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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미애, 윤석열에 최후통첩 “9일 오전 10시까지 답하라”

    추미애, 윤석열에 최후통첩 “9일 오전 10시까지 답하라”

    이틀째 연가낸 추 장관“현명한 판단 기다릴 것”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도 윤석열 검찰총장이 수용 여부를 밝히지 않자 추 장관이 최후통첩을 했다. 추 장관은 8일 법무부 대변인실을 통해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면서 “9일 오전 10시까지 하루 더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일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윤 총장에 수사지휘서를 내려보냈는데도 윤 총장이 6일째 답을 하지 않자 “총장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린다”며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추 장관은 “저도 검찰조직 구성원의 충정과 고충을 충분히 듣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면서 “어느 누구도 형사사법 정의가 혼돈인 작금의 상황을 정상이라고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은 많이 답답하다”며 “우리 모두 주어진 직분에 최선을 다하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고 가야 한다. 더 이상 옳지 않은 길로 돌아가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추 장관은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연가를 내고 향후 대응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전 추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 사찰에 서 있는 자신의 뒷모습 사진과 함께 “산사의 고요한 아침이다. 스님께서 주신 자작나무 염주로 번뇌를 끊고 아침 기운을 담아본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무수한 고민을 거듭해도 바른 길을 두고 돌아가지 않는 것에 생각이 미칠 뿐”이라며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내가, 남길, 노랠, 찾아야 돼 … 절망의 위로

    내가, 남길, 노랠, 찾아야 돼 … 절망의 위로

    “내게 불을 붙여 줘.” 암울한 1930년대 미국 뉴욕, 자신의 곡을 쓰고 싶어 골몰하는 가난한 예술가 ‘로저’와 마약중독에 시달리는 ‘미미’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소하고 자주 꺼지기도 하는 담배에 붙일 작은 불꽃이 어느덧 두 사람의 마음을 타오르게 한다. 기타를 치는 뒷모습에서 시작해 어느새 관객들의 마음에 뜨거움을 불어넣는 것은, 배우 오종혁의 로저 연기도 마찬가지다. 지난 16일 막을 연 뮤지컬 ‘렌트’에서 열연하고 있는 오종혁과 최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처음엔 기타만 잡는 로저 이해 못 해 무대에서 오종혁은 시종일관 기타 하나를 쥐고 고민한다. 그가 연기하는 로저는 에이즈 보균자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로저는 월세 낼 돈도 없어 건물주인 친구에게 쫓겨날 처지다. 죽기 전에 의미 있는 곡 딱 하나를 쓰겠다는데 주변에선 그의 시간과 공간을 모두 방해한다. 객석과 등 돌리고 기타를 만지작거리거나 미간을 찌푸리고 친구들에게 짜증을 내는 게 극 초반부터 한참 동안 로저의 모습이다. 그런데 방해물로 여겼던 미미의 유혹도 서서히 사랑이 되고 친구들의 존재는 점점 로저의 의지를 더 굳혀 준다.오종혁은 처음엔 ‘마크’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고 한다. 마크는 무대 위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갖고 사는 인물로 로저의 친구이자 극의 해설자다. 마크 역시 영화 제작자이자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애쓴다. 오종혁은 “마크 역할이 연기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역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오디션 현장에서 제작진은 “딱 로저인데 왜 마크를 하려고 하느냐”며 그 자리에서 로저 역을 맡겼다. ●가슴으로 따르다 보니 알게 된 로저의 감정 오종혁은 “생각보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캐릭터라 그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썼다”면서 “암담한 상황에서도 뒤돌아 앉아 기타만 잡고 있는 그 이해 안 되는 행위들을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끝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친구라는 결론을 내렸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의 느낌을 따르다 보니 오히려 연기가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로저의 노래에 대한 갈망은 ‘원 송 글로리’(One Song Glory)에서 폭발한다. 여기서 오종혁은 서정적인 멜로디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내가, 남길, 노랠, 찾아야 돼”라며 단어마다 뚝뚝 끊어 힘주어 부른다. “죽어 가는 상황에서 마지막 노래를 찾기 위한 절박함 뿐 아니라 갖고 싶지만 잡을 수 없는 영광과 아름다움에 대한 답답함을 절실하게 녹이려고 했다”며 “객석에선 과하게 들릴 수 있지만 모든 단어에 감정을 실어 불러야 로저의 처절함이 그려질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꽉 찬 에너지,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어 오종혁은 “무조건 희망만 노래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라 특유의 폭발하는 에너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1930년대 대공황에 빗대기도 하는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돌아온 뮤지컬 ‘렌트’의 조각을 그려 내고 있는 그는 인터뷰 마지막까지 긍정의 목소리를 냈다. “불확실성이 크고 많은 분이 움츠러든 시기잖아요. 이 작품으로 조금이나마 힘을 얻으면 좋겠어요. 제가 공연하면서 느끼는 이 꽉 찬 에너지와 행복감을 많은 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오종혁 “치열하게 고민한 ‘로저’ 연기… ‘렌트’는 절망 속 희망 찾는 에너지”

    오종혁 “치열하게 고민한 ‘로저’ 연기… ‘렌트’는 절망 속 희망 찾는 에너지”

    “내게 불을 붙여 줘.” 암울한 1930년대 미국 뉴욕, 자신의 곡을 쓰고 싶어 골몰하는 가난한 예술가 ‘로저’와 마약중독에 시달리는 ‘미미’의 사랑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소하고 자주 꺼지기도 하는 담배에 붙일 작은 불꽃이 어느덧 두 사람의 마음을 타오르게 한다. 기타를 치는 뒷모습에서 시작해 어느새 관객들의 마음에 뜨거움을 불어넣는 것은, 배우 오종혁의 로저 연기도 마찬가지다. 지난 16일 막을 연 뮤지컬 ‘렌트’에서 열연하고 있는 오종혁과 24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무대에서 오종혁은 시종일관 기타 하나를 쥐고 고민한다. 그가 연기하는 로저는 에이즈 보균자로 언제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로저는 월세 낼 돈도 없어 건물주인 친구에게 쫓겨날 처지다. 죽기 전에 의미 있는 곡 딱 하나를 쓰겠다는데 주변에선 그의 시간과 공간을 모두 방해한다. 객석과 등 돌리고 기타를 만지작거리거나 미간을 찌푸리고 친구들에게 짜증을 내는 게 극 초반부터 한참 동안 로저의 모습이다. 그런데 방해물로 여겼던 미미의 유혹도 서서히 사랑이 되고 친구들의 존재는 점점 로저의 의지를 더 굳혀 준다. 오종혁은 처음엔 ‘마크’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고 한다. 마크는 무대 위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갖고 사는 인물로 로저의 친구이자 극의 해설자다. 마크 역시 영화 제작자이자 비디오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애쓴다. 오종혁은 “마크 역할이 연기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역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오디션 현장에서 제작진은 “딱 로저인데 왜 마크를 하려고 하느냐”며 그 자리에서 로저 역을 맡겼다.오종혁은 “생각보다 너무 깊숙이 들어가야 하는 캐릭터라 그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썼다”면서 “암담한 상황에서도 뒤돌아 앉아 기타만 잡고 있는 그 이해 안 되는 행위들을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끝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친구라는 결론을 내렸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그의 느낌을 따르다 보니 오히려 연기가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로저의 노래에 대한 갈망은 ‘원 송 글로리’(One Song Glory)에서 폭발한다. 여기서 오종혁은 서정적인 멜로디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내가, 남길, 노랠, 찾아야 돼”라며 단어마다 뚝뚝 끊어 힘주어 부른다. “죽어 가는 상황에서 마지막 노래를 찾기 위한 절박함 뿐 아니라 갖고 싶지만 잡을 수 없는 영광과 아름다움에 대한 답답함을 절실하게 녹이려고 했다”며 “객석에선 과하게 들릴 수 있지만 모든 단어에 감정을 실어 불러야 로저의 처절함이 그려질 것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오종혁은 “무조건 희망만 노래하는 게 아니라 수많은 절망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라 특유의 폭발하는 에너지가 있다”고 강조했다. 1930년대 대공황에 빗대기도 하는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돌아온 뮤지컬 ‘렌트’의 조각을 그려 내고 있는 그는 인터뷰 마지막까지 긍정의 목소리를 냈다. “불확실성이 크고 많은 분이 움츠러든 시기잖아요. 이 작품으로 조금이나마 힘을 얻으면 좋겠어요. 제가 공연하면서 느끼는 이 꽉 찬 에너지와 행복감을 많은 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특별기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을 추모하며

