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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그룹 대북사업 김윤규카드 재활용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이 한달간의 ‘외유’를 마치고 전격 귀국함에 따라 현대그룹과 김 부회장의 갈등이 해소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침 현정은 회장과 이종혁 북한 아태부위원장의 회담이 주선되는 등 현대와 북측의 관계가 개선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김 부회장 문제만 해결되면 현대의 대북사업은 다시 순항할 수 있는 상황이다.●김윤규 복귀 가능성은20일 미 LA에서 귀국한 김 부회장은 강한 ‘업무복귀’ 의지를 밝혔다. 그는 2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일 잘하는 사람에게 힘을 줘서 사업을 성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 현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을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귀국 기자회견에서도 “꼭 대표이사가 아니어도 어느 정도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돼야 한다. 곁다리나 컨설턴트같은 일은 곤란하다.”는 ‘조건’을 내걸며 일을 다시 하고 싶다는 뜻을 감추지 않았다.“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대북사업을 좌지우지하는 바람에 북쪽과의 신뢰가 깨진 것 아니냐.”며 대북사업에는 자신이 꼭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또 “독자적인 사업추진은 있을 수 없고 내가 대북사업을 잘 아니까 현대를 도울 것이며 현정은 회장이 잘 되기를 바라고 있다.”면서 “현대가 확보한 7대 사업권은 계속 지켜나가야 하며 북측도 이를 지켜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해 현대그룹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그는 “현대측으로부터 연락이 오면 언제든지 만나겠다.”고 말했고 현대 역시 “조만간 최용묵 경영전략팀 사장이 김 부회장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현대-김윤규 ‘진실게임’김 부회장이 일단 자세를 낮춰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지만 아직 갈등은 많이 남아 있다. 현대측은 특히 김 부회장이 “내부 감사자료를 보지도 못했고 소명할 기회도 없었다.”고 불만을 토로한 것에 대해 발끈하고 나섰다. 현대 관계자는 “현대아산 이사회가 열리기 직전 최용묵 사장이 김 부회장을 만나 감사자료를 건네주며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시라.’고 했지만 김 부회장이 ‘보고 싶지도 않고 볼 필요도 없다.’며 거절했다.”면서 “소명 기회를 줄 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지금에 와서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대는 이미 현정은 회장이 ‘비리경영인’의 복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을 밝힌 터여서 김 부회장에게 대표이사직을 되돌려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김 부회장도 “지금은 (비리경영인으로)낙인이나 찍혀 있고 일할 여건이 아니다.”고 인정했다. 현대 관계자는 “대표이사에서는 물러나되 부회장직을 그대로 유지하며 대북사업에 일정한 역할을 맡도록 한다는 현대아산 이사회의 결정이 우리의 공식 제안”이라면서 “김 부회장의 복귀는 전적으로 그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시론] 동포를 차별하는 나라/김해성 목사·외국인 노동자의 집 대표

    [시론] 동포를 차별하는 나라/김해성 목사·외국인 노동자의 집 대표

    중국 동포 150여명이 기독교연합회관 15층에서 20여일째 재외동포법의 차별없는 시행을 촉구하며 무기한 농성을 진행 중이다. 이들은 광복 60주년을 맞아 “60년만에 돌아오니 외국인이 웬말이냐.”“우리가 불법이면 안중근도 불법이다.”“정부는 대통령이 공포한 법을 시행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다. 재외동포의 출입국 및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재외동포법)은 1998년 8월 제정됐다. 이 법 2조는 재외동포를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했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라고 규정했다. 대한민국 국적은 1948년 정부수립으로부터 시작됐다. 결국 48년 이후 출국한 사람은 재외동포 지위를 보장하지만, 그 이전 출국자들은 동포가 아니라 아무 혜택도 줄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재외동포 600만명 중 중국과 옛 소련, 일본의 무국적 동포 등 300만 동포들을 제외시키는 반쪽짜리 법안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누가 48년 이전에 출국을 했을까. 일제 강점기에 농사 지으러 나갔거나 강제징용·징병·학병·정신대를 피해 나간 이들이다. 나라와 민족을 찾기 위해 싸우다 죽어간 순국선열과 그 후손들도 포함돼 있다. 이 법에 의하면 안중근 의사와 윤동주 시인, 그 후손들은 우리 동포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99년 8월 중국동포 3명은 헌법재판소에 재외동포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는 2001년 11월 “재외동포법은 차별이며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04년 2월 국회도 48년 이전에 출국한 이들도 재외동포라는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고, 대통령은 같은 해 3월5일 공포했다. 그런데 법무부는 지금까지 1년 반이 넘도록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덮어만 두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 있는 동포들은 여전히 출·입국에 제약을 받고 차별을 당하고 있다. 헌재 결정과 법안 개정 이전이나 상황이 달라진 것은 없다. 만일 아무 문제가 없었다면 왜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법개정을 했겠는가. 앞장서 법을 지키고 집행해야 할 법무부가 이렇듯 법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고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농성중인 동포들이 애국가를 목놓아 부르는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4절까지 가사를 맞춰 부르는 것도 놀라웠지만,‘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라는 후렴구 가사를 음미하며 화들짝 놀랐다. 노래로는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자고 외치면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국이라고 찾아온 이 땅에서 동포들은 ‘불법 체류자’이며 ‘외국인’일 뿐이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제 동족을 불법 체류자, 외국인 노동자로 낙인찍고 체포하고 추방할까. 그 결과 많은 이들의 꿈이 깨지고 그들은 원망과 분노를 안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고 있다. 많은 동포들이 “당신들이 과연 우리와 피를 나눈 동포인가.”라며 절규하고 있다. 광복 60주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일까. 약소국가·민족으로 그동안 잊어버리고 책임지지 못했던 동포들을 찾고 인정하고 대접하는 일이다. 그들은 돌아오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분단과 함께 온 광복 때문에, 동서 냉전 때문에 돌아올 수 없었다. 헌법 2조는 재외국민에 대한 보호의무가 국가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재외동포법 개정에 따라 법무부는 마땅히 중국과 옛 소련 지역 동포들에 대해서도 자유왕래와 법적 지위를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김해성 목사·외국인 노동자의 집 대표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2)-동생 김호연 빙그레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2)-동생 김호연 빙그레회장家

