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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유미 “동명배우 때문에 이름 바꿀까 고민”

    정유미 “동명배우 때문에 이름 바꿀까 고민”

    탤런트 정유미가 개명을 고민했었다고 털어놨다. 1일 오후 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보석비빔밥’(극본 임성한ㆍ연출 백호민) 제작발표회에서 정유미는 이름 때문에 생긴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정유미는 “이름 때문에 살짝 마음의 상처를 받은 일이 있었다. 영화배우 정유미 씨가 청룡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을 때 주변에서 축하전화가 그렇게 많이 왔다. 솔직히 속상했었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이어 “작명소에서 사주에 맞는 이름을 받아 개명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는데 이번 ‘보석’ 포스터에 ‘정유미’ 이름 세 글자가 큼지막하게 찍혔다. 그걸 보고 그냥 이대로 열심히 하기로 했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정유미는 ‘보석비빔밥’에서 산호(이현진 분)의 여자친구인 이강지 역을 맡았다. 강지는 밝고 애교 많은 대학생으로 산호의 큰 누나 비취(고나은 분)의 분식집에서 일을 돕는다. 사전제작으로 진행된 전작 ‘친구, 우리들의 전설’과 차이점을 말하며 정유미는 “이번 작품에는 훨씬 더 많은 순발력이 필요할 것 같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정유미의 상큼 발랄한 연기 변신이 기대되는MBC 새 주말드라마 ‘보석비빔밥’은 오는 5일 첫방송된다.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 / 사진=이규하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울릉도 내수전 옛길

    [진우석의 걷기좋은 산길] 울릉도 내수전 옛길

    울릉도에 갈 계획이 있는 사람은 서둘러야겠다. 울릉도 일주도로에서 유일한 흙길인 내수전∼섬목 구간 4.4㎞가 내년부터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길을 내수전 옛길이라 부르는데, 예로부터 북면 사람들이 행정 중심지인 도동에 드나들던 길이었다. 울릉도의 험준한 동쪽 해안을 끼고 돌며 깊은 원시림 속으로 이어진 내수전 옛길은 풍광이 빼어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성인봉 나리분지, 도동∼저동 해안도로, 대풍감 코스 등과 더불어 울릉도 최고의 걷기여행 코스로 꼽힌다. ●가는 길과 맛집 묵호와 포항에서 울릉도 가는 배가 다닌다. 대아해운고속 홈페이지(www.daea.com)나 전화로 출항 요일과 시간을 확인한다. 울릉도까지는 소요 시간은 2시간 30분∼3시간. 문의 대아해운(포항 054-242-5111, 묵호 033-531-5891, 울릉 054-791-0801). 저동항 활어센터에서 저렴하고 싱싱한 활어회와 오징어를 먹을 수 있다. 현지 교통은 우산버스(054-791-7910)가 다닌다. ●집어등이 은은하게 비추는 저동항의 정취 내수전 옛길이 시작하는 곳은 울릉도 오징어잡이 전진기지인 저동항이다. 저동항은 도동항에 비해 한결 조용하고 운치있는 항구다. 이곳에 숙소를 잡으면 집어등이 밤바다를 비추는 저동 특유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선창 노점에서 싱싱한 오징어회에 술 한 잔 곁들이면 울릉도 매력에 홀딱 빠져버릴 것이다. “내수전 전망대는 내수전에서 30분밖에 안 걸려요.” 전망대로 가는 팍팍한 포장도로는 40분을 넘게 걸어도 끝없이 이어진다. 길을 알려준 분식집 아저씨가 착각했거나 그의 걸음이 무지하게 빠른가 보다. 내수전 약수터의 톡 쏘는 물맛에 힘을 얻어 간신히 내수전 전망대에 올랐다. 내수전 전망대는 울릉도 동쪽 해안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남쪽으로 저동항, 왼쪽(북쪽)으로는 걸어야 할 석포마을 일대가 장쾌하게 펼쳐진다. 특히 석포와 섬목 일대는 마치 열대우림처럼 나무들이 빽빽하고, 바다 쪽으로 내려갈수록 험준한 해안절벽을 이루고 있다. 과연! 아직까지 포장도로가 생기지 못할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울릉도의 해안도로는 1963년 공사를 시작해 2001년에 완공되었는데, 내수전에서 섬목까지 4.4.㎞ 구간은 지형이 워낙 험하기도 하거니와 생태계 보전을 위해 흙길 그대로 남겨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작년부터 울릉도 일주도로가 국가지원 지방도로로 승격됨에 따라 도로포장은 시간문제가 되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본격적인 흙길이 시작된다. 모퉁이를 한 굽이 돌아서자 길섶에는 고사리류들이 지천으로 깔렸고, 아름드리 섬고로쇠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길은 평탄한 산비탈을 타고 도는데 중간중간 내려다보이는 죽도와 바다 경치가 아름답다. 내수전 옛길의 중간 지점인 정매화곡쉼터에는 말오줌나무흰꽃이 만개해 화려한 산제비나비들을 불러 모은다. 이곳은 섬을 걸어 다니던 시절, 1962∼1981년 이효영씨 부부가 살면서 폭설과 악천후를 만나 곤경에 빠진 섬 주민과 관광객 300여명을 구한 따뜻한 미담이 깃든 곳이다. 쉼터를 지나면 삼거리다. 여기서 와달리로 가는 길로 내려서면 안 된다. 해안의 아름다운 마을이었던 와달리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길도 끊겨 위험하다. 삼거리를 지나면 길은 슬며시 오르막으로 이어지면서 북면 경계를 넘는다. 이어 제법 가파른 고개를 넘으면 솔숲이 나오면서 포장도로를 만나게 된다. 여기가 자게골 입구 삼거리. 이정표를 따라 죽암 마을로 내려가도 되지만, 석포 마을을 둘러가는 것이 정석이다. ●짙은 에메랄드빛 파도가 부서지는 삼선암 이제 길은 포장도로를 따르지만 호젓하고 바다가 잘 보여 걷기 좋다. 띄엄띄엄 집들이 자리잡은 석포마을은 겨울이면 마을버스도 다니지 못하는 오지다. 하지만 더덕과 미역취 등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잘 자라고 인심도 좋아 정들면 떠나지 못한다고 해서 정들포라고 부른다. 석포에서 선창 해안까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 내려와야 한다. 지그재그 내려오며 충격을 줄여보지만, 한동안 무릎 고생을 피할 수는 없다. 터벅터벅 40분쯤 내려오면 석포전망대로 가는 갈림길이다. 여기서 전망대까지는 왕복 40분 거리다. 석포전망대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망루를 설치했을 정도로 조망이 좋은 곳이다. 짙은 에메랄드빛 망망대해와 더불어 북면의 명소인 삼선암, 관음도 등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 20분쯤 더 가면 선창에서 바다를 만난다. 이제 울릉도 최고의 절경인 북면 해안이 이어진다. 우선 섬목까지 걸어갔다가 되돌아 나오며 관음도, 삼선암 등을 구경하는 것이 좋다. 바다 풍광에 반한 세 명의 선녀가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삼선암 앞은 울릉도에서 가장 황홀한 에메랄드빛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뾰족한 바위 하나가 기둥처럼 솟은 일선암을 지나 천부에 도착하면서 걷기는 끝이 난다. 천부에서 도동으로 가는 버스가 있고, 가까운 나리분지에 들어가 하룻밤 묵어도 좋다. 저동에서 내수전 전망대, 석포전망대를 거쳐 천부까지는 약 10㎞, 5∼6시간쯤 걸린다. 저동에서 내수전 전망대까지는 택시를 타고 이동해 체력을 비축하는 것이 좋겠다. 여행전문작가 ●가는 길과 맛집 묵호와 포항에서 울릉도 가는 배가 다닌다. 대아해운고속 홈페이지(www.daea.com)나 전화로 출항 요일과 시간을 확인한다. 울릉도까지는 소요 시간은 2시간 30분∼3시간. 문의 대아해운(포항 054-242-5111, 묵호 033-531-5891, 울릉 054-791-0801). 저동항 활어센터에서 저렴하고 싱싱한 활어회와 오징어를 먹을 수 있다. 현지 교통은 우산버스(054-791-7910)가 다닌다.
  • 장마·방학이 싫은 어린이들의 하소연

    장마·방학이 싫은 어린이들의 하소연

    이번 주부터 전국 초등학교에서 여름방학이 시작됐다. 하지만 방학의 설렘보다 그늘이 더 큰 아이들이 있다. 장마철 곰팡이가 많은 반지하방에 살거나, 학교에서 먹던 무료급식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아이들이 그렇다. 서울 돈암동 단독주택의 반지하에 사는 강준영(12·가명)군은 23일 ‘캔디다성 곰팡이염’이란 진단을 받았다. 지난주 장맛비가 쏟아진 뒤부터 온몸이 가렵기 시작하더니 며칠 전부터 가려움증이 더 심해져 피부과를 찾았다. 이날 찾아간 강군의 집 벽엔 곰팡이가 시커멓게 피어 있었다. 10평(35㎡)짜리 방엔 30㎝ 남짓한 창문밖에 없어 빛이라곤 없었다. 서울대병원 피부과 김규한 교수는 “어린이들이 곰팡이가 많은 반지하 공간에서 오래 생활하다 보면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각종 곰팡이염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지난 3월 경기 안산·시흥·성남지역 13개 초등학교 3∼5학년 어린이 119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하·반지하층에 거주하는 학생이 천식과 알레르기성 비염을 앓은 경우가 각각 2.47배, 1.29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에서 무료 급식을 먹던 기초생활수급권자·차상위계층 아이들은 방학이 되면 밥 먹을 방법이 없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각 지자체와 지역아동센터에서는 그동안 나눠 주던 종이식권 대신 이달부터 ‘꿈나무카드’(전자카드)를 도입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마음 놓고 밥을 먹기엔 불편한 점이 많다. 7월 현재 서울시내 결식아동은 5만 4000여명, 이중 68%인 3만 7000여명이 꿈나무 카드를 받아 쓰고 있다. 하지만 서울 시내 음식점 1188곳과 24시간 편의점 934곳, 제과점 17곳 등 총 2139곳에서 이 카드를 쓸 수 있다. 아이들은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이 제한돼 있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대로 못 먹는 것”을 가장 불편해한다. 이달부터 24시간 편의점인 ‘훼밀리마트’에서도 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도시락, 샌드위치, 우유 등 살 수 있는 품목이 제한돼 있다. 중곡동에 사는 김모(12)군은 “한 끼에 3500원씩 해서 하루에 7000원밖에 결제가 안 된다. 피자도 가끔 먹고 싶은데 카드로는 찌개나 밀가루 음식밖에 먹지 못한다.”며 풀 죽은 표정을 지었다. 한 사회복지사는 “카드단말기가 설치된 곳이 대개 분식집이나 중국집, 편의점이라 영양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한 끼 때우라는 식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종이식권을 사용할 때는 배달이 가능했지만 카드로 바뀌면서 꼭 식당에 찾아가야 하는 것도 아이들에게 ‘위축감’을 심어줄 수 있다. 김민희 유대근기자 haru@seoul.co.kr [서울신문 다른기사 보러가기] 미디어법에 휩쓸려간 민생법안 온라인 동호회 운영자 수십억 챙겨 잠적 강남·목동 학원가 심상찮다 기능→일반직 10월24일 첫 시험 10년째 동굴에서 땡전 한 푼 안 쓰고… 뉴질랜드 호주 쪽으로 이동 왜? 공무원연금 지급기준 강화
  • [데스크 시각] 애견가에게 고함/손원천 체육부 차장

    [데스크 시각] 애견가에게 고함/손원천 체육부 차장

    어느날 아침 동네 골목길에서 벌어진 일이다. 누가 먼저 가나 경쟁이 붙은 어린 아이 몇 명이 유치원 건물을 향해 뛰어갔다. 그때 마침 유치원 맞은 편 연립주택에서 한 아주머니가 아이 무릎 정도 되는 키의 애완견 한 마리를 데리고 나왔다. 목줄이 묶여 있지 않던 애완견은 문밖을 나서자마자 아이들을 향해 사납게 짖으며 쫓아갔다. 화들짝 놀란 아이들 중 일부는 재빨리 유치원 건물로 뛰어 들어갔지만 일부는 개를 피하느라 갈팡질팡 골목길을 오가며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아주머니 대신 ‘약간의 힘’을 써서 그 개를 ‘제압’했다. 다행히 아이들이 놀란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아주머니나 아이들에게나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난 셈이다. 그러나 조그마한 사달이긴 했어도 되새겨 봐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애완견을 밖으로 데리고 나올 때 목줄을 묶지 않은 것과 주인의 명령에 따르도록 훈련시키지 않은 것은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애견가들에게 듣는 말 중 가장 흔한 게 “우리 개, 사람 안 물어요.”다. 그럴 때마다 의아하다. 그걸 어떻게 보증한다는 것인가. 물론 광견병 등 특정 질병에 감염된 개가 아니라면 물렸다손 쳐도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염려되는 것은 개의 공격적 성향으로 인해 빚어질 수도 있는 돌발 사고다. 예를 들면 이렇다. 차도와 인도가 혼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우리 주변 골목길 중 ‘평화’가 정착돼 있는 곳은 사실상 없다. 자장면이 붇기 전에 서둘러 배달하려는 오토바이며, 골목길에서조차 질주하는 일부 몰지각한 자동차 운전자들로 우리 사는 골목길의 평화는 깨진 지 이미 오래다. 그렇다면 자신이 기르는 개 때문에 지나던 아이가 놀란 나머지 갑작스레 골목길로 뛰어나가다 이들과 부딪치는 경우도 생각해 봐야 한다. 앞서 벌어진 사달의 경우에도 미로처럼 꺾인 골목길 어디선가 차나 오토바이 등이 튀어나왔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아이들이 자주 찾는 동네 구멍가게나 문방구점, 분식집 등에서 애완견을 풀어 놓고 키우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보면 사고의 개연성은 도처에 깔려 있는 셈이다. 해답은 간단하다. 애완견에 목줄만 채우면 된다. 가장 쉽고, 가장 기본적인 안전조치다. 개는 오랜 세월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고 순화돼 온 반려동물(伴侶動物)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늑대의 후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야성이 드러날지 알 수 없다. 바꿔 말하면 다중과 마주치는 곳에 애완견을 데리고 나갈 때는 언제든 자신의 ‘완벽한 통제’ 아래 둬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애완견 훈련의 필요성이 설득력을 얻는다. 애완견 전문가에 따르면 돈과 시간을 들여 애견훈련소 같은 곳을 가지 않더라도 간단하게 훈련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물총이나 분무기를 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체벌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단, 직접적인 구타 등은 피해야 한다. 목줄을 잡아당기며 ‘안돼!’ 명령을 내리는 것도 훌륭한 훈련 방법이다. 이 경우 애완견은 맹수 조련사의 채찍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에게 벌을 내리는 ‘천벌’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어느 수의사의 홈페이지에 이런 글이 실려 있었다. “개가 사람을 물고 흉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주인의 무관심으로 인한 책임이다. ‘우리 개는 원래 사나워.’라며 주인이 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애완견에 대한 작은 안전조치만으로도 개와 주인의 행복, 그리고 이웃들의 안전에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손원천 체육부 차장 angler@seoul.co.kr
  • [엄마와 읽는 동화] 우리 아빠 이름은 반칠득/방미진

