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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개비 둥지 속의 새끼 뻐꾸기/이상규 글

    이상규(63)시인은 중국 옌볜(延邊)에 더 널리 알려져 있다.현재 한국 중국조선족문화예술인 후원회 회장이다.그의 수필집 ‘개개비 둥지 속의 새끼 뻐꾸기’(문예촌 펴냄)에는 소외된 이웃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나눔의 철학이 진솔하게 드러난다. 시인은 조선족 여성의 주선으로 1996년 시집 ‘순정의 고백’을 출간하기 위해 옌볜에 갔다가 조선족의 실상을 목격한 뒤 9년째 조선족 문화계를 돕고 있다. 폐간 위기에 처해 있던 계간지 ‘아리랑’이 발간될 수 있도록 도운 것을 시작으로, 헤이룽장(黑龍江)신문의 실화·수필상 공모,문화총서 ‘한마당’ 출간,옌볜작가협회 문학상,20세기 중국조선족문화사료전집(전 50권)출판 등을 후원했다.2000년부터는 조선어를 가르치는 백두산 아래 장바이(長白)현 오지의 소학교 어린이들의 기숙비를 지원하고 있다. 후원금은 대부분 자신이 대표로 있는 고려식품판매(주)에서 충당한다.하지만 시인은 부자가 아니다.조선족들을 돕기 시작한 뒤 회사 운영이 어려워져 아들은 대학을 중퇴하고 사업을 돕고 있으며,시인은 45년간 피우던 담배를 끊었고,그토록 좋아하던 수상 스키마저 팔아버렸다.낡은 집도 8년째 고치지 못하고 있다. 이 시인은 농부같은 소탈한 외모에 허름한 차림이다.한 옌볜 아주머니에게는 “도움 주시는 것 조금 줄이시고 옷 좀 해입으시면 안되나요?”라는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시인은 옌볜 동포들에게 “몇푼 안되는 돈을 갖고와서는 인간으로서 지조와 존엄,순결성같은 소중한 정신을 한 짐씩 지고 간다.”고 얘기한다. ‘조선의용대 마지막 분대장’이자 광복 후에는 옌볜에서 소설가로 활동하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고(故)김학철 선생과의 소중한 인연도 소개한다.이 시인은 지난해 옌지(延吉)시가 주는 ‘제2회 고마운 한국 지성인상’을 수상했다.8000원. 황진선기자 jshwang@seoul.co.kr
  • [환경엄마 김순영의 건강한 밥상] 자연산 생선이라고 안전할까

    근래에 우리나라의 생선 소비량이 크게 증가했다.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수산물 소비량이 생선회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을 따라잡고,드디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2001년 기준으로 국민 1인당 연간 소비량이 66.9㎏으로,수산물 요리를 좋아한다고 알려진 타이완(40.3㎏),프랑스(31.3㎏),스웨덴(30.9㎏)은 물론이고,일본(66.8㎏)보다 소비량이 많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 식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생선이지만 사실 생선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둔감한 편이다. 우리는 흔히 생선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잣대로 자연산인가,양식인가와 싱싱한 것인지 아닌지를 따지곤 한다.물론 중요한 잣대다.단적으로 말해 아직도 자연산과 양식의 차이는 크다고 할 수밖에 없다. 생선을 양식할 때는 가축을 밀집 사육할 때 생기는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사료에 들어가는 재료의 안전성 문제,첨가물 문제,밀집 양식으로 인해 물고기 자체가 만들어 내는 생체 독성 문제,그리고 이런 점들로 인해 물고기들이 약해져 전염병에 잘 걸리며,이를 해결하기 위해 투여하는 각종 항생제 문제 등을 생각해 보면 정말 양식어류를 선택하는 일이 두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점 외에 또 다른 잣대를 추가해야만 한다.어느 생선이 보다 덜 오염되었을까 하는 점이다.바다가 점점 심각하게 오염되면서 양식 어류가 아닌 자연산 생선이라도 더는 안전한 먹을거리가 아닌 것이다.물이 오염되면 그곳에 사는 물고기는 쉬지 않고 그 물을 빨아들이고 내보내면서 꾸준히 오염물질을 자신의 체내에 축적하게 된다.이게 사람 몸에 들어가 2차 오염원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비교적 안전한 생선은 없는가.틀림없이 있다.먼저 물이 차고 맑은 바다에서 살면서 운동량이 많은 생선이 훨씬 안전하다.삼치 고등어 명태 오징어 등이 그런 생선이다.연근해보다 먼 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이 더 나음은 물론이다. 생선을 먹을 때도 부위에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대부분의 화학물질은 지방에 좀더 잘 녹는다.따라서 생선 부위 중에서도 지방이 많은 곳에 오염물질의 농축이 더 심하다.이 때문에 기름기가 많은 생선이나,생선 부위 중에서는 내장 알 아가미 등 지방이 많은 부위는 가능한 한 먹는 걸 삼가는 게 좋다.오염물질이 많이 묻어 있는 비늘을 잘 긁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헬렌 니어링은 그의 저서 ‘소박한 밥상’에서 기름에 지지고,볶고,튀기는 요리법을 피해 날로 먹을 수 있는 것은 날로 먹고,아니면 살짝 데치거나,찌거나,삶거나,조려서 먹을 수 있는 요리법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생선도 그렇다. 생선을 조리할 때도 튀기는 것보다 지지거나 조리는 것이 낫고,그것보다는 굽는 게 더 낫다.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방법은 쪄서 먹는 것이다. 혹은 생선을 어떻게 찌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그러나 간단하다.물을 솥바닥에 조금 붓고,그 위에 스테인리스 국그릇 같은 용기를 엎어놓은 뒤 그 위에 생선을 올려놓고 불을 가하면 된다. 먹어 보면 찐 생선은 가시를 발라 먹기도 좋고,육질이 부드러운가 하면 기름이 쪽 빠져 정말 담백하다.이것을 몇 번 먹어 본 사람은 그 다음부터 기름에 튀긴 생선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국물이 있는 생선 요리라면 국물 표면에 떠오르는 거품을 잘 걷어 내야 한다.이 거품에는 오염물질도 많이 포함돼 있고,여러가지 나쁜 냄새를 풍기는 성분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거품을 잘 제거하면 훨씬 안전하면서 맛도 깔끔한 생선찌개가 된다. 생선은 육류보다 안전한 동물성 단백질 공급원으로 평가받고 있다.그런데도 많은 아이들이 생선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그런 자녀가 있다면 주말 야외프로그램의 하나로 온 가족이 수산시장 나들이를 하는 것도 좋다.애들이 스스로 고른 생선에는 아무래도 젓가락이 한번이라도 더 가기 마련이다. 물론 보너스로 살아 있는 어시장의 활기와 흥분의 체험을 담아올 수도 있다.
  • 임진왜란 해전사/이민웅 지음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싸워 이겼을까.’ 이 단순한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주변에 이순신과 관련된 사료와 이를 가공한 텍스트가 넘치지만 이순신은 쉽게 읽히고 알려지기를 거부하고 있다.마치 당대의 왜적에게 그가 불가해했듯 우리에게도 여전히 미궁이다. 그는 확실히 전쟁 영웅이다.불퇴전의 기개와 무패의 기록,그러면서도 절대왕권의 위세에 눌려 끝내 좌절하고야 마는 굴곡진 삶의 궤적까지도 영웅적이다.여기에다 백의종군 끝에 지휘권을 되찾아 전선에 복귀하면서 ‘무능한 임금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 남겼으되,‘신에게는 아직도 열두척의 전선이 남아 있습니다.’란 기록은 차라리 비장해 그의 신성성(神聖性)을 확고하게 한 명문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냉정하게 돌이키면,찬사와 추앙으로 이어지는 끝모를 이순신의 신격화와 영웅시가 또한 그의 실체를 가리는 차단막이 됐음도 부인할 수 없다. 투철한 군인이자 가솔의 안위를 걱정한 인간이기도 했던 그의 실체를 한 걸음 다가가 보려는 이들에게 현역 해군 소령이자 해군사관학교 전사전략학 교수인 이민웅의 ‘임진왜란 해전사-7년 전쟁,바다에서 거둔 승리의 기록’은 눈여겨 볼 책이다.저자는 주저없이 ‘이순신 신화’의 허구성을 들춘다.“그의 전공이 일제하 민족의식 고취 필요성,박정희 시대의 반공독재 체제 구축 등에 이용되면서 미화와 영웅화,나아가 순국사관으로까지 발전,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를 차단하고 있다.” 그는 임진왜란 해전사를 영웅담의 범주에서 역사의 기록으로 자리매기기 위해 당대의 전쟁 조건,즉 직·간접적인 전력을 폭넓게 파악하고 있으며,이를 위해 방대한 주변 사료를 낱낱이 끌어들이고 있다.왕조실록은 물론 난중일기,임진장초,이충무공전서,난중잡록,새미록과 서애집,상촌집,백사집 등 이순신의 기록을 전하는 사료들을 종횡으로 아우르며 신빙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방대한 탐구는 우리가 사실로 믿었던 오류의 시정으로 이어진다.마산 앞바다에서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 합포해전의 진상,그리고 명량해전에서 쓰였다는 철쇄(鐵鎖)의 실제 여부를 규명한 것이 그것.실인 즉,마산포를 말하는 합포가 진해만과 잇닿아 있어 논란의 여지가 없지는 않으나,그는 기록과 위치의 적정성으로 미뤄 이곳이 마산이 아닌 진해 연안이라고 주장한다.또 명량해협에 쇠줄을 엮어매 적선을 격침시켰다는 기록도 일본측 학자가 제시한 주장을 생각없이 끌어왔고,이 가설이 영웅담으로 확대재생산되는 과정에서 고착화된 허구라고 단정했다. 조일 양군의 무기와 군선체계,왜성 축조의 배경 등 이미 학계에서 고구(考究)돼 온 문제에 대한 일부 안일한 기술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가 눈길을 끄는 것은 이순신을 신화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과감히,그리고 논리적으로 옮겨 앉히고 있다는 점이다.그는 우리 역사상 가장 크고 의미있었던 전쟁을 전쟁사로 정리하는 새 문을 이렇게 열고 있다.청어람미디어 펴냄.1만 8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국내最古 600년된 미라 발굴

    국내 최고(最古)인 6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 4구가 대전시 중구 목달동에서 한꺼번에 발굴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 미라는 보존 상태가 좋아 기관지 내시경이 가능할 정도였다. 대전보건대 박물학과 조한희(51) 교수는 “최근 대전의 S문중으로부터 가족묘 조성 공사 때 발굴된 총 4구의 미라를 인수,계룡산 자연사박물관과 함께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21일 밝혔다.조 교수는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 S문중 11대 및 14대 손이 포함된 남자 미라 4구로,신체와 복식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당시의 장제와 복식은 물론 사인과 음식문화를 규명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사료”라며 “이중 미라 1구는 고대 안암병원으로 옮겨 조사중이며,복식은 따로 수습해 최근 부산대에 정밀 조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고대 안암병원으로 옮겨진 미라는 병리과 김한겸(50) 교수팀에 의해 21일 신체 계측과 조직검사에 이어 기관지 내시경 검사를 마쳤으며,이어 위와 장,복강경 내시경 검사를 통해 정확한 사인과 음식물 등의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계측 결과 이 미라는 170㎝로 생전에는 180㎝가량의 키였을 것으로 추정됐다. 조 교수와 연구에 참여한 계룡산 자연사박물관 이동찬(37) 학예실장은 “이 미라의 주인공은 조선 초기인 15세기에 사망한 종3품 무관으로,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굴된 30여구의 미라 중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부고]

