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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BS 특집다큐 3부작 ‘선생님 세우기’

    EBS가 스승의 날을 맞아 16일부터 18일까지 3부작 특집 다큐멘터리 ‘선생님 세우기’(오후8시)를 방송한다. EBS는 ‘학교는 붕괴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한다.800만학생이 학교에서 교육받고,40만 교사들이 학교를 지키고 있는 것이 그 이유다.학교의 한 축이면서도 교육위기가 나올 때마다 책임자로 비난받는 교사들이 고민하는 문제와 학교의 존재이유,진정한 교육 등에 대해 알아본다. 1부 ‘선생님 어디 계세요-지은이의 촬영일지’는 경기 분당 서현고등학교방송반 학생들이 만든 다큐 ‘선생님 세우기’ 촬영기다.방송반 학생들은 학생들과 교사들의 인터뷰를 담아가면서 그동안 몰랐던 교사들의 뒷모습을 탐색해 간다.방송반은 교사가 학생보다 더 심한 입시 스트레스에 갇혀 있지 않는가를 자문해 보기도 한다. 학생들도 수긍할 수 있는 체벌,주위 교사들의 반대에도 담임반 학생들의 야영을 이끌어내는 교사,교무실에서 보여지는 교사들의 인간적 삶 등이 담겨있는 ‘선생님 세우기’ 시사회를 통해 학생들은 교사와 학생을 이어주는 끈을 확인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친다. 2부 ‘2000년 5월 한국에서 교사로 살기’에서는 부산 해운대여중 곽태훈교사를 담는다.곽선생은 교단일기,학급앨범 등으로 꾸며진 인터넷 홈페이지(myhome.netsgo.com/step2002)를 운영하고 있다.곽선생은 “교단일기를 통해아이들에게 미처 얘기하지 못했던 것들,힘든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어 너무좋다”고 한다. 1박2일 수련회에서 학생들에게 보여줄 캉캉춤을 연습하는 교사들을 통해 아이들에게 다가가려고 선생님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아이들에게 사랑을 쏟다가도 자신들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볼 때면 힘이빠진다는 곽선생의 허탈감 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3부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찾아서’는 한 교사의 해외학교 탐방기다.장승중 안승문 교사는 세계적 실험학교인 러시아 톨스토이학교와 독일 헬레네랑에학교를 찾아가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에 대해 고민한다. 톨스토이학교는 각종 행사를 학생들 스스로 준비,기획하고 수업내용이 상황에 따라 많이 바뀌는 등 교사와 학생의 자율권이 대폭보장돼 있다.헬레네랑에학교는 한 주제를 4∼6주 동안 집중적으로 다루는 프로젝트 수업,기업에서이뤄지는 현장실습 등을 통해 학생 스스로 수업을 이끌어가는 체험학습을실현하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
  • LA타임스 ‘비키니여성 등 모델’ 판촉광고 물의

    [로스앤젤레스 연합]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16일부터 각종 발행물,광고게시판,TV 등에 게재키로 한 판촉광고가 여성권익옹호 및 이슬람단체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 ‘우리를 타임스와 연결하기(Connecting Us To Times)’로 명명된 이 광고캠페인은 16일자 LA 타임스 생활면 하단에 가로 5단 세로4단 크기로 실렸는데,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백인 여성 3명의 뒷모습과 검은색의 이슬람교 전통여성복장을 한 2명을 대비시키고 있다.또 앞으로 선보일 광고 가운데 하나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교통정체와 파키스탄의 전차를 대비시켜 타임스를 보면 세계를 한 눈에 알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이들 광고는 LA 인근 마리나 델레이 소재 광고회사 ‘그라운드 제로(GZ)’가 제작한 것으로 LA 타임스는 판촉을 위해 총 1,500만달러를 투입했다. 그러나 미-이슬람관계협의회(CAIR)와 여권신장재단(FMF) 등은 LA 타임스 새광고가 여성과 이슬람교에 ‘매우 모욕적’이라며 광고게재를 중단할 것을요구했다.후삼 아일루시 CAIR 남가주지부 사무국장은“광고 메시지가 이슬람인을 서양문명에 반하는 것으로 대비시키고 있다”며 “이는 매우 유감스런 일”이라고 말했다. 타임스 편집국 안에서도 200여명의 기자들이 문제의 광고 중단을 요구하는청원서에 서명하는 등 내부 비판도 일고 있다.
  • [굄돌] 포니를 기억하며

    포니를 보았다.신문로의 대저택들이 끝나는 곳에서,정계 드라마에 가끔 등장하는 H요리점 앞에서. 포니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외제 차인 줄 알았다.껑충하고 덜 기교적으로 보이는 뒷모습 때문이었다.마주 오는 미술관 셔틀 버스에게 길을 양보하느라 포니가 눈앞에서 멈췄을 때,탈탈거리는 차의 뒷모습을 무심코 바라보다 나는 조금 놀랐다.그 차는 이미 오래 전에 단종되었다. 포니를 보자 과거의 순간들이 향낭(香囊)처럼 펼쳐졌다.20여년 전,내가 위험을 감수하며 난생 처음 히치하이커가 되었을 때 선뜻 차를 세워 태워줬던사람의 차도 포니였다.그러고 보니,정말 그런 시절이 있었다.여행중에 버스가 끊겨 어깨를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걸어갈 때 막 지나쳐간 차가 멈춰 후진을 하고 “어디까지 가세요?”하고 묻던 따뜻한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던 시절….이젠 너무도 까마득하여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실감나지않는다. 내가 본 차는 90년에 단종된 포니 2가 아니라 82년도에 생산이 중단된 포니였다.포니 2를 못본 지도 오래인 것 같은데,그냥 포니라니,차를 자주 바꾸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눈앞의 포니는 신기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했다.그 차는 유지비가 많이 들고 수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며 매연도 만만찮게 내뿜을 것이다.차 주인에게 편집증이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순한 생각이 스친 것도 우리 시대를 곪게 하는 개인의 병폐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몇년 전,마포대로에서도 포니를 보았다.일년 남짓 다니던 직장에서 퇴근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붉은 빛을 띤 포니가 눈앞을 지나갔다.그땐 동행이 있었는데,우리는 한동안 포니를 몰고 당당하게 서울 시내를 활보하는 사람의 건전한 소비 성향과 뚜렷한 주관을 오래도록 칭송했다.그후오래지 않아 IMF가 왔다. 모두들 우리 경제가 깊은 수렁에서 벗어났다고 믿는 이 순간,포니를 생각하니 이 도시 어딘가에서 폐쇄되었던 창이 하나 열린 듯하다.잊고 살던 풍경들이 눈앞에서 물결친다. 조은 시인
  • [외언내언] ‘만추의 여인’ 문정숙

    그 유명한 영화 ‘만추’(李晩熙 감독)를 나는 보지 못했다.깊어가는 가을의 공원,쓸쓸한 벤치.주변엔 낙엽이 딩굴고 또 바람에 우수수 지고...바바리코트 깃을 올리고 벤치에 앉아 누군가 기다리는 우수에 젖은 여인.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만추’를 본 사람들의 가슴을 아직도촉촉하게 적셔주는 이 장면을 보지 못한 것이다.이 영화가 개봉됐던 60년대에는 영화관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는 학생신분(게다가 한심한 ‘범생’)이었고 성인이 되고나서도 한참동안 한국영화에 대한 불신이 컸던 탓이다.그럼에도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배우 문정숙(文貞淑)씨의 서늘한 눈매,우수와 정열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는 내 가슴속에도 뚜렷한 각인을 남겼다. 그가 출연한 영화의 스틸 사진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 드문 배우였기때문이다.‘7년만의 외출’에서 지하철 환풍구 위에 선 마릴린 먼로의 모습도 강렬하지만 문씨의 경우는 뒷 모습을 담은 한 컷의 사진 만으로도 숨을멈추게 한 미국의 현대무용가 마사 그레이엄과 더 닮았다고 할수 있다. 새봄이 오는 길목을 ‘만추’의 여인이 떠나갔다.한국영상자료원이 6일부터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영상자료원 시사실에서 ‘문정숙 회고전’을 열려던 참에 주빈이 개막식에 참석도 못하고 간 것이다.‘만추’의 여인에겐 그것이 더 어울리는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남은 사람은 그 뒷모습에 또 다시가슴이 젖는다.문씨의 별세를 전하는 기사들은 그가 1927년 평북 선천에서태어나 북한의 공훈배우까지 지낸 언니 문정복씨의 영향으로 연극무대에 섰다가 영화에 데뷔해 30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고 쓰고 있다.그러나 지난 80년대 초 한 신문인터뷰에서는 400여편에 출연했다고 그 자신이 말한 것으로나온다.데뷔작품도 52년 신상옥(申相玉) 감독의 ‘악야’와 56년 유현목(兪賢穆) 감독의 ‘유전의 애수’ 등 각각 다른 기록이 뒤섞여 있어 혼란스럽다.아직 체온이 느껴지는 스타의 기록이 이처럼 부정확한 것 또한 쓸쓸한 느낌을 안겨준다. 기록에 무관심한 우리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워낙 많은 작품에 출연한 탓에데뷔작을 그 자신 착각했을 가능성도없지 않다.그러나 생전에 그가 자신의대표작으로 꼽은 작품이 ‘만추’가 아니라 같은 감독의 ‘시장’이었다는사실은 흥미롭다.‘만추’는 홍성기(洪性麒) 감독의 ‘실락원의 별’‘애원의 고백’,이강천(李康天) 감독의 ‘나는 속았다’,권영순(權寧純) 감독의‘흙’,이만희 감독의 ‘주마등’‘귀로’‘검은 머리’‘7인의 여포로’ 등과 함께 “기억되는 작품들” 중 하나로 꼽았을 뿐이다.‘만추’도 ‘시장’도 네가필름이 없어져 버려 고인의 뜻을 헤아리기 어렵게 됐지만 그를 다듬어 낸 이만희 감독처럼 그도 한국영화의 한 신화(神話)가 될 것은 분명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임영숙 논설위원
  • 대한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II)