    ‘한번 들어서면 뒤를 볼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는 김호연(50) 회장의 경영 ‘일방 통행론’이 진행된지 횟수로 13년째.1992년 ‘미운오리 새끼’였던 빙그레는 2005년 확실한 ‘백조’가 됐다. 당시 부채 비율 4000%대는 50%대로,230억원대의 시가 총액은 무려 20배 가까이 늘어난 4300억원대로 껑충 뛰었다.10년간 누적적자 100억원은 놀랍게도 2004년에 순이익 350억원으로 바뀌었다. 이같은 변신은 빙그레와 김 회장이 처했던 극한의 조건들이 이뤄낸 절묘한 조화 덕분이다. 그룹 신규 투자에서 항상 ‘찬밥 신세’였던 빙그레는 김 회장이 취임한 이후부터 한화와의 단절을 통해 자력 갱생의 계기를 만들었고, 한때 경영능력에 대한 오해를 뒤집어쓴 김 회장은 처절한 구조조정으로 수익성과 성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특히 빙그레의 뛰어난 경영 성적표는 일방적으로 제기됐던 김 회장의 ‘자질 오해’를 깨끗이 불식시켰다. 내성적이며 말수가 적은 ‘충청도 양반’ 스타일인 김 회장에게 10년 이상의 기나긴 구조조정을 성공케 한 원동력은 뭘까. 불명예를 안고 무너지기엔 너무나 억울해서였을까. 아니면 성공해서 반드시 보여줘야만 했던 오기였을까. ●형제 분가 김승연-호연 형제의 분가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92년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될 당시 시작된 형제간의 재산권 분할과 관련된 소송은 여론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사건의 발단은 당시 한양유통(현 한화유통)의 사장인 김호연 회장을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명예 퇴진시킨 것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김 회장으로서는 공격적으로 유통업을 확장시키려는 순간에 경영 감사에서 이런 사실을 통보받자 너무나 어이없어했다고 한다. 한양유통은 인수 시절부터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데다 증자가 없어 한층 악화됐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경영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회사에서 저를 밀어낸 것은 사실상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김 회장은 이 사건 이후 6개월 가량 두문불출했다.‘경영능력이 부족하다.’는 낙인 때문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였다. 이 때문에 그는 2004년 4월에 수상한 ‘한국의 경영자상’에 유독 애착이 간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일련의 사태 이후 재산권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자, 약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지루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3년 6개월의 법정 공방을 거치면서 김 회장은 모친인 강태영(78) 여사를 비롯한 가족과 지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강 여사의 칠순을 맞아 대학 은사인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이 형제간 화해를 권유하자 김 회장은 이를 받아들여 소송을 취하했다. 강 여사는 당시 “칠순 잔치보다 가족들의 화합이 더 중요하며, 형제들의 잔치 비용을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좀 서먹해진 것도 있지만 과거 형님과의 갈등은 해소됐다.”면서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형제간 모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10년 구조조정 92년 빙그레가 한화그룹에서 분리될 때 빙그레의 부채 비율은 4183%,10년간 누적적자가 100억원이나 되는 자본잠식 상태였다. 당시 기업 평균 부채비율이 420%대였던 점과 비교하면 무려 10배나 높은 수치였다. 한때 한화그룹의 ‘캐시카우’로서 그룹의 투자 자금을 조달했던 옛 위용은 사라지고,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았다.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성이다. 시장 점유율 1위는 의미가 없다. 수익성을 개선시킬 여지가 없는 사업은 과감히 잘라야 한다.”는 김 회장의 경영판단 아래 강도높은 사업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김 회장은 우선 가지치기를 시작했다.‘썬메리’ 베이커리 사업을 삼립식품에 매각했으며, 냉동식품과 초코케이크 등 비주력 사업은 시장 철수를 단행했다. 특히 초코케이크 사업 철수로 인해 유휴 상태였던 생산라인을 가동시키기 위해 아이스크림 경쟁사인 롯데제과의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도 받는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않았다. 빙그레 구조조정의 핵심은 주력 사업인 라면과 스낵사업 부문이었다.80년대 중반 겨울철 비수기 주력 사업으로 시작한 라면과 스낵사업은 매년 30억∼40억원씩의 적자를 기록하는 빙그레의 ‘두통거리’였다. 김 회장은 2003년 3월 라면사업 철수와 스낵사업의 국내 영업권 위탁이라는 고강도 처방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매수자를 찾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김 회장의 이같은 구조조정과 현금 흐름의 개선 노력은 92년 부채비율 4183%에서 외환위기 당시인 98년 360%,2004년에는 53.7%로 줄어든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학구파에서 몽골 인연까지 김 회장은 재계의 학구파로 유명하다. 경기고와 서강대 무역학과를 나온 김 회장은 일본 히도쓰바시(一橋)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 석사 학위도 땄다. 또 지금은 서강대에서 경영학과 박사 학위를 밟고 있다. 그의 독서량은 경영인들 중에서도 다독으로 손꼽힌다. 하루에 한 권 이상을 읽는 편이니 그야말로 ‘독서광’이다. 또 빙그레의 구조조정이 만들어준 김 회장과 몽골의 인연은 각별하다. 서울 압구정동 사옥을 매각하고 남양주시 도농동으로 본사를 옮긴 빙그레는 남양주가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와 자매결연을 맺은 덕분에 자연스럽게 몽골 정부 관계자와 정치인 등의 잦은 방문이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김 회장은 김구재단을 통해 몽골 유학생들을 지원했고, 몽골 정부는 2001년 김 회장을 명예영사로 임명했다. 김 회장은 또 ‘몽골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후원했으며, 특히 최근에는 차남 동만의 아이디어로 몽골 수흐바토르 테뮤렐 종합학교에 어학실습실 설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여기에 김 회장은 바가반디 몽골 전 대통령의 딸인 바야르마씨와 서강대 동문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2005년 3월 한국과 몽골의 우호 협력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몽골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았다. 북극성 훈장은 몽골 국가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큰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러브 레터로 결혼하다.’ 김 회장과 김미(48)씨는 떠들썩한(?) 연애 결혼으로 유명하다.‘끼리 문화’가 지배적인 재벌가에선 이례적이다. 보통 정략 결혼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더러 연애 결혼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이 커플은 정말 뜨거운 사이였다. 한화 김종희가(家)의 2세 가운데 유일한 연애 결혼 케이스다. 김 회장과 김미씨의 인연은 대학 시절로 거슬러간다. 서강대를 다니던 김 회장과 이화여대를 다니던 김미씨는 명문가의 자제로서 서로 얼굴은 알고 있었던 사이. 호감을 갖고 데이트를 즐기다가 김 회장의 공군장교 입소 훈련으로 한층 각별해진 사이로 발전했다. 김미씨의 ‘러브 레터’로 김 회장은 당시 연애편지를 가장 많이 받는 훈련생으로 부대 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편지와 함께 김미씨가 곱게 접어 보낸 종이학은 김 회장의 군 생활 내내 함께 했다고 한다. 이들은 5년 넘게 연애를 했다. 김 회장의 군 생활이 길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형인 김승연(53) 회장의 ‘싱글’도 이들 연애를 길게 했다. 김 회장의 얘기다.“훈련소에서 저의 연애 스토리는 꽤 유명했습니다. 아내에게 답장을 쓰는 것도 중요한 하루 일과였죠. 지금도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나 종이학들은 아내가 추억으로 잘 보관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엔 형님 결혼이 어서 이뤄지기를 기다린 적이 많았습니다.” 김승연 회장이 백두진 전 국회의장의 부인인 허숙자 여사의 중매로 1982년 10월 서영민(44)씨와 결혼식을 올리자, 김 회장도 그 다음해 2월 김미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 회장과 김미씨는 장남 동환(22)-장녀 정화(21)-차남 동만(18) 등 2남1녀를 뒀다. 모두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처가는 독립운동가(家) 산실 김 회장의 처가는 국내 독립운동가(家)를 대표할 만한 명문가다. 김미 여사의 조부가 민족 지도자인 백범 김구 선생이며, 큰어머니가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고 안미생 여사다. 김 여사의 부친은 교통부 장관과 타이완 대사, 공군 참모총장, 국회의원 등을 지낸 김신(83)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회장이다. 김신 회장은 임윤연(작고) 여사 사이에 김진­김양-김휘-김미 등 3남1녀를 뒀다. 김진(56)씨는 동서통상과 글로볼씨스텍 대표이사를 거쳐 DJ정권 시절인 98년 대한주택공사 감사를 역임했다. 또 참여정부 들어서는 대한주택공사 사장에 임명되기도 했다. 미국 남가주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으며, 행정학 석사 학위를 땄다. 차남 김양(52)씨는 최근 주중국 상하이 총영사에 임명됐다. 이로써 그의 집안은 4대째 상하이와 인연을 맺게 됐다. 김구 선생은 1919년 독립운동을 위해 상하이로 건너갔으며, 이듬해는 선생의 모친인 고 곽낙원 여사와 부인인 최준례 여사가 상하이로 갔다. 김 총영사의 부친 김신 백범 기념사업협회 회장 역시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김 총영사는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하고, 외국계 회사 근무와 기업체 운영 등으로 경제 경험이 풍부한 데다 상하이가 갖는 독립운동의 상징성을 감안해 발탁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젖소 사료를 제조·판매하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EBT 네트웍스의 대표이사로 활동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국제관계학을 공부했다. 시티뱅크 서울지점 부장과 컴퓨터 코리아 부사장 등을 거쳤다. 3남 김휘(50)씨는 광고인으로 나라기획 이사와 멕켄 에릭슨 상무를 거쳐 지금은 광고대행사 ㈜에이블리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한국관광공사 비상임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원을 나왔다. 김 회장은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라는 인연으로 독립운동가 추모사업에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회장은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 이사로 활동하며 서울 효창동에 위치한 백범기념관 건립에 큰 역할을 했으며, 현재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백범 사상의 학술연구과 관련 출판물 발간도 지원하고 있다. 김 회장은 또 후손 없이 서거한 이봉창 의사의 기념사업회도 후원하고 있다. 그는 이봉창 의사의 업적을 알리고,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10월9일 ‘광복 60주년 기념 이봉창의사 마라톤 대회’를 연다. 이밖에 김 회장은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김구재단을 통해 매년 150여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천재보다 따뜻한 사람으로 커라.”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다 같지 않겠습니까. 좋은 것을 주고 싶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고…. 하지만 저는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할 가장 큰 자산은 균형 잡힌 가치관이라고 생각합니다. 똑똑한 천재로 키우기보다 평범하지만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김호연 회장) 김 회장과 김 여사는 자식들에게 유난히 사회봉사 활동을 강조한다.‘우리’라는 단어의 참 의미를 깨우쳐주기 위해서다. 독립운동가(家)의 후손다운 자녀 교육법이다. 큰 아들 동환군이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을 보낼 때다. 김 여사가 아들 손을 잡고 찾은 곳은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한 맹인교회. 설거지나 청소 등 맹인들이 하기 어려운 일들을 도우며 ‘더불어 사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아들에게 가르쳤다. 모자(母子)는 동환군이 중3이 될 때까지 6년간 매년 여름을 맹인교회에서 봉사하며 지냈다. 또 외환위기가 한창인 98년에는 성공회 ‘푸드뱅크’ 주관의 노숙자 돕기 자원봉사에 김 여사와 3남매가 함께 참가해 서울역 광장에서 석달간 식사 배식과 설거지 등을 하기도 했다. 김 회장도 해비탯(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자녀들을 참여시켜 함께 집을 짓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 김구선생 손녀 김미 여사 “평범한 가정주부입니다. 사치 안 하고, 겸손하고, 얘들 교육에 관심 많고요. 또 독립운동가 후손답게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는데, 일은 조용히 하려고 해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굉장히 쑥스러워하고 꺼려합니다.” 김호연 회장이 보는 부인 김미 여사의 평이다. 김 여사도 국내 여느 재벌가의 며느리처럼 공식적인 바깥 활동을 거의 안한다. 김 여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봉사 활동도 ‘왼손이 하는 일, 오른 손도 모르게’ 하는 식이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대외 활동을 한다.6년간 맹인교회의 도우미로서 활동했고, 여전히 어린이 교육사업에 앞장서고 있지만 남들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김 여사의 이런 배경에는 국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家)로서 사회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과 조부 백범 김구 선생의 명예에 혹시나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몸가짐을 조신하게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또 김 회장과 자녀들이 사회봉사 활동에 적극 나서는 것도 김 여사의 영향이 크다. 특히 김 여사의 봉사 활동은 살아있는 자녀 교육이 됐다. 김 여사는 자녀들에게 명문가의 사회적 책임을 가르치며, 균형 잡힌 가치관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 여사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지인의 설명이다.“김 여사의 모친인 임윤연 여사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김 여사는 중2 때부터 집안 살림을 챙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상 어린 시절부터 주부 역할을 해오신 거죠. 그래서 그런지 차분하고, 조용할 뿐 아니라 일처리도 깔끔합니다.” 김 여사는 현재 국내·외 아동의 건강과 교육을 비롯해 결손·빈곤 가정 어린이 지원사업 등을 펼치는 국제 어린이 보호재단인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의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한편 백범 김구 선생은 서울신문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의 지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는 1905년 11월부터 1907년 2월까지 황해도 장연에서 대한매일신보 지사장으로 민족신문 보급에 애썼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식민지시대 한인 아나키즘 운동사’ 펴낸 박환 교수

    ‘식민지시대 한인 아나키즘 운동사’ 펴낸 박환 교수

    아나키즘(anarchism).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된다. 그러나 아나키즘에 애착을 가진 이들은 그런 번역을 일종의 오역으로, 심지어는 일제의 잔재로까지 보기도 한다. 서구에서 수입된 이 단어가 제국주의 일본을 거치면서 ‘정부가 없는 무법·혼란 상태’라는 부정적 의미가 짙게 깔린 무정부주의로 번역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정부주의 대신 아나키즘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다.‘an-archi’라는 어원 그대로,‘지배자 혹은 권력집단이 없는’ 자유로운 개인간의 연대라는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다. 노엄 촘스키가 아나키즘을 어떤 이론체계나 행동양식이라기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경향’으로 정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나키즘은 살아남기가 버겁다. 체제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냉전 같은 경우에는 더 그러하다. 자본주의·공산주의 모두에게 ‘체제를 부정하는 자’로 낙인찍히기 때문. 우리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일제시대는 달랐다. 기존 체제를 격렬히 부정했기에 당시 많은 독립지사들은 아나키즘으로 ‘광복 이후’를 상상했다. 잊혀져 가던 이 대목을 정리한 책이 나왔다. 독립운동사 연구로 유명한 한국민족운동사학회장 박환 수원대 교수가 ‘식민지시대 한인 아나키즘 운동사’(선인 펴냄)를 정리해 낸 것. ●제3의 길, 아나키즘 얼마 전 유행했던 말로 치자면 일제시대 아나키즘은 제3의 길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독립운동 진영내 좌우파 대립을 보다 못해 택한 길이 바로 아나키즘이었다는 사실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박 교수는 이들이 왜 제3의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집중 조명한다. ‘다물단’‘재중국조선무정부공산주의자연맹’‘남화한인청년연맹’‘한국청년전지공작대’‘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한족총연합회’‘조선공산무정부주의자연맹’ 등 중국·만주·조선에서 1920년대부터 45년까지 활동한 아나키스트들을 통해서다. 이들이 꿈꾼 사회는 ‘자본주의의 착취’도 없고,‘공산주의의 독재’도 없는 국민자치에 의한 연합체였다. 중간에 낀 입장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선택은 다양했다. 사회주의 혹은 민족주의 진영과 힘을 합하는 경우도 있었고, 끝까지 아나키스트로서의 삶을 유지한 사람들도 있었다. ●잊혀진 운동, 아나키즘 아나키즘은 환영받기 힘들었다. 일단 중간자였다. 우파가 보기엔 체제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좌파와 별 다를 바 없고 좌파가 보기엔 무모한 행동으로 혁명 역량을 분산시키는 어리석은 자들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남북분단 뒤 이승만·김일성은 임정 중심의 일부 우익 세력과 제한적인 사회주의 계열에만 정통성을 부여했다. 또 아나키스트들은 행동력에서도 주목받기 어려웠다. 개인 중심의 저항운동이다 보니 순교자적인 행동을 요구했고, 그러니 숫자도 얼마되지 않았는 데다 그나마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책에서 아나키스트들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대목을 추가해 놓았다. 바로 당시 아나키스트들의 숨결이 녹아 있는 각종 문건들을 번역해 놓은 것. 중국의 대문호로 꼽히는 바진, 뤼신이 아나키즘에 대해 남겨둔 글과 조선 아나키스트 기관지 ‘고려청년’의 발간사 등이 각장 뒤에 달려 있다. 박 교수는 “학계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글이라도 사료 차원에서 참고자료 삼아 번역해 실어뒀다.”고 말했다. ●아나키즘의 현재적 의미 박 교수가 이렇게 아나키즘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지금 한국에도 유효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독립운동으로서 어떤 성과를 냈느냐고 한다면 다소 부족하지만, 새로운 국가 건설론으로 이해하면 의미가 적지 않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다름 아닌 중간자였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아나키즘의 근본적인 목적은 인간성 존중과 풀뿌리 민주주의”라면서 “다른 체제로 살아온 남북이 통일할 때 한 방안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물론 박 교수가 마냥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자유로운 개인의 자유로운 연대라는 것이 현실성 있느냐는 질문은 여전하기에. 그래도 그는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포기하기보다 하나의 이상향으로서, 미래지향적으로 가능성을 열어 두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박 교수는 책 내용에 조금 불만이 있다.“이번 책은 중국내 한인들의 아나키즘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다음 번에는 한국내 아나키즘의 수용과 전개에 대해 연구해볼 참입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17일 TV 하이라이트]