    [엄마와 읽는 동화] 우리 아빠 이름은 반칠득/방미진

    설 전날, 아빠와 나는 창원에 있는 큰집에 가기 위해 고속버스에 올랐다. “멀미 나나?” 차창에 머리를 기댄 채 잔뜩 찡그리고 있는 나에게 아빠가 물었다. 나는 대꾸도 없이 창밖만 봤다. 넓은 도로가 시원스레 펼쳐지면서 커다란 나무들과 공원이 한 눈에 들어왔다. 버스는 어느새 창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창원은 한적하고 깔끔한 도시다. 나는 창원의 탁 트인 느낌이 좋다. 하지만 큰집이 가까워 올수록 멀미는 심해졌다. “멀미 나면 오징어 먹어라.” 아빠가 내 눈치를 보며 오징어를 내밀었다. 나는 아빠를 보지도 않고 물었다. “또 술 먹을 거가?” 기어이 말하고 말았다. 출발하기 전부터 내내 하고 싶은 말이었다. “안 묵는다. 정초부터 무슨 술이고.” “약속했데이.” “알았다. 오징어나 묵어라.” 나는 그제야 무시하고 있던 아빠의 손에서 오징어를 받았다. 아빠는 날마다 술을 먹는다. 옛날부터 그랬다. 하지만 친척들 앞에서 술 먹는 것만큼은 정말 싫다. 큰집에 도착했다. 큰엄마, 큰아빠, 식이 형, 고모, 고모부, 영이, 공이. 모두 와 있었다. 다들 들어서는 우리를 빤히 보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어디 둬야 할지 몰라 고개를 푹 숙였다. 큰엄마가 아빠 손에 들린 청주 한 병을 슬쩍 보고는 말했다. “오느라 힘들었제. 차 안 밀리드나?” 우리가 거실 가운데로 들어올 때까지, 청주는 아빠 손에 그대로 들려 있었다. 아빠는 슬그머니 거실 한쪽에 청주를 내려놓았다. “야! 시내 구경하러 가자!” 식이 형이 말했다. 나는 나가면서 아빠에게 눈짓을 보내, 다시 한 번 술 마시지 말라는 다짐을 해 두었다. 하지만 아빠는 머리를 긁적이며 내 눈을 피했다. 불안한 마음이 일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따라 나왔다. 우리는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서 시내를 구경했다. “경수, 니 키 마이 컸네. 내 보다 더 크나?” 같은 나이인 영이가 바짝 다가와 키를 쟀다. 괜히 얼굴에 열이 올랐다. 나는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고 뭘 찾는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언니야. 경수 오빠야가 더 크다.” 일곱 살인 공이가 내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살갑게 구는 공이 덕에, 낯설고 어색한 기분이 많이 사라졌다. 나는 공이가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동생이라도 되는 듯, 괜히 더 살뜰하게 챙기며 공이 손을 꼭 잡고 다녔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큰집이 가까워오자 또 불안한 마음이 일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벌써 술판을 벌였는지 떠들썩한 소리가 대문 밖까지 들려왔다. 다행히 아빠는 술에 취해 있지 않았다. “한잔 더 하소.” 고모가 술을 권했다. “마, 고만 묵을란다.” 아빠가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제 시작인데 무슨 소리고. 한잔 받아라. 요새 가게는 장사 되나?” 큰아빠가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장사? 잘 되지! 안 될 리가 있나.” 아빠는 몇 년째 회사도 안 나가고 엄마가 하는 분식집 일을 거들고 있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손님도, 배달도 줄어 아빠는 하루 종일 가게 구석에 앉아 홀짝거리며 술을 마신다. 아빠는 눈을 반짝이며 술잔을 받았다. 그때부터 아빠는 자제력을 잃고 술을 마셔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풍을 쳐댔다. “야는 일등밖에 안 한다.” 아빠가 내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나는 반에서 30등 하면 잘하는 거다. “야가 이번에 중학교 들어 가제?” 고모가 물었다. “하모. 일등 중학교 안 들어가나. 무슨 시험이든 일등이라.” 입학시험 치는 중학교는 없을 뿐더러 일등 중학교도 없다. 아빠는 계속해서 빤한 거짓말을 해댔다. 친척들 얼굴에 슬슬 지겨운 표정이 드러났다. “니는 고만, 입 좀 다물어라.” 큰아빠가 일어나며 말했다. 허우적거리며 걸어가는 큰아빠의 발에 청주병이 걸려 넘어졌다. “뭐가 이래 걸리적거리노? 이게 뭐고?” “식이야 저거 좀 치워라. 술병을 와 저 놔뒀노?” 큰엄마가 삐죽거렸다. “엄마, 냉장고에 넣으까?” “아무데나 갖다 놔라.” 괜히 가슴이 오그라들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경수야. 게임하자. 이리 온나.” 식이형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동정 받는 것이 싫었다. 식이형이 나를 억지로 끌었다. 나는 못이긴 척 식이형을 따라 방으로 가면서 아무도 몰래 눈물을 찍어냈다. 설날 아침이었다. 우리는 제사를 지내고 성묘도 하고 왔다. 집에 돌아와 어른들은 다시 술판을 벌였다. 아빠는 이미 얼큰하게 취해 있었다. 나는 그만 마시라고 계속 눈치를 줬다. 하지만 아빠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피했다. 아빠는 술에 취해 또 허풍을 쳐댔다. “동네에 사장님, 사장님 하면서 따르는 사람이 천지다. 내가 운만 따랐으면 벌써 국회의원 돼 있을 놈이라. 큭큭큭.” “쓸데없는 소리 고마해라. 시끄럽다마.” 큰아빠가 말하자 고모도 맞받아쳤다. “코딱지만 한 가게하면서 무슨 사장이고? 제발 정신 좀 차리소. 분수를 알아야지.” “뭐? 분수? 지금 어떤 놈이 내한테 분수 어쩌고 지껄여 샀노? 내가 누군 줄 아나? 어? 반칠득이라고! 반. 칠. 득! 알겠나?” 아빠가 소리를 지르며 악을 써댔다. “여기 오빠야 칠득인 거 모르는 사람 있나? 조용하소.” 고모가 화를 냈다. 아빠는 더욱 악을 쓰며 몸부림을 쳐댔다. 급기야는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이기 진짜 미칬나! 니 칠뜩이 아니랄까봐 이라나! 와 이라노! 칠뜩이짓 고만해라. 어이!” 큰아빠였다. 엄마가 아빠랑 싸울 때도 이런 말을 자주 했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큰아빠가 그러니까 눈물이 핑 돌았다. “술 마시면 개다. 개!” 큰엄마였다.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닫자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식이 형이 따라 들어왔다. “새끼 우나? 뭘 그라노? 다들 술 채 가지고 헬렐레해서 그러는 거 아이가. 어디 한두 번이가? 니가 이해해라.” 매년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다. 그래서 더 싫은 거다. 식이 형도 싫다. 큰아빠 자식이라서 싫다. 친척들도 다 싫다. 영이, 공이도 다 싫다. 창원도 싫고 설날도 싫다. 추석도 싫다. 아빠도 싫다. 어른들은 한바탕 소란을 피운 뒤,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졌다. 밤이 되자 어느 정도 술이 깨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텔레비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는 과장되게 웃고 떠들었다. 그 모습이 광대처럼 우스꽝스럽게 느껴져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집에 가자.” 아빠에게 말했다. “하루만 더 있다 가자. 오랜만에 만났다 아이가. 와 그라노?” 왜 그러는지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인가? 나는 아빠를 계속 따라다니며 졸랐다. “오빠야, 더 있다 가라.” 공이가 나를 잡아끌며 말했지만, 나는 못 들은 척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마 하루만 더 있다 가그라. 이 밤에 어딜 간단 말이고. 차표도 없을 거구만.” 큰엄마였다. “야가 와 자꾸 갈라고 이라노? 아빠 회사도 안 간다 아이가. 오래 있다 가그라 마.” 고모였다. 나는 뚱하니 아빠 팔만 잡고 흔들어댔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왔다. “경수 여자 친구 만날라고 안 그라나. 니 내일 약속 있제. 그자?” 식이 형이 말했다. 고마웠다. 나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말을 하면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눈물을 감추려고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결국 아빠와 나는 한밤중에 큰집을 나왔다. 아빠가 내 손을 잡았다. 나는 그 손을 뿌리쳤다. “와?” “아빠가 술 마시고 그라니깐 그렇지! 다시는 여기 안 올 거다!” 터미널까지 가는 동안, 나는 아빠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 터미널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표도 모두 매진이었다. 우리는 멍하니 한참을 서 있었다. 이대로 다시 큰집에 가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차라리 여기서 밤을 새야지 싶었다. “뭐 좀 먹을래?” “됐다.” 나는 아빠를 쳐다보지도 않고 잘라 말했다. 아빠가 내 눈치를 슬슬 봤다. 그러더니 어디론가 가서 표를 구해왔다. “니도 내 싫나?” 대뜸, 아빠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자꾸만 눈이 시려왔다. 나는 눈에 뭐가 들어간 척, 눈을 비벼댔다. 손등에 물기가 축축하게 묻어났다. “가자!” 아빠가 나를 잡아끌었다. 우리는 사람들 틈을 헤치고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빠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아빠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아빠 손은 꺼끌꺼끌하고 차가웠다. 문득, 아빠 손한테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 말 가족이 부끄럽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남들 앞에 섰을 때요. 그럴 때면 내 가족이 남들 앞에서 초라하다는 사실이 분하고, 슬프고, 견딜 수가 없어 도망치고 싶어지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 못난 부분을 보듬어 주는 것 역시 가족이 아닐까 합니다. 경수가 아빠의 손을 꼭 잡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작가약력 1979년 울산 출생. 200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술래를 기다리는 아이’로 등단. 지은 책으로는 단편동화집 ‘금이 간 거울’(창비), 명랑심리동화 ‘행복한 자기감정 표현학교’(다산어린이), 청소년소설집 ‘라일락피면’공저(창비), 그림책 ‘비닐봉지풀’(느림보) 등이 있음.
  • [엄마와 읽는 동화] 자반고등어/홍종의