    [특별기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선생을 추모하며

    셀수없이 많은 이들에게 스승으로 남는 분들이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이 그렇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제자를 계수하는 속좁은 직업꾼과 달리, 선생은 이미 피하고 싶어도 스스로 거대한 사상 공동체의 초석이었다. 선생의 글을 읽는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도반(道伴)을 자청한다.어설픈 너스레로 살아온 나 역시 그를 사숙해온 ‘나 홀로 제자’였다. 어제 갑자기 선생의 부음을 들었다. 버스창에 스쳐 지나가듯, 며칠에 한번씩 존경하는 분들의 부음(訃音)을 듣지만, 선생의 부음은 너무 갑작스러워 눈물도 안 나왔다.김종철 선생을 처음 만난 건 지난 2012년 4월 6일 ‘리얼리스트’에 선생님 인터뷰를 싣기로 해서 노지영 평론가와 함께 찾아 뵈면서였다. 도서출판 녹색평론, 달랑 방 두 칸의 작은 공간인데 왜 그리 큰 출판사로 보였는지. 영적인 눈으로 보면 물리적인 크기가 달리 보인다다. ‘4대강 재앙사건’과 ‘후쿠시마 사건’이라는 지리멸렬한 시대에, 선생의 표정은 어두웠다.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이야기하자면 독일에서는 68혁명의 세대가 나중에 녹색당 창당으로 귀결되면서 녹색운동, 시민운동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전공투 세대가 대부분 대기업으로 들어가 버리면서 오늘날 독일과 일본의 차이가 생겨버렸지요. 일본이 보이는 ‘무책임의 체계’하고도 관계가 있을 겁니다.” 이명박 시대의 총선 전이었는데, 선생께서 지지하던 녹색당은 1석도 가망이 없었다. “지금처럼 계속 가면 도시는 장기 지속이 불가능하죠. 농업 인구가 전체 인구의 7%밖에 안 되는데, 적어도 50%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안정된 사회가 될 수 있고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될 수 있죠. 비정규직 문제도 농업인구를 늘리는 방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모여서 살면 농사가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혼자서 하려면 고달파지죠. 준비를 해야죠. 당장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도시적 삶이 유기농 삶으로 갈 수 있는 징검다리를 만들어야 되겠지요.” 선생의 표정은 곧 저물녘처럼 여전히 어두웠다. “두부 나오는 갈치 조림 잘 하는 괜찮은 집 있는데, 가실까?” 대화가 끝나고 김종철 발행인이 같이 막걸리나 하자고 하셨다. 막걸리를 권하시면서 그제야 선생은 예의 소리없는 미소를 자주 보이셨다. 내 주량을 금방 파악하시고, 막걸리 두 사발 이상 권하지 않으셨다. 두부를 자꾸 권하셨다. 내가 갈치 조림을 금방 먹자, 한 마리 더 시켜 주셨다. 생태계 얘기하다가 ‘나무’를 ‘나무님’이라 하셨다. 이후로 선생은 내게 반은 반말, 반은 경어로 대하셨다. 얼마 후 내게 부탁하셨다. 일본 여류 시인의 시집인데 꼭 ‘녹색평론’에서 내고 싶으니 판권을 알아봐 달라 하셨다. 이시무레 미치코(石牟禮道子)였던 거 같다. 알고 보니 일본에 있을 때 잠시 일을 도왔던 일본 출판사에서 판권을 갖고 있었다. 이 출판사에는 나는 ‘고은 시선집’을 일본어로 공역해 내고, 김명인 평론집, 신경림 시집, 황석영 소설 등을 여기서 냈다. 마침 한국을 방문한다는 출판사 대표에게 ‘녹색평론’이 한국에서 얼마나 중요한 출판사인지, 김종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설명했다. 인사동에서 두 분 자리를 마련했는데, 출판사 대표가 반술에 취했는지 고자세였다. 한국 작가들에게 깎듯하게 대하는 출판인인데, 왜 이러시나 싶었다. 통역하면서 대표의 말을 겸손한 말로 바꾸어 전했다. 찌는 여름밤, 모기까지 물어 짜증스러웠다. 선생은 기분 언찮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저작권을 받아내려 하셨다. 선생은 대나무처럼 꼿꼿하며서도 대나무 잎새처럼 유연하셨다. 꼿꼿함과 유연함의 절묘한 품성으로 그는 자신을 ‘책장사하는 사람’이라고 늘 낮추셨다. 이 분은 모든 것을 내려 놓으셨구나, 이 날 느꼈다. 선생의 태도를 시험해보려 했던 출판사 대표를 설득했고, 얼마후 이시무레 미치코 시집 ‘신들의 마을’이 번역되어 나왔다.이후에 내게 ‘녹색평론’에 글 쓰게 하셨고, 일본 문학이나 일본 현대시에 대해 가끔 전화 주셨다. 이후에 한번 더 내가 찾아 뵈었다. 그때 또 두부 나오고 갈치 조림이 괜찮은 그 집에 가서 막걸리와 함께 저녁을 들었다. 지난 2019년 4월에 대구 지역의 작가 후배인 김용락 시인의 시집 출판 식사 모임에 오셨다. 옛 제자를 만나 밝게 웃으시며 반가워 하셨다. 시대가 바뀌고 선생님 빈 표정에 웃음이 많고 즐겁게 말씀하셨다. 선생이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한국 지성인들은 큰 그림을 그릴 줄 몰라요. 쓸데없는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버릴 줄 몰라서 그렇습니다. 큰 그림을 갖고 굵직하게 써야 해요. 지금 르포가 가장 필요한 문학 형태라고 봐요. 잡문이 중요해요. 세상은 잡풀이 주인이거든.” 쓸데없는 장식을 버린 그의 문장은 꾸밈없고 검박하다. 가볍고 쉽지만, 그 안에 사상은 진득하고 울림이 크다. 그의 강연은 아무 준비를 안 한 듯 허허로웠는데, 사상의 총량이 넘친다 할까. 익은 포도주의 넘치는 포도즙처럼 맛깔났다. 그의 강연은 느림으로 가득했고, 그 느림은 모든 빠름을 부끄럽게 했다. 생태운동을 하면서도 도시 안에서 사는 자신을 그는 자주 자책했다. ‘녹색평론’을 창간했던 1991년 11월 당시 더 큰 출판 운동과 영업을 하려면 서울로 옮겨야 했고, 전국에 녹색운동을 강연하려면 서울로 출판사를 옮겨야 했다. 도시와 농촌 격차가 사라져서 어디에 있느냐가 문제가 아니며, 오히려 도시가 생태를 망쳐 놓고 있으니 오히려 도시에서 생태계 운동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래도 선생은 자주 자신의 글과 삶이 다르다며 자책하곤 하셨다. 자책하면서도 선생은 스스로 ‘나무님’으로 사셨다. “병원 안 간지, 신체 검사 안 한지 삼십 년이 넘었어요”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병든 지구가 아파하듯 그는 지구와 함께 아파했다. 지구의 고통은 얼마나 그를 괴롭히고 압도했을까.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워 했는지 우리는 몰랐다. “곧 시스템이 붕괴됩니다. 정권을 잡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생명이냐? 죽음이냐? 전환이야? 자멸이냐? 그걸 걱정해야 할 시기입니다.” 선생이 늘 걱정하듯이,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죽음과 자멸을 체험하고 있다. 그의 예언을 사람들은 가볍게 생각했었다. 후학들 앞에서 잘 웃으셨지만 골목길을 돌아서는 선생의 뒷모습은 외로워 보였다. 빈소에는 선생을 스승으로 모셔온 단독자들이 많이 모였다. 더 오래 사셔서 더 귀한 글과 말을 남겨주셔야 하는데, 73세. 우리는 90세 이상으로 살아 글 써주시기를 바랐나 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선생의 ‘숙환’을 함께 아파했다. 자주 웃으셨기에 선생의 깊은 병을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했다. 빈소에서 돌아와 선생의 책을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모셨다. 선생의 글 읽기 모임을 만들어 이 정신을 배우고 이어야지. 다음 학기부터 수업 때 선생의 산문 읽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 뵐 때마다 책을 주시곤 했는데, 없는 책이 있다. 녹색평론사에서 낸 단행본을 더 구입했다. “소년 시절에는 시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로 시작하는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은 선생의 문학론 핵심이 다 들어 있다. 신동엽 시인이 우리 생태문학의 핵심이니 잘 연구하라고 권하셨다. “신동엽의 반(反)권위적이고 원시 반(反)봉건에 대한 몽상이랄까. 이것은 시인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 가지고 시인이 있는 거 아닙니까? 시인은 ‘현대에 사는 원시인이다’라는 얘기도 있듯이 삶의 원천적인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몽상하고 전달하는 것이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동엽은 전형적인, 순결한 시인이죠. ” 이 책에 실린 평론 ‘신동엽의 도가적 상상력’은 신동엽 연구하려는 이들에게 필독해야 할 명문이다. 스스로 “한국인이라면 이 책 정도는 읽어야 하는데”라며 말씀하셨다는 ‘근대 문명에서 생태 문명으로’은 선생님 사상이 종합되어 있다. 선생은 제대로 된 세계인의 사상을 겸허하고 전했다. 블레이크, 디킨스, 매슈 아놀드, 리비스, 프란츠 파농, 이시무레 미치코 등 작가론이 담긴 『대지의 상상력』은 세계인과 연대하는 선생님의 비교문학적 연구다.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근대 문명에서 생태 문명으로’, ‘대지의 상상력’. 이 세 권은 2학기 수업과 학회에서 초등학생처럼 문장 하나 하나 읽으며 강독해야겠다. 이 거대한 존재를 따를 길이 없다. 평론의 가치를 가르쳐 준 선생들 중 선생의 오롯한 글은 범접하기 어려운 경계에 있다. 그는 종교인들에게 ‘집단실천으로서의 하느님’, ‘나무님으로서의 하느님’을 제시했다. 그저 두부에 갈치 조림에 막걸리를 즐기시던 선생님 곁에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더 갔다면, 허탈하고 그립고 힘없이 무너진다. 거대한 산맥 하나가 사라진 큰 사건이다. 누가 선생의 빈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지.이 심야에 조용하게 불러봐요, 김종철 선생님 이제 씨앗으로 살아나실 거예요. 선생님 정신의 씨앗이 움트고 새싹이 오르기 시작할 거예요. 전국에 ‘녹색평론’ 독자 모임, 작가 후배들의 선생님 저서 읽기 모임 등 선생님 정신을 깊게 넓여 나갈 거예요. 선생님이 절망하시고 아파하시던 그 고통, 우리가 새기며 선생님 사상을 나누며 조금씩 실천할께요. 잊을 수 없어 선생님을 배웅하지 못해요. 떠나보내지 못해요. 선생님, 편히 쉬셔요. 이제부터 또다시 시작할께요.글: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시인)
  • [유세미의 인생수업] 혼자여서 좋은 날

