지 조선의 본심을 떠보려고 시도했다. 역관 박인범(朴仁範) 등이 들어갔을 때, 용골대는 새로운 제안을 내밀었다. 자신들에게 협력하여 명을 공격하는 데 동참하고, 화친을 배척한 신하를 넘겨주고 왕자를 볼모로 보내라는 요구였다. 박인범 등은 반발했다. 그러자 용골대 등은 왕자와 척화신만 보내주면 청군이 비록 압록강에 이르더라도 침략을 당장 중지하고 두 나라가 혼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다시 제의했다. 박인범 등이 ‘예의의 나라로서 차마 들을 수 없고, 또 전달할 수 없는 말’이라고 거듭 반발하자 용골대 등은 돌아갔다. 좀처럼 좁히기 어려운 서로의 입장 차이를 다시 확인했던 것이다. ●홍타이지, 침략 결심을 하늘에 고하다 1636년 11월25일 홍타이지는 신료들을 이끌고 환구에서 제사를 지냈다. 황천(皇天)과 후토(后土)를 향해 자신이 조선 정벌에 나서게 된 까닭을 고하는 자리였다. 홍타이지는 축문을 통해 조선이 ‘저지른’ 잘못들을 열거했다.1619년 명을 도와 자신들을 공격하는 데 동참한 것,1621년 이후 자신들이 요동을 차지했을 때 도망하는 한인들을 받아들여 명에 넘긴 것, 정묘년에 맹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누차 그것을 어긴 것, 후금으로 귀순하는 공유덕과 경중명 일행을 공격했던 것, 명에는 병선(兵船)을 제공했으면서도 그것을 빌려 달라는 자신들의 요구는 거부한 것, 인조가 평안감사 홍명구(洪命耉)에게 유시문을 보내 자신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운운 한 것 등이었다. 조선에 대해 품었던 불만이 모두 나열되었다.‘청의 힘과 역량이 명 못지않게 커졌는데 조선은 명만 편들고 자신들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만의 요점이었다. 공유덕 등의 귀순을 저지하려 시도하고, 명에만 병선을 제공한 것에 대한 불만이 특히 도드라져 보였다. 홍타이지는 곧이어 누르하치의 신주를 모신 태묘(太廟)에도 나아가 자신의 결심을 고했다. 홍타이지는 11월29일 여러 장수들을 모아놓고 유시문을 내렸다. 조선을 정벌해야 하는 까닭을 다시 강조했다. 위에서 언급한 ‘허물’에 더하여 조선이 청에서 보낸 국서를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도 추가했다. 조선 조정이 몽골 버일러들이 내민 편지를 퇴짜놓았던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홍타이지는 평안감사 홍명구에게도 ‘유시문’을 보냈다.‘조선이 패만하고 무례하므로 어쩔 수 없이 의병(義兵)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병’들에게 조선에서의 행동 지침을 하달했다.‘인명을 함부로 살상하지 말 것, 대군이 통과하는 지역의 사묘(寺廟)를 파괴하지 말 것, 저항하지 않는 자를 죽이지 말 것, 항복한 자를 죽이지 말고 치발(髮)할 것, 망명해 오는 자를 받아들여 보호할 것, 사로잡은 백성들의 가족을 서로 이산시키지 말 것, 부녀를 폭행하지 말 것’ 등이 그것이었다. 12월1일 조선 원정에 동참할 몽골 버일러들이 병력을 이끌고 심양에 집합했다. 홍타이지는 이날, 정친왕(鄭親王) 지르가랑(濟爾哈朗)에게 심양에 남아 도성을 방어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아지게(阿濟格)를 우장(牛莊)에 배치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했다. 조선을 공격하는 와중에 혹시라도 명군이 배후에서 역습해 오는 상황을 우려한 조처였다. 우장은 압록강과 발해만으로 연결되는 전략 요충이었다. 당시 청은 명이 수군을 이용하여 발해만으로 들어와 내지에 상륙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조선 침략에 나서면서도 여전히 명의 위협을 염려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2월2일 오전 홍타이지는 대군을 출발시키기에 앞서 당자(堂子)에 나아가 삼배구궤두례(三拜九頭禮)를 행했다. 당자는 까치를 신성시하는 만주족 샤머니즘 신앙의 상징물이었다. 이어 팔기의 깃발들을 도열해 놓고 주악을 울리며 다시 배천례(拜天禮)를 행했다. 홍타이지는 이어 도도(多鐸)와 마부대 등에게 병력 1300명을 따로 주었다. 그들 가운데 300명은 상인으로 변장시켰다. 그들을 신속히 서울로 진격시켜 궁궐을 포위하려는 깜냥이었다.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 홍타이지의 생각이었다. ●무너진 통신체계 조선 침략에는 만주와 몽골군뿐 아니라 명에서 귀순한 한족 출신 장졸(-漢軍)들도 대거 동참했다. 공유덕, 경중명, 상가희(尙嘉喜)를 비롯하여 석정주(石廷柱), 마광원(馬光遠) 등 한군 지휘관들이 그들을 이끌었다. 청은 조선을 공략하기 위해 만몽한(滿蒙漢)의 모든 역량을 사실상 총동원했던 것이다. 한군들은 특히 홍이포(紅夷砲), 대장군포(大將軍砲)를 비롯한 중화기의 운용과 운반을 맡았다. 12월9일 의주부윤 임경업(林慶業)은 청군이 압록강을 건너 몰려오는 상황을 인지했다.‘병자록’에 따르면 이미 12월6일부터 청군과 관련된 이상 징후를 알리는 봉화(烽火)가 여러 차례 올랐지만, 도원수 김자점(金自點)은 그 상황을 서울에 제때 알리지 않았다. 