    ●琴東秀(KBS스카이 사장)朱正煥(플러스엔지니어링 〃)洪承杓(웰피아24 실장)柳茂永(휴먼서플라이 사장)씨 빙모상 18일 오전 2시 신촌세브란스병원,발인 20일 오전 6시 (02)392-2899 ●李炳郁(신한향료 회장)씨 별세 正中(서울대 교수)惠慶(사업)씨 부친상 鄭亨鎭(〃)씨 빙부상 16일 서울대병원,발인 20일 오전 6시 (02)760-2016 ●金士龍(자영업)龍珍(환경부 서기관)石珍(자영업)海淑(국민대 총동문회 문화부장)씨 부친상 金龍秀(매일경제 교열부 차장)씨 빙부상 17일 서대문 적십자병원,발인 19일 오전 7시 (02)2002-8936 ●申斗憲(전 상명대 교수)씨 별세 元燮(전 한국일보 기자)利燮(우성사료 총무인사부장)씨 부친상 曺五鉉(건국대 교수)李印彬(영등포여고 교사)씨 빙부상 16일 오후 1시17분 제주한라병원,발인 20일 오전 7시 (064)749-8444 ●李載宗(쌍용화재보험 고문)載學(사업)載薰(LG화재 직원)載寅(SUN MUSIC 이사)씨 모친상 崔炳洙(사업)씨 빙모상 17일 0시1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19일 오전 8시 (02)3010-2239 ●柳重夏(CJ개발 PMI팀장)씨 모친상 閔永壽(KIST 총무과)李商鎬(자영업)李貴馨(충북개발연구원 사무과장)李悌恩(비에노솔루션 마케팅팀장)씨 빙모상 17일 오후 8시,발인 20일 오전 7시 (031)701-2095 ●睦正均(삼정기획 대표)씨 모친상 18일 오전 5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0일 오전 10시 (02)3010-2265 ●李揆正(고려대 공대교수)揆和(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씨 부친상 白完基(인하대 의대교수)씨 빙부상 17일 고려대 안암병원,발인 20일 오전 8시 (02)921-5299 ●李明燮(평안남도 명예군수)씨 별세 亨基(재미 사업가)原基(벨기에 거주)씨 부친상 趙成龍(비티아이 대표)深鎭彦(뱅크이포스트 이사)씨 빙부상 16일 서울아산병원,발인 20일 오전 8시 (02)3010-2264 ●金榮澈(성람재단 이사)雲庸(K-2에드 대표)雲圭(가림코리아 〃)義錫(나라종합건설 〃)씨 모친상 李漢武(전 봉화 재산중학교장)鄭熙弘(고려이주개발공사 사장)金裕東(경상대 독문학과 교수)郭寅(토지개발공사 부장)씨 빙모상 18일 오전 4시15분 국립암센터,발인 20일 오전 4시 (031)920-0310 ●金洪喆(한국산업양행 대표)明壕(자영업)銀玉(진매트릭스 연구이사)씨 부친상 李永宰(건국대 교수)씨 빙부상 18일 서울대병원,발인 20일 오전 10시 (02)760-2022 ●羅大柱(철도청 부천역 열차운용팀장)文柱(도로공사 비상계획과장)天才(함평군청 서무과 직원)盟哲(자영업)씨 모친상 17일 오전 6시 부천 성가병원,발인 19일 오전 7시 (032)340-7301 ●孫泰植(전 대한주택공사 근무)씨 별세 殷植(대한항공 차장)씨 형님상 18일 삼성서울병원,발인 20일 오전 8시 (02)3410-6917 ●고정곤(자영업)씨 모친상 정창호(한성대 행정대학원 교수)임철부(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장)씨 빙모상 18일 낮 12시30분 서울아산병원,발인 20일 오전 6시 (02)3010-2260 ●李愚英(전 부산한독병원장)씨 별세 聖喆(서울대 의대 외과학교실 교수)賢喆(송천학원 이사장)仁喆(이인철의원 원장)씨 부친상 17일 부산 대동병원,발인 20일 오전 8시 (051)550-9951
  • [창간 100주년- 학술대회·지면분석]

    서울신문이 국내 현존 언론 중 처음으로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서울신문은 1904년 7월18일 창간된 대한매일신보의 구국독립정신을 이어받아 21세기에도 바른 보도로 공공이익과 민족화합에 앞장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대한매일신보에서 시작되는 민족언론의 뿌리가 서울신문으로 어떻게 이어져 왔으며,이 시대에 대한매일신보가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위한 학술회의가 지난 7일 열렸다.서울신문사와 한국언론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대한매일신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다. ●정리 논설위원실 1. 창간의 역사적 의의 /정진석 외대 명예교수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래 오늘날까지 100년을 이어온 발자취는 한국 현대사의 축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명암과 굴절이 많았다.이 신문이 한국의 언론사와 더불어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특이하고 중요하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 열강의 침탈에 국운이 기울던 시기에 창간돼 1904년부터 6년 동안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키면서 강력한 항일언론을 펼쳤다.한일병합이 강제로 체결된 후에는 매일신보로 제호가 바뀌면서 총독부의 기관지가 됐다.광복 후에는 서울신문으로 재출발했다가 한때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고,이제 또다시 서울신문이 됐다.대한매일신보의 이같은 굴절은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비극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대한매일신보가 항일 신문으로 발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발행인이자 소유주였던 배설이 영국인이었고,그가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발행인 배설은 민간인 신분이었으나 영국인이었기에 대한제국의 법률로는 처벌할 수 없었으며,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도 그를 추방하거나 신문의 발행을 금지할 수 없었다.대한매일신보는 항일무장 의병투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하면서 강력한 항일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의 본거지가 됐다. 한국의 민족진영은 이 신문을 열렬히 지지하고 성원했다.반면에 일본은 이 항일신문을 침략정책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여겼다.영국의 입장에서는 영국인이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치외법권을 손상받지 않도록 하려 했다. 영국과 일본이 처음에는 다같이 배설을 한국의 법률 또는 일본의 군율 등으로 간단히 처리해 보려 했지만,결국은 영국의 법정에서 진행하는 재판에 회부하게 됐다.대한매일신보가 발행되던 한말에 있었던 재판은 다섯 차례나 됐고,한국·영국·일본의 법관이 이를 다루었으며,재판 장소도 서울과 상하이까지 걸치게 됐다.재판은 한일병합 후까지 계속됐다. 대한매일신보사는 국채보상운동의 총합소가 되기도 했고,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은 논설로써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한편으로는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해 항일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따라서 이 신문은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대한매일신보는 한말에 발행된 신문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최대의 민족지였다.신문의 발행부수도 당시로서는 최고였지만,국한문·한글·영문의 3종을 동시에 발행한 신문은 한국 언론 사상 처음이었다. 대한매일신보는 자주개화운동의 근본으로서 한글 사용을 주장했다.또한 지면에 실린 항일 시가(詩歌) 등은 국문학상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을 고종 또는 민족진영이 주도했다는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나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경영한 주체는 배설이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종이나 민족진영의 자금지원이 있었지만,그것이 신문발간의 계기가 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서울신문을 한말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으로 보는 것이 옳은가,과거의 역사로부터 단절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관(史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그것은 언론의 역사를 민족사관(民族史觀)에서 파악하는가,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실증사관(實證史觀)의 입장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광복 후 1945년 11월23일 제호가 서울신문으로 바뀔 때에는 대한매일신보에서 매일신보까지의 지령을 이어받아 13738호부터 시작했다.제호는 바뀌었지만 신문의 역사는 계승한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자유당 말기였던 1959년 3월23일부터는 매일신보의 역사를 단절하고 지령을 다시 조정했다. 1998년 11월11일부터는 단절시켰던 과거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고 지령도 새롭게 계산했다.대한매일신보를 지령에 넣되 매일신보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부분은 지령에서 뺌으로써 매일신보를 건너뛰고 역사를 계승했음을 밝혔다.2004년 1월1일부터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다시 환원했다.이 날짜 지령은 20095호로 역시 한말 대한매일신보 지령을 합친 것이다.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으로 역사를 이은 것이다. 2. 참여인물·언론사상/박정규 한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 발간과 운영에 참여한 인물 중 배설과 양기탁에 대해서는 완벽할 정도로 연구가 이뤄져 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논객이었던 박은식과 신채호의 재직 기간 중 활동,지사(支社)설치 상황과 종사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또,기명이 안된 사설의 집필자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배설은 영문 논설이나 기사 외에 국한문판 신보에 직접 집필한 형식의 글들을 발표했다.그러나 이는 배설이 한국어로 쓴 기사라기보다 한국인 기자들이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진 배설의 이름을 빌려 사회문제 등에 대해 맘껏 필봉을 휘둘렀다고 보아야 한다. 박은식은 성리학자였던 만큼 전통 한문체의 글을 썼다.1907년 박은식의 뒤를 이어 주필이 된 신채호는 가장 영향력이 컸던 논객이다.신채호는 애국사상이 담긴 특유의 선동적 문장을 통해 국민들의 국권회복 정신을 북돋우는 등 독자를 감동시켰다.양기탁의 글로 알려진 ‘학계(學界)의 화(花)’ 등 2편의 논설은 집필시점과 문체로 보아 신채호가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양기탁은 총무로서 신문 경영 외에 국채보상운동과 비밀결사인 신민회 활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해 논설집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보는 국한문판 발행을 본격화하면서 1905년 평양,선천,장련 등 관서재방 세 곳에 최초의 지사를 설치하게 된다.장련의 지사는 백범 김구가 운영했다.1908년 평양 태극서관 지사장을 맡은 안태국은 교사이자 이 지역 신민회의 중심적 인물이었다.신보의 전국 지사 중 절반이 평안도에 집중 돼 있었던 것은 총무 양기탁이 이 지역 출신이었고 안태국과 같은 지사원의 활약에 힘입었기 때문이다.1910년 6월 전국 지사 수는 59개소,지사원은 250명에 달했는데 이들은 신민회의 지방거점,국권회복운동가들로 추정할 수 있다.회계 임치정은 양기탁이 가장 신임한 동지였다.이완용 암살미수사건,신민회사건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고 신채호와도 친밀한 관계였다. 3. 국채보상운동 주도/이연 선문대 교수 차관을 이유로 조선민중을 식민지의 올가미에 옭아 매려는 일제의 획책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권회복운동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이다. 이 운동은 1907년 대구 광문사(廣文社·현 수창초등학교 뒤 대성사 자리)에서 시작됐다.