    [유세미의 인생수업] 혼자여서 좋은 날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어차피 예견된 실직이었다. 회사는 뜬금없이 젊은피 수혈만이 살길인 양 핑계 댄 지 일 년째였다. 창업주 아들이 전공도 애매한 유학을 마치자마자 임원 자리에 앉더니 나이 많은 직원만 보면 답답증이 일어나는 듯했다. 자기 목숨 부지에 혈안 된 인사팀장과 귀엣말 한번 쑥덕거릴 때마다 동료들이 짐을 싸서 떠났다. 창립 초창기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청춘을 바친 회사. 이곳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웃고 울던 세월이 28년. 김화평 부장의 인생 그 자체인 회사에서 ‘젊게 바꾸고자 가슴 찢어지며 결단한 오너의 뜻’이라는 명분에 어이없이 내쫓긴 꼴이었다. 그동안 왜 퇴직 후를 걱정하지 않았을까만은 늘 일에 쫓겨 그저 띄엄띄엄 걱정했을 뿐이다. ‘다녀 봐야 얼마나 더 다니겠어…. 준비를 해야지….’ 그러나 영업실적에 목을 매고 아파트 대출금에 허덕였다. 커가는 애들에게도 마른 논에 물 들어가듯 돈이 필요한데 그저 딴생각 말고 직장이나 온전히 다니자라고 고개를 흔들었을 뿐이다. 어려운 일은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것이 인생이던가. 퇴직한 후 코가 쑥 빠져 있는 김화평 부장을, 아니 더이상 부장 아닌 중년의 남자를 보며 아내는 자신도 이제 홀로서기를 하고 싶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남편과 두 아들, 김씨네 세 남자 뒷바라지에 바친 인생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나. 직장도 그만뒀으니 새벽부터 해장국 끓일 일 없고, 다 큰 아이들은 더이상 엄마 손이 필요 없다고 했다. 인생 오십 넘었으나 이제라도 자신의 꿈을 펼쳐 보겠다는 아내는 알고 보니 야심가였다. 아내는 거짓말처럼 미련 없이 짐을 싸더니 친구와 플라워 카페라나 뭐라나 아무튼 동업을 시작한다며 부산으로 떠났다. 바다 위 노을이 가장 애틋하게 보이는 곳에서 커피를 마신다며 그에게 문자를 날리기도 했다. 이혼도 아니고 졸혼은 더더욱 아니며 그저 나이 먹었으니 이젠 쿨하게 따로따로 좀 살아 보자는 이상한 형식의 별거를 일방적으로 당한 셈이다. 철부지 엄마라는 둥, 배신이라는 둥 분개하며 그의 편을 들어줄 거라 기대한 아들들은 엄마가 옆집 마실이라도 간 양 덤덤했다. 큰 녀석은 애써 이직한 회사도 제 마음 같지 않은지 힘들어하고, 둘째는 아직도 취업의 높은 장벽 앞에 절망하고 있었으니 자기 발등 불끄기에 정신없어 보였다. 그는 쌀을 씻으며, 세탁기를 돌리며, 인생이 참 서운하다 생각했다. 부모님에게도 아직 실직 얘기를 못했다. 당신 아들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 여기는 그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해서이다. 아내가 떠나버렸다는 얘기를 하는 것도 태산처럼 막막하다. 평생 천생연분 그들에게 그저 따로 사노라 실토하는 건 지구가 알고 보니 평평하답니다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리지 싶다. 올해 아흔의 아버지는 지금도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소녀 같다고 미소 짓는다. 체기 있다고 투정부리는 아흔셋 아내의 발을 꼭꼭 주물러 주며 어쩜 발조차 이렇게 귀엽냐고 웃음을 터뜨리는 아버지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폭염이라지만 김화평 부장의 올여름은 서늘하다. 일이 없어 그렇고 아내의 빈자리가 더 그렇다. 쉽지 않겠지만 다시 일을 찾아야 하고 아내의 노을 타령에 답장도 해 줘야 한다. 안간힘을 쓰는 두 아들의 쉽지 않은 도전도 응원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가족 모두 이 풍진세상을 홀로서기 위해 기를 쓰는 중이다. 어차피 인생은 누구나 혼자다. 식물도 분갈이를 하면 한동안 몸살 하듯 우리도 홀로 설 때면 끙끙 앓는 인생 한마디를 겪는다. 그런 때는 혼자여서 그저 좋은 날로 여기면 된다. 그래야 그 한마디가 단단해지도록 오늘 온 마음을 다할 수 있다.
  • “사당역 몰카범 잡음” 추격·제압·경찰에 넘긴 시민

    “사당역 몰카범 잡음” 추격·제압·경찰에 넘긴 시민

    ‘불법촬영’ 시민이 잡아…“누구라도 그랬을 것” 여성의 뒷모습을 휴대전화로 불법 촬영하던 40대 남성을 시민이 붙잡았다. 1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방배경찰서는 불법 촬영 혐의로 40대 남성 A씨를 조사 중이다. A씨는 지난 17일 밤 10시쯤 서울지하철 4호선 사당역 출구 근처 계단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로 여성들의 뒷모습을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촬영 모습을 목격한 시민 B씨가 항의했고, A씨는 도망쳤지만 B씨는 10분 간의 추격전 끝에 A씨를 붙잡았다. A씨를 제압한 B씨는 근처 거리에 있던 시민에게 112에 신고해달라고 했다.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A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었다. 이 내용은 시민 B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사당역에서 몰카범 잡음’이라는 내용으로 글을 올려 네티즌의 응원을 받았다. B씨는 “계단 내려가는데 폴더형 휴대전화 케이스로 액정을 가리고 가슴 앞으로 손 모아서 후면 카메라로 내려가는 여성을 찍고 있었음, 바로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 지르니까 도망가길래 (내가) 소리 지르면서 쫓아갔다”고 적었다. B씨는 이날 오후 2시쯤 자신의 트위터에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보려고 노력 중”이라며 “또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을 하며 혐의 사실을 조사 중에 있으며 조만간 A씨를 입건할 방침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NASA가 뽑은 ‘올해의 사진’…인류의 위대한 도전이 이뤄지는 순간 포착

