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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선무효형 불합리” 대법 코앞서 브레이크 건 이재명

    “당선무효형 불합리” 대법 코앞서 브레이크 건 이재명

    대법 이르면 이달 내 최종 결론 예정 신청 인용 땐 상고심 장기화 가능성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이재명 경기지사가 대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지사는 지난 1일 대법원에 공직선거법 250조 1항와 형사소송법 383조 4호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냈다. 이 지사 측은 허위사실 공표죄를 규정한 선거법 250조 1항에서 ‘행위’와 ‘공표’의 개념이 모호해 후보자 등의 발언은 물론 하지 않은 발언까지 해석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자의적일 수 있어 헌법상 명확성 원칙,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이 조항은 연설·방송·신문·통신·잡지·벽보·선전 문서 등의 방법으로 공표된 허위 사실을 처벌하도록 하고 있는데 쉽게 말해 “친형 강제 입원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 지사의 토론회 발언까지 처벌 대상에 올리는 것은 과도하다는 것이다. 또 사형, 무기징역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 한해서만 대법원에서 양형부당으로 다툴 수 있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383조가 입법부작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공직선거법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당선무효와 피선거권 박탈 등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나는 만큼 선거법에 대해서도 대법원에서 양형부당으로 다툴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지사의 신청에 대해 이르면 이달 안에 결론을 낼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의 상고심은 원심 판결이 있은 날부터 3개월 이내에 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이 지사의 상고심 판결 법정 기한은 다음달 5일이다. 이 지사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게 되면 기한 안에 선고가 이뤄져야 한다. 반면 이 지사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로 사건이 넘어가면 이 지사의 상고심은 장기화할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이 피고인의 신청을 인용해 직접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경우는 1989년 이후 12건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드물다. 친형을 강제로 입원시키는 등 선거법 위반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지사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가 지난 9월 6일 수원고법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판단돼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지사의 상고심은 노정희 대법관이 주심을 맡고 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박준영 변호사 “8차사건 윤씨 내주 최면 조사”

    박준영 변호사 “8차사건 윤씨 내주 최면 조사”

    화성연쇄살인 8차사건 범인으로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재심 청구를 준비 중인 윤 모(52)씨가 최면과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게 됐다. 윤씨 재심청구 변론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씨가 11월4일 오전 10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4차 참고인 조사에서 최면 조사와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는다”고 밝혔다. 이어 “최대한 협조하는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 우리 쪽에서 적극적으로 원한 조사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조만간 수원지방법원에 재심청구를 한 뒤 재심 사유를 설명하는 기자간담회도 열겠다고 밝혔다. 재심청구서 작성 등에 시간이 필요해 구체적인 일정은 다음 주쯤 공개할 예정이다. 그는 “당시 윤씨를 조사한 경찰들의 마음이 바뀌어 대질조사가 성사된다면 언제든지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며 대질조사의 가능성도 열어뒀다. 화성 8차사건은 1988년 9월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아무개(당시 13살)양의 집에서 박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이듬해 7월 윤씨를 범인으로 특정, 강간살인 혐의로 검거했다. 재판에 넘겨진 윤씨는 같은 해 10월 수원지법에서 검찰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도 형이 확정돼 20년을 복역한 뒤 2009년 가석방됐다. 이춘재(56)가 8차사건을 포함한 10건의 화성사건과 다른 4건 등 모두 14건의 살인을 자백하고 윤씨가 억울함을 주장하면서 진범 논란이 불거졌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화성 8차’ 윤씨 이르면 내주 재심 청구

    ‘화성 8차’ 윤씨 이르면 내주 재심 청구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재심 청구를 준비 중인 윤모(52)씨가 30일 3차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귀가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오후 9시 30분까지 7시간 동안 윤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윤씨의 재심 청구를 돕는 박준영 변호사는 이날 윤씨와 함께 출석해 8차 사건 진범이 이춘재라고 확신하는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게 “이춘재 자백이 들어맞는 부분이 있다”고 대답했다. 박 변호사는 “피해자의 마지막 모습은 사진이나 기사를 통해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데 그 모습이나 주변 현장이 말해주는 사실과 이춘재의 자백이 들어맞는다”며 “이춘재의 자백은 범인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을 담고 있지만 당시 윤씨가 자백한 조서를 보면 너무 황당하다”고 말했다. 윤씨는 심경이 어떤지 조사를 받는 것이 힘드냐 등의 취재진 질문에 “착잡하다. 그리고 조사 받는 것은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8차 사건 당시 국과수에도 억울한 것이 있나 라는 질문에는 “시비를 가릴 것이 있으면 가려야 한다. 잘못이 있다면 국과수로부터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대답했다. 박 변호사는 “변호인단과 내부적으로 검토해 다음주 혹은 늦으면 2주 후에 재심신청을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의 경찰이 증거를 숨기거나 조작했을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는 “당시 경찰은 사건 현장의 모습을 10개월 뒤 윤 씨를 검거했을 때 왜곡했다”며 “윤 씨의 신체 상황(다리가 불편한 부분) 때문에 사건 현장과 모순이 됨에도 불구, 교묘하게 사후 조작한 정황이 있다”고 부연했다. 박 변호사는 “그러나 당시 경찰과 지금의 경찰을 동일시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경찰이 의지를 갖고 수사하려고 하는 만큼 윤씨도 이들을 믿고 조사에 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는 이번 주 예정된 시사 프로그램 방송 후에 더 자세한 내용을 말하겠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윤 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더 부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모(당시 13세) 양의 집에서 박 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윤씨는 범인으로 검거돼 1990년 5월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윤씨는 복역 중 감형돼 20년 만인 2009년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하지만, 지난 4일 이춘재가 “화성 8차 살인 사건도 본인 소행”이라고 진술하면서 8차 사건의 진범 논란이 불거졌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화성 8차 범인 이춘재 100% 확신…반박 불가 자료 있다”

