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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맛의 정수가 담긴 ‘골수 요리’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맛의 정수가 담긴 ‘골수 요리’

    음식의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종종 ‘굳이 이런 것까지 먹어야 하나’ 싶은 것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의구심은 문화에 따라 상대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운 김이나 간장 게장은 이역만리에 사는 이방인에겐 못 먹을 기괴한 음식으로 비치기도 한다. 한국의 여러 음식을 소개하는 외국인 유투버의 영상만 봐도 음식이라는 건 절대적으로 상대적인 문화의 산물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음식에 열망은 크지만 무지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메뉴판에 있는 ‘본 매로우’라는 단어가 매력적으로 보여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아는 척 주문을 했다. 스테이크 전문 식당이었고, 본은 뼈니까 뼈에 붙은 살이겠거니 짐작했다. 눈앞에 놓인 접시를 보고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접시 위에는 검게 그을린 뼈, 그리고 그 사이에 마치 고름처럼 생긴 무언가 있었다. 소 다리뼈의 골수라고 설명해 준 서버는, 동공의 흔들림을 눈치챘을 터. 그때 정확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굳이 이런 것까지 먹을 생각을 대체 누가 했을까.’동물의 골수, 그러니까 뼈 안에서 혈액을 만드는 부드러운 조직은 구석기 시대 인류 말고도 육식을 하는 동물이라면 누구나 탐을 내던 식재료였다. 대부분 지방으로 이뤄져 칼로리가 높고 철분, 인, 비타민 등의 함유량이 살코기에 비해 많아 효율적인 에너지원이었다. 혹자는 인류가 아직 치명적인 사냥 기술을 습득하기 이전에 동물들이 먹다 남긴 뼈를 주워다 골수를 섭취했고 그로 인해 두뇌가 발달할 수 있었다고도 주장한다. 단지 쪼개진 동물뼈를 통해 추론한 것이라 그대로 믿기에는 다소 의심이 가지만, 어쨌거나 동물 뼈에서 골수를 따로 빼내거나 그것을 요리해 먹는다는 건 비인간적이거나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어떤 주기를 따라 패션의 유행이 반복되듯 골수 요리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부유층은 구운 골수 요리를 꽤 선호했다. 당시 상류층의 연회나 만찬에 빠지지 않았고, 뼈의 좁은 홈을 따라 골수를 쉽게 파내도록 특수한 은제 도구도 등장했다. 주방도구의 역사를 서술한 영국 음식작가 비 윌슨은 “자잘한 부엌 용품은 그 사회가 무엇에 집착했는지를 보여 준다”고 했다. 그 말대로라면 전용 도구의 존재는 당대에 인기가 높았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다. 20세기에 접어들자 지방이 건강의 주적으로 꼽히면서 골수 요리는 더이상 현대 미식가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구식 요리로 전락한다. 물론 일부에서는 여전히 골수를 요리해 냈다. 이내 지방에 씌워진 누명이 벗겨지고, 고기와 과일을 먹던 구석기인처럼 먹어야 건강해진다는 ‘구석기식 다이어트’가 영미권에 유행하면서 골수 요리는 단숨에 ‘힙한’ 요리로 재조명됐다. 2011년 캐나다 음식작가 제니퍼 맥 라간이 자투리 부위의 활용법과 의미를 다룬 책을 출간하면서 북미 지역에서 골수의 위상이 높아졌다. 그동안 미국에서 개 사료로 쓰던 값싼 소뼈가 일시적으로 품귀현상을 빚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골수 요리는 어떤 맛이길래 사랑을 받게 된 것일까. 조그만 단서라도 얻기 위해 영국 런던의 세인트 존 레스토랑을 찾았다. 1994년 문을 연 세인트 존의 셰프 퍼거스 핸더슨은 영국 전통요리의 부활을 시도해 영국인들 사이에선 ‘셰프들의 셰프’로 통한다. 핸더슨의 골수 요리는 유명세에 비하면 무척이나 소박하다. 오븐에 두 번 구운 골수와 파슬리 샐러드, 구운 토스트, 그리고 영국산 바다 소금이 전부다. 뼈 안에 든 골수를 살살 긁어 먼저 맛을 봤다. 소고기를 굽고 난 후 남은 기름을 긁어먹는 듯한데 조금 더 풍미가 강하다. 소의 향이 깊게 배인 기름이라고 하면 조금 이해될까. 남은 골수를 토스트 위에 펴 바르고 약간의 소금을 더한 후 케이퍼, 양파가 어우러진 파슬리 샐러드를 얹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기름진 골수의 맛이 파슬리 샐러드의 신맛, 토스트의 탄내와 어우려서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맥라간은 골수 요리를 두고 ‘가난한 자의 푸아그라’라고 극찬했다. 잘 구워 간을 한 골수는 푸아그라 못지않게 풍미가 훌륭하다는 것이다. 지방이 풍부해 전통적으로 버터나 라드의 대체제로도 사용됐다. 지방이 적은 소고기 스테이크에 버터소스를 끼얹기도 하지만, 이왕이면 훨씬 풍미가 강력한 지방인 골수를 고기와 함께 먹으면 맛이 더 배가된다는 것이다. 뼈를 갈라 안에 든 골수를 먹는 것이 기이하게 보일 수 있지만 남김없이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의식하지 않았지만 골수 요리를 자주 즐기고 있다. 진하게 우려낸 사골 국물도 결국 넓은 범위에서 보면 골수 요리의 하나이니까.
  • 별이 된 박완서 길이 되다

    별이 된 박완서 길이 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5차 서울의 문학5-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편이 지난 21일 서대문구 현저동과 종로구 무악동·사직동·필운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독립문역 4번 출구를 출발, 현저동 가파른 언덕배기에 올랐다. 박완서 작가가 어린 시절 놀던 길과 매동보통학교(매동초등학교) 등굣길을 연상하는 코스였다. 독립문~옥살이 골목~무악현대아파트~인왕산 순성길~종로도서관~매동초등학교로 이어진 코스는 단출했지만 명작의 힘은 위대했다. 꼬불꼬불한 골목 귀퉁이마다 작가의 숨결이 느껴졌다. 한 참가자는 “작품 속 등굣길이 궁금했고, 그대로 따라 걸어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꿈이 이뤄졌다”는 감동적인 소감을 남겼다. 올해 최종회인 이날 코스에서 서울미래유산은 영천시장이 유일했다. 해설을 맡은 심흥식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서울문학의 현장을 차분하고 깊이 있게 전달했다.박완서(1931~2011)는 서울과 서울사람을 탐구한 대표적 작가이지만 서울 토박이와는 거리가 멀다. 경기 개풍군 박적골에서 태어나 조부모 슬하에서 자라다 8살 때 극성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온 이주민이다. 사대문 밖 대표적 빈촌지대 현저동 46-418번지는 ‘제2의 고향’이었다. 숙명여고를 다니다 개성 호수돈여고로 전학 갈 때까지 6년간의 성장기를 이곳에서 보냈다. 광복 후 몇 차례 행정동 개편을 통해 의주로 남서쪽은 서대문구 현저동으로 남고, 북동쪽은 종로구 무악동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의 무악동 아이파크아파트가 있는 산 중턱이 옛 집터쯤으로 추정된다. 현저동을 벗어나서는 잠시 신혼살림을 차린 종로구 충신동과 성북구 돈암동 신흥주택 개발지구에서 살았다. 강남개발 이후 주저하지 않고 잠실 장미아파트로 이주, 강남문학을 선보인 이유도 서울의 사대문 안과 사대문 밖을 구분 짓는 앙상레짐이 싫었기 때문이다. 40세 늦깎이 데뷔작 ‘나목’((1970년)에서 거주지를 북촌 계동으로 설정한 것도 현저동 달동네를 벗어나고픈 의도였다.현저동은 박완서의 문학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장소다. 현저동이라는 사대문 밖에 둥지를 틀었지만 언젠가는 사대문 안에 입성하기를 갈망했다. 사대문 안과 밖이라는 분리주의는 남북 분단과정에서 빚어진 오빠의 죽음이라는 가족의 비극과 닮았다. 50~51세에 발표한 ‘엄마의 말뚝1~2’는 분리와 분단의 세계에 세운 작가의 깃발이다. ‘박완서 산문집6: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수(문학동네 2015)’에서 “그러나 막상 내가 도달한 어머니의 서울 살림은 형편없이 궁색한 것이었다. 평지의 반듯반듯한 기와집 동네를 다 그냥 지나쳐 꼬불꼬불한 돌사닥다리 길을 한없이 기어올라가 깎아지른 듯한 축대 끝에 제비집처럼 매달린 초가집의 우중충한 문간방이 어머니 서울 살림집이었다. …서울에서의 첫날밤…나는 이불 속에서 소리를 죽여가며 울었다”는 구절은 8살 박완서가 서울살이를 시작한 현저동 달동네 어느 문간방의 1938년 풍경이다.세월이 흘러 현저동 산기슭엔 아파트단지가 빼곡하다. 소설에서 “골목은 깎아지른 듯한 층층다리로 변했다, 집들도 층층다리처럼 비탈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곧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이상한 동네였다”고 묘사된 곳이라곤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미끈하게 변했다. 현저동은 물이 좋아서 악박골(약박골)이라고 불렸다. 이광수의 ‘흙’에 “…소화불량이 심하기나 해야 악박골 약물에나, 그것도 다른 사람들 오기 전에 이른 새벽에 다녀올까…”라는 대목이 나오고, 심훈의 ‘상록수’에서 주인공 영신과 동혁이가 나누는 대화에서도 “그럼 목두 마른데 악박골루 가서 약물이나 마실까요?”하고 독립문 편짝을 향해서 앞장을 선다. “참, 악박골이 영천이라구도 하는 덴가요?”라고 나온다. 약수로 유명한 이 동네의 진면목과 다양함은 박완서의 작품에 의해 사실화되고 구체화된다. 박완서의 연작 자전소설은 장장 15년 만에 마무리된다. 50세에 쓴 ‘엄마의 말뚝’에 나타난 자전적인 서사를 62세 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다듬었다. 이 작품에는 ‘소설로 그린 자화상’이라는 부제까지 붙어 있다. 65세 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로 드디어 3부작을 완성했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저서 ‘서울문학기행’에서 “이들 자전적 연작소설을 보면 박완서 가족에게 서울은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부역과 전향에 얽힌 가족사 때문에 전쟁 속의 서울이 작품의 주무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풀이했다.작가가 경험한 서울은 전쟁의 도시인 동시에 사랑의 도시였다. 해방과 전쟁, 피란살이가 중첩된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살았다. 현저동 ‘괴불마당집’은 서울에 입성한 작가에게 ‘지상의 방 한칸’이었다. 서울사람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이자 작가의 길을 마련해준 이야기보따리였다. “우리 세 식구가 처음으로 서울에 장만한 내 집인 현저동 꼭대기 괴불마당집에서의 첫 겨울은 가혹했다. 추위도 예년에 없이 혹독했지만 여름철 장마처럼 눈이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몇 날 며칠 계속됐다. …물보다는 불 걱정이 훨씬 더 심각했다”고 ‘엄마의 말뚝’에서 현저동 시절을 추억했다. ‘엄마의 말뚝’이란 소설 제목은 현저동에 입성했을 때 “드디어 서울에 말뚝을 박았구나”고 안도하는 어머니의 말에서 따왔다. 엄마의 말뚝은 서울의 말뚝이었다. ‘서울탄생기’의 저자 송은영은 “이 말뚝은 드디어 서울에 정착했음을 알게 해주는 장소이다. 말뚝은 지식과 주체성을 갖춘 새로운 여성상에 대한 지향과 그것을 딸에게 투사한 어머니의 욕망을 담고 있다”고 해석했다. 어린 박완서는 등굣길 인왕산 산록에서 싱아를 애타게 찾아다녔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만큼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한 줄기를 꺾어서 겉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 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 데는 그만일 것 같았다.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박완서의 작품에서 현저동은 ‘바닥 상것들’이 사는 ‘쌈박질이 그치지 않는 동네’로 묘사되고 있다. 현저동의 삶은 ‘서울살이의 법도라기보다는 셋방살이의 법도’부터 익혀야 하는 궁핍한 삶이었다. “오줌과 밥풀과 우거지가 한데 썩은 시궁창 물”이 흐르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박완서는 현저동에서 작가의 길을 찾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나만 보았다는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고 썼다. 현저동은 박완서 문학을 잉태한 산실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흥미진진 견문기] 비탈에 다닥다닥 쏟아질듯한 동네… ‘싱아’가 그립더라