    NASA가 뽑은 ‘올해의 사진’…인류의 위대한 도전이 이뤄지는 순간 포착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2019년 한 해 동안 NASA의 곳곳과 사람을 담은 사진 중 최고의 사진을 선정해 공개했다. NASA는 공간, 사람, 초상, 기록 등 4개 분야로 나누고 각 분야의 최고의 사진을 선정했다. 해당 사진들은 NASA에 소속된 사진작가들이 직접 촬영한 것으로, 이 사진작가들의 주 업무는 우주 개발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들을 선명하게 포착하는 동시에, 쉽사리 볼 수 없는 NASA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다. ‘제2회 올해의 NASA 사진가’ 대회의 ‘공간’ 부문에서는 크리스 건이 촬영한 작품이 선정됐다. 메릴랜드주 고다드우주비행센터 소속 사진작가인 크리스 건은 거대한 헤파필터로 이어진,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 앞에 외롭게 서 있는 NASA 직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작은 격자가 모여 큰 격자를 이루고 있는 벽이자 과학의 산물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은 작다 못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지만, 한편으로는 벽을 마주 선 채 고개를 올려 위를 바라보는 뒷모습에서 인간만이 가진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사진 속 NASA 직원이 서 있는 벽은 미세한 입자를 대부분 걸러낼 수 있는 고성능 필터인 헤파필터가 이어진 것으로, 차세대 우주망원경인 제임스웹에 설치할 광학기기를 테스트하는 우주시스템 개발 및 통합시설 입구에 설치돼 있다.‘사람’ 부문의 수상자는 버지니아주 랭글리리서치센터의 할렌 카펜이 차지했다. 그의 작품은 NASA 소속 엔지니어들이 초음속 풍동터널(인공적으로 바람이 불게 만드는 터널형 설비)을 위한 새로운 장비를 설치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초상’ 부문은 비행기의 결빙 현상을 연구하는 X선 단층 촬영 시스템을 개발한 팀 벤치치의 초상을 담은 작품으로, 글렌리서치센터의 사진작가인 조던 솔킨이 촬영했다. 마지막으로 ‘기록’ 부문 수상작은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우주선 부분과 결합할 준비를 마친 광학장비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 선정됐으며, 작가는 ‘공간’ 부문에서도 선정된 크리스 건이다. 휴스턴존슨우주센터의 사진 담당 책임자인 마우라 화이트는 이 사진들을 공개하며 “이번 수상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NASA 소속 사진작가들의 업무를 자랑하고, 동시에 이들의 일이 NASA의 미션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인증하는 행사”라고 소개했다. 한편 이번 대회는 우주비행사와 항공우주전문잡지인 ‘에어 앤 스페이스’ 사진 편집자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평가했으며, NASA 소속 사진가 70여 명이 참여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그 여자는 거기 없었다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그 여자는 거기 없었다

    하머스호이는 코펜하겐 스트란드가드 30번지에 십 년 동안 살면서 이 집을 일흔 점 가까이 그렸다. 이 방은 작은 살롱이다. 가운데 창문이 있고 오른쪽에는 흰 문이 있다. 왼쪽 벽에는 액자 두 개가 걸려 있고 그 앞에는 타원형 탁자가 놓여 있다. 탁자 앞에는 검은 옷을 입은 화가의 부인 이다가 앉아 있다.관객은 이 그림을 보면서 어디에다 중점을 두어야 할지 주저하게 된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성은 주인공이 되기에는 존재감이 빈약하다. 한쪽에 치우친 데다가 뒷모습이어서 무엇을 하는지, 표정이 어떤지 알 수 없다. 인물보다는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더 중요해 보인다. 햇빛은 흰 커튼을 더욱 희게 만들고, 창턱과 바닥에 창살 무늬를 떨구고 있다. 지금은 아침나절일까 늦은 오후일까. 이 고요한 방안에서는 시간조차 정지된 것 같다. 하머스호이는 서구 예술이 급격한 변화를 겪던 세기 전환기에 활동했다. 야수파, 표현주의가 등장하면서 원색이 폭발했으나 하머스호이는 흰색, 회색, 검정, 갈색으로 이루어진 모노톤에 가까운 그림을 고집했다. 색뿐만 아니라 지시적 내용도 소거했다. 가정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화가들은 실내 그림에 여성을 등장시켜 온기를 불어넣거나 모종의 드라마를 암시했다. 하머스호이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다는 그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 부부의 실제 생활이 어떠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하머스호이는 대학 친구이자 동료 화가인 페테르 일스트의 여동생 이다와 평생을 해로했다. 자식은 없었지만, 사이가 나빴다는 증거도 없다. 과묵했던 화가는 가까운 사람들한테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번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코펜하겐으로 하머스호이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하지만 화가가 아무런 얘깃거리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릴케는 그에 대한 글을 쓰려던 계획을 접어야 했다. 그를 인터뷰했던 기자는 화가의 집이 그의 그림과 똑같았다고 증언한다. 창백한 공간 속에 이다는 그림자처럼 존재한다. 화가는 그림을 통해 고독의 메타포를 창조했지만, 모델이 돼 준 아내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 힌트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도리어 그녀를 자꾸 생각하게 된다. 미술평론가
  • 故구하라 전남친, “불법촬영 아냐…구하라가 안 지워”

    故구하라 전남친, “불법촬영 아냐…구하라가 안 지워”

    “많이 반성” 항소한 최종범유족에 사과 없이 지인들과 ‘파티’구하라 오빠, 법정서 엄벌 촉구 그룹 ‘카라’ 출신 고(故) 구하라를 폭행하고 불법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최종범이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징역 3년을 구형받았다. 21일 서울중앙지법 1-1부(김재영·송혜영·조중래 부장판사)는 최종범에 대한 항소심 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항소 이유에 대해 “1심에서 무죄가 된 불법 촬영 등에 대하여 사실오인이 있었고, 양형이 부당하다”라고 밝혔다. 당시 1심 재판부는 “명시적 동의를 받지는 않았지만, 피해자 의사에 반해 찍은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라고 판단하며, ‘불법촬영’ 혐의는 무죄로 봤다. 이번 항소심에서 검찰은 “최씨가 구씨를 촬영한 6장을 종합해보면 구씨의 의사에 반해 구씨 뒷모습을 촬영한 것에 대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은 위법하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최종범 “폭행은 인정하지만 불법 촬영은 무죄” 주장 반면 최씨 측은 1심에서 유죄로 판단한 혐의는 인정하지만 불법 촬영은 무죄라고 강조했다. 최씨 측은 “연인관계였던 당일 여러 이벤트 과정에서 사진을 찍게 됐는데 블루투스로 음악을 듣고 있어 촬영하면 소리가 났다. 이에 대한 제지도 없었고 그 뒤 말도 없었다”며 “구씨가 최씨의 휴대전화를 보고도 사진을 지우지 않았다는 점에서 명시적으로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고 보인다”고 구씨가 촬영에 동의했다는 근거를 댔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과 최씨 양측의 항소 이유를 확인한 뒤 변론을 마무리했다. 최씨는 최후변론에서 “이유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게 생각하고 선처를 부탁한다”고 했다. 구씨의 오빠 구호인씨는 법정에 나와 최씨의 엄벌을 촉구했다. 구호인씨는 “동생이 1심 판결에 너무 억울해하고 힘들어했다. 여성 입장에선 씻지 못할 트라우마”라며 “유명 연예인이다 보니 민감한 상황 속에 많이 힘들어했다. 최종범은 파티를 즐기는 등 반성하는 모습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씨는 2018년 9월 구씨와 다투는 과정에서 팔과 다리 등에 타박상을 입히고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구씨를 협박한 혐의(상해·협박)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같은 해 8월 구씨 신체를 몰래 촬영한 혐의(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구씨의 당시 소속사 대표가 무릎을 꿇게 하라고 강요한 혐의(강요) 등도 받는다. 최씨의 항소심 선고 공판은 오는 7월 2일 진행된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그날, 그 광장서 울린 ‘임을 위한 행진곡’… “오월 정신은 모두의 것”

    그날, 그 광장서 울린 ‘임을 위한 행진곡’… “오월 정신은 모두의 것”