    [엄마와 읽는 동화] 자반고등어/홍종의

    거짓말도 자꾸 해 보니까 별 것 아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지도 않고 말도 더듬지 않았다. 오히려 없는 말까지 보탰다. 욱이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남은 돈을 셈했다. 천원 권 두 장과 동전 몇 개가 고작이었다. “좀 아껴 쓸 걸.” 욱이는 후회를 했다. 엄마에게 과외비로 받은 오만 원을 열흘 만에 거의 다 써버렸다. 당장 내일 쓸 돈이 모자랐다. “한 시간만 더 하자니까.” 민규가 고양이 발톱처럼 열 손가락을 세워 흔들며 툴툴거렸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던 느낌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듯했다. “이제 돈 없어. 내일부터는 네가 대.” 욱이가 다른 쪽 주머니를 훌렁 뒤집어 보였다. 먼지가 풀썩 피어올랐다. 민규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배고파. 오늘은 네가 떡볶이 좀 사라.” 욱이가 민규의 팔을 잡았다. 민규는 얼른 욱이의 팔을 떼어냈다. “내, 내가 왜?” 민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뒷걸음질을 쳤다. “내가 그렇게 많이 사 줬으면 한 번 사 줄 만도 하잖아.” 욱이가 목에 힘을 주며 또박또박 말했다. “누가 사 달랬어? 같이 있어 달라고 사정을 해서 나도 학원을 빼 먹으면서 놀아 줬더니….” 갑자기 민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마주 오던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쳐다봤다. 욱이는 창피해 얼른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민규를 쫓아가 한 대 갈겨 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지나가자 욱이는 골목에서 머리를 삐쭉 내밀었다. 민규가 바람개비처럼 팔을 빙빙 돌리며 뛰어가고 있었다. “의리 없는 자식! 두고 보자.” 욱이는 주먹을 꼭 쥐었다. 열흘 전, 순대 김밥 배달을 민규에게 들키지만 않았어도 엄마를 속이지 않아도 됐다. 하필 배달을 한 곳이 민규네 보석 가게였다. “너, 철가방이었어?” 푹신푹신한 소파에 누워 발장난을 하던 민규가 욱이를 보자 처음 한 말이었다. 번쩍거리는 보석 진열대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탁자에 김밥, 순대를 꺼내 놓는데 손이 떨렸다. 욱이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우, 우리 엄마 심부름이야.” 욱이가 더듬거렸다. 덩치로 보면 반밖에 안 되는 민규가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었다. “그 잘난 우리 반 회장이 겨우 분식집 아들이었어?” 민규가 나무젓가락으로 순대를 싼 투명 랩을 푹 찔렀다. 욱이는 가슴이 찔린 듯 움찔했다. “안 본 걸로 해 줄 테니까 걱정 마.” 민규가 문까지 따라 나오며 욱이의 어깨를 툭툭 쳤다. 욱이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민규네 가게에 다녀오고 나서 욱이는 고민이 생겼다. 잘못하다가는 또 다른 친구에게 들킬 것이 뻔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욱이는 꾀를 냈다. 보석가게를 하는 부자 민규를 팔았다. 공짜로 과외를 같이 하자면 미안할 테니 오만 원만 내라고 했다고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다. “욱이가 도와줘서 편했는데 할 수 없지 뭐. 그런 친구를 두기도 어려워.” 엄마는 당장 꼬깃꼬깃한 천원 권과 오천원 권, 만원 권으로 오만 원을 채워 주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것보다도 욱이는 어떻게 당장 민규의 입을 막을지 막막했다. “똑똑.” 빗방울이 떨어졌다. 날씨가 흐린 탓인지 간판에 일찍 불이 켜졌다. 욱이는 육교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높은 곳에라도 올라가야 답답한 가슴이 시원해질 것 같았다. 빗방울이 점점 많아졌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자동차들도 속력을 높였다.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 한 발에 두 계단을 오르던 욱이었다. 그런데도 욱이는 느릿느릿 한 계단씩 육교에 올랐다. 육교에 오르자 바람이 시원했다. 욱이는 얼굴 가득 빗방울을 받았다.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렸다. 욱이는 육교의 난간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이리 와 봐.” 육교 중간쯤이었다. 한 할머니가 소쿠리를 앞에 놓고 욱이를 불렀다.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고 할머니 혼자뿐이었다. “저, 저요?” 욱이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여기 좀 앉아 봐.” 할머니가 손짓으로 소쿠리 앞자리를 가리켰다. 욱이는 자석에 끌리듯 할머니 앞에 앉았다. 비린내가 확 풍겼다. 소쿠리 위에는 생선 한 마리가 달랑 남아 있었다. 자세히 보니 두 마리였다. 한 마리가 배로 다른 한 마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뒤에서 꼭 껴안은 모습이었다. “자반고등어야. 다 팔고 이것만 남았어. 비도 오고 날도 저물고 이것을 팔아야 집에 갈 수 있어.” 할머니가 생선을 욱이를 향해 밀었다. 어둠이 내려 할머니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저, 저는 돈이 없는데요?” 욱이가 앉은걸음으로 뒤로 물러났다. 키가 큰 트럭이 달려오는지 육교 위가 환해졌다. 아주 잠깐이지만 쪼글쪼글한 할머니의 입이 보였다. 그 모습이 욱이의 머리에 오래도록 남았다. “내일 갚으면 돼.” 할머니가 냉큼 생선을 집어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내밀었다. 욱이가 받지 않으면 바닥에 떨어질 것 같았다. 욱이는 얼결에 비닐봉지를 받았다. 할머니가 소쿠리를 챙겨서 일어섰다. 욱이도 엉거주춤 일어났다. 할머니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육교를 내려갔다. 욱이는 비닐봉지를 들고 터덜터덜 걸었다. 그냥 주머니에 남아 있는 돈이라도 털어 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에 들어서자 혼자 남은 아줌마 손님이 일어섰다.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손에 묻은 물을 탈탈 털었다. “아이구, 우리 왕자님 오셨네.” 엄마가 두 팔을 벌리며 반겼다. “아들이우? 어쩜 저렇게 듬직하게 생겼을까?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기고 엄마를 업어줘도 되겠네.” 아줌마가 호들갑을 떨었다. “업어주기는요. 몸은 커다래도 아직 애기인 걸요.” 엄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래, 영어 과외는 잘했어? 고맙기도 하지. 그만한 돈으로 어떻게 과외를 해. 학원을 다니려고 해도 십 몇만 원은 든다던데.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해.” 엄마는 아줌마가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욱이는 비닐봉지를 슬그머니 의자위에 내려놓았다. 욱이는 슬슬 엄마의 눈치를 봤다. 탁자에 걸레질을 하는 엄마가 더 작아 보였다. 욱이는 주춤주춤 엄마에게로 가서 등을 내밀었다. “엄마, 한 번 업혀 봐.” 등 뒤에서 엄마의 기척이 들렸다. “어서!” 욱이가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래도 엄마는 업히지 않았다. 갑자기 엄마가 뒤에서 욱이를 꼭 끌어안았다. 욱이는 가슴이 저릿해졌다. “우리 욱이 많이 컸네.” 엄마가 팔에 힘을 주었다. 욱이는 몸이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다. 아주 작아져 엄마의 가슴에 푹 담기는 것 같았다. 그때 욱이는 자반고등어 생각이 났다. “어, 엄마. 이거.” 욱이는 자반고등어 봉지를 내밀었다. “육교를 건너는데 할머니가 팔고 있었어. 이걸 팔아야 집에 갈 수 있대. 그래서 돈이 없다고 하자 내일 갚아도 된 대.” 엄마가 봉지 속에서 자반고등어를 꺼냈다. 불빛을 받고 자반고등어의 등이 푸르게 빛났다. “자반고등어네? 잘했어. 야무지게도 재웠네. 자반고등어는 이렇게 두 마리를 야무지게 재워야 상하지 않아. 우리 욱이와 엄마가 이렇게 한 몸인 것처럼.” 욱이는 가슴이 뜨끔했다. “외할머니께서 자반고등어를 무척 좋아하셨는데….” 엄마가 자반고등어를 뒤적이며 울먹였다. 외할머니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자반고등어는 머리는 두 개지만 마치 한 마리처럼 보였다. 욱이는 더 이상 엄마 옆에 있을 수 없었다. 마침 가게에 손님이 들었다. 엄마가 김밥을 써는 틈에 욱이는 가게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밤새 퍼붓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햇살이 쨍하니 나고 안개가 뽀얗게 피어 올랐다. 욱이는 엄마가 자반고등어 값으로 준 돈을 하루 종일 쥐고 있었다. 민규가 슬슬 욱이를 피해 다녔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욱이는 육교를 향해 뛰었다. 육교 위에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그러나 자반고등어를 파는 할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욱이는 육교의 끝에서 끝으로 두 번을 왔다 갔다 했다. 할머니가 앉았던 자리에는 김을 파는 아줌마가 앉았다. “아줌마, 여기에서 자반고등어를 파는 할머니 안 나왔어요?” 욱이는 망설이다가 물었다. 아줌마는 하품을 하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반고등어요.” 욱이가 힘을 주어 다시 말했다. “무슨 자반고등어? 여기는 그런 거 안 팔아.” 아줌마가 쌀쌀맞게 말했다. “어제 여기서 자반고등어 팔던 할머니요. 제일 나중에까지 남아 있었어요.” 욱이는 울상을 지었다. “장사도 안 되는데 왜 귀찮게 굴어. 여긴 내 자리고 어제도 내가 제일 나중에 일어섰구먼.” 아줌마가 김을 뜯어 질겅질겅 씹었다. 다시 물었다가는 혼이 날 것 같았다. 욱이는 힘없이 육교를 내려왔다. 아무리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려 보려 해도 가물가물했다. 욱이는 길 가는 할머니들을 요리조리 살폈다. “야, 강욱!” 욱이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췄다. 어느새 민규네 보석가게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가게에서 튀어 나오며 민규가 욱이를 불러 세웠다. 그때였다. 욱이의 머릿속이 환해졌다. 갑자기 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입이 퍼득 떠올랐다. “걱정 마. 오늘부터는 내가 돈을 다 댈게.” 민규가 욱이의 코앞에 돈을 들이대고 흔들었다. 그래도 욱이는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다 댄대도?” 민규가 욱이의 등을 퍽 때렸다. 그때서야 욱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반고등어의 머리가 눈앞에 떠오르면서 외할머니의 얼굴이 겹쳤다. “맞아. 외할머니의 입이야!” 갑자기 욱이가 소리를 질렀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입이었다. 틀림없었다. 욱이는 민규의 손을 뿌리치고 가게를 향해 뛰었다. 아무래도 가게에 엄마를 닮은 외할머니가 와 있을 것 같았다. ●작가의 말 가정이 행복한 세상이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다. 현실적인 여건으로 인해 불안정한 가정이 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전부 불행한 것은 아니다. 진한 사랑을 바탕으로 한다면 불행은 행복의 과정이 될 수 있다. 자반고등어는 두 마리가 합쳐 하나(한손)가 된다. 그렇게 서로 포개져야만 제대로 발효가 되어 맛있는 자반고등어가 된다고 한다. 자반고등어처럼 서로 기대고 안아주어야 하는 것이 가족이다. 짠맛이 고소한 맛이 되는 세상을 꿈꾸어 본다. ●약력 ▲대전일보신춘문예 동화당선 ▲계몽아동문학상, 율목문학상, 대전일보문학상 수상 ▲‘대나무 숲에 사는 잉어’, ‘하늘음표’, ‘하늘매 붕’, ‘똥바가지’, ‘초록말 벼리’, ‘구만이는 알고 있다, 구만이는 울었다’, ‘오이도행 열차’, ‘곳니’ 등의 작품집이 있음. ▲현재 중앙공무원교육원 근무
  • [4·29 재보선 현장] “경제 어려운데 누가 나오든 무슨 상관” 냉랭

    이명박 정부 2년차에 치러지는 ‘4·29 재·보선’의 결과는 향후 여권의 정국 운영과 여야 및 각당 내부의 역학관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작용할 전망이다. 서울신문은 14일 국회의원 재선거 지역 가운데 여야가 각각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두 곳을 둘러봤다. 한나라당내 친이·친박간 세력 다툼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는 경북 경주와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민주당 김근식 후보와 격돌하는 전주 덕진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 전주 덕진 4·29 재·보선 후보등록 첫날인 14일.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지는 전주 덕진은 ‘정중동’의 분위기였다. 큰 길을 따라 3분 남짓 거리에 있는 민주당 김근식 후보와 무소속 정동영 후보 사무실의 열기가 서서히 지역구 전체로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였다. 덕진 재선거는 ‘텃밭’을 지키려는 민주당의 김근식 후보와 정치 재개를 노리고 민주당을 탈당한 정 후보의 승부로 압축된다. 이날 정 후보는 오후 2시30분쯤, 김 후보는 오후 4시30분쯤 전주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후보등록을 마쳤다. 덕진구 금암1동에 있는 김 후보 사무실은 15일 개소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김 후보 쪽의 일성(一聲)은 ‘텃밭’이었다. “지금 같은 때에 ‘젊은 통일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같은 덕진구 진북동 정 후보 사무실에는 ‘당이 버린 정동영 우리가 살려냅시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봄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정 후보 쪽은 “후보의 경력과 지지도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유권자들의 목소리는 갈렸다. ‘전주의 아들’을 내건 정 후보가 대체로 우세했지만, 당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정 후보와 전주북중학교 동창이라는 택시기사 심범봉(56)씨는 “정 후보가 전주에서는 무조건 되지. 선거운동 안 하고 저렇게 사진만 걸어놔도 돼.”라며 정 후보 사무실 외벽에 걸린 현수막을 가리켰다. ‘어머니, 정동영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정 후보의 웃는 얼굴이 담겨 있었다. 북진동 모래내 시장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양복남(55·여)씨도 “대선후보까지 했던 사람이 전주에 내려왔는데…. 우리 아저씨랑 나랑은 정동영 꼭 찍을 거여.”라고 귀띔했다. 분식집 곳곳에는 후보들이 남기고 간 명함이 쌓여 있었다. 여기저기서 ‘당보다는 사람’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주부 김양순(49)씨는 “당을 보고 노무현 뽑았다가 이렇게 된 거 아니여. 이번에도 돈 받았다고 나오는 거 보니까 권력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나봐.”라며 씁쓸해했다. 반면 택시기사 김장환(46)씨처럼 “죽으나 사나 민주당”이라며 당을 보고 한 표를 행사하겠다는 유권자들도 있었다. 김씨는 “정치인이 당을 떠나면 무슨 힘이여.”라면서 “민주당 후보를 뽑아줘야지.”라고 말했다. 인후동에 사는 주부 박명희(46)씨는 “아직 전주에서는 민주당의 힘을 무시하지 못 한다.”면서 “전통적인 ‘선택’을 쉽게 바꿀 수 있겠느냐.”고 밝혔다. 일부 주민들은 어려운 생활 속에서 재선거는 생각할 겨를도 없다고 토로했다. 진북동의 카센터에서 근무하는 강민홍(27)씨는 “경기가 이런데 누가 나오든 무슨 상관이냐.”고 불평했다. 강씨는 “어른들은 정 후보를 좋아할지 몰라도 젊은 사람들은 아니다.”면서 “내가 논산 출신인데 정 후보가 이인제랑 다를 게 뭐냐. 해준 것도 없이 선거 때만 찾아오는 게 보기 안 좋다.”며 혀를 차기도 했다. 전주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경북 경주 “괘씸하긴 하지만 여당 후보가 돼야 경주가 발전 안 하겠능교.”, “정종복이가 이상득이 ‘양아들’이라 카데예. 우리는 무조건 박근혜입니더.”  경주 재선거에서는 출마 후보보다 그 뒤에 있는 ‘거물 정치인’끼리의 승부가 더 관심거리다. 한나라당 후보인 정종복 전 의원은 지난해 총선에서 낙선한 뒤 절치부심하며 재도전을 노려 왔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의 ‘복심’으로 불린다. 이에 맞서 박근혜 전 대표의 안보특보를 지낸 무소속 정수성 후보는 현지의 ‘박근혜 정서’에 기대,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한나라당 정 후보는 “경주의 밀린 숙제를 풀겠다.”며 ‘힘 있는 여당 후보론’을 내세웠다. 유권자들의 개발 욕구를 파고들겠다는 생각이다. 지역의 시급한 현안인 양성자가속기의 국비 지원 문제와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방폐장 유치지역 지원사업 등이 원활히 처리되기 위해서는 집권세력의 핵심인사를 ‘여의도’로 보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다. 정책대결로 나가야지, 정치싸움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앙당에서 요란하게 ‘지원군’을 보내는 것에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괜히 친박 정서를 자극해 선거가 친이·친박 대리전으로 흘러가는 것을 우려하는 눈치다.  무소속 정 후보는 ‘박근혜 대통령론’을 주창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못다 이룬 ‘경주개발’을 박 전 대표와 함께 완성하겠다.”면서 “경주를 역사문화 특별시로 재탄생시키겠다.”고 주장했다. 정 후보 쪽은 “이번 재선거에서 당선되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디딤돌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유권자들의 반응도 서로 달랐다. 이들은 민감한 선거 분위기를 반영하듯 실명 공개를 꺼렸다.  성동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40대 주인은 선거에 대해 묻자 대뜸 친이 쪽의 ‘무소속 정 후보 사퇴 종용’ 논란을 언급했다. 그는 “요새 사람들 만나면 다 그 얘기한다. 자기들이 뭐라고 후보를 사퇴하라 마라 하느냐.”면서 “지난해 총선 공천 때도 친박 의원들 다 떨어뜨려 놓고 염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전 대표가 후보 사퇴 종용 논란에 대해 “우리 정치의 수치”라고 지적한 것에 경주 현지의 표심(票心)도 술렁이고 있었다. 경주역 앞에서 가게를 하는 50대 여주인도 “정 전 의원이 서울에서 잘나간다고 카더만, 자기만 잘나갔지 경주는 그대로 아인교.”라면서 “전에는 힘 없어서 경주 발전 못 시킸나.”라고 반문했다.  반면 정 전 의원을 지지한다고 밝힌 60대 택시기사는 “경주가 발전할라 카믄 실세가 돼야 안 되겠능교. 미워도 우야겠노.”라고 말했다. 황오동에서 만난 부동산 중개업자는 “정 전 의원도 많이 변하겠다고 하는데 한번 믿어 봐야지.”라고 털어놨다.  경주의 유권자들은 이처럼 지역 발전에 대한 기대와 ‘박근혜 향수’ 사이에서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경주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대한민국 극&극] 자린고비 고시생 - 폼생폼사 고시생