    ◆이슬털기-편혜영고양이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니.그는 짧은 대답을 마치고 운동화의 끈을 여덟 개 구멍에 천천히 넣어 X 자 모양으로 만든 후에 이제 모든 준비가 다 끝났다는 듯이 현관에서 발을 몇 번 굴렀다.오랫동안 물청소를 하지 않은현관에서 뿌옇게 잔먼지가 일었다.남편이 먼지를 없애기 위해 손사래를 치면서 현관을 나섰다. 남편이 아파트 단지까지 산책을 갔다가 돌아오는 것을 실은 한 번도 본 적이없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의 츄리닝 바지춤에서 부석거리는 잔모래가 떨어지거나,바지 끝에 풀섶 이슬이 묻어 있거나,저 아파트 앞으로는 8차선 도로공사를 하고 있어,라거나,아파트 외벽이 이만큼이나 높아졌어,팔을 벌리며설명하는 것을 듣고는 짐작했을 뿐이었다. 산책을 나가지 않고 집에 있을 때도 남편은 곧잘 베란다 창을 통해 새로 시공 중인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았다.남편은 지은 지 20년이 다 되어 간다는,좁은 마당에 쥐가 들끓어 고양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 아파트 단지를끔찍하게 여겼다. 베란다 창문을 뚫고 들여오는쥐며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남편은 쥐새끼는 소리라도 안 내는데 저 놈의 도둑 고양이 새끼가 질러대는 소리는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고 투덜거렸다. 고양이들은 아파트 마당을 소리없이서성여 대다가, 발정기가 되면 길고 끊이지 않는 소리로 암컷을 불러 대곤했다.그 소리는 부쩍 떨어진 기온으로 잔뜩 냉랭해진 아스팔트 위로 길게 솟구쳐 올랐다.야생에 사는 쥐는 스스로 독초를 먹는다는 거야,부엉이나 올빼미가 얼씬하지 못하도록 내성을 기르는 거지.아파트 마당에다가 먹고 죽지 않을 정도로 쥐약을 뿌려야겠어,결국 쥐약을 먹은 쥐를 잡아먹다가 고양이가 죽게 될꺼야,그러면 저 지겨운 소리를 안 들어도 될테지,남편은 시선을 이제 반 너머 지어지고 있는 길 건너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남편이 시선을 거둘 줄 모르는 아파트는 최신 설계에 따라 시공 중이며 아파트 내부는 입주자가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높은 층에 살꺼야,베란다를 아주 넓게 하고,창은 아무 소리도 새어들지 않게 5mm 유리를 두장 쯤달겠어.남편은 밤이면 철근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보여 괴괴하기 짝이 없는 아파트 단지를 보며 꿈에 부푼 아이처럼 유리에 입김을 불어 조감도를 그리기도 했다.저 아파트 말이야,35평 분양가가 1억 4천이라는 거야,어디 급전쓸 데 없을까? 그는 꼭 내게라고 할 것 없이 베란다 유리창에 바짝 붙어 서서 시선을 여전히 주공 아파트 단지에 고정한 채 말했다.나는 그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몸 속에 켜켜이 쌓이는 독약을 어쩌지 못하고 자꾸 쓴 침만 삼켜대는 쥐를,그 쥐를 먹고 고통스러워 할 고양이를 상상하며 몸서리쳤다. 그러나 아파트 공사는 중단된 지 두 달이나 되었다.남편은 그것을 모르는 걸까.산책을 나갔다 오면 어김없이 저 아파트 말이야,마치 그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온 사람처럼 얘기를 했다.오늘은 저기 뒷동의 외벽이 유난히 높아 보이는 거야,어쩐지 퇴근 무렵에 인부들이 유난히 몰려 있더라고.현장 사람들이그러는 데 석달 정도면 외관 공사는 마무리 될 것 같다는군,석달이면 말이야. 나는 이미 8층에 사는 반장 여자를 통해,저 아파트 공사장에서 인부가 하나떨어져 죽었는데,회사측에서 보상액을 턱없이 낮게 책정하는 바람에 임금 노동자들이 반발하고,노동쟁의까지 일으키는 바람에 일손을 놓고 있다고,게다가 회사 간부가 계약자들한테 받은 착수금을 갖고 해외로 도망쳐서 회사측에서는 더할 수 없이 자금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다.그런데도,나는 남편의 말에 간혹 대거리까지 해가며 짐짓 그 사실을 모른 척 했다. 수정이 나를 부르러 왔다.마당에 상청이 다 마련되었다고 했다.울었는지 수정의 눈이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병풍을 친 마당에는 조상상과 망자를 위한 상이 따로 놓여 있었다.무녀는 도사중의 영력으로 임신하여 ┌欲屛? 제석님네 맏딸아기가 아들을 낳아 남편을 찾아간다는 내용의 소리를 하고 있었다.맏딸아기가 찾아가자 곧 제석이 중노릇을 파하고 큰 법당은 헐어내어 몸채 팔간을 짓고 큰 장삼은 뜯어내어 홑이불이 제격이며 목탁은 쪼개내어 장종지로 쓰고 장죽장은 분질러서 부지깽이로 쓰시어어,하는 긴 소리의 사설이 이어졌다.소리가 끝나자 무녀가 관중과고인을 상대로 재담을하기 시작했다.주발 뚜껑을 땡땡 치면서 염불도 하고,업도 불러들이고,바라춤을 추기도 했다.마당에 둥굴게 모여 구경을 하던 마을 사람들도 무녀와 하나가 되어 신나게 춤을 추었다.고인들도 아까의 오열을 잊고 일어나 어느 샌지 흐흐 웃음을 흘리며 덩더쿵,사람들과 함께 춤을추었다.수정도 박수로 박자를 돕고 있었다.나도 어색하게 두리번거리다가 수정을 따라 박수를 쳤다.춤은 사람들의 웃음 속에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춤을 추고 난 후에 무녀가 천막을 친 기둥에 무명 한 끝으로 쌀 담은 주발을 묶어 맨 후 나머지 헝겁에 일곱 개의 매듭을 만들었다.무녀는 신칼을 들고 서서 고풀이 무가를 잠시 불렀다.불쌍하신 최씨망제,최씨망제가 새앵전에 매애치인하안으을 고오로로 푸우러러 가시오오,축원한 후 고를 들고 춤을 추며 너울지게 흔들어서 하나씩 매듭을 풀어갔다.왠일인지 고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이승에서 풀지 못하고 저승까지 가져간 한을 뜻한다는 고를 풀기 위해 애쓰는 무녀를 보자,아직 예 남아 있는 그의 영혼이 저 고를 놓지 않는가 보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은이도 왔구나. 누군가 어깨를 툭,치며 알은 체를 했다.강호 선배였다.나는 반가운 마음보다 강호 선배가 왔으면 은미도 오지 않았을까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가까이에 은미는 보이지 않았다. 예정일이 언제니,배가 많이 나왔다,은미도 임신해서 못왔어. 강호 선배는 내가 왜 두리번거렸는지를 알아채고 말했다.은미와 강호선배는 작년에 결혼을 했다. 강호 선배 어디 있었어요?수정이 다가왔다.아까 수정이 그의 방 문앞에서 만난 사람이 강호 선배였던듯,수정과 강호 선배는 오랜만일텐데도 안부 인사가 없었다.아직도 무녀가 쩔쩔매며 풀리지 않는 매듭을 잡고 있자,그의 큰 누이가 나가 고를 푸는 것을 도왔다.드디어 첫 번째 고가 풀렸다.사람들이 와아,길게 환호성을 질렀다. 첫번째가 풀리니 나머지는 쉬웠다.무녀가 모두 풀어진 고를 든 채 염불로 망자의 극락왕생을 빌고 식구들을 축원해 주었다. 드디어 고가 풀렸다고,정말로 그가 생전에 한이라도 남기고 갔으면,다 풀렸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덩달아 박수를 쳐대다가 나는 다시 배를 잡고 허리를 구부렸다.뭔가가 뭉클,아랫도리로 쏟아지는 느낌이 났다. 나는 다시 그의 방으로 왔다.수정은 강호선배를 내보내고,마당에서 아까 나를 부축했던 아주머니를 찾아 데리고 왔다.아주머니는 내게 밑에 뭐시 묻었소? 라고 물었다. 나는 축축한 팬티를 벗어 보았다.피가 섞인 끈적끈적하고 맑은 점액 덩어리가 묻어 있었다. 이슬이라요,이것이.아가 나오기 전에 자궁이 벗개지면서 쪼께 피가 나는 것이요,배 많이 아프요? 곧 아가 나올 수도 있겠어라요.나는 몸을 활처럼 휘고 잠깐 누워 있었다.마당에서 다소 느린 흘림 장단이 들려왔다.나는 이미 사라져버린 진통을 털고 문을 열었다.수정이 바람도 찬데,나오지 말라고 두꺼운 이불을 꺼내어 덮어 주려고 하였으나,나는 마당으로 나갔다.영혼으로라도 그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가 갑작스럽게 며칠 전,그는 잔뜩 신이 나서 임신 4개월 밖에 안 된 주제에 아기의 배냇저고리를 사겠다고 남대문 시장을 돌아 다녔다.나는 아기를 가졌다는 말 이후로 몰라보게 달라진 그가 환멸스러워서 모든 것이시큰둥해 있었다.그게 그거인 좁은 시장통을 몇 바퀴 도는 동안 너무 지쳐 버려서 세 시간쯤이 되자 아무 옷이나 사 버렸다.커다란 테디 베어가 조악하게 프린트된 옷이었다.순면도 아니어서,갓난아기에게는 도무지 입힐 수가 없는 것이었다. 신세계 백화점 앞에서 나는 아기의 배냇 저고리가 담긴 비닐 봉투를 그의 손에 쥐어주고,아기 지울꺼야,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 마침 도착한 좌석 버스를 탔다.그가 버스를 타려는 나를 잡았으나 있는 힘껏 그의 팔을 뿌리치고 재빨리 뒷좌석에 몸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버스는 바로 출발했다.눈을 떴을 때 그가 지하보도로 느릿느릿 걸어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점점 어두운 구멍 속으로 빠져 드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너 때문에 충분히 불행하다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나쁜 공기처럼 늘 우리 곁을 떠돌게 마련인 죽음의 신에게 음울하고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곧 병원으로 가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정말 그가 죽어 버렸다.횡단보도에서 유아들을 태운 12인승 미니 버스에 치이던 날 같이 있던 성우선배는 이상하다고,건너 편에 선 나를 보고 길을 건너던 기환이가,갑자기 판화처럼 멈추어 서더라고,그리고는 가깝게 다가오는 노란색 버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고,신호등도 없는 횡단보도여서 사람들은 기환의 곁을 빠르게 걸어 지나갔다고,그런데도 기환은 조금도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고 그의 학생증 사진을 확대해서 만든 영정 사진 앞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그가 죽자 없던 입덧이 생겨났다.입덧이라니.터무니없었다.이미 내 자궁은 내게 음식 냄새를 거부할 만한 어떤 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수술은 봄날의 낮잠처럼 짧고도 평온한 것이었다.얇은 가운만을 걸친 채 벌린 다리가 수술대의 차가운 난간에 가끔씩 부딪쳤다.그럴 때마다 나는 언젠가 과학잡지에서 보았던,혈관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의 얇은 살갗을 가진 16주된 태아가 씨앗같은 눈을 감고 있는 사진을 떠올리며 몽롱하게 마취되어 갔다.4개월 된 태아의 죽음에는 암울한 흑백 사진도,값싸고 아린 만수향내도 나지 않았다.눈물도 아까울 만큼 수술은 금방 끝났다. 나는 우욱,먹은 것을 토해내고 질질 침을 흘렸다.대학 병원 전체가 장례식장인 듯 어딜가나 전을 지지는 기름내와 비릿한 육계장 냄새,만수향내가 났다. 포르말린 냄새가 지독해서 물도 마시지 못하다가 그의 하관식 날,나는 정신을 잃었다. 굿을 시작하면서 안방의 병풍에 걸려 있던 그의 한 벌뿐인 양복을 내려 마치 산 사람이 입은 것과 꼭 같이 만들어서 가마니 위에 펼쳐 놓고 이를 말아 일곱 매듭을 묶어 세웠다.그 위에 술을 만드는 누룩을 놓고 다시 사람 모양으로 오린 넋을 놋쇠 주발 속에 넣어 뚜껑을 덮은 다음 그 위에 바가지를 덮었다. 무녀가 신칼로 솥뚜껑을 두드렸다.저승문을 두들겨 여는 것이라고 했다. 선배가 가려나 보다. 나직하게 한숨짓는 목소리로 수정이 말했다. 나는 그가 가는 길은 어딘가,혹 그가 죽은 후,마음 속으로 그의 무덤 곁에묻었던 우리의 4개월 된 아이와 함께 가는 것은 아닌가,아득하게 눈을 돌려 영혼이 올라간다는 바닷길이 있는 쪽을 보았다가,먼 하늘에 돛대도 없는 쪽배인 듯 조금 차 오른 상현달을 보았다.무녀가 그의 옷을 넣어 만든 영돈을 쑥물,향물,청계수 순서로 빗자루에 묻히어 머리로부터 아래로 씻겨가기 시작했다.진양조의 긴 소리가 이어졌다.나야아 시러어어어 에에 헤이이이히로오 넋이로오오고나아아아 넋이이로오고나아.장구와 징만으로 된 진양조의 가닥이 슬프게 들리는지 그의 작은 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그의 어머니가 손을 맞대고 빌면서,부디 이승에서 맺힌 원한풀고 맑은 물로 깨끗이 씻겨 극락왕생하소서 기구하는 짧은 소리를 했다.망자는 마르고 깨끗해야 환생할 수 있는데 망자의 원한이 이슬이 되어 젖어 있기 때문에 이를 씻겨 주어야만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해서 이슬털기라고 한다는,씻김이 지나가고 있었다. 사람들 꿈에 선배가 나타난대,그의 어머니도 여러 번 꿈을 꾼 모양이야,아무래도 선배가 떠나지 못하는 것 같다고 굿할 날을 받았다는 거야,실은 우리가 떠나보내지 못한 걸텐데 말이야.수정이 잠깐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나도 선배의 꿈을 꾼 적이 있어,꿈에 선배가 얼마나 인상을 쓰고 있던지 무서워서 잠이 깼어,그 눈이 얼마나 무서운지,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나도 딱한 번,꿈 속에서 그를 만났다.꿈 속의 그는 나를 등지고 서서 어디론가 걸어 가고 있었다.뒷모습에 불과한 남자의 영상을 그라고 생각한 것은,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사내가 멈칫 걸음을 멈추고,이내 서서히 돌아섰기 때문이었다.나는 돌아서는 남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잠이 깨었다.지은아,가자,난선배 넋도 풀고,빚진 것 같은 내 마음도 풀고 와야겠다.너한테 수술하라고 다그친 게 내가 아니니.아무래도,선배가 그것 때문에 넋을 놓고 죽어 버린것 같아서 말이야.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수정의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무녀가 솥뚜껑을 연 후에 신칼로 바가지를 쳐서 독에 담긴 물 위로 떨어지게 하였다. 넋이 담긴 주발을 다시 한 번 쑥물 향물 비누 맑은 물로 씻기고 바가지 위에 얹어 놓았다.바가지는 배가 되고 독안의 물은 저승으로 가는 강이 된 것이다.망자는 쪽박 배를 타고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는 것이다.천천히 무녀가 신칼로 바가지를 돌리자 무녀를 돕던 다른 무녀가 아,배삯을 내야 저승으로 가지,하고 소리를 질렀다.그의 누이와구경꾼 몇이 바가지 속에 돈을 놓으니 쪽배는 금방 속력을 내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저승으로 가버렸다.그는잠깐이라도 들렀던가,다시 빠른 속도로 떠나 버렸다. 진통은 언제라도 내게 닥칠 수 있다는 기미를 팬티에 흘려 놓고 사라져 버렸다.사방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처럼 때없이 닥치는 진통으로 나는 미처 내게닥친 진통이 몇 분 간격인가를 헤아리지 못하다가,진통은 20분이 채 못되는시간꼴로 한 번씩 오는 것을 깨달았다.만약 여기서 아기를 낳는다면…나는갑자기 두려워져서 가만히 방으로 들어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이미 새벽세 시가 가까워오고 있었고,긴 산책 후 돌아와서는 깊은 잠에 골아 떨어지는 남편은 전화도 받지 않았다.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주지 않는 남편을 잠깐원망하며 나는 어두운 방에 오도카니 앉아 치마 아래로 이슬이 비친 팬티를 벗어 버리고 몽골한 새 팬티로 갈아 입었다.그 때,진동으로 해두었던 핸드폰이 울렸다.남편이었다.자다 깬 듯 졸려운 목소리였다. 이왕 간 거니 어쩔 수 없쟎아,조심해서 있다 오라구. 굿이 끝나는 대로 출발할 생각이예요. 재촉하려는 뜻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도 나는 지레 그렇게 대답했다.아니야,한숨도 못자고 운전하는 당신 친구도 생각하라구.다만 몇 시간이라도 좀 자 둬. 나 때문에 깬 거예요?미안해 할 필요 없어,산책을 안갔다 와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어.당신,산책을 안 나갔어요?좀 의심스럽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래,고양이 죽이는 일도 지겨워,사방에 쥐약 뿌리는 짓을 몇 번 했더니 어제는 드디어 죽은 고양이를 네 마리나 보았어,당신 생각대로 신축 아파트 공사장 따위는 가지도 않았다구.애기가 저 고양이 소리를 안 듣게 되서 기분이 좋아.난 좀 자야겠어,당신도 좀 자두지 그래.남편이 선하품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나는 밤이슬 젖은 풀섶을 뒤적이며 쥐는 죽지 않을 만큼,종내는 고양이가 죽을 만큼의 쥐약을 흩뿌리고 있었을 남편을 떠올려 보았다.어이없고 황당한 마음 한켠으로 고양이 소리 따위에 마음 속에서 확확 불길이 치솟는 그의 마음을 몰랐던 것 같아 안쓰러워지기도했다. 무녀가 대바구니 속에 쌀이며 망자의 옷,넋을 담고 지전으로 장식한 넋상자를 다리 위에 올려 놓고 쌀을 천 위로 뿌리면서 신칼을 들고 소리를 했다.안방에서는 그의 작은 누이가 무명천으로 만든 질베의 한 끝을 잡고 마당에서는 동네 아주머니가 한 끝을 잡고 있었다.무녀가 신칼과 넋상자를 다리 위로 조금씩 움직여 닦으면서 염불을 했다. 가족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저승 고개를 넘어가는 것이라고 했다.넋상자를 질베 밑으로 넣어 한 바퀴 돌린 후 망자가 편히 저승에 갈 수 있도록 길을 닦은 후 마당 쪽에서부터 베를 걷어 안방에서 들고 가족들 축원을 잠깐 했다.이제 망자는 극락으로 천도했고,자손들 발복하게 축원도 했으니 한 번 놀고 가자면서 무녀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도 덩달아 장단을 맞추며 춤을 추었다. 춤은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수정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선배며 후배들을 만나고 있는 모양이었다.사람들이 하도 많아서이기도 했지만,사람들마다 춤사위가 워낙 커서 나는 점점 뒤로 밀리고 있었다.옆에 서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이 발을 구르고 크게 팔을 내두르는 손짓에 슬쩍배가 맞았다.팽팽한 고무줄처럼 바짝 조여 있던 배가 약하게 떨려 왔다.무녀가 굿상의 음식을 조금씩떼어 바가지에 담고 있었다.왼손에 바가지 오른손에는 빗자루에 손대를 들고 마당에 서서 굿에 따라든 잡귀에게 풀러 먹인 후 대문을 활짝 열고 바깥에다 버렸다.나는 가늘게 밑에서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통증에 잠깐 휘청였다. 마당 가운데 그의 옷 넋을 태우기 위한 불꽃이 길게 퍼져 올랐다.벌써 저편으로 연하게 동이 터 오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불꽃 속에 그의 옷가지며 책들을 던져 넣었다.그의 누이가 누런색 곰인형을 들고 나오더니 거리낌없이 불길 속에 던져 버렸다.인형은 솟아오르는 불기둥 근처에 떨어져 타박타박,날라오는 불씨에 조금씩 타고 있었다.나는 허적이며 인형을 향해 손을 뻗쳤다.인형은 태우지 마세요,말은 입속에서만 크게 울렸다.사람들 몇이 춤을 추다 말고 나를 쳐다보았다.그 때,몸이 찢겨지는 듯한 통증이 다시 아래로부터 솟아올랐다.진통은 아까보다 더 지독한 것이었다.나는 휘청거리는 것으로는 막지 못하고 바닥에 스러져버렸다.초겨울 바람에 잔뜩 얼어 있던 땅이 임부복을 입고 있는 내 몸에 닿자,나는 진통 때문인지 추위 때문인지 다시 한번 몸을 웅크렸다.아슴하게 사람들이 서서히 내게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진통은 멈추지 않았다.누런 곰인형은 여전히 날아드는 불씨에 조금씩 타 올라 이제는 불꽃을 내뿜는 전설 속의 용처럼 온통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아랫도리로 뭔가가 뭉텅,빠져나오는 느낌이 들면서 원피스가 따뜻하게 젖어갔다.왠일인지 흙바닥이 더이상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다리 사이에서는 뜨거운 액체가 연신 흘러나오고 있었다.나는 따뜻하게 젖어가는 땅 위에서 혼몽하게 정신을 놓칠 것만 같아서,이를 꽉 물고 내게로 다급하게 모여드는 사람들을 쳐다 보았다.누군가,어째야 쓰까나,양수가 터져 버렸네,크게 소리를질렀다.자꾸만 감기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안아 일으키려는 얼굴을 바라보려고 미간을 찌푸렸다. 누군지,그 사람의 얼굴 뒤로 보이는 달은 아까보다 조금 더 차오른,상현이다.
  • [굄돌] 아름다운 사람