    ●생방송 60분-부모(EBS 오전 10시) 뇌기반 학습법에 관해 알아본다.‘뇌의 우열은 태어날 때 이미 가려진다?’,‘아인슈타인은 평생 자기 뇌의 5%만을 사용했다?’와 같은 뇌에 관한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 보고, 아이에게 ‘바보’라고 낙인찍는 것은 결국 그 아이를 바보로 만들 수도 있다는 이른바 ‘낙인효과’에 대해서도 알아 본다.   ●박주현의 시사 업 클로스-국가권력 범죄, 시효배제 논란(YTN 오후 3시5분) 남북 공동 개최로 그 어느 때보다 뜻 깊었던 8·15행사가 끝나기 무섭게 노무현 대통령의 경축사 발언이 정치권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대통령은 왜 갑자기 ‘시효배제’발언을 했을까? 노무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의 의미와 쟁점을 여야의원과 함께 짚어 본다.   ●요리보고 세계보고(MBC 오후 5시20분) 소금에 절인 호박씨와 해바라기씨, 아몬드, 피스타치오, 호두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씨앗 종류가 많은 이란은 가히 씨앗의 천국이라고 할 만하다. 하루라도 씨앗을 먹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는 이란 사람들을 만나본다. 더불어 요리의 핵심인 씨앗의 변신을 체험한다.   ●루루공주(SBS 오후 10시45분) 찬호의 말을 떠올리며 고민하던 우진은 희수에게 전화를 한다. 들뜬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하던 희수는 찬호가 가지 말라고 하자 멈칫 거린다. 약속 장소에서 먼저 기다리던 우진은 희수가 오는 것을 보고 몸을 숨긴다. 희수를 혼자 있게 내버려둔 우진은 희수를 데려가라고 찬호에게 연락을 하고….   ●어여쁜 당신(KBS1 오후 8시25분) 기준은 결혼식 예약을 위해 들른 재민과 우연히 마주치고, 희주는 사사건건 기준 엄마와 부딪쳐 기준을 피곤하게 한다. 한편, 힘찬은 유치원에서 놀다가 팔이 부러지고 인영은 그런 힘찬을 위해 일을 하루 쉬고, 엄마처럼 힘찬이를 돌봐준다. 재민은 그런 인영에게 감동한다.   ●마법전사 미르가온(KBS2 오후 6시40분) 아라가 다시 암흑전사가 될 때까지 마법전사와 마법사들을 자극하지 말라는 지배자의 명령에 호구네 가족은 미르와 아라네 집 앞 복도를 청소해 준다. 아라를 옥상으로 불러낸 지배자는 아라의 몸에 남아 있는 암흑전사 에너지를 이용해 아라가 암흑전사로 돌아오도록 최면을 건다.
  • [옴부즈맨 칼럼] 독자의 공감을 얻어라/최광범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진흥팀장

    신문의 뉴스가치를 단순화하면 두 가지로 대별된다. 공익적 가치와 ‘상품으로서의 기사’가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것인가 하는 점이 그것이다. 신문독자는 TV시청자들보다는 고학력 식자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실은, 신문독자가 공익적 의제에 대해 더 높은 관심을 가질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광고수익이 신문사의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우리의 언론현실에서 기사의 공익성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상품으로서의 기사’만을 추구할 수도 없다. 선정주의를 추종하는 신문으로 낙인찍혀 언론의 생명인 권위와 신뢰를 희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익적이면서 재미있는 기사를 많이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최상이다. 인터넷이나 전파매체 같은 이종매체는 차치하고라도 종합일간지간의 경쟁이 치열한 마당에 이런 기사를 발굴하기가 말처럼 용이한 작업은 아니다. 그래서 신문에 조언을 하는 전문가들은 ‘특화’라는 막연한 말만 되뇐다. 필자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서울신문 기사를 보면 이런 지적의 구체적 실례를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신문에는 기사 첫머리에 표시가 있는 ‘Only & Online’이 있다. 서울신문 단독보도이거나 홈페이지에 추가 정보가 있는 기사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 반응을 검증해 보면 될 것이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궁금증이 풀린다. 왼쪽 상단의 ‘Only & Online’코너를 클릭하면 그 이슈에 관련된 기사가 망라돼 있어 배경 및 진행과정을 이해하는 데 그만이다. 또 그 아래 ‘많이 본 뉴스’코너에는 독자의 사랑을 받는 기사리스트가 배열돼 있다. 이들 중에는 서울신문의 강점이라고 독자들 사이에 각인된 고시·취업 및 행정기사와 ‘Only & Online’기사가 상위권을 차지한다. 최근 많이 본 뉴스의 1,2위를 차지했던,11일자 13면의 “7급 지원 10명중 6명 ‘시험포기’”와 5면의 “자치단체장 98% 공무원의 정년 단일화 찬성” 기사는 서울 신문만 보도한 기사였다. 이런 기사들은 다른 경쟁사들이나 신문의 라이벌로 부상한 포털사이트 뉴스난과는 확연한 차이가 나타난다. 이 정도면 편집국 구성원들간의 지면제작에 관한 합의의 논거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필자의 이 같은 견해가 맞는다면, 어떤 점이 보강되어야 하느냐만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언론 매체를 교차소유할 수 없는 우리와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플로리다주 중부에 있는 탐파트리뷴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TV방송과 인터넷 편집국, 종이신문 편집국 기자들의 경계를 파괴해버렸다(미디어 월드와이드 2000년 6월호). 이처럼 서울신문도 인터넷기사와 지면기사의 경계를 허물어 공유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했으면 한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온·오프라인 뉴스룸 통합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주 한국언론재단을 방문한 미국의 미디어기술 연구기업인 Ifra의 랜디 코빙턴 뉴스플렉스 국장도 온·오프라인의 통합 필요성을 역설했다. 물론 종합일간지가 특화된 기사만을 찾다가 시의성 있는 기사를 놓칠 수는 없다. 하지만 지나간 뉴스를 가지고도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12일자 경제면에 실린 “재계의 ‘우울한 여름’”은 그 전형이라 할 수 있겠다. 형제간 다툼으로 내홍을 빚고 있는 두산그룹,X파일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 삼성, 중소기업협동조합이사장 입건문제, 전경련 강신우 회장의 동아제약 세무조사 등은 개별적으로 발생한 사안이지만, 이를 종합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이 기사는 다음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경제면 두 번째 중요기사로 받아 보도했다. 단순한 속보성 특종에 비견할 수 없는 의미 있는 기사였다. 혹시 다른 분야에서도 이처럼 경쟁지를 선도할 수 있는 기사의 발굴 여지가 없는지 조금 더 고민하는 신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쟁지를 선도하는 비결은 ‘독자의 공감’이다.
  • 방송위 심의위원 27명 위촉

    방송위원회는 12일 보도교양·연예오락·상품판매방송 등 3개 부문의 차기 심의위원회 위원 27인을 위촉했다. 관련 규정에 따라 3분의 1은 여성을 위촉했다. 위촉기간은 16일부터 2006년 8월15일까지 1년이며,1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위촉식이 열린다. 다음은 부문별 위원 명단.◇보도교양심의위원회 ▲신대근 전 대구MBC 사장(위원장)▲윤재홍 전 KBS 제주방송총국장▲김재봉 전 문화일보 수석논설위원▲목진자 단국대 방송영상학부 교수▲문미원 미디어교육연구소장▲안영도 필동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국성호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최대열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부원장◇연예오락심의위원회▲김순길 중앙대 신문대학원 겸임교수(위원장)▲윤대작 전 KBS 전주방송총국장▲박영일 전 포항MBC 사장▲장낙인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이경화 숙명여대 아태여성정보통신센터 책임연구원▲최민수 국회 전문위원▲김다은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이웅 이웅법률사무소 변호사▲전미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협동사무처장◇상품판매방송심의위원회▲이시권 전 SBS 관리본부 협력사지원팀장(위원장)▲김봉현 동국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이수범 인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김진 법률사무소이안 변호사▲엄애선 한양대 식품영양학과 교수▲신석우 한국제약협회 전무이사▲하병조 서울보건대학 뷰티아트과 교무위원▲이춘근 금융감독원 보험계리실장▲김연화 한국소비생활연구원장
  • [위기의 한국축구](상) ‘경질론’ 휩싸인 본프레레