    “화성 8차 범인 이춘재 100% 확신…반박 불가 자료 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수감생활을 한 윤모(52)씨의 변호인이 “화성 8차 진범은 이춘재라는 것을 확신한다”며 반박 불가능한 증거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윤씨의 재심을 준비 중인 박준영 변호사는 지난 29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11월 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많은 분들이 ‘이 사건은 물증이 없는 사건이지 않느냐’, ‘이춘재가 얼마든지 허세를 부리고 허위 진술을 할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고 이야기한다”면서도 “하지만 자백은 ‘증거의 왕’이라고 한다. 정말 그 사건을 경험한 범인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의 폭로라는 게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춘재 자백은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들었을 때 ‘물증은 이제 필요가 없는 사건이구나’라는 생각을 누구나 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물론 ‘집을 상세하게 묘사했다’, ‘그림을 그려가면서 자백했다’는 부분도 굉장히 의미가 있다”면서도 “그런데 이 진술에 대해서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면서 그렇게 그려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이것 외의 비밀의 폭로는 그런 반박조차 불가능한 자료”라며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이춘재가 범인이라는 것은 경찰도 확신하는 것 같다”며 “그러면 이춘재가 범인인데 왜 그 당시에 윤씨가 범인으로 몰려서 무기징역까지 받았는지, 수사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함께 밝혀야 되는 그런 과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까 경찰도 결과 발표를 빨리 못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는 또 “윤씨는 3일 동안 못 잤다. 그 과정 속에서 말도 안 되는 조서들이 작성되고 의미도 모른 채 서명 날인을 강요당했다. 그리고 소아마비 장애가 있는데 쪼그려 뛰기를 시키고 또 앉았다 일어섰다를 시키는 말도 안 되는 폭행과 가혹행위가 있었다”고도 했다.방사선 동위원소 분석 결과를 담은 국과수 감정서와 관련해서는 “국과수의 감정서가 상당히 문제가 많다”며 “너무 단정적으로 표현하는 바람에 경찰은 그것을 믿었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사건은 국과수가 사과를 하고 과거의 잘못에 대해서 깊이 사과하고 반성해야 되는 사건이 될 것 같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경찰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이 많은데 지금 이 사건 수사하는 경찰은 잘못을 바로 잡으려는 의지가 확고하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많이 응원해주고 박수 쳐줄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전했다. 박 변호사는 끝으로 “이 분이 담배를 끊었는데 최근 이 사건이 불거지고 나서 담배를 다시 피우고 있다. 물론 재심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에 희망 때문에 많이 좋아하고도 있지만 언론에서 너무 많이 주거지를 찾아와서 기다리고 있고 인터뷰를 요구하니까 이게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은 것 같다”며 “이런 부분에 배려를 해주시고 죽은 여중생의 억울함과 가족의 한을 풀어야 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편 윤씨가 처벌받은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모(당시 13세) 양의 집에서 박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이듬해 7월 22세이던 윤씨를 범인으로 검거해 강간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이 사건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모방범죄로 보인다고 밝혔었다. 윤씨는 재판에 넘겨져 같은 해 10월 21일 수원지법에서 검찰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대법원에서도 무기징역을 확정받아 20년을 복역한 끝에 감형받아 2009년 가석방됐다. 1심 이후부터 줄곧 무죄를 주장해온 윤 씨는 이춘재의 자백 이후 재심전문 변호사인 박 변호사와 함께 이 사건 재심 청구를 추진하고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진범 논란’ 화성 8차 사건 윤씨 “이춘재 자백 고맙다”

    ‘진범 논란’ 화성 8차 사건 윤씨 “이춘재 자백 고맙다”

    ‘억울한 옥살이’ 윤씨, 참고인 신분 2차 조사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윤모(52)씨가 “이춘재가 지금이라도 자백을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윤씨는 26일 오후 1시 30분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자신의 재심 청구를 돕는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그가 자백을 안 했으면 이런 일(30년 만의 재조사)도 없을 것이고 내 사건도 묻혔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윤씨는 그 동안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8차 사건 수사 당시 경찰의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허위 자백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윤씨는 당시 경찰의 강압수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묻는 질문에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몇 차례 구타당했고 고문은 3일 동안 당했으며 그러는 동안 잠을 못 잤다”고 답했다. 당시 경찰관들이 강압수사를 부인하고 있는 데 대해 “그건 거짓말이고, 양심이 있으면 당당히 나와서 사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윤씨를 상대로 과거 8차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을 당시 허위 자백을 했는지, 당시 조사 중 구타와 고문 등 가혹행위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했다. 윤씨가 이 사건의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것은 이번이 2번째다. 경찰은 앞서 이춘재가 지난달 8차 사건을 포함한 10건의 화성 사건과 다른 4건 등 모두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한 이후 윤씨와 1차례 면접한 뒤 참고인 신분으로 1차례 조사했다.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다음해 7월 당시 22세였던 윤씨를 범인으로 검거, 강간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이 사건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모방범죄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윤씨는 재판에 넘겨져 같은 해 10월 21일 수원지법에서 검찰의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돼 20년 동안 복역한 끝에 감형을 받아 2009년 가석방됐다. 윤씨는 1심 이후부터 줄곧 무죄를 주장했으며 이춘재의 자백 이후 재심 전문 변호사인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이 사건 재심 청구를 추진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임세원 교수 살해범, 2심도 징역 25년…“치밀하게 계획한 범행”

    임세원 교수 살해범, 2심도 징역 25년…“치밀하게 계획한 범행”