“우리나라의 국채가 현재 1300만원인데 정부의 국고금으로는 갚을 수 없는 형편이라,국채를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주어야 할 형편이다.우리 2000만 동포가 담배를 끊고 그 대금으로 매월 1명당 20전씩 모은다면,3개월 만에 국채를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 강점하의 물산장려운동이나 해방 후 국산품 애용운동,1998년 IMF 이후의 금모으기 운동처럼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애국운동으로,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민운동이었다.최초 발의는 상인들에 의해 시작됐으나,한 푼 두 푼 성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농민들이나 봇짐장수,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적으로 확산됐다. 이 운동을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승화시킨 데는 무엇보다도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한 게 동력이 됐다.이 신문들은 기사나 논설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의의와 당위성을 호소하면서 날마다 의연자의 명단 및 납부금액을 게재해 온 국민들의 동참을 역설했다.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의 한마디가 조선인을 감동케 하는 힘이 크다.”고 개탄했다고 대한매일신보가 보도했다. 조선통감부는 국채보상운동을 배일운동으로 간주하면서 갖은 탄압과 모략을 획책했다.일제는 을사 5적 중 한 사람인 이지용과 일진회의 송병준,이용구 등 친일파를 동원해 반대하는 책동을 일으키게 했다.그러나 대한매일신보 배설 사장과 양기탁 총무는 이러한 탄압과 이간책동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을 계속 전개했다.일제는 결국 이들의 언론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배설의 국외추방과 양기탁을 탄압해 제거하기에 이른다. 4.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논설/김덕모 호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의 과정은 크게 4단계로 나누어 평가된다. 제1기는 창간 때부터 1905년 3월10일 일시 휴간 때까지의 시기이다.6면중 4면은 ‘The Korea Daily News’라는 제호로 영문면을 만들고,나머지 2면은 대한매일신보라는 제호로 국문면을 만들었다. 제2기는 대한매일신보를 속간하기 시작한 1905년 8월11일부터 1907년 3월말까지의 단계다.이 시기에는 ‘을사5조약’ 반대투쟁을 전개하면서 애국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제3기는 대한매일신보가 신민회의 기관지로 전환되기 시작한 1907년 4월 초부터 대한매일신보사가 이장훈에게 팔려 양기탁 등 신민회 간부들이 대한매일신보사를 떠난 1910년 6월13일까지의 시기다. 제4기는 배설에 이어 사장직을 승계한 만함이 일제의 공작에 말려들어 회사 일체를 사원 이장훈에게 매도하고 귀국해버린 1910년 6월14일부터 일제가 한국을 완전식민지로 병합하여 대한매일신보를 폐간시켜버린 1910년 8월29일까지의 2개월 반 간의 기간이다. 제1기에는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여 국가의 안녕질서에 대한 모든 주제에 대해 공평한 변론을 전개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제2기는 한국인의 문명지식을 계몽하고 세계 각국에 대한 견문을 공유하기 위한 개화의 목적에 역점이 두어졌다. 제3기 이후는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에 초점을 맞춰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다. 대한매일신보가 개화기 구국계몽운동의 선봉이 될 수 있었던 데 대해서는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에 광무신문지법에 의한 일제의 탄압과 검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어왔다. 그러나 신용하 교수 등의 연구는 이러한 외적요인에 더하여 대한매일신보가 구국운동 단체인 신민회의 기관지가 된 이후 더욱 과감하게 국권회복을 위한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논설 분석 결과로도 입증된다. 이 시기 논설은 민족의 자립정신,교육과 나라정신,산업진흥,친일언론과 단체에 대한 비판,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 일본의 통감부 설치가 식민 지배를 감추기 위한 기만책임을 통렬히 비판하고,국채보상운동,헤이그 특사 파견,고종황제 퇴위,한일병합조약,동양척식회사 설립 등 역사적 사건을 맞을 때마다 과감하고 열렬한 언론구국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제 오늘의 신문들은 이러한 전통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갈지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5.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광고/안종묵 외대 연구원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때부터 광고를 게재했다.사기업인 대한매일신보는 신문의 안정적인 발행을 위해 광고가 중요했다. 창간 초기의 광고료는 1인치에 50전이었고 한달에 5원이었다.발행부수가 다른 신문의 3배 이상이어서 광고의 효과면에서 대단히 컸다.한글과 영문이 혼용된 6면이 발행된 시기에는 운수광고(16%),은행(14%),잡화점(9%) 등이 주요 광고주였다.광고주의 국적은 한국이 13%,외국이 43%,미상이 44%다. 1907년 5월23일부터 발행된 한글판 대한매일신보의 광고는 그해 하루 평균 5.26개이던 것이 1910년에는 10.25개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10대 광고업종은 약국,서적,사고광고 등이었다.약국 가운데 이응선의 종로 화평당약방과 이경봉의 남대문 제생당약방이 최대 광고주였다. 서적광고는 전체의 16.5%를 차지했다.애국계몽운동가인 이승훈이 운영하던 태극서관이라는 서점 광고가 집중적으로 등장했다.‘국한문신옥편’이라는 실용적인 서적부터 ‘서사건국지’‘애국부인전’ 등 국권회복을 자극하는 계몽적 성격의 서적들이 광고됐다. 1908년과 1909년에는 사고(社告)광고가 많이 등장하는데 명함 인쇄와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된 사고였다.국채보상운동 취지를 제일먼저 보도한 신문은 대한매일신보였다.흥미로운 것은 신보가 국채보상운동을 촉구하고 있을 때 일제 담배광고가 많이 광고되었던 점이다.이는 광고가 국채보상운동과는 큰 관계없이 운영되었음을 말해준다. 6.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독자 인식/김영희 서울대 강사 대한매일신보 독자들이 투고한 기서(寄書)에서 신문에 대해 가장 자주 요구한 것은 춘추필법으로 공정하게 계도하는 엄한 스승으로서의 언론의 모습이었다.다음으로 많이 주문한 것은 다양한 분야의 광범한 지식을 제공하는 문명진보 수단으로서의 역할이었다.이 두 요인 또는 인식은 지금까지 개화기 신문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설명된 것으로,이 시기 신문발행에 참여한 발행 주체들의 신문에 대한 인식이 일반 신문 독자들의 인식으로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로 자주 언급된 것으로 신문이 독립자유의 감발심(感發沈)을 격동케 하고,새로운 자각을 유발시킨다는 인식이었다.이러한 인식은 신문의 춘추필법과 지식 제공으로 자극을 받아 생성되는 기쁨,감격,분노,안타까움,흐뭇함 등의 정서적 반응이었다. 대한매일신보를 읽은 독자들이 남긴 다양한 글에서도 당시 대한매일신보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황현은 대한매일신보를 설명하면서 “각 신문사에서도 의병들을 폭도나 비류(匪類)로 칭하였지만 오직 매일신보는 의병으로 칭하며,그 논설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일본인의 악행을 게재하여 들으면 들은 대로 모두 폭로하였다.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 신문을 구독하여 한때 품귀 상태에까지 이르렀고,1년도 못되어 매일 간행되는 신문이 7000∼8000장이나 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대한매일신보를 읽었던 김윤식은 대한매일신보가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은 사람으로 하여금 매우 통쾌하게 한다고 기록하였다.이러한 논의들은 신문의 공공성을 지키면서 보도와 논평 기능을 통해 환경을 감시하고,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여 국민을 개명 진보로 이끌고자 한 대한매일신보의 역할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그러한 대한매일신보의 모습을 신문의 전형으로 인식했음을 알려준다. 7.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잡보(사회면)/채백 부산대 교수 오늘날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하는 것이 ‘잡보’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 중에서는 사실보도가 전체의 76.1%를 차지했다.반면 의견이 개입된 기사,즉 사실+해설과 해설기사를 합치면 전체의 14.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독립신문의 분석결과와 비교해 보면 의견기사가 줄어들고 사실보도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란에 실린 기사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정부 관련 정보였다.전체의 24.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문제,유명인사 동정,관의 비리와 폐해 순서로 나타났다.사회문제 기사에서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활발했던 의병 관련 기사나 교육 관련 기사가 포함됐다. 독립신문에서는 해외토픽류의 흥미 위주의 기사가 있었지만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이런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반면 일식이나 태풍,자살 기사 등이 ‘사고와 흥미거리’ 기사에 포함됐다. 잡보란에 등장하는 기사들의 관련지역을 보면 한성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아 전체의 59.6%에 이른다.그밖의 지역은 전체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외국에 대해서도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나라가 등장했다.특히 일본이 가장 많았다. 잡보기사의 주인공도 다양했다.잡보 기사의 주인공으로는 지식인과 단체가 26.3%로 가장 많았고,그 다음으로 왕실과 정부가 22.3%를 차지했고,일반인이 15.6%로 그 뒤를 이었다. 잡보기사의 보도태도를 긍정,중립,비판 세가지로 분류해보면 긍적적이 6.8%,중립적이 85.8%,비판적이 7.4%의 분포를 보였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에 나타난 주요 특징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기사의 건수가 독립신문에 비해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이는 지면의 판형이 커지고 단수가 늘어나는 등의 외형적 요인 외에도 신문이 정착기에 들어가면서 취재여건이 다소나마 좋아졌던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다음으로는 사실보도와 중립적 보도태도가 늘어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이는 신문이 지향해야 할 이념으로서 중립성과 객관성을 표방하는 객관저널리즘에 좀 더 접근한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사실보도 위주로 가면서 단위 기사의 분량도 점차 짧아지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세번째로는 기사의 관련 지역이나 주인공,정보원 등에서 특정의 편향을 강하게 보였다는 점이다.지역면에서는 한성,주인공이나 정보원 측면에서는 정부나 관리에 대한 의존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그섬에 가고 싶다] 울릉도