    [흥미진진 견문기] 비탈에 다닥다닥 쏟아질듯한 동네… ‘싱아’가 그립더라

    올해 마지막은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주인공이 학교 가던 길을 따라 걷는 투어였다. 독립문에 서서 소설의 배경이 된 영천시장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현저동(현재 무악동 46번지) 달동네를 빙 둘러봤다. 맞은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가족의 옥바라지를 위해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기거하던 옥바라지 골목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소설 속 주인공이 살았던 현저동으로 2016년 재개발돼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섰다. 종로구청 홈페이지에 ‘여관골목’(옥바라지골목)으로 표시돼 있지만 감옥에 맞서는 삶의 기억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소설 속 엄마는 아이들이 감옥소 마당에서 노는 것을 질색하며 주소만 사직동으로 옮겨 매동초등학교에 다니게 한다. 인왕산길을 올라 학교까지 가려면 30분 이상 걸린다. 길을 오르다 보니 옛 모습을 그대로 지닌 좁다란 골목들이 나타났다. 골목은 곧 깎아지른 층층다리로 이어지고, 집들도 층층다리처럼 비탈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곧 쏟아져 내릴 것 같다. 가쁜 숨을 고르고 한양도성 성벽이 보이는 곳에서 잠시 쉬었다. 멀리 선바위와 국사당이 보인다. 바닥의 풀들은 일정한 방향 없이 마구 헝클어져 있고, 싱아는 보이지 않는다. 소설 제목에 나오는 ‘싱아’는 주로 봄에 무쳐 먹거나 데쳐 먹던 풀로 새콤달콤하게 신맛이 나서 먹을 게 없던 시절에 아이들이 간식으로 따 먹던 풀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엄마의 교육열 때문에 넉넉하던 살림과 싱아가 지천으로 널려 있는 고향 땅을 뒤로하고 서울로 왔다. 아무리 멀리까지 봐도 고향은 보이지 않고, 학교에 가면 거짓 주소를 말해야 한다는 생각에 조그만 가슴이 더욱 오그라들었을 주인공을 떠올리니 찬바람에 애잔함이 번진다. 한양도성 성벽을 따라 내려와 1895년에 개교한 매동초등학교에 도착했다. 우리는 각자 편한 교통시설을 이용해 따뜻한 집으로 가겠지만 어린 박완서는 다시 숨 가쁜 인왕산길을 걸어 집으로 가야 한다. 이해할 수 없이 엄격하기만 한 엄마와 각박한 일상에서 어린 박완서를 지탱했던 힘은 고향 할머니의 사랑과 그리움 가득한 평화롭던 시절의 싱아가 아니었을까? 이소영 동화작가
  • 하지원이 직접 밝힌 ‘초콜릿’ 힐링 포인트 “가슴에 단비 같은”[인터뷰]

    하지원이 직접 밝힌 ‘초콜릿’ 힐링 포인트 “가슴에 단비 같은”[인터뷰]

    ‘초콜릿’ 하지원이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는 힐링 감성으로 돌아왔다. JTBC 금토드라마 ‘초콜릿’(연출 이형민, 극본 이경희, 제작 드라마하우스·JYP 픽쳐스)이 불처럼 따뜻한 셰프 문차영으로 돌아온 하지원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사소한 디테일까지 완벽한 싱크로율로 문차영에 녹아든 하지원의 인터뷰는 본격적으로 펼쳐질 ‘초콜릿’의 ‘힐링 마법’을 기대케 한다. ‘초콜릿’은 첫 방송부터 차원이 다른 감성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휴먼 멜로의 정수를 선보였다. 시청자들의 호평도 뜨거웠다. 이에 지난 30일 방송된 2회가 전국 4.4%, 수도권 5.3%(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 분당 최고 시청률이 6.0%까지 치솟으며 자체 최고시청률을 경신했다. 따뜻한 감정과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로 디테일한 서사를 쌓아 올린 이형민 감독, 이경희 작가. 여기에 윤계상과 하지원의 ‘감성’ 시너지는 설렘과 애틋함을 넘나들며 감성을 두드렸다. 캐릭터에 그 누구보다 깊이 빠져있는 하지원은 ‘초콜릿’을 “제목처럼 달콤하기도 하고, 위로가 되고 따뜻해지는, 힐링이 되는 드라마”라고 소개했다.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아온 명실상부 ‘흥행퀸’ 하지원이 2년 만에 안방극장 복귀작으로 선택한 ‘초콜릿’은 특별했다. “대본을 읽었을 때 가슴에 단비가 내렸다. 마음이 안 것 같았다. 초콜릿 시놉 중에 ‘누군가에게 밥상을 차려주는 것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위로와 따뜻함을 주는 기적이 되는 음식’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게 마음을 움직였다. 눈물이 많이 났다”는 하지원은 “각박한 세상에 단비처럼 마음을 움직였던 대본이 좋았다. 이경희 작가님, 이형민 감독님과도 꼭 작업해보고 싶었는데 이번에 두 분이 만나셨다. 그래서 더 좋았다”고 ‘감성 제조 드림팀’에 대한 신뢰도 드러냈다. 하지원이 연기하는 ‘문차영’은 백화점 붕괴사고가 남긴 트라우마를 특유의 무한 긍정과 따뜻함으로 딛고 살아가는 인물. 하지원은 “문차영과 하지원은 ‘초콜릿’을 너무 좋아한다는 점이 가장 닮았다. ‘초콜릿이 밥이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힘들 때 기쁠 때, 중요한 촬영을 앞뒀을 때나 자기 전에 초콜릿을 먹는다”고 문차영에게 느낀 동질감을 전했다. 컵케이크에 인사하는 문차영처럼 사물에 인사를 전하는 점도 닮아있다며 싱크로율의 비결을 공개했다. 불처럼 따뜻한 실력파 셰프 문차영으로 변신하기 위해 하지원은 촬영 전부터 이탈리안, 베이킹 등을 연습했다. 그 과정을 통해 요리를 대하는 자세를 배웠다는 하지원은 “요리하는 공간이 궁금해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보조로 투입돼 실제 영업시간에 파스타도 만들어봤다. 손님들 중에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도 있었을 거다”라며 “주방에서 소리들이 오케스트라처럼 들린다. 굉장히 빠른 리듬이 내 몸에 있어야 하는 거다. 브레이크 타임 외에는 앉아있을 시간도 없었다. 굉장한 집중력이 필요한 공간인데, 불 앞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정성과 사랑을 듬뿍 담아 손님들께 나가는구나, 감탄했다”고 아주 특별한 경험을 전했다. 무엇보다 윤계상과 하지원의 하모니는 기대 이상의 시너지로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하지원은 “윤계상은 웃음이 많고, 솔직하고, 되게 착한 사람 같았다. 촬영장에서 늘 나를 웃게 해줬다. 정말 매일매일, 매 순간. 그래서 촬영하는 순간순간이 재밌고, 가끔은 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가 잘 통했다”고 윤계상에 대한 믿음을 전하며, “마지막 날에는 눈만 봐도 눈물이 날 정도로 문차영과 이강에 빠져서 찍었던 것 같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완도에서 만난 천사 소년의 한 끼가 전한 온기를 잊지 못하고 셰프가 된 ‘문차영’. 하지원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에 대해 “엄마가 이모네 밭에서 따온 토마토로 가마솥에서 수프를 끓여주신다. 내가 좋아하는 채소를 넣고. 그걸 보온 통에 싸주시면 전 매일 따뜻한 수프를 먹을 수 있는데 특별한 무언가를 가미하지 않아도 맛있다. 신맛과 단맛에 엄마의 정성이 담겨서 그런지 토마토 수프만 먹으면 기분 좋게 촬영할 수 있다. 엄마표 토마토 수프가 가장 좋다”고 밝혔다. 결이 다른 감성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린 ‘초콜릿’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부터다. 하지원은 “한 편 한 편 보실 때마다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 때문에 시청자들께서 살이 찌실 수도 있다. 정말 맛있는 음식들이 회마다 등장한다. 그래서 음식을 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다”는 관전 포인트를 전했다. 이어 “‘초콜릿’은 심장이 한 2도 정도 올라갈 만큼 마음이 따뜻해지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올겨울, 여러분들을 더 따뜻하게 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초콜릿 많이 사랑해주시고 많이 기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JTBC 금토드라마 ‘초콜릿’ 3회는 내일(6일) 밤 10시 5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피시앤드칩스, 왜 영국음식의 대명사가 됐을까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피시앤드칩스, 왜 영국음식의 대명사가 됐을까

    실제로 발을 내딛기 전까지 내게 영국이란 나라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아틀란티스와 다름없었다. 유럽에서 핀란드 다음으로 음식이 형편없다는 오명을 가진 나라, 전 국민이 맛없는 음식을 감내하는 나라라니. 아틀란티스가 존재한다는 것만큼이나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한때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운영하며 전 세계 부를 빨아들인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 기껏해야 기름에 튀긴 흰살 생선과 감자라니. 대체 영국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피시앤드칩스는 문자 그대로 반죽을 입혀 튀겨낸 생선과 감자튀김으로 구성된 요리다. 영국식 피시앤드칩스란 소금이나 신맛이 덜한 몰트식초를 뿌려먹는 게 정석으로 통한다. 예상과는 달리 같이 딸려나오는 마요네즈나 케첩은 피시를 위한 게 아니라 칩스를 위한 조미료라는 게 영국인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취향대로 넣는 다진 양념과 들깻가루를 순댓국이 아닌 같이 딸려나온 밥에 비벼먹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까.피시앤드칩스의 역사는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영국에서 발간된 관련 자료를 교차 비교해 보면 대략 1860년대를 전후로 탄생한 음식이라는 데엔 다들 동의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전국 생선튀김 업자 연합’(NFFF)이 무려 1913년 결성됐으며, 이들이 주축이 돼 2010년에 피시앤드칩스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생선을 밀가루 반죽이나 계란옷을 입혀 튀겨내는 방식은 유대인의 조리법으로 피시앤드칩스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다만 지금처럼 튀겨낸 후 바로 먹는 게 아니라 일종의 보존을 위한 전처리였다는 게 다른 점이다. 유대인들은 튀겨 익힌 생선을 식초물에 담가 먹었는데 이렇게 하면 냉장고 없이도 1년 정도 보관이 가능했다. 감자튀김은 19세기 초중반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유행했다.피시앤드칩스는 테이크아웃이 가능한 최초의 영국식 패스트푸드였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도시에 인구가 몰리면서 노동자 계층이 주를 이뤘는데, 이들에게 피시앤드칩스는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우선 값이 저렴했다. 여기엔 증기 트롤어선이 등장해 어획량이 급격히 늘고 철도가 항구와 도시를 촘촘히 이으면서 신선한 생선의 공급이 용이해진 배경이 있다. 20세기 초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집에서 요리하는 걸 감히 상상할 수 없었는데, 식재료를 준비해 장만하는 노력이 만만찮았고 연료비도 충분치 않았다. 이들에게 있어 저렴하면서 금방 조리돼 나온 피시앤드칩스는 훌륭한 대안 식사였던 셈이다. 맛과 영양 측면에서도 피시앤드칩스는 매력적인 선택이었다. 해안가에 살거나 강가에 살지 않는 이상 신선한 상태의 생선을 먹기란 쉽지 않았다. 내륙에 거주하는 이들 대부분은 소금에 절이거나 훈제하거나 식초에 절인 보존식품으로 생선을 접해 왔기에 신선한 생선의 맛에 쉽게 열광할 수 있었다. 또 피시앤드칩스는 적은 비용으로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을 섭취할 수 있는 고열량 식품으로도 사랑받았다. 노동자의 간편식이었던 피시앤드칩스는 1960년대까지 큰 인기를 누리다가 경쟁자들의 등장으로 점차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KFC나 맥도날드, 중국식 누들이나 인도식 카레 등 노동계급이 선택할 수 있는 테이크아웃 음식이 많아지면서 식당이나 매대도 자연스럽게 감소했다. 그럼에도 피시앤드칩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영국음식의 대명사가 된 데엔 미디어의 역할이 컸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파니코스 파나이는 외국 음식의 홍수 속에서 영국의 정체성을 구분 짓는 마케팅 도구로 피시앤드칩스가 이용됐다고 지적한다. 이탈리아의 피자, 미국의 햄버거 등에 대항해 영국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아이콘이 된 것이다. 여기엔 자부심과 일종의 자학적인 냉소가 섞인 영국인 특유의 이중적인 성향이 한몫 거들었다. 하찮은 음식이 영국을 대표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를 대놓고 부끄러워하지는 않겠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피시앤드칩스를 비롯해 영국을 대표하는 일련의 음식을 맛보고 난 후 조심스럽게 내린 결론이 있다. 영국인에게 맛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이들도 맛있는 음식이 어떤 음식이라는 건 분명히 자각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영국인이 아니고서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사찰음식을 먹고 난 후 마음이 평안해지는 경험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느꼈다고 할까. 음식은 당연히 맛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조차 문화적인 편견일 수 있겠다는 큰 깨달음을 영국에서 얻었다.
  • 여기, 해변의 파도가 지난 흔적을 지운다…허무한 삶, 살 만하다