    70년대 어두웠던 시절,사람이 아름답다고 김민기는 노래했다. “어두운 비 내려오면,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있네.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새 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어라”(김민기 글·곡) 앙상한 나뭇가지 아래로 급히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다.멀리 사는 친구가 보고싶고 누군가를 만나 오래도록 이야기하고 싶다.누구를 오래기다리는 사람은 아름답다.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꽃을 건네는 사람도,집안을 깨끗이 윤 내는 사람도 아름답다.아는 이를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도 아름답다. 감옥에 있는 아들을 위해 면회 가는 어머니의 발걸음도 아름답다.눈물 흘리는 사람도 아름답다. 문익환 목사는 몸바쳐 통일 운동하면서 두 동강이 난 한반도 땅과 그 위에사는 사람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노래를 불렀다. “고마운 사랑아,샘솟아 올라라.이 가슴 터지며 넘쳐나 흘러라.새들아,노래를 노래를 불러라.난흘러 흘러 적시네.메마른 강산을.사랑은 고마워.사랑은 뜨거워.쓰리고 아파라.피멍든 사랑아.살갗이 찢기워,뼈마디 부수어져 이 땅을 물들인 물들인 사랑아” 고인이 된 그 분의 넋이 목터지게 부르는 노래소리이다.이천년여의 세월동안 작고,가난한 동네에 태어난 한 아기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도 한 가지일 것이다.누군가를 가슴 설레며 기다리는 사람 역시 행복하고 아름답다.우리시대의 시인 김용택은 다음과 같이 기다린다. “당신,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곱게 지켜/곱게 바치는 땅의 숨결/그 설레이는 가슴/보드라운 떨림으로/쓰러지며 껴안을/내 몸 처음 열어/골고루 적셔 채워줄 당신/혁명의 아침 같이/산굽이 돌아오며/아침 여는 저기 저 물굽이 같이/부드러운 힘으로 굽이치며/세상 깨우는/먼 동 트는 새벽빛/그 서늘한 물빛,고운 물살로/유유히,/ 당신,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12월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름답다. 김미경 서양화가
  • 미 FBI 실체 국내 첫 공개