    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살해한 30대 남성이 2심에서도 1심과 똑같은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6부(오석준 부장판사)는 25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박모(31)씨의 항소심에서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치료감호와 20년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명령 등도 1심과 똑같이 유지했다. 박씨는 지난해 12월 31일 강북삼성병원 신경정신과에서 진료 상담을 받던 중 임 교수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범행에 대해 피고인과 가족이 온전히 책임지는 것이 가혹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 범행의 피해자는 그간 진료를 통해 사회에 많은 헌신을 하고도 아무 잘못 없이 피해를 입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서 “나름대로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고 양형 이유를 들었다. 앞서 1심은 “피고인을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하는 것이 상응하는 처벌이 아닐까 고민했다”면서도 “성장 과정에서 겪은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으로 발현된 정신질환이 범행에 큰 원인이 된 점을 참작한다”며 검찰이 구형한 무기징역보다 형량이 낮은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경찰, 윤씨 변호인에 수사기록 9건 제공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25일 화성연쇄살인사건 관련 ‘억울한 옥살이’를 호소한 8차사건 범인 윤모(52)씨의 재심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에게 당시 신문 조서,구속영장 사본 등 수사 자료 9건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이날 경기남부청을 방문해 직접 자료를 받았다. 박 변호사는 지난 15일 경찰에 윤 씨의 수사 기록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경찰은 24일 현재 이춘재 수사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자료를 제공 하겠다고 밝혔었다. 박 변호사는 “수사 과정에 있기 때문에 모든 기록을 공개할 수 없는 것 이해하지만, 최소한 윤씨 진술과 그에 연관된 의미 있는 진술 기록은 받았으면 한다”며 “진실을 규명해서 윤씨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은 경찰과 우리의 공통 목적”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해 수사 기록 제공을 결정했다”며 “다만 아직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검토를 거쳐 일부만 포함했다”고 말했다.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한 가정집에서 박모(당시 13세) 양이 성폭행당하고 살해당한 사건이다. 당시 윤씨는 범행을 인정했으나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 혹독한 고문으로 허위 진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심과 3심 모두 이를 기각했다. 윤씨는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수형생활을 하고 모범수로 석방되었다. 이에 따라 윤씨측 재심 청구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부산 태양다방 사건 다시 원점으로 … 재상고심서 피고인 무죄 원심 확정

    장기 미제였다가 경찰 재수사로 사건 발생 15년 만에 붙잡혀 재판을 받은 부산 태양다방 여종업원 살인 사건의 피고인에게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는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양모(48)씨의 재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검찰 측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이 이 사건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한 것은 대법원 환송판결의 취지에 따른 것으로 정당하다”며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결했다. 지난 2002년 5월 부산의 한 다방에서 퇴근하던 A(당시 22세)씨가 괴한에게 납치돼 흉기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9일 만에 마대에 담긴 시신이 바다에서 발견됐지만 사건은 10여년간 미궁에 빠졌다. 살인 사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으로 형사소송법이 개정된 2015년 재수사에 나선 경찰은 A씨의 예적금을 인출한 양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붙잡아 2017년 재판에 넘겼다. 1, 2심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중대 범죄에서 유죄를 인정하는 데 한 치의 의혹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선 1, 2심 당시 양씨와 함께 시신이 든 마대를 옮겼다는 동거녀의 진술이 유력 증거였으나 파기환송심을 맡은 부산고법은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고 수사기관 정보를 자신의 기억으로 재구성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무죄 판결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검찰, ‘강서구 PC방 살인’ 김성수 항소심도 사형 구형…피해자父 “모든 것 잃었다”

    검찰, ‘강서구 PC방 살인’ 김성수 항소심도 사형 구형…피해자父 “모든 것 잃었다”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잔혹하게 살해해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김성수에 대해 검찰이 항소심에서도 사형을 구형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정준영) 심리로 21일 열린 김성수의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은 과거 아무런 원한관계도 없는 피해자와 당일 PC방에서 사소한 시비를 이유로 폭행한 뒤 80회에 걸쳐 찌르고 살해하는 등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며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김씨와 공모해 공동폭행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동생 김모씨에 대해서는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다. 검찰은 “적법 절차에 의해 가축을 도살할 때도 이렇게 잔혹하게 하지 않는다”면서 “당시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과 두려움은 피해자가 아닌 우리는 절대로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이 같은 중대범죄로 서울시민들은 자기도 피해자가 될까봐 공포와 두려움에 빠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 김성수는 자신의 불행한 가정환경 등 터무니 없는 변명을 하고 있지만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도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는 국민들이 많고 오히려 그 주장이 그 같은 국민들에게 모욕으로까지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검찰 “가축 도살도 이토록 잔혹하지 않아”…김성수에 사형 구형 검찰은 “잔혹하고 계획적인 방법으로 20세의 장래가 촉망받는 청년을 무자비하게 살해해 하나 뿐인 인생을 없앴고 피해자 가족의 남은 삶을 짐작하기도 어려운 깊은 절망에 빠뜨렸다”면서 “유사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엄정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는 등 어느 면에서 봐도 피고인은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돼야 한다는 데 한 점 의문이 없다”고 강조했다. 김성수는 지난해 10월 14일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 신모씨와 말싸움을 하다가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김성수에게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1심 재판부는 김성수에게 유기징역의 최고형인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동생 김씨는 “폭행을 공모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김성수의 동생 김씨에 대해서는 “PC방에서 친형 김성수와 피해자의 다툼을 지켜본 김씨에게 피해자에 대한 앙심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것으로 김성수가 피해자에게 다가가고 최초 폭행할 때 말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김성수가 폭행할 것임을 명확히 알았다”면서 “말릴 의도가 있었다면 더 강하게 피해자를 잡아 김성수와의 사이를 크게 벌려놨을 텐데 피해자의 허리만 잡은 것은 피해자가 김성수를 폭행하기 어렵게 만들고 김성수의 폭행을 쉽게 만들려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성수는 최후 진술을 통해 가족들에게 미안함을 쏟아냈다. 그는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후, 후’ 소리를 내며 여러 차례 심호흡을 한 뒤 “동생아, 형의 잘못으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하게 하고 혼자 고립돼 있지 않을 까 걱정된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사건 이후) 네가 형한테 했던 말, ‘내가 칼에 찔릴 각오로 말렸어야 했는데 무서워서 그렇게 못했다, 미안하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네가 공범으로 몰려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되는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심적으로 힘들지, 형이 책임을 다 지지 못했기에 너에게 그 책임을 짊어지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지만 이건 형의 잘못이니 고인(피해자) 분의 명복을 빌고 예를 갖추고, 너 자신을 자책하는 행동은 하지 말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성수는 어머니를 향해서도 울먹이며 미안한 마음을 토로한 뒤 “이 불효자, 먼 훗날 다시 어머니를 만나뵙게 될 때는 훨씬 더 성숙해져서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피해자 분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죽는 날까지 제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다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흐느꼈다. ●재판장, 피해자와 가족 향해 묵념 요청…김성수와 동생도 일어서 고개 숙여 앞서 재판부는 이날 신씨의 아버지를 법정에 불러 피해자 가족의 의견을 진술하도록 했다.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는 “형사재판은 죄를 가려 엄정하게 처벌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는 절차인 동시에 피해자와 가족이 조금이나마 존중과 위로를 받고 나아가 범죄로 인한 정신적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절차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정 부장판사는 특히 “재판부는 피해자 가족의 의견 진술을 듣기 전에 고인이 된 피해자 신씨와 가족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해를 표하며 조금이나마 위로를 드리기 위해 잠시 묵념을 하고 다시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며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 묵념을 하도록 했다. 김성수와 동생 김씨도 피고인석에서 일어섰다. 피해자의 아버지인 신모씨는 “김성수의 동생이 제 아들을 뒤에 잡은 것은 결코 싸움 말린 게 아니고 폭행이라 생각. 또한 그 행위가 살인이 더 용이하게 이뤄지는 데 충분한 영향 줬다고 생각한다”면서 “부디 제 아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수 있도록 김씨의 죗값을 물어주실 것을 재판부에 간청드린다”고 먼저 말했다. 이후 김성수에 대해서도 잔혹한 범행과 매우 사소한 일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 김성수가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들어 “최소한 무기징역 이상을 선고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강조했다. 신씨는 “자식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것은 슬픈 일 만이 아니다. 도저히 참기 어려운 고통이고 엄중한 형벌”이라면서 “저희 애가 그 때 당했던 무자비한 고통과 몸서리치는 두려움 생각하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온몸이 떨리고 토할 것 같고 온몸이 자꾸만 무너져내린다. 죽을 때까지 저희 가족은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 애는 저희에게 보내준 귀하고 소중한 선물이었다. 늘 얼굴에 미소 만들어 준 친구같은 아들, 엄마에게 딸 못지 않은 자식, 형과는 분신처럼 우애좋게 지내며 온 가족의 활력소였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신씨는 재판부에 “제발 남의 일로만 생각하지 말아달라”면서 “저희도 저희 가정에는 절대로 이런 불행한 사건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의 불행이 한 순간에 닥쳤다”며 재판부에 거듭 엄하게 처벌해줄 것을 요청했다. 신씨는 “저희는 이미 다 잃어버렸고 남아있는 제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면서 “그저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저희 애가 그 때 고통스럽고 무서운 기억일랑 다 잊고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있기를 빌고 또 빌 뿐”이라고도 덧붙였다. 신씨는 법정에서 마련된 가림막에 가려져 김성수와 동생 김씨와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다. 김성수와 동생 김씨는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신씨의 말을 듣기만 했다. 재판부는 다음달 27일 오전 두 사람에 대한 선고를 할 예정이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화성 8차 사건 윤씨 “‘쪼그려 뛰기’ 시켜…지장 찍으라 해 찍었다”