    [그섬에 가고 싶다] 울릉도

    우리나라 동해를 지키는 울릉도.막내섬 독도와 함께 어린 형제 중 ‘나름대로 의젓한’ 형같은 섬이다. 수 십 미터 깊이의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바닷물,솜씨좋은 조각가도 흉내낼 수 없게 만들어진 절벽과 바위,원시림에 가까운 울창한 산림 등 태고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울릉도는 강원도 묵호항에서 3시간이나 가야한다.그것도 국내에서 제일 빠르다는 한겨레호를 타고 시속 90㎞로 달리서 말이다. 동쪽 먼 ‘점’같은 섬은 멀∼다. ‘울렁 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라는 노랫말처럼 배멀미를 느낄 쯤에 도동항이 눈에 들어온다.을릉도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괭이갈매기였다.수백 마리의 갈매기 떼가 ‘끼룩끼룩’소리를 내며 뭍에서 온 사람들에게 인사한다.또한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한 공기가 ‘울릉도’임을 실감케 한다. 예로부터 울릉도를 ‘3무5다의 섬’이라 한다.‘도둑과 뱀 그리고 공해’가 없어서 3무(無)이고 풀·바람·맑은 물·향나무·미인이 많다고 5다(多)라고 한다.그만큼 울릉도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 생긴 말이다. 도동항은 이 섬에 제일 큰 항이며 여객선터미널이 있어 모든 관광객들이 이곳을 통해서 울릉도를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다. 울릉도 관광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첫째가 육로관광이다.24인승 미니버스나 갤로퍼 택시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섬을 일주하는 것이다.둘째가 유람선을 타고 섬을 일주하는 것.세째가 성인봉 트래킹이다. 먼저 관광버스에 올라 육로관광에 나섰다.전화 안내원처럼 헤드셋을 낀 운전수 김병수(49)씨가 마이크를 통해 인사한다.“지금부터 4시간을 버스로 관광합니다.도로가 험해 강원도 베테랑 운전수도 운전을 못하고 걸어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그러니까 손잡이를 꼭 잡으세요.”라고 말하며 출발했다.말대로 길은 험하했다.30∼40도의 경사길은 기본이고 S자 모양,심지어는 8자 모양의 길이 이어졌 다.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곡예를 하는 것 같다. 바닷가 쪽으로 나서자 탄성이 절로 나온다.사동을 지나 가두봉 등대를 보며 코너를 돌자 바다위에 거대한 거북바위가 나타나고 그 뒤에는 산 한쪽면이 국수를 말리는 모양 또는 비파모양으로 보이는 비파산이 뽐내고 서 있다.사자를 닮은 사자바위,우산국 우해왕이 신라의 이사부에게 항복을 결심하고 벗어 던진 투구가 바위로 변했다는 투구바위… 정말 자연의 신비로움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태하등대에 도착할 쯤에 해가 진다.바다와 섬 전체가 붉게 물든다.‘아름답다’는 생각도 잠시 카메라를 꺼내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로 찰칵찰칵 기계음만이 들렸다. 시시각각 변하는 낙조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기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기후변화가 심한 울릉도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날은 1년에 50일이 채 안된다고 한다. 이밖에도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너와집’,‘투막집’,바위에 구멍이 린 ‘공암’,여름에도 찬 바람이 나오는 ‘풍혈’,성인봉 골짜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름다운 ‘봉래폭포’,동남동녀(童男童女)2명의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성하신당’ 등 육로관광으로 돌아보는 곳은 다양하다. 버스관광은 1인당 1만 5000원.(054)791-7020.택시일주는 보통 5시간 정도 소요되며 요금은 8만원.(054)791-2315.랜터카는 울릉도 전체에 10대가 있는데 24시간 기준으로 10만원이다.(054)791-2240 도동항에서 유람선으로 섬을 돌아보는 해상관광은 편안하게 울릉도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공암,신선암 등 크고 작은 바위섬들과 해안절벽을 돌아본다.새우깡 한 봉지는 필수 준비물이다.유람선 뒤를 쫓아 오는 갈매기들이 새우깡을 공중에서 받아먹는 묘기를 부리기 때문이다.섬일주에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하루에 2번,오전 9시,오후 4시 출발한다.요금은 성인 1만 3000원,소인 6500원이다.(054)791-4468 성인봉 트레킹 코스는 3가지.성인봉은 해발 984m로 낮은 것 같지만 초입부터 걸어야하기 때문에 4시간 이상 소요돼 힘든다.하지만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을 통과해 보면 그 수고가 아깝지않다. 오는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울릉도 오징어 축제’가 열린다.오징어 요리 경연대회,오징어 조업 승선 체험,오징어 맨손으로 잡기,호박엿 늘리기 등 체험 행사와 불꽃놀이,노래공연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해삼·전복·약소 입들이 술렁술렁 울릉도는 먹을거리가 다양한 편이다.해삼,전복 등 어패류와 오징어,방어 등이 풍부하다.더덕과 삼나물,명이 등 산나물이 많이 난다. 특히 명이(茗荑)는 산마늘의 일종으로 잎을 먹는데 독특한 냄새와 매운 맛이 난다.주로 김치나 장아찌로 만들어 먹는데 맛이 일품이다. 또한 ‘울릉도 더덕’은 크기에 따라 1㎏에 1만∼3만원 수준으로 가격이 매우 싸다.하지만 더덕이 갖는 특유의 향은 없다. 도동항 근처 ‘99식당’(054-791-2287)의 ‘약초해장국’은 사골을 푹 곤 물에 물엉겅퀴,어성초,토란 등의 약재를 넣고 끓이는데 일품이다.가격은 6000원.10여가지 맛있는 밑반찬은 남도의 맛이다.홍합밥,오징어 불고기 등도 맛있다. 나리분지의 ‘나리촌’(054-791-6082)은 푸짐하고 맛깔스럽다.더덕무침과 삼나물회가 한 접시당 1만원,더덕파전은 5000원이다.마당에 있는 커다란 섬벗나무 그늘에서 바람을 맞으며 씨앗동동주를 마시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씨앗동동주는 천궁과 더덕을 넣어 만든 것으로 뒤끝이 깨끗하다.한 동이에 7000원. 또한 자생목초를 먹고 자란 소를 울릉도에서는 ‘약소’라고 부른다.약소에는 약초의 특유한 향과 맛이 배어 불고기를 해서 먹으면 맛이 색다르다. 산채비빔밥도 유명하다.섬부지갱이,고비,삼나물을 비롯해 명이,전호 등을 넣고 고추장에 비벼먹는다. ■ 정들면 못떠나는 정들포 울릉도의 일주도로,울릉읍 내수전에서 북면 석포리까지 4㎞ 구간은 길이 없다.해안 절벽과 험한 산세 때문이다.보통 관광객들은 해돋이가 아름다운 내수전 전망대에서 발길을 돌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에 주민들만 아는 길이 숨어있다.원시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이 길은 2시간 정도의 트레킹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마을이 아름다워 금방 정이 들고 떠날 때는 눈물이 나온다고 해서 ‘정들포’(지금은 석포라고 불린다).내수전에서 그 정들포까지,6㎞ 정도 호젓한 산길이 있다.오르막길은 거의 없고 산허리를 감싸돌며 아름다운 동해바다와 숨바꼭질을 하듯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들포 가는 길은 ‘자연식물원’이다.길바닥에는 푸른 이끼가,길섶에는 진초록의 고사리 잎,섬노루귀,섬바디 등이 가득하다.나무 또한 벽오동,섬단풍나무,너도밤나무 등이 ‘쭉쭉빵빵’ 자태를 뽐내고 있다.심호흡을 하면 온갖 풀과 나무 향기가 몸속에서 빨려 들어간다.억만금을 준다고 이렇게 신선한 공기를 살 수 있을까. 이렇게 걷다가 목이 마르면 가만히 서서 귀를 귀울여보자.어디선가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그 물을 그냥 마시면 된다.너무 차가워 손이 시리다.1시간 정도 걸으면 약간의 오르막이 시작되고 산 중턱에 이정표가 나온다.여기서 와달리 방향으로 가면 된다.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가면 조그마한 마을 정들포가 나온다. 이곳은 아직까지 관광상품으로 개발되지 않은 곳이라 더 좋다.양진수(016-535-3739)씨에게 문의하면 도움받을 수 있다. ■독도·죽도도 가보자 ●독도는 오는 10월 말까지 매일 오전 8시와 오후 2시30분에 도동항에서 출발한다.아쉽게 독도에 직접 갈 수 없는 경우에도 울릉동에선 눈으로,마음으로 독도를 실컷 느낄 수 있다.4시간30분 정도 소요되며 승선료는 3만 7500원이다.(054)791-8111 ●죽도는 울릉도 저동항에서 동북쪽으로 4㎞ 지점에 위치한 섬으로 현재 단 한 가구가 살고 있다.물이 없어 빗물을 받아 사용한다고 한다.섬을 울릉군에서 관리하고 있다.도동항에서 죽도까지는 15분 정도 배를 타고 간다.보통 오전 8시,10시,11시30분,오후 4시에 죽도로 들어가는 배가 있고 사람들을 내려주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싣고 나온다.승선료는 대인 1만원,소인 5000원.죽도 입장료는 대인 1200원,소인 600원.(054)791-4488. ●도동약수공원은 빈혈,생리장애,류머티스성 질환에 좋은 탄산수가 자랑이다.물맛이 찝찔하며 톡 쏘는 맛이다.앞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독도전망대’(해발 495m)에 오른다.도동항이 한눈에 들어오고 밤에는 오징어잡이배들이 밤바다를 수놓는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대인 6500원,소인 5500원 (054)791-7160). 주변에 ‘독도박물관’과 ‘향토사료관’도 있다. ■ 이렇게 가세요 ●숙소 깨끗한 숙박시설이 부족했던 울릉도에 최근에 대아호텔(02-518-5000)이 문을 열었다.135실 규모의 방갈로형 호텔로 객실이나 베란다에서 바닷가를 감상할 수 있다.8월22일까지 한실을 12만원,양실을 13만원에 판매한다. 이밖에 북면 공암부근에 황토방으로 유명한 ‘추산일가’(054-791-7788),울릉비취호텔(054-791-2335) 등이 있다. ●울릉도 가는 길 울릉도로 가는 배는 동해(묵호)와 포항,후포에서 탈 수 있다. 묵호에서는 3월부터 10월까지 매일 오전 10시에 출발한다.가격은 편도 4만 1500원. 포항에서는 매일 오전 10시 출발한다.편도 5만 1100원.차량을 가지고 갈 수 있다.소형차는 왕복 25만원,중형차는 30만원 선이다.단 울릉도에는 LPG충전소가 없다. 후포는 부정기적으로 운항한다. 기상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운항시간이 자주 바뀌므로 대아여행사(02-514-6766)로 문의하는 것이 좋다. ●울릉도 패키지 상품 울릉도는 패키지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교통이나 숙박 등 개인적으로 움직이기 쉽지 않다.일반 버스노선도 3개로 제한되어 있고 그나마 1시간에 한번씩 다닌다.또한 택시비가 비싸 자신만의 스케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울릉닷컴’에서는 삼색·호박·햇살투어와 독도 스페셜 등 다양한 주제로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추산일가나 대아호텔 등에서 잠을 자고 약소불고기,명이나물 쌈밥,오징어 더덕구이 등을 먹을 수 있는 고급상품으로 약간 값이 비싸다.2박 3일에 33만원에서 36만원선.1544-7644,www.outdoor7.com. 비타민여행사(02-736-9111),대아여행사(02-514-6766) 등은 2박 3일에 28만원 선.
  • [그섬에 가고 싶다] 울릉도