    1995년 4월 미 오클라호마 연방건물의 폭탄테러 참사현장에 5분만에 나타나화제가 된 미 연방수사국(FBI)의 실체가 국내 언론사상 최초로 KBS-1TV에 의해 공개된다. 17일 밤12시 방영되는 ‘수요기획’은 루이스 프리 국장의 내한에 발맞춰 공개되기를 극도로 꺼려온 대테러 진압부대 SWAT(전술화기 특수부대)의 최신장비와 훈련장면 등 FBI의 실상을 카메라에 담는 데 성공했다. 물론 FBI측은 “ABC나 CBS같은 미국의 유수 방송사에게도 2∼3일밖에 취재를 허용하지 않았다”며 취재진을 감시하는 요원을 붙이는 조건으로 보름동안의 취재를 허가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준 사람이 SWAT의 사격교관으로 일하는 한국인 최재범(33)씨와 워싱턴 지부에서 근무하는 김경미(31)씨 부부였다. 제작진은 엄격한 보안을 요구하는 FBI 속성상 김씨의 뒷모습만을 카메라에담을 수 있었고 몰래카메라로 찍으려다 들켜 얼굴을 붉힌 적도 있었다. 버지니아주 콴티코 해병대기지 안에 있는 FBI아카데미에서는 영화 ‘양들의침묵’에 나온 호건스 앨리라고 불리는 특수훈련장,유전자 연구소 등을 촬영했다.이 연구소의 유전자 감식기법은 현재 전세계에서 통용된다. 지난 93년 발생한 미 중앙정보국(CIA)정문 앞 총기난사 사건을 CIA에 앞서해결해 FBI의 수사력을 입증한 범죄학박사이자 수사관인 브래드 가랫을 인터뷰,세계 최고의 수사기관으로 인정받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들어본다. 외주제작사인 트라이엄프의 이인수PD는 “FBI요원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법학·회계학·어학 전공자 또는 대학졸업후 3년,석사 취득후 2년이상 취업경험이 있는 사람 가운데서 선발된다”며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친만큼 이들은 일반 시민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부드럽고 친절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부러워했다. 임병선기자 bsnim@
  • [외언내언]‘슈퍼땅콩’