    화성 8차 사건 윤씨 “‘쪼그려 뛰기’ 시켜…지장 찍으라 해 찍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8차 사건 범인으로 검거돼 20년을 복역한 윤모(당시 22세)씨가 21일 청주에서 취재진을 만나 “사건 당시 강압 수사를 한 형사들이 지금이라도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씨는 인터뷰에서 ‘쪼그려 뛰기’ 등의 가혹행위를 당했고, 형사들이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또 “3일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태로 조사 받았고, 지장을 찍으라고 해서 찍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이춘재의 자백으로 누명을 벗을 희망이 생겼다”며 “20년이라는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도 경찰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고 명예를 회복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모(당시 13세)양의 집에서 박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으로 체모에 포함된 중금속 성분을 분석했고, 경찰은 국과수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윤씨를 범인으로 검거했다. 윤씨는 재판에 넘겨져 무기징역을 확정받아 복역하던 중 감형받아 수감 20년 만인 2009년 가석방됐다. 이춘재가 8차 사건이 자신의 범행이라고 시인하면서 윤씨는 현재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윤씨는 취재진 인터뷰에서 “1988년 9월 16일 평소 알고 지내던 홍모씨와 함께 있었다. 홍씨와 함께 잠을 잤고, 그는 항소심에서도 같은 취지로 증언을 한 적이 있다”며 “하지만 재판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경찰이) 1989년 5월부터 찾아온 것 같다. 체모를 뽑아달라고 해서 뽑아줬다. 두 달에 걸쳐 총 6차례 체모를 뽑아줬다”며 “당시 농기계 수리업체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업체 사장과 직원의 체모도 뽑아갔다. 직장과 집 근처에서 형사들이 감사하기 시작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같은 해 7월 직장 동료와 집에서 밥을 먹고 있다가 형사가 집에 찾아오더니 “잠깐 가자”라고 해서 파출소로 갔다고 체포 당시를 회상했다. 윤씨는 “승합차를 타고 야산 속에 있었던 별장으로 갔다. 경찰들이 뭐라고 얘기했는데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사를 받은 뒤 수갑을 채웠다.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20분 정도 받았다”며 “영문도 잘 모르고 체포당했고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윤씨는 수사 과정에 가혹행위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서에서 조사받으면서 ‘쪼그려 뛰기’를 하라고 했다”며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했기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번 하고 넘어졌는데 왜 쪼그려 뛰기를 시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형사들이 발로 걷어찼다”고 했다. 아울러 “당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3일간 조사를 받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했다.윤씨는 “경찰은 5시간 만에 조사를 끝냈다고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3일 정도 받았다. 어떻게 조사를 받았는지 경황도 없었고 지장을 찍으라고 해서 찍었다”며 “그것이 (자백으로) 인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졸업을 못 했는데 당시에는 글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였다”고 취재진에게 밝혔다. 윤씨는 “현장 검증에서 담을 넘은 적이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검찰로 넘어가서 현장 검증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1.6m 높이 담인데 그 담을 혼자 힘으로 넘을 수가 없다. 넘은 적도 없는데 당시 보도는 담을 넘었다고 나왔다. 멀쩡한 성인 남성도 겨우 넘는 담을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혼자 넘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오빠와 지인이라는 얘기가 있다’는 지적에는 “피해자 오빠를 본 일이 없다. 그 집 구조도 모른다”며 “사건 전에 그 집 근처에 간 적도 없다. 어쩌다가 출장 갈 때 지나갔을 수는 있지만 그 집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거듭 부인했다. ‘항소심에서야 억울함을 호소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1심에서는 사형을 당할 거라고 주변 사람에게 얘기했다”며 “시인하고 동정을 구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1심에서는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했다. 항소심에서는 검사에게 재수사를 요청하기도 했다”고 답했다. ‘당시 수사 경찰들이 강압 수사가 없었다고 했다’는 말에는 “그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면서도 “나 말고도 화성 사건 피해자가 많다. 고문을 당했다는 증언이 많다. 판단은 국민에게 맡기겠다”고 밝혔다. 그는 끝으로 “(당시 형사들의 사과는) 없었다. 따로 연락이 온 적도 없다”며 “지금이라도 나와서 진정성 있게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나는 명예를 찾고 싶다. 인간 된 도리로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선배 약혼녀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30대 무기징역