    文대통령 “5·18정신이 만개하지 않았다 민주주의 수호·세대 이어 거듭 태어나야” 유족 편지 낭독 끝나자 손잡으며 위로 작년 숨진 희생자 묘역 찾아 헌화·참배“5·18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이 따로 있다면, 그것은 아직 5·18정신이 만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40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사에서 한 청년의 말(계간지 ‘문학들’ 2020년 봄호 중 박은현의 ‘지금-여기-이곳을 위한 5·18’ 중)을 인용해 오월 정신과 핵심인 연대의 힘이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으로, ‘정치·사회 민주주의를 넘어 가정·직장·경제에서의 민주주의’로 재해석되고 미래 세대에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그것이 그날, 도청을 사수하며 죽은 자들의 부름에 산 자들이 진정으로 응답하는 길”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기념식 주제인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와도 맞물려 있다. 5·18에 대한 이념적 논쟁과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항거한 5·18 정신을 미래 세대에 계승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입술이 부르터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단호하게 “‘오월 정신’은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것”이라며 “더 널리 공감되어야 하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 거듭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했다. 또한 1980년 당시를 언급하며 “광주는 철저히 고립됐지만 한 건의 약탈도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 격려하는 마음이 계엄군에 맞서는 힘이었다”고 떠올린 뒤 “그 정신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깃들어 있고 코로나 극복에서 세계 모범이 되는 저력이 됐다”고 말했다.기념식이 망월동 국립 5·18민주묘지가 아닌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것은 1997년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처음이다. 청와대는 “옛 전남도청 앞 광장이 항쟁 당시 본부였고, 광장 분수대를 연단 삼아 항쟁 의지를 불태웠던 역사적 현장이라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행사는 경과 보고, 유족 편지 낭독, 대통령 기념사, 헌정 공연 순으로 진행됐다. 특히 항쟁 당시 희생된 고 임은택(당시 36세)씨의 아내 최정희(73)씨는 눈물을 참으며 사부곡을 낭독했다. 최씨가 “밥이 식을 때까지 오지 않은 당신을 열흘 만에 교도소에서 시신으로 만났지요. 이 억울한 마음을 세상천지에 누가 또 알까요”라고 한 대목에서 소복 차림의 ‘오월 어머니’들은 눈물을 훔쳤다. 담양에 살던 최씨는 5월 21일 수금하러 광주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 남편의 뒷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 귀갓길에 계엄군의 사격을 받아 숨진 임씨는 같은 달 31일 광주교도소 인근에서 암매장된 채 발견됐다. 낭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 눈물을 쏟은 최씨를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손을 잡으며 위로했다. 문 대통령 부부는 참석자 전원과 함께 주먹을 쥐고 흔들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이어 국립 5·18민주묘지 추모탑 및 새로 조성된 2묘역을 참배했다. 문 대통령은 2묘역에서 전남대 학생 신분으로 계엄군에 체포돼 고문당하고 평생 트라우마로 고통받다 지난해 숨진 시민 이연씨 묘에 헌화·참배했다. 이씨의 부인은 “트라우마가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이어졌다”면서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이씨 딸의 손을 잡고 “아빠의 트라우마는 어쩔 수 없어도 따님은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달라”며 위로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정총리 “모든 정책에 치매 어르신·가족 인권 배려”

    정총리 “모든 정책에 치매 어르신·가족 인권 배려”

    정세균 국무총리는 8일 “모든 정책에 치매 어르신과 그 가족에 대한 인권 존중의 관점이 견지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고 밝혔다.정 총리는 어버이날인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365일 중 하루만이라도 부모님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고 감사를 표하는 날이 오늘”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 총리는 “특별한 날은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화해로 초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며 “그동안 부모님과 불편하게 지냈다면 어버이날이 바로 화해의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정 총리는 “치매로 통칭되는 인지기능 저하는 더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이슈라는 인식 하에 정부는 2017년 9월 ‘치매 국가책임제’를 선언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책임제가 조기에 정착될 수 있도록 치매 안심병원과 치매 전담 요양시설 확충, 치매 안심센터 접근성과 편리성 제고, 치매 원인 규명·치료기술개발 지원 등 정책 과제 이행을 면밀히 챙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 총리는 유년 시절 어머니와의 추억을 소개하며 그리움도 표했다. 그는 “제 어머니는 화전민이었는데, 산에 올라 나무를 하는 어머니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지게질을 했다”며 “앞서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큰 짐을 지고도 흐트러짐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정 총리는 “어머니가 걸은 그 길을 따라 꽤 오래 지게질을 하고 나서야 지게를 질 땐 무게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며 “삶도 그렇다. 한쪽으로 기울어짐이 없어야 한다. 그 지혜를 알려준 어머니가 무척 그립다”고 전했다. 정 총리는 ‘부모의 연세를 몰라서는 안된다. 한편으론 기쁘고 한편으로는 두렵다’는 논어의 한 구절을 인용해 “부모님과 함께 하는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긴다”고 덧붙였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서울포토]대통령 의전의 뒷모습

    [서울포토]대통령 의전의 뒷모습

    대통령의 동선 하나하나는 모두 사전에 치밀한 경호계획과 의전준비에 의해 정해진다. 국가원수의 안위와 국격유지를 위해서는 필수사항이다. 이런 대통령의전의 뒷모습을 사진으로 공개한다.
  • 11년 만의 출근길 빨간 장미를… “함께여서 행복합니다”

    11년 만의 출근길 빨간 장미를… “함께여서 행복합니다”

    평택 본사 공장 앞 동료들 환영 물결 연말까지 휴직 연장 12명 제외 출근 한상균 “아내가 되찾은 일상 짠하다 해” “손배 가압류 등 과제… 최선 다할 것”“비로소 오늘 첫 출근을 합니다. 그동안 여러 단체와 많은 사람들이 연대해 준 게 큰 힘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조문경씨) “이게 기쁜 건지, 하도 감정이 메말라가지고 (얼떨떨합니다). 회사가 어렵지만 저희 나름대로 열심히 자동차도 만들고 열심히 생활하겠습니다.”(이덕환씨) 4일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 공장 앞에 마지막 복직자가 된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모였다. 이날 개인 사정으로 연말까지 휴직을 연장한 12명을 제외한 35명이 출근했다. 2009년 5월 쌍용차 ‘옥쇄파업’을 이끌었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복직 명단에 포함됐다. 앞서 복직한 동료들은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함께여서 행복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복직자들은 빨간 장미꽃을 전달받으며 동료와 포옹한 뒤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입니다”라며 손을 흔들었다. 이들은 동료들의 박수 속에 출근버스에 올라타면서 비로소 복직을 실감한 듯 활짝 웃었다. 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솔직히 마음을 많이 졸이고 밤을 꼬박 새웠다”면서 “동료들이 모두 복직한 뒤 마지막에 복직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어 기쁘다. 빠르게 적응해 좋은 차를 만들겠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아직 100억원대에 달하는 손배가압류 문제가 과제로 남아 아찔하지만, 노사와 정부가 적절한 역할을 할 것으로 믿고 우리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지부장의 아내 배은경씨는 편지로 소감을 전했다. 그는 “기쁨의 눈물보다는 오히려 덤덤하고 만감이 교차한다”면서 “그동안 많이 울기도 하고 남편에게 포기하라고 말한 적도 많다”고 고백했다. 이어 “남편은 반드시 복직할 수 있다며 온 힘을 다해 노력했는데, 지금 보니 함께해 주신 분들 때문에 가능했다”고 감사를 표했다. 한 전 위원장도 “오늘 아침 11년 만에 일상을 되찾은 내 뒷모습을 보고 아내가 ‘마음이 짠하다’고 하더라”며 “한국 사회에 대량해고 사태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게 숙제다. 복귀하면 비정규직의 처우 문제에도 침묵하지 않고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쌍용차 복직자들은 두 달간 업무 교육을 거쳐 오는 7월 1일부터 현장으로 복귀한다. 이들은 2018년 9·21 합의에 따라 올해 초 출근할 예정이었지만, 회사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무기한 유급 휴직을 통보해 복귀가 늦어졌다. 2009년 4월 2646명 정리해고와 5월 옥쇄파업으로 시작된 쌍용차 사태는 11년 만에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고 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여러분 덕분입니다”…11년 만에 작업복 입는 쌍용차 마지막 복직자들