    ‘슈퍼 땅콩’으로 불리는 김미현이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노라면 엉뚱하게도 표현주의 화가 뭉크의 그림 ‘절규’가 떠오른다.이른바 풀 스윙자세의 그는 뭉크의 ‘절규’처럼 절절한 느낌을 준다.1m53㎝라는 작은 키의 단점을 극복하고 자신의 역량을 120% 끌어내기 위한 그 자세는 금방 허물어질 듯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묘한 여운을 남긴다.눈물겨운 투지와 집념이 그속에 응축돼 있기 때문인 듯싶다. 뒷모습만으로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하기 힘든 당당한 체구의 박세리와달리 김미현은 실제 나이(22세)보다 더 어린 소녀처럼 보인다.우승컵을 안아 들고 짓는 깜찍한 미소는 꼬옥 껴안아 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게다가 그에게는 기울어가는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프로 골프계에 뛰어들었다는 애잔한 이미지마저 붙어 있다.비행기와 호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중고 미니밴으로 이동하며 때로는 햄버거로 끼니를 때운 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참가해 왔다는 것이다.팬 서비스 정신 또한 투철해 국내 대회에 열심히 참가하는것도 그가 특별한 인기를 모으는 한 요인인 듯싶다.오는 22일 시작되는 스포츠서울투어 최종전인 제1회 바이코리아여자오픈에도 그는 참가한다. 김미현이 11일 LPGA투어에서 두 번째 우승을 거머쥐었다.지난 9월 스테이트팜레일 클래식에서 첫 승을 거둔 데 이어 퍼스트유니언 베시킹 클래식에서또다시 우승한 것이다.그는 이제 더이상 동정의 눈길을 받는 선수가 아니라국제무대에서 실력으로 인정받는 ‘확실한 스타’로 발돋움했고 밤잠을 못자며 그의 경기를 지켜 본 골프 팬들은 잠시 시끄러운 세상살이를 잊고 마음껏 기뻐했다.“이러다가 미국 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끼리 1,2,3등 하게 되지않을까”하며 행복해하는 팬들도 있다.지난해 박세리가 메이저 대회 2승을포함해 LPGA 투어 4승 행진을 한 데 이어 김미현이 다시 한국 여자 프로골퍼의 실력을 과시한 데다 내년에는 박지은의 활약이 예약돼 있는 터다.박지은은 김미현이 우승하던 날 LPGA 2부 투어인 퓨처스투어에서 준우승과 ‘올해의 선수’ 타이틀을 안았다.그가 박세리와 김미현처럼 LPGA 신인왕이 돼 3년연속 우리 선수들이 이 타이틀을 획득하는 기록을 세울 가능성도 높다. 광활한 국토에 잔디밭이 잘 자랄 수 있는 기후조건을 갖춘 미국에는 전세계 골프장보다 많은 골프장이 있다.지난 94년 미국 골프협회 통계에 의하면 정규코스만 1만4,600개에 달하고 동호인도 2,400만명에 달한다.그에 비하면 현재 정규코스 100여개,동호인 25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한국은 국제 골프계의 땅콩에 불과한 셈이다.그럼에도 우리 선수들이 잇따라 LPGA대회에서 우승하는 모습은 참으로 자랑스럽다.슈퍼 땅콩 만세!임영숙 논설위원
  • [문명자 회고록] 비화3共의 실세들(8) 귀국 기내에서