    [위기의 한국축구](상) ‘경질론’ 휩싸인 본프레레

    한국 축구가 위기에 휩싸여 있다. 북한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4개국 대항전인 동아시아연맹축구선수권 3경기에서 단 1골만을 넣은 채 2무1패의 ‘꼴찌’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내년 6월 초 개막하는 독일월드컵을 불과 10개월 남겨 놓은 중요한 시기에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단일대회 최하위라는 성적에 축구계는 당혹해 있고, 팬들의 분노는 폭발하고 있다. 월드컵 4강의 쾌거를 달성한 지 3년 만에 밑바닥까지 추락한 한국축구의 위기는 누가 불러온 것인가. 조 본프레레 감독인가, 선수들인가. 위기를 돌파할 카드는 없는가. 본프레레호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골맛을 보여달라 본프레레 감독은 일본과의 최종전을 0-1로 마친 뒤 가진 인터뷰에서 “경기 내용에 만족한다.”면서 “젊은 국내파들을 시험하기 위한 무대였다.”고 책임을 피해 갔다. 그러나 그의 ‘황태자’로 불리는 이동국(26·포항)의 말처럼 팬들은 좋은 경기 내용보다는 이기는 축구를 원한다. 그는 결국 경질론에 직면해 있다. 본프레레호에 쏟아진 비난 가운데 가장 큰 건 ‘뻥축구’였다. 한국은 이번 대회 3경기에서 모두 51개의 슈팅을 날려 단 1골만을 뽑아냈다. 그것도 최후방 수비수 김진규가 프리킥으로 뽑아낸 것이었다. 성공률이 겨우 1.96%에 그치는 한심한 수준이었다. 미드필더와 최전방 공격진이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세트 플레이’의 실종은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측면 돌파 요원들의 부정확한 크로스뿐 아니라 최전방에서 보이는 침투패스의 부재는 골결정력 부족으로 이어졌다. 특히 측면 날개의 임무를 맡은 공격수와 미드필더들의 저조한 돌파능력은 득점루트를 더욱 단조롭게 만드는 시발점이 되고 말았다. 감독의 전술과 전략의 부재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다. ●취임 14개월 ‘테스트´ 일관 북한의 김명성 감독은 한국과의 경기를 0-0 무승부로 끝낸 뒤 한국을 얼마나 연구했느냐는 질문에 “부임한 지 이제 한 달인 데다 지난 우즈베크전을 녹화로 본 것밖에는 없다.”면서 “선수 파악을 위해 전반전 수시로 선수 교체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본프레레 감독의 경우는 어떨까. 그는 지난해 6월24일 정식으로 사령탑에 앉았다. 달 수로는 현재 14개월째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고백처럼 ‘테스트’로 일관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시험’은 계속됐다. 그 결과 매 경기마다 선발 출전 선수를 놓고 교체와 복귀를 거듭하는 난맥상을 그대로 드러내며 실패한 ‘용병술’로 낙인찍혔다. 문제는 가장 우수한 공·수의 조합을 찾아내는 노력의 정당성 여부가 아니라 시간이다. 이제 독일에서 벌어질 ‘축구 대전’은 꼭 10개월밖에 남지 않았다.“하루빨리 실력차가 크지 않은 선수 25명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자신의 말은 아직도 선수 파악을 끝내지 못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감독·선수 문제점 처방이 먼저 이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경질론이 물 끓듯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른바 대안부재론. 독일월드컵 개막을 불과 10개월 남기고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기에는 찾을 대안이 없는 데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게 요지다. 대한축구협회도 8일 “팬들의 비판은 겸허하게 수용하겠지만 감독 경질 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못을 박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교체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최후의 선택’이 돼야 한다.”는 원칙론이 제기된다. 김주성 MBC 해설위원은 “감독 경질에 대한 선행 과제는 대표팀의 전술적·기술적 부분에 대한 다각도의 점검”이라면서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에서 팀 경기력이나 감독의 능력에 대해 냉철히 평가한 뒤 대표팀의 문제점에 대해 처방을 내리는 게 올바른 순서”라고 말했다. 김호 전 프로축구 수원 감독은 “히딩크 감독 시절 이후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한때의 ‘4강쇼’에서 깨어나지 못한 협회에도 책임이 있다.”면서 대한축구협회의 자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축구가 한 감독의 역량에 모든 것을 맡기고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체질개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시론] 누구를 위한 쌀협상 비준 거부인가/안덕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시론] 누구를 위한 쌀협상 비준 거부인가/안덕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쌀시장 완전개방을 연기하기 위해 미국, 중국, 태국 등 9개국과 지난해 4월부터 8개월간 씨름해 얻어낸 세계무역기구(WTO) 쌀 협상 타결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비준을 거부해야 한다는 농민단체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모양이다. 148개 WTO 회원국 가운데 농업 부문에 대한 관세화 유예를 허용받고 있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필리핀뿐이다. 더욱이 우루과이라운드(UR)에 이어 관세화 유예를 10년간 추가적으로 허용받은 사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물론 특별한 예외를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부분적인 시장개방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공짜 점심은 없으니 말이다. 우리나라는 올해 22만 5000t인 쌀 수입 허용량을 2014년까지 40만 8000t으로 늘리고, 중국산 사과 등 일부 농산물에 대해서는 수입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검역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키로 합의했다. 부르튼 입을 하고 세계 각지로 협상하러 다녀야 했던 실무진들의 고초 또한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고 한다. 어렵게 진행된 협상이 마무리되고 나자 국내에서는 “과다한 양보를 했다.”,“혹시 이면 합의가 있는 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왔고, 여야는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하지만 국정조사는 떠들썩했던 시작과 달리 별다른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국회는 비준 여부를 9월 정기국회로 미뤄놓았다.UR 이후 통상 문제에 대한 국회의 입법 과정에서 나타나는 큰 특징은 농산물 시장개방에 관해서만 여야가 구분없이 한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드잡이가 벌어지는 국회지만 농산물 개방 문제에 대해서만 신통하리만큼 보조를 잘 맞추고 있는 셈이다. 국제 통상이라는 중대한 문제에 대해 여야의 입장차를 넘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 정치의 선진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다. 농산물, 특히 쌀 시장을 개방하자는 주장이 정치적으로 악재라는 것을 여야 의원 누구나가 알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기묘한 공동보조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농업은 통상협상을 해서는 안 되는 성역으로 간주되고 있다.10년전 UR 당시 농산물 시장을 지키지 못했다는 책임을 지고 당시 농림부 장관이 경질됐다. 우리나라가 체결한 최초의 자유무역협정(FTA)인 한·칠레 FTA는 칠레산 농산물이 우리 농촌을 폐허로 만들 것이라는 주장에 막혀 국회 비준에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여전히 농산물 시장개방의 경제적 효과를 따져보자는 합리적인 주장은 “개방이라는 말조차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는 강경파들의 목소리에 묻히고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협상 상대국들이 이런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농산물 개방을 의논하는 협상 테이블마다 우리 협상팀이 궁지에 몰리는 이유일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통상협상 결과를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국회의 비준 절차가 거부되거나 지연된다면 우리 정부의 대외협상 신인도는 추락하고 국제적인 ‘협상 미숙아’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불가피한 최소 수준의 농업 개방이라는 성과를 거둔 이번 쌀 협상도 폐기될 수밖에 없다. 국회는 표심(票心)에는 온전히 투영되지 못하지만 국익만큼은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만약 WTO 148개 전 회원국이 우리나라 쌀의 특수성을 인정해 개방 연기를 승인한 이번 협상이 당사자인 우리나라 국회의 비준 거부로 불발된다면 앞으로 어떤 국제 협상이 가능하겠는가. 안덕근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 (3) 재소자의 인권(영국)

    [인권선진국으로 가는 길] (3) 재소자의 인권(영국)

    교도소는 지은 죄를 징벌하기 위해 신체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도록 법으로 합의한 곳이다. 그러나 높은 담이 상징하듯 폐쇄적인 교도소에서는 징벌이 강조됐지, 인권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져 왔다. 오랜 행형의 역사를 가진 영국은 교도소의 담을 낮추고 재소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노력도 함께 기울여 왔다. 죄는 엄격히 벌하되 인권은 존중하고, 나아가 재사회화를 통해 재범을 줄이는 영국의 앞선 교도행정 현장을 찾았다. |워튼언더에지(영국) 이효용특파원|런던에서 자동차로 서쪽으로 달린 지 2시간여, 글로체스터주(州)의 한적한 마을에 닿는다. 나지막한 붉은 벽돌 건물들과 여기저기서 담소하는 사람들은 영락없이 한가로운 시골 풍경의 하나다. 정문의 차단막과 제복을 입은 직원들이 아니라면 농장이나 학교쯤으로 보일 법한 이곳은 1948년 탄생한 영국 최초의 개방형 교도소 레이힐이다. 여권을 맡기고 철저한 신분 확인을 거쳐 정문을 지나자 ‘방문자 출입 제한’이라는 푯말이 나타난다. 보안 정도에 따라 A(중구금시설)∼D(개방형)급으로 분류되는 영국 내 137개 교도소 가운데 D급에 속하는 이곳의 재소자는 크게 두 부류다.5개월∼1년 정도의 형을 선고받은 경범죄자들과 살인·성폭행 등으로 12년∼종신형을 선고받고 10년 이상 복역한 장기수들이다. 특히 장기수들에게는 사회와 비슷한 환경에서 직업활동을 익히도록 해 복역을 마친 뒤 사회적응이 쉽도록 도와주고 재범을 줄인다는 것이 레이힐의 설립목적이다. ●재소자들 각방 자유롭게 드나들어 체육관과 의료센터를 지나 도서관 옆 건물 안에 들어서자 복도 양 옆으로 늘어선 방들에서 시끄러운 록음악이 새어 나온다. 마을 목공소에서 일을 마치고 퇴근해 쉬고 있던 매튜(39·가명)가 선뜻 방을 보여주겠다며 열쇠를 꺼내 문을 연다. 이 곳은 대부분 1인용 방으로, 재소자들이 각자 방 열쇠를 가지고 자유롭게 드나든다. 침대와 책상,TV, 옷가지 등이 널려 있는 모습이 마치 학교 기숙사 같다. 음주운전으로 건물을 들이받는 사고를 내고 5개월형을 선고받은 매튜는 첫 2주를 일반교도소에 있다가 4주 전 이곳으로 왔다. 그는 “전과자로 낙인찍혔다는 두려움이 이곳에 와서 사라졌다.”면서 “죗값은 치르지만 복역기간 중에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인터넷이나 우편으로 개방대학 다녀 중범죄자 수용동에 들어서자 바닥을 쓸고 있던 대런(60·가명)이 반갑게 말을 건넨다. 성폭행으로 15년형을 선고받고 12년을 복역하다 지난해 이곳에 온 그는 건물 청소를 하며 주당 15파운드(약 2만 7105원)를 번다. 나이가 많아 비교적 수월한 직업을 택했다면서 “벌써 2000파운드나 모았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탈옥할 수 있지만 남은 인생을 위해 하지 않는다.”면서 “내년 10월 출소하면 모아 둔 돈으로 새 삶을 시작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살인으로 11년을 복역하고 이곳에 온 로이(27·가명)는 대학 갈 꿈에 부풀어 있다. 어린 나이에 의도하지 않은 살인으로 오랫동안 사회에서 떨어져 있었지만, 대학에서 전기·배관 기술을 배워 출소할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그는 “이곳 생활은 거의 완벽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더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사회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아직 젊은 만큼 남은 2년간 많은 것을 배워 가치 있는 삶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소자들은 교도소 안팎에서 일을 하거나 교육을 받는다. 교도소 내 농장, 목공소, 인쇄소, 식당은 물론 인근 마을에서 트럭 운전, 기계공, 상점 직원 등으로 일하고 주당 10∼20파운드를 번다. 읽고 쓰기, 수학 등 기초교육에서 외국어, 컴퓨터, 경제학까지 교육프로그램도 다양하고, 인터넷이나 우편으로 개방대학에 다니기도 한다.512명의 재소자 가운데 100여명이 마을로 출퇴근하고 70명이 외부 교육을 받고 있다. 재소자들의 직업소개를 담당하는 토니 로바그로바(47)는 “어떤 일을 원하는지 상담한 뒤 고용주에게 데리고 가 왜 교도소에 왔고 왜 일하고 싶은지를 직접 설명하게 한다.”면서 “직업을 갖는 것은 책임감을 키워 주고 더이상 범죄가 필요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리처드 부티 레이힐교도소장은 “10년 넘게 교도소에서 살다가 나오면 적응하기 어려워 다시 범죄의 유혹을 받게 마련”이라면서 “이들을 그냥 사회로 내보내는 것은 매우 게으르고 무책임한 처사”라고 강조했다. 그는 “물론 허가없이 교도소를 나가 A∼C급 교도소로 돌려보내지는 경우도 한 달에 3∼4번꼴로 있다.”면서 “그러나 제한된 자유를 시험하는 장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출소전 6개월간 일반주택서 생활 영국에는 개방형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교도소가 있다. 그렌든 교도소와 같은 의료집중교도소는 최신 의료시설과 심리 프로그램을 갖춰 정신질환자나 마약 중독자들이 수감된 기간을 치료기간으로 활용해 내보내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여성만 수용하는 브론즈필드 교도소 등은 임신한 재소자를 위한 의료서비스는 물론 영아와 산모가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해 모성을 보호한다.‘호스텔’이라 불리는 중간처우시설은 출소 직전 6개월간 10∼20명 단위의 그룹홈 형태로 일반 주택에서 생활하면서 ‘가족과 사회’를 만난다. utility@seoul.co.kr ■ ”인권감시 자원봉사모니터링 큰 효과” |런던 이효용특파원|“범죄자라 할지라도 수감된 기간에 존엄하게 처우하면 법을 존중하는 시민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습니다.” 런던킹스칼리지 국제교도소연구센터 소장 앤드루 코일 교수는 “교도소 내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재소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을 낳기 때문에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25년간 교정국에서 근무하며 교도소장을 역임하는 등 실무를 겸비한 교정학의 권위자다. 코일 교수는 이를 위해 독립적 기구와 감시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영국은 교도소에 대해 복수의 감시장치를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재소자들이 일상 속에서 가장 가깝게 손을 뻗을 수 있는 곳이 137개 교도소마다 구성돼 있는 교도소모니터링위원회다.16∼18명의 지역사회 자원봉사자들이 언제든 자유롭게 재소자들을 만나 불만을 듣고, 잘못된 점의 시정을 요구하며, 진정이 필요할 때는 진정서 작성을 돕기도 한다. 교사, 법조인, 전직 경찰,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상담을 한다. 모니터링위원회가 지역 중심의 1차 감시기구라면 교도소사찰위원회는 전문적 사찰을 담당하는 중앙 기구다. 모든 감옥을 5년에 한 차례씩 불쑥 방문해 1주일간 300여개 기준으로 집중 사찰한다. 문제점에 대해 권고 조치를 내리며 수용률은 96%다. 행형옴부즈맨위원회는 특정 사안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다. 우선 자살을 포함한 모든 죽음에 대해 예상이 가능했는지, 의료 서비스를 받았는지, 교도관의 부당 행위는 없었는지를 조사한다. 또한 공식 진정을 접수해 조사하고 필요할 경우 권고 조치한다. 수용률은 98% 정도. 코일 교수는 “교도소 인권 감시는 꼭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며, 모니터링위원회와 같은 자원봉사 제도를 통해서도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다.”면서 “관리가 매우 비싼 교도소의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범을 줄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utility@seoul.co.kr ■ 기고 우리나라 수용자 1명이 교도소에서 생활하는 면적은 법무시설준칙이 규정한 0.75평에도 채 미치지 못해 이른바 ‘칼잠’을 자야 하는 실정이다. 교도소 내 과밀수용 문제는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우리 행형법은 독거수용을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면 교정 현실에서 독거수용은 오히려 예외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구교도소의 경우 1실 평균 수용인원이 8.77명에 이른다. 법규와 현실이 일치될 때만 인권은 보호될 수 있다. 2001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족한 이래 지금까지 구금시설 내에서의 인권침해를 이유로 위원회에 접수된 진정사건은 총 5500여건으로 전체 인권침해 사건의 44.4%에 해당한다. 이러한 진정사건의 처리와 조사 등을 통해 구금시설 내 인권상황의 점진적 개선을 가져온 것은 위원회가 이룩한 가장 가시적인 성과 중의 하나다. 모든 국민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은 우리 헌법 최고의 원리다. 여기에 교도소 수용자도 포함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반사회이든 구금시설 내부이든 질서는 법에 의해 구축돼야 한다. 거리의 자유로운 시민이든 시설에 갇힌 수용자든 최대한의 인권보장은 민주국가가 갖추어야 할 필수요소다.“구금시설의 상황은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말이 있다. 진정한 선진사회는 사회의 가려진 모든 구석에 대한 헤아림을 바탕으로 가능해진다. 갇혀진 자들 역시 이러한 포용의 대상에서 결코 예외일 수 없다. 김호준 인권위 상임위원
  • ‘테러공장’ 낙인… 난감한 파키스탄