    “여러분 덕분입니다”…11년 만에 작업복 입는 쌍용차 마지막 복직자들

    “비로소 오늘 첫 출근을 합니다. 그동안 여러 단체와 많은 사람들이 연대해준 게 오늘까지 큰 힘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 조문경(57)씨 “이게 기쁜 건지 하도 감정이 메말라가지고 (얼떨떨합니다). 회사가 어렵지만 저희 나름대로 열심히 자동차도 만들고 열심히 생활하겠습니다.” - 이덕환(53)씨 4일 오전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 공장 앞. 지난 1월 출근투쟁을 벌이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이날에서야 마지막 복직자로 공장 앞에 섰다. 개인 사정으로 휴직을 연말까지 연장한 12명을 제외한 35명이 출근한다. 앞서 복직한 동료들은 이른 아침부터 “많이 기다리셨습니다. 함께여서 행복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복직자들은 빨간 장미꽃을 전달받으며 동료와 포옹한 뒤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입니다”라고 손을 흔들었다. 이들은 동료들의 환호와 박수 속에 출근버스에 걸어가면서야 복직을 실감한듯 활짝 웃었다.김득중 쌍용차지부장은 출근 전 기자회견에서 “솔직히 마음을 많이 졸이고 밤을 꼬박 세웠다”면서 “동료들이 모두 복직한 뒤 마지막에 복직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어 기쁘다. 빠르게 적응해 좋은 차를 만들겠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아직 100억원대에 달하는 손배가압류 문제가 과제로 남아 있어, 생각할 때마다 아찔하지만 노사와 정부가 적절한 역할을 할 것으로 믿고 우리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득중 지부장의 아내 배은경씨는 편지로 소감을 전했다. 그는 “남편이 첫 출근을 한다고 하니 기쁨의 눈물 보다는 마음이 오히려 덤덤하고 만감이 교차한다”면서 “그동안 많이 울기도하고 남편에게 포기하라고 말한 적도 많다”고 고백했다. 이어 “남편은 반드시 복직할 수 있다며 온 힘을 다해 노력했는데 지금와서 보니 함께 해주신 분들 때문에 가능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해고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오늘 아침 11년 만에 일상을 되찾은 내 뒷모습을 보고, 아내가 ‘마음이 짠하다’고 하더라”며 “다시는 한국 사회에 이런 대량해고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숙제로 남았다. 회사에 복귀하면 비정규직들의 처우 문제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고 연대하겠다”고 강조했다. 2018년 12월 복직한 김정우 전 지부장은 “죽어간 동지들의 영혼을 기리며 복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 “건강을 잘 살피고 마음도 잘 추스르고 연수를 받고 현장에 들어오는 날에 다시 맞이하겠다”고 환영했다. 마지막 쌍용차 복직자들은 약 2달 동안 업무 교육을 거쳐 오는 7월 1일부터 현장으로 복귀하게 된다. 2018년 9·21 합의에 따라 올해 초부터 출근이 예정돼 있었지만 회사는 경영 악화를 이유로 무기한 유급 휴직(70% 임금)을 통보했다. 지난 2월 노조는 경기지방노동위에 부당휴직 구제 신청을 내며 반발했다. 2009년 4월 2600여명 정리해고와 5월 파업으로 시작된 쌍용차 사태는 11년 만에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고 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기지개를 켜고 지루해?” 온수역 스토커 추적 (궁금한 이야기Y)

    “기지개를 켜고 지루해?” 온수역 스토커 추적 (궁금한 이야기Y)

    여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온수역 스토커 박(가명) 씨의 정체를 추적한다. ‘온수역 스토커’ 박 씨(가명)는 누구일까? 박 씨는 온수역에서 하루종일 여성들을 기다리고, 따라가고, 뒷모습을 찍어 마치 아는 사람인 양 글을 쓴 후 SNS에 올린다. 여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온수역 스토커 박 씨의 정체를 SBS ‘궁금한이야기Y’ 추적한다. ‘반짝이는 수현이는 언제 오나요?’ 노을이 지는 풍경 사진과 함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글이다. SNS을 둘러보던 유진(가명) 씨는 우연히 박 씨의 SNS을 보고 섬뜩함을 느꼈다. 또 진주(가명) 씨는 유독 한 여성이 걱정스러웠다고 했다. 박 씨가 온수역 근처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을 매일 같이 스토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하다가 스트레칭하고 기지개를 켜고 지루해?”, “새해부터는 다시 중간에 들를게. 잘 들어가요”등 그는 아르바이트생의 행동 하나, 하나를 몰래 찍고 심지어 영상까지 촬영해 자신의 SNS에 게재한다. ‘궁금한 이야기Y’ 제작진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과 연락이 닿았다. 뜻밖에도 그녀는 이미 스토킹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일을 그만둔 후에도 수 개월간 그와 비슷한 옷차림만 봐도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박 씨는 수빈 씨가 일하는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났다고 한다. 심지어 수빈 씨의 집과 학교까지 쫓아왔다고 한다. 제작진은 온수역 스토커 박 씨가 SNS에 올린 사진들을 토대로 그가 주로 다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스토커 박 씨는 황당한 해명을 했다. 그는 “‘나는 아침 6시부터 8시까지 있겠다’고 SNS에 올리면 그거 보고 그 시간에 얘가 나와요. 그래서 제가 찍을 수가 있는 거예요” 여성들이 자신을 찾아왔다며 스토킹이 전혀 아니라고 말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애니멀 픽!] 각자 짝 잃은 두 펭귄이 만나 의지하는 뭉클한 순간

    [애니멀 픽!] 각자 짝 잃은 두 펭귄이 만나 의지하는 뭉클한 순간

    코로나19가 전 세계에서 큰 영향을 주면서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 경우가 적지 않은 가운데, 호주에서 한 사진작가가 자신의 SNS에 공유한 사진 한 장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멜버른에 사는 사진작가 토비아스 바움게르트너는 지난달 25일 인스타그램에 쇠푸른펭귄 한 쌍이 함께 붙어 서 있는 뒷모습을 담은 사진을 게시했다.멜버른의 스카이라인이 내려다보이는 세인트킬다 비치의 한 바위 위에서 촬영한 이 사진은 왼쪽 펭귄이 우측 날개를 그 옆에 서 있는 펭귄에 대고 있어 마치 어깨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듯해 보인다. 작가에 따르면, 이 사진은 1년 전쯤 촬영한 것이다. 그는 “당시 한 자원봉사자가 내게 다가와 오른쪽 흰 펭귄은 짝을 잃은 나이 든 암컷이고, 왼쪽의 검은 펭귄 역시 짝을 잃었다고 말했다”면서 “두 펭귄은 서로 위로하면서 인근 도시의 불빛을 내려다보고 몇 시간 동안 함께 있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그는 이 사진을 얻기 위해 쇠푸른 펭귄 서식지에서 3일 밤을 보냈고, 이런 노력 덕분에 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촬영용 조명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작은 펭귄들은 쉼없이 움직여 날개를 서로의 몸에 대는 순간까지 촬영하는 데 정말 힘이 들었지만, 이런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는 행운을 얻어 기쁘다”고 말했다.이후 작가는 지난 14일에도 이들 펭귄의 새로운 사진 한 장을 공유했다. 그러고나서 “두 펭귄은 서로를 보듬는 모습이 펭귄 서식지에서도 돋보였다. 다른 펭귄들이 자고 있거나 뛰어다니는 동안 이들 펭귄은 그 자리에 그냥 서서 마치 1초 1초를 차분히 서로 즐기는 것처럼 날개를 서로의 몸에 의지하고 있었다”면서 “서로 아픔을 이겨내고 예기치 못한 사랑을 발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사진은 이전에 공유한 것과 비슷하지만 공개하지 않으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공유하게 됐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아름답다”, “이야기도 사진도 감동적”이라는 등 호평을 보였고, 일부 네티즌은 이들 펭귄의 모습을 영상으로도 보고 싶다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작가는 오는 25일 세계 펭귄의 날을 맞이해 이들 펭귄의 영상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유할 계획이다. 사진=토비아스 바움게르트너/인스타그램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어느 봄날