    [대한민국 극&극] 자린고비 고시생 - 폼생폼사 고시생

    서울 신림동에서 고시 합격의 꿈을 키우는 수험생은 줄잡아 3만명. “고시생은 모두 폐인, ‘찌질이’”라는 우스갯소리는 이제 옛말이다. 얼굴 생김새가 서로 다르듯 그들의 모습과 삶도 제각각이다. 어떤 고시생은 옛 선배들의 ‘관습’을 그대로 따라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짠돌이’ 생활을 한다. 반면 어떤 고시생은 시험이 끝나면 외국여행을 즐기고, 수십만원짜리 만년필을 쓴다. 외제차를 몰고 통학하는 고시생의 모습을 보는 것도 이제는 유별난 풍경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을 항상 맴도는 단어는 모두 똑같다. ‘합격(合格)’. 다만 주어진 환경이 달라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모습도 차이가 나는 것뿐이다. 전자는 ‘헝그리’정신으로 무장해 ‘고시 패스’라는 고지를 정복하려 하고, 후자는 여유있는 경제력을 ‘합격’의 디딤돌로 삼는 것이다. 고시촌은 ‘헝그리’라 해서 인정받고, ‘럭셔리’라고 손가락질 받는 곳이 아니다. 잔인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합격’한 고시생이 박수받는다. 때문에 ‘럭셔리’와 ‘헝그리’ 고시생들은 위화감을 갖기보다는 한데 어울리는 모습을 곧잘 보인다. 쪽방에 살며 근검절약의 화신처럼 생활하는 ‘헝그리’ 고시생과, 겉보기에 여유로워 보이지만 항상 무거운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는 ‘럭셔리’ 고시생의 모습을 들여다봤다. ■ 헝그리? 희망으로 채워요! 고시생들에 따르면 신림동에서 가장 저렴한 고시원의 월세는 보증금 없이 11만원이다. 2평 남짓한 곳에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수준. 그래서 고시생들 사이에선 ‘잠만 자는 곳’으로 불린다. 주로 신림9동의 산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그래도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헝그리’ 고시생들에겐 소중한 안식처다. 신림동은 값싸고 맛있는 식당이 많다. 그래도 ‘헝그리’ 고시생들은 고시식당을 이용한다. 식당에서는 아무리 싸도 3000~4000원이 드는 반면, 고시식당에서는 1끼를 2400원에 해결할 수 있다. 고시식당에서는 식권을 낱개로 살 때는 3500원을 받지만, 100장을 한꺼번에 구입하면 24만원으로 할인해준다. 고시식당 음식이 지겨워 분식집을 찾는 ‘헝그리’ 고시생도 있다. 지난해부터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오모(23)씨는 1년 내내 고시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다, 최근 ‘분식파’에 합류했다. 오씨는 “분식집은 고시식당보다 크게 비싸지 않은데다, 메뉴를 직접 고를 수 있어 고시생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고기가 그리울 때 ‘헝그리’ 고시생이 찾는 식당은 1인분에 3000원 하는 삼겹살집이다. 자주 갈 순 없고, 1주일에 한 번만 간다. 고기 질은 떨어지지만 다른 고시생들과 어울릴 때는 제법 기분을 낼 수 있다고 한다. 고시생들이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독서실은 한 달에 8만원짜리가 제일 싼 것으로 알려졌다. 책상 폭은 1.2m 남짓. 책을 여러 권 펼쳐 놓고 공부하기엔 비좁다. 한 독서실의 경우 회원은 200명인데, 동영상 강의를 볼 수 있는 PC는 3대밖에 없어 치열한 쟁탈전이 펼쳐진다. ‘헝그리’ 고시생들은 학원 수강료를 아낄 수 있는 비법도 안다. 학원과 연계된 몇몇 독서실 회원이 되면 수강료를 15% 깎아 준다. 또 5명이 한꺼번에 학원에 등록하면 5%의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신림동의 헬스장은 3개월에 15만원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저렴하다. 그래도 ‘헝그리’ 고시생이 이용하기에는 여전히 벅차다. ‘헝그리’ 고시생이 체력단련의 장소로 삼는 곳은 고시촌 내에 있는 신성초등학교 운동장. 매일 밤이 되면 수십명의 고시생이 조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시생들에게 가장 소중한 게 ‘시간’이다. 하지만 ‘헝그리’ 고시생들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행정고시를 준비 중인 김모(28)씨는 지난해부터 1달에 40만원을 받고 고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김씨는 “보통 2차 시험이 끝난 여름이 되면 과외를 몇 탕해 돈을 모은 뒤, 다음해 학원비에 보태는 고시생이 많다.”고 말했다. 나이가 많은 ‘장수생’들은 고시학원에서 서무 일을 보거나 심지어는 식당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다고 고시생들은 전했다. ‘헝그리’ 고시생의 삶은 고달파 보이지만, 이들이 기죽는 일은 결코 없다. 언젠가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인재가 되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고시생 김명진(28)씨는 “합격한 뒤 지금을 되돌아보면 오히려 즐거운 추억이 될 것 같다.”며 웃음지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럭셔리? 또다른 투자예요! ‘럭셔리’ 고시생이 주로 사는 곳은 개인생활을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는 고급원룸이다. 신림동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가장 비싼 원룸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65만원(관리비 포함)이다. 이곳은 고시학원과 5분 거리인데다, 냉장고·싱크대·드럼세탁기 등이 ‘풀옵션’으로 갖춰져 있다. 하지만 값비싼 원룸에는 의외로 침대가 없다. 부동산 관계자는 “‘럭셔리’ 고시생들은 원룸에서 제공하는 조악한 침대보다는 자신의 푹신한 침대를 직접 가져오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예 고시촌 인근의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생활하는 고시생도 있다. 신림동에는 고시학원에서 20분 거리에 30평대의 아파트가 있는데, 전세가는 1억 2000만~1억 4000만원이다. ‘럭셔리’ 고시생이 주로 찾는 독서실은 한 달에 18만원짜리 최고급이다. 화장실에 비데 설치는 기본이다. 책상마다 동영상 강의를 볼 수 있도록 최신 LCD모니터를 장착한 컴퓨터가 설치돼 있다. 최근에는 비회원의 출입을 막기 위해 현관에 지문인식기를 도입한 독서실도 등장했다. 신림동에서는 1차나 2차 시험이 끝나면 외국여행을 가는 고시생을 종종 볼 수 있다. ‘헝그리’ 고시생이 보기에는 사치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들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양모(26·여)씨는 이달 말 영국여행을 할 계획이다. 지난달 1차 시험이 끝나 여유가 있는 만큼 평소 보고 싶었던 서유럽의 부활절 풍습을 견학하기 위해서다. 양씨는 지난해에도 이집트를 갔다 왔다. 유능한 외교관이 되려면 공부도 중요하지만 견문을 넓히는 것도 필요하다는 게 양씨의 생각이다. 집이 잠실인 김모(29)씨는 외제차를 몰고 신림동 고시촌으로 통학한다. 주차는 독서실에 하고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다. 김씨가 차를 모는 이유는 촌각을 아껴 공부에 투자하기 위해서다. 책상 앞에서 법전을 놓고 씨름하다 보면 지하철이 끊기는 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아 차가 필요하다. 합격생들에게 개인과외를 받는 고시생도 있다. 보통 서술형인 2차 시험 문제를 풀고 답안을 첨삭받는다. 한번 교습받는데 4만~5만원이 통상적인 가격. 고시생 윤모(27·여)씨는 “학원에 비하면 비싸지만 합격기도 들을 수 있고 꼼꼼한 첨삭 지도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체력 관리 역시 ‘럭셔리’ 고시생은 남다르다. 헬스와 수영으로 몸을 다지는 것은 물론이고, 한 제 당 50만원이 넘는 보약을 지어 먹기도 한다. 최근에는 원기회복에 좋다는 물개즙이 인기다. 한 끼에 9000~1만원 하는 뽕잎 칼국수와 초밥을 즐겨먹고, 2만원짜리 스테이크를 찾을 때도 있다. ‘럭셔리’ 고시생의 삶은 일면 화려해 보이지만, 그들은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집에서 지원을 많이 받는 대신 ‘꼭 합격해야 한다.’는 부담이 더 심하다. 3년 전에는 한 고시생이 자신의 외제차를 몰고 한강에 투신해 고시촌을 술렁이게 했다. 고시생 강모(28·여)씨는 “‘럭셔리’와 ‘헝그리’ 고시생은 서로 환경이 달라 생활에 차이가 나기는 해도, 모두 똑같은 꿈을 품고 있기 때문에 유대감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전·현대표 갈등이 자살로 내몰았나 입학사정관제…218명이 학생 10만명 면접 고시생 헝그리vs럭셔리,외제차 몰고 촌각 아껴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 차별법? 양도세 중과폭탄 제거에 부동산 시장 살까 에이즈 공포에 떠는 제천 르포…검사문의 폭주 불황 직격탄 의왕 컨테이너 기지 “지옥이 따로없다”
  • [대한민국 극&극] 용산구 이태원 고급주택가 사람들-울진군 쌍전리 농가마을 사람들

