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뒷모습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주차장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현금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디자인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 솔라시도
    2026-05-2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972
  • “내가 필승후보” 오세훈에 고민정 “환상 속에 빠져 있다”

    “내가 필승후보” 오세훈에 고민정 “환상 속에 빠져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내가 (대선) 필승 후보”라고 자신한 데 대해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의원이 “여전히 환상 속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오세훈 전 시장은 22일 김무성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이 주도하는 ‘더 좋은 세상으로’(마포포럼) 초청 강연에서 “민주당의 거물들이 나를 두려워하는 것을 느꼈다”면서 “내가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필승 후보”라고 강조했다. 이에 고민정 의원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오세훈 전 후보가 선거에서 제게 진 후 ‘고민정이 아닌 문재인 대통령과의 대결이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본 적 있다”면서 “정치신인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자존심도 상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고민정 의원은 서울 광진을에서 미래통합당 오세훈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고민정 의원은 “선거를 여러 번 치러 본 분이기에 패배를 떳떳하게 인정하는 품격 있는 뒷모습을 기대했지만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면서 “오늘 정치 재기를 기약하며 많은 말들을 쏟아놓으셨다. 여전히 환상 속에 빠져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움마저 든다”고 꼬집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리뷰] 거장이 다시 파고든 깊이…백건우 초연한 듯 어루만진 슈만의 삶

    [리뷰] 거장이 다시 파고든 깊이…백건우 초연한 듯 어루만진 슈만의 삶

    백발 거장은 곡을 시작하기 전 천장을 올려다 보며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그리곤 한 음씩 어루만지듯 차분히, 그렇지만 단단하게 이어갔다. 스스로도 “이번 기회로 재발견한 셈”이라고 소개했던 슈만의 마지막 작품 ‘유령 변주곡’이 그렇게 시작됐다. 젊었을 때 수없이 연주했어도 어쩐지 불편했다던 슈만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그의 손으로 지나간 한 음악가의 삶은 아름다우면서도 애처로웠다. 9일 저녁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백건우와 슈만’은 슈만의 첫 작품으로 문을 열어 마지막 작품으로 무대를 맺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변주곡이다. 작품번호가 붙은 첫 번째 곡인 ‘아베크변주곡’으로 두 손이 건반 끝에서 끝을 몰아치듯 힘차게 오갔고,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하기 전에 쓴 마지막 곡 ‘유령 변주곡’은 오히려 차분하고 서정적으로 위로를 건네듯 다가왔다. 그 사이 ‘세 개의 환상작품집’과 ‘아라베스크’, ‘새벽의 노래‘, ‘새로운 소품집 중 다섯 개의 소품’, ‘어린이의 정경’이 작품이 쓰여진 순서를 넘나들며 무대를 채웠다. 백건우는 리사이틀을 앞두고 지난 6일 가진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초기와 마지막해에 초점을 둬 슈만이 죽을 때까지 어린이 같은 순수함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인생의 쓰라림을 표현했던 그 양면을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에 맞게 2부 공연 후반부에 이어진 ‘어린이의 정경’과 ‘유령 변주곡’이 특히 내내 마음을 울렸다. 거장이 연주하는 ‘어린이의 정경’은 발랄하면서도 여백이 느껴졌고 ‘유령 변주곡’은 쓸쓸한 듯 하면서도 따뜻했다. ‘카니발(사육제)’, ‘크라이슬레리아나’, ‘환상곡’ 같은 피아니스트라면 누구나 도전하는 대작은 이미 찬란한 시절을 함께했다면서 늘 자신에게 불편함을 줬던 그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던 그가 슈만의 깊이를 더욱 파고든 과정이 오롯이 전달됐다.백건우는 무엇보다 ‘유령 변주곡’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슈만이 정신적으로 심각하기만 했다면 그런 곡을 쓸 수 없어요. 한 음 한 음이 살아있고 모두 의미가 있거든요.” 그리고 음악과 사랑, 죽음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쉽게 얻지 못했던 슈만의 그 복잡한 삶이 이해된다고 했다. “어떤 심정으로 자기가 직접 짐을 싸서 정신병원으로 들어갔는지, 사랑하는 클라라와 아이들에게 위험이 되지 않게 혼자 걸어 나온 그를 생각하게 됐죠.” 반드시 넘어야 할 것 같았던 고비였다는 불편함을 극복한 그가 전하는 선율은 모든 것을 초연한 것마냥 자유로워 보였다. ‘유령 변주곡’을 마친 백건우는 다시 깊은 숨을 쉬었다. 그리고 잠시 틈을 두었다가 객석에 인사했다. 기립 박수를 보내는 관객들을 향해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하기를 여러 번, 무대 한 켠에 선 백건우는 두 손을 모아 왼쪽 가슴에 포개 뜨거움을 고이 담았다. 앙코르가 없어 오히려 마지막 작품의 잔상이 짙게 남는 데다, 일흔이 넘어 재발견한 깊이를 나눈 뒤 객석의 사랑을 폭 안고 돌아선 거장의 뒷모습이 묘한 위로가 됐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2005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신들의 황혼’을 쓸 때 나는 ‘연희고지 전투’ 장면에서 가장 가슴이 아팠다. 주인공은 겨우 스무 살이었다. 6·25 전쟁이 시작되고 사흘 만에 빼앗긴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연합군이 감행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한국 해병대원. 불과 한 달 전에 입대한 학도병이었지만 그는 어느덧 죽음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남아 있었다. 포성과 화염에 휩싸인 인천항에서 상륙주정의 문이 열리자 무조건 앞을 향해 뛸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많은 인민군이 남쪽으로 내려간 상태에서 항공 폭격과 함포 사격을 퍼부은 뒤였으므로 인천에 상륙한 병사들에게 다가온 것은 전투가 아니라 시체 썩는 냄새였다. 적들이 버리고 간 각종 중화기 사이에서 뒹구는 인민군의 시체들, 불타버린 시체들…. 후퇴하는 적군과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면서 도달한 행주 나루에는 허옇게 불어터진 시체들이 물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오기 직전에 서울 진격의 교두보 확보를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증거였다. 수륙양용 장갑차를 타고 건너면서 내려다본 한강에는 인민군과 미군과 국군의 시체가 뒤엉켜 있었다.그러나 서울 서쪽 안산의 줄기인 연희고지 근처에 이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눈앞의 104고지에는 인민군이 기관총과 박격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고지 앞을 흐르는 하천과 구릉은 적에게만 유리한 지형지물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땅은 엄폐물 하나 없이 트여 있는 개활지였다. 그의 소총 부대는 그 모든 것을 헤치며 나아가야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훈련장이기도 했던 연희 104고지는 천연 요새이자 적의 최후 방어선이었으므로 서울 탈환을 위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교전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스무 살 청년은 정신없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고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와도 무조건 나아가야 했다. 한국 해병 제1대대는 26명만이 생존했으나 104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서울 수복 전투의 승기를 잡았다.바로 그곳, 연희 104고지 전적지를 찾았다. 지난 26일 서울신문과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의 18번째 여정 ‘104고지와 안산’에서였다. 서울 수복 70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주말, 하늘은 높고 햇살은 투명했다. 6·25 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 수복을 이룬 것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1950년 9월 15일과 28일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서대문구 연희동, 이 평화로운 주택가가 바로 그 시기의 격전지였다. ‘연희104고지앞(구 성산회관)’이라는 이름의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눈앞에 보이는 대형 건물(구 성산회관, 현 지오영) 뒤의 낮은 산이 104고지다. 그곳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어서 지도를 살펴 가며 주택가의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1982년에 세워진 ‘해병대104고지전적비’가 그곳의 주인공으로 높게 서 있다. 그러나 1958년에 처음 설치했다는 자연석 비석을 찾을 길 없어 둘러보니 전적비 맞은편 아래로 뒷모습의 윗부분만 조금 보였다. 그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있으나 표지판이 없었다. 지금은 ‘궁동 공원’으로 바뀐 104고지 정상이 아닌 산자락에 전적비가 설치된 까닭은 바로 이 비석 때문이었을 터인데,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0년대에 비문을 새겼던 역사적인 바윗돌로 이끄는 표지판이 없는 게 아쉬웠다. 연희 104고지 전적지는 서울미래유산이자 현충시설이다. 70년 전에 이곳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젊음을 기리며 우리는 전적비 앞에서 묵념했다. 인민군은 최후까지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어린 병사들의 발목과 기관총을 쇠사슬로 묶어놓고 끝까지 저항하게 했다. 하지만 서울을 탈환하려는 아군의 의지는 그보다 강했다. 아군 전사자 178명, 인민군 사살자 1750명의 치열한 전투였다. 한미 해병이 안산 일대의 주요한 봉우리들을 모두 점령한 것은 9월 25일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9월 27일, 한국 해병대 청년들이 중앙청에 걸려 있던 인공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전적비 옆에 있는 ‘해병대 수도 서울 탈환 작전’ 안내판에는 그 사진이 중앙에 가장 크게 게시돼 있다. 사진과 지도가 어우러진 설명문을 읽으며 6·25 전쟁을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잠시 서울 시내를 내려다봤다. 안내판에는 ‘104고지 탈환 후 서울 시내를 바라보는 해병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 속의 서울은 포연에 휩싸인 폐허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서울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104고지의 총성이 시작된 지 1주일 뒤 수도탈환기념식에 개선부대로 참석한 해병대 청년들처럼.우리는 연희동 주택가를 지나고 연세대 캠퍼스를 거쳐 안산 자락을 넘어 서대문 쪽으로 코스를 잡았다. 연세대는 당시 6일 동안 엄청난 포격전이 벌어진 격전지였다. 6·25 발발 직후에 인민군 사령부가 들어섰고 서울 수복 후에는 미군이, 1·4 후퇴 때는 중공군이 각각 진지를 구축해 전란 내내 군인들이 주둔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들의 자유와 교정의 평화가 가득하다. 1922년에 세워진 핀슨관 앞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며 멈춰 섰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남학생 기숙사였고 지금은 윤동주 기념관으로 쓰는 국가지정 문화재 건물이다. 윤동주 시인은 1938년과 1940년에 각각 이곳에 머물렀는데, 하숙집터로 알려진 종로구 누상동에서 등교할 때는 안산 자락을 넘어다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우리는 캠퍼스 북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온실을 지나자 안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쪽문이 나타났다.안산은 자락길이 잘 갖춰져 있지만, 그 길로 진입하기까지는 등산로의 숲길을 헤치며 가야 한다. 서울 수복을 위해 한미 해병대가 진격했던 길, 일제강점기의 윤동주 시인이 하숙집을 오갔던 길, 그 길을 가늠해 보면서 흙길을 밟아 오르다가 숨이 차오를 무렵 안산 자락길을 만났다. 휠체어와 유모차도 다닐 수 있게 조성한 순환형 무장애 숲길답게 주말을 맞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종류의 숲과 여러 방향의 조망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안산 자락길은 총 7㎞로 이어져 있다. 평탄한 데크 길을 걷다가 우리가 걸어온 연희동 쪽을 내려다보면서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유와 평화라는 유산을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의 세대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자락길에 만발한 꽃무릇의 진홍색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올 무렵, 우리는 서대문형무소 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과 독재정권 시절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갇혀서 고통당했던 서대문형무소의 담벼락을 따라 걷는 동안, 우리의 현재는 앞선 세대가 물려준 선물 같은 유산이라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김광섭의 시 ‘독방 62호실의 겨울’과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받은 이 선물을 미래에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동안 독립공원을 지나 독립문 사거리에 이르렀다.독립문 건너편에 자리잡은 영천시장도 서울미래유산이다. 1960년대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재래시장으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자유 민주주의 사회를 발전시켜 나간 서민들의 생활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골목형 전통시장인 영천시장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석교교회도 서울미래유산이다. 조금 빠듯했던 일정을 따라 마지막 목적지인 석교교회에 이르자 1916년에 건립된 고딕 양식의 적벽돌 건물이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하고 의미 있게 여겨졌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쟁의 폭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모든 것을 지켜본 교회. 저 안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연들로 기도했을까. 이것은 유형의 유산이지만 무형의 유산이기도 하다. 오늘 둘러본 모든 것들이 그랬다. 외형상 문화적 인공물에 해당하는 유산이라도 거기에는 문화적 행위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물리적 배경이 존재한다.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은 어쩌면 유형과 무형으로 나눌 수 없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의미 있게 살아가다 보면 유·무형의 유산은 저절로 쌓여갈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을 둘러보는 서울미래유산 투어. 치열했던 전쟁의 결과로 얻은 자유와 평화의 길을 걸었던 여정의 마지막에서 맑디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연희고지 전투를 끝낸 뒤 피아의 구분 없는 시체더미 속에서 허탈한 마음으로 밤을 맞이했을 때, 동쪽 하늘로 한가위의 둥근 달이 떠올랐다고 했던가. 올해도 그 달은 어김없이 떠올라 우리를 비춰 줄 것이다. 100년 후의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글·해설 고은주 소설가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19회 4·19민주묘지 ●출발 일시 10월 3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연희동 주택가에서의 처절한 전투…아름다운 서울의 평화를 선사하다