    우리나라 동해를 지키는 울릉도.막내섬 독도와 함께 어린 형제 중 ‘나름대로 의젓한’ 형같은 섬이다. 수 십 미터 깊이의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바닷물,솜씨좋은 조각가도 흉내낼 수 없게 만들어진 절벽과 바위,원시림에 가까운 울창한 산림 등 태고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울릉도는 강원도 묵호항에서 3시간이나 가야한다.그것도 국내에서 제일 빠르다는 한겨레호를 타고 시속 90㎞로 달리서 말이다. 동쪽 먼 ‘점’같은 섬은 멀∼다. ‘울렁 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라는 노랫말처럼 배멀미를 느낄 쯤에 도동항이 눈에 들어온다.을릉도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괭이갈매기였다.수백 마리의 갈매기 떼가 ‘끼룩끼룩’소리를 내며 뭍에서 온 사람들에게 인사한다.또한 도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한 공기가 ‘울릉도’임을 실감케 한다. 예로부터 울릉도를 ‘3무5다의 섬’이라 한다.‘도둑과 뱀 그리고 공해’가 없어서 3무(無)이고 풀·바람·맑은 물·향나무·미인이 많다고 5다(多)라고 한다.그만큼 울릉도가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 생긴 말이다. 도동항은 이 섬에 제일 큰 항이며 여객선터미널이 있어 모든 관광객들이 이곳을 통해서 울릉도를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다. 울릉도 관광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첫째가 육로관광이다.24인승 미니버스나 갤로퍼 택시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섬을 일주하는 것이다.둘째가 유람선을 타고 섬을 일주하는 것.세째가 성인봉 트래킹이다. 먼저 관광버스에 올라 육로관광에 나섰다.전화 안내원처럼 헤드셋을 낀 운전수 김병수(49)씨가 마이크를 통해 인사한다.“지금부터 4시간을 버스로 관광합니다.도로가 험해 강원도 베테랑 운전수도 운전을 못하고 걸어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그러니까 손잡이를 꼭 잡으세요.”라고 말하며 출발했다.말대로 길은 험하했다.30∼40도의 경사길은 기본이고 S자 모양,심지어는 8자 모양의 길이 이어졌 다.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곡예를 하는 것 같다. 바닷가 쪽으로 나서자 탄성이 절로 나온다.사동을 지나 가두봉 등대를 보며 코너를 돌자 바다위에 거대한 거북바위가 나타나고 그 뒤에는 산 한쪽면이 국수를 말리는 모양 또는 비파모양으로 보이는 비파산이 뽐내고 서 있다.사자를 닮은 사자바위,우산국 우해왕이 신라의 이사부에게 항복을 결심하고 벗어 던진 투구가 바위로 변했다는 투구바위… 정말 자연의 신비로움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태하등대에 도착할 쯤에 해가 진다.바다와 섬 전체가 붉게 물든다.‘아름답다’는 생각도 잠시 카메라를 꺼내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들로 찰칵찰칵 기계음만이 들렸다. 시시각각 변하는 낙조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기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기후변화가 심한 울릉도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는 날은 1년에 50일이 채 안된다고 한다. 이밖에도 울릉도의 유일한 평지인 ‘나리분지’,‘너와집’,‘투막집’,바위에 구멍이 린 ‘공암’,여름에도 찬 바람이 나오는 ‘풍혈’,성인봉 골짜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아름다운 ‘봉래폭포’,동남동녀(童男童女)2명의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성하신당’ 등 육로관광으로 돌아보는 곳은 다양하다. 버스관광은 1인당 1만 5000원.(054)791-7020.택시일주는 보통 5시간 정도 소요되며 요금은 8만원.(054)791-2315.랜터카는 울릉도 전체에 10대가 있는데 24시간 기준으로 10만원이다.(054)791-2240 도동항에서 유람선으로 섬을 돌아보는 해상관광은 편안하게 울릉도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공암,신선암 등 크고 작은 바위섬들과 해안절벽을 돌아본다.새우깡 한 봉지는 필수 준비물이다.유람선 뒤를 쫓아 오는 갈매기들이 새우깡을 공중에서 받아먹는 묘기를 부리기 때문이다.섬일주에 걸리는 시간은 2시간 정도.하루에 2번,오전 9시,오후 4시 출발한다.요금은 성인 1만 3000원,소인 6500원이다.(054)791-4468 성인봉 트레킹 코스는 3가지.성인봉은 해발 984m로 낮은 것 같지만 초입부터 걸어야하기 때문에 4시간 이상 소요돼 힘든다.하지만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을 통과해 보면 그 수고가 아깝지않다. 오는 8월 13일부터 16일까지 ‘울릉도 오징어 축제’가 열린다.오징어 요리 경연대회,오징어 조업 승선 체험,오징어 맨손으로 잡기,호박엿 늘리기 등 체험 행사와 불꽃놀이,노래공연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해삼·전복·약소 입들이 술렁술렁 울릉도는 먹을거리가 다양한 편이다.해삼,전복 등 어패류와 오징어,방어 등이 풍부하다.더덕과 삼나물,명이 등 산나물이 많이 난다. 특히 명이(茗荑)는 산마늘의 일종으로 잎을 먹는데 독특한 냄새와 매운 맛이 난다.주로 김치나 장아찌로 만들어 먹는데 맛이 일품이다. 또한 ‘울릉도 더덕’은 크기에 따라 1㎏에 1만∼3만원 수준으로 가격이 매우 싸다.하지만 더덕이 갖는 특유의 향은 없다. 도동항 근처 ‘99식당’(054-791-2287)의 ‘약초해장국’은 사골을 푹 곤 물에 물엉겅퀴,어성초,토란 등의 약재를 넣고 끓이는데 일품이다.가격은 6000원.10여가지 맛있는 밑반찬은 남도의 맛이다.홍합밥,오징어 불고기 등도 맛있다. 나리분지의 ‘나리촌’(054-791-6082)은 푸짐하고 맛깔스럽다.더덕무침과 삼나물회가 한 접시당 1만원,더덕파전은 5000원이다.마당에 있는 커다란 섬벗나무 그늘에서 바람을 맞으며 씨앗동동주를 마시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씨앗동동주는 천궁과 더덕을 넣어 만든 것으로 뒤끝이 깨끗하다.한 동이에 7000원. 또한 자생목초를 먹고 자란 소를 울릉도에서는 ‘약소’라고 부른다.약소에는 약초의 특유한 향과 맛이 배어 불고기를 해서 먹으면 맛이 색다르다. 산채비빔밥도 유명하다.섬부지갱이,고비,삼나물을 비롯해 명이,전호 등을 넣고 고추장에 비벼먹는다. ■ 정들면 못떠나는 정들포 울릉도의 일주도로,울릉읍 내수전에서 북면 석포리까지 4㎞ 구간은 길이 없다.해안 절벽과 험한 산세 때문이다.보통 관광객들은 해돋이가 아름다운 내수전 전망대에서 발길을 돌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에 주민들만 아는 길이 숨어있다.원시적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이 길은 2시간 정도의 트레킹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마을이 아름다워 금방 정이 들고 떠날 때는 눈물이 나온다고 해서 ‘정들포’(지금은 석포라고 불린다).내수전에서 그 정들포까지,6㎞ 정도 호젓한 산길이 있다.오르막길은 거의 없고 산허리를 감싸돌며 아름다운 동해바다와 숨바꼭질을 하듯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들포 가는 길은 ‘자연식물원’이다.길바닥에는 푸른 이끼가,길섶에는 진초록의 고사리 잎,섬노루귀,섬바디 등이 가득하다.나무 또한 벽오동,섬단풍나무,너도밤나무 등이 ‘쭉쭉빵빵’ 자태를 뽐내고 있다.심호흡을 하면 온갖 풀과 나무 향기가 몸속에서 빨려 들어간다.억만금을 준다고 이렇게 신선한 공기를 살 수 있을까. 이렇게 걷다가 목이 마르면 가만히 서서 귀를 귀울여보자.어디선가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그 물을 그냥 마시면 된다.너무 차가워 손이 시리다.1시간 정도 걸으면 약간의 오르막이 시작되고 산 중턱에 이정표가 나온다.여기서 와달리 방향으로 가면 된다.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가면 조그마한 마을 정들포가 나온다. 이곳은 아직까지 관광상품으로 개발되지 않은 곳이라 더 좋다.양진수(016-535-3739)씨에게 문의하면 도움받을 수 있다. ■독도·죽도도 가보자 ●독도는 오는 10월 말까지 매일 오전 8시와 오후 2시30분에 도동항에서 출발한다.아쉽게 독도에 직접 갈 수 없는 경우에도 울릉동에선 눈으로,마음으로 독도를 실컷 느낄 수 있다.4시간30분 정도 소요되며 승선료는 3만 7500원이다.(054)791-8111 ●죽도는 울릉도 저동항에서 동북쪽으로 4㎞ 지점에 위치한 섬으로 현재 단 한 가구가 살고 있다.물이 없어 빗물을 받아 사용한다고 한다.섬을 울릉군에서 관리하고 있다.도동항에서 죽도까지는 15분 정도 배를 타고 간다.보통 오전 8시,10시,11시30분,오후 4시에 죽도로 들어가는 배가 있고 사람들을 내려주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싣고 나온다.승선료는 대인 1만원,소인 5000원.죽도 입장료는 대인 1200원,소인 600원.(054)791-4488. ●도동약수공원은 빈혈,생리장애,류머티스성 질환에 좋은 탄산수가 자랑이다.물맛이 찝찔하며 톡 쏘는 맛이다.앞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독도전망대’(해발 495m)에 오른다.도동항이 한눈에 들어오고 밤에는 오징어잡이배들이 밤바다를 수놓는 색다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대인 6500원,소인 5500원 (054)791-7160). 주변에 ‘독도박물관’과 ‘향토사료관’도 있다. ■ 이렇게 가세요 ●숙소 깨끗한 숙박시설이 부족했던 울릉도에 최근에 대아호텔(02-518-5000)이 문을 열었다.135실 규모의 방갈로형 호텔로 객실이나 베란다에서 바닷가를 감상할 수 있다.8월22일까지 한실을 12만원,양실을 13만원에 판매한다. 이밖에 북면 공암부근에 황토방으로 유명한 ‘추산일가’(054-791-7788),울릉비취호텔(054-791-2335) 등이 있다. ●울릉도 가는 길 울릉도로 가는 배는 동해(묵호)와 포항,후포에서 탈 수 있다. 묵호에서는 3월부터 10월까지 매일 오전 10시에 출발한다.가격은 편도 4만 1500원. 포항에서는 매일 오전 10시 출발한다.편도 5만 1100원.차량을 가지고 갈 수 있다.소형차는 왕복 25만원,중형차는 30만원 선이다.단 울릉도에는 LPG충전소가 없다. 후포는 부정기적으로 운항한다. 기상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운항시간이 자주 바뀌므로 대아여행사(02-514-6766)로 문의하는 것이 좋다. ●울릉도 패키지 상품 울릉도는 패키지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교통이나 숙박 등 개인적으로 움직이기 쉽지 않다.일반 버스노선도 3개로 제한되어 있고 그나마 1시간에 한번씩 다닌다.또한 택시비가 비싸 자신만의 스케줄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울릉닷컴’에서는 삼색·호박·햇살투어와 독도 스페셜 등 다양한 주제로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추산일가나 대아호텔 등에서 잠을 자고 약소불고기,명이나물 쌈밥,오징어 더덕구이 등을 먹을 수 있는 고급상품으로 약간 값이 비싸다.2박 3일에 33만원에서 36만원선.1544-7644,www.outdoor7.com. 비타민여행사(02-736-9111),대아여행사(02-514-6766) 등은 2박 3일에 28만원 선.˝
  • 안산사동에 빈센트의원 극빈자·노숙자 무료병원

    경기도 안산시에 극빈자·노숙자·행려자·미등록 외국인근로자 등 의료보호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환자들을 위한 무료병원이 문을 열었다. 재단법인 ‘성빈센트 드뽈 자비의 수녀회 유지재단(이사장 박성목)’은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안산 빈센트의원을 개설했다고 13일 밝혔다.빈센트의원은 지하 1층,지상 2층,연면적 251평 규모로 5개의 진료실·물리치료실·방사선실·약국 등이 마련됐으며 일반외과 전문의 1명과 간호사·방사선기사 등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자원봉사로 참여하는 각 분야 전문의가 이미 10여명에 달하고 추가로 20여명이 동참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내과·소아과·신경정신과·정형외과·치과·산부인과·방사선과·이비인후과·한방·재활치료 등 14개 과목을 요일별로 진료할 예정이다. 빈센트의원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극빈층 환자나 외국인 노동자 등을 위해 일반 병원이 문을 닫는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진료를 실시한다.또 평일은 화∼금요일 오후 1∼5시의 주간진료와 오후 7∼9시의 야간진료를 실시하며 야간진료 환자에게는 식사도 제공한다. 진료대상은 극빈자·노숙자·행려자뿐만 아니라 경제사범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미등록된 외국인 근로자,사회복지시설 보호환자와 동장,신부 등이 추천한 환자 등이다. 빈센트의원은 환자로부터 진료비·검사료·투약료 등을 한푼도 받지 않으며 의료보험청구도 하지 않는 등 예산을 모두 자체 후원금으로 충당할 예정이다.병원측은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환자들을 형제적 사랑으로 돌보기 위해 설립된 무료 복지의원”이라며 “각 과별로 의사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하기 때문에 진료과목이 요일별로 탄력적으로 운영된다.”고 말했다.(031)407-9780. 안산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씨줄날줄] 멧돼지 사냥/이기동 논설위원

    그는 멧돼지답게 저돌적(猪突的)으로 저항했고,이름에 걸맞은 죽음을 맞았다.반나절 넘게 수십명의 인간 무리에 쫓기면서 여러 발의 마취총을 맞고서도,그는 그물을 헤치고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사방을 헤집고 다녔다.무수한 쇠몽둥이를 맞아 생긴 내출혈과 마취제 과다 투여가 복합작용했다지만 부검의는 그의 최종 사인을 쇼크사로 진단했다.불굴의 저항정신으로,스스로 분을 못 이겨 숨을 거둔 것이리라.원래 속박당하기 싫어하는 동물이라지만 그 지치지 않는 스태미나는 분명 예사놈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주말 새벽 청와대 뒤편 북악산 기슭의 멧돼지 출현은 경찰,119구조대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었다.하지만 손에 손에 몽둥이를 들고 아이들 전쟁놀이보다 더 엉성한 작전을 펼치며 우왕좌왕하는 체포조의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국민들은 그가 목숨만은 건지기를 바랐다.전문가들은 체포조가 좀더 침착했더라면 생포할 수 있었다며 못내 아쉬워한다.적정량의 몇배나 되는 마취제를 맞고 쓰러진 멧돼지를 향해 쇠몽둥이 찜질이 가해졌다.마취주사 한대 놓고 5분여 가만히 놔두면 잠든다는데,체포조는 그 여유를 못 가졌다. 생후 1년 6개월 정도 된 놈은 긴 주둥이에 활처럼 휜 등,벌어진 어깨,회갈색의 털을 한 수컷이었다.지난 1월 서울대공원에서 이송 도중 탈출해 서울 청계산에 숨은 늑대가 34시간만에 마취총을 맞고 생포된 적이 있다.이번에는 청와대 옆이라 체포조가 더 허둥댔을 것이라 생각해 보지만,실은 청와대 옆이라 더 효율적인 작전이 됐어야 했다.지난 1969년 1·21사태 때 북한특수부대 침투로가 이곳이기에 더욱 그렇다.멧돼지가 아니라 불순분자가 출몰했더라도 이렇게 허둥댔을까 하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전국에 멧돼지 사육장이 퍼져 있고 인터넷에 소개된 멧돼지 전문농장,전문식당만도 수십 곳에 이른다.이번 놈도 위에서 옥수수 가루 등 배합사료가 나온 것으로 미루어 사육우리에서 도망쳐 나왔을 것이라는 추정이다.집돼지와 달리 멧돼지 출몰을 정국이 어수선할 때 나타나는 불길한 징조로 풀이하는 역술인들이 있다고 한다.반면 원래 산속에서 좋은 것만 먹고 사는 상서로운 동물로 치는 역술인도 있다.아무튼 청와대 코앞에 나타난 그 힘이 펄펄 넘치는 놈을 굳이 피흘리며 죽게 한 것은 못내 께름칙하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 [창간 100주년-창간주역 5인의 발자취] (3) 초대총무 양기탁