    여기, 해변의 파도가 지난 흔적을 지운다…허무한 삶, 살 만하다

    “과학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제압하고 있다. 오직 바다만을 친구로 삼고, 페루 해변의 모래언덕 위에 있는 카페의 주인이 되는 데에도 설명이 있을 수 있다.”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는 문학을 좋아하는 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법한 유명한 소설이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페루 리마에서 북으로 10㎞ 떨어져 있는 해안. 자크 레니에는 해안에서 먼 바다의 섬에서 살다가 이 해안으로 찾아와 죽는 새들을 보고 있던 중 죽어 가는 새들 사이에서 한 여인을 발견한다. 그 여인은 파도가 높은데도 계속 암초 쪽으로 걸어간다. 아마도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지려는 듯하다. 자크는 해안으로 달려가 파도에 휩쓸리려는 그녀를 구해내 자기가 운영하는 카페로 데리고 온다.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레니에는 잠깐이나마 그녀와 교감을 나누는데 곧 그녀의 남편과 비서가 카페를 찾아와 그녀를 데리고 떠난다. 줄거리로는 이야기가 잘 가늠되지 않는 이 작품은 발표되자마자 1964년 미국에서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자신이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한 동명 영화를 그의 두 번째 부인이 된 진 세버그를 주인공으로 해 1968년 개봉했다.?이 작품은 젊은 시절 레지스탕스와 혁명을 비롯한 거대한 이상을 위해 복무하던 한 남자가 40대 후반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덤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페루 리마의 바닷가를 배경으로 그리고 있다. 작품 속에서 자크는 이렇게 말한다. “마흔일곱이란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아 버린 나이. 고매한 명분이든 여자든 더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나이니까. 자연은 사람을 배신하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다만 아름다운 자연에서 위안을 구할 뿐. 조금 시적이고 조금 몽상적이지만…. 하지만 시도 언젠가는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단순한 생리적 분비 현상으로 연구되리라. 과학은 모든 면에서 인간을 제압하고 있다. 오직 바다만을 친구로 삼고, 페루 해변의 모래언덕 위에 있는 카페의 주인이 되는 데에도 설명이 있을 수 있다.” 마흔일곱.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알아 버린 나이.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나이. 리마의 바다는 아니 세상의 모든 바다는 여행자들에게 이 사실을 일깨워 준다. 수평선 너머에서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영국 작가 제프 다이어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흔이 지나면 온 세상이 오리가 지나간 자리의 물결처럼 되는 거야. 마흔이 지나면 인생은 원래 낭비하기 위해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그의 말대로 인생은 “오리가 지나간 자리의 물결”이 사라지듯 곧 지워지는 허무한 것이고, 그래서 허무한 인생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의 무대가 된 해변은 미라플로레스 해변이다. 로맹 가리의 팬들이 죽은 새들을 ‘기대’하고 해변으로 가지만 죽은 새들은 없다. 대신 서퍼들이 많다. 세계에서 서핑하기 좋은 3대 해변 중 한 곳으로 일년 내내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타며 서핑을 즐길 수 있다. 로맹 가리는 독특한 소설가다. 1914년 러시아에서 유대계로 태어나, 14살 때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해 니스에 정착한 후 프랑스인으로 살았다. 홀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그는 어머니의 바람대로 군인, 외교관, 대변인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는데, 2차 세계대전 참전 중에 쓴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1945년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명성을 얻었고 1956년에는 ‘하늘의 뿌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공쿠르상 수상에 대해 프랑스 문단과 정계는 그를 혹독하게 평가했고 이후 그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대아첨꾼’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당시 프랑스 문단은 이 새로운 작가에 열광했다.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소설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한 그는 한 사람이 한 번만 수상할 있다는 공쿠르상을 다시 한번 수상하게 된다. 원래 공쿠르상은 같은 작가에게 두 번 상을 주지 않는 것을 규정으로 하고 있는데, 그가 생을 마감한 후에야 그가 남긴 유서에 의해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 인물이었음이 밝혀지면서 평단에 일대 파문이 일기도 했다.●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도시, 리마 자, 그렇다면 우리가 이 허무한 인생에서 위로받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아마도 여행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닐까. 페루 리마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여행지다. 매년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이 선정하는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리스트에는 페루의 레스토랑들이 단골로 오른다. ‘센트럴’, ‘아스트리드 이 가스통’, ‘마이도’ 등은 미식가들이 한 번은 가보기를 원하는 곳이다. 페루 요리가 이처럼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로 풍부한 원자재를 꼽을 수 있다. 페루는 서쪽으로 자리한 태평양과 북쪽을 따라 흐르는 아마존, 지역마다 위치한 거대한 호수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얻을 수 있다. 아마존강을 따라 형성된 거대한 열대우림에서 나오는 진귀한 과일과 아열대 식재료, 안데스산맥의 다양한 기후대에서 생산되는 농수축산물은 페루 음식을 한층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여기에 여러 문화의 융합이 더해졌다. 페루 고유의 역사에 스페인, 이탈리아, 아프리카가 더해졌고 중국과 일본의 이민자들이 들어오면서 그들의 식문화 또한 가미됐다. 페루 음식은 풍부한 식재료와 문화의 교류가 만들어 낸 결과물인 것이다. 미라 플로레스에 자리한 ‘센트럴’은 페루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꼽히는 곳이다. 페루 전통요리를 재해석해 세계 여러 나라의 요리 스타일을 가미한 독창적인 요리를 선보인다.리마 시내 한가운데 자리한 수르키요 시장은 리마의 모든 식자재들이 모이는 곳. 시장 골목 구석구석마다 산더미처럼 쌓인 온갖 종류의 과일과 채소, 향신료와 생선 등은 이곳이 왜 ‘리마의 부엌’으로도 불리는지 알게 해준다.시장 사이를 돌아다니다 한쪽에 자리한 허름한 식당에서 우리 돈으로 3500원짜리 세비체를 맛보았다. 신선한 생선회에 레몬과 라임즙을 잔뜩 뿌려 내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신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페루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가운데 하나로 페루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세비체의 DNA가 박혔다고 농담을 할 정도다. 세상 끝에서 시작된 신들의 세상●남미 여행의 정점, 공중도시 ‘마추픽추’ 페루까지 가서 마추픽추를 보지 않을 수 없다. 페루, 아니 남미 여행의 하이라이트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곳이자 맨몸으로 오르기도 힘든 산꼭대기에 세워진 공중도시. 여행자들은 이 불가사의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돌아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입구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입구에서 표를 제시하고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기를 10분. 마침내 우리가 잡지나 신문에서 익숙하게 보아 왔던 마추픽추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풍경은 똑같았지만 직접 마주하는 그 감흥은 비할 바가 아니다. 몸에 전율이 일고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무수한 화강암 석축들과 건축물, 3000개의 계단으로 이뤄졌다는 공중도시 앞에서 지구 반 바퀴를 돌아온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진다. 마추픽추는 페루 남부 안데스산맥에 자리한 유적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목록에도 등재돼 있다. 안데스산맥의 해발 2430m에 세워진 잉카의 고대 도시로, 15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남아메리카대륙을 지배했던 잉카족들이 살았다. 잉카제국 멸망 후 400년 동안 숨어 있다가 1911년 미국 고고학자이자 예일대 교수였던 하이럼 빙엄이 발견하면서 존재를 드러냈다.당시 산꼭대기에 숨겨진 도시가 있다는 말을 주민에게 들은 빙엄은 11살 꼬마 가이드를 따라 올라갔다가 이 신비로운 고대도시를 발견하게 된다. 빙엄이 발견했을 때 도시는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우리가 마주하는 지금의 마추픽추는 오랜 세월 동안 복원한 것이다. 물론 당시의 모습 그대로다. 더 놀라운 사실은 현재 발굴된 것이 전체의 3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나머지 70% 여전히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1년 발견 당시 두세 가족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돌벽 사이 창문이 해시계로 ‘태양의 신전’ 마추픽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물은 태양의 신전이다. 반원형 건물인데 신전 돌벽에는 두 개의 창문이 나 있다. 정확하게 남쪽과 북쪽을 향해 나 있는데, 동지와 하지 때면 햇빛이 창을 통해 들어와 신전의 제단을 비춘다고 한다. 태양의 신전 위엔 거대한 돌을 길쭉하게 깎아 만든 석조물이 보이는데, ‘태양을 잇는 기둥’이란 뜻의 인티파타나다. 해시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추픽추를 안내하는 가이드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였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기록으로 남은 역사가 없는 까닭에 마추픽추에 대한 모든 설명은 ‘추정’할 뿐이다. 가아드마다 마추픽추에 대한 설명이 조금씩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왜 이런 험한 곳에 거대한 도시를 만들었을까.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인정받고 있는 설은 잉카 제국의 초대 황제인 파차쿠티가 세운 여름 별장이라는 것. 그는 우리나라 광개토대왕에 해당하는 왕으로 전쟁을 통해 잉카 왕국의 영토를 확장한 인물이다. 13세기 초에 시작한 잉카문명은 스페인의 침공으로 멸망한 1533년까지 안데스를 중심으로 융성한 문명을 펼쳤는데, 그 전성기를 이끈 황제가 바로 파차쿠티다. 북쪽 해안의 치무와 서쪽의 창카, 정글의 강자 안티 등을 거푸 정복한 파차쿠티는 마침내 1438년 잉카 제국을 건설하는데, 수많은 노예를 전리품으로 거둔 그는 이들을 데려다 마추픽추를 짓기 시작했다. 노예들은 1450년부터 1540년까지, 90년 동안 도시를 만들었다. 여름 별장을 마추픽추로 정한 건 ‘땅과 하늘의 정기를 함께 받을 수 있는 곳’인 데다 쿠스코의 추운 6~7월 날씨에 견줘 한결 따뜻하고 건조했기 때문이다. ●잉카와 스페인이 어우러진 도시, 쿠스코마추픽추에 닿기까지 여러 도시를 거치는데, 출발점이 되는 도시가 쿠스코다. 잉카 제국을 멸망시킨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535년 리마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잉카 제국의 수도로 군림했던 곳이다. 원주민들이 쓰는 케추아어로 ‘세계의 배꼽(중심)’이란 뜻이다. 당시 잉카 제국은 페루를 비롯해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칠레 북부까지를 차지했던 대제국이었다. 쿠스코 인구만 100만명이었다. 현재 인구가 15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그 규모와 영화를 짐작할 수 있다. 쿠스코가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정복당한 후 도시는 잉카 문명에 스페인풍이 더해져 새롭게 재탄생한다. 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도시는 그만의 독특한 풍경으로 채색돼 여행자들을 매료시킨다. 넓게 베란다를 내고 스페인 특유의 주황색 지붕을 얹은 원색의 이층집 사이를 전통 복장을 입은 원주민들이 걸어다니는 풍경은 쿠스코 아니면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풍경이다. 도시 곳곳에 자리한 성당과 교회, 수도원 등도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 시대에 만들어진 건물들을 파괴해 그 위에 그들의 건물을 지었다. 대표적인 건축물이 산토도밍고 성당이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코리칸차(태양의 신전)를 약탈한 뒤 그 위에 성당을 지었다. 이 때문에 성당 안에 신전 건물 일부가 남아 있다. 1650년과 1950년 쿠스코에 대지진이 일어나면서 산토도밍고 성당이 붕괴됐는데, 그때 코리칸차가 존재를 드러냈다. 무너진 스페인식 건물 아래 잉카의 거대한 돌들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대지진에도 뒤틀림 하나 없었던 ‘12각돌’마추픽추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잉카인들의 돌 다루는 기술이 신기에 가깝다. 돌들을 면도날로 잘라 내듯 정교하게 다듬어 각을 맞추고 하나의 거대한 건축물을 조각조각 이어 붙인다. 이 신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곳이 ‘12각돌’이다. 쿠스코 광장 뒤편 골목에 자리한 ‘12각돌’은 고대 석조 기술의 절정을 보여 준다. 크기도 모양도 일정치 않은 돌들이 주변의 돌과 빈틈없이 맞아떨어지며 하나의 벽을 이룬 광경은 그저 감탄스럽기만 하다. 1950년 발생한 쿠스코 대지진에도 이 벽은 약간의 뒤틀림조차 없었다고 한다. 반면 스페인 침략 후 지어진 건물 대부분은 무너져 내렸다. 소설가 김인숙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대한 독후감을 이렇게 남겼다. “날갯짓을 멈춘 새는 세상의 끝이고, 그 끝에서도 버리지 못한 희망이고, 그 희망의 끝에서 뱉어지는 모욕과 경멸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끝의, 생의 비리고 안타까운 아름다움이라니. 로맹 가리를 쫓아가다 보면 나는 늘 페루에 있다. 새들이 그곳에 와서 죽는 이유는 어쩌면 내 삶의 이유와 같다. 차마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그러나 바로 그것인, 내 삶의 단 한 가지의 이유.” 안개 가득한 리마의 해변과 옛 제국의 번성이 사라진 도시 마추픽추와 쿠스코 앞에서 생각한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쇠퇴한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마도 사랑과 여행일 것이라고. ■ 여행수첩 한국에서 페루까지 직항편은 없다. 미국 댈러스나 로스앤젤레스를 거쳐야 하는데, 아르헨티나항공, 란칠레항공, 바리그브라질항공 등을 이용해 리마까지 갈 수 있다. 리마에서 마추픽추까지는 비행기로 쿠스코까지 간 후 미니밴, 기차, 버스를 차례로 이용해야 한다. 쿠스코 주변 여행지로는 모라이 유적지가 있다. 해발 3600m에 자리한 거대한 계단식 농작지로 이곳은 옛 잉카인의 농업연구소였다. 층에 따라 15도의 기온 차이가 나는데, 이 온도차를 이용해 작물 재배 실험을 했다고 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는 옥수수 등 기온이 높은 곳에서 자라는 농작물을 재배했고, 가장 높은 곳에서는 추운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감자 등을 재배했다.?932년 미국 탐험가 로버트 시피와 조지 존슨이 항공 촬영 중 발견했다. 인근에는 해발 3400m 계곡에 만들어진 마라스 염전이 자리한다. 암염 성분이 섞인 샘물을 계단식 염전에 받아 소금을 만들고 있다. 1500년 전부터 염전으로 사용된 이래 지금까지도 옛 방식 그대로 월평균(4~10월) 300t의 소금을 생산하고 있다. 다랑논처럼 계곡에 펼쳐진 염전이 장관을 이룬다.
  • 과식 후 시원하게 아이스커피?… 한밤 위산의 ‘뜨거운 역류’ 키워