그는 적이 겨울에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또 봉화가 알려질 경우, 서울에서 소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9일 적군이 이미 순안(順安)을 통과하여 안주를 향해 내달리는 상황에서야 김자점은 장계를 올렸다. 청군은 질풍같이 내달렸다. 조선은 청군의 철기(鐵騎)와 야전에서 맞서서는 승산이 없다고 여겨 주로 산성에 들어가 방어하는 전술을 구상했다. 하지만 청군은 조선군이 대비하고 있는 산성을 공격하여 시간을 허비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서울로 돌격하는 전술을 택했다. 사실 의주 부근의 백마산성도, 평양 부근의 자모산성도 서울로 이어지는 대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대로에서 적 기병을 차단하려 들지 않았던 것은 치명적이었다. 그나마 봉화마저 제때 올리지 않았고, 평안도 각지에서 올린 변보(邊報)는 청군 기마대에 의해 차단되었다. 그 같은 상황에서 인조와 조정은 강화도는커녕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시간적 여유조차 가질 수 없었다. 전쟁은 이렇게 시작부터 음울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명장 김호감독과 200승

    김호 대전 감독의 200승 달성을 축하하는 자리가 지난 18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 마련됐다. 선수들은 마다하는 김 감독을 억지로 방석에 앉혀 큰 절을 올렸고, 감독은 이에 화답해 선수와 팬들 앞에서 춤을 췄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평생 처음 춰본 춤이었다고 김 감독은 말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케빈 코스트너가 주인공 로이 역을 맡은 영화 ‘틴컵’을 떠올렸다. 로이는 아마추어 시절 세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실력파 골퍼였다. 기존의 관습과 정석을 멀리한 이단아이기도 했다. 그래서 프로가 되지 못하고 텍사스의 작은 마을에서 레슨 프로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동네 정신과 여의사가 골프를 배우러 찾아오고…. 사실 다음부터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으로 흘러간다. 우여곡절 끝에 US오픈 출전 자격을 얻어 세계적인 골퍼들과 겨루게 된 로이. 그러나 그는 정석대로 해야 할 상황에서, 그의 방식대로, 그만의 태도로, 그를 키운 그 자신의 방법으로 자기의 운명을 결정한다. 나는 지금 영화 ‘틴컵’이 김호 감독의 축구 인생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절반은 닮았다고 얘기하고 싶다.‘자기의 방식대로 새 규칙을 만들며 살아가는 삶’, 이 점에서 영화 주인공이나 김호 감독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김 감독은 그의 방식대로 그라운드의 삶을 살아왔다. 축구계 안팎에 권력이 있고, 그 권력을 둘러싸고 말들도 많다. 이 그라운드 바깥의 혼전 양상에 대해 김 감독은 ‘한국 축구의 미래’라는 화두를 들고 맞섰다. 감독을 맡을 때는 팀 전체를 설계하고, 유망주를 발굴하고 선진기술을 도입해 좋은 성적은 물론 팀 전체의 틀을 바로 세웠다. 잠시 현역에서 물러나 있을 때는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데 말과 행동에서 결코 물러섬이 없었다. ‘야인’이라는 별칭을 얻기는 했지만 이 말은 야유가 아니라 일종의 ‘훈장’이었다. 김호 감독은 자신의 방식으로 일정한 성취를 이뤘기 때문에 축구계 안팎의 세력 판도를 고려해 말을 가려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직설의 비판이 그의 입에서 늘 터져나왔다. 물론 이런 것들보다 더 중요한 건 그가 감독 생활을 하면서 200승을 일궈냈다는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승패와 상관없이 옛 부천 SK의 발레리 니폼니쉬 감독과 겨뤘을 때가 가장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바둑의 고수들처럼 당시 두 명장은 원대한 전략 속에 세부적인 전술을 세워 90분 내내 지략 다툼을 벌였다. 지금은 ‘명확한 개념과 풍부한 경험’을 지닌 알툴 베르날데스 제주 감독과 겨룰 것에 대비해 밤새 지략을 짜는 것이 흥미롭다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김 감독의 200승은 진정한 ‘고수’가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에서 얻은 ‘전리품’이었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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