    69년 8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박정희-닉슨 한미정상회담이 끝난 후 나는 박정희 대통령의 동행 제의를 받아들여 그 일행과 함께 한국에 왔다.출발하는 날 아침 박정희는 인사하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아침 먹을 시간도 없는 것 같았다.전세기가 뜨는 미 공군기지 캐슬 에어 베이스로 가기 위해 각료들과 수행기자들이 모두 버스 한 대에 올라탔다.나는 기자들과 함께 앉았는데 앞쪽에 있던 김동조 주미대사가 내 옆으로 와 앉으면서 “우리 얘기 좀 합시다”하는 것이었다.평소 그를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던 나는 일부러 비꼬아 말했다. “아니 저 앞에 부인도 앉아 계신데 왜 이러세요?” 그는 내가 대통령 전세기에 함께 타고 서울로 간다는 것을 알고 대통령에게 자신에 대한 얘기를 좀 잘 해달라고 부탁하러 온 참이었다.나는 어이가 없어 물었다. “무슨 얘긴데요?” “대통령께서 만일 이 실장(이후락)과 나와의 관계에 대해 물으시면 나는절대로 이 실장 측근이 아니라는 것만 전달해 주시오” 나는 내심 ‘아니 이 사람이?’ 싶었다.김동조는 이후락의 사람이었다.이후락 맏아들의 결혼식을 자신의 대사관저에서 치러주었다.그런 사람이 자신과이후락이 관계가 없다고 말해 달라니‘이제 이후락의 권세가 끝난 모양이다’싶었다. “이번에 HR(이후락)이 목 달아납니까?” 그는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없이 자기 부탁만 되풀이했다(실제로 3선개헌후이후락과 김형욱은 비서실장과 중앙정보부장 자리에서 각각 물러났다).나는“김 대사께 들은 이야기 그대로 전달하겠습니다”고 말하자 그는 “아이고,그러면 안되고…”하며 당황해했다. 김동조는 원래 일제때 일본 규슈(九州)제국대학을 나와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일제때 관리를 지내기도 했다. 일본제국주의에서 이승만에게로,이승만에서 박정희에게로,거기서 다시 이후락에게로 이어진 김동조의 ‘줄서기’는 또다시 누구에게로 계속될지.제자리로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약속을 지키마”하고 중얼거렸다. 전세기에 올라 나는 다른 기자들과 함께 비행기 꼬리부분에 있는 수행기자실에 앉아 있는데 육 여사의 통역관 겸 비서 나은실이 찾으러 왔다. “각하께서 문 기자님을 접견실에 앉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박정희 부부와 몇 시간동안 마주보고 앉아 가게 되었다.얼마뒤 식사가 나왔다.포크,나이프를 갖다놓는데 보니 물론 도금을 한 것이겠지만온통 황금색으로 번쩍번쩍 한데 대통령 휘장이 박혀 있었다.내가 말했다.“이거 하나 째빌까요(슬쩍 집어넣는다는 경상도 사투리)? 이런 걸로 밥먹기는제 일생에 처음인데…” 육 여사가 웃으며 말했다. “다 세어 놓았을 거예요” 이번에는 메뉴판을 가지고 오는데 보니 그것도 대통령 휘장을 금색으로 박아 멋지게 만든 것이었다. “그럼 여행기념으로 이거 하나 주십시오”.그러자 박정희는 메뉴판에 ‘문명자여사를 위하여, 박정희’라고 쓰더니 나에게주었다.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오빠와 박정희가 대구사범 동기동창이었다. 박정희도 오빠를 기억하고 있었다.세상은 이렇게 좁은 것이었다.이야기 중에 김동조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나는 “세상에 별 웃기는 일도 많습니다”하고는 버스안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전했다.그말을 들은육 여사는 한숨섞인 소리로 “아휴”했다. 식사를 마치고 박정희가 담배 한 대를 피워 무는데 역시 신탄진이었다.칠이 벗겨진 지포 라이터를 쓰고 있었다.미국에서 지포 라이터는 주로 GI(미군병사나 하사관)들이나 쓰는 것이었다.그래서 물었다. “왜 하필 사병들이나 쓰는 지포라이터를 쓰십니까?” “옛날에 미국놈에게 선물 받은 것인데 바람이 불어도 불도 안꺼지고 참 좋아요” 박정희는 꼭 ‘미국놈’이라고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그러다가 박정희가 갑자기 물었다. “문 기자는 3선 개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드디어 ‘본론’이 나오는구나 싶었다.나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안됩니다.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절대로 안됩니다.이승만 박사를 보십시오” 그러자 육 여사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제 생각도 그래요” 박정희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창쪽으로 돌리더니 담배를 피워물고 연기를길게 내뿜었다.그리고 다시 말했다.“그러니까 문 기자는 한국실정을 모른다는 말이요.이번에 가서 한국실정을 좀 잘 둘러보시오” “한국실정이 어떻든 저는 3선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샌프란시스코-서울 간을 나는 14시간의 비행동안 박정희는 비서실장 이후락을 단 한번 불러 물었다. “이 실장,이번 정상회담 성과에 대해 어떻게들 보고 있소?” 나는 이후락이 박정희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나 유심히 보았다.더없이 공손한 태도로,그러나 급한 성질은 어쩔 수가 없었던지 이후락은 말을 더듬으면서 듣기좋은 소리를 늘어놓았다. “가가각하,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모두들 대성공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대성공이라니.박정희는 주한미군 철수정책을 변경시키러 닉슨을 만나러 간다고 했지만 닉슨은 전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나는 하마터면 이후락에게 “도대체 누가 그렇게 평가합디까?”하고 소리칠 뻔했다.그 순간 박정희를 힐끗 쳐다보니 그 역시 이후락의 보고가 듣기좋은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정리 정운현기자 jwh59@
  • ‘脫한국성’ 속에 숨겨진 치열한 예술혼

    한국의 예술가는 빠르든 늦든 ‘한국적’이란 문제와 운명적으로 맞닥뜨린다.이 운명적 문제를 바쁜 길을 막는 바윗돌인 냥 요리조리 피하기만 하는예술가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오히려 보편적·세계적 예술성의 광활한 하늘로 솟구치는 그네로 삼으려 한다. 바윗돌이 가뿐한 그네가 되기 위해선 예술가는 자기와 피나는 싸움을 벌여야 한다.미술 작품이 이런 내면투쟁의 아름다운 뒷모습일 때 보는 이는 즐겁다. 갤러리 현대는 ‘최선호-시적 변용’과 ‘박윤정-팽이:시간·공간’ 두 전시회를 나란히 20일부터 연다.흔한 그룹전도 만남전도 아닌 두 전시회는 우연히 물리적 전시공간만 같은 ‘따로따로’ 전처럼 보이나 양 작가는 ‘한국’ ‘한국적’이란 관점에서 우연찮은 인연과 기맥 상통함을 보여주고 있다. 최선호는 한국화를 가운데 두고 두번의 변신을 단행한 작가다.70년대 말 대학 전공을 도중에 서양화에서 동양화로 바꾸었으며 한국미술 전문인 간송미술관에서 10년동안 동양화를 연구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가 서양미술을 공부했다. 뉴욕에서 한국화를 버리고 미술을 새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전통회화와 전위적 서양미술의 접목을 꾀한 것이나 그의 작품은 얼핏 서양화,그것도 선과 색의 단순화에 온 힘을 기울이는 미니멀 아트로 다가온다. 작가의 이력은 작품을 보다 진정하게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다.그러나 서양화 같은 외양이 작가의 한국화에 대한 열정에서 솟아난 변신임을알 때 그림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실제 어떤 거리를 지키려는 절제력이 돋보이는 그의 미니멀 아트적 그림은 조금 있으면 온기가 느껴진다.캔버스에 아크릴릭으로 그냥 채색한 것이 아니라 한지를 배접하듯 부치고 그 위에 염료와 아크릴릭을 혼합 사용했고 한국 전통적 색상인 쪽빛,노란 치자색,다홍을주로 쓰고 있다.모시나 삼베를 겹쳐서 생겨나는 촉감과 헝겁을 이어서 생기는 선의 느낌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평자들은 말한다. 이번 전시회 그림은 주로 직선을 사용하고 있지만 따뜻하고 인간적인,가공되지 않고,다듬어지지 않은 선들로 오히려 푸근하게 느껴진다(박규형 갤러리현대 아트디렉터)는 것이다. 이처럼 최선호가 한 줄의 직선긋기를 통해 한국화의 새 지평을 열려고 끈기있게 노력하고 있다면 60년대 말 한국을 떠난 뒤 한국에서 첫 전시회를 갖는 박윤정의 ‘한국’은 한번만 정통으로 겪으면 끝인 무지막지한 격통같은 것이다. 한국 대학원에서 도예를 공부한 그는 미국유학과 동시에 한국에서 배운 미술공부를 비롯 한국적 미개념에 일대 혼란을 느꼈고 절망과 방황 끝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한국’은 저 밑 내면으로 침전된 지 오래였다. 30여년 간 미국에서 9회의 전시회를 열고 현재 샌디에이고 시립대 교수로재직하고 있다.박윤정의 흙을 이용한 조각,부조,설치작업은 한국적 관점에서 보면 이국적일 만큼 주변이나 남의 시선에 괘념치 않은 강렬한 집중력을 내비친다. 박윤정의 이번 전시회 주제는 팽이로 작가는 “팽이가 만든 자국은 우리 인생의 흔적이요,팽이가 주는 그림자는 시간의 흐름이다”고 말한다.우주 공간에서의 인간 모습을 팽이에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단순하나 스케일 큰 개념,소수의 강한 색채,단호하고 자신에 찬 형상 등이 어필하는박윤정의 팽이에서 우리는 한국과 상관된 주저흔이나 여백을 발견하지 못한다.한국전시회에서 강조될 수 밖에 없는 박윤정의 이같은 ‘탈’한국성은 작위적인 망각이아니라 드문,보다 생산적인 기억상실로서 오히려 상큼해 보인다. 9월2일까지.(02)732-6111. 김재영기자 kjykjy@
  • “콜렉터는 벗는 연극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미란다’를 하지 않는다.우리가 하는 연극은 ‘콜렉터’다. ”존 파울스 원작의 연극 ‘콜렉터’가 오랜만에 제 모습대로 무대에 오른다. 나비를 채집하는 남자 클렉이 미란다라는 여인을 납치,감금해 사랑을 강요한다는 줄거리로 지난 20여년간 꾸준히 공연돼 온 작품이다. 작가의 의도는,하층 계급의 남자가 상류층 여자에게 보이는 편집증적인 사랑을 통해 계급간 갈등과 화해·용서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지난 94년 ‘미란다’라는 제목으로 탈바꿈해 외설연극의대명사가 된다.미란다가 탈출을 노려 알몸으로 클렉을 유혹하는 장면에 초점을 맞춰 남녀 연기자의 전라출연,파격적인 성행위 묘사에 치중했다.그 결과극단대표와 여성연기자가 사법처리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연출을 맡은 극단 녹색무대 송수영대표는 “‘콜렉터’라는 걸작이 ‘벗는연극’의 표본처럼 취급받는 현실이 서글펐다”면서 “이번 무대에서 그 작품성을 알려 명예를 회복시키겠다”고 밝혔다.여주인공이 벗는 장면도 전라여야 흐름에 맞긴 하지만오해의 소지를 없애려고 상체만을,그것도 뒷모습으로 보여주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클렉과 미란다 역은 중견연기자인 이상용 구양숙이 맡는다.대학로 마당세실극장(02-742-8836)에서 31일까지.평일에는 오후7시30분,토·일요일 오후6시,월요일에는 쉰다.극단 녹색무대,우리극단 마당. 이용원기자 yw
  • [대한매일을 읽고] 富의 공정분배 적극적 방안 모색을