    [대한민국 극&극] 용산구 이태원 고급주택가 사람들-울진군 쌍전리 농가마을 사람들

    국토해양부와 국세청은 매년 전국의 땅값과 집값을 공개한다. 이변이 없는 한 가장 비싼 곳과 가장 싼 곳의 순위는 변하지 않는다. 가장 비싼 값이 매겨지는 곳을 금싸라기땅으로, 대조적으로 값을 가장 적게 쳐주는 땅을 지푸라기땅으로 이름을 붙여봤다. 금싸라기땅은 이름 그대로 발 한짝 딛기에도 미안할 만큼 비싼 곳이었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갑부들이 소유하고 있었다. 반면 지푸라기땅은 비록 값이 가장 싸고 홀대를 받는 땅이기는 했지만, 대궐같은 금싸라기땅에서도 볼 수 없는 자연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곳이었다. 조금 초라하긴 해도 달 한간, 나 한간, 청풍 한간 맡겨두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 이태원동 사람들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서울 명동. 소비의 중심이 강남으로 많이 옮겨갔다고 하지만 명동은 여전히 우리나라 패션의 중심지이자 금융 중심지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산업은행과 국민은행이 여의도로 이사를 가긴 했지만 원래 명동은 금융의 중심지였다.”면서 “명동에 나오면 모든 은행의 본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가장 비싼 땅은 명동 충무로 1가 24-2로 3.3㎡당 2억 1100만원이다. 스타벅스가 비싼 임대료를 내지 않겠다며 나간 자리를 후발업체인 파스쿠찌가 이어 받았다. 충무로 명동 1~2가에는 의류, 신발, 화장품 매장이 빼곡히 들어와 있다. 많은 업체들이 브랜드를 론칭할 때 비싼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명동에 매장을 오픈하는 이유는 상징성 때문이다. 명동에 없는 브랜드는 유행을 선도하는 브랜드라고 할 수 없다. 한창 경기가 좋을 때는 한달이 멀다 하고 명동의 겉모습이 바뀔 정도로 앞다투어 명동에 매장을 내려 했다. 현지 부동산중개업소에 따르면 30~40평 점포를 빌리는데 월 임대료만 3000만원을 줘야 한다. 보증금은 8억~10억원 정도다. 사람들의 움직임은 24시간 분주하다. 자주 부딪쳐도 인정이란 찾아보기 힘들고 경쟁은 치열하다. 실리를 따져 이로우면 내편, 그렇지 않으면 그저 남이다. 이곳 사람들의 머릿속은 비싼 땅에서 활동하는 만큼 시간당 매출을 많이 올리고 이익을 많이 남겨야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부자들이 좋아하는 동네는 따로 있다? 진짜 부자들은 강남에 살지 않는다. 국내 100위권내 주식 부호들 가운데 절반 이상인 54명이 서울 강북에 살고 있다. 그중 용산구가 26명으로 가장 많다. 특히 상위 10명은 대부분 이태원·한남동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고의 부자동네로 알려진 서울 용산구 이태원. 남산 자락을 타고 한강을 내려다보는 곳에 고급 단독주택들이 몰려있다. 풍수지리를 따질 때 길지(吉地)로 꼽힌다. 남산을 따라 강남과 양재동으로 이어지는 금맥(脈)이 지난다고 한다. 그래서 부자들이 많이 모여산다는 얘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단독주택이 있는 용산구 이태원1길. 2006년 국토해양부가 단독주택 공시가격을 발표한 이래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단독주택이 있다. 지난해 공시가격이 95억 9000만원. 시가의 80%를 반영한다고 했을 때, 시세는 1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된다. 보유세만 해도 1억 8667만원을 냈다. 동네에 들어서면 높은 담에 굳게 닫힌 육중한 대문 때문에 위축감을 느낀다. 대지만 1000평을 넘는 집도 있다. 100m가까운 담벼락을 친 집은 마치 작은 성처럼 보인다. 골목 여기저기 방범용 CCTV가 설치돼 있고, 집집마다 보안장비가 달려 있어 일반인의 접근을 막고 있다. 이것도 부족해 경비초소까지 갖춘 집도 있다. 안마당은 잘 가꿔진 정원과 식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 정원수들이 가득하다. 마침 집수리를 하는 집이 있어 작업인부를 통해 어렵사리 집안 분위기를 들었다. “이런 집은 처음 구경합니다. 최고급 인테리어에 첨단 전자제품, 값 나갈 것으로 보이는 그림을 걸어놓고 비 한방울 맞지 않게 해 놓고 삽니다.” ●“졸부는 사절”… 그들만의 동네 이태원1길 주변 집을 구하려면 얼마나 필요할까.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에 따르면 이 일대의 집은 평당 최고 5000만원에 거래된 적이 있다고 한다. 외국 상사 주재원을 상대로 2~3년치 임대료를 한꺼번에 받고 빌려주기도 한다. 전망이 좋은 집은 월 700만~80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사업가·의사·변호사 같은 전문직업인과 국회의원·검사 등 공직자들도 집주인이다. 돈이 있다고 해서 다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이 직업이나 학벌, 집안을 따져서 ‘아무나’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때문에 부동산중개업소보다는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를 받아 들어오는 경우가 더 많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상류층에 끼고 싶어서 들어오려는 사람이 줄을 서 있지만 물건을 내놓는 사람이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동네에는 편의점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로 물건을 사기 위해서는 차를 타고 한남대교를 건너 강남으로 넘어간다. 그것도 대부분 가정부나 비서가 하기 때문에 사실상 집밖으로 나올 일은 별로 없다. 당연히 주민들간의 접촉도 없다. 한 주민은 “하얏트 호텔 헬스클럽이 주민들이 유일하게 만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쌍전리 사람들 경북 울진. 손꼽히는 오지다. 서울 동서울 터미널에서 버스로 4시간10분을 달렸다. 36번 국도를 타고 빙글빙글 고갯길을 넘는 것이 지겨워질 때쯤이면 울진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 버스터미널은 시골의 여느 터미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어둠침침한 대합실과 간혹 버스기사들끼리 목청높이 실랑이를 벌이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한 시간에 한두대밖에 들어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버스 시간이 가까워오면 한 구석의 분식집 아주머니의 손만 잠시 바빠질 뿐이다. 서울에 있는 아들, 딸에게 줄 음식거리를 보자기로 싸 양손에 쥐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다. 터미널에서 10분쯤 걸어나오면 금방 읍내다. 울진군청과 울진군의회가 있어서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버스 정류장에는 아주머니들이 버스를 기다리며 수다를 떠는데, 외지인의 눈에는 마치 싸움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시골 읍내라고 해도 브랜드 옷 가게, PC방, 스포츠용품점, 패스트푸드점 등이 즐비하다. 재래시장에는 주민들이 고로쇠 수액, 배추, 고추 등 집에서 잘 기른 농산물들을 가지고 나와 판다. 하루 매출이라고 해봤자 3만~4만원도 안 된다. 울진은 대게, 송이버섯, 백암온천 등이 유명하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 ‘친환경 농산물’이라는 이름으로 잘 팔린다. 올 7월에는 2회 세계친환경 농업엑스포가 열릴 만큼 이곳 사람들의 친환경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집 한채 32만원… 자연 풍경은 셀 수 없는 가치 경북 울진군 서면 쌍전리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싼 집이 있다. 가격은 32만 7000원. 2008년 국토해양부 개별주택가격 조사 결과 가장 저렴한 집이다. 가장 비싼 집 한 채 가격으로 무려 3만여채를 살 수 있다. “서면은 울진에서도 최고 오지지요. 저도 한달에 한번 주택조사나 영세민 조사할 때 아니고는 갈 일이 없습니다.”(서면 면사무소 직원) 비좁은 비포장 도로를 따라 들어가니 계곡물이 아직 하얗게 얼어 있다. 배추, 무는 올해 값이 폭락해 아예 거두지 않고 밭에서 자연스럽게 거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흑염소 떼가 길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다가, 차소리에 놀라 종종걸음으로 산으로 올라간다. 집은 파란 슬레이트 지붕에 본채, 별채, 외양간이 마치 한 채처럼 보였다. 여기저기 수리, 보수를 한 흔적 때문에 전통 가옥이라 하기에도, 개량주택이라 하기에도 어색한 모습이다. 토지 대장에는 11.2㎡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훨씬 큰 이유도 수시로 개·보수를 했기 때문이다. 쌍전리 주민들은 아직도 나무를 패서 장작을 땐다. 기름보일러를 쓰는 집도 간혹 있지만, 비상용으로 마련해 둔 것일 뿐 대부분은 장작을 지핀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곳에서 어떻게 기름 보일러를 씁니까. 나무 장작을 땐 온돌방이 최고로 따뜻합니다.” 별다른 불편함이 없어 보이는 이 집의 가장 큰 단점은 화장실이었다. 20m쯤 떨어진 곳에 슬레이트를 이어 붙여 만든 물체가 바로 화장실. 나무 판때기를 대충 얹어 재래식 화장실의 모양을 겨우 갖추고 있었다. ●모두가 이웃사촌 “도시보다 편해” 때마침 마을 주민들은 정월대보름을 맞아 경로당에 모여 소박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잔치라고 해봐야 팥떡, 문어 수육, 과일에 소주 한잔씩 나누는 게 전부다. 쌍전2리의 이장님 장형진(69)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외지에서 찾아온 손님을 반갑게 맞았다. “제가 이 동네 막내입니다. 동네 심부름이라도 하려면 나이 어린 내가 이장을 해야지요.” 쌍전리 주민 대부분은 70·80대. 남자 18명, 여자 17명이 산다.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이곳에서 농사 지어가며 마을을 지킬 젊은이들은 없는 것이다. 인터넷도 지난해야 겨우 개통됐다. 그래도 우체국 택배는 하루에 한번 들어온다. 해발 800m에서 키운 배추나 무 같은 고랭지 채소나 한약재, 야콘 등을 택배로 배달하면 서울까지 이틀이면 간다. 쌍전리에는 구멍가게 하나도 없고, 장을 보려면 40㎞밖에 있는 읍내로 나가야 한다. 집값보다 교통비가 더 들 수 있다. 마을주민 중 젊은 편에 속하는 사미라(43)씨는 딸 세희(11)양을 30분 거리의 학교에 매일 아침 차로 바래다 주고 있다. 사씨는 11년 전 부산에서 서면으로 이사를 왔다. 사씨는 배추 심고 소를 치는 지금의 생활이 더없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내 일을 자유롭게 하는 이 생활이 너무 좋습니다. 다시 도시로 나갈 생각요? 전혀 없어요.” 글 사진 울진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주사님은 1시간40분째 식사중 보험사건 부실변론 변호사의 굴욕 추락 여객기 지상피해 적었던 이유 ”여덟 쌍둥이 엄마 홍보 못 해먹겠다”
  • 대낮 관악산 찾는 젊은 군상들

    대낮 관악산 찾는 젊은 군상들

    따르릉~ 휴대전화가 울렸다. 관악산을 오르던 박정진(가명·34)씨, 걸음을 멈추고 전화기를 꺼냈다. 화면에 뜬 발신자는 ‘예쁜 내 각시’ 다섯 글자였다. 결혼 2년차.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내였다. 그런데 박씨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한참을 주저주저 망설이기만 했다. 그러다 겨우 받은 전화. “응… 바빠… 거래처야… 이따 할게….” 딱 네 마디 뱉고는 서둘러 끊었다. 박씨는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어엿한 직장인이었다.”고 했다. “큰돈은 못 벌어도 아내와 딸을 돌볼 정도는 됐다.”고도 했다. 그때만 해도 모든 게 안정돼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박씨의 회사가 갑자기 무너졌다. 누군가 “키코(KIKO)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설명해 줬다. 그러나 박씨는 키코가 뭔지, 왜 그것 때문에 멀쩡하던 회사가 무너졌는지 아직 이해를 못한다. “제가 아는 건 딱 하나입니다. 아내에게 이 사실을 말하면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씨는 매일 출근하는 척 관악산에 오른다. 6일 서울 관악산에는 온갖 사연을 마음에 담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등산을 즐기려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저 시간 때울 곳을 찾아 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관악산 관리사무소 채규정 팀장은 “경제 불황 탓인지 올해 초부터 평일 30~40대 남성 등산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했다. 산 정상에서 간식을 팔던 상인도 “지난해 9월 추석 이후부터 30대 젊은 남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돈 안들고 하루 보낼 수 있어” “산이 최고 만만하네요. 돈도 안 들고 몸뚱이만 있으면 하루 보낼 수 있으니….” 혼자 산길을 걷던 박모(35)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박씨도 몇 개월 전까지는 작은 기업의 사장이었다. 직원 11명에 연매출 30억원. 작지만 알찬 폐쇄회로(CC)TV 생산업체였다. 그러나 지난 8월부터 수출길이 끊겼다. 몇 개월 만에 회사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답답했던 박씨는 혼자 산을 찾기 시작했다. “집에서 아내 얼굴만 보고 있을 수 없어서 산에 옵니다. 투자자 만난다고 거짓말하는 게 그나마 마음 편하니까….” 박씨는 말끝을 흐렸다. 지난해 9월 권고 사직한 손모(45)씨도 공장 부도로 실업자가 된 김모(38)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집에 있기 눈치 보이는데 돈 안 들이고 시간 보내기 좋아서”라고 했다. 채 팀장은 “젊은 남자 말고 늘어난 사람들이 또 있다.”고 했다. 등산로 곳곳에 모여든 보따리장수들이다. ●폐업 자영업자는 보따리장수로 “보따리에 물건 싸와서 팔기만 하면 되니 자본금이 필요 없잖아요.” 등산 장갑을 팔던 김모(59)씨의 말이다. 김씨는 지난해까지 재래시장에서 등산용품점을 하던 자영업자였다. 장사가 안 돼 올초 가게문을 닫았다. 떡과 김밥을 팔던 홍모(67) 할머니 사정도 비슷했다. 오랫동안 분식집을 하던 홍 할머니는 뉴타운 개발로 가게를 잃었다. 보상금으로 포장마차를 하려 했지만 권리금이 만만찮아 포기했다. “단속 때문에 조마조마하지만 이거라도 해야 먹고 사니까…따뜻해지면 좋아지겠지.” 할머니 뒤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외통위 박차고 나간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 성형수술 사망 딸 어머니 성형권유 죄책감에 자살 석유公, 1조원대 페루 석유社 인수 서울대 출신 타짜 특수렌즈 끼고 사기도박
  • 김현중 “내 손으로 조폭 기절시켜” 깜짝고백