    파키스탄인 다수가 이집트의 샤름 엘 셰이크 연쇄테러 용의자로 떠올랐다는 25일 언론 보도 이후 파키스탄이 새로운 테러 세력의 온상인가를 두고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후세인 하리디 파키스탄 주재 이집트 대사는 26일 성명을 내고 “파키스탄인은 지난 23일 샤름 엘 셰이크 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이집트 당국의 이같은 결론은 전날 밤 파키스탄 정부에 전달됐다고 밝혔다. 하리디 대사는 이집트 경찰이 파키스탄인 6명을 뒤쫓고 있으나 이는 23일 폭탄테러와는 관계 없이 보안 차원의 관례적인 확인이라고 밝혔다. 전날 언론보도 몇시간 후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도 라호르에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 영토에서 알 카에다가 작전을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은 궤멸됐다.”며 “파키스탄내 조직이 런던과 샤름 엘 셰이크는 물론,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테러를 조종할 여지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라호르 등에서 전투원 700여명을 검거하는 등 자국 내에서 알 카에다의 지휘 및 통신 시스템을 제거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그 결과 자국내 조직들은 밀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만 두 달이 걸릴 정도여서 이역만리에서의 작전을 지휘할 여력이 없다고 덧붙였다. 무샤라프 대통령이 서구 언론의 보도에 대해 이처럼 기민하게 움직인 것은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과 접경 지역인 파키스탄의 와지리스탄을 은거지로 삼고 있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상황에서 런던 1차테러에 이어 샤름 엘 셰이크 테러범마저 자국인으로 확인될 경우 새로운 테러의 온상이라는 낙인이 찍힐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런던 1차테러 용의자 4명 중 2명은 파키스탄계 영국인으로 지난해 파키스탄을 방문한 사실이 확인돼 파키스탄 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든 바 있다. 이와 관련, 지난 7일 BBC는 파키스탄 정부의 테러조직 단속이 매우 위험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BBC는 당국이 조직원들을 체포하는 대신 다른 조직원과 접촉하도록 한 뒤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며 이것이 원치 않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쿠바 관타나모기지에 수감됐다가 석방된 150여명의 파키스탄인들이 9∼10개월동안 상당히 자유로운 상태로 지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만약 이때 비극적인 연쇄테러의 씨앗이 틔워졌다면 파키스탄은 국제적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사회인 야구 ‘나이트 시대’

    사회인 야구 ‘나이트 시대’

    “나이트(Night)게임, 라이트(Light·조명탑)에 적응하라.” 해님이 고개를 숨긴 지난 10일 오후 8시30분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면 신월교 인근 한양대 구장. 직장인 30여명이 야구를 하느라 땀에 흠뻑 젖어들었다. 이날 경기는 주신리그 루키그룹 ‘진건 엘리펀트’와 ‘단무지2’의 한판으로 5회까지 다툼을 벌여 진건이 14대 4라는 짜릿한 승리를 맛봤다. 특히 두 팀은 낮 경기에 견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뽐냈다. 진건은 투수 이석근(42)과 중견수 박광현(29)의 각 2안타 등 타자 29명이 돌아가며 20타수 7안타를 터트렸다. 단무지2 역시 22타자에 중견수 권용화(22)와 좌익수 이충우(33)의 2안타 등 21타수 7안타를 뿜어냈다. 똑같은 안타수에도 불구하고 진건은 사사구 9개와 도루 8개 등으로 뛰어난 선구안과 기동력을 발휘해 단무지 진영을 흩뜨려 놓은 끝에 낙승을 거뒀다. 일주일 뒤인 17일 싱글A그룹에 속한 ‘풍산 화이터즈1’과 ‘타이탄스’의 야간경기에서도 재미가 넘치면서도 알찬 내용이 잇달아 쏟아졌다. 풍산이 6대5로 역전극을 펼쳤다. 그러나 타이탄스가 1회 말 먼저 2점을 뽑아내자 풍산이 3회 1점으로 반격하고 말 공격에서 타이탄스가 1점을 보태는 등 ‘시소’게임이 이어졌다. 타이탄스의 지명타자 이용석(35)이 3안타를 터트리는 등 타이탄스 9개, 풍산 7개의 안타가 폭죽처럼 터져 타격전을 이뤘다. 도루도 양팀 통틀어 6개 나왔다. 완투한 타이탄스 투수 유현우(32)는 삼진을 7개나 솎아내는 위력을 선보이고도 패배로 빛이 바랬다. 이처럼 갈수록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사회인 야구판에도 ‘나이트 시대’가 활짝 열렸다. 이제 막 시작됐지만 열기는 프로야구를 방불케 한다. 리그마다 오후 6시 이후 플레이볼에 들어가는 야간경기가 직장인들 위주인 야구 동아리들이 페넌트레이스를 갖는 매주 토·일요일 이어지고 있다. 주신리그만 해도 지난 3월19일 2005시즌의 막을 올린 뒤 지금까지 311경기 가운데 35경기를 야간에 치렀다. 앞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약간씩 달라질 수는 있지만 두번째 야간경기는 보통 오후 8∼9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장소별로 하루 두 차례까지 경기가 가능하다. 경기도 시흥시 생활체육야구연합회가 주관하는 시화리그에서는 자체 구장에서 야간경기를 치르는 것은 물론, 페넌트레이스 일정이 없는 평일을 이용하려는 후발 동호회까지 나이트게임 신청이 몰려들어 과연 야구 붐이 대단하구나 하는 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해안고속도로 인근에 우뚝 선 시화리그 구장에는 올 3월 중순 거대한 조명탑이 들어섰다. 모두 6개의 탑이 밤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조명탑 한개에 적어도 1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생활체육 종사자들이 이러한 시설을 만들기는 쉽지 않은 대역사(大役事)로 꼽힌다. 시화구장에도 5억여원이 들어갔다. 시화구장에서는 평일 야간경기 회원을 모집 중이다. 리그 관계자는 “서울과 수도권 지역 동호인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어 야구하는 사람들도 내심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제1구장 외에도 올 들어 김포시에 2∼4구장과 유소년 경기장을 갖춘 코리아리그에서도 조명탑 시설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고양시와 달리 생활체육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어서 야구장 자체가 불법이라는 낙인 아닌 낙인이 찍혀 어려운 실정이다. 안양리그 호프스 야구단의 포수 강대영(34)씨는 “중·고교 때 유니폼을 입고 선수로 뛴 동호인들도 야간경기를 해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퍽 신기해하며 문의하는 편”이라면서 “언제 조명탑 아래에서 야간이라는 똑같은 환경에서 운동할 기회를 맞겠느냐.”고 반문했다. 강씨는 이어 “매주 토·일요일 정규리그 각 2경기씩, 주중에도 한두 경기를 야간에 치르기 때문에 전체의 20% 정도를 나이트게임으로 소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儒林(393)-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9)