    2005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신들의 황혼’을 쓸 때 나는 ‘연희고지 전투’ 장면에서 가장 가슴이 아팠다. 주인공은 겨우 스무 살이었다. 6·25 전쟁이 시작되고 사흘 만에 빼앗긴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연합군이 감행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한국 해병대원. 불과 한 달 전에 입대한 학도병이었지만 그는 어느덧 죽음에 무감각해져 있었다.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만이 남아 있었다. 포성과 화염에 휩싸인 인천항에서 상륙주정의 문이 열리자 무조건 앞을 향해 뛸 때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많은 인민군이 남쪽으로 내려간 상태에서 항공 폭격과 함포 사격을 퍼부은 뒤였으므로 인천에 상륙한 병사들에게 다가온 것은 전투가 아니라 시체 썩는 냄새였다. 적들이 버리고 간 각종 중화기 사이에서 뒹구는 인민군의 시체들, 불타버린 시체들…. 후퇴하는 적군과 산발적인 전투를 벌이면서 도달한 행주 나루에는 허옇게 불어터진 시체들이 물에 떠다니고 있었다. 그들이 오기 직전에 서울 진격의 교두보 확보를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증거였다. 수륙양용 장갑차를 타고 건너면서 내려다본 한강에는 인민군과 미군과 국군의 시체가 뒤엉켜 있었다.그러나 서울 서쪽 안산의 줄기인 연희고지 근처에 이르자 상황이 달라졌다. 눈앞의 104고지에는 인민군이 기관총과 박격포로 무장하고 있었다. 고지 앞을 흐르는 하천과 구릉은 적에게만 유리한 지형지물이었다. 게다가 나머지 땅은 엄폐물 하나 없이 트여 있는 개활지였다. 그의 소총 부대는 그 모든 것을 헤치며 나아가야 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훈련장이기도 했던 연희 104고지는 천연 요새이자 적의 최후 방어선이었으므로 서울 탈환을 위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교전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스무 살 청년은 정신없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동료들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오르고 곳곳에서 비명이 들려와도 무조건 나아가야 했다. 한국 해병 제1대대는 26명만이 생존했으나 104고지를 탈환함으로써 서울 수복 전투의 승기를 잡았다. 바로 그곳, 연희 104고지 전적지를 찾았다. 지난 26일 서울신문과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이 함께하는 ‘2020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의 18번째 여정 ‘104고지와 안산’에서였다. 서울 수복 70주년 기념일을 이틀 앞둔 주말, 하늘은 높고 햇살은 투명했다. 6·25 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 수복을 이룬 것에 대해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1950년 9월 15일과 28일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서대문구 연희동, 이 평화로운 주택가가 바로 그 시기의 격전지였다. ‘연희104고지앞(구 성산회관)’이라는 이름의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눈앞에 보이는 대형 건물(구 성산회관, 현 지오영) 뒤의 낮은 산이 104고지다. 그곳으로 안내하는 표지판이 없어서 지도를 살펴 가며 주택가의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작은 공원이 나타났다. 1982년에 세워진 ‘해병대104고지전적비’가 그곳의 주인공으로 높게 서 있다. 그러나 1958년에 처음 설치했다는 자연석 비석을 찾을 길 없어 둘러보니 전적비 맞은편 아래로 뒷모습의 윗부분만 조금 보였다. 그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있으나 표지판이 없었다. 지금은 ‘궁동 공원’으로 바뀐 104고지 정상이 아닌 산자락에 전적비가 설치된 까닭은 바로 이 비석 때문이었을 터인데,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1950년대에 비문을 새겼던 역사적인 바윗돌로 이끄는 표지판이 없는 게 아쉬웠다. 연희 104고지 전적지는 서울미래유산이자 현충시설이다. 70년 전에 이곳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젊음을 기리며 우리는 전적비 앞에서 묵념했다. 인민군은 최후까지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어린 병사들의 발목과 기관총을 쇠사슬로 묶어놓고 끝까지 저항하게 했다. 하지만 서울을 탈환하려는 아군의 의지는 그보다 강했다. 아군 전사자 178명, 인민군 사살자 1750명의 치열한 전투였다. 한미 해병이 안산 일대의 주요한 봉우리들을 모두 점령한 것은 9월 25일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9월 27일, 한국 해병대 청년들이 중앙청에 걸려 있던 인공기를 내리고 태극기를 게양했다. 전적비 옆에 있는 ‘해병대 수도 서울 탈환 작전’ 안내판에는 그 사진이 중앙에 가장 크게 게시돼 있다. 사진과 지도가 어우러진 설명문을 읽으며 6·25 전쟁을 이야기하다가 우리는 잠시 서울 시내를 내려다봤다. 안내판에는 ‘104고지 탈환 후 서울 시내를 바라보는 해병대’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 속의 서울은 포연에 휩싸인 폐허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서울은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104고지의 총성이 시작된 지 1주일 뒤 수도탈환기념식에 개선부대로 참석한 해병대 청년들처럼.우리는 연희동 주택가를 지나고 연세대 캠퍼스를 거쳐 안산 자락을 넘어 서대문 쪽으로 코스를 잡았다. 연세대는 당시 6일 동안 엄청난 포격전이 벌어진 격전지였다. 6·25 발발 직후에 인민군 사령부가 들어섰고 서울 수복 후에는 미군이, 1·4 후퇴 때는 중공군이 각각 진지를 구축해 전란 내내 군인들이 주둔했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학생들의 자유와 교정의 평화가 가득하다. 1922년에 세워진 핀슨관 앞에서 우리는 잠시 숨을 고르며 멈춰 섰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남학생 기숙사였고 지금은 윤동주 기념관으로 쓰는 국가지정 문화재 건물이다. 윤동주 시인은 1938년과 1940년에 각각 이곳에 머물렀는데, 하숙집터로 알려진 종로구 누상동에서 등교할 때는 안산 자락을 넘어다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우리는 캠퍼스 북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온실을 지나자 안산으로 올라갈 수 있는 쪽문이 나타났다.안산은 자락길이 잘 갖춰져 있지만, 그 길로 진입하기까지는 등산로의 숲길을 헤치며 가야 한다. 서울 수복을 위해 한미 해병대가 진격했던 길, 일제강점기의 윤동주 시인이 하숙집을 오갔던 길, 그 길을 가늠해 보면서 흙길을 밟아 오르다가 숨이 차오를 무렵 안산 자락길을 만났다. 휠체어와 유모차도 다닐 수 있게 조성한 순환형 무장애 숲길답게 주말을 맞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양한 종류의 숲과 여러 방향의 조망을 즐기며 걸을 수 있는 안산 자락길은 총 7㎞로 이어져 있다. 평탄한 데크 길을 걷다가 우리가 걸어온 연희동 쪽을 내려다보면서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유와 평화라는 유산을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미래의 세대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자락길에 만발한 꽃무릇의 진홍색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올 무렵, 우리는 서대문형무소 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하산길로 접어들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과 독재정권 시절의 민주화 운동가들이 갇혀서 고통당했던 서대문형무소의 담벼락을 따라 걷는 동안, 우리의 현재는 앞선 세대가 물려준 선물 같은 유산이라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김광섭의 시 ‘독방 62호실의 겨울’과 심훈의 ‘그날이 오면’을 떠올리면서, 우리가 받은 이 선물을 미래에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동안 독립공원을 지나 독립문 사거리에 이르렀다.독립문 건너편에 자리잡은 영천시장도 서울미래유산이다. 1960년대에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재래시장으로 전쟁의 폐허를 딛고 자유 민주주의 사회를 발전시켜 나간 서민들의 생활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장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골목형 전통시장인 영천시장을 통과하면 나타나는 석교교회도 서울미래유산이다. 조금 빠듯했던 일정을 따라 마지막 목적지인 석교교회에 이르자 1916년에 건립된 고딕 양식의 적벽돌 건물이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하고 의미 있게 여겨졌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쟁의 폭격에도 무너지지 않고 모든 것을 지켜본 교회. 저 안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사연들로 기도했을까. 이것은 유형의 유산이지만 무형의 유산이기도 하다. 오늘 둘러본 모든 것들이 그랬다. 외형상 문화적 인공물에 해당하는 유산이라도 거기에는 문화적 행위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물리적 배경이 존재한다.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은 어쩌면 유형과 무형으로 나눌 수 없는 우리의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성실히 의미 있게 살아가다 보면 유·무형의 유산은 저절로 쌓여갈 것이다. 미래 세대에게 전할 100년 후의 보물을 둘러보는 서울미래유산 투어. 치열했던 전쟁의 결과로 얻은 자유와 평화의 길을 걸었던 여정의 마지막에서 맑디 맑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연희고지 전투를 끝낸 뒤 피아의 구분 없는 시체더미 속에서 허탈한 마음으로 밤을 맞이했을 때, 동쪽 하늘로 한가위의 둥근 달이 떠올랐다고 했던가. 올해도 그 달은 어김없이 떠올라 우리를 비춰 줄 것이다. 100년 후의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글·해설 고은주 소설가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19회 4·19민주묘지 ●출발 일시 10월 3일(토) 오전 10시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을왕리 사고 유족 “음주운전 인식 전환되길…응분의 처벌 원해”