    김현중 “내 손으로 조폭 기절시켜” 깜짝고백

    ’꽃남’ 김현중이 파란만장했던 과거의 학창시절을 털어 놓았다. 김현중은 26일 방송되는 SBS ‘야심만만2 예능선수촌’ 녹화에 참여해 “고등학교 때 가출을 했다가 죽을 뻔했던 순간(맞아 죽을 뻔, 배고파 죽을 뻔, 깔려죽을 뻔)이 3번 있었다.”는 발언으로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김현중은 “가출 후 친구들과 길에서 술에 취한 조직폭력배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시비를 걸더니 막무가내로 친구를 때리기 시작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문제는 김현중이 그들을 말리면서 더 큰 일이 벌어졌던 것. 그는 “그들을 말리면서 한 명을 덥석 잡았는데 하필이면 눈이 온 후라 뒤로 벌러덩 넘어지더니 그대로 기절해버렸다.”고 말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김현중은 “곧 보스와 무리들이 우르르 나타나 보스가 기절한 그 남자를 때리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하지만 뒤이어 또 다른 친구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상황은 더 복잡하게 꼬이게 됐다고. 이 외에도 김현중은 너무 배가 고파 분식집에서 튀김을 먹다 튀김을 그대로 손에 들고 도망쳤던 사연, 잘 곳을 찾아 건물 보일러실을 전전하다가 찜질방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발견했던 일, 재건축 아파트 건물 지하에서 잠을 자다가 철거 직전에 기적적으로 빠져나왔던 기절초풍할 사건 등을 털어놓는다. 김현중의 파란만장한 가출 스토리는 26일 오후 방송되는 SBS ‘야심만만2 예능선수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제공 = SBS) 서울신문NTN 김예나 기자 yea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수원 못골시장 방송 19일 첫 전파

    수원 못골시장 방송 19일 첫 전파

    경기 수원시 지동의 식재료전문 전통시장 ‘못골시장’ 상인회가 19일 ‘못골 온에어’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시작한다. 16일 시에 따르면 못골시장 상인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의 하나로 시장 안에 작은 방송부스를 설치했다. 방송은 완도상회 이충환(36), 쉼터분식집 김승일(32), 신 지동순대 김덕원(41)씨 등 상인 3명이 프로그램 진행과 대본 작성, 장비 조작 등을 맡아 운영한다. 시장상인회 총무이자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이씨는 ‘통통튀는 이야기’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해주겠다고 밝혔다. 그는 “고객들에게 좋은 시장이 되려면 먼저 상인들끼리 불협화음이 나지 않고 소통이 잘 돼야 한다.”면서 “우리 방송이 시장의 양념이 되도록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했다. 4대째 못골에서 살아 ‘못골지기’를 자처하는 김승일씨는 시장골목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전해줄 예정이다.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4년 전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김덕원씨는 ‘김나는 솥두껑’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정겹고 포근한 세상이야기를 들려 줄 작정이다. 그는 “옛날 친구들과 시장 상인들이 떠나도 못골시장의 전통은 아직 살아 있다.”며 “관광시장으로 탈바꿈하는 못골시장을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못골시장에서는 이밖에 점포마다 얽힌 이야기를 책과 영상으로 만드는 ‘이야기상점 87’, 전국의 제철 특산물을 선보이는 ‘시끌벅적 난장’, 어린이 문화·경제교육 프로그램 ‘와글와글학교’ 등 막바지 제작 작업이 한창이다. 1790년대 중반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조할 당시 성밖시장의 일부로 형성된 못골시장은 1970년대 이후 식자재와 음식을 판매하는 시장으로 특화돼 87개 점포가 모여 전통시장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정부와 수원시 예산 10억원을 지원받아 추진 중인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은 오는 5월 마무리된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여성&남성] 고유가시대 짠돌이·짠순이로 사는법

    [여성&남성] 고유가시대 짠돌이·짠순이로 사는법

    ‘월급만 빼고 안 오른 것이 없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치솟는 기름값에 승용차를 세워둔 지 이미 오래고, 가족과 외식 한 번 하려고 해도 몇번을 고민하다 포기하기 일쑤다.“오늘은 내가 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던 회사 동료들도 말수가 부쩍 줄었다. 최대 소비층인 젊은 남녀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남성과 여성은 소비품목과 행태가 다른 만큼 가장 먼저 줄이는 지출도 남녀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남녀의 ‘지출줄이기’ 노력이 어떻게 다른지 짠돌이·짠순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장형우 김정은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돈 아끼려면 술값 먼저 줄여야-男 대부분의 남성들은 술값만 줄이면 돈 나갈 데가 확 줄어든다고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김모(31)씨는 그동안 회사 근처 바(bar)를 자주 찾았다. 김씨는 회사업무가 바쁘기 때문에 술을 자주 마실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그저 업무 끝나고 가끔 회사직원들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회식을 하거나, 친구들과 어쩌다 한 번 술자리를 갖는 게 전부다. 하지만 술을 좋아하는 김씨는 업무가 늦게 끝나도 부담없이 한 잔 할 수 있는 곳을 찾게 됐다. 그래서 회사 앞에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바에 자주 가게 됐다. 예전에는 바에 가면 항상 양주를 마셨다. 술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보니 독하게 한두잔 먹고 빨리 술기운이 돌아야 금방 자리를 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회사가 어려워지다보니, 그마저도 못하게 됐다. 점점 발길이 뜸해지고 술생각이 나면 근처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들이켜는 일이 더 많아졌다. “소주를 마시면 아무래도 다음날 업무에 지장이 있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래도 요즘 같이 하루가 다르게 물가가 뛰는 세상에 예전처럼 비싼 양주를 마시지는 못 하겠어요.” 회사원 유모(39)씨는 호인이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했다. 특히 술자리에서 여러 사람과 어울려 얘기 나누는 걸 즐겼다. 주 4일 정도는 술을 마셨다. 월급의 반 정도를 술값으로 썼다. 늘 술값을 계산했기 때문에 동료나 선후배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집에서는 구박받기 일쑤였다. 부인은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줄 아느냐. 술 좀 작작 마셔라.”고 바가지를 긁곤 했다. 그래도 유씨는 술과 사람에 취해 살았다. 그런 유씨가 최근 변했다. 술자리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물가 시대를 맞아 가정생활이 휘청거리는데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유씨는 동창, 선후배 등과의 모임을 대폭 줄였다. 절친한 친구가 불러도 사양했다. 업무상 피할 수 없는 자리만 참석했다. 그것도 1차에서만 잠깐 얼굴을 내민 뒤 계산하기 전에 슬그머니 빠져 나왔다. “친구나 선배들에게서 ‘호인이 좀생이가 됐느냐.’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때도 있어요. 하지만 가계가 휘청하는데, 호인인들 어쩌겠습니까. 아내와 자식을 생각해서 최대한 아껴야죠.” ●알뜰생활 위해 취미도 과감히 포기 요즘같은 고물가 시대에는 좋아하는 취미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와인수집이 취미인 회사원 임모(34)씨는 최근 자신이 가지고 있는 20만원대 보르도 와인을 인터넷을 통해 팔았다. 취미생활로 인한 지출이 가계부에서 너무 많은 비용을 차지하기 때문에 비용을 줄여보자는, 스스로의 다짐이었다. 직장경력 5년차로 미혼인 임씨는 최근 동료에 비해 모은 돈이 너무 적다는 것을 알았다. 동료와 차이가 나는 이유는 와인을 사들이는 데 있었다. 월급이 200만원대인데 한 달이면 와인에 들어가는 돈이 거의 70만원 정도나 됐다. 또한 동료는 임씨의 취미가 ‘와인 수집’이 아니라 ‘와인 마시기’이기 때문에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을 깨우쳐주었다. 임씨는 “와인도 좋지만 사람들과 즐기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면서 “솔직히 와인과 함께 하는 맛에 결혼도 서두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와인을 끊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임씨는 가장 큰 구입처인 마트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근처 슈퍼에서 소규모로 장을 본다. 또한 퇴근길에 와인셀러를 들르지 않기 위해 다른 길로 다닌다.“최근 몇주 동안 한 병의 와인도 안 샀습니다. 지금은 집에 모아 놓은 것을 마시기는 하는데 솔직히 좀 불안합니다. 요즘에는 와인보다 DVD에 재미를 붙이고 있죠.” 신혼의 재미에 흠뻑 빠진 회사원 김모(32)씨는 주말 부인과의 즐거운 외식을 포기했다. 맞벌이 부부인 그들은 평일에 마주앉아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김씨는 이른 아침에 출근해 밤늦게 들어오고, 간호사인 부인은 주·야간 근무가 매주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토요일이나 일요일 가운데 함께 쉬는 날 점심을 근사하게 먹고 데이트를 즐겨왔다. 하지만 내집마련이라는 ‘지상과제’를 풀어야 하는 김씨 부부는 고심 끝에 주말 외식을 포기했다. 함께 시장을 보고 같이 요리 해서 주말외식을 대신하기로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알뜰한 방식으로 ‘데이트 코스’를 바꿔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부부가 같이 시장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사고, 다정하게 요리 하고, 주위 사람 눈치보지 않고 서로 음식을 떠먹여 주다보니 외식할 때보다 오히려 더 정이 드는 것 같았다. “외식할 땐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생각에 조금 무리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는데, 지금은 더 알뜰하게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커피값과 옷값이 가장 무서워-女 여성들은 가장 손쉽게 줄일 수 있는 항목으로 커피값과 옷값을 꼽았다. 인터넷포털에 근무하는 이모(30·여)씨는 얼마전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 모임을 가졌다. 친구들과 한참 수다를 떨다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쉬웠다. 게다가 이번 모임은 거의 석달 만에 보는 친구들과의 만남이었다. 예전에는 그래도 한달에 한번은 정기적으로 만나곤 했는데, 요즘은 다들 사는 게 팍팍해서인지 예전처럼 자주 만나기 힘들다. 친구들은 요즘 물건 사기가 겁난다고 했다. 한 친구는 우스갯소리로 “나는 요즘 분식집 가면 떡라면 시킬거 그냥 라면 시키게 되더라.”고 말했다. 이씨도 요즘 식당에 가면 메뉴판에서 일단 가격부터 보는 습관이 들었다. 이왕이면 싼 걸로 고르게 된다는 것이다.“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난 그날도 결국 한 곳에서 커피까지 해결했죠. 예전에는 커피전문점에 가서 30분 정도 더 얘기하다 나오곤 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직장인 김모(25·여)씨는 커피값과 옷값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두 품목이 씀씀이 대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어머니로부터 뼈아픈 충고를 들어야 했다. 과다지출을 일삼는 딸의 행태가 못마땅하셨는지 호되게 야단을 친 것이다. 결국 지난달부터 그녀는 식사 후 즐겨 찾던 커피를 끊고 월급날에 맞춰 감행했던 옷구입도 중단했다. 그랬더니 지난달에는 수중에 60만원이 여윳돈으로 남았다. 또 식사 후 습관적으로 마시던 커피를 끊자 한달 사이 체중이 3㎏이나 빠져 일석이조 효과를 거뒀다. “두 달전만 해도 월급타면 남는 돈이 없을 정도였어요. 백화점을 갈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옷들이 얼마나 많았다고요. 하지만 앞으로도 커피는 완전 끊을 생각이고, 옷은 정말 필요한 것만 사려고 해요.” ●교통비 절감으로 고유가 파고 넘는다 교통비 줄이기에 주력하는 경우도 많다. 회사원 윤모(33·여)씨는 최근 택시비를 줄이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광화문에 직장이 있는 윤씨는 신대방동 집까지 1만 2000원씩 주고 택시를 타곤 했다. 최근 물가가 너무 치솟자 경제적으로 살기 위해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윤씨는 택시비가 한 달이면 20만∼30만원이나 든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다. 윤씨가 택한 ‘택시비 줄이기 작전’은 3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출근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늦잠을 자지 않도록 알람시계를 하나 더 구입했다. 또한 밤에 술을 마시는 횟수를 줄였다. 할증으로 나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꼭 택시를 타야 할 때는 동료나 선배와 함께 이용하는 것이다. 최소한 택시비의 절반은 아낄 수 있다. 학원강사 정모(29·여)씨는 승용차 이용을 사실상 포기했다. 기름값을 줄이기 위해 웃돈을 주고 휘발유차가 아닌 경유차를 선택했지만, 최근 경유값 폭등으로 기름을 넣을 때마다 쓰린 속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부득이하게 여러 곳을 옮겨다니며 강의를 하다보니 승용차와 같은 이동수단이 필요했던 그는 마침내 스쿠터를 구입했다. 승용차를 이용할 때 연료탱크를 가득 채우면 7만∼8만원이나 들었는데 스쿠터는 1만원밖에 들지 않는다. 또 1ℓ만 넣어도 25㎞는 거뜬히 갈 수 있었다. ●나만의 고물가 극복 노하우! 디자인업계에 종사하는 이모(34·여)씨는 ‘신상품’에만 눈길을 주다가 고물가를 극복하기 위해 ‘리뉴얼’의 기지를 발휘하기로 했다. 이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계절별로 새 옷을 장만했다. 일의 특성상 패션에 있어 남다른 감각을 과시하고 싶었다. 결혼 전에는 ‘쇼핑광’이었다.‘나’만을 위해 살면 됐기 때문에 철마다 새로 선보인 옷들은 거금을 들여서라도 꼭 구입했다. 이씨는 남편에게 “계절당 한 벌 정도의 옷은 사겠다.”고 했고, 남편도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결혼 생활 3년 동안 지켜져 오던 이 같은 불문율도 올해 들어 깨지고 말았다.‘고물가’라는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음식비, 교육비, 교통비 등을 생각하면 수십만원에 달하는 옷을 선뜻 구입할 수 없었다. 아이가 생긴 뒤에는 여러 벌의 비싼 옷을 산다는 것이 언감생심이었다. 고심 끝에 이씨는 리뉴얼로 눈을 돌렸다. 옛것을 감쪽같이 새것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씨는 동대문 쇼핑몰을 돌며 저렴하고 디자인이 뛰어난 액세서리를 샀다. 그것을 기존 옷에 붙여 새로운 옷처럼 바꾸었다. 직장에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언제 또 새 옷을 샀느냐, 역시 감각이 뛰어나다.”는 등 듣기 좋은 말을 했다.“적은 비용으로 ‘신감각 귀재’라는 예전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어요. 리뉴얼은 고물가 시대를 헤쳐 나가는 가정주부의 지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한접시에 1만2000원 속볶는 떡볶이