    ‘집중분석 빈부격차’(대한매일 26일자 5면)에서 부유층의 그릇된 소비행태는 평범한 서민들에게 허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한달 내내 아침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까지 일해 봐야 부유층이 걸치는 평상복 한 벌 수준도 되지않는다니 찜통 더위에 아침부터 땀흘리고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외환위기이후 중산층의 살림살이는 점점 쪼그라들고 있지만 소위 가진 사람들은 더욱 부자가 되었다니 입맛이 쓰다.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기 위하여 마련된 금융소득종합과세는 왜 사라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번 기회에 부유층의 잘못된 소비행태를 지적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것이 바람직할 것이다.무엇보다도 부의 공정한 분배,즉 열심히 일한 자에게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안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박경순[모니터·주부]
  • 빌게이츠의 MS사 세계지배 비판/美 저널리스트 웬디 골드먼

    미국의 여성 저널리스트 웬디 골드먼이 쓴 ‘마이크로소프트 파일’은 세계적 성공 신화의 주인공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일그러진 뒷모습’을 고발한다.(고병권·김인수 옮김 더난출판사 1만원). 저자는 왜 게이츠를 비난하는가.그는 이렇게 말한다.“그의 지배가 시장을표준화시켰기 때문이다.그가 아니었다면 시장은 다양화하고 생산적인 논쟁으로 가득했을 것이다”.지금과 같은 지배가 계속된다면 다가오는 디지털 시대의 운명은 빌 게이츠 개인의 손에 좌우될지 모른다고 그는 경고한다.
  • [외언내언] 봉정사의 앞뒤

    ‘조용한 산사(山寺)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라는 글귀 아래 영국여왕이 서명했던 곳에 최근 다녀왔다.엘리자베스 여왕이 “너무나 아름답고인상적이다”고 감탄했던 대로 봉정사는 신록 속에 숨겨진 작은 보석처럼 빛났다.결코 큰 절은 아니나 대웅전과 극락전 공간의 병렬적 배치와 대비에서연출되는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는 ‘우리나라 산사의 대표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兪弘濬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3)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여왕의 안내를 맡았던 스님의 이야기도 미소를 자아냈다.영국 교회의 수장(首長)으로서 부처님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는 말에 여왕을 극락전 안으로는 모시지 않았다는 것이다.그 스님의 자존심은 여왕의 안동방문 추진 과정에서 영국측 인사가 “당신들은 양반이지만 이쪽은 왕이다”란 말을 해야했을 만큼 안동 양반들이 전통적인 격식을 고집했다는 이야기도 상기시켜 주었다.대충대충 절을 둘러보는 어른들과 달리 가져온 자료를 들추며 꼼꼼히감상하는 청소년들의 모습도 흐뭇하게 다가왔다. 그러나 이런 기분은 절 뒤쪽을 돌아본 순간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대웅전(보물 제55호) 뒤편 지붕이 곧 무너질 듯 내려앉아 나무 받침대가 어설프게설치돼 있고 극락전(국보 제15호)에서 떼어낸 벽화는 비바람이 들이치는 처마 밑에 세워져 있었다.극락전이 부석사 무량수전보다 앞선 국내 최고의 목조건물로 고려 공민왕때 중수했던 사실이 밝혀진 것이 지난 72년인데 당시완전 해체 보수작업 과정에서 벽화를 떼내고 지금까지 방치해둔 것이다.성묵(性默)총무스님은 두달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벽화와 벽 사이가 개집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면서 벽화를 쥐가 파먹는 등 크게 훼손된 상태라고 안타까워 했다.봉정사 보수비로 3억여원의 예산이 책정돼 있으나 대웅전 지붕이 기울고 있어 완전 보수를 하려면 6억여원이 든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우선 올해 장마철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도 했다. 봉정사의 앞과 뒤는 우리 문화재 보호의식과 행정의 앞뒤 모습이 아닐까.건국 이후 최고의 국빈이었던 영국 여왕을 안내할 만큼 자랑스러운 문화재이지만 너무도 허술하게 보존된 그 뒷모습을 엘리자베스 여왕이 보았더라면 한국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여왕은 다행히 앞모습만 보고 떠났지만 여왕 방문후부쩍 늘어난 관광객들에게 봉정사의 뒷모습은 많은 부끄러움을 안겨준다.문화재관리청이 문화관광부 소속 문화재관리국에서 승격돼 24일 발족했다.자랑스러운 문화재를 남겨준 조상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도록 문화재 보호관리와 보존행정 그리고 예산지원도 한차원 높아져야 할 것이다.
  • [오늘의 눈] 루빈과 李揆成

    올 5월 미국과 한국은 며칠 사이로 각각 재무(재경)장관을 바꿨다.관심을끄는 것은 자리를 떠난 두 사람 다 역대 가장 ‘빛나는’ 재무장관 가운데한 명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지난 12일 사임한 로버트 루빈(61) 전 미 재무장관은 98개월째 이어지는 미국경제 장기호황의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95년 그가 취임할 때 4,000포인트를 가리켰던 다우지수는 11,000대로 치솟았고,미국은 40년 만에 흑자 예산시대를 열었으며 실업률은 4.3%까지 내려갔다. 24일 물러난 이규성(李揆成·60) 전 재정경제부장관은 ‘환란(換亂)’의 수렁에 빠진 경제를 회생시키는 데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1년3개월 전 취임 당시 달러당 1,500원대였던 환율은 1,190원대로 떨어졌고,20%를 웃돌던 시중금리(회사채수익률)도 8%대로 끌어내렸다.570포인트대에서 허덕이던 주가는 한때 800선까지 뛰어올랐다. 두 사람은 적당한 때를 골라 스스로 명예롭게 물러나는 뒷모습도 닮았다.모두 튀지 않는(shy) 스타일이어서 개성이 강한 경제팀을 원만하게 리드했다는 평가도 받는다.루빈이 2,000여만달러의 월스트리트쪽 고액연봉을 포기하면서 국사(國事)를 택했다면 이 전장관은 환란수습에 따른 과중한 업무로 건강을 상했다. 그러나 이같은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물러나면서 받는 대접에 있어서는 사뭇 차이가 있는 것 같다.루빈은 퇴임시 지나치다싶을 만큼 극찬을 받으며 떠났다.그에 비하면 이 전장관에 대한 배웅은 좀 초라해 보인다.이같은 예우가‘영웅 만들기’에 인색한 우리 사회 특유의 정서 때문은 아닌지 하는 상념에 잠긴다. 사실 미국정부와 여론이 그렇게 ‘띄웠던’ 루빈도 알고보면 과대포장됐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미국의 호황이 루빈 취임 훨씬 전인 9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는 점만 보더라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이 전장관이 재임 중 ‘과(過)’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공(功)’이 그것보다 클 때는 칭송을 아끼지 않는 문화를 가꾸었으면한다.이제 우리도 ‘스타 장관’‘스타 대통령’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김 상 연 경제과학팀 기자
  • [굄돌]책과 21세기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맑고 선량해 보인다.그리고 그들에게서는 진지한 삶의 향기 같은 것이 풍긴다.절대로 대충대충 살아갈 것 같지 않은 신뢰감도 아울러 묻어난다. 칸칸이 빽빽하게 진열된 책의 행렬을 따라 걷는 이들의 뒷모습은 어느 시인이 읊은 구절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다.특히 아동도서 서가 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웬지 머리라도 한번 쓰다듬어 주고싶은 마음이 불쑥 생겨난다.바로 저 아이들이 커서 이 나라를 이끌 때쯤이면 지금 같은 혼탁함이 말끔히 개일 것이라는 기대 또한 샘솟는다. 다가오는 21세기를 가리켜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문화를 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문화의 세기는 책이 중심에 서는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오늘날의 종이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오랜 세월 책이 품었던 수많은 지식과 정보,그리고 예술이 어떤 형식으로든 담겨 있는 매체라면 그것이전자적인 것이든 멀티미디어적인 것이든 곧 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출판을 비롯한 모든문화시장이 개방의 파고에 휩쓸리고 있다.지구촌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문화상품의 국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문제는 그 속에 담긴 내용이다. 유명한 외국상표를 달고 우리 정신과 문화가 세계 구석구석으로 팔려나간다면 그것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오히려 우리 상표임을 내세우지만 정작 그 속에 담긴 내용이 남의 것일 때 우리 문화의 정체성은 점차 상실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정신과 문화를 담아온 소중한 그릇이다.그럼에도 책의 존재를 잊고 사는 세대가 있다면,그런 책의 무한가치를 폄하하는 장사꾼들이 설치는 세상이라면 21세기는 분명 우리의 시대가 될 수 없을것이다.그런 의미에서 서점을 찾는 일은 곧 우리 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리라. [김기태 한국출판학회 사무국장]
  • 劉鍾山씨 18년간 홀로노인에 영정사진무료촬영 봉사