    과식 후 시원하게 아이스커피?… 한밤 위산의 ‘뜨거운 역류’ 키워

    직장인 A(41)씨는 6개월 전부터 반복적으로 가슴 쓰림 증상을 겪었다. 화끈거리는 증상이 가슴에서 목으로, 귀로 치밀어 올라 자다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럴 땐 벌떡 일어나 찬물이라도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었다. A씨의 가슴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걸까. 가슴이 아프고 쓰리면 먼저 심혈관계 질환을 의심하지만, 대개는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이런 증상이 생긴다. 가슴 쓰림과 신물 오름, 신트림 등 역류 증상은 위식도 역류질환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중앙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김범진 교수는 8일 “가슴 쓰림은 가슴이 화끈거리는 듯한 증상, 뜨거운 것이 가슴 아래에서 위로 치밀어 오르는 듯한 증상, 고춧가루를 뿌린 듯한 증상, 뻐근하게 아픈 증상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명치 부위에 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는 것은 강한 산성을 띤 위산이 역류해 식도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신성관 교수는 “위산이 과도하게 식도로 역류한 후 원활하게 제거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며 “위와 달리 식도에는 산에 대한 방어 체계가 전혀 없어, 산 성분이 식도를 자극하고 점막을 손상해 통증과 염증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역류성 식도염 환자 5년새 22.7% 증가 가슴 쓰림 외에도 환자들은 이유 없이 목이 쉬거나 목에 뭔가 걸리는 느낌, 만성 기침, 천식 악화, 협심증과 유사한 흉통 등 심혈관질환이나 호흡기질환으로 오해할 수 있는 매우 다양한 증상을 호소한다. 역류성 위식도염으로 이비인후과 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은 4~10% 정도다. 역류성 후두염이 가장 많고 후두궤양, 후두협착 등도 발생한다. 목에 이물감이 있거나 인후부 종괴감(목에 덩어리가 있는 느낌)을 호소하는 환자도 0.7~4.1% 정도 된다고 한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정훈용 교수는 “역류한 위산은 식도가 아닌 다른 장기까지 영향을 준다”며 “인두에 자극을 주고 폐 기능에도 영향을 미쳐 만성 기침이나 기관지 천식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충치와 잇몸 질환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런 증상이 계속되면 역류성 식도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전문가와 상의해 보는 게 좋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질병통계를 보면 역류성 식도염 환자는 2014년 362만명에서 2018년 444만명으로 5년간 22.7% 증가했다. 경제활동을 하는 주 연령층인 30~50대 환자가 전체의 52.8%로 절반을 웃돈다.나이가 들수록 하부 식도 괄약근의 기능이 약화해 역류성 위식도염이 더 많이 발생하는데 특히 30~50대는 가장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고 과식이나 야식 같은 잘못된 식습관, 음주나 흡연, 운동 부족으로 역류성 위식도염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느긋하게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의 삶이 역류성 위식도염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인 셈이다. 역류성 위식도염은 회식이나 송년회 등의 모임이 몰린 12월에 가장 많이 발병한다. 지난해 9월 58만명 수준이던 환자가 10월 68만명, 11월 71만명, 12월 76만명으로 급격히 증가했다.●꽉 조이는 의상·복부 비만도 발병 원인 꼽혀 지난해 기준 진료 인원은 여성이 56.6%로 남성(43.4%)보다 많다. 통상 남성이 여성보다 역류성 식도염이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성이 남성보다 증상에 대한 민감도가 커 병원을 더 많이 찾는 바람에 진료 인원이 다소 많이 집계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했다. 이 밖에 꽉 조이는 의복 등이 여성에게 역류성 식도염을 일으킨 원인으로 지목됐다. 역류성 식도염은 복부 비만으로 복압이 증가해도, 임신을 하거나 꽉 조이는 옷을 입어도 생길 수 있다. 역류성 식도염을 예방하려면 식습관부터 바꿔야 한다. 기름진 음식, 커피, 탄산음료, 초콜릿을 되도록 먹지 말아야 한다. 고지방식을 하거나 술을 마시면 역류가 더 잘 발생한다. 식도 점막을 자극하는 매운 음식, 신맛이 나는 주스, 향신료 등도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담배는 식도 괄약근을 이완시키기 때문에 역류성 위식도염이 있는 환자는 식후에 절대 담배를 피워선 안 된다. 또한 밤늦은 식사, 식후에 바로 눕는 습관, 과식하는 습관도 버려야 한다. 특히 과식 후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될 때 시원한 탄산음료나 커피를 마시는데, 이런 습관은 식도위괄약근을 약화시켜 역류가 더 잘 발생하게 한다. 과음이나 과식 후 일부러 구토하는 나쁜 습관도 식도염의 원인이다. 비만이면 복압을 줄이도록 체중을 단 몇 ㎏이라도 빼는 게 좋지만, 밥을 먹고 바로 뛰는 운동을 하거나 상체를 앞으로 굽히는 요가를 하면 위산이 식도로 역류할 수 있어 피하는 게 좋다.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이풍렬 교수는 “기름진 음식과 육류 등 서구화된 식생활과 술·담배 등이 역류성 식도염의 가장 큰 원인이지만 최근에는 빨리 먹고 과식하고 간식을 즐겨 역류성 식도염에 걸린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역류성 식도염 유병률은 10명 중 1~2명꼴로 흔하지만,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하지만 증상이 사라졌다고 안심하면 안 된다. 증상이 없더라도 역류성 식도염이 만성화되면 식도 점막이 위 점막처럼 변하는 ‘바레트 식도’로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레트 식도가 발생한 사람은 일반인과 비교해 30~100배 정도 암 발생 위험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장영운 교수는 “역류성 식도염을 방치하면 연하장애(삼키기 장애)가 생겨 체중이 감소하며 출혈이나 폐렴,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는 드물지만 식도 점막 변성으로 인한 식도 선암으로까지 악화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성관 교수는 “대부분의 환자가 증상이 심할 때는 치료도 열심히 받고 생활습관 개선을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지만, 곧 방심해서 예전의 나쁜 습관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결국 생활습관 때문에 역류성 식도염이 재발하는데,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겠다는 치료 시작 때의 결심을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생활습관 개선과 함께 지속적으로 약물을 복용해 합병증을 예방할 것을 권고한다. 김범진 교수는 “현재의 약물요법은 위식도 역류질환을 일으키는 근본 원인을 치료하지는 못하므로 투약을 중단하면 6개월 내에 80% 정도 재발해 장기간 복용하며 치료하는 일이 많다”며 “특히 역류성 식도염이 심하다면 증상이 호전되더라도 식도협착이나 출혈 등의 합병증을 방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약 복용해도 고통 땐 ‘식도이완불능증’ 의심 만약 약을 복용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식도이완불능증’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질환은 음식물이 위장으로 내려가지 못하고 식도에 머무르다 역류하는 질환이다. 음식을 먹으면 식도 괄약근이 연동운동을 하며 음식물을 위장으로 내려보낸다. 하지만 연동운동에 이상이 생기고 하부 식도 괄약근압이 증가하면 식도가 충분히 이완되지 못해 음식물이 위장까지 가지 못한다. 식도이완불능증 환자의 식도암 발생률은 0.4∼9.2% 정도다. 식도암 발생 위험이 건강한 사람보다 14∼140배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대학교병원 외과 박중민 교수는 “비슷한 증상 때문에 식도이완불능증을 역류성 식도염으로 오인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고생하는 환자가 많은데, 두 질환은 증상이 비슷하지만 치료법이 달라 반드시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식도이완불능증 환자는 역류성 식도염 약물을 복용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기 때문에 삼킴 곤란과 역류가 지속되며 체중이 감소한다면 식도이완불능증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약주·막걸리·고급 증류주… 추석 차례상 전통주 바람 분다

    약주·막걸리·고급 증류주… 추석 차례상 전통주 바람 분다

    추석을 앞두고 전통주 업계가 활기를 띠고 있다. 전통주의 인터넷 판매가 허용되고 2030세대를 겨냥한 전통주 전문점 등이 속속 생겨나면서 주 소비자층이 젊어졌고, 일본산 불매운동의 영향으로 한국 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 또한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여름 우리 술 전문 매장인 신세계백화점 우리술방 매출은 지난 봄 대비 1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술로 눈을 돌리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이번 추석 차례상에는 ‘다양성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제사상 전용 술로 ‘정종’이라고 불리는, 일본식 청주 스타일의 특정 제품이 독식을 했지만 전통주가 새 트렌드로 떠오른 최근에는 고급 증류주, 약주, 탁주 등 다양한 우리 술을 올리려는 분위기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전통주 소개 사이트인 ‘대동여주도’를 운영하는 이지민 대표와 명절 차례상에 올린 뒤 온 가족이 모여 함께 즐길 만한 우리 술을 추려 봤다.●약주 -그리움 : 경기 용인의 양조장 ‘술샘’에서 빚는 차례주다. 술의 이름인 ‘그리움’에는 소중한 인연에 감사하고 조상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전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일본식 누룩인 입국을 사용하지 않고 자체 연구소에서 개발한 누룩과 질 좋은 경기미, 경기도 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토종 효모를 이용하여 어떠한 첨가물도 넣지 않고 빚은 순수한 술이다. 은은하게 올라오는 과실향을 느낄 수 있으며, 단맛이 적고 깔끔한 맛과 부드러운 목넘김을 가져 명절 음식 특유의 기름진 음식과 함께 마시기 좋다. 알코올 도수 14도, 700㎖, 1만 5000원.-사시통음주 : 2008년부터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면서 자취를 감추고 문헌으로만 존재하는 우리 술 600여 가지를 연구하여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국순당이 복원한 대표적인 우리 술이다. 사시통음주는 사시사철 빚어 친구들과 통하며(通) 마셨던(飮) 술이라는 뜻으로 술 만드는 법(酒作法 찬자 미상, 1800년도 말엽의 한글 필사본)에 수록되어 있는 제법으로 복원했다. 원료는 쌀과 밀가루인데 발효주 치고는 높은 알코올 도수에도 부드러운 목넘김, 감칠맛 나는 신맛과 산미가 일품이다. 이 산미는 원재료 중 1%의 함량인 밀가루가 내는데, 이 밀가루가 독특한 감칠맛을 끌어 낸다. 사시통음주의 산미는 다소 느끼할 수 있는 고기의 기름기를 깔끔하게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각종 고기류를 비롯해 한식 요리에도 두루 잘 어울린다. 알코올 도수 18도, 550㎖. 6만원.-천비향 : 기름진 쌀이 나는 것으로 유명한 경기 평택에서 오양주(五釀酒) 제조법으로 생산되는 술. 오양주 제조법은 술 빚기를 다섯 차례 반복하는 것으로 덧술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일반 술에 비해 4배가 넘는 쌀이 들어가고 발효시간도 길다. 3개월간의 장기발효 과정과 9개월간의 저온숙성을 거쳐 완성된다. 천비향은 멜론, 사과, 모과 등 갖가지 과일향을 지녔다. 오로지 쌀과 누룩만으로 만들어 낸 향으로 누룩은 단 1%만 들어갔다. 다른 발효제는 일체 쓰지 않는다. 2016년엔 청와대 만찬주로도 선정됐다. 알코올 도수 16도, 500㎖, 3만원.●막걸리(탁주) -풍정사계 추 : 가을의 풍요로움을 알리는 추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술. 청주 청원군 내수면 풍정리 양조장에선 제품의 스타일마다 춘, 하, 추, 동 사계절의 이름이 따로 붙는다. 이 가운데 가을의 추수, 수확의 기쁨을 담아낸 추는 국내산 쌀과 전통 누룩, 청주 청원군의 좋은 물로 빚어낸 탁주다. 어떠한 인공, 첨가물이 가미되지 않아 자연스럽고 깔끔한 맛과 향을 지녔다. 특유의 꽃향이 있으며 은은한 단맛을 느낄 수 있다. 목넘김이 부드럽고 감미로워 여성들이 마시기에 좋다. 가을 술 말고도 봄, 여름, 겨울을 대표하는 술도 꼭 맛보길 권한다. 춘(봄)은 약주, 하(여름)는 과하주, 동(겨울)은 증류주다. 춘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방한 시 만찬주로도 선정돼 인기를 끌었다. 알코올 도수 12도, 500㎖, 1만 5000원-향수 :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밀 막걸리. ‘막걸리=쌀막걸리’의 공식이 성립된 건 1990년 이후부터다. 6·25전쟁이 끝나고 힘겹게 살았던 과거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 준 술은 밀로 만든 막걸리였다. 1965년 정부가 양곡관리법을 발표해 귀한 쌀로 술을 빚는 것을 금하면서 대부분의 양조장들이 25년간 미국에서 수입한 밀가루로 막걸리를 빚었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인에게 ‘쌀밥’의 특별함이 사라지면서 흔했던 ‘밀 막걸리’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게 됐지만 주당들은 여전히 밀 막걸리 특유의 구수한 맛을 잊지 못한다. 90년 넘는 역사를 이어 온 충북 옥천의 ‘이원 양조장’에선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밀 막걸리를 빚는다. 막걸리 이름도 예전을 그리워한다는 의미의 향수다. 100% 우리 밀로 만든 막걸리로 인공감미료는 일체 넣지 않았으며 특유의 걸쭉한 맛과 질감이 일품이다. 알코올 도수는 9도, 700㎖, 6500원.●증류주 -감홍로 : ‘조선의 위스키’로 불리는 한국 증류주를 대표하는 술. 그 맛이 달고(甘) 붉은 빛깔(紅)을 띠는 이슬 같은 술(露)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감홍로의 은은한 붉은 빛깔과 깊은 맛에 평양의 주당과 기생들은 이 술을 최고의 술로 쳤다. 감홍로의 주원료는 쌀과 조, 한약재다. 장에 좋다는 용안육, 정기를 북돋아 준다는 정향, 비타민이 풍부한 진피, 풍을 막아 준다는 방풍, 향긋한 계피, 생강, 달콤한 감초 등이 들어간다. 이 약재들이 어우러져 혈을 뚫고 기를 세우고 장을 보호하며 배를 따뜻하게 해 준다고 해서 왕실에선 약을 끓일만큼의 시간도 없이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일 때 약 대신 급히 감홍로를 처방하기도 했다. 도수가 높지만 목넘김이 부드럽고 약재향이 은은하다. 알코올 도수 40도, 400㎖, 4만 5000원.-삼해소주 : ‘서울’의 술이 삼해소주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삼해소주는 송절주, 향온주, 삼해약주와 함께 서울시에서 무형문화재 술로 지정한 4개의 술 중 하나로 10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전통 명주다. 고려시대에도 마셨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풍류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쌀이 많이 들어가고 증류한 뒤 얻게 되는 소주의 양이 적어 고급 술에 속했다. 재료는 맵쌀과 찹쌀, 물과 누룩이다. 일년에 딱 한 차례 빚는 삼해주는 정월 첫 돼지날, 해(亥)일에 밑술을 담근다. 이어 돼지날마다 두 번 더 덧술을 해서 익힌다. 보통 100일의 숙성 시간이 필요해 백일주로 불리기도 했고, 버들가지 꽃이 나올 때쯤 마신다고 해서 유서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여러 번의 저온 숙성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맛과 향이 깊다. 세 번에 걸쳐 맛을 보길 권한다. 마실 때마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이 조금씩 바뀌며 마지막 세 번째 잔에서 그 맛과 향이 극대화된다. 농축미가 돋보이고, 입안 가득히 퍼지는 상쾌한 맛이 일품인 술이다. 증류주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맛봐야 할 술. 알코올 도수 45도, 400㎖, 7만 7000원.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보름달처럼 꽉 찬 사과, 추석용으로 딱