    대한매일신보의 대들보인 우강 양기탁 선생은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외국어학교에서 영어를 배워 영어사전을 편찬하고 일본 나가사키상업학교에서 조선어교사로 근무하는 등 33살 때까지의 삶은 평탄했다.능통한 영어·일본어 실력을 바탕으로 정부관리(예식원 주사)와 한성전기회사 간부로 채용되는 등 출세길이 보장돼 있었다. ●배설과의 만남·20여년 망명생활 하지만 1904년 배설 선생과의 운명적 만남(34세) 이후 ‘혁명가의 길’이 주어졌다.이후 5년여 동안 대한매일신보를 통한 국채보상·신민회 운동 등을 펼쳤고 일제에 의해 나라가 강제병합되자 1910년 만주로 탈출,1918년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과 우수리스크 등지에서 활동했다.1922년(52세) 임시정부 주석 등으로 활동했지만 결국 살아서 광복한 조국땅을 밟지 못했다. ●리양에서 맞은 쓸쓸한 임종 선생은 1938년 5월21일 일제의 감시를 피해 숨어든 중국 장쑤성 리양현 대부진 남문두 고당암에서 68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지금은 논으로 변해 버린 암자에서 중국인들에 둘러싸여 파란만장한 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20여년 동안 중국 관내와 만주,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떠돌며 독립운동에 몸바친 그의 유해는 사후 60년 만인 1998년에야 국립묘지 임정묘역에 봉환됐다. ●우수리스크엔 담장만 남아 러시아 연해주의 주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2시간 거리인 우수리스크 자나드보롭스가야 15번지에서 그의 숨결을 만날 수 있었다.우수리스크는 러시아거주 9만여 고려인들의 절반가량이 모여사는 연해주의 여러 도시중 고려인이 가장 많이 사는 지역이다. 사료에 의하면 선생은 서간도를 거쳐 연해주에 들어왔으며 고려인신문 ‘한인신보’의 편집인으로 청빙됐다.선생이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자 이동휘 선생 등이 주도한 환영회가 대대적으로 열린 사실도 기록돼 있다. 1917년 5월 전 러시아 한인의 대표기구인 전로한족중앙총회가 개최된 자나드보롭스가야에서 선생은 박은식·이동휘·최재형 선생 등과 함께 사자후를 토하며 조국의 독립투쟁 방안을 논의했다.우수리스크와 하바로프스크에 사는 한인들이 러시아혁명 이후 새로운 변화에 부응하는 독립운동을 모색하려고 연 회의였다.그러나 우강은 최초의 한인 공산주의 정당인 한인사회당 창건에 반대하고 국제유대를 통한 조국독립운동을 주장,갈라서고 말았다. 1㎞ 남짓한 이 거리에는 ‘노령정부’로 알려진 대한국민의회와 그 기관지 청구신보의 사무실 등이 세들어 있었다.부자들이 모여 산 화려한 주택가로,시장의 주택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체체리나 22번지에 학교가 들어섰고 집이 있던 거리는 운동장에 편입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취재팀을 안내한 송지나(러시아 극동대) 교수는 “길 건너편에는 100년 전에 지은 오래된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면서 “도시계획에 따라 학교쪽 집을 모두 허물고 길을 넓혔다.”고 말했다. 운동장 구석 잡초 더미에서 발견된 허물다 만 오래된 집 담장이 취재팀을 상념에 빠지게 했다. ■ 특별취재팀 ●영국(런던·브리스톨) 함혜리 특파원 ●일본(고베) 이춘규 특파원 ●중국·러시아(리양·블라디보스토크·우수리스크) 노주석·이언탁·박지윤 특파원˝
  • 서울 도심 멧돼지 소동… 11시간40분 추격전

    일요일 서울 도심에 난데없이 멧돼지 한마리가 나타나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이 멧돼지는 긴급 출동한 소방본부 특수구조대와 경찰,서울대공원 및 어린이대공원 사육사 등 70여명과 11시간 40분동안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결국 붙잡혔다. “수상한 물체가 출몰했다.”는 급보가 들어온 것은 오전 3시6분.서울 종로구 청운동 창의문길 임시 경찰검문소 근무자 4명은 북악스카이웨이 초입에서 검은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 이곳은 1969년 1·21사태 때 북한특수부대가 청와대를 목표로 침투한 바로 그 루트.근무자들은 근접 확인 결과 이 물체가 멧돼지라는 사실에 일단 안도하면서 본부에 보고했다. ●“69년 北 침투루트에 수상한 물체…”한때 긴장 이들은 순찰차로 멧돼지를 몰아 부암동사무소 앞까지 유도했다.하지만 지나던 주민들까지 합세하자 멧돼지는 돌연 방향을 바꿔 청와대 쪽으로 돌진했다.창의문 임시검문소의 바리케이드를 뚫고 질주하던 멧돼지는 문이 열려 있는 청운중학교 정문으로 뛰어들었다. 이때가 동이 트기 시작한 오전 4시6분.멧돼지는 철망의 낮은 모서리를 뛰어넘어 테니스장에 들어갔다.출동한 119소방대원들은 오전 4시40분쯤 마취총 4발을 쐈다.정통으로 맞은 멧돼지는 비틀거리며 쓰러져 잡히는 듯했으나,경찰관 4명이 다가가 묶으려 하자 다시 벌떡 일어났다. 오전 7시30분쯤 마취총 5정으로 ‘무장’한 과천 서울대공원과 어린이대공원의 지원 인력이 ‘작전’에 합류했다.오전 10시40분쯤 청운중 본관 건물 뒤편에 모습을 드러낸 멧돼지는 동물원팀의 마취총 한방을 더 맞았지만 그대로 산으로 달아났다. 오전 11시40분쯤 ‘추격대’는 3중으로 그물을 친 뒤 곤봉·쇠창살·쇠망치·손도끼 등으로 무장한 소방대원들을 대기시켰다.뒷산에서 전경과 소방대원 20여명이 일제히 고함을 지르고,막대기를 휘두르며 멧돼지를 본관 뒤편으로 유도했다.전경 10여명은 수풀 뒤로 매복했다. ●마취총 10발 맞고 끝내 쇼크사 낮 12시10분.멧돼지는 그물에 걸리면서 거의 잡히는 듯 했지만 엄청난 힘으로 그물에서 벗어났다.30분뒤 4차 포획에 나섰지만 이번에도 영리한 멧돼지는 샛길로 달아나 버렸다. 오후 1시45분.멧돼지는 테니스장과 이웃한 경기상고를 경계짓는 철망 사이의 70㎝ 좁은 틈에 갇혔다.엉덩이에 마취총 한대를 다시 정통으로 맞은 멧돼지는 잡히는 듯했지만,통로를 가로막은 10여명의 사이를 돌진,운동장을 가로질러 다시 도망쳤다. 오후 2시30분쯤 건물 뒤쪽 수풀에 모습을 나타낸 멧돼지는 마취약 기운에 정신을 잃어가는 듯 비틀거렸다.15분 동안의 팽팽한 신경전 끝에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멧돼지는 마취총 4발을 등과 다리에 다시 맞았다.소방대원들은 쓰러진 멧돼지의 사지와 입을 묶었다.밖으로 끌려나온 멧돼지는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숨가쁜 추격전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위장에 사료… 사육장서 탈출한 듯 손홍락 서울대공원 진료팀장은 “이 멧돼지는 길이 1m,몸무게 72㎏에 1년6개월쯤 된 수컷”이라면서 “사인은 용량의 5배에 이르는 마취총을 맞은 데 따른 쇼크사”라고 말했다.손 팀장은 “멧돼지가 서울 도심에 출몰한 것은 최근 10여년 동안 처음”이라면서 “부검 결과 위장에서 다량의 사료가 나온 만큼 사육장에서 탈출한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날 멧돼지의 ‘서울 도심 습격사건’에는 소방본부 특수구조대원 11명등 소방대원 40명,경찰관 22명,동물원 관계자 8명 등이 ‘방어작전’에 투입됐다.소방본부 특수차량 7대와 경찰차량 7대도 동원됐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도둑고양이덫 빌려줍니다

    서울 광진구(구청장 정영섭) 골목골목에 속칭 ‘바께스’(양동이)가 등장하고,중랑구(구청장 문병권)에는 대형 ‘덫’이 놓이게 된다. 도심 한복판에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이 물건들은 최근 급속히 늘고 있는 도둑 고양이들의 횡포(?)에 맞서기 위한 톡톡 튀는 아이디어 행정으로 주목받고 있다. 중랑구는 최근 주택가 등지에서 쓰레기봉투를 훼손하는 등 주변환경을 해치고 있는 도둑 고양이를 퇴치하기 위해 ‘포획틀’을 무료로 대여한다고 9일 밝혔다. 각 동별로 배치되는 포획틀은 주민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 최대 2주간 대여할 수 있으며,사용 후 각 동사무소에 반납하면 된다.또 붙잡힌 고양이는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031-867-9119)에 연락하면 인계할 수 있다. 문 구청장은 “고양이는 마땅한 천적이 없어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주민들에게 공포감과 불쾌감 등을 유발하고 있는 골칫거리”라면서 “다만 덫으로 인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02)490-3365. 광진구는 다음달부터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배출하고 있는 단독주택과 소규모 음식점 등에 음식물 쓰레기를 담을 수 있는 빨간색 양동이 1만 2000개를 배포한다고 이날 밝혔다. 지금까지는 전용봉투에 담아 배출하면 됐지만,도둑 고양이들이 봉투를 훼손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이같은 조치가 취해졌다. 양동이는 주택의 경우 8가구를 기준으로 1개,음식점은 업소당 1개를 각각 지급한다.대상지역은 중곡1·3동과 노유1·2동,자양3동,군자동 등 6개동이다. 특히 양동이는 물기를 제거할 수 있도록 안쪽에 거물망이 있고,바닥에는 물기를 뺄 수 있는 마개가 달린 구멍도 뚫려 있다. 정 구청장은 “무단투기를 예방하기 위해 양동이에 주소 또는 음식점 이름 등을 기재,실명배출제를 실시할 계획”이라면서 “또 수거되는 음식물 쓰레기는 농·축산가의 사료나 퇴비 등으로 재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02)450-1375.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싼값의 함정 ‘공동구매’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휴대전화 동호회 회원인 김모(25·회사원)씨는 지난달 휴대전화 공동구매에 참여했다가 낭패를 봤다.53만 9000원짜리 신형 휴대전화를 8만 5000원에 살 수 있다는 데는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지나치게 싼 값이 마음에 걸렸지만,7만명의 회원을 가진 카페에서 ‘설마 사기를 치랴.’생각하고 입금했다. 하지만 김씨는 며칠 뒤 동호회 게시판에서 ‘택배 봉투에 휴대전화가 아니라 행주가 들어있었다.’는 다른 공동구매 참여자의 글을 발견했다.김씨는 물론 아무도 휴대전화를 받지 못했다.이들은 판매자를 경찰에 고소했고,73명으로부터 900여만원을 가로챈 김모(24)씨는 사기죄로 구속됐다. ●믿는 공동구매에 발등 찍혀 전자제품,유아용품에서 개 사료,발코니 새시,폐백음식,부케까지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공동구매의 품목이 갈수록 다양해지는 등 인기를 끌면서 이를 악용한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에는 회원 수가 5만명이 넘는 디지털카메라 동호회에서 운영자가 보증한 판매업자가 회원 80여명으로부터 7000여만원을 가로챈 공동구매 사기사건이 일어나 경찰이 수사중이다. 소비자보호원에는 올 들어 5월까지 인터넷 공동구매에 의한 피해사례가 61건이나 접수됐다.‘배송지연과 미배송’이 42건으로 가장 많았다.‘품질하자 제품’이 8건,‘제품에 잘못이 있을 때 대금 미환급 또는 환급비용 본인 부담’이 6건이었다. ●개인정보 노출 무방비 공동구매에 쓰여진 이름,주소,전화번호,신분증 사본 등 개인신상 정보도 마구 유출되고 있다.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은 올들어 5월까지 인터넷 공동구매를 포함한 전자상거래 등에 의한 개인정보침해 신고·상담 건수가 1만 784건이라고 밝혔다.지난해 1만 2594건보다 크게 늘어난 것이다. ‘타인 정보의 훼손·침해·도용’이 3863건으로 가장 많았다.‘고지·명시한 범위를 넘어선 이용 또는 제3자 제공’이 190건,‘목적 달성 후 개인정보 미파기’가 43건이었다. 지난 3월에는 김모(34)씨가 가입한 적도 없는 중소 홈쇼핑업체로부터 물건을 사라는 전화를 받았다.정보보호진흥원 조사 결과 이 업체는 지난해 4월 김씨가 대형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가면서 물품구입용으로 써넣은 신상정보를 계속 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보보호진흥원 개인정보보호팀 윤수영 연구원은 “쇼핑몰 가입 약관에 ‘고객정보를 사이트 홍보에 이용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고,이를 근거로 상품 홍보에 사용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면서 “특히 인터넷 공동구매에는 별다른 약관이나 소비자 보호장치가 없어 개인정보를 빼돌려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보호원 사이버소비자센터 여춘엽 차장은 “공동구매에 참여할 때는 물품 값을 보내기 전에 가격비교 사이트 등을 찾아 지나치게 싸면 일단 의심하고 운영자의 직업 등을 밝히도록 하는 등 신용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그는 “신용카드로 할부구매하면 사고가 나더라도 일부 구제받을 수 있지만 현금으로 결제하면 방법이 없다.”면서 “인터넷 공동구매는 대부분 현금 결제를 조건으로 하고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쪽지통신]