    [부희령의 다초점 렌즈] 어느 봄날

    뭐니 뭐니 해도 봄은 빛의 계절이다. 봄은 반짝인다. 호수의 잔물결이, 바람에 흔들리는 창백한 매화 꽃잎이, 그 꽃잎이 그림자를 드리운 하얀 시멘트 도로가 반짝인다. 호숫가 벤치에 앉아 올려다본 새로 돋은 나무눈들도 초록별처럼 빛난다. 그 아래로 반짝이는 티아라를 쓴 어린 여자애가 지나간다. 아빠를 부르며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가 본다. 젊은 아버지가 뒤돌아보고, 옆에서 자전거를 끌고 가던 남자애도 함께 뒤돌아보고, 두 사람은 동시에 여자애를 향해 빨리 오라고 소리친다. 주말이나 휴일이 아님에도 공원에는 사람이 많다. 아이들로 북적이는 풍경도 사뭇 낯설다. 어느 동네나 평일 낮에 공원을 산책하며 마주치는 사람은 대부분 중년 여성이나 노인들이다. 분홍, 노랑, 파랑 헬멧을 쓰고 자전거와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 줄넘기를 하는 아이들, 부모 주위를 빙빙 돌며 저만큼 뛰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아이들이 바로 화사한 봄이다. 다른 어느 해 봄보다 유독 올봄이 이렇듯 더 반짝이고 화사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설적으로 벌써 여러 달 동안 전 세계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코로나19 때문이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은 익숙한 일상을 뒤바꾸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자가격리, 확진환자 등등 어쩌면 평생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을 낱말들이 우리 주위를 맴돌면서, 늘 하던 여행이나 이동을 멈추면서, 수많은 환경보호 시위들이 이루지 못했던 매연이나 공기 오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집 안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가족들은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고, 남아도는 시간 속에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자기 자신에 대해 깨닫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서방의 강국들이 시리아, 리비아, 예멘에서 이루지 못했던 휴전 혹은 전투 중지 같은 일들이 일어났고, 알제리 군대가 못 막아 내던 리프 지역 시위에 종지부를 찍게 만들기도 했다. 세계 정상의 대기업들이 못 한 일도 해냈다. 세금 낮추기 혹은 면제, 무이자, 투자기금 끌어오기, 전략적 원료가격 낮추기 등등, 모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해낸 일들이다. 문득 시골에 살던 과거를 돌아본다. 4월 5일 식목일 즈음에는 무엇을 했던가. 경기도 북쪽, 봄이 그리 빨리 오지 않던 곳이라 땅이 조금씩 갈라지기 시작할 무렵이고, 비로소 열무나 상추 씨앗을 뿌렸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바이러스가 뭔지, 자가격리가 뭔지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 돌이켜 보면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지금은 어떤 시절인가. 가장 행복한 것도, 가장 불행한 것도 아닌 시간이다. 비록 바이러스는 세상을 불안으로 몰아가지만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연민과 사랑은 더 깊어지는 시절 아닌가. 언제 죽음이 등 뒤에서 다가올지 몰라 더 아름답고 소중한 시절. 아이들은 여전히 푸른 공원에서 뛰어놀고 있다. 저 아이들이 자라나 우리가 살던 세상과 다른 세상이 됐을 때, 먼 훗날 그 시절 사람들은 코로나19의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 흙과 돌 틈, 자연 그대로의 삶이 오롯이… ‘토지’ 생명력처럼 강인하고 든든한 품

    흙과 돌 틈, 자연 그대로의 삶이 오롯이… ‘토지’ 생명력처럼 강인하고 든든한 품

    ‘작가의 땅’(작.땅)은 온 생을 다해 글을 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주소다. ‘작.땅’은 치열한 창작의 공간이자 문장으로 대들보를 세운 장소들을 따라간다. 작가들이 글을 쓰는 뒷모습과 곡진한 삶의 희비를 엿보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책 바깥의 여행이다. 그곳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강원 원주 매지리에 있는 토지문화관은 내게 멧돼지 떼가 창궐하던 한여름 밤의 옥수수밭으로 남아 있다. 재작년 여름, 두 번째 소설집의 교정지와 가을호 계간지 마감이 겹쳐서 얼마간은 저돌적인 상태로 토지문화관 문인 창작실에 입소했다. 만두 찜기의 뚜껑을 연 것 같던 하오가 지나도 청쾌한 바람은 쉽게 산골에 스미지 않았다. 창작실에서 식당으로 가는 길목에 나 있던 산짐승 발자국이 멧돼지의 것이라는 사실은 먼저 입소해 소설을 연재하고 있던 전성태 소설가가 알려주었다. 그날 밤부터 나는 창작실의 베란다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벌레 소리들을 배경음악 삼아 원고 작업에만 매달렸다. 일상에서 오는 잡념들을 접어둔 채 오로지 창작에만 매달릴 수 있는 환경이 더할 나위 없었지만 작업은 진척이 없었다. 자정을 넘기고서야 겨우 숨이 좀 가라앉을 만한 바람이 내려왔다. 그리고 바람을 따라 산골의 멧돼지도 왔다.창밖의 기척이 심상찮아서 밖을 내다보던 중이었다. 하늘보다 더 어두운 옥수수밭 한가운데에 분명 어떤 움직임이 있었다. 만일 나에게 귀신을 보는 눈이 트였다면, 헛것에게라도 어떻게든 빌어 보고 싶던 시기였기에 내 눈은 어둠 속의 움직임에 집중돼 있었다. 그 밤 내내 일사불란하게 옥수숫대 사이를 누비는 소리를 들으며 간신히 새벽을 맞았다. 다음날 남들이 점심 먹을 때쯤 일어나 식당으로 가다 보니 옥수수밭 한가운데가 우주선이 앉았다 간 모양으로 둥그렇게 파헤쳐져 있었다. 식당에서는 어젯밤에 내려온 멧돼지들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옥수수와 고구마밭이 점점 더 크게 헤쳐진다는 사실도 덧붙여 들려왔다.덕분에 아침마다 밭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도 내 또 다른 일과가 됐다. 엄밀히 따지자면 산짐승의 공간을 우리가 침범한 셈이기도 했으니 잘못은 이쪽에 있었지만 말이다. 그곳에서 나는 원고가 풀리지 않을 때마다 박경리 선생이 손수 일구시던 밭과 장독대에 다녀왔다. 선생의 거처를 지키고 있는 거위 떼들이 꽉꽉 우는 곳이었다. 그 소리를 따라 창작실과 선생의 울 안까지 오가는 길이 내가 부릴 수 있는 최대치의 여유였다. 정갈한 장독대와 두둑하게 북이 오른 밭이랑을 볼 때마다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작물들로 하루에 한 끼는 꼭 직접 반찬을 만들어 후배 작가들의 식사를 챙겼다는 선생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그곳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산짐승의 울음도, 더위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자연의 모든 것들은 우리가 후대에게 잠시 빌려 쓰는 것일 뿐”이라는 선생의 말씀에 따라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진 문화관의 모습과 인위적인 것을 최대한 배제하며 살아가고자 했던 그분의 뜻이 곳곳에 배어 있는 자리였다. 생의 마지막까지 밭둑의 흙을 돋우며 생활하셨던 선생답게 남겨진 것들은 매우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선생이 손수 지은 옷들과 밀짚모자, 호미와 낫 같은 농기구들이 생전 그대로 놓여 있었다. 허울 좋은 건물의 이름 크게 쓴 문학관보다는 문인 창작실을 지어 후배 작가들의 작업을 응원했던 그 정신 그대로 오로지 작가들의 복지만을 추구하고 당신께서는 직접 흙과 돌 틈에서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삶을 사셨다. 그러는 동안에도 창작에 대한 열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를 때마다 이렇게 앉아 게으름을 피우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소리가 들리지는 않지만 게으른 후배에 대한 정갈한 꾸짖음, 그렇지만 응원과 격려를 한꺼번에 전해 받는 듯한 그 감각은 오로지 선생의 울타리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좋은 기회에 선생이 사용하던 모든 물건이 고스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처에도 들어가 보았다. 방 한쪽에 은은한 분위기를 풍기던 장은 예전에 선생이 어느 글에서 썼던 그 나비장이었다. 6·25전쟁 당시에 피란을 가기 위해 이불에 싼 나비장을 마른 우물에 던져 넣고 떠났다가 천신만고 끝에 다시 돌아온 뒤에 건져냈다고 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애지중지하며 아꼈던 장과 필기구, 오래된 살림살이들, 태우시던 담배 보루까지도 여전한 그곳은 선생이 곧 문을 열고 들어올 것처럼 무척 현실적인 공간이기도 했다.작가 중에서 토지문화관을 모르거나 거쳐 가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로 이곳은 창작하는 사람들에게는 고요한 꿈의 공간, 선생의 창작열을 느낄 수 있는 산실이다. 누구도 선뜻 문인들의 복지를 이야기하지 않았던 시절에 사재를 기꺼이 헌사해 지은 이 공간을 선생은 무척 아끼고 사랑하셨다고 전해진다. 매지리 안쪽 산기슭에 자리했지만 제주도와 경상도, 전라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작가들이 몰려들었고 급기야 해외 작가들도 한 번쯤 다녀가고 싶은 공간으로 손꼽히는 장소가 됐다. 중견과 신진을 가리지 않고 고루 지원하는 문화관의 정책도 여전했다. 국내 지원을 넘어서 해외 레지던스까지도 교류를 넓힌 상태였다. 매년 봄이면 새로운 작가들이 입주해 60일 동안 혹은 길게는 90일 정도 이곳에 머물다 간다. 올해도 봄이 시작됐으니 창작실도 새 주인을 맞이했겠다.올해 토지문화관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박경리 선생의 딸 김영주 이사장이 숙환으로 별세한 후 그의 둘째 아들 김세희 관장이 취임했다. 선생의 유지를 이어 작가들의 창작을 지원하고 소설 ‘토지’의 삶과 생명 그리고 환경보호의 정신을 잇는 일이 손자 대로 넘어온 셈이었다. 토지의 생명력처럼이나 강인하고도 든든한 바통 터치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박경리 선생과 관련된 공간은 하동 악양면 평사리의 최 참판 댁 한옥문화관, 통영 박경리기념관 그리고 원주의 박경리 문학공원과 ‘토지’를 완성하고 선생이 말년을 보낸 공간인 이곳 흥업면 매지리 토지문화관까지 모두 네 군데다. 선생이 17년 동안 사신 원주시 단구동 자택이 택지지구가 되면서 그 자리가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많은 문인이 마음을 모았다. 여기에 택지지구 보상금과 토지개발공사 기부금을 합쳐 토지문화재단과 토지문화관이 들어섰다. 토지문화관 개관식에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참석해 선생의 소설과 후배들을 지원하고자 하는 마음을 기렸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흘렀지만 창작실에는 여전히 문인들의 입주 신청이 쇄도하고 매일 관람객들이 찾아와 문전성시를 이룬다. 김세희 관장은 위에 언급한 네 군데의 장소들을 보다 유기적이고도 조직적으로 연계해 ‘토지’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더불어 소설 ‘토지’의 콘텐츠들을 보다 현대적이고도 접근성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제반 사업들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도 덧붙였다. 선생의 유훈과 창작 업적을 기리기 위해 숙고 끝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세계문학상인 ‘박경리 문학상’을 국내외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작업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들이 토지문화관에서 진행하는 강연 또한 국내에서 다시 듣기 어려운 기회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터였다. 최인훈, 베른하르트 슐링크, 응구기 와 티옹오, 이스마일 카다레 등이 이 상의 역대 수상자였으며 이들의 강연은 창작실에 입주한 작가들을 비롯해 전국에서 찾아든 독자들로 인해 매년 성황리에 개최됐다. 아울러 여러 문화 행사들과 관련된 장소 대관과 숙박을 해결할 수 있는 공간을 대여하는 일도 동시에 이루어지는 바쁜 문화관이라는 관장의 말을 듣고 있자니 소설 ‘토지’의 북적이는 평사리 장터의 여러 장면들이 떠올랐다. 선생이 일구었던 환경과 삶 그리고 창작의 힘을 후대에도 변함없이 이어 가겠다는 새 관장의 목소리에 자못 힘이 실려 있었다. 끊임없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중에도 문화관 한켠에 위치한 창작실에서 여러 명의 작가가 각자의 작업에 몰두하는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문화의 산실이 아닌가.코로나19 탓에 여러 나라의 국경이 닫혔다. 새싹과 꽃이 피는 길을 따라 걷던 발걸음도 사라졌다. 그러나 곧 감염병은 잠잠해질 것이며(그러리라 믿고!) 우리는 다시 길 위에 두 발을 얹어둘 것이다. 봄꽃은 남도에서부터 피어 온다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봄꽃을 따라 통영에서 하동을 거쳐 원주에서 그 여정의 정점을 찍는 일명 ‘박경리 토지 로드’를 돌아보시기를 추천해 드린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시간에 문학과 대문호의 발걸음을 따라 걷는 시간이 길 위의 사람들에게 보다 의미 있는 여정이 돼 주리라 확신한다. 토지문화관을 돌아보고, 선생의 자취를 밟으며 하룻밤 토지문화관에서 묵어가는 일정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꿈꿨던 작가의 삶을 조금은 엿볼 기회가 되지 않을까. 올봄의 여정은 ‘토지’의 길을 따라 문학적인 시간 속으로 들어가 보시기를, 그곳에 다녀가면 분명 이 ‘다음’을 살아갈 새로운 용기가 생겨 있을 것이니. 참, 나는 그해 여름에 멧돼지 옥수수 갉아먹는 소리를 들으며 작업했던 두 번째 소설집 ‘유빙의 숲’을 출간했고, 단편소설 마감 역시도 무사히 마쳤다. 선생의 응원이 분명 그곳에 실려 있다고 아직도 믿고 있다. 그 시간을 지켜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어디에 해야 할지 몰라 이곳에 적는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소설가 이은선
  • [핵잼 사이언스] 가장 오래된 새 조상…닭+오리 닮은 ‘원더치킨’ 화석 발견