    을왕리 사고 유족 “음주운전 인식 전환되길…응분의 처벌 원해”

    인천 을왕리해수욕장 인근에서 치킨 배달을 하다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50대 가장의 유족이 이번 사고가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피해자 A(54·남)씨의 유족은 22일 법률 대리인 안팍 법률사무소를 통해 입장문을 내고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고취돼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유족은 “갑작스러운 참변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아버지의 마지막 뒷모습을 애써 붙잡으며 한동안 비극적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많은 국민이 함께 나눠주신 슬픔과 반성 없는 가해자들에 대한 공분은 유가족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가정에 닥친 비극이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며 “고인의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가해자들이 응분의 처벌을 받는 그 날까지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지난 9일 0시 55분쯤 인천시 중구 을왕리해수욕장 인근의 한 편도 2차로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1% 이상의 만취 상태에서 벤츠 차량을 몰던 B(33·여)씨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치킨 배달을 가던 오토바이 운전자 A씨가 숨졌다. 경찰은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망사고를 내면 처벌을 강화하는 이른바 ‘윤창호법’을 B씨에게 적용해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 혐의로 구속하고, 동승자 C(47·남)씨를 음주운전 방조 및 위험운전치사 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아래는 유가족 측 입장문 전문. <을왕리 음주운전 역주행 사고 유가족 입장문> 을왕리 음주운전 역주행 사고 피해자 유가족의 법률대리인 안팍 법률사무소입니다. 피해자의 유가족은 갑작스러운 참변으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아버지의 마지막 뒷모습을 애써 붙잡으며 한동안 비극적인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미뤄두었던 이별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 지금, 유가족은 다시금 형언할 수 없이 깊은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많은 국민 여러분께서 함께 나눠주신 슬픔과 걱정, 그리고 반성 없는 가해자들에 대한 공분은 유가족에게도 큰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유가족을 대신하여 용서 못할 음주운전의 죄상을 세상에 알려주신 언론, 개인 방송, 목격자와 제보자, 국민청원에 동의해주신 수십만 명의 국민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또한, 수사기관에도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유가족 역시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이 고취되어, 다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법률대리인은 끔찍한 사고로 가장을 잃고 실의에 빠진 유가족이 하루빨리 평온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에 당부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많은 언론인들이 취재를 위해 고인이 운영했던 가게와 집까지 찾아오시고 계십니다. 아직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유가족은 두려운마음에 쉽사리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부디 유가족이 고인을 떠나 보내고,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도록, 생활의 터전을 지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유가족께서는 자신의 가정에 닥친 비극이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당장은 견디기 힘든 슬픔을 누르지 못해 수많은 인터뷰 요청에 응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향후 유가족은 법률대리인 안팍 법률사무소를 통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고인의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가해자들이 응분의 처벌을 받는 그 날까지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0. 9. 22. 을왕리 음주운전 역주행 사고 유가족 법률대리인 안팍 법률사무소 드림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추미애 “딸 가게라고 공짜로 먹을 순 없어…위법 아냐”

    추미애 “딸 가게라고 공짜로 먹을 순 없어…위법 아냐”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17일 자신의 장녀가 과거 운영했던 서울 이태원 소재 양식당에서 기자간담회 등 명목으로 수백만원을 사용해 정치자금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에 대해 “딸 가게라고 공짜로 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라고 반박했다. 추 장관은 큰딸이 음식점을 차리며 청년 창업에 나섰지만 높은 권리금과 임대료 등을 감당해야 했다면서 “이 실패는 너의 실패가 아니고 너는 최선을 다했다고 격려차 (식당에 갔던 것)”이라고도 해명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2014년 11월부터 2015년 8월까지 총 21차례에 걸쳐 추 장관의 장녀 A씨가 운영하는 양식당에서 250여만원을 사용해 정치자금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의혹에 대해 질의했다. 추 장관은 “때로는 (장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기자들과 민생 얘기도 하며 아이 격려도 했다”며 “정치자금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주말인 일요일에 여의도가 아닌 이태원까지 가서 기자간담회를 한다는 것이 정상적이냐는 지적에는 “일요일에도 기자랑 담소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추 장관은 최 의원이 ‘정치자금법 위반뿐 아니라 가족에 일감을 몰아주고 매출을 올려주는 공정에 반하는 일’이라고 지적하자 청년 창업의 어려운 현실을 내세웠다. 추 장관은 “제 딸 아이가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청년 창업을 하고 싶다고 해 모은 돈으로 창업을 했으나 높은 권리금과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아이 혼자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문을 닫았다”고 주장했다. 추 장관이 갑자기 청년 창업의 고충을 이야기하자 의원석에서는 고성과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추 장관은 작심한 듯 “제가 아이에게 이 실패는 너의 실패가 아니고 잘못돼도 너는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추 장관의 장녀는 2014년 10월 서울 이태원에 수제 미트볼 등 미국 가정식을 판매하는 양식당을 열어 운영했다. 이 식당은 케이블 방송의 인기 맛집 소개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다. 큰딸은 2018년 6월 추 장관이 당대표 시절 결혼식을 올렸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화환을 보냈다. 추 장관은 김상희 국회 부의장에게 1~2분이라도 더 설명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한 뒤 발언기회를 받고선 “제가 (식당에서) 기자들에게 민생 얘기를 했다”면서 “치솟는 임대료와 권리금으로 청년의 미래가 암울하니 그 당시 우리 사회의 ‘지대’가 걸림돌이 된다고 봐 지대 개혁을 해야 한다고 깨달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정치자금법을 위반하거나 이런 일은 없었고, 그때 아이가 느꼈을 좌절을 보고 정치하는 공인인 엄마로서 지대 개혁을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도 했다. 추 장관은 “그래서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국무위원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면서 “아픈 기억을 소환해준 의원님 질의에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비꼬았다. 최 의원은 발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는 추 장관의 뒷모습을 향해 “앞으로는 정치자금 말고 개인 돈으로 써라”고 소리쳤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연작 소설처럼… 여성들의 ‘일상 속 이야기’ 줌인·줌아웃

    연작 소설처럼… 여성들의 ‘일상 속 이야기’ 줌인·줌아웃

    홍상수·연인 김민희 함께한 7번째 작품서사 요소 배제… 단편소설 3개 이은 듯옛 인연 ‘불쑥’ 찾아가 서투른 관계 맺기‘찌질한 남자’는 영화 전개 큰 영향 안 줘홍상수 감독에게 은곰상을 안긴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카를로 샤트리안은 그의 영화를 두고 “에리크 로메르나 우디 앨런과의 비교를 멈추고, 안톤 체호프에 관해 얘기할 때가 됐다”고 했다. 안톤 체호프가 누구인가. 풍자와 유머, 애수가 담긴 명단편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소설가다. 지금껏 홍상수가 빚어낸 영화들은 길이는 장편이어도 작법은 단편소설에 가까웠다. 서사가 배제된, 거친 줌인·줌아웃을 반복하며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 작은 파문들을 들여다본다. 영화(17일 개봉) ‘도망친 여자’는 남편과 꼭 붙어 지내던 여자 감희(김민희 분)가 그가 출장을 간 사이 옛 인연들을 만나러 다니는 이야기다. 감희 시점에서 차례로 영순(서영화 분), 수영(송선미), 우진(김새벽)을 만나 펼치는 에피소드는 단편 소설 3개를 이은 연작처럼 보인다. 감희의 인생에서 이들이 오랜만이라면, 이들에게는 감희가 ‘불쑥’이라 소통은 매끄럽지가 않다. 채식을 주로 하는 영순에게 감희는 고기를 사고, 머리를 자른 감희에게 영순은 “집 나간 고등학생 같다”고 한다. 한때 같이 ‘까불고 놀았던’ 수영에게 자신의 옷 한 벌을 선물하지만, 수영은 ‘썸 타는 윗집 남자’와 돈 자랑을 하며 크게 감희에게 감사하지도 않는 것 같다. 서투른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감희는 여자들이 연대하는 방식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항의하러 찾아온 이웃 남자를, 영순은 함께 사는 룸메이트 여성과 점잖지만 결연하게 맞받는다. 이웃 취준생이 감희에게는 불청객처럼 느껴지지만, 영순에겐 담배를 함께 태우고 애환을 나누는 이웃이다. 이 과정에서 홍상수 영화 특유의 ‘찌질한 남자’는 한참 주변화됐다. 고양이가 불편하다며 항의하는 이웃, 하룻밤 잔 것으로 매달리는 남자 등 뒷모습으로만 나타날 뿐, 영화의 전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우진과의 만남이 감희에게는 극적이다. 작은 영화관을 운영하는 우진은, 우연히 만난 감희에게 옛 일을 사과한다. 우진의 남편인 정 선생(권해효 분)은 감희의 옛 연인이다. 정 선생과 간만의 해후에서, 감희가 내뱉는 언사들은 그간의 여정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그사이 감희가 성장했음을 나타낸다. 영화는 홍 감독에게 스물네 번째 장편이고, 연인이자 페르소나인 김민희와 함께한 일곱 번째 작품이다. 그들의 사랑이 공개돼 세간의 지탄을 받은 후, 홍 감독의 세계관은 어느새 ‘김민희 연작 소설’처럼 이어져 온다. ‘도망친 여자’는 더욱 여성을 전면에 세웠으되, 찌질한 남자로 대표되는 일련의 남성상, 어딘가 모르게 부유하는 여성 주인공이 동어 반복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의 영화를 계속 보아 온 국내 팬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홍상수가 써내려간 ‘김민희 연작소설’… 영화 ‘도망친 여자’