    전자발찌를 찬 채 선배 약혼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30대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부장 김정아)는 17일 선배의 약혼녀를 성폭행하려다 숨지게 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구속기소 된 정모(36)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청소년과 장애복지시설 등에 취업제한 10년, 신상 공개 등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의 전과를 알고도 온정을 베푼 피해자들에게 잔혹하고 비정한 범죄를 저지른 죄책이 무겁다”며 “개전의 정이 부족해 사회로부터 격리할 필요성이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정씨는 지난 5월 27일 순천시 한 아파트에서 선배의 약혼녀인 A(43)씨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려다가 숨지게 한 혐의다. 새벽에 집으로 찾아온 정씨가 강간하려 하자 피해자는 아파트 6층에서 화단으로 뛰어내렸다. 이후 정씨는 1층으로 내려가 피해자를 다시 집으로 옮겨 목을 졸라 숨지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두 차례 성범죄로 10년을 복역하고 지난해 출소한 정씨는 자신의 집에 약혼자인 선배가 잠자는 틈을 이용해 오전 5시 30분 혼자 있는 A씨 집을 찾아가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무려 200명 성폭행한 英 범죄자, 감옥서 살해당해

    무려 200명 성폭행한 英 범죄자, 감옥서 살해당해

    무려 200명에 달하는 어린이를 학대한 혐의로 붙잡힌 남성이 감옥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BBC 등 현지 언론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켄트 출신의 리차드 허클(33)은 2016년 당시 71건의 성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시인했으며, 이중 22건의 성범죄와 관련한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는 2006년부터 8년에 걸쳐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러왔으며, 피해자들은 생후 6개월 된 신생아부터 12세까지의 말레이시아 아이들이었다. 프리랜서 사진가로 일해 온 그는 말레이시아의 아이들 약 200명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자신의 모습을 촬영해 사진과 영상으로 남겼다. 그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사진과 영상만 2만 건이 넘었다. 이후 문제의 사진과 영상을 세계 곳곳의 소아성애자들이 방문하는 불법 웹사이트에 올려 금전적 이득을 취하기도 했다. 또 불법 웹사이트에 “가난한 아이들은 서양의 중산층 아이들보다 유혹하기 쉽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지 8년이 지난 2014년 영국에서 체포됐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풀 서튼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러나 현지시간으로 지난 13일, 허클은 쓰러진 상태로 교도소 관계자가 발견했으며 발견 당시 이미 숨진 상태였다. 경찰은 그가 시중에서 판매되는 흉기가 아닌 직접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흉기에 찔려 사망한 것으로 보고 현재 용의자를 특정하고 있다. 현지 법무부 측은 “허클이 수감됐던 폴 서튼 교도소는 영국에서 가장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모인 교도소로, 최고 수준의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사망한 허클은 성범죄를 저지르던 당시, 한 웹사이트에 “잭팟을 맞았다. 세 살짜리 여자아이가 내게 개처럼 충성하고, 누구도 이러한 일을 신경쓰지 않는다”고 올린 사실이 드러나 더욱 공분을 산 바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윤창호씨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 징역 6년 확정

    윤창호씨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 징역 6년 확정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 윤창호씨를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 박모(27)에게 선고된 징역 6년의 실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15일 대법원 등에 따르면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위험운전 치사·치상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고 상고했던 박씨가 최근 상고취하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박씨는 항소심에서 선고받은 징역 6년이 확정됐다. 박씨는 지난해 9월 25일 오전 2시 25분쯤 부산 해운대구 중동 미포오거리에서 술에 취한 채 차를 몰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피해자 윤창호씨를 차로 치어 숨지게 하고 윤창호씨의 친구 배모(21)씨를 다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음주를 하고 일행까지 태운 상태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서 있던 두 사람을 치어 한 사람은 생명을 잃고 한 사람은 중상을 입는 등 그 피해가 매우 심각하다”면서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도 엄중한 형벌은 불가피하다”고 징역 6년을 선고했다. 박씨는 징역 6년의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새롭게 드러난 양형 조건이 없고, 원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 무겁거나 가벼워 보이지 않는다”며 박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 사고로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일명 ‘윤창호법’이 제정되는 등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키웠다. 이 법으로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케 한 경우 ‘징역 1년 이상’에서 ‘최소 징역 3년 이상, 무기징역까지’ 선고가 가능해졌다. 아울러 ‘제2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지난해 12월 7일 국회를 통과해 지난 6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음주운전 단속 기준이 면허정지는 0.03% 이상(기존 0.05% 이상), 면허취소는 0.08% 이상(기존 0.1%)으로 강화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항일 무장 독립운동 3대 맹장… 연구 논문 한 편 없고 묘는 北에