    儒林(393)-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9)

    제4부 百花齊放 제1장 浩然之氣(19) 그 무렵 제나라에는 광장(匡章)이란 장수가 있었다. 용맹한 사람이었지만 평판이 매우 나빴다. 광장이 아버지와 싸워 불효하였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광장이 아버지와 싸운 이유는 어머니가 남편인 광장의 아버지에게 부정한 죄를 지었으며 이로 인해 아버지가 직접 어머니를 살해한 데서 비롯되었다. 광장은 아무리 어머니가 부정한 죄를 지었다고는 하지만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으며, 이로 인해 아버지와 싸우다 아버지에게 쫓겨남으로써 봉양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광장은 제나라에서 불효자라고 낙인찍히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맹자는 평판이 나쁜 광장과 교유하고 있었다. 교유할 뿐 아니라 예의까지 갖추는 것이었다. 이에 못마땅한 제자 공도자(公都子)가 맹자에게 묻는다. “광장은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불효자라고 칭하는 나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그와 함께 놀러 다니시고, 또 게다가 예모까지 갖추시니 감히 무슨 까닭인지 묻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맹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세속에서 이른바 불효라는 것은 다섯 가지이다. 첫 번째 불효는 사지를 게을리 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이요, 두 번째 불효는 장기 두고, 바둑 두며,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이고, 세 번째 불효는 재물을 좋아하며 처자만을 사랑하고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이며, 네 번째 불효는 듣기 좋은 말과 화려한 것만 보려 하는 욕망에 따름으로써 부모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다섯 번째 불효는 용기를 좋아하여 잘 다투며 사나워서 부모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그것인데, 장자(章子:광장)는 이 중에서 하나라도 있는가. 장자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착하게 되기를 요구하다가 아버지에게 쫓겨나 효를 다할 수 없게 된 것뿐이다. 이에 장자는 자신이 어떻게 아내와 자식들의 봉양을 받을 수 있겠는가에 생각이 미쳐 아내를 내보내고 아들을 물리쳐서 종신토록 봉양받지 않았으니, 마음에 결정하기를 ‘이처럼 하지 아니하면 이는 죄 중에서 큰 것이다.’라고 생각하였으니 이런 사람이 바로 장자인데, 어찌 그를 불효하다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답변을 통해 맹자가 세평에 흔들리지 않는 심지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가 비록 부정한 일을 지었다고는 하나 아버지에게 살해됨으로써 이에 부당함을 탓하다가 쫓겨나게 되자 자신도 가솔(家率)을 거느릴 자격이 없다고 해서 가정을 해체하였던 광장은 맹자의 눈으로 보면 ‘용기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광장이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전한(前漢)시대 때의 유향(劉向)이 쓴 ‘전국책(戰國策)’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장이 제나라 장수가 되어 진나라와 싸웠다. 왕은 광장의 어머니가 마잔(馬棧)에 묻힌 것을 생각하고 ‘전승을 거두면 반드시 그대의 어머니 묘를 이장해 주겠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광장은 말하였다.‘제 어머니의 묘를 이장할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께 죄를 지었고, 아버지는 어머니의 묘를 어떻게 하라는 말씀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묘를 이장하면 이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속이게 되는 것이니 감히 이장할 수 없습니다.’ 진나라와 전쟁할 때 제나라의 정탐병이 왕에게 광장이 진나라에 투항하였다고 세 번씩이나 고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속이지 않는 광장인데 어찌 살아 있는 나를 속이겠는가.’”
  • [열린세상] 성매매 현장 밖의 삶/최광기 전문MC

    뜻밖의 일이었다.“너 어떻게 살았니?”라고 물을 수도 없었다. 그저 담담하게 “너, 희야 아니니?”라고 물으며 내 기억 속에 있던 어린 희야의 말투와 모습을 떠올리며 반갑게 웃었다. 그랬다. 열두세살의 희야는 자기보다 두세살 많은 오빠와 단둘이 살았다. 유난히 눈이 크고 수줍음이 많았던 희야. 나와도 몇개월을 함께 지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 지역을 떠나면서 희야 남매에 대한 기억도 세월 속에 묻혀져 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전 성매매에서 벗어난 여성들의 쉼터인 ‘M 쉼터’에서 이제는 25세가 된 희야를 만난 것이다.10여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그 아이가 겪어야 했을 그 험한 세상을, 그 고단한 삶의 무게를 가늠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2000년과 2001년, 군산 성매매 집결지 내 업소에서 연이어 발생한 화재사건은 우리 사회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인권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등장시켰으며, 이는 성매매 방지법 제정운동으로 이어졌다.2004년 성매매 방지법이 제정되고 시행되면서 관련 예산이나 시설의 수가 늘어나고 성매매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단체들도 많이 생겨났다. 법적인 제도가 갖추어진 만큼 강력한 행정력이 갖추어져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지난 3월에 하월곡동, 속칭 미아리 텍사스촌에서 5명의 여성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의 현장에서 나는 또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과 ‘일하게 해달라는’ 여성들…. 그 끔찍한 삶의 현장에서 도덕적 잣대로만 길들여진 내가 다양한 삶을 수용하고 존중하며 함께 삶의 그림을 그려나간다는 것은 여간 혼란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성매매 현장에 있는 여성들의 대부분은 성매매를 ‘바람직하지 않은 일’로 인식하며 ‘언젠가는 그만둬야 할 일’로 여기고 있다. 성매매에 관한 사회적 비난과 낙인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여성들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성매매로 인한 폐해를 그들 스스로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부정적인 상황 인식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현장 밖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고민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특히나 학력이 낮고 상대적으로 다른 사회적 경험이 부족한 여성들로서는 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누구나 누리는 배움과 경험의 기회가 그들에게는 없다. 이들 역시 우리 사회가 확보하고 있는 ‘여성 자원’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탈출’을 시도한 여성들의 경우 당장의 주거 문제에서부터 성매매 현장에 남겨진 채무 관계며 그 안의 인간관계를 해결하고 나면,‘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과 직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긴 시간 성매매 현장에서 생존을 위해 체득된 삶의 양식을 한꺼번에 바꾸기란 쉬운 문제가 아닐 것이다. 또, 현장 깊숙이에서 벌어지는 하루하루의 삶에는 우리가 함부로 단정지을 수 없는 인권의 문제, 한 개인의 삶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회 속으로 ‘탈출’한 성매매 여성뿐 아니라 아직도 그 안에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여성들 존재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안과 밖의 거리를 좁히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그 지원의 내용과 방법이 더욱 다양해져야 한다. 그 여성들이 무엇보다도 자기에게 희망을 걸고 익숙했던 그 많은 것들과 결별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기까지 천천히, 조금씩 넘나듦이 필요한 것이다. 성매매의 대안은 그 ‘안’의 여성들을 ‘밖’으로 탈출시켜 ‘편입’되도록 하는 식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 안의 여성들은 삶의 새로운 변화가 아닌 자신의 인생의 변혁(transformation)을 치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법적·제도적 변화로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 일상에 뿌리박힌 관념과 삶의 방식을 한꺼번에 바꾸기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성매매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피해’와 ‘비난’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고민하는 것,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권리를 더욱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1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M쉼터’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찬 모습으로 자신과 닮은 여성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희야를 보며 다시 한번 묻게 된다. 나는 지금 희야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최광기 전문MC
  • ‘개똥녀’ 美서도 시끌

    |워싱턴 연합|지난 6월 한국의 인터넷을 시끄럽게 한 ‘개똥녀’ 논쟁이 미국 블로거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7일 한국의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사라졌던 ‘개똥녀(Dog Poop Girl)’ 사건은 인터넷의 힘과 함께 ‘해결되지 않은 (인터넷 세상의) 미래의 한 구석’을 엿보게 하고 있다면서 이를 둘러싼 전문가들의 분석과 블로거들의 논쟁을 소개했다. 조지 워싱턴 대학의 대니얼 J 솔로브 법학 교수는 “개똥녀 사건은 자기 개가 저질러 놓은 것은 치워야 한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규범을 담고 있다.”면서 “그러나 한 개인의 규범 위반에 대해 영구적인 기록을 갖는 것은 마치 ‘디지털 주홍글씨’로 그들을 낙인찍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집단 행동 전문가인 하워드 레인골드는 “(‘개똥녀’ 사건에 대한) 토론은 사생활권에 대한 규칙이 변화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과 함께 시작돼야 한다.”면서 “15억명이 온라인으로 감시하는 요즘 세상에는 과거의 ‘빅 브라더’가 아닌 우리의 이웃, 즉 지하철의 사람들에 대해 우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 닷컴에는 ‘인터넷 린치’를 막기 위한 관련 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과 블로거들의 행동을 옹호하고 오히려 정부의 인터넷 통신 감시를 우려하는 엇갈린 댓글이 실려 눈길을 끌었다.
  • [당정 ‘서울대 입시안 저지’] “창의력 검증 위한것 ‘위장 본고사’ 아니다”

    당정의 3불정책 법제화 검토와 관련, 타깃이 된 서울대는 논술고사 강화가 본고사 부활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6일 “우리가 대략적으로 밝힌 2008학년도 입시안에 대해 오해가 많은 것 같다. 대학의 일은 대학에 맡겨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이종섭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도 “서울대의 입시안은 교육부 원칙에 충실한 것”이라면서 “공식 의견은 더 논의를 한 뒤 발표하겠다.”고 언급을 자제했다.이 본부장은 논술고사와 관련,“사고력과 창의력을 검증하는 통합교과형 문제가 위장된 본고사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라면서 “통합형 교과형 문제가 객관식으로 출제되고 있는 수능시험과 논술고사의 방향은 똑같다.”라고 말했다.●“교육부, 논술 가이드라인 제시하라” 서강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은 교육부가 논술고사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을 빨리 제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고 입시책임자들이 해외 출장 중인 연세대와 고려대는 당정의 방침에 대해 가타부타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영수 서강대 입학처장은 “이제 막 결혼식 올리는 새색시에게 애가 왜 이렇게 생겼느냐고 말하는 격”이라면서 “교육부에서 금지하고 있는 본고사가 무엇인지, 국·영·수 위주의 지필고사라는 애매한 말 말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면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실체없는 상황서 본고사 낙인 답답” 현선해 성균관대 입학처장은 “서울대가 2008학년도 입시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정한 사항이 별로 없어 실체가 없는 상황에서 당정이 이를 본고사라고 규정한 것은 답답한 면이 있다.”면서 “정부에서 강력히 대응키로 했다면 대학들로서는 따라갈 수밖에 없으나 논술고사를 보지 않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살아남은 대우계열사] ④끝 대우인터내셔널