    홍상수가 써내려간 ‘김민희 연작소설’… 영화 ‘도망친 여자’

    홍상수 감독에게 은곰상을 안긴 베를린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장 카를로 샤트리안은 그의 영화를 두고 “에리크 로메르나 우디 앨런과의 비교를 멈추고, 안톤 체호프에 관해 얘기할 때가 됐다”고 했다. 안톤 체호프가 누구인가. 풍자와 유머, 애수가 담긴 명단편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소설가다. 지금껏 홍상수가 빚어낸 영화들은 길이는 장편이어도 작법은 단편소설에 가까웠다. 서사가 배제된, 거친 줌인·줌아웃을 반복하며 평범해 보이는 일상 속 작은 파문들을 들여다본다. 영화(17일 개봉) ‘도망친 여자’는 남편과 꼭 붙어 지내던 여자 감희(김민희 분)가 그가 출장을 간 사이 옛 인연들을 만나러 다니는 이야기다. 감희 시점에서 차례로 영순(서영화 분), 수영(송선미), 우진(김새벽)을 만나 펼치는 장면들은 단편 소설 3개를 이은 연작소설 같다. 감희의 인생에서 이들이 오랜만이라면, 이들에게는 감희가 ‘불쑥’이라 소통은 매끄럽지가 않다. 채식을 주로 하는 영순에게 감희는 고기를 사고, 머리를 자른 감희에게 영순은 “집 나간 고등학생 같다”고 한다. 한때 같이 ‘까불고 놀았던’ 수영에게 자신의 옷 한 벌을 선물하지만, 수영은 ‘썸 타는 윗집 남자’와 돈 자랑을 하며 크게 감희에게 감사하지도 않는 것 같다. 서투른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감희는 여자들이 연대하는 방식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을 항의하러 찾아온 이웃 남자를, 영순은 함께 사는 룸메이트 여성과 점잖지만 결연하게 맞받는다. 이웃 취준생이 감희에게는 불청객처럼 느껴지지만, 영순에겐 담배를 함께 태우고 애환을 나누는 이웃이다. 이 과정에서 홍상수 영화 특유의 ‘찌질한 남자’는 한참 주변화됐다. 고양이가 불편하다며 항의하는 이웃, 하룻밤 잔 것으로 매달리는 남자 등 뒷모습으로만 나타날 뿐, 영화의 전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마지막 우진과의 만남이 감희에게는 극적이다. 작은 영화관을 운영하는 우진은, 우연히 만난 감희에게 옛 일을 사과한다. 우진의 남편인 정 선생(권해효 분)은 감희의 옛 연인이다. 정 선생과 간만의 해후에서, 감희가 내뱉는 언사들은 그간의 여정이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그사이 감희가 성장했음을 나타낸다. 영화는 홍 감독에게 스물네 번째 장편이고, 연인이자 페르소나인 김민희와 함께한 일곱 번째 작품이다. 그들의 사랑이 공개돼 세간의 지탄을 받은 후, 홍 감독의 세계관은 어느새 ‘김민희 연작 소설’처럼 이어져 온다. ‘도망친 여자’는 더욱 여성을 전면에 세웠으되, 찌질한 남자로 대표되는 일련의 남성상, 어딘가 모르게 부유하는 여성 주인공이 동어 반복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의 영화를 계속 보아 온 국내 팬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잔망스런 소녀와 마주칠 듯… 순수한 서정이 숨쉬는 ‘소설의 땅’

    잔망스런 소녀와 마주칠 듯… 순수한 서정이 숨쉬는 ‘소설의 땅’

    황순원 생전 자주 찾던 ‘소나기’ 의 배경작가 유년시절 보낸 평양과 빼닮아 설립소설 배경의 지명 이용한 산책코스 눈길 일제 민족성 말살 정책 꿋꿋하게 이겨내우리말 소설의 순수성 지킨 문학혼 정수국내 첫 문학관 AR 등 실감 콘텐츠 사업촘촘한 버드나무 뿌리 사이에 첫사랑이 있다. 소나기처럼 삽시간에 왔다가 비구름이 바람에 흩어지듯이 떠나거나 사라져버린 무방비의 사랑이다. 비 갠 자리의 흔적이 나무뿌리 사이로 오롯하게 새겨지는 고장, 경기도 양평. 이 지명은 양근군과 지평군이 합하여 만들어졌으며 양근군은 버드나무의 뿌리, 지평은 날카롭게 벼리는 숫돌과 공평할 평자가 만난 글자다. 그곳을 배경으로 한 소년과 소녀의 사랑 이야기라니! 그렇다면 흡사 버드나무 뿌리가 비 맞은 숫돌을 감싸쥔 형상을 소설에서는 사랑이라 부른 것일까.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1953년 작품인 소설 ‘소나기’ 이야기다. 한국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발표한 소설이자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독자들에게 첫사랑의 풋풋하고도 아련한 이미지로 굳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소나기처럼 스치듯 지나갔지만 강렬하게 남은 빗방울의 흔적만으로도 일생을 회고할 수 있는 사랑이자 소설의 배경이 된 고장에 다녀왔다. 어른들 눈에 ‘여간 잔망스럽지 않다’던 소녀의 흔적과 그를 기억하는 소년의 애틋함이 새겨진 소설 속의 ‘조약돌’ 혹은 지평의 숫돌은 지금 버드나무 뿌리 어디쯤 닿아 있을까 생각하면서.●황순원 문학적 지류는 평양과 양평의 모든 길 평남 대동군 재경면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수학한 황순원 선생의 고향 대신에 소설의 배경이자 선생이 즐겨 찾은 양평에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이 들어선 것은 2003년 일이다. 양평군 지원과 선생이 혼신을 다해 제자들을 길러 냈던 경희대의 결연으로 이곳에 테마공원이 조성된 것이다.‘유년의 내 고향을 빼닮았다’며 찾은 곳에 온전히 그의 소설로만 탄생한 마을이라니. 선생의 제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황순원문학촌장은 ‘선생의 문학적 지류는 평양과 양평 사이에 있는 모든 길’이라 회고했다. 양평과 평양은 단순한 지명 자체를 벗어나 남과 북을 가로지르고,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는 인간애가 펼쳐지는 삶의 길이자 소설의 땅인 셈이다. 단편소설 ‘소나기’가 수록된 소설집 ‘학’에 실린 동명 소설에는 이념을 뛰어넘는 사람들의 인간애가 오롯이 담겨 있다. 우리가 손쉽게 찾아볼 수 있던 교과서 속 소설은 시대의 모진 칼날 속에서도 소설의 명맥과 한글 문장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려 했던 선생의 고투가 새겨진 산물이다. 서슬 퍼런 일본의 한글 말살 정책에도 우리말로 쓴 소설의 순수성을 지켜 내려던 선생의 문학혼이 빛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의 소설사가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관하여 김종회 문학촌장은 다시 이렇게 소회했다. “세상의 명리에 타협하지 않으시고 그렇다고 세상과 절연하지도 않으셨으며, 있을 자리와 할 말, 물러설 때와 취해야 할 행위에 망설임도 구김살도 없으셨던, 삶과 글의 양면에 걸쳐 뜻깊고 아름다운 족적을 남기고 떠난 작가셨습니다.” 그 엄혹하고도 핍진했던 시대에 어찌하여 ‘첫사랑’이었던 걸까. ‘소나기’가 발표된 시기인 1953년은 특히나 6·25전쟁이 막바지였던 때가 아닌가. 전란의 여파로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사람이 사람됨을 잃을 수밖에 없던 시대에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피어난 첫사랑의 이야기라니. 이는 선생이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 마음에 대한 서정적 표현이자 사랑’을 말하고자 함이었다고 후대는 평가하고 있다. “소설이 정말로 선생님의 사랑 이야기냐”고 당돌하게 물어오던 제자에게 선생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답한 우문현답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해서 아직도 회자되는 중이다.●매시 정각마다 분수쇼… 소설 속 주인공 된 듯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며 이념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은 작가의 ‘사랑’ 이야기가 오늘날 홀연히 피어난 공간이 바로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이다. 이곳은 황순원문학관을 비롯해 황순원 묘역, 수숫단 오솔길, 고향의 숲, 해와 달의 숲, 들꽃마을, 학의 숲, 송아지 들판, 너와 나만의 길, 목넘이 고개, 징검다리 등으로 꾸려져 있다. 이 소나기 마을을 에두르는 산책코스는 선생의 소설에 나오는 배경지에서 이름한 것들이다. 오솔길을 걷다 매 시각 정시가 되면, 소나기 광장에 난데없는 분수쇼가 펼쳐지는 모습 또한 빠트릴 수 없는 볼거리이자 온몸을 흠뻑 적실 수 있는 문학촌 체험 중의 백미다. 이 또한 그곳을 찾은 연인들의 사랑을 위한 장치인 것일까. 문학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소설의 흔적을 종합해 한마디로 말하자면 “세상 모든 첫사랑의 흔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람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다 보면 광장에서 분수에 몸이 젖듯이 마음도 사랑에 젖어가고, 또 소설의 한 대목처럼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노릇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이 마을에 온 연인들의 사랑은 꼭 이루어진다는 말도 떠돈다고 한다.“선생님, 사랑이 뭘까요?” 또 “첫사랑은 뭘까요?” 소녀가 소년에게 조약돌을 던지듯 질문을 하고 나면 돌아오는 대답은 물론 없겠지만 그 질문의 자리에 내 스스로 찾아낸 대답이 스며들겠지. 이쯤 해서 첫사랑의 정의를 ‘첫 번째 한 사랑’보다는 ‘그녀 혹은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랑이 첫 번째’라 말하면 어떨까. 왜 이리도 ‘첫사랑’에 마음을 두느냐 질문한다면 나는 지금 ‘첫사랑의 마을’에 다녀왔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다. ‘소나기 마을의 테마가 ‘첫사랑’인 까닭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잠시 공사가 중단됐지만, 개관 10주년을 넘긴 황순원문학촌 소나기 마을은 지금 대대적인 탈바꿈을 앞두고 있다. 바로 ‘실감콘텐츠 사업’이다. 실감 콘텐츠는 사용자에게 가상 환경에서 현실 같은 생생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시각, 청각, 촉각, 운동감각 등의 모든 감각 정보를 전달해 가상체험(AR)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소설의 영화화나 드라마화는 익숙하지만 가상 체험은 익숙하지 않은 독자와 방문자들에게 ‘실제 소설 속으로 들어간 듯한 나 자신’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문학작품 속의 이야기(스토리)가 나에게 다가와 다시 한번 ‘텔링’되는 순간. 전국 문학관 중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사업이다. 마치 지금 현실의 이 순간에 저 공간으로 들어서면, 소년과 소녀가 사랑이 사랑인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책의 공간이 눈앞에 펼쳐진다니, 어떤 느낌일까. 조만간 그 시스템이 완성되면 다시 한번 소나기 마을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늘어버렸다. 소설 한 편이 한 마을을 조성했고, 그 마을 속에서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문학의 외연이 문장과 미학을 넘어선 것을 대변한다. 작품 속의 문장들이 ‘현재’와 ‘스토리 텔링’을 넘어서서 ‘현실’이 된 순간이라면 1950년대와 2020년을 잇는 일쯤은 너끈히 해내고도 남을 것이다. 1950년대의 소설 속의 문장이 2020년으로 스며와 새로운 목소리와 물리적인 몸체를 갖는 공간에서라면 ‘첫사랑’을 더 궁금해해도 되겠다. 떠나간 이들, 다시는 볼 수 없는 이들을 마음껏 불러내어 못내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해 볼 수도 있을 성 싶다. ‘소나기’ 증강현실을 넘어서면 소나기 마을 뒤편에 ‘첫사랑 테마 로드’가 펼쳐질 예정이라고도 했다. 첫사랑의 산실인 이곳에서 세계 문학 속의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는 것이다. 알퐁스 도데의 ‘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마지막으로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이 주요 테마로 준비되고 있다.●첨단 과학 통해 다시 노작가 모습 만나게 되길 AR 속에서 ‘소나기’의 첫사랑과 만나고 나오면 ‘별’의 목동과 어린 왕자의 우주적인 사랑 그리고 톰 소여가 모험을 떠나던 도중에 만난 가슴 설레는 사랑 이야기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곳이 열리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증강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가 분수에서 물을 쏘듯이 내게 다가오면 가랑비와 소낙비에 옷이 젖듯이 내 마음도 젖어들 수밖에 없을 터이다. 바라건데 그 현실 속에서는 첫사랑뿐만 아니라 황순원 선생의 모습도 만나뵐 수 있길. 소년과 소녀를 넌지시 바라보는 마을의 인자한 할아버지의 형상에서부터 현실의 풍파를 날카롭게 그려내되 사람의 됨됨이를 끝내 잃지 않으려는 모습 그리고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밤이 깊도록 원고를 써내려 가는 노작가의 뒷모습으로라도 선생을 만난다면 어떨까. 선생께 언제까지라도 ‘당돌한 질문’을 건네고 싶은 제자의 바람과 독자들의 ‘첫사랑’에 대한 궁금증을 한꺼번에 풀어줄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소나기 마을’은 또 어떤 모습으로 현실을 비추게 될까 궁금해지는 지점이다.한 편의 소설이 시대와 손잡고 만들어낸 가장 최신의 시스템 속에서 사람의 제일 오래된 마음인 ‘사랑’ 이야기가 버드나무 뿌리 안에서부터 툭 불거져 나와 우리에게 손짓하는 마을. 자, 다시 한번 강조하건데 증강현실이든 1950년대의 사랑이든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이곳을 다녀온 나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게 되고야 말았다. 당신에게도 오늘은 첫 번째 사랑의 감정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기를! 첫사랑에 관해서라면 조금 더 잔망스러워져도 괜찮겠다. 소나기처럼. 소설가 이은선
  • “무릎 위 3㎝ 이상 치마 입지 마” 직장 내 류호정들도 ‘부글부글’