    ●서울대 해양연구소는 오는 8월10∼16일(화∼월) 강원도 동해시 동해 해양연구소에서 초등학교 5·6학년과 중 1·2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제1회 해양여름학교’를 연다.스킨스쿠버 강의와 해양연구기관 견학,신비한 바다 이야기 강의,해양학 실험,자연탐방 등을 체험할 수 있다.초등학생과 중학생 각 20명씩,모두 40명 모집.신청마감 31일(토).(02)880-5730. ●국립중앙과학관(www.science.go.kr )은 10∼11일(토∼일) 대전 유성구 구성동 중앙과학관 일대에서 ‘2004 여름 사이언스데이’를 진행한다.병아리와 달팽이,귀뚜라미의 부화과정 등을 배우는 ‘생명과학여행’과 과학 교사와 함께 극저온의 세계와 과일전지,도깨비 매직쇼 등 40여개 주제를 직접 실험해보는 ‘열린 실험실’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됐다.모래시계와 사이다 등을 만들어보는 기초과학 실습실과 영화 속의 과학을 탐구하는 체험 과학실도 경험할 수 있다.한지와 염색을 해보는 전통생활과학 체험마당과 프라모델(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축소모형)을 볼 수 있는 창작놀이 마당,가족끼리 참가하는 ‘가족 과학경진대회’도 열린다.무료.(042)601-7907∼11. ●서울시교육청(www.sen.go.kr)은 13일(화) 오전 9시∼오후 5시 경기도 남양주시 북한강 호반나루터에서 서울 시내 초등학생 1300명이 참여한 가운데 ‘제10회 통일 기원 서울 학생 한강 헤엄쳐건너기’ 행사를 개최한다.(02)399-9405. ●서울시교육청은 9일(금) 오후 3∼6시 종로구 신문로2가 본청 11층 강당에서 ‘제8회 유치원 교사 동화구연대회’를 연다.지역 교육청을 대표해 공·사립 유치원 교원 11명이 참가한다.(02)399-9351∼2. ●서울시 교육과학연구원(www.sesri.re.kr)은 11일(일)까지 중구 회현동1가 소월길에 있는 연구원 13층 회전전망대 전시실에서 ‘2004년도 제38회 교육자료전 및 제14회 유아교재교구전 작품전시회’를 열고 있다.교육자료전과 유아교재교구전에서 특상,우수상 입상작 79작품을 볼 수 있다.같은 기간 연구원 2∼5층 실험실에서는 ‘제25회 과학전람회 및 제26회 발명품 전시회’ 우수작 135점이 전시되며,교육자료전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02)311-1210. ●서울 정독도서관(www.jeongdok.or.kr)은 26∼30일(월∼금) 초등학교 3·4학년 40명을 대상으로 종로구 화동 북촌길 도서관 부설 서울교육사료관에서 ‘전통천자문 교실’을 운영한다.사자소학과 전통예절,한국사 특강,민속놀이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7일(수) 오전 9시부터 전화로 선착순 40명 모집.무료.(02)736-2859.˝
  • [쪽지통신]

    ●서울대 해양연구소는 오는 8월10∼16일(화∼월) 강원도 동해시 동해 해양연구소에서 초등학교 5·6학년과 중 1·2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제1회 해양여름학교’를 연다.스킨스쿠버 강의와 해양연구기관 견학,신비한 바다 이야기 강의,해양학 실험,자연탐방 등을 체험할 수 있다.초등학생과 중학생 각 20명씩,모두 40명 모집.신청마감 31일(토).(02)880-5730. ●국립중앙과학관(www.science.go.kr )은 10∼11일(토∼일) 대전 유성구 구성동 중앙과학관 일대에서 ‘2004 여름 사이언스데이’를 진행한다.병아리와 달팽이,귀뚜라미의 부화과정 등을 배우는 ‘생명과학여행’과 과학 교사와 함께 극저온의 세계와 과일전지,도깨비 매직쇼 등 40여개 주제를 직접 실험해보는 ‘열린 실험실’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됐다.모래시계와 사이다 등을 만들어보는 기초과학 실습실과 영화 속의 과학을 탐구하는 체험 과학실도 경험할 수 있다.한지와 염색을 해보는 전통생활과학 체험마당과 프라모델(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축소모형)을 볼 수 있는 창작놀이 마당,가족끼리 참가하는 ‘가족 과학경진대회’도 열린다.무료.(042)601-7907∼11. ●서울시교육청(www.sen.go.kr)은 13일(화) 오전 9시∼오후 5시 경기도 남양주시 북한강 호반나루터에서 서울 시내 초등학생 1300명이 참여한 가운데 ‘제10회 통일 기원 서울 학생 한강 헤엄쳐건너기’ 행사를 개최한다.(02)399-9405. ●서울시교육청은 9일(금) 오후 3∼6시 종로구 신문로2가 본청 11층 강당에서 ‘제8회 유치원 교사 동화구연대회’를 연다.지역 교육청을 대표해 공·사립 유치원 교원 11명이 참가한다.(02)399-9351∼2. ●서울시 교육과학연구원(www.sesri.re.kr)은 11일(일)까지 중구 회현동1가 소월길에 있는 연구원 13층 회전전망대 전시실에서 ‘2004년도 제38회 교육자료전 및 제14회 유아교재교구전 작품전시회’를 열고 있다.교육자료전과 유아교재교구전에서 특상,우수상 입상작 79작품을 볼 수 있다.같은 기간 연구원 2∼5층 실험실에서는 ‘제25회 과학전람회 및 제26회 발명품 전시회’ 우수작 135점이 전시되며,교육자료전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02)311-1210. ●서울 정독도서관(www.jeongdok.or.kr)은 26∼30일(월∼금) 초등학교 3·4학년 40명을 대상으로 종로구 화동 북촌길 도서관 부설 서울교육사료관에서 ‘전통천자문 교실’을 운영한다.사자소학과 전통예절,한국사 특강,민속놀이 등의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7일(수) 오전 9시부터 전화로 선착순 40명 모집.무료.(02)736-2859.
  • 러·日·몽골 “중국 고구려사 편입 난센스”

    제2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총회가 28일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개막됐다.새달 7일까지 계속될 이 총회에서는 북한과 중국이 함께 심의를 요청한 ‘고구려 유적’이 동시에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될 것이 확실시된다.세계유산위 총회 개막일에 맞춰 한국JC(중앙회장 박상용)와 고구려연구회(회장 서길수 서경대교수)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고구려의 정체성’이란 주제의 대규모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한국 일본 미국 러시아 몽골 터키의 학자 81명이 참가해 30일까지 진행하는 이 학술회의는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시도의 허구성을 비판하고,고구려뿐 아니라 중국 인접 민족과 국가의 학자들의 발제문과 토론을 통해 ‘동북공정’ 프로젝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자리여서 각별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중국과 제3국 학자들의 입장과 주장을 요약한다. ■ 중국의 입장과 반론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당초 3명의 중국 학자가 참가해 고구려사를 놓고 한국 학자들과 열띤 논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됐지만 중국 정부가 세계유산회의 기간 중 학자들에게 금족령을 내려 불발에 그쳤다.대신 중국학자들은 논문을 보내와 ‘고구려는 동북지역의 고대민족이며,중국 역사상의 소수민족 정권’임을 분명히 밝혔고 이에 대해 한국학자들은 일제히 반발하며 그 허구성을 지적했다. 우선 쑨진지(孫進己) 중국 선양동아연구중심 주임은 “고구려를 고려,오늘의 조선인으로 보는 선입견을 배제해야 하며 역사귀속과 현실의 계승을 분명히 나누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구려와 중·한의 관계 및 귀속’이란 발제문을 통해 “왕씨 고려가 고구려의 3분의1의 토지와 4분의1의 인민을 계승했기 때문에 왕씨 고려를 고구려의 계승자로 보지만 고구려의 다른 3분의2의 토지와 4분의3의 인민은 중국이 계승하였기 때문에 고구려가 단지 조선(한국)인의 선인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특히 “고구려가 건립 초기 한(漢) 현토군 관할하의 한개의 후국이었고 후에 왕국으로 승진했으므로 고구려의 전기에는 조선(한국)역사상의 정권의 관할에 속할 수 없었고 후기에 고구려가 비록 중국의 중원의 전란을 틈타 중국의 많은 군현을 점령하였지만 고구려는 시종 중국의 역대 정부가 책봉한 고구려왕의 직을 접수하고 조공했을 뿐만 아니라 명령을 받아들이는 것을 위주로 했기 때문에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못박았다. 이에 대해 최광식 고려대 교수는 고려시대 편찬된 삼국사기,삼국유사,제왕운기 등에 고구려가 고조선 부여 신라 백제 등과 함께 기재되어 있고 조선시대 편찬된 동사강목,동국통감 등에도 고구려가 기재되어 있음을 들어 그것은 선입관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라고 반박했다.최 교수는 “고구려가 중국에 조공을 하고 책봉을 받은 것을 문제삼아 두나라가 중앙정권과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조공책봉관계는 남북조시대 중원왕조와 주변 제국의 군장들 사이에 책봉을 통한 외교적 관계에 불과하다.”며 “역사적 계승관계는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후대에 누가 계승의식을 가졌는가에 달려 있다.”고 응대했다. 장잉(張英) 지린성 사회과학원 조선한국연구소장은 ‘고구려 귀속문제에 대한 중국학자의 관점’에서 “중국학자들의 고구려에 대한 관점은 일관되게 ‘중국 역사상의 소수민족 정권’이란 점이며 일부 ‘일사양용론’(一史兩容論),혹은 고구려가 고대조선(한국)의 국가임을 주장했던 학자들도 최근 모두 고구려사의 중국사임를 강조하고 있다.”며 그 근거로 고구려는 중국 영토에 건립됐고 줄곧 중원왕조의 신복으로 책봉받았음을 들었다. 이에 대해 장보영 경북대 교수는 “고구려가 동북지역에 있었다고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한다면 동북지역이 항상 중국민족의 영역인가.”라고 묻고 “중국역사상 여진의 금,거란의 요,만주의 청 등은 비중국민족으로 동북지역에서 발흥하여 중국을 지배했지만 중국인으로 자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고유의 문화와 통치방식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이들이 후에 중국에 흡수되었다고 해서 이들을 중국인이라 부를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제3국 학자들 입장 ●1세기에서 7세기에 걸친 왜(倭)와 중국의 조공·책봉 관계의 성격에 대해(후루하타 도루·일본 金澤大學) 고구려가 존재한 시대의 왜(倭)와 중국왕조의 조공·책봉 관계를 검토하면 일본은 ‘외(外)’,즉 중국왕조가 설정하는 협의의 천하의 밖의 존재로서 자리매김됐다.고구려·백제·신라에서는 중국왕조가 설정하는 협의의 천하와 ‘외’의 이중성이 나타난다.이것은 한(漢)무제(武帝)가 조선사군(朝鮮四郡)을 설치해 ‘내’에 편재한 것과 관계돼 있다.중국왕조로서는 직접 통치할 수 없어도 그 땅까지 황제의 지배가 미친다고 이해한 것이다.그렇더라도 고구려와 백제·신라가 분리,취급된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당대 사료에 보이는 ‘해동삼국(海東三國)’용어는 삼국을 일체의 지역으로 인식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현재의 중국이 고구려만을 분리해서 ‘고구려는 중국사(史)상의 변경지역민족정권’으로 주장함이 얼마나 비역사적인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다. ●몽골과 한국의 관계에 대하여(A 오치르·몽골국립역사박물관장) 고구려의 대부분 영토는 오늘날 한국인이 사는 지방 이외의 땅으로 분리되어 나갔지만 고구려의 역사를 만들고 국가정책을 세우고 정권을 장악했던 사람들은 한국인이다.어떤 지역사회의 역사는 국가역사의 한 부분이다.그 국가를 최초로 만들고 권력을 장악해 정책을 만들어 통치해가는 과정을 추적하면 어느 민족의 정권임이 명확히 드러난다.고구려를 만든 사람들은 한국인들이며 고구려 역사도 한국의 역사임을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고대 한국인과 사얀-알타이 민족들 간의 민족 문화적 관계에 대하여(아바예프 N 비아체스라보비치·러시아 투바대학) 원(原) 몽골인들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고대 한국민족의 기원과 함께 사얀-알타이 민족그룹의 이동,주변 민족들 간의 영향력 행사 등과 맞물려 중요한 주제다.사얀-알타이 지역의 지명·인명이나 한국 고대문화의 주몽신화와 단군신화도 사얀-알타이민족과 고대 한국인들과의 민족문화사에서의 유사성을 보여준다.그러나 이 민족형성그룹들은 고대 중국,특히 중원에 사는 사람들과는 아무 직접적인 관계도 없다.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정치권력은 비록 후대에 들어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궁극적으로 중국인들의 이주에 의해 형성되지는 않았다.반대로 남만주지역에 거주했던 한국인들이 흉노에 의해 중국 본토로 들어가 흉노,쌍비,고대 투르크,고대 몽골인들처럼 중국인들이 인종적·민족적 원류를 갖추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
  • ‘고구려의 정체성’ 학술대회 여는 JC 박상용 회장