    한접시에 1만2000원 속볶는 떡볶이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는 가운데 값싸고 푸짐해 국민의 대표 간식으로 사랑받아온 떡볶이 값마저 급등하고 있다. 분식집들이 브랜드화하면서 떡볶이 가격을 지나치게 인상하는 등 고가 상술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떡볶이 촌’인 신당동에 본점을 두고 있는 Y떡볶이집의 떡볶이 한 접시 가격은 무려 1만 2000원.1주일 전만 해도 1만원이었는데 그새 2000원이 올랐다. 웬만한 삼계탕 값보다 비싼 셈이다.Y떡볶이는 블로그나 인터넷 미니홈피 등을 통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현재 강남, 명동, 홍대입구, 부산에 체인점을 냈다. 1만 2000원짜리 떡볶이라 해도 일반 떡볶이와 별 차이가 없다. 매운 맛이 조금 더 셀 뿐이다. 밀가루를 섞었기 때문에 100% 쌀떡도 아니다. 굳이 특징을 찾자면 떡볶이에 치즈를 조금 뿌렸다는 점이다. 강남, 신촌 등 서울시내 주요지역에 체인점을 낸 S분식도 떡볶이 한 접시에 기본 5000원이다. 여기에 치즈를 추가하면 7000원으로 가격이 뛴다. Y떡볶이집에서 만난 회사원 최모(27·여)씨는 “처음엔 메뉴판의 가격을 잘못 본 줄 알았다.”면서 “떡볶이 한 접시 가격이 1만 2000원이란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28·여)씨는 “Y떡볶이와 S떡볶이 모두 먹어봤지만 특별히 맛이 더 좋지는 않다.”면서 “아무리 고물가 시대라지만 상술이 너무 지나치다.”고 씁쓸해했다. 이에 대해 떡볶이집 주인은 “우리는 비싼 청양고추를 쓰고 햄과 오뎅도 최상품만 쓴다.”면서 “고품격 그릇 가격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글 사진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키위소스 샐러드를 밥반찬으로 먹어본 적이 있니?

    키위소스 샐러드를 밥반찬으로 먹어본 적이 있니?

    역시나 사람은 먹고 살아야 하는 동물인지라 식생활에 있어서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식사를 한마디로 하면 ‘기사식당 백반스타일’이다. 나물 몇 가지와 두부조림, 어묵 볶음, 그리고 된장찌개만 있으면 만화에 나오는 며칠 굶은 그지 마냥 잘 먹는다. 이런 식습관은 굉장히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다. 우리 엄마는 내가 아직 어렸던 시절 피아노 학원을 경영하셨고 그런 이유로 나는 항상 혼자 밥을 먹었다. 엄마는 가끔 라면을 사두고 끓여먹으라고 하기도 했지만 보통은 삼천 원을 주면서 사먹고 오라고 하곤 했다. 당시에 삼천 원이면 롯데리아에서 배터지게 햄버거를 사 먹을 수 있던 돈이었고, 물론 분식집에 가려면 친구를 두세 명쯤 더 데리고 가도 끄떡없는 돈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항상 햄버거나 먹고 떡볶이나 돈가스만 먹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어린 마음에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새로운 외식문화를 개척하기로 마음먹고 시장 한복판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선지국과 순대국을 발견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갓 일고여덟 살 정도 밖에 안됐을 꼬맹이가 시장 국밥집에 앉아 신문 펴들고 순대국밥을 기다리는 광경은 좀처럼 상상이 안 되지만 일단 떠올리고 나면 정말 웃긴다. 옆에는 아저씨들이 대낮부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고…. 여튼 엄마가 피아노 학원을 그만 둘 무렵 나는 고등학생으로 지방에서 자취를 했다. 당시의 우리 집 식습관에 어떤 일대기적 혁명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고등학교 시절 서울에 있는 본가에는 분기에 한번 꼴로 다녀오곤 했기 때문에 정확하게 어떤 일이 일상에서 일어났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이후 대학시절을 저녁엔 술 마시고 아침은 굶고 나갔으므로 패스한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지금이 내 인생에서 기억이 생긴 후 처음으로 엄마가 차려준 밥을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첫 기회인 것이다. 물론 중간 중간 얻어먹은 적은 있지만 가끔이니까 그냥 참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틀리다. 이젠 정말 엄마가 차려준 ‘집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이 엄마가 차려준 밥이라는 게 정말 미친 노릇이다. 군에 있던 시절, 동료들은 항상 엄마가 차려준 집밥이 최고라며 짬밥은 너무 맛이 없다고 불평을 하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집밥이 어쨌다고? 집밥? 그거 맛없거나 화났을 때 외치는 형용의성어 같은 거 아니야? 박세회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집밥’의 활용 * 비가 오고 땅에 물기가 있을 때 :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참 땅이 참 ‘집밥집밥’하구만. * 음식점에 가서 밥이 맛없을 때 : 이거 그냥 ‘집밥’ 아냐? * 군대에서 고참이 아주 화났을 때 : ‘집밥’ 아 정말 우리 집의 집밥을 설명하기란 너무 어렵지만 예를 몇 가지 들어보자면 어제도 우리 집에서는 느타리 한 팩이 죽어서 나갔다. 얼마 전에 우리 집 냉장고에는 느타리가 두 팩 있었다. 그래서 나는 왜 느타리를 볶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야채는 익히면 영양소가 다 빠져나간데, 그거 그냥 초장 찍어먹을 거야” 그래서 나는 한 팩을 꺼내서 맛있게 볶아서 고추장에 비벼먹고 나갔다왔더니 내가 볶아 놓은 남은 느타리는 엄마가 다 먹었다. 그리고 오늘, 그때 남은 느타리 한 팩이 죽어 있길래 내가 버렸다. 사건의 흐름이 이해가 안 되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엄마는 느타리를 볶으면 맛있다는 걸 알았지만 가만 놔두면 내가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냉장고 근처에 가지 않았다. 마치 내 잘못 같다. 그저께 먹었던 알탕에는 알밖에 없었다. 마늘과 고추장 그리고 알과 소금이 그 알탕에 들어간 전부였다. 역시 야채는 익히면 안 되는 거라는 변명이지만 호박이랑 감자 써는 게 그리 귀찮은가? 나는 대체 이놈의 웰빙 바람이 어디서 불어온 건지 모르겠다. 어떤 놈이 우리 엄마에게 야채를 익히지 않아야 더 좋다는 정당성의 칼을 쥐어 준 것인가? 나보고 맛없는 음식을 자꾸 먹다가 스트레스로 일찍 죽어버리라고? 신선한 샐러드에 키위소스를 뿌린 걸 밥반찬으로 내놓는 집에서 영양소가 중요할 것 같은가? 아니 그러면 엄마 대체 이번 추석에트랜스유가 잔뜩 들어간 피자와 치킨을 시켜먹은 이유는 뭐야? 고기는 익혀야 되니까? 난 지금 수사적인 의문문을 잔뜩 늘어놓고 있는데, 정말 두려운 건 우리 엄마가 이 글을 읽으면서 이 의문문들에 ‘응 그렇지 잘 알고 있네’ 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나는 요리를 잘 한다. 사실 자기가 먹어서 맛있으면 되는 게 일반인의 기준이지만 나는 물론 레스토랑 주방에 있을 만큼은 아니지만 일반인들 중에선 좀 하는 편인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을 가서 내가 소테를 잡으면 친구들이 항상 대체 어디서 그런 요리를 배웠느냐고 물어보곤 한다. “뭐 도와줄 거 없어? 근데, 너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친구야 너도 우리 집에서 삼 년만 살면 이 정도는 금방이야. 거기 있는 고추 좀 줄래?” “이거? 여기 있어. 근데, 왜? 어머니가 요리를 아주 잘하시나 보지? 좋겠다. 우리 엄마는 항상 간이 좀 안 맞는데” 이쯤에서 내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이 자식 그냥 해주는 것이나 먹고 조용히 있을 것이지 가슴 아픈 과거는 왜 건드려. “응, 그래 그렇다고 해두자. 길게 설명하려면 내 정신 건강에 안 좋으니까. 너 혹시 키위소스 샐러드를 밥반찬으로 먹어본 적 있니?” 박세회 :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후 진로 탐색을 위해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음악활동(sunstroke.co.kr)과 영화감상에 매진하고 있는 보헤미안 백수입니다. 모든 이의 정신연령을 자신처럼 10살쯤 낮추는 것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월간 <삶과꿈> 2007년 11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깔깔깔]

    ●대략 난감한 상황 ▲화장실에서 맛있게 담배를 피운 다음 손가락으로 튕겨 담뱃불을 끄려는데 불똥이 행방불명되었을 때.예전에 바지 속으로 들어갔던 기억이 있어서…. ▲업무시간 중 몰래 라면먹으러 분식집에 갔다가 나처럼 몰래 나온 회사 고위간부와 만났을 때. ▲애써 외면했는데 설상가상으로 그 고위간부가 내 라면값까지 내고 갔을 때. ▲직장동료 집들이 가서 고스톱을 치던 중 그날 따라 어찌나 패가 잘 붙던지, 본의 아니게 회사 간부에게 ‘쓰리고’에 ‘피박’까지 씌울 상황인데, 내가 앉은 방석 밑에서 화투 1장이 발견됐을 때. ▲만원 엘리베이터에 가까스로 탔는데 회사 고위간부가 바로 뒤따라 들어오고, 마침 ‘삐잉’하며 경고음이 날 때. 뭐, 어쩌겠어…. 예의상 내가 내려야지.
  • 마포구 저소득자녀 돕기 본격화

    마포구는 4일 차상위 저소득층 자녀에게 급식과 교육경비를 지원하는 ‘꿈나무 키우기 결연사업’에 신용보증기금 ‘이웃사랑나눔단’이 후원자로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꿈나무 키우기 결연사업은 ‘다섯명이 정성을 모아 한 명을 돕자.’는 슬로건 아래, 소득 최하위 계층인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차상위 저소득층 자녀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사업을 시작한 지난 3월부터 지금까지 지역내 61개 기관·단체와 585명의 후원자를 모아,1억 8840만원에 해당하는 1570계좌를 만들었다. 매달 한 계좌당 1만원씩 갹출해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5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후원자 중에는 서교동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방송인 박경림(10계좌)씨와 마포구청에서 2년여동안 공익근무를 한 뒤 1000만원을 후원금으로 기탁하기로 약속한 배우 소지섭씨도 포함돼 있다. 이날 구청장실에서 협약식을 맺고 결연사업 후원 단체가 된 이웃사랑나눔단은 이달부터 매월 100만원씩 한해 1200만원을 후원하기로 했다. 이웃사랑나눔단은 신용보증기금의 9개 전국지부에서 사원 1506명이 참여한 지역밀착형 봉사단체이다. 구 관계자는 “이번 협약을 계기로 저소득층 자녀 20명을 더 도울 수 있게 됐다.”면서 “앞으로 후원자 개발과 함께 동사무소, 학교를 통해 지속적으로 결연 대상자를 발굴해 더 많은 청소년이 혜택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만두 한 접시

    만두 한 접시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무렵, 뜨끈한 칼국수 생각이 나서 지하철역 근처 분식집을 찾았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이 별로 없었다. 학생인 듯한 아가씨와 중년의 아주머니가 따로 앉아 칼국수를 먹고 있었고, 나도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칼국수 하나 주세요.”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또 손님이 들어왔다. 동남아에서 온 까무잡잡한 남자와 한국 여자 그리고 등에 업힌 어린 아기였다. 얼른 자리를 잡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며 낯설어하자 주인이 “그리 앉으세요” 한다. 주인이 가리킨 테이블에 앉으며, 여자는 등에 업은 아기를 앞으로 안았다. 두 사람은 벽에 붙은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만두 1인분을 주문했다. 얼른 보아도 그리 넉넉해 보이지 않는 차림새와 음식 주문하는 모습에 식사를 하던 세 사람의 눈이 모두 그쪽으로 쏠렸다. 왜 어른 두 사람이 와서 만두 1인분을 시켰을까? 나만이 아니라 먼저 와서 식사를 하던 중년 여인도 자꾸 그쪽으로 눈을 주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여자는 자기 앞에 만두 접시를 놓고 먹었고, 남자는 아기를 건네받아 품에 안고서 젓가락으로 만두를 잘게 잘라서 아기 입에 넣어주었다. 남자는 아기가 흘린 것은 입에 넣으면서도 다른 만두는 먹지 않았다. 갈등이 일었다. 그 가족에게 만두를 더 주문해주고 싶었지만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같아 망설여졌다. 그러는 사이 먼저 들어왔던 두 사람이 나갔고, 남자는 만두 한 개를 다 먹이고 나서 또 한 개를 잘라 아기에게 먹였다. 아빠를 닮아 눈이 동그란 아기는 만두를 맛있게 먹으면서 아빠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해맑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일어났다. 계산대 앞으로 가 주인에게 귓속말을 했다. “저 사람들 만두 값도 함께 계산해주세요.” “아까 먼저 나가신 아주머니가 벌써 계산하셨는데요.” “그럼 만두를 한 접시 더 갖다 주세요.”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뜨거운 국수를 먹느라 흘린 땀이 저녁 바람에 시원하게 느껴졌다.
  • 그때 먹은 마음, 잊지 않을게