    “무릎 위 3㎝ 이상 치마 입지 마” 직장 내 류호정들도 ‘부글부글’

    한수연(가명)씨는 팀장으로부터 매일 옷차림에 대한 지적을 받는다. 평범한 외투를 입고 출근해도 팀장은 “이런 거 입고 다니지 말라”며 핀잔을 주고, 평소 들고 다니는 가방에도 “아줌마들이 시장바구니로 드는 거야”라며 지적하기 일쑤다. 한씨는 “핫팬츠나 미니스커트를 입고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왜 옷차림에 대해 지적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상사의 옷차림 지적은 성희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씨의 팀장은 “뒷모습을 보니 엉덩이가 토실토실해졌다”고 말하기도 하고, 거래처 손님이 오면 “얼굴 예쁜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커피를 접대시켰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9일 공개한 직장인 옷차림 지적 갑질 사례에 따르면 여성 직장인들이 최근 원피스 출근으로 논란이 된 류호정 정의당 의원처럼 직장에서 과도한 옷차림 지적으로 고통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직장인 이지연(가명)씨는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면 ‘청바지를 입었다’고 뭐라 하고, 치마를 입으면 ‘네 몸매에 짧은 치마는 아니지 않냐’고 지적받아야 했다”고 털어놨다.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사례 중에는 “치마를 입을 땐 무릎 위로 3㎝ 이상 올라가면 안 된다”며 치마, 신발 등 자신이 정한 기준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올 경우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 지적하는 사장도 있었다. 앞서 류 의원은 원피스를 입고 국회로 출근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와 페이스북 그룹인 ‘더불어민주당 100만 당원 모임’의 일부 회원들은 이를 두고 성희롱·성차별적 발언을 일삼았다. “술값 받으러 왔냐”, “술집 도우미”, “정의다방 미스류” 등을 비롯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성폭력 발언들이 이어졌다. 직장갑질119는 “똑같은 신입사원이어도 상사는 여직원의 옷차림을 ‘눈요기’하고 ‘지적질’한다”면서 “복장 갑질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며 표현에 따라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무릎 위 3㎝ 올라간 치마 입지마”…일상의 류호정들

    “무릎 위 3㎝ 올라간 치마 입지마”…일상의 류호정들

    한수연(가명)씨는 팀장으로부터 매일 옷차림에 대한 지적을 받는다. 평범한 외투를 입고 출근해도 팀장은 “이런 거 입고 다니지 말라”며 핀잔을 주고, 평소 들고 다니는 가방에도 “아줌마들이 시장바구니로 드는 거야”라며 지적하기 일쑤다. 한씨는 “핫팬츠나 미니스커트를 입고 출근하는 것도 아닌데 왜 옷차림에 대해 지적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상사의 옷차림 지적은 성희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씨의 팀장은 “뒷모습을 보니 엉덩이가 토실토실해졌다”고 말하기도 하고, 거래처 손님이 오면 “얼굴 예쁜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커피를 접대시켰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9일 공개한 직장인 옷차림 지적 갑질 사례에 따르면 여성 직장인들이 최근 원피스 출근으로 논란이 된 류호정 정의당 의원처럼 직장에서 과도한 옷차림 지적으로 고통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직장인 이지연(가명)씨는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면 청바지를 입었다고 뭐라 하고, 치마를 입으면 네 몸매에 짧은 치마는 아니지 않느냐고 지적받아야 했다”고 털어놨다. 직장갑질119가 공개한 사례 중에는 “치마를 입을 땐 무릎 위로 3cm 이상 올라가면 안 된다”며 치마, 신발 등 자신이 정한 기준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올 경우 하루에도 몇 번씩 불러 지적하는 사장도 있었다. 앞서 류 의원은 원피스를 입고 국회로 출근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와 페이스북 그룹인 ‘더불어민주당 100만 당원 모임’의 일부 회원들은 이를 두고 성희롱·성차별적 발언을 일삼았다. “술값 받으러 왔느냐”, “술집 도우미”, “정의다방 미스류” 등을 비롯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성폭력 발언들이 이어졌다. 직장갑질119는 “똑같은 신입사원이어도 상사는 여직원의 옷차림을 ‘눈요기’하고 ‘지적질’한다”면서 “복장 갑질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며 표현에 따라 직장 내 성희롱·성추행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송혜교·현빈 재결합? 소속사 “사실무근”…문제의 사진 보니

    송혜교·현빈 재결합? 소속사 “사실무근”…문제의 사진 보니

    과거 연인이었던 배우 현빈과 송혜교 측이 최근 제기된 재결합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현빈의 소속사 VAST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31일 현빈과 송혜교가 다시 열애에 빠졌다는 중국발 보도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송혜교의 소속사 UAA 관계자 역시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면서 부인했다. 이날 중국의 한 연예 채널에서는 ‘현빈과 송혜교로 추정되는 남녀가 한밤 중 개를 산책시키는 사진이 SNS에 올라왔다’면서 두 사람이 재결합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해당 매체가 공개한 사진에는 어두운 산책로에 서 있는 행인 2명의 뒷모습만 나와 있을 뿐 이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알아보기 힘든 수준이다.현빈과 송혜교의 교제를 지지하는 내용을 올리는 한 인스타그램은 해당 사진을 공유하며 ‘현빈의 스타일리스트가 이 사진을 올렸다가 몇 분 만에 지웠다’며 두 남녀가 누구인지 궁금하다고 적었다. 게다가 현빈은 현재 영화 촬영을 위해 요르단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져 두 사람의 재결합설에 대해 누리꾼들은 근거가 약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빈과 송혜교는 KBS 2TV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함께 출연한 뒤 연인으로 발전했으며, 2009년부터 공개 연애를 시작했다. 이후 2011년 현빈이 군에 입대한 후 두 사람은 약 2년 만에 결별 사실을 알린 바 있다. 현빈은 현재 영화 ‘교섭’의 촬영을 위해 요르단에 머물고 있으며, 송혜교는 차기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낡은 배수로 통과해 ‘헤엄 월북’…CCTV 보고만 있었다(종합)