    세계경영의 본산,‘대우맨’의 자존심인 ㈜대우 무역부문(현 대우인터내셔널). 그러나 대우 몰락으로 분식회계의 진원지, 부정 금융기법의 대명사로 낙인찍힌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상사의 생명줄인 거래선의 이탈과 상사의 유일한 자원인 인력의 ‘엑소더스’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우인터내셔널은 기나 긴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보란 듯 다시 돌아왔다. 국내 종합상사 가운데 유일하게 수출에 무게를 둔 ‘복고풍 종합상사’로 순항 중이다. 2000년 말 대우인터내셔널이 ㈜대우로부터 분리될 때만 해도 부채비율은 940%, 차입금은 1조 3386억원으로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해 보였다. 여기에 자체 생산 기반은 무너졌고, 상품 판매망도 가파른 속도로 빠져 나갔다. 그야말로 ‘책상과 사람’만이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이태용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의 ‘고군분투’가 시작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주말마다 직원들과 북한산을 등반,CEO와 직원들간의 신뢰 회복에 나섰으며, 채권단을 일일이 찾아가 “대우의 해외 네트워크를 살려달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구조조정도 더욱 강력하게 추진했다.190곳에 달했던 해외 지사 및 해외법인을 절반 이상 줄였으며, 현금 확보를 위해 비핵심 자산은 모두 시장에 내놓았다. 또 해외근무 경험을 가진 직원들의 활약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우인터내셔널은 과장급 이상 인력 중 75%가 외국 근무 경험이 있었고, 이들의 노력으로 이탈했던 해외 거래처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결과, 총 6000여개의 국내외 장기거래선을 확보하게 됐고, 차입금은 지난해 말 현재 4854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부채비율도 142%로 감소했다. 게다가 ‘천덕꾸러기’로만 생각했던 대우의 세계경영이 대우인터내셔널의 회생에 ‘도우미’로 등장했다.2000년 대우그룹의 몰락으로 다들 몸을 사릴 때 미얀마 정부가 대우의 적극적인 법인활동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성공 가능성이 큰 미얀마 ‘A-1’광구의 개발권을 준 것. 지난해 확인된 추정 매장량은 우리나라가 연간 사용할 수 있는 가스량의 6배에 달하는 ‘자이언트급’ 가스전으로 판명됐다.2010년부터 매년 1000억∼1500억원의 배당수익을 안겨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매출과 순이익도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2001년 매출 4조 2535억원에서 지난해는 5조 172억원으로 18% 가량 늘었다. 순이익은 2001년 990억원 적자에서 지난해는 1141억원 흑자를 기록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대우인터내셔널 구조조정 일지 ▲1999년 8월 ㈜대우 워크아웃 대상 기업 선정 ▲2000년 3월 채권단과 기업구조개선 약정서 체결 ▲2000년 12월 ㈜대우로부터 분할 ▲2002년 11월 워크아웃 자율추진 기업 선정 ▲2003년 12월 워크아웃 졸업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노래인생 40년’ 기념 신곡낸 남진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노래인생 40년’ 기념 신곡낸 남진

    ‘오빠부대’에도 원조가 있다. 지난 1971년 9월16일 서울 세종로 시민회관 분장실. 당시 스물 여섯살의 젊은 가수가 초조하게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과연 관객이 얼마나 올까.’ 베트남전에 청룡부대로 참전했다가 돌아온 지 3개월 만인 데다 국내 가수로는 첫 리사이틀이라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이날 따라 부슬부슬 비까지 내렸다. 공연시작 1시간 전까지만 해도 관객의 발길이 뜸했다. 그러나 30분 전. 약속이나 한 듯이 관객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루었다. 여성 관객이 70%. 역사적인 공연이 시작됐다. 엘비스 프레슬리 의상을 차려 입은 그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노래를 불렀다. 여기저기에서 ‘오빠, 오빠’ 하는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공연은 전례없는 대성공. 이후 공식 팬클럽이 생기면서 ‘오빠부대’는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오빠부대’ 원조…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이른바 ‘오빠부대의 기수’ 남진씨. 흔히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린다. 공교롭게도 남씨와 프레슬리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프레슬리는 21세때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불러 일약 스타가 됐다. 이후 자신이 부른 노래를 소재로 한 영화에도 출연, 팬들을 사로 잡았다. 남씨 역시 21세때 ‘가슴아프게’로 스타가 됐다. 또한 자신의 노래를 영화화한 ‘가슴아프게’‘울려고 내가 왔나’‘별아 내가슴에’ 등에 출연, 더욱 인기를 모았다. 헤어 스타일이나 몸동작 그리고 하얀 가죽옷에 금속장식이 있는 프레슬리 의상 차림으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남씨는 올해로 만 60세이자 가수로 데뷔한 지 꼭 40년째. 그동안 두세 차례 공백기가 있었지만 가요 40년사를 관통하는 빅스타의 길을 흔들림없이 걸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블루스 트로트 왈츠 차차차 트위스트 등 장르를 뛰어넘는 천부적인 가창력과 특유의 무대동작은 인기의 보증수표. 아울러 숙명의 라이벌인 나훈아씨도 아직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어 둘이 함께하는 ‘빅쇼’를 기대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남씨는 ‘노래인생 40년’을 기념해 최근 신곡을 무려 여섯곡이나 내놓으며 새로운 의욕을 보이고 있다. 신곡은 ‘둥지’와 ‘모르리’에 이어 2년 만이다. 서울 여의도 모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남방셔츠의 윗단추를 두 개 정도 풀어헤치는 평소의 모습을 연상했던 것과는 달리 소탈하면서 깔끔한 옷차림었다.‘원조 오빠’의 멋은 여전히 풍겼다. 우선 신곡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지난 2년 동안 신곡을 준비하느라 무척 바빴다.”면서 원래 일곱 곡을 예정했으나 가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을 우선 제외시켰다고 말했다. 대표곡은 ‘저리가’(김동찬 작사·차태일 작곡). 지난 40년 세월을 잘 녹여 담으려고 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8월 특별무대 이어 가을부턴 전국투어 어쨌든 이번 신곡발표를 계기로 제2의 노래인생을 시작하겠다고 몇 차례 강조했다. 이를 위해 오는 8월 두시간여 동안 특별무대를 마련한다. 신곡과 추억의 히트곡, 또 잘 알려지지 않은 금지곡 등으로 팬들과 새롭게 만나겠다는 것이다. 아울러 올 가을부터 전국투어를 나서 또 한번 ‘바람몰이’에 도전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이와 관련,“노래를 시작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강산이 네번이나 변했다. 정말 세월이 덧없이 빠르다. 하지만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느냐. 데뷔 당시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소회를 피력했다. 잠시 지난 세월을 회상하던 그에게 공전의 히트곡 ‘가슴아프게’를 불쑥 꺼냈다. 그러자 “원래 제목은 ‘낙도 가는 연락선’이었다.”면서 “작사가 정두수씨의 고향이 하동이라 하동포구를 연상하며 글을 썼는데 너무 올드패션 느낌이 들어 고민 끝에 ‘가슴아프게’로 바꾸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님과 함께’는 작곡가 남국인씨의 부인이 작사한 곡. 처음에는 동요처럼 느껴졌지만 때마침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맞물려 삽시간에 남녀노소가 즐겨 부르는 국민가요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반면 금지된 곡도 여럿 된다고 했다. 데뷔하던 해에 ‘서울 플레이보이’‘울려고 내가 왔나’‘연애 0번지’ 등 신곡을 잇달아 발표했다.‘연애 0번지’의 경우 ‘달콤한 입술로 윙크하는 연애 0번지여∼’라는 노래인데 곧 ‘퇴폐곡’으로 낙인찍혀 금지되고 말았다. 또 이 무렵 발표된 ‘사랑하고 있어요’도 왜색이라는 이유로 금지됐다. 그러다 보니 기대하지 않았던 ‘울려고 내가 왔나’가 오히려 인기를 끌었던 것. 시골에서 상경해 고생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한가닥 위안을 주는 노래라는 이유에서였다. 문득 ‘라이벌 나훈아’와 합동공연 여부가 궁금해졌다. 주저없이 “팬들이 원하고 있는 만큼 내년 정도에는 (합동)공연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이제는 (팬들에게)보답할 때가 됐다.”며 웃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았지만 ‘우정’이든 ‘라이벌’이든 무대에 같이 서면 나름대로 가요계에 의미있는 바람을 불러일으키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모 언론사에서 흥미있는 조사를 했더군요. 대한민국 최고의 라이벌 1위는 ‘정주영-이병철’ 2위는 ‘남진-나훈아’라고요. 사실 나훈아는 나이로 보나 가요계 데뷔로 보나 4,5년 후배지요.‘라이벌’은 흥행사들이 만들어냈지요. 하긴 술자리나 여학교 등에서 ‘남진 팬’과 ‘나훈아 팬’이 서로 나뉘어 싸우는 일도 많았지요. 아무튼 우리 가요사에서 남인수-현인 선배 이후 최고의 라이벌이라고들 합디다. 특히 스타일과 분위기, 고향 등이 극명하게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빅이벤트감이지요.” 나훈아씨와 만나느냐는 질문에 “어쩌다 공연장에서 마주치는 경우는 있어도 별도의 만남은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목포 부잣집 장남… 해병대로 베트남 참전 남씨는 자유당 시절 국회의원을 지낸 목포 부잣집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목포 북초등학교를 나온 후 부친을 따라 서울에서 경복중학교를 다녔다. 다시 고향에서 목포고를 나온 뒤 평소의 꿈인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한양대 영화과에 진학했다. 부친이 돌아가시던 65년에 어머니(13년 전 작고)의 전폭적 지지로 가수로 데뷔하기에 이르렀다. 인기가수로서 명성을 막 날리기 시작할 때 돌연 해병대에 입대했다. 일본 공연을 앞두고 병역미필로 불발되자 곧바로 해병대를 자원했던 것. 훈련을 마친 후 청룡부대원으로 베트남의 다낭과 호이안 지역 전투에 참전했다. 여기에서 그는 일주일에 한번씩 사과상자에 가득 담길 분량의 팬레터를 받았다. 대부분 여성팬. 주위 전우들 사이에는 팬레터와 예쁜 사진을 서로 먼저 차지하려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혼에 골인한 전우도 있었다. “영화 출연은 지금까지 50여편되지요. 윤정희 남정임 문희 등 트로이카 여배우들과 자주 출연했습니다. 특히 남정임은 같은 학과 메이트였지요. 최근에는 2년 전 상영된 ‘대한민국헌법 1조’에서 신부역을 맡았습니다.” 허스키한 목소리와는 달리 스스로 ‘마마보이’라고 말하는 남씨. 그런 가정적 영향 때문인지 자녀들에게도 자상한 아버지이고 싶어한다. 남씨는 부산 출신의 여성과 결혼해 3녀1남을 연년생으로 두었다. 딸 셋은 국내에서 대학에 다닌다. 막내인 아들은 미국에서 공부 중. 남씨의 딸 사랑은 극진하다. 하루에도 십여차례 전화를 걸어 친구처럼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나눈다. 대신 해가 떨어질 무렵이면 반드시 귀가해야 한다는 엄한 규정을 정했다. ●“더욱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의 노래 부르겠다” 건강관리를 위해 자택(경기도 분당) 주변의 헬스클럽을 가끔 찾는다. 골프 핸디캡은 10정도이며, 이탈리아 칸초네와 프랑스 샹송을 듣는 취미도 있다. “(노래 부를)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경험을 잘 살려 더욱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의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본명은 김남진(金湳鎭). 데뷔 직전 문여송 감독이 ‘남쪽의 보배’라는 뜻을 담긴 ‘남진(南珍)’으로 예명을 지어주었다. 이후 가요계의 보배로 40년 동안 이름값을 했다.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5년 목포 출생 ▲56년 목포 북초교 촐업 ▲60년 경복중학 졸업 ▲62년 목포고 졸업 ▲65년 한양대 영화과 졸업 ▲65년 ‘서울플레이보이’로 데뷔,‘울려고 내가 왔나’ 등 발표 ▲66년 ‘가슴아프게’ 발표, 영화 ‘형수’‘가슴아프게’ 데뷔 ▲67년 MBC방송 신인상 수상 ▲69년∼73년 TBC방송 남자 가수상 대상 3회 수상 ▲69년∼71년 베트남전 참전 ▲71년 서울 시민회관 첫 리사이틀공연, 한국 무대예술상 그랑프리2회 수상 ▲71년∼73년 MBC10대가수왕 연속 3회 ▲72년∼77년 리사이틀 5회 공연 ▲91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장 ▲2000년 한국연예협회 이사장 ■ 대표곡 가슴아프게, 울려고 내가 왔나, 별아 내가슴에, 미워도 다시한번, 님과 함께, 그대여 변치마오, 지금 그사람은, 빈잔, 둥지 등.
  • 내부고발자 67% “자살 충동”