    “한·중 양국이 벌이고 있는 고구려사 논쟁의 핵심은 바로 고구려의 정체성 문제라고 봅니다.지금 우리사회의 정체성 문제는 비단 역사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청년의 애국심과 민족적 자긍심을 강조해온 한국청년회의소의 입장에서 당연히 관심을 갖고 천착해야 할 중대한 사안입니다.” 오는 28∼30일 고구려연구회(회장 서길수)와 함께 세종문화회관 콘퍼런스홀과 소회의실에서 ‘고구려의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여는 한국청년회의소(JC) 중앙회장 박상용(38)씨.‘조국의 미래,청년이 책임’이라는 한국JC의 대명제를 거듭 강조하면서 이번 학술대회를 추진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지난해 6월 중국 광명일보에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임을 주장하는 기사가 실려 파문이 인 직후부터 고구려연구회와 접촉해 구체적인 사업으로 구상했습니다.역사왜곡이라는 중차대한 사안에 맞닥뜨려 정체성 찾기에 젊은이들이 앞장서 불씨를 지펴보자는 뜻에서 적극 매달렸습니다.” 학술대회는 ‘사서에 나타난 고구려의 정체성’ ‘연구사를 통해서 본 고구려 정체성’ ‘한국사에 나타난 고구려 정체성’ ‘대외관계를 통해서 본 고구려 정체성’ ‘고고미술사를 통해선 본 고구려 정체성’이란 소주제 아래 모두 84명이 참가해 주제발표와 토론을 진행한다.각국의 학자들이 똑같은 자료를 갖고 해석해도 각기 다른 관점과 입장을 보이기 때문에 토론을 거쳐 그 차이를 좁힐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전체 37명의 발표자 가운데 12명을 외국학자로 구성했다. 한국JC는 올해 주요 사업인 ‘고구려 역사찾기 운동’의 하나로 마련한 이 학술대회 말고도,중국에서 입수한 고구려사 관련 사료들을 번역해 학자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우리 학계의 고구려사 연구 환경이 아주 열악하다고 들었어요.학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관련 자료가 한정되어 있고 데이터베이스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은 실정입니다.학자들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도록 미공개 자료들을 입수해보자는 것이지요.단발성이 아닌 지속사업으로 추진할 것입니다.” 한국JC는 전국 16개 지구,368개 지방회의소를 갖춰 정회원 2만여명과 40세 이상 명예회원 3만명 등 5만여명의 총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청년 기업조직.세계 110개 회원국 가운데 세번째로 많은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17대 국회의원으로 17명이 진출했으며 39명의 기초단체장,100여명의 광역의회 의원,300여명의 기초의회 의원들이 한국JC 출신이다.지난 1월 제53대 중앙회장으로 취임한 박 회장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을 JC운동으로 재건하자.’는 숭고한 이념 아래 창립된 한국JC가 본질과는 다르게 비쳐지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며 앞으로 이미지 개선과 홍보에 주력할 계획이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다음생각]철거된 휴전선 확성기 어떻게 할까

    |미디어다음 이성문 기자| 지난 16일 휴전선에서 철거되기 시작한 대북 선전용 확성기의 활용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당국에선 ‘재활용’할 계획이지만 문화계 일각에서는 이 확성기를 분단 역사의 유물로 박물관에 전시,보존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향후 운영 계획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가 없다.일각에서는 군 훈련용이나 해안 어선통제용 확성기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화계에서는 “남북 분단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역사적 유물로 지정해 일부라도 영구 보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한다.독립기념관 이명화 학예실장은 “선전용 확성기는 분단 이후 현대사를 상징하는 유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면서 “90여개 확성기 전부는 아니더라도 한두 개는 수집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국립민속박물관 박호원 전시운영과장도 “대북선전 시설물을 역사 자료로 지정,특정 박물관에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전쟁기념관 관계자는 “관계부처와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 함부로 의견을 밝히기 곤란하다.”고 아직 적극적인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서울대 정용욱(국사학) 교수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독일은 장벽 일부를 전시,보존했을 뿐 아니라 파편을 판매해 관광수익을 올리기도 했다.현대사 관련시설이 학문적 역사 사료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보존해야 할 상징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100자 의견 ●차라리…부시리님 독도에 설치해서 정광태님의 ‘독도는 우리 땅’노래나 틀고 서해 연평도나 중국 가까운 곳에 설치해서 중국 해적들 경고 방송용으로 사용하면…. ●밤에 지피에서 아무 소리 안 들리면시온님 그나마 저거 방송으로다가 최신 노래 듣고 그랬는데.잠은 잘 오겠네.북한 애들도 심심하겠다. ●박물관 지어 관광상품화 하자조폭님 희망찬 미래를 위해 영원히 박물관 짓자. ●국민의 소리를 들려주자순한양님 청와대 앞이 딱이지…. ●우리만 다 철거하는 것 같다.Antena님 북한에는 대형 확성기는 있어도 전광판은 못 봤다.북한은 손해될 게 없다.우리만 전광판 철거하는 것 같구먼. ●보존보다는…Nureyev&#님 확성기 보존보다는 그 확성기로 무엇을 방송하고 선전했는지 보여 주는 게. ●대략 찬성유상포04님 어느 정도는 과거를 짚어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생각함. ●박물관에는 왜 가져다 놓는지??울모님 재활용이라면 몰라도 박물관에 가져다 놓고 기념할 만한가? 보기 안 좋을 듯.˝
  • ‘원로 예술인의 삶’ 다시 본다

    지금은 현장에서 물러났지만 격동의 근현대를 살면서 문화예술의 창조자로 맹활약했던 원로들이 역사기록자로 나섰다. 지난해 6월부터 ‘한국 근현대예술사 증언채록사업’을 벌여온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소장 강태희)는 최근 문화예술계 원로 32명의 증언채록을 마쳤다고 23일 밝혔다. 문예진흥원 후원으로 진행되는 증언채록사업은 지난 세기 현장에서 활약했던 80·90대 원로 예술인 100인의 증언을 통해 한국 근현대예술사를 정리하는 기획으로,이번에 1차사업이 마무리됐다. 이달 말 책으로 발간될 32명에 대한 증언 채록 작업에는 자문,발제,토론,촬영,녹취문 작성 등에 200여명의 예술인과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2005년까지 진행될 채록사업은 음악,무용,연극,미술,문학,대중예술 등 6개 분야에 걸쳐 1930년 이전 출생한 원로 예술인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이번 1차연도에는 1920년 이전 출생자들이 인터뷰 대상자로 참여했다. 해당분야 전문가들이 5∼6회에 걸쳐 대상자의 자택을 직접 방문해 촬영,녹취한 증언 채록작업 결과 총 300여 시간 분량의 영상자료와 200자 원고지 4만 5000장의 녹취문이 만들어졌다. 영상자료와 녹취 문집은 문예진흥원 예술사료관에 보관돼 연구의 1차사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1차연도 사업에 참여한 문화예술인에는 정진숙(92) 을유문화사 사장,국악인 이은관(87),미술사학자 황수영(88)·진홍섭(88),연극배우 김동원(88),시인 황금찬(86),화가 전혁림(88)·정점식(88)·김흥수(85),무속인 김석출(82),건축가 엄동문(85),방송작가 한운사(81)씨 등이다.구상 시인,영화배우 독고성씨,한만년 일조각 대표도 인터뷰 대상이었으나 채록에 앞서 별세했다.아동문학가 어효선 선생은 증언채록 한 달 뒤인 지난 5월 작고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미술사학자 진홍섭씨는 고유섭 선생을 만나 미술사로 전환한 경위와 동료 미술사학자 황수영·최순우씨 등과 교유했던 과정을 상세히 전했다. 미수(米壽)의 화가 전혁림은 “처음부터 화가가 되려던 게 아니고 문학을 하기 위해 일본어로 번역된 소설책을 탐독했다.”며 자신의 그림작업이 문학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털어놓았다. 정진숙 사장의 증언에는 광복 직후 문화예술인들이 출판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동해안별신굿의 무속인 김석출옹은 우리네 삶은 전통과 현대,몸과 정신이 한꺼번에 버무려진 집합체임을 들려준다. 이인범 예술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시기까지 역사의 주체이자 문화예술의 당사자였던 원로예술인들의 체험과 기억은 우리 근현대예술사의 단절과 공백을 메울 중요한 자료”라며 “구술작업을 통해 삶과 인간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없던 지난 시절을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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