    낡은 배수로 통과해 ‘헤엄 월북’…CCTV 보고만 있었다(종합)

    3년 전 페트병을 타고 한강을 건너온 탈북민 김모(24)씨가 다시 유유히 북으로 돌아간 과정이 공개됐다. 31일 합동참모본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씨는 이달 18일 오전 2시 18분쯤 택시를 타고 강화도 월미곳에 있는 정자인 연미정에서 내렸다. 하차 후 연미정으로 올라가는 모습과 월북을 위해 배수로로 이동하는 장면은 인근 소초 위병소의 CCTV에 고스란히 찍혔다. 당시 깊은 밤이었기 때문에 200m 떨어진 민통선 초소에서는 택시 불빛이 육안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초소 근무자는 김씨에게 다가가 확인하거나 상부 보고 등 별도 조치를 하지 않았다. 평소에도 마을 주민들이 새벽 시간에 종종 택시를 이용하기에 특이하게 판단하지 않았다는 게 합참의 설명이다. 합참이 위병소 CCTV 등을 토대로 재분석한 결과, 김씨가 배수로로 이동해 이를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여분 정도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배수로와 소홀한 감시망으로 가능했다. 가로 1.84m, 세로 1.76m, 길이 5.5m인 배수로에는 10여개의 수직 형태 철근 장애물과 바퀴 형태의 윤형 철조망 등 장애물이 이중으로 설치돼 있다. 김씨가 163cm, 54kg의 왜소한 체격이어서 탈출이 수월했다는 합참의 당초 설명과 달리 배수로 철근 구조물은 낡고 훼손돼 ‘보통 체구의 사람’도 통과가 가능한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철근 구조물의 일부 간격은 35∼40cm 정도까지 벌어져 있었다고 합참은 전했다. 당시 배수로는 성인 무릎 높이 정도까지 물이 차올랐을 것으로 합참은 추정했다. 이 배수로에는 CCTV도 없었고 하루 두 번씩 점검해야 하는 매뉴얼도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배수로를 통과한 김씨가 한강에 입수한 시각은 오전 2시 46분쯤이다. 이후 조류를 타고 헤엄쳐 무인도인 김포 유도 인근을 거쳐 약 75분 만인 오전 4시쯤 개성시 개풍군 탄포 지역 강기슭에 도착했다. 연미정에서 직선거리로 약 5㎞ 떨어진 지점이다. 심야였고 감시장비 화질 등 한계로 장비의 도움을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군은 3년 전 김씨가 귀순 당시 페트병 부력을 이용해 헤엄쳐왔던 전례를 볼 때 이번에도 구명조끼 등 수영 장비를 착용하고 갔을 개연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군의 열상감시장비(TOD)에는 김씨가 북한 지역 도착 후 육지로 올라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후 4시 40분쯤 김씨가 걸어가는 장면도 TOD 영상에 남았다. 깊은 밤이라 식별이 쉽지 않았던 근거리 및 중거리 감시카메라와 달리 TOD 영상에는 상대적으로 김씨의 뒷모습이 뚜렷하게 잡혔지만, 당시 TOD 운용병은 이를 북한 주민으로 오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월북 전 치밀하게 사전 준비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월북 하루 전인 17일 오후 6시 30분쯤에서 7시 40분 사이 교동도와 강화도 해안도로를 방문한 정황이 검문소 및 방범 CCTV를 통해 확인됐다. 사전에 지형정찰을 한 것으로 군은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가 18일 월북한 시점부터 26일 북한이 이를 보도하기 전까지 일주일 넘게 월북자 발생 사실 자체를 몰랐던 군은 김씨를 놓치고 나서야 연미정 배수로 인근에서 김씨가 버리고 간 백팩 가방을 발견했다. 가방 안에는 김씨 명의 통장과 성경책, 비닐 랩, 구급약품 등이 있었다고 합참은 전했다. 군 당국은 해병대 사령관과 수도군단장을 엄중 경고하고, 해병 2사단장을 보직 해임하는 등 관련자를 징계위에 회부하겠다고 밝혔다. 합참은 “재발 방지를 위해 민간인 접근이 가능한 철책 직후방 지역을 일제 점검하고 주기적인 기동 순찰도 강화할 방침이다. 또 전 부대 수문과 배수로를 일제 점검해 경계취약요인에 대한 즉각 보강대책을 수립하겠다”고 전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추미애 ‘관음증보도’ 비판에 법조기자 뿔났나…공개질의 나서(종합)

    추미애 ‘관음증보도’ 비판에 법조기자 뿔났나…공개질의 나서(종합)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6일 채널A 검언유착 사건을 놓고 윤석열 검찰총장과 대립한 것에 대한 언론 보도를 ‘관음증보도’라고 비판하자, 법조기자들이 공개 질의에 나섰다. 추 장관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개혁을 바라는 민주시민에 맞서 검찰과 언론이 반개혁 동맹전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며 “관음증보도에 힘을 보태는 진보신문 역시나 법조출입기자입니다. 절독해야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전날 추 장관은 “여성 장관에 대한 언론의 관음 증세가 심각하다”라며 연가를 내고 산사에 머물며 찍은 뒷모습 사진에 ‘누가 찍어줬을까’란 기사 제목과, 산사와 자택에 찾아와 취재를 한 기자들을 비판했다. 추 장관의 ‘관음증보도’란 비판에 SBS 임찬종 기자는 즉각 추 장관이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공간인 본인의 페이스북에 언론인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했다며 답변을 요구했다. 임 기자는 ‘관음증보도’는 통상적으로 공적인 업무와 관계 없는 사적인 영역에 대한 보도를 뜻하는데 어떤 보도가 어떤 점에서 사적 영역에 대한 보도라고 주장하는 지에 대한 설명을 요청했다.이어 “관음증보도에 힘을 보태는 진보신문”은 어느 신문의 어느 보도를 말하는 것인지도 설명을 요청하며, 검찰의 누구와 언론이 어떤 방식으로 ‘반개혁 동맹전선’을 형성했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사실관계 설명을 해달라고 덧붙였다. 임 기자는 법무부가 기자간담회 요구 등에 응하지 않고 있어서 부득이 법무부 대변인과 100명 이상의 기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질문한다고 주장하며 질문 내용을 본인의 페이스북에도 공개했다. 한편 추 장관은 ‘검언유착’ 의혹 수사를 둘러싼 수사지휘권 발동으로 윤 총장과 대립하며 지난 7일 ‘산사 휴가’를 떠났을 당시 관용차를 사용한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윤한홍 미래통합당 의원은 법무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인용해 추 장관이 지난 7∼8일 연차 휴가를 내고 경기도 화성시의 용주사를 찾았으며, 사찰까지 이동을 위해 장관 운전기사가 모는 관용차량을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무원이 사적 용도로 관용차량을 사용했다며 공무원 행동강령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추 장관의 ‘산사 연가’에는 비서관 1명과 수행비서 1명도 동행했으며, 이들은 개인 휴가를 내고 용주사에 머문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추 장관이 비록 휴가 중이었으나 수시로 보고를 받는 등 업무를 처리 중이었기에 관용차 사용에는 문제가 없으며, 언제든지 근무지에 복귀할 수 있도록 운전원이 동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추미애 “여성 장관에 관음증 심각”…“도끼병”

    추미애 “여성 장관에 관음증 심각”…“도끼병”

    진중권, 여성 장관이 아니라 장관 추미애에 대한 보도추미애 법무장관이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여성 장관에 대한 언론의 관음 증세가 심각하다”며 언론의 보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추 장관은 소위 채널A 검언유착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주장하며 지난 7일 연가를 내고 산사로 가자 자신의 소재를 탐색하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이 언론은 물론 정치권에 로비를 심하게 한다는 것이 감지되어 다음날까지 휴가를 연장했다고 덧붙였다. 첫 연가 다음날 산사에서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개하자 한 언론은 “제 메시지는 뒷전이고 ‘뒷모습 누가 찍었나?’를 궁금해했다”고 강조했다. 8일 오전 9시쯤 산사에서 거처를 옮겼는데 기자들이 추 장관이 머물던 절을 추적했고, 스님에게 장관과 찍은 사진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같은 날 오후 5시 30분쯤 집 앞에 도착하자 수많은 기자가 진을 치고 있어 집에 못 들어가고 또 거처를 옮겼다고 했다. 조수진, 국회 법사위 열어 각종 의혹 해명해야 추 장관은 검찰의 건의안을 거부한 법무부 의견문 발표를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와 협의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이미 인터넷 SNS를 통해 반복해서 설명했지만 애초에 저의 해명은 필요 없었던 것 같다”며 “‘최 의원=장관의 최순실’이란 프레임을 씌우고 싶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추 장관은 “언론의 진실을 외면하는 무능력은 관대하게 넘어가겠지만 관음증 중독은 선을 넘었다”며 “남성 장관이라면 꿋꿋이 업무를 수행하는 장관에게 사진은 누가 찍었나, 최순실이 있다, 문고리가 있다, 발끈한다 등 이런 어이없는 기사 제목을 붙이며 우롱했겠는가”라고 한탄했다. 추 장관의 페이스북 게시물에 대해 한 기자는 “도끼병 장관님은 또 처음이라 좀 당황스럽다”며 “장관님 그러니 페이스북 게시물 말고 간담회를 통해 질문을 받으시라”고 제안했다. 기자들의 질문은 모두 공적인 물음이고, 성별과도 무관한 내용일 것이라고 장담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여성’ 추미애에게는 아무 관심 없다. 못 믿겠으면 ‘장관’ 그만둬 보세요. 그 많던 기자들, 싹 사라질 것”이라며 “피해의식을 가장한 자아도취”라고 추 장관을 비판했다. 조수진 미래통합당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열어 추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최강욱 의원이 출석한 가운데 각종 의혹의 진실을 따지자고 말했다. 조 의원은 “추 장관이 이번엔 ‘관음증’에 대한 추미애식 뜻풀이로 ‘국민농단’을 했다”며 “‘검찰총장 수사권 박탈’이나 시도하려는 법무부 장관의 그릇된 행태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 어떻게 관음증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호잉 떠난 자리에 뒷모습만 남은 대전구장