    그때 먹은 마음, 잊지 않을게

    저는 꽃다운 열여덟 살의 고등학생입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게 가장 즐겁고요, 취미는 책 읽기와 노래 부르기랍니다. 지금까지 제 소개를 조금 해드렸는데, 역시 다른 아이들과 별다를 것이 없는 아이라고 생각하셨겠죠‘?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저는 알았습니다. 제가 여느 아이들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뭔가가 친구들과 달랐거든요. 친구들은 신나게 뛰어다니는데 저는 항상 숨이 차고 다리도 아프고, 그러다가 주저앉고 매일같이 넘어져서 무릎은 성할 날이 없고. 그때부터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나는 뛰지 말아야겠구나. 운동이란 건 내겐 좀 힘든 건가 봐’ 하고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상황은 같았습니다. 저는 정말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은데, 아이들이 ‘얼음 땡’을 할 때마다 저는 깍두기만 해야 했거든요. 친구들에게 뭐라고 말도 못 하고,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는 아이였습니다. 학년이 올라가고 어느 날 부모님과 함께 신촌에 있는 종합병원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제가 다리를 저는 건 태어날 때 조금 잘못 태어나서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제 병명은 ‘뇌성마비’였습니다. 그동안 부모님은 제가 충격을 받을까 봐 말씀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듣고 멍해졌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뇌성마비 아이들이 나오면 팔다리가 꼬이고 어버버버 말도 잘 못해서 진짜 불쌍하다, 좀 징그럽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 병명이 뇌성마비였다니…‘…. 일곱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 체르니 40번까지 쳤다고 하니 의사선생님은 특이한 케이스라고 하시더군요. 저 같은 뇌성마비 아이들은 팔다리가 꼬이니까 피아노를 절대 칠 수 없다면서 놀라는 기색이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제 머릿속을 스쳐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물건을 들면 손을 떨고 잘 건네지 못한다는 것을요. 전 그냥 “나 수전증인가봐, 그치‘?” 하고 친구들과 웃고 지나갔었는데 그것이 뇌성마비의 증세였다니…‘…. 의사선생님은 저에게 똑바로 서보라고 하셨습니다. 제 딴에는 정말 학교에서 배운 차렷 자세로 섰습니다. 그런데 화면에 나온 제 발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양쪽 발이 엄지손가락 길이만큼 차이 나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제 왼쪽 발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 이상이더군요. 저는 왼쪽 발 면적의 1/5 정도만 딛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왼발을 잘 딛지 않으니까 발이 자랄 수 없었고, 뼈도 휘어져 있고 발 모양이 많이 이상했습니다. 병원에서 지체장애 5급 판정을 받고 와서 며칠간 저는 밤마다 베갯잇을 적셨습니다. 제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나 잘 못 걷잖아. 나 장애인 아냐‘?”라고 물으면 친구들은, “네가 왜 장애인이냐‘? 넌 좀 다르게 걷는 것뿐이잖아.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 지희야 힘내!” 이렇게 대답해주었거든요. 친구들은 저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 한 말이었겠지만 저는 그 말들이 떠올라 더욱더 가슴이 아렸습니다. 내가 진짜 장애인이구나, 보통 사람과는 정말 다르구나 하고요. 저는 1989년 11월 24일 생입니다. 원래 예정일은 1월 중순 정도였지만 일찍 엄마의 양수가 터져버리는 바람에 우스갯소리처럼 ‘미끄러져’ 나온 것이죠. 막상 태어나고 보니 저는 탯줄을 목에 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30분간 여느 갓난아이처럼 ‘응애’ 하고 울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의사선생님은 저를 뇌성마비라고 진단하셨고, 왼쪽 다리의 신경에 이상이 있다고 하셨답니다. 그래서 전 세 살이 지나도록 걷지 못했습니다. 돌이 되기 전부터 걷는 아이들도 있는데 말이죠. 제가 했던 걷는 연습은 왼쪽 다리의 일부분만 딛고 걷는 것이었고, 그 연습이 잘 되지 않아 어렸을 적 자주 넘어졌던 것입니다. 중학교 3학년 정도부터는 잘 넘어지지 않았거든요. 며칠간 남몰래 울고 나서 저는 결심했습니다. ‘뭐 어때‘? 난 경미한 뇌성마비일 뿐이잖아. TV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스스로 걷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손발도 꼬이지 않았고 얼굴이 뒤틀리지도 않았고 발표도 똑똑히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의사선생님 얘기와는 다르게 글씨도 예쁘게 쓰고 피아노도 남들만큼 치고 공부도 그 정도면 잘하는 거잖아‘? 남들과 아주 조금 다른 거잖아.’ 그렇게 마음을 바꿔먹은 것이죠. 이렇게 마음을 먹은 뒤 초등학교 생활을 잘 마치고 인근 중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중학교에 가서는 제 성격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병원에 다녀온 뒤 한 다짐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조금씩 활기찬 아이가 되어갔습니다.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친구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힘들어할 땐 옆에서 위로도 하고 웃긴 농담도 건네는 그런 친구.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분식집으로 몰려가고, 시험기간이 끝나는 날이면 노래방에 가서 스트레스도 풀고요. 그러다 중학교 2학년 때 저에게 있어서는 큰 사건이 터졌습니다. 2003년 12월 10일, 제게는 잊히지 않는 날이랍니다. 저는 체육시간에는 할 수 있는 부분만 따라하고 못 하는 부분은 친구들이 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거든요. 그날은 매트 위에서 구르기 연습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남학생들의 매트 구르기를 봐주기 위해 운동장 저편으로 가 계셨고, 그동안 여학생들은 운동장 한쪽에서 구르기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12월 초순이라 날이 추워 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뒤로 물러나 팔짱을 끼고 친구들이 연습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곁에서 “지희야, 너도 해볼래‘?” 하더군요. 날도 춥고 몸이 뻑적지근했던 터라, “아니야. 난 안 할래” 하는데 친구가 저를 매트 위로 끌어당겼습니다. 순간 저는 매트 위로 퍽 하고 넘어졌고, 거의 정신을 잃었습니다. 아이들의 부축을 받고 일어선 저는 몽롱한 상태로 양호실까지 걸어갔고, 놀라서 달려오신 체육 선생님과 근처 병원에 갔습니다. 오른쪽 쇄골이 부러졌다고 하더군요. 막상 다친 것을 알고 나니 너무너무 아프고 눈물이 마구 나왔습니다. 옆에서 아이들은 놀라서 어쩔 줄을 몰라 하더군요. 하지만 고통을 참으면서 친구들에게 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짜증난다. 나 쌍병신 되는 거 아냐‘? 팔이랑 다리.” 아이들은 제 말에 더 충격을 받아 난리였습니다. 우스갯소리라도 그런 말은 하면 안 된다구요. 진짜, 저를 사랑하는 친구들 앞에서 그런 심한 소리를 하다니 전 정말 나쁜 아이인가 봐요. 놀라서 달려온 엄마, 고모와 함께 종합병원에 가서 입원 수속을 밟았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가 시에서 주최하는 학력고사더군요. 저는 담당 선생님께 수술을 늦추자고 말씀 드리고 병원에서 시험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친 어깨 부근에 단단히 압박붕대를 감고 등교해 교무실 한켠에서 시험을 봤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수술을 잘 마쳤고, 1년 뒤에 핀 제거 수술을 한 번 더 받아야 했지요. 지금 저는 인천에 있는 연수여자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2학년이 되네요. 고등학교에 와서도 여전히 그때 먹은 마음, 잃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남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약간 다를 뿐이다. 나는 평범한 여고생이다. 남들만큼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해야지’라고 매일 아침 제 방에 있는 전신거울을 보며 다짐합니다. 거울에 비춰지는 제 다리는 약간 굵기가 다른 것 같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모를 정도예요. 제 꿈은 열심히 노력해서 멋진 국문과 08학번 대학생이 되는 것이랍니다. 고1 때 담임선생님이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그분 덕분에 국문학도의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일 2학년 반 편성을 위해 학교에 갈 텐데, 내일 아침에도 머리를 빗으면서 거울 속의 나에게 말하렵니다. “모든 승자들의 공통점은 열정이래. 열정enthusiasm, 내 안에 신을 둔다는 뜻이잖아. 오늘 하루도 잘 해낼 수 있지‘? 아자아자 파이팅!”(2006) ‘지희‘_ 올해 고3이 되는, 꿈 많고 웃음도 많은 소녀입니다. 가끔 엉뚱한 말을 던져서 친구들을 포복절도하게 한다고 하네요. 열심히 공부해서 08학번 멋진 국문학도가 되는 것이 올해의 소망입니다. 책이 출간되면 고1 때 담임선생님께 제일 먼저 보여드리고 싶다고 합니다. 희망예보 <오늘은 맑음>
  • [의사 한송이의 요리짱건강짱] 겨울철 인기메뉴 만두전골

    [의사 한송이의 요리짱건강짱] 겨울철 인기메뉴 만두전골

    추운 겨울날의 인기 식단으로 김치 넣은 만둣국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평안도나 황해도, 강원도 출신 사람들은 설날에도 떡국보다 만둣국을 해먹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명절 무렵이면 가족들이 다 모여 만두를 만들어놓고 겨울 내내 만둣국을 끓여 먹곤 한다. 만두는 원래 중국 음식으로 한나라 때 처음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시대에 들어왔다. 가장 오래된 한글 음식책인 음식디미방(1670년경)에서는 메밀가루로 풀을 쑤어서 반죽하고 삶은 무와 다진 꿩고기를 볶아서 소를 넣고 빚어 새옹에 삶아 내었다고 써있다. 우리는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서 소를 넣은 것을 만두라고 하지만 중국에서는 이를 교자라고 하고, 밀가루 반죽을 발효시켜 지금의 호빵처럼 껍질을 두껍게 만든 것을 만두라고 한다. 특히 고기나 팥 소가 들어간 것은 포자라고 하고 소를 넣지 않은 것을 만두라고 한다. 만두는 껍질의 재료나 모양, 삶는 방법에 따라 종류가 많다. 밀만두, 메밀만두, 어만두, 동아만두, 처녑만두 등으로 나뉘고, 빚은 모양에 따라 사각진 것은 편수(片水), 해삼모양은 규아상, 골무처럼 작게 빚은 골무만두, 석류 모양을 딴 석류만두, 큼직하게 빚은 대만두, 작게 빚은 소만두 그리고 껍질 없이 소를 밀가루에 굴려서 만든 굴림만두 등이 있다. 알려져 있는 대로, 만두는 추운 북한 지역에서 더욱 발달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만두는 평양식과 개성식. 평양식은 두부를 기본으로 숙주나물·부추·파·돼지고기를 소로 넣은 것으로 어른 주먹만하게 크다. 만둣국은 양지머리와 사태를 삶아서 그 국물에 만두를 말아낸다. 개성 만두는 한 입에 쏙 들어갈 정도로 앙증맞다. 두부나 김치를 적게 넣는 대신 야채를 많이 넣어 퍽퍽하지 않고 깔끔하다. 만두는 겉껍질은 밀가루나 메밀가루로, 속은 야채와 고기, 두부 등으로 만들기 때문에 음식 하나에 탄수화물과 단백질, 섬유질, 비타민 및 무기질 등이 듬뿍 들어가 있는 영양식이다. 따뜻한 계절에 비해 좀 더 높은 칼로리와 지방이 필요한 겨울에 체력 유지를 위해 즐겨 먹을 만한 음식이고, 이런 이유로 추운 지방에서 자주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도 만두를 좋아하지만, 필자 주변에 만두를 좋아하는 분들이 여럿 있다. 사실 만두는 음식의 한 종류이면서 워낙 다양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만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즐겨 먹는다. 필자도 제대로 된 만두집 만두부터, 중국식 만두, 시장 한편 조그만 분식집에서 파는 만두까지 만두라면 다 좋아한다.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뒤 대우빌딩 지하에 위치한 ‘평안도만두집’은 평양식 만두를 표방하는 곳이다. 이미 꽤 알려진 곳이지만, 막상 가보면 생각보다 작은 식당 규모에 놀라게 된다. 여의도에서 11년을 해오다 2년 전에 현재 장소로 이전했다. 이곳에서의 추천메뉴는 만두전골인데, 특이하게 만두 외에 힘줄(스지), 생선전, 녹두전, 배추, 대파, 버섯, 쑥갓 등을 전골냄비에 가지런히 넣고, 양지를 4시간 동안 푹 고아 맑게 우려낸 육수를 부어 끓여낸다. 이곳의 만두전골은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담백하면서도 시원하고 깊은 맛이 있는데, 재료를 모두 싱싱하고 좋은 것으로 넉넉히 쓰는데다 조미료를 거의 쓰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만두는 두부, 돼지고기, 숙주, 파에 잘 익은 김치 씻은 것을 넣어 큼직하게 만든다. 두꺼운 만두피로 만든 큼지막한 만두를 쪼개서 양념간장을 살짝 뿌려 먹으면 그 고소하면서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13년을 만두만 만들다 보니, 가장 맛있는 만두소를 만들 수 있는 재료의 배합 비율을 맞추게 되는 것이 이곳의 노하우라고 한다. 접시만두 5000원, 빈대떡 5000원, 보쌈 2만원, 만두전골 2만원, 김치말이국수 4000원. 전화 02-723-6592. 영업시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일요일 휴무. 여성전문병원 ‘한송이 W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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