    항일 무장 독립운동 3대 맹장… 연구 논문 한 편 없고 묘는 北에

    “그분을 상면하니 저런 분이 어찌 왜놈의 군인과 맞서 선두 지휘를 하시며 혈전을 하셨나 할 정도로 외모가 잘생기셨고 그 풍채가 관후 유덕하시며 인자한 풍기가 주위 사람에게 호감을 주실 뿐 아니라 인정이 철철 넘쳐 흐른다. 그분이 무기형을 받고 마포로 수감된 후 왜놈에게 요구 조건을 제시하나 불허하므로 단식투쟁을 선포하고 단식에 돌입하였다. 처음 15일간은 물도 한 잔 안 먹었다. 소장이 병동에다 수감하고 왜놈 간수에게 감시를 하게 하고 조선 사람은 얼씬도 못하게 하고 매일 변기를 검사하였다. 물 한 모금도 안 먹었으니 소변인들 나올 리가 없었다.” 독립운동가 이규창(이회영의 아들)은 회고록에서 서울 마포형무소(경성감옥)에서 같이 수감 생활을 한 오동진 선생에 대해 이렇게 썼다. 김좌진, 김동삼과 함께 무장 독립운동계의 3대 맹장으로 평가받는 오동진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건국훈장 다섯 가지 가운데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는 모두 30명인데 오동진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독립운동사에서 김구, 안창호, 안중근, 윤봉길에 필적할 만한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변변한 연구 논문 한 편 없다. 옥중에서 선생은 일제에 저항해 여러 번 단식투쟁을 했다. 마포형무소에서 한 단식 기간은 무려 48일로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라고 한다. 악랄한 일본인 형무소장도 그런 선생에게는 예를 갖추고 인사를 했으며 ‘가미사마’(神)라고 부르기도 했다. 1889년 평북 의주군 광평면 청수동 659에서 태어난 선생은 생후 반년 만에 생모를 잃고 후모(後母) 백씨의 손에 자랐다. 어릴 때부터 온후하고 정의감이 남다르게 강했던 선생은 기쁨과 슬픔을 얼굴에 잘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19세에 안창호 선생이 세운 평양 대성학교 사범과를 졸업한 선생은 고향에 일신학교를 설립해 청소년들을 가르쳤다.1919년 3월 기미독립만세운동은 선생의 인생 행로를 바꾸었다.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체포령이 내려지자 선생은 3월 18일 중국 관전현 안자구(安子溝)로 망명했다. 이때부터 평생 온몸을 내던진 선생의 무장독립투쟁이 시작됐다. 선생은 비밀결사인 광제청년단을 조직하는 한편 의용대를 편성해 군자금을 모금했다. 이듬해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만주에 이탁을 파견해 광복군총영을 조직했는데 선생은 총영장(總營長)이 됐다. 광복군총영은 임시정부에서 장총 240여정과 탄약을 입수해 무장투쟁을 준비했다. 마침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알릴 기회가 찾아왔다. 미국 상원의원 일행이 1920년 8월 14일 서울에 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이다. 총영은 결사대원을 평양·신의주·선천·서울로 보내어 미 의원단이 그 지역을 통과할 때 파괴 공작을 펴 이목을 끌기로 했다. 안경신 일행은 안주경찰서의 일제 경찰과 친일 조선인 경찰을 사살했으며 평양의 경찰서 신축 건물을 폭파했다. 신의주 철도호텔에 폭탄을 투척했고 선천경찰서도 파괴했다. 이 사건 이후 일제는 선생을 체포하느라 혈안이 됐다. 선생은 1922년 6월 양기탁의 동삼성(東三省) 독립운동단체 통합 제안으로 발족한 대한통의부 군사위원장이 돼 독립군을 지휘하며 무장투쟁을 벌였다. 1924년에는 대한통의부 와해 후 새로 통합된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가 출범했는데 선생은 군사위원장과 총사령을 겸임했다. 선생이 이끌던 무장 독립군은 국내에 침투해 일제와 싸워 큰 전과를 거두었다. 독립군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며 압록강 일대 삭주, 벽동, 후창, 초산, 무산 등의 경찰 주재소와 관공서를 습격했다. 독립군 결사대에는 여성들도 있었다. 일제 평북경찰부의 통계에 따르면 선생은 1927년까지 부하 1만 4149명을 지휘해 일제 관공서를 143회 습격하고, 일제 관리 149명과 밀정 765명을 살상했다.그러나 무장 항쟁을 이끌던 선생은 밀정의 덫에 걸려 일제에 체포되고 말았다. 선생은 독립군 부하들의 양식 조달을 위해 지린에 농업공사를 만들었는데 운영난으로 그와 부하들은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이를 본 옛 동지 김종원이 선생에게 “삼성(三成) 금광주인 최창학이 선생을 만나 뵙고 싶어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 말을 믿은 선생은 1927년 12월 16일 창춘 시내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일제가 파 놓은 함정이었다. 일제의 앞잡이로 변신한 김에게 유인당한 선생은 잠복해 있던 신의주 경찰서 고등계 형사인 김덕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선생은 일제의 취조에 자신이 지휘한 무장 투쟁을 부인하지 않았지만, 고문을 당하면서도 부하들의 이름은 발설하지 않았다. 선생의 활동만큼 일제가 붙인 죄목은 방대했고 수사·재판 기록은 쌓아두었을 때 높이가 5m가 넘어 3·1운동 이후의 만주 독립운동사와 같았다. 선생은 광인(狂人) 행세를 하고 1929년 11월부터 33일이나 단식을 하는 등 재판에 협조하지 않았다. 또 “한번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나 개인의 집안일을 돌보고 걱정하고 그리워할 수는 없다”며 아내는 물론 어떤 면회도 거절했다. 부인과 아들은 옥 밖에서 통곡을 하고는 돌아갔다고 한다. 1928년 4월에는 부하 2명이 선생을 구하려고 경찰서로 잠입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재판이 열린 신의주 지방법원 법정에는 선생의 모습을 보려는 방청객들이 쇄도했다. 선생은 그들 앞에서 큰 소리로 “독립만세”라고 외치거나 노래를 불렀다. 또 “하느님의 명령”이라면서 재판을 거부했다. 선생의 광적인 행동은 일부러 미친 척함으로써 일제와 일인(日人)의 재판에 저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인 의사는 선생에게 ‘형무소 정신병’이라는 기이한 병명을 붙였다. 하지만 선생은 정신을 차려서는 “내가 무슨 잘못한 일이 있기에 징역살이를 하며 또한 설혹 잘못한 일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조선 사람이니까 너희 일본놈의 재판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1932년 3월 9일 선생은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2심 선고도 무기징역이었다. 선생은 상고를 포기했으며 장기수를 수감하던 마포형무소로 이감됐다가 1944년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던 공주형무소로 다시 옮겨졌다. 한 달이 넘는 단식도 이겨냈던 선생은 17년이 넘는 세월의 모진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광복을 1년도 채 남겨 놓지 않은 그해 12월 1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선생의 나이 55세였다. 선생을 체포하고 옥사하게 한 김덕기는 노덕술, 하판락과 함께 조선인 3대 악질 형사였다. 김은 16년 동안 일제 경찰로 일했고 평북경찰부 고등형사과장 자리에 올라 수많은 독립군과 애국지사들을 잡아들여 고문했다. 그가 검거해 송치한 독립군이 1000명이 넘었고 그중 20%가 사형 또는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광복 후 김은 반민특위에 체포됐지만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반민족 행위자로서는 처음으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반민특위 해체로 감형된 뒤 6·25전쟁 중에 횡사한 것으로 전해진다.오동진이 숨을 거둔 땅 충남 공주의 공산성 주차장 한쪽에 선생의 추모비가 덩그렇게 서 있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무후선열제단에는 순국선열 중 유해를 찾지 못한 130분의 위패가 봉안돼 있는데 선생의 위패도 있다. 선생의 묘소가 없는 것은 아니고 북한 애국열사릉에 있다. 공주형무소에서 순국한 선생의 유해가 왜 북한으로 옮겨졌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선생은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어린 나이에 만주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부인의 행적도 알 길이 없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이춘재 피의자 입건… 신상공개 가능성 열려