    호잉 떠난 자리에 뒷모습만 남은 대전구장

    극심한 부진 끝에 교체된 한화 이글스 외국인 타자 제라드 호잉의 떠난 자리엔 뒷모습만 남았다. 한화는 지난달 22일 올시즌 부진한 성적을 보인 호잉을 웨이버공시하는 대신 대체 타자 브랜든 반즈를 영입했다. 지난 2일 입국한 반즈는 2주 간의 자가격리에 돌입한 상태다. 코로나19로 인해 올해 프로야구는 무관중으로 치러지고 있는 가운데 한화는 대전구장에 들어오는 한쪽 입구 쪽에 외국인 선수 3인방의 사진을 걸어뒀다. 호잉이 가운데 있고 양옆에 워윅 서폴드와 채드 벨이 서있는 사진이다. 한화 구단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10승 듀오로 이름을 남긴 원투 펀치와 팬들에게 ‘복덩이’로 불린 호잉이었던 만큼 따로 특별히 장소를 마련했다.그러나 호잉이 떠난 뒤 지금은 3인방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대신 구단 측은 불꽃 이미지와 함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 사진으로 대체했다. 한화 관계자는 “호잉 선수가 떠난 뒤 담당 부서에서 사진을 교체한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구단 측은 반즈가 합류하더라도 다시 외국인 선수 3인방의 새로운 사진을 걸어둘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호잉이 먼저 성적부진으로 떠났지만 올해 채드 벨도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8경기에서 승 없이 6패 평균자책점 7.96이다. 가을야구에서 사실상 멀어진 한화지만 그렇다고 부진한 외국인 선수를 계속 데리고 갔다간 국내 선수들에게 과부하가 걸릴 가능성도 있다. 서폴드가 팀의 1선발로서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호투해도 승운이 따르지 않는 등 팀 성적 부진과 맞물려 5승 6패 평균자책점 4.16의 어려운 시즌을 보내고 있다. 대전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추미애, 윤석열에 최후통첩 “9일 오전 10시까지 답하라”

    추미애, 윤석열에 최후통첩 “9일 오전 10시까지 답하라”

    이틀째 연가낸 추 장관“현명한 판단 기다릴 것”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도 윤석열 검찰총장이 수용 여부를 밝히지 않자 추 장관이 최후통첩을 했다. 추 장관은 8일 법무부 대변인실을 통해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면서 “9일 오전 10시까지 하루 더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일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윤 총장에 수사지휘서를 내려보냈는데도 윤 총장이 6일째 답을 하지 않자 “총장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린다”며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추 장관은 “저도 검찰조직 구성원의 충정과 고충을 충분히 듣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면서 “어느 누구도 형사사법 정의가 혼돈인 작금의 상황을 정상이라고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은 많이 답답하다”며 “우리 모두 주어진 직분에 최선을 다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고 가야 한다. 더 이상 옳지 않은 길로 돌아가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추 장관은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연가를 내고 향후 대응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전 추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사찰에 서 있는 자신의 뒷모습 사진과 함께 “산사의 고요한 아침이다. 스님께서 주신 자작나무 염주로 번뇌를 끊고 아침 기운을 담아본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무수한 고민을 거듭해도 바른 길을 두고 돌아가지 않는 것에 생각이 미칠 뿐”이라며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내가, 남길, 노랠, 찾아야 돼 … 절망의 위로

    내가, 남길, 노랠, 찾아야 돼 … 절망의 위로

    “내게 불을 붙여 줘.” 암울한 1930년대 미국 뉴욕, 자신의 곡을 쓰고 싶어 골몰하는 가난한 예술가 ‘로저’와 마약중독에 시달리는 ‘미미’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소하고 자주 꺼지기도 하는 담배에 붙일 작은 불꽃이 어느덧 두 사람의 마음을 타오르게 한다. 기타를 치는 뒷모습에서 시작해 어느새 관객들의 마음에 뜨거움을 불어넣는 것은, 배우 오종혁의 로저 연기도 마찬가지다. 지난 16일 막을 연 뮤지컬 ‘렌트’에서 열연하고 있는 오종혁과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처음엔 기타만 잡는 로저 이해 못 해 무대에서 오종혁은 시종일관 기타 하나를 쥐고 고민한다. 그가 연기하는 로저는 에이즈 보균자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로저는 월세 낼 돈도 없어 건물주인 친구에게 쫓겨날 처지다. 죽기 전에 의미 있는 곡 딱 하나를 쓰겠다는데 주변에선 그의 시간과 공간을 모두 방해한다. 객석과 등 돌리고 기타를 만지작거리거나 미간을 찌푸리고 친구들에게 짜증을 내는 게 극 초반부터 한참 동안 로저의 모습이다. 그런데 방해물로 여겼던 미미의 유혹도 서서히 사랑이 되고 친구들의 존재는 점점 로저의 의지를 더 굳혀 준다.오종혁은 처음엔 ‘마크’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고 한다. 마크는 무대 위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갖고 사는 인물로 로저의 친구이자 극의 해설자다. 마크 역시 영화 제작자이자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애쓴다. 오종혁은 “마크 역할이 연기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역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오디션 현장에서 제작진은 “딱 로저인데 왜 마크를 하려고 하느냐”며 그 자리에서 로저 역을 맡겼다. ●가슴으로 따르다 보니 알게 된 로저의 감정 오종혁은 “생각보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캐릭터라 그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썼다”면서 “암담한 상황에서도 뒤돌아 앉아 기타만 잡고 있는 그 이해 안 되는 행위들을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끝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친구라는 결론을 내렸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의 느낌을 따르다 보니 오히려 연기가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로저의 노래에 대한 갈망은 ‘원 송 글로리’(One Song Glory)에서 폭발한다. 여기서 오종혁은 서정적인 멜로디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내가, 남길, 노랠, 찾아야 돼”라며 단어마다 뚝뚝 끊어 힘주어 부른다. “죽어 가는 상황에서 마지막 노래를 찾기 위한 절박함 뿐 아니라 갖고 싶지만 잡을 수 없는 영광과 아름다움에 대한 답답함을 절실하게 녹이려고 했다”며 “객석에선 과하게 들릴 수 있지만 모든 단어에 감정을 실어 불러야 로저의 처절함이 그려질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꽉 찬 에너지,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 오종혁은 “무조건 희망만 노래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라 특유의 폭발하는 에너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1930년대 대공황에 빗대기도 하는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돌아온 뮤지컬 ‘렌트’의 조각을 그려 내고 있는 그는 인터뷰 마지막까지 긍정의 목소리를 냈다. “불확실성이 크고 많은 분이 움츠러든 시기잖아요. 이 작품으로 조금이나마 힘을 얻으면 좋겠어요. 제가 공연하면서 느끼는 이 꽉 찬 에너지와 행복감을 많은 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오종혁 “치열하게 고민한 ‘로저’ 연기… ‘렌트’는 절망 속 희망 찾는 에너지”

    오종혁 “치열하게 고민한 ‘로저’ 연기… ‘렌트’는 절망 속 희망 찾는 에너지”

    “내게 불을 붙여 줘.” 암울한 1930년대 미국 뉴욕, 자신의 곡을 쓰고 싶어 골몰하는 가난한 예술가 ‘로저’와 마약중독에 시달리는 ‘미미’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소하고 자주 꺼지기도 하는 담배에 붙일 작은 불꽃이 어느덧 두 사람의 마음을 타오르게 한다. 기타를 치는 뒷모습에서 시작해 어느새 관객들의 마음에 뜨거움을 불어넣는 것은, 배우 오종혁의 로저 연기도 마찬가지다. 지난 16일 막을 연 뮤지컬 ‘렌트’에서 열연하고 있는 오종혁과 24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무대에서 오종혁은 시종일관 기타 하나를 쥐고 고민한다. 그가 연기하는 로저는 에이즈 보균자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로저는 월세 낼 돈도 없어 건물주인 친구에게 쫓겨날 처지다. 죽기 전에 의미 있는 곡 딱 하나를 쓰겠다는데 주변에선 그의 시간과 공간을 모두 방해한다. 객석과 등 돌리고 기타를 만지작거리거나 미간을 찌푸리고 친구들에게 짜증을 내는 게 극 초반부터 한참 동안 로저의 모습이다. 그런데 방해물로 여겼던 미미의 유혹도 서서히 사랑이 되고 친구들의 존재는 점점 로저의 의지를 더 굳혀 준다. 오종혁은 처음엔 ‘마크’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고 한다. 마크는 무대 위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갖고 사는 인물로 로저의 친구이자 극의 해설자다. 마크 역시 영화 제작자이자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애쓴다. 오종혁은 “마크 역할이 연기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역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오디션 현장에서 제작진은 “딱 로저인데 왜 마크를 하려고 하느냐”며 그 자리에서 로저 역을 맡겼다.오종혁은 “생각보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캐릭터라 그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썼다”면서 “암담한 상황에서도 뒤돌아 앉아 기타만 잡고 있는 그 이해 안 되는 행위들을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끝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친구라는 결론을 내렸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의 느낌을 따르다 보니 오히려 연기가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로저의 노래에 대한 갈망은 ‘원 송 글로리’(One Song Glory)에서 폭발한다. 여기서 오종혁은 서정적인 멜로디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내가, 남길, 노랠, 찾아야 돼”라며 단어마다 뚝뚝 끊어 힘주어 부른다. “죽어 가는 상황에서 마지막 노래를 찾기 위한 절박함 뿐 아니라 갖고 싶지만 잡을 수 없는 영광과 아름다움에 대한 답답함을 절실하게 녹이려고 했다”며 “객석에선 과하게 들릴 수 있지만 모든 단어에 감정을 실어 불러야 로저의 처절함이 그려질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오종혁은 “무조건 희망만 노래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라 특유의 폭발하는 에너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1930년대 대공황에 빗대기도 하는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돌아온 뮤지컬 ‘렌트’의 조각을 그려 내고 있는 그는 인터뷰 마지막까지 긍정의 목소리를 냈다. “불확실성이 크고 많은 분이 움츠러든 시기잖아요. 이 작품으로 조금이나마 힘을 얻으면 좋겠어요. 제가 공연하면서 느끼는 이 꽉 찬 에너지와 행복감을 많은 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특별기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을 추모하며