    “아버지께서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변변한 영정사진이 하나도 없었어요.주민등록증에 있는 사진을 확대해서 영정사진으로 썼는데 그게 그렇게 마음이 아플 줄 몰랐습니다” 서울시 세종문화회관 시설부에 근무하는 劉鍾山씨(48·기능직9급)는 무의탁 노인이나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을 찾아 영정사진을 무료로 찍어준다.지난 77년 부친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영정사진을 마련해놓지 않아 불효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자원봉사로 이 일을 하게 됐다. 劉씨가 사진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67년 충남 당진에 있는 삼민중학(현서야중학)을 졸업하고부터.사진의 마력에 빠져든 劉씨는 책을 보면서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80년 공무원시험에 합격,세종문화회관 시설부에 근무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진 촬영을 했다.이듬해인 81년 여름 동료들과 함께 강원도 산골마을을 여행하다가 노인 8명의 영정사진을 찍어 액자로 만들어 우편으로 보내주면서부터 영정사진을 찍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영정사진을 한장 찍으면 필름값 인화료 액자비용을 합쳐 3만원 정도의재료비가 든다.劉씨는 박봉을 쪼개 재료비를 전액 부담하고 있다. 지금까지 영정사진을 찍어 드린 노인은 1,300여명.비번 때 동사무소나 사회복지센터,종교시설 등을 찾아 생활이 어려운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생전 모습을 필름에 담았다.현재 강북구에 사는 劉씨는 지난해 11월부터 강북구 노인100여명의 영정사진을 찍어주었다. “자식들도 못해준 효도를 해준다고 그렇게 고마워하십니다.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마음속으로는 눈물을 흘리면서 셔터를 누르곤 하지요.액자를 받아보고 고맙다고 편지를 보내온 노인들도 많습니다” 삼각대 대형배경판 카메라가방을 멘 劉씨의 뒷모습에서 사랑의 향기가 느껴진다. 金龍秀 dragon@
  • SBS ‘그것이‘ 취재팀 두만강 접경지역서 촬영

    지난 연말 방영된 KBS 일요스페셜 ‘1998년 지금 북한,무슨 일이 일어나고있나’를 통해 참담한 실상이 처음 밝혀진 북한 꽃제비들(부랑아).이들이 목숨을 걸고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는 현장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진이 지난 1월20일부터 보름간 두만강 접경지역에서 촬영한 이 화면은 20일 오후 10시50분 ‘꽃제비들의 강타기-르포,두만강’편에서 방송된다. 최근 북한은 접경지역의 경계를 강화,탈북자를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 하지만 굶주림을 참지 못한 북한주민들의 도강(渡江)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취재진이 만난 14살,15살 꽃제비 형제도 이들 중의 하나.아버지가 병으로 숨진 뒤 강냉이와 풀죽으로 연명하다 이틀을 꼬박 걸어 강을 건넜다고 한다.중학생인 형의 키는 겨우 125㎝.같은반 40명중 10명가량은 항상 결석하고,소학교의 경우 3∼4명만 학교에 나올 정도로 굶주림이 심각하다고 이들은 전한다.접경지역 주민들이 준 빵과 보리개떡을 ‘보퉁이’에 싸 짊어지고 다시 북으로 돌아가는 형제의 뒷모습에는절망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있다. 한때 북한의 상류층에 속했던 한 가족이 생계유지를 위해 탈북,유랑중인 모습도 방송된다.이들은 “우리가 먹고살기 힘들 정도면 다른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다”고 말한다.또 한국전쟁 때 월남한 아버지가 북에 두고온 아들(50)을 50여년만에 제3국에서 어렵게 만났으나 북한에 있는 아들의 가족을 염려해 그를 북으로 돌려보낸 눈물겨운 사연도 소개된다.박종성PD는 “보다 체계적인 북한동포지원 시스템의 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이 프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李順女 coral@
  • 학생 봉사활동 학교중심으로 운영돼야

    학생들의 봉사활동 실적이 점수화되면서 방학때만 되면 파출소같은 공공기관에는 봉사활동을 자청하는 학생들이 줄을 잇는다.보통 비슷한 또래들이 어울려 찾아와 몇 시간동안 봉사활동을 해야 하니 일을 시켜달라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나오면 어떤 일을 어떻게 시키겠다는 준비된프로그램이 별로 없는 실정이다.그래서 학생들에게 무슨 일을 시킬까 고민하다가 결국 청소같은 허드렛일을 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일이 끝나면 학생들은 미리 준비해온 ‘봉사활동 확인서’라는 용지에 확인도장을 받아들고 돌아간다. 그런 학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학생들 스스로가 진정으로 봉사의 의미를 이해하고 실천했다고 생각할지 한 두번 회의에 빠진 것이 아니다. 학기나 방학중 학생들의 개인적인 봉사활동 실적을 요구하기보다는 학교의도덕 또는 사회과목 연간 교육계획에 봉사활동 시간을 설정,학기중에 학교측의 지도아래 학교중심의 봉사활동으로 개선 운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양희종 [익산경찰서 방범순찰대]
  • 외언내언-조계종 총무원장

    구세군 자선냄비에 한 스님이 시주받은 돈을 내놓았다.종교를 초월한 이타 행(利他行)의 아름다운 실천이지만 그 뒷모습은 여러가지 생각을 갖게 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둘러싼 종권다툼의 아수라장에 스님마저 잠시 등을 돌린 것은 아닐까.세속보다 더 세속적인 집안싸움에 실망해서 구세군 자선냄 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은 아닐까…. 한 스님의 자선행위까지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 만큼 한국 불교의 위상은 크게 실추됐다.그 원인이 된 조계종 사태가 29일 총무원장 선거를 고비로 해결되고 더 이상 잡음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불교도는 물 론 일반인들의 소망이다. 새 총무원장은 이런 염원을 잘 읽고 종단 개혁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종단 분규의 소지를 모두 없애 악순환의 고리를 잘라버려야 하는 것이다. 조계종단 분규의 불씨는 ‘잿밥’이다.소설가 김성동씨도 한 칼럼에서 “ 문제는 돈이다”고 지적했듯이 엄청난 규모의 종단 재산이 화근이다.총무원 장이 집행하는 1년 공식예산만도 1백40억원에 이르는데다 조계종 산하 전국 사찰의 재산을 돈으로 환산하면 가히 천문학적 규모가 된다.최근 그린벨트 해제 논의로 인해 사찰 재산이 더 불어나게돼 조계종 분규에 영향을 미쳤다 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총무원장은 총무원 직할사찰인 조계사 주지를 겸하면서 조계종 산하 사찰 의 주지 인사권을 쥐고 있어 그 권한이 막강하다.전국 24개 교구본사와 2,50 0여 각 말사 주지 선출은 지방자치제처럼 각 본사별로 선출하지만 총무원장 이 이들에 대한 인준권과 징계위 회부권을 쥐고 있고 종단 소속 사찰 재산에 대한 감독권 및 처분 승인권도 갖고 있다. 이처럼 막강한 총무원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종단재산이 잿밥에 눈먼 권승들의 손에서 좌지우지되는 사태를 막지 않는 한 조계종 분규는 4년마다 재발할 수밖에 없다.지난 94년의 조계사 사태도 지나치게 비대한 총무원장의 권한이 빌미가 된 것이었다. 제도와 함께 사람도 바뀌어야 한국 불교의 진정한 거듭남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제도 개혁은 물론 승려 교육의 획기적 변화가 필요하다.불교정 신의 핵심은 무소유이다.새 총무원장은 무소유의 정신으로 이번 조계종 사태 가 전회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개혁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任英淑 논설위원ysi@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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