    경찰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를 이 사건 피의자로 정식 입건했다. 사건은 공소시효가 모두 끝나 이씨에 대한 입건이 처벌로 이어질 수는 없지만 이씨의 신분이 용의자에서 피의자로 전환돼 향후 신상공개가 가능하다.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최근 이씨를 강간살인 등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올해 8월 화성 사건의 5·7·9차 사건 증거물에서 이씨의 DNA가 검출되자 이씨를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으며 이씨로부터 자백을 끌어냈다. 이어 화성 사건의 3·4차 사건 증거물에서도 그의 DNA가 나왔다. 경찰은 이씨에 대한 처벌 여부와 별개로 그동안 우리나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 미제 사건으로 기록된 이 사건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이씨를 용의자 신분으로 남게 하지 않기 위해 입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가 입건되면 이씨의 현재 모습을 비롯한 신상공개 가능성이 열린다. 다만 현재 경찰은 피의자를 검찰에 송치할 때 모자나 마스크를 제공하지 않는 등의 소극적인 방법으로 피의자 신상공개를 하고 있는 데다 이씨가 수감 중이어서 현재 모습이 공개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이씨는 화성 사건 이후인 1994년 1월 충북 청주 자택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25년째 복역 중이다. 이씨는 이날까지 10여 차례 이어진 경찰 대면조사에서 10건의 화성 사건을 포함해 모두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강간·강간미수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피해자 집 현장검증 때 처음 가 봤다… 담장 못 넘자 경찰 각본대로 시늉만”

    “피해자 집 현장검증 때 처음 가 봤다… 담장 못 넘자 경찰 각본대로 시늉만”

    이춘재(56)가 모방범죄로 분류된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도 자신의 범행이라고 진술하면서 이 사건으로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모(52)씨가 거듭 무죄를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윤씨는 14일 충북 청주에서 서울신문 등을 만나 “고문 없이 5시간 만에 자백했다는 당시 수사 경찰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며 “너 하나쯤 죽이는 일은 아무 일도 아니고, 범행을 부인하면 사형을 당할 수 있다고 겁을 줘 허위 자백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30년 전 악몽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윤씨는 “1989년 7월 집에서 가족, 회사 동료들과 저녁을 먹는데 형사 5~6명이 찾아왔다”며 “잠깐 조사할 게 있다며 나를 데려간 뒤 3일 동안 재우지 않고 폭력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이어 “검거되기 전 최모 형사가 찾아와 체모를 뽑아 줬는데, 체모를 잃어버렸다고 해 5번 정도 더 뽑아 줬다”며 “이후 체모가 현장에서 나왔다며 나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사건현장은 현장검증 때 처음 가 봤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현장검증은 경찰이 써 준 대로 했던 것 같다”며 “소아마비로 불편한 내 다리를 이끌고 1m 70㎝ 정도의 담을 훌쩍 넘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윤씨는 현장검증 때 경찰이 땅에 쌓아 준 벽돌을 밟고 담을 넘어가는 시늉만 했다고 한다. 경찰이 작성한 조서는 읽어 보지도 못하고 지장을 찍었다. 윤씨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국선변호사가 붙었지만 도움을 받지 못했다. 변호사 얼굴 본 게 1, 2심 모두 선고공판 법정이 유일했다. 윤씨는 “교도관 등에게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뒤집을 증거가 없어 재심이 힘들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종교의 힘으로 버텼다”며 “언론과 국민들이 도와줘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윤씨는 1999년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과 2000년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무죄로 이끈 재심 전문 박준영 변호사 도움을 받아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윤씨는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한 주택에서 잠자던 박모(당시 13세)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이듬해 7월 검거됐다.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청주교도소에 복역하다 감형을 받아 2009년 8월 가석방됐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2@seoul.co.kr
  • 미제 될 뻔한 15년 전 살인사건…공소시효 만료 직전 기소

    미제 될 뻔한 15년 전 살인사건…공소시효 만료 직전 기소

    15년 전 발생한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검거돼 공소시효 완성 직전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뒤늦게 전해졌다. 14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2014년 서울에서 일어난 강도살인·살인미수 혐의로 이모(54) 씨를 지난해 11월 검찰에 송치했다. 이씨는 공소시효가 끝나기 직전인 지난 8월 기소됐다. 이씨는 2004년 8월 16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주부 이모씨를 흉기로 살해하고, 사흘 뒤 강북구 미아동에서 여성 2명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는다. 당시 경찰은 탐문수사를 거쳐 인상착의를 토대로 용의자를 수배했으나 이씨 검거에 실패했다. 이씨는 같은 해 12월 공범 A(2011년 사망·당시 65)씨와 함께 송파구 석촌동에서 2명을 살해하는 등 6명을 연쇄 살해한 ‘석촌동 연쇄살인사건’으로 검거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명일동과 미아동 사건 수사는 좀처럼 진척이 없었다. 2012년 광진경찰서가 공범 A씨의 자백을 토대로 이씨를 명일동 주부 살해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증거불충분 등으로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 이후 몇 년이 지난 뒤 경찰은 추가 첩보를 입수해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씨를 상대로 끈질긴 설득과 추궁을 병행한 끝에 범행을 자백받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보강수사를 거쳐 지난 8월 이씨를 재판에 넘긴 데 이어 명일동 살인사건도 조사를 마치는 대로 추가 기소할 방침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명일동 살인사건과 미아동 살인미수 사건의 유력 용의자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교도소를 찾아가고 편지를 주고받는 등 8개월간 설득 끝에 자백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이춘재, 피의자로 입건…신상공개 가능해져