    보름달처럼 꽉 찬 사과, 추석용으로 딱

    20일 경남 함양군 함양읍 웅곡리에서 한 부부가 추석 무렵에 나오는 홍로사과를 수확하고 있다. 홍로는 신맛이 거의 없고 당도가 높다. 함양 뉴스1
  • 밀면의 면발·육수·양념 ABC

    밀면 면발은 밀가루(중력분) 또는 전분을 첨가해 반죽한 후, 국수 틀에 넣어 압착 면으로 만든다. 면발의 쫄깃한 질감은 소금, 반죽, 반죽의 숙성, 면의 삶는 속도와 면을 헹구어 내는 냉수의 온도 및 횟수 등에 의해 달라진다. 육수는 소·돼지의 사골 뼈, 닭 뼈, 소고기 양지 및 사태 부위를 고아 사용한다. 식당마다 여기에다 각종 한약재, 채소류 등을 넣고 고아 사용하기도 한다. 밀면은 면발, 육수, 고명, 양념장으로 이뤄진다. 고명으로는 돼지고기 편육, 가오리 무침, 무초절임, 무김치, 오이, 완숙 달걀과 지단 등을 올린다. 양념은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참기름 등을 넣어 만든다. 밀면은 일반적인 국수처럼 물 밀면과 비빔 밀면 두 가지 형태가 있다. 밀면은 면발도 중요하지만, 육수와 양념에 따라 맛의 우열이 가려진다. 이에 따라 가게마다 자신들이 개발한 육수 등을 사용해 맛을 낸다. 혜성출판사 김성배(55·시인) 대표는 “어떤 집은 육수 간이 센 반면 다른 집은 육수가 시원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먼서 “어느 집 맛이 더 낫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만큼 개인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고 설명했다. 밀면을 시키면 무생채가 찬으로 따라 나온다. 겨자와 식초는 탁상 위에 놓여 있다. 가위로 질긴 면을 잘라서 먹기도 한다. 일부 밀면 집은 찐 만두를 함께 팔고 있다. 차가운 밀면과 따뜻한 만두는 나름 궁합이 잘 맞는다. 육수를 좀더 새콤하게 먹고 싶다면 식초와 겨자 소스를 추가하면 된다. 밀면은 신맛, 단맛, 매운맛 등 세 가지 맛이 조화된 것이 특징이다. 비빔 밀면은 고추장 양념과 고명 그리고 차가운 육수를 조금 붓고서 비벼 먹는다. 이렇게 육수를 넣으면 비비기도 쉽고 밀면의 맛도 깊다. 주문 후 5~10분 이내 짧은 시간에 식탁에 밀면이 올라와 성질 급한 부산사람과 잘 어울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 밀면의 면발·육수·양념 ABC

    밀면 면발은 밀가루(중력분) 또는 전분을 첨가해 반죽한 후, 국수 틀에 넣어 압착 면으로 만든다. 면발의 쫄깃한 질감은 소금, 반죽, 반죽의 숙성, 면의 삶는 속도와 면을 헹구어 내는 냉수의 온도 및 횟수 등에 의해 달라진다. 육수는 소·돼지의 사골 뼈, 닭 뼈, 소고기 양지 및 사태 부위를 고아 사용한다. 식당마다 여기에다 각종 한약재, 채소류 등을 넣고 고아 사용하기도 한다. 밀면은 면발, 육수, 고명, 양념장으로 이뤄진다. 고명으로는 돼지고기 편육, 가오리 무침, 무초절임, 무김치, 오이, 완숙 달걀과 지단 등을 올린다. 양념은 고추장, 고춧가루, 다진 마늘, 참기름 등을 넣어 만든다. 밀면은 일반적인 국수처럼 물 밀면과 비빔 밀면 두 가지 형태가 있다. 밀면은 면발도 중요하지만, 육수와 양념에 따라 맛의 우열이 가려진다. 이에 따라 가게마다 자신들이 개발한 육수 등을 사용해 맛을 낸다. 혜성출판사 김성배(55·시인) 대표는 “어떤 집은 육수 간이 센 반면 다른 집은 육수가 시원하고 깔끔한 맛을 낸다”먼서 “어느 집 맛이 더 낫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만큼 개인 기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고 설명했다. 밀면을 시키면 무생채가 찬으로 따라 나온다. 겨자와 식초는 탁상 위에 놓여 있다. 가위로 질긴 면을 잘라서 먹기도 한다. 일부 밀면 집은 찐 만두를 함께 팔고 있다. 차가운 밀면과 따뜻한 만두는 나름 궁합이 잘 맞는다. 육수를 좀더 새콤하게 먹고 싶다면 식초와 겨자 소스를 추가하면 된다. 밀면은 신맛, 단맛, 매운맛 등 세 가지 맛이 조화된 것이 특징이다. 비빔 밀면은 고추장 양념과 고명 그리고 차가운 육수를 조금 붓고서 비벼 먹는다. 이렇게 육수를 넣으면 비비기도 쉽고 밀면의 맛도 깊다. 주문 후 5~10분 이내 짧은 시간에 식탁에 밀면이 올라와 성질 급한 부산사람과 잘 어울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 “유럽산 와인 문법에서 벗어나야 한국 와인 진짜 맛 느껴져요”

    “유럽산 와인 문법에서 벗어나야 한국 와인 진짜 맛 느껴져요”

    ‘와인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1988년 와인이 국내에 수입된 이후 지금처럼 불티나게 팔린 적은 없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되고, 잦은 야근과 회식 문화가 사라지면서 활성화된 ‘홈파티’는 ‘BYOB’(Bring your own bottle·각자 술 한 병씩 가져오세요)라는 용어를 우리의 일상 깊이 끌어들였다. 실제로 편의점의 와인 판매는 지난해 45.2% 증가했다. 대형마트에서도 와인 판매 비중은 지난해 전체 주류 가운데 22.7%를 기록해 처음으로 맥주를 넘어섰다. 전통의 와인강국 프랑스, 이탈리아부터 미국, 호주, 칠레,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대륙 와인, 조지아, 헝가리 등 동유럽 와인까지 소비자들의 선택지도 부쩍 다양해졌다.이러한 와인 열풍 속에 오랫동안 와인 불모지로 분류됐던 한국의 와인도 최근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150개에 달하는 전국의 와이너리에서 700여 종류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으며 신라호텔, 그랜드 하얏트 호텔 등 특급호텔에서도 이들 와인을 취급한다. 품질이 검증된 한국 와인들은 국가적 행사의 만찬주로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국 와인이 가성비 좋은 수입산 와인과 대적할 수 있을까. 향후 한국 와인이 차별화에 성공한다면, 핵심 경쟁력은 무엇일까. 지난 8일 한국 와인의 성지라 불리는 경기 안산시 대부도 그랑꼬또 와이너리의 김지원(53) 대표를 만나 농업과 직결된 한국 와인의 오늘과 미래를 물었다. “지금 숙성 중인 와인은 ‘캠벨 얼리’ 포도 품종으로 만든 레드와인입니다. 가볍게 마시는 와인이어서 오래 보관하기보다는 금방 마시기를 추천합니다. 긴 시간 숙성해 맛이 열리는 프랑스 와인과는 품종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죠.”서늘한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 양조 탱크 앞에 선 김 대표는 이날 와이너리 방문객들의 ‘선입견 깨기’에 열중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캠벨 얼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는 포도 품종으로 전체 생산의 약 80%를 차지한다. 프랑스, 미국 등에서 레드와인을 만들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카베르네 소비뇽이 와인 양조에 최적화된 품종이라면, 캠벨 얼리는 신맛과 향이 강해 생과로 더 많이 먹는다. 이 같은 이유에서 “한국에서 나오는 포도 품종은 와인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이 나왔고, 이는 곧 “한국 와인은 맛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돼 과거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김 대표는 수입 와인이 와인 맛의 표준이 된 현실과 맞서고 있다. “와인의 맛을 평가하는 기준과 체계가 유럽에서 비롯된 것인데, 유럽과는 환경과 농업 시스템이 전혀 다른 한국에서 나오는 와인을 그들의 잣대로 단정 짓는 것은 편향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역사적으로 마실 물이 마땅치 않아 술이 물을 대체해야 했던 유럽에서 포도 농사는 와인을 만들기 위한 산업이었다. 반면 깨끗한 물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어 술이 물의 대체재가 아니었던 한국에서 포도는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과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한국 와인의 특성을 인정해야 이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한국 와인 지도와 전국의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들이 종류별로 전시된 건물 1층을 지나 2층 시음장에서 캠벨 얼리 레드와인을 마셨다. 그의 말대로 이날 머릿속에 있는 와인 상식을 최대한 없애고 있는 그대로의 한국 와인을 즐기고 싶었으나 쉽지는 않았다. 복합적이고 드라이한 유럽산 와인과의 캐릭터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다. 산딸기와 체리향이 강렬했고 비교적 단순한 아로마에 은은한 산미, 가벼운 목넘김이 인상적이었다. 기성 소믈리에의 시선으로는 “당도가 높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옆자리에 앉은 한 방문객은 “평소 와인의 떫은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와인은 부드럽게 넘어가서 마음에 든다”는 평을 내놨다. 그는 시음장에서도 “와인 잔을 드는 방법부터 와인을 마신 뒤 혀를 굴리는 시음 방법까지 모두 유럽에서 만들어진 것이지 정답은 없다”면서 “기성 와인의 문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반복했다. 서양의 와인이 하나의 문화라는 점, 또 이를 바탕으로 거대한 산업이 형성됐다는 점에서 기존 와인 체계를 애써 배격할 이유는 없지만, 결국 와인도 술의 한 종류이며 ‘취향의 문제’임을 직시할 때 소비 시장에서 한국 와인의 경쟁력이 살아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가 이토록 한국 와인의 개성을 강조하는 건 약 50년간의 암흑기를 지나 이제 막 기지개를 켠 한국 와인이 우리보다 앞서 와인 산업을 일군 일본만큼 발전할 수 있다고 믿어서다. 일본 와인도 한때 외국 와인의 아류 취급을 받았지만 끊임없는 고유의 품종 개발을 통해 브랜딩에 성공, 글로벌 시장에 일본 와인 장르를 안착시켰다. 1985년 농협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그는 와인에 관심이 없었다. 농업에 뜻을 두고 1993년 회사를 나와 대부도에서 포도 농사와 축산 등을 하던 그를 2000년 이 지역 포도 농업인들로 구성된 그린영농조합에서 찾았다. 포도 재배 면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수입산 포도가 들어오면서 포도 가격이 하락하자 조합에선 와인을 비롯한 가공 산업을 통해 위기를 타개하려 했고, 행정 실무 경험이 있던 그가 결국 와이너리 운영을 책임지게 됐다.가시밭길이었다. 예쁘게 생기지 않은 포도로 와인을 만들어 판매한다는 취지는 훌륭했지만, 한국 와인에 대한 주변 인식은 전무했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정부에서조차 와인 산업을 농업의 한 분야로 인정해 주지 않는 분위기였다. 수차례 유럽을 드나들며 양조 기술을 익히고 시행착오를 겪던 2014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1993년 생과용으로 개발한 청포도 ‘청수’를 와인으로 만들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청수는 맛과 향이 좋았지만 익으면 알맹이가 잘 떨어져 시장성이 낮았다. 그는 청수를 양조하며 독일의 유명 화이트와인 품종인 리슬링 와인에 들어가는 효모를 넣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단맛과 신맛의 조화로움과 풍부한 과실향, 청량함에 “한국 와인이 이렇게 발전했느냐”는 업계의 평가가 이어졌고, 주요 대회인 아시아와인트로피에 출품해 2015년부터 2년 연속 실버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 무대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1병에 6만원으로 저렴한 가격이 아니었음에도 생산 물량이 동날 정도로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레스토랑에선 외국인 손님 접대용으로도 인기가 좋았다. “청수 와인을 통해 한국 와인에 대한 가능성을 봤다”는 그는 향후 한국 와인의 경쟁력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먼저 그는 “한국 와인은 ‘우리 농부가 손으로 직접 만드는 와인’”이라고 강조했다. 대량생산을 하는 해외 거대 와이너리의 유명 와인에 비해 생산성은 떨어지지만 좋은 원료로 만든 와인이라는 점, 와인 생산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관광상품으로서의 경쟁력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그랑꼬또는 대부도에 놀러오는 내·외국인의 필수 방문코스로 자리잡았다”며 “와인 시음, 포도밭과 양조장 투어 외에 지역 스토리와 와인 족욕 체험 등 복합적인 콘텐츠를 제공해 소비자들의 ‘가심비’를 만족시킨다면 가격 경쟁력에서도 저가 수입 와인에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서울포토] 신세계백화점, 체리데이 맞아 워싱턴 주 체리 출시

    [서울포토] 신세계백화점, 체리데이 맞아 워싱턴 주 체리 출시

    1일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지하 슈퍼마켓에서 모델이 체리데이(7월 2일)를 맞아 스위트 체리의 대표 산지인 워싱턴 주에서 생산된 체리를 선보이고 있다. 워싱턴 주의 체리는 캘리포니아 산지의 체리에 비해 고지대에서 재배돼 신맛이 적고 단맛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2019. 7. 1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임지연의 내가갔다, 하와이] 섬을 대표하는 커피이야기 ④