    내부고발자 67% “자살 충동”

    철도청에 근무하던 A씨.1998년 동료 4명과 함께 조직내 부패와 안전소홀 실태를 언론사에 알리면서 ‘내부고발자’가 됐다. 익명으로 폭로했지만 금세 신원이 노출됐고, 그것은 낙인이 됐다. 전혀 연고가 없는 강릉으로 발령났고, 징계위원회는 그를 형편없는 직원으로 평가했다. 자녀 학비 문제로 큰 빚을 졌고 부인은 파출부 일을 해야 했다. 좌절감과 생활고를 못 이긴 그는 2000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군인이었던 B씨는 97년 관행화된 군사물자 납품비리를 시민단체에 고발했다. 세 번에 걸친 전보 조치와 “잠자코 있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못이겨 그해 전역을 했다. 새로운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그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됐다. 키 178㎝의 건장한 체격에 감기 한번 안 앓던 그는 신경성 장염, 불면증, 십이지장궤양이 겹치면서 2002년 사망했다. 국내 한 재벌그룹에서 근무했던 C씨. 사내 부정을 알리면 포상한다는 시책에 따라 자재 납품 비리를 보고했지만 오히려 승진누락 등의 피해를 봤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쓰러지고 뇌출혈로 장기간 입원도 했다. 회사 이미지 광고를 볼 때마다 혐오감을 느낀다는 그는 지금도 우울증, 소화불량, 악몽에 시달린다.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 내부고발자들의 사례들이다. 정부나 기업의 불법이나 부정을 외부에 알리는 내부고발자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면서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건강이 위협받는 데서 그치지 않고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25일 서울대 보건대학원 신광식(전 참여연대 맑은 사회만들기 실행위원장)씨의 박사과정 논문 ‘한국사회 공익제보자의 스트레스와 건강문제’에 따르면 내부고발자들은 제보를 한 뒤 각종 보복을 받고 큰 경제적 피해를 보았을 뿐 아니라 신체적·정신적인 질병을 얻은 것으로 드러났다. 신씨는 2002년 말부터 1년 4개월간 국내 유명 공익제보자 9명을 인터뷰했다. 국내에서 내부고발자의 건강과 스트레스에 대한 연구가 심층적으로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연구에 따르면 8명 중 7명이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 불면증, 실신, 두통, 악몽과 같은 정신병 증상을 보였다. 또 8명 가운데 6명은 소화불량, 위궤양, 십이지장궤양, 설사, 건망증, 속쓰림과 같은 증상을 보였다. 또 9명 중 6명은 가정 및 가족 관계에서 불화가 생기는 등 ‘사회적 건강’면에서도 어려움을 겪었으며 자살하거나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 입원을 하거나 약을 복용한 경우도 9명 중 5명에 이르렀다. 그 이유는 징계·해고, 따돌림, 사법조치, 명예훼손, 물리적 테러, 블랙리스트 등재, 경제적 조치, 공갈 협박 등으로 조사됐다. 신씨는 “여러 요인 가운데 명예훼손과 따돌림 등의 경우 건강문제가 더 심각했다.”면서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호와 경제적 인센티브 외에 이들의 도덕성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장치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그는 내부고발자들에 대해 정부가 경제적인 도움뿐 아니라 공무원 대상 강연회에 초청하는 등 예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이재근 간사는 “현재 국내에는 2002년 발효된 부패방지법에만 부패신고자 보호조항이 있을 뿐”이라면서 “신분상 불이익 방지 등이 명문화돼 있지만 질적이나 양적인 면에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열린우리당 정성호 의원측에서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기업의 내부고발자까지 보호할 수 있는 내용의 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Doctor & Disease]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하규섭 박사

    [Doctor & Disease]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하규섭 박사

    “상태가 좋은 경우 2년이면 완치되는 게 조울병인데, 정부에서는 무관심하지, 의사는 우울증으로 진단하지, 가족들은 쉬쉬하며 병을 숨기거나 치료를 기피하지, 이렇게 병을 키워 ‘자살 왕국’이 된 것 아닙니까.” 의료계에서 ‘조울병 박사’로 통하는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하규섭(44) 박사. 그는 ‘이제 더는 숨기지 말고 진실을 말하자.’며 이렇게 역설했다.“치료가 필요한 조울병 환자가 전 국민의 3∼5%입니다. 대가족 구성원 중 1명은 환자라는 뜻인데, 이걸 ‘정신병’이라며 자꾸 쉬쉬하니까 낙인이 되는 겁니다. 모두 내놓고 치료받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죠.” 사태가 그렇게 심각한가. -심각하다. 조울병과 우울증에 대한 대책없이 자꾸 자살 예방하자고 떠들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특히 조울병의 경우 우울증과 달리 사전 예고나 징후없이 치명적인 자살을 시도하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자살하지 말자는 말이 들리겠는가. 그게 정상인의 자살이 아니라 병에 끌려 죽는 건데…. 조울병은 어떤 질환인가. -학술적으로는 기분의 양극단, 즉 아주 좋은 상태(조증)와 아주 나쁜 상태(우울증)를 오간다고 해서 양극성 장애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기분이 방방 뜨는 조증과 우울증이 교차하면서 나타나는 기분조절장애를 말한다. 그 병이 왜 문제가 되는가. -조울병의 우울증은 개별 질환인 우울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에 비정상적으로 들뜨는 조증이 더해져 정상적인 학교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이 병에 의한 자살도 문제다. 예컨대 조증 상태에서 앞뒤 안가리고 왕창 카드 긁었다가 못 견디니까 자살을 택하는 식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마니아(mania)’라는 말이 조증의 영어식 표기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발병 원인은 무엇인가. -뇌의 신경전달물질인 노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도파민 등이 감소하면 우울증, 증가하면 조증을 보인다. 당뇨병이 췌장 기능의 문제이듯 이 병은 뇌의 기분조절 회로에 고장이 생긴 병이다. 세간에 조울병 발병을 두고 ‘날궂이’라고도 말하는데 근거는 있나. -날궂이라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근거는 있다. 조울증 환자는 특히 호르몬 변화에 민감한데, 봄에 멜라토닌의 분비량이 줄면 조증을 보이다가 가을에 분비량이 늘면 우울로 돌아선다. 여성은 호르몬 양이 변하는 생리, 임신, 출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유형도 따로 구분하나. -조울병 1·2형과 기분장애 3형으로 나누는데,1형은 정도가 심해 입원치료가 필요한 단계,2형은 기분변화의 폭이 1형보다 작아 우울증으로 오진하기 쉬운 단계,3형은 기분의 불안정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단계이다. 유병률과 최근 발병추세는 어떤가. -가중되는 스트레스와 핵가족화에 따른 정서적 완충구조의 해체 등이 영향을 미쳐 전체 유병률이 3∼5%, 전국적으로는 100만∼200만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경향은, 이전보다 환자 수는 늘어난 반면 정도는 덜하다. 조기발견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치료에 대해서 묻자 하 박사는 완치를 특히 강조했다.“이건 틀림없이 완치되는 병입니다. 치료 예후는 고혈압보다 낫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확실히 치료하지 않으면 자주 재발하는 게 문제지요. 재발할 때마다 뇌가 손상을 입는데, 환자는 증상이 조금만 좋아지면 치료 안 받으려고 하고, 의사들은 조울병을 자꾸 우울증으로 진단해 병을 키웁니다. 현재의 우울증 환자 절반이 조울병 환자라는 예측도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정확한 진단과 첫 시도로 치료를 끝내야 한다는 겁니다. 안 그러면 만성화되니까요.” 치료는 어떻게 하나. -조울병은 어떤 경우라도 환자 개인의 의지로는 치료되지 않으며, 리튬 등 기분조절제와 올란자핀 등 비전형 항정신병 약물, 항우울제 등을 적절하게 투여해야만 한다. 치료 효과와 현실적인 치료의 한계를 설명해 달라. -약물을 2∼3주 투여하면 증세가 호전되기 시작해 2∼3개월 후면 많이 좋아졌다고 느낄 수 있다. 계속 6∼9개월을 투여하면 다 나은 것 같은데 여기가 치료의 함정이다. 환자들이 이 상태에서 치료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대부분 재발해 몸이 망가지고 치료만 어렵게 한다. 하 박사에게 자가진단법에 대해 물었다.“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일주일이 넘도록, 그것도 온종일 좋기는 쉽지 않으며, 우울도 2주 이상 계속되기는 어려운데, 이처럼 주위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조증과 우울증이 반복된다면 조울병을 의심할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유의할 점은 우울증은 잘 드러나지만 조증은 면밀히 관찰하지 않으면 간과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오진도 많고요.” 하 박사는 특히 조울병을 보는 정부의 시각과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서구의 신뢰할 수 있는 자료에 따르면 사회적 부담이 가장 큰 질환은 우울증이고 조울병은 5위에 올라있는데, 정책입안자들은 이를 일부의 문제로 치부합니다. 보호자가 감추고, 정부는 모르는 척하는 사이 우리 가족들이 복구불능의 상태로 망가지고 있습니다. 자살 예방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조울병과 자살을 따로 떼어 말할 수 있습니까? 이제 모두가 진지해야 합니다. 누구나 이 병을 앓는 사람은 ‘나 지금 우울해서 치료가 필요해.’라거나 ‘걱정마. 치료받고 있어.’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완치된 환자들이 사회적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합니다.” 그는 “우리나라 자살증가율 1위의 이면에는 이처럼 진실을 한사코 묻으려고만 하는 개인과 정부, 진지하지 못한 의사들이 있다.”며 “이제 정말 내놓고 얘기 좀 하자.”고 호소했다. ■ 하규섭 박사는 ▲서울대의대 및 대학원(박사)▲용인정신병원 정신과장▲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샌프란시스코의대 정신과 객원교수▲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전산화 인지기능검사실·우울증클리닉·조울병클리닉 담당교수▲현, 분당서울대병원 교수 겸 기획조정실장 및 전자의무기록개발팀장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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