    경찰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를 이 사건 피의자로 정식 입건했다. 사건은 공소시효가 모두 끝나 이씨에 대한 입건이 처벌로 이어질 수는 없지만 이씨의 신분이 용의자에서 피의자로 전환돼 향후 신상공개가 가능하다.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최근 이씨를 강간살인 등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올해 8월 화성 사건의 5·7·9차 사건 증거물에서 이씨의 DNA가 검출되자 이씨를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으며 이씨로부터 자백을 끌어냈다. 이어 화성 사건의 3·4차 사건 증거물에서도 그의 DNA가 나왔다. 경찰은 이씨에 대한 처벌 여부와 별개로 그동안 우리나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 미제 사건으로 기록된 이 사건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이씨를 용의자 신분으로 남게 하지 않기 위해 입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가 입건되면 이씨의 현재 모습을 비롯한 신상공개 가능성이 열린다. 다만 현재 경찰은 피의자를 검찰에 송치할 때 모자나 마스크를 제공하지 않는 등의 소극적인 방법으로 피의자 신상공개를 하고 있는 데다 이씨가 수감 중이어서 현재 모습이 공개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이씨는 화성 사건 이후인 1994년 1월 충북 청주 자택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25년째 복역 중이다. 이씨는 이날까지 10여 차례 이어진 경찰 대면조사에서 10건의 화성 사건을 포함해 모두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강간·강간미수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경찰, 이춘재 피의자로 입건

    경찰, 이춘재 피의자로 입건

    경찰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이춘재(56)를 이 사건의 피의자로 입건했다. 화성사건은 공소시효가 모두 끝나 이씨에 대한 입건이 처벌로 이어질 수는 없지만 신분이 용의자에서 피의자로 전환되면서 향후 신상공개 가능성이 열렸다. 14일 경찰 등에 따르면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최근 이씨를 강간살인 등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은 올해 8월 화성사건의 5, 7, 9차 사건 증거물에서 이씨의 DNA가 검출되자 이씨를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 이씨로부터 자백을 끌어냈다. 이어 화성사건의 3, 4차 사건 증거물에서도 이씨의 DNA가 나오자 경찰은 대한 입건을 전격 결정했다. 경찰은 이씨에 대한 처벌 여부와 별개로 그동안 우리나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아온 이 사건의 중대성 등을 고려해 이씨를 용의자 신분으로 남게 하지 않고자 입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가 자백한 모든 사건의 피의자인지 이 가운데 일부 사건의 피의자로만 입건됐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그동안 경찰은 변호사 등 외부 법률자문위원을 선임해 이씨에 대한 입건이 가능한지 여부 등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고심해왔다. 다른 사건으로 수감 중인 이씨는 이날까지 10여차례 이어진 경찰의 대면조사에서 10건의 화성사건을 포함해 모두 14건의 살인과 30건의 강간·강간미수 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이씨가 저지른 모든 범죄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이번 입건이 처벌로 이어지기는 불가능하지만 이씨의 현재 모습을 비롯한 신상공개 가능성은 남아있다. 현재 경찰은 피의자를 검찰에 송치할 때 모자나 마스크를 제공하지 않는 등의 소극적인 방법으로 피의자 신상공개를 하고 있는데 이씨는 이미 수감 중이어서 현재 모습이 공개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이씨는 화성사건 이후인 1994년 1월 충북 청주 자택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25년 째 복역 중이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이춘재 DNA, 화성 3차사건 증거물에서 검출…“8차 증거물도 분석”

    이춘재 DNA, 화성 3차사건 증거물에서 검출…“8차 증거물도 분석”

    범인 잡힌 화성 8차 사건 ‘자백’ 이춘재 DNA 감정 중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이춘재(56)의 DNA가 화성사건의 4, 5, 7, 9차 사건에 이어 3차 사건 증거물에서도 검출됐다. 이로써 화성에서 발생한 10건의 사건 가운데 5건이 이춘재의 소행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범인이 잡혀 이춘재 모방범죄 알려진 8차 사건 증거물에 대해서도 이춘재의 DNA를 분석하고 있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부터 3차 사건의 증거물에서도 이춘재의 DNA가 검출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화성 사건 가운데 3차 사건은 1986년 12월 12일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축대에서 권모(당시 24세)씨가 스타킹으로 양손을 결박당하고 머리에 속옷이 씌워진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번에 이춘재의 DNA가 검출된 3차 사건 증거물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은 현재 이춘재가 스스로 범행했다고 자백한 8차 사건의 증거물에 대한 국과수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경찰은 이후 순차적으로 추가 증거물에 대한 감정의뢰를 하겠다고 밝혔다.앞서 경찰은 화성사건의 마지막 사건인 10차 사건 증거물부터 차례대로 국과수에 DNA 감정을 의뢰했다. 이춘재의 DNA는 이 중 4, 5, 7, 9차 사건의 피해자 속옷 등에서 검출됐으며 10차 사건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 자백의 신빙성을 밝히기 위해 순차적으로 증거물 감식을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춘재는 최근 화성 8차 사건을 포함해 14건의 살인사건과 함께 성폭행과 성폭행 미수 등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8차 사건 당시 범인으로 지목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윤모씨는 복역 도중 징역 20년으로 감형을 받아 2009년 8월 풀려났다.윤씨는 항소심과 징역형을 살면서 “경찰에서 고문을 받고 잠을 못 잔 상태에서 허위로 진술했다”며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해왔다. 윤씨는 이춘재가 “8차 사건도 내가 했다”고 자백한 뒤 재심 전문 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와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이춘재는 화성사건 이후인 1994년 1월 충북 청주 자택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하고 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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