    [임지연의 내가갔다, 하와이] 섬을 대표하는 커피이야기 ④

    미국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를 실천 중인 필자가 하와이 섬 생활을 시작하면서 목격한 뜻 밖의 경험 중 하나는 미국인들이 가진 생각지도 못한 커피 취향이다.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 같은 커피 본연의 향을 느낄 수 있는 것들 대신 달달하고 부드러운 풍미의 라떼와 휘핑크림을 잔뜩 올린 당도 높은 풍미 것들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 필자의 시선에는 매우 뜻 밖이었다. 실제로 매일 아침마다 스타벅스나 커피빈 등 하와이 일대에 다수 포진해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 길게 줄은 선 이들의 손에는 제법 무거운 이 같은 음료가 들려 있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 탓에 섬 생활을 시작한 이후부터 전에 없던 ‘1일 1라테’ 습관이 생겼다는 한국 유학생들도 다수일 정도다. 그만큼 현지인들의 커피 기호는 한국의 것과 비교해 남다른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와이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커피는 단연 ‘코나 커피(KONA COFFEE)’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록 진하게 로스팅 된 향과 맛을 가진 스타벅스, 커피빈 등의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의 것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다소 낯선 ‘신맛’을 특징으로 가진 코나 커피지만, 하와이를 찾은 이들이라면 빠짐없이 코나 커피의 명성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코나 커피는 하와이의 총 8개 섬 중 가장 큰 규모의 섬인 ‘HAWAII ISLAND’의 해발 4000~4500미터 지역에서 재배된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다. 아직도 매년 활발한 화산 활동 중인 화산 지대 일대에서 재배된다는 점이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커피 콩과의 맛의 차이를 만드는 비결로 알려져 있다. 거기에 사시사철 뜨거운 햇살과 연중 내내 부는 부드러운 바닷바람까지 더해지면서, 커피 향과 풍미에 유독 예민한 이들 조차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 현지인들이 가진 코나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다. 실제로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과거 코나 커피의 향과 맛에 대해 ‘찬사를 받기에 충분한 커피’라는 호평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화산 지대에서 자란 코나 커피 콩의 특성 상 지방 함유량이 다른 종류의 것보다 높다는 특징이다. 그러나 이 점은 곧 매장 내에 배치된 로스팅 기계를 통해 즉석에서 콩을 볶아내는데 가장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지방함유량이 많은 콩을 로스팅 할 시에 기계 결함을 일으킬 확률이 높다는 것이 정설이다. 때문에 소규모 개인 커피 상점에서는 지방 함량이 높은 코나 커피 100% 대신, 코나 커피 함량을 최대 10% 이하까지 낮춰 판매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지방 함량이 높은 코나 콩의 경우 유통 기한이 다른 커피와 비교해 짧고, 짧은 유통 기한은 곧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하와이에 소재한 커피 전문점 중 상당수에서는 코나 커피 함량 10% 수준으로 판매하는 곳도 대부분이다. ‘코나 커피’라는 홍보 문구를 붙인 커피숍일지라도 사실상 10% 이하의 낮은 커피 함유량인 경우가 대부분인 셈이다. 게다가, 코나 커피의 경우 로스팅 후 4일 이내에 판매하는 것이 가장 맛 좋은 상태의 커피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지에서 판매 중인 ‘코나 커피’라는 상호명을 가진 커피들 중 100% 코나 커피를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그런데, 이번 원고에서 소개한 커피 전문점 ‘다운타운 커피 호놀룰루(Downtown Coffee Honolulu)’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100% 코나 커피를 사용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세를 얻은 곳이다. 호놀룰루 시 다운타운 도심 한 가운데에 운영 중인 ‘다운타운 커피 호놀룰루’는 다운타운에서도 딱 한 가운데 지점에 입점해 있다는 점도 이곳의 특별함을 배가 시키는 분위기다. 무채색의 도심 한 가운데에 빨간색 지붕으로 유난히 눈에 띄는 아담한 규모의 이 곳은 그 명성 만큼이나 찾아오는 손님들의 수가 많은데, 이른 아침 6시에 문을 열고 오후 4시면 어김없이 문을 닫을 때까지 찾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찾아오는 고객들 중에는 멀리서는 한국, 일본, 중국에서 오는 인종과 국적을 초월한 커피 마니아층도 상당하다.이들의 경우 대부분 오직 하와이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신선한 코나 커피콩 100%의 에스프레소를 맛보려는 목적을 가진 이들이다. 일부 코나 커피콩 100% 함량의 커피를 추출해 판매하는 다른 커피숍의 경우에도 커피 추출기 등의 문제로 인해 진한 에스프레소를 직접 우려내 판매하는 곳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때문에 상당수 매장에서는 브루잉 종류를 주로 판매해오고 있다. 물론, 하와이에서 생산되는 코나 커피에 대해 통상적으로 약 10% 정도만 함유한 것이라면 ‘코나 커피’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다. 일반 편의점이나 상점, 프랜차이즈 업체 등에서 판매 중인 저가의 코나 커피들이 여기에 속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지에서는 코나 커피의 대중화 정책에 힘입어 이 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웃으며 넘기는 분위기다. 그런 이유 탓에 코나 커피 100%를 선호하는 이곳의 대표 메뉴는 100% 코나 커피 종류다. 이 집에서 직접 볶아내는 코나 커피 로스팅 과정을 직접 확인하기 가장 좋은 때는 매주 토요일이다. 주인장은 일주일에 한 두 차례 커피콩을 직접 매장에서 로스팅 해오고 있는데 주로 토요일 아침 약한 불로 시작해 뜨겁게 로스팅을 하는 것으로 한 주의 장사를 마친다. 이 곳의 코나 커피의 맛은 첫 한 모금은 입 안에 알싸하게 퍼지는 질감에서 놀라고, 그 후 올라오는 코나 특유의 신맛과 진하지만 전혀 진하지 않은 묵직한 쓴맛의 밸런스가 기분 좋은 맛이라는 평가다. 특히 블루마운틴, 모카 마타리와 함께 세계 3대 커피라고 칭송받을 정도로 유명한 코나 커피는 맑고 뚜렷한 향과 뒷맛이 오래 가는 여운을 남긴다는 호평이 주를 이룬다. 비록 미국인들의 대부분이 휘핑 크림을 잔뜩 올린 커피류와 라떼 등의 종류를 더 선호하는 것과 달리, 하와이에 왔다면 반드시 100% 진짜 코나 커피 한 잔을 맛 보길 추천하는 이유다. 호놀룰루=임지연 통신원 808ddongcho@gmail.com 
  • 열대과일 ‘리치’ 섭취 주의…인도·중국서 집단 사망

    열대과일 ‘리치’ 섭취 주의…인도·중국서 집단 사망

    인도 북부에서 열대과일 ‘리치’를 먹고 뇌질환이 발병해 사망한 어린이가 100명을 넘어섰다. 힌두스탄타임스 등 현지 매체는 인도 북부 비하르주 무자파르푸르 지역에서 지난 17일 ‘급성뇌염증후군’(AES) 관련 증상으로 6명의 아동이 추가로 사망했다고 18일 보도했다. AES 증상으로 이 지역에서 숨진 아동 수는 103명이 됐다. 현재 200여명의 아동이 관련 증상으로 병원 치료를 받고 있어 사망자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숨진 아동 대부분은 급격한 혈당 저하로 혼수상태에 빠졌다. 보건당국은 리치에 함유된 독성물질이 AES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했다. 리치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히포글리신’과 ‘MCPG’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이들 성분은 포도당 합성과 지방의 베타 산화를 방해해 저혈당증에 따른 뇌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공복에 리치를 과도하게 섭취한 어린이 10여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특히 덜 익은 리치에 히포글리신과 MCPG가 2~3배 더 많아 공복에 다량 섭취하면 구토, 의식불명, 사망에 이를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따라서 해외에서 리치를 먹을 때는 공복 섭취를 피하고 성인은 하루에 10개 이상, 어린이는 한 번에 5개 이상 섭취하지 말아야 한다고 식약처는 설명했다. 리치는 달콤하면서 신맛이 나는 과일로 껍질은 거북 등처럼 생겼으며 돌기가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커피의 천국, 천국의 커피