    [특별기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을 추모하며

    셀수없이 많은 이들에게 스승으로 남는 분들이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그렇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제자를 계수하는 속좁은 직업꾼과 달리, 선생은 이미 피하고 싶어도 스스로 거대한 사상 공동체의 초석이었다. 선생의 글을 읽는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도반(道伴)을 자청한다.어설픈 너스레로 살아온 나 역시 그를 사숙해온 ‘나 홀로 제자’였다. 어제 갑자기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버스창에 스쳐 지나가듯, 며칠에 한번씩 존경하는 분들의 부음(訃音)을 듣지만, 선생의 부음은 너무 갑작스러워 눈물도 안 나왔다.김종철 선생을 처음 만난 건 지난 2012년 4월 6일 ‘리얼리스트’에 선생님 인터뷰를 싣기로 해서 노지영 평론가와 함께 찾아 뵈면서였다. 도서출판 녹색평론, 달랑 방 두 칸의 작은 공간인데 왜 그리 큰 출판사로 보였는지. 영적인 눈으로 보면 물리적인 크기가 달리 보인다다. ‘4대강 재앙사건’과 ‘후쿠시마 사건’이라는 지리멸렬한 시대에, 선생의 표정은 어두웠다.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이야기하자면 독일에서는 68혁명의 세대가 나중에 녹색당 창당으로 귀결되면서 녹색운동, 시민운동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전공투 세대가 대부분 대기업으로 들어가 버리면서 오늘날 독일과 일본의 차이가 생겨버렸지요. 일본이 보이는 ‘무책임의 체계’하고도 관계가 있을 겁니다.” 이명박 시대의 총선 전이었는데, 선생께서 지지하던 녹색당은 1석도 가망이 없었다. “지금처럼 계속 가면 도시는 장기 지속이 불가능하죠. 농업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밖에 안 되는데, 적어도 50%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안정된 사회가 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죠. 비정규직 문제도 농업인구를 늘리는 방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모여서 살면 농사가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혼자서 하려면 고달파지죠. 준비를 해야죠. 당장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시적 삶이 유기농 삶으로 갈 수 있는 징검다리를 만들어야 되겠지요.” 선생의 표정은 곧 저물녘처럼 여전히 어두웠다. “두부 나오는 갈치 조림 잘 하는 괜찮은 집 있는데, 가실까?” 대화가 끝나고 김종철 발행인이 같이 막걸리나 하자고 하셨다. 막걸리를 권하시면서 그제야 선생은 예의 소리없는 미소를 자주 보이셨다. 내 주량을 금방 파악하시고, 막걸리 두 사발 이상 권하지 않으셨다. 두부를 자꾸 권하셨다. 내가 갈치 조림을 금방 먹자, 한 마리 더 시켜 주셨다. 생태계 얘기하다가 ‘나무’를 ‘나무님’이라 하셨다. 이후로 선생은 내게 반은 반말, 반은 경어로 대하셨다. 얼마 후 내게 부탁하셨다. 일본 여류 시인의 시집인데 꼭 ‘녹색평론’에서 내고 싶으니 판권을 알아봐 달라 하셨다. 이시무레 미치코(石牟禮道子)였던 거 같다. 알고 보니 일본에 있을 때 잠시 일을 도왔던 일본 출판사에서 판권을 갖고 있었다. 이 출판사에는 나는 ‘고은 시선집’을 일본어로 공역해 내고, 김명인 평론집, 신경림 시집, 황석영 소설 등을 여기서 냈다. 마침 한국을 방문한다는 출판사 대표에게 ‘녹색평론’이 한국에서 얼마나 중요한 출판사인지, 김종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설명했다. 인사동에서 두 분 자리를 마련했는데, 출판사 대표가 반술에 취했는지 고자세였다. 한국 작가들에게 깎듯하게 대하는 출판인인데, 왜 이러시나 싶었다. 통역하면서 대표의 말을 겸손한 말로 바꾸어 전했다. 찌는 여름밤, 모기까지 물어 짜증스러웠다. 선생은 기분 언찮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저작권을 받아내려 하셨다. 선생은 대나무처럼 꼿꼿하며서도 대나무 잎새처럼 유연하셨다. 꼿꼿함과 유연함의 절묘한 품성으로 그는 자신을 ‘책장사하는 사람’이라고 늘 낮추셨다. 이 분은 모든 것을 내려 놓으셨구나, 이 날 느꼈다. 선생의 태도를 시험해보려 했던 출판사 대표를 설득했고, 얼마후 이시무레 미치코 시집 ‘신들의 마을’이 번역되어 나왔다.이후에 내게 ‘녹색평론’에 글 쓰게 하셨고, 일본 문학이나 일본 현대시에 대해 가끔 전화 주셨다. 이후에 한번 더 내가 찾아 뵈었다. 그때 또 두부 나오고 갈치 조림이 괜찮은 그 집에 가서 막걸리와 함께 저녁을 들었다. 지난 2019년 4월에 대구 지역의 작가 후배인 김용락 시인의 시집 출판 식사 모임에 오셨다. 옛 제자를 만나 밝게 웃으시며 반가워 하셨다. 시대가 바뀌고 선생님 빈 표정에 웃음이 많고 즐겁게 말씀하셨다. 선생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한국 지성인들은 큰 그림을 그릴 줄 몰라요. 쓸데없는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버릴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큰 그림을 갖고 굵직하게 써야 해요. 지금 르포가 가장 필요한 문학 형태라고 봐요. 잡문이 중요해요. 세상은 잡풀이 주인이거든.” 쓸데없는 장식을 버린 그의 문장은 꾸밈없고 검박하다. 가볍고 쉽지만, 그 안에 사상은 진득하고 울림이 크다. 그의 강연은 아무 준비를 안 한 듯 허허로웠는데, 사상의 총량이 넘친다 할까. 익은 포도주의 넘치는 포도즙처럼 맛깔났다. 그의 강연은 느림으로 가득했고, 그 느림은 모든 빠름을 부끄럽게 했다. 생태운동을 하면서도 도시 안에서 사는 자신을 그는 자주 자책했다. ‘녹색평론’을 창간했던 1991년 11월 당시 더 큰 출판 운동과 영업을 하려면 서울로 옮겨야 했고, 전국에 녹색운동을 강연하려면 서울로 출판사를 옮겨야 했다. 도시와 농촌 격차가 사라져서 어디에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도시가 생태를 망쳐 놓고 있으니 오히려 도시에서 생태계 운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래도 선생은 자주 자신의 글과 삶이 다르다며 자책하곤 하셨다. 자책하면서도 선생은 스스로 ‘나무님’으로 사셨다. “병원 안 간지, 신체 검사 안 한지 삼십 년이 넘었어요”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병든 지구가 아파하듯 그는 지구와 함께 아파했다. 지구의 고통은 얼마나 그를 괴롭히고 압도했을까.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는지 우리는 몰랐다. “곧 시스템이 붕괴됩니다. 정권을 잡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생명이냐? 죽음이냐? 전환이야? 자멸이냐? 그걸 걱정해야 할 시기입니다.” 선생이 늘 걱정하듯이,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음과 자멸을 체험하고 있다. 그의 예언을 사람들은 가볍게 생각했었다. 후학들 앞에서 잘 웃으셨지만 골목길을 돌아서는 선생의 뒷모습은 외로워 보였다. 빈소에는 선생을 스승으로 모셔온 단독자들이 많이 모였다. 더 오래 사셔서 더 귀한 글과 말을 남겨주셔야 하는데, 73세. 우리는 90세 이상으로 살아 글 써주시기를 바랐나 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선생의 ‘숙환’을 함께 아파했다. 자주 웃으셨기에 선생의 깊은 병을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했다. 빈소에서 돌아와 선생의 책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모셨다. 선생의 글 읽기 모임을 만들어 이 정신을 배우고 이어야지. 다음 학기부터 수업 때 선생의 산문 읽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 뵐 때마다 책을 주시곤 했는데, 없는 책이 있다. 녹색평론사에서 낸 단행본을 더 구입했다. “소년 시절에는 시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로 시작하는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은 선생의 문학론 핵심이 다 들어 있다. 신동엽 시인이 우리 생태문학의 핵심이니 잘 연구하라고 권하셨다. “신동엽의 반(反)권위적이고 원시 반(反)봉건에 대한 몽상이랄까. 이것은 시인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 가지고 시인이 있는 거 아닙니까? 시인은 ‘현대에 사는 원시인이다’라는 얘기도 있듯이 삶의 원천적인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몽상하고 전달하는 것이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동엽은 전형적인, 순결한 시인이죠. ” 이 책에 실린 평론 ‘신동엽의 도가적 상상력’은 신동엽 연구하려는 이들에게 필독해야 할 명문이다. 스스로 “한국인이라면 이 책 정도는 읽어야 하는데”라며 말씀하셨다는 ‘근대 문명에서 생태 문명으로’은 선생님 사상이 종합되어 있다. 선생은 제대로 된 세계인의 사상을 겸허하고 전했다. 블레이크, 디킨스, 매슈 아놀드, 리비스, 프란츠 파농, 이시무레 미치코 등 작가론이 담긴 『대지의 상상력』은 세계인과 연대하는 선생님의 비교문학적 연구다.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근대 문명에서 생태 문명으로’, ‘대지의 상상력’. 이 세 권은 2학기 수업과 학회에서 초등학생처럼 문장 하나 하나 읽으며 강독해야겠다. 이 거대한 존재를 따를 길이 없다. 평론의 가치를 가르쳐 준 선생들 중 선생의 오롯한 글은 범접하기 어려운 경계에 있다. 그는 종교인들에게 ‘집단실천으로서의 하느님’, ‘나무님으로서의 하느님’을 제시했다. 그저 두부에 갈치 조림에 막걸리를 즐기시던 선생님 곁에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더 갔다면, 허탈하고 그립고 힘없이 무너진다. 거대한 산맥 하나가 사라진 큰 사건이다. 누가 선생의 빈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지.이 심야에 조용하게 불러봐요, 김종철 선생님 이제 씨앗으로 살아나실 거예요. 선생님 정신의 씨앗이 움트고 새싹이 오르기 시작할 거예요. 전국에 ‘녹색평론’ 독자 모임, 작가 후배들의 선생님 저서 읽기 모임 등 선생님 정신을 깊게 넓여 나갈 거예요. 선생님이 절망하시고 아파하시던 그 고통, 우리가 새기며 선생님 사상을 나누며 조금씩 실천할께요. 잊을 수 없어 선생님을 배웅하지 못해요. 떠나보내지 못해요. 선생님, 편히 쉬셔요. 이제부터 또다시 시작할께요.글: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시인)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