    [핵잼 사이언스] 가장 오래된 새 조상…닭+오리 닮은 ‘원더치킨’ 화석 발견

    현대 새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공룡시대에 살았던 역대 가장 오래된 새 화석이 발견됐다.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등 공동연구팀은 6680~6670만 년 전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갈매기 만한 크기의 고대 새 화석의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18일 자에 발표했다. '원더치킨'(Wonderchicken)이라는 흥미로운 별명이 붙은 이 새는 얼굴은 닭, 뒷모습은 오리를 닮았으며 무게는 396g 정도다. 또한 해안가를 무대로 서식했으며 두개골 분석결과 닭과 오리의 특징을 모두 가져 연구팀은 이들의 마지막 공통 조상이었을 것으로 보고있다.연구팀에 따르면 이 새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국경 근처 채석장인 마스트리흐트 지층에서 발견돼 ‘아스테리오니스 마스트리흐텐시스’(Asteriornis maastrichtensis)라는 학명을 얻었다. 아스테리오니스라는 학명이 붙은 이유도 흥미롭다. 아스테리오니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스테리아(Asteria)에서 따왔다. '별이 빛나는 하늘’이라는 의미를 갖는 아스테리아는 제우스(Zeus)가 구혼을 하자 거절하고 유성처럼 바다에 떨어져 죽는다. 이는 6600만년 전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져 공룡을 비롯한 동식물의 80% 이상이 사라진 대멸종을 원더치킨이 겪었음을 의미하며 이 과정에서도 살아남았을 것으로 보인다.  논문의 선임저자인 케임브리지대학 대니얼 필드 교수는 "이 화석은 역대 가장 오래되고 잘 보존된 조류 두개골"이라면서 "오늘날 새들의 초기 조상들이 언제 어떻게 진화했는지 설명해줄 수 있는 휼륭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한국 비난하고 떠난 멀린스, 스페인 리그도 중단 날벼락

    한국 비난하고 떠난 멀린스, 스페인 리그도 중단 날벼락

    스페인 리가 ACB 12일 리그 연기 공지멀린스 새리그도 떠나야 하는 처지 놓여한국 떠나며 SNS에 일본과 비교해 논란스페인, 전 세계에서 확진자 5번째 많아부산 KT에서 활약하다 코로나19 공포에 한국을 탈출한 바이런 멀린스가 새로 둥지를 튼 스페인 리그도 코로나19로 중단되는 사태를 맞았다. KT를 떠나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일본 리그와 비교글을 올리며 한국을 비난하는 뉘앙스의 게시물로 논란을 일으켰던 멀린스가 스페인 리그마저 떠날지 주목된다. 스페인 프로농구 리가 ACB는 12일(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향후 2주간의 리그 일정 연기를 공지했다.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 소속 선수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고, 스페인 내에서도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리그가 긴급히 중단했다. 스페인은 12일(한국시간) 기준 확진자가 3003명, 사망자는 84명이다. 같은 날짜를 기준으로 한국이 확진자는 7869명으로 더 많지만 사망자는 66명으로 적다. 스페인은 중국, 이탈리아, 이란, 한국에 이어 코로나19 확진자가 전 세계에서 5번째로 많다. 멀린스는 팀 동료 앨런 더햄이 자진 퇴출을 선언하자 다음날 KT에 자진 퇴출을 요청했다. 서동철 감독의 만류로 오전에 마음을 잡았지만 오후에 마음을 바꿔 급히 한국을 벗어났다. 한국의 상황이 좋지 않아 외국인 선수들의 이탈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지만 멀린스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한국이 리그를 중단하지 않는다며 일본과 비교글을 올려 한국팬들에게 좋지 않은 뒷모습을 남겼다. 멀린스의 바람대로 멀린스가 떠난 뒤 한국농구연맹(KBL)은 긴급히 리그를 중단했다. 12일에는 미국 프로농구(NBA)도 유타 재즈의 루디 고베어가 코로나19 확진판정을 받자 리그를 급히 중단했다. KBL도 언제 리그를 다시 재개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KBL을 비롯해 전 세계 리그가 다 불안해지면서 멀린스의 탈출은 의미가 없게 됐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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