    커피의 천국, 천국의 커피

    120원짜리 에티오피아 커피 한 잔, 그 꿈의 향을 찾아서정말 맛있었다. 짙은 액체가 입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순간, 어떻게 이렇게 깊을 수가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 신선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노천카페에서 파는 120원짜리 커피 한 잔에 감탄이 나왔다. 에티오피아를 처음 찾은 건 몇 해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갈 때였다. 원래 홍콩과 요하네스버그를 거쳐 더반으로 가는 여정이었지만 비행기가 연착하면서 항공편이 꼬여 갑자기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들어가게 됐다. 홍콩에서 아디스아바바까지 비행시간은 11시간이었다. 담요를 부탁했지만 승무원은 담요가 없다며 대신 따뜻한 차를 마셔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녀가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홍차를 마시고 겨우 잠들었던 것 같다. 스리랑카 콜롬보 상공을 지날 때쯤 눈을 떴는데 창밖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창문은 복숭아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인도양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잘못 든 길’이 주는 행운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슬며시 좋아졌다. 더 좋은 건 비행기 환승 시간이 넉넉했다는 것. 그래서 비록 공항에서지만 에티오피아 커피를 에티오피아에서 마실 수 있었다는 것. 커피는 기대보다 별로였지만 여기는 아디스아바바공항이니까 이 정도쯤이야 뭐. 그리고 다시 한 달 만에 에티오피아를 찾게 됐다. 첫 여행은 아디스아바바에서 시작해 랄리벨라와 곤다르를 돌아보는 일정이었고 두 번째 여행은 아디스아바바에서 시작해 진카, 아라브민치, 하와사, 콘소를 거쳐 짐마, 봉가, 바레 국립공원, 하라르에 이르는 다소 긴 여정이었다.그렇게 한 달에 걸쳐 에티오피아 구석구석을 훑어보며 에티오피아의 다양한 모습과 만났다. 고대 기독교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한 랄리벨라의 암굴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온몸을 감싸던 숭고한 느낌을 아직 잊을 수 없다. 진카의 무르시족과 하마르족 마을에서는 티브이에서나 보던 아프리카 부족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고 술을 나눴다. 바레 국립공원에서 만났던 멧돼지 가족과 바분 원숭이들도 유쾌했다.●수도사들 ‘악마의 열매’라며 불에 태우자… 세상에 없던 향 뿜으며 ‘커피’ 탄생해 하지만 이 모든 풍경과 경험을 지나와 한국에 와 있는 지금 머릿속에 가장 강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은 커피다. 매일 아침마다 거리의 노천 카페에서 에티오피아 사람들과 함께 마셨던 진한 커피향을 아직 잊을 수 없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코 끝에 커피향이 스치는 것만 같다. 커피 하면 많은 이들이 브라질 또는 콜롬비아를 떠올릴 테지만 커피의 발상지는 에티오피아다. 다양한 설이 있지만 커피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6~7세기경 에티오피아에 살았던 목동 ‘칼디’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염소를 보살피던 칼디는 어느 날 이상하게 생긴 붉은 열매를 먹고 있는 염소들을 목격했다. 그 열매가 독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칼디는 염소들이 열매를 실컷 먹을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붉은 열매를 먹은 염소들이 술에 취해 흥분하여 춤을 추는 듯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칼디는 그 열매를 따서 집으로 돌아와 물에 끓인 후 마셔 보았는데 정신이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칼디는 이 신기한 사실을 이슬람 수도사들에게 알렸고, 이 열매가 악마의 것이라고 생각한 수도사들은 불 속에 던져버렸다. 그런데 열매가 불에 타면서 더 향기로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커피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발견 덕분에 이른 아침을 여는 지루한 회의가 그럭저럭 참을 만하게 된 것이다. 커피라는 이름 역시 에티오피아의 지명 ‘카파’(Kaffa)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카파는 에티오피아의 커피나무 자생지이기도 하다. 카파가 터키로 전파되어 Kahweh,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에서 Cafe, 이탈리아에서 Caffe, 독일에서 Kaffee, 영국과 미국에서 Coffee로 불리게 되었다. 커피 콩은 크게 아라비카종과 로부스타종으로 나뉘는데 아라비카종은 로부스타종에 비해 산미가 있고 향이 뛰어나다. 하지만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고 냉해에 약한 편이라 가격이 비싸다. 아라비카종은 주로 해발고도 1500m에서 3000m에 이르는 고산지대에서 연평균 15~25℃의 기온과 2000~2500㎜ 정도의 강수량인 지역에서 자라는데 에티오피아는 그 조건에 딱 떨어지는 곳이다. ●귀한 손님에겐 ‘커피 세리머니’ 전통… 화로 ·토기 주전자·송진 이용한 특별한 의식 아디스아바바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한 시간을 가면 짐마다. 여기가 바로 카파다. 그러니까 카파는 짐마의 옛 명칭이다. 짐마 공항에 내리자마자 커피를 그려 놓은 커다란 커피 간판이 여행자를 반겼다. 공항 한쪽에는 에티오피아식 커피를 파는 조그만 커피 좌판이 자리잡고 있었다. 십여 분을 달려 시내로 들어서자 에티오피아의 여느 도시와 다름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삼륜 오토바이 택시와 말이 끄는 마차, 자동차가 뒤엉킨 도로는 복잡했다. 이 복잡한 도로 위를 양과 염소가 느린 걸음으로 걸어다녔다. 숙소에 들어서자 커피 세리머니가 펼쳐졌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귀한 손님이 방문했을 때, 환영의 인사로 커피 세리머니를 한다. 에티오피아 말인 암하릭어로는 ‘분나 마프라트’라 부른다. ‘분나’는 ‘커피’를, ‘마프라트’는 ‘요리’를 뜻한다. “에티오피아식 커피는 한국에서 마시던 커피와는 전혀 다른 맛일 거예요. 처음엔 좀 낯설 테지만 이틀만 지나면 세 잔 이상 마시지 않고는 하루를 보내지 못할 거예요.” 짐마 지역을 안내할 가이드인 데스가 말했다.커피잔이 가득 올려진 자그마한 탁자 위에는 네렐라라는 에티오피아식 하얀색 옷을 입은 여인이 앉아 있었다. 주위 바닥에는 행운을 불러 온다는 풀이 깔려 있었다. 탁자 앞에 자리한 화로에는 숯불이 연기를 피워 올렸고 그 위에는 목이 긴 토기 주전자 ‘제베나’가 올려져 있었다.그 옆에는 향로가 있었는데, 노란색 송진 덩어리를 올려놓으니 흰 연기와 함께 진한 향내가 퍼져나와 실내를 가득 채웠다. “세리머니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예요.” 데스가 귓속말로 나지막이 말했다. “주변의 냄새를 없애 커피향이 더 도드라지도록 하는 거죠. 손님에게 예의를 표하는 방법이기도 하구요.” 여인은 곧 프라이팬에 하얗게 건조된 커피콩을 볶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피가 진한 갈색으로 변하며 연기를 피워 올렸다. 이때 손님들은 연기를 함께 마시며 향기를 음미한다. 커피가 적당하게 볶아지자 곧 절구에 넣고 빻기 시작했다. 그 사이 제베나에 담긴 물이 끓기 시작하고 커피 가루를 넣고 다시 얼마간 끓인다. 에티오피아는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 2000m 이상인데, 높은 고도 때문에 95℃ 정도면 물이 끓는다. 하지만 목이 긴 제베나는 기압 차이를 줄여줘 진한 커피를 우려낼 수 있다. 또한 커피 아로마의 손실을 최대한 막아 주는 역할도 한다.이제 커피를 마실 차례다. 제베나에서 나온 커피가 손잡이가 없는 작은 찻잔 ‘시니’에 넘치도록 담긴다. 기분 탓인지 훨씬 더 검고 진하게 보인다. 여기에 설탕을 두 스푼이나 넣는다.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셔 본다. 진하고 신선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찬다. 초콜릿 향인지 캐러멜 향인지 뭔가 달콤한 맛과 쌉싸름한 맛이 어우러져 있다. 박하향이 스며 있고 에티오피아 커피 특유의 신맛도 깃들어 있다. “세 잔은 마시는 게 예의입니다. 첫 잔은 ‘우애’, 둘째 잔은 ‘평화’, 셋째 잔은 ‘축복’을 담아 마시죠. 커피 생산지 중 고유의 커피를 마시는 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는 에티오피아가 유일합니다.” 데스가 어깨를 으쓱 했다. 커피에 대한 자부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어깻짓이었다. 첫째 잔은 ‘아볼’, 두 번째 잔은 ‘후에레타냐’, 마지막 잔은 ‘바라카’로 부른다.짐마에서 차를 타고 1시간을 가면 봉가라는 조그마한 도시가 나온다. 이곳이 칼디가 가장 먼저 커피를 발견한 곳이다. 봉가에는 야생 커피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숲이 있다. 지금의 카파는 10개의 워레다(작은 행정구역)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 인구는 100만명 정도다. 봉가는 카파의 행정수도. 인구는 약 3만명이다. 에티오피아의 모든 커피는 우리나라 농림축산식품부와 같은 역할을 하는 ‘ECX’(Ethiopia Commodity Exchange)를 통해 거래된다. 수확 후 가공을 마친 커피는 ECX의 커피 보관소로 모인다. 커피 보관소는 에티오피아 8개 주요 지역에 있는데 봉가도 그중 한 곳이다. 봉가 시내를 지나 비포장 도로를 삼십 여분 가자 짙은 황토색의 강이 나타났다. 드라이버는 이곳부터는 차가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봉가 가이드를 맡은 베레케트는 물 한 병을 던져주며 여기서부터 40분 정도는 걸어야 한다고 했다. 그늘 하나 없는 황톳길이 눈 앞에 펼쳐졌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를 걸어가자 이곳이 커피를 가장 먼저 재배한 곳이라는 입간판이 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커피를 발견한 곳이라는 명성에 비해서는 다소 초라한 간판이었다. 베레케트는 팔을 이끌며 숲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그런데 몇 발자국 숲으로 들어갔을 뿐인데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에티오피아에 오는 여행자들은 사실 봉가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그들은 랄리벨라의 암굴교회나 진카의 원시부족 마을을 방문하길 원하죠. 하지만 봉가는 아라비카 커피의 최초 발생지이기도 한 만큼 더 알려질 필요가 있는 곳이에요.” 베레케트가 말했다. “커피 나무가 어디 있죠?” 내가 묻자 베레케트가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이 숲의 모든 나무가 커피 나무입니다.”정말 놀라웠다. 아열대 기후 속에 자리한 이 울창한 레인 포레스트가 모두 커피나무라니! 나는 어느새 커피 숲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나무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보니 커피 열매가 매달려 있었다. 어떤 커피나무는 키가 5m는 더 돼 보였다. “봉가의 산림 보존 지역은 넓이가 500㎢에 이르는데, 이와 비슷한 크기의 아열대 숲은 에티오피아에 몇 군데밖에 남아 있지 않아요.” 베레케트는 숲의 나무들이 만드는 짙은 그늘이 열매를 느린 속도로 자라게 하는데, 이 때문에 풍미 가득한 커피 열매가 열린다고 설명했다. “이걸 바로 따서 먹을 수도 있나요?” “물론이죠. 단 수확기가 돼야 하죠. 10월부터 빨갛게 익은 커피를 따기 시작해요.” 지금이 10월이 아닌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글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여행수첩 →에티오피아 항공은 인천~아디스아바바 직항을 주 4회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10시간 30분. 에티오피아 여행은 국내선 연결편이 잘 돼 있어 되도록이면 항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육로로 이동하기에는 도로 사정이 그다지 좋지 않다. 통화는 비르. 1비르는 약 40원. 원두 250g이 3000원 정도 한다. →에티오피아의 전통 음식은다. 커다란 부침개처럼 생겼는데, 수건처럼 돌돌 말린 인제라를 펼쳐놓고 조금씩 뜯어 매콤한 고기인 ‘와트’와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맛이 시큼하다. 전압은 220V로 우리와 같은 콘센트를 사용한다.
  • ‘알바생에서 월드챔피언까지···’, 전 세계 커피업계 접수한 전주연 바리스타

    ‘알바생에서 월드챔피언까지···’, 전 세계 커피업계 접수한 전주연 바리스타

    2007년 4평짜리 테이크아웃 커피숍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일하며 커피와의 ‘첫 만남’을 가졌던 한 여학생, 이후 바리스타를 평생의 업으로 선택하고 피나는 연습과 악바리 근성으로 10년 만에 커피 세계를 평정했다. 그녀의 이름 앞엔 ‘한국인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게 되는 명예까지 거머쥐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지난 4월 11~14일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orld Barista Championship,이하 WBC)에서 우승한 바리스타 전주연(32)씨. 호주인 폴 바셋(Paul Bassett)도 2003년 이 대회 우승자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20회를 맞이한 올해 대회엔 총 55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참가했다. 전씨는 캐나다, 독일, 그리스, 인도네시아, 스위스 5개국 대표들과 함께 여섯 명이 겨루는 최종전에 진출해 경쟁자들을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각국 예선에 참가한 3000여 명의 선수들까지 포함하면 ‘역대급 경쟁’을 제친 쾌거다. 자다 깨어나 보니 스타가 돼 있었다. 많은 인터뷰 요청 등 대중매체의 관심이 많아져 속칭 ‘바쁜 몸’도 됐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커피 이벤트 우승자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계적 명성도 뒤따랐다. 얼마 전에는 “이젠 네 얼굴이 크레딧 카드다”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명성에 따른 부담감도 없진 않다. 과거 유명 바리스타를 롤모델로 삼고 꿈을 향해 도전했던 그녀가 이젠 바리스타를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의 롤모델이 됐기 때문이다. 그녀로서는 자신이 이 순간에만 만족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과 꿈을 향해 치열하게 나아가야만 하는 기분 좋은 ‘명분’이 생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지난 8일 부산 모모스 커피 이사로 재직 중이기도 한 그녀를 찾아 WBC 대회 관련 얘기들과 우승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사연들, 앞으로의 희망과 꿈에 대해서 들어봤다.(Q) 55개 참가국 대표선수들과 경쟁에서 우승했다. 소감이 남다를 텐데우선 너무 기쁘다. 솔직히 아직까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기쁜 건 내 이름과 South Korea가 같이 적혀 있었다는 것과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는 게 굉장히 영광스러웠다. (Q) 어떻게 도전하게 됐는지2009년에 바리스타를 직업으로 선택하게 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바리스타란 직업이 그렇게 존중받는 직업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냥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사람 정도로만 생각했다. 2009년에 우연히 WBC 대회 영상을 보게 됐다. 많은 사람들이 바리스타 한 명에게 집중하고, 바리스타란 직업의 가치를 모두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분위기에 매료됐다. 그 대회 영상을 보면서 나도 바리스타이기 때문에 저 자리에 꼭 서고 싶다, 저 자리에 꼭 서야지만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것이 당시 내가 커피인으로서 처음 세운 목표이기도 하다. (Q) WBC 대회 참가 두 번째 만에 우승이다. 자신 스스로가 놀랍지 않은지사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오래 걸린 편이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대표가 되어야만 세계무대에 설 수 있다 보니깐 10년이란 세월은 다른 나라 선수들보다 오래 걸린 셈이다. 그래서 결코 내 자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회 우승하기까지 오래 시간이 걸렸지만 오랜 기간 동안의 많은 경험들이 빛을 발한 게 아닌가 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Q)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있는지많은 분들이 엄청난 상금을 받는 걸로 생각하는데 금전적으로 들어오는 건 전혀 없다. 대신 커피 산지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라든가 큰 대회 스폰서들로부터 커피 관련 기계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홍보대사 같은 활동 등이 있을 뿐, 그다지 큰 혜택은 없다. 커피업계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이벤트이다 보니 커피와 관련된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이 가장 큰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Q) WBC 대회는 무엇을 어떻게 심사하는지한 선수 당 약 15분의 프레젠테이션 시간이 주어진다. 그 15분 안에 세 카테고리 음료를 만들어내야 되는데 에스프레소 4잔, 밀크음료 4잔, 창작음료 4잔 총 12잔을 네 명의 심사위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또한 만든 음료와 함께 바리스타가 가지고 있는 철학, 주제 등도 전달해야 한다. 심사위원들은 바리스타가 생각하고 있는 주제와 철학이 제공된 음료들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커피를 바리스타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평가하게 된다.(Q) 창작음료 부문에서 좋은 평가받았다. 어떤 부분에 있어 높은 점수를 받은 건지저는 한 잔의 커피를 마실 때 단맛과 질감에 중점을 두고 커피를 즐기는 편인데 이 단맛을 어떻게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더 잘 담아낼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던 찰나에 커피가 가지고 있는 성분 중 탄수화물을 좀 더 연결시켜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됐다. 지금까지 탄수화물이란 주제로 프레젠테이션을 한 선수들도 여러 명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만든 창작음료는 지금까지 추출해내지 못한, 커피가 가지고 있는 다당류를 추출해 내고 그것을 저의 창작음료 재료로 사용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시너지라든가 창작성의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거 같다. (Q) 영어발표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는지굉장히 부담스러웠다. 모국어가 아니다보니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프레젠테이션 내용이 산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만일 프레젠테이션에서 한 문장이라도 까먹게 되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통으로 날아가 버리는 꼴이 되니깐 굉장히 긴장하면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자기 전에도, 차에서 이동할 때도 내가 녹음했던 걸 수도 없이 듣고 연습했다. (Q) 준비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을 텐데제가 커피를 처음 시작할 때 정말 많이 힘들었다. 바리스타란 직업 인식 때문에 그랬던 거 같다. 집에서 뿐 아니라 학교에서 취업계를 낼 때 교수님들이 많이 반대하셨다.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고 가족들과 만나는 횟수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것들이 다 좋아졌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체력적인 부분이었다. 작년엔 10년 만에 얻은 기회로 WBC 대회라는 무대에 처음 섰던 거다. 때문에 많은 한국 분들이 기대를 걸어줬던 만큼 부담감과 책임감이 너무나 컸다. 근데 이상하게도 올해엔 힘든 일이 하나도 없었다. 대회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너무 재밌었다. 부담감과 욕심을 내려놓고 어떤 성적에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준비하다 보니깐 하루하루가 재밌었던 거 같다.(Q) ‘커피 주량’은 어떤지사실 저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커피를 많이 못 마시는 편이다. 커피를 한 잔 즐길 때는 한 잔 가득 다 마시지만 커피를 테스트할 경우엔 커피를 마시고 뱉는 경우가 많다. 하루에 마시는 커피는 세네 잔 정도밖에 안 되는 거 같다. (Q) 장래 희망이 유치원 선생님이었는데바리스타를 어릴 때부터 꿈꿔 온 건 전혀 아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커피 만드는 게 정말 재밌다’ 정도였던 거 같다. 유치원 선생님, 사회복지사로도 일했는데 상대적으로 커피 관련 일을 하는 것에서 보다 큰 에너지를 얻었고, 굉장히 재밌게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깨달았다.(Q) 본인이 생각하는 ‘커피’란저는 ‘커피란 에너지다’라고 늘 얘기한다. 사실 커피가 맛있을 수도 있고, 맛없을 수도 있는데 더 맛있게 만들어 주기 위해선 하나의 에너지가 필요한 거 같다. 제가 커피 한 잔을 내리기 위해서 정말 많은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는 편이다. 커피 내려주고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할 때 무엇보다 친근함으로 손님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보면 결국에는 커피를 마시고 가시는 손님들께서 ‘맛있게 먹고 갑니다’라는 말보다는 ‘좋은 기운, 좋은 에너지를 받고 갑니다’라는 말을 많이 해주신다. 저도 새로 만나는 분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런 에너지를 많이 받는다.(Q) 좋은 커피 원두를 고르는 비결이 있다면바리스타 입장에선 ‘좋은’이라는 기준이 있지만 커피를 소비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좋은’은 또 다른 의미라고 생각한다. 대중매체에서 신맛 나는 커피가 좋은 커피라고 말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분들께서 신맛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건 결코 좋은 커피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커피를 마시는 입장에서 좋은 커피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커피가 좋은 커피라고 생각한다. 소비자들께서 원두를 고르실 때는 원두를 한 움큼 잡고 펼친 상태에서 컬러가 얼마나 동일한지를 확인하고 또한 언제 로스팅을 했는지도 잘 살펴보면 좋은 원두를 고를 수 있다. (Q) 바리스타를 꿈꾸고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굉장히 힘든 직업이었다. 일이 힘들다기보다는 주변의 시선들이 더 많이 힘들었는데 지금은 조금씩 전문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하나의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이 직업에 도전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있다면 도전해보시는 걸 추천한다. 하지만 중도에 너무 빨리 포기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떤 직업이든 다 힘들거라 생각하고 스스로가 선택한 일에 대해서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지켜나가면 나중에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Q) 앞으로의 계획과 꿈WBC 우승을 발판 삼아 부산을 커피 도시로 만들고 싶고 대중들에게 스페셜티 커피를 알리고 싶다. 스페셜티 커피의 가치를 많이 알고 그 가치를 존중해줘야지만 바리스타란 직업의 가치 또한 같이 성장하게 되는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결국에는 커피를 생산하는 산지에까지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나라 농업기술이 매우 발달돼 있다고 한다. 농업에 대해 관심 갖고 공부해서 커피를 생산하는 농가에 반영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 커피를 소비하는 소비국에서의 활동뿐 아니라 커피 생산국에서의 활동도 함께 하면서 우리나라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손진호, 박홍규, 문성호 기자 nasturu@seoul.co.kr
  • [사이언스 브런치]혀에 냄새 맡을 수 있는 세포가 있다고?

    [사이언스 브런치]혀에 냄새 맡을 수 있는 세포가 있다고?

    감기가 심하게 걸려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로 코가 막히거나 비염이 심할 경우 산해진미를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없다. 향을 맡고 맛을 느끼는 감각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금까지 미각과 후각은 독립적 감각이며 음식에 대한 감각은 맛과 냄새, 다른 자극들이 입력돼 뇌에 도달하면서 만들어진다고 여겨져 왔다. 그런데 미국 뉴욕대 치대, 모넬 케미컬센스센터 공동연구팀은 냄새를 맡는 후각 수용체가 혀에도 일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25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센서분야 국제학술지 ‘케미컬 센스’ 24일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실험실에서 사람의 혀에 있는 미각 세포를 배양한 다음 세포의 활성도를 측정하는 칼슘 이미징 기술과 생화학적 방법을 이용해 분석한 결과 미각 세포에도 후각 수용체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많은 핵심 분자들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각 세포가 후각 세포와 비슷한 방식으로 냄새 분자에 반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맛과 냄새를 동일한 감각으로 보지만 대부분의 음식에서 독특한 맛은 미각보다는 후각에서 오는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을 느끼도록 하는 미각은 체내에 들어오는 것의 영양학적 가치와 잠재적 독성을 평가하는 문지기 역할을 하는 것일 뿐 음식 맛에 대한 실질적 평가는 미각 세포에 있는 후각 수용체가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연구를 주도한 메멧 오즈데너 박사는 “이번 연구는 음식 맛을 느끼게 해주는 주요 감각기관인 후각과 미각 사이 상호작용이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것처럼 뇌가 아닌 혀에서 시작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추가 연구를 통해 비만이나 당뇨, 고혈압처럼 식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질병의 원인으로 꼽히는 소금, 설탕, 지방 섭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김포 최초로 체험·관광하는 낙농업 6차산업화로 행복한 목장 만드는 게 꿈”

    김포 최초로 체험·관광하는 낙농업 6차산업화로 행복한 목장 만드는 게 꿈”

    “35년간 젖소와 살다보니 이젠 소 얼굴만 봐도 건강상태를 알 수 있어요. 앞으로 김포에서 낙농업 체험·관광까지 할 수 있는 6차산업화를 이뤄 모두가 행복한 목장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경기 김포시 통진읍 서암리에 시민들은 몰라도 제주도 목장주들까지 알 정도로 유명한 젖소목장이 있다. 연덕흠(52) 대표가 운영하는 ‘연보람목장’이다. 연 대표는 평균 단위생산 우유량이 10년 넘게 전국에서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젖짜는 기술이 남다르다. ●평균단위 우유생산량 10년 넘게 ‘전국 최고’ 그동안 받은 상장도 넘쳐난다. 2002년 카길코리아로부터 전국 1위 최우수목장으로 뽑힌 데 이어 2004년에는 305일 젖소평균 산유량 1만 4432㎏을 기록해 전국 1위에 올랐다. 같은해 최우수검정농가 농림부장관상과 2014년 축산물안전관리인증원으로부터 축산물해썹우수작업장으로, 지난해에는 농림부지정 깨끗한목장가꾸기 우수목장으로 선정됐다. 네덜란드산 홀스타인종을 키운다. 다른 목장에서는 보통 하루에 젖을 2번 짜는데 연보람목장은 3번 짜낸다. 유량이 남아돌면 유방염이 걸려 소가 죽을 위험이 크단다. 알고 보니 최고 우유를 생산하는 비결이 별게 아니다. 연 대표의 비결이라면 항상 소와 함께하고 있다는 점이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소와 같이 생활하면서 소의 상태를 살펴보고 철저하게 바닥을 깨끗이 위생관리한다. 아침·저녁으로 먹이를 주는데 하루에 4~5차례씩 나눠서 주고, 바닥에 톱밥도 자주 갈아줘 청결상태를 유지해준다. 그래서인지 농장에서 소농장 특유의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특히 더위에 약해 여름철 소가 더위를 먹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 사소한 것이지만 여름철 낮에 밥을 많이 주면 소는 땀구멍이 없어 헐떡거리고 가스가 발생한다. 그래서 연 대표는 소가 소화하기 힘들까봐 되도록 밤에 먹이를 더 많이 준단다. 남다른 노력으로 연보람목장은 2006년 경기도 안전관리인증(HACCP)으로 우유와 제품 안전성을 입증받았다. ●17살때부터 12년간 남의 집살이… 송아지 3마리로 시작 100마리규모로 성장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읜 연 대표는 1987년 김포종고 축산과를 졸업했다. 졸업후 가진 게 없어 17살 때부터 남의 집살이를 하며 어렸을 적 꿈이었던 낙농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월급 8만원짜리 남의 집살이를 12년간 해 장만한 돈으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 셋방을 얻어 살았다. 처음 400평짜리 목장에서 시작해 현재는 1200평규모 목장으로 키웠다. 어미소에서 탄생한 송아지가 30마리, 젖소는 70마리가량 된다. 전국에서 목장하는 분들 중 ‘연보람목장’을 모르면 간첩이란다. 젖소는 위생청결이 가장 중요한데 사람 사는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물과 물통도 하루에 한번씩 닦아 소 위생관리를 철저히 한다. 서울우유 사료를 쓰지만 강원도처럼 대규모 목장 말고 대도시 수도권 지역에서 먹이는 대동소이하다. 소들이 젖을 짜러 들어오면 신나게 들어와야 하는데 젖짜는 게 아프다고 소가 안들어오려고 한다. 이런 소는 매맞는 소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우유 짤때 발길질을 하는 이유다. ●통진읍 마송에 치즈카페 ‘보네르’ 운영중… 우유 체세포 수 1등급 고소한 맛 연보람목장에서는 우유와 가공식품을 판매하고 있다. 치즈와 요구르트는 물론 색소가 들어가지 않은 아이스크림도 아이들이 좋아해 판매하고 있다. 연보람목장에서는 당일날 생산한 우유로 요구르트나 치즈·아이스크림을 만들어낸다. 지난 1월 제조업허가를 받았다. 이곳 제품이 타농장 제품하고 다른 점은 수제다. 전국에는 100군데 농장제품이 있으나 제각각 맛이 다르다. 우유 품질에 따라, 소의 특성에 따라 맛이 다르단다. 우유 중 92%가 수분이다. 나머지 8%가 고형분이다. 다른 업체는 일반 유제품을 가져가서 단백질을 뺀 뒤 버터와 치즈·요구르트를 만드는데 연보람목장은 원재료로 제품을 만드는 게 차이점이다. 목장마다 소를 키우는 방식이 다르고, 같은 풀을 먹어도 원유가 다르단다. 연보람목장 우유는 체세포 수가 1등급으로 고소하고 단맛이 나며 배탈이 나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건강한 소에서 질좋은 우유가 생산된다. 치즈는 구워 먹으면 입에서 우유향이 확 돈다. 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피로한 소한테 짠 우유는 신맛이 난다. 연 대표는 2017년 가을 통진읍 마송에 치즈카페 ‘보네르’를 열었다. 질 좋고 신선한 우유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맛보고 구매할 수 있다. 반응이 좋아 조만간 장기동에도 카페를 낼 예정이다. 목장에서 나오는 매출액은 유제품이 하루 1500㎏으로 한 달에 5000만원가량, 1년이면 6억원어치다. 카페매출액이 월 700만원으로 1년에 8000만원을 거둬들인다. 모두 합하면 7억원대 매출액으로 농촌에서는 적지 않은 규모다. ●서암리 목장 입구에 ‘목장이야기’ 카페공간 꾸며 시민에 무료 개방 최근에는 서암리 목장입구에 ‘목장이야기’라는 카페공간을 꾸몄다. 이곳을 작은 동창모임이나 동호인들 모임장소로 무료 제공한다. 누구나 편안히 와서 고기 구워 먹고 놀다가는 곳이다. 커피는 덤이다. 대신 이곳에 가공식품 진열대를 만들어 방문객들이 요구르트나 치즈를 사갈 수 있게 카페식으로 조성했다. 첫 1호 손님으로 뜨개질하시는 분들이 예약했단다. 아주머니들이 강사를 모시고 작은 행사를 열 예정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주저없이 연 대표는 “낙농업의 6차산업화를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1차로 목장에서 젖소에서 우유를 생산하고 2차로 요구르트·치즈로 가공해, 3차로 카페서 판매하며, 체험·관광까지 하는 6차산업화가 꿈이란다. 바로 앞에 있는 농지 1000평을 구입해서 6차산업농장으로 만들고 싶다며 이 토지만 구입하면 꿈이 이뤄질 것 같다고 빙그레 웃었다. 현재 김포에는 유착체험 농장이 없다. 2~3년내 반려견이나 고양이를 데리고 와 4계절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힐링테마 목장을 만들고 싶단다. 이웃 파주에는 이런 목장이 5개 넘게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유학파로 호주에 살고있는 큰딸 부부를 끌어들였다. 작은 딸은 마송 치즈카페 운영을 맡고 있다. 큰딸 부부는 제조업을 맡기 위해 올해 농업대학에 다닐 계획이다. 연덕흠 대표는 “17살 때부터 35년간 젖소하고 생활해 왔다. 이젠 6차산업이라는 부푼 꿈을 갖게 됐고 기와집도 짓고 있어 기쁘다”며, “앞으로도 행복한 목장을 만들어 일에만 치이지 않고 행복한 마음으로 목장을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김정은 트럼프 버거·티셔츠 불티…분위기 띄우는 하노이

    김정은 트럼프 버거·티셔츠 불티…분위기 띄우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를 향해 출발한 가운데 하노이도 회담 분위기로 달아오르는 모습이다. 하노이 시민들은 정상회담을 기념하는 각종 먹거리와 입을 거리 등을 내놓으며 역사적 이벤트를 즐길 준비를 하고 있다. 하노이 레스토랑 ‘더티 버드’는 24일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딴 ‘김정염(Kim Jong Yum) 버거’(왼쪽)와 ‘더티 도널드 버거’(오른쪽) 출시를 하루 앞두고 준비에 분주했다. 아일랜드 출신의 더티 버드 대표 콜린 켈리(40)는 “하노이의 흥분되는 순간을 기념하고 싶었다”며 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이름(Kim Jong Un)과 맛있는(Yummy)의 합성어인 김정염 버거는 돼지고기 패티에 볶은 김치를 넣어 만든 것이 특징이다. 레스토랑 이름(더티 버드)에 트럼프 대통령의 퍼스트 네임을 붙인 더티 도널드 버거는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맥도날드의 빅맥을 기반으로 러시아 스캔들을 풍자하며 ‘러시아 드레싱’으로 맛을 냈다고 소개했다. 내외신을 통틀어 여섯 번째 인터뷰를 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은 그는 아직 출시되기 전인데도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고객도 소식을 듣고 이들 버거를 찾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노이의 한 크래프트비어 전문점도 김 위원장의 이름에 에일맥주 명칭을 합성한 ‘김정에일’을 출시했다. 백두산 천지 물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이 맥주는 김치의 신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다른 칵테일바도 ‘평화 협상’,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불렀던 데서 아이디어를 얻은 ‘록 잇, 맨’ 등 기념 칵테일을 선보였다. 이 밖에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는 이미 불티나게 판매돼 하노이 시민뿐만 아니라 외신 기자도 티셔츠를 입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인증’하는 것이 유행이 됐다. 켈리 대표는 “수십 년간 반목했던 사람들이 하노이에서 만난다는 사실에 하노